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뻥이요, 뻥”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지난 봄 조용한 죽음이 내 마음에 슬픔의 작은 여울을 만들었다.2014년부터 서울 성북구의 몇 동네를 돌며 독거어르신들을 방문하여 쌀이나 필요물품들을 전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축복의 기도를 함께 드리는 나눔과 섬김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돌아보는 분들 중에 7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은 냉골인 단칸방에서 자그마한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셨고 휴대용 가스렌지에 밥을 해서 신김치 하나로 식사를 하시던 분이었다. 젊었을 때는 뻥튀기 기계를 손수레에 싣고 서울 강북의 동네들을 돌아다니시면서 뻥튀기 장사를 하셨고, 나이가 들어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됐을 때는 튀겨진 뻥튀기과자를 팔러 다니셨다.봉사자가 쌀 등을 드리고 잠시 이야기와 기도를 하고 돌아설 때면 할아버지는 어떤 때는 내 몸채만한 큰 비닐봉지째로 어떤 때는 한 상자 통째로 뻥튀기과자를 주시곤 했다. 아무리 받지 않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봉사하는 우리는 하릴없이 그 뻥튀기과자를 받아서 다른 독거어르신들에게 나눠 드렸다.코로나19로 대면접촉이 제한돼 몇 달을 찾아뵙지 못하는 사이 그 분은 뻥튀기 기계와 과자를 싣고 다니던 녹이 슨 손수레만 골목길에 덩그마니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검은 며칠이 지난 뒤에야 독거노인생활관리사에 의해 발견됐다. 자그마한 몸으로 한때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뻥뻥” 호령하며, 동네 주부들과 아이들에게 맛있는 주전부리를 제공하고 뻥 소리와 흰 연기의 즐거움을 나눠주던 뻥튀기 할아버지는 그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갔다.“뻥이요, 뻥!” 내 어린 시절 좁은 골목길 초입에 뻥튀기 아저씨가 들어서면 동네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곡물이 기계 안에서 다 튀겨질 무렵 아저씨가 외치는 “뻥이요 뻥” 소리에 모두들 귀를 막고 있다가 투입구를 열 때 나오는 수증기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터지는 시간을 미리 알려주니 아무리 큰 소리에도 기계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놀라지 않았다. 뻥튀기 기계는 곡물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을 튀겨냈다. 물론 쌀, 옥수수알이 가장 흔한 재료였지만, 가끔은 검정콩에 떡국용 떡, 말린 누룽지도 튀겼다. 뻥튀기는 별다른 간식거리 과자가 별로 없었던 시절에 맛도 있고 양도 푸짐한, 그러나 배는 부르지 않은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차가 막힐 때 최고의 주전부리 중 2위가 뻥튀기였다는 2007년의 조사도 있다.7월 8일 오늘은 1994년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날이다. 우리 쪽에서도 많이들 놀라기는 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봄 김일성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공식 활동이 전혀 보도되지 않자 김정은 사망설이 돌았다. 5월 1일에는 탈북자 출신의 어느 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김정은 사망을 99% 확신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김정은 위원장은 바로 북한 언론에 자신을 드러냈고, 사망설은 모두 헛소리가 됐다. 그런 말을 퍼뜨린 사람들은 ‘뻥쟁이’가 됐다.“뻥이요, 뻥” 외침은 뻥튀기 아저씨가 곡물을 튀겨낼 때만 사람에게 이롭고 즐겁다.

2020-07-07

궁즉통

사람들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흔히 떠올리는 말이 있다. 궁즉통(窮則通)이다. 주역(周易)에서 나온 이 말은 원래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의 줄인 말이다. “궁하면 변할 것이고 변하면 통할 것이고 통하면 오래 갈 것”이라는 뜻이다.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움에 처할 때가 종종 있다. 이때는 궁즉통의 말처럼 변화를 먼저 구해 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세상의 일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돌파구가 있기 마련이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서양 격언이 같은 말이다. 주역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는 하늘이 도와 이롭게 하며 오랫동안 누릴 수 있게 한다고 했다.궁즉통은 주역의 만물순환 원리 철학이 잘 드러난 표현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으면 안 된다. 변화를 통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참뜻이다.공자는 주역의 중요성을 알고 책을 묶어놓은 끈이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이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공자 사후에는 한 때 볼품없는 점술책으로 여겨져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끼지도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오경 중 으뜸으로 치고 있는 책이다. 삼라만상을 음양 이원으로 설명하며 철학과 윤리, 정치적 상황에 대한 주석도 달아 놓고 있다.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가 접한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다.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도 포스트 코로나를 극복할 숙제가 산적하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고 가는 곳마다 낯선 풍경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종의 스트레스다. 궁즉통이 코로나가 바꿔 놓은 세상에 적응할 방법은 되지 않을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7-07

희망을 기다린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나는 대학시절 20대 초반에 민족종교라는 어떤 종교를 추종한 적이 있다. 그 종교가 좋았던 점은 한국사람이 창시자라는 것, 그 분은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이 희망을 잃어버리고 도탄에 빠졌을 때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것, 전세계에 전염병이 돌 때 한국에서 깨달은 자들이 전 세계를 구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 우주의 가을이라서 사람들의 마음도 성숙해져서 깨달은 자가 많이 나온다는 것, 우리의 조상과 부모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 그리고 명상!나는 그 종교의 교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처음 경험한 명상이었다. 나는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때 당시 과학을 추구하는 심리학의 풍토 속에서 나는 나의 마음의 소리를 따랐다. 명상은 그때 당시 검증된 과학이 아니었기에 명상을 한다는 것은 다소 비주류 내지는 엉뚱한 행동에 속하던 그런 시절, 나는 명상의 가치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체험했다.명상 그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누구나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듯이 인간은 명상하지 않으면 본성을 잃어버린채 심신이 불안정해지고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쉽게 상실될 수 있다.명상은 분명히 머리속의 복잡한 생각을 잠재우고 몸의 기순환을 도움으로써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과거로부터 명상을 해왔다. 그리고 현대의 리더들도 누구나 명상을 하고 있다.그리고 일반인들도 자신들이 명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뿐이지 사실 누구나 명상을 하고 있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것, 산책을 하는 것, 그림을 감상하는 것, 음악을 감상하는 것, 등산하는 것, 기도하는 것 등이 일종의 명상활동일 것이다. 현실의 근심을 좀 내려놓고 심신이 쉬는 시간, 그 시간이 명상하는 시간일 것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 땅의 대기에 떠돌기 시작한 지 5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심리적으로 힘든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지고 일반인들도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누구나 자가치유를 해야 할 때다. 마음에 관심을 가질 때가 왔다. 명상은 부정적인 생각과 에너지를 긍정적인 생각과 에너지로 바꾸어준다. 그리고 면역력을 키워줌으로써 바이러스를 극복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국가나 지역사회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신체적 감염방지를 위한 노력과 함께 정신력 강화를 위한 정책이나 시스템을 고려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명상의 대중화도 그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명상의 대중화에 대한 제안과 함께 심리치료의 원리를 적용하여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대처방법을 제안해본다. 사람들이 심리적 문제가 생기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1.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당신의 과거가 현재의 증상을 낳았습니다.2. 긍정도 부정도 아닌 현실적인 생각을 하세요.3. 방법을 3가지로 찾아보세요.4. 교훈을 얻고 미래로 전진하세요.5. 희망을 끝까지 놓지 마시고 노력하세요.

2020-07-06

21대 국회와 조선의 선비상(像)

강희룡 서예가조선조 당대 명가의 후예로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을 했던 인물인 허균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가까운 집안 서숙(庶叔)이 면앙정 송순에게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재상 중 죽어서 서소문으로 나가는 사람은 봤지만, 살아 남대문으로 나가는 사람은 여태 못 보았네.’ 권력에 한번 발을 들이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으려 하기에 한 말이었다. 후에 송순이 개성유수를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서숙이 강가로 배웅을 나오자 송순이 말했다. ‘이제 제 발로 남대문을 나갑니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문을 나서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권력이란 원래 허망하기에 정의롭지 못한 인물은 더 큰 변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직을 내려놓는 게 순리라는 뜻일 것이다. 정승 조현명의 부인이 세상을 떴다. 영문(營門)과 외방에서 부의가 답지했다. 장례가 끝난 후 집사가 물었다. ‘부의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돈으로 바꿔 땅을 사 두시지요.’ 조현명이 ‘큰 아이는 뭐라든가?’ ‘맏 상주께서도 그게 좋겠다고 하십니다.’이 말을 들은 조현명이 여러 아들을 불러 꿇어 앉혔다. ‘못난 놈들! 부의로 들어온 재물로 토지를 사려하다니, 부모의 상을 이익으로 아는 게로구나…’ 하며 매를 몹시 때리고 통곡했다. 이튿날 부의로 들어온 재물은 궁한 일가와 가난한 벗들에게 고르게 돌아갔다. 우리사회에서 고위공직이라는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받은 축의금이나 부의금, 부동산투기로 재산형성을 목적으로 삼는 부류들이 새겨야할 대목이다.정조 때의 성대중은 그의 저서 ‘청성잡기, 질언(靑城雜記, 質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구차하게 먹는 것만 찾는 자는 짐승과 다를 게 없다. 눈을 부릅뜨고 이익만 쫓는 자는 도적과 한가지다. 악착같이 사사로움에 힘쓰는 자는 거간꾼과 다를 바 없다. 재잘거리며 권세에만 빌붙는 자는 종이나 첩과 같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권세욕과 물욕만 좇는 전형적인 부나비 유형들을 일컫는다. 조선후기 학자 홍석주가 쓴 학강산필(鶴岡散筆)에 이조판서 이문원의 세 아들이 가평에서 말을 타고 아버지를 뵈러 상경했다. 아들들이 말을 타고 온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며, ‘아직 젊은데 고작 100 여리 걷는 것이 싫어 말을 타다니, 힘쓰는 것을 이렇듯 싫어해서야 무슨 일을 하겠느냐!’ 바로 세 아들에게 걸어서 가평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다시 걸어 올 것을 명했다.세 아들 중 한 사람인 이존수는 이천보 전 영의정의 손자요 현 이조판서의 아들이지만 불호령을 받고 돌아갔다가 다시 걸어왔다. 이처럼 엄한교육을 받고 자란 이존수 또한 후에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언행과 침묵함이 법도에 맞았고, 지휘하고 일을 살피는 것이 공정하고 민첩해서 간교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속일 수 없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되자마자 수사 받는 의원들이 여당에서 50여 명, 야당에서도 상당수가 있다고 한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패거리들을 위해 이용한지 오래 된 ‘내로남불 정치판’에서 반칙과 비리로 얼룩진 패악적인 이들에게 법이 얼마나 공정하게 심판하는지 한국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2020-07-06

김용출- ‘필수적인 것’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의 삶에 무엇이 과연 필수적인가를 많이 깨우치게 되었다. 그 동안 꼭 있지 않아도 될 일들이 얼마나 많은 자원과 인력을 소모시켰는지도 조금은 알겠다.요즘 여기 토론토 시내를 관통하는 401 고속도로를 보면 옛 생각이 난다. 20년 전과 비슷한 풍경이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401 고속도로는 하루 종일 정체였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어느 시간이든 정체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교통사고가 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렇다.영업을 할 수 없는 업종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동차가 집 밖으로 나올 일이 훨씬 적어진 반증일 것이다. 문닫은 업소들의 영업도 재개되고 고속도로가 비록 복잡하더라도 코로나 사태 이전처럼 바쁘고 번잡한 일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번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말 인간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많은 활동과 자원의 소모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활화가 되고 일상이 되면 보다 쾌적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삶,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사는 삶이 된다면 그러한 삶은 모든 면에서 인간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추구하고 살아왔다. 더 많고,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즐겁고, 더 좋고, 더 건강에 도움이 되고 등, 그러다가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지 않았을까? 우리의 욕망을 줄이지 않으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한다. 필수적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면서 사는 지혜를 이번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깨우쳐 줬다 할 수 있다./캐나다 토론토시 은퇴 목사

2020-07-06

엄민재-‘경주 불국사’

오늘의 목적지 불국사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던 산과 들과 논이 알록달록 수채화처럼 예쁘게 색칠해 놓은 듯 했다. 푸르름에 반해 한동안 넋 놓고 있다 보니 불국사 주차장이었다. 오래간만에 달려간 불국사는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나와 내 친구들을 아낌없이 품어줬다. 좀 전까지 세차게 불던 바람도 갑자기 멈추었고, 접시꽃은 수줍은듯 분홍빛 웃음으로 반겼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의 단골장소였던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이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그날의 기억도 되살려주었다.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북소리가 텅 빈 불국사에 울려 펴졌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우리들만 남아서 오후의 홍차를 지인이 싸온 쑥떡과 함께 나눠마시던 참이었다. 손에 들었던 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소리에 놀란 소떼들처럼 부지런히 뛰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터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친구는 그 순간 우사인 볼트가 되었고, 그렇게 빨리 뛰어가는 친구를 따라 잡으려고 열심히 내달리는 내 모습이 너무나 웃겨서 배를 움켜잡고 달렸다.스님들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북을 두드렸다. 서너 분이 1분씩 돌아가며 치는 북소리에 내 가슴도 쿵쾅거렸고, 스님마다 약간의 리듬이 달라서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뭐라고 표현 못할 정도의 그 느낌. 북소리가 끝나자 종소리가 울리고 종소리에 화답하듯 목어와 운판이 몸을 떨었다. 그 소리들은 나를 지혜로운 사람으로, 우리를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그날은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우울했던 내가 빨강머리 앤 같은 S양, 빨간 망토 차차 같은 J양, 그리고 환한 웃음 짓는 C양과 함께한 소풍은 행복하고 또 행복한 하루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적 거리는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포항시 북구 해맞이 그린빌

2020-07-06

이한구- ‘숨쉬는 바다’

경북매일이 7월부터 시민광장 코너를 개설합니다.독자들의 일상 속 소소한 경험담과 재미있는 이야기, 나만의 레시피, 지역의 숨은 명소, 지역의 과거와 현재, 지역의 풍경과 사람, 반려동물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글과 사진을 매주 화요일 신문에 게재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200자 원고지 0.5매∼최대 5매 이내 분량의 글과 관련 사진(JPG파일)을 이메일(kbm24@kbmaeil.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에겐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경북매일신문 편집국 시민광장 담당자(054-289-5002)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한다는 것은 생성과 동시에 소멸을 의미한다. 그러한 반복들은 지형을 변화시키고 공간을 장소화하기도 한다.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초적 자연일지라도 같은 모습을 두 번 보여 주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이 닿는 자연은 그 변화의 속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나의 작업들은 이렇게 지속적인 시간의 변화 속에서, 내가 만나는 자연에 대한 탐색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서 변화무쌍하게 변화하고 있는 자연의 본질을 묻는, 그러니까 자연을 거울삼아 내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반추해보는 일종의 성찰이기도 하다. 포항 앞바다가 그렇고 내연산 청하골이 그랬다. 내가 나고 자란 포항의 앞바다는 이미 오래전의 자연 그 자체는 아니다. 바다와 더불어 숨을 쉬고 바다에 의지해 생존을 해결하던 공존 생명체의 지위를 잃은지 오래다. 우리의 산업화와 더불어였다. 그 자리는 철의 도시라는 배경으로, 도시의 확장과 함께 소비의 대상으로 이미 장소화 되었다. 요즘은 자연의 색에서 인공의 색으로 또 기억의 공간에서 욕망의 장소로,변화의 속도가 도시의 변화 속도를 오히려 견인한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나에게는 추억과 사색의 공간이다. 자연의 색에 대한 감성을 열어주고 자연을 정신적으로 인지하는 감각을 가르쳐 주는, 생명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칼로스(kalos)이다./사진작가

2020-07-06

안채현-‘더 그리운 그런 날’

나에게 2012년 봄은 특별했다. 보물 하나 내어주고 보물 두개를 얻은 슬프고도 기쁜 봄이었다.나는 언제부터인가 나비를 좋아했다.나비로 다시 태어나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던 엄마의 말이 나비를 좋아하게 만든 듯하다.나의 엄마는 곧 태어날 첫 손주를 고대하며 힘을 내 보겠노라고 암과의 힘든 싸움에서 8개월을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칠흙같은 어두운 밤 우리의 곁을 조용히 떠나버리셨다. 그 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도 당신을 잊지 않겠노라 매일 당신을 기억하겠노라 약속했더랬다.2020년 봄, 지금의 난 세 아이의 엄마, 내조 잘하는 아내로 평범하고도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라’라는 당연한 말의 뜻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왠일인가? 엄마와의 행복했던 추억들만 기억날 줄 알았는데 왜 투정부리고 화내고 짜증부렸던 일들만 기억이 나는지…. 엄마의 웃던 얼굴을 떠올리고 싶은데 늘 힘들어하던 엄마의 얼굴만 기억나는지…. 어딘가 여전히 남아있는 엄마 사랑속에 나의 부족함이 뒤섞인 탓일터. 이제 그 기억마저도 조금씩 조금씩 잃어가니 정말 안타깝다.오늘 아침 막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등원길에 신이나 앞서가던 아이가 길가 주인 모를 화분의 꽃을 보더니 뒤돌아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거기엔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앉아있었고, 아마도 나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꼬맹이가 급하게 찾은 깜짝 선물인 듯했다. 아이는 뿌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고 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엄지척을 날려주고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꽃 위에 날개를 세우고 있는 하얀 나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오늘 더욱 그대가 보고싶네요….’/포항시 북구 삼호로 391

2020-07-06

그것은 필연적인 나와의 조우… 경주 보리사(菩提寺)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에 보리사가 있다. 불국사 말사로 헌강왕 12년(886년)에 창건된 절로 남산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삼국사기에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의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서 깊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후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폐사로 남아 있던 절을 1911년 비구니 박덕념 스님이 중창하면서 지금에 이른다.수없이 화랑교를 지나다니면서도 산림환경연구원 뒤쪽 미륵골에 보리사가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접시꽃이 예쁘게 핀 작은 마을을 지날 때까지 보리사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왕대밭에 싸인 너른 주차장, 키 큰 적송들 품에 정갈하고 아담한 사찰 하나 앉아 있다.“보리사, 이름부터 참 예쁘다.”다행히 친구가 좋아한다. 소나무 아래를 걸으며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주제도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마음을 전한다. 그저 그런 나의 일상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 친구는 새로운 기법에 열정을 쏟으며 재미를 붙이고 있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살아가는 친구가 오늘따라 더 젊고 아름다워 보인다.부처님 계신 수미산을 오를 때면 무언가에 집착하고 서두르던 일상들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아서 좋다. 고만고만한 날들이 모두 감사할 뿐이다. 오늘은 친구가 여유를 가지고 멋진 영감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보리사로 향하는 우리의 걸음은 느리지만 소소한 것들로 행복하다.깊은 역사에 비해 젊고 현대적인 당우들. 하지만 고도(古都)의 도시 경주에 어울리는 경관과 품격이 느껴진다. 대웅전의 반듯한 이마와 단아한 탑과 석등, 범종각과 요사채, 소나무에 둘러싸인 석불좌상까지 어느 하나 허술함 없는 짜임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친구가 나보다 먼저 합장 반배한다.우리는 대웅전에 들르는 것을 잊고 정성스럽게 꾸며진 화단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원에는 누군가의 노고가 먼저 읽혀진다. 군데군데 수국이 주존불처럼 넉넉하게 자리를 잡으면 크고 작은 꽃들이 협시보살처럼 조화롭게 어울려 유월의 마지막은 한껏 풍요롭다. 주지 스님은 어떤 분일까?절은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하지만 생동감이 느껴진다. 덩굴을 뻗어 올라가는 호박꽃도 이곳에서는 어엿한 화초로 손색이 없다. 아침저녁 예불소리 듣고 자라는 꽃들의 맑은 낯빛이 탐스럽다. 무리 속에서 저마다 가치를 드러내는 저 구김 없는 자존감들! 서로의 향기에 어깨를 기대며 살아가는 꽃의 세계에도 부처님 말씀이 숨어 있다.잘 생긴 소나무 숲 아래 보물 제 136호 보리사 석불좌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대좌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춘 완전한 불상으로 보존 상태나 조각기법이 남산에 있는 불상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는다. 주존불의 수인이 항마촉지인이라 석가모니불로 볼 수도 있고, 뒤편에 동쪽의 부처인 약사불을 배치한 것으로 보아 앞은 서쪽의 부처인 아미타불로 보는 견해도 있다.천년을 견뎌온 불상은 어떤 아픔이나 회한의 흔적도 없이 연화좌대 위에 안정감 있게 앉아 있다. 인고의 시간들을 굳건하게 승화시킨 석불의 자비로운 미소 앞에서 누구나 두 손 모을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합장 삼배로 화답한다.조낭희수필가뒤늦게 대웅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요사채의 화려한 유리문이 붙든다. 거울처럼 반사가 심한 유리문에는 유월의 마지막 풍경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담겨 있었다. 그 광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순간 사진을 찍지 마라는 호통 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굳게 닫혀진 반사유리에는 푸른 잔디만 눈부시다. 요사채를 향해 얼떨결에 두 손 모으며 사죄했지만 반사유리가 주는 묘한 구조적인 관계에서 나는 폭력성을 느끼고 말았다.무안함과 동시에 불쾌감이 인다. 잠깐 문을 열고 훈계하였다면 훨씬 인간적인 따뜻함이 묻어났을 텐데.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저토록 꽃을 사랑하고 절을 정성스럽게 꾸민 주지 스님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절이 가진 정갈한 이미지와 경관이 싸늘하게 멀어져간다. 문턱 높은 절 앞에서 마음이 무겁다.깨달음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보리사, 대웅전 법당은 부처님 계신 불단도 화려하다. 절의 재정 상태가 넉넉해 보인다. 원고료 중 일부를 불전으로 내오던 나름의 원칙이 잠시 흔들린다. 이토록 유치하고 조잔해지는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가? 탁하고 분별심 가득한, 너덜해진 마음 앞에서 잠시 참담하다.바람 한 점 없는 법당에서 백팔 배를 시작한다. 촉촉하게 몸이 젖어 올수록 마음은 평온해져 온다. 작은 바람에도 파문을 일으키는 마음, 여전히 갈 길이 먼 나와의 조우는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법당을 나서는데 보리사의 경관은 첫 인상 그대로 정갈하고 아름답다.요사채를 피해 돌아서 나오며 연화좌대에 앉아 있는 불상을 향해 두 손 모은다. 아무도 없지만 여전히 미소 짓고 있으리라. 궂은 날에도 흔들림 없이 지을 참다운 미소를.

2020-07-06

고통과 영광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서

전달되지 않은 화해와 용서는 유효한가. 70년의 세월 동안 온 몸에 새겨진 상처와 정신적 고통들의 뿌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노쇄한 영화감독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의 매니저와 주치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32년 전 시사회에서 단 한 번 보았던 그의 영화를 다시 볼 기회를 가지면서 주연배우의 연기에 대해 그때와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된다.그 평가에서 시작해 오늘날 그를 만들었던 변곡점들을 되새긴다. 그 변곡점들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것들은 강렬하고 찬란했으며, 괴로웠으며 아팠던 것들이었다. 모두 ‘어디에서’ 왔는가에서 시작해 ‘어떻게’ 왔는가를 말한다.파편적으로 그의 과거와 조우하면서 그 기억들이 주는 양면성을 탐색한다. 바로 영화의 제목인 ‘고통’과 ‘영광’이다. 기억이 순차적으로 오지 않듯이 예고없이 치고 들어오는 회상들은 어떻게 왔는가, 즉 어떤 환경에서 떠올려졌는가에 따라 그 빛깔이 달라진다.원인없는 결과가 없듯이, 고통과 영광이 층위를 만들고 쌓아올려진 층위의 결과물로 오늘의 내가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로 이야기하는 자전적 일대기가 되는 것이다.영화 속에서 영화를 이야기하며 영화 밖에서 영화를 끌어 온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전작들이 탄생하게 됐던 이유를 만나게 되고, 그 이유가 되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다. 삶은 어떻게 영화가 됐고, 영화는 어떻게 삶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영화 밖에서 들고나던 기억은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상처가 영광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그 과정 속에서 묶여있던 과거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새롭게 작별을 고한다. 날카로웠던 집착은 무뎌지고 다듬어져 더이상 ‘상처’가 되지 못한다. 그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파격과 수다는 이처럼 부드러워지고 깊어진 것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눈빛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영화 속 영화감독인 살바도르는 어린 시절 신학교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유명한 영화 감독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게 되면서 지리를 알게 됐고,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게 되면서 해부학을 배웠다고 말한다. 영화를 통해 시야를 넓히게 됐으며, 영화를 통해 눈빛이 깊어지는 과정을 겪게 됐다.인생의 넓고 깊음이 오롯이 영화에서 기인했음을 읊고 있으며, 그 영화를 이뤘던 요소들이 그의 과거에서 시작되어 의미를 달리하며 재해석되고 새롭게 빛깔을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죽음을 향해가는 삶에 대한 과거의 작별이 아니라, 중단되지 않는 삶에 있어서 과거의 기억들이 ‘재배치’되는 과정에 대한 영화다. 유효하지 않던 화해와 용서는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직면하게 되면서 재배치 된다. 화해와 용서는 재배치를 통해 유효성을 획득하고, 고통과 영광은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 다시 출몰하여 재배치되느냐의 문제가 된다. 70년의 세월 동안 새겨진 상처와 고통, 그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되어지던 영광은 시기와 자리를 바꿔가며 재평가되어 지고 있다. 영화 안과 밖을 넘나들던 이야기들은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를 허물고, 살바도르로 분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오늘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감독의 회고록이 아니라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담은 영화가 된다.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탄성과 함께 깨닫게 된다. 영화의 안과 밖,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관계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관계 맺었음을. 삶은 취하고 버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나를 배치하느냐의 문제인 것. 극단의 고통과 영광이 자리를 바꿔 앉을 수 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네이버와 구글플레이, IPTV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0-07-06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가벼움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최근 어느 시민 단체에서 구청의 부조리를 비판한 성명서를 보며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났다. 며칠 전에는 양심을 찾으라고 모 재벌 총수를 비판하는 어느 종교 단체의 성명서가 훈장님 훈계처럼 느껴져 실소가 나왔다. 그러면서도 이런 분개는 비겁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몰려온다. 그러노라니 문득 김수영의 시가 떠오른다. 김수영은 그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언론을 억압하는 권력에는 아무 말 못하고 기름덩어리 갈비탕에만 분개하는 자신이 옹졸하다며 작디작은 자신을 자책했다.구청의 부조리나 재벌의 편법에 얼마나 분개했나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지금의 분노는 김수영이 옹졸하다고 했던 그 감정과 비슷하다. 큰일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것을 비판하는 성명서는 오만한 훈계라며 분개하다니, 옹졸하고 비겁하다는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름덩어리 갈비에 분개하는 것은 왜 떳떳한지 못한지, 성명서를 비판하는 것은 왜 정당하지 못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은 그저 화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데로 생각이 미친다.화와 분노는 다르다. 틱 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에서 강조했듯이 화는 조절해야 할 감정인데 비해, ‘분노하라’,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분노는 일으켜야 할 감정이다. 화는 정당하지 못하고 미숙한 감정이고, 분노는 정당하고 성숙한 감정이다. 성명서를 보며 일어나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화라서 부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그런데 문제는 김수영의 옹졸한 분개나 요즘 일어나는 감정이 화인지 분노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언론을 탄압하는 권력도 부당하지만 기름덩어리 갈비탕을 주는 음식점 주인도 옳지는 않다. 구청이나 재벌에게 문제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시민 단체나 종교 단체도 잘못할 수 있다.그렇다면 화와 분노를 잘못한 대상이 작으냐 크냐로 구분하는 것은 이상하다. 분노는 적절한 감정이고 화는 부적절한 감정이라면, 잘못한 대상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느냐로 옹졸한지 아닌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적절하게 표현했느냐로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중용’에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절도에 맞게 표현되는 것이 조화”라는 말이 있다. 희로애락의 감정 자체는 잘잘못이 없다. 절도에 맞느냐 안 맞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권력의 부당함에 분개하더라도 적절함을 넘어서면 좋은 비판이 되기 어렵다. 작은 일에 분개하더라도 적절하게 분개한다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김수영은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는 일이 작다고 한탄했지만, 그런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작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는 분노해야 할 일이다. 분노의 대상이 크냐 작으냐보다 그 분노가 적절한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적절하게 분노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떳떳하고 용기 있는 일이다.

2020-07-06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한국형 발사체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등이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하는 탑재 중량 1천500kg, 길이 47.2m의 3단형 로켓으로, 1단은 75t급 액체엔진 4개, 2단은 1개, 3단은 7t급 액체엔진으로 구성된다.누리호는 2021년 발사를 목표로 하는데, 누리호에 들어갈 엔진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발사체는 2018년 11월 28일 오후 4시 발사됐다.연료는 발열량이 많은 수소 대신 케로신(등유)을 사용한다. 75t 엔진은 총 150회 이상의 연소 시험을 수행했고, 누적 시간도 1만5천초를 넘어섰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내년 2월 한국이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발사체가 우주로 날아오르게 된다.우주로 갈 수 있는 로켓은 한번에 만들어지지 않고, ‘체계개발모델(EM) → 인증모델(QM) → 비행모델(FM)’순으로 개발 단계를 밟는다.체계개발모델은 엔진 없이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수류시험’을 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다. 점검이 끝나면 엔진을 붙여 지상 연소시험과 발사대 시험까지 진행하는 인증모델을 만든다. 이후 비행용 엔진을 붙여 실제로 발사하는 비행모델을 만들게 된다. 누리호는 현재 1단 체계개발모델을 이용해 수류시험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이 8월까지 완료되면 1단 인증모델에 75톤 엔진 4개를 붙여 올해 하반기에 시험할 예정이다.누리호를 우주로 보낼 발사대에 대한 검증 시험도 준비중이다. 항우연은 지속적인 발사를 통해 신뢰도를 확보하고, 성능 개량을 이어 나가 2030년까지 830kg급 달 탐사선 발사 성능을 확보하는게 목표다.우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멀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2020-07-06

포스트 홍콩이 싱가포르가 되듯이

그동안 시끄러웠던 홍콩이 마침내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지난 6월 3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전국인민대표회의(제13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0회 회의에서 출석한 162명의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국가안전유지법(中華人民共和56FD香港特別行政533A56FD家安全維持法, 이하 홍콩안전법)’을 가결하였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49호 주석령에 서명한 직후 공표된 이 홍콩안전법은 7월 1일 0시부터 시행되었다. 무려 150여 년 동안의 영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반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역사적인 1984년 영국과 중국간 합의 당시 반환 이후 최소 50년간은 기존의 사법, 금융, 경찰, 관세 제도를 유지하기로 함에 따라 ‘1국 2제도’를 탄생시켰던 홍콩이었지만 1997년 7월 1일 반환일로부터 불과 23년 만에 그 약속이 깨어지면서 홍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유일한 홍콩 선출위원인 탄 야오쫑(譚耀宗)은 30일 회의 종료 직후 홍콩 공영방송(RTHK)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안전법에는 ‘사형’이 없다고 함으로써 종신형이 최고형임을 알렸지만 그때까지 금고 10년형이 최고로 알려지던 것보다는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된 모습이다. 법안은 홍콩에서 국가 분열이나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세와 협력하여 국가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핵심은 치안 유지를 담당할 ‘국가안전유지공서’의 신설이다. 일부 외신에서는 홍콩안전법이 조기에 성립된 것은 당장 오는 9월 6일로 예정된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를 대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홍콩특별행정구 구위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18개구 중 17개구를 차지하였으나 앞으로 이 홍콩안전법 조항을 악용 내지는 확대해석할 경우 범민주 진영 인사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출마자 심의과정에서 걸러져 아예 선거 참여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홍콩안전법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 간 대립도 점차 가열되고 있다. 이 법이 가결되기 하루 전인 6월 29일 미국 정부는 기밀기술의 홍콩 수출을 억제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미국은 1992년 ‘1국 2제도’를 전제로 홍콩에 관세·투자·무역 등에 대한 ‘특별지위’를 부여하는 ‘홍콩 정책법’(Hong Kong Policy Act)을 도입, 시행해 왔다. 하지만 이 법이 폐기될 경우 홍콩은 중국 본토와 같이 품목에 따라 대미수출에 최고 25%의 징벌 관세를 부담해야만 한다. 윌버 로스(Wilbur Louis Ross Jr.)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수출 허가 예외 등 홍콩에 부여했던 특혜 규정이 중단”되었으며 “특별대우를 없애는 추가 조치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홍콩안전법으로 중국의 홍콩 지배가 강화될 경우 홍콩으로 수출되는 미국 기술이 중국군이나 국가안전부로 흘러 들어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홍콩에 관계되는 중국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비자발급 제한 조치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자오 리지엔(趙立堅) 대변인은 6월 29일 정례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중국은 홍콩지구의 문제에서 악랄한 행동을 취한 미국인에게 비자발급을 제한할 것을 결정’하였다고 밝히며 맞섰다.이처럼 국제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홍콩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특별한 지역으로 기억되었던 곳이다. 1842년 ‘난징조약’을 계기로 영국 총독의 지배를 받았던 식민도시였지만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홍콩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1954년 고 금사향이 발표하였던 히트곡 ‘홍콩아가씨’는 6·25전쟁으로 상처를 입었던 많은 국민의 가슴속 아픔을 감싸준 경쾌한 치유의 노래였다. 1960-70년대까지도 비교적 부유층 여성들에게 홍콩은 그야말로 선진 도시였고, 쇼핑의 천국이었으며, 새로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환상의 도시였다. 여성만이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지금의 50대 남성들은 홍콩 영화의 전성기와 함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소룡의 당산대형, 정무문, 용쟁호투 등 무협 액션 영화를 필두로, 1980년대에는 성룡의 취권 등이,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홍콩느와르의 상징과도 같은 영웅본색 등 홍콩 영화가 국내 극장가를 휩쓸었다. 한때 홍콩은 우리나라와 대만, 싱가포르까지 합쳐 아시아의 4마리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국 반환 이후 우리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져가게 된 것도 사실이다.한편 홍콩의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제44차 유엔 인권이사회의 화상 연설에서 “홍콩 안전법은 법을 위반한 극소수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며 홍콩 거주 압도적 다수의 생명과 재산, 기본권, 자유는 보호될 것”이라고 강조하였지만 이미 국제 금융 자본시장의 흐름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홍콩이 아시아의 국제 금융 허브로서 명성을 날린 것은 국제사회에서 영국령으로서 호주, 캐나다 등과 같은 선진국 지위를 부여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다. 50년간은 현행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던 국제적 인식이 무너지면서 오랫동안 아시아지역 금융의 허브 역할을 수행했던 홍콩의 지위가 동반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포스트 홍콩의 지위가 싱가포르로 옮겨지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지역 사업거점의 본부를 홍콩에 두고 있었던 구미기업들이 그 기능을 싱가포르로 이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3일 발표한 설문 조사결과에서도 홍콩에서 사업 중인 미국기업 가운데 홍콩 안전법에 대해 어느 정도 우려가 30%, 매우 우려가 53.3%로 나타났다. 특히 조사대상 기업의 30% 정도는 홍콩에서 자본이나 자산, 사업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것을 검토한다고 답변하였다. 포스트 홍콩으로 싱가포르가 부상하는 데는 법인세율이 17%, 개인 소득세율이 최고 22%에 불과한 과세제도도 장점인 데다 중국어와 영어가 모두 능통한 사업환경 때문이다. 실제 6월 5일 싱가포르금융통화청(MAS)이 발표한 4월말 은행 비거주자의 예금 잔액은 전년 동월 대비 44%가 증가한 620억 싱가포르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는 1991년 이후 최대 증가액이다. 싱가포르 민간은행의 외화예금도 대폭 증가하였다. 자본 유입의 진원지는 아마도 홍콩일 것이다. 이러한 자금 흐름에는 미국 등 구미기업만이 아니라 그동안 중국 본토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홍콩에 자본이나 자산을 두고 관리하고 있던 중국 부유층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개인금융 회사인 크레디 스위스, UBS 등은 물론 헤지펀드 등도 홍콩 안전법 성립을 계기로 지난 수 개월간 활동거점을 싱가포르로 옮기면서 인재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포스트 홍콩으로 싱가포르가 부상하게 된 것은 즉각적인 어떠한 정책을 내세우거나 시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평소에 그와 같은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항도 미래지향적으로 조기에 지진 특별법을 기반으로 지역의 재생, 복구, 재건에 힘써 새로운 정주 환경을 만들고, 기업의 투자와 활동에 친화적이며, 외국인들이 큰 어려움이 없이 시내를 활보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국제 항만도시에 어울리는 기반을 꾸준히 정비해나갈 필요가 있다. 어떠한 사건이, 어떠한 충격으로 인해 포스트 홍콩의 대안으로 싱가포르가 부상되는 것처럼, 포스트 주거지의 대안으로 포항이 급부상하더라도 큰 무리 없이 인구나 기업을 수용할 수 있도록./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7-05

쇠똥구리의 지혜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아주 오래전 일이다. 자료조사를 핑계로 학과 친구 몇몇과 여름맞이 시골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다들 시원한 수박을 우적우적 먹으며 평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쇠똥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똥을 굴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들 신기하다며 보는데 마침 마을 어른 한 분이 이게 참 대단한 거라며, 또 존경스럽다고까지 하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곤충 주제에 대단해 봤자지 거기에 무슨 존경까지는. 헌데, 그분 말씀의 요지가 이러하였다.오랫동안 소를 치면서 쇠똥구리를 지켜봐 왔는데, 글쎄, 꼭 자기가 짊어질 만큼만 소똥을 굴릴 뿐만 아니라, 그 굴린 똥 또한 단단하여 웬만해선 부서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잘 다진 똥 구슬을 땅속 둥지에다 옮기고 그 속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니, 다른 벌레나 새들에게 잡아먹힐 일도 없다 했다. 즉 굴릴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굴릴 뿐 아니라, 그것을 또 잘 지키는 현명함마저 갖추었으니, 욕심쟁이 인간들보다야 백 배 낫지 않는가 했다. 듣고 보니, 그럴싸 싶어, 수박 먹다 말고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지나치게 욕심부리다 패가망신한 예는 우리 고전에 수도 없이 많다. 혹 하나 떼려다가 혹 하나 더 달고 온 혹부리 영감에서부터, 금도끼 가지려 꼼수 부리다 쇠도끼마저 잃어버린 욕심쟁이 나무꾼, 애꿎은 제비 다리 분질러 온갖 재화(災禍)를 받은 놀부 등 지나친 욕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우리 옛말에 ‘욕심 많은 놈, 참외 제쳐놓고 호박 고른다.’는 말이 있다. 또, 성경 야고보서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낫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도 있다. 이는 모두 지나친 욕심이 제 살을 갉아먹음을 경계한 말이다. 바다의 해녀들은 한결같이, 욕심내지 말고 딱 자기 숨만큼만 있다 오곤 한다. 욕심부리는 순간, 물숨을 먹고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됨을 잘 아는 까닭이다. 해지기 전까지 걷는 만큼 모두 당신 소유의 땅이 되리라 하니, 과욕부리다 결국 지쳐 넘어져 자기 몸뚱이가 묻힐 만큼의 땅만 얻게 된 이야기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그럼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욕심쟁이들이 세상엔 참으로 많다. 욕심은 바로 절제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우유와 치즈 하나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였다. 그만큼 행복은 절제하고 자기 수준만큼 갖고 가진 만큼 열심히 지키는 데서 오는 법이다. 그런데 욕심 많은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한 줄 안다. 욕심이 많을수록 불행도 커지는 것을 모르는 까닭이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악을 행하는 사람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죄짓는 사람 곁에 서지 않지만, 욕심쟁이들은 쉽게 악의 무리와 결탁되기 쉬운 법이다.한평생, 참으로 짧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인생, 뭐가 그렇게 욕심들이 많아 남의 것을 뺏으려 하고, 배 아파하고, 꼼수를 써서 이미 공정한 심사에 따라 결정 난 일을 무리수를 두어가며 뒤집어엎어선 자기 것 하나 더 챙기려 하는지 모를 일이다. 불쌍한 인생들, 더 늦기 전, 쇠똥구리의 지혜를 한번 되새겨 보길 바란다.

2020-07-05

“고객님, 사랑합니다”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인간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물건 하나를 주겠다. 사용법을 꼭 지켜라. 첫째, 많이 나눠줘라. 둘째, 대가를 바라지 말라. 셋째, 돈 주고 사지 말라. 넷째, 자주 표현하라’.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인 사랑사용법이다. 하지만 인류는 사랑을 사용법대로 사용치 못하고 살고 있다. 예수님, 석가모니 부처님까지 인간 세상으로 출장(?)와서 사랑을 제대로 사용하라고 역설했지만 세상은 아직도 다툼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이다.그럼에도 맹렬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뜬다. 받을까말까 망설인다. 혹시 급한 용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신버턴을 누른다. 쟁반을 구르는 구슬소리 같은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작은 소리통을 통하여 들려온다. “…. 사랑합니다.” 느닷없는 여인의 사랑고백에 화석같이 굳어있던 중년의 가슴팍이 살짝 떨린다. 찰나의 시간에 발칙한 생각이 든다. ‘누구지?’ 떠나보낸 기억저편 첫사랑 여인의 팜므 파탈인가? 지친 영혼을 달래겠다며 퇴근길 들리던 단골 선술집의 뜸한 발걸음을 불러들이려는 여주인의 얕은 수작인가? 옆지기가 혹시 들을까 음량키를 줄이려다 잘못 눌러 더 크게 하는 대참사를 겪는다. 잠시 혼미했던 정신 줄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입자들을 귓구멍으로 몰아넣는다.“고객님 잠시 시간이 되시면 이번에 새로 나온….” 선풍기 강풍모드로 급히 돌아가는 콜센터 여직원의 말임을 알게 된다. - 어찌하랴 여인으로부터 ‘사랑합니다’란 고백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는 중년이 있으랴!- 몽환에서 깨어나고 짧은 시간 동안 외도 아닌 외도에 괜한 쑥스러움이 밀려온다. 워낙 강렬하게 내리꽂히는 ‘사랑합니다’란 말 때문이다. ‘고객님’이란 호칭 앞부분 말이 수신불능 상태가 된 것이다.가끔씩 오는 콜센터 직원들의 전화응대 예절 말 ‘고객님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데 어찌 매몰차게 전화를 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말의 진정성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얼굴도 모르는 고객을 상대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직원들의 애환을 생각해보게 된다. 회사의 방침이니 전화응대어로 사용할 것이다. 어쩌면 갖은 험한 말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제적 방어용일지 모르겠다. 물론 고객들도 그들이 정말로 자기를 사랑으로 대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물건 팔아먹으려는 얄팍한 상술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세상 최고 고운 말인 사랑한다는 말로 고객을 응대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말일 수 있다.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일지라도 숭고함, 고귀함, 아름다움이 깃든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연결되는 일은 신이 정해준 사랑 사용법 중의 하나 ‘자주 표현하라’이다.말은 의식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콜센터 사람들은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아름다운 사람일 것 같다. 척박해지는 세상살이에 빈말일지라도 가족과 이웃에 ‘사랑합니다’란 자주 표현했으면 좋겠다.콜센터 사람들의 고운 인사말에 “진짜로 사랑합니까?” 되물어 바쁜 그들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

2020-07-05

착한 소비

자린고비는 지독한 구두쇠나 인색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그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하나만 소개하면 이렇다.부모 제사에 사용하는 지방을 한번 쓰고 태워버리는 것이 아까워 고비라고 적은 지방을 기름에 절여 해마다 썼다고 하여 절인 고비로 불렀다가 이것이 변하여 자린고비가 됐다는 설이다.자린고비와 관련하여 전승되는 이야기도 지방에 따라 많이 있다. 대개 생선, 간장, 된장 등 사소한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을 주제로 하고 부부나 부자간,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에 아껴쓰는 방법을 두고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부채를 아끼는 방법으로 부채살을 하나씩 펼쳐 사용한다거나 부채가 아니라 고개를 흔들어 부친다는 이야기 등이 그런 것이다. 근검절약한다는 것은 구두쇠와 같은 맹목적인 인색함과는 다르다. 물건을 사용하되 법식에 맞춰 낭비나 방종에 따른 소비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약은 저축이란 결과로 나타난다. 오늘날 이런 저축은 노후생활이나 주택마련과 같은 미래에 대응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선비들에게 내려온 청빈사상도 이런 근검절약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의 조상은 밥 한톨도 아껴 먹어야하며 물건을 아껴 쓰지 않으면 하늘에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경제 부흥기였던 1960대 우리사회는 근검절약만이 부를 일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국민 모두가 내핍을 생활화 했다. 신발이 헤지면 꿰매신고 형에게 옷이며 교과서며 대물림을 받았다. 새 옷, 새 신 한 켤레가 사무치게 그립던 시절이 우리에게 었었다.코로나 사태가 장가화되자 정부가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범국민적 소비촉진 운동에 나서고 있다. 바야흐로 소비가 칭찬받는 시절이 됐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7-05

‘주초위왕(走肖爲王)’ 데자뷔

안재휘 논설위원선조실록에는 1519년 11월, 그러니까 조선 중종 임금 때 훈구파가 기상천외한 모략으로 젊은 개혁파 조광조를 제거한 기록이 등장한다. 궁궐 뽕나무 잎에 꿀로 ‘조(趙)의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는 뜻의 ‘주초위왕(走肖爲王)’ 글씨를 새겨 뜯어먹게 하고, 중종은 그 나뭇잎을 역모의 증좌(證左)로 삼아 조광조를 능주(전남 화순)로 유배했다가 사사했다는 역사다.몇 해 전 인하대학교 민경진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흥미로운 연구결과 하나를 발표했다. 기묘사화의 발단이 된 ‘주초위왕’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실험팀은 관악산 일대에서 나뭇잎 뒷면에 임금 ‘왕(王)’자를 써두고 곤충의 섭식 여부를 조사했지만, 벌레가 먹은 나뭇잎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조선 시대에는 소문만으로 관리를 탄핵하는 풍문탄핵(風聞彈劾)이라는 어이없는 제도가 있었다. 누군가 탄핵을 받으면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그 자리에서 물러나 조사를 받는다. 그러나 탄핵 내용이 허위로 밝혀지면 그를 주도한 대간(臺諫: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리)이 처벌을 받았다. 풍문탄핵은 골육상쟁으로 치달은 사화 비극의 촉매가 되기도 했다.여당 정치인들의 ‘윤석열 찍어내기’가 점입가경이다. 정권 초기 전 정권을 겨눈 ‘적폐청산’의 날랜 칼솜씨로 집권세력의 온갖 찬사를 받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가공할 융단폭격을 받는 중이다. 추미애 장관이 권력 핵심으로부터 ‘찍어내기’ 밀명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검찰총장을 향한 추 장관의 잇따른 발언의 품격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다만 자신의 과거 언행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 한둘이 아니어서 추 장관이 멀쩡한 이성을 지키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부르대던 그가 ‘검언 유착’이라는 네이밍으로 수사 중인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대목은 아연실색할 정도다.‘검찰 개혁’의 본질은 ‘정치적 독립’이다. 그런데 추 장관이 조장하는 검찰 내부의 패싸움은 오히려 권력에 줄 서는 ‘정치검찰’을 양산하고 있다. 윤석열 총장의 행동이 ‘항명’이라면, 윤 총장에게 반기를 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행태는 더 심각한 ‘항명’이다. 민주당은 혹여, 비망록에 ’검찰장악’이라고 써놓고 ‘검찰개혁’이라고 우기는 건 아닌가. 말 없는 윤 총장을 지지하는 국민이 늘어가는 민심을 엄중히 읽어야 할 것이다.‘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에 대한 인하대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놓고 ‘그런 사건이 없었다’고 해석하는 건 심각한 오류다. 조광조를 왕권 강화에 이용한 중종은 급진개혁에 피로를 느꼈고, 훈구 세력은 그 틈을 파고들어 역모를 조작하는 ‘풍문탄핵’으로 기묘사화를 일으켜 신진 사대부들을 제거한 것으로 읽는 해석이 상식에 부합한다. 인하대 팀의 실험은 그 시절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실험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꿀을 먹자고 글자를 따라 이파리까지 뜯어먹는 멍청한 벌레는 없다.

2020-07-05

울릉 농·어업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분다

김병수 울릉군수지난 1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대형 국책사업의 적극 유치와 주요 현안사업들의 해결 노력으로 미래 울릉 발전을 위해 성장 동력 마련’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민선 7기 공약으로 약속했던 주민 정주 여건 개선과 관광 특화를 목표로 중앙 정부 공모 사업에 적극적 참여해 군 자체적으로만은 진행하기 어려운 대형 국책사업 공모에 선정돼 주민 숙원 사업들의 단계적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또한, 전 세계적 위험요소인 ‘코로나 19’로 인해 침체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다양한 분야의 지원 시책사업을 마련했고 코로나 19 청정지역인 울릉 사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낙후된 울릉의 촌락 지역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하는 농촌 신활력 플러스사업과 도시민 농촌유치 지원사업에 공모, 선정됐다. 이는 내륙지역과 달리 체계적 발전이 어려운 울릉의 농업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농촌 신활력플러스 사업으로 총 70억 원의 사업비를 2023년까지 투입, ‘울릉 화산섬 비즈니스플랫폼 구축’이라는 비전 아래 울릉의 유·무형 자산과 민간 조직을 활용해 특화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를 추구하는 농촌형 지역혁신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또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으로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울릉군에 미래 농업 인력의 확보를 위해 2023년까지 총 6억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안정적이고 내실 있는 귀농·귀촌의 프로그램 등을 마련할 것이다.국토교통부 주관으로 공모 선정된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 기반 구축 사업’은 자연재해의 피해가능성이 상존하는 지역주민과 안전한 여행정보가 필요한 관광객들에게 ‘스마트시티 도시안전 5대 연계 서비스’를 기존의 울릉 알리미앱 등에 연계, 주민생활과 관광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총 12억 원 규모의 사업이 완료된다면 기존에 방범, 교통, 재난 등 분산 운영되던 개별 S-서비스의 통합 운영을 통해 서비스를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생활에 치명적 피해를 줄 자연재해에 대한 사전예방과 신속한 현장대응을 통해 피해를 절감할 것으로 기대된다.2019년 울릉 천부항이 어촌뉴딜 300사업에 선정된 쾌거에 이어, 서면 태하항과 북면 웅포항이 2020년 어촌뉴딜300사업에 각각 공모·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지역적 특수성을 살린 해양 관광 명소로 개발하고자 총 182억 원을 들여 진행하는 사업으로 서면 태하항에는 총 사업비 89억 원으로 해양심층수 체험센터, 황토구미 로드 등이 조성된다.북면 웅포항에는 총 사업비 93억 원으로 친수레저 해양 체험 공간 조성, 소득기반 사업, 주민역량 강화사업 등이 추진, 어업과 해양레저의 복합화를 통한 어촌의 혁신 성장 인프라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또한, 제3차 연안정비기본계획에 10년간 총사업비 1천404억 원 규모로 울릉군의 지역 현안사업 등이 반영, 태풍·자연재해에 취약한 5개 지구의 연안보호를 위한 이안제를 설치할 예정이다.이를 통해 매년 태풍으로 크고 작은 피해가 반복되는 연안지역이 재해지역에서 벗어나 정주환경이 개선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해양수산부에서 공모·선정한 이번 사업들은 기본적 인프라 및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잠재력을 발현 못 하는 울릉의 어촌지역에 혁신성장을 주도할 원동력이 돼 어촌경제 활성화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지역 발전의 가능성과 역동적인 생태환경은 울릉의 무궁무진한 성장자원이며 이러한 자원을 토대로 울릉군은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다.대형 국책사업과 주요 현안 사업들은 울릉군의 행정이 적극적으로 추진, 군민이 편안한 정주여건 개선과 성장하는 지역경제에 뒷받침할 것이다.‘코로나 19’로 침체한 경기는 다양한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는 등 울릉군민의 행복구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20-07-05

경상도 사투리를 간직해 주꾸마

“어마야, 이기 무신일이고/가시개로 끄내기를 짜르고/보루박꾸를 열었디마는/모티 있는 꿀캉 지렁도 꺼꿀고/여불때기 메루치 코짱배기에도/양가세 있는 오그락지에도/늙은 호박 몸띠 우에도 노랑 꽃가리분/중략”(구순희 시인의 ‘우끼는 택배’중)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이해 가능한 시이다. 가위로 택배박스를 자르니 꿀과 간장이 뒤집혀있고, 무말랭이와 호박 위에 송화가루 봉지가 멸치에 찔려 노랗게 덮고 있는 것을 묘사했다.백석 시인 또한 고향 사투리로 시를 썼다. ‘여우난곬족’이란 시에는 오리치(오리잡는 도구), 반디젓(밴댕이젓), 술국막질(숨바꼭질), 조아질(공기놀이)같은 시인이 살던 그 시대에 살아 숨 쉬던 말로 써서 지금의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지금 평안도 말이 백석이 노래했던 시와 같지 않고 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기록한 덕분에 평안도 사투리를 읊조릴 수 있다.사투리는 작가들에게 글의 중요한 소재이다. 자기가 나고 자란 곳의 말이기에 작가의 마음을 서술하기에 표준말 보다 더 정곡을 찌르는 표현일 것이다. 평안도 사투리가 나올 때마다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그랬더니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웠다. 사투리란 것이 입말이니 일부러 기록하지 않으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만다.어느 해 늦가을, 신작로에 나가니 저 아래 점방 근처에 사는 동네 오빠가 저만치 앞서 가는 친구를 향해 손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양아~, 여 유꾸 캤나?” 게릴라전 하는 투사들의 암호 같은 이 말은 “재양아, 너희 집 무를 캤느냐?” 라는 뜻이다. 친구이름을 줄여 양, 너희가 여, 무는 안동 사투리로 유꾸였다.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그 오빠의 말투가 재밌어서 친구들과 며칠을 깔깔거렸었다.내가 살았던 동네에서만 사용하던 말이 하나 더 있다. ‘오케라’, 친구의 말이 진짜냐고 되물을 때 사용한다. “앞 집 얼라가 꼬닥거리다가 질바닥에 온 얼굴을 갈아부쳤단다.”“ 오케라?”“ 얼굴이 그래가 아치라바 몬 보겠다.” 앞 집 애가 까불다가 길바닥에 넘어져 얼굴에 생채기가 생겼다. 진짜? 얼굴이 그렇게 되어 안쓰러워 차마 보기가 안타깝다 이런 뜻이다. 오케라는 오른손처럼 ‘옳다’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싶다. 옳게라 하다가 받침은 떼어먹고 오케라만 발음하게 되었을 거라 짐작한다.‘아치랍다’를 사전에서 찾으면 안쓰럽다의 사투리로 나온다. 하지만 안쓰럽다란 말로 퉁치기엔 뜻이 조금 모자란다. 아슬아슬한 것이 위태롭고 조마조마하고 안되 보여서 못 보겠다는 마음을 더 보태야 한다. 그렇게 길게 표현해야 아치랍다의 늬앙스를 다 담을까 말까다. 그래서 글을 쓰다 어느 순간에는 안쓰럽다 안타깝다 대신에 아치랍다라고 써 넣기도 한다. 내 글의 독자는 대부분 경상도 사람이니까 하고 말이다.김순희수필가‘다라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어라서 큰대야로 바꿔 쓰라고 하지만 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져 내게 오기까지 다라이는 큰대야와는 다른 쓰임새였다. 대야는 세수할 때나 쓰지 김장 담그려고 배추 서른 포기를 소금물에 절일 때 쓰지 못 하는 것이다. 그러니 큰대야는 다라이를 대체하기엔 조금 버겁다. 지분대다(귀찮게 하다), 기지기매지기도 없다(움직임이 없이 조용하다), 불부다(부럽다),쭉담(뜰)…….아래 세대로 내려갈수록 사투리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들을 때마다 하나씩 적어 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십상이다.20년 넘게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만 했다. 제사상도 생일상도 시키는 대로 차렸다. 하지만 이제 어머님이 안 계신다. 시부지기(슬그머니) 귀찮은 음식 하나씩 빼 먹기도 하고, 맥지(공연히) 가족들이 좋아한다는 핑계로 새로운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짜달시리(그다지) 따지는 형제도 없어 이제 집안 대소사는 내 쪼대로(마음대로) 해도 된다. 사투리도 글에 슬쩍 끼워 넣듯이 말이다. 그래도 자꾸만 어머니 말씀이 내 귓가를 맴돈다. “잘한다 잘한다카이 행주에 풀한다드니만.” 꾸중하는 소리도 얼른 받아 적었다.

2020-07-05

통합당, 아쉬운 결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21대 국회 출발부터 거대여당 더불어민주당의 힘자랑에 밀려 맥을 못추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176석의 거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원구성을 강행하고, 민주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의 비호 아래 여당의 폭거에 반발하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 의원들을 상임위에 강제배정하고, 의사일정도 단독 운영에 나선 마당이다. 급기야 38조원 규모의 3차 추경 예산도 통합당의 국회 일정 보이콧을 기화로 민주당이 3일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이쯤되면 미래통합당이 야당의원으로서 뭘 할 수 있을 지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더 큰 문제는 거대여당에 맞서서 싸워야 할 미래통합당에게 돌파구란 게 별로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미래통합당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의원직 총사퇴’를 비롯한 초강경 대응과 국회내에서 실리를 챙기며 정책투쟁을 펼치는 실리론 두 갈래 길밖에 없어 보인다.초강경 대응론은 어차피 국회 내에서의 투쟁은 안 되는 상황이니 일단 의원직 총사퇴를 하고 일당독재의 부당함을 국민들에게 호소해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가져오자는 주장이다. 야당으로서의 독기나 결기를 여당에게 확실히 보여줘 판을 새로 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국민들의 호응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경우 퇴로전략을 찾기 힘들고, 정국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 책임을 덮어쓸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또 하나는 여당의 횡포에 직접적으로 맞서지 말고 실리를 챙겨서 정책어젠다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자는 실리론이다.미래통합당은 일단 실리론에 힘을 실었다. 무작정 여당의 정책에 대해 반대와 비판만 한다고 해서 국민의 관심을 끌어올 수 없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은 듯 보인다. 그래서 이번 여당의 일방적인 국회 원구성 사태국면에서도 강경대응으로 판을 깨기 보다 3차 추경을 여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이후 국회안에서 추경예산의 불합리성이나, 공수처 출범에 대한 비판 등 명분있는 목소리와 주장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어들일 모양이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1일 페이스북에서 ‘폭주 기관차의 개문 발차, 세월호가 생각난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여당의 일방적인 원구성과 38조원에 이르는 추경예산안 부실심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 역시 역시 실리론에 맞물린 여론전의 일환으로 읽힌다.다만 미래통합당이 실리론을 선택했다 해도 야당으로서의 결기가 아쉽다는 보수층의 평가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에 나서기 전‘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라고 한 말처럼 강렬한 대여투쟁을 바라는 민심을 느껴야한다. 이는 통합당이 야당이면서도 야당답지않게 느슨한 대응을 해왔다는 질타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사실 여당이 야당을 배제하고 일당독재의 길로 달려간다면 제1야당 국회의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야당의원이라면 극약처방인‘의원직 총사퇴’카드라도 언제든지 던질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통합당에 대해 야당다운 결기를 아쉬워한다.

2020-07-02

에마뉘엘 마크롱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치 철학은 좌파와 우파를 아우른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불평등 해소와 공정한 사회진출과 같은 좌파정책을 표방한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는 전통적인 자유시장 경제주의자로서 친기업적 성향의 우파정책을 주창하는 사람이다.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좌우파로 대립된 정치게임을 종식한다는 목적 아래 중도성향의 정당을 창당했다. 사회당과 공화당으로 나눠진 프랑스의 오랜 정치구도는 그의 혁명적 노력에 의해 마침내 비주류 정당 출신의 대통령을 탄생시킨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마크롱 혁명’이라 부른다.2017년 5월 그는 프랑스 제25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의 나이 38살 때다.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 기록이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 자신보다 24살이나 나이가 많은 부인을 둔 사실이다. 학창시절 스승이었던 브리지트 마크롱과는 오랜 시간 열애 끝에 결혼에 이른다. 그의 나이 16세 때 자식 셋 달린 유부녀 선생과의 열애는 그의 대통령 당선 후 더 유명해진 일화다.그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기존 정치에 맞서 민주혁명을 일으키겠다. 이것은 프랑스를 위한 우리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정치 신인이었던 그가 프랑스 국민을 향해 외쳤던 말이다.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주자 지지율 3위에 올라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와 관련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검찰총장이 무슨 대선후보냐”며 선을 그으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같은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얼마 전 그는 백종원 외식사업가처럼 누구나 호감이 가는 인물을 대통령감으로 거론했다. 마크롱이나 백종원 같은 인물 찾기가 기존 정치권에서 과연 가능할까 궁금한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7-02

조해일 소설 ‘아메리카’

며칠 전 작가 조해일이 세상을 떠났다. 뉴스에는 났다지만 돌아볼 사람 별로 없는 조용한 타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조해일의 대표작 가운데 ‘겨울여자’라는 게 있어,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쯤 일이었을 텐데, 거기 나오는 음악 ‘노예들의 합창’ 때문에 두고두고 인상에 남았다.세대를 따져 보면 작가의 위치가 쉽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조해일은 1941년생, 그러니까 필자가 이른바 1940년 전후 출생자 그룹으로 분류하는 작가군의 한 사람이다. 이 그룹에 이청준, 이문구, 현기영, 김원일, 조정래,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있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분도 있다.조해일은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했는데, 이 점에서는 신경에서 출생한 황석영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둘 다 해방 전에 만주에서 출생하여 해방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해방과 6.25 전쟁을 겪은 한국 현실에 적응하며 성장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조해일은 지금껏 대중적인 작가, 상업적인 작가라는 말을 굴레처럼 쓰고 있는데, 작품들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작가라는 사람들 가운데 대중적, 상업적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나? 그런 ‘순수’ 작가는 안 팔리는 작가거나 실력 없는 작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정말 ‘순수’ 세계를 구축하는 고독한 작가 정신의 소유자는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조선작, 조해일, 최인호 같은 작가들에 덧씌워진 이 ‘금고아’를 시험해 볼 생각인데, 이미 대학원에서는 그런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조해일 작가의 별세를 계기로 필자는 그의 몇몇 대표작들을 다시 읽는다. ‘뿔’이며, ‘멘드롱 따또’며, ‘아메리카’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다들 수준 높은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그 가운데서도 ‘아메리카’는 문제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들이 아파트 붕괴로 몰살당하는 아픔을 뒤로 하고 제대 후의 삶을 당숙에게 의탁하러 간다. 당숙이 미군 상대 클럽을 운영하는 곳의 이름은 ‘ㄷ’ 시인데, 이니셜을 살려 말하면 실제의 ‘동두천’쯤 된다.미군이 삶의 ‘원천’이 되어 있는 이곳에서 주인공 청년은 ‘양공주’들의 ‘별난’ 세상을 체험한다. 이 세계에 대한 풍부하고도 현실감 있는 묘사는 이 작가의 작가적 수업 과정이 탄탄했음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작가는 가고 작품은 남는다. 필자 또한 그 작가의 한 사람임을 생각하며, 과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였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7-02

방하착(放下著)

김병래시조시인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려고 혼자 산속에 들어가 살다보니 어느 샌가 암 덩이가 사라져 버렸다는 얘기를 더러 듣는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삶에 대한 미련조차 버렸을 때, 오히려 죽음이 비켜가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방하착(放下着)이 진리인 까닭이랄까. 예수도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 ‘자기를 버린’ 기독교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물론 진정 하심(下心)을 가진 불교도를 보지도 못했다.텔레비전 종교방송에 나오는 유명 설교(설법)자들도 대다수가 덕지덕지 아집과 독선에 찌든 모습이었다. 입으로 청산유수 경전과 교리를 말하는 사람일수록 아집과 독선의 도그마에 더 깊이 빠져 있는 걸 보게 된다. 사도 바울이 깨달은 예수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비록 천사의 말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고, 관자재보살은 오온(五蘊)이 다 공(空)임을 조견(照見)하고 일체고액(一切苦厄)을 건너 구경열반(究竟涅槃)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空)이고 무(無)인데 무엇에 집착을 하고 무얼 안다고 잘난 체 하는가, 다 내려놓으라는 것이다.교인들의 헌금으로 호의호식하고 치부(致富)하는 목사들, 정치적 이념에 함몰되어 사리분별을 못 하는 신부들, 주지자리를 놓고 유혈난투극을 벌이는가 하면 신도들 시줏돈으로 룸싸롱에 드나들고 도박판을 벌이는 승려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지렁이들보다 무얼 잘 안다는 자들이 사실은 예수나 붓다에게서 훨씬 더 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랑이란 그저 사랑하는 것이고, 공(空)은 무(無)일 뿐인데 도대체 무얼 알고 뭐가 잘났다는 것인가, 일찍이 노자(老子)는 도(道)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도(道)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도니 법이니 떠들어대는 자체가 부질없다는 것이다.무얼 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속박이고 감옥이라는 걸 깨닫는 일은 쉽지가 않다,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보다도 더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 ‘안다’는 독선과 아집이다.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창녀나 도둑놈들이 목사나 승려들보다 오히려 예수나 붓다에 더 가까울 수 있는 까닭이다.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처럼 기독교나 불교의 교리나 제도에 얽매이지 않을 때 오히려 진면목이 보이는 게 아닐까.종교계가 그럴진대 정치판이야 오죽할까. 권력에 눈이 멀고 당리당략에 함몰되면 아집과 파렴치의 화신이 되기 십상이라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권력의 칼자루를 쥐면 법이고 윤리고 다 팽개치고 자기편이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비호하고 밀어붙이는 후안무치가 판을 치고 있다. 검찰이 지난 정권의 비리에 칼을 휘두를 때는 박수를 치더니 그 칼끝이 자신들을 겨누자 온갖 협박과 중상모략으로 검찰총장을 쫓아내려고 혈안이 된 정부와 여권의 작태가 참으로 악착스럽고 노골적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쯤에서 그만 내려놓기 바란다.

2020-07-02

미국서 겪는 코로나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전세계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로 난리법석이다.가족행사에 참석차 급히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그 넓은 주차장에 차가 거의 보이지 않고 공항은 완전히 유령공항처럼 변해있었다. 98% 승객이 사라졌다고 하며 일일 탑승객이 작년의 2%에 불과하다고 한다. 공항에서는 두 번이나 발열체크를 하고 철저한 방역을 했다. 항공사가 운영하는 라운지도 뷔페식사를 모두 없애고 간단한 음료수만 제공하고 있었다. 철저한 방역이 힘들지만 안심을 주기에 충분했다.미국 애틀랜타로 가는 비행기는 좌석의 1/3 정도인 100명 정도의 승객이 있었다. 항공기 안에서 되도록 떨어져 앉고 모든 탑승객과 승무원은 마스크를 써야 한다. 어떤 승객은 바이러스 검사원처럼 전신에 보호복을 입고 이중삼중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그러나 애틀랜타 공항에 내리니까 상황이 바뀌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입국수속도 전과 같았고 특별한 발열체크도 없었다. 입국자의 자가 격리도 각자가 알아서 하는 시스템으로 보였다.이 두 나라의 코로나에 대처하는 시스템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결국, 미국은 오늘 일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5만2천명을 넘어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미국의 누적 코로나 확진자 수는 이날 현재 250만을 넘었고 사망자는 12만이 넘었다. 최근 며칠 동안 미국의 일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계속해서 4만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한편 한국은 일일 확진자가 50명 안팎의 수준이고 총 확진자 1만2천여명, 사망자가 280명 수준이다. 미국 인구가 3억3천만, 한국인구 5천만으로 보고 크게 잡아도 미국이 7배 정도로 인구가 많다. 하지만 일일 확진자는 1천배, 총 확진자는 200배, 사망자는 400배 정도이다. 확진자 대비 사망률도 미국은 5%, 한국은 2% 정도이다.미국에 오니 사람들이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듯하다. 공항이나 호텔의 종업원들은 마스크를 쓰지만 일반인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모양새다.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백신 초기 실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포스텍 성영철 교수가 이끄는 제약회사 제넥신은 터키 제약사와 백신 ‘GX-19’를 공동 개발하는 업무협약(MOU)을 맺고 현재 국내에서 GX-19의 임상 1상 시험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그러나 아직 치료제와 백신개발이 예측을 불허하는 상태에서 한국 미국 두 나라 시스템의 차이가 흥미롭다.아마도 총기를 자유화 하는 미국과 총기를 규제하는 한국의 차이일 수도 있다. 희생을 무릅쓰고도 개인의 자유를 더 중요시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화적 철학적 차이일 지도 모른다.생각에 따라서는 미국과 한국을 비교해 보면 한국이 지금 이 코로나 상황에선 훨씬 더 선진국의 반열에 들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코로나 예방 말고 정치와 교육, 사회 이런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가 미국을 앞서는 선진국이 될 수는 없을까?

2020-07-02

니르바나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절집에서 아침 저녁 널리 독송되는 경이 ‘반야심경’이다.본래의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이 뜻은 ‘지혜의 빛에 의해서 열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이란 뜻이다.반야심경은 수백 년에 걸쳐서 편찬된 반야경전의 중심 사상을 270자로 함축시켜 서술한 경으로 불교의 모든 경전 중 가장 짧은 것에 속하며 불교의 모든 의식(儀式)에서 반드시 독송되고 있다.반야심경의 중심 사상은 공(空)이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므로 현상으로는 있어도 실체·주체·자성(自性)으로는 파악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공은 개개인의 참된 마음이다. 걸림 없는 마음, 공포가 없는 마음, 교만하지 않는 마음, 영원히 맑고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마음이며 부정을 겪어 그것을 넘어선 대긍정의 마음이다. 여기서 평화와 통일과 자유와 해탈이 모두 유래됨을 이 경전을 통하여 자각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삼라만상은 독립되어 있는 개별적 존재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러한 근본 원리를 깨쳐 하늘에 구름이 끼어 해가 보이지 않아도 그 속에 해가 들어 있음을 알아차려 세간의 어려움 속에서도 청정심을 잃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에서는 끊임없이 파도가 일었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파도는 이렇게 생멸(生滅)을 거듭하면서 존재하고 있다.이것이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세계다. 현상적으로 보면 바닷물과 파도는 다른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바닷물과 파도가 다르지 않듯 하늘과 구름, 인간과 자연도 서로 다르지 않은 불이(不二)의 세계이다.나의 육신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날마다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파도와 구름들이 물(水)과 하늘로부터 분리될 수 없듯이, 나의 모습 또한 사실은 늘 다른 모습이면서도 결국 다르지 않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나, 그것이 오늘 ‘나’의 모습이다.나 또한 물처럼 흘러 구름처럼 흘러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물체처럼 시공간에 매여 있는 고정된 내가 아니라 주변의 인(因)과 연(緣)에 의해 늘 새롭게 ‘되어지는 존재(inter being)’. 그래서 오늘,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하고 존재론적 자문을 하게 된다.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영원 속의 한순간처럼 우주 속의 한 원자로 살아가고 있다.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그 영원한 니르바나, 저 언덕에서 손짓하고 있는 피안의 중도(中道)를 다만 지향하고 있을 뿐이다.

2020-07-01

내일은

윤순옥수필가코로나19 감염증 재확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인지 확진환자가 늘고 있다. 며칠 잠잠하던 코로나 관련 뉴스를 보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나 싶어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최초 환자 발생으로부터 4개월이 훌쩍 지나도록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평범한 일상은 더욱 기약이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이토록 간절한 일이 될 줄이야. 자유롭던 만남이 꿈결같이 아득하다.사람이 그리워 텔레비전을 켠다. 화면을 통해 만나는 사람이 반갑다.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즐기지 않는 내가 드라마를 챙겨보고 토크쇼를 보며 웃는다. 일면식도 없는 연예인들의 가정사도, 연애사도 마치 가족 일처럼 즐거워 웃고, 안타까워 눈물짓고, 억울해서 화가 난다. 쇼 호스트의 하이 톤에 이끌려 홈쇼핑을 시청한다. 마실 다니듯 쇼핑 채널 몇 개를 돌다보면 필요한 물건이다 싶은 걸 만나게 된다. 매진 임박에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는 도중에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서둘러 주문하기를 누르고, 결제를 끝내고, 확인 메시지를 받은 다음에야 안심이 된다.텔레비전을 보면서 충동구매가 늘었다. 입을거리, 먹을거리, 생활용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여러 번 고민하고 구입하던 습관이 변한 것인지 안사면 후회할 것 같은 상품도 정작 받아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하기 쉬운 음식은 어쩔 수 없지만 옷이나 생활용품은 교환이나 반품을 하게 된다. 우리 집 택배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딩동! 초인종 소리는 늘 반갑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택배기사가 최근 우리 집에 오는 일이 많아졌단다. 특히 이 번 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들렀다며 오래 드나들면서도 필요 없는 말을 삼가던 그가 몇 마디의 말과 함께 땀 냄새를 남기고 사라진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가 멈출 줄 모르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했고 급기야 배송 날짜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었다. 이 시국에 나까지 한몫 했으니…. 제 발 저리 듯 뜨끔 한다.며칠 전, 이른 한여름 더위가 찾아왔다. 침구를 시원한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설 명절 때 다녀가고 집에 오지 못 했던 큰아들이 기말시험 끝나고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은 뒤라, 큰아들 방을 정리할 때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방을 돌며 침대 커버와 요를 교체하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칙칙한 요에 눈이 간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침대 요 두 장을 또 주문했다.주문할 때 들뜬 마음은 풍선 바람 빠지듯 하는 것인지 며칠을 깜빡 잊고 지냈다. 카카오톡 알림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윤순옥님 자연염색 60수 침구 업체 이브리다 입니다.’로 시작하는 택배 지연 안내문이다. 발송 처리된 건들이 현재 택배 사에서 이동 움직임이 없어 하루나 최대 삼 일 정도 지연된다는 사실을 알린다. 기다릴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일일이 연락하게 되었고, 꼭 상품으로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보태고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까지 남긴 후 긴 글이 끝이 난다. 행동이나 말이 과하다 싶으면 불편한 순간을 넘기기 위한 제스처인 경우가 많은데 관계자의 글 곳곳에서 진심이 묻어난다.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은 가장 큰 위로이며 희망이다. 지금 우리는 끝도 모르는 긴 터널을 달리고 있다. 답답하고 불안한 상황을 이해와 인내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바이러스와 가장 가까이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 방역관계자, 그리고 안전한 일상을 위해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국민들 모두 툭, 건드리기만 해도 참고 있던 것들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택배 지연에 따른 침구업체에서 보내온 글을 고객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로 여길 수 있으나 내가 받은 문자에 담긴 것과 같은 작은 진심들은 유래 없는 위기 상황을 이기는 힘이 된다. 여린 빛을 내지만 결국 그 한줄기 빛이 모여 긴 터널을 뚫고 나가는 동력이 되리라. 내일은 밝은 태양 아래 말끔한 얼굴로 너와 내가 마주 서 있기를 소망한다.

2020-07-01

스칼라 산타, 계단

블로그 알림창이 뜹니다. 3년 전 오늘 날짜에 올린 당신의 글을 확인하세요.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방치해둔 온라인 공간에서 짧은 글과 함께 사진 몇 장이 보입니다. 로마 스칼라 산타 주변 몇 컷에다 헬레나 씨 부부에 대한 단상이 적혀 있습니다. 스쳐지나가든 오래 곁에 머물든, 따뜻한 인연들과의 시간은 늘 여운을 남깁니다. 정작 본인들은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낌새조차 의식하지 못하겠지만요.여행에서 헬레나 씨 부부와 저는 같은 조원이었습니다. 초로의 헬레나 씨 남편은 차에 오르면 제일 먼저 일행의 간식이나 안부를 챙겼습니다. 내릴 때면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떨어진 쓰레기를 줍곤 했습니다. 좋은 것의 덤은 양보하고, 궂은 것의 덤만 갖는 게 몸에 밴 분 같았습니다. 그게 못마땅한 헬레나 씨는 잔소리를 했지만 그게 더 다정해보여 일행들은 웃곤 했습니다.티볼리 숙소 근처의 난전부터 얘기해야겠습니다. 체리와 납작복숭아를 비롯한 과일, 올리브 무늬 원피스와 바람막이용 스카프 같은 입성, 느긋하면서도 활달한 현지인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인 감흥들이 넘쳐났습니다. 저토록 황홀한 풍경을 두고도 가이드는 호텔 밖 출입을 불허하겠답니다. 마감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 책임지고 싶지 않은 속내를 ‘해 저물면 위험한 곳이 여행지’라는 말로 에둘러 말했습니다. 밤이 오려면 멀었고,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저와 헬레나 씨는 어스름의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이국의 풍광에 너무 취했을까요. 눈 깜짝할 새 지나던 세단과 맞부딪쳤습니다. 헬레나 씨는 엉덩이를 차문에 부딪쳤고, 저는 달려드는 범퍼를 저지하느라 오른손목이 살짝 꺾였습니다. 중년의 운전사는 미안한 내색은커녕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멀어지는 차 꽁무니를 보면서 화가 나기보다 창피함이 몰려왔습니다. 외출을 삼가라던 가이드의 단호한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헬레나 씨와 저는 동시에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일탈의 벌로 얻은 상처와 난처함에 대해 비밀을 공유하게 된 것이지요.다음날 헬레나 씨가 말했습니다. 어제저녁 시장에서의 일은 입도 뻥긋 안 했어. 근데 내 얼굴빛이 안 좋았는지 남편이 자꾸 무슨 일 있냐고 물어. 걱정 마. 작은 고통에서 큰 기쁨까지 온 인류를 위해 기도했대.그제야 전날 스칼라 산타에서의 헬레나네 아저씨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스칼라 산타’는 거룩한 계단이라는 뜻입니다. 저마다의 사람들은 ‘거룩한 계단’을 무릎걸음으로 오릅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고 자신의 죄를 돌아보는 의미입니다. 제 여행의 의미 가운데 하나도 그곳에서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대리석을 감싸는 나무 계단을, 이방의 여행객에 묻혀 천천히 기어오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심과 결과는 다른 법. 카메라가 무겁고 가방도 맡길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핑계를 대며 무릎을 꿇지도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무릎걸음용 오른쪽 계단 대신 도보용 중앙 계단을 선택해, 착실한 여행객들이 묵언의 무릎으로 올라 반들반들해진 성단을 셔터에 담았을 뿐입니다.김살로메소설가와중에 헬레나네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희를 훌쩍 넘긴 분이, 아픈 무릎을 꿇고 한 계단 한 계단 2층 예배당 입구를 향해 오르고 있었습니다. 빨판을 잃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하지만 작정한 듯 내딛는 아저씨의 무릎걸음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너무 애잔하고 진지한 그 구도의 시간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그 무엇이었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연민이나 구차함의 감정이 제 안에 아주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타자의 고난을 공감하고 내 하루를 반성해야 하는, 실체적 행위를 거른 자의 자기합리화가 발동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명한 그림 같은 그 기도 속에 제 안위도 포함되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헬레나네 아저씨의 기도 덕에 제 일탈의 벌이 그 정도에 그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복만 기원한 끝에 곁다리로 끼워주는 기도가 아니라, 온 인류가 우선인 소망을 기도한다는 아저씨의 진실함이 통하지 않을 리 없었겠지요. 그만하기 다행이다는 말은 그냥 생기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하기 다행일 수 있도록 부지불식간에 누군가는 길을 잡아주고 배경이 되어 줍니다.손목의 욱신거림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날 스칼라 산타의 시간만은 아슴아슴할 때까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진지한 믿음과 이타적 자애로 가득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삶 자체가 충만합니다. 그들은 계단을 오르기 전에도 이미 성실하고 친절했지만, 계단을 오르면서 그 마음들은 더욱더 이타적으로 승화합니다. 누군가의 따스한 수고나 진심어린 선의 덕에 우리의 삶이 다사로워진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을 제 것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것 또한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뜨끔해지곤 합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 앞에서 지키지 못한 약속들, 꼭 그리해야지 해놓고 현실에 닿으면 미적대고 망설인 날들이 하 몇 날인지요. 반성문을 되새김질하기도 전에, 어리석게도 저는 또 다른 여행을 꿈꿉니다.

2020-07-01

홍콩 보안법

홍콩 국가보안법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처리돼 2020년 6월 30일 밤 11시(현지시간)부터 시행된 법안으로,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은 물론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하는 기관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중국은 홍콩 반환 23주년 기념일(7월1일) 1시간 전에 법 시행과 동시에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전문을 공개했다.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또 주요 사안의 관할권은 중앙이 가지는데, △외국 세력이 개입했거나 홍콩 특구 정부가 효과적으로 법 집행을 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는 중앙정부가 설치하는 홍콩 국가안보처(홍콩 주재 국가안보공서)가 관할권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홍콩의 공직 선거 출마자나 공무원 임용자는 반드시 중화인민공화국에 충성 맹세를 하도록 했으며, 학교와 사회단체·미디어·인터넷 등에 필요한 조치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국가안보 교육도 시행하도록 했다. 홍콩의 법률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따라 기본적으로 홍콩 의회인 입법회를 통해 제정되지만, 국방·외교 등 홍콩 정부의 업무 범위 밖의 법률에 대해서는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홍콩 정부와 협의해 추가·삭제할 수 있다. 홍콩보안법 시행은 사실상 중국이 2047년까지 홍콩에 보장해온 일국양제 원칙을 부정하는 것으로, 향후 홍콩이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급속히 편입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의 강권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의 충돌로 이어지니 걱정스러울 따름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7-01

보이지 않는 것들

장규열 한동대 교수봄을 건너 여름이다. 봄이 왔을까 싶었을 적에 우리를 찾아왔던 코로나19는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다.과학기술이 세상을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믿었던 인류는 더없이 절망하고 있다. 우선 보이지 않는다. 현미경으로 본다고 해도 사람의 솜씨로는 어쩔 수 없는 존재 앞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리칠 방법과 약을 찾는다 해도 수다한 환우들이 고통과 함께 이미 스러져 간 다음이 아닐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코로나19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은 인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것일까. 까닭없는 역사가 실제로 없다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과학과 이성이 문명을 추동하며 모더니즘이 만개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엉뚱한 악한을 만났다. 백약이 무효인가 손쓸 겨를도 없이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됐으며 수십만이 목숨을 잃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인지 알지 못하며 그가 얼마나 더 오래 머물 것인지 누구도 모른다. 다 아는 것 같아도 실은 그다지 모른다는 게 현실이 아니었을까. 다 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문명의 탑을 높이높이 쌓았지만 이제는 좀 낮아지라는 자연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깨우치지 못하면 그는 떠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보이지 않는 악한은 바이러스뿐일까. 몸 안으로 침투하는 코로나19 만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미움’이 있다. 모든 종교가 사랑을 가르치지만 여기 세상은 미움을 키우고 있다. 미움은 혐오가 되고 단절이 되며 차별도 하고 배제도 한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와 다르지 않듯이 그 누구도 그의 존재 탓에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데. 미국이 가진 인종차별 문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조금씩 다르다는 건 차라리 반기고 어울려야 할 다양함과 풍성함을 주지 않는가. 싫어하고 미워하며 돌던지고 멀리하노라면 끝내는 외톨이 나 자신만 남지 않을까.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어차피 없는데.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배운다. 바이러스에게 겸손함을 배우고 미워했던 기억들로부터 함께 어울려야 하는 까닭을 배운다. 겸손과 화합을 장착하면 세상은 또 얼마나 성큼성큼 나아질 것인가. 무한경쟁에 상처입지 않고 낮은 자세로 서로를 살피는 세상. 보이는 사물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에 주목하는 세상. 단절과 반목으로 편가르지 않고 화합과 협력으로 함께 하는 세상. 문명이 성취한 빛나는 토대 위에 새로운 진전이 그렇게 다가왔으면 한다.돌아보면 이미 깊이 들어와 있는 21세기이다. 백년 만에 닥친 바이러스의 소리없는 공격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세상을 지나면서, 우리는 낮아지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챙겨야 한다. 세상이 아직도 이 모양인가 싶어 부끄러워 진다. 미움과 차별로 가득한 모습은 이제 벗었으면 한다.코로나19가 지나갈 즈음, 뉴노멀로 다가올 세상은 겸손과 화합으로 그득하길 기대해 본다.

2020-07-01

속절없는 교육부 시계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절기는 하지(夏至)를 지나 소서(小暑)로 향하고 있다. 소서를 글자대로 풀이하면 작은 더위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규칙대로 움직일 때의 일이다. 철을 잊은 인간 사회에는 더 이상 절기의 의미가 없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뉴스가 있다. 제목은 “겨울왕국 시베리아, 이상 고온으로 38도 폭염”이다. 제목만 보면 뉴스 제목이 아니라 환경 재앙 영화 제목 같다.“북극권에 속해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꼽히는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40도에 육박하는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겨울철 기온이 영하 50도 밑으로 떨어지는 (….)”영하 50도에서 영상 38도의 온도 차를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산술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온도 차에 시베리아 지역의 생명체들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철 잃은 사회가 다시 절기에 맞춰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서에 대해 좀 더 알아본다.소서에 하는 대표적인 농사일은 논매기이다. 이때를 놓치면 논은 잡초로 뒤덮인다. 그러면 한 해 농사는 망치고 만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소서 때는 새 각시도 모심는다.”이다. 속담의 의미처럼 예전 소서 때에는 갓 시집온 새색시조차도 일을 거들만큼 바빴다고 한다.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논매기라는 말이 참 낯설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지역에서조차 보기 힘든 광경이 논매기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는 하지만,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자연의 순리대로 살던 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새로운 것에 대한 무 조건적인 거부는 있을 수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명 변화도 필요하다. 변화에도 규칙과 조화와 양심이 있어야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 만이 모두에게 행복을 준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기형적이다. 그 기형에 지구와 인간이 불 파고 있다.최근 필자는 기형적인 뉴스를 보았다. 제목은 “교사들 아프면 쉬어라, 교육부, 학교에 지침 재강조”이다. 속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교육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낼 수도 있다. 필자는 교육부에 묻고 싶다. 대안학교 교사도 아프면 쉬어도 되는지! 교육부의 답을 알기에 굳이 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 교육부 답은 “대안학교는 스스로 알아서 하세요!”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교육부의 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행정 명령을 어겼다고 엄포를 놓는 곳이 이 나라 교육부이다.문재인 정부의 국가 비전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다. 이 말을 볼 때마다 “정의”의 뜻에 대해 생각한다. 정의(定義)! 과연 이 나라와 교육부에 정의가 있을까?벌써 7월이다. 다들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가 그나마 지금처럼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감을 못 잡는 곳이 있다. 교육계이다. 무늬는 수업이지 실상은 학생들을 학교 대신 학원으로 내모는 괴이한 수업이 바로 온라인 수업이다. 가르침은 없고 과제만 있는 과제 수행 중심 온라인 수업은 수업이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도 교육부는 들을 생각이 없다. 소통은 없고 아집만 있는 교육부 시계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무색하게 만들며 오늘도 속절없이 잘 가고 있다.

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