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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 어게인’의 이유? - 추종의 원리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구속됐다. 12·3 비상계엄 이래 한국 사회가 받아들여야 했던 거대한 손실을 생각하면 통쾌해야 마땅하겠으나 외려 수치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윤 어게인’ 따위를 외치며 극우적인 행태를 보이는 자들이 제1야당을 점령하고 있는 꼴을 봐야 한다는 게 괴롭기도 하다. 한국 보수 정치의 수준이 이토록 처참했나 싶다. 대체 저이들은 어떤 이유로 구치소에 갇힌 대통령 내외를 여전히 지지하는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윤건희’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런 광경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도 ‘박사모’나 ‘태극기 부대’, ‘어버이 연합’ 등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오직 한 정당만을 혹은 특정한 권력자만을 바라보겠다는 ‘어용 국민의 탄생’에 관해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를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거의 신앙에 가까운 반지성적 추종의 원리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에 관해 연구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지도자가 대중들의 민족 감정에 조응하여 실제로 민족의 화신이 될 때 대중들은 지도자와 개인적 유대를 생성한다고 한다. 그 지도자는 대중 개개인에게 정서적인 가족적 유대를 형성하면서 엄격하지만 보호를 제공하는 아버지상을 구현한다. 독재자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보호를 받으려는 대중의 이러한 태도와 지도자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이다. 이때 문제는 대중들 개개인이 ‘지도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 보호에 대한 아이와도 같은 욕구는 지도자와 하나가 된다는 감정의 형태로 더욱 위장된다. 이런 동일시 경향이 민족적 나르시시즘, 즉 개인들이 ‘민족의 위대함’에서 빌려온 자존심의 심리적 토대가 형성된다. 이제 대중은 지도자와 권위주의적 국가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동일시에 기반하여 그는 자신이 ‘민족성’과 ‘민족’의 방어자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어버이들’ 역시 대체로 산업화의 주역으로서 자기에 대한 자부심을 ‘제왕적 카리스마’를 내세운 통치권자에 대한 순종적 존경으로 이행시키곤 한다. 나아가 바로 그렇게 형성된 지지의 확장을 역으로 자신들의 권위로 인식하는 전도된 상상에 의존하며 남은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 어게인’을 외치는 오늘날의 (특히 남성) 청년들의 정신 구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최근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공정 담론의 보수적 귀착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공정이란 경쟁을 사회 발전의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여야만 작동하는 가치형태이다. 경쟁의 조건은 갈수록 열악해지는데, 다툼의 시장엔 상대가 너무 많다. 여성 혹은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사회적 지분이 과거에 비해 너무 커진 것 아니겠나. 진보 진영은 전통적으로 이런 현상을 부추길 뿐이니 가장 보수적인 세력에 대한 ‘쏠림’이 증가한다. 물론 그 보수화가 극우로 나아간다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기도 하다.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의 정신구조는 학술적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8-21

벌써 처서란다

입추가 지나도 더위가 가시지 않더니만 때늦은 장마라면서 연일 비를 퍼붓는다. 동남아 여행 때나 듣던 우기(雨期)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지구 온난화라고 떠들어 댄 지 수십 년은 된듯하고 수도권 농장에서 바나나를 수확한다고 하니 이젠 별반 놀랄 일도 아니다. 곧 지리산 열대 밀림을 보게 될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느낌이다. 새벽에 선풍기도 끈다는 처서가 곧 온다. 조금 있으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겠구나 싶다.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 캐럴도 울려 퍼지겠지. 국방부 시계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인네 많은 복지관 시계도 쉼 없이 움직인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 처서(處暑)의 뜻은 가을이 온다는 이야기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처서 이후엔 풀이 자라지 않기에 추석 성묘를 대비해 벌초를 가야 한다. 시간 없다고 처서 전에 벌초하는 사람을 본다. 성묘 때 절할 자리도 없이 풀이 자란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될 것이다. 햇볕이 강하면 돌아서면 풀이 엄청나게 자라는데 괜히 생고생할 필요가 없다. 날을 잡아도 알고 잡아야지 무턱대고 빈 시간에 맞추다 보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집안에서 제법 어른 축에 속한다 싶으면 주위에 귀를 열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고 옛날 속담도 주워 담아 ‘어른다움’을 가져야지 식솔들이 말을 듣는다. 이런 말 한마디가 권위를 부른다. 엉뚱한 이야기나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입 냄새 풀풀 풍기며, 했던 이야기 또 하며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 봤자 나중에 채신머리없는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뿐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면서 이상한 유튜브만 보다가 젊은이들에게 타박이나 받지말고 시대를 역행하지 않고 순행하는 멋진 삶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집안 양반 피가 그래도 몸속에 조금이라도 흐른다면 처서가 오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책 정리이다. 음건(陰乾)이나 포쇄 (曝曬) 같이 어려운 용어까지는 몰라도 습기 먹어 냄새날법한 책을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집에 책이 너무 많아 정리를 하긴 해야 한다. 더 쌓아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돈도 못 벌어오면서 책만 쌓아놓는다는 질책이 쏟아지기 전에 뭔 조치를 해야 할 판이다. 눈치 줄 때 알아서 기어야 한다. 아침에 새마을 금고에 갔다가 이사장에게서 젊디젊은 전무가 중풍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전날까지 멀쩡했는데 기가 막힐 일이다. 업무를 보다 갑자기 쓰러졌고 119 불러 조치를 했음에도 몸이 엉망이 되었단다. 아직 찬 바람 부는 날씨는 아닌데 중풍이 웬 말인가. 요즘 다리에 쥐도 자꾸 나고 뒷골도 당기는 게 중풍 전조증상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살짝 긴장된다. 쉼 없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몸도 같이 상하고 있다는 것에 한없이 슬퍼지는 가을맞이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1

대구의 ‘모나리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떠오르고 한국의 간송미술관 하면 신윤복의 ‘미인도’가 생각난다. ‘모나리자’와 ‘미인도’가 자주 비교되는 것은 두 작품이 각국을 대표하는 미인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뛰어난 예술적 가치에 더해 시대적 상징성을 갖춘 것도 닮아 두 작품은 자주 비교돼 회자된다. ‘모나리자’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통한다. 다른 작가들에 의해 모방도 되고 상업적 목적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간판 스타로 통하는 ‘모나리자’ 작품 앞에는 항상 수많은 인파들로 붐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조선시대 ‘미인도’ 가운데 최고 걸작이다.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런 명성 덕에 전시 때마다 관람객이 전시장 앞에 줄을 선다. 단아한 여성의 모습과 여인이 취한 다소곳한 자세, 그리고 가제를 얹혀놓은 잘 빗질된 머리, 정돈된 옷매무새 등은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신윤복 이전에는 이런 식의 전신상을 그린 ‘미인도’가 거의 없어 조선시대 풍속을 아는 미술사적 의미도 크다. 대구시가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대표작 ‘미인도’를 내년부터는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상설 전시한다고 밝혔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대구의 대표 문화 콘텐츠로 삼을 생각이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대구의 모나리자가 될런지 기대를 한번 걸어보자. /우정구(논설위원)

2025-08-21

촉법소년

어렸을 때 필자는 장난전화를 많이 했다. 재밌었다. 포항 청림동에 살고 있었는데 심심하면 아무 번호나 눌러 장난전화를 걸고 끊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 장난전화 단속 좀 시키라고 연락이 왔다. 청림동은 군부대 아파트라 집집마다 전화 추적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땐 부모님께 된통 한번 혼나고 말았지만 지금 같으면 이렇게 원치 않는 전화를 계속 거는 것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처음 고백하는 건데 조금 더 어렸을 땐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쳐 먹은 적도 있다. 더 고백할 것들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어쨌든 만약 필자가 그때 스토킹 처벌법 위반과 절도로 전과자가 됐으면 어땠을까? 아마 인생은 암울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변호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준법의식과 인지능력이 성숙하기 전에 저지른 일을 무조건 형사처벌 하자는데 동의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소년의 교화와 보호, 사회비용 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촉법소년 제도의 존재 이유이다. 우리 형법은 만 14세 미만인 자는 어떤 행위를 해도 형사처벌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이 14세의 촉법소년 기준은 1953년 제정 형법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얼마 전 서울 한 대형 백화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반복적으로 올라와 그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백화점 본관 건물 1층에 폭약을 설치했고 오후 3시에 폭파될 예정이라는 꽤나 구체적인 협박 글이다 보니 경찰 특공대와 소방대가 투입되었다. 백화점 이용객 4천여명이 대피하고 백화점 영업은 3시간 동안 중단됐으며 인근 상가들도 문을 닫고 대피했다. 이 일에 따른 영업손실은 백화점 측의 추산으로만 6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범인을 잡고 보니 제주도에 사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공공이 모이는 특정 장소를 폭파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형법상 공중협박죄가 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범인은 만 14세가 안된 촉법소년이므로 형사처벌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촉법소년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촉법소년 제도는 필요하지만 그 연령 기준을 개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70년 전 14세와 2025년의 14세는 육체적 정신적 성숙도가 다른데 1953년에 만든 기준으로 여전히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이라면 형사처벌은 못 해도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은 가능하다.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최대 소년원 구금까지 가능한 처분이므로 청소년을 무조건 전과자로 만들기보다는 지금의 촉법소년제도를 유지하되 소년법의 적용이나 다른 방법으로 교화 기능을 대신하자는 반대 의견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법과 범죄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다. 이 중학생이 협박글을 올리는 것은 공중협박죄라는 중범죄 행위이고 인터넷에 올려도 다 추적이 가능하며 너의 부모가 큰 돈을 물어줘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미리 배웠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영어 수학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중고사이트 사기, 성범죄, 스토킹, 명예훼손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좀 가르칠 필요가 있다. /김세라 변호사

2025-08-21

공연을 마치고 난 후

오늘 정호승 시인의 문학강의가 있는 날이다. 나는 그의 시로 여는 시낭송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 강의는 신경을 많이 썼다. 시인은 필요한 이것저것을 요구했으며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깐깐하다고 생각한 점은 시작하기 전부터 빔을 설치해서 화면을 보며 강연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미술관에는 전혀 그런 것이 준비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디.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고집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며칠 동안 멤버 중의 한 명이 고생해서 겨우 완성한 상태였다. 당일이 되어 강의가 시작되자 시인의 생각은 현실적으로 옳았다. 강의장에 도착한 정호승 시인을 마주했다. 7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시인들이 대부분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맑고 깔끔한 이미지가 십 여 년 전에 봤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인사와 함께 추억을 남기고자 줄을 잇는 사람들 틈에 나도 끼여 한 장의 추억사진을 찍었다. 함께 시낭송을 하게 된 지인은 본인이 십 오년 전에 사무국장을 하면서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세월은 언제 또 이렇게 흘러 여기까지 온 것일까. 정호승 시인의 특강은 프리젠테이션이었다. 그의 강의는 간결하면서 핵심을 사진과 함께 설명이 이루어지는 형태였다. 시는 은유다. 시는 개인의 창의성을 보여야함을 강조했다. 그의 시처럼 이해하기 쉽고 음악적 리듬을 살린 시어와 문장이 와 닿았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고요히 그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경주에 외가가 있었고 대구 사람이고 외할머니의 추억을 얘기 할 때는 오래된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고 에밀레종 속에 들어간 개구쟁이고 정말 귀엽다는 생각과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기억과 추억과 그리고 사물의 독창성을 깨닫고 시어를 찾아내는 무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정호승 시인이 낸 시집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를 쓰는 작가로 굳건한 이미지로 본다면 시인의 강의처럼 연기자로써 살아온 김혜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두 사람 다 정점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영화배우 김혜자는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할 때 했던 말들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을 펴낼 만큼 작가의 기량을 갖고 있던 그녀는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두고두고 나는 그녀의 대사를 기억하려 한다. 놓친 기억의 일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가져온 구겨진 메모지를 꺼내 읽는 것도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여든이 넘은 그녀가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란 작품을 통해 84세의 나이를 뛰어 넘는 연기력과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가슴 뭉클했다. 자상한 어머니로 사랑스런 아내로써 치매를 앓는 노인의 역할까지 무수한 역할을 수없이 많이 하면서도 전혀 질리지 않는 그녀의 탄탄한 연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정호승 시인의 많은 저서를 통해 그의 탄탄한 시어들의 탄력성과도 유사하게 느낀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익히 하던 일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이더라도 살면서 우린 나 자신이란 몸에 에너지를 넣으며 하루를 비슷하지만 다른 연속된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애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정호승 시인이나 김혜자 배우처럼 자신의 길을 걸으며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 그것이 바로 참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들을 통해 나 또한 잔잔하게 나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던 정호승 시인의 시 낭송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낭송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섬세한 내면을 잘 담고 있다. /배문경 수필가

2025-08-20

조손공감(祖孫共感)

“아이 워즈 어 고스트 우아 워즈 얼론 어두워진 앞길 속에 아이 르브드 두 라이브즈, 트라이 투 플레이 보스 사이즈(I was a ghost, I was alone 어두워진 앞길 속에I lived two lives, tried to play both sides)”.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의 노래에 푹 빠진 손녀의 공책이다, 이렇게 노래 가사를 한글로 적어 보면서 노래한다. 무슨 뜻인제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며 해맑게 대답하는 손녀. 제 딴에는 노래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읽기에 급급한 듯하니 귀엽고도 우습다. 이 노래는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OST ‘골든(Golden)’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는데 우리 손녀까지도 이렇게 열광(?)하니 과연 맞나보다. 이 외에도 여러 곡이 더 있다. 손녀가 “You‘re my soda pop, my little soda pop“이라고 ‘소다팝’을 흥얼거릴 때면 옆에 있던 나와 손자까지도 같이 따라 할 정도로 중독성 있는 멜로디니 참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겠다 싶다. 지난달이었다. 손자가 ‘케데헌’을 봤느냐고 물었고, 그게 뭐냐 되물었더니 자기는 세 번이나 봤다고 자랑하면서 TV로 넥플릭스를 켜서 같이 보자고 했다. 애니메이션이라 시큰둥했지만 장면 장면을 가리키며 워낙 아는 체하길래 대충 보는 척을 했다. 케이팝을 부르는 세 명의 걸그룹이 악귀를 잡는 능력으로 귀마인 사자보이스라는 남자 그룹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한국이라는 것이 내 흥미를 끌었다. 거리의 간판이 한글로 쓰였고, 서울의 잠실 올림픽경기장, 삼성역 전광판, 북촌 한옥마을, 낙산공원과 남산타워, 명동 등이 배경으로 등장해서 서울시장이 ‘케데헌’ 제작진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뉴스를 접한 바는 있었는데, 과연 그랬다. 목욕탕과 한의원 등도 등장하니 K-컬처를 제대로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내용은 그렇다 치고 배경이 흥미로워 자세히 보게 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OST에는 또 관심 없었다가 손녀 덕분에 흥얼거리게 되니 참 이렇게 조손이 공감하는 접점이 있기도 하나 보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도 월요일 밤의 ‘가요무대’는 챙겨본다.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이다. 어제 ‘가요무대’를 볼 때 손녀는 옆에서 공책을 보며 ‘케데헌’의 소다팝을 흥얼거리고, 손자는 과학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니 애들은 하던 짓을 멈추고 나와 TV를 번갈아보며 이런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가 노래를 하네? 손자가 책을 던지고 일어나 노래에 맞춰 설렁설렁 춤추는 시늉을 하자 손녀와 나도 일어나 서로 안고 빙빙 돌았다. 조손공감이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아이들에게 노래방에 한 번 가자고 했더니 노래방이 뭐야? 되묻는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 방학 버킷리스트 하나 더 추가한다. 노래방 가서 각자 좋아하는 노래 목청껏 불러보기. 점수에 따라 내기도 하면 재미있어 하겠지.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8-20

노화 방지를 위한 한의학적 생활 관리

노화는 인체의 모든 조직과 기능이 서서히 약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 속도와 양상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고 생활 습관과 체질 관리에 따라 상당 부분 조절이 가능하다. 한의학에서는 노화를 단순히 피부의 주름이나 머리카락의 변화로만 보지 않고 오장육부의 기능 저하와 기·혈·정의 소모라는 전신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 한의학 고전인 황제내경에서는 신은 선천의 근본이라고 하였고 신장의 정을 노화와 직결된 핵심 요소로 보았다. 정은 생명 에너지를 저장하고 성장, 발육, 생식, 회복을 담당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또 간은 혈을 저장해 눈과 피부의 윤택을 유지하고 비위는 영양을 전신에 공급해 근육과 피부를 튼튼하게 한다. 결국 신, 간, 비의 균형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노화 방지의 기초라 할 수 있다. 음식은 한의학에서 약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신장을 보하는 검은콩, 흑임자, 검은깨, 검은쌀 같은 흑색 식품은 기와 정을 보강해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 간과 혈을 보하는 대추, 구기자, 당근, 시금치 등은 피부의 윤기를 회복시키고 눈의 피로를 줄인다. 비위를 튼튼하게 하는 현미, 기장, 고구마, 호박은 소화력을 높여 영양 흡수를 돕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기름지고 단 음식 과도한 음주는 습열과 담을 쌓이게 하여 피부 노화를 촉진하므로 멀리하는 편이 좋다.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과 수면이 필수다. 특히 밤은 음이 충만해지고 정과 혈이 회복되는 시간인데 현대인들처럼 늦게 자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신장과 간의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노화가 빨라진다. 가능하면 밤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 7시간 내외의 숙면을 취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일정한 생활 리듬은 자율신경계 안정에도 도움이 되어 피부 탄력과 면역력 유지에 유리하다. 이와 함께 계절에 맞춘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 여름에는 땀을 어느 정도는 흘려야 면역력이 올라가고 겨울에도 적당하게 산책을 해 면역력을 올리는 것이 좋다. 너무 덥거나 춥다고 에어컨 바람만 쐬거나 따뜻한 집에만 있으면 면역력이 더 떨어지게 된다. 기혈 순환이 원활해야 피부와 모발이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하루 30분 이상 가볍게 땀이 나는 운동을 하거나 스트레칭, 기공, 태극권처럼 완만한 움직임을 꾸준히 하면 기와 혈이 잘 순환된다. 목과 어깨, 등 근육이 굳어 있으면 얼굴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안색이 칙칙해지므로, 평소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근육을 풀어주는 습관이 필요하다. 마음가짐 역시 노화 속도에 영향을 준다. 한의학에서는 희로애락 같은 감정 변화가 오장육부의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다. 특히 스트레스는 간기울결을 일으켜 혈류 흐름을 막고 피부 트러블이나 탈모, 노화를 촉진한다. 명상과 복식호흡, 취미 활동을 통한 정서 안정은 신체 회복력과 피부 건강을 함께 높여준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한의학적 생활 관리로 그 속도를 늦추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신, 간, 비의 균형을 유지하고 올바른 음식과 수면 규칙적인 운동 마음의 안정을 실천한다면 외형뿐 아니라 내면까지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를 더해갈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8-20

트럼프의 미국, 기로에 서다

미국은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을 외치며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다. 보호무역과 자국 이익 우선을 내세운 관세강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일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표면적 승리를 얻은 듯 보일 수 있다. 길게 보면, 세계 곳곳에서 미국발 일방적 관세정책에 고통받는 국가들의 원성이 있고 뿌리째 흔들리는 국제질서가 있다. 미국이 쌓아온 ‘신뢰 자본’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결정적인 자산의 침식이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각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고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 등 동맹국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철강업계는 환영했지만 동맹국들은 깊은 당혹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캐나다는 보복관세로 맞섰고 유럽연합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대응에 나섰다. 함께 가자던 오랜 파트너들이 각자도생의 태도로 돌아섰고 미국의 지도력은 도전받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는 더 복잡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가 매겨지자, 한국과 대만, 베트남 같은 중간재 수출국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스마트폰과 가전,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뒤틀렸고, 중소기업들은 무역 차질로 문을 닫았다. 한·중·미 간의 삼각무역 구조 내에서 미국의 변화무쌍한 무역정책은 외교적 마찰을 넘어 각국의 생존에 위협이 되었다. 중국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브라질, 러시아, 동남아 국가들과의 교역을 강화하며 미국 중심의 무역의존도를 낮추었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상대국의 항복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디커플링’을 초래했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가치사슬은 서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포스트-미국’ 무역 질서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무역 규범이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WTO 분쟁해결기구의 상소기구 판사 임명을 거부하면서 국제무역 규범의 수호자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 다국적 규칙 기반의 질서 대신에, 국력에 의존한 양자 협상 체제가 부상했다. 무역뿐 아니라 국제 정치 전반에서 불확실성을 키우게 되었다. 세계는 갈수록 더욱 ‘미국 없는 세계질서’를 상상하게 되고 대안적 리더십을 모색하는 중이다. 흐름의 저변에는 미국이 축적해 온 ‘신뢰 자본’의 자멸이 있다. 신뢰 자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오랜 기간 세계의 조정자이자 경찰 역할을 자임하며 쌓아온 정치적 신뢰, 경제적 예측 가능성, 국제규범의 준수자라는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그 자본을 스스로 갉아먹으며 소모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소중한 신뢰 자산을 깎아 먹는 셈이다. 미국이 위대한 나라로 다시 서려면, 보호무역과 자국 중심의 승자 독식 전략이 아닌, 다자 협력과 신뢰 회복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관세라는 칼을 휘두를 때마다 파편은 온 세계를 향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는 미국 자신의 리더십에 남는 법이다. 짧은 안목으로 거둔 이익이 긴 미래의 전략적 손실이 되지 않도록, 미국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세계는 미국을 주목하고 있다. 세상의 시선이 기대와 존경일지 아니면 실망과 의심일지는 미국의 손에 달렸다. 국제관계는 멀리 넓게 보아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8-20

문재인의 실패한 ‘자식 농사’

풍수지탄(風樹之歎)을 말하면 ‘이상한 아저씨’로 취급받는 세상이 왔다. 그 옛날 자식들은 아버지 뜻을 거스르고, 어머니를 부끄럽게 만드는 행위를 극히 경계했다. 그게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바 효지시야(孝之始也·인간이 할 수 있는 효도의 시작)였으니. 세상이 바뀌었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아들이나 딸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인 시절이 21세기다. 전 경기지사 남경필과 국회의원 이철규의 아들은 마약사범으로 처벌받았고, 그게 남우세스러워 아비가 고개를 들지 못한 게 오늘의 한국. 선거를 통해 뽑힌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 자식이라고 아버지의 뜻대로 될 리가 없는 모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는 지난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채 운전대를 잡아 세상의 손가락질 대상이 됐다. 음주운전은 미필적 고의의 살인 행위다. 대통령인 아버지는 부동산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는데 딸은 ‘갭투자’로 억대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비난도 받았다. 뿐인가? 무혐의 처분되긴 했지만 자선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아 입건까지 됐다. 문재인 씨를 지지하는 이들은 “성인인 자식의 행위를 왜 아버지가 책임져야 하느냐” 묻는다. 일견 타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자식 하나도 통제 못하면서 5천만 국민에게 정직하고 바른 삶을 말했던 아버지의 부끄러움은 어떡할 것이며, 문씨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5년을 살아온 이 나라 국민들의 수치심은 누가 없애줄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낡았기에 버려야 할 농담이 아니다. 단 아홉 글자로 지향해 마땅한 통치자의 모습을 이처럼 제대로 형상화한 경구를 본 적이 있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20

수국 핀 길을 걸으며, 여성의 존엄을 생각하다

7월 18일. 날씨는 화창했으나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이었습니다. 저는 시부야에서 쇼난선(湘南線)을 타고 기타가마쿠라역으로 향했는데요. 기타가마쿠라 일대는 명찰이 즐비한 곳입니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가 인생의 비의를 풀고자 참선수행했으며, ‘문’(1910)이라는 소설에까지 등장시켰던 엔카쿠지를 비롯해, 초여름이면 수국으로 유명한 메이게츠인, 국보인 범종과 동일본 최대 규모의 산문을 자랑하는 겐쵸지 등이 유명하죠. 오늘 답사지로 선택한 곳은 도케이지(東慶寺)입니다. 도케이지는 8년 전에 몇 명의 연구자와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일본에서 ‘비평의 신’으로 불리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을 찾느라 꽤나 많은 땀을 흘렸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찰 곳곳에 피어있던 짙은 하늘색의 수국이 무척이나 이채롭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방문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8년 만에 다시 찾은 도케이지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과 수국만으로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지닌 절이었습니다. 1285년 창건된 도케이지는 600여년 동안 ‘여성의 피난처’ 역할을 하던 사찰이었는데요. 과거 여성이 남편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없던 시절에, 여성이 이 절로 들어와 2년간 머물면 이혼이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여성이 비녀나 짚신을 던져 넣기만 해도, ‘도망쳐 들어온 것’으로 인정되었다고 하는데요. ‘인연 끊는 절(縁切り寺)’로도 불린 도케이지는 오늘날의 가정폭력 쉼터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 도케이지에서 놀란 건, 이 곳에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무덤이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8년 전에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 찾는 것에만 신경을 썼는데요. 이번에 자세히 보니 이 곳에는 ‘비평의 신’ 이외에도 일본의 선(禪)을 세계에 널린 알린 스즈키 다이세쯔, ‘선(善)의 연구’(1911)로 일본근대철학의 주춧돌을 놓은 니시다 기타로, 윤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와쓰지 데쓰로, 전후 일본의 교육 개혁을 주도했던 아베 요시시게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근대 지성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이토록 많은 근대 지성이 한곳에 묻힌 이유는, 바로 도케이지 뒤편 산자락에 마쓰가오카 분코가 만들어진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는데요. 마쓰가오카 분코는 일종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선승인 샤쿠 쇼엔이 주도하여 설립하고, 그의 제자인 스즈키 다이세쯔가 말년에 깊은 연구를 수행한 곳입니다. 아마도 이런 인연으로 근대 일본의 수많은 지성이 도케이지에 묻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꽃의 절’로도 불릴 만큼, 계절별로 아름다운 꽃이 피는 이 조용한 절은 영혼의 안식을 얻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마침 도케이지를 방문한 이 날은 한 달에 한번 수월관음보살반가상(水月観音菩薩半跏像을 일반에 공개하는 날이었는데요.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목조 반가상은, 편안하게 바위에 기대어 조용히 수면에 비치는 달을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의 관음상은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주로 유행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 관음상을 보고 가장 크게 놀란 것은 크기였습니다. 관음보살의 전체 모습은 물론이고, 각종 장식까지 세밀하게 표현했음에도, 전체 높이가 겨우 34cm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작고 정밀하여 놀랍기까지 한 관음상 앞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오래된 명제가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최고의 일본문화론 중 하나로 꼽히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은 일본인들이 뭐든지 ‘작게 만드는 것’에 특기가 있다고 말하는데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접이식 부채, 주먹밥, 접이우산, 도시락, 문고본, 분재, 꽃꽂이, 하이쿠 등이 모두 ‘축소지향’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몸 하나 누일만한 공간에 호텔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인 캡슐호텔이 인기를 끌고, 수십년 전에는 ‘손 안의 오디오’인 워크맨으로 세계시장을 제패하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저서를 관통하는 방법론은 구조주의로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수많은 일본문화의 표면 현상 밑에 놓인 심층구조로서의 ‘축소한다’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축소한다’는 고메루(込める, 밀어넣는다), 오리타타무(折畳む, 접어 작게 하다), 히키요세루(引き寄せる, 가까이 끌어당기다), 니기루(握る, 쥐다), 게즈루(削る, 깎아내다), 도루(取る, 잡다), 쓰메루(詰める, 채우다), 카마에루(構える, 자세를 취한다), 고라세루(凝らせる, 집중시키다) 등으로 세분화할 수도 있는데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34cm 크기의 관음상을 보며,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명제를 실물로서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8년 전에 처음 도케이지에 왔을 때는, 오직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 하나만을 찾아 한나절을 헤맸는데요.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은 도케이지는, 일본문화의 많은 것들을 응축해 놓은 통조림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짙푸른 녹음과 아름다운 새소리에 둘러쌓여, 산문을 나서는 제 머리에는 시대를 초월한 여성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구원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고 떠올랐습니다. /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8-19

거울 속의 나이

에스컬레이터가 한 층, 또 한 층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주말의 백화점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매장 사이로 풍기는 화장품 향과 음식 냄새가 공기 속에서 뒤섞였다.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꽂혔다. 서너 명의 어르신들이었다. 나이로만 따지면 칠순은 훌쩍 넘은 듯한 분들이었는데 말투는 묘하게 젊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들으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들려 오는 소리는 막지 못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식당에서 있었던 일로 시작되었다. 한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며 말했다고 한다. “어르신, 여기 메뉴판입니다.” 그 한마디가 문제였다. 이야기를 주도하던 분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누가 나를 보고 어르신이라고 하나? 주문 받는 자기가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더만. 나 아직 그렇게 안 늙었어!” 그 말에 다른 친구들이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종업원이 무심히, 혹은 예의를 지키느라 던진 호칭이 그들에게는 날카로운 침처럼 꽂힌 모양이었다. 나는 그 대화가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에 오래 남았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누가 봐도 사회가 통상적으로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연령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젊음이 살아있는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젊다’고 여기는 감각이 그분들의 자아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이 늙는 것이지 마음이 반드시 늙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거울 속 주름진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안의 시간은 여전히 예전의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의 절반쯤을 산 듯 성숙해 보였고, 쉰이 넘으면 어김없이 ‘중년’이라는 무게를 짊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면 마음은 여전히 스무 살 무렵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은 나를 나이로 분류하지만 내 속의 나는 그 분류를 거부한다. 이 착각은 어쩌면 생존 본능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여전히 젊다고 믿는 마음은 무기력과 체념을 막아주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품게 만든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주관적 연령(subjective age)’이라고 부른다. 실제 나이보다 자신을 젊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건강 지표가 좋고 사회적 관계망도 더 활발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젊음에 머물러 있다는 착각’은 분명 삶을 지탱해 주는 긍정적인 힘이다. 그러나 그 착각에는 그림자도 있다. 젊음을 고집하는 마음은 때로는 나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지점에서 불필요한 분노를 만든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에서 예민하게 반응한 백화점의 그분들처럼 말이다. 사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존칭이다. 그 안에는 연륜과 경험을 존중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니다’라는 내면의 방어막이 그 호칭을 곡해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나이 듦을 존엄하게 받아들이려면 내 마음 속의 젊음과 거울 속의 나이가 화해해야 한다. 그것은 순순히 늙음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젊음의 감각을 지키되 나이가 쌓아준 지혜와 품격을 함께 품으라는 말이다. 나 역시 나이를 계산하면 중년의 어귀에 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삼십대의 감각이 살아 있다. 거울 속의 얼굴과 마음속의 나이가 다른 채로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 불일치가 인간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백화점을 나서며 나는 뒤에서 들려오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오래 곱씹었다. ‘어르신’이라는 호칭 하나에 담긴 세대 간의 인식 차이, 나이듦에 대한 자기 해석,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나이를 둘러싼 심리적 줄다리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의 대화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나이란 단순한 숫자기 아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불러 주는가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언젠가 누군가 나를 ‘어르신’이라 부를 때 나는 그 말 속에 존경을 먼저 읽어내고 싶다. 내 마음속 젊음과 거울 속 나이가 그때쯤은 비로소 화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경아 작가

2025-08-19

청년이 돌아오고, 어르신이 머무는 포항을 꿈꾸며

거리를 걷다 보면, 세대마다 다른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청년의 얼굴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골목길 평상에 앉은 어르신의 표정에는 그리움과 고단함이 함께 묻어난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힘차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서도 이 도시에서 꿈을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부모들의 마음 한편을 채우고 있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도시를 지탱하는 진짜 힘은 시민의 삶 속에 있다. 그래서 포항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세대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도시여야 한다. 청년이 돌아오고, 어르신이 머무르고, 아이들이 자라는 도시. 그 균형이 깨지면, 아무리 산업이 발전해도 도시는 서서히 힘을 잃는다. 포항은 한때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많은 청년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곳을 떠난다. 일자리 부족, 낮은 임금, 한정된 문화·여가 공간, 주거 불안정이 청년의 발목을 잡는다.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 떠날 이유가 없다”라는 말, “월세 걱정 없이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라는 말, “퇴근 후에도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한다”라는 그들의 말을 곱씹으며 그 이유를 해결할 방안 마련에 몰두해 왔다. 청년이 돌아오는 포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취업·창업·주거를 하나의 연결된 과제로 보고 종합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주력산업과 연계한 청년 전문인력 양성,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장기 거주형 청년 임대주택 확대, 청년 문화거점 조성 등은 단순한 정책 목록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설계도인 것이다. 고령화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사회에서 멀어진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포항은 어르신이 존중받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의료·돌봄·여가·사회참여가 균형을 이루는 고령친화도시, 이는 복지가 아니라 품격이다. 홀로 사는 어르신의 고독사를 예방하는 생활 안전망, 경로당을 넘어서는 복합문화공간, 지역사회 멘토로 참여할 기회 등은 단순히 어르신을 돌보는 차원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포항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 인프라, 안전, 보육 부담으로 고민이 크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교육과 돌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해양과학·친환경 에너지·문화예술 등 포항이 가진 자원을 교실 밖에서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교육. 안전한 통학로, 질 높은 방과 후 프로그램,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육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아이들은 포항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세대가 함께 행복한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청년이 안심하고 돌아와 뿌리내리고, 어르신이 존중받으며 편안히 살아가고,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환경이 촘촘히 이어져야 한다.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며, 서로의 경험과 에너지를 나누는 순간들이 쌓여야 진짜 ‘함께’의 도시가 된다. /김일만 포항시의회의장

2025-08-19

삶의 질과 마인드 맵

일을 잘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인드맵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삶이나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대부분의 활동은 머리를 쓰는 일인데, 마인드맵은 우리의 머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툴이기 때문이다. 마인드맵을 활용하면 흩어져 있는 데이터, 정보, 지식 등을 논리정연하게 한 페이지로 정리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획기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마인드맵(Mind Map)은 삶과 직장의 문제 해결이나 기획에서 사고(思考)를 시각적으로 정리하는 도구이다. 마인드맵은 한 가지 주제를 중심에 두고, 관련된 아이디어나 정보를 방사형(放射型)으로 시각화하여 창의력-기억력-문제해결 능력을 높여준다. 영국의 교육학자 토니 부잔(Tony Busan)이 체계화 한 방법으로, 두뇌의 연상 작용을 시각화 한 ‘생각의 지도’ 라고 할 수 있다. 마인드맵의 조건은 첫째, 중심 주제의 명확화이다. 하얀 종이 중앙에 삶의 목표, 직장의 과제 등의 핵심 주제를 이미지나 키워드로 표현하는 것이다. 둘째, 방사형 구조이다. 주제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로 세부 주제를 연결하는 일이다. 셋째, 키워드 사용이다. 문장이 아니라 핵심 단어, 짧은 구로 표현해 뇌가 빠르게 연상할 수 있다. 넷째, 이미지, 색상 활용이다. 그림, 아이콘, 색깔을 써서 직관성과 기억 효과를 강화하는 일이다. 다섯째, 계층적 구조이다. 큰 가지에서 작은 가지로 점점 세분화하는 체계적인 사고 전개이다. 여섯째, 개인 맞춤형이다. 정답은 없고, 본인의 사고 흐름에 맞게 자유롭게 확장하는 것이다. 가령, ‘올해 인생 계획’을 마인드맵으로 서술해보면, 건강, 가족, 재무, 자기계발 등 영역별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각 테마에 대한 종합과 목표관리를 잘 한 결과, 분산되어 있던 생각이 정리되고 실행력이 높아져 1년만에 저축 목표를 달성하는 등 생활의 여유와 삶의 질이 높아진다. 또한, 이직, 창업, 유학 등 중요한 인생 선택을 할 때 찬반 이유를 마인드맵으로 정리하여 명확히 비교,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기업에서는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 회의에서 마인드맵을 활용하면, 팀원들이 각자 아이디어를 붙여 나가면서 단순 아이디어에서 구체적 기능과 마케팅 전략까지 한눈에 정리되고, 실제 성공적인 신제품이 출시되게 된다. 이외, 제조업의 품질 불량 문제를 마인드맵으로 생산 조건(사람/기계/재료/방법)관점 체계적으로 분류하면, 원인 파악이 빨라지고 개선 효과도 높아진다. GE,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회의록 대신 마인드맵을 써서 의사 결정, 정보 공유 속도와 일의 효과를 높인다. 이런 듯 마인드맵은 삶과 직장에서 ‘흩어진 생각을 구조화 하고 창의적 해결책을 찾는 도구’로 사용된다. 중심 주제를 선정하고 방사형 확장, 키워드 활용, 이미지 전개, 계층 구조화 하는 일이다. 개인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과 목표 달성, 그리고 기업의 기획, 혁신, 문제 해결을 하는 데 효과적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8-19

봉트남 마을 프로젝트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계기로 봉화군과 베트남의 역사적 인연이 새삼 화제다. 지난 11일 한·베트남 정상 만찬장에 봉화 특산물이 요리로 올라오고 베트남 당 서기장 환영연에 봉화군수가 등장하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봉화와 베트남 간의 인연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베트남에서 직선거리로 3000km 이상 떨어진 경북 봉화에 베트남 마을이 조성된다는 사실도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기회로 더 널리 소개되기도 했다.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 이용상이 내란을 피해 고려국에 도착한 것이 1126년이니까 베트남과 봉화의 인연은 800년이 넘는다. 이용상은 고려국으로부터 화산 이씨 성씨를 하사받고 봉화에 세거지를 이루고 살았다. 임진왜란 때는 그의 13대 후손 이장발이 19세 나이로 문경새재에서 왜군과 싸움을 벌이다 전사해 그의 공덕을 기린 충효당이 봉화에 세워졌다. 지금도 봉화에 있는 화산 이씨 집성촌에는 7가구 10여 명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1995년 한국과 베트남 수교 5주년을 맞아 화산 이씨 종친회 대표가 선조의 고향인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는 베트남 정부의 주요 요인들이 직접 나와 이들을 환영했다고도 한다. 봉화군은 베트남과의 이런 인연을 스토리텔링해 봉트남(봉화+베트남)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계획공모형 지역관광개발사업으로 이 계획이 선정돼 소멸 위기 극복의 획기적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지역의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입혀 관광 사업화하고 지역성장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자치단체의 노력이 돋보이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9

지방선거 앞둔 여야 모습, 너무 다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대야(對野) 관계에서 엇박자를 내는 게 아냐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공개석상에서 이 대통령은 ‘상생의 정치’를, 정 대표는 ‘내란세력 척결’을 이슈화하고 있어, 국민의힘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른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은 ‘내년 지방선거 석권’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면서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은 ‘민심’, 정 대표는 ‘당심’ 잡기에 주력하면서 여권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의도를 가진 듯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계속 국민통합과 민생안정 메시지를 내왔다. 민심을 의식해서다. 야당 지도부와도 여러 차례 만나 덕담을 주고받았다. 지난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이제 정치 문화를 바꿔야 한다. 여야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상생의 정치를 만들어가자”고 했다. 반면, 정 대표는 야당을 없어져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그는 그저께(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16기 추모식에서도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만났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국민 전체를 포용하라”는 조언이 쏟아지고 있지만, 민심보다는 강성당원을 챙기는데 올인하는 것 같다. 그는 최근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당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이러한 ‘정리된 모습’과는 달리, 전당대회를 이틀 앞둔 국민의힘은 여전히 ‘사분오열(四分五裂)’된 상태다. 지난 17일 열린 마지막 TV 토론회에서도 ‘반탄파(탄핵 반대)’와 ‘찬탄파(탄핵찬성)’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을 두고 충돌했다. 안철수·조경태 후보는 반탄파를 향해 “계엄 옹호를 해선 안 된다”, “윤 전 대통령을 버려야 한다”고 했고, 김문수·장동혁 후보는 “계엄을 선택한 것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우리 당에 무슨 내란 동조 세력이 있느냐”며 서로를 공격했다. 지금까지의 합동연설회나 TV토론 과정을 종합해 보면, 비전과 혁신 경쟁은 실종된 지 오래다. 여전히 ‘반탄파’는 강성 당원 표를 노리며 한물간 ‘배신자’ 유행가를 부르고 있고, ‘찬탄파’는 끊임없이 영남권 현역의원 공격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이러니 컨벤션 효과(정당 지지율 상승)를 내야 할 전당대회가 오히려 민심이반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모레(22일) 전당대회에서 당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새롭게 탈바꿈시킬 리더를 뽑지 못하면 당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민주당 정 대표는 최근에도 ‘국힘은 10번, 100번 정당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처럼 집권당의 정당해산 칼끝이 턱밑까지 올라왔는데도, 국민의힘은 그 긴박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은 이젠 상대를 향해 탈당하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지난 주말부터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를 둘러싼 극우 논란까지 더해지며 당이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전당대회 이후 당이 둘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국민의힘 앞날이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8-19

‘울릉도 물놀이장 사망사고,과연 담당공무원 혼자 책임일까’…파면까지 이른 법원선고를 보고 느낀 소회

울릉도 현포리 심층수 어린이 물놀이장 초등학교 6학년생 사망사고와 관련 법원이 2년 만에 울릉군청 담당 팀장에게 파면에 해당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울릉군 공무원 4명 중 담당팀장에게 금고 1년·집행유예 2년을, 나머지 3명은 각각 1000만~1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팀장은 파면에 해당하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준공 이후 시설 관리 책임은 공무원에게 더 크다.”라며 공무원들의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법원은 이번에 관리책임을 사실상 울릉군 차원의 구조적 문제보다, 말단공무원에게만 가혹한 형사적 책임을 물었다. 전체적으로 안전 부재라는 근본적인 원인보다 일면 희생양을 만든 느낌이 든다. 더욱이 법원이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이 우연히 담당이 됐을 뿐”이라며 공무원 개개인의 전문성 부족과 행정 현실을 인정했으면서도 판결은 책임을 조직적 차원이 아닌 개인에게만 집중시켰다. 수심이 37cm인 영유아 급 물놀이 시설은 지난 2015년 아기 낳기 좋은 울릉도, 인구 증가 정책으로 만든 것으로, 사고 전까지만 하더라도 8년째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운영됐다. 워낙 수심이 얇은 부분과 영유아시설이다 보니 보호자가 동반해 별 사고 없이 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23년 육지에 여행 온 초등학생이 취수구에 팔꿈치가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 문제가 커졌다. 풀장 및 대중목욕탕을 관리하는 법령인 공중위생관리법에는 사업자에 대한 안전 책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순환배수구 등에 대한 관리 지침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006년 배수구 안전망 설치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했지만, 현재까지 반영된 것이 없을 정도로 관심 밖 영역이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이 관리 소홀로 파면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물론 담당 공무원은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해야하고 꼼꼼히 챙겨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단순히 개인의 관리 소홀로만 볼 것이냐는 부분에 들어가면 논란이 뒤따른다. 실제, 시설 준공 당시부터 취수구 안전망 미설치가 꾸준히 지적됐음에도, 군청 차원의 개선 조치는 없었다. 안전 관리 예산과 인력 부족 역시 장기간 이어진 고질적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고 당시 팀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직장, 생업과 관련된 직장에서 그는 파면됐다. 한켠에서 다소 가혹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울릉도에는 성인용 등 해수풀장이 5곳 있다. 이곳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면 담당 팀장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할까? 그렇다면 아무도 팀장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회피 근무는 팀원도 마찬가지일 터. 관리인이 없을 경우 풀장 등은 당장 폐쇄가 불가피하다. 설령 발령받든다해도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수다 없게 된다. 때문에 이번 판결을 두고 도의적 책임은 물을 수 있는지만 파면까지 책임을 지운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 군민들 시각이다. 이 사안은 어쩌면 당초 설계하고 시공한 책임자에게 더 책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안전장치 개선은커녕 그대로 방치한 울릉군 행정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 그간 이곳 팀장을 거쳐간 10명은 이번 판결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자칫했다면 그들 중 한명이 파면의 당사자가 됐을 수도 있다. 어떤식으로든지 사망사고 같은 후진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책임 부분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목이 날아간 팀장은 다소 억울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것이 저간의 여론이다. 이번 판결은 울릉군 전체에 만연한 안전과 제도적 안전 관리 시스템 부재는 뒤로하고 말단 공무원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다. 안전 불감증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뒤집어 쉬운 꼴인 것이다. 울릉군이 적극적으로 나서 담당 공무원을 구제하고 안전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이 주민을 위해 사명감으로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수 있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8-19

인간 욕망의 끝판왕, 죽은 자의 천국

사후세계의 천국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궁극적 욕망의 표상이요, 지상에서의 고통과 결핍을 넘어선 풍요, 불멸, 평화, 완전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만든 처절한 상징이다. 천국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허구 세계다. 믿거나 말거나, 죽은 자의 천국은 없으며, 오지 않으며, 온다 한들 죽은 후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백번을 양보하여 천국이 존재한다 치더라도, 죽은 이후 천국의 도래는 용서할 수 없다. 왜 하필 죽은 이후에 오는가. 있다면 죽기 전에 오라. 천국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겐 천국의 부재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이다. 이들은 천국을 믿음으로써 현재를 낭비한다. 이들은 천국을 믿음으로써 삶에서 도피한다. 이들에겐 천국이란 낙타가 짊어진 거대한 짐이다.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겐 천국은 아무런 관심 사항이 아니다. 이들은 천국의 부재로 인하여 고통받지 않는다. 이들은 천국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며, 천국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유예하지도 않는다.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우리네 삶은 ‘오직 한 생’이라 그랬다. 인류의 수 많은 현자들은 릴케처럼 우리네 삶이 오직 한 번뿐이라는 걸 알았다.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직 한 생인 지금 이 삶의 소중함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돌아오질 않을 이 한 번의 삶을 위하여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도덕적 삶은, 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삶의 기준일 뿐, 천국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자격증이 아니다. 현자는 천국을 위하여 다음 생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나머지 삶을 천국에서 보상받겠다고 기대하면서 지난 삶을 살아왔던가! 그래도 늦지 않았다. 남은 삶을, ‘지금의 삶, 여기의 천국’에 아낌없이 투자하여야 한다. 후회할 일도, 후회할 필요도 없다. 천국이란, 인간이 지어낸 욕망의 끝판왕이다. 욕망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현실 세계에서의 결핍과 불완전을 사후에 보상하려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정교한 상징 체계가 천국이다. 과도한 욕망은 삶을 힘들게 하고 고통 속으로 몰아간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천국에의 집착은, 욕망에 대한 집착과 동의어이다, 천국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현실 세계를 경멸하게 하고, 삶을 부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천국에의 집착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갈지 모른다. 이 세계 너머 저 세계는 없다. 천국을 찾고 싶다면 주위를 살펴보면 된다. 그냥 눈을 뜨면 된다. 여기저기 천국이 널려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죽은 이후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천국에 대한 갈망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질 것이다. 죽음과 그 이후는, 산자의 인식(생각)일 뿐, 삶의 부분도, 삶의 연장도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존재 하는 동안 죽음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죽음이 올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천국을 믿는다면, 그대는 허무주의자일 가능성이 많다. 천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당신의 주변에서 깨끗이 정리하시라.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니, 천국이라는. /공봉학 변호사

2025-08-18

보수와 진보, 그리고 좌파와 우파

일반적으로 보수(保守)란 전통과 질서를 중시하고,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이고 신중한 변화를 선호하는 정치·사회적 태도를 말한다. 법과 질서, 가족제도, 시장경제의 자유, 국가 정체성 유지 같은 기존의 제도와 가치가 사회 안정의 기반이라고 보고 그것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하다. 반면 진보(進步)는 사회의 불평등이나 부조리를 변화·개혁하려는 입장이다. 기존의 제도나 전통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바꾸어서 인권, 평등, 복지의 확대를 지향한다. 물론 보수와 진보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보수에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혼란을 막고 사회의 기반을 지키려는 장점이 있는가 하면,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도 그에 대한 대처가 너무 느리거나 소극적일 수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에 비해 진보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불합리한 점을 혁신적으로 개선한다는 장점과 함께 급격한 변화가 부작용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현실 정치에서는 순수한 의미의 보수나 진보는 드물고, 상황과 사안에 따라 두 가지 성향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은 18세기 프랑스혁명에서 비롯됐다. 혁명 당시 국민의회의 좌석 배치에서 의장의 오른쪽에는 왕권과 전통질서를 지지하는 인물들이 앉았고, 왼쪽에는 공화주의와 개혁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앉았던 것에 유래하여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따라서 우파는 보수적 성향을, 좌파는 진보성향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 후 유럽에서 산업혁명과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확산되면서 보수와 진보가 본격적인 사상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보수는 귀족·지주·성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왕정·교회·시장경제를 옹호하였고, 진보는 자유주의자·공화주의자·노동운동가를 중심으로 평등, 참정권 확대, 복지 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출발점일 뿐, 이후 각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좌·우, 보수·진보의 관계는 복잡하게 변해왔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다양한 형태의 보수와 진보가 공존한다. 미국에서는 작은 정부, 낮은 세금, 전통적 가치, 자유시장, 강한 국방을 중시하는 공화당이 보수 성향을 보이고, 복지 확대, 인권·환경 보호, 소수자 권익 확대를 강조하는 민주당이 진보성향이다.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교대로 집권하며 정치적 균형을 유지해왔고, 프랑스는 국민연합(RN)과 공화당이 우파, 사회당과 좌파연합이 진보진영을 대표한다. 독일은 기독교민주연합(CDU)이 보수, 사회민주당(SPD)이 진보지만,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 같은 제3세력이 정책 방향을 조정하는 중도 실용주의 성향이 강하다. 북유럽은 사회민주주의가 강세이고, 일본은 보수 실용주의가 대세다. 우리나라는 지금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보다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대립이 극심하다. 정권을 잡은 좌파들은 진보는커녕 낡은 이념에 함몰되어 오히려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결국 국가 정체성을 허물고 그동안 피와 땀과 눈물로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8-18

김건희와 뇌물 공여자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유명 디자이너의 목걸이와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 그리고 또 무엇이 오갔을까?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아내 김건희 씨의 ‘뇌물 스캔들’이 차츰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뇌물 공여는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기에 처벌 수위 또한 높은 범죄다. 사적인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관련된 직무에서 일하는 사람을 매수하려고 돈이나 물품을 제공하는 행위를 뜻 하는 뇌물 공여. 법적으로는 인사권과 정치적 결정권이 없지만, ‘영부인’은 그 명칭이 가진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호가호위가 가능한 자리다. 그렇기에 더욱 몸을 낮추고 고개 숙여 겸양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아내가 아닐지. 그런데 김건희 씨는 어땠나? 최근 특검의 압수수색이란 초강수 앞에 긴장한 서희건설은 2022년 나토 순방 당시 김건희 씨가 착용한 목걸이, 브로치, 귀걸이를 자신들이 준 것이라 고백했다. 이는 김씨 구속의 결정적인 사유가 됐다. 이뿐 아니다. 또 다른 한 사업가는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 씨의 요청으로 고가의 시계를 구입해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김씨는 “시계를 사주면 나중에 돈을 주겠다”는 약속도 깨뜨렸다고 한다. 세칭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성배 씨 역시 특정 종교단체의 이권 청탁을 받고 김건희 씨에게 고가의 목걸이와 가방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특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비싼 선물을 사주고 부정한 청탁을 한다는 것, 심지어 그런 청탁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건 아직 한국이 후진국의 그림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나라 얼굴에 이처럼 먹칠을 했으니, 뇌물을 받은 사람은 물론 건넨 이들에게도 엄정한 수사와 법적 처벌이 있어야 마땅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18

대통령이 경계해야 할 유혹들

영국의 사학자이자 정치가인 액튼(John E. E. Dalberg-Acton)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이재명 대통령이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가르침이다. 대통령이 ‘힘의 정치’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지 않으면 불행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사적 이익’에 대한 유혹이다. 만약 이재명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재판이 중단된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해소하려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절대 권력은 그런 기도를 할 수 있고, 이미 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에 측근을 임명했고, 자신의 변호인들을 법제처장·국정원기조실장·대통령실법무비서관 등에 포진시켜 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검찰인사권을 이용해서 수사검사들을 한직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고, 검찰과 사법부를 겨냥한 입법을 통하여 그들을 압박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대장동 및 불법대북송금 사건이 조작되었으므로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고 검찰과 법무장관에게 압력을 넣고 있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검찰개혁과 사법정의를 명분으로 ‘셀프 사면’하려는 유혹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집권 초반이라서 역풍을 조심하고 있지만 적당한 시기가 오면 그 본색이 드러날 것이다. 자칭 ‘국민주권정부’라고하면서 민심과 상반되게 사법체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든다면 국민이 용납할 수 있겠는가? 공정성을 상실한 당파적 이익추구도 문제다. 야당이었을 때는 전액 삭감한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를 정권을 잡자 사과 한마디 없이 슬쩍 부활했고, 야당이었을 때는 복지부장관 후보 1명 청문회에 증인·참고인으로 25명을 채택했는데, 여당이 되자 장관 19명 청문회에 단 7명만 채택한 것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횡포다. 또한 김어준의 뉴스공장, 이상호의 고발뉴스, 장윤선의 취재편의점 등 친여 유튜버들은 대통령실기자단에 등록해주고, 야권 성향의 보수 유튜버들은 배제함으로써 공정성을 잃었다. 당파적 이익추구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정당성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코드 인사와 권력 사유화’의 유혹도 경계해야 한다. 이진숙과 강선우의 인사 실패에서 보듯이 실용주의를 역설한 대통령이 코드 인사를 하는 것은 모순이다. 게다가 ‘권력 불나방들’은 또 얼마나 아첨하고 있는가. 인사 참사를 저지르고도 “대통령님의 인사 수준이 너무 높다”는 강훈식 비서실장, “이재명은 민족의 축복”이라는 최동석 인사혁신처장 등 수많은 간신들이 낯 뜨거운 아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스맨(yes man)’들에 둘러싸여 사유화된 권력으로서는 정도정치(正道政治)가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성공하는 대통령은 ‘권력이 마약’임을 명심하고 절제하지만, 실패하는 대통령은 자제력을 잃고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불행을 자초한다. 성공과 실패 중 어느 길로 가느냐는 대통령의 선택이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대통령으로서 주권자인 국민을 배신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8-18

여행을 떠나요

곧 여행을 떠난다. 사실 이주 전쯤 급히 계획한 여행인지라 갑작스레 떠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이왕 떠나는 여행, 그간 가고 싶었던 교토로 가기로 했다. 이 년 전 방문했던 교토의 여름은 뜨겁고 습했지만 아름다웠다. 오래된 담벼락과 새파란 하늘, 좁은 골목과 고택, 사이사이의 기찻길 등 마주하는 곳마다 오래된 것들이 많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한 풍경이 오랜 기간 그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단 점이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다. 나는 일본의 소도시에서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며 내가 지금 어떤 걸 위해 살고 있고,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끝마치기 위해 간다. 하루하루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책상에 앉아 비슷한 업무를 하고, 비슷한 시간대에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잠자기 전까지 생각하는 것도 잠이 드는 자세도 모든 게 똑같은 하루. 비슷한 굴레 속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짜증과 화를 삼키고 있다. 급작스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당황한 나머지 숨이 쉬어지지 않는 상황까지 미처도 그저 또다시 아침이 찾아왔고, 출근을 해야 하고, 정해진 업무가 있기 때문에 묵묵히 일을 한다.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고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고, 흔들리고, 또 단순한 것에 마구 웃어버리는 요지부동의 날들. 모두가 이렇게 산다면서, 모두가 비슷한 힘듦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의미 없이 도망을 치다보니 내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은 퍽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많다면 많고 적으면 적은 나이. 어떤 이는 내게 새로운 도전은 너무나 늦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아직 한참 좋을 나이이기에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응원한다는 말을 한다. 타인의 말에 휩쓸리지 않아야 할테지만 나는 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좋아하는 게 없어서 무슨일을 할지 모르겠는데, 어떡하죠? 말을 꺼낼 때마다 나보다 더 듣는 이가 난처해한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있는 것도 언제부턴가 편하지 않다. 집은 계속 살아가는 곳이기에 해결해야 할 집안일, 이메일 확인, 생활비 걱정 같은 현실적인 부담들이 언제나 쌓여있다. 우리 뇌는 매일 반복되는 환경과 자극에 익숙해지면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그 자극들을 ‘자동모드’로 처리한다고 한다. 이러한 뇌의 습관적 패턴은 우리가 매일 걷는 출근길의 행동을 자동으로 수행하면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아끼고, 더 중요한 자극에 집중할 준비를 한다. 이러한 습관적 패턴이 많을수록 일상은 단순해지고 생각은 간결해진다. 익숙한 패턴 속에 갇히는 순간부턴 새로운 생각이나 깊은 사유, 내면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일상 속 자기연민에 호되게 빠져 있다면, 호기롭게 쇼파에서 몸을 박차고 일어나 ‘때가 되었군’ 생각해야 한다. 잠들어있던 여권을 깨우고, 캐리어의 먼지를 닦고, 가장 요란스러운 네임택을 캐리어에 달고선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찾는다. 더는 지체 없이, 더 많은 인지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뇌를 깨워야만 한다. 여행은 일하지 않는 상태를 선언하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 아닌, 삶의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 택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맞는 것인지, 현재 나에게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나는 늘 삶의 방향을 정하기 전, 답답할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처음은 집 근방의 작은 소도시들, 그리고 점차 나아가 기차를 타면서 처음 들어보는 도시들을 골라 누볐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로 위험했고 외롭고, 맛있는 걸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열망과 집요함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선택을 끝끝내 했고, 끝까지 행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삶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꿈과 일상은 다른 것이라고 누군가 선을 딱 그으며 말해도 결국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하고 정의해야 하기에 또다시 중요한 여행을 앞두고 있다. 다가오는 가을엔 하프 마라톤을 뛸 것이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력이다. 단거리처럼 순간적인 속도가 아닌 오랜 시간 꾸준히 달리는 힘이 필요하기에 체력과 페이스조절이 핵심이다. 체력과 페이스조절을 하기 위해선 우선 같이 뛰는 라이벌들이 아닌 나의 호흡과 마음가짐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린다면 후반에 지쳐버릴테고 너무 느린다면 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기르고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힘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것. 때론 일상에서 벗어나 아주 낯선 곳까지 찾아가 ‘나’를 집중하다 보면 결국 지금보다 훨씬 편안함에 이르를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시인)

2025-08-17

유럽 콤플렉스 너머

여름방학을 맞아 지중해에 다녀왔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시작으로 아테네, 몰타 발레타와 고조섬 블루라군, 스페인 몬세라트와 바르셀로나까지 12일간의 여정이었다. 한국은 폭염과 폭우가 계속됐지만 지중해의 여름은 청량했다. 햇볕은 뜨거워도 습하지 않아 돌아다닐 만했다. 걷고 먹고 마시고 더우면 풀장이나 바다로 뛰어들었다. 직장생활 15년 만에 처음으로 2주 휴가를 얻은 친구와 동행해서 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렇게 썼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2005년, 2015년에 이어 2025년까지 10년 주기로 세 번씩이나 그리스를 여행한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처음 여행했을 때에 비해 지나치게 관광지가 돼 버린 산토리니가 생경하긴 했지만 깎아지른 칼데라 절벽에 금빛 폭포수처럼 넘쳐흐르는 석양은 역시나 장관이었다. 스무 살 무렵의 가난한 배낭여행은 이제 하려 해도 할 수 없다. 체력과 용기가 고갈됐기 때문이다. 돈은 좀 들어도 일몰이 아름다운 해안 절벽의 레스토랑에서 차가운 산토리니 와인과 함께 문어와 생선 요리를 먹었다. 일정 내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마시고 싶은 거 다 마셨다. 예전에는 유럽에 가면 부러운 것만 보였다. 중세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거리에는 음악과 예술이 가득하고 거길 걸어 다니는 사람들 얼굴엔 활력과 여유가 넘쳤다. 음식은 맛있고 맥주의 풍미는 그윽했다. 유럽 문학과 미술, 클래식 음악의 아우라에 기가 죽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가 보니 오히려 한국의 좋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껏 열 번쯤 유럽을 여행했는데 20대와 30대 초반에 들끓던 선망이 이제 잔잔해졌다. 경험의 누적과 반복 탓만은 아니다. 여러 면에서 유럽보다 나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치안, 위생, 공중도덕, 환경, 경제력, 의료, 대중교통, 서비스업, 시민의식 등은 유럽 대부분 국가를 훨씬 상회한다. 그토록 기가 죽던 문화예술도 꿀리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나라다. 케이팝의 세계적인 인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국립중앙박물관도 있다. 제일 사무치게 감각한 건 음식이다. 예전에는 유럽 음식이 다 맛있었다. 여행 다녀온 후에는 왜 한국에는 유럽 맛을 내는 레스토랑이 없을까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음식이 훨씬 맛있다. 양식에 비해 한식이 맛있다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먹는 유럽 음식이 현지보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방문한 도시마다 심사숙고해 레스토랑을 골랐다. 잘한다는 집들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짜거나 달거나, 파스타면에 소스가 배지도 않고, 식은 고기는 질기고, 해산물의 선도도 떨어졌다. 몰타 발레타의 페루 식당에서 먹은 남미음식 ‘상코초’, 바르셀로나에서 먹은 애저구이 ‘코치니요 아사도’와 먹물 빠에야, 아테네에서 먹은 베트남쌀국수 정도가 인상적이고 나머지는 그저 그랬다.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스튜, 스시, 디저트 모두 한국이 더 잘한다. 그러고 보면 세계화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여러 면에서 유럽과 대등하거나 넘어섰다. 유럽의 전통과 근대성을 동경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열심히 학습해서 넘어서고 나아가 한국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마저 따라하다 넘어설까 봐 걱정되는 게 있다. 그리스 국가부도 이후 아테네 경제는 거의 회복됐지만 중심지인 오모니아는 슬럼화되어 재생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번화하던 상점가는 온통 공실이고 젊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거리엔 노숙인, 부랑자, 이민자들로 가득하다. 10년 전 참 활력 넘치고 아름답던 곳이 이제는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방문 자제를 권하는 지역이 됐다. 하필 호텔을 그쪽에 잡았는데 대낮 길거리에 널브러진 채 팔에 주사기를 꽂고 마약을 투약하는 중독자들을 계속 마주쳤다. 겉으로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이지만 민생 경제는 갈수록 곪아간다. 상점들이 폐업하고 거리에 활기가 없고 청년들의 얼굴은 어둡고 출생률마저 바닥이다. 하물며 여러 어둠의 경로로 마약이 유통돼 여기저기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피자, 파스타 맛있는 걸로 만족하고 싶다. 따라할 걸 따라하자. 오모니아 거리의 살풍경을 서울에서 보고 싶지 않다. /이병철(시인)

2025-08-17

이벤트 정치는 실용정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국정 운영의 철학과 비전의 중심에 언제나 국력의 원천인 국민을 두겠다”라고 강조했다. ‘국민 임명식’이라는 행사에서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편지’에 담은 내용이다. 너무 당연하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형식과 의미가 무엇인지 뜨악하다. 이 대통령의 이날 광복절 기념사는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다. 그는 “증오와 혐오, 대립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 우리 정치가 꼭 그 상태다. 그는 이어서 “분열과 배제의 어두운 에너지를 포용과 통합, 연대의 밝은 에너지로 바꿀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거듭 제안하고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꼭 필요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매우 실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대통령이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한 배경도 이념적 동지의 틀에 묶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그의 이 제안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날 그가 남북 관계에 대해 지적한 말대로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행동’을 믿기에는 아직 신뢰가 부족하다. 특히 취임 초기 그의 인사는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국민임명식도 실용과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다. 어디에도 그것을 뛰어넘을 의미는 없다. 그런 점에서도 이날 행사를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떠오르는 게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다. 그는 자칭 황제가 됐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비오 7세 교황까지 참석시켰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왕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국민투표라는 형식을 빌렸고, 대관식을 통해 교회와 귀족들의 복종을 받아내려 했다. 황제는 이미 절대자지만, 정통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절대권력에 대한 찬가를 듣고 싶었던 셈이다. 이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대통령이 되었다. 과반에는 미치지 못해도 49.42%, 1728만7513표를 얻었다. 그 표보다 엄중한 임명장이 어디 있겠나. 선거 과정을 통해 공약으로 국민에게 약속도 했다. 그런데 굳이 왜 ‘국민임명식’이라는 이벤트를 벌인 걸까. 문재인 정부야말로 이벤트에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말 따로, 행동 따로’가 많았다. 재임 중에만 그런 게 아니다. 퇴임 후엔 “자연으로 돌아가 잊힌 삶을 살겠다”라던 그는 정반대 행보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로운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벤트는 ‘실용’과 거리가 멀다. 그는 “그 모든 미래의 중심에 국민을 두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벤트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 대통령이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한 행사다. 임명장을 80장씩 받은 것도 이 대통령이다. 80명의 ‘국민 대표’는 나폴레옹 대관식에 참석한 교황과 귀족들처럼 들러리일 뿐이다. 유신독재 시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처럼 선거했지만, 국회의원이 아니다. 소속 정당도 없다. 대통령을 반대하는 대의원 후보는 나설 수도 없었다. 미국의 대의원과 비슷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무효표 몇 표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 사람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15일 참석한 국민의 대표는 다양하게 선발했다. 그렇지만 정색하고 국민 대표라고 할 것도 아니고, 거창하게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줄 대표성도 없다. 결국 이벤트, 보여주기 쇼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국민의 대표는 국회의원이다. 아무리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국회라도 국민의 대표는 국회다. 흔히 독재자는 정치적 파트너인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직접 상대한다. 국회의 대표성을 무시하고,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정치적 권위,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정통성을 나누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이벤트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실용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답지 않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17

한 톨의 쌀에서 미래를 보다-농업대전환의 길

지난 4월 일본 니가타현을 찾았다. 세계적인 브랜드 쌀 ‘고시히카리’를 직접 마주한 순간, 나는 농업이 단순한 재배를 넘어 철학과 문화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쌀 한 톨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네 차례의 검사를 거친다. 정성 어린 포장을 통해 소비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농부는 장인으로 존중받는다. 그 현장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칠곡의 농업도 이제 그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선명해졌다. 현실은 냉혹하다. 기후는 달라지고, 농촌은 늙어가며, 젊은이들은 떠난다. “이대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희망은 방향에서 온다. 그래서 우리는 농업대전환의 길을 차근차근 열어가려 한다. 먼저 쌀부터 바꾸려 한다. 왜관·북삼·동명에 프리미엄 쌀 단지를 조성하고, 생산에서 포장까지 전 과정을 새롭게 설계할 계획이다. 1인 가구 시대에 맞춘 소포장과 진공포장을 도입해 신선도를 오래 지켜낼 것이다. 직거래 접점도 넓혀 농산물에 ‘칠곡’이라는 이름값을 더해 갈 것이다. 목표는 쌀을 단순한 먹거리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지역 브랜드로 키우는 일이다. 대전환은 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참외·고추·딸기 등 주요 품목 전반을 함께 끌어올릴 계획이다. 값싼 물량 경쟁의 시대에서 벗어나, 고품질과 특화로 승부해야 한다. 많이가 아니라 잘하는 농업, 흔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농업, 값싼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농업이 우리가 지향할 길이다. 생산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고령화된 현장에서 노동력만으로 버티기는 어렵다. 수경재배와 수직재배를 도입해 서서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 드론 방제를 확대해 작업의 정확도를 높이고 농약 사용량을 줄이겠다. 땀과 근력만이 아니라 기술과 데이터가 함께하는 농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농민의 삶을 지키는 길이고,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는 길이다. 가공과 유통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저급과 참외를 활용한 비건가죽은 ‘버리는 것을 벌이가 되게 하자’는 생각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유주방을 통해 농민의 소규모 식품 창업을 돕고, ‘퍼뜩시장’ 같은 판로를 넓혀 소비자와 더 가깝게 만나겠다. 아파트 단지, 고속도로 휴게소, 도심 광장에서 만나는 직판장은 신선함과 신뢰를 동시에 전하는 창구가 될 것이다. 농업은 이제 재배를 넘어 체험과 문화가 결합한 6차 산업으로 확장될 것이다. 안전은 농업의 뿌리다. 농업인이 직접 참여한 안전교육 뮤지컬 ‘농터맨’ 같은 시도를 더 발전시켜, 교육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보완해 나가겠다. 안전이 확보될 때 지속 가능성도 단단해진다. 환경 역시 미래를 가르는 과제다. 유용미생물배양센터를 통해 친환경 농법 보급을 넓히겠다. 영농부산물은 파쇄·재활용해 미세먼지와 산불 위험을 낮추겠다. 농약과 소각에 의존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가는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아이들에게 깨끗한 미래를 물려주는 길이다. 농업대전환은 곧 농민의 삶의 대전환이기도 하다. 기술이 들어오면 허리는 덜 굽히고도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 판로가 넓어지면 농민의 소득이 안정되고, 자부심도 커진다. 변화는 결국 사람에게서 완성된다. 농민이 존중받을 때 농업도 지속된다. 앞으로는 청년들이 다시 농촌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팜과 데이터 농업은 젊은 세대가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농업이 힘들고 낡은 산업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때, 농촌은 다시 활력을 찾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다. 농업이 흔들리면 농촌이 무너지고, 농촌이 사라지면 우리의 삶터도 함께 위태로워진다. 지금이 변화의 적기다. 앞으로의 농업은 데이터와 기술로 정밀하게 관리되고, 가공과 유통으로 가치가 확장되며, 문화와 체험이 더해지는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그 방향을 분명히 바라보고, 현실적인 걸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 길을 군민과 함께 열어가겠다. /김재욱 칠곡군수

2025-08-17

강릉가는 열차에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태화강 역에서 강릉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서울과 세종, 천안 등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강릉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4시간 이상 가야하는 것보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과 해변을 끼고 달릴 기차의 운치에 대한 기대가 마음을 흔들었다. 작년 12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이 기차는 좌석 간의 거리도 넓고 쾌적했다. 여행의 기대치가 올라가고 있었다. 서너 명의 중년 남녀가 열차에 올랐다. 친숙한 사이인지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전 10시 경 출발해 오후 2시 넘어 도착하니 다들 점심이 걱정인가 보다. 서로 음식을 갖고 왔냐고 물으며 커피와 과일을 나눈다. 정겹다. SRT와 KTX의 도입은 시간의 단축과 함께 열차 안의 풍경을 바꾸었다. 거기에 코로나는 그 모습을 더욱 빠르게 정착시켰다. 그 시기에는 기차 안에서 마스크를 써야 했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기에 숨죽인 침묵이 자리했었다. 자거나 휴대폰을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열차에서 음식을 섭취해도 된다고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새로운 문화에 젖어들었다. 기차 안에서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가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조용히 앉아 옆의 사람과는 눈길조차 주고 받지 않은 채 휴대폰에만 눈길을 주거나 눈감고 자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었다.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가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이며 문화인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바뀐 풍속도가 그 때까지 마음에 든 것도 사실이었다. 강릉 가는 열차도 ktx-이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긴 시간의 여행이어선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승무원도 조용히 하라고 제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옆의 모르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권하는 소리도 들렸다. 어린 시절 가끔 탔던 열차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김밥을 싸오고 삶은 달걀과 사이다, 과일을 먹으며 가족들, 친구들과 담화를 나누던 그 시절의 기차 안 풍경을 조금 나이 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긴 시간의 여행에 그런 것은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열차는 계속 푸른 풍경을 뒤로 보내며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아쉬움에 생각은 과거로 흘러간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던 ‘배우며 생각하며’라는 책이 생각났다. 사고의 확장을 위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서 초등학생들과 토론하기에 좋은 교재였다. 그 중에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문명인들이 먼 오지의 원주민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과 시설을 보며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각종 문명의 이기들을 가져다주었다.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원주민들의 생각은 중요치 않았다. 기계를 사용하면 원주민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문명의 발달이 문화의 발달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문명인들의 삶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강릉 가는 차안에서 서로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모습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앗이와 두레로 서로의 품을 나누고 정을 쌓던 것이 우리였는데···. 조금은 수선스러워도 그 안에 넘치는 정이 담겨 있는 그 모습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정담을 나누며 가는 것이 비문화인의 모습은 아니니까.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의 옆모습을 처음으로 가만히 쳐다본다. 점심을 전혀 먹지 않던데. 가지고 있던 샌드위치라도 나눌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쑥스러움이 손길을 눌렀다. 정동진이 가까워오니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들과 옆자리의 아저씨가 내릴 준비를 한다. 그들의 여행이 따뜻하고 즐겁기를 바란다. 다음엔 샌드위치를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나기를 또한 바라본다. 정동진을 지난 열차 차창 밖으로 동해의 바다가 비로소 시원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이번 역이 이 열차의 마지막 종착지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도착해서 강릉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8-17

바가지요금, 이제는 그만

여수와 울릉도에서 관광객에 대한 불친절과 바가지요금 문제가 일어났다. 그전부터 언론에 바가지요금 문제가 오르더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휴가철이 되니 뉴스에 단골 메뉴처럼 오른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바가지요금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 건데, 왜 이런 문제는 고쳐지지 않고 계속 일어날까. 속초에서도 오징어 두 마리를 5만6000원에 사고, 식당에서 추가 주문에 시달려야 했다는 게시글이 속초시청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 이것은 어디 야수나 울릉도, 속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가지요금을 주고도 속으로만 삭이고 넘어간 관광객이 더 많을 것이다. 일 년을 별러 온 여름휴가인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국인이 이러한 데 외국인은 어떠할까. 한국관광공사가 받은 2024년 관광 불편 신고를 보면 1위는 쇼핑(306건)이었고 2위는 택시(158건)였다. 택시 관련 불편 사항은 부당요금 징수와 운전사 불친절 등이 문제였다. 유명 유튜버 빠니보틀이 어느 나라건 택시 기사는 믿지 않는다는 말이 공연히 나온 말이 아니다. 서울역 인근 쉐라톤 호텔에서 크라운 파크 서울까지 택시를 이용한 한 외국인 관광객이 1.5km 구간을 이동한 요금으로 2만4000원을 지불했다. 택시 기사는 바가지요금을 받을 생각을 했는지 미터기도 켜지 않은 채 운행하며 8100원 정도의 정상적인 요금보다 세 배 정도의 바가지요금을 받았다. 지자체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캠페인을 한다. 대전시는 ‘2025 대전 0시 축제’ 개막에 맞추어 바가지요금을 없애기 위한 민관합동 캠페인을 펼쳤다. 이는 대전시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전국의 지자체마다 행사를 앞두고 사전에 지역민을 상대로 바가지요금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행안부는 바가지요금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없애기 위해 ‘휴가철 물가안정 특별대책 기간‘을 정하고, 민관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이러한 노력에도 바가지요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한 철 장사라는 생각에 눈이 멀어 관광객과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며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다. ’백 명의 사람이 한번 오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 번 오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요즈음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손님이 당한 억울한 마음은 금방 인터넷을 타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로 퍼져나간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눈앞의 이득보다 적정한 이윤을 보며 오래도록 유지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선행을 베풀어 뜻하지 않은 대박을 낸 사장님들의 기사가 오른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사장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행복한 이런 길을 왜 마다할까.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고 남들에게도 욕을 먹는 일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한 대가로 돈을 벌고 밥을 먹는데 그 입속으로 다른 사람의 원망이 섞여 들어간다면 기분이 어떨까. 자신과 자식의 입에 들어가는 밥이 손님들의 고마움이 함께하면 좋겠다. 인터넷을 달구진 않더라도 선한 영향력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장님이 되는 건 어떨까. 누구에게나 당당한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가. /김규인 수필가

2025-08-17

누가 배터리를 바꿔줄까?

10년 전 아버지가 혼자 사실 때 가장 힘들어한 것이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었다. 파킨슨 병으로 14년 간 투병하시는 엄마 간병의 고통보다 대화 상대가 없는 외로움의 고통이 더 힘들다고 호소하셨다. 자식들이 자주 가고 요양보호사도 세 시간씩 방문하지만 24시간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도 자식들과 같이 사는 것은 한사코 거부하시다가 결국 엄마가 돌아가신 후 7개월만에 아버지도 엄마를 따라가셨다. 외로움은 노인의 심신 건강에 이렇게 치명적이다. 만약 그때 돌봄 로봇이 있었다면 아버지의 외로움은 줄어들었을까? 2024년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아기처럼 생긴 AI 로봇을 개발했다. 영상을 보니, 이 로봇이 독거노인과 함께 살면서노인들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떤 할머니는 효돌이 로봇에게 옷도 만들어 입히거나 장신구도 달아주고 안아준다. 효돌이는 할머니에게 약 먹을 시간도 알려주고 애교 있는 말도 해준다. 어떤 할머니는 민희라고 이름 붙인 AI 로봇 덕에 두 달 만에 우울증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2013년 제작된 ‘체인징 배터리’라는 5분짜리 애니메이션에도 돌봄 로봇이 나온다. 이 영상은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아들이 로봇 선물을 보내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할머니가 무언으로 로봇과 교감하면서 기쁨을 되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로봇이 작동을 멈추자 배터리를 갈아주어 살린다.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눈을 뜨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로봇은 자기처럼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배터리를 가져오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게 할머니가 먼저 죽고 로봇도 결국 배터리를 갈아줄 사람이 없어서 정지한다. 그때 할머니 영혼이 와서 로봇의 손을 잡고 하늘로 같이 간다.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AI 로봇의 유용성과 필요성을 설득하는 영상이다. 그러나 효돌이든 애니메이션의 로봇이든 이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외로움 극복에 실제 도움 될지 아직은 실감 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6월에 나온 뉴스를 보니 2029년이 되면 전 세계 돌봄 로봇 시장은 8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1999년에 처음 개발된 돌봄 로봇이 2010년대까지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돌봄 로봇의 수요가 급성장한 것이다. 일본은 올해 3월 와세다대 연구진이 요양 환자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예방하는 등 실제 돌봄 인력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돌봄 로봇 ‘AIREC’를 개발했고 보험 지원도 해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효돌이 판매를 검색해보니, 현재 9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이고 복지 혜택을 받으면 28만 원 정도다. 이렇게 돌봄이 기계로 대체되는 추세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일지는 의문이 든다. 올해 말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출시될 가정용 로봇 ‘볼리’와 ‘Q9’는 기계처럼 생겨서 효돌이만큼 교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아버지가 생전에 효돌이가 있었다 해도 외로움은 해소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도 필요하고 약간의 갈등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17

무궁화 꽃의 품격

국민 대다수가 무궁화 꽃을 우리나라의 국화인 줄로 알고 있지만 이것이 법적으로 공인된 근거는 없다. 국민정서상 무궁화를 국민 모두가 국화(國花)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해온 것은 기록상으로 2000년이 넘는다. 옛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시대 이전부터 하늘의 꽃으로 불리며 귀하게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는 무궁화 나라라는 뜻의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렀다고 한다. 무궁화를 국화로 하기 위한 법 제정 작업은 19대 국회부터 20대, 21대에 걸쳐 여러 번 시도가 있었지만 법 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8월 8일을 무궁화의 날로 정해 부르고 있지만 이는 민간단체에 의해 제정된 날이지 국가 지정 기념일은 아니다. 무궁화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공식적인 국화 지정이 안 된 때문이라는 분석도 한다.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님이 작곡했다. 그러나 애국가 가사 말의 작사자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안익태는 일제 강점기 때 애국가 가사 말이 스코틀랜드 민요 곡에 붙여 불려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작곡을 했다고 한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랫말이 곡에 붙여 널리 불리게 되자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꽃으로 더욱 공고히 자리를 잡게 됐다. 무궁화 꽃은 법적 지위가 없음에도 공무원의 임명장과 국회의원 배지, 사법부의 법복, 우리나라 최고훈장(무궁화대훈장)에도 쓰이는 등 국가 업무와 관련된 분야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민족의 꽃이란 상징성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민족의 꽃인 줄 알지만 늦었지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후속조치가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가 딱 어울린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7

‘광복 80주년’을 맞으며

찌는 듯한 무더위와 날 선 칼날처럼 쏟아지는 폭우가 반복되는 대단한 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장마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다. 이런 여름이 앞으로도 계속되고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형편이다. 살아있는 거대 유기체 지구가 내지르는 고통의 소리를 더욱 확대하는 최악의 생명체가 인류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하기 어렵다. 2025년 8월 15일 아침도 매우 무덥고 습하다. 하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태극기를 들고 나가 대문에 게양한다. 산들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태극기가 산뜻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나는 태극기 게양에 인색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와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을 기억하면서 아픈 마음의 조기(弔旗)를 다는 것에 한정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오전 빛나는 태양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내걸린 태극기는 얼마나 아름답고 당당한가?! 국기에 담긴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과 가슴 아픈 날을 온 국민이 함께 돌아보고 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소중한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 운명체의 구성원이란 명징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에는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과 슬픔과 절망으로 점철된 사건이 훨씬 많았다. 해마다 4월과 5월이면 교정을 물들이던 최루탄의 하얀 비말(飛沫)과 눈물로 범벅된 선후배들의 얼굴이 오늘도 삼삼하게 떠오른다. 유난히 행복하고 건강해야 할 20대의 10년 세월을 한숨과 탄식, 절망과 우울로 보내야 했던 세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이런 정황은 최근 몇 년 동안 달라진다.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한국 문화의 힘이 바탕이 되어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와 춤, 드라마와 노래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의 정점을 찍은 것은 2024년 12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진정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대 사변(事變)이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언제부턴가 나는 ‘국뽕’에 취하기 시작했다. 나이 서른에 서독일로 유학 나갔다가 경험한 쓰라린 통증이 시나브로 해소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혐오와 멸시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셈이다. 무엇인가 많이 부족하고, 창피하고, 당당하지 못한 한국 사회가 어느 날 문득 선진 사회로 진입했다는 뿌듯한 감동! 나의 ‘국뽕’을 완전히 날려버린 참혹한 비상계엄과 엄중한 내란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면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80주년 광복절을 맞이하고 있다. 내란 세력의 근본적이고 조속한 척결과 건강하고 행복한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국민의 열망이 합쳐지고 있다. 하나둘씩 밝혀지는 계엄과 내란의 본질을 확인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생각한다. 이승만의 부당한 ‘반민특위’ 해체로 흐려진 민족정기를 이참에 완벽하게 다시 세움으로써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의 미래를 광명으로 빛나게 해야 할 일이다. 이 땅에 더는 계엄과 내란이 없는, 자유-평등-형제애가 넘치는 대한민국 건설이 광복 80주년의 가슴 벅찬 교훈일 것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