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혐오 표현이 용납되는 사회

한 정당의 대변인이 유튜브 방송에서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인 김예지 의원을 겨냥해 장애인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해 문제라고 본다, 왜 국민의 힘에서 공천 달라고 구걸을 하냐, 민주당에 널리고 널린 게 김예지과라 민주당 가면 공천 안 줄 것 같으니까”라고 하더니, “본인이 장애인이라는 주체성을 가지는 게 아니라 배려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것”이라고도 했다. 제1 야당의 대변인이 현직 국회의원을 향해 공개적으로 혐오 발언을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만 해당 발언을 한 대변인은 김 의원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 정당의 원내대표도 “왜 굳이 자그마한 일을 가지고 기사화하려고 하느냐”라며 이를 ‘자그마한 일’로 치부하고 도리어 기자들 탓을 했다. 혐오 표현이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바탕으로 경멸, 비하, 모욕, 위협 등을 담는 언어적, 비언어적 행위를 말한다. 이런 혐오 표현은 오랜 기간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주로 이루어진다. ‘병신’, ‘장애인처럼’, ‘저능아’ 와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표현들은 장애인을 하자 있는 존재로 보는 그릇된 인식을 생산하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강력한 장애인 혐오로 작용한다. 이런 직접적 비하 표현이 아니더라도 장애인을 불쌍히 여기거나 부당하게 혜택받는 집단으로 치부하는 표현 또한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야당의 대변인이 한 말이 전형적이 예이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단 세 명에 불과한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해 그는 역량과 자격도 안되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국회의원 자리를 구걸해 받았다 식으로 말했다. “눈 빼면 기득권”이라는 막말을 하고도 반성과 사과가 없다. 이런 장애인 혐오 표현은 장애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런 표현들을 제재 없이 용납하는 사회는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을 심화시키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와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이런 혐오 발언에 대해선 지금의 법상으로는 처벌 방법이 없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있지만 혐오 발언 자체를 처벌하는 것은 아니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조치에 대해 처벌할 뿐이다. 혐오 발언으로 피해를 입어도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밖에 없다. 나치 과거에 의한 뿌리 깊은 반성 의식을 갖고 있는 독일은 사회 통합을 방해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매우 엄격히 처벌한다. 플랫폼 사업자는 혐오 발언이 들어간 콘텐츠를 24시간 이내에 삭제할 의무가 있고 혐오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 형법상 징역형이나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우리는 어떠한가. 관광지에서 ‘중국인 out’이라는 팻말과 욕설이 가득한 거리 시위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제1 야당의 대변인이라는 자가 공공연하게 장애인 혐오 발언을 한다. 내면의 증오와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고 싶다는 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소수자들의 인권보호와 사회적 통합이라는 법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가?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1-20

수능보다 아빠

1993년부터 대학수능시험이 시작됐다. 올해로 32번째다. 수능을 치르는 고3에게 수능은 마치 인생에 있어 새롭고 거대한 문을 여는 것처럼 엄숙한 순간이다. 30년 넘게 수능이 치러졌지만 수능을 바라보는 우리 주변의 눈길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특히 자식의 수능시험을 지켜보는 부모들은 자식보다 더 긴장된 마음으로 수능의 결과를 기다린다. 수능의 결과가 좋은 대학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자식 인생 항로의 중대 고비가 된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검정하는 테스트다. 수십년 간 똑같은 방법으로 시험을 봤지만 사회적 반론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회의론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듣기 좋은 말로 수능을 인생의 한 과정이라지만 학생이 받아들이는 압박감은 크다. 수능 한번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재단해 버린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충격이다. 12년 공부한 결과를 받아보고 교실 안에서 울고 웃는 수험생의 모습을 보면 과연 수능이 만능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올 수능이 실시되고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능을 망친 수험생 딸에게 아빠가 보낸 글이 화제다. 불수능에 좌절한 딸에게 아빠는 “소중한 막내딸 성적 잘 안 나왔다고 좌절하고 그러지 마, 아빠가 돈 버는 이유는 너 때문인데 아빠 능력이 아직도 짱짱해”라고 했다. 그는 딸에게 500만원 주고 “하고 싶은 거 다 도전해도 좋다”고 했다. 이 글을 본 네티즌은 “수능 만점보다 이런 아빠가 더 좋다”는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모두가 걱정하는 수능을 통쾌하게 한 방 먹인 아빠의 응원, 꽃보다 할배라더니 수능보다 아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20

재벌의 언어

요즘 들어 주식 시장의 변동만큼이나 재벌들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이후,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기업 총수들의 찬사에서 주목된 건 그 내용보다는 그들의 언어 그 자체 아니었을까? 그만큼 대중의 귀에 재벌의 언어와 소리가 가닿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이채로운 일로 여겨지곤 한다. 가령 서울 한복판에서 재벌들이 치킨을 먹었다는 사실만큼 놀라운 건 그들의 ‘먹방’ 소식을 듣고 모여든 수많은 인파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나타나자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마치 대선 유력 후보의 연설 현장 같기도 했다. 물론 이런 열광은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리더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들 아닌가. 저들이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너를 향한 대중의 선망하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도 없다. 안타까운 현상일지라도 말이다. 다른 한편 재벌의 삶만큼 철저하게 미지의 세계가 있을까 싶다. 이재용 회장은 자신의 모습을 담으려는 대중을 향해 “아이폰이 너무 많다”며 너스레를 놓기도 했다. 아마 대다수는 재벌 총수의 농담을 처음 들어봤을 거다. 그만큼 재벌의 언어는 알려진 바가 없다. 지난 ‘치맥 회동’이 색다르게 느껴졌다면 재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을 먹고 마시며 지낸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게다. 당연한 일일 텐데도 우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 거라고 상상해 온 건 아니었나 싶다. 당연히 이런 상상에는 출처가 있다. 매체에서 재현되는 재벌 일가의 행태가 대체로 그렇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는 재벌들의 ‘속사정’에 대한 ‘지레짐작’에서 비롯된 양식이다. 재벌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화된 이미지들만 넘칠 뿐 실제 그들의 말과 언어를 들을 기회는 없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들의 일상을 다룬 소설에 비해 재벌의 세계를 다룬 작품은 거의 없다는 것도 이해 가능하다. 작가들 역시 재벌의 생활을 알 도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난쏘공)’은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난쏘공’ 연작은 주로 도시 빈민이나 노동의 측면에서만 다뤄졌으나, 사실 이 작품에는 재벌의 세계가 중요하게 담겨 있다. 한국소설에서 재벌이나 사장은 탐욕의 화신으로 전형화되어 왔는데, ‘난쏘공’에서는 재벌 2세의 불안정한 사생활과 그로 인한 방황과 회의 등의 정서가 핍진하게 그려진 것이다. 이는 1970년대 한국 자본주의가 강남 개발과 부동산 투기, 관치금융 등을 통해 ‘토건’과 재벌 중심의 경제로 재편된 현실과도 상통하는 서사였다. 무엇보다 ‘난쏘공’은 ‘노동자의 눈에 비친 재벌’과 ‘재벌의 눈에 비친 노동자’의 교차를 통해 각자의 관점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 작품이 재벌 2세를 살핀 이유도 여기 있다. 생활세계에서 쉽게 식별할 수 없는 재벌의 존재를 후경화하면서도, 그들의 후계자를 내세움으로써 재벌에 대한 이해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맥 회동’을 계기로 재벌에 대한 인식의 차원이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 궁금하다면 우선 ‘난쏘공’을 권하고 싶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11-20

사람 사귀기가 쉽나

사진을 배울 때다. 선생님이 질문했다. “사진을 가장 잘 찍는 첫 번째 비법은 무엇인가?”라고 묻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빛에 따라 조리개를 잘 조절해야 한다.” “조금의 흔들림도 주의해야 한다.” 등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답을 질러본다. 선생님은 웃으며 “렌즈를 먼저 닦는다.”라는 답을 한다. 그 순간 수강생들의 반응은 헛웃음이었다. 뭔가 잔뜩 기대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사진 찍을 때마다 렌즈부터 닦는 습관이 들었다. 그 어떤 스킬도 그다음이었다.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병원 자주 가서 건강 체크를 하는 것도 중요하고 고급 영양제 달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동무가 있는 것이란다. 시시껄렁한 야담을 늘어놓아도 전혀 거리낌 없는 친구가 주변에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 지수는 높아져 가고 이에 편성해 장수 인자가 몸에 자리 잡게 된다는 이론이다. 아주 손쉽고 간단한 방법이 정답으로 다가올 때 살짝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주위에 아는 사람이 하나둘 나의 곁을 떠날 땐 분명 자신에게 큰 문제점이 있음을 알아야 하는 데 늘 상대방 탓을 한다. 우린 보인다. 그들이 왜 떠나는지를. 사실 이 사람의 인간성을 볼 땐 우리도 별로 다가서고 싶지는 않지만, 모임 속 일원이라 이야기 정도는 받아주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는 모른다. 자기는 착한데 떠나가는 남들은 전부 나쁜 인간들로 치부해 버린다. 나를 찾는 이가 없으면 남에게 베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든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친구를 만드는 데도 노력과 희생도 필요하며 절대 이기적으로 굴어서는 친구를 만들 수 없고 나 좋을 때만 연락해도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허구한 날 얻어먹는 인간에겐 사주기가 싫다. 모임 회비는 늘 늦게 내면서 챙기는 것은 일등으로 챙기려 들고 남 찬조 안 한다고 뒷말하고 다니면 좋아할 사람 없다. 이기적인 티가 팍팍 나는데 남들은 모른 줄 안다. 염치를 모르고 사는 전형적인 인간형이다. 혼자서만 똑똑하다. 세상 아는 척은 혼자 한다. “저 인간은 주는 것 없이 미워.” 이 말은 절대 본인은 들을 수 없다. 마치 자신의 입에서 나는 심한 구취를 본인만 모르고 주변 사람들은 다 알듯이 죽을 때까지 안 보고 살 자신이 있지 않은 한, 대놓고 말하기는 많이 힘든 말이기 때문이다. “난 천성이 혼자 있는 것이 좋아.” 이런 말을 하면서 혼자서 여행가고, 홀로 영화 보면서 고상 떠는 한 지인이 있었다. 그도 생일날 혼자 밥 먹으니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나더란다. 사람이 살면서 주는 것 없이 미운 인간형으로 낙인찍혀 사는 것만큼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내 가족부터 먼저 챙기는 것이다.” 가족이 제일 먼저 안다. 내 가족 간에 대화 없이 산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쓸데없는 유튜브만 쳐다보지 말고 가족과 지인에게 전화 돌릴 때다. “지금 뭐해? 같이 밥이나 먹을까?” /노병철 수필가

2025-11-20

MZ세대의 결혼과 출산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MZ세대’는 많은 부분에서 이전 세대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인간과 사물에 대한 철학과 관점이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형태를 보이는 것. 결혼과 출산 문제에 관해 보여주는 태도 역시 그렇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짝을 이뤄 결혼을 하고, 결혼 이후엔 당연한 순서처럼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전통적인 결혼관은 그들에겐 낡고 답답한 공식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독립이 가능하다면 혼자 사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느끼는 MZ세대가 적지 않다. 20세기 스타일의 결혼과 출산 패턴에 억지로 맞춰가려는 사람들이 드물어지고 있다. 사회 흐름의 변화를 추적하는 각종 기관에서 최근 조사한 결과를 종합하면 ‘결혼과 출산은 필수’라 생각하는 MZ세대 여성은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나머지는 결혼과 출산을 개인 선택의 문제로 인식한다. 이와 함께 ‘부모는 자식이 모셔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이들이 20%에 불과하고, 동시에 ‘늙으면 자식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넘쳐나는 정보와 개인을 존중하는 자유스러움 속에서 성장한 MZ세대는 너나없이 사고의 다양성을 가졌다. 그렇기에 “결혼은 하지 않아도 자식은 가지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의 고리로 묶을 수 없는 세대인 것이다. 어쨌건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그 변화하는 세상을 살게 될 주류 세대도 바뀌고 있다. 그러니, 현대사회란 당장 내일을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1-19

수능 후기

수능이 끝났다. 해마다 이맘때면 한국 사회는 긴장과 과열의 공기를 안고 그 하루를 통째로 맞는다. 지구상 그 어느 나라도 수능 날 하루만큼 이렇게 나라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고사장의 주변을 통제하고, 항공기의 이륙과 착륙 시간을 조정하며, 심지어 증권시장도 한 시간 늦게 문을 연다. 국가 전체가 ‘입시공화국’의 구성원임을 새삼 확인한다. 대학이 인생의 모든 걸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대입 중심주의를 넘어 대입편집광적 구조에 들어섰다. 청춘의 출발선에서부터 ‘대학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암묵적 강박에 시달리고, 학부모는 ‘좋은 부모’ 자격증을 오직 입시준비를 얼마나 잘 해주느냐로 획득한다. 학교, 학원, 지역사회, 언론, 교육당국, 정책 모두가 대입 압박의 공동기획자다. 서울시의회는 사교육의 대명사인 학원의 강습시간을 자정까지 연장하는 조례안을 상정했다. 표면적으로는 ‘학습권 보장’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웠지만, 실은 사교육 시장의 영업권 확대라는 본질을 숨기지 못한다. 학교에서 배움이 충분하다면 왜 밤 12시까지 학원에 있어야 하는가. 공교육의 무력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지만, 자정 수업 허용 논의는 공교육의 존재 이유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더욱 큰 문제는, 이 논의가 ‘아이들의 시간’을 누가 어떻게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비껴간다는 데 있다. 한국의 고등학생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는 집단이다. 한참 성장기이지만 수면시간은 가장 짧다. 결국 아이들의 삶을 깎아내 학원의 상업적 성취를 돕겠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입시전쟁은 가족의 시간도 허물어 버린다.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하루를 물으며 포근함을 나누는 공동체여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가족의 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니, 가족이 사라졌다. 부모는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고 아이들은 입시압박 속에서 가정의 품을 쉬어가는 곳이 아닌 또 또 다른 긴장공간으로 여긴다. ‘가족이 가족다우려면 무엇부터 챙겨야 할까’라는 질문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그들은 잠을 자야 하고 걸어야 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와 이야기해야 한다. 시험 때문에 지워졌던 일상성을 되찾고 가족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입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자기 삶의 방향과 속도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한국 사회가 입시 과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내년에도 우리는 같은 긴장 속에서 수능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학원 강습 시간을 자정까지 늘일 게 아니라, 아이들이 집으로 더 일찍 돌아가 가족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공교육이 역할을 다하는 구조를 세우고, 입시의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모아야 한다. 수능은 하루로 지나갔지만, 일상은 그 이후에도 이어진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어떤 대학에 가는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이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부가 아니라, 더 많은 삶이다. 수능 지나간 자리에, 사회가 그동안 잊었던 ‘정상성’을 되찾도록 돌아보아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1-19

영천 기행

우리 중학 동창 다섯은 매년 만난다. 서울, 부산, 공주, 대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아도 최소 일 년에 한 번은 보기로 한 지 20여 년이 넘었다. 작년 가을 전주에서 만나 올해 여행지를 해외로 정했는데 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장소가 뭐가 중해, 만나 얼굴 보는 게 중하지 모두들 동의해 주어 내가 사는 대구에서 가까운 영천으로 급변경했다. 영천을 관광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검색하여 일정표를 짜고, 영천 기행을 시작했다. 임고서원에 잠시 들러 수령 500살인 은행나무를 경외롭게 우러러봤다. 보현산 아래 화북면 자천리에는 역사 깊은 교회와 성당이 있다. 자천교회는 1903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120년이 더 된 오래된 유산이다. ‘야소교예배당’ 간판과 자천교회 간판이 정갈하다. 잘 정돈된 잔디마당을 지나면 일자형의 한옥, 옛 자천교회였던 예배당이 나온다. 내부에는 남녀석을 분리해서 칸막이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아쉬웠다. 세월을 이고 근엄하게 서있는 나무 종탑도 멋지다. 교회 옆 골목을 들어가면 영천성당 자천공소 안내표지가 나온다. 오래되어 쓰지 않은 건물에 ‘바오로정미소’ 나무 간판이 세월의 먼지 속에 희미하다. 성당에서 운영하였나 아니면 세례명이 바오로인 충실한 성당 신도가 운영하였나 넘겨짚어 본다. ’은혜의 모후‘ 성모상이 반기는 뒤편에 아마도 후대에 지어졌을 분홍색 성당이 현재의 자천공소이고 입구 오른쪽에 세월을 알게 해주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 한옥이 옛 자천성당인 듯했다. 1927년에 지은 초가집으로 성당이 시작되었다니 내년이면 100년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와 천주교사에 남을 만한 역사적 건물이 이렇게 있을 정도면 자천이 예전엔 꽤나 번화한 마을이었나 싶다. 자천 입구 길 따라 길게 펼쳐진 오리장림도 웅장하다. 1500년대에 조성된 마을숲이었다는데 수령이 족히 수백 년은 돼 보이는 나무들이 가을 풍치를 제대로 보여준다. 자천은 나의 원 고향이었다. 종고모와 종숙이 살던 집은 어딘지 잊었으나 어린 시절 오리장림에서 놀던 기억은 또렷한데 이렇게 오래된 교회와 성당이 있는 줄은 몰랐다. 오후엔 은해사와 거조암엘 갔다. 타지에서 온 친구들에겐 은해사는 생소한 절인 듯했다. 은해사냐? 은혜사냐? 은해사구나. 평탄한 길을 산책하듯 가다보면 다리 건너 절이 보인다. 초파일 등을 아직 거두지 않은 절 마당에 수령 450년이나 된 향나무가 우뚝하다. 은해사에선 우엉차와 무말랭이차, 갓 내린 커피를 대접받았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은혜다. 은해사에서 20여 분 오르면 팔공산을 동서로 가른 계곡 자락에 거조암이 있다. 매년 정초 거조암에 올라 오백나한 앞에 100원짜리 보시를 올리는 나였다. 이름과 표정이 제각각인 나한상은 볼 때마다 경이롭고도 재밌다. 친구들은 종교가 제각각이다. 한 친구는 성당에서 세례받은 신자요, 둘은 교회의 권사이며, 날 포함한 둘은 수계관정 받은 불자다. 어쩌다 보니 이번 영천 여행은 종교가 제각각인 우리에게 마침맞은 성지순례가 되었다. 한 친구가 범종교 여행이라고 했는데 절묘한 말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1-19

통증은 거기서 오지 않는다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들 아픈 부위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어깨가 아프면 어깨가, 허리가 아프면 허리에 문제가 있다고 단순하게 연결 짓는다. 그런데 실제로 초음파로 근육과 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통증 부위는 신호가 집결된 위치일 뿐, 실제 문제는 먼 곳에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예를 들어 회전근개 통증 환자의 어깨를 초음파로 보면 건이 약간 두꺼워져 있거나 미세하게 찢어진 흔적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원인은 어깨 바로 옆이 아니다. 날개뼈를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져 있거나 목 주변 근막이 굳어 있어서, 그 여파가 어깨에 쏟아지는 식이다. 환자들은 어깨만 아픈데 왜 목이나 견갑골을 치료하느냐고 묻지, 초음파로 구조를 보여주면 그제야 이해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곳에 실제로는 지방이 스며든 듯 흐릿하게 변한 근육이 보이거나, 건의 모양이 분명하지 않게 일그러져 있는 모습이 잡힌다. 이런 변화들은 MRI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초음파만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고 통증의 진짜 뿌리를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환자가 통증을 느끼는 곳보다 더 아픈 곳이 초음파에서 잡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만성 허리 통증 환자는 본인은 허리가 아프다고 하지만 초음파를 보면 둔근이나 측면의 장요근 라인에 더 심한 문제들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허리 주변의 건들이 이미 두꺼워지고 활액막이 부어 있는데도 환자는 그곳이 아프다고 느끼지 않는다. 실제 통증은 허리에서 느끼지만 문제를 유발하는 힘의 불균형은 완전히 다른 구조에서 출발한다. 이런 원리 때문에 단순히 아픈 곳만 침 맞고 약침만 맞으면 좋아지는 기간이 짧고, 근본적으로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구조의 원인을 정확히 보지 않으면 통증은 반복된다는 뜻이다. 초음파 진단이 좋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환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가 아무리 설명해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그런데 초음파에서 건이 두꺼워진 모습, 미세 파열처럼 검게 갈라진 부분 지방이 껴서 흐릿하게 보이는 근육을 직접 보여주면 환자 입장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통증의 원인을 본인이 직접 보고 나면 치료에 대한 신뢰도가 훨씬 높아지고 생활관리도 더 잘 따른다. 통증은 결국 기능의 문제이고 기능은 구조가 만든다. 구조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왜 전신 치료와 근막 라인 치료가 필요한지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통증 환자에게 초음파를 거의 기본처럼 사용한다. 단순히 염증이 있네 없네를 보는 게 아니라 근막의 방향성 건의 탄성 근육의 밀도 그리고 힘이 전달되는 체인의 불균형을 잡아낸다. 이후 치료는 아픈 곳만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만드는 곳까지 포함해 약침을 가이딩으로 정확히 넣고 필요하면 추나로 구조를 맞추고 매선으로 약해진 조직을 단단하게 받쳐준다. 이런 식으로 통증을 부위별 치료가 아니라 구조 단위 치료로 접근해야 진짜 효과가 난다. 통증은 늘 구조의 결과로 나타난다. 아픈 곳만을 보지 말고 몸 전체의 흐름을 보는 것이 진짜 치료의 시작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1-19

내안의 잎이 시들기 전에

초등학교2학년인 지율이는 나에게 꼬마박사로 불린다. 나는 최근 들어 이 아이만큼 나를 붙잡고 자신이 아는 지식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해 주는 학생을 만난 적이 없다. 오늘도 나를 보자마자 벌레잡이식물인 파리지옥에 대해 뜻밖의 질문을 건넸다. “선생님, 파리지옥은 파리 세 마리를 먹으면 죽는 거 알아요?” 내가 알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며,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진지해 보여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전혀 몰랐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율이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마치 세상의 비밀을 막 풀어낸 사람처럼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예요. 욕심을 너무 부려서 죽는대요.” 나는 그 말투가 어찌나 도덕책 같던지 웃음이 났다. 그러나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순간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찔렸다. 욕심을 부리다 죽는다니. 어쩐지 나의 이야기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몇 년 전, 나는 빈혈 수치가 높아서 고생했다. 아침과 점심을 습관처럼 자주 거르는 날이 많았고, 저녁마저 밤늦게 빵 한 조각과 커피로 때우기 일쑤였다. 잠을 자는 시간도 불규칙적이었다. 강의준비와, 읽어야 될 책, 맡은 일들이 온몸의 세포를 부유하며 나를 끊임없이 앞으로 밀어냈다. 밤이면해야 할 일들의 그림자가 자꾸만 늘어나 새벽이 깊도록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조금만 더 하면 돼.” 그 말은 어느새 내 안에 뿌리내린 주문처럼 나를 지배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버티다가 언제부터인가 어지럼증이 무시로 일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몸이 예전처럼 가볍지 않고 무거웠다. 하루를 힘없이 시작하기 일쑤였다. 나는 참을 만큼 참다가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진단은 빈혈이었다. 몸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의사는 나에게 체력이 바닥났으니 휴식이 필요하단다. 나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빙글빙글 끝없이 맴돌았다. ‘조금만 더, 하루만 더’라는 주문은 나를 갉아먹는 덫이 되어 있었다. 몸은 멈춰 섰는데, 마음은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이 바로 나였다. 지율이가 말해준 파리지옥이 떠올랐다. 파리 한 마리가 잎에 닿을 때마다 파리지옥은 한 번의 소화를 위해 온 에너지를 쓴다. 몇 번을 반복하면 그 잎은 기능을 상실해 더는 버티지 못해 시든다. 잎을 열어야 먹이가 들어올 텐데, 힘이 없어 더 열지 못한다. 그러나 식물 전체가 죽는 것은 아니다. 시든 잎 아래에서 새로운 잎이 조용히 돋아난다. 그렇다면 닫는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내려놓음의 표시가 아닐까. 파리지옥은 스스로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에너지가 고갈되었음을 알아차리고 먹이를 더 이상 소화시킬 힘이 없을 때 잎을 다문다.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 스스로 입을 닫는 것과 같다. 그 단순한 움직임은 생존의 방식이다. 돌이켜보면나는 그 지혜를 알지 못했다. 끝없이 삼키려고 욕심을 부렸다. 또한 파리지옥처럼 살아남기 위해 잎을 닫는 것이 아니라, 버티기 위해 ‘닫음’을 되풀이했다. 일에 치여 감정을 닫고관계 속에서 상처받기 두려워 마음을 닫았다. 속을 털어놓으면 약해질까 봐 차라리 침묵을 택했다. 그런데 닫음이 쌓일수록내 안의 잎이 하나둘씩 조용히 시들고 있었다. 시드는 순간은 언제나 소리가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파리지옥으로부터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내가 품을 수 있는 만큼만 품고그 이상은 놓아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짜 생의 균형을 회복하는 첫 걸음일 것이다. 앞으로는 아무 감정이나 억지로 삼키지 말고일에도 욕심을 덜어내기로 했다. 이제 나는 일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조금씩 여백을 주기로 했다. 일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창문을 연다. 내 안의 잎이 시들기 전에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멈춤의 시간 속에서내 안의 새로운 잎이 자라는 것을 느낀다. 그 잎은 더 단단하고, 더 푸르다. /정미영 수필가

2025-11-19

(11.20)이우근 시인과 박계현 화백의 포항 메타포

감은사지 2 당신이 애인이 있다면 당장 감은사지에 가라 둘 다 서로 잊혀질 것이다 가장 강렬해서 소원하고 멀어도 가깝다고 하나는 적절하게 외롭고 둘은 이미 다소 귀찮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당신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덤덤하게 말한다, 사랑은 늘 어렵다고 두 개의 탑 사이를 오가며 잡풀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바다를 기웃거리는 삶, 설렁설렁 잘 놀다 간다 순간을 영원으로 착각하지 말아야지 그것의 무난한 진리를 깨물며 씹었다 그러나 부처라 해도 문무대왕이라도 해도 안간힘으로 한판 패대기치면 간단한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랑이 그런 것을. …. 요란하지 않아도 즐겁고 따스한 곳이 있다. 감은사지 터가 그렇다. 그냥 다섯 시간을 앉아 있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다. 사람과의 만남은 상수이자 변수이므로 대충 뭉개면 된다. 단지 아프게 뭉개야 한다. 그래야 흔적이 남지 않는다. 아픔은 그대의 운명이다. 극명하다. 최고의 성실은 최대의 게으름이다. 저 두 개의 탑이 증명하고 있다. 세월은 배신과 반전이다. 당신의 퇴적층을 만들라! 반성의 빌미로 새로운 명제를 만들 것이다. 쇠락이 진전이 된다. 사람의 시작이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1-19

[김한섭 전 포항북부경찰서장 기고] 산업 근로자, 현장 안전이 최우선 가치 돼야

우리는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에서 교통사고를 포함한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각종 사건 사고와 관련된 뉴스가 쏟아지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필자는 38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경찰서장을 마지막 보직으로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KT 협력업체인 (주)우주씨앤티의 청도지역 경영과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다. 가끔씩 경찰관일 때와 기업 활동하는 현재가 오버랩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현장에서의 안전이다. 실제, 아무리 준비와 결과가 좋더라도 안전 문제가 꼬이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그런 점에서 어떤 분야든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물론 안팎에서 경험해 본 두 직업의 안전에 대한 내용이나 우선순위에서는 여러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나와 주변의 안전을 확보함으로써 일상의 평온함을 목표로 한다는 큰 틀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경찰관은 직업상 현장에서 나 자신의 안전보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민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런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나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거나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특성이 있다. 반면 기업에서는 자신과 주변 동료들의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다.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안전 우선이라는 점에서는 지향하는 바가 같다. 필자 또한 경찰관 재직 시에는 공공의 안전이 최우선이었으나 정년퇴직을 하고 사기업에서 종사하고 있는 지금은 근로자 안전을 가장 먼저에 두고 있다. 기업이 작업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직에 있을 때는 솔직히 잘은 몰랐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기업들의 안전 대응은 생각 이상이었다. 안전사고는 소속 기업에도 엄청난 손실을 끼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지만 대표자나 경영인들의 안전에 대한 대응과 계획은 기대를 웃돌았다.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우리 현장은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라는 KT의 표어가 걸려있다. 문구를 보고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들이 저마다 안전에 대하는 일종의 이념과 가치, 룰을 갖고 있음을 알았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실제, KT에서는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현장 안전관리를 위한 노력과 시스템이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KT 협력업체에서 안전관리 업무에 담당하는 필자로서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다. 누구나 주변의 위험요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심하고 살펴야 하겠지만 특히 산업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제복 입은 공무원들께는 현장의 안전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안전수칙을 준수함으로써 자신과 주변의 안전을 지키고 우리 사회의 안정과 발전의 초석을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공무원들이나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모두가 사회에서 존중받으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2025-11-19

6·3 地選, ‘TK폐쇄성’ 극복하는 계기되길

여야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룰 확정 작업에 분주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최근 당 행사에서 “국회의원이 입김을 행사할 수 없는 룰을 만들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권리당원이 100% 공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과거처럼 국회의원이 후보를 내리꽂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지방선거 때마다 현직 국회의원(당원협의회 위원장)의 공천전횡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직전(2022년) 지방선거 때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각 시·도당에 국회의원의 ‘내리꽂기 공천’ 잡음이 발생할 경우 다음 총선 공천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했었다. 여야의 이러한 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자기사람’을 공천하는 관행은 거의 일반화돼 있다. 국민의힘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 지역은 특히 지방선거 때마다 현역 의원의 공천개입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2022년 지방선거 때는 경북도당 공관위가 ‘교체지수’라는 낯선 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3선 도전 단체장(포항·영주·군위)들을 경선에서 탈락시켰다가 번복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컷오프 과정에서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국민의힘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서도 ‘기초단체장 평가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차기 총선 경쟁자 싹을 자르려는 ‘제2의 교체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TK지역의 경우 특히 현역 의원의 입김이 강하다. 이 때문에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국회의원 ‘가방모찌’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사실 현역 의원이 지역구 공천 작업을 주도하겠다고 나서면 당 지도부에서도 이를 말릴 명분이 별로 없다. 지방선거 결과는 지역구 의원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기 총선 공천주체는 먼 훗날에 결정되기 때문에 현 공관위의 압박에 긴장하는 의원도 많지 않다. 결국 비상식적 공천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심판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TK지역에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들이 학맥, 인맥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끼리끼리’ 먹고 사는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구의 GRDP가 전국에서 꼴찌고, 시민소득이 울산의 3분의 1에 그칠 정도로 쇠락한 것도 TK지역의 이러한 정치적 폐쇄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TK지역은 국채보상운동이나 1960년대 민주화운동, 1970년대 산업화의 주역도시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이 지역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할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중심이 돼서 해야 한다. 극단적인 비교일지 모르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사는 아이와 폐쇄적 도시에서 사는 아이가 한평생 누리는 행복수준은 같을 수가 없다. ‘한국의 시간’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김태유 박사는 “자라는 아이에게 새총을 주면 산에 가서 참새를 많이 잡는 꿈을 꿀 것이고, 엽총을 주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사냥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TK지역 아이들에게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리더들이 많이 출마하길 기대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1-18

부동산 계급론

서울 전체 아파트 가격에서 서울의 요지로 손꼽히는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의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43%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 전체 25개 기초자치단체 중 강남 3구의 가치가 거의 절반에 가깝다. 놀라운 편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부동산 조사기관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올 6월 현재 기준으로 강남 3구의 아파트 시가 총액은 744조원이다. 서울의 부자는 강남 3구에 다 몰려 살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파트 매매가격이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 우리나라 최고가 아파트가 집중된 곳이다. 그래서 한번 강남 3구로 이사 가면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집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얼마 전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서울 강남지역 고교 졸업생의 서울대 입학을 제한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실제로 서울대 합격생의 거주지를 살펴보니 아파트 가격이 비싼 순으로 합격자가 많았다고 한다. 최근 서울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부모들이 자식에게 아파트를 물려주는 증여가 크게 늘고 있다. 강남 3구에서 올해 증여한 부동산만 1452건에 달한다. 남 줄 것 없이 자식에게 물려주는 부모 찬스의 케이스다. 최근 서울의 고급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입주민 간 결혼 주선이 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부동산 계급론이 회자되고 있다. “새로운 귀족계층의 형성이다” “아파트로 신분 등급을 매긴다”는 등의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한편에선 신원이 확실하고 자산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다는 긍정론도 있다. 어쨌거나 부동산을 신분으로 보는 인식이 커져가는 세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18

심상(心像)요리사와 마음경영

기업의 성과는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많은 조직은 설비, 공정, 데이터는 관리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의 마음은 방치한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숫자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조직이 멈추는 대부분의 순간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식고, 불안이 쌓이고, 동기가 꺼질 때 찾아온다. 이 마음을 읽고 요리하듯 다루는 리더를 우리는 심상(心像)요리사라 부른다. 현장의 사람들은 늘 다양한 감정을 품고 출근한다. 불안, 분노, 억울함, 기대, 희망, 무기력 등 이 감정들은 공정 품질, 안전사고, 협업, 개선 활동의 결과를 좌우하는 요소다. 리더는 단순한 관리자나 지시자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요리사여야 한다. 마음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면 불량은 급증하고 소통은 막히며, 혁신은 사라진다. 마음을 잘 다루는 리더가 등장하면 생산라인은 놀라울 만큼 살아난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는 심상‘을 요리하듯 다루어 긍정적, 창조적 상태로 변화시키는 리더가 심상요리사인 것이다. 구성원의 감성, 심리, 동기를 경영자원으로 보고 이를 정성스러운 요리처럼 관리, 조율하는 리더십 방식이다. 마음의 재료(감정·욕구·불안·열망)를 읽고 다루는 리더이다. 개인과 조직이 보고 싶은 미래를 보이게 만드는 역할, 강압이 아닌 마음의 상태를 터치하여 구성원의 행동을 바꾸는 리더이다. 마음 경영은 구성원의 심리, 감정, 관계, 동기 등을 경영의 핵심 요소로 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성과를 연결하는 경영방식이다. 심상요리사와 마음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첫째, 리더 개인의 조건이다. 구성원이 다가갈 수 있는 ‘심리적 난로‘처럼 온화한 정서, 지적하기 전에 먼저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 말 뒤에 숨어있는 감정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심리적 경청 능력과 분노, 불안, 갈등을 익혀서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감정 요리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조직 상황의 조건이다. 의견을 말해도 공격받지 않는 심리 안전성의 환경이 필요하다. 실수는 숨기는 것이 아니라 학습의 재료로 삼는 조직문화이다. 신뢰 없는 마음경영은 형식적 이벤트로 전략한다. 리더와 직원 간 신뢰 구축이 필수요건이다. ‘작은 개선, 빠른 인정‘ 문화를 형성하도록 현장 중심 피드백 시스템과 태도, 협력, 소통을 성과에 반영하는 조직 분위기가 필요하다. 마음경영을 잘하여 일류기업으로 가고 있는 사례는 많다. 도요타는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 감정의 긴장 완화, 개선 활동 활성화라는 원리를 사용한다. 팀장들은 ‘마음 요리사‘ 역할을 하고, 작업자와 매일 감정 체크 대화를 한다. 그 결과 불량률 27% 감소, 개선 제안 2배 증가, 라인 사고 40% 감소 등 감정이 안정되면 손/머리/협업이 자연스럽게 정교해지는 속성이 있다. 사람 마음의 상태, 감정을 요리하듯 다루는 리더, 감정, 심적 동기를 경영 핵심 자원으로 관리하는 마음경영을 통해서 신뢰를 잇는 공동 발전의 디딤돌을 만들어 긍정조직 기반으로 훌륭한 기업문화로 나아갈 수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1-18

인공지능과 인간의 마음

인공지능(AI)은 이제 우리의 생활 곳곳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복잡한 데이터 분석, 방대한 정보 처리, 패턴 인식 등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인지능력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압도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AI가 그려내는 그림이나 작곡하는 음악, 심지어 논리적으로 구성된 글쓰기 능력은 이미 인간 지능의 모방을 넘어선 듯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놀라운 기능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게 결여된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진 마음(Consciousness·Mind)이다. 우리가 AI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지능(Intelligence)‘은 주로 문제 해결 능력, 학습 능력, 논리적 추론 능력 등 이성적인 기능을 의미한다. AI는 알고리즘과 데이터라는 연료를 통해 이 지능을 극대화한다. AI의 작동 원리는 본질적으로 계산(Computation)이며, 이는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정해진 규칙과 입력값에 따른 출력값으로 귀결된다. 반면,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계산 가능한 능력의 집합이 아니다. 마음은 주관적인 경험, 감정, 자아 의식, 도덕적 판단,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의미 부여를 포함한다. 인공지능이 비록 훌륭한 시를 쓴다고 할지라도, 그 시를 읽고 진정한 슬픔이나 환희를 느낄 수는 없다. AI는 수많은 고통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 고통이 나의 일인 것처럼 아픔을 경험하지는 못 한다. 이것이 바로 계산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주관적 경험의 영역이다. AI가 인간 지능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수록, 인간은 AI가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여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우선으로는 공감(Empathy)과 관계를 들 수 있다. 마음은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나의 것처럼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와 유대를 형성하는 능력의 원천이다. AI가 인간의 대화를 분석하여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감정적 교류는 마음이 있는 인간만의 영역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진정한 창조성(True Creativity)이다. AI는 기존 데이터의 패턴을 조합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소위 ‘모방적 창조‘이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성은 예상치 못한 통찰, 고통스러운 경험의 승화,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에서 비롯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을 가진다. 이는 감정적 동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셋째는 윤리적, 존재론적 성찰이다. AI는 프로그래밍 된 윤리규칙을 따를 뿐이지만, 인간은 왜 이 규칙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다. 이러한 성찰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힘이다. AI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인간 삶의 도구이자 동반자다. 우리의 지적 능력을 확장하고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그리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마음을 가진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데이터와 논리를 넘어선 마음에 대한 교육과 성찰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1-18

스팸문자

아침이라는 말은 언제나 새롭고 부드럽지만 완전히 나에게 결속되지는 않는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희끄무레한 빛은 또 하루의 시작을 알리지만 그보다 내게 먼저 도착한 것은 금속이 주는 진동이다. 침대맡에 놓아둔 전화기가 잠결에 취한 자아를 흔드는 떨림, 발신자가 불투명한 문자다. 읽어보기도 전에 나는 그것이 스팸이라는 것을 짐작한다. 이제는 번호도 낯설지가 않다. 발신인은 무의미하고 문장 구성은 비슷비슷하며 메시지가 담고 있는 내용은 늘 내가 알고 쉽지 않은 정보들이다. 나를 전혀 모르는 이가 나를 향해 보낸 것도 아닌 허공의 잔해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기어이 내 하루의 초입을 건드린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작은 균열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한 번 차단하면 끝날 것 같은데 스팸은 이상할 정도로 끈질기다. 오늘 막아낸 번호는 내일 새로운 번호로 다시 찾아오고, 그 다음 날에는 전화번호 뒤의 한 자리만 바꿔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왜 ‘스팸문자’를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지 좀 알 것 같다. 차단이 완성이 아니라 막아도 또 다른 모양으로 다시 온다는 사실을 체감하니까 그런듯 하다. 오늘은 이 스팸문자가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일상의 틈새마다 우리는 계획에 없던 염려를 한다. 마음속 깊이 저장하고 싶지 않은 걱정들, 원치 않는 근심들, 때로는 스스로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발신된 불안의 파편들. 그것들은 우리가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조용히 침입한다. 어디에도 원치 않는 감정들이 있다. 잠잠하다고 느낀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정체 모를 불안감이 메시지처럼 도착한다. 오늘은 아무런 위협도 없었고 별다른 사건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유 없는 가속이, 심장을 자극한다. 마음은 물결처럼 잔잔해지는 듯싶다가도 바람 없는 날에 갑자기 일어나는 파도처럼 스스로를 흔들어 놓는다. 가끔 나에게 묻는다. “이제는 좀 평안해져도 되지 않나?”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평안을 방해하는 건 외부의 어떤 거대한 힘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있는 스스로 발신한 스팸문자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무자비한 발신인이 된다. 이미 끝난 과거의 실수를 싸늘한 문장으로 다시 출력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재난을 마치 공지사항처럼 보내고, 타인의 말 한 조각을 확대 해석한 뒤 그것을 불필요하게 꾸며서 새 메시지를 만들어 마음의 우편함에 꽂아 넣는다. 우리는 마음속 편지함을 불필요한 감정들로 가득 채운다. 삭제하지도 못한 채, 또 차단하지도 못한 채 묵혀둔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은 견디기 어려운 무게로 가득차 오른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그 메시지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오래 침묵한다. 불안의 정체가 스스로 만든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소한 흔들림에 마음이 지배되는 순간들을 반복하면서도 스스로가 발신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마지막에야 깨닫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스팸문자 차단의 권한은 우리의 손 안에 있다.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밤들이 있다. 모든 일이 너무 무겁고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불안은 고장난 메시지 발신기처럼 계속 울린다. 그 불안을 열어볼 것인지, 바로 지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하루의 향을 결정한다. 예고 없이 종종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자리가 넓어졌다면 불안에게 내어줄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중년을 맞으며 조금씩 배워간다. 텅 빈 시간 속에 간헐적으로 날아드는 알 수 없는 진동들, 이전처럼 급히 열어보지 않으려 한다. 삶은 끝없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어떤 것들은 분명 소중하지만 어떤 것들은 분명 스팸처럼 자리만 차지하며 나를 소란스럽게 만든다. ‘삭제’ 버튼을 누르고 그것이 실제 위협인지 혹은 마음의 기만인지 구별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몇 번이고 스팸문자를 보내온다 해도 언제든, 또다시 차단할 수 있기에 이제는 괜찮다. 그 반복 속에서 평안의 깊은 자리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11-18

가브릴로와 블랙핸드 몰락

세르비아 비밀조직(기실 비밀도 아니었지만) ‘블랙핸드’가 추진했던 대세르비아주의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살해하면서 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된다. 배후에는 세르비아 블랜핸드가 있었다. 블랙핸드 소속 탄코시치 소령은 가브릴로 일행에게 세르비아 산 수제폭탄 여섯 발, 브라우닝 리볼버 권총 네 자루를 건넨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한 오스트리아에 경종을 울려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대세르비아주의 기상을 드높여 잠든 세르비아민족을 깨우기 위한 목표였다.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계 가브릴로는 가난한 고향을 떠나 형이 사는 도시 사라예보로 왔다. 상업학교에 다니던 가브릴로는 우연한 기회에 오스트리아에 대항하는 무정부주의자들 시위를 구경하게 된다. 이때 가슴에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조국이라는 원대한 이상이 요동쳤다. 블랙핸드에 몸을 담으며 본격적으로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폭탄 발포와 사격술을 연마한 그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로 옮겨 생활한다. 한편 강성일로를 걷는 블랙핸드는 세르비아 정부와도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던 터였다. 이때 세르비아는 페타르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둘째 아들 알렉산다르가 이어받았다. 대세르비아주의의 실현을 위해 블랙핸드는 오스트리아 요인 암살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하지만 어수룩한 계획, 미숙한 폭탄 투척과 총질로 매번 실패로 끝났다. 가브릴로가 시도했던 일곱 번째 암살 시도 역시 어수룩하기 짝이 없었다. 1914년 6월 28일 때마침 세르비아의 수호신이자 성자 성 비투스의 날,(525년 전 1389년 6월 28일 세르비아가 코소보 ‘검은 새의 들녘’에서 오스만터키제국에게 최후의 일인까지 마지막으로 항전했던 같은 날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암살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오스트리아는 국경수비를 강화하면서 검문검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블랙핸드는 국경수비대 소속 장교와 세관원을 매수해 가브릴로 암살단 일행을 사라예보에 잠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가브릴로 일행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기차역에 도착했다. 가브릴로의 동료 네델코가 던진 폭탄이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가 타고 있던 차량 밑에 떨어지면서 경호원을 포함해 오스트리아인 16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황태자 부부는 멀쩡했다. 도망친 가브릴로는 사라예보 시내를 흐르는 밀랴츠카강의 라틴 브리지 인근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운명은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돌연 예정된 길을 벗어나 중경상을 입은 호위병들을 위문하기 위해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던 가브릴로가 황태자가 탄 차량을 발견하고 뛰쳐나가 총을 쏘았다. 부부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이를 확인한 가브릴로는 사이안화물 성분의 캡슐을 삼켜 자살을 시도했으나, 캡슐마저도 불량품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결박당한 가브릴로는 미성년자란 이유로 사형은 면했으나, 법원은 20년 형을 선고한다. 일이 이렇게 커질지 어찌 알았을까. 감옥에서 자신이 벌린 일로 인해 세계대전이 일어난 사실에 무척 괴로워했다. 결국 가브릴로는 감옥에서 결핵을 앓던 중 25세의 나이로 죽는다. 영원할 것 같았던 블랙핸드, 즉 검은손 조직도 위기를 맞는다. 세르비아 왕 알렉산다르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블랙핸드와 갈등 관계를 이어갔다. 알렉산다르는 반전을 위해 은밀히 움직였다. 먼저 국민 여론을 자신 편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블랙핸드 폭정에 언젠가 세르비아가 국제사회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변할 것이라며 여론을 환기했다. 당장 세계대전이 블랙핸드에 의해 발발하자 그의 설득력에 힘이 실렸다. 블랙핸드와 맞설 대안으로 친위대 ‘화이트핸드’를 창설한다. 우리말로 ‘흰손’, 혹은 ‘백수단’ 쯤 되겠다만, 어쨌거나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의 강경노선은 군부 내 반대파를 양산했고, 진급이나 요직에서 소외된 군인들이 공공연히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알렉산다르는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이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면서 조직을 탄탄히 했고, 또한 대령이 수장인 블랙핸드는 언젠가 왕의 친위대인 화이트핸드에게 밀릴 것이라며 ‘왕정 대세론’을 퍼트렸다. 세계 1차 대전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1917년 초,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군부 내 일부 세력들은 화이트핸드로 갈아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왕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배후에 블랙핸드가 있다는 빌미를 씌워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을 전격적으로 체포했다.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을 중심으로 블랙핸드 핵심인물 공개재판이 1917년 4월 초순부터 두 달간 열렸다. 핵심은 민족 반역자 처단이었다. 알랙산다르는 오스트리아 페르디난드 황태자 부부 암살은 이들이 배후에 있다고 만천하에 알렸다. 6월 26일, 디미트리예비치가 죽으면서 외친 말은 여전히 세르비아인의 가슴에 살아서 요동쳤다. “대세르비아여 영원하라!”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11-18

중국 관광객의 빛과 그림자

서울은 물론 경주와 부산, 제주도까지 한국 어디를 가더라도 중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다. 특히, 이름난 명소나 인기 좋은 여행지 식당에선 들려오는 중국어를 피해 가기 어려울 정도. 늘어나는 중국 관광객 숫자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한국관광공사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인 2022년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460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2023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제도 시행 이후엔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중국인이 더 많아졌다. 서울을 포함한 다양한 관광지를 돌아본 중국 젊은이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도 한국 여행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세칭 ‘한국병’을 앓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중국의 미래세대가 한국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문화와 생활패턴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건 나쁘지 않은 신호다. 하지만, 한국인들 사이에선 아직 중국 여행객을 마냥 우호적인 눈길로만 바라보지는 않는 시각이 분명 존재한다. ‘시끄럽고 질서와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중국인을 낮춰 보는 것이다. 관광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용변을 보는 등 중국 관광객들의 추태는 잊을 만하면 방송이나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그런 까닭에 중국인이 방문하는 걸 달갑지 않게 여기는 카페나 식당도 있다고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 문제도 마찬가지. 여행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를 어디서건 명심해야 혐중(嫌中)이라는 그림자가 걷히지 않을까 싶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1-18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

아제르바이잔 대사님,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디아스포라청 지원재단의 집행 이사 아크람 압둘라예프, 이만희 한-아제르바이잔 의원 친선협회장, 그리고 서울대와 연세대의 아제르바이잔 유학생들, 또 많은 분들이 오셨다. 사회자 임성희 연구소장이 묻는다. “아제르바이잔은 아직 한국에서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닙니다. 아제르바이잔 문학을 한국의 독자들과 대중에게 어떻게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한국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세계 문학의 일원으로 합류한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오랫동안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시인 베흐티야르 와합자대의 퀼리스탄의 시, 또 니자미 간자비의 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해체 이전 ‘검은 1월’ 사태 등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지닌 나라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담은 문학 작품을 통해 아제르바이잔인의 삶과 현실적 고민을 전한다면, 한국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아제르바이잔과 한국 간의 학술 및 문화 교류의 미래 전망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답. “저는 아제르바이잔에 두 번 가보았습니다. 두 번 모두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국제학술대회에서 아제르바이잔 학자분들이 다른 나라 학자들의 논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반은 농담이지만, 제가 ‘아제르바이잔 식 토론’이라고 이름 붙인 토론 방식이었습니다. 발표자의 발표 내용에 대해서 단순히 소감을 말하거나 질문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풍부하게 개진하고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온 학자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고 또 흥겹게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서 아제르바이잔은 풍부한 국제적인 문화 유대를 가진 나라임을 실감했습니다. 한국도 그 유대관계 속에 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유라시아 네트워크를 통해서 새로운 문화의 미래가 열릴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마심리 레일라와 유수진 시인이 함께 번역한 서사시 책에는 우리의 ‘나뭇꾼과 선녀’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아제르바이잔은 투르크 계열의 민족. 초승달과 샛별이 국기에 그려진 나라는 우리와 오랜 연원을 같이 하는 민족이다. 그러고 보니 이 아세르바이잔 같던 때가 1년이 조금 못 되던 때다. 어수선한 나라를 뒤로 먼 나라에를 비행기를 갈아타고 갔었다. 고독은 깊을수록 좋다. 그것이 삶을 새롭게 생성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돌아왔는데 이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 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 아니고 지난 1년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모든 일을 정신없이 처리해야 했다. 정신을 비워두지도 못한 채 밀려오는 일들에 시달리며 고통을 건너뛰려 했다. 두 사람이 어찌나 ‘닥달질’을 하는지 삼 년쯤 감수했다고나 할까? 이제 책이 나오고 이렇게 출판기념회까지 하게 되니, 새삼 사연 많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어려운 때는 뭔가 잘 보이지 않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1-17

GD 그리고 MZ

‘GD’는 싱어송 라이터 권지용이 자신의 성 ‘권’과 이름 지용의 ‘용(龍)’을 영어로 표현한 ‘지드래곤( G Dragon)’의 약칭이다. GD는 조용필, 신해철, 서태지, GD, BTS(방탄소년단)로 이어지는 한국 가요의 맥을 잇는 큰 산맥이자 ‘MZ 세대’의 아이콘이다. MZ는 GD를 통해 자신을 이야기한다. ‘MZ’는 M세대(Millennials)와 Z세대(Generation Z)를 합친 세대다. ‘MZ 세대’라는 용어는, X세대(Generation X· 베이비붐 다음 세대라는 의미), Y세대(Generation Y·X 다음이므로 Y·Millennial과 거의 같은 의미), Z세대(Generation Z·Y 다음 세대이므로 Z)의 X,Y,Z 중 Y·Z를 지칭하는 말이다. ‘X 세대’ (1970~1980년대 청소년기)는 베이비붐 세대 이후 등장한 “정체불명”의 세대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변화를 경험하며 개인의 자아 탐색을 중시했다. ‘Y 세대’(밀레니얼 세대, 1980년대 후반~2000년대 초 출생)는 MF 외환위기, 취업난, 주거난 등 구조적 위기 속에서 성장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개인적 목표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Z 세대’(1995~2010년대 초 출생)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기본값인 세대로, 유튜브. SNS , 스마트폰과 함께 삶을 시작하였고, 자기표현, 다양성, 개인적 정서를 중시하며 기성세대들의 틀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MZ 세대는, 인터넷 모바일 소셜미디어에 친숙한 소위 ‘디지털 원주민’들이다. MZ들은, ‘현실의 자아’와 ‘디지털 자아’ 사이에서 진정한 자아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세대 들이다. 욕망, 불안, 계급, 그리고 ‘나’가 사라진 시대의 자화상들이 MZ들이다. 이들은 자기증명과 계급상승의 강박에 시달리는 세대다. 소비패턴과 이미지가 이들의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GD는 1988년생으로 MZ 세대이다. GD의, 2012년 곡 ‘one of kind’의 가사 중, ‘난 달라, 달라,달라“, 2013년 곡 ’삐딱하게‘의 가사 중, ’난 오늘도 화려한 척해‘ ’모두 나를 미워해. 외로워서 미치겠다‘는 표현들을 보자. 행복한 척, 풍족한 척, 화려한 척, 잘사는 척하는 자신들의 분열된 자아를 고백하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함을 과시하지만, 안으로는 우울과 고독감을 감추는 디지털 시대의 특징을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다. ’SNS의 나‘는, 편집되고, 보정되고, 조합된 하나의 브랜딩 된 자아이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불안하고, 외롭고, 확신이 없고, 명확한 정체성이 없다. 흔치 않은 발라드 2014년 곡 ‘무제(無題)’에서 GD는,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겁이 많은 건지‘라고 고백한다. 외적 화려함 뒤에서 스스로가 느끼는 내적 고갈의 표현이다. GD를 듣노라면 예술과 철학의 경계를 허무는 느낌을 받는다. GD의 노래가 어디 MZ만의 절규일까. X 세대를 포함한 지금의 장년층이라고 다를까. X들이여 GD를 듣자! 세대 간의 무경계를 위하여! /공봉학 변호사

2025-11-17

제1 산업의 쌀, 외면 받다

11월 첫 토요일. 볼일로 흥해 들판 농로를 지난다. 어느새 온 논에 타작 마친 짚만 가지런히 깔려있다. 가을이 깊다. 올해도 쌀 풍년인지 모르겠다. 농촌 출신이어서, 쌀 사랑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DNA가 되었나 보다. 생명 줄의 근원이기 때문이리라. 군 제대 후 첫 직장 포스코에서 인간사회는 쌀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산업의 쌀 철강’이다. 철강은 건설·자동차·전자제품 등 온 산업의 기초소재이기에 그렇다. 오늘날은 반도체·에틸렌·탄소섬유 등 각 산업에서 핵심 기초소재도 산업의 쌀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들 소재 역시 생산에 직간접으로 철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철강은 ‘제1 산업의 쌀’이다. 지난 11월 5일, 이강덕 포항시장은 자신의 SNS에서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철강은 단 한 차례 언급도 없었다”라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철강을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철강을 외면’한 것이 된다. 우리 몸은 생명 줄 쌀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철강 없는 산업이 버틸 수 있을까. 당국은 ‘값싼 외국 철강을 쓰면 된다.’라고 믿는가. 관세 협상 때 한국의 철강 침묵에 이 시장은 국내 시장이 “수입산 철강으로 대체된다면, 경제의 식민지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기초를 잃은 첨단은 공중의 성(城)에 불과하다. 국가기간산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이유다. 철강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이유다”라며, “정부가 산업을 포기할 권리 같은 건 없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정부의 과감한 대책과 결단이 필요하다. 그 책임과 행동은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라고 절규했다. 만일, 수입 철강을 써 국내 철강산업이 문 닫으면, 수입 철강값은 치솟을 터. 그러면 우리 철강은 망하거나, 외국에 뺏길 게 뻔하다. 나아가 자동차·전자·반도체 산업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땐, 후회해도 늦다.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현재 50%씩이나 관세를 물고 있는 철강 문제를 테이블에 올리지 않고 왜 침묵했을까. 대미 관세 협상 결과 설명에서도 철강 문제를 언급 안 했던 연유는 또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치적 이유 말고는 이해할 길이 없다. 철강산업과 집권세력은 무슨 연결고리를 가질까. 세계가 놀라며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 한국 경제의 대표 산업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철강이 산업화 정부의 큰 업적이어서 외면하는 걸까. 혹, 정치 입김이 안 먹히는 산업구조를 철강이 가진 걸까. 또는, 과거 정치의 눈부신 성공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철강 외면의 까닭은 뭔가. 첫 직장을 포스코 공채사원으로 시작한 때문인지, 이강덕 시장의 절규가 그대로 가슴에 독화살 되어 꽂힌다. 그 봄, 청운의 꿈을 안고 젊은 은빛 자전거 출근대열에 합류하여 형산강 다리 위를 달려가던 첫 직장···. 그리운 날들이 바로 어제다. 한데, 철처럼 굳건하던 제철소 하늘에 사람의 삿된 먹구름이 낀다는 건 포항시민과 국민이 용납할 수가 없다. 부디, 정부가 ‘제1 산업의 쌀 철강’을 살려내는 길에 떨쳐나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길수 수필가

2025-11-17

늦가을의 죽단화

헤어짐은 만남을 약속하고도 늘 아프다. 우리 집에서 친구들과 2박3일을 보냈다. 마지막 날 공원 산책을 하고 친구들은 역으로 나는 집으로 향했다. 학창 시절에 만나 지속되어온 우정이라도 이별 앞에선 늘 마음이 소란스러워진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거리는 아름다운 색의 전시장이 되었다. 봄의 통통 튀는 화사함 대신 진중하고 깊은 색감을 띈 나무들이 제각각 마지막 발걸음을 하고 있다. 친구를 보낸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파트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예쁘게 조경이 된 돌 틈 옆 빛바랜 초록의 나무가 서 있다. 평범하고 수수한 잎들이 미처 단풍들지도 못한 채로. 죽단화였다. 일반적으로 겹황매화로 더 불리는 꽃이기도 하다. 무더기로 많이 자라고 관상수로 키우기도 하지만 크게 매력이 있는 나무는 아니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옆에는 아직도 초록의 싱싱함을 자랑하는 연산홍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장미처럼 화려한 모습도 아니고 백합처럼 은은한 향기로 시선을 끄는 것도 아닌 길 가의 들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나무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이었지만 지나치면서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초록이 짙은 여름에는 죽단화도 옆의 꽃이나 나무와 함께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아도 조화를 이루며 있었던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며 옆의 나무나 꽃들이 겨울 준비로 자신을 치장할 때에 죽단화는 빛바랜 모습의 자신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런 죽단화를 보면서 헤어진 친구들이 떠올랐다. 젊었던 한 시절은 푸른 여름의 초록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화려한 삶을 추구하고 성공을 향해 달려야 했기에 함께 했던 시간들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 모두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만을 보고 달려간 시간들이었다. 전업주부로 살며 자녀 교육에 열중했던 친구. 재력을 키우기 위해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 직장 생활을 오랜 시간 하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은 친구들. 때론 보이지 않는 경쟁의 심리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열정에 쌓였던 날들도 있었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각자 사는 장소가 달라졌다. 과거의 크고 잘 되기 위한 일에 대한 관심사에서 벗어나 근래에 들어서는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어느 때보다 자주 모였다. 명예나 재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건강에 대한 것, 하루를 보내는 것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우리의 시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옛날 같은 경쟁의식이나 비교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소소한 것을 나누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소용돌이치던 젊음의 그 한 때에서 벗어나 욕심을 조금 내려놓은 지금의 조용해진 삶이 서로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러다보니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푸른 초록의 시절은 지나갔지만 늘 그 자리에 존재감이 없어도 있었던 죽단화의 시간이 온 것이다. 한 귀퉁이에서 살아온 죽단화를 보며 누구의 눈에 잘 띄지 않아도 피어야 할 때 필 줄 알고 져야할 때 질 줄 알며 스스로의 때를 살아가는 황매화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잠시의 화려함도 없고 시선을 끄는 향기도 적지만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있는 황매화의 그 모습이 나를 위로한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지금의 작지만 변화없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으로 족하다고 가만히 말해주는 것 같다. 죽단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랜 잎마저 시들 것이다. 그리고 또 꾸준한 인내의 시간을 갖고 다시 모습을 드러낼 날을 기다릴 것이다. 자신의 계절을 알고 자신의 온도를 알고 피어날 때를 순수한 마음으로 황매화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들은 또 작지만 따뜻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친구를 보낸 허전한 마음과 이제는 조금 작아진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애틋했던 마음이 죽단화를 보며 욕심을 죽이고 현재에 충실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다시금 느꼈다. 역으로 향한 친구들의 마음에도 이런 따뜻함이 함께 했으면 한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11-16

‘우리가 황교안’으로 지방선거 치를 수 있나

여야 정치권이 모두 내년 지방선거에 매달렸다. 이재명 정부의 전반기를 평가하게 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내년 선거를 독재로 가는 것을 막는 ‘마지막 저지선’이라고 규정했다. 장 대표는 보수 세력을 끌어모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잇달아 터져나오는 극우 성향의 몸짓들이 선거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좌우 균형을 맞춰가며 원을 넓히는 전략적 행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이다’라는 말은 ○○○에게 완전히 공감하고,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말이다. 황교안 전 총리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중심에 서 있다. 장 대표가 “우리가 황교안”이라고 말한 것은 그 음모론에 100% 공감한다는 뜻으로 비친다. 장 대표가 말한 ‘우리’는 누구인가. 부정선거 음모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의 씨앗이 됐다. 따지고 보면 멀쩡한 정권을 조기에 끝내고, 민주당에 헌납한 원인이다. 비상계엄이 아니라면, 이재명 대통령 재판은 정상적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그 가운데 몇 개는 이미 끝났을 수도 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비상계엄 직후 페이스북에 “부정선거 세력도 이번에 반드시 발본색원해야 한다”라면서 “강력히 대처하시라. 강력히 수사하시라. 모든 비상조치를 취하시라”라고 촉구했다. 더구나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체포하라”라고 부추겼다. 황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과 공모한 것은 아니다. 내란죄로 수사하려는 특검을 이해할 수 없다. 내란죄에 대한 특검 수사를 이렇게까지 확대해야 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황 전 총리의 말은 분명히 반헌법적이다. 전직 국무총리가 한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히틀러의 수권법을 응원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황 전 총리는 “아무리 봐도 내란 자체가 없었다”면서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하는 것이 내란이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국헌을 문란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주장했다. 현직 대통령이 하는 일은 무조건 합헌인가. 그렇다면 굳이 탄핵 절차를 왜 만들어놓았나.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헌법의 틀에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서라면, 계엄령을 발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헌법 절차를 밟지 않았다. 계엄령 발동에 대한 유일한 견제 수단인 국회마저 무력화하려 했다. 계엄령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정족수’까지 챙겼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은 견제받는 권력이지, 독재자가 아니다. 헌법 질서를 파괴하면서 견제 기관을 무력화하고, 헌법이 부여한 이상의 모든 권한을 한 손 에 장악하려 했다. 명백히 친위쿠데타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도 면회했다. 이어지는 언행이 극우편향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윤 전 대통령은 보수 정권의 자살을 가져온 것뿐만 아니다. 지난해 4월 22대 총선에서 패배한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현재 상황의 출발이다.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김태우 전 구청장을 무리하게 사면·복권해 재공천한 것부터 민심을 거슬렀다. 여론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한 독단이다. 총선 직전 전공의 파업에 대한 윤 전 대통령 담화는 민심을 뒤집었다. 참모들이 말렸지만, 그는 사전 상의도 하지 않은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선거를 앞두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도피시켰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사건에 사과는커녕 내부 갈등만 일으켰다. 대통령 참모의 회칼 발언은 민심에서 유리된 오만한 대통령실 분위기를 반영했다. 농산물 가격의 폭등과 물가고로 서민들이 고통받을 때 대통령의 ‘대파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국회 다수당 독재를 만들어 준 건 윤 전 대통령이다. 더 큰 문제는 선거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본인만 모른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비위를 맞춘 측근들도 문제다. 장 대표의 일련의 행보가 선거 필패의 윤 대통령 전철을 밟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극우세력을 끌어안는 게 지지층 확장이 아니다. 극우를 안으면 더 많은 중도층이 민주당으로 떠나는 걸 각오해야 한다. 정권을 다시 찾을 의지는 있는건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1-16

아, 1970년 11월 13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지난 11월 13일 오전 10시 30분, 내 입에서 갑자기 55년 전에 일어난 한국 노동 운동사의 대사건이 튀어나온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절규와 함께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자살한 전태일(1948~1970) 열사 이야기가 부지불식간에 강의실에서 발화(發話)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절을 극한 노동조건을 동대문구청과 서울시 그리고 노동청에 알리면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한다. 당시 전태일이 노동청에 제출한 진정서를 바탕으로 어느 일간지가 1970년 10월 7일 보도한 내용을 인용한다. “노동자들은 하루 13~16시간의 고된 근무를 하고 있으며, 적은 보수에 직업병까지 얻으며 근로기준법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휴일에도 나와 일을 하고, 여성들이 받을 수 있는 생리휴가 등 특별휴가는 생각도 하지 못할 형편이다. 이미 4~5년 전부터 받는 월급을 현재까지 그대로 받고 있다.” 동대문구청과 서울시, 노동청 어디서도 전태일의 요구사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근로기준법’을 불살라버린 전태일은 끝내 자신의 몸마저도 불태워버린 것이다. 그가 세상을 버린 30년 후인 2005년 서울시는 청계천 평화시장 인근에 전태일 거리를 조성하고, 청계천 버들다리 안에 전태일 기념 동상과 동판을 설치하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전태일은 온몸을 불살라 한국의 극악무도한 노동실태를 나라 전역에 알렸고, 그 결과 ‘청계천 피복 노조’가 탄생한다. 황석영은 중편소설 ‘객지’(1971)를 발표하여 노동 문학의 효시를 쏘아 올린다. 이것은 1983년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이어진다. 인권 변호사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1983)으로 전태일 열사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기폭제 구실을 한다. 전태일이 세상을 버린 지 어언 55년, 그러니까 두 세대가 흘렀건만 이 나라의 노동실태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울산 화력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로 노동자 7명이 숨지는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오늘의 수많은 전태일이’ 노동인권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잘 먹고, 잘 살자 주의’ 이른바 ‘먹사니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름없다. 위험의 외주화는 원청에서 시작하여 3~4차 하청(下請)에 이르러야 비로소 막을 내린다. 시간과 비용의 감축에 바탕을 둔 돈의 논리가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판국에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노란 봉투법’에 고개를 흔들어댄다. 비정규직-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법 바깥에서 최소한의 임금과 사회보험보장,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55년 전 산화한 전태일의 피맺힌 외침과 분신이 그저 고요한 메아리로 남은 셈이다. 기업의 이윤과 성장에 매몰된 경제 제일 논리를 주장하는 대기업 집단과 새로 출범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각별한 인식과 발상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1-16

마약의 검은 그림자

전 세계에서 마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1960년대 히피 문화가 퍼지면서 국내 마약 사용이 급증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지속 단속을 벌였지만 결과는 실패다. 미국은 인구의 약 4%가 마약을 소비한다. 세계 소비량의 30% 정도다. 마약 중독자 수도 매년 늘어나 지금은 약 4000만 명에 달한다. 미국 성인 10명 중 1명은 약물 중독자인 셈이다.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한해 10만명을 넘는다. 미국 젊은층의 사망 원인 1위는 펜타닐이다. 모르핀의 100배 효능을 가진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은 처음에는 말기 암환자나 절단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 치료제로 사용됐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이것이 오남용되면서 지금은 그 폐해가 심각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정책 배경을 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마약류를 막기 위한 것이 본질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으나 마약에 한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마약 청정국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도 매년 2만건에 달하는 마약사범이 단속되고 있다. 그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제주도와 포항지역 해안가에서 중국산 차봉지로 위장한 마약류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관계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발견된 물질은 신종 마약류로 분류된 케타민 성분으로 한꺼번에 수십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라 한다. 어디서 어떻게 흘러들어 왔는지 알 수 없다고 하니 더 섬찟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마약의 검은 그림자가 우리 뒤를 밟는 게 아닌가 두렵다. 경각심을 높여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16

인간 닮은 로봇을 만들 거라면

2022년 영국 로봇 기업 엔지니어드 아츠사가 개발한 ‘아메카’라는 인공지능 로봇은, 아직 몸체는 기계처럼 보이지만 얼굴과 손은 회색 고무 같은 재료로 되어 있고, 27개의 모터로 눈썹, 입술 등으로 섬세한 표정을 구현할 수 있어서 완전히 인간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6월에 코엑스에서는 아메카의 전신이 공개되고 11월 11일부터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아메카는 흉상 부분만 있다. 이것을 유튜버 비트가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서 언박싱하는 영상이 있어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눈에는 시각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외부 사물을 지각하고, 소형 마이크로는 소리를 포착한다. 뒤통수 아래에는 누크라는 미니 PC가, 뒤통수 위쪽에선 엔진과 모터로 머리 움직임을 정교하게 제어한다. 그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연결된 인공지능이 계속 업데이트되면서 답변해주는 하이브리드 식으로 작동하고 자연어 처리 엔진이 텍스트를 생성하여 사람과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며 상대방의 감정을 분석하여 적절하게 표정도 짓는다. 언캐니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피부를 회색으로 만들었다지만, 대화 능력이나 표정 등 움직임이 너무 정교해서 정말 사람 같다. 실제로 비트는 ‘이 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처음에는 존대말을 쓰기도 한다. 로봇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라도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많은 SF를 썼는데, 그중 1976년에 발표한 ‘이백 살을 산 사나이’(바이센테니얼 맨)은 2000년에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이백 살을 산 사나이의 이름은 앤드류 마틴, 그는 원래 가사도우미 로봇이었으나 인간에게서 독립해서 살다가 이백 살이 되던 해 죽는다. 그것은 그가 주인집 손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기를 원했는데, 법원에서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 죽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판결하자 인간의 장기를 이식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소설이나 영화에서 있는 일이고, 마틴의 외모가 완전히 기계 느낌이라 인간과 결혼한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빵조차도 동물 모양이면 칼로 자르기도 부담스럽고 먹는 것은 더 어렵다. 하물며 아무리 기계라도 사람과 아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 단순한 물건 취급하기는 더 어렵다. 2013년 영화 ‘그녀’에서 그녀는 몸체가 없는 인공지능인데도 주인공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 ‘그녀’가 여러 사람과 가상 데이트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몸부림칠 정도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닯았다는 뜻이다. 아메카가 이런 방식으로 개발된 이유는 사람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당연히 사람처럼 만들어야 더 실감 날 것이다. 이렇게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로봇권에 대한 논의도 미뤄서는 안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만든 로봇 3원칙으로는 부족하다. 로봇이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통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로봇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는 논의도 병행되어야 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1-16

기술 인재 유출, 막을 수 없나

2025학년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원 신입생 모집 결과, 석·박사 과정의 정원 885명 중 단 221명만이 입학하여 75%의 무더기 정원 미달 사태를 빚었다. 작년과 재작년의 미달 사태와 다르게 이번 대규모 미달은 대한민국 이공계의 미래에 충격을 준다. 대한민국 이공계는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내 교육기관과 연구소와 기업에 근무하는 이공계 석·박사급 연구자 1,9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 중 20대는 72.4%, 30대는 61.1%, 40대는 44.3%가 3년 내 해외로 이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젊은 층일수록 이직률이 높고 중년층도 상당수가 이직을 계획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추산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해외로 나간 이공계 인력은 총 34만 명이다. 이 중 석·박사급 인력만 9만 6,000명에 이른다. 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할 예정인 인공지능 전문 인력도 많은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2010년에 미국 체류 한국인 이공계 박사는 약 9,000명에서 2021년엔 1만 8,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2022~2023년 미국 유학생은 8% 증가했다. 낮아진 출산율에 국내 대학에 충원할 학생 수도 모자라는 판에 해외 유학 증가는 이공계 인력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온다. 유학을 떠난 이공계 인력은 국내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이공계 인력의 대탈출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공계 인력의 한국 탈출이 심각하다. 한은에 따르면 해외 이공계 전문가는 13년 차에 가장 많은 평균 36만 6,000달러의 연봉을 받았으나, 국내 이공계 전문가는 19년 차에 평균 12만 7,000달러의 최고 연봉을 받는다. 1/3에 불과한 낮은 임금과 최고 연봉을 받기까지 6년이나 더 걸리는 기간도 문제였다. 한국은 연구 생태계, 근무 여건, 연봉과 승진에서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진다. 직업 안정성과 높은 수입, 명예마저 갖는 의사를 기르는 의대는 블랙홀이 되어 이공계 인력을 싹쓸이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로 시간을 소비하며 정작 이공계 인력의 유출 문제에는 소홀하다. 이공계 인력의 대한민국 대탈출을 막는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은 우수 기술 인재 확보다. 이는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중국은 ‘천인계획’으로 미국은 높은 임금과 우수한 근무 여건으로 기술자들을 빨아들인다. 대한민국은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어떻게 하면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국내에 정착할지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일시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낮아지는 출산율, 젊은 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 의대 쏠림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우리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정책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기술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사람이 없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기술자가 살아야 기술도 인공지능도 미래도 꽃을 피울 수 있다. /김규인 수필가

2025-11-16

주민도 안다, 10억 ‘웰니스’는 실패였다!

“웰니스”라는 화려한 구호 뒤에는, 남은 것은 예산 낭비 지적과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사법 판단뿐이었다. 경상북도와 영덕군이 산업통상자원부 후원으로 벌인 ‘국제 웰니스 페스타’는 보건소 신고조차 하지 않은 외국 의료진의 시술, 강풍 속 강행된 행사, 부상자 발생 후 책임 공방으로 얼룩졌다. 수년째 반복된 불법 의료행위와 재단 본부장 횡령 기소에도, 군은 이제야 원점 재검토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이미 늦은, 뒷북 행정이다. 영덕군 재정 상황은 심각하다. 인구 3만 3천여 명 중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이고, 재정자립도는 7.72%에 불과하다. 통합재정수지는 수백억 원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10억 원이 넘는 혈세를 국제 행사에 쏟는 것은 주민과 지역 경제를 외면한 무책임한 도박이다. 특히 외국 의료진과 산업전 관계자 초청 비용에만 1억 7천여만 원이 집행됐다. 주민 참여는 배제된 채, ‘국제’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지출이었다. 견제 없는 권한과 감시 없는 행정이 낳은 구조적 실패. 지난해 웰니스 사업을 전담해온 영덕문화관광재단 본부장이 횡령으로 기소된 전례에도 군은 교훈을 얻지 못했고, 주민 안전과 혈세는 또다시 위험에 노출됐다. 같은 경북 지역의 성공 사례는 영덕 행정의 무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구미라면 축제는 예산 3억 9,500만 원으로 35만 명을 모으며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김천 김밥축제도 소규모 예산에서 출발했지만, 주민 참여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정체성을 살렸다. 영덕군은 ‘국제’라는 허울 뒤에 숨기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감시의 자리를 비워둔 책임은 군의회에도 크다. 군민이 맡긴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의회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지금 영덕군의회가 받아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4년 차를 맞은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었고, 주민은 철저히 배제됐다. 행정은 책임을 회피했고, 군의회는 침묵했다. 군민은 이미 혈세가 잘못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이다. 행정과 군의회 모두 반복된 무책임 속에서 손을 놓았다. 주민 삶 위에 내려앉은 책임의 무게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만약 그 10억 원이 개인 돈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경상북도의 책임도 면할 수 없다. 상급 행정기관으로서 예산 지원과 행사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적 실패를 방치했다. 영덕군이 지금 당장 필요한 진정한 치유는, 무너진 행정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 어떤 선언보다, 바로, 이 행동이 치유의 시작이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11-16

강릉~울릉도 항로 중단 이유, 강릉시-국민 이해 하도록 해야

지난 2011년 3월 첫 운항을 시작한 울릉도~강릉항 간 여객선 노선이 10월 말 15년 만에 행정조치로 강제 중단 사태를 맞았다. 이 노선은 강원·충청은 물론 서울 등 경인지역에서 울릉도를 찾는 가장 가까운 필수 노선이다. 하지만 15년간 큰 문제 없이 운영되던 강릉항 여객선 접안시설이 ‘사용 불허’ 처분을 받았다. 행정조치 그 자체만 보면 절차상 문제는 없다지만, 공교롭게 겹친 시기적 정황이 지역사회에 불필요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 속담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서로 무관한 사건이 맞물려 억측을 낳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부 지자체는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수년째 경쟁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정작 강릉시는 이미 보유한 노선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혹을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릉~울릉 항로는 15년 동안 수도권·강원·충청 이용객의 울릉도 접근성을 책임져 온 노선이다. 연간 10만 명 이상이 이용했고, 강릉항 인근 상권·숙박·운수업계까지 직간접적 혜택을 누렸다. 안전 문제를 사유로 들었다면, 동절기 휴항 기간을 활용한 보수·보강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는 ‘사용 연장 불허’라는 가장 강한 조치를 선택했다. 묻고 싶은 질문은 단순하다. “왜 지금이어야 했는가” 물론 해당 선사가 터미널 이전·신축 조건을 장기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은 크다. 그러나 행정은 공공성 위에 서 있다. 단일 기업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지역 접근권을 사실상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대안 제시 없이 ‘불허’만 남긴 행정은 결국 주민 이동권·관광 산업·지역경제라는 훨씬 큰 피해로 돌아온다. 더구나 올해 개서한 강릉해양경찰서가 해당 부지를 일부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됐다. 해양경찰은 해상교통과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이런 기관의 신뢰는 투명함에서 나온다. 그런데 여객선 운항과 해경 시설 활용 가능성이 겹쳐 버리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의혹까지 스스로 자초하게 된다. 양양군은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매년 100억 원 투자를 공언하고 울릉군과 MOU까지 체결했다. 반면 강릉시는 이미 존재하는 항로를 강제적으로 끊어내며 지역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밀어냈다. 이것이 과연 지역 전략으로서 합리적인 선택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강릉시와 해양경찰은 이 조치가 어떠한 공익적 판단 위에서 내려졌는지, 다른 선택지는 정말 없었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의혹은 설명 부재에서 싹튼다. 울릉도는 국민의 휴식, 관광, 삶의 균형을 책임지는 중요한 공간이다. 강릉~울릉 항로는 단순한 뱃길이 아니라 동해권 관광·경제의 동맥과도 같다. 지역은 상생의 기회를 필요로 한다. 행정 결정은 그 기회를 절단하는 칼이 아니라,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강릉시의 보다 책임 있는 대응을 기대한다. kimdh@kbmaeil.com

2025-11-16

생의 종결에 대한 자기결정권

영화 ‘노트북’에서 평생을 사랑하며 산 노아와 앨리는 요양원에서 손을 잡고 잠든 채로 함께 세상을 떠난다. 이런 영화와 같은 일이 얼마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다. 미국 워싱턴주에 살던 90대 노부부가 손을 잡고 한날한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안락사를 통해서였다. 말기 심장진환을 앓던 아내 에바는 낙상사고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수술 대신 삶의 마지막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싶다며 안락사를 결심했고, 아내의 결정을 들은 남편 드루스 역시 아내가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안락사를 신청했다. 드루스 역시 뇌졸중 병력이 있었기에 부부는 의료진으로부터 안락사 승인을 받을 수 있었고, 부부는 딸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마지막 날로 정한 8월 13일 음악이 흐르는 방 안에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손을 잡은 부부는 약이 든 칵테일을 마시고 함께 영면에 들었다. 이렇듯 워싱턴주를 비롯한 미국 10개 주는 의료적 조력 안락사가 합법이다. 작년엔 1982년까지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판 아흐트 전 총리가 뇌졸중이 악화되자 안락사 허가를 받아 아흔 세 살의 동갑내기 아내와 손을 잡고 함께 숨을 거두는 일도 있었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어야 하고 의사 두 명이 안락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해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이 있지만 네덜란드는 매년 8000명 이상이 안락사를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안락사의 뜻을 풀면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이다. 주로 가망 없는 불치병 환자, 중환자가 대상이 되는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약물을 주입해 사망하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약물이나 음식물 투입 등의 처치를 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우리는 이런 안락사가 모두 불법이자 범죄이다. 불치병으로 극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고 해도 약물 제공 등 안락사를 돕는 경우 자살방조죄나 촉탁살인죄로 처벌될 수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선 안락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스위스로 안락사 여행을 떠난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외국인에게도 안락사 및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이다. 지금까지 열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스위스로 가 실제 안락사를 시행했고, 안락사 순서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한국인들도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선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편안하지 않고 러프한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무작정 고통 없는 자살을 허용해 주자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인간의 생명을 조건부의 가치로 취급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상황을 강요할 권리가 과연 타인과 사회에게 있는 것일까.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인간은 어떻게, 언제 죽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도 전혀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이제 우리 국민도 76%가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안락사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결정권 말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