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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참새를 위한 변명

경산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다가 청도로 이사한 지 어언 1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다. 도회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들어온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그 가운데 하나가 층간 소음이다. 10층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소년이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친구들을 불러서 거실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언젠가 아이 엄마한테 그런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애들이 다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순간 경험한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뇌리에 삼삼하게 각인돼 있다. 강호에는 고수가 많다지만, 이런 절정 고수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때 나는 굳게 결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한 촌에 층간 소음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다른 형태의 층간 소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에스파냐 기와를 얹은 나의 소담한 지붕에서 일어났다. 기왓장 사이마다 참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 키우면서 잠꼬대하며 몸을 뒤틀거나, 기왓장 아래 나무판을 발톱으로 긁거나, 새벽마다 자기네 기상을 알리는 것이다. 햐, 이런 층간 소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찾아든다. 그런 일을 이미 알고 있던 일부 식견 놓은 건축주는 기왓장 틈새를 완벽하게 막는 시공법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참새는 천적을 피해 인가 부근에 둥지를 트는 인간 친화적인 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는 참새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말에 ‘참’이란 접두어가 붙으면 ‘좋은’, ‘진정한’, ‘우수한’의 의미다. 참나리, 참깨, 참나물 같은 어휘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참새에 이르면 나는 생각이 썩 달라진다. 아무 곳에나 똥오줌 내갈기고,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새벽잠을 깨우고, 여기저기 솜털이며 깃털을 날리는 불결하고 요란한 작은 조류에 지나지 않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무엇보다 우두머리 참새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그러지곤 한다. 사람을 비웃는 듯한 울음소리 때문에 아침부터 언짢은 심사가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참새의 ‘참’자는 풍자(諷刺)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놀라운 발상의 소유자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에는 여전히 헤아리기 어려운 숫자의 참새가 무상-무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를 풍미한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는 아직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요즘 농촌에는 완벽히 사라진 허수아비의 추억도 참새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문화혁명 시기 모택동의 지시로 3억 마리 이상의 참새를 잡아 죽인 까닭에 해충이 들끓어 식량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그만큼 참새는 인간과 가까운 조류다. 세상에 ‘나’에게만 좋은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만 좋은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과율에 따라 서로 의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관계와 인연에 따라 생멸(生滅)을 되풀이한다. 일방적인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는 없다. 참새를 위한 어느 인간의 소박한 변명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8

포항, 이제는 광역철도 시대로 가자!

“국장님, 포항에 광역철도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까?” 2022년 10월 21일, 제299회 임시회 건설도시위원회 정책 질의에서 필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최근 지난 4년여 동안 의회에서 ‘철도’와 ‘트램’을 언급한 속기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시정 질문과 위원회 정책 질의 곳곳에 남아 있는 기록을 읽으며, 그 시간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건설도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포항의 광역철도망 구축 필요성을 포함해 포항·수서행 고속철도 도입, 포항역 주차장 확충문제, 트램 도입의 문제 등을 꾸준하게 제기했다. 지적한 내용 중 포항·수서행 고속철도는 실제 도입되었고, 포항역 주차장 확충 역시 유휴부지 활용 공모사업을 통해 현재 추진 중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사안은 ‘트램 도입’이었다. 2023년 12월 제311회 정례회 건설도시위원회 속기록을 보면, ‘트램 도입 관련 용역 3억 원’에 대한 집중 질의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집행부는 포항에 트램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용역이라 설명했지만, 위원회에서는 공통적으로 “시기상조이며,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냈다. 당시 담당 국장은 “일단 용역을 한번 해보고 판단하자”라는 취지로 설명했고, 트램 관련 기업을 직접 방문했다는 발언도 했었다. 열변을 토하던 국장에게 “국장님, 트램 회사에서 나왔습니까?”라고 되묻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결국, 해당 용역비 3억 원은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전액 삭감되었다. ‘일단 해보자’라는 말은 가벼웠지만, 시민의 혈세 3억 원은 절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램 도입을 반대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현행법상 포항 도심에 트램등 도시철도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철도안전법에 따라 철도보호지구는 경계선에서 30m, 도시철도법상으로는 10m가 설정돼 행위제한을 받게 된다. 만약 죽도시장 일대에 트램이 들어서면, 기존 4차선이 2차선으로 좁아져 교통대란은 불가피하다. 또 철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사유재산 침해까지 발생할 소지가 크다. 법을 개정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행법을 무시한 채 추진하는 것은 문제다. 서울과 수도권을 보면, 지하철뿐 아니라 광역철도를 통해 서울과 경기권을 오가는 출퇴근이 일상화돼 있다. 그만큼 자가용 이용이 줄어들고 교통 체증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최근에는 광역급행철도인 GTX까지 도입되었다. 이러한 현실과 비교할 때, 포항을 비롯한 비수도권 시민들이 겪는 교통 불편은 명백한 불균형이다. 그래서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항의 광역철도망 구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포항시는 이미 2024년 4월, 경상북도를 통해 국토교통부에 관련 계획을 공식 건의했고, 올해 6월 국토부 고시를 앞두고 있다. 포항시가 제안한 안은 동대구–영천–포항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와 부산권(부전–북울산) 노선을 경주와 포항까지 연장하는 구상이다. 포항에 광역철도를 도입해 대구권과 부산권을 연결한다면 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 지역 통합이라는 정부의 계획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올해 6월 국토부 고시에 포항 광역철도망 구축계획이 포함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18

21세기 도시 생존은 ‘차이’에 달려 있다

20세기 도시 발전의 목표는 ‘결핍 해소’와 ‘차이 제거’에 있었다. 서울과 지방 간 주거·교육·문화 등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것이 곧 발전이며 진보라고 믿어졌다. 어디를 가나 동일한 아파트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상업시설, 효율 중심의 도로망은 도시를 빠르게 팽창시켰고, 우리에게 안정과 편의를 제공했다. 개발의 언어는 효율과 속도가 중심이 되었고, 차이는 불편한 것으로 간주되어 제거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단지 불편함만이 아니었다. 각 도시의 고유한 특성과 특별한 개성도 사라졌다. 낯선 도시의 역에서 내려도 어디선가 본듯한 대단지 아파트 숲이 눈앞을 가로막고, 골목마다 똑같은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서울 외곽의 수많은 신도시 프로젝트에서부터 지방 도시, 유럽 교외에서 아시아 해안 도시까지, 같은 건축물과 인프라, 접근 방식, 논리가 복사된 듯 반복되었다. 도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색무취한 공간으로 전락했다. 요즘 도시, 특히 지방 도시의 문제는 인프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본적인 도로와 건물, 각종 시설은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진짜 문제는 “왜 굳이 이 도시에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방소멸은 단순한 인구나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도시가 더 이상 어떤 삶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방 도시가 삶의 선택지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일이 많은 도시만을 고르지 않는다. 일 이후의 삶까지 상상하며, ‘나다운 삶’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한다. 결국 사람들이 도시를 고르는 기준은 그 도시만이 가진 공기의 질감, 축적된 역사의 기억,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고유한 관계의 방식 말이다. 포항과 경북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산업과 항만, 대학과 자연이라는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도시가 어떤 삶을 제안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와 똑같은 풍경으로 채워지는 ‘어디에나 있는 도시’가 되는 순간, 젊은 세대는 떠나고 도시는 빠르게 늙어간다. 따라서 21세기 도시 전략은 장식이 아닌 구조적 차이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차이는 일회성 축제나 화려한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보호하며, 어떤 삶의 방식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선택이다. 공간과 건축, 문화와 산업, 그리고 일상의 방식까지 포함한 총체적 차이다. 차이는 단순히 더 많은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 도시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이유다. 20세기의 인프라가 이동과 생산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21세기의 도시는 여기에 더해, 관계·기억·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가가 아니다. 이 도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다. 다름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살아남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차이를 잃어버린 도시에 미래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1-18

포항 교육, 서울 못지 않은 ‘기회’의 토대를 세워야 한다

포항은 지금 교육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해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학생 선택권 확대라는 취지로 출발했지만, 시행 1년 만에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은 커졌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이로 인한 교육격차는 더 벌어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33.5%가 자퇴를 실제로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한 번의 성적 부진이 곧 탈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의 결과다. 경쟁에서 밀리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 학부모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학생의 71%, 학부모의 90%가 고교학점제가 사교육을 유발한다고 응답했다. 진로와 과목 선택이라는 중요한 결정 앞에서, 공교육은 충분한 정보와 안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사교육 컨설팅이 빠르게 채우고 있단 점이다. 지역의 한 고교에선 고교학점제 대비 컨설팅을 대치동 사설학원에 맡기고 총 1억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내신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받기 위해 대규모 학교로 진학해야 한단 말도 사교육 업계에서 가장 먼저 나왔고, 실제 고교학점제 1년의 시행 결과 대도시와 대규모 학교가 내신 혜택을 받아 지역 격차가 더 두드러진단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과 비서울 간 입시 정보 격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교육의 문제가 주거와 경제력의 문제로 더 심화하는 것이다. 이 정보 격차는 곧 기회 격차로 이어진다. 포항에 교육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포항은 자사고와 과학고 등 비교적 교육 선택지가 많고 교육열도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그렇기에 공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고교학점제로 인한 혼란과 지금의 교육격차를 방치하면, 더 많은 정보와 여유를 가진 가정의 자녀만 앞서 나갈 수밖에 없다. 공교육 안에서도 진로와 과목 선택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정보를 제공 받고, 정보의 속도와 질에서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에 ‘포항형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를 구축하고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온라인 포털로 운영되는 경북교육청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로는 부족하다. 포항 지역 맞춤으로 학생들 누구나 우수한 강의와 진학 지도, 멘토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뿐만 아니라 질 높은 오프라인 컨설팅 공간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진학관계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 시가 적극적으로 입시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폐교된 용흥중학교 건물이 비어있으니 공간은 충분하다. 지원과 의지의 문제만 남아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현장과 제도, 두 곳에서 모두 고민해 왔다. 과거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실 수석보좌관으로 일하며, 수많은 교육 정책이 어떤 의도로 설계되고, 또 현장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제도 하나가 학생과 학부모의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도 직접 확인해 왔다. 그래서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는 말은 필자에게 ‘구호’가 아니다. 공정한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몸으로’ 알고 있다. 고교학점제란 새로운 제도로 인한 혼란과 이미 구조화된 교육격차란 오랜 문제는, 이상적인 말로 해소할 수 없다. 서열을 없애겠단 말보다, 서울 못지않게 인프라를 제공하겠단 말이 더 현실적이다. 포항의 도약은 교육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때문에 이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이 먼저 선택되는 도시, 가정의 배경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평가받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포항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을 생각하면, 가능한 이야기이고 해야만 하는 꼭 필요한 일이다. /박대기 전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 직무대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18

검찰은 없애고, 특별검사로 대체하나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한다. 자두를 따 먹는다고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그러나 요즘 정치인은 오히려 오이를 따 먹으려고, 내놓고 신발 끈을 푼다. 그러고는 왜 오이를 딴다고 음해하느냐며 버럭 화를 낸다. 얼굴이 참으로 두껍다. 민주당은 지난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2차 종합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 28일 3대 특검 수사가 끝난 지 19일 만이다. 3대 특검(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 순직 해병 특검)이 미진했다는 이유다. 새롭게 드러난 의혹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검은 577명의 수사 인력이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쓰며 180일간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탈탈 털었다. 2차 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16일에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첫 1심 판결이 있었다. ‘체포 방해’와 관련해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그것 말고도 7개 재판부가 1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핵심인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서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다. 내란 우두머리에게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두 가지밖에 없다. 무죄를 선고한다면 모를까, 최소 무기징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2차 특검을 또 하겠다고 한다. 2차 특검은 검사 15명에, 특별수사관 100명, 파견 공무원 130명으로, 내란 특검과 비슷한 규모다. 수사 기간은 최장 170일, 추가 비용만 154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해제 방해는 용서할 수 없는 중대 범죄다. 민주주의를 위협했다.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만 특검을 오래 끌어야 징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새 정부는 윤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국민이 적극 지지했다. 그런데도 아직 미진하다고 한다. 미진한 점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굳이 특검을 다시 해야 하는 걸까. 특검은 권력자를 수사하기 위한 장치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 대통령이 수사 검사를 해임했다. 이 때문에 의회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할 ‘독립검사법’을 만들었다. 그 뒤로 21년 동안 20여 차례 특검을 임명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무분별한 수사로 정쟁의 도구가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바람에 1999년 그 법을 폐기하고, 정부와 의회가 서로 견제하도록 특검 제도를 수정했다. 그런데 한국은 그 무렵 특검제도를 도입했다. 한국도 27년 동안 19개 특검이 활동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민주당은 검찰을 해체하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검수완박’(檢搜完剝·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외쳐왔다. 정치적 수사를 하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히 빼앗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특검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다. 현재 검찰과 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을 민주당 정부가 장악하고 있다. 내란 수사를 방해할 권력자는 없다. 내란 수사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추가 수사까지 통상의 수사기관에 맡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검찰을 ‘정치적’이라며 없애자는 민주당이 가장 정치적인 특검을 반복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정작 집권 세력이 연루된 사건에 대한 특검은 외면한다. 김병기·강선우 의원 사건은 고발한 뒤에도 묻어두다가, 끈이 떨어진 뒤에야 수사기관들이 움직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공천 비리 특검은 거부했다. 수사기관은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의 불씨가 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도 경찰이 저질러놓고 은폐한 것을, 검찰이 흘리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더구나 2차 특검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상계엄에 동조했는지, 추가로 수사하겠다고 한다. 지방선거가 겨우 130여 일 남았다. 특검이 확정되지 않은 야당 후보의 의혹을 최장 170일 동안 쏟아내면 선거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하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비자금 사건 수사를 선거기간에는 중단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않는 절제를 보였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민주당은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풀고 있다. 그런데도 참외를 따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린다. 정치인의 낯가죽이 참으로 두꺼운 시대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18

로봇 세상이 코앞에

최근 막을 내린 CES 2026 전시 현장에는 인간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가득했다. 관람객들은 로봇의 정교한 움직임에 감탄하며 앞으로 로봇이 인간에게 제공할 무한한 노동의 영역을 상상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는 앞으로 10년 안에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부분 대체할 거라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예측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세상은 로봇천지로 바뀌고 있다. 국내 어느 대기업의 CEO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년 후면 많은 생산라인에서 로봇이 일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이라 말했다. CES 2026에서 보았듯이 LG전자의 클로이드는 빨래, 요리 같은 집안 일을 척척해낸다. LG전자는 가사노동 제로화를 비전으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로 인간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도대체 두렵기도 하다. 테슬라와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을 시도하고 있다.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하면 생산비 절감과 동시에 작업 성공률도 높아진다. 지금의 속도로 가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안에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으로 바뀔 것 같다.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배하면서 인공지능 위력에 깜짝 놀란 지 불과 10년 만에 AI 로봇이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이 인류의 미래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학계에서는 현재 인류가 수행하는 일자리의 절반 가량은 로봇 등으로 사라질 거란 전망을 내놓는다. 인간이 만든 기계에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기막힌 세상이 바로 코앞에 와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15

인서울 대학 경쟁은 공정한가?

‘공정’은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였다. 이 단어는 경쟁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되었고, 평가의 잣대가 되었다. 선거에서, 학교에서, 채용과 승진의 장에서 공정은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공정해졌는가.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격차는 더 벌어지고, 분열과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왜곡된 공정이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노력과 능력이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승자에게 정당화된 우월감을, 패자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치심을 남긴다. 성공은 자격이 되고, 실패는 낙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서열은 고착화되고 공동체의 연대는 느슨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영역은 교육 분야다. 그중에서도 대학 입시는 극도로 민감한 공정의 최전선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문자 그대로의 계급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대학의 서열화는 더욱 강화되어 왔다. 오늘날 ‘서연고서성한’으로 시작되는 대학 서열은 ‘태정태세문단세’로 암기되는 조선왕조 계보보다 더 유명하고 확고한 계급 체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학 서열화는 공정한 입시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인서울 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의 격차에서 공정의 허상은 보다 명확해진다. 대학의 소재지는 능력과 가능성을 대신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교육 수준이 아닌 대학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으로 선호도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인서울 여부는 능력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지방 대학은 2등 시민을 양산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감춰진 공정 담론은 지역과 서울 간 교육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애써 정당화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간판은 채용과 승진을 넘어 삶의 경로를 결정한다. 한 번 형성된 서열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사람들은 이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 오늘날 사회 구성원들이 인서울 대학, 인서울 직장, 인서울 아파트 구입을 목표로 경쟁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인서울 경쟁에서 승자의 명예와 패자의 수치는 간극이 너무 크고, 이를 만회할 기회는 거의 없다. 공정 담론이 쉽게 분노와 혐오의 언어로 변질되는 이유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려면 계속 질문해야 한다. 인서울 대학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교육의 질보다 대학의 위치를 먼저 따지는 사회는 건강한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우리는 공정한 민주 시민인가. 공정은 과소 평가되는 존재들에 대한 차별없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대학의 지리적 위치가 삶의 서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지역과 학교를 넘어 사회적 기여를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은 경쟁의 언어가 아니라, 공존의 문법이어야 한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1-15

주사 이모

골프장에 가면 호칭은 단 하나다. 모두가 “사장님”이다. 진짜 사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손사래를 쳐도 “사장님 나이스 샷”은 멈추지 않는다. 호칭은 사실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편리하게 만드는 장치다. 반복되면 어색함은 사라지고, 결국 말은 의미를 잃는다. 골프장에서 사장님이 넘쳐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칭이 존중의 표현이기보다 서비스의 윤활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듣는 쪽도, 부르는 쪽도 그 허구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주사 이모’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낯설었다. ‘주사 아줌마’도 있을 수 있고, ‘주사 도우미’도 가능할 텐데, 왜 하필 이모일까. 더 묻게 된다. 고모는 왜 안 되는가. 외삼촌은 왜 상상조차 되지 않는가. 호칭 하나에 이렇게 많은 전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동시에 불편함을 남긴다. 이모라는 호칭은 이미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동네 병원에서도 여성 노동자를 부르는 가장 무난한 말이 되었다. 이름 대신 불리고, 직함 대신 쓰이며, 개인은 자연스럽게 지워진다. 친근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친근함은 대체로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부르는 쪽은 편하고, 불리는 쪽은 선택권이 없다. 과거 드라마 속 가사도우미는 “청주댁”, “안성댁”으로 불렸다. 본래 ‘댁’은 존칭이었지만, 어느 순간 출신과 신분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고, 급기야 비하의 언어로 굳어졌다. 지역과 혈연을 담던 말이 노동과 종속을 표시하는 기호로 변한 것이다. 언어는 이렇게 계층을 정리하고, 한 번 굳어진 호칭은 좀처럼 위로 이동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모라는 말조차 부담스러워졌는지, 재벌가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가사노동자를 “실장님”이라 부른다. 반면 골프장에서는 모두 사장님이고, 글 쓰는 세계에서는 모두 선생님이다. 미술계에서는 작가라 부른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모’라는 호칭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모는 특정한 장소, 특정한 계층에만 허용되는 말이 되어 버렸다. 호칭 하나로 공간의 위계가 구분되는 셈이다. 백화점에서 이모라는 호칭이 통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곳에서는 “저기요”면 충분하다. 아가씨도 아니고, 이모는 더더욱 아니다. 호칭을 지우는 대신, 서비스 공간의 격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모라는 말이 그만큼 낮은 위치로 고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는 평생 이모라는 호칭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는 외동이었고, 아버지 쪽에는 고모만 있었다. 그래서인지 식당에서도 이모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오십쯤 되어 보이면 무조건 아가씨라 부른다. 그 말에 불쾌해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불편함은 말보다 맥락에서 생긴다. 내게 이모는 친족 호칭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모는 여성 노동자를 부르는 가장 손쉬운 말이 되었다. 친근함이라는 포장을 두른 채, 개인을 지우고 역할만 남기는 언어가 된 것이다. 만약 주사를 놓는 사람이 남자였다면 우리는 뭐라고 불렀을까. ‘주사 외삼촌’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요즘 꽤나 심심하긴 한 모양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1-15

해방군은 없다

새해 벽두부터 참담한 소식이 전해온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납치하고 직접 통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군은 새벽 두 시에 침입하여 한 명의 전사자도 발생하지 않은 반면, 베네수엘라 측은 8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명분은 마두로의 부정선거와 미국 내 마약 판매다. 아무 배경지식이 없이 상식적으로 보아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트럼프는 1기 대통령 시절부터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이유로 반미 성향의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그동안 트럼프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마약과 폭력을 전파한다고 비난하면서 마약 실은 배를 습격하는 등 긴장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부정선거에 미국이 개입할 정당성도 없거니와, 대통령을 납치한다고 마약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미국의 개입을 환호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마두로가 얼마나 독재를 했으면 미국의 침공을 환영할까 싶은 것이다. 사실 마두로가 처음부터 독재자는 아니었다. 그는 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노동운동가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마두로는 자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명분만 사회주의를 내세웠을 뿐 실제로는 사익만을 위했다. 예를 들어, 마두로가 석유 산업을 국유화했지만, 그것은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었다. 작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였던 것은 마두로의 독재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마차도는 차베스가 대통령일 때부터 독재를 비판해왔다. 차베스와 마두로는 갖은 위협으로 마차도의 인권 운동을 방해했지만 마차도는 수년간 꿋꿋하게 독재에 맞서 왔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노벨상 위원회가 발표한 것이 기억난다. 마차도 같은 인권 운동가가 정권을 잡게 된다면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희망이 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미국이 개입해서 친미 정권을 세우는 것은 또 다른 독재를 불러올 뿐이다. 과테말라나 이라크, 아프카니스탄처럼 미국이 개입해서 친미 정권이 들어선 나라들은 내분만 격화할 뿐 제대로 발전한 나라는 없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다. 그러나 이 석유 때문에 베네수엘라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트럼프가 마두로 부부를 납치한 것은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일 뿐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차도 같은 민주 인사가 정권을 잡는다고 안심만 할 수는 없다. 사람은 변한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얀마의 정치 지도자 아웅 산 수 치도 노벨상 수상 이후 반민주적인 행보에 비판이 많다. 아무리 민주 투사였던 사람이라도 처지가 바뀌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현재까지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가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복덩어리가 되려면 마두로의 부정투표와 독재에 저항하고 트럼프의 군사 개입에도 항거할 수 있어야 한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1-15

껌팔이 소년에서 교수로,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160시간의 사회복지실습이 일깨운 ‘스마트 복지’의 미래

포항시 북구 기계면 고지리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도움터기쁨의집’(원장 황순희)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시작된다. 160시간의 사회복지 실습을 마친 지금, 나는 이곳에서 한국 사회복지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았다. 껍질을 벗고 본질로 1970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구의 한 방직공장으로 향했다. 실을 잇는 손가락 사이로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기계에 끼어 오른팔이 절단될 뻔한 사고를 당했으나, 동료 선배가 재빨리 스위치를 꺼준 덕분에 팔은 남았고 상처만 남았다. 부상 후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시골의 비인가 중학교에서 공부했고, 이후 포항으로 이사했다. 당시 가난은 쉽게 회복될 수 없는 굴레였다. 극장에서 껌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매점 사장의 배려로 포항문화원 사환으로 일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맹모삼천지교’의 현대적 의미라고 생각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비인가 중학 과정인 포항중앙재건학교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 나를 가르쳐준 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 교사선생님들이었다. 그분들과 여러 선배들의 도움으로 중학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포항고를 거쳐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장학생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군 제대 후에는 포스코 협력업체 노동 현장에서 일했고, 새벽 우유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이후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대학교 해양연구소에서 ‘복어독 생성균과 해양환경에서의 독 축적 메커니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립대 약학부에서는 적조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오로지 포항영일만환경과 발효식품연구에 매진을 하였다. 그 후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하며, 특히 사회봉사 담당 주임교수로 10여 년간 봉사와 복지의 경계를 고민해왔다. 은퇴 후, 어린 시절 나를 일으켜 세워준 이름 모를 자원봉사자들에게 사회로 환원하고자 사회복지사의 길을 선택했다. 잔여주의에서 제도주의로, 그리고 그 너머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인 ‘도움터기쁨의집’에서의 160시간은 한국 사회복지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현장은 여전히 잔여주의 복지의 그늘 아래 있다. 가족과 시장이 감당하지 못할 때 비로소 국가가 개입하는 구조다. 발달장애인은 가족의 돌봄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시설로 오고, 예산은 항상 ‘최소한’에 머문다. 정확한 통계는 아닐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복지사 1인당 돌봄 대상자는 10명을 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관련 종사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년 미만, 연 이직률은 20%를 상회한다. 낮은 처우와 과중한 업무 때문이다. 복지는 여전히 ‘권리’가 아니라 ‘시혜’로 인식된다. 그러나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말한다. “이분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것이 제도주의 복지의 관점이다. 복지는 소수의 불운한 사람을 돕는 시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다. 실습 기간 중 가장 거주인들의 인기 있는 활동은 노래와 춤이었다.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거주인과 사회를 잇는 소통의 다리였다. 특히 은하수로타리 여성봉사단의 후원, 하모니카 봉사단과 예술봉사단 및 참붕어빵학교의 참여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방송대학생들의 실습생들도 스스로 프로젝트를 구성하여 거주인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린다. 아직도 아쉬운 것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날에 모든 거주인들이 다 함께 국내외에 나갔으면 하는 마음과 거주인들을 움직이는 짧은 공간의 애마(이동수단)를 변경하는 것이 나의 작은 올해의 소망이기도 하다.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 실습 중 만난 40대 발달장애인 L씨는 간단한 문장 표현이 어려웠지만, 태블릿 PC와 그림 소통 앱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했다. 또 다른 시설의 B씨는 IoT 센서가 부착된 침대 덕분에 야간 낙상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앞에서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을 보았다. AI와 기술은 돌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손을 덜어주고, 발달장애인의 선택권과 안전을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태블릿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주인, IoT 센서로 밤사이 낙상을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존엄을 지켜주고 있었다. 복지는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복지는 사람과 사람이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 껌팔이 소년이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 아니다. 사회가 한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다시 현장에 서서 묻는다. 우리는 복지를 여전히 시혜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권리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이 평범한 하루가 포항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스마트 복지’와 ‘따뜻한 연대’가 만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포항에서 시작할 MIND 프로젝트 BTS 민윤기씨가 제안한 MIND(Music, Interaction, Network, Diversity) 프로젝트는 음악을 통한 치유와 사회적 연대를 결합한 새로운 복지 모델이다. 나는 이를 포항에서 실현하고 싶다. 지역 기업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포항형 스마트 복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AI 기반 개인 맞춤형 돌봄 시스템, 지역 기업과 연계한 의미 있는 일자리, 시민 참여형 온라인 플랫폼 구축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도구다. 기술이 아닌 사람, 시혜가 아닌 연대 껌팔이 소년이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시혜가 아니라 연대 덕분이었다. 이제 내가 그 연대의 고리를 잇고자 한다. 포항 시민 여러분, 지역 기업 여러분. 함께 포항형 MIND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발달장애인이 존엄하게 사는 사회는, 우리 모두가 존엄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나는 한때 극장에서 껌을 팔던 소년이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방직공장에서 일했고, 기계에 팔이 끼어 절단될 뻔한 사고도 겪었다. 가난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 정확히 말하면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와 어른들의 연대였다. 나 역시 이제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을 배우고 다시 사회로 환원하려는 사회복지예비실습자 (혹은 선배시민)로서의 모습으로 서 있다. 교수였던 과거의 직함은 이 공간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여기서는 누가 더 잘 듣고, 더 천천히 기다리며,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도움터기쁨의집에서 만난 발달장애인 거주인들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였다. 노래를 좋아하고, 춤을 추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자기만의 리듬과 감정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음악·예술 활동 시간은 거주인들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확실한 통로였다. /도형기 한동대 명예교수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명예교수(현재) •도쿄대학교 농학박사(해양생명과학·해양미생물·복어독) •전 한동대학교 사회봉사 담당 주임교수 •포항시 어린이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 센터장 (현재)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이사 (현재)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과정 중(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4학년) (현재) •승강기대학교 션사인학부 파크골프학과 1학년 재학 중 (현재)

2026-01-15

‘한동훈 제명’ 후폭풍···국힘 사생결단 충돌 안타깝다

지난 12일 가까스로 ‘6인 체제‘를 갖춘 국민의힘 윤리위가 14일 새벽 기습적으로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하면서 당이 내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제명’은 당적을 박탈하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또 다른 계엄”이라고 반발하며 “이번에도 반드시 막겠다”고 했다. 윤리위는 이날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당원게시판 사태’를 여론 조작으로 규정, 최고 수위인 제명 결정을 내렸다. 한 전 대표와 가족들이 지난 2024년 국민의힘 익명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당시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을 대거 작성했다는 게 제명 사유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특검이 ‘사형 구형‘을 내린 날이어서 당 분위기가 더욱 뒤숭숭하다. 권영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이를두고 '한밤의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제명 확정은 15일 최고위에서 최종 결정된다. 그러나 최고위 인적 구성을 볼 때 친한계인 우재준 청년최고위원, 비주류 양향자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반대 의견을 낼 분위기가 아니어서, 한 전 대표 징계안이 반려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한 전 대표 징계를 주도해온 장동혁 대표도 14일 “윤리위 결정을 뒤집고 다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하며 제명 수순을 시사한 상태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리위 결정이 이미 답을 정해놓은 결과다. 재심을 신청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명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또 다른 계엄 선포“라면서 “국민, 당원과 함께 이번 계엄도 반드시 막겠다”고 말했다. 당 내에서는 한 전 대표가 이를 법적인 분쟁으로 끌고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회견에는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형동, 배현진, 박정훈, 정성국, 고동진, 유용원 의원과 윤희석 전 대변인이 함께했다. 국민의힘 내에서 비교적 ‘중수청’ 외연확장을 위한 메시지를 내온 ‘대안과 미래(소장파와 초·재선 의원이 주축인 모임)'도 이날 긴급 회동을 하고 윤리위 결정을 재고하라는 입장을 냈다. 이 모임 주요 멤버인 김재섭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제명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처벌을 했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의힘의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일부 초·재선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 TK 중진 의원들은 공개 발언을 자제한 채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국민의힘 당내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고,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아마 한 전 대표 제명은 국민의힘 내분을 더욱 심화시키고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당 일각에선 15일 오전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당내 갈등이 봉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장동혁 대표의 그간 발언내용을 종합해 보면 윤리위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방선거 초반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설 연휴 민심를 감안해 보면, 국민의힘이 집안싸움의 격랑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2026-01-14

장판 밑에 숨겨둔 돈

한국과 외국을 가릴 것 없다. 고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파렴치한이나, 무시로 뇌물을 받아온 권력자의 집에서 수 억,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현금 뭉치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서민들은 아연실색한다. ‘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저렇듯 엄청난 현금을 집에 두는 걸까?’라는 생각에서다. 고액권이나 달러 등 외화를 숨겨 놓은 곳도 기상천외하다. 방처럼 거대한 금고는 물론이고, 드물게는 천장 위나 김치냉장고 속에 5만원권 지폐나 100달러짜리 지폐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이른바 부정한 ‘검은 돈’이 아닌 당당한 자기 재산이라면 숨길 이유가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처럼 은행에 예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일부가 “금융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19세기에나 통할 변명처럼 들린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현금을 집이나 자신 소유의 공장 등 생활공간에 숨겨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안방 장판 밑에 놓아둔 거액의 현금이 뜨거운 열에 손상돼 그걸 부랴부랴 은행에 가져가 교환했다는 소식, 신문지에 싸서 창고에 보관하던 지폐가 습기 탓에 원형을 잃어 낭패를 봤다는 뉴스가 최근 있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2025년 손상 화폐 폐기 규모’를 공개했다. 발표에 의하면 손상돼 폐기된 금액은 모두 2조8404억원. 지폐 3억6401만장의 엄청난 양이다. 이걸 한 장, 한 장 이어 붙이면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을 만들려면 돈이 든다. 해마다 소요되는 지폐와 동전 제작비가 만만찮다. 그러니, 돈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도 작은 애국이 아닐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14

더 좋은 미래

본가 아파트 단지 내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는데 때가 되면 여의도나 석촌호수 부럽지 않을 만큼 꽃잎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벚꽃 보러 멀리 안 가도 되겠다. 그냥 집 앞에 돗자리 깔고 벚꽃 구경하면 되지, 뭐. 우리 가족은 그런 말을 하며―실제로도 벚꽃 개화 시즌에 맞춰 피크닉을 한 적은 없다―바람에 흩날리는 분홍 꽃잎들을 지켜보곤 했다. 벚꽃이 마음에 든 건 우리 가족뿐만이 아닌 듯했다. 벚꽃 개화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면, 단지 곳곳에서 벚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란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나무 아래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댔다. 아이들이 그만 찍겠다며 투정을 부릴 때까지 계속. 그래서인지 그 집에 사는 동안 내게 봄은 아이들을 보는 계절로 인식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이런 내가 아이들을 주시하게 되는 때가 있으니, 바로 꽃잎이 사방에 뿌려진 봄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이다. 다른 강아지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강아지는 이따금 길가의 꽃잎을 주워 먹는다. 집안의 화분들엔 관심도 없으면서 밖에만 나가면 코를 들이밀고 입을 벌려 꼭꼭 씹다가 퉤 뱉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봄에는 마음이 들뜨는 걸까? 그래서 안 하던 짓도 하고 싶어지는 걸까. 여름, 가을, 겨울에도 꽃은 있지만 봄꽃이 아니면 뜯지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으니 희한한 일이다. 강아지가 봄바람에 코를 씰룩이는 것처럼, 아이들도 봄에는 유독 활기가 넘친다. 아이들 대부분은 강아지를 보는 순간 스위치 켜진 장난감처럼 눈을 번뜩이며 다가온다. 강아지다! 외치는 것에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강아지를 만지려고 겁 없이 작은 손을 뻗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난다. 그럴 때 보호자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강아지 귀엽지? 만지고 와도 돼, 하고 멋대로 지시하는 보호자와 강아지 귀엽지? 그래도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하고 제지하는 보호자. 반려인으로서는 당연히 후자의 경우를 선호하고 또 지지한다. 그런데 몇 해 전, 전혀 예상 못 한 세 번째 유형의 보호자를 만났다. 정확히 그를 만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엄마였다. 이른 점심을 먹고 강아지와 산책을 다녀온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에,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와 아이 엄마가 옆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강아지를 본 아이는 대번에 흥분해선 자기 엄마의 팔을 잡아당기며 강아지, 강아지,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아이 엄마가 몹시도 엄격한 얼굴로 크리스, 엄마가 영어로 말해야 한댔지? 강아지가 아니라 퍼피라고 해야지, 말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다른 곳을 보는 척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이도 엄마도 한국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스피크 잉글리시. 올웨이즈 스피크 잉글리시. 아이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가 따라 할 때까지 퍼피, 퍼피, 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말이 없자, 급기야 아이의 손을 낚아채더니 손바닥에 퍼피 스펠링을 하나하나 그리기까지 했다. Puppy, puppy. 결국 아이가 더듬더듬 퍼피, 하고 말하자 아이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멀어지는 두 사람 사이로 리멤버, 크리스.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단호히 되뇌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도 엄마는 종종 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애한테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친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웃음이 거두어진 자리에 남은, 딱딱하게 굳어가던 그 얼굴이. 강아지든 퍼피든 뭐가 중요할까. 애가 그렇게 웃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었는데.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엄마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후로 몇 번의 봄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잊었다가 떠올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이런 때이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무시하고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날의 아이 엄마도 아이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그토록 단호했던 거겠지.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을 테니까. 옆에서 아이가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요하게 미래를 보고 있던 거겠지. 그렇지만 강아지든 퍼피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지금 얼마나 환하게 웃는가, 얼마나 기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일 테니까.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좋은 미래가 아닌 더 중요한 지금을 보고 싶다. /양수빈(소설가)

2026-01-14

영포티 말고 ‘굿포티’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단지 달력을 바꾸어 다는 것 말고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만 나이 보다는 우리식 세는 나이가 익숙하다. 그런 식으로 따져 보면 경북매일의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의 독자님들께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되었다. 2020년,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서른 네 살이었기에 마흔 살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볼 일도 없었고 그때까지 이 연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이런 제목의 연재를 맡게 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나는 금세 마흔 살이 되었다. 서른아홉이 마흔이 되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인생을 나보다 오래 살아온 선배들은 마흔도 충분히 젊고 심지어 어린 나이라 이야기 해주시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청춘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청년이라는 단어 역시 여러 법령과 지방자치단체 정책에서 다양하게 규정되지만 마흔은 거기 속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부분에 있어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실 그런 것들보다 마흔 살에 접어든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따로 있다. 바로 요즘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사십대 남성에 대한 조롱 문화다. 영포티(Young Forty)는 사십대 남성에 대한 조롱을 마주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단어다. 원래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나 패션, 취향 면에서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사십대를 일컫는 긍정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어 보이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고 20대 감각을 무리하게 흉내 내는 사십대 남성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울리지 않는 스트리트 패션으로 무장한 채 이십대-삼십대 초반 여성에게 추근대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곤 한다. 밈으로 많이 돌고 있는 영포티 패션에 대한 조롱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이키, 스투시 같은 브랜드는 지금의 사십대가 이십대 때부터 선호하던 것들이다. 이제와 젊은 척 하려고 입는 게 아니라 원래 입던 것을 입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젊을 때 돈이 없어서 못 입던 것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에야 구매할 수 있게 되어 입는 것이다. 그다지 조롱받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흔히 이야기하는 영포티의 행동방식에 대해서는 딱히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직도 자기가 어린 줄 알고 이삼십대 노는 데 끼어들어서 젊은 척 하고 돈 자랑 하고 어린 이성의 환심을 사려 하는 사십대는 나도 종종 목격하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한 조롱은 마냥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굳이 영포티 대열에 합류하지 말자는 것이다. 영-하지는 않아도 자기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굿포티’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굳이 어떤 것을 사십대 다운 것이라고 정의하고 꼭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이삼십대를 거치며 새롭게 알게 된 것,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나는 마흔 살을 맞아 굿포티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새해 다짐을 해 보았다. 먼저 하루하루 좋은 루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의 생활을 무절제하게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컨트롤하는 노하우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다음으로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대하기. 이제는 종종 사회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과 어떤 관계를 쌓아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한다. 비록 우리의 인생 선배들은 간혹 우리에게 무례하곤 했을지라도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보다 늦게 출발한 친구들에게 예의를 갖추겠다고 다짐했다. 말을 절제하는 것도 필요해졌다. 지저분하거나 거친 말들로부터 이제는 멀어질 것이며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는 일도 자제할 생각이다. 그 외에도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 많지만 말을 절제해야 하므로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조롱받는 영포티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태까지 살아온 내 삶이 조롱받을 만큼 하찮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살아온 삶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의 삶도 잘 살아가야 한다. 영포티 말고, 굿포티로 살아갈 내 또래들을 응원한다. /강백수(시인)

2026-01-14

탄소의 시대에서 수소의 시대로-기후위기와 포항의 다음 10년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s)는 지구의 자전축 변화와 공전 궤도 변화로 인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복사량, 즉 일사량(日射量)이 달라지고, 그 결과 빙하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이론이다. 지구는 약 10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며 기온 변동을 겪어왔고, 현재 인류는 약 1만2000년 전 시작된 홀로세(Holocene)라는 간빙기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 속에서 인류는 농업을 시작했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과학자들은 이번 간빙기가 끝나기까지 아직 약 1만 년가량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지금의 온난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며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지구 평균기온을 급격히 상승시켰다는 과학적 증거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자연적 기후 변동과 인간이 초래한 급격한 온난화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석유산업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는 점 역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과대학을 다녀 본 이들은 2학년 공업수학 시간에 배웠던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를 잊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푸리에급수를 정립한 프랑스 과학자, 죠제프 푸리에(1768~1830)가 ‘대기가 열을 붙잡아 가둔다는 온실효과’를 처음 발표한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날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일부 과학자들만의 전문 용어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인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1760년대 산업혁명 이후 약 250년 동안 인류는 석탄과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루어왔다. 방적기와 증기기관, 제철산업으로 시작된 탄소 문명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탄소산업이 이제는 인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가 지속된다면, 수백 년 후에는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워터 월드(Water World)’에서처럼 남극대륙의 빙하가 모두 녹아 인간이 육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에 살며, 육지를 찾아 떠돌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 역시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지금 당장 전 세계의 모든 공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춘다 하더라도, 이미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후재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운명이 결코 밝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뒤늦게나마 대응에 나섰다. 유엔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만들어졌고, 2015년에는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산업 부문에서 이산화탄소 감축에 나서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배출권거래제와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실행 수단이 되었다. 결국 인류는 탄소 에너지에서 벗어나 수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1만년의 간빙기 동안, 탄소 문명이 아니라 수소 문명이 인류 사회를 떠받쳐야 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 후반, 필자의 중학생 시절 포항 송도동에는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 노동자들이 많았다. 형산강 건너편에는 포항제철이 우뚝 솟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해도동 자전거도로를 따라 출퇴근했다. 산업화의 열기와 함께, 산업재해로 이웃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그 무렵 들려왔다. 포항은 그렇게 한국 산업화의 현장이었다. 당시 포항에서 일하던 이들은 주로 1차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들은 한국의 탄소산업을 이끌며 산업화를 완성한 세대이다. 그 뒤를 이은 세대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탄소에서 수소로 전환되는 산업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포항에는 석탄화력발전소 못지않은 이산화탄소 배출원인 포스코의 용광로가 있다. 이를 대체할 핵심 해법이 수소환원제철이다.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과정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포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포스코는 대기업이므로 당연히 잘 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고, 또 일반사람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이므로 잘 알 수도 없다. 필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시민들이 우리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떻게 힘을 합쳐 개척해나가야 하는지 서로 논의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K-스틸법이 통과되어 법률로 확정되었다. 이 법은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 전환을 통해 철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국가 경제안보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26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포항은 이미 철강 집적지이자 연구·인력·산업 기반을 갖춘 도시이다. K-스틸법에서 규정한 저탄소철강특구 포항지정과 수소환원제철의 성공 여부는 포항의 향후 10년, 그리고 그 10년 이후의 미래세대의 운명을 좌우할 전략적 과제이다. 탄소의 시대는 저물고 수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초입에 서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에너지 공급망, 신재생에너지와 이차전지가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이 변화는 지켜볼 일이 아니라, 포항시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다. 정의로운 전환과 지역 협력의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공적토론영역이 자유로운 사회문화적 환경도 대단히 중요하다. 앞으로 포항의 10년은 협력과 연대가 어젠다가 되길 희망한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1-14

AI를 어찌하나

ChatGPT를 비롯한 생성형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인류는 새로운 편리함과 함께 오래된 불안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가, 아니면 잠식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기술낙관론자들은 AI를 세탁기나 청소기에 비유한다. 손빨래와 손청소에서 해방되었듯, 인간은 이제 번거로운 사고노동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럴듯하게도 들리지만, 이 비유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빨래와 청소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지만, ‘생각하는 힘’은 다르다. 사고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핵심 능력이 아닌가. 최근 한국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시험과 과제에서 AI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대학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까지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질문이 설득력을 갖는다. AI가 논문을 요약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토론문까지 만들어 준다면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다닐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거꾸로 본 진단이다. 대학의 위기는 AI의 등장이 아니라, 대학 스스로 무엇을 평가하고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처음부터 정답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았다. 질문을 만드는 지혜, 생각을 전개하는 방식, 타인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수단을 훈련하는 공간이었다. 오늘의 대학강의실에서 사고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만이 평가된다면, 학생들은 생각하기보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이는 부정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본질의 문제다. 대학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평가방식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결과중심의 과제평가 대신에 사고의 경로와 질문의 질을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AI사용 여부를 단속하기보다, AI에 어떤 질문을 던졌으며 그 답에 어떤 분석과 판단을 거쳤는지를 서술하게 해야한다. 생각의 궤적을 평가하지 않는 교육은 AI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둘째, 커리큘럼은 ‘도구사용법’이 아니라 ‘판단과 분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AI리터러시는 버튼 설명이 아니라, 한계인식과 오류탐지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 AI가 쏟아낸 답을 검증하고 반박하는 수업이 정규과정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셋째, 대학은 다시 ‘느린 공간’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효율과 속도를 숭배하는 사회에서,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되새기는 훈련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비효율을 감내하지 않는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침묵과 명상, 토론과 성찰, 그리고 도전과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강의실에서 사고는 성장할 길이 없다. 대학이 아직도 필요한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은 필요 없다. 생각하고 성찰하는 법을 가르치는 대학만 살아남을 터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대학은 정답 공장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질문 광장으로 거듭날 것인가. 대학이 오늘의 모습만으로는 쇠락의 길에 설 수 밖에 없다. 선택여부에 따라 대학은 오히려 부흥할 지도 모른다. 선택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1-14

구룡포 응암산 박바위

구룡포 바다를 장악하려면 구룡포에서 멀어져야 한다 박바위가 제격이다 거기는 공허의 공간이나 단단하게 마음을 다지는 힘줄이 있다 전각 하나 없어도 마음에 그것을 세울 평평함을 제공한다 그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기운이 있다 바위 끝에 서서 구룡포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차가움이 인간의 체질임을 박바위는 지적한다 그것은 냉혈(冷血)이 아니라 침착과 질서이다 따스해지려면 더욱 차가워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꽁초처럼 버려질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한때의 뜨거움으로 영원을 추구할 수는 없다 박바위는 걸어온 먼 길을 스스로 지우며 안으로 다른 길을 만들고 있다. …….. 박바위로 가는 길은 참 아늑하다. 반드시 걸어서 도착해야 한다. 수신(修身)에서 멈추어야 한다.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는 나중의 일이다. 그러한 책무를 감당하고자 하는 잡놈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치세에 지치면 박바위에 가서 자신을 뒤집어놓고 잘 관찰하면 길이 보인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늘 첩첩산중이라, 그곳에서 바라보는 겹겹의 수묵화와 같은 산들이 상징적이다. 박바위에서 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잠시의 위안으로, 돌아봄으로, 진통제와 같지만, 혹은 박하사탕 같지만, 하나의 길이 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1-14

포맷해 주세요

“포맷해 주세요” 요즘 차만 타면 듣는 소리다. 주차해 놓은 내 차를 누군가 차를 후진하면서 박아서 범퍼가 손상되었다. 한 달간 영상이 남는 관리사무실의 CCTV를 보았으나 1주일 치의 영상만 남았다. 사고가 있은 지 10일이 지난 뒤였다. 마지막으로 내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았으나 영상이 없었다.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실망이 크다. “뭘 했느냐?” 한마디만 했는데 성깔이 있는지 차만 타면 포맷해 달라고 성화다. 별생각 없이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만날 때마다 못 살겠다고 포맷해 달라고 하니 나도 슬슬 화가 난다. 이제는 하지 않겠지 하며 기다린 지 얼마인가. 하지만 여전히 같은 톤으로 한결같이 말한다. 내가 무슨 빚이라도 진 것처럼 보채니 말이다. 난감한 것은 둘만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있을 때도 계속 그러니 체면이 서지 않는다. 옆에 탄 사람이 얼마나 무심하길래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나도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른다. 둘이 있을 때 포맷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최후통첩한다. 그녀도 단단히 성질이 났는지 수그러들 기세가 전혀 아니다. 같이 있는 내내 화난 목소리를 듣다가 헤어졌다. 얼굴을 붉히며 마주한 시간을 생각하면 괜히 만났다고 생각한다. 내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자기 말만 한다고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 나와 만난 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뭘 했느냐?’는 한마디도 못 한다는 말인가. 그게 몇 날 며칠을 두고 화를 낼 일인가. 그동안 나와 함께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이제까지 모든 기억을 지워버릴 일인가 하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함께 출장 가면 말없이 나를 지켜주던 그 다정함은 어디로 갔는지. 하여튼 여자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어쩔 수 없어 다시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지겹지도 않은지 같은 말이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이래서 마음이 상했다는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늘 같은 말만 한다. 처음 만났을 때나 화가 났을 때도 한결같으니, 처음부터 나에겐 어떤 감정도 없는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하다. 이제까지 나와 같이 한 시간이 얼마인데 이까짓 일로 파업하듯이 없던 일로 하고 자신을 처음 상태로 되돌려 달라니. 말로 풀어도 될만한 일인데 말이다. 나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 혼자만 잘 먹고 살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시간이 나면 닦아준 시간이 말할 수 없이 많은데 말이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른다.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이번 일이 있기 전에도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후방 카메라를 점검해 주세요.” 이 말을 듣고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했다. 먼 길을 다녀왔을 때도 무덤덤하게 헤어졌다. 그래도 덕분에 낮이나 밤이나 그녀 덕분에 잘 다녔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한 것 같다. 이제는 앞도 뒤도 가릴 것 없이 전신이 아픈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말없이 무심한 경상도 사나이라고 해도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괜히 머리만 긁적인다. 이럴 때는 무슨 말로 풀어야 할지 딱히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난감하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노래를 들려준다. 소통이 중요하다. 말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생각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으니 말이다. 내일은 휴가를 내어서라도 그녀를 데리고 병원엘 가야겠다. 건강은 미루지 말고, 제때 치료해야 하는 데 말이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룬 것을 후회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막상 포맷하려니 나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 같다. 무뚝뚝해도 마음만은 따뜻한 남자임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는다. 완전한 포맷 대신 나에 대한 기억만은 남기고 부분 포맷을 할 수는 없을까. 남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모든 건 때가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김규인 수필가

2026-01-14

스트레스는 몸에 먼저 온다

스트레스는 대부분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많거나 성격이 예민해서 멘탈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제 진료실에서 만나는 스트레스는 거의 예외 없이 마음보다 몸에 먼저 나타난다. 환자들은 마음이 힘들다고 오기보다는 몸이 이상하다고 찾아온다. 턱 밑에 멍울이 만져진다거나 이유 없이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고 잠이 깨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 검사 결과는 대체로 정상이다. 그래서 더 불안해진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스트레스를 감정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신경과 혈관 근육과 면역 반응으로 처리한다. 긴장이 지속되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자율신경이다.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혈관은 수축하고 근육은 경직된다. 목과 어깨가 뻣뻣해지고 턱 주변 림프절이 부어 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 과정은 의식적인 생각과 거의 무관하게 일어난다. 본인은 괜찮다고 생각해도 몸은 이미 비상 상태에 들어간다. 수면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소화력도 전보다 떨어진다. 한 번씩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불안해진다. 특히 림프절이 잘 붓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반응이 빠른 편이다. 림프는 면역과 노폐물 처리의 통로인데 긴장이 지속되면 흐름이 느려지고 정체가 생긴다. 턱 밑이나 목 옆에 멍울이 잡히는 경우는 단순한 염증이 아니라 자율신경 긴장과 연관된 경우가 적지 않다. 환자 본인은 감기 한 번 안 걸렸다고 말하지만 몸은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 억지로 이를 견디고 있는 중이다. 어지럼이나 가슴 두근거림도 마찬가지다. 심장이나 뇌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신경계가 균형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숨이 얕아지고 맥박이 빨라지며 몸은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회복 속도는 더 느려진다. 결국 작은 자극에도 몸이 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스트레스 치료는 마음을 달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몸이 이미 긴장 모드에 들어가 있다면 먼저 그 상태를 풀어줘야 한다.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시키고 경직된 근육과 신경을 이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몸이 안정되면 마음은 그 다음에 따라온다. 반대로 몸이 계속 경계 상태에 있는데 마음만 괜찮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진료를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별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는데 몸이 이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사건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몸이 얼마나 오래 긴장해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참아온 시간 버텨온 기간이 길수록 몸은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지내다 보면 증상은 점점 다양해지고 회복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진다. 본인 스스로는 스트레스에 무던하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고 신호를 보낸다. 스트레스는 마음의 약함이 아니라 몸의 경고다. 몸이 먼저 흔들리고 그 다음에 마음이 따라 흔들린다. 그래서 치료의 출발점도 몸이다. 몸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 비로소 마음도 숨을 돌릴 수 있다. 이 순서를 이해하고 대비한다면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1-14

中企 정책자금, 지역경제의 안전벨트

대구·경북에서 공장과 가게를 가까이서 보면 요즘 경영난은 매출 감소에 더해 ‘돈이 안 도는 구조’ 때문에 더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본다. 매출이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닌데, 대금 결제가 늦어지고, 원부자재는 선결제를 요구하고, 금리는 높아져 이자 부담이 쌓인다. 월급날·임대료·세금 납부일이 겹치는 달에는 대표가 “이번 달만 넘기자”를 입에 달고 산다. 은행은 담보나 재무제표를 더 까다롭게 보니, 당장 필요한 것은 ‘응원’이 아니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현금흐름이다. 협력업체 한두 곳이 흔들리면 그 주변 식당·카페·편의점 매출이 같이 꺼지고, 일자리가 줄면 소비가 줄어 골목도 바로 체감한다. 결국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은 지역 생활경제와 직결된 문제다. 이런 흐름은 숫자에서도 보인다.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는 응답이 40.0%로 ‘호전됐다’(13.2%)보다 3배 이상 높게 나왔다. 악화 원인도 ‘판매부진’(59.0%), ‘원부자재 가격 상승’(51.5%), ‘인건비 상승’(33.0%)처럼 현장형 요인이 상위에 걸려 있다. 즉 “경영을 잘못해서 망했다”라기보다 “외부 환경이 급격히 나빠져서 버티기 게임이 됐다”에 가깝다. 원자재 결제일을 넘기고, 직원 월급을 지키고, 납품을 이어가 거래처 신뢰를 유지하게 만드는 자금은 결국 지역의 일자리와 소비를 지키는 ‘안전벨트’가 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런 현장을 반영해 올해 총 7조7000여억 원(중소기업 4조4000여억 원, 소상공인 3조3000여억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마련했다. 특히 전체 정책자금의 60% 이상을 비수도권에 집중 공급해 지역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공급을 넓히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수도권보다 금융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역 기업들에게 숨통을 더 넓혀주겠다는 의미다. 또 AI·반도체 등 혁신성장 분야와 K-뷰티 산업 지원을 강화하고, 공정과 업무를 AI로 바꾸는 AX 전환을 추진하거나 AI 기술을 도입·활용하는 기업을 위해 1400억 원 규모의 ‘AX 스프린트 우대트랙’을 신설했다. 대경중기청은 정책자금이 ‘아는 기업만 받는 제도’가 되지 않도록 현장으로 직접 들어간다. 올해 1월 중순부터 대구·구미·포항·안동·칠곡·경산·김천·경주 등 지역 주요 산업 거점을 순회하는 ‘찾아가는 중소기업 정책금융 설명회’를 개최한다. 중기청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이 함께 참여해 업종·성장단계·경영 여건별로 어떤 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면 좋은지 쉽게 풀어주고, 설명회 뒤에는 기관별 1대 1 상담으로 기업별 상황에 맞춘 길을 바로 연결한다. 정책자금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에 대한 ‘투자’다. 자금이 제때 공급되면 기업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자리가 지켜지면 시민의 생활도 덜 흔들린다. 그래서 지금 같은 시기일수록 정책자금은 기업만의 대책이 아니라, 대구·경북 전체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처방이다. /정기환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2026-01-14

포항 철강이 흔들리면 도시가 흔들린다

2026년 올해 철강 산업은 더욱 힘들 전망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 기조가 여전한 가운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본격화로 철강 수출 문턱은 더 높아졌다. 한국 철강의 심장인 포항은 이러한 변화의 충격을 지역 경제주체들이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7개월 연속 포항지역 철강제품 수출은 금액과 물량이 동반 감소하며 1~11월 누계 수출액은 전년 대비 11.4% 줄어든 52억2300만달러, 물량은 6.9% 감소한 525만t에 그쳤다. 수입 역시 같은 기간 금액과 물량이 모두 감소했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기업들의 수익성 악화, 생산 물량 감축, 신규 고용 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또 철강 물동량 감소는 지역 물류·운송업계의 실적 부진으로 직결된다. 그뿐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 여력 축소는 결국 포항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로 연결된다. 포항의 철강이 흔들리면 물류와 건설로 이어지며 지역 전체의 고용과 소비가 연쇄적으로 위축되는 구조다. 여기에 내부 비용 부담까지 동시에 커진것이 문제다. 철강산업에서 가장 큰 고정적 경영 부담 요인은 산업용 전기요금이다. 이 요금은 2021년 kWh당 105원에서 2025년 180원으로 4년 동안 71%나 올랐다. 전력으로 움직이는 철강업계의 원가 구조가 흔들리는 수준이다. OECD 보고서를 보더라도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 중국보다 비싸져 에너지 전환 비용이 높은 독일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그동안 저가·고품질의 국산 철강재에 의존해왔던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여기에 있다.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사들은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전환이라는 구조 개편 과제를 안고 있다. 방향성이야 맞지만, 관세·탄소 규제·전기요금 부담이 동시 작용하는 상황에서 전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무리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환하기까지 최소한 버틸 체력만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준비 중인 K-스틸법 시행령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법 제정만으로 정책은 움직이지 않는다. 법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구체화된 세부 설계도인 시행령이 필요하다. 전환 설비 투자에 대한 재정·금융 지원,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 탄소 규제의 현실적 적용 방안이 구체화돼야 비로소 현장에 응급 처방이 가능해진다. 포항 경제는 철강에서 출발한 수많은 협력업체와 지역 상권, 고용으로 이어진다. 철강이 기침만 해도 포항 경제는 독감에 걸리고 몸살을 앓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리하기 어려운 국제분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국내 여건 조성은 가능한 영역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부터 K-스틸법 시행령까지 모두 시급한 현안 과제다. 기업에 전환을 요구하려면 기업이 버틸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놓는 것이 국가 산업정책의 기본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1-13

국민의힘, 지금 헤게모니 싸움할 때 아니다

집안싸움으로 민심 이반 수렁에 빠진 국민의힘이 결국 당명까지 바꾸기로 했다. 당명 개정에 책임당원 68%가 찬성했으며, ‘공화’나 ‘자유’ 등이 포함된 이름이 다수 제안됐다고 한다. 장동혁 대표는 새로운 당명에 “보수의 가치를 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다음 달 중순 시작되는 설 연휴 전까지 당 간판을 바꿔 지방선거에 대비한다는 구상이다. 당명 개정은 보수 정당이 위기 때마다 꺼내 든 카드다. 지난 1997년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꾼 이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그 이후에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름만 비슷비슷하게 바꿨지 당 구성원이나 정책 등 콘텐츠는 ‘그 나물에 그 밥’이었기 때문이다. 당명 개정에 대해 당내에서는 “분위기 쇄신의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긍정론과 “이름만 바꾼다고 지지율이 따라붙겠나”라는 회의론이 교차하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당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청년 중심 정당, 전문가 중심 네트워크 정당, 국민 공감 연대를 세 축으로 삼아 외연을 확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부 갈등을 지켜보면 쇄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는 쇄신안 발표 하루 만에 12·3 비상계엄을 옹호한 인사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친윤계 핵심 인물을 주요 당직에 앉혔다. ‘김건희 옹호’ 논란을 빚은 중앙윤리위원장 임명도 강행했다. 한동훈 전 대표 징계를 다룰 당 윤리위원회에는 김건희 옹호 전력자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장 대표의 인사내용을 보면 앞으로도 합리적 보수보다는 극우화된 집단과 손잡고 일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러니 장 대표가 말하는 쇄신이 결국 당내 특정 세력은 배제하고 강경파와 같이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갤럽이 지난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이 45%, 국민의힘이 26%를 각각 기록했다. 직전 조사 대비 민주당은 5%p 오른 반면 국민의힘은 한 달째 제자리걸음을 했다. 무당층은 21%다. 무당층이 모두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해도 양당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내에 있다. 문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장 대표의 쇄신안이 지지율 판세를 바꾸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 내분 수습이다. 장 대표가 당의 간판까지 바꾸겠다는 것은 당의 스펙트럼을 넓혀 보겠다는 생각 때문 아닌가. 그러려면 가장 먼저 위험수위에 이른 당내 갈등을 수습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눈에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만약 당 윤리위가 한 전 대표에 대해 무리하게 징계를 결정하고 최고위가 이를 의결하면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다. 설 연휴 핵심 이슈가 민주당 의원비리와 입법독주가 아니라 ‘국민의힘 내분’이 될 경우 민심이반도 걷잡을 수 없게 진행된다. 지금 장 대표는 어떻게 하면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만을 고민해야 할 때다. 헤게모니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건 한동훈 전 대표에게도 해당되는 충고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1-13

대구시장의 이상형은

작년 11월 중소기업중앙회 대구지역본부가 관내 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차기 대구시장에게 바라는 상공인의 의견을 물은 바 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7%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감당할 경제·일자리형 시장을 손꼽았다. 보호주의 무역이 확장되는 세계 경제 흐름에서 한국경제의 갈 길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그 속의 대구경제도 특별히 좋을 리가 없다. 지역의 소상공인이 경제형 대구시장을 바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얼마 전 대구를 찾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구경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대구시민이 30년 이상 국민의힘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지만 대구경제는 30년째 전국 꼴찌에 머문다고 비판했다. 그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대구의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 2024년)는 3137만원으로 전국 평균 4948만원의 63% 수준이다. 31년째 전국 꼴찌다. 특정 정당 지지가 대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견제와 균형이 상실되면서 나타난 결과라 주장했다. 그가 지적한 대구지역 정치카르텔이 대구경제를 전국 하위권으로 몰아 넣은지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30년 이상 경제 꼴찌와 청년인구의 유출, 제조업의 낮은 부가가치 등이 대구경제의 민낯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만 여야 합쳐 20명에 가깝다. 전현직 국회의원, 구청장, 정치인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면면을 드러내지만 아직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낸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구경제를 기사회생할 이상형 대구시장의 등장에 시민들의 목이 길게 늘어나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13

더 아픈 손가락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다. ‘은혜 갚은 까치’, ‘심청전’ 등 전통 설화는 희생과 효심을 강조하지만, 오늘날엔 그 의미가 재해석된다. 무조건적 헌신보다는 어쩌면 조금 냉정하지만 철저한 대가와 반대급부를 주는 것이 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산단이자 2009년까지 기초지자체 중 수출 1위였던 구미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고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는가. 필자는 구미공단이 조성되고 현재까지 구미 수출 금액을 모두 더해보았다. 올해까지 대략 7900억불 정도이다. 이는 2024년 대한민국 전체 수출의 115%, 2025년의 113%이다. 이것을 최근 환율 1430원 정도로 계산해보면 약 1130조원으로 2025년 대한민국 예산의 1.7배, 2026년의 1.55배이다. 물론, 수출단가 인상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단순 합계이다. 또한 인천공항을 통해 나가는 항공 수출 금액 중 구미 비중은 경북의 93%, 2007년에는 99%였으며, 전국의 22%까지 차지하기도 하였다. 1969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제조기지로 막대한 수출과 무역흑자를 남긴 구미는 이제 반세기를 훌쩍 넘긴 세월 동안 옷과 신발이 너무나 낡아버렸다. 120년 동안 구미를 거쳐 가는 철도가 건설되지 않았으며, 55년 만에 드디어 구미~군위 간 고속도로 신설이 확정되었다. 이제는 구미가 단순생산기지를 넘어 핵심R&D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그간 공로에 대한 포상을 할 때이다. 신공항 개항을 기점으로 구미산업단지의 백년대계를 내다 볼 수 있도록 철도·도로를 촘촘히 연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거점산업단지의 경쟁력을 키워 낙수효과로 경북 경제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미는 지난 2023년 7월 반도체특화단지로 지정받았고, 기업 신증설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수도권과 지방은 투자규모나 정부지원이 천양지차인 상황에서 지난 2025년 12월 10일 정부에서는 구미, 부산, 광주 등 ‘남부권 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을 밝혔다. 구미는 반도체기업이 집적화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전력, 용수, 산업용지 등 모든 면에서 투자 여건이 유리한 만큼, 이번 기회를 살려 반도체 소재부품 주력 생산기지인 구미가 대규모 파운드리를 유치해야 한다. 다만 구미가 남부권벨트의 핵심축이 되려면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조기 건설과 연결망 확충은 물론, 정주여건 개선을 통해 인재가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비수도권에는 법인세·상속세·소득세를 인하해 주는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지역 거점 발전전략을 통해 글로벌 ‘초격차’ 실현은 물론,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구미는 반도체·방산을 중심으로 한 신증설 투자, 국내 최대 AI데이터센터 건립, 호텔과 문화선도산단 등 재도약의 에너지를 응축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살려 구미가 경북의 중심은 물론, 대한민국 핵심 R&D 거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 아픈 손가락’, ‘더 고생한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줄 때이다. /윤재호 경북상공회의소 회장

2026-01-13

성장의 벽, 성공의 길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급급해 자기 자신을 개선할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보통 발이 묶여 있다.’ 꿈, 목표, 포부를 실현하려면 성장해야 한다. 누구나 성장과 잠재력 발현을 가로막는 잘못된 신념이 한두 개쯤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성장 의도를 가로막는 다섯 가지의 그릇된 생각을 살펴보자. 첫째는 미래 꿈의 벽이다. 가끔 신입 사원이나 기존 사원이라도 “꿈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행복하게 사는 것” “건강하고 부자 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성장의 동력을 만들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10년 내 3층 건물주가 되겠다’ 등 시간 개념이 들어간 꿈과 매년 목표 설정이 되어야 성장의 동력이 가동된다. 둘째,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벽이다. “당신에게는 성장의 계획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성장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한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면 세상도 명확하게 응답한다. 많은 사람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나서야 무언가를 깨닫는다. 역경을 겪으며 교훈을 얻고 변화하는 것은 느리다. 의도적으로 성장 계획을 세우는 게 낫다. 자신이 도달해야 하거나 도달하고 싶은 성장 지점을 정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선택한 다음, 스스로 정한 속도와 원칙에 맞춰 나아가는 것이다. 셋째, 아직은 때가 아니야 하는 시간의 벽이다. “무더운 여름 날 강물 따라 떠 내려오는 통나무 위에 개구리 다섯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중 네 마리가 뛰어내리기로 마음 먹었다. 남은 개구리는 몇 마리일까?” 보통 “한 마리!”라고 답한다. 답은 다섯 마리다. 마음 먹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의도성 체감의 법칙’에 걸려들고 만다. ‘의도성 체감의 법칙’이란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룰수록 실천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넷째,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실수의 벽이다. 성장의 길에 들어서려면 인생 수업료를 내야 하는 법이다. 성장하고 싶다면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저술가 워런 베니스 교수는 ‘실수는 실천의 또 다른 방법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성장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실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실수할 때마다 그것을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섯째, 완벽의 벽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최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관념은 시작을 늦출 뿐이다. 최상의 방법은 시작을 하면서 찾아가는 기술이다. 이는 밤에 자동차를 타고 낯선 도로를 달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운전하기 전에 경로를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운전을 하면서 차츰 길을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길이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장의 벽은 개인 생각의 관점이고, 진보적인 사고의 부족이기도 하다. 꿈, 지식, 시간, 실수, 완벽 등의 벽에 열린 생각을 갖고, 유연한 사고와 시간 개념이 담긴 꿈과 목표를 향해 소신껏 행동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1-13

폭력의 동반자 크로아티아 ②발칸반도 또 하나의 민족주의

크로아티아는 역사적, 시기적으로 세르비아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같은 지역을 두고 서로의 주장이 상이하다는 뜻이다. 사정이 어찌 되었던 현재 크로아티아 땅은 그리스와 로마 비잔티움제국을 거쳐 바이킹 노르만족, 헝가리, 베네치아와 오스만터키에 이어, 오스트리아, 독일 등 지속적으로 외부 세력의 영향 아래 들었다는 것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처럼 다양한 민족 지배에 들기 시작하면서 한 국가 내에서도 자그레브를 중심으로 한 내륙과 헝가리와 세르비아 경계인 보이보디나,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해안 도시 달마티아로 구분되면서 경제는 물론 극명한 문화적 차이를 보였다. 서기 803년 샤를마뉴대제가 위용을 부릴 당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비잔티움제국의 동방정교에서 로마가톨릭으로 자연스럽게 개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비잔티움제국 영향 아래에 있던 세르비아와 불가리아 정교 문화권과는 본격적인 경계선이 형성된다. 그러나 적어도 10세기 초까지 달마티아 지방은 오랫동안 비잔틴제국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에 소속되어 있어 가톨릭인 자그레브와 지역적 경계가 명확하다고 할 수 없다. 지금의 크로아티아 지도를 펼쳐놓고 경계 짓는다면 오류란 뜻이다. 로마 가톨릭과 서유럽문명권에 동승한 크로아티아는 9~11세기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과거에 로마제국 당시 세워졌다가 아바르족에 의해 파괴된 100여 개의 교회를 새롭게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초기의 로마네스크양식 교회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어쨌거나 비잔티움제국 발아래 호시탐탐 독립의 기회만 엿보던 크로아티아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불가리아가 비잔티움제국에 반기를 들면서 비잔티움이 눈과 귀가 불가리아로 향했을 때 불이불식간에 독립을 선언해버린다. 더구나 지리적 이점과 국제정세 흐름을 타고 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해 귀족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재산을 교회에 환원하면서 권위는 물론 정통성까지 충족하려 했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면서 교회에 재산을 헌납하는 일은 하느님에 대한 선물로 승화되고, 크로아티아 군주들은 로마교황으로부터 하느님 은총과 함께 충복으로 인정을 받는 개가를 올린다. 기실 하층민으로부터 권력과 정통성을 부여받는 그 이상도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크로아티아인들 삶에 가톨릭이 깊게 파고들면서 아드리아해 족장이던 토미슬라브(재위 925~928)에 의해 독립국가로 우뚝 선다. 912년 비잔티움 황제 알렉산드로스가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성기를 조각해 원형경기장 멧돼지에 붙이고, 이교 제사를 지내며 성불구를 치료하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정상이 아니었다. 이 광기 어린 황제는 913년 6월 6일에 쓰러져 죽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불가리아 시메온이 반기를 들었고, 크로아티아가 이 틈바구니를 이용해 ‘크로아티아공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왕국을 선포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토미슬라브는 세르비아 듀산왕과 마찬가지로 대크로아티아주의 원조로 추앙받게 된다. 로마교황 존 10세로서는 교권의 확장을 반기면서 독립국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토미슬라브는 교세 확장에 노력을 약속하면서 충성 맹세를 한다. 그는 서로마를 위협하는 헝가리 마자르족의 공격을 일선에서 막아낸 혁혁한 공로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는다. 한발 더 나아가 로마와 연합군을 꾸려 제1불가리아제국을 선제공격하자고 나섰다. 시메온이 죽고 없는 제1 불가리아제국과 한판 승부에서 크로아티아가 승리를 거두면서 크로아티아 왕국은 승승장구한다. 935년 크로아티아 왕 페타르 크레시미르는 아드리아해 북부 달마티아를 비롯해 해안을 따라 리예카는 물론 남쪽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에 이르는 네레트바강까지 영토를 넓혔다. 크레시미르는 로마 교황을 넘어 비잔티움제국 바실 2세로부터 크로아티아와 달마티아의 왕으로 공식 인정을 받아 명실공히 왕국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온전히 왕국의 기틀을 세운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크로아티아왕국은 11세기 후반 뻬타르 크레시미르 4세를 정점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크레시미르 4세는 아드리아해 지배권까지 손에 넣었고, 이때 11세기 소아시아에서 등장한 셀주크투르크의 군사적 압력은 비잔티움제국 세력 약화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이 틈바구니를 역이용했던 크레시미르 4세는 아드리아해와 달마티아 전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중세 왕국의 면모를 갖춘다. 아드리아해 무역권을 장악하자 신흥 귀족이 탄생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크레시미르 4세가 후손을 남기지 않은 채 죽자 복잡한 후계 구도가 벌어진다. 여러 도시의 영주 ‘반’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설쳤다. 이때 로마교황 의중을 간파한 크로아티아 중동부 도시 슬라보니아의 반이었던 드미타르 즈보니미르가 교황으로선 더없이 충성스럽게도 십자군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맹세하면서 로마교황청 후원으로 왕좌에 오른다. 눈치가 빠르고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읽는 눈이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1-13

껍질을 쥔 손으로

나의 삶은 왜 이토록 바쁜 걸까. 새해가 밝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의 하루는 분주하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가 끝날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서둘러 신발을 신고 서둘러 마음을 정리하고 서둘러 나 자신을 뒤로 밀어둔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고개를 들면 이미 저녁이고 또 이렇게 하루를 잘 버텨냈다는 안도만이 하루를 닫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상하게도 모두들 여유로워 보인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식사 시간도 충분히 즐긴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그 풍경 속에서 유독 나만 바빠 보인다. 늘 손에 무언가를 쥐고 놓지 못한다. 책임, 역할, 기대, 내가 해야 할 몫들. 어딜 가나 짐과 책임을 안게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많은 일들은 늘 내게로 왔다.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조금 더 익숙해 보인다는 이유로, 조금 더 잘 해낼 것 같다는 인상으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켜켜이 쌓여 물 흐르듯 나의 몫이 되었다. 일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예상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어디서든 정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들이 내려놓은 무게를 조용히 들어 올리는 쪽이 되어 있었다. 며칠 전 대게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았다. 붉게 삶아진 다리들이 단단한 껍질을 두른 채 겹겹이 쌓였다. 보기에는 풍성했지만 가볍게 먹지는 못했다. 값으로도, 마음으로도 가볍게 다룰 수 없었다. 바다를 건너온 시간과 사람의 손을 거친 수고가 한 끼로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귀한 부분을 잃을까 봐 조심히 다뤘다. 과정이 번거롭고 느리지만 그 안에 스며든 모든 이의 땀과 시간이 스며들었기에 허투루 하지 못했다. 괜히 아까웠다. 너무 쉽게 먹어 버리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늘 그렇듯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고 있었다. 손에 힘을 주고 비틀고 껍질을 벗기고 애쓰고 나서야 하얀 살 한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왠지 내 삶도 꼭 대게 같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에 닿기 위해서는 쉼 없이 껍질을 벗겨야 하는 삶. 남들 눈에는 풍성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늘 애쓰고 있는 삶. 손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도, 발이 떼지지 않아도 멈출 수 없는 삶. 가끔 충동적으로 이런 생각에 빠진다. 한 달, 아니 단 며칠이라도 다 먹고 난 게껍질처럼 속까지 완전히 비워버리고 싶다고. 아무것도 들지 않고, 아무 역할도 맡지 않고, 마음 속 감정까지 다 비워낸 상태로 투명 인간이 되었다가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한 시간 뒤의 일을 생각하고, 내일 일을 계획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또 발견한다. 껍질만 남은 접시는 결국 비워짐의 끝이 아니라 먹어낸 시간의 증거다. 수고의 흔적이고 누군가의 배를 불려준 자리의 기억이다. 아무 의미 없이 남겨진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내가 늘 바쁘다는 이유는 어쩌면 내 삶의 살이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쉽게 꺼내 먹을 수 없는 대신 천천히, 끝까지 애써야만 얻을 수 있는 삶.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더 깊은 맛을 지니는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가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어둡고 조용한 곳에 숨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리라 믿는다. 지금껏 나를 바쁘게 했던 모든 시간들이 헛된 껍질이 아니었음을. 내 손이 아팠던 것은 비워내기 위함이 아니라 채우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쉽게 꺼내 쓸 수 없는 사람이 되기까지 삶은 나를 서두르지 않게 훈련시켜 왔고 견딜 수 있는 만큼만 맡기며 조금씩 깊어지게 했다. 더 이상 분주함을 전부 불행으로 부르지 않으려 한다. 이 시간이 언젠가 나를 가볍게 증명하는 대신 조용히 단단해지게 할 것임을 믿어보려 한다. 나는 오늘도 바쁘다. 다이어리는 꽉 차 있고 나조차도 기억할 수 없는 일정이 나를 짓누르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껍질을 쥔 이 손이 결국 나를 굶지 않게 했고 나를 걸어오게 한 힘이었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김경아 작가

2026-01-13

대머리, 남편을 고소한 이유

유전적 원인, 또는 남성 호르몬 영향 탓에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거나 빠진 사람의 이마선이 밀리거나 정수리가 드러나는 걸 지칭해 대머리라고 부른다. 이는 수많은 남성들의 고민거리다. 중년 이상은 물론, 20~30대 젊은 남성의 경우에도 “줄어드는 머리숱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탈모를 미용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는 청년들이 있기에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 발언 이후 세간의 뜨거운 설왕설래도 있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탈모로 고민하고, 대머리가 가진 선입견 탓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비단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닌 모양. 그런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인도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24년 결혼한 인도의 한 여성이 올해 초 남편과 시댁 가족 4명을 고소했다. 고소의 이유는 혼인 이야기가 오갈 때 신랑이 될 사람의 학력과 재산 규모, 외모를 속였다는 것. 그 가운데 ‘외모 속임수’로 지목된 것이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남성이 아닌 가발을 착용한 대머리였다는 것.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에 ‘머리숱의 많고 적음’이 개입되는 건 불합리하고 부당하다. 그러나, 이건 당위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인공적으로 머리카락을 심고, 빠진 머리칼이 다시 돋아난다는 광고에 고액의 약을 바르거나 복용하며 탈모 치료에 고심하는 지인들이 분명 존재한다. 대머리가 고소 사유까지 되는 세상을 뭐라고 해야 할까? 분명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12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

1월 10일 토요일 아침부터 문학 공부하는 이들이 모였다. 해질 무렵까지 계속된 학술발표, 주제는 ‘1980년대 문학을 되돌아본다’였다. 뜨거운 젊음을 바쳐 이제는 연구 대상이 된 1950년대 전반기 출생의 문학인들, 그들의 성명을 열거해 본다. ‘공장의 불빛’(1979)의 김민기(1951~2024),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문학과지성사, 1983)의 황지우 (1952~), 희곡작품들과 소설 ‘잠과 늪’(실천문학사, 1987)의 최인석(1953~), ‘황색 예수전’(실천문학사, 1983)의 김정환(1954~),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1990)의 김영현(1955~2025), ‘시와 경제’와 ‘노동해방문학’의 김사인(1956~),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 비판’(연구사, 1989)의 조정환((1956~) 등. 이들은 문학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고 찾은 순례꾼들이었다. 그 1980년대에는 서로 다른 의미를 함축한 여러 ‘민중’들이 혼거하고 있었다. 류영모와 함석헌의 ‘씨알’ 민중, 장일순과 김지하의 생명적·중생적 민중, 신경림과 박태순의 대지와 공동체의 민중, 백낙청과 채광석의 계급연합 범주로서의 민중 같은 것들이다. 김민기는 이 가운데 김지하의 생명사상에 접속해 있었다. 그는 김지하의 치열함에 매료되었고, 희곡 ‘금관의 예수’에 노래를 붙였다. 1970년대 말 여공들의 처절한 싸움을 담은 ‘공장의 불빛’을 ‘노래굿’이라 한 것은 김지하가 개척한 ‘마당굿’ 양식에 통하는 것이었다. ‘공장의 불빛’이 어떤 이상이나 염원을 그린 것인가는 ‘굿’이 무엇인가로부터 해석되어야 한다. 김지하가 1970년대 초에 쓴 ‘진오귀굿’은 특히 황해도 진혼 굿의 명칭이다. 이 진오귀굿은 망자를 하늘로 보내는 천도굿이다. 무당은 망자의 혼을 불러내고 공수를 받아 망자의 삶에 어려 있던 한을 풀어준다. 망자는 이 해원이 있어서야 편히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 ‘공장의 불빛’에 담긴 사연들과 민요와 김민기의 창작곡들은 ‘무당’ 김민기가 불러낸, 싸움에 패배한, 즉 죽음과도 같은 상황에 처한 여공들(노동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해원의, 씻김의 굿과도 같다. 그렇게 해서 생존의 문제를 안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했던 그네들은 재생과 부활을 기약할 수 있다. ‘공장의 불빛’은 생명적 민중의 해원 굿이고, 이 생명의 회복을 염원한다. 김민기와 그의 선배 김지하가 지향한 생명적 민중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의 지식계ㆍ문학계는 계급연합적인 개념의 민중 쪽으로 급격히 경사되었다. 생명적 민중은 그 내부를 분할하고 고정시키는 계급 범주들을 첨예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반면에 민중을 계급 연합으로 보고 여기서 노동자의 전위성을 내세는 방향은 억압받는 자의 독재를 정당화 한다. 2026년의 시점에서 되돌아 보는 1980년대 문학은 오늘의 격렬한 정체성주의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다. 김민기와 김지하의 생명적 민중은 일하는 이들을 큰 하나로 포괄하는 풍요로운 개념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돌아가 의지할 수 있는 고향과도 같이 따사로워 보인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1-12

종이 내음

어린 시절, 새 책 내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잠잘 때도 껴안고 잠들었었다. 나에게는 몇 가지 냄새의 화석이 있다. 새 책,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보리밭, 해 그늘지는 늦여름의 논둑 길. 이 아이들이 ‘화석의 근거지’다. 프로스트가 홍차에 찍어 먹은 마들렌 향기의 추억처럼. 새 책의 종이가 나에게 선물한 ‘내음의 기억들’은 언제나 뜻밖의 경로로 나에게 들어왔다. 그렇다. 기억은 언제나 뜻밖의 경로로 들어오는 것이다. 기억은 스스로 길을 선택한다. 새 책을 펼칠 때 코끝을 스치는 종이 내음처럼 아주 사소한 감각의 틈을 타서 들어오는 것이다. 냄새는 과거를 설명하지 않지만, 대신 과거를 통째로 데리고 온다. 설명 이전의 시간, 해석 이전의 삶이 코를 거쳐 한순간 현재로 쏟아져 들어와 나의 현재를 흔든다. 과거에 대한 설명은 생략된 채, 현재의 나를 한순간에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새 책을 펼칠 때면, 글보다는 종이 내음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건다. 그 냄새는 비슷하지만, 매번 다른 시간을 불러온다. 조그만 시골집 툇마루, 학교 도서관, 비 오는 날 카페 창가, 그때의 공기, 마음의 온도, 사유의 감촉 같은 것들이다. 그런 내음들은 설명된 적이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내가 살아왔고, 살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 새 책의 종이 내음이 유난히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 책을 펼칠 때, 종이 내음을 먼저 나의 심연으로 초대한다. 내 몸속 내음의 화석을 깨우기 위해서다. 코끝을 지나 폐부에 깊이 스며들어 나를 깨우기 전까지는, 책의 저자는 아직 책의 밖에 있다. 내음의 화석이 깨어나면, 읽게 될 가능성의 설렘과 지나가 버린 시간의 그리움이 동시에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서점에서 방금 사서 가지고 온 책이나 택배 상자를 열어 처음 손에 쥔 책을 펼칠 때, 아직 한 줄도 읽지 않았음에도 ‘성스러운 종이 내음의 영접’이라는 멋진 통과의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새 책 종이 내음은 마치 오래된 내면의 서가를 조용히 열어젖히는 열쇠와 같다. 첫 장의 내음이 스치는 순간, 시간은 사유의 강물이 되어 거슬러 흐르고, 잊혔던 순간들이 은은한 향기와 함께 다시 태어나 우리 존재의 근원을 깨우게 되는 것이다. 전자책은 이러한 통과의례가 없다. 종이는 사라지고 글만 남은 세계. 더 이상 후각이라는 감각이 작동하지 않는 곳. 냄새라는 기억을 통해 더 이상 과거의 어떤 것도 소환하지 않는 푸른 피 종족이 전자책이다. 종이책은 종이의 내음만으로 나의 생명을, 나의 영혼을 일깨워준다. 봄날 아지랑이 피는 들녘 초록의 내음처럼,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 아래 자라는 벼의 뿌리에 정화된 논물의 내음처럼. 그렇다. 독서는 종이의 내음과 함께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멋지고, 아름답고, 생명 가득한 기억들을 떠올리고 싶다면, 향기를 맡을 일이다. 책을 들고, 봄날 초록의 언덕길을, 여름의 숲길을 걸어가면 될 일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봄의 풀과 여름의 나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대지의 여신은 오직 향기만으로 그대가 살아 있음을 노래해 줄 테니. /공봉학 변호사

202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