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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북천숲 700년 느티나무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필연적으로 죽어가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살아갈 많은 날들 매우 눈부셔요 당신의 나날은 더 아름다워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성실하려 해요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잘 살길 바라는 것은 잘 죽기 위함이에요 항상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교만은 지금의 자살이에요 지금 당신 옆의 모든 존재에 대해 모든 것을 허락할 것을 맹세하면 어떨까 해요 지금 눈앞의 손해보다 양보가 큰 이득이었어요 물러섬이 나아감보다 좀 낫더라고요 나는 미처 몰랐어요, 앞 사람의 어깨를 보는 것. 좋더라고요 비빌 언덕의 환한 햇살, 너무 따스하지 않아요? 나 역시 중요하지만 남들도 모두 중요해요 남루한 어깨동무, 타박타박 걷는 길 그냥 가만히 가요 사람은 절대 지워지지 않아요 북천숲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해요 발전적이지 않아 제자리 지키면 오히려 발전적이에요 누가 뭐래도 상관 없어요 나무와 숲이니, 모두가 두루뭉술하니, 손해 볼 일 없으니 그러한 가능성에의 지향적 삶이 궁극의 길일 거예요. …… 정말 모르고 살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임을. 몰랐다. 면피가 아니라 무지의 극점(極點)에서 세상의 부분을 설파하려 했다. 무모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죄질이 나쁜 교조적인 관념의 세계에 숨어, 무한의 삽질을 하며, 나무 한 그루 못 심었다는 것이다. 적당하게 살아야 했다. 깨달음 혹은 각성은 강요할 수가 없다. 말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불구하고, 구업(口業)의 악업을 일상으로 저질렀다. 문제는, 그것이 지속적이며 세속적이라서, 습관화되어, 무감각하게, 덧칠하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그러나 삶은 명랑하다. 그렇다고 믿고 나를 개조해야 한다. 북천숲의 나무들은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걸음을 따르지 못한다. /이우근 시인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8-06

한 사람의 사랑이 바다를 건너왔다

초록바람이 살랑거리는 오후였다. 포항성모병원의 뒷마당에 조성된 ‘루이 델랑드 치유의 정원’을 거닐었다. 표지판에는 루이델랑드 신부님이 어린아이를 안고 계신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고아를 안고 계신 것만 같아 내 가슴이 감동으로 뭉클했다. 치유의 정원 안에서 나무들과 어우러진 조형물 ‘기도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조용히 하늘에 가 닿을 것 같았다. 그 따스한 분위기에 스며들어 나의 소망도 한 줄 기도문이 되어 내 안에 울려 퍼졌다. 환한 빛이 몸에 깃든 듯 마음이 평온해졌다.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묘소로 향했다. 이 땅에 뿌리 내린 한 영혼의 이야기를 더듬듯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걷는 언덕길은 성스러웠다. 신부님께서는 1895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람 많은 연안에서 태어나셨다. 그가 수평선 너머에 있는 머나먼 나라 조선 땅에 발을 디딘 건 1923년이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부산에 도착하셨다. 조선은 식민지의 불안 속에 있었지만, 신부님께서 내딛은 소명의 발걸음은 분명했다. 그 후의 삶은 말보다 조용한 손길로 채워졌다. 다른 나라에서 종교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그 땅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1935년 여섯 명의 동정녀와 ‘삼덕당(三德堂)’이라 불리는 초가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소박한 집에서 싹튼 마음은 훗날 ‘예수성심시녀회’라는 이름으로 꽃피웠다. 기도보다 더한 기도는 삶이었고, 강론보다 더한 복음은 나눔이었다. 신부님은 이듬해 할머니 두 분과 두 명의 고아를 맞아들여 새로운 삶의 식탁을 꾸리셨다.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주고, 길 잃은 이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셨다. 그렇게 ‘성모자애원’이 세워졌다. 오직 사람을 품는 마음만으로 시작된 보금자리였다. 삶의 주변부에 있던 이들을 자애롭게 끌어안으셨다. 그리고 1950년 3월 포항으로 향하셨다. 보다 깊은 헌신을 향한 발걸음이셨다. 낯선 바닷바람 속에서 익숙한 사랑의 언어로 병든 이들을 어루만졌고, 흙먼지 나는 길 위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마주 보며 걸으셨다. 한국전쟁 뒤에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고아들을 품으셨다. 이름조차 없는 아이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울던 아이들, 신부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묘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신부님은 끝내 고향땅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 묻혀 흙이 되셨다. 신부님의 삶은 영웅적인 장면들로 채워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위대함은 반복된 하루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비우는 자세 속에 있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총을 들었지만, 신부님께서는 세상을 껴안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주셨다. 문득, 신부님께서 수십 년 전에 돌보았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그가 바라보았던 아이들의 눈빛, 노인의 주름진 손, 고요한 죽음 앞에서의 기도가 아직도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신부님을 떠올려 보면,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은 대단한 영웅이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굶고 있는 자에게 한 끼를 나누는 일, 고통과 눈물 속에 머물러 있는 자에게 등을 두드려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일, 자존감이 낮은 이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관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작은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랐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 지역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헌신하신 이분의 행적이 더 넓게, 더 깊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묘비에 새겨진 이름 위로 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어쩌면 신부님께서는 지금도 이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묵념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종교를 증명하신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사람의 사랑이 바다를 건너왔다. 그 뿌리는 이 땅에 내려져 영원히 꽃이 되었다. /정미영 수필가

2025-08-06

수난시대 자초한 장관들

고려나 조선처럼 왕이 통치하던 때가 시대적 배경인 영화나 드라마를 가끔 본다. 전제 군주제에서의 왕은 지금의 대통령과는 위상이 달랐다. 선거가 아닌 혈통을 이어 최고 권력자가 된 왕은 그 자체가 곧 국가였으니. 왕의 뜻에 반한다거나 칙령을 거부하며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반드시 ‘바른 말’을 하며 왕에게 저항하는 신하가 한둘은 있기 마련. 대체로 보아 그런 자가 충신인 경우가 흔하다는 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왕은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인간사 전체를 매번 합리적으로 꿰뚫는 존재가 아니다. 그도 때론 실수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며, 이성이 아닌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왕에겐 간언(諫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신하가 필요한 법. 현대사회로의 변화는 지난날 왕이 가졌던 힘의 대부분을 대통령이나 내각책임제의 총리에게 이양시켰다. 대통령 역시 왕처럼 실수와 오판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 오판과 실수를 재고하거나 고치라고 충언할 수 있는 장관과 차관이 필요하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자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전 국방장관 김용현과 전 행안부장관 이상민은 구속됐고, 또 다른 전 국방장관 이종섭은 ‘호주로 도망친 사람’이란 오명 속에 있다. 전 법무장관 박성재와 전 외교장관 조태열 역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딱한 처지다. 그들의 오늘이 이 지경인 건 권력자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간언하지 않았던 게 이유가 아닐지.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용기가 없다면 장관직은 사양했어야 옳다. 허니, 장관들의 수난시대는 자업자득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06

영화, 독립영화, 인디플러스

극장가에 ‘다양성’이 사라졌다. 이름난 배우, 검증된 감독, 흥행 공식에 충실한 영화들이 멀티플렉스를 독점한다. 대작 영화 한 편이 개봉하면 전국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잠식하는 ‘스크린 독과점’은 낯익은 풍경이다. 저예산 영화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진다. 다양성을 지우는 통에 영화산업 전체의 창의성과 생명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병폐가 생겨버렸다. 경직된 산업구조 한복판에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있다. 독립영화. 대규모 자본, 물량공세 마케팅과 화려한 스타시스템과는 한참 먼 자리에서 독립영화는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삶의 숨결과 세상의 맥박을 포착한다. 노년과 어린이, 장애인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와 환경 이슈 등 비주류 목소리와 소외되던 이야기가 들린다. 자본논리로는 성립되지 않을 실험과 시도들이 영화라는 그릇 안에서 호흡한다. 독립영화가 모두를 구원하겠나.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상영 기회도 매우 제한적이다. 홍보력도 미흡하고 유통망도 답답하다. 관객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 인내와 집요함이 필요하다. 그런 자리에 영화 본연의 정신, 곧 사회와 인간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예술로서의 독립영화가 살아 숨 쉰다. 독립영화는 ‘가능성’의 씨앗이다. 낯선 감독과 작가, 배우들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한다. 봉준호, 박찬욱, 김보라, 윤단비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이들 역시 독립영화현장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갈고닦았다. 독립영화는 한국영화산업의 최전선이자 미래를 담보하는 인큐베이터다. 상영작 리스트를 살피면, 상업영화관의 그것에 못 따라갈 까닭이 없다.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전국에 흩어진 독립영화전용관들이 실마리가 아닐까. 포항에도 소중한 공간이 있다. ‘인디플러스포항’. 수도권 집중 문화 지형에서 포항은 소외된 도시다. 영화산업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인디플러스포항’은 도시에 문화적 숨통을 던진다. 놀랄만큼 낮은 관람료 삼천오백원은 가격정책을 넘어, 넓게 열린 문화공간을 지역에 선사하겠다는 선언이다. 상영되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속깊은 생각거리와 오래 남을 여운을 남긴다. 극장일 뿐 아니라 영화를 매개로 지역문화 생태계를 새롭게 짜겠다는 움직임이다. 어려움도 크다. 관객 기반이 취약하고 운영수지는 바닥이다. 전국의 독립영화관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상황에서 ‘인디플러스포항’이 걸어가는 길이 험난하다. 그런 판에 이 극장의 존재가치는 오히려 높다. 개별 독립영화가 만드는 파장이 소박하지만, 다른 시선, 다른 감각, 다른 세계를 향한 문을 열어젖힌다. 예술의 역할이며 영화의 본질이 아닐까. 산업은 성장을 목표로 수익을 겨냥한다. 영화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어야 하고 공감을 나누고 연민을 실어야 한다. 독립영화는 영화의 본질을 되새기며 최선을 다한다. 상영관 인디플러스는 영화의 다짐과 기억을 지역에서 살아있게 한다. 상업영화만큼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아도, 우리 삶의 여러 가닥과 높낮이를 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매력과 스토리의 벅찬 감동이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할리우드의 영광이 저물어 간다는 소식도 있다. 독립영화가 영화로의 관심을 불러 모을지 누가 알겠나. 우리가 그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8-06

몸이 차가우면 감정도 차가워진다

‘마음이 시리다’는 말은 단순한 표현 같지만 실제 몸이 차가워지면 감정도 함께 차가워지고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처럼 스트레스가 많고 식습관이 불규칙하며 냉음료를 자주 먹는 환경에서는 속까지 냉해진 사람들이 꽤 많다. 겉은 멀쩡한데 손발이 차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 중 많은 경우가 바로 몸이 차고 혈액순환이 안되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단순히 몸이 찬 체질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오장육부가 약해지고 균형이 맞지 않으면 몸의 중심과 에너지를 담당하는 장부가 허약해지고 냉해졌을 때 기혈이 제대로 돌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 몸의 오장육부에서 말초 혈관까지 순환이 떨어지고 몸의 대사가 전체적으로 느려진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몸이 계속 긴장된 상태로 유지되고 자율신경계는 점점 균형을 잃게 된다. 결국 교감신경은 계속 흥분돼 있고 부교감신경은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이게 바로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서 감정 기복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다. 현대의학에서도 이런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체온이 낮으면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기분 조절 물질의 생성이 줄어든다. 또 위장 운동이 느려지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몸이 많이 차가운 사람들은 소화도 잘 안 되고 장도 예민하고 항상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계절마다 감기에 걸리고 몸살이 온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감정이 자꾸 가라앉고 불안해지기 쉽다. 실제로 몸이 차갑고 가슴이 답답한 여성 환자들 중에는 불면· 불안장애·공황장애까지 겪는 경우도 꽤 많다. 이럴 때는 단순히 마음을 다스리는 상담이나 정신과 약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은 육체가 좋아지면 안정된다. 즉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감정도 안정된다. 한방에서는 속을 데우는 약재들과 함께 기혈 순환을 돕는 치료를 병행한다. 예를 들면 건강, 육계, 황기 같은 따뜻한 성질의 약재들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몸의 활력이 살아나고 기분도 같이 살아난다. 여기에 복부 찜질, 좌훈, 뜸 같은 물리적인 자극을 함께 하면 더 효과가 좋다. 몸이 많이 찬 사람일수록 치료는 일정 기간 꾸준히 받아야 하고 생활 습관도 함께 교정해줘야 한다. 음식도 매우 중요하다. 몸이 찬데도 찬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자주 복용하고 찬 샐러드나 생과일을 자주 먹는 식습관은 냉증을 더 심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은 따뜻한 생강차나 계피차를 커피 대신 마시고 익힌 채소와 따끈한 국물 요리처럼 몸을 데워주는 음식 위주로 복용하는 것이 좋다. 식사량은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단백질 위주로 먹는 것이 좋고 식후 간단하게 30분 정도의 동네 산책과 함께 잠을 자는 시간은 규칙적으로 맞춰야 한다. 감정이 흔들릴 때 무조건 ‘내 멘탈이 약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기 전에 몸 상태를 먼저 점검해보는 게 좋다. 몸이 아프고 찬 상태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시들해지고 감정 기복도 심해진다. 반대로 몸을 따뜻하게 돌보고 순환을 살려주면 마음도 다시 온기를 되찾는다.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돌보는 게 곧 감정을 돌보는 길이고 내 삶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8-06

심폐소생술 교육

70년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여학생도 교련 교육을 받았다. 남학생들은 얼룩무늬의 특별히 제작된 복장이 따로 있었으나 우리 여학생들은 체육복을 입고 교련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식 제식훈련을 하고 열병식 같은 것도 했다. 대학교에서도 흰 바지에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적십자가 새겨진 흰 응급가방을 메고 열병식을 했다. 총검술을 배우는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의 경우 응급처치·붕대법·간호법 등을 배웠다. 유사시에 여학생을 간호인력으로 지원한다는 가정이었을 것이나 학생으로서는 정말 말할 수 없는 곤욕이었다. 불평만큼이나 당시 정부에 대한 반감은 비례적으로 컸다. 응급처치법은 몇몇 학생들을 뽑아 시범적으로 가르쳤는데 그 학생들이 인공호흡법을 시범하면서 질색했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난 겉옷을 벗어 두 개의 막대에 걸어 응급용 들것을 만든 시범을 한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그때 배운 붕대매듭법만은 지금도 요긴하게 쓰긴 한다. 교련은 일제강점기에도, 광복 후에도 실시하였다고 하며, 1950년대에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60년대 말부터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엄연한 필수 교과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의 학생 대상 군사교육이었던 셈인데, 더러 개그 프로에서 그 시절을 풍자하거나 추억하는 소재로 소비되는 걸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나 공익적으로도 요긴한 응급처치법 중에 심폐소생술에 관심을 가졌다. 40여 년 전 교련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었다. 대학 재직 중에 이따금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이 몇 번 있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배울 기회를 놓쳤다.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요즘, 심폐소생술은 필수적으로 배워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대구 팔공산 기슭에 안전테마파크가 있어 손주들과 가끔 놀기 삼아 가는데, 그곳에서 대구시응급의료지원단을 찾아보라고 들었다. 홈페이지 상단에 심폐소생술 교육 신청을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잘 보이게 있었다. 팝업창에는 대구 심정지 환자 수, 심정지 환자의 발생 장소를 가르쳐주는 그래프가 그려져 있어 경각심을 준다. 2023년 기준 심정지 환자 수가 1113명, 심정지 환자의 발생 장소 중 가장 많은 곳이 집(68.3%)이라고 하니,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배워 두어야 할 심폐소생술이었다. 첫 번째 신청 시에는 집 가까운 수성보건소 교육은 신청 마감이었다. 나와 같은 교육 희망자가 많은가 보았다. 매월 한 달 전에 신청자를 모집한다는 걸 알고, 미리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가 6월 첫날 신청하고, 지난 7월 23일, 수성보건소에서 2시간의 기본 교육을 받았다. 20명 가까운 교육신청자 중엔 유치원 교사나 아파트 관리원 같은 필수 교육이수자도 있었다. 가슴압박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을 실습했다. 내친김에 7월 1일엔 8월의 심화1과정을 신청해 두었고, 8월 첫 주엔 9월의 심화2과정을 신청할 작정이다. 과정의 차이 유무는 모르겠으나 일단 배워두면 스스로 든든할 것 같아서이다. 손주에게 자랑했더니 수영 시간에 모두 배웠다면서 가슴압박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손주와 종종 복습하며 몸에 익힐 생각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8-06

파지

휴가철, 짧은 여행을 다녀오자는 말에 가족들과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 바람에 지쳐갈 때쯤 창밖으로 복숭아밭이 펼쳐졌다. 장호원, 예전부터 복숭아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 아이들이 어릴 때 일부러 복숭아를 사기 위해 몇 번이나 들렀던 곳이다. 들판 끝에 자리한 직판장 간판이 눈에 띄었고 우리는 잠시 발길을 멈췄다. 햇볕 아래 노랗고 붉게 익은 복숭아들이 상자에 담겨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파지 복숭아’라고 적힌 상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상자 안의 복숭아는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비닐에 잘 덮여 있는 상품 복숭아와는 달리 크기도 제각각이었고 눌린 자국에 거뭇한 흔적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상품으로는 팔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껍질 아래 단맛이 풍겨져 나왔다. 낙과처럼 땅에 떨어진 복숭아가 아니라 어쩌면 풍성하게 익어 스스로 무게를 못 이긴 열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은 볼품없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렸다. “겉은 좀 그래도 속은 멀쩡해요.” 상인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파지복숭아 다섯 상자를 사서 차에 올랐다. 상자 안의 복숭아는 상처투성이였다. 표면은 부드럽기보다는 거칠고 울퉁불퉁했다. 연한 황도빛 위에 붉은 기운이 번졌지만 군데군데 멍이 들고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떤 건 껍질이 살짝 벌어져 속살이 보이기도 했고 어떤 건 꼭지 주변이 눌려 검게 변해 있었다. 송진처럼 굳은 진물이 마른 채 매달려 있기도 했다. 손에 쥐자 복숭아 특유의 솜털이 손끝에 부드럽게 스쳤다. 눈으로는 상처가 먼저 보였지만 코끝에는 단내가 먼저 스며들었다. 숙소로 와 파지 복숭아를 조심스레 깎았다. 칼이 껍질을 따라 들어가자 표면의 상처 아래서 뜻밖에도 말갛고 단단한 속살이 드러났다. 붉은 빛이 번진 살결은 탱탱했고 칼끝에 단물이 묻어났다. 상처 난 껍질을 벗겨내자 복숭아 특유의 맑은 향이 방 안에 퍼졌다. 벌레 먹은 부분이나 검게 변한 자리를 도려내고 나니 그 안은 상처 하나 없던 것처럼 투명하고 순했다. 첫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깜짝 놀랐다. 달고, 시고, 향긋하고, 입 안 가득 과즙이 흘렀다. 겉모습만 보고 맛을 짐작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속내였다. 복숭아는 여전히 제 계절의 한복판에 있었다. 복숭아 하나를 앞에 두고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문득 사람도 이 복숭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누구나 겉모습에 조금씩 주름이 생기고 빛이 바래진다. 하지만 살아온 시간만큼 그 속은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향기롭게 익어간다. 언뜻 보기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의 바람에 겉껍질은 거칠어졌을지 몰라도, 그 껍질 아래에는 계절을 견디며 은근히 익어온 속내가 있다. 손끝으로 조심히 벗겨낼 줄 아는 이에게만 드러나는 말간 진심과 묵직한 내공이 있다. 그런 사람은 껍질 너머로도 빛을 머금는다. 언젠가 친구가 말했다. “요즘은 거울 보기가 싫어. 피부도 푸석하고 눈가에 잔주름이 너무 많아.”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주름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었겠니. 아이 키우며 울고 웃은 날들, 남편과 싸우고 화해한 날들, 일하고 지치고 다시 일어난 날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나는 파지복숭아를 먹으며 내 삶의 파지들을 떠올렸다. 실수로 넘어졌던 날들, 오해받고 상처 입었던 시간들, 몸과 마음이 지쳐 도망치고 싶었던 밤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단맛이었음을 다시 되새김한다. 내 안에 스며든 날것의 시간들, 그것이 나를 ‘속이 꽉 찬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나이 든다는 것은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상처를 껍질 삼아 속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내면을 지키기 위해 감당한 바람과 비, 기꺼이 받은 햇살이 내 삶을 익혀간다. 하지만 조금 시들어도 괜찮다. 조금 눌리고 찢겨도 괜찮다. 그 속이 얼마나 깊고 넉넉한지를 알기에. 복숭아를 깎으며 나는 나를 깎았다. 단단한 씨를 피해 조심스레 칼질을 하다 보니 내 안에도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 도려내지지 않는 단단함으로 남았다는 것을. 익어간다는 것, 그것은 단맛을 품는 일이다. 삶의 모든 계절을 통과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파지 복숭아에 담긴 인생의 맛은 생각보다 훨씬 달콤했다. /김경아 작가

2025-08-05

예술의 황홀, 역사의 무게

6월 10일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목적지는 교토국립박물관이지만, 그 전에 기요미즈데라와 주변의 골목길인 샨넨자카와 니넨쟈카를 먼저 가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샨넨자카 돌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야사카 오층탑을 좋아합니다. 6세기 말 쇼토쿠 태자가 만든 후에, 1440년에 재건되었다는 이 목탑을 바라볼 때면, ‘정말로 내가 교토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들고는 합니다. 이날은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로 인해 무척이나 붐볐지만, 오래된 집들과 탑의 검은 빛만은 더욱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샨넨자카를 내려와 1.3km 정도 떨어진 교토국립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구급맵을 켜자 근처에 귀무덤(코무덤)이라는 지명이 나타났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이 무덤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베어간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임을 직감할 수 있었는데요. 코무덤(귀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인인 도요쿠니 신사 앞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 일대30만 평은 과거 도요토미의 ‘성역’이었다고 하네요. 죽어서 신이 되고자 한 도요토미는 산정에 특별한 방식의 무덤을 만들고, 그 산기슭에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도요쿠니 신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높이 19미터의 대불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날 일본에서 크기로 유명한 도다이지 대불이 15미터이고 가마쿠라 대불이 11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이 대불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라는 ‘타자’가 생생하게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더욱 무거워진 심신을 추스르며, ‘일본, 미의 도가니:이문화 교류의 궤적’이라는 전시가 열리는 교토국립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 개최를 기념하여, ‘문화 교류’라는 키워드로 일본 미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였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부터 메이지 시대(1868-1912)까지의 회화, 조각, 묵적, 공예품 등 200점의 문화재를 엄선하여 일본 미술의 빼어남을 전세계인에게 발신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의 포인트는 수백 점의 작품 하나하나가 이문화와의 교류로 창조된 것이며, 일본 미술의 고유성이란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화를 녹여낸 ‘도가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시는 ‘프롤로그: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 ‘제1부 동아시아 속 일본의 미술’, ‘제 2부 세계와 만난 일본의 미술’, ‘에필로그:문화의 벽을 넘는 것은 누구인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롤로그: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이었는데요. 일본은 만국박람회에서 미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1900년의 파리만국박람회에서는 일본의 첫 번째 미술사 책을 프랑스어로 화려하게 만들어 전시했는데요. 이듬해인 1901년에는 이 책의 일본어판이 간행되었고, 이후 일본의 공식적인 미술사로 자리잡아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일본 미술사는 근대 서양이라는 타자를 경유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예술은 한국, 중국, 유럽 등의 ‘다른 문화’와 교류하며 형성된 것임을 수백점의 예술품들은 실물로서 증명해 보이고 있었는데요. 특히 한국과의 교류는 6세기 중반 무렵에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것,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의 도자기 기술이 서일본 각지에 뿌리내린 것, 에도시대(1615-1868)에 조선통신사와의 교류로 수많은 시와 회화 등이 탄생한 것 등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전시의 키워드가 ‘이문화 교류’여서인지, 관람객 중에도 외국인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쩌면 일본 예술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란 결국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서만 꽃피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술(창조)의 본질이 새로움에 있다면, 그 새로움은 분명 타자와의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교토 국립박물관을 나오며, 불과 몇 시간 전에 본 조선인들의 코무덤이 떠올라 마음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다음날인 6월 11일에는 나라국립박물관에 갔는데요. 이곳에서는 개관 130주년을 맞아 ‘초국보:기도의 휘황함’이라는 전시가 펼쳐졌습니다. 이때의 ‘초(超)국보’라는 의미는 ‘매우 뛰어난 보물’이라는 의미와 함께, ‘시대를 넘어(超)’ 선조들로부터 전해진 마음과 그 마음을 계승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람객이 어찌나 많은지 인파(人波, 사람의 물결)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였는데요. 출렁거리는 인파에 몸을 싣고 수백 점의 ‘초국보’를 관람했습니다. 고대의 수수께끼를 온전히 품고 있는 ‘칠지도’를 실물로 보고, 작년 호류지에서 저를 눈물짓게 했던 ‘백제관음’을 유리창 없이 직접 바라보며 커다란 감흥에 젖어든 시간이었습니다. 6월 12일에는 오사카시립미술관의 ‘일본국보전:일본의 국보, 오사카에서 빛나다’를 보러 갔는데요. 평일임에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입장까지 무려 1시간 정도를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135점의 국보를 소개하는 이 전시회에서는, 특히 오사카와 관련된 국보를 따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파리만국박람회 등에 출품된 쇼조칸 소장의 작품을 따로 전시하여 만국박람회와 국보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간사이에서 보낸 3박 4일은 일본인들이 수천년에 걸쳐 낳은 최고의 보물에 둘러싸여 보낸 황홀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돌아오는 도쿄행 신칸센에서까지 코무덤(귀무덤)이 환기시킨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번민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8-05

이열치열 해양환경지킴이 봉사활동

갈수록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밤새 집중호우가 남부지역에 많은 양의 비를 뿌리면서 바짝 달궈진 대지가 좀 식혀지는가 싶었는데, 비가 그치기 무섭게 염천에 폭서로 작렬하니 과연 여름날의 기세가 예외없이 등등하기만 하다. 더욱이 일부 지역에서는 폭우 피해가 속출해서 안타깝기만 한데, 고온다습으로 눅눅하고 꿉꿉한 무더위에 불쾌지수마저 올라갈 정도니,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더위를 참고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더위를 피하거나 묵묵히 참으며 여름나기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더위에 정면으로 맞서서 오히려 더위를 즐기며(?) 당당하고 거침없이 여름날을 보내면 어떨까? 이를테면 열(熱)은 열(熱)로써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측면에서, 더위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땀을 흠뻑 흘린다든지, 아니면 아무리 더워도 뜨거운 차를 마시며 담담히 더위를 재운다든지 하는 등의 방식으로 더위를 떨치며 물리친다면 한결 개운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필자는 후자의 방식을 선호하기에, 이른 아침부터 더위를 무릅쓰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포항철길숲과 도심을 가로 질러 영일대해수욕장을 거쳐서 한걸음에 다다른 곳이 포항시 북구 여남항이었다.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챙이 넓은 파란색 모자를 쓰거나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곧장 어깨띠를 두르고 피켓과 비닐봉지를 나눠 들고는 삼삼오오 동료, 가족들과 함께 바다 옆으로 난 둘레길로 이동해 아침부터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여남 해안에서 죽천으로 이어지는 영일만 북파랑길(호랑이 등오름길) 2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단순히 걷는 것만이 아니라 포항 해상 스카이워크를 지나가면서 관광객이나 시민들에게 해양환경의 중요성과 일회용품 줄이기, 플라스틱 사용 감축 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는 환경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다. 또한 바다와 인접된 해안둘레길과 방파제 주변 곳곳에 파도로 떠밀려온 폐어구나 해양쓰레기를 줍는 환경정화활동까지 실시하며 ‘바다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펼치는 이들은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 단원들과 가족들이다. 지난 2022년부터 활동을 하기 시작한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은 포항의 천혜의 절경을 갖춘 204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환경정화와 해양환경 보호, 바다사랑 캠페인 활동 등으로 꾸준한 자원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18년만에 지난 7월 재개장한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비롯 영일대해수욕장과 월포ㆍ화진ㆍ도구ㆍ구룡포 등 6개 지정 해수욕장이 있는 포항은 한 해 평균 400만 명의 전국 피서객이 몰리는 ‘국민 휴양지’인데, 그에 걸맞게 해양환경을 지키고 가꾸는 봉사단의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포항의 영일만관광특구 일원이 최근 해양수산부로부터 ‘복합 해양레저관광도시’ 사업 대상지로 선정, 동해안 해양관광의 새 시대를 열 기반이 마련돼 그 어느 때보다도 해양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옷이 땀으로 젖는 찜통더위에도 이열치열로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꾸고 지켜가는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의 작은 손길이 전국 관광객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8-05

생각정리 스킬과 현대인의 삶

21세기의 현대인은 ‘생각정리 스킬’이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 지혜롭게 사는 길은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큐레이션(Curation)해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단순한 요약이 아닌 융합을 해야 한다. 융합을 할 때는 데이터와 정보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이 필요하다. 이런 지식을 경험과 합쳐 지혜로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에서 2020년 발표한 ‘직장인들이 가져야 할 역량’ 1위가 ‘복합적 문제해결 능력’이고, 2위는 비판적 사고, 3위는 창의성이다.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앨런켄트로의 지식삼각형(Knowledge triangle)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삼각형을 피라미드라고 생각했을 때, 1층은 데이터, 2층은 정보, 3층은 지식, 4층은 지혜다. 데이터, 정보, 지식, 지혜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모두 다르다. 데이터는 의미 없는 기록이다. 데이터를 의미 있게 분석한 것을 정보라고 부른다. 그것을 모으고 구조화 해서 이용할 가치가 있게 되면, 이것을 지식이라고 한다. 지식이 경험과 만나 통찰력이 생기면 마침내 지혜가 된다.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자신만의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패턴화된 지식을 갖게 된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그것이 지혜가 되어 어떤 문제 상황에서도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지혜를 가리켜 해결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패턴화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령, 피자집을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가정하면, 매일 쌓이는 영수증은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고 각각의 데이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루 매출 데이터가 모이면 피자집 하루 평균 매출이라는 정보가 도출된다. 이 피자집 하루 평균 매출은 50만원인데 어제 매출은 100만원이었다. 갑자기 왜 2배가 되었을까? 분석해보니, 어제는 눈이 와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피자를 많이 시킨 결과였다. 이후 눈 오는 날에는 10% 할인하는 ‘스노 쿠폰’을 발급하여 매출액이 2배 늘어나는 결과를 얻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피자집 사장은 매출 상승 요인을 생각하다가 날씨와 영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벚꽃계절에는 ‘벚꽃 나들이 쿠폰’을 지급하는 등 계절마다 피자 특별 수요를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응하여 연간 매출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요즘 세상에 정보와 지식은 차고 넘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빅데이터 시대라고 하지만, 수많은 정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보는 네이버와 챗GPT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을 잘 선별하고, 정리하고, 연결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생각정리 스킬’이고, 누구든 갖추어야 할 역량인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가치창출을 더하는 ‘데이터-정보-지식-지혜’의 ‘생각정리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그 역량에 따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현대인의 삶의 질이 달라지게 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8-05

과유불급의 지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정치인에게는 예외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공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과유불급으로 설명했다. 옛 성현들의 남긴 말들이 때때로 살아가는 데 지혜가 될 때가 있다. 권력 다툼을 하는 정치인은 물론이요, 한 나라의 국왕도 성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과유불급의 속 뜻은 과도한 행동이나 욕심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새로운 당 대표에 선출된 정청래 의원의 정치적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과거 정치 발언 등으로 미뤄보아 당의 운영이 강경 일변도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야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특별히 이목을 끄는 대목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국내 다수의 언론들은 그에게 정치 투쟁보다 정치 복원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여당 대표로서 협치와 국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충고한 것이다. 그러면서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독주를 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의 말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신임 정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야당과는 악수도 않겠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위헌 정당 해산법 발의와 검찰, 언론, 사법개혁을 전광석화처럼 해치우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대학 시절 미 대사관저 점거 농성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이재명 당 대표 당시 핵심 검투사 역할을 맡았던 당내서 소문난 초강경파다. 그에게 과유불급이란 성현의 말이 통할지 지켜 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05

취재 위축시키는 ‘언론중재법’ 살아나나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언론개혁을 주도할 특위 위원장에 ‘강성’ 최민희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했다. 정말 ‘전광석화’처럼 언론개혁을 추진할 모양이다. 최 의원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전신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가 1985년 창간한 월간 ‘말’의 1호 기자다.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등을 지내며 민언련의 ‘대모’로 불린 인물이다. 정 대표는 최근 “언론개혁은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과 언론중재법이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유야무야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22대 국회 임기 시작 다음 날 곧바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악의적인 언론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 손해액의 3배 이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 내용이다. ‘악의’는 “허위 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정의했다. 언론사 사회부에 오래 몸담은 기자들은 한 번씩 경험해 봤겠지만, 필자도 1980년대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언론중재위에 제소당한 적이 있다. 출입처 관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취재 과정에서 경찰이 확보한 피해자의 일기장 내용 일부를 기사에 언급한 것에 대해 유족 측이 명예훼손 혐의로 중재위에 제소한 것이다. 정정보도를 하는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지만, 중재위의 조정과정을 뒤돌아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만약 정 대표가 발의한 언론중재법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기자들의 취재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언론중재위는 지난 6월 13일 언론중재법 제정 20주년 학술세미나에서 “2010년부터 청구건수가 2000건을 넘었고, 2016년부터는 3000건을 넘어섰으며 2020년부터는 4000건 내외의 사건이 청구되고 있다”고 했다. 중재위 제소건수가 계속 늘고 있다는 말이다. 언론중재위의 ‘언론관련 판결분석보고서’에서도 2005년 30건에 불과했던 배상 건수가 매해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2~2023년에는 각각 80건을 넘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손해배상 건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언론 상대 소송이 그만큼 빈번해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신문협회는 지난 6월 1일 발행한 신문협회보에서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고, 정정보도 시 원 보도의 크기 및 분량으로 게재하도록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대표적인 언론 규제 법안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선 정 대표를 비롯해 언론개혁을 중대한 개혁 과제로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철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급한 일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추진 의사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권력을 견제해온 유일한 도구인 언론이 권력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언론중재법’이 무서워 침묵을 선택하게 되면, 우리사회는 친여권 매체들이 매일 만들어 내는 ‘창문’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8-05

바뀌는 여름 휴가 트렌드 ‘저소비 고효율’… 지자체도 바뀔 때

우리나라 여름휴가 트렌드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인터넷 검색으로 저비용으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자체마다 지역 상징성과 어우러진 지역 내 관광지를 조성하고 있지만,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하는 곳이 많다. 지난 3일 경남에 있는 한 지역의 A 랜드마크 관광지에 다녀왔다. 여름휴가의 최고 성수기 기간이었지만, 이곳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임대가 적혀있거나 일찍 문 닫은 상점들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특히 지역을 대표한다는 호텔에선 100여 개의 객실 중 예약된 곳은 7개 객실뿐이었다. 찾은 사람이 적음에도 호텔 숙박비는 성수기라는 이유로 평소보다 비싸게 받았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 비해 서비스와 인근 인프라는 가격에 대한 의구심 마저 들게했다. 인근에서 10여 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날이 갈수록 이곳으로 휴가를 오는 인원이 줄어들고 있다”며 “매년 같은 콘텐츠가 되풀이되고, 관리가 부실하다 보니 다시 찾는 이가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에서도 랜드마크 조성에 실패한 사례가 있다. 최근 대구 달서구에서는 10억 원을 들여 도시철도 2호선 용산역 광장의 ‘하이로프 클라이밍장’을 조성했지만, 개장 석 달 만에 휴업에 들어가 ‘예산 낭비’ 논란이 커졌다. 달서구는 수요 예측 실패와 홍보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현장을 가본 이들은 부족한게 더 많다고 말한다. ‘하이로프 클라이밍장’ 하나만으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하이로프 클라이밍장’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다른 편의시설들이 있어야 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다른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사람이 몰리는 세상이다. 상징성만 입혀 ‘빛 좋은 개살구’를 빚은들 운영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최근 트렌드인 야외 캠핑이나 박물관 투어 등이 알찬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간송미술관, 대구과학박물관 등의 시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오토캠핑장의 경우 예약을 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다. 그만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게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투자만이 능사가 아니다. 조성해놓은 관광지를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지자체마다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만 소비자의 빠른 트렌드 변화에 맞춰 지역 경제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5-08-05

계곡에 숨은 위험… 숫자가 경고하는 여름철 물놀이 사고

경북의 계곡과 강, 해변은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물속을 향한 발걸음은 가볍고, 물가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런 풍경 뒤에는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물놀이의 즐거움은 늘 위험과 맞닿아 있고, 사고통계가 알려주는 숫자들은 이를 침묵 속에서 경고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물놀이 사망자는 112명에 달한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하천과 강에서 39명, 계곡에서 33명, 해변과 바닷가에서 40명이었다. 사고의 주요 원인은 구명조끼 미착용 41건, 수영 미숙 38건, 음주 수영 19건, 급류에 휩쓸린 사례가 8건이었다. 대부분 충분히 예방 가능한 인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수난사고로 인한 출동 건수는 각각 1142건, 1522건, 1006건에 달했다. 올해 2025년 상반기에도 이미 231건의 구조 요청이 있었고, 이 가운데 74명이 구조됐다. 특히 안동, 문경, 청송은 계곡과 하천이 발달한 지역으로 가족 단위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이러한 특성은 구조 요청의 빈도를 높이는 동시에 사고 가능성 또한 크게 만든다.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수행하는 대원들의 목소리는 무겁다. 한 구조대원은 “출동 횟수가 줄었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된다. 사람들의 경각심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익숙한 장소, 평소 자주 찾던 계곡이라도 그날의 기상 상황, 수온, 수위 변화에 따라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소방본부는 여름철 휴가철에 대비해 해수욕장 13곳, 하천과 계곡 4곳에 시민수상구조대원 318명을 배치했다. 이들은 단순한 인명 구조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응급처치, 심폐소생술 교육, 해파리 제거, 미아 찾기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한다. 한 구조대원은 “사람들이 수영복과 물놀이 용품은 철저히 준비하면서도 안전 수칙엔 소홀한 경우가 많다. 우리 역할은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대원에게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한 시민은 “구명조끼 덕분에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안전 교육을 받고 나니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됐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물놀이 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 수칙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그 실천이 관건이다. 출발 전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고, 음주 후 수영이나 단독 수영을 절대 하지 않으며, 구명조끼 착용을 생활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린이들은 반드시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며 장시간 수영은 자제하고 상황 발생 시에는 119에 즉각 신고하고 구조도구를 활용해야 한다. 이런 작은 실천이 생명을 지키는 시작점이 된다. 숫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속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다. 아무리 맑고 고요한 계곡일지라도, 자연은 결코 인간의 예측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수영복도, 튜브도 아닌 안전 의식일지도 모른다. 경북의 청정 자연은 사람들에게 쉼과 평온을 제공하지만, 그 속에서 안전을 지키는 노력이 없다면 그 아름다움은 위태롭게 흔들릴 수 있다. 진정한 피서는 안전에서 시작된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5-08-05

프레임 씌우기

지금 한국의 민심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가 ‘프레임 씌우기’인 것 같다. 프레임(frame)은 원래 틀이나 구조 등 가치중립적인 말이지만, 요즘은 주로 굴레나 낙인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런 프레임은 그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 사고의 틀을 고정하고, 감정의 방향을 정하며, 여론과 제도까지 바꾸어 막강한 정치적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프레임 씌우기는 일거에 폭력적으로 사태변혁을 노리는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흔히 자행되는 수단이다. 중세 가톨릭의 마녀재판,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 학살, 스탈린 소련의 대숙청 등. 일단 프레임을 씌어 명분을 만들어 주면 일말의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이 잔혹해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수십 년간 주로 좌파 진영에서 프레임 씌우기를 투쟁과 선동의 기본 전략으로 삼아왔다. 독재 프레임, 친일 프레임, 국정농단 프레임, 세월호 프레임, 광우병 프레임, 민주화운동 프레임, 촛불혁명 프레임, 극우 프레임, 후쿠시마 핵오염수 프레임에서 내란 프레임까지. 이러한 도식화된 선전 전술은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양심을 자극해 상대 진영을 악마화 하고 자신들은 정의의 대변자로 포장하는 데 크게 성공해왔다. 그래서 손쉽게 우파 대통령들을 탄핵하고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은 물론 언론, 학계, 문화예술계,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특정 진영의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확대·재생산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이념에 경도된 식자층과 문화 권력자들이 진영논리의 나팔수가 되어 자신들이 만든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모순적 현실이 심화되고 있다. 프레임 씌우기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진실을 가리고, 생각의 자유와 토론의 공간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사건도 다양한 해석과 복합적인 배경이 있을 수 있는데, 프레임은 그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고, 흑백논리와 감정적 구호로 사태를 단순화한다. 그 결과 복잡한 사회현상은 이해와 공존이 아닌 증오와 편가르기의 소재가 되고,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양성과 상호존중은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프레임 정치가 권력을 쥔 자들의 면죄부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정권의 비리나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 그것을 ‘반민주’, ‘극우’, ‘가짜뉴스’ 등의 프레임으로 되치기하면서 논점을 흐리고, 비판자에게는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국민의 알 권리는 말살되고, 언론은 자기 검열에 빠지며, 야당은 의회민주주의의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 프레임 씌우기는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다. 그것은 대중의 감정을 인질로 삼아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고, 이견을 범죄시하며, 합리적 토론 대신 선동과 감정몰이로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이런 방식이 반복될수록 국민은 피로감을 느끼고, 결국 정치 혐오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가 붕괴된다. 프레임 씌우기 같은 선동과 폭거로 탈취한 권력은 결국 패망하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 과정에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는 것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8-04

자유의지 VS 법적 책임

자유의지란, ‘개인이 외부의 강제나 내적 필연성 없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위를 하는 능력’을 말한다는 정도로 대충 정의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의가 그럴듯하여 보여도 자유의지를 제대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자유의지는 ‘자유’와 ‘의지’라는 두 단어의 철학적 함의는 물론, 양자의 의미가 결합 된 이후의 뇌과학적 분석까지 필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유의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왔던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범죄를 저지른 자의 범죄 행위는 자유의지로 인한 것이었으므로, 뒤따르는 법적 책임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행위는 자유의지의 결과물로서 발생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인류는 오랜 기간 신앙처럼 지켜왔다.(슬프게도 자유의지는 종교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기도 하다)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그 중요 구성 요소는, ‘선택 가능성, 자기 결정성, 도덕적 책임’이다. 그런데 그 범죄가 범죄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질러진 것이라면 우리는 범죄자를 어떻게 처벌하여야 할 것인가? 도덕적 비난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현대 뇌과학계에서 자유의지 긍정론에 반대하는 상당수의 뇌 과학자들이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자유의지 긍정론과 부정론의 비율이 정확하게 조사되어 보고된 통계는 없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자유의지란 없다’라고 주장하는 뇌과학자들은, 우리가 내린 결정은 우리가 ‘의식하기 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며, ‘자신이 결정하였다고 생각(의식)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고 한다.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때,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마음의 발생 기관인 우리의 신체, 그 중 특히 뇌가 ‘물질로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행위의 근원인 마음은 물질인 신체(대부분 뇌)에서 발생 되기 때문이다. 현대 뇌 과학에서도, 마음이란 ‘전기적 신호 전달로 인하여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물리 화학적 작용의 결과물’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다수설이다. ‘마음이 물질의 결과물’이라는 선언에 대하여, 우리의 순진하고도 전통적인 영혼 수호자들은 경기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사실인 것을 어떡하랴! 물질의 작용이 잘못되면 마음도 잘못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가 결정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질(시냅스)에서 발생(창발)한 마음이 물질이든 아니든 그것은 그다음 문제이다. 범죄자의 행위가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이에 대한 법적 처벌은 달라져야 한다. ‘도덕적 비난’보다는 ‘사회 유지와 재범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바보라고 부르되 죄인이라고 부르지 마라! 생각과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표상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이것들 사이에는 인과의 수레바퀴가 돌지 않는다!’라고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말했다. ‘그냥 처벌하면 될 일’을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 두 번 죽이지 말라’는 자유의지의 존재에 대한 탁월한 철학적 물음을 던진 것이다. 과연 누가 창백한 범죄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공봉학 변호사

2025-08-04

윤석열 전 대통령의 어깃장

수의를 벗고 내의 차림으로 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드러누웠다고 한다. 종일 방송된 뉴스와 특검의 관련 발표로 이 소식을 접한 상당수 국민들이 혀를 찼다. 국회에선 법무부장관을 향해 이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다. 국회의원도, 장관도 서로 묻고 답하기를 낯뜨거워했다. 외신도 가만있을 리 없다. 소식은 실시간으로 세계를 향해 타전됐다. “전직 대통령이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지난 8월 1일 발생한 사건(?) 이야기다. 그날 특검은 법원에서 발부된 체포영장의 집행을 위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그러나, 계속된 특검의 설득과 요청에도 윤 전 대통령은 요지부동, ‘잡아갈 테면 잡아가 봐라’는 식의 어깃장을 놓았다고 한다. ‘조폭 수준의 행태’라는 극단적 말까지 나왔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의 변호사들은 폭염으로 인한 체온 조절 때문에 수의를 벗고 있었고, 영장 집행 과정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공개한 건 의도된 전직 대통령 망신 주기라며 반발했다. 영국의 정치가 존 스튜어트 밀은 “법은 가진 자에겐 든든한 방패지만, 가지지 못한 자에겐 심장을 겨눈 창끝”이라 말했다. 법 집행의 평등하지 못함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실상 19세기 영국 법은 부자와 권력자에겐 관대하고,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가혹했다.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21세기. 심플하게 묻자. 한국은 어떤가? 19세기 영국보다 나은가? 법을 다루며 일생을 살았고, 법의 준수를 약속하며 대통령에 올랐던 사람의 위와 같은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윤 전 대통령은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란 문장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04

국민의 회초리가 나라를 살린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국민’이다. 정치인은 주권자의 감시와 비판을 두려워하지만, 국민이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권력을 남용한다. ‘권력은 마약’일 뿐만 아니라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주권자는 여차하면 정치인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권력을 위임한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여당의 행태를 보라. 민주당은 이미 12년 전에 ‘을(乙)’의 목소리를 듣고 ‘갑질’을 근절하겠다고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억강부약(抑强扶弱)’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래놓고서는 제자의 논문을 ‘표절’한 이진숙을 교육부장관에, 그리고 보좌진에게 온갖 ‘갑질’을 일삼은 강선우를 여가부장관에 지명한 것은 전형적인 표리부동이요 자가당착이다. 국민의 비판이 점점 커지자 대통령은 이진숙의 지명을 철회했고, 강선우는 임명을 강행하려했다. 민주당 지도부까지 나서서 강선우를 적극 비호했으나 국민들은 결코 회초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야당과 언론은 물론이고,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강선우의 갑질’이 ‘이진숙의 표절’보다 더 나쁜데 왜 측근이라고 두둔하느냐는 여론이 확산되었고,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떨어지자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가 마침내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다. 한편 야당의 정치행태는 어떤가? 국민의힘은 야당의 책임인 여당 견제는커녕, 제 살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정권을 잃고 나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니 어이가 없다. 윤석열에 대한 판단은 이미 헌재 판결과 대선 결과로 법적·정치적으로 모두 끝났음에도 아직도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전한길 같은 극우 선동가에 휘둘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심지어 당 지도부는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혁신의 일환으로 요구한 친윤 4명(나경원·송언석·윤상현·장동혁)의 거취표명에 대해 ‘다구리(뭇매의 속어)’를 가했으니 제정신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더 이상 혁신을 거부하고 퇴행을 계속한다면 국민이 결단을 내려야한다. 작은 회초리로 반성하지 않으면 큰 회초리를 들어야 하고, 그래도 혁신을 거부한다면 ‘회초리가 아니라 몽둥이’가 약이다. 도저히 고쳐 쓸 수 없는 정당이라고 판단되면 버릴 수밖에 없다. 시대착오적인 ‘가짜 보수’가 죽어야 민심을 받들어 혁신하는 ‘진짜 보수’의 시대가 열린다. 이처럼 정치인들에게는 국민의 회초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제는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국민의 이성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철학자 아렌트(H. Arendt)가 “사유하지 않는 천박함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했듯이, 이성이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은 회초리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나라를 살리는 회초리는 ‘진영인의 회초리’가 아니라 ‘이성인의 회초리’다. 깨어 있는 국민은 결코 진영정치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 ‘공정한 심판자의 회초리’가 나라를 살린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8-04

증오를 버려야 실용주의가 성공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표방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쓸 것”이라며 “진보의 문제도, 보수의 문제도 없다. 오직 국민의 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전부터 그는 여러 차례 실용주의를 언급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를 기존의 어떤 이념적 틀로 묶기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운동으로 보면 유도도, 태권도도 아니고, 잡초 같은 투지를 가진 싸움꾼의 싸움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자신을 ‘실용주의’라고 강조한 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가장 잘 포장한 표현이다. 그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길을 걸었다. 기존의 민주당 주류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경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혹독한 압박 속에 정치적 위기를 넘겼다. 정치생명이 끝날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 정부 때도 어려웠지만, 문 정부 때가 더 위험해 보였다. 당권을 장악한 뒤 지난해 총선 공천에서 이재명 대표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난다”라는 말로 과감하게 물갈이했다. ‘비명횡사’(이재명계가 아니면 죽는다)가 유행어가 됐다. 문재인 정부 때 당한 설움을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다. 호남 출신도 아니고, 이념 성향이 분명한 운동권 출신도 아니다. 지역 변호사로 싸우면서 시장, 도지사를 거치며 중앙당과는 다른 통로를 지나왔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이념 성향으로 특징짓기는 쉽지 않다. 최대 공통점은 그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고, 충성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과 위주로 움직이는 실용주의가 그에게는 적절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과거 대통령 중에 실용주의를 강조한 이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자기 철학이 더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예상치 못한 행보가 여럿 있다. 그의 행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특정 이념이나 지지 기반의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실질적인 맥락은 이해하고, 따지고, 결정하려 들었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 한 예다. 그를 지지한 정당이나 유권자는 전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정관념을 넘어서려 노력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도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의 회고록 ‘운명’에 기록해 놓았다. 그는 한·미FTA 체결을 결정한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FTA에 반대한 진보주의자들의 이론과 견해를 나는 존중한다. 그러나 그분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방과 관련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라는 것이다. 그가 믿고, 강연도 했다고 밝힌 ‘외채 망국론’은 한국 실정에 맞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 OECD 가입에 대해 “나도 야당 시절 안줏거리처럼 비판했다”라면서, “가입하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되물었다. 지금 민주당의 주류조차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다. 하지만 그는 실용을 취했다. 이 대통령도 실용주의를 실현할 조건을 갖췄다. 과거의 다른 정치지도자에게 빚이 많지 않다. 지지 기반 내에서 카리스마를 갖췄다. 정부는 물론 당도 확실하게 장악했다. 습관처럼 방향을 정해버렸던 과거의 틀을 깨기 위해 지지자를 설득할 능력과 힘을 가졌다. 남은 것은 본인의 결심과 냉정한 판단이다. 우리와 수교할 1992년만 해도 중국이 매우 힘들었다. 반만년 역사에 한국보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유일한 시기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이 홍(紅)·전(專) 투쟁을 계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십 명의 명멸한 야심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라졌을 게 뻔하다. 실용주의가 성공하려면 증오를 버려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제 다시 선거를 치를 일이 없다. 남은 것은 역사의 평가다. 증오에 사로잡히면 모든 일을 진영으로 보게 된다. 우리 편은 무조건 감싸고, 상대는 타협이 아니라 척결 대상이다. 다시 ‘내로남불’로 갈 건가. 이 대통령은 다른 길을 선택할 능력이 충분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03

헐크 호건은 안 죽어

초등학생 시절 토요일 방과 후 티브이 채널을 2번으로 돌려놓고는 못 알아듣는 영어 방송을 보며 두 시가 되기만 기다렸다. 화질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투성이고 비 오는 날엔 수신 상태가 더 나빠 옥상에 올라가 안테나를 만지면서 거실의 동생에게 “나와?” 외치며 화면 조정을 해야 했던 그 채널은 AFKN 주한미군방송이다. 볼거리 놀거리가 많지 않던 그때 AFKN에서 토요일 오후에 방영해주던 미국 프로레슬링 WWF(현 WWE)는 신세계였다. 뱀 사나이, 경찰관, 이발사, 백만장자, 장의사 등 다양한 캐릭터의 거구들이 펼치는 승부는 ‘뽀뽀뽀’나 만화에 없는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비디오대여점에도 프로레슬링 테이프들이 있었다. 몇 년 지난 과거 경기 영상을 녹화한 것이지만 미디어 속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던 지라 실시간인양 실감났다. 지난주 AFKN에서 ‘홍키통크맨’에게 졌던 ‘마초맨’이 어제 빌려본 테이프에서는 설욕했다며 친구들에게 떠들면 비디오를 먼저 보고 AFKN을 나중에 본 친구는 반대로 홍키통크맨이 설욕했다고 주장하다가 서로 감정이 격해져선 책상을 밀어놓은 교실 뒤편을 링 삼아 레슬링을 했다. 순수하고 멍청해서 귀여운 시절이었다. 우리의 영웅은 단연 헐크 호건이었다. 탈모로 정수리가 비었어도 한 올씩 애써 치렁치렁 늘어뜨린 금발의 뒷머리와 그에 대비되는 풍성한 수염이 멋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몸무게 303파운드 월드레슬링페더레이션 챔피언 헐크 호건!”이라는 아나운서 멘트와 함께 등장곡 ‘Real American’이 울려 퍼지고, 터질 듯한 근육으로 노란 셔츠를 찢으며 그가 링에 오를 때 도파민이 폭발했다. 따라한다고 찢어먹은 ‘난닝구’가 여러 벌이다. 아무리 당겨도 안 찢어져서 가위로 미리 잘라놔야 했고 그럴수록 헐크 호건의 괴력은 아이들 사이에서 더욱 신화가 됐다. 헐크 호건은 1980~90년대 어린이들에게 “꿈을 위해 기도하고, 비타민을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서 정의, 강함,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티브이 화면 속 프로레슬링의 단순하고 강렬한 서사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배웠는데, 선악이 교묘한 지금과 달리 흑과 백처럼 뚜렷하던 그때 매번 정의의 편에 서서 승리하는 그를 보며 ‘선한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악당의 공격에 초죽음이 되어 패배하기 일보직전 ‘헐크 업’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해 기적적으로 이기는 그는 ‘불멸’이라는 단어의 완벽한 인간화였다. 어느 날 악역으로 전환해 충격을 주기도 했고, 인종차별 발언 등 실제 사생활에서의 논란도 있었다. 바위 같던 근육은 노년이 되어 쭈글쭈글해졌다. 영웅의 이상적 기억과 현실의 실존이 충돌할 때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걱정 근심 없이 마음껏 꿈꾸던 유년기,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영웅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어릴 적 혼자 놀이터에 남겨졌을 때, 학교에서 속상한 일을 겪었을 때 티브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그의 강함에 위로 받은 날들이 있었다. 동시대의 전설적인 레슬러 ‘브렛 하트’는 “그는 수없이 많은 병든 아이들, 혹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탈의실에서 불려 나갔다. 본인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쉬고 싶었겠지만, 아픈 아이들을 위해선 언제나 시간을 냈다. 그들에게 진정한 영웅이 되어주기 위해서였다”라고 회고한다. 결코 안 죽을 것 같던 영웅이 세상을 떠났다. “헐크 호건의 죽음”이라는 수사가 말도 안 되는 형용모순으로 읽힌다. 이제 세상은 복잡하고 각박하며 링 위의 선악이 구별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영웅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헐크 호건의 죽음은 그저 한 인물의 퇴장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던 어떤 정서, 시절, 추억, 촌스럽고 낡은 ‘선한 영웅’에 대한 신뢰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가 노란 셔츠를 힘차게 찢을 때 어린 소년은 ‘나도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돕겠다’는 기특한 용기를 품었다. 그 소년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아직 내 안에 있을까. 소년은 사라져도 영웅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디오가게에서 빌린 ‘레슬매니아3’ 테이프에서 헐크 호건이 ‘앙드레 자이언트’를 들어 메치던 순간은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있다. 그가 8090키드들에게 남긴 유산,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그 통쾌하고 짜릿한 믿음은 지금도 누군가의 삶의 선택과 가치관과 방향에 스며 있다. 그렇게 영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웅이 살아 있는 한 소년도 계속 있다. /이병철(시인)

2025-08-03

시와 운동

최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헬스장에 가면 자전거와 런닝머신 밖에 하지 못했기에 매번 꾸준히 다니지 못했지만 이젠 정말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겠단 생각이 간절해져서, 결국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과 함께 하는 PT 수업을 받게 됐다. 처음 수업은 제자리에서 걷기, 다리를 위로 올려 복부를 접는 동작 등 아주 간단한 운동부터 시작했다. 숨을 쉬는 법을 몰라서 늘 힘이 들면 숨을 참기 바빴고, 아주 적게 움직이는 동작에서도 땀이 비오듯 났기에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던 적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음날이 되면 근육통이 심하게 찾아와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괴로웠고,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도 꽤나 고통스러워했다. 그랬던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맨몸 운동의 다음 단계인 기구를 쓰게 되고, 무게를 들게 되면서 전에 혼자 운동했을 때와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극점과 운동의 기쁨을 알게 됐다. 유튜브 영상으로는 상세히 알 수 없었던 디테일한 동작이라든지, 올바른 자세와 호흡을 유지하는 것도 선생님을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더욱 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운동은 하나의 동작을 일정한 자세와 힘을 들여 단순히 반복한다는 점에서 꽤나 큰 만족감을 줬다. 멈추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동작을 완료하게 되고,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경지에 다다라 팔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려와도 어찌 됐든 그 고비를 이기고 나면 결국 미세하게 달라지는 몸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 챌 수 있단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변화하기 위해선 몸과 마음이 함께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마음의 다짐이 아주 먼 계획까지 그럴 듯하게 나아가 봤자 몸이 움직이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몸을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다시 헬스장까지 가기만 한다면 그 하루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동작을 반복하며 만들어 내는 단순한 리듬을 유지하며 성공과 실패로 하루를 정의하는 것이 아닌, 해냄과 해내지 않음으로 하루를 착실히 쌓아간다. 10kg를 겨우 들던 무게를 이제는 40kg로 추가해서 동작을 해내거나 말랑하고 흐물거리던 피부가 조금은 단단해 졌단 몸의 변화를 느끼거나, 특정 부위의 자극을 잘 느낄 때면 노력 대비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어깨와 등, 팔을 자극하는 동작은 30회씩, 스쿼트와 런지는 60개씩, 복부 운동은 100회씩, 유산소 30분 정도를 마무리로 곁들어 진행하는 고작 한 시간 남짓한 간단한 운동이지만, 괴로움 속에서 꾸준히 나아가는 힘과 집요함을 얻게 된다. 단순하고도 정직한 움직임은 결국 내가 나에게 주는 다정한 관심이 되어 머지않아 보상처럼 돌아온다. 운동을 가기 전 후, 여름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한다. 초록으로 가득 물든 나무 사이에서 한 포기의 풀잎처럼 흔들리다 올려다보는 푸른 하늘은 드높고 광활한 기쁨을 안겨다 준다. 매미 소리와 함께 풍경의 일부가 되어 아주 먼 곳까지 내다보면 무겁던 마음과 짓눌리던 스트레스도 가볍게 날려보낼 수 있다. 밤으로 향하는 저녁 하늘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을 준다. 주홍으로 가득 물들었던 하늘이 오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둠으로 잠기면 내 마음이 가라 앉아 있다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과 상관없이 시간이 흐른단 광경은 조용한 위로가 되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껏 웅크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시간은 흐른다. 잘려나가는 손톱을 보는 것처럼 붙잡을 새도 없이 허망하게, 또는 모래 위에 쓴 잘 살아보겠단 다짐의 글자들을 자꾸만 파도가 채어간 대도, 나는 또다시 자라나는 손톱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손톱깎이를 꺼내들어 잘라내고 또 연인의 손을 잡고 바다로 나아가 사랑한다는 글자를 계속해서 쓴다. 주변을 둘러보며 나를 받드는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의 대상들이 나를 보고 있음을 계속해서 몸으로 느낀다. 그럼 하루를 살아내야만 하고, 나는 더 건강해야만 한다.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어찌 됐든 아주 사소한 것에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더 절망하지도 않고, 실패와 과거에 기웃거리지도 않고 오늘을 살아 낸다. 이왕이면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즐겁게. 그리고 시를 쓴다. 한동안 멈춰 있던 시쓰기였지만 이제는 누군가 부탁하지 않아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시를 쓴다. 이것이 계속해서 쌓여서 머지않은 날에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단 생각을 했다. 반복적으로 써내어야만 탄생하는 시와 일정한 움직임을 통해 같은 곳의 근육을 자극하여 만들어 내는 몸의 리듬, 나는 하루를 살아낸다기보단 하루를 만들어 가며 지내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5-08-03

보행자 신호 작동기 앞에서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보행자 신호 작동기를 눌렀다. 둥근 기계의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며 ‘작동기를 눌렀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온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한 아저씨가 묻는다. 그렇게 눌러야 하는 거냐고? 신호가 바뀌지 않고 있어 당황했다고 하신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면 횡단보도의 불이 초록 불로 바뀐다고 이야기했더니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랐다고 한다. 굉장히 놀라셨나 보다. 나도 그랬다. 이 년 전이었다. 낯선 동네를 처음 가는 날이었다. 앱을 통해 노선을 찾아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야 해서 횡단보도 앞에 섰다. 퇴근 무렵의 강변로는 끊임없이 달리는 자동차로 넘쳐났다.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런 때는 아무리 여러 번 확인을 하고 왔어도 마음 한편은 늘 수선스럽다. 족히 20분은 서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한 사람이 전신대 옆에 있는 둥근 물체를 눌렀다. 잠시 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나중에 자세히 둥근 물체를 보니 보행자 신호 작동기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알게 된 신문물이었다. 보행자 신호 작동기는 보행자가 직접 버튼을 눌러 횡단보도 신호를 바꾸는 장치이다. 통행이 적은 도로나 교차로에서 차량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버튼을 누른 후 약 20초 정도를 기다리면 초록 신호로 바뀌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르지 않으면 마냥 기다리고 있어도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다. 철저히 보행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작동기는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변화를 원할 때 그 결정을 하고 안 하고는 온전한 나의 의지이다. 작동기를 눌러야 신호등의 색이 변하듯이 내가 결정하고 움직여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이곳으로의 이사 결정이 그런 거였다. 연고가 없는 낯선 곳이라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말에 생각은 많아지고 길어졌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주변의 만류도 강경했다. 오랜 동안 아니 거의 전 생애를 살아온 도시를 떠나 낯선 장소로 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커다란 변화 앞에서 오랜 시간 고민 후 마음을 굳혔다. ‘잠시만 더 기다려주세요’ 라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변화는 시작되고 있지만 바로 결과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옆의 아저씨는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눈길을 자꾸 주고 있다. 타고 갈 버스가 올 시간이 여유있는 나는 비교적 느긋하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생활에 젖어들고 적응하기 까지는 여러 달이 걸렸다. 가끔은 향수병에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했고, 많아진 시간 앞에 놓여있는 무료함에 우울감이 들기도 했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수필반에 등록했는데 강사분이 대학교 선배셨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과 변화가 시작되었다. 선배님을 통해 시조 쓰는 분들을 만나고 삶의 반경이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살아가면서 보행자 신호 작동기를 누르듯이 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크고 작은 문제 앞에 놓이게 된다. 변화의 결과를 알 수 없기에 그 선택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변화가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늘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동기를 누르지 않으면 좋은 쪽이든 아니든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때론 늦게 눌러서 타고 가야 할 것을 놓칠 때고 있었고, 일찍 건너가 여유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드디어 ‘건너가도 좋습니다’ 라는 신호가 들렸다. 아저씨는 급한 걸음을 옮겼다. 막 정류장을 출발하려는 버스에 간신히 탑승하는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쓰고 있던 양산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타고 가야할 버스가 저만치서 오고 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8-03

생활인구에서 찾은 내일의 희망

지금 대한민국은 낮은 출생률로 심각한 인구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의 수는 국가경쟁력과 연결되는 것으로 인구감소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사회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등록 인구는 지역 민심을 대변하는 선거구와 정부가 지원하는 보통교부세, 광역지자체 조정교부금의 기준이 되는 등 지역발전의 원동력이라 볼 수 있어 청도군도 인구 유입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출생 장려금 지급, 신혼부부 지원 등 적극적으로 청년층에 구애를 펼치고 있다. 주민등록 인구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것이 생활인구다. 생활인구는 특정 지역에서 거주·체류·활동하는 인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주민등록 인구 외에 통근·통학·관광·업무 등 목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과 외국인을 포함한다.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근거해 2023년 1월 시행된 법정 개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구 유출 대응을 위해 도입되었고 생활인구는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예측할 좋은 자료로 청도군에는 귀중한 힘이 되고 있다. 청도는 인구로 인해 ‘낙담과 희망’이라는 두 단어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청도군은 인구소멸지수 전국 8위에 고령화율 4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 구조로 행정안전부가 지난 2021년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돼 지방소멸 대응 기금을 받고 있다. 청도군의 지방소멸 위기는 단순한 인구감소 문제가 아니라 지역 생존의 문제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정주 여건 개선과 생활인구 유입, 청년 정착, 출산 장려 등을 키워드로 수립한 대응 전략으로 2022년 10월부터 자연적 감소의 악재에도 전입자가 전출자 수를 웃도는 순수 유입인구의 영향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군은 2022년 70억 8300만 원의 지방소멸 대응 기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확보한 대응 기금 472억 3800만 원은 지역 변화를 이끄는 귀중한 자원이 되었다. 청도군의 지방소멸 대응 투자는 체류형 관광 활성화로 관계 인구 극대화와 지역 공간 상품화로 생활인구 활성화, 도시공간 개선과 귀농 귀촌을 통한 정주 인구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민등록 인구 증가와 청도의 생활인구는 지역에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이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생활인구에서 3월 체류 인구가 32만 8000명으로 주민등록 인구 4만 1000명의 7.8배에 달해 전국에서 7위, 경북도 내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등 평균 30만 명의 생활인구가 지속으로 청도를 방문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인구의 청도 방문은 인접 도시 430만 명의 생활인구가 청도를 찾을 환경을 조성하고 고부가가치화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청도의 3대 비전 중 하나인 ‘문화·예술·관광 허브 도시’ 조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의 결과다. 군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특히 신혼부터 임신·출산, 영아, 학생, 청년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1인당 최대 2억 5000만 원 상당을 지원하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정책은 군민의 삶을 높이는 동시에 인구 유입과 정착을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또 생활인구의 지역 정착을 위해 인구소멸 대응 기금의 최대 확보와 함께 각종 공모사업으로 지역의 모습을 변화시키며 청년의 정착과 출산을 장려하는 등 최대의 노력을 하고 있다. 청도군이 지난해 37건 1566억 원을 확보한 공모사업은 국·도비의 비율이 73%에 이르는 우량 공모사업으로 군의 재정압박을 줄여주었고 올해도 23건 147억 원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군의 끊임없는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청도군은 이러한 노력과 함께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문제 해결과 문화생활 영유에도 적극적이다. 정기적으로 청도를 방문하는 생활인구 유입을 위해 월 10만 원대 임대주택 136호와 빈집을 활용한 월 1만 원 주택 10호 등과 자연 드림파크와 산림치유 힐링센터 내 숙박시설 조성, 700석 규모의 아트홀과 전시 공간을 갖춘 생활문화복합센터, 예술인을 위한 창작공간도 조성 중으로 생활인구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청도는 이러한 노력에 안주하지 않고 지역민 모두가 경쟁력을 갖춘 지역으로 자리매김해 인구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2025-08-03

아부하는 정치인

이솝우화 ‘까마귀와 여우’편에서 여우는 고기를 물고 있는 까마귀에게 이렇게 말한다. “까마귀님의 아름다운 목소리 듣는 게 소원”이라고. 그러자 우쭐해진 까마귀가 “까악”하며 소리를 내자 고기가 땅에 떨어진다. 여우는 잽싸게 이를 물고 달아난다. 듣는 이에게 이득이 되면 칭찬, 아부하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게 과장된 칭찬을 하면 아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정확한 대답은 아닌 것 같다. 칭찬과 아부의 경계가 모호하다. 역사를 보면 정치인에게 아부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보여진다. 아부를 해서 손해를 본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부를 한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요, 아부했다고 고소를 당할 일은 더 없다.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를 아부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을 안목 있는 이로 생각한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미화하거나 칭찬하는 법안들이 줄줄이 상정돼 논란이라 한다. 미 일부 하원의원이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250달러 지폐를 만들고 거기에 트럼프 초상화를 넣자는 법안을 상정했다. 또 일부는 100달러 지폐에 들어 있는 미국의 건국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 초상화 대신 트럼프 대통령 초상화를 넣자는 법안도 만들었다 한다. 워싱턴 덜레스국제공항 이름을 트럼프 공항으로, 트럼프 대통령 생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자는 법안까지 등장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인에게 아부가 출세의 중요한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도를 넘은 법안들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비열한 충성 경쟁”이라 꼬집었다. 정치인의 아부는 동서양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03

폭염(暴炎)과 자연

날마다 이어지는 폭염경보가 언제 수그러질지 궁금한 시점이다. 내가 경험한 가장 극심한 더위는 1994년 7월 21일 낮 최고기온 39.4도를 기록한 대구에서다. 그해 대구의 7월 평균기온은 30.2도로 우리나라 역대 최고기온으로 기록돼 있다. 가구마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았기로 한밤중에 잠을 깨는 것이 시민들의 다반사(茶飯事)였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우리가 겪고 있는 폭염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40도를 넘는 지역이 날마다 속출하고 있다. 일본 중부지역의 효고현과 교토부 그리고 오카야마현 같은 지역에서는 40도를 넘어서는 고온이 기록되고 있다 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같은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이 일상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낮에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저녁 어스름 무렵 산책을 하노라면 경이로운 장면에 걸음이 절로 멈춰지곤 한다. 불같은 땡볕을 자양분 삼아 날마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로 왕성하게 성장해나가는 초목이 그 주인공이다. 한두 달 전에 모내기한 논을 진초록색으로 장식하는 벼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현저하다. 어제와 그제 오늘이 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는 학(鶴)과 왜가리를 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벼가 어른 허벅지 높이까지 자란 탓에 그들이 즐겨 먹는 개구리며 미꾸라지, 붕어 같은 먹잇감을 구하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이제 녀석들은 무릎 높이까지 낮아진 청도천 인근에서 잠행하고 있다. 거의 삼 미터 높이까지 자라난 달맞이꽃은 마치 관목처럼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며 거리를 수호한다. 이따금 만나는 주황색 능소화(凌霄花)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계절이란 표정이 역력하다. 한낮의 살인적인 열기를 무색하게 하면서 능소화는 지상으로 천상으로 세력을 확장한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에서 심었다는 능소화의 기상과 인내를 보면서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지독한 혹서(酷暑)와 혹한(酷寒)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선사하는 자연이 놀랍기만 하다. 한여름 폭염과 폭우 그리고 태풍을 뚫고 풀과 나무는 생장을 거듭한다. 젊은 시절 내가 여름을 가장 좋아했던 까닭도 거기 있었다. 여름은 약한 것은 모질게 죽여버리고, 강한 것은 지극하게 살려낸다. 노자는 이것을 일컬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천지자연은 인하지 않아서 만물을 종이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도덕경' 5장)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자연과 인간이 다른 점은 약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인간은 아무리 모질어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와 실천궁행을 근본이념으로 삼는다. 가족과 사회를 대행하는 강력한 조직으로 근대국가가 등장한 이후 이런 상황은 날로 개선돼 가고 있다. 자연도태와 문명사회의 이율배반적인 공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자연의 폭력적인 양상을 가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가혹한 역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망각하지 말아야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03

빈집에서 살아남기

빨갛게 부은 눈으로 그녀는 나를 건너다보았다. 입술은 뭐라고 말하고 싶은 말을 삼키려는 듯 꼭 다물어져 있다. 그리고는 손에 든 휴지를 눈가로 가져가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그녀는 마치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빈 집에서 혼자 살아 보셨어요?” 며칠 전 출근 준비를 하며 틀어놓았던 TV에서 또 부모 없이 빈 집을 지키던 자매가 화마에 생명을 잃었다는 뉴스를 봤다. 비슷한 뉴스를 본 지 채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며 몇 년 전 내게 빈 집에서 혼자 살아봤느냐고 묻던, 한여름에도 긴 팔 셔츠를 입고 어깨까지 늘어뜨린 파마머리로 햇빛을 못 봐 창백해진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쭈뼛쭈뼛 상담실로 들어왔었던 그녀가 떠올랐다. 서른 초반의 그녀는 청소년기 이후 내내 혼자 살며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이른바 고립은둔 청년이었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적응을 못해 잘리기 일쑤였고 상담실에 내원할 당시에는 심한 우울과 언젠가부터 가지게 된 척추추간판탈출증 등 건강문제까지 겹치며 경제활동을 전혀 못 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밤마다 돈 벌러 간다며 밥상 위에 엄마가 바가지에 부어놓고 간 쌀뻥튀기를 집어먹으며 TV를 보다 잠이 들곤 했다.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의 찬모였던 엄마는 밤이 늦거나 아침이 되어야 휘청휘청 돌아와서는 한낮까지 코를 골며 잠을 자야만 했다. 엄마가 깨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동네 문구점 앞 오락기계 앞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거나 가끔은 엄마가 준 천 원짜리 지폐가 동전이 되어 다 없어질 때까지 오락을 하며 놀았다. 엄마의 일터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여전히 혼자인 밤이 많았던 초등학교 4학년 가을쯤이었다고 했다. 라면을 끓이려는데 그날따라 가스렌지가 말을 잘 안 듣고 불이 잘 안 붙더란다. 불이 붙는지 보려고 가스 화구 쪽으로 머리를 숙였다가 머리카락과 입고 있던 셔츠에 불이 화르륵 붙으며 왼쪽 옆얼굴과 겨드랑이 쪽 피부를 데었다고 그녀는 무심히 말했다. 엄마는 다 큰 것이 조심성이 없다며 짜증을 냈고 병원에 두 번 다녀온 후에는 그냥 상처가 아물도록 기다렸다고, 그녀는 살기 퍽퍽했을 엄마가 그래도 자신을 버리지 않아준 건 참 고마운 일이라고 일찍 세상을 뜬 엄마 얘기를 할 땐 흠뻑 젖은 목소리가 되고 눈이 빨갛게 붓도록 울었다. 아직도 우리는 돌봄에서 소외된 아이들,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내몰린 부모들을 외면하며 살아야 하나.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전히 빈 집에서 혼자 살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그녀 앞에서 함께 눈시울만 붉힐 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담사로서의 무력감이 나를 짓누른다. 세상이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을 지켜내는 걸 최우선 순위로 두지 않고서는 가장 좋은 방법,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이 상황이 해결되기는 어려울 거란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답답함은 두통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 어른들 모두가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면 지킬 수 있지 않겠나, 꽃보다 더 귀한 어린 주인들을. 눈을 감고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 /신현자 라온재심리상담연구소장·재활심리학 박사

2025-08-03

노후 준비, 누구의 책임인가?

작년 12월부터 다시 가계부를 쓰고 있다. 2년 전 금융감독원에서 재무 컨설팅을 받기 위해 반짝 열심히 쓰고 나서는 다시 손을 놓고 있었다. 그때부터라도 가계부를 꾸준히 쓰지 못한 것은 평생의 습관 고치기가 쉽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가계부 관리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도 크다. 수입이 많지 않기도 하고 가정 경제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지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때가 많아 딸들의 도움을 받아 가계부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2025년 1인 가구 중위소득이 256만 원이고, 1인 가구 적정생활비는 192만 1천 원이며, 최소필요노후생활비는 월 136만 1천 원이라고 한다. 이 기준에 비하면 내 소득은 중위소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지출이 큰 항목인 주거비 지출이 없으니 내 지출 목표가 어마어마하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항상 지출이 수입을 넘는 달이 많다. 이럴 때는 무조건 안 쓰는 것이 답이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더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수입이 더 줄어들 텐데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결국 8월부터 연금을 수령하기로 했다. 작년부터 연금 수령 자격이 되었으나 미루다가 받을 돈은 일찍 받는 쪽이 유리하다는 주위 말을 믿고 결정했다. 임의가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몰라서 뒤늦게 가입한 데다 수입 불안정으로 최소 금액으로 납부한 터라 금액만 따지면 최소필요노후생활비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지금은 수입이 있으니 그런대로 살 수 있지만 수입이 줄어들면 낭패인지라 최대한 은퇴를 늦추는 수밖에 없다. 어느 기사를 보니, 2024년 12월 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보고한 ‘1인 비임금 근로자의 국민연금 인식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에서도 “대체로 ‘노령’이라는 사회적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노동 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나도 딱 그 경우에 해당하는 셈이다. 올해 발표한 국민연금 개편안에서는 내년부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렸다. 그러나 국민연급 가입자 월 평균 소득 309만 원인 사람이 40년간 보험료를 납부한다는 전제로 나온 수치라서 해당 안 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월 평균 연금수령액은 67만 원이니,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이렇게 노후 준비를 못한 것은 1차적으로 개인 책임이 크다. 내 경우만 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경각심이 부족했다. 노후 준비를 위한 정보가 국민 모두에게 닿을 수 있게 정부가 더 노력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알고는 있어도 연금을 납부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현재 일정 소득 이하의 농어업인에게나 두루누리사회보험료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러 영역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이다미 연구위원은 소득 변동성과 불안정성을 반영하여 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편할 것을 주문하면서 특수고용직 같은 실질적 사용자가 사회보험을 부담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의 노후가 안정되는 데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03

아버지가 없어진다

이율곡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어머니는 신사임당이라고 코흘리개 애들도 안다. 우리나라 최고 고액의 지폐의 모델이기도 하니깐 그 위세는 대단하다. 하지만 이원수라는 아버지는 어디 가도 찾을 수 없다.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인물이어서 그런가? 조선은 분명 유교 문화의 시대이다. 그래서 조선은 부계 중심의 사회로 형성되어 있다. 자식 제사는 없어도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는 당시 풍습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영향이 이어져 온다. 제사를 합치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 중심으로 제사를 합치지 할머니나 어머니 기일에 맞춰 합치지는 않는다. 이런 현상에 대해 누구도 반론하지 않는다. 마치 외손자보다 친손자가 더 끌린 듯 부계의 전통은 우리 몸 깊숙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유교의 대가인 이율곡 집안은 달랐다.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중심의 사회이었음에도 아버지 이원수의 존재감은 간데없다. 심지어 아버지가 계모 권 씨와 재혼하자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율곡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려다가 환속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다. 그 영향인가? 불교는 이상하게도 어머니 중심의 효를 강조한다. 모계를 중심으로 효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부모은중경에,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후에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이었던 양주동 박사가 부모은중경 내용을 보고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를 만든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전부 어머니 찬양가이다. 불교에는 오역죄(五逆罪)라는 다섯 가지 아주 큰 죄가 있다. 오역죄를 범하면 저승에서 가장 지독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 묘사된 이 지옥의 고통 받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형벌이다. 다섯 가지 죄 중 맨 처음 나오는 것이 어머니를 해한 인간이 나온다. 아버지는 두 번째이다. 어머니가 더 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다는 것은 노벨상 수상자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증명이 되고 있다. 그들이 애들을 키울 때 머리를 때리지 않고 대신 귀싸대기를 때릴 정도로 머리를 중하게 여겨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유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한 민족이다. 부모에게 물을 가져가야 할 때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간다. 어머니에게 물을 먼저 가져가도 바로 아버지에게 물을 건네기에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고 그 권위는 자라면서 체득되고 있다. 그 결과물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 아버지의 위치가 너무 비참하다. 평생 돈 벌어 먹이고 입혔건만, 돈 안 벌어 오니 대접이 영 신통찮다. ‘부모’란 단어가 ‘모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상한 징후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딸이 제 엄마만 데리고 외국 여행 간단다. 나만 고양이랑 집을 지켜야 한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31

'햇빛연금'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극한 강우와 ‘대프리카’라는 별명을 실감케 하는 폭염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재난이 되었다. 이러한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답은 바로 ‘탄소중립’에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 속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었다. 최근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햇빛연금’ 정책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이 재생에너지 생산의 주체가 되어 기후위기 대응에 직접 참여하고, 안정적인 연금 소득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햇빛연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려 한다. ‘햇빛연금’이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전기 판매 수익을 매달 연금처럼 돌려받는 모델을 말한다. 핵심 원칙은 ‘에너지 민주주의’와 ‘이익 공유’이다. 즉, 과거 대규모 발전소가 독점하던 전력 생산을 시민의 손으로 가져오고, 그 혜택을 지역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재원은 주로 시민들의 투자나 조합 출자금 그리고 정부의 정책자금 융자 등으로 마련된다. 물론 초기 설치 비용 부담이나 발전수익의 변동성 같은 문제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공공 주도의 금융 지원을 통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특히 대구경북은 연평균 일조시간이 2200시간을 넘어 전국 최고 수준의 태양광 발전 잠재량을 자랑하며, 넓은 산업단지와 농촌 유휴부지가 많아 ‘햇빛연금’의 최적지로 꼽힌다. ‘햇빛연금’의 성공 사례는 국내·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 강국’ 독일은 시민들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는 ‘시민발전소’가 전체 재생에너지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에서는 전남 신안군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햇빛연금’을 통해 섬 주민 1인당 분기별로 최대 60만 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태양광이 노인들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 소멸 위기 극복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사례들은 주민 수용성 확보와 투명한 이익 분배가 성공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구는 아파트 베란다, 공공기관 및 학교 옥상, 서대구·성서 산업단지 등 공장 지붕을 활용한 ‘도심형 햇빛연금’을, 경북은 ‘영농형 태양광’이나 유휴 산지를 활용한 ‘농촌 상생형 햇빛연금’ 모델을 적극 도입할 수 있다. ‘햇빛연금’의 성공적인 확대를 위해서는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초기 투자 부담을 줄여줄 금융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또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민 갈등을 예방하고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갈등 조정 메커니즘’ 구축도 시급하다. 이제 대구경북이 국가의 ‘햇빛연금’ 정책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데 그치지 말고, 우리 지역의 강점을 살려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이다. ‘햇빛연금’은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며 기후위기 시대의 진정한 주역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우리 집 지붕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가 대구경북의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7-31

말이 화(禍)가 돼

설화(舌禍)란 경솔한 말 한마디로 재앙을 불렀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 진시황의 한 부하가 미인을 조롱하는 말을 했다가 집안 전체가 망하는 멸문지화를 당한 일화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은 함부로 말을 하지 말고 항상 언행을 신중히 하라는 의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 역시 사소하지만 적절한 말 한마디가 큰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교훈을 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 한마디로 패가망신하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벼락출세도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교묘히 말을 잘하고 얼굴 빛을 화려하게 꾸미는 자 중에는 어진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고 말했다. 여기서 아첨하거나 알랑거린다는 뜻의 교언영색이란 말이 유래됐다고 한다. 또 설저유부(舌底有斧)란 어려운 사자성어가 있다. “혀 밑에 도끼가 있다”는 뜻이다. 무심코 한 말이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으며 때로는 도끼처럼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삼사일언(三思一言)과 연결되는 교훈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과거 자신이 한 말이 되돌아 와 설화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에 임명된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자신이 뱉은 말들을 감당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주 먼 옛날 일인 줄 알았던 말들이 도돌이표처럼 되살아나 구화지문(口禍之門)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말 중 문재인 대통령은 “멍청한 사람”, 이재명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말이 막말의 백미다. 말이 화(禍) 된다는 걸 몰랐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