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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영덕군산림조합, 눈앞의 부패-사라진 책임

영덕군산림조합은 더 이상 ‘협동’이나 ‘상생’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내홍과 비리가 신문지면을 채우는 일이 일상화했다. 직원들은 허위 서류를 만들어 인건비와 장비비를 빼돌리고, 해외여행과 접대성 지출을 반복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 회식 자리 마다 여성 도우미를 부르고 조합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도 반복됐다. 송이 공판 감량률 조작, 직원 출장비 절반 상납, 동일인 한도대출 부정 의혹까지 겹치면서 조합은 스스로 ‘비리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쌓아 올렸다. 최근 드러난 행태는 더욱 뻔뻔하다. 업무추진비와 사업비를 활용해 관공서 직원을 접대하고, 송이를 선물하며 술잔을 돌렸다. 관공서와 조합, 그 뒤에는 사실상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정황이 이어진다. 뇌물과 유착의 그림자가 지역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단순한 조직 내부 문제를 넘어 지역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관계 당국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산림청과 중앙회 감사, 경찰 수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고발과 인지 사건은 깜깜이 처리된다. 공직자윤리법과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은 사실상 묵살되고 있으며, 감사는 수박 겉핥기식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반복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말은 이미 허울 뿐이다. 조합 내부 문제와 함께 관계기관의 무책임이 맞물리면서 지역사회에는 냉소가 번졌다. 대의원회와 조합은 싸움터가 되었고, 조합원들의 복리와는 무관하게 조직은 흔들리고 있다. 주민과 조합원들은 “신뢰할 수 없는 조직”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내부 비리가 아니라 조합과 관공서, 그리고 일부 관계기관이 얽힌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조합원들은 예산과 인력 운용이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일부 조합원은 “이대로라면 조합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신뢰 회복을 위해선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혁만이 답이다. 감사 시스템 강화, 예산 집행 투명화, 외부 감시기구 설치 등 구체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영덕군산림조합을 지켜보는 지역사회와 조합원들의 시선은 이미 날카롭다. ‘법과 원칙’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8-31

칭찬 외교

칭찬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칭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무기라는 뜻이다. 개인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나라 간 외교에서도 칭찬의 효과는 크다. 특히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세계 지도자들의 칭찬 릴레이가 쏟아지면서 칭찬 외교가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란 폭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가끔 자식에게 따끔한 매를 들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미국 편을 든 것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한술 더 떠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의 적임자”라고 치켜세우며 자신이 추천한 문서 사본까지 꺼내 든 모습이 언론에 공개됐다. 지난 7월에는 아프리카 5개국 수장들이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해 세계가 또 한 번 주목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대해서도 미국 언론들은 칭찬 공세가 외교 성과에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했다. 가끔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 정책 후 트럼프와 눈을 마주치면서 아첨하는 외국 지도자가 늘고 있다는 칭찬 외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나오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칭찬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 같다는 분석이다.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국익을 챙기려는 세계 지도자들의 칭찬 릴레이를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현대화의 상징인 등소평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인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며 ‘흑묘백묘론’을 펼친 바 있다. 칭찬이든 아부든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28

혼전계약(프리넙)에 관하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번의 이혼을 했다. 지금의 영부인 멜라니아는 세 번째 결혼의 상대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혼을 할 때 늘 혼전계약, 그러니까 나중에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 재산분할에 대해 미리 정해두는 계약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을 혼전계약, 흔히 프리넙(prenuptial agreement)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은 원하지 않았으나 나는 프리넙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것이 결혼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프리넙의 효력을 인정한다. 과거엔 미국도 혼전계약이 이혼을 조장하고 혼인의 가치를 훼손한다며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혼전계약이 부부 사이의 분쟁을 예방하고 혼인관계의 보호와 가정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도 민법에 혼인 전 부부재산계약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긴 하다. 민법 829조는 부부가 혼인 전 서로의 재산 귀속, 관리 방식, 이혼 시 재산분할 방식에 대해 합의할 수 있고 혼인 후엔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이 있긴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혼전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원이 이혼 시 혼전계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혼전계약을 규정한 민법 829조는 사문화된 규정으로 평가된다.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긴 해도 이혼소송에서 혼전계약서는 판결의 중요한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따라서 재산이 많거나 복잡하다면, 혹은 상속재산이나 차명재산 등 특정 재산이 부부공동재산으로 혼입되는 것을 막고 이혼할 때 재산분할에서 빼고 싶다면 미리 혼전계약을 체결해 두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우리도 차차 혼전계약 체결 사례와 관련 판례가 누적되며 프리넙 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이혼전문 변호사로 많은 이혼 사건을 다루고 있는 필자는 혼전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결혼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고 본다. 여전히 결혼 전 모은 재산, 부모에게 받은 재산은 재산분할을 안 해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은 특유재산이라도 혼인 기간이 어느 정도 지속되었다면 배우자도 그 재산을 유지 보존하는데 기여했다고 보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는데, 그것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재산분할을 대비하고 있지 않다가 이혼을 하며 예상치 못한 난관을 겪고 재산 문제로 치열하게 싸우곤 한다. 이혼하고도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 사람들이 재산 문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어떤 법률관계도 처음 관계를 시작하며 계약을 할 때 계약 내용을 철저히 정하고, 문구와 단어 하나하나까지 치열하게 고민해 계약서를 쓰는 것이 더 큰 분쟁을 예방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계약서를 썼다간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싸움부터 날 수 있다. 일이 시작되어도 불필요한 마찰과 오해가 잦아질 것이고, 관계를 청산해야 할 땐 더 큰 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서로 가장 호의적인 시기, 관계를 시작하는 시기에 합의 내용을 철저하게 정해두는 것이 관계의 안정적 유지와 본업의 집중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결혼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혼전계약의 효력을 점차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 /김세라 변호사

2025-08-28

바뀔 때가 된 장례문화

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가 어중간해서 자식 결혼이랑 부모상이랑 맞물려 있어 부좃돈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정년퇴직하면 제일 먼저 모임을 줄이라는 선배 말이 실감 난다. 시간 난다고 여기저기 머리 디밀다 보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 서로 간에 안면 트고 이름 정도 알면서도 부조 안 하면 그것만큼 ‘뒷담화’ 대상이 되는 것도 없다. 모임을 안 하면 모를까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라면 몇 푼이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인간관계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일정조차 포기하고 참석해야만 했다. 그 친구도 우리 집 길흉사에 다 참석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상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조만 달랑 보내는 것은 인간의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요즘 추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길흉사 치부책 보면서 상대가 얼마 했으면 10년이 지나도 같은 액수를 고집하는 이상한 부좃돈 문화에 치졸한 부조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현할 마음은 없다. 단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고 과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또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 집 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남동생들은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씩 문병하러 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막상 장례식장 상주는 동생이었다. 누나는 딸이었고 딸은 주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없고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주어지게 된다. 딸만 있는 나로선 사위보다는 딸이 상주가 되어주었으면 싶은데, 조금 있으면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친구 누나는 상주 쪽에 서 있지 못하고 며느리와 함께 여자 상주 쪽에 그냥 들러리로 서 있다. 여자는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장례 의식 때문에 아들 그리고 맏사위가 상주 하게 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장례 풍습이다. 여자는 완전 찬밥 신세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음에도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이상하게도 변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영정사진만이라도 누나가 들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누나가 영정사진을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집안에도 꼰대 어른이 존재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말도 안 되는 음양이론을 갖다 붙여 여자가 나대는 것을 아주 금기하는 사상이 머리에 깊이 박힌 분 말이다. 여자는 음식이나 준비하고 조문객 접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주접을 떠는 늙은이 말이다. 마치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는 양 유식한 척하면 나이가 깡패라 괜한 말 듣기 싫고 분란을 원치 않으니 그대로 따르고 만다. 요즘은 상조 회사에서 나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진행한다. 상조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상조 회사조차 집안 어른 한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 일단 모든 행사를 그분의 말에 따르라고 교육받는단다. 그래서 집안에 고집 센 늙은이 한 분 있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막강한 상조 회사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단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8

‘플라스틱 방앗간’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극한 폭염이 9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제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위기의 근본적인 해답은 ‘탄소중립’에 있으며, 실천 방안으로 ‘자원순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플라스틱의 ‘업사이클링(새활용)’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분야다. 당장 2030년부터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는 만큼, 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지역의 과제다. 이 문제에 대한 흥미롭고 혁신적인 해법으로, 우리 동네 ‘플라스틱 방앗간’을 소개한다. ‘플라스틱 방앗간’은 이름 그대로, 우리가 분리배출한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모아 분쇄하고 가공하여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만드는 시민 참여형 공간이다. 방앗간에서 쌀을 빻아 떡을 만들듯, 버려질 플라스틱을 잘게 빻아 치약 짜개, 비누 받침, 열쇠고리 등 가치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연간 수십만 톤에 달하며, 이는 소각·매립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우리의 강과 토양, 심지어 몸속까지 위협하고 있다. ‘플라스틱 방앗간’은 단순히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직접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자원순환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의 장이자, 즐거운 경험을 통해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지역 문화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미 국내외에서는 ‘플라스틱 방앗간’과 유사한 성공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프레셔스 플라스틱(Precious Plastic)’ 프로젝트는 누구나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계 설계도를 온라인에 공개하여 전 세계적인 시민 참여를 이끌어냈다. 국내에서는 서울의 ‘플라스틱 방앗간’이 시민들로부터 택배로 작은 플라스틱을 기증받아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보내주면서 큰 호응을 얻었고,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지역 특색을 살린 소규모 공방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구경북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도시와 농촌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모델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심에서는 주민센터에 소규모 설비를 갖춰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농촌 지역에서는 영농 폐기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거점형 방앗간’을 운영하는 방안이 있다. 물론 ‘플라스틱 방앗간’을 대구경북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안정적인 플라스틱 수거 체계 구축, 초기 설비 투자 비용, 그리고 시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낼 운영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는 관련 조례를 정비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기업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고, 환경 단체와 시민들은 적극적인 참여로 자원순환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플라스틱 방앗간’의 조기 도입과 확산은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구경북이 선제적으로 ‘플라스틱 방앗간’ 모델을 성공시켜,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선도하는 자원순환 모범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8-28

뒤끝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얼굴이 핼쑥하다. 한 달 전, 시골에 혼자 지내던 시어머니가 일사병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전한 뒤였다. 그녀는 불볕더위 속에서 상을 치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한 숙제가 남았다고 했다. “사람이 살다 간 자리에 이렇게 많은 게 남을 줄 몰랐어.” 그 말 속에는 지친 한숨이 섞여 있었다. 시어머니가 시집와서 평생 살아온 집은 자식들을 키우고, 조상 제사를 모시던 살림살이로 가득 했다. 벽장에는 자식들이 집을 떠나면서 나중에 가져가겠다며 놔둔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딸들은 엄마가 서랍 밑바닥에 넣어둔 금반지와 통장에나 관심을 가질 뿐, 자기 물건은 고사하고 손때 묻은 살림에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창고는 더 심각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녹 쓴 고추 건조기와 나무 자루가 갈라진 곡괭이, 속이 반쯤 남은 비료 포대들이 거미줄로 포장되어 있었다. 언젠가 필요한 날이 있을 거라며 쟁여두던 시어머니였다. 친구는 녹이 쓴 연장들을 발로 모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심정에 찬물을 두 컵이나 연거푸 마셔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올려다보시던 자식들과 손자 사진부터 벽에서 거두고, 개인정보가 담긴 종이들을 모아 불태웠다. 끄집어내면 낼수록 물건은 더 불어났다. 뒷방 한쪽, 이불덮개로 싸 놓은 솜이불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눅눅해진 이불에서 곰팡이 냄새가 올라와 목구멍을 막았다. 순간, 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정리 전문 업체를 불렀지만, 처리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시어머니의 손 때 묻은 것들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래전 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던 날을 떠올렸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나는 아버지의 뜻대로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겼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를 원했고, 집의 크기만큼 살림은 줄어들었다. 서너 번의 이사로 아버지의 물건들은 한눈에 다 보일만큼 남았다. 혼자 지내기 힘들어지자, 아버지는 요양원을 택했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고집을 끝내 꺾지 못한 나는 필요한 것들로 가방을 챙겼다. 정장을 한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깨끗한 양복 한 벌과 구두를 함께 넣었다. 그리고 가족사진 액자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내게 남은 것은 그 가방 하나뿐이었다. 닳아진 지갑 속에는 자식들의 전화번호와 사진이 들어 있었다. ‘내 뒤끝도 이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혼잣말처럼 내 뱉은 말에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살다 보면 추억으로 남은 물건들을 정리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지난 번 이사 때를 떠올렸다. 이삿날을 앞두고 나는 옷장 문부터 열었다. 자주 입는 옷은 몇 벌 뿐이고, 나머지는 몇 년째 그대로 걸려있었다. 버려야지 하는 건 마음뿐,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을 정리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그 책을 살 때의 기억들이 손목을 잡았다. 책마다 버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다시 원래 자리에 꽂았다. 대신 굽 높은 구두와 발이 불편하던 운동화를 과감히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싱크대 구석에서 오래 묵은 냉면 그릇이 나왔다. 몇 년 전에 이사 올 때 넣어둔 그대로다. 지난 이사 때도 버릴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이 났다. 연꽃 모양의 그릇은 본래의 색을 잃어갔다. 행주로 닦자, 하얀빛이 살아나 한 번은 사용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다. 다시 집어넣었다가, 결국은 쓰레기장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자, 빈틈없이 채워진 뭉치들 속에 아이스 팩까지 들어 있었다. 국이라도 끓여서 소비하자는 생각에 데쳐서 넣어둔 얼갈이배추를 꺼내 녹였다. 국이 한 솥이다. 두 식구가 먹기에는 많다. 결국 통마다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몸에 밴 채우는 습관이 또 속을 꽉 채웠다. 체증(遞增)처럼 불어나는 물건 앞에서 체증(滯症)이 올라오는 날이다. 소유보다 비움에 무게를 두어야 할 나이임을 입으로만 말하고 있다. 욕심으로 채워진 것들이 결국은 짐이 되는 순간, 가방 하나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게 소중했던 것들이 자식들에게 쓰레기가 되게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옆에 두고, 책상 서랍부터 정리하기 시작한다. /윤명희 수필가

2025-08-27

앙팡 테리블, 혹은 소외에 대하여

앙팔테리블, 혹은 소외에 대하여 -새마을이 아니라 새마음, 기계 문성리에서 학교가 끝나도 나는 갈 곳이 없어 응원석에 혼자 앉아 있네 나를 응원할 수는 없네 노을은 타고 있지만, 춥네 구멍 난 운동화가 나를 보네 오늘은 무얼 먹어야지 모든 게 뒤죽박죽, 열 살 무렵 조금 불편하며 보편적이지 않지만, 내성(耐性)을 키우면 돼, 버티고 견뎌야지, 나처럼 아픈 아이들이 아마 무작정 있을 걸 우리의 부작용과 무작용의 시간 창피와 모멸의 시간을 넘어 그래도 지금 삶은 대체로 지탱해야지, 살아가야지 운동장 너머의 세상을 향해 나는 걸어가야지, 그 자발적 활력을 위해 새마을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몰라, 다만 살기 위하여 혹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나쁜 아이라도 되어야 하나? 모르겠다, 그러나 알아야겠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중심적으로 살아야겠다 꽃잎과 강철(强鐵)을, 강물과 바람을 생각했다 마을과 마을은, 강과 강은 햇빛과 바람으로 자강(自彊)한다는 것을 알았다 연약의 소외가 오히려 힘이 되니, 그것들의 힘, 흩어진 힘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그렇게, 무엇이라도 무엇을 위해 몰라서, 돌진하여 목숨의 끝에 다다른다 추궁은 불허(不許)하며 변명하지 않음으로 살고자 한다. … 독재와 팽창의 시대를 살면서 훈련된 삶을 살았지만 문득 어떤 개념에 집착하면서 혼돈의 시대를 버티며 살았다. 독서와 글쓰기의 무용함을 응시하면서도 그것마저 포기하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변명과 핑계로 버텼다. 그런 삶이 어쩌면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겠지만 죽음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 다만 아내에게 미안하다. 당분간 유지될 무용한 시간 앞에서.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8-27

소림사 파계승의 성적 타락

50대 이상의 중년이라면 ‘소림사(少林寺)’라는 중국 사찰을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 같다. 1980~1990년대 허난성 숭산에 자리한 소림사가 공간적 배경이 되고, 그곳 승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우후죽순 한국에서 개봉됐다. 머리칼을 박박 밀고 노란색 승복을 걸친 승려들은 하나 예외 없이 쿵푸와 봉술의 절정고수였다. 그 시절 한국 중고생에게 소림사는 약자를 핍박하는 악당으로부터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됐다. 돌아보니 낭만적인 옛날이야기다. 바로 그 소림사가 최근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소림사의 30대 주지 스융신(釋永信)이 성적 방종과 부정한 방법의 축재로 중국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구금됐다는 뉴스. 나라가 커서일까? 부정과 타락의 스케일도 엄청나다. 외신에 따르면 승려 스융신이 해외에 숨겨놓은 재산은 한국 돈 2조 원으로 추정된다고. 관계를 가진 여성이 50명을 넘고 그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174명이란다. 속세와는 거리를 둬야 할 승려임에도 11개나 되는 회사를 바지사장을 내세워 대리 운영했다는 추문까지 있었다고 한다. ‘소림사의 실력자’ 스융신이 여론의 돌팔매를 맞고 자유를 박탈당하자 최근 소림사 승려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환속(還俗) 행렬이 이어진 것이다. 짐작하건대 부끄러움을 견디기 힘들어서였을 터. 쉽지 않은 수도의 과정과 고행을 기꺼이 감내해야 할 승려가 돈과 여자라는 세속적 욕망을 이기지 못해 오물을 뒤집어쓴 모습을 보니 삼가는 자세로 겸양하게 산다는 건 참으로 어려울 일인 듯하다. 그게 승려이건 필부(匹夫)건.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27

한미공조로 본 남북문제의 향방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첫 라운드는 예상보다 무난히 마무리됐다. 회담 시작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쏟아낸 도발적 언사가 긴장을 고조시키며 국민을 불안하게 했지만, 막이 오르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관세 압박과 안보 위협도 없었다. 대신, 노벨평화상과 북미대화라는 상징적 의제가 회담장을 채웠다. 우리 대통령은 유연한 언어와 특유의 재치로 트럼프를 추켜세우며 회담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정상회담의 중요한 함의는 따로 있었다. 대한민국 외교 전략의 핵심으로 강조해 온 ‘한반도 운전자론’이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수차 등장했던 구상은,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 중재자’로서 판을 이끌어간다는 비전이었다. 이번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운전자’가 아닌 조력자 즉 ‘페이스메이커(Pace Maker)’로 규정했다. 주도권을 쥐지 않고 보조자의 위치, 즉 트럼프라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만들어내는 흐름을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수사적 표현을 넘어 나라의 외교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미중 간 전략경쟁이 격화되고 대북제재가 장기화되며 한미동맹의 비대칭성이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독자적 판을 짜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판이다. ‘운전자론’이 자주성의 상징이었다면, 이번 회담에서 드러낸 태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판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수순, 세 갈래가 보인다. 첫째, 김정은의 반응이다. 트럼프가 노벨평화상과 북미대화 재개를 거론한 만큼, 북한이 어떤 신호를 내놓을지가 곧 국면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긍정적 화답이 온다면 대화 재개의 문이 열리겠지만, 침묵이나 부정적 메시지가 이어진다 해도 회담의 효과는 삭제되지 않는다. 둘째, 미국의 전향적인 접근이다. 북한이 호응한다 해도 미국은 “조건없는 양보” 대신 “실질적 비핵화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측의 상응행동이 있어야 대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미국외교 관료 집단의 일관된 입장이다. 트럼프가 환영 제스처를 보였더라도 국무부와 안보 라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셋째는 한국의 준비다. 한국이 직접 판을 짜고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협상을 견인하지는 않는다. 정상회담의 메시지는 다르다. 한국이 독자적 의제를 내세우기보다 미국이 만드는 흐름에 발맞추어 가겠다는 태도다. 이 선택이 단기적으로는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한국 외교의 주체적 기반을 좁히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한미 정상회담은 ‘작은 성공’을 낚았다. 분위기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운전자론’ 대신 ‘보조자론’이 떠올랐다. 스스로 판을 짜기보다, 트럼프의 관심사인 노벨평화상과 북미대화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우리는 더이상 운전석에 앉지 않는다. 외교의 주체성을 양보하고 강대국의 정책 흐름에 올라타는 방식이 장기적 안정과 항구적 평화를 담보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안도를 넘어, 또 다른 긴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8-27

바람결에 내려놓다

제주의 하늘은 유난히 낮게 드리운 듯했다. 햇볕은 따스했지만 바람에는 염분이 묻어 있었다. 창문을 열자 멀리서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도시에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리듬이었다. 이 섬에 오면 늘 마음의 속도가 늦춰진다. 어쩌면 이 여행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걸음을 늦추고자 하는 몸과 마음의 요구였는지 모른다. 이번 여행은 특별했다. 딸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몇 달을 숨 가쁘게 버텨내다가 마침내 한계에 이른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좀 쉬고 싶다.”라는 말 속에는 지친 영혼의 무게가 묻어 있었다. 우리는 그 말을 신호로 삼았다. 가족 모두 각자의 시간을 내어 이 섬으로 모였다. 다 성장하여 독립한 아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 마음이 고맙고 뭉클했다. 마치 다시 한 번 아이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나도 지친 마음이 달래지는 듯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파란 하늘 아래 감귤밭이 펼쳐졌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던 딸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는 걸 보았다. 직장에서 늘 긴장으로 굳어 있던 표정이 바람 한 줄기에 조금씩 느슨해졌다. 그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저릿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아이의 성장만큼이나,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첫날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파도는 멀리서부터 쉴 새 없이 밀려왔고 아이들은 그늘에 앉아 한참을 바다만 바라보았다. 대화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배가 아프도록 웃음이 터졌다. 함께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바다는 아무 말 없이도 사람을 감싸는 힘이 있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무 설명 없이도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 주었다. 숙소도 자연 속에 파묻힌 아주 조용한 곳을 얻었다. 저녁 무렵 숙소 근처를 산책하며 딸이 문득 말했다. “엄마 사실 요즘 내가 너무 버겁더라.”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많은 날의 고단함이 담겨 있었다. 그 말에 우리는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 조언도, 위로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냥 그 마음이 바람에 섞여 풀 향기 속으로 흩어지길 바랐다. 섬의 시간은 그렇게 모든 것을 느리게 만들었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웃었다. 둘째 날에는 오름에 올랐다.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땀이 맺히고 숨이 찼다. 그러나 정상을 밟는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사방이 초목과 푸름으로 가득했고 멀리 바다와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딸은 그 풍경을 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업무와 인간관계 속에서 시야가 좁아지고 자신감을 잃어가던 아이가 잠시나마 넓고 탁 트인 세상을 바라보았을 것이라 나는 믿어졌다. 여행이 주는 선물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막혀 있던 시선이 트이고 닫혀 있던 마음에 바람이 스며드는 것.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단순히 휴식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자라고 각자 다른 길을 가더라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세상이라는 바다로 나아간 아이들이 잠시 항구로 돌아와 쉬어가는 시간, 그것이 바로 가족여행의 의미가 아닐까. 여행 마지막 날, 바닷가 카페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고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여백이 하나 찍히고 바람 한 모금이 스며든 듯 상쾌했다. 딸의 얼굴에도 오기 전보다 한결 가벼운 빛이 돌았다. 바다의 바람이, 시간과 풍경이 함께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비행기에 오르며 나는 생각했다. 삶이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같아서 때로는 지치고 흔들리지만 이렇게 잠시 멈추어 서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고. 이번 여행이 딸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그런 시간이 되었기를 바랐다. 가족이라는 항구가 언제나 열려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기를 바랐다. /김경아 작가

2025-08-26

대세르비아주의 독립투쟁사 ①반복되는 탐욕, 역사의 시작

서구 문명에서 소외된 채 오스만트루크제국 지배를 받아오던 세르비아인들은 무슬림 생활양식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동화되어 갔다. 일부이긴 하나 초창기 에니체리 모집의 방식 초심에서 벗어나 무작위 선발로 인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청춘들은 주체할 수 없는 폭력의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편 정교회로부터 민족정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정교회에 스테판 듀산을 비롯해 성인의 반열에 든 18명의 왕족들은 대 트루크제국에 항쟁의 의기로 작용하면서 더욱 탄탄하게 결속해가고 있었다. 대부분 무슬림으로 개종을 택하기보다 세금과 신분 등 약간의 차별을 참아내면서 자신들이 오랫동안 믿어온 세르비아정교의 기로에서 굳건하게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종교 지도자는 현실안주에 만족하고 스스로 무슬림과 자민족 사이에 방패가 되어 무슬림 대변자 역할도 해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향교 조직의 타락과 불교, 기독교 등 친일행각의 종교인, 스스로 일본인인 양 행동한 조선인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믿음과는 다르게 종교 지도자 타락은 정신적 타락을 부추겼고, 이는 하층민끼리 응집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들(주로 농민이었지만) 스스로 뭉치기 시작하면서 슬금슬금 항쟁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다. 크네세스라는 농민자치조직이 생겼고, 이들 중 크네즈라 부르는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종교 지도자 힘을 능가하게 된다. 세르비아는 농민 항쟁으로 촉발된 에니체리와 대결에서 파생된 일련의 사건들이 오스만터키제국으로서는 골치만 아픈 땅일 뿐이었다. 오스만터키제국은 비엔나 공략 두 번의 실패 이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와 일정 국경만 놓고 이어가는 불안한 평화의 시대에 만족하면서 고인 물이 썩어가듯 지방호족들의 부패가 몰락을 앞당기고 있었다. 민중의 고혈을 짜냈고, 이는 곧바로 민중항쟁, 즉 두 차례에 걸쳐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제국이 넓어질수록 오스만제국 술탄은 지방호족의 반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 말기로 갈수록 지방분권형 권력이 강성해지면서 중앙정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자적인 권력이 등장한다. 지방에 파견된 총독 파샤 아래 오스만 용병 시파히(Sipahi)라는 900여 명의 군인 계급이 존재했다. 주로 전쟁에 승리하면 재물보다 땅을 하사받는 중세 봉건기사와 성격이 비슷했다. 시파히 아래 소작농민들은 일정 세금만 내면 대를 이어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시파히 역시 농토를 후손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소작농 고혈을 짜내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이들 시파히와 에니체리 갈등이었다. 발칸반도 지배자 무라트 1세(코소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는 툭 하면 반란을 일으키는 귀족 출신 친위대 대신 오로지 술탄, 즉 자신만을 위한 맹목적 충성과 술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술탄 외에는 그 어떤 명령도 듣지 않는 용감하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막강 부대를 창설했다. 이들이 바로 누구의 표현대로 가혹하고도 슬픈 피해자 에니체리다. 이들은 그리스와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등지에서 천애고아를 만든 후 어릴 때부터 맞춤교육을 시켜 조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제국의 기운이 소멸되기 시작한 것도 이들 에니체리로부터였다.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에니체리들이 시파히 땅을 우격다짐으로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이 감당해야 했다. 18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에니체리에 대한 불만이 농민 항쟁으로 촉발된다. 제1차 혁명은 기사 계급 시파히와 농민지도자 크네세스를 중심으로 세르비아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부터다. 분노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결국 막강 에니체리들은 베오그라드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에니체리에 대항하다 잡혀 온 농민들을 사면하면서 에니체리의 분노를 샀다. 도망친 에니체리들은 그동안 누렸던 권력의 달콤함 맛을 잊지 못했다. 결국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베오그라드를 재점령하고, 지방정부 파샤를 뒤엎은데 성공하면서 1801년 베오그라드에는 무인 정권 시대가 도래 했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 역시 개혁이었다. 가해자가 마치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 행위는 훨씬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민중을 향한 폭력과 압제일 뿐이었다. 이들 에니체리는 최고위급 지도부 네 명의 다이스(Dayis)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한 번 일어난 농민 항쟁은 옥죈다고 해도 반등하기 마련이다. 이를 염려한 다이스들은 기세를 꺾기 위해 죄 없는 세르비아 농민 지도자를 체포해 처형하기에 이른다. 선참후계(先斬後啓), 즉 1866년(고종 3) 권력을 쥔 대원군이 천주교 금압령(禁壓令)을 내려 병인박해(丙寅迫害)를 시작으로 6년간 1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처럼, 다이스들 역시 먼저 처벌하고 나중에 보고하도록 하면서 반체제인사는 체포와 동시에 죽여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세르비아인 최초 공식적인 피의 학살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세르비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민중의 생활을 더욱 피폐해졌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8-26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이 한 말이다. 당신과 내가 처리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올바른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다. 올바른 생각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에 오르는 것이다. 로마제국을 통치했던 위대한 철학자 아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 진다.’ 그렇다. 우리가 행복한 생각을 하면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다. 불행한 생각을 하면 불행해질 것이다. 두렵다는 생각을 하면 두려워질 것이고, 건강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아플 것이다. 실패를 생각하면 분명히 실패할 것이고, 자기 연민에 빠지면 모든 사람이 우리를 멀리하고 피할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품으면 행동도 소극적으로 흐르고, 긍정적, 창조적 생각을 품으면 행동도 전향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마음의 프레임’이 곧 현실을 규정하는 것이다. ‘적극적 사고의 힘’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미국의 목사이자 저술가인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이 바로 당신이다.” 생각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성격을 형성하며, 결국 성격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즉, 사람은 자기가 먹는 음식이 아니라 자기가 품는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적극적인 사고(Positive Thinking)의 핵심 원리를 정리해보면, 첫째, 믿는 대로 된다. 신념의 힘이고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원리이다. 부정적인 사고는 실패를 부르고 긍정적인 사고는 기회를 만드는 등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둘째, 긍정적 자기 암시와 말의 힘이다. 매일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반복하면 잠재의식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셋째, 기도와 영적 에너지 활용이다. 단순한 심리학이 아니라, 신앙과 연결된 긍정적 사고로 평안과 자신감을 얻는 것을 보는 것이다. 넷째, 걱정을 내려놓고 용기를 선택하기이다. 걱정과 두려움은 ‘마음의 독’이라고 보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걱정 대신에 믿음과 용기를 택하면 문제 해결력이 커지는 것이다. 다섯째, 감사와 봉사의 습관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삶의 만족과 기쁨이 커진다. 남을 돕는 행동은 자기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고 긍정적 에너지를 되돌려 준다. 기업에서 보면, 긍정적인 조직문화 기반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보고서나 대화 시 ‘문제’ 대신 ‘개선 기회’, ‘실패 사례’를 ‘학습 사례 혹은 또 다른 개선 기회’로 표현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일상의 긍정 문화가 필요하다. 조직의 장은 ‘우리 팀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작은 성과도 크게 인정하고 자신감을 상승시켜줄 필요가 있다. 현장 개선 활동은 쉽지 않은 여건에서 작은 개선과 노력도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다. 작은 개선이 조직 내 긍정적 에너지를 확산시켜 큰 혁신으로 연결되는 속성이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하는 일은 생각에서 시작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8-26

스트레스와 만성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누적되면 우리는 피곤함을 느낀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원인이면 잠을 못 자거나 일이 많아서 생기는 피로와 달리 아무리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다. 늘 몸이 무겁고 머리가 맑지 않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단순히 과로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스트레스로 인한 몸의 피로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결과론적으로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이 원인이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루어져 몸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는 중요한 신경망이다. 교감신경이 주로 흥분과 긴장을 담당한다면 부교감신경은 안정과 회복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인처럼 지속적인 스트레스 속에 살다 보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부교감신경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잠이 깊지 않고 자주 깨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 피로가 누적되고 심해지며 체력이 떨어져 결국 만성피로라는 이름의 고질적인 불편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기혈의 순환이 막히고 장부의 균형이 깨진 것으로 본다. 특히 간과 심장은 스트레스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어 간과 심장의 기운이 울체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쉽게 화가 나며 소화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장의 기능이 불안정해지면 불면과 두근거림 같은 증상이 생기고 이에 비위가 약해지면 음식에서 얻는 에너지를 제대로 쓰지 못하니 몸은 늘 지치게 된다. 스트레스라는 자극이 전신의 자율신경과 장부의 조화를 무너뜨리고 이로 인해 회복되지 않는 만성피로가 심화되는 것이다. 치료의 핵심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데 있다. 약침 치료는 교감신경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부교감신경의 작용을 강화하여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특히 자율신경 조절에 효과적인 혈 자리에 약침을 활용하면 긴장이 풀리면서 수면의 질이 개선되고 심장의 두근거림과 가슴 답답함도 차츰 완화된다. 한약은 소모된 에너지를 보강하면서도 가슴의 열을 내려주고 막힌걸 풀어주는 방향으로 처방할 수 있다. 심장의 열을 내리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약재와 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약재를 적절히 배합하면 전신의 에너지 균형이 회복된다. 치료와 더불어 생활 습관의 조정도 중요하다. 불규칙한 생활은 자율신경의 균형을 더욱 무너뜨리므로 일정한 수면과 식사 리듬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스마트폰 사용이나 카페인 과다 섭취는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므로 줄이는 것이 좋다. 홍삼 에너지음료 등 힘이 나는 식품들은 교감신경을 항진 시키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가벼운 운동이나 명상과 호흡법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여 회복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너무 지쳐 있다’는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는 것이 만성피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스트레스가 불러온 피로를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로만 여기면 회복은 더디다. 자율신경의 균형 회복을 목표로 한방치료와 생활 관리가 함께 이루어질 때 몸은 다시 제 리듬을 찾고 깊은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피곤함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만성피로를 단순한 피곤이 아닌 자율신경의 신호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8-26

여성 병장 나올까

지난 20일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여성도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여성 현역병 복무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인구 절벽으로 군에 입대할 남성이 줄어들면서 대안으로 등장한 여성 현역병 복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논의의 추이가 주목된다. 김 의원은 현역병 선발 시 성별과 관계없이 지원자를 뽑을 수 있도록 병역법을 개정했다. 현행법상 여성도 현역 복무가 가능하나 장교나 부사관으로만 복무가 가능하고 일반 병사로는 복무할 수 없다. 여성들의 군 복무는 세계적으로 10여 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초로 성 중립적 징병제를 도입한 나라는 노르웨이다. 헌법에 국가 방위에 대한 평등한 책임을 명시하고 징병에서 복무, 보상까지 전 과정을 시민에게 평등한 기회를 준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여성의 90%가 복무 후 만족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노르웨이에 이어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스웨덴에서도 국민의 72%가 여성의 징병제 도입에 긍정적이라 한다. 다만 이들 나라는 성평등 지수가 세계 상위권 국가란 점은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성평등 지수가 세계 146개국 중 94위다. 노르웨이는 상장 기업의 40%를 여성 임원으로 임명해야 하는 법이 존재하고, 정부 직원의 절반이 여성이다. 그러나 여성의 현역병 지원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여론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절반이 긍정적 답변을 했다고 한다. 여성징병제 도입에 따른 제도적 보안을 해야겠지만 22대 국회에서 시행 여부가 판가름 날지는 미지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26

전공의들 ‘내외산소’ 기피…소아과가 걱정

대구지역 6개 수련병원(경북대병원·칠곡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 대구의료원)들이 지난 주말 전공의 모집을 마감한 결과 대부분 정원의 절반만 채웠고, 그마저도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는 지원자가 없는 경우가 수두룩했다고 한다. 수련병원들이 진료과별 지원자 현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병원 안팎에서는 필수의료과목은 대부분 미달이거나 지원자가 0명이고, 피부과·영상의학과 등 인기과에 지원자가 몰렸다는 말이 나온다. 기존 필수의료과 전공의 상당수는 수도권 병원으로 옮겼거나, 진료과목을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부가 느닷없이 추진한 의료개혁이 오히려 필수의료 과목을 아예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필수의료 중 특히 걱정되는 진료과목은 소아청소년과(소아과)다. 소아과 의사부족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의대에서부터 소아과가 힘들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전공의 지원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소아과 개업의들도 미용·통증 클리닉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대도시인 대구에서도 소아과 병원이 귀해지면서 병원 문을 열기 전에 보호자들이 아이를 안고 길게 줄을 서는 ‘오픈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열이 펄펄 나는 아이와 밤새 시름을 하다 날이 새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온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예약받는 소아과도 많아져 제때 진료를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밤 시간대와 휴일에 진료를 보는 ‘달빛어린이병원’을 각 시·도별로 도입했지만 큰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소아과 전문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원무과 직원 등 간호사를 포함한 수반 인력 및 교대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설사 인력을 구하더라도 야간 수당 등에 대한 기존 수가가 너무 낮아 이직이 잦다고 한다. 의대생들의 필수의료과목 기피로 앞으로 소아과 진료 전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추세대로 수련 전공의들이 줄어들 경우 3~4년 뒤에는 소아진료 공백 대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의대생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낮은 수가(진찰·수술비)다. 동네 소아과 수익의 대부분은 진찰료인데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만2000~1만4000원 선이다. 그리고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진료하는 게 어려울 뿐 아니라, 맘카페 등에 입방아라도 오르면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소아과 진료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건당국도 잘 알 것이다. 필수 진료 과목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 체계 도입과 공공의료 확충 등 파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당장 소아과 전문의면서 소아 진료를 포기한 의사 중 진료 수가를 높이고 근무 여건을 개선하면 소아 진료로 복귀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소아진료 대란이 생기기 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이가 아파도 주변에 갈 병원이 없다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8-26

땡감 철

어릴 때, 고향의 여름은 ‘땡감 철’이었다. 익어도 떫은 감을 땡감이라고도 하지만, 그 무렵 고향에서는 여름 감나무에서 덜 자란 채 떨어진 초록 감을 땡감이라고 불렀다. 산골 마을이어선지 사과, 복숭아, 배 같은 과수원은 없었다. 가까운 윗마을에 감나무과수원 하나가 유일했다. 품종도 여느 집들의 감나무와 달리, 납작한 똬리 감이 열리는 나무였다. 6‧25 전쟁 직후, 1953년 한국 국민소득은 67달러였다. 세계 최빈국이던 보릿고개 시절, 산골 고향엔 배고픈 아이들의 간식거리라곤 없었다. 여름날, 우리 동네 아이들은 며칠에 한 번씩 땡감 줍기가 즐거운 놀이였다. 감나무 풀숲을 뒤지는 땡감 보물찾기는 허기를 느낄 겨를도 없는 놀이가 되었다. 땡감은 아이 주먹만 한 것들이었다. 집에 오면 땡감을 씻어 단지에 넣고, 다 잠길 정도의 물을 붓는다. 그 위에 소금을 조금 뿌려 둔다. 며칠 지나, 소금물에 삭아서 달고 아삭한 맛으로 변한 땡감은 우리 동기(同氣)들의 배고픔도 달래주는 즐거운 군것질거리였다. 떫은 땡감과 소금물의 조화가 신기했지만, 어른들이 도제(徒弟)처럼 가르쳐준 방법이기에 묻지 않았다. 처음 땡감을 주웠을 때, 그 맛을 보고 싶었다. 떫으니 그냥 먹지 말라던 엄마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호기심이 앞서 땡감 하나를 잡아 옷에 슥슥 닦은 다음, 한 입 베어 물었다. 땡감 물이 혀에 닫는 순간, 저절로 ‘액’하고 내뱉고 말았다. 떫은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그 첫 느낌은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그대로 남았다. 지금, 그 보릿고개 시절을 되돌아보면 ‘땡감 삭혀 먹기는 가난과 배고픔 달래기’였다. 몇 해 전부터 여름이면, 성당 가는 보도에 똬리 땡감이 한두 개씩 보였다. 높다란 담장 위로 뻗은 감나무에서 떨어진 것이다. 작년까지는 어린 날 추억을 되살리는 땡감이 그저 반가웠다. 한데, 올여름 보도의 땡감을 처음 만났을 때, 혓바닥에 남았던 옛 떫은맛 기억이 와락 되살아나며 새 ‘땡감 철’을 마주했다. 웬일일까. 이어, 현 우리나라 상황이 꼭 땡감 한 입 베문 것처럼 떫다는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번 6‧3대선의 상식이나 통계 법칙상 출현 불가한 1, 2번 후보 당일 및 사전투표 득표율 숫자들(1번 이재명; 당일 37.96%, 사전 63.72%, 2번 김문수; 당일 53.00%, 사전 26.44%)···. 지난 4‧15총선 때, 선관위가 ‘시스템 장비 요구사항의 주전산기 성능보강’에서 ‘컴파일러(C/C++)제공’을 명기했다는 보도 같은 사실들이 땡감처럼 떫은 것이다. 어릴 땐 떫은 땡감을 바로 내뱉었지만, 떫은 나라는 어찌해야만 할까. 행여, 배고파 여름 땡감을 삭혀 먹던 때로 돌아갈까 불안하다. 뾰족한 수도 안 보인다. 옛사람들은, ‘나물 먹고/물 마시고/팔베개 베고 누웠으니/대장부 살림살이/이만하면 족하다.’고 하며 공자의 안빈낙도를 즐겼다지만, 지금 한국인인 내겐 그런 마음 여유조차 없다. 진초록 떫은 땡감도, 가을이 깊으면 발갛게 익어 다디단 홍시가 된다. 그렇듯, 우리나라와 국민도 홍시처럼 가을까지 참고, 배우며, 바꿔나가서 모두가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한 국가사회를 제대로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마음 깊다. /강길수 수필가

2025-08-25

뽕짝에 관한 단상

예술을 정의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가치 중 하나는 ‘독창성’이다. 어떤 작곡가가 표절 없이 작곡하였더라도, 같은 멜로디가 수백 년 전에 이미 존재 하였던 것이라면 이 음악의 예술적 가치는 부정된다. 위대한 예술가를 말할 때, 우리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형식과 감각을 창조한 사람들을 떠 올린다. 베토벤이 교향곡의 문법을 바꾸었고, 피카소가 회화의 시선을 해체한 것처럼, 예술은 낯익은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힘에서 그 가치를 얻는다. 이것이 예술의 독창성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트롯트는 다소 난처한 위치에 놓인다. 일정한 2박자 리듬, 단순한 코드 진행, 반복되는 멜로디와 주제로 일관한다. 형식적 실험이나 조성의 파괴 대신 익숙함 속에서 감정을 끌어낸다. 그래서 흔히 ‘음악성은 부족하다’거나 ‘저급한 대중 오락‘이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가 따른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을 오직 형식적 독창성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독창성을 떠난 예술은, 고통을 미화하는 ’위대한 거짓말‘이자, 인간의 삶을 다시 ’예‘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신비한 마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트롯트는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애절한 정서와 사랑을 노래하며,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제공한다. 반복의 진부함보다는 집단적 카타르시스가 우위를 점하는 곳이 뽕짝의 필드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을 ’인간이 세계와 화해하고, 삶을 긍정하기 위한 근원적 장치‘로 보았다. 니체에게 예술이란, 진리에 대한 인식 행위보다 더 깊은 차원의 힘이며,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묘약이다. 진리가 삶의 무의미와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예술은 고통을 형상화하고 미화한다. 우리의 삶에게, ’그래 좋아‘라고 말하게 만드는 것이다. 트롯트는 묻는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어디냐?‘ 라고. 이 질문을 던진 트롯트가 현대 미학을 인도의 향불(정의송 노래)처럼 흔들리게 만든다. 미셀 옹프레는 ’예술의 이유‘에서 ’고상한 미적 영역이라는 관념의 신전‘에서 예술을 끌어내려, 예술이 초월적 그 무엇이 아닌, 감각적 그 무엇임을 선언한다. 예술을 민중적, 감각적, 쾌락적 힘에서 찾고, 고통을 노래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면 그것이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맛난 음식을 한입 머금고 ’오! 예술이다!‘라고 감탄할 때, 예술은 그저 맛난 것일 뿐이다. 예술의 독창성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술이 삶에 봉사하는 그 무엇으로 볼 때, 우리는 예술의 대중성을 또 다른 가치 창조의 반열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이 음양으로 짜여있듯, 예술도 순수와 대중이 함께 한다. 거실에서는 조용히 클래식을, 차 안에서는 뽕짝을 감상하자. 이왕이면 한 곡 뽑아도 좋고. 이 맛에 사는 것이 아닐까. 예술의 진정한 이유가 삶을 긍정하고 인간의 감각을 해방하는데 있다면, 트롯트는 그 자체로서 충분히 예술이리라. 오늘 퇴근길 차 안에서는 뽕짝 한 곡을. 쿵짝 쿵짝~~ /공봉학 변호사

2025-08-25

법사와 도사가 날뛴 정권의 말로

누가 뭐래도 21세기는 합리와 이성의 시대다. 이를 부정하는 건 그 사람의 정신이 전근대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과학의 발달로 머지않아 인간이 우주를 여행하게 되고, 최첨단 AI가 일상화돼 생활 속으로 들어온 오늘. 합리·이성과는 무관한 무속인에게 길흉화복을 묻는다는 건 우매한 행위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김건희 씨는 유독 역술인, 법사, 풍수전문가 등과 가까이 지냈다. 윤석열 씨 파면 이후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은 이제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는 상식이 됐다. 대통령 업무 공간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고, 대통령 부부의 순방 때 어떤 행사장을 가거나 가지 않는 걸 결정하고, 특정 종교가 김건희 씨에게 전달하려 했던 값비싼 목걸이와 명품 가방을 중간에게 브로커 역할하며 건네고…. 이 모든 기이한 행위와 범죄 혐의에 무속인의 이름이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천공, 건진법사, 풍수전문가 백재권 등이다. 이쯤 되니 대체 윤 전 대통령 부부는 누구와 논의해 국사(國事)를 결정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진나라의 첫 번째 황제 조정(趙政)은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유명하다.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하도록 명령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전혀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던 진시황이 땅에 파묻은 건 유학자가 아닌 혹세무민을 일삼으며 나라와 백성을 농락한 사이비 무속인들이라는 것. 2200년 전 중국 왕도 믿지 않던 무속인들의 허무맹랑한 말을 금과옥조로 섬겼고, 그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이곳저곳에서 날뛰게 방치했다는 의심만으로도 국민들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25

국가 자본주의와 국가 사회주의

한국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이 물음 앞에서 생각해 본다. 일제 강점이 말기로 접어들어 1940년이 되자 신체제론이 대두된다. 생산과 소비를 국가주도로 행한다는 것인데, 천황을 극점으로 해서 개인이 국가의 수족이 되는 체제를 구축하려 한 것이었다. 이 일본식 통제경제가 당시의 한국인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가는 채만식이나 김남천의 몇몇 사소설 계열 작품에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는 강점기 내내 조선총독부는 사회주의자들을 가혹하게 다루었고, 그들의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염상섭의 ‘무화과’나 심훈의 ‘불사조’ 같은 장편소설에 검열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경찰서 내 고문 같은 가혹행위 장면이 나타난다. 박헌영이나 제4차 공산당수 차금봉 같은 이들이 혹독한 고문 끝에 실성 단계에까지 이르고 또 죽어버리기까지 한 것은 그 시대의 야만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도 사회주의를 적대시하고 추적하고 적발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들의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이 추종한 레닌이즘의 좌익 전체주의와 양상이 얼마나 달랐던가는 미지수다.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한다는 것, 계획통제한다는 점에서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국가자본주의는 소비에트 국가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었지 않을까? 그때 천황제 파시즘 아래서 사람들은 어떤 실질적인 자유도 누리지 못했다. 국가자본주의는 그 통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국가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어진다. 나중에 백군을 진압한 레닌은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신경제정책을 구사했다. 그것은 전시공산주의의 철저한 통제를 풀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좌익 전체주의 정권이 시장 원리를 도입하면 적어도 외견상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와 완전히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라면 오늘날의 한국사회도 얼추 이에 들어맞는지도 모르겠다. 한참 이른바 변혁론이 유행할 때 그 논자들 중에는 한국사회가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도 말했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체질상 확실히 국가 주도적 성격이 강했고, 지금 그 성격이 변화되고는 있지만 대기업, 재벌기업도 아직까지 국가가 이렇게 저렇게 불러낼 수 있는 것을 보면 국가자본주의에서 크게 멀지 않다. 문제는 이 국가자본주의 한국사회의 권력 구성 방식에 지금 심대한 변화가 야기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변화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결코 내적, 자율적이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1987년의 국민주권 혁명으로 획득한 자유가 무척 컸고 세대에서 세대로 그 자유를 충분히 누려왔기 때문일까. 자유에 ‘취한’ 국민들은 어떤 기이한 선거 ‘절차’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세상이 변한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많다. 확실히 지난 6월 3일의 이상한 일까지 경험한 작금의 한국 사회는 바야흐로 ‘국가적 자본주의’를 넘어 어디로 가는지 모를 길에 접어든 느낌조차 없지 않다. 무섭고 두려운 느낌. 이것은 단지 몇몇 사람들만의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8-25

‘갈이천정’ 포항시, ‘반면교사’ 보여주길

최근 영일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퇴역 경주마가 소음에 놀라 산책하던 60대 남성을 밟아 크게 다치게 한 사고가 있었다. 피해자는 종아리와 어깨 골절상을 입어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재수술도 했다. 순식간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신세가 된 피해자는 사고 전 건강했던 순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호소했다. 평생 후유증을 달고 살 수 있다는 의료진의 조언에 우울감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뭘까. 일단은 포항시 조례의 부실을 들 수 있다.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말의 백사장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나 포항시는 조례에서 이 부분을 빠뜨렸다. 말이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가십거리의 기사 대신에 이번에 법과 제도를 깊이 살펴보고 취재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례에 분명한 기준이 없다보니 포항시 공무원들 또한 사고 책임 소재를 두고 ‘핑퐁 게임’을 벌여 볼썽사나웠다. 시 해양산업과장은 “해수욕장 내에 말 출입은 제한된다”라고 한 뒤 연락이 끊겼고, 담당자는 “조례상 말 출입 금지 조항이 없기 때문에 해수욕장 내 말 출입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해양수산국장은 “관련 법과 조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혼란은 장상길 부시장이 정리, 잠재워졌다. 포항시 조례에 말 출입 금지 조항이 빠져 있음을 질타하고 조례 개정을 통해 말 출입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으라고 담당과에 지시한 것. 영일대 도로에 말을 탄 모습이 목격된지는 꽤 오래됐다. 처음엔 신기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위협으로 다가왔다. 특히 말이 소음에 놀라 육중한 몸을 흔들 때는 시민들이 혼비백산하는 광경도 자주 보였다. 언젠가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은 생각은 그때부터 들었다. 이번 사고가 없었다면 말은 여전히 해수욕장 내를 걸었을 것이다. 자칫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저 아찔할 뿐이다. 갈이천정(渴而穿井)이란 말이 있다.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판다’는 것인데 시는 이번에 사고가 나자 조례 개정 등 여러 대책을 서둘러 내놨다. 여러 필의 말이 줄지어 해수욕장을 걷는 것을 보고 시나 시의회의 누군가가 ‘저러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또 시민들은 그동안 왜 민원을 제기하지않았을까. 그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본지 보도 이후 영덕군과 울진군이 백사장에 말 출입을 금지하는 조례 개정에 나섰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이미 조례에 해수욕장 백사장 말 출입 금지를 담은 경주시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백사장내 말 사고는 이미 벌어진 것이다. 반면교사 삼아서 앞으론 사소한 사고라도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포항시에 보내는 말이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2025-08-25

정권만 잡으면 면죄부를 쥐게 되나

우상호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인 사면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사면 이후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데 대한 해명이다. 기세 좋던 지지율이 눈에 띄게 꺾이니 ‘피해자’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면의 피해자라니 어불성설이다. 정치는 권한과 책임이다.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을 진다. 이 대통령이 누군가의 협박을 받아 통치행위를 했어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이 대통령 몫일 수밖에 없다. 권력을 누구나 원하고, 부러워하지만, 그 책임을 나눌 수는 없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책임이 커진다. 대통령의 책임이란 무한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해자라니…. 우 실장은 “대통령 임기 중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정무적 판단을 먼저 했다”라면서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취임 초에 하는 것이, 한다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해서 사면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조 전 대표는 형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가석방 요건도 안 된다.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의 근거를 알 수 없다. 굳이 곧바로 꺼내주려고 결심한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나온다. 우 실장은 사면하면 국정 지지율이 4~5% 하락할 것이란 대통령실 내부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면했다는 것이다. “무슨 이익을 보기 위해 (조 전 대표를) 사면한 게 아니고, 피할 수 없다면 사면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이 대통령이) 고뇌 어린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더 떨어졌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주만에 12.2%P가 추락했다.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 국민 여론은 사면을 반대한다는 말이다. NBS조사에서 조 전 대표 사면에 대해 부정 의견이 54%로 긍정 평가(38%)보다 16%정도 높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부정평가의 첫 번째 이유로 특별사면(21%)를 꼽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 뜻을 거스 른 ‘결단’이 무슨 영웅적 ‘고뇌’이고, ‘희생’인지 공감할 수가 없다. 사면은 사실 지극히 예외적인 조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삼권은 서로 존중하며 분립한다. 사법부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충분히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은 국민통합과 민생 회복을 내세웠다. 그러나 사면 명단을 보고도 이런 명분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사면 제도는 정치보복을 해소하고, 억압과 차별을 해소한다는 왕의 자비다. 왕은 관대함으로 존경받고, 정치적 반대자까지 왕의 통치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면에도 야당 정치인을 포함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들러리다. 더군다나 청탁 사실이 노출되면서 야당의 반대 목소리마저 군색하게 됐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은 배제했다지만 누가 믿겠는가. 같은 진영에 대한 대폭 사면은 정치적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조국 전 대표, 윤미향·최강욱 전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등을 풀어주는 게 국민 화합에 도움이 될까. 이들은 본인들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이면 잡범 취급당하며 형기를 채워야 했을 범죄를 정치 탄압이라고 포장한다. 오히려 개선장군인 양한다. 죄를 지어도 권력만 쥐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통을 만드는 꼴이다. 이 대통령도 야당 시절 “국민 통합에 저해되는 특혜 사면은 전면 철회돼야 한다”라고 주장했었다. 이 정부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표적 수사로 몰았다. 검찰도 정치권에 줄을 서는 잘못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검찰도, 경찰도, 심지어 법원까지 신뢰가 무너졌다. 재판을 받아도 사법 정의를 믿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정의는 법이 아니라, 권력을 쥐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차지한다. 재판이 아니라 권력만 잡으면 무죄가 되는 전통을 만들면 정의가 설 땅이 없다. 결국 가진 것 없는 사람만 감옥에 남고,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큰소리치게 된다. 대통령만 되면 수백 명, 수천 명의 재판을 무효로 만들고, 같은 패거리 정치인을 모두 풀어주는 이런 사면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24

가슴 울리는 ‘골 때리는 그녀들’

챙겨 보는 TV프로그램이 딱 하나 있다. SBS에서 방영중인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골때녀’라고도 부르는 이 프로그램은 2021년 6월부터 현재까지 방영중인 축구 예능이다. 여성 출연진들이 팀을 이루어 축구(엄밀히 말하면 풋살에 가까운)경기를 펼치는데 보통 한 주에 한 경기씩 방영 해 주곤 한다. 한 팀에 6명씩 등장 예정인 팀을 포함하여 11팀이 등장하며 각각의 팀은 국가대표팀 출신 전직 축구선수들이 감독을 맡아 이끈다. 나는 요즘 방영하는 그 어떤 TV쇼보다 이 프로그램에 더 열광하고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각각의 출연자들을 ‘선수’라고 일컫는다. 합당하지 않은 표현일 수 있다. 출연자들 중에는 ‘구척장신’팀의 허경희, ‘국대패밀리’팀의 박하얀, ‘액셔니스타’팀의 정혜인과 박지안, ‘원더우먼’팀의 마시마 유 같은 에이스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동호인인 그들을 엘리트 선수들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그다지 민망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들이 축구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이 ‘선수’들은 본인들이 정말로 선수인 것처럼 축구에 미쳐있는 것 같다. 훈련이 많은 팀은 거의 한 달 내내 모여서 훈련을 한다고 하고, 경기시간 동안 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어깨를 부딪치고 몸을 날린다. 무릎이 깨지고 얼굴에 멍이 들고 코피가 나도 이들은 이내 털고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빈다. 아깝게 골을 놓치면 월드컵 16강이 걸린 경기에서 골 포스트를 맞추는 슛을 때린 양 분개하고, 골을 넣으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골을 넣은 듯 진심으로 환호를 한다. 모두가 이렇게 축구에 진심인데, 선수라는 호칭 좀 붙여주는 일에 굳이 인색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전원 모델로 구성된 구척장신 팀의 주장이자 스트라이커인 이현이. 어느덧 불혹을 넘은 그는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함께 하고 있는, 골때녀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출연자다. 지금이야 출연자들의 전체적인 실력이 매우 향상되어 있지만, 프로그램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초보 수준의 축구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현이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무섭게 성장하더니 지금은 다른 모든 팀들이 두려워하는 공격수가 되어 있다.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뜨거운 선수이기 때문이다. 큰 눈을 희번덕거리며 긴 다리로 경기장을 겅중겅중 누비는 그의 모습은 가끔 감탄을 넘어서 애처로움마저 자아내곤 한다. 다리에 쥐가 나면 주먹으로 내리치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고 모두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보이면 크게 소리치며 팀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곤 한다. 이기면 누구보다 뜨겁게 기뻐하고 지면 누구보다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가 샤넬, 구찌, 에르메스 등의 패션쇼에 등장하던 탑모델이라는 사실이나,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엄마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각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가장 뜨거운 가슴으로 뛰어들었던 어느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 역시 그의 땀과 눈물을 보면 시인을 꿈꾸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머리를 쥐어뜯던 어느 밤과 밤새 합주를 하다가 손끝과 기타 줄에 맺힌 피를 닦아내던 어느 새벽의 감각이 떠오르곤 한다. 개개인의 열정 외에도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동료애다. 지난 주에는 ‘월드클라쓰’ 팀과 ‘개벤져스’ 팀의 경기가 방영되었다. 이 경기에서 진 팀은 당분간 리그에서 퇴출되어 경기를 뛸 수 없게 되는 것이었는데 분전 끝에 ‘개벤져스’가 김혜선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패배했다. 팀에서 가장 열심히 뛰었던 김혜선은 경기가 끝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져서 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임이 분명했다. 동료들은 패배로 쓰린 자신의 마음을 챙기기보다는 먼저 김혜선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위로하기 위해 애썼다. 그 모습을 보며, 주로 개인 작업에 골몰하곤 하는 내가 한때 밴드 동료들과 웃고 울던 시절이 떠올랐다. 함께 웃고 울어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누군가의 뜨거웠던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가슴에 잠들어있던 어떤 마음을 다시 깨워내는 것은 모든 문학과 음악의 꿈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그들은 공 차는 행위를 통해 매주 해내고 있다. 그들은 매주 내게 한 주 동안 필요한 만큼의 도파민과 어떤 문학과 음악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모든 선수들이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뜨거운 경기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강백수(시인)

2025-08-24

낭만 끝에 마감

소설 쓰신다고요? 낭만 있네요. 최근 어떤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업무를 하면서 늘 문장을 다루고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 사이에만 있다 보니 작가라는 직업이 대단할 것 없이 느껴졌는데, 전혀 다른 업에 종사하는 그에게는 글 쓰는 직업이 신비로운 일처럼 다가온 모양이었다. 어느덧 일상의 지루한 노동이 된 글쓰기가 누군가에게는 낭만의 영역으로 다가갔다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묘한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 상념은 나를 교실 속으로 데려간다. 일주일에 두 번 강의를 나가는 예술고등학교에서 나는 지금 고3 수험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보았던 푸릇푸릇한 아이들의 두 눈. 작가가 되겠다던 열망으로 반짝이던 눈빛이 원고지와 씨름하는 나날 속에서 묘하게 흐릿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가끔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의 눈빛처럼 공허하게 번져 보이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 나는 이 아이들이 낭만 대신 지루함과 지난함을 먼저 배워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 마음, 왜 모르겠는가. 부딪치고 또 부딪쳐도 영영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 소설 쓰기는 쉽게 열리지 않는 문과 같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좌절하게 순간은 새삼스럽지 않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릴 기미가 없는 문 앞에 놓인 무력감. 어쩌면 글쓰기의 본질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는 감각에 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창작 이론 대신 백지와의 눈싸움을 더 빨리 습득해 버렸다. 온종일 문장과 씨름하다가 책상 위로 풀썩 쓰러지는 것은 기본. 연필을 빙글빙글 돌리며 손톱을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 가끔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뿜어 내기도 한다. 내게 획기적인 방법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참 난감하다. 마치 일부러 비기를 숨기고 일부러 제자를 괴롭히는 스승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더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은 계속해서 읽고 책상 앞에 앉아 고민하는 것뿐인 걸. 지루함을 견디고 한 줄을 써내는 힘.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창작 기술이다. 만일 그날 그에게 소설을 쓰는 과정에 관하여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삶과 예술에 관한 심도 있는 토론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달래보자면 이렇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는 것으로 글쓰기는 시작된다. 멀리서 봤을 때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수많은 단어가 머릿속에서 서로 치고받는 중이다. 마침내 그중 하나를 골라 쓰면 곧바로 후회가 따라붙는다. 필연적으로 다시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 한 문장을 고르기 위해 열 문장을 버려야 하고 가끔은 쓴 걸 모조리 날려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선택과 후회의 굴레 속에서 결국 남는 건 단 한 줄의 문장이다. 어린 시절 내가 상상한 소설가는 경쾌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가졌더랬다. 건반을 두드리듯 빠른 속도로 소설 한 편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상상했던 삼십 대의 모습이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듯, 작가가 된 내 모습 역시 맞춤법조차 헷갈리는 허술함으로 가득하다. 그런 나 자신을 미덥지 않아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 허술함이 내 글의 출발점이 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이어가며 허공에 대고 말을 걸듯 문장을 적어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 불 꺼진 방에서 키보드를 타닥타닥 치는 모습은 분명 누추한 이미지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어떤 희열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언제나 글쓰기는 손익 계산의 바깥에서 작동한다. 수익과 손해로 따져 보자면 낭비의 극치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고 돈은 곧 생존이니까. 굳이 한 문장에 몇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라니. 주식이라면 진즉 손절하고도 남았어야 옳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런 계산법이 통하지 않는다. 더딘 성과를 받아 들여야 하는 노동. 쓸모없는 것들의 총체. 그리고 그 무용함 속에 인생의 쓸모를 발견하는 시선. 이런 점에서 쓰는 행위는 정말 낭만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함을 기꺼이 껴안고 책상 앞에 앉는 마음. 그러한 집념 자체가 곧 낭만일 수도 있겠다. 낭만 혹은 지루한 노동. 둘 중 무엇으로 명명하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낭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마감조차 반짝여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그가 그러한 대사를 내뱉는 순간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날 나는 웃음으로 답하며 속으로 생각했었지. 아, 이번 주 칼럼은 이걸로 쓰면 되겠다! /문은강(소설가)

2025-08-24

“악마가 아무리 검다 해도”

학창 시절 나와의 주먹질에서 패배했던 친구가 차에 치여 죽었을 때 난 알았다 내가 진 것이었다 상갓집에서 육개장을 앞에 놓고 맥없이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눌러도 고개를 드는 오래된 죄책감에 대해 누구에게 말 한마디 못 하고 혼자 미안해하다 다시 영정 사진을 올려다봤다 속엣말로 미안하다고 사실은 내가 졌다고 독한 척했던 내가 사실은 더 겁쟁이였다고 아직 앳된 상주의 어깨를 다독이며 상갓집을 걸어 나오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절대적으로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때 그 친구의 얼굴 표정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득의양양한 나를 올려다보던 그 영양의 눈빛 그날 나는 사악했다 상갓집을 나와 걷는 길 등 뒤에서 찬바람이 오고 기억들이 폐지처럼 몰려날아다니고 있었다 ―허연, ‘패배’ 전문 (‘우리는 언제 노래가 되지’, 2020, 문학과지성사) “눌러도 고개를 드는 것”이 있다. “악마가 아무리 검다 해도” 결코 이기지 못하는 게 있다. 지고도 “득의양양한”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그 영양의 눈빛”이란 기표만으로도 말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란 무엇인가. 시인은 “그날 나는 사악했다”라는 기표로 오래된 패배를 독백하며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은 어리석다. 위기 앞에 자신의 약함을 들키지 않으려 “독한 척” 위악을 하거나 달아나는 것으로 비겁을 일삼는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그 작품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떠올려 보면 분명하게 보인다. 이 세계는 평범한 사람, 패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로 인간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한순간에 박제되기를 원하는 욕망에 굴복되기 쉽다. 한편으로, 시인의 인용되지 않은 시에는 “악마보다 힘이 센” ‘그것’이 있다. 시인은 그것을 ‘눈물’이라고 했다. 눈물은 “한적한 골목/ 자전거에 실려 가는 파 한 단 앞에서도/허물어진 폐가 귀퉁이/버려진 앨범 앞에서도 충분히” 흐른다고 했다. 자신이 노래하는 줄도 모르고 노래하는 새처럼 “눈물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흘리는 대책 없는 생의 밀도”로 시인의 인간 이해는 인간과 악마 사이의 전통적 거래 방식을 비틀어버린다. 이때 시인은 “오래된 죄책감”에 대해 “원했든 원치 않았든 / 절대적으로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반추하는데,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며 오래된 친구의 얼굴 표정을 떠올리며 자신의 사악함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인간에 대한 조야한 비관주의로만 끝을 맺는 것인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조차 인간성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를 발견할 기회를 가진다. 그것이 시인의 고백 ‘패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하여 허연 시인의 시는 육성에 가깝다. 박형준 시인의 말처럼 시인의 시에는 “김종삼의 후신이라 느껴질 정도로 담백하고 슬픈 기운”이 서려 있다. 시인의 정신과 가슴이 맞닿은 시 앞에 서면 글과 삶에 대한 간절함과 어떤 부끄러움 같은 게 깔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 인간은 인간을 속이거나 빠트리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의지를 과대평가하고, 자신은 남과 다르다고 믿는 것으로 자신을 속인다. 이때 사람은 기억을 가졌다는 것으로, 혹은 고백만으로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부끄러움’이라는 인간성을 지졌기에 점점 더 밝은 쪽으로 나은 쪽으로 나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등 뒤에서 찬바람이 오고 / 기억들이 폐지처럼 몰려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희정 시인

2025-08-24

김천, 혁신도시 시즌2 - 균형발전과 경제도약 거점으로

경북 김천혁신도시가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거점으로 출범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김천시는 인프라 확충과 지역 특화 전략을 통해 정주여건을 크게 개선했으며, 이제 ‘선택과 집중’ 전략 아래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지를 넘어 지속 가능한 신성장 거점으로 도약하고 있다. 김천혁신도시는 2007년 착공, 2016년 ‘경북드림밸리’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했다. 총 381만㎡ 부지에 12개 공공기관 이전을 완료했고, 현재 9,605세대, 23,407명이 거주한다. 초기에는 공기업 3곳, 확장성이 제한된 정부기관 7곳, 공익 기능 중심 기타 공공기관 2곳으로 구성돼 산업 유치와 경제 파급효과에 제약이 있었으나, 김천시는 이를 기회로 삼아 정주환경 개선과 미래 산업 육성을 병행하며 교육 중심형 특화도시로 발전시켜 왔다. 정주여건 개선, 문화 인프라 확충 김천시는 ‘소통하는 김천, 함께 여는 미래’를 비전으로 김천혁신도시에 생활밀착형 사업과 성장동력 연계형 정주 기반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연간 3만 명 이상이 이용하며 양육 가정의 필수 거점이 됐고, 율곡시립도서관은 독서·학습 공간을 넘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녹색미래과학관은 상반기 교육프로그램 참여자가 16만 명을 돌파하며 전국 과학문화 허브로 부상했고, 청소년테마파크는 놀이·문화·체험 공간을 통해 지역 청소년과 관광객 모두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127억 원을 투입한 율곡동 국민체육센터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건립 중이며, 반려동물 가구 비중이 높은 지역 특성을 살린 반려동물 놀이터도 조성해 반려동물 친화도시 기반을 마련한다. 미래 모빌리티 튜닝산업 육성 김천시는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협력해 자율주행, 전기차 전환, 드론·UAM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튜닝안전기술원는 2023년 12월, 드론자격센터는 2024년 9월에 준공했으며, 전기차 튜닝·안전기술 실증, 미래차 애프터마켓 부품산업 기반 구축, K-드론지원센터 조성 등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조성 중인 모빌리티 튜닝산업 지원센터, 자동차 주행시험장, 미래차 부품 친환경 소재 전환지원센터는 연구개발·실증·상용화를 한 곳에서 수행할 수 있는 산업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김천시는 이를 기반으로 첨단 튜닝산업 클러스터의 중심지로 도약할 계획이다. 스마트도시 ‘MObility DO Everything!’ 올해 6월 김천시는 국토교통부 주관 ‘2025년 강소형 스마트도시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총 160억 원을 투입해 ▲모빌리티 서비스 ▲도시케어 ▲산업지역 ▲데이터 등 4대 핵심 분야를 추진한다. 특히 혁신도시와 원도심을 연결하는 DRT(수요응답형 교통) 서비스와 친환경 자율주행차 도입으로 교통 편의성을 높이고, 교통·물류·안전·복지 서비스가 통합된 스마트도시 모델을 구현한다. 교육·연구·산업 연계 복합지식도시 김천혁신도시는 교육·연구·산업이 결합된 복합지식도시를 목표로 한다. 조달교육원(연 1만 명), 국제종자생명교육원(연 2,400명), 첨단자동차검사연구센터(연 1만 명 이상 교육) 등 전문 교육기관이 집적돼 있으며, 경북ICT이노베이션스퀘어는 2024년 이용자가 4,000명에 달했다. 2025년 7월 개소한 K-하이테크 플랫폼 공동훈련센터는 제조업 중심의 디지털트윈 교육을 진행 중이며, 올해 하반기 완공될 국토안전교육원은 연 6,000명의 교육생을 유치할 전망이다. 동물보건 교육·실습센터도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전문인력 양성에 나선다. 지속 가능한 발전 ‘혁신도시 시즌2’ 김천시는 공공기관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도록 정주여건 개선과 상생 기반 구축에 힘써왔다. 공공기관은 이제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상생 파트너이며 공공기관 2차 이전의 조속한 추진과 전략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한다 2016년 준공 이후 ‘선택과 집중’ 전략 속에서 성장한 김천혁신도시는, 이전 공공기관과 함께 ‘혁신도시 시즌2’라는 새로운 도약기에 들어섰다. 김천시는 앞으로도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도약을 동시에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 /배낙호 김천시장

2025-08-24

관종인가 연결인가

이름 대면 알 만한 상담전문가가 SNS에 올린 글을 읽게 되었다. 알고리즘으로 뜬 모양이다. 그의 남편이 암으로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재택 임종을 원해서 집에 왔는데 맥주를 너무 먹고 싶어 해서 무알코올 맥주를 건넸다는 이야기다. 남편이 침대에 누워 맥주를 들고 있는 사진까지 올렸다. 몸통만 보였는데 너무나 앙상해서 불치병 환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사진까지 올린 그 상담전문가의 용기가 놀라웠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맥주 건넨 것을 잘했다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아플 때 먹고 싶은 것을 금지했던 일을 후회한다는 댓글도 많았다. 나 역시 그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우리 부모님도 모두 재택 임종하셨다는 댓글을 달아 위로했다. SNS는 현대인의 생존 방식이자 중요한 소통 창구이다. 실종된 딸을 오직 딸의 SNS 흔적만으로 발견하는 영화가 나올 정도이다. 그래서 SNS에 올라온 글은 정보 창고이기도 하고 사람을 연결해주는 끈이 되기도 한다. 상담전문가의 SNS의 글도 그런 사례에 속할 것이다. 글쓴이는 재택 임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싶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 자신도 많이 두려울 것이다. 말로는 맥주를 주는 것이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했지만 무알코올 맥주를 마신 후 상태가 악화될까 걱정하면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올 수도 있다. 그런 힘든 마음을 SNS에 고백하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무너지고 있는 자신을 부여잡기 위해서, 글이 아니면 아무런 생의 목표도 없이 흩어져 버릴 것 같아서 글을 쓴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행동이 몹시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어떤 분이 돌아가신 후 지인이 그분의 생전 모습을 SNS에 올렸는데 약간 취한 모습이라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분이 살아있었으면 틀림없이 그런 영상은 내리라고 했을 것이라면서 혹시 그분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올렸나 의심하기도 했다. 심지어 부모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서 올리는 사람도 봤다면서 SNS에는 밝은 모습만 올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동안 경험으로 보면, 아무래도 자기 개방을 많이 한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연결고리를 만드는 경향이 많다. 봄 학기에 50대 후반의 여성 수강생이 대학 시절에 자기의 입술이 키스를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키스할 때 안 지워지는 립스틱을 바르면 안 된다는 글을 발표했다. 그때 모든 수강생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강의실 분위기가 화사해진 느낌이 들었던 것 역시 비슷한 경우다. SNS 글쓰기는 현대인의 필수 소통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관종인가 연결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수용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글을 쓰는 이가 글쓰기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내면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는가만 중요하다. 덧붙여 그 글들이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주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 글은 온전히 잘 쓰인 것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24

나라는 염치도 없나

소년병, 6・25전쟁 시 징집 의무가 없던 청소년들이 전쟁터로 끌려간 수가 3만 명에 이른다. 6・25전쟁 74주년을 맞은 지금 앳된 얼굴은 백발노인이 되었다. 법에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예우와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소년병들은 하나둘 죽어간다. 국가가 이들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은 가지고 있는 건지, 그렇게 시간만 흘러간다. 소년병뿐만 아니라 소녀병도 있었다. 국방부 군적에 남은 소녀병 수는 467명이다. 군번이 없다는 이유로 어린 소년과 소녀를 전쟁터로 내몰던 국가는 염치도 없이 두 손을 놓고 있다. 나라가 다급할 때는 길 가던 아이들을 붙잡아 전쟁터로 내몰고서는 이제 와서 모르쇠로 일관한다. 국가보훈부가 2016년부터 지자체나 학교에 건립한 명비 중에 소년병을 위한 건 하나도 없다. 명비가 없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년・소녀병들의 슬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법으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겪은 아픔을 이제 국가가 위로해야 한다. 6・25 참전 소년병 이수행 씨는 위기에 처한 국가와 부모님에 대한 효도 사이에서 인간적인 갈등이 많았다. 그런데도 나라의 어려움에 총을 선택한 소년병이다. 3만 명에 이르는 소년병의 참전으로 전쟁은 휴전하고 대한민국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는 국가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헌법재판소는 소의 제기가 늦었다며 소년병들이 힘을 모아 신청한 헌법소원을 각하했고, 소년병 지원에 관한 법률은 16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법률로 제정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만을 되풀이한다. 22대 국회에서도 소년병 지원에 관한 3법을 발의했지만, 이것 또한 자동 폐기 될지도 모른다. 소년병 강제 징집의 위법 여부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검토 중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집단 이익이나 의원 개인의 필요가 있을 때만 움직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년간 법률안 발의만 하고는 폐기를 반복할 리가 없다. 그나마 대구시의회는 6·25 소년소녀병 예우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의 중요내용은 소년소녀병 관련 기념행사 초청 및 의전 예우, 저소득 소년소녀병 및 유가족 위문·격려, 명예 회복과 사회적 지원을 위한 시책 마련 등이다. 국가에서 법으로 제정한 건 아니지만 관심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이 소년소녀병들의 피와 땀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노고에 대해 국가 차원의 인식이 필요하다. 전쟁 중에는 급해서 어린 소년소녀들까지 전쟁에 동원했지만, 끝까지 모른 척할 수 없지 않은가.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당한 대우를 해 주자. 국가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줄 때 국가를 위해 국민이 나선다. 모든 건 때가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는 죄인으로 남는다. 국가 스스로 역사적 오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자. /김규인 수필가

2025-08-24

‘시절 인연’에 대하여

살면서 문득 돌이키는 한 가지가 시절 인연이다. 시절 인연은 불교의 업설(業說)과 인과응보설에 따른 것으로, 사물과 관계는 특정한 시공간 환경이 만들어져야 일어남을 뜻한다. 하필 그런 때와 장소에서 그 사람과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시절 인연이다. 정해진 장소와 시기에 누군가와 운명처럼 인연을 맺게 되는 근본 동인이 시절 인연인 셈이다. 시절 인연의 근간으로 작동하는 것이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라는 업설이다. 전생과 현생에서 내가 지은 업이 선과 악으로 나뉘면서 그것의 결과로 작용하는 것이 인연이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적-사회적 환경에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에게는 좋은 인연이 찾아오고, 그 반대의 경우엔 나쁜 인연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업설을 달리 말하면, 인과응보설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할 수 있다. 인과응보는 우리의 행위에 담긴 선과 악이 그 결과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자연물을 포함한 타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언젠가 명백한 결과를 잉태하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사자성어도 인과응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맺는 인연의 배후에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필연의 불문율(不文律)이 작동한다. 오늘의 행복과 고뇌의 근저에는 그에 합당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 불가(佛家)의 해석이다. 나이 들수록 얼굴이 환하고 걸음걸이가 반듯하며 언어에 품격이 넘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되는 사람도 적잖다. 그가 지은 현업(現業)이나 지난날의 업장(業障) 때문이다. 루소는 1762년 출간한 ‘에밀’에서 인간이 당면하는 괴로움의 두 가지 근원을 밝힌다. 그 하나는 육체적 고통이고, 그 둘은 양심의 가책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숱한 질환이 불러오는 육신의 고통과 정신적 통증을 유발하는 후회의 상념이 인간을 촘촘하게 옭아맨다는 얘기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1869)에서 이것을 질병과 양심의 가책으로 변용하여 표현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육체적 고통의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는 우리 자신일 경우가 많다. 우리의 생활 습관이 장시간 축적된 결과가 만성적인 고질병이나 급성질환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번민과 고뇌의 낮과 밤을 불러오는 양심의 가책도 알게 모르게 우리가 저지르는 파괴적인 악행과 폭언에 근거한다. 모든 것의 원인은 결국 ‘나 자신’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나 역시 수많은 인간적인 결함과 실수를 저질렀다. 누군가는 나의 폭력적인 언사와 행위로 인해 분명 괴로웠을 것이다. 그때그때 사과하면서 살아왔지만, 성에 차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윤동주 시인처럼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지 못한 인간이다. 그것이 오늘날 내가 경험하는 쓰라린 양심의 가책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경이로움으로 전율한다. 정말 대단한 인생 행로를 걸어왔구나, 하는 찬탄의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 줄이고자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창밖에 매미가 맹렬하게 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24

‘처서 매직’

지난 주말인 23일은 처서다. 24절기 중 열 네번째 절기인 처서(處暑)는 한자말 그대로 해석하면 더위가 멈춰 선다는 뜻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체험적으로 터득한 기상에 대한 깨달음을 각종 속담 등을 통해 여러 가지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예를 들면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서 오고 하늘에서는 뭉개구름 타고 온다”고 말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모습을 이렇게 섬세하고 예쁘게 표현했다. “처서가 지나고 나면 참외 맛이 없어진다”고 하는 말이나 “매미 소리가 자취를 감추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는 말은 경험적으로 느낀 계절의 변화를 말로 표현한 것이다. 또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도 있다. 계절의 변화를 우리 조상들은 유머적 감각까지 동원해 재치있게 표현했다. ‘처서 매직’은 처서를 기점으로 더위가 마법처럼 사라진다하여 붙여진 합성어다. 북쪽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뜨겁고 습한 공기를 밀어내어 온도가 하락하는 현상을 마술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처서가 되면 여름 더위는 이젠 갔다며 가을 수확 준비에 모두가 바빠진다. 그 시점이 양력으로 8월 23일쯤이다. 자라던 풀도 성장을 멈추고 누렇게 변해 집집마다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는 것도 지금부터다. 그러나 수 년전부터 처서이후 기온이 되레 상승하는 역주행 현상이 나타났다. 지구온난화 탓이다. 처서인 지난 주말 대구의 낮기온은 최고 37도를 기록했다. 전국 대다수 지역에 폭염주의보도 내려졌다. 기상청은 처서가 지났음에도 당분간 찜통 더위가 이어질 것을 예보했다. ‘처서 매직’이 무색해졌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08-24

노인과 소방관의 건강 보호 시급하다

지난 3월 22일부터 28일까지 경북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 5개 시·군을 휩쓴 산불은 149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됐으나, 피해 규모와 파급력은 대한민국 산불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특히 사망자의 대부분은 불길이 아닌 산불 연기에 의한 질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태는 경북 산불 연기에 노출된 노인층과 소방관의 건강 보호가 단기적 재난 대응을 넘어 장기적이고 과학적인 건강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노인층은 산불 연기에 특히 취약하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서부 지역 노인 1036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높은 산불 연기에 노출되면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입원이 증가했다. 하버드대 연구팀도 노인이 단기간이라도 산불 연기에 노출되면 폐 기능 저하, 심혈관계 부담 증가 등 뚜렷한 건강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천식이나 만성 폐쇄성 폐 질환을 앓는 고령층은 연기 속 독성 물질로 인해 호흡 곤란이 심화하고, 혈관 염증과 혈압 상승으로 심혈관 질환 위험이 더욱 커진다. 소방관들도 안전하지 않다. 이번 경북 산불처럼 장기간 이어진 화재 진압은 소방관들을 고농도 산불 연기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킨다. 여러 연구에서 소방관은 평균 폐 기능이 낮아 이러한 상황에서 호흡기 질환에 더 취약하다고 보고된다. 장기적인 연기 흡입은 암·폐기종·만성 기관지염·심혈관 질환 등 여러 질병의 위험을 높인다. 여기에 심리적 스트레스·수면 부족·강도 높은 신체 활동이 겹치면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폐 기능을 개선하고 강화를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운동 처방과 체계적인 재활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규칙적인 중등도 이상 유산소 운동은 호흡근을 강화하고 심폐 기능을 향상해 산소 공급 효율을 높인다. 여기에 개인별 맞춤형 근력 및 신전 운동을 병행하면 폐 주변 근육과 흉곽의 유연성이 향상되어 호흡 효율과 회복 속도가 더욱 개선된다. 해외 사례에서도 이러한 접근이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는 산불 예방뿐 아니라 연기 피해 대응을 위해 고령층 대상의 체계적인 폐 기능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독일의 ‘자가 15분 호흡 운동’, ‘호흡 테라피’, ‘최고의 호흡 훈련’ 등이 대표적 사례로, 산불 연기로 인한 건강 피해를 완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경상북도는 대형 산불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노인층과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폐 기능 보호·강화 종합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기 노출 위험군에 대한 사전 폐 기능 검사, 호흡법·유산소·근력․신전 운동을 결합한 맞춤형 훈련, 심혈관·호흡기 질환 예방 교육 등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산불 피해 대응은 단기적인 진화 활동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연기에 취약한 노인층과 소방관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건강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재난 안전 정책의 핵심 축이 돼야 한다. 이러한 체계가 자리 잡으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산불에도 지역사회가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성률(동국대 의대 연구초빙교수·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

2025-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