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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8세의 말자씨를 남 몰래 좋아하던 세 살 많은 남성 노 씨는 어느 날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만나자며 말자씨 집을 찾아왔다. 거절해도 한참을 집 앞에서 버티고 있던 노씨가 그럼 가는 길이라도 알려달라고 조르자 그를 빨리 보내기 위해 말자씨는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큰 길까지 함께 걸어갔다. 으슥한 골목 어귀에서 별안간 노씨는 “키스만이라도 하자”라며 말자 씨를 덮쳤고, 넘어진 말자씨의 입을 강제로 맞췄다. 반항하는 과정에서 말자씨는 노씨의 혀를 물고 말았고 노씨의 혀는 1. 5센티미터가량 절단되었다. 말자씨의 행동은 정당방위일까, 중상해죄의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이는 1964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이다. 당시 검찰과 법원은 말자씨를 중상해죄의 범죄자로 판단했다. 심지어 말자씨는 노씨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노씨는 강제추행 또는 강간 미수의 혐의가 적용되지도 않은 채 특수협박 및 주거침입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되었지만, 중상해죄로 기소된 10대 소녀 말자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말자씨를 조사하던 검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니 책임져야지, 결혼해야겠네” 법원은 한 술 더 떴다. 남자가 덮친 데엔 길을 같이 걸어가 준 말자씨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 최말자씨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과 성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중상해죄 전과범으로 60년을 살아 온 말자씨는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단지 자신에 대한 불법적 폭력과 성범죄에 대항해 자기 몸을 지키려 했을 뿐이었던 10대 소녀는 자신에게 내려진 부당한 법의 잣대에 순응하지 않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며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성범죄에 대한 정의가 변해갔다. 비슷한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성범죄에 저항하다 남성의 혀를 절단하고 만 여성들은 모두 정당방위로 무죄 판단을 받았다. 78세가 된 말자씨는 ‘56년 만의 미투’를 단행해 법원에 재심 청구를 했고, 5년의 쉽지 않았던 재심 청구 과정을 거쳐 결국 대법원의 재심 결정을 받아냈다. 지난 7월 23일 열린 재심 재판의 마지막 변론에서 검사는 말자 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그리고 검사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씨에게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사죄드린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1960년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사건들이 말자씨의 사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용기 있는 여성은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결백함을 위해, 또 후손들은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실현하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건이 자신의 이름을 딴 사건으로 불리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고 재심 개시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결국 재심 재판과 검사의 무죄 구형을 받아냈다. 살다 보면 저렇게 늙고 싶다 생각이 들게 하는 멋진 할머니들이 있다. 최말자 할머니 같은 멋진 할머니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성폭력과 여성에 대한 일그러진 편견을 여전히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31

여름은 가고 또 여름이 가도

무슨 말이든 해 보라고 채근했지만, 엄마는 말이 없었다. 행여 한마디라도 할까 귀를 대고 지켜보았던 마지막 사흘이 지금도 명치에 앉아있다. 엄마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며 병원에 갔다. 의사는 위암이 초기라 수술만 하면 괜찮아 질 거라고 했다. 우리는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이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수술이 시작된 지 채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의사가 나왔다. 속을 열어보니 암이 마치 밀가루를 흩뿌려놓은 것 같아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길어야 6개월이라는 말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입원에 필요한 것을 가지러 집으로 가야했다. 허정거리는 걸음으로 차에 오른 나는 대성통곡 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이 울음을 삼켜버렸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남편이 운영하는 공장으로 출근했다. 대충 사무실 일을 마무리한 후, 친정으로 갔다. 아버지가 며칠 동안 병원에도 오지 않아서였다. 이제 괜찮아질 거라 믿고 있는 엄마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몇 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신 적이 있어 두려웠다. 밥상을 차려 두고 나는 병원으로 가야 했다. 엄마 곁에서 살갑게 살아왔던 날들이 사라져간다. 갑자기 허물어져 가는 둥지를 붙잡고 허둥거린다. 엄마가 없는 세상이 나는 무서웠다. 닥치면 다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남편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표정과 행동은 평소처럼 했지만, 내 속은 떨고 있었다. 안타까움과 애살스러움은 처음 얼마간이었다. 병원 생활이 가면 갈수록 말하지 않아도 손이 먼저 알아서 했다. 씻어주고 닦아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여동생이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들고 왔다. 한나절 동안 옆에 앉아 입에 넣어주고, 물수건으로 손도 발도 닦아주었다. 그녀 앞에서 엄마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종알종알 수다 속에 엄마가 웃었다. 그 시간에 나는 친정으로 갔다. 병원에서 대충 식사를 때우는 아버지의 생활이 궁기에 절은 듯했다. 가져간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집안 대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상을 차렸다. 엄마가 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속옷과 양말까지 챙겨두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여동생이 방금 간 듯 했다. 엄마가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숙이는 진정성이 있데이”라고. 나는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었다. 그럼 나는? 이라고 그때 장난처럼 말했어야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점점 아기가 되어가던 엄마는 내가 당신에게 소홀하다고 여긴 것이었을까. 추석날 아침이었다. 시댁 주방에는 사촌동서까지 차례상에 낼 음식 준비로 바빴다. 온 집안 식구들이 시끌벅적한 틈 사이로 남편이 나를 찾았다. 엄마가 위독하다고 했다. 앞치마도 벗지 못한 채 차에 올랐다. 친척들의 걱정이 길게 따라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널브러진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명절이라고 와 있던 삼촌과 숙모가 나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잠시 비빌 언덕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내가 결정해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모두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 가는 그 길이 서러웠다.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남동생 내외가 왔다. 며칠 머무는 동안 오롯이 엄마의 아들이 되게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가고 엄마가 말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옆 침대에서 같이 잤다고. 모두가 잠든 밤에 엄마는 아들이 옆에 앉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엄마 손에 떨어지더라고 했다. 엄마는 당신이 깨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울음을 삼켰다. 아들이 잠들고, 엄마는 밤새 이불을 덮어주고 또 덮어 주었다고 했다. 의사가 말했던 6개월이 지나고 2년도 더 지난 여름날, 엄마가 눈을 감고 입도 다물었다. 먼 길 떠나기 전에 어떤 말이라도 해 보라고 졸랐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다.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생각했을까. 말없이 사흘이 지나고 엄마의 맥박이 멈추었다. “희야, 아부지를 니한테 맡겨서 미안테이” 엄마는 그 말 한마디 하기가 그리 주저되었던가. 여름은 가고 또 여름이 가도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있는데. /윤명희 수필가

2025-07-30

명품 수난 시대

명품. 말이 좋아 ‘럭셔리’, 실은 골치 아픈 부담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명품을 들었다 하면,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게 되는 시대. 명품이 문제일까, 그 명품을 쓰는 사람이 문제일까, 아니면 명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일까. 사람에 따라 이름난 브랜드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욕망일 수 있다. 디자인이 예쁘니까, 품질이 좋으니까, 혹은 유명인들이 들고 다니니까. 각자의 판단이며 선택이다. 문제는, 명품을 가졌다고 해서 사람이 곧 명품이 되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명품이 사람을 감당하지 못해 수난을 겪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 부인의 명품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한다. 처음에는 ‘받은적 없다’고 했다가, ‘받았지만 빌렸었다’고 했었고. 이제는 ‘모조품’이란다. 결국, 공직자 재산으로 신고하지 않았거나 출입국 시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물품들이 문제가 되니, ‘ 명품이 아니고 가짜였다’는 해명이 등장했다. 웃지못할 코미디다. 이쯤되면 그 명품도 억울하겠다. 처음엔 공직자의 부적절한 수령으로 시비에 휘말리더니, 뒤늦게는 ‘그건 짝퉁’이라는 말 한 마디에 자존심이 짓밟혔다. 진품이든 모조품이든 처음에는 ‘있는 척’ 하다가, 나중엔 ‘없는 척’ 하기 위해 명품의 위신까지 끌어내렸다. 진품이든 아니든, 문제의 본질은 ‘품격’이다. ‘사람이 명품을 만드는가, 명품이 사람을 만드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답은 자명하다. 아무리 값비싼 명품을 걸쳐도 품위와 진정성 없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는 장식물에 불과하다. 반대로 검소한 옷차림 속에서도 곧은 인품과 당당한 태도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는 이미 명품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바로 그것이 ‘사람의 품격’이다. 명품을 소지한 사람이 아니라, 명품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가짜를 구입해서 오빠에게 선물했다가 자신이 필요해지자 오빠에게 빌려서 출국했다.’ 설명이 길다. 이렇게 발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된 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 그에게는 그 어떤 명품을 둘러줘도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 해외순방에서 버젓이 사용했었다는 허영과 기만에서 국민의 자존감은 여지없이 흘러내린다. 명품을 통해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 가방과 시계, 옷과 구두, 의상과 장신구. 명품이 늘어가면서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듯한 착각. 명품은 결국 소유자의 태도와 언행에 의해 평가받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명품을 걸치는 순간, 명품은 더 이상 명품일 수 없다. 명품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당신이 걸친 그 명품이 부끄럽다’고 말해야 한다. 명품의 가치는 가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걸치는 사람의 ‘품격’에 있다. 물건보다 사람을 보아야 한다. 명품이든 무명이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인간’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명품에 휘둘리는 시대, 사람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7-30

유치한 용비어천가

말을 한 사람 외엔 대부분의 국민이 낯이 뜨거워 실소를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려나 조선 같은 봉건시대 왕에게도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한다는 건 칭송이 아닌 결례가 될 게 뻔하다. “하늘이 내린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느냐.” “그가 이 시대에 나타났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축복이다. 5년은 너무 짧다. (대통령을) 10년, 20년을 해도 될 사람”…. 얼핏 조선 왕조 최고의 혼군(昏君)이라 불리는 연산군 앞에서 간신배의 전형인 임사홍이 한 아첨처럼 들린다. 그러나 천만에. 위에 인용된 건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한신대학교 석좌교수 김용옥과 이 정부 인사혁신처장 최동석이 한 말이다. ‘용비어천가’는 조선의 네 번째 임금 세종의 명령으로 그의 선조인 목조에서 태종까지 여섯 명 통치자의 행적을 기려 만든 서사시(敍事詩). 헌데, 사전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현대사회에선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아랫사람들의 언행을 “용비어천가 부르고 있네”라며 비꼬기도 한다. 한 대학의 석좌교수고, 차관급 공무원이라면 사인(私人)이 아닌 공인에 가깝다. 자기 생각엔 칭송의 대상이 세상 최고라 느껴져도 말은 가려 해야 하는 법이다. 특히나 칭송을 받는 상대가 정치·경제적 힘을 가졌을 때는 더 그렇다. 그런 금도(襟度)를 지키지 못한다면 자칫 나잇살 먹고 아부나 일삼는 철부지로 오해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의 힘은 장황함이 아닌 간결함에서 온다. 무엇이건 넘치는 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 우리 선조들은 그걸 과유불급이라 했다. 김용옥 교수와 최동석 처장에게 정중히 권한다. 이제 그러지 마시라. 대통령도 위와 같은 언사를 좋아할 리 없으니.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30

울릉도 ‘비곗덩어리 삼겹살’로 관광업 휘청…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기를”

비곗덩어리 삼겹살 파동으로 울릉도 관광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한 유튜버가 울릉도 여행 중 한 식당 종업원의 실수로 엉터리 삼겹살을 제공받은 후 이를 유튜브 영상으로 게시하면서 파문이 일었고, 사태가 겁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식당 주인은 어떻든 잘못은 자신의 책임임을 시인하고 유튜버에게 장문의 이 메일로 사과를 했고, 유튜버도 “사과를 받겠다”고 했다. 울릉군수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열흘째 많은 미디어 매체들이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울릉도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지 울릉도에서 당한 배신감을 고려하면 백배 천배 사과해도 모자란다. 울릉도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여행지이고, 연간 40만 명이 이곳을 다녀간다. 대다수 군민들은 관광객을 환영하고 실제 관광 분야에서 적잖게 종사하고 있다. 유튜버도 울릉도가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해 울릉도 관광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네티즌과 미디어의 행위는 “이때다”라며 마치 울릉도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한 종업원이 실수로 비곗덩어리 가짜 삼겹살을 제공한 일로 정녕 다시는 찾으면 안되는 곳인지…’ 를. 더욱이 군민의 대표인 군수까지 나서 진정으로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 일 아닌가. 울릉도는 대한민국 동해에서 유일하게 섬 하나가 군 단위의 지자체인 보석 같은 섬이다. 일본이 야욕을 드러내며 뺏으려는 민족의 섬 독도도 지키고 있다. 울릉도가 있기 때문에 한반도 남한 면적 보다 더 큰 바다(해륙)의 주권도 대한민국에 있다. 서·남해 수천 개의 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위를 갖고 있는 셈인 것이다. 물론 애정이 깊을수록 어떤 잘못된 일에 대한 배신감도 더 커질 수는 있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부분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관광지 울릉도 대다수 관광업 종사자들의 사기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현재 울릉도는 사면초가다. 경제 불황으로 관광객이 감소하고, 그러다보니 뱃길도 줄어들고 있다. 관광산업이 지속적이고 연쇄적인 어려움에 처하면 정주기반이 약한 울릉도의 미래는 뻔하다. 가장 우려스런 것은 주민들이 떠나는 상황이다. 계속 매를 맞으면 상처는 덧날 수 밖에 없다. 살아봐도 매력이 없고 경제적 어려움의 극복이 어려우면 울릉도를 떠나는 섬 주민들이 늘어나 섬을 비우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울릉군민들이 심기일전해 더욱 잘 해야겠지만, 악재가 자꾸 겹치면 의욕도 사라진다. 울릉도와 울릉주민들은 여전히 좋은 점과 잘하는 것이 더 많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지켜봐 주면 어떨까. 울릉도는 인구소멸지역이다. 한때 울릉도에서 오징어와 명태, 미역·김의 생산이 많이 생산될 당시에는 주민등록 인구 3만 명을 포함해 총 5만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수산자원이 고갈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군민들이 알게모르게 하나 둘씩 울릉도를 떠나 이제 전체 인구는 9000명 정도 밖에 안된다. 국민들이 애정과 사랑으로 울릉도를 다시한번 감싸안아 울릉주민들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일 할 발판과 계기를 마련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이때문에

2025-07-29

대세르비아주의 탄생과 식민지배 - 암흑기 세르비아

대 이슬람 코소보 항전 패전을 끝으로 세르비아에는 암흑의 시대가 찾아왔다. 세계 시대적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단절된 공간,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채 이슬람 생활양식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삶을 이어갔고, 어쩌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종교가 달랐음에도 데브시르메(Devsirme), 즉 전쟁포로 중 소년 징발과 공납이란 방식에 의한 직업군인 에니체리에 기꺼이 발을 들이며 전쟁을 수행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가 공격했을 때 이슬람 술탄을 위해 결사항전 했던 세르비아 병사들이었다. 이렇듯 지금에 와서야 유럽의 영역에 유입되지만, 당시에는 그저 이슬람제국 백성일 뿐이었다. 피지배민족은 봉건제도 아래 중앙과 분리된 느슨한 구조 속에서 충성을 다하며 질서에 편입된다. 종교가 비교적 자유로웠으니, 세르비아정교를 가지고서도 다른 이슬람민족과의 전투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슬람 연구자들 주장대로 이교도 강제 개종금지는 성경 코란의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일련의 이러한 조건 속에서 종교단체 집단 거주지이자 통제를 위한 집단 밀레트를 중심으로 제국에 순응하면서 세르비아민족이라는 영속성을 간직할 수 있었다. 정교회라는 믿음을 보장받으며 오스만트루크제국 압제에 순응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생활 수준도 다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오스만 지배를 받은 세르비아는 말 그대로 식민정책으로 문맹의 나라였다. 교육기관이라곤 세르비아에 대학교는커녕 중학교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두 개가 전부였다. 문화를 전파하는 인쇄소는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세르비아어조차 배울 수 없어 그리스어를 공식 언어로 정해 학교에서 교육할 정도였다. 이웃 몬테네그로는 더 열악했다. 1834년까지 어떤 교육기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세르비아 사람들은 합스부르크제국의 지배를 받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로 터전을 옮겨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19세기 초 슬로베니아에는 초등학교가 1천 개를 넘었다. 세르비아인 귀에도 이런 소식이 들렸을 법했다. 그러자 당연히 크로아티아로 가면 잘살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국경을 넘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도중에 목숨을 잃거나, 국경 수비대에 뇌물을 주고 겨우 성공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이동한 세르비아인이 크로아티아에 터전을 잡으면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훗날 배타적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자 살육의 발판이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 눈치 빠르고 발 빠른 인간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네 일제강점기처럼 제국에 빌붙어 자민족 고혈을 짜내는 인간도 생겼다. 메메드 소콜리에 의해 세르비아 정교가 활기를 띤다. 하지만 어떠한 관용에도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리스마저 오스만트루크제국 발아래 들면서 통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세르비아 정교회를 그리스 정교 교구에 예속시켜 버리자 세르비아인은 자존심이 상했다. 세르비아정교회는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오스만트루크 지지를 얻어 독립교구로 거듭나고자 종교의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1557년 목표에는 성공했으나,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지지하며 정당화하는 악수를 둔다. 일련의 이 사건에는 오스만제국에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메메드 소콜리가 중심이 되었다.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까지 해가며 술탄 쉴레이만의 수족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세르비아 페치교구가 부활했고, 자신의 동생 마카리우스를 세르비아 주교로 올려 부흥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엄격하게 바라보면 밀레트라는 종교조직 속에서 세르비아인 통제를 위한 과정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대신 산악지방이 대부분인 발칸반도 지형 상 트루크 귀족 지배에서 벗어난 농민의 패쇄적인 삶은 정체되기 마련이었다. 그러자 조직적인 항쟁은 오랜 세월 동안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세르비아정교라는 정체성은 꾸준하게 이어갔다. 하지만, 정복전쟁을 즐겼던 술탄 무스타파 2세(재위 1695~1703)는 정교회세력이 점차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페치 교구를 폐쇄해버린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세르비아정교회는 지지기반이 허약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종교 자체는 민중항쟁의 구심점에 있었지만, 이는 세르비아에 성인으로 추앙된 인물들이 가슴 뛰는 추억을 불러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정교에는 대략 58여 명의 성인이 기록되어 있는데, 네마냐왕조 시조를 비롯해 세르비아정교회가 독립교구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한 사바, 세르비아 최초 황제 스테판 듀산, 코소보 영웅 밀로슈 오빌리치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18세기에 시작된 세르비아 항쟁은 민족적 항쟁이 아니라 발칸반도 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주장처럼 신앙에서 파생된 순교자적 저항에 힘이 실린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7-29

나에게 말을 걸다

한없이 조용한 방 안에서 문득 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대답은 없었지만 그 말은 오래 묵혀 있던 무언가를 흔들었다. 최근 들어 이유 없는 짜증이 잦아졌다. 가족의 사소한 말에도 날이 서고, 혼자만 있고 싶고 가슴이 조여 오는 듯한 불안이 몰려왔다. 불면의 밤이 늘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율 신경이 망가졌다고 한다. 갱년기 증상과 겹쳐 신체와 정신이 동시에 흔들리는 시기라고. 그러자 억눌렀던 것들이 떠올랐다. 결혼 후 쉼 없이 달려온 시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나가 맞벌이를 시작했고, 두 아이를 키우며 부모 노릇에 며느리 노릇에 딸 노릇까지. 나는 언제나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최고’라는 기준에 나를 밀어 넣었다. 누구보다 잘해야 했고 누구보다 헌신해야 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지쳐 있었다. 쉼 없이 달려온 삶, 한시도 멈출 수 없었던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숨 가쁘게 달리기만 했지 단 한 번도 멈춰 서서 ‘나는 괜찮은가’ 되묻지 못했다. 정작 내 마음을 돌보는 일에는 무심했고 감정의 먼지를 털어낼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겉으론 살아내는 듯 보였지만 속은 점점 텅 비어갔다. 누구보다 나를 혹독하게 다그치고 몰아세운 사람도 결국 나였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실망 시키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이 켜켜이 쌓여 어느덧 내 안에서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한밤중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아픈 것도, 그동안 너무 참았기 때문이야.” 그 말이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내가 건넨 말에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그 한 마디에. 살면서 우리는 많은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배우자로서. 그러나 정작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드물었던가. 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해 마음이 다친 줄도 모르고 숨이 차도록 달리다 지쳐 쓰러져서야 아팠던 것을 깨닫는다. 나를 돌보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연민이며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몸이 아프면 쉬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잠시 멈춰야 한다. 그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숨 고르기다. 자기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일, 그것이 곧 치유의 시작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빠도 타인의 기대가 아무리 무거워도 결국 나를 지켜낼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절실히 깨닫는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하고 묻고, 밤에는 “수고했어, 오늘도 잘 버텼어.”라면 나를 토닥인다. 내가 살아온 루틴과 다른 방향이지만, 너무 흔한 말인 것 같지만 나쁘지 않았다. 거울 속 주름이 깊어진 나의 얼굴에도 “그래도 잘 살아 왔어.” 라고 말을 건넨다.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살기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나의 내면이 고요히 정돈되어야 타인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기대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결국 내가 나를 돌보는 만큼, 나는 타인에게도 따뜻한 존재로 설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같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하루가 아닌, 나를 위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유일하고 가장 소중한 책임감임을 깨달아 간다. 나는 이제야 삶의 중심에 나를 세워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텼던 과거의 나를 다독이고 이제 안간힘 대신 온기 어린 말로 나를 이끌어간다. 그 한마디는 내가 살아갈 다음 날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07-29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삼복더위의 절정인 중복이다. 여름의 초입부터 유난히 무더워져서 왠만한 불볕더위쯤이야 다소 적응이 된 듯하지만, 갈수록 기세등등해지는 폭염의 고삐는 언제쯤이나 느슨해지려는지 ‘온 세상이 시뻘건 용광로 속에 있는 것 같은(萬國如在紅爐中)’의 시구가 피부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폭염 아니면 폭우로 돌변, 온열질환과 수해를 위협하는 이상기후에 더욱 긴요하고 철저한 대비와 예방에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염천, 폭서가 무색할 정도로 한여름 밤을 뜨겁게 달군 다채로운 공연으로 잠시 더위가 멈칫해진 듯하다. 포항시 자원봉사자들을 위로하고 시민 화합을 위한 뮤직 감사콘서트 컨셉으로 ‘아세만사(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음악회가 다양한 레퍼토리로 성황리에 열린 것이다. 수개월 간의 준비와 연습을 거쳐 마침내 고품격의 열띤 공연이 펼쳐지면서 관객의 환호와 갈채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다양한 볼거리와 흥겨움의 열기로 가득한 버라이어티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고나 할까? 박진감 넘치는 퓨전국악을 시작으로 경쾌한 노래와 활달한 춤, 구성진 민요와 계면조의 시조창에 스토리와 붓글씨 퍼포먼스를 곁들인 시낭송, 힘차고 거침없는 난타와 목소리를 대신해주는 유장한 악기연주와 오케스트라의 폭포수 같은 선율, 그리고 풀잎 한 장으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이색적인 풀피리 연주 등이 때로는 잔잔하고 차분하게 펼쳐지다가 때로는 멋스럽고 흥겹게 풀어내며 무대와 객석을 잇는 감동의 울림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80여명의 출연진 모두 일상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봉사활동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봉사자들이라 주목된다. “저마다의 끼와 재능을 펼쳐 보이며/소박한 듯 수수하게/열의(熱意)인 듯 진지하게/흥겨움과 웃음을 솟게 하고/찬사와 감동을 자아내며/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네//···.//음악과 무도(舞蹈)가 피어나며 시가 흐르는 저녁/바람 따라 마음 따라 선율 따라 별빛 따라/흥겹게 어울리고 한결로 소통하니/도탑고 멋스러워라 한여름밤의 꿈빛이여!/나누고 베풀며 챙겨주고 함께하니/고맙고 아름다워라 상생의 울림이여!”-拙詩 ‘아세만사, 상생의 울림’ 중 지난 2017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올해 9회째로 열린 ‘아세만사’ 음악회는 자원봉사자들이 보유한 다양한 재능으로 스스로 참여하고 누리며 예능으로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기획됐다. 즉, 봉사활동 현장에서 나눔과 베풂으로 봉사의 가치를 빛낸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감사의 선율이라 할 수 있다. 소외되고 어두워진 사회 곳곳에 따스한 손길을 내밀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자원봉사자들은 소리 없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자원봉사는 일상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생각을 나누고 개인의 자존감과 지역의 연대감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익성을 지향하며 유무형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다. 그와 함께 지역의 다양한 재능을 가진 봉사자들을 네트워크화 함으로써 일상 속의 자원봉사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봉사자들에게 진정한 감사와 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아세만사’ 음악회가 아름다운 봉사문화로 지속되기를 축원해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29

세상은 변하고 기업수명은 짧아진다

더 이상 한국에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없다. 미국은 더 앞에, 중국은 우리를 추월하여 앞에 섰다. 1990년대에 선진국(미국, 일본, 독일)의 첨단 기술에 뒤지고 중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저가 생산 사이에 끼어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세계 전자업계의 리더였던 소니(SONY) 등 기술력, 브랜드, 고부가가치 면에서 일본에 뒤처졌지만 중반에 들어서면서 삼성이 소니를 추월하고 LG전자마저 경쟁력에 앞섰다. 2000년 3월, 필자가 동경 아키하바라 전자 도시에 갔을 때 삼성전자 제품은 진열대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소니는 전자업계 미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디지털 전환에 실패하는 사이 삼성은 반도체, LCD, 휴대폰 시장에 초점을 두고 급성장하며 글로벌 선두에 섰다. 하지만 영속하는 기업은 없다. 언제든 퇴화할 수 있는 게 기업의 생리다. 경영을 못하여 망하기도 하지만 산업이나 소비자, 시장의 변화를 못 따라가도 영속 기업은 어렵다. 외부의 경제위기나 사회적 불안정성도 기업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기업 수명은 지속적으로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35년 기준으로 90년이던 것이 1975년 30면, 2015년에 15년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기업 수명이 짧아지는 이유는 산업 재편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할 당시 휴대폰 세계 최강자는 노키아였다. 노키아가 시장에서 사라지기까지 불과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계 1등도 변하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하지 못하는 시대다. 철강업에서도 일본을 앞서던 한국 기업이 중국에 밀려 경쟁 상대에서 멀어지는 흥망성쇠의 흐름이 있다. 기업의 실적을 분석할 때 매출과 영업이익 수치만 볼 것이 아니라, 신사업 분야에서 올린 매출과 이익을 따로 봐야 한다. 미래 먹거리가 계속 준비되지 않는 기업은 당장은 건재해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도 기업 평가를 할 때 총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등의 재무 재표만 보는 것이 아니다. 기업평가에서는 조직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적 성과 관리 도구인 BSC(Balanced Scorecard)를 사용한다. BSC는 재무 지표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비재무적 지표를 포함한 재무, 고객, 프로세스, 학습과 성장 등 4가지 관점에서 조직 성과를 균형 있게 평가한다. 재무적 관점은 조직의 수익성, 성장성, 생산성 등을 측정한다. ROI, 매출 성장률, 순이익율 등이다. 고객 관점은 기업의 제품 만족도, 고객 충성도, 시장 점유율 등기업의 신뢰 수준을 보는 것이다. 내부 프로세스 관점은 생산 리드타임, 불량률, 공정 개선지표, 조직 내부 운영 효율성 등을 평가한다. 학습과 성장의 관점은 직원 교육 시간, 조직문화 지표, 직원 만족도 등 인적 자원개발과 조직 역량 강화도 측정하는 것이다. 이런 듯 기업의 수명은 사회와 시장 변화를 예지하고 전략적 미래 비전 설정과 지속적 도전만이 영속 기업 여부를 판가름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29

‘타운홀미팅’ 일정 TK는 언제 잡힐까

이재명 대통령은 광주·대전에 이어 지난 25일 부산에서 가진 세 번째 타운홀 미팅 자리에서 “지방 발전전략을 부산·울산·경남을 중심으로 빠르게 시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침 북극 항로가 활용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기 때문에, 부산이 북극항로 개척에 따른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연내에 해양수산부가 이전하는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부산시민들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실 수 있는데 우리 정부에서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겠다”면서 “좌초되지 않도록 하는 게 첫 번째고, 지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두 번째”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부산에서 언급한 북극항로 개척과 신공항 건설은 대구·경북(TK)지역에서도 겹치는 현안이다. 북극항로 개척은 경북도가 일찌감치 기획하고 있는 사업이다. 경북도는 지난해부터 북극항로 상용화에 대비해 포항 영일만항을 ‘거점항만’으로 건설하는 내용의 용역을 발주해둔 상태다. 국제컨테이너 터미널을 갖춘 영일만항은 북극항로 ‘관문항’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TK신공항사업은 현재 가덕도 신공항과 마찬가지로 첫 삽도 뜨기 전 개항 연기 가능성이 제기된다. 내년부터 당장 토지 보상에 들어가야 하지만, 재정 문제에 부딪혀 한 발짝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은 “만약 연말까지 건설비 조달계획이 확정되지 못하면 내년에 예정된 토지보상과 기본설계의 지연이 불가피해 2030년 개항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광주에서 열린 첫 번째 타운홀 미팅에서 광주 군공항 이전 해법을 찾기 위해 대통령실에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도록 지시했다. 그 후 대통령실은 곧바로 정부·지자체가 참여하는 6자 협의체를 가동했다.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의 취지와 목적은 TK 신공항사업과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TF는 그동안 광주시가 추진했던 소음도 측정, 이전지역에 대한 보상 규모와 방안, 이전부지 개발계획과 관련한 자료를 국방부·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으로부터 넘겨받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TF는 8월중 첫 회의를 연다고 한다.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는 이 대통령이 직접 챙길 것으로 보여 건설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TK지역으로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다. 대구시는 최근 민주당 대구시당에 이어, 국민의힘 대구시당과도 정책협의회를 가지고 ‘TK지역 현안의 국정과제화’를 건의했지만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산, 광주처럼 TK지역이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며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는 ‘타운홀 미팅’ 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 다음 타운홀 미팅 장소로는 대구를 비롯해, 인천, 울산, 서울 등지가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위상과 대구시장 공석인 점을 감안할 때, TK지역이 뒷순위로 밀릴 가능성은 다분하다. 이 지역 민주당 시·도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의 역할이 기대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29

중국산 김치의 습격

중국산 김치하면 한국인에게는 충격적인 기억들이 있다. 2021년 3월 중국의 한 김치공장에서 직원이 알몸 상태로 김치를 절이는 장면이 공개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비닐을 씌운 대형수조 안에서 상의를 벗은 한 남성이 배추를 절이는 모습은 한국인에게 큰 충격으로 각인됐다. 중국산 김치는 이보다 앞선 2005년에도 기생충 알이 검출돼 파문을 일으켰고, 2013년에는 병원성 대장균이 검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산 김치가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노출되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자들이 중국산 김치를 기피하는 현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지금은 중국산 김치가 국내 외식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게 되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에 수입된 외국산 김치는 거의 전량 중국산 김치로 16만3000t에 달했다. 이는 작년 동기보다 10%가 늘었다. 이 상태로 이어질 경우 연말엔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산 김치는 비위생적 이미지에도 이미 국내 외식시장을 장악하고 장차는 일반가정 내 식탁까지 넘보는 상태에 도달했다. 이유는 국내산 김치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월등히 앞선 때문이다. 중국산 김치 가격은 국내 김치의 5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최근 들어 폭염 등 이상기후로 배추 작황이 부진하고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외식업소 대부분이 중국산 김치로 대체하려는 분위기라 한다. 경제성이 있는데다 간편함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까지 겹쳐 이 상태로 방치한다면 한국산 김치를 구경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이 무너질 판이다. 적절한 대책이 있어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9

뻐꾸기 탁란

뻐꾸기가 꾀꼬리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알은 꾀꼬리알보다 일찍 부화한다. 부화하지 않은 꾀꼬리알은 일찍 부화한 뻐꾸기 새끼에 의하여 둥지 밖으로 밀려나 추락하여 깨진다. 둥지의 주인인 꾀꼬리는 뻐꾸기를 자신의 새끼로 생각하고 열심히 키운다. 자연의 섭리로 치부하기엔 뭔가 찜찜한 장면이지만, 어느 숲속 나무 위의 꾀꼬리 둥지에서 조용히 벌어지기만 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세계에도 ‘탁란 형 무임승차’가 판을 친다. 알고도 속는 세상. 욕망, 정치, 종교의 바닥이 그러한 곳이다. 당신의 욕망은 진정 당신의 것인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언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욕망은 누군가가 당신의 정신적 둥지에 몰래 낳은 ‘타인의 욕망이라는 알’일지 모른다. 유튜브 알고리즘, 넷플릭스 큐레이션은 당신의 감정, 욕망을 조작하여 ‘내가 원해서 샀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주체적 소비가 사라진 공허한 소비의 현장이다. 정치의 영역은 어떤가. 자기 책임과 정체성을 숨긴 채, 타인의 시스템이나 신념, 노동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이익을 실현하는 ‘탁란 형 권력’. 이것은 권력자가 기존 도덕, 종교, 민족주의 담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슬쩍 얹어 다수의 대중이 그것을 ‘자기 것’이라 믿고 행동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기존의 가치라는 둥지’에 ‘전혀 다른 목적의 알’을 몰래 넣는 것이다.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평생 열심히 투표하듯이 지배층이 만든 세계관을 피지배자가 스스로 내면화하여 실천하는 노예도덕의 현장이다. 종교라고 별반 다를까? 대한민국의 모든 종교는 ‘샤먼이라는 뻐꾸기 탁란’일지 모른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등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그 핵심에는 ‘샤먼이라는 근본 뿌리’가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부처, 예수의 본래 면목은 둥지 밖으로 밀려나 사라졌다. 뻐꾸기는 오직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뿐이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지를 살펴보면 탁란 형 신앙인지 아닌지는 단번에 알 수 있다. 탁란 형 성전은 거짓 사랑과 헛된 자비라는 장막이 드리워진 공사 현장이다. 위 세 곳의 현장들을 진실하게 들여다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의 욕망’을 소비할 수 있고, ‘바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참된 기도’를 할 수 있다. 굳이 칼 융을 빌리지 않더라도 탁란 형 인간은 인간의 ‘자기 됨(Selfhood)’에 실패한 자다. 무의식 속 타자의 그림자가 자기를 덮어 그것이 나의 것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 자비, 우정. 부모, 자식, 시민, 근로자, 신자, 애국자라는 개념이 내 새끼처럼 품고 사는 ‘타인의 알’ 이라면 믿겠는가. 안전한 가짜 자아에 속아서는 안 된다. 평생 단 한 번도 뻐꾸기를 의심한 적이 없는 꾀꼬리여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내 안의 알’은 누구의 것인지 살펴보자. ‘탁란된 것들’은 나의 자아를 점유하고 욕망, 윤리, 감정의 방향까지 설정한다. 해체하고, 폭로하고, 새로운 주인의 도덕을 찾아 떠나보자.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두려울지 몰라도 어느 순간 평화가 찾아와 그대를 다스릴지니. /공봉학 변호사

2025-07-28

나라 예언직

‘예언직(豫言職)’이란 단어가 있다. 가톨릭에서 주로 쓴다. 가끔 ‘예언자직(豫言者職)’이라고도 한다. 국어사전에는 예언직, 예언자직이 없는 대신 ‘예언’을 두 뜻으로 적었다. 첫째,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함’을 뜻한다. 둘째, 기독교에서 ‘신탁(神託)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또는 그런 말’이라 했다. 가톨릭의 예언직은 국어사전 예언의 둘째 뜻에 ‘직’을 붙인 게 주된 뜻일 것이다. 신탁자(神託者) 그리스도의 세 직분 곧, 예언직‧사제직‧왕직 중 예언직은 신자들에겐 으뜸 직분이라 생각된다. 1962~1965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황청에서 열렸다.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하여 바오로 6세 때 마무리 지었다. ‘교회의 현대 사회와의 소통과 쇄신’을 목표로 한 공의회는, 16개 문헌을 반포했다. 그중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제2장 ‘하느님의 백성’에서 ‘특히, 신앙과 사랑의 생활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산 증거를 널리 전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입술의 열매를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그 예언 직에 참여한다(히브13,15) 하였다. 제4장 ’평신도‘에도 ’위대한 예언자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실 때까지 당신의 예언직을 수행하시되, ····. 성직계를 통해서뿐 아니라 또한, 평신도들을 통해서 성취하시는 것이다‘라 했다. 또, "‘···.계속 회개하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암흑의 세력과 악신들을 거슬러“(에페6, 12) 싸움으로써, ···. 이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하겠다’라고 하였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도 참여한다.” 이는 특히,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해진 믿음을 온전히 지키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때, 평신도이건 성직자이건 간에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라 했다. 결국, 예언직은 ‘믿음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고, 성심 다해 그 증인이 되는 직무’라 요약되겠다. 가톨릭이 사도 때부터 순교자의 역사로 빛나는 것은 바로, 신자들이 목숨 걸고 예언직 삶을 산 결과가 아닐까. ‘예언직’을 국가에 접목하면, ‘나라 예언직’이 될 것이다. 가톨릭이 예언직 삶으로 빛나듯. 국민도 나라 예언직 곧 공정한 주권자로 산다면 얼마나 밝을까. 특히 언론, 정치, 사회, 문화, 교육, 학계 등 지도층의 나라 예언직 삶이 절실하다. 최근 나라 예언직 삶의 모범은, ‘모스 탄 미국 제6대 국제 형사사법 대사’란 생각이 짙다. 주류 언론, 법조인, 지식인, 종교인, 정치인, 관료들이 못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해냈으니까. 우리나라는 헌법 제1조가 밝힌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도 국민에게서 나온다. 또,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한다고 그 전문은 밝힌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를 위해 나라 예언직을 살아내어 자유민주적 질서를 높여나가야 한다. 즉, 국민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지지를 선언하고 그 증인으로 산다면, 나라가 융성하여 국리민복으로 빛나리라 믿는다. /강길수 수필가

2025-07-28

그땐 누가 이스라엘을 도울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 비극적 상황 속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사 직전의 딸에게 줄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구하러 갔던 가자 지구 주민이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 맞은 것. 마구잡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 지구엔 모든 게 모자란다. 전기와 식수가 공급되지 못하고, 생필품 부족은 이제 일상이다. 세상에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연명의 마지막 수단인 원조식량 배급까지 막아섰다. 최근 유엔 세계식량계획은 ‘가자 지구에서 9만 명의 아동과 여성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고, 대부분이 긴급한 치료를 필요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122명이 굶어 죽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가 보낸 식량의 배급을 방해하는 이스라엘의 횡포는 멈출 기미가 없다. 땅에서 나눠주면 총격을 가하기에, 밀가루 포대를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원조하겠다고 나선 국가도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요르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거기에 하마스가 사용할 무기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불허했다.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적이 굶는 것까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한다. 묻는다. “전쟁과 무관한 팔레스타인 아이들까지 당신들의 적인가?” 세계 28개 나라가 ‘비인도적인 처사를 멈추라’고 이스라엘에게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소 귀에 경 읽기다. 2차대전 때 이스라엘인들은 히틀러에 의해 현재의 팔레스타인과 유사한 고통을 겪었다. 그때 유대인을 곤궁에서 구한 건 연합국이다. 가자 지구에 대한 핍박이 앞으로도 지속된다고 가정하자. 향후 이스라엘이 위험에 빠졌을 때 누가 나서 그들을 돕겠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28

'옛날 사람'

세월이 참 빠르다. 어수선한 시국 따라 시간은 더 가파르게 흐른다. 안후이성, 난징에 갔다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주일 훌쩍 넘겼다. 다녀오고 나서는 한 이틀 끙끙 앓았고, 그 사이에 이효석 축제에 학술대회 지원 못 해준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토요일에는 탈북작가와 함께 하는 ‘나도 작가다’ 창작교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난 해에 이어 두번째,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새롭게 하고자 했다. 북한에서의 삶의 문제는 나의 중요한 문학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 사이에 어느 아침에 갑자기 혈뇨가 빨갛게 흘러 이곳저곳 병원을 알아보기도 했다. 건강하시던 부친은 돌아가실 때까지 암을 무려 네 개나 앓으셨는데, 그 중 하나가 신장암이셨다. 일요일에는 ‘길 위의 인문학’. 폭염 속에서 나와주신 분들 서른다섯 분은 될 것 같은데, 서촌 ‘이상의 집’에서 ‘윤동주 하숙집’ 지나 ‘윤동주 문학관’, ‘환기 미술관’으로 순례를 한다. 지금 서울은 폭염. 저녁에는 한증막이요, 아침부터 불볕더위다. 수화 김환기의 파란 추상화 앞에 서자 이제야 마음이 차분함을 얻은 듯한 느낌. 그러자 이제서야 중국 떠나기 직전 집에 배달되어 온 소포 하나가 생각난다. 영문 모를 큰 박스가 부쳐져 왔는데, 최근에는 ‘북아일랜드’에서 청계천 책들 주문한 것 외에는 박스가 올 일이 없다. 어렵사리 무거운 소포를 들여놓고 열어보니 금방 밭에서 따낸 것 같은 옥수수가 한가득. 이게 뮌가, 하면서도 금방 떠오르는 얼굴은 강원도 정선 사는 시인 친구, 시집 ‘사랑의 환율’을 펴낸 이다. 갓 밭에서 따낸 푸른 잎 옥수수를 보기 얼마 만이던가. 옥수수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옛날 대전 변두리 태평동에 59평 밭을 어렵게 장만하신 아버지가 옥수수, 감자, 깨 같은 농사를 지으셨던 일. 어렸을 때 참외밭 같은 작물 가꾸던 솜씨로 어느 해 옥수수가 얼마나 탐스럽게 다닥다닥 열렸는지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고는 이상의 수필 ‘산촌여정’에 등장하는 옥수수. “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 부딪치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여기서 ‘갑주’란 갑옷과 투구. 옥수수들 늘어서 있는 것 보고 군인들의 관병식, 곧 열병식을 떠올리는 작가 이상의 ‘문명스러움’이라니. 나면서부터 쭉 시골에 살아 ‘옛날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은 얼마나 귀한가.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으로 이민 가 억척스럽게 새 삶을 개척해 오면서도 습속이나 가치관은 옛날 60년대나 70년대나 80년대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귀한가. 서울을 경험하고도 옛날 고향으로 돌아가 잃어버릴 수도 있을 ‘옛날 스러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귀하디 귀한가. 손수 농사 지은 것을 멀리 있는 사람 생각나 우체국을 찾아 보낼 수 있는 ‘옛날 사람’을 생각하면, 하루하루 번잡하기만 한 서울의 생활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이냐. 그러고 보니, 나는 저 논산에 내려가 농사 지으며 살아가는, 북에서 떠나온 귀한 옛날 사람 작가도, 한 분, 알고 있었다. 논산 사람의 그 묵직한 ‘옛날스러움’이 더없이 귀해 보이는 날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7-28

“닫힌 문 하나가 생명을 살립니다 ”

“왜 문을 닫지 않았을까….”한겨울 이른 아침,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안타까운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방화문이 열려 있어 계단실을 타고 연기가 빠르게 상층부로 퍼졌고, 그 결과 심정지, 추락사 등 크고 작은 인명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수원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1층에서 발생한 화재가 연기로 확산되며, 10층 주민이 끝내 귀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공통으로 방화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방화문은 단순히 화재를 막는 문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이 화재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지켜주는 ‘생명의 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아파트에서는 여전히 방화문이 고정장치로 열려 있거나, 도어스토퍼로 눌린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일부 단지에서는 ‘휴즈 타입’처럼 화재 시 실제로는 연기를 막지 못하는 장치가 설치돼 있어, 평소 점검과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소방청과 전국 소방서에서는 ‘방화문 닫기 안전 문화 운동’을 본격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 아파트 대피계획 세우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국 계단실형 아파트의 방화문 유지‧관리 실태를 일제 점검하고, 입주민과 관리사무소 대상 맞춤형 컨설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계단실형 아파트의 경우 구조상 피난 통로가 단일 계단실로 제한되기 때문에, 방화문 하나만 열려 있어도 굴뚝 효과로 인해 유독가스가 빠르게 위층까지 퍼지고, 이는 치명적인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장비도, 복잡한 훈련도 아닙니다. 바로 “평소에 방화문을 잘 닫아두는 생활 습관”입니다.   우리가 함께 실천해야 할 세 가지만 지켜주세요! 방화문은 항상 닫아 두기– 연기와 불꽃을 차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입니다. 방화문 자동 폐쇄 장치 정상 작동 여부 점검– 매월 한 번, 체크리스트를 작성하여 관리사무소 직원과 함께 확인해 보는 게 좋습니다.   방화문 앞에 물건 쌓아두지 않기– 피난 경로를 막는 작은 물건이 생명줄을 끊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을 넘어,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방화문 하나가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에 따라 화재 상황에서의 생사(生死)가 갈립니다. 대피계획 수립, 방화문 관리 실태 점검, 그리고 생활 속 실천 운동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스스로 안전을 지켜가는 문화 운동입니다. 지금, 우리 집 방화문은 닫혀 있습니까? 오늘 하루, 현관문을 나서기 전 방화문을 꼭 한 번 확인해 주세요. 닫힌 문 하나가, 소중한 생명을 지킵니다.

2025-07-28

그럴듯한 포장이 인사 혁신은 아니다

말 한번 시원하게 한다 싶었다. “문재인 같은 인간은 무능하다.” 그뿐 아니 다. “문재인은 비열한 사람”, “문재인이 오늘날 우리 국민이 겪는 모든 고통의 원흉이다.” 최동석 신임 인사혁신처장이 과거에 했다는 발언이다. 그의 평가가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표현이 너무 거칠다. 야당의 반발은 약과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윤건영 의원은 SNS에 “화가 많이 난다”라며 “치욕스럽기까지 하다”라고 비판했다. 최 처장의 말에도 새길 만한 대목이 없지 않다. 그는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보은 인사’ 비판이 일자, “인사는 ‘코드인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임명권자와 성향이 비슷한 인사를 기용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성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완전히 부정만 할 수는 없다. 그는 “문재인 정부 장·차관들 명단을 쭉 봐라. 다 문재인 같은 무능한 인간들”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4년 단식 농성 중단을 설득하러 광화문에 갔다가, 갑자기 자신도 동조 농성을 시작했다.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다. 남의 눈을 의식한다.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돌아서자마자 다른 행동을 하는 일이 잦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연이은 타운홀 미팅에서 현장 민원을 단호하게 잘랐다. 그는 “제가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일선의 개별 민원을 처리할 권한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SPC 사고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추궁했다. 프레스에 팔이 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매정해 보이고, 당사자는 섭섭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게 맞다. 지도자가 가질 태도다. 이런 두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최 처장의 언행은 너무 나갔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 원천 배제 7대 원칙’을 “아주 멍청한 기준으로 나라를 들어먹었다”라고 비난했다. 위장전입, 병역 기피, 불법 재산 증식, 탈세, 연구 부정행위라는 기존 원칙에 성범죄와 음주 운전을 더한 것이다. 그는 “일꾼이 몸 튼튼하고, 일 잘하면 되지”라고 했다. 이게 단순히 도덕성으로만 치부할 문제들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익을 해치고, 법을 어길 수 있는 사람에게 공직을 맡겨도 되나. 도덕성이 없으면서 유능한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그는 특히 성 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다. 문 정부가 성범죄를 인사 원칙에 추가한 걸 비난했다. “예쁜 여자는 얼굴값 한다”라면서 “된장끼 있는 여자가 명품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해 기획’됐다며, “점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했다. 당시는 안희정 충남지사·오거돈 부산시장까지 민주당에서 성추행 사건 연거푸 터질 때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반성문을 요구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비굴한 짓”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조 전 장관에게는 “정치하라. 재능을 썩힐 필요가 없다”라고 부추겼다. 그러다 조 전 장관이 조국혁신당을 만들자 태도가 돌변했다. “조국은 이론도 없고, 과거도 숨기고 있다”, “금수저의 ‘있어빌러티’ 때문에 속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대단한 철학이 아니다. 이재명에게 유리하면 선(善)이고, 그와 적대하면 악(惡)이라는 이분법이 뚜렷하다. 그는 이 대통령이 “하늘이 내린 민족의 축복이자 구원자”라며, “5년은 짧다. 10년, 20년은 해야 한다”라고 찬양가를 불렀다. 왜 발탁됐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강선우 의원에 관한 질문에 “TV도 없고, 신문을 안 본다”라면서 피하고, “도덕성 관련된 것을 공개적으로 청문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교육정책의 기본도 모르는 교육부 장관,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나. ‘코드인사’를 인정하더라도,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진영주의라면 곤란하다. 몰(沒) 도덕이 대한민국의 공직자상일 수는 없다. 더구나 그의 역할이 공직을 전리품으로 나누는 것을 인사 혁신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위험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27

포항과 포스코, 숙명적 공진화(共進化) 관계

필자는 오늘의 포항을 보면서 미국 유학 당시 한동안 머물렀던 피츠버그시를 떠올린다. 포항의 자매도시이기도 한 피츠버그시는 철강 도시로 불리며 번성을 구가했으나 1970년대부터 신흥공업국들에 밀려, 불과 10여 년 만에 인구 70만 도시에서 30만 도시로 쇠락했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녹슨 도시의 오명을 벗고 세계적인 첨단바이오·문화도시로 거듭났다. 이는 민관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수십 년에 걸친 ‘르네상스’ 운동을 벌이며 도시 재개발·재창조에 나선 노력의 결과였고, 무엇보다 혁신과 포용, 인재와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항은 지금, 철강산업의 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경제 전반이 철강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철강 공단 출근자 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포스코가 기침하면 포항경제는 감기에 걸린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필자는 피츠버그에서 포항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항은 포스코라는 세계적 기업과 대학, 그리고 과학기술연구 기반이 탄탄해 잠재력이 풍부한 도시이다. 포항의 산학연민관이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도시 재개발에 나선다면 피츠버그에 버금가는 도시 재창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포항과 포스코는 반세기 넘게 한 집단이 진화하면 그와 연관된 집단도 함께 진화하는, 숙명적인 공진화(共進化) 관계였으나 언제부턴가 둘의 관계가 느슨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항과 포스코가 공진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일이다. 포스코는 포항시의 산업구조 전환과 탄소중립, 디지털 혁신 등에 있어 핵심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수소·이차전지·신소재 등 포스코의 산업전환 노력에 포항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포항과 포스코는 지금부터 새로운 공진화 모델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동반자에서 미래의 파트너’로, 더욱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한 공진화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이는 포항시·포스코·시민사회·전문가가 함께하는 상설협의체가 되어야 하고, 환경·안전·일자리·교육·사회공헌 등 의제별 분과 운영 등을 통해 실질적 소통을 강화하면서, 공진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포스코는 청년창업·교육·복지·지역소멸 대응 등 포항시의 미래 전략사업에 대한 공동투자 참여, 수소환원제철과 친환경 소재 등 자사의 미래 사업들에 대한 포항투자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둘의 공진화는 단지 포스코의 노력만으론 요원할 것이다. 포항시와 시민들의 노력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 이에 포항시는 ‘포스코와의 파트너십 행정’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정책공유 플랫폼 운영 등을 통해 포스코 계획과 시정 목표의 교류, 공동 기획도 가능할 것이다. 환경·안전에 대한 협치 역량도 더 키워야 한다. 과학적 데이터와 정책 대안을 가지고 협의하고, ‘산업도시의 숙명’을 인정하면서도 시민 건강권 보호에는 철저해야 한다. 지역사회도 기업에 대한 균형된 시각으로 잘못은 비판하되, 지역 공헌에 대한 평가는 공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포항시와 시민, 포스코가 새로운 공진화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간다면, 지금의 느슨한 관계를 넘어 미래형 지역-기업 모델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포항과 포스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2025-07-27

익숙한 방향을 의심하기

오키나와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지난하고 숨 가쁜 일상에 너무도 지쳐있던 터라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휴가를 구상하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주 빤한 이미지였다. 맑은 바다, 따뜻한 햇살, 해안가에 나 있는 도로를 타고 창문을 연 채 선선히 들어오는 바닷바람을 마시며 드라이브하는 내 모습. 머릿속에서는 정말 완벽한 그림이 그려졌다. 문제는 그 낭만을 만끽하려면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방향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렌터카 업체 직원의 겁 주기 기술은 실로 대단했다. “사고가 얼마나 자주 나는지 몰라요.” 말끝마다 ‘진짜예요’를 붙이며, 친히 사고 현장의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부서진 범퍼와 찌그러진 번호판을 보기만 해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일본 운전 실전판!’ 제목을 단 유튜브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본 성과가 빛을 발하길 바라며, 야심 차게 시동을 걸었다. 운전대는 오른쪽에 있고 차는 왼쪽 차선으로 달려야 하는 상황. 좌회전을 하기 위해 숨을 길게 내쉰 순간, 내가 켠 건 방향 지시등이 아니라 와이퍼였다. 비는 오지 않았다. 오키나와의 맑은 하늘 아래, 내 차 앞 유리엔 와이퍼가 분노에 찬 듯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렁뚱땅 좌회전을 마치고 와이퍼를 끄려는데 이번에는 방향 지시등이 켜졌다. 닦을 것도 없는 유리를 열심히 닦아대고 회전할 일 없는 도로 위에서 차는 홀로 신호를 남발하는 중이었다. 문득 직원이 사고 현장을 보여주며 덧붙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출발하는 순간 각이 다 나와요. 아, 저 사람 큰일 나겠구나.” 그의 눈에 나는 어떤 각을 그리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허둥지둥 도시를 헤쳐 나갔다. 목적지에는 도착했다. 물론 와이퍼는 그날 하루 종일 내 방향지시등 노릇을 했지만. 도착한 뒤 본 차는 출발했을 때보다 어쩐지 더 반짝반짝해 보였다. 처음엔 우습기만 했던 그 실수가 시간이 지나자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한국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관성적으로 운전을 하던 나는 낯선 도로에서 맨 처음 운전대를 잡고 연수를 받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끊임없이 “오른쪽 어깨를 중앙선에, 오른쪽 어깨를 중앙선에...” 하며 중얼대고, 신호등도 제대로 보지 못해 급정거하기 일쑤. 아마 이날의 운전대로 면허 시험을 봤다면 나는 초고속으로 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늘 익숙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길 원한다. 몸이 기억한 방향과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분명한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모든 익숙함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것도 사실이다. 살면서 그런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그건 낭패라기보단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익숙함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감각에만 기대어 방향을 정해왔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기회. 익숙한 것들이 흔들릴 때 비로소 나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당황하고 머뭇거리고 엉뚱한 버튼을 누르며 실수하는 나. 더 잘하고 싶어서 안달 내고 그러다가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남발하는 평소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일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러나 운전에서만은 나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기로 했다. 수없이 머뭇거렸지만 결국 전진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와이퍼와 방향 지시등을 헷갈리는 모습이 멀리서 봤을 때는 조금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어쨌든 가고 있으니까. 핸들을 쥐고 힘차게 엑셀레이터를 밟는 마음은 스스로 분명하게 아는 것이니까. 말은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여행 내내 긴장과 조마조마함의 연속이었다. 역주행을 간발의 차로 피한 순간이 몇 번 있었고 위험천만한 길로 들어 굉장한 사고를 낼 뻔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점차 새로운 운전법에 익숙해지게 됐다. 결국 어떤 사고도 내지 않고 제시간에 무사히 렌터카 업체에 차를 반납할 수 있었다. 자동차 키를 직원에게 건네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것은 덤. 손을 번쩍 치켜들고 속으로 외쳤다. 해냈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이 아슬아슬 위험천만했던 순간이리라. 그렇게 나는 익숙한 방향을 의심하며 그 속에 숨어 있던 무심함과 안일함을 깨트릴 수 있었다. 그래,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용기를 얻은 것을 이번 휴가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해 두자. 그렇게 뿌듯함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한 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공항 주차장에 주차된 그리운 나의 차에 올라타며, 나는 또다시 깜빡이 대신 와이퍼를 켰다. /문은강(소설가)

2025-07-27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을 떠나보내며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Black Sabbath’의 보컬리스트이자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자체를 완성시킨 장본인 중 한 명이었던 위대한 뮤지션, 오지 오스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대한 아티스트의 죽음 앞에 적당한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의 죽음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그가 불과 세상을 떠나기 17일 전에 올랐던 무대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그의 마지막 무대라고 미리 알렸다. 마치 마계의 왕좌를 연상시키는 의자에 앉아 노래 몇 곡을 부르기도 했던 그는 세상을 향해 작별 인사를 하며 이보다 더 멋진 마지막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그는 그가 다스리는 어둠의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며 끝인사를 남기는 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우리 주변의 죽음을 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고 병들어 요양원으로 떠난다. 고통스런 육신 속에서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오랫동안 느끼며 크게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촛불 하나가 꺼지듯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아니면 뜻밖의 순간에 갑작스레 차에 치이거나 높은 곳에서 실족을 해서, 아니면 어떤 재난에 휘말려 인사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지워지고 만다. 아니면 절망 속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떠나는 마당에 몇 마디라도 가까운 이에게 남길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한 일은 대부분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행해지고 묻힌다. 마약과 기행으로 얼룩진 부분들이 있지만 어쨌거나 뜨겁게 살아낸 그의 76년 인생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정말 부러운 것은 희미하게 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 거대한 폭죽 하나를 쏘아 올리고 떠날 수 있었던 그의 마지막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은 유일무이한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들의 인생을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낸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마지막은 어째서 단지 그에게만 허락된 것일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고령이 되어 질병과의 싸움을 지속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되었을 무렵, 누구나 보편적으로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이들과 자신이 살았던 세상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누군가는 오지 오스본처럼 화려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조촐하고 소박한 마무리를 꿈꿀지도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나는 이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과 세상에 기여하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조용히 죽음의 곁으로 걸어가겠다고 선언하는 자리를 갖는 일이 흔해진다면 어떨까. 어차피 죽은 다음이라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모여 육개장과 편육을 집어먹곤 하는 장례식 보다야 훨씬 의미 있고 멋진 일일 것 같은데. 영화 ‘타짜’에 등장하는 인물인 ‘아귀’는 자신의 숙적인 ‘평경장’의 죽음을 전해 듣고 말한다. “허허, 그 양반 갈 때도 예술로 가는구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때때로 방만한 삶을 살았지만 어쨌거나 헤비메탈이라는 에너지 넘치는 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공이 있는 예술가이다. 그런 업적에 걸맞게 정말로 예술로 떠났다. 그의 죽음에 앞선 두 번의 죽음이 떠오른다. 한 명은 그의 벗이자 음악적 동반자, 개인적으로는 그가 가장 능숙하게 다룬 ‘악기’라고 할 수 있는 천재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의 죽음이다. 랜디 로즈는 오지 오스본의 곁에서 수많은 전설적인 연주들을 선보이다 1982년 경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른 한 명은 오지 오스본은 모르겠지만,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아시아의 한 국가에서는 그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천재적인 음악적 역량으로 전설로 남게 된 인물이다. 바로 2014년 우리의 곁을 떠난 ‘마왕’, 신해철이다. 2002년에 오지 오스본의 내한 공연이 확정되었을 때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그의 업적과 위대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것이 아직도 나는 생생하다. 신해철의 사심 가득한 방송 덕분에 음반가게로 달려가 오지 오스본의 음반을 사가지고 와서 듣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쯤 오지 오스본은 다음 세상으로 잘 도착했을까. 부디 그곳의 무대에서 랜디 로즈를 다시 만나 뜨거운 공연을 펼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 날의 오프닝 뮤지션으로는 신해철을 추천한다. 백스테이지에서 만나 신나게 한 잔 하며 음악 이야기를 나눌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의 명복을 빈다. /강백수(시인)

2025-07-27

정책과 감동

30년 전 이야기다. 점촌에서 가은 집에 가려고 타던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나면 언제나 서서 가야 했다. 사람도 많았고, 교통수단도 적어 버스는 늘 그랬다. 당시 버스는 이동생활의 구세주였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동반자였다. 그 시절 버스는 모두의 발이자 삶의 일부였다. 시간이 흘러 버스는 점차 잊혔지만, 그 시절이 주는 따뜻한 기억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때는 버스사업이 호황기였다. 우리가 내는 차비로 회사를 운영하고, 기사들을 고용하고, 유류비나 제반 소요경비를 제하고도 이윤이 있었다. 30년 전 점촌에서 가은으로 가던 시내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하고 나면 언제나 서서 가야 했다. 마이카 시대가 오기 전, 버스는 가장 소중한 이동수단이었다. 그 시절 버스는 모두의 발이자 삶의 일부였다. 시간이 흘러 버스는 점차 잊혔지만, 그 시절이 주는 따뜻한 기억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런 젊은 날을 보내고 마이카시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자동차를 가지게 되면서 버스는, 특히 시내버스는 잊어진 존재였다. 고향 길에 비포장도로를 타고 덜컹덜컹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던 일들은 새까만 먼 옛날의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게 잊힌 시내버스가 자동차 없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는 것을. 하지만 시내버스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멀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하루 여러 번 드나들던 시내버스의 운행 횟수가 줄었고, 그만큼 더 불편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와 지자체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오지 노선을 시작으로 시내버스에 보조금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 규모와 범위는 점점 크고 넓어졌다. 문제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었다. 지원하는 보조금 대비 효율이 낮아지고 있었다. 황금노선이라고 하는 점촌-문경 간 시내버스는 물론, 오지를 오가는 시내버스는 언제나 빈자리만 왔다 갔다 하는 형편이었다. 문경시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 정책은 이런 현실 속에서 나왔다. 시의회에서 한 의원이 ‘시내버스무료화’를 제안했고, 곧 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에게 카드를 제공하는 방법, 쿠폰을 제공하는 방법 등등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최적의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드나 쿠폰 지급 등의 방법은 또 다른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다. 보조금 15억만 더 들이고 부대비용이 없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문경 시내를 오가는 모든 시내버스를 누구나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타는 사람이 시민이든 아니든 구분하지 않았다. 이 정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고, 오지서 오는 사람들도 반겼다. 그러자 시내버스가 대도시에서 보는 것처럼 복잡하기 시작했다. 시내 노선에 아침저녁으로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자 생기도 돌았다. 텅 빈 채 운전기사 혼자 무료하게 달리던 시내버스에 사람들이 점점 많이 타기 시작했다. 점촌장날에는 혼잡하기까지 하다. 국가나 지자체의 정책이 모두 이렇게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시민과 국가에 좋은 것이라고 시도하는 일들이 곧잘 질타받기 일쑤다. 그런 중에 시내버스 무료화의 시민 감동은 너무 이례적이다. 많은 정책들은 ‘소금장수와 우산장수’에 비교되곤 한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는 말도 늘 따라다닌다. 이처럼 시내버스 무료화도 양비론을 피해갈 수 없다.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비오는 날에는 소금장수 아들을 걱정하고, 갠 날에는 우산장수 아들을 걱정해, 언제나 근심걱정 속에 살아야 했다. 이 어머니는 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데 초점을 두면 어떨까? 비오는 날은 우산장수 아들이 잘 돼 기쁘고, 갠 날은 소금장수 아들이 잘 돼 기쁘면 그 어머니는 언제나 기쁜 날이 될 것이다. ‘yes문경’은 매일 걱정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매일 기뻐하는 어머니가 되어 긍정의 힘을 갖자는 슬로건이다. 특히 행정은 안 되는 방법보다 되는 방법을 찾는, no보다 yes를 지향한다. 안 되는 방법을 먼저 찾기보다 되는 방법을 먼저 찾아보는 자세가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시내버스 무료화로부터 빚어진 그늘이 있다면 지금부터 그 그늘을 걷어내면 된다. 그 그늘을 침소봉대해 긍정적인 면이 묻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현국 문경시장

2025-07-27

“여기, 내 얼굴을 가져가라.”

그들이 내 얼굴을 원하다면 여기 있는 얼굴을 가져가도 좋다. 시간의 일부였던 얼굴, 더는 시간의 일부가 아닌 얼굴, 시간에서 벗어난 얼굴. 거의 모든 얼굴이 그러하듯 한 얼굴이 스쳐간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얼굴 없는 존재들. 어부, 농부, 석공, 주부, 교사, 미화원, 조산사, 기계공. 마을과 도시를 창조했던 그들, 그곳에 살다가 이제는 풍경을 잃어버린 그들 오늘도 우리에게 오늘의 얼굴을 주소서. 어떤 얼굴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내 얼굴을 가져가라. 여기 내 얼굴이 있다. 더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얼굴, 풍경처럼 닳아버린 얼굴, 수면처럼 주름진 얼굴. 나는 닐스 비크, 내게는 배가 있다. 나는 이 배를 얼굴들로 가득 채우고 피오르를 건넜다. ―프로데 그뤼텐 장편소설, 150쪽 부분.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2025. 다산책방) 지난해 한강 작가가 노르웨이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녀의 소설을 ‘시적 산문’이라고 평한 바 있다. 여기 노르웨이의 작가, 프로데 그뤼텐(Frode Grytten)의 소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에서 그러한 시적인 순간을 만난다면 어떤가. 인구 1만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인 이곳에서 사용하는 일상어는 노르웨이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뉘노르스크어다. 작가는 욘 포세와 더불어 이 언어로 작품을 집필하는 몇 안 되는 노르웨이 작가 중 한 명이다. 흔히 시를 쓸 때 더 적합한 언어로 알려져 있다.(손화수, 역자의 말 참조) “새벽 5시 15분, 닐스 비크는 눈을 떴고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인용 구절과 도입부에서 짐작하다시피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피오르 양옆에 자리한 도시와 섬마을을 이어주는 한 페리 운전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작품이 소개하는 인물 닐스를 통해 우리는 평범함 속에는 항상 저마다의 특별함이 숨어 있다는 삶의 비의를 발견할 수 있다. 닐스의 시간과 공간을 스쳐간 “거의 모든 얼굴이 그러하듯” “이제는 보이지 않는, 얼굴 없는 존재들 / 마을과 도시를 창조했던/ 이제는 풍경을 잃어버린” 얼굴들이 기록되어 있다. 초상화(portrait)의 라틴어 어원에는 ‘끌어당기다’라는 뜻이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자신의 배를 탔던 수많은 ‘얼굴’을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끌어당김으로써 기록한다. 이때 어떤 기록은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되고, 그가 살아간 공간과 시대를 보여줌으로써 그 사람이 된다. 여기서 기록이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일상으로, 실은 주인공 닐스 비크의 ‘항해일지’이다. 그는 무엇을 기록했는가. “날씨와 바람, 정치와 지리” 외에 그가 한 낙서와 신문에서 베껴 적은 ‘글귀’들의 가치는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의 일지에 우리의 삶이 기록된다면 어떤 얼굴일까. 울진과 영덕 방향 국도변에는 포항의 신도시 초곡리로 꺾이는 구간이 있다. 그 ‘틈새’에 스타벅스 카페가 개점했다. 그곳은 말 그대로 확 트인 시골을 에두른 논(NON View)의 공간이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이 생경하고 이질적인 풍경이 바깥의 이미지로써 흥미로울 것이다. 말하자면 프레임이 없는 빈 공간일 텐데, 그곳을 기억으로 채워 나가며 쓰는 일은 비롯된다. 도시와 시골 사이의 얼굴은 점점 더 낯설어져 가는 현실 속의 공간과 소멸해 가는 기억의 공간 사이에 떠 있는 어떤 의식(意識)에 대한 혹은 존재에 대한 기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숲도, 바다도 아닌 부재하는 풍경, 즉 없음의 풍경이다. 미시적인 뷰의 압도하는 풍광과 대비되는 소외의 풍경에 가깝다. 매번 사람으로 붐비는 이 기이한 공간의 통창 밖은 기실은 어떤 집의 가장, 농부의 경작지로서의 일터일 것이다. 이때 “농부”라는 존재와 그 일터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마치 영화의 롱테이크 씬처럼 내가 방문하지 않은 시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지난겨울, 황량한 논에 덩그렇게 놓여 있던 건초더미는 사라지고 어느새 초록의 모가 키를 키우며 흔들리고 있는 눈앞의 풍경이 그렇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같은 날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매일 하늘색이 변하고 구름의 모양이 바뀌는 가운데 반복된 일상을 지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오늘의 얼굴을 주소서” /이희정 시인

2025-07-27

이런 제안 어떻습니까?!

퇴임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대구에 나간다. 경북대 인문대학 퇴임 교수들을 주축으로 ‘인문 세상’이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 세상’은 ‘법인으로 보는 단체’로 설립되어 인문학의 확산과 보급을 목표로 1년 정도 연륜을 지닌다. 월 1회 이사회에 나가서 ‘인문 세상’의 현황과 우리가 견디는 일상과 세상사를 화제로 두어 시간 환담한다. 지난번 이사회에서 감사를 맡은 분이 솔깃한 제안을 했기로 독자 제현의 고견을 청하고자 한다. 그분은 한국 사회에 넘쳐나는 퇴직 고급 인력의 활용방안을 고민해보자고 운을 뗐다. 해마다 교직을 떠나는 초중등 교사들과 대학교수들 숫자가 상당할 것인데, 그들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문제 제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를 잠시 돌이켜보았다. 나는 퇴임 이후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단에 서고 있다. 4학기 가운데 3학기 동안 교양 교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강사료는 둘째치고 삶의 규칙성과 활력이 이어지고 있기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여유 시간이 늘어난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수업을 준비한다. 열렬하되 여유롭게, 단단하되 유연하게 학생들을 대하는 기쁨이 자못 크다. 작년 2월 18일부터 청도와 대구 시민들을 대상으로 3학기째 주 1회 무료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지식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리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첫 번째 주제는 ‘문명과 인간’으로 고대문명의 발생에서 시작하여 21세기와 4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 강의는 작년 10월 하순에 종료되었다. ‘문명과 인간’ 강의에 이어 공자의 ‘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있는데, 지금까지 네 번째 장(章)인 ‘이인편(里仁篇)’을 마무리했다. 강연 시작할 당시에는 적당한 공간이 없어서 청도에 자리한 카페에서 강의를 진행했는데, 작년 말부터 ‘청도 도서관’의 도움으로 동아리방을 강의실로 활용하고 있다. 세상에는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여기 더해 경북대 인문 학술원에서 행하는 시민 인문학 프로그램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그러나 다수 퇴임 교수들은 등산이나 도서관 혹은 취미생활로 차고 넘치는 시간을 축내고 있다. 아울러 그들이 가진 고도의 전문지식도 시나브로 사장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감사의 제안이 솔깃하게 다가온 게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가 발전된 나라의 복된 시민으로 살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회가 없음은 애석한 노릇이다.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이나 혹은 무상으로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사회 구성원들과 공유한다면 매우 유익하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지식인 양성을 위해 가족과 사회, 국가가 기울인 노력을 공염불로 만드는 것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때마침 새로 출범한 ‘국민 주권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기획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참에 녹슬지 않은 지식과 혜안, 미래기획과 통찰을 지닌 퇴임 교수들의 활용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보는 것도 우리 사회를 위한 긍정적인 방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27

바가지 요금

바가지 요금의 바가지라는 말이 어디서 유래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설은 분분하나 명확한 게 없다. 그 중 한가지 “바가지로 물을 뒤집어 쓰다”는 말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한글학자들은 남의 책임을 죄다 뒤집어 썼을 때 ‘똥바가지’라는 표현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피서철이 닥치자 바가지 요금을 둘러싼 시비가 잦아지고 있다. 당국이 물가질서를 외치며 바가지 요금 근절에 나서나 때만 되면 다시 등장하는 게 바가지 요금 시비다. 특히 제주도 등 유명 관광지일수록 바가지 요금이 더 기승을 부린다. “비행기표보다 비싼 제주도 렌터카 요금” 등의 말들이 이런 사례다. 내국인이 국내관광을 기피하는 이유의 1순위가 바가지 요금 때문이다. 바가지 요금 피해 해외로 나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이런 바가지 요금은 외국 관광지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는 파리를 찾는 외국인에게 업소들이 고의로 비싼 요금을 받으며 바가지를 씌운다는 언론의 폭로가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상술에 빠져 바가지 요금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건 국내나 외국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울릉도에서 비계가 반이 넘는 삼겹살을 판 업소가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면서 울릉관광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드셌다. 울릉군수가 직접 나서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엎어진 물”처럼 울릉관광 이미지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부산에서도 11월 열리는 불꽃축제를 앞두고 하루 숙박료를 200만원까지 올려 받는 업소가 있어 논란이다. 바가지 요금으로 돈 번 사람 없다. “손님이 횡재했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성공한다” 는 장사의 신이 말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7

문해력, 책 읽는 사회가 되어야

국어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2022년 8.0%에서 2023년 8.6%, 2024년 9.3%로 늘어났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읽기 영역 순위도 2006년 세계 1위에서 2018년 세계 6위로 떨어졌다. 기초학력을 측정하는 다른 여러 지표도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역 간 학력 격차도 여전하다. 읍면지역 중3 학생들의 경우 모든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대도시보다 높았다. ‘금일’을 금요일로 알고 있거나 ‘이부자리’를 별자리의 하나로 생각하거나 ‘추후 공고’라는 표현을 학교 이름으로 잘못 이해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고지식’을 높은(高) 지식으로 이해하는 학생들도 많다. 학교 수업 시간에 기본 용어를 모르는 학생이 많아 교사가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이는 시험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학생들도 있다. 시험 시간마저 이러하니 전반적으로 수업 이해도가 낮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학생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학부모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에 “수학여행에서 중식 제공”에서 중식을 중국식 식사로 이해하여 자신의 아이에게는 한식을 요청하거나 “우천 시 장소 변경”을 “우천시”라는 지역으로 오해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이제 문해력 저하는 시급한 사회 문제이다. 국내의 반도체 회사에서 10억이라는 불량을 내었다. 원인 조사를 해보니 1분을 100초로 생각하여 수치를 잘못 입력하여 발생한 일이었다. 회사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생산직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STOP, RUN 등의 간단한 영어와 국어 단어의 뜻을 묻거나 분수 등 산수 문제 시험을 치렀다. 시험 결과 전문대졸 출신의 평균이 70점대 중반, 고등학교 출신의 평균이 60점대 중반을 기록했다. 문해력만의 문제도 아니다. 고등학생이 1/2 + 1/3 = 2/5로 계산할 때도 있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사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사회로 나가 중년 세대가 되었고, 학부모가 되었다. 수업은 학교에서 교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가정을 포함한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교육에 함께해야 한다. 지금 교육을 심각하게 돌아볼 시점이다. 책 읽지 않는 사회가 된 지 오래고, 학생들은 길거리에서조차 휴대전화에서 눈을 못 뗀다. 마음대로 줄여 쓰는 비정상적인 문자가 난무하고 짧은 영상이 넘쳐나는 휴대전화를 보는 아이들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 든다. 어릴 때부터 길든 디지털 인간화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방법조차 못 하게 가로막는다. 문해력도 상식도 수리 능력도 부족한 아이들이 이제라도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고, 책을 들 수 없을까? 책을 읽으며 생각을 키우는 정상적인 교육은 언제나 가능할지. 디지털 선진국이라는 말이 아이들을 망치는 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책을 기본으로 생각을 키우고, 휴대전화는 모르는 것을 채워주는 보조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언제나 올 것인지. /김규인 수필가

2025-07-27

터널 비전이 문제는 아니다

지난 주말 이틀간 사진 치료 워크숍에 참여했다. 작년에 ‘사진으로 대화할까요’라는 책을 사놓고만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의 저자인 김문희 사진상담치료사가 직접 진행한다기에 바로 신청했다.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무지했거나 외면했던 여러 가지 마음 패턴을 발견했다. 그중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치료사가 A, B. C를 말했는데 A에 꽂히면 B와 C는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터널 비전에 사로잡힌 것이다. 터널 비전은 원래 시각장애를 뜻하는 의학용어로, 주변부 시야가 사라지고 중심부 시야만 남아 마치 터널 안을 보는 것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의미가 확장되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심리상태나 한쪽 정보만으로 판단이 편협해지는 인지적 문제를 의미하게 되었다. 같은 사진 카드에서 참여자들이 각자 다른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터널 비전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재난 상황이나 운동 경기, 큰 시험 등 고도의 집중력이 상황에서는 터널 비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본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은 듣지 않는 내게 치료사가 집중력이 좋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을 것이다. 터널 비전은 프레임과 혼동하기 쉽지만 프레임은 아예 객관적 인지를 못하는 상태인 반면 터널 비전은 대상을 제대로 보기는 하지만 시야가 좁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다른 참가자의 시선을 보거나 사진상담치료사의 피드백이 충분하면 자신의 터널 비전을 자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없다면 터널 비전은 갈등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많다. 최근 사퇴한 강선우 여가부 장관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의 밑바닥에도 터널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강선우를 비판하는 쪽은 보좌관 갑질에 주목하고, 찬성하는 쪽은 보건복지 관련 입법 발의한 경력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주목하는 부분이 다른 것만으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집중한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심지어는 증명되지 않은 논리로 비판하는 데 이르렀을 때 문제가 커진다. 아무리 터널 비전을 가지고 있어도 더 많은 사실을 보여주면 상대를 이해하거나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는 쪽이 제시하는 사실을 축소 해석하거나 ‘음모’니 ‘수박’이니 하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면 토론하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은 이렇게 지나친 해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국민의힘이 반대하니 적격자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강선우 지명자를 비판하는 쪽과 옹호하는 쪽, 그중에서 논리 비약을 많이 하는 쪽이 더 단단한 프레임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국민 모두에게 사실을 공개하고 토론에 붙여 어느 쪽이 논리 비약이 많은지를 기준으로 적격 부적격을 판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자세히 설명하다 보면 내가 일부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듯이 강선우의 행태를 모두 열거하고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여론은 터널 비전을 자각하게 하는 한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퇴는 이런 시스템이 작동한 셈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27

이혼 후 배아이식을 결정한 엄마의 마음

배아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이루어진 수정란이다. 사전적 의미로 수정 후 8주까지의 수정란을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수정 후 2주 이내의 초기 수정란을 ‘배아’로, 그 이후의 단계는 ‘태아’라고 하며 배아와 태아를 구분한다. 배아와 태아를 구분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생명권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수정 후 언제부터 인정할 것인지 문제 되기 때문이다. 2004년 부산의 한 부부는 병원에서 인공수정으로 배아 개체 3개를 얻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부인의 몸에 착상됐고, 나머지 2개는 폐기되거나 생명공학 연구에 쓰일 처지가 되었다. 부부는 인공수정으로 힘들게 얻은 배아를 차마 실험실로 보낼 수 없어 “인공수정 배아를 인간이 아닌 세포 덩어리로 규정해 연구 도구로 취급하고, 보존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한 생명윤리법은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로 국가가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수정 후 2주 이내의 배아는 헌법상 생명권이 인정되는 독립된 생명체가 아니라고 하며 수정된 배아를 불임이나 질병 치료 연구에 이용하고 수정 뒤 5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조항은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했다. 배아와 태아의 구분을 수정 후 2주로 잡은 이유에 대해 헌재는 수정 후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 초기배아는 인간으로 볼 수 없는데 이 원시선이 수정 후 14일쯤 지나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정란의 원시선은 나중에 아기의 척추를 형성한다고 한다. 배우 이시영씨가 이혼 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인공수정 했던 배아를 이식해 임신한 것이 화제이다. 전 남편의 동의 없이 아이를 가진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가, 전 남편이 아이에 대해 부양의무를 지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것 같다. 배아를 생성할 땐 배아의 생성과 이식에 대한 대상자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 동의는 사후에 철회할 수 있지만, 아마 이시영씨 부부는 5년 전 생성해 보관 중이던 배아의 처리 문제에 대해 따로 생각하지 못하고 이혼을 했던 것 같다. 이혼 후 배아의 보관기간 만료가 임박했고 이시영씨는 혼자 이식을 결정하고 임신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생부가 인지하거나 아이가 생부에게 인지 청구를 하면 된다. 인지가 되면 아이와 친부 사이에선 부자 관계에서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양육비를 받을 수 있고 아빠는 아이를 면접 교섭할 수 있으며, 상속도 이루어진다. 아이 둘의 엄마인 필자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과연 이시영씨가 이 배아를 폐기되어도 어쩔 수 없는 세포 덩이로 인식할 수 있었을까? 보관기간이 만료되어 이식하지 않을 거면 배아를 폐기하겠다는 병원의 통보를 받았을 때 “이혼했으니 폐기해주세요”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모에겐 배아도 자식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수정 후 2주 이내의 배아는 생명권이 인정되는 독립된 생명체로 볼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사실 부모의 마음과는 조금 먼 곳에 있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24

고스트 건

총기 사용이 허용되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고스트 건(Ghoast Gun)이다. 고스트 건은 일반 총과 달리 총기 제조 공장에서 합법적으로 생산된 총이 아니다. 일반인이 직접 제작한 불법 총기를 말한다. 인터넷에서 부품을 구입해 제조하기도 하고, 요즘은 3D 프린팅에 힘입어 초보자도 쉽게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고스트 건은 일련번호가 없다. 제조사를 추적할 수 없어 유령 총이라고도 한다. 주로 범죄에 사용되는데, 미국 총기범죄에 사용된 총의 약 30%가 고스트 건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고스트 건 규제에 관한 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몇 년전 인천공항 경찰은 12정의 총기를 보관하고 있던 40대 남자를 붙잡았다. 이 남자는 해외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60여 차례 걸쳐 총기부품과 총기 관련 서적을 구입해 권총 7정과 소총 5정을 만들어 보관해 왔다고 한다. 총기 사용과 관련해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통해서 누구나 사제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지난 20일 인천에서 사제총기로 30대 아들을 살해한 60대 남성은 유튜브를 보고 총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인터넷 등에는 실제로 총기 만드는 방법 등이 상세히 소개되기도 하고 해외 포털에서도 제작 방법 등을 쉽게 접촉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서 보았듯이 사제 총기도 실제 총에 못지 않는 위력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불안하다. 사제 총기가 발붙이지 못할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4

부조금

장례 행사가 끝난 뒤 망자의 혼백을 평안하게 하도록 지내는 제사를 우리는 우제(虞祭)라고 하며 세 번 지내기에 삼우제라 한다. 그래서 우린 “삼우, 삼우”하는 것이다. 간혹 어떤 이는 ‘삼오’라고 말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경우다. 똑같이 헷갈리는 것이 ‘부조(扶助)’이다. 이것을 ‘부주’라고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부조”라고 고쳐주면 ‘알아서 들어라.’ 라는 핀잔만 돌아오기에 요즘은 그냥 알아서 듣는 편이다. 장례식장에 꽃을 보낸다면서 조화를 화환으로 이야기해도 그러려니 한다. 과거에는 봉투에 한문으로 부의(賻儀)라고 써달라고 부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 인쇄된 봉투가 비치되어 있고, 축의금과 조의금 구분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버려 부고장이나 청첩장에 ‘성의 보내는 곳’으로 입금하면 끝이다. 세상 살면서 유효기간이 없는 것이 딱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부조 명단과 액수이다. 이건 끝까지 간다. 완전히 ‘기부 앤 테이크’이다. 부조금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은 큰 재벌이거나 고관대작들이나 호기에서 하는 행위이고 대형할인점 할인쿠폰 지갑에 쟁기고 사는 서민은 그런 짓을 잘 하지 않는다. 문제는 부조가 다 빚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한 만큼 남도 하게 되고 내가 하지 않으면 남도 하지 않는다. 역으로 말하면 내가 부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받을 마음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했는데 상대방은 하지 않고 있으면 둘의 관계는 아주 묘해진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만큼 돈독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배신감마저 생기게 된다. 갑을 관계에 있는 거래 관계에선 큰일 치고 난 뒤 거래 끊어지는 경우가 제법 많다. 그래서 비록 갚아야 할 빚임에도 부조를 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이 생각보다 뒤끝이 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물론 생뚱맞게 단체 문자 톡에 뜨는 부고장이나 청첩장은 예외이다. 고등학교 동창이라지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무슨 문상을 가겠는가. 부고장은 이해가 간다만은 청첩은 또 다르다. 단체톡에 청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일이 청첩(請牒), 즉 손님으로 와서 축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야 가는 것이다. 자식들 결혼 시키는 나이이자 부모님 돌아가시는 나이엔 많이 바빠진다. 한 달에 부조금으로 나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정년퇴직에 별반 돈벌이가 없는 이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몇 푼이라도 벌지 않고 놀러 다니기엔 상당한 지출 액수가 한동안 계속될 조짐이 있어 사람 구실하고 살기 위해선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무조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형님, 들어온 부조금을 형제자매간에 어떻게 배분했습니까?” 이젠 부조금 배분문제 말이 많은 모양이다. 갚아야 할 빚이기에 누구 앞으로 들어온 건지 배분 작업을 하는 것이다. 어떤 집안에선 남는 돈 전부를 집안 돈으로 묶어 공동경비로 했단다. “난 그냥 남는 것 전부 어머니 다 드렸어.” 배분하는 게 이상하게 추잡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땐 장남이란 게 마음이 편하다. 따라준 동생들과 제수씨들에겐 고마울 뿐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