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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더운 여름날, 독서를 생각하다

최선희 경운대 교수 절기상 말복이 지났지만 당분간 폭염과 열대야가 전국적으로 계속될 거라고 한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사람들은 에어컨 아래로, 바람 솔솔 부는 나무그늘 아래로 모여들어 더위를 식히거나 바다나 계곡으로 떠날 채비에 분주하다. 도심 가로수의 싱그러운 초록빛은 더욱 짙어가지만 우리는 삼복염천(三伏炎天)에 힘겨워하며 기진해간다. 연일 푹푹 찌는 찜통더위에 지친 몸을 식힐 좋은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본다.인터넷으로 무더위 날리는 방법을 검색하다가 ‘도서관은 쿨 하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서울도서관을 비롯하여 서울지역 180여 개의 도서관에서 시행하는 이 행사는 시원한 동네 도서관에서 더위를 피하고 냉방비를 절약하며 기후위기 극복에도 동참하자는 취지의 도서관 방문캠페인이다.경기도도 376개의 작은 도서관을 무더위 쉼터로 운영하며 더위를 피해 주민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서 독서문화 정착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 여름 독서캠페인은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그렇다. 더위를 이길 좋은 방법은 독서 삼매경에 빠져 편안하게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에서 나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난무하는 정보에 휘둘리거나 타인에게 내둘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을 바라보며 적절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는 데 독서는 아주 유용하다.일찍이 사회학자 하워드 레인 골드(Howard Rheingold)는 로봇이 인간을 위해 남겨둔 일자리는 사고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상상하며 생각하고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자신만의 사고로 어떤 새로움을 창조해낸다는 점이다. 기계는 인간이 프로그래밍 하여 부여해준 일만 한다. 때문에 인간은 기계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남다르게 사고하며 상상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면 된다. 이런 창조성은 인간 고유의 역량이며 그 힘의 원천은 독서라고 생각한다.인문학자이며 교육가인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그의 저서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에서 “21세기에는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으로 양분되는 계층사회가 생겨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독서습관을 강조하며 독서유무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은 달라질 수 있음을 역설했다.이제 독서는 우리의 취미와 선택을 넘어선 행위이며 사람이 기계에 대체당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그만큼 독서는 인공지능시대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의 생존을 담보하는 경쟁력이 된 것이다.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경쟁력은 ‘생각’이며 이 생각을 길러줄 좋은 방법은 독서인 것이다.푹푹 찌는 날씨에 도서관에서, 시원한 계곡에서 한 박자 쉼표를 찍으며 독서에 몰입해보자. 저자의 생각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나아가 새롭게 해석하면 내 인생의 해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는 모범 답안이 없지 않은가. 내 삶의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거늘. 더운 여름날, 책읽기에 빠져 나를 통찰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 해보자.

2024-08-18

‘철쭉 작은 도서관’과 인문 강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열흘 전 무렵 전북 완주군에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가까웠던 후배 2주기 행사로 울산에 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원(疏遠)했던 터라, 비록 전화상이지만 매우 반갑고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인문 강연을 해보면 어떨지 넌지시 묻는다. 아주 적은 액수의 강연료를 걱정하기에 우리가 만나는 일이 중요하지, 강연료가 대수냐고 대답한다.그렇게 창졸간에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철쭉 작은 도서관에서 니체의 명저 ‘비극의 탄생’을 강연하게 되었다. 대학원 시절 읽으려고 무던히 애썼건만 완독하지 못했던 서책 가운데 하나가 ‘비극의 탄생’이다. 난삽하기로 유명한 니체의 첫 번째 저작이기도 했지만, 역자들의 역량 부족이 큰 문제였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見)’이 도통 불가능했던 터였다.지금까지 10명의 역자가 ‘비극의 탄생’ 번역에 도전했으며, 그 가운데 이젠 읽을만한 번역서가 나오기도 했다. 역시 세월이 명약(名藥)인 모양이다. 소양면의 근면한 독서인들이 모여서 니체의 난해한 책을 중간 정도까지 읽었으며, 그 방면의 전문가를 초빙해서 인문 강연을 요청했고, 내가 그것을 수락하는 형식으로 ‘비극의 탄생’ 강연회가 이뤄졌다.청도에서 대략 3시간 남짓 걸리는 철쭉 작은 도서관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강연을 위해 나는 꼬박 사흘을 바쳤다. 재차 독서하고, 내용을 정리하여, 파워포인트 형태로 재구성한 다음 서너 번 반복하면서 내용을 재삼재사 점검했다. 전문적인 독자들이 아니라는 말을 염두에 두면서 가능하면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강연을 인도하기로 작심(作心)한다.어려운 내용을 전달하려면 우선 연사가 전체 내용을 숙지하고,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편안하고 평이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완주로 떠나는 시각까지 강연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 강연장에는 스무 명 남짓 되는 청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채로운 연령대지만, 주력은 60대 이상으로 보였다.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효율적으로 독서하려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야’,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일과 나날’,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이것에 기초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로마의 호라티우스의 ‘시학’, 프랑스 신고전주의 시기의 부알로가 남긴 ‘시학’과 1980년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까지는 읽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인간이 나다.그런데 소양면 주민들의 학구열과 독서 의욕은 하늘을 찔렀고, 별로 재미도 없을 강연에 몰입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졸거나 딴전 피우는 사람 하나 없이 집중하는 그들 모습이 몹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강연 직후 질의응답 시간, 그 후에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이어져 멀리서 온 나그네의 마음을 흡족하게 인도하는 것이다.또 와주겠느냐는 질문에 응당 그리하겠노라고 답하는 목소리가 생각보다 높고 크게 울려 나와 나도 내심 놀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인문 강연을 다시 떠올려 본다.

2024-08-18

대프리카 간판 내리나?

우정구 논설위원 매년 한증막 더위로 전국의 이목을 끌었던 대구의 한여름 무더위가 올해는 대프리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지나가고 있다는 평가다.오히려 서울은 27일째 열대야가 이어져 118년만에 신기록이 세워졌고 부산도 23일째 열대야가 이어지는 폭염으로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강릉과 속초에서는 밤사이 최저 기온이 30도를 넘는 초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많은 시민이 밤잠을 설쳤다는 소식도 들린다.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대구는 지난 50년간 폭염 일수가 1261일로 같은기간 광주(668일), 서울(393일)보다 2배 내지 3배가 많았다.대구는 팔공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다. 안에서 생성된 뜨거운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여름철이면 뜨거운 공기가 계속 머물면서 도시를 한증막처럼 대우고 있는 것이다.2010년 이후 대구 더위를 빗대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고 대구 도심에는 더위를 상징하는 조형물도 등장했다. 여름철만 되면 한증막처럼 무더운 대구의 날씨는 늘 전국 뉴스의 한토막을 장식했다.최근 기상청이 10년간 5∼9월 사이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광주가 29∼32도로 가장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주와 대전이 그 뒤를 이었고, 대구는 전국 11번째로 나타났다고 한다.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열섬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가로수와 도시숲 조성사업을 지속 펼쳐온 것이 효과를 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변에 나무가 있으면 없는 곳보다 3도 정도 기온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 대구의 상징처럼 쓰였던 대프리카 간판을 이제는 내려야 할 때가 된 걸까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8

누구도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탄탄 스님(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장). 예전 청주의 한 공원에서 몸소 겪은 일이다. 앞을 못 보던 어느 맹인이 타인의 수십 년 먼 훗날의 운세를 봐주고 있기에 하루 종일 그를 지켜보며 소일했던 적이 있다.점사를 묻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 그의 호구지책이 염려가 되기는 하였지만 ‘크게 구김은 없겠구나’ 하며 해가 저물어가던 공원 벤치에서 막 일어서 요기를 하려가려는 찰나였다. 그도 일과를 다 마친 듯 접어두었던 맹인용 하얀 스틱을 꺼내 들고 공원을 막 나서려고 하다가 가로수 나무에 걸려 휘청거리는 모습을 봤다. 맹인이 고객들의 수십 년 세월의 운세와 점을 잘도 쳐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몇 시간, 몇 분 후의 운명은 모르는 법이다. 살아간다는 건 예측불허 미지의 세계다.현대사회가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전하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천기를 읽어내고 일기를 예측하지만, 오늘 오후엔 비가 올 것이라던 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사람의 운명도 어느 날 어느 시에 운명의 장난에 의해 어찌 될지 모르는 처지여서 근친 혈육들이 재산상속 문제로 법적 송사를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아왔다.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미리미리 살아생전 유서나 유언을 해 두는 것이 사후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한 치 앞조차도 예측불허인 삶을 예비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다.16세기 일본은 백년이 넘도록 센고쿠시대(전국시대)로 수많은 다이묘들의 힘의 각축장이었다. 날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화가 그침이 없던 시절, 일본 열도의 통일을 거의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라는 무장은 18세가 되던 해 부친인 오다 노부히데로부터 가독(가장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물려받았다.가독이나 당주란 안동 명문 집안의 장자에서 장자로만 이어지는 종손처럼 가문을 번성케 하는 막중한 책무와 재산과 노비들이 주어진다.봉건영주의 시대, 많은 가신을 거느리고 전쟁에서 오직 승전을 하는 길만이 다이묘 자신 뿐 아니라 가문의 멸문지화와 가신들의 불운을 막는 최선의 상황. 그는 독점적으로 물려받은 가독의 자리를 기반 삼아 천하통일을 위한 기틀을 차근차근 마련해 나가고 있었다.오다 노부나가 또한 스물네 명의 자녀 중 장자인 오다 노부타다에게 가독을 물려주려는 의도였다. 일단의 군사를 맡겨 고도의 훈련을 시키던 시기에 그는 명리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49세가 된 오다 노부나가는 어느 날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자신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측근에게 자신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동일한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을 데려 오도록 명령했다.교토의 혼노지(本能寺)라는 절에 머무르고 있던 그에게 불려온 대장장이에게 물었다.“그대는 나와 사주팔자가 똑같은데, 어찌 하찮은 대장장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가?“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은근히 내세우며, 대장장이의 변변치 못한 모습을 보며 즐기듯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장장이는 고개를 바로 들고 이렇게 말했다.“현재 주군의 명성이야 세상에 자자하니 누구든지 부러워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제의 일인 것이고 내일은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이 말에 불같은 성격의 오다 노부나가가 칼을 빼들고 대장장이의 목을 치려 하자 곁에 있던 측근들이 말렸다. 주군의 명성에 흠이 된다며 참으시라 한 것이다.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다 노부나가가 머물던 임시 처소인 혼노지의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있어 잠에서 깼다. 자신의 측근 중 가장 충신으로 불리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휘하의 부하장졸 1만3천여 명의 군사를 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이다. 일본 역사의 그 유명한 반란, 즉 혼노지의 변고(本能寺の変)가 발생한 것이었다.당시 그는 불과 100여 명의 남짓의 가신들과 그곳에 머물고 있어 제대로 응전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운명을 예감하며 혼노지에 불을 질러 생을 마감한다. 인근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훈련 중이던 장남 또한 몰려드는 반란군에 대항하다가 할복해 자살했다. 대장장이가 말한 그대로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왜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을 공격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오다 노부나가의 성정이 매우 거칠고 부하를 함부로 다루면서 원한을 품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돈다. 또한 천하통일의 과실을 아케치 미츠히데가 가로채려 했을 수도 있다.그런 점에서 혼노지의 변고는 한국 현대사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박정희의 친위대장이기도 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10.26사태 하극상과 유사하다는 사가들이 평가가 있다.오다 노부나가처럼 박정희도 가장 신뢰하던 측근에게 배신을 당했다.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음이다. 혼노지의 변이나 궁정동 만찬장에서의 시해 사건에서 보듯 역사의 흐름은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급격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난다.일본 전국시대의 종결과 통일시대를 여는 변곡점이 된 혼노지의 변처럼 1979년 10월 26일도 한국 현대사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다 노부나가와 박정희의 비극적 죽음. 그 이면에는 사소한 개인적 원한이 있었다고 추정된다.천하통일을 달성한 후 장자에게 가독을 상속하려던 오다 노부나가의 꿈도 그렇게 혼노지의 변고와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권력과 부는 영원할 수 없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권력을 독점한 이도 거대한 부를 쌓아 올린 이도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처참히 몰락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영웅도 한순간에 비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이 이 두 사건에 잘 나타나 있다.권력을 지키려고, 재산을 지키려고 아무리 철저히 대비한다 한들 운명을 피해 갈 수는 없으니 그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를 일이다.“敵は 本能寺に あり!!”무장 가문들 간에 처절한 살육과 암투가 절정을 치닫던 그 센고쿠시대, 1582년 6월 2일 새벽 6시,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 1528-1582)가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가 묵고 있는 혼노지를 포위하고 쳐들어가면서 부하들에게 내지른 명령은 이 한마디였다.불의에 모반을 당한 오다 노부나가는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피와 땀으로 어렵게 일구어 온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고 화염 속으로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 갔다.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헤이안(平安) 시대 이후 오랜 세월 일본의 정치·경제·문화·종교의 중심을 이루어 온 교토(京都)의 웅장하고 화려했다는 대찰 혼노지에서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던 오다 노부나가는 충천하는 살기와 날름거리는 불길에 휩싸여 마지막 광기를 드러내며 불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2024-08-16

이커머스 미정산 사태, 관련 사업자 보호를

정희용 국회의원(고령·성주·칠곡) 최근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발생한 미정산 사태가 농어업인 및 관련 사업 종사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8월 12일 기준으로 농식품 분야에서만 총 160억9000만원의 피해가 발생했으며, 수산물 판매업체들도 2억1000만원의 미정산 대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북 지역에서도 식품기업 농업법인 등 18개소에서 총 4억2000만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커머스는 이들에게 새로운 판로로 자리 잡으며 그들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여겨졌지만, 이번 사태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불안정성이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농어업은 한국 경제의 중요한 기둥이자, 국민의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핵심 산업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은, 디지털 경제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이커머스 플랫폼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프라인 시장보다 더 넓은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이커머스를 적극 활용해 왔지만, 정작 판매대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으면서 경제적 안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플랫폼의 기술적 오류나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생계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절실히 필요함을 시사한다.특히 이들은 이커머스에서 얻은 수익으로 다음 시즌의 생산비를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판매대금이 미정산되면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생계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며, 이는 우리 농어촌 지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법제도를 신속히 정비해야 한다.정부는 이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통해 1700억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을 통해 300억원, 신용보증기금과 기업은행을 통해 30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책을 마련했다. 또한, 지자체별로도 6000억 원 규모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자금을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신속히 전달하여 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이커머스 입점 업체 보호를 위한 법령을 정비하고, 제3의 기관이나 별도의 계좌를 통해 판매대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제도의 의무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들이 이커머스를 통해 안정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이번 이커머스 미정산 사태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농어업인 및 관련 사업 종사자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이들이 안심하고 이커머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들의 삶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 우리 사회 전체도 건강하고 지속 가능해질 것이다. 이커머스 미정산 사태가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번지지 않도록, 신속하고 철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24-08-15

무기징역형으로 사기꾼 잡는다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나라다.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법적으로 사형제도가 존속하면서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한국을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한다.따라서 무기징역형은 우리나라에선 사실상 최고형에 해당한다. 무기징역형은 글자 그대로 교도소에서 기한없이 영구히 노역에 종사하는 형벌이다.1979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그라나도스라는 우체국 배달부는 38만4912년의 징역형을 구형받았다. 4만여 건에 달하는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고 일부 우편물은 열어 귀중품도 챙긴 혐의다. 우편물 1개당 9년씩 형량을 매겨 나온 형량이나 정작 법원은 그에게 징역 14년 2월을 선고했다.사기 혐의로 최고 형량을 선고받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인물은 태국의 차모이 티피아소라는 여성 사업가다.1989년 다단계 사업을 통해 1만6000여 명에게 사기를 쳐 2300억원을 빼돌린 혐의다. 선고 형량은 14만1708년이었으나 실제로는 8년가량 복역하고 출소했다고 한다.우리나라 사기범죄는 연간 30만건 이상 발생한다. 전체 범죄의 21%를 차지해 사기공화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사기범죄 대상이 경제취약층에 표적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경제적 회복이 어려워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대법원이 사기죄의 양형기준을 13년만에 대폭 상향한다는 소식이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조직적 사기에 대해서는 피해액이 300억원이 넘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고 한다.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으나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5

비상시국(非常時局)을 넘어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지식이나 판단력을 상식(常識)이라 한다. 가장 바람직한 상식이 성립하려면 물론 인권, 자유, 평등, 정의, 존엄성, 연대와 협력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고 비정상적인 사회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좌파 정치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보이고 있는 무법과 몰상식한 행태는 국기를 문란케 하고 나라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대규모 민중 시위로 정권을 무너뜨린 여세를 몰아 정권을 잡은 좌파세력은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자유우파를 말살하는 정책을 서슴지 않았다. 압도적 다수의석을 확보해 입법부까지 장악한 것에 이어 공영방송과 사법부까지 손아귀에 넣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향으로 나라와 국민들을 몰아갔다. 아무리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 경제를 파탄내고 안보를 포기해도 포퓰리즘과 선전·선동에 현혹된 국민들은 끝까지 지지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문재인 정권에 굴종하지 않은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이 자유우파 후보로 나와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 무엇보다 상대편 후보인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워낙 막중해서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차마 그것까지 싸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또다시 좌파 정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기현상이 속출했다. 범죄 전과자들과 재판이나 수사를 받고 있는 범죄 혐의자들, 반국가적 용공분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대한민국은 지금도 비상시국이다. 문재인 좌파정권이 들어서고부터 법치와 상식이 무너진 비정상적인 나라가 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와해시키고 친북·용공 사회주의로 몰아가려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신념과 결단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 이승만 대통령과 반공을 국시로 경제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 독재자로 매도하기에 혈안이 된 것이다. 불과 0.73% 차이로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나라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작금의 비상시국을 타개하려면 우선 나라가 비상사태인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범죄자들이 오히려 몽둥이를 들고 검찰을 때려잡겠다는, 법치가 무너지고 가치가 전도된 세상에서 어찌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구현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검찰과 사법부가 물갈이를 해서 좌편향 판·검사들이 사법체계를 흔드는 불상사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온갖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의 정상화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은 공영방송이 날조·왜곡·편파·조작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세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법치를 바로 세워 정치판 범법자들의 사법처리를 조속히 완결하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면, 미래학자들과 예언가들이 전망한 대로 대한민국은 통일이 되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나아갈 것이다.

2024-08-15

광복절에 건국절 시비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파리 올림픽에서 금13 은9 동10개 메달로 세계 8위의 성적이 안겨준 시원함과 함께 말복을 지난 바람이 더위에 지친 마음을 식혀주고 있다. 80여 년 전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 작은 나라가 주권을 되찾은 감격을 모아 국가를 세우고 근면한 정신으로 세계 10위권 국력의 위상도 높였다. 이 모두가 광복(光復)이라는 힘을 꾸준히 가꾸어 온 우리 민족의 정신력 때문이리라.8·15 광복절에 다시 한번 광복절 노래를 불러 본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1910년 8월29일 한일 합방으로 국권을 빼앗긴 후 40여 년을 피눈물 나는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연합군 승리의 힘이 더해져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광복을 이루었었다. 이 역사적 날을 기념하여 광복절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이 광복절에는 국민 모두 태극기 높이 들고 다시 찾은 민족의 빛을 온 누리에 밝히며 세계에 우뚝 설 힘을 보여 주어야 하는 날인데 느닷없이 ‘건국절(建國節)’ 시비로 두 쪽 나버린 광복절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광복절 기념식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독립기념관 등에서 대통령과 3부 요인 및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가 참석하여 독립과 함께 정부수립을 축하하여 왔는데, 이번 79주년 경축식에는 국회의장과 야당 6개 정당, 그리고 광복회장과 광복회를 비롯한 37개 독립운동 단체 등이 보이콧하여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가졌다.이는 신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임명에 따른 논란의 결과다. 김 관장은 뉴라이트(New right) 즉, ‘신우파 (新右派)’ 성향으로 독립운동을 폄훼했다는 이유로 사퇴를 압박당하고 있다. 뉴라이트는 2000년대 중반에 나타난 신보수주의로 반공주의를 구시대적이라 비판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경제적 자유주의를 외치며 보수를 넘어 극우화된 부류라는 평이다.여기에 덧붙여 건국절 제정을 주장하고 있는데 ‘건국은 언제인가?’라는 많은 논란이 정치계와 학계,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1919년 독립운동 시작과 임시정부 수립, 1948년 정부수립 중 어느 시점을 건국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미 광복절로 우리나라 탄생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있는데 굳이 건국절을 제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외국의 경우 건국기념일이 따로 없고 미국은 독립기념일, 프랑스는 혁명기념일, 중국은 국경절이라 하지 않는가. 또 북한은 1948년 9월 9일을 인민정권 창건일 즉, 구구절이라 한다. 이러한 다양한 명칭 속을 비집고 싹튼 건국절 논란을 꺼낸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역사재단 등 역사 관련 8개 공공기관과 위원회에 21명의 뉴라이트를 요직에 앉힌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발로 이번 광복절 경축식이 별도 개최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해방과 광복, 독립과 건국 모두 다 이루어졌는데 건국이라는 해석 차이로 광복절이 두 동강 났다는 것은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24-08-15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이틀 뒤에 뵙겠습니다

마음은 이미 라면으로 향해 있다. 가능한 빵이나 라면, 국수 등 탄수화물 섭취는 줄이시고 단백질 섭취를 늘이세요. 짜게 드시지 마시고. 아파트 같은 동 옆집에 살고 있는 의사가... /언스플래쉬 탄수화물과 염분의 문제다. 입술을 혀로 적시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셔도 해결되지 않는 초조함은 단순히 배가 고픈 것과는 다른 것이다. 전일 저녁 먹다 남겨놓은 사과 한쪽을 집어 먹거나, 저번 주에 선물 받고는 아직 개봉하지 않았던 호주산 다크 초콜릿을 입에 넣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냉동실의 식빵을 떠올렸지만 마음은 이미 라면으로 향해 있다. 가능한 빵이나 라면, 국수 등 탄수화물 섭취는 줄이시고 단백질 섭취를 늘이세요. 짜게 드시지 마시고.아파트 같은 동 옆집에 살고 있는 의사가 출근길 승강기 안에서 말해준 기계적인 답변이 떠올랐지만 어차피 안다고, 들었다고 다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난번 마트에서 마주쳤을 때 그 원장의 장바구니에는 라면이 들어있었다. 지금 내 속엔 ‘뭐 어때?’ 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럼에도 선뜻 라면봉지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은 최근 들어 잦아진 속쓰림 때문이다. 지금 라면을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더부룩해지고 명치 부위가 타들어가듯 아려올 것이 분명하다. 입이 원하는 것과 속이 거부하는 것 사이. 나의 선택은 라면이다. 입이 원하는 것은 지금의 일이고, 속이 거부하는 것은 이후의 일이다.라면에 만두까지 넣어 끓여먹는다. 이제는 냉장고 문을 열고 닫던 손길을 멈출 수 있다. 그리고는 부푼 배를 감싸 안고서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나의 휴가 셋째 날 아침은 라면으로 시작되고 티브이로 이어진다.보험광고는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늦은 저녁이나 새벽 시간에 주로 보이던 것들이 요즘은 아침나절에도 보인다. 예전에도 이랬을지 모른다. 내 눈에 이제야 들어오기 시작한 것일지도. 팔십이 뭡니까, 백세를 준비해야죠. 홈쇼핑 보험 판매 호스트의 말에 그렇지, 하다가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하며 채널을 돌리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채널을 고정한 채 티브이 앞에 앉아 있다. 가입해둔 보험들이 내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보험증서를 꺼내어 살펴보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뒤에야 살펴볼 것들이다. 보험에 가입할 무렵, 그러니까 친구나 옛 동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보험회사를 다니던 때에는 요즘과는 달리 사망 이후에 대한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무엇보다도 그들, 친구들이나 옛 동료들에게 십시일반, 상부상조하듯 보험가입을 하던 시기였다. 물론 그들은 자세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했지만, 애초에 나는 내용에 관심이 없었다. 말이라도 잘 들어 둘 걸. 후회되지만 그렇다고 지금 보험증서를 꺼내어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조건들을 살펴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음에 한 번에 몰아서 살펴봐야지, 다짐을 반복하는 정도. 어떻게 죽어야 보험금이 잘 나올지를 살피기에는 아직 젊다. 잘 살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아내나 아이들이다. 그들 삶의 문제이니까. 그들이 살펴야 할 것들은 또 있다. 마침, 상조. 상조회사의 선전들이 이어진다. 주로 노인들의 시청시간-오전이나 늦은 밤-에 맞추어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상조회사가 대신 해줄 일은 노인들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노인들의 자식들 문제이지. 사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고 가라는 뜻일까?채널을 돌린다. 이번에도 보험이다. 지겹지만 그럼에도 치매나 뇌졸중 등을 다루는 보험 상품이나 암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보험, 그리고 실손 보험에는 눈길이 간다. 그것들은 입을 맞춘 듯 묻는다. 요즘 세상에 암이 대숩니까? 발달된 치료법으로 치료할 수 있지요. 하지만 늘어난 치료비은 어쩌시려고요? 가족들은요? 어쩌면 벌써부터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 일이었을 지도.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없는 나는 아쉬운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이들 보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일주일간의 휴가 덕분이다. 어떻게든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라는 회사 방침 덕분에 모처럼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혼자만의 휴가일 뿐. 가족들이 다 같이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혼자라도 어디든 다녀오세요. 말들은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혼자서 여행을 다닌 적도 없었고 그런 여행을 상상해본 적도 없다.나의 선택은 ‘집에서’다. 늦은 아침 일어나 모두들 나간 텅 빈 집에서 빈둥거리다 친구들이 직장에서 돌아올 즈음 약속해둔 장소에서 친구들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지만,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집이다. 그 시간을 티브이와 함께 한다. 긴 시간 나와 함께 해 주는 것은 보험광고만이 아니다.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프로그램 또한 너무나도 많다. 시간대만 잘 조절한다면 하루 종일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제 겨우 휴가가 삼 일 지났음에도 전문가부터 연예인 패널까지, 질병으로부터 회복하고 살아 돌아온 이들의 수기가 곁들여져 쏟아지는 건강정보는 내가 평생 들었던 건강에 관한 정보를 넘어선다. 당신의 혈관은 어떠십니까? 가끔씩 온몸에 힘이 빠지듯 어지럽거나 시야가 흐려지지는 않습니까? 예전에는 분명히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이름들은 없으십니까? 묻는 티브이 앞에서 나는 애써 기억하지 않았던 일들을 떠올리거나, 침침해지는 눈이 눈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나, 가끔씩 뻐근해오던 목 뒷덜미를 만지며 자신의 혈관 속을 상상하는 것이다.고무관 같은 갈색의 벽을 가진 혈관이다. 혈액의 붉은 파도를 타고 놀던 노란색 튜브, 콜레스테롤들의 수가 점점 많아진다. 갈색의 벽에 들러붙고 서로를 붙잡아 혈관을 막기 시작한다. 이윽고 혈관은 막혀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혈액들과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혈액들이 서로 뒤엉켜 아우성을 지른다. 그러다 제풀에 쓰려져 혈전이 되거나 부풀어 오른 혈관의 약한 곳을 뚫고 쏟아져 나간다. 운이 좋아 혈관이 터지지 않아도, 혈전으로 막힌 혈관 뒤쪽으로는 말라버린 저수지 바닥처럼 하얗게 변한 뇌 세포들이 살려 달라 아우성을 지르다 쓰러진다.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린다.“에이씨.”채널을 돌린다. 다음 채널에서는 허리가 아프지는 않은지, 오른쪽 발가락 끝에 찌릿한 전기가 오지는 않는지 묻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보험광고가 나올 것이다. 보험광고가 끝나고 나면 상조광고가. 상조광고 이후에는 간간히 난민이나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캠페인광고가 이어진다.잘 짜여진 이야기다. 당신은 건강한가? 자신 있는가? 감당할 수 있는가? 보험에 가입하라. 그럼에도 결국은 죽을 것이니 사후를 준비하라. 충고에 충실했다면 이제 착한 일을 하라. 마음의 평안을 얻으라.첫날은 불편했고, 두 번째 날은 기억할 수 있었고, 세 번째 날인 오늘, 지금 나는 1588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다. 해당 지역 담당 설계사가 전화를 할 것입니다. 곧 전화벨이 울린다. 설계사다. 그에게는 익숙한 만남이다. 보험에 가입을 하지 않는다면 닥쳐올 불행에 속수무책으로 맞서야 할 것입니다. ‘만일’이 아니다. 무겁고 섬뜩한 예언이었다. 보험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평안한 마음을 얻을 것이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큰 문제없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그는 나를 사장님으로 만든다. 이틀 후 휴가가 끝나기 전에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후회하는 마음이 약간은 들지만 그래도 이제는 챙길 나이가 되었다, 스스로 다독인다.“사장님, 최근에 건강검진에서 이상한 결과라든가, 병명이 있는 질환을 진단 받았다던가 하신 적은 없으시지요?”“아. 병원에 가본 적이 없어서.”사실이 그렇다. 감기 정도로 병원에 가지는 않는다. 검진을 받으라, 직장 담당부서가 몇 번 재촉을 하기는 하지만, 잠깐의 재촉일 뿐 그 시간에 일하고 있는 나를 비난하거나 압박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아픈 적이 없었나? 어딘가 아팠던 것 같기도 하다. 왼쪽 어깨가 결린 적이 있었고 엉덩이 위쪽 허리가 묵직했다. 소화가 안 되고 헛배가 불러와 하루 종일 굶은 적도 있다. 체중도 좀 주는 것 같고. 병원에 가야하나? 아니지. 병원 내원 기록이 있으면 보험 가입이 거절되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래, 보험 가입 먼저 하고. 그리고 병원에 가봐야겠다. 보람찬 휴가.“그래요? 그런 분은 잘 없으신데. 사장님 연배면 보통은 적어도 한두 번은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시거나 하시는데. 하여튼 병원 내원 기록이 없으신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틀 뒤에 뵙겠습니다.”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8-13

앙팡 테러블

우정구 논설위원 스포츠나 연예계 등에서 나이가 어린대도 당차게 차고 나오거나 엄청난 기대를 할 만큼의 유망주가 등장하면 ‘앙팡 테러블(무서운 아이)’이라 한다. 직역하면 무서운 아이들이란 뜻이다.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 가운데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도 있다. 후배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있어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뜻이다. 공자의 이 말 본뜻은 젊은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로 보통 해석한다.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예상을 뒤엎고 역대 최상급 성적을 올려 화제다. 당초 5개로 예상했던 금메달을 13개나 땄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과 맞먹는 성적을 올려 1978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가장 작은 규모 선수가 출전해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대회로 기록됐다.파리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2000년대생들의 겁없고 거침없는 활약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10∼20대 선수들이 한계에 도전하는 열정과 용기만으로 보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것이다.이번 대회 메달리스트 44명 가운데 24명이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선수들이다.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반효진은 현재 고교에 재학 중인 16살 선수. 양궁 3관왕 위업을 달성한 임시헌은 21살, 배드민턴의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은 22살. 등등이다.무서운 아이들의 반란이 있을 때마다 국민의 눈과 귀는 즐거웠다. 승패보다 올림픽 무대를 즐기는 듯한 긍정적 태도에서 기성세대와는 다른 신선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짜증나게 하는 우리 정치판에도 앙팡 테러블이 등장했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3

‘지방시대’ 말하면서 서울그린벨트 해제?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최근 신혼부부 신규택지 공급을 위해 서울 서초·강남지역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충격적이다.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을 오히려 지원하는 정책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해제 대상인 그린벨트가 ‘환경영향평가 3등급 이하’를 받으면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정부가 직권으로 해제할 수 있는 모양이다.서울지역 그린벨트는 국토균형발전의 상징이다. 지난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수도권에 그린벨트를 집중시킨 이유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가 많은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고, 곳곳에서 난개발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이러한 취지에 동의하고 지금까지 그린벨트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가 처음 강남·서초구 일부 그린벨트를 해제했을 때도 투기가 판치고 아파트 시세가 폭등해 국민적 원성을 샀다.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수도권 규제완화는 브레이크 장치 없이 진행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취임 직후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 규제(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를 푼 것이다. 과거 수도권 경제자유구역에는 외국인 투자기업만 공장 신·증설이 가능했는데, 이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해외에 나가있는 ‘유(U)턴 기업’의 공장 신·증설도 허용됐다. 당시 유턴기업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던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반발했지만, 정부는 ‘풀 수 있는 것은 다 푼다’는 식으로 대처했다.정부는 올들어서도 “경기 남부를 관통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에 5년 동안 158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95만개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비수도권으로서는 유일하게 지난해 첨단반도체 소재부품 특화단지로 지정된 구미와 비메모리 반도체 허브도시를 꿈꾸는 대구시로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일이었다.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는 앞으로 관련기업과 인력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될 게 뻔하다.정부 정책판단 우선순위에서 ‘국토균형발전’이 ‘수도권 중심주의’에 밀리는 것은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도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몰림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은 당연히 ‘비수도권 소멸’이다. 윤 대통령은 올 신년사에서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불필요한 과잉 경쟁을 개선하고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칼럼에서 몇 차례 강조했지만, 저출산 문제는 결국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을 분산시키지 않고는 달리 해법이 없다. 서울에 몰려드는 청년들이 학교졸업 후 결혼하고 아이양육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니까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다.현 정부가 연이은 수도권 규제완화에 이어, 서울지역 그린벨트까지 풀겠다고 결정한 것은 국토균형발전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특히 그린벨트 해제의 주된 목적이 ‘신혼부부 신규택지 공급’이라는 점에서 쇼크는 더 크다. 정부는 지금 대구·경북을 비롯해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들의 수도권 유출로 비상이 걸린 상태라는 것을 설마 모르고 있는가.

2024-08-13

쉼, 재충전의 여정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말복에 즈음하여 바람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공기는 차츰 선선함을 더하는 것 같고,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한결 또렷하고 명징하게 들리고 있다. 하지만 한낮의 노염(老炎)은 아직도 맹렬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매미들의 열창(熱唱)을 부추기는 듯하다. 만고불변의 청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햇살과 바람과 물소리 매미소리가 스며들면서 차츰 계절의 옷을 갈아 입을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하늘에선 해가 땅위에선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 8월은, 그야말로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추구하며 깊어지기에 타오름달이라고도 한다. 푹푹 찌는 듯한 열기와 눈부신 햇살로 들판의 곡식을 익게 하고,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가슴으로 집중하고 몰입하여 열정을 사르면서 목표를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가슴이 탈 정도로 뜨겁고 목마르게 갈망하고 혼신을 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동동거리는 것 같아 ‘동동팔월’이라고도 하는 걸까?하지만 8월은 잠시 쉬어가는 달이다. 연중 가장 무덥고 뜨거우며 또한 습하고 꿉꿉하며 비도 많이 내리기에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게 보전하며 보신(補身)으로 건강한 여름날을 나도록 알려주는 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나 산으로 피서를 떠난다거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보양식으로 기력을 채우기도 하는 등 여름날의 다채로운 풍속도에 젖어들고 있다.‘8월은/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달이다.//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오는 것/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8월은/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가을 산을 생각하는/달이다.’ - 오세영 ‘8월의 시’ 전문사람도 기계도 계속 일만 할 순 없는 일이다. 쳇바퀴 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바쁘고 숨차게 달려가기만 한다면 이내 지치고 기력이 쇠잔해질 것이다. 일터에서의 휴식이 중요하듯이 삶터에서는 쉼의 시간이 무엇보다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즉, 쉼이란 하던 일이나 동작, 집중을 멈추고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느슨하고 편안하게 몸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긴장되고 경직된 상태에서 벗어나 아무런 생각없이 멍때린다거나 곤한 잠을 자는 등의 방식으로 몸 속에 쌓인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일 못지 않게 쉼이 중요함은, 여가시간이 있어야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게 된다. 쉼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기 때문이다.당연하고도 자명한 휴식의 의미와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늘 일에 쫓기고 시간에 발목 잡힌 현대인들이 제 때 쉬거나 여유로운 휴가를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보니 딜레마에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이 강조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지만, 현실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하기엔 다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잘 놀아야 잘 산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8월이다.

2024-08-13

도요타자동차 성공의 비밀 자주연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성공하는 기업들은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끄는 독특한 조직문화와 특징이 있다. 훌륭한 조직문화를 통해 직원들이 동기부여를 받고 협력하며,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한다. 명확한 가치와 비전이 있고 직원 간 신뢰와 존중의 긍정적인 조직분위기를 갖는다. 지속적인 개선과 학습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일의 효율성과 품질의 지속성을 형성한다. 또한 직원들이 자신의 지식과 스킬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이 제공되고 성과중심의 조직문화로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황에도 흑자를 내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성장 비밀 자주연에 대해서 알아본다.도요타자동차의 개선 활동인 ‘자주연(自主硏)’은 도요타의 생산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특한 개선활동을 의미한다. 도요타의 ‘지속적인 개선(改善·카이젠)’ 철학의 일환으로 작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작업 환경과 프로세스 개선활동을 의미한다. 자주연의 주요 활동과 목표는 첫째, 작업 개선이다. 작업자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작업 과정에서 비효율적이거나 불필요한 단계를 식별하고 제거하거나 개선한다. 이를 통해 작업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 시킨다. 둘째, 문제 해결이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신속하게 식별하고 해결한다. 작업자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셋째, 협력과 소통이다. 자주연 활동은 팀 단위로 이루어지며 팀원 간의 협력과 소통을 통해 보다 나은 개선 방안을 도출한다. 이를 통해 팀워크를 강화하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다. 넷째, 지식 공유이다. 개선 활동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른 팀원들과 공유하여 회사 전체의 작업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자주연 활동은 도요타의 전사적인 학습과 지식 공유 문화의 중요한 영역이다.자주연 활동은 도요타의 ‘지속적인 개선’인 카이젠 철학을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운영 체계는 현장 중심의 접근이다.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작업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실질적인 개선 활동이 이루어진다. 참여와 주인의식이다. 자발적으로 개선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혁신과 창의성이다. 작업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혁신적인 개선방안을 지속적으로 도입 적용 할 수 있다. 도요타의 자주연 활동은 이러한 지속적인 개선 문화를 통해 회사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며 작업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최근 전 세계가 장기적인 불황의 늪으로 갈 수 있다는 지표들이 나와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의 개선 문화는 70년대 1,2차 석유파동에도 흑자를 지속한 기업의 성장 비밀이었고 88년간 지속되고 있다. 기업 성장을 지속하고 불황에도 생존하는 길은 자사만의 독특한 개선 문화로 진화 발전시키고 지속하는 일이다.

2024-08-13

‘낚시꾼적’ 사고

낚시꾼만큼 핑계가 많은 사람도 없다. 지난 주말 부안 격포에 다녀왔다. 낚시용 레저보트를 장만한 후 처음으로 멀리까지 가 낚시를 했다. 농어를 노리고 배를 띄웠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꽝이다. 같이 간 일행이 장대와 어름돔을 잡았지만 대상어종인 농어가 아니므로 꽝이나 마찬가지다. 어름돔의 경우 제주도와 남해에 주로 서식하는데, 서해 격포에서 잡히는 걸 보니 수온이 오르긴 오른 모양이다.그렇다. 수온이 문제다. 기온이 32도인데 수온도 32도였다. 바람도 없고 파도도 없는 날씨에 뙤약볕을 그대로 빨아들인 해표면은 사우나 온탕이나 다름없다. 수온이 높으니 농어들도 깊은 자리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또 핑계를 대본다.낚시만큼 시도 대비 실패가 잦은 행위도 없다. 강에만 가면, 바다에만 가면, 배만 타면 물고기를 잡을 것 같지만 막상 쉽지 않다. 내가 가입한 레저보트 동호회 카페에 어느 회원이 글을 올렸다. 보트 구입 후 자신이 저지른 초보적인 실수들을 나열하면서 마지막 열 번째, 보트를 산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했다. 거기 다 적진 않았지만 매번 다채로운 실패의 변이 있을 것이다.낚시꾼만큼 핑계가 많은 사람도 없다. 수온이 높아서 안 잡힌다. 반대로 수온이 낮아서 안 잡힌다. 냉수대가 유입돼서, 일본에 지진이 나서, 적조가 발생해서, 돌고래가 날뛰어서 낚시가 안 된다.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안 불어서, 비가 와서, 비가 안 와서, 기압이 높아서, 기압이 낮아서, 너무 환해서, 너무 어두워서, 수량이 많아서, 수량이 적어서, 물색이 맑아서, 물색이 탁해서 꽝이다. 그럼 도대체 언제 잡는가?낚싯배를 타거나 고기가 잘 잡힌다는 지역에 가 낚시를 하면 선장이나 현지의 고수들이 하는 말이 있다. 1번 “있으면 잡혀요”, 2번 “물 때 되면 물어요”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 고기가 있겠거니, 곧 물겠거니 집중해도 입질은 전혀 없다. 그때 압권의 3번 “어제까지 잘 나왔는데”가 나온다. 낚시꾼 속은 뒤집어진다.물고기는 기억력이 아예 없다던가. 낚시꾼도 물고기 못지않다. 한 마리도 못 잡고 씩씩대며 집에 와서는 낚시장비를 정리해두자마자 다시 물가로 가고 싶은 게 낚시꾼이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한다던데,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게 없는 어리석은 자만 낚시꾼이 될 수 있다. 아니다. 실패 따위 아랑곳하지 않아야 낚시꾼이다. 낚시꾼이야말로 긍정적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온라인에서 ‘럭키비키’라는 말이 유행이다. 아이돌 가수 장원영이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에게 닥친 불운마저 행운으로 여기며 예컨대 “앞사람이 빵을 다 사가는 바람에 새로 갓 나오는 빵을 살 수 있게 됐어. 완전 럭키비키잖아”를 외치는 데서 유래했다. 비키는 장원영의 영어 이름이고 ‘럭키비키’는 이른바 ‘원영적 사고’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주 농어낚시의 아픔을 잊은 나는 어제 서천 마량진항으로 백조기 낚시를 다녀왔다. 낚시 도중 예보에 없던 폭우와 풍랑, 낙뢰에 급히 항구로 들어와 정박한 다른 배에 배를 묶어두고 화장실에서 비를 피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팬티까지 다 젖었지만 선크림을 안 챙겨 왔는데 얼굴 안 타서 럭키비키잖아!’ 긍정적 사고에 힘입어 만선으로 입항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낚시꾼적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다. 낚시꾼은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살면서 자책하는 낚시꾼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낚시꾼에겐 다 핑계가 있고 변명이 있다. 주변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초자연적인 운을 탓한다. 그러면서 실패쯤은 웃어 넘긴다. 못 잡으면 사 먹으면 된다며 ‘카드채비’(신용카드와 낚시채비의 합성어)를 필살기를 꺼내든다. 어시장에 가 고기를 사서는 직접 낚시로 잡은 거라며 집에다 뻥을 친다.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불행과 불운과 좌절과 패배와 실패에는 다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원인에서 자신은 쏙 빼는 낚시꾼의 뻔뻔함이야말로 ‘팍팍한 인생살이 다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 아닐까. 어제 실패한 낚시꾼은 오늘 다시 바다로 간다. 오늘 실패하고 내일 또 간다. 실패 따위 적당한 핑계로 둘러대고 새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수온이 높아 한 마리도 못 잡은 덕분에 다음번 잡을 농어들을 두 배로 남겨뒀어. 완전 럭키비키잖아!’

2024-08-12

처음이라는 이름의 탈피

처음, 이라는 말처럼 마음을 조여오는 말이 또 있을까. 처음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덜 익은 풋사과처럼 입 안 가득 잔뜩 떫은맛이 맴돈다. 설렘과 서투름, 민망함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질서 없이 섞여 ‘첫’이란 단어에 모두 응축되어 괴상한 맛을 띠고 있는 것 같달까.나는 모든 처음을 싫어한다. 처음은 능숙하지 않고 어딘가 어리숙하고 부족하고 부끄러움이 많고 미성숙한 상태로 느껴진다. 게다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막연한 공포심이 들게 한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비해 신체에서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게 되고, 이는 은근한 긴장 상태에 빠져 입이 바짝 마르고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게다가 ‘처음’이라는 말에 기대어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이 일이 처음이라 그래’, ‘처음이라 어쩔 수 없었어’ 등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을 두 번째로 미루고 처음이란 단어에 기대어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는 사람의 유형이 제일 난감하고 대하기 멋쩍다. ‘이렇게 황당한 사과를 받는 나의 감정도 처음이야!’ 라고 되받고 싶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화를 삭히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이란 단어와 정을 붙이기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하지만 누구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을 정도로 누구나 서툴 수 있단 사실은 인정한다. 처음이란 어딘가 삐뚤삐뚤한 서툰 마음이 당연히 들기 마련이니까. 그러므로 이성적으로 처음이란 단어를 다시금 생각해보자면 ‘첫’은 단 한 번밖에 없어 애틋한 것이기도 하다. 첫 등교, 첫 키스, 첫 출근, 첫 해외여행 등등 처음은 낯선 대상으로부터 오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오묘하게 섞여, 딱 한 번밖에 느껴볼 수 없으므로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최근 회사를 그만 두면서 다시 처음이란 관문 앞에 서 있다. 하루에 두 시간씩 내 경력을 증명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한 시간 정도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금 다듬고 많은 회사들 중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 고심히 지원한다. 그렇게 지원한 여러 회사들 중 서류 단계부터 불합격 통보가 날아올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시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단 열패감이 어지러이 맴돌아, 시작조차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러니 언제나 처음이 두렵답시고 언제나 구석에 숨어 피하고만 있을 순 없다. 한자 으뜸원(元)은 처음, 시초(始初)라는 뜻도 지니고 있지만, 우두머리, 두목 또는 임금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한다. 처음이 없다면 사건이 발생하지 않듯 무엇이 진행되거나 생기기 위해선 처음은 필수불가결로 일어나야만 한다. 처음은 곧 발판의 도약이 되어 최고 또는 일등이란 결과물로 나아가게도 하니까.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 뱀이 탈피하는 영상을 봤다. 탈피하는 과정은 꽤 힘겨워 보였고, 느렸고,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태 가지고 있던 몸의 껍질을 버려내는 이유는 뭘까 싶어 검색해 보았더니 탈피는 생물에게도 매우 힘겨운 과정이지만 탈피를 하지 않으면 몸의 크기를 불릴 수 없기에 필수로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탈피는 성장과 관련이 있어 성장주기에 따라 탈피 시기도 달라진다고 하는데, 파충류의 경우 대부분 1년에 1번 계절의 환경이 변하고 생물의 내분비계가 탈피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호르몬을 분비했을 때 몸이 탈피 준비를 하게 된다고 한다.외골격을 두른 곤충이나 갑각류는 탈피 후 더 큰 갑각을 만들어 내고, 파충류는 내골격의 성장에 맞추기 위해 피부를 크게 늘려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다. 파충류, 양서류 등은 탈피로 인해 피부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나 세균들을 떨쳐내기도 한다고 한다. 탈피를 하는 동물은 모두 고통을 동반하면서까지 전의 모습을 버리고 다음으로 나아간다.전에 있던 상황이나 무언가에서 많이 달라졌거나, 과거의 인식을 벗어난 경우, ‘탈피’ 또는 ‘탈바꿈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실은 내가 처음이란 단어를 낯설게만 느껴졌던 것도 첫 시작점 앞에서의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낯선 것에서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해야 할 일을 찾아낸다면 처음이란 혼란에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져야 할 것은 탈피라는 용기다.

2024-08-12

김순일 ‘스산 사투리4’를 AI가 읽으면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얼마 전 경북매일 구독자로부터 왜 표준어가 아닌 방언으로 쓴 시에 대한 칼럼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미 누누이 언급했듯이 문학에서의 토착적 정서와 변두리 사람들의 심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언은 표준어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이라는 대답을 했다. 또한 방언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도달하기 힘든 지식정보 관리를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해낼 수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표준어 이상으로 쓸모 있는 정보 데이터이기도 하다는 답도 곁들였다.영국은 산업혁명을, 프랑스는 정치혁명을, 독일은 정신혁명을, 미국은 청교도 정신을 기반으로 한 지식정보화 혁명을 이루면서 세계사를 한 단계씩 끌어올렸다. 한국은 20세기 이후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단 기간에 서구가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해온 제도적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과 기술적 성취라는 기적을 이뤘다. 현재 21세기 한국의 놀라운 지식정보화 기술력과 디지털 생산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세계를 선도한다. 지금은 음성, 문자, 이미지를 벡터(0.1)로 전환하여 호환할 수 있는 AI기술시대이자, 기계가 사물을 인식하고 감성까지 그대로 베낄 수 있는 GPT-4(Generative Pre-Training4)의 시대이다. 문제는 사람의 말소리는 순간순간 달라진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계층에 따라 분화되며 언어권에 따라 또 광범위하게 변이된다. ‘아버지’라고 말한 음성 파형은 말소리로 발화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변별적 범주가 있다. 이것을 음운이라고 규정한다. 표준어 ‘잠자리’는 지역에 따라 ‘잔자리’, ‘잠바리’, ‘철갱이’, ‘철기’와 같이 매우 복잡한 방언 분화형을 생산한다. AI나 GPT-4와 같은 기계가 이러한 방언형을 ‘잠자리’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언 분화형의 데이터를 엄청나게 확보해서 이들을 함께 묶어내야만 한다.우리나라 언어 정보처리 회사 ‘솔트룩스’는 이러한 방언 음성형들을 클라우드 데이터로 구축하는 일을 오랫동안 추진해 왔다.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를 구매합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통해 다양한 언어와 방언들을 동시통역함은 물론 방언이 섞인 문학작품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시대를 준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표준어만 학습해 왔다면 그 인공지능은 편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되었기 때문에 방언이나 개인적 언어 변이를 해석해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언어의 지역적 편향성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사례로 윈터라이트 랩(Winterlight Labs)이라는 캐나다의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진단하는 인공지능의 성능을 들 수 있다. 이 발명은 매우 획기적이었지만 데이터를 온타리오 지역에서 수집한 까닭에 미국 영어 중에서도 온타리오 방언 사용자들만 진단이 가능했다. 표준어나 혹은 방언이냐에 따른 데이터의 편향성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무용에 가까운 폐기물이 될 수가 있고 언어정보가 어떤 변이형인지에 따라서 그 기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좋은 사례다.충남 서산 출신 김순일 시인의 ‘스산 사투리4’를 예를 들어보자. ‘스산 사투리4’를 예를 들어보자. “갯바닥이나 뒤지며 살든 안흥 새악시가 근친을 왔는디유/새신랑의 품속에서유 야들야들해져가지구유 갯바닥이나/ 뒤지며 살든 새악시가 상글상글 근친을 왔는디유/갯바닥이 달을 품구 응어리진 멍울을 푸는 밤에유 지집 아이들이 모여 앉아서유 첫날밤 이야기를 졸랐는디유/보리누름에유 지름기 자알잘 흐르는 우럭은유 그래두유/ 눈이나 뜨구 먹는디유….” 라는 시를 표준어만 학습한 AI는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을 것이다. 충남 방언에서는 중모음이 길어지면 고모음으로 변화한다. ‘서:산’이 ‘스:산’으로 바뀌며 접속어미 ‘-고’가 ‘-구’로 바뀌고 모음으로 끝나는 접속어미 끝에 ‘-유’가 붙어서 말소리가 느려지고 길어진다. ‘계집’이 ‘지집’으로 ‘기름’이 ‘지름’으로 ㄱ-구개음화가 널리 퍼져 있는 충남 방언의 특성을 학습하지 못한 인공지능은 충청도 방언으로 된 이 시를 제대로 읽어내기 힘들 것이다.이런 점에서 인공지능의 데이터 편향성을 극복하고 방언을 이해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일은 개발자들의 윤리적 의무라고도 할 수 있다. 2002년부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서는 남북을 포함한 한국어의 지리적 사회 계층적 방언음성형을 대대적으로 조사하여 클라우드 데이터로 구축하려는 국가적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2024-08-12

예니체리(Yeniceri)의 탄생과 몰락

오스만트루크, 이슬람제국을 강성하게 만든 원인이자, 제국이 하향곡선을 그리게 한 가장 큰 요인, 폭력의 시대 한가운데를 장식했던 그 이름 ‘예니체리’다. 어느 사학자의 표현처럼 어찌 보면 그들도 가혹하고도 슬픈 피해자이다.예니체리는 오스만제국 3대 군주, 엄밀하게 초대 술탄이었던 무라트 1세에 의해 창설되었다. 1389년 6월, 마지막 십자군과 코소보에서 싸우다 세르비아 영웅 밀로슈 오빌리치 칼에 죽은 무라트 1세는 1363년 발칸반도에 진출한 뒤 예니체리 탄생에 박차를 가했다. 종교와 사상, 시대적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술탄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을 정예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이슬람제국은 군인징집에 있어 까다로운 규칙이 있었다. 일단 외아들은 제외됐다. 대를 잇는 것이 우리 조선이란 나라만큼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튀르크 인을 비롯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 역시 징집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한 종교 아래 연결된 같은 형제라는 이유다. 정체성 등 뿌리를 알 수 없는 고아와 떠돌이로 살아간다고 해서 하류 취급을 당했던 집시, 전과자, 그리고 복종을 모르는 유대인 역시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다 보니 군사 충당요건은 한계에 다다랐다. 때마침 제국이 전쟁에 연승을 거듭하면서 전쟁포로가 많았다. 데브시르메(Devsirme), 즉 전쟁포로 중 소년징발과 공납이란 방식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있었다. 무라트 1세는 기독교인 중 건강한 혈통과 건강한 몸, 지혜를 두루 갖춘, 청소년을 뽑아 훈련시켰다.이들은 주로 발칸반도에서 차출했는데 이들이 예니체리다. 이렇게 부모에게서 강제로 떨어져 나온 후 특별한 장소에 흩어져 가장 먼저 이슬람으로 개종 당했다. 그리고 고된 훈련으로 몸과 마음을 담금질 당해야 했다. 튀르크 말을 익히고, 정해진 기간에 무슬림 전사로서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런 후 이스탄불 궁정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마쳐야 온전한 예니체리가 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예니체리는 철저하게 술탄의 노예로 길들어졌다. 술탄에 무한충성, 술탄의 명령에만 절대복종했으며, 황제의 친위대를 겸하며 궁정 수비는 물론 국경의 수비도 이들 임무 중 하나였다. 엄격한 규율 속에 군영에서 독신으로 생활하며 사치는커녕 경제활동 또한 금지됐다. 최정예부대였던 만큼 최신식 무기로 무장했고, 술탄 이외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궁정반란이 일어나면 술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다 술탄이 죽으면, 곧바로 새로운 술탄에게 충성하는 맹목적이면서도 오로지 술탄을 위한, 술탄으로선 가장 충성스러운 병사들이었다.코소보전투에서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십자군이 무라트 1세의 아들 바예지드에게 전멸당한 후 그곳 출신 전쟁고아들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가 공격했을 때 술탄 바예지드를 위해 결사항전 했던 예니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세르비아 출신들이었다. 부모의 원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것이다. 19세기 중엽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의 열망이 들끓을 때, 반란 지도자를 죽이고, 세르비아 농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이들도 예니체리였다.나날이 발전한 예니체리 부대는 16세기 무라트 3세에 이르러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튀르크 출신도 예니체리 신분이 될 수 있었기에 기독교도 청소년은 제외된다.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예니체리는 적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내부적으로는 정치에 깊게 관여하면서 골칫덩이로 떠올랐다. 장군과 재상의 지위에 오를 만큼 막강한 권한을 누리고, 술탄의 약점을 잡아 위협과 공포정치를 일삼기도 했다. 심지어 그들의 뜻에 맞지 않을 경우 황제를 암살하는 등 국정농락에 앞장서면서 제국의 세기말적 현상을 두드러지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 집중되면 초심은 사라지고 부와 함께 쾌락이 따른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물질이 스며들며 고이게 되고 반드시 부패한다. 1826년 30대 술탄 마흐무트 2세는 새로운 질서를 위해 일련의 개혁에 성공하면서 수만 명의 예니체리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예니체리는 튀르크 말로 ‘예니센’, 즉 ‘새로운 병사’들은 이렇게 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천애 고아를 만드는 반인륜적인 방법으로 모집해 양육한 전쟁의 소모품이자, 용감한 군인들이었고, 500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폭력의 한 가운데 자발적 희생양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의무라 여겼다.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초심이 사라지자, 욕망이 대신했다. 그리고 그들은 처절한 멍에를 뒤집어쓴 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카루스 패르독스(Icarus Paradox)란 말이 있다. 성공이 실패를 초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교만하지 말라.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8-12

하수도 탄소중립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마가 물러가고 연일 40℃에 육박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간간이 내리는 집중호우의 기세가 엄청나다. 이런 집중호우 속에 운전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는 도로 구간도 많다. 너무 많은 비가 일시에 내려 미처 배수되지 못하는 경우인데 다행히 하수도가 늦게나마 배수를 해서 심각한 침수사고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날에 생활하수와 빗물 같은 하수관로로 배제하는 합류식 하수도는 평상시 하수관로를 흐르는 생활하수량의 3배를 넘게 되면 생활하수와 빗물이 썩인 물이 하수처리시설로 들어가지 못하고 하수도를 넘쳐 하천으로 그대로 유입된다.1970~80년대에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기존 도심 대부분의 구간에는 이러한 합류식 하수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최근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생활하수와 빗물을 각각 배제하는 우오수 분류식화 사업이 한창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축산폐수와 함께 극심한 녹조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도시지역 비점오염원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분류식화의 증대로 하수처리시설에는 과거 대비 높은 농도의 생활하수가 그대로 유입되어 최대 처리용량에 육박하는 하수처리시설도 급격히 늘고 있다.더불어 하수관로와 하수처리시설에서 다량 발생하는 메탄(CH₄)과 아산화질소(N₂O)는 이산화탄소(CO₂)보다 각각 약 25배와 300배에 달해 이산화탄소와 함께 배출량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메탄(CH₄)을 신재생에너지인 수소(H₂)가스로 전환하거나 최신 아나목스(Anammox) 수처리공법의 도입으로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이고 아산화질소(N₂O)의 배출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하수도 탄소중립’ 사업이 미국, 일본 등 하수도 선진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하수도 탄소중립’ 사업은 그간 하수처리시설 가동을 위해 전기 등 외부 에너지 의존율이 90% 이상이나 되었던 것을 급격히 낮추었다. 여기에다 태양광 외에도 통합바이오가스, 소수력, 하수열 등 하수처리시설 자체 에너지 생산기능의 확대로 외부공급 에너지 소비량을 완전히 제로(Zero)로 만드는 ‘에너지자립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환경부는 2050 국가 탄소중립 목표달성에 대응하여 ‘에너지자립화율’ 목표를 2030년 60%, 2050년 100%로 매우 도전적으로 설정했다.이처럼 하수도에는 집중호우로 인한 도시침수, 녹조로 인한 심각한 상수원 오염, 메탄(CH₄)과 아산화질소(N₂O)로 인한 기후위기 심화 등 최근의 가장 우려스러운 기후환경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막대한 역할이 부여되었다. 이에 환경부는 2001년부터 매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수관로 유지·관리 △탄소중립 실천 등 38개 항목의 운영·관리 실태를 총인구수 기준 4개 그룹으로 나누어 평가하고 있다. 작년 11월 말에 발표된 2023년도 결과를 보면 161개 지자체 중 대구경북지역 지자체는 대부분 중·하권으로 실태평가 결과에 대응한 ‘하수도 탄소중립’ 사업 전개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2024-08-12

전기차 화재 극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김규인 수필가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주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경찰은 차량 제조사인 벤츠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참여하는 두 차례의 합동 감식을 벌였다. 배터리 관리 장치를 국과수에 보내 정밀 감정을 의뢰하고 자체 원인 조사를 위한 조직을 보강하고 진행한다.이번 화재 발생 이후에 추가로 여러 건의 전기차 화재가 겹쳐서 전기차 공포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주차를 금지하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충전 시설을 지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야단이다. 여기에 멀쩡한 전기차 차주들도 난감한 입장이다.전기차 화재 사고는 2020년 11건을 시작으로 24건, 43건, 72건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난다. 이는 전기차 등록 대수가 2020년 13만4962대에서 2024년 상반기에는 60만6610대를 넘어서는 차량의 증가와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차량의 증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난 사고라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걱정은 늘어난다.소방청에서 발표한 지난 3년간 발생한 139건의 전기차 화재 분석 결과를 보면 운행 중 68건, 다른 화재로부터 옮겨붙은 경우를 포함한 주차 중 38건, 충전 중 26건, 정차 중 5건, 견인 중 1건의 순이었다. 차량이 운행 중이거나 주차 중, 충전 중을 가리지 않고 조건만 되면 일어난다.전기차 화재가 주목받는 건 불이 나면 끄기 힘들 뿐만 아니라 확실한 대처 방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차량 하부의 배터리 팩에 수백~수천 개의 리튬 배터리 전지가 들어간다. 전지 내부의 양극판과 음극판 사이의 분리막이 손상되거나 심한 과열, 외부 충격이 일어날 때 화재가 발생한다. 리튬 배터리는 하나의 셀에서 불이 나면 다른 셀로 불이 옮겨붙는 연쇄적 폭발 현상이 일어난다. 화재 온도도 1900℃까지 올라가 진화하기 어렵고 재발화와 폭발이 쉽게 일어난다.전문가들은 배터리를 느리게 85% 이하로 충전하고, 충전기에도 과충전 방지 장치 설치를 제안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현재 일어나는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제조사를 알리는 것조차 영업 비밀이라며 숨기고, 정부의 종합 대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배터리 제조사도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장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을 막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화재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산업을 견인하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정부도 배터리 안정화를 위한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행정과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국가의 힘을 모아 대응한다면 생각보다 빨리 안전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임을 말하지 않는가. 수많은 국난을 극복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할 때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산업에 새로운 동력을 얻고 화재로부터 소중한 인명을 구할 수 있다.

2024-08-12

이슬처럼 영롱한 ‘뒷것’의 삶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남달랐던 ‘천재 아티스트’가 그의 노래 ‘아침이슬’처럼 홀연히 떠났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하늘이 보내준 보물, 큰 산과 같은 어른, 세상이 빚진 분, 시대를 노래한 음유시인, 어둠을 밝혀준 성자” 등 찬사가 끊이질 않는다. 문화예술계는 물론이고 정계와 법조계, 수많은 시민들까지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이러한 존경과 감사는 사랑과 헌신으로 일관한 청죽(靑竹)같은 삶의 결과였다. 엄혹했던 시절,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 시위에서 불렸다는 이유로 ‘운동권 학생’으로 낙인찍혀 엄청난 고초를 겪으면서도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버리지 않았다. 독재정권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생계를 위해 봉재공장과 탄광에서 일할 때, 그리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에도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먼저 생각한 그의 삶에는 변함이 없었다.‘영혼이 아름다운 어른’이 남긴 가르침은 너무나 크다. 무엇보다 큰 감동은 그가 우스갯소리로 했다는 ‘뒷것’ 정신이다. 그는 무대 뒤에서 일하는 자신을 ‘뒷것’이라 낮추고, 무대 앞의 배우들을 ‘앞것’이라 높이면서 묵묵히 뒷바라지 했다. 사재를 털어 만든 소극장 ‘학전(學田)’은 그의 말대로 가난한 예술가들을 키우는 ‘못자리’였으며, 이곳에서 설경구·황정민·장현성·김광석·박학기 등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앞것에 환호하고 서로 앞것이 되려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그의 ‘뒷것 정신’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뒷것 정신’은 양지가 아니라 음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는 정신이다. 그의 노래 ‘상록수’는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선물한 것이었고, ‘봉우리’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 낙담한 선수들을 위해 만든 노래였다. 공연 4000회를 기록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었고, 수익성 없는 ‘아동극’을 무대에 올린 것도 돈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였다. 이러한 것들은 그가 이미 대학시절 달동네 판자촌에서 봉사했던 ‘신정야학’과 ‘해송유아원’의 연장선에 있었음은 물론이다.만약 그가 돈을 벌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재능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권유와 정권의 유혹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맑은 뒷것 정신’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늘 사회의 명암(明暗)을 균형 있게 보아야 하며, 밝음(강자)만 찾고 어둠(약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노래 ‘아름다운 사람’처럼 ‘맑은 눈’과 ‘고운 마음’이 있어야 돈·권력·명예의 아귀다툼으로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평생 꿈과 희망을 심고 가꾸었던 상록수였다. 고인의 영정이 33년을 함께했던 학전(현재 아르코 꿈밭극장)을 떠날 때, 제자 이인권이 색소폰으로 연주한 노래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김민기였다. 약자의 아픔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었던 ‘큰 어른’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뒷것 정신’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빛날 것이다.

2024-08-12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달린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이유가 있다. 면밀하게 작성된 시나리오와 현란한 연출 없이도 드라마나 영화 이상의 감동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기 때문.이번 프랑스 파리올림픽에서도 드라마틱하고 눈물겨운 장면들이 여러 번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보여졌다. 그중 한 장면은 오랜 시간 우리 기억 속에 남을 듯하다.지난 2일 프랑스 생드니에서 펼쳐진 여자 육상 100m 예선 경기. 한국만큼이나 뜨거운 날씨였음에도 팔다리를 가리는 새까만 히잡(이슬람 여성의 복식) 형식의 운동복을 입은 선수 한 명이 등장한다. 망명 중인 스물여덟 아프가니스탄 여성 키미아 유소피였다.국제적 수준과는 거리가 먼 기록 13초42. 꼴찌였다. 하지만, 키미아 유소피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 크게 주목받았다. 경기를 마친 뒤 ‘교육은 우리의 권리입니다’라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관중들 사이를 달린 것.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교조주의자’로 불리는 탈레반이 집권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문 앞에서 쫓겨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이 이미 수차례 전파를 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긴다.‘달리는’ 인간의 행위에는 여러 가지 함의(含意)가 담겼다. ‘부당함에 온힘을 다해 저항한다’는 것도 분명 그 함의 중 하나일 터.유소피는 그날 100m를 전력으로 질주함으로써 ‘나를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부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으려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졌다. 그날, 그녀가 보여준 용기는 꽃다발 1만 개를 받기에 충분했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12

파리의 스포츠맨십, 서울의 스테이츠맨십

김진국 고문 파리 올림픽이 어제 막을 내렸다. 올림픽에서 우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많이 봤다. 여자 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을 딴 레베카 안드리드(브라질)가 양팔을 들고 승리의 기쁨을 표시하자, 은메달리스트 시몬 바일스(미국)와 동메달리스트 조던 차일스(미국)가 레베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뻗어 존경을 표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관중들이 환호했다.바일스는 체조의 전설이다. 넷플릭스가 ‘시몬 바일스, 더 높이 날아올라’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정도다. 8년 전 리우올림픽 4관왕인 바일스는 이번에 금 3, 은 1개를 땄다. 그런 바일스가 마루 종목에서 0.033점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활짝 웃으며 차일스를 꽉 안아줬다. 시상대에서는 레베카를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기자회견에서도 “레베카는 정말 대단하고 여왕 같다”라고 칭찬했다.# ‘삐약이’ 신유빈은 탁구 여자 개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역전패했다. 5세트까지 가는 힘겨운 시합이었다. 그러나 신유빈은 드러누워 있는 하야타 히나(일본)에게 다가가 미소로 포옹하며 축하했다. 일본 감독에게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나를 이긴 상대들은 나보다 더 오랜 기간 열심히 묵묵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유빈이 경기장을 떠날 때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본 언론들도 찬사를 보냈다.# 양궁 남자 개인 결승전은 슛오프 끝에 김우진이 브레디 엘리슨(미국)을 이겼다. 슛오프에서도 동점이었지만 4.9㎜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그럼에도 엘리슨은 승복하고, 축하했다. 양국 감독까지 손을 잡고, 만세를 불렀다. 엘리슨은 “그와 동시에 화살을 쏜다는 건 인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태권도의 박태준은 결승전에서 이긴 뒤 승리의 세리머니 대신 쓰러진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상태를 살피며, 위로했다. 시상식에는 그를 부축하고 나타났고, 끝난 뒤에도 부축해 줬다.# 남자 유도 100㎏ 이상급 결승전에서 테디 리네르(프랑스)는 김민종을 매트에 꽂아 한판승으로 이겼다. 리네르는 김민종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김민종의 왼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관중의 환호를 유도했다. 이유를 묻자, 리네르는 “여기 있는 선수들 모두 잘 싸웠다. 강한 상대였다. 아름다운 경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일 남자 높이뛰기 예선에서 무타즈 바르심(카타르)이 2m27 1차 시도를 하다 다리 근육경련으로 쓰러졌다. 지안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는 바로 직전 2m27에 1차 시도해 실패했는데도 바르심에게 달려가 다리를 뻗게 도와주고, 종아리를 주물러 풀어줬다. 두 사람은 4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공동 수상했다. 파리에서는 바르심이 동메달을 땄다.# 10일 오후 7시 35분(한국 시각) 파리의 르부르제 클라이밍 경기장. 스포츠클라이밍 마지막 대회가 열렸다. 여자 콤바인 결선 리드 종목. 완등자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도전자로 얀야 간브렛(슬로베니아)이 나섰다. 경쟁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관중이 일제히 리듬박수를 치며 완등을 축원했다. 금메달 포인트까지 따자 환호가 더 커졌다. 더 올라가 완등 직전에 떨어졌지만, 경쟁자와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우리가 이미 본 장면들이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우리 정치권이다. 경쟁을 끝내고도 승복할 줄 모른다. 내 능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끌어내린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커녕 예의도 없다.국회 연설에서 다른 의원들을 향해 ‘존경하는…’이라고 발언을 시작하는 것을 자주 본다. 영국의 전통을 흉내 냈다. 상대의 의견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말마저 ‘존경하고 싶은…’이라고 비튼다. 야유와 조롱과 욕설이 난무한다.열거한 사례 대부분은 한국 청년이다. 그 앞 세대인 정치권은 왜 그 모양일까. 그러면서 정치꾼(politician)이 아닌 정치가(statesman) 행세를 한다. 오히려 남들에게 “올림픽처럼 하라”며 하늘 보고 침을 뱉는다. 제발 미래세대에 걸림돌, 부끄러움이 되지 말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11

철의 인문학

아들이 손을 흔들었다. 얼마 전 직장을 따라 타지역으로 나간 아들을 보며 나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열차가 플랫폼을 떠나 소실점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열차가 밟고 지나간 평행 레일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오늘 나는 철길 위에 이별의 시(詩) 한 소절 뿌렸다.돌아오는 길, 하늘로 솟은 건물들이 압도적이다. 건물들은 저마다 높이를 자랑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옆에는 새로운 빌딩이 철을 수직으로 세우며 높이 치솟는다. 철은 이 시간에도 강인한 힘으로 문명을 드높인다.철철철, 철이 넘칠수록 인간은 번영을 누렸다. 철을 화덕에 넣어 빨갛게 달구고 두들기고, 그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인간도 강인해졌다. 철기로 무장한 부족은 강자가 되었다. 힘이 약한 부족을 정복하면서 마을을 파괴하고 오만과 탐욕의 피를 뿌렸다. 철의 연금술이 뛰어난 집단이 곧 문명이라는 명제가 진리였다. 그렇게 인류는 철과 함께 역사를 써내려 왔다.철은 평화를 일구는 도구도 되었다. 돌을 떼고 돌을 갈아 쓰던 인간에게 철은 혁명이었다. 낫, 볏, 보습, 쇠스랑, 철로 쟁기를 만들어 논밭을 갈았다. 철의 힘이 더해지자 수확은 급속히 늘었다. 철은 주변에 흔하게 있다. 광석에 녹아 있는 철도 녹이지 않으면 그냥 돌의 부분일 뿐이다. 용광로에 녹여 하나로 뭉치고 다시 녹여 가공해야 가치가 살아난다. 망치로 얻어맞고 불에 달궈지면서 더 강하고 더욱 탄탄해진다. 철은 인고의 과정을 지나온 만큼 도도하다.철은 차갑다. 철문, 철창, 칼, 발음으로도 차가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철은 그 누구보다 뜨겁게 태어난다. 뜨거운 화덕에 들어가 한 번 데워지면 쉬이 식지를 않는다. 철은 달구고 식히는 동안 속에는 따뜻한 품성을 지닌다. 그래서일까. 철은 도구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영역으로 뻗어나갔다. 도도해 보이는 철이 길게 누우면 길이 된다. 강물 위로 몸을 눕혀 강을 건너뛰게 하고, 늪 위로 몸을 구부려 늪을 가로지르게 한다. 산은 입을 벌려 길을 받아들이고 제 등을 내어주며 길을 낸다. 뭍과 섬을 이어 외롭지 않게 하고 도시와 촌을 이어 사람이 흐르게 한다. 나란히 누운 길은 또 다른 징검다리가 되어 부와 가난을 잇는다. 먼 소식도 철길을 타고 왔다. 돈을 벌어 돌아오겠다고 먼 객지로 떠난 아들의 ‘부모님 전상서’가 밤길을 달려왔다. 그러면 ‘객지에서 몸조심하그래이’ 답장이 달려갔다. 집을 나간 삼촌 소식도 오는 사람을 통해 풍문처럼 들려왔다. 떠남과 기다림과 만남이 있는 플랫폼에는 늘 눈물과 설렘과 기쁨이 교차했다. 간이역이라는 마디마다 사연이 깃들었다. 어머니는 객지로 떠난 아들을 기다리고,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이별은 눈가에 촉촉한 이슬을 남기고, 환한 미소를 남기고, 별 같은 수다를 남기고, 잊지 못할 바람을 남겼다. 아나로그 간이역 마디와 마디, 길을 오가는 정한(情恨)의 문장들이 철길 위에 뿌려졌다. 김경아 작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철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철학이 있다. 무사는 함부로 베지 않는다는 칼의 철학을, 농군은 벨 것만 벤다는 낫의 철학을, 대장장이는 만 번을 두드려 명기를 만든다는 장인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식솔의 숟가락을 쥔 아버지는 배고픈 녀석 먼저 먹인다는 배려를, 바느질하는 어머니는 해진 마음까지 깁는다는 마음을 가졌다. 마음속으로 불러들인 철의 가치는 그렇게 정신문화로 승화했다.철로 된 건물이 수직이라면 철로 된 길은 수평이다. 수직은 창문을 거는 밤 같지만 수평은 창문을 열어 펼치는 아침 같다. 절벽 같은 수직을 강물처럼 수평으로 눕혀 철길은 숱한 삶의 문장을 헹궈내고 흘려보낸다. 떠나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인간은 기나긴 소설을 쓰고 번뜩이는 시를 쓰기도 하면서 삶을 녹였다 굳혀갔다. 아들과의 이별을 통해 나는 철길 위에 만남의 시를 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직 아들을 보내지 못한 내 마음이 작은 꽃씨가 되어 말갛게 터져 나온다. 나도 함께 철길을 달리며 써 내려간 가슴의 시는 길이 되어 독자에게 달려간다. 몇 달 후, 아들은 평행선을 타고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온다. 그러면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것이다. 새로운 문명을 체험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나는 철의 인문학을 또박또박 써내려 간다.

2024-08-11

경산의 문화·관광이 꽃피울 날을 기다리며

조현일 경산시장 관광자원이 현재와 미래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임을 부인하지 못한다.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도 있지만, 지역의 역사와 함께 전해진 문화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이를 위해 자치단체들은 축제와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스토리텔링을 입히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경산도 불교의 3대 기도 도량인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일명 갓바위)을 활용한 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대구의 관광자원으로 아는 등 지역의 관광자원과 역사, 문화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또 삼성현역사문화공원과 박물관 등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을 활용하고 경산의 삽살개, 용산산성, 반곡지 등 관광지가 많지만, 이 역시 전국적인 지명도가 낮아 관람 위주에 그치며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경산은 임당동을 중심으로 고대 국가인 압독국이 찬란한 고유문화를 꽃피웠고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선돌로 대표되는 공동체가 자리 잡았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근·현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도시다.경산시는 이러한 사실들을 활용해 지나가는 도시가 아닌 쉬어가는 도시로 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시는 찬란했던 압독국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 유적전시관인 ‘임당유적전시관’을 내년 5월 개관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압독국은 2천 년 전 삼한시대와 삼국시대 초기 경산을 다스리던 소국 중의 하나로 압독국의 자산인 임당·조영동의 고총·고분에서는 금동관과 금동 장식,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環頭大刀) 등 최고 지도자를 유물들과 함께 2만 8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특히 유적에서 출토된 고인골 259개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로 상태와 개체 수가 탁월하고 남녀노소, 계층이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이들이 무엇을 먹었고 어떠한 질병 등을 가지고 있었는지 확인도 가능하다.임당동 632번지 일원에 228억 원으로 건립되는 임당유적전시관은 인근 박물관들과 달리 고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생활유적)과 죽음의 관념(무덤 유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유적인 임당 유적을 전시·조사·연구·교육하는 중심기관으로 지역을 알리는 좋은 자원이 될 것이다.이와 더불어 경산시는 ‘경산문화관광재단’을 설립해 문화예술과 관광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해결하고 경북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예술인과 높은 청년 예술인 비율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콘텐츠 개발과 체계적인 문화정책을 추진한다.경산문화관광재단은 그동안 문화예술과 관광을 겸한 문화관광도시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시가 직접 추진하기에는 전문성이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해 폭넓은 문화 향유 기회 제공과 축제, 관광 콘텐츠 개발 등 문화도시 경산의 수준을 높이고 문화예술 창작 활동의 플랫폼 역할로 시민들과 관광객에게 고품격 문화서비스를 제공한다.또 시민들의 문화 욕구를 해결할 예술회관도 준비 중이다. 상방공원의 개발이 차일피일 미루어져 예술회관의 준공도 언제일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가변무대에 넓은 공연장을 가져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일 예술회관이 준공된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지역의 문화와 관광이 꽃피우려면 지역을 찾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머물며 쉴 곳과 흥미와 교육, 체험을 동시에 즐길 거리가 필요하다.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게 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은 만족하게 하는 경산시가 될 것이다.경산은 다양한 국가지정문화재와 천연기념물, 국가무형문화재 등이 있다.이들을 관광자원화하는 것이 아마도 경산문화관광재단의 주 업무가 될 것이다.경산문화광단재단의 10월 발족을 위해 대표이사와 이사진을 구성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경산의 문화를 이해하고 관광을 활성화 시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사람이 경산문화관광재단에 참여해 경산의 문화·관광이 꽃피울 날이 빨리 다가오길 기대한다.

2024-08-11

마당에 물을 주다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과 비교해봐도 강우량이 크게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마당의 잔디가 붉게 타들어 간다. 무슨 조화일까?! 생각이 많아도 실천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두 시간 가까이 물을 주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불편하고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이다.생명 가진 것은 하나같이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만 해도 그렇다. ‘혐기성 박테리아’는 있어도 ‘혐수성(嫌水性)’ 박테리아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공기와 물은 어찌 보면 무한한 자원이고, 그래서 쉽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숨을 쉬지 못하거나 물을 먹지 못하면 모든 생명체는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작년 이맘때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준 ‘상사화(相思花)’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대문 옆 상사화 자리에 물을 듬뿍 주는 것으로 물주기를 시작한다. 상사화 주변을 맴도는 기생식물의 뿌리를 뽑는 작업을 함께하면서 나무와 풀의 경이로운 생명력에 탄복한다. 벌써 보름 넘도록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건만 이들은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밖에!물을 주노라니 방아깨비 한 마리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신속하고 강력하게 허공을 날아오른다. 거의 10㎝쯤 돼 보이는 실하고 큰 녀석이다. 역시 풀과 나무가 있으니 이런 곤충도 동행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텃밭으로 물길을 옮길 즈음에 기름치와 때때기가 깜짝 놀라 줄행랑을 놓는다. “야,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속삭인다.작년과 재작년에 크게 성공한 방울토마토와 상추는 올해 거의 망해버렸고, 고추도 작황이 별로여서 안타깝다. 그래도 처음 심어본 옥수수가 우뚝하게 자라났고, 참외 역시 몇 알 싱싱하게 햇살 아래 얼굴을 보여준다. 여기 더하여 가지도 자주색 어여쁜 꽃송이와 열매를 실하게 달고 있어서 미래의 수확을 약속한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붓꽃의 단단하고 강건한 줄기 쪽으로 물살을 뿌리니 방아깨비가 다시 얼굴을 보이며 황망하게 달아난다. 아까 마주친 녀석과 친구인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솟구친 녀석은 제법 규모가 있는 여치였다. 거의 풀무치 정도로 큰 덩치의 여치가 이웃한 쇠막대에 사뿐히 자리를 잡는 것이다. “사진기를 두고 왔네” 하고 혼잣말한다.마당에 물을 줄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결같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단순 명쾌한 사유가 그것이다. 호모사피엔스인 나도 지구의 거대한 생명체의 순환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라는 인식이 찾아드는 게다. 저 여리고 순박한 숱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에 나도 한자리 얻어서 살아갈 뿐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고,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사물은 자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덕분에, 다른 것의 결과로서, 다른 것과 관련하여. 다른 것의 관점에서 존재한다.” 나가르주나(龍樹)의 가르침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아침이 환하게 밝아온다.

2024-08-11

일본과 숙명적 관계인 대지진

우정구 논설위원 수많은 자연재해 중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재난을 꼽으라면 지진이 으뜸이다. 태풍은 특정 시기에 찾아오고 방향이라도 가늠할 수 있으나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마치 발밑에 시한폭탄을 묻어 놓은 것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다.전 세계적으로 지구 내부에선 하루 1000∼5000번 정도의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지진이 세계에 골고루 발생하지 않고 일정한 지역에 집중 발생하는데, 이를 지진대라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대는 태평양 연안으로 환태평양 지진대다.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과 캄차카 반도, 일본, 필리핀, 동인도제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9.1 규모 대지진. 일본 국내 관측사상 최고규모를 기록했다. 초대형 쓰나미가 몰려오고 후쿠오카 원전에서 방사성이 누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수 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일본 사회를 가장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지난 8일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일본 기상청이 난카이 해곡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본열도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난카이 대지진은 수도권 서쪽인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시코쿠 남부, 규슈동부해역까지 이어지는 곳으로 100∼150년 간격으로 지진이 발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도 30년 내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70∼80%로 보고 있다.동일본대지진과 맞먹는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다면 일본은 또 한번 최악의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인에게 지진은 숙명과 같은 존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8-11

새 세대가 온다

유영희 작가 8월 11일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규모는 144명으로 지난 도쿄 올림픽 232명에 비해 90명 정도가 줄었다. 이런 100명대 선수단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8월 10일 당시 활, 총, 칼을 필두로 금메달 13개 등 29개 메달을 따서 7위에 이름을 올려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성적뿐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사격의 김예지가 공기소총 1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고 나서 자신의 주종목 25m 경기를 앞두고 금메달을 자신했지만 예선에서 0점을 받아 출전하지 못하게 된 후 보여준 태도는 정말 참신했다. 그는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0점 한 번 받았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사격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라면서 다음을 기약한다고 차분하게 말한 것이다.탁구의 신유빈은 임종훈과 함께 뛴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중국의 천멍과의 단식 경기에서 0:3으로 졌다. 그럼에도 낙담하지 않고 상대가 너무 잘했다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하더니, 하야타와의 단식 경기에서 패하고도 승자를 안아주는 등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그런 실력과 정신력과 체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잘 알기 때문에 더 배우겠다는 신유빈의 인터뷰는 새로운 올림픽 문화를 알리는 신호로 느껴진다. 이런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10일 열린 여자단체전에서 다시 동메달을 땄다.방향은 다르지만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역시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스포츠 역사의 새 페이지를 쓰고 있다. 그는 금메달 획득 후 인터뷰에서 협회가 선수 보호에 소홀했다고 작심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아마도 오랜 고민 끝에 가장 파급력이 큰 금메달 인터뷰 때 발언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자기 나름의 판단과 전략으로 그 순간을 선택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둘러싸고 두 가지 쟁점이 있는데, 하나는 안세영의 발언이 ‘사실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방법이 ‘적절한가’이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안세영도 다른 선수들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여기서 발언 타이밍 등 표현 방식의 적절성을 따지기보다는 사실 여부를 중심으로 진상 조사가 이루어져야 배드민턴이 발전할 것이다.태권도 경기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권도의 서건우가 16강전에서 오판으로 패하게 되자 오혜리 코치(36세)가 강력하게 항의하여 8강에 진출한 것이다. 결국 오 코치는 코트에 뛰어든 일로 세계태권도연맹(WT)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오 코치는 그대로 끝나면 뭘 해도 뒤집을 수 없었다는 판단으로 한 행동이라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한 세대가 저물고 새 세대가 온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무리 큰 무대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어도 유머와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고 할 말은 하는 세대가 오고 있다. 기성세대는 두 팔 벌려 새 세대를 환영할 일이다.

2024-08-11

메시지의 중요성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은 비전 선포나 신년사 등을 최고 경영자의 직접 소통의 기회로 활용하며 이를 통해 기업의 내부와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필요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메시지에는 업의 특성을 고려한 전략적 방향성이 선명하게 담기고, 구성원들의 일체감 조성을 고려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실행지침으로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새로 취임하거나 할 때 내어 놓는 메시지도 매우 중요한데, 그 메시지를 해석하면 기업의 성장과 진화 발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하여 이해관계자의 지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대표가 이해하여 선포하는 범위 이상으로 절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며, 그래서 메시지에 담긴 의미는 기업을 평가하는 주요 항목이 된다.선언적 의미가 있는 메시지에는 업의 본질을 명확하게 직시하여 경쟁사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야 하며, 내부적으로 조직의 문화와 가치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일관된 방향성을 제공하고, 조직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업의 본질이란 그 업의 지속성과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말한다. 이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경영자의 메시지에 담겨야 하는데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말들을 적당히 버무려 내어 놓는다면 시장은 냉담하게 반응할 것이고 그 결과는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이다.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전자상거래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성패를 결정짓는 바로 그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남들과 똑같은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어느 플랫폼에서 구매하든 상품의 기능이나 상품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상품을 우리 플랫폼에서 그것도 마진을 얹어 사야 하는 이유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면 쿠팡이 새벽 로켓 배송과 조건 없는 쉬운 반품을 차별화된 메시지로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원하는 시간에 받아 보고, 단순한 변심에도 쉬운 반품을 제공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선정하여 직접 매입하고, 물류 혁신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때에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같은 상품이지만 다른 곳이 아닌 쿠팡에서 사야 할 이유를 잘 만들어 냈다. 이처럼 업의 본질을 알고 차별화된 전략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수도꼭지 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물이 차가워서 온수 방향으로 돌렸는데 실제 물이 따뜻해지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뜨거운 방향으로 더 돌렸다가 지나치게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기업에서도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새로운 업의 영역에 진출하거나 할 때 정책이나 의사결정이 반영되어 효과를 내는데 필요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예상보다 훨씬 큰 효과, 혹은 부작용을 낸다는 뜻이다.바뀐 경영 환경엔 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맞지만 업의 본질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시장 앞에서 겸손한 경영자들이 성공할 수 있다.

2024-08-11

별 볼 일 없는 세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하늘나라 천제(天帝)의 손녀인 직녀는 길쌈을 잘 하고 부지런하였다. 그런데 은하수 건너편의 ‘하고(河鼓)’라는 목동(견우)과 혼인을 하고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맡은 일을 게을리 하였다. 그것을 알고 크게 노한 천제는 그들을 은하수 양편으로 갈라놓고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일에만 만남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은하수를 건널 수 없어 만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까마귀와 까치들이 몸으로 다리(오작교)를 만들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칠석날의 유래다.이 설화의 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후한(後漢) 때에 만들어진 효당산(孝堂山)의 석실 속에 있는 화상석(畵像石)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발견되고, ‘시경 (詩經)’의 시구에도 은하수와 직녀성, 견우성이 나온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진(晉)나라 종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광개토왕 18년에 축조된 대안 덕흥리(大安德興里) 고분 벽화에서 은하수를 가운데에 두고 소를 끌고 가는 견우와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사’에 공민왕이 몽고인 왕후와 함께 안뜰에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선사시대 유적인 암각화에도 별자리가 새겨진 걸 보면, 하늘의 별들이 옛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지나는 경로를 12개의 별자리로 나눈 ‘황도 12궁’이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 기원하여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점성술의 요소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예부터 천체를 3원 28수로 구분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천문현상에 관심을 가진 흔적이 여럿 남아있다. 삼국시대부터는 천문관측이 나라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는 것을 여러 시설과 기록으로 알 수 있다.인공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는 별을 쳐다볼 일이 별로 없다. 간혹 밤하늘을 쳐다보아도 희미해진 별빛이 가깝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늘 별을 쳐다보며 살았다는 걸 실감하지 못 한다. 어쩌다 산간오지 같은 데 여행을 가서 밤하늘을 쳐다보게 되면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고 밝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 중에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서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한천공 열려있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에 대한 신비로움이 정서의 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현대인들은 현란한 문명의 불빛을 선택한 대신 별빛을 잃어버렸다.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신비와 경이로움에 젖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드는 게 현실이다. 문명이 가져다 준 온갖 쾌락과 안락이 그야 말로 ‘별 볼 일 없는 삶’은 아닌가. 밤하늘의 은하수를 건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을 앞두고 문득 해보는 생각이다.

2024-08-08

다민족 나라 대한민국

정태옥 ​​​​​​​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교수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제국의 발전에는 한가지 패턴이 있다. 한 민족이 발전하여 군사력이 강해지고 경제와 문화가 융성하면 필연적으로 그 주변 이민족과의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면 제국으로 성장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지리멸렬하다가 망했다. 높고 큰 성을 쌓기도 하고 정복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땅덩이가 커져 제국이 된다는 것은 다민족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제국의 발전은 이들 다민족들과 잘 화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기존 단일민족과는 전혀 다른 창조적 제국으로 발전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2010년,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리콴유가 본 세상’이란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출산 여성에게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여성 복지를 잘해도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 참여가 많아지는 것이므로 돈을 주고 복지를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이민이라고 꼭 짚어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아예 거론하지 않고 저출산이 심각한 일본과 싱가포르의 예를 들며,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이민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서구 선진국들도 원래 원주민을 중심으로 보면 저출산인데 이민을 계속 받아들이기 때문에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 되지 않는다. 이민 자체가 인구를 늘리고 이민 1세대와 1.5세대는 출산율이 높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이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두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가 수용가능한 적정규모의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싱가포르 다문화에 적응력을 높이기 위하여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국민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수백조 원을 투입했다. 요즘은 대통령실에 수석비서관 자리를 만들고 부영기업은 출산 직원들에게 1억원씩 나누어 줄 거고 서울시는 어린이를 가진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매주 하루씩 재택근무를 시킬 거라 한다. 기본적인 내용은 현금이나 복지를 늘리는 것이다. 일부 필요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 저출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해결책은 양질의 감당할 만한 수준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이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땅덩어리는 예전과 같지만 이제 더 이상 소득 1000불 시대의 백의민족 대한민국이 아니다. 경제 영토로 보면 10대 경제 대국이고, 올림픽 메달로는 5~6위 하는 큰 나라다. 세계인이 한국식 라면을 먹고 한국 여권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190개국이 넘는다. 남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드는 제국이 아니라, 이미 다민족이 모여 아웅다웅 살아가는 경제문화적 제국이 된 대한민국이다. 물건만 외국에 팔아먹는 이코노믹 애니멀이나 북한식 우리끼리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저출산 해결을 위한 수단적 다민족 국가가 아니라 나라의 규모가 커지고 무역과 문화의 교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다민족 국가를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자.

2024-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