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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몸 구석구석 지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사람들은 아플 때 스스로 그곳에 손을 댄다. 아픈 것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려고 하는 본능적인 시도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플 때 어디를 만져주면 좋은지 알아보자. 아픈 곳을 찾으면 시간이 될 때마다 수시로 지압을 하고 만져주면 매일 매일 불편한 증상들이 조금씩 개선될 것이다. 수일에서 수주동안 꾸준히 하면 좋다.우선 두통과 어지럼증 등 두부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증상은 뒷목과 어깨를 만져주는게 좋다. 상부경추 위주로 모든 경추부를 압박해주고 승모근 부위를 꾹꾹 눌러 준다. 바로 눕거나 앉아서 손을 머리 뒤로 한뒤 뒷머리뼈에 붙어 있는 소후두직근 대후두직근을 만져준다. 특히 아픈 부위는 깊게 꾹꾹 눌러 준다. 많이 할수록 좋다. 티비 볼 때 앉아서 멍하니 있을 때 자기전에 누웠을 때 뒤통수 최하단 뼈 근처의 근육들을 만져 준다. 그리고 목 옆의 흉쇄 유돌근과 사각근 부위를 눌러서 아픈 부위를 만져 준다. 다음은 어깨 최상단 승모근 부위도 만져보고 아프면 풀어준다.어깨가 결릴 때는 승모근과 견갑거근 능형근을 풀어 준다. 아픈 어깨 반대쪽 손으로 어깨쪽을 만져주면 닿는다. 닿지 않으면 골프공 같은 것을 바닥에 깔아두고 잘 조준한 다음 누워서 압박을 해줘도 된다. 특정 부분에서 엄청나게 아플 수가 있다. 그 부분 근육이 뭉치고 염증이 생긴 부위라 조금 더 깊게 압박을 해주면 된다.회전근개 통증은 보통 어깨 관절통으로 나타난다. 대부분 극상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위팔뼈와 어깨가 만나는 관절면을 눌러보다 특히 아픈 곳 주변을 깊게 꾹꾹 눌러 준다. 견우라는 혈자리 근처이고 극상근건 부착부를 검색한 다음 위치를 보고 가늠해도 좋다.다음은 허리 통증이다. 요방형근과 대둔근 중둔근 소둔근을 풀어 주면 된다. 검색으로 위의 근육들을 찾아서 꾹꾹 눌러준다. 이 부위는 주변 사람이 도와주면 더 좋다. 아래팔 척골 부분을 흉추 12번 갈비뼈와 골반뼈 사이에 넣은 다음 몸무게로 눌러 주면 된다. 조심해야 할 것은 갈비뼈를 누르면 골절 위험이 있으니 그 아래 살이 있는 곳에 척골을 넣은 다음 몸무게로 눌러야 한다. 그리고 다리가 저린 경우는 엉덩이 중간 부분에 팔꿈치를 대고 눌러 보면 아픈 곳이 있다. 보통 이상근이 있는 자리고 좌골 신경이 분지되는 곳이다 적당한 체중으로 누르면 상당히 뻐근하고 아픈데 풀어주면 다리 저림에 많은 도움이 된다.아래다리 쪽은 전경골근을 꾸욱 누르면 아픈 경우가 있다. 족삼리란 혈자리 근처를 누르면서 발까지 다리 외측을 타고 깊게 눌러준다. 무릎 뒷쪽 흔히 오금이라고 하는 슬와근 근처를 눌렀을 때 많이 아프면 그곳도 깊이 눌러준다. 무릎 통증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하지의 혈액순환이 좋아져 밤에 잘 때 쥐가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발은 간단한 골프공이나 자갈을 바닥에 깔고 나서 발바닥을 올린 뒤 체중을 누르면 특히 아픈 곳이 있다. 인체 반사점이니 지압을 해주면 좋다. 인체 어느 곳이든 지압을 할 때는 며칠에서 수주까지 그곳의 통증이 세게 만져도 안 느껴질 정도로 하는 것이 좋고 그곳이 풀리면 주변을 다시 더듬어 아픈 곳이 생기면 반복한다. 할일 없을 때 손을 움직여 불편한 곳을 풀어 보자.

2024-02-28

잎꾼 개미

피귀자 수필가 이파리들이 찰랑거리며 간다. 잘린 나뭇잎을 지고 가는 개미떼의 모습이 팔랑거리는 날개 같다. 개미는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다양한 모양으로 잘린 잎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동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지고 갈 크기만큼 잎을 잘라 등에 지고 나른다고 잎꾼 개미, 또는 잎을 자를 때 아래턱뼈를 마치 가위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가위 개미라고도 불린다.열대종인 이 개미가 최초의 농사꾼이라니! 부지런하고 근면한 대명사가 개미지만 농사도 짓는다는 말에 저절로 귀가 쫑긋해졌다. 게다가 인간보다 5천만년 정도 먼저 농사를 시작한 종으로 평가 받는다고 하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개미들은 지구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동물 사회를 이룩하고 있다. 무리가 생성되고 몇 년 있으면 800만의 개체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개미학자들이 규모를 알기 위해 버려진, 어떤 개미집의 내부에 시멘트를 들이부은 결과 42평, 즉 어지간한 집 한 채 크기가 나왔다고 한다. 작은 개미들의 생활 과정이 놀랍다.우리는 종종 보이는 대로 그것에 갇혀버리는 실수를 한다.작고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하거나 마음대로 판단해 버리고, 편견과 고정관념의 방해에 전체 모습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한다. 하여 생각의 확장을 스스로 가로막고 진실을 보는 시야를 차단해버리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꽃나무처럼 순순해져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야 하리.이들이 잎을 채취하는 이유는, 잘게 찢어서 균사를 사육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균사가 이들의 주식인데, 그들이 기르는 균사와 서로 의존적인 공생을 하고 있다. 즉 균은 개미들이 있어야 살 수 있고, 개미의 애벌레들은 균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공생관계인 것이다. 개미들은 버섯 균이 새로운 식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감지해낼 수 있으며, 만약 어떤 식물이 균에 해롭다고 밝혀지면 더 이상 그 식물을 수집하지 않는다고 하니 많이 똑똑하다. 무르익은 개미들 삶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생의 온갖 경험들이 응축되어 쌓인 지혜와 비견되어 감탄하게 된다.이들 개미의 분업화 수준은 매우 높다. 성숙한 무리에서는 몸의 크기로 대략 4계급으로 나뉘는데, 계급마다 맡은 일이 다르다고 한다. 각 계급의 이름은 정원사개미, 소형일개미, 중형일개미, 대형일개미(병정개미)이다. 머리의 직경이 1㎜가 되지 않는 정원사개미는 어린 유충을 돌보거나 버섯 농장에서 일하며, 잎을 운반하는 개미들을 기생파리로부터 보호한다. 소형일개미는 정원사 개미보다는 약간 크며 경비병 역할을 한다. 잎을 가지러 가거나 오는 개미들을 보호하며 다른 생물이 공격할 경우 제일 먼저 방어를 한다. 중형일개미는 잎을 자르고 무리로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대형 일개미는 가장 큰 개미로 무리를 외부침입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주 임무이다.개미들이 잎을 수집하고 있을 때, 잎꾼 개미 위에 다른 개미들이 올라타서 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얌체라서가 아니다. 기생파리가 이동하는 개미의 목을 공격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기생파리는 일개미 머리의 관절에 산란관을 꽂아서 알을 낳으므로, 잎을 들고 가는 정원사 개미나 소형개미가 지키면서 기생파리의 공격을 방지해준다니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다.작디작은 개미들도 이렇게 서로 힘을 합쳐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서로 편을 갈라 공격하고 없는 일까지 만들어 험담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상대를 끌어내리고 내가 올라가겠다며 모여서 시위를 하고 피켓을 들고 소리치며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여러 어리석은 작태가 혐오스러울 지경이다.새해엔 잎꾼 개미처럼 맡은 일 잘하며 시기와 질투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모두에게 이로운 사람, 쓸모가 많은 사람, 살아서는 기둥이 되고 죽어서는 역사가 되는 사람, 그가 있음으로 우리 모두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늘어나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빌어본다. 우리 모두가 이들 개미처럼 자유와 평화를 위한 달콤한 농사꾼이 되어보면 어떨까.

2024-02-28

청명(淸明)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가 청명(淸明)이다. 태양의 황경이 15도에 위치하며, 올해는 4월 4일(음력 2월 26일)이다. 음력으로는 3월의 절기다.청명을 한자로 풀이하면 맑을 청(淸)에 밝을 명(明)이다. 날씨가 맑고 하늘이 차츰 밝아진다는 뜻을 의미한다. 음양오행에서도 청명에서 곡우까지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었다.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며, 중후(中候)에는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 보인다고 한다. 완연한 봄빛으로 가득한 화창하고 따사로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음력 3월인 진월(辰月)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진(辰) 방향을 가리킨다. 해질녘에 칠성수(七星宿)가 남쪽 하늘 가운데 나타나며, 새벽녘에 견우수(牽牛宿)가 나타난다. 이달의 방위는 동쪽, 수는 8, 맛은 신맛, 냄새는 누린내다.이 달은 생기가 왕성하여 양기가 활발하게 발산되고, 구부리고 있던 새싹이 모두 밖으로 나오는 때다. 그러니 묵은 곡식은 창고에 남겨둘 수 없다. 이에 천자는 관리에게 명하여 곡식 창고를 열어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식량이 떨어진 자에게 빌려주게 하며, 재물 창고를 열어 제후들에게 예물로 보내 훌륭한 선비를 초빙하고, 어진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인재를 구하게 했다. 또한 사공(司空)에게 봄비가 내려 낮은 곳의 물이 차오를 수 있으니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들판을 잘 살피고, 제방을 수리하며, 물길을 소통시키고, 도로를 정비하라고 명했다. 날씨가 포근해지면 해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이나 백성들의 굶주림을 살피는 것은 물론, 인재 등용을 중요하게 생각한 대목을 엿볼 수 있다.청명 다음날인 4월 5일은 한식(寒食)이다. 동지가 지나고 105일째 되는 날이다. 한식을 한자로 풀이하면 차가운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 따르면 청명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과 360개 고을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 했다.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의 충신 개자추가 공을 세우고도 벼슬을 받지 못하자 면산(綿山)으로 은둔했다. 나중에 문공이 잘못을 깨닫고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불을 질렀지만 끝내 타 죽었다는 고사에서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서 찬 음식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한식은 잡귀들이 꼼짝없이 묶여있다고 해서 ‘귀신 맨 날’ 즉, 손 없는 날이라 했다. 그래서 산소에 잔디를 새로 입히거나, 비석이나 상석을 세우기도 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도 땅에 꽂으면 잎이 돋는다’는 말이 있다. 청명 다음날인 4월 5일은 식목일이기도 하다. 한때 공무원과 학생들이 식목일에 산에 가서 나무를 심은 적도 있었다.이때는 봄을 완연히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에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볍씨 소독과 모판을 만들기 위해 논에 물을 대고, 써레질과 논둑과 밭둑을 손질한다. 청명에 날씨가 좋으면 풍년이 들고, 궂으면 흉작을 예상했다. 어촌에서도 마찬가지로 풍어를 기대한다.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었다.‘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다. 하루 먼저 죽으나, 하루 늦게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음을 말한다. 무엇보다 우선할 것은 청명과 한식에 불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천지의 음양이 바뀌는 시기라서 기후가 불안정하고,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반드시 불조심을 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명리학적으로는 청명부터 진월(辰月)이 시작된다. 진월은 봄의 마지막 달이다. 물을 머금은 토(土)다. 봄의 기운을 갈무리하여 다음 사월(巳月) 여름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계절 중에서도 가장 생명력이 강한 시기다. 그래서 진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왠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일도 잘 풀리는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명리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면 음양의 기준으로 볼 때 춘분을 기점으로 음이 양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 본격적인 양의 기운이 득세하니 꽃도 피고,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것이다. 확연히 낮이 밤보다 길어진다. 봄은 젊음의 계절이고, 시작이다. 사람의 인생으로 치면 이제 신접살림을 시작하는 신혼기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젊어서 부지런히 일도 하고, 자식도 낳아 키우고,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하듯이 말이다.청명에 우리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지 한번 뒤돌아봐야 할 것 같다. 독신주의가 득세하고, 아이 낳는 것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를 바라보면 걱정이 앞선다. 봄에 열심히 씨앗을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다는 단순한 이치를 거스르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2024-02-28

겨울 장마

홍석봉 대구지사장 때 아닌 ‘겨울 장마’로 농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 한반도에는 계절적인 영향으로 저기압이 형성된다. 하지만, 올해는 강수량이 예년보다 훨씬 많다. 특히 2월 강수량치고는 이례적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올 들어 지난 18일부터 25일까지 대구·경북엔 평균 50㎜ 이상 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평년보다 4배가량 많은 눈과 비가 내렸다. 기상전문가들은 엘니뇨 영향 때문으로 해수 온도와 기온이 모두 높고 대기층이 수증기를 다량 함유해 비나 눈이 더 많이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월 기온이 20도가량 오르는 등 최고기온을 기록한 것과 이번의 많은 눈과 비는 극히 드문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올해 유례없는 겨울 장마와 흐린 날씨 때문에 ‘성주참외’가 ‘발효과’ 현상이 나타나 농가들이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참외는 3월부터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간다. 하지만, 참외 성숙기에 속이 먼저 익는 현상으로 과육 내 발효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상품성이 떨어진 참외는 판매도 어렵다.일조량이 격감, 화훼와 시설 채소 및 과일 재배 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시설 채소나 과수가 일조량 부족으로 병해와 기형 과일이 많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햇빛이 부족하면 시설 하우스 온도가 떨어지고 습도까지 높아져 역병까지 번질 수 있다. 일부 농가는 온 종일 조명을 켜고 전기보일러를 틀고 있지만, 적정 일조량에 못 미처 애태우고 있다. 늘어난 전기료 부담에 수확시기마저 놓치면서 화훼와 시설 재배 농가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 됐다. 환경 재앙이 현실로 닥쳤다.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2-28

끔찍한 새 학기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2월은 늘 왠지 흐지부지하다. 한 달 삼십일을 채우지 않고 끝나면서도 늘 같은 날수가 아니다. 28일이었다가 29일이었다가. 그렇게 마치는 한 달을 보내면 봄이 온다. 봄소식을 기다리면서 학교가 열린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선생님이 돌아온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은 신이 나겠지만, 교실을 지켜야 하는 선생님들은 삼월 개학이 천근만큼 무겁다. 교육이 본래 가볍지 않은 일이라서 마음이 무겁다면 격려하고 끌어도 올리겠지만, 요즘 선생님들에겐 교육이 아니라 존재가 무겁다고 한다. ‘왜 교사가 되었을까.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계속한다면 무엇에 기대를 걸어야 하나.’ 월요일이 끔찍한 직장인들처럼 선생님들에겐 끔찍하다.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두렵다. 부모들에게 떳떳해야 하는데 부모들 앞에만 서면 쪼그라든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 누구도 답을 모른다. 순진한 아이들이야 그렇다해도, 학교를 다녀 본 부모들은 사실은 조금 안다. 교육이란 건 본디 아이들을 선생님에게 믿고 맡겨야 겨우 돌아간다는 것을. 무섭고 때로는 가혹했던 선생님이 계셔서 그래도 우리가 모두 이만큼 자랐다는 것을. 호랑이 선생님 덕분에 질서를 익히고 예절을 배웠다. 매섭던 눈초리로 지켜주신 선생님이 무서워서 한 자라도 더 배우지 않았을까. 오늘 교실은 어떤가. 선생님이 구겨진 자부심을 붙들고 존재를 의심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두려워 교실 문을 열기가 끔찍해진 교실에 진심어린 교육이 살아있을 턱이 없다.교육이 부끄럽다. 개학을 앞두고 교실이 걱정이다. 학교의 문을 열면서 교육의 내일을 염려한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이대로 좋을까. 처음에는 ‘나라의 미래를 기른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을 젊은 선생님들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할만한 직업이 의사밖에 없는 듯이 시끄러운 세상에 교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르치고 사람을 만드는 일에 어려움이 태산같고 박봉도 견디겠지만, 교육이 살아있는 교실을 지키지 못하면 거기 서 있을 까닭을 잃게 된다. 정상적인 수업이 펼쳐지고 온당한 교육이 진행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중요하고 교육 효과가 중요하지 않을까. 오늘 교육정책을 위한 담론들에는 왠지 누군가 이익집단을 챙겨주려는 저의가 숨어있는 듯하여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새로운 다짐으로 새 학기를 열어야 한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기대로 가득해야 한다. 학기가 쌓이면서 쑥쑥 커가는 아이들이 교사들의 보람이 되어야 한다. 철없는 아이들의 비뚤어진 요청에 반듯하게 교육적으로 반응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테두리를 함부로 생각하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한다. 믿고 맡길만한 교사가 되어 교육의 질서를 바로잡는 건 선생님 본인의 몫이 아닐까. 직장인의 월요일이 즐겁고 선생님의 삼월이 즐거워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가르치고 배우는 일로만 신이 나는 새 학기가 되었으면 한다. 선생님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2024-02-28

3월 1일의 물결을 되뇌며

경북남부보훈지청 보상과 백창훈 1931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탑골공원에 모인 인파는 하나둘 술렁이고 있었다. 독립 선언서를 낭독해야 할 민족 대표 33인의 부재, 유혈충돌을 방지하려 했던 그들의 뜻은 의심없이 순수했지만 구심점을 잃은 인파는 모두 지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그 때에 앞장선 이는 정재용 선생이었다. 그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독립 선언서를 꺼내어 팔각정 단상 위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렇게 나비의 날개짓은 태풍이 되었고, 그가 붙인 작은 불씨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한 큰 불길이 되었다. 정계, 학계 및 종교계의 거두가 아닌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지식인이 발휘한 용기와 그가 내딛은 몇 발자국이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것이다.보훈의 사전적인 의미는 갚을 보에 공 훈, 즉 공적에 보답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공적 속에 세워졌으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풍요의 밑바탕에 유공자들의 위업이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예외없이 해당되므로 보훈 역시 모두의 몫일 것이다. 3.1 운동에서의 정재용 선생의 역할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가 해 주겠지’, ‘거창하고 복잡한 일이므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수반되어야겠지’하는 마음이 아닌 우선 나 하나부터 실천하는 것이 보훈일 것이다. 마음가짐으로, 일상 속에서, 작은 것부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유공자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대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치 3.1운동의 불씨를 지핀 정재용 선생의 실천처럼 말이다.본인은 국가보훈부에 소속되어 공무원으로서의 책무 하에 보훈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의 이 일화를 되뇌어본 순간 공무원이 아닌 개인이자 한 국민의 일원으로서도 유공자들의 공적에 감사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작디작은 몸짓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실천이 3.1운동처럼 큰 여파가 되어 이 사회를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 예우받고 존경받는 유공자들의 모습, 그들을 대우하는 국가와 이 사회의 모습을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될 테니.

2024-02-28

몰입과 성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질주할 때는 몸의 움직임, 스키의 위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공기, 눈 덮인 나무에 집중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흐트러지면 눈 속에 고꾸라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이 순간, 우리는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 시카코대학 교수이자 삶의 질 연구소장인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는 상태다.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에서 오는 것이고,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한다. 휴식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듯 일과 문제만 몰입하기 보다 놀이와 병행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기 때문이다. 몰입은 생각의 연속선이고 선택과 집중을 말하기도 한다. 선택과 집중은 기업이든 개인의 삶이든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다. 한정된 시간에 경쟁 상대를 이기는 비기(秘器)는 자원과 기술, 시간을 선택과 집중하여 원하는 성과를 창출해내는 것이다.‘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모토로 전 직원이 반도체에 몰입하여 성공한 일류 기업이 오늘날 삼성이다.뉴턴은 “어떻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느냐”는 질문에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라고 했다. 시인이나 수필가는 하나의 테마에 몇 달이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고 초고가 나오면 천 번의 수정을 거쳐 명작이 탄생한다고 한다. 성공하는 스포츠인이나 기술자, 과학자 등 어떤 분야의 최고가 되는 삶의 공통점은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에 생각하고 집중하여 몰입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아인슈타인은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9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낸다”고 했다. 잠자는 90%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몰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 문제가 설정되면 몰입할 수 있다. 문제 난이도는 높지만 중요해서 그것을 푸는 것이 의미가 있어야 하고, 문제를 푸는 기간을 정하면 더 몰입하여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이제는 Work Hard에서 Think Hard의 시대다. 열심히 일하면 남들보다 2배 이상 잘하기도 힘들지만 열심히 생각하면 남보다 10배, 100배까지도 잘 할 수 있다.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거머쥐고 싶은 사람이라면 열심히 생각하는 것에 인생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삶의 그림이 그려지고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나의 문제를 설정하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생각과 연구를 거듭하여 몰입에 이르게 되면 뜻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성장과 성공하는 삶은 몰입의 깊이에 달려 있고 쓰레기통에 던져 놓았던 먼지 낀 시간들을 순도 100%의 황금빛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몰입은 최고의 나를 만나는 기회이고 미래를 읽는 시간이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미래 산업의 핵심을 읽고 선택과 집중하여 승부를 건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사고 활동이 몰입이기 때문이다.

2024-02-27

올 듯 말듯, 필 듯 말듯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오는 길목에 눈을 맞으며 설경 속을 거니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욱이 고향 근처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본다는 것은 수십년 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을지도 모른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이 어릴 적의 추억을 소환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언어의 몸짓으로, 무언의 함성으로 내려앉는 듯했다. 근래 봄비가 잦아들어 벌써 봄인가 싶었었는데 마치 겨울을 환송이라도 하듯 춘설이 나부끼니, 마음은 솜털 마냥 포근했었다고나 할까?짧게나마 내린 눈과 잎샘추위가 잰걸음으로 오던 봄걸음을 주춤하게 한다. 벌써 산골짝에서는 복수초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뒤뜰의 청매가 진한 향기를 내뿜기 시작해도 아직 봄이 오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순탄하고 순조롭게 금방이라도 올 것만 같은 봄은, 새침데기 아가씨마냥 이리저리 망설이며 시치미를 떼고 올 듯 말듯 앙탈을 부리는 듯하다. 그만큼 겨울은 끈덕지고 봄날은 인고를 거쳐야 오는 것이리라.‘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돌아오니/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춘설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조선시대 평양 기생 매화(梅花) 시조얼핏 읽어보면 옛날에 피었던 가지에 다시 꽃이 피듯이 따스한 봄날을 맞이하고 싶지만, 때아닌 봄눈으로 봄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 시조는 평양 기생 매화가 연적(戀敵) 동료 기생 춘설(春雪)에게 애인을 빼앗기고 원망하며 지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자신의 늙어진 몸으로 비유되는 고목에 매화가 다시 피어나길 바라면서 자기 이름과 꽃의 이름을 이중의 뜻이 되게 한 중의법(重義法)으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시조는, 고목 등걸에도 꽃이 다시 피어나듯이 옛적에 교유했었던 정든 이들이 다시 올 듯도 하지만, 때아닌 봄눈이 어지럽게 흩날려 세상이 복잡해졌으니 못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치적인 의미로도 풀이된다.바야흐로 40여 일 앞둔 총선으로 정국이 때아닌 봄눈 마냥 어지럽고 뒤숭숭한 모양새다. 연일 끊이질 않는 공천경쟁에 온갖 파문이 일고, 제3지대 신당의 이합집산으로 향방이 주목되는가 하면, 악의적인 딥페이크 콘텐츠 등장과 선심성 정책발표 등 하루하루 점입가경이 따로 없을 정도다. 각각의 정당과 출마자들에게는 아직 올 듯 말 듯한 봄이지만, 저마다 벅차게 맞이할 봄날을 믿고 준비하며 결연한 각오를 다지는 듯하다. 정당정치의 관건인 공천을 위해 타협하고 양보하며 새로운 줄을 서고 온갖 기를 써보지만 여전히 관문은 낙타구멍이니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공천의 꽃망울이 어렵사리 맺혔다 해도 당선이라는 꽃은 끝끝내 조마조마 필 듯 말 듯할 것이다. 여와 야가 격돌하고 보수와 진보, 관록과 신예가 대항하여 소신과 비전을 관철시켜야 봄꽃으로 일어설 것이다. 냉혹함이 난무하는 올 듯 말 듯한 봄날에 필 듯 말 듯한 망울이지만, 진실과 정의, 공정과 희망의 꽃은 투표로 환하게 피어날 것이다.

2024-02-27

고로쇠 약수

우정구 논설위원 단풍나무의 일종인 고로쇠 나무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을 전후해 자신의 몸에서 많은 수액을 내놓는다. 땅속의 수분과 뿌리에 저장해두었던 양분을 빨아올려 몸 밖으로 내놓는 수액 속에는 칼슘과 미네랄, 마그네슘 등이 함유돼 이를 마시면 인체내 노폐물 배출과 피로회복, 미용 등에 좋다고 한다.고로쇠 약수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지리산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목이 마른 병사들이 화살이 꽂힌 나무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한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또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좌선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아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았으나 나무가 부러지는 바람에 넘어졌다고 한다. 그때 부러진 나무에서 수액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받아 마시니 무릎이 펴지고 원기가 회복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처음에는 뼈에 유익한 나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고로쇠로 바뀌었다고도 한다.경칩을 전후해 20일 정도 채취가 가능한 고로쇠 약수를 맛볼 수 있는 고로쇠 축제가 시작됐다. 지난 25일 경남 산청을 시작으로 내달 초까지 남원, 진안 등지에서 고로쇠 축제가 열린다. 특히 고로쇠물 채취는 밤 기온이 영하 3∼5도, 낮기온 영상 8∼13도일 때가 좋다고 하니 지금이 적기다. 고로쇠 약수 효과가 알려지면서 봄철만 되면 전국에서 이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 그 중에는 봄의 기운을 느껴보고자 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지구온난화로 벚꽃 개화기도 예년보다 3∼6일 빨라질 것 같다는 소식도 들린다. 고로쇠 약수 축제가 시작됐다는 것은 어느새 봄이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알리는 반가운 소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2-27

醫·政 강대강 대치, 극적인 돌파구 마련될까

심충택 논설위원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전공의간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MZ세대 특유의 퍼스낼리티가 우리사회의 주요담론이 되고 있다. MZ세대는 2000년대 전후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청년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대학생부터 자녀를 둔 30대후반 학부모까지 포함된다. 수련병원 전공의들은 대부분 MZ세대다.대구에서는 새해들어 ‘MZ세대 공무원’이 이슈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 공직사회의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근무환경에 염증을 느낀 신규 공무원들이 대거 이직을 하는 경향이 계속되자 대구시가 기존 관행(인사철 떡 돌리기, 연가 사용 눈치 주기, 계획에 없는 회식, 개인 연락망 공유)을 타파하는 혁신방안을 내놓은 데서 비롯됐다.전공의와 관련된 담론의 핵심도 ‘의료대란’ 원인 중의 하나를 MZ세대 특유의 성향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전공의들이 사법처리 위험에도 열흘 이상 복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부정적인 의료환경 때문에 실제 병원을 떠나겠다는 각오를 했을 수 있다는 논리다.전공의나 의대생들이 우리정부의 의료정책에 거부감을 느끼고 해외에서 기회를 찾으려 하는 움직임은 이미 일반화되고 있다. 아마 의대생이나 전공의를 자녀로 둔 부모들 상당수가 이로 인해 속을 끓이는 일이 많을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의사면허 시험 정보공유 커뮤니티(usmle Korea)의 접속량이 폭주하면서 한때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이 사이트는 20여 년간의 면허시험 정보가 누적돼 있어 미국 의사를 희망하는 한국 의사들의 안내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정부가 의대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을 ‘시위용’으로 인식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들의 성향을 볼 때 지금처럼 정부가 국민지지를 믿고 계속 위협을 할 경우,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정부가 연일 주동자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을 강조하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음에도, 이제 전국 주요 수련병원 인턴합격자들까지 계약포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사실 윤석열 정부가 의대정원을 2천명 늘린다고 해서 한국의료의 고질적인 병폐(필수의료·지방의료 공백사태)가 사라진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의대정원 확대는 우리사회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사교육비 뇌관’을 건드려 대형학원 수입만 늘려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과학·산업계는 인재들이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연구인력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이고, 재학생들의 대규모 자퇴가 예상되는 이공계 대학들도 비상이 걸려 있다.한가닥 실낱 같지만, 이번 주들어 정부와 전공의 간의 타협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복귀를 전제로 “정원을 포함한 모든 의제가 대화의 대상이 된다”고 했고, 의대 교수협의회도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일부 수련병원에선 전공의들의 현장 복귀 움직임도 있는 모양이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하루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아 서로 입장을 경청하면서 의료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2024-02-27

하고자 하면

강길수 수필가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미사 복음에서 이 성경 이야기를 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우리 사회도 깊은 병이 들었다. 몸의 한 부위가 병들면 온몸이 아프거나 영향받듯, 지금 우리 사회 공동체도 지체(肢體)들이 심한 병을 앓고 있다. 나병 환자가 하고자 하여 예수께 무릎 꿇고 도움을 청해 나았듯, 우리 사회도 지금 무언가 하고자 해야 한다.’한국의 가장 크고 심각한 병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부정선거다. 2020년 4·15 총선 직후 우리나라는 부정선거 문제가 제기되었다. 많은 애국자의 희생적 노력으로 부정선거는 사실로 드러났다. 선거소송 재검표장에서 쏟아진 수많은 위조 투표지는 물론 선관위가 발표한 선거결과 수치의 통계학적 분석데이터 등은 확실한 증거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좌 편향된 악의적 정치재판으로 부정선거의 진실을 덮어버리거나 쉬쉬하며 정의를 묻어버린 망국적 행태를 보였다.나라의 선거 공정성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결연한 활동으로 국민 절반 이상이 부정선거 사실을 알았다는 보도를 보았다. 또 국정원과 인터넷진흥원의 합동 선관위 보안 점검 결과도 발표되었다. 이어 KBS의 부정선거 관련 보도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근엔 여당 비대위원장이 사전투표지 감독관 도장날인을 인쇄로 갈음하지 말고 법대로 ‘개인 도장날인 시행’을 수차 요구하기에 이르렀다.이 같은 변화는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은 나병 환자의 결기와 같다. 그의 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병고에서 나으려는 절실한 자각에서 비롯되었을 터다. 사무치게 병이 낫기를 바란 환자는 이제 병을 낫게 할 분만 찾아가면 되었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의 간절한 소망을 부탁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우리나라의 크고 심각한 병은 어찌해야 나을까. 이런 마음이 든다. 우선 선관위가 침묵하는 국민과 하늘 무서움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나병 환자처럼 ‘하고자 하면’ 길이 보이리라. 다음 대통령이 선관위에 공정선거를 요구하는 일이다. 국민에게서 통치권을 위임받은 최고 책임자로서 나라의 크고 시급한 이 문제를 꼭 ‘하고자 하는 일’로 삼아야만 한다. 이는 선거 개입이 아니라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의 하나다. 그다음 정치권 여야가 함께 공명선거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공직선거법 제158조 3항은 사전투표지에 투표관리관 개인 도장날인을 규정하고 있다. 한데 선관위는 공직선거관리규칙 84조 3항에 ‘인쇄 날인으로 갈음’할 수 있게 했다. 법 위반이며 해괴한 망발이다. 인쇄는 인쇄고, 날인은 날인이다. 부디 선관위, 정부, 여당, 야당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오는 4·10 총선부터 우리나라가 부정선거 중병에서 깨끗이 낫도록 해 주기 바란다. ‘하고자 하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2024-02-26

‘메탄 감축 로드맵’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4년이 시작된 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2월의 마지막 주를 맞이하게 되었다. 엄청난 시간의 속도를 느끼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불과 지난 1년 사이에 역대급 기록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유럽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의해 올해 2024년 1월의 지구 평균기온이 13.14도를 기록해 최근 30년(1991~2020년) 1월 가운데 가장 따뜻한 1월로 기록되었다. 또한 ‘2023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년 기간 동안’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시점인 1850년대에 비해 1.52도 상승으로 기록되었다. 무려 170년 만에 최초로 1.5도를 넘어서는 대기록이다.2013년 IPCC는 지구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북극이 녹아 이산화탄소보다 30배나 강력한 온난화 효과를 보이는 메탄가스가 대량 분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되면 지구 온도는 순식간에 4도까지 오를 것이고 인류는 공룡처럼 지구에서 멸종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지구의 온도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해야 하는데, 산업화 이후 인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를 급격하게 배출하면서 대기중에 이들 물질이 계속 축적되었다. 따라서 배출량을 갑자기 줄여도 온난화는 계속되기 때문에 지구온도 상승을 1.5도 이하에서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이렇게 인류는 지구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을 1.5도로 설정하고 2015년에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약속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에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였으며, 2023년에 ‘탄소중립 녹색성장 제1차 국가 기본계획’을 확정하였다. 특히 이 계획에서는 2050탄소중립 달성 전략과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2020년 기준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6억5천238만톤이고 이중에서 메탄 배출량은 2천740만톤으로 약 4.2% 정도이다. 그러나 메탄은 대기중 농도가 이산화탄소에 비해 이백분의 일(1/200) 이상 낮으나 지구온난화지수가 약 30배나 높다. 또한 메탄은 대기중 체류시간이 약 10년으로 이산화탄소(최대 200년)에 비해 현저히 짧아 집중적으로 감축하면 1.5도 이하 억제를 위한 단일요인으로는 가장 효과적이고,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 가능할 것이다.메탄의 주배출원은 농축산(장내발효, 가축분뇨처리, 벼재배 등), 폐기물, 에너지(탈루 등) 부문인데, 2020년 기준 대구광역시(군위군 제외)는 온실가스 총배출량 중 이 부문 비율은 3.5%에 불과하나 군위군은 무려 42%나 된다. 경상북도도 대부분 시·군이 군위군과 유사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경북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은 국가가 수립한 ‘메탄 감축 로드맵’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농축산 부문에서는 체계적인 논물관리, 저메탄사료 개발·보급, 가축분뇨 자원화 확대, 폐기물부문에서는 음식물폐기물 발생저감, 폐자원 바이오가스화 확대 등이 대구경북 ‘메탄 감축 로드맵’ 의 핵심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2024-02-26

방언의 고고학 ‘어뜨무러차’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한국의 근현대시 100년, 그리고 한국현대시단을 대표해온 한국시인협회 50주년을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를 노래한 시들을 모아 엮은 작품집이 있다. ‘노래하자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 국토사랑시집’(한국시인협회, 천년의 시작).이 시집은 우리말의 곡진한 의미와 꼴을 찾는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알리고 그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고어나 방언을 되살려 표준국어의 운용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그런 기획 의도를 오탁번 회장은 금방 알아차리고 반겼기에 작품집 제작이 순조로웠다.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는 작년 고인이 되었다. 그가 남긴 유작집인 ‘좋은 시는 다 우스개다’(태학사, 2024)가 며칠 전 출간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다. “지지난 달에 나온 이상규 교수의 시집 ‘외젠포티에의 인터네셔널가 변주’(예서, 2022)에 ‘아 그리운 오탁번’이라는 시가 있는 것에 놀랐다.2008년 내가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일할 때 국립국어원장이던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방언시집을 낼 때 국립국어원에서 지원금 교부를 받기 위해서였다.국어학 전공 교수로만 알았지 그가 등단한 시인이라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그의 시집에 ‘오탁번’이 등장한다. 이 아니 놀랄쏘냐.”라며 17년 전 오랜 추억을 서로 교감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워했다.“까물치도록 사투리를 애껴 시에 자릴 앉히는 오탁번 시인의 요오 메칠 전에 출간한 ‘비백’ 곳곳에서 탁, 탁 맥히는 충청도 사투리. 이 어른 일부러 사투리 애끼가면서 요 모퉁이 조 모퉁이에 종자씨 모종 흐트뿌려 놓듯, 시 제목이 ‘노향림’인 시 작품 맨 끄트머리에 ‘노향림의 시를 읽으면/어뜨무러차!/짊어진 소금가마처럼/눈물이 다 나네’ 노향림 시 한 편도 안 읽었어도 고만 눈물이 따라 날라카네.”- 이상규 시‘아, 그리운 오탁번’ 부분)시의 맨 끝부분에 나오는 “진자지미 밥 뜸 들이는 그리운 냄새에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갈보리처럼 밟힌 마이너리티 촌티를 못 벗은 건지 안 벗는건지 매양 오탁번 시인의 시가 그래서 그립다.”‘어뜨무러차’는 어린아이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내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으샤, 영차 등의 뜻인 셈이다. 이 한 마디가 시의 본질이 언어의 예술이자 우리 국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오 시인은 토착어는 중앙 집권의 공식 언어가 아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사용되는 소리언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렇다. 그는 표준어를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서울 지역의 교양인이 아닌 다양한 지역에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방언을 찾아 시어로 사용했다. 그 속에서 ‘마음의 고고학’이라는 일관된 미학을 우뚝 세운 것이다.사용하지 않아 천천히 사라지는 고어들이나 변두리인들이 사용하던 낡은 언어를 정성을 쏟아 한 편의 시 안에 곱게 자리를 만들어 앉혀내는 시인들의 경이적인 노력들이 이어질 때 전통의 현재적 계승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담아둔 옛 기억의 순수한 언어들을 새로운 시청각적 시언어로 탈환시키는 일은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이러한 문화적 변곡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한국시인협회가 흔쾌히 동참해 준 결과다.오탁번 회장은 국어정책 연구 지원 기관인 국립국어원의 이러한 호소어린 요청을 시인들에게 한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이셨다. 순은빛으로 반짝이는 우리 말 토박이의 소리를 회귀의 미학으로 꽃 피워 주신 시간과 공간 언어의 필경사, 오탁번 선생을 다시 또 그리워한다.그는 “이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서 순금이 반짝이는 저 오로라빛 암흑으로 갔다. 독을 바른 창을 잡고 휘장을 친 수레를 몰고 그는 갔다. 아아, 희망도 절망도 없는 가을 하늘 아래 흔들리는 구절초 하나 같은”그와 나는 국립국어원장과 시인이라는 그 한 번의 만남, 그 후에도 시를 쓰거나 에세이로 기억하면서 잊지 않고 교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4-02-26

민주정 아테네와 군국주의 스파르타-금권정치와 전군 체제

고대 그리스는 아테네를 비롯해 스파르타, 테베, 코린토스, 에레트리아가 폴리스 대표적인 도시국가였다.기원전 431년에서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에 대항해 스파르타를 지원하는 도시국가가 승리했다곤 하지만, 그리스 사회는 에너지 고갈이라는 쓴맛을 보아야 했다. 결국 그들이 바르바로이, 즉 변방의 야만인이라 부르던 마케도니아 발아래 무릎 꿇게 된다.그리스 수도 아테네는 민주정 대표적 역사 도시이자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이름만큼 역사가 깊다. 기원전 8세기 전후로 귀족들이 정치·군사적 권력이 점차 강화되면서 왕정이 약화된다. 그러자 교역과 공업으로 부를 축적한 시민과 귀족 간 대결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왕정으로 시작해 군주정에서 민주정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발전했다.기원전 6세기에 접어들면서 상공업이 발달하자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노예로 전락하는 시민이 늘어났다. 기원전 594년, 이때 아테네 최초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솔론(Solon)이 등장한다. 재산 정도에 따라 정치적인 권리에 차등을 주는 개혁, 금권정치를 단행한다. 부채노예를 금지하고, 정당하게든 부당하게든 팔려 간 사람들과 빚의 멍에를 피해 이국땅을 방황하는 사람들을 아테네로 돌아오게 했다.그러나 참정권은 아테네에 거주하는 사람 중 여성, 이방인, 미성년자, 노예, 전과자, 빈민 등을 제외하면 10%에 불과했다. 이는 플라톤의 ‘국가론’으로 진화(?)하면서 먼 훗날 존경받는 지식인, 교육받은 귀족에게 권력을 준다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미국 헌법의 토양이 된다.각설, 금권정치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부추겼다. 정치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빈민의 지지를 끌어내며 이들을 기반으로 권력 중심에 선다. 귀족은 귀족대로, 평민은 평민대로 제한된 권력 행사에 만족해야 하는 금권정치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두 신분 간 극심한 대립을 가져왔다. 그러나 수적으로 우세했던 빈민 세력을 등에 업은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정권을 탈취하다시피 하여 참주에 오른다. 그가 죽자, 아들 히피아스가 기반을 이어받았으나 독재로 치달으며 폭정을 일삼자 참주 능력에만 의존하는 참주정은 결국 붕괴를 앞당기게 된다. 페르시아로 도망친 히피아스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할 당시 길잡이를 자처하며 훗날을 도모하지만, 마라톤 전투에서 죽는다. 이후 그리스는 행정구역 개편과 더불어 평의회를 설치하고 아테네에 참주의 등장을 방지하기 위한 ‘도편추방제’가 생겨났다. 깨진 도자기에 독재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적어 600표 이상이 나오면 10년 동안 해외로 추방하는 제도다.폴리스 중 아테네처럼 민주정으로 발전한 경우와 달리 귀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가 스파르타다. 스파르타인은 피정복민 노예 헤일로타이(heilotai)와 주변인 페리오이코이(peri-oikoi) 위에 군림했다.스파르타 시민이라면 누구나 군국주의적인 제도에 참여해야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파르타인 스스로는 매우 합리적인 민주정이라고 생각하였다.스파르타에는 왕이 두 명이 있었다. 이들은 세습 가문에서 선출되는 귀족 대표자였지만, 군사 지휘권만 지녔을 뿐 그 어떠한 정치적인 행위에도 간섭할 수 없었다. 행정은 다섯 명의 집정관이 주도했으며, 관직 감시 역할도 담당했다. 특히 집정관은 노예 헤일로타이 감시와 탄압이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스파르타 신민은 20세부터 60세까지 병역 의무를 졌다. 유사시뿐만 아니라, 단체로 병영생활을 하면서 똑같은 토지를 배분받았다. 이 토지는 피정복민 노예에 의해 경작되면서 신민으로서 균등한 대우를 받았다.헤일로타이에 의해 음식이 만들어지고, 차려지면 시민 모두가 함께 식사를 즐겼다. 사정이 이런 만큼 불쌍하고 가련하기 짝이 없는 헤일로타이 감시가 가장 중요했을 법하다.웃기는 이야기지만, 이 제도는 다양한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인근 그리스인에게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 된다. 똑같이 먹고, 누리며 즐기는 삶은 대를 이어 양산되는 헤일로타이라는 노예가 있어 가능했다. 따라서 헤일로타이는 결혼도 할 수 있었고, 가정을 위해 제한적이나마 재산도 모을 수 있었지만,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국가’를 쓴 플라톤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체제라고 한 스파르타였지만, 우리 아니면 모두 적이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다 배척하였으며, 개인의 성향보다 모든 초점이 체제수호에 맞춰져 있었다. 플라톤이 극찬하였으면서도 스파르타로 옮겨가 살지 않은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사족을 붙이자면 상상의 확장일지 몰라도 스파르타는 민주정의 원조 아테네와 달리, 다양성을 부정하는 파시스트 원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2-26

고용률 1위의 마법(?), 울릉군

홍석봉 대구지사장 인구 9천 명의 울릉군은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자치단체다. 한때 인구가 2만7천 명을 웃돌던 시절도 있었지만 옛 이야기다. 면적도 가장 적다. 그런 울릉군이 10년 째 1등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고용률이다.지난해 하반기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전체 고용률이 가장 높은 곳은 경북 울릉군으로 82.4%를 기록했다. 전국 시·군·구 228곳 중 고용률 1위다. 특·광역시 중에는 인천 옹진군이 73.9%로 가장 높았다. 고용률은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자 비율이다.울릉군은 2014년 상반기부터 전국 시·군·구 중 10년 째 고용률 80% 대를 넘나들며 선두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상반기엔 81.8%로 청송군에 이어 2위로 밀려났었지만 반년 만에 다시 왕좌를 되찾았다. 관광이 활성화된 덕분이다.울릉군의 1위 비결에 대해 통계청은 “육지와 동떨어진 섬 지역 특성상 어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수요가 꾸준한 데다, 관광과 숙박도 활발해지며 고용률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2위는 고용률 81.6%의 경북 청송군이 차지했다. 울릉과 청송은 지난해 상·하반기 서로 1위를 주고 받았다. 지자체 중 고용률이 80%를 넘는 지자체는 울릉군과 청송군, 그리고 전남 신안군(80.1%)뿐이다. 의외로 농·어촌 지역이 높은 고용률을 나타낸다. 이동이 적고 안정적인 직업 특성 때문이다.이같은 이유로 울릉군은 일자리 걱정이 없는 섬이 됐다. 농·어업과 관광·숙박업이 단단히 주민 생계를 받쳐주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로 울릉도의 대표적인 명물 오징어가 사라지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경기도 크게 타지 않는다. 고용률 1위를 유지하는 울릉군의 비결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2-26

총선용 매표(買票) 포퓰리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총선용 포퓰리즘(populism)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 선거 때마다 도지는 ‘망국적 고질병’이다. 매표나 다름없는 선심성 공약을 여야가 경쟁적으로 남발한다. 여당이 50을 약속하면 야당은 100을, 또 다시 여당은 150을 던지는 ‘투전판 정치’다. ‘아니면 말고’식의 허황된 공약을 하는가하면, 여야가 야합해서 ‘예타 면제 특별법’으로 대못을 박기도 한다.윤 대통령은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총선이 다가오자 소상공인들에게 재난지원금 환수면제, 대출이자의 현금반환, 전기료감면 및 신용사면을 단행했다. 또한 부동산·주식·금융투자자들에 대한 소득세와 상속세의 감세도 발표했다. 포퓰리즘을 비판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외치던 대통령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여당과 야당의 ‘개발 포퓰리즘’ 경쟁은 더욱 가관이다. 여당이 1기 신도시의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푸는 특별법을 발의하자, 야당은 노후계획도시 정비·지원특별법을 발의했다. 여당이 수도권도심철도 지하화를 공약하자, 야당은 전국 모든 도심철도의 지하화로 맞섰다. 여당이 김포의 서울 편입을 다시 띄우자 야당은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예타를 면제했다. 심지어 여야는 야합하여 대구∼광주 달빛철도 특별법과 수도권 철도지하화 특별법을 모두 예타 없이 통과시켰다.‘복지 포퓰리즘’은 또 어떤가. 야당이 노인 간병비의 보험 급여화와 경로당 주5일 점심제공을 발표하자, 여당은 간병비의 국가부담 확대와 주7일 점심제공으로 맞불을 놓았다. 여당이 2028년까지 기초연금 40만원을 공약하자 야당은 2026년까지 모든 고령층에 기초연금 제공을 약속했다. 야당이 청년들에게 월 10∼20만원 수당, 학자금 무이자대출, 교통비 할인 청년패스를 공약하자, 여당은 대학생 50%에서 80%까지 국가장학금을 주는 동시에 ‘대학생 1천원 아침밥’의 확대 및 연 2%대의 주택담보대출을 약속했다.이러한 막가파식 선심성 정치는 망국의 길이다. 포퓰리즘에 빠졌던 이탈리아·그리스·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지금 참회하고 있다. 총선을 겨냥해 여야가 던지는 포퓰리즘은 ‘마약’이다. 국민이 ‘마약’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지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대가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국민에게 돌아온다. ‘마약 복용’의 대가는 경제파탄이고 미래세대의 불행이다.포퓰리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면 정치 불신을 초래하고, 약속대로 실행되면 재정악화로 경제가 거덜 난다. 물론 정치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약 같은 권력’에 중독된 정치인들이 ‘마약 같은 포퓰리즘’을 국민에게 투여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니다.결국 미래는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국민은 매월 300만원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안을 77%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시킴으로서 남유럽이나 남미처럼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았다. 앞날을 내다본 그들의 혜안(慧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2024-02-26

국민을 버리면 의사도 없다

김진국 고문 살아가면서 의사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본인이나 가족이 병으로 고통받을 때 의사는 천사와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의사가 고맙기 짝이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의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오죽하면 나이가 들어 첫 번째 주거 조건으로 병원을 꼽겠는가.필자도 그동안 많은 의사를 만났다. 환자로서는 물론이고, 이웃으로, 친구로, 여러 가지 인연으로 만났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훌륭했다. 어려운 사람을 잘 돕고, 보이지 않게 기부하시는 분이 많다. 매년 해외로 의료 봉사 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분들은 하나 같이 합리적이고, 친절하다. 특정 직업을 싸잡아 개념화하는 것은 무리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그렇다.그런데 최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과 그 배후로 보이는 의사들의 발언은 내가 알고 있는 의사 이미지와 너무 달라 당혹스럽다. 의사들은 대한민국에서 머리가 가장 좋다는 인재들의 집합체다. 요즘은 대학 입학 때 성적순으로 전국의 의대 정원부터 먼저 다 채운다고 한다. 그렇게 특별히 선발된 인재들이 다른 어떤 과정보다 오래, 힘들게 공부한다. 그런데 특권 의식에 절어 있는 집단으로 모니 얼마나 섭섭할까 싶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의사 증원에는 민주당이 더 강경하다. 보수 정권과 합리적 대화가 필요했다. 적어도 국민 여론을 살폈어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일반 국민과는 다른 사람, 다른 집단으로 고립시켰다. 폐쇄된 엘리트 과정만 걸어와서 그런지 공감이 부족하다. 의사의 높은 소득을 질투하는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사 스스로 여론과 멀어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국민은 의사에게 최고 엘리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의사 대표들이 쏟아낸 말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유치한 수재의 이미지만 남겼다.김택우 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면허 정지 경고에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에게 도전했다니, “버릇없이 감히 의사에게 대드느냐”는 말로 들린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民度)”라고 막말하더니, “아주 급하면 외국 의사를 수입하라”라는 말도 했다. 그는 자신들을 ‘매 맞는 아내’로 정부를 ‘폭력 남편’으로 비유하기도 했다.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좌훈정 서울시 의사회 정책이사는 박민수 제2차관을 겨냥해 “나이가 비슷하니 말을 놓겠다”라면서 “야, 우리가 언제 의대 정원 늘리자고 동의했냐”, “네 말대로라면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력 해도 되느냐”고 폭언했다. 전공의 발언은 더 나갔다. 원광대 산본병원 전공의는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라고 주장했다.전공의들이 주 80시간씩 일하며 힘들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안다. 그런데 힘들다면 인원을 늘려달라는 게 정상 아닌가. 대학병원에 전공의 아닌 교수를 더 늘리려 해도 의사가 더 있어야 하고, 전공의를 늘려 일을 나누려 해도 증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힘든데 몰라주느냐. 증원하지 마라”라고 한다. 머리 좋은 의사들이 하는 논리적인 말이라고 이해되나. 국민은 “우리가 힘들게 이 자리에 왔으니 이제 충분히 보상받도록 의사 수를 늘리지 마라”는 요구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다 그런 건 아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대학병원에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데 주 80시간씩 일하느냐”면서 “4~5억 벌다가 3억 벌면 죽느냐”고 꼬집었다. 천은미 교수도 “국민을 설득하려면 환자 곁에 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사단체 지도부가 문제다.사회 지도층은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 발전을 고려하고, 추구해야 한다. 힘이 세다고 사회적 가치를 독점하거나, 머리가 좋다고 다른 사람 몫까지 뺏어가면 야만 사회다. 힘이 있어도 자제하고, 배려할 때 인정하고, 존경한다. 국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정부를 이길 수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25

이재명 민주당의 한심스런 선거전략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4·10 총선이 6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여야는 각기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선거 초반 민주당은 강서 보궐 선거 압승, 국힘당 지도부의 혼선, 대통령 부인 명품 백 수수 사건 등으로 압승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한동훈 비대위의 출범 이후 총선 판세는 여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민주당이 이래서는 이길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윤석열 정부의 계속된 악재에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다. 이번 주 코리아 리서치 등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 31%는 39%의 여당에 뒤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한동훈 국힘당 비대위가 그렇게 잘한 것도 없는데 민주당 지지율은 이렇게 추락할까. 처음에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기대치 라고만 생각했다.민주당 지지세의 추락 원인은 총선 전략의 부재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의 근본적 각성과 개혁 없이는 이번 총선의 야당 승리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선거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총력전이며 반드시 승리해야 힘이 생긴다. 전 당원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민주당 내부의 갈등과 내홍은 총력을 약화시킨다. 이미 민주당의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의원은 탈당하였다. 예고된 탈당인데도 당내에서 수습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전직 당대표 이낙연과 이상민 의원의 탈당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마저 없었다. 이재명 열성적 지지자들은 ‘수박청산’이라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이낙연의 ‘새로운 미래’신당은 민주당 공천 탈락자를 맞이할 거물까지 쳐 두었다. 이낙연 전 당 대표의 정치 행보에 비판적인 사람도 많다. 필자 역시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이재명 당 대표가 당 분열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치 못하는데 있다. 현대 민주정당에서는 당권파인 주류와 비당권파인 비주류는 있다. 민주당도 친명과 비명은 공존해야 한다. 이들 간의 경쟁만이 당의 역동성을 기대할 수 있다. 선거 전야의 당내 갈등과 내홍은 결국 민주당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이번 민주당 공천과정의 마찰음도 선거의 동력을 약화시킨다. 김영주, 이수진 의원 등 공천 탈락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있다. 컷오프 된 탈락자들은 당의 공정한 공천 기준이 없다고 비난하면서 농성까지 하고 있다. 공천 후유증으로 탈당 도미노가 이어진다면 당의 결속력은 현저히 저해된다. 흔히 정당 공천에는 NBA특성이 따른다고 주장한다. 공천은 다소 시끄럽지만(Noise), 균형(Balance)과 놀라움(Amaze)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이번 민주당 공천에는 균형도 무너지고 인물에 대한 놀라움마저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번 공천은 비명 제거용 사천이라는 혹평이 따랐다. ‘친명횡재(橫財), 비명횡사(橫死)’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임혁백 당 공천위원장은 출범 초기 시스템 공천을 약속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천 탈락자들이 당의 여론조사마저 불신하고 있다. 이러한 공천 과정의 대립과 갈등이 지나치면 단일대오의 선거는 치르기 어렵다.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산뜻한 정책이나 공약마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민주당의 ‘검찰 독재 심판’마저 여당의 ‘민주당 심판’에 막혀 제대로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오직 대통령 부인 명품 백 하나에 기대를 걸수록 민주당의 선거 공약은 희미해진다. 심지어 총선이 코앞인데도 민주당은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문제를 따지고 있다. 지난 대선 패배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의 반반의 책임이 분명하다. 이를 후보 공천에 적용한다면 친명과 친문간의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결국 민주당 선거 결속력만 소실시킬 뿐이다.이 과정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국회의원 세비 삭감’ 공약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민주당은 ‘의사 정원 2000명 확대’라는 의료 정책마저 여당에 빼앗겨 버렸다. 기후위기, 인구 절벽, 꽉 막힌 남북문제, 고물가 등 절박한 민생문제에 대한 정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집권 여당의 지역별 포퓰리즘 공약이 남발되는 정황에서도 민주당의 장밋빛 공약마저 보이지 않는다.민주당은 총선의 승리를 위한다면 선거의 전략적 틀부터 확 바꾸어야 한다.공천에는 의례 잡음이 있다는 안일한 사고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권노갑, 정대철 민주당 원로뿐 아니라 전직 정세균, 김부겸 총리의 고언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재명 대표의 당 통합과 결속을 위한 재빠른 결단이 있어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후보 공천만이라도 제대로 된 ‘이기는 공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최근에는 이재명 대표의 결기와 시원한 사이다 발언도 들을 수 없다. 지난 2년 간 시달려온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트라우마 때문일까. 이러다간 어느 것 하나 잡지 못하고 선거의 기회를 놓칠 수밖에 있다. 이러다간 그가 주장한 ‘151석의 승리’도 어렵고 ‘화려한 패배’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당대표직의 전격 사퇴나 총선 불출마 선언 같은 극약 처방도 필요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심기일전의 총선 전략 없이는 야당의 총선승리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2024-02-25

연안 생태 보존과 회복

문성준 이학박사(경북도 해양수산과장) 근래에 들어 ‘연안어장에 고기 씨가 마르고 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자주 들려오고 있다.실제로 통계청의 해면어업 자료에서 의하면 1980년대 중반 172만여t에 달하던 수산물 생산량이 2020년에는 93만여t으로 뚜렷한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고 아직도 100만t을 밑돌고 있는 현실이다.이러한 원인은 남획, 연안오염 그리고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환경 변화를 들 수 있다.기후는 해양과 대기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은 결국 화석연료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를 일으켜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키며, 이것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동해의 경우, 수온이 지난 100년 전에 비해 1.43℃가량 상승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이는 세계 평균수온 상승 0.49℃의 약 3배에 달한다.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현재까지 시행된 정책이 지속한다고 가정했을 때, 2100년 지구의 온도는 3.2℃가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현재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국제적인 이상기후를 증가시키고 있고, 금 세기 내에 조치하지 않으면 지구의 환경이 악화돼 인간과 동식물, 자연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우리나라 역대 최장 시간이었던 지난 3월 울진-삼척 산불의 예로 보면 그 원인이 1~2월 강수량이 6.1㎜로 1973년 이래 가장 적어 건조한 기후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라고 기상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2020년에 발생한 미국과 호주의 대형 산불 등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로 인한 문제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우리나라는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9년 Earth system science data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중국, 미국 등과 더불어 탄소배출량 상위 10개국에 속한 것으로 조사됐다.이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는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 국내 ‘순배출량 0(넷제로)’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또한 기업차원에서는 탄소배출 감축 및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국제적 기업간 협약 프로젝트(RE100, Renewable Electricity 100)도 진행 중에 있다.특히 해양수산분야에서는 블루카본(Blue Carbon) 및 저탄소, 친환경, 스마트양식이 키워드로 대두하고 있다.블루카본이란 미세조류 및 대형 해조류 등의 광합성과 같은 해양생태계 작용으로 인한 탄소흡수를 일컫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5월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해 연안해역 바다숲 조성을 통한 탄소흡수 시나리오를 설정했다.더 나아가 천연 해조숲 보호도 병행해 갯녹음 방지 및 연안해역 해조류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이에 따라 한국수산자원공단에서는 매년 다양한 모자반류와 켈프를 바다에 이식하고 있으며,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동해안에서 사라져가는 냉수성 개다시마, 구멍쇠미역 같은 해조류의 군락 및 종(種)복원에 노력하고 있다.특히 경북도는 인공어초(魚礁)를 활용한 바다숲(海藻場) 조성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바다숲의 면적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더욱이 블루카본(Blue Carbon) 및 저탄소 친환경 양식에 발맞춰 스마트양식 클러스터를 조성해 친환경 순환여과 양식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또한 국립수산과학원 사료연구센터에서 준비 중인 친환경 양식장 운영과제와 연계해 양식 현장에 저어분 사료를 시범적으로 사용하고 이렇게 생산된 전복, 해삼, 쥐노래미, 가자미류, 도화새우 등의 연안 정착성 종(種)을 방류해 연안 생태계 및 마을어장 회복시켜 나간다는 복안이다.수온이 급변하고 있는 동해의 연안 생태보존과 회복을 위해 광온성 해조류를 활용해 바다숲을 조성하고 더불어 그 위에 전복류 및 치어와 같은 연안 정착성 종(種)을 방류한다면 건강한 해양생태계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등의 탄소저감을 위한 개인들의 작은 실천은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인 바다의 생태계 살리기는 물론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까지 살아갈 지구를 지켜나갈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4-02-25

휴대폰의 발전으로 보는 미래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삼성전자가 한국시간 1월 18일 새벽 3시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위치한 SAP 센터에서 갤럭시 언팩 2024를 통해 새로운 S24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삼성은 갤럭시 AI를 기반으로 새로운 모바일 시대를 연다는 것을 알리면서 서로 다른 언어로 통화를 할 때 실시간으로 양방향 통역을 지원하는 모습을 시연하였다. 이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이드 없이도 예술을 느낄 수 있고, 뉴욕 공립 도서관의 호사스러운 자리에 앉아 엽서를 쓰며 지나가는 뉴요커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침내 언어의 장벽이 없어지고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1849년 쿠바 아바나에서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메우지에 의해 전기 파동 신호를 이용한 통화 방식으로 최초의 전화기가 개발된 이래 전화기는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제는 통신의 비약적인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통화의 수단을 넘어 다양한 분야와 예술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발전된 통신 기술과 기술적 진보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 시킬지 가늠해 보고자 한다.휴대폰은 피처폰에서 PDA 폰을 거쳐 현재의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피처폰일 때 휴대폰의 광고 포인트는 “와이파이 잘 터져?” 또는 어디서든 통화 가능하다고 하는 전화기의 본질인 “통화 성능”에 있었다. 그 후 스마트폰으로 넘어와서는 더 이상 “통화 기능”은 성능의 바로미터가 되지 못한다. 통화 기능은 뒷전으로 밀리고 카메라 화소나 화면의 크기와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이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다. 통화 기능은 부가기능이 되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카메라로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다. 거기에 더해 전화기 디바이스 자체만으로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대가 막 도래한 것이다.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에 미치는 영향을 염려한 환경 지표가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면서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자동차 본연의 이동 수단 외에 자동차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구매 포인트가 되리라 본다. 2022년 8월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경북 포항시 오천읍 일원을 흐르는 냉천이 범람하여 포항제철소 전체가 정전되고 대부분의 시설들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을 때 전기가 없는 상황에서는 인력과 장비가 무용지물이었다. 이때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전기차의 전원을 양수펌프에 공급하여 초기 복구 작업에 엄청난 위력이 발휘되었다는 사실은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차 자체가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일본처럼 대규모 지진으로 정전이 되었을 때,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널처럼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발생했을 때, 전기차는 전원 공급 장치로 활용 가능하여 별도의 전원 공급이 없이 차는 집이나 사무실 기능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제는 부가기능이 어떻게 본질 기능을 대체할 것인가가 미래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2024-02-25

양시양비에도 책임자는 있다

유영희 작가 지난 2월 6일, 정부는 현재 3천58명인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2000명씩 늘려서 2035년까지 1만 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의료인들이 집단 반발하며 단체 행동을 불사하고 있다. 며칠 전 빅 5 병원의 전공의 50%가 사직서를 냈다는데, 정부 역시 물러설 기미가 없으니, 이 문제의 본질과 해법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국민 1천 명당 OECD 평균 의사 수가 3.7명인데, 현재 한국은 2.6명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적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의 계획은 타당해보인다. 그런데 1천 명당 의사 숫자가 한국과 거의 비슷한 일본조차도 의대 정원을 줄일 예정이라고 한다.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대 정원은 똑같은데 1천 명당 의사는 2006년 1.8명에서 2012년 2.0명, 2022년 2.6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이것은 출생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왜 1만 명씩이나 늘려야 하는지 근거가 없다. 사회적 비용만 엄청나게 드는 정부 계획에 대해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불사하며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옳다.또 다른 문제는,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이 현재 의료 서비스 불만을 해소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의사가 많아져도 수가로 수입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는 필수 의료 분야 부족 문제나 지방 의료 공백이 해결되지 않는다. 1천 명당 의사 숫자가 2019년 현재 5.0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리투아니아의 경우만 해도 대도시와 지방의 의사 공급 편차가 극심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수가로 운영되는 방식을 개선하고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의료인들과 정치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작년 남인순 국회의원의 보고에 따르면, 2021년 OECD 국가 중 공공의료 기관 비중은 영국 100%, 캐나다 99.0%, 프랑스 45.0%, 미국 23.9%, 일본 22.8%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5%대로 세계 꼴찌이다. 공공의료 확충 없이 의사만 증원하면 시장 경쟁만 부추길 뿐 지역 격차도 커지고 필수 의료는 사라진다. 그런데 지금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의사들은 이런 의료의 공공성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응급 의료를 간호사에게 맡기는 무책임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은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받을 여지가 많다.증원된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나 지방 의료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섬세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현재 의대생의 세 배를 증원하겠다는 정부도 무책임하고, 공공의료 확충에는 관심 없고 의사 숫자 늘리는 것만 반대하는 의료인들도 명분이 부족하다. 다만, 양측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국민을 안전하게 해줄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 정부 책임이 더 크다. 130회 소통했다고 횟수만 생색내지 말고, 정부는 필요한 의사 인원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의대 졸업생이 공공 의료에 참여하게 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의 갈등을 봉합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하는 길이다.

2024-02-25

오디세우스號

우정구 논설위원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다. 트로이 목마를 고안한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그리스 이오니아해 섬나라 이타카의 왕이다. 지략과 교활, 모험, 불굴의 의지로 상징되는 인물이다.미국의 민간 우주기업인 인튜이티브 머신스가 지난 23일 달 착륙에 성공시킨 우주탐사선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신화 영웅의 이름을 땄다. 모험과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그의 이름처럼 오디세우스는 민간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달 착륙에 성공하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그동안 안보를 목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던 우주개발이 민간기업의 손으로 넘어가 달 착륙에 성공한 첫 케이스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등 겨우 5개 국만이 달 착륙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민간기업의 달 착륙 성공은 놀라운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2019년 이스라엘과 2022년 일본의 기업이 달 착륙 탐사선을 발사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오디세우스의 달 착륙 성공은 앞으로 국가보다 민간 중심의 우주개발이 더 활발해지는 신우주시대 개막을 예고한다.또 우주개발의 목적이 국가의 안보가 아닌 경제적 가치쪽으로 중심축이 이전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달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천체 중의 하나로 인식돼 왔다. 그래서 문학과 신화, 과학의 주요 소재로 자주 등장했고, 인류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미지의 세계로 손꼽히는 곳이다.민간 우주선의 달 착륙 성공은 달이 더 이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창조의 장소로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자원의 고갈 등 지구가 당면한 위기의 대안으로 달의 경제적 가치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주경제시대 서막이 열렸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2-25

공포와 분노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대표적인 묘비명 주인공은 필시 니코스 카잔차키스일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그의 고향 크레타섬에 시멘트 묘지와 나무 십자가로 수수하게 꾸민 무덤의 묘비명은 그야말로 비상하기 짝이 없다. 자유를 향한 그의 등정에 걸림돌은 바람과 공포였다.죽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무엇인가를 두려워한다.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두려워하고 바라는 대상은 천차만별이겠으되, 카잔차키스는 그 둘을 훌훌 뛰어넘는다. 사랑도 돈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노년과 죽음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목청껏 외칠 수 있었다. “나는 자유다!”얼마 전 우연히 맞닥뜨린 방송에서 한국 사회를 추동하는 두 가지 심리적 기제가 공포와 분노라는 말을 듣고 전율했다. 사태의 핵심을 찌르는 통찰과 절제된 단어가 전하는 진실의 뼈저린 아픔이 온몸을 관통해버린 까닭이다. 한국인과 한국 사회가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두 가지 감정이 두려움과 분노라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요즘 의대생 증원 문제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이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어 또한 공포와 분노다. 상당수 의대생과 전공의 그리고 개원의들은 우리나라 의사들의 숫자가 모자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정부가 의대생 정원을 늘리면, 의료수준이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하는 것은 의사의 특권 상실 가능성에서 오는 뜨거운 분노다.현대사회에서 의사는 최고의 전문직 가운데 하나로 상층권위와 높은 수임료로 타자(他者)를 압도한다. 그들이 상층권위를 누릴 정도로 실력이 있는지, 도덕적으로 대단한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많은 명문대생이 재수-반수를 해가며 의대로 돌진하는 까닭을 생각해보시라. 특권과 부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그들을 분노로 결집한다.반면에 다수 국민은 의대생 증원을 반긴다. 늘어가는 노령인구와 저출산 문제가 한국 사회의 걸림돌로 작용한 지 오래다. 소득수준이 오른 만큼 그에 합당한 의료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면 성에 차지 않는다. 의대생 숫자를 늘려 소외지역에서도 마음 놓고 병원에 가고 싶은 것이다. 국민 다수는 현재 상황이 두려운 것이다.경남 어느 지역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했음에도 의료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보도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은산철벽(銀山鐵壁)’을 실감한다. 서울과 경기도가 독점하는 중앙의식, 대도시가 석권하는 도회지 중심주의가 한국 사회를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넓지 않은 나라를 다시 세분하여 떼지어 몰려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공포와 분노가 만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주 보며 질주하는 두 대의 거대 기관차의 충돌은 영화에서는 멋지게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 건강증진과 건전한 의료체계 정립을 위해 공포와 분노가 적정 시점에 슬기로운 결론에 도달했으면 한다.

2024-02-25

안동·예천 선거구 조정 결국 제자리

정안진 경북부 경북 북부지역 선거구 획정이 오락가락해 논란이 일고 있다.경북 북부지역 선거구는 인구 감소에 따라 4년마다 선거구획정이 지연되면서 지역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인구하한선에 맞춰 선거구를 조정하다보면 인구가 적은 지자체는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 하는 홍역을 치르기 일쑤다.예천군 선거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오락가락 했다. 문경과 선거구가 묶였다가 다시 영주시와 합쳐졌다.21대 총선에서는 안동시와 통합 선거구로 선거를 치렀다. 이번 22대 총선에는 의성·청송·영덕과 한 선거구가 된다더니 급기야 없었던 일이 되는 모양새다. 안동·예천 선거구가 존치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듯하다.당초 군위가 대구로 편입되면서 울진을 의성·청송·영덕과 합치는 안이 나왔다. 이에 국회 정개특위는 군위가 빠진 선거구에 예천을 넣자고 의견을 내는 등 혼란을 겪었다.최근 울진 출신의 박형수 국회의원이 자신이 반대하던 울진·영덕·청송·의성 선거구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면서 갑자기 선거구 조정안이 바뀌었다. 현직 국회의원의 목소리에 선거구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안동·예천 선거구는 그대로 유지되는 모양새다. 지난 16일 국민의힘 공천심사위원회는 선거구 조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안동·예천 선거구의 공천 결정을 미뤘다. 이곳은 선거구획정이 끝나는 이달 말께 공천을 확정 지을 예정이었다. 이에 상대적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정치 초년생들은 지역구도 모른 채 우왕좌왕했다.안동·예천 선거구는 ‘김형동 현 국회의원이 컷오프될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으로 공천받을 것이다’ 등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며 선거판을 뜨겁게 달궜다.초선인 김형동 의원이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안동·예천 선거구에 5명의 신인 예비후보자들이 출사표를 던졌고 각 후보들의 가산점(정치신인, 청년)과 감산점(권역별 하위 10~30%에 해당하는 의원)이 적용되면 충분히 이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설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제 일단락 된 듯 하다.안동·예천 선거구가 현행대로 유지될 경우 23대 총선에서는 예천이 또다시 영주·영양·봉화 선거구와 합쳐질 소지가 없지않다. 재선에 도전하는 김형동 의원은 이 같은 상황을 반기고 있지만 예천 출신의 황정근 전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은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당초 예천이 안동과 분리된다는 전제 아래 황정근 예비후보가 공천을 신청,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벌였으나 획정 무산 소식이 전해지자 황 예비후보는 인구 15만3천의 안동시를 예천군 인구 5만5천여 명으로 상대할 방법이 없다며 크게 실망했다. 황 예비후보는 국민의힘 공천 취소 및 예비후보 사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편 안동·예천 행정통합 반대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만약 선거구가 이대로 존속될 경우 선거가 끝나면 안동시장과 많은 시민들이 안동·예천 통합을 다시 주장할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양 지역 주민들 간 마찰이 예상돼 신도시 발전은 커녕 반목만 재연될 것”이라며 “현행 선거구획정 제도는 국회의원들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라 공청회 등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4-02-22

‘노키즈존’과 저출생

홍석봉 대구지사장 외국 언론들이 우리나라의 유례 없는 저출생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흑사병 창궐 이후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보다 한국 인구가 더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최근 프랑스의 르몽드가 한국의 ‘노키즈존’(No kids zone) 현상을 저출생과 연관지어 조명했다. 르몽드는 “한국 사회가 저출산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그리고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에서 이런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또 “집단 간 배제,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식당 등에서 어린이 관련 안전사고 발생 시 업주가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 16년 간 280조를 저출산 예산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온갖 대책을 내놓아도 약발을 받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됐다. 급기야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대로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도 백약이 무효인 현실을 인정, “기존에 추진했던 정책을 꼼꼼하게 살펴서 저출산 정책을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지방도 안간힘이다. 지방 소멸을 목전에 둔 지자체에 저출생 대책은 최우선 과제다. 지자체마다 파격적인 출산 장려금 등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아파트와 경로당·도서관 등을 어린이 돌봄센터로 활용한다’, ‘사무실에서 아이를 데리고 일할 수 있도록 한다’, ‘공무원에게는 하루 2시간씩 육아 시간을 준다’ 경북도가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내놓은 대책이다. 육아와 돌봄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고 주거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완전 돌봄과 안심 주거, 일·생활 균형, 양성평등 4개 분야를 단계별로 실행할 계획이다.온종일 마을과 학교 어디서든 돌봄이 가능토록 했다. 초등 저학년 부모들의 ‘조기 퇴근 돌봄’과 산업단지 거점형 돌봄센터도 만든다. 각종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 및 행복주택 공급 등 주거대책도 들어 있다. ‘아빠 출산휴가 한 달 모델’, ‘다자녀 가정 공무원 인사우대’ 등과 함께 ‘완전 돌봄 특구’ 경북 지정, 인구가족부 지방 설립 정부 건의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도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관심 없이는 허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노키즈존’이 단적인 예다.소파 방정환은 ‘어린이’ 용어를 처음 만들고 1923년 한국 최초의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그는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한국 사회에 설파한 선각자다. 이미 100년 전 일제치하 엄혹한 시절에 어린이가 나라의 보배임을 인식하고 실천했다.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배려하며, 학대나 폭행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어른들의 인식 개선과 관심이 필요하다. 더 이상 ‘노키즈존’이라는 족쇄에 어린이들이 상처받고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노키즈존’ 사회는 지방소멸과 망국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2024-02-22

러시아판 롤스로이스

우정구 논설위원 최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게 선물한 것으로 전해진 아우루스 세나트(Aurus Senat) 승용차는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최고급 브랜드 자동차다.푸틴 대통령이 국가 원수의 의전용 차량을 자국 기술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따라 러시아 국영 자동차개발연구소가 2013년 개발에 들어가 2018년 완성한 차다.아우루스(Aurus)는 라틴어 금을 뜻하는 Arum과 사람을 뜻하는 Aura와 Rusia의 앞 세 글자를 합성한 것이다.이 차의 설계와 제작에 124억 루블(약 1천700억원)이 투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엔진 개발에는 포르쉐와 보쉬엔지니어링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푸틴과 함께 탑승하면서 관심을 보였던 차량이기도 하다.외신에서는 이를 푸틴의 차로 소개한다. 이 차는 무게가 무려 7t에 달하는 장갑차로 폭탄은 물론 화학무기 공격에도 끄떡이 없다고 한다.아우루스 세나트 모델은 옵션에 따라 러시아 현지에서 4천만∼8천만 루블(약 5∼11억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북한은 푸틴으로부터 아우루스 승용차를 선물 받은 사실을 두고 두 나라 정상의 각별한 친분의 표시로 선전했다.푸틴이 전범으로 또 그가 정적의 옥중 의문사 등으로 국제적 비난이 비등한 것과는 별개로 푸틴이 준 승용차를 양국 우의의 상징으로 내세운 것이다.푸틴이 김 위원장에게 준 아우루스 선물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최근 북한의 전통적 형제국인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은 것에 대한 충격의 보상심리는 없었는지 모르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2-22

미디어파사드, 강문화관 디아크

대구와 고령의 경계 지역에는 한눈에도 독특한 건축물이 공원의 낮은 언덕 위에 홀로 놓여있다. 이 건축물은 길고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데, 마치 은빛 고래가 몸체를 위로 치켜들며 배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래의 배부분은 어느 유명 브랜드 가방의 표피마냥 누빈 것도 같다. 실제로 건축가 하니 라시드는 강·물수제비·물고기와 같은 자연의 모습과 한국도자기의 곡선미를 디아크(The ARC·Architecture/Aristry of River Culture)에 담았다고 한다.그러고 보니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오를 때 생긴 물의 수려한 곡선이나 물수제비로 인한 물의 파장과도 닮아있다. 대부분 상자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축물에 익숙한 막눈에는 그저 신기하고 멋있는 예술작품으로 보인다.디아크는 강의 과거와 현재를 전시하는 강문화관이다. 대구를 관통하는 낙동강과 금호강 같은 강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그에 맞는 작품과 미디어 영상을 전시한다.특히 실내 바닥과 벽면의 디자인 모두 물의 색깔인 화이트와 블루를 활용하여 장식하고 물의 형태를 표현함으로써 건물 전체가 비정형인 물을 3차원의 공간에 2차원의 영상으로 형상화했다.지하 1층은 상설 전시실과 세미나실이 있고, 1층과 2층은 써클 영상존으로 예술품과 ‘생명의 순환’ 미디어를 감상할 수 있다. 3층은 카페테리아가 위치하며, 루프탑이 있어 낙동강과 금호강의 경관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루프탑의 작은 연못은 디아크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또한 건축물의 실내 가운데가 위아래로 뻥 뚫려있어 층간에 답답함이 없다. 마치 고래 속을 탐험하는 피노키오처럼 독특한 실내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공원과 전시 공간, 전망대와 탁 트인 경관까지 디아크는 물의 이미지를 담아 힐링을 선물하는 정다운 친구가 된다.밤이 되면 디아크는 대구의 랜드마크로써 또 다른 배역을 맡는다. 낮의 친근한 은빛 고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미디어파사드의 화려한 옷을 입으며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건축물의 은빛 외피가 보라색과 파란색 등 여러 색깔로 변하고 레이저빔이 함께 어두운 밤의 전경에 수를 놓는다. 멀리서도 화려한 색깔로 변신하는 건축물은 무대 위에 홀로 올라선 주인공처럼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현대의 도시는 비슷비슷한 도시들의 경쟁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디어파사드는 이러한 도시의 아이덴티티 구축을 빠르고 쉽게 만들어준다. 미디어파사드는 미디어와 파사드의 합성어로서, 건물 외벽에 미디어 기능이 구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물이 디지털 미디어를 융합하여 시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건축의 형태로 현재는 건축 예술의 종합적인 표현 방법으로 많은 도시에서 활용되고 있다.초기의 미디어파사드는 도시의 건축물에 스크린을 설치하거나 건축물의 벽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광고나 정보, 이미지를 단순하게 표현하고 전달하였다. 현재는 나날이 발전하는 디지털 영상 기술과 대형 발광 스크린 설비의 가격 하락으로 인해 미디어파사드의 적용과 표현 방법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점점 미디어스크린과 건축물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융합되고 있다.이에 도시의 다양한 정보를 선전하고 홍보하거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매개가 되거나, 문화전시 등 예술적 역할을 하거나, 도시의 야경을 풍부하게 하거나,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는데 미디어파사드가 활용된다.베이징올림픽 때 ‘워터 큐브’는 낮에는 수영경기장으로, 밤에는 물거품을 표현한 미디어파사드로 국가이미지를 랜드마크하였다.홍콩은 낮과 다른 매력의 야경 미디어파사드가 유명하여, 이를 구경하려는 관광객으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독일월드컵 때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는 고무보트 모양의 건축물을 뒤덮은 미디어파사드로 어떤 팀과 어떤 팀이 경기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였다.인천항 7부두의 폐곡물창고는 부두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다.경주의 대릉원에 펼쳐졌던 한밤의 미디어파사드는 도시축제의 또 다른 형태를 제공하여 시선을 끌었다. 대구의 강문화관 디아크는 낮에는 친근한 힐링 공간이자 전시관으로, 밤에는 멀리서도 단번에 보이는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였다.특히 3차원의 공간과 2차원의 영상을 건축물의 외피뿐만 아니라 전시관이 있는 실내까지 확장하여 미디어파사드를 적용하였다.미디어파사드는 문화·역사·생태 등 다양한 관점에서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시키고, 산업 발전으로 연결시키며,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이를 폭넓게 공유하기에 적합한 건축과 미디어의 융합 표현 기술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도시의 야경이 미디어파사드로 인해 매력을 더하는 듯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2-21

낙타처럼

배문경수필가 사막을 걷는다. 모래에 한 땀 한 땀 발자국이 남았다. 제대로 걸어온 길일까. 중간쯤에서 돌아보니 곧은 길이 아니라 삐뚤다. 바람이 불어와 먼 곳 발자국부터 지운다. 모래언덕을 바라보는 나는 낙타다. 놀라 깨어보니 꿈이다.월요일 아침은 부산하다. 씻어둔 유니폼을 꺼내 보니 허벅지 쪽 실밥이 풀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바느질을 시작한다. 바늘귀에 실을 꿰려니 실이 귀를 통과하지 못한 채 그대로다. 돋보기를 끼니 이젠 영락없는 세월을 느낀다. 눈 하나는 타고났다고 스스로 자만했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일러주는 길을 따라 낙타처럼 천천히 따라 걷는다.얼마 전, 몽골의 낙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래서 스스로 낙타가 되어버린 꿈을 꾼 걸까. 낙타는 단봉낙타와 쌍봉낙타의 두 종류가 있다. 단봉낙타는 혹이 하나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남서부에 분포하며, 쌍봉낙타는 혹이 두 개로 단봉낙타보다 몸이 작으며 중앙아시아에 분포한다.발가락은 2개로 모래땅을 걸어 다니기에 알맞은 구조다. 또, 콧구멍을 막을 수 있으며, 귀 주위의 털도 길어서 모래 먼지를 방지할 수 있다. 등 위의 혹은 물주머니가 아니고 지방 덩어리이다. 따라서 며칠 동안 먹이를 섭취하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는데, 이때에는 혹이 점점 작아지고 종래는 소실된다. 3일간 물을 마시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는 것도 탈수로 혈액이 짙어져도 타원형의 적혈구가 농축된 헤모글로빈을 가지고 혈관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기에 가능하며, 적혈구가 수분을 잘 빨아들여서 수분 유지가 가능하다. 1회에 57ℓ의 물을 마실 수 있으며, 임신기간은 1년, 수명은 40∼50년이다.한 번에 500㎏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며, 장시간 물을 마시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일찍부터 가축화되었다.운반이나 승용(乘用) 이외에 고기는 식용으로, 젖은 음료로, 털은 직물에 이용되므로 사막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축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초에 거란인이 타고 온 낙타 54필을 만부교 아래에 매어 굶어 죽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바지를 뒤집어 솔기를 찾아보니 손가락 두 마디쯤이 터졌다. 매듭 묶은 실이 바늘에 딸려 솔기를 지날 때마다 삶의 편린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낙타가 사막의 계곡을 지나 언덕을 오르듯이 고단한 순간도 지나고 나니 웃음이 난다.이 바지를 입은 것이 십 년이 넘었다. 유니폼 두 벌로 매주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세탁해서 입었으니 십 년으로 계산해도 대략 520주다.그것을 반으로 나누면 260번을 세탁해서 말렸다. 양봉 사이에 인간을 싣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모습은 이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다. 누군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삶의 무게 바로 그것이었다.내가 나이를 먹는 사이 아이들은 자랐다. 간호사 유니폼은 낙타가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눈과 귀를 닫고 묵묵히 사막을 횡단하듯 내 직장생활을 버티는 갑옷이 돼주었다. 어느덧 나보다 키가 크고 목소리에 힘도 들어간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면 대견하고 어찌 보면 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 속 쓰리고 슬프다.얼마 전 직장을 옮겼다. 새로운 자리에 적응하려니 힘에 겨워 몸살이 났다. 낙타의 봉에 가득하던 지방을 다 소진해 혹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며칠은 물을 마시지 않아도 견디던 젊은 낙타가 아닌 삶에 지친 나이가 된 것이다. 한 땀씩 내 삶에 그려 넣었던 많은 추억들을 낙타처럼 되새김질한다. 서서 바라보는 수평선이며 지평선 아래 얼룩덜룩 남루한 것과 햇빛에 반짝이는 고운 것들도 있으니 잘살았다, 잘살았다. 나의 등을 두드려준다.주섬주섬 바느질을 마치고 낙타처럼 훌쩍 일어선다. 사막에 해가 저문다. 언덕 위에서 모래폭풍이 지나간 사막 저 끝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리라. 황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낙타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2024-02-21

급성 통증 담결림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겪는 질환은 급성 통증 질환이다. 갑자기 목이나 어깨 등 혹은 허리쪽과 관절이 많이 아프고 가동이 안되는 질환이다. 그중에서도 목과 어깨 쪽이 갑자기 너무 아프고 돌아가지 않는 것이 제일 흔하고 등과 허리가 다음으로 흔하다. 팔꿈치나 다른 관절이 그런 경우 있고 이럴 땐 흔히 담결렸다 삐었다고 표현한다.목과 어깨는 보통 자고 일어나면 통증이 발생하고 안돌아간다. 갑자기 발생해서 이유가 없이 아프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동안 조금씩 목과 어깨쪽의 근육이 뭉친 것이 잘 때 잘못된 자세로 인해서 뭉치고 늘어나서 염증이 생겨 통증이 발생한다. 목만 아픈 경우 목과 그 옆의 승모근이 아픈 경우, 목과 견갑거근 혹은 능형근쪽으로 일직선으로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 등 약간의 차이가 있다. 통증이 심한 경우는 목을 아예 움직이지 못하지만 대부분은 한쪽은 어느 정도 가동이 되고 다른 한쪽으로는 가동이 힘들다. 허리나 관절쪽은 무리가 되었던 부분들이 무거운 것을 들거나 사용을 할 때 순간적으로 뜨끔 하면서 통증이 발생한다.이런 통증의 특징은 날카롭게 순간적으로 아프고 움직일 때마다 뜨끔뜨끔해서 생활이 불편하다. 통증이 심한 경우는 움직임이 너무 힘들어 큰 병원에 내원해 검사를 받고 오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 큰 구조적인 문제가 발견 되지는 않는다. 환자와 한의사가 보는 괴리가 큰 질환들이 이런 담결림 통증이다. 환자는 너무 아프고 움직일 수가 없어 걱정이 크지만 치료자가 보기엔 며칠만 치료하면 아픈게 금방 좋아지기 때문이다.환자는 디스크나 근육 손상 인대의 파열을 의심하지만 그럴 땐 신경이 눌리는 증상이 나타나거나 그런 증상이 없더라도 정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보통은 심한 통증이라도 문제가 있는 곳의 근육 힘줄 인대를 정확히 찾아서 부항으로 피를 뽑아 주거나 약침 혹은 침으로 풀어 주면 하루 이틀 내에 심한 통증은 잡힌다. 대부분 일주일 안에 거의 정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좋아지니 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를 보고 따라하는 경우도 있으나 권장하지 않는다. 담결림도 사람마다 조금씩 아픈 위치가 다르고 원인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잘못 따라하면 손상 부위의 자극이 더 심해져서 염증이 심해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약간의 구조적인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추나요법을 병행하면 좀 더 빨리 회복된다. 허리가 삐뚤어져 있거나 목과 어깨 높이가 맞지 않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으면 조금더 적극적인 치료를 해주면 되는 것이다. 추나를 추가하거나 초음파로 보면서 정확한 곳에 약침을 주사하는 치료를 하면 좀 더 빨리 회복된다. 운동은 절대 권장되지 않는다. 운동은 아플 때 하는 것이 아니고 아프지 않을 때 해야지 근육이 강화되고 건강해진다. 당연히 일도 쉬어 주는 것을 권장하지만 일을 꼭 해야 하는 경우는 보호대로 감싸거나 조심히 일을 하면서 치료를 하면 된다. 아주 심한 경우만 아니라면 일과 치료를 병행해도 회복이 된다. 담결림 통증은 심한 통증과 몸의 움직임 제한으로 걱정을 많이 하지만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빨리 나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2024-02-21

빗자루에 대한 단상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빗자루는 먼지나 쓰레기를 쓸어 내는 청소도구인데 본말은 ‘비’다. 엄밀히 말하면 빗자루는 ‘비’의 ‘자루’이고 청소 도구는‘비’가 맞지만 ‘비’에는 마땅히 자루가 있어야 하니 ‘비’를 그냥 빗자루라고 부른다. 예전 방을 청소할 때는 당연히 빗자루를 써서 먼지를 한켠으로 모아 쓰레받기에 담고, 걸레질을 했다. 진공청소기가 나오기 전의 청소 풍경이다. 진공청소기도 진화하여 긴 줄이 달린 굉음 큰 유선청소기에서 시작하였고 이젠 무선청소기가 대세다. 물걸레질은 물론, 스스로 움직이며 구석구석 청소하는 로봇청소기까지 있으니 요즘 아이가 빗자루를 알까. 빗자루를 청소도구가 아니라 마녀의 교통수단으로나 알고 있을 거다.며칠 전 이사를 하면서 청소를 하게 되었다. 유선청소기, 무선청소기에 물걸레청소기도 있었으나 하나같이 마뜩찮았다. 그것들은 구석과 틈새에 켜켜이 쌓인 먼지와 쓰레기를 대충 치우는 정도였다. 알뜰살뜰한 청소에는 역부족이었다. 쓰레잘비라는 신박한 빗자루가 있어 사용해봐도 뻣뻣한 게 마음대로 청소되는 느낌이 없었다. 빗자루가 없을까? 차 트렁크에 눈 올 때 쓰려고 사둔 짧은 빗자루가 보였다. 바닥에 앉은자리 모양새로 엉덩이를 밀면서 먼지를 쓰니 이것만한 게 없다 싶었다.예전 방에서 쓰던 빗자루는 예쁘기까지 했다. 빗자루의 목을 청홍색실로 묶기도 하고 왕골끈으로 매듭묶어 치장도 했다. 방빗자루는 벼의 줄기를 길게 묶어 마디마디를 조인 비였다. 자루 부분은 단단히 조여 묶었고 아랫도리의 쓸 부분은 부챗살처럼 퍼져 아름답기까지 했다. 부엌에서는 수수비를 썼고, 댑싸리나 대나무를 통째로 묶어 만든 길고 커다란 마당비도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다. 방빗자루는 진공청소기에 밀려 거의 사라졌지만 마당비는 절간의 너른 마당이나 학교 운동장, 군대 생활관 등에서는 아직도 많이 쓰인다. 다만 재질이 싸리나무나 대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어졌을 뿐이다.꿩의 긴 꽁지깃을 모아서 맨 장목비가 있었다. 알록달록한 꿩의 깃도 아름답지만 손잡이나 깃을 모아 묶는 색색의 끈도 멋스러웠다. 빗자루라기보다는 벽에 걸어두는 장식품 같기도 했다. 외할아버지 방에서 자주 봤던 개꼬리비도 있다. 꼬리가 긴 개의 꼬리만을 잘라 안의 것을 발라내고 나무심을 박아서 맨 비인데, 외할아버지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이불을 거두고는 개꼬리비를 들고 무릎걸음으로 방을 돌며 비질을 하셨다. 폭신한 털이 보들보들 예쁘다고 손바닥으로 쓸어보다가 개꼬리라는 걸 알고는 기겁을 한 기억이 있다. 오래 쓰면 털이 닳아서 꼬리 속의 거죽이 다 드러나 보였다.서양의 비는 나무막대 끝에 마른 풀을 단 빗자루였다. 긴 나무막대가 있으니 마녀가 하늘을 날 때 요긴하게 탈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 빗자루의 나무막대기 중간에 걸터앉아 타는데. 막대기와 볏부분에 걸터앉아 방석삼아 타는 경우도 있고, 스케이트보드 타듯 두 발로 서서 타기도 한다. 현대에는 청소기가 빗자루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청소기나 로봇청소기를 타고 다닐 수도 있겠다. 로봇청소기를 타는 고양이를 본 적도 있다.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