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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커밍아웃이 필요 없는 세상

유영희 작가 ‘삼국유사’에는 임금님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다가 죽기 전에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이야기의 교훈은 권력자의 횡포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임금님 같은 권력자라도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알까, 장인이 발설할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권력자라도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 하거나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이렇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혼자만 또는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데는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정보가 알려졌을 때 자신이 심한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는 몇 배 가중될 것이다. 그런 사람 중에는 성소수자들도 있지만, 특정 질환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커밍아웃의 부담을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간다.치매 역시 너도나도 밝히기를 꺼리는 질환이다. 한국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 환자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대처 방법을 눈여겨보게 된다. 김웅철의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의 첫 장에는 스타벅스가 어떻게 치매와 만나는지 소개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치매 환자의 가족은 물론, 치매 당사자와 간병인, 전문가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모여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이것은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치매 정책 5개년 계획에 2025년까지 일본 전역에 치매 카페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세운 후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공공시설이나 빈 가게를 활용하다가 최근에는 스타벅스가 나서서 치매 카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도쿄 근처 마치다 시에는 치매 카페를 의미하는 D-카페 푯말이 붙은 스타벅스가 8곳이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고령의 치매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라고 한다.치매 카페에서도 이들을 특별히 따로 구분하지 않아서, 일반 손님과 자연스럽게 섞여 어울리니 주민들도 치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스타벅스는 이것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장소로 운영한다고 한다. 일본 상황을 잘 아는 지인에게 들으니, 일본에는 치매 환자들의 토론대회도 있다고 한다.2021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10%, 85세 이상은 40%라고 하니, 더 이상 쉬쉬할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주변에는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누가 진단이라도 받는 날이면, 가족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치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환자를 일상에서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당나귀 귀처럼 생긴 귀를 가지고 있어도 기꺼이 두건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2024-03-17

청소의 마력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불교 용어 중에 깨달음이라는 용어가 있다. 깨달음은 특정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임을 이해하고 세계적인 이해와 평화로운 정신상태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는 ‘나는 나 이외의 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를 늘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 즉 태양 공기 물 동료와 같이 나 이외의 것이 없으면 내가 지금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기에 늘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은 하나라고 하는 불교의 세계관과 모든 일은 연결되어 일어난다는 연기법과도 일맥상통한다.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윌슨(Kelling Wilson)에 의해 1982년 발표된 깨진 유리창의 법칙도 연기법의 일종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나중엔 지역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시에서는 지저분하고 낙서 투성이로 범죄가 끊이지않던 지하철 내부 벽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작은 범죄부터 엄격히 단속하여 깨진 유리창을 바로잡아 나가는 방식으로 도시 전반의 치안을 개선하는데 성공한 예가 있다.제조 현장의 관리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제철소의 경우 제품 생산을 문제없이 하기 위해서는 설비를 포함하여 운영에 필요한 자재류와 작업 도구 작업장이 항상 깨끗하고 일하기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유지관리 점검을 해보면 공장 주변의 통로나 사무실 환경 등이 깨끗하게 관리되는 공장은 현장 설비와 그 주변도 잘 정리정돈 되어있고 항상 깨끗하게 관리된다. 특히 대대적인 청소를 통해 깨끗하고 먼지가 없는 새공장만들기를 추진한 공장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공장이 깨끗해지니 이상하게 불량과 고장이 줄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청소를 하찮은 활동으로 여기는 직책자나 직원들이 많은 공장을 보면 현장이 빠르게 지저분해지고 화재나 사고 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깨끗한 공장은 모두가 공들여 만든 작업장과 설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며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거나 사용한 자재나 치공구를 방치하지 않고 정해진 위치에 두고자 노력한다. 이런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각자의 마음가짐을 바꾸게 되고 개인은 스스로 하고있는 일에 대해서도 정리 정돈하여 효율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습관으로 이어져 현장은 더 깨끗해지고 자연스럽게 불량과 고장의 감소까지 연기되어 일어나는 것이다.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이런 청소의 마력을 직책자나 선배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그리고 누구든 활동을 안하면 그 당시는 편하기에 하지않으려 하고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이 서로가 알면서도 방치하게 되어 서서히 지저분한 환경이 되고 사고나 문제 발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면 이를 조치하기 위해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따르게 되며 이 과정에서 재해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지게 된다. 그렇기에 청소는 나와 동료의 생각을 바꾸어 주고 재해 위험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마법과도 같은 활동인 것이다.

2024-03-17

“말이 씨가 된다”

우정구 논설위원 중국 당나라에서는 관리를 등용하면서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네 가지 기준을 사용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바로 그것이다.신(身)은 풍채와 용모를 뜻한다. 얼굴에서부터 총기가 서려 있고 똑똑함이 묻어나고 마음도 선해 보이는 것을 말한다.언(言)은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란 뜻이다. 생각과 말이 합리적이어야 다른 사람을 이해 설득시킬 수 있다.서(書)는 글씨를 잘 쓴다기보다 자기 생각을 올바르게 표현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판(判)은 그 사람의 판단과 결단을 의미한다. 성공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정확하고 합리적 판단을 잘한다는 것이다.오늘날에도 이 네 가지는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원용이 되고 경우에 따라 신입사원 선발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네 가지 기준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는 것은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여기서는 말(言)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총선을 앞두고 막말 논란으로 여야 간 공천 취소 사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공천을 딴 후보가 지난날 생각없이 던진 말이 씨가 돼 공천이 취소되는 일이 여야 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유대인의 교육 지침서인 탈무드에는 “인간은 입은 하나요 귀는 둘이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말을 신중하게 하지 못해 낭패를 당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구설수(口舌數)라는 게 그런 것이다.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말은 하기에 따라 상대를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지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막말로 공천이 취소된 후보자들에겐 말이 씨가 된 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17

봄꽃 피어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대 창창한 시절엔 여름이 제일 좋았다. 청년 시절 누구나 그렇듯 관념론에 빠져 있던 터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있는 ‘부패는 만상의 본질’이란 구절에 마음을 뺏긴 까닭이다. 열렬한 속도로 생장하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의 빠르기로 부패와 소멸이 진행되는 계절이 여름인 까닭이다. 양극단의 두 얼굴의 계절, 여름을 찬양하라!중년에 접어들자 겨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한여름의 눅진한 습기와 극복 불가능한 열기, 그것들이 자아내는 무기력과 타락의 분위기가 현저히 역겨워진 것이다. 그러나 겨울은 어떤가?! 피부를 뚫고 스며드는 한기(寒氣)가 내장을 서늘하게 인도하고, 이마를 때리는 설한풍은 영혼을 맑게 정화한다. 공부 좋아하는 학자들이여, 겨울을 찬미하라!다시 세월이 흐르고 귀밑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자 사정이 달라진다. 누가 뭐래도 봄을 기다리게 된 터다. 10년 전부터 촌으로 이주한 후에는 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부쩍 깊어진다. 10월 말 11월 초에 누렇게 변색한 잔디와 곳곳에 나부끼는 낙엽이 전하는 처연함과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초로의 인간이여, 봄을 목청껏 노래하라!지난 1월 초에 마주한 후배가 네덜란드 출신 알뿌리 서른 알을 넘겨준다. 봉투에는 튤립, 히아신스, 크로커스, 무스카리의 네 가지 이름이 적혀 있다. 매서운 칼바람 부는 시절에 땅을 파고 알뿌리 심는 일은 차일피일 미뤄진다. 그러다가 후배 전화를 받고 심는 작업에 착수한다. 물까지 듬뿍 준다. 그 이튿날부터 기온이 급강하한다.그때부터 2월 하순까지 달포 가까이 속앓이를 했다. 미숙한 주인 만나 유럽에서 건너온 네 종류의 어여쁜 구근(球根)이 얼어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몹시 괴로웠다. 그러던 차에 녀석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게다. ‘청도 인문학’을 시작한 2월 20일 무렵 일곱 개의 초록 초록한 얼굴이 나를 향해 웃는다.날이면 날마다 녀석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수효를 헤아리는 게 일상이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환희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3월 14일 녀석들 전방에 자리한 수선화가 노란 꽃망울을 화사하게 터뜨리더니, 히아신스와 크로커스가 뒤를 따라 하늘로 몸을 연 것이다. 눅눅하던 마당의 분위기가 일신(一新)한다. 몇 송이 꽃의 개화가 전해주는 생동감과 환희라니!한겨울 추위를 겪지 않으면, 줄기는 자라나지만,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한다. 뉴질랜드에 사는 교민이 개나리가 그리워 옮겨 심었으나 결국 꽃은 보지 못했다 전한다. 그곳의 겨울이 우리의 겨울보다 온화한 까닭에 몸체는 생겨나 자라났지만, 꽃은 피우지 못했다는 얘길 듣고 생각나는 게 적잖았다. 가혹한 시련이 사람도 꽃도 만드는 모양이다.이번에 피어난 크로커스와 히아신스를 보면서 봄이 깊어지면, 튤립과 무스카리도 여기저기서 환하게 피어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환해진다. 만상을 보는 계절 ‘봄’을 화려하고 은성(殷盛)한 축제로 만들어주는 봄꽃을 보면서 저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절이다.

2024-03-17

세계서 가장 비싼 한국 사과

우정구 논설위원 전세계 물가를 비교할 수 있는 웹사이트인 넘베오(Numbeo)에 의하면 한국의 사과값은 전 세계 1위다.한국 사과 1kg의 가격은 6.77달러로 웹사이트에 올라온 94개국 중 으뜸이다. 다음으로 스리랑카(6.27달러), 미국(5.32달러), 자메이카(5.22달러)가 뒤를 이었다. 94개국 평균 사과값은 2.34달러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지난달 우리나라 과일 물가 상승률은 40.1%다. 통계청에 따르면 과일 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상승률(3.1%)보다 37.5%포인트나 높았다. 과일 물가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85년 이후 약 40년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품목별로는 귤이 78%로 가장 높았고 사과 71%, 복숭아 63%, 배 61%, 감 55.9%, 참외 37.4%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과값은 지난해 이후 지속 폭등하면서 대체재인 다른 과일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고 한다. 문제는 사과값이 이처럼 폭등을 해도 당분간 안정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과 수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검색 절차상 당장 어려워 수입 사과는 기대가 힘들다.사과값이 폭등한 이유는 기후이상에 따른 수확량 감소 때문이다. 특히 사과는 재배면적까지 줄면서 작년 동기보다 가격이 120%나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앞으로 9년 후면 국내 사과 재배면적이 축구장 4천개 면적만큼 줄 거라 했다.과일은 비타민, 섬유소, 미네랄, 항산화제 등 영양소가 풍부해 피로회복이나 면역력 증가 등에 좋다. 사과는 한국인이 즐겨찾는 대표 과일이다.이상기후에 떠밀려 사과값이 금값이 됐지만 지금 추세라면 국내산 사과 구경이 힘들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14

시들해진 TK 선거

홍석봉 대구지사장 우리말에 ‘굿도 보고 떡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굿도 굿이지만 굿판에 차려진 음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굿판은 차려졌는데 음식이 그다지 풍성하질 않다. 손이 갈만한 음식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굿판이 재미가 없다. 구경꾼도 시들하다.22대 총선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작 본선은 시작도 않았는데 대구·경북(TK) 선거판은 열기도 식고 유권자도 별로 관심이 없다.국민의힘 공천이 저들만의 리그 속에 마무리됐다. 당 지도부의 ‘안전빵’ 공천 덕분에 별 잡음 없이 끝났다. 혁신과 감동이 없는 맥빠진 공천이 됐다. 절반 이상 물갈이를 요구하던 지역 유권자들의 열망은 ‘희망고문’이 됐다. 공천 결과에 반발해 뛰어나가 무소속 출마를 하는 예비후보도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예년 총선의 경우 지금쯤이면 무소속 후보들의 연대가 이어지는 등 시끄러웠다. 경산과 포항북, 영천·청도 정도만 무소속 후보가 나서 국민의힘 후보에 맞서는 형국이다. TK가 역대 선거 중 출마자가 가장 적은 선거가 될 조짐이다.역대 총선 중 22대 총선만큼 재미없는 선거는 없을 듯하다. 각 후보자가 개별적으로 지역 발전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 내놓은 공약은 신선미가 떨어진다. 지역 발전과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도 별로 없어 보인다. 당 지도부도 열세 지역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다. 집토끼는 아예 내놓은 자식 취급한다. 지역민들도 누가 되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관심 밖이다. 전국적인 지명도 높은 인사도 없고, 주목할 만한 인물도 없다. 밋밋하고 재미없는 선거판이 불 보듯 하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한 표의 행사는 국민의 소중한 권리다. 하지만, 극심한 지역주의 구도 아래의 선거에서 뻔한 선거 결과는 한 표의 의미마저 퇴색시키고 만다.제3지대를 표방하며 출발한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이낙연의 새로운미래도 갈라서면서 중도세력 결집에 실패했다. 개혁신당은 TK에서 겨우 1명의 후보를 내는데 그쳤다. 보수와 진보에 실망한 표들이 갈 곳조차 없다. 이들 신당은 조국 신당에도 밀리는 등 존재감이 미미하다.지난 20대 총선 때는 안철수 발 녹색 바람이 일면서 굿판에 어느 정도 신명은 있었다. 대구 수성갑 선거에서 김부겸과 김문수의 대결은 빅히트를 쳤다. 31년 만에 야당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명 장면을 만들었다.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 1명과 무소속 3명이 당선되는 이변도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이 공천 파동으로 자멸한 결과였다. 결국, 나중에는 정권까지 헌납하고 말았다.그로부터 4년 뒤 치러진 21대 총선은 민주당이 호남을 석권하고 국민의힘 전신인 통합미래당은 TK를 독식했다. 영호남은 지역구도 타파는 고사하고 지역주의에 매몰됐다. 25일 남겨둔 이번 총선도 21대 총선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지역은 다시 폐쇄와 무기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 정치의 근본 틀을 바꾸지 않고서는 지역 정치판의 변화는 백년하청이다. 재미없고 맥빠진 TK총선을 보는 건 고역이다.

2024-03-14

3월은 ‘깨어나는 달’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꽃샘바람 속에 들판을 걷다 보면 파란 풀들의 새싹이 밟히고 나무마다 꽃망울이 움트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개구리가 깨어난다는데 산간 지역엔 찬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고 있다.만물이 생동하는 달, 3월 달력을 보니 15일이 ‘3·15 의거 기념일’이다. 기억을 60년 전으로 되돌려 본다. 1960년 그날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 중 마산에서 부정선거가 적발되어 이에 항거하는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이 거리에 모여 행진하며 시위했고 이에 경찰이 총기를 발포하여 9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부상했으며 시위는 계속됐었다.이 사건 보름 전 2월 28일 일요일에는 대구에서 자유당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여 경북고, 대구고를 비롯한 8개교 1천200여 명의 고교생들이 ‘일요 등교’ 지시에도 학교를 뛰쳐나가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제1공화국 정부수립 후 민주개혁을 요구한 최초의 시위로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었다.그리고 1주일 후, 3월 8일에는 대전에서 대전고를 시작으로 지역 고교 1천600여 명이 정권의 부정부패와 불법 인권탄압에 항의하여 시위를 전개하였었다. 이는 고교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용기로 항거한 충청지역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고 100여 명의 학생들이 연행·구속되거나 몽둥이 등으로 구타당하는 고충을 겪은 아픈 역사이다.보름 동안 일어난 3건의 학생 민주의거운동은 한 달 후 전국에서 불길처럼 타올랐던 4·19혁명의 불씨가 됐었다. 학생들이 깨어난 나라지킴 열의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본다.3월은 영어로 ‘March’, ‘행진하다’는 말인데 참으로 숨겨진 의미가 있을까 찾아보니, 그 어원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쟁의 신-마르스(Mars)’이다. 추운 겨울 동안 준비했다가 따뜻한 봄이 되면 힘차게 행진하여 전쟁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3월은 우리에게도 투쟁의 역사가 기록됐을까….이렇게 학생운동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 3월은 전국 의대 학생들이 놀라 깬 듯 집단 파업에 들어갔다. 2000년대 초 감축하기도 했던 의과대학 정원이 선거를 앞둔 탓인지 한 달 전 ‘의사인력 확대방안’의 긴급 브리핑에서 현재 3천58명에서 2025년부터 2천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대학 수요와 역량을 기반으로 비수도권 지역의대 중심으로 증원한다고 하지만 관련 학계와의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지 심각한 반대에 부딪혔다. 대학입학 후 전문의까지 10년 후에야 그 효과를 볼 수 있으니만큼 18년간 동결되었던 의대 정원을 갑자기 늘린다고 수도권 의료인력 집중과 필수 의료분야 부족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이 문제로 수련의, 전공의 9천여 명이 집단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 또한 전체 1만8천여 명의 30% 정도인 5천500여 명이 휴학을 신청한 상태이며, 33개 의대의 교수들도 증원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집단 사직서를 쓰고 제자들을 지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대규모 집단행동은 심각한 문제이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 대계이다.3월은 ‘깨어나는 달’-이제 4월 총선도 있고 하니 지금 한창 분탕질에 묻힌 정치계도 다시 털고 깨어나 국가의 진정한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

2024-03-14

의사들의 직업윤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을 직업윤리라 한다. 직종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윤리적 규정이 있을 수 있지만, 교육이나 종교와 같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이 요구된다. 또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직업이나 사회의 정의구현을 담당하는 직업,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살피는 직업에도 못지않은 도덕성과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러한 직종의 종사자들이 윤리규정을 어겼을 때는 더 엄격하게 법적 제재나 지탄을 받게 된다.한국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가 의사라고 한다. 정년의 제한이 없는 안정된 직업인데다 고액의 연봉이 보장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편 병든 사람을 낫게 하고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자부심과 보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오랜 기간 공부와 수련을 거처야 하는 고도의 전문직인 만큼 그에 상당하는 대우를 받아야겠지만 그만큼 직업적 윤리의식도 높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는 의사들이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 등을 내용으로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하기도 한다.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의료(醫療)다. 빈곤한 나라일수록 먹는 것 못지않게 절실한 것이 의사와 의료 시설이다. 간단한 의약품조차 없어 죽어간 사람들도 부지기수라 한다. 아프리카 가봉에 가서 평생 의료 봉사를 한 알베르트 슈바이처나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의료 활동을 펼친 이태석 신부 같은 사람들은 단순한 직업 윤리의 차원을 넘어 지극한 인류애를 실천한 인물로 칭송과 존경을 받는다.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6일 보건의료 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3천58명으로 동결됐던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입시에서 5천58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2035년까지 의사 1만5천명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증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정부 시책에 의사들은 강력 반발하면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현재 전공의들 80% 가량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 중 대다수가 의료 현장을 떠난 상태다. 지난 12일에는 전국 19개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공동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결했다.의대생 증원에 대해 의사들이 왜 그토록 강력하게 반발을 하는 걸까. 이런저런 구실을 대지만 결국 의사의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수익이 줄어들 것에 대한 우려가 제일의 이유일 터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료대란을 일으켜 의료계를 마비시킬 만큼의 타당성을 갖지는 못한다. 의사란 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자유경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다른 직업들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는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현대에 맞게 개정한 제네바 선언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사가 환자 곁에 있어야 할 이유다.

2024-03-14

장송곡 시위와 간접강제

홍석봉 대구지사장 장송곡 시위가 과연 사라질까. 대구서부지법이 대구 서구가 구청 앞에서 장송곡 시위를 벌인 철거민을 상대로 낸 간접강제 신청을 받아들였다.‘간접강제(間接强制)’는 채무자에 대해 불이익을 예고하거나 부과해 심리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채무를 이행토록 하는 강제집행 방법의 하나다. 채무자가 이행하지 않으면 법원은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기간을 정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지연 기간에 따라 일정한 배상을 명해 간접적으로 채무 이행을 강제한다.재판부는 장송곡 시위를 벌인 철거민 2명에게 구청 청사 50m 이내에서 확성기 등을 이용해 장송곡 등을 75㏈ 이상 고성으로 틀어놓으면 하루 100만 원씩 서구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차로를 점거해 청사 차량 진출입을 방해하는 행위도 포함됐다.서구는 철거민 2명이 지난해 12월 대구고법의 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며 간접강제 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철거민들이 위반 행위를 반복할 개연성이 있다며 간접강제를 명령한 것이다. 철거민 측은 앞서 방해금지 가처분 결정과 관련, 집회 시위의 과도한 제한이라며 대법원에 재항고키로 한 상황이다. 대법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기존의 집회·시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장송곡 시위는 상대방에게 미치는 효과는 직접적이고 크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번 법원 결정에 따라 소음 시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시위의 소음 기준이 정해졌고 위반하면 돈으로 물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됐다. 신청 기관과 법원은 돈으로 강제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기관 등에 억울한 피해를 호소하는 방법도 이젠 바뀔 때가 된 것 같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13

총선에 교육이 안 보인다

장규열 고문 곧 총선이다. 나라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선거임에 틀림없다.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도 첩첩산중이다. 경제와 일자리, 산업과 과학기술, 복지와 의료, 외교와 국방, 도시와 건설, 지방정책과 균형발전, 안전과 치안 등 국정 전반에 손을 보아야 할 가닥이 차고넘친다. 최근 들어 우리 모두를 압박하는 과제가 있다.저출산. 젊은이들에게 물으면, 결혼과 출산에 대하여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경제적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적 전망이 밝지 못한데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과 즐거움을 설명하려 해도, 자신과 아이가 겪어야 할 어려움이 불을 보듯 확연한데 어떻게 그런 모험을 하겠느냐는 반응이다.출산을 가로막는 까닭들 가운데 심각한 장애물이 바로 교육이다. 아이들을 반듯하게 기르는 일이 너무 힘들다. 출산과 동시에 다가오는 돌봄과 육아를 비롯하여 초등학교에도 밀려든 사교육의 압박과 대학입시의 그림자, 학교폭력과 교권수호 사이에서 힘을 잃어가는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의 피폐함은 신혼부부들의 자신감을 앗아갈 뿐이다. 총선이 다가오지만, 정당과 후보자들이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유권자가 아닌 학생들에게 표가 없어서 그런지 총선 이슈로는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다.교육부와 교육청으로 나뉘어진 정책 수립과 책임 소재의 구조적인 과제도 있다. 교육이 가진 실질적 내용을 뿌리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젊은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맡길 분위기부터 자리를 잡아야 하고,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녀들이 공교육 과정을 지날 수 있도록 교육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부적절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과정을 손을 보아야 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대입제도도 크게 수정해야 한다.정당들이 훌륭한 후보들을 영입한다지만, 교육과 관련하여 적절한 선택이 그리 보이지 않는다. 교사노조와 관련하여 선생님들의 교권과 복지에 관심있을 인사가 보인다거나 특정한 교과목을 전공한 인사가 영입된다고 하여 교육을 둘러싼 기본적인 담론이 나아지지 않는다. 교육은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떤 인성을 길러낼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떠들썩한 늘봄학교 정책도 따지고 보면 시간활용을 놓고 줄다리기가 있을 뿐 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즐겁고 안전한 학교를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학교만 다녀도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날 든든한 교육의 과정과 내용이 살아나야 한다. 대학은 전문적인 소양을 심화할 장소가 되어야 할 뿐, 사회적 위신을 위한 간판으로 역할은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대입제도는 더 이상 학생들과 부모들을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폭력이 사라지고 교권이 적절하게 보호되는 행복한 학교가 돌아와야 한다. 학생과 선생님이 모두 즐겁게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교육직은 충분하게 존중되어야 하며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총선에 나선 정당과 후보들은 관심 정책 담론에 교육을 반드시 반영하여 유권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4-03-13

추억의 맛, 시금장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여남은 살쯤이었을 것이다. 막내이모가 결혼하던 겨울이었다. 외갓집 마당에서 올린 혼례식은 끝나도 당일로 돌아가지 않고 며칠을 더 묵는 손님들이 많이 있었다. 자연 잔치분위기는 며칠 더 이어졌다. 나도 아예 방학 내내 있을 참이었다. 어린 손이어도 외할머니와 외숙모의 부엌일도 거들고 심부름을 곧잘 하면서 밥값을 했다. 나의 큰 소임 중의 하나는 상차림이었다. 열 개도 훨씬 넘는 작은 개다리소반을 마루에 쭉 나열해 두고는 독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상마다 수저를 놓고, 작은 종지 같은 반찬그릇에 일일이 반찬을 덜어 담았다.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추위가 문제였다. 밥상을 행주로 닦으면 금방 살얼음이 끼었고, 수저는 손가락에 쩍쩍 달라붙곤 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발도 몹시 시렸다. 발가락을 구부려 바닥에 닿는 면을 최소화해 종종걸음하며 반찬을 담았다. 문어숙회를 찍어 먹을 초고추장도 담고, 각색전 옆에 둘 깨소금간장도 덜어담았다. 그 중에 시금장이 있었다. 작은 단지에 담겨있는 시금장은 된장보다는 색깔이 거무튀튀하고 살짝 묽었다. 그 장을 한 숟가락씩 떠서 작은 종지에 덜어담았다.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비주얼이라 맛보고 싶지 않았다. 시금장은 소스가 아니라 그대로 반찬이었다.대학생이었을 때 큰집에서 시금장을 다시 봤다. 어릴 때 봤던 거라 눈에는 익숙하나 맛은 본 적이 없어 쭈뼛거리고 있었다. 온 식구들이 모두 맛난 반찬 같이 시금장을 먹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 부드러운 단맛과 꼬들꼬들 씹히는 무말랭이의 식감도 섞인 오묘한 풍미였다. 첫 맛임에도 진작 먹어 본 듯도 한 익숙한 맛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까지 처마 밑에 매달려 있던 깨주메기가 없어졌다. 고운 보리등겨 가루를 물로 반죽해 뭉쳐서 납작하게 눌러 가운데 구멍을 뚫어 도넛 모양으로 만든 깨주메기를 새끼나 나무 꼬챙이에 끼워 건조시켰다. 다 마르면 불에 구운 깨주메기는 처마 밑에 매달아 두었다가 시금장을 만든다고 했다. 장 만드는 과정은 못 봤지만 며칠 전까지 있던 바로 그것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시금장의 맛을 안 알게 된 나는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의 솜씨로 만든 시금장을 종종 먹었고, 어른들은 젊은이가 시금장을 잘 먹는다며 대견해 하셨다.외할머니, 외숙모, 큰어머니, 시어머니 돌아가신 후로는 시금장을 먹지 못했다. 언젠가 안강 장날 시금장을 판다길래 사 먹었더니 옛날의 그 맛이 아니었다. 또 경주의 한 식당에서 단골에게만 조금씩 준다는 시금장을 얻어먹어 봤는데 감질났다. 인터넷에서 시금장을 검색하면 팔기는 하나 맛에 실망할까 선뜻 구매할 용기가 안 섰다.며칠 전 큰형님과 통화할 일이 생겼다. 마침 자네 주려고 시금장 좀 담아 놨네 하시는 형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타다닥 손뼉을 쳤다. 목소리의 톤도 절로 높아졌다. 정말요? 직접 담으셨어요? 와 맛있겠네요. 과연 예전 먹었던 바로 그 맛의 시금장이었다. 남편은 살짝 거부감 드는 비주얼 때문에 근처에 놓지도 못하게 한다. 매 끼마다 간장종지에 한 숟가락 듬뿍 떠서 내 쪽에 감추듯 두고 아껴아껴 먹는다.

2024-03-13

생각을 멈추고 행복해지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최근 ‘내면소통’이란 책을 읽으면서 현대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현대인들의 뇌는 원시사회에서의 수렵 채집 등이 삶의 방식이었던 뇌와 다르지 않다. 이는 당시 원시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에 현대인들은 많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당신만 불안하고 화나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게 아니다. 당신만 아픈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문명사회에 사는 현대인들은 다 비슷한 고통을 받고 이를 힘들어 한다.원시시대에서 맹수를 만나면 근육의 힘이 필요하니 심박수를 올려야 하고 몸의 근육을 수축시켜야 한다. 평소에 소화기능에 쓰는 에너지도 근육으로 끌어오기 위해 소화기능을 떨어뜨려야 한다. 죽거나 살거나 하는 상황이라 면역기능도 저하된다. 이는 현대 의학이 말하는 전형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다. 이때는 이성적인 전전두피질 중심의 신경망 보단 편도체 중심의 신경망에 의존한다. 본능적이고 두렵고 공포스런 감정이 올라온다. 원시시대는 이 상황만 벗어나면 다시 평화스런 일상으로 회복이 가능했으나 현대인은 그렇지가 않다. 대학진학을 위한 수능 준비나 취업준비 회사 프로젝트 등등 하루 종일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럴 때 맹수를 만났을 때와 같은 반응이 일어난다. 현대인은 쉬고 있어도 사자에게 쫒기는 상태가 된다.그러니 항상 마음은 불안하고 두려우며 잠은 오지 않고 소화는 되지 않는다. 일을 끝내고 집에 있어도 내일 일을 걱정하고 한 달 뒤의 미래를 걱정을 한다.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제대로 쉬지 못하는 육체는 매일 아프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초원의 얼룩말이 되는 것이다. 얼룩말은 위장병이 없다. 사자한테 쫓길 때는 우리와 똑같은 스트레스 반응이 발생하나 사자의 위협에서 벗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풀을 뜯는다. 사자를 떠올리며 화내거나 분노하지도 또 언제 사자가 나타날까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여기에 집중할 뿐이다. 물론 사자가 나타나면 다시 도망을 가면 된다.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얼룩말이 되어 두뇌를 쉬어야 한다. 걱정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운동을 해도 음악을 들어도 그림을 그려도 된다.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좋았던 추억을 떠올려도 좋다. 이 시간은 나만을 위한 시간이니 지금 현재 여기 나를 위해 시간을 쓰자. 불안한 감정이 들면 그 불안한 감정을 종이에 쓰자. 불안한 감정을 내가 붙들고 있을 때는 편도체가 작동해서 스트레스 반응이 증가하지만 내가 종이에 그 감정을 적는 순간 전전두피질이 작동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게 되고 이는 나의 시야를 넓혀 준다.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지켜보는 내가 된다. 다른 사람도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고 괴롭고 몸이 아프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금 할 일을 하자. 남이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나에게 집중하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 내일의 나는 편안함에 이를 수 있다.

2024-03-13

곡우(穀雨)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여섯 번째가 곡우(穀雨)다. 태양의 황경이 3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4월 19일(음력 3월11일)이 곡우(穀雨)다. 봄철의 마지막 절기다.곡우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하며, 곡식을 뿌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싹과 새순이 돋아나고, 농사철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절기다. 봄비가 내려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뜻도 있다. 농촌에서는 못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된다. 속담으로는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에서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와 같이 농사 또는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곡우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날씨는 따뜻하고 습해져서 강우량은 증가한다. 쌀 성장과 성숙에 결정적이며,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하는 시기다. 농촌에서는 이 시기에 모내기한 논을 정비해 물을 가두고, 조와 같은 늦깎이 작물을 심는다.곡우에 관한 전설이 있다. 이 시기에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의 삶이 힘들어지자 비가 오기를 지극정성으로 빌었다. 정성에 감동한 젊은 용이 강에서 나와 하늘로 치솟아 구름을 모으고 비를 만들어 가뭄을 해소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용의 자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곡우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채로운 용 모양의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렸다. 이렇게 용 연날리기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농경 문화권에서는 자연이 인간의 삶에 깊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풍년을 위해 애쓰는 농민들의 수고로움을 엿볼 수 있다.곡우 무렵에는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북상해 충남 해안 격열비열도(格列飛列島)까지 올라온다. 이때 서해에서는 조기가 많이 잡힌다. 이 조기를 ‘곡우사리’라고 한다. 이 조기는 아직 살이 적지만, 연하고 맛있다. 이 때문에 서해는 물론, 남해의 어선들이 몰려든다.전남 영광에서는 한식사리 또는 입하사리 때보다 곡우사리 때 잡히는 조기에 알이 많이 들어 있어 맛이 좋다고 한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는 속담은 곡우가 지나서 잡힌 조기 즉, 곡우사리의 맛이 최고라는 말이다. 여기서 조기(助氣)란 이름이 ‘사람의 기(氣)를 북돋우는 효험이 있다’고 해서 유래됐다고 한다. 조기는 제사상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제수다.곡우는 봄철의 마지막 절기로, 농작물이 성장하기에 좋은 기후를 가져온다. 이러한 곡우의 의미와 전통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축제와 음식 등이 이어지고 있다. 차(茶) 중에는 곡우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차를 우전차라고 한다. 곡우 이후에 딴 차에 비해 품질이 더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곡우제를 지냈다. 곡우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태의 차이가 있지만, 한 해의 농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는 같다.곡우는 음력 3월이므로 음양오행으로 보면 진토(辰土)에 해당하며, 음에서 양으로 넘어오는 경계의 시점이기에 양의 시간을 관장하는 힘이 있다. 권력과 지배욕을 가지고 있으며,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허무맹랑한 비전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어 현실감이 부족하다. 또한 스케일이 지나치게 커 허세가 드러나기도 한다.동물로는 용(龍)이다. 서로 다른 존재를 아우르는 힘이 있어 비난을 수용하고, 불협화음도 잘 조정한다.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기도 한다. 위급할 때 오히려 차분하며, 과감한 결정을 잘 내린다. 용은 변덕이 심하기에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겉과는 다르게 내면에 어둠을 안고 살아가는 단점도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주역으로 보면 택천쾌(澤天夬)다. 상왈(象曰)에는 ‘하늘 위에 연못이 있는 것이 쾌(夬)괘이니 군자는 이것을 보고 은덕을 아래에 베풀며, 덕에 머물러 있는 것을 피한다’라고 했다. 하늘에 무거운 구름이 잔뜩 드리운 것과 같으니 군자는 이것을 보고 마치 단비가 대지를 적시듯 은택을 아래로 베푼다는 것이다. 군자는 덕에 머물러 있는 것을 피한다고 한다. 즉, 덕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쾌(夬)는 나누어 결단하는 것이라고 설문해자가 설명한다. 다시 말해 소인과 군자의 무리가 섞여 있다면 둘을 구별하여 어느 한 쪽을 과감히 도태시키는 것이다. 소인의 욕심을 경계하는 괘로 설명한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단초이기도 하다.변화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은 타인과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타인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서로를 나누고 차별하는 순간부터 고통의 싹은 이미 자라나기 때문이다.

2024-03-13

목리

배문경 수필가 장롱 한 짝을 들였다. 친정집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만 차지하던 장롱이다. 앞은 느티나무에 옆과 뒤는 오동나무로 된 전통 방식의 맞춤이다. 비록 유행이 지나고 낡았지만 합판에 무늬 필름을 덧씌운 가구보다 나을 것 같았다.장롱은 부모님과 오래도록 한 방에서 숨을 쉬었다. 연륜이 있는 물건은 내력을 품어서 그런지 곳곳에 부모님의 숨소리가 배어있는 듯하다. 두런두런 나누는 말이며 갸릉갸릉 가래소리와 쿨럭쿨럭 기침소리 그리고 얼굴에 새겨진 주름까지 느껴진다. 물걸레로 닦고 광택제로 문지르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삶의 무늬가 깨어난다.물결일까, 바람의 무늬일까, 아니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등고선일까. 이쪽에서는 산모롱이를 지나는 물처럼 유려하게 휘돌고 저쪽에서는 들판을 달리는 바람처럼 곧장 내달린다. 옹이에 부딪치면 소용돌이치다가 서로 엉킴도 없이 다시 흘러간다. 곡선과 직선의 흐름은 말 없는 나무가 온몸으로 그려낸 무늬다.땅속에 묻힌 씨앗 하나, 땅을 움켜쥐고 가만히 고개를 내민다. 축복이라도 하듯 따뜻한 햇살이 뺨을 어루만진다. 직립의 의지를 곧추세운 나무는 우듬지를 하늘로 밀어 올린다. 그토록 사납던 바람이 언제 부드러워졌는지 교태를 부리며 겨드랑이를 간질인다. 꽃이 만개하면 봄날은 절정이다. 벌 나비와의 밀애는 달콤하다. 그러나 봄날 뒤에는 또 다른 시련이 예고되어 있다.나무는 선택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직립을 무너뜨릴 듯 바람이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온 힘을 다해 버틴다.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지면 끝이다. 땅을 꽉 움켜잡는다. 우지끈, 견디지 못한 팔이 파열음을 내며 부러진다. 발성기관이라도 있으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나무는 속으로 제 울음을 가둔다.나무는 소리조차 몸으로 듣는다. 소리에도 나름의 무늬가 있다. 졸졸졸, 쏴아, 휘이잉, 매암매암, 나무는 소리에서 무늬를 읽고 차곡차곡 몸으로 기억해둔다. 우르릉 쾅,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지만 몸을 움츠리지는 않는다. 나무는 두려움도 둥글게 안으로 감아 무늬로 승화한다.몸이 가벼워지면 나무는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고요한 참선에 들어 봄 여름 가을을 다시 돌아본다. 해충이 몸을 갉아댈 때의 아픔, 팔이 부러진 후의 환상통, 온몸을 받아들여야 했던 희로애락, 나무는 한 생애를 통해 겪은 일들을 레코드판에 깊게 새긴다.나무는 제 결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베도록 온전하게 몸을 내놓는다. 결 따라 쓰다듬으면 부드럽게 눕고, 거스르면 가시를 세운다. 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굴리면 둥글게 굴러가지만 대팻날이 지나갈 때는 날을 덥석 물기도 한다.산다는 것은 그 흔적을 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울고 웃고 즐기고 참는 과정에서 들추면 아픈 옹이 몇 개쯤 가슴속에 뭉쳐두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알고 보면 사람의 결도 나무를 닮았다. 버림받고 거절당할 때, 오해로 억울할 때, 외로움과 열등감을 혼자 추스를 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여한과 부러움을 삭일 때, 때로는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도 치지만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절이 순환하면서 사람도 그러한 시련들이 무늬로 새겨진다.삶은 나름의 결을 짜는 일이다. 그것은 누에가 실을 뽑고 직조하는 일만큼 과정이 지난하다.타고난 성질마다 다르고, 겪은 파란에 따라 아랍카펫처럼 다양한 문양이 될 수도 있다. 살아온 날을 돌이킬 수 없듯 한 번 그어지면 바꿀 수 없는 나이테, 기왕이면 추녀에 걸린 풍경소리처럼 은은히 번지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람일까.나무는 동강나야 제 속의 무늬를 드러낸다. 나무의 종을 보려면 자르고, 횡을 보려면 켜야 한다. 종은 하늘을 향한 마음이요, 횡은 삶을 아우르는 역사다. 세상을 종횡으로 누비는 나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서정과 서사를 아울러 내면에 무늬로 켜켜이 새기고 있으리라.장롱을 곁에 두고 나는 오래도록 목리(木理)를 읽을 것이다.

2024-03-13

醫·政갈등 파국으로 가면 정권도 위험

심충택 논설위원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4주째에 접어들면서 의료대란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들을 위협하는 마지막 카드인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전공의가 병원에 복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면허 처분에 들어간다는 강경입장이다.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전공의와 의대 교수, 의대생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회는 정부가 합리적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으면 오는 18일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병원진료도 강의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들이 적지 않다. 전공의와 학생이 없는 상황에서 교수의 의미는 무엇이겠느냐”고 했다.의대생들의 집단 유급도 현실화할 것으로 보여, 그 가족들이 초조해하고 있다. 전국 의대생 대부분은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수업에 불참하고 있으며, 각 의과대학은 휴강이나 개강 연기를 해둔 상태다. 많은 대학에서는 수업 일수의 4분의1 혹은 3분의1을 초과해 결석하면 F학점을 준다. F학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유급 처리된다. 유급이 되면 등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지난해 기준 의학 계열의 등록금은 평균 979만200원이다.의료 공백도 위기단계다.정부는 중증·응급환자 중심의 비상진료체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하지만, 의료현장은 그렇지 않다. 코로나 대유행 때처럼 응급실을 찾아온 중환자들이 응급처치만 받고 후속치료를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수소문해야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대구시내 대학병원 전문의들은 의대증원 발표 이후 4주째 병원에서 쪽잠을 자면서 의료공백에 대응하고 있지만 지칠대로 지쳐있다. 대부분 교수들은 낮에 외래진료를 보고 야간당직까지 연속근무를 해야 해 이틀에 한번 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대형병원들은 병상 가동률일 뚝 떨어지면서 경영상황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최근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철회한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교육부에 경북대 의대 정원을 현재 110명에서 2배가 넘는 250명으로 늘려달라고 신청했다. 경북대 의대 학장단은 “총장이 의대의 제안을 존중하지 않고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입학정원 증원을 제시했다”며 일괄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의대 대폭 증원을 주장해온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로 뽑혔다.정부가 절대 양보하지 못한다는 ‘2천명 증원’ 근거가 정치적일 수 있다는 의심이 이러한 사례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정부가 당연히 환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의사나 의대학생, 그 가족들에 대한 보호책임도 있다.경북대 경우에서 보듯, 비합리적인 근거에서 나온 증원 숫자에 매몰돼 의사들이나 의대생을 궁지로 몰아넣는 행위는 지극히 위험하며, 반드시 책임도 따른다. 정부는 2천명이라는 증원숫자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의정(醫·政) 양측 모두 출구를 찾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2024-03-12

2024년 대구국제섬유박람회

우정구 논설위원 문익점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목화씨가 면직물로 생산됐던 곳은 경북 의성이다. 문익점의 처가인 의성에서 재배되던 목화는 문익점의 손자 문래가 그의 이름을 딴 물레를 만들어 실을 뽑았다고 전한다.이런 유래와 연관지어 보면 대구에서 수공업 위주의 섬유공업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구는 내륙도시로 노동력이 풍부하고 용수와 천연섬유 조달이 용이해 우리나라 섬유업의 태동지로 꼽힌다.일제 강점기 수공업 위주의 섬유공업이 대구에서 시작됐고 달성소재 동양염직소는 일제가 세운 조선방직보다 2년 앞서 설립됐다. 이곳은 한국 섬유공업이 대구에서 최초 시작한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해방직후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섬유산업에서 경북의 비중이 24%였다. 경북도내에 142개의 섬유업체가 있고 그 중 67%인 95개 업체가 대구에 있었다 한다.대구 섬유업이 비약적 발전을 한 것은 1960년 들어서다. 박정희 정권의 수출전략산업의 하나로 섬유업이 포함되면서부터다. 1967년 1억 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한 후 1987년에는 단일업종으로서는 최초로 섬유가 100억 달러를 달성한다. 이탈리아, 서독과 함께 세계 섬유수출 3대 대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대구경북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한 섬유산업의 본고장이라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다.13일부터 15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대구국제섬유박람회(PID)가 개최된다. 국내 최대 섬유비즈니스 박람회로 국내외 322개 기업이 참여한다. 첨단업종에 밀려 지역 주력산업에서 한발 물러난 감은 있으나 섬유만큼 영원한 산업도 없다. 이번 박람회가 대구섬유산업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12

미래의 나를 안다면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미래의 나를 안다면 삶은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어떤 인생이든 삶의 흐름을 보면 미래는 있다. 하늘에서 내려진 운명적인 미래가 아니라 내가 그리고 만들어 간다면 내 미래는 달라진다. 삶에 있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현재의 삶은 어떻게 될까, 꿈과 희망이 현재를 이끌어 간다.미래의 나를 아는 방법은 어떻게 해야할까. 첫째, 꿈과 목표를 명확하게 세운다. 꿈과 목표가 구체화 되면 미래를 아는 지름길이다. 둘째, 덜 중요한 목표를 제거한다. 사람은 장애물을 만나 목표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눈 앞에 보이는 덜 중요한 목표를 추구하다가 진정한 목표에서 멀어진다. 셋째, 필요에서 열망으로, 열망에서 앎으로 나아간다. 열망이 필요보다 앞서고 앎은 열망보다 높은 수준이다. 앎은 행동하는 것이고 알면서 행동하지 않은 것은 아는 게 아니다. 넷째, 미래의 나의 일정을 관리한다.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 다섯째, 완벽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완수한다. 실패와 성공을 투자할수록 미래의 나는 성장한다.필자는 시골에서 태어나 초딩 2학년 시절 ‘송아지의 꿈’을 그렸다. 1년간 용돈을 모아 토끼 두 쌍을 샀고 새끼를 낳아 키워 강아지를 샀다. 강아지를 키우다 사고로 송아지를 사려던 꿈은 멈추었지만 사회 나와서 3년만에 그 꿈을 이루었고 소원하던 우리 집 일 소가 생겼다. 그 후 낳은 송아지는 동생 대학 등록금이 되고 동생은 SK그룹 임원이 되어 지난 날을 얘기하면 고마워 한다. 이것은 초딩 시절 미래의 꿈을 잃지 않은 결과이고 미래와 단절시키지 않은 성과가 아닐까, 미래의 나와 단절되면 현재의 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지만 시급한 문제와 사소한 목표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먼 미래의 나의 모습은 생각하지 못한다. 미래를 깊이 생각할수록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능력은 향상 된다.‘미래의 나’라는 렌즈를 통해 삶을 바라보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그려나갈 수 있다. 미래의 내 모습이 구체화 될수록 미래의 나와 더 깊이 연결될수록 선택과 도전의 힘은 커진다. 목표에 대한 도전 크기만큼 결과는 얻어진다. 사람이 꿈꾸는 사회적 위치나 미래의 모습은 사람이 가진 큰 자산이다.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스토리는 미래를 위협한다. 지나온 시간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한 현재의 시간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일상 속의 삶의 성과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낮다면 당신의 성과 수준은 낮아지고, 높은 기대를 하면 그 수준으로 올라간다. 이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 한다. 내 주변에 긍정적인 모티브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사람은 관계 속에 살아가기에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미래의 나를 안다면 삶의 희망을 세우고 현재 시간에 동력을 걸어 주도적인 삶으로 영위해 나갈 것이다. 꿈과 실행이 미래의 나가 된다.

2024-03-12

봄의 이끌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약간 움츠렸던 봄이 다시 기지개를 켜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생동의 봄날이 성큼 다가온 듯 양지 바른 언덕엔 새파란 풀잎들이 바람에 하느작거리고, 남도에선 홍매, 청매의 꽃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히는 듯하다. 산수유 꽃망울이 샛노랗게 피어나며 오는 봄을 반기고, 물오른 가지마다 봉긋한 움과 싹이 도드라져 새봄의 향연에 망울을 터트릴 태세다. 무덤덤하던 무채색의 대지에 노랑이며 빨강, 초록색의 봄빛이 조금씩 아른거리며 이른바 계절의 붓질이 시작되고 있다.산과 들의 채색으로 오는 봄과 함께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됐다.이 맘 때가 되면 빳빳한 새 책을 받아 들고 책장을 넘기면서 책 속에서 배어나는 잉크 가득한 냄새를 맡으며 마냥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새롭게 배울 책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과 한 학년 더 올라간다는 희열감(?)에 사로잡혀 맡는 특유의 책냄새는 꽃내음보다 향기롭고 진했던 것 같다. 한 살 더 먹으며 새로운 책으로 공부하고 형이나 누님들처럼 어서 빨리 자라 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동화 같은 초등시절이었다고나 할까?“입김으로 호호호/유리창을 흐려놓고/썼다가는 지우고/또 써 보는 글자들/봄 꽃 나비//봄아 봄아 오너라/어서 오너라/봄이 되면 나는 나는/새로 사학년/내 마음엔 벌써/봄이 와 있다//봄을 찾아 산으로 들로 나가자/노랑 봄을 찾아서 산으로 가자/파랑 봄을 찾아서 들로 나가자” -양해광의 수필 중 작자 미상의 동시 ‘봄 꽃 나비’ 전문벌써 50년도 더 지난 듯하지만, 당시 초등학교 3학년 말 무렵이었던가?국어시간 교과서의 맨 마지막 단원에 실린 동시(童詩)가 요즘 같은 봄날이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됨은 어인 일일까?큰 고갯길를 넘나들며 10여리의 등, 하굣길에 뻔질나게 외우고 외치며 즐겨 읊었던지 요즘도 술술 나올 정도다. 외운 것에 지나지 않고 큰 네 모 칸이 그려진 공책에 연필로 삐뚤삐뚤 즐겨 쓰곤 하면서 밤낮없이 ‘봄 꽃 나비’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그러고보니 그 당시엔 필자도 모르게 어린 마음에 무엇인가에 이끌려 외우고 종이에 쓰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었나 보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국어책에 처음으로 나오는 시조 ‘오 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를 비롯 교과서에 실린 시조를 십리 길 학교에 오가는 길에 거의 다 외우고는 또래들과 시조 외우기를 재미삼아 했는가 하면, 다보탑 그림이 초록색 판화로 찍혀진 듯한 ‘오늘의 일기’ 일기장을 학교 내 문방구에서 사서 거의 매일 일기를 쓰거나 그날 외운 시조를 적을 정도였으니, 과연 딱히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과 즐김이 그때부터 싹튼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그러한 습성은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 강산이 몇 번씩 바뀐 현재까지도 줄곧 이어지는 듯하니 막연하게 좋아하던 것에서 알게 모르게 마음의 움과 싹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스프링(Spring)처럼 약동하는 봄날, 자신의 즐길 거리로 희망찬 새봄을 맞이하자.

2024-03-12

대게 씨 마른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게 철이다. 경북 동해안의 울진과 영덕군은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다양한 체험행사가 어우러진 대게 축제가 열린다.대게는 등껍질 크기가 약 13~15cm 정도다. 국내에서 잡히는 게 가운데 가장 크다. 맛도 뛰어나다. 수심 30m 이상, 최대 수심 1천800m까지 심해 바닥에 서식하며 한국과 일본·캄차카 반도 등지에만 분포한다.대게는 우리나라의 영덕에서 울진 앞바다에 이르는 동해안 벨트에서 주로 잡힌다. 특히 울진 후포면 근해의 거대한 수중 암초인 ‘왕돌초’가 대표적인 서식처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생태계의 보고다. 우리나라의 대게 연간 어획량 2천t 가운데 80% 이상이 경북 동해안에서 잡힌다.대게는 꽃게와 달리 수컷만 먹을 수 있다. 어자원 보호를 위해 암컷 대게는 연중 포획이 금지돼 있다. 암컷 대게 한 마리는 5만~7만 개의 알을 품고 있다. 대게는 성장하는데 7년 이상 걸린다. 이 때문에 종 보호 차원에서 암컷 대게 포획을 법으로 금지했다. 수컷 대게도 9cm 미만 어린 것은 포획이 연중 금지돼 있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금어기로 정해 보호한다. 동해안 대게가 수온 상승과 불법 포획 및 남획으로 어획량이 해마다 줄고 있다. 포획이 금지된 암컷 대게와 어린 대게를 포획·소지·유통·가공·보관 또는 판매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과해진다.얼마 전 울진과 영덕 앞바다에서 암컷 대게와 어린 대게를 불법 포획한 일당이 해경에 적발됐다. 해경이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하지만 불법 포획은 근절되지 않는다. 잠시 맛을 즐기고 돈에 눈멀어 씨를 말려서야 되겠나. 명태가 사라졌고 오징어도 잡히지 않는다. 대게 마저 씨가 마를까 걱정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11

영화의 정치화, 무엇이 문제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인들은 ‘정치 영화’를 이용해서 ‘영화 정치’를 한다. 대통령이나 정치적 이슈를 다룬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여야는 ‘영화의 정치화’를 통해서 색깔논쟁을 일으키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선거용 정치 영화’를 만들어서 돈벌이하려는 제작사와 그것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일치되기 때문이다.정치인들은 영화를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고 지지자를 결집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민주화운동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10·26), 택시운전사(5·18), 1987(6·10), 서울의 봄(12·12) 등이 진보진영의 메시지 전파에 이용되었다면, 건국·산업화·안보를 다룬 국제시장(산업화), 연평해전(남북충돌), 인천상륙작전(6·25), 건국전쟁(이승만) 등은 보수진영에 이용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스크린 정치’라는 영화의 ‘정치마케팅’이다.그러나 영화의 정치화는 부작용이 크다. 영화 제작사나 감독이 정치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고, 정치권은 그 영화를 편향적,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정치적 선전·선동의 도구로 삼기 때문이다. 정치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영화가 다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평가는 전혀 다르다.영화 ‘건국전쟁’의 경우, 보수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功)’에, 그리고 진보는 그의 ‘과(過)’에 초점을 둔다. 서로 다른 관점과 잣대로 정치적 여론몰이에 이용하는 것이다.‘영화의 진영정치화’는 국론분열과 적대정치를 심화시킨다. 언론들이 정치 영화에 편을 갈라 싸우면 갈등은 격화되고, 감독의 제작 의도는 왜곡·훼손될 수 있다. 특히 선거를 겨냥해서 영화인·정치인·언론인들이 야합하여 영화를 정치화할 경우 영화예술의 순수성은 훼손되고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전체주의체제에서 영화는 이념과 정권의 홍보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의 성찰과 각성이 필요하다. 물론 영화는 매체의 특성상 정치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인이 정치인의 노예로 전락하면 영상예술의 발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영화의 상업성을 인정하고 영화인의 가치관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제작사나 감독은 영화발전을 위해 양심과 책임을 갖고 정치적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정치인들의 영화 정치는 더 큰 문제다. 정치를 잘해서 민심을 얻으려하지 않고 영화에 기대에 표심을 사려고 잔 꽤만 부리는 행태는 한심하다.영화 정치는 내편 결집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비판자나 중도층을 끌어들이기는 어렵다. 영화 한편 보고 표심을 바꿀 유권자가 어디 있겠는가. 영화를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면 영화예술도 죽고 정치발전도 없다.삶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의 도구화, 즉 영화로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정치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영화 같은 정치’가 아니라 정도정치(正道政治)를 통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민에게 ‘영화 같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2024-03-11

하루에 한 번은

강길수 수필가 3월…. 내일이면 그 중순이다. 절기로 따지면 입춘이 한 달 전에 지났고, 우수 경칩도 지났으니 분명 봄이다. 한데, 나는 절기보다는 달별로 계절을 구분하는 습관이 들어 “3월!”이라고 말해야 봄이 왔다는 기분이 든다.양지바른 산 자드락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산골 소년은 마른 풀잎 사이에서 솟아오르던 3월 새싹을 만나러 나섰다. 겨우내 땅속에 단잠 자던 싹눈은 3월이면 따사한 햇빛 노크에 눈을 뜨고야 만다. 아지랑이 아롱아롱 눈시울 간질이면 못 이긴 척 기지개 켜고 새싹으로 올라온다. 아지랑이 오름 길 따라 눈길은 절로 위로 향한다. 잎눈 품은 나뭇가지에 봄 새 한 쌍이 노래를 부른다. 노랫가락은 아지랑이 등 타고 파란 봄 하늘에 하늘하늘 올랐다.3월은 내게 먼저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달이다. 사람들은 가을하늘을 ‘천고마비’라 칭송하지만, 눈 녹은 물이 졸졸 흐르는 도랑 가, 버들강아지 가지 위로 펼쳐진 햇빛 찬란한 3월의 하늘과 비교할 수는 없다. 따사한 해, 몽글몽글 피는 아지랑이, 그리고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들, 뭇 가지에 눈뜨고 피어나는 새잎들…. 이 모든 것을 품은 존재가 바로 3월 하늘이기 때문이다.지난날, 한 문우는 이메일 끝에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바라보자!”라는 자기 경구를 써서 보내왔었다. 나는 답신에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보자!”라고 강조 보조사를 덧붙여 보내곤 했었다. 국어사전엔 ‘대조’나 ‘화제’ 또는, ‘강조’의 보조사로 ‘~은’을 풀었으나, 내 느낌은 ‘해야 하는’ 강제성이 강하다. 하여, 그 무렵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늘을 바라보거나 응시하게 되었었다.사람은 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일까. 하늘은 도대체 인간에게 어떤 존재이며 의미일까. 생명 사는 곳을 둘러보면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는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 풀, 동물, 나아가 모래, 돌, 평지, 산, 바다 같은 무생물까지 하늘을 바라보며 그 아래에 살거나 있다. 어쩌면 모든 존재의 본향은 하늘이 아닐까. 한반도의 반대편 남반구에서 보아도 하늘은 같다.하늘이 무엇이기에 많은 민족의 탄생신화나 설화의 주제가 되어있을까.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하늘이 어떤 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깊은 믿음을 갖게 한다. 사람이 하늘을 두고 이야기할 때는, 물리적 공간의 하늘보다는 뜻을 담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종교 사상을 빌리지 않더라도, 하늘은 지구촌 공통의 어떤 절대성에 대한 표상이 틀림없으리라. 이를테면 우리 단군신화에서 보듯, 제천(祭天)이나 천명(天命)사상 같은 것 말이다.하면, 인간은 하늘 앞에서 어떤 존재여야 할까. 하늘 무서운 줄 아는 인간, 민심이 곧 천심임도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마음이다. 안 그러면 자기 능력도, 업적도, 명예도 이카로스의 날개가 되어버릴 테니까. 한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공익에 눈감고, 사익에 눈뜬 꾼들이 득실거린다. 하늘 앞에 서면, 제 날개가 녹을 것도 모르는 체….슬프다. 모두가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으면 참 좋으련만….

2024-03-11

‘탄소줄이기 1110’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11월 ‘대구광역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이하 기본계획)’의 대시민 설명회를 통해 도출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한 기본계획의 수립이 이달 중에 완료될 예정이다. 지난 설명회에서 전문가와 시민으로부터 도출된 다양한 의견 중에서 핵심 사항은 탄소중립에 대한 ‘시민의 인식’을 높이고, ‘시민이 주도’하는 사업을 발굴하여 기본계획에 반영하고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본계획에는 ‘탄소중립 생활문화 확산(Green Life Style)’을 포함한 ‘시민주도 8Green 전략’을 제시했다.‘탄소중립 생활문화 확산’ 전략에는 ‘온·오프라인 세대별 탄소중립 페스티벌’과 같은 ‘시민공감 문화활동’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탄소중립포인트제’나 ‘탄소줄이기 1110’과 같은 ‘시민실천’ 사업이 포함되었고, ‘비산업부문 온실가스 진단 컨설팅’과 같은 ‘탄소중립 컨설팅’ 사업이 포함되었다. 이들 사업의 투입비용대비 온실가스 감축효과는 상당할 것이나 대부분 정성적인 사업이라 정확한 감축량을 산정하기 어렵다. 다만, ‘자동차 탄소중립포인트제 운영’ 사업만 유일하게 정량적 사업이라 감축량을 산정 가능하며, 2033년까지 연간 약 20만톤 정도이다.이 양은 2018년 기준 대구시 연간 총배출량 1천234만톤의 1.6%에 불과하나 나머지 정성적인 사업까지 포함하면 감축비율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생활 속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캠페인의 국내와 국외 우수사례들을 살펴보면 지역사회 참여와 혁신을 기반으로 다양한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마을’과 같이 일정 단위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온실가스 인벤토리(배출량 목록)’를 개발하여 온실가스 발생량과 감축량을 정확히 측정, 관리하고 이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다양한 실천사업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있다.최근 대구시가 주최한 매우 스마트한 시민실천 캠페인 사례가 있었는데, 탄소중립 활동을 실천하고 스마트폰 앱으로 인증사진을 올리는 형태의 ‘나의 탄중일기’ 챌린지 캠페인이 그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거북선을 모티브로 하면서 대구시 대표 캐릭터 ‘도달쑤(수달)’를 등장시킨 것이 매우 재미있다. 9월 한 달간 에너지, 소비, 수송, 자원순환, 흡수원 등 5개 부문 총 43개 항목의 실천 행동 각각에 난이도에 따라 점수(10~30점)를 부여하고 누적 점수가 높은 순으로 입상자를 선정하였다.한달간 286명의 대구시민이 참여하여 총 1만7천752회 탄소저감 생활실천 인증을 하였고, 탄소저감량은 소나무 약 171그루의 흡수량인 1찬679㎏로 산정되었다. 자원순환부문이 가장 높은 참여횟수를 보였고, 20대와 남성의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에 대구시는 ‘시민 1사람이 탄소 1톤을 줄이는 10가지 행동’을 1에서 10까지의 첫음을 달아 ‘도달쑤’가 재밌게 노래하며 율동하는 ‘탄소줄이기 1110’ 동영상을 제작하여 공개할 예정이다. ‘시민의 인식’이 얼마나 높아질지 상당히 궁금하다.

2024-03-11

이상화 시, 정전화(正典化)가 시급하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어떤 언어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낡아지다가 언젠가는 사라진다. 문명 대상물이 시대 변화에 따라 소멸하면 그 이름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함께 사라진다. 오래된 무덤 속에서 발굴된 유물이 고고학의 대상이 되듯이, 문명의 변두리 사람들이 사용하던 사물의 이름인 방언도 언어고고학적 유물이다. 소설가들이나 시인들은 오랜 언어 시간의 그물코를 짜는 언어 문명의 필경사이다. 문학 작품은 문명의 변천사, 그 속에 알알이 맺힌 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의 파문을 정성으로 직조한 한 필의 천이라고 할 수 있다.지난 3월 8일, 대구 3·8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이 있었다. 대구 3·8독립만세사건의 주역이기도 했던 이상화 시인은 지금까지 71편의 시작품을 남겼다. 국어맞춤법통일안이 정착되지 않았던 1920년대에 주로 작품을 발표했던 이상화의 시 작품에는 다양한 대구방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대구방언을 활용한 이상화의 시들은 엄청난 왜곡의 세월을 거쳤다. 방언에 이해도가 낮은 비평가나 출판업자들에 의해서였다. 이상화의 대표작인‘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깝치지 마라’가 ‘까불지 마라’로 해독된 적도 있다. 심지어 국정국어교과서에서도 그런 오류가 수정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비를 다고’라는 작품의 ‘이장’은 ‘농기구, 연장’를 뜻하는 대구 방언이다.‘병적 계절’등에 보이는 ‘짬’은 ‘어떠한 일이 일어난 영문이나 사건의 앞과 뒤’(이상규, 2001)라는 의미다. 그런데 정한모·김용직의 ‘한국현대시요람’에서는 ‘짬’에 대한 대구방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짬’을 전혀 의미가 닿지 않은 ‘셈’으로 교열하기도 하였다. 이상화의‘가장 비통한 기욕’에 보이는 ‘햇채’는 ‘빗물이나 집안에서 버린 물이 흘러가도록 만든 시설’로 ‘수채’의 경상도 방언인데. 이를 ‘바다풀’ 곧 ‘해채(海菜)’로 해석한 한심한 오류도 있다. 사라져 없어질 위기의 고어인 지역 방언을 시 속에 이처럼 살포시 감추어 둔 항일시인의 작품을 후손들은 무지하고도 무관심하게 훼손하면서 차세대에게 가르쳐왔다.1950년 정음사에서 출간한 ‘이상화시집’에서 범했던 오류는 표준어 관점에서 방언을 제대로 해석치 못한 채로 범해졌고, 그 이후 출간한 시집에도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80년대까지 이어져 시집이 출간되고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것이다. 80년대, 이러한 이상화의 시 71편을 수합하여 필자가 이를 전면 교열하여‘정본 이상화시전집’을 출간했다. 아직까지도 이상화의 시 작품이 몇 편이지, 시에 어떤 부분이 오류로 전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 대구를 대표하는 항일 시인인 이상화의 온전한 문학작품정전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은 물론 없다. 이상화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또 기념사업회에서 대구시의 지원으로 현창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이상화 문학의 정전화 작업에는 독립운동단체에서나 지방정부에서조차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이상화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구 출신의 소설가 현진건의 작품에도. ‘국해(시궁창의 흙), 데불다, 뒤통시, 몰, 진동한동, 불버하다, 삽작, 엉설궂다, 찰지다, 거진’과 같은 방언형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1936년 무렵동아일보에 연재한 현진건의 ‘무영탑’에는 ‘별판’, ‘찐답잔은’, ‘노박이’, ‘진둥한둥’, ‘감때사나운’과 같은 방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곳곳에 박혀있다.식민지의 작가들은 왜 구태여 방언이라는 천으로 시와 소설을 직조했을까? 공식적인 언어가 아닌 방언을 사용했던 이유는 바로 방언의 생명성의 문제였을 것이다. 방언은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언어이기 때문에 시적 주인공의 현존성, 소설 속 인물의 토착성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상화의 경우, 시인의 고향 방언이라는 비장의 언어를 통해 ‘낯설게 하기’라는 실험적 자유시로 우리 한국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적 언어를 통해 드러내려는 전략이 아니었을까? 서울 말씨와 다른 방언을 시적 매개로 삼았던 이유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면서 동시에 시간적으로 다가올 미래의 고향에 다가가려는 심리적 기제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이상화문학 현창사업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바로 이상화문학을 총량화하고 반듯하게 정전화하는 사업이어야 할 것이다.그것이야말로 후손된 도리요 책무이다.

2024-03-11

동방정교와 로마 가톨릭-콘스탄티노플 황제와 로마교황

꾸준하게 아래로부터 전파를 탄 가톨릭의 생명력은 줄어드는 법이 없었다. ‘보편적인’의 그리스 말 ‘카톨리케’ 어원인 가톨릭이 로마 종교로 합류했고, 박해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났다. 순교로써 박해에 대항하는 이들에게 집권 세력은 공포심을 느꼈다.종교는 백성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는 절대적인 요소였다.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종교끼리 느닷없이 동화되는 법은 없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서기 312년에 로마 북부 막센티우스에게 승리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드넓은 제국을 한곳으로 모을 구심점이 필요했던 그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뒤이어 서기 322년 국가의 보호를 받는 공식 종교로 인정되었다.325년에 로마 상층부로 스며든 가톨릭이 392년에 일취월장 로마의 국교로 등극한다. 이로써 로마는 모든 종족과 동족이 하나의 종교 아래 흡수되는 정신적 통일의 기초를 마련했다. 330년 그는 수도를 발칸반도의 동쪽 끝자락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 했다.이때부터 황제가 곧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콘스탄티노플과 로마 교회는 갈등의 링에서 본격적으로 맞붙는다. 기독교 정통성의 자부심이 충만한 로마 교회와 황제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콘스탄티노플 간의 대결 구도는 필연이었다. 콘스탄티노플로서 로마 교구는 안티오키아교구, 예루살렘교구, 알렉산드리아교구 등 하나의 교구에 지나지 않았다. 제정일치 시대 황제가 수도를 이전함으로써 교권도 함께 옮겨왔다는 뜻이다.수도가 옮겨간 뒤의 이탈리아반도는 폐허에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476년 게르만 장수 오도아케르가 서쪽 로마를 점령하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서로마 교권이 차츰 높아지는 선순환을 낳았다. 굳이 콘스탄티노플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기독교가 서유럽으로 전파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경제와 교권마저 동방으로 옮겨간 뒤의 이탈리아 사람들 경쟁심리가 발동하면서 새로운 지도자를 찾게 되고, 당시 그리스도교 수장 로마 주교를 옹립하여 그에게 영적, 세속적 권위까지 안겨버린다. 막바지에 몰린 도시에 향수를 불러내 증오심을 자극했던 것이다.그러나 518년, 유스티아누스 1세가 황제에 오르면서 이탈리아 로마를 되찾는다. 그는 ‘신이 하나, 교회도 제국도 하나, 황제도 하나’란 구호를 내걸고 교회 분열을 봉합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 또한 임시봉합에 그쳤고, 그가 죽자 예수가 그랬듯 3일 만에 갈등이 부활하면서, 때마침 교리논쟁까지 불붙기 시작하였다. 즉, 예수를 신으로 보느냐, 인간으로 보느냐를 두고 죽음도 불사했다.교리논쟁은 조선시대 파벌적 논쟁 이기론(理氣論)과 비슷하다. 이기론, 즉 이(理 스스로)와 기(氣 에너지)의 원리를 통한 세상 만물의 존재와 움직임에 대한 이론이다. 논쟁이 확산되자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으로 정립되면서 유학에 발전을 가져왔다고들 하는데, 두 이론의 차이를 그리 힘들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말을 탄 사람이 길을 가고 있다. 이때 사람이 간다고 생각하면 주리론, 말이 간다고 생각하면 주기론이다. 간단명료하지 않는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중국 주자가례를 두고 예송논쟁을 벌여 얼마나 많은 정적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동·서로마 분열의 결정적인 원인이 또 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4차 십자군이 교회 십자가를 내려 장검으로 사용했다.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주민을 살육하고, 약탈과 도시를 불사르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서로마 교황의 부추김이 결정적이었다. 신을 빙자한 경제적, 정치적으로 이용된 침탈이 분명해졌다. 역사적으로 동방의 정교와 로마 가톨릭 두 종교 간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동방정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274년~337년)가 비잔티움으로 로마의 수도를 옮기면서 시작된 동유럽 중심이 되는 신앙이다. 훗날 발칸반도 사람에겐 신앙을 넘어선 민족의 자존심이자 이민족 지배에 항거하는 절대적인 에너지원이다. 부활, 즉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뜻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상징이다. 부활절을 ‘동방의 날’, 즉 ‘이스트 데이(East Day)’라 부르며 표준, 원래 모습 그대로의 교회 ‘오서독스 처치(Orthodox Church)’라고 한다.로마 가톨릭에 있어서 교회란 구원의 장소다. 성직자는 구원을 실현하는 막강하고도 이상적인 영적 영역을 부여받았다. 교인의 공동체 교회와 그리스도 교리에 의해 성직자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신의 영역과 인간 세계는 엄연히 구별되고, 교회와 성당이 화려한 까닭은 신앙의 원천이기 때문이다.이와는 반대로 수평적 구조의 동방정교 성직자 개인적인 권위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신 앞에서 모두 동등한 지위라는 뜻이다. 생활 속 깊숙이 뿌리박힌 신앙의 실천이 중요했다. 하느님과 인간 세계의 분리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 신이 함께한다는 종교적 개념 때문에 정교일치(政敎一致)는 당연했다. 불교 선종(禪宗)의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살짝 통하는 맛도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3-11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

김진국 고문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7일 별세했다. 오늘 발인한다. 3김 내외가 모두 떠났다. 정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손 여사의 내조(內助)를 모범 사례로 꼽는다.손 여사는 YS 재임 기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의 다른 영부인들과 달리 고위직 부인들 모임을 모두 없애버렸다. 옷의 상표도 모두 떼고 입었다. 대신 청와대 수행원과 운전기사, 여직원들을 눈에 띄지 않게 챙겼다.손 여사는 1951년 결혼 이후 평생 YS의 정치 인생을 함께했다. 필요할 때는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1983년 YS가 목숨을 걸고 23일간 단식할 때 외신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상황을 전파한 사람이 손 여사다. 90년 3당 합당 때는 최형우 전 의원 등이 합류를 거부하자 설득한 사람도 손 여사다. 그런 위기를 제외하면 상도동 집에서 매일 100명 가까운 비서와 방문객에게 밥과 시래깃국을 대접하며 조용히 내조했다.‘김영삼 회고록’에는 93년 2월 24일, 청와대로 들어가기 하루 전 가족회의 이야기가 나온다. YS는 “가장 큰 걱정이 친·인척”이라며 “이상한 사람들이 속을 다 내어줄 듯이 접근해서 너희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한다. 절대 이권이나 인사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개석 대만 총통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 총통이 대만으로 쫓겨났을 때 며느리가 밀수와 사치를 일삼자 보석상자 하나를 주면서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했다. 며느리가 집에 가서 열어보니, 그 안에 권총이 들어 있었다. 며느리는 자살했다.그런 YS도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아들 현철씨와 관련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임기 중 아들을 구속했다. 그렇지만 손 여사는 한 번도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다.‘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은 미국 시민이 좋아하는 영부인도 내조형에서 전문가형으로 바뀌어왔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건 사적 욕망을 드러내는 영부인을 좋아하는 시민은 없다. 민심을 거스르는 영부인은 성공할 수 없다.이 책이 최악의 영부인으로 꼽은 매리 링컨(16대)은 장갑을 사 모으는데 몰두했다. ‘대통령 부인’(Mrs. President)이라는 서명으로 명령하기도 했다. 줄리아 그랜트(18대)는 사치스러운 오락과 환대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음성적인 자금을 모았고, 영부인의 권력을 이용해 부패 방지조사를 막았다. 제인 피어스(14대)는 사고로 죽은 아들과 대화한다며 백악관에서 강신(降神)회를 열기도 했다. 낸시 레이건은 백악관의 정치적 운영을 공개적으로 간섭해 영부인의 활동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았다.우리는 아직 영부인이 설치면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씨로부터 13억 원을 받아 수사받자 “자기 잘못을 아내한테 떠넘긴 못난 남편이 되어 있었다”고 자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해외여행 버킷리스트, 라오스에서 대통령을 앞질러 행진한 것 등으로 비난받았다.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민주당은 특검을 추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양평을 방문해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공격했다. 명품백을 받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가 총선 최대 악재가 될뻔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사과 대신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해 파문이 일었다. 그대로 한 위원장이 물러났으면 어떻게 됐을까.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 여사는 경기지사 시절부터 ‘혜경궁김씨’ 논란이 있었다. 경기도 법인카드로 당직자에게 음식을 대접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공무원을 개인비서처럼 부리고, 법인카드로 생활비를 썼다는 폭로도 있었다. 당에 ‘배우자실’이란 조직을 만들고, 부실장을 단수 공천했다 번복하는 소동도 있었다.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았다. 선출된 배우자를 돕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남편의 공적 활동을 간섭하거나, 자기가 선출됐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모범을 보여야 다른 부인의 일탈도 막을 수 있다.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10

위성 정당, 우당(友黨), 제3 신당의 정치 지형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의 굳어져 버린 양극정치 하에서 제3당의 진출은 무척 어렵다. 22대 총선을 몇 달 앞둔 시점부터 위성정당과 제3 신당이 창당되었다. 이번 선거 전야에도 과거처럼 여러 개의 신당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왔다. 선거 후 소멸될 정당이 많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층 흡수를 위한 급조된 신당이 이번 선거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위성 정당을 제외한 제3당이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여야가 시간에 쫓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여 위성 정당을 재탄생시킨 결과이다. 한편 여야의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새로운 3신당을 창당하였다. 이렇다보니 원래의 녹색정의당, 진보당 등 참된 의미의 제3세력의 정치 지형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선거를 한 달 앞 둔 시점에서 이들 위성정당이나 제3정당의 정치 지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지난 총선 후 여야 모두 그렇게 비판했던 위성 정당이 또다시 출현하였다. 집권여당의 ‘국민의미래’, 민주당의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급조된 정당이 창당된 것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던 여당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먼저 창당하였다. 민주당은 준연동제 채택에 대한 비판 때문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연합정당을 창당하였다. 결국 위성 정당은 준연동제라는 괴상한 선거제가 야합한 사생아이다. 모두 여야 거대 모당의 일란성 쌍생아이다. 이는 지역 선거 결과와 연동하여 비례대표를 분배한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질마저 훼손시킨다. 위성 정당은 비례대표 의원만을 많이 확보하고 사라지는 일종의 ‘떴다 방’ 정당이다. 여야는 지역구선거 결과에 더하여 46석의 비례대표를 먼저 차지하고 나머지 의석을 적절히 갈라먹는 방식이다. 결국 위성정당은 고질적인 양극 정치, 혐오정치를 더욱 가열시킬 뿐이다. 이 낭비적인 위성 정당의 탄생은 거대 양당의 책임 회피의 산물이다.위성정당은 서구 민주정치의 정당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야당을 변질시켜 만든 친여적 ‘사쿠라 정당’과도 성격이 다르다. 북한 일당 독재 체제하에서는 우당(友黨)이라는 정당이 존재한다. 북한 당국은 천도교 청우당과 사회민주당이 조선 노동당의 친구 정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전자는 천도교라는 민족 종교 세력을 중심으로 후자는 사회 민주적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으로 북한 노동당의 외곽 정당일 뿐이다. 이들 정당은 당규와 당 대표 등 정당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북한의 다당제를 외부에 선전하기 위한 수단이다. 북한 당국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노동당 독재로 미화시켜 사실상 일인 독재를 강화시켰다. 여기에 노동당의 들러리 외곽조직이 우당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노동당 일당 독재를 강화시키는 수단일 뿐이며 자유 민주국가의 다당제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런 정황에서 송영길 대표가 옥중에서 ‘소나무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우당을 창당한다고 선언하였다. 언뜻 이해하기 힘들고 조급한 발상이다.이번 총선 전야의 제3 신당 창당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대체로 당의 패권 경쟁에서 밀린 비주류와 공천 탈락자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신당을 창당하였다. 이준석의 ‘개혁신당’은 먼저 창당하였지만 당의 정체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혁신당은 여야를 넘나드는 김종인 공천관리 위원장을 영입하여 선거전에 임하나 그 당세는 정체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낙연 전 당대표는 ‘새로운 미래’를 창당하고 민주당 탈당자의 영입을 기다리고 있지만 당세 확장은 여전히 주춤거린다. 이준석과 이낙연 신당이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중도파나 무당파의 지지를 획득하기는 여러 한계에 부딪쳐 있다. 오히려 ‘조국혁신당’이 예상과 달리 중도파와 민주당 좌파의 지지로 급부상하는 실정이다. 윤석열 정권의 심판과 검찰독재 청산이라는 당의 선명성을 내세운 결과이다. 선거 후 이들 역시 거대 양당에 흡수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결론적으로 위성정당은 결코 거대 양당정치의 갈등 조절 수단이 될 수 없다. 이들은 민의를 왜곡시키는 사이비 정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치 발전론적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존립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두 당 역시 정당 간의 친밀성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는 들러리 정당에 불과하다. 더욱이 북한식 우당은 정당의 본질이나 민주적 헌법적 질서에도 어긋난다. 그에 비해 제3당은 거대 양당의 극한적 대립 구도에서 갈등의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그 필요성은 충분히 공유한다. 양당의 거대 구도 하에서 중간층의 선택 공간을 넓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극한 대결정치에서는 캐스팅보트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 전야에 탄생한 ‘개혁신당’이나 ‘조국혁신당’ 등은 그 역할을 담당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이들은 선거 후 합종연횡으로 거대 양당에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여하튼 이번 총선 후에는 민간 차원의 제3 신당의 육성책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24-03-10

치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운동치료

박성률 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치매(Dementia)는 지능, 언어, 학습 등의 인지기능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대표적인 신경정신계 질환이기도 하다. 치매는 노인 10명 중 1명의 비율로 발생하며, 환자 본인의 삶의 질 저하뿐만 아니라 가족의 부담, 국가의 부담 등 직간접적으로 미래 한국사회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 관리하여 치매의 발병을 1년 정도 늦출 경우 44년 후에는 920만 명의 치매환자를 줄일 수 있어 조기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약물치료가 치매의 주된 치료지만, 최근 연구들에서 인지 재활, 행동 심리치료, 운동치료 등 비약물적 치료 후 인지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계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운동은 뇌에서 수의적 움직임으로 뇌의 신경으로부터 말단 운동기까지 신호전달이 이루어져 인지기능을 높이기 때문에 치매 예방 및 관리를 위한 방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American Academy of Neurology에서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도 운동이 가장 효과적으로 인지기능을 향상시킨다고 보고하고 있다.운동의 종류 가운데 특히나 유산소운동은 신경세포의 성장과 분화 등에 관여하는 신경 호르몬을 증가시켜 뇌의 가소성을 증가시키고 신경노화에 관여하는 베타-아밀로이드와 같은 물질을 감소시키며, 해부학적으로는 기억력과 연관된 해마의 퇴행을 예방하고 용적을 증가시킨다. 유산소운동과 인지기능의 긍정적인 상관관계는 다양한 연구들에서 입증되고 있다. 유산소운동은 치매 환자나 인지기능 감퇴가 없는 노인 모두에서 인지기능이 개선된 것으로 드러났다.다양한 종류의 단독 혹은 복합운동도 인지기능 개선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서 하루 15분에서 60분가량, 주 3~5회, 12주간 걷기나 자전거 타기, 공차기 게임 등의 운동을 시행한 경우 집중력, 기억력, 의사소통 능력, 집행 기능 등 전반적인 인지기능이 나아졌다. 유산소운동 단독 혹은 관절 가동범위 운동, 하지의 근력 강화 운동이나 유연성 운동 등의 복합운동도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에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 환자를 대상으로 걷기와 유산소운동, 가벼운 근력운동 등의 복합운동을 하루 50분, 주 3회 이상, 24주간의 프로그램을 시행한 연구에서도 대조군에 비해 18개월 뒤 인지기능이 현저히 좋아졌다.저항운동 혹은 근력강화운동이 인지기능의 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유산소운동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노인에서 6개월간 중등도 또는 고강도 저항운동을 시행한 연구에서는 운동 후 단기 및 장기 기억력, 언어 추론 능력이 향상됐다. 고강도 저항운동과 미니 스쿼트, 미니 런지 등의 근력강화운동을 포함한 저항운동을 시행한 다른 연구에서는 12개월 후 인지기능을 평가하였을 때 선택적 주의집중 및 집행 기능이 좋아졌다. 한편 여러 연구의 결과들을 통합하는 메타분석에서는 유산소운동을 단독으로 시행한 경우보다 유산소운동, 저항운동, 유연성운동을 포함한 복합운동을 했을 때 더 큰 인지기능의 향상이 나타났다.이같이 정상인, 치매 위험군, 경도인지장애, 치매 환자 모두에서 유산소운동 단독으로 혹은 저항운동을 포함한 복합운동을 시행했을 때 인지기능의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치매 환자의 운동 처방에 있어 유산소운동은 가급적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안전한 운동치료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운동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 낙상 예방 교육, 균형 운동 등의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치매 환자를 위한 명확하게 정해진 운동지침은 없다. 다만 10년간의 추적 조사에서 하루에 60분 이상 활동량이 감소한 남자 노인의 경우 활동량을 유지한 노인에 비해 인지기능의 저하가 1.8~3.5배 빠르게 진행하며 활동량이 증가할수록 인지기능의 저하가 적게 나타났다. 운동량과 치매 위험이 역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연구의 결과가 있지만, 저강도에서 중등도의 운동은 인지기능의 감퇴를 35%, 고강도 운동은 38% 감소시켜 그 효과가 유사하다. 그러므로 치매 환자에게 무리한 고강도 운동보다는 실질적으로 시행 가능한 중등도의 운동이 권장된다.유산소운동의 경우 한번에 적어도 20~30분 이상 지속하는 것이 권장된다. 저항운동의 경우 주 1회, 혹은 주 2회 시행하는 경우 모두 비슷한 정도의 인지기능의 호전이 나타났다. 그런데 주 1회 시행하는 경우 근골격 손상이 현저히 많이 보고되고 있어 저항운동은 주 2회 정도 실시하고 스트레칭 등의 유연성 운동을 저항운동 전에 실시하는 것이 추천된다.치매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이 알츠하이머병이고 뇌혈관질환, 퇴행성질환 순이다. 이 질환은 운동이 부족하고 약한 데서 비롯된다. 결국 치매의 예방과 관리는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운동만이 답이다.

2024-03-10

낭비 없는 행복한 삶, 여가생활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필자는 테니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테니스 할 때는 행복감을 느낀다. 테니스는 협업운동이어서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클럽활동을 해야 하는데 필자는 50명 수준의 회원을 운영하는 포항 영일테니스클럽에 속해 있다.지난 주말에 구장을 갔을 때, 다리미처럼 말끔히 정리된 녹색의 코트, 화려하지는 않지만 일렬로 정돈된 개인 컵과 라켓들을 보면서 누군가 보이지 않는 정리 정돈의 흔적에 기분이 상쾌했다. 또한, 선임 회원이 새내기 회원에게 테니스 비결을 전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클럽활동이 회사 생활과 같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낭비 없는 삶의 지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여가생활을 통해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곧 회사 생활을 잘하는 기반이 된다. 여가 활동의 장점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회원 간 소통으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땀 흘리는 신체적 활동을 통해 건강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대 사회는 많은 물질적 소유가 행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삶을 즐기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직장생활이나 여가생활이나 낭비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낭비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첫째,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 우선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고,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을 소유하고, 소유한 물건은 소중히 다루어 길게 사용하는 습관을 지닐 필요가 있다. 이것이 에너지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지름길이며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이다.둘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남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관심사에 집중하여 삶을 즐기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공유하는 것도 낭비 없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다.셋째, 자신의 가치와 원칙을 기반으로 행동해야 한다.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타인과의 비교나 외부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물질적인 소비와 소유에 의존하지 않고 내적으로 풍부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낭비 없는 행복한 삶의 열쇠라고 생각한다.낭비 없는 행복한 삶을 위해 고민해 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낭비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개인의 낭비 없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다. 시간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즉 시간 관리가 답이라고 본다. “세상에서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나이밖에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여 낭비되는 시간이 없어야 하겠다. 이를 통해 좀 더 행복하고 뜻깊은 삶을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2024-03-10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

유영희 작가 어르신이라고 불릴 나이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요즘 어르신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존칭의 의미를 담았다고는 하나 실제 사용할 때는 사회적 약자한테만 쓰는 말처럼 들린다. ‘어르신’이라고 또박또박 발음해주면 그나마 그런 기분이 덜할 텐데, ‘어르신’을 ‘으르신’으로 부르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부를 때는 대부분 톤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보니, 귀도 잘 안 들리는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가만히 보면, 나이별로 붙이는 이름의 형식이 다 다르다. 대략 초등학생까지는 어린이라고 하는데, 청소년부터, 청년과 중장년까지는 시기를 나타내는‘년’으로 부르다가 65세 이상 노년은 갑자기 ‘어르신’으로 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른’은 중장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기계적으로 볼 수는 없다.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용례에서처럼, ‘어른’은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여기서도 ‘어르신 김장하’라고 하지 않았다.그러니 ‘어르신’은 ‘어른’의 높임말이라기보다는 ‘늙은이’의 높임말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같은 ‘이’라도 ‘어린’에 붙으면 높임, ‘늙은’에 붙으면 하대처럼 보인다. 국어사전을 보면, ‘어린이’는 ‘어린 아이’를 높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젊은이’는 그나마 가치중립적으로 그저 젊은 나이대 사람으로 생각되는데, ‘늙은이’는 폄하하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늙은이’는 대부분 욕으로 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단어가 ‘어르신’일 것이다.애당초 어른이라는 명사에 어떻게 ‘시’를 붙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어 찾아보니 ‘어르신’의 어원은 16세기 ‘얼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얼운’은 동사 ‘어르’에 사동접미사 ‘우’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붙은 것이고, ‘어르신’은 거기에 존칭을 의미하는 선어말어미 ‘시’를 붙인 것이란다. 그러고 보면, 어르신이라는 단어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고 족보가 있는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어르신’이 ‘어른’보다 낮춤말 같이 느껴진다.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적 관계에서 마음을 담아 사용하는 존칭을 보통명사로 만들어서 존대의 의미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존대의 마음을 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에다 우리 사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지위는 한없이 처량하다. 빈곤율 세계 1위는 말할 것도 없고, 65세만 넘으면 갈 곳이 없다. 호칭만 어르신이지, 그에 걸맞은 처지도 아니고 대우도 없다. 그저 호칭 인플레만 고공행진일 뿐이다. 이러니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달가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어른’이 백번 낫다.공식적인 명칭에 존칭을 붙이는 해괴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좋게 보면, 긍정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속 없는 ‘긍정적’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

2024-03-10

만남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살아가면서 우리는 만남과 별리(別離)를 경험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중대한 일대사(一大事)다. 불가(佛家)에서는 그것을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로 명쾌하게 풀이한다. 인연이 생겨나면 만나는 것이요,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것이다. 고로 만남과 헤어짐에 특별한 의미와 희로애락을 부여할 까닭도 없는 셈이다.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6)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은둔 생활자 혹은 러시아판 ‘히키코모리’다. 돈 때문에 휴학생으로 지내는 그는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돈은 많지만, 사회적 이(蝨)에 불과한 전당포 노파 알료나를 살해하고자 한다. 타인의 돈을 부당하게 갈취해 부를 축적한 노파를 죽여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려고 기획하는 그는 러시아판 홍길동이나 임꺽정처럼 보인다.라스콜리니코프가 그런 기괴하고 낯선 사유에 빠져드는 계기는 사회적 고립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노파를 살해할 동기를 부(富)의 사회적 불평등과 공정한 분배에서 구하지만, 실제로 그의 사유와 인식에는 초인의식이 자리한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영웅이라 불린다. 사회적 불의와 악행의 표본인 전당포 노파를 죽임으로써 초인의 대열에 합류해보자는 계산이 그의 흉중에 깊이 자리 잡는다.그가 부조리하고 흉악한 범죄를 꿈꾸고 실행하는 배경은 고립무원(孤立無援)한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사회적 관계는 매우 협소하다. 오랜 친구 라주미힌과 여동생 두냐 그리고 어머니 정도가 고작이다. 그는 온종일 다락방에 틀어박혀 완전범죄를 실행할 계책과 구체적인 방도에 골몰한다. 미침내 그는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 리자베타를 무참하게 살해한다.여기서부터 우리는 주인공의 급변하는 내면세계와 만난다. 살인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죄의식이 어느샌가 그를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섬망(譫妄)의 형식으로 밤마다 그를 괴롭히는 잠재의식의 심연에서 그는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그가 대면하는 구원의 손길은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한다.여주인공 소냐가 살인자의 내면 깊은 곳으로 틈입한다. 혼자였던 그가 자신의 왜곡되고 굴절된, 억압받고 학대받은 영혼을 하나둘씩 털어놓을 대상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소냐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자발적으로 예심판사 포르피리를 찾아간다.라스콜리니코프를 칠흑 같은 사회적 고립과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은 견고한 격절(隔絶)에서 구해낸 것은 소냐였다. 의붓어미와 동생들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의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해 제 한 몸을 거리에서 팔아야 했던 소냐. 하지만 소냐는 그런 사회-경제적 모순과 침탈을 원망하지 않으며, 그 어떤 저항도 시도하지 않고 순응하는 인물이다.소냐와 만남으로써 라스콜리니코프는 회개하는 인간으로 거듭 태어난다.고립무원으로 파괴된 자아를 타자와 만남으로써 구원하려는 그의 행로는 우리에게 ‘만남’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2024-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