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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자연·문화 어우러진 다양한 콘텐츠가 만든 `낭만 여행지`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 中)가을밤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서정적인 노래 가사에 나오는 전라남도의 도시 `여수`는 많은 이들의 낭만을 자극하는 꿈같은 여행지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 2012년 세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여수는 국내해양관광에도 새로운 획을 그었고 체험형 관광상품, 교통·숙박시설 등 풍부한 관광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난 한 해 관광객 1천30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 30만의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국내 최고의 해양관광도시로 자리 잡은 여수. 이 도시가 오늘날의 명품관광지로의 영광을 이룩하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살펴본다.2012년 세계박람회 성공 개최로4년째 연 1천만명 방문 `쾌거`예술인거리·버스커 특화마을마리나항·해양레저스포츠타운 등체류형 관광도시 조성 대성공□ 지난해 1천300만 관광객 달성`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nd Coast)`이란 주제로 지난 2012년 여수에서 열렸던 세계박람회는 여수시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했다. 개최 당시 800만이상의 방문객이 여수를 찾았고, 박람회 유치로 인한 경제적 기대효과는 전국적으로 약 12조 2천억원의 생산, 약 5조 7천억원의 부가가치를 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해양관련 기구·기관 유치에도 노력을 기울였으며 청소년해양교육원 및 복합해양센터 건립 등 박람회장을 해양 문화·학술·스포츠 메카로 육성하는데도 힘을 쏟았다. 이에 박람회 종료 후 4년째 평균 1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됐으며 지난해는 1천300만명이 여수를 방문하는 쾌거를 이뤘다.□ 문화기반시설 구축 등 다각도의 노력흔히 `여수`하면 아름다운 바다, 야경, 섬 등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여수시는 이러한 자연환경에만 의존하면 지속 가능한 관광산업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판단,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우선 문화기반시설 구축을 위해 중앙동·종화동에 예술인거리를 조성하고 버스커 특화마을과 도립미술관 등을 유치했다. 이와 함께 체류형 관광을 늘리고자 생태관광을 개발해 여자만 연안생태 휴양마을 및 갯노을길, 소호해변공원, 백야도 별자리 테마공원, 개도 생태탐방로 등 체험과 휴양의 기능을 하는 다양한 관광지를 조성했다. 또 해양도시에는 풍경 감상 외에 즐길 거리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해안 포장마차촌, 국내 최초 해상 케이블카·해상 시티투어 운영, 여수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거북선유람선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해 주목을 받았다.실제로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여수에는 전체 관광숙박업소가 838곳 9천764실에 이르며,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70곳 1천319실에 이르는 숙박업소 신축 바람이 불고 있다. 여수시는 관광객 증가로 인한 숙박업소 호황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국제 해양레저·스포츠 산업에도 초점여수시는 체류형 관광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해양레저스포츠 참여인구 증가에 발맞춘 관련 분야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호·웅천 등 대규모 마리나항 조성과, 해양레저스포츠 타운(웅천) 및 돌산해양낚시공원 조성 등이 있다. 또한 해양레저스포츠 거점도시 이미지를 굳히고자 전국해양스포츠제전 개최, 전국단위 요트대회 및 비치발리볼대회 유치 등 전국단위 해양레저대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중이다.이와 더불어 시에서는 딩기요트, 윈드서핑, 카약 등 해양레포츠 체험 프로그램 운영시간을 확대해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관광객이 웅천친수공원·박람회장·만성리해수욕장·소호요트경기장을 찾으면 각종 해양레저스포츠 체험을 무료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 이에 여름 휴가철에는 대학생과 중·고등학교 단체 체험 인파가 줄을 잇고 있으며 주말에는 하루 1천명이 넘게 이용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수학여행단·외국인 등 단체관광 유치도여수시는 해외 관광객과 수학여행단 등 단체 관광객 유치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를 위해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중이다. `K-Travel Bus`는 서울 등 수도권을 주로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지방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고, 지역의 우수한 관광 및 체험 콘텐츠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버스는 서울을 출발해 여수의 유명 관광지를 등을 돌아본 후 여수에서 하루를 묵는 1박 2일 여정으로 운행하고 있다. 이밖에 일본인 맞춤 관광상품,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를 찾는 관광객이 여수에서 하룻밤을 머무를 수 있도록 셔틀버스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아울러 대규모의 크루즈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크루즈산업박람회에 참가해 여수가 가진 천혜의 자연경관과 15만t급 크루즈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여수항 크루즈부두를 홍보했다. 이는 크루즈선박들이 대개 유럽이나 미주지역에서는 2년 전에, 아시아지역은 1년 전에 기항지를 확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또 수학여행객을 맞이하기 위한 관광시책과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학생들이 생생한 현장학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최적의 코스를 준비해 홍보하고 있다. 여기에 호텔, 리조트 등 4천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최고급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어 전국 초·중·고 학교를 대상으로 집중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해양스포츠=여수` 브랜드 만들기 주력… `아름다운 여수밤바다` 문화콘텐츠도 잘 활용” 김재일 여수시 관광과장-지난해 여수 관광객이 1천300만명을 돌파했는데 비결은.△여수시가 지난해 관광객 1천358만 명을 기록했다. 이런 기록은 서울시와 제주도, 경기도 용인시를 제외하면 중소도시에서는 전례가 없는 놀라운 기록이다.여수 관광의 비결은 천혜의 관광자원과 여수만의 관광 상품 그리고 시민들의 열정이라 생각한다. 국내 최초의 해상케이블카, 해양레일바이크, 여수밤바다와 낭만 버스킹 공연, 시티 투어버스와 야간 유람선 등 여수만이 가진 관광 상품도 최근 많이 생겼다.-올해 여수 관광객의 유치 상황은 어떤가.△9월 말 기준 여수를 찾은 관광객 수가 1천20만명을 넘었다. 올해도 1천300만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다소 감소 추세이지만, 단체관광보다 가족단위 관광과 섬 관광객이 증가하는 등 관광 패턴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주말 숙박업소의 투숙률은 큰 변화가 없다. 가족단위 체험관광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은 관광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여수시에서는 어떤 관광산업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나.△여수의 미래비전은 해양관광에 있다. 하지만 레저스포츠가 결합해야 지속적인 해양관광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해양레저스포츠를 여수관광의 핵심 사업으로 육성시키고 있는데, 우선 웅천에 150선석 요트마리나를 올해 개장한 데 이어 300선석 규모의 정부 거점형 마리나를 건설해서 국내 최대 마리나항을 조성할 계획이다. 그리고 매년 4월부터 9월 말까지 4개 장소에서 스쿠버와 딩기요트, 원드서핑과 카약 등 9개 종목의 무료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어 다양한 해양스포츠 대회도 개최해 `해양스포츠는 여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여수의 인기 관광 프로그램은.△여수에는 `아름다운 여수밤바다`라는 문화콘텐츠가 있다. 종포 해양공원 앞에 펼쳐진 돌산 섬과 야경, 그 앞을 오가는 야간 해상유람선, 해상케이블카는 여수만이 가진 인기 상품이다. 또한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낭만버스커` 거리 공연이 인기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3% 늘어난 17만여명이 관람했다. 낭만버스커 거리공연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상품으로 해외 홍보도 시작했다. 내년에는 `국제 버스킹 페스티벌`로 확대해 여수를 세계적인 버스킹의 메카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2층 야간 시티투어버스와 해양레일바이크, 올해 개장한 `낭만포장마차`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인기 상품이다.-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여수는 청정바다에서 나는 신선한 해산물로 유명하다. 특히, 게장백반과 서대회무침, 장어탕과 구이, 해산물 삼합과 싱싱한 회는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관광객이 밤바다를 보면서 낭만을 즐기고 술 한 잔을 할 수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여수밤바다 중심 해안가에 `낭만포차`를 마련했다. 수산시장에는 `바이킹 야시장`도 개장했는데 지난 여름휴가철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

2016-10-24

마케팅·컨벤션·방문서비스 등 `비짓브라이튼`의 대활약

지난 상편에서는 브라이튼이 유럽에서 손꼽는 해양관광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관광산업의 실태를 짚어봤다. 하편에서는 브라이튼의 공식관광기구인 `비짓브라이튼`에서 11년째 근무하고 있는 홍보담당관 샬럿 배로우(Charlotte Barrow)씨와의 인터뷰와 함께 브라이튼 시의회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살펴본다.지난 한해 60여개 컨퍼런스·이벤트 행사 성사대리 숙박시설 예약제로 계약 1만개 이루기도해안가 복원·재생 프로젝트 가동, 홍보에도 심혈□ 비짓브라이튼(VisitBrighton)`비짓브라이튼(VisitBrighton)`은 브라이튼호브(행정구역통합)의 공식 관광기구다. 브라이튼이 오늘날의 해양관광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적·지리적 장점과 더불어 비짓브라이튼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구는 브라이튼의 홍보를 담당하는 `브라이튼 마케팅` 부서, 컨퍼런스·회합 및 이벤트를 유치할 수 있도록 도시를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컨벤션`부서, 브라이튼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방문자 서비스` 부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에 걸쳐 비짓브라이튼은 90개 이상의 신문이나 미디어의 방문을 주도했으며, 이를 통해 760만 파운드를 초과하는 보도자료와 언론 광고 효과를 달성했다.또한 비짓브라이튼을 통해 지난해 브라이튼은 167개의 컨퍼런스와 이벤트 문의를 받았고, 이 중 64개가 성사됐다. 덕분에 4천500만파운드의 경제이익을 생산할 수 있었으며 비짓브라이튼에서 시행 중인 컨퍼런스 대리 숙박시설 예약 제도를 통해서는 총 94만6천파운드 가치를 지닌 1만개의 숙박계약이 이뤄졌다.또한 이 기구는 영국뿐만 아닌 인근 유럽 등의 관광 추세를 분석하고 새로운 잠재적인 고객 확보를 위해 시장 전략을 수립하는 등 `브라이튼`을 하나의 기업처럼 상품화하고 판매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 도시 전체에 걸친 개발 프로젝트브라이튼시의회는 브라이튼의 해안가 시설 인프라에 대한 `복원 및 재생 사업`이 긴급하다고 진단하고, 현재 장기적인 투자 프로그램의 첫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해변 한 가운데에 있는 쉘터홀(Shelter Hall)에 대한 보강공사에 착수했다. 쉘터홀은 과거부터 해일, 폭염 등의 기상악화에 대비한 피난처의 기능을 담당한 건물이다. 하지만 낡고 보수가 필요함에 따라 시의회는 이 건물의 피난처 기능을 강화함과 동시에 상가를 형성해 새로운 형태의 통합 쇼핑·비즈니스센터로 마련할 방침이다. 여기에 브라이튼 마리나 신규 주택 건설과 함께 시 외곽의 개발로 지역 교통 프로젝트를 재정립하는 계획, 오래된 씨 라이프 센터(Sealife Centre) 위의 수족관 테라스 재개발을 통해 일자리와 교육을 포함한 자금 조달 방침, 해안가에 기업을 유치하고자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이와 더불어 일자리 창출과 도시재생을 목표로 새로운 교육 및 연구 시설을 형성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유학생이 증가하고 있는 브라이튼은 학생의 숙박 시설 공급을 통해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댄스 스튜디오와 작업 공간 등 예술거리 형성으로 스타트 업 기업 및 예술가, 대기업의 진출을 노리고 있다. □ 브라이튼의 새 상징 i360브라이튼이 18세기 이후 영국 왕실의 휴양지, 오래된 피어(piers, 교각) 등을 통해 고전적인 느낌의 관광지로 이름을 떨쳐왔다면, 지난 8월 4일 문을 연 전망대 `i360`은 브라이튼의 `새로운 상징물`로 자리 잡고 있다.브라이튼은 이 전망대를 통해 440개의 정규직 및 부가적인 일자리가 발생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으며 앞으로 다른 축제나 행사를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높이 약 162m 이르는 이 전망대는 강한 폭풍으로 폐쇄된 `웨스트 피어`가 있던 자리에 건설됐고 브라이튼의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바라볼 수 있는 위치다. 전망대에 함께 설치된 세계 최초의 수직상승 케이블카는 지상 138m까지 올라가며 아름다운 브라이튼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어 이미 소문을 타고 유럽 곳곳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영국항공이 투자해 설치한 i360은 아름다운 바다와 문화유산 등에 그치며 그동안 특별한 상징성은 없었던 브라이튼에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브라이튼 관광기구 `VisitBrighton` 홍보담당 샬럿 배로우연중 즐기는 이벤트·쇼핑·문화 등다양한 분야서 관광객 충족시켜야브라이튼 관광기구 `VisitBrighton` 홍보담당 샬럿 배로우-브라이튼이 오늘날의 관광지로 자리 잡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있었나. 시에서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간단히 설명해달라.△정부가 브라이튼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 주도한 역할은 없다. 그러나 `비짓브라이튼`에서는 브라이튼과 호브의 방문객, 특별히 체류하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항상 모색하고 있다. 또한 컨퍼런스 담당부서에서는 컨퍼런스와 비즈니스 회의, 전시 또는 기업의 사회적 기능 부문들을 브라이튼에서 할 수 있도록 기업을 장려해 비즈니스 관광을 증가시키고 있다.-해양관광도시로의 발전을 위해 거쳐온 과정 중 어려운 부분은.△브라이튼은 항상 관광지로 알려졌었으나, 우리가 직면하는 유일한 어려움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브라이튼을 찾을 수 있는지를 홍보하는 문제다. 이와 함께 브라이튼이 단지 여름 한 철만 찾는 곳이 아니라 1년 365일 방문하기에 좋은 곳인지를 인식시키는 일이다.-브라이튼의 주요 관광시설은 어떤 것이 있고 이용객은 점차 늘고 있는지.△우리는 유럽에서 가장 큰 교각 중 하나인 브라이튼피어를 가지고 있으며, 로얄파빌리온과 박물관, 극장, 영국항공의 전망대 i360 등이 있다. 특히 지난 8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이 전망대는 2017년에 `세계에서 가장 높고 날씬한 타워`로 기네스북에 등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브라이튼은 1천50만명이 방문했다. 이 수치는 850만명이 찾아왔던 지난 2010년보다 많이 증가한 것이다.-각종 축제도 많이 열리는 것 같은데, 지역 경제에 얼마나 보탬이 되나.△브라이튼에서는 모든 분야의 축제가 열린다. 예술, 음악, 코미디, 사진, 문학, 디지털, 음식·음료, 문신, LGBT(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맥주, 고추, 자동차, 스포츠 등 무슨 축제든 항상 열린다. 비짓브라이튼의 담당부서는 브라이튼에서 열고자 하는 모든 축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홍보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축제가 더 많은 방문객 유치 효과가 있으므로 경제효과도 당연히 따라온다. 지역의 가장 큰 축제인 `브라이튼 프라이드(Brighton Pride)`는 지역 경제에 1천300만파운드(약 184억원)의 수익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올해 혹은 몇 년 사이 브라이튼의 발전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많은 개발 계획이 있다. 현재 해안 산책로 개선을 위해 진행 중인 사업이 있으며 오는 2018년에 완료될 예정이다. 여기에 브라이튼 해안 개발 사업 및 도시 구석구석의 발달을 위한 많은 계획이 논의 중이다. 하지만 검토중인 단계며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해양관광도시로의 새로운 꿈을 키우는 포항시를 위해 조언하고 싶은 것은.△브라이튼에게 중요한 것은 다양한 축제나 이벤트들이다. 만약 포항시에서도 지금보다 다양한 이벤트를 장려할 수 있다면, 해양관광도시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포항에 방문자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접근성도 고려해야 하며, 지역 내 주요 관광지에 대한 교통 여건 개선 등도 필요하다. 아울러 `바다`라는 자연환경이 브라이튼에게 좋은 관광상품이긴 하지만, 우리 시에서는 바다가 브라이튼의 전부라고 인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브라이튼이 따뜻하고 햇볕 좋은 여름 한 철에 찾기 좋은 관광지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포항시도 단순히 `바다`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연중의 다양한 이벤트와 쇼핑, 문화 등 관광객을 다양한 분야에서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6-10-17

작은 해변도시에서 `바닷가의 런던`으로 화려한 변신

브라이튼(Brighton)은 오랜 역사를 지닌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양 관광도시이다. 과거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이 도시는 18세기부터 차츰 휴양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국 남부 해안가의 작은 도시인 브라이튼은 `바닷가의 런던`이라고 불리며 현재 최고의 관광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여름마다 유럽 여행객들이 넘쳐나고 사계절 내내 지역 명소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연중 큰 해양 이벤트와 각종 축제 등도 마련돼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본지는 2회에 걸쳐 브라이튼의 발전 과정과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지 소개해 본다.1759년 웨일즈왕 왕궁 `로얄 파빌리온` 지으며 귀족 휴양 관광지로 급성장1806년 극장 `로얄` 건립 ·호텔·철도 개통으로 연간 방문객 25만 러시20세기 들어 제1,2차 세계대전 등으로 휴양지 기능 상실하며 내리막2000년 문화·예술 분야 활성화로 영국에서 가장 세련된 해변 중 하나로 재도약해마다 열리는 브라이튼 페스티벌·브라이튼 프린지, 연극·무용·콘서트 등 풍성한 축제매년 800만명 이상 관람객 방문 관광지출 5천700억원 발생□ 외딴 어촌마을이 영국 여왕의 휴양지로브라이튼은 런던에서 기차로 약 50분, 버스로는 2시간가량이 소요되는 가까운 위치의 작은 해변 도시다. 이 도시에서의 본격적인 관광은 지난 1759년 의사였던 `리처드 러셀`이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해수욕과 바닷물을 마시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한 해수치료법을 주장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유래된다. 당시 영국 귀족들은 수영을 즐기고자 브라이튼 해변으로 몰려들었다.이후 1783년에 웨일즈의 왕(후에 황세자가 되고 조지 4세 왕이 된다)의 방문으로 브라이튼시의 운명이 바뀌었다. 그는 처음엔 작은 농가를 임대해 지내다가 결국은 소유지를 구매해 그 자리에 헨리 홀랜드에 의해 디자인된 고전주의 양식의 첫 번째 궁전 `로얄 파빌리온`(오늘날 로얄 파빌리온은 존 내쉬에 의해 디자인되고 오리지널 건물을 중심으로 지어진 것) 을 지었다. 이에 브라이튼은 사람들을 모으며 더욱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조지 4세는 브라이튼을 왕실의 거주지로 삼았으나 이후 빅토리아 여왕의 취향에 맞지 않아 그녀는 이곳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후 관광지로 본격적으로 개발되며 극장 `로얄`이 1806년에 로얄 파빌리온 맞은 편에 지어졌다. 이어 지역 내 유명 호텔도 들어서기 시작했다.또한 지난 1841년에는 런던과 브라이튼을 이어주는 철도가 생겨 이후 수많은 당일치기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곳이 됐다. 이어 1860년 브라이튼은 1년에 기차를 타고 찾아오는 방문자의 수가 25만명에 다다랐다. 철도는 또한 중공업의 발전을 이룩했고 기관차 관련업무는 마을에 일자리를 창출했다.이와 함께 브라이튼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인 `피어(piers, 교각)`도 지어졌다. 오늘날 브라이튼에는 브라이튼 피어와 웨스트 피어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세 개의 피어가 있었다. 영국 제도에서 첫 번째로 특수제작된 유흥지 피어가 브라이튼에 지어졌었고, 이는 1823년에 선보인 로얄 서스펜션 체인 피어다. 그러나 1896년 강풍에 의해 파괴된 바 있다.지난 1970년 강한 폭풍으로 웨스트 피어 역시 심하게 손상돼 결국 1975년에 폐쇄됐다. 하지만 이 장소에 돛대 모양의 관망대인 `i360`이 지난 8월 새롭게 문을 열었고, 캐나다 토론토의 CN타워처럼 i360도 브라이튼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이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큰 교각인 브라이튼 피어는 식당과 유흥시설, 놀이기구 등을 도입해 현재는 매해 3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 휴양지로서의 영광-몰락-재기20세기에 들어서자 영국 조간신문 데일리메일(Daily mail)이 브라이튼을 `비진취적이며 매력적이지 않고 구식이 된 휴양지`라고 주장할 만큼 관광지로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영국의 세계 1, 2차 세계대전 참전 등으로 휴양지의 기능이 어려워졌던 브라이튼은 1950년대 중반부터 피쉬앤 칩스, 유리구슬점 등으로 다시 인기를 조금씩 회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80년대에는 레저를 즐길만한 관광지로의 가치가 떨어졌고 다행히 1977년 브라이튼 센터의 개통이 이 도시를 국제적인 회의 장소로 만들어 놓았다. 남쪽 해안의 첫 번째 컨퍼런스 센터 중 하나인 브라이튼 센터는 대규모의 정당 컨퍼런스를 유치할 수 있었다. 이어 지난 200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브라이튼과 인근의 호브(Hove) 지역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통합했다. 이후 시에서는 새로운 해안 개발을 시도하며 쇠퇴하는 지역을 되살리고자 노력했고, 새로 만들어진 예술가의 분기, 클럽, 바, 식당들은 지역을 활성화하며 영국에서 가장 세련된 해변들 중의 하나로 돌아오게 했다.또한 브라이튼의 관광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시의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높은 관심도 큰 역할을 했다. 지난 2007년 6월 브라이튼의 극장 `로얄`은 200주년을 기념했다. 오늘날 이곳은 예술가들과 극장 관람객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며 많은 유명한 웨스트 앤드 런던 작품들을 초연해왔다. 고전연극, 무용, 콘서트, 뮤지컬 그리고 서커스에 구색을 갖추는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언극이 이어지고 있다.또한 브라이튼 페스티벌(Brighton Festival)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이벤트로, 5월 3주간 연극, 무용, 음악, 서커스, 문학 등의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과 어린이 축제 등이 마련된 행사다. 영국과 해외의 혁신적인 예술가와 작품들을 소개하고 제작하고 있다.브라이튼 프린지(Brighton Fringe)도 5월 한 달 동안 열리는데, 이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예술 축제이다. `오픈 액세스`는 저자의 비용 부담, 이용자의 무료 접근, 시공간을 초월한 상시적 접근, 저자의 저작권 보유 등의 4대 원칙을 강조하는 정보 공유 체제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열린 축제이며 예술가와 즐기는 이들 모두에게 꿈같은 기회의 장이다. 이와 비슷한 축제로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Edinburgh) 프린지 페스티벌이 있다. 이 페스티벌이 불러들이는 경제유발 효과도 한화로 1천500억원에 가깝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브라이튼은 런던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쇼핑이나 예술적인 감각을 충족시키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문화·관광` 도시로도 자리 잡을 수 있었다. □ 오늘날의 `브라이튼`이 되기까지세계적인 여행상품 판매사이트인 라스트미닛(lastminute.com)에 의하면 브라이튼은 영국을 방문하는 해외 방문객 상위 10위권, 가장 인기있는 영국의 도시로 상위 5위권에 선정된 바 있다. 런던 개트윅 공항에서 30분, 런던 시내에서는 1시간이 걸리는 교통적 이점으로 해마다 브라이튼에는 8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많은 레저 관광객과 각종 국제회의 관계자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호텔도 도시 주변에 속속 생겨나고 있다. 브라이튼 지역에서만 해마다 4억 파운드 (한화 약 5천 700억원)가량으로 추정되는 관광지출이 발생하는 등 경제창출에도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이와 더불어 브라이튼은 해변과 바다의 조화가 아름답고 요트를 즐기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브라이튼이 기존의 피어(교각)와 함께 아름다운 해변, 역사를 자랑하는 각종 박물관 및 유적, 문화·예술의 장 등을 토대로 유명세를 떨쳤다면, 여기에 영국 최대 마리나항인 `브라이튼 마리나(Brighton Marina)`도 해양 관광에 한 획을 그었다.이곳에 정박한 요트 규모는 1천600여척으로, 마리나항에 주거단지와 상업시설 등을 복합적으로 조성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11개의 마리나 밸리지에 853개의 아파트, 상가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각 주거단지 전면에 전용 계류장 배치를 계획했다. 편의성을 높이고자 워터프런트 호텔과 영화관, 쇼핑몰, 볼링장, 카지노 등을 도입해 해마다 꾸준한 방문객 유입 효과도 누리는 중이다. 다음 편에 계속 /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6-10-10

철강도시 이미지 털고 해양레저스포츠 도시로 `비상`

최근 세계에서 해양레저 등 관광산업은 미래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웰빙 및 힐링 욕구 증대, 주 5일제의 정착 등에 따라 국내 해양관광활동 수요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북미와 유럽은 마리나 산업, 크루즈 시장 등으로 해양관광을 주도하고 있으며,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등 기타지역도 빠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이에 국내 각 지자체에서도 해양관광산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포항 역시 기존의 철강산업도시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본지는 지난 2012년 세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 명실상부한 최고의 해양도시로 자리 잡은 여수시와 작은 규모의 어촌에서 영국 최고의 휴양지로 거듭난 브라이튼 시의 사례를 참고해 앞으로 포항이 해양관광산업을 위해 나아갈 길을 5회에 걸쳐 살펴보기로 한다.200㎞ 해안선 따라 아름다운 해수욕장 등 천혜비경 갖춰KTX·포항~울산 고속도 개통 더불어 포항공항도 재개항두호마리나 복합리조트·여남지구 해양문화공간 조성 등환동해 해양관광 거점도시로의 기반 마련 `착착`□ 해양관광의 중요성관광산업의 중요성은 급속한 속도로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의 내륙 중심형 관광에서 해양관광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여기서 `해양관광(Marine tourism)`은 해양과 도서, 어촌, 해변 등을 포함하는 공간의 자원을 이용해 일어나는 관광 목적의 모든 활동을 뜻한다. 쉽게 말해 바다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관광 활동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스포츠와 레저활동 등도 포함되며 해양의존형의 스포츠(윈드서핑, 보트, 제트스키, 다이빙 등)·휴양(해수욕, 낚시 등)·유람(해상유람, 크루즈 등) 등과 해양연관형과 같은 해양문화관광, 경관감상, 생태관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해양관광은 국내 관광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해수욕장과 낚시 등 전통적 강세분야와 함께 도보여행, 서핑과 스킨스쿠버 등의 스포츠 같은 신규 분야의 인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주5일 근무제의 정착과 교통여건 개선 등으로 국내 관광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지자체마다 경제창출의 새 원동력으로 관광을 주목하는 만큼, 포항도 지리적 강점을 해양관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아울러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세계 관광시장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4.3%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2년 기준 세계관광객 규모는 10억명, 시장규모는 1조2천억달러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10년간 권역별 관광객 비중은 미국·유럽시장이 13%p 감소한 반면, 아시아·태평양시장은 11%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전체 관광시장에서 해양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로 추산되고 있으며 세계관광기구가 발표한 미래 `10대 관광트렌드` 중에도 해변, 스포츠, 크루즈 등 6개 분야가 해양관광과 관련돼 있다. 이에 따라 전체 관광에서 해양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지역적 측면이 아닌 국가적 측면에서도 왜 `해양관광산업`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 포항, 해양관광으로 답을 찾아야포항은 동해안의 풍부한 해양자원을 지닌 천혜의 도시다. 200여㎞의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갖춰져 있고 곳곳에 관광 명소가 분포돼 있다. 영일대해수욕장과 죽도시장, 포항운하, 호미곶 등 인접한 관광지를 찾는 이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시에서도 전국 최고의 해양관광도시를 꿈꾸며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포항은 지난 6월 개통한 포항-울산 간 고속도로와 더불어 올해 포항공항도 재개항하면서 과거보다 교통 접근성도 크게 향상됐다. 여기에 포항과 울산, 경주의 연합체인 `해오름동맹`도 함께 맺어져 세 도시가 공유하고 있는 해양자원을 이용한 해양관광분야도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또 그동안 `교통 오지`로 불렸던 포항은 지난해 포항~서울 KTX 개통 이후 동해안의 교통·관광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연평균 1천700만여명이던 포항시 관광객은 KTX가 개통한 지난해 1천800만여명으로 100만명가량이 늘었다. 또한 포항에 KTX가 운행된 이후 영덕, 울진 등 인근 동해안 관광객도 더불어 증가하는 등 연계 효과를 누리고 있어 잠재적인 영향력이 충분하다. 아울러 오는 2018년에 예정된 `동해안발전본부`의 이전도 포항 및 경북동해안지역의 해양관광을 한층 고급화시킬 수 있는 기회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동해안발전본부는 경북도청의 안동 이전으로 공백이 예상되는 경북 동남권 행정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조직으로, 행정 기능과 함께 향후 도내 다양한 산업·관광분야 등의 육성을 맡을 예정이다.이와 함께 경북도가 동해안의 대표적인 섬 울릉도를 동해안 해양관광의 중심지로 개발하는 계획 역시 포항 해양관광에 큰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는 향후 울릉공항 건설과 대형여객선 취항 등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함에 따라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국제적인 해양관광·휴양지를 조성한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포항은 울릉도·독도의 주요 관문으로, 울릉공항이 개장하게 되면 포항공항과 함께 이용객이 늘고 내륙에서 독도 관광의 주요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수십년간 국내 철강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아왔던 포항이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새로운 먹거리`가 현재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 이에 포항도 지금보다 강화된 관광인프라 구축을 통해 수익성과 고용 창출 효과 등을 기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로봇연구, 타이타늄 등 각종 신산업과 더불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해양관광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필수다. □ 포항의 해양관광 현주소현재 포항 하면 떠오르는 관광 요소는 역사·문화자원과 해수욕장, 죽도시장과 포항운하, 영일대해수욕장 등이다. 대표적인 볼거리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국가우수축제인 `포항국제불빛축제`가 있다. 올해 열렸던 제13회 포항국제불빛축제에는 187만명이라는 기록적인 관람객을 유치했다. 하지만 관람객 수와 명성에 비해 인근상가 등 일부만 수혜를 입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지역 전체 체감도는 낮아 실익으로 연결되는 축제로 전환하기 위한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해양관광의 한 부분인 레저산업은 지역에서 인기가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다.이에 포항시도 해양스포츠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계획을 본격화하고 있다. 시는 두호마리나 복합리조트 조성을 시작으로 북구 환여동 여남지구 일대를 오는 2018년까지 해양문화공간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또한 형산강 일원에 경북수상조종면허 시험장을 유치해 해양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신라문화탐방 바닷길과 호미반도권 해안둘레길, 동해안 연안녹색길 등 해양관광 인프라 확충에 박차를 가하는 등 환동해 해양관광 거점도시로의 기반 마련에 행정력을 집중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딩기요트와 윈드서핑,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해양스포츠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해양스포츠아카데미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7월 말께 열린 `2016 전국 제트스키 챔피언십`등 각종 해양 대회들을 유치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 및 각종 대회의 성공 여부를 벗어나 관광객이나 시민들의 실질적 `해양관광도시`로의 체감은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다.지난 2014년 포항테크노파크가 실시했던 관광객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다양한 관광 콘텐츠 개발이 시급함과 동시에 포항에 대한 이미지가 여전히 철강도시로의 이미지가 강한 부분도 지적된 바 있다. 이에 민자유치를 통한 복합리조트 조성, 마리나 항만의 성공적 개발 활용, 스토리텔링 관광자원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

2016-09-26

옛 도심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새생명을 불어넣다

도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쇠퇴하고 낙후되는 지역이 생기는 등 사람의 삶의 흔적과 같이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도시마다 신도심은 눈에 띄게 빠르게 발전하는 반면, 구도심은 활력을 잃어 슬럼화 되고 있으며, 지자체마다 구도심 재개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대구경북기자협회(협회장 김철우)는 도시 발달과 산업의 변화 등으로 인한 도심지역 내 낙후된 구도심을 어떻게 개발해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는지 알아보고자 대구·경북 회원사들과 함께 독일 등 유럽 도심재생 선도도시들을 8일간 둘러봤다. 편집자주에센의 버려진 탄광시설 쫄페어라인바우하우스 양식 탄광 제반시설 보존디자인 박물관·화랑·야외수영장 조성관람객 150만명…유럽관광 필수 코스뒤셀도르프 지하 터널미술관도로건설 공사자재 창고로 쓰이다 폐쇄뒤셀도르프 미대생 창작공간 활용 계기2007년 전문 전시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회화·조각·사진 등 신진예술 교류의 장성당을 서점으로 활용한 도미니카넨 서점고색창연한 13세기 성당으로 들어가면10여개 장엄한 아치형 기둥이 병렬하듯`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 선정전세계서 매년 70만명 찾는 관광 명소우리나라의 도시재생은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유명무실해진 뉴타운, 재개발·재건축의 대안으로 낙후된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의 새로운 제도를 제정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각종 정책 공모사업을 추진하면서 정착되기 시작했다.도시재생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다양한 지역자원을 활용해 경제적·사회적·물리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으로, 구도심의 슬럼화로 인한 다양한 불평등을 극복하고자 도시재생을 중요한 정책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 도시재생은 현재 제도와 조직만 갖춘 실정이지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영국은 1980년대부터 정부기구와 보조금을 활용하고 있고, 독일은 1970년대 이후 구도심 도시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제적 활성화와 공공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정책화하고 있으며, 미국은 1990년 이후에 주거부족, 빈곤, 위생 등의 도시문제를 해결하며 최근에는 중심시가지 활성화 사업을 발전시키고 있다.이 가운데 독일 에센의 버려진 탄광시설인 쫄페어라인과 라인강변에 버려진 지하공간, 13세기 성당을 이용한 서점 등 구도심 내 폐허가 되고 버려진 산업시설을 문화·관광 인프라로 변모시켜 세계적인 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독일의 도시개발 사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독일 에센의 버려진 탄광시설 쫄페어라인독일은 1970년대 이후 구도심 도시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제적 활성화와 공공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정책화하고 있다.독일 서부지역 에센은 석탄산업 도시로 1950년대 중반 석탄 생산량이 1억2천500만톤을 기록했으나, 석유와 미국 석탄에 눌려 1980년에는 생산량이 6천910만톤으로 줄어드는 등 쇠락의 길을 걸었고 결국 1986년 문을 닫았다.지역 경제를 이끌어가던 석탄산업의 쇠락으로 65개에 이르는 건물, 200개가 넘는 설비, 약 2.7㎞ 컨베이어 시설과 13.2㎞인 파이프는 에센의 애물단지가 됐다.애물단지가 된 100㏊ 광산지대를 어떻게 개발할지에 대해 고민에 빠진 주 정부는 독일 루르지방의 에펠탑이라고 불리는 쫄페어라인의 탄광 제반시설이 1930년대에 서양 현대 건축의 모태가 되는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지어져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사실에 주목했다. 기능을 중시하고 단정한 형태의 새로운 건축 미학을 추종하는 바우하우스 양식은 당시에 대단히 진보적으로 평가됐다.이에 주 정부는 에센 주민의 자존심인 산업시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재활용하는 방안을 찾았고 1989년 `용도 전환을 통한 보존`이라는 원칙에 따라 문화를 통한 변화에 눈을 돌렸다.에센의 대표적인 탄광시설인 쫄페어라인의 공장은 디자인 박물관, 화랑, 디자인 학교, 야외수영장 등 편의시설 등으로 변모했으며, 탄광 설비 일부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해 채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주 정부와 지역민의 노력으로 폐광은 세계적인 도심재생 명소로 변모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매년 150만명 가량이 찾는 유럽 관광 필수코스가 됐다.쫄페어라인은 흉물로 변한 공장시설을 파괴하고 새로 만드는 변화가 아니라 재활용을 통한 세계적인 문화시설로 변모해 지역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고, 특히, 지역민들에게는 자부심을 주고 있다. △뒤셀도르프 지하 터널미술관독일 뒤셀도르프 시내를 가로지르는 라인강변 지하에는 뒤셀도르프 시내 지하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각종 공사 자재를 보관하던 창고를 미술관으로 변화시킨 터널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라인강과는 불과 40여m 떨어져 있는 터널미술관은 길이 144m, 면적 888㎡으로 상당히 특이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지상에 있는 카페로 들어간 뒤 긴 계단을 내려가 미술관에 들어서면 천장 높이와 공간 폭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지고 좁아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1990년대 중반 뒤셀도르프 시내 지하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며 각종 공사 자재를 보관할 창고 용도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지하도로를 완공한 뒤 사실상 버려졌고, 1990년대 후반 뒤셀도르프 국제공항 화재를 계기로 실시한 공공물 소방점검 직후 안전문제로 폐쇄됐다.그러나 폐쇄된 지하공간은 시간이 흐르며 인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생들이 몰래 예술을 창작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이에 2006년 뒤셀도르프 시장은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을 높이 사 지하터널을 전시장으로 꾸미기로 하고 350만 유로라는 거금을 들여 전시공간으로 바꾼 뒤 2007년 문을 열었다.터널미술관은 뒤셀도르프 미대생들에게 공식적인 첫 전시회를 열 기회를 제공하고,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아트, 설치 등 장르를 망라해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신진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인적 교류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신진미술가들의 등용문이 되고 있는 이 미술관은 매년 5만명 가량의 젊은 예술가와 관광객이 몰리며 독일의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성당을 서점으로 활용한 도미니카넨 서점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시내에는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을 개조해 매년 70만명의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 독특한 서점이 있다.밖에서 보면 고색창연한 성당 모습 그대로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이 나타난다. 바로 도미니카넨 서점이다.건물을 떠받치는 10여개 기둥과 아치가 줄지어 있는 천장, 장엄한 느낌을 주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은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이 건물은 1294년 도미니코 수도회가 고딕 양식으로 세운 성당으로 1796년에 문을 닫은 뒤 마구간, 자전거 보관소, 전시장, 파티장 등 주민을 위한 공공장소로 이용했다.그러던 중 2005년 네덜란드 최대 서점 체인이 이곳을 서점으로 바꾸겠다고 나섰고, 마스트리흐트 시 정부는 성당 내외부 모두를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서점으로 활용하는데 동의했다.옛 성당 내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진행된 공사로 2006년 12월 14일 5만권의 장서를 갖춘 현대적인 서점으로 변모했으며, 영국 `가디언`이 2008년 이 서점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한 것을 비롯해 많은 언론매체가 앞다투어 소개하며 매년 70만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옛것을 보존하는 가운데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은 행정당국의 노력으로 도미니카넨 서점을 찾는 사람은 책을 고르거나 커피를 마시며 17세기 초 프레스코화(1619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일대기를 묘사한 13세기 벽화(1337년) 등 지나온 역사와 만날 수 있게 됐다.이제 우리도 도시가 지니고 있는 역사와 문화는 물론, 살고 있는 지역민의 애환을 반영한 도심 재창조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6-09-13

`抗日(항일)`과 `農道(농도)` 정체성 자부하는 경북이 중심에 나서야

재미 한인 교포 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852년부터 1905년까지 32개 민족의 하와이 외국 이민자들 가운데 한인들의 귀국과 본토 이주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는 조국이 일본에 의해 침략되고 있는 불안한 정세 속에서 가족들을 염려하거나 외세의 피압박에 절망한 나머지 이민의 길을 선택한 결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이후 본지의 기획특집이 보도되는 동안 공교롭게도 한국은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나라 안팎에서 극심한 갈등에 휩싸여 있다. 지금 한반도의 정세가 을사늑약(1905년) 즈음의 동북아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경고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망국의 시름에 백성이 타국으로 방랑길에 오른, 뼈 아픈 과거를 가지고도 과연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고 있는가. 미 중가주 한인 1세대의 잊혀진 역사를 재조명하고 기념하는 일은 시시각각 시련과 도전에 직면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자각하고 자강하게 하는데 한 계기가 될 것이다. `김형제상회` 김호 후원으로 빛 본 1959년 발간 `재미한인 50년사`해외독립운동史서 큰 의미 차지세번째로 많았던 경북출신 이민자독립 지원에 상당한 역할 담당미주 이민1세대 조명 당위성 충분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위상도 커져국내외 독립운동사 연구확대 기대□ 중가주 초기 한인사의 의의지난 2003년은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정부와 민간에서 모두 기념 저작과 발표가 봇물을 이룬 해였다. 당시 관련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됐다고 평가되는 단행본 `재미한인 50년사`의 발간 경위는 미국 중가주가 한국의 해외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재미 사학자 김원용(1976년 79세로 타계)이 514쪽 분량에 직접 손으로 써서 지난 1959년 미국 리들리시에서 발간한 이 역작의 후원자는 김호였다. 그는 미국의 천도복숭아 `넥타린`을 개발해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가가 된 김형순과 함께 `김형제상회`를 운영하며 조국을 지원한 정부 포상 독립유공자이다. 미주 이민 1세대인 이들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인종차별에 시달려가며 미국 본토에서 자수성가했다. 이후 미 주류 사회에 진출하는 한편 정치활동에 참여해 조국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한인사회를 형성하는 중심이 됐으며 지식인을 후원해 자신들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남겼다.본지는 이번 기획 취재로 지난 1903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농업 이민자 가운데 미 본토 이주를 택한 한인들이 북가주인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리들리와 다뉴바 일대 중가주로 유입된 이후 미주 최초의 한인타운이 형성되는 경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21년 김형제상회가 설립된 이후 1960년대까지 이 일대 농장에는 일평균 최대 500여명의 한인이 고용됐다. 1920년에 국내외 최초의 3.1운동기념식이 인접한 다뉴바에서 열린 배경에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각성된 이곳 한인사회는 최초의 여성애국단을 결성하고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왜간장 안먹기, 일제상품 배척운동을 폈다. 한인교회는 여름마다 국어학교를 열어 2세 민족교육을 했다.하지만 본국의 외면과 한인사회의 해체 속에서 은퇴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리들리와 다뉴바 한인묘지의 자료를 교민들이 분석한 결과 독신자는 3분의 2가 넘었다. 안창호나 이승만 같은 해외독립운동 명망가의 손에 매월 수입의 10%가량을 독립자금으로 맡겼지만 자신은 말년에 `여관`이라 불리운 합숙소에서 무연고자로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리들리의 마지막 한국인` 로버트 김에 따르면 이들의 유품을 챙기는 과정에서 침대나 카펫 아래서 꼬깃꼬깃하게 접은 지폐가 나와 주위를 더 슬프게 했다고 전한다. □ 경북도 정체성 확장 계기도경북도가 펴낸 경북독립운동사와 재미 사학자 등의 연구성과를 종합하면 지난 1903년부터 1905년까지 하와이로 공식 이민을 떠난 7천500여명 가운데 경북 출신은 세번째로 많았으며 그중 경주가 으뜸이었다. 공식적으로 경북 출신의 미주 이민자 중 독립유공자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무명의 한인 이주 노동자들이 비루한 삶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대열에 나서는데 경북 출신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동안 `항일`(抗日)과 `농도`(農道)를 정체성의 중심으로 삼아온 경상북도가 미주 한인 이민1세대를 재조명하고 기념하는 일은 당위성이 충분하다.특히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으로 위상이 확대된 상황에서 국내외 독립운동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희곤 관장이 경북 전역으로 사업 확장을 준비하고 있어 상당한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본지에 이번 해외취재보도를 제안한 LA 거주 재미 신학자 최덕희 씨는 “미 중가주 한인 이민선조들의 역사가 재조명되고 재미 교포들이 이를 추모하는 행사에 쓸 태극기가 고국에서 기증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면서 “나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자각을 주고 다음 세대에는 또 다른 길이 된다”고 말했다.지난 13일 오전 11시(현지 시각) 미국 리들리시 공공묘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 및 애국선열 추모식에는 25년째 행사를 주관해온 김명수 재미 중가주해병전우회장과 이자경 미주 한인이민역사연구가 등 교민들이 참석해 이민선조들을 위로했다. 이날 행사에 사용된 태극기는 본지 보도를 계기로 민족화합통일연대 박영근 공동대표 등 회원들의 기증으로 전달된 것이어서 그 의미를 더했다.▲ 김희곤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인터뷰 - 김희곤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관장 정부 포상 독립유공자수 `전국 최다`대구·경북은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경북의 위상은.△정부 포상 독립유공자 수가 2천101명으로 전국 최다이다. 그 다음인 경남, 전남 등의 1천명대와 비교하면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안동이 356명으로 가장 많다. 1905년부터 1910년말까지 전국의 순절자 70여명 중 가장 많은 18명이 경북에서 나왔다. 대구경북은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이다.- 경북출신의 대표적 미주 독립유공자는.△2012년까지 미주지역 독립유공자 중 경북은 모두 9명으로 주로 반 이승만 계열에 섰다. 영양 출신 권도인은 하와이에서 이승만 중심의 동지회, 안창호 중심의 대한인국민회 간의 갈등이 깊어지자 `합동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기업가로서 한국의 `발`을 응용한 차양을 개발해 조국독립에 많은 기부도 했다. 대구 출신 송종익은 안창호와 함께 흥사단의 주역이었다. 경주 출신 김성권은 하와이와 북미의 한인단체를 통합한 국민회 경축식(1909년 2월1일)에 하와이 총대표원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학자로서 해외독립운동사 연구에 업적이 많은데….△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편찬위원장을 역임하며 해외독립운동 유적지 조사를 주도했다. 이 사업은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는데 미주팀 등 7개팀이 구성돼 전세계 대상지 700여곳을 조사했다. 미국 리들리도 포함돼 조사단이 현지를 2번 방문했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의 운영 계획은.△경북도청 이전과 맞물린 김관용 도지사의 공약사업으로 지난 2014년 1월 명칭이 바뀌었다. 업무영역이 기존의 안동에서 23개 시군 전체로 확대됐지만 8명의 정 직원으로 예산, 규모 등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과도기이다. 오는 연말 신축 기념관이 완공되면 건물이 2.5배 확장된다. 이 곳은 대구경북 전체의 독립운동사를 포함하며 지금 안동의 독립운동가 1천명을 기념한 추모벽도 경북 전역을 망라할 것이다. 기존 건물에는 어린이박물관과 안동의 독립운동 대표마을을 기념할 것이다. 연수원도 2배 확장해 120명의 숙식이 가능해진다. 신흥무관학교를 재현하기 위해 서바이벌게임 체험장도 운영할 계획이다. 조상들의 자료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한 상담도 강화할 것이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끝글·사진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8-16

하드웨어가 아닌 콘텐츠로 승부, 예술·문화·지식의 보물창고로 거듭나야

소설가이자 도서출판 리젬의 대표인 안성호(47)씨는 가끔 황당한 전화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책 뿐 아니라 영화·그림·공연 등다양한 콘텐츠로 내실 채우고정보소통·네트워크 구축이 중요지역 공공도서관들이하나의 그물망으로 촘촘히 이어져시민들위한 문화향유 거점돼야글 싣는 순서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잊을만하면 도서관협회 등에서 연락이 온다. 책을 기부하라는 것이다. 물론 책을 도서관에 기부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쌓여있는 책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보다야 백번 나은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전화를 받을 때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도서관에 책을 기부하면) 세금 부분의 혜택도 받으니까. 하지만, 도서관을 짓는 데는 수십 억 혹은, 수백 억 원을 사용하면서 1~2만원짜리 책을 공짜로 얻으려는 태도는 당최 이해하기가 어렵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도서관에 강연을 가보면 `책을 배제한 행사`가 태반이다. 심지어 초청한 저자의 책이 없는 도서관도 있다. 부산은 세계적으로도 영화와 영화제의 도시로 이름이 높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부산에 영화전문 도서관이 있나? 부천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판타지 영화제를 열면서 판타지문학 도서관은 없다. 책을 공짜로 얻으려는 도서관측의 인식에 변화가 없다면, 이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이 요원하다.”안 대표의 말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처럼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도서관 운영시스템이 가장 선진화됐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시 관악구의 1년 도서구입 예산은 5억2천만 원 남짓. 240억 원을 들여 건축된 멋들어진 포항시 포은중앙도서관의 도서 구입예산은 3억5천만 원이다. `억원`이란 단위만으로 보면 적지 않은 금액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포은중앙도서관 도서구입비는 건물가의 70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포항 인구를 50만으로 보면 시민 1인에게 배정된 연간 도서 구입예산은 700원에 불과하다. 이는 과자 한 봉지도 사먹을 수 없는 돈이다. 책 중에서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는 시집 1권의 평균 가격은 8천원.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1년을 모아야 포항시민 한 명의 손에 시집 1권이 들려지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모아진 예산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책에 투자되는 금액이 이 정도라면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하게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국립도서관)이 보유한 책은 3천500만 권이다. 서울 관악구나 포항시의 수준으로 도서 구입예산을 책정한다면, 대체 얼마의 세월이 흘러야 프랑스 국립도서관만한 장서를 구비하게 될까? 계산도 되지 않는다.안 대표는 이런 말도 들려줬다. “책이 인간에게 길을 열어주던 시대가 끝났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이 책 외에 무엇에게서 세상을 배운단 말인가.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전화번호부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 만약 그런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엔 미래도 없다.”`책이 없는 도서관`이란 황당한 문제점 외에도 한국의 지방도시 도서관이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많다. 취재를 위해 프랑스 파리를 찾았을 때 퐁피두센터 내에 위치한 퐁피두도서관을 방문했다. 책은 물론, 영화와 그림을 만날 수 있고, 상설·특별 전시회와 다종다양한 문화공연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퐁피두센터에 입장하려고 10대 소년·소녀 수백 명이 족히 100m는 넘어 보이는 긴 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한국의 어떤 도서관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찾아가고 싶은 도서관, 뭔가 얻어낼 게 있는 도서관, 예술과 문화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도서관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트렌드다. 예산 부족과 여의치 않은 현실 상황을 이유로 이러한 트렌드의 완성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앞서 안 대표의 언급처럼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고.전 중앙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철화(51)씨는 1990년대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공부하며 보냈다.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고문서의 빛나는 보물창고”라고 정의한다. 서울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박 평론가는 유학 시절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가 말한다.“도서관은 건물의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외형이 아닌 책과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처럼 도서관 건물 자체에만 집착하는 태도는 19세기식 낡은 사고방식이다. 이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21세기는 정보의 소통과 네트워크의 효율적 구축이 중요한 시대 아닌가.”도서관의 핵심 콘텐츠가 `책`이라는 것은 재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책을 중심으로 채워져야 할 도서관이 외피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한국적 현상`은 어디에서 발원한 것일까? 이 문제에 관해 박철화 씨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다소 과장이 섞인 이야기겠지만, 퐁피두센터를 건립한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는 시 3천 편을 외우는 문학애호가였다. 그에게 문화예술센터의 건립은 단순히 치적을 위한 것이 아닌, 개인적으로 절박한 숙원사업이었다. 파리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갤러리, 공연장과 휴식공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퐁피두센터는 대중을 위한 최고의 `공적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긴 설명 없이도 간명하게 보여준다.”책을 중심으로 책과 관련된 각종 문화이벤트와 예술전시회가 펼쳐지는 도서관, 책을 매개로 미래를 설계하는 청년들이 북적거리는 도서관, 문화적 감각을 가지고 선진적 문화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나라, 책을 죽은 지식의 감옥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오랜 친구로 인식하는 도서관장이 있는 도시. 이는 모두가 꿈꾸는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경제적 발전과 솟아오르는 고층건물의 높이만으로 한 국가의 발전 정도를 측량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가 오고 있다. 아니 이미 도래했다. 한국의 지역 도서관은 이 시대를 어떤 자세로 맞아야할까?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루이스 보르헤스는 말했다. “만약에 천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선언적 문장에 가까운 보르헤스의 진술에 박철화 평론가는 이런 실질적인 조언을 보탰다. “도서관은 시민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거점이 돼야 한다. 개별적으로 운영돼온 인접한 지역의 공공도서관들이 하나의 그물망처럼 이어지는 것을 상상해본다. 책을 통해 꿈꾸는 내일, 결국 그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미래가 아닐까?”끝※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8-12

해외동포 피와 땀의 이민史 가슴 저릿한 울림으로 다가와

1903년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한국인들의 초기 농업이민사에는 국권 침탈 과정에서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 해외로까지 확산되는 생생한 면모들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이는 독립운동사 알기의 또 다른 방법이면서 국내 다문화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반듯한 창(窓)의 역할도 한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14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에 이르며 오는 2020년에는 물경 5%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을 우리 사회의 엄연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 이민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대하고 느끼는 동병상련의 마음에서도 비롯된다. 본지는 사계에서는 국내 유일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찾아 이민기념사업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농협중앙회 등 국내 공공 박물관으로 사업을 확산할 필요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인천 정체성의 또 다른 진면목역사책을 즐겨 읽어본 사람이라면 인천 제물포항 개항의 계기가 된 강화도조약이란 단어 앞에는 `일본의 운요호 사건을 핑계로 한 굴욕적인`이란 수식어가 상투적으로 붙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인천이 지닌 이미지는 외부에 어떤 것일까? 실리를 추구해 일견 야박해 보이기도 하는 인천사람들을 지칭하는 `짠물`에다 한국전쟁의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장군, 수출항인 인천항, 영종도 신공항에다 `먹방`의 시대가 되면서 `공화춘`으로 상징되는 차이나타운까지 겹쳐진다. 하지만 그 어느 것에서도 문화나 유장함과 같은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하지만 인천의 월미도에 자리잡은 한국이민사박물관에 한번 가보면 인천사람들의 자부심의 깊이와 인천만의 정체성에 대해 충격에 가까운 자각에 이르게 된다. 영남권에서 찾아가기란 `멀고 먼`인천에 접어들면 몸이 파김치가 되지만 월미도에 이르는 순간부터 놀라움의 연속이다. 인천시는 상륙작전의 현장이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대관람차를 비롯한 놀이시설이 있는 곳쯤으로 외부에 알려진 월미도를 어느 새 정부로 부터`관광특구`로 지정받아 놓은 것이다. 리모델링된 구항은 이제 경관이 뛰어난 수변시설지구로 탈바꿈해 테마파크와 전망대, 해양분야 마이스터고교인 국립 인천해사고등학교 등을 갖추고 있다.그중의 백미인 한국이민사박물관은 검단선사박물관, 송암미술관, 컴팩트스마트시티 등 인천시립박물관의 분관 중 한곳이다. 국내 최초의 관련 기관이라는 분관의 자부심은 본관인 시립박물관이 우리나라 최초(1946년)의 `공립박물관`이라는 위상에 뿌리를 대고 있다. 시립박물관은 현재 맥아더 동상 자리에 있던 옛 세창양행 사택 터에 시민들의 염원을 모아 개관했으나 상륙작전의 포화에 소실됐다. △`최초`위상 걸맞은 `콘텐트 파워`한국이민사박물관은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03년 3월 추진위원회가 결성돼 2008년 6월 개관했다. 박물관 측 홍보 브로슈어의 내용 대로 `우리 선조들의 해외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천 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의 뜻을 모아 건립`한 이력은 시설 내부 곳곳을 둘러보면 관람객에게 이심전심의 울림으로 전해진다.총 4개의 전시실은 최초의 하와이 이민(`미지의 세계로`), 생활상과 본토 이주(`극복과 정착`), 해외독립운동과 기타 중남미 이민(`또 다른 삶과 구국 염원`), 750만 해외동포의 위상(`세계 속의 대한인`) 등 테마별로 조성돼 있다. 전시물의 수준과 전시 방법, 설명의 완성도는 범작들의 공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민선 `코리아마루호`의 선상 메뉴, `집조`(여권), `방고`(하와이 사탕수수농장 노동자 식별표) 등 유물들은 학예사의 엄정한 고증과 세심한 큐레이팅으로 인해 저마다 제자리를 잡고 있다. 내부를 둘러보면 이민선조들이 `고립무원``창졸지간`에 맞닥뜨린 풍찬노숙의 시련에 마음이 저려오는 가운데 도대체 어떤 에너지가 이 박물관을 거쳐갔거나 재직 중인 구성원들을 움직였을까 하고 자문하기에 이른다. 기획을 맡았던 한 담당자에 의하면 가장 큰 도움은 재외동포들이었다. 이민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동포가 기증을 해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한 재외동포는 전시관의 하와이 당시 복원 마네킹이 한복 바지를 입고 있자 오류를 지적하며 청바지로 갈아 입히도록 조언하기도 했다. 그럴 것이다! 평범한 지식인이나 샐러리맨에 머물러도 웬만하면 흠이 없을 이 박물관의 사람들을 고양시킨 힘은 해외 시련 동포들의 피와 눈물이었을 것이다. 학예사들의 역량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미국 현지 취재 중 다뉴바 묘지에서 무연고자 김경선의 이름을 확인하고 고향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이름 세 글자만으로 그가 1904년 몽골리아호를 타고 하와이에 이민한 경주 노동동 출신임을 확인시켜 준 이는 이현아 학예사였다. 그는 기자가 출국에 앞서 하와이 이민자들의 전국 분포 통계를 문의하자 단행본`구한말 한인 하와이 이민`(인하대 출판부)의 해당 페이지를 복사해 턱 내놓았다. 평가가 너무 상찬인 감은 있으나 이 박물관의 태도도 남다르다. `지역사회와의 소통, 그리고 공존과 번영`. 평범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해보면 이는 실천되고 있다. 신은미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은 “그동안 주로 하와이와 중남미 이민 위주로 전시를 했지만 앞으로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 EU 등 전세계의 동포를 대상으로 기획 중인 특별전을 상설화하는 것이 중장기 목표”라며 “들어오는 이민자들에 대한 전시도 함께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협박물관, 농업 이주사 조명해야농협중앙회가 서울 충정로에 운영 중인 농협박물관은 전시물마다 풍부한 자금력이 흠뻑 배어 있는 시설이다. 하지만 이번 취재에서 한민족들이 뛰어난 `농업DNA`를 살려 미주와 러시아 연해주 등 해외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연구 및 수집한 결과들은 전시물에서 전혀 없었다. 미주 이민 1세대 중 천도복숭아인 넥타린을 개발해 거부가 된 김형순, `라이스 킹`김종림 등 농업 분야의 성공 사례는 국내 농업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활용할 가치가 충분한 만큼 농협이 중심이 돼 재조명하고 기념해야 한다.학문적 성과와 관련해서도 농협박물관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농협중앙회 전체에서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로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등에 문의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문헌 조사의 결과로 볼 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학계가 남아 있지만 농협중앙회 조차 성과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면 관련 연구는 적어도 체계적이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글·사진/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8-08

포항을 항해하는 지식의 선박을 꿈꾸다

“저 안에 제대로 된 콘텐츠만 채워진다면, 도서관의 외형은 한국 아니, 세계 어디다 내놔도 빠지지 않겠는 걸.”지난달 포항을 찾은 소설가 조용호(55)씨가 포은중앙도서관을 보며 한 말이다. 조 씨는 남미·아프리카 문학기행서인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을 필두로, 소설집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떠다니네` 기행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등을 쓴 작가. 소년시절부터 중년에 이른 오늘까지 수십 년을 책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니 도서관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글 싣는 순서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포은·대잠도서관 필두 포항시립도서관 총 45개 보유포항문화원·어린이영어도서관 등 특화 도서관도 인기지역별 특색있는 프로그램·이벤트 기획 `주민에 더 가까이`포은, 개관 1년차…보유 장서수 적고 휴식공간·열람석 부족서적 상호대차서비스 가능해도 4~5일 시간 소요 개선 시급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내실 다져야조 작가의 말처럼 포항시 북구 삼호로에 위치한 포은중앙도서관의 `하드웨어`는 곱고 아름답다. 출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며 `지혜를 싣고 항해하는 날렵한 선박`처럼 느껴지고, 달리 보면 지식을 관장하는 신화 속 `거대한 동물의 알`처럼도 보인다.지난해 10월 개관한 이 도서관은 포항 북부의 새로운 랜드마크 역할까지도 하고 있다. 지하1층·지상6층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683석의 열람석과 7개의 강의실이 갖춰져 있으며, 만화자료실과 디지털자료실에는 8천 권에 육박하는 만화책과 2천500여 점이 넘는 극영화·다큐멘터리 DVD가 구비돼 있어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개관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터라 보유 장서수가 아직은 다소 적고, 휴식공간의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학원 강사로 일하며 중·고교생들을 자주 만나는 A씨(31)는 “열람석을 줄이는 것이 현대 도서관의 추세인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학생들과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은 오랜 시간 앉아서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을 원한다. 그런 요구도 도서관 관계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시청 이전 등으로 인구가 줄고 있는 포항 북구에 젊은이들이 오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으니 A씨의 말에도 귀 기울일 필요성은 충분하다.포은중앙도서관의 휴식공간 부족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역시 젊은층이다. 이들은 “저렴한 가격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과 책을 읽다가 친구들과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는 휴게실이 도서관 내에 설치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시간 도서관에 머물며 책과 영화를 보고, 각종 예술관련 행사까지를 즐기기 위해서는 가벼운 식사를 해결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하다.오늘도 포은중앙도서관을 포함한 포항시 시립도서관 직원 32명은 쏟아지는 도서관 관련 각종 민원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일까를 고민하고 있다.인구 50여만 명이 생활하는 포항시의 시립도서관 숫자는 읍·면·동에 자리한 `작은도서관` 38개소까지 포함해 모두 45개. 이중 포은중앙도서관과 시청 내에 위치한 대잠도서관이 메인도서관 격이다.열람실만 갖춘 포항문화원과 어린이영어도서관 등은 이른바 `특화된 도서관`.11만 권의 장서를 갖춘 포은중앙도서관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4천664명, 13만 권의 책이 사람들을 기다리는 대잠도서관엔 하루에 1천700여 명이 찾아온다.포항 도서관 전체의 연평균 방문자 수는 약 125만7천여 명. 포항 전체 시립도서관의 장서를 모두 합하면 70만 권에 육박한다. 포항시 도서관이 갖춘 외양이 이 정도라면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내실을 갖춰가고 있을까. 현대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벗어나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 추세다. 지난 6월 취재를 위해 찾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도서관은 그러한 흐름을 잘 보여줬다. 갤러리와 서점, 자연스레 형성된 외부의 공연장과 영화관은 도서관을 찾는 남녀노소의 다양한 예술욕구를 효과적으로 채워주고 있었다.포항의 도서관들 역시 “책을 중심으로 도서관만이 진행할 수 있는 독창적이고 전문적인 행사를 늘려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포은중앙도서관과 대잠도서관은 물론 곳곳에 위치한 작은도서관에서도 특색 있는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기획해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포항시립도서관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조미령 씨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올 한해 2억2천만 원의 예산도 배정됐다. 포항시에 산재한 도서관들은 개별적인 특성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 포은중앙도서관이 만화와 예술관련 서적에 강세를 보인다면, 대잠도서관에는 시집과 소설집 등 문학서적이 많고, 영암도서관과 동해석곡도서관엔 사회과학 도서와 철학책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그런 이유로 각각의 도서관은 이를 염두에 두고 이벤트와 강연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나름의 효율성 제고인 셈이다.포은중앙도서관, 영암도서관, 오천도서관에서 연 72회에 걸쳐 진행되는 `북 스타트`는 “어린이들이 책과 함께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유아 대상 프로그램으로 적지 않은 부모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초등학생을 위한 `학년별 독서회`와 `방학독서교실`,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방학 인문학 교실`과 성인들이 참여하는 각종 문화강좌와 `주부독서회` 등도 포항 도서관이 진행하는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들이다.포항시 도서관에서 기획한 이벤트 중에선 큰 인기를 끈 것도 있었다. 지난 4월 열린 `창조만화페스티벌: 만화를 통한 문화축제`에는 만화가 이현세 씨가 초대됐고, 그의 높은 인기 덕분인지 3일간의 페스티벌 기간 동안 3만2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도서관을 찾았다. 이외에도 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한 후 이를 비교해가며 토론하는 `영화, 책 숲을 거닐다`도 도서관 방문자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하나다. 이처럼 외형과 내면 모두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포항의 도서관들이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기자는 도서관시스템의 선진화가 전국에서 가장 잘 이뤄져있다고 평가받는 서울시 관악구에서 4년 가까이 살았다. 관악구에선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에서 신청해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서 받아볼 수 있다.포항 역시 `상호대차 서비스`를 통해 이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관악구가 책 신청에서부터 대출까지 이틀이 걸린다면, 포항의 경우는 4~5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또한, 24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포은중앙도서관의 규모에 어울리는 다양한 책을 갖춰나가는 것도 긴급한 과제다. `읽고 싶은 책이 없는 도서관`은 `공이 없는 축구장`과 다를 게 없다.젊은 도서관 방문자들이 원하고 있는 스낵바와 소규모 카페테리아의 개설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결국 그들이 앞으로도 도서관을 찾을 주요 방문객인 동시에 `젊은 포항 도서관`을 만들어갈 주역이기 때문이다.포은중앙도서관 6층에는 `둥지마루`라는 이름의 휴식공간이 있다. 거기서 바라보면 푸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배`를 닮은 포은중앙도서관에 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철학, 실용학문과 예술, 거기에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를 모두 싣고 `책 읽는 미래 포항`을 위해 닻을 올려야 할 때다.글/홍성식 기자·사진/이용선 기자

2016-08-05

털없는 복숭아 `넥타린`으로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벼농사 중심의 농업국가이다. 봉건주의 조선을 지탱한 양대 축은 이데올로기로는 유교(儒敎)요, 산업에서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상징되는 농업이었다. 조선시대에 조정이 세종대에 농사직설, 효종대에 농가집성, 숙종대에 산림경제 등 국가적인 농법서 편찬사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한 것은 애민(愛民)의 발로이면서도 국부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선의 백성은 모두 군사로 육성한다는 국가적 목표 아래 군역에 고통받기도 하고, 세원(稅原)으로서 농토에 붙박혀 떠날 수가 없는 `가렴주구`,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농업이야 말로 한반도의 백성에게는 가족을 먹여살릴 하늘과 다름 없는 쌀을 생산하는 중요한 기술이었기에 끊임 없이 매달려 궁리한 결과, `농업DNA`는 한국인의 한 특성이 됐다. 망국의 한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던 미주 이민 한인 가운데 농업으로 대륙에 이름을 아로새긴 명사들이 수두룩하게 배출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경남 통영출신 통역관 김형순 미국의 천도복숭아 개발 성공`김형제상회` 설립 美전역 판매독립운동·구호사업에도 헌신동업자 김호, 해방 후 애국가 소개숙주나물 통조림으로 富 일군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라이스 킹`으로 알려진 김종림도성공한 초기 이민 한인 이름 올려□ 미주 최초의 한인 백만장자 김형순캘리포니아 리들리와 다뉴바 일대에 드넓게 펼쳐진 과일농장을 지나다보면 우리나라의 국도변처럼 생산자들이 운전자를 상대로 직거래를 하기 위해 세워놓은 입간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넥타린`(Nectarine)이라는 생소한 과일이름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바로 `미국의 천도복숭아`다.미국인들이 `털 없는 복숭아`로 부르는 이 신품종의 개발자는 경남 통영 출신의 김형순(Harry S. Kim, 1886~1977)이다.통역관으로서 1903년 첫 이민선 갤릭호를 탄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본토에 입국한 다음 1916년 리들리에 정착해 대학교수의 도움으로 넥타린을 개발했다. 미국인들은 복숭아의 잔털에 특히 알레르기가 심하다는 점에 착안한 그는 조선의 천도복숭아를 염두에 두고 복숭아와 자두를 육종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처음에는 묘목을 판매하던 김형순은 아예 `김형제상회`(Kim Brothers, Inc.,)를 통해 미 대륙 전역에 넥타린을 판매함으로써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초기에 하와이를 거쳐 본토에 입국한 한인들은 처음에는 주로 `철새노동자`로서 수확철마다 리들리와 다뉴바에 거주했다. 김형순이 김호(본명 김정진, 1884~1968)와 공동설립한 김형제상회라는 든든한 언덕은 리들리에 한인 타운이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두 김씨는 조국을 위해 해방 전에는 독립운동을, 후에는 구호사업에 헌신했다. 현재 리들리시에 남아 있는 옛 한인장로교회(현재 멕시코교회)는 김형순이 기부한 대지 위에 한인들이 1938년 직접 건립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미국인교회와 라이온스클럽에서 기금과 구호물자를 지원받아 전쟁고아와 난민을 도왔다. 이번 취재에서 확인한 그의 대저택은 사후 40여년이 지났으나 옛 주인의 명성을 확인케 해주는 건축물이었다.반면 그의 동업자였던 김호의 저택은 길건너편에 단촐한 규모로서 소박한 성품을 짐작케 해줬다. 그는 한때 여운형과 친분을 맺었으며 배재와 이화학당에서 수학, 물리, 영어교사를 지내고 도미해 해방 후에는 한국에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소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 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세워졌다. □ 유일한 박사도 농업으로 성공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1895~1971)박사는 근검과 성실, 투명 경영과 사회헌신을 위한 기업가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한국의 기부문화에 원조격의 모델이 돼 왔다. 하지만 그가 도미 역정의 초기에 미국에서 생소한 숙주나물로 부를 일군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일한은 1922년 숙주나물 등을 통조림에 넣어 파는 라초이회사를 설립해 6년 만에 자산 200만 달러 규모의 회사로 키워 `숙주나물 킹(King)`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라이스 킹`(Rice King) 김종림(1884~1973)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1907년 23세에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철도 노동자로 일하다가 가주로 이주해 1914년 벼농사에 뛰어들었다. 당시 쌀을 재배하지 않던 가주였지만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수요가 폭증해 연간 8만 달러(현재 가치 100만 달러)를 벌 만큼 거부가 됐다. 그가 1920년 2월 북가주 윌로우스 지역에 5만 달러(현재 가치 60만 달러)를 기부해 창설한 `한인비행학교`는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가 됐다.이민선조를 기리는 재미 한인들 `리들리의 마지막 한국인` 로버트 김버려진 한인묘지 발견 뒤 외부에 알려김명수 재미 중가주 해병대전우회장24년째 매년 2차례 한인묘지 헌화봉사한인들의 미국 이민사에서 중요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중가주 초기 한인들의 숨겨진 역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졌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국(故國)의 역사연구와 추모사업에서 소외돼 왔다. 이들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진 계기는 스스로 이민 길의 험로를 경험했기에 타국의 묘지 한켠에 쓸쓸하게 방치돼 있는 이민선조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주머니를 털어 조촐한 헌화에서 시작해 추모사업으로 발전시켜온 한인 후예들의 노력 때문이었다.지난 6월13일 로스앤젤레스시 써니힐스 양로원에서 만난 로버트 김(김경옥·93·사진)은 `리들리의 마지막 한국인`으로 불릴 만큼 중가주 한인사의 산증인이다. 그의 부친 김유호는 1903년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에 첫 입도한 최초 이민자이다. `사진결혼`부부의 이민2세인 그는 귀국을 선택한 아버지에 의해 식민지 조선에서 중국을 거쳐 미군속으로서 패망한 일본, 다시 하와이를 거쳐 본토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부침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1960년경 리들리에 정착해 인접한 다뉴바의 학교재단에서 회계행정 담당으로 22년간의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결과 리들리와 다뉴바의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사가 됐으며 김형순과 김호 등 한인 명사들과 많은 일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가 이민선조들의 역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이사 직후 그의 아내가 집 근처의 묘지를 산책하면서 비롯됐다.“하루는 아내가 집으로 막 울면서 들어왔어요. 미국인들의 공동묘지 한구석에 낯선 이름들이 있어서 읽어보니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거예요. 묘비에 부인이 없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함께 집 정원의 꽃들을 꺾어서 무덤마다 헌화하기 시작했지요.” 그는 1남2녀의 자녀를 모두 성공시키고 부인이 작고한 뒤 LA의 양로원에 홀로 거주하고 있다. 노구에도 불구하고 성성한 눈빛과 완벽에 가까운 한국어가 인상 깊은 로버트 김은 “죽으면 리들리에 묻히고 싶지만 가족묘가 있는 하와이로 가야 할 것 같다”며 “학생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철저하게 가르쳐달라”고 당부했다. 로버트 김의 오랜 임무는 김명수(76) 재미 중가주해병대전우회 회장에게 이어졌다. 해병대 97기인 그는 1987년 12월 LA로 이민해 의류사업 등에 종사하던 중 1992년 2월 로버트 김과 함께 리들리묘지를 첫 방문했다. 이후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와 8·15광복절 등 매년 2차례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의 관심도 없이 요즘도 종이에 직접 태극기를 그려 넣어 189기의 무덤에 꽂고 있다.김명수씨는 “저 무덤에 누워 계신 이민선조들은 모두 자갈밭을 개간하신 분들”이라며 “그 위에 지금 우리가 씨를 뿌리고 있으며 수확의 열매는 우리의 후손들이 누리게 될 것이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글·사진/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8-01

선진시스템·문학강의·연주회도… 작지만 알찬 관악도서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는 김민석(30)씨는 오랜 취업준비 끝에 최근 A기업에 입사했다. 맡은 업무와 회사 분위기 파악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김 씨. 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의 취미인 `독서`의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런 김 씨에게 이용자 친화적인 관악구의 효율적인 도서관시스템은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홈페이지 통해 책 신청하고원하는 장소에서 받아볼수 있어55만권 책 데이터베이스화도서대출·반납 편리하게도서관 신축보다 민간자본 유치해유휴공간 활용, 내실부터 다져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도서관다문화 가족위한 프로그램까지하드웨어 아닌 소프트웨어로 승부글 싣는 순서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관악구 도서관 통합홈페이지에 접속해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출퇴근 시 이용하는 지하철 신림역에서 그 책을 바로 찾아볼 수 있는 것. 반납 또한 지하철역에 설치된 도서반납기를 이용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책을 받아볼 수 있는 관악구의 선진적인 도서관 이용체제.구 내 40개의 도서관이 소장한 55만 권의 책을 데이터베이스화 해 구민이 평소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 도서 대출과 반납이 가능하도록 만든 관악구의 혁신은 국내외 많은 도서관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 관악구가 타 지자체가 부러워하는 `도서관 시스템`을 갖춘 배경에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유종필 씨가 있다. `세계 도서관 기행` 의 저자이기도 한 유 씨가 관악구청장으로 취임한 2010년부터 현재까지 관악구의 도서관 시스템은 해를 거르지 않고 업그레이드되고 있다.2009년 5개에 불과했던 관악구의 도서관은 2014년엔 43개로 늘었고, 각각의 도서관이 효율적 네트워크로 연결됐다. 이를 통해 자신의 집 가까운 도서관에는 없는 책도 신청을 통해 이틀 안에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이 업무를 위해 관악구는 6명의 전담직원을 운용한다. 이들은 몸이 불편해 도서관까지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의 집으로 책을 배달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지식 도시락 배달`로 명명된 이 서비스를 통해 지난해 관악구민이 읽은 책은 도합 36만 권. 그 책들을 쌓으면 에베레스트산(8천848m) 턱밑까지 도달하는 약 7천m 높이가 된다. “걸어서 10분이면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관악구청 도서관과 직원들이 지난 6년간 마음속에 담아온 슬로건이다. 관악구에 자리한 43개 도서관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승부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관악구청 도서관과 임병재 도서관운영팀장은 “빠듯한 예산으로 무작정 도서관을 신축하기는 현실상 힘들다. 대신 민간자본을 유치하고, 유휴 공간을 활용해 작지만 내실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구 관악구청 청사 1층 여유공간을 활용해 만든 `용꿈 꾸는 작은도서관`, 공유지를 활용해 환경친화적으로 꾸민 `도림천에서 용나는 작은도서관`, 방치돼 있던 관악산도시자연공원 내 매표소를 리모델링한 `관악산 시(詩)도서관` 등은 임 팀장이 설명이 현실화 된 생생한 사례다.신림로3길에 위치한 관악문화도서관(지하2층·지상5층)은 17만 권의 도서를 갖춘 관악구의 메인 도서관이다. 서울대학교와 지척인 여기에선 입구에 늘어선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 혹은 벤치에서 책을 읽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이 도서관 외에도 관악구엔 4개의 공공도서관과 33개의 소규모 도서관이 있고, 지하철 신림역·봉천역·서울대입구역 등엔 `무인 도서예약·대출기`와 `스마트도서관 자동반납기`가 설치돼 있다.3년째 관악구에 거주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는 B씨는 “책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도 좋지만, 더 매력적인 건 도서관에서 각종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관악구 내 공공도서관 5곳에서 진행된 `길 위의 인문학` `다산 정약용 이야기` `명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시험 준비에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바쁜 B씨에게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선물했다.여기에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도 관악구청이 내세우는 문화행사다. 분기별로 시인과 소설가 등을 초청해 허심탄회한 이야기의 시간을 나누는 북콘서트. 독자들이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 앞에서 작품을 낭송하고, 연주회와 작가 사인회 등이 동시에 열리는 이 행사에는 작년에만 1천150명이 참석했다.`책과 구민을 보다 가까이`하려는 관악구청의 노력은 이것만이 아니다. 임병재 팀장은 부연한다. “주민센터 내에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다문화가족을 위한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어린 시절부터 책과 함께 하는 환경조성을 위해 `북 스타트 운동(아이들을 위한 독서교육 프로그램)`도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도 관악구의 도서관시스템은 끊임없이 발전할 겁니다.” 이런 형태의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췄으니, 이를 보고 배우려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시도가 이어지는 건 명약관화한 일. 2016년 상반기에만 부산광역시 남구청, 전라북도 문화예술과 도서관문화시설팀, 완주군 교육지원과 도서관팀, 서울시 중구청 교육체육과, 거창군 문화관광과, 안성시립중앙도서관, 동대문구 문화체육과가 관악구 도서관과를 찾아 도서관 운영과 문화행사·이벤트 진행의 노하우를 배워갔다.지구 전체가 인터넷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된 세상이니 외국에서도 관악구의 도서관 체제와 독서·문화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좋은 것을 모방하려는 노력은 외국도 국내와 다르지 않았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관악구로 시찰단을 보냈고,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교수들을 보내 “우리도 관악구의 도서관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줬다. 또한, 중국의 CCTV와 일본의 `동경신문` `주니치신문` 등은 `특색 있는 한국의 도서관`, `지식복지를 추진하는 미래 창조 도서관`이란 제목 아래 관악구의 도서관을 다룬 방송과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유종필 구청장은 “사람이 곧 미래”라고 말한다. 그 사람과 미래에 대한 투자의 방점을 `책`과 `도서관`에 찍고 있는 관악구의 내일을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글/홍성식 기자사진제공/ 구창웅

2016-07-29

수많은 해외 독립유공자들, 독신으로 비참하게 생 마쳐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를 일컫는 중가주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로스앤젤레스(LA) 한인사회로 상징되는 남가주와 샌프란시스코가 중심인 북가주는 미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인듯 우리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중가주는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이어진 하와이 농업 이민 1세대 한인들이 북가주를 통해 미 본토에 입국해 남부로 이동하며 전역에 250만 교민을 형성하기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해외독립운동 사적지이다. 오죽했으면 교민사회에서 `미주 한인 이민역사의 성지`라는 평가까지 나오겠는가. 이들은 비록 역사에서 이제 거의 잊혀졌지만 비천한 신분과 가난 속에서도 이름 없는 해외독립 유공자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제 리들리와 다뉴바를 중심으로 한 중가주 한인 이민사를 복원하는 일은 과거의 거울에 내일의 길을 비추는 모색으로서 그 의의가 충분하다. 하와이 첫 공식 이민자 중 2천명 美 본토 밟아당시 한인 전체 이민자 3분의 1이 중가주 정착리들리엔 안창호·다뉴바엔 이승만이 거점 삼아경쟁적으로 관리하며 독립자금 거둬 들여이민 1세대 중 경주출신 매장기록 유일한 김경선29세 청년 시절부터 농장 날품팔이로 늙어간 뒤환갑 나이에 스스로 목숨 버린 한많은 生 안타까워□ `포와`에서 `상항` 거쳐 `딴유바`까지자동차로 LA를 출발해 우리 고속도로와 같은 5번과 99번 프리웨이를 3시간 가량 달리면 다뉴바이며 다시 30분을 더 가면 리들리가 나온다.전형적인 농촌도시인 이곳은 킹스리버(King`s River)가 공급하는 풍부한 용수와 일조량,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분지의 지형으로 인해 `미국의 과일바구니`로 불릴 만큼 과수 농업이 발달돼 있다.이번 현지 취재 기간 중 직접 차를 몰아 달려본 도로변에는 복숭아와 오렌지, 아몬드 등 갖가지 유실수가 끝 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해보면 나무 아래에는 노동력 부족으로 수확되지 않은 낙과들이 부지기수였다. 이제는 히스패닉들도 취업을 주저할 것 같은 이 과일 수확 임노동자들의 선조는 지난 1904~1905년께부터 시작해 1930년대 무렵, 한때 300~500명이 모여 살았던 한인 이민자였다. LA 거주 사학자 이자경씨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른바 `포와`(하와이)에서 근로기간을 마친 한인 임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귀국이나 하와이 잔류, 미 본토 입국 등 다음 행선지를 선택할 수가 있었다.그 결과 하와이 첫 공식 한인 이민자 7천500여명 중 1천500~2천여명이 `상항`(샌프란시스코)을 통해 미 본토를 밟았다. 이들은 곧바로 솔트레이크시티 등의 대륙횡단철도 공사현장이나 덴버의 광산에서 중노동을 하거나, 하루 일당 1~2달러로 다소 낮지만 리들리와 `딴유바`(다뉴바)의 포도나 오렌지 농장에서 과일 수확을 했다.극히 드문 사례지만 1909년에는 박제순이 유타주에서 현지인의 토지를 빌려 사탕수수를 직접 재배하기도 했다. 한인들은 본토 입국 후 초기 5년 동안 성실하게 삶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국민회와 동지회의 주무대중가주 한인 커뮤니티의 규모가 가주 전체 한인의 3분의 1을 점할 만큼 성장하자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양대 거두였던 도산 안창호와 우남 이승만이 지나칠 리가 없었다. 이들은 각기 노선을 달리해 사사건건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나 경쟁적으로 리들리와 다뉴바의 한인사회에 정성을 쏟았다.결국 리들리는 안창호의 계열인 대한민국민회가, 다뉴바는 이승만이 중심인 동지회가 각각 거점으로 삼기에 이르렀다.이 때의 감정으로 인해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자 리들리의 한인들은 한국 입국 비자를 받지 못할 만큼 불이익을 받았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이다.□ 독립지원 이면에 일탈의 양면도상해 임시정부의 활동은 미주 한인들의 독립성금에 크게 의존할 만큼 공헌도가 컸다. 대부분이 독신자인 한인 노동자들은 `먹고 남은 것은 조국 광복운동 후원에 바쳤다`(김원용 저 `재미 한인 50년사`)고 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힘든 노동과 가족의 위안도 받을 수 없었던 처지에서 이들 가운데 일부는 도박과 마약에 빠지고 살인과 폭행 등 범죄와 일탈의 심각성을 보이기도 했다.결국 노동력을 상실한 은퇴 한인 이민자들은 리들리 한인교회 앞 한인이 운영하던 하숙집에 집단 거주하며 열악한 의식주로 연명하다가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임종 조차 지킬 이가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 경주사람 김경선의 흔적을 찾아서이번 취재에서 리들리와 다뉴바의 공동묘지에 안장된 미주 한인 이민1세대 가운데 매장기록이 확인된 유일한 경북 경주 출신 김경선본지 18일자 1면 보도의 행적을 거슬러 가는 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미국 중가주의 작은 농촌도시 다뉴바의 공동묘지에 쓸쓸히 잠든 그의 존재는 지난 6월14일(현지 시간) 오후 현지 안내를 맡은 한 교민이 건네준 명단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애국선열 명단`제목을 단 11쪽 분량의 이 묘지 기록에 기재된 한인 1세대 매장자는 리들리 189명, 다뉴바 58명 등 모두 247명으로 생몰 연대와 출신지, 사인(死因) 등이 담겨 있었다. 물론 성씨만 기재되는 등 미확인자도 적지 않았다.출국 전 이미 국내 취재에서 제물포항을 통해 하와이로 농업이민을 떠난 7천500여명의 출신지 중 경상도가 세 번째이며 그중에서도 경주 출신이 가장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자의 눈에 김경선이 띈 것이다.유일하게 `경주`가 기재된 그는 1874년생으로 1934년 4월28일, 만 59세에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생을 접었으며 `중가주 독립당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기록돼 있었다.한인 매장자 가운데 그리 드문 사인은 아니었으나 확인된 유일한 경주사람이니 자연히 행적에 관심이 갔다. 이어 다음날 방문한 다뉴바에서 묘비 하나로 남은 그를 뭉클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이 쓸쓸한 사내는 누구이며 어떤 일이 있었길래 머나먼 고국의 나이 60세가 된 해에 생을 버렸던 걸까?18일 귀국한 뒤 곧바로 경주시에 취재를 했으나 동명이인은 있을 뿐 1874년생은 없었다. 미심쩍은 생각에 포항시에도 문의했으나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번 취재의 시작 지점이었던 인천의 한국이민사박물관에 도움을 청했다. 얼마 뒤 이메일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같은 이름이 모두 8명 확인되지만 출생년도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첫 보도를 해야 하는 11일이 코앞에 다가오는데 속이 탔다. 하지만 흔한 이름이 아닌데도 8명씩이나 확인된다는 점에 의문이 들어 다시 용기를 내어 재확인을 요구했다. 며칠 뒤 이현아 학예사로부터 놀라운 답변이 왔다. `미국 측 도착자 명단에서 재확인을 해보았더니 경주시가 아닌 상세 거주지로 □ Dong으로 기록된 김경선이라는 이름이 검색`된다는 것이다. 이 학예사는 `1904년 9월 26일 몽골리아(Mongolia)호로 하와이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도 덧붙였다.그렇다. 김경선이 경주 시내인 노동동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확실해졌다. 29세의 청년으로 하와이로 건너간 그는 다시 본토로 건너가 농장의 날품팔이로 늙어간 뒤 끝내 외로운 삶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그렇다면 이쯤에서 그에 대한 더 이상의 확인은 미뤄두기로 했다. 잘만 하면 그의 혈족들을 찾아 보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그가 마지막 눈을 감던 순간, 먼 시절 이역만리 경주의 토함산에 걸렸던 뭉개구름과 알천변의 물놀이, 반월성지의 첫사랑을 그리워했으리라는 추모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비록 자신은 비루한 처지 속에서 떠돌이로 생을 마쳤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가난한 주머니를 열었으며 이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후손들이 있다면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7-25

세상의 모든 예술 만나는 파리시민 사랑방 같은 도서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에피소드부터 하나. 10대 청소년들이 끝도 보이지 않게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1층 안내데스크에서 “퐁피두도서관 담당자와 5분쯤 인터뷰가 가능한가?”라고 물었다.잠시 후 세련된 옷차림의 중년여성이 계단을 통해 2층에서 내려왔다. 언론담당관 크리스틴 카리에였다. 예고 없는 방문이었음에도 그녀는 친절했다. 약속했던 5분의 인터뷰는 15분으로 길어졌다.1977년 국립예술문화센터와 함께 개관 소장도서 40만권 한정해 신간 로테이션 빠르게영화·음악 등 예술·문화 전 장르 만날수 있어카페·영화관·비디오 자료·갤러리 전시실 등20~30대 젊은 층의 전폭적 사랑받는 도서관글 싣는 순서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퐁피두도서관 언론담당관 크리스틴 카리에.재밌는 사건(?)은 인터뷰가 끝난 후 일어났다. 통역자를 통해 크리스틴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 “한국엔 국립도서관이 몇 개나 되느냐?” “한국 도서관의 관리주체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다오.” “서울과 지방 도서관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누가 기자이고, 누가 언론담당관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3개의 매체를 거치며 10년 넘게 기자를 해왔지만, 이처럼 `호기심 많은` 취재원은 처음이었다. 아는 한도 내에서 질문에 답해주며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게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임하는 모습이고, 많은 책을 읽으며 살아온 자의 지적 호기심이구나.`크리스틴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퐁피두도서관은 1977년 개관한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와 함께 생겨났다.철골과 배관을 숨기지 않고 외부로 노출한 대담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퐁피두센터는 그 독특한 미적 완성도로도 이름이 높아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등과 함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한 번은 들러보고 싶어 하는 곳. “책, 음악,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더불어 숨 쉬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퐁피두도서관은 바로 이 퐁피두센터 2~3층에 자리했다. 크리스틴의 설명에 따르자면 “도서관을 향한 프랑스인의 현대적 요구에 가장 효과적으로 답하는 공간”이 바로 퐁피두도서관이다.소장도서를 40만 권 내외로 한정시켜, 출간시점이 오래된 책은 외부로 내보내고 항상 새로운 소설과 시집, 미술과 음악 관련 신간들을 채워 넣는 퐁피두도서관의 시스템은 젊은층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0대와 20대 방문자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프랑스의 어떤 도서관보다 늦게 문을 닫는 것도 장점이다. 퐁피두도서관이 불을 끄는 시간은 밤 10시. 이 원칙은 일주일에 단 하루,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휴일과 국경일에도 지켜진다. 비유를 해보자. 프랑스국립도서관(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이 3천500만 권에 이르는 희귀한 고서적과 고문서를 소유한 점잖은 교수라면, 퐁피두도서관은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몸을 뒤채는 쾌활한 학생이라 할 수 있다. 퐁피두센터는 젊은이들의 `지적 열망`에 효과적으로 답하는 공간 배치로도 이름이 높다. 1층에는 카페테라스, 영화관, 서점이 위치해 있고 2~3층은 열람실과 학습실, 비디오 및 음향 자료실과 프레스 미디어실로 꾸몄다. 여기에 4층과 5층엔 갤러리와 그래픽아트·조각 전시실이 자리했다. 퐁피두센터 한 곳에서 책은 물론 영화와 음악, 미술까지 예술의 거의 전 장르와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게 무료라는 것도 주머니 가벼운 소년·소녀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틴이 가지고 있는 퐁피두도서관에 대한 자부심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인구대비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북유럽이 더 많아요. 하지만, 북유럽은 춥고 흐린 날씨 탓에 도서관이 `따뜻한 동네 카페`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사교공간으로서의 비중이 더 큰 거죠. 아마 순수하게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오는 이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더 많을 걸요.” 환하게 웃어 보인 크리스틴이 말을 이어갔다.“프랑스는 국가가 운영하는 도서관만이 아닌, 대학 도서관과 지역의 민간도서관도 인프라가 좋은 편이죠. 거기서 체계적인 도서관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관한 도움을 요청하면, 파리에서 전문가가 파견되기도 한답니다.”내침 김에 도서관과 책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이 여성에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다행히 기자도 들어본 이름이 나왔다.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프랑스 소설가 실비 제르맹(Sylvie Germain). 한국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라는 작품을 번역·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당연지사 “왜 그의 소설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노래하듯 들려준 크리스틴의 답변이 잘 쓰인 한 편의 프랑스 시 같았다. “외로움에 대한 해석이 독특해요. 어쩔 수 없는 생의 비극적 정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게 좋았죠. 게다가 슬픔에 접근할 때도 문장은 한없이 아름다워요. 그러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취재와 인터뷰를 마치고 퐁피두센터 앞 광장으로 나왔다. 햇살이 제법 따가운데도 젊은이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이야기하거나 광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소규모 공연을 지켜보느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거기서 만난 프랑스 소녀 소피(18)와 소년 루카스(17)는 “퐁피두센터 안에선 책도 읽고 영화와 전시회도 보고 친구랑 아이스크림도 먹어요. 이렇게 광장으로 나와선 형과 누나들의 악기 연주와 마임(Mime)을 보기도 하죠. 아저씨도 파리를 즐겨보세요”라는 말로 기자를 즐겁게 했다.앞으로 20~30년 후쯤에는 소피와 루카스의 아들·딸도 퐁피두센터와 그 앞 광장에서 책, 음악, 미술, 공연과 함께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낼 것이다. 바로 그런 청춘시절의 경험이 그들을 예술을 알고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시키지 않을까.※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글/홍성식 기자·사진/이준성 기자

2016-07-22

쇠퇴한 중앙동에 복합개발사업 옛 활기 되찾을 무한가능성 열려

지난 2015년 4월 1일 포항시 북구 대흥동 구도심에 위치한 구 포항역은 역사이전과 함께 지난 100년간 수행했던 역세권으로서의 역할에 종지부를 찍었다. 역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글 싣는 순서1. 영국 산업발전 견인차 `맨체스터 리버풀역`2. 영국 과학·산업 역사 한눈에 `맨체스터 MOSI`3. 시민의 발이 문화공간으로 `충남 보령문화의전당`4. 포항역의 역사(歷史)와 KTX시대5. 옛 포항역 부지 가능성과 개발 기대효과옛 포항역 복합개발사업 용역 진행주택·체육시설·편의시설 등사유지 포함 수만평 규모 확대 개발구도심 활성화 신호탄 기대비록 도로개설로 인해 역사(驛舍)는 철거됐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역주변 부지는 개발을 앞두고 있다. 이번 개발사업의 중요포인트는 주민 스스로가 개발에 대한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앞서 영국 맨체스터의 사례에서 과거 맨체스터 리버풀역이었던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 인근 도심지역인 스피닝필드는 런던부동산연합(Allied London Properties)이라는 민간기관이 주도아래 2000년 이후부터 본격화됐다.런던부동산연합은 15억파운드라는 엄청난 민간자본을 유치해 박물관으로부터 1㎞ 가량 떨어진 스피닝필드 지역에 비즈니스, 상업, 주거가 복합된 새로운 지구를 만들었다. 맨체스터 시의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1만6천명이 넘는 인원이 스프링필드 지역에 입주한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구 포항역이 위치한 포항 구도심지역은 침체일로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1980~90년대 가장 번화했던 포항 중앙상가 일대는 젊은 청춘들이 추억을 쌓는 공간으로 늘 생기가 돌았지만 이제는 그러한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도로변 상가들은 점포가 비어있기 일쑤고, 일부는 아예 임대문의조차 없이 방치되고 있다.쇠퇴한 상권은 점점 되살리기 어려워졌고, 휴일이나 주말이 되면 각종 아울렛·쇼핑센터가 들어선 가까운 대구·울산·경주 등으로 쇼핑객들이 빠져나가면서 지역자본이 유출되고 있다.이 때문에 지난 1980년대 4만6천여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했던 포항시 북구 중앙동은 2016년 6월 기준 1만7천여명에 불과하다.이는 포항시 북구지역 동단위 행정구역 8곳 중 환여동(1만1천여명)에 이어 2번째로 적은 규모다.이같은 상황에서 구 포항역 복합개발사업이 구도심활성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구 포항역 철도부지는 약 6만6천97㎡(약 2만평)의 규모로 소유지분은 국유지가 4만4천145㎡, 코레일이 2만633㎡, 포항시가 1천319㎡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개발에 추가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변 사유지의 범위설정이 이뤄진다면 개발범위는 수만평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구체적인 안이 제시되지는 않고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예상안은 행복주택, 주차장, 광장, 체육시설 등 주거와 편의시설이 포함된 복합개발이다. 현재 구도심 인근에 위치한 중앙동, 대흥동, 죽도동 등지에는 대규모 주거시설이 없어 퇴근 이후에는 상당수의 인구가 장량, 문덕 등 신시가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여러 주거·편의시설이 함께 들어설 경우 퇴근이후에도 머물 수 있는 인구를 확보하게 되고 더불어 상권의 활성화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또한 지난해 개관해 포항시민의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는 포은중앙도서관과 경북동해안 최대 규모의 죽도시장, 중앙상가 등과 효과적으로 연계하면 상당한 인구유입 효과와 관광객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여기에 포항역 이전으로 폐선된 효자역~포항역간 철도부지 4㎞구간에 대한 공원화 사업 추진도 본격화되면서 휴식기능을 더한다면 구 포항역 일대는 인구를 모으고,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포항시 관계자는 “구 포항역 개발사업은 단기간에 마무리짓기 위해 사업속도를 높이기 보다는 10년, 20년을 내다보며 사업을 진행해야 성공적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제시 등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사업시행자가 이를 반영한다면 구도심활성화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데 소중한 수단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안병국 포항시의회 건설도시위원장지역주민 아이디어·대안 제시로도심재생사업 시너지 효과 기대-구 포항역 복합개발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지난해 4월 포항시, 한국철도시설공단(KR), 코레일 등 3개 기관이 구 포항역 개발사업을 위해 MOU를 맺은 바 있다. 그런데 협약을 맺고 KR이 용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사업범위를 확대해 주변 사유지도 함께 개발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사업주체에 변화가 생겼다. 사업범위가 사유지로 확대되면 국토부 지침과 법적근거 등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주체로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LH의 사업참여가 본격화되면서 수개월간 각 기관이 입장을 교환했고 지난 6월 포항시와 LH가 새로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사업구상을 위한 용역을 수행 중이다.-개발사업이 어떤방향으로 가야만 구도심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가△우선 사람이 살아야 한다. 상주인구가 늘어나면서 유동인구도 덩달아 확보가능해진다면 근거리에 있는 상업지구와 연계해 활발한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LH의 구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행복주택의 경우 젊은 직장인, 신혼부부, 대학생이 70%이상이라 소비층이 다소 약한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투자가 수반되기 때문에 구도심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구 포항역 축소복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장소인 만큼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철거이전 실시했던 실측모델을 바탕으로 개발사업 부지 한켠에 마련한다면 의미가 있는 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KTX역 이전의 포항역을 기억하는데 도움을 주고 건물 내에 갤러리, 전시회 등을 수시로 개최할만한 공간을 제공한다면 구도심의 새로운 명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가장 중요한 사실은 구 포항역 복합개발사업은 역세권을 상실하고 구도심침체를 우려한 주민들 스스로가 자구책을 들고 나오면서 추진된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포항시에서 도심재생과 중앙상가 활성화 등을 위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도심은 여전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주민들이 협의체구성 등을 통해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요구를 제시하고 대안을 의뢰한다면 구 포항역 개발사업은 도심재생사업과 더불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끝

2016-07-21

650년 역사 `문화·교육 유기적 결합한 창조적 공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인류가 역사와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지식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책 이외의 어떤 것들에서 세상을 배울 수 있을까? 책이 인간이 만든 최고의 `보물`이라면, 도서관은 `보물창고`다. 본지는 프랑스 파리와 서울시 관악구의 선진적인 도서관문화를 소개함으로써 향후 포항지역 도서관이 그려갈 청사진에 미력한 도움이나마 주고자 한다. -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1368년 세워진 세계 첫 민간도서관 펼쳐진 네권의 책모양 형상화한 건물쇠·나무·유리·흙의 조화, 동선도 편안1692년 개방… 서적 3천500만권 보유장 폴 사르트르와 앙드레 지드, 폴 엘뤼아르와 알베르 카뮈의 나라.대통령이 소설가인 문화부장관(앙드레 말로)을 예술가로서 존경하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급진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의 대변인을 맡는 나라. 다수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독일과 더불어 유럽 현대철학의 생성과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나라.재론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는 지구 위에서 손꼽히는 `문화강국`이다. 지난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의 가혹한 식민통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제국주의`라는 정치적 행태에 대한 비난이다. 그 나라가 이룬 문화적 성취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는 게 아닐까.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예술가를 존중하는 사회의 중심에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que Nationale de France)이 있다. 펼쳐진 네 권의 책 모양을 형상화한 거대한 금빛 건물이 보는 이를 부드럽게 압도한다. 파리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1368년 세워진 세계 최초의 민간도서관이다. 그 역사가 자그마치 648년에 이른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1692년.여기엔 병인양요 때 한국에서 반출된 `외규장각 도서`도 보관돼 있었다. 그것들이 `대여`라는 형식으로 사실상 반환된 것은 2011년이다. 현대에 들어서며 프랑스는 `접근성`을 문화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자”는 매력적인 구호는 파리 시민들을 도서관으로 이끌었다.문화와 예술을 누구보다 아낀 유럽 정계의 거물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대통령은 1988년 “국립도서관을 세계 최대 규모로 리모델링 하겠다”고 발표한다. 도서관을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닌, 문화와 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었다.미테랑이 마음속에 그린 그림을 현실로 옮겨 지금의 국립도서관 모습으로 축조한 사람은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이런 이유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으로도 불린다.파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접 찾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쇠와 나무, 유리와 흙이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서고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동선은 자연스러웠고, 열람실 창밖으론 푸른 나무가 열을 맞춰 서 있어 눈이 편안했다.보유한 책은 3천500만 권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분량. 도서관 바깥엔 휴식공간도 잘 조성돼 있어, 도시락을 먹거나 음료수를 나눠 마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그러나, 정작 놀라운 건 도서관의 외형이나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의 거침없는 비판의식과 딱 부러지는 의견개진은 더 놀라웠다.바칼로레아(Baccalaureate·프랑스의 대학입시 자격시험)를 준비하고 있다는 17세 마리안느와 18세 알렉산드라. 평소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 않고서는 논술형으로 진행되는 바칼로레아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다. 시험에선 이런 유형의 문제가 출제된다고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일체의 의미를 박탈해가는 것인가?” “인문학은 자연과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예술은 현실에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40대 중반인 기자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어려운 논제들이다.이런 교육환경에서 자란 탓일까. 비록 10대지만 둘의 독서량이 적지 않다는 것을 주고받은 몇 마디 말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프랑스 도서관은 규모보다는 그 안에 채워질 콘텐츠에 관해 더 고민해야 돼요”라는 마리안느의 똑 부러지는 어법과 “사회에선 모두가 공평하게 돈을 나눠가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곤궁한 학생들에겐 1년에 30유로(약 3만9천원)인 전문도서 열람료를 면제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라는 알렉산드라의 주장에는 논리적 빈틈이 없었고, 철 덜 든 소녀의 칭얼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독서의 힘` 외에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저무는 붉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 출구에서 스위스와 프랑스를 오가며 일한다는 해운회사 직원 클로드(49)와 그의 친구 마커스(52)를 만났다. 휴가 중이라는 둘에게 “편히 쉬거나 여행을 가지 왜 도서관에 온 것인가”라고 물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하다. 가만히 집에 있는 것보단 새로 나온 소설을 찾아보는 게 휴가를 즐기는 보다 좋은 방법 아닌가?”라는 반문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나이와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프랑스 사람들은 오늘도 도서관을 향한다. 불어 닥친 경제적 불황에 휘청거리고 있지만, 유럽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배후에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책`이 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글/홍성식 기자·사진/이준성 기자

2016-07-15

옛 포항역 100년 역사보존 ·新 역사주변 개발이 남겨진 숙제

일제 강점기때 대구~포항 경동선 착공해방 후 포항역서 청룡부대 월남파병도1970년대 포항제철 건립으로 새 전환기어촌에서 공업도시로 변신, 부흥기 맞아2011년 KTX 포항직통노선 공사 착공철도기념물 옛 포항역 축소 복원키로글 싣는 순서1. 영국 산업발전 견인차 `맨체스터 리버풀역`2. 영국 과학·산업 역사 한눈에 `맨체스터 MOSI`3. 시민의 발이 문화공간으로 `충남 보령문화의전당`4. 포항역의 역사(歷史)와 KTX시대5. 옛 포항역 부지가 지닌 가능성과 개발에 따른 기대효과□ 첫 시작은 일제의 침략통로우리나라 철도 역사(歷史)는 1899년 9월 18일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33.2㎞) 개통과 함께 시작됐다.당시 서구열강과 일제로부터 수시로 위협을 받았던 조선은 철도개설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일제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철도는 침략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포항 철도의 시작도 일제 침략의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대구와 포항을 연결하는 경동선(慶東線, 현 대구선)은 1916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지시로 철도회사인 조선중앙철도가 착공했다.같은해 11월 1일 대구~하양 구간이 우선 개통됐고, 2년 후인 1918년 10월 31일 나머지 구간인 하양~포항간 109.1㎞가 개통되면서 포항역은 보통역으로서 업무를 시작했다.경동선은 두 레일의 간격을 지칭하는 궤간이 762㎜로 표준궤인 1435㎜에 절반 가량에 불과한 협궤로 연결됐다.협궤는 부설이 쉽고 비용이 저렴해 20세기 초반 식민지 지역의 철도 부설에 널리 이용됐다.1919년 6월에는 포항에 주둔한 해군부대와 인접한 포항 학산역까지 노선이 준공되면서 군장병들의 이동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경동선이 개통한지 3년 만인 1921년 10월에는 부산~포항을 잇는 동해남부선 구간 중 일부인 울산~포항 구간이 개통됐다.이후 1935년 12월 16일 조선총독부가 경주~포항 구간을 인수한 뒤 이를 표준궤로 교체하는 광폭궤도 공사에 착수했으며 1945년 6월 10일 부산진~포항을 잇는 동해남부선 전구간이 표준궤로 운영됐다. □ 월남전 파병과 포항제철소해방을 맞으면서 포항역 철도의 활용성은 한동안 크게 줄었다.해방 이전 일본이 아시아대륙 진출의 연결통로로 이용했지만 이후에는 인구 5만의 작은 어촌마을인 포항을 오가는 승객이나 화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20여년간 암흑기를 겪은 포항역은 월남전 발발과 함께 역사적 장소로 거듭나게 된다.1965년 10월 3일 해병대 여단규모 500여명으로 구성된 청룡부대의 출발을 시작으로 6년여 동안 수만명의 파월장병들이 이곳을 통해 베트남으로 향했다.어린 나이에 가족과 생이별하는 슬픔을 뒤로하고 국가를 위해 한 몸을 바치는 장병들의 모습은 포항역을 애환이 담긴 장소로 만들었다.포항제철소가 건립되기 시작하면서 도시발전이 시작된 1970년대 포항역은 부흥기를 맞았다.어촌이 주요산업이었던 작은 도시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자재 및 제품운반을 전담할 운송수단의 필요성이 부각됐던 것이다. 이를 위해 1971년 4월 포항역과 포항철강공단 내 괴동역을 연결하는 괴동선(5.6㎞)이 개통됐다.괴동선은 현재 화물전용 노선으로 바뀌어 여객수송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개설초기에는 포항제철소 직원들의 통근열차도 함께 운행됐다.하루 10여회 운행된 괴동선 통근열차는 자가용 문화가 발달되기 이전인 1990년대 초까지 포항시민들로부터 널리 이용됐다.포항시사(市史)에 따르면 포항 철도가 전성기를 맞은 1990년 한 해 동안 768만여명의 승객이 포항역을 이용하기도 했다.1992년 12월에는 포항과 서울을 잇는 새마을호가 최초로 운행됐고, 1997년 7월부터는 대구와 포항을 오가는 통근열차가 1일 6회로 운영되기도 했다.□ KTX개통과 역사(驛舍)이전고속철도망이 본격적으로 구축된 2000년대 들어 포항역은 쇠퇴기를 맞았다.경부선을 중심으로 운행된 KTX는 새마을호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2010년 인근지역인 신경주역에 KTX가 들어온 이후 포항역의 존재는 희미해졌다.포항과 서울을 오가는 시민들이 포항역에서 출발하는 새마을호를 탑승하기보다는 신경주역에서 KTX를 탑승하는 것을 선호하면서 자연스레 포항역 이용객 숫자는 감소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2011년 6월 KTX포항 직통노선 연결공사를 착공하면서 포항역 역사(驛舍) 이전계획이 수립됐다.한국철도시설공단은 포항시 북구 대흥동에서 100년 세월을 보낸 포항역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이인리에 마련키로 하고 2013년 9월부터 305억원을 투입해 신역사를 건립했다.결국 2015년 4월 2일 KTX 포항노선이 개통되면서 포항시 북구 대흥동 옛 포항역은 영구폐쇄가 결정됐다.같은해 9월 포항시는 도심 교통정체 해소방안으로 용흥동~대흥동간 왕복 4차선 횡단도로를 개설계획을 수립했다.그런데 이 노선이 옛 포항역 역사를 관통하도록 설계되면서 다소간의 논란이 발생했다.도로 개설을 위해서는 옛 포항역의 철거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특히 포항역은 지난 2013년 코레일로부터 철도기념물로 지정되며 역사(驛舍)가 지닌 역사(歷史)적가치를 인정받은 만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포항시는 이같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구 포항역 역사를 축소복원키로 하고 건물철거가 진행되기 전 현장확인 및 실측을 통한 복원기초자료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3단 구조의 비대칭 박공지붕의 독특한 모양과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왓장, 목재기둥, 아날로그 기차시간표 등을 원본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이들 자료는 축소복원 계획이 수립되면 축소복원된 역사(驛舍) 내에 전시될 예정이다. □ KTX 누적이용객 300만시대 눈앞개통한지 1년 3개월여가 지난 포항역은 어느덧 이용객 3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포항역에 따르면 지난 6월 말까지 1년 3개월간 총 수송인원은 269만9천74명(KTX 217만6천145명, 무궁화호 52만2천929명).이는 5천여명이 매일같이 포항역을 이용한 수치로, KTX는 교통오지라 불렸던 경북동해안권역의 오명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지역민들의 최고 이동수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특히 코레일에서 오는 8월 15일 예정된 수서발 KTX 개통에 맞춰 포항역 열차편수를 일일 왕복 2회 이상 증편하기로 검토할 만큼 수요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실제로 포항역은 평일 초저녁시간대는 물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전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포항시민과 인근 주민의 이용률이 높다.하지만 주요교통수단으로서 입지를 다져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우선 개통 당시부터 지적됐었던 고객 편의시설과 상업시설의 부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인근 역세권 개발도 지지부진한 상태다.만성적인 포항역 주변 불법 주·정차 문제와 추가 진입로 설치 및 연계교통망 확충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이에 대해 포항역은 내부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교통혼잡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해결할 것을 약속했다.포항역 관계자는 “열차 승하차 시 역사 내부의 교통혼잡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며 “포항시 등 관계기관과 협조를 통해 이용객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박동혁기자phil@kbmaeil.com

2016-07-14

대천驛舍 야심적 재개발… 보령의 歷史 품은 랜드마크로

2007년 78년만에 역사 이전정부 공조로 국·도비 확보문학관·생태관 등 갖춰진`보령문화의전당`으로 재탄생지역민 휴식공간·기업대관 등도시 전체에 활력소 역할글 싣는 순서1. 영국 산업발전 견인차 `맨체스터 리버풀역`2. 영국 과학·산업 역사 한눈에 `맨체스터 MOSI`3. 시민의 발이 문화공간으로 `충남 보령문화의전당`4. 포항역의 역사(歷史)와 KTX시대5. 옛 포항역 부지가 지닌 가능성과 개발에 따른 기대효과□ 충남 보령의 새로운 랜드마크`충남 보령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대다수 사람들이 경포대, 해운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욕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천해수욕장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1930년 개장해 길이 3.6㎞, 너비 100m, 면적 0.03㎢의 서해안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백사장에 동양 유일의 조개껍질로 이뤄진 해수욕장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물놀이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매년 7월 이곳에서 열리는 보령머드축제를 보기 위해 연간 30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국내에서도 10~20대 젊은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수욕장 중 하나로 손꼽히며 명성을 높이고 있다.그렇다면 대천해수욕장과 더불어 보령의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는 장소는?이 질문에는 쉽사리 대답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대천해수욕장에 도달하기 위한 관문이었던 옛 대천역 부지에 건립된 `보령문화의전당`이 그 해답을 제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령문화의전당`의 역사(歷史)는 대천역이 역사(驛舍)를 이전하게 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대천역은 1997년부터 시작한 장항선 개량 1단계사업의 일환으로 온양온천역~장항역 간 105.7㎞ 중 선형불량구간인 71.7㎞를 직선화한 구간에 포함되며 2007년 12월 21일 역사를 이전하게 된다. 이에 따라 1929년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현 보령시 대천동)에서 문을 열었던 대천역은 78년 만에 보령시 내항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새롭게 영업을 개시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4만1천500여㎡에 이르는 옛 대천역 부지 활용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는 역과 인접한 구도심지역 활성화와 맞물리면서 지역의 새로운 아젠다로 부각됐다.□ 폐쇄된 역사가 시민 문화공간으로보령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의 적극적인 공조를 추진했다.2008년 5월 당시 행정안전부에 `구 대천역 역세권 개발사업안`을 신청했고, 중앙투융자사업 심의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으며 국·도비 240억원을 우선 확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가칭 `보령 문화·관광지구`로 명명된 이곳은 보령지역을 대표하는 문학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문학관, 대천문화원, 갯벌생태관, 야외공연장 등을 포함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건립이 추진됐다.또한 옛 기차역으로 인해 막혀있던 시가지와 외곽을 관통하는 연결·순환도로를 개통시켜 옛 기차역을 기준으로 반경 500m 이내에 있는 재래시장을 포함한 구도심지역의 도심공동화를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지난 2010년 6월 착공에 돌입한 이 사업은 착공 한 달 뒤인 7월에 사업지구 내 지장물철거와 보상협의 지연에 따라 공사가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듬해 4월 공사를 재개, 공사를 시작한지 3년 4개월만인 2013년 10월 준공됐다.보령시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2년 10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명칭제안 공모를 실시, 이곳의 명칭을 보령문화의전당으로 선정했다.보령문화의전당은 보령의 역사와 문화를 한 곳에서 느끼고 파악할 수 있는 문화소통의 중심지라는 의미와 함께 문학관, 홍보관, 공연장, 문화원 등의 관(館), 원(院), 장(場)을 아우를 수 있는 명칭인 `전당`이 붙여져 지어졌다.보령문화의전당 홍승완 학예사는 “보령문화의전당이 새롭게 자리하면서 기차역 폐쇄로 침체돼 있던 주변지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수년전까지만 해도 낡은 주택가로 가득했던 주변지역에 최근 들어 오피스텔, 원룸 등 젊은층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이 형성되고 상가도 들어서면서 도시전체에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다”고 전했다.□ 보령의 역사를 한 눈에 총사업비 601억원을 투입된 보령문화의전당은 1만4천382㎡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8천636㎡ 규모를 자랑한다.보령박물관, 갯벌생태과학관, 보령문학관, 관광홍보관, 기획전시실 등 전시시설과 대강당, 야외공연장, 세미나실, 북카페 등 문화시설로 구성돼 있다.보령지역 최초의 지방사 박물관인 보령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시대에 이르기까지 보령의 향토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박물관이다. 기존에 다른지역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전시물을 구입 또는 인계받고, 개인 및 단체에서 소장 중인 유물을 기증받거나 구입해 어느덧 3천700여종에 이르는 보령지역과 관련한 근현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시대마다 주거문화, 고분문화, 종교문화, 도자문화 등 주제가 있는 전시를 기획, 보령지역이 품고 있는 역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갯벌생태과학관은 보령지역 최초의 과학관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린공간이며, 갯벌의 종류와 생성과정, 갯벌에 터를 잡고 사는 갯벌친구들, 보령갯벌과 이용방안 등이 전시되고 있다.관광홍보관은 VIVA보령을 주제로 Vacation, Impress(감동), Variety(다양함), Adventure(모험) 등 4개의 주제로 품격 있는 보령의 관광자원을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다.보령문학관에서는 보령지역 출신 문학인 이문희 작가와 임영조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보령문화의전당에 따르면 시설의 문을 연 지난 2013년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2년 6개월 동안 6만8천여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았다.지난해 기준 보령시의 인구가 인구 10만4천여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이같은 이용실적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뿐만 아니라 220석 규모의 훌륭한 시설을 갖춘 대강당에서 크고 작은 행사개최를 희망하는 각종 단체를 대상으로 매월 80~100회 가량을 시설대관을 해주고 있다.보령문화의전당 박미선 학예팀장은 “보령문화의전당 내 `보령박물관`은 국립박물관 수준의 우수한 시설을 갖췄고 유물관리가 체계적이라는 평가 등을 받아 충남도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돼 있다”며 “전시공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전문가들로부터 지역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6-07-07

애물단지 폐쇄 기차역, 역사·문화의 `보물창고` 변신

시의회·대학 등 힘모아 재정지원`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 개관연간 83만명 관광객 방문주변 도심 발전 시너지효과 커글 싣는 순서1. 영국 산업발전 견인차 `맨체스터 리버풀역`2. 영국 과학·산업 역사 한눈에 `맨체스터 MOSI`3. 시민의 발이 문화공간으로 `충남 보령문화의전당`4. 포항역의 역사(歷史)와 KTX시대5. 옛 포항역 부지가 지닌 가능성과 개발에 따른 기대효과□ 폐쇄된 기차역을 박물관으로1940년대 영국은 도로를 이용한 화물수송업의 급속한 성장이 이뤄지면서 이전까지 물동량의 대부분을 담당하던 철도수송업이 쇠퇴기를 맞게 됐다.맨체스터~리버풀 노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Museum of Science Industry, MOSI)의 모태인 리버풀로드역(Liverpool Road Station)도 이때부터 운영비 충당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역사용량이 줄어들면서 건물외관에 대한 보수유지비 충당마저도 힘들어졌던 리버풀로드역은 결국 1975년 관리업체인 브리티쉬 레일웨이(British Railways)에 의해 문을 닫았다.이는 1830년 영국 최초의 화물수송열차의 종착역으로서 화려한 개통식을 가진 이후 145년 만에 전해진 비보였다.비슷한 시기 맨체스터과학기술대학교(University of Manchester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UMIST)는 맨체스터시와 관련된 역사적가치를 지닌 유물을 수집해 박물관을 만들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그러나 마땅한 장소가 없어 대학 고위관계자들은 고민에 빠졌다.비록 18세기 영국에서 창립된 비밀공제조합인 오드펠로우(OddFellow)가 사용하던 조합회관(Oddfellows hall)의 절반을 활용해 1969년부터 임시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한 해 방문객이 1만명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시간이 흐르면서 기부, 구입 등을 통해 수집된 전시물의 양은 박물관 공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급속도로 늘어났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이같은 혼란을 겪고 있을 즈음인 1974년 맨체스터 시의회가 박물관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면서 박물관은 시의회, 맨체스터시, 맨체스터대, 맨체스터과학기술대 등 4개 기관이 24%씩, 샐포드 대학이 나머지 4%를 부담하는 체계를 구성하면서 박물관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작업이 본격 시작됐다.1976년 폐쇄된 리버풀로드역의 실질 소유주였던 브리티쉬 레일웨이는 역과 부속건물 등을 1파운드라는 상징적인 가격에 매입할 것을 시의회 측에 제안했으나 시의회는 엄청난 보수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며 거절했다.이에 브리티쉬 레일웨이는 10만파운드의 건물보수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추가적인 제안을 해왔고, 시의회는 비슷한 시기 기차역을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사안을 놓고 진행된 시민 설문조사에서 찬성이 많았다는 것을 근거로 수용하기에 이르렀다.1980년 맨체스터~리버풀 노선 1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이같은 사실이 대중에게 공개됐고, 3년여 동안의 보수작업 끝에 1983년 9월 15일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문을 열었다.□ 영국 산업과학 역사를 한눈에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은 과거 역사(驛舍)로 활용된 건물을 포함, 5개의 옛 기차역 건물을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그레이트 웨스턴 웨어하우스(Great Western Warehouse)와 1830 웨어하우스(1830 Warehouse), 스테이션 빌딩(Station Building), 파워홀(Power Hall), 에어앤스페이스홀(Air Space Hall) 등 5개 건물에 산업과 혁명, 과학과 기술, 에너지, 교통, 사람, 통신 등 6가지 주제로 상설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박물관에는 영국의 항공기 제조업체인 애브로(AVRO)가 1912년 발명한 최초의 단엽비행기 `AVRO Type F`와 1948년 빅토리아 대학(후에 맨체스터 대학에 합병됨)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내장형 컴퓨터인 베이비(Baby), 1829년 발명가 존 에릭슨에 의해 만들어져 맨체스터~리버풀 철도개통 기념 기관차대회에 출전했던 초기 증기기관차 노벨티(Novelty) 등 영국 산업·과학의 발전을 이끈 맨체스터시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물 수천여개가 배치돼 있다.박물관에 따르면 이처럼 맨체스터를 넘어 영국과 유럽 전체에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전시물을 관람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연간 약 83만명(2015년 기준)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또한 소위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으로 잘알려진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분야에서 기술개발을 촉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은 2009년 이후 맨체스터 지역의 학교와 대학, 단체를 위한 STEM 맞춤형 이벤트를 주관하면서 연간 7만5천명의 젊은 청년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특히 오는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2016 유럽과학포럼(The Euro Science Open Forum, ESOF)`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유럽 주요도시에서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유럽과학포럼은 과학연구와 개발에 이바지하기 위해 마련된 범유럽 과학회의이다.유럽을 포함한 전세계 90여개국에서 과학자, 기술자, 정책담당자, 언론인, 교육자 등 4천50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할 예정이다.뛰어난 과학자에서부터 일반대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오늘날 과학이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샐리 맥도널드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 대표는 “포럼이 열리는 기간인 7월에는 꿈의 나노 물질로 전세계 과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그래핀(graphene)`에 초점을 맞춰 전시회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이번 포럼을 통해 맨체스터를 방문하는 과학·기술분야 관계자들에게 산업혁명의 발상지 맨체스터를 고스란히 담은 과학산업박물관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 주변도심도 동반성장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의 존재는 주변도심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박물관으로부터 1㎞ 가량 떨어진 스피닝필드(Spinningfields)지역은 2000년대 들어 개발이 시작된 곳으로 비즈니스, 상업, 주거가 복합된 형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맨체스터 도심지역인 딘스게이트(Deansgate) 서쪽의 작은 거리에 불과했던 스피닝필드의 개발계획에 관한 논의는 1997년 런던부동산연합(Allied London Properties)의 주도아래 시작됐다.런던부동산연합은 43만㎡의 방대한 공간에 15억파운드가 넘는 엄청난 민간자본을 유치해 금융 및 서비스업 특화지구를 만들었다.맨체스터 시의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1만6천명이 넘는 인원이 스프링필드 지역에 입주한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맨체스터가 시작된 곳(This is where Manchester began)으로 유명한 캐슬필드(Castle Field)지역은 박물관 남쪽 1.5㎞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맨체스터시에서 가장 오래된 구도심 지역이다.기원전 140년 로마제국이 이곳에서 철수한 뒤 그들이 사용했던 요새의 흔적이 남아있어 캐슬필드라는 지명이 붙여졌다. 맨체스터 시의회는 지난 1979년 역사적가치를 인정해 캐슬필드 일대를 보호구역(Conversation Area)으로 설정했고, 과학산업박물관도 이 구역에 포함됐다.1983년 영국 환경부는 캐슬필드를 영국 최초의 도심문화유산공원(Urban Heritage Park)로 지정해 이 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허용된 선에서 보존과 개발을 실시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도록 했다. 맨체스터 개발공사(Central Manchester Development Corporation)는 1988년 캐슬필드를 포함, 187만㎡에 달하는 도심 재생정책을 수립했다. 개발공사는 캐슬필드의 관광기반을 강화하고 비즈니스활동을 지원하고 활기찬 주거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낙후된 건물 중 대부분은 개조 또는 복원, 신축 등을 통해 현대식건물로 변모했다.이 과정에서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여러 유적이 발굴돼 관련 전문가들이 맨체스터의 초기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참고자료를 얻게 됐다.이와 관련,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학교 앨런 키드 교수는 “기차역이 폐쇄된 후 수년간 방치되면서 도심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리버풀로드역 문제가 박물관 개설로 해결되면서 캐슬필드, 스피닝필드 등 주변지역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며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 주변지역은 이제 맨체스터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핵심지구로 성장했으며 앞으로도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기대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6-06-30

실용적 민·관협력이 `관광 황금알` 낳는 열쇠

포항도 대부분의 중·대규모 국내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70~80년대 집중된 급격한 도시 팽창과 기형적 발전을 겪었다. 최근에는 외곽지를 개발하는 도시 `스프롤링(sprawling, 무분별 팽창) 현상`의 격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노후 항만도 재개발사업의 완성도에 따라 대구경북에서 포항에만 유일한 자원으로서 주민들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관광자원으로 황금알을 낳을 수도 있다. 이번 미국 동부지역과 부산, 창원 등 국내외 취재는 포항의 위기를 절감하고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美, 기업 막강자본·엄격한 市 규제로 도심개발 `시민 품으로`포항 도시재생委 행보 지지부진… `민자 기피증` 벗어나야글싣는 순서① 해양형 창조도시 모델 개발해야② 부산 미래 100년의 새 엔진, 북항 재개발③ `퍼블릭 억세스`의 힘, 미국 서부 항만④ 민간사업자가 꽃 피운 LA 복합단지⑤ 위기극복, 민관(民官)협력이 성공열쇠△ 재생사업의 핵심은 `시민`포항은 지난 2013년 7월 전국에서 비교적 빨리 도시재생위원회가 결성됐지만 시의 전담 부서가 지난 1월에야 구성되고 주민협의체도 아직 발족하지 못하는 등 차질을 빚고 있다. 시민의 낮은 자발성과 빈약한 민관 협력은 오랜 기간 토대를 다져온 선진국들의 시민사회계와 달리 도시재생 부문에서도 거버넌스(협치)를 막는 요인이다.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확인한 도심 및 항만 재생사업의 핵심이 시민임은 명확했다. LA의 산페드로항은 컨테이너부두를 개발해 마리나항과 레스토랑 등 주민친화시설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건너편 롱비치항도 `제럴드 데스몬드 브리지`를 교체하는 야심찬 사업을 마치면 물동량이 30% 증가하고 관광명소로도 기대되고 있다.샌프란시스코는 LA 항만 발전의 여파로 인한 50여개의 황폐한 피어(pier)를 리모델링하기 위해 공공기관과 시민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시설의 핵심 개념을 `퍼블릭 어프로치`(public approach), 즉 공공의 접근성을 보장하는데 맞췄다. 이는 부산시가 미래를 걸고 있는 북항 재개발에도 도입돼 시민의 접근을 막았던 컨테이너 부두를 돌려주겠다는 계획이다. △ `관치` 잡아야 민간투자 활성화LA 도심의 슬럼가를 개발해 도심을 활성화하고 전세계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LA라이브`(Live).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리는 NBA 경기 중계 등으로 전세계에 알려져 1천500만명이 찾는 등 이곳은 민간자본에 의한 도심복합개발의 대표적 성공사례이다. 미국의 공공기관은 이처럼 민간사업자의 막강한 자본과 추진력을 과감히 정책에 내화(內化)하되 감독과 규제는 엄격히 해 그 결과가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실용주의를 택하고 있다.국내에서도 최근 수년사이 구도심 내 노후공간들이 골칫거리가 되자 서울시를 필두로 대규모 상업지역에 민간투자자를 참여시켜 인파를 불러모으는 집심효과(集心-)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대표적 예인 영등포역 앞 타임스퀘어는 구로공단 주변의 술집과 사창가 등 변두리의 대명사격인 이 일대 이미지를 깨끗이 바꿔놓으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인접한 대구도 동대구역을 신세계가 복합환승센터와 쇼핑몰로 새롭게 단장하면 경북동해안 지역민의 소비문화에 까지 일대 변동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하지만 유독 포항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북구 두호동의 슬럼가에 1천400억여원을 투입한 사업자가 판매시설을 준공하고도 포항시의 눈치만 보고 있다.하루 2~3만여명이 왕래하는 포항시외터미널은 도심은 물론 KTX포항역과도 1km 떨어진 흥해읍 성곡리 이전을 고집하는 시 정책에 가로막혀 비가 새는 흉물이 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규제개혁을 위해 노후 터미널의 입주 업종 제한을 푼 상황에서 사업자가 복합환승터미널에 호텔과 컨벤션센터 유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포항시는 요지부동이다.구자문 한동대학교 교수는 “민자사업을 특혜로 간주하는 관치(官治)의 장벽으로 인해 울산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대구와 울산, 부산 등으로 포항자본의 유출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강덕시장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시 관료들의 유별난 민자(民資) 기피증을 혁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병국(포항시의회 의원)포항시 도시재생정책 제안안병국(포항시의회 의원)전담부서 강화·주민협의체 구성 급선무도시 생활권역별 사업 노하우 파급돼야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시행되면서 포항시는 올해초 조직 개편을 통해 전담부서인 도시재생과를 신설해 운영 중이다. 이에 따라 필자가 의원발의한 포항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돼 현재 시행 중이다. 도시재생과의 업무 기간은 아직 1년여에 불과하다. 이를 전제로 두고 포항시의회 건설도시위원회 위원으로서 신설 부서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먼저 포항시는 관련 법률의 체계 등에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관련 부서 간 협업이 아직 원활하지 않은 편이다. 또 전문 인력 부족에 따른 전담부서의 자신감도 떨어지는 분위기다.경쟁이 치열한 도시재생 선도지역 선정과 관련, 국토부의 심사 기준이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이 수립된 시·군이 대상임에도 포항시는 아직 용역을 진행하고 있어 2016년 신청에 차질이 우려된다.기획력도 보강해야 한다. 포항시는 그동안 공모를 통해 이미 확보한 예산으로 기존 사업을 진행하는데만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원도심 가로경관 개선사업, 범죄예방 마을 만들기, 수변공간 폴리사업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도시재생의 기본 원칙인 민·관·학의 협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민협의체 구성도 늦춰지고 있다. 이는 도시재생 전략적 계획과 활성화계획 수립 후 선도지역 신청 시 심사 및 평가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최근 도시재생과도 이점을 인식해 협의체를 곧 출범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주민협의체의 구역 설정도 중요한 문제이다.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기 위한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 등을 위해서는 주택재생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또 상가재생협의체는 도로를 기준으로 구분하되 상점을 특성화 할 수 있도록 구역을 나눠야 한다. 이는 상인들의 동질성과 협동성을 통해 마을기업을 만들 경우 중요한 토대가 된다. 예를 들어 중앙상가는 4개 구역으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체적으로 죽도시장구역과 북부시장구역, 옛 아카데미극장 상업구역과 불종로거리구역, 동빈내항 옛 엔진수리공장구역, 대흥동과 덕수동 주택구역 등이다. 이를 통해 고유 영역별로 나누어진 주민협의체는 스스로 △업종 특화 △상가 전면(파사드) 변경 △컬러풀한 도로와 벽면의 조형물 설치 등 다양한 아이디어와 요구를 도시재생센터에 제시하고 대안을 의뢰해야 한다. 이후 센터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예산 확보에 노력한 뒤 주민과 함께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주민과 함께 노력해 얻어진 사업 노하우는 체계적 기록을 통해 포항시 도시기본계획에서 권역별로 나누어진 북부생활권, 남부생활권 등 부도심 별로 파급되도록 해야 한다. 파급효과야 말로 가장 핵심이 되는 도심재생사업의 목표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끝※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5-12-03

시장환경 민감한 민간기업 참여로 도시에 활기 가득

외곽지 위주로 팽창을 거듭해온 도시개발의 문제점은 지금 한국에도 엄청난 정책적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수백억의 국가예산을 들여 전국에서 도시재생선도지역을 지정하고 있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실질적 성과를 내기는 요원해 보인다. 한국적도시재생사업 수립의 필요성이 높지만 그만큼 중앙과 지방의 관 주도형 위주의 체질 개선은 심각한 고민꺼리가 되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제시해온 대안인 민간 부문을 포함해 도시재생디벨로퍼 육성과 국공유지 활용, 규제완화와 공공부문 관행개선 등 민간참여 활성화는 중요한 과제이다.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시와 글렌데일시에서 민간기업의 주도를 통한 복합쇼핑몰 개발 등 도심재생의 선도 사례를 점검해본다.이번 해외 취재를 통해 선진국들이 시장환경에 발 빠른 기업을 어떻게 참여시켜 도심에 주민들을 소비자로서 불러모으고 국내외 관광지로 활용해 도심의 가치를 높이는지 재확인할 수 있었다.슬럼가였던 도심, `LA라이브`로 환골탈태도시계획 입안초기부터 민간 적극 참여한국 정부·지자체, 의식전환 시급한 실정글싣는 순서① 해양형 창조도시 모델 개발해야② 부산 미래 100년의 새 엔진, 북항 재개발③ `퍼블릭 억세스`의 힘, 미국 서부 항만④ 민간사업자가 꽃 피운 LA 복합단지⑤ 위기극복, 민관(民官)협력이 성공열쇠△슬럼에서 명소로 변한 `LA 라이브`LA의 도심에는 다저스팀의 야구선수 류현진이 구입해 더 유명해진 럭셔리 콘도 `리츠칼튼 레지던스 앳 LA라이브`가 있다.2베드룸 규모가 200만달러에 가까운 이 고급주택은 `LA라이브`(Live)로 통칭되는 다운타운 엔터테인먼트 지구에 자리잡고 있다. 콘도 거주자는 스포츠·엔터테인먼트사로서 개발사업자인 AEG가 제공하는 티켓으로 바로 옆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리는 LA레이커스 등의 스포츠 경기를 VIP박스에서 이웃들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특혜를 받는다.하지만 2005년까지 LA 도심은 대낮에도 사람들이 찾기를 꺼렸다. 관광객들은 헐리우드나 디즈니랜드 같은 LA 교외만 보고 다운타운에는 들르지 않았다.보고 즐길 게 없는 데다 슬럼가여서 치안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EG는 과감하게 도심 한복판에 LA라이브를 개발해 죽었던 도심을 되살려냈다. AEG는 스테이플스센터로 몰려드는 스포츠팬을 하루 종일 묶어둘 수 있는 기능을 찾았는데 바로 엔터테인먼트였다. 미국도시연구소(Urban Land Institute)의 조셉 브라운 단장은 “LA 라이브는 다운타운을 24시간 깨어 있는 명소로 만들어 도시 이미지까지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의 투자 비용은 25억달러(2조7천억여원). 땅과 스테이플스센터는 AEG 소유였고, 원래부터 주민이 살지 않아 토지 보상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어 슬럼가였던 LA 도심이 이로 인해 연간 1천500만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미국도시연구소는 LA라이브를 `도심 복합개발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선정했다. 이 사업의 성공 비결은 콘텐츠다. AEG 측도 `오로지 LA만 할 수 있는 차별화된 프로그램 전략이 성공 요인이다`고 홍보하고 있다. 실제로 NBA 경기와 에미상·그래미상 시상식 행사를 보면서 즐길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LA밖에 없으며 LA라이브는 이 같은 장점을 활용했다. △글렌데일시 `아메리카나`글렌데일시는 로스앤젤레스카운티 가운데 중산층 이상이 주로 거주하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가진 곳으로 손꼽힌다. 이곳의 도심에 개발된 `아메리카나 앳 브랜드`(Americana at Brand)는 대규모 야외 쇼핑몰이다. LA의 사업가인 릭 J. 카루소와 그의 회사인 카루소 어필리에이티드가 건설하고 소유하고 있다. 카루소 어필리에이티드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그루브 앳 파머스 마켓을 비롯해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운영해왔다. 아메리카나에는 75개의 상점과 다양한 레스토랑이 입점하고 있다. 패션샵, 레스토랑, 반스앤노블 등 유명 숍이 모여 있으며, 유럽 스타일의 고급스러움과 여유로움이 풍겨난다.뿐만 아니라 100개의 콘도미니엄과 238개의 아파트도 포함돼 있다. 주변은 글렌데일 다운타운으로 금융가, 사무실, 학교, 도서관, 우체국 등 공공시설과 기관이 모여있는 황금 구역이다. 길 건너에는 노드스톰, 메이시스, 제이씨페니, 타겟 등이 밀집해 있는 대규모 갤러리아 쇼핑몰이 있어 도보 5분으로도 쇼핑을 만끽할 수 있다.하지만 아메리카나 프로젝트는 4년 동안 글렌데일 지역에 큰 논쟁을 가져왔다. 일부 상인들은 그루브-스타일(라이프스타일 센터)이 브랜드 거리와 글렌데일 갤러리아에 있는 상점들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과도한 개발과 교통문제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인들이 찾는 명소가 돼 확장공사를 할 만큼 국내외의 인기를 끌면서 관광지가 됐다.△민간사업자 장점 활용해야미국 서부도시들의 복합개발 사례는 포항을 비롯한 국내 도시들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과도한 규제와 공무원들의 업무관행, 민간개발사업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현재처럼 과도한 관료주의와 규제가 유지되면 기업체의 투자 의욕은 꺾일 수밖에 없다. 관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의 한계와 예산 부담을 민간에 과감히 넘겨 도심활성화에 새 바람이 필요하다.LA시청에서 6년 동안 도시계획관과 주택경제분석관을 역임한 한동대 구자문 교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지자체는 도시계획의 입안 초기부터 민간을 적극 참여하게 하고 도시개발사업에서도 토지 매입 등에 많은 협조를 한다”면서 “정부와 지자체들의 의식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LA 조망 명소 `그리피스 천문대`지역민이 기부한 땅에 공원 건립제임스 딘 흉상 등 관광명소 인기로스앤젤레스시와 카운티는 대부분 평지에 위치해 도심의 대형빌딩에 올라가지 않으면 도시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기가 어렵다.그리피스공원(Griffith Park) 내 헐리우드산(Mount Hollywood) 남쪽의 그리피스천문대는 이 점에서 국제적 관광명소인 동시에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평일에는 주로 가벼운 산행에 나선 시민들로, 주말에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발길로 차량 정체가 빚어질 정도이다. 산 정상에 서면 사방에 끝 없이 펼쳐진 LA 일대를 채운 야트막한 건물과 도심 중간의 마천루들의 모습이 한국인에게는 특히 낯설게 느껴진다.1896년에 지역 유지가 그리피스 부지를 시에 기부해 공원이 세워졌고 1935년 5월에 천문대가 건축됐다.영화와 TV 시리즈의 촬영지로 자주 이용돼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과 피어스 브로스넌의 `레밍턴 스틸`, `심슨가족 시리즈`(The Simpsons)등이 거쳐갔다.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장소는 제임스 딘의 흉상이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전세계에 LA와 미국영화를 상징하는 상징물인 `HOLLYWOOD`심볼이 배경에 담기기 때문이다. 인증샷인 셈이다. 대개 LA를 관광한 한국인들은 헐리우드 도심의 코닥극장 앞 계단에서 이 심볼을 찍어가지만 발품을 더 팔면 도심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보고 멋진 사진도 가질 수 있다.한국교민인 제이슨 박(한국명 박병남·47)씨는 “LA는 도심은 도심대로 민·관 협력을 통한 복합쇼핑몰이 있어 사람을 불러모으고, 그리피스천문대처럼 근교에 있지만 여러 테마를 활용한 휴식처가 있어 더 편안한 삶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