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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직원을 사랑한 사우스웨스트, 탄탄한 조직력 비결 됐다

□ 직원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사우스웨스트설립 초기, 임원인 킹이나 라마 뮤즈 등은 사원용 선술집에 가서 직원들과 격의 없이 맥주를 마시는 일이 흔했다. 일례로 이런 모습을 본 경쟁사 브래니프 조종사들은 놀라서 맥주 잔을 떨어뜨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특히 킹과 라마 뮤즈는 직원들의 만남을 통해 승객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승객들의 반응을 궁금하게 여겨 물었다고 한다. 킹은 현장에 나가 직원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여겼다고 알려졌다. 한달에 25∼30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고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공항 현장을 점검할 기회를 가졌다. 심지어 킹은 1971년에 현장에 나가 최전선에서 뛰는 직원들과 함께하는 날을 제정함으로써 이러한 행동을 하나의 기준으로도 확립했다.사우스웨스트의 창업자 허브 켈러허. 그는 올해 1월 3일(미국 현지시간) 87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사우스웨스트 제공□ 의사소통이 핵심이다사우스웨스트의 창업 첫해는 매우 어려웠다. 자원은 풍부하지 못했고 이용 승객수도 많지 않았다. 비행기 연료조차 두달씩이나 라마 뮤즈의 개인 신용카드로 구입해야 할 정도였다.지상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있는 것도 낡아서 잘 가동되지 않았다. 때때로 직원들은 아주 낡았거나 버린 장비를 구해다가 대체품으로 사용했다. 한창 브래니프와 사우스웨스트 사이에 치열한 법정공방이 오갈 때여서 갈등이 심했지만, 브래니프 정비공들은 부품이나 도구를 사우스웨스트에게 빌려주기도 했다.어쩌면 불쌍하게 생각했거나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을 공산도 크다. 업계 기준으로 볼 때 지상 장비가 불충분하고 작업 환경이 열악했지만 사기는 어느 회사 못지 않았다고 한다.열성적이고 직업 윤리가 강한 직원들은 항상 중진들과 격의 없이 의사소통을 했고 ‘재미를 추구하는’기업문화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외인구단이었던 사우스웨스트 직원들사우스웨스트 초창기 직원들은 상당수가 다른 항공사에서 해고된 사람들이었다. 당시 망해버린 퍼듀 항공사 출신이 많았고 군대 출신들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 사우스웨스트의 문으로 들어오게 됐다.이런 사람들은 실직이 얼마나 뼈아픈지 잘 알고 있었다.직원들은 남들보다, 다른 경쟁 항공사들보다도 더 잘해내야 한다고 알고 있었고, ‘10분 턴’ 등도 이러한 절박한 마음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오게 된 정책이였다고 회상한다.조종사, 승무원, 정비공 등도 틈만 나면 기내로 들어가 좌석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수화물을 정리하는 일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들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실제로도 정말 해냈다.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때 금기사항이 2가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못해’와 ‘그건 내 일 아니야’였다. 이러한 생존 전략은 창의적인 정신만 함양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유대 의식을 아주 단단하게 단련시켰다.인터뷰 ▶▶ 빌 콜(BILL COLE) 전 사우스웨스트 기장험난했던 법정 소송과 갖가지 방해 공작에도 사우스웨스트는 살아남았고 오히려 성공했다. 이러한 전설을 남긴 초창기 직원들은 아직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심이 강하다. 22년 동안 사우스웨스트 항공기를 조종했던, 창립자 중 한 명인 허브 캘러허와 개인적으로도 교류가 있었던 빌 콜 전 기장을 만났다.-본인의 소개를 부탁한다.△이름은 빌콜, 올해로 77세다. 현재는 러브필드 공항 근처에 위치한 항공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사우스웨스트는 물론이고 지역 투자자들이 합심해 만든 비행역사의 기록보관소 역할을 하고 있다.1965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월남전 참전도 한 경력이 있다. 대한민국도 군 복무 당시 임무 수행차 들린 적이 있어 친근하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 동안 사우스웨스트에서 기장으로서 일을 했다. 마지막 2년 동안은 조종 훈련 시뮬레이터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성공한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에도 사고사례가 있었는지.△기체 결함 정도는 있어도 큰 사고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무 당시 단 한번 사망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 사고도 옆의 비행기 펜이 고장나 조각이 날라오면서 우리 비행기 창가 승객 1명이 맞아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그때 기장과 부기장이 침착하게 대처해 비행기를 급강하시켜 산소마스크를 내려오게 했고 대형 인명피해를 막아냈다. 우리 사우스웨스트는 조종사 훈련이 굉장히 철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비상상황에 대응 방법도 이미 숙지해 항상 승객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사우스웨스트에 도움을 준 기관, 정부 등이 있다면.△정부는 우리에게 도움을 거의 안줬다. 거의 개인투자자들 중심이었다.새로운 지역항공사도 지자체나 우리의 ‘캘러허’같은 의지가 강한 인물이 나서서 투자자를 모으는게 우선으로 보인다. 사우스웨스트 설립자도 종잣돈을 가지고 개인 투자자들을 모아 시작했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를 자랑한다면.△최고의 직장이었다. 직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사우스웨스트를 직장으로 가진 건 축복이었다. 일하면서 은행에 예금도 잘 되있고, 직원들간 소통도 잘돼 서로 잘 뭉쳤다.특히 허브 캘러허는 나에게 있어 영웅이었다. 기존의 리더가 아닌 전혀 색다른 타입의 리더였다. 다른 항공사는 해고를 잘 하는데 사우스웨스트는 정말 큰 이유가 아니면 해고를 안한다.그래서 직원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흔히 회사가 어려울때 하는 정리해고도 우리 회사는 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실수를 해도 기간을 주고 개선하도록 도와준다.-회사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면.△뭐니뭐니 해도 허브 캘러허가 제일 기억이 난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소속감을 느끼도록 항상 배려했다. 한번은 내가 조종사였을 때 공항에 내리면서 마주쳤는데 캘러허가 “조종사, 차가 어딨냐”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직원 주차장에 있다”하니, 캘러허가 “1번 게이트에 내 차가 있으니 같이 가자”라며 운전해줬다. 캘러허는 항상 직원들에게 친근했고 스킨십도 서스럼없이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직원들을 안고 키스하기도 했다.또한 내가 아들과 야구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캘러허가 담배를 입에 물고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와 시구하는 등 그는 정말 자유분방하면서도 그릇이 크게 느껴진 사람이었다.요즘에는 컴퓨터로 하지만 옛날에는 조종사들이 모여 노트에 몇시에 비행기를 타는지 기록하는 ‘파일럿 라운지’가 있었는데 캘러허가 항상 매일 아침 나와 인사하고 ‘우리’라는 개념을 상기시켰다.콜린 법률사무장도 기억에 남는다. 사우스웨스트 조직 문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사우스웨스트 문화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어느날 직원들에게 줄 먹을 것을 챙겨온 적이 있는데 직원들과 얘기하다가 “우리 이날을 문화의 날로 만듭시다”라며 즉흥적으로 제안해 실제 기념일이 정해지기도 했다.-포항시를 기반으로 했던 저가항공사가 최근 운항을 중단했다. 항공사를 두고 싶어하는 포항시에 조언을 한다면.△논리적으로 봐도 이용자가 시민들이다. 시민 중 사업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커뮤니티 등 단체를 만들어 ‘우리는 지역항공사를 원한다’라는 슬로건으로 항공사 창립 또는 유치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세계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대기업들의 지원을 받는 것도 좋을 듯하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10-30

고향 지킨 ‘뚝심’, 직원과 이익 나눈 ‘파격’ 통하다

□ 댈러스의 토종 공항, 러브필드댈러스 러브필드(DALLS LOVE FIELD) 공항은 지난 1917년에 군공항으로 개항해서 1927년부터 민항기를 취급하고 있다.러브필드의 ‘러브(LOVE)’는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닌 1911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조종사 모스 러브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하지만, 사우스웨스트는 ‘THE REASON PEOPLE HAVE ALWAYS LOVED LOVE FIELD(우리가 러브필드를 러브(사랑)해온 이유’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공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사우스웨스트의 본사 역시 이 공항에 있다.러브필드 공항은 단순한 공항으로 보기보단 댈러스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역사를 함께해온 공항으로서도 의미가 크다. 그 유명한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 당하기 전, 1962년 11월 22일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러브필드 공항에 첫발을 내딛은 바 있다.그때 미국 정계는 혼란한 상태였다. 케네디 대통령의 민권을 앞세운 정책이 각계에서, 특히 극우세력들의 거센 반발을 받는 상황이었다.케네디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텍사스 주 지역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의도로 댈러스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를 역사로 남기기 위해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다운타운 딜리 플라자에 ‘6층 박물관(6th floor museum)’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에는 현재까지도 케네디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한 미국 갤럽의 조사결과, 미국인의 60% 이상은 여전히 케네디 암살에 배후가 있다고 믿었고 오스왈드 단독범행이라는 답변은 30%에 그쳤다.러브필드 공항에서 내린 케네디 대통령은 시가지에 오픈카 종류인 전용차를 타고 부인과 행진하다가 암살범 오스왈드에 의해 모두 3발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한발은 전용차를 빗나갔고, 한발은 케네디 대통령과 텍사스 주지사를, 나머지 한발은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를 직격했다.오스왈드는 대통령 암살을 위해 여러 장소를 물색하다가 다른 곳에 비해 덜 눈에 띄면서도 대통령의 동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이기에 딜리 플라자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박물관에는 당시 행진 이후의 스케쥴이었던 댈러스 지역 유지들과의 만남 장소에서 사람들이 대통령의 총격소식을 듣고 손을 모은 채 회복을 기도하는 사진 등 역사의 흐름이 여실히 소개되고 있다.박물관에서 만난 텍사스 주민 앤더슨 씨는 “러브필드 공항은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로 케네디 대통령 방문 역사는 물론, 현재 댈러스 발전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교통인프라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러브필드 공항을 고집한 사우스웨스트지금의 댈러스 제1공항 댈러스 포트워스 국제공항이 완공되어가는 당시, 사우스웨스트는 기존의 러브필드 공항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서 공항 관리공단 측에 신공항으로 옮겨 가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전했다.댈러스 도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러브필드 공항이 도시에 빨리 들어가 일을 보고 싶어하는 출장자들에게 안성맞춤 공항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객들을 상대로 도심에서 30분이나 떨어진 포트워스 공항으로 발착지를 옮겨 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게 사우스웨스트의 입장이었다.하지만, 1968년 채권 규정에 의하면, 신공항은 항공사들의 이착륙비와 시설 사용비 등 공항 이용료를 통해 공항 시설에 투자된 돈을 회수하기로 되어 있었고 만약 손실이 발생하면 공항 관리공단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결국 이전에 사우스웨스트가 휴스턴의 인터컨티넨털에서 하비로 옮겨 간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휴스턴과 포트워스 일대의 항공사들은 또다시 사우스웨스트의 공항 비이전 고집을 괘씸하게 생각해 1972년 6월 6일, 법원에 고소한다.또다시 법정 싸움에 돌입한 사우스웨스트는 32일간의 심리 끝에 ‘러브필드 공항에 머물러도 좋다’는 판결을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연방 대법원에서도 상소를 ‘이유 없음’으로 기각했다.오히려 1975년 2월 14일 사우스웨스트를 공격한 브래니프와 택사스 인터내셔널이 미 정부에 의해 기소됐다. 혐의는 사우스웨스트의 정당한 영업 행위를 방해해 그들을 항공업계로부터 쫓아내려 했다는 것이었다.브래니프와 텍사스 인터내셔널은 ‘이의 없음’으로 혐의를 인정했고 10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1977년, 러브필드 공항을 사수하기 위한 5년간의 법정공방은 사우스웨스트의 승리로 끝났다.물론 33회에 걸친 사법부 및 행정부 처분을 거치면서 사우스웨스트는 전국의 법원이나 행정부 중 가보지 않은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경험(?)을 쌓았다.이후에도 1979년에 연방의회가 포트워스 공항을 살리기 위해 러브필드에서 장거리 영업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하자, 사우스웨스트는 해당 조항에서 취항이 허가된 인근 주에 미니 허브를 만들어서 환승환적을 해가면서까지 영업했다.해당조항은 지난 2006년에 폐기됐고 사우스웨스트는 사랑하는 러브필드를 지켜냈다. 더욱이 공항에서 나가는 도로 이름마저 사우스웨스트의 창업자의 이름을 따 ‘허브 캘러허 웨이’로 바꿔버렸다.□ 러브필드 사랑만큼 색다른 조직 운영러브필드 공항을 고집하는 사우스웨스트는 그 애향심만큼이나 조직운영에서도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사우스웨스트의 정신을 키워온 캘러허는 1978년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인사부에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라’라는 특별 주문을 했다.사우스웨스트는 유머가 많은 사람일수록 변화에 잘 적응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창조적이며 또 보다 효율적으로 일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놀 때 열심히 놀고 남들보다도 더 건강하다는 것.사우스웨스트는 직장 분위기가 밝지 않으면 생산성, 창조성, 적응성을 떨어뜨리며 직원 채용 기준에서 유머를 최우선 조건으로 설정함으로써 직장 안팎에서 즐거움, 자부심, 재미 등을 찾아가는 방법을 고민한다.특히 직원을 자원 이상의 존재로 여긴다. 직원 채용에 통일된 하나의 근본 원칙으로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유머 감각은 물론이고, 남들에게 베풀 줄 아는 이타심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중요 기준이다. 즉, 태도를 본다는 것인데 실제로 항공업계에서는 파격적인 회사 제복인 버뮤다 반바지를 입을 용의가 있냐고 물어보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탈락시켰다.모험정신을 본다는 의미로, 필요한 일은 뭐든지 하려고 달려든다는 정신을 함양시키는 문화로써 사우스웨스트에 유난히 장기 근속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로도 들고 있다.‘10분 턴’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자세가 이미 입사에서부터 만들어짐을 볼 수 있다.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의 이익도 직원들에게 나눠줄 만큼 파격적이다. 1973년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직원을 위한 이익 나누기 계획을 도입해다.오늘날에도 모든 사우스웨스트 직원은 채용된 다음해 1월 1일자로 이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사우스웨스트는 세전 소득의 15%를 이익 나누기 계획에 배정한다. 1970년대에 사우스웨스트는 사원들의 임금 양보를 요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 주식을 나눠 준 유일한 항공사였다.1973년 이래, 매년 이익을 내온 사우스웨스트는 이익을 직원들에게 나눔으로써 오히려 주가가 몇배로 뛰어오르는 진풍경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익 나누기는 중역들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직원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었다. /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2019-10-23

‘무조건 성공’ 보장 없어… ‘지역관광 상생’ 전략 세워야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지난 10월 18일 ‘목포해상케이블카’ 탑승체험을 한 후 정인채 새천년종합건설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도지사가 직접 케이블카 사업을 맡은 건설사에 감사패를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 이는 그만큼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전남도청에 따르면 새천년종합건설은 850억원을 투자해 목포 북항∼유달산∼고하도를 잇는 총 연장 3천234m(해상 820m·육상 2천414m)의 목포해상케이블카를 조성해 지난 9월 개통했다. 이 케이블카는 국내 최장 운행거리와 전 세계 최고 지주 높이 155m를 자랑하고 있다. 목포해상케이블카 개통 이후 18일까지 33일간 케이블카를 탑승한 이용객 수는 21만1천여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6천400명이 이용한 셈이다. 주중 5천여명, 주말 1만여명이 이용하는 등 케이블카 개통으로 목포를 찾는 관광객 수가 급증하면서 서남해안을 대표하는 명품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김 지사는 감사패를 전달하면서 “최근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새천년종합건설의 아낌없는 투자와 헌신에 감사드린다”며 “전남 서남해안의 아름다운 섬과 바다 등을 세계적 해양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전남의 새천년 비전인 ‘블루투어(Blue Tour)’ 실현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지역 사회가 똘똘 뭉쳐 케이블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경우도 있다.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전형적인 예다. 설악산오색케이블카사업의 경우 이를 백지화시킨 환경부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며, 이와 관련해 친환경설악산오색케이블카추진위원회는 지난 10월 10일 양양군 양양읍 남대천 둔치에서 ‘환경부 규탄 범도민 궐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앞서 환경부는 지난 9월 16일 설악산오색케이블카사업과 관련해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자연환경과 생물 다양성 등에 미칠 영향과 사업 승인 부대조건의 이행 방안을 검토한 결과, 환경 가치 훼손이 심각하고 보완 대책도 미흡해 사업이 재검토돼야 한다”며 부동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015년 8월에 국립공원위원회가 조건부 승인을 낸 이후 4년 만에 이러한 결정이 떨어지자, 친환경설악산오색케이블카추진위원회를 비롯한 지역사회는 “환경부는 적폐를 내세워 강원도와 양양군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사업을 불허하려면 일찍 할 것이지 수년 동안 끌어오다가 이제 와서 부동의 한 환경부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즉각 반발했다. 김진하 양양군수 역시 “양양군민 모두가 단합된 힘으로 밀고 나가자”고 밝히는 등 민관이 하나 돼 케이블카 사업을 다시 재개하기 위한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이들 사례 외에도 통영케이블카의 성공으로 촉발된 케이블카 건설 사업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수많은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다. 포항을 비롯해 강화, 춘천, 화성, 거제 등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케이블카 사업에 뛰어드는 등 전국이 케이블카로 들썩이는 상황이다.□ 양날의 검, 케이블카그렇다면 케이블카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 사업일까.여수해상케이블카의 경우 출발은 좋았으나, 현재 시와 업체가 소송을 벌이며 시끄러운 상황이다. 사업 시작 당시 운영업체에서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기부금을 지역사회 환원 명목으로 내기로 했었지만, 이를 약 2년 전부터 거부하며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어 업체 측은 지난 2016년 만들어 여수시에 기부한 오동도 주차타워도 다시 찾아오겠다는 의지를 최근 내비치고 있어 지역 사회와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이는 기본적으로 민자사업으로 추진됐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데, 사천시시설관리공단이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천바다케이블카의 경우 “민자사업 이슈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관광 사업의 경우 서로 상생하는 ‘공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사천시시설관리공단 박태정 이사장은 “우리나라 케이블카 중 케이블카 수익만으로 제대로 돌리는 곳이 절반도 될까 말까다”며 “사천시와 같이 시설공단이나 공사가 하는 것이 버티는 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카의 미래에 대해 “어느 시점에 가면 분명히 인건비가 나오지 않을 경우가 있다”면서 “만약 시에서 운영한다면 적자분에 대한 보전이 되면서 재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겠지만, 개인 회사는 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 이는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실패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케이블카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그는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이와 관련해 “이 상태로 가면 5년 내나 10년 내 적자로 가지 않을까 싶다. 다른 것을 찾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서 주변에서 연계하고 소비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로서의 케이블카를 강조했다. 즉 주변과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부분은 민자 사업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을 내비친 것이다.그는 “개인이 한다면 주변 땅을 다 사서 하지 않는 이상 서로 상생하는 점은 불가능하다. 케이블카를 실컷 지어놨더니 주변 식당이나 상가가 돈을 벌어가는 상황이 온다면 사업주는 어떤 판단을 내리겠나. 고철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10년을 해야 본전을 찾을 것이다. 그 이후를 돌아봐야 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포항은 아직 시작단계, 지역 사회와 충분한 소통 필요민자 사업 이슈 외에 지역민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는 해운대와 이기대를 연결하는 해상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를 둘러싸고 지역사회는 찬반 논란이 가열되며 둘로 쪼개진 상황이다. 반대 측에서는 “공공재인 부산 앞바다가 기업에 사유화되고, 동백유원지와 이기대가 상업 개발로 환경이 훼손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찬성 측에서는 “해상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연간 31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침체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케이블카 도입은 필수다”라고 맞서고 있다.포항의 경우 아직 시가 업체와 MOU만 맺은 상황이어서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타 지자체의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 사업 실패 확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지 선정부터 사업 추진 방식까지 전부 백지화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지역민을 포함한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소리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민자 사업으로 추진하더라도 지역 관광과의 상생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이다. 만에 하나 케이블카가 수익성 저조로 폐쇄돼 흉물로 전락한다면, 영일만관광특구 지정으로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포항 관광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입지에 대한 재논의도 필요하다. 포항의 현 사업지인 영일대해수욕장과 관련해 타 케이블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풍광이 걱정스럽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즉 동해 자체가 지평선 외에 볼 것이 없는 상황에, 영일대 해수욕장의 나름 장점인 포스코 야경의 경우에도 “산업단지라는 정서가 관광적인 목적으로 크게 와 닿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상생의 손으로 대표되는 일출 명소이자 호미반도 해안둘레길로 이미 풍광의 우수성이 입증된 호미곶과 같은 최적의 장소는 제외하고, 굳이 주거지와 상가가 몰려 있는 영일대해수욕장을 고집하는 것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계획대로 영일대해수욕장이 사업지가 된다면, 해수욕장과 바로 인접해 있는 주민들과의 갈등 또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이미 국제적인 행사로 거듭나고 있는 포항국제불빛축제만 하더라도 영일대해수욕장 인근 주민들이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케이블카가 들어서면서 생기는 소음과 인파는 분명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여수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여수는 섬지역이고 교통이 평지와 비교하면 제한돼 있어서 일시적으로 몰리면 여파가 시 전체로 퍼져 나간다”며 “포항의 경우에도 케이블카 사업지 인근에 주거지가 있다고 하는데, 복잡한 곳에 설치하게 되면 교통 문제가 가장 걱정이다”고 밝혔다.사업 타깃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케이블카는 인근 관광지와의 연계가 중요하며, 어떤 연령층을 주요 타깃으로 잡느냐에 따라 이 연계의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사업 초기단계부터 고령층을 중심으로 정적이고 휴양적인 프로그램으로 짤 것인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활동적이고 체험적인 프로그램을 짤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잡아나가야 한다.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케이블카가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전국에서 너도나도 해당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케이블카 자체가 ‘레드오션’이기 때문이다. 수요는 정해져 있는데 파이만 늘어나면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포항시가 단순히 “MOU만 맺었으니 끝”이라는 자세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2019-10-21

‘어떻게 하면?’ 끊임없는 질문이 항공사 날게 했다

교통은 지역의 발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까지 모두 큰 강의 유역이다. 하나같이 농업에 유리한 물이 풍부하다는 장점과 함께 교통이 편리하다는 특징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세계 무역의 중심이었던 실크로드 또한 세계 각국으로 통하는 사통팔달의 교통로이다. 중국 비단의 로마로의 무역, 당제국과 비단길 무역, 불교의 전래 유통로, 몽골 제국와 동남아시아 및 해상 비단길까지 아우르고 있다. 현재 실크로드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의해 철도, 항로 등 신 비단길이 형성되고 있다.동해를 끼고 있는 포항시도 최적의 교통망 개설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향후 북한과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으로 통하는 환동해 물류중심도시도약의 길이 열려 있다.하지만, 인구 50만의 도시에 비해 하늘길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포항시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지역항공사 ‘에어포항’은 임금체불, 경영난 등으로 취항 10개월여만에 운항을 중단했다. 미국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을 허브공항으로 두고 있는 세계 3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의 성공사례를 토대로 날개가 꺽인 포항의 저가항공사 재취항 가능성을 짚어봤다.□ 사우스웨스트의 성공은 정신에 있다위대한 업적을 기록한 회사들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신념, 의무, 사명감 등이 있다. 사우스웨스트도 예외는 아니다.이 회사 직원들은 단순한 수익을 내기 위한 고용된 직원이라기보다 스스로 항공사업에 동참한 ‘십자군 운동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신적 토대가 바로 사우스웨스트의 최저운임 유지의 기반이 되고 있다.직원들은 평상시에도 ‘우리 비행기를 타는 손님들을 어떻게 하면 잘 보호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을까, 저비용 때문에 우리 회사 비행기를 타는 노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해드릴 수 있을까’ 등을 수시로 확인하는 원칙을 고수한다.이러한 원칙들을 사우스웨스트가 포기했다면 미국 소비자들이 혜택받은 연간 수십억 달러의 요금 인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익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수익을 추구하는 이면에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바로 이러한 정신적 원칙에 기인하고 있고 이 점은 회사 창립에서부터 두드러지고 있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역사를 보면 용기와 인내로 점철돼 있다. 미국 항공 업계 역사상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처럼 극적인 투쟁을 거쳐 항공업에 진출한 유래가 없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샌안토니오의 사업가이면서 자그마한 항공 서비스 회사를 소유한 콜린 킹과 그를 지원하는 은행가 존 파커의 합작품이었다.1966년 킹은 대형 비행기를 가지고 텍사스 주의 주요 3개 도시를 운항하는 새로운 항공 회사를 만들겠다는 기획서를 들고 현재까지도 사우스웨스트의 역사적 인물로 일컬어지는 ‘허브 캘러허’를 찾아간다.캘러허는 처음엔 이 아이디어가 황당하다고 생각했으나, 흥미도 가지고 있어 사업구상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1967년 3월 15일, 캘러허는 에어 사우스웨스트 컴퍼니(현재 사우스웨스트)의 법인 설립 서류를 법원에 제출한다.킹은 캘러허의 도움을 받아 사업 구상을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며 최초의 종자 자본을 모금했다. 2차 자본 모집에도 박차를 가했고, 정계의 정치적 도움도 요청했다. 결국 2차 자금 모집에서 킹, 캘러허, 내글리(캘러허의 처남), 피스(샌안토니오의 변호사·사업가·정치가) 등 4명의 사업가는 54만 3천 달러를 거두게 됐다.1967년 11월 27일 캘러허는 사우스웨스트의 신청서를 텍사스 항공 위원회에 제출했고 1968년 2월 20일, 항공위원회는 이 신청을 허가했다.하지만, 사우스웨스트는 하늘에 비행기를 띄워 보기도 전에 브래니프, 트랜스 텍사스, 컨티넨털 항공사 등 기존 항공사들로부터 법적인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어려움 속에 싹튼 기업 정신기존 항공사들이 항공 위원회가 사우스웨스트에 항공업 면허증을 발급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이들 항공사들은 사우스웨스트가 취항하려는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신규 회사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양측의 소송은 너무나 치열해 ‘텍사스 리포트’지는 한때 독자들에게 연예 오락이 따로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캘러허와 기존 항공업체를 대변하는 변호사들 사이의 법정 싸움이 매일 벌어졌으며 1심 법원에서 사우스 웨스트가 이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것은 허가할 수 없다는 판결마저 내려졌다.종잣돈도 소송 비용으로 다 써버린 탓에 사우스웨스트 이사회 이사들은 피곤한 데다 좌절감마저 느꼈다.이사회 중 일부 이사들이 차라리 손절매하고 회사 설립 구상을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마저 내놓았다.하지만 ‘파이터’캘러허는 당시 “여러분, 한 번만 더 싸워 봅시다. 내가 계속 회사의 법정 대리인으로 나서겠습니다. 나에게 주는 변호사 비용의 지불을 무기한 연기해도 좋습니다. 또 각종 법정 비용은 내 호주머니에서 대겠습니다”라며 설득했다.캘러허의 열변과 사자후가 통했는 덕분이였을까. 대법원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엎고 사우스웨스트의 손을 들어주게 됐고 결국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업 면허를 받게 됐다.사우스웨스트가 중요한 싸움에서 이겼지만, 기존 항공사들은 ‘끈질긴 방해공작’을 그만두지 않았고 연방 대법원에 항소하며 향후 몇년 동안에도 여러번 법정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다행히 타 항공사에서 백전노장으로 알려진 라마 뮤즈를 신임 대표 이사로 영입하면서 희망의 불씨가 재차 살아났다. 뮤즈는 항공업계 친구들 및 관련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7백만달러의 자금을 추가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사우스웨스트의 초창기 법정싸움은 직원들을 오히려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직원들은 댈러스 모닝 뉴스나 댈러스 타임스 헤럴드 등 지역 신문지에서 본인들의 회사 전망이 암울하다는 기사를 보면서 회사와 함께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경쟁 속에서 생존 전략을 찾아내다사우스웨스트는 저운임 정책을 혁신적으로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항공 업계는 민간 항공국에서 승인받은 균일한 운임을 책정했다.항공사들은 시장은 비행기 값을 낼 여력이 있는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고 바라봤다. 항공료 인하는 곧 수입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기존 항공사들은 항공기 수송에 문제가 생기거나 비용이 상승하면 곧장 항공료를 올렸다.하지만, 사우스웨스트는 이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낮은 운임과 훌륭한 서비스를 연결시키면 얼마든지 새로운 승객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봤다.1973년이 되자 수익이 어느 정도 나기 시작한 상태에서 뮤즈는 리오그란데 밸리 일대에 눈독을 들이고 할링언 공항에 추가 취항을 신청한다.이 판단은 정확했고 당시 텍사스 인터내셔널이 심한 노사 분규에 휘말린 상태에서의 밸리 일대 공백을 정확히 노려 기존 승객수의 거의 3배 가까이 증가하는 성과를 거둔다.증가의 원인으로는 사우스웨스트의 낮은 운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행기를 탈 기회를 줬기 때문이고, 이를 통해 박리다매 가격 정책의 성공을 한번 더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또한 지금도 회자되는 ‘10분 턴’전략을 실시해 마찬가지로 성과를 거두게 된다. 비행기를 빠른 시간 안에 회전시켜 정기 스케줄을 유지할 수 있었고, 또 항공업계 내에서 정시 발착을 가장 잘 지킨다는 전통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기장 등 조종사와 타 부서 직원들도 비행기 출항 준비에 부서 구분없이 협력한 것이 비결이었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10-16

낮엔 한려수도의 눈부심이, 밤엔 다리 밝히는 황홀한 조명빛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띄운 곳인 사천만에 자리를 잡은 사천시는 경남의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상으로는 여수시부터 거제시까지 이르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중심에 있다. 인구는 11만5천여명이며, 시 중에서 면적은 그리 크지 않은 약 399㎢로 전국 63개 시 중 58번째로 작은 도시다. 그러나 작은 규모가 단점은 아니다. 사천은 지형 요건이 매우 뛰어난 편인데, 시의 동과 남은 고성군과 남해군을 경계해 와룡산과 바다에 걸쳐 있고 서북은 진주시와 하동군이 경계하며 지리산이 뻗어내린 산악으로 형성돼 있어 해안평야가 남북으로 전개돼 있다. 또한 덕천·사천·죽천·백천·곤양천이 흘러 수리이용이 높고 토양은 비옥하며,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어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다. 사천시는 이 외에도 한려수도의 중심 기항지이며 서부 경남의 관문 항구로서 교통의 요지이자 수산물 집산지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온화해 농수산업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은 전략산업인 항공우주산업과 더불어 사천시가 남해안 해양관광의 거점 도시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에서 대상을 차지한 삼천포 대교와 연인들로부터 가장 가고 싶은 곳 1위를 차지한 삼천포 대교공원 등을 중심으로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와룡산, 각산을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체험거리가 넘쳐나는 해양 관광의 파라다이스다. 그리고 이러한 관광의 중심에는 사천바다 케이블카가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사천 관광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2018년 4월 개통된 이래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어 사천시가 해양관광 거점도시로 발돋움하는데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사천시의 바다케이블카는 통영과 여수케이블카를 합쳐놓은 국내 유일하게 바다와 산을 동시에 지나가는 명품 케이블카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일단 사업 현황을 살펴보면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지난 2015년 12월 설치사업에 들어가 2018년 7월 4일 준공했으며 사천시 동서동(초양도∼각산) 일원에 위치해 있다.국비 50억, 도비 100억, 시비 448억 총 59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2.43㎞의 길이에 정류장 3곳, 캐빈 45대가 운영 중이다. 왕복 시 운행시간은 20∼25분정도 소요된다. 사천시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고 있으며, 2019년 6월말까지 128만2천123명의 탑승객이 다녀가 186억여원의 이용료 수익을 냈다.사천시가 내세우는 사천바다 케이블카의 장점은 무엇보다 ‘산-바다-섬’을 잇는 국내 최초의 케이블카라는 점이다. 즉 우리나라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산 아니면 바다를 잇는 단조로운 코스를 가지고 있는 반면,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섬(초양도)과 바다와 산(각산)을 잇는 3개 정류장(대방, 초양, 각산)의 승하차 시스템을 적용해 더욱 역동적이고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안전성 역시 확보했다. 10개월에 걸쳐 풍동(風動)실험을 실시한 후 자동순환 2선식을 채택해 한겨울의 매서운 바닷바람에서도 흔들림을 최소화한 든든한 안전장치로 설계됐고, 순간 돌풍과 강풍 등 돌발상황을 대비해 모든 지주에 풍향, 풍속 계측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한 구조시스템도 마련했다. 전력 공급이 끊기면 비상 엔진으로 구동용 케이블을 돌려 비상 운행하고, 자체 모터를 가진 특수 구조차가 캐빈에 직접 접근해 승객을 안전하게 구조하게 된다.모든 구간이 무진동으로 운행된다는 점도 사천바다 케이블카의 특징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지지하고 있는 철탑부분을 통과할 때마다 덜컹거리는 진동으로 공포감을 느끼는데, 사천바다케이블카는 모든 구간이 무진동으로 운행돼 케이블카를 타는 내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직선코스(국내 대부분의 케이블카)가 아닌 대방역사에서 각산역사로 올라가는 구간이 초양역사와 대방역사 구간보다 약 26.6도가 꺾여 더욱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며 이 무진동의 묘미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그 밖에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쾌적한 캐빈의 내부 환경을 고려해 10인승 중형 캐빈을 이용하고 있으며 최대 속도 6m/s로 시간당 최대 1천300명이 이용할 수 있다. 크리스탈 캐빈은 총 45대 중 15대로 바닥이 투명 유리로 돼 있어 816m 바다 구간을 최고 높이 74m(아파트 30층 높이)에서 관람할 수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와 연계된 사천 관광사천바다 케이블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는 다른 케이블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1968년 우리나라에서 4번째이자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해양생태계의 보고이자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름난 한려수도는 71개의 무인도와 29개의 유인도가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사천지구에 속해 있고, 이러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 선착장 역시 케이블카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사천 8경 중 제1경인 창선·삼천포대교도 케이블카를 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케이블카 선로 자체가 이 두 대교를 따라 건설됐기 때문이다. 창선·삼천포대교는 사천시의 대방과 남해군의 창선을 연결하는 연륙교로 우리나라 최초의 섬과 섬을 잇는 다리다. 낮이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눈부심이, 밤이면 대교를 밝히는 아름다운 빛의 조명이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케이블카가 각산 정상에 도착하면 각산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약 해발 400m에서 사천시와 삼천포대교,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횃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수단이 옛 모습대로 남아있는 곳인 각산 봉수대도 전망대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봉수대는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 놓은 곳으로, 과거 횃불과 연기로 적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던 군사 통신 수단으로 삼국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산 봉수대는 각산의 정산인 해발 408m의 고지에 있으며 수많은 자연돌을 모아 둥그렇게 만든 형태이다. 고려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남해 금산에 있는 구정봉의 연락을 창선 태방산을 거쳐 받았다. 사량도의 공수산 봉수를 고성 좌이산 봉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사천시 관광진흥과 박용국 관광시설팀장“충분한 관광수익 올리는친환경 시설로 인정받아 ”- 사천바다케이블카만의 장점은.△바다구간 길이가 820m다. 즉 한려해상국립공원 위를 횡단한다. 이후 각산정류장까지는 산을 올라가기 때문에 바다와 산을 모두 지나갈 수 있어 누가 봐도 인프라가 뛰어나다. 사업비를 많이 들인 만큼 케이블카도 자동순환 2선식으로 지어져 매우 안전하다. 또한 바다 구간에는 지주를 박지 않아 환경적인 면도 고려했다. 1년 반 정도 운행하는 기간 강풍으로 인한 예방적 차원에서 잠시 케이블카를 세웠던 것 등의 조치를 제외하면 사고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사천 관광에 많은 도움이 되나△많은 도움이 된다. 케이블카가 건설되고 나서 재래시장 등 지역 상인들이 관광객들이 많아졌다고 몸소 느끼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워낙 방문객이 많기 때문에 숙박을 하지 않고 식사한 한 끼 해결하고 가더라도 엄청난 규모다. 케이블카 주변 땅값도 많이 올랐다.- 사업 추진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환경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이슈가 있었으나 큰 반대가 있지는 않았다. 기존에 개발이 많이 됐던 곳이라 오히려 케이블카를 설치하길 주민들이 원했다. 바다쪽에 지주를 박게 된다면 바로 어민들이 반대에 나섰겠지만, 지주를 박지 않는 쪽으로 건설을 해서 이 문제도 해결했다.- 사업을 시작하는 지자체에게 한마디△케이블카는 누가 봐도 공해 시설이라고는 볼 수 없고 기본 목적이 운송이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주택가를 지나는 곳이 많다. 주민들이 노파심에 많은 걱정을 하는 것으로 안다. 지역에 대한 발전 등을 생각하면 대의적인 측면에서 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도 이를 적극 어필해야 한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10-07

천혜의 경관이 계획된 관광인프라와 만나 세계적 명소 탄생

서울 면적의 채 두배도 되지 않는 1천100여㎢에 7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홍콩은 최근 잇따른 시위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시지만, 원래는 아시아 금융과 물류 허브이자 쇼핑의 메카로 유명세를 떨쳐왔던 곳이다. 1841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은 그 이유에서인지 중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1국 2체제라는 이름 아래 자치권을 누리는 지방행정구역이며, 현재까지도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영토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된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배 흔적이 남아있는 이러한 이질적인 모습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차별된 많은 매력을 갖추고 있어 연중 수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등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히는 마천루들의 모습,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홍콩 영화의 태생지, 중세 중국의 건축물 유적, 서양·중국·동남아시아가 혼재된 문화 등 많은 것들이 홍콩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부분의 인파가 몰리는 곳은 흔히 홍콩섬과 홍콩섬 맞은편이자 중국 대륙과 붙어 있는 구룡반도다. 그러나 홍콩 국제공항이 위치한 란타우 섬도 ‘의도적으로’ 관광을 위한 각종 명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선 디즈니랜드가 있으며, 그다음으로 옹핑360 케이블카를 중심으로 한 란타우 섬 일주 관광 코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옹핑360 케이블카는 홍콩을 1박 이상 머무는 관광객들이 들르기도 좋지만, 공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비행기를 환승하려고 대기하는 방문객들이 잠깐 서너 시간 짬을 내 홍콩을 구경하기에 최적화됐다.한해 20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고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계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옹핑360 케이블카와 그 주변 관광지에 대해 살펴보면, 풍광은 돈을 주고도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계획된 관광 인프라가 맞물려야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끼고 방문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란타우 섬 관광의 시작지 옹핑360 케이블카홍콩 란타우 섬은 1998년 국제공항이 생기기 전까지는 불모지였다. 그러나 공항 건설 이후 해변 휴양지인 ‘디스커버리 베이’, 유원지인 ‘홍콩 디즈니랜드’, 아시아에서 가장 긴 이중 케이블 선로를 사용하는 ‘옹핑 360’까지 들어서며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홍콩 내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란타우섬의 관광은 구룡반도를 통과한 지하철이 멈추는 퉁청역에서 시작하는데, 그곳이 바로 옹핑360이 위치한 곳이다.옹핑360은 퉁청역에서 출발해 포린사가 위치한 옹핑 빌리지까지 이동한다. 길이는 5.7㎞로 총 소요시간은 25분이다. 케이블카는 스탠다드와 크리스탈 두 가지가 있는데, 크리스탈의 경우 요금은 더 비싸지만 바닥이 유리로 이뤄져 발아래의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5분이라는 시간이 얼핏 길고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란타우 섬의 다채로운 풍광은 그러한 걱정을 말끔히 씻어준다. 바다와 섬을 공중에서 바라보며 이동하는 경험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다. 출발하면 가장 먼저 퉁청 개발 지역을 지나 자연 서식지이자 낚시·조개잡이로 잘 알려진 퉁청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이 해안은 습지와 바다 식물의 독특한 조합으로도 유명하다. 이어 매일 약 1천100회의 비행이 이뤄지는 국제공항, 아시아 월드 엑스포가 먼 거리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50㎞ 길이인 홍콩-주하이-마카오 브릿지의 전경 또한 탁 트인 남중국해와 함께 어우러진다. 홍콩 란타우 섬, 마카오 반도와 광둥 지역의 주하이 시를 연결하는 이 다리에는 인공 섬과 해저 터널도 있다. 특히 란타우 섬 일대는 그 자체가 국립공원이라 케이블카 역시 친환경적으로 지어졌고, 그 덕분인지 잘 보존된 경관은 하이킹 코스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1978년에 설립된 22㎢ 면적의 이 공원에는 네이 락 샨과 옹핑 북부를 비롯해 선셋 픽, 이 퉁 샨, 리 파 샨, 란타우 픽 북부 경사로와 같은 꽤 많은 인기 하이킹 명소가 있다. 마지막으로 케이블카가 옹핑에 도착하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티안 탄 부처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옹핑360 케이블카와 연계된 란타우 섬 관광옹핑360 케이블카는 그 자체로도 관광상품이지만, 란타우섬 관광을 시작하는 출발지로서의 의미도 있다. 즉 케이블카만으로도 아시아에서 으뜸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 관광 인프라 역시 그에 못지않게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은 옹핑 빌리지다. 이 곳은 불교 테마 마을로 옹핑의 경치 좋은 자연에 동화되도록 설계·조경된 마을이다. 식당과 각종 기념품점 외에도 붓다의 길, 원숭이 극장 등의 볼거리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옹핑 빌리지를 걸어서 조금만 지나면 바로 포린사가 나온다.홍콩 최대 규모의 불교 사원으로 바로 옆에 위치한 티안 탄 부처상(천단대불)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부처상은 높이 26.4m로, 연꽃 좌석과 받침대까지 포함한 총 높이는 34m다. 250t의 청동으로 만들어져 12년 동안 주조됐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야외 부처 동상이다. 관광 목적이 아니더라도 불교계에서도 유명해 세계 각지의 승려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68개의 돌계단을 올라 3층 제단에있는 큰 불상에 도달하면 플랫폼에서 란타우 섬과 남중국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포린사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면 타이오라는 어촌 마을이 나온다. 타이 오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어촌 마을로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상 가옥들이 유명하다. 또한 핑크 돌고래가 출몰하는 인근 바다로 떠나는 돌고래 투어도 있다. 이 외에도 청사 해변, 홍콩의 유럽이라 불리는 디스커버리 베이 등도 들를만한 곳이지만, 란타우 섬 관광의 마지막은 시티게이트 아웃렛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옹핑360의 출발지인 퉁청역에 있는데 공항과 아주 가까워 입출국을 앞두고 방문하기에도 좋다. 아웃렛이라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며, 대형슈퍼 TASTE도 있어 이를 구경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옹핑360 케이블카의 위상옹핑360 케이블카는 란타우 섬 관광의 처음이자 끝이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이동 수단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예약 없이 방문할 경우 짧게는 한 시간, 적어도 두 세 시간은 기다려야 탈 수 있을 만큼 인기도 있다. 이러한 모습은 케이블카 이동 구간마다 꽉 채워진 자연 풍광과 건축물들도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타 관광지와 유기적으로 연계된 프로그램의 역할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즉, 서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런 부분은 케이블카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케이블카는 무조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다.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천혜의 경관을 전제로 하고, 거기에다 철저한 계획을 통한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가 뒷받침돼야만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09-30

100m 상공서 감상하는 도심속 바다 지역경제 활성화 원동력 키워낸다

포항시가 ‘해양관광 1번지, 명품해양관광도시’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바다’를 이용한 활발한 관광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시는 지난 8월 관광특구로 지정된 영일만 일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영일만 관광특구는 포항시 환호동에서 송도동을 잇는 약 2.41㎢(약 73만평)로 우리나라 관광특구로는 33번째다. 영일만 일대는 환호공원, 영일대해수욕장, 중앙상가 영일만친구 야시장, 죽도시장, 포항운하, 송도솔밭 도시숲 등 여러 관광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포항의 관광메카로, 연간 11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관광특구는 현재 전국 32개로 경북도는 경주시(1994년), 울진군(1997년), 문경시(2010년)가 지정돼 있다. 경북 자체로 보면 문경관광특구 지정 이래 10년만으로, 영일만관광특구는 경상북도 내 유일한 도심 속의 바다를 끼고 있는 관광특구라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포스코 야경과 국제불빛축제,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싱싱한 포항물회와 호미곶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영일대해수욕장’ 일대는 우수한 해양관광 자원을 품고 있어 이번 지정으로 포항관광의 브랜딩 효과 및 대외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관광트렌드에 부합하는 관광명소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이 중에서도 포항시는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인 포항여객선터미널과 환호공원 전망대를 연결하는 총 길이 1.8㎞의 해상케이블카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영일만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환경훼손이 없는 범위 내에서 바다 위 100m 높이에 해상케이블카를 설치해 아름다운 영일대해수욕장과 깨끗한 영일만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해상케이블카는 이미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여러 사례가 많다. 이 중에서 성공적인 곳을 벤치마킹해 포항 해상케이블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단해 본다.□ 선풍적인 케이블카 인기이달 초 다도해와 유달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전남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개통했다. 3.23㎞ 코스로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왕복 40분이라는 탑승 시간 동안 유달산과 목포 앞바다, 목포대교, 다도해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모두 55대의 케빈이 시간당 1천200여명을 태울 수 있고, 이 중에서도 15대는 바닥까지 투명한 유리로 제작돼 발아래를 감상할 수 있는 장점도 갖췄다. 이를 반영하듯 추석 연휴 기간 총 3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용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케이블카 설치 열풍은 비단 목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에서 대유행처럼 번지며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케이블카를 추진하고자 발벗고 나서는 상황이다. 어림잡아 전국 50여곳에서 관광 케이블카를 건설 중이거나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러한 인기는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로부터 촉발됐다. 지난 2008년부터 운행을 시작해 10년 넘게 지역 관광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통영 케이블카는 해마다 140만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누적 탑승객은 올해까지 1천4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케이블카 열풍이 좋은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후죽순 난립하는 케이블카가 서로 경쟁하며 수익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만일의 경우 폐쇄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환경 훼손의 가능성마저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일례로 부산 해운대와 이기대를 연결하는 해운대 해상케이블카 사업의 경우 찬반 논란으로 뜨거운 상황이다.이 사업을 둘러싸고 반대 측은 민자 사업에 대한 우려와 환경 훼손을, 찬성 측은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맞서는 상황이다.□ 포항 해상케이블카 설치 사업포항시는 해상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지난 2016년 말부터 준비해 왔다. 당시에는 영일대해수욕장 일원(포항여객선터미널∼환호공원 전망대)에 580억원의 민간자본을 투입해 2019년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현재는 시일이 일 년 가량 뒤로 밀린 상황이다.이에 포항시의회에서도 올해 6월 사업 현장을 방문해 “영일대 해상케이블카는 침체된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해양관광산업을 선도할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추진해줄 것”을 주문하며 신속한 건설을 요구하고 나선바 있다.시는 애초 영일만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환경훼손이 없는 범위 내에서 해상케이블카를 설치해 바다 위 100m 높이에서 아름다운 영일대해수욕장과 깨끗한 동해를 한눈에 감상하고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을 세웠다.이는 대한민국 대표 해양도시인 경남 통영과 사천, 전남 여수 등이 해상케이블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큰 바탕이 됐다. 이들 해상케이블카 탑승객은 연간 120만명에서 많게는 200만명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도 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이처럼 포항지역에서도 해상케이블카가 완공되면 1천억원 이상의 생산·부가가치 유발효과와 약 1천4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포항시는 침체된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행히 산악케이블카보다 해상케이블카가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성공사례도 해상케이블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포항의 해상 케이블카 사업은 일단 출발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항 해상케이블카 어디까지 왔나영일대 해수욕장 일원(여객터미널∼환호공원)에 추진되고 있는 포항 해상케이블카는 애초 계획대로 길이 1.8㎞, 높이 100m의 자동순환식 왕복 모노케이블카로 추진되고 있으며, 사업기간은 오는 2020년까지다. 총 사업비도 내진 적용기준을 1등급으로 상향하면서 최초 발표 당시보다 100억원 가량 증가한 687억원이 됐다.사업비 모두는 민자유치 방식으로 건설되며, 2017년 6월 제3자 제안 공모 공고를 통해 그해 9월 우선협상대상자로 대한엔지니어링(주)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어 진행된 수요예측과 재무모델 등 사업성 평가에서는 연간 128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나타나며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2018년 11월에는 포항해상케이블카 특수목적법인이 설립됐고, 이 법인은 2019년 5월 사업시행지로 지정 통보됐다. 8월에는 GS건설이 특수목적법인 지분의 60%를 사들이며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를 계기로 케이블카 건설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이달 들어서는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본격적인 사전 준비를 마쳤으며, 10월 중으로 궤도시설에 대한 실시계획인가를 거쳐 내년 하반기에는 준공할 것으로 예상된다.환호공원 쪽 탑승장은 해변공원 인근 두호동 42번지 일대로, 환호공원 내 해변공원은 동해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로 유명한 곳이다.여객선터미널 쪽 탑승장은 항구동 58-54에 위치한 여객선터미널 주차장으로, 여객선을 이용하는 고객이 배를 기다리는 동안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포항시 관계자는 “케이블카 사업은 포항의 해양관광산업을 선도할 사업일 뿐만 아니라, 죽도시장·포항운하·크루즈·영일대 및 송도해수욕장 등 다수 관광지 시설과 연계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며 “특히 신규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의 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09-16

전시회·예술교육·체험까지 ‘원스톱’ 복합문화예술공간 세계 예술산업 새 기준점 제시

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토르토나 지구를 문화예술지구로 만들다이탈리아 밀라노는 화려한 패션과 명품거리로 대변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다.여느 성공한 도시와 마찬가지로 패션 1번지 밀라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존재했다.밀라노라는 도시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패션 1번지였고 100년, 200년 뒤에도 아무 노력없이 패션 1번지 자리를 사수할 수 있다면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다.이처럼 오늘날 밀라노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기업이 있다.이탈리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 슈퍼 스튜디오 그룹(Super Studio Group)이다.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1983년 슈퍼 스튜디오 13(Super Studio 13)이라는 이름으로 토르토나 지구에 처음 발을 내딛었다.슈퍼 스튜디오 13은 오픈당시 사진작가, 미술감독, 패션디자이너, 홍보전문가 등 문화예술산업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춘 사진스튜디오 13개로 구성됐다.독립적인 시설인 개별 스튜디오에 의상실, 분장실, 음향장비 등을 갖췄고 작품제작, 사진촬영, 홍보활동 등 모든 작업이 한 번에 가능했다.불과 2∼3년 만에 유명세가 퍼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 스튜디오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슈퍼 스튜디오 13은 세계 예술산업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슈퍼 스튜디오 그룹 공동창업자인 플라비우 루치니(Flavio Lucchini)씨는 “처음에는 단순히 밀라노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모아 이들을 키워내기 위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그런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밀라노를 국제적인 패션도시로 만드는데 마중물이 되기로 하고 또다른 벽을 넘어서는 도전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 복합문화예술공간 ‘슈퍼 스튜디오 피우’슈퍼 스튜디오 13이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전시회, 예술교육, 체험활동이 가능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슈퍼 스튜디오 그룹 공동창업자인 플라비우 루치니와 지셀라 보리올리(Gisella Borioli)는 패션, 커뮤니케이션, 창조영역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공간을 밀라노에 제공하고자 했다.이에 그들은 슈퍼 스튜디오 13에서 200여m 떨어진 장소에서 생산공장을 가동했던 미국계 전기조명업체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이 떠난 폐공장부지 1만7천㎡를 매입해 슈퍼 스튜디오 피우(Super Studio Piu)를 만들었다.슈퍼 스튜디오 피우는 현대적이고 다재다능하고 횡단하는 멀티 장소이자 패션, 예술,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문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발한 사람들과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또한 밀라노 패션 위크(Milano Fashion Week),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o Design Week)로 대표되는 각종 행사, 전시회, 컨벤션, 박람회 등 대규모 행사 개최장소로 활용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사내 파티, 동호회 모임, 댄스공연 등 비공식적이고 소규모로 치러지는 행사를 위한 장소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크기가 다른 공간들은 가구, 자동차, 광고 영화, TV촬영 등 어떤 종류의 서비스든 넓고 편안한 공간이 필요한 곳에 딱 맞는 공간이며 트럭형 입구 형태라 접근하기도 용이하다. □ ‘세계적 기업이 한 곳에’ 지상 최대 디자인 쇼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매년 4월 개최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o Design Week)에서도 자신들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약 1주일간 진행되는 이 전시회에서 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지난 2015년부터 슈퍼 디자인 쇼(Super Design Show)라는 단독행사를 마련해 디자인 위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슈퍼 디자인 쇼는 예술과 디자인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크고 작은 글로벌기업의 제품을 새롭게 디자인하며 상품가치를 창출하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다.이탈리아 자국 기업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중국, 프랑스, 덴마크, 일본, 벨기에, 영국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기업들이 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한국에서도 삼성과 LG가 슈퍼 디자인 쇼에 참여해 국가 위상을 드높였다.시대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이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2천명이 넘는 기자와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행사장을 찾고 있으며 불과 4년 만에 지상 최대의 디자인 쇼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치아라 페렐라 팔다(Chiara Ferella Falda) 슈퍼 스튜디오 홍보팀장은 “세계 트렌드를 이끄는 이탈리아 밀라노이지만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없이 결과를 기대한다면 그 상태 그대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도 충분히 성공적인 쇼를 보여줬지만 앞으로도 더욱 뛰어난 쇼를 만들기 위해 인도, 러시아, UAE 등 이전까지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의 기업을 유치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고 밝혔다.지셀라 보리올리슈퍼 스튜디오 그룹 창업자 인터뷰비전과 진심을 팔아라장기적 투자 바탕으로창작활동에 매진하라포항 꿈틀로,한국의 밀라노로재탄생할 것모두가 안된다고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성공적인 결과로 이끌어낸 그들은 이제 신화로 남게 됐다. 이탈리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 슈퍼 스튜디오 그룹(Super Studio Group) 공동창업자인 지셀라 보리올리(Gisella Borioli·사진) 대표와 남편 플라비우 루치니(Flavio Lucchini)씨의 이야기다.이탈리아의 유명 잡지 클래스(Class)가 선정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꼽힌 보리올리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나눠봤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창업배경은△남편이 패션잡지 보그(Vogue)의 창간인이자 편집장이었고 나 또한 패션관련 리포터로 근무하고 있어 패션, 예술, 디자인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머리를 맞댄 결과 작품제작, 사진촬영, 전시회, 예술가양성 등 모든 과정을 한 곳에 모은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실행을 하기에는 부담이 컸다.주어진 돈이 많지 않았는데 밀라노 도심의 건물은 입주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적당한 공간을 찾다보니 토르토나(Tortona)라는 옛 공장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폐허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근처에 기차역이 있어 교통이 좋았고 건물임대료도 매우 저렴했다. 그리하여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원조인 슈퍼 스튜디오 13(Super Studio 13)을 설립했는데 이곳에는 사진촬영공간, 의상실, 예술인 양성학교 등이 마련됐다. - 슈퍼 스튜디오 그룹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으로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1999년 토르토나 구역 내에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공장 부지가 매각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정원과 테라스, 야외공간, 사무실, 창고가 있는 1만7천㎡의 넓은 공간이었지만 매각대금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은행에 대출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비즈니스 계획이 없다며 거절당했다.고민 끝에 투자설명회를 열어 당시 3천만유로라는 많은 투자금을 모았다. 우리는 투자자들에게 비전을 팔았고 그 진심이 통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매입한 건물에는 슈퍼 스튜디오 피우(Super Studio Piu)를 세웠다. 단순히 예술활동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예술, 패션,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등이 모두 가능한 복합예술문화공간이 탄생했다.슈퍼 스튜디오 피우가 설립된 이후 토르토나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르마니(Armani), 펜디(Fendi) 등 유명 패션브랜드들이 줄지어 이곳에 쇼룸을 만들었고 크고 작은 공방들도 들어왔다. 오직 토르토나 만을 위해 일하는 컨설팅업체 토르토나 로케이션스(Tortona Locations)의 역할도 토르토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포항 ‘꿈틀로’에 조언을 부탁드리자면△슈퍼 스튜디오 그룹을 처음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4가지가 있다.엄격한 작품선정, 최상의 품질, 혁신적인 요소, 미적인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의 가장 끝부분에 연결돼 있는 단어는 예술이다. 아무리 뛰어난 쇼여도 예술적인 요소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밀라노를 제작의 공간에서 창조의 공간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장기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고 창작활동에 매진한다면 꿈틀로도 포항이라는 도시를 창조의 공간으로 충분히 탈바꿈시킬 수 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8-08-21

폐허가 된 공장에서 꽃 피는 예술… 세계 문화예술 허브로 재탄생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2차 산업인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수십년간 성장하다 최근 철강산업 성장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도 4차 산업을 재도약의 기회로 판단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세계에서 3번째로 구축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신약개발, 질병원인 분석, 신에너지 개발 등 부가산업을 창출할 전망이고 포항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에서 개발 중인 수중로봇, 국민안전로봇 등은 산업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새로운 먹거리 산업 중 하나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문화예술산업이다. 인류 역사상 문화와 예술은 대중의 소비 속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어왔다. 오늘날 이러한 문화예술적 콘텐츠를 산업화시킨 것이 바로 문화예술산업인 것이다.포항시도 지역에 문화예술을 부흥시키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조성에 나서고 있다.아직까지는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본지는 이번 기획시리즈를 통해 문화예술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해 침체된 구도심과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이탈리아 밀라노, 전남 순천 등 타지역 사례를 살펴보고 철강도시 포항이 문화예술도시로 재도약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본다.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 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19세기 밀라노의 대표 공업지역이탈리아 북부지역 최대 도시이자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경제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인 밀라노는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수식어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평가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20년 가까이 지내며 ‘최후의 만찬’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을 남긴 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오랜 세월동안 세계의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고 있는 밀라노이지만 정작 밀라노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 조나 토르토나(Zona Tortona)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이탈리아어 ‘조나(zona)’는 영어 ‘존(zone)’과 같은 의미이며 조나 토르토나는 곧 토르토나 지구를 뜻한다.밀라노 서남부에 위치한 토르토나 지구는 1865년 포르타 제노바역(Porta Genova)이 들어선 이후 외곽의 농촌에서 도심시가지 중 하나로 급성장했다.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농경지와 과수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던 자리는 공장과 주택가가 대신하게 됐다. 토르토나 지구는 나빌리오(Naviglio)와 올로나(Olona) 두 하천에서 공업용수를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고 포르타 제노바역에서 유럽 전역에 화물운송이 가능하다는 뛰어난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1960년대 말까지 약 100년간 밀라노를 대표하는 공업지역으로 유명세를 떨쳤다.이 시기 철도회사인 안살도(Ansaldo), 생수업체 비슬러리(Bisleri), 조명업체 오스람(Osram), 식가공업체 네슬레(Nestle)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토르토나 지구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했다.그런데 1960년대 말 생산체계의 급격한 변화와 에너지 위기로 인해 토르토나 지구에 자리잡고 있던 기업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안살도는 대부분의 생산라인을 제노바로 옮겼으며 많은 회사들이 다른지역으로 생산공장을 이동시켰다.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석유가격이 최대 4배까지 오르는 오일쇼크 사태가 발발하자 남아있던 공장들 마저도 문을 닫거나 해외로 생산시설을 빼냈다.토르토나 지구를 가득채웠던 거대한 공장 부지는 순식간에 폐허나 다름없는 공간이 됐다. 수만평에 이르는 부지가 한꺼번에 산업유휴시설화 되면서 일대는 우범지대로 전락했다.사람들이 떠난 거리는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며 암흑도시처럼 변해갔다. □ 폐허로 변한 공장지역, 예술가들의 성지로 재탄생하다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토르토나 지구에 구원의 손길이 뻗친 것은 1983년.이탈리아의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 플라비오 루치니(Flavio Lucchini)는 패션전문기자이자 자신의 부인인 지셀라 보리올리(Gisela Borioli)와 함께 토르토나 지구를 찾았다.10년이 넘도록 폐건물로 방치된 포르타 제노바역 인근 옛 상들리에 제조공장을 살펴본 그들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이곳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문화예술과 관련된 제품을 사진으로 촬영해 잡지, 광고, 홍보물 등에 활용하는 사업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사업이었다.사진작가인 파브리시오 페리(Fabrizio Ferri)도 사업에 참여하며 슈퍼스튜디오(Super Studio)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업체는 오늘날 토르토나 지구가 밀라노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1985년에는 유명 사진작가인 카를로 오르시(Carlo Orsi)가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며 문화예술사업을 시작했고 같은해 루시아노 포르미카(Luciano Formica)도 비슬러리 제조공장의 일부를 개조해 자신의 작업장으로 만들었다. 1987년 또다른 사진작가인 지오바니 가스텔(Giovanni Gastel)은 자신의 작업실인 가스텔 앤 어소시에티(Gastel Associati)를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로 옮긴 후 세계적인 패션작가로 거듭나게 됐다. 밀라노시는 1990년 철도회사인 안살도(ansaldo)가 사용했던 2만㎡ 규모의 대형공장 건물을 매입했고 이곳을 이탈리아에서 가장 웅장한 오페라하우스라 평가받는 스칼라극장(Teatro alla Scala)의 무대제작실로 활용하고 있다.대장장이, 목수, 세트 디자이너, 경치 기술자, 조각가, 의상 디자이너 등 150여명이 근무하는 이 무대제작실은 세트디자인, 의상디자인, 세트조립, 기계작업 뿐만 아니라 오페라 출연자들의 합창연습실과 공연 리허설을 위한 무대공간도 마련돼 있다.이밖에 199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 ‘최후의 만찬’을 복원한 예술작품 복원전문가인 피닌 브람빌라 바르실론(Pinin Brambilla Barcillon)도 토르토나 내 비아 사보나(Via Savona)에 작업실을 마련하며 수많은 예술작품을 재탄생시켰다.유명 예술가들이 토르토나 지구에 하나 둘씩 입주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젊은 예술가들도 덩달아 토르토나 지역에 입주를 희망하기 시작했다.오래된 공장 건물은 예술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노동자들이 출퇴근길로 이용하던 철도 선로는 패션모델의 런어웨이 무대가 됐다.근래에 들어서는 아르마니(Armani), 제냐(Zenga), 토즈(Tods)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토르토나 지역에 쇼룸을 설치하고 안도 타다오(Ando Tadao),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이 지역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토르토나 지역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문화 중심지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 세계 문화예술 허브 ‘토르토나’ 토르토나 지구는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전시회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브레라(Brera), 람브라테(Lambrate) 등 밀라노의 또다른 시가지와 함께 분산 개최하고 있다.토르토나 디자인 위크로 불리기도 하는 이 행사는 2004년 설립된 컨설팅업체 토르토나 로케이션스(Tortona Locations)의 주도 하에 매년 4월 열리고 있으며 전세계 160여개국에서 30만명이 넘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행사 주관업체인 토르토나 로케이션스는 디자인 위크를 포함해 토르토나 지역에서 연간 10여회에 달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점포 임대를 희망하는 기업 또는 개인에 대한 종합적인 카운슬링을 하며 토르토나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4㎡에 불과한 작은 가판대에서부터 3천㎡에 달하는 옛 공장건물에 이르기까지 입주 희망자들이 원하는 컨셉에 맞춰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수개월 동안 작업공간을 임대해주고 있다.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하는 일과 매우 흡사해 보일 수 있으나 토르토나 로케이션스는 단순히 건물을 임대해주는 것으로만 자신들의 업무를 끝내지 않는다.토르토나 지구에 입주한 사업자들이 사업설계, 세트디자인, 설비구축 등을 위해 지구 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컨설팅업체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토르토나 지구 내 업체들 사이에서는 인적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고 자연스레 예술가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이렇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토르토나 지구는 최근 또 한 번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토르토나 지구와 150년을 함께한 포르타 제노바역은 예전만큼 기차가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100m 거리에 포르타 제노바 지하철역(Porta Genova FS)이 개통되며 기차역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대부분 기차가 인근 기차역인 산 크리스토포로역(San Cristoforo)에 멈춰서기 시작했다.밀라노시는 역 주변 공간을 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토르토나 지구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토르토나 지구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조프(Zoff)씨는 “토르토나 지구는 산업단지를 문화예술지구로 변모시켰다는 역사적인 배경과 나빌리오 운하와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인접해 있는 장점 등이 복합돼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최근 밀라노 내 타지역에 토르토나 지구와 같은 문화예술지구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토르토나 지구 만이 지닌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글·사진/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8-08-14

모든 세대가 즐길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수준높은 공연 선사 최선

# 딜레마 1. 오스트리아엔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이 있다. 1년에 300회 가까운 클래식, 오페라, 발레 공연이 열리지만 극장 측에선 관객 동원을 걱정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공연이 입석까지 매진될 정도니까.‘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단원들의 기량은 “경제적 안정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 극장 단원 330여 명은 매달 극장으로부터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넉넉한 월급을 받는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이 생긴 건 지금으로부터 149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향악단, 오페라단, 발레단을 후원하겠다는 이들이 줄을 섰다.극장 설립 초기엔 귀족과 돈 많은 딜레탕트(dilettante·호사가)가 주된 후원자였다면, 지금은 세계 유수의 기업과 예술 애호가들이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십억 원씩을 흔쾌히 극장에 내놓고 있다. 이들이 후원을 통해 얻는 홍보효과 역시 크다. 포항을 포함한 대구·경북지역 공연 관계자들에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구와 경북엔 150년 된 공연예술 전문극장이 없고, 오페라나 발레 공연 후원에 선뜻 나서는 이들도 드문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자체나 독지가의 적극적이고 통 큰 투자 없이 대중적 토대가 미약한 클래식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딜레마 2.관객이 없는 공연장은 ‘팥소가 빠진 붕어빵’과 다를 게 없다.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서울은 축복받은 도시다.서울과 인근 인천·경기지역의 인구를 모두 합하면 자그마치 2천500만 명. 한국인의 절반이 그곳에 몰려 산다. 젊은이들의 거리 공연에도 수백 수천의 관객이 들어차고, 대중예술은 물론 발레와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공연예술 관계자의 한숨 소리가 크지 않다.사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서울 사람들의 비율이야 다른 도시와 큰 차이가 없을 터.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핵심’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숫자다.포항의 인구는 대략 50만 명. 서울·인천·경기의 1/50이다. 포항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1천 석 극장에 오페라나 발레 관객을 가득 채우려면 서울 공연 기획자에 비해 50배 이상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그렇다고 공연장을 채우기 위해 ‘인구 늘리기 운동’을 벌일 수도 없는 일. 그야말로 딜레마(Dilemma·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가 아닐 수 없다. 글 싣는 순서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열악한 공연 인프라·적은 인구 등악조건에도 불구시민 위한 다양한 공연 마련에 열성더 풍부한 공연 예술 위한지자체·독지가 등 후원 아쉬워 ◆ 포항 공연예술계, 역량 강화와 적극적 마케팅으로 난관 극복공연예술계가 겪는 어려움은 비단 대구·경북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 대부분의 도시들이 유사한 걱정을 하고 있다.그런 까닭에 “어떻게 하면 양질의 공연을 시민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 “홍보의 방식을 달리하면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아줄까?”라는 건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다.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포항시립예술단은 시민들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시민이 행복한 공연서비스 제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각 예술단의 화합과 결속을 위한 조직구조 개선과 단원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립교향악단을 이끌 상임지휘자의 영입으로 구심점을 세우고, 공연기획과 홍보업무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전임 사무단원도 배치할 계획이다. 여기에 지휘자와 연출가를 중심으로 비전을 설정해 공연의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예술단의 특성에 따른 정기공연과 합동공연, 기획공연과 초청공연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클래식의 대중화와 전통공연의 저변 확대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포항시립예술단의 각오다. 이를 위해 학교, 기업, 복지시설로 찾아가는 공연을 기획하고 포항의 명소 곳곳에서 야외공연과 테마공연도 펼칠 예정이다.시립교향악단의 경우 클래식에서부터 팝,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며 “클래식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인식을 깨는데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4회의 정기공연과 44회의 찾아가는 공연, 8회의 특별공연으로 포항시민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한 시립교향악단. 올해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을 찾게 된다. 정기공연 등과 함께 복지시설과 재난 현장을 찾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희망을 돌려주겠다는 의지도 충만하다.시립합창단은 지난해 이충한 상임지휘자가 부임했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조직력을 갖추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지역을 넘어 세계 속에 포항을 알리는 합창단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원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비전도 세웠다.시립연극단 또한 올해 포항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선보인 다양한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주목받는 신예 박훈영의 창작극 ‘클로즈 업’과 정기공연 ‘철로’는 이미 무대에 올려져 극장에 모인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 포항문화재단이 준비한 기대되는 공연들작년에 이어 올해도 ‘화제의 공연’을 여러 편 선보이고 있는 포항문화재단의 하반기 공연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7월 14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펼쳐질 가족극 ‘브러쉬’는 ‘2018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선정작. 그림과 음악을 결합시켜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선보일 이 공연은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아시안 아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입장료도 1만원으로 저렴해 가족 단위로 부담 없이 볼 수 있을 듯하다. 9월 14일과 15일엔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뮤지컬 ‘시카고’를 만날 수 있다. 아이비, 김지우, 남경주, 안재욱 등이 출연하는 이 공연은 이미 관람한 수많은 관객들이 재미를 보증하는 뮤지컬이다. 찬바람이 불어올 12월이 되면 국립합창단이 포항을 찾는다. ‘2018 국립 명품시리즈’로 명명된 ‘메시아’ 공연이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것. 몇몇 클래식 전문가들이 “죽기 전에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곡”으로 지목한 ‘메시아’가 자신에겐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지 궁금한 이들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이처럼 포항시립예술단과 포항문화재단 공연예술 관계자들은 비엔나에 비해 열악한 공연 관련 인프라와 서울에 비해 매우 적은 ‘공연 향유 인구’라는 조건 속에서도 악전고투(惡戰苦鬪)를 지속하고 있다.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클래식과 오페라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외 아티스트의 공연과 무용, 그림 전시회를 포항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는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문화 관련 단체에겐 아픈 지적이다. 하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처한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포항의 공연예술계에 따뜻한 박수와 격려를 전하고 있다. 이 기획 연재기사가 시작될 무렵 “한 편의 공연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은 ‘인간의 삶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쏟는 땀과 열정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홍성식기자끝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6-29

거리 전체가 공연 무대 함께한 모든 이들이 예술가이자 관객이었다

200m의 차없는 거리, 갖가지 공연 펼쳐져보여주기보다 스스로 즐기는 공연나이·지위·시간·공간 초월하는 홍대거리젊은 예술인 끼 펼칠수 있는 정책적 지원 필요글 싣는 순서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에 위치한 홍익대학교. 여타의 캠퍼스에 비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그 대학과 일대 상수동-합정동을 엮어 지칭하는 ‘홍대 입구’는 이제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청춘의 해방구’ 혹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의 생산기지’를 의미하는.비단 10~20대만이 아니다. 젊음의 언어와 문화, 행동양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40~50대에게까지 ‘홍대 입구’는 낯선 명칭이 아니다. 서울 시민만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驛) 9번 출구를 나와 골목을 꺾어 돌면 어울마당로가 나와요. 거기 가면 거리 공연 하는 애들이 지천일 걸요.”올해 홍익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 선배의 딸에게 “금요일 밤에 거리에서 노래하거나 춤추는 젊은이들을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위와 같은 답이 돌아왔다.과연 그랬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5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홍대 입구 어울마당로는 노래하고, 춤추고, 환호하는 청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족히 200m는 넘어 보이는 차 없는 거리. 대략 10~20m 간격을 두고 통기타 공연, 힙합 공연, 보이밴드를 카피한 공연, 마임 공연까지가 다채롭게 펼쳐졌다.밤 10시가 넘었음에도 그곳은 청년들이 만들어내는 초여름 밤의 열기로 마치 대낮 같았다. 독일의 베를린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가 ‘클래식과 오페라 공연의 메카’라면, 홍대 입구는 ‘버스킹(Busking)의 성지’라 불러도 좋을 듯했다. ◆ “관객보다 내가 즐거워서 거리에 선다”는 청춘들‘버스킹’이란 행인들에게 노래와 춤, 연주 등을 보여주고 약간의 돈을 얻어내는 공연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날 어울마당로를 채운 젊은이들에게 공연 후 관객이 자발적으로 내놓는 ‘돈’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해 보였다.아스팔트 위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맞춰 한바탕 멋진 춤을 보여준 강한민(가명·19)씨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거죠. 세상엔 의사와 판사도 필요하지만 춤꾼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돈과 지위가 인간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라는 어른스런 말로 기자를 놀래켰다.강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문화·예술이 함께 하지 않는 정치·경제만의 성장은 나라를 절름발이로 만들기 십상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클래식과 오페라 같은 ‘순수예술’과 더불어 ‘대중예술’이 함께 꽃을 피운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문화예술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벽을 허물었다. 런던 교향악단(London Symphony Orchestra)과 록 밴드 ‘딥 퍼플’에서 기타를 연주한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의 협연은 그 생생한 사례다. 사실 21세기에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놓고 우열을 논한다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런 행위다. “앞마을 달걀과 뒷동네 계란 중 어떤 게 맛있느냐”고 논쟁하는 것처럼.‘홍대 입구’와 인근 신촌은 1980년대부터 전위성과 실험성이 가미된 대중예술이 싹을 틔운 공간이다.록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신촌블루스’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았던 청춘들의 우울함을 위로해줬고, 1990년대 홍대 입구 소규모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크라잉 넛(Crying Nut), 노 브레인(No Brain) 등의 펑크록 밴드는 출구 없는 세기말 젊은 영혼의 어깨를 따스하게 두드려줬다.노래는 물론 작사와 작곡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가수 김윤아 역시 그 시절 ‘미운 오리’란 이름의 밴드로 홍대 입구 클럽에서 활동했다. ◆ 젊은 예술가들에게 ‘판’ 깔아주는 정책적 지원 있어야2000년대에 들어서며 ‘홍대 입구’의 공연예술은 보다 다채롭게 발전한다. 어느 한 장르와 경향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어울마당로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며 1970년대 풍의 노래를 부르던 A씨(23)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이면 홍대 입구에서 거리 공연을 한다고 했다. 그에게 물었다. “힙합과 댄스음악의 시대에 왜 하필 고풍스런(?) 통기타냐”고. 돌아온 대답이 철학자 방불이었다.“잘난 척 하는 것 같지만….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 아닌가요. 어떤 장르가 시대에 뒤떨어졌다, 어떤 스타일이 시대를 앞서간다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그저 공연을 펼치는 사람의 영혼이 향하는 쪽으로 가는 거죠.”밥과 빵이 사람의 육체를 키운다면, 공연예술과 문학, 미술과 영화는 인간의 정신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어울마당로에서 만난 버스커(Busker·버스킹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기주장과 논리가 정연하고 뚜렷했다. ‘공연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공연을 보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중학교 2~3학년으로 보이는 소녀 4명에게 물었다. “늦은 시간인데 왜 집에 안 가고 있어요?” 친구라는 그들의 대답은 이구동성이었다.“어른들은 우리에겐 스트레스가 없는 줄 알아요. 그런데 안 그래요. 중학생도 짜증나는 일이 많거든요. 근데 오빠들이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그래서 가끔 친구들끼리 어울려 홍대 입구로 놀러 와요.” 말을 마친 소녀들은 다시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즐거움 속으로 빠져들었다.버스킹이 한창인 어울마당로에선 보기 드문 중년남성이 있어 다가갔다. 홍익대 지척에 자리한 서강대를 졸업하고 금융 회사에서 일한다는 정경식(49)씨.그는 “요즘 부쩍 ‘이제 내게선 청춘이 사라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면 옛날 20대 시절도 떠오르고…. 그냥 살아가는데 위로가 돼요”라며 웃었다.이처럼 홍대 입구 ‘거리 공연’은 연주자와 댄서, 노래하는 이들은 물론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공연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홍대 입구’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예술공간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문화상품’이자 ‘관광상품’으로 만들기까지는 분명 서울시와 마포구의 지원과 노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보고 배울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서울처럼 공연을 볼 사람이 많지 않고, 문화를 소비할 이들도 적다”는 변명만으로 일관한다면, 지자체마다 외쳐대는 “문화도시 건설”은 앞으로도 헛된 캐치프레이즈에서 멈출 게 뻔하다. 공연·영화·연극·강연까지… 접할수 있는 모든 예술 한 곳에멀티플렉스 ‘KTG 상상마당’홍익대 아래 어울마당로를 걷다 보면 독특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7층 건물과 만나게 된다. 어둠이 거리를 장악한 밤이면 이 건물은 몽환적인 ‘마법의 성’처럼 보이기도 한다.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은 커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 대신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다. ‘ KTG 상상마당(이하 상상마당)’이다.콘서트와 연극 공연, 영화 상영과 미술 전시회까지 다양한 문화 관련 이벤트가 연중 이어지는 복합 예술공간 상상마당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7년 9월 개관했다.청춘의 특권이자 책임이기도 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문화로의 행진’을 지원하는 이 공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지상 7층·지하 4층으로 만들어졌다. 아담한 규모의 영화관·공연장과 함께 갤러리와 문화예술 교육 강의실, 사진 암실까지 갖춘 상상마당이 20~30대에게 특별한 장소로 활용되는 건 당연한 일.“예술가의 창작활동을 돕고, 관객과 방문자에겐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전달한다”는 상상마당의 슬로건은 기업의 바람직한 사회공헌 방식을 보여준다. 이번 6월에도 밴드 ‘잔나비’와 버스커의 합동 공연, ‘오버 더 레인보우’라 명명된 전시회, 작가 지망생을 위한 아카데미, 예술영화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다른 멀티플렉스에선 보기 힘든 영화와 만날 수 있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공연도 즐기며, 내게 필요한 강의나 강연까지 접할 수 있어 한 달에 몇 번은 찾게 된다”고 하는 대학생 김현민(25)씨의 말에는 상상마당이 수행하는 역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문화계 원로들은 “무모할지라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새로운 예술적 시도는 청춘의 특권이다. 그 문화·예술적 실험이 이뤄지는 공간이 서울만이 아닌 지방 도시에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하기 힘든 지적이다.글/홍성식기자·사진제공/구창웅  hss@kbmaeil.com

2018-06-22

1천명 넘게 모인 관객… 음악소리 말고는 잡음 하나 없어

# 장면 1.2018년 5월 3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쇤브룬 궁전에서 비엔나 필하모닉 교향악단 (Vienna Philharmoniker)의 야외 연주회가 열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1717~1780)가 애지중지한 아름다운 그곳에서 시민들을 위한 무료 음악회가 펼쳐진 것. 연주회 시작 3~4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비엔나의 그날 날씨는 한국의 8월처럼 무더웠다. 그럼에도 연주회장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중 짜증난 표정을 짓는 이는 없었다. 백발의 노신사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온 열 살 남짓 아이까지 마찬가지. 고등학생 손자와 쇤브룬 궁전을 찾은 루드비히(71)씨는 “나 역시 어린 시절엔 아버지와 함께 비엔나 교향악단 연주회를 찾곤 했다”며 “좋은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두어 시간쯤 기다리는 건 아무렇지 않다”며 유쾌하게 웃었다.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에 의지해 음악회를 찾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 다수의 관객들은 그들을 배려하는 것에 익숙해 보였다. 최소한 비엔나 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만큼은 장애인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장면 2.2011년 7월.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비엔나 시청 건물에 수십m의 거대한 영사막이 드리워졌다.거기선 녹화된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1813~1901)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상영됐다.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야외 객석엔 1천 명이 넘는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관객석은 물밑처럼 고요했다. 끼리끼리 떠들거나 깔깔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놀라웠다. 다들 화면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오페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비엔나 시민 모두는 공연장에서 지켜야 할 매너를 혹독하게 교육이라도 받는 걸까? 실내와 야외를 구별하지 않는다. 문화공연과 예술가를 대하는 비엔나 관객의 태도는 어디서나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7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관객들의 서로를 향한 정중함과 매너 ‘예술공연’에 대한 프로의식 돋보여소속된 단체에 문제 있으면 입단 1년차 단원도 지적… 비판정신 투철글 싣는 순서 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공연문화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 관객 ‘매너’와 예술가 ‘프로의식’이 만든 비엔나 공연문화공연장에 함께 자리한 이들에 대한 배려와 예술을 향한 흠모와 존중이 비엔나 관객들을 상징한다면,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실력에 더불어 인격까지 높여가려는 프로의식은 비엔나 공연예술가의 특징이다.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쇤브룬 궁전, 문화예술기획사 등에서 만난 공연예술 관계자들은 너나없이 “빼어난 프로의식과 비판정신이 오늘날 유럽의 문화와 예술을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비엔나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나 클래식 연주자, 연극배우와 발레단원은 자기가 소속된 극장이나 단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그 점을 지적한다. 그러니 입단 1년차 단원이 최고 경영자에게 극장 운영 시스템을 비판하는 상황도 가끔 발생한다. 한국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하지만, 지적을 받는 쪽에서도 비판이 합리적이라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잘못된 관행을 바꿔나가는 것이 일상화 돼 있다고 한다.또 하나 독특한 게 있다면 비엔나의 예술가들은 행정적인 업무에도 능력을 보인다.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합창단 내에는 재무, 서무, 홍보를 맡아보는 단원이 존재한다.성악가가 사무직원의 역할까지 겸하는 것이다. 재무와 홍보 등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없어도 합창단은 원활하게 운영된다.“문화예술을 잘 아는 사람이 그와 관련된 행정업무도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비엔나의 공연예술가들에겐 있다. 비엔나를 떠나오던 날. 케른트너 거리를 다시 찾았다. 미려하게 우뚝 선 국립 오페라극장의 분수대 인근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그날도 클래식이나 오페라 공연이 열리는 것인지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멋진 공연과 만날 수 있다면 몇 시간의 기다림이 대수인가”라고 말하는 관객들. 매너와 정중함을 갖춘 그들의 기다림을 설렘으로 바꿀 정도니 비엔나 공연예술가들의 ‘실력’을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2018년 초여름 비엔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은 물론, 관객을 기다리는 연주자와 성악가 역시 행복해보였다.비엔나 문화예술기획사 WCN 송효숙 대표한국의 미성숙한 티켓문화 아쉬워재능있는 음악가에 국가관심 필요비엔나의 공연예술과 문화가 지닌 특징은 무엇이며, 어떤 힘이 이 도시를 ‘클래식과 오페라의 고향’으로 자리매김 시켰을까?세계 각국의 공연예술가를 가까이서 만나온 비엔나의 문화예술기획사 WCN(World Culture Networks) 송효숙 대표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아래는 리하르트 바그너가 연주되는 비엔나 시내 카페에서 송 대표와 나눈 이야기다.-비엔나에서 공연기획사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1996년 대기업 법인장이었던 남편을 따라 가족 모두 비엔나로 왔다. 2년 후 IMF로 회사가 문을 닫게 됐고, 여러 환경이 잘 갖춰진 비엔나에서 아이들 교육이라도 시키고자 남게 됐다. 여기서 지내다보니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 생동하고 있는 클래식을 자주 접하게 됐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 음악가들도 만났고,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설립한 것이 WCN이다. 음악을 통해 한국과 오스트리아를 잇고, 한국의 공연예술가를 유럽에 소개시키겠다는 꿈도 생겼다.”-한국과 오스트리아 관객의 가장 큰 차이가 뭔가.“연령층이다. 한국에 비해 비엔나는 공연을 관람하는 이들의 나이가 많다. 클래식을 지금의 대중가요처럼 듣던 시기에 그 음악을 사랑했던 중년층 이상이 공연장을 주로 찾는다. 그러다보니 유명한 극장들은 미래의 관객을 위해 청소년들에게는 제일 좋은 좌석을 5유로(약 7천원)에 예약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의 관객 연령층이 낮다는 것은 미래 한국 클래식시장의 전망이 밝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WCN을 해오며 보람됐던 순간과 마음 아팠던 순간은.“한국 연주자들이 유럽 무대에 데뷔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기쁘다. 클래식 연주자가 유럽에서 데뷔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력이 좋다고 모두 무대에 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한국 연주자를 더 많이 유럽 무대에서 소개시키는 것, 이 부분이 우리가 해야 될 일이라 믿고 있다. 비엔나의 많은 유학생들이 좋은 실력을 가졌음에도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해 힘겨워 할 때면 우리도 가슴이 아프다.”-한국 클래식 공연문화는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할까.“한국은 공연에 대한 관심은 상당한데 티켓문화가 아직 덜 성숙된 듯해 아쉽다. 경제적인 어려움 탓에 성장을 멈춘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이 주위에 많다. 국가나 기업이 관심이 기울였으면 한다. 그들이 한국의 이름으로 세계적 콩쿠르에 나가 좋은 결과를 얻어내며 성장한다면 그것이 결국 한국의 이름을 높이는 일 아닌가. 그 옛날 바하, 헨델, 모차르트, 슈만 등 유명한 작곡가들도 모두 가난했다. 그러나 그들 곁엔 후원을 아끼지 않은 귀족과 왕이 있었다. 비엔나 교향악단도 전 세계 기업들의 후원이 단원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떤 힘이 비엔나의 공연예술을 지탱하고 있는지.“축적된 클래식 역사와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엔나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아름다운 음악이 그 힘이다.”-비엔나 공연문화예술 관계자들의 특징은.“그들은 약속과 신뢰라는 단어를 소중하게 여긴다. 공연의 기획부터 계약, 그리고 진행까지가 바로 이 약속과 신뢰 아래서 진행된다. 유럽은 한국보다 일의 진행이 많이 느리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이 유럽인들과 함께 일하는 게 때론 어렵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기에 ‘느리지만 정확한’ 유럽 사람들의 태도를 배우기도 한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왈츠와 알프스의 근사한 풍경이 있는 오스트리아는 작지만 멋진 나라다.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 외에도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과 미적 완성도 충만한 비엔나의 역(驛)들을 설계한 건축가 오토 바그너도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번쯤 비엔나를 찾아 문화예술의 향기를 느껴보시길 권한다.”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제공/WCN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6-15

수백년 이상 체화된 클래식 문화의 집대성 ‘공연예술의 본향’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다른 표현을 떠올릴 수 없는 올드타운(Oldtown·옛날 도심). 그 가운데 자리한 칼스플라츠(Karlsplatz)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면 137m의 아찔한 높이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슈테판성당(Stephansdom)이 보인다.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케른트너 거리(Kerntner Street). 0.6km를 직선으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 양 옆으로 예쁘게 꾸민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고,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을 도자기와 티셔츠에 새겨 넣은 기념품점들이 가득하다.해마다 유럽과 북미, 남미와 아시아 관광객 수백 만 명이 찾는 곳. ‘지구 위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그 길의 끝에 ‘무언가’ 있다.구구절절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곳이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Wiener Staatsoper)’이라는 건 누구나 알게 된다. 왜냐? 건물의 사방을 둘러싸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수많은 여행자들 때문이다.사실 오스트리아는 우리가 ‘클래식’이라 부르는 음악이 탄생한 곳이라 불러도 무방한 나라다. 초등학생도 그 이름은 알고 있는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하이든 등이 태어난 곳이 바로 오스트리아.뿐 아니다. 비엔나는 베토벤과 브람스가 수백 년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연주되는 ‘불멸’에 가까운 곡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머물렀던 도시다. 그런 역사가 있으니 그곳에 ‘세계 최고의 공연장’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1869년 객석 2천여석의 극장 완공1년에 300회 가까운 공연 열리고다양한 가격대 입장료에 입석까지예술을 원하는 사람에 차별없어글 싣는 순서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공연문화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 ◆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함께 포용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클래식 공연과 더불어 관악과 현악, 타악과 노래까지 결합된 종합예술인 ‘오페라의 메카’라고 부를만한 공간이다.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는 옛 도심의 성벽을 부수고 말의 발굽 모양과 유사한 커다란 순환도로를 만든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이때 국회의사당, 시청, 몇몇 미술관과 함께 조성됐다. 극장이 완성된 것은 1869년. 완공 기념으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가 공연됐다. 객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2천여 석에 가깝다.클래식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풍문을 통해 한 번은 들어봤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규정짓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Metropolitan Opera House)와 더불어 이 극장을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이라 부른다.네오 르네상스 양식과 고딕 양식이 결합된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외부와 내부가 모두 아름답다.극장으로 들어가는 계단 위에 달린 무지막지하게 큰 샹들리에와 보석처럼 반짝이는 로비의 바닥, 짙은 붉은색 관객석과 황금빛으로 장식된 천장화, 거기에 예전엔 왕이나 왕비, 공작과 후작, 백작이나 남작만이 앉을 수 있었다는 멋들어진 발코니까지.그러나 1년에 300회 가까운 오페라와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이 극장은 이제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사실 100년 전만 해도 왕족·귀족과 평민은 좌석만이 아니라 출입구까지 따로 사용했다. 물론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비싼 좌석은 현재도 300유로(한화 약 37만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돈이 부족해 좋은 공연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오스트리아의 선진적 문화마인드가 3유로(3천700원)짜리 입석을 만들어냈다.힘들겠지만 두어 시간 동안 서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거나,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귀한 관객’이 될 수 있다. ◆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비하인드 스토리사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건 2011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여행에선 건물의 외부만을 구경했을 뿐 극장 안으로 들어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엔 운이 좋았다. 지인이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합창단에서 테너로 활동 중인 송원철(49)씨를 소개시켜줬다. 대구에서 태어난 테너 송원철은 대학 졸업 후 10년 가량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다가 ‘보다 큰 꿈을 꿀 수 있는 유럽 무대로 가고 싶다’는 열망에 독일 뉘른베르크를 향했다. 그곳에서 열정을 펼치던 송씨가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합창단 테너가 된 것은 2012년 9월.그의 안내로 극장 무대에 오르는 출연자들만이 오갈 수 있는 복도와 대기실, 연습실과 무대 뒤편까지를 두루 돌아볼 수 있었다. 바쁜 일정임에도 2시간 이상을 기자에게 내준 테너 송원철과 함께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의 안내와 설명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적지 않게 알게 됐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지하에는 거대한 터널이 뚫려 있어 에어컨이 없던 시절 여름에도 객석이 그다지 무덥지 않았다는 것, 19세기엔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엄격했던 탓에 남녀 가수와 배우들의 대기실과 연습실이 건물의 정반대 방향에 자리해 있었다는 것, 150년 전에 설계됐음에도 무대에서 객석으로는 소리가 잘 전달되지만, 객석에서는 어지간히 크게 떠들어도 그 소리가 무대에선 들리지 않는다는 것,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은 극장 맨 위층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는 것, 관객이 볼 수 있는 무대보다 2~3배는 더 큰 출연자와 스태프들의 공간이 극장 빨간 장막 뒤에 존재한다는 것 등….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이 지닌 ‘하드웨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한 후 테너 송원철과 극장 내에 자리한 휴게실에 마주 앉았다. 이제 ‘소프트웨어’에 관해 질문할 시간. 아니, 그보다 먼저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왜 서울시립합창단과 독일에서의 솔리스트(Solist) 활동을 접고 이곳의 합창단원이 됐느냐”고 물었다.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한 사람의 진솔한 대답이 돌아왔다.“사람에겐 명예가 중요하지요. 하지만 저는 가족이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1~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시스템이 힘들었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명예가 아니라 평생 노래하는 겁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 극장 합창단이죠. 좋은 인프라와 누구나 인정하는 높은 수준도 비엔나를 찾은 이유겠지요.”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합창단원, 발레단원, 배우 등 300여 명의 예술가를 월급 주며 고용하고 있다. 한 사람만 벌어도 가족 모두가 어렵지 않게 생활할 정도로 금액도 박하지 않다.테너 송원철은 여기서 정년까지 활동할 수 있는 계약을 이미 마쳤다. ‘생활은 우리가 책임질 테니 당신들은 노래와 춤, 연기에 집중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행복감을 주시오’라는 문화·경제적 약속을 흔쾌히 맺어준 것이다.그런 편안함 속에서 노래를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기 때문일까? 송씨는 우스개에도 인색하지 않았다.“독일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유럽 극장 관계자들이 물어요.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들 노래를 잘 하는가? 김치 때문인가’라고요.(웃음)” ◆ 비엔나가 가진 ‘문화·예술적 힘’은 어디서…“독일엔 인구가 2만 명 이상인 도시엔 클래식과 오페라를 공연하는 극장이 반드시 있어요. 놀라운 것은 그 극장마다 1명 이상의 한국 성악가가 활동하고 있다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테너 송원철에게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유럽,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공연예술의 본향(本鄕)’으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주저함의 시간 없이 현답이 나왔다.“이곳엔 수백 년 이상 체화된 클래식에 대한 지식과 문화가 있어요. 그것들이 공연예술에 대한 이해로 나타나는 거지요. 거기에다 이곳 사람들은 오페라 한 편을 보러올 때도 많은 공부를 하고 옵니다. 한국의 문화공연 관계자와 관객들에게 한마디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말만은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흉내’가 아니라 ‘노력 속에서 얻어지는 이해’라고요.”취재와 인터뷰가 끝났다. 예술가의 혜안과 안내자의 꼼꼼함을 동시에 보여준 테너 송원철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그 순간,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수만 관객을 사로잡았던 마리오 델 모나코(Mario del Monaco)와 송씨가 학생 때부터 흠모했다는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가 떠올랐다.남성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역으로 노래하는 테너. 우리는 그들을 “청각적 행복을 위해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말한다. 송원철 테너가 모나코나 도밍고처럼 ‘최고의 테너’가 되기를 빌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심이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제공/Wiener Staatsoper·Michael Poehn

2018-06-08

포항의 문화감수성 높여 시민 삶 행복으로 이끌 저력 키운다

클래식 공연 한 편, 대중문화 공연 하나가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사회가 진화할수록, 그 나라가 선진적인 형태를 취해갈수록 문화예술의 중요성도 함께 커진다. 정치·경제·사회적 발전과 더불어 문화와 예술의 향유 욕구도 함께 성장해온 것이 우리의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수의 시민이 다양한 공연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건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본지는 최적화된 환경에서 양질의 문화예술 공연을 펼침으로써 시민들 삶의 질을 높여가고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서울 홍대 인근을 밀착 취재했다. 이번 기획보도로 포항이 공연예술이 활성화된 도시로 나아가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자 한다./편집자 주포항문화재단문화진흥 위한 정책 개발예술 다양성 증진 위한 노력 열성포항시립예술단30년간 지역 문화예술 책임져활력 넘치는 문화생태계 구축 최선‘클래식 어렵다’ 선입견 깨고효과적인 공연홍보 방법 고민해야글 싣는 순서 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공연문화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상대성 이론’과 ‘광양자 가설’로 잘 알려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 그는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불린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청년시절부터 클래식 공연 보는 걸 즐겼다고 한다.특히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에 관해선 고전음악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신문 기자가 “당신은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답했다. “죽음요?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아인슈타인이 보여준 천재성에 클래식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궁금해진다.송강호와 설경구 등 유명 영화배우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곧잘 등장한다. “학창시절 본 한 편의 대중문화 공연이 내 발길을 연극판으로 향하게 했고,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이처럼 공연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밝혀주는 동시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세상사를 해석하는 인식의 폭을 넓혀주는 것 역시 공연예술이 주는 선물이다. 그렇기에 대구·경북의 지자체들은 공연장을 만들고, 양질의 문화예술 공연을 주민들에게 선보이고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포항의 경우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이 지역 공연문화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단체가 최근까지 진행해온 기획·정기공연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현재 포항의 공연예술 현황과 향후 바람직한 발전 방향까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 포항문화재단 “공연작 선정부터 무대 철수 때까지 마음 못 놔” 2017년 1월 1일 “포항의 문화진흥을 위한 주요 시책을 지원하고 수행한다”는 슬로건 아래 설립된 포항문화재단은 지난해 16편의 기획공연을 포항문화예술회관과 포항시청 대잠홀 무대에 올렸다.클래식 공연에서부터 뮤지컬, 무용극, 역사인물 체험극, 아동 음악극, 미술 퍼포먼스, 국악 공연 등 그 장르도 다양했다. 이 기획공연들을 관람한 인원은 모두 1만1천187명.이는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양질의 문화행사를 추진해 포항의 문화 감수성을 높인다는 재단의 설립 목적을 위해 매진한 결과다.재단 출범 직후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축하음악회엔 1천여 명의 관객들이 모여 드보르작과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했다. 이날 연주된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과 가수 김조한의 노래 역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안재욱과 정성화 등 인기배우가 출연한 포항문화재단 출범기념 뮤지컬 ‘영웅’도 2천898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이 작품은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다. ‘2017 문예회관과 함께 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선정작인 국립현대무용단 공연과 성악가 황수미와 피아노 연주자 헬무트 도이치의 ‘듀오 콘서트’, 역사인물 체험극 ‘소년 이순신, 무장을 꿈꾸다’도 문화예술회관을 찾은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이외에도 포항문화재단은 한국의 전통 장례 절차인 ‘염’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성찰한 연극 ‘염쟁이 유씨’, 아동 음악극 ‘캐나다에서 찾아온 바이올린 할머니’, 매력적인 미술 퍼포먼스 ‘페인터즈 히어로’, 송년기획 ‘꿈드림 콘서트’, 문화가 있는 날 작은 음악회 ‘오픈하우스 콘서트’ 등을 통해 시민들의 예술적 갈증을 해소시켰다. “가득 찬 객석을 바라볼 때, 그리고 관객들이 만족감을 표현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포항문화재단 공연전시팀 문혜정 대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다양한 공연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이미 상반기에 무대에 올린 ‘KBS교향악단 초청 2018 신춘음악회’와 넌버벌 코미디 ‘옹알스’, 가정의 달 특집 콘서트 ‘장사익 소리판-꽃인 듯 눈물인 듯’이 호평을 받았고, 앞으로도 가족극 ‘브러쉬’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명품 뮤지컬 ‘시카고’,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국립합창단의 ‘메시아’ 공연이 포항시민들과 만나게 된다. 올해 예상되는 관객 수는 1만3천여 명.포항문화재단 관계자들은 “시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문화예술 창작기반 조성에 힘쓰며, 예술의 다양성 증진을 지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포항시립예술단 “문화도시 포항의 위상 높일 터”“문화예술을 통해 시민의 삶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목표 아래 30년 간 꾸준히 활동해온 포항시립예술단은 지난해 재도약의 시간을 가졌다. 포항시립교향악단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합창’ 협연이 주목받았고, 배우와 관객 사이의 벽을 사라지게 한 연극 ‘갈매기’ 또한 좋은 평가를 얻었다.“예술단의 경쟁력 강화, 조직 분위기의 변화, 단원 역량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는 포항시립예술단. 이의 실천을 위해 시립교향악단은 유명 지휘자를 초빙해 곡 해석의 수준을 높이고, 단원들의 연습 강도 역시 높이고 있다.시립연극단은 세계적 극작가 안톤 체홉의 ‘갈매기’와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 등 순수연극을 무대에 올려 지역적 한계 극복을 꿈꾸고 있다. 이런 노력은 전년대비 관객 250%, 공연수익 300% 증가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시립합창단은 음악적 완성도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제100회 시립합창단 정기공연 ‘봄을 노래하다’는 화려한 의상과 생동감 있는 율동으로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는 관객들의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9월 시립연극단과 제4기 어린이 단원들이 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린 뮤지컬 ‘어린 왕자’도 눈길을 끌었다. 회당 800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린 이 공연은 23명의 어린이 단원들에게 스스로 공연예술의 주인공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상생, 도약 그리고 비상”을 올해의 비전으로 선포한 포항시립예술단은 활력 넘치는 문화생태계 구축과 문화예술 플랫폼 조성에 진력하고 있다.지난해 11월 15일 포항을 덮친 지진으로 오랜 시간 준비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시립연극단 정기공연 ‘연애의 시대’가 취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포항시립예술단이 2018년 공연에 임하는 자세는 진중할 수밖에 없다.“시련을 극복하고 예술의 터전 위에서 성숙한 문화시민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포항이 문화예술 도시로 발전하는데 역량을 모을 것”이라는 게 이와 관련된 시립예술단의 설명이다.이를 위한 구체적 계획은 ‘시민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연서비스 제공’ ‘각 예술단의 특성에 맞는 정기공연, 합동공연, 기획공연, 초청공연의 활성화’ ‘클래식의 대중화’ ‘야외공연과 테마공연의 확대’ ‘포항·울산·경주의 해오름 문화동맹을 선포하는 야외 합동공연과 해오름 합창페스티벌 참가’ 등이다. ◆ 공연예술이 가진 ‘긍정적 힘’을 낙관해야…평소 초등학생인 두 딸과 함께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이 진행하는 공연을 자주 관람한다는 강민정(39) 씨는 “가까운 곳에서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기쁨과 함께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도 생긴다”며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획공연들이 많아졌고, 지자체의 지원으로 입장료도 저렴해서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하지만, 지역에서 꾸준히 좋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도 없지 않다. 아직도 “클래식 공연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존재하고, 공연의 효과적인 홍보 방법도 매번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공연예술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다양한 요구까지 만족시켜야 하는 힘겨움 또한 존재한다.하지만 현실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은 “항상 시민들이 좋아할 프로그램과 예술가를 선정하는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공연예술이 가진 긍정적 힘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 정도 마음가짐이라면 포항이 열어갈 공연예술의 미래를 낙관해도 좋지 않을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6-01

다시 일어서는 포항… 세계적 ‘지진 극복모델’ 구축이 관건

진앙지 흥해읍 ‘특별재생지역’ 지정7월부터 6천500억 투입, 재생사업 추진‘흥해 도시재생 주민협의체’대학생 ‘흥해 아이디어 발굴단’ 등|지역주민 적극 참여, 공동체 의식 제고한국 제1호 재난대응형 도시이미지로‘지역 명소화 사업’ 추진한반도 방재 ‘랜드마크’ 도약 기대글 싣는 순서 1. 지진 원인·특성과 한반도2. 한신·아와지와 동일본 대지진3. 고베시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4. 대한민국 방재는 어디쯤 왔나5. 진앙지 포항 ‘뉴딜’을 꿈꾸며◇ 도시재생 뉴딜(New deal)사업지난해 4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가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약을 발표했다. 전국적인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에 따른 도시 쇠퇴가 심각하고, 이에 따른 시민들의 삶의 질 만족도가 저하되면서 이를 해결하려는 방편으로 뉴딜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간의 도시재생정책은 주민의 체감도가 낮고 정부지원 수준도 미흡했다. 지난해 8월,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본격적인 사업 시행에 들어갔다.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일반 도시재생사업과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은 기존 개발이익 중심의 전면 철거방식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는 점이다.뉴딜사업은 도시공간을 혁신적으로 활용해 삶의 질 향상 및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마련됐다. 특히, 주민과 지역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나가면서 공동체 회복 및 사회 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다. 또 노후 주거지를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정비하고 쇠락한 구도심을 혁신 거점공간으로 조성, 지역 기반의 도시재생 경제 생태계 회복과 함께 상가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에도 대응할 수 있다.지난해 12월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에 전국 68곳이 선정됐다. 올해부터 추진전략 및 계획 수립 이후 본격적인 사업 진행에 들어간다. ◇ 진앙지 흥해읍, 특별재생지역으로 새롭게 도시재생사업은 △최근 30년간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기와 비교해 20% 이상 감소한 지역 또는 최근 5년간 3년 이상 연속으로 인구가 감소한 지역 △최근 10년 간 총 사업체 수가 가장 많았던 시기와 비교해 5% 이상 감소한 지역 또는 최근 5년간 3년 이상 연속으로 총 사업체 수가 감소한 지역 △전체 건축물 중 준공 후 20년 이상 건축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50% 이상인 지역 등 3가지 쇠퇴 요건 중 2가지 이상 충족돼야만 도시재생사업 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재난지역에 대한 별도의 도시재생사업은 없었다.정부는 지난해 11월 15일 포항지진 이후 약 한 달 만인 12월 7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국무총리)에서 도시재생특별법 개정 및 ‘특별재생지역’ 신설을 통해 흥해읍에 특별재생 시범사업 추진을 발표했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원이 세 가지 조건 중 인구감소 부분만 충족해 현행 도시재생법에 따른 지원이 불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자유한국당 김정재(포항북) 국회의원은 지난 1월 19일 지진의 진앙지지이자 가장 큰 피해를 본 포항 흥해읍이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도시재생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특별재생지역(특별법 제2조 제1항 제8호의 2)이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 중 피해지역의 주택 및 기반시설 등 정비, 재난 예방 및 대응, 피해지역 주민의 심리적 안정 및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재생을 긴급하고 효과적으로 실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지역을 말한다.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개정된 도시재생특별법으로 흥해읍을 중심으로 한 포항 지진 피해지역은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돼 재생계획에 따라 포항의 새로운 부흥지역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약 6천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한다. ◇ ‘관’ 주도에서 ‘민’ 주도로 포항시는 흥해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흥해 도시재생 주민협의체’에 참여할 주민을 공개 모집하고 있다.이들은 뉴딜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주민 대표 역할을 한다. 주택정비와 도시 재생 활성화 방안 등 두 분야로 나눠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추진하는 상향식 모델이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은 흥해읍을, 포항시를 재해로부터 안전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12만 가구 이상의 주택이 파손돼 시민들이 갈 곳을 잃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재해부흥공영주택을 큰 기둥으로 삼아 주택문제를 해결했다. 말 그대로 재해로 말미암아 주거지가 파괴된 이재민들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어 공급하는 주택이다.가장 중요한 점은, 주택재개발사업과 구획정리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일본정부가 주민들로 구성된 ‘도시 만들기 협의회’ 등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그 결과,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지역 주민인 이재민들 간의 공동체 의식도 높아졌다.흥해지역 주민들도 직접 도시 설계에 참여한다. ‘주민참여컨설팅단’에 소속된 도시재생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주민들과 만나 마을 부흥의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흥해’를 설계한다.또 한동대나 포항대, 선린대 등 지역 대학생들의 집합체인 ‘흥해 아이디어 발굴단’을 통해 대학생들이 보고 느낀 아이디어를 수집해 도시계획에 반영한다.포항시는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뉴딜사업을 지원사격한다. 포항시 재난심리지원센터 개소와 함께 지진을 겪은 주민들의 심리적인 안정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동시에 앞으로 진앙지인 흥해읍 일원에 ‘지역 명소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진을 극복하고 새롭게 일어서는 도시 이미지를 구축, 포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이 외에도 흥해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개소와 함께 주민밀착형 사업 추진으로 ‘대한민국 제1호 재난대응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이재민들의 당면과제인 경제적인 부분은 중앙정부와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 중이다.흥해읍은 고령화에 서민밀집지역, 구도심 지역이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이 많다. 새 건축물에 이주한다 하더라도 또다른 빚더미에 앉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이재민들이 떠안아야 할 개인의 재건비용이 많이 들어 문제가 됐었다.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이재민들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다각도에서 방편을 찾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피해주택복구지원금도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서 지자체 조례 등도 개정한다.주택사업과 관련한 각종 규제에 대한 편의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포항시는 문화재, 도시계획, 부당금 등 사업 진행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부분을 최소화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뉴딜구역’에서는 상하수도 요금도 감액한다. 지역 내 건설업체나 원자재 공급업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 제도도 구상하고 있다.이재민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의 주거안정사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모든 업체와의 협업으로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포항재난지역 특별도시재생 성공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공공기관이 사업성을 우려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포항)도시재생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뭔가를 해줘야 한다”며 “국토부를 중심으로 특별재생 T/F팀을 꾸려 현실성 있는 (지진 대책)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도약하는 포항, 한반도 방재 ‘랜드마크’로11·15 포항지진을 겪은 포항시는 가까운 미래, 도시부흥의 선도모델이자 전 세계적인 지진극복모델로 성장하겠다는 야삼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경상북도를 넘어 한반도 대표 방재도시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다. 전국 처음으로 포항시 행정조직에 지진을 전담으로 하는 ‘지진국’도 신설됐다. 포항시 지진대책국에는 20여 명의 공무원이 배치돼 지진에 대한 수습뿐만 아니라 365일 지진 선제대응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국내 최대규모 지진안전체험관을 비롯해 지진과 관련한 모든 시설들이 집대성한 국립방재공원 건립도 포항에서 추진되고 있다.지진은 물론 태풍, 해일, 화재 등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의 재난 컨트롤타워인 고베시 ‘인간과미래 방재센터’의 역할과 같다.포항의 경우,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해일이나 지진해일(쓰나미) 등의 위험과도 상당히 맞닿아 있다. 특히, 해발 0m인 일본 오사카시와 마찬가지로 포항 역시 오래전 ‘뻘 지역’으로 지대가 낮다. 따라서 동해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하게 되면 그 피해가 다른 지역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다.또 ‘루사’나 ‘메미’ 등 한반도에 들이닥친 강력한 태풍들의 이동경로에 자리 잡고 있어 태풍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진도 포항에서 발생했다. 모든 방면에서 ‘포항’ 국립방재공원의 건립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국립방재공원이 들어서게 되면 이곳에서 방재전문가를 양성, 재난 상황 발생 시 신속·정확하고 효율적인 조치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경상북도 내 안전체험관의 부족으로 체험형 안전교육이 미비했던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시는 기존 체험관에 대피기능까지 갖춘 국립방재공원 건립 추진으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준비 중이다. 이와 함께 정부 100대 국정과제인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역시 포항에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일본 최고의 항구도시이자 아시아 중심(hub)항이었던 고베시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으면서 일본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도시로 추락했다.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전국적인 관심에 힘입어 과거의 영광을 넘어선 세계적인 방재도시로 부흥에 성공했다.전문가들을 초빙해 교육하고 방재 비전을 제시하는 등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선두주자로 나아가고 있다.조건은 다 갖췄다. 일본의 성공적인 사례가 이미 있고, 정부와 포항시는 예시대로 모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남은 건 실천하려는 의지 뿐이다.‘New deal’은 미국 숙어로 재출발, 대변혁, 또 한 번의 기회 등으로 뜻풀이된다. 포항시는 지진 이후 재출발,“New deal”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New deal’, 혁신적인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끝

2018-05-18

선제적 방재대책 추진·형식 아닌 실질적 대응시스템 마련 ‘착착’

‘지진 안전지대’ 안심하던 대한민국경주·포항 지진 당시 전국민 불안 떨어정부, 지진대응 체계 ‘대수술’ 착수내진설계 의무대상 확대·인증제 도입전국 단위 지진대피 훈련 실시도포항시, 지진방재 선구도시 목표현장중심 대응능력 고도화에 최선글 싣는 순서1. 지진 원인·특성과 한반도2. 한신·아와지와 동일본 대지진3. 고베시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4. 대한민국 방재는 어디쯤 왔나5. 진앙지 포항 ‘뉴딜’을 꿈꾸며 □ 헛돌았던 지진방재대책경주지진의 정부 대응은 참혹했다.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경주시 남남서쪽 8.2㎞ 지점,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약 한 시간 뒤인 오후 8시 32분, 본진인 규모 5.8의 강진이 경주를 휩쓸었다. 이날 발생한 지진은 1978년 국내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였다. 경주는 물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진동을 느낄 만큼 강력했다. 행정안전부 추산 부상자 23명, 이재민 54세대 111명, 약 110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대한민국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도 지진임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정보전달이 신속·정확하지 않았다. 이날 지진 이후 전 국민들에게 보내진 긴급재난문자는 8분이나 늦었다. 일부는 이 연락조차 받지 못했고, 최초 지진 이후 16분이 지난 오후 8시가 다 되서야 각 시민의 휴대전화에 발송됐다. 충분하고 신속한 설명자료 없이 5천만 대한민국은 원인도 모른 채 늦은 저녁 집 밖으로 나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물론 TV에서도 재난안내를 수분이 지난 뒤 짧게 내보냈을 뿐이었다.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모든 전산망이 마비됐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땅의 흔들림에 놀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었지만 모두가 불통이었고, 문자, SNS 등을 비롯한 모든 연락수단이 멈췄다. 일부 지역에서는 약 2시간 가량 전화 연결이 안되기도 했다. 지진을 관측하고 예보하는 기상청 홈페이지도 먹통이긴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한반도는 지진에 그저 방치돼 있었을 뿐이었다.대피소도 마땅치 않았다. 주변에 대피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국민들이 대다수였다. 지진이 발생한 경주 역시 지정된 대피소와 재난 임시 주거시설도 마련돼 있었지만, 전쟁이나 풍수해 등에 대비한 시설이었다. 지진대피소는 없었다. 대한민국은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던, 이전까지 지진 안전지대라고 모두들 알고 있었다. 갈피를 못 잡던 주민들이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은 건물 주변에서 떨어져 본능적으로 넓은 곳을 찾아 삼삼오오 모이는 것 뿐이었다. 숱한 방재정책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간 건 없었다. □ 형식에서 실질적인 대책으로경주지진 이후, 중앙정부는 지진 대응의 모든 부문에서 ‘대수술’에 들어갔다.우선 지난해 12월 기존 내진설계 의무대상 기준을 3층 또는 연면적 500㎡에서 2층 또는 200㎡ 이상 건축물 및 모든 주택으로 확대했다. 법적으로 강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개인 소유 건축물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 내진 설계를 적용한 건축물에 대해서는 재산세와 취득세 등 지방세 감면율을 최대 100%까지 확대했으며, 소득세와 법인세 등 국세는 최대 7%(내진투자금액의 대기업 3%, 중견기업 5%, 중소기업 7%) 공제해 준다. 내진설계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축물 대장 및 부동산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내진성능을 표시하도록 했다. 또 ‘지진 안전 시설물 인증제’를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한다. 시설물 인증제는 민간 건축물과 시설물 등의 소유자·관리자가 필요한 경우 지진 안전 시설물 인증을 신청해 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고, 인증표시를 시설물 등에 부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건물주와 세입자 모두 느끼고 있는 지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방편이다. 이 외에도 교량이나 철도,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SOC시설의 내진보강은 오는 2019년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학교시설 내진보강 소요기간 역시 지진 예산을 투입해 기존 83년에서 34년으로 단축했다. 거센 비판을 받았던 지진재난문자 송출체계를 지진 이후인 지난 2016년 11월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 기존에는 조기경보를 기상청이, 송출은 행정안전부가 담당해 차례를 거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기상청은 이동통신사(SKT·KT·LG U+)와 지진·지진해일 긴급 재난문자 서비스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신속·정확한 재난안내를 하기로 약속했다. 오는 6월부터는 규모 6.0 이상 지진 발생 시 강제 수신기능과 지진에 대한 행동요령을 포함하는 재난문자 발송 등의 서비스도 함께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지진조기경보 시간은 50초에서 25초까지 당겼다.혼란을 가중시켰던 지진대피소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옥외대피소 8천155곳, 실내구호소 2천489곳을 구분해 지정했으며,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 지도와 T-map 등에서 대피소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전엔 없었던 전국단위의 지진대피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학교 안전관리사 제도 도입 및 안전교육·훈련 실시도 의무화했다. 지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장소와 상황별 구체적인 국민행동요령을 마련해 책자나 리플릿 동영상을 통해 상시 홍보하고 있다. 주택피해 지원기준 마련과 지진대응 전개양상을 반영한 매뉴얼 개선, 중앙과 지자체 모두 지진분야 전담조직을 확대했으며, 전문가 양성과 지진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지진방재 전문인력 양성기관(고려대, 강원대, 충북대, 전남대, 부산대)을 지정해 운영하면서 지진대응역량강화를 준비중이다. 또 미지의 구역이었던 한반도 활성단층 조사·연구에 착수했다. 총 5단계 1천175억원을 들여 오는 2041년까지 25년간 추진하기로 했다. 범정부 지진 대응역량 강화를 위해 중앙부처 및 지자체의 조직과 전문인력을 102명(중앙부처 45명, 지자체 57명)으로 보강하기도 했다. □ 방재대책에 앞장서는 포항최근 한국은행 포항본부는 ‘11·15 포항지진’의 피해 규모가 총 3천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직접 및 간접 피해액으로 나눠 포항지진 발생에 따른 자산 손실액을 추계한 결과다. 직·간접적으로 포항은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포항지진은 규모가 경주보다 작았지만 피해는 오히려 더 컸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께 포항시 북구 북쪽 9㎞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포항시가 집계한 피해액은 현재 668억 2천 5백만원이고, 복구비용은 1천억원을 넘겼다.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명됐지만,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액상화현상이 나타나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이 집중됐다. 계속된 여진은 지난 3월 30일자로 100회를 기록한 뒤 멈췄다. 하지만, 지진이 끝난 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모로 포항지진은 경주지진보다 심각했다.포항지진이 남긴 가장 큰 문제점은 이재민이었다. 포항지진이 포항 도심지를 강타했고, 발생 깊이가 얕았기 때문에 주거지의 피해가 심각했다. 특히 대성아파트는 30년이 넘은 아파트였다. 진앙지 주변으로 내진설계가 없었던 오래된 건축물이 많았던 것도 포항지진에 큰 피해를 입은 이유로 지적된다. 포항시는 전파·반파·소파로 나뉜 피해규모에 따라 우선적으로 재난지원금과 의연금을 지급하는 한편, 지진의 여파로 현 주거지에서 생활이 불가능한 이재민들의 이주작업을 진행했다. 국민임대아파트 172호와 다가구 128호 등 총 300호의 물량을 지원받아 현재까지 653세대 이재민 중 95%의 진행률을 보이고 있다. 월 임대료는 경북도와 포항시가 각각 50%씩 나눠 부담하며, 전세임대 신청자에게는 LH의 지원을 받아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 강력한 지진을 겪은 포항시는 현재 ‘365 선제적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통해 지진방재 선구도시로 나아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우선 4대 계획(△예측·예방 △사전대비 △지진발생시 대응 △조사·복구)을 마련해 추진하면서 현장 중심의 지진대응능력을 고도화시키고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데 목표를 뒀다. 주민 방재지도자 육성, 지진감지 센서와 방사선 감지기 추가설치, 기상청 및 교육청과 조기경보 협약 등을 통해 지진 예측·예방 기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재난방송 송출협약, SNS 상황전파단 운영, 주민소통 현장채널 개설, 이재민 관리 전자인증 시스템 도입 등을 마련해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을 정착시키기로 했다. 빠른 조사와 복구를 위해 원스톱 주거안정 시스템 마련, 이재민 주거안정협의회 구성, 포항 해비타트운동 전개, 심리안정 현장지원센터 및 국립 트라우마 치유센터, 국립지진방재센터 유지 등도 현재 진행 중이다.그동안 형식에 지나지 않았던 지진대피훈련을 수정해 실질적인 방안을 담았다. 읍면동 권역별 순회교육을 통해 지역 내 초·중·고 126개교를 대상으로 연 1회 이상 이론·체험교육 등의 종합교육을 실시한다. 기업현장지원단을 활용해 개별 기업의 지진 대응계획 수립 및 대피훈련 실시 여부를 확인하고, 미수립 기업에 대해 자체계획을 수립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읍면동별 시범 마을·아파트를 지정해 자체 대피훈련을 정기적으로 추진하고, 학교·기업·다중밀집시설 등도 기관·장소별로 적합한 자체 매뉴얼을 수립해 정기적인 대피훈련을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photokid@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5-11

흔들리는 재앙 ‘震災’ 기억하고 복구하고 대비하는 ‘재난 제어탑’ 역할 충실

한신·아와이 대지진 이후 당시 현장의 모든 기록 저장재해 경험·교훈 ·정보 총망라지역내 모든 관공서 연계재난종합방재정보시스템 구축매달 지진 정보 연재하는 언론 등‘방재 생활화’ 위한 노력 계속글 싣는 순서1. 지진 원인·특성과 한반도2. 한신·아와지와 동일본 대지진3. 고베시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4. 대한민국 방재는 어디쯤 왔나5. 진앙지 포항 ‘뉴딜’을 꿈꾸며 □ 학계고베시 한가운데 있는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는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재해의 경험과 교훈을 계승하고, 방재 및 감재사회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알리는 시설이다. 건물 안에는 전시 자료와 지진 당시의 영상, 지진 재해 체험자의 체험담을 통해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재해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또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전의 거리와 이후의 모습들, 재해부터 도시의 부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등 모든 자료들도 저장돼 있다.특히, 센터는 단순 기념 시설을 떠나 방재 연구와 전문가를 육성하면서 일본 재해·재난의 제어탑 역할을 한다. 30년 앞을 전망하면서 △재해대책행정대응 △응급피난대응 △정보대응 △지역경제대응 등 10가지로 연구분야를 나눠 일본의 방재를 이끌어가고 있다. 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자 등을 연구원으로 채용해 방재전문가로 육성한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실제 이들은 지난 2016년 일본 구마모토 지진(일본 기준 진도 6, 한국 진도 9 수준) 당시에도 현장에 투입돼 많은 활약을 하기도 했다.오사카시에 있는 ‘오사카시립 아베노 방재센터’는 다가올지 모르는 대재앙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일본은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 앞으로 30년 안에 진도 8의 대지진이 일본 본토에 들이닥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100∼200년마다 일본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하곤 했다. 단지, 어느곳에서 어떻게 지진이 발생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곳에는 일본에서도 아직 경험해본 적 없는 진도 8의 대지진을 체험할 수 있도록 ‘체험코너’를 마련해 놓고 있다.□ 언론일본의 가장 큰 신문사 중 한 곳인 마이니치 신문은 매달 17일마다 지진 관련 이야기를 신문에 담아내고 있다.올해로 23년째 연재 중이다. 지진 피해상황과 함께 재난민에게 생활 정보를 전하는 ‘희망신문’과 ‘재난특집’은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한 1995년 1월 17일 이후부터 시작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목적으로 언론 역시 재난을 극복하고 또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또 일본에서는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표기할 때 ‘한신·아와지 대진재(大震災)’로 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진(地震)’이 아니다. 이를 가장 먼저 사용한 곳 역시 마이니치 신문이다. 이 신문은 지면기사를 통해 ‘한신 아와지 대지진’을 ‘진재(震災)’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자연의 재앙은 거스를 수 없지만, 반대로 이를 극복해서 이겨내자는 의미에서 ‘지신(지진, 地震)’이 아닌, 강조의 의미를 담은 재앙을 단어에 담아 ‘신사이(진재, 震災)’를 썼다”고 말했다. 이 단어는 오늘날까지 일본 전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 관공서일본 내 모든 관공서들은 재해·재난 발생 시 각자의 메뉴얼대로 움직이도록 시스템화돼 있다. 일본 여행지 중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오사카시는 재해·재난 발생 시 시민들의 대피장소에 53만명이 사흘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양의 식사와 물을 비축해 두고 있다. 이곳은 해발 0m 지대로, 해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공업용수로 많은 양의 지하수를 퍼올려 쓰면서 지반 침하가 발생했다. 오사카시는 지진과 해일 등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층 빌딩을 ‘쓰나미빌딩’으로 정해 비상시 시민들의 피난장소로 활용하고 있다.또 재난종합방재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소방국, 경찰 등 모든 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동체계를 구축해 놓은 상태다. 재해가 발생하면 오사카 시내 전역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신속하게 알리도록 하고 있다. 특히, 오사카시에서는 일반인이 아닌 고령자나 장애인 등이 재해 중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가까운 병원과 직접 연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피난소’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곳곳에는 자주방재조직(자율방범대, 유년소방클럽, 소년방재클럽, 부인방재클럽)을 통해 지방방재능력의 향상 및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낙오자가 없도록 자주방재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 자원봉사자정부나 학계, 언론 등 모든 기관에서 재해·재난 발생 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자원봉사자’로 꼽는다.지진 이전, 일본에서 ‘자원봉사자(Volunteer)’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 의미가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려진 때가 바로 1995년이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고베시에는 전국적으로 구원의 손길이 모였다. 공무원들이 동원돼 물질적인 피해를 복구하는 동안, 이들은 공무원들이 신경 쓰지 못한 이재민들의 모든 아픔을 함께 나누고 봉사했다. 방재와 관련한 모든 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통해 고베시를 포함한 지진 피해지역이 신속하게 복구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재난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지진이라는 아픔을 겪고 나서, 일본에서 ‘자원봉사자’라는 의미가 정착했다. 자원봉사활동이 발전하면서 지난 2006년 고베시가 있는 효고현 내 NPO(특정비영리활동)법인이 1천개를 넘어서면서 전국 6위를 기록하는 등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지진으로 많은 것을 잃은 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시라이시 히데토시부센터장 인터뷰방재는 재해를 상상해서 하는 대비준비만 잘하면 80%는 해결된 것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이 가장 중요고베시와 효고현, 일본 정부는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고베시 한 가운데서 방재 전문가를 육성하고 있다. 지진을 겪은 이들은 예방하고, 지진을 극복하기 위해 미래를 설계 중이다. 일본 방재사업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 시라이시 히데토시 부센터장을 만나 지진에 대한 진짜 이야기와 일본 방재의 현주소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를 소개 한다면△방재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다. 연구원들을 교육시키는 곳은 많지만, 전문가 양성을 할 수 있는 곳은 일본에서 우리 센터뿐이다. 물론 지진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한 1995년 1월 17일 이후 당시 그 누구도 고베에서 지진이 발생할 줄 몰랐다. 실패를 딛고서 교훈으로 삼자는 의미에서 고베시에 방재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7년 만인 2002년에 완공됐다. 당시 국비 30억엔과 지방비 30억엔을 합해서 60억엔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은 지진 교육과 앞으로 일본 전 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재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연구원들이 상주하면서 방재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연구원들이 실제 재난 발생 시 재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원·육성하고 있다. 실제로 2년 전 ‘구마모토 지진’ 당시에서 이곳 연구원들이 현장에 나가서 많은 대처를 했다. 중국에서도 방재 교육을 위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일본은 지진을 예측하고 있는 수준까지 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일본에서도 지진을 예측 가능하다는 말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전부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예측을 전혀 할 수 없다. 지진이 어디에서 일어날 지도 모른다. 지진 발생 이후 또 다른 어떤 상황이 닥칠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한신·아와지 대지진은 땅이 운동하면서 수많은 건물이 붕괴됐다. 그런데 구마모토 지진도 땅이 분열됐는데, 큰 피해가 없어서 사람들이 안심했었다. 하지만, 방심한 틈에 두번째 지진이 연이어 와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같은 원인의 지진이어도 발생 이후 현상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씀드릴 수가 없다. 또 동일본 대지진처럼 지진으로 인한 1차 피해가 아닌 지진해일(쓰나미)로 피해를 많이 입은 사례도 있다.-일본의 방재는 어느 수준까지 와 있나△우선 방재는 큰 재해가 발생할 경우를 상상해서 사전에 대비하는 것 또는 준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준비만 잘 해 놓으면 80% 해결된 것과 같다. 가장 쉽게 접하는 부분이 내진설계인데, 일본은 1986년 건축법 개정으로 진도 6까지 건물이 견딜 수 있도록 설계를 강제했다. 일본은 진도 7이 최대치다. 진도 6이면 한국 기준으로 9∼10 정도다. 지진은 사실 ‘운’이다. 집에서 있을 수도 있고, 밖에 외출한 상태로 지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어디서든 큰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살아남았다면, 전력을 다해 도망가라.-지진 발생 이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건 무엇인가△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건물 재건을 비롯한 물질적인 부분은 100% 복구됐다. 다만, 처음에 내세웠던 ‘고베 부흥’의 목표 설정이 어디까지인지 미묘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순 없을 거 같다. 지진 트라우마 등 인간관계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하다.사람에 대한 대처, 사람들이 생활에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험상 재난이 발생하면 공권력이 상황을 추스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버린다. 온 국민들이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해결은 어렵다. 같이 협조하고 지원하고, 구조활동을 해야 한다. 지진 이후에는 소통하려고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전에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것. 한국사람들에게 꼭 이 말을 해 주고 싶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photokid@kbmaeil.com

2018-05-04

‘규모 7.2’ 부서진 고베…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며 생존을 배우다

고속도로·철로 끊어지고 주택 붕괴지자체의 모든 기반시설 무너지고섬과 日 본토 사이 거리도 1m 벌어져갈라진 땅·붕괴주택 등 지진 잔해 보존정부·지자체 합동 박물관·공원 조성미래세대에 위험성 인식·학습자료 활용글 싣는 순서 1. 지진 원인·특성과 한반도2. 한신·아와지와 동일본 대지진3. ‘신사이(震災)’ 재난을 극복하다4. 대한민국 방재는 어디쯤 왔나5. 진앙지 포항 ‘뉴딜’을 꿈꾸며□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일본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지진은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다.규모는 9.0. 1900년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돼 있다. 이 지진의 특징은 지진의 규모 자체보다 후발주자인 ‘쓰나미(지진해일)’에 있다.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도호쿠)지방 태평양 해역 해저 깊이 24㎞에서 흔들린 땅의 울림을 시작으로 10m 높이의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을 덮치면서 당시 1만5천890명이 숨지고 2천589명이 실종됐다.이 여파로 후쿠시마 제1원전 수소폭발과 함께 방사능이 누출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모두 2만명이 넘는 희생자와 약 182조원의 피해를 낸 최악의 지진이자 쓰나미로 기억돼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전 일본 최악의 지진은 물론 1995년 규모 7.2의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다.1월 17일 오전 5시 46분 52초에 관측됐다.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에서 ‘7’이라는 숫자가 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기록된 진도 7 지진이었다.‘쓰나미’가 아닌 땅의 직접적인 타격으로 일본 전국에서 6천43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4만3천792명이 다쳤다. 약 20초의 흔들림으로 10만4천906채의 건물 전파, 14만4천274채가 반파됐다.화재는 7천36건 발생했다. 한신 고속도로가 끊어지고, 역사가 붕괴해 철로에 있던 기차가 쓰러졌다.당시만 해도 일본 최대의 항구이자 아시아의 중심항이었던 고베시는 이 지진으로 지자체의 모든 기반시설이 무너지면서 일본에서 최고의 부채를 안고 가는 도시로 몰락했다. 고베시의 피해가 가장 커 ‘고베 대지진’으로도 부른다.‘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으면서 일본은 큰 충격에 빠졌다.애초에 지진이 빈번한 나라기 때문에 나름대로 지진에 대해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엄청난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고베시는 오래전부터 지진이 없었던 곳이었고, 당시 지진 연구기관들도 진원지에 활성단층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만큼 갑작스런 지진이었다.목조건물이 많았던 곳이라 피해는 극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서 내진설계를 포함한 건축기준이 더욱 엄격해지는 계기가 됐다.한편, 일본 기상청이 명명한 정식 명칭은 ‘헤이세이 7년(1995년) 효고현 남부 지진’이지만, 발표에 앞서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이 지진을 ‘한신 대지진’으로 보도했다. 아와지섬의 피해도 극심하다는 상황을 고려해 일본 정부는 약 한 달 만에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명칭을 통일했다. □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남은 것들일본 효고현 고베시에서 남서쪽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인 ‘아카시해협 대교(아카시 대교 또는 명석 대교)’가 나온다.전체 길이는 3천911m, 중앙 지간의 길이는 1천991m다. 이 다리는 1988년 착공 당시 전체 길이가 3천910m로 설계돼 1998년 개통됐는데, 대지진의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1995년 1월 17일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땅이 크게 뒤틀리면서 일본 본토와 섬 사이의 거리가 1m 벌어졌고, 보완작업을 거쳐 기존 설계 길이에 추가로 1m를 늘여 공사한 뒤에야 개통됐다. 이 대교에 오르면 멀리 아와지(淡路)섬이 보인다. 섬에 도착해 다시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5분여를 가다 보면 ‘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일본 효고현의 작은 섬인 이곳 아와지섬은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진원지였다. 섬 지표면의 16㎞ 아래인 아카시해협의 활성단층 중 일부가 운동하면서 일본 본토까지 충격이 이어졌고, 재앙이 일어났다. 이 지진으로 아와지섬에는 총 길이 10㎞에 이르는 ‘노지마 단층’이 생겼다.일본 정부는 1998년 7월 31일 지표면으로 표출된 노지마 단층(185m)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함과 동시에 그 일부인 140m를 ‘북단 지진재해기념공원’에 보존해놨다. 기념공원 안에는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남아 있다.평평했던 땅이 지진을 겪으면서 층이 생겼다거나, 직선 배수관 중 일부가 45도 기울어지는 등 단층에 의한 다양한 지형변화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진도 7 지진에 모든 건물이 무너질 때 유일하게 형태를 유지했던 고베시 나가타구 와카마츠 시장의 방화벽(일명 ‘고베의 벽’)도 아와지섬 내 기념공원에 그대로 옮겨왔다. 공원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1995년 지진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념공원에서 만난 시즈오카 시민 타키다 아사에(66·여)씨는 “23년 전 고베 지진 당시 고베와 시즈오카는 엄청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흔들림을 느껴 잠에서 깬 기억이 있다”며 “아와지섬에 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이 있다는 걸 알고 TV로만 봤던 지진의 실제 모습을 알고 싶어서 방문했다”고 말했다.특히, 이곳은 지진 당시 활성단층 위에 지어져 심각한 피해를 입은 개인 주택도 파손 상태 그대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직접 이 건물을 사들여 현재까지 유지 및 보수작업을 한다.섬 안에 살면서 지진을 직접 체험했던 생존자들이 매주 이곳에서 방문자들에게 직접 지진체험담을 들려주기도 하며,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진도 7을 체험할 수 있는 지진체험관도 기념공원 안에 있다.고베시 주오구에 위치한 메리켄 파크 내에 조성된 ‘고베항 지진피해 메모리얼 파크’에도 고베 대지진 당시 피해를 입었던 잔해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1997년 7월 준공된 이 공원은 기존 메리켄 파크 내 방파제가 지진의 여파로 파괴되면서 그 일부를 지진 당시의 상태 그대로 보존해놓음과 동시에 주변을 기념공원으로 만들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탑을 세웠다. 이 외에도 지진 피해지역 상점가의 빈 점포를 이용해 지역의 지진 기록을 전시하는 ‘지진 박물관’을 만들거나, 상점 주인이 직접 당시의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모임 등이 여전히 열리고 있다. □ 참혹한 현장 보존해 교육자료 활용지난해 3월 고베신문은 대지진 재해자의 생활 및 주택 재건과 산업재생 등을 지원하는 공익재단법인 ‘한신·아와지 대지진 복구기금’이 오는 2020년에 모든 사업을 완료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또 재해복구주택의 고령자 돌봄사업 역시 2018년 이후에는 예산 부족으로 효고현이 계승해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5년 피할 수 없었던 자연 재앙을 겪은 일본은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대지진의 참혹한 현장을 보존하기로 했다.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름 아닌 ‘체험’이다. 일본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방재교육을 받는다고 농담 섞인 말을 한다.지진을 겪었던 많은 이들은 당시의 모든 상황을 온전하게 보전해 자라나는 후세에 물려줌으로써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일본 정부는 모든 학교에서 지진체험교육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면서 유치원생부터 직장인들까지 모두가 지진과 화재 시에 대비한 훈련을 많게는 매달 실시한다.지역마다 국비로 운영되는 ‘방재훈련시설’에서는 지진 대비 교육부터 대지진 당시의 상황들을 재연해 가감 없이 보여주는 교육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들부터 진도 7을 체험하고 느끼면서 지진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학습하면서 실제 지진이 닥쳤을 때도 차례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상태다.우리나라에서 의례적으로, 형식적으로 실시하는 각종 대피교육과 마음가짐부터가 다른 이유는 바로 ‘실제경험’에서 나오는 교육의 차이에서부터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포항은, 소중한 ‘경험’을 했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18-04-27

뒤틀린 땅의 에너지,인간을 공격하다

땅이 흔들렸다.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31초, 한반도에서 유래가 없었던 강진이 포항을 덮쳤다. 재산피해만 600억원을 넘겼다. 건물 벽면이 통째로 무너지고 필로티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던 기둥이 으스러졌다. 시민들은 평생을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잃어버렸다. 불과 1년 전 인근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에 연이은 재앙이었고, 5.4 규모의 포항 지진은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안겼다.땅이 흔들렸다.1995년 1월 17일 화요일 오전 5시 46분 52초. 6천434명이 사망했고 4만3천792명이 부상을 입었다. 10만4천906채의 건물이 붕괴, 7천36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재민 중 3명은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로 남아있다. 일본 효고현의 한 작은 섬이 진앙지였다. 아와지섬 땅 속 판이 뒤틀리면서 시작된 강력한 지진은 그 영향이 바다를 넘어 일본 전역에 미쳤다. 7.2 규모의 지진으로 시가지 아스팔트 도로가 절단되고 교량은 속절없이 넘어갔다. ‘한신·아와지 대지진’또는 ‘고베 대지진’으로 불리는 이 지진은 오늘날까지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돼 있다.20년이 지난 지금,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은 일본은 지진 복구를 완료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 자원봉사자, 시민들 모두가 힘을 합친 결과 이들은 모든 것을 지진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것 이상으로 발전에 성공했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됐고, 참고 인내하고 견뎌내는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란듯이 자연의 재앙을 극복해냈다. 대재앙을 겪은 일본은 이제 당시의 상황을 온전히 보전하면서 값진 경험을 후세에 물려주려 하고 있다.이에 본지는 지난해 지진으로 여전히 트라우마에 갖혀 있는 포항시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미래상 등을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고베시에서 찾아보았다. 고베시의 과거와 현재 모습과 현 일본 정부의 지진 방재방향, 미래상을 통한 지진 극복방안 등을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글 싣는 순서1. 지진 원인·특성과 한반도2.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3. ‘신사이(震災)’, 재난을 극복하다4. 대한민국 방재는 어디쯤 왔나5. 진앙지 포항, ‘뉴딜’을 꿈꾸며2017년 11월15일 오후 2시규모 5.4 강진 포항 강타삼국시대 부터 지진 기록 존재해1978년부터 20년간 연 평균 19회3.0이상 지진도 8.8회… 증가 추세구름운 등 전조현상 검증 안돼전문 학계 연구 뒷받침돼야□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불행하게도,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었던 삼국시대 때부터 지진은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해 왔다.한국의 지진활동 자료는 1905년 인천에 지진계가 설치되기 전까지의 역사지진자료와 그 이후의 계기지진자료로 구분된다.역사지진자료는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적에는 ‘땅이 갈라지고 샘물이 솟아 올랐다’, ‘담과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많이 깔려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779년(신라 혜공왕 15)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무려 1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역사지진자료를 종합하면 AD 2년부터 약 1천800회의 유감지진(인체로 느낄 수 있는 지진)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본격적인 계기지진관측이 시작된 지난 1978년부터 2000년까지 한반도에는 총 469회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상청이 발표한 ‘1978∼2000 지진관측보고’을 보면 이 기간 동안 한반도에 규모 4.0 이상 지진도 19번이나 있었다. 규모가 가장 컸던 지진은 1980년 1월 8일 오전 8시 44분 13초 평안북도 의주에서 발생한 규모 5.3의 의주지진이었고, 진도를 기준으로 하면 1978년 10월 7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발생한 진도 V(5)의 지진이 가장 강한 지진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홍성 지진은 한국 지진사의 변환점이었다. 이날 오후 6시 19분 52초께 북위 36.6도, 동경 126.7도에서 관측된 규모 5.0 지진으로 당시 부상 2명과 건물 파손 118동, 건물 균열 1천여 곳 등 총 1억9천995만5천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 ‘지진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한반도에서 지진의 위력과 공포를 실감한 사건이었고, 현재의 체계적인 지진관측업무가 정착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기상청의 ‘2017 지진연보’에서는 지난 1978년부터 20년간 연 평균 약 19.2회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규모 3.0 이상 지진은 8.8회였다. 지난 1992년부터는 지진발생 횟수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지난 1999년부터 2017년까지는 연 평균 지진발생건수가 약 67.6회로 급증했다. 3.0 규모 이상 지진도 11.2회로 늘었다. 한반도가 지진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반증이자 이전부터 꾸준히 지진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지역적으로는 경상 일대의 경상분지에서 지진활동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충청·경기 일대의 서해안 지역이며, 내륙지역과 북부의 개마고원 지역에서는 낮은 편이다. 한반도의 경우 1971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에 발생한 지진의 분포를 보면 추가령단층대, 양산단층대와 포항 영일만-아산만 간 대상을 이루는 진앙지를 갖는 것을 알 수 있다. □ 지진이란 무엇인가지진의 전조현상은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 지진 때마다 퍼졌던 구름운이나 가스냄새, 곤충들의 무리이동 등은 정확히 ‘지진만’의 전조현상은 아니다. 설사 이러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지진이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전조현상이 관찰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지진예보에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본진이 발생하기 전 종종 작은 규모의 지진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이를 전진이라고 한다. 대지진에는 전진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주 지진과 포항 지진 때에도 물론 전진이 있었다. 이를 통해 최근에는 지진 예측에 이러한 전진을 이용하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지진의 전진인지 또는 본진인지 확인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지진이 모두 발생한 이후에서나 알 수 있는 게 과학적 현실이다.지난 2016년 9월 12일 발생한 경주지진 이후 여진은 19일 기준 195회를 기록했다. 포항 지진은 100회째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본진이 끝난 후 보통 이보다 작은 규모로 여러 차례 발생하는 지진을 여진이라 한다. 지진은 응축된 에너지가 분출되는 현상인데, 여진은 단 한 번의 본진으로 방출되지 않은 에너지를 모두 해소하기 위해서 발생한다. 본진보다 규모가 작으며, 본진 발생 후 수일에서 수년 동안에 걸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진의 규모가 클수록 여진은 더욱 광범위한 지역에서 보다 긴 시간 동안 잦다. 지진의 크기는 규모(Magnitude)와 진도(Intensity scale)를 사용한다.지난 경주 지진의 경우 규모는 5.8로 포항 지진(규모 5.4)보다 규모가 컸지만, 피해액은 포항 지진이 668억 2천500만원으로 경주와 비교해 6배나 많았다. 포항에서는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액상화 현상’도 관측됐다. 진원의 깊이를 포함해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이 달랐기 때문이다.규모는 진원에서 방출된 지진에너지의 양을 나타내고 진도는 어떤 한 지점에서 인체 감각, 구조물 피해 정도에 따라 지진동의 세기를 표시한 것이다. 규모는 절대적인 반면, 진도는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해 11월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5.4 규모의 지진을 전국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지역에 따라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진 당시 경북은 최대진도가 Ⅵ(6)이었지만, 거리가 떨어진 전북은 약간 흔들리는 정도인 Ⅲ(3)의 진도로 지진을 ‘체험’했다.지진은 활성단층이 움직임과 동시에 그동안 축적돼 있던 힘이 분출되면서 발생한다. 전체 지진의 90% 정도가 활성단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학계에서는 낙동강 하구에서 부산 을숙도, 양산, 경주를 거쳐 경북 울진 기성면까지 약 200km 정도 이어지는 양산단층을 활성단층대로 추정 중이다. 활성단층이란 최근에 운동을 했으며 미래에 운동을 할 수 있는 단층으로, 쉽게 말해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다. 단층은 외부의 힘을 받아 지각(지구의 바깥쪽을 차지하는 부분, 땅)이 두 개의 조각으로 끊어져 어긋난 지질 구조다. □ 지진 발생 원인지진의 발생원인은 현재 ‘판구조론(Plate tectonics)’으로 설명한다.판구조론이란 지각이 단일 구성이 아닌 십 수개의 조각난 판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론이다. 이 판들은 각각 서로 부딪치거나 밀고 때로는 서로 포개지면서 매년 수cm 정도(손톱이 자라나는 정도)의 속도로 점성이 있는 맨틀 위를 제각기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지각판들이 마주치게 되고, 경계부위가 미끄러지면서 직·간접적으로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지진이 잦은 일본은 유라시아판과 태평양 판 사이, 즉 ‘불의 고리(Ring of fire)’에 위치해 있다. 세계 주요 지진대와 화산대 활동이 중첩된 지역인 환태평양 조산대다. 동일본 대지진을 비롯한 대형 지진이 모두 이곳에서 발생했고, 실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지진은 이러한 판의 경계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판 내 지역에서는 판 경계지역보다 지진발생빈도가 낮을 뿐더러 규모도 작은 편에 속한다. 유라시아 판 내부에 속한 대한민국은 이러한 이유로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판 경계부위가 아니더라도 큰 지진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제일영 센터장은 “막대기 끝 부분에 힘을 가하면 힘이 약한 부분이 휘어지듯이 판 내부에 있는 한반도 역시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라며 “경주와 포항 지진 이후 지진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계에서도 지진 전조현상을 비롯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18-04-20

교통인프라·지속가능한 에너지·지역 상생이 산악관광개발 첫 걸음

12시간을 날아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각 저녁 7시반. 숙소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취리히 중앙역에서 루체른행(行) 기차에 몸을 실었다. 버스로 갈아탄 다음 필라투스(Pilatus) 정거장에서 내렸다. 이국적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걸어서 산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고, 산꼭대기에 호텔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입구에서 케이블카에 올라 해발 2천132m까지 닿는데 30여분.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구름에 가려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산 아래는 해가 쨍쨍했는데 정상에 오르니 자우룩하게 안개 낀 또 다른 별천지가 펼쳐졌다.자연과 낭만 즐기는 특별한 고객들연 평균 68만여명 관광객 맞이해최대한 자연 훼손없이 생태계 보존무분별한 개발 절제 필요`편하게 산을 오르내리는 것`모든 산악관광 사업의 초점경북도 산악관광 활성화 방안1. 세계 산악관광의 모범사례 스위스 알프스 산맥2. 산악관광 특성화 모델 스위스 필라투스 쿨름호텔3. 국내 산악관광 선점 경쟁 -울산 영남알프스4. 산악관광 활성화 가능성 및 개발 기대효과5. 경북 산악을 한국의 필라투스로전망대 맞은편 벽돌건물 하나가 보였다. 붉은색 용(dragon) 그림이 새겨진 필라투스 쿨름(Kulm)호텔이다. 아주 옛날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해주었다는 용의 전설을 품은 곳이다.문 앞에 필라투스 해외영업마케팅 담당자 콜레트 리히터(Colette Richter)씨가 나와 있었다. 자신을 `드래곤 레이디(dragon Lady)`라고 소개했다. 스위스관광청 소개로 이번 만남이 이뤄졌다.배낭을 멘 단체 손님들과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찬바람 불고 진눈깨비 흩날리던 외부와는 달리 따뜻하고 아늑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구 바로 왼편 식당으로 발길을 옮기니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두꺼운 외투를 의자에 걸어두고 식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직원들은 걸음이 빨랐다.-식당 풍경이 매우 인상적이다. 한국에선 보통 배낭에 과일을 간단히 챙기거나 도시락을 싸서 산에 오른다. 간식으로 컵라면을 파는 매점이 있다면 모를까. 산 정상에서 그것도 고급 식당에서의 한 끼 식사라니.“우리 호텔의 자랑거리 퀸 빅토리아(The Queen Victoria) 레스토랑이다. 수년간 리모델링을 거쳐 과거의 고풍스러운 스타일을 되찾았다. 기둥이나 천장 오래된 구조물을 수리해 호텔이 처음 문을 열었던 1890년 당시 클래식한 분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음식 맛도 좋다. 가능한 한 로컬푸드(local food)를 사용해 계절마다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루체른 주민들 얘기로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대규모 보수작업을 했다던데.“지난 2011년에는 간단히 건물 외부만 손봤는데 최근 들어 내부작업까지 마무리했다. 전에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복도에 있었다. 객실을 확장해 방마다 욕실을 만들었더니 손님들이 매우 편리하다고 좋아한다. 모든 작업은 고객 요구에 따라 진행됐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도 달라졌다`는 말에 공감해서다. 사회적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이를 현장에 반영한 것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호텔을 운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다.”-정확히 127년이다. 역사가 어마어마하다.“더 놀라운 사실은 테라스 반대편 둥근 건물, 즉 지금의 벨뷰(Bellevue)호텔이 우리보다 30년 앞선 1860년에 세워졌다는 거다. 심지어 그때 당시 호텔에서는 투숙객이 필라투스 산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톱니바퀴 기차를 운행했다. 1960년에 소실된 이후 3년 뒤 재건축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필라투스 곳곳에 엄청난 역사가 깃들어 있다.”`산악레저 천국` 필라투스의 케이블카와 산악열차와 같은 교통 인프라는 이미 매스컴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됐지만, 산악 숙박시설인 쿨름호텔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스위스에 쿨룸호텔만큼 높은 고도에 있는 숙소가 별로 없기도 하다. 콜레트는 호텔 전망이 뛰어난데다 편안함까지 갖춰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지닌 스위스 관광명소라고 말했다.-호텔 손님은 많이 오는가.“연평균 68만5천명이 필라투스를 찾는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전부 산 정상까지 올라오진 않는다. 호텔 방문객은 지난 2012년 58만6천명에서 2016년엔 68만5천명으로 5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해마다 평균 49만명 정도 오는 것 같다.”필라투스를 찾는 관광객 절반 이상은 스위스인이다. 북미와 아시아에서 온 이들도 각각 20%씩 차지한다. 쿨름호텔 숙박객 중엔 아시아인이 전체의 65%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주로 일본과 한국, 홍콩에서 온 관광객들이 좋아한다.-이들은 어떤 매력에 끌려 호텔을 찾아오는 건가.“`의도적(conscious)`으로 쿨름호텔을 선택한 것이다. 투숙객들은 밤의 경관과 고요함 속에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골랐다고 말한다. 대부분 자연을 사랑하고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호텔이 산 정상에 있다는 것은 분명 사람들을 산으로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요소다.”-일종의 산악관광 트렌드라고 볼 수 있는가.“최근 유행하는 글램핑(glamping)만 봐도 그렇다. 요즘 사람들은 `특별한(special)` 것을 추구한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산속에서의 낭만을 꿈꾼다. 동시에 너무 많은 불편은 감수하지 않길 원한다. 자연과 어울리면서도 고급스러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 편안함을 느끼면서 자연 속에 머무르길 바라는 것이다.”-식당이나 객실 운영을 제외한 수익 창출은.“결혼식이나 각종 모임 공간으로 연회장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어떤 행사는 새벽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필라투스 전체 매출이 연간 3억1천500만 프랑이라면, 식당 운영을 포함한 호텔 수입이 8천400만 프랑을 자치한다. 호텔 전체 매출 가운데 회의나 결혼식 유치로 벌어들이는 비중은 25~30%가량 정도다.”-지역 일자리 창출에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계절마다 다르긴 하지만 필라투스 산 곳곳에 직원 140명이 일하고 있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250명의 손이 필요하다. 주로 호텔과 레스토랑에 인력이 많이 동원되는데 최소 90명이 투입된다.”한국도 스위스만큼이나 아름다운 산악지형을 자랑한다. 콜레트는 “그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서툰 한국어로 얼마 전 `평창`에 다녀왔다고 했다.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인지 되물었다.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를 만난 것은 운이 좋았다. 산악관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경북도에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이란 기대와 희망이 생겼다.-강원도 평창을 가봤다니.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산악관광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한국에도 산악관광을 활성화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본다. 하지만 성급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 물론 나무를 자르지 않고 건물을 세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정 장소에 건물을 짓고 나면,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 남겨두는 절제가 필요하단 얘기다.”-보전과 개발 중에 자연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뜻인가.“산악관광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 바로 `골드러시(gold rush)`에 빠진 개발자들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산에 리조트를 마구잡이식으로 짓고 이러한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자연생태계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까봐 우려된다. 한국에겐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 주변 다른 나라들이 저지른 실수를 본보기 삼아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단 얘기다.”-어떤 실수(mistake)를 말하는가.“러시아 소치만 봐도 그렇다. `개발`된 자연은 올림픽 행사가 끝난 뒤 본래 가치를 잃어버린다. 하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둘러보라. 다른 나라를 본보기 삼아 한국은 최선의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런던올림픽이나 밴쿠버올림픽은 모범이 될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산악관광을 논의할 때 항상 대두되는 논쟁거리가 있다. 바로 환경문제다.-산을 개발하려고 하면 환경론자와 개발론자의 대립부터 거쳐야 한다.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이끌어 낼 만한 방법이 있는가.“쿨름호텔이 1890년에 지어진 게 얼마나 `다행(lucky)`인지 모른다(웃음). 지난 2011년 리모델링 관련 프로젝트를 하나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협상과 기획안 수정 과정을 거쳐야 했다. 파노라마 갤러리를 만드는데만 환경보호론자와 그 밖의 다른 단체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데 예상보다 5년이 더 걸렸다. 만약 지금에서야 쿨름호텔 건설을 추진하려 했다면 아마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결국 산악관광 추진은 환경론자와 개발론자의 타협과 대립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는 순간 자연은 훼손된다`는 주장과 `1%의 개발로 99%의 완벽한 보존과 더불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장을 만들자`는 견해 차이의 접점을 어떻게 찾느냐의 문제다.-산 정상에 쿨름호텔을 짓는다고 했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당시 법과 규제는 지금처럼 엄격(strict)하지 않았다. 물론 몇 가지 기준이 있긴 했지만 수용할만한 범위였다.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 호텔을 필라투스 산 정상에 짓겠다고 한다면, 결코 허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예 산에 오를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프래크뮌테그(Frakmuntegg)에 있는 레스토랑을 재건축하려고 했을 때에도 처음 계획을 많이 바꿔야만 했다. 자연보호를 이유로 기획안을 거듭 수정했다. 끝내 최종 `오케이(okay)`를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경북지역은 전체 면적의 70%가량이 산림으로 돼 있다. 여기다 동해안 바다까지 천혜 자연을 누리고 있는데 이와 연계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제시한다면.“스위스 중부의 안데르마트(Andermatt) 지역 개발 사례를 참고한다면 도움이 될 거다. 안데르마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은 예산으로 스키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는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이 마을에 있던 오래된 스위스군 막사 부지를 거대한 휴양지로 바꾸는 계획이 실행되고, 럭셔리 리조트 체디 안데르마트가 오픈하면서 조용했던 이 마을은 뉴욕 타임스가 추천하는 `숨겨진 최고의 겨울 휴양지`로 떠올랐다.”-안데르마트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교통수단. 물류나 인프라 부문을 강화하려면 우선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야 한다. 한국에는 대도시와 지방을 연결하는 고속열차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평창이 KTX열차 운행노선을 갖춘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본다. 지역 내에서는 대중교통 연결이 잘 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오갈 수 있다. 교통이 편리하단 것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실제로 루체른 주(州)는 기차역에서 필라투스 입구까지 10분 간격으로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교통 연결망 구축 외에 운영 전략을 제시한다면.“나를 컨설턴트로 고용하는 건 어떤가(웃음). 산악관광지 개발을 추진할 때 되도록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태양열, 풍력, 수력을 이용하는 것이 최대한 자연을 보존하면서 개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식당을 운영할 경우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식재료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local)에서 공급받는 게 좋다.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 아니라면 가급적 로컬푸드를 사용하는 방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길 바란다. 지역과 상생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협력이 어디 있겠나.건물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 지역 제품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만약 건물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었다면 이것을 공사 현장에서 목재로 다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원리로 깨진 바위는 도로공사에 재활용하면 된다. 자연이 너무 고통받지 않는 범위에서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필라투스의 향후 100년을 기대한다면.“사실 산악 숙박시설을 만든 것은 우리의 핵심 사업이 아니다. 쿨름호텔은 단지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에 불과하다. 산 정상에서의 낭만적인 하룻밤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부가가치이자 서비스 옵션일 뿐. 거듭 반복해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통 인프라다. 스위스 주민이든,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든 필라투스에 온 사람들이 편리하게 산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오직 여기에 모든 산악관광 사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아무리 정상에 올라서도 산은 정복된 적 없고, 늘 그렇게 똑같이 있다. 정상에 선 산악인의 산 아래 인생도 바뀌는 게 아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기 위한 양보가 필라투스 뿐만 아니라 루체른 지역 전역을 별천지로 만들었다. 꼭대기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오니, 이번엔 산 아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김민정기자 hykim@kbmaeil.com끝

2017-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