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기획ㆍ특집

국내 유일 곤충 페로몬 제품 보유, 맞춤형 해충방제기술 전파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의 지원 덕분에 사업 초기 일찍 자리를 잡았고, 창업 1년 만에 12억원의 매출을 달성 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됐습니다.” 새로운 창업에 대한 수많은 정부의 지원과 정책들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지만, 신규 창업에서 살아남는 창업주는 극히 드물다. 10명 중 한두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극악의 성공률을 보이는 창업, 그러한 창업 전선에서 창업 1년 만에 500%의 급성장을 이룬 (주)에이디 권기봉(35) 대표를 만나 청년창업의 성공담을 들어봤다.- (주)에이디의 간단한 소개해 달라△(주)에이디는 곤충 페로몬을 이용한 친환경 해충 방제 전문회사로 현재까지 곤충 페로몬 관련 자체 기술과 제품을 보유한 국내 유일한 회사이다. 곤충 페로몬 및 물질 합성 기술, 곤충 페로몬 루어 및 트랩 개발, 개발 제품의 현장 적용 등 최적의 기반을 갖추고 있다. 안동대 화학과 출신 청년 5명이 모여 지난해 6월 초기 자본 2천만원으로 창업. 사업 시작 약 6개월 만에 2억원의 매출 기록했고, 현재까지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올해까지 총 12억원의 매출 달성을 앞두고 있다.- 어떤 계기로 곤충 페로몬 사업을 하게 됐는지△지역에서 중·고등학교에 이어 안동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처음 취업한 곳이 곤충 페로몬을 이용한 친환경 농업 해충 방제 회사였다. 그곳에서 곤충 페로몬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당시 국내 곤충 페로몬 관련 회사 대부분이 페로몬을 분석해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수입해 포장재만 바꾸는 식으로 판매를 하는 실정이었다. 해외에서 생산한 곤충 페로몬 제품의 경우 국내 곤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아 국내에선 그만큼 방제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국내 곤충 페로몬의 정확한 화학식을 분석해 국산화된 제품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방제 효과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그 기대감은 적중했고, 국내 곤충 페로몬 관련 자제 기술 제품을 보유한 국내 유일한 회사가 됐다. - 곤충 페로몬은 무엇이며, 국내외 시장 규모는△곤충 페로몬의 사전적 의미는 곤충이 몸 밖으로 분비해 같은 종류의 다른 곤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화학 물질이다. 즉 곤충의 종(種)내에서 의사 교환이나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체내에서 합성해 냄새로서 이동, 먹기 찾기, 짝짓기, 알 낳기 등을 위해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것이다.이런 곤충 페로몬을 이용, 농작물과 산림에 유해한 곤충을 유인해 포획하는 ‘곤충 페로몬 제품 시장’의 전 세계 규모는 현재 1조5천746억원에 이른다. 북중앙아메리카가 9천908억, 유럽 2천900억, 아시아 1천10억, 오세아니아 820억, 남아메리카 670억원 순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80억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친환경 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을 통해 친환경 농업 육성정책이 추진하고 있어 시장 규모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농림축산식품부의 국내 친환경 페로몬 제품 지원 사업 분석에 따르면 유기농과 무농약 등의 친환경 농산물의 시장규모가 지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그 사업 규모도 매년 증가해 2020년에는 193억원, 2024년에는 726억원대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최근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농산물에서 ‘등록되지 않은’ 농약이 0.01ppm 이상 검출되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분류됨에 따라 잔류 농약 걱정이 없는 곤충 페로몬 친환경 해충 방제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창업 초기 힘들었던 점과 어떻게 극복했는지△창업 초기 페로몬 국내 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나를 비롯한 전 직원 전원이 연구원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유통하기까지의 과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제품 판매에 앞서 특허 등록·출원, 디자인 등록 등 막대한 초기 자본도 필요했다. 그러던 중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로부터 창업초기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제품 특허 등록·출원, 디자인 등록 등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서도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 사업과 관련된 기관들과 네트워크 형성을 할 수 있어 제품 개발 후 유통경로 확보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를 통해 낸 특허를 담보로 특허기술보증기금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아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 특허등록 5건(국내 3건, 중국 1건, 일본 1건), 특허출원 1건, 디자인등록 4건, 유기농업자재공시 4건의 지적재산을 갖출 수 있었다. 또 농촌진흥청과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의 연구 과제에 선정돼 지원을 받게 됐다. -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소나무재선충병 매개 하늘소를 친환경적으로 유인·포획하는 트랩을 비롯해 농작물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주는 노린재를 유인·포획하는 트랩, 성페로몬을 이용해 나방류의 교미를 교란하는 제품과 예찰 트랩, 골프장과 그 밖의 잔디밭에 피해를 주는 풍뎅이류를 포획하는 트랩 등 다양한 제품이 있다. 그중 노린재 트랩의 경우 최근 국내 농업 대표기업인 팜한농과 연간 7억6천만원 규모의 제품 계약을 체결했다. 또 경북능금농협 판매처에 나방류 교미 교란제와 예찰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현재 경북 도내 소나무 숲은 재선충에 시달리고 있다. 제품 중 소나무재선충병 매개 하늘소 유인·포획 트랩이 있던 데 어떤 제품인가△‘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를 잡아야 해결할 수 있다. 솔수염하늘소는 4월에 부화해 건강한 소나무를 갉아먹으면서 소나무재선충을 감염시키고, 가을철 나무껍질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이런 하늘소 포획에 최적화된 유인 물질(페로몬, 카이로몬)구성과 산림환경에 적합한 유인제 방출기, 매개 하늘소 포획 전용 트랩으로 갖춰져 매우 우수한 유인 포획력을 자랑하는 제품이다. 특히 강력한 유인제의 시기별 복합적 역할로 윤인해 매개충 우화후부터 시작해 후식·교미·산란시기까지 전 기간에 걸쳐 유인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항공방제와 나무주사를 이용한 예방에 나서고 있다. 방제의 경우에는 꿀벌과 같은 좋은 곤충들도 함께 죽일 수 있고 소나무 근처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에 잔류할 수 있다. 나무주사의 경우에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약제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주사를 맞은 소나무의 경우 침입하는 선충의 번식을 막음과 동시에 잎이나 줄기를 갉아먹은 솔수염하늘소의 수명을 절반 이상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감염 시기를 늦출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 때문에 매개충인 하늘소를 포획할 수 있는 이 제품을 함께 써야 소나무재선충병의 원천 차단이 가능하다. 이 제품의 경우, 산림청에 검증을 받아 국제방제메뉴얼에 등록된 제품이다.- 진행 중인 사업과 신제품 개발 상황은△최근 농촌진흥청이 12억원을 들여 3년간 해외에서 들어오는 해충을 유인하는 페로몬과 트랩 개발에 대한 연구과제에 참여하게 됐다. 이를 통해 3년간 약 2억여 원의 연구과제비를 확보했다. 또 단독으로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에서 1억8천만원을 들여 2년간 노린재 유인을 위해 빛과 페로몬을 연구하는 사업에도 선정됐다. 이는 빛에 대한 노린재류 반응을 규명하고 트랩 형태 및 구성, 후각 및 시각 기반 친환경 노린재 전용 유인등 개발하는 사업이다.이밖에도 담배나방과 담배거세미나방 2종에 대한 교미 교란제, 노린재류 기피제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페로몬을 활용한 친환경 해충 방제 외에도 시장 흐름과 소비자들의 충족에 맞춘 모기류 기피제와 바퀴벌레 트랩, 진드기 트랩도 개발했다.- 창업에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무모하고 즉흥적인 도전보다는 사전에 경험을 쌓으면서 착실하게 준비를 한 뒤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해 7년간 경험을 쌓았다. 그곳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았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고 거기에 미치지 않고서는 성공의 길에 가까이 갈 수 없다.‘곤충 페로몬’이라는 것이 지역 농가에서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큰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국내 시장 자체가 크지 않아 해외 제품이 고가에 팔리고 있고 해외 환경에 맞춘 제품이다 보니 국내 해충에는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곤충 페로몬 제품 자체의 신뢰성을 떨어트려 농가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여기에서 착안해 곤충 페로몬 국산화에 성공한 (주)에이디는 안동에 위치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남도를 비롯해 성남시, 용인시, 경북산림환경연구원 등과 함께 다양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앞으로는 경북도를 비롯해 안동지역 농민들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안동/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2018-09-03

사랑·질투·권력… 저마다 찬란한 꽃 같았던 1천년 전 여인들의 삶

영화 ‘이유 없는 반항’과 ‘에덴의 동쪽’ 주연배우로 잘 알려진 제임스 딘(James Dean·1931~1955). 겨우 스물네 살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그가 다음과 같은 근사한 말을 남겼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고자 하는 건 인간이란 존재만의 특징이다.”다분히 철학적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제임스 딘이 지적한 바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조언한다.“과거를 통해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우리의 오늘을 보다 명확하게 해석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아득한 옛날 존재했던 왕국 신라. “그 시절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란 단순하고 소박한 질문에서 이 기획기사는 출발했다.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건 인간보편의 삶을 학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 또한 있었다.그랬다. 10세기 저편 신라 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빛과 그림자, 꿈과 환멸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를 짧은 지면에 다 담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신라의 여인들’에 포커스를 집중해 보편적 신라인(人)의 삶을 조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기사를 연재하며 신라 시대 여성의 지위와 사회활동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높았고 활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현상·해석학적 교육연구’에 실린 하현진의 논문 ‘화랑세기에 나타난 신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에서의 서술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런 대목이다.“유교적 여성관이 강조되기 이전 한국 고대 사회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사회적 지위가 높았고, 공적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는 물론 그 후대인 고려나 조선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여왕이 세 명이나 등장한다.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정치 분야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 여왕 이상의 정치적 실권 가진 여성도 존재했던 신라사실이 그랬다. 신라는 이 땅에 존재했던 어떤 왕조국가에도 없었던 여성 최고 통치자가 3명이나 있었다.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탁월한 미학관을 갖춘 선덕여왕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당대 남성 엔지니어들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줬다. 진덕여왕 역시 실질적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유신을 왕궁으로 불러 호통을 칠 정도로 드높은 기개를 가진 여성이었다. 진성여왕은 ‘무능력’과 ‘성적 타락’이라는 학계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재위 기간에 보여준 ‘백성에 대한 애정’과 ‘사리사욕 없음’은 재평가 받아야 할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비단 여왕들만이 아니다. 신라 역사에는 왕과 어깨를 견줄만한 정치권력을 행사한 여성도 등장한다. 바로 ‘미실’이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하현진의 논문 중 한 대목.“신라는 개방적인 성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남녀 관계는 쌍방향적이고 호혜적이었다. 미실은 색공(色供)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단계적으로 상승시켰고 정치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왕의 즉위와 폐위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이처럼 여성이 왕이 될 수도 있었고, 여성 정치실력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신라 사회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신라의 여성들은 남성과 평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았고, 남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지니기도 했던 것이다.”신라의 여인들이 정치 분야에서만 두각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고전문학 연구자들로부터 신라 시대 대표적 시가로 평가받는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의 주인공인 수로부인은 그 미모가 전설 속 짐승인 용까지 유혹할 정도로 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우리 고대문학에 비밀스런 상상력의 숨결을 불어넣은 매력적인 여성임에 분명하다.‘화랑의 전신’으로 불리는 원화(源花)를 주도했던 두 여성 준정과 남모의 이야기도 여러 가지 함의를 담고 있기에 흥미롭다. 준정과 남모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백 명의 남성을 이끌던 리더십 강한 두 여성이 단순히 ‘질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을까”란 의문이 생기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여기에 오십 살의 나이 차이를 훌쩍 뛰어넘은 소지왕과 벽화의 열정적인 ‘러브 스토리’, 비단 한 필로 언니의 꿈을 사서 태종무열왕의 아내가 되는 문희의 에피소드도 낭만적이다. 동시에 보다 심도 깊은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 전하지 못한 신라 여성들의 이야기새삼스럽게 에드워드 카(Edward Carr·1892~1982)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역사란 결국 과거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가 나누는 끊임없는 대화”라는 걸.신라 시대를 살았던 세 명의 여왕(선덕·진덕·진성)과 미실, 수로부인과 준정·남모, 벽화와 문희…. 독자들이 대화하고 싶은 신라의 여성이 이들만은 아닐 게 분명하다.‘삼국유사’ ‘삼국사기’ ‘화랑세기’ 등에는 그녀들 외에도 수많은 신라 여인들의 삶과 죽음이 길게 혹은, 짧게 기록돼 있다. 어떤 이야기는 슬프고 어떤 건 재미있으며, 몇몇 일화는 놀랍고도 감동적이다.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태어난 알영부인(閼英夫人)은 신라의 첫 번째 왕 박혁거세의 아내다. 용의 옆구리에서 나왔다는 설화가 전하는 알영은 닭의 부리와 같은 입을 가진 여자아이였는데 신성한 우물에서 목욕을 시키자 그 부리가 떨어졌다고 한다.그녀는 외모만 빼어났던 것이 아니라 인성까지 선량하고 자애로웠기에 박혁거세가 인자한 군주로 자리매김 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이야기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진평왕의 딸 중 가장 미모가 빼어났던 선화공주는 훗날 신라의 라이벌인 백제의 무왕(武王·재위 600~641)이 되는 서동(薯童)의 계략에 의해 혼인에 이르게 된다. 개인적으론 그 결합이 크게 불행하지 않았으니 다행스런 일이다.신라에는 여성 시인도 드물지 않게 존재했다. 희명(希明)은 서라벌 백성들이 인정한 향가(鄕歌) 작가다. 경덕왕 시절 쓴 것으로 알려진 ‘도천수관음가(禱千壽觀音歌)’. 이 향가에는 병을 얻어 눈이 멀어버린 자식을 위해 애절한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의 서러운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고 한다. ◆ 지속돼야 할 ‘신라’에 대한 탐구이외에도 요석공주, 선묘낭자, 원명부인, 도화녀, 강수부인 등 독자의 관심과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신라 여성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언젠가는 그녀들의 생애에 관해서도 쓸 날이 오지 않을까? 길고 지루했던 여름이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서두르던 며칠 전.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아 1천 년 전 서라벌 시내를 재현해놓은 조형물을 오래 들여다보았다.“그 시절 신라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고 무엇을 희구하며 살았을까”, “그들을 웃기고 울린 건 뭐였을까”란 궁금증이 이어졌다. 바로 이러한 ‘지적 호기심’이 앞으로도 신라의 여인들, 아니 ‘신라’라는 나라 전체에 대한 탐구열정을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끝

2018-08-31

시름시름 골목길 문화예술 새 옷 입고 북적북적 핫플레이스로

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도시재생’, ‘문화도시’ 두마리 토끼 한 번에순천시는 1980년대까지 순천 동천과 봉화산을 중심으로 서쪽지역에 위치한 원도심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했다.그런데 1990년대 들어 원도심에 자리잡고 있던 법원, 검찰청, 교육청, 세무서 등 공공기관이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동천 동쪽지역의 연향, 조례, 금당, 신대지구에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향동, 행동, 중앙동 일원의 원도심은 재래식의 좁은 골목길, 생활 편의시설 부족 등으로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도심공동화로 이어지면서 거리는 활력을 잃고 말았다. 원도심 중심상권에 위치한 상점들은 시설노후화에도 대부분 투자여력이 부족한 영세상인들로 구성돼 재투자가 전무하다시피 하면서 죽은 도시로 변한 반면, 신도심은 각종 의료기관과 대형상가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찾고 싶어하는 거리로 바뀌었다. 도심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순천시는 칼을 빼들었다. 침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순천의 문화자원들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도록 보전하는 이른바 ‘도시재생’과 ‘문화도시’조성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한 번에 달성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순천시는 지난 2008년 순천 문화의 거리 조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해 원도심 일부를 문화의 거리로 지정하면서 문화도시 만들기 사업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2009년에는 당시 국토해양부가 추진한 ‘살고싶은 도시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총 30억원의 예산를 확보했다. 순천시는 사업 선정을 바탕으로 향동, 행동, 중앙동 등 원도심 일원 14만7천㎡에 문화의 거리를 본격 조성했다.우선 향동 삼성생명 빌딩에서 금곡사거리 구간 보도블럭 및 가로등 교체, 간판정비사업, 냉각탑 리모델링, 가로화단 조성 등 거리 경관을 개선했다. 또 아름다운가게∼호남사거리간 130m 구간에는 부읍성곽 이미지 재현, 성돌배치, 잔디블럭, 화강석포장, 수목식재 등 문화광장 조성과 함께 매산고등학교 앞 공터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특히 문화의 거리 내 입주한 문화예술인 육성 및 지원, 각종 문화공연 운영, 문화시설·예술공방 연계한 테마스토리텔링 코스개발 등 문화예술거리가 지니는 본질적 요소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 주민 돌아오고 유동인구 늘어나2010년부터 2013년까지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추진한 ‘살고싶은 도시 만들기 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순천시는 또다른 사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 국토교통부가 2014년 공모한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에 ‘자연의 씨줄과 문화의 날줄로 엮어내는 천가지로(天街地路)’라는 주제로 응모해 당당히 선정되며 무려 200억원을 확보하게 됐다.순천시는 도시재생 사업이 원도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생태·문화·역사가 통합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전략으로 이 사업에 응모했다. 확보된 예산을 바탕으로 대부분 단독주택으로 이뤄진 노후주택은 집수리사업과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통해 창호와 단열재를 모두 친환경 자재로 바꿨고, 전등도 LED로 교체했다. 정돈되지 않은 도로는 차 없는 거리를 신설해 보행자들의 편의를 도모했고 거리 곳곳을 아름다운 벽화와 정원, 바닥분수 등으로 꾸몄다. 원도심의 빈 상가는 문화예술인을 위한 창작스튜디오, 전시실, 예술학교로 운영하며 전문예술인이 양성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입주를 희망하는 문화예술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 상가 임차료를 연간 400만원 한도로 최대 3년간 지원했다.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은 우수한 성과로 이어졌다. 순천시에 따르면 사업 초기인 지난 2010년 20곳에 불과했던 문화의 거리 내 문화예술업종 점포수는 지난 2017년 기준 77곳으로 급격히 증가했다.2009년 당시 문화의 거리 주변 빈집은 190개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10여개로 줄었으며 유동인구는 2015년 10월 1만여명에서 지난해 10월 2만5천여명으로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주민들이 참여한 마을협동조합 등 사회적기업 30여개가 생겼고 일자리도 150개 가까이 늘어났다. 옛 순천중앙파출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조강훈 아트스튜디오’와 순천 출신 한복명인 김혜순 디자이너의 작품이 전시된 ‘김혜순 한복스튜디오’등은 문화의 거리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 순천 대표축제, 문화재 달빛야행문화의 거리가 순천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거리로 성장하면서 이곳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순천 문화재 달빛야행은 순천부읍성 재생사업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역 문화유산과 주변 문화콘텐츠를 하나로 묶어 달빛아래 문화재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로 마련됐다. 올해도 지난 8월 3일부터 5일까지 ‘순천가(順天歌)와 함께 하는 풍류기행’이라는 주제로 행사가 열려 큰 인기를 끌었다.이번 순천문화재 야행에서는 선암사 승선교 조형물을 설치해 순천가의 한 대목에 언급된 승선교의 가치 복원 및 지난 6월 말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암사 등재에 대한 축하 의미를 부여했다.축제 개막행사에서는 승평지 편찬 400주년을 기념해 순천시민 400여명이 음악의 선율로 하나되는 합창을 선보였고 24개 읍면동에서 발원한 ‘청수(淸水)’를 모아 화합을 표현하는 합수식이 이어졌다. 달빛 야행에 참가한 시민, 관광객들은 문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500m이내의 순천향교, 팔마비, 근대문화유산, 기독교 유적 등 14곳의 지역명소를 둘러보며 순천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겼다.이번 축제는 문화의 거리에 입주한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전에 열린 2차례 행사에 비해 두배 이상의 체험부스를 마련했다. 체험부스는 시민들이 직접 예술품 제작을 체험하고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구성됐다.또한, 혹서기를 대비한 휴게 공간 및 프로그램을 운영해 관광객들의 편의 서비스를 확대해 만족도를 높였다.무더위를 식혀주기 위해 대형 선풍기를 행사구간에 설치하고, 대형 얼음을 이용해 문화재를 만드는 아이스카빙 체험도 진행됐다. □ 자생적 생태계 조성 목표3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이 10년차를 맞이하면서 순천시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됐다.문화예술인을 한데 모으고 특화된 거리를 조성하면서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에 걸맞는 구색은 갖추게 됐지만 또다른 부작용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일부 양심없는 업자들이 점포 월 임차료를 90% 범위 내로 연간 4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3년간의 임차료 지원이 끝나면 점포를 고스란히 외부로 이동시키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순천시는 이같은 현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례 개정을 통해 올해 1월 1일부터 문화예술인 지원제도를 개편했다.개편된 지원제도에 따르면 2018년 이전에 임차료 지원금을 신청한 문화예술인들을 제외한 신규 신청자의 경우 소요액 40% 범위 내로 회당 200만원 한도로 연 1회 창작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이를 통해 가파른 월세 상승속도로 인한 시 재정부담을 감소시키고 지원 종료 후에도 문화예술인들이 자생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2017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되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확보하게 된 37억5천만원의 사업비는 지역의 특화된 문화자원을 창조적으로 발굴, 활용해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육성하는 작업에 쓰인다.1년차에는 사업추진을 위한 사업추진체 조직 및 도시의 문화 핵심가치 실현을 위한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2년차부터는 본격적인 시민참여형 문화기획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업기간 종료 후에는 도시별 사업평가를 통해 지속 관리를 위한 2년간 추가 지원이 가능하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업 중간평가를 통해 문화도시 지정 신청 및 문화도시 인증을 받게 된다.순천시 관계자는 “순천이 문화도시 사업을 시작한지 어느덧 10년이 지나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이제는 새로운 도전보다는 사업진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문화의 거리가 자생적인 생태를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8-28

‘민족의 아리랑’ ‘품격의 찻사발’로 세계가 주목하는 문경 재탄생

문경시가 글로벌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문경시는 최근 미국 여러 도시와 우호증진을 위한 자매결연을 통해 국제 교류도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여기에 잘 짜여진 교육 인프라를 활용한 학생들의 영어교육과 우수한 체육시설을 바탕으로 외국팀을 유치하는 등 글로벌 도시에 걸맞는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문경시의 이러한 노력이 문경의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문경시가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도시를 위한 정책들을 점검해 본다.미국·중국 등 해외도시와 자매결연지속적 국제교류 확대로 관광객 유치우수한 체육인프라… 세계 스포츠인 유혹문경오미자 효능 해외 홍보에도 열성△미국 3개도시와 자매결연 등 국제교류 추진문경시 권기섭 부시장 일행이 지난 7월 14일부터 21일까지 미국 뉴욕주 Putnam County(풋남 카운티), 뉴저지주 Bergen County(버겐 카운티), 캘리포니아주의 Orange County(오렌지 카운티)를 방문, 국제관계자와 미팅을 통해 자매결연을 협의하고 금년 중 답방 의향을 받았다.이번 교류에는 명상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봉암사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문경세계명상마을추진단도 함께 동행했다.미동부의 뉴욕주 Putnam County는 인구 약 10만 명으로 뉴욕시에서 승용차로 1시간 20분 거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으며 인근에 문화유산, 명상센터, 사찰이 많이 있어 문경과 유사한 점이 많은 곳이다.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주의 Orange County는 인구 340만 명으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LA에서 승용차로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County 산하 제2구역 Michelle Steel위원장은 적극적인 결연 의지를 표명했으며, 봉암사 템플스테이 등 문경체험을 위해 조만간 문경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미국 거주 동포들도 만나 문경시와의 국제비즈니스에 대해 논의했다. 예천 출신으로 미국, 캐나다 전역에 100여 개의 대형마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북지역 수십 명의 인턴학생을 채용하고 있는 권일연 H마트 회장과 경주출신으로 의류, 디자인 사업을 하고 지역 대학생 수십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경북도해외자문위원인 이돈 Active USA 회장 등 한인 기업인을 만나 현지 세일즈 외교를 추진했고 이용규(운강 이강년 선생 손자)국제로터리회장, 영남향우회 회원들을 만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또 조계종 관계자들과 문경세계명상마을 건립과 관련해 뉴욕시와 LA 인근의 Zen Moutain Monastery, Blue Cliff Monastery, Garrison Institute, Lake Shrine 등을 방문해 예산확보, 건축, 디자인, 운영방식, 직원 채용 등 벤치마킹했다.문경시는 세계화를 촉진하고 국제교류협력의 확대를 위해 2008년 중국 이싱시와 자매결연을 추진한 이래 11차례 방문교류를 했다.올해 4월 베트남 송콩시와 우호교류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초중고 영어 캠프로 외국어 능력 향상 교육문경시의 글로벌도시화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먼저,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해 글로벌 선진학교의 초중학생 영어체험 캠프를 2010년도부터 해마다 실시해 오고 있다.지역 초등학생 300명이 4박 5일간, 중학생 100명이 4박 5일간의 합숙훈련을 통해 원어민교사의 직접지도 아래 다양한 영어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 받고 있다.또 문창고 1학년 20명 내외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부터 뉴질랜드 영어캠프를 실시하고 있으며 문경시청 직원들도 외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외국인 새마을 행정인턴과 함께 1주 1회 영어학습반을 운영해 세계화 시대에 맞춤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체육인프라 우수해 외국팀 전지 훈련지로 각광2015세계군인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우수한 체육시설을 바탕으로 2016년부터 말레이시아 등 4개국 100여명의 선수들이 다녀간 이래 올 6월까지 일본, 중국 등 11개팀 1천400여명의 외국팀이 수영, 농구, 태권도, 근대5종 등 훈련을 위해 문경을 다녀갔으며 인원수와 종목이 해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문경시는 공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전지훈련으로 매년 3만여 명이 넘는 선수 및 임원들이 다녀가고 있으며 25억 원의 지역경제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이는 문경시가 전지훈련 유치를 위해 매년 적극적이고 활발한 스포츠 마케팅을 벌이는 한편 스포츠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한 결실이다.지금까지 문경시는 배드민턴 경기장, 온누리체육관 건립 및 시민정구장 리모델링, 국궁장, 인공암벽장, 영순천마광장 조성 사업 등 많은 체육시설을 확충했다.문경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포츠도시 문경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자 ‘문경종합스포츠타운 조성’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사업용역을 시작으로 지역 스포츠 발전을 견인할 것은 물론 문경시와 국군체육부대간의 상호협력 관계가 더욱더 돈독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더불어 진천선수촌 개장에 따른 국군체육부대와 상호 협력하에 제3국가선수촌 조성 등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 전지훈련 메카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또한 기존 문경실내체육관의 협소한 장소 및 접근성이 낮아 국제대회 및 큰대회 개최가 어려운 문제점을 보완 문경시 종합체육관건립 중장기계획을 수립, 국·도비 확보 후 총사업비 500억 원으로 신축을 검토 중에 있다.이 시설이 완공되면 2015세계군인체육대회 성공 개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대회 개최 및 전지훈련 확대 유치는 물론 국군체육부대 시설과 연계한 스포츠 도시 문경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될 것이다. 또한 문경시민정구장 돔 설치를 위해 도비 11억 원을 확보해 여름철 폭염 및 우천과 강설 시에도 대회 개최 및 전지훈련을 할 수 있는 사계절 스포츠 도시가 된다.△아리랑 도시 문경새재국제아리랑제 개최 추진아리랑의 도시 문경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미지를 제고시키며 문경아리랑을 세계에 홍보하고 아리랑 국립무형문화센터 건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문경시는 2008년부터 아리랑 관련 사업을 꾸준히 준비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아리랑을 한데 묶어 우리 민족 고유의 정체성 확립,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해 국내 아리랑 전승자와 해외동포 예술가가 함께 하는 아리랑 공동체를 결성해 아리랑 허브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올해 11월, 2018문경아리랑제(세계아리랑제)를 개최 할 예정이다.△문경오미자 해외 홍보 및 판매 추진지난 3월 세계3대 식품박람회중 하나인 FOODEX JAPAN 2018에 참가해 문경 오미자의 세계적 홍보와 국제 판로 확대를 모색했다.이 자리에서 문경오미자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오미자 효능의 우수성을 해외 바이어들에게 홍보했으며, 문경오미자전시관운영을 통해 120여명의 바이어 발굴 및 미팅, 오미자시음 5천여명, 캐나다, 멕시코, 태국, 일본, 대만 음료회사와 스페인, 오스트리아 와인 회사 등 7개국의 바이어들의 수출 오더 진행이 예상됐으며, 오미자외에도 표고버섯, 사과, 배 등이 바이어들을 사로 잡았었다. △문경찻사발축제 등 외국인 방문 증가문경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중 1위를 차지하고 한국관광의 별 1위로 선정된 ‘문경새재’를 비롯한 천혜의 청정 환경과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다.지난해 문경새재도립공원 오픈세트장 일원에서 열린 제19회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무인계수기 확인 결과 23만6천여 명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2016년 보다 22.5% 늘어난 수치이다. 입장료 수입도 2016년 1억2천550만원에 비해 25.8% 늘어난 1억5천800만원으로 잠정 집계됐다.특히 문경전통찻사발 축제는 대한민국 대표축제, 최우수축제 6회 등 관광축제의 대표주자이다.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통해 적극적인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문경전통찻사발 축제에 다녀간 해외관광객수가 2017년도에는 7천600여명에 달했으며, 해마다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이 같은 노력을 통해 문경시는 미국도시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국제교류 도시의 다변화를 꾀한다. 문경의 우수한 관광자원과 휼륭한 체육시설에 국제 우호증진을 더해 해외관광객 유치와 특산물 판매를 모색해가는 한편 잘 갖춰진 우수한 관광 인프라에 글로벌 역량을 보태 명실상부한 글로벌 도시로 도약할 것이다.문경/강남진기자75kangnj@kbmaeil.com

2018-08-28

비단 주고 산 언니의 꿈으로 왕비가 된 문희… 1천년 전에도 사랑은 뜨거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으로부터 최소 1천 년 전을 살았던 신라 사람들도 21세기 우리와 똑같이 사랑을 하고 결혼도 했다. 까마득한 과거 서라벌에도 비극적인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던 청년이 있었고, 매력적인 사내와의 결혼을 꿈꾸며 노심초사하던 처녀가 있었다.‘삼국유사’ ‘삼국사기’ ‘화랑세기’ 등 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고문헌을 읽다보면 드물지 않게 ‘러브 스토리’가 등장하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것은 재미있고 웃음을 부르는 반면, 또 다른 어떤 것들은 슬프고 애절하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신라의 여인들도 오늘날의 여성처럼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에 애태우고, 근사한 남성과의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꿈꾸곤 했다.그중 일흔 살의 왕이 사랑했던 열여섯 살 소녀의 이야기와 ‘꿈을 거래한 덕분’에 왕비가 된 김유신의 여동생 이야기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회갑 넘긴 소지왕, 16세 소녀 벽화를 만나다“통치하는 기간 내내 백성의 삶을 가까이서 살폈고, 무엇보다 민생을 중시했다”고 평가받는 소지왕(재위 479~500).자비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겸손한 태도를 가졌기에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다.재위 기간에도 고구려와 일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나라가 곤경에 빠지는 걸 막았고, 서라벌 곳곳에 성을 쌓아 국방을 튼튼히 했다.행정 시스템을 개선하고, 백성의 결속을 다짐으로써 정치력을 극대화시킨 것도 눈길을 끈다. 신라에서 최초로 역참(驛站)을 설치하고 관도(官道·국가가 관리하는 길)를 보수한 것도 소지왕의 업적이다.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왕궁의 곳간을 기꺼이 열었고, 고생하는 군사들을 직접 찾아 따뜻한 겨울옷을 나눠주기도 했으며, 고통 받는 고아와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로했다니 분명 자애롭고 좋은 왕이었다.그런 소지왕이 생애 단 한 번 ‘좋지 못한 소문’에 휩싸인 적이 있으니, 열여섯 소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삼국사기’에 실린 관련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회갑을 넘겨 일흔이 가까워오던 소지왕이 신라의 북쪽 국경마을 날이군(捺已郡·현재의 영주 지역)으로 순시를 나갔다. 왕을 맞이한 그 마을 유력자가 자신의 딸 벽화(碧花)를 치장해 바쳤다. 겨우 16세 소녀였다.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하며 돌아왔지만 얼핏 본 소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손녀 또래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이후 소지왕은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변복(變服)하고 날이군을 찾아 여러 차례 벽화와 통정했다. ‘왕이 신중하지 못하게 처신한다’는 고약한 풍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남들의 손가락질도 그의 정열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벽화를 왕궁으로 불러들인 소지왕은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기도 했다.”때때로 사랑은 노인을 ‘철없는 소년’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보편적이지 않지만 스스로 제어할 수 없고, 견딜 수도 없는 연애의 감정은 1천500년 전 신라에도 분명 존재했던 것이다. ◆ 문희, 비단을 주고 언니의 꿈을 사다앞의 에피소드에선 남성(소지왕)이 적극적이었다면,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능동적인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겠지만 ‘삼국유사’에 기록된 걸 간략하게 소개한다.“신라의 장군 김유신에겐 보희와 문희라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문희에게 들려줬다. ‘서라벌 높은 산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시내가 온통 물바다가 돼버렸다’는. 당시 신라에선 꿈과 별자리로 미래를 점치곤 했다. 그 꿈이 상서로운 것임을 눈치 챈 문희가 비단 한 필을 주고 언니의 꿈을 샀다.며칠 후 김유신의 집에 풍채 좋은 김춘추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사소한 사고로 옷이 찢어진 김춘추는 보희를 대신해 바느질을 해주러 온 문희를 눈여겨보았다. 오래지 않아 사랑에 빠진 문희와 김춘추는 밀애를 시작했고, 연이어 문희가 임신을 함으로써 김춘추와 혼인하게 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춘추는 후에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이 되는 인물이다.”겨우 비단 한 필로 ‘왕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문희의 일화는 어떤 측면에선 농담처럼 재미있고, 또 달리 보자면 낭만적이기도 하다.하지만 이 ‘러브 스토리’를 당시 신라의 정치·사회적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역사학자들도 다수다.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행한 ‘신라의 사회 구조와 신분제’에선 김춘추와 문희의 결혼 이면에 자리한 김유신의 야심(野心)을 이렇게 쓰고 있다.“김유신은 누이동생인 문희를 김춘추와 혼인시켰다. 또 자기 자신도 김춘추의 딸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하여 김춘추 가문과 중복적인 인척 관계를 맺었다.이는 진골로서 그 가문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하는 김유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유신 집안은 신라 왕실 안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굳히고, 진골로서 신분적 위치도 확고히 할 수 있었다.”둘의 결합은 문희가 우연히 언니의 꿈을 사서 얻은 행운이거나, 김춘추의 애정 공세가 만들어낸 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신라에서 자기 가문의 권력을 강화하려 한 김유신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을까?지금도 이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내놓을 사람은 없다. 당시로 돌아가 문희와 김춘추, 김유신에게 직접 물어보고 그들의 대답을 들어보기 전엔.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신라 시대나 오늘날이나 사랑을 차지하고 결혼에 이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적극적인 능동성’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학계로부터 “음탕한 동시에 무능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신라의 진성여왕. 시인 김선향이 “권력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가졌을 진성여왕의 고뇌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 한 편을 본지에 보내왔다. 역사 인물에 대한 문화적 해석을 독자들과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이를 게재한다.진성여왕을 위한 변명경문왕과 문의왕후의 딸너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다음란과 방탕, 신라 멸망의 원흉너에게 찍힌 낙인을 지운다오라버니 정강왕의 유언으로 너를 기억한다만(曼)은 총명하고 민첩하여골상(骨相)이 장부와 같으니옛날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처럼그녀를 왕으로 받들라즉위 다음해 숙부이자 애인 위홍이 죽자너는 큰 슬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밤낮으로 남자들에 탐닉한다이미 신라는 바람 앞의 등불서라벌에 흉년이 들고 해가 뜨지 않는다근년에 백성이 굶주리고 도적이 일어나는데이는 내가 덕이 없는 까닭이다이제 숨어 있는 어진 자 요(嶢)에게 왕위를 물려주노라너는 비단옷을 버리고 탐스러운 머릴 자른다여왕이 아닌 여자가 되어홀연히 순례를 떠난 너는그해 겨울 영원히 세상을 버린다그 무엇도 아닌 본래의 너로 돌아간다.◆ 시를 쓴 김선향 시인은…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2005년 문학계간지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된 후 창작 활동을 본격화했다.2016년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문학적으로 탐구한 시집 ‘여자의 정면’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수원시 다문화센터에서 여성 결혼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오랫동안 했었고, 시 쓰는 모임 ‘사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8-24

민원 ‘Zero’ 승차 불안 ‘Zero’ 대기 시간 ‘Down’ 포항버스는 대변신 중

일반적으로 도시의 버스노선체계를 살펴보면 시내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수많은 노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 도시의 시민이라도 해당 지역에 살지 않고서는 선뜻 노선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아는 노선이 아니면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기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남들에게 대중교통의 이용을 권하기도 어렵다.버스가 택시나 승용차와 경쟁하려면 이들을 앞서는 장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타면 승용차처럼 편히 앉아서 문 앞까지 갈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불편하지는 않아야 하며, 가능하다면 승용차만큼이나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 포항시는 교통여건 변화에 맞춰 시내버스 노선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시내버스 노선 전면개편 이후 교통여건 변화에 따라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지역주민의 이용 편의와 이용자 중심의 대중교통체계 구현하고자 지난해 2월 노선개편 사업에 착수했다. 올 하반기에는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시민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작년 2월 개편 착수, 올 하반기 주민설명회 개최도심 환승센터 확보·급행좌석 버스제 도입양덕·문덕지구 등 신규 주거지 순환버스 검토철도역·터미널·공항 등 교통 거점시설 연계 등심도있는 분석 통한 최적의 대안 마련 ‘기대’버스수송 분담률 등 각종 통계지표 파악 안돼현실과 동떨어진 결과 나올까 우려도 커□ 노선 개편에 대한 우려노선 개편이 추진 중이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개편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포항시의 버스이용객이 해마다 줄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인 가운데,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으로 시내버스의 경영난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서 적자 노선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포항시의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이런 가운데 버스 수송 분담률과 같은 교통량 사용 분석을 가늠하는 각종 통계지표 등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주먹구구식 대중교통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상위 정책인 포항시 도시기본계획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하위 개념의 인구 추계 통계는 물론, 버스 수송 분담률과 같은 통계도 나오지 않고 있다. 관련해서 포항시는 내년 하반기 전면적인 버스 노선 개편을 위해 용역을 의뢰해 대중교통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등 시민들의 편의와 수요에 적합한 대중교통 정책을 펴기 위해 전문가 자문 등 다방면으로 최선의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노선개편 어떻게포항시의 이번 버스노선체계 개편은 무엇보다 도시 팽창과 교통여건 변화로 대중교통의 핵심인 시내버스에 대한 시민들이 요구사항이 날로 증대하고 있어서 이에 따른 시내버스 노선개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또한 그동안 교통카드 결제시스템 도입, 무료 환승제 실시, 버스도착 예고시스템 도입, 그리고 읍·면 오지지역중심으로 공영버스 도입·운영하고 있지만 오히려 버스 이용객은 해마다 줄고 있는 점을 심각하게 판단했다는 후문이다.포항시는 이밖에도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한’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막바지 준비에 총력을 쏟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교통안전의 주요 키워드로 꼽히는 ‘보행자’와 ‘고령자 안전’ 등 생활지역에서의 보행자 안전증진에 대한 고려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특히 버스노선체계의 개편을 앞두고 예측되는 문제점 및 시민, 관광객 등 이용자들의 혼란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모아 시행 초기 예상되는 혼선과 민원 등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대책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교통정책이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서민의 발을 자처하는 대중교통을 서민들이 바라는 시간대에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노선에 대한 편리함 등을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포항시의 이번 노선체계 개편에는 △도심 환승센터 신규확보 및 간선·지선노선 운영방법 재정립 △배차간격의 적정성 검토 및 죽도시장 경유노선 시장주변 분산운영 △급행좌석 버스제 도입 검토(국도 7호선, 국도대체 우회도로 운행) △포항형 교통카드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신규 주거지 순환버스 도입 검토(양덕, 문덕지구 등) △교통 거점시설 연계방안 마련(철도역, 터미널, 공항, 여객선터미널) 등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최적의 대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시민 의견 최대한 반영포항시는 앞서 노선개편 초기 단계에서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 반영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용자 중심의 대중교통체계를 만들기 위해 시민 참여단을 모집한데 이어 참여단의 아이디어를 시내버스 정책개선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번 버스노선체계 개편은 민원 ‘0’, 승차불안 ‘0’, 기다리는 시간 ‘짧게’를 목표로 시민을 비롯한 이용자 중심의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노선의 효율성과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를 위한 노선체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관련해서 포항시는 단순히 시민들만을 위한 노선체계가 아닌 지역적 특성과 외지인 유입 등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개방적, 미래적 노선체계 나아가 대중교통체계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버스는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말 그대로 ‘시민의 발’이다. 개인 중심이 아니라 대중이 중심이 돼야 하며, 서로가 조금만 배려하고 양보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모두가 이용하는데 편리한 대중교통이 될 것이다. 포항시의 버스노선체계의 개편이 가야 할 방향이다. 이용객 감소로 위기맞은 포항버스깊어지는 버스업계 노사 갈등부족한 동·서축 연결도로 등산적한 문제점 우선 해결돼야포항시에는 지선 94개, 간선 15개의 노선에 총 200대의 버스가 운행 중이다. 지선은 파란색 버스로 좁은 지역안에서 많은 곳을 다니며 간선버스 등으로 쉽게 환승할 수 있고, 간선은 초록색 버스로 시 외곽에서 도심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시내버스는 ‘시민의 발’로서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대중교통수단이지만 과거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코리아와이드 포항’에 따르면 버스 이용객 숫자는 2016년 2천680만명에서 2017년 2천56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는 월평균 이용객 180만명을 바탕으로 추산하면 2천370만명 수준으로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포항시의 차량등록대수는 2016년 24만8천281대, 2017년 25만4천292대, 2018년 25만8천713대로 해마다 늘고 있다. 더구나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으로 촉발된 버스업계 노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포항 버스업계의 임금·단체협상이 결렬돼 파업의 먹구름마저 드리우고 있다.이 외에도 드러난 문제점은 많다.우선 동서축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노선이 남북축을 연결하고 있는 실정으로, 인구 7만5천여명이 거주하는 경북지역 최대 동(洞)인 장량동의 경우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할 때 포항역까지 10여분 정도 걸리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환승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인접한 흥해와 장량동을 오가는 버스노선도 상황은 비슷하다.일부 지역의 인프라 부족도 이슈다. 일례도 북구 흥해읍 학천교차로 정류장에 드나드는 버스는 고작 배차 간격 20분의 175번 버스가 전부로, 875세대 삼도뷰엔빌과 779세대 학천삼도미래타운1차 및 360세대 삼도뷰엔빌스마트 등 총 2천세대가 넘는 아파트단지가 몰려 있는 곳 치고는 너무 열악하다. 더구나 그 흔한 버스정보시스템(BIS) 하나 없으며 인도도 없어 바로 아래 하천 부지와 도로 사이의 1m 남짓한 폭이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의 전부다. 안전사고 문제까지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가운데 포항시의 버스 노선 개편에 시민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즉, 포항시가 기본적인 대중교통 인프라와 시민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행정을 펼치기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자가용 없이 살기 어려운 포항’의 대중교통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인구유출 등의 근본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포항시 버스 노선 개편이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끝

2018-08-23

빼어난 미색의 두 여인 준정과 남모… 질투로 얼룩진 죽음의 스캔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성의 질투’가 가져온 비극적인 사건을 기록한 문헌이 적지 않다. 프랑스의 왕비와 황제의 내연녀였던 백작의 부인, 남아메리카 예술가와 그가 사랑했던 몇 명의 여성들이 만들어낸 추문은 문학작품이나 음악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운 것 중 하나가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아내와 첩이었던 ‘여태후(呂太后)와 척부인(戚夫人)의 사연’이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에 기록된 이 일화는 너무도 끔찍해 그대로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다.“여태후는 유방의 조강지처다. 그와의 사이에서 혜제(惠帝·한나라의 2대 왕)와 노원공주를 낳았다. 유방이 초나라 항우와의 싸움에서 고전할 때 힘을 다해 도왔으나, 정작 한나라의 왕이 된 유방은 여태후가 아닌 척부인과 그녀에게서 낳은 아들을 더 아끼고 사랑했다. 질투의 불길이 타올랐다. 유방이 죽자 여태후는 척부인의 아들을 독살하고 무딘 칼로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잘라버렸다. 그것으로는 화가 다 풀리지 않았던지 벌겋게 달아오른 숯을 억지로 먹였고, 눈과 귀를 멀게 한 후 오물 가득한 돼지우리에 척부인을 던져 넣어 굶겨 죽였다.”이처럼 호러 영화 수준의 두려움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질투가 부른 무시무시한 스캔들’은 신라에서도 발생했다. 화랑(花郞)이 생기기 전 신라의 청년들을 이끌던 전위 조직 원화(源花)의 리더였던 준정(俊貞)과 남모(南毛)가 바로 그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먼저 원화가 어떤 조직이었는지 살펴보자.◆ 여성 둘의 뒤를 따르던 수백 명 신라 청년들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는 원화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진흥왕은 천성이 어질고 신선(神仙)을 숭상해 민가의 낭자 중 아름답고 예쁜 사람을 택해 원화로 삼았다. 이것은 무리를 모아 인물을 뽑고 그들에게 충성과 효도, 우애와 신의를 가르쳐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받고자 함이었다. 이에 준정과 남모, 두 원화가 선택됐는데 둘을 따르는 청년들이 무려 300~400명에 이르렀다.”‘삼국사기’의 김부식 역시 원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이런 것이다.“진흥왕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벼슬을 주고자 했다. 하지만 개개인의 능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걱정 끝에 젊은이들을 함께 모여 즐기게 하고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 발탁해 쓰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 필요에 의해 준정과 남모가 원화로 뽑혔다.”‘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적힌 문장을 쉽게 해석하면 어린 나이에 왕좌에 앉은 진흥왕은 인재 발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향후 신라의 발전을 이끌 젊은이들을 필요로 했다.그 목적의 달성을 위해 청년들이 기꺼이 따를 수 있는 아름다운 두 명의 여성 준정과 남모를 내세웠던 것이다.역사학계에 따르면 준정과 남모는 원화의 리더 역할과 동시에 당시 신라의 왕이 수행했던 종교의식을 곁에서 돕기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지금으로부터 1천500여 년 전. 서라벌 최고의 미모를 가진 준정과 남모, 거기에 빼어난 용모의 귀족 청년들 수백 명이 말을 타고 풍광 수려한 곳을 찾아다니며 몸과 마음을 닦던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시원스러움을 제공한다.그러나 원화의 결말은 아름답지도 희극적이지도 못했다. 다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인용한다.“준정과 남모, 두 여인은 서로의 아름다움을 질투했다. 이에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불러 억지로 독이 섞인 술을 권했다. 준정은 술과 독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모를 깊은 연못으로 끌고 가 익사시켰다. 남모를 따르던 무리들은 슬퍼하며 준정의 음모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그 노래는 진흥왕과 진흥왕의 어머니 귀에까지 들어갔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자 준정도 사형을 피해갈 수 없었다.” ◆ 남모의 죽음은 단지 준정의 질투 탓?서강대학교 사학과 조범환 교수는 ‘한국고대사탐구(韓國古代史探究)’에 발표된 논문 ‘신라 원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비록 원화가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하고 화랑도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지만, 화랑도가 생겨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사실 한국 사학자들의 화랑(남성) 연구에 비하면 원화(여성)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흡한 수준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사료(史料)가 부족했던 탓일까?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우리의 연구 성과가 미약했기에 일제강점기 일본 역사 연구자들은 원화를 창기(娼妓·몸을 파는 기생) 정도로 격하시키거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인물로 치부하기도 했다.이와 관련 조 교수는 “원화의 신분이라든가 원화 아래에 있었던 청년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하며 “남모에 대한 준정의 질투가 원화의 폐지를 가져왔다는 단순한 해석에서 벗어나 원화 해체의 이면적 배경을 밝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원화 신분과 ‘해체의 본질적 이유’ 연구해야앞서 언급한 논문 ‘신라 원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삼국시대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주목의 첫 번째 이유는 원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신분이었는지 알려준다는 점이다.“원화는 단순히 미모의 여성이 아닌 화랑과 같은 진골(眞骨)이었고, 왕실의 제사를 보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 이는 과거 일본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해석이다.또 하나. 조범환 교수의 논문은 원화의 폐지가 단순히 ‘준정과 남모의 스캔들’ 즉, 여성의 질투만이 이유가 아니었을 수도 있음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원화의 해체는 당대 신라가 처한 시대적 상황, 체제 내에서 벌어진 왕과 귀족의 권력 다툼, 약화된 이념 구조의 보완을 위한 차원에서 진행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조 교수 견해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화’ 폐지하고 ‘화랑도’ 설치‘가장 아름다운 절’ 불국사 중건한 지소태후사연과 곡절 많은 삶이라면 법흥왕의 딸이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只召太后· 574년 이후 사망 추정)도 어느 신라 여성 못지않다.‘이차돈의 순교’라는 사건을 통해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공인한 법흥왕과 보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지소태후는 당시 풍속대로 여러 명의 왕족·귀족과 관계를 맺었다. 여기서 낳은 자식이 6~7명.신라 24대 왕인 진흥왕과 함께 미실의 첫 번째 남편인 세종(조선 4대 왕인 세종과는 다른 인물)도 지소태후의 아들이다. 딸 역시 여러 명이었다.540년 가을이 깊어갈 무렵 법흥왕이 아들 없이 사망하자, 진흥왕은 겨우 만 6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세상사 이치와 법도를 명확히 분간하기 힘든 나이.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걱정은 당연했다. 그런 이유로 진흥왕이 즉위한 이듬해부터 섭정(攝政·임금을 대신해 통치하는 행위)이 시작됐다.지소태후의 섭정 시기에 대해 역사학계는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그녀는 빼어난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이사부(異斯夫), 거칠부(居柒夫) 등의 조력을 받아 아들이 수행해야 할 통치자의 역할을 큰 실수 없이 해냈다.545년엔 국사(國史) 편찬을 지시했고, 경쟁 관계에 있던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밀리지 않는 뚝심을 보여줬다. 불심이 깊었던 부친 법흥왕의 뜻에 따라 흥륜사를 완공하는 등 불교 중흥에도 공을 세웠다. 지소태후의 섭정은 10년 가량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지소태후는 574년 불국사를 중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시기에 ‘아미타여래상(阿彌陀如來像)’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만들어졌고 이는 불국사에 봉안(奉安)됐다.이를 볼 때 그녀는 아버지 이상으로 불교에 기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도 불국사는 “가장 크진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절”로 이름이 높다.‘화랑세기’에 의하면 지소태후는 원화를 폐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준정이 남모를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소태후는 망설임 없이 원화를 해체하고, 원화를 따르던 무리들을 화랑으로 재편성했다.서강대 조범환 교수는 ‘원화 해체-화랑도 설치’라는 지소태후의 결정이 가진 의미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새로운 인재 발굴을 통해 어린 아들(진흥왕)이 법흥왕 시절 이루어진 여러 가지 변화를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 것이며, 사상의 변화 과정에서 그것을 수용하고 새로운 종교적인 변화를 이끌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8-17

聖과 惡 경계를 뛰어넘는 신라여인 미실, 21세기로 데려오다

아득한 옛날 서라벌. 선덕·진덕·진성 등 3명의 여왕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큰 권력을 누렸고, 수로부인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웠던 신라 여성’으로 손꼽히는 사람. 외형적 미와 함께 내면의 지혜까지 갖췄기에 생의 어느 한 순간도 사랑받지 않았던 적이 없는 여자. 바로 ‘미실’이다.논란과 주목,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여성을 ‘화랑세기’라는 책에서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이는 소설가 김별아(49).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장편소설 ‘미실’의 작가인 그녀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이 지속되던 7월 말 서울에서 만났다.오후 4시쯤 시작된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김별아는 ‘6세기 신라 사회’와 ‘일찌감치 능동적 삶을 실천한 여성 미실’ 여기에 더해 ‘역사소설 쓰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21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줬다.가장 신라적이자 가장 현대적 여성여성작가의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세상 앞에 당당했던 미실의 욕망오늘날 여성에게 시사하는 바 있어-당신은 6세기 말과 7세기 초를 살았던 신라 여인 ‘미실’을 21세기 사람들의 관심 속으로 끌어들인 작가다. 어떤 매력이 미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는가.△ 미실은 역사에 없었고 기존에 알려진 여성 전부를 뛰어넘는 캐릭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뿌리박힌 여성에 대한 이분법 즉, 성녀/악녀, 어머니/요부라는 규정을 훌쩍 넘어서는 존재다. 선악으로 분별할 수 없고, 아름다움을 무기로 거침없이 사랑을 쟁취했으며 스스로 권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처럼 가장 신라적인 여성이자 시대를 건너뛴 현대적 여성에게 관심이 갔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장편소설 ‘미실’은 1억 원의 상금을 내걸었던 세계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작이다. 역사, 좀 더 미시적으로 말하자면 ‘역사 속 여인’을 소재로 문학상 응모작을 썼던 이유가 있는지.△‘미실’은 내가 역사를 소재로 쓴 첫 번째 소설이다. 등단 후 10년간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작업하다가, 자기 고백을 넘어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재를 다각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역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역사는 남성과 승자의 기록이다. 여성과 약자의 이야기가 합해져야 온전한 역사가 되지 않을까? 기존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들 또한 주로 남성 작가에 의해 쓰였기에 나 자신이 여성 작가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미실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화랑세기’ 필사본은 아직도 ‘진위 논란’ 속에 있다. 그 논쟁과 별개로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보는가.△‘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갇힌 고대사의 지평을 넓혀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유교가 장악하기 전 고대 신라의 사상과 문화와 풍속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유불선(儒佛仙)을 뛰어넘은 ‘풍류’라는 현묘한 도의 실체가 드러나 보이는 것도 매력이다. 학계의 고고학적 연구가 보강돼 진위 논쟁이 학문적 지평을 넓히고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몇몇 논문을 보면 미실이 살았던 신라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권’이 신장되고, ‘성적’으로도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중요한 건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현대의 기준, 윤리와 제도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여권’이나 ‘성적 개방’이 지금 쓰는 말뜻 그대로였을 리 없다. 생산성이 낮았던 고대엔 열악한 삶의 조건 속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생명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남녀의 분별이나 도덕적 질서만을 내세워서는 후손인 우리들이 지금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 아닌가. 신라는 그런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에너지를 국가적 힘으로 활용했다고 본다.-단편적인 자료와 고문헌의 몇 줄 문장을 토대로 장편소설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실’을 집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었기에 사료를 찾아 공부하고 정리하는 게 가장 복잡하고 어려웠다. 특히 고대사는 자료 자체가 많지 않아 신라뿐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 중국과 일본의 연구서까지 뒤져봐야 했다. 최대한 정사(正史)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내 나름의 창작원칙 때문에 소설에 쓰지 못할지라도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썼기에 더 애착이 간다.-위의 질문과는 반대로 예술가에게 창작 과정은 희열과 환희의 체험이기도 할 것이다. 즐겁거나 행복했던 기억도 분명 있었을 텐데.△자료가 적다는 게 어려운 문제이긴 했지만 소설적 상상력을 펼치는 데는 유리한 조건이었다(웃음). ‘화랑세기’는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우리가 알던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신세계였기에 문학적으로 보수적인 내가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미실’을 쓴 그해 벽걸이 달력에 ‘화랑세기’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비교해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연대표를 만들었는데, 그 빽빽하고 나달나달한 달력이 창작의 기념품이 됐다.▲ 소설가 김별아가 서울 망원동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구창웅-당신이 만난 ‘미실’은 어떤 여자, 아니 어떤 인간이었나.△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세상이 만들어놓은 모든 억압과 약속까지도 뛰어넘으려 했던 여자다. 현대를 사는 비겁하고 둔중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미실은 왕과 귀족, 화랑 등 많은 남성들과 육체적으로 교접하고 정신적으로 교류했다. 그중 미실이 가장 신뢰했고 사랑했던 사내는 누구였을까.△처음으로 정을 준 화랑 사다함과 마지막을 함께한 설원랑이 아니었을까? 사다함은 순수의 표지이면서 미실의 운명을 바꾼 남자다. 힘을 갖지 못하면 힘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설원랑은 지고지순한 동시에 신뢰와 의리의 사내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색이 바래듯 사랑도 흐려지기 마련이라는 이치를 거스른 남자이기에 매력적이다. 병든 미실을 대신해 죽기를 하늘에 빌고 먼저 떠난 것은 로맨틱하기까지 하다.-10년 넘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고 관련 공부를 하며 작품을 쓰고 있다. 미실 외에 당신이 주목하는 ‘신라의 또 다른 여인’이 있는지.△신라의 여왕들은 특이한 고대사의 인물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여왕의 존재를 공격의 근거로 삼았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세 나라 중 신라만이 여왕을 옹립하고 통치를 수용했다면 그만큼의 진보성과 순혈주의가 강조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활동 시기가 거의 겹치지 않는 미실과 선덕여왕을 동시대에 놓고 꾸며낸 일종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그렇게 소비되기엔 선덕여왕의 존재가 너무 크다.-신라부터 조선, 근대까지를 오가며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쓰고 있다. 현재 집필하고 있는 소설이 있는가.△얼마 전 출간한 ‘구월의 살인’ 이후 현재는 쉬고 있다. 소설이라는 서사 장르가 현대에 적합한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한가(웃음)? 목소리를 대신하고픈 중세와 근대의 인물이 몇몇은 남아있다. 하지만 누가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줄지는 의문이다.-1천 년 전 신라사회건 오늘날 한국사회건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분명 있을 것 같다. 뭐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 문제의 해결 방안은 뭔가.△요약하면 투쟁과 조화가 아닐까. 남성들의 오랜 영토 속에서 식민지로 착취당하지 않고 투쟁하며 여성의 영지를 개척해야 한다는 건 인류사적 과제다. 동시에 인류를 보존하는 파트너로서 이성(異性)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협력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AI의 시대에 여성과 남성이 만든 전선(戰線)이 고착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런 낙관이 온당한지는 잘 모르겠다.-이른바 ‘페미니즘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어떤 것인지.△현재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감성을 갖고 있다. 그들의 운동은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이다. 변화를 위한 모든 운동에는 급진성의 단계가 있고, 의미와 함께 폐해도 있기 마련이다. 때로 싸움이 엉뚱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젊은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쪽도 강자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기자는 ‘미실’을 시대를 뛰어넘는 ‘자립과 자존의 여성성’이란 키워드로 읽었다. 동의하는가. 또 신라 사회에서 미실이 가졌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미실이 자립하고 자존할 수 있었던 힘이 동시에 그녀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권력이 된 근거가 그다지 근대적이지 않은 ‘아름다움’ 때문이 아닌가. 또한 미실이 행사하는 정치권력이 새로운 ‘여성 권력’이 아니라 기존의 ‘남성 권력’과 크게 변별되지 않는 형태를 보인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에 당당하고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며, 원하는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했던 미실의 삶은 오늘날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김별아는…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1993년 문예계간지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20대엔 ‘자아 발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다. 30대 중반 이후로는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관심은 ‘역사소설 집필’로 이어졌다. 장편 ‘미실’과 함께 ‘영영이별 영이별’ ‘논개’ ‘백범’ ‘채홍’ 등이 그 시기에 쓰인 소설들이다.“멈추지 않고 꾸준히 쓰는 성실한 작가”로 문단 안팎에서 인정받는 그녀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등의 산문집으로도 주목받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8-10

‘냉혹한 권력자’ ‘순정한 여인’ 꽃들도 질투한 신라 절세미녀 미실의 두 얼굴

먼저 얼핏 보기엔 ‘난잡한 여성의 남성 편력기’로 오해될 수도 있는 기록부터 옮긴다.“14살에 황후의 아들과 혼인한 그녀는 첫 남편의 곁을 떠나 신라의 전쟁영웅 중 하나였던 화랑 사다함(斯多含)과 뜨거운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가 한 사내 옆에 머무는 것을 신라의 지배자와 귀족들은 견디지 못했다. 진흥왕과 진평왕을 비롯해 금륜태자와 화랑 설원랑까지….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남성들이 귀애한 그녀는 5명의 왕·왕족·귀족 사이에서 8명의 자녀를 낳았다.”궁금증이 생긴 이들이 ‘대체 그 여성이 누구냐’는 질문을 해올 게 빤하다. 미실(美室·549~606 추정). 외형적 아름다움과 내면에 잠재한 정치력으로 6세기 말 신라를 자신의 치마폭에 가둔 여걸.한국여성문학연구회장을 지낸 정영자(77)는 미스터리와 비밀 속에 존재해온 미실을 이렇게 정의한다.“3명의 왕과 왕자들, 화랑 사다함을 비롯한 숱한 호걸영웅을 미색으로 녹였고 왕실의 권력을 품었던 여성,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자유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당당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고.◆ 세상의 모든 여성이면서 그 모두를 뛰어넘은 ‘어떤 존재’정영자가 평론가다운 정제된 문장으로 미실을 표현했다면, 소설을 통해 그녀를 21세기 한국사회로 불러낸 장본인 김별아(49)의 서술은 좀 더 드라마틱하다. 읽어 보자.“이러저러한 매체를 통해 이제는 세간에 그 이름이 제법 알려진 미실은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여인이다. 성녀와 악녀, 어머니와 창부의 바탕을 한 몸에 가진 그녀이기에 누군가는 그녀에게 매혹되어 열광하고 누군가는 질시하며 비난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미실은 세상의 모든 여성이면서 그 모두를 뛰어넘은 어떤 존재다.”혹자에겐 ‘미색을 무기로 권력의 정점에 섰던 여인’으로,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겐 ‘고대(古代)를 살았던 희귀한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미실.그녀와 관련된 가장 많은 기록이 담긴 건 필사본 ‘화랑세기(花郞世記)’다.그 책에 따르면 미실은 왕가의 사내들은 물론, 귀족과 화랑들을 자신의 품에 넣고 좌지우지하며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휘둘렀다. 미실의 출생에 관해 ‘화랑세기’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신라 왕족과 귀족에게 색공(色供·높은 신분의 사람에게 제공하는 성적 서비스)을 바쳐 자신의 권세를 유지했다. 출중한 아름다움과 함께 학식도 가졌던 여인으로 외할머니는 초대 풍월주(風月主) 위화랑의 딸 옥진이었다. 미실의 아버지는 2대 풍월주인 미진부다.”역사학자 신재홍의 논문 ‘미실과 사다함, 송사다함가와 청조가’에는 미실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 등장한다.“미실은 용모가 절묘했다. 풍만하고 도톰함은 외조모를 닮았고, 마음까지 밝고 총명하면서도 오묘했으니 온갖 꽃들이 그녀를 질투할 정도였다.”하지만, 미실과 ‘화랑세기’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태어난 날과 사망일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미실. 필사본 ‘화랑세기’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미실은 실존했던 여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 과연 미실은 권력만을 탐했을까?아득한 옛날의 사건이나 인물을 놓고 벌어지는 학계의 ‘진위논쟁(眞僞論爭)’은 별스런 것이 아니다. ‘화랑세기’와 ‘미실’에 얽힌 사학자들 간의 설왕설래 역시 그런 차원에서 보면 될 터.필사본 ‘화랑세기’를 부정적 관점이 아닌 긍정적 시각에서 해석한 하현진의 논문 ‘화랑세기에 나타난 신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엔 6세기 말부터 7세기 초까지 미실이 가졌던 정치권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서술이 눈에 띈다.“미실은 색공을 통해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대(代)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신라 왕실에 큰 힘을 발휘했다. 미실이 정치 일선에 있으면서 왕의 즉위와 폐위에 관여했을 정도니 얼마나 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미실의 삶을 통해 신라 사회에서는 여성도 권력을 지닐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쯤에서 자연스레 질문 하나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미실은 오로지 정치적 권력만을 탐한 여자였을까?아래 인용하는 향가(鄕歌·향찰로 표기된 신라시대의 노래)인 ‘송사다함가’(학자에 따라 ‘풍랑가’ 혹은 ‘송랑가’ 등으로도 부른다)’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읽힌다.바람이 분다고 해도랑 앞에 불지 말고물결이 친다고 해도랑 앞에 치지 말고어서 빨리 돌아와다시 만나 안아 보기를마주 잡은 손만으로도 좋은데우리 행여 헤어지진 않겠지‘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이 썼다고 전해지는 이 향가는 신라가 대가야와 전투를 벌일 때 참전한 연인 사다함에게 노심초사의 애틋함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송사다함가’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전쟁터로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 하는 여인의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TV 드라마를 포함한 대중문화 매체에선 미실을 성적 기교와 미모를 무기 삼아 수많은 남성들 위에 군림한 ‘냉혹한 여성 권력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그게 미실의 본모습일까?그런 사람이 과연 위와 같이 ‘따스한 문장’을 쓸 수 있었을까?어쩌면 미실은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여러 사내들의 마구잡이식 사랑이 아닌, 한 남성의 완전하고 오롯한 사랑을 받고 싶었던 ‘순정한 여인’이었을 수도 있다. 미실을 역사 속에서 불러낸 책 ‘화랑세기’“인간의 상상 밖에 존재하는 바다 풍경을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백경(白鯨)’. 그 작품의 주인공은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만치 거대한 고래’다.급속하게 진행된 산업화의 과정에서 ‘뿌리 뽑힌 사람들’로 전락한 이들의 서러운 풍경을 빼어난 문장으로 형상화한 황석영의 수작(秀作) ‘삼포 가는 길’의 주인공은 타락과 순수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작부 백화.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화랑의 리더 풍월주들의 전기’로 기술했다고 전해지는 책 ‘화랑세기’의 주인공은 ‘미실’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화랑세기’는 7세기가 끝나갈 무렵 ‘신라의 문장가’로 이름 높던 김대문이 썼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원본은 소실돼 전하지 않는다. 다만 필사본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1989년과 1995년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필사본을 베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일제강점기 일본 왕실 도서관에서 일한 박창화(1889~1962).다수의 사학자들은 필사본 ‘화랑세기’를 두고 “상상력으로 만든 창작품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다른 쪽에선 “여러 정황과 사실 묘사의 핍진성으로 볼 때 위서(僞書)로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어쨌건 ‘진위 논란’과는 별개로 ‘화랑세기’의 진정한 주인공이 ‘문제적 신라 여성’ 미실이라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에 관해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를 쓴 김태식은 이렇게 부연한다.“‘화랑세기’를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가게 만든 신호탄은 소설가 김별아의 ‘미실’이다. 소설이 주인공으로 삼은 미실은 ‘화랑세기’가 아니면 영영 매몰되었을 인물이었다. 김별아는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여성을 문학으로 극화해냈다.”조선시대 때부터 “이미 사라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풍문처럼 전하는 책”으로 평가절하 된 ‘화랑세기’.하지만, 일부 사학자들은 “화랑과 당대 신라 귀족들의 성 풍속을 거침없이 드러냈기에 유학이 지배했던 사회가 ‘화랑세기’를 배타적으로 대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어쨌건 필사본 ‘화랑세기’가 지닌 가치와 의미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1천400년 전 아득한 기억 속 서라벌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매력적인 여성 미실에 대한 ‘대중적 주목’은 ‘화랑세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8-03

꿈틀로 철수와 목수 문화반상회 문화품앗이

포항시의 문화적 도시 재생 정책 일환으로 문을 연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포항시 북구 중앙로에 위치한 이곳은 지역 예술가 21개팀이 입주한 창작예술촌으로서 공예, 사진, 회화, 연극 등 다양한 창작활동과 아트프리마켓, 거리축제 등이 펼쳐지는 등 포항의 새로운 문화 거점이 되고 있다.2016년 꿈틀로 사업초기만 해도 4~5 점포 건너 문을 닫은 빈 점포가 즐비하던 노후한 골목이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하나둘씩 채워지면서 예술가의 창의성이 덧입혀진 예술간판과 조형작품이 설치되고 공예, 사진, 회화, 연극 등 다양한 창작활동과 아트프리마켓, 거리축제 등이 펼쳐지는 등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도시재생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문화와 더불어 도시성장을 견인할 포항시 도시재생 정책의 추진방향과 문화적 도시재생의 의미, 발전방향 등을 알아본다.다양한 장르 예술가들 입주문화 체험·젊은 예술가 ‘허브’로도심에 불어넣는 문화 성장동력주민_입주 예술가 결속상인에 간판 만들어 주고작가 활동땐 자원봉사함께 ‘밥’ 먹으며 상생 공동체 형성1:1 결연해 서로 도움주며함께 살아가는 ‘삶터’로 인식단발적 지원금에 의한시스템 아닌지속적 생명력 갖춘 공간 ‘과제’△사람중심의 문화공간으로서의 문화적 도시재생최근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전국의 낙후지역 500곳에 매년 재정 2조원의 예산을 들여 도시활성화를 도모하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이 본격적으로 착수되면서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특히 지난해 11월 지진이후 재난지역으로 지정된 포항시의 경우 물리적 정신적 재건의 도시재생이 그야말로 절실한 상황이다.도시재생은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는 과정에서 도시공간의 재편에 따라 나타난 도심공동화 현상을 막고 침체된 도심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공간활성화 전략으로 국내에서는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도시재생사업의 변화 양상이 가시화됐다.도시재생이란 단순히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는 개발사업이 아니다. 1960년도 이후 진행돼온 도시개발사업의 물리적 개발방식에서 탈피, 지역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공간적 특성과 경제·사회·물리·환경 등의 비물리적 측면을 고려해 재생해 가는 도시재생 패러다임으로 변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도시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사람중심의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것이 최근의 주요 트렌드가 되고 있다. 특히 유휴지나 폐공간을 박물관, 갤러리 등 이색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매개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어 도심을 활성화시키고 관광산업으로까지 확대시킨 사례는 너무나 많다.최근 몇 년사이 국내에서도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역사문화마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라든가 공연과 푸드 패션 분야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플랫폼 창동 61 등 문화를 접목한 도시재생으로 성공시킨 사례가 늘고 있다.이처럼 도시재생에 있어 문화중심의 장소성 복원과 커뮤니티 활성화는 도시재생을 관통하는 핵심 아젠다가 되고 있다.1970년대 북미대륙에서부터 문화예술을 활용한 새로운 의미의 도시정책에서 시작된 문화주도의 도시재생 정책은 198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더욱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공예와 민속예술 분야의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지정된 일본 가나자와, 세계 최대의 광산 지역을 산업시설과 도시환경을 문화적으로 재생시킨 독일 루르지역, 20년간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영국의 테이트모던 등 산업화 이후 침체되고 낙후된 도시들의 새로운 성장동력은 바로 ‘문화’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또 단순히 문화적 색깔을 덧입히는 방식에서 나아가 문화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관광산업을 견인하며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성장시켰다.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7년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원 도시재생지역 선정사업이 시작되면서 도시재생이란 의미가 피부에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올해 첫 시행된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범지역으로 전국의 68개의 지자체가 선정된 가운데 포항시에서도 국토부가 주관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대상지로 각각 선정되면서 도심 활성화에 기대감을 주고 있다.이 가운데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를 통해 도시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해 도심과 공동체의 활성화는 물론 문화적앵커로서의 장소구축사업을 펼치는 사업이다. △포항시의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의 중심 꿈틀로포항시의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지난 2016년부터 포항시가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꿈틀로를 거점으로 이뤄진 다양한 문화적 활동이 기반이 돼 공모에 선정됐다.꿈틀로에는 현재 올해 6팀의 신규작가를 추가로 공모·선정해 총 27팀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입주해 있으며 그램책 마을과 꿈틀갤러리 등 소규모 문화공간이 자리하고 있다.2016년 꿈틀로 사업초기만 해도 4~5 점포 건너 문을 닫은 빈 점포가 즐비하던 노후한 골목이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하나둘씩 채워지면서 예술가의 창의성이 덧입혀진 예술간판과 조형작품이 설치되고 공예, 사진, 회화, 연극 등 다양한 창작활동과 아트프리마켓, 거리축제 등이 펼쳐지는 등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난 2월 문화체육관고아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도시재생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포항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올해 1년간 총사업비 2억5천만원이 투입돼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연계를 통해 예술가와 주민, 지역 문화리더, 시민이 상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꿈틀로의 장소성 회복과 커뮤니티 활동, 장소디자인 구축 사업을 펼치게 된다.그러나 꿈틀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경관 위주의 물리적 재생보다 장소성이 가진 서사성을 살리고 주민 공동체가 자발적 중심이 된 사회적 재생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주민과 입주예술가가 결속이 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응하고 제대로 된 간판조차 갖추지 못한 영세 상업자들에게 입주작가들이 간판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반대로 주민이 작가들의 활동에 자원봉사를 하는 ‘문화품앗이’ 등의 상생의 과정을 통해 삶터로서의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기존 외관 중심의 도시재생사업과는 차별성을 둔 것이다.△2018년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포항시의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및 작가협업 프로그램으로 ‘철수와 목수’‘문화반상회’‘문화품앗이’‘주민영화제’ 등이다.이 중‘철수와 목수’는 철공과 목공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지역사회 자원활동가가 주민(상인)이 필요한 간판이나 생활용품을 만들어 주면서 꿈틀로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문화공작소 기능을 담당한다. ‘문화반상회’는 음식이라는 매개체가 가져다주는 ‘소통과 연대’의 효과에 착안해 주민과 입주예술가가 정기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며 주민과 예술가의 문화간극을 좁히고 서로 소통하며 공동체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꿈틀로 조성사업에 있어 주차문제, 공간조성 등 현안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주민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 결국 거주자가 아닌 정주자로서 주민과 입주예술가가 ‘우리 동네’라는 삶터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서로 함께 현안을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문화품앗이’는 꿈틀로 작가와 주민(상인)이 1:1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나누며 공동체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프로그램이다. 구제옷가게, 소규모 양품점, 분식집, 세탁소 등 꿈틀로의 영세 상업체 대부분은 제대로 된 간판이나 사람의 발길을 끄는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를 갖추지 못했다. 이처럼 하루하루 벌어서 겨우 살아가는 꿈틀로의 상인들에게 입주작가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이색적인 간판을 만들어 주거나 실내 인테리어를 단장해 주고 혹은 식기나 찻잔을 제작해 주면서 영업에 활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반대로 주민들은 꿈틀로에서 펼치는 문화행사때 자원봉사를 한다거나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로 상생해 나간다.이러한 상생의 기반을 위해 수차례 주민과 입주작가가 식사자리와 간담회를 가졌으며, 지난 6월 개최한 ‘꿈틀로 여름날의 소소한 축제’에서 주민과 입주작가 자치회가 중심이 돼 차없는 거리를 요청하고 함께 문화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TF팀은 이런 사회문화적 재생에 방점을 둔 주민, 입주작가간 커뮤니티 활동을 정례화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해 꿈틀로 내 구 아카데미 극장 부지에 ‘문화공판장’을 조성 중에 있다. 또 1960년대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이었던‘청포도 다방’을 재현해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주민과 입주예술가들이 함께 마을 발전궁리를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계획이다.또 주민의 일상과 꿈틀로의 모습을 기록해 함께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주민영화제’ 개최와 지역의 이슈를 그들만의 유쾌한 방식으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여러 가지 방안들도 모색해 나갈 예정이다. △지속적인 생명력 갖춘 공간으로 거듭나야 이처럼 문화가 매개가 된 커뮤니티 중심의 도시재생사업 방식은 시간이 더디 걸린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보다 지속적이고 영속성을 가진다.장기불황에 따른 경기침체에 지진이라는 악재를 겪으면서 재난상황이 직면한 포항은 현재 사회적 관점의 도시재생이 절박한 시점이다.수 백억을 투자해 대형 신축건물을 짓고 갖은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천편일률적인 백화점식 개발사업 형태의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보다 나아가 도시의 철학을 세우고 사람이 중심이 된 인문적 도시재생방안에 대한 연구가 보다 깊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실례로 수년간 30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들여 조성했지만 올해 사업비 지원이 끝나게 되어 입주작가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투자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창동예술촌의 사례는 향후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포항이 중요하게 되짚어봐야 할 사안이다.지역의 한 인문학자는 “도시재생사업이 단발적인 지원금에 의해 사업의 성패가 좌지우지 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철학적 베이스가 된 사업추진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황상해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TF팀장은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이 사회문화사적인 도시철학을 바탕으로 도시에 문화가 관통하고 시민의 삶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도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존의 문화도시 조성사업과 각종 부처연계사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08-01

소 풀 먹이고 초롱불로 공부하던 시골소년의 ‘회장 되겠다’ 막연한 꿈, 36년만에 현실로

제 9대 포스코 회장으로 선임된 최정우 회장은 1983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재무실장, 정도경영실장, 가치경영센터장, 포스코건설 경영전략실장, 포스코대우 기획재무본부장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회계, 원가관리부터 심사분석 및 감사, 기획 업무까지 제철소가 돌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업무를 두루 경험하며 현장 구석구석에 대해 누구보다 밝은 눈을 가지게 됐다.공정 간 물류는 어떻게 관리되고, 공정 간 가치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실수율은 어떠한지 등의 현장 프로세스를 손바닥 보듯 해야 원가든 심사든 감사든 주어진 업무를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업무 경험이 36년간 고스란히 쌓여 ‘철강업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경남 고성 구만초등학교·회화중학교 전교 1등 우등생1983년 포스코 입사, 동기회장 맡으며 ‘회장 되겠다’ 결심포스코켐텍서부터 준비한 ‘경영 아이디어 노트’ 로100년 기업 포스코에 ‘준비된 적임자’ 이미지 얻어여기에 포스코건설, 포스코대우를 거쳐 포스코켐텍에 이르는 그룹사 근무 경험은 철강 이외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됐다.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력이 그를 ‘철강 그 이상의(Steel Beyond)’ 100년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는 포스코에 딱 맞는 적임자로 만들어 주었다.2015년부터는 포스코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가치경영센터를 이끌며 그룹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그룹 사업재편과, 재무구조 강건화 등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리튬, 양극재, 음극재 등 신사업을 진두 지휘함으로써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포스코의 100년 미래성장 토대를 마련했다.그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핵심 철강사업은 매각했으며, 유사한 사업부문은 합병시켜 효율성을 높이고, 낭비를 제거했다. 저수익, 부실사업은 과감히 정리해 부실확대를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이로써 한때 71개까지 늘어났던 포스코 국내 계열사는 38개가 됐고, 해외계열사는 181개에서 124개로 줄었다.2015년 포스코 해외생산법인의 실적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당시 최정우 가치경영센터장은 해외법인의 고부가제품의 생산 판매 확대, 현지 정부 및 철강사와의 협력강화를 통한 사업환경의 구조적 개선, 포스코와 해외법인간 협력체제 강화 등 전사적 활동을 전개해 해외생산법인의 생존력 확보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전교 1등 산골 소년의 야망경남 고성 구만면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최정우 회장은 구만초등학교를 거쳐 회화중학교를 나왔다.당시 구만면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좀 더 큰 면 소재지인 회화면으로 매일 6km씩 걸어서 등교했다.가난한 농가 형편에 배불리 먹어본 기억이 없는 작은 체구의 아이였지만 초등학교 6년 내내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친 적이 없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에도 수석 입학을 할 정도로 다부진 우등생이었다. 고등학교는 부산으로 다녔다. 부모님께서 매달 보내주시는 쌀 한 말로 큰 집에 신세를 지며 수학했고, 동래고등학교를 거쳐 부산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다들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인데다 농사 밖에 모르시던 부모님 밑에서 학업에 매진하기는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가 끝나면 소 풀 먹이러 산으로 들로 다녀야 했고 소가 풀을 뜯는 동안 짬짬이 책을 보거나 밤에 초롱불을 켜두고 공부했다. 힘들게 자라온 어린 시절 기억은 지금까지 남아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단돈 천원이라도 주고 가야 마음이 편했다.# 최정우를 쓰다듬던 손, 포항제철소 착공식 버튼 누르다1970년 3월 경남 고성군 회화면 회화중학교 입학식날 운동장으로 흙먼지를 날리며 헬기 한대가 내려앉았다. 고성의 자랑 김학렬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가 온 것이다. 바로 수석 입학생에게 상장을 주기 위해서였다.얼굴이 까맣고 키 작은 최정우 소년은 당시에는 짐작도 못했지만 포스코와의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김학렬 부총리는 최정우 소년에게 상장을 준 그 손으로 한달 뒤 포항제철소 착공식 버튼을 누른다.김 부총리는 포스코 전신인 포항제철의 산파역을 맡았다. 한일각료회담 참석차 일본으로 가는 김 부총리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포철 자금이 합의 안 되면 돌아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대일 교섭 초창기 일본 관료들이 한국의 신생 제철소를 ‘쓰루제철소’라고 불렀는데, ‘쓰루’란 학(鶴)의 일본말로 김학렬 부총리의 ‘학’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신입사원 최정우, 사진 속 김학렬 부총리와 재회1983년 1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포항제철에 입사한 최정우는 홍보센터에 걸린 커다란 흑백 사진 속 낯익은 인물을 보고 머리를 쿵하고 얻어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자신의 우상이었던 김학렬 부총리가 박정희 대통령, 박태준 사장과 함께 당당하게 포항제철소 착공식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13년전 중학교 입학식때 상장을 받은 인연으로 여름방학이면 군내 우수 학생들과 함께 ‘뉴 화랑’이라는 이름으로 고향집에 초대해 합숙훈련도 시켜준 고마운 분이었다.‘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부산에서 다니면서 잠시 잊었던 자신의 우상을 여기에서 만나다니… 10여년전의 인연이 필연이 돼 자신을 여기로 이끈 것은 아닐까?’신입사원 최정우는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과 알 수 없는 책임감으로 연수원의 첫 밤을 고스란히 지새웠다. #포스코 회장을 꿈꾸던 신입사원1983년 입사할 때만 해도 경기가 좋은 편이라 친구들은 주로 종합상사나 건설회사에 취직을 많이 했다.당시 포항제철은 봉급은 많지 않았지만 복지정책이 좋고 안정된 직장이라는 소문이 났고, 국가 기간산업이라 부모님들도 은근히 권유했다.그의 입사 동기생은 75명이었다. 신입사원 교육 때는 학생장이 다른 동기생이었으나 부서에 배치받은 이후 동기회에서 동기회장을 하겠다고 했다.아무래도 앞장을 서야할 것 같았다. 동기회장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중에 회사 회장이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금까지 동기회장을 맡고 있는데 동기생들은 말이 씨가 됐다며 “회장이 되겠다고 하더니 진짜 회장이 됐다”고 놀라움으로 축하를 대신해 줬다.#사외이사 마음 움직인 2권의 노트지난 4월 18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권오준 회장이 사임한다고 했다.포스코 역사상 한번도 임시주총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충격적이었다.그날 밤은 입사첫날 때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회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불현듯 틈날 때마다 메모해뒀던 노트가 생각났다. 올해 초 포스코켐텍 사장으로 명령이 났을 때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걱정과 위로를 들었다.고마운 일이지만 정작 본인은 겸연쩍었다. 포스코켐텍은 포스코그룹이 차세대 먹거리 사업중 하나인 에너지저장소재를 책임지는 회사인데다 평판도 아주 괜찮은 회사라 그 회사의 대표는 모사 사장만큼이나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이었다.지난 3년 가까이 그룹내 구조조정에 심혈을 기울이다보니 심신이 지친 측면도 있고, 또 참모로서 한 분야를 깊이있게 보는 것보다 작은 규모지만 대표로서 회사 전반을 총괄하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포항에서 등산도 하면서 체력도 보충하고 CEO로서 안목도 넓혀볼 참이었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포스코에 36년을 몸 담으면서 각 분야에 개선했으면 좋은 점, 최근 회사를 둘러싸고 있는 우려에 대한 해결책, 타사에서 배웠으면 하는 점을 매일매일 정리했다. 이대로 계열사에서 직장생활을 마감한다면 포스코켐텍 사장 후임자에게 전해줘도 좋고, 포스코로 다시 돌아가거나, 더 큰 기회가 온다면 업무에 큰 도움이 될 성 싶었다.그러나 갑자기 권오준 회장이 사임을 발표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포스코를 잘 이끌어야 하고 어려울 때 힘을 보태려면 아이디어 노트도 완성도가 높아야 할 것이었다.그때부터 외부 출입을 자제하고 포스코의 시대적 소명과 비전을 좀 더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경영쇄신방안, CEO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조직문화, 사업계획, 대북사업, 사회공헌 등 분야별로도 전략안을 만들었다.포스코켐텍으로 옮긴 지 4달여, 권 회장 사임 발표 후 2달여 지난뒤 최정우의 경영 아이디어 노트는 더 두껍고 촘촘해졌다. CEO후보추천위원회에서 면접대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사외이사들의 마음을 움직인 2권의 노트가 완성된 것이다.#건강한 리더, 건강한 리더십90년대 초반 주말도 없이 일에만 파묻혀 지내다보니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된 적이 있었다. 고지혈증이 찾아와 간경화로 발전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것이다.‘이런 몸 상태로 일이나 계속 할 수 있겠나’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그 길로 매일 아침 북부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뛰었고 지금도 건강관리라면 누구보다 철저하다. 등산, 자전거 등 건강한 취미 생활도 하나 둘 만들었고, 사무실까지 계단을 이용해 오르내리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건강관리를 혼자만 하지 않는다. 임원들이나 그룹장, 팀장들과 주말 등산을 함께한다.올초 포스코켐텍 사장으로 옮겨간 후 “리더가 건강해야 현장 곳곳을 다니며 직원들의 안전을 지킬수 있다”면서 연말까지 계획을 짜놓고, 매월 1회 전 임원 및 그룹장들과 등산을 해왔다.리더가 건강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리더십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쳤기에 직원들의 건강 관리에 발벗고 나서게 된 것이다.#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어디서든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되게. 최정우 회장의 36년 철강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할 수 있다.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되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하면 내가 있는 위치가 진리, 참된 것이라는 뜻이다.최정우 회장이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준점으로 삼아 온 좌우명이자, 신조다.어느 회사든 비슷하지만 과거에는 모기업에서 계열사로 이동할 때는 낙담하고 계열사에 있다가 퇴사할 것으로 생각하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정우 회장은 처음 계열사 포스코건설로 발령이 났을 때에도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생각해서 건설분야 공부에 매진했다.당시 최 회장은 포스코건설의 경영전략실장으로 부임했는데, 모든 임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임원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참석했다. 본인이 마음을 열어야 다른 임원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건설화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것이다. 2년 후 기회가 돼 포스코에 돌아왔고 4년 뒤에 포스코대우로 발령이 났을 때도 같은 마음으로 포스코대우화되기 위해 팀장이상 부장들과 자주 소통했다.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 회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직장인의 자세며, 후배들에게도 그런 리더가 되기를 주문하고 있다./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2018-07-30

神들도 탐한 절세미녀 수로부인 그녀가 곧 꽃이었다

역사와 문학 연구자들로부터 ‘신라의 대표적 시가’로 지목받는 ‘헌화가’와 ‘해가’. 숭실대학교 국문과 이경재 교수가 여기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신라 여성 ‘수로부인’이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김동리(1913~1995)의 소설과 서정주(1915~2000)의 시에서 어떻게 묘사·해석되고 있는지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독자들을 위해 가감 없이 게재한다. /편집자 주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992년간 존속했던 왕조다.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 중 유일하게 1000년을 지속한 신라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그 이야기의 가닥 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여성들의 다양한 활약상이다.신라시대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 명의 여왕(선덕·진덕·진성)이 존재했고, 화랑의 전신(前身)으로 이야기되는 원화(源花)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여러 연구들은 성리학에 찌든 조선시대보다 신라 여성들의 삶이 더욱 활기찼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신라 시대 여성들 중에서도 한국문학에서 자주 호출된 이로는 신라 33대 왕인 성덕왕(재위 702~737) 때 사람인 ‘수로부인’을 들 수 있다.대표적인 신라시대 시가로 꼽히는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의 배경 설화에 등장하는 수로부인은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편’에 등장한다. 남편 순정공(純貞公)이 태수로 임명된 강릉으로 가던 수로부인은 일행과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이때 수로부인은 천 길이나 되는 절벽 위에 활짝 핀 철쭉꽃을 발견했고 “꽃을 꺾어 바칠 사람 그 누구 없소?”라고 외친다. 순정공을 포함한 모든 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암소를 끌고 지나던 한 노인이 꽃을 꺾어서는 노래까지 지어 바친다.그때 노인이 꽃과 함께 지어 바친 노래가 4구체 향가 중 절창으로 꼽히는 ‘헌화가’다.자줏빛 바윗가에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니,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꽃을 꺾어 바치오리다.이틀 후에는 임해정(臨海亭)에서 수로부인이 바다의 용에게 납치당한다. 모두가 어쩔 줄을 모를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사람들이 모여 막대기로 언덕을 치며 노래를 지어 부르면 부인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이 말을 따랐더니 실제로 수로부인이 다시 나타났다. 이때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해가’다. 이후에도 자태가 빼어난 수로부인은 깊은 산이나 큰 연못을 지날 때마다 신(神)적인 존재들에게 납치당하고는 한다.‘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수로부인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동리와 서정주에 의해 작품화된다.김동리는 1977년 출판사 지소림(智炤林)에서 ‘김동리 역사소설(신라편)’을 발간한다. 여기 수록된 16편의 소설은 석탈해, 최치원, 장보고, 눌지 왕자, 왕거인, 강수 선생, 우륵, 김명, 최치원, 김현, 엄장, 기파랑, 미륵랑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중에는 수로부인을 다룬 ‘수로부인’이라는 단편도 있다.이 작품에서 수로부인은 한마디로 ‘신명에 취한 여인’이다. 용모가 빼어나고 가무에 재주가 남다른 수로부인은 열세 살에 나을신궁의 신관(神官)이 된다. 이후 펼쳐지는 수로부인의 사랑, 결혼, 이후의 행적은 모두 신적인 존재인 ‘검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화랑 응신의 피리 소리에 이끌려서 그와 만나게 되는 것도 검님의 뜻에 따른 것이고, 이후 순정공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도 초월적인 힘에 이끌린 결과이다. 남성들과의 관계도 육체성은 배제된 정신적인 것으로 그려진다.응신과 수로부인이 만날 때도, 응신은 피리를 불고 수로부인은 그에 맞추어 가무(歌舞)를 할 뿐이다. 수로부인은 결혼 이후에도 제단을 만들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검님을 배례하며, 제단에 올렸던 음식만 먹는다.“항상 신명에 취해 지내는” 수로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검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수로부인에게 절벽의 꽃을 꺾어다 바친 노인도, 나라에서 제일가는 도사인 이효 거사가 후일의 대업을 위해 보낸 것으로 그려진다.작품의 마지막은 나라에 큰 가뭄이 들자, 이효 거사가 주관하는 기우제에서 월명 거사가 된 화랑 응신이 피리를 불고 수로부인이 춤을 춤으로써 비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 모든 일도 결국은 신명의 뜻과 응감에 따른 것으로 그려진다.이 작품에서 수로부인은 검님이라는 자연의 질서와 하나가 된 성스러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김동리의 친구이자 문협정통파(文協正統派)로서 순수문학의 깃발을 함께 들었던 미당 서정주 역시 ‘노인헌화가(老人獻花歌)’라는 시를 통해 수로부인을 형상화하였다.이 시는 1961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된 ‘신라초(新羅抄)’라는 서정주의 네 번째 시집에 수록돼 있다. 제목에도 선명하게 드러나듯이, 이 시집은 신라시대의 인물과 각종 설화 등을 주요한 제재로 다루고 있다.불교 정신을 중심으로 한 신라에 대한 관심은 다음 시집인 ‘동천(冬天)’까지 지속된다. 신라에 대한 탐구는 미당 시의 중심 줄기를 형성하는 한국의 전통과 영원주의 탐구에 그 맥락이 닿아 있다.‘노인헌화가’는 제목처럼 암소를 끌고 절벽 위의 꽃을 따다 수로부인에게 바친 노인을 화자(話者)로 내세운다. 이 시는 서정주 특유의 능청과 넉살로 노인을 둘러싼 온갖 형이상학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걷어내고 있다. 노인이 꽃을 바친 행위는 심플하게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젊은 여인네한테 건네인 수작이다”라고 간명하게 정리된다. 노인은 신적인 존재도 무격(巫覡)도 아닌 사랑의 달콤함에 어깨가 들썩이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자기의 흰 수염도 나이도 다아 잊어” 버리고, “남의 아내인 것도 무엇도 다아 잊어” 버리고, 심지어는 벼랑의 그 높이도 “다아 잊어” 버리고, “꽃이 꽃을 보고 웃듯이 하는 그런 마음씨”로 꽃을 따다 바친 것이다.이 시에서 ‘헌화가’는 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남의 집 할아비가 지나다가 귀동냥하고 도맡아서 건네는” 작업 멘트가 된다.이러한 노인의 성격에 걸맞게 수로부인도 인간의 정감에 충실한 모습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서는 “아이그마니나 꽃도 좋아라/그것 나 조끔만 가져 봤으면”이라고 지극히 인간적인 목소리를 낸다.흥미로운 것은 이 말이 “꽃에게론 듯 사람에게론 듯 또 공중에게론 듯” 발화된다는 것이다. 수로부인은 자신의 남편과 동행자에게만 꽃을 따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대상(공중)을 향해서도 꽃을 따 달라고 하는 것이다.꽃이 가진 중의성까지 덧보태져 이 작품의 수로부인 역시 암소를 끄는 노인만큼이나 인간적 욕망에 충실한 상태임이 드러난다.‘노인헌화가’는 노인과 수로부인을 둘러싼 공기(空氣)가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적시면서/그들의 말씀과 수작들을 적시면서/한없이 親한 것이 되어가는 것을/알고 또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로 끝난다. 어느새 수로부인과 노인은 같은 공기에 적셔진 친한 사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수로부인 이야기가 수록된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시절 보각국사 일연(一然·1206∼1289)이 지은 책이다. 이 저서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역사서이자 신화집이며 동시에 빼어난 문학작품집이기도 하다.그렇기에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해석의 폭이 넓고도 깊다. 수로부인 이야기도 마찬가지여서, 이 작품의 수로부인은 水路라는 이름처럼 물로 대표되는 자연과 소통하는 신화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바다로, 산으로, 못으로 수시로 불려 다니는 그녀는 사실 자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한국 현대문학사의 거장인 김동리와 서정주는 바로 수로부인이 지닌 이 자연과의 일체성에 공통적으로 주목하고 있으나 그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김동리에게 천지자연은 하나의 유기체이며, 그 유기체의 원리 속에서만 인간은 온전한 존재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수로부인’에서 그 유기체의 원리를 인격화한 것이 검님이고, 수로부인은 그 검님의 신명과 감응에 따름으로써 ‘생의 구경(究竟)적 형식’을 완성하게 된다.서정주가 파악하는 자연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에의 끌림에 충실한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이 자연에 비하자면 나이니 지위니 하는 것은 성가신 인공의 장식품에 불과하다.수로부인은 과감하게 그 장식품을 떼어낼 줄 아는 여인이고, 그렇기에 결국 “맑은 공기” 속에서 암소를 끄는 노인과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다.김동리와 서정주가 형상화한 신라 여인 수로부인의 모습에는 한국의 고유한 정신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숨 쉬고 있다.문학평론가 이경재‘매혹적인 신라 여인’ 수로부인. 서정주와 김동리는 자신들의 문학에서 이 여성을 어떻게 그려냈을까?이 궁금증에 답하는 원고를 본지에 보내온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한설야 소설의 서사시학 연구’.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돼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고, 문예지 ‘문학수첩’의 편집위원을 지냈다.비평집 ‘단독성의 박물관’과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를 등을 썼으며 ‘한설야와 이데올로기의 서사학’ ‘한국 현대소설의 환상과 욕망’ 등의 연구서를 펴내 주목받았다.지난해 출간한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는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공간의 이해를 통해 문학의 주제에 접근한 독특한 저작”이라는 호평을 얻어내기도 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7-27

韓~러 연결 통로서 환동해 물류·관광활성화 견인 기대

갈 수 없는 지역을 곧바로 이어주는 매개체, 바로 다리(교량·橋梁)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수많은 다리와 마주한다.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부터 산과 산,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는 다리까지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많은 다리를 오가며 살아갈 것이다. 다리는 의식주에서부터 물적·인적 교류를 통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분야의 연결통로가 돼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이렇듯 다리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골든게이트교는 차고 거센 조류와 안개가 많은 날씨, 그리고 수면 아래 지형이 복잡해 건설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4년 만에 완공돼 미국 토목학회에서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베이교 역시 마찬가지로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거친 물살, 강풍, 토양조건, 물의 깊이, 기술적 문제 등으로 인해 건설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됐지만 예르바부에나섬을 중심으로 베이 브릿지를 건설하면서 많은 건축자재와 인건비를 최소화해 결국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대형 교량들은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건설돼 각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그렇다면 경북은 어떨까. 경북 동해안의 교통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포항을 보면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일부 구간으로 영일만 대교 사업이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사업 제안 이후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현재는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 그러나 위기가 지나면 기회가 다시 찾아오듯, 북방외교의 활성화로 영일만 대교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 필요성과 기대효과에 대해 알아본다.포항시, 주요 관광명소 접근성 높이고 울산간 국도대체우회도로 이용 줄여 물류비 절감 기대경북도, 부산~유럽 아시안하이웨이 연결 도로망 구축된다면 북방교류 협력 선점 효과 커중앙정부, 영일만항 거점으로 북방외교 성공 이끌 교두보 기대·U자형 국토균형발전 역할도□ 영일만 대교 추진될까포항시가 영일만항 물류수송 및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영일만대교 건설 사업이 경제성과 환경문제 등으로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던 가운데 ‘판문점선언’ 등 남북경제협력의 확대 분위기로 인해 그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영일만대교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과 북구 신항만을 연결하는 전체 길이 9.1㎞의 구간으로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일부 구간이다. 영일만대교가 건설되면 네트워크형의 교통순환체계가 이뤄지면서 블루밸리를 비롯한 국가산업단지와 영일만항, 철강산업단지와의 접근성이 한층 좋아지게 된다. 당연히 물류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물류수송 수단인 철도와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요건이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남북경제협력을 위해서는 영일만대교의 건설 추진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문제는 예산이다. 영일만대교 건설은 수조원이 투자되는 사업으로 수익성과 예산확보 등의 문제로 최근까지 실질적인 사업진척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포항시는 영일만대교 건설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남북관계 호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업 진척에 파란불이 켜졌다는 평가이다.관련해서 포항시는 영일만대교 건설을 비롯해 국제여객부두 조성과 포항 수출물류(가공)단지 조성, 자유무역 지역 조성, 콜드체인(Cold Chain·저온유통체계, 즉 냉동 ·냉장에 의한 신선한 식료품의 유통방식) 구축, 북방항로 및 북극항로 개척 등 관련 사업에 대한 연계 추진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이 명실상부한 환동해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사업으로 미래 경북의 100년을 위한 사업이기도 한만큼 민·관이 체계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협력해 나가겠다”면서 “영일만대교 건설을 통해 영일만항 활성화를 비롯해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일만 대교 사업의 역사총 사업비 1조7천700억원의 대형 국책사업인 영일만대교는 지난 1992년 초 포스코에서 발표한 ‘영일만 광역권 개발 기본구상’에서 출발했다. 서울대학교에 용역 의뢰해 만들어진 이 기본구상에는 영일만 해상도시(인공섬)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다. 영일만에 인공섬을 조성해 국제공항과 항만시설, 주거지역, 위락시설 등을 입주시키고 이 인공섬과 육지 양쪽을 교량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이 제안됐다. 영일만대교는 이처럼 포항의 새로운 희망으로 힘차게 출발했지만, 이후 정치권의 변화에 따라 정부의 정책이나 평가주체, 평가시점이나 방법 등에 따라 다른 추진 해법이 나왔다. 특히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국토균형발전론을 내세운 정치권의 영향으로 서해대교를 비롯해 호남지역의 대부분의 섬들은 교량으로 연결됐지만, 영일만대교에는 경제성 분석의 잣대가 적용돼 매번 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그러던 중 영일만대교는 2011년 말 국토해양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당초 서쪽 육지로 계획된 포항~영덕구간 일부가 영일만을 횡단하는 동쪽으로 변경되는 안이 확정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에 포항시 역시 민자유치를 통해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고, 2015년에는 국회 본회의를 통해 ‘기본계획수립용역비’ 20억원이 반영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와 국토부 타당성조사까지 마쳤음에도 지난 2017년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가 진행되는 등의 시련을 겪었고, 이번 정부 들어서는 아예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으며 현재 사업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 영일만 대교의 필요성그렇다면 경북도와 포항시는 왜 경제성이 떨어지는 영일만대교의 건설을 고집하는 것일까? ‘해양경북의 랜드마크’가 될 영일만대교가 완성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우선 포항시의 입장에서는 영일만대교가 완성되면 호미곶을 비롯한 주요 관광명소의 접근성이 높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가장 철(鐵)을 많이 생산하는 포항과 국내에서 가장 철(鐵)을 많이 소비하는 울산간의 물류가 국도대체우회도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돼 물류비가 크게 절감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포항∼울산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국도대체우회도로와 국도 7호선의 교통량이 증가해 심각한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영일만대교가 완공되면 이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영일만대교 건설과 영일만항 활성화를 시작으로 영일만관광특구 지정으로 이어지는 물류산업과 해양관광산업의 육성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먹거리를 발굴한다는 측면도 중요하다.경북도의 입장에서도 영일만대교는 북방교류협력을 선점하는 차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포항에서 영덕, 울진, 삼척으로 이어지는 동해안고속도로를 부산에서 시작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아시안하이웨이와 연결한다면 북방진출의 대동맥을 경북에서 시작하게 된다. 여기에 동해안 유일의 국제 컨테이너항만인 영일만항을 북방진출의 거점항만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데 영일만대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환동해경제권의 물류·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 영일만대교의 건설은 미룰 이유가 없는 사안이라는 분석이다. 부산에서 시작해서 울산과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나선특급시 등을 거쳐 러시아의 하산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구축될 경우, 영일만대교는 환동해권의 도시연대를 통한 물류·관광 활성화에도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이다.또한 영일만대교는 L자형 국토개발 형태에서 U자형 국토균형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영일만항은 우리나라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현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북방외교를 성공시킬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곳 역시 영일만항이다. 영일만대교는 북방물류거점항만으로 건설된 그 영일만항의 남쪽 통로 역할을 하게 된다. 영일만항과 포항철강산업단지, 울산공업단지, 부산항을 연결하는 중요한 물류수송 기능을 하게 된다. 이제는 정치논리나 지역 차별성에서 벗어나 영일만대교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고 냉정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바란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18-07-26

경북 최초 ‘같이 모여 함께 일하는 창업공간’ 준비된 청년 CEO 육성

청년인구 유출과 실업난의 해결방법으로 기존 산업 체계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업종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요구되고 있다. 그 중심에 ‘청년창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들은 이를 위해 각자 청년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혁재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 본부장은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자에게 최고의 접근성과 최대의 인프라 제공을 통한 창업 허브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본지는 안동시가 추진 중인 청년창업지원 사업과 성공·우수사례를 소개하고 앞으로의 청년 일자리 사업과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 향후 추진방향 등을 조명해 본다.경북도, 청년일자리 정책 추진창업투자생태계 조성에 88억지역정착지원형에 59억 투입청년 취·창업 다양한 기회 제공청년창업가 ‘코워킹 공간’ 제공전문적 교육·마케팅·판매까지기술·지식·6차 산업 창업 지원최고 접근성·최대 인프라 제공◇ 청년층 지방 유도·산업인력 창출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15∼29세)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10.5%를 기록했다.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청년층 고용보조지표는 23.2%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이처럼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청년 실업률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안동시와 경북도가 추진 중인 ‘청년 일자리 정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행안부는 지난 5월 일자리추경에서 확보된 831억원(국비 기준)을 활용해 전국 1만480명의 청년에게 취·창업 기회를 제공하고, 70곳의 창업 공간을 조성해 청년 친화적 취·창업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이에 따라 경북도는 지역정착지원형에 59억원(국비 26억원)을 투자해 중소기업 및 사회적 경제기업 등에 390개의 청년일자리를 제공하고 도내정착을 도울 계획이다.특히 창업투자생태계조성형에 88억원(국비 27억)을 투입, 경북에 창업하는 도시청년 100명에게 1인당 연간 최고 3천만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창업 공간 4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앞서 안동시와 경북도는 ‘경북도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를 안동에 설치하고 본격적인 청년층의 지방 유도를 위한 신성장 산업 및 일자리 창출에 나섰다. ◇청년창업지원센터가 하는 일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는 낙후된 경북 북부지역의 특화분야 청년 창업자를 발굴·육성해 청년 취·창업 활성화 및 우수 청년 창업자와 기업 배출을 목적으로 지난 5월 16일 안동시 옥정동에 위치한 안동도시재생센터 3층에 문을 열었다.지난해 6월 착공해 이날 개소한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효율적인 창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하고 ‘같이 모여 일한다’는 의미를 가진 경북 최초의 청년 창업가를 위한 코워킹(Co-working)공간이다.올해 도시재생센터 3층 359.84㎡, 내년엔 4층 269.4㎡ 공간에 4억7천여만 원을 들여 청년창업지원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곳엔 북 카페, 라운지, 공연장 등 청년문화 친화공간으로 활용된다.이 센터는 2021년까지 34억2천여만 원을 들여 안동·영주·문경시와 예천·의성·봉화·영양·청송군 등 8개 시·군의 청년 예비창업가를 대상으로 도내 협력기관들과 유기적 협업을 통해 장기적인 창업 보육 모델을 구축한다.이어 초기 창업 과정을 지원받은 심화 창업자를 위한 실무 중심의 효율적인 사업을 지원한다.특히 경북 북부권역 산업과 연계한 지역 강점인 6차 산업, 문화자원 등 사업 아이템을 가진 예비창업자를 중점 지원하고 있다.예비 창업가들에게는 실전형 창업교육과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와 실행, 전문가 자문, 시제품 제작 등 창업 전 과정을 지원한다.교육 수료 이후에도 안정적인 경영정착을 위해 경북도와 협업을 통해 판로개척, 마케팅 디자인 제작지원 등 사후 관리도 한다.이곳에선 청년 창업가들에게 창업 활동비를 지원하고, 8개의 다양한 창업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청년CEO들의 창업 및 취업 활동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코워킹 공간(Co-Working Space)·청년창업 지원청년 창업가에게 창업공간을 제공하는 ‘코워킹 공간’ 지원은 청년창업 지원센터 입주자 대다수가 외부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1인 창업기업으로, 고정적인 공간 필요한 기업을 제외 나머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창업활동비의 뚜렷한 목적성을 위해 업무추진비 및 여비, 소모품, 기타 경비 목적으로만 사용하되, 높은 금액이 소요되는 특정 목적의 사업화 지원은 창업 분야별 요구에 따라 선택형으로 지원한다.학생 직업 역량 및 청년 일자리 부족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청년 강소기업 창업 인턴제’는 6천970여만 원을 투입해 청년 기업에는 맞춤형 특화 인재와 인건비 약 70%를 지원한다.청년 인턴에게는 인턴 필수교육 지원과 인센티브 지급한다.청년 강소기업에게 지원하는 인건비의 경우 월 1인 100만원 한도로 고용 계약서 기준 월 봉급액의 52.7%, 국가근로장학금 21%를 지원한다.지원기간은 선정일로부터 6개월간이다. 인턴에게는 사업 종료 후 1개월 이내, 1인 100만원 한도로 지급한다. 이 밖에 기업에는 청년 친화적 기업 인증을, 인턴에게는 경력증명서를 각각 발급한다.청년CEO 지원에 따른 규모 있는 사업화 지원금을 지급하는 ‘청년 Biz-up 프로그램’은 단일 제품을 판매하는 청년기업의 특징을 감안해 기술집약적 제품을 개발하고, 고부가가치를 융합한 새로운 표준의 제품 혁신이 목표다.이에 9천200여만 원을 투입, 청년CEO 20명을 선발해 이들에게 500만∼3천만 원까지 지원한다. 특히 지역특화, 기술 집약·혁신, 지역문화 덧대기 지원 등을 통해 지역특화 청년CEO양성, 기술 혁신 제품 창출, 고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농식품 창업·6차 산업-경북 문화 브랜딩 지원농식품 분야 청년 창업가를 위한 지원사업인 ‘농식품 창업 성공 DNA 과정’은 농식품 창업의 까다로운 제조공정을 전문 기관의 특화지원과 체계적인 전문가 양성 교육을 통해 조기 사업화와 제품의 시장 상용화를 돕는다.전문 기관으로 참여하는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은 시험 생산과 실험분석 지원, 제품검사, 인증 지원을 담당한다.경북바이오벤처프라자는 제품 공정과 품질 장비, 제품성분, 품질관리 등을 지원한다.교육과정을 마친 청년기업 중 직접 생산을 희망하는 기업 중 생산 공장을 설립하기 어려운 기업에는 경북바이오벤처프라자의 아파트형 공장 입주도 지원한다.6차 산업은 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바탕으로 농업과 식품, 특산품 제조가공(2차 산업) 및 유통 판매, 문화·관광·체험·서비스(3차 산업) 등을 연계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런 농업의 6차 산업에 경북의 문화콘텐츠를 접목한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6차 산업-경북 문화 브랜딩 지원’은 콘텐츠와 제품 간의 관련성이 인증될 때 해당 콘텐츠를 제품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또 이 제품의 콘텐츠를 다각화해 6차 산업의 새로운 브랜드 마케팅 수단으로 지원한다.세무 및 회계 신고기간에 맞춰 단기특강을 지원하는 청년기업 실무 교육 및 멘토링 지원사업은 청년CEO 기업의 애로사항 및 시장 개척을 위한 교육을 진행한다.청년기업의 지속적인 사업 영위와 기업 규모 증대에 따른 세무·회계·법률 중심의 교육 및 멘토링 커리큘럼 구축한다. 또 판로 개척을 위한 우수 청년 기업의 직·간접적인 수출 교육 및 상담회를 시행한다. ◇청년기업 우수제품 세일즈·투자 오아시스 발굴‘청년 기업 우수제품 세일즈 프로모션’은 판매 스피치 프로그램 운영, 청년 창업가 플리마켓과 판매전 등을 개최하는 제품 판매 활동이 취약한 청년 기업을 지원한다.이론에서 벗어나 실제 실현 마케팅 중심의 지원 프로그램을 구축해 청년기업의 우수 제품이 시장에 상용화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지원 체계는 1단계 청년기업 세일즈 시피치, 2단계 센터 및 학내 청년기업 플리마켓 운영, 3단계 도내 청년기업 팝업 스토어 설치, 4단계 유통·판매전 참가, 5단계 오프라인 스토어 개점, 끝으로 해외 수출까지 총 6단계로 나눠 지원한다.투자를 원하는 기관 또는 개인과 투자를 받고 싶어 하는 청년기업의 수요는 많으나 기업 검토와 투자 협상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단계 아래서 많은 투자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이에 센터는 투자자와 청년기업간의 정기적인 만남(데모데이)의 장을 마련한다. 아울러 투자 유치의 중요성을 청년 기업에 인식시키기 위해 후원성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과 굿 펀딩, 인큐젝터 등과 연계해 청년 기업의 투자 유치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준비된 창업가 발굴해 청년CEO 육성경북 도내 청년창업지원센터는 각 시·군, 지역 대학교 창업보육센터와 기관들이 협력해 청년CEO 육성사업을 펼친 결과, 1천774팀이 창업에 성공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더욱 주목할 점은 창업유형이 소위 치킨점으로 대표되는 생계형 창업에서 벗어나 기술·지식·6차 산업 창업 등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이는 창업의 양적 성장보다 정착지원에 중점을 두고 좋은 창업, 준비된 창업가 발굴에 초점을 맞춰 추진한 정책이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특히 지난해 안동시와 위탁 기관인 안동대학교는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해 20명의 청년CEO를 양성했다.이들은 18억원의 매출과 34명의 고용 창출 성과를 거뒀다.이들 가운데 곤충 ‘페로몬’을 활용한 친환경 해충방제 기업인 (주)에이디(대표 권기봉)는 지난해 기업 및 제품 인증 5건 획득에 특허 출원 등록까지 마치면서 우수사례로 꼽히고 있다. 권기봉 대표는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로부터 창업초기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창업공간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재정적인 면에서도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손병현기자why@kbmaeil.com

2018-07-25

추문·비난에 얼룩진 신라 마지막 여왕 진성, 그 빛과 그림자

지금으로부터 1천130년 전인 아득한 옛날 서라벌. 신라의 궁궐에서 시작된 소문이 저잣거리를 술렁이게 했다. 이런 내용이었다.“여왕이 자기 아버지의 동생인 숙부 위홍(魏弘)과 추문을 일으키더니, 그가 죽고 나서도 음심(淫心)을 참지 못하고 젊고 잘생긴 사내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밤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 나라 미래가 어찌될 것인지….”이뿐 아니었다. 세간을 휩쓰는 풍문 중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도 있었다.“여자가 왕에 오르고 나서 해괴한 일이 자꾸 일어난다. 사철 솟구치던 우물이 마르고, 하늘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를 내려주지 않고 있다. 각처에서 도적이 들끓고, 조정(朝廷)의 충신은 씨가 말라 간신만이 활개치고 있다.”이처럼 맹렬한 공격과 원망의 대상이 된 사람은 신라, 아니 한국 봉건시대의 마지막 여왕인 진성(재위 887~897)이었다.“음란한 것은 물론, 정치 감각도 없었다”는 꼬리표는 진성여왕을 따라다니는 어두운 그림자다. 그런데 그건 공론(空論)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진실일까?가뭄·홍수로 고통받는 백성 위해즉위 즉시 조세면제 정책 펼치고어려운 백성 직접 돌보기도이미 국가통제력 상실된 신라말기진성의 정치력으로는 통제불가◆ 아버지와 오빠 둘에 이어 왕좌에 오르다먼저 그녀가 어떤 경로를 통해 여왕의 자리에 오른 것인지 살펴보자.진성여왕의 아버지인 경문왕은 ‘왕의 직계 혈통’이 아니었다.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장인 헌안왕의 유언 때문. ‘삼국사기’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헌안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과인은 불행히도 아들이 없고 딸만 있다. 옛날 선덕과 진덕 두 여자 임금이 있었으나, 이는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과 유사하므로 본받을 일이 될 수 없다. 나의 사위 응렴(膺廉·경문왕)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성숙한 덕을 갖추었으니, 경들은 그를 왕으로 세워 섬기라. 그러면 훌륭한 왕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왕이 될 수 있는 사람’에서 여성을 배제한 헌안왕과 달리 경문왕의 아들이었던 정강왕은 요즘 말로 하면 ‘페미니스트(Feminist)’의 면모를 보인다.역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나의 병이 위중하니 이제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내겐 왕위를 이을 자식이 없다. 누이 만(曼·진성여왕)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그 뼈대가 남자를 능가하니, 그대들은 선덕과 진덕의 옛 일을 본받아 그녀를 왕위에 옹립해 성심으로 받들라.” 진성여왕 직전에 신라 왕의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은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문왕은 진성의 부친이고, 헌강왕과 정강왕은 오라버니였다. 진성여왕은 겨우 1년 남짓 통치권을 행사하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오빠’ 정강왕의 의지 덕택에 왕좌에 앉을 수 있었다.사학자 이기봉은 그의 논문 ‘신라 진성여왕대의 재이(災異·괴이한 일과 재앙)와 농민 반란’에서 이와 관련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진성여왕은 경문왕가(王家) 성립 이후의 왕권 강화정책과 왕실의 신성화 노력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이에 더해 이기봉은 진성여왕 시기의 신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도 요약해 알려준다. 아래와 같은 진술이다.“진성여왕은 즉위 이후 곧바로 조세 면제 조치를 취했다. 계속된 서라벌 일대의 가뭄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이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엔 이미 신라의 국가통제력이 상실되는 상황이었고, 이듬해 조세를 독촉하자 농민들의 반란까지 일어났다.”실제로 그랬다. ‘통일신라’의 번영을 몇 대에 걸쳐 제대로 누렸던 서라벌은 9세기를 넘어서며 위기를 맞고 있었다.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은 민생을 곤궁에 빠뜨렸고, 귀족들의 욕심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 당연한 수순처럼 신라 각지에서 민란(民亂)이 발생했다. 진성여왕 한 사람의 잘못 탓만이 아니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발행한 조경철의 논문 ‘신라의 여왕과 여성성불론’엔 이와 관련된 서술이 등장한다.“진성여왕은 국내외적 상황이 어려움에도 나름대로 정치를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했다. 진성여왕 시기에 조세와 공물이 제대로 걷히지 않고 도적이 들고 일어났지만, 신라의 상황은 진성여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이미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진성여왕대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욱 어렵게 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왕이 다스렸다 해도 몰락으로 기울고 있는 신라를 어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진성여왕이 보여준 ‘긍정적인 면’도 살펴야조경철의 지적처럼 9세 말 신라에 닥쳐온 위기상황이 진성여왕의 실정(失政) 하나만으로 야기된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음탕함’과 ‘정치 감각의 부재’라는 진성여왕의 ‘그림자’에만 주목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녀에게도 ‘환하게 빛나는’ 일화 역시 없지 않다. ‘삼국사기’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진성여왕 시절 서라벌에 살던 처녀 지은(知恩)은 서른이 넘도록 혼인을 하지 않고, 장님인 어머니를 모시는 일에만 온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여자 혼자의 몸으로 모친을 제대로 공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지은은 부잣집에 자신을 여종으로 사달라고 읍소한다. 지은의 어머니는 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 소식을 들은 진성여왕은 집을 마련해 모녀를 편히 살게 해주고, 군사를 보내 둘을 지켜주기까지 했다.”이 에피소드는 진성여왕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에 더해 진성여왕은 권력의 무상함을 일찍 깨닫고 자신의 조카인 요(嶢·효공왕)에게 왕위를 기꺼이 물려주기도 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겨우 20대 후반이었다. 욕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간행한 ‘신라에서 고려로’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실렸다. 이는 진성여왕의 ‘그림자’만이 아닌 ‘빛’도 함께 살피자는 이야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진성여왕에 대한 비난은 대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남성우월주의의 편향된 시각에 기인한 바가 많다. 국가 멸망의 원인을 지배층의 무능과 실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보편적인 경향이라 하겠지만, 그것을 여자가 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거기에 음란과 방탕이라는 올가미까지 씌워 비난하는 것은 가혹하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적절하지 못한 비판이나 오명을 덮어쓴다는 것은 마땅치 않다. 신라 쇠퇴의 원인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엄정한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7-20

울진 바다·숲·온천… 三色 매력에 심장이 쿵

일상을 훌훌 벗어 던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은 열정의 계절, 여름이다.작열하는 태양, 코발트 빛으로 유혹하는 바다, 눈부시도록 환한 은빛으로 펼쳐진 모래밭, 싱그런 녹음으로 뒤덮인 계곡이 그리운 여름이다. 동해안에 자리잡은 ‘생태문화관광도시’, 국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삼욕(三浴;해수욕·산림욕·온천욕)의 고장 울진에서 올 여름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올해로 8회째 맞는 ‘2018 울진 워터피아 페스타’가 바로 그 것. 울진 워터피아 페스타는 ‘생태문화관광도시’ 울진의 대표적인 여름 축제로 여름 휴가가 절정에 이르는 오는 28일부터 8월 5일까지 9일간 울진 염전해변과 왕피천, 엑스포공원, 망양정해수욕장, 금강소나무숲 일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이번 울진 워터피아 페스타의 슬로건은 ‘바다·숲·온천 울진에 푸욱 빠지다’다. 낮에는 시리도록 투명한 바다와 모래밭, 맑고 깊은 왕피천에서 물놀이 체험프로그램과 모래조각 체험, 은어반두잡이·후릿그물체험, 놀싸움, 뗏마타기, 윈드스핑, 카누·카약, 워터바이크, 워터 제트 등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중심 체험프로그램이 숨가쁘게 진행된다.해변의 밤은 노래와 춤과 마임, 매직과 모래밭 토크쇼가 어우러진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 연출된다. 축제가 진행되는 9일 동안 염전해변과 왕피천, 망양정해수욕장은 힐링과 열정의 공간으로 변한다. 28일부터 8월5일까지 9일간염전해변·왕피천·엑스포공원·망양정해수욕장 등곳곳에서 다양한 축제장 펼쳐져낮에는 물놀이와 체험 프로그램밤에는 공연·마술·토크쇼 등지루할 틈없는 한여름의 울진 ‘유혹’◇모래밭에서 펼쳐지는 한국청소년댄스경연대회축제를 주관하는 울진군축제발전위원회(위원장 남효선)는 이번 축제에 청소년들의 위한 킬러콘텐츠 하나를 더 마련했다.올해 첫 선을 보이는 ‘한국 청소년 댄스 경연대회’가 그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의 청소년 댄스동아리 50여개 팀이 출전해 기량을 겨룬다.축제 오프닝 퍼포먼스를 겸해 펼쳐지는 경연대회는 참가팀이 ‘울진대게춤과 대게송’을 주제로 한바탕 신명나는 플래시몹을 펼친다. 모래밭에 펼쳐지는 경연 자체가 열정의 무대다.축제발전위원회는 이번 청소년 댄스경연대회를 마련한 배경으로 젊은 층 참여를 통한 워터피아페스타 이미지 확장과 축제 변별력 강화를 내세웠다. 참가자격은 청소년(13~19세) 4인 이상으로 구성된 팀이면 가능하다. 참가 분야는 B-Boy, 팝핀, 힙합, 방송댄스, 창작댄스 등 댄스 전 장르이다. 상금도 푸짐하다. 참가신청은 울진군청 홈페이지의 워터피아페스타 홈페이지나 울진군축제발전위원회(054-789-5485~6)로 하면 된다. ◇모래밭과 왕피천이 선사하는 놀이의 세계축제장인 염전해변과 왕피천은 모래조각 체험장과 가족 단위로 함께 즐길 수 있는 물놀이와 은어잡기·구이체험장 그리고 수상레저 체험장으로 운영된다.모래조각 체험장은 지난해와 달리 그 규모와 체험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모래작가와의 만남은 물론 유아들이 맘놓고 놀이판에 빠져들 수 있도록 체험장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물놀이 체험장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물놀이 기구를 구비해 그야말로 물놀이 천국으로 운영한다. 또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워터장애물 놀이장의 규모도 대폭 늘여 운영한다.수상레저 체험장으로 운영되는 왕피천은 교육을 겸한 윈드스핀 체험프로그램과 카누, 카약, 수상바이크 등 다양한 수상기구를 즐길 수 있도록 진행한다. 또 하늘로 치솟는 워터제트의 체험은 짜릿한 스릴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선사한다.특히 지난해 처음 선 보인 ‘놀싸움’과 ‘뗏마체험’은 울진지방 전통 문화의 진수를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안겨준다.이와 함께 왕피천과 염전 앞 바다에서 진행되는 ‘후릿그물던지기 체험’은 울진지방 전통어로 기술을 직접 익히는 프로그램으로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여기에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과 울진 남대천 은어다리를 잇는 해파랑길 걷기 체험프로그램과 세계적 명품 ‘울진금강소나무숲 생태탐방’은 버스킹과 함께 최고의 힐링을 선사한다.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가하는 ‘수중배구’, ‘수중풋살’, ‘수중줄다리기’는 경기 방식으로 진행해 긴장감과 묘미를 더한다. ◇망양정해수욕장, 여름밤이 펼치는 품격 높은 공연축제 이튿날인 29일 망양정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청소년 댄스 경연대회’와 플래시몹으로 막을 여는 야간 프로그램은 ‘관과 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콜라보레이션인 ‘망양정 블루스’, ‘모래밭 섬머파티’, ‘하이퍼마스크댄스’와 유명 연예인과 지역 연예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 공연, 마임과 매직 등 다양한 장르로 전개된다.특히 문학, 사진, 미술 등의 주제로 모래밭에서 진행되는 ‘모래밭 토크쇼’는 뜨거운 여름밤을 훈훈한 감성으로 식혀주는 격조 높은 축제의 진수를 보여준다. ◇‘축제 밴드제’ 지역 경제 살리는 ‘일석이조’축제장인 염전해변과 왕피천을 무대로 운영되는 모든 체험 프로그램을 비롯 축제 체험프로그램은 모두 ‘축제밴드제’로 운영된다.축제장에 마련된 ‘축제밴드(1개당 1만원)’ 판매소에서 반드시 밴드를 구입, 착용해야만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축제밴드를 착용하면 축제장 전역에 마련된 모든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밴드는 재활용된다. 축제장에 마련된 다양한 먹거리 부스나 울진지역 농수임특산물 부스에서 재활용(밴드 1개당 5천원)하면 된다.축제장에 마련된 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축제참가밴드를 1만원에 구입하고 체험을 모두 즐긴 뒤 축제장에 마련된 먹거리 부스나 농수임특산물 부스에서 1개당 5천원으로 재활용 되는 방식이다.축제도 즐기고 울진지역 특산물도 구입해 축제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선순환적 프로그램인 셈이다.남효선 축제위원장은 “올 워터피아 페스타는 종전과는 달리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고 특히 울진군민이 직접 축제판을 짜고 운영하는 주민참여형 축제와 울진이 보유하고 있는 자연을 고스란히 담아 격조 높은 힐링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며 “물놀이 중심의 ‘낮’ 프로그램과 ‘가족 중심의 따뜻한 감성과 공연’을 담은 ‘밤’ 프로그램으로 특화해 울진을 찾는 피서·관광객들에게 또다른 볼거리, 즐길거리를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울진/주헌석기자 hsjoo@kbmaeil.com

2018-07-16

7척의 키에 풍만하고 아름다운 모습용인술·외교력까지 갖춘 진덕여왕

서기 649년. 백제는 은상(殷相)을 선봉장으로 하는 7천여 명의 군대를 신라로 보내 7개의 성을 동시에 공격한다. 태풍 앞에 세운 촛불 같아진 나라의 운명. 왕은 궁궐로 대장군 김유신(595~673)을 불러들인다. 목숨을 건 수많은 전투에서 잔뼈가 굵은 김유신은 신라의 군권(軍權)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인물인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그러나 명령을 내리는 왕의 카리스마는 김유신을 압도했다.“병사를 내어줄 것이니 속히 전장으로 달려가 위기에 빠진 이 땅과 백성을 구하라. 패배는 용납하지 않겠노라.”휘하의 장수 수천 명을 도열시킨 김유신이 답한다.“명을 받들어 기필코 승전(勝戰)의 소식을 주군께 전하겠나이다.”다소의 상상력이 더해진 이 장면에 등장하는 왕은 누굴까? ‘천하의 김유신’을 쥐락펴락한 이는 예상 외로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이자 신라의 28대 왕인 진덕(재위 647∼654).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과 월명부인(月明夫人)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진덕여왕은 그 풍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엔 이런 기록이 남아있다.“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던 진덕여왕은 키가 7척(尺)에 이르렀다. 또한 늘어뜨리면 팔이 무릎 아래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경주대학교 이강식 교수는 성신여자대학교 경영연구소가 발행한 논문 ‘신라 세 여왕의 삶과 경영’에서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진덕여왕의 이름은 승만(勝曼)인데 이는 ‘특별히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7척을 신라 때의 당척(唐尺)으로 계산하면 207.9cm가 되니 당시로나 지금으로나 사실 거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대한 자태도 등극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는 큰아버지인 진평왕이 신체가 장대한 것에서 유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전쟁에는 김유신 앞세우고정치에는 김춘추 활용삼국통일 완수의 큰 발판 만들어◆ 수차례의 외침을 극복한 용기 있는 여왕사실 고대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이나 예술작품엔 크건 작건 과장이 섞여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는 어지간한 10대 청소년의 몸무게와 맞먹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가벼운 나무젓가락 다루듯 한다. 뿐인가. ‘수호전’의 무송은 맨주먹으로 거대한 식인 호랑이의 머리뼈를 부숴버리는 초인적 괴력을 보여준다.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연출한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4대 왕 크세르크세스(Xerxes·재위 BC 486∼BC 465)는 키가 진덕여왕의 2배쯤 되는 4~5m로 그려진다.하지만 그 옛날 왕이나 영웅호걸에 대한 묘사가 마냥 과장스럽기만 한 것일까? 진덕여왕의 경우를 꼼꼼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앞서 언급한 649년 침공 외에도 진덕여왕은 즉위한 직후부터 백제와 고구려 군대의 끊임없는 공격에 맞서야 했다.진덕여왕이 명령하고 김유신이 실행한 방어작전은 성공적이었다. 647년에는 무산성과 감물성을 포위한 백제군을 격퇴했고, 이듬해에도 서라벌 서쪽을 노리는 백제 무장 의직(義直)으로부터 신라의 10개 성을 지켜냈다. 이강식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사촌누이를 반대한 비담과 염종의 반란을 겪으며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한 상황 속에서 즉위한 진덕여왕은 누란의 위기에 빠진 신라 국정을 개혁해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져야한다는 주요한 과제를 안고 탄생했다”고 쓰고 있다. 안으로는 반란의 잔당을 진압하고, 밖으로는 여러 차례의 외침을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진덕여왕의 용기와 군사적 능력에 후한 점수를 주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여왕의 관심은 군사조직의 정비에까지 이어져 651년에는 왕궁의 호위를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했고, 652년엔 궁병(弓兵)들이 주축이 된 부대를 만들기도 했다.일부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진덕여왕이 김유신과 김춘추(604~661)가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왕’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그러나 7세기 중반 신라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어떤 잣대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주장은 힘을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 아래와 같이 정반대로 말하는 학자도 존재하니까.“선덕여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안목을 키운 진덕여왕의 상황 판단능력과 정치력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전쟁에는 김유신을 앞세우고, 정치적 감각이 탁월했던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외교에 적극 활용했다. 이것만 봐도 진덕여왕의 용인술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외교’ 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 보여줘백제와 고구려의 침탈에 용기 있게 맞선 통치자였던 진덕여왕은 ‘외교’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강식 교수의 논문 ‘신라 세 여왕의 삶과 경영’은 진덕여왕의 외교 전략을 ‘자주화’와 ‘대당 외교의 병행’으로 요약한다.“진덕여왕은 즉위 원년(647년) 연호를 태화로 고쳤다. 그리고 같은 해 초겨울 신궁에서 친히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신라의 천신교 의례를 수행함으로써 자주성을 표방한 것이다.”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 ‘자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화 전략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진덕여왕은 ‘중국(당나라)과의 외교’라는 방법을 선택했다.이 교수는 신라와 당나라가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에 시달렸던 신라와 고구려 원정에 두 번이나 크게 실패한 당나라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다.” 여기에 이런 문장도 덧붙이고 있다.“진덕여왕의 대당 외교 성공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해 삼국통일을 완수하게 되는 발판을 만들었다.”8년의 재위 기간 동안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진덕여왕이 이룬 일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녀에 관한 보다 정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신라를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 ‘골품제’뼈에도 품격이 있다?신라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타고난 혈통과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부모를 통해 얻게 되는 지위가 평생을 지배했다. 언필칭 골품제(骨品制)다.골품제의 최상위 계급은 성골(聖骨). ‘성스러운 뼈’로 해석 가능한 성골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왕의 핏줄을 가진 사람을 지칭했다. 신라의 두 번째 여왕인 진덕은 성골 출신의 마지막 왕이었다.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행한 책 ‘신라의 사회 구조와 신분제’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실려 있다.“골품제는 신라의 역사와 사회를 들여다보고 살피는 창(窓)과 같은 역할을 한다.동시대에 존재했던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비슷한 시대의 외국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신분제였고, 신라 사회를 살아갔던 많은 사람들의 정치·사회 활동과 일상생활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던 법제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성골-진골(眞骨·부모 중 한 사람이 왕족의 혈통인 사람)-6두품-5두품-…1두품’으로 나뉜 골품제 아래서 자신의 계급이 확정되면 오를 수 있는 벼슬의 상한선에서부터 입는 옷, 사용하는 생활용품, 집을 지을 수 있는 규모까지가 함께 정해졌다.심지어 여성들의 속치마와 장신구 색깔에까지 골품제가 끼어들었다. 현대인의 상식으론 이해가 힘들다. “너는 성골이 아니라 6두품이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샤넬 립스틱을 쓰면 안 된다”고 한다면 21세기 여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중앙집권제 국가로 성장하던 신라가 지역 토호들의 세력을 흡수하며 만들어진 골품제는 많은 폐단을 낳기도 했다. 능력과 노력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출신 성분’을 인간의 판단 기준으로 삼았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몇몇 역사학자들은 신라 멸망의 원인을 ‘골품제가 야기한 차별’에서 찾기도 한다.인도의 ‘카스트(Caste)제도’는 신라의 골품제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카스트제도 역시 사람을 브라만(Brahman·성직자), 크샤트리아(Ksatriya·귀족과 군인), 바이샤(Vaisya·평민), 수드라(Sudra·천민)의 네 가지 계급으로 나누고 각 계급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정해주는 건 물론, 결혼까지 같은 카스트끼리만 하도록 허락했다. 현재 법적으로는 카스트제도가 폐지됐다. 그러나 아직도 인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이 제도의 그림자가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생생한 사례를 인도를 여행한 몇 해 전 목격하기도 했다.기자가 묵은 남부 인도의 호텔 주인은 브라만이었는데, 남이 입었던 옷을 절대로 만지지 않는다고 했다. 인도에서 빨래는 천민 계급인 수드라가 한다.뭄바이에선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브라만 계급인 택시기사가 목적지로 가던 중 갑자기 차를 세우고 태양을 향해 기도 올리는 걸 본 것이다.이처럼 골품제와 카스트제도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기엔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런 사회 시스템이다. 하지만, 그 옛날 신라와 인도를 해석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7-13

에어포항, 저가항공사로 규모 키워다양한 하늘길 여는 영남권 대표항공사 만든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에 위치한 포항공항. 포항공항은 포항시청에서 약 11.5㎞, 포스코에서 구룡포 방향으로 5㎞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난 1970년 포항공항에 민항시설이 설치된 이후 48년의 세월 동안 시민의 발로 그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14년 6월부터는 약 2년간 활주로 및 항행안전시설을 전면 개보수하고 새롭게 문을 열기도 했으며, 올해 2월 7일에는 포항시를 기반으로 한 지역항공사인 ‘에어포항’이 첫 취항을 시작했다. 초기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에어포항’은 50인승 이하 규모의 항공기 2대를 도입해 포항을 거점으로 한 김포 및 제주노선 운영을 시작했으며, 향후 인천을 비롯해 울릉공항 개항을 대비해 울릉도까지 연결하는 노선을 계획하고 있다.경북도 주도 내년 3월 지역항공사 설립 추진… 7월까지 에어포항 법인 합병키로광주공항 등 ‘동서 노선’ 개설·울릉공항 거점공항 육성 등 다양한 발전방안 모색포항, 지역발전·일자리창출 ‘두 토끼’ 잡고 북방교류협력 전초기지 자리매김 기대□에어포항의 도전포항시는 지난 2016년 4월, 포항공항 활주로 공사를 마치고 대형항공사들의 취항을 기다렸지만, KTX 개통으로 수요가 줄어들면서 기존 항공사들이 적자를 이유로 운항을 꺼리는 상황에 맞딱트렸다. 이에 포항시는 시 차원에서 지출하고 있는 적자보전금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새로운 지역항공사 설립에 적극 나서게 됐다.포항시가 기존 항공사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지역항공사를 설립한 결정은 사실상 KTX 개통으로 인해 국내선 항공편의 운항횟수나 항공편 이용승객이 크게 줄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해법은 있다. 제주노선의 경우 해마다 폭발적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실제로 한국공항공사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도 6월 대비 대구-제주노선의 운항편수와 이용객 수는 각각 11.9%와 20.6%가 증가했다. 2014년 6월에 비해 운항편수는 15.7%, 이용객 수는 35.2%가 늘어난 수치다.국내를 제외한 국제 항공 여객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엔저와 유류할증료 부담 완화에 따른 내국인의 일본관광과 중국인의 국내관광 수요 증가, 그리고 저가항공사(LCC)의 해외 근거리 신규노선과 운항 확대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형항공 사업은 유럽과 미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관광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항공수요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좌석 수가 50인 이하인 항공기로 운영되는 소형항공사는 제주에어(제주), 에어부산(부산), 이스타젯(전북), 티웨이(서울) 등의 저가항공사(LCC)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최근 국내에서도 이러한 소형항공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지방을 거점으로 한 소형항공사는 에어포항에 이어 지난달 말에 취항한 광주공항 기반의 에어필립이 운항 중에 있고, 인천의 에어 프레미아, 강원지역의 플라이강원, 충북지역의 에어로케이가 취항을 추진하고 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증가하는 항공여객 수요에 발맞춰 하늘길을 꾸준히 확대해 포항시민은 물론 인근 경주와 영천, 영덕, 울진 등의 지역민들이 제주와 김포 등으로 가기가 한결 편리해질 것”이라면서 “더 나아가 지방 거점공항 확보를 통해 지방도시간 항공교통망을 구축해 포항공항 활성화를 도모하는 한편, 소형항공사로 시작하지만 이른 시일 안에 저가항공사(LCC)로 회사 규모를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역항공사를 위한 경북도와 포항시의 노력에어포항은 현재의 노선에 이어 인천, 여수, 울릉도, 흑산도 등으로 국내 노선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또한 향후 중국, 일본, 러시아, 베트남 등 국제노선도 취항한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어, 포항시는 에어포항을 통해 말 그대로 ‘환동해중심도시 포항’으로 도약하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이런 가운데 경북도가 에어포항의 안정적인 운항과 포항공항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 항공사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북도는 포항시와 함께 각각 자본금 20억원을 출자해 내년 3월 지역항공사를 설립하고 7월까지 에어포항 법인과 합병한다는 내용이다.지난 3월, 경북도에 보고된 ‘경상북도 지역항공사 설립 타당성조사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가 전체 400억원 규모의 자본금 중 10%인 40억원을 출자하면 비용보다 편익이 높아 경제성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출자방식은 지자체가 시설법인을 설립하고 나서 이미 설립된 에어포항을 합병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지자체가 출자한 항공사 사례로는 제주항공과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등 3곳의 항공사가 있다.이 경우, 경북도와 포항시가 출자하고 에어포항과 합병하게 될 지역항공사는 설립 후 5년간 약 2천446억원의 생산과 약 584억원의 부가가치, 약 574명의 취업 등 경제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다만, 보고서는 출자시점을 에어포항이 국제항공사 면허를 취득해 B737 항공기(189석 규모)의 운영이 가능하게 되거나, 2022년 이후로 예정된 울릉공항이 개항하는 시점이 적절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에어포항 성공할까에어서울, 에어부산, 제주항공처럼 지역의 이름을 따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항공사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에어포항에 거는 지역의 기대는 크다. 항공업계는 에어포항이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 취항 노선을 늘린다면 동해권역은 물론 영남권을 대표하는 항공사로 자리매김하고 지역의 이미지와 브랜드도 크게 선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특히 지방도시 간의 하늘길을 개척함으로써 지역민의 항공 이용편익을 늘리는 데도 크게 기여하는 한편, 에어포항이 보유한 인프라를 통해 지역발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포항공항의 시장성을 높이는 데에도 에어포항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에 따라 포항시와 포항공항, 그리고 에어포항 등은 향후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KTX와의 차별화를 비롯한 다양한 발전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포항공항과 호남의 광주공항 등 동서(東西)를 연결하는 노선의 개설이다.우리나라 영호남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최소 4시간 이상이 걸리는 육상교통의 불편으로 인해 인적·물적 교류의 장애는 물론 지역화합도 사실상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서를 잇는 항공노선을 마련하자는 것이다.이와 함께 포항공항은 앞으로 들어서게 될 울릉공항의 거점공항으로 육성하는 한편, 인근에 천년고도 경주와 영일만관광특구 조성에 따른 관광수요를 활용한 활성화 전략 역시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이 밖에도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서비스 제공과 검색대 확대 등 시설확충, 최적의 항공스케줄 구성 등 항공서비스 경쟁력 강화 등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에어포항은 국제종합물류항만인 영일만항과 함께 포항이 지속발전 가능한 환동해중심도시로 나아가는데 디딤돌이 될 것”이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제1차 한·러 지방협력포럼의 개최를 계기로 포항이 북방교류협력의 전초기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데 발 벗고 나서겠다”고 밝혔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18-07-12

심미적 감성 품은 예술가이자 명철한 과학기술자 ‘선덕여왕’

선덕여왕(재위 632∼647)이 남긴 흔적을 찾아 홀로 경주를 찾았던 날은 초여름 소나기와 뜨거운 햇살이 거듭 반복되며 사람을 괴롭혔다. 그러나 6월 말 경주의 풍광은 짜증보다는 감동을 먼저 불러들였다.국립 경주박물관이 마련한 ‘황룡사 특별전’을 천천히 둘러보고, 여왕이 영면에 든 보문동 선덕여왕릉을 들른 뒤 버스를 타고 경주시 인왕동에 우뚝 선 ‘첨성대(瞻星臺)’를 향했다.과학기술·천문관측에 큰 관심삼국사기 ‘총명하고 민첩’ 기록그림 속 은유·상징 읽어내기도옛 사람들은 하늘의 별자리가 인간의 운명과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반짝이는 달과 별을 관찰하는 것은 ‘세상사의 순리와 역행’을 예언하는 행위와 동일한 의미였다. 첨성대는 바로 이 역할을 수행했다.고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첨성대는 선덕여왕 16년(647년)에 만들어졌다.지금은 국보 31호로 지정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가 남성 왕이 아닌 여성 왕이 지배하던 서라벌에 들어선 것이다.구조적인 측면은 물론, 미학적인 면에서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과학기술과 천문 관측에도 높은 관심을 가진 통치권자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사실 여러 문헌에 전하는 선덕여왕의 모습은 ‘미모’와 ‘예술적 감수성’에 한정돼 있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묘사들이다. “용봉(龍鳳·용과 봉황)의 자태와 천일(天日·하늘에 떠있는 태양)의 위의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화랑세기(花郞世紀)’가 표현한 선덕여왕.“성품이 너그러운 동시에 어질고 총명하며 민첩하기까지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선덕여왕 모습.그런데,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창겸의 논문 ‘신라 선덕여왕의 왕위계승에 대한 논의’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선덕여왕이 여성의 입장에서 왕이 되기까지의 어려움을 추정하게 해주는 대목이다.“선덕여왕의 즉위는 신라 왕위 계승에서 종전에 지켜온 부자 계승원칙을 준수하고자 재위 중인 왕의 자식이라야만 하는 필수적 기본조건인 혈연에 더하여, 반드시 성골(聖骨·부모가 모두 왕의 직계인 신라의 최고 골품)이라야 한다는 골품제 규정을 새롭게 추가로 적용시킨 사례다.”위의 서술은 선덕여왕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성적인 한계’를 당대의 정치적 지지와 더불어 개인적 능력을 통해 쟁취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라의 주류사회가 곧 무너질 ‘골품제 규정’을 그녀를 위해 억지스럽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 ‘예술 애호가’에서 멈추지 않았던 선덕여왕우리의 인식 속에 고착된 또 하나 ‘선덕여왕의 신화’는 예술 애호가로서의 모습이다.한 점의 그림도 허투루 보지 않고 그 작품 속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을 읽어내는 선덕여왕의 예술적 심미안은 ‘삼국유사’에서 아래와 같이 묘사되고 있다.“당나라 태종이 붉은색, 흰색, 자주색의 모란 그림과 함께 꽃의 씨앗을 신라로 보내왔다. 선덕여왕은 그림을 한참 살피더니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 잘라 말했다. 과연 그랬을까? 신하들은 왕궁에 당나라 왕이 준 씨앗을 심어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꽃이 만개했다. 여왕의 말처럼 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았다.”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일화를 통해 선덕여왕은 그저 ‘아름다운 예술 애호가’로만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하지만 이에 아쉬움을 표하는 학자들도 이제는 적지 않다.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과 유교적 틀에서 신라 왕조를 연구해온 ‘20세기적 해석의 한계’가 젊은 역사학도의 반발을 부르고 있는 형국.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가 발행한 김명희의 논문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타난 여성의 자기실현’은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소속 집단을 리드하는 왕이면서 새로운 질서와 가치체계를 가지고 기성사회를 재편하고자 하는 창조적 영웅”이라고 규정한다.김명희의 주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되는 다양한 지략과 영민한 전략의 향연”을 펼치는 인물로 선덕여왕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제 이어지는 논문의 아래 대목을 한 번 읽어보자.“주인공(선덕여왕)이 여러 난관과 과제를 명철한 슬기와 계략으로 헤쳐 나가며 왕에 오르는 과정을 외연적으로만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과정 전체를 자기실현의 심리적 과정으로 뒷받침함으로써 풍부하고 심오한 상징적 층위를 창출한다.”이 문장이 과연 ‘드라마 선덕여왕’을 향한 단순한 상찬(賞讚)에 그치는 것일까?그게 아니면 ‘인간 선덕여왕’을 향해 있는 것일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 ‘첨성대’에서 선덕여왕을 떠올리다인왕동에서 칼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 첨성대를 찾았다.‘하늘의 별과 달을 관찰한다’는 실용적 의미만이 아닌 ‘미학적 완결성’까지 갖춘 7세기 고대의 건축물이 21세기 현대의 인간을 단번에 매료시켰다.기단(基壇)으로 사용된 화강암은 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도 건재했고, 높이 9m, 밑지름 4.93m·윗지름 2.85m로 설계된 첨성대의 조형미는 ‘완벽’이라 불러도 모자랄 것이 없어 보였다.기단석 위로 가지런히 쌓인 돌은 한 단이 28개. 이는 천체의 28개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다.가운데 자리한 네모난 출입구엔 창문 아래와 위로 12개의 단이 쌓였다.이것은 1년이 12개월이란 것을 의미한다고 사학자들은 해석한다.지척에 첨성대가 바라다 보이는 풀밭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자연스레 날개를 편 ‘역사적 상상력’은 선덕여왕이 정치·사회·종교적 우두머리였던 그 옛날 신라로 날아갔다.그 순간, 서라벌의 쟁쟁한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 가운데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하는 덕만(德曼·공주 시절 선덕여왕의 이름)의 모습을 본 듯도 하다.자,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덕여왕은 ‘아름다운 예술 애호가’인 동시에 ‘명민한 자연과학자’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신라의 3가지 보물 중 하나’ 불국토 이상사회 구현 ‘황룡사 9층 목탑’법흥왕(재위 514∼540)의 불교 공인 이후 신라에는 대규모 사찰이 우후죽순(雨後竹筍) 들어선다. 선덕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에도 분황사, 영묘사, 법림사, 통도사 등 20여 개의 사찰이 만들어졌다.역사학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처럼 신라의 불교는 국가 혹은, 왕의 권력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선덕여왕이 가졌던 권위를 짐작하게 만드는 거대한 건축물 황룡사 9층목탑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황룡사는 지금의 경주시 구황동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신라 최대의 절 중 하나였다.진흥왕 14년(553년) 왕이 기거할 새로운 궁궐을 짓던 중 어두워진 하늘에서 황룡이 나타난다. 숭배 받는 동물의 출현을 신기하게 여긴 왕은 궁을 만들던 자리에 사찰을 지으라고 명령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황룡사다. 자그마치 2만5천 평에 이르는 거대한 가람(伽藍)이었다.선덕여왕은 바로 이곳에 드높은 목탑을 축조한다. 황룡사 9층목탑이 세워질 당시 공사현장의 총감독이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이었다는 것은 이 프로젝트가 가진 무게감을 보여준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춘추는 후에 삼국통일의 밑그림을 그리는 태종무열왕이 된다.‘신라의 3가지 보물 중 하나’로 불리는 황룡사 9층목탑은 선덕여왕 12년(643년)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승려 자장(慈藏·590~658)의 건의로 만들어졌다. 연구자들은 변방 아홉 국가의 침탈로부터 신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담기 위해 탑을 9층으로 설계했다고 말한다.문헌과 학자에 따라 탑의 높이는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된다. 하지만 80m 안팎이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현대적 건설장비 하나 없던 1천400여 년 전에 그 정도 높이의 목탑을 만들 수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탑의 꼭대기에선 당시 서라벌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을 터. 최고 통치권자였던 선덕여왕이 황룡사 9층목탑을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황룡사로 행차한 여왕의 모습은 어땠을까?경상북도가 간행한 ‘신라의 불교 수용과 확산’은 황룡사 9층목탑의 축조가 가지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왕실의 권위 강화와 외침의 저지라는 목적 속에 건립된 황룡사 9층목탑은 ‘신라 땅에 불국토’라는 이상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신라 불국토의 관념으로 확대되었다.”안타깝게도 지금은 황룡사 9층목탑을 볼 수 없다. 만들어진지 50년 후 벼락에 맞아 파손된 뒤 여러 차례 중수됐으나, 1238년 몽골군에 의해 완전히 불태워진 탓이다.현재는 경주시 구황동에 자리한 황룡사 역사문화관에서 1/10로 축소·복원된 9층목탑만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