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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무자식 상팔자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명심보감에 “하늘은 사람에게 저마다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게 한다”(天不生 無祿之人)는 말이 있다. 지금보다 먹을 것이 훨씬 부족했던 시절에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산아제한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이라 태어난 자식을 소중히 잘 키워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하면 좋을 듯 하다.유교 문화가 널리 퍼졌던 동양권의 나라에서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이 최고의 행복 가치다. 잘먹고 잘살며 자식이 많아야 하며, 특히 아들이 많으면 다복하다고 생각했다. 대가족 중심사회의 핵심인 혈연중심 사고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보인다.우리나라는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1960년대부터 산아제한 정책을 시작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구호가 등장했던 시절이다. 1970년대 들어서는 “자녀 둘만 낳자”고 했으며 1980년대는 한 자녀 정책으로 바뀌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구호가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저출산국으로 전락한 지금의 우리 처지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자식이 없어 오히려 걱정이 없어 편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말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 자식이 많으면 걱정으로 편한 날이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딩크족이란 부부가 맞벌이하며 자식을 의도적으로 가지지 않는 가정을 말하는데 1980년 후반 미국에서 등장한 가족 형태다. 우리나라에도 번져 저출산국으로 전락하는데 일조하는 형태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25∼39세 맞벌이 부부의 무려 36%가 무자녀란 통계가 나왔다. 무자식 상팔자 시대가 온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6

다베이 준코,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이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또는 “난 여자라서 이런 건 못해”라는 말이 우스워진 시대가 됐다. 남성 혹은, 여성만의 고유한 영역이란 이제 한국사회에 거의 없다. 금녀의 벽은 이미 무너졌다.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수석 입학자와 1등 졸업자 중에도 여성이 있고, 육중한 공격용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여성 장교도 생겨났다. 더불어 섬세한 감각과 미적 완성도를 요구하는 고급 요리 시장에서 주목받는 남성 요리사도 흔전만전인 세상이다.하지만, 49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가파른 절벽에 매달리는 일, 여성이 목숨을 걸고 지구 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른다는 건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바로 49년 전 오늘인 1975년 5월 16일. 일본의 36세 주부 다베이 준코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산에 올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조그만 체구와 약한 체력이 콤플렉스였던 여자. 그러나, ‘어떤 산이라도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면 못 오를 정상이란 없다’는 다베이 준코의 신념은 “여자의 힘으론 난공불락”이라던 8848m의 세계 최고봉보다 높았다.그녀의 도전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1981년엔 몽블랑과 킬리만자로, 이후엔 알래스카의 매킨리와 남극 빈슨 매시프에도 오른 다베이 준코는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완등(完登)한 최초의 여성’으로 역사에 기록됐다.힘겨움과 고통을 이기고 끝끝내 목적한 바를 이루는 열정과 에너지를 남자만 가졌을 리가 없고, 여자만이 독점할 까닭도 없다.다베이 준코를 떠올리며 ‘양성평등의 길’을 함께 걸어갈 젊은이들의 미래에 박수를 보내고픈 날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15

대구시장과 의협회장의 난타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는 ‘도백(道伯)’으로 불린다. 대구광역시의 인구는 대략 237만 명. 홍준표는 그 도시의 도백이다. 또 다른 명칭으로 부르자면 ‘오십만호장(4명을 1개 가구로 환산한 수치·50만 가구를 통치하는 수장)’쯤. 칙령(勅令)이 아닌 시민의 선택으로 오른 자리이니 역할은 더 크고, 책임은 보다 무겁다.임현택은 이 나라 의사협회장. 수십 억 자산을 가진 강남의 부모들을 포함한 한국 아버지·엄마 다수가 제 자식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의사들의 상징적 우두머리다. 자신의 말이 가지는 무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최근 이 둘이 인터넷상에서 주고받은 설전을 본다. “한 나라의 흥망은 그 나라 언어의 흥망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가져다놓을 것도 없다. 둘 모두 정제되지 못한 거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한다.임 회장이 “돼지 발정제로 성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고 시장을 하는 것도 기가 찰 노릇… 그러니 정치를 수십 년 하고도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 하니, 홍 시장은 “더 이상 의사 못하게 그냥 팍 고소해서 집어넣어 버릴까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니 별 X이 다 나와서 설친다”고 받았다.국가의 수준은 그 국가를 이끄는 자들의 어법과 무관치 않다. 여론을 선도한다는 세칭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격(國格)’을 입버릇처럼 말한다.묻고 싶다. 위에 인용한 막말이 국격을 높이고 있나? 자신들의 인격을 의심하게 하는 언사는 아닌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 사람 마르틴 하이데거가 쓴 문장이다. 대구시장과 의사협회장, 두 사람에게 던지는 질책 같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13

추경호의 사즉생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 달성에서 3선을 한 추경호 의원이 집권 여당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새로 선출됐다. 그는 선출 소감으로 “사즉생 각오로 독배의 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22대 국회가 마치 전쟁터 같음을 예상한 발언이다.또 그는 영남당이란 이유로 “TK출신이 맡아선 안 된다”는 당내 비판에도 출마함으로써 당내에서의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원내대표로서 역할을 잘하지 않으면 영남권에 부담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가 사즉생을 꺼낸 것도 당내외의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사즉생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저술된 것으로 전해지는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원전에는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로 돼 있다.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는 뜻이다.우리한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랑대전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일갈한 내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자병법’에 기록된 이 말이 수천년 전해져오면서 시대를 넘어 널리 사용된 것은 말의 무게감이 그만큼 큰 탓이다. 조선시대 무사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였다고 전해지니 장수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적합했던 모양이다.영화 명랑대전에서 이순신은 비장한 각오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웠다. 더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22대 국회가 열리기도 전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거대 야당의 독주가 예사롭지 않다. 추 대표의 사즉생은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전쟁터의 장수와 심정이 같다는 뜻이다. 추 대표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2

경주 월정교(月精橋)

우정구 논설위원 남천이 흐르는 경주의 월정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설화 속의 장소다.원효대사가 파계를 각오하고 요석공주와 연을 맺으러 일부러 강물에 뛰어든 곳이 바로 남천(당시는 문천)이다. 요석공주의 아버지 태종무열왕은 원효의 기이한 행동을 알아채고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인물이 신라 문자인 이두를 고안하고 신라 10현의 하나로 꼽히는 설총이다.월정교는 1984년부터 복원을 위한 자료수집과 고증작업을 벌였으나 2018년에야 복원사업이 완료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35대 경덕왕 18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라 왕궁이 있는 월성과 건너편 남산을 연결하는 다리다. 조선시대 들어와 유실된 것을 고증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했다.길이 66m, 폭 13m, 높이 6m로 양끝에 문루(門樓) 두개 동이 세워져 있다. 워낙 오래된 다리인 데다 고증자료만으로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아 현재의 모습이 당시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신라 천년의 도시 경주시의 역사성을 재현하고 관광상품을 늘린다는 취지가 복원의 학술적 목적보다 앞섰다는 평가다.경주에는 역사성을 배경으로 야경 명소로 꼽히는 곳이 여럿 있다. 동궁과 월지, 금장대, 첨성대, 월성 등이 있으며 월정교도 그 중 하나다. 고풍스럽고 예쁘게 단장한 월정교에서 바라본 경주의 모습에서 신라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국빈공식 만찬장으로 월정교를 추천했다고 한다. 월정교의 역사성과 아름다움, 스토리 등으로 볼 때 손색이 없는 장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9

‘아침이슬’ 그리고, 김민기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침’과 ‘이슬’이란 2개의 보통명사로 ‘아침이슬’이란 고유명사를 만든 사람이 있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요약되는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이름 김민기(73).작곡가이자 가수, 공연연출가이자 시인에 필적하는 수준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인 김민기의 아우라(aura)는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빛난다.“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으로 시작해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로 끝을 맺는 ‘아침이슬’. 삶의 무게가 힘겨워 울고 있는 젊은이들에겐 성가(聖歌)와 같은 숭엄함으로 위로를 전했고, 자신과 더불어 공동체를 아끼며 살고자 결의했던 이들에겐 총알보다 더 강위력한 변혁의 무기가 돼주었던 노래다.‘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인 김민기가 아픈 모양이다. ‘위암 투병 중’이라는 기사가 경향 각처의 신문에 오르내린 게 올해 이른 봄. 미디어와의 접촉을 꺼리는 김민기의 성향 탓에 병세가 어떠한지는 소수의 사람들만 안다고. 최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엔 김민기와의 추억담을 털어놓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마치 곧 이별할 사람과의 기억을 반추하듯.2018년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TV 화면에 등장해 아나운서 손석희와 인터뷰를 한 김민기는 이런 말을 했다. “노래의 주인은 그걸 부르는 사람들이지요.” 1987년 6월. 항쟁의 거리에서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단다. 과연 김민기다웠다.그가 병마를 이겨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면식은 없지만 이 나라 중년 모두는 청춘의 어느 한 부분을 김민기에게 빚지고 있으므로./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8

행복한 어린이

우정구 논설위원 어린이날을 맞아 각 교육기관 등이 어린이와 관련한 설문을 조사해 보면 그 내용에 공통점이 있다. ‘가족과 사랑’이 공통의 단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예컨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해 질문했을 때 어린이들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를 가장 많이 대답한다.또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질문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가기’. 부모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이란 단어가 제일 많다.어린이들은 각종 설문조사에서 행복의 조건을 손꼽으라 하면 ‘화목한 가정’을 가장 먼저 말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천진난만하고 깨끗한 동심에서 어른들은 배울 게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을 닮아가니 어른들이 솔선해 모범적 생활을 하라는 의미로도 풀이한다.최근 교직원노동조합이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학생 2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초등생 10명 중 6명이 거의 놀지 않거나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논다고 대답했다. 그 외 시간은 학원과 학습지, 온라인 학습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우리나라는 사교육비 지출은 GDP 대비 압도적 세계 1위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8.3%다. 주당 사교육 참여시간은 7.2시간, 특히 초등생의 경우 사교육 참여율은 85.2%로 10명 중 약 9명이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OECD 국가 중 우리 어린이의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는 수치다. 1년 365일을 어린이날처럼 보낼 수 있는 우리사회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7

술까지 끊게한 모정(母情)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최근 할리우드발 흥미로운 가십 하나가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신부들의 전쟁’ 등의 작품에서 호연을 펼쳐 한국 영화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앤 해서웨이(42)가 5년째 금주 중이고, 여덟 살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술잔 들 일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뉴욕타임스와 ABC 등 미국 유수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고백한 바 있다. 과거 앤 해서웨이는 술 탓에 일상생활이 지장을 받을 정도의 주당(酒黨)이었다. 대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신 술. 배우 생활을 하면서 주량은 더 늘어났고, 그 음주 습관은 전도유망한 여배우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그랬던 앤 해서웨이가 “아직은 아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나이다. 아들이 대학에 가면 다시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니 모정이 술을 이긴 것이다.‘모정’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떠오르는 또 다른 한 장면. 케이트 윈슬렛(49)은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오른 영국 여배우. 수십 만 파운드짜리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시상식장을 드나들던 그녀가 아들을 등에 업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찍혔다.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에 낡고 헐렁한 면바지를 입었음에도 등에 업힌 아들 조 알피를 돌아보며 세상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의 행복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같은 무게의 황금을 준다 해도 아들을 금과 바꿀 어머니는 없다”. 중국 속담이다. 가정의 달로 불리는 5월. 가정의 일상이 행복하게 유지되는데 모정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거론하는 건 바보짓이다. 부엌에서 아침 짓는 어머니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면 좋을 날이 내일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6

선관위 채용비리

우정구 논설위원 동양에 복마전(伏魔殿)이라는 고사가 있다면 서양에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전설의 이야기가 있다. 출처는 다르지만 악(惡)을 담아놓은 전각이나 상자의 문을 열면서 인류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내용은 비슷하다.수호지에 등장하는 복마전은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다. 열지 말아야 할 전각의 문을 열면서 마귀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세상에는 불길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는 악의 근거지라는 뜻으로 부정부패, 비리의 온상을 부를 때 보통 복마전이라 한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는 인류의 모든 악과 재앙을 담은 상자다. 그 상징성 때문에 비리나 부정, 음모가 있는 곳을 가리킬 때 보통 판도라 상자라고 부른다. 복마전과 비슷하게 부정부패가 상징되는 곳에 사용되는 말이다.중앙선관위와 전국선관위의 채용비리를 보면서 많은 국민이 공분을 하고 있다. 10년 동안 1200건이나 되는 채용비리가 저질러졌음에도 단 한차례 문제도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특히 선관위 고위직 자녀를 세자로 호칭하는 등 특혜채용 사실이 내부적으로 공공연한 비밀이었을텐데도 묵과돼온 사실은 이해할 수가 없다.전문가들은 부정부패 원인을 몇 가지 차원에서 접근한다. 도덕적 접근법, 사회적 관습의 결과, 또는 제도적 결함 등으로 분석한다. 여기서 선관위의 채용비리는 도덕적 규범의 붕괴에 가깝다. 공무원이 국민의 봉사자라는 사실을 잊고 권한이 자신의 것인양 착각하고 남용하는 윤리적 가치관의 몰락을 뜻한다. 부정부패의 분위기가 조직 내에 스며들면서 끝내는 본인 스스로도 물들어 가는 과정이다. 복마전의 선관위 비리에는 일벌백계가 답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2

누가 하마스(Hamas)가 되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 하마스의 이스라엘 영토 습격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다. 휴전과 개전(開戰)의 지루한 반복은 전쟁의 직접 당사자인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아닌 어린이와 여성 등 무고한 희생자를 낳고 있는 형국. 미국 등이 종전을 위한 협상을 종용하고 있으나, 이미 100년 가까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다퉈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화해가 쉽사리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인을 자신들의 영토를 강제 점령해 냉혹한 감시와 폭력을 휘두르는 상종하지 못할 이민족으로 인식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감정도 최악이다. 농장을 침탈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하마스를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마’로 보고 있는 것.‘신을 위해 헌신을 다하는 군대’로 해석될 수 있는 하마스는 1987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압제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며 태동한 무장단체. 설립자인 아흐마드 야신(1936~2004)은 이스라엘로부터는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테러를 지시한 악마의 우두머리”로 비난받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를 “우리 민족의 해방을 주도한 지도자”로 추켜세운다. 안중근이 한국인들에겐 의사(義士)지만, 일본 군국주의자에겐 테러리스트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그렇다면 대체 누가 하마스가 되는 걸까? 7개월의 전쟁에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사망했다. 목이 부러져 죽은 일곱 살 여동생의 시체 앞에서 열두 살 오빠가 절규한다. “빨리 커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하마스가 될 겁니다.” 이 아이를 ‘악마’라고 함부로 부를 수 있나? 종교와 인종이 야기한 반목이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1

책 안 읽는 사회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의 최고 부자들은 독서광이다. 주식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록펠러, 카네기, 일론 머스크 등 엄청난 부를 이뤄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은 모두 책벌레라 불릴만큼 독서광이다.워런 버핏은 “당신은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명언을 던지면서 책읽기를 권한다. 그는 그의 스승으로 통하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을 19세 때 독파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책 읽기를 좋아한 세종대왕의 일화도 있다. 세종이 왕자 시절 책에 병적으로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걱정한 아버지 태종이 세종 처소에 있던 모든 책을 치우기까지 했다고 한다.조선시대 22대 정조대왕은 독서대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책을 완전히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어 책 구석구석에 어떤 구절이 있는지를 줄줄 외웠다고 한다.소크라테스는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하여 얻은 지식을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고도 했다.동서고금을 통해 책은 모든 이의 스승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아무리 발달을 해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사회 진전은 어렵다. 책에서 얻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인간관계 해결 능력 등은 기계가 인간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지난해 국내 종합독서율은 43%로 1994년 이래 역대 최저다.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독서 분위기를 저해하기 때문이라 한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분위기 조성이 절실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30

패륜과 유류분(遺留分)

홍석봉 대구지사장 지난 2019년 가수 구하라 씨가 숨지자 1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살던 어머니가, 돌연 유산을 나눠달라며 나타났다. 구하라의 오빠와 가족은 키워 준 것도 아니고 고인에게 해 준 것도 없는데 유산을 줄 수 없다며 반발했다. 소송 끝에 어머니는 유산 일부를 받았다. 당시 민법상의 유류분 제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20대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발의됐다.‘유류분(遺留分)’ 제도는 국내 민법이 처음 제정됐던 1955년에는 없었다. 1977년 도입됐다. 장남이 유산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했다. 배우자와 자녀, 형제자매까지 유산을 나누는 비율을 법으로 정했다.헌법재판소가 47년 만에 유류분 제도의 일부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 폐지하고, 일부는 법을 고쳐야 한다고 결정했다.패륜 행위를 한 사람에게 유류분 권리를 상실시키고 반대로 ‘독박간병’과 같이 돌아가신 분을 특별히 부양한 상속인에게는 기여분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패륜아까지 유산을 나누는 건,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국회의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 유류분권 상실 사유를 빨리 법제화 해야 한다.유류분은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등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유언의 자유가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미국도 대부분의 주에서 유류분과 유사한 ‘유족부양청구권’을 인정한다.평균 수명과 1인 가구의 증가 등이 유류분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반면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는 보장받게 됐다. 시대 흐름이다.유류분 소송은 지난해에만 2000건을 넘었다. 상속 다툼을 벌이다 소송까지 가고 결국은 가족의 연을 끊는 경우가 허다하다. 패륜의 끝은 소송과 절연인 셈이다. 일생에 한번 이상은 겪는 상속, 잘 풀어야 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9

맹견 사육허가제

우정구 논설위원 이달 24일 이탈리아 남부 살레르노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생후 15개월 된 남자아이가 맹견 핏불테리어 2마리에 물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이 사고는 마을 외딴 이층집 마당에서 일어났는데, 아기의 어머니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기의 어머니는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해당 맹견은 동물보호소로 옮겨져 안락사 여부를 결정받는다고 한다.일반적으로 맹견이라함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개를 말한다. 특정한 상황이나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여 사람이나 동물에게 심각한 위협을 주는 개다.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탠퍼드셔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이 해당되며 우리나라에선 동물보호법에 따라 해당 맹견이 외출시에는 반드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4년 전 서울 은평구 한 골목길에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맹견 로트와일러가 산책 나온 소형 스피츠를 물어 죽인 사고가 발생했다. 스피츠는 로트와일러의 공격을 피해 견주 뒤로 숨었으나 끝내 물려 숨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견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줄을 이었다.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27일부터 맹견을 기르는 사람은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또 맹견에 대해서는 책임보험 가입, 동물 등록, 중성화 수술의 요건을 갖추도록 법을 강화했다.미국서는 개에 물려죽는 사람이 매년 500명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서도 매년 2000건 이상 개물림 사고가 벌어진다. 맹견이 아니더라도 개는 일반적으로 공격성을 갖고 있다. 맹견관리를 강화한 조치는 잘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8

기본소득 25만원

우정구 논설위원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이 많든 적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돈이다.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복지 개념이다.2016년 스위스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할지 여부를 물었다. 전국민 투표 결과, 국민의 76%가 반대했다. 18세 이상 성인에게 매달 2천500 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고, 어린이·청소년에게는 650 스위스프랑(약 78만원)의 기본 소득을 나눠주자는 것인데 반대가 훨씬 많았다.스위스 국민의 반대는 지금보다 세금을 2∼3배 정도 더 내야하고 현재의 사회복지제도 중 상당 부분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소득이 없거나 경제활동을 못하는 국민에게 기본소득은 큰 도움이 된다.그러나 어느 나라든 재정상 국가가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기는 어렵다. 또 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감당할지도 문제다. 기본소득으로 국민이 일할 동기를 잃어버리는 문제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놀고 먹어도 생활할 수 있으니 땀 흘려 일할 필요가 없다. 도덕적 해이는 당연하다.대통령과 영수회담에서 민주당은 전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최우선 의제로 삼겠다고 한다. 포퓰리즘이라는 거센 비난에도 이를 관철하려는 야당의 기세가 등등하다. 국가 부채가 1000조를 넘어 빚을 내 빚을 갚는 국가 재정은 안중에 없다.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를 두고 “25만원의 합리적 근거를 대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가벼운 경제적 인식을 비판했다. 25만원으로 민생이 살아나기도 어렵지만 국민을 달콤한 유혹에 끌어들이는 야당의 저의가 오히려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4-25

한개마을 저잣거리

홍석봉 대구지사장 ‘저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가게, 작은 규모의 시장을 이르는 말이다.‘저잣거리’는 가게가 늘어서 있는 거리라는 뜻이다. 가방(街坊), 시항(市巷) 등으로도 불렸다.저잣거리는 원래 서울시 마포구 밤섬에 있던 마을 이름이다. 조선시대 나루터가 발달한 곳에 저자가 형성됐다. 지금은 이름만 남았다. 전국 민속 마을에 저잣거리가 조성되고 있다. 조상의 생활상과 정취를 맛보게 할 목적이다.충남 아산시 외암마을은 16세기 중반에 조성된 예안 이씨 종족마을이다. 민속문화재 등 전통 가옥이 많은 충남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 마을이다.아산시는 이곳에 저잣거리를 조성했다. 외암 저잣거리는 먹을거리와 즐길거리에 옛 문화 요소를 가미, 조선 시대 서민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인기다.전남 강진에는 다산 정약용이 귀양 와 머문 사의재 주변에 2018년 저잣거리가 조성됐다. 이곳에선 강진의 역사와 인물을 재현한 문화 관광 프로젝트가 펼쳐지며 아마추어 배우들이 마당극을 공연한다. 주모가 다산에게 차려주던 아욱국 등 특색 있는 먹을거리, 초의선사와 메롱 무당 등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이 조선 시대를 재현,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성주 월항면 성산 이씨 집성촌 한개마을은 전통 한옥과 토석 담이 잘 보존돼 있다. 경북도 문화재인 건축물 등 75호의 전통 가옥이 남아 있다. 한개마을에도 저잣거리가 조성된다. 최근 용역 보고회를 가졌지만 관광센터와 식당, 주차장 등 편의시설 조성이 고작이다. 너무 빈약하다. 이야기와 문화를 덧입히고 고유한 색깔을 내야 한다. 다른 저잣거리를 벤치마킹, 한개마을 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관광객이 온다. 돈만 들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4

코로나 졸업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코로나19 대응 교훈보고서를 발간하면서 한국을 모범사례 중 하나로 소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정 중 얻은 교훈을 전 세계적으로 공유해 향후 팬데믹 가능성이 높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자는 취지로 만든 이 보고서에 한국의 코로나 극복과정이 모범사례가 된 사실은 자랑할만한 일이다.코로나19가 4년 3개월 만에 엔데믹 상황을 맞는다. 작년 8월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계절성 독감과 같은 4급으로 분류한 정부는 5월부터는 사실상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병의원 등에 남아있던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가 사라지고 정부 차원의 대응조직도 해체한다.2020년 1월 20일 국내서 첫 환자가 발생한 코로나는 세계적 유행을 일으키면서 국내서만 3만5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내 누적 확진자가 3400여만명으로 국민의 67.4%가 코로나19에 한번 이상 감염되는 가슴 아픈 경험을 했다. 사망자가 급증할 때는 화장 차례를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의무화, 사적 모임 인원제한, 상업시설의 영업시간 규제 등 과거 한번도 겪어보지 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압박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이 코로나 우울증을 겪었다.그런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는 시민들과 함께 70일의 사투 끝에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는 기적을 일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ABC 방송은 “코로나를 이겨낸 이 시대 삶의 모델”로 극찬을 했다.엔데믹은 전염병이 풍토병으로 정착한다는 뜻이다. 공포와 아픔으로 끔찍한 기억을 안겨준 코로나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3

비운의 순종황제 동상

홍석봉 대구지사장 순종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다. 대구 중구는 순종이 1909년 1월 남쪽 순행 중 대구를 다녀간 일을 재현해 지난 2017년 달성공원 정문 앞 일대를 테마거리로 만들었다.어가길에 담긴 치욕을 ‘다크 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역사교육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낙후된 골목 개발과 원 도심 재생 및 관광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길이 2.1㎞의 어가길은 국비 35억원 등 70억원이 들어갔다. 동상 건립과 함께 차선을 줄여 교통섬 등이 들어섰다.사업은 구상단계부터 친일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일제가 반일 감정 무마를 위해 순종을 대구와 부산 등으로 끌고 다닌 치욕스러운 역사라는 이유였다.어가길과 동상 조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대례복 차림의 순종 동상이 군복을 입고 다닌 당시 모습을 왜곡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대를 무릅쓰고 건립을 강행했다.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어가길 조성 이후 달성공원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교통 혼잡 등 민원이 빗발쳤다. 보행과 안전사고 위험이 커졌다. 결국 중구는 ‘순종황제 어가 길 조형물’ 철거를 결정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순종의 후손들은 “황제를 욕되게 하지마라”며 동상 기증을 요청했다. 의미 있는 장소로 이전하자고 했다.역사 왜곡과 친일 논란까지 애써 무시하고 다크 투어리즘으로 포장한 채 세워진 대구 ‘순종황제 동상’은 고작 7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조선의 마지막을 지켜봐야했던 것만큼 서글픈 운명이다.동상 건립비와 원상 복구비로 11억원이 들어간다. 지역사회와 논의조차 제대로 않고 추진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세금낭비와 행정력만 소모했다. 10년 앞도 못 내다본 우리 행정의 현주소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2

담배와의 전쟁

우정구 논설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밝힌 한국의 흡연율은 15.9%(2022년)다. OECD 평균과 비슷하다. OECD국가 중 흡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튀르키예로 28%다. 흡연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아이슬란드로 7.3%다.한국은 남성 흡연율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남성은 27.8%인데 반해 여성은 3.9%다. 남성 흡연율로만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8번째다. 우리나라는 2015년 2500원하던 담뱃값을 4500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당시 OECD 평균보다 높은 흡연율을 낮추고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조치라 했다. 그러나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다소 논란이 있다.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감소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데 별반 이론이 없다. 그러나 소비자 물가가 오르면서 지속적 효과보단 반짝효과에 그친다는 견해가 더 많다. 그럼에도 흡연율을 줄이는 데 각국은 담뱃값 인상을 유효한 정책으로 활용한다.지금 세계는 흡연과의 전쟁이 치열하다. 담배의 유해성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을 펴는 나라로 멕시코가 꼽힌다. 멕시코는 거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하고 있다. 광고는 물론 가게에 담배를 진열하는 것도 금한다. 가정집과 같은 사적 공간에서만이 흡연이 가능할 정도다. 영국이 이보다 더 강한 금연법을 추진해 화제다. 2009년생부터 평생 담배를 못사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법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간섭한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아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담배의 심각한 유해성에 반해 아직 담배를 금한 나라는 없다. 담배와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1

봄의 불청객

우정구 논설위원 온갖 봄꽃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봄은 계절의 왕이라 부를만하다. 많은 시인들이 봄빛의 따스함과 형형색색으로 갈아입는 봄날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했다.경주가 고향인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윤사월’이라는 짧은 문단의 시 속에 앳 된 한 소녀의 애틋한 그리움을 4월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려냈다.봄이 밝고 희망찬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처럼 불청객도 있게 마련이다. 봄에 찾아오는 불청객 중에 으뜸은 황사다.중국 내몽골 고원과 고비사막 등지에서 발생하는 모래 폭풍과 흙먼지가 우리나라로 날아와 황사가 된다. 중국서 오는 황사는 우리나라에서는 4월이 가장 많다.특히 모래바람은 중국 전역을 돌면서 다양한 매연과 화학물질, 산성비 등 유독성 물질과 합쳐져 우리나라에 오게 됨으로써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알레르기 질환은 물론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반도체와 같은 정밀기계의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지난 17일 경북에는 황사 위기경보가 발동했다. 중국에서 넘어온 황사로 당분간 대기질이 크게 떨어질 것 같다는 일기 예보다.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로 황사 폐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에는 황사 일수가 무려 23.1일을 기록한 바도 있다.황사의 역사는 삼국시대 기록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토(雨土)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 때는 한양에 흙비가 떨어졌다는 실록의 기록이 보이기도 했다.봄의 불청객인 황사가 기승을 부릴 시기이다.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실내서는 먼지가 들어오지 않게 창문을 잘 닫도록 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18

조선 왕실의 ‘검’

홍석봉 대구지사장 조선의 대표 도검 중 하나인 사진검(四辰劍)은 용을 상징하는 주술 목적의 벽사(8F9F邪)용 칼이다. 조선 왕실의 신령한 사진검이 경북 문경 고려왕검연구소에서 최근 다시 태어났다. 용을 뜻하는 진(辰)이 네 번 겹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사진검(四辰劍)은 청룡의 해인 올해(甲辰年), 4월(辰月), 13일(辰日), 오전 7~9시(辰時)에 만들어졌다. 장인이 6개월 정도 작업 끝에 수만 번의 단조작업과 담금질 과정을 이겨내고 완전한 검으로 태어났다. 사진검은 1m 약간 넘는 길이에 한 면에는 벽사 글귀와 용 형상이, 반대편에는 28수의 별자리가 상감기법으로 새겨졌다. 칼자루에는 사진검이라는 글자와 전통문양이 새겨졌다. 조선왕실에서 마를 물리치기 위한 참사검(斬邪劍)의 하나로 만들었던 사진검은 호랑이 기운이 담긴 사인검(四寅劍)보다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이 검은 사인검과 함께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선정된 장인에 의해서만 제작됐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만들어진 수량이 적은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유실돼 현재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조선왕실은 또 12년마다 한 번씩 호랑이해에 귀신을 쫓아내고 재앙을 막아준다는 사인검(四寅劍)도 만들었다. 사인검은 왕실의 종친이나 공신에게 하사했다. 조선말 고종황제가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하사한 사인검 한 자루가 10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전통 왕실 검은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공도 많이 들어간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칼이다. 사진검 등에 얽힌 일화를 찾고 이야기를 덧입히면 훌륭한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을 터이다. 새로운 K-콘텐츠의 탄생을 볼 수 있으려나./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