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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4월의 이야기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시인 박목월은 ‘4월의 노래’에서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며 꿈의 계절을 노래했는데, 영국 시인 엘리엇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깨우는 무엇이 있어서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의 4월에는 가슴 아픈 기억의 날들이 많다. 해방 4년 후 터진 제주 4·3사건은 탄압과 학살로 제주도민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고, 4·19혁명은 민주화로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으며, 10여 년 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들의 꿈을 노란 리본에 묶어버린 충격적인 사건이다. 참으로 잔인한 4월의 기억들이지만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보듬듯 화사한 봄의 정령이 우리 앞에서 하늘하늘 춤추고 있다. 청명날 맑은 공기 마시며 풍년을 빌어야 하고, 한식에는 예의를 갖추어 조상님 묘소를 돌봐야 하는데 이날은 또 산불 조심도 해야 한다. 지난 3월의 대형 산불로 인해 넓은 산림과 많은 마을이 새까맣게 잿더미가 되어 버린 기억은 아직도 마음속 잔불을 정리하고 있는데, 마음이 타고 있을 이재민에게 각계각층에서 보내준 온정의 손길이 이들을 치유해 주기를 바란다. 곧 식목일이다. 울창한 산림을 위해서 나무를 심는 것과 함께 관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목일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산림복구’라는 국가적 과제를 잘 수행하여 50여 년 전만 해도 황폐된 산림의 ‘복구 불가’ 판정을 받은 나라가 2020년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로부터 최근 25년간 산림 증가율 세계 1위, 산림 크기 4위라는 ‘기적의 나라’로 판정받았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식목일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정해졌었다. 60년 ‘사방(砂防)의 날’로 폐지되었다가 다음 해 복귀되었고, 2006년 다시 제외되어 법정기념일로 되었다. 그런 탓인지 식목에 대한 국민 인식이 줄어든 듯하니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및 생물 다양성 감소 등에 대한 인식 전환과 참여로 식목일이 국민 마음에 다시 살아나도록 힘쓰자. 공휴일이 아니더라도 단체 나무 심기 등으로 산림 보호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4월은 축제의 달이기도 한데, 이번 산불로 여러 지자체에서 예정된 식목 행사가 취소되었고, 포항도 이달 중순에 계획되었던 해병대 축제를 비롯하여 호미곶 돌문어 축제와 장량떡고개 벚꽃 문화축제도 연기되었다. 그러나 4월에는 부활절이 있다.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듯, 산불 피해를 입어 잘 곳과 생활 터를 잃은 주민들에게 사랑의 성금과 봉사활동으로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부활의 의지를 줘야겠다. SNS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식목일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었고 4월7일이 임시공휴일로 결정됐다고….‘끝까지 읽어보세요’ 한다. 뜻밖의 일이라 쭉 읽어봤더니 아! ‘오늘은 만우절’이라는 거짓말 6행 시였다. 남을 속이려는 ‘빨간 거짓말’은 아니고 그렇다고 남을 편안하게 하는 선의의 ‘하얀 거짓말’도 아니고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까만 거짓말’도 아닌데…. 만우절에 회색 거짓말일까? 4월은 그래도 봄꽃이 화려한 행복의 꽃밭이기를 기다려 본다.

2025-04-03

‘괴물 산불’에 당하고 보니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예기치 않았던 대형 산불이 영남지방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리산 기슭까지 파고들었고, 22일 경북 의성에서 성묘객의 실화로 시작된 대형 산불은 6일째 강풍을 타고 안동 청송 영덕까지 산과 마을을 까맣게 태우고 있으며, 25일 울산 울주군에서 일어난 2건의 산불은 거의 진화된 상태이다. 이들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는 진화 대원을 포함한 사상자가 50명을 넘었고 피해 면적 또한 역대 최고로 기록되었다. 산불을 진화하던 헬기가 추락하여 기장이 순직한 안타까운 일도 있다. 지난주에는 폭설이 쏟아져 붉은 설중매가 아름다운 봄날을 노래했었는데 이번 주에는 강풍을 타고 ‘괴물 산불’이 영남지역을 할퀴고 있으니 이 무슨 난리인가! 산불은 70% 이상이 소소한 실수로 인한 화재이다. 이번 산불도 비가 적게 내린 3월에 바싹 마른 낙엽이 쌓인 숲을 태풍급 바람을 타고 넘어 마을을 덮쳐 인명 피해도 엄청나다. 산림청은 산불 재난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하고, 정부는 해당 지역에 ‘재난 사태’를 선포하여 헬기 130여 대와 진화인력 4600여 명을 투입하여 산불 끄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불길은 커졌다 줄었다하며 마음을 태운다. 가장 심한 곳은 경북지방,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고운사의 가운루 등을 전소시키고 강한 남서풍을 타고 안동까지 타들어 가서 하회마을과 문화유산을 화재 위험에 빠트리며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문화유산 대피작전’을 펴게 했다. 산청 산불은 하동의 900년 된 은행나무를 불태웠고 영양 답곡리 산불에 400년생 만지송은 무사했지만 국가 자연유산 피해도 크다. 의성 산불이 안동까지 번지는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는 등 불붙은 나뭇가지나 솔방울 같은 도깨비불 비화(飛火)에 대한 행정 당국의 대응이 미숙했을 수도 있다. 수시로 안내문자를 보내어 주민 대피를 유도했지만 대피 장소의 알림이 확실하지 않고 주로 학교, 경로당, 마을회관이지만 먼 곳일 수도 있어 인명 피해가 큰 듯하고 거의 기동이 힘든 7080대 노인들이다. 이웃을 구하려던 영양군 이장 부부, 영덕 매정리 실버타운 입소자 3명이 이동 중 화염에 차량이 폭발하여 사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약 2만8000명의 주민들이 대피소에서 어려운 날들을 보내고 있으며 안동과 영덕은 전 주민에 대피명령이 내려져 있고, 건물도 300동 이상이 타버렸다. NASA 위성 관측 사진에도 우리나라 3곳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선명하고 산불 현장 항공 사진에는 산이 온통 새까맣다. 이렇게 산불이 확산하는 이유를 건조한 기후, 숲의 발화성, 지형적 요인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숲 가까운 건축물의 난연성 구조도 고려해 봐야 될 것이다. 또 주민들이 고통을 겪는 정전과 단수(斷水), 휴교, 철도와 고속도로 운행 중단에 대한 신속한 대응 지침도 마련되어야 한다. 산불 발생을 막아주는 큰비 소식은 거의 없고 다음 주부터는 맑은 날들이 계속된다니 반갑지만은 않다. 곳곳에 예정된 봄꽃 축제도 이번 대형 산불로 마냥 힘을 잃을 것만 같아서 좀 섭섭한 마음이다. 하늘이시여, 봄비를 흠뻑 내려주소서….

2025-03-27

설중매(雪中梅) 피어나듯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춘분(春分)을 이틀 앞둔 18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었고 3월 중순의 늦은 폭설로 수도권과 강원 및 중서부 지방은 온통 백설로 뒤덮혀 대형 교통사고도 이어졌다. 이는 북극발 영하 40도의 소용돌이 제트기류가 몰려온 기상 이변으로 남해고속도로 42중 추돌사고를 비롯해 영동고속도로 8중 추돌사고 등 꽃샘추위 속에 출퇴근 길이 어려웠었다. 포항 경주 지역에도 대설주의보가 내려져, 빙판길 주의하며 차량을 서행 운전할 것과 도로 결빙으로 미끄러짐 주의 등 안전안내문자가 날아온다. 울릉도에는 대설경보가 내려져 적설량 36.5㎝로 최고기록을 보였고 크루즈 여행객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주말부터는 다시 평균기온을 회복하여 최고 기온이 15도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저께 첫눈을 맞았다. 외출하려고 무심코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니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라 신기해서 손바닥에 받아보았는데 차가움보다 가벼운 감각이 봄을 느끼게 하는 듯 같았다. 앞 화단의 목련꽃 봉오리에도 매화꽃 잎새에도 내리고 있었지만 설중매(雪中梅)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곧 녹아버려 서운했다. 휴대폰에는 지인으로부터 보내오는 설중매 사진이랑 얽힌 얘기들이 쌓인다. 설중매는 굳건한 의지와 고결한 품격을 상징하며 옛 시인과 묵객들은 그 절개와 인내를 시와 그림으로 많이 남겼는데 상촌 신흠(象村 申欽)의 싯귀가 생각난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즉, ‘매화는 한평생 추운 겨울에 피어나지만 그 향기를 팔지않는다’는 뜻이다. 시골집 능수매화가 지난주 꽃봉오리를 맺었는데 이번 눈에 설중매가 되었는지, 또 오래전 봄날 통도사에서 보았던 빨간 자장매(慈藏梅)도 하얀 눈송이를 덮어썼을까? 춘분 지나 밤보다 낮이 길어지고 땅 온도가 오르면 봄이 완연해질 텐데, 1주일 전, 전남 영암과 무안에서는 뜬금없는 구제역이 발생하여 축산농가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고 화순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도 발견되어 당국에서는 방역에 최선을 다짐하고 있다. 우리 정치판은 아직도 탄핵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탄핵 될지 각하·기각될지 심판지연에 따른 여·야의 공방 속에 국민들은 봄 같지 않은 봄을 맞는 기분이리라. 윤 정부 들어 발의한 29번의 탄핵소추로 인한 정치 불안정의 파장은 국제적으로 퍼져나가며 미국은 우리나라를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정할 것이라는 말도 떠도는데 만일 다음 달 15일 확정된다면 외교적 신뢰 저하는 물론 국가 이미지 추락이라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 민감국가는 1954년에 도입된 이후,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 전 세계의 25개국에 낙인을 찍고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는 외교 문제가 아니고 과학기술관점에서 방첩, 첩보 등 에너지 보안이 허술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모양이다. 따뜻한 봄은 곧 온다. 이제 하얀 눈에 덮인 설중매처럼 굳건한 의지로 국제 신뢰를 쌓고, 고결한 품격으로 국내 분열을 가다듬어 새로운 나라의 봄날을 맞도록 하자.

2025-03-20

화이트데이, 파이데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이다. 굳이 ‘하얀날’이라 하지 않는다. 남자가 마음에 있는 여자에게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는 날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기념일로 자리 잡고 있으며, 1980년대 일본 제과업체의 마케팅 전략으로 탄생하였고 한국,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때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다져갔다는 사연과 짝을 이루는 날이지만 우리 조선 시대에도 처녀와 총각의 사랑 나눔 날이 있었다. 가을에 노랗게 익은 은행알을 주워 보관해 두었다가 경칩 날에 함께 까먹으며 은행나무 주변에서 사랑을 확인했다고 한다. 암수 나무가 서로 가까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봄날에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더니 주말엔 중국과 몽골 사막에서 발생한 황사가 북서풍을 타고 와서 온 천지에 누렇게 흙먼지 뿌리고 대기의 질을 나쁘게 할 것이라는데 화이트데이에 황토 먼지(yellow dust)를 뿌리게 되면 봄 내음이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려는 청춘남녀가 흙비에 젖게 되지는 않을지…. 이날 인연을 맺지 못하면 다음 4월 14일 솔로(solo)들은 흑갈색 짜장면을 먹게 되는 ‘블랙데이’의 외로움을 맛보게 된다. 4월에도 짝을 찾지 못하면 5월 14일 ‘옐로우데이’에 노란 카레를 먹으며 연애운을 빌어야 하는가…. 이날은 또 ‘로즈데이’라고도 하니 예쁜 장미 한 다발 주고받으며 사랑스러운 날을 보내야겠지. 이렇게 언제부턴가 매달 14일을 특별한 날로 정하고 젊음의 연애문화를 즐기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포틴데이(14일)’ 문화다. 즉, 1월 다이어리데이, 6월 키스데이, 8월 그린데이, 10월 와인데이, 12월 허그데이 등이 있고, 또 같은 숫자가 중복되는 3·3 삼겹살데이, 4·4 클로버데이, 6·6 고기데이, 8·8 라면데이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11·11 빼빼로데이까지…. 이러한 비공식 기념일은 상술의 한 방편이겠지만 소비자와 관련 기업의 상호 작용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자발적 참여문화가 그 기반에 깔려있으며, K-팝 K-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영향이 크고 소비도 촉진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경상도 사투리로 한마디 던져본다, “기념일 참 많데이!” 또 3월 14일은 201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수학의 날’이기도 하고 ‘파이데이’(π day)라고도 한다. 원의 지름과 원둘레 간의 기본 상수인 원주율 3.1415와 같기 때문이다. 이날 각급 학교에서는 갖가지 수학 관련 행사로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기도 하고, 또 그 발음이 둥근 빵 파이와 같아서 파이데이(pie day)라고 하여 파이 나누어 먹고 파이 굽기 대회도 하며 3·14마일 달리기도 한다니 참 재미있는 날이다. 희한하게도 이날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생일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여전히 뿌연 하늘 아래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은 듯 헤맨다. 황사를 뒤집어쓴 듯 마음을 덮는 무기력과 우울감을 극복하고 싱그러운 봄의 맑은 화이트데이를 만끽하려면 파이 대신에 파릇한 봄나물 캐서 전을 부쳐 먹으며 햇볕도 쬐고 행복 호르몬을 많이 만들어 봄을 타지 않아야 한다.

2025-03-13

생명이 움트는 3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3월 초순, 봄이 오는 길목이다. 그런데 훈풍에 화사한 꽃비가 내려야 좋을 계절에 영동할매의 심술인지 전국에 강풍을 동반한 차가운 눈비가 내렸다. 강원 영동에는 나흘째 폭설이 내렸고 제주에는 강풍이 불고 있다니 봄의 시작이 스산하다. 경칩에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겠지만 일찍 깬 개구리는 얼어 죽지는 않을까. 예부터 개구리 첫 울음소리에 농사의 길흉과 식복(食福)을 점쳤다고 하는데…. 다음 주에는 맑은 날씨를 회복하여 따뜻한 봄날이 될 것이라고 하니 겨울 가뭄에 바짝 마른 동해안은 그동안 내린 눈이 녹아 산불 염려도 한숨 돌리게 하고 파란 새싹을 움트게 할 것이다. 농촌에서는 밭갈이 나설 테고 옛날에는 임금님이 적전(藉田)에서 직접 농사지으며 선농제도 지냈다지만 올봄의 이 나라는 정부와 국회 모두가 국민의 삶은 뒷전인 듯하다. 각급 학교가 개학을 했다. 초등학교는 올망졸망 귀여운 아동들의 발걸음에 밝은 웃음소리가 가득할 테지만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전국 184개 학교로 작년보다 27개교가 증가했고 경북도는 42개교로 잠정 집계되어 전국 최고이다. 거기에다 입학생이 1명만 있는 ‘나 홀로 입학식’을 한 학교도 수십 개가 된다고 하니 출산율 감소와 수도권 집중 및 농어촌 공동화에 따른 지방소멸로 통폐합 또는 ‘줄폐교’가 늘어나고 있음은 나라의 미래를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대 정원도 해결하지 못한 정부의 고민도 크겠지만 교육체계 전반에 대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것이다. 국제관계도 걱정이다. 한반도에 동쪽 해양의 저기압과 서쪽 대륙의 고기압이 마주치면 난기류가 형성되고 비바람이 불 듯, 미국의 일방적 관세정책으로 중국 등이 반발하며 글로벌 무역전쟁이라는 암운이 예견되는 가운데 우리는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 미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무관세 교역을 하고 있는데 평균 관세가 4배라고 우기고 있으니 큰일이다. 더구나 트럼프의 광물 협정을 젤렌스키가 평화에 대한 의지로 받아들여 종전된다면, 그동안 현대전을 익힌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도발을 할지도 모르는, 봄도 봄 같지 않은 날을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우리 아파트 정원수들은 벌써 전지(剪枝)를 했다. 시원스레 잘려나간 가지들은 묵묵히 봄을 기다리며 조용하다. 불량 가지, 죽은 가지뿐만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가지, 혼자 쭉 뻗은 가지, 밑으로 자란 가지 등을 잘라내니 통풍과 채광이 잘되고 목련꽃 망울도 부풀고 있다. 시골집 배롱나무와 가죽나무도 가지치기하니 그 옆에 있는 매화꽃 망울이 눈을 뜬다. 서울 여의도 정원수들도 전지를 해야할텐데…. 올해 제21회 죽장 고로쇠 축제는 긴 겨울 가뭄으로 수액이 많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러나 3월 초, 사흘간 열린 울진 대게축제는 6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고 14일부터 강구 해파랑공원에서 열리게 되는 영덕 대게축제도 새로 개통된 동해중부선을 타고 오는 봄바람으로 흥청대는 풍성한 먹거리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생명이 움트는 3월, 정녕 봄처녀가 꽃향기 흩날리는 맑은 봄이 오리라.

2025-03-06

영동할매 내려온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벌써 2월의 끝날, 차가운 날씨가 조금 풀려 봄이 저만치 고개를 내미는 듯하고 이번 주말과 삼일절 연휴에는 전국적으로 약한 비가 예보되어있기도 하다. 음력 2월은 영동달(영등달), 제석달이라 하여, 초하룻날은 영동할매가 하늘에서 내려와 농사를 돌아보고 가정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날이라고 한다. 예부터 경상 전라의 남도 지방에서는 영동할매를 맞이하기 위해 정성 들여 굿을 하거나 마을마다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도 시골 마을 노인들은 새벽에 정화수 떠놓고 집안 두루 복됨을 비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농촌에서는 풍년을 빌며 농업신으로 받들어 영등고사를 지내고 제주도와 해안 지방에서는 풍신에게 풍어를 빌며 영등굿을 하곤 했다. 영동할매는 바람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음력 2월 초하루에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내려와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보름날에 하늘로 올라 가버린다는데, 며느리를 데려오면 깨끗한 다홍치마가 얼룩지도록 비를 내리고 딸을 데려올 때는 봄바람을 살랑살랑 불어서 예쁜 치마가 휘날리도록 한다는데, 영동할매도 며느리가 미웠나 보다. 그런데 며느리 치마를 젖게 한 비에는 풍년이 들고 예쁜 딸 자랑하려던 바람에는 흉년이 든다 했으니 ‘우순풍조(雨順風調)’, 즉 비가 때맞추어 고르게 내리고 바람이 곱게 불도록 영등제(靈登祭), 풍신제(風神祭)를 잘 지내야겠다. 그래야 봄이 오는 길목, 농한기가 지나서 밭 갈고 씨 뿌리는 계절이 평온할 것이 아닌가. 어릴 때 봄학기가 시작될 즈음, 학교에 가려고 나서는 나를 붙잡고 “영동할매 내려온다. 바람 부니까 조심해서 다니거래이….” 하시며 뺨을 부비고 옷을 추려주시던 우리 할매의 손길이 그립다. 그래서 ‘영동할매’라고 알고 있었는데 ‘영등할매’로도 부른다. 그때 엄마는 새벽녘에 우물가 장독대 위에 밥 한 그릇, 나물 한 접시, 물 한 사발 떠놓고 꿇어앉아 두 손 비비며 가족의 복을 빌었고 얇은 종이를 태워 날리며 높이 날아가라고 손을 휘저었던 소지(燒紙) 모습….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는 우리 민속이지만 상상 속의 영동할매 모습이 보고 싶다. 이날을 머슴날, 노비날, 구럭달개 등 많은 방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올해는 영동할매가 곱고 착한 며느리와 딸을 데리고 와서 따뜻한 바람과 함께 봄비를 듬뿍 뿌려 온 가정에 평온과 함께 사랑이 넘치게 하고, 어지러운 이 나라에 밝은 기운을 뿌려주고 올라가면 좋겠다. 음력 2월 영등절을 맞아 국가 안위에 두 손을 모아 본다. 지난 25일 대통령 탄핵 심판의 최종 변론이 종결되었다. 11차 변론까지 거치면서 엎치락뒤치락 말싸움을 해왔던 양측은 아직도 합당한 결론으로 이끌지 못하고 재판부의 평의를 거쳐 추후 3월 중순경 고지할 것이라 하는데 만장일치의 인용을 할지 기각, 각하 등의 심판이 내려질지는 예측이 어렵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도 시작되었으니, 두 싸움이 잘 풀려서 새로운 봄날이 피어나야 될 텐데. 2월 말 지나 다시 추워질 수도 있다는 꽃샘추위도 온다지만, 이제 농한기도 지나고 있으니 쌓인 눈 녹이고 새싹을 틔우는 따뜻한 비와 바람을 보내주시기를…, “영동할매, 부탁해요.”

2025-02-27

국제사회에서의 패싱 우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입춘이 지난 지도 스무날이 되어가는데 날씨는 여전히 봄날이 되지못하고 있다. 봄날이 올까를 기다리지 말고 두툼한 옷 입고 감기도 조심해야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4일이면 3년이 된다.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및 자기들의 땅 돈바스를 보호한다는 변명 아래 자신있게 밀어부친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대 전쟁이 되어 이미 양측의 전사자는 10만 명을 넘었고 우크라이나 주민 4만명도 피해를 입었다. 그동안 미국은 약 5천억 불을 지원했고 유럽연합도 약 1400억 달러를 지원했으며 러시아는 북한군의 지원을 받아 전투를 계속하고 있어서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은데 미국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평화조약을 권고하며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구적 중립을 바라며 NATO 가입을 반대하고, 침공으로 장악한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려는 의사를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그동안 원조를 아끼지 않은 EU를 배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안전이 보장되면 영토협정 등에도 긍정적이라 하지만 협정에서의 패싱은 아쉽다. 러시아는 그동안 국제 외톨이가 되었던 무대에서 복귀하는 듯하지만 유럽은 정상회담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미·러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정전협정에 전쟁 당사국이 제외되는 것은 우리도 경험했었다. 7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 38선을 3번이나 넘어다녔지만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이때도 유엔을 대표한 미국과 중국 북한 등 3개 국가만 서명했고 정작 피해국인 남한은 빠졌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권을 미국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한 탓이라고 하지만 약 120만명의 사상자를 낸 당사국으로 참여하지 못한 슬픔도 있다. 정전이냐 휴전이냐 논란도 있지만 약소국의 발언권이 없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유엔군의 막강한 전투력에 힘이 빠져버린 중공군이 휴전선 긋기에 동의한 것이다. 나라는 강해야 한다. 트럼프의 고집으로 무역전쟁도 예고되고 있다. 관세 폭탄부터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수출에도 관세가 부과되는 등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전략에 속수무책인 듯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가? 계엄과 탄핵으로 국가기능이 거의 마비되는 듯 헐떡이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수감되어있고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은 궐석이고 육군참모총장도 없고 경찰청장도 탄핵 대상이며 감사원장도 없다. 나라가 이 꼴인데 국회는 야당 천지가 되어있고 얼어붙어 있던 미국과 러시아는 정상화되는 듯 리셋되고 있다. 바야흐로 관세전쟁이 시작되고 있어 철강 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와 반도체까지 몰아붙이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고 이끌어야 할 정부가 공백 상태이니 누가 우리를 보호할 것인가. 미국은 현지 투자를 유치하려는 전술이니 우리 기업들이 관세 폭탄에 몰려 그곳으로 가버리면 국내 산업은 어찌될 것인가? 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인데 미·중·러 강국의 사이에서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코리아 패싱이 되지 않도록….

2025-02-20

하늘아 사랑해, 미안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대전의 한 초등학교 선생이 같은 학교 8살 1학년 여학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같은 학교 내에서…. 뉴스를 접하는 순간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냐!’ 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곧 뉴스와 SNS를 달구는 사건의 진상을 대하며 교사의 범행, 아이의 안타까움에 비통한 마음으로 학교 현장의 정신병을 읽어야 했다. 미술학원에 오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고 학부모와 경찰이 휴대폰 위치추적으로 겨우 사건 현장을 찾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아이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우울증을 겪고 있던 40대 여교사가 돌봄교실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어린 여학생을 교내 시청각실로 유인하여 준비해둔 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자신도 자해했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건이다. 교사는 학생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냥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우발적 범죄도 아닌 계획범죄임이 분명하고 조현병이라는 정신분열 상태도 의심된다. 이 교사는 우울증 증세로 병가를 신청하였으나 곧 20여 일 만에 복직하였고 사건 며칠 전에 컴퓨터를 부수고 다음 날 동료 교사를 폭행하는 등 교직자로서 자질은 물론 인간성 자체를 상실한 듯하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지원청의 권고를 듣고도 강력한 통제를 하지 못하여 이런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학교는 교육을 위한 곳이고 교사의 덕목은 제자를 사랑하는 일이 우선이며, 열정과 친절, 배려로 제자들을 사회에 우뚝 서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교육의 뜻에서 가르치는 교(敎)도 중요하지마는 정신적 가슴으로 품어주는 육(育)이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이번 ‘하늘이 사건’은 학교폭력을 넘어선 살인 사건이니만큼 교사의 정신 건강 관리와 학생 안전문제에 있어 교육계 전반에 걸쳐 교육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실은 신성한 학문의 전당이니 스승과 제자는 서로의 정을 나누는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요즘 학생 수 감소에 의한 교직의 불안감과 학부모의 갑질로 인해 교직이 극한 직업이라는 말도 나돌고 있으니 교사들의 정신적 안정에도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12일 교육부장관은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 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가칭 ‘하늘이 법’ 추진을 제안하였고 국회도 당정협의회를 거쳐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였으니 이제 학교도 교사도 학생들도 모두 안전하고 사랑 가득한 교육환경 속에서 가르침과 배움을 엮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본 바와 같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교사 자격이 염려되는 교사를 휴직 또는 파직시킬 수 있도록 ‘질환교원 심의위원회’ 활동도 강화되면 좋겠다. 질병 휴직과 복직에도 전문의료진 진단을 의무화하고 비뚤어진 일탈 행위에도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학교폭력예방법, 아동복지법 등을 보완하여 안전해야 할 학교,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학교가 되도록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겠다. 영정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소녀 김하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하늘아 사랑해, 미안해.”

2025-02-13

입춘, 봄이 온다는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봄이 저만치 오는데 매서운 한파가 몰려오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이 영하권에 들어서면서 곳곳에 한파 특보가 계속되고 있다. 한파주의보는 영하 12도 이하 날씨가 이틀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되는데 포항 경주 구미 등 전국 17개 지역에 내려졌고 경북 북부는 한파경보까지 내려졌었다. 여기에 전남, 전북과 울릉도, 독도는 대설경보까지 내려져 교통안전에도 비상이 걸렸고 항공기 여객선도 결항하고 있다. ‘입춘 추위는 꿔다해도 한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한 2월 초순의 날씨다. 체감기온이 영하 20도가 된다는 이번 추위와 강풍은 주말까지 이어진다는 예보이니만큼 기저 질환자나 65세 이상 노인들은 야외활동을 삼가고, 이곳 동해안 지역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화재 예방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입춘이 지나면 봄이 오겠지만 마음을 모아 빌어보기로 하고 입춘이 드는 3일 밤 11시 10분을 기다려 입춘첩을 현관문에 붙였다. 늘 써오던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대신에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사태가 염려스러워 나라의 안녕을 염려하며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의 입춘축(立春祝)에서 하나를 뽑아 반반 섞어서 ‘입춘대길 국태민안’으로 써 붙였다. 현관을 깨끗이 닦고 들어와서 설날 자식들이 선물로 준 견과류를 깨물며 ‘부럼깨기’도 했다. 그리고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의 입춘방(立春榜)처럼 다음 날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 바닥도 쓸었다. 어디서 금덩어리가 나오는 복이 오려나…. 시골집 기둥에도 입춘첩을 붙였는데 이 나라의 입춘첩은 어떤 것을 붙일까? 대통령은 구치소에 있으며 탄핵과 특검에 묶여 국회와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있으니, 비바람이 순조로워 시절이 평화롭고 풍년이 들도록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8C50)을 마음에나마 붙여볼까. 바다 건너 미국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보호무역의 현실화를 들먹이며 관세 전쟁으로 가려는 위험이 크다. 국경 접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 협상이 극적인 타결을 이루어 30일간 유예됐다지만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10% 추가 관세 등에 서로의 문을 닫아 난맥상이다. 이에 우리의 반도체, 철강산업, 2차 전지의 수출 대외 리스크는 최악의 침체와 더불어 환율도 높게 치솟고 있으니 특히, 수출의존도가 중국에 32% 미국에 16.2%로 높은 경북은 무역 한파에 비상이 걸릴 듯하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말이 있듯이, 세계적 무역 한파에 그동안 잘 담가 놓았던 한국의 대외수출품 장독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데 정계는 장독 돌볼 생각도 하지 않고 여전히 추운 천막 속에서 홍매가 피나 백매가 피나…. 서로의 뿌리만 갉아 대고 있으니 밝은 봄날을 기다리는 국민은 입춘대길만 읽을 뿐 가슴이 아프다. 장성동 천마지 둘레길을 걸어봤다. 숲길 옆 진달래는 아직도 콩알만 한 꽃봉오리가 맺혀있고 출렁다리 지나며 내려다본 얼어있는 못가엔 청둥오리 몇 마리가 조용하다. 그러나 이제 곧 봄이 오려니, ‘입춘에 비 오면 풍년이 든다’ 했으니 어저께 뿌린 눈발이 땅을 적셔 풍년이 올 것을 믿는다.

2025-02-06

6일간의 긴 설 명절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24절기 마지막 대한(大寒)도 지났다. 소한 땜을 하느라 한파가 지나갔는지 조금 푸근해진 날씨에 성질 급한 꽃망울들은 맺기 시작하는데 심술꾼 미세먼지가 서북쪽 대륙에서 ‘나쁨’으로 밀려오더니 ‘낮음’으로 되다니 다행이다. 내일부터 ‘푸른 뱀띠해’의 설날 연휴가 엿새나 이어지는데 이 긴 명절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행복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주말과 연휴 사이의 27일이 월요일이라 정부에서는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며 6일간의 황금연휴를 만들고 ‘민생경제 회복의 확실한 계기로 삼겠다’며 관광 활성화와 내수경기 진작을 위하여 국내 여행과 착한 소비를 부탁하고 있다. 여기에다 31일이 금요일 샌드위치 데이라, 연차 휴가를 쓰게 되면 2월 2일까지 무려 9일간의 연휴가 된다. 이제 곧 입춘인데 따뜻한 마음의 휴가를 계획해 보자. 우리의 세속 풍속인 설날에는 정성껏 차례상을 차려 절하고 예쁘게 설빔 입은 자식들에게 세배받고 세뱃돈을 주며 덕담도 들려준다. 그리고 하얀 떡국을 따뜻하게 끓여 먹으며 또 한 해 가족의 행복을 빌어보는 것이다. 옛날 정월 초하루 전후한 날 밤에는 ‘야광귀’라는 신발 귀신이 와서 뜨락에 벗어둔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신발을 빼앗기면 1년 동안 불운(不運)이 닥친다고 신발을 방 안에 숨기거나 벽에 체를 걸어두었는데, 야광귀가 체의 구멍 수를 세다가 날이 새어 돌아간다는 재미있는 얘기도 있다. 요즘은 복조리를 사서 복을 담아보라는 복조리 장수도 사라졌다. 올해의 귀성길은 더욱 붐비겠다. 10일간 약 3500만명의 대이동과 설 당일에만 600만명이 예상되어 당국에서는 안전관리 강화에 주력하고 있으며 설 연휴 4일간(27~30일) 전국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한다. KTX, STX 등 열차도 최대 40% 할인하고 국내선 공항과 여객터미널 등의 주차장도 감면하고 있으니 모처럼의 긴 설 연휴를 맞아 고향의 부모님을 찾는 마음이 좀 더 편안해졌으면 한다. 또 고속버스 시외급행버스도 증편 운행한다고 하니 차량운행도 대폭 늘어나는 만큼 안전 운행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향 나들이를 더 즐기도록 지방자치단체들은 각자의 관광계획을 내놓고 있는데 포항은 기계 문성리에 있는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과 남양 홍씨 종택을 전면 개방하여 고향의 정을 흠뻑 느끼도록 할 계획이다. 6일간의 긴 연휴 동안 많은 친족과 지인들을 만나서 밝은 인사 나누며 명절 놀이하며 모이는 곳에 요즘 급성 호흡기 질환인 독감 등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위생관리에도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특히 이번 독감은 RSV 바이러스 감염으로 기침 가래 콧물과 인후통 등 영유아와 고령층에 치명적이니만큼 의심자 접촉을 삼가며 개인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여 모처럼의 가족 만남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건당국도 ‘응급의료체계 유지 특별 대책’을 발표하여 다음 달 5일까지 응급의료 분야의 부족 등 중증 응급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한다. 아무쪼록 긴 설 연휴에 너무 마음을 풀지 말고 알뜰한 계획과 안전 수칙 등을 잘 지켜서 ‘소한 얼음 대한에 녹듯’이 따뜻한 설날을 보냈으면 한다.

2025-01-23

지는 햇살이 만든 햇귀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한파(寒波)를 밀고 내려오던 동장군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한 지난 14일 늦은 오후, 평년 기온을 회복한 겨울 바닷가를 나가보았다. 영일대 난간에 기대어 서쪽을 보니 붉은 윤슬을 가르며 제트 보트가 달리고 그 건너 해변에는 저녁나절의 산책을 즐기는 모습들이 어른댄다. 파도가 쉴새 없이 밀려오는 넓은 모래밭을 걸으면 물결이 밀려왔다 간 흔적 위에 많은 고둥 껍질이 예쁘게 깔려있고 흰 갈매기들이 몰려다닌다. 그 가운데 모이를 던져주는 소녀 주위에는 수십 마리의 갈매기 떼들이 몰려드는데 부근을 지나는 내 얼굴을 스치듯 하여 놀라기도 한다. 지난해 무안공항 참사의 원인이기도 한 갈매기 떼, 그러나 겨울 해변에서 활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새떼들이다. 해변에 찍힌 갈매기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무안공항 참사를 떠올려본다. 대형 참사가 나면 으레 ‘시체 팔이’를 하던 정치집단들이 희한하게도 이번 대형 인명 참사에는 조용하니 참 신기한 일이다. 입지조건이 좋지 않은 해변에 공항 건설을 한 것부터가 잘못이고 운항 허가도 졸속이라고 하는데도 아무런 투쟁이 없다니 어쩐 일인가.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며 천천히 걸어서 모래밭 끝 방파제까지 가서 바위에 앉아 쉬려는데 뒤쪽에서 붉은 햇살이 비친다. 저녁나절인데 웬 일출인가 하고 동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바다 건너에서 해돋이처럼 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환호공원 위에는 스페이스워크가 어깨에 힘주어 과시하는 듯 우람한 자태가 있고 그 옆 고층아파트의 넓은 유리 벽이 지고있는 태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겨울의 저녁녘에 해가 돋을 때의 빛 즉, 햇귀를 보는 듯한 신비로운 마음에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금새 그 모습은 사라지고 스페이스워크 위로 보름달이 떴다. 마침 보름쯤이라 일몰과 월출 시간이 비슷하게 오후 5시 30분경이었기에 묘한 느낌이었다. 조금 어둑해지고 갈매기 떼들도 자취를 감출 때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마음도 씻었다. 15일 아침, 윤 대통령이 체포되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3일 만에 공조수사본부의 억지스러운 행위로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유혈 충돌 없이 재집행 6시간 만에 완결되는 현장을 보면서 저녁의 햇귀 풍경을 떠올렸다. 계엄의 정당성을 떠나 그렇게나 완강하게 버티더니 왜 관저의 뒷문으로 잡혀 나갔을까? 자신 있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국민 앞으로 나와 계엄의 속뜻을 피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는 햇살도 아파트 유리에 비치면 빛나는 햇귀라도 보여줄 수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상황을 보면, 트럼프 취임, 동유럽 전쟁,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 등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가 산더미인데 걱정이다. 햇귀 현상이 사라진 힘 빠진 저녁 바다를 되돌아오면서 보니 모래 위의 발자국은 지워져 버렸고, 방금 지나온 발자국도 밀려오는 물결이 지워버린다. 시골집에 노란 납매가 한창 피어 향기를 뿌려준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꽃이 더 향기롭다고 하니, 우리도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면 더 밝고 힘찬 국가가 되리라 믿는다.

2025-01-16

을사년에 바라는 것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새해는 돋았으나 예년과 같이 밝고 희망찬 아침이 아니다. 지난 연말 일어났던 제주항공 참사가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전국에 설치된 분향소에 밀려와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는 연말연시에 정치계의 계엄 잡음 또한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탓이다. 대통령 체포 명령이 5시간 대치 속에서도 성사되지 못하고 재차 시도를 계속하는 체포-사수의 공방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갉아내고 있으니 ‘새해답지 않은 새해’를 맞고 있는 심정이다. 이렇듯 나라가 두 쪽으로 나누어진 듯하니, 날씨도 두 쪽인 듯…. 소한(小寒) 집에 대한(大寒)이 놀러 왔는지 서해안엔 강풍과 함께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며 눈발이 날리고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는데 이곳 동해안에는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산불을 조심하라니 작은 나라가 이렇게 날씨마저도 갈라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안쓰럽다. 올해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이다. 천간(天干) 을(乙)과 지지(地支) 사(巳)는 각각 나무와 불의 기운을 상징하며 생동감과 도전을 의미한다. 또 뱀은 통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겨울잠 자는 동물이라 을사년은 ‘지혜로운 변혁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되니 그 잠에서 깨어나 나라를 바로 일으켜주었으면 한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앰블럼에는 지팡이를 감고 있는 뱀이 그려져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은 ‘치유의 신’, 불교계에서는 비와 땅을 관장하는 ‘풍요의 신’으로 여기고 있으니 올해에는 푸른 뱀의 기운을 받아 사회적 육체적 모든 병이 없어졌으면 한다. 마침 올겨울부터 호흡기 질환이 급격히 늘고 있어 가뜩이나 의료대란으로 인해 패닉 상태가 되어있는 전국 병원들이 포화상태를 염려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을사년의 기운으로 사라지길 바란다. 지난 6일 포항상공회의소는 신년인사회를 가졌다. 국내 사태로 인한 민생경제의 내리막과 트럼프 차기 정부가 벼르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으로 부의 양극화와 지방소멸 위기에 따른 저성장 진입을 우려하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올 10월 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회의는 태평양 연안 21개국에서 6천여 명의 경제인들이 참석하는 국제행사이니만큼 잘 계획하고 추진하여 세계로의 날개를 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는 꿈을 키우자. 또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국회의 예산 삭감으로 어려워진 듯하지만 우리 경북의 힘으로도 큰 고래가 물을 뿜어 올리듯 동해안 해저에서 석유가 솟아오르게 할 수 없을까? 어디 그뿐이랴. 1월1일부터 개통한 포항∼속초간 166.3㎞ 동해중부선 운행으로 동해안이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다. 한반도 호랑이의 척추 위를 달리는 iTX 철마가 대구, 부산에서 업고 온 기운으로 울진 삼척까지 달려 새로운 동해안 시대를 열 것이며, 아울러 연말에 포항-영덕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포항은 동해의 중심으로 일어설 것으로 기대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포항시는 사자성어 ‘총화전진(總和前進)’을, 시의회는 ‘운외창천(雲外蒼天)’을 내걸었으니, 근래 철강산업의 부진으로 조금 위축되었을 산업역량도 회복시켜 보자.

2025-01-09

해넘이, 해맞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해가 바뀌었다. 태양은 변함이 없는데 연도(年度)가 바뀌었다는 말이다. 갑진년 마지막 날 해넘이를 보려고 기계읍 변두리 시골집으로 갔었다. 마을 앞을 나서면 봉좌산과 운주산이 나란히 서 있는데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이내 봉좌산 허리에 황금빛 태양이 걸린다. 일몰 시간은 5시 20분경, 찬란하게 빛나던 태양이 산 뒤로 숨어버리고 들판은 어둠에 젖는다. 산의 실루엣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냈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저 태양은 14시간 뒤 다시 동해에 떠오르겠지. 한 해의 끝날 자정에 마음을 편히 하고 보신각 타종행사의 TV 화면을 본다. 여느 때 같으면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신나는 공연이 있겠지만 올해는 조용하게 시민 대표 15명이 종방망이로 33번 울릴 뿐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제주항공의 무안공항 참사로 179명이 사망하여 1월 4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한 탓이다. 연말을 맞아 방콕 여행을 다녀와서는 공항에 내리지도 못하고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린 영혼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전국의 새해맞이 타종행사는 축소되거나 취소되어 새해를 즐기지 못하고 분향소 앞에 묵념하게 되어 축제가 추모의 장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겠지만 여러가지 의혹을 풀어서 다시는 그러한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계엄과 탄핵의 어지러움에 울화통이 터지는데 울고 싶은 심정의 국민은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어김없이 또 새날은 밝았다. 차가운 새벽에 해돋이를 보려고 두껍게 입고 영일대 바닷가로 걸어 나갔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해변으로 이어진 골목을 메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먼동이 튼 바닷가에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고 바닷물이 밀려오는 모래밭에 길게 늘어선 모습 또한 장관이다. 인파를 헤치며 영일대 쪽으로 걸어갔더니 입구는 막아두었고 바리케이드가 길게 쳐져있었다. 광장에는 어느 사찰에서 떡국을 끓여 나누어주고 있기에 한 그릇 받아서 먹고는 일출을 기다리는 인파 사이로 파고드니 영일만 건너 호미반도 위로 해가 솟는다. 어제저녁 봉좌산 뒤로 사라졌던 그 해는 다시 솟아올랐지만 이제 을사년의 해이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위태로운 국가의 안녕과 집안의 평온을 빌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호미곶에도 전국에서 온 3만여 명의 인파가 상생의 손 해맞이를 보러왔지만 공식행사는 취소되고 해맞이 공원에 설치한 추모의 벽에 글을 남길 뿐이었다. 새해를 맞아 경북도는 초일류 국가를 위해 ‘멈추지 않는 도전, 희망의 경북 시대’를 신년 화두로 내 걸었고, 포항시는 ‘미래 성장, 도시 활력, 시민 중심, 생활 행복’ 등 4대 시정 목표를 세워 바이오, 수소, 2차전지 등 3개 분야 특화단지 조성과 함께 POEX(포항국제컨벤션센터) 추진에 힘을 쏟겠다고 한다. 탄핵 정국으로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 등 민생 경제의 어려움과 미국 트럼프 취임 후 예상되는 국제정세도 걱정이 크겠지만 ‘매일이 새해 첫날이라고 생각하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빛나는 한 해가 되도록 스스로 응원하며 다독이자. 작년에 못다한 일들을 아쉬워하지 말고 새해엔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마음속의 종을 울려보자.

2025-01-02

새마음 새 각오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아기 예수가 태어나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내려준 성탄절도 지나고 이제 더 밝은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며 뱀띠의 해 을사년(乙巳年)을 맞는다. 국내외적으로 모두 어수선한 가운데 31일 자정에는 서울 보신각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묵은해의 액운을 떨치고 새해를 기원하는 타종식이 열린다. 경북도는 영덕 강구 삼사해상공원에서 ‘2025 도민화합 새해맞이 타종식’을 하며 경북대종을 33번 두드린다. 이에 앞서 송년음악회와 함께 ‘청사(靑巳)조형물에 소원지 붙이기’도 하고 광장에서는 먹거리 부스도 열어서 심야의 추위를 녹여주며, 고래불과 대진해수욕장에서는 해돋이 손님맞이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경주는 신라 대종과 봉황대 일원에서 가수와 성악가의 식전공연과 함께 타종식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포항시는 호미곶 한민족해맞이 축전을 준비하여 ‘너와 나의 빛, 상생의 2025’를 슬로건으로 5년 만에 해넘이 행사도 하고 미니 불꽃 쇼와 함께 자정에 카운트다운을 하며 해돋이 축제가 계속된다. 버스킹 페스티벌, 월월이청청 등으로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고 화합과 도약의 마당을 즐기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행사 모두 추운 겨울밤 야외에서 하며 포항과 영덕은 해풍도 예상되어 방한복은 물론 모자 장갑 등을 챙겨야 하고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또 상생의 손 뒤로 솟아오르는 새해 첫 일출을 보며 거대한 가마솥에서 끓여내는 떡국을 먹으며 국가의 안위와 가족의 건강과 평온을 빌어보자. 일출시간은 오전 7시 32분, 날씨는 맑음이다. 새해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진 지 120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을 꼬드겨 양보를 받아 강제로 체결한 불평등조약이다. 그 뒤 36년간 식민통치를 당한 쓰라린 역사가 있는데, 현재와 같은 미·중·러의 국제관계 속에 북한까지 거들고 있는바, 그때의 늑약(勒約)이 스멀스멀 뇌리에 스치는 것도 국내 정치계가 염려되는 마음 탓일까? 대통령 탄핵과 미국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에 따른 국격 하락의 위험성과 경제 불확실성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고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도 2년째, 지금도 가자 지구에는 폭격이 끊이지 않아서 이번 성탄절의 베들레헴은 2년째 크리스마스트리가 없고 순례객과 여행객들이 한산하다고 한다. 이렇듯 불행한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교황청은 25년마다 시행되는 희년(禧年·jubilee)을 맞아 성베드로 성당문을 열고 옛날 유대인들의 노예를 해방했듯이 희망과 용기로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을사년에 나라를 잃고 일제의 억압을 받아 나라의 분위기가 흉흉하고 스산하다고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생겼다지만, 뱀은 지혜롭고 야망이 있어 새로운 시작과 변화를 이끌어 사태에 굴하지 않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지녔다고 여기고 있으니, 이번 을사년에는 그 역사를 거울삼아 국민 모두 새마음 새 각오로 이 나라를 반듯한 모습으로 세계 속에 서게 해야 할 것이다.

2024-12-26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이제 올해도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청룡의 꿈’으로 시작된 갑진년이 마음의 평화를 심어주며 내 일상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하루하루 일상과 마음을 적어온 일기장을 다시 넘겨보니 꽤 많은 날들이 빈칸으로 남아있다. 매일 썼다고 생각했는데 하얀 공백으로 있으니 나의 게으름일까? 마음의 평화였을까? 어찌했던 큰 어려운 일없이 보내게 된 한 해였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과 후회 없는 날들의 추억으로 채워야겠다.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축하하려는 장식 불빛이 현란하게 반짝이고 집에도 작은 꽃등을 달아두니 한 해의 정리와 함께 밝아오는 새해에 대한 마음이 곱게 물들어 온다. 그러나 느닷없이 터져버린 계엄 선포와 연이은 대통령 탄핵 소추로 국민은 충격과 허탈감에 빠졌으리라 보지만 나의 마음 또한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는 연말을 넘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내수침체, 환율 상승 등 경제 부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음이 안타깝다. 근래 부정 선거 논란에 휩싸인 국회의원 선거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지만 금메달 13개로 세계 8위에 오른 파리올림픽은 우리의 자부심을 높였다. 나를 돌아본다. 크게 기뻐할 것도 심각하게 가슴을 졸였던 것도 없었던 평범한 1년이었나 보다. 올해 초에 계획했던 일들은 대부분 잘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문화원과 주민센터에서의 자기 계발 학습이다. 중국어를 배우며 덕분에 어학 실력을 쌓았고, 묵향을 맡으며 붓을 놀렸던 한글서예와 문인화 수업은 숨어있던 나의 취향을 일깨웠고 매주 동호인들과 목청껏 불렀던 가곡교실의 즐거움은 젊음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기에 내년에도 강좌에 적극 참여하여 늙어가는 내적 역량을 유지하고 싶다. 나이가 먹을수록 육체적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큰 병 없이 1년을 지나왔다는 것 또한 다행이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한 맨발 걷기는 여전히 여러 숲길과 해변 모래밭을 걸었더니 작은 아픔이 사라지는 것 같고, 고교 동문들과의 매달 산행에도 참여하여 나름대로의 체력을 유지하여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정신적 활동은 뭐니해도 나의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올해로 불혹의 나이가 된 형산수필 모임은 소담스럽게 가꾸어온 글밭의 낱알을 모아 제40집을 엮고 지난주 출판기념회를 하며 여러 문인들의 호응도 받고 보니 힘이 솟는다. 그 응원으로 신문칼럼도 수년간 계속하고 있으니 나대로의 글쓰기 힘을 기른 셈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독서인데 매달 독서량을 채우지 못해 반성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뿌듯한 것은 두 번의 가족 해외여행이다. 멀지 않은 베트남과 일본을 둘러보았지만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루었으니 내년에는 좀 더 먼 곳에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싶다. 며칠 남지 않은 날 동안에 지난 계획을 되돌아보고 점검하여 못다한 부분을 채우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써 보내어 새해 인사를 해야겠다. 내년에도 ‘맑은 마음 밝은 얼굴 고운 말씨’로 살아가려 한다.

2024-12-19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마세요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며칠 전 조금 풀린 날씨에 철길숲을 걸어보려고 갔었는데 낮게 걸린 현수막이 하나 보였다.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무슨 말이지? 하고 가까이 가봤더니 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 됐다는 것이었다. 평화의 상징인 하얀 비둘기가 해를 끼치는 동물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참새 까치 까마귀 등 15종류와 함께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유해 조류로 보는 이유는 첫째, 잡식성이라 배설물이 깨끗할 리 없고 둘째, 배설물이 강한 산성이어서 문화재와 건축물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셋째, 이곳저곳 많이 날아다니기에 깃털의 바이러스로 인해 아토피성 피부염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도 이미 비둘기와의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영국은 모이를 주었을 때 벌금부과를 하고, 프랑스는 집을 지어주고 산란하면 깨어버리고, 스위스는 알 바꿔치기를 하며, 미국은 불임약을 먹여서 개체 수를 줄인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전 세계에 약 300여 종이 있으며 우리나라는 멧비둘기, 집비둘기와 천연기념물 215호인 흑비둘기를 포함하여 8종류가 있다. 이 중에서 집비둘기를 환경부가 유해 동물로 지정하자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비둘기를 곱게 보는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포획보다는 굶기거나 불임약을 주어 개체를 줄이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비둘기는 1년에 1~2회 번식하지만 도심에 살고있는 경우 4~5회 정도 번식하여 개체 수가 증가 하는데, 이는 도심에는 매와 황조롱이 같은 천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역에 약 100만 마리 가량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서울 경기에서 5년간 비둘기 수는 3배로 증가하였고 비둘기 관련 민원이 3000 건에 육박하고 있는데, 86아시안게임에서 3000 마리를 평화의 상징으로 날려 보낸 것이 개체 수 증가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참새와 까치도 무리 지어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주며 까마귀도 전신주에 앉아 전력시설에 장애를 주고 있다. 도심 속 비둘기는 몸을 씻을 만한 곳이 마땅찮아 깃털에 병균이 많이 붙어있다. 또 사람들이 먹고 버린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탓에 배설물로 뇌수막염이나 피부염 같은 질병을 옮기기도 한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낮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지자체마다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에 대한 조례가 정해져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할테니 공원이나 길에서 무리지어 노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즐기던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우리에게 ‘퍼주기 정책’, 즉 포퓰리즘이라는 것이 있다.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지역화폐(지역사랑 상품권)의 국고지원 의무화 법안도 올해 세수 부족 30조원 이상으로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지지나 않을지 우려되니, 좌파 정권에 의해 1970년대 부국에서 빈국으로 떨어진 베네수엘라를 교훈 삼아 우리 전 국민 1인당 25만원 현금 지급하겠다는 발상도 접어야한다. 스위스는 성인 월 300만원을 무상지급하려는 기본소득제를 국민 77%가 반대하였다. 일을 하지않으려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 무차별 복지에 대한 반대였다.

2024-12-12

함께하는 선율, 하나 되는 마음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 경상북도교육청 문화원 대공연장에서 참으로 따뜻한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학생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렸다. 청하중학교와 포항명도학교의 ‘함께하는 선율, 하나 되는 마음’의 합동 연주회였다. 첫 순서는 포항명도학교 어울림 학생 오케스트라. 각자의 악기를 들고 차례로 조용히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그 넓은 무대가 꽉 찬다. 인사를 하고 지휘자의 손놀림 따라 ‘미녀와 야수 OST’ 등 4곡을 진지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일반 연주자들 못지않다. 포항명도학교는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이며 1989년에 개교하여 현재 유치-초-중-고등 및 전공과 등 약 260여 명의 학생이 70여 명 선생님에게 알뜰한 사랑의 교육을 받고 있다. ‘어울림 학생 오케스트라’는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해 2013년에 창단하여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편견의 벽을 허물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연주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단원들은 국내 최고의 장애인 예술단을 목표로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창단 이후 매년 연주회를 가져 올해 10회째이고 여러 관현악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대상, 금상을 수상하고 장애를 뛰어넘어 서로 협력하고 조화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하여 음악을 통한 소통의 기회를 주고 있음이 훌륭하다. 다음은 임종식 경북교육감이 ‘삶의 힘을 키우는 따뜻한 경북 교육’이라는 비젼을 얘기한 축사에 이어 내빈 소개가 있었고, 이날 특별 출연한 경북도교육청 ‘온울림 앙상블’의 창단 연주회가 이어졌다. 명도학교 어울림 앙상블을 모태로 하여 피아노, 클라리넷 각 1명, 바이올린 2명으로 구성된 경북도교육청 장애인 예술단으로 올해 10월 1일 창단하였다니 이번이 제1회 연주회인 셈이다. 쇼팽의 즉흥곡 1번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누르는 손놀림을 보면 장애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듯, 발달장애인들이 성인으로 성장해 나가며 잠재적 재능을 발견하고 이끌어내는 자립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 진정한 연주 활동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다음은 청하중 관송오케스트라 연주로 ‘공감’을 주제로 한 ‘아리랑 판타지’를 포함한 3곡과 독창 2곡을 들려주었다. 2014년 윈드오케스트라로 창단한 후, 8년 뒤에 100명이 넘는 관현악단으로 성장하여 14기 예술꽃 씨앗학교(문화체육관광부) 및 새싹학교로 선정되어, 음악을 통해 청소년기 감수성을 계발하여 전인적 인재로 키워가며 사회와 재능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올해 제9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하였으며, 8월엔 제7회 학생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서 금상 수상을 하는 등 경북을 대표하는 학생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높이고 있음이 지방 중학교의 뿌듯한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순서로 두 학교의 합동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우리의 꿈’과 ‘흰수염 고래’를 듣고 앙코르까지 외쳤다. 2시간 반 동안 가슴 가득 사랑의 연주를 들려준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키우고 가르쳐준 학부모와 선생님들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두 학교가 마음을 같이한 연주를 계속하여 기쁨과 감동을 나누어 주길 바라며….

2024-12-05

봉좌마을 분옥정(噴玉亭)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포항시 북구 기계면의 봉좌산 기슭에 있는 분옥정도 지난 8월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기에 찾아봤다. 기계읍을 흐르는 기계천 옆길을 따라오다 보면 울창한 기계숲 맞은 편에 분옥정(噴玉亭)이란 표석이 있다. 다리를 건너 사과밭 사이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폐교된 기남초등학교 자리에 농촌체험센터가 있고 한참 올라가면 아담한 마을 끝에 분옥정이 자리하고 있다. 안내문을 읽고 고택 마당으로 들어가니 400년 된 노송과 모양 좋은 향나무가 맞이하고 한시비(漢詩碑)를 지나 들어간 넓은 잔디밭에는 일암정(逸菴亭)이 있고 오른쪽에 낡은 정자가 있어 개울까지 내려가 봐도 현판은 걸려있지 않았다. ‘옥(玉)을 뿜어낸다’는 보물 정자-분옥정을 찾았는데 현판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나와서 안내판을 읽고 개울가에 있다는 정(丁)자형 건물을 찾아보니 아까 보았던 그 정자다. 둘러보니 마루 밑에 땔감이 수북한 보물 같지 않은 낡은 정자다. 이건 보물이 아닌데…. 하고 갸웃거리며 나오는데 마침 주민 한 분이 지나가기에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 유적지를 지키는 유사(有司)라면서 친절하게도 열쇠를 가져와서 정자의 문을 열고 안내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찾던 현판이 걸려있었다. 분옥정과 청류헌(聽流軒) 화수정(花樹亭) 용계정사(龍溪精舍) 4개가 가지런히 걸려있고 지금 분옥정 현판은 모각(模刻)이고 진품은 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이라고 알려 준다. 낡은 정자 기둥을 쓸어보며 좁은 계곡 건너 바위벽을 보니 붉고 노란 낙엽이 엉겨 붙어 예쁜 각시옷처럼 곱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서 발목까지 덮히는 낙엽들을 밟으며 맑은 개울물에 손 씻고 층층이 쌓여진 퇴적암의 긴 연륜을 헤아려본다. 바위틈에서 계곡물 떨어지는 모습이 옥구슬 떨어지는 모습처럼 보였을까? 봉좌산 쪽으로 몇 걸음 올라가니 바로 위에 세이탄(洗耳灘)이라는 표석이 있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 돈옹(遯翁) 김계영이 난세와 결별하며 ‘귀를 씻는다’는 뜻으로 반석에 새겨놓은 개울이다. 무지개 모양 나무다리 밑으로 내려가니 넓은 바위 위에 고인 물에 낙엽이 쌓여 있다. 낙엽을 쓸어내고 살펴봐도 긴 세월 동안 계류에 마모된 세이탄의 음각은 찾을 수 없었지만 시끄러운 속세의 소리에 귀를 씻었듯 나도 두 귀를 씻어봤다. 이제 마음도 씻고 귀도 씻었으니 마음도 맑아지려나….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인 문화유산은 겨레의 정체성과 국민 생활을 간직한 사적(史蹟)들이니 노후한 건물들을 좀 더 깨끗하게 보수 관리하여 정신적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저녁 햇살이 봉좌산 위에 걸려 석양이 덮여오는 분옥정을 나오며 조용한 용계지 못 옆길에 차를 세우고 둑으로 올라가니 우람한 거목 두 그루가 수 백년 연륜을 허물벗 듯 갈라진 둥치를 못가에 드리우며 까만 철새들의 날개짓을 품어주고 있다. 기계면은 파평 윤씨, 기계 유씨, 영월 신씨의 삼태사(三太師)를 배출한 지방이기도 하다. 세조묘가 있어 몇몇 고인돌과 함께 유구한 역사를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2024-11-28

덕동마을 용계정(龍溪亭)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벌써 흰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절기라 늦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도 차가운 ‘손돌바람’에 낙엽을 떨구느라 정신이 없는 듯하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지난 8월에 국가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포항 두 곳의 조선 후기 정자(亭子) 용계정(龍溪亭)과 분옥정(噴玉亭)을 둘러보러 단풍이 곱게 물든 시골길을 달렸다. 포항에는 문화유산 보물이 12곳이 있는데 이번에 지정된 용계정과 분옥정 이외에, 보경사에 8개, 오어사와 상달암에 각각 1개씩 있다고 한다. 먼저 용계정을 찾아간다. 기계읍을 지나 북쪽으로 20여 리를 달려 여강 이씨 향단파 집성촌인 덕동문화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부터 용계정 보물 지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을 둘레길을 따라 걷다 덕동민속전시관 덕연관(德淵館)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여강 이씨 문중에서 소장 중인 고문서를 비롯한 67점의 유물이 문화재 552호로 지정돼 있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전시된 문방사우, 가재도구, 놋쇠 그릇, 베틀, 농기구 등 수많은 민속품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물과 공기가 새지 않도록 장독 윗부분을 오목하게 덧붙인 단지 설명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용계정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관장의 안내 설명을 듣고 나오면서 이 많은 문화재를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관을 크게 넓혀주는 문화재 관리지원을 건의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관 앞마당에는 ‘제4호 기록사랑마을’ 표지석이 눈에 띄고 그 옆에 덕연구곡(德淵九曲) 비문도 마음에 담고 기북오덕 전통 고택을 보러 마을 길로 들어갔다. 몇 개 쌓아둔 기왓장과 작은 반송이 예쁜 애은당(愛恩堂)을 보고 흙돌담길을 걸으면 민속자료 문화유산인 여연당(與然堂)과 사우정(四友亭) 고택을 만나는데 둘 다 임란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의 흔적도 있는 곳이다. 그 안쪽의 근대한옥을 기웃거려 보고 나와서 문이 닫힌 덕계서당을 담 넘어 보니 강의재가 생각보다 작다. 조용한 골목과 채소밭을 지나니 회나무 우물과 도송(島松) 숲을 끼고 있는 작은 연못 호산지당(護山池塘)을 만난다. 초록색 연잎들이 수면을 덮고 있다. 숲속의 누운 소나무 밑을 지나 개울가로 내려가니 단풍 가지 사이로 이층 누마루 용계정이 맑은 개울물에 모습을 비추고 있다. 농재 이언괄의 4대손인 사의당 이강(李58C3)이 착공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일자(一字)형 팔작지붕의 아름다운 누정(樓亭)은 보물로 지정될 충분한 가치가 있겠다. 계곡의 둔덕으로 올라가서 노란 낙엽이 소복이 깔려있는 옆문을 지나 올라가 보니 붉은 대들보와 기둥, 그리고 화려한 장식의 누마루가 예술품인 듯하고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연어대(鳶魚臺) 바위 절벽이 와룡암과 합류대를 지나온 맑은 냇물을 지키듯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멍때리다가 정자를 나오니 얼굴 없는 불상이 앉아있는 세덕사(世德舍) 터에 조선 말의 서원철폐령에 뜯겨버린 서원을 그리듯 높다란 은행나무가 황금빛 잎사귀를 뿌리고 있다. 숲과 개울, 계곡과 정자가 어우러진 덕동 300년, 그 민속 마을 입구의 전통문화체험관을 살펴보고 나오며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은 덕동 숲이 국가 문화재 명승 81호의 명예를 안고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잘 보존되기를 빌었다.

2024-11-21

수능이 끝났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11월 14일 목요일, 수능이 끝났다. 2025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한 수학능력시험이 마무리된 것이다. 그동안 부단히 외우고 익힌 노력을 평가받는 과정이다. 이제 재학생들은 3년간의 고등학교 학업을 끝내고 자신의 10대를 마무리하는 길목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올해 수능 총지원자 수는 작년보다 1만8000여 명이 증가한 52만2670명이다. 그중 재학생이 34만777명으로 65% 정도이고 졸업생이 16만1784명, 그리고 검정고시는 2만109명이라고 한다. 여기서 고3 재학생 1만4000명, 졸업생과 검정고시는 각각 약 2000명이 증가하여 졸업생 지원자 수는 2004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많았다. 이는 올해 의료계 언쟁의 소용돌이 속에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 내년 전국 40여 개 의대 정원 축소 우려를 느낀 반수생 지원자 등 ‘N수생’이 몰려든 탓도 있을 것이다. 시험 하루 전 예비 소집 날, 수험표를 받고 시험장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후배들이 마련한 레드카펫과 격려문 피켓을 보며 ‘대박을 기원합니다’라는 격려도 받고, 또 담임 선생님들이 정성껏 마련한 쿠키와 떡 등의 간식 선물들을 받은 수험생들은 ‘잘 풀고 잘 찍자’라고 다짐하며 출정식을 즐겼다. 수험생들은 전국 85개 지구 1282개 시험장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문제의 답을 하나씩 적어나갔을 것이다. 성적 통지일은 12월 6일이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N수생의 변수를 고려했을 문제들은 지난 6월과 9월의 모의평가에서 난이도가 높았다 낮았다 하는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불수능이니 용암 수능이니 하는 불평은 없어야 될텐데…. 한국사는 필수이니 응시하지 않으면 모든 시험이 무효되고, 당일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하여 소음도 막았다. 작년 수능 만점자는 1명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올해는 몇 명이나 나올까 기다려 보자. 예전에는 수능 감독들의 불만도 많았다. 하루 2~3시간 연속으로 감독할 경우 인권 침해의 우려도 걱정이 되었지만 ‘수고했어요’ 한 마디에 마음이 풀어졌을 것이다. 포항지역은 12개 시험장에서 4330명이 시험을 치렀다. 시험장이 없는 울릉고는 남학생 9명과 여학생 13명 모두 22명이 포항까지 먼 뱃길을 와서 시내 3~4곳에 분산되어 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공항이 없어 기상 여건에 따라 시험을 치르지 못할 경우를 염려한 것이고 선박비, 숙박비 등 비용 전액을 경북교육청에서 지원받는다고 한다. 이제 수능이 끝났으니 자유시간을 갖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의 마음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별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내년 전국 대학 입학정원은 330여 개 대학에 작년보다 3300여 명 감소한 34만명이라지만 학생부 위주의 수시모집은 이미 끝났고 앞으로 있을 정시모집은 수능 위주의 평가이니 문과 이과 통합교육 과정 등을 잘 살펴서 전공 선택도 신중했으면 한다. 학생들에게 ‘수능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물은 ‘알바 천국’의 조사를 보면, 첫째가 아르바이트, 둘째가 여행 그다음이 휴식이다. 아르바이트를 택한 이유는 경제적 자립과 경험을 쌓기 위한 욕구라고 했다하니 늦은 단풍을 구경하며 마음의 휴식을 갖기를 바란다.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