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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계 가곡여행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1월 17일, 25명의 가곡 동호인들과 10주간 즐겁게 노래했던 세계 가곡여행을 끝내고 나니 마음이 왠지 허전해지며 또 가곡여행이 기다려진다.‘가곡여행? 어디로 어떻게 다녀왔는데….?’ 그러나 관광 여행이 아니다.지난해 11월 초, 포항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성악가와 함께 떠나는 세계 가곡여행’ 공지가 떴다. 포항시민을 대상으로 11월 15일부터 10주간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매주 화요일 2시간씩 성악가의 지휘로 우리나라 가곡과 함께 세계적으로 애창되는 노래를 배우는 교육문화 프로그램이다. 오전 오후 2개 반 25명씩 모집한다는 내용이어서 지인들과도 의견을 나누고 신청했더니 당첨, 물론 여행비는 무료였다. 마침 단풍 짙은 가을이 끝나가는 계절에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헛헛한 마음이었는데 가곡을 부르며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5년 전 포항오페라단이 지원한 ‘가곡교실’에 참여하여 중앙아트홀에서 2년 4학기 동안 1주일에 하루, 성악가 두 분의 지도로 많은 가곡을 배우며 불렀던 모임이 있었다. 여태껏 듣기만 했던 가곡, 처음 불러본 가곡, 또 멋진 외국 가곡을 원어로도 불러보며 음악용어도 많이 배웠었다. 매 학기 말에는 발표회를 했었는데 나도 무대에 서봤던 참 재미있고 즐거운 교실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지원이 끊기고 중단되어 아쉬웠던 3년이 흘러갔었다.이번 여행의 첫출발하는 날 오후, 포항시청 대잠홀로 갔었다. 입구에 놓여있는 명단 맨 아래에 내 이름이 있었고, 듬직한 악보집을 받고 연습실로 들어가니 여행객들 표정이 밝다. 인사하니 반쯤은 낯익은 분들이고, 대부분 5~60대인 듯, 70대도 있었다.이번 ‘가곡여행’은 성악가 하형욱 교수가 지휘를 맡았고, 여러 성악가와 연주자들도 참여했다. 행사 개요가 적힌 푸른색 팸플릿을 보니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우리 가곡과 세계 유명가곡을 성악가와 함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곁들여 감상하고 같이 불러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2022 문화 취약지역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국고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하여 포항문예회관에서 포항 지역민을 위해 지원하는 행사였다.첫날 정겨운 우리 가곡 시간에는 익숙하고 친숙하며 학창시절 다 함께 불렀던 노래 ‘가고파’, ‘선구자’등을 부르고 감상하니 가슴이 시원했다. 그 다음에는 첫사랑 등 신작 가곡과 영·미 가곡, 프랑스 샹송도 배웠고, 연말연시에는 이탈리아 칸초네, 독일 리트들을 원어로 부르기도 했다. 마지막 10주째 날에는 무대 위에서 중창도 하고 음악가들의 성악과 기악 연주를 들으며 환호했으며, 마지막으로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합창하며 서로를 돌아봤다. 그렇게 화요일이면 기다려지는 가곡여행이었으나 아쉽게도 10주 만에 끝마치고 나니 여행객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귀한 추억을 남겨주어 감사하다.이 멋진 가곡여행을 계속해 주기를 포항문화재단 등 관련 단체에 부탁드려본다. 예산이 어려우면 여행자들의 일부 분담을 고려하며 장소와 지휘 반주 등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 새봄에도 가곡여행을 같이 떠나보고 싶다.

2023-01-26

까치 까치 설날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부르는 동요가 귓전에 맴도는 설날이 다가왔다.올해는 일요일이라 작은 설이라는 ‘까치설’과 대체공휴일을 더해서 4일 연휴이기에, 10여 년 만의 설날 한파가 예상된다고 하지만 가족 모두 한데 모여 한해의 건강과 풍요를 바라는 덕담을 나누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음력 정월 초하루는 일제 강점기 때 구정(舊正)이라 했고, 국민 모두 땀 흘리며 일했던 박정희 시절에는 신정·구정 2중 과세(過歲)를 하지 말라고 공휴일에서 제외시켰고 전두환 때인 1985년에 ‘민속의 날’로 지정되었다가 4년 후 ‘설날’ 명절 이름을 되찾아 고향의 부모님 뵙고 가족과 친척의 만남으로 정을 나누는 4대 명절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그러나 세대의 변화로 고유한 민속 명절로서의 가치와 풍습을 이어나가려는 기운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설’이라는 어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새해가 되니 ‘낯설다’, 묵은해를 보내니 ‘서럽다, 섧다’, 한 해의 시작이니 몸과 마음을 ‘사리다’, 새로운 기운이 ‘서다’ 등이 있지만, 새해를 맞아 마음을 곧게 가지고 몸에 새로운 기운을 서게 한다는 뜻에 설날의 의미를 찾고 싶다.정월 초하루이기에 원일(元日) 원단(元旦) 등 처음이라는 뜻을 많이 쓰지만, 신일(愼日) 달도(601B5FC9) 등 삼가고 조심하자는 것도 있으니 마음가짐을 평온하게 하고 매사에 신중하는 삶의 자세로 설날을 맞이하자.올해는 코로나 방역 조치 해제 후 첫 설 연휴이니만큼 교통 정체가 심할 것이 예상되지만, 버스·철도·항공기·연안여객선 등 교통수단을 증편 운행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4일간 면제한다고 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고향을 찾아 가족의 안위를 묻고 사랑을 전했으면 좋겠다.설날 아침, 고운 설빔으로 갈아입고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차례(茶禮)를 지낸 후 웃어른께 세배드리고 세뱃돈과 함께 안녕과 건강을 바라는 덕담(德談)을 주시면 그 속에 가족의 훈훈한 정과 따뜻한 마음을 담아보는 것도 설날의 행복이다.그리고 둘러앉아 떡국을 먹으며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긴 가래떡 맛있게 먹고 구들목에 둘러앉아 윷놀이도 하다가 밖으로 나가 남자애들은 제기차기 딱지치기하고 아가씨들은 널뛰기하며 담장 너머를 살피기도 했었다.어른들은 들판에서 하늘 높이 연을 띄워 액운을 날려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자취일 뿐, 요즘은 보기 어렵다.설날 새벽에 복조리 장수의 외침에 일어나 대나무로 만든 복조리를 몇 개 사서 부엌 기둥에 묶어두었던 추억이 있다. 지금 그 풍경은 사라졌지만 예쁜 끈으로 묶은 장식용 복조리를 사서 문간에 걸어두어야겠다.새해 첫날 새벽에 처음 듣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한해의 길흉을 점치는 청참(聽讖) 풍습에는 까치 소리를 들으면 길하고 까마귀 소리는 흉조라 하니, 고운 댕기 들이고 예쁜 설빔 차려입은 손자 손녀에게 세뱃돈 던져주면 할배 할매 부르며 깔깔대고 안겨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족의 행복을 가져오는 까치 소리가 아닐까….

2023-01-19

새 일기장을 펼치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해가 바뀌면 새로 마련하는 것이 일기장이다. 예전엔 그냥 대학노트에 썼었는데 약 20여 년 전부터 표지가 고급 양장으로 된 같은 규격의 다이어리를 사용해 오고 있다. 올해는 ‘검은 토끼해’라 표지가 검은 것을 택했다.처음 다이어리에 쓸 때는 그야말로 계획과 일정을 간단히 적어두고 실행 여부를 첨부하는 일과의 기록이었으나 차츰 아래 여백에 그날그날 느낀 마음을 기록해 두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나의 인생 기록물이 됐다. 지난해 일기장을 정리하며 몇 장을 넘겨보면 잘 기억나지도 않는 무수한 일들이 적혀있고 설핏 뇌리를 스친다. 또 펜글씨는 글쓰기 훈련이 되어 필력도 향상됐다.매년 해 오던 대로 새해의 바람과 다짐을 담아 맨 첫 장에 토끼를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생활환경 속에서도 마음 흔들림이 없이 내가 선택한 일들에 긍정적 사고를 견지하려는 몇 마디 덕담을 써 본다. 나름대로 새해에 알맞은 사자성어를 골라보는데 올해는 무엇으로 할까? 수처작주(隨處作主)를 하려니 칠순 넘은 나이에 어디 뻗대고 나서는 게 미안하고, ‘토끼해’라고 교토삼굴(狡FA32三窟)로 하려니 위기 대책이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니니 그냥 수산복해(壽山福海)를 마음에 담고 평안한 생활을 하고 싶다. 새해가 되면 각 지자체나 단체들도 신년 사자성어를 공모하는 곳도 있는데 포항시는 춘색만성(春色滿城) 즉, ‘추운 겨울의 어려움을 이겨내면 따뜻한 봄기운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뜻을 택했으니, 지방소멸과 경제위기 등의 불안함을 이겨내고 밝은 미래의 도시 포항을 만들겠다는 희망찬 표현이다.책꽂이에 꽂혀있던 50여 년 전 옛 일기장을 정리하며 펼쳐보니 빈칸이 많다. 매일 매일 쓰지 않았고 글의 길이도 몇 줄의 짧은 것에서부터 2페이지가 넘는 날도 있다. 우연히 그중 한 권을 넘기다 보니 시 한 편이 눈에 띈다.“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하루의 끝에 서서/ 하루를 반성하며// 어제의 ‘나’와 함께/ 지금의 ‘나’를 쓰고/ 또 내일의 ‘나’를 위해/ 조금씩 모래성을 쌓아가는 것이다”또박또박 펜글씨로 쓴 나름의 일기가 사회에 익숙해지기 전의 젊은 나를 마주하게 한다. 이렇듯 일기는 시가 되기도 하고 짧은 수필이 되기도 한다.매일 밤,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그날 일정의 결과를 정리하며 일기를 써 내려 가면서 ‘참 잘했구나’하고 칭찬도 하고 ‘이건 해결하지 못했네’ 하는 반성의 표시를 하기도 한다. 수년 전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하루 다섯 가지 감사를 적는 것을 10년간 반복했다는 ‘감사 일기’의 사연을 알고 나서부터 나도 그 흉내를 내고 있다. 좋았던 일들, 잘 처리된 일들을 쓰고 나서 그 끝에 ‘….감사’라고 덧붙여 두곤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루에도 예상외로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경험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요즈음은 카톡이나 문자 또는 밴드와 같은 SNS를 이용하여 손글씨 보기가 쉽지않지만 나의 일기장엔 붓글씨로 새해 소망을 썼고 또 펜글씨로 정성껏 펼쳐나갈 것이니 올해도 풍요로운 일상들이 가득히 쌓이기를 바라며 작가 이태준의 말을 되뇌어본다. ‘일기는 사람의 훌륭한 인생 자습서다.’

2023-01-12

토끼의 지혜로움으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토끼’하면 보름달 속 계수나무 그늘에서 두 마리가 정답게 마주 보며 절굿공이로 무병장수의 선약(仙藥)을 빻고 있는 설화가 떠오른다. 집토끼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고, 산토끼는 총명하고 재빠른 몸놀림으로 천적들이 우글대는 숲속에서도 잘 살아왔으니 올해는 토끼에게 배워보자.토끼는 또 ‘꾀보’라는 애칭이 있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귀염둥이다. 그 순박한 모습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유난히 심했던 재난과 재해의 기억들이 많다. 영덕과 울진 지역의 20년 만의 대형 산불을 비롯하여 수도권에 퍼부은 80년 만의 폭우, 또 가을에 불어닥친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포항지역의 홍수와 인명피해 등 자연재해가 컸고, 코로나19는 3년째 여러 변이를 만들며 757일간의 거리 두기 해제를 비웃듯 감염자 1천만 명을 돌파했다. 10월 말 핼로윈 축제에 밀려든 인파가 골목에 넘쳐 158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국민의 마음을 울렸고, 3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그 여파로 여의도 들판에는 혼탁한 바람이 불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한바탕 휩쓸고 가는 어려움 속에서 자랑스러운 소식도 들려왔다. 뜨거운 나라 카타르의 월드컵에서 국민들의 응원으로 16강 대열에 섰으며, 누리호의 2차 발사 성공으로 우주 강국 7위에 올랐고, 이어 연말에는 다누리 우주선이 달 궤도에 안착하여 달나라 토끼가 보고 있을 지구의 모습을 보내왔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호랑이해였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신년 시정 방향을 ‘창의·융합·혁신’으로 표방하며 ‘안전도시 포항, 흔들림 없는 경쟁력, 사람 중심의 친환경 도시’ 등을 실현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가겠다고 밝혔다.우리는 흔히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라는 말을 한다. 따로 뛰어다니는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잡는 일이 어렵기도 하지만 잘하면 두 마리를 동시에 잡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기도 하며, 또 계획 없이 함부로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의미도 있으려니 올해는 국가는 견제와 타협, 사회는 성장과 복지, 국민은 일과 생활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별주부전’을 보면 토끼의 총명한 꾀가 대단하다. 병든 용왕이 토끼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고 해서 자라가 육지로 올라가 토끼를 꼬셔 데려왔는데, 간을 내놓으라고 하니 ‘청산유수 맑은 물에 씻어 감추어 두었다’고 하여 다시 뭍으로 돌아와서는 ‘간 빼놓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냐’고 하며 숲속으로 달아났다는 판소리 ‘수궁가’를 듣노라면 부귀영화를 탐낸 것에 후회하며 현명하게 빠져나온 토끼가 기특하다.올해는 국내외 정세를 보아 어느 때보다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지혜로움이 필요한 것 같다. 큰 귀로 잘 듣고 퉁방울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뒷발로 힘차게 언덕을 뛰어오르는 토끼의 영특함을 배우자.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

2023-01-05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윤영대 수필가 하얀 눈발이 설핏 다녀간 동지(冬至)도 지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분위기 속에 도심 거리와 바닷가의 가로수에 입혀진 꼬마전구 옷이 찬란하게 반짝이며 천사와 함께 내려온 은하수 같지만, 나무들은 밤새 시민의 마음을 기쁘게 하느라 잠을 잘 수도 없겠다.전국 17개 도시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져 시민의 기부금으로 따뜻해지며 100도를 향해 올라가는 중이니 우리 모두 이웃을 위한 ‘희망 2023나눔 캠페인’에 참여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으로 사랑의 열매를 키워나가자.코로나 열병에 지치고 대형 참사에 침체된 마음을 치유해주기 위해 문화예술 행사도 많이 열리고 있다. 포항문예회관에서는 오페라 ‘토스카’가 열려 많은 시민의 열광을 받았고 연말에는 가족 뮤지컬 ‘피터팬’도 계획되어 있다. 성탄절 전야에 경쾌하고 맑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마다 울리게 되면 집안에 꾸며둔 크리스마스트리에는 빨간 모자의 산타 인형이 저물어가는 한 해의 따뜻한 사랑을 선물해 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각자가 산타클로스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라이온즈 협회 등 많은 사회단체나 기업 등에서 매년 해 오고 있는 이웃돕기 활동으로 사랑의 연탄 나누기와 쌀 나눔 행사 등을 통해 홀몸 노인이나 취약계층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연말의 축복이다.이번 성탄절이 일요일이 되고 보니 국경일에만 적용되는 대체공휴일을 석가탄신일과 함께 지정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국민 휴식권 확대, 내수 진작과 함께 종교계의 요청도 있는 모양이다. 각급 학교에서도 따뜻한 마음의 행사가 행해지고 있어 엷어져 가는 듯한 사제 간의 믿음과 사랑의 온도를 높여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다행스럽다. 포항 시내엔 ‘산타 버스’도 다닌다. 차 안에는 색색의 종이와 장식물로 예쁘게 꾸미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운전기사가 친절한 인사로 맞으며 한 해를 바쁘게 마무리하려는 마음을 밝게 한다. 이러한 작고 착한 일들이 쌓인 덕분인지 ‘내 삶이 즐거운 복지희망 특별시’를 꿈꾸는 포항시가 다양한 복지 서비스 사업 분야 평가에서 우수평가를 받아서 우수지자체로 선정되어 복지 활동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 것은 참 잘된 일이다.올해도 대한결핵협회의 크리스마스씰이 나왔다. 마침 월드컵 16강에 오른 우리의 축구 대표 손흥민 선수를 그린 10장 1세트가 3천 원이지만 사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는 것이다. 요즘 손편지를 잘 안 쓰는 풍조이지만 연말연시 연하장이나 카드를 보낼 때 붙여 보내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 즉, 매일 50여 명이나 발생한다는 불명예를 씻어주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도 많은 기금이 모여 국내외 결핵 퇴치에 도움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또 길모퉁이 어디에선가 따뜻한 종소리에 끌려 가보면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가 걸려있다. 이 거리 모금 통에 지폐 한 장을 넣어주면 마음도 조금 행복해진다.이렇듯 주위의 다양한 퍼네이션, 즉 ‘재미(fun)와 기부(donation)’를 함께 찾아내어 일상생활 속에서 재미있고 즐겁게 나눔을 생활화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해 본다.

2022-12-22

한파가 밀려오면

윤영대수필가 이번 주,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우리의 일상이 조심스러워진다. 기상청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에 한파 특보를 발령하여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이번 주말 서울이 영하10도 가까이 되는 등 올겨울 ‘최강 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보다. 다음 주 초에는 더 기온이 낮아지고 서해안과 제주에서는 대설특보가 내려지고 있다. 대설주의보는 24시간 내에 눈이 5cm 이상 쌓일 것으로 예측될 때 내려지고, 대설경보는 20cm 이상일 때이다. 이보다 앞서 최악의 ‘겨울 황사’가 찾아왔었다. 이 ‘봄의 불청객’이 한겨울에 찾아온 것은 내몽골 고원의 건조한 날씨 탓이라고 하니 눈이 내려 말끔히 씻어주면 좋겠다.한파가 닥치면 심뇌혈관, 심근경색 등 고혈압, 고지열증에 근거한 환자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으니 체온 유지를 위한 운동을 꾸준히 하여야 한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3년, 아직도 그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또다시 전염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이번 한파를 잘 견디어나가 사회의 안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파가 몰려오면 흔히 동상이나 저체온증이 우려되며 추위에 얼어서 피부 손상이 생기는 동창(凍瘡) 등의 한랭 질환도 염려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도 고위험 상태의 사고가 발생하기 쉬우므로 야외작업 시에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게 된다. 겨울이면 걱정되는 것은 수도관 동파이다. 시골집 수도계량기도 잘 덮어주어야겠다.한파가 밀려오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이런저런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한파 대응책이 필요하다. 먼저 난방비의 부족으로 인한 연탄수급이 문제가 되는 등 안타까움이 있는 만큼 각 지방자치단체와 봉사단체는 취약가구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한 한파 대응 물품 지원사업을 마련하고 있다.또 요즈음 경제적 한파도 문제다. 코로나의 장기화 등에 따른 고용 한파로 인해 일자리 부족과 얼어붙은 노동시장으로 청년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최고치를 기록하며 취업률 감소로 악화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는 등 경제적 한파를 맞고 있다고 하니 이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MZ 세대는 삶이 고되더라도 비관하지 말고 생명이 움트는 봄을 기다려 보자.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특징 중 하나가 삼한사온이다.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해지며 반복되는 시베리아 기단의 계절 특성도 이번 한파에는 ‘삼한’이 조금 길어질 것이라는 예보다. 북극에서 발생한 이동성 고기압의 차가운 기운이 남하하면 ‘삼한’이 되었다가 동쪽으로 이동해서 우리나라를 덮게 되면 바람도 약해지고 따뜻해지는 ‘사온’이 되는데 최근 경향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불규칙해진다는 관측도 있다.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추위가 심한 계절에 한파가 몰려오는 것은 당연한 계절의 섭리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딛고 일어서서 조용한 일상을 즐기고 국민 모두가 하나 된 긍정적 생각으로 경제적 한파도 이겨내리라 믿는다.

2022-12-15

대설(大雪)의 계절에

윤영대 수필가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大雪), 이곳 동해안 포항은 아직 눈 소식이 없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산불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만 들린다.이제 추수한 곡식이 쌓여있는 곳간을 보며 일 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농한기이다. 김장을 담그고 메주도 쑤고 보리밟기도 하는 계절, 흰 눈이 소복이 내리면 아이들과 눈사람도 만들어 보고 싶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라 하니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들판에 눈이 쌓이면 그 밑에서 푸른 보리는 봄의 꿈을 키우겠지….이 한겨울에 ‘열사의 나라’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은 지칠 줄 모르는 투혼과 모두의 마음을 모은 붉은 악마의 응원으로 뜨겁게 하나 되어 월드컵 16강의 기적을 일구어냈으나 태극전사들은 최강팀 브라질을 맞아 초반의 긴장감을 가진 탓인지 아쉽게도 8강에 오르지는 못했다. 시원하게 터진 중거리 슛 한 골,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래며 4년 후 승리의 영광을 꿈꾸어 보자.10일은 세계인권 선언일이다, 1948년 파리에서 열린 제3회 유엔총회에서 2차 세계대전 때 인권침해가 극심했던 쓰린 역사를 뒤돌아보며, 인간으로서 자유와 기본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노동자 단결권, 교육의 권리,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 등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를 선언했었다.지금 우리나라는 화물연대 운송자들을 중심으로 최저시급, 안전운임제 등을 내세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외침으로 집단운송거부를 하며 총파업 보름째를 맞고 있다. 여기에 건설 노조와 서비스 연맹 등은 참가했지만 철강과 시멘트, 레미콘 등의 부족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포스코와 현대제철 노조 등이 탈퇴와 불참을 하는 등 불협화를 보이고 있다.대설의 계절에 하얀 눈이 쌓이면 우리 국민의 마음도 맑아지려나. 사회와 경제가 안전한 국가,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그리고 관용과 신뢰로 이어진 조직을 모두가 바라고 있지만 이루기에는 참으로 먼 세상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마지막, 정부와 노동계가 강력 일변도의 대립 관계를 끌고 가기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정책과 행동으로, 먹이를 다투는 호랑이의 포효를 멈추고 사이좋게 떡방아를 찍고 있는 두 마리 토끼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9일부터 사흘간 제20회 경북과학 축전이 포항운동장 만인당에서 ‘경북을 보다 과학을 읽다 미래를 쓰다’라는 주제로 AI, 로봇, 메타버스 등 체험 부스 운영으로 100개가 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하니 차가워지는 겨울 속의 축제마당을 찾아 축하공연도 보며 따뜻하게 즐겨보자.올해 ‘호미곶 해맞이 축제’행사는 취소됐다. 3년 만에 열리는가 기대했었는데 아직 꺼지지 않은 코로나 열기와 수많은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취소되어 상생의 손은 손님을 맞지 못하게 됐고,‘토끼의 해’새해 첫날, 붉은 일출 위로 계수나무 밑에서 놀던 토끼가 내려와 춤추는 환상을 그려보려는데 또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겨울 가뭄이 계속되는 12월, 아직 큰 눈 소식은 들려오지 않지만 잘 익은 고구마 구워 먹으며 멋진 설국(雪國)을 기다려 본다.

2022-12-08

겨울의 맛, 과메기

윤영대수필가 올해 첫눈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야 추위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겨울이 되면 제일 먼저 생각되는 것이 구룡포 바닷가 덕장이나 죽도시장 건어물 거리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반쯤 마른 꽁치 과메기, 또 그 맛이다.과메기는 관목(貫目), 즉 ‘눈을 꿰다’는 말에서 ‘목’을 ‘메기’로 부른 사투리가 굳어진 것이라 하며, 청어나 꽁치를 통째로 짚끈에 묶어 약 1주일간 바닷가 찬바람에 말린 반 건어물로 포항 지역 특산품이다. 원래 가마솥 부엌의 연기로 그슬며 말렸다 얼렸다 하는 ‘엮걸이’ 통 과메기가 전통 방식이었고 조금은 비린 맛과 물컹한 식감이 좋은 훈제였는데 요즘은 반으로 잘라서 말린 ‘배지기’ ‘편 과메기’가 대세이고 11월부터 건조설비를 이용하여 말리기도 한다. 나는 청어 과메기가 귀한 탓인지 맛은 더 있는 것 같다.시장에서 과메기를 고르다 보면 ‘발 과메기’라고 있기에 ‘발로 밟아서 숙성시키나?’했더니 발(足)이 아니고 해변에 즐비한 덕장의 발(簾)에 걸어 말렸다는 뜻이란다. 10여 년 전까지는 20마리씩 엮어놓은 것을 사서 아파트 뒤쪽 외벽에 걸어두고 한 마리씩 빼먹곤 했는데 가끔 큰 새들이 매달려 쪼아먹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제대로 말리면 짠 내나 비린내가 없고 초고추장에 찍어 알배추나 깻잎, 생미역 또는 생김에 싸서 먹으며 소주 한잔 마시는 것도 겨울의 별미요 낭만이다. 예전에는 주점 난롯가에 앉아 껍질을 직접 벗겨 먹고 구워 먹는 맛도 있었다. 언젠가 여름철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과메기를 그대로 먹어봤더니 푸석하게 씹히며 맛은 어디 가고 없다. 과메기는 겨울철 음식인 것이 틀림없다. 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3 등 영양분이 많아서 혈관과 뼈, 두뇌와 눈의 건강에 좋고 노화 방지 등에도 효과가 많다고 하지만 꾸덕한 기름 덩어리가 산패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서 먹어야 한다.12월 3일과 4일 이틀간 과메기 특구로 지정된 구룡포의 과메기 문화거리 ‘아라광장’에서 코로나로 2년간 열리지 못했던 제23회 과메기축제가 열린다. 힌남노 태풍의 피해를 극복하는 힘을 보태자는 마음으로 ‘바다와 바람이 키운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구룡포 과메기’를 표방하며 축하공연과 가요제, 그리고 깜짝 경매까지 열린다니 옷 두껍게 입고 둘러보며 시식도 해보고 포항 지방의 특산물을 K-푸드로서의 가치를 높여보자.매년 연말이면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채소와 고추장 등으로 푸짐하게 꾸며져 잘 손질된 과메기 1세트씩을 보내어 맛보게 한다. 모두 잘 먹었다는 감사 인사와 함께 내년 겨울이 기다려진다며 웃음을 전해오면 나 또한 50여 년 전 낯선 포항에 와서 처음 과메기를 맛본 기억들이 생생하다. 자랑하듯 꽁치 과메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기에 그 작고 마른 꽁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알고 있었던 꽁치는 ‘양미리’였고 사투리로 알았던‘삼마’는 일본말이었던 것이다. 과메기 꽁치가 통째로 식탁에 올라왔고 각자 껍질을 벗겨 먹으며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새롭다.올해도 첫눈이 내리면 겨울의 맛, 과메기에 꽂혀 요즘 어수선한 세태의 씁쓸한 맛을 날려버리고 싶다.

2022-12-01

다시 한번, 대~한민국

윤영대 수필가 2022 FIFA월드컵 대회가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다. 전 세계 지역 예선을 통과한 32개국이 나라의 명예를 걸고 한 달간의 열띤 경기를 벌이는 세계인의 축구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중동의 무더운 나라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통상 6~7월에 열렸으나 카타르의 무더위 탓에 이번에는 11월부터 12월까지, 그것도 아랍 이슬람 국가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월드컵 경기이다.우리나라는 1954년 스위스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헝가리와 터키에 참패를 당했지만, 그 후 실력을 쌓아 1986년부터 9회 연속 본선 진출 팀이 되었으며 우리가 너무나도 잘 기억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대회 유치는 물론 패배 없는 2승1무로 4강 진출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었다. 그리고 2018년에 지난 대회 우승팀인 독일을 2-0으로 격파한 손흥민의 활약을 기억하며 이번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고 앞으로 한 달간 또 하나 우승의 꿈을 이루어나갈 것이다.개막식은 20일 오후 5시 40분이었으나 시차가 6시간인 우리나라에서는 자정 무렵에 중계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경기도 거의 한밤중인 24일 밤 10시 되어서 볼 수 있었다. 조금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태극전사들을 위하여 잠 못 이루는 응원을 펼쳤다.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슬로건은 ‘놀라움을 기대하라(Expect Amazing)’이며 개회식에서 방탄소년단 BTS 정욱의 단독 공연을 보노라면 20년 전, 2002 한·일 월드컵 대회 때 불렀던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가 불현듯 생각난다. 그때의 슬로건이었던 ‘새천년, 새 만남, 새 출발’처럼 우리는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를 차례로 꺾고 8강에 올랐으며 스페인과의 승부차기로 이겼을 때, 나는 유럽 연수여행을 가던 비행기 안에서 승리를 귀띔받고 환호했던 날로 기억하고 있다. 독일과의 준결승 경기는 시내 일정을 잠시 미루고 파리시청 앞 광장에 앉아서 응원했는데 패하여 씁쓸한 마음이 되었었고, 귀국하는 날 3∼4위 전에서 터키에 또 패배하여 4위가 되었으나 우리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는 국민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았고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세계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문을 열었다. 도심 한복판을 붉은 응원의 물결로 넘실거리게 했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흔들며 전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었다.이제 다시 그 붉은 악마의 힘찬 함성이 뜨겁게 되살아나려는 분위기이다. 아직 이태원 참사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은 만큼 거리응원을 하더라도 조심하고 질서를 지켜 마음을 합치는 월드컵이 되었으면 한다. 중동에서 불어오는 열풍으로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국내 정치계도 녹이고 서로 투닥이는 말싸움도 한마음 응원가로 씻어내자.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열기가 국민 모두의 가슴 속에 힘찬 응원의 힘을 불어넣어 월드컵 4강을 이루고 그 기치를 높이 들어 주기를 소망해 본다.다시 한번 외쳐 보자.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짜짜짜 짜짜.

2022-11-24

포항의 옛시 노래가 되다

윤영대수필가 11월 14일 월요일 오후 7시30분 포항시 북구 양덕동에 있는 경북교육청 문화원 대강당에서 ‘포항의 옛시(한시) 노래가 되다’라는 예술공연이 있었다. 월요일 공연이라 좀 마뜩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인의 권유로 보러 갔었다.경북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알스노바(ArsNova)종합예술단이 주관한 무대공연이었는데 춤과 노래, 시 낭송 그리고 연주까지 색감 넘치는 무대에서 펼쳐진 포항을 주제로 한 예술공연이었으며 한복 차림을 한 공연자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이번에 11번째 공연을 한 알스노바종합예술단은 ‘예술로 사회를 아름답게 정화시키는 역할을 소망’하며 2007년 창단하였다고 한다. 그 후 2011년 1회 정기공연을 시작으로 15년간 성악, 보컬, 기악, 국악뿐만 아니라 실용음악과 무용까지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입구에서 받은 팸플릿 표지를 보고 음악회보다는 역사문학 강연인 것 같은 착각을 했으나 무대 화면에서 시를 읽고 노래를 들으면서 포항의 숨겨진 풍광과 역사 속을 거니는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포항지역학연구회 권영호 연구원이 ‘포항 한시 소개’에서 밝히는 바에 의하면 그동안 회재집(晦齋集), 시암집(是巖集) 등 숱한 고서를 읽고 포항 연일 장기 청하 등 포항 고을을 오가며 옛 문인들이 노래한 1천300여 편에 달하는 한시를 발굴, 번역하였고, 그중 15편을 골라 현대적인 선율을 입힌 창작가곡을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몇 개의 한시를 보긴 했으나 이렇게 많은 시가 있는 줄 몰랐고 지금은 사라진 지역의 문화재와 풍습의 존재를 알게 되어 참으로 가치 있는 관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들 옛 시를 현대적 선율로 해석하고 작곡한 임주섭 윤재덕을 비롯한 5명의 작곡가와 서로의 마음을 합쳐 가곡 무대를 완성해준 10여 명의 남녀 성악가들 또한 멋있었다.가곡의 제목과 가사에는 남빈 바닷가 모래밭의 갈대와 달이 뜬 풍경이 그려져 있고, 해도에 소금밭 염전이 있어서 임금에게 진상하는 최고의 소금인 자염(煮鹽)을 만들어 부유한 고을을 꿈꾸었다는 것도 알았다. 또 시 낭송을 듣고 청하에 해월루가 있었고 영일만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고래도 있었다니 옛날의 풍광이 놀랍고 그리워지기도 한다.공연의 내용을 보면, ‘포항을 노래하다’에서 영일만 형산강 내연폭포가 나오고 ‘옛 마을 찾아’에서는 연일 우현 남빈 학산의 옛 명칭도 알게 되고 보니 현대적 풍광인 포스코와 동빈항의 밑그림이 된 이들 지역을 다시 한번 돌아볼까도 생각했다. 옛 이름 ‘봉산’인 장기는 유배지라 많은 인물이 머물렀기에 천리 밖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는 선비의 탄식도 들었다. 대형 스크린의 한시를 읽으며 창작가곡과 함께 피아노 플루트 첼로 바이올린의 선율 또한 고급 창작 문화를 체험하게 했다.우리 지역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잇고 문화유산을 계승하고자 앞으로도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다양한 공연을 창작, 기획하여 격 높은 예술문화 콘텐츠로 시민의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하고자 다짐하는 이항덕 단장과 알스노바종합예술단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2022-11-17

개기월식을 지켜보았다

윤영대수필가 입동(立冬) 다음날 8일 저녁, 오후 6시경부터 개기월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두텁게 입고 해그름의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벌써 수평선 위로 보름달이 떠 있고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저녁 하늘이어서 보름달의 변화를 지켜보기로 했다.월식은 해-지구-달이 일직선으로 있을 때 지구 그림자가 둥근 달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월식(月蝕)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몽땅 다 갉아먹는 개기월식이고, 또 가까이 지나는 천왕성을 덮어버린다는 ‘천왕성 엄폐’가 동시에 일어나는 희귀한 ‘우주 쇼’라는 것이다. 그래서 쌍안경까지 챙겨서 나갔었다. 넓은 바다를 향해 앉아 지구가 달을 갉아먹는 것을 보려니 6시8분48초에 시작됐다는 월식은 이미 상현달 모양이다. 조금씩 가늘어지며 거꾸로 초승달 모양으로 되어 가더니 7시16분경에 개기월식이 시작되어 서서히 검붉게 변하여 8시경에 절정을 이루어 핏빛의 블러드 문(Blood Moon)으로 변했다. 이때 붉은 달은 햇빛이 지구를 지나며 푸른빛은 산란하고 붉은빛만 굴절되어 달을 비추기 때문이다. 바닷가에는 조용히 흰 파도가 밀리고 해변 모래밭을 걷던 산책객들도 월식 현상을 폰카메라로 찍어댄다. 망원렌즈를 부착한 큰 카메라를 앞에 두고 앉아 촬영하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다음 개기월식은 2025년 9월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천왕성 엄폐 모습은 200년 후에나 다시 발생한다는 사실이 아쉬워 쌍안경으로 텅 빈 하늘을 이리저리 찾아봤으나 작은 렌즈 속으로 보름달을 끌어넣기가 쉽지 않았고 겨우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방아 찍는 모습이 불그스럼한 자국으로 보일 뿐….8시43분 경에 90여 분 정도의 개기월식이 끝나자 붉은 달 왼쪽이 하얗게 빛나더니 그믐달이 되며 지구 그림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영일대 누각에서 보면 어떨까 하고 장미원 광장으로 가는데 한 무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늘 무슨 축제인가?’하고 가까이 가봤더니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커다란 망원경도 4대나 놓여있었다. ‘2022년 개기월식 공개 관측회’라는 현수막도 낮게 걸려있었다. 알아보니 경북천문교육연구회와 포항고등학교 별바라기 모임에서 시민들에게 개기월식을 직접 관찰하게 하는 행사였다. 이날 전국적으로 30여 곳 천문대 등에서 별빛보기 행사를 했다고 하는데, 포항에도 이렇게 15명 정도의 고등학생들이 천문연구 모임을 만들어 우주를 공부하고 있다니 자랑스럽다. 그때 막 개기월식이 종료되고 부분일식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줄 서서 기다렸다가 망원경 렌즈에 눈을 갖다 대었다. 붉은 보름달이 신비로운 우주의 모습을 대형 망원경으로 보는 것도 첫 경험이다. 행사 요원의 도움으로 그 영상을 휴대폰에 담아왔다. 달은 그믐달에서 서서히 빛을 찾아가며 하현달을 지나고 9시30분이 되어서 환한 보름달의 밝음을 되찾았다.하루 저녁 3시간 동안에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까지 모든 모습을 보여준 개기월식을 잘 보았다는 생각에 해변의 푸드트럭에서 블러드 문을 닮은 타꼬야끼 한 봉지를 사 먹으며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뇌리에는 아직도 개기월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2022-11-10

축제 속의 질서의식

윤영대 수필가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을 보며 축제 분위기의 가을을 즐겨야 할 10월의 마지막 주말, 뜻하지 않은 대규모 인명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한 체 우리 사회의 질서의식을 생각해 보았다.10월 29일 밤 10시경, 내가 넓은 영일만 밤바다의 정취를 즐기고 있을 때 서울 이태원에서는 외국풍의 핼러윈 축제의 흥겨운 한때를 즐기려던 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에게 막히고 밀려 쓰러지고 압사(壓死)당하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3년간이나 억눌렸던 마음을 털어내려고 모여들었다가 졸지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국가기념일도 아닌 날에 상업적, 신 문화적인 행사로 정착하며 귀신이나 괴물 분장을 한 채로 돌아다니는 축제로 미국과 일본 등 몇 나라에서만 즐기고 우리에게는 20여 년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사고의 발단은 ‘노 마스크’의 자유로움으로 약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좁은 언덕 골목길을 통제 없이 쏠려 다닌 탓이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10여 건의 112신고를 받았다지만 그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 미흡했고 안전 관리 부실 또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겠다. 예년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는 사실을 기초로 안전 대책을 세우고 시민의 긴급신고에는 정확한 판단과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고 출동하여 구조했어야 했다. ‘압사 될 것 같다’, ‘아수라장이다’라며 경찰의 통제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희망도 꺼져갔고 중고생 6명을 포함한 20~30대 젊은이들 154명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다.이러한 압사 사건은 외국에서도 일어났었다. 최근 10월 1일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지역에서 벌어진 프로축구장 난동으로 174명이 사망하기도 했고, 작년 4월 이스라엘 종교축제에서 44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이들처럼 평지에서도 질서가 깨어지면 군중들은 그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더구나 경사가 있는 폭 4m 길이 40m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아마 세계 기록이겠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문화와 기술, 경제 대국으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어이없는 사고가 났으니 외국 여러 나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위로를 보내고 있다.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 정부는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합동 분향소도 설치하여 추모함과 동시에 사건의 원인을 찾고 있다.이번 사고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참사가 없도록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안전교육이 필요하겠다. 경찰과 소방대원을 도와 심폐소생술(CPR)을 하거나 환자를 이송하는 등 ‘얼굴 없는 의인들’도 많았다. 항상 준비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사고에 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사고 난 후의 대책 마련에 핀잔을 주고 있지만, 그래도 외양간을 잘 고쳐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미 저질러진 일, 엎질러진 그릇이기는 하지만 희생자에 대해서는 진정한 애도의 마음을 품고 동시에 그들 가족과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가지게 될 트라우마도 잘 치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2022-11-03

바닷가 소나무 숲속의 축제

윤영대수필가 올해의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15일간의 야외전시로 송도 바닷가에서 열리고 있다. 예년보다 조금은 소규모인 듯하고 다양한 볼거리가 없지만, 송림 솔밭 도시 숲에서 포항거리예술축제가 같이 열려서 푸근하게 바다와 숲을 보면서 우리 생활에서 희미해져 가는 듯한 삶의 맥을 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스틸아트페스티벌은 ‘동행-공존하는 다양성’을 주제로 철강기업 작품 14개와 작가 작품 21개, 시민참여 작품 1개 등 총 36개 스틸아트가 맑은 가을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송도에서 푸른 바다, 하얀 모래밭을 배경으로 포항이 문화예술 도시로의 발전을 기원하듯이 ‘해보는 대로’에 줄지어 서 있다.먼저 입구 쪽 안내 부스로 가서 안내 책자와 문화 여권을 받고 천천히 투어를 시작했다. 하나하나 사진도 찍으며 살펴보니 부엉이, 오리 새들과 돌고래, 개복치 물고기도 있고 사슴, 고양이뿐만 아니라 예쁜 나비와 달팽이 등 곤충과 벌레도 철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모두 인간과 공존하는 생명체들이다. 그 사이 서 있는 천사는 두 손 모아 무엇을 기도하고 있을까? 평화의 여신상이 50년 전 포항 시정목표인 ‘명랑한 문화도시’가 이루어진듯 힘차게 하늘로 두 손을 펼치고 있다.백사장에 늘어서 있는 체험 부스로 돌아오니 어린이와 손잡고 가족이 흥미롭게 기웃거린다. 캐리커처도 그려주고 한지·칠보 공예 체험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고 기념품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도 문화 여권에 ‘제목 맞추기’를 써넣어 스탬프도 찍고 체험 티켓을 사서 캐리커처도 그려 받고 종이꽃 액자도 만지작거려 보았다. 또 다음 날 밤에 다시 와 보니 찬란한 포스코 불빛과 검은 바다의 파도 소리에 스틸아트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포항거리예술축제’가 열리고 있는 길 건너 소나무 숲으로 가봤다. 금·토·일요일 사흘간 송도 솔밭 도시 숲에서 ‘우리, 좀 더 가까이’라는 주제로 숲속에 있는 구령대, 족구장, 정자뿐만 아니라 숲속 쉼터와 놀이터 데크 등에서 스무 개의 다양한 볼거리가 공연되고 있었다. 예술가와 시민을 잇고 다양성, 포용 그리고 연결이라는 시민참여 예술제에 포항의 16개 동호회가 참여하고 있었다. 주로 젊은이들이 몸짓으로 율동으로 또 연극으로, 관람하는 시민과 가까이서 또는 같이 움직이며 평범한 하루가 특별한 시간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다 둘러보기는 어렵겠지만 숲길마다 흥겨운 가족 나들이 모습이 바로 축제다.‘요람’ 공연장 데크에서 체험으로 요람에 누워 어린이처럼 웃었지만 곧이어 시작된 1인극은 홀로 공간에서 맴도는 한 여배우의 모습이 각자의 생활 속 시공을 되새겨 보게 한다. 무대 옆을 흰 삿갓을 쓴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기에 뭔가 했더니 ‘숲을 거니는 싯구들’이라는 참여형 거리극이었다. 움직이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기도 했다.저녁나절, 송도 카페 문화거리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니 그것은 밤의 축제다. 카페와 치킨집, 그야말로 ‘까치집’에는 젊은이들의 웃음이 가득하다. 국제불빛축제가 취소된 포항의 바닷가에는 또 다른 축제가 시민들의 마음속에 불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2022-10-27

통신 서비스의 먹통 사태

윤영대 수필가 지난 15일 오후 3시경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SK CC 센터의 카카오 데이터 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카카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많은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은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는 8시간 만에 진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부 장애는 남아있다. 데이터 저장시설의 전기실 내 작은 배터리 1개에서 불꽃이 튀어 번진 후 전체에 옮겨붙어 소실된 것으로 봐서 누전이나 합선 등의 전기화재인 것 같고 화재진압에 물을 사용하지 못하여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그날 나는 보경사 계곡을 탐방하며 보현암을 지나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단풍들기 시작하는 내연산 경치를 둘러보고 연산폭포로 내려와서 잘 찍혀진 사진을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계곡을 내려오며 또 한 장을 보내려고 휴대폰을 펼치니 아까 보낸 사진이 가지 않았다고 되어있다. 간단한 문자를 보내봐도 전송되지 않고 ×자 표시가 뜬다. 계곡이라 통신상태가 좋지 않은가 보다 하며 더 내려와서 상생폭포에서 보내 보니 역시 불통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모임 행사를 끝내고 귀가하였는데 아내도 카톡이 안된다고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찌 부부가 똑같이 동시에 통신장애를 당하다니…. 가족 해킹을 당했나 의아해하며 다른 SNS를 뒤지다 보니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 소식이 있고, 카톡 서비스는 일시에 ‘먹통’이 되어 정보통신기술 강국인 대한민국이 일상을 멈추었다고 이용자들은 난리가 났다. 만약 그때 나에게 급한 일이 있었다면 어찌할 뻔했을까?카카오는 136개 기업을 가진 공용 플랫폼 기업이라 이번 메신저 정지로 택시 지하철 등 교통서비스와 은행 업무 및 금융서비스, 식당 배달업무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었고 카카오 내비 등 PC버전에도 피해를 가져왔다. 근래 합병한 다음(daum)도 마찬가지로 장애가 발생했다. 유·무선 서비스는 국가 기간통신망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카카오 같은 부가통신서비스는 제도권 밖이라 사고가 나면 경제와 사회를 마비시킬 우려가 있어 앞으로 법적으로 시스템을 보완하여 데이터의 이중화·이원화를 철저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통신시스템의 전력공급은 리튬배터리로 하며 급증하는 에너지 저장장치 ESS에 대해서도 화학적 방화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더라도 고전압 시스템도 아니고 또 기계적 설비도 아닌 만큼 전선 회로에 쌓인 먼지에 의한 발화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러한 미세한 부분의 스파크 때문에 온 나라가 통신 먹통이 된 사태를 당하고 보니 만약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것 같다. 이뿐만 아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와 드론과 같은 차세대 운송수단이 무선정보에 의해 운용될 경우 위치 정보 공급시스템에 사고가 발생하여 불통 된다면 자동차와 비행체는 방향과 위치를 잃고 말 것이다. 또 인위적 조작에 의해 범죄도 발생할 수도 있겠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러더’처럼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도 있으려니 미래가 심히 우려된다. 이러한 통신 서비스 관리는 점점 더 엄격해지고 또한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2022-10-20

사라진 사람, 잊혀진 사람

윤영대 수필가 지난 태풍 힌남노 폭우 때 아파트 지하에서 실종된 9명을 구조했는데 생존 2명, 심정지 추정 7명이라는 보도를 보고 ‘실종(失踪)’이란 말을 되새겨본다. 실종은 첫째, 보호자 이탈, 납치, 가출 등 자의나 타의로 잠적한 경우로 살아있을 확률은 높지만 둘째, 재난에 의한 경우는 생사여부가 불분명하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면 남겨진 가족들 마음에 상처가 크다.작년 실종자는 경찰서 신고 기준으로 하루 180명이나 된다고 하며, 지난 5년간 매년 4만여 명이 실종되어 아동 2만, 지적 자폐 정신장애자 8천, 치매가 1만2천이라 하는데 시민 제보와 경찰 당국의 추적 관리로 거의 다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미해제 인원은 3~15명 정도 남는다고 하니 놀랐던 마음이 풀린다. 어린이는 약취, 유인, 유기, 가출 등으로 미아 신고되거나 해외입양, 인신매매되는 일도 있고, 범죄 관련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이러한 악조건도 발생하고 있어서 각 지자체는 2013년 ‘실종아동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그 범위를 14세에서 18세 미만으로 확대했고, ‘모바일 안전 드림 앱’ 등으로 보완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어린이 실종 사건으로는 대구의 ‘개구리 소년들’이 옛 기억 속에 남아있다.한국전력 요금청구서 뒷면에는 매달 2명씩 실종아동의 사진과 함께 나이, 실종 일자와 장소, 키, 체중, 피부색, 심지어 흉터 등 신체 특징과 당시 입었던 옷, 신발 등도 알리고 있다. 보통 10세 미만의 아동들인데 0세 아이는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80년에 실종된 3세 아이는 지금 40세가 넘었을 텐데 어디 무엇을 하고 있을까? 17세 여학생은 성범죄에 연루된 건 아닐까? 다 예쁘고 착해 보이는데 잃어버린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64년 3세였던 아이는 지금 살아있다면 60세가 넘은 할머니뻘인데, 가족이 아직도 찾고 있는 모양이니 안타깝다. 전국적으로 수천 개가 넘는 아동 보호시설은 사회 취약 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월 30만 원 보장비를 받고 있고 해외 입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들도 잘 관리하여 아동의 안정적 자립을 도와주고 사라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요즈음 휴대폰의 ‘안전안내 문자’에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함께 실종자를 찾는 알림도 뜬다. 주로 60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외모와 인적 사항을 알리고 있지만 궁금하여 들어가 보면 거의 1주일 이내에 실종경보 해제가 되고 있음이 다행이다.노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무연고 사망과 자살 등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가족해체 등으로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901만 명 중 독거노인은 176만 명이며, 이 중에서 고독사가 3천600 명으로 4년 전보다 47% 증가했다고 한다. 22년 8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경북을 비롯한 9개 시·도에서 시작하여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을 떼고 있다.세계적인 나라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 외롭게 잊혀진 사람과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후원으로 밝은 사회를 이루었으면 한다.

2022-10-13

새로운 하늘을 열자

윤영대수필가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에 태극기를 달며 생각을 해봤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지 4355년,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반만년의 역사를 써왔다. 최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가고 있음을 느끼며 위대한 나라의 자긍심으로 새로운 세상의 하늘을 열고 이 지구상에 우뚝 서기를 다짐해 본다.1970년대 경제건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일제 식민통치와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최빈국에서 세계 10위 권의 경제 강국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을 가슴 펼쳐 자랑하고 싶다. 세계 최고 수출국으로 OECD의 무대에 같이 섰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 이웃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됐다. 불과 반백 년,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도 밝은 빛이 보인다. 가장 아름다운 나라, 그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지금, 바람직한 민족문화를 더욱더 가꾸고 닦아서 세계의 넓은 하늘로 날려 보아야 한다.국제 음악콩쿠르에서 들려오는 찬사와 영화계에 이어지는 낭보에 우리는 자랑스럽다. 아카데미상과 칸 영화제, 그리고 에미상의 연이은 수상 소식, BTS 등 K-pop과 함께 K-드라마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각종 올림픽에서 보여준 메달 소식과 과녁을 명중시키는 양궁 전사들의 의지는 활 잘 쏘는 동이족 후예임을 알렸다. 축구 야구 등에서도 힘껏 그라운드를 누비며 ‘코리아’를 외치게 만든다. 반만년 역사 속에 언제 이렇게 우리 민족의 슬기와 용기를 보여주었던가.한글 덕분에 문맹률 1% 미만의 유일한 나라, 이제 세계인들도 이를 알고 많은 나라가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더 나아가 나라 글로 채택한 민족도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세계를 열게 하는 자랑이 된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유럽에서는 상표에 한글 병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국의 맛을 세계로’의 기치를 앞세운 음식문화, 한복의 아름다움을 매료시키는 공연과 전시회 등 그동안 꽃피우지 못했던 한류가 세계 곳곳으로 흐르며 맑고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알리고 있다. 가전제품은 이미 세계인의 생활환경에 스며들었다.어디 이뿐이랴. 과학, 기술, 산업 분야에서도 새 하늘이 열리고 있다. 세계 8번째로 개발된 초음속 KF21 ‘보라매’가 하늘을 날았고 T50 고등훈련기 ‘블랙이글스’는 하늘에 태극기를 그리며 박수를 받았다. 우주로의 비행도 시작됐다. 순수 우리기술로 제작된 ‘누리호’가 우주로의 길을 뚫으며 암흑의 하늘을 열었다. K2 전차와 K9 자주포도 열강의 기술을 넘어 합리적 가격과 신속한 생산력으로 세계의 지킴이가 되고 있다. 근래 몇 년간 잠들었던 ‘탈원전’을 깨워서 그간 잃어버렸던 에너지를 되찾고, 두려움을 벗어나 더 안전한 생활의 기반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역사는 흐른다. 그동안 물적 성장에만 쏟았던 마음을 사랑과 배려, 질서를 가르치는 교육으로 민주 국민양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렇듯 세계로의 길을 뛰어 하늘 높이 솟구치게 할 우리 민족의 힘을 모아야 할 지금, 소소한 집안일들로 온갖 분탕질에 집착하는 정치계를 볼 때 한심한 생각이 든다.자! 하늘이 열리고 오천 년, 다시 한번 더 새로운 하늘을 열어보자.

2022-10-06

성범죄 처벌의 현주소

윤영대수필가 요즘 스토킹 범죄가 늘어나며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사이였는데 피의자가 작년 10월부터 협박하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스토킹을 하여 피해자가 2차례나 고소했으나 법원에서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음’으로 기각된 사건이었지만 결국 보복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지난 7일에는 40대 남성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10대 여학생을 승강기 안에서 흉기로 위협하며 납치를 시도하다가 붙잡혀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는데도 이 또한 ‘재범의 우려가 없다’고 기각되었다. 이에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일자 불법촬영 혐의를 추가하여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다는데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에는 위배되지는 않는지….어린이 성폭행 범죄로는 2008년 ‘조두순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교회 안 화장실에서 만8세 여아를 강간 폭행한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나이 많고 술 취한 상태 즉, 심신미약이 참작되어 12년으로 감형받았다. 그러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갈 텐데 안타깝다.여성 스토킹 행위로 접근금지 조치를 받은 남성이 4개월 후 재범을 한 사건, ‘그만 만나자’는 통보를 받고 협박을 하며 흉기를 휘두른 30대 남자에게 경고는 했지만 입건하지 않은 사건 등 20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후 지난 8월 말까지 입건된 7천152명 중 구속된 것은 254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물론 법상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반의사 불벌죄 규정’이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은 아닐 테고 그 집요한 접근이 다음에 더 큰 폭력이 될 것이라는 염려를 한 때문일 것이다.스토킹도 ‘형사적 처벌 대상’인 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성폭력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접근 또는 연락하여 불쾌감, 굴욕감 등을 주는 행위 즉,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모두를 포함한다. 이렇듯 성범죄 행위는 일반 형사 사건과 많이 달라 심리분석과 아울러 초기대응이 중요하며, 구속수사 원칙 등 법원의 판단도 좀 더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군 내부에서의 여군 성폭력 사건 등 성 관련 위반사항이 연간 1천 건을 넘고 있고, 직장 내에서의 성범죄도 사회를 혼탁하게 만든다. 그동안 사회적 물질적 풍요로움만 추구하여 오면서 인간성 교육이 멀어진 탓이리라. 사랑의 표현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진정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야 된다.어릴 때 동네 여동생을 툭 쳐서 ‘오빠, 왜 때려!’하고 울먹이면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야.’라고 하던 기억들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성폭력의 씨앗이 되지는 않았을까? 성 윤리에 대한 새로운 시민교육이 절실하다.

2022-09-29

일상의 회복을 위해

윤영대수필가 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秋分)이다. 한여름의 더위가 사라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의 변화에 벌레가 땅속으로 숨고 누른 벼 이삭은 풍요로운 결실을 위한 기도를 하듯 고개를 숙인다. 텃밭에는 빨간 고추가 익고 마을 골목에는 홍시가 탐스럽고 과수원에는 사과가 알알이 태양을 닮아 붉게 익어가고 있다.20여 년 만에 밀어닥친 최강 태풍 힌남노가 폭우와 강풍으로 주택 8천 가구와 상가 3천 동을 물바다로 만들어 2천여 수재민을 내며 초토화했던 상처의 기억 속에 포항도 이제 한숨을 돌리고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러한 특별재난지역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주민들에게 국가의 발 빠른 지원과 함께 국민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음이 감사하다. 오천 냉천의 범람으로 인한 안타까운 인명손실과 시내 저지대 상가의 침수로 추석특수를 잃어버린 상인들의 슬픔도 씻어줄 응원도 절실하다. 흙탕물에 잠겼던 포스코와 제철산업 단지는 숨이 멎은 듯 그 피해가 엄청나게 커서 복구에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최선의 노력으로 빠른 기간 내에 생산을 회복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이제 온 시내에 폭우를 퍼붓고 흙탕물로 뒤덮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노래하기에 깨끗하게 치워진 바닷가를 거닐어 본다. 김경숙 작가의 ‘2022 영일대 샌드페스티벌’의 모래 작품들이 자유롭다. 소라와 화환을 들고 웃는 ‘바다를 품은 인어’상 뒤로 ‘푸른 꿈의 말’ 4마리가 달리고 사자와 사슴과 백로가 어울려 태풍의 기억을 씻고 있다. 또 강아지를 안고 있는 소녀와 비치볼을 던지려는 아가씨,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가을의 평화를 가슴에 품어본다.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서 환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의 모습 또한 정겹다.가을은 축제의 계절. 전국 곳곳에서 인삼, 고추, 오미자, 포도 등 특산물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포항의 ‘국제불빛 축제’는 잠정연기되었고 태풍으로 피해를 본 모든 분들의 빠른 일상회복을 기원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호박이랑 박이랑 따서 얇게 썰어 말리고 깻잎도 따서 절이며 귀뚜라미의 맑은소리 들으며 가을을 즐겨야겠지. 누른 벼 베어 햅쌀밥 해 먹으며 음력 8월의 농가월령가도 부르며 폭우 피해를 입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어 보자.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아직도 기죽지 않은 코로나에도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 들판에는 코스모스가 가을을 노래하고 하얀 개망초가 웃고 있는 계절에 우리 국민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야 할 텐데, 정치계는 아직도 마음의 쓰레기를 치우지 못하고 서로의 탓만 하고 있다. K2014pop 등 우리의 문화예술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오늘날, 과학, 무기 등 ‘한국의 힘’을 보란 듯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이제 가을걷이를 해야 할 때, 뜨거운 여름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잘 가꾸어온 결실을 추수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계절을 맞이하자.

2022-09-22

인생도 운전처럼

윤영대 수필가 차를 운전하여오면서 인간의 삶도 운전과 같음을 알았다. 사고 없는 운전을 위해서는 운전 기술도 있어야 하지만 신호와 차선을 잘 따라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듯이 탈 없이 인생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지켜야 할 법과 가야 할 길을 잘 알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끔은 뜻하지 않는 장애물도 만나고 위반해 보고 싶은 유혹도 있을 것이며 자신도 모르게 교통위반 딱지가 날아오기도 한다.운전의 기본은 가고 서는 것이다. 출발과 정지의 기술뿐만 아니라 가야 할 때와 서야 할 때를 잘 판단해야 하는데, 그 가고 서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신호등이며, 길이 교차하거나 갈라지는 곳, 또 주의해야만 하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에도 무수한 신호등이 깜빡거린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신호등일 뿐이며, 모르고 지나치기 쉽고 지나고 나서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이다. 빨간 신호가 들어오면 괜히 짜증 나고 푸른 신호에 맞게 잘 통과하고 나면 기분이 좋듯, 우리 삶도 앞이 막히거나 잘 풀리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일이 잘되어 나가면 몸도 마음도 즐겁고 가벼워진다.빨간불은 정지 신호다. 그러나 좀 있으면 파란불이 켜진다. 그런데 그 몇 초간을 묵묵히 잘 기다리는 사람과 사뭇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성격 탓만은 아닐 것이다. 파란불은 계속 달려도 좋다는 신호다. 그러나 언제 빨간 신호로 바뀔지 모르는 것에 대비하여 브레이크에 발을 얹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흔히 푸른 신호를 보고 달려왔을 때, 가속해 통과하려고 하기 쉬운데 자칫 신호 위반과 함께 사고의 위험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인생도 그렇다. 앞날이 약속되고 순탄하게 승승장구할 때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안하무인으로 달려나가다 보면 자기 페이스를 잃고 큰 실패를 겪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호는 빨간불보다는 파란불일 때 더 위험하다. 푸른 신호에서 브레이크를 밟아가는 사람과 가속페달을 밟는 사람, 이 두 경우 항상 사고는 후자의 경우에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한적한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릴 때 빨간 신호가 보이면 속도를 줄이며 다가가서 정지하는 일이 없이 다음 푸른 신호에 맞추어 통과하는 시도를 한다. 빨리 가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서서히 가다가 서지 않고 통과하는 것이 쾌감도 있고 서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우리의 인생에도 신나게 달리는 푸른 신호만 켜지는 것이 아니다. 빨간 신호가 들어오면 잠깐 서서 허리도 펴고 눈을 들어 앞을 보는 여유를 가지자. 명절날 정체된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버스 전용차선으로 용감하게 질주하는 규정 위반의 차들을 본다. 바쁜데도 차선을 지켜 가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규정을 지키며 천천히 밀려가는 많은 차량을 볼 때 동행의 평온함을 느낀다.푸른 신호 앞에서 브레이크를 조금씩 밟아가는 지혜와 밀리는 차량의 물결을 따라 천천히 달리며 멀리 보는 여유를 운전하면서 깨달았다. 남은 내 인생의 운전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2-09-15

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윤영대 수필가 9월 달력을 넘겨보니 15개가 넘는 기념일이 보인다. 어떤 날은 하루에 2개씩이나 중첩되어 있고, 처음 알게 된 기념일도 수두룩하다. 자연순환의 날, 세계 오존층 보호의 날, 세계 차 없는 날 등 환경에 관한 날들과 사회복지의 날, 세계 자살 예방의 날, 치매 극복의 날, 세계 심장의 날 등 인류의 보건에 관한 기념일도 많다. 우리에게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보전하여 인간의 삶의 가치를 드높이자는 각오를 다지려는 것이다. 7일은 ‘푸른 하늘의 날’이다. 우리나라가 대기오염의 경각심을 높이고 청정대기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협력을 제안하여 채택된 첫 유엔 공식 기념일인데 올해가 3회째이다.올 추석은 초순에 들어 좀 이른 편이다. 이번 태풍 11호 ‘힌남노’는 오키나와 남쪽 바다에서 서쪽으로 가다가 잠깐 멈칫하여 초강력 힘을 얻고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대한해협을 지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있다. 어릴 적 추석날 덮친 태풍 사라호에 담장이 날아갔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주말에는 가족나들이 겸 산소에 가서 벌초도 하면 좋겠다. 산길을 가다 보면 ‘살아서 몸 백 년 보존하기 힘들고 죽어서 무덤 백 년 보존하기 어렵다’는 명심보감의 말처럼, 허물어지고 잡초 무성한 묘소가 많이 보이는 것도 안타깝다. 역대급 인플레이션과 날씨 탓에 추석 상 차리기가 부담될 거라고 하지만 조상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예의만 있으면 간소하게 차린들 어떠하랴.초·중·고 각급 학교의 2학기가 시작되었다. 모든 학교가 정상 등교로 교문을 열고 대면 수업으로 그동안 막혔던 마음의 문도 열겠지만, 급식시설과 기숙사 등의 소독과 환기도 철저히 하여 방역관리의 강화도 필요하며, 학교 상황에 따라 원격수업도 유동적이다. 코로나 확진자는 8월 중순 최고점을 찍고 9월 들어 10만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지만 경북 5천, 포항 1천 명을 오르내리며 우리에게 푸른 가을 하늘을 그리게 한다. 재감염률도 7%를 넘고 17세 미만이 약 40% 정도라니 아직은 방심할 단계가 아니다.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어 곡물과 에너지 공급의 길을 막아 세계는 환율과 금리인상 등의 불안에 떨고, 국내 정계는 여야 당파 간의 불협화와 대통령실의 갈팡질팡 인재 채용으로 국가위기 해결과 국제적 위상 정립은 내팽개치고 당규 싸움과 내부 분탕질이나 하고 있으니 이 고질병을 고치는 백신은 없을까…. 아! 구월이여.9월이 왔다. 가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리는 시골집 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보며 ‘멍 때리기’를 하노라면 6, 7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영화 ‘9월이 오면’의 경쾌한 음률이 흐릿한 기억을 살린다.“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이해인 수녀의 ‘9월의 기도’를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9월의 꿈, 그 맑고 푸른 하늘에 들꽃의 향기를 날리고 싶다.

202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