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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동해선 무궁화호 열차의 꿈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붉은 가을의 막바지, 푸른 바다 동해안의 블루로드 산길을 걷고 싶어 영덕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포항역에 가서 열차 시간표를 보니 하루 5회 왕복, 요금은 어른 2천600원, 어린이는 반값이고 경로는 1천800원이다. 영덕까지 4개 역 모두 승차요금은 같다.플랫폼에서 만난 디젤 전동열차는 좀 낡아 보여도 오히려 옛날 완행열차의 추억이 되살아 올라 친근감이 든다. 2018년 1월에 개통되고 2개월 후 타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여 열차 내로 들어가니 승객은 적고 좌석 사이가 넓어 편안히 앉았다. 곧 출발해 ‘경북의 바다 역’- 월포, 장사, 강구를 지나는데 시골 역이라 승객은 거의 없고, 플랫폼도 좁고 여러 개의 터널도 지난다. 이따금 트이는 바다를 보며 40여 분을 달려 영덕역에 도착해 보니 역 건물이 홀로 잘난 듯 현대적이다.역 바로 옆에 뚫린 작은 시멘트 터널 두 개를 지나 안내도를 따라 고불봉(高不峰·235m)으로 오른다. 차가운 바람이 살살 부는 산길을 오르며 빨간 망개나무 열매도 만져보며 정자가 있는 산마루에 선다. 영덕읍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이곳, 동해에 보름달이 떠서 봉우리에 걸쳐지면 두 개의 달이 보인다는 일명 망월봉에서 목을 축인다. 동쪽으로 바다가 보이고 북쪽에는 풍차들이 돌고 있는 이 봉우리는 경치가 아름다워 유배를 온 고산 윤선도 선생이 쓴 시가 정자 앞에 놓여있다. 전망 좋은 고개마다 쉬어가며 나무 계단도 오르며 숲을 지나노라면 좁은 산길에 소복이 떨어져 있는 도토리들…. 이 산에는 다람쥐도 청설모도 없나 보다. 금진 구름다리를 건너 강구항이 보일 때쯤 잠시 쉬어가는 산막의 ‘숲속 도서관’에는 열댓 권의 책이 꽂혀있다. 축구장이 있는 생활체육공원을 내려다보며 산길 입구로 내려오니 ‘바다를 꿈꾸는 산길’ 10㎞를 4시간쯤 걸었다. 대게의 맛내음이 물씬 풍기는 항구에 오니 시장끼가 돌아 작은 식당에 들어가서 물가자미회에 해물탕 시켜놓고 일행들과 하산주를 한 잔 했다.해그름의 강구에서 포항행 직행버스를 타려다가 열차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차비도 훨씬 비싸서 무궁화호를 타려고 역을 찾았는데, 20여 분이나 걸었다. 한적한 역에 올라가니 매표 창구는 운영하지 않고 자동발매기를 이용하던가 승차 후 승무원에게 구입하란다. 한참을 기다려 탄 야간열차는 여행의 끝맺음을 느긋하게 한다.동해중부선의 시작인 포항역을 나오며 생각해 본다. 2020년 12월에 착공한 영덕에서 삼척까지 2단계 사업은 당초에 단선 비전철로 계획되었으나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강원 동해까지 172㎞ 전 구간을 전철화로 바뀌었고 현재의 철도 시스템 및 통신공사가 마무리되는 2025년 1월에 완공 예정이다. 전철이 연결되면 철도이용 서비스 확대로 동해안으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영덕 지방의 관광객 증가와 더불어 지역 균형발전을 기대해 본다.그리고 강원 고성까지 백두대간 등줄기 종단 철도가 완성되면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금강산을 지나 북으로 연결되고 함경도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까지 연결되는 유라시아 횡단 철길을 꿈꾸어 본다.

2023-11-23

수능시험을 치르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이 되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이 치러진다. 1994년도부터 실시해 오고 있고 문이과 통합 수능으로는 세 번째이며 전국 84개 시험지구의 1천200여 개의 시험장에서 치러졌다. 그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공부한 50만4천여 명 수험생은 이제 긴장을 풀고 본인이 원하는 대학지원에 온 정신을 쏟아야겠지. 이중 N수생(재수 이상 수험생) 및 검정고시 출신이 17만8천여 명으로 35% 이상이 되어 28년 만에 최고라고 하는데, 최고 상위권 학생의 ‘의대 열풍’과 킬러 문항 배제 소식에 반수생(半修生·대학을 다니다가 중간에 재수하는 학생)들이 가세한 탓이라고 본다.수능 과목의 국어, 수학, 사회·과학 탐구는 상대평가이고 한국사, 영어 또는 제2외국어, 한문은 절대평가인데 한국사는 우리 역사에 대한 기본 교양 평가이며 미응시자는 전 과목이 무효 처리된다. 이번 수험생들이 약간 혼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는 지난 6월 입시 비리 관점에서 불거진 ‘사교육 카르텔’ 논란으로 대통령이 사교육 경감방안을 요구하며 소위 초고난도 문제라는 킬러 문항 배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수능 출제 위원과 학원 사이에 출제 문항의 정보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로 학원가에 빨간불이 켜지기도 했다. 이에 오히려 ‘물수능’이 되지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계획이라는 말에 그 연관성에 약간의 의문을 갖게한다. 그러나 사교육이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지금, 공교육 중심의 공정한 수능을 실현하여 고교 이상 학력이면 여태껏 배운 실력으로 유추하여 해답을 얻는 정도의 문제이면 족하리라 본다. 수능성적은 대학마다 과목·영역별 반영 비율이 다르므로 지원할 때 잘 파악하여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근래 와서 대학은 반도체 및 첨단과학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증원하려 하고 의대 쏠림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올해의 수시 모집에서 보여준 의대 경쟁률은 수도권이 61대 1이고 지방의 29개 대학은 18대 1인 것을 보면 의약학 계열 지망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나아가 우리 국민의 교육 의식을 엿볼 수 있다.‘말이 나면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있다. 제주도에서 키운 말이 품질이 좋듯 인재도 서울에 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 평준화…. 참 어려운 말이다. 천재는 천재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근래 4년간 SKY대학 정시합격자의 70%가량이 수도권 출신이라는 통계가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대학 소멸 위기가 닥쳐오는데 이에 대한 국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영유아 10명 중 6명 이상이 사교육 즉, 선행 학습을 받는데, 연간 3개 이상 사교육을 받는 영유아는 수도권이 비수도권의 3배 이상이고, 전국 초등 1학년 학부모 1만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연간 300만원 이상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집이 약 26%라고 하니 온갖 희생을 감수하고 자식들 교육에는 최선을 다하는 우리 국민의 교육열은 아마 세계 최고가 아닐까!코로나 확진자, 유증상자도 같이 치른 이번 수능으로 독감 환자가 늘고 있는 겨울의 초입에 우리 사회도 별 탈이 없기를 바란다.

2023-11-16

입동(立冬)의 계절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푸근한 날씨가 이례적으로 계속되며 단풍이 곱게 물들더니 이제 안동에서 첫얼음을 보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평년보다 10여 일이 늦은 얘기이고 전국 곳곳에 첫서리가 내리고 고드름이 열렸다는 추위 소식도 들린다. 대지가 얼기 시작한 모양이다.이제 농촌에서는 1년 농사의 끝맺음으로 콩으로 메주를 쑤고, 찬 서리 맞은 배추와 무를 절여 김장을 담그는 계절이다. 입동(立冬) 전후 닷새 이내가 가장 맛 좋다고 하니 갖은양념을 섞어 우리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만들어 장독에 넣어 한해의 양식으로 저장해 두면 마음이 푸근하리라. 지난 2년 전 뉴스를 달군 중국 어느 공장의 김치 담그는 장면이 떠오른다. 알몸 남성이 배추를 절이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중국산 김치를 거부하는 공포가 확산하여 김치에 대한 원산지 집중 점검이 실시되곤 했었다. 그러나 김치는 미국 일본 등 해외수출량이 약 4만t으로 지난해에 비해 5% 정도 증가했다지만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뺏겨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알몸 김치’였던 중국산에도 손길을 뻗치지 않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최근 어처구니가 없는 ‘소변 맥주’와 더불어 중국산 식품에 대한 거부 운동이 일고 있다.누른 황금 들판에서 거두어들인 햅쌀로 시루떡을 만들고 치계미(雉鷄米)로 노인들에게 음식을 전해드리는 풍습은 우리의 경로(敬老)사상으로 주변에 훈훈한 미소를 짓게 한다. 또 가을걷이 후 초가지붕을 다시 덮으며 이엉 잇기하고 ‘입춘날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춥다.’고 하여 군불 때어 바닥 말리고 하던 옛 시골의 정경이 떠오른다. 이번 첫추위 이후에 한파특보가 내려지면 땅속으로 파고드는 동물들처럼 우리도 조금 침체된 생활 속에서도 몸을 움직이며 꾸준히 삶의 에너지를 살려나가야겠다.11일은 ‘빼빼로 데이’다. 11월 11일, 아라비아 숫자 ‘11’이 가늘고 길쭉한 초콜릿 과자를 닮았다고, 30여 년 전 부산의 어느 여고에서 시작한 것을 롯데가 국내 최대의 ‘데이 마케팅’으로 추진했던 날이다. 지금은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빼빼로나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자리 잡은 인기 있는 행사일이다. 11일은 또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여 빼빼로 데이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기념일이니만큼 서로를 잘 융합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면 좋으리니….한파특보가 내려졌다. 칼바람 속에 체감 온도가 떨어지면서 시민들도 겨울옷과 목도리 등 추위를 피하기 위한 모습들이 이제 겨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정치계도 연일 찬 바람이 부는 한파로 걱정이다.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터무니없는 날 선 공방으로 밝은 미래를 원하는 국민은 연일 한랭 전선에 싸여있는 듯하다. 이 추운 겨울날 국민들의 마음에는 따스한 날들이 기대될 것인데 연일 쏟아내는 망발에 마음은 더 추워질 뿐이다.이제 나뭇잎 떨어져 나목(裸木)이 되면 풀들도 마르고, 만물 또한 활동을 접고 다음 봄날까지 휴식을 취하는 겨울, 그 초입의 계절인 11월에는 이제 추수 후 겨울잠을 자야겠지. 다음 따뜻한 봄날을 꿈꾸며….

2023-11-09

겨울을 준비하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달력을 또 한 장 넘겼다. 겨울의 초입, 11월이다. 그런데 날씨는 푸근하다. 주말부터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오겠다는 예보도 있는데…. 달력을 살펴보니 공휴일이 없어 좀 쓸쓸한 달이지만 1일부터 청송 사과축제가 열리고 3일에는 포항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포항음악제가 시작되며 10일에는 구룡포 씨푸드축제가 준비되고 있다.저녁 먹고 영일대 바닷가로 나갔다. 40여 일째 해오고 있는 해변가 ‘맨발로 걷기’를 하기 위해서다. 바다시청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서니 하루의 일과가 머릿속에 정리된다. 붉게 물든 큰 보름달이 수평선 위에 떠 있고 많은 사람이 깨끗한 모래 위를 걷고 있다. 나는 찰방찰방 물을 밟으며 영일대 쪽으로 걷는다. 많은 사람이 스치며 조용히 뒷짐 지고 걷거나, 팔을 크게 흔들며 걷는다. 대부분 혼자서 걷는 사오십 대가 많고 노년의 부부도 조용히 얘기하며 걷고 몇몇이 놀러 나온 젊은이들은 불꽃도 터뜨리고 사진도 찍는다. 무릎 깊이의 물속에서 발가락을 꼬무락거리며 조개를 줍고 있는 아줌마가 있는가 하면 모래사장에 해초와 함께 밀려 나온 조개를 도로 바다로 던져주는 아저씨도 있다.영일대 부근까지 오니 스페이스워크가 알통을 재는 것 같은 포즈 위로 달이 보인다. 집을 나설 때는 춥지는 않을까 하고 따뜻하게 입고 나왔으나 물속에 발을 담구어 보면 차갑지가 않다. 요즘은 바람도 잔잔하다. 해변에 서 있는 스틸아트 이정표를 보니 먼 나라 도시 10개 정도가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뉴욕이 약 1만1천km이고 서울은 270km이다. 되돌아 오면 포스코의 휘황 찬란한 불빛이 포항의 힘을 빛나게 하고 있다. 남쪽 끝 여객터미널 앞까지 와서 체조를 하며 잠깐 쉬고 되돌아간다. 이렇게 약 3천500 보 2.5km를 걷는다. 오늘도 버스킹 그룹 몇 개가 노래를 들려주고 큰길 옆 식당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카페에는 연인들의 모습이 조용하다.이처럼 바다는 맑고 깨끗한데 근래 갑자기 들려오는 ‘럼피스킨’이라는 소 전염병이 전국 74곳이나 발생하였고 약 5천 마리가 살처분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다행히 경북은 아직 피해가 없다니 다행이다. 이 병은 모기 따위가 옮긴다는 데 또 빈대가 출몰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도 들린다. DDT(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 뿌려서 1970년대에 없어진 줄 알았던 빈대가 또 말썽이다. 아마 해외에서 유입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맨발 걷기를 마치고 모래밭을 나와보니 스틸아트 작품들은 거의 철거되고 몇 개만 남겨두었는데, ‘Time’의 흰 딱따구리는 기둥을 쪼고 있고 ‘비상(飛上)’의 20마리 포항갈매기들은 하늘을 향해 뜨겁게 날아오른다.집에 와보니 땀이 조금 났다. 이제 여름철 옷은 빨아 넣고 길고 두꺼운 겨울옷을 꺼내야겠다. 벌써 마음먹고도 행하지 않았던 에어컨 청소도 전기 코드는 이미 빼놓았지만 필터도 닦고, 이방 저방 흩어져 있는 선풍기도 씻어 넣어야지. 시골집 뒷간도 정리하고 황토방에 불을 때어 주어야겠다. 곧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니 더 추워지기 전에 주위를 정리하고 마음 조용히 11월을 맞이하자.

2023-11-02

10월의 어떤 기억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천고마비의 10월도 이제 다 지나간다. 단풍 고운 마지막 주에 들면 낙엽 지면 꿈도 따라가는 줄 몰랐던 아련한 추억을 되돌아보기도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낙엽 따라가버린 사랑의 노래가 아닌 쓰라린 가슴을 안아야 할 하나의 아픈 기억이 살아 오른다.작년 이맘때 ‘핼로윈 축제’의 흥청거림 속에 서울 이태원 골목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폭 4m의 좁은 언덕길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서로 뒤엉켜 압사당했던 159명의 젊은 영혼들의 기억이 슬프다. 아직도 그 사건의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특별법 제정과 분향소 설치를 다투는 가운데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린다. 매년 호황을 누리던 대형 백화점의 마케팅 행사는 사라지고 핼로윈 축제는 물론이고 2주 전에 열려던 ‘지구촌 축제’도 취소됐다.10월 26일이면 생각나는 10·26사태는 1979년 현직 대통령이 살해된 기막힌 역사적인 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3선 개헌을 통하여 장기 집권의 틀을 마련하고 1972년 10월 유신체제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낙후한 조국을 구하겠다는 선언으로 국민의 정신 개혁과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였으나 신임하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회식 자리에서 권총으로 살해당했다. 올해가 44주년이 된다.그리고 또 26일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일본 총독 이토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역에서 저격하였고 우리에게는 독립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한 사건이다. 그가 목숨 바쳐 구국 투쟁을 벌이겠다고 동지 11명과 맹세하면서 자른 손가락은, 여순감옥에서 쓴 많은 글씨와 함께 찍은 장인(掌印)의 자국으로 보여주며 그의 구국 열의를 되새겨 보게 한다.또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46년에 일어난 ‘대구10월항쟁’은 올해로 77주년이다. 당시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불만을 품은 대구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하자 경찰이 총격을 가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였는데, 이를 참지 못한 민중봉기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해방 후 최초 민중항쟁이었다. 이 사고의 진상규명과 희생된 수천 명의 명예 회복은 최근까지 계속되었다.역사는 흐른다. 낙엽 지는 가을의 정취 속에 마음을 정리해 보노라면 지나온 세월 동안에 일어났던 숱한 사건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1900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명시한 것을 기념하며 2010년 한국교원 총연합회와 몇몇 유관 단체가 ‘독도의 날’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일본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만 우리 독도의용수비대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이제 곧 11월. 그 많았던 축제들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포항문화재단의 ‘우리동네 일상예감 프로젝트’로 떠나본 두 번째 ‘세계가곡여행’은 26일 끝났다. 매주 목요일 오전 오후 2개 팀이 대잠홀에서 이탈리아 오페라 공부와 함께 우리 가곡을 감성 있게 불러본 두 달 반의 노래 여행은 이제 나의 뇌리에 행복한 꿈으로 남는다.“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불러본다.

2023-10-26

무서리 내리는 상강(霜降)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며 기온은 뚝 떨어지고 전국적으로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평년보다 3~5도 낮은 강추위가 올 거라고 예보되고 있다. 동쪽 바다에는 강풍이 불어 파도가 높을 거라고 한다.이제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의 절기이다. 무서리가 내린 아침 풀밭을 걸어 보면 발목이 시리고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곧 산과 계곡은 낙엽으로 물들고 들판엔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하늘대며 풍요로운 가을을 노래하겠지…. 농부들은 벼를 추수하고 농사를 마무리하며 겨울 준비를 할 터,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뛴다’던 옛 농촌의 힘들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큰 농기계들이 훑고 지나간 들판에는 하얀 천으로 말아둔 볏단들이 한 해의 결실이다.예전 같으면 보리 씨 뿌려 다음 봄날을 기다려 보겠지만 요즈음 보리 심는 경우는 드물고, 고구마 캐어 삶아 먹고 국화주 한 잔 마시며 그동안 수고를 돌아 봐야지…. 가끔 천천히 달려보는 마을 개천 가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지나가는 계절을 손짓하고 있다. 시골집 골목길 입구의 감나무에 몇 개 남겨둔 빨간 홍시는 직박구리 같은 텃새들을 불러 모으고 철새들은 벌써 남으로 날아갔는지 소식이 뜸하다. 까마귀 무리는 들판을 지나는 전깃줄에 모여 앉아 우리 인간들을 보며 수군대는 듯하다.다음 주부터는 가로수도 단풍으로 물들 것이고 내연산 계곡에는 소풍객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날 것이다. 이제 더 날이 추워지고 된서리가 내릴 때면 수풀도 나뭇잎도 모두 시들어 가겠지만 단풍은 절정을 이루고 국화가 만발하게 된다. 국화를 ‘신이 만든 꽃 중에서 마지막에 만든 꽃’이라던가? 서리 내리는 계절- 오상고절(傲霜孤節)에 피어난다고 꽃말은 고결(高潔)이다.이맘때면 온 나라가 가을 축제로 흥청댄다. 축제의 계절이다. 포항은 지난 12∼15일‘일월의 빛, 포항의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제15회 일월문화제가 열려 부부 선발대회도 했고 풍물 공연 한마당과 춤 축제가 열렸었다. 그리고 영일대해수욕장에서는 2023 스틸아트 페스티벌이 열려 ‘Steel Wave, 포항의 꿈’을 형상화한 예술가 26명과 철강기업 20여 곳에서 제작한 40여 개의 조형물이 전시되고 있다. 모래밭 체험 부스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러 나온 젊은 부부의 사랑스런 모습도 일렁인다. 스탬프투어에 끼어들어 스틸아트를 찾으며 10개의 도장을 찍어 조그만 기념품도 받았다. 작품들을 모두 둘러보고 형산강 하구 둔치로 갔더니 핑크 뮬리 밭의 분홍 물결이 강물 따라 출렁이며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시골집에 가서 잔디를 말끔히 깎고 화단에 떨어진 주먹만 한 노란 모과를 주워 바위 위에 모아놓으면 가을이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상추잎 뜯고 부추를 솎아내어 부추전 부쳐 막걸리 한잔하며 요즘 나랏일을 생각해 보니 추상(秋霜) 같은 하늘의 엄명으로 벌레 먹은 잎사귀 모두 털어내고 아름답게 단풍으로 물든 세상을 기원해 본다.

2023-10-19

순우리말을 사랑하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올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77년이 된다. 비가 올 듯한 날씨에 베란다 밖으로 태극기를 달고 고개 내밀어 살펴보니 130여 가구의 아파트 벽면에는 다섯 집 정도가 걸려있다. 국경일에 대한 국민 의식이 좀 더 고양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념식 중계방송을 보며 한글날 노래를 3절까지 따라 불러봤다. ‘한글은 우리 자랑이요 문화의 터전이며 생활의 무기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라고 다짐하고 보니 한글과 우리말 사랑의 마음이 잔잔히 일어난다. 한글은 4글자(ㅿㆁㆆㆍ)가 없어지고 자음 14자, 모음 10자 총 24자로 소리가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글자이다.요즈음 글을 읽다 보면 그 의미를 잘 모르는 말들이 있다고 한다. 말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변화한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의 휴대폰 대화와 문자전송 등에서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따른 지식으로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유행되기도 하여 우리말에 편입되거나 짧게 유행하고는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특히 한글은 거의 모든 발음을 나타낼 수 있기에 한자어나 외래어로 유입된 지 오래되어 발음이 변하여 고유어로 오인되는 귀화어(歸化語)도 상당히 많다. 우리 고유어라고 생각되는 단어들이 외래어일 수도 있고, 순우리말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명확하게 가려내는 것이 어렵기에 논란도 있다.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한자문화권에 들어있어서 한자에서 유래된 단어가 많고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기초적인 단어는 일본어로 대체되었으며 또 나라가 발전하며 서방 국가들과 많은 왕래로 영어가 스며들었다. 이러한 언어문화 변화의 다양화로 우리 고유어가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고 그 유입을 차단하기란 불가하고 또 적합하지도 않아 다른 방향의 언어순화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개념이 들어올 때 한자어를 이용하기 편하고, 고유어를 한문으로 음역(音譯)하면서 그에 비슷한 한자를 쓴 결과 순수한 우리말과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글을 쓰면서 가능한 한 순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함축된 뜻을 전하려면 한자어를 쓰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순우리말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순우리말인 줄 알았던 바람(風)과 가람(江)이 고대 중국어에서 왔고 붓, 쇠도 어원은 중국어에 있다고 하니 놀랍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선조들은 중국대륙에서 옛 문화를 공유한 탓이라고 봐야할까? 감자 고추 대추도 한자어의 변형이며, 심지어 김치도 침채(沈菜)라는 어원을 갖는다는 설도 있다. 이와 반대로 한자어로 오해받는 순우리말에는 근심, 마감, 거문고 등이 있고 생각도 생각(生覺)이 아니란다. 우레도 우뢰(雨雷)가 아닌 순우리말이고 에누리도 일본어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고유어로 착각하는 것에는 가짜, 공부, 귤 그리고 수를 셀 때의 ‘개(個)’도 한자어이고 냄비, 가방은 일본어, 담배와 빵은 포르투갈 언어라고 한다.캘리그라피 공부를 하며 외래어 같은 순우리말 몇 개를 듣고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자연 그대로 변함없는-온세미로’ ‘사랑하는 사이-예그리나’ ‘즐거운 내일-라온하제’ 등 순우리말을 많이 사용하여 꽃가람 흐르는 ‘세상의 중심-가온누리’가 되길 바란다.

2023-10-12

장묘 문화가 바뀌고 있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이번 추석에도 가족묘를 찾아가 술 한 잔씩을 정성스레 올렸다. 조모님은 파주의 묘지에, 부모님은 대구의 공원묘원에, 그리고 1년 전 귀천한 동생은 의왕의 납골당에 모셔져 있어서 한 바퀴 순회하듯 마음 경건히 둘러보았다. 그런데 추석 연휴가 길어서인지 성묘객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아 조용한 분위기였다. 기일(忌日)이나 한식날에도 찾아보려 했었지만 추석에 한 번 찾아가는 것도 어려워 묘지관리는 맡기고 있다. 덕분에 산소는 깔끔하게 벌초가 되어 있어 고마웠다.우리의 장묘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유교문화를 전통으로 한 매장(埋葬)도 90년대부터 변하기 시작하여 요즘은 화장(火葬)이 90%를 넘고 포항지역만 해도 81.4%라고 한다. 화장 후에도 납골당에 정갈하게 봉안하기보다는 수목이나 잔디밭에 묻는 자연장(自然葬)이 더 많다고 하니 후손들의 관리 불편에 따른 심정이 조금 묻어있는 것 같다. 산에 봉분을 만드는 일반 매장은 유족의 경제적 부담과 함께 1인 가구와 핵가족의 증가, 고령화 등으로 인해 1년에 한 번도 성묘하지 못하는 죄스러움도 있을 것이고, 수해의 우려와 교통편 등을 생각하더라도 넓은 추모 공원 등에 안치하는 것이 좋아서 앞으로의 장묘문화가 될 것 같다.우리나라의 묘지 면적은 국토의 약 1%이고 매년 20여만 기의 묘가 만들어지고 있어 10년 이내에 묘지공급의 한계가 우려되는 장묘 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예측도 있다. 2001년 제정된 장사(葬事) 관련 법은, 매장은 국토를 잠식하고 자연환경을 훼손한다는 관점에서 화장과 봉안, 자연장을 장려하며 묘지 조성은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약 1천800만 기의 묘지가 있으며 그중 3분의 1 정도가 무연고 묘로 조사되어 각 지방자치단체는 분묘 개장과 이장을 권고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산행하다 보면 산 능선과 아늑한 계곡에서 많은 무덤을 보게 되는데 거의 다 벌초도 되지 않고 손상된 방치 묘소로서 버젓이 큰 비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잘 나가던 집안이었던 같은 데도 돌보는 후손이 없는 듯하며 마음이 아프다. 명심보감에서 읽은 ‘살아서 백 년간 몸을 보전하기 어렵고 죽어서는 백 년 동안 무덤을 보전하기 어렵다(難保百年墳)’는 글귀가 생각난다. 무덤은 명당이어야 한다며 배산임수니 좌향이 어떠니 하며 풍수를 보곤했지만 이제는 세상도 바뀌어 명절 때 벌초하고 성묘하기 위해 교통이 편리하고 경관이 좋은 곳이 명당이 되겠다.점점 화장이 증가하는 추세를 따라 포항시는 2021년에 친자연적 장례문화를 구축하고 편리한 장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으로 추모공원 설립지를 공모했었지만 반응을 얻지 못하였다가 올해 다시 모집한 결과 남부의 장기면을 비롯한 7개 지역이 참여 의사를 밝혀 추진력을 얻고있다. 약 10만 평 규모에 80%는 공원화하고 20%는 화장시설, 봉안시설 등을 갖추어 2025년 3월 개원을 목표로 포항지역의 대표적 명승지로 만들려고 한다.우리의 장묘문화도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사회적 의식 변화로 바뀌어가겠지만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만은 마음에 한껏 안고 가야 할 것이다.

2023-10-05

맨발로 걷는 건강한 삶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요즈음 걷기운동이 우리들의 일상에 많은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 만 보 걷기’를 꾸준히 하고있는 지인도 있다. 지난주 철길 숲과 송도 솔밭과 해변을 걸었더니 약 2만 보가 된다. 싱그러운 숲의 내음과 선선한 바닷바람을 마시며 걷고 나면 땀 젖은 피로감보다는 오히려 몸속의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느낌이다.지난 20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포항 GreenWay 아카데미 행사인 ‘맨발로 걷는 건강한 삶’이란 주제로 맨발 걷기 국민운동본부 박동창 회장의 강연이 있었다, 2시간가량 맨발 걷기에 관한 얘기를 듣노라니 그 효과가 신기하여 나도 한번 시작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선다. 맨발로 걷기를 ‘어싱’이라고 하기에 “무슨 말….?” 했는데 영어로 earthing-접지(接地), 즉 피부를 땅에 접촉하게 함으로써 우리 체내에 전기를 없앤다는 것이다. 그냥 걷기보다 맨발의 경우 2배 이상의 효과가 난다고 한다. 그 접지가 이루어졌을 때, 항산화 작용으로 NK 세포(바이러스 및 암세포 대응 백혈구) 증가로 인해 암, 고혈압, 뇌졸중 등 심각한 질환도 벗어났다는 체험담도 여럿 들려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압 효과, 뇌 기능 향상, 숙면 효과, 스트레스 해소 등 놀랄 만한 효과가 있으니 맨발로 걸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최소 10분에서 1시간가량 맨발로 흙 위를 걷는 운동이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며 전국 각 지역에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지자체들은 이에 호응하듯 산책로를 다듬어 주고 있다는데 벌써 지방의회 12곳에서는 조례 지정을 하여 국민의 건강한 삶을 보살피고 있으며 각종 축제도 벌어지고 있다.포항시는 그린웨이 추진과를 운영하며 2016년부터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전국 최초로 ‘걷기 좋은 길 맨발로(路) 30선 선정 도시’가 되어 살기 좋은 녹색도시로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북부에는 영일대해수욕장과 용한리 해변 모래길, 기계서숲과 흥해 북천수 숲길 그리고 천마지 둘레길 등 12곳이 있고 남구에는 송도 솔밭과 해도 도시숲, 포항운하길 그리고 오어지와 달전지 둘레길 등 18곳이 선정되어 건강을 유지하려는 시민들의 맨발 걷기운동을 유도하고 있다.신발을 벗으면 발의 자유로움과 자세 균형 및 전자 흡수로 체온이 올라가 자연과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맨발로 산길을 걸을 때의 몇 가지 우려 사항도 알려준다. 먼저 걷기 전에 몸을 풀고 1~2m 앞을 주시하며 걷고 길 밖으로는 걷지 말고 파상풍 예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발바닥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는데 수많은 인대와 근육, 뼈와 관절이 있고 또한 맨발 걷기는 가성비도 좋으니 일정한 계획을 세우고 집에서 가까운 맨발로를 찾아가서 열심히 걷기운동을 하면 좋겠다. 맨발로 입구에는 발바닥 모양의 알림판이 있는데 신발 벗고 들어가며 그 내용을 읽어보니, 혈액순환개선 up/ 뇌 건강 up/ 불면증 down/ 당뇨 down 등 7가지 효과가 적혀있다.곧 추분이다. 이제 밤의 길이가 길어지고 생명체들이 움츠려드는 계절에 자연 즉, 지구와의 접촉을 통해 숲속 길, 바닷가 길, 호수 둘레길 등을 맨발로 걸으며 건강한 삶을 살자.

2023-09-21

단식투쟁은 ‘양날의 검(劍)’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8월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1주년이 되는 날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외치며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한 지 2주일이 지났다. 단식투쟁(斷食鬪爭)은 ‘정치적 시위 또는 특정 사항 관철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단식을 하는 비폭력 저항 행위’로 자신의 건강과 목숨을 걸고 하는 자해나 자살과 같은 의미가 짙다.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목적을 위해 그 정당성과 인간 권리를 앞세워 특성 이슈를 부각하려는 것이기에 대중에게 설득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서 그 가치를 판가름하게 된다.단식투쟁의 효과는 원인과 목적, 추진 맥락,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르다. 이번 이재명 대표의 경우는 정부에 대한 직접공격 대신에 단식을 선택하여 검찰 소환에 항의하려는 듯한 회피성 투쟁이고 조건 없는 단식이라는 조롱과 위로가 엇갈리고 있다. 단식 중단의 명분도 없고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 물타기 한다는 둥 실리도 챙기지 못하고 대여(對與) 투쟁만 시끄럽게 한다. 우리 인간은 물 없이는 3일, 음식을 먹지 못하면 3주가 적정생존 기간이고 4주가 넘으면 위험하게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3일 이상 음식을 안 먹으면 체내 포도당이 소진되고 칼륨의 손실이 커지게 되어 1주일 넘기면 몸에 이상이 발생한다는데, 단식 13일째 검찰 조사받으러 가는 모습에 의사도 놀란다. 밤에는 천막을 떠나고 토·일요일에는 쉰다는 것에 ‘출퇴근 단식’이니 ‘웰빙 단식’이니 하는 말도 나돌지만 건강 악화로 당내의 우려도 커져 국회 당 대표실로 장소를 옮겼다.단식하면 떠오르는 인물에 인도의 성웅 간디가 있다.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 무저항으로 3주간 옥중 단식투쟁을 했다. 집단 투쟁으로는 1981년 영국과의 갈등으로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 200여 명이 1, 2차 60여 일간 단식으로 10여 명이 사망했다는 역사도 있다. 단식투쟁이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 정치사의 경우, 1983년 가택연금 중에 대통령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한 김영삼은 23일간, 1990년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한 김대중은 13일간, 2014년 세월호특별법 국회 통과를 두고 문재인은 9일간 단식을 하였고, 5·18특별법으로 수감 중이던 전두환과 영수회담을 제안하며 8일 단식한 황교안은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갔었다. 또 비정치인과 학생운동가들도 단식투쟁을 감행했었고 올해만 해도 3월 간호법 반대의 대한의사협회, 6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7월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철회와 9월 새만금 예산 삭감 항의 등의 단식규탄도 계속되었다.단식투쟁은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고 ‘양날의 검’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진정한 태도로 상대방의 이해와 합의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번 이재명 대표의 경우 무표정한 여당의 아량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2023-09-14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4일 학부모 갑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등 여교사의 49재 날, 서울 여의도에서 약 2만 명의 교사와 시민들의 추모집회가 열렸다.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전국 곳곳에서 약 10만 명 이상이 동참하였다고 한다. 교육부 장관은 이 추모집회를 ‘교사들은 집단행동 불가’라는 공무원 복무규정의 위반이라며 집회 참가자에게는 파면, 해임 등의 징계가 가능하다는 통보를 했으나 교사들은 오히려 자발적 결의로 연가 또는 병가를 내어 함께 모였고, 유·초·중등 교사 50만7천 명의 교권확립을 주장하며 질서 정연하게 마무리했다.매주 수만 명 이상 토요일 집회를 이어오면서 외친 것은 그동안 계속되어온 공교육 약화를 우려한 교육개선의 문제였다. 지난해 말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고 올해 8월 교원지위법이 발의되어 교사의 생활지도권이 강화되고 교권침해범위가 확대된다. 지난 5년간 교권침해 사례는 매년 약 2천여 건이 발생했고 초등교사 대부분이 교직 생활 중 교권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그중 반 이상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라고 한다.이러한 교권침해 사례가 일어나면 피해 교원과 학생을 격리하지 않고 오히려 교사에게 병가를 내게 하거나 전보 발령을 하는 등 교육청과 교권보호위원회는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등 2차 가해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명예퇴직이 늘고 있다는 안타까운 교육계 소식이다.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 학습권과 교사 수업권, 교원의 존중 등이 법규화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인의 공허한 약속일 뿐 구체적 학생지도와 징계 방법 등이 명시되어있지 않아서 오히려 아동학대로 의심받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업 중 잔다거나 수업 방해와 지시 불응 등이 있는 경우에도 체벌이 불가하여 교내 청소나 반성문 작성을 시키면 비인권적이라는 학부모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학생지도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교육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2014년 ‘아동복지법’이 통과된 후, 아동학대죄로 정직을 당한 경우도 많고 지난 3년간 전국에서 담임교사 129명이 학부모 요구로 교체되었는데, 이 중 102명이 초등교사라 한다. 초등학생 학부모라면 3, 40대 젊은 층일 텐데 귀한 자식을 금쪽같이 키우다 보니 ‘내 아이만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자기 자식은 제멋대로인 아동이 되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은 모르는 듯하다. 잘 못한 초·중등 아동의 인성교육에 필요한 훈육을 아동학대라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사례가 많아서 교사들의 생활지도권 보장이 요즘과 같은 공교육 추락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교권과 학생 인권은 상호 대립하는 가치는 아니다. 정당한 생활지도를 통해 진정한 가르침을 주었을 때 선생님들 또한 자존감과 긍지를 가질 것이다. 이번 집회에서 “선생이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진다”를 외쳤으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큰 가치 속에 부모는 교육을 선생님에게 믿고 맡기고 선생은 제자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가르침을 주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를 이루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09-07

9월이 왔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9월이 왔다. 장마는 지나갔지만 남아있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오고 경북 북부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맑은 9월의 시작은 아니지만, 천천히 달려본 시골 길가에는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계절을 노래하고 골목길 흙담 너머로 노란 해바라기들이 벙긋벙긋 웃는다. 가을이 온 것이다.8일은 백로(白露), 하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과일이 익고 벼가 고개를 숙인다. 황금 들판에는 키다리 허수아비가 한낮에도 꾸벅꾸벅 졸고 빨간 고추밭에는 고추잠자리가 짝을 찾아 날아다니고 강둑과 산기슭에 핀 하얀 구절초는 붉은 부전나비들을 불러 모은다. 먼바다에서는 10호 태풍 ‘담레이’는 소멸됐지만 9호 ‘사올라’는 또 동생 몇몇을 꼬드겨 올라올 것이라며 가을장마가 예보되기도 한다.지난 30일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이다. 세벌 김매기가 끝난 후 편한 마음으로 농민들의 두레놀이가 열리곤 했는데, 100가지 곡식 씨앗을 늘어놓고 호미도 씻어 걸고 일 잘한 머슴들을 소에 태워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는 ‘머슴날’이며 ‘풋굿’도 즐긴 중원(中元) 날이다. 남아있는 폭염과 가을장마 우려에 농민들의 얼굴은 밝지 않겠지만 그래도 황금빛 벼 물결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불교계에서는 1년에 한 번 지옥문이 열린다는 우란분재(盂蘭盆齋) 날로서, 정성껏 백중기도 드리고 혼령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5대 명절 중 하나이기도 하다.백중에는 달과 해와 지구가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서로의 인력이 커서 해수면이 높아지는 ‘백중사리’ 현상이 발생한다지만 동해안 바닷가에는 영향이 적다. 그러나 이 백중사리보다 더 염려된다는 것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어민들의 생계에 대한 분노이다. 해양 오염의 런던협약에 따라 삼중수소 농도를 허용치 이하로 처리하여 방류하겠지만 벌써 해양수산물을 기피하고 거래도 격감하고 있어 정부는 오염수 유입감시와 방사능 검사를 대폭 확대하여 해양계 손상을 막을 계획이다. 그러나 ‘핵 오염수 방류를 중단하라’는 외침과 ‘위험한 일은 없다’는 태도로 여야 공방은 국민 마음을 두 동강 내고 있지만 과학적 자료와 전문가 견해도 참고해야 한다. 공기 중 자연 방사선보다 훨씬 적다는 처리수 농도는 더 오염된 정치문제로 이어질 듯하다.8월의 끝날, 지구에 가장 가까워진 보름달이 크고 밝게 웃으며 9월을 맞이했다. 8월 초 유둣날에 떴었고 또 월말에 떠서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이라 ‘블루문’이기도 하여 ‘슈퍼 블루문’이 된다. 저녁 7시 반경에 떠올라 3시간 후 최대 크기로 되었다가 다음 날 아침 7시경에 끝난다. 다음엔 14년 후에야 볼 수 있고 토성도 달 바로 위에 나타나는 진귀한 모습을 보려고 경주 첨성대와 여러 천문대에서는 ‘달 보기’ 행사도 열린다.9월에는 결실의 계절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라의 걱정거리도 추수하면 좋겠다. 나도 집 뒤 언덕의 대나무 숲도 정리해야겠다. 나팔꽃들이 푸른 가을을 연주하고 잎들은 하늘에 하트를 그리고 있다. 나도 가을을 타나 보다. 비발디의 ‘사계-가을’을 들으며 손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내고 싶다.

2023-08-31

한여름 산행을 즐기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 동문산악회가 “경북수목원 둘레길 한 바퀴 돌고 오자”며 산행 계획을 알려왔다. 창문을 열면 뜨거운 열기가 들어와 에어컨으로도 견디기 답답하던 터라 간단히 배낭을 메고 반바지 차림으로 따라나섰다.청하를 지나 유계리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데 산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잘 보이지를 않아 전조등을 켜고 조심스레 달려 경북수목원에 도착했더니 등산객이 많다.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조용한 수목원 길을 걸어 능선에 섰다. 간단히 몸 풀고 가슴 가득 숨 쉬어 숲의 정기를 채웠다.안내판을 보며 산행 경로를 짰다. 매봉(833m) 아랫길, 임도(林道)가 아닌 오붓한 산길로 삼거리까지 갔다가 삿갓봉길로 올라오며 한 바퀴 돌아오기로 했다. 다섯 시간쯤 걸어야 한다. 옆길로 내려가니 흐릿하던 숲이 뚫리며 물기 젖은 풀잎들이 다리에 스치고 한 구비 돌 즈음에 벌써 어깨 등어리는 땀범벅이 된다. 여름이라 꽃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예쁜 버섯들이 비에 젖은 갈색 낙엽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까이 사진을 찍다 보니 길섶에 붉은 보라색 작은 꽃이 애잔스럽다. 꽃며느리밥풀, 꽃말은 ‘여인의 한’이다.이따금 만나는 통나무 계단 길은 흙이 모두 쓸려나가 앙상해져 걷기가 힘이 든다. 밑둥치가 썩어버린 고목을 어루만지며 내려가다 만난 무덤은 봉우리 흙이 무너져 내려 묘의 상석이 덥혀 잡초만 무성하고, 오르막길에서 만난 돌무지에 돌 한 개 쌓고 산신령에게 가족의 평안을 빌어 보았다.단풍나무 상수리나무가 둘러싼 쉼터에 앉아 막걸리 한 잔 벌컥 마시니 마른 목과 속이 뻥 뚫린 기분에 순간 안개도 싹 걷힌다. 한여름 산행의 땀은 이제 감각도 없다. 1시간쯤 내려오니 졸졸 물소리가 들리고 둥근 나무다리 아래에 흐르는 개울이 보인다. 삼거리다. 개울 건너 물가 자갈밭에 배낭을 벗어두고 발 담그니 신선이 따로 없다. 발등이 간질거려 물속을 보니 버들치들이 모여들어 발가락을 콕콕 문다. 닥터 피쉬의 모습이다. 물은 무릎까지 차고, 어릴 적 발가벗고 풍덩 뛰어 들어가 물장구치던 기억, 그 ‘알탕’을 하고 싶었으나 웃통만 벗고 땀을 씻었다.둘러앉아 김밥 맛있게 먹고 한잔하고 푹 쉬었다가 일어나 삿갓봉 쪽 산길을 오른다. 오르막길 몇 걸음에 또 땀이 흥건하다. 옛 화전민들이 참나무 숯을 만들었던 숯가마 터를 지나 오르노라면 갖가지 나무에 이름표가 붙어있다. 참나무 여섯 종의 이름도 처음 알았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와는 잎의 매끈함이, 졸참나무와 갈참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또 떡갈나무와 신갈나무는 잎 뒷면의 갈색 털로 구분한단다.멧돼지, 고라니, 뱀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곁 눈짓하며 한참을 걸어 드디어 외솔배기에 왔다. 옛날 가래골 사람들이 청하장에 다니던 길목의 정자나무 쉼터에 250년 된 소나무가 아직도 잘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좋다.마지막 영춘정 전망대 입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곧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들 단풍 숲을 그려 본다. 숲과 둘레길, 계곡물과 바위, 꽃과 버섯을 눈에 담으며 걸어본 약12km 1만8천 보…. 훌륭한 8월의 힐링 산행길이었다.

2023-08-24

늙은 말(馬)이 갈 길을 안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최근 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폄하 발언 후, 사회적 물의가 번져가고 있다. 청년들과의 좌담회에서 아들이 중학생 때 했다는 말을 꺼내 들며 “남은 생에 비례해서 투표해야 한다”는 내용의 말을 한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상의 보통선거와 평등선거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 발언으로 대한노인회와 국가원로회의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2004년에도 열린우리당 의장의 “6,70대는 투표 안 해도 된다”는 발언으로 총선 판도를 바꾸어 놓기도 했고, “60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입놀림으로 홍역을 치른 정치인도 있었다.왜 이렇게 노인들이 비하되고 폄하를 받아야 할까? 세대 간의 갈등과 가치관의 차이라고 보아 진다. 은퇴 후 몸도 약해지고 생산 활동이 줄고 소비가 늘어나게 된다는 것에서 사회적 힘이 없고 지식의 한계를 나타낸다는 관점일 것이다. 그래서 노인네, 늙은이, 꼰대 심지어 ‘틀딱충’이라는 신조어도 나돌고 있다. 꼰대는 프랑스 귀족 ‘백작(Comte)’에서 온 말인데 ‘권위적 사고를 가진 어른’을 비하하는 은어가 되었고, 또 번데기의 영남지방 사투리 ‘꼰데기’에서 변화됐다는 설도 있다.유엔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국민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라 하고있는데 우리나라는 올해 7월 이미 18.5%을 넘어 ‘고령사회’이다. 2020년에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에 진입하여 60대 이상 노인세대가 950만, 100세 이상이 8천500여 명이라고 한다. 이렇듯 많은 노인에 대한 경로효친 사상은 MZ세대에서는 왜 찾기가 힘든 것일까?삶을 살아가는 데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은 ‘앎(knowledge)’이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철학, 수학, 과학, 예술 등의 교육과 학습,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지혜는 ‘슬기(wisdom)’ 즉, 사물의 원인을 이해하고 이치를 깨닫는 전인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은 어떤 것인가?’라는 명제적 지식은 요즘과 같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절차적 지식은 많은 경험과 감각에서 얻은 사리 분별 능력이 그 길을 찾게 해 준다.노마지로(老馬知路) 즉 ‘늙은 말이 갈 길을 안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융적(戎狄) 토벌원정에 나섰다가 겨울에 돌아오며 길을 잃어버렸는데 재상 관중(管仲)이 ‘늙은 말은 지혜가 쓸 만하다’며 늙은 말을 풀어놓고 말 가는 데로 따라가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늙을수록 경험을 쌓아 사리에 통달하는 지혜를 습득한다는 뜻이다. 노인의 지혜로움은 사회 측면에도 많은 가치가 있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집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모셔라’는 외국 격언들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의 지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진정한 사회인의 덕목은 존중과 배려이다. 사는 날이 많지 않아 쓸모없다(?)는 노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슬기로운 삶의 지혜를 빌려 나라의 앞길을 찾아보자.

2023-08-17

분노 사회의 ‘묻지마 범죄’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입추와 말복에 태풍이 다가오는 어수선한 8월 초, 흉기 난동의 무차별 살인범죄가 연이어 발생했고 그 여파로 닮은꼴의 살인예고 협박성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SNS에 와글대고 있다. 지하철역 등 다중 밀집 지역에서 불특정 사람들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에 범행을 막으려고 전신무장한 경찰들이 배치되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의심의 눈길을 둔다,지난 7월 21일 서울 신림역 부근 골목에서 30대 남자의 무차별 칼부림으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범인은 무직, 전과 3범 외에도 소년 시절 범행도 10여 건이 넘는다.‘열심히 살았는데 잘 안돼….’ 하며 범행 후 태연하게 부근 계단에 앉아있다가 검거됐다.이후 2주일도 지나기 전에 분당 서현역에서는 22세 청년이 차량을 인도로 돌진하여 행인 5명을 친 후, 다시 인근 쇼핑몰로 칼을 들고 들어가 무차별 난동으로 9명을 다치게 하였다. 정신병력이 있으며 자신은 ‘스토킹 집단의 위험을 느꼈다’고 진술하고 있다.또 지난 1월 신도림역과 2월 신길역에서 묻지마 폭행을 한 남·녀, 3월 전철 내에서 시끄럽다는 60대 여성을 살해한 30대 여자…,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노린 반사회적 범행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이러한 분노 범죄는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사회와의 단절과 고립에 의한 사회성 결여와 고물가, 불황과 실업, 빈부의 양극화 등 사회 불안 현상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경찰청이 밝힌 바에 의하면 9일까지 수사 중인 살인예고 187건 중 67건을 검거했다고 하는데 10대가 34명이며 14세 미만도 다수라고 한다. 이처럼 고립·은둔 청년의 묻지마 범죄로 인한 피해자 역시 평균 27.4세라고 하니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정신적 불안이 심각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묻지마 범죄’의 공식 용어는 ‘이상동기 범죄’라 하며 현실불만형, 정신장애형, 만성분노형 등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검거된 후에는 ‘죄송합니다’‘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살고 싶지 않다’라고 중얼대지만 ‘관심받고 싶다’는 10·20대의 심리가 사회에 화를 유발시켜 관심을 끌고 자신은 변태적 쾌감을 느끼는 악질적 범죄인데도 ‘장난이었다’라고 변명하고 있다.이에 행정안전부는 특별치안 활동을 선포하고 예고지역 순찰강화와 선별적 검문검색을 실시하는 동시에 경찰의 정당한 총기 사용 및 제압 행위에 대한 책임감면 규정을 재조정하는 한편,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 형사사법제도의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 한다. 즉 위계에 의한 공무 방해, 협박 및 살인예비죄 등을 적용한 처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최근 묻지마 범죄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하여 알림 사이트 ‘테러리스(terrorless)’도 배포되어 있다. 살인, 칼부림, 총기 난동, 폭탄 테러 등이 난무하는 요즘, 우리나라에 총기 소지를 허용하였다면 어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마냥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교육심리 상담 등 특별예방교육과 홍보 활동 확대, 갈등관리에 대한 지원과 멘토링으로 공동체 의식함양을 높이고 사회 전반의 대응 체계를 강화하여 안정된 사회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2023-08-10

뜨거운 지구, 열대화가 시작되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7월 중순부터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으며 폭염특보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하루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으로 2일 이상 지속하면 폭염주의보가, 35도 이상이면 폭염경보가 발령되는데, 전국 기상특보 구역 180곳 중에서 40% 이상으로 폭염특보가 확대되어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상향되었다.방에 들어앉아 있어도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을 겪고 있는데 폭우까지 들락거리는 도깨비 날씨에 겹쳐 제6호 태풍 ‘카눈’마저 오키나와를 거쳐 한반도로 방향을 틀지 모른다는 예보에 속은 더 타들어 간다. 7월 말 누적 온열 질환자가 1천명이 넘었고, 10명이 사망했다 하니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자주 마시며 노약자와 아이들 보호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이 뜨거운 여름은 우리뿐만 아니다. 그리스를 비롯한 서유럽이 40도 넘는 폭염에 수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미국도 폭염 지옥에 아스팔트가 흘러내렸고 중국은 50도가 넘는 살인적 기온에 당황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 WMO는 7월 첫 3주의 지구 기온이 섭씨 16.95도로 1940년 관측 이래 최고기간이었다고 발표하였고,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는 끝났다. 끓는 지구의 시대가 시작됐다”며 온난화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였다.지구 온난화(warming)는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서 언급된 용어였는데 지구 대기권의 탄산가스 증가로 인한 태양에너지의 온실효과로 51년 만에 열대화(boiling)로 변경된 것이다. 2015년 파리 기후협정에서 세계는 21세기 말까지 1880년 대비 온도상승을 섭씨 1.5도로 합의하여 그 주범인 탄소배출량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 탄소배출량의 80%를 차지하는 주요 G20 나라들은 재생에너지 확대, 친환경 교통수단 도입, 산림 보호 등의 추진과 함께 도시녹지와 도로 및 지붕의 포장법 개선, 쓰레기 줄이기 등의 계획을 확대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이러한 기후변화로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면 산림화재가 빈번히 발생하고 농작물에 영향을 미쳐 식량부족의 원인이 되고 해수면 상승 등 생태계 변화로 생물 다양성이 파괴되는 등 지구의 미래가 걱정된다. 태평양 해수면 온도변화를 가져와서 지구 온난화를 앞당기는 엘니뇨와 라니냐 현상도 이제 낯설지가 않다. 남극지방의 빙하는 지난 40년간 남한의 26배 면적을 녹아내렸고 탄소의 주요 저장소인 호주 동북부와 아마존 등의 열대우림도 기후건조로 35년간 고사율이 2배가 넘었다는 보고도 있다. 야외에서 사람이 느끼는 더위 정도를 나타내는 ‘열 스트레스 지수’도 이번 세기말에는 지금보다 12배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러한 열대화 현상이 탄소배출량 증가 탓만은 아니고 태양의 활동, 지구의 화산 폭발 등 자연적 원인도 있다고 한다. 다음 주말까지 35도 이상의 더위에 땀 뻘뻘 흘려야 한다니 지구 열대화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지구가 병들고 있다. 열병(熱病)이다. 그러나 그 병의 원인에 인간의 책임도 많으니 지구인 모두가 ‘넷 제로 (탄소중립)’등 환경운동을 통해 지구가 앓고 있는 병 치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23-08-03

교권과 학생 인권의 조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18일 서울 서이초등에서 23세 새내기 여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이 전해왔다. 그것도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을 훈계한 것을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협박하는 소위 ‘부모의 갑질’에 시달리며 힘겨워했으며, 이 사실이 터지자 유사한 사건들이 하나둘씩 알려지며 우리 교육계의 어두운 면이 밝혀지며 참았던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교사의 꾸지람이 학생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으로 학부모의 폭언과 해명 요구 등 보호자의 악성 민원이 교사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불안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1개월 전쯤에는 초등 6학년이 여선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해 신체적 손상을 입혔는데 이 학부모 역시 아동학대라는 이유로 학교를 찾아오고 전화로 협박하여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부모의 갑질은 잘못된 방향의 자식 사랑이고 지나친 편애의 과잉보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수단이 없는 실정이며 교사를 업신여기는 사회 풍조 탓이다. 학생 인권을 앞세우고 있지만 교사들에게는 교권침해이기도 하여 교권 붕괴 현장이 된 것이다.교사는 교육할 권리,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권리 및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있으나 학생, 학부모 또는 동료 교원, 사회단체 등에 의해 침해를 당하기도 한다. 교권은 교과 과정 편성, 교재 채택, 성적 평가 등 많은 곳에 해당하지만 학생지도와 징계권도 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나름의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데 이를 아동학대라 하여 고발하는 등 범죄로 취급하는 학부모가 문제인 것이다. 최근 교육활동 침해는 연간 2천 건을 넘고 모욕과 명예훼손이 약 55%라 한다.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자녀교육권을 위임받아 인생의 지도자로서 덕성과 인격을 바탕으로 진리와 양심을 자유롭게 가르치는 이른바 ‘스승’으로 대접받는 ‘선생’이어야 하지만 요즘은 단지 가르치는 직업인 즉 ‘교사’로 격이 낮아지고 공무원으로만 여겨지는 것 같다.학생들은 수업 중에 라면을 먹는 영상을 남기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녹음도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있어 체벌이나 압수가 어려운 실정이며 하기싫은 공부를 시킨다고 반항하며 오히려 선생을 폭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를 제지하거나 몸에 손을 대면 언어폭력 또는 성폭력이라고 고발당하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조사에 의하면 교사 10명 중 8명 정도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이직과 사직을 생각한다’는 응답이고 ‘이제는 꿈의 직장이 아니다’라는 분위기이다. 여기에 충북도 교육감은 “교사는 예비 살인자이다” 했으니 과연 그 교육감은 교육자인가….교육의 교(敎)는 회초리로 때려 가르친다는 글자이고 육(育)은 거꾸로 태어난 아이를 몸으로 감싸서 키운다는 글자이니 비록 매를 들더라도 따뜻하게 품어주어 진정한 사랑의 가르침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학생은 자유와 권리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하고, 선생은 아동학대, 정신적 학대라는 가해자로서의 모욕을 받지 않도록 참된 인성교육을 통해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올바른 교육환경이 이루어져야 한다.

2023-07-27

피스로드 통일대장정의 꿈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19일 포항 덕업관 대강당에서 ‘신통일한국 피스로드 2023 경상북도 통일대장정’ 행사가 열렸다.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경북도회와 경북평화대사협의회 주관으로 6·25 전쟁 정전협정 70주년과 피스로드 10주년을 맞아 마련한 행사였다.마침 장맛비도 그치고 푸른 하늘이 열렸기에 걷기 편한 복장으로 나서는 마음은 가벼웠다. 식장에 들어가 앞자리에 앉으니 ‘6·25 전쟁 참전 학도의용군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슬로건도 보인다. 초청 내빈과 도민 400여 명이 자리를 채우고 특히 맨 앞줄에 흰 모자 쓰고 훈장 달린 정복을 입은 현재 생존하신 6·25 참전 학도의용군 일곱 분이 눈에 띈다.1부는 6·25 참전용사 추념식. 헌화와 묵념에 이어 낭독한 ‘어느 학도병의 편지’를 듣노라면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라는 중3 의용군의 절규가 가슴을 저린다. 영상을 본 후 팔순이 넘은 노병들을 무대 위로 모시고 꽃목걸이를 달아드렸더니 “오늘 멋진 대접을 받으니 참 고맙다”라고 하신다.2부에서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축사, 격려사, 대회사가 끝나고 청년대표의 평화선언에 이어 ‘통일의 노래’를 합창할 때면 오랜만에 마음이 뭉클해져 우리의 소원을 마음에 새겨봤다. 태극기 흔들며 만세삼창도 힘껏 외쳤다.마지막 3부 순서가 걷기대회였다. 모두 행사장을 나와서 참전국 국기를 앞세워 형산강둑을 따라 20여 분을 걸어 해도근린공원 숲으로 갔다. 6·25 전쟁 당시 44일간 결사 항전했던 최후의 방어선 ‘워크라인’이었던 곳이다. 참전 유공자 명예선양비 앞에 헌화하고 전몰용사 3천234명의 영혼을 기렸다.이 ‘피스로드 통일대장정’ 행사는 198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문선명 총재가 제안한 ‘국제평화 초고속도로’ 주창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고 지구촌의 평화시대를 열어 보자는 운동이며, 2013년 ‘한·일 3천800㎞ 평화의 자전거 통일대장정’으로 출발했다. 이후 동참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2015년 ‘피스로드’라는 이름으로 되어, 걷기와 자전거, 자동차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의 길을 간다는 세계적 행사로 확대되었다. 그동안 칠레 산티아고에서 피스로드 세계 출범식을 가졌고 아시아, 유럽, 북·남미, 아프리카 등 6대륙을 하나의 길로 연결하여 서울에서 아프리카 희망봉, 그리고 남미 산티아고까지 ‘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류를 한 가족처럼 묶어 평화에 다가가는 금세기의 기념비적인 꿈의 프로젝트이다. 이미 한·일간 해저 터널은 첫 삽을 떴고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꿈도 그리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촉매제를 뿌리는 것이다.‘2023 피스로드 통일대장정’은 전 세계 160개국 약 100만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2021년에는 포항영일대해수욕장에서 시민 걷기대회를 열었고 작년에는 영천 시민회관에 모여 금호강변을 걷고 자전거를 달리기도 했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이라 한·미·일 등 8개국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국토종주단이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DMZ 자전거 횡단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남북이 다시 어우러지는 행복한 꿈을 이루어야 하리라.

2023-07-20

삼복더위를 시원하게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작은 더위’ 소서(小暑)가 다녀가니 급기야 무더위를 거느리고 온 삼복더위 삼형제가 들이닥친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숨을 막히게 하고 남쪽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열기에 실려 온 장맛비가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게릴라성 집중 호우를 퍼붓고 있다. 여기에 태풍급 강풍을 동반하니 가히 한여름이 중간에 선다. 일본 큐슈를 강타하고 북상한 장맛비는 다음 주까지 수도권 250mm를 정점으로 남부에 폭우를 뿌리며 전국에 물 폭탄을 쏟아붓는다니 산사태와 침수 등 비 피해에 대비하며 생활 안전에 신경을 써야겠다.복(伏)날은 경일(庚日)이라, 가을의 금(金) 기운인 음기가 여름의 화(火) 기운인 양기에 눌려 엎드린 개의 형상인데, 영어로도 ‘개의 날(Dog day)’이라니 동서양 모두 7월 더위가 개와 관련되어 있어서 참 신기하다. 예전 같으면 뜨거운 보신탕 한 그릇 후루룩 비우며 이열치열(以熱治熱) 더위를 물리치겠지만 요즈음은 ‘바다의 산삼’이라는 전복과 인삼을 넣어 푹 삶은 삼계탕을 먹고 이 더위를 이겨나갈 수밖에…. 아니면 ‘밭에서 나는 쇠고기’ 흰콩을 껍질 벗기고 알맞게 삶아 맷돌에 갈아 만든 콩국에 하얀 국수를 말아 콩국수도 먹고 시원한 참외나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날려야겠다.경북 동해안의 23개 해수욕장이 14일부터 순차적으로 개장을 하는데 포항지역 6개 해수욕장은 15일부터 개장하여 8월 27일까지 다양한 해양축제와 함께 그동안 코로나19에 찌들었던 국민의 몸과 마음을 씻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백사장은 중금속 검사를 통해 납, 카드뮴, 수은 등 유해 물질은 기준적합 판정을 받았고, 포항 영일대해수욕장과 영덕 장사해수욕장은 방사능 검사 결과 안전한 수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작년에 23만여 명이 찾은 것으로 봐서 이른 더위가 찾아온 올해는 더 많은 해수욕객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어 아직도 코로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방역 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또 갑자기 식인상어가 돌아다닌다는 소식에 괜한 걱정이 된다.2007년 공식 폐장되었던 송도 해수욕장이 그동안 고운 은빛 모래로 채우고 수중 방파제도 설치하고 각종 시설을 보강하여 17년 만에 개장하려 했으나 바다 시청과 주차장, 화장실 등의 설치 미완으로 내년에 개장하기로 미루는 바람에 옛날 명성을 되살려보려던 지역 주민들이 아쉬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늘 높이 두 손을 치켜들고 웃는 ‘평화의 여신상’도 무색해졌다.한편 해변의 정화 활동에 참여한 2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해안 쓰레기를 빗질하듯 쓸어 모으는 비치 코밍(Beach combing) 활동으로 깨끗한 모래밭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일대 해수욕장에는 새로운 모래예술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이 무더운 여름날에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으로 환자들의 고통이 있고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대통령탄핵 외침으로 도로의 열기가 더욱 달구어지는데 옛날에도 삼복더위에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여 각종 행사를 자제해 왔다고 하니, 현명한 타협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바람이다.

2023-07-13

계절 따라 꽃은 피는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시골집 골목에 주황색 종 모양의 능소화가 6월 중순부터 활짝 피었다. 옛날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고 ‘양반꽃’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무 담장이나 나무에 등나무처럼 달라붙어 귀태를 뽐내는 여름꽃이라 금등화(金藤花)고도 한다. 노란 금계국이 피어 퍼드러졌던 큰길 지나 마을 입구엔 정갈한 무궁화도 피고 있다.뜨거운 열기와 장맛비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의 잔치를 보고 싶어 이른 봄에 보았던 노란 유채꽃 들판에 이제 하얀 메밀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호미반도 해안길을 달렸다. 연오랑세오녀 공원을 지나 발산리를 지날 때쯤, 노란 꽃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작은 꽃들이 떨어질 때 황금비가 오는 것 같다고 ‘Golden rain tree’라고 하는 모감주나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보니 벌써 노란 꽃들이 소복이 떨어져 있다. 7월 개화라는데 이른 폭염 때문인지 벌써 만개가 되었던가, 그야말로 황금비가 내린 모양이다. 꽈리 모양 열매 속에 들어있는 까만 씨앗으로 염주를 만든다고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발산리 군락지는 병아리꽃나무 군락지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371호이다.대동배를 지날 때쯤 갑자기 소나무숲이 붉게 변했다. 사태가 심각하여 내려보았더니 낮은 산꼭대기까지 모든 소나무가 죽어있는 것이다. 재선충병이다. 숲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군데군데 녹색 비닐로 덮은 훈증 무덤이 보인다. 고사한 소나무를 잘라 방제하고 묶어둔 것이다. 소나무 불치병인 재선충병은 1900년대 일본에 극심한 피해를 주었고 우리나라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최초로 발견된 후 최근 1년에 약 40만 그루를 고사시키고 있다. 1mm 정도 작은 벌레가 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여 나무껍질 속에 파고들어 고사시키는 치명적인 병이다. 이미 전국에 퍼졌고 올해는 2배 정도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 보도가 있다.더운 날 병든 숲을 본 아픈 마음에 냅다 호미곶으로 달려 구만리 언덕을 넘으니 넓은 벌판이 그래도 마음을 식혀준다. 해바라기밭 길가에 주차하고 작은 원두막에 앉았다. 15만평 넓은 메밀꽃밭이 펼쳐지는데 지난번 봤던 그 하얀 소금밭은 어디 가고 검은 소금이 조금 뿌려진 듯한 늦은 6월의 메밀꽃밭이 보였다. 밭두렁 길을 걸어가며 메밀꽃 송이를 따보니 벌써 씨앗은 여물고, 멀리 꾸부정한 소나무가 ‘왜 이리 늦었냐!’고 나무라는 듯하다.십여 년 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따라 평창군 봉평마을에 갔을 때 해맑은 가을의 메밀밭을 걸어서 문학 산책을 하고 왔던 기억이 새롭다. 허 생원은 밤길을 동행하게 된 왼손잡이 동이에게서 아들의 흔적을 보았지….흰 눈 내린 듯한 여름 꽃밭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상생의 손’으로 가서 갈매기 날개짓 따라 푸른 바다 해안길 숲속에 있는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詩碑)를 읽는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다음 가을, 메밀꽃 필 무렵에는 청포를 입고 하얀 모시 수건에 청포도 한아름 싸 와서 병들어 가는 호랑이 꼬리를 낫게 해 달라고 빌어봐야겠다.

202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