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서 멱을 감다가난 곧잘 모래 위에서 뒹굴곤 했다뜨겁게 달구어져머리카락이며 옷이며 신발이며물기만 있으면 달라붙던 작은 알갱이들그때쯤이면 달착지근한 냄새가근처에 있던 어머니의 떡함지로부터 풍겨왔다어머니의 손끝에선 밤과 낮이 찧어지고긍지와 수난이, 희망과 오해가 빻아져서색색깔의 꿀떡, 바람떡, 시루떡으로 빚어지곤 햇다몰래몰래 집어먹던 떡에 모래 알갱이들이 함께 씹혔다모래들은 다리가 되고 빌딩이 되었다가다시 부스러져 내리고허파 가득 채워지는 바람의 부피입안에서 서걱이는 모래의 시간들강변에서 멱을 감던 시절, “물기만 있으면 달라붙던 작은 알갱이들”은 시인에게 점착된 행복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삶을 부드럽게 기억으로 감싸며 달라붙는 시간. 아버지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어머니-자연’의 시간. 이 시간에는 “근처에 있던 어머니의 떡함지로부터 풍겨”오는 “달착지근한 냄새가” 난다. 떡함지 같은 그 시간에는 어머니와 같이 가난한 이들의 “긍지와 수난이, 희망과 오해가 빻아져” 있다…. 문학평론가
2024-08-22
교도소로 납품되는 형벌들죄가 돈이 되는구나큰 죄가 큰 돈이 되는구나죄를 짓는 종사자들시를 짓다니! 멍청이 같으니라고오래된 한탄 속에노을이 목을 베러 온다노을을 목에 감는다국적란에 붉은 선을 아름답게 긋는 화가시비詩碑의 전문을 긁어 백비를 만드는 시인재생되는 돌의 질감배경에 깔고 천천히 나는나를 그린다죄를 짓는 이들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이 세상에는 곧 어둠이 닥칠 것을 예고하는 노을이 창밖 하늘에 깔리고 있다. 이에 시인은, 노을이 자신의 목을 베기 전에, 아예 “노을을 목에 감”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한다. 하나, 그 목에 건 노을빛은, 화가가 국적란에 아름답게 그은 ‘붉은 선’과 같은 것.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국적이니, 명예니 하는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지우기 위한 붉은 선. 문학평론가
2024-08-21
사랑을 잃으면 밤이 찾아온다아침 햇살은 아직 빛나건만하늘을 떠 가는 배 모양 구름은 보이지않고구름이 있던 자리에는햇빛의 영광마저 사라진다산마루에 감돌던 광휘도 사라지고눈에 맺히는 경치는 아름답지 않네사랑을 잃으면 보이는 모든 것이활기를 잃고 처량하다사랑은 인생을 화사하게, 단단하게 바꾸고사랑은 떠날 때 슬픔을, 그늘을 남기고유령처럼 윤기 없는 시간은 느릿하게 지나간다슬픔에 빠졌을 때 위안이 되는 생각은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아, 사랑을 잃으면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윌콕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여성 시인. 이 시에서 그녀는 “사랑을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나는지 절절하게 읊는다. 낮도 밤처럼 어둡고, “보이는 모든 것이/활기를 잃고 처량”하게 되며, 삶의 시간은 “유령처럼 윤기 없”고 “느릿하게 지나간다”는 것. 사랑을 잃어본 자는 이 구절이 정말이라는 것을 잘 알 테다.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위안은 “우리 모두 죽는다는” 사실뿐이라는 것을. 문학평론가
2024-08-20
눈물은 심장에 맺히는 것이었다거기 고이는 것이었다그러므로 동맥을 타고 올라온 모든 눈물은피눈물이다(중략)바다는 잠자지 않고더욱이 바다는 꿈꾸지 않고다만 내디딜 뿐살 뿐이다더 이상 깊어지지도 넓어지지도 둥글어질 수도 없지만, 그렇지만 바다는 오늘도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외로이 둥글어진다중심을 한사코 파 내려가면거기 아직도 바스러지는 심장이 있다바다에서 눈물을 보고 듣는 시인. 그 눈물의 연원은 심장에 있다. 심장에서 “동맥을 타고 올라”오는 눈물. 그래서 그 눈물은 피눈물이다. 그 바다의 눈물은 우리 마음에서도 뿜어지지 않겠는가. 누구나 마음 한편에 바다를 두고 있을 테니까. 그 바다는 “꿈꾸지 않고/다만 내디딜 뿐”인 마음이다. 마음의 “중심을 한사코 파 내려가면” 도달하는 “바스라지는 심장”의 마음. 그 마음에서 피눈물이 솟아나고 있지 않은가. 문학평론가
2024-08-19
큰 바윗덩이를겹겹 뿌리로 감싸 안은 소나무 한 그루를 본다그 근처 나무들은 저 홀로 쑥쑥 자유로운데저 막무가내를 어쩌나천형처럼 피하지도 않고어쩌다 서로 말문이 트였는지힘줄이 되고 얼개가 되어전신을 다해 바치는한 뿌리의 지극저 갸륵한 한 나무의 가호가오늘의 경전이다송영희 시인에게 경전은 매일 매일 다르다. ‘오늘의 경전’은 어떻게 발견하게 된 소나무 한 그루. 그 소나무는 “저 홀로 쑥쑥 자유로운” “그 근처 나무들”과는 달리, 마치 천형처럼 “큰 바윗덩이를/겹겹 뿌리로 감싸 안”고 있다. 소나무는 자신의 짐이 된 바위를 힘줄처럼, 얼개처럼 받아들이며, “전신을 다해” 바위에 자신을 바치는 지극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오늘은 시인에게 그 모습이 신의 가호처럼 다가온다. 문학평론가
2024-08-18
갓길로 등 굽은 노인이 걸어오는데요어떤 슬픔은 녹이 슬어다시 펼 수가 없습니다먼 곳에서부터 달라붙는 죽음을쿡쿡 누르며 걸어오는 지팡이둘이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합니다서로의 그림자를 밟던 걸음이개나리와 손잡고 피어나는 봄날한 줄로 그어 놓은 공중의 길당신은 버스 창가에 앉아지상을 보고 있네요풀숲 위로 손 하나가 날아오릅니다손바닥을 접었다 펼칠 때마다웃는 얼굴이 뭉텅뭉텅 지워집니다손이 마치 지우개 같습니다악수란 그런 것이겠지요- ‘나비’후반부‘상가 다녀오는 길’에 어떤 등 굽은 노인을 보면서, 시인은 그 노인에게 달라붙으려 하는 죽음”을 포착한다. 그 노인에게 슬픔은 오래 달라붙어 있어서 녹이 슨 정도, 노인은 겨우 지팡이로 지하에서 올라오는 죽음을 “쿡쿡 누르”고 있다. 지팡이만이 그의 ‘오래된 친구’인 것. 봄날 피어나는 개나리는 저 죽어가는 노인과 대조되는데, 마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저승으로 가는 길로 인도하는 나비처럼 보인다. 문학평론가
2024-08-15
모든 새집은 단칸방이다.새집도 월세가 있고 전세도 있을 것이며화려한 집도 있을 것이며 소박한 집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세상의 모든 새집은 단칸방이다이것은 새가 생겨난 이후 변화가 없다새집은 단칸방으로 완벽한 평등을 이루었다평등은 진화가 없는 개념으로 세상의 죽음 이후완벽한 평등을 새집에서 보았다세상의 모든 새집은 평등의 단칸방이다그리고 그 평등을 거부하는 새를 본 적이 없다새들은 날개의 크기가 달라도새집의 크기는 날개를 접은 새의 크기로완벽하다새는 욕심이 없나? 모든 새집이 단칸방인 것을 보면. 새들은 각자 “날개의 크기가” 다르더라도, 딱 “날개를 접은 새의 크기로” 새집을 짓는다. 그래서 “모든 새집은 평등”하다. 이 평등함은 “새가 생겨난 이후 변화가 없”는데, 시인은 “평등은 진화가 없는 개념”이라면서 이 새집이 “완벽한 평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빈곤의 평등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단견이다. 새들은 ‘빈곤’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문학평론가
2024-08-13
(전략)나는 하나의 이파리가 되어 허공을 떠다닌다.저녁노을은 추억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오래된 책이다.책장을 넘기면 먼 곳으로부터 북소리가 들린다.하늘을 날아다니던 붉은 마차가 산을 넘어가자죽음의 빛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본다.결국 나는 허공을 떠도는 시간의 흔적이고물방울인 내가 언젠가는 강으로 들어갈 것이다.침묵의 아름다움이 슬픔의 방향이었고시간은 그 슬픔을 데리고 떠나는 새로운 소식이었고결코 백발이 되지 않는다.이별과 이별은 만나서 새로운 시간을 만든다.물을 마시던 다친 새가 하늘에서 떨어질 때밤의 따뜻함이 그 종착역이었다.‘해-붉은 마차’가 산을 넘어가며 나타나는 노을은 ‘밤-죽음’이 올 것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노을은 죽음의 빛이겠는데, 그 빛은 “물방울인 내가 언젠가는 강으로 들어갈” “시간의 흔적”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노을은 아름답지 않은가. 죽음, 그 침묵은 아름다워서, 죽음이 가져올 슬픔의 방향은 아름다움을 향해 있다. 죽음을 통해 “이별과 이별”이 만나고 “새로운 시간”은 형성되는 것, 하여 종착역인 밤은 따듯하다. 문학평론가
2024-08-12
기차가 또 나를 지나갔다철길에 엎드려있던 마음이우두커니 지나간 기차를 본다다리를 절룩이며달빛이 일어서고 있다크고 작은 별들이 쏟아지고온갖 기억들이 맨발로 걸어온다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내 기억의 끝은 늘 맨발이었다백 년을 걸어도 돌아보면 벌판이었다(중략)뭉큰 돋아나는 기억을 싣고어디 가닿는 데도 없이 기차는 또 달린다철로 옆에서 지나가는 기차를 ‘우두커니’ 보며 어떤 아련함을 느끼곤 했다. 위의 시는 이 아련함의 정체를 말해준다. ‘나’를 지나치고는 사라지는 기차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뭉큰 돋아나”게 한다는 것. 이때 “기억들이 맨발로 걸어”오고, 절룩이는 달빛이 맨발의 기억을 비춘다. 기차가 주는 아련함은 이 기억으로부터 오는 것, 시인에게 다가온 기억은 무엇인가.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하여 늘 벌판이었던 삶…. 문학평론가
2024-08-11
뿌리는 무엇과도 친하다꽃나무와 풀꽃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서로 엉켜 있다냉이가 봄쑥에게라일락이 목련나무에게꽃사과나무가 나에게햇빛과 구름과 빗방울이 기르는 것은 뿌리의 친화력바람은 얽히지 않는 뿌리를 고집스레 뽑아버린다우리는 울고 웃으며 풀지 않겠다는 듯 서로를 옮겨 감았다위의 시에 따르면, 꽃나무나 풀꽃처럼 여린 존재자들은 “뿌리의 친화력”으로 “서로 엉켜 있”음으로써 생존한다. 이때 ‘뿌리’는 시적인 의미에서의 뿌리, 존재자들의 존재 차원에서의 뿌리이다. 뿌리둘이 서로 엉키도록 이끄는 ‘친화력’은 “햇빛과 구름과 빗방울이 기”른다. 세계에는 “얽히지 않는 뿌리를 고집스레 뽑아버”리는 힘도 존재하지만, 존재자들이 “서로를 옮겨 감”게 이끄는 연결의 힘도 존재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4-08-08
나이 수만큼의 표정은 눈길 뒤에 숨었을까거울 속엔무덤덤한 그녀의 얼굴이 살고 있다손댈 수 없는 네 표정을 문질러 보았다슬픔이 겹겹이 밀리면서 속눈물은 말라갔다(중략)얼굴은 알아보지만 전혀 다른 사람으로착각한다는 카그라스증후군어떤 추억도 살아남지 못했으매그 옛날 눈 감은, 입술의 접점을느리고 생생하게, 음표로 베낀 간주곡,이따금씩 반짝이는 바람결저 구름 호수의 무늬들보일 듯 말 듯 한 그녀 얼굴, 보일 듯 말 듯.거울을 언뜻 보자 ‘저 사람이 누구지?’라고 의아해 할 때가 있지 않겠는가.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될 때가. “어떤 추억도 살아남지 못했”을 때 그런 착각이 일어날 터, 추억의 말소는 “슬픔이 겹겹이 밀리면서” 이루어진다. 하나 시인은 저 낯선 얼굴이 느리게 재생하는 ‘간주곡’을 듣기 시작한다. 그러자 ‘구름 호수’가 된 얼굴에서 ‘바람결’이 “이따금씩 반짝이”고, ‘그녀 얼굴’이 “보일 듯 말 듯”하기 시작한다. 문학평론가
2024-08-07
너는 언니다. 동생을 기른다같이 아침 먹고 같이 잠자고 웃는다옷도 갈아 입혀주고 몸도 씻어준다집에서는 늘 같이 지낸다외출은 혼자 한다그 같이를 뚫고 전화 한 통 온다동생의 시신을 바다에서 찾았습니다만너는 네 시신을 찾았대 동생에게 말해준다그러고도 같이 산다 꿈도 대신 꿔주고 친구도 만들어준다동생의 시신을 확인하고 와서도동생이 바다에 가라앉는 꿈을 꾼다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고 같이 텔레비전 본다너는 동생과 같이 사는 것이 가장 편하다해변에 서 있으면 무언가 검은 덩어리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언제나 같이 지내며, “옷도 갈아 입혀주고 몸도 씻어”주었던 동생. 그 동생이 바다에서 죽음을 맞았다. 화자는 죽어버린 동생에게 “네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는 여전히 ‘동명이인’이 된 동생의 영혼과 같이 살고 있는 것, “동생과 같이 사는 것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하나 해변에 가면 화자는 동생의 죽음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는 검은 덩어리가, 죽음이 하늘에서 내려오기에. 문학평론가
2024-08-06
노란 비단막 위에하나의 태양은 여전히 금빛이고 하나의 한숨이 일렁인다.한순간 바람에 지난날이 흔들리며 삐걱대는 소리를 낸다.여전히 공간 속에 남아 생각하거나자신을 돌아본다. 잠들어 지켜보는 사람은 대답 않고침묵을 본다, 아니 그건 잠들어 있는 사랑.잠, 삶, 죽음. 연약한 비단이 자잘하니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화사하게 꿈꾼다, 너무도 생생하다. 누군가의 기호생각했던 사람의 이미지가 거기에 남는다.삶이 천천히 도모했고 아직도 숨가빠하는 호흡을 위해한올 한올 남겨놓았던 곳에서 줄거리를 엮는다.모르는 것이 삶. 앎은 삶을 죽이고.197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페인 시인 알레익산드레가 노년에 발표한 시. 시에 따르면, ‘지난날’이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너무도 생생하”게 현재의 삶에 다가오는 때가 있다. 이 회상에 등장하는 이는, 침묵하고 있다. 그는 이제 “잠들어 있는 사랑”인 것. 그래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일은 침묵을 보는 일, 하나 이미지는 남고 하나의 줄거리가 엮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앎은 삶을 죽”인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문학평론가
2024-08-05
불과 물. 우리는 서로를 불태우며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는 망해가는 나라니까. 악천후의 지표니까. 우리는 나뭇가지를 쌓아놓고 불을 붙였고, 오줌을 쌌고, 자주 울었고, 나무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위의 시는 ‘악천후’ 시기인 십대를 ‘불과 물’이 공존하고 뒤섞이는 시기로 상징화한다. 자신의 삶을 “망해가는 나라”라고 여기고 “자주 울었”던 십대 시절, 이 시절 ‘우리’는 위험한 불장난으로 “서로를 불태우”거나, 오줌을 싸서 서로를 “물속으로 밀어 넣”기도 했다고. 하나 이 시절엔 이 모든 위반 행위들을 품어주고 지켜봐주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나뭇잎들을 품고 있는 ‘나무들’과 같은 존재가. 문학평론가
2024-08-04
칼국수가 먹고 싶은 날은입소문 자자한?해물 칼국수 집으로 간다바지락, 새우, 오징어?듬뿍 넣고고추장 풀어 끓인 해물칼국수,시청 뒷골목 칼국수 그 집에는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나해맑은 날에도 만원이다(중략)온통 바다 내음이어머니 무르익은 손맛을 넘보는해물칼국수, 그 집에는파도?소리가 살고 있다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 자연처럼 존재한다. 동물은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살 수 있는 법, 이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칼국수에 ‘듬뿍’ 들어간 해물들이 군침 돌게 하는 해물 칼국수 파는 집. 각양각색 사람들이 자연물과 어우러진 칼국수 먹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 이 식당은 자연의 생명력이 샘솟는 공간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 집에는/파도 소리가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4-08-01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내 가슴 설레느니,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쉰 예순에도 그러지 못하다면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워즈워스의 유명한 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다. 오랜만에 이 시를 읽어보니 가슴이 찔리는 듯 아프다. “쉰 예순에도”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는 구절 때문이다. 사실, 그 나이에도 하늘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하늘을 보지 않으니 무지개를 볼 수도 없는 일, 우리는 어쩌다 죽음이 나은 삶을 살게 된 걸까? 문학평론가
2024-07-31
기억의 뒤편에 있던 ‘첫’그가 하얀 꽃송이로 왔다밤새 하얗게 내려 쌓인 첫눈검은 발자국들 소리 없이 덮은 눈꽃 세상이내 눈으로 들어온다‘첫’들이 솟구치는 방의 문고리를 연다깊숙한 방에서 한 장 한 장 화선지를 들추면첫 아기, 첫 노래, 첫 학교, 첫 동무, 첫 영성체, 첫 무대, 첫 운동화첫 색동저고리, 첫 심부름, 첫, 첫….에밀레 종소리처럼 퍼지는 음파, 하얀 첫눈목어木魚도 으스레를 친다차별 없는 저 하얀 손길오늘 나도첫 눈꽃 송이가 되는 꿈을 꾼다밖에는 올해 첫눈이 내리고, 마음 뒤편의 기억이 ‘솟구치’듯 되살아난다. ‘첫 아기’부터 시작하는 ‘첫’에 대한 기억들. 하여, 첫눈은 ‘에밀레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퍼지며 시간을 되살리는 음파다. 그렇게 첫눈은 거리를 더럽히는 ‘검은 발자국들’을 덮으며 세상을 순결하게 변모시키고, 그 순결한 ‘하얀 손길’은 차별 없이 세상을 어루만진다. 시인도 이 손길의 은총을 받아 ‘첫 눈꽃 송이’으로 변모하는 꿈을 꾼다…. 문학평론가
2024-07-29
어려운 공식은 내려놔도 돼뭐라 하지 않을게빨간 빗금도 치지 않을게회초리는 모두 불쏘시개로 쓸게그러니 우리는 그만제 얼굴을 찾는 게 좋겠어더는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을게약속은 다 과거에 버리고다시 여기서 기약하면 돼다 기점이 있고 종점이 있고그렇게 지키려고 힘쓰지 않아도 돼(중략)그림자는 제 길로 보내 버리고꽃과는 의절을 하고우리 여기저기 서 있으면 돼기억해보면, 세상은 ‘회초리’를 들고 ‘빨간 빗금’을 그으며 필자를 자신의 질서에 맞추도록 강요해왔던 것 같다. 이에 맞춰 살아가기 점점 지쳐갔던 것 같기도 하고. 위의 시는 이런 필자에게 주는 어떤 위로로 다가온다. 시는 말한다. “뭐라 하지 않을”테니 이제 “그만/제 얼굴을 찾”으라고. 약속을 지키느라 드리워진 과거의 그림자에 얽매이지 말라고. 사랑의 강요에서 벗어나 그저 “여기저기 서 있으면” 된다고. 문학평론가
2024-07-28
광장에서 흩어진 사람들이근처 골목으로 삼삼오오 뭉친다골목은 혁명을 숨겨주었고그로부터 다시 늙은 미완의 혁명들을불러들이고 술잔을 권한다골목들은 늘 저변의 힘으로장미를 피워올렸고그 왁자한 뒤끝으로 아직도 곳곳에 건재하다꺾어들고 다시 꺾어 내달렸던그 모퉁이들을 회상하면최루탄이니 물대포에 맞닿은 간격으로스크럼을 짜고 막아서던그 든든한 뒷배 같았던 골목들도시의 매력은 큰 건물이 솟아 있는 도심의 대로가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흔적이 녹아있는 골목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도시-골목’의 매력은, 시위자들을 백골단으로부터 “스크럼을 짜고” 지켜주었던 시위 때 더욱 빛을 발한 바 있다. 이 골목은 이제 “늙은 미완의 혁명들을/불러들이고 술잔을 권”하는 ‘회상’ 대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저변의 힘으로/장미를 피워올”리는 곳으로 건재해 있음을 시인은 말해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4-07-25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을아삭아삭 씹어 먹는다나는 익히 당근을 좋아하는데걱정도 조리해 먹으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삶은 옥수수에 마요네즈를 넣고 버무리면 샐러드의 세계웅크리고 있는 양파에 간장을 쪼르르부으면 장아찌의 세계껍질이 연한 기분을 골라 찬물에 씻는다저녁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는 동안뿌리가 발바닥을 뚫고 자란다창밖엔 줄기가 부러진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다다 익은 영혼을 헤쳐보면 작은벌레가 자라고 있다남이 가하는 힐난을 당근 먹듯 먹고, “걱정도 조리해 먹”는 화자. 그에게 사람살이는 음식과 같아서, 삶은 샐러드나 장아찌의 세계로 나타난다. 그렇게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삶을 어떤 음식처럼 먹으며 자란 사람은 “뿌리가 발바닥을 뚫고 자”라는 식물이 된다. 그 중에 어떤 이는 “줄기가 부러”져 버리고, 어떤 영혼 익은 ‘식물-사람’ 속에는 “벌레가 자라고 있”기도 한다. 식물로서의 삶에도 고통은 여전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