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품에 안긴 여자 아이가 울며 들어섰다. 열이 많이 나는지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어 들어선 남자 아이는 작은 몸에서 나오는 기침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진료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이때 남자 간호사가 아이의 손에 주삿바늘을 찌르자 놀란 아이가 경기하듯 소리지르며 울어댔다. 아픔이 가시지 않은 듯 아이는 주사를 맞은 한참 후까지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이 병원 응급실의 소아진료실 운영시간은 오후 10시까지. 그나마 이곳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아이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후 시간부터 병원들이 문을 여는 아침까지 포항에서는 아이들이 아파도 갈 병원이 없다. 큰 병원마다 응급실이 있긴 하지만 열을 내리는 등 간단한 처방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이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한 해 포항시청 홈페이지에는 이 민원을 해결해달라는 글이 20여 개나 올라와 있을 정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항시가 전국 중·소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24시간 소아응급실제도`를 운영하기로 하고 6일까지 희망 의료기관을 모집하고 있다.
4개 종합병원 중 희망하는 병원에 포항시가 3억2천만원을 지원하고 병원은 응급실 안에 별도로 소아응급실을 설치하는 제도다. 평일 야간뿐 아니라 휴일에도 24시간 내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전문간호사가 환자를 진료하기 된다.
하지만 종합병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근본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턱없이 모자라는데다 전문의를 확보하더라도 대부분이 야간 근무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시가 규정한 까다로운 자격요건도 병원들의 참여를 떨어뜨리게 하고 있다.
포항시는 공모조건에 응급실에 일반환자와 별도의 소아응급실을 설치해야 하고 전문의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또는 3년 이상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로 규정했다.
남구의 종합병원 한 관계자는 “지방 의료기관이 야간에, 그것도 24시간 소아응급실을 운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병원은 주간에 진료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모자라 지난해 반년 동안 전국 네트워크망을 통해 모집했지만 아직도 지원자가 없다”며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하고 대부분이 지방근무를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포항시가 제도의 효율성을 감안한다면 전문의의 경우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초진한 후 전문의에게 진료를 요청하는 `당직콜 시스템`으로 조건을 완화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로 4일 현재까지 제도 참여를 신청한 의료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포항시 보건정책담당관실 박인환 담당은 “인구 50만의 포항시 도시 규모에 비해 소아응급진료시스템이 너무 열악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면서 “1차 공모에서 신청 의료기관이 없으면 2차 공모로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최승희·이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