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토요일 방과 후 티브이 채널을 2번으로 돌려놓고는 못 알아듣는 영어 방송을 보며 두 시가 되기만 기다렸다. 화질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투성이고 비 오는 날엔 수신 상태가 더 나빠 옥상에 올라가 안테나를 만지면서 거실의 동생에게 “나와?” 외치며 화면 조정을 해야 했던 그 채널은 AFKN 주한미군방송이다. 볼거리 놀거리가 많지 않던 그때 AFKN에서 토요일 오후에 방영해주던 미국 프로레슬링 WWF(현 WWE)는 신세계였다. 뱀 사나이, 경찰관, 이발사, 백만장자, 장의사 등 다양한 캐릭터의 거구들이 펼치는 승부는 ‘뽀뽀뽀’나 만화에 없는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비디오대여점에도 프로레슬링 테이프들이 있었다. 몇 년 지난 과거 경기 영상을 녹화한 것이지만 미디어 속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던 지라 실시간인양 실감났다. 지난주 AFKN에서 ‘홍키통크맨’에게 졌던 ‘마초맨’이 어제 빌려본 테이프에서는 설욕했다며 친구들에게 떠들면 비디오를 먼저 보고 AFKN을 나중에 본 친구는 반대로 홍키통크맨이 설욕했다고 주장하다가 서로 감정이 격해져선 책상을 밀어놓은 교실 뒤편을 링 삼아 레슬링을 했다. 순수하고 멍청해서 귀여운 시절이었다.
우리의 영웅은 단연 헐크 호건이었다. 탈모로 정수리가 비었어도 한 올씩 애써 치렁치렁 늘어뜨린 금발의 뒷머리와 그에 대비되는 풍성한 수염이 멋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몸무게 303파운드 월드레슬링페더레이션 챔피언 헐크 호건!”이라는 아나운서 멘트와 함께 등장곡 ‘Real American’이 울려 퍼지고, 터질 듯한 근육으로 노란 셔츠를 찢으며 그가 링에 오를 때 도파민이 폭발했다. 따라한다고 찢어먹은 ‘난닝구’가 여러 벌이다. 아무리 당겨도 안 찢어져서 가위로 미리 잘라놔야 했고 그럴수록 헐크 호건의 괴력은 아이들 사이에서 더욱 신화가 됐다.
헐크 호건은 1980~90년대 어린이들에게 “꿈을 위해 기도하고, 비타민을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서 정의, 강함,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티브이 화면 속 프로레슬링의 단순하고 강렬한 서사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배웠는데, 선악이 교묘한 지금과 달리 흑과 백처럼 뚜렷하던 그때 매번 정의의 편에 서서 승리하는 그를 보며 ‘선한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악당의 공격에 초죽음이 되어 패배하기 일보직전 ‘헐크 업’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해 기적적으로 이기는 그는 ‘불멸’이라는 단어의 완벽한 인간화였다.
어느 날 악역으로 전환해 충격을 주기도 했고, 인종차별 발언 등 실제 사생활에서의 논란도 있었다. 바위 같던 근육은 노년이 되어 쭈글쭈글해졌다. 영웅의 이상적 기억과 현실의 실존이 충돌할 때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걱정 근심 없이 마음껏 꿈꾸던 유년기,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영웅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어릴 적 혼자 놀이터에 남겨졌을 때, 학교에서 속상한 일을 겪었을 때 티브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그의 강함에 위로 받은 날들이 있었다. 동시대의 전설적인 레슬러 ‘브렛 하트’는 “그는 수없이 많은 병든 아이들, 혹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탈의실에서 불려 나갔다. 본인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쉬고 싶었겠지만, 아픈 아이들을 위해선 언제나 시간을 냈다. 그들에게 진정한 영웅이 되어주기 위해서였다”라고 회고한다.
결코 안 죽을 것 같던 영웅이 세상을 떠났다. “헐크 호건의 죽음”이라는 수사가 말도 안 되는 형용모순으로 읽힌다. 이제 세상은 복잡하고 각박하며 링 위의 선악이 구별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영웅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헐크 호건의 죽음은 그저 한 인물의 퇴장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던 어떤 정서, 시절, 추억, 촌스럽고 낡은 ‘선한 영웅’에 대한 신뢰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가 노란 셔츠를 힘차게 찢을 때 어린 소년은 ‘나도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돕겠다’는 기특한 용기를 품었다. 그 소년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아직 내 안에 있을까.
소년은 사라져도 영웅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디오가게에서 빌린 ‘레슬매니아3’ 테이프에서 헐크 호건이 ‘앙드레 자이언트’를 들어 메치던 순간은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있다. 그가 8090키드들에게 남긴 유산,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그 통쾌하고 짜릿한 믿음은 지금도 누군가의 삶의 선택과 가치관과 방향에 스며 있다. 그렇게 영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웅이 살아 있는 한 소년도 계속 있다.
/이병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