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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경산 갓바위축제·경북과학축전·평생학습축제

약사여래불에 소원성취 기원 아름다운 풍광은 덤경북과학의 미래가 `한눈에` 과학여행도 즐겨볼만 경산지역의 9월과 10월은 각종 문화행사로 풍성함을 더한다.오는 10월 28일과 29일 와촌면 갓바위 주차장 일원에서 열리는 제11회 경산 갓바위축제는 시민과 관광객의 관심을 끄는 축제로 `소원성취`의 테마가 주를 이룬다.신라시대 제작된 약사여래불로 보물 제431호로 지정된 경산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이 머리에 갓 모양의 석판을 쓰고 있어 갓바위로 불리며 “하나의 소원을 정성껏 빌면 이루어준다”는 불교 3대 기도 도량의 하나다.경남과 울산, 부산지역을 바라보는 자세로 자리잡고 있는 특색이 있으며 수험생이나 고시생의 부모, 병을 치유하거나 득남을 원하는 참배객과 관광객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관광명소다.흔히 팔공산 갓바위로 알려져 국민 대부분이 대구 갓바위로 알고 있다. 경산시는 갓바위가 경산시에 있는 관광명소란 사실을 알리고자 지난 98년 갓바위축제를 시작했다.그러나 와촌지역이 수해를 입거나 수해의 아픔에 동참하고자, 신종플루로 인해 3번의 축제가 취소되기도 한 아픔과 대구 동구청과 갓바위축제라는 명칭을 동시에 사용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경산시는 이번 축제를 갓바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을 홍보하고 관광객과 시민에게 소원성취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축제로 기획하고 있다.공연행사로는 다례봉행, 타고단 공연, 시립합창단 축하공연, 풍물놀이, 선무도 공연, 갓바위 노래자랑과 음악회가 진행된다. 탁본과 도자기공예, 전통 다도, 연밥, 천연염색, 양초 만들기 등의 체험행사를 즐길 수 있다.부대행사로는 소원 축원문과 가훈 써주기, 예술전, 건강상담과 무료진료, 먹거리 장터가 운영된다.또 23일부터 25일까지 경산실내체육관 일원에서는 제11회 경북과학축전이 열린다. `꿈이 있는 미래, 경북과학으로의 여행`을 주제로 경북벤처박람회와 경북 홍보관, 경산시 홍보관이 운용되고 과학을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과학 체험마당, 사이언스 콘서트, 각종 부대행사가 열려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한다.10월 7일부터 9일까지 경산시 일원에서 열리는 제2회 경북 평생학습축제도 130개 기관과 단체가 참가해 동아리 체험행사와 야생화 등 전시회, 연예인 초청 공연행사, 평생학습 교·강사 연수회, 심포지엄 등 부대행사로 평생학습 성과를 공유한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1-09-19

안동 학가산 산약 맛축제

산약의 고장 직접 찾아 원기회복50여 가지 음식으로 새롭게 즐겨 전국 재배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안동산약(마)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 10월 29일 안동시 북후면 옹천 산약테마공원에서 `안동 학가산 산약(마) 맛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4회째 열리는 이번 축제의 주무대는 마 퍼포먼스를 비롯해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며, 산약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마를 활용한 50여 종의 음식을 새롭게 선보이는 `마 음식 특별전`이 열린다.전시판매장에서 우수한 품질과 효능을 인정받은 안동산약(마)을 생산농가와 소비자간 직거래로 비교적 싸게 살 수 있다.산약(마)를 주재료로 한 다양한 가공식품도 준비돼 있다. 마분말, 마차, 마음료수 등 북안동농협 가공제품과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참마 보리빵, 참마쌀국수, 마 동동주를 맛보고 구입할 수 있다.체험코너로 자신이 캔 마를 직접 포장해서 사갈 수 있는 마 캐기 체험, 숯불에 마 구워먹기, 마 씨앗 목걸이 만들기, 산약 산책로 걷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시식행사도 병행된다. 마 떡국, 마 인절미, 참마돼지 바비큐, 마 튀김, 마 부침개 등을 시식할 수 있고, 마 주스, 마 동동주, 마 막걸리를 시음할 수 있는 기회 등 마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축제에서 느낄 수 있다./권광순기자 gskwon@kbmaeil.com

2011-09-19

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28> 그 골목이 들려주는 이야기(5) /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1945년 8월15일 아침 서울 시내 각처에는 `금일 정오 중대방송, 1억 국민 필청`이라는 벽보들이 나붙었다. 소수의 식자층은 `일본의 항복`을 알리는 방송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감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여기 충량한 그대들 신민에게 고하노라….” 정오 무렵,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방송이 전해졌다. 1910년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우고, 1939년 7윌에는 노구교사건을 일으켜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개시했던 일본. 급기야 그들은 히틀러, 무솔리니와 손잡고 1941년 12윌8일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일본은 서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1945년 5윌7일 나치스의 무조건 항복으로 전선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패색이 짙어졌고, 7월17일 포츠담에서 미, 영, 소 3개국 대표는 힘을 집결키로 합의했다. 8월 6일과 9일에 미국의 폭격기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세례를 퍼부었고 8월 15일 정오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4년을 끌던 태평양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 날, 포항 동남쪽 포구 구룡포는 정적이 감돌았다. 일본인 가옥은 문을 굳게 닫았고 조선인 역시 만세를 부르며 뛰쳐나오는 이가 없었다. 이틀이 지난 어느 밤, 한 집에 네댓 명씩 모여 있던 청년들 중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에이, 마캐 나가자. 나가서 딥다 소리를 질러야 안켔나.” “그래 좋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루루 몰려나갔다. “만세~ 만세~” 큰 소리로 목청을 높이며 굳게 입 다문 일본인 거리를 뛰었다.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삼십 명씩 무리를 이뤄 부르는 만세소리와 축항을 치는 파도소리가 늦여름 밤을 흔들었다.그 중에는 앞이 안보이는 봉사도 있었다. 그가 무리를 따라 창주공립보통학교 부근 로터리부터 축항까지 따라 뛰는 모습에 일행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징을 치며 따라오는 노인도 있었다. 저녁마다 외치던 만세소리는 일주일가량 계속 되었다.포구에는 일본인의 짐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구룡포항을 통해 본국으로 가려고 몰려든 내륙사람들은 식솔들을 데리고 일본인 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구룡포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을 뺏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챙기라고 했다. 수개월에 거쳐 운반선이 닿는 대로 그들은 떠났다. 일본인 중에는 죽어도 구룡포를 떠나지 않겠다던 노부부가 있었다. 아이가 없던 그들은 이곳에 살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조선인들이 돌아가라고 해서 억지로 돌아갔지만 얼마 후 다시 구룡포를 찾아왔다. 그러나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쓸쓸히 구룡포를 떠났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바다를 건너 구룡포에 발을 딛었던 일본인들은 50여 년 동안 이루고 쌓았던 유토피아를 그렇게 놓아야 했던 것이다.“패전 소식으로 마을 전체가 어수선 했습니다. 급하게 철수하는 어선에 오르느라 짐을 제대로 챙길 수도 없었지요. 구룡포 항을 떠나자 배가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8월 말에서 9월 초순 사이였어요. 기상이 매우 나빠 파도가 높았고 바람도 거칠게 불어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불안에 떨었습니다. 이러다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표류하다가 시모노세키에 겨우 도착한 우리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1931년 구룡포에서 태어나 1945년 패전으로 떠난 이시하라 히데오. 15살의 이시하라는 어머니의 친척이 갖고 있던 배를 타고 구룡포와 작별했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다. 가져올 물건도 없었다. 부모님은 구룡포가 제2의 고향처럼 살 곳으로 알았으므로 특별히 값어치 나는 것을 간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 거처할 집이 없어서 담배창고 한 쪽에서 기숙을 했다. 식량이 부족해 얻어먹었다.귀환할 때 손꼽히는 부자로 살던 하시모토 젠키지의 막내딸 하시모토 히사요. 그녀는 가족과 헤어져 홀로 배를 탔다. 일행이 모두 가가와현 사람들이라 잘 보살펴 주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곯았다. 씻지 못해 꾀죄죄한 모습이 거지꼴이었다. 뒤늦게 오다에서 이뤄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재회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눈물바다 였다.도가와 야스브로의 아들 카오루가 쓴 회고사는 당시 상황을 더욱 상세히 보여주었다. `전쟁의 상황은 나빠졌다. 미군기가 구룡포 상공에도 자주 나타나 정박 중인 어선에 총을 쏘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바닷가에는 조난당한 병사의 사체가 떠밀려 오는 일도 잦았다. 북한에서 내려오는 피난민들과 내륙으로부터 돌아오는 귀환자가 쇄도했다. 구룡포 항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귀항하기 위해서였다. 고향을 떠나있던 구룡포 사람들도 돌아왔고 그 사이 조선인들로 구성된 조선자치회가 조직돼 활동을 하는 등 거리가 갑자기 붐볐다. 9월이 되자 현저하게 사람들이 줄었다. 남은 것은 치안관계의 주재소장을 비롯하여 몇 안 되는 사람 뿐이었다. 조선자치회가 배를 준비해 귀환하라는 요청을 했다. 그때 나와 오노 슈윤이치 두 사람을 빼고는 모두 구룡포 항구를 떠났다. 나와 오노는 우리가 태어난 땅에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취하도록 술을 마시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10월이 되자 심상소학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이 우리를 소환했다. 미군은 나와 오노를 즉시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부산으로 갔고 부산항 부두에서 인양선 메이유호에 인도됐다. 그 배를 타고 처량하게 일본으로 돌아왔다.`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까? 그들은 일을 봐주던 집사나 가까웠던 이웃에게 맡겼다. 훗날 그들은 일본인들이 하던 일을 자연스럽게 이어 받았다. 누구 하나 간섭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한 상황은 구룡포 사람들 사이의 빈부차이를 넓혔고 신분 변화를 가져왔다. 느닷없는 시대적 변화에 올라 탄 사람들은 급속히 부를 축적해 구룡포의 신진 세력으로 부상했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일본인들이 거주할 때나 그들이 돌아간 뒤에나 똑같았다. 새롭게 변화할 여건도 구실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구룡포를 떠난 지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갈피마다 먼지처럼 앉은 이야기들이 여전히 수런거리고 있다. 끝* 이 글은 2009년 3월, 소설가 조중의씨와 필자가 공동 집필하여 발간한 `구룡포에 살았다(도서출판 아르코)`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권선희시인

2011-09-19

장일환 산림조합중앙회장

한국 근대화의 근간에는 산림녹화사업이 있었다. 산림의 황폐화는 헐벗은 우리 근대사의 가난과 맥을 같이했다. 1962년 창립한 산림조합은 산주와 조합원의 권익향상과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촉진을 통한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왔다.142개 회원조합을 중심으로 200만 산주들의 노력과 국민들의 참여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 내에 극도로 황폐화되었던 산림의 조림 성공이란 위업을 달성하게 했다. 장일환 산림조합중앙회장을 만나 산림의 가치와 미래가치창출의 사업 등을 들었다.(편집자 주)-산주 또는 임업 종사자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나 지원제도는 어떤 것이 있나.▲산림을 경영하기 어려운 산주의 산을 대신 경영해 주는 대리경영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산림경영계획서 작성에서부터 정부 지원 보조금의 신청과 수령까지 전업무를 대신해 주고 있다.또한 전국 142개 산림조합에 840명의 산림경영지도원을 배치해 산주와 임업인이 필요로 하는 산림경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표고, 밤, 산채 등 8개 단기소득임산물에 대해 40명의 특화품목지도원이 전문재배기술을 지도하고 있으며, 임업기계장비를 저렴하게 대여해주기 위해 7개의 임업기계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기후변화에 의한 집중호우 피해로 산사태 등 산림재해의 예방과 복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산림조합에서는 사방댐 등 사방사업에 대한 설계 및 시공에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동안의 성과와 향후 추진계획은?▲사방댐의 경우 1곳에 2억5천만원의 예산으로 상류지역의 계곡과 지류에서 수십배에 달하는 하류 재해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를 가진 시설물로 정부에서도 매년 사업량을 늘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방댐 시설의 설계를 선진화하기 위해 통합산림설계시스템(TFDS)의 개발을 완료했고, 현지여건에 맞는 사방댐시설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설계분야에도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산사태 위험이 높은 산지에 대한 숲가꾸기 사업의 확대 등을 통해 산지보존 및 인명과 재산피해를 막는데 앞장서 나갈 것이다.-임산물 유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목재와 먹을거리 등 임산물유통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소개한다면.▲시장개방에 따른 수입임산물의 증가, 전자상거래 등 소비패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임산물유통사업의 체제개편과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목재유통센터, 목재집하장, 임산물직매장, 임산물가공공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국산재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목재유통센터에서는 건축 내외장재, 통나무집, 목구조시설 등 국산목재의 부가가치를 높여 나가는데 선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수도권, 영동권에 이어 남부권에 1곳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먹을거리 임산물은 생산자나 조합원으로부터 직접 수집해 일련의 가공절차를 거쳐 대형마트나 급식업체로 판매, 공급하고 있다. 국내산 청정임산물의 안정적 보급을 위해 유통체계를 개선하고 가공·포장기술개발을 통해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산림조합이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조림사업 등을 꾸준히 확대해 오고 있다. 성과와 앞으로의 추진계획은?▲우리나라는 목재수요의 86%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 원자재 시황변동과 자원무기화에 취약하다. 또한 온실가스 의무감축에 대한 국제사회 요구도 강하다. 이에따라 94년부터 베트남 동남부를 중심으로 해외조림을 추진해오고 있다. 베트남에는 여의도면적의 53배에 달하는 1만6천㏊를 조림했으며, 조림목은 벌채 후 제지·펄프용 우드칩으로 가공해 국내 업계에 80만7천㎥을 공급함으로써 443억원의 수입대체효과를 거뒀다.2006년부터 인도네시아 해외조림을 준비, 2009년 3월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녹색외교 순방을 계기로 사업에 착수하고 총 10만㏊의 조림지 조성을 목표로 추진 중에 있다. 해외조림에 대한 국제적인 움직임이 목재자원뿐만 아니라 탄소배출권 확보를 위한 조림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어 여건이 조성된다면 북한의 황폐화된 지역 조림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며, 해외에서의 원목관련사업 및 바이오매스 활용사업에 대한 투자도 진행할 것이다.-마지막으로 경북 청송에 건립을 추진중인 임업인종합연수원의 목적 및 향후 운영방안 등을 소개한다면.▲임업인종합연수원 건립은 임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여러 지역을 검토하던 중 마침 청송군에서 기반시설을 지원하고 군유림을 실습림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많은 지원조건을 제시함에 따라 청송으로 결정했다.임업은 물론 경제, 사회, 문화 등 종합적인 교육환경을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해 산림의 기술혁신과 녹색기술선진화를 위한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고,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는 기초연구 및 교육기반을 구축할 것이다. 또한 산림관련학과 학생 등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고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산림문화휴양분야의 숲길체험지도사, 유아숲지도사 등 전문지도인력을 양성하며 산촌정착자 등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이외에 국가공인 교육기관 및 산림관련학과 수강·학점 인정 기관 지정 등을 추진, 단순한 교육공간이 아닌 산주와 임업인에게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임업분야 인적자원개발의 메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이창형기자chlee@kbmaeil.com

2011-09-16

디지털 붓으로 그린 자연과 전통문화

디지털 붓을 들어 아날로그 세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언제부터인가 내 작업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타협 없는 직선이 만들어 낸 사각형의 틀속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망각된 채 강조되는 효율성, 그것은 결국 나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었다.나는 이러한 작업의 적자(適子)가 아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했던 것일까?매일 목적에 의한 짓과 씨름해 오다가 우리의 자연과 전통문화에 주목하게 되었다.무심스럽고 어리숭한 선, 비균형적 형, 조촐한 멋 무목적의 곡선들과 무채색, 그리고 무심한 필획(筆劃). 거기에는 고귀한 단순성과 위대한 고요함이 깃들어 있었다.따뜻함과 평안함에 매료되었다.이제 디지털 붓을 들어 아날로그 세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나는 내달 말까지 청도군 각북면에 있는 갤러리 BK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자연과 일상의 사물을 주제로 한 첫번째 개인전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문화에 주목하고 있다.우리 민화의 화려한 멋과 전통회화에서 나오는 무심하고 조촐한 멋을 모던하게 해석해 내놓은 이번작품들은 전통 민화나 회화를 재해석하여 본인의 디자인적 조형언어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디지털 붓을 들어 아날로그 세상을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시각디자이너 김성년-영덕 출생-경북대 시각정보디자인학과·쓰쿠바대학교(일본)대학원 졸업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초대작가대구디자인전람회 초대작가-현재 경북대 시각정보디자인학과 교수

2011-09-14

추석 제사 어떻게 지내나

추석 제사 어떻게 지내나고향 향한 발걸음들이 분주하다. 아니면 부모님 계시는 곳, 그도 아니면 큰형님 댁으로 모두들 모여든다. 추석이기 때문이다. 거기 가야 조상님 차례를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돌아가신 분이 할아버지 할머니라면 마음이 조금 더 당기고,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더더욱 그렇다. 차례를 올리고 묘소에 인사 드린 다음에야 놀러 나가도 마음이 가볍다.`보본반시`(報本反始)라는 말이 있다고 했던가? 뿌리에 보답하고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라 하고, 조상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을 가졌다고도 했다. 차례 혹은 제사라는 게 이런 것이다.모두들 어려워 하는 제사법앞서 봤듯, 차례 혹은 제사는 그냥 제사만이 아니다. 흩어져 사는 후손들을 저렇게 불러 모으는 구심점 역할도 해 준다. 차례가 아니면 더 보기 힘들었을 형제간도 그 일로 짬을 낸다. 조상님들은 돌아가셔서도 후손들 단합을 걱정하시는가 보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제사 지내는 법을 어렵게 생각한다. 절차를 매우 엄중하게 느끼는 게 원인일 수 있다. 자잘한 동작까지 경(敬)으로 해받치니 새 세대에겐 더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웬 절차가 저리도 까다롭나 싶게 세세한 것도 겁을 먹게 했을 수 있다.그런 걸 걱정해서 나라는 1969년에 벌써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간소화를 추진했다. 조상에게 일러 올리는 말씀인 축(祝)이 한문으로 돼 있어 알아듣기 힘든 것을 인정, 옛 풍속을 받드는 유도회가 솔선해서 한글 축을 만들기도 했다. 풀어놓고 보니 그저 우리 일상생활에서 하는 말과 다름 없는데 왜 그렇게 꽉 막혀 지냈을까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제사법도 마찬가지다. 원리만 설명 듣고 나면 누구나 아, 그쯤이야 나도 알 수 있지! 한다. 제사 홀기에 쓰이는 용어들이 어렵지만 그 역시 한자라서 그럴 뿐이다. 철시복반! 하면 모르지만 그 뜻이 “숟가락 거두고 밥뚜껑 덮어라”라는 것임을 알게 되면 “그러면 그렇지” 할 수 있다.제사를 관통하는 원리상차리기에서부터 차례 진행하기에 이르기까지 어렵고 복잡한 원칙성어들이 매우 많이 오간다. 상차리기의 경우, 앞뒤를 둘러싸고도 그렇지만 좌우를 놓고는 더 용어가 현란하다. 이런 얘길 들으면 순식간에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안철수 원장이라도 머리가 지끈거릴 것이다.그러나 제사에도 그걸 시종 관통하는 원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건 간단하다. 초등학생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것만 알면 저 복잡한 지엽말단은 금세 초탈될 수도 있다. 원리부터 살펴보자.한마디로, 제사 또한 산 사람 접대하는 것과 꼭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우리집에 손님이 온다면, 먼저 인사를 하고 다음엔 술상부터 봐 낸다. 그렇게 접대를 하다가 때가 되면 밥상을 차려낸다. 그리고 일어서시면 배웅하고 전별 인사를 한다. 이게 전부다.그러는 도중 옆집 친구를 불러다 인사 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아이들 불러 인사 올리게 할 수도 있다. 제사도 마찬가지다.그런 곁다리 절차는 얼마든 추가할 수 있다. 적어도 현대에는 그렇다.원리만 흐트리지 않고 따라가면 큰 문제 없다는 뜻이다.원리에 따른 제사 순차제사는 처음 조상에게 인사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걸 한자로 번역하면 `참신`(參神)이 된다. 그럴 때 우리 조상만 모시는게 비좁다면 주위 여러 선인들을 함께 초치해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신`(降神)이라는 절차가 이것 아닌가 싶다. 강신 때는 잔에 술을 부었다가 세 번에 나눠 지운다. 그걸 삼제라 부르는 듯하다.그렇게 인사가 끝났으면 이제 술을 권해 올릴 차례다. `올린다`는 말을 한자로 번역하면 `헌`(獻)이 된다. 처음 올리는 술잔은 초헌, 둘째는 아헌, 마지막 잔은 종헌이다. `초`는 처음, `아`는 두번째, `종`은 마지막이란 뜻이다.첫 술잔을 올려 놓고는 조상께 오늘의 일을 일러 올린다. 차린 것 없으나 달게 잡숴 달라고 말씀 드리는 것이다. 그게 `축`이다. 틀에 박힌 축을 뜯어보면 내용이 별 것 없다.그저 저 정도다. 차라리 한글로 글을 지어 읽어 올리면 어떨까 싶을 때도 있다. 제문과 겸해 간곡한 마음을 전해 올리는 방법 말이다.술은 보통 저렇게 세번에 걸쳐 올린다. 맞이가 첫 잔을 올리고, 망자의 친구나 외래 참사객이 종헌을 한다고 책에 나와 있다. 아헌과 종헌 사이에는 별도로 술잔을 올리고 싶은 사람들이 줄줄이 나와서 잔을 받들어도 좋다고 한다.다만 저런 3헌의 법은 제사에 쓰는 것이라 했다. 추석·설에 지내는 차례 때는 그러지 않고, 술을 한번만 올린다는 것이다. 아헌 종헌은 없는 셈이다.이렇게 술 권하기가 끝나고 나면, 다음엔 밥을 드시게 권할 차례다. 이 말을 한자로 번역하면 `유식`(侑食)이다. 그럴 때는 먼저 밥뚜껑을 열어야 하고, 다음엔 숟가락을 꽂아 드려야 할 것이다. 이걸 어렵게 표현한 말이 `계반삽시`(啓飯揷匙)다. 표현만 어려울 뿐이니 잊어버려도 무방할 것이다.조상이 저렇게 식사를 하시는 동안 후손들은 대체로 방 밖에 나가 있거나, 엎드려 기다린다.그리고 식사가 끝났다 싶으면 순서를 반대로 해 밥 뚜껑을 덮고 숟가락을 내린다. 이건 `철시복반`(撤匙復飯)이라 한다. 앞 문장 바로 그 뜻일 뿐이다.이후 제관들은 일제히 송별 인사를 올린다. 제사는 대체로 이 순서로 진행된다고 안내서에 나와 있다.절 하는 법여기서 잠깐 눈여겨 둘 것은 절하는 법이다. 이것마저 요즘은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아 별별 희한한 절 모습이 다 나온다. 무슨 동물들이 널브러지듯 고꾸라지며 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처님께 올리는 방식으로 절을 해 대는 사람까지 있다.우리 전래의 절하는 법에서 주의할 신체 움직임은 팔 움직임과 허리 움직임이다. 허리를 펼 때 팔은 몸과 90도 되게끔 둥그렇게 감아 올린다. 아마도 중국영화에서 쉽게 보는 읍하는 방식에서 유래한 것 아닌가 싶다. 그리 허리를 굽힐 때는 그에 맞게 내렸다가 도중에 45도 가량 감아 올리는 등의 움직임을 이어간다.안동향교와 안동성균관청년유도회의 도움을 받아 차례 지낼 때 절하는 법을 사진 순서대로 소개한다.⑴ 손을 포개어 잡고 대상을 향해 바르게 선다.⑵ 허리를 굽혀 포갠 손으로 바닥에 짚는다. 손을 벌리지 않는다.⑶ 왼쪽 무릎을 먼저 꿇은 후 오른쪽 무릎을 왼쪽 무릎과 가지런히 꿇는다.⑷ 왼쪽 발이 앞(아래)이 되게 발등을 포개며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앉는다.⑸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며 이마를 손등에 댄다. 이때 엉덩이가 흔들리지 않게 주의한다.⑹ 일정기간 머물러 있다가 머리를 들며 팔꿈치를 바닥에서 뗀다.⑺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운 후 포개어 잡은 손을 바닥에서 떼어 그 위에 얹는다.⑻ 오른쪽 무릎에 힘을 줘 일어나서 왼쪽 발을 오른쪽 발과 가지런히 모은다.⑼ 팔을 수평으로 뻗쳐 공수한 손을 밖으로 원을 그리면서 공경을 표하는 읍례로 마무리 한다.상차리기 원리도 동일그러면 상차리기는 어떤 순차로 해야 할까?그것 또한 손님 접대와 같은 순서다. 먼저 술을 드신 후 밥을 자시고 마지막으로 후식을 먹는 순서다. 그러니 신위가 앉은 자리에 가까운 쪽부터, 먼저 술잔을 놓고, 술 안주거리들을 놓고, 다음엔 밥 반찬을 놓고, 마지막엔 과일을 놓는다. 우리 산 사람이 하는 것과 뭣이 다를까?이 원칙만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은 때에 따라 변용해도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가가례(家家禮)라고, 집집마다 풍습이 다르니 그걸 따르는 것은 각 집안 사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원리만 제대로 파악하면 젊은 세대라도 금방 제사법을 이어받을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고집스레 복잡한 가문별 제사법을 지키느라 디테일에 집착하다가 본령마저 놓친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안동향교 류기홍(78) 전교는 “차례 지낼 때 제례가 각각 조금씩 다르고 각 지방에서 나는 특산품이 다르기 때문에 제수도 다르다” 면서 “형편에 따라 그저 밥 한 공기, 물 한 사발로도 제사를 지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정성스런 마음” 이라고 말했다./권광순기자 gskwon@kbmaeil.com

2011-09-09

필요때 대접 받다가 쓸모없을 땐 도외시 되는…

추지선(秋之扇) `가을부채` 가을이 돼 쓸모없게 된 부채를 가리킨다. 곧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줘 주인에게 사랑받았지만, 가을이 되자 쓸모없게 돼 한구석으로 밀려나고 만 처지를 말한다. 이에 비유해, 사랑을 잃게 된 처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반첩여의 `원가행(怨歌行)` 이라는 시에서 비롯됐다. 반첩여의 전기는 `한서(漢書)` 속에 그의 유명한 `자상부(自傷賦)`와 함께 실려 있으며 `원가행(怨歌行)`은 `문선(文選)`과 `옥대신영집(玉臺新詠集)` 등에도 실려 있다.“새로이 제(濟)나라의 흰 비단을 재단하니,희고 깨끗하기가 상설(霜雪)과 같다.마름질하여 합환(合歡)의 부채를 만드니둥글둥글하여 명월(明月)같다.임의 품과 소매 드나들면서움직일 때마다 미풍을 일으킨다.어느덧 두려운 가을이 오면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빼앗아가니장롱 깊숙이 버려지는 신세가 되어은정(恩情)은 도중에 끊어지는도다”이것이 `원가행(怨歌行)`이라는 시 가운데 나오는 `가을 부채`이다. 이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이야기이다.성제의 후실인 반첩여가 황후 허씨(許氏)와 짜고. 임금의 사랑을 받고 있는 후궁들을 저주하고, 또 임금에 대한 중상과 욕을 했다는 혐의로 하옥되는 사건이 벌어졌다.그러나 사실은 임금의 총애를 독점하고 있던 조비연(趙飛蓮) 자매가 일을 꾸며 허황후와 반첩여를 무고하게 옭아넣었다는 소문이었다.소문대로 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반첩여는 자신의 신세를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후궁살이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임금의 총애도 옛날 같지 않고. 질투의 소용돌이에 언제 또 휩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반첩여는 장신궁(長信宮)으로 들어가 황태후를 모시며 지내겠다고 원해 성제의 허락을 받았다. 황태후는 성제의 모후(母后)로서, 반첩여가 후궁으로 들던 무렵 그를 귀여워해 주었다. 장신궁으로 들어가 황태후의 말 상대로 호젓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반첩여는 성제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40여세로 조용히 죽었다.장신궁에 있으면서 반첩여가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시가 바로 `원가행`이다. 이 시는 옛날 임금의 총애를 받던 시절을 그리면서, 지금의 처지를 가을이 돼 쓸모없게 된 여인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한때 쓸모 있어 사랑받다가 쓸모 없게 된 후에 버려지는 일은 예나 지금에나 흔하디 흔한 일이다. 인간이 매정한 것은 필요한 때에는 요긴하게 썼다가도 필요 없어지면 가차없이 고개를 돌리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데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옛정을 생각해 달라며 눌러붙어 있는 것도 딱하고 염치없는 일이다.사람의 일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혹 다음에 쓰일 것을 생각해서 잘 갈무리해 두든지, 아니면 그것이 쓰일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 놓아주든지 하는 것이 사람을 관리하는 지혜가 될 것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9-07

환영 환상의 여성과 미적 감성

남성이 가질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생각은 실제적으로 다가서는 모습과 또는 환상, 기억 등의 아름다운 화폭의 한 장면 다가오기도하며 다양한 형태의 느낌으로 그 남성에게 다가선다.나는 이런여성들의 모습에 실제가 아닌 남성 또는 여성 스스로가 원하는, 바라는 모습들을 화폭에 나타내고 싶다.그럼에 나의 화폭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앞이 아닌 뒷모습 내지 옆을 나타내고 있는데 직접적인 여성이 아닌 환영, 환상으로 나타나는 여성이며 이것은 그림을 보는 관객들의 기억을 더듬어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원해지는 모습으로 관객의 시각을 통해 다른 오감을 되살린다.그러한 감성은 내 옆의 누군가 일수도 있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누군가 일수도 있다.이런 상상에 의한 여성은 단순한 이성이 아닌 미적대상으로서 귀결 될수 있으며, 누군가의 단순한 감정이 다양한 상황의 조건들에 의해 눈앞에 재현되는 듯한 감성을 가질 수 있게 한다.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또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생각을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전달하려한다.◆서양화가 도진욱-계명대 서양화과 졸업-수상경력·제2회 대한민국 누드 미술대전 대상 외 다수-현재 심상전, 자관전 회원

2011-09-07

水墨으로 번져가는 노래들

11년 전, 장석남의 넷째 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을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가슴이 얼얼했다. 시와 노래를 담아두고 스스로 즐기다가 가끔 퍼내기도 하는 내 오른쪽 가슴이 불에 데인 듯 십일월의 가을바람이 들어찬 듯 서늘했다. 통증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노래의 흥분에 휩싸이는 행복한 통증이었다. “번짐,/번져야 살지/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번짐,/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번짐,/번져야 사랑이지”(`水墨 정원 9`부분)시집 속에는 `수묵 정원` 서시를 비롯하여 `수묵 정원1`에서 `수묵 정원9`까지 모두 10편의 연작시가 있다. 장석남 시인이 물(水)과 먹(墨)으로 만든 그의 정원은 소슬(蕭瑟)하면서도 품격 높은 것이다. `번짐`이라는 말이 이 노래의 매개항이다. 시인은 “번져야 살지” “번져야 사랑이지”라고 노래한다. 또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고,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면서. `번짐`이 사랑과 예술, 삶과 죽음을 깁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노래한다. 네게로 번지는 내 노래를 너는 듣고 있는가?/이종암(시인)

2011-09-07

볼트가 쓴 9일간의 감동 드라마 그 때문에 울고 그 때문에 웃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도쿄(1991년)와 오사카(2007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9일간의 열전을 치르고 4일 밤 폐막했다. 202개 나라, 1천945명의 선수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진 이번 대회에서는 초반부터 이변이 속출, 내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세계 육상계의 지각 변동을 새삼 실감케 했다. 종목별로 1인자의 `물갈이`가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던 와중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선수는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였다. 아사파 파월(29·자메이카)과 타이슨 게이(29·미국) 두 단거리 경쟁자가 각각 부상과 수술로 이번 대회에 불참하면서 볼트에게 쏟아진 기대는 지대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100m와 200m, 400m 계주 등 세 종목을 거푸 석권한 `슈퍼스타` 볼트가 이번 대회에서도 메이저대회 3회 연속 3관왕을 재현할지에 전 세계인의 시선이 쏠렸다. 자신에게만 쏟아진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볼트는 이번 대회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섰다.볼트의, 볼트에 의한, 볼트를 위한 대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는 지난달 28일 무난히 100m 결승에 올라 타이틀 방어를 눈앞에 뒀으나 충격적인 부정출발에 의한 실격을 당해 뛰지도 못하고 레이스를 접었다.최대 이변의 희생양이 됐던 볼트는 그러나 3일 열린 200m 결승에서는 19초40이라는 역대 네 번째로 좋은 기록으로 마침내 금메달을 획득하고 엿새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곧이어 대회 최종일, 마지막 레이스로 벌어진 남자 400m 계주에서 마지막 4번 주자로 나서 폭풍과 같은 질주로 37초04라는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화끈하게 대회를 마무리했다.볼트의 원맨쇼와 마지막에 탄생한 세계신기록 덕분에 이번 세계대회는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이변 속출..세대교체 본격 점화=대구 세계육상조직위원회가 매일 펴낸 안내책자인 `데일리 프로그램`에 표지 모델로 나섰던 우승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지면서 `이변`은 이번 대회를 관통하는 핵심어가 됐다.남자 장대높이뛰기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티브 후커(호주)를 필두로 남자 110m 허들의 다이론 로블레스(쿠바),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등은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목표했던 금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후커는 예선에서 탈락했고 이신바예바는 세계기록을 27번이나 바꾼 `지존`답지 않게 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로블레스는 라이벌 류샹(중국)의 팔을 낚아채 1위로 레이스를 마치고도 실격당했다.대회 2연패를 노렸던 남자 400m의 라숀 메리트(미국)는 그레나다의 신예 키러니 제임스에게 왕좌를 내줬고 여자 400m에서도 아만틀 몬트쇼(보츠와나)가 미국과 자메이카 양강 구도를 깨고 정상에 올랐다.볼트가 실격당한 틈을 타 그의 훈련 파트너인 요한 블레이크(자메이카)가 100m에서 깜짝 우승했다.여자 100m에서도 `무관의 제왕` 카멜리타 지터(미국)가 올림픽·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셸리 앤 프레이저 프라이스(자메이카)를 따돌리고 영광을 안았다.`장거리 황제` 케네니사 베켈레(에티오피아)는 부상 후유증으로 5,000m와 10,000m 정상 수성에 실패했다.여자 높이뛰기의 블랑카 블라시치(크로아티아), 남자 창던지기의 안드레아스 토르킬센(노르웨이), 여자 창던지기의 바보라 스포타코바(체코) 등도 거센 추격을 이기지 못하고 타이틀을 잃었다.대신 파벨 보이치에호브스키(폴란드·남자 장대높이뛰기), 올라 살라두하(우크라이나·여자 세단뛰기), 이브라힘 제일란(에티오피아·남자 10,000m), 데이비드 그린(영국·남자 400m 허들), 다비드 슈트롤(남자 포환던지기)·마티아스 데 초르도(남자 창던지기·독일), 안나 치체로바(러시아·여자 높이뛰기) 등이 이번 대회에서 1인자로 등극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400m 계주에서 은메달, 200m에서 동메달, 100m에서 4위를 차지한 `백인 볼트` 크리스토프 르매트르(프랑스)는 첫 메이저대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3관왕은 없었지만 볼트를 필두로 블레이크, 지터와 펠릭스, 여자 5,000m와 10,000m를 휩쓴 비비안 체루이요트(케냐)가 2관왕을 달성하며 대구를 빛냈다.◇기록 흉작..세계신기록 1개·대회신기록 2개=`기록의 산실` `마법의 양탄자`로 불리는 몬도트랙이 깔린 대구스타디움에서는 대회 마지막 날 볼트의 역주에 힘입어 남자 400m 계주에서 유일한 세계신기록(37초04)이 수립됐다.남자 400m 계주의 종전 세계기록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자메이카 대표팀이 작성한 것이다.역시 몬도트랙이 깔린 곳이었고 당시 기록은 37초10이었다.극적으로 세계기록이 생산되면서 역대 13차례 대회 중 세계신기록이 없는 대회는 1997년 아테네·2001년 에드먼턴·2007년 오사카 대회 등 세 개만 남게 됐다.대회신기록은 2개가 나왔다.여자 창던지기에서 우승한 마리아 아바쿠모바(러시아)가 71m99를 날려 2005년 헬싱키 대회에서 쿠바의 올리스델리스 메넨데스가 수립한 대회 기록(71m70)을 29㎝ 늘렸다.여자 100m 허들에서도 샐리 피어슨(호주)이 결승에서 12초28을 찍고 우승, 1987년 로마 대회에서 불가리아의 진카 자고르체바가 세웠던 12초34를 24년 만에 0.06초 앞당겼다.이밖에 3일까지 올해 세계최고기록 11개, 대륙별 기록 3개가 새로 작성됐다.한편 한국 선수 중에서 남자 10종경기의 김건우(문경시청·7천860점), 남자 1,600m 계주팀(3분04초05), 남자 50㎞ 경보의 박칠성(국군체육부대·3시간47분13초)이 한국신기록을 세웠다.또 남자 400m 계주팀이 4일 예선에서 38초94를 찍어 종전 기록을 0.1초 앞당기는 네 번째 한국신기록을 세워 마지막을 성공적으로 장식했다.◇초반 미숙한 운영..그러나 성공적 마무리=대회 초반에 숙박·교통·음식·보안 등 여러 부문에서 문제가 드러나면서 조직위원회에 `미숙하다`는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그러나 대회가 진행되면서 조직위는 비교적 신속하게 문제점을 개선·보완해 뒤늦게나마 운영의 묘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대구 시민의 열성적인 대회 참여와 뒷바라지, 성숙한 관전 문화가 어우러져 초반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대구 세계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연합뉴스

2011-09-06

토·일요일 오전 11시부터 10경기

○소싸움의 재미 갬블(베팅) 청도 상설 소싸움의 특징은 △전용 경기장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열리고 △돈걸기(베팅)가 권장된다는 점이다. △여건 좋은 정해진 장소에서 △연중 내내 정해진 시간에 △관람객이 게임의 일부로 참가해 스릴 넘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이런 청소 소싸움은 매주 토·일요일 이틀간 오전 11시부터 각각 하루 10경기씩 진행된다. 출전하는 소는 축제성·일회성 행사인 전국 민속소싸움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싸움소 가운데서 선발된 우수한 싸움소 300여 마리다. 현재는 청도 소 103마리를 포함한 301마리가 참가 등록을 해놨다.사람이 타고 달리는 말 경주(경마) 등과 달리 소싸움에선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소끼리 싸운다.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적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래도 또 다른 조작이 있을 위험성에 대비해서, 출전하는 싸움소는 경기 전날 우사동(牛舍棟) 대기실에 입소시켜 주인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우사동에는 54개 대기실이 있고, 각 방마다에는 감시용 CCTV가 작동된다. 각 경기는 5분씩 6라운드까지 진행되고 도합 30분이 지나면 무승부 처리된다.돈을 거는 방식은 4가지 뿐이어서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한 경기의 승리소를 맞히거나 무승부가 날 것이라고 맞히는 단승식이다. 한 걸음 나아가 연속하는 2경기를 한 조로 묶어 맞히면 복승식이라 분류된다. 여기에다 승리 시간 맞히기가 첨가돼 시간적중 단승식, 시간적중 복승식이 생긴다. 어느 라운드에서 어느 소가 이길 것인가를 맞히는 게 `시간적중`이다. 경마, 경륜, 경정 등에서는 결승점 도착 시간이 중요하지만 소싸움에서는 어느 소가 어느 시점에 이기는가 하는 승리 시점 분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무승부도 하나의 시간적중이다. 특히 무승부는 배당률이 매우 높다. 자주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돈은 100원에서 10만원까지 걸 수 있다. 사행으로 변질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해 1인 1회 10만원 이하로 제한된다.청도/이승택기자

2011-09-06

청도공영사업공사 박종규 사장

청도 소싸움은 `청도공영사업공사`와 `(주)한국우사회`가 업무를 분담해 운영한다. 청도공영공사는 사업 시행자로서 경기의 공정성과 관련된 업무와 싸움소 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한국우사회는 농림부에 의해 지정된 수탁사업자로서, 우권 발매, 방송, 안전, 고객지원, 시설관리, 홍보 등을 맡았다.소싸움 개장을 진두지휘해 온 주역이다. 개장식과 첫 경기를 치러내느라 정신이 없다.“참으로 오랜 세월 공 들여온 사업입니다. 1990년 개최한 영남민속투우대회로부터 치자면 무려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2003년 10월1일 공영공사가 발족한 것부터 쳐도 벌써 8년이지요”박 사장은 그 동안 많았던 곡절을 숨기지 않았다.“2007년 1월 돔 경기장을 완공하고도 4년 이상 개장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 감사원은 사업청산을 지시했습니다. 저런 고난을 넘어 오다보니 개장이 누구보다 기쁩니다” 개장식 순간에는 `그간의 고충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눈물이 핑돌더라`고 했다.공영공사는 박 사장 주도로 싸움소 수급, 심판·조교사 선발, 전산·방송시설 가동, 경기 운영 숙달, 고객 서비스 훈련 등에 많은 준비를 기울여 왔다.지난 7월9일부터 매주 토·일요일엔 시뮬레이션을 해 가며 실황상의 문제점을 보완해 오기도 했다.박 사장은 “청도 소싸움은 경기 자체만으로도 많은 볼거리로 좋은데다 베팅 묘미까지 가미돼 사업 전망이 매우 밝다”면서 “세계적 문화관광상품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청도/이승택기자 lst59@kbmaeil.com

2011-09-06

“대구 시민과 서포터즈 진정한 금메달 주인공”

“IAAF, 역대 최고대회 찬사” “9일간의 짜릿한 감동과 환희와 열정이 지구촌 65억 세계인의 가슴속에 또렷이 각인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대구 시민의 열띤 응원과 뛰어난 시민의식이 있었습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5일 오전 시청 기자실에서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에 큰 역할을 해 준 대구 시민께 드리는 감사 인사를 발표했다.김 시장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은 위대한 시민 여러분의 열정적인 참여 덕분으로, 대구시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대구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대구 시민들과 6천700여명의 자원봉사자, 1만7천여명의 시민서포터즈가 이번 대회의 진정한 금메달 주인공”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이어 그는 “육상의 비인기 종목인 한국에서, 그것도 지방도시 대구에서 개최됐지만 지금까지 선진국의 세계적인 도시에서 열린 역대 대회와 비교해 엄청난 성공을 이뤘다는 평가와 함께 라민 디악 IAAF 회장 및 육상연맹 관계자로부터 역대 대회 중 가장 준비가 잘된 대회라고 찬사를 받았다”고 덧붙였다.김 시장은 “역대 대회 중 가장 많은 202개국 선수·임원이 참가했고 최첨단 경기장과 최고수준의 경기운영, 만석 관중과 수준 높은 관람 및 응원, 역대 최고 수준의 선수촌 시설과 선수촌내 연습장, 한국 전통의 각종 문화행사 등 명실상부한 역대 최고 대회로, 대구 유사 이래 최고의 행사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자부했다.김 시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대구가 전 세계 언론에 수천번 노출되면서 글로벌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높아진 대구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 투자유치 활성화, 지역 잠재력을 확인한 문화관광자원의 개발, 육상의 메카로서 육상진흥센터를 활용한 꿈나무 육성 등 포스트 2011사업 추진에도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김 시장은 “이번 대회는 대구 시민들이 하나로 뭉친다면 어떠한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었다”며 “자신감과 자긍심을 되찾아 글로벌 도시 대구를 향해 힘차게 달려 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 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1-09-06

경북 유일 청도소싸움 20년전에 시작됐다

소는 우리 민족과 더불어 2천여 년 함께 살아오면서 `생구`라 불리게 됐다. 생구는 한 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가리키는 말로, 소를 거의 사람 대접할 만큼 존중했다는 뜻이다.소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소 먹이러 간 아이들이 심심해 즉흥 놀이로 시작했으리라 짐작될 뿐이다. 그러다 규모가 커져 마을 혹은 씨족단위로 번져 가세(家勢) 또는 족세(族勢) 과시의 장으로 발전됐을 가능성이 점쳐진다.현재 전국에서는 11개 소싸움대회(축제)가 열린다. 대부분 연중 한 두 차례 시기를 정해 5일 정도 기간에 리그전으로 치러진다. 전체 11개 대회 중 6개가 경남에서 열리고, 전라도서 2개, 경북·대구·충북에서 각 1개 열린다. 경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경북에서는 청도 것이 유일한 대회다. 입상 순위별로는 상금이 주어진다.시기별로 보면 봄·가을로 열리는 것에 진주소싸움대회(5월·10월)가 있고, 봄에 열리는 것에는 △함안소싸움대회(4월. 5일간) △의령소싸움대회(5월, 5일간)가 있다. 그 외에는 가을에 열린다. △청도소싸움대회 △대구달구벌축제 소싸움대회(9월·5일간) △창녕소싸움대회(9~10월, 5일간) △창원소싸움대회(10월·5일간) △김해소싸움대회(11월·5일간) △정읍소싸움대회(10월·5일간) △보은소싸움대회(10월·5일간) △완주소싸움대회(9월·5일간) 등이 그것이다.저 여러 대회 중에서는 진주소싸움대회의 역사가 가장 오래 됐다. 신라가 백제를 이긴 전승 기념잔치에서 비롯된 후 고려 말부터 진주를 중심으로 민속놀이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현대 들어서는 1971년부터 전국대회로 자리잡았다.경북에서 유일하면서도 청도소싸움의 역사는 깊지 않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년 전이다. 싸움소를 기르던 농가들이 `청도투우협회`를 조직하고 1990년 영남민속투우대회를 연 것이 처음이다. 이 대회는 1995년 전국민속투우대회로 발전해 1998년까지 지속됐다. 1999년엔 청도소싸움축제로 명칭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그해엔 문화관광부 지정 `한국의 10대 지역문화 관광축제`로 선정됐다.이런 여러 소싸움대회는 모두 잠깐 축제 형태로 열리는 행사다. 하지만 근년 들면서 그런 일시 행사를 뛰어넘어 소싸움을 상설대회로 격상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내 처음으로 2001년 매주 토요일 상설 소싸움 경기를 시작한 진주가 첫 주자였다.그 뒤를 이은 게 이번 청도 상설소싸움이다. 하지만 청도소싸움은 진주 것과는 또다르다. 경마 처럼 복표를 사서 돈을 걸 수 있는 형태로 한단계 더 진화했다. 지금으로서는 세계 유일의 투우사업이라 볼 수 있다.청도상설소싸움은 2003년 청도공영사업공사가 설립되면서 구체화됐었다. 경기장도 2007년에 완공됐다. 2010년 12월31일에는 사업에 조건부 승인이 났다. 그리고는 지난 3일 첫 시합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정철화기자

2011-09-06

“팸투어 개발로 외국 관광객 유치”

(주)한국우사회 기화서 대표사업의 앞날을 짊어진 주역이다. 소싸움 활성화를 위해 여러 여행사 및 코레일과 연계해 국내 수도권 관광객들의 청도 단체 관광상품 개발을 완료했다. 일본 오사카 등 외국 관광객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소싸움 영상을 해외방송사로 송출하는 일과, 관광객들이 소싸움에 겸해 청도 경승지를 둘러보는 팸투어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청도 소싸움이 어느 정도 흥행을 거두고 매출을 올릴지는 명확히 예측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사업이 2009년 기준 7조3천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입니다. 소싸움경기장 주변 개발이 성사돼 관광단지화가 이뤄질 경우 비슷한 수준까지 매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우사회는 나아가 청도지역 주요 관광지를 묶는 종합레저타운 개발, 마카오 등 해외에서의 우권 발매 등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소싸움을 지금은 주 이틀만 열지만 안정되면 주 3일까지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 했다.기 대표는 “천년 역사를 가진 소싸움이 현대적 브랜드로 탈바꿈해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게 청도소싸움”이라며 “가족 단위 관람을 권하고 싶다”고 인사했다.청도/이승택기자 lst59@kbmaeil.com

2011-09-06

“가장 한국적인 관광상품 될 것”

세계 유례없는 상설 베팅 소싸움 청도서 팡파레서울 대구 부산 등 5만여 관중 우뢰같은 `와~아` 신대구부산고속도로에서 청도나들목을 빠져나와 북쪽(경산쪽)을 향해 국도 25호선을 타고 5분 정도 달리면 오른편에 지붕이 하얀 천으로 덮인 돔형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속에서 본 비행접시를 연상시킨다. 이곳이 바로 청도 소싸움 전용 경기장이다. 자동차로 대구에서 30분, 부산에서 1시간, 서울에서 5시간 남짓 거리다.지난 3일 있은 개장식 날엔 이 경기장에 무려 5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청도군민이 많았지만 대구, 부산, 서울에서 달려온 사람들도 엄청났다. 서울서 온 한 50대 남자는 진작부터 다양한 싸움소들의 오랜 전적 기록을 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그는 직장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종전의 일반 소싸움대회 때도 청도를 매년 빼먹지 않고 들락거렸다고 했다.첫날 총 10경기 중 오전 5경기는 시범경기로 진행됐다. 돈을 걸 수 있는 소싸움은 나머지 5경기였다.경기장 지하층과 1층에 포진한 우권 발매소들에는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우권 베팅에 호기심이 발동한 거대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발매 아나운서의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더니 얼마 안 가 우권 발매가 끝났음을 알리는 창구 커튼이 드리워졌다. 그러자 장내 어나운서가 소싸움 시작을 알렸다.모래판 한 가운데에는 850㎏이 넘는 거구의 황소 두 마리가 마주섰다. 앞발로 모래를 차내며 거친 숨을 몰아 쉰다. 금방 달려들 듯 기세가 맹렬하다. 주심이 호각을 불자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에 휩싸였다. 두 마리 황소는 뿔치기, 뿔걸이, 밀치기 등 다양한 기술을 주고 받았다.한참을 한 발짝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경기시한 30분을 5분 남겼을 때까지 그랬다. 힘이 부친 한 마리가 등을 보이며 도망치고서야 경기는 종료됐다. 무려 25분에 걸친 혈투였다. 심판이 승패를 선언했다. 그와 함께 대형 전광판에 경기 결과와 배당률이 공개됐다. 순간 관중석엔 당첨자 환호와 탈락자 탄성이 교차했다.첫날 싸움소들은 일반 소싸움(민속대회)에서 기량이 검증돼서인지 대체로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박진감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관중석은 각자 베팅한 소가 이기기를 열망하는 관중들의 응원으로 더욱 뜨겁게 달궈졌다.이날 5경기 베팅 총액은 6천여 만 원으로 집계됐다. 한 경기당 1천200만원 정도다. 최고 배당률은 두 번째 경기의 시복승식에서 나온 1천172배로 기록됐다.개장식날 소싸움장에 몰린 인파는 청도군 전체 인구 4만7천여명보다 많은 것이었다. 1천400여대 분의 주차공간은 오전 10시께 이미 만원이 됐다. 오후엔 경기장 주변도로 갓길까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한국우사회 기화서 대표는 “개장 첫날 치고는 매우 성공적이다. 인파가 6, 7년 전 부산 경륜장 개장일 때의 10배 정도에 이른다”고 반겼다.청도/이승택기자 lst59@kbmaeil.com

2011-09-06

“대구 잊지말고 다시 오세요”

9일 간의 감동 드라마 세계육상 폐막“대회 훌륭”…2년 뒤엔 모스크바서 “2013년 모스크바에서 다시 만나요!”8월27일부터 9월4일까지 9일간 대구 스타디움과 대구 시내 전역을 뜨겁게 달구며 감동의 드라마를 시연했던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4일 폐막했다.관련기사 3·11·12·13·14·15면 세계 3대 스포츠 축제 중의 하나인 세계육상선수권의 이번 대구 대회에는 202개국 47개 종목 선수 1천945명, 임원 1천817명, 미디어 관계자 3천59명, 기술사·개인코치 7천명 등 역대 최대 규모가 참가했다. 또 65억 세계인이 감동의 드라마를 시청해 세계 속의 한국 위상을 드높였다.특히 이번 대회는 대구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응원, 자원봉사자와 시민 서포터즈의 헌신적인 노력 등으로 성공에 이름으로써 이 도시의 이미지를 세계에 고양했다. 대회 유치 당시 우려했던 관중 부족 문제는 목표관중 49만명의 92%인 45만명 관람으로 깨끗이 극복됐다..그러나 육상 성적은 대회 폐막일인 4일 남자 400m 릴레이에서 우사인 볼트가 마지막 주자로 나선 자메이카 팀이 37초04(종전 37초10)으로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며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회신기록이 2개에 그치는 등 흉작이었다. 한국 선수는 남자 경보 20㎞ 김현섭이 6위, 남자 경보 50㎞ 박칠성이 7위, 남자 넓이뛰기 김덕현이 본선진출한 데 그쳤다.폐막식은 김황식 국무총리, 라민디악 IAAF(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 각국 선수·임원, 자원봉사자, 시민서포터즈 1천500여명 등이 함께 그라운드에 입장한 가운데 진행됐다. 김범일 조직위원장의 환송사, 라민디악 IAAF회장의 폐회사, IAAF기 차기 개최도시 모스크바 전달식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김범일 시장은 “각국 선수와 임원, 미디어 그리고 모든 IAAF 가족들에게 깊이 감사 드린다. 오랫동안 대한민국과 대구를 기억해 주시고, 다시 오시기 바란다”고 인사했다.한편 그에 앞선 4일 오후 5시 라민디악 IAAF회장, 김범일 대구시장, 문동후 대회조직위 부위원장 등은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총평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라민디악 회장은 훌륭한 경기시설과 대구시민의 성숙한 관전문화 등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도핑검사에서 문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큰 수확이며, 그레나다 등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 메달을 딴 것도 성과라고 평했다. 경기운영과 관련해서는 “경기 초반 약간 미비한 점이 있었으나 극복됐으며, 방송 시청이 직전 오사카대회의 10배가 넘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오사카대회는 600만이 시청했으나, 대구대회는 6천만 이상, 유로존에서만 3천만명이상이 시청했다./이곤영·이창훈기자

2011-09-05

한국 남 400m계주 런던 보인다

한국 남자 400m 계주팀이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내년도 런던올림픽 본선 무대를 향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여호수아(24·인천시청)-조규원(20·구미시청)-김국영(20·안양시청)-임희남(27·광주광역시청)이 이어 달린 계주팀은 4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예선에서 비록 조 5위로 결승에 오르진 못했지만 38초94를 찍고 종전 한국기록을 0.1초나 앞당겼다.계주팀이 발족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기적이라는 평가다.특히 발목이 좋지 않은 전덕형(27·경찰대) 대신 신예 조규원을 투입하고서 얻은 결과라 더 주목할만하다.계주팀은 이날 결승 진출과 한국신기록 수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역주를 펼쳤다.그러나 2년 전 베를린 세계대회 결승 진출 마지노선인 38초60을 통과한 팀이 이미 8팀을 넘어서면서 아쉽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하지만 대만(39초30)과 태국(39초54) 등 아시아의 계주 강국으로 통했던 나라를 잇달아 제치며 자신감을 수확했다.대한육상경기연맹은 100m 개인 최고기록이 10초23에 머무는 현재 실력으로는 100m 단일종목에서는 세계와의 격차를 줄일 수 없다고 판단, 지난 1월 계주팀을 결성해 틈새를 노리겠다고 선언했다. 대표팀은 바통 터치를 완벽하게 가다듬는 것에서 기록 단축의 해법을 찾았고, 이날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는 팀워크를 발휘하며 한국 기록을 4개월 만에 0.1초 다시 앞당겼다.레이스가 끝난 뒤 많은 육상인의 축하를 받은 오 코치는 “감격스럽다. 내년 런던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고자 더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100m 10초5대를 뛰는 조규원이 오늘 아주 잘해줬다”며 “10초3대를 뛰는 선수가 한 명만 더 있으면 아시아 최강이라는 일본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이날 전체 23팀 중 13위를 달린 한국은 일본(9위·38초66)과 중국(12위·38초87)과의 격차를 각각 0.28초, 0.07초 차로 줄이며 턱밑까지 추격했다. 계주 선수들은 개인의 100m 기록 향상보다 400m 계주의 기록 단축에 더 집중했고, 마침내 대구 세계대회 폐막일에 값진 열매를 맺었다.런던올림픽에는 기준기록을 통과한 나라 중 기록이 좋은 16개 나라가 참가한다.드디어 38초대에 진입한 계주대표팀이 기록을 어디까지 줄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1-09-05

승자도 패자도 축제 즐겼다

女800m 사비노바 銀 세메냐 우정의 포옹 러시아 마리야 사비노바(26)가 여자 800m의 새 여왕으로 등극했다.사비노바는 폐막일인 4일 오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여자 800m 결승에서 지난 2009년 이 종목 우승자로 성별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캐스터 세메냐(20·남아프리카공화국)를 제치고 1분55초87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골인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위는 자넷 젭코스게이 부시에네이(케냐·1분57초42).이날 여자 800m 결승 경기 후반 100m를 남겨두고 세메냐가 선두로 치고 나오며 이 종목 2연패를 달성하는듯 했으나 루사노바가 10여m를 남겨두고 막판 스퍼트로 대역전극을 펼치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정상에 올랐다.남자 5천m 결승에서는 소말리아 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철각 모하메드 파라(28)가 13분23초36의 기록으로 버나드 나가트(미국·13분23초64)를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고 우승했다. 3위는 이마네 메르가(에티오피아·13분23초78)가 차지했다.여자 해머던지기에서는 러시아의 타티아나 리센코(28)가 결승에서 77m13을 던져 이 종목 세계기록(79m42) 보유자로 타이틀 방어에 나섰던 베티 하이들러(독일·76m06)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위는 중국의 장웬시우가 74m48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남자 세단뛰기에서는 미국의 신예 크리스천 테일러(21)가 결승 4차 시기에서 올해 최고기록인 17m96을 뛰어 2연패에 도전했던 필립스 이도우(영국·17m77)를 19㎝ 차로 물리치고 우승했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1-09-05

`실격` 볼트로 스타트 `세계신` 볼트로 피날레

자메이카 男 400m 계주 37초04로 우승… 볼트 200m 이어 2관왕女 400m 계주 4년만에 정상 탈환 미국 금메달 12개 종합우승 명불허전. 명성은 헛되이 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회 마지막날 마지막경기에서 극적으로 세계신기록이 나왔다. 그동안 목말라 하던 기록가뭄에 말 그대로 단비였다. 4일 밤에 열린 남 400m계주에서 볼트를 앞세운 자메이카는 37초04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조국에 금메달을 보탰다.이날의 히어로도 단연 볼트였다. 6번 레인의 마지막 주자로 나온 볼트는 200m 금메달로 여유가 생긴 듯, 연신 몸을 흔들며 쇼맨십을 과시했다. 전광판에 경기 전 시작되는 `쉿`하는 소리가 나올 때는 자신이 먼저 인지손가락을 입에 대며 관중에게 조용히해 줄 것을 주문하는 등 예선보다 한결 여유있어 보였다.경기가 시작돼 3번 주자 블레이크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후에는 폭발적인 스퍼트로 2위와의 격차를 벌리며, 여유만만하게 결승선을 끊었다.이후 볼트는 웃옷을 반쯤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관중석으로 다가갔다. 마침 흥겨운 디스코 음악이 나오자 거기에 맞춰 연신 디스코 동작을 해보이며 팬들과 호흡을 맞춰 우레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탭댄스 동작을 몇번 반복해 관중들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당초 자메이카의 강력한 상대로 여겨졌던 미국은 3번 주자 패튼이 바통을 넘겨주는 순간 넘어지면서 완주도 못해보는 불운을 겪었다. 당연히 바통이 손에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레이스를 시작하던 딕스는 뒤를 돌아보는 순간 경악했다. 패튼이 트랙에서 넘어져 있었던 것.미국의 거듭된 `바통 악몽`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미국은 남녀 대표팀 모두 바통을 떨어뜨려 메달을 놓치고 말았다. 남자 400m 계주 예선에서는 3번 주자였던 다비스 패튼이 마지막 주자로 나선 타이슨 게이에게 바통을 넘겨주려던 순간 게이가 놓치면서 레이스를 포기했다. 이어 벌어진 여자 400m 계주 준결승에서는 4번 주자 로린 윌리엄스가 너무 일찍 출발한 나머지 토리 에드워즈가 건넨 바통을 제대로 움켜쥐지 못하고 뒤로 흘리면서 한참 뒤로 처지고 말았다.이듬해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악몽이 이어졌다. 미국은 남자 400m 계주 예선에서 전체 출전팀 중 가장 빠른 37초97의 기록으로 결선에 진출했으나 이튿날 바통 터치 과정에서 규정된 지역을 벗어났다는 판정이 내려져 실격됐다.3번 주자 숀 크로퍼드가 마지막 주자였던 다비스 패튼에게 바통을 주는 과정에서 바통 터치 구역을 벗어났다는 판정이었다. 특히 다비스 패튼은 세 차례 연속으로 바통 터치 실수의 장본인이 돼 `억세게 운 없는 사나이`로 남고 말았다. 트랙에 넘어진 패튼은 힘없이 엎드린 채 4년째 깨어나지 못한 악몽에 고개를 떨궜다.망연자실한 미국 계주팀이 트랙에 누워있자, 금메달을 목에 건 자국의 여자 계주팀인 지터, 팰릭스 등이 나와 성조기를 걸어주며 위로했다. “노 프라블럼, 더 선 라이즈 어게인.”앞서 벌어진 여자 400m계주에서는 비안카 나이트 - 앨리슨 펠릭스 - 마르쉐벳 마이어스 - 카멜리타 지터가 이어달린 미국이 41초56의 시즌 최고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었다.자메이카는 프라이스, 스튜어트, 심슨, 브라운으로 팀을 꾸린 후 마지막 주자 캠벨브라운이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지터를 따라잡지 못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3위는 42초51을 기록한 우크라이나가 차지했다. 이로써 미국은 4년만에 400m계주 정상을 탈환했으며 100m, 1,600m계주에서 각각 우승한 지터와 펠릭스는 2관왕에 올랐다.한편 미국은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8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하며 종합우승을 차지, 2003년 파리 대회 이후 종합 5연패를 달렸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1-09-05

“내년 올림픽서 전설이 되고 싶다”

역시 볼트였다.100m부정출발로 팬들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겼던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는 3일 열린 남자 200m 결승에서 19초40의 시즌 최고 기록을 작성하며 우승, 팬들을 흥분시켰다. 이날 볼트의 기록은 2년 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기록(19초19)을 작성한 이후 2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역대 기록 중에는 두 차례 자신이 작성한 19초19, 19초30의 세계기록과 마이클 존슨(미국)의 종전 기록(19초32)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볼트는 트랙에 주저앉아 잠깐 숨을 고르고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번개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자메이카 국기를 받아 들고는 손에 말아 들고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볼트의 사진을 찍으려는 취재진 때문에 트랙 주변의 광고판이 넘어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다음은 볼트와의 일문일답-금메달을 딴 소감은.△아주 기분이 좋다. 최선을 다해 최대한 빨리 달렸다. 내가 자랑스럽다.-100m실격에 대해서.△참으로 아쉽다. `셋(set·차려)`이라는 소리를 `고(go·출발총성)`로 잘못 듣고 뛰어나갔다.우승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해 마음이 조급했다. 앞으로 이를 교훈삼겠다.-강력한 경쟁자는 누구로 봤는가.△모든 선수를 경쟁 상대로 생각한다. 오늘 달린 선수들이 다 훌륭하다.-뛰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200m는 100m보다 긴 거리이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든다. 지금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라 계속 내 자신에게 `잘할 수 있다`고 자기 암시를 보낸다.-오늘 결승전 소감은.△나는 원래 5번, 6번 레인에서 뛰는데 3번에서 처음으로 오늘 뛰었다. 코너 돌기가 어렵다. 돌 때는 약간 조심해서 돌았다. 오늘 기술이 최고는 아니었다. 그래도 만족할 만하다.-5, 6번 레인에서 뛰었다면 기록이 더 좋았을까.△다른 레인이었다면 코너를 돌 때 더 속도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부정출발 실격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나.△너무 흥분했고 긴장했다. 차분하게 경기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는 경기 자체를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부정출발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나.△규정을 이미 알았고 내 실수였기 때문에 개정 규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더 집중해서 앞으로 경기에 임할 것이다. 코치도 `천천히 차분하게 뛰어라, 예측하지 말라`고 계속 주문했다.-부정출발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100m 기록은 얼마나 나왔을 것 같나.△아마 그렇게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9초70이나 9초60 정도가 됐을 것 같다.-세계기록이 나오지 않는 대구의 환경은.△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불었는데 오늘은 바람이 잘 불어 내 기록도 세계기록에 가까워졌다. 다만 내 컨디션이 최고가 아니었다. 그러나 19초40에 충분히 만족한다.-내년 올림픽에 대한 각오는.△100m를 이번에 못 뛰었다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각오가 더 새롭다. 진지하게 임할 것이다. 나는 전설이 되고 싶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1-09-05

매일 매일 축제… 젊은이들 마음 사로잡다

사통팔달 교통망에 접근성 탁월도심 속 쉼터서 문화 공간 대변신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2·28 기념중앙공원이 대구 문화의 허브로 부상했다.특히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교통 접근성도 좋은데다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녀 마라톤과 남·녀 경보의 출발점 및 결승점으로 세계 곳곳에 생중계되면서 단순한 도심 속 쉼터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자리를 굳혔다.또 한국 근대사의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데다 사통팔달의 교통망 덕분에 대구지역 젊은이들의 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지역으로 거듭나면서 동성로만으로 국한되던 젊은이들의 거리가 이곳까지 확장됐다는 평가다.9일간의 육상대회기간 대구시가 동성로 등 5개 공간에서 마련한 도심문화행사인 컬러풀 대구페스티벌의 112회에 달하는 행사중에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열린 행사만 각각 20회와 48회 등 68회를 차지해 전체 공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꽃이 피는 예술정원`에는 교향악과 합창, 무용, 기악, 전통공연, 재즈 등이 펼쳐졌고 2·28기념중앙공원 `상상의 숲`에는 마임극과 마당극, 뮤지컬, 연극, 성악공연 등이 길을 걷던 젊은이들의 발길을 붙들었다.다양한 장르만큼 공연 내용도 거의 백화점 수준으로 다양했다.이번 육상대회기간 이들 공원에서 선보인 공연 프로그램은 콘서트에서, 전통춤, 재즈, 오페라, 연극, 서커스 쇼, 플루트 연주, 피아노 연주, 남사당놀이, 마술, 뮤지컬, 인형극, 영화음악, 국악, 클래식, 피아노연주, 전시회 등 문화 전분야를 총망라해서 공연이 이뤄졌다.지난달 31일 오후 6시에 열린 `미리보는 오페라 축제`에서는 귀에 익숙한 오페라가 올려졌고 버스를 기다리던 젊은이들은 영화음악과 우리 가요 등이 계속 연주되자 하나둘씩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몰려들어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지난 3일 오후 7시에 거리에서 펼쳐진 `저글링 코믹 마술쇼`와 지난달 30일 오후 6시에 공연된`나홀로 서커스 쇼`등은 화려한 댄스에 이어 코믹한 마술로 젊은이들이 가던 길을 멈추게 했고 공연장면을 담기 위해 연신 사진 플래시를 터뜨리며 저글링의 묘비를 만끽하기도 했다.같은날 오후 7시까지 열린 `거리의 피아노` 공연에서는 야외에서 연주되는 피아노 선율에 이끌린 관객들이 공연장 주위를 에워싸 도심 속 공원에서 문화를 직접 보고 듣고 즐기는 작은 연주회장으로 변모시키기는 등 새로운 도심문화의 정착을 엿보게 했다.또 지난 3일 오후 2·28기념공원에서 열린 `도심속의 재즈 스테이션`에서는 실용음악과 교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밴드가 재즈는 물론이고 펑키, 라틴 등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자 관객들이 함께 춤을 추면서 연주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이재영(22. 수성구 만촌동)씨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입구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오페라 공연장에서 귀에 익숙한 우리 가요와 영화음악 OST가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공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며 “대구에 이런 곳이 있는지 다시 알게 됐다”고 말했다.또 한빛나(27. 서구 평리동)씨는“자원봉사를 하는 친구를 통해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심금을 울리는 플루트 연주를 듣게 됐다”며“번잡한 동성로보다는 이곳이 오히려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공간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9-05

“국제행사 안전 기여 보람

끝까지 혼신의 노력한 대원들에 감사” “역대 어느 대회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을 자신이 있습니다”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대테러를 담당했던 대구지방경찰청 특공대장 이홍수(38) 경감은 “육상선수권대회에는 80여명의 특공대원들이 항시 출동 태세를 하고 있었다”며 “각종 전술 훈련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도 완벽히 대응할 태세를 완비해 테러가 근접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이 대장은 “지난달 31일 지하철 고산역에서 폭발물 신고가 접수됐을 때도 10분만에 폭발물처리반(EOD)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 지하철역사 출입을 통제하고 의심 물체를 검색한 후 안전을 확인해 40여분만에 상황을 끝냈다”며 대응테세가 완벽했음을 보였다.“대회 전에는 총기로 완전 무장한 대원들이 순찰을 할 경우 외국인들이 치안이 불안한 나라로 오해할까봐 무척 고민했었다”는 이 대장은 “그러나 실제 순찰할 때 외국인들이 오히려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친근감을 표시하며 사진 촬영까지 요청해 자부심과 함께 우려를 불식하게 됐다”고 언급했다.이어 이 대장은 “특히 특공대가 들고 있는 총기를 보고 외국인들이 신기해 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며 “40대이후 일부를 제외하곤 국내 관광객들도 우리 요원들에게 사진촬영 요청이 쇄도해 우리 사회에서도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점차 좋아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은근히 자랑한다.9일간의 대회기간동안 힘든 일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 대장은 “2002월드컵대회 이후 대구에서 10여년만에 열리는 국제적인 행사에 안전을 책임지고 기여한다는 보람이 더 컸다”며“안전한 육상선수권대회를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끝까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대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김영태기자piuskk@kbmaeil.com

201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