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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경북동해안 연안 새그림 그린다

연안정비 사업은 침식으로부터 훼손된 해안을 정비해 깨끗한 연안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자연재해로부터 연안을 보호하고 친수연안 공간을 조성해 지역 주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경북도는 포항시, 경주시, 영덕군, 울진군, 울릉군 등 5개 시·군을 대상으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3천341억원을 투자해 모니터링, 연안보존, 해역개선, 친수연안조성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업량은 도 주관 1, 포항 6, 경주 7, 영덕 7, 울진 9, 울릉 5개소 등 35개소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편집자주경북도, 포항·경주·영덕·울진·울릉에 3천341억 투자2019년까지 침식 모니터링·해역 복원 사업 등 펼쳐포항 동빈내항·영덕 강구항·경주 해수욕장 등 정비경북도는 정부의 1차 연안정비 10개년 계획에 따라 2000년부터 2009년까지 630억 원을 들여 28개 사업을 완료했다.이어 제2차 연안정비 10개년 계획에 따라 2010년 97억원을 들여 도 모니터링 3억원, 포항시 34억원, 경주시 7억원, 영덕군 27억원, 울진군 5억원, 울릉군 21억원 등 6개소에 침식 방지시설 설치, 호안정비, 친수연안 공간 조성사업을 펼쳤다.올해는 126억700만원을 들여 도, 포항, 경주, 영덕, 울진 각각 1개소, 울릉 2개소 등 7개소에 모니터링, 해역복원, 잠제, 호안정비, 친수공간 조성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는 정부가 2019년까지 10년에 걸쳐 해안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308개소를 대상으로 제2차 연안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 벌이고 있는 정비사업의 일부다.대상사업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신청을 받은 후 적합성 등에 대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연구원, 엔지니어링업체, 국토해양부 및 관련 지자체와 합동으로 현장실사 후 관련부처 협의와 중앙연안관리심의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경북도의 연안정비 사업△경북도는 국토해양부의 제2차 연안정비 10개년 계획에 연안침식 모니터링 사업이 반영됨에 따라 침식이 심한 지역의 침식 원인을 분석해 연안정비 사업에 참고 자료로 활용코자 연안침식 모니터링 사업을 펼치고 있다.따라서 도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30억원을 들여 기본 모니터링 24개소, 정밀모니터링 14개소 등 38개소에 대해 침식 이력조사, 표층퇴적물 조사, 항공사진 및 위성영상 분석 해안선 측량, 해저질 조사, 수치 모형실험, 파랑관측 등의 침식관련 모든 정보 수집 사업을 펼치고 있다.이미 도는 2010년 2억5천만원을 들여 포항 3, 경주 5, 영덕 4, 울진 10, 울릉 2개소 등 24개소에 대한 기본모니터링 사업으로 침식 이력조사, 표층퇴적물 조사, 항공사진 및 위성영상분석, 하천유입 및 유사량 조사 등을 실시했다.이어 올해는 4억2천800만원을 들여 기본모니터링 23개소, 정밀모니터링 2개소에 항공사진, 위성영상 분석, 수치모형, 파랑관측 등의 사업을 펼친다.경북도는 울진, 영덕, 포항, 경주와 울릉군 등 5개 시군에 걸쳐 30억원을 들여 연안침식모니터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해안 5개 시·군의 연안정비 사업△경주시는 32억5천800만원을 들여 감포읍 전촌2리 전촌 해수욕장의 연안 보존의 잠제 사업, 120억 원을 들여 감포읍 나정 1리 나정해수욕장의 연안보존으로 호안보수와 잠제 사업, 50억원을 들여 감포읍 대본2리 친수연안의 친수공원 조성, 30억원으로 감포읍 오류리 오류해수욕장에 친수연안의 친수공원을 조성한다.또 24억 원을 들여 양남면 나아리 나아해수욕장에 연안보존을 위해 호안보수와 돌제 사업, 30억 원을 들여 양남면 읍천2리 읍천항에 친수연안을 위한 친수공원 조성, 75억원을 들여 양남면 하서1리 하서 1리 연안보존을 위한 호안보수와 이안제 사업 등 7개소에 361억5천800만원을 투자한다.△포항시는 341억4천400만원을 들여 해도동, 송도동 동빈내항에 친수연안 통수시설을 설치하고, 87억원을 들여 송도동, 죽도동 동빈내항에 친수연안사업으로 친수공원과 인도교를 조성한다.또 368억원을 투자해 남구 송도동 송도해수욕장에 연안보전 사업으로 양빈과 잠제를 설치하고, 7억 원을 들여 남구 동해면 흥환에 친수연안 사업으로 해변 산책로 조성, 20억원을 들여 남구 장기면 신창1리 친수연안 사업으로 친수호안보수 조성, 20억원을 들여 북구 청하면 월포해수욕장에 친수연안 사업으로 친수호안보수를 조성하는 등 6개소에 843억4천400만원을 투자한다.△영덕군은 278억4천100만원을 들여 강구면 강구항에 친수연안사업으로 친수호안신설과 친수공원을 조성하고, 5억원을 들여 남정면 부경리 부경에 연안보전을 위해 호안보수 조성, 30억원을 들여 남정면 장사리 장사해수욕장에 친수연안을 위한 친수공원을 조성한다.또 120억원을 투자해 병곡면 고래불해수욕장에 연안보전을 위해 해변 산책로와 순환양빈시스템을 설치하고, 2억5천만원을 들여 병곡면 금곡-백석리에 연안보전으로 호안시설 조성, 37억원을 들여 영덕읍 금진~하저리에 연안보전을 위해 호안보수 조성, 7억원을 들여 축산면 경정1리 경정해수욕장에 연안보전 호안시설 등 7개소에 502억4천100만원을 투자한다.△울릉군은 23억4천400만원을 들여 울릉읍 도동리-사동에 친수연안을 위한 해변 산책로를 조성하고, 100억원을 들여 울릉읍 사동1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을, 100억원을 들여 서면 남양3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을, 100억원을 들여 서면 남양1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 100억원을 들여 서면 태하1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 등 5개소에 423억4천400만원을 투자한다.△울진군 또한 124억1천만원을 들여 죽변면 봉평리에 연안보전을 위한 돌제, 잠제 조성을, 138억원을 들여 근남면 산포리에 연안보전 잠제 설치와 호안보수 조성을, 53억원을 들여 기성면 봉산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 53억원을 들여 기성면 망양리에 연안보전 잠제 설치를 한다.또 265억원을 들여 기성면과 평해읍 구산-월송리에 연안보전 잠제와 돌제 조성을, 30억원을 들여 원남면 오산리에 연안보전 순환양빈시스템 조성을, 100억원을 들여 원남면 덕신리에 연안보전 잠제와 돌제 조성, 167억원을 들여 평해읍 직산리에 연안보전 잠제와 돌제 조성, 250억원을 들여 후포면 금음리에 연안보전을 위한 호안보수와 잠제, 돌제 설치 등 9개소에 1천180억1천만원을 투자한다.인/터/뷰 - 김관용 경북지사에 듣는다환경친화 연안 조성해양문화 관광명품도시로 건설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유한 울진군, 영덕군, 포항시, 경주시, 울릉군 등 동해안 5개 시군의 훼손된 해안을 정비 복원해 재해로부터 연안을 보호하고 환경친화적인 연안공간 조성으로 지역주민 생활안정을 도모하겠다.또 연안정비 사업을 통해 친환경 녹색도시 구현과 저탄소 녹색성장의 모범사례로 해양문화관광 명품도시를 건설하겠다.정체 수역의 수질을 개선하고 지역상권 회복과 도심 재생에 최선을 다해 관광객 1억 명 유치와 소득증대에도 만전을 기하겠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1-04-29

맛있고 향긋한 봄 산나물축제 울릉서 열려요

5월6~8일 나리분지 등서 다양한 행사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울릉도 신비의 약초, 산나물을 채취하고 직접 맛볼 수 있는 울릉도 산나물축제가 다음 달 6~8일까지 3일간 열린다. 대한민국 최고의 5월 봄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울릉도 산나물축제는 이색 체험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즐거움을 더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이번 축제는 북면 나리분지에서 개최하던 예년과 달리 공연행사 및 부대행사, 참여프로그램은 한마음회관 광장에서, 산나물 채취행사는 나리분지에서 각각 진행된다.특히 육지에서 이번 산나물 축제에 참가하는 관광객에 대해 4~6일까지 입도 객과 7~10일까지 출도객에 한해 (주)대아고속해운과 동해 해상관광 여객선을 이용할 경우 여객운임 20%의 할인혜택(울릉군 홈페이지 참가신청)이 주어진다.축제는 6일 첫날 울릉 한마음회관 본 무대에서 식전공연 및 개막식, 연예인초청 개막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화려한 막을 올린다. 개막 행사에서는 순수 울릉도 웰빙산나물인 미역취와 더덕, 삼나무, 취나물, 명이 나물 등을 넣어 500명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특별 산채비빔밥을 만들어 시식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어 쑥떡 만들기 체험행사와 안동 하회탈춤공연 등 각종 부대행사가 이어진다.둘째 날인 7일에는 무료로 관광버스를 이용해 나리분지 체험장으로 이동, 산나물채취 체험활동을 한다.또 울릉산악회 주관으로 울릉읍 내수전에서 북면 섬 목까지 4km 구간에서 울릉도 옛길 걷기 체험행사가 진행되며 도동리 농가를 방문 더덕 캐기 체험행사도 한다.본 무대에서는 산나물요리 경연대회, 쑥떡 만들이기 체험행사, 어린이 보물찾기, 울릉도, 독도 바로 알기 OX 퀴즈대회, 연예인 초청축하공연 및 노래자랑이 진행된다.8일 2차 나리분지 산나물 채취 체험과 해안선이 아름다운 행남 산책로 건강걷기 대회가 열린다.부대행사로 울릉도·독도 사진 전시, 울릉도 산채화분 전시, 먹을거리 장터, 생채 및 특산물상설판매장, 산나물요리 시식회, 울릉도·독도 링 걸기 민속놀이, 산채보자기 판매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한편 산나물 축제는 울릉도 산채의 우수성 홍보, 주민소득 증대, 도시 관광객들의 울릉도 웰빙 산나물 직거래와 관광 비수기 새로운 관광 창출 및 지역이미지 제고, 고향을 떠난 인사들의 고향 맛 체험하기 등의 일환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울릉군은 울릉도의 새로운 이미지 창출 및 군민화합과 애향심 고취, 산채판로 활성화 및 주민소득 증대기여 등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축제를 연출한다는 계획이다.울릉군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신비의 섬 산속에서 천혜의 자생 산나물을 직접 채취하는 즐거움과 웰빙 울릉도 산나물의 참맛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울릉/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11-04-29

울릉도 산나물축제 주요 행사

△개막식 개막식은 울릉도축제위원회가 주관하며 6일 오후 1시30분부터 울릉한마음회관 광장에서 진행된다. 공군부대 재즈 공연과 이벤트회사가 진행하는 울릉도 웰빙산나물 홍보 이벤트, 각설이 공연, 마술쇼, 인기가수 공연 등 다양한 연예인 초청 공연이 울릉 한마음회관 광장 특설 무대에서 펼쳐진다.△특별산채비빔밥 만들기특별산채비빔밥 만들기는 생활개선회 주관으로 6일 오후 3시30분 본 행사장에서 개최된다. 대형 통나무에 울릉도 산 미역취와 부지깽이, 고비, 삼나물 등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산나물을 이용, 한꺼번에 500인분을 만든다.1차 기관장 비비기와 2차 관광객 및 주민이 함께 비비기 등 특수제작 된 대형 통나무에 주민들과 관광객이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쑥떡 만들기쑥떡 만들기는 울릉군 생활개선회가 주관하며 6일 오후 4시30분 한마음회관서 열린다. 햇 쑥을 재료로 전통 떡 만들기 체험공간을 조성, 어린이들에게 교육 효과를 높이고 군민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켜 축제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울릉에서 자생하는 쑥을 재료로 떡판을 만들어 떡 매로 치는 것을 반복적으로 한다. 관광객과 주민들이 함께 떡매치기에 참여하며 떡이 완성되면 품평회를 거친 후 시식회를 한다.△산나물 요리 경연대회산나물 요리 경연대회는 7일 오후 1시 한마음회관 본 행사장에서 울릉군 여성단체협의회가 주관하며 울릉도의 특산물인 산나물을 이용한 산나물요리 실력을 겨룬다. 관광객 10개 팀과 기관단체 5개 팀이 참가해 산나물 요리경연을 펼치며 심사 후 상품으로 울릉도 오징어, 산나물, 호박엿이 제공된다.△노래자랑 장기자랑대회노래자랑 장기자랑대회는 울릉군축제위원회 주관으로 7일 오후 4시30분 본 행사장 본무대에서 개최된다. 노래자랑 장기자랑 산나물축제에 참가하는 관광객들에게 즐길 거리와 볼거리를 제공 주민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신나는 놀이 한판을 펼친다.현장에서 30명의 참가 신청을 받아 진행된다. 1~3등까지 고급산채를 시상하고 참가자에게는 오징어 20축, 호박엿 30봉지, 산나물 30봉지 등 특산품이 제공된다.△건강걷기대회건강걷기대회는 7일~8일 오전 9시 울릉산악회 주관으로 진행된다. 웰빙산나물축제에 참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을 주제로 주민과 관광객이 참께 참여해 울릉도 예길을 걸으며 건강을 다진다.7일 오전에는 울릉읍 내수전 정상에서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바다를 조망하며 북면 석포리까지 4km의 울릉도 옛길 등산로를 걷는다.절벽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걸으며 울창한 숲과 발아래로 펼쳐진 청정 동해, 울릉도 유일한 유인도인 죽도와 두 번째로 큰 섬인 무인도 관음도 등 빼어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8일 오전에는 KBS 인기프로 1박2일 프로그램에 소개된 도동좌안 해안을 따라 개설된 산책로와 아름다운 도동등대 주변, 해안 절벽에 세워진 직벽 소라계단(높이 50m)과 바다와 절벽을 연결한 무지개 다리를 걷는다.△산나물채취 체험산나물채취 체험행사는 울릉농업협동조합 주관으로 7, 8일 이틀간 열린다. 오전 8시30분 울릉한마음회관에서 울릉축제위원회가 제공하는 무료 관광버스를 타고 나리분지 산나물체험장으로 이동해 직접 산나물을 채취한다. 울릉군홈페이지 참가신청 선착순 300명(관광객 우선 참여)에 한해 참가할 수 있으며 1인당 참가비는 1만원(중식제공)이고 1인당 1kg만 채취를 할 수 있다. 300명 미만일 경우는 현장에서 접수를 받으며 10명을 한 팀으로 구성한다.△더덕 캐기 체험더덕 캐기 체험은 울릉영농회 주관으로 울릉읍 도동리 지역 농가에서 개최해 무공해 울릉도 더덕을 홍보하고 주민소득 증대에 기여한다.방법은 참가비 1만원을 내고 지정된 농장에서 더덕(1kg)을 직접 캐 가질 수 있고 현장에서 구입도 가능하다.△기타 행사울릉군축제위원회 주관으로으로 7일 오후 4시 행사장 본 무대에서 울릉도 독도 OX퀴즈대회가 마련된다.또 천혜의 비경이 담긴 울릉도와 독도 풍경사진 30여점이 본행사장 특설무대 주변에 전시사진되고 울릉도 자생산나물 30여종의 화분전시회, 먹을거리 장터운영, 생채 건나물, 오징어 호박 엿 등 울릉도 특산품 판매 장터도 운영된다.울릉도 각종 산나물로 만든 전, 떡, 반찬류 등 산나물요리 시식회, 투호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 체험, 울릉도, 독도 링 던지기, 퍼즐 맞추기 행사도 특설무대 주변에서 진행된다.울릉/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11-04-29

⒁수운 최제우와 용담정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조선은 국운의 쇠잔과 제국주의의 침탈로 인해 서서히 어둠과 고통의 터널로 빠져들고 있었다.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본격화되어 감에 따라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붕괴되고, 잦은 `서양 오랑캐`(洋夷)의 위협에 두려움은 높아만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척의 세도정치와 지배계층의 권력 다툼은 정점으로 치달았고, 삼정의 문란과 이를 틈탄 벼슬아치들의 탐학, 잇단 기근과 질병의 창궐은 백성들을 깊은 도탄의 수렁으로 빠뜨렸다. 1811년 홍경래의 난 이래 끊이지 않던 민중봉기가 1862년에 이르러 진주민란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러한 불안과 고통에 따른 몸부림이었다.시대 도처에 넘쳐나는 고통과 모순은 경주 현곡 출생의 민감한 영혼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를 불러냈다. 6대조 이래 벼슬을 내지 못한 채 기울어져 가던 경주 양반가의 서자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벼슬에 뜻을 두었지만 학문에 몰두하지 못해 여의치 못했고, 변변한 경제적 기반도 없었다. 기울어져 가던 가세는 당시 나라의 형편을 닮아있었고, 그의 불우함과 고뇌는 당대 백성들의 고통과 둘이 아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호구지책으로 나선 떠돌이 장사꾼 생활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수많은 민초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눈뜨게 했다. 이로써 그는 개인적 차원의 아픔을 넘어서 시대를 앓게 된 것이다.그러한 과정에서 그가 얻은 결론은 혼란한 사회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을 구하는 길은 하늘의 뜻[天命]`을 깨닫고 따르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천명을 찾아가는 구도의 걸음은 1856년 울산 처가살이 시절부터 1859년 10월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고향 구미산 용담정에서의 수도로 이어졌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찾아 받들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은 결국 1860년 4월 5일의 절대적인 종교체험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늘에 정성을 드리던 중 갑자기 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하늘의 소리를 듣는 신비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체험은 세상을 구할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으로 이어졌고, 이후 1년에 걸쳐 그것은 말과 행동으로 모습을 이루게 된다. 동학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동학의 포교에 수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오고 동학이 점차 세력을 형성해 가자 정부와 지방의 유림 등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견제와 탄압이 찾아왔다. 그들이 보기에 동학은 본질상 서학과 동일하며 유학의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이단이었던 것이다. 이에 최제우는 1861년 호남지역으로 피신했다 다음해 다시 경주로 돌아왔는데, 이 시기 동안`논학문(學文)`·`안심가(安心歌)`·`교훈가(敎訓歌)`·`도수사(道修詞)` 등을 지어 동학의 교리를 체계화한다. 이후 최제우는 1860년의 깨달음 이래 채 4년이 안 되어 체포되어, 이듬해 3월 대구감영에서 `사특한 가르침으로 올바른 도리를 해쳤다`(邪道正)는 죄목으로 41세의 나이로 참형에 처해진다.`동학`은 동쪽의 진리라는 의미이다. 동학이라고 이름한 것은 서양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인 서학에 맞서는 동쪽, 곧 이 땅의 진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깨달은 진리를 담은 4편의 한문체 논설과 9편의 한글가사는 사후 해월 최시형에 의해 동학의 기본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로 편찬되어 세상에 나왔다.동학 경전은 수운 최제우라는 한 영혼이 시대의 어둠과 고통을 깨치려는 간절한 염원으로 품어낸 사유의 산물이다. 그것은 모순의 현실에 대한 극복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혁적이다. 그런데, 현실을 넘어서는 변혁의 가르침이라 해도 현재의 말과 생각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제우의 동학은 고립적이거나 평지돌출의 사상이 아니라 그가 접했던 다양한 사상들의 창조적 절충이고 변용(正)의 산물이다. 즉, 그는 유·불·선과 기타 민간신앙 등 전통사상의 계승과 창조를 통해 변혁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전통사상 중에서도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유학, 곧 주자학이다. 그런데 당시 주자학은 비록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 과정에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배사상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제우 자신 역시 양반 집안에 나고 자랐기 때문에 주자학적인 사유형식에 훈습되어 있었다. 따라서 동학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에서 주자학적 사유에 뿌리를 둔 논리 형식이나 개념과 명제를 매개로 해 전달되었다.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동학이 전통사상인 유학의 지향이나 사유방식을 적지 않게 공유하고 있다면, 동학의 이론적 창조성과 실천적 혁신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유학자들과 달리 동학 창도자 최제우가 당시 민중들의 고통과 시대의 어둠에 대해 관조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아픔으로 삼아 대면하고 타개하려 했기 때문이다.시대의 고통과 어둠은 더 이상 `누천년에 운이 다한` 유학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현실은 한가한 이론적 분석이 아니라 시대의 고통과 어둠에 맞서고 행동하는 결단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동학은 유학에 의거하되 유학을 넘어서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서`에 대적하는 `동`의 진리, 옛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르침, 모순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변혁의 의지를 담고 있다.우리 사상사를 돌아볼 때 동학은 이 땅에서 거둔 창조적인 사상의 목록에 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취 중의 하나이다. 동학에서 우리는 유학이 기획하고 지향했지만 현실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상의 궁극적 실현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동학은 유학이 봉건사회의 현실적 한계로 인해 이론적 천명이나 불완전한 구현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인간존중과 만인평등 사상을 실현해 낸 것이다. 그것은 최제우라는 시대적 아픔에 동참한 인물의 강렬한 열망과 사상적 반추를 통해 유학을 넘어서는 사상적 개벽과 시대의 어둠을 깨치는 실천적 개벽을 이루어내었기에 가능했다.우리가 동학을 주목하는 것은 그 속에서 자유, 평등, 인권 등 근대적 이념의 자생적 원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학은 부자유스럽고 차별과 부조리한 억압이 넘쳐나는 현실에 맞서 사람은 하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의 인간관을 천명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절대적 자유의 존재이고 평등하고 고귀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동학은 중세의 어둠을 깨치고 왕조의 끝자락에 팽배한 불안을 넘어서서 근대를 향한 빛과 희망을 주었으며 시대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박경환(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2011-04-29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 `聖化門` 눈길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龜尾山) 자락에 있는 용담정(龍潭亭)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도를 얻어 가르침을 펼친 천도교의 발상지다. 용담정은 대신사가 1864년 이단으로 몰려 참형당한 후 폐허로 남아 있다 1914년 복구됐다.성지 입구에 이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는 `성화문`(聖化門)의 친필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과 겨울 각각 한달씩 일반인 단체에게 개방되는 수도원에는 연간 500여명 안팎이 수련을 위해 찾는다.용담정 아래 용담수도원을 세우고 주변 일대를 공원처럼 단장했다.주차장에서 바로 정문인 포덕문(布德門)이 보인다. `포덕`은 한울님의 덕을 세상에 편다는 뜻. 문짝은 없이 네 개의 석주를 일직선상에 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기와지붕을 얹었다. 출입구를 세 칸으로 나눈 뜻은 천도교 세 가지 기본 교리를 상징하겠다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사람을 한울님같이 섬기자`는 사인여천(事人如天), `모든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이다.포덕문을 들어서 300m쯤 숲길을 오르면 오른편에 용담수도원이 보인다.정면 3칸, 측면 8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평범한 전통 한옥 양식이지만 콘크리트 건물이다.수도원 외벽이 모두 백색이다. 이는 한울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안정과 평화를 나타내는 한울님의 정적인 마음이다.다시 100m쯤 오르면 성화문(聖化門)이 나온다. 성스러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문이다. 전통 한옥의 목조 3칸 대문인데, 가운데 문짝에 궁을(弓乙)의 문양이 선명하다. 궁을은 수운 대신사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영부(靈符)를 형상화한 것이다. 마음 `心`자를 표현한 것인데, 모양이 태극(太極) 같기도 하고 활 `궁(弓)` 자를 나란히 놓은 것 같기도 하다.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문득 길이 10여m의 평범한 석조 다리 용담교가 나타난다. 그 너머에 용담정이 있다.정면 5칸 측면 3칸의 아담한 크기로 용담정은 있다. 별 특징 없는 기와지붕의 전통 목조 한옥.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대신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영정 양 옆에는 궁을 영부가 또한 모셔져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29

또 하나의 석굴암, 보안암(普安庵)

시집간 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문화재 보존과 원형 복구 기술 개발을 위해 건축환경학적 측면에서 연구를 해오던 필자였다. 토함산 석굴암 석굴의 원형 복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와 가장 유사한 또 다른 석굴을 찾아 석굴의 실내 환경 측정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했었다. 우리나라의 석굴 수는 대략 180여개가 된다. 그 중 토함산 석굴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해 찾은 곳이 경남 사천시 천왕산 해발 570m 동쪽 기슭에 위치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 `다솔사 보안암석굴`이었다. 판석(板石)을 이용해서 만든 이 석굴은 보는 순간 모든 조건이 토함산 석굴 원형복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토함산 석굴암의 석굴은 정상 동쪽 바로 아래 경사면에 작은 평지를 조성하고 그 곳에 대좌(臺座)를 놓고 결가부좌한 본존불을 봉안한 후 그 좌우에 팔부중과 인왕상 그리고 사천왕상을 배치했다. 다시 그 위에 커다란 판석(板石)을 가구(架構)하여 전방후원(前方後圓)의 석조건축으로 본존불 상부를 궁륭형 돔(Dome)식으로 구축한 축조굴이다. 1913년부터 1915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1차 훼손된 석굴암은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끝내 원형복구에는 실패했다. 단지 석굴 내 습윤을 방지하고 이끼가 끼지 않도록 공기조화설비를 갖춘 지금의 석굴 구조로 변모시켜 놓았을 뿐이다.석굴사원이란 한 마디로 바위를 뚫어 만든 사원을 말한다. 그런데 토함산의 석굴은 인도나 중국의 석굴사원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암질(岩質)이 다르다. 인도나 중국은 사암(沙岩)이거나 흑대리석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뚫기가 매우 어려운 화강암이다. 결국 개착석굴(開鑿石窟)이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이 경사지를 `ㄴ`자형으로 고르고 축대를 쌓아 평지를 만든 다음 그 곳에 특이한 형식의 석굴을 조성한 것이다.토함산 석굴암과 유사한 석굴을 찾긴 했지만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암자에는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계셨는데 석굴에서는 참배 외에는 다른 어떤 행위도 일체 금한다는 것이었다. 석굴 실내 환경 자료 수집을 위해서는 온열환경 측정은 기본이고 촬영도 해야 하는데 실로 암담한 노릇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스님께 고3 딸의 수험을 핑계로 천배를 올리겠다하고 부인이 2시간여 기도하는 동안 실내온열환경을 숨죽여가며 측정하여 데이터를 손에 넣고 부리나케 하산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찍은 사진이 모두 반씩만 현상된 게 아닌가. 황당했다. 다시 찍으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때 고3이던 딸은 그 후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고 10년 후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지만 토함산 석굴암 석굴 원형 복구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영남이공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11-04-28

우리의 위대한 전통문화 단단히 지키자

“한단의 걸음걸이” 곧 자기 분수를 잊고 무턱대고 남을 흉내내는 일을 빛댄 말이다. `장자`, `추수(秋水)`편에서 유래한다.옛날 연나라의 서울인 수릉에 한 젊은이가 살았다. 연나라는 작은 나라였다. 그젊은이는 보잘것없는 작은나라에 살고있는 처지를 한탄하며 큰 나라인 조나라를 동경했다.어느날 그는 드디어 조나라의 서울인 한단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보니 수릉 사람들의 걸음걸이와는 무척 달랐다. 젊은이는 열심히 한단 사람들의 걷는 모양을 배웠다. 그러나 한단의 걸음걸이를 다 배우기도 전에 그만 옛날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걷는 법을 아예다 잊은 그는 겨우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이 이야기는 `장자`, `추수`편에, 궤변론자인 공손룡과 위나라공자 위모의 대화에서 나온다.공손룡이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자. 위모가 우물 안 개구리는 밖의 세상을 알수 없고. 수릉의 젊은이는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울 수없다고 하면서 비웃는 대목에서 나오는 얘기이다.거리에 나가보자. 아니. 나갈 것도 없이 잡지나 텔레비전 화면을 들여다보자. 무수히 많은 수릉의 젊은이들이 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모를 정도로 외모들이 많이 변했고. 문화가 변했다.이미 문화면에서 국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세계화시대에 살면서 외국 것을 모방하지 말라고 외쳐도 그것은 이미 설득력을 잃는다 문화는 지역과 시간의 편차 없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네것 내것 가리지 않고 골고루 여러 문화를 접할 수 있고 습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또 자기 문화만을 고집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를 열린 시각에서 바라볼수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문제는 `줏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내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내 것 가운데 탁월한 점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남의 것만 흉내 내는 것이 문제이다.자기 줏대도 없이 유행만 따른다면 그것은 그저 소비적인 모방에 불과하다.오천년 동안이나 집적된 좋은 우리 것들을 돌보지 않고 그저 새로 들어온 남의 것만 따라다닌다면 우리는 영혼의 한 갈래를 잃는 것이나 같다. 흉내내다 보면 그문화의 영혼만 종속되어 버리고 마는것이다. 그래서 문화 패권주의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것은 소중한것이다. 위대한 전통문화 이제부터 단단히 지키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4-27

희극과 비극사이 `無言의 이미지` 몽타주화

누구나 순간의 찰라에서 만질 순 없지만 감지할 수는 있었던 그 불편한 무엇이 있을 것이다.나는 유독 이상하게도 그 불편한 무엇이 무언으로도 형용될 수 없을 때면 날카롭게 팽창되어가는 답답함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질 맛을 느꼈다.그런데 작업이란 그랬다.나의 기만일지도 모르는 이 방식들이 영원한 비밀일 수도 혹은 자위적인 감동의 봇물처럼 쉽사리 터질 수도 있을법한 그것들을 유연하게 의식하게하고 자각하게 만들었다.내가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사사로움 앞에 억지식의 눈돌림으로 감추었던 누구에게나 필연적이고 개연성있는 무언들의 비겁하고 어리석은 순간들의 `화`나 `회의심`의 배설물들을 달콤한 해악적인 시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그리고 여기서 나타나는 모순된 불순물들의 희극과 비극사이에서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이 주제를 현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때론 치졸한 방법으로 때로는 애매모한 위트 섞인 농담마냥 넌지시 던져주고자 하였으며 실천 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무모한 소비를 낳게 하는 모든이의 철학에 잠시나마 드라마틱한 순간적인 동요로 결코 쉽게 웃어 넘길 수 없는 기묘하고 불편한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즉, 일종의 반어적인 표현방법으로 왜곡,변형시켜 탈바꿈하여 발상은 시인의 것과 비슷하지만 머릿속의 질서없이 뒤엉킨 하나하나 생각들을 조합하여 언어로 포착할 수없는 무언의 이미지들을 몽타주화시켜 시각적 언어의 행위를 슬며시 들어내어 아이러니한 수수께끼를 던져주고자 하는 것이다.♠ 서양화가 김종희-2011 수성아트피아 뉴프론티어 - `한계`개인전-2010 스페이스 가창 129 - 신진작가 발굴 프로젝트-2010 저탄장 프로젝트 ` 폐허의 감성 `-2010 종로 `주민과 함께 DESIGN하는 살고 싶은 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2010 작은공간이소 - 젊은실천 프로젝트 그룹전-2010 space9 - `NEON GORE` 퍼포먼스-2008 계명대 서양화과 졸업

2011-04-27

사물과의 상응으로 피어난 무늬들

이하석 시인의 제9시집 `상응`은 좀 특별나다. 아담한 크기의 시집 판형과 거기에 수록된 시편도 고작 32편이어서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기다란 시나 산문시가 60편을 넘어 70편에 가까운 일반적인 시집들과는 비교가 된다. 부피가 작고 수록된 편수도 적지만 그의 시들이 내장하고 있는 의미는 자못 깊고도 크다. 그 가운데 `청도 냇가에서 대 무늬진 돌을 주워 동풍`이라 이름 짓고`라는 좀 길고 독특한 제목의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속속들이 두근대는 동부새에, 상기 성깔 남은 소소리바람에, 짐짓 명랑한 듯 퍼덕이는 동풍에 휘는-꼿꼿하게 휘는-겨울, 대나무들. 누워서도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마디마디 곧게 설레는, 동부새에 소소리바람에 동풍에 눕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마디마디 한 마디로 일어나는 대나무들의 푸른 물음들. 봄으로 쓸리는, 서걱대는, 헛될 수 없는 말의 카랑카랑한 잎사귀들. 동부새를 소소리바람을 동풍을 안으려 흰 겨울 비탈에 서는 이가 그렇게 온몸 흔들리며 안간힘 하며 휘젓는 칼날의 춤. 마구, 또 기어이 일어나 제 온몸의 빗자루로 서서 성긴 적멸의 어둠을 쓴다.”사물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상응(相應)으로 빚어진 삶의 비의가 깊이 새겨진 작품이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사랑의 말은 여전히 동튼다고 쓴다.”라는 시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이종암(시인)

2011-04-27

지역 전통도가 `청슬도가` 웰빙막걸리 `옹해야` 출시

우리 전통주 `막걸리`가 최근 항암물질 성분 발견으로 또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1ℓ당 파네졸 함량이 0.15~0.5㎎으로 포도주와 맥주(0.015~0.02㎎)의 무려 10~25배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막걸리가 제2의 도약기를 맞았다.이런 가운데 최근 젊음과 열정으로 뭉친 30대들이 50~60대 장노년층이 주를 이룬 지역 막걸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어 눈길을 끌고 있다.■30대 젊음과 열정 녹아든 `청슬도가`포항에서도 특히 청정지역으로 소문난 북구 기북면 관천리에 최근 전통도가가 문을 열었다.맑을 청(淸), 큰 거문고 슬(瑟), `맑은 소리를 내는 큰 거문고`라는 뜻의 `(주)청슬도가`다.막걸리 열풍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청슬도가는 독특하고 깊은 술맛과 인적구성, 이 두 가지를 승부로 내걸었다.술 맛은 양조장이 청정지역에 위치해 있고 우리쌀을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하지만 무엇보다 청슬도가의 가장 큰 경쟁력은 30대의 파워다.청슬도가는 대표와 연구를 맡은 한정길(39)씨와 기획·홍보의 정광욱(36)씨, 판매·자금관리의 김정배(33)씨, 세 명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사업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이들은 포항 철강공단 한 회사의 직장동료였다.중국, 멕시코, 베트남 등 각각 다른 해외팀에서 근무하다보니 얼굴을 보며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러다 귀국 후 오랜만에 함께 경주 남산산행을 간 어느 날, 칼국수 집에서 마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청슬도가 탄생의 계기가 됐다.막걸리와 함께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막걸리 사업을 해 보면 어떻겠냐는 농담 섞인 진담이 나왔다. 그 당시만 해도 막걸리의 대중성이 낮아 당장 적극적으로 실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회사를 정리하고 전세자금과 대출 등 각자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으기 시작하면서 사업은 구제화됐다.양조 경험이 전혀 없었던 탓에 술 만드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포항 뿐 아니라 경주, 부산, 대구, 전주 등 전국의 유명한 양조장은 모조리 쫓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양조장이 영세하고 고령자가 운영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고 더 큰 자신감을 얻었다.몇 달 동안 눈으로, 귀로 습득한 양조 상식은 포항에서 유일하게 전통주 교육을 실시하는 청목 전통주 연구소를 접하면서 체계화됐다.그러나 도가를 본격적으로 건립하면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자금을 모으기는 했지만 땅을 사고 공장을 짓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매출실적이 있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중기청에서 창업자금을 지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몇 번의 수정 보완 작업 끝에 자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난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통주 교육을 통해 술 만드는 방법은 배웠지만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은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술 맛이 일정하지 않아 원인을 찾아야 했지만 노하우가 부족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수 십 번, 반복하고 반복한 끝에 만족할 만한 양조기술을 찾았고 최근 첫 작품 `옹해야`를 출시했다.■105m 천연암반수 웰빙막걸리 `옹해야``옹해야`는 천연암반수에 솔잎을 첨가한 웰빙막걸리다.주요 공략층은 20~40대 젊은 입맛이지만 입국방식과 누룩을 활용한 전통 제조방식을 모두 적용해 사실상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옹해야의 가장 큰 특징은 물이다.현재 유통되는 막걸리 상당수가 수돗물을 사용해 간혹 화학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지만 옹해야는 기북지역의 105m 천연암반수를 사용해 이 같은 단점을 보완했다. 특히 올 초 실시한 수질 검사에서 옹해야에 사용되는 지하수가 음용수로 판정받아 품질 우수성을 드높이고 있다.생산방식도 눈에 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막걸리의 90% 이상은 일본식 방식인 입국 제조방식을 사용한다. 입국은 일정한 맛을 유지하고 생산성이 좋지만 깊고 풍부한 맛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반면 누룩을 사용하는 전통방식은 깊고 풍부한 맛이 좋지만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어렵고 생산성이 낮다.청슬도가는 이 두 방식의 장점만을 골라 새로운 제조방식을 개발, 옹해야를 출시했다.마지막 특징은 솔잎을 첨가했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솔잎을 술에 첨가할 경우 솔잎 자체를 첨가해 향만 내고 솔잎은 버리게 된다. 그러나 옹해야는 솔잎을 말려 분말로 만든 후 술 재료와 함께 발효시켜 첨가해 솔잎 효능을 100% 살렸다.이 같은 특징으로 옹해야는 올 초 건립된 위덕대학교 막걸리 연구소가 외식 산업학부 학생 23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블라인드 테스트에 두 개 제품을 출시, 타사 유명제품(4개)들을 모두 제치고 두 제품 모두 1·2위를 차지했다.청슬도가는 옹해야에 이어 올 연말 프리미엄 막걸리를 출시하기로 하고 현재 대구대학교 생명공학과 강선철 교수와 포항테크노파크 바이오센터와 공동으로 개발 중이다. 또 내년 후반기에는 기북지역의 청정 사과를 이용한 청주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같은 꾸준한 제품 개발을 통해 청슬도가는 단순한 막걸리업체에서 벗어나 종합주류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계획 중이다.한정길 대표는 “옹해야는 100%지하수를 활용한 웰빙막걸리다. 특히 우리 청슬도가는 품질보증을 위해 지역에서 운영 중인 다른 업체와 달리 생산과 유통, 홍보를 직접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며 제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최승희기자 shchoi@kbmaeil.com

2011-04-25

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8> 저 바다에 고래가 살았다 ③

80년대 중반부터 고깃배는 사라지고새로 허가받을 날 기다리다 세월만… 그 당시만 해도 뱃사람들 하는 일에는 일본 사람들 풍습이 쪼매씩 남아 있았다. 그네들이 이래 보믄 말이지. 무신 날만 되므는 찹쌀모찌 그거를 마이 맨들았그든. 집을 새로 지우든지 배로 새로 하믄 큰 다라이로 한 가득 모찌를 맹글어가 속에다가 돈으로 옇는기라. 떡마다 다 옇는기 아이고 드문드문 옇지. 그래가 다라이로 이고는 젤로 높은 데로 올라가가 이래저래 막 떤지는기라. 이짝으로 내삘고 저짝으로 내삘고. 그라믄 돈 든 모찌로 주워야 재수로 좋타꼬 마캐 몰리 가그든. 묵을 기 읎??시절이니 가릴 기 뭐이 있겄노,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지. 와 떡을 떤지고 했나 인자 가마이 생각해 보믄 그기로 주울라카믄 수그리야 안되나. 배도 글코 집도 글코 그 앞에서 수그리믄 절로 하는택이 아이가. 우리 배들도 그기를 쪼매썩 따라하곤 했다. 그라지만 인자는 누가 그란 거로 하나? 전번에 우리 사우도 배 새로 한다 캐서 포항 가 봤드이 그마이 쓸데읎??짓으로 안하데. 배에서 이래 내려오는 나무를 하나 놔놓고 거다가 음식을 잔뜩 채리더라고. 채리가지고는 마 여럿이 모여가 묵고, 다 묵고 난 뒤에는 배에서 내리놓구 말드라. “살아 생전에 다부 고래잡을 날 있을라는가”“기적 울리는 고깃배 기다릴 날 있을라는가”가마보자. 내가 고랫배로 73년도에 시작해가 85년도에 마쳤으이 어불더불 십이 년이나 한기라. 그때 전국에 고랫배가 스물 한척인데 스무 척이 경남이고 한 척이 경북인데 그기 우리 배 용운호였는기라. 하마 내 나이 팔십 둘이니 손 놓고도 20년이 훌쩍 지났구마. 그때는 이 나라 저 나라 고래잡는 나라끼리 조합맨키로 계가 있았는데 영국 아주머이가 대장이라. 85년도에 그 아주머이가 말하기를 딱 5년만 잡지말자 캤지. 그 이유가 말이다. 이래 잡아 들루다보믄 씨알이 다 말라뿐다, 그라이 쪼매 쉬었다가 다부 잡자 그 말이었재. 그라이 5년 후에는 허가를 다부 해가주고 고래를 잡는다 캤는기라.그 당사 우리 촌놈들이 중앙청에 참 마이 올라갔데이. 가이 첫 먼저로 느그가 그간 잡은 맨큼 뭐이든 허가로 바꿔 주끄나 하데. 그래 다부 울산에 내리가이 돈 있는 놈으는 트롤선 할라 이라고 우리 같이 돈 읎??놈들은 우짜든동 배로 지대로 값을 쳐가 팔라 카고 지각각 원하는 기 달랐는기라. 와 그렇노 하믄 죽변부터 저 속초꺼정 스물 한척이나 트롤선으로 허가를 내줘뿌믄 우리는 마캐다 앤 죽나. 그래 마 막 데모를 해가 트롤선 허가로 막았지. 그라이 이번에는 지각끔이라. 콜프장 허가 받는 놈, 택시 허가 받는 놈, 지 원대로 받드라. 우리는 뭐나 규모도 약하지럴 돈도 읎지?? 돈 있는 놈이사 즈들 뜻대로 하지마는 읎??놈들은 이도 저도 숩지 않은 기라. 그래 스물한 척에 세 척일랑 고래가 올개는 어데로 가고 오는지 살피는 수용선으로 하고 열여덟 척만 허가를 바꾸차 이래 됐다. 한 사람이 두 척 세척 가진 경우에는 이나저나 뭐이 아숩겠노.내는 아무것도 바꾸치 않고 고래를 앤잡아도 고랫배 허가를 가주 있겠다 한기라. 그라지만 그게 어데 쉽나. 바다에 나가 고래로 잡으므는 괘않지만 월급있재, 또 묵여야 되재, 행여 고래 잡아 들루나 감시하는 영국사람 따라 댕기는데 그눔 월급꺼정 줘야되재. 그라고 또 돌아 댕기는 장소 죄다 적아가 영국에 마캐 보고꺼정 해야 하는 기라. 속시끄럽기가 이만저만이 아이지. 그래 마 이래저래 5년이 지나이 이기 뭐 아무 소식도 읎는??우야노. 치아뿌리야재.대구 동청에 가믄 서류가 한 짐이라. 5년 후에 다부 한다고 말해놨으이 고랫배 안하는 사람도 서류를 여가 앤글나. 고랫배 타던 선원들도 옇고, 오징어배 타던 선원들도 옇고 마캐다 고랫배 할라 캤다. 내는 솔직한 말로 그때는 마 하믄 하고 말믄 말고 했지. 해상업이 어데 좋은 일만 있나 바람만 불어도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오는 긴데.그란데 또 몇 년 지나 중간에 뭐시라 고랫배 우짜고 저짜고 말이 있는 기라. 그래 내 생각했지. 고랫배가 스물한 척에 세 척이 지금도 있으이 나무지 열여덟 개를 다부 허가로 주믄 우얄까? 하지만도 세 척을 줄똥 열 척을 줄똥 모르지. 대통령이 빽이 있다고 마음대로 하나, 경상도에 고랫배 죄다 주믄 전라도는 농사만 짓나. 전라도도 배하고 싶은 사람 있다는 말이지. 형님요, 내 좀 허가 주소 하믄 앤 줄 수도 읎?? 그렇다고 빽으로 주나. 빽으로 주믄 대가리 싸움나지. 그라믄 예전에 고랫배하던 사람들로 우선 시킬랑가? 그라믄 뭐하노. 생각하나마나 을매 안가가 쏘옥 드가뿌고 말드만, 요순간에 고랫배가 또 들썩들썩 하는 기라. 인자 포항방송국에서 고래가 이만치 있는데 잡아가 일본에 수출로 하믄 몇십 억썩 벌어가 올 낀데 이기 와 안하고 이라노 하매 앞으로 고랫배 허가를 내 줄라카믄 전에 경험 있는 사람으로 줄라꼬 했단 말이다.그때 우리 큰 아들이 그라데. 아부지요. 고랫배하던 사람들이 다 살았나카믄 몇 키 안 남고 다 죽았어요. 지가 아부지 뭐시 해가 될똥 앤 될똥 그거는 모르지마는요 한 분 해볼끼요. 그래 마 니 맘대로 해봐라 했더이만 차로 타고 울산으로 부산으로 어데로 앤댕긴데가 읎드?? 언젠가 서울서 대학 선생들이 낼로 찾아와서는 이래저래 묻고해가 내 잡은 나가수 고래 사진도 우예 알아가꼬 책에 얹아 놨드란 말이지. 근데 이 사람들이 보이 몇 년도에 어느 배가 몇 마리 잡고, 어느 배가 몇 마리 잡았는지 싹 다 기록해 놓은 기라. 그래 우리 아들이 그기를 가주고 참작을 해가 용운호가 언제 어느 놈 몇 마리, 흥안호가 언제 어느 놈 몇 마리, 이래 서류로 꿰매가 올리 놓기는 했다. 마 안되믄 고만이고 올리나 보자고 올리는 놨다마는 앤즉까지 소식 한 장이 읎?? 모리겠다. 살아생전에 다부 고랫배 몰고 나가 고래 잡을 날 있을라는가. 항구다방에 앉아 저거 바다로 보믄서 빽빽 기적 울며 들아오는 배 기다릴 날 있을라는가.

2011-04-25

6·25전쟁 후 이중섭 자신과 조카, 그리고 대구시민 그려

천재화가 이중섭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화가다.소와 어린이의 모습을 주된 테마로 작품활동을 한 이중섭이 대구에서 유일하게 남긴 대구지역 관련 그림이 있다. `동촌 유원지` 가 바로 그것.6·25전쟁 당시 대구로 피란을 내려온 이중섭은 예술인들이 모여 있던 중구 향촌동에서 여러 예술가와 교류를 하면서 궁핍한 생활 덕분에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는 등의 활동을 해왔지만 정작 대구와 인연이 있는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았다.6·25전쟁이 끝난 후 평화로운 일상이 되면서 이중섭 화가는 조카 영진과 모처럼 당시 대구시민의 휴식처였던 동촌 유원지를 찾았다.조카인 영진은 당시 군인이었고 모처럼 휴가를 나와 작은 아버지인 이중섭 화가와 나들이를 했던 것이 동촌유원지 그림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이중섭의 동촌유원지에도 전쟁이 끝나고 나서 평화롭게 물놀이를 즐기는 대구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 이곳을 대구시민들이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가 있을 정도다.동촌유원지 그림을 자세히 보면 특이하게 그림의 오른쪽 아래의 두 남자가 등장하고 있다. 바로 화가 이중섭 자신과 조카 영진의 모습이다.전쟁이 끝나고 나서 오는 여유로움에 이중섭은 특유의 자신의 모습과 함께 조카 영진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냈다. 그림에서도 이중섭 화가는 기분 좋은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고 정겹게 조카의 손을 잡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한때를 엿보게 한다.화폭의 화면을 뒤덮은 푸른색의 커다란 물방울들은 동촌유원지에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표현한 것으로 미술 전문가들은 알려주고 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4-25

대구 재발견- 동촌유원지

내년 6월 유람선 떠다니고 카누·조정 등 다양한 레저활동 가능오감체험형 공간으로 관e´?객 유치·지역경제 활성화 도움 기대 금호강변에 위치한 145만4천500여㎡(44만평)규모의 동촌유원지는 오래전부터 대구시민들의 휴식처와 위락시설로 사랑받아 왔다.교통이 편리해 금호강을 끼고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을 배경으로 그네뛰기를 즐겼고 여름에는 수영과 오리배 놀이, 가을에는 밤 줍기 등이 이어지는 대구시민이 즐겨찾는 유원지다.또 각종 위락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도로가 놓여져 있고 수량이 풍부한 금호강에 조교가 가설돼 있으며 우아한 아양교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다.동촌유원지에는 구름다리, 유선장, 체육시설, 유기장 및 상가 60여 곳 등 각종 위락시설, 파고라, 식수대, 벤치, 영남 제1관, 자전거 경기장, 실내 롤러 스케이트장, 야외수영장, 골프장 등 다양한 즐길 거리와 놀거리가 있다.내년 6월 유람선 떠다니고 카누·조정 등 다양한 레저활동 가능오감체험형 공간으로 관광객 유치·지역경제 활성화 도움 기대■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리턴 중한때 금호강이 심하게 오염되면서 동촌유원지에 대한 대구시민의 사랑이 멀어졌지만 지난해 전국평생학습축제가 열릴 정도로 최근에는 대구시민들이 몰리는 휴식처로 되돌아오고 있다.그동안 동촌유원지를 살리려는 각계의 노력과 함께 대구시가 40년 이상 노후된 동촌유원지 일대를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핵심 프로젝트인 금호강 생태하천 조성사업에 포함시켜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도 대구시민의 사랑이 돌아온 원인 중 하나다.금호강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국토해양부에서 실시설계가 완료돼 대구시가 사업시행을 전면 위탁받아 전 구간에 대한 공사에 착수했으며 오는 8월에 개최되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전까지 모든 공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4월1일 현재 금호강 생태하천 조성공사는 총 공정의 38% 공정률을 보이고 있고 오는 5월 동촌보, 무태보 완료 및 오는 6월 동촌보도교 및 하도 준설 완료, 오는 7월 주요구간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 완료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2012년 6월이면 모든 공사가 끝난다.■수준 높은 생태공원 변모이 사업에는 모두 2천594억원(공사비 1천825억원, 보상비769억원)이 투입돼 금호강 41.4km 전 구간에 걸쳐 하천 고유의 이·치수 기능 강화와 생태환경 개선, 수변 친수공간 조성 등으로 꾸며지게 된다.세부적으로는 수질 개선과 홍수 예방을 위해 낙동강 합류부에서 화랑교까지 30㎞ 구간의 하상 퇴적물을 준설해 기존 콘크리트 보인 무태보와 동촌보를 공기압식 고무보로 대체하고 가창댐보다 많은 1천100만㎥의 수량을 확보할 계획이다.이렇게 되면 충분한 수량과 수준 높은 수변경관을 자연스럽게 확보, 최소 수심 1.8m 이상을 유지하면서 유람선이나 수상스키, 카누, 조정 등 다양한 수상레저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도 변모하게 된다.특히 시민들이 친근하게 이용하는 하천으로 만들기 위해 4개의 가동보를 신설 또는 개량하고 금호강 19개소를 특색 있는 테마별 친수공간으로 조성한다.이재만 동구청장은 “동촌생태공원 조성으로 금호강 동촌유원지내 경관보도로와 실개천,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 접안시설, 중앙광장, 야생초화원, 포켓쉼터 등 경관성과 환경보전을 최대한 반영한 수변자원의 활용하겠다”면서 “오감체험형 체험공간 조성해 관광객 유치 및 지역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대구의 한강동촌유원지 일대는 6만5천㎡의 수변공간을 하천생태원을 비롯한 다목적 놀이마당, 수변무대, 접안시설, 생태수로 등으로 꾸며진 품격 높은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아울러 동촌유원지를 방문하는 시민들이 한번쯤은 찾는 동촌구름다리가 노후돼 대체할 새 다리가 가설된다.효목동과 방촌동을 연결하는 경관보도교를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통행할 수 있도록 신설, 새롭게 태어나는 금호강의 상징적 랜드마크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또 금호강 에코트레일을 조성해 낙동강과 연결하면서 안심지구 등 18개소에는 지구별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 마라톤 코스 등으로 꾸며져 대구의 한강이상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동구청은 대구시의 이같은 사업에 발맞춰 동구 동촌유원지 일대를 자전거 명소가 될 수 있도록 꾸미고 있다.동촌유원지 인근 지하철역에 `자전거 주차장`을 만들고 경주 보문호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전거 임대사업을 펼치기로 하고 오는 12월 말까지 545㎡ 규모의 자전거 주차장을 지하철 1호선 동촌역 앞에 만들어 150대의 자전거를 세울 수 있도록 한다.조영성 대구시 낙동강살리기추진단장은“오는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전까지 가동보, 경관 보도교, 자전거 도로 및 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오는 2012년 6월까지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라면서“서울의 한강과 같은 도심 하천으로 마무리되면 재해없이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행복 금호강`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4-25

인/터/뷰 서자원 동구청 건설과장

“보도교 새로 생기면 금호강의 명물될 것”“서울의 한강처럼 금호강도 생태하천으로 변모해 대구시민이 가장 아끼는 동촌유원지로 변모하게 된다”고 말한 서자원 동구청 건설과장은 “금호강은 대구의 한강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특히 서 과장은 “대구 시민들의 향수깃든 동촌유원지의 구름다리를 대체할 동촌 보도교를 새로 건설해 금호강의 명물로 만들겠다”면서 “팔달교와 노곡교 사이의 섬 22만㎡ 규모의 하중도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금호강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된다”고 밝혔다.또 “오는 8월에 열리는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전에 가동보와 경관 보도교, 자전거 도로 및 산책로 조성을 추진해 오는 2012년 6월까지는 기타 사업들을 완료할 계획”이라며 “금호강 생태하천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면 금호강은 시민들에게 여가공간 제공으로 풍요한 생활을 가능케 한다”고 자랑했다.이어 “서울 한강과 같은 도심하천인 금호강의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경산시계에서 낙동강 합류점까지 41.4km의 금호강 구간에 모두 1천744억원의 국비를 투입한다”면서 “하도준설, 가동보 설치, 경관 보도교 건설, 자전거 도로 및 산책로 조성 등을 추진해 명실상부한 대구의 휴식처로 재탄생하게 된다”고 말했다.“여기에다 수질 개선과 홍수 예방을 위해 낙동강 합류부에서 화랑교까지 30km 구간의 하상 퇴적물을 준설해 수량을 확보하게 된다”고 말한 서자원과장은 “수변 레포츠장 활용을 위해 기존의 콘크리트보인 무태보와 동촌보를 공기압식 고무보로 개체하면 가창댐의 저수량 900만㎥보다 많은 1천100만㎥의 수량을 유지하게 된다”고 언급했다.이와 함께 “시민들이 친근하게 이용하는 하천으로 만들기 위해 금호강 19개소를 특색있는 테마별 친수 공간으로 조성하고 동촌유원지와 달서천 합류점 구간 왕복 40km는 백리길 조깅코스로 특화할 방침”이라며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는 자연 친화적인 포장재 사용으로 하천과 잘 조화되도록 조성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서자원 건설과장은 “개발이 완료되면 금호강은 재해에 안전하고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 깨끗하고 건강한 “행복 금호강”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면서 “동촌지구 등 금호강에 접한 연안지역의 획기적인 발전과 함께 국제도시 대구의 위상을 제고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4-25

포항TP 입주기업 탐방<8> (주)유비

IT가 대세인 시대에 웹사이트, 쇼핑몰은 이제 흔한 단어가 됐다. 몰라서는 안될 정도로 우리생활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있다. 우리 실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고객들부터 웹사이트, 쇼핑몰 제작이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 IT·쇼핑몰 선두주자 ㈜유비(대표이사 유창욱)를 만났다.◇㈜유비는 어떤 회사인가.㈜유비는 `Your Bussiness Agency`. `고객을 성공시키는 기업`이란 슬로건으로 홈페이지 및 쇼핑몰제작과 유지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지역에 몇 안되는 전통파 웹에이젼시이로 올해로 창립 10년차가 되는 회사다. ㈜유비는 웹에이젼시를 중심에 두고 포스코인재개발원에 IT출강 교육과 동해지역의 수산물과 건어물 등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쇼핑몰 `동해사람들`을 운영하고 있다.지난 2002년 웹브라우져 기반에서 고객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비즈헬퍼`란 사업아이템으로 창립한 ㈜유비는 개발 아이템 `비즈헬퍼`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망한 것은 아니라는 의지로 개발로 얻게 된 고객관리·웹메일·로그분석 등 여러 기술을 바탕으로 2003년 하반기부터 웹에이젼시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희망을 꿈꾸고 있다.2003년 하반기부터 홈페이지 제작 영업을 시작해 회사를 운영했지만, 노크를 시작한 시장은 의외로 제작단가가 낮고, 또 개발기간과 경비에 대한 고객의 이해가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잘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만을 갖고 시작한 ㈜유비의 도전은 여러면에서 무모했다. 결국 초기의 실수는 IT분야 사업을 하기 위한 비싼수업료를 톡톡히 낸 샘이 됐지만, ㈜유비가 둥지를 틀었던 선린대학 창업보육센터의 지원과 지인들의 도움, 또 유능한 직원들의 경험이 지역에서 전통파 웹에이젼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특히 직원들과 같이 고민해 제작한 고객관리 툴이 홈페이지 제작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점차 고객사가 늘면서 안정을 찾게 됐다.◇㈜유비의 사업성과현재 ㈜유비는 포항MBC, 동국대학교, 포스코교육재단, 포스코 계열사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250여개 이상 구축했다. 또 고객사 초기 미팅부터 웹 기획과 그리고 고객사에서 원하는 디자인 시안을 제공하고, 복잡한 구성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스토리보드를 통해 고객의 요구사항을 정리·제작해 그 완성도가 높은 것이 장점으로 볼 수 있다.특히 전통파 웹에이젼시 답게 ㈜유비는 지난 2004년부터 자체적으로 준비했던 웹표준 코딩능력을 바탕으로 웹접근성 및 장애인접근성을 100% 통과하는 웹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또 유비에서 제작한 웹사이트는 기본적으로 웹표준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브라우져 환경이 다른 나라에서도 이상없이 구동하므로 외국에 고객사를 둔 기업들은 웹사이트 제작 시 이점을 참고하는 것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점을 ㈜유비는 안내하고 있다.㈜유비는 지난 10년 동안 각 대학과 직업훈련전문학교들과 다양한 산·학 협력을 체결해 지역에서 웹 관련 기술을 공부하고 취업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 창업보육센터 기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기술력 또한 인정 받았다.특히 `동해사람들`에 관련된 실용신안과 상표등록, 고객관리에 관련된 프로그램 등록 등 자체 지적재산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현재 ㈜유비는 스마트폰 열풍에 맞춰 모바일사이트 제작에 초점을 맞춰 자체 교육을 지원하고 의로 받은 모바일 사이트를 제작하고 있다.◇㈜유비의 미래성장현재 ㈜유비는 창립 10년과 동시에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현 조직도를 IT기술력 업그레이드 방향으로 재편하고, 집중분야를 웹표준과 모바일사이트 중심으로 보고 하이브리드앱 개발력에 회사의 비전을 걸고 있다.㈜유비는 지난 1998년부터 붐을 타기 시작한 홈페이지 제작시장(웹에이젼시)이 어떻게 활발하게 됐는지를 학습했던 경험을 살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하이브리드앱 전문 기술연구소를 2011년 5월 회사 내 개소 할 계획이다.`하이브리드 앱`은 기존 앱의 장점과 모바일사이트의 장점을 두루 갖춘 방식으로 `하이브리드 앱`에는 HTML5, CSS3 등 기존에 익숙한 툴에서 벗어난 툴을 활용 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존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업과 더불어 새로운 툴을 익히기 위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이에 ㈜유비는 기술연구소를 통해 집중력과 다양한 개발사례를 통한 경험을 높여 지역 모바일 시장을 충분히 리드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기술연구소 개소와 맞춰 ㈜유비는 새롭게 개발자와 웹디자이너 그리고 기획자를 추가로 선발하고 있다. 지역 전통파 웹에이젼시 ㈜유비는 포항테크노파크와 포항소프트웨어지원센터의 하이브리드앱 기술연구소에 대한 지원과 또 서울에 본사를 둔 모바일 전문회사인 유누스와의 협력에도 기대를 하고 있으며 서울, 경기권 이상의 기술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임직원 모두가 협력해 뛰고 있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4-22

인터뷰-유창욱 (주)유비 대표이사

“웹사이트·모바일사이트 연동되는 기술 확보 절실” - ㈜유비 창업배경은.△㈜유비는 고객관리(CRM)를 인터넷환경에서 자동화시키고,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면 상공인과 세일즈맨에게 꼭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비즈헬퍼라는 고객관리 사이트를 제작하기 위해 창립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장에 대한 경험부족 등 여러 요소 등으로 개발 경험만 간직한 채 창업 1년 후 개발을 중단해야 했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바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웹에이젼시로 방향을 전환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향후 지역IT산업과 웹, 온라인쇼핑몰 관련 전망은.△분명 지역에도 컨버젼스 시장에 대한 연구와 사례가 나오겠지만, 그 분야는 생활환경에 맞춘 스마트그리드 시장에 먼저 오리라 생각한다. 웹에이젼시 시각에서 전망한다면, 모바일 환경을 고객에게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고급시장으로 접근을 포기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홈페이지를 제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웹환경이 아닌 모바일 환경에서도 구현될 수 있도록 제작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이 웹사이트와 모바일 사이트가 연동되는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 온라인 쇼핑몰은 대형 오픈마켓(옥션)과 같은 지역 오픈마켓(포항옥션)이 만들어져 중·소형 쇼핑몰을 흡수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관련분야 창업과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웹분야의 기술은 너무나 빠르고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지난 1998년 웹이 일반인들에게 소개됐고 또 그 중심에 있던 PC가 이젠 휴대폰으로 옮겨가고 있다. 관련된 기술들이 얼마나 많고 진보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진보된 기술과 앞으로 발전될 그림을 먼저 상상하면서 창업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이 분야가 많은 공대 학생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현실은 더욱 스스로가 전문가로 인정받는 기회가 많다는 점으로 이해하고 승부를 건다면 비전이 뚜렷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4-22

민선 5기 300일 맞는 구미시

강한 경제 더 큰 구미 건설을 기치로 힘차게 출발한 민선 5기 구미시정이 곧 취임 300일을 맞는다. 민선 5기 출범 첫날, 남유진 시장은 모든 취임행사를 생략하고 환경미화원과 함께 새벽 거리 청소, 기업체 현장방문, 농촌 봉사활동 등 주로 민생현장에서 업무를 시작했다.그러나 지금은 강한 경제 더 큰 구미건설을 목표로 독일, 일본 등 해외 순방과 국내 기업유치로 전국 기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이런 남 시장의 노력은 소통과 화합의 시정추진과 더불어 인구 증가를 위한 기업 유치 등 경제시정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민선 5기 `80개사·10조 달성` 목표로 글로벌 첨단기업 대상 투자유치 주력시민 공용자전거 도입·낙동강 녹색체험관 개관 등 녹색도시로 빠르게 변화◇ 올해 국내기업 5개 3조·국외기업 5개 5천억 유치구미시는 올해 투자 유치목표를 국내기업 5개 3조원, 외국기업 5개 5천억원으로 정했다.총 10개 기업 3조5천억원을 달성해 총 9천117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글로벌 첨단기업인 LCD, LED, 광학기기, 첨단의료기기, 신재생에너지 산업 등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유치해 민선 5기 총 목표액인 80개사 10조 원을 달성해 나갈 계획이다.지난해 달성한 13개사, 2조 2천억원의 투자유치액보다 올해는 무려 1조3천억원이나 늘어난 규모로 산업구조의 다각화와 신성장동력산업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다는 계획이다.시는 앞으로 5공단과 경제자유구역 등 대형 투자 유치 성과를 내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해마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 폭 감소구미시는 인구증가 기업 투자 유치 못지않게 대일 무역적자 해소에도 심혈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특히,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은 전국적으로 해마다 계속 증가 추세지만 구미시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은 해마다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구미시의 대일무역수지적자액은 2004년 39억9천400만 달러, 2006년 23억1천700만 달러였으나 지난해는 13억 달러로 30%가까이 줄었다.이런 현상은 구미 4단지 외국인 전용단지에 아사히, 도레이 계열사를 비롯한 일본계 기업의 입주가 늘어나면서 수입대체효과가 발생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하지만 아직도 전체 수입대비 대일수입 비중이 27.5% 정도로 높아 이 문제를 해결코자 부품소재 전용공단에 대한 글로벌 첨단기업 유치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시는 일본, 미국, 스페인 등 세계 각국의 부품소재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첨단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5공단 조성 투자유치 총 목표액 80개사 10조원구미가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 사업들의 추진전망도 매우 밝다.4공단 확장단지는 95% 이상 보상이 추진됐고 분양도 완료됐다. 앞으로 5공단 보상과 구미경제자유구역도 애초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될 전망이다.특히 구미시는 대구 등 다른 지역은 사업시행이 표류하고 있지만 구미는 흔들림 없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구미시의 지난해 총 수출은 대구시(52여억 달러)보다 6배나 많은 306억 달러이고 전국 총 수출액의 6.6%를 차지, 한국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또 앞으로 구미 4단지 확장, 5단지 조성과 노후화된 1공단 산업단지 구조고도화하고 대우일렉 부지 36만5천여㎡ 부지 리모델링사업을 올 12월말 완료해 전자의료기기, 그린에너지, IT 융·복합소재, 정밀금형 등의 업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집적화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이들 사업이 완료되면 구미시는 인구증가는 물론 수출액도 늘어나 구미시의 강한 경제가 현실화할 전망이다.구미시 황종철 투자통상과장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자치단체가 매년 인구감소 추세에도 구미시는 매년 인구 증가 현상을 나타낸다”며 “이는 국내외 기업유치 노력과 5공단 조성 등 미래성장 인프라 확충 등 시민들의 살기 좋은 정주여건 개선에 적극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일자리 창출 7만개로 인구증가 50만시대 진입지난해 8월 26일자로 구미 인구가 40만명을 돌파했다. 1978년 시 승격 당시 8만9천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1995년 시군 통합 당시 30만 명에서 마침내 40만명 시대를 연 것이다. 또한, 구미시는 일자리 창출 7만개를 위한 노력으로 지난해 9월1일 정부로부터 2010년 상반기 일자리 창출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3억 원의 재정 인센티브를 받고 전액 일자리창출에 재투자했다. 또 전국 최초의 고용안정과 노사평화를 위한 위 투게더 운동(We Together)확산과 희망 일자리 창출 TF팀 운영, 일자리창출전략위원회 구성, 중소기업 취업박람회, 읍면동 찾아가는 현장채용박람회 등 기업체, 교육기관 등 민관이 합심 노력해 큰 성과를 이뤄냈다. 앞으로 5공단, 경제자유구역 등 대형사업들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어 인구증가는 더욱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더 낮게 더 가까이, 40만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지난 4년간 구미시의 시정목표는 미래는 지금이 아니면 없다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면 민선 5기는 40만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으로 정해 소통과 참여의 폭을 넓혀가는데 초점을 맞췄다.남 시장은 조금 늦게 가더라도 시민의 동의와 합의로 소통하는 열린 시정을 열어가겠다는 철학이다. 퇴근길 시민과의 대화를 정례화하고, 민생현장 자전거 투어와 기업현장 방문, 직원 현장회의 등을 개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생활 밀착시정을 실천해오고 있다.행정 내부적으로도 사무위임 및 전결규정을 개정해 결재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실·국장 중심의 책임행정체제를 구축했으며, 주요 시책추진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양방향 소통시스템을 강화했다.◇ 녹색성장 선도도시 본격 시동지난 6월 전국 10대 자전거거점도시로 선정된 구미시는 7월부터 시민 공용자전거를 본격 도입했다.구미시는 도내 최초로 전 시민 자전거보험 가입과 자전거 안전교육장, 시범공원 조성, 자전거 출퇴근 도로 구축 등 자전거 이용확산을 위한 거점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또 동락 공원에는 구미과학관개관과 낙동강 녹색체험관 개관, 지산수우지역 생태하천 조성사업도 원활하게 추진되고 있어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체험과 녹색수변도시로 새롭게 태어날 전망이다. 또 전국 10대 자전거 거점도시와 도심중앙을 흐르는 금오천 및 구미천이 국토해양부의 물 순환형 수변 도시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낙동강 살리기와 연계한 새로운 친수공간 조성 등 녹색성장 선도도시 추진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어 미래 녹색성장도시로 빠르게 변화중이다.남유진 시장은 “지난 시정은 40만 시민과 함께 구미의 미래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시민생활현장에서 지역발전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면서 “앞으로는 힘차게 뻗어 나갈 구미의 미래 동력을 확보해 강한 경제 더 큰 구미 건설에 주력해 구미시의 위상을 더욱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남보수기자 nbs@kbmaeil.com

2011-04-22

⒀영남 퇴계학맥의 숨은 주역, 정부인 장씨

기호학파와 함께 조선후기의 학술사와 정치사를 양분했던 영남 퇴계학파는 내부적으로 두 갈래의 학맥으로 분화된다. 서애 류성룡을 계승하는 서애학맥과 학봉 김성일을 이어받는 학봉학맥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학봉계는 학봉에서 시작해 경당 장흥효-석계 이시명-갈암 이현일-밀암 이재-손재 남한조-대산 이상정-정재 유치명-서산 김흥락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한다. 여기서 경당에서 갈암으로 이어지는 초기학맥은 일종의 가학(家學)적 연원관계를 이룸으로써 학봉학맥이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했다.이 가학의 성격은 석계가 경당의 사위이고 갈암이 석계의 아들이라는, 초기계보 사이에 존재하는 혈연적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이 계보는 자연스럽게 이 관계를 연결시키는 한 여인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그 여인을 매개로 경당은 아버지이고 석계는 남편이며, 갈암은 아들인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남 퇴계학파의 중심적인 줄기 가운데 하나인 학봉학맥의 초석 형성사의 숨은 주역, 그가 바로 정부인(貞夫人) 장씨(張氏)이다.정부인의 이름은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다.`정부인`은 아들인 갈암이 뒤에 이조판서를 역임함으로써 추증받은 품계이다.임진왜란이 끝나던 해인 1958년 11월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경당 장흥효와 안동권씨 사이에서 무남독녀 외딸로 태어났다.경당은 영남 퇴계학파의 초기학맥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통상 퇴계문하의 고제로 월천 조목과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그리고 한강 정구 네 사람을 꼽는다. 경당은 이들 가운데 월천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에게 모두 배움으로써 퇴계학의 적통을 이었다. 이는 그가 자신의 호를 퇴계철학의 중심개념인 `경(敬)`에서 따와 `경당(敬堂)`이라 한 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정부인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학문과 덕성에 대한 소양을 익혔다. 한 번은 경당이 제자들에게 중국 송나라의 사상가 소강절이 주장한 천지자연의 변화원리인 원회운세(元會運勢)의 이치에 대해 말하였으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정부인이 그 수치를 정확히 계산해 대답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정부인은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도 남다른 성취를 보여 아들을 군대에 보낸 이웃집 노파의 애끓는 모정을 읊은 학발시(鶴髮詩)를 비롯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의 소중함을 노래한 경신음(敬身吟), 보슬비의 운치를 운율감 있게 노래한 소소음(蕭蕭吟), 성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노래한 성인음(聖人吟) 등의 시를 남겼다.이 가운데 성인음은 다음에서 보듯이 마치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뵈”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하는 퇴계의 도산십이곡 가운데 제9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성인의 자취를 배우고자 하는 여군자(女君子)의 열의를 엿보인다.성인의 때에 태어나지 못해성인의 모습 뵙진 못했으나성인의 말씀은 들을 수 있으니성인의 마음씀은 족히 알겠네정부인은 19세 되던 해인 1617년 영해 나랏골에 살던 8살 위인 석계 이시명에게 시집을 갔다. 당시 석계는 이태 전 부인을 사별하고 슬하에 1남 1녀를 둔 상태였다. 때문에 정부인으로서는 석계와의 결혼이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정부인은 결혼 후 전부인의 소생을 친자식보다 더 살뜰히 키워 여섯 살이던 아들 상일을 매일 5리나 떨어져 있는 선생의 집에 업고 다니며 글을 가르쳤고, 나중에 자신의 소생들이 무엇을 물어오면 반드시 형에게 물어보게 함으로써 집안의 위계를 세웠다. 나랏골 재령이씨 충효당 가문을 연 시아버지 운악(雲嶽) 이함(李涵)이 이를 보고 자신의 손자는 어미를 잃은 것이 아니고 죽은 어미가 살아온 것이라고 이웃들에게 말했을 정도였다.전 부인 소생을 포함해 정부인은 슬하에 모두 7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웠는데, 그 가운데 둘째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셋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넷째 항재(恒齋) 이숭일(李崇逸)은 학문적으로도 큰 성취를 이루어 영남 퇴계학맥의 중심인물들로 활약하였다.특히 갈암은 영남남인의 영수로서 당시 정적 관계에 있던 서인을 상대로 정국을 주도함으로써 영남학파의 정치적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갈암은 정부인의 생애를 기록한 글에서 어머니는 시부모를 지극한 효도로 섬겼고, 60년 가까이 아버지와 살면서 늘 받들어 공경하고 서로 대하기를 손님과 같이 하였으며 매사를 반드시 아버지께 여쭌 뒤에 행하였다고 회고하였다.정부인은 이처럼 시집살이를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친정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시집 온 후 1년에 한 번은 문안을 갔고 어머니와 사별한 후 아버지 경당 선생이 재혼해 3남 1녀를 두고 돌아가시자 어린 동생들과 계모를 아예 시집 인근으로 이주시켜 보살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주도 모셔와 제사를 거르게 하지 않음으로써 친정의 가계가 보존되도록 힘을 기울였다.정부인의 부덕(婦德)은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라는 책자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이 책은 정부인이 노년에 자신의 살림지혜를 종합하여 모두 146종의 음식조리법을 소개한 것으로, 영남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그런데 이 책 속에는 영남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전통이 스며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음식디미방`과 함께 영남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오늘까지 전하는 대표적인 조리서로 `수운잡방(需雲雜方)`이 있다. 안동 예안에 세거하던 광삼김씨 예안파의 김유(綏)가 지은 것인데, 석계의 첫 부인이 바로 이 김유의 증손녀이다. 따라서 `음식디미방` 속에는 정부인의 친정인 안동장씨 경당문중과 시집인 재령이씨 충효당 그리고 광산김씨 예안파 이 세 가문의 음식문화가 고스란히 집대성되어 있는 셈이다.그야말로 영남의 음식문화를 오늘까지 전하는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박원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2011-04-22

가볼만한 곳-영양군 두들마을

훌륭한 학자·독립운동가·소설가 이문열 배출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院里里) 두들마을은 인조 18년(1640)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 1590~1674) 선생께서 터를 잡으셨으며 4자 숭일(恒齋 李嵩逸)이 선업(先業)을 잇고, 방후손(傍後孫)들이 더해져 재령이씨(載李氏) 집성촌(集姓村)이 됐다. 마을 이름은 마을이 언덕(두들) 위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것이다.이곳은 일찍이 크게 문풍(文風)이 일었던 곳으로 훌륭한 학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조선시대에는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과 밀암 이재(密菴 李栽) 등이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학문을 계승·발전시켜 후학에게 널리 했다. 근세에는 의병대장을 지낸 내산 이현규(奈山 李鉉圭), 유림대표로 파리 장서사건에 가담한 운서 이돈호(雲西 李暾浩)와 이명호(李命浩), 이상호(李尙浩) 등 독립 유공자와 이병각(李秉珏), 이병철(李秉哲) 등 항일 시인이 이곳 출신이다.이 마을에는 모든 여성에게 길이 사표(師表)가 될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의 자녀교육에 대한 전범(典範)과 부덕(婦德)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 곳은 소설가 이문열(李文烈)의 고향으로 그의 문학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 무대이기도 하다.◆정부인 안동장씨 예절관정부인 장씨(貞夫人 張氏:1598~1680), 선조 31년 경북 안동 금계리(溪里)에서 태어나서 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영양 석보촌(石保村)에서 타계했다. 만년에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이 대학자이자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부여하는 산림(山林)으로 불림을 받아서 이조판서를 지냈으므로, 법전에 따라 정부인의 품계가 내려졌다. 이 때부터 `정부인 장씨`라 불리게 됐다.정부인 장씨는 왜란으로 전국이 쑥대밭이 돼 있던 정유재란 다음 해에 태어났으므로, 이후 광해군 통치에 뒤이은 인조반정(1623년)이라는 정치적·사상적 혼란기를 겪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1636)이라는 이전 역사에 없었던 치욕적인 국가적 수모까지 겪으면서 살아간 세대에 속했다.◆정부인 안동장씨 유적비정부인 안동장씨의 학문과 예술, 자녀교육에 대한 전범(典範)을 기리기 위해 1989년 10월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전 국사편찬위원장 박영석(朴永錫)이 짓고, 장상조(張相朝)가 썼다. 이 유적비의 배면(背面)에는 부인의 대표적인 한시(漢詩 `소소음(蕭蕭吟)`이 각인돼 있다.◆석계고택(石溪古宅)안동 대명동(大明洞)에서 석계(石溪) 선생께서 돌아가시자 숙종 1년(1675) 4남 숭일(嵩逸)이 모친 정부인 안동장씨를 모시고 고향에 돌아와 선인의 옛터에 집을 중수하고 당호(堂號)를 항재(恒齋)라 했다.석계고택은 일자형의 사랑채와 안채를 흙담으로 막아 허실감(虛失感)을 메우고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고, 사랑채는 후면에 감실(龕室)을 설치한 삼량가(三樑架)의 구조이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1호로 지정돼 있으며, 32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집이다.◆광산문학연구소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문학도를 양성하기 해 소설가 이문열씨의 고향인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에 광산문학연구소를 건립하고 2001년 5월12일 개소식을 가졌다. 이 연구소가 들어선 석보면 원리리 두들 마을은 재령이씨의 집성촌으로 2000년 10월 전통문화마을로 지정된 마을로서 민속자료 제91호인 석계고택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와 정부인 안동 장씨의 유적비등이 있는 유서깊은 고장이며, 두들마을은 이문열의 소설 `선택` 등의 배경 장소로도 유명하다.◆석천서당(石川書堂)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 선생이 영해부에서 석보로 이주해 초당(草堂)을 지어 유생과 아들들을 강도(講道)한 곳으로 영조 46년 (1771) 중수(重修) 하고, 당호를 석천서당(石川書堂)이라 했다. 그 후 고종 28년(1891)에 중건(重建)해 현재에 이르며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79호로 지정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22

(15) 이육사 `광인의 태양`

치열한 광인의 삶, 의열단 훈련의 풍경광인의 태양 ………………………………………………………………………………… 이육사 분명 라이플선을 튕겨서 올라그냥 화화(火華)처럼 살아서 곱고오랜 나달 연초(煙硝)에 끄슬린얼굴을 가리면 슬픈 공작선(孔雀扇)거치른 해협마다 흘긴 눈초리항상 요충지대를 노려가다이육사의 `광인의 태양`은 그의 항일투쟁 경험이 구체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라이플선`, `연초`, `요충지대` 등의 어휘가 등장한다. 이것은 일종의 군사용어다.`라이플`은 라이플(rifle) 총으로서, 총신(銃身) 안에 나사 모양의 홈을 새겨 탄알이 회전하면서 날아가도록 만든 총을 가리킨다. 라이플선은 총신(銃身) 안에 새겨진 나선 모양의 홈을 말하는데, 이것 때문에 명중률이 높고 사정거리가 늘어난다. `튕겨서 올라`라는 표현은 이 라이플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수철과 유사하게 생겼기 때문이다.또한 `연초`는 화약 혹은 화약의 폭발에 의해 생기는 연기를 말한다. 연초는 앞에서 말한 라이플에서 총알이 발사하면서 생기는 화약연기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요충지대`는 지세가 험하여 적을 막고 자기편을 지키기에 편리한 지대를 말한다.이런 어휘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육사의 체험 때문이다. 육사는 1923년 10월에 의열단에서 만든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간다. `한국의 절대독립`과 `만주국의 탈환`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이 학교는 중국정부의 도움으로 중국 남경에 세워졌는데, 육사는 제1기로 입학하였다. 이 학교의 교장은 바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다.이 학교에서 육사는 6개월 동안 각종 군사훈련을 받고 국내외에서 활약하게 된다. 교육 내용은 정치학, 사회학 같은 정치과목과 `사격교범`, `폭탄제조법` 등의 군사과목, 그리고 `기관총조법`, `실탄사격` 같은 실습과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사는 이 과정을 훌륭하게 수료한 군사간부였다. 또한 증언에 따르면 육사는 권총 사격에 있어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따라서 이 시의 광인은 어떤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요원으로서 육사 자신을 가리킨다. 그는 라이플선에서 튕겨 올라 망설임 없이 불꽃처럼 살아가는 치열한 존재이다. 이런 삶은 불꽃처럼 격렬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고울 수밖에 없다. `아리랑`에서 감동적으로 그려진 의열단원의 불꽃과 같은 삶을 생각해보면 이 구절의 의미가 선명해진다.이 광인은 오랜 시간 동안 연초(烟硝), 즉 화약의 폭발에 의해 생기는 연기 속에서 단련되는 존재이다. 군사훈련 중에 그을린 얼굴에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때, 그 손은 공작선이 된다. 공작선은 조선 시대에 나라의 의식에 쓰던 부채로, 붉은 빛으로 공작을 화려하게 그린 것이다. 햇빛을 가린 손바닥이 초라해서 슬픈 것이긴 하지만, 삶의 치열함 속에서 그것은 공작선처럼 곱고 화려한 것일 수밖에 없다.불꽃처럼 격렬한 삶을 선택한 사람은 자신이 피할 수도 있는 극한적 상황을 끝내 피하지 않고, 삼엄한 경계가 끊이지 않는 요충지대를 `항상` 의도적으로 `노려가는` 존재이다. 자신을 절대 극한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애쓰는 자학에 가까운 준열함이 이런 표현에 잘 나타난다.`항상`이라는 강렬한 부사가 등장한 것도 이 준열함 때문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이제 왜 이런 존재를 광인이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일부러 극한 상황 속으로 밀어 넣는 정신의 준열함이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또 흉내 낼 수도 없는 정신적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지의 인간이 광인으로 불러지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육사가 `광인의 태양`을 발표한 것은 1940년 4월이다. 이때면,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제의 억압과 약탈이 심해지던 시기이다. 내선일체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창씨개명이라는 유례없는 저질 식민지 정책이 강요되던 시기이다.시국을 비판하는 작품이 자취를 감추고 친일파시즘문학이 창궐하던 이때, 육사는 이 시를 발표하였다. 이런 위험한 시기에 이런 위험한 작품을 발표한 이육사는 과연 이 시대의 광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태양처럼 찬란한 광인이다. 끝(경북대 국문과 교수)

2011-04-21

두 성씨가 동거해 온 양동마을 관가정

우리나라 전통 가옥은 아궁이에 부뚜막이 붙어있는 부엌(정지)이 안방과 함께하는 `日`자형 평면구조가 기본이다. 그런데 양동마을 관가정을 처음 찾았을 때 손씨 문중의 종가(宗家)로 알고 여느 때처럼 실측을 시작했는데 안방에 붙어 있어야 할 부엌이 없었다. 안채 좌우 어느 쪽에도 부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관가정은 주생활 전용 주거공간과는 차별화 된 용도의 건물로 밖에 볼 수 없다. 몸채 안마당인 중정(中庭)에서 우익사 전면부에 우측 외부공간으로 드나드는 통례칸이 있어서 이곳을 따라 밖으로 나와 보니 어김없이 그곳에는 종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당이 내삼문과 함께 몸채 우측 배면에 자리하고 있었다.그런데 통례칸을 지나다보니 사랑채 문간방 사이에 실내 아궁이가 있었다. 건물의 소유주는 이곳을 부엌이라고 말하지만 그곳에는 부뚜막도 없었고 더더욱 조선시대 반가(班家)의 사랑채에 정지 기능을 갖춘 부엌은 부설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곳은 소유주의 설명과는 달리 문간방에 단순히 난방을 하기위한 아궁이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양동마을의 관가정은 사랑채 누마루 위에 걸린 편액 `관가정(觀稼亭· 보물 제442호)`이 말해주듯 이 건물은 살림집 기능으로서 보다는 넓은 안강 들녘에서 농사일 하는 것을 누마루나 사랑방에 앉아 여유롭게 관리하고 또한 종갓집의 일상사인 사당에 제사를 올리는 것을 고려해서 초창 때부터 주생활 위주 보다는 문중의 대소사에 필요한 공간 확충과 효율적인 들판의 농사 관리 기능을 갖춘 용도로 건축된 듯하다.요즘 중요민속자료 제189호이던 양동마을이 2010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찾고 있다. 양동마을은 지금부터 553년 전인 1458년 청송에 살던 당시 25세의 손소(孫昭, 1433~1484)가 처가가 있는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마을의 역사가 시작된다. 손소의 장남이 처가의 대를 잇게 되자 차남이 상속자가 되는데 그가 바로 우재 손중돈(愚齋 孫仲暾, 1463~1529)이다. 한편 손소의 외동딸에게 이번(李番·여주 이씨)이 장가들어 두 아들을 두고 일찍 사망하자 아들들은 외가인 양동마을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 맏아들이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이다. 이때부터 양동마을은 손소의 후예인 월성 손씨 가문과 이언적의 후예인 여강 이씨 가문이 한 마을에 동거하는 양성씨족(兩姓氏族) 마을이 된다.손중돈이 1514년에 건립한 관가정은 마을 입구 왼편에 전망이 좋은 언덕위에 있다. 관가정은 정면 5칸 측면 6칸으로 `口`자형 평면 구성을 이루고 있고 우측 뒤편에 사당이 있다. 전면 사랑채는 누마루로 꾸민 2칸 대청과 2칸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누마루의 정면은 개방되어 있다. 양동마을 관가정에 가면 부엌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가 될 것 같다./영남이공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11-04-21

길지 않은 인생, 소중히 살아가자

어부지리(漁父之利) 어부의 이득 곧 둘이서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챙긴다는 말이다. 방휼지쟁과 같은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나온다.전국시대 진(秦)나라에 대항하는 여러 나라들이 합종연횡(合從連橫)의 대책들을 서로 들고 나와 천하가 한창 어지러운 때였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대표적인 종횡가 합종 연횡술에 밝은사람 였지만 소진의 아우소려와 소대도 형 못지않은 유세객이었다. 소려는 주의 난왕에게 백발백중의 비유를 인용하고 중국의 동북방에 있었던 연 나라는 이웃한 서쪽의 조 나라와 남쪽의 제 나라와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때 연나라에 기근이 들자 조왕은 제나라에 군대를 파병하고 있던 터라 조나라와의 전쟁을 피하고자 했으므로 소대에게 조나라를 설득해 주도록 부탁했다. 소대는 다음과 같이 해문왕을 설득했다.“오늘 이 나라에 들어오는 길에 역수 연나라. 조나라와 국경을 이루는 강을 건너다 문득 강변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마침 조개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요새가 날아와 조개의 속살을 부리로 쪼았습니다. 화가 난 조개가 입을 굳게 다무는 바람에 도요새는 그만 부리를 끼이고 말았습니다. 도요새가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화가 난 조개는 입을 꼭 다물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도요새가 `내가 이렇게 버티고 서서 오늘도 내일도 비가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 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내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도 굶어 죽고 말 것 이다`라고 맞대면서 버텼습니다. 이렇게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마침. 그곳을 지나던 어부가 둘을 발견하고는 냉큼 어망 속에 잡아 넣어버렸습니다”느닷없는 조개와 도요새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하는 혜문왕에게 소대는 말을 이었다.“지금 전하께서는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입니다. 연과 조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국력을 낭비한다면. 바로 이웃의 저 강대한 진나라가 운 좋은 어부가 될 것입니다”이 말에 혜문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낭장 침공 계획을 취소했다.인생은 길지 않다 소중한 인생을 살아가야한다. 혹시 시기와 질투·간섭 등으로 인해 당신의 어부지리를 당하지 않는지 유심히 당신의 그림자를 보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4-20

일상의 축제를 소망하는 마음의 형상화

내 조형의 화두는 축제다.축제는 열정과 자유로움과 분방함과 아름다움이 한데 엉켜 환희가 샘솟는 현장이다. 그것은 이제껏 살아온 나의 삶의 궤적과 뜻을 같이 한다. 순수하고 고운 나의 심성처럼 밝은 자유로움으로 생의 길을 걸어왔듯이 일상이 축제이기를 그는 소망 하는 것이다.내 작업은 자연주의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단순한 자연주의에 넣을수 없는 것은 대상을 시경화하는 것이 아닌, 마음의 시각을 형상화 해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그림은 단순하게 꽃을 잘그리고자 하는게 아니라 꽃이라는 표현 대상을 통하여 삶과 만남의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의 꽃은 한 송이 외롭게 그려진 것들이 없다. 여러 개의 꽃들이 한데 어우러져 큰 송이를 이루고 있다. 그것이 암시하는 바는 더불어 어울려 사는, 서로 의지하고 기대어 사는 삶을 상징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인생은 어둠보다는 밝음, 슬픔보다는 기쁨, 나 홀로 보다는 여럿이 같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런 긍정적인 삶이 축제의 뜻과 이어진다. 단아하고 결고운 노래처럼 나의 그림 역시 관람객들에게 깊은 서정의 울림으로 가슴에 고여지면 한다. 그렇게 느껴지도록 화면을 만들어 내는 것, 그런 필력의 재능을 나는 보여주고 싶다. 꽃이라는 흔한 소재를 가지고 나만의 독창적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기대를 가질 뿐이다. 자기만의 언어, 자기만의 기법을 화가가 지니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덕목이기 때문이다.♠ 서양화가 김상옥-계명대 회화과 졸업 동 예술대학원 서양화과 졸업-개인전 및 초대전 8회(서울, 대구)KCAF 초대전·The Affordable Art Fair- Paris·아트 빌리지 서울과 만나다 전·한국여성미술 100년 전·ACA갤러리 초대전·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기원 대구 중국 교류전·한국미술협회 영·호남 교류전·대구미협전·크레이트 212전·전업 작가 영·호남전·art 2009 Woman`s Vision·메트로 갤러리 가을 축제전·대구 광역시전·환경 미술협회전 외 단체전 다수-현재 한국미술협회회원, 전업작가미술협회원, 환경미술협회원

2011-04-20

지적 쾌락주의자가 되자

늘 책읽기를 장려하는 내게 서점에서 한 눈에 들어 온 책이 바로 `리딩으로 리드하라`였다. 우선 책 제목이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정말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책을 읽자, 좀 더 많이 책을 읽자”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천재들이나 부자들은 모두 인문 고전을 읽었다고 그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아인슈타인, 에디슨을 비롯하여,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의 승자들인 카네기, 워런 버핏, 이병철, 정주영은 모두 엄청난 인문 고전 독서가였다. 치열한 인문 고전 독서로 두뇌의 수준을 한 차원 높힌 뒤에 얻는 사고력과 통찰력이야말로 그들의 평범한 손을 황금 손으로 만든 것이다.세상에 있는 책을 두 부류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고전이고 또 하나는 비고전이다. 고전을 짧게는 1백~2백 년 이상, 길게는 1천~2천년 이상 살아남은 책을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천재들이 지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앞으로 이 천재들이 지은 책을 10년 동안 매일 2시간씩 이 천재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잠재되어 있던 천재성이 드러나 천재적인 사고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인문고전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익히고 알아가는 것에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2011-04-20

이월드(구 우방랜드)

대구 재발견- 이월드(구 우방랜드) 연평균 110만명의 입장객이 찾는 지역 대표 문화레저공간 이월드(구 우방랜드)가 개장 17년째를 맞아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1995년 3월 세계에서 유일하게 타워와 파크가 어우러진 도심형 테마파크로 문을 연 이월드(구 우방랜드)는 전체 약 14만평의 부지안에 30여종의 놀이기구와 식음료점, 공연시설 등을 갖춘 한강 이남을 대표하는 공원이다.이월드는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경남·부산권 등 시장인구가 1천300만명으로 전국 인구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대구시 도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편리하고, 야간개장이 유리하며, 지역내 비슷한 규모의 경쟁업체가 없다는 점을 내세우며 대구경북권의 대표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했다.■ 이월드는 현재 리모델링 중벚꽃이 물러난 자리에 형형색색으로 나들이 객을 유혹하는 튤립을 저만치 두고 공원 곳곳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우방랜드를 인수한 이랜드그룹은 올해 50억원을 들여 그동안 낙후된 각종 시설과 놀이기구 등을 새단장하고 있다. 특히 오는 8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대비해, 8월 이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타워 전체를 대상으로 도색작업과 함께 각종 음식매점과 조형물 등을 새시설로 교체중이다. 5월 공원 전체를 순행하는 코끼리열차시설 개장을 목표로 마무리작업도 한창이다. 이외 밀랍인형 전시장과 매직아트관도 새로 만들고 있다.이월드의 색다른 분위기를 제공하는 회전 레스토랑(2시간에 한바퀴 회전으로 대구전경을 다양하게 구경할 수 있음)도 리뉴얼 중이고, 스카이라운지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간다.■ 진행중인 이벤트봄꽃을 테마로 하는 봄축제 `플로라 판타지`가 공원 곳곳에서 벌어진다.5월말까지 이어질 이번 축제는 `꽃과 봄, 그리고 번영의 여신 플로라`가 축제의 타이틀에 들어있는 만큼, 봄과 꽃을 이벤트에 가득 채웠다.이월드의 봄을 상징하는 벚꽃과 튤립에 이어 유채꽃이 봄 인사 채비를 끝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약 2천평에 달하는 잔디광장 전체를 노란 유채꽃으로 채워, 대구의 도심 한가운데서 제주도를 느껴볼 수 있도록 꾸몄다.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을 비롯한 각종 포토존에서부터 승마체험까지 가능하도록 해, 진짜 제주도에 와 있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또 바람개비 500여기를 설치해, 어린이들과 어른 등을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고 봄바람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도록 해 놨다.23일부터 5월말까지 매주 토요일 밤, 대공연장 일대에서 화려한 불꽃놀이도 펼친다. 이외 안데르센하우스에서는 100여마리의 동물들이 펼치는 신나는 가족뮤지컬 `정글로 간 백설공주`를 만나볼 수 있다. 6월6일까지 진행한다.요금은 6천원이며, 자유이용권 또는 연간회원권이 있으면 2천원에 관람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인기코스이월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뭐니뭐니해도 초고층 타워. 높이 202m(탑신 153m, 철탑 49m)로 해발 312m의 국내 최대 전망탑으로 신라시대 다보탑형태를 본따 한국의 전통적 건축미를 재현, 대구의 도심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대구시의 360도 전경을 한곳에서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와 시내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회전레스토랑 라비스타는 관광명소가 돼, 대구를 찾는 외국인이라면 꼭 들르는 장소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이외 연중 실시하는 스카이점프와 실내빙상장이 인기짱이다. 지난 2006년에 개장,타워높이 129m에서 시속75km의 속도로 수직 낙하하는 스카이점프는 여자도 많이 찾는 코스로 누적인원이 4천명을 넘어서는 등 이월드의 이색체험장소로 각광받고 있다.실내빙상장은 연중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어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 이후 더욱 인원이 늘어났다.■ 영욕의 세월 겪어이월드는 지난 3월말 정기주주총회를 개최, 과거 우방랜드에서 이월드로 개명했다. 이날 변경된 상호를 바탕으로 5월초께 새로운 CI가 일반에 공개되는 등 또다른 모습으로 시민에 다가간다. 이번 개명은 지난해 3월 (주)이랜드가 우방랜드를 인수한 후 새롭게 출발하자는 차원에서 이뤄졌다.이월드는 지난 1984년 10월 대구광역시 승격 기념으로 타워가 먼저 착공됐다. 이후 1995년 3월 우방타워랜드가 오픈돼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IMF사태로 모기업인 우방건설이 부도가 나 200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힘든시기를 보낸후 2005년 1월 선박회사인 세븐마운틴그룹에 인수됐으나 글로벌경제의 위기와 함께 찾아온 불황여파와 사주의 비리혐의 등으로 표류하다, 지난해 10월 이랜드에 매각돼는 등 영욕의 세월을 겪었다. 이 와중에서 과거 400여명이던 직원도 현재 200여명으로 축소됐으며, 그동안 시설투자를 하지 않아 놀거리와 새로운 볼거리가 줄어드는 등 지역의 대표 테마파크로서 제대로 된 위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공원을 찾는 관람객수 또한 크게 줄었다. 과거 잘 나가던 시절 연평균 250만~300만명이 찾은 적도 있었지만 근래에는 110만명 정도로 최전성기 시절의 반 이하로 확 줄었다. 올해 관람객 목표도 120만명이다./이창훈기자myway@kbmaeil.com

2011-04-18

인터뷰...전영수 이월드 대표이사

“고객의 요구 잘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에 최선” 전영수 이월드 대표이사는 “올해를 수도권 이남 최대, 최고 테마파크 이미지를 재구축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로 매출목표를 250억원, 영업이익 37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대비 약 30% 상향조정한 것이다.올해는 대구육상선수권대회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많은 관람객이 유입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목표치를 끌어올렸다.전 대표는 “실제로 대구에서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렸던 2003년에 약 240만명의 입장객이 몰렸다”며 “최근 경기침체로 국내 테마파크가 전반적으로 과거보다는 못하지만 객단가(입장객 한명당 소비총액)는 증가하는 것으로 볼 때, 매출달성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이같은 매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먼저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시즌축제 또는 이벤트와 같은 즐길 거리와 볼거리 등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를 중점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중인 리뉴얼 역시 이러한 고객의 요구에서 출발했다고 덧붙였다.또 서비스 중심의 역량 강화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고객서비스담당자를 지정,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임과 동시에 직원 서비스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 서비스 평가가 낮은 직원들은 `점프교육`을 통해 개선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전 대표는 “올해의 매출목표 달성여부에 따라 향후 투자계획서가 나올 것”이라며 “회사개명과 더불어 그동안 침체됐던 테마파크를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여 지역민들에게 다가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이창훈기자myway@kbmaeil.com

2011-04-18

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7> 저 바다에 고래가 살았다 ②

에미고래 잡아온 날 구룡포앞바다선새끼고래 밤새도록 희한한 울음소리 사램이 고래만같으믄 자식 놔 놓고 달라날 눔 아무도 읎?? 하나도 버릴 게 없는 고래, 빌기도 많이 빌었지 고래가 말이다 굉장히 영리하데이 소보담 더 영리해. 이래 보므는 우리가 고래를 발견 앤하나. 보믄 부부간에 새끼를 데불고 가는 기 보인다. 식구 세키가 이래 막 가는기라. 철선들은 일본말로 소나라카는 걸 갖고 댕겼지. 소나는 일본 사람들이 쓰던 기곈데 고래 잡는데는 왔따지만 다른 잡어들이 마카 피해를 보는기라. 그래가 일본에서는 법으로 쓰지 몬하게 했지. 그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다가 썼다. 그 소나를 고래가 잠수로 몬하게끔 물 속에 잡아옇고 요래 15° 요래 15° 그라니까 30° 각도로 전파를 쏴뿌는기라. 고래도 귀가 있데이. 가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카믄 미친다 아이가. 막 튀 오르지. 한 10분만 그래 튀쌌타보믄 마 퍼져뿌리지. 우리 목선들은 소나가 없으이 그저 마 대포 갖고만 잡았다.신랑각시 요래 가다보믄 제일 뒤가 숫놈이라. 아하고 마누라하고 앞세우고 지는 뒤에서 가는기라. 암만 쫓아도 꼴찌서 간다. 희안채? 그라다가 배는 자꾸 달라붙재, 어린 새끼는 심이 딸려 쳐지재, 아고 안되겠다 싶으믄 에미가 요래 지 날개에 새끼를 언자가 간다. 그기로 가마이 보믄 사램이 고래만 같으믄 자석 놔 놓고 달라날 눔 아무도 없을기라는 생각이 든다. 조매 맴이 짠하지만 우야겠노. 내는 사램이고 지는 괴기니. 그래 다부 맘 붙잡아 매고 좆는다. 우리는 숫놈부터 잡아야 하는기라. 그기 말이다. 암놈부터 죽여뿌믄 숫놈은 막바로 달라빼지만 숫놈에게 포를 놓으면 암놈은 절대 안달아나고 주위를 맴돈다. 교미할 때는 또 우짜는 줄 아나? 희안테이. 이래이래 가다보믄 고래들이 마 우글우글 한기라. 그기 암놈 하나에 숫놈들이 예닐곱마리썩 몰려있다. 그때도 순서대로 잡아야 하는기라. 암놈부터 쏴뿌렀다가는 다 놓친다. 숫놈 다 달라뺀단 말이다. 숫놈들은 마 잩에??죽그나 말그나 그저 암놈만 쫓는기라. 한 분은 이란 일도 있었다. 에미고래를 잡아 데불고 왔는데 고날 밤새도록 구룡포 앞바다에서 희안한 소리가 나는기라. 동네 사램들이 마카 잠을 설쳤는데 알고 보이 새끼고래가 지 에미 잡히간거로 알고 마 방파제 너머 꺼정 와서는 울었던기라.해상사업을 할거 같으믄 미신을 마이 믿어야했다. 영감 할무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음력 초이틀 날에는 절로 하나 맞춰놓고 거 기도하러 가는기라. 절도 쪼매난 절이재. 몬 잡을 거 같으믄 해나 부정타가 몬 잡았는가 싶아가 또 점바치한테 물으러 간다. 가믄 뭐가 걸리가 옛날 선조 뭐시 할배가 읃??잡술라고 한다카고 그라믄 또 굿을 한다. 온마리 고기에 삼실과 사고 떡하고 술받고 또 점바치가 용왕님 문어 좋아한다고 하믄 문어 한 마리 산다. 문어는 비싸그던. 비싸이까네 한 마리로 사믄 요 갖다놓고 빌고 조 갖다놓고 빌고 그랬다. 몇 십만 원썩 들았다. 그때만 해도 몇 십만 원이라카믄 돈이 마이 큰기라. 크고 말고재. 그란데 그래 굿을 하믄 놀랍기도 하재. 또 한 마리 잡아들루는 기라. 그 재미로 절에 가가는 죽을 똥 살 똥 영감 할매가 비는기지.큰 고래는 자주 몬 잡았다. 목선이니 큰 놈으로 만나믄 다부 달라빼야지. 꽁지로 툭 치믄 우야노. 50자 짜리는 높이가 사다리 놓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큰데 우예잡노. 새끼 서른다섯 자 짜리 만해도 이짝에 사람이 서믄 저짝 사람이 앤 보인다. 그 큰 놈이 바닷물 속으로 쑤-욱 드가뿌믄 배가 우예 되겠노 말이다. 어쩌다 쪼매 큰 놈을 잡으므는 창 같은 거로 배때기를 푹 찔라뿔고 기계로 돌리가 창에 주사기맨즈로 에어를 여야 한다. 에어를 여믄 바람이 붕-드가 고래가 안 뜨나. 그라믄 인자 끌고 오는 기 쪼매 수월해 지는기라. 고기는 좀 상치. 그라이 싸게 끄집고 와가 싸게 헤쳐야 한다. 부두에 올리자마자 이양 끊카야 한다. 고래가 떠억 들아오믄 경매 보는 사람들이 지다리고 있다가 하마 이기는 몇 자고 요기 살키 을마 나온다카는걸 다 알고 있다 말이지. 그래 인자 경매를 옇는데 단가가 을매다 을매다 하믄 막바로 해부하는 사람들이 마 지다란 칼로 이 만치씩 뜯아내는기라.고것도 나날이 해 놓으이 끊가내믄 딱딱 맞다. 껍데기는 발라내고 살키만 끍아내??기 희안타. 그래가 얼음 쑤그리옇고 그라고 인자 경매보던 사람들도 집에 냉장고 채려놓고 대가리 꽁지 같은 거는 인부들로 시키가 즈들 집에도 실아다 놓는기라. 고래는 말이지 한개도 버릴 기 읎?? 아주먼네들이 고래 뼈가치 가주고 불로 활활 때가주고 고기를 삶아가 썩썩 상그라가 파는데 경주, 포항 사람들이 사러온다. 그라믄 마 을매다 을매다 값으로 매기고 그럼 몇 관 줄라카믄 팔고 했재. 돈 있는 사람들으는 살키를 사 묵지만도 읎??사람들으는 그랄 수 있나. 그란데 희안한 거는 제각끔 입맛이 천지차인기라. 어떤 사람으는 전신에 지름치인 껍디기를 참말로 잘 묵는다. 내 아는 울산 포장 하나는 살키는 절대로 안 묵고 내 지름치만 사 묵는더라. 하루에 한 분썩 그 지름치로 안 묵으믄 몬 산다카드라.살키 떡떡 비가고 남는 껍질로 크다란 솥에다 옇고 불로 땔거 같으므는 지름이 둥둥 뜬다. 그라믄 그 지름을 도람에 붓는기라. 그 지름은 비누공장에서 사러오지. 지름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난 찌끄라지는 또 우야노 하믄 그 또한 묵는 사람이 있는기라. 그기 바로 고래과잔기라. 우리 클 때 저 대보 사는 사람들으는 살로 서 말을 몬 묵고 시집왔다 캤다. 살은 읎??고작 보리뿐이었재. 논이 있는 거는 골짝인데 논이 있는 사람들으는 그때만 해도 부자인기라. 전신에 밭이고 고구마 심쿠고 보리 심쿠고 살밥으는 제사 지낼 때나 구경했지. 우리 마누래가 대보 사람인데 지금도 누가 보리밥 묵으러 가자카믄 막바로 돌아앉는다. 그마이 몬 살던 시절에 지금처럼 뭐시 묵을게 뭐이 있었겠노. 눈깔사탕도 돈이 있어야 사 묵고 엿가락도 냄비나 고무신이 있어야 사 묵지. 그라이 고래과자는 최고였다. 하모 최고품이지. 그눔을 질겅질겅 씹아 묵으므는 쫄깃쫄깃한 기 고소했는기라.

2011-04-18

포항TP 입주기업 탐방<7> (주)알씨씨

전 세계가 CO2 절감을 통해 녹색성장을 표방하면서 국내 저탄소·녹색성장을 위한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산업분야의 온실가스 감축 및 에너지 절약을 통해 국내 탄소시장의 형성 및 기반구축으로 정부의 녹색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알씨씨(대표 문승재)를 살펴봤다. ◇ ㈜알씨씨 설립배경㈜알씨씨(대표 문승재·www.rcc-posco.co.kr)는 지난 1994년 3월 기후변화협약이 발효된 지 10여년이 2003년 8월 포스코 사내 벤처로 출발했다. ㈜알씨씨는 포스코의 친환경·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철강, 전력, 시멘트, 석유화학 등의 산업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 및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다양한 활동은 물론 기술 개발에 노력을 경주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내 탄소시장의 형성 및 기반 구축을 위한 노력을 통해 포스코에서의 사내 벤처로 탄생했다. ㈜알씨씨는 2005년 12월 법인 설립 후 에너지절약 전문기업(ESCO), 벤처기업 인증, 소프트웨어 사업, ISO14001 취득 등 환경컨설팅사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해 녹색 성장 산업의 중심에 있다. 현재 ㈜알씨씨는 포항 테크노파크에 본사를 두고 서울과 울산, 광양에 사무소를 운영 중이며 인도네시아 등 해외 현지법인 사무소를 개설할 계획이다.◇ ㈜알씨씨 사업영역㈜알씨씨는 에너지 절약 및 기후변화 대응 컨설팅 전문기업으로 지자체 및 기업을 대상으로 `기후변화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이라는 국제적 합의를 이행과 나아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절한 대응 방법을 적기에 도출하고 그에 따른 기술과 기법을 제공하고 있다. ㈜알씨씨는 기업체가 기후변화협약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온실가스 배출량 평가 및 잠재량 분석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CDM사업 및 온실가스 감축사업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생태산업단지 구축과 연계한 공정 진단 및 에너지 절감을 위한 설비 구축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등 컨설팅을 통해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 사용 방안을 수립·제시하는 21세기 `녹색성장 산업`의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산업체 기후변화 대응 시나리오 개발㈜알씨씨는 실제 산업현장에서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체들의 경영진 또는 실무자들이 적기에 기후변화 대응 및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벌일 수 있는 기후변화 대응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시나리오 대응기술은 약 6년여 동안에 걸쳐 부설 연구소에서 개발하고 보완시킴으로서 지자체나 산업체가 기후변화협약 및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종합 컨설팅의 산출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술은 국제 기후변화협약 동향 및 국내 온실가스 감축 법규, 탄소세 등 직간접적인 규제, CDM사업 등 여러가지 상황들을 고려한 시나리오 설정, 시나리오별 온실가스 감축잠재량 평가 및 비용편익 분석 등의 분석, 시나리오별 우선순위 설정 및 보고서 작성 등이 가능하게 된다. 기업체들의 기후변화 대응이 단순한 에너지절약활동에 국한하지 않고 Carbon Management를 고려해 전략적 접근에 의해 우선순위별 개선활동으로 온실가스 저감 및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이 기술의 개발 및 지속적인 개선노력을 통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온실가스 인벤토리 시스템 구축,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이행, 국내 온실가스 감축사업 및 CDM 사업 관리,온실가스 감축량 평가 등 다양한 형태로 산업체 뿐만 아니라 지자체, 건물분야 등에서도 보다 용이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국내 온실가스 감축사업 및 CDM사업기후변화 대응 및 녹색성장을 위한 실질적인 활동 중의 하나가 온실가스를 줄여 나가는 일이다. 기업체가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방향설정과 함께 실제 줄인 온실가스를 정부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회사는 에너지절약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매우 높은 기업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포스코 광양소수력 발전 CDM사업(2008년)을 UNFCCC에 등록하는 등 방대한 양의 국내 온실가스 감축사업 및 CDM사업에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알씨씨는 6건의 *CDM(청정개발체제)사업을 UN에 등록했고 2011년 현재 7건의 국내 사업과 3건의 해외 사업이 PDD(Project Design Document)작성과 DOE(Designated Operational Entity)의 타당성 검토 단계에 있다. 등록된 사업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제품생산에 사용되고 버려지는 물을 활용해 600kW(300kWⅹ2)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 국가계통망으로 공급하는 CDM사업을 2008년 7월 UN 등록 시작으로, 2009년 2월 서부발전의 삼랑진 태양광 사업, 2009년 5월 유러스 에너지의 태기산 풍력사업과 2010년 6월 서남 태양광 사업, 2010년 10월 수자원공사의 소수력IV사업, 2010년 11월 서부발전의 태안 소수력 사업을 UN등록 완료했다. 등록을 완료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외에 메탄회피 및 회수, 에너지 효율향상, 폐가스 회수 등 다양한 분야의 CDM사업이 UN등록을 위해 추진 중에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해외에서의 CDM사업 발굴 및 추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및 온실가스 감축활동에 대한 진전이 늦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능력 향상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CDM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개발체제): 선진국가의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 개발도상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발생된 감축실적을 CERs(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이란 형태로 발급받아 이를 자국의 감축의무 이행에 사용 할 수 있도록 감축 의무 이행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한 것.

2011-04-15

인터뷰-박진현 푸드사이언스 대표

“식품·신약·화장품 개발 위해“해양바이오분야 도전 계획” - ㈜푸드사이언스 경영 목표는△㈜푸드사이언스는 포스텍 창업보육센터에서 설립돼 포항테크노파크에서 제품상용화를 이룬 기업이다. 그 외에 지역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의 푸드사이언스가 있다고 생각된다. 많은 지원에 대해서 기업인으로서 보답하고 싶고, 그러한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가장 현실적인 기여는 매출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나아가서 지역 바이오산업의 역량을 높여 지역발전에 기여할 계획이다.- 사업·경영 철학은.△`수적천석(水滴穿石: 천정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가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의 초심으로 사업을 시작하던, 경영을 하던, 기업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세일즈맨이던,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마인드로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미래 비전 및 향후 사업 계획.△복어 뿐만 아니라 해양유래 생물, 즉 해양바이오 분야에 도전할 계획이다. 바다는 지표면의 70%이상을 구성하고 있으며, 전체 지구생명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해양생명체의 상업적 이용은 1%도 지나지 않고 특히 3면이 바다를 접한 우리나라는 해양바이오 분야의 연구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양바이오 기술을 통해 식품, 신약 뿐만아니라 화장품 등으로도 사업을 확대 할 계획이다.- 지역 바이오 산업 발전 제언은.△대부분의 벤처기업, 특히 바이오벤처기업은 풍부한 자금과 우수한 인력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다행이도 우리 지역에는 포항테크노파크 바이오지원센터, 생명공학연구센터 등 지원기관이 있어 연구장비를 수월하게 이용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우수한 인력이 많이 있는 것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된다. 지역에서 바이오 산업이 발전하려면 인력과 장비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친목부터 시작해서 공동으로 연구개발, 지식공유 등이 활성화 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기업이 필요한데, 향후 푸드사이언스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경영시 어려운점 및 정부/지자체 건의 사항은.△신약개발은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바 이를 지탱하기 위한 단기적인 비즈니스 모델(기능성 식품·화장품, 시약)이 필요로 하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최근에 들어 바이오분야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며 중소벤처기업은 연구개발과정에서 얻어지는 중간 부산물을 사업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하고 바이오기업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장기 비즈니스 모델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4-15

⑫ 서애 류성룡과 충효당

임진왜란이 종전을 향해 막바지로 치닫던 1598년 11월19일, 7년여 전쟁 기간 동안 만 5년을 영의정으로 봉직하면서 전쟁을 진두지휘하였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파직되었다. 공교롭게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 정읍현감으로 있다가 서애에 의해 전라좌수사로 발탁되어 전쟁 기간 내내 조국의 바다를 지켜냈던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일본군 전함 300여척을 격파하고 전쟁에 종지부를 찍으며 전사한 바로 그날이었다.서애의 파직은 정치적 반대파의 탄핵이 빌미였다. 종전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반대파들은 서애가 국정을 책임지는 영의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일본과의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잘못 이끌었다고 비판하였다. 서애의 공을 거론하며 이들의 의견을 묵살하였던 선조도 거듭된 탄핵에 마침내 굴복하여 파직을 단행하고, 이어 12월6일에는 모든 관작까지 삭탈하는 추가 조치를 취하였다. 삭탈관작의 수모를 당한 서애는 지친 몸을 이끌고 이듬해 2월 고향 하회마을로 낙향하였다. 이후 반대 여론이 가라앉자 선조는 1601년 서애의 관작을 복구시키고, 전쟁중의 공훈을 기려 1603년에 풍원부원군, 1604년에 호성공신에 연이어 임명하였다.하지만 서애는 그때마다 직위를 사양하였고 공신상을 그리기 위해 선조가 보낸 화공도 돌려보냈다. 대신 서애가 고향 하회에 은거하면서 심혈을 기울인 일은 임진왜란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 기록에서 서애는 승전보다 패전의 경험을 더 담아내려 노력하였고, 특히 지휘자들의 잘잘못을 소상히 기술하는 데 공을 들였다. 기록의 목적이 승전의 헹가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 하지 않게 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서애는 저술의 이름도 `지난 일을 반성하고 경계시켜 뒷날의 우환을 예방하기 위한 기록`이라는 뜻에서 `징비록(懲毖錄)`이라고 명명하였다.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서애의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임진왜란에 대한 가장 완벽한 기록인 국보 132호 `징비록`이 탄생하는 배경이다.서애 류성룡은 1542년 의성 사촌마을에 있는 외가에서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류중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명한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이 형이다. 유년시절을 하회에서 주로 보낸 서애는 21세 되던 해 아버지의 권유로 도산으로 퇴계 이황을 찾아가 문하에 들었다. 당시 서애를 가르쳤던 퇴계는 그의 사람됨을 보고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고 평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후 1566년 25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랐는데, 1570년에는 율곡 이이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의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사가독서는 조선시대에 관료에게 특별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하던 제도로서, 뛰어난 관료에게만 내리는 특전이었다. 이후 홍문관수찬, 이조정랑, 도승지, 경상감사, 대사헌 등을 거쳐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두 해 전인 1590년에 우의정에 올랐고 그 이듬해에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형조정랑으로 있던 권율을 의주목사로 천거하고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발탁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592년 4월 운명의 전쟁인 임진왜란을 맞는다.1592년 4월14일 부산포 공격을 시발로 조선에 발을 디딘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선조는 4월30일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3일만인 5월2일 개성에 도착한 후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영의정인 이산해를 파직하고 서애를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서애 역시 좌의정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으므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조정의 여론에 밀려 임명 당일 저녁 곧바로 파직하였다. 하지만 서애는 이에 개의치 않고 풍전등화에 직면한 나라를 구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전세가 계속 불리하게 전개되자 선조의 중국 망명을 거론하는 조정에 대해 어가가 한 발짝이라도 이 땅을 벗어나게 되면 조선은 더 이상 우리의 나라가 아니라며 반대한 것도 그이고, 냉철한 정세 판단을 토대로 임금의 피난지를 함경도가 아닌 평안도로 결정하여 결과적으로 선조를 무사하게 한 것도 그였으며,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며 구원병 파견을 성사시킨 것도 그였다.이와 같은 활약에 힘입어 1592년 12월에 평안도 도체찰사(都體察使)에 임명되었다. 비상시국에 중앙에서 지방에 파견하는 최고 군령권자가 된 것이다. 이어 충청, 전라, 경상 삼도 도체찰사를 역임한 서애는 1593년 10월 영의정에 다시 임명됨으로써 전쟁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1598년 11월19일 반대파의 탄핵으로 물러날 때까지 서애는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전쟁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이런 점에서 임진왜란은 곧 류성룡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서애는 이 과정을 통해 나라와 백성을 구함으로써 자신을 두고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고 평했던 스승 퇴계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늘이 내린 재상`으로서의 역할을 유감없이 수행해냈던 것이다.서애는 효성도 뛰어나 관직생활 틈틈이 노모를 봉양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겸암과 형제간 우대도 남달랐다. 서애가 평생 추구한 가치는 이처럼 가족과 나라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는 그가 죽음 얼마 앞두고 자손들에게 남겼다는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숲 속엔 새 소리 그치지 않고문 밖엔 쿵쿵 나무 찍는 소리죽고 사는 일 또한 자연의 이치이나평생 부끄러운 일 많아 한스럽네권하노니, 자손들아 반드시 삼갈지니충효 외에 힘 쏟을 일 따로 없음을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의 서애종택에 들어서면 사랑채 대청마루 위에 `충효당(忠孝堂)`이라는 당호가 예스러운 서체로 방문객을 맞으며 서애 선생의 그런 가르침을 오늘에 되새기게 한다. 젊어 벼슬에서 잠시 물러나 있을 때 학문을 닦던 원지정사와 징비록을 집필한 장소인 옥연정사 그리고 위패가 모셔져 있는 인근의 병산서원도 선생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현장들이다./박원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201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