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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50년 정치인생을 마감하고 서거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궤적에는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이 수놓아져 있다.김 전 대통령은 때로는 치밀한 논리로, 현안의 핵심을 찌르는 표현으로, 때로는 화려한 수사로 좌중을 압도한 달변가이자 뛰어난 대중연설가였다.군사정권 시절 그가 남긴 말들은 쉽사리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채 `옥중서신` 등을 통해 재야 및 운동권 인사들 사이에서 `조용히` 퍼져갔다.이후 사면·복권으로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온 87년 이후 쏟아진 거침없는 발언들은 그를 지탱해준 최대의 정치적 무기였다.“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현미경처럼 치밀하게 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봐야 한다” 등은 그가 생전에 즐겨 쓰던 문구들이다.“정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과도 같다”는 표현은 그가 몸담았던 한국 현대 정치사의 역동성을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정치권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92년 대선운동 과정에서는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이라는 감성적 수사로 표심을 자극했다.97년 `준비된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로 대권 도전 4수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햇볕정책`, `제2의 건국` 등으로 자신의 통치철학을 드러내기도 했다.김 전 대통령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언급해가며 강조하고자 하는 새로운 주제를 하나씩 추가해 나가는 `얼레(reel) 화법`을 구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연합뉴스

2009-08-19

반세기 정치역정… 한국 현대사 질곡 투영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후광(後廣)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이었다.“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그가 헤쳐나간 반세기 정치역정에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한 의지는 투옥과 연금, 망명의 고통을 딛고 마침내 인동초(人冬草)처럼 피어올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란 열매를 맺었다.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가 놓지 못했던 남북화해라는 화두는 미완의 유업으로 남았다.■섬소년에서 정치인의 길로김 전 대통령은 목포 앞바다에 솟아있는 섬, 하의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가 전답을 팔아 뒷바라지해 준 덕분으로 목포로 유학,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합격했다.졸업 후 강제징집을 피해 일본인이 운영하던 해운회사에 취직했다 해방 후 이 회사 관리인으로 사업수완을 발휘, 목포일보까지 경영하는 등 청년실업가로 성장했다.그는 해방공간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이 좌우익을 망라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좌익계열이 주도권을 잡자 환멸을 느껴 탈퇴했다. 그러나 건준에 몸을 담은 이력은 그를 평생 `색깔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 멍에였다.54년 실시된 제3대 민의원 선거 때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쓴 잔을 마신 그는 56년 장 면 박사가 이끌던 민주당에 입당,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64년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 때에는 본회의장에서 5시간19분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연설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해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40대 기수론에서 6월 항쟁까지71년 첫 대선 도전에서 97년 4수 끝에 최고 통치권자에 오르기까지 36년간의 대권 도전사는 좌절과 재기의 반복이었다.67년 7대 총선에 당선된 뒤 그해 5월 한평생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원내총무 경선에서 첫 대결을 펼치지만 고배를 마셨다.그러나 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철승 의원의 막판 지원으로 YS를 누르고 이듬해 대선에 나섰으나 박정희 대통령에게 95만표차로 석패했다.그의 대권 도전은 야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도약한 계기가 됐지만 긴 가시밭길에 들어서게 만든 원인이 됐다. 박정희 정권이 정적으로 지목, 탄압을 본격화한 것이다.유신이 선포된 72년부터 87년 6.29 선언까지 17년의 시간은 납치와 망명, 투옥, 연금으로 점철된 암울했던 시기였다. 73년 일본 도쿄에서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납치돼 수장당할 뻔했으나 미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74년에는 명동성당에서 `3.1 민주 구국선언`을 주도했다가 3년간 복역한 뒤 가택연금을 당했다.79년 10.26 사태로 복권, 정치일선에 컴백했지만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다시 민주화의 꽃을 피우려던 그의 꿈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무산됐고,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후 군사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사형에서 무기, 무기에서 20년형으로 감형돼 죽음의 그림자에서 또 한 번 벗어났지만 82년말 미국으로 쓸쓸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양김 분열 후 정권교체까지그는 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YS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평민당을 창당해 출마했다. 당시 YS로 단일화될 경우 민주진영의 정권교체가 보다 유력시되는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끝내 권력욕 앞에서 갈라졌다.대선에서 노태우,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치면서 민주진영으로부터 지역주의에 기댄 야권 분열의 책임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김 전 대통령 스스로도 훗날 “당시 내가 후보직을 사퇴하는 게 옳았다”고 회고했다.92년 12월 대선에서 YS에게 패해 대권 3수에 실패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홀연히 영국 유학을 떠났다. 곡절 많은 정치인생에 마침표가 찍히는 듯한 순간이었다.93년 7월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통일운동에 전념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다 95년 7월18일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호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정치전면에 복귀했다. 우여곡절 끝에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정권의 최대 실세였던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와 손잡았고, `DJP 공조`는 외환위기를 맞아 `준비된 대통령` 탄생을 갈망하는 국민 여론을 타고 정권교체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DJ정부 출범… 불운했던 말년국민의 정부 5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선 승리의 감격을 누릴 여유도 없이 당선 다음날부터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김대중 정부는 5년 동안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분단의 벽을 허물어 남북화해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집권세력 내부의 갈등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견제,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측근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YS처럼 조기 레임덕에 빠지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퇴임후 그는 외부활동과 정치적 발언을 통해 건재를 과시했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사태가 터지자 “북미관계가 안 돼서 진전을 하지 못한 것”이라며 햇볕정책 책임론을 반박했고, 2007년 대선 전에는 여당의 대통합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그의 `한마디`는 퇴임 후에도 민주당과 전통적 지지층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관계가 위기에 빠졌다고 비판하면서 민주개혁세력의 연대를 주문하는 등 왕성한 정치활동 때문에 현실 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는 등 대정부 투쟁의 선봉에서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연합뉴스

2009-08-19

“큰별 졌다”… 전국 애도 물결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서거하자 전국 각지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3김 정치`를 직접 경험했던 노·장년층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는 물론 영·호남 등 지역을 막론하고 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부산공동어시장에서 일하는 박수만(60)씨는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고 민주화에 헌신했던 분이 갑자기 서거했다고 하니 무척 울적하다”고 슬퍼했다.소상공인 이형진(56·경기 안양)씨는 “이 시대의 국가원로를 잃어 너무 슬프다. 노 전대통령에 이어 이번에도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을 계획”이라며 “기업을 하면서 `김대중 정권`의 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대화와 민족공존의 정신을 높이 산다”고 평가했다.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취약지`였던 영남 지역도 안타까움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울산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최성길(47)씨는 “여러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지면서도 매번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결국 대통령이 된 분”이라며 “이런 강한 의지는 국가원수로서 큰 귀감”이라고 말했다.부산에서 지난 20여년간 `영원한 DJ맨`의 길을 걸어온 정오규(48) 전 통합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도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빛을 밝혔다”면서 “정치적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김태일 영남대 정치행정대학장은 “김 전 대통령은 지역발전을 위해 밀라노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에 대해 끊임없이 애정을 표현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지역간 편견이 없어지고 국민이 진정으로 손잡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희망했다.민주화와 남북대화 등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을 평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이광호(56) 부산 민주공원 관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냄으로써 남북의 화해와 협력,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말했다.경기 안산 탈북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의 최경숙(45·여) 총무는 “`우리집`은 김 전 대통령 재임 때인 2001년 남북을 잇자는 의미에서 `다리공동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면서 “남북화합과 평화통일에 애쓴 거목이 쓰러져 안타깝다”고 슬퍼했다.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전남 지역의 슬픔은 남달랐다.광주 지역 대표적 재야 원로인 조비오(71) 신부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더 해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면서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발전, 남북교류와 통일의 기틀을 닦은 `평화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김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창인 박홍수(87)씨는 “고난의 세월을 이겨온 강한 친구라 병마를 떨치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다니 허망하기 그지없다”고 흐느꼈다.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 1년 남짓 살았던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동 3통 권영숙(56·여) 통장은 “대통령과 한동네에서 살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면서 “좀 더 오래 사시길 바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남기헌(50)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으로 인해 한국이 세계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연합뉴스

2009-08-19

양동 민속마을을 다녀와서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을 알리는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햇살을 시원스레 적셔주는 단비였다. 커다란 두 개의 산이 앞뒤로 지켜주는 양동마을은 현대문명의 손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우리의 멋을 한껏 살린 마을이다. 양동마을은 초가집과 기와집의 단조로움이 어우러져 마을을 아늑하게 느껴지게 했다. 아름다운 이 마을이 오늘 우리가 봉사하게 될 장소이다. 사무장님께서 양동마을에 대한 깊은 역사를 말씀해 주셨다. 내가 고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장님의 말씀은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내가 양동마을의 매력 속으로 깊게 스며들어갈 때 쯤 어느덧 비는 그쳤다. 우리는 각 조마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마을의 정화를 위해 양동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이 마을에 처음 오시는 거라서 길을 많이 잃기도 했지만 덕분에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 까지 청소 할 수 있었다. 청소를 하면서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조상들의 자취와 전통이 깃들어진 우리고유의 문화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 봉사를 하면서 바라본 양동 민속마을은 옛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고유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줄줄이 늘어선 초가집과 기와집, 그리고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논과 밭이 마을의 정겨움을 연출해 냈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마을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손 씨 집안의 종가집이다. 양동민속마을의 꽃이라고 할 만큼 대표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종가집의 수백 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전통적 운율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건물구조는 복잡했고 구경거리도 많이 있었다. 특히나 부엌이 인상 깊었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공간이 따로 있었고 너무 폐쇄적인 구조였던 것 같았다. 음식저장 공간도 마치 감옥 같았다. 매일 교과서에서만 보던 내용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많이 신기했다. 곳곳마다 사진을 찍고 구경을 했다. 또한 쓰레기를 줍는 환경미화활동도 잊지 않고 열심히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다행히도 쓰레기가 많이 없어서 봉사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잘 보존 되어있는 마을 덕분에 봉사를 하면서 많은 역사를 탐험 할 수 있어서 봉사하는 마음 뿐만 아니라 역사지식도 많이 얻은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의 보수적인 면에서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조상들의 지혜에 감동받았다. 조상의 얼에 한껏 빠지기도 했고, 아름다운 마을의 정경에 적셔 들기도 했다. 두 번째로 오는 양동마을, 아침부터 촉촉한 단비가 내려 봉사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양동마을에서 느껴지는 고묘한 한국미에 심취 한 것 같다.

2009-08-19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18일 오후 1시43분 다발성 장기부전으로제15대 대통령이면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께 향년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연세세브란스병원 측은 이날 폐렴 증세로 37일째 입원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밝혔다.병원 측은 김 전 대통령이 1시35분경 심장이 정지했고,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40분께 다시 심장이 뛰었으나 3분후인 43분께 서거했다고 전했다.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 증세가 호전되면서 같은달 22일 일반병실로 옮기기도 했었다.그러나 바로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로 치료를 받아왔다.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씨 등이 있다.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박창일 연세대학교 의료원장은 2시 35분께 기자회견을 열고 김 전 대통령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박지원 의원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서거했다”고 밝혔다.이어 박 의원은 “쾌유를 빈 국민과 의료진에 감사한다”면서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특1호실에 임시 빈소를 마련해 이희호 여사 등 가족과 정부와 잘 조율해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모시겠다”고 말했다.박 의원은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자 “여사님께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이어 박창일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오늘 오후 1시43분 서거하셨다”면서 “7월13일 폐렴으로 입원하셨지만 마지막에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서 심장이 멎으셨고 급성호흡곤란 증후군과 폐색전증 등을 이겨내지 못하셨다”고 말했다.박 원장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원인은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폐색전증, 다발성 장기부전증 등의 증세”라고 밝힌 뒤 임종 직전 “사실상 심폐소생술이 의미없는 단계였기 때문에 심폐소생술 등의 조치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09-08-19

“우주강국 코리아” 발사준비 끝

나로호 발사대로 이동·19일 오후 카운트다운… 성공 기대감 고조 “우주강국 코리아! 힘찬 발걸음을 떼다.” 우리 땅에서 우리 힘으로 쏘아올릴 `나로호(KSLV-1)`의 힘찬 발걸음이 시작됐다. 17일 오전 8시15분 약한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 조립동 문이 활짝 열리자 나로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바탕에 자랑스러운 태극 마크와 `대한민국 나로`를 몸에 새긴 나로호는 느리지만 힘차게 첫 걸음마를 했다. 진동을 방지하는 특수이동차량 2대에 실린 나로호는 무인 조종으로 조립동에서 1.5km 떨어진 발사대로 이동했다. 조립동을 나와 1시간30여분만에 발사대에 도착한 나로호는 연료공급선 및 시스템 운용을 위한 최종 점검을 거쳐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역사적인 발사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게 된다. 이날 나로우주센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낀 가운데 약한 안개비가 내려 연구진들을 긴장시키기도 했지만 나로호가 이동할 때에는 성공적인 발사를 예고하듯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치기도 했다. 나로호가 발사대로 이동해 사실상 발사 준비에 들어간 가운데 나로우주센터 주변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나로우주센터 앞 봉래면 진입도로에는 경찰 차량이 나와 검문 준비에 들어갔으며 나로우주센터 입구는 군·경 통제선이 설치돼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육상은 물론, 나로우주센터 앞 해상과 상공도 일반 선박과 항공기의 출입이 제한되는 등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나로호 발사가 임박해옴에 따라 발사 성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나로우주센터 인근 봉래면과 고흥읍내 곳곳에는 `성공발사`를 기원하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휴가철을 맞아 우주센터를 찾는 관람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로우주센터를 찾은 문선옥(37·여)씨는 “아이들과 우주과학관을 보러 왔는데 구경을 못해서 아쉽다”며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돼 우리나라가 우주강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리나(10)양은 “TV에서만 보던 나로호를 모형이지만 직접 보니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며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로호는 19일 오후 4시40분에서 6시20분 사이에 발사되며 지상과의 첫 교신은 발사된 지 12~13시간 지나 이뤄질 전망이다./연합뉴스

2009-08-18

이환진 포항시 경제통상과장

“포항, 글로벌 도시 새롭게 자리매김 기대”18~21일 한·중·일·러 `환동해 거점 도시회의`영일만항 홍보·도시야경 관광 해상투어 마케팅 18일부터 21일까지 포항에서 한·중·일·러 4개국 11개 도시가 참가한 가운데 열리는`제15회 환동해거점도시회의`는 극동 아시아 역내에서 포항을 글로벌 도시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는 8일 개항한 포항영일만항 홍보 및 마케팅에도 매우 시의적절한 호재로 꼽히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10월 월드옥타 한국대회 개최에 이어 중요한 국제행사를 잇달아 치르고 있는 이환진사진과장 등 포항시 경제통상과 실무진의 활동이 돋보이고 있다. -이번 행사의 의의는?▲포항이 그 동안 지향해온 글로벌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국제적인 위상이 먼저 구비돼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환동해는 물론 세계로 열려 있는 국제 교역항인 영일만항의 개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도시에 눈을 그려넣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국내에서 자축하는 데서 나아가 이번 행사는 극동 아시아 국가들에 영일만항과 포항을 홍보하고 항만 세일즈를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대회를 준비하며 어려웠던 점은?▲참가국 섭외 면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시가 경제 위기로 인해 대회 직전까지 참가 여부가 불투명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에도 러시아는 일본 개최 도시인 요나고시에서 참가 경비 전액을 부담한 바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특히 지난해 부터 포항시가 영일만항 정기항로 개설을 위해 공을 들인 곳인 만큼 포항시의 실무진이 참가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핫산 등 러시아 내 대체 참가도시도 물색했다. 다행히 국제행사에 반드시 필요한 컨벤션 문제는 필로스호텔이 개관해 무난히 해결됐다. 지난해 10월 개최한 월드옥타대회 당시 호텔이 없어 북부해수욕장의 모텔을 모두 동원했던 상황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번 대회 일정과 맞추기 위해 호텔 측과 보수 및 재개관 일정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협의를 진행해 왔다.-외국인 행사이므로 문화적 차이도 고려해야 할 텐데.▲중요한 문제이다. 다행히 조선족들이 다수 거주하는 훈춘, 도문, 연길 등 중국의 도시와는 언어적 어려움이 별로 없다. 음식문화도 마찬가지인데 일본도 이점에서 수월한 편이다. 행사 일정 중 오찬에 포항물회도 내놓을 계획이다. -역대 대회와 비교해 포항시가 이번에 내놓을 행사 기획 포인트는 무엇인지.▲국제 정상회의처럼 공식만찬 자리에서 단체장들에게 전통한복을 착용케 할 계획이다. 포항야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행정선 2대를 이용해 형산강에서 두호동에 이르는 해상투어도 준비하고 있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09-08-18

일흔네번째 안부 - 우리는 한 배를 탔다

집을 떠나온 지 아흐레째, 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바다 호를 타고 울릉도로 가고 있습니다. 물결에 조금씩 기우뚱거리는 책상에 앉아 그대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 스탠드 불빛 아래 작은 시간은 자정을 조금 지나고 있네요. 오후 10시25분 마산 항을 출발, 오색 불빛 찬란한 마창대교 아래를 유유히 지나 두 시간 남짓 만에 멀리 부산 동두말등대를 만났습니다. 바다에서 보는 부산의 밤 풍경에 괜스레 마음 벅차고 물결에 환하게 길을 낸 달이 너무나 고운 탓에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의 고단함이 스르르 지워지네요. 그간의 일정을 돌아보니 참 다난했습니다. 1박이 예정되었던 백령도에선 다행히 해병대 극기 훈련은 마쳤지만 태풍의 기운이 몰고 오는 파고 때문에 장병들과의 시간을 뒤로하고 부랴부랴 다시 배에 올라야 했지요. 다시 긴 시간 흘러 평택항으로 돌아와 장대비 쏟아지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목포에 닿았구요. 목포해양대학교 새누리호에서 잠을 자고는 다음날은 해남으로 여수로 발걸음 옮기며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뜨겁게 스며들었지요. 손을 잡고 일을 돕고 특산물을 찾아다니며 영상에 담아 섬을 지나면 또 섬인 시간을 흘렀네요. 제주에서는 애광원을 찾아 지체장애 원생들과 삼성중공업을 찾았을 때는 우리나라 조선업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푸릇푸릇한 청년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 속에서 아, 저에게도 새로운 힘이 솟아 나는 걸 느꼈습니다. 함께 가고 싶었지요. 함께 흐르고 싶었지요. 당당하게 모든 보폭을 맞추며 뜨겁고 아득한 여름을 지나고 싶었습니다. 104명의 대학생과 보도진 그리고 도중에 합류하였다 내리는 응원자들. 왼쪽 가슴에 새겨진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로고를 새기고 또 새기며 지칠수록 손을 내밀고 잡으며 함께 가는 해양영토대장정. 이제 내일 오후엔 울릉도에 닿아 해안 순례를 하고 모레는 성인봉에 올랐다가 독도로 들어 갈 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내 나라 바다를 느끼고 해양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그에 대한 방책을 논의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배를 타고 희망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2009-08-18

`나로호` 카운트다운… `우주 강국` 희망 쏜다

드디어,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가 오는 19일 전남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다. 이번 나로호 발사는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우리 발사체`로 쏘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나로호 발사를 사흘 앞둔 16일 “현재 나로호는 1, 2단 로켓이 완전 조립되고 과학기술위성 2호도 탑재된 상태”라며 “나로호는 발사 54시간 전인 17일 발사대로 이동해 이렉터를 이용해 수직으로 세워져 발사대에 고정된 뒤 발사 하루 전인 18일 최종 리허설이 실시된다”고 밝혔다. 나로호의 발사시간은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약 2시간 이내로 잡혀 있다고 교과부는 전했다. 교과부는 발사를 위한 최종 준비 상황과 발사 당일의 기상조건에 따라 발사가 연기될 수 있음을 고려해 오는 26일까지를 발사예비일로 설정했다.`이제는 우주기술 자립`한국형발사체 KSLV-II 개발 시동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가 오는 19일 발사되고 나면 같은 모델로 내년 4월 나로우주센터에서 두번째 시험발사된다. 이후 정부는 항공우주 기술자립에 초점을 맞춘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본격화한다. 먼저, 우주기술 개발의 자립화를 위해 핵심기술 확보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우주개발 사업을 통해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기술을 자립화할 수 있도록 위성체와 발사체 추진 일정 및 전략을 재조정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또한 대학의 기초기술연구 지원을 확대해 원천기초 연구능력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오는 2016년까지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기간에 총 3조6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특히 나로호에 이어 한국형발사체(KSLV-II) 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 이는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저궤도에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 개발 및 발사를 말하며 오는 2018년까지 10년간 진행될 예정이다./연합뉴스

2009-08-17

운명의 19일 16시 40분… 미리보는 발사 순간

온 국민이 기대감에 부풀어 숨죽이며 지켜볼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의 실제 발사진행 과정을 미리 보면 어떨까. 일단 나로호의 발사 시점은 오는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2시간 이내로 잡혀 있으며 당일 기상조건 등을 감안해 구체적 발사 시점이 정해질 예정이다. 발사를 위해서는 먼저 발사 예정일로부터 최소한 사흘 전(D-3)에는 발사체 조립과 관련한 모든 작업이 완료된다. 1단 액체 엔진과 2단 킥모터(고체모터)로 구성된 2단형 발사체인 나로호는 이때까지 고체모터동에서 상단부조립, 위성시험동에서 위성조립, 발사체 종합조립동에서 1, 2단 발사체 조립 등의 과정을 각각 거치게 된다. 모든 조립이 완료된 발사체는 발사 54시간 전에 트랜스포터를 이용해 발사대까지 이송된다. 이동은 수평으로 실시하며 이후 이렉터를 이용해 나로호를 수직으로 세워 발사대에 고정시키게 된다. 나로호가 발사대에 설치되고 나면 발사를 위해 나로호의 연료와 전기 계통을 중점적으로 점검하는 등 모든 부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발사 하루전(D-1) 나로호가 장착된 상태에서 최종 리허설을 실시하게 된다. 이어 발사 약 4시간 전부터는 발사대 기계와 공급장비를 연결시켜 1단 발사체에 쓰일 연료(등유)와 산화제(액체산소) 주입, 고압가스 충전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는데, 주입과 충전 개시가 결정되면 모든 발사준비는 사실상 끝나게 된다. 이어 발사 예정 시간 18분전 실제 발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이후 발사 예정시간까지 모든 기기가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 기상 상태와 주변 환경 역시 발사에 이상이 없을 경우, 발사 15분 전부터 자동 발사기능이 작동하면서 최종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이륙과 음속돌파, 페어링 분리, 1단 분리, 위성 분리까지 자동화 시스템하에서 `비행 시퀀스`가 진행된다. 발사 준비 및 발사는 발사지휘센터(MDC)와 발사체 통제센터(LCC)가 있는 발사통제동(MCC)에 모든 상황을 총괄 지휘한다. 발사 후 200여초 뒤 위성을 감싸고 있던 페어링이 떨어져 나가고 발사체 1단이 분리된다. 이후 고도 200㎞쯤에서 2단 킥모터(고체연료 엔진)가 연료를 다 태우고 난 뒤 100여초 후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가 분리된다. 이 시점에서 나로호 발사의 성공 여부는 확인된다. 과학기술위성와 지상국(대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과의 첫 교신은 발사 후 약 13시간 뒤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연합뉴스

2009-08-17

공원식 경북도 낙동강 살리기 사업추진본부장

“홍수·가뭄·물부족·물오염 한꺼번에 해결” 영주댐·보현댐·안동~임하댐 연결 용수 10억t 확보9월중 보상 착수·10월 부지매입 완료후 12월 착공생명이 깨어나는 강, 낙동강 등 4대강이 살면 새로운 대한민국시대가 열린다.고 박정희 대통령이 녹화사업으로 대한민국을 일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치수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경북도는 전국 최초로 낙동강 살리기 사업 추진본부를 출범시키는 등 발빠른 대처를 하고 있다.공원식(경북도 정무부지사)사업추진본부장을 만났다.-4대강 살리기, 특히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주요내용은?▲4대강 살리기의 한 축인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경제와 환경을 모두 살리는 한국형 녹색뉴딜사업`으로 즉, 낙동강 살리기는 홍수와 가뭄, 물 부족, 물 오염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하천복원 프로젝트`,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고 생태환경을 조성하는 `환경복원 프로젝트`,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발전 프로젝트`, 새로운 여가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발전 프로젝트`의 4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먼저 보 설치(8개소), 중소규모댐(영주댐, 보현댐, 안동~임하댐 연결) 건설, 농업용 저수지 증고(19개소)로 용수 10억t 가량을 확보할 수 있는 물 확보사업입니다.둘째 하도·환경정비(259㎞), 배수문·양배수장(77개소), 도류제(2개소) 설치, 교량보호공(29개소) 설치 등으로 홍수조절용량을 6억t을 증대하는 사업입니다.마지막으로 제방 등을 활용한 상하류를 연결하는 자전거도로(315㎞) 건설 등 강중심의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복합공간창출사업입니다. -사업은 어떻게 추진하고 기대효과는?▲하천부지 보상, 준설토 처리 등과 관련한 민원에 적절히 대응하고 이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환경평가, 문화재 조사 등 사업추진 과정 역시 법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사업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수질 오염, 사고 발생, 취수 및 정수대책, 생태계 훼손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관리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10년간 홍수 등으로 발생한 재해 피해액이 6조8천억원, 복구비가 11조원 투자됐습니다. 이번 낙동강 살리기 사업으로 홍수와 재해를 근원적으로 막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낙동강 살리기는 경북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획기적 전기(轉機)가 될 것입니다. 현실적인 경제측면에서 보면 위기에 처한 지역건설업을 구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낙동강 살리기의 전체 사업비는 9조 8천억으로 이 가운데 경북지역 사업비는 5조 4천억원 정도입니다.-사업기간과 예산규모 등은?▲사업기간은 낙동강살리기 본사업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며, 댐과 저수지는 2012년까지 완료합니다. 예산규모는 4대강 살리기 사업비중 본사업비는 16조 9천억원으로 낙동강 살리기사업비는 9조 8천억원이며, 그 중 경북도가 차지하는 사업비는 5조 4천억원입니다. 그리고 지류하천, 수질개선사업 등 직접연계사업 5조3천억원과 부처별 연계사업은 별도입니다.-하천공사, 보상 등 분야별 향후계획은?▲하천공사는 두가지로 나누어 국가발주 턴키공사는 현재 설계용역중으로 10월초 발주하고 경북도가 추진하는 일반공사는 9월말 설계를 완료. 10월 입찰공고를 하고 11월중 착공합니다.보상은 1단계 물건기본조사가 완료하고 8월 공람공고를 거쳐 9월중으로 보상에 착수하겠다. 농경지 리모델링은 8월중으로 리모델링 대상지를 조사완료하고, 10월 실시설계 및 부지매입을 완료, 12월 착공할 계획입니다. /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09-08-17

지구 저궤도 진입하는 `나로호` 어떻게 구성됐나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는 100㎏급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를 지구 저궤도(지상 300~1천500㎞)에 진입시키는 발사체다. 1단 액체 엔진과 2단 킥모터(고체모터)로 구성된 2단형 발사체로 1단은 러시아와 공동으로 개발했으며, 2단은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했다. 나로호의 총중량은 140t 규모이며, 총길이와 직경은 각각 33m와 2.9m다. 나로호 발사체 1단부(하단) 액체추진기관은 연료로 등유(케로신)를, 산화제로 액체산소(LOX)를 각각 사용한다. 터보펌프 방식의 추진제 공급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추력은 170t급이다. 액체산소 산화제를 싣고가는 이유는 우주발사체가 공기가 희박한 대기권 밖을 비행해 나가면서 등유를 태우는 데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액체산소는 130t의 무게가 나가는 추진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전체 로켓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액체 엔진 로켓은 액체상태의 연료 및 산화제를 연소실로 각각 분사한 후 혼합시켜 연소시키며 추력을 얻는다. 구조가 비교적 복잡하며 소요되는 구성 부품이 많으나 추진력이 크기 때문에 대형 발사체의 주엔진으로 많이 사용한다. 추력 8t급의 발사체 2단부(상단) 고체추진기관은 고체 킥모터 1기를 사용하고 있다. 고체 연료 로켓은 연료와 산화제가 혼합된 고체 형태의 추진제를 사용하고 부품 수가 적고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제작성이 좋아 대형 발사체의 보조추력 장치로 사용된다. 발사작업이 비교적 간단하고 신속성을 갖춰 군사용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공기 저항이 심한 지구 상공 40~70㎞까지는 추진력이 강한 액체로켓을 사용하고, 이어 고체로켓을 점화시켜 소형 과학기술위성 2호를 타원 궤도에 올리게 되는 것이다. 나로호에 실려 발사되는 과학기술위성 2호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광주과학기술원 등이 공동 개발했다. 2년 동안 경사각 80도로 지구 저궤도를 돌게 될 과학기술위성 2호는 프레임 타입의 위성구조체다. 이 위성의 크기는 615x673x898㎜이고 무게는 99.4kg급 소형위성이다. 또 이 위성은 복합소재 태양전지판, 이중머리 별추적기, 디지털 태양센서, 펄스형 플라즈마 추력기, 소형위성용 탑재컴퓨터, X-밴드 송신기 등 다양한 핵심 위성기술과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 주탑재체와 레이저반사경 부탑재체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는 물체에서 방사되는 마이크로파 대역의 자연 에너지(잡음신호)를 초광대역, 저잡음, 고감도 수신기를 이용해 물체의 밝기온도를 검출하는 주 시스템이다. 이는 우주용 2개 주파수를 통해 마이크로파 대역에서의 지구의 밝기온도를 측정, 지구의 수증기 양, 구름 속의 물 함유량 등을 산출함으로써 기상관측을 수행한다./연합뉴스

2009-08-17

한국 첫 우주발사체 성공 확률은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발사가 오는 19일로 확정되면서 이제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50년대 이래 1990년대까지 세계 곳곳에서 이뤄진 우주발사체 발사의 통계를 보면 전체 4천379건의 발사 시도가 있었으며 발사 성공률은 91.1%로 집계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처음으로 과학기술위성 2호를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키는 나로호 발사와 마찬가지로 해당국에서 첫번째로 위성을 발사했을 때의 성공률은 27.2%에 불과한 실정이다. 역대 자국 땅에서 자력으로 위성을 쏘아 올린 우주클럽(Space Club) 9개국 가운데서도 첫 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옛 소련), 프랑스, 이스라엘 3개국 정도다. 이번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나로호는 러시아 측이 1단 로켓, 우리가 2단 로켓 개발을 맡는 등 한국-러시아 공동으로 개발, 완료됐으며 이번에 첫 시험발사 단계에 와있다. 이와 관련해 나로호의 핵심적인 기술인 1단 로켓을 개발한 러시아의 발사 성공률은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는 195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통계치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우주발사체 발사 시도(2천770건) 및 가장 높은 발사 성공률(93.5%)을 자랑한다.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 러시아의 절반 정도인 1천316건의 우주발사체 발사 시도가 있었고 성공률은 87.5%다. 나라호 개발 및 발사 수행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조광래 발사체연구본부장은 16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나로호 발사 성공확률과 관련해 “발사 시스템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발사를 위한 최종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며 “여러 시험을 거쳤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09-08-17

“실패는 없다” 나로호 막바지 준비

“우주강국 코리아를 향한 힘찬 발걸음...실패는 없다!”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 발사를 사흘 앞둔 16일 한국 우주 역사를 새로 쓸 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나로우주센터는 발사를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 기술로 만든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를 우주로 쏘아 올릴 발사체의 조립은 이달 초 이미 마쳤고 현재는 조립동에서 최종 점검을 진행 중이다. `나로호`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발사 성공에 대한 기대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패는 없다”..최종 점검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는 `나로호` 상단부와 위성에 전력을 공급할 배터리를 충전 중이며 17일 발사체 이동을 위한 막바지 점검이 한창이다. 150여명의 연구원들은 휴일도 잊은 채 막바지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나로호` 발사일이 지난달 30일에서 이달 11일로 연기됐다가 다시 19일로 조정되면서 발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연구원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발사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는 발사체를 발사대로 옮기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으며 날씨 등 큰 변수가 없으면 17일 발사대로 이동할 계획이다. 발사체는 17일 오전 조립동을 나와 1.5km 떨어진 발사대까지 진동을 방지하는 특수 이동차량 2대에 실려 옮겨진다. 나로우주센터 관계자는 “발사체 조립 등 사실상 발사를 위한 준비는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연구원 모두 만반의 준비를 마친 만큼 성공적으로 발사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발사 성공` 기대에 부푼 나로도광복절이자 휴일인 15일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에는 관람객 5천여명이 다녀갔다. 7월부터 휴가철을 맞아 우주과학관에는 평일에도 평균 1천여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가족단위로 우주과학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나로호` 모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가 하면 우주과학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발사 성공을 기원했다./연합뉴스

2009-08-17

김법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

“`의료메카` 첨복단지 조성 지금부터가 시작” 해외환자 유치·글로벌 협력 강화로 의료산업 선진화 주력화장품 산업·신약·국산의료기기 개발 등 RD사업 지원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 선정은 `저력있는 도시` 입증한 것경북 의성출신의 김법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최근 몇달동안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때문에 눈코 뜰새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대구 신서혁신도시와 충북 오송의 공동 선정으로 결론난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에 심사위원 8명을 선임했을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산하 출연연구기관장으로서 의견도 개진해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경북출신 기관장이란 이유로 애꿎은(?) 오해도 적지 않았지만, 김 원장은 “대구·경북이 지난 정부때 소외됐던 점을 부인할 수 없으며, 대구의 의료인프라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대구가 선정된 것은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동아일보에서 선정한 비뇨기과(비뇨기종양부문) 명의로 뽑히기도 한 김 원장을 만나 학창시절부터 최근의 보건산업진흥원 얘기까지 들어봤다.편집자주 -어릴 때 고향에서의 추억이나 별명 등 학창시절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고향은 경북 의성인데 초등학교때 대구로 이사와서 삼덕초등학교를 다녔고, 경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학창시절 별명은 법완이란 이름이 특이해 비슷한 어감이었는지 `뽀빠이`란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 시절에는 등산을 즐겼고, 운동으로는 태권도를 했습니다. 등산도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정도로 좋아해서 백두대간 산행도 여러 번 했습니다. 한국산악회 모임에도 35년째 참여하고 있죠. 태권도는 대학교 2학년때까지 했습니다. (“몇단까지 땄느냐”는 질문에 그는 “몇단이라고 밝힐 것까지 없고 3단 이상”이라고만 했다). 요즘 취미는 자전거타기와 주말농장 가꾸기인데 주말농장은 벌써 8년째 참여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길로 들어 선 계기가 있었는 지 궁금합니다. ▲4형제 가운데 제일 큰 형님만 사업을 하고, 바로 위인 보완형이 경북대 내과교수로 있고, 아래인 동생 정완은 최근까지 치대교수로 있다가 개원한다고 퇴직했습니다. 또 집안에 사촌이내에만 10명이 넘는다고 하면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형제의 아들이 모두 9명인데 그 중에 6명이 의사가 됐으니 2대에 걸쳐 의사들이 많이 난 셈입니다. 제가 비뇨기과 의사가 된 것은 집안 분위기상 자연스럽게 의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서 됐다고 해야겠죠. 누가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요. (그의 부친은 경북대에서 역사과 교수로 재직했던 김영하씨로 지난 2007년 작고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어떤 기관인지 소개하신다면.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서 RD의 70%를 관장하는 지원기관이며, 보건복지부 정책의 78%를 제공하는 보건복지부 출연 연구기관입니다. 의료나 화장품 등 국내 보건산업 육성을 위해 10년전 설립된 기구로 최근에는 해외 환자유치사업과 글로벌협력프로젝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취임한 지 이제 1년남짓인데 취임후 가장 주력한 사업이나 현안은 어떤 것입니까. ▲보건산업진흥원의 목적인 의료산업 선진화를 위한 것이니 만큼 해외환자 유치사업과 공공의료 활동, RD자금 배가 등에 주력해 왔습니다. 특히 해외환자 유치는 지난해 1만7천명에서 올해는 8만명으로 급증했고, 경제효과도 지난해 2천500억원에서 올해는 1조3천억원에 늘었습니다. 앞으로 2012년까지 20만명을 돌파해 20조원의 경제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처럼 해외환자 유치실적이 급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외국인환자 유치와 관련한 의료법이 개정된 것이 해외환자 유치의 물꼬를 텄고, 그 다음으로는 해외에 우리나라 의료수준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거점센터를 늘려나간 데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보건산업진흥원에서는 이미 미국과 싱가포르, 북경에 유치센터를 설립했고, 조만간 러시아와 몽골에도 설립할 계획입니다. -화장품 산업에 대한 지원도 보건산업진흥원에서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화장품산업에 대해서 국가가 지원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프랑스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화장품산업에 대해 국가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데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보건복지부도 화장품 산업지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저도 화장품 산업 육성을 위한 세부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수출을 위해서는 수출지원센터를 통해 여러나라의 수출입 인허가 정보를 수집해 화장품업계에 제공하고 있고, RD지원을 위해서 예산지원을 크게 늘릴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예산이 많이 지원되지 않아 RD자금으로 60억원이 지원됐는데 올해는 200억원 정도로 늘리려고 합니다. 특히 대구에서는 화장품에 관심을 가진 한의사와 약사가 공동으로 한약재를 베이스로 한 화장품을 개발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런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특화된 화장품 산업에 대해 지원할 계획입니다. -보건산업진흥원이 거둔 성과를 소개한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지난 95년 128억원으로 시작된 RD지원 사업이 지난 2007년까지 13년간 모두 9천261억원이 투자됐고, 지난해에는 1천527억원이 투자됐습니다. 주요 성과로는 발기부전치료제인 자이데나, B형간염 치료제인 레보비르 등 국산신약 9건이 개발됐고, 신약기술 수출 13건, 초음파영상진단기, 셍체계측기기 등 국산의료기기 상품 출시 92건 등이 있습니다. 사업초기에는 기초연구 중심의 지원을 해서 논문중심의 성과를 거뒀으나, 지난 2002년이후에는 신약개발, 의료기기 개발 등에 지원을 집중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에서도 우리 RD사업이 2년 연속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이번에 대구와 오송이 공동 유치한 첨단의료복합단지에 대해 총평을 하신다면. ▲직접 심사위원도 선임하고, 의견을 낸 입장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다만 대구·경북이 지난 15년동안 소외돼왔는 데도 불구하고, 역시 저력있는 도시라는 것이 입증됐다고 봅니다. 의료인프라와 RD, 의료기기와 관련한 전자공학과 등의 인력도 있는데다 자동차부품산업이나 섬유계통이 의료용으로 개발되고 있는 게 점수를 더 받은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지역에 비해 100년의 전통을 가진 경북대와 계명대 병원이 있다는 점도 가점요인이 됐구요. 전체적으로 대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2등에 비해서 점수차가 상당폭 벌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균형개발 항목이 들어가 대구가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지역균형개발 항목에서는 다른 지역보다도 점수를 낮게 받았습니다. 인구 100만이상의 대도시가 인근에 없어야 하는데 대구만 해도 인구 250만명이기 때문에 지역균형개발 항목에서 점수를 더 받을 수는 없지요. 충북 오송만 해도 이 항목에서는 대구보다 점수를 더 받았죠. -공동 유치후 예산배분이나 민간투자 유치 등에서 여러가지 걱정이 많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어쨌든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한 만큼 제대로 계획을 세워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단지로 만들어내는데 총력을 다해야 겠죠. 단지 유치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대구·경북지역민들도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함께 힘을 모아야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성공적으로 조성될 것으로 봅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김법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김법완 원장은 1952년 1월20일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대구 삼덕초등학교와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 의과대에서 3년간 조교수를 지냈으며, 지난 1986년 경북대 의대 교수로 부임해 경북대 기획부처장과 대구 경북 테크노파크 추진단장을 지냈고, 경북대 제2캠퍼스 추진단장과 경북대병원 기획조정실장, 학생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암학회 및 대한비뇨기과학회 이사로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을 맡고 있다.

2009-08-17

박창원 민속학자

지난 2003년 봄, 아직도 할무당 신당에 제사를 모시는지 궁굼해 이 마을에 갔더니 신당은 건재했고 신당을 찾는 사람은 극히 적지만 제사는 명맥을 잇고 있었지요. 이 신당이 허물어지거나 할무당 신앙이 소멸되기 전에 실태조사라도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백계당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로부터 끔찍이 산신을 섬겨왔고 어느 산에든 산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아직도 산에 시신을 매장하거나 조상 묘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산신제 부터 지내는 게 순서처럼 돼 있지요. 산신 중에서도 이름 난 산신이 더러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하여 다스리다가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하고, 석탈해왕이 죽어 토함산 산신이 되었다 하며,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부인은 선도산 성모(聖母)가 되었다 합니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3리 산령전 마을에는 `할무당 할매`산신을 모신 신당이 있다. 산령전 마을에는 동해안 여느 마을에서 처럼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동제당이 있는데 이 마을엔 동제당 외에 백계당(白啓堂)이란 현판이 붙은 산신당이 있다. 여기에 지리산 산신 성모처럼 돌로 조각한 산신을 모셔 놓고 있다. 특히 할무당이란 이름을 가진 이곳 산신을 위해 인근 14개 마을 사람들이 계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민속학자로부터 주목할 만한 일이다. 향토 민속학자 박창원(53·사진)는 최근 이곳에 대한 연구를 한 `내연산 산령전 마을 백계당(白啓堂)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동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민간신앙이라고 여겼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21년 가량이 흐른 후에서야 논문을 펴내게 됐다. “지난 2003년 봄, 아직도 할무당 신당에 제사를 모시는지 궁굼해 이 마을에 갔더니 신당은 건재했고 신당을 찾는 사람은 극히 적지만 제사는 명맥을 잇고 있었지요. 이 신당이 허물어지거나 할무당 신앙이 소멸되기 전에 실태조사라도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백계당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이 논문은 내연산 산신 할무당을 모신 신당인 백계당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이를 위해 현지 조사 자료와 관련 문헌을 통해 신당의 역사, 신화와 신의 영험, 제의의 진행과정 등에 대해 밝히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백계당은 포항의 명산인 내연산 산신을 모신 신당이고 포항지역의 그 어떤 신당보다도 그 연원이 오래고 역사적 기록 자료가 풍부하기 때문에 민속적, 문화적 가치가 놓은 포항의 정신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또한 의 모습을 형상화한 석상이 보존되고 있고, 신의 내력담이 담긴 신화가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이 영검하다고 믿고 있다. 또한 신앙의 범위가 넓으며, 계 조직에 의해 운영되어 온 포항의 대표적인 산신 숭봉처이다. 하지만 마땅히 보존되어야 할 민속자료이지만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 산간오지인 신령전 마을의 인구가 급감해 언제 마을이 없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며 현재 백계당을 유지, 운영하고 있는 주체도 고령화 되어 제의가 언제 중단될 지 모르는 형편에 놓여 있어 문화재로 지정해 백계당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로부터 끔찍이 산신을 섬겨왔고 어느 산에든 산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아직도 산에 시신을 매장하거나 조상 묘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산신제 부터 지내는 게 순서처럼 돼 있지요. 산신 중에서도 이름 난 산신이 더러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하여 다스리다가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하고, 석탈해왕이 죽어 토함산 산신이 되었다 하며,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부인은 선도산 성모(聖母)가 되었다 합니다.” 현지조사를 생명으로 하는 민속학 전공자인 그에 의하면 백계당은 그 역사나 유래, 자료의 충실도, 주변 지역에 끼친 문화적 영향, 계에 의해 운영돼온 민간 신앙으로서의 학술적 가치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문화재로서의 손색이 없다. 따라서 신당과 신상 등을 빠른 시일내에 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간신앙을 연구한 지 올해로 25년째다. “어촌이 있는 해안 지역은 내륙지방에 비해 민간신앙이 강하게 전승되는 곳인데, 역설적이긴 하지만 포항의 전통문화 중 조사·연구가 가장 안 돼 있는 영역이 민간신앙이라는 점, 그리고 연구 대상이 무궁무진하다는 점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 민간신앙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영역이어서 재미가 있습니다.” 1988년에 이 신당을 답사한 이후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으고 연구를 해 온 끝에 이제야 논문을 완성하게 됐다는 그는 백계당 외에도 민간신앙과 관련된 것 중 재미있는 신화를 전하고 있거나 연구 자료가 되는 것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마을 앞 해변 도로에 설치된 장기면 영암3리 골목할매 제당, 거대한 고인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계면 문성리 제당, 천제단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죽장면 두마리 제당, 거북신을 모시고 있는 청하면 덕성리 제당 같은 것은 보존할 필요가 있다. 보존 가치가 있는 동제당은 행정기관에서 지원을 해서라도 보존해야 합니다.” 하지만 포항지역에서는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타 지역이나 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해신당 제당은 특특한 신앙행위로 인해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돼 있습니다. 민간신앙도 충분히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지요.” 그는 민속학자로, 교육자로 살고 있다. “민속학자나 교육자 중 어떤 일이 더 좋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자는 나의 `생업`이고, 민속학은 여가를 이용한 `부업`이라 할 만한데, 민속학은 하고 싶은 일이니 이게 재미는 더 있다고 본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카메라 가방 메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민속조사를 하고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는 지난 2006년에는 경북매일신문에 `포항의 역사이야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포항의 역사 이야기`라는 타이틀이지만 저는 한 걸음 비켜나 `포항의 민속 이야기`를 썼습니다. 내연산 할무당 할매, 장기 영암3리 골목할매, 두마리 천제단 같은 민간신앙 이야기, 그리고 월월이청청, 죽장지게상여놀이, 구진앉은줄다리기, 모포줄다리기 같은 민속놀이 이야기를 썼지요. 민속에 대한 종전의 연구 성과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됐다고 봅니다.” 민속신앙을 연구하는 데에는 동대해문화연구소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4년부터 동대해문화연구소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소위 명풍수 성지와 포항, `내연산 폭포 주변 암벽에 새겨진 인명 연구`, `흥해의 기인 권달삼 전설 연구`, `내연산 산령전 마을 백계당 연구` 등 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위원 신분이니 부지런히 연구하고 논문 쓰는 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수필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수필가로서 포항이 낳은 위대한 수필가 한흑구 선생을 닮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고령 출신인 그는 영남대 국문과와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을 졸업했다. 1982년 9월부터 포항시 청하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2005년 9월부터 교감으로 있다. 한동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교실, 선린대 플라워디자인과, 포항여성문화회관 문화유산해설사, 포항KYC 역사문화길라잡이, 포항생명의숲 숲해설사, 포항문예아카데미 수필 등 대학과 사회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하거나 출강도 했다. 1992년 `포항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4월 `수필문학`추천 완료됐고, 포항문인협회, 경북문인협회, 보리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민속학회 회원, 월곡고전문학연구회 회원, 동대해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포항시정신문화발전연구위원, 포항시사편찬위원으로 민속학과 향토사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영일군사`, `포항시사`(1999) 편찬위원으로서 집필에 참여했으며 `포항지역 구전민요`, `아름다운 포항 유서깊은 마을`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들판을 산책하면서, 또는 산에 오르면서 자연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청정자유인`이다. “들판에는 많은 풀과 꽃이 있고, 산에는 또 많은 나무와 동물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사색에 잠길 때 삶의 의욕이 샘솟습니다.” 평소 취미도 여가가 생기면 곧잘 시골 구석구석으로 민속조사를 나가는 그는 “특이한 민속을 발견했을 때 희열을 느끼고 현장에서 조사한 자료를 정리하고, 관련 문헌을 뒤져 논문을 쓴다고 몰입할 때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오래 전에 읽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최근엔 강한 인상으로 남습니다. 흥미진진하기도 하려니와 민족을 사랑하는 선생의 뜨거운 열정이 가슴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최근엔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을 읽었는데 완당 선생의 치열한 삶과 예술혼이 폐부 깊숙이 들어옵니다.” 지금은 포항시사편찬위원으로 올해 시승격 60주년기념사업으로 발간 예정인 `포항시사`집필에 매진하고 있다는 그. 포항문인협회 및 경북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보리수필문학회 회원으로서 좋은 작품 쓰는 일도 그 앞에 놓인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계당 산신당을 빠른 시일내에 경북도 지방문화재로 등록 신청하고 지금까지 조사·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포항의 민속을 주제로 한 단행본을 출간하는 일은 시간을 늦출 수 없다.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청하중학교가 최근에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전원학교`로 지정받았는데 앞으로 교과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포항 유일의 전원학교로서의 성공모델을 창출하고 싶어하는 `욕심많은 이 시대의 참일꾼`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8-14

`킬리만자로`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어느 날, 형사가 깡패가 되어 강원도 주문진에 나타난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승진을 코앞에 두고 정직을 먹은 악질형사 해식. 동생의 유골을 들고 고향인 주문진으로 내려간 해식은 그를 쌍둥이 동생 해철로 오해하는 깡패들을 만난다.그리고 원치 않게 그들 사이의 이권다툼에 말려든다. 한때 같은 패거리이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 원수들처럼 싸우는 것일까? 죽은 동생 해철은 대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해식은 점점 그들의 관계가 궁금해지고, 그들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다. 해식은 잘하면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사건을 하나 건질 것만 같다.그는 해철임을 부정하지 않고 번개 패거리와 어울리기 시작한다. 한물간 깡패 번개는 그런 해식을 해철로 오해하며 끔찍히 챙기고 보살핀다. 그 과정에서 해식은 동생의 과거와 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는데….이 영화에서 주조를 이루는 색깔은 붉은 빛과 검은 빛, 흰 빛이다.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붉은 색이 있다. 피로 상징되는 붉은 색은 죽음과 분리를 의미한다. 쌍둥이는 분리되고, 피를 나눈 형제(쌍둥이 박신양)와 마음을 나눈 형제(안성기)는 죽음을 맞이 한다.검은색은 등장 인물들의 의상으로 나타나는데, 번개패와 해식의 암울한 미래를 의미한다. 그리고 흰 색, 안식과 희망을 상징하는 이 색은 번개가 죽음을 맞이하는 눈이다. `킬리만자로`의 최고봉에 있는 만년설을 대신한다.박신양은 연기력에 비해 과대 평가를 받아 왔지만 이 영화에서 만큼은 노력의 흔적이 역력해 섣불리 연기 못하는 배우라고 말하기 꺼려진다. 대사는 절제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느끼는 비애감과 분노를 과잉해 보여준다.물론 과잉된 연기는 결코 좋은 연기라고 말할 수 없지만 `폼`잡는 영화에서는 필요악같은 존재이기도 하다.하지만 안성기가 힘을 조절하는 능력을 터득한 탓이 박신양의 과잉 이미지는 안성기의 억제하는 이미지에 의해 조절된다.이 영화로 대종상 남우 조연상을 수상한 정은표는 작은 체구에서 발하는 깡다구 있는 연기로 주목을 끈다. 첫 감독작으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낸 오승욱 감독에게는 차기작을 충분히 기대해 봄직하다.깡패 영화의 틀 안에 자학과 회한, 방황과 속죄의 몸짓들로 꽉 채워놓은 울림이 깊은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비극적 결말이 인상적이다.오승욱 감독은 `킬리만자로`에 대해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한 관객의 감상을 꼽는다. 그는 “힘들었을 때 영화를 보고, 나 혼자만 이 세상에서 힘든 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삶의 희망마저 등을 돌린 막판 인생들이 수두룩하게 몰려나와 피바다를 뒹구는 이 우울한 영화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소통으로서의 영화 `킬리만자로`는 이미 충분히 구원받았는지도 모른다.

2009-08-14

류미경 포철서초 교감 예정자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배양에 최선”포스코교육재단 창립 이후 첫 여성관리자“활발한 공동연구 `토론의 장` 성장시킬 터” 포스코교육재단이 여성관리자 리더십이 학교경쟁력 강화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류미경 포철동초 교사를 재단 창립이후 최초로 교감으로 선임했다.오는 9월1일자로 포철서초 교감으로 부임하는 류미경 교사는 첫 여성관리자로서 재단의 관심과 기대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평소 주창해온 자기주도적 학습과 상담을 통한 인성교육이 널리 확산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류교사는 30여년 동안 일선 교사로 생활해 오면서 아이들의 생활및 인성교육과 창의성 교육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해 왔으며 이를 위해 부모교육 및 상담등 모두 9개의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남다른 열성이 이번에 교감으로 선임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류미경 교감예정자를 만나 소감 및 각오, 30여년 교직생활동안 기억에 남는일, 교육관, 첫 여성 관리자로서의 자세, 부임후 역점추진 사업 등에 대해 들어본다.-사상 첫 여교감으로 선임된 소감은.▲기쁜 마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진작 출범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늦은감이 있다. 활발한 공동연구 토론의 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첫 여성리더자로 선임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부족한 점이 많지만 경청하는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되고 그래야만 함께 나갈수 있기 때문이다.-다른 여교사들의 롤모델로서 제2의 여교감 탄생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여자라고 해서 직장에서 장점을 살리는 것은 좋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보호를 받는 등 여린마음을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들의 리더가 필요한 만큼 섬세함 등 여성특유의 장점으로 관심갖고 옳은 길을 간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30여년 교직생활동안 기억에 가장 남는 일화는.▲지난 2003년 6학년 담임당시 반에서 1등하는 아이가 있었다. 성격이 활달하고 공부도 잘해 교사들로부터 평판이 좋을뿐만 아니라 문제아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않았다. 그러나 막상 담임을 맡고보니 다른아이를 왕따시키는 가해자였다. 꾸준히 관찰한 결과 가정에서 아버지의 폭력이 있었고 도벽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하지만 이 아이의 문제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및 사회의 책임이고 주변 환경 때문이다. 꾸준한 상담을 통해 바른 인성을 되찾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게 됐으며 잘 성장해준 일이 기억에 남는다.-교감 부임후 가장 주안점을 두고 싶은 것은.▲기본적으로 베풀고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펴야 되겠지만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적 학습력을 심어주고 바른 인성을 갖도록 노력하겠다. 요즘 학생들은 단순 암기공부를 하고 있다. 학부모가 학생들에게 암묵적으로 보여줄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학습모델인데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교육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기주도적 학습력을 갖도록 하기위해 학부모들이 변해야 한다. 학부모가 변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할 계획이다./권종락기자 kwonjr@kbmaeil.com

2009-08-14

박인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

지난 1년간 20여건 투자유치 협의가 활발히 진행첨복단지 유치 신서혁신지구 `자족형 도시`로 조성 지난 1년간 20여건 투자유치 협의가 활발히 진행첨복단지 유치 신서혁신지구 `자족형 도시`로 조성“오는 9월까지 현재 진행중인 투자유치연구용역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11개 사업지별로 주된 투자유치 타겟국가와 유치기업 목록을 정리해 금년 하반기에 독일 등 유럽(9월), 일본(10월), 아시아(11월) 등 현장중심의 투자유치활동에 나설 계획입니다.”박인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이 12일 출범 1주년을 앞두고 구역청의 향후 계획을 이 같이 밝혔다. 박청장은 “올해 2월 FORCA(주한외국기업협회), 3월 KOTRA, 독일 하이델베르그 생명과학클러스터,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 8월 세계의 대표적인 테크노폴리스인 프랑스 소피아앙티폴리스와 MOU를 체결했다”며 그 동안의 성과를 밝히고 “하반기에는 중국 중관촌 등 세계적 RD클러스터와 교류협력을 강화해 투자유치가 조기에 가시화되도록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의 중점 투자유치 분야는.▲DGFEZ는 `글로벌 지식창조형 경제자유구역`을 비전으로 중점 투자유치분야로 지역이 지니고 있는 강점인 IT융·복합산업을 비롯해 첨단수송 부품·소재산업, Clean Tech산업(그린에너지산업), 지식기반 서비스산업 등 `4개 글로벌 비즈니스 분야`를 중심으로 11개 사업지별로 차별화된 개발 및 투자유치 방안에 따라 투자유치에 나설 계획이며 이에 다른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투자유치 활동의 성과는.▲DGFEZ가 지난 1년간 발로 뛰어왔던 11개 사업지에 대한 투자유치노력의 결과로 20여건의 투자유치협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경기도에 본사를 둔 태양광소재 생산기업의 이전협의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며 미국 D대 에너지정책환경대학원 대구캠퍼스 유치를 위해 경북대 등과 실무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또 대구가톨릭대와 대구한의대가 수성의료지구에 첨단 양한방 협진RD센터를 건립하기로 협약을 체결했고 미국 M대학 의과대학과 W대 간호대학, 미국 S대학원 및 호주자본과 연계한 상업시설 유치 등이 협의중이다. 영천첨단부품산업지구는 국내자동차부품관련 기업인 M, K, S 기업이 입주신청을 했고 미국의 기업인 D, J 등 기업들이 문의를 하고 있으며 자전거 집적화단지는 일본의 S기업과 대만의 G기업, 미국의 T기업, 독일의 H기업등이 입주를 문의하고 있는 등 유치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천하이테크파크지구는 경북임베디드혁신기술센터, 전통천연염색산업화연구소 입주가 확정된 상태이고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상공회의소와 구체적인 외국투자기업자를 컨택하고 있는 중이다. 구미디지털산업지구에는 일본의 S사, 중국의 F사와 투자유치에 대한 협의를 진행중에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 예정지인 신서혁신도시지구는 어떻게 개발되나.▲정부가 5조6천억원이 투자되는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대구가 유치함에 따라 예정지인 신서혁신도시는 첨단의료기기 및 제약산업발전의 기반이 마련됐다. 따라서 신서혁신지구는 의료관련 기업을 산학연 클러스터부지에 유치할 계획이며 교육·학술관련 공공기관 이전, 대구과학고 설립, 주택 등 자족형 도시로 조성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인근 수성 의료지구는 해외 유명 병원과 관련 대학 및 연구소, 국제 교육기관 등의 투자유치를 추진 중이다. 신서혁신도시와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어 두 지구의 시너지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그린에너지 분야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나.▲그린에너지 분야는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3.75㎢)~대구테크노폴리스(7.27㎢)~구미디지털산업지구(6.24㎢)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로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사업과대구 솔라시티사업을 상호 연계해 태양광, 연료전지, 풍력 등 그린 에너지산업밸트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3.75㎢)는 포스텍,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과 협력을 통해 수소연료전지시범타운을 조성할 계획이고 대구테크노폴리스(7.27㎢)는 수도권 태양광소재 생산기업 이전협의가 마무리단계에 있으며 미국 D대 에너지정책환경대학원 대구캠퍼스 유치를 위해 경북대 등과 실무협의를 벌이고 있다. 구미디지털산업지구(6.24㎢)는 구미의 주력산업인 반도체TFT-LCD공정과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태양광, 휴대전원용 연료전지기업을 집중 유치할 계획이다. /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09-08-13

성공 배경에는 창의적인 부모가 있다

일본인들이 키우기를 좋아하는 물고기 가운데 `코이`라는 잉어가 있다. 코이는 작은 수족관에 넣어두면 3인치 정도 밖에 자라지 않지만, 조금 더 큰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6~10인치까지 자란다. 더욱 놀라운 점은 강물에 놓아두면 36~48인치까지도 자란다는 사실이다. 이 물고기 이야기를 우리의 창의성 교육에 비추어 보면 생각할 점이 많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키우는 자녀들은 코이와 같은 존재이다. 코이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인데, 수족관이 아닌 강물에서와 같이 코이가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자녀들을 부모의 품 안에서만 욕심으로 키우면 어항 속에서 자란 잉어처럼 좁은 안목을 가진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 반면 사랑으로 키우되 자기만이 아니라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면 연못에서 자란 잉어처럼 더 넓은 안목을 지닌 사람이 된다. 자녀들에게 강물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도전할 거리가 많고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이 되므로 창의적인 사람으로 자랄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모들은 강물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큰 물고기와 같은 인재로 키우기 보다는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욕심이 앞서서 어항 속 잉어에 만족하는 교육을 선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학습의 양은 많은데 질은 우수하지 못하다. 공교육 보다 사교육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고, 본질적인 내용 보다는 입학시험에 나올만한 것을 가려서 배우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질적인 교육으로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겠다는 교육목표 달성은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거창하게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한다고 한 교육목표를 비웃기라도 하듯 학교 현장에서는 창의와는 거리가 먼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창의적인 인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글로벌 기업에 제도권에서 교육을 받은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다시 1-2년을 재교육시켜야 회사일을 제대로 맡길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우리의 교육은 온실 안에서 화초를 키우듯 하여 온실 밖의 서바이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 것이다. 인구는 많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살 길은 오직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길 뿐인데 우리의 자녀들이 어항 속의 코이처럼 자라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은반 위의 요정`이라 불리는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가 쓴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에는 부모의 몫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녀의 노력에는 창의적인 자기만의 노우하우가 있었는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키워주었다. 김연아가 7세 무렵, 피겨스케이팅 비디오를 보고 동작을 따라 하자 소질이 있음을 파악하고 스케이트장으로 데려간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다. 둘째, 자녀에 대해 모든 면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김연아 어머니는 `나의 전공은 오직 연아`라고 할 정도로 자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딸의 심리 상태와 강점,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은 김 선수가 국내경기에서 성적이 저조하여 슬럼프에 빠졌다. 이때 국제대회에 데리고 나가서 새로운 목표를 갖도록 동기를 부여하였다. 이것은 김연아의 강한 승부 근성을 자극하려는 계획된 행동이었다. 셋째, 창의적인 교육방법을 알고 있었다. 김연아 선수에게는 칭찬을 할 때나 과제를 낼 때 창의적인 교수법이 적용되었다. 칭찬을 할 때 “내 딸 잘났다!”가 아니라 “네가 **하므로 너무 자랑스럽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잔소리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같은 내용의 말을 할 때는 표현을 다르게 하였다. 무엇을 시킬 때도 “이거 해!”가 아니라 “어느 것을 해 볼래?”라고 물어서 스스로 선택하게 하였다. 김연아의 어머니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잘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극을 주어야 해요.” 재능만으로는 결코 최고가 되지 못한다. 어항이 아니라 강물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부모가 있어야 한다. Create yourself!

2009-08-12

과학- 우주 이야기

*사람들은 언제부터 우주로 날아갔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은 모든 분야에서 서로 이기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두 나라는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먼저 우주 개발 시대를 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1957년 소련의 과학자들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의 공전 궤도에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1961년에는 우주 비행사를 태운 소련의 소형 우주선 보스트크 1호도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최초 우주인은 유리 가가린 1961년 4월12일,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1934~1968)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48분 동안 지구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그는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사람이 되었으며, “우주에서 본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고 말했다. ♠달 첫발은 닐 암스트롱 맨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사람은 누구일까? 1969년 7월16일,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1930년~), 에드윈 올드린(1930년~), 마이클 콜린스(1930년~)를 태운 아폴로 11호가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로 출발했다. 아폴로 11호는 4일 만에 달 궤도에 진입했고,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이글`이라 이름 붙여진 착륙선을 타고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그리고 1969년 7월20일,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암스트롱이 달 표면 위에 발을 내딛는 장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중계되었다. 그는 달에 첫발을 내려놓으면서 “이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입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우주에 간 최초 생명체는 `견공` 그렇다면 사람이 가장 먼저 우주에 나간 것일까? 아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발사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소식이 또 세상을 놀라게 했다.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시베리안스허스키종)를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 우주에 보낸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라이카는 우주에 가게 된 최초의 생명체로, 당시 세 살쯤이었다. 1957년 11월, 이 개를 우주에 보낸 후 우주 공간에 있을 때의 호흡, 체온 등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안타깝게도 라이카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우주에서 죽었지만, 이후 라이카를 통해 알게 된 정보는 생명체가 우주에서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생각 생각 ▶초등 1. 최초의 인공위성은 무엇인가요? 2. 최초 우주인은 어느 나라 누구인가요? 3.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4. 다음 낱말의 뜻을 찾아보세요. ·착륙: ·진입: ·도약: 5.우주개발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정리하고 토론해 보세요.

2009-08-12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을 다녀와서

박 지 은영일고 1영일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첫 봉사활동에 체험학습을 가게 되어 아쉬웠다. 체험학습을 갔지만 마냥 다른 곳으로 봉사활동을 갔던 다른 반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드디어 4월, 내가 기대하고 바랬던 봉사활동에 가게 되어 매우 기뻤다. 봉사활동을 가기 전 운동장에 1학년 전교생이 모였고,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으셨다. 봉사활동 가기 전 마냥 들떴던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시 한 번 내가 왜 봉사활동을 가는지에 대한 목적을 알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 중에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는 말씀이 가장 가슴이 와 닿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전승기념관에 도착하였을 때, 사뭇 나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생각해보았다. 전승기념관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왠지 평범한 기념관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승기념관에 들어선 후 2층 강당에 모두 모였다.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강당을 휙 둘러보았다. 무대 위 조명 쪽에는 플랭카드가 붙여져 있었고, 영일고를 맞이하는 글이 있었다. 그리고 밑에 조그만한 글씨로 ` 경주보훈지청 ` 이라는 문구를 보고 ` 아, 뭔가 문화재와 관련이 있거나 과거 역사랑 관련이 있는 곳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의 강의를 1시간 듣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제자리에 앉아 40분짜리 영상물을 보았다. 그 영상물을 보면서 아주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느끼게 되었다. 영상은 남북전쟁을 주제로 만들어졌는데, 같은 혈족을 지닌 한민족끼리 서로 피를 보면서 치열하게 전투하는 모습에 그만 울컥 하고 말았다. 반 친구들도 아마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군인들의 시체위에 또 죽어서 쌓여가는 수많은 시체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수많은 감정들을 지금도 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영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영상물을 보면서 가장 인상에 깊고 가슴이 찡했던 장면은 갓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태아가 조그마한 바구니 안 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피난길을 올라가던 아주머니와 그 아주머니의 자식이 손을 꼭 잡고 바구니 안을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던 장면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된다. 바구니 안의 아이는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힘들까? 내가 저 갓난 아이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전쟁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 같다. 대다수의 국민이 원치 않은 전쟁이였고, 한민족끼리 누가 이겼다 누가 패하였다를 가린다는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 전쟁통 속에서 희생되는 건 죄 없는 국민들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전승기념탑들을 보기위해 수백개의 계단들을 올랐다. 한 계단 두 계단 겨우겨우 오르고 나서 드디어 계단의 끝에 다다랐을 때, 굉장히 높은 탑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동 묵념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내려와 또 하나의 탑을 거쳐 드디어 전승기념관 청소를 하게 되었다. 난 처음부터 내가 청소할 구역을 못 찾아 헤매었지만 이내 내 구역에서 청소를 하였다. 아주 긴 빗자루로 쓱쓱 떨어진 많은 잔잔한 꽃들을 쓸고 또 쓸었다. 떨어진 꽃들이 한자리에 뭉텅이로 쌓이자 나는 그때 엄청나게 뿌듯했었다. 하지만 몇 분도 체 안돼서 부는 바람에 나무에서 또 꽃들이 떨어지고 난 그것을 또 쓸고 쓸었다. 그래도 난 너무 뿌듯하고 즐거운 마음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빗자루질을 열심히 했다. 전승기념관을 다녀온 후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난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우리나라 과거사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과거 우리나라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많은 백성들과 남한군들의 희생 정신때문이 아닐까? 옛 조상들의 희생과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조차 감사히 여기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스럽다. 이번 계기로 인해 정말 많은 반성과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2009-08-12

김범일 대구시장·김관용 경북도지사 인터뷰

10일 첨단의료복합단지 복수 유치에 성공한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지사는 “14개 시·도가 치열하게 경합한 끝에 이뤄낸 첨복 유치는 대구·경북의 저력을 보여준 쾌거인 동시에 앞으로 지역 발전에 커다란 동력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시·도지사는 이날 정부의 발표 직후 대구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첨복단지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내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총 5조6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38만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할 정부의 미래 핵심 프로젝트”라면서 “대구·경북은 세계적 첨복단지 조성을 위해 지역의 모든 역량을 모으고 다른 시·도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의 지도와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 일류의 의료산업단지로 육성해 미래 국가 성장동력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면서 “대구·경북은 유치과정에서 보여준 지역민의 일치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앞으로 영남권 신공항 건설, 국가과학산업단지 조성, 4세대 방사성가속기 건설 등을 반드시 성공시켜 대구·경북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획기적 계기로 삼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김 시장과 일문일답. -기대했던 단일 지정이 아닌 복수 지정에 대한 소감은. ▲분산 지정으로 두 지역 모두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면이 아쉬움으로 남으나 첨단의료복합단지 위원회와 정부의 결정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한다. 오송단지와 협력, 상생의 길을 열어 갈 것을 다짐하며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 두 지역이 역할과 기능을 달리하고 상호 경쟁을 통해 더욱더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구·경북에서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가 갖는 의미는. ▲대구·경북은 의료산업 육성의 기반이 잘 조성돼 첨단 의료기기 산업과 제약산업이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으며 IT·한방산업 등 기존에 지역에 구축된 연관산업의 동반 성장효과로 고용창출, 수출증대 등이 기대된다. 또 우수 연구인력과 의료연구개발기관의 유치로 지역 전체에 새롭고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고 막대한 RD 투자로 지역 대학 및 기업들도 경쟁력을 높이게 될 것이다. -향후 일정과 계획은. ▲당장 정부의 첨단의료기기개발센터 등 핵심 시설건립을 위한 부지를 토지개발공사로부터 사들여 정부에 제공해야 하고 재단설립 등 앞으로 갈 길이 바쁘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민간 투자 부문인 첨단임상시험센터와 벤처연구센터의 설계 및 조성, 입주를 확약한 기관 유치, 보건복지가족부와 협의를 통한 첨단의료복합단지 관련 계획 수립 등도 과제다. 빠른 시일내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전담조직을 신설해 행정적 지원을 할 계획이며 세부적인 일정은 관련 기관들과 협의해 시행해 나가겠다. /이현주기자 sun@kbmaeil.com

2009-08-11

지역 인사들 “대구·경북이 똘똘뭉쳐 해냈다”

10일 첨단의료복합단지의 복수 지정과 관련, 대구·경북지역 각계는 진한 아쉬움을 표하면서 지역의 신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국회의원 중 그동안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이한구(대구 수성갑) 의원은 이날 “첨복단지의 복수 지정은 전정권에서 그쪽(충북 오송)으로 가도록 이미 방향이 설정돼 있었던 것을 이번 정권 들어 지역 정·관·민의 합심된 힘으로 바꿔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날 대구시청에서 가진 시·도지사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심사 결과 대구가 오송 보다 많은 격차로 1위의 점수를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대구의 첨복 입지 여건이 객관적으로 가장 좋았다”면서 “다른 지역에서 대구·경북이 정치적 힘으로 첨복단지를 유치하려 한다고 잘못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정권에서 다른 지역에 첨복이 가도록 의도록적으로 돼 있던 것을 이번에 대구·경북에서 정치적 논리가 아닌 실력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이번 선정 준비를 위해 출향인사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대구·경북이 단합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라며 “대구를 건강산업도시로 만들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업의 성공에 지역민 모두가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도 “첨복 유치 과정에서 솔직히 정치적으로 부담이 많았다”고 털어놓은 뒤 “그동안 유치에 쏟은 힘 못지않게 앞으로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침체된 대구·경북의 분위기를 바꾸고 최고의 성장동력으로서 지역 발전을 견인할 수 있도록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며 “탈락보다야 낫겠지만 경쟁지역인 충북 오송이 수도권과 가까운 이점이 있는 만큼 대구는 앞으로 단지 조성의 성공을 위해 정부에 더 많은 요구를 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말했다. 조영래 경북대병원장은 “첨복단지는 산업체와 의료계가 손잡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며 “2곳이 선정되긴 했지만 대구는 의료와 교육,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지자체의 육성 의지가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라고 주문했다. /이현주기자 sun@kbmaeil.com

2009-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