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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김국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인재경영·조직변화 추구하는 인사관리 전문가” 한국지방재정공제회는 공익성 추구하는 공제사업의 메카옥외광고센터 개소 등 사업영역 다각화로 수익창출 모색조직내 독서클럽 활성화… 내부역량 향상 변화 이끌어내 경북 안동출신의 김국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은 행정자치부 조직정책과장, 인사국장, 의정관 등을 역임하며 인사관리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4월 전국지방자치단체의 재해복구나 손해배상 등 공제사업을 취급하는 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이인위본(以人爲本)과 무한히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조직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응형무궁(應形無窮)을 경영철학으로 공제회 발전에 힘쓰고 있다. 김 이사장을 만나 고향 안동에서의 학창시절과 공제회 운영에 대한 얘기 등을 들어봤다.편집자주 -고향인 안동에서 지낼 때 추억 가운데 기억나는 게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저는 안동에서 태어나서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지냈습니다. 전통 유림의 가풍에서 자라난 탓으로 항상 올바른 생각을 가꿔 나가고 책을 가까이 하는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특히 음악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합창단에서 활동했으며, 중학교 때는 학교 콩쿠르 대회에 반 대표로 나가서 입상한 경험도 있습니다.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100곡은 기본입니다. -고향을 떠나 대구서 고등학교를 다녔는 데, 에피소드가 있다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꿈에도 그리던 대구로 진학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안동에서는 대구만 해도 대도시로서 선망의 대상이 됐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하숙비가 너무 아깝기도 하고, 스스로 독립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학교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기간 동안 저의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큰 힘이 됐지요. 일주일에 한 번 김치랑 된장이랑 반찬이랑 가득가득 싸서 머리에 이고 대구역으로 오시는 정성에 부모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깊게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을 가졌습니다. -대학졸업하던 해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는 데, 서울서 대학을 다닐 때 공부는 어떻게 했습니까. ▲서울서 대학을 다닐때는 학교 분위기상 고시공부에 전념하다 보니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4학년 졸업 카니발 때 참석은 해야하는 데 여학생 파트너가 없어서 친구하고 둘이서 서울 명륜동 학교앞 찻집을 전전하면서 파트너 구하러 다닌 적도 있을 정도였죠. 학업의 성취는 1974년 당시 2학년 겨울방학 때 안동 근처 학가산 중턱에 있는 광흥사에서 공부하던 때입니다. 불과 두 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산사에서의 학업집중도는 어디에서도 가져 보지 못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저의 학교시절은 이렇게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공직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무엇보다 철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법대 행정학과에 진학해서는 당시 명문학교의 기준이 고시합격이라는 분위기가 있어서 먼저 공직에 진출한 선배들로 부터의 자극도 한 몫을 했죠. 같은 학우들 가운데 고시합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해서 일상의 환경이 모두가 고시공부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여건이었습니다. 그 이외의 동기라면 무엇보다도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집안의 전통과 가풍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행안부(옛날 총무처) 공무원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과 힘들었던 일은 어떤 것입니까. ▲공무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주로 정부 조직관리와 인사제도와 운영, 행정정보화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국장직으로는 정부 인사관리를 총괄하는 인사국장과 정부혁신 업무를 기획하는 혁신기획국장, 정부 행사와 의전업무를 총괄하는 의정관을 지내고, 최근에는 1급인 소청심사위원으로 재직 했습니다. 항상 저의 맡은 일이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정부내에 가장 중요한 분야와 관련되는 기능을 지원하는 일이었고, 담당 기능에 대해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고 정책을 개선해 나름대로 행정의 선진화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힘들었던 기억은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부정과 비리로 명예롭지 못하게 은퇴하는 공직자들이 있어서 같은 공무원으로서 자긍심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로 고민도 많이 해 보았지요. -한국지방재정공제회가 무슨 일을 하는 지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데, 소개해 주신다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전문기관으로서 공유재산에 대한 손해배상과 재해복구 공제사업이 주요업무입니다. 그 이외에 지방청사 정비 지원사업, 옥외광고 사업, 적립금 운용을 통한 투자수익사업, 지방재정세미나 개최 등 회원지원 사업을 실시하는 특수법인이죠.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사업이란 점에서 보험과 공통점이 있지만, 기업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사와 달리 회원인 자치단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역주민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공제회는 지난해 5월 옥외광고센터를 개소하는 등 사업영역 다각화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또 자치단체 이장과 통장상해공제, 하수도 준설기 배상공제 등 신규사업개발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재정공제회 이사장으로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취임직후 공제회 중장기 발전전략인 `KLFA Vision2020`을 선포, 공제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옥외광고사업을 새롭게 추진해 `대한민국최고의 공제서비스기관`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최상의 공제서비스, 다향하고 종합적인 금융서비스, 옥외광고산업의 선진화를 3대목표로 하고, 창의적인 조직, 성장하는 기관, 고객만족경영의 3가지 추진전략으로 비전달성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기관의 만족은 우선 내부고객의 만족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믿기때문에 조직내 임원과 직원들이 참여하는 자원봉사클럽인 리더스 클럽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조직내 독서클럽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독서클럽에서는 경영관련 서적과 인문학 공부를 통해 감성리더십을 배우고, 부서간 장벽을 허물어 의사소통을 활성화시켜 내부역량을 향상시키는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조직문화를 활성화해 개인의 역량을 개발하고 성장을 뒷받침하는 기관으로 거듭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시게 됐다는 데, 만학을 하게 된 동기와 학위취득과 관련해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저는 1977년도에 학부를 마치고 10년 뒤인 1987년에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정책학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 이후 약 20년 뒤인 2006년에 저의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됐지요. 저는 평소에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나이들어서, 특히 저의공직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과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박사학위 논문은 현 정부들어서 공직사회에서 문제로 제기돼 온 고위공무원단제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정책적 개선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실증적 연구입니다. 앞으로도 공부는 평생토록 하고 싶으며, 기회가 온다면 대학에서 제가 관심있게 공부하고 경험한 내용을 후학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끝으로 고향인 대구·경북지역민들에게 당부 또는 안부 한 마디. ▲저는 경북에서 태어나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자라서는 대구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한 시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객지에서 생활하더라도 병들고 나이들어서는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땅에서 자라는 곡식과 야채, 과일을 먹어야 원기를 회복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출향인사들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도 많이 하시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도 하고 계시지만, 고향을 자주 찾으시고 또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김국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은 김국현 이사장은 1955년 5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고등학교와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졸업하는 해에 행시 1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미국인디애내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오는 8월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공직에서는 총무처 행정전산과장,조직1·2과장을 거쳐 행정자치부 조직정책과장, 인사국장, 의정관,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2009-07-27

천혜의 자연절경 울릉서 `축제의 향연` 펼쳐진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에 접어들면서 연중 최고 관광성수기를 맞은 울릉도가 여름 축제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아름다운 조약돌(몽돌)과 함께 청정 푸른 해변을 찾은 관광객과 주민들을 위한 축제가 잇달아 열린다. 29일 회당문화축제를 시작으로 8월 한달 동안 관광객과 주민에 함께하는 노래자랑과 오징어특산품 축제, 독도 어울마당 등 다채로운 행사가 거의 매일 열리다 시피한다. 이 기간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경관을 관광하는 즐거움에 더해 아름다운 여름 추억을 만드는 소중한 기회를 얻는다. 편집자주▲2009 회당문화 축제(29일~30일) 도동항 해변공원서 `독도아리랑 콘서트` 개최취타대·풍물길놀이·국악인 장사익씨 등 공연 종교단체에서 주관하는 문화행사로 많은 예산을 투입해 29일 울릉도관문 도동항 해변공원 가설무대에서 개막과 함께 본격적인 공연행사에 들어가 이틀 동안 여객선터미널인 도동항해변을 달군다. 이 행사는 실제로 27일부터 시작된다. 대한불교진각종 회당 대종사 탄생지인 울릉도를 성역화하고 종주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회당문화제는 27일부터 31일까지 자원봉사단이 운영된다. 28일~30일까지는 도동 행사장일대에서는 군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독도와 나라사랑캠페인(동해지도, 소망 등 달기 등, 독도사진전), 페이스페인팅, 풍선아트, 핸드페인팅, 풍등띄우기 등의 행사가 준비된다. 29일 오후 7시 도동항해변공원 특설무대에서 `생명사랑콘서트`를 주제로 지역주민관광객, 군 장병이 참여하는 공연행사와 국악 관현악 공연(대구교사, 청소년국악관현악단), 밴드공연(최승민 밴드), 비보이 갬블러의 사물놀이와 비보이 협연, JB 소올 대중음악 공연 등이 마련된다. 체험행사로 독도사랑 캠페인 독도신전, 페이스페인팅, 군장병 초청 특별공연 및 위문품전달, 대형 불꽃 쇼도 이어진다. 30일 오후 7시부터 `독도아리랑 콘서트`를 주제로 진각종 울릉군 내빈 및 군 장병특별 초청공연, 취타대, 풍물길놀이공연, 국악인 장사익씨의 공연이 열린다. 이 공연에는 소프라노 김양희, 재주 가수 이수연, 비보이 켐블러 공연, 뷰트리팝스, 팝오케스트라 연주 등도 있다. 이 축제는 지난 1902년 울릉도에 태어난 대한불교진각종의 개종조 회당 대종사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탄생 100주년인 지난 2002년부터 매년 울릉도에서 개최되고 있다. ▲제22회 해변가요제(8월1일~2일) 저동항 특설무대서 열리는 해변 축제7080라이브·아마추어 노래자랑 등 마련 사회단체인 울릉도 젊은 청년단체(울릉청년단 단장 박창주)가 주관하는 울릉도 여름 해변축제다. 동해안어업전진기지인 저동항 물량장특설무대에서 개최되며 울릉도문화축제 중 가장 오래된 여름철 축제다. 울릉도 축제 중 관광객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지만 울릉도 관광균형발전을 위해 울릉도 어업생산량 90%를 차지하는 어항인 저동항에서 펼쳐진다. 1일 오후 7시부터 밤 12시까지 열리며 KBS코미디언 김성남씨가 사회를 맡아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오직 하나뿐인 그대의 주인공 가수 심신, 천하장사 가수 나니까 백승일, 백미경, 김선미, 이미테이션 가수 넘진, 뜨거운 눈물의 가수 이현주, 장상기, 김남순, 김상식 등 많은 가수들이 출연한다. 또한 환상의 몸놀림 `탑 밸리 댄스 공연 팀과 7080라이브 등 다 수의 연예인들이 출연 즐거운 여름 밤하늘을 수 놓은 예정이다. 아마추어 노래자랑 예선, 지역주민, 관광객 장기자랑, 폭죽행사, 불꽃놀이, 가수 등 연예인 초청 공연, 스포츠 댄스시범 지역동호인 취미활동을 통해 익힌 다양한 장기 자랑 등이 선보인다. 2일에는 아마추어 노래자랑 예선과 결선전이 개최되며 연예인 축하 공연, 인기가수 초청공연, 어린이 건전디스코 공연, 불꽃놀이, 관광객, 주민 어울림 한마당 등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 마련된다. 해변 가요제는 울릉도 젊은 청년이 관광객과 주민들이 서먹서먹함을 없애고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며 여름철 피서를 함께 즐기며 어울려 사랑을 나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88년부터 시작된 뒤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노래자랑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울릉도 오징어축제(8월4일~6일) 경북도 선정 울릉도 최대 우수 특산품 축제풍어기원 제례·무료시식회 등 다양한 행사 울릉군오징어축제위원회가 주관하는 울릉도 최대의 특산품 축제로 올해로 9회째 열리고 있다. `태고의 신비 꿈이 있는 사람의 만남`을 주제로 8월 4일~6일 3박5일 동안 울릉읍 저동항(동해안어업 전진기지 항)과 울릉도 일원에서 개최된다. 경북도 선정 우수 축제인 울릉도 오징어축제는 울릉도 오징어와 관련한 전통문화와 고유향토문화를 축제로 승화, 관광이벤트 상품으로 정착시켜 관광객유치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울릉도 오징어의 우수성과 차별성을 체험관광을 통해 어민소득증대에 기여하기 위해 매년 여름에 개최된다. 이번 축제는 `꿈이 있는 바다로, 신비의 섬 울릉도로, 민족의 독도`를 슬로건으로 개막, 체험, 축하, 기념프로그램 등 4개 분야 23개 프로그램과 부대행사로 꾸며진다. 첫날인 8월 4일은 개막공식행사를 시작으로 풍어기원 제례, 오징어 무료음식시식회, 서예퍼포먼스, 연예인 초청축하공연이 주행사장인 울릉읍 저동항 특설무대를 중심으로 저동항 일원에서 열린다. 5일에는 열린 바다낚시대회와 냉동오징어분리하기, 관광객 오징어 할복경기, 끼우기, 관광객 오징어요리경연, 오징어조업승선체험, 오징어 조업현장견학, 축하공연 2부 연예인초청 공연 등이 마련된다. 마지막 날인 6일에는 풍광이 아름다운 울릉읍 저동리 내수전과 천부 사이 선조가 다니던 옛길을 따라 걷는 옛길 걷기와 북면 천부리 해상공연에서 오징어 맨손으로 잡기, 저동항에서 전통 뗏목경주, 호박엿 늘리기, 노래자랑 및 연예인 축하공연이 진행된다. 또한 해안에서는 바다미꾸라지 오징어다리를 이용 맨손으로 잡기, 해변몽돌 쌓기가 진행되며 1천발의 불꽃이 울릉도 밤 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잔치가 펼쳐진다. ▲독도 어울마당(철인3종 경기)(8월7일~9일) 260명 참여 독도서 펼치는 최대 스포츠 제전수영·사이클·달리기 하며 `우리땅 수호` 홍보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전국대회인 독도어울마당 철인3종 경기가 울릉도와 독도일원에서 개최된다. 이번 대회는 7~8일 울릉도 도동에서 사동리사이에서 예선전을 거친 후 9일 독도에 들어가 독도를 수영으로 한바퀴 돌게 된다. 이번 행사는 포항문화방송과 국민생활체육전국철인3종경기연합회 주관으로 열리며 철인3종 올림픽 코스인 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로 울릉군 일원에서 치러진다. 예선경기 중 수영은 울릉도 도동항에서 사동항 구간에서 펼쳐지고 결선경기는 독도 동도와 서도를 순환하는 코스로 약 5km의 수영 기록으로 입상자를 가릴 예정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독도·울릉도구간에 열리는 대회에는 외국인 10명, 국내 톱 랭커 포함 100명, 특별 초청선수 2명 등 참가선수만 110여명에 달한다. 그리고 심판진과 임원, 서포터까지 합하면 관계자만 260명이 넘어 울릉도, 독도에서 펼쳐지는 최대 규모의 스포츠 제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독도 회영에는 민족대표 33인을 상징하는 결선 주자 33명과 독도와 관련된 상징적 선수들이 참여해 그 의미를 드높일 예정이다. 국제 독도철인3종 경기대회는 남자부 종합 1위(독도강치상) 300만원, 여자부 1위 200만원의 상금이 걸려있고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울릉도·독도에서 경기를 진행한다는 점, 우리 땅 독도 수호에 일조한다는 색다른 의미들이 더해져 벌써부터 독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한편 이번 대회는 포항MBC 로컬방송 및 ESPN 전국방송이 예정돼 있으며 참가신청은 인터넷으로 150명까지만 가능하며 참가비는 50만원이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09-07-24

`걸어도 걸어도`

요코야마 집안 가족들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다. 준페이는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 요시오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형에게 콤플렉스를 가진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서 살려는 딸 지나미(유)는 일단 집에 모이지만 그 분위기가 화목하지만은 않다. 겨우 결혼한 료타의 아내는 전남편과 사별한 과거를 지녔고 지나미의 엄마에 대한 배려는 엄마의 본심과 한참 어긋나 있다.15년 전의 죽음과 쉽게 풀어지지 않는 가족들 사이의 작지만 무거운 기억들이 서로 충돌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항상 죽음 이후를 찍는다. 혹은 어떤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의 이후 사정을 좇는다.그의 영화는 애써 죽음, 상실 그 자체를 피하려는 인상도 준다. 고레에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어떤 사건이 남긴 잔해와 파장이며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다.`걸어도 걸어도` 역시 죽음의 15년 뒤를 그린다. 물에 빠진 한 아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요코야마 집안의 장남 준페이가 그 주인공이다.영화는 준페이가 죽은 지 15년이 된 어느 여름날을 배경으로 한다.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15년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떻게 얽혀 있는지가 그들의 대사와 감정을 통해 드러난다.그리고 여기서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이란 존재 자체를 심각하게 묻는다. 그가 생각하는 죽음은 항상 삶의 어딘가에 파묻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터져나오는 가족 사이의 오해와 불일치도 준페이의 죽음을 넘어선다.가족이란 관계 자체가 담고 있는 본질적인 딜레마들이 새어나온다. 홈드라마 구조를 취한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모두, 은밀하게 품은 작품이다.요코야마 가족과 요시오 사이의 관계는 옴진리교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를 상기시키고 죽음을 겪은 가족의 일상은 `환상의 빛`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또 영화에 등장하는 3명의 아이들, 특히 요코야마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츠시는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이런 요소들을 한 가족의 일상사로 부드럽게 묶는다.일면 한 가족의 상처 치유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잔잔한 표면 아래 삶과 가족이란 관계에 대한 잔인한 통찰을 담는다.한정된 실내에서 벌어지는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사는 매우 탄탄하게 짜여져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게 서로 부딪치고 모여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희망보다 아픔에 가깝다.아픔을 끼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족에 대한 고레에다의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머니 역할의 기키 기린의 연기는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다.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정교하게 축조된 구조물이다. 어떤 대사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다.어떤 상징도 돌출되어 있지 않고, 어떤 디테일도 불필요하지 않다. 이 영화에는 덜 조여진 나사 하나 없다. 그러면서도 여유와 관조 혹은 유머까지 넉넉히 갖췄다.배우들의 연기마저 정확하고 깊은 이 작품은 살아서 영화를 보는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이다.

2009-07-24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

"생명은 강으로 흐르고 문화는 길로 흐릅니다. 죽음으로 삶을 밝히는 영혼의 강 갠지즈나 실크로드를 보면 그렇습니다. 둘은 닮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에 미쳐 있지만 길은 더불어 미치는 삶의 공적 공간입니다. 미술관은 소비적인 `돈 먹는 하마`가 아니라 더불어 세상을 가치롭게 만드는 창조의 원천입니다. 100년이 가도 그 감동이 깊어가는 미술의 집을 짓고 싶습니다" 오는 11월이면 포항시 북구 환호동 환호해맞이공원에 포항시립미술관이 문을 연다. 포항예술문화연구소 초대소장으로 10년동안 포항예술문화를 도맡아 꾸려왔던 김갑수(53·사진) 포항시립미술관장이 초대 관장을 맡아 포항의 새로운 명소로 꾸밀 경북 최초의 시립미술관이다. “21세기의 미술관은 시민들이 슈퍼마켓처럼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소비할 수 있는 미술관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해야 겠지요.” 경북 최초의 시립미술관 건립의 중책을 맡은 김 관장은 포항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미술대학을 진학하면서부터 줄곧 예술가의 길을 걸어 왔다. “어렸을적 친구들과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며 놀곤 했습니다. 모래나 땅바닥에 그어진 선들은 먼지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해가는 줄 모르고 땅그림 그리기를 했던 것 같아요. 어느덧 쉰을 훌쩍 넘겼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그렸던 그림들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관장은 홍익대 대학원과 영국 런던 국립 예술대 대학원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한 뒤 지난 1999년 고향인 포항에 정착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해 포항예술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그는 지역자치시대의 포항문화의 뿌리와 유·무형의 예술인자를 발굴해 지역문화를 브랜드화 하는데 앞장 서왔다. 매해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으며 전국적인 행사로 거듭나고 있는 포항아트페스티벌은 포항의 정체성인 `빛`을 재발견하는 예술축제로 회화와 조각, 사진, 문학, 국악, 연극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을 종합한 국내 유일의 아트페스티벌이다. 지금은 연구소 이사장에서 물러나 미술관 건립에 전념하고 있지만 지역문화와 예술에 대한 창조정신은 여전한 듯 했다. “학문에서도 분야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융합하는 시대입니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지요. 장르와 장르간의 소통과 융합이 가속화되고 예술에서 지역성은 더욱 강조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포항시립미술관장 취임 이후 하루도 편히 잠을 잘 수 없다는 그. 오는 11월 하순 개관을 앞두고 여러가지 개관 준비 사업들을 펼쳐놓았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역미술사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있는 안목을 제공하기 위한 무료 미술교양강좌를 연다. “산일된 과거의 미술자료를 수집해 포항미술사를 정립하는 연구 자료로 활용, 보존할 계획입니다. 또한 `깊이 있는 안목의 시작`이란 주제로 한 미술교양강좌는 시민과 함께하는 미술관으로서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포항시립미술관에 대한 애착이 많다. 무엇보다 우리지역에도 미술관 시대가 열린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했다. “지속 가능한 활기찬 미래도시를 만들려면 우리지역의 장점인 경제와 산업기술을 바탕으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문화예술의 하드웨어를 단단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여행하다보면 웬만한 규모의 도시에는 으레 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런 시설들은 그 도시의 문화와 교육, 사회화의 중심이 됩니다. 문화와 예술의 소중함을 알기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기업들 또한 메세나 운동이나 직간접적인 참여를 통하여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는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20년전 쯤인 1991년에 유엔과 세계은행이 발표한 사회개발지표에서 한국과 세계 12대 선진국 간의 정신문화지수를 비교한 통계치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도서 대출 책 수는 선진 12개국 평균치의 4%, 무대 예술 관람자 수는 3%, 박물관 관람자 수는 1% 였습니다. 비록 경제지표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수준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소비는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 입니다. 경제 뿐 만 아니라 정신 문화적 측면에서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되겠죠.” 그는“해는 솟아야 하며 불빛은 타올라야 제 맛”이라고 했다. “사람도, 도시도 삶의 에너지가 충만하여 활기가 넘쳐야 합니다. 예술인과 과학자가 모여 문화 창조와 과학진흥의 밤을 밝히는 그런 도시가 포항의 미래가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포항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매력적인 도시가 되어야 겠죠. 포항시립미술관의 건립은 성장에서 성숙의 시대로 나아가는 포항역사의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흔히 뜨고 있는 웰빙 이란 말도 우리식으로 거칠게 풀이하면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함께 조화로울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불완전한 근대를 거치고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산업화, 서구화라는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온 우리 사회는, 겉모습은 진주처럼 화려해도 속으로는 성장의 아픔과 부조화를 안고 있습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이 삶은 아니겠지요. 빨리 달릴수록 삶은 자신이 도달하려는 결승점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음은 삶의 급정거에서 찾아옵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급정거 했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을 잃은 후입니다. 느리게 천천히 미술관을 거니는 일, 마음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자신의 삶의 곳간에 문화의 향기로 가득 채우는 일, 이런 삶이 바로 웰빙이 아닐까요.” 포항시립미술관은 포항시 북구 환호동 해맞이공원에 부지면적 8천886㎡, 건축연면적 5천24㎡, 지하1층, 지상2층 규모로 11월 하순 개관될 예정이다. “시민이 감동하는, 작지만 차별화 된, 세계적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그의 미술관 철학이다. 그는 21세기 미술관은 도시 정책과 연계 했을 때 도시 브랜드 가치와 미술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면서 `포항시립미술관 MI 연구`라는 이름이 붙여진 책자를 건네주었다. 첨단과학도시, 창조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의 위상에 걸맞게 `Steel`에 디지털과 IT를 접목시키는 예술을 차별화된 미술관의 전략으로 삼고 있다. 미술이 삶이고 삶이 곧 미술인, 삶과 미술의 간격을 좁히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그는 깊은마음 못지않게 열정으로 넘쳐 났다. “그림은 오케스트라와 같이 한 폭의 화면에 색채와 질감, 형태 등 전체화면의 관계성을 고려하며 완성합니다. 행정 또한 개개인의 능력과 역할에 따른 조율이 필요하고 전체적인 멤버십(membership)이 이뤄졌을때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다만 미술이 작품 구상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작가 개인의 몫이라면 행정은 조직과 절차에 의한 팀플레이죠. 현대미술에서 삶과 미술의 구분이 모호해지듯 미술과 행정은 서로 얼굴이 다를 뿐 과정이 중요시되는 일종의 프로세스 아트와 닮았다고 할까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은 강으로 흐르고 문화는 길로 흐릅니다. 죽음으로 삶을 밝히는 영혼의 강 갠지즈나 실크로드를 보면 그렇습니다. 둘은 닮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에 미쳐 있지만 길은 더불어 미치는 삶의 공적 공간입니다. 미술관은 소비적인 `돈 먹는 하마`가 아니라 더불어 세상을 가치롭게 만드는 창조의 원천입니다. 100년이 가도 그 감동이 깊어가는 미술의 집을 짓고 싶습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7-24

인재양성 요람 `김천고`… 명문사학 재도약 꿈꾼다

김천고등학교가 경상북도에서 유일하게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됐다. 지난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로 개교한 이래 78년 만이다.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통해 명문사학으로서의 재도약을 힘찬 시동을 걸었다. 김천고는 앞으로 최고의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특성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개발해 영남 최고의 명문사학으로서의 옛 명성 회복에 나선다. 편집자주 ■개교 명문사학 김천고등학교는 지난 1931년 최송설당(崔松雪堂) 여사가 `영위사학(永爲私學)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는 건학이념으로 설립한 `영남의 오아시스`, 나아가 민족혼이 숨 쉬는 겨레의 교육장이다. 최송설당 여사가 투철한 국가관과 민족의식에 바탕해 설립한 김천고등보통학교는 한국 고등인력 양성의 한 축을 맡은 또 정주의 오산학교와 더불어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한국 사학(私學)의 전당이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적막의 김천은 활기의 김천으로 되고, 초야의 김천은 이상의 김천으로 진전되었다”고 했다.(1931. 4. 25) 최송설당 여사 생전에 있은 개교 4주년 기념행사와 교주 최송설당 여사 동상 제막식(1935. 11. 30)에서 몽양 여운형은 “김천에 들어와서 우리의 생명탑이라 할만한 이 고등보통학교가 뚜렷이 서 있음을 발견하매 `오아시스`를 만남과 같아서 얼마나 반가운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고 했다. 그러나 1940년대에는 그 창교이념이 일제의 민족성 말살정책으로 역경을 맞는다. 1938년 4월 조선총독부 교육령이 개정되면서 김천고등보통학교는 김천중학교로 개칭됐다. 또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정열모 제2대 교장이 구금됐고, 이듬해 3월에는 학교가 강제 폐교되면서 공립 김천중학교로 이관되는 고난을 겪었다. 일제는 민족정신 함양의 온상으로 지목한 김천고등보통학교의 맥을 끊는 수단으로 정열모 교장이 연루된 사건을 최대로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송설(松雪)의 혼은 송설당 유훈대로 꿋꿋하게 자라나 1946년 9월 사범과, 1949년 9월 전수과와 초등교원양성소를 설치하는 등으로 광복 후의 심각한 교사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1951년 9월 사립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하고, 1953년 2월 김천중학교 사립 환원인가가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송설학원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해지고 말았다. 그러던 1957년 1월 김세영(4회 졸) 제4대 송설당교육재단 이사장의 등장과 함께 중·고 병합운영, 교사 보수·신축, 서산 염전(42만평)의 농장화 등으로 1960년대의 송설학원은 전국에서 우수 학생들이 찾아오면서 김천고보 시절의 명예를 회복하고 영남 명문사학의 자리를 되찾았다. 1963년 8월 교주 최송설당은 한국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포상을 추서 받았다. 또 1979년 5월 제1회 송설동창회장기쟁탈 기별축구대회 개최, 1981년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교주 흉상 건립과 송설50년사·동창회 명부 발간, 장학사업 확대, 최신식 기숙사 청운료 준공, 1985년 4월 서산농장 농지정리 완료와 획기적인 증산책 강구 등에 힘입어 한국교육 백년대업의 큰 몫을 담당했다. ■자율형 사립고 1931년 개교 이래 영남의 명문사학으로서의 찬란한 교육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환경이 변화하면서 2000년대 들어서서는 명문대학 진학률이 저조해지는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정해창 제5대 재단이사장은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취임 직후 학교의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송설역사관을 개관하는 등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 지난해 6월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국 30개 자율형 사립고 지정신청서를 경북도교육청에 제출했고 또 지정을 받았다. 김천고등학교는 자율형 사립고 지정과 함께 향후 100억원을 투자해 36만㎡의 교정에 잔디운동장과 골프연습장을 조성하는 등으로 교정을 생태공원화하면서 오는 2011년까지 경북 최고의 교육시설로 만들 계획이다. 또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교실과 기숙사를 리모델링하고 과학, 음악, 미술 등의 과목을 특화 교육할 수 있도록 특별교실도 신축할 계획이다. 송설교육재단의 자산 평가액은 210억원에 이르고 있고, 연 예상수익은 10억원이다. 이 재원으로 전교생의 80%가 연간 100만원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지난해 1억3천200만원이던 장학금을 오는 2012년부터 5억3천만원으로 늘려 수혜인원이 500명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기존 교사들의 연수 등으로 연구풍토를 조성하면서 내년부터 17명 내외의 우수 교사를 초빙해 수업을 질을 높이고, 학생들의 개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맞춤식 교육`을 할 계획이다. 학생 개인의 능력과 희망에 따라 대학 등 외부교육기관에서 교과를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심화·전문교과 과정`도 도입한다. 김천고등학교는 또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동문과 교직원,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10억원의 `송설사랑 발전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송설동창회도 100억원의 장학금을 모금할 계획으로 1천명의 동문이 각각 1천만원을 기부하는 `천천운동`을 한다. 또 동문이 학생들의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대학진학, 사회 진출까지 돌봐주는 `1대 1 멘토링제도`를 도입하고, 졸업생 10여 명으로 구성하는 입학사정관제를 운용하면서 공정한 입학관리는 물론 우수한 인재를 선발할 때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최준경기자 jkchoi@kbmaeil.com ■김천고 출신 인물 ▲한완상 전 부총리 ▲정해창 전 법무부장관 ▲이선중 전 법무부장관 ▲박정수 전 외교통상부장관 겸 국회의원 ▲이종대 전 유한킴벌리 회장 ▲김종호 전 해군참모총장 ▲김채윤 전 KBS이사장 ▲배영호 코오롱 사장 ▲송석환 동진기업 회장 ▲고병헌 캐프그룹 회장 ▲정석수 현대모비스 사장 ▲성영목 신라호텔 사장 ▲이태희 두산 사장 ▲유영식 동신제약 회장 ▲송재당 효성 사장 ▲이철우 국회의원 ▲임인배 전기안전공사 사장 ▲배병휴 언론인 ▲이홍기 육군 중장 ▲김정두 해군 중장 ▲핵물리학자 이창환 ▲소설가 김연수 ▲시인 문태준 (송설역사관 자료)

2009-07-23

`장한 한국인상` 정계인상 수상 김성하 경산미래연구소장

“교육발전·환경보전 활동 높게 평가한듯” 도의원 시절, 쓰레기소각장 운영실태 등 고발특화된 지역정책 개발 위해 미래연구소 개소김성하(43) 경산미래연구소장이 지난 17일 제8회 `장한 한국인상` 정계인상 을 수상했다. 김 소장은 지난 2002년 35세의 나이로 최연소 경북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김소장은 다시 한 번 정치에 도전하는 꿈을 안고 올 초 성암산 자락에 경산미래연구소를 열었다.나라의 경제발전과 각 산업의 경쟁력 강화, 사회·문화·복지수준 향상에 공헌한 인물에게 `무궁화 금장패`를 수여하는 장한 한국인상에는 김종빈 전 검찰총장, 이강두·신중식·유재건 국회의원,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 이희호 여사, 대한가수협회 남진 회장 등이 수상한 바 있다.-어떤 공적으로 수상하게 되었는지.▲최근의 활동보다 4년 전 도의원 시절의 의정 활동을 높게 평가해준 것으로 본다. 지난 일은 잊기 쉬운데 기억해 준 것은 시민에게 더 봉사하라는 격려로 생각한다. 도의원 시절 의정 활동은 교육발전과 환경보전을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자체 운영하는 쓰레기소각장과 간이상수도시설의 운영 실태를 고발하고 개선한 것, 경산과학고 유치, 문명중학교 설립 청원, 사동초등학교 축구부 창단 등이 있다. 2002년 당시 최연소 경북도의회 의원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쓰레기소각장의 실태를 조사·발표한 것은 지금에 와서도 뿌듯한 일이다. 다이옥신 배출량의 기준치를 1천 배가 넘는 소각장이 상당수에 달했다. 이를 근거로 지자체가 운영하는 소규모 소각장을 일대 정비하고 일선 학교의 소각장을 완전히 폐쇄하게 되었다.- 경산미래연구소는 어떤 곳인가.▲교육과 문화, 산업과 경제, 자치·행정, 복지·개발, 보건·환경 등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모든 것에 대해 전문가와 지역의 젊은이가 경산의 미래를 위한 정책개발 활동을 펼쳐가는 공간으로 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지역사회를 연구하는 단체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지역주민을 위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은 타지역에 대한 벤치마킹에만 급급해 독창성과 지역특색을 살린 특화정책에는 소홀했다. 이제는 지역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고 경산지역의 특화된 정책을 개발하고자 경산미래연구소가 설립되었다.-연구소가 발표한 연구사례는.▲연구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적자원이지만 지방이란 핸디캡으로 구성에 애로를 겪고 있다. 하지만, 가을쯤에는 연구에 대한 이론적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경산미래연구소의 역점사업 방향은 △금호강 상수원관리시스템의 재정비 △중학교 축구부 창단 △월드컵로 경산지역 방음벽 설치 △자인·남산·남천·용성지역 발전방안 수립 △수출주도형 유망기업유치 △경쟁력 있는 교육도시와 문화도시로 인구 증가 등에 대한 연구결과를 내어 놓는 것이다. -앞으로 개인적인 진로는.▲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난 2005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도의원을 사퇴하게 됐다. 정치인들이 비일비재하게 겪는 상황이었지만 확정판결이 나기 전에 사퇴의사를 밝히고 자리에서 물려났다. 너무 어린 시절 정치에 몸담았기에 한 번의 실수로 정치에 대한 꿈을 포기하긴 어렵다.시민의 용서를 구하고 진정한 일꾼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09-07-23

창의력 키우려면 소통부터 시작하라

철수는 집에만 들어오면 짜증을 잘 낸다. 철수 엄마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러려니 하는 생각에 안쓰러움을 느낀다.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날, 철수 엄마는 이웃집 영희 엄마를 만나고 돌아왔다. 영희가 밤잠을 설쳐가며 시험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철수 엄마는 한창 게임에 빠져 있는 철수에게 한 소리를 했다. “너, 공부 안 하고 뭐 하니? 영희는 잠도 안자고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하던데….” 엄마는 철수가 당장 게임을 끝내고 공부를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말인데 아들은 들은 척도 않고 게임에 더 열중했다. 충고로 한 말이 아들에게는 잔소리로 들려서 반항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녀와의 의사소통에서 부모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의사소통의 문제를 간과하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창의성의 구성 요인에 해당되는 동기부여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면 소통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질 것이다. 아마빌이나 토랜스에 의하면 창의성은 경험, 지식, 동기, 기능의 교집합 부분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경험과 지식 부분은 어느 정도 잘 되고 있지만 동기와 기능 부분이 취약한 편이다. 동기 부분이 취약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소통의 문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어느 나라 부모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교육열이 높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소통의 문제 때문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애정을 담아서 자녀에게 한 말이 잔소리처럼 전달되어서 오히려 반항심을 안겨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소통의 구조 속에서는 잠재능력이나 창의력이 극대화될 수 없다. 학부모 상담을 해 보면 자녀와 의사소통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이런 부모들은 `I-message` 소통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You-message`는 `너`를 중심으로 표현하는 말이고 `I-message`는 `나`를 중심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You-message`가 `명령형`의 메시지라면, `I-message`는 `부탁형`의 메시지이다. 앞의 언급한 철수의 예에서 엄마가 한 말은 `You-message`이다. “너, 공부 안 하고 뭐하니?” 이 말 속에는 `너 지금 공부 안하는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으니 당장 고쳐라.`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러한 `You-message` 속에는 명령, 비난, 평가, 질책, 해석 등의 뉘앙스가 들어 있으므로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게 된다. 반면 `I-message`는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으로써 듣는 이에게 이해와 공감이 일어나게 하여 실제적으로 행동 수정의 효과가 있다. 철수 엄마의 경우, `I-message`로 의사 표현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시험을 앞두고 네가 게임을 하니 엄마는 성적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 많이 되는구나.” 이렇게 하면 철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꾸중을 듣지 않아서 기분이 상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마음을 읽게 되어 스스로 할 행동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게임을 그만 두고 책을 들게 되면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한다고 생각하므로 행동수정이 쉽게 이루어진다. `I-message`를 보다 정확하게 활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하면 된다. 1단계:상대방의 행동을 먼저 이야기 한다.(행동)/ 시험을 앞두고 네가 게임을 하니까 2단계:그 행동이 미칠 영향을 이야기 한다.(영향)/ 성적이 떨어질 것 같아서 3단계:그로 인한 나의 감정을 이야기 한다.(감정)/ 엄마는 걱정이 많이 된다. 가정에서부터 충분한 소통의 문화 속에서 아이들이 자란다면 학교에서 소통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므로 세대간의 격차가 거의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학교와 사회로 이어져서 곳곳에서 토론문화가 꽃피고 있다. 이스라엘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바탕에는 이러한 소통의 문화가 있다. Create yourself!포항제철지곡초 이용석 교사

2009-07-22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 이순옥 경북도 보건정책과장

“출산 가치관 변화 기폭제 되길 바라”지역본부, 실천적 차원서 지역별 중점대책 마련 근로시간제 도입·출산 유급휴가제 도입 등 추진종교계, 경제계, 여성계 등 범국민적 차원에서 펼치는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가 전국적으로 발족됨에 따라 경북도도 22일 발족을 한다.경제계는 사회공동체의 주요 구성원으로, 종교계는 신앙을 통해, 시민사회와 민간단체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정부는 자녀출산 및 양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 보다 편안하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회를 만드는 등 아이낳기가 범국민적으로 확산되고 있다.이에 실질적으로 업무를 맡고 있는 경북도 이순옥 보건정책과장을 만났다.-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는 무슨 일을 주로 합니까.▲중앙정부는 국가차원에서 저출산 심각성 제기와 대응방안을 촉구하고 지역본부는 실천적 차원에서 각 지역별 중점 대책을 마련한다.따라서 운동본부에서는 종교계, 경제계, 여성계, 학계, 노동계,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해 각각의 업무를 맡게 된다.-참여단체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노동계는 미혼여성이나 결혼 여성들이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시간제 도입과 육아 및 출산의 유급휴가제 도입 등에 앞장선다.종교계는 올바른 가치관 확립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지원하고 생명존중과 올바른 육아를 위한 부모의 건전한 자녀양육 자세확립에 노력한다.지자체는 저출산의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경제적 요인의 해소에 지방자치행정의 초점을 맞추고 중장기적 정책개발에 노력한다.이밖에 기관과 단체들도 각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다.-왜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가 발족됩니까.▲ 아시다시피 여성 한명이 지난해 기준 평생 2.1명이 돼야 하지만 1.19명의 아이만 낳다, 출생아는 47만명으로 지난 80년도의 87만명 대비 절반으로 감소했다. 따라서 노인부양인구도 2005년 8명, 2020년 4명, 2050년 1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여 심각한 상태다.자녀양육과 교육비의 과다 등 경제적 부담과 결혼과 출산의 가치관의 변화, 여성의 일과 자녀양육의 양립곤란 등으로 저출산이 이어지고 있다.따라서 운동본부 발족으로 범국민 운동으로 발전시켜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다.-본부 구성원은 물론 남성과 여성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본부의 정식 출범이 기폭제가 되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이 재인식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되는 등 불길같은 사회운동이 되길 바란다.따라서 한 특정기관이나 단체, 정부의 노력만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기에 우리 모두의 asn제로 받아들여 솔선 참여하고 동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빈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09-07-22

세계 속의 글로벌 기업

오늘은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의 국적을 알아볼까요? 우리 집 TV는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을까요? 삼성이나 LG면 우리나라 제품이겠죠. 또 디지털카메라는 어떤가요? 올림푸스, 소니, 캐논, 니콘 등 일본 회사들의 제품이 많을 거예요. 이 같은 방법으로 우리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각기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찾아봅시다. 보통 제품 뒷면에 쓰여 있는 `made in…`이란 부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컴퓨터, 프린터, 샤프, 볼펜, 운동화, 티셔츠, 청바지, 시계, 화장품, 향수, 과자, 아이스크림…. 제품 이름과 만든 나라를 공책에 정리해보세요.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이 만든 제품들도 세계 여러 나라에 팔리고 있지요. 세계 각국에서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를 교환하는 것을 `무역`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교환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루어지는 것은 `국제무역`이라고 합니다. 또 상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것을 `수입`이라고 하며, 다른 나라에 파는 것을 `수출`이라 합니다. 이러한 국제무역의 경계는 최근 들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국내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 생산 공장을 짓고, 여기서 만든 제품을 현지 시장에 판매하는가 하면, 이탈리아에 디자인 본부를 둔 미국 의류회사가 중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최근의 기업활동은 제품 개발에서부터 디자인, 그리고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한 나라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잡한 경제적 의존 관계 속에서 국제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글로벌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훌륭한 글로벌 기업이 많이 생겨나서 수출을 해야만 나라의 경제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생각 생각 ▶초등 1.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기업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세요. 2. 우리나라 기업 중에 글로벌 기업이라고 불릴만한 회사가 있는지 조사해보세요. 3.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과 수입품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세요. 4. 글로벌 기업이 왜 필요한지 토론해 보세요.

2009-07-22

할아버지 할머니 기쁘게 해드리기

햇빛은 파도 냄새가 한껏 풍기는 구룡포 바다를 덮었다. 클래식을 듣는 듯 잔잔한 파도소리가 동해의 정경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하늘마음 이라는 곳은 구룡포 바다를 배경으로 한 노인들의 안락한 쉼터이다. 그곳에는 나의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 분들이 생활하고 계신다. 고1 여름방학, 음성 꽃동네에 다녀온 이후로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봉사하러 가는 것은 즐거운 일 중 하나가 되었다. 하루 동안 단 몇 시간만이라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친 손녀가 되어드리는 것이 봉사라기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마음에 들어서자마자 조를 만들어 청소를 했다. 아직 사람들의 손이 닫지 못한 곳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시커먼 먼지들이 쌓여 있는 곳이 많았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쓰시는 이불은 매일 먼지를 털어줘야 한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한 할머니의 이불을 털어 드렸는데 할머니께서 품속에 챙겨놓으신 하얀 박하사탕을 하나씩 주셨다. 그 박하사탕의 맛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참된 봉사에서 비롯된 따뜻한 정처럼 달고 정겨웠기 때문이다. 내가 많이 기다렸던 시간은 할머니 할아버지께 춤을 추고 노래하는 재롱잔치 시간이었다. 이 특별한 시간은 그들과 오고가는 정을 맛보기에 가장 적합했다. 나는 자신있게 먼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께서 박수를 치시며 즐겁게 봐 주셨다. 담임선생님과 사무장님도 우리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부르셨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준비를 많이 못해서 서툴렀지만 할머니께서는 친 손녀처럼 두 손을 꼭 잡으시며 내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셨다. 그 할머니와 마주잡은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렇게 따뜻하게 내리 쬐는 햇볕 속 고요히 요동치는 파도 옆에서 화목한 기운이 돋아나는 듯 했다. 시간이 다 되어 아쉬운 마음에 단체 사진을 한 장 찍고 긴 작별인사를 했다. 짧은 시간동안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 지지 않았지만 다음에 꼭 친구들과 함께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하늘마음을 나왔다. 내 주위에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곳이 있었는지 미처 몰라 아쉽긴 했지만 지금 그들을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 된다.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계시는 소외 계층의 사람들을 연민의 눈으로만 볼게 아니라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어주는게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들과 함께 있다 보면 화목함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에 한 번 더 묻히고 싶어 질 테니까.

2009-07-22

김태만 포항스틸러스 사장

포항스틸러스가 월드컵 휴식기 이후 가진 9경기에서 8승1패의 호성적을 거두며 K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이 됐다.좋은 성적과 함께 사상 최초 4관왕(정규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피스컵 코리아, FA컵)의 희망을 부풀려 갔으나 지난 15일 FA컵 8강전 성남과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하며 물거품이 됐다.하지만 포항은 경기내내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3관왕을 달성하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이같은 호성적의 이면에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태만 사장의 보이지 않는 축구사랑과 창의적인 경영정신이 밑바탕이 됐다. 김태만 사장을 만나 스틸러스 웨이를 창안한 배경, K리그 발전방안, 포항스틸러스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취임 1년이 지난 올해 초 `스틸러스 웨이`를 선포했다. 스틸러스 웨이를 구상하게 된 배경은.▲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롤모델로 삼아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축구를 선보이고 싶었다. 지난 1년동안 경기를 지켜보니 모든 팀들이 우승을 위한 승리만을 생각했지 관중들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었다. 승패를 떠나 감동이 있는 축구문화를 정착시키고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팀을 만들고 싶어 생각하게 됐다.-스틸러스 웨이를 창안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면.▲사실은 박태준 명예회장이다. 포스코 근무 당시는 2만명 가운데 1명으로서 박 명예회장을 보아왔지만 막상 스틸러스 사장으로 와서 보니 스틸러스를 만든 박태준 명예회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당시 축구전용구장 및 스틸하우스 건립, 유소년 클럽시스템운영등을 어떻게 생각하고 추진했는지 존경스런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 물론 박 명예회장은 장학사업 개념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경영을 고민해야 하는 점이 다르지만 박 명예회장의 뭔가 다른 창의적인 사고에 자극 받았다. 박 명예회장의 정신에 누가 되지 않는 일원이 되려고 고민한 끝에 만들게 됐다. -스틸러스 웨이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플레잉타임을 5분 이상 늘리기다. EPL과 비교해 보니 유럽은 90분 경기중 65분을 뛰는데 반해 K리그는 55분밖에 되지 않았다. 플레잉타임을 늘리기 위해 경기중 쓸데없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둘째 깨끗한 경기매너 지키기다. 경기중 부딛혀 넘어지면 큰 부상이 아닌데도 드러누워 시간을 지연시키는 모습은 굉장히 꼴불견이었다. 셋째는 심판의 권위를 존중하고 판정을 수용하기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면 어김없이 항의하는 모습을 연출하는데 심판을 믿지 못하면 경기는 재미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스틸러스 웨이 선포이후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때 심정은 어땠나.▲답답하고 암담했다. 최소한 2~3게임은 승점 3점을 따야하는 경기였다. 선제골을 넣고도 후반 막판에 어이없는 동점골을 내줄때 나의 방식이 틀렸나 잠시 의심하기도 했었다.(웃음)-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분명한 것은 우리팀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출한 스타가 없음에도 동료선수를 믿으며 5분이상 더 뛰겠다는 마음이 하나로 될때 엄청난 경기력이 분출된다. 힘들지만 잘 따라주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확실한 팀컬러를 갖출 수 있다고 확신한다.-끝으로 K리그 발전을 위한 방안을 이야기한다면.▲아까도 말했지만 관중 없는 K리그는 있을 수 없다. 우승을 위한 경기도 좋지만 관중을 생각하는 축구를 해야한다. 경기시간 5분 더 늘리고 매너있는 경기를 하며 심판을 존중하는 등 스틸러스 웨이가 확산될 때 한단계 성숙할 것이다./권종락기자 kwonjr@kbmaeil.com

2009-07-21

칠십번째 안부 - 당신의 부재(不在)

마당 수돗가에 앉아 분홍자물쇠로 꾹 잠근 문을 봅니다. 벚꽃이 훌훌 날릴 때 저 문을 나선 당신은부용화 큰 얼굴로 피고 모감주나무 씨앗 여무는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으시네요.마당가 채송화는 식구를 늘려 저리 오순도순 피었는데 지난겨울 내내 경로당 앞에 세워졌던 낡은 유모차도안보이네요. 강사리 앞바다 미역돌에 너불너불 미역 자라면 새벽같이 쫒아나가 팔순에도 깊은 자무질 하고봄 햇살 짧다 짧다 부지런히 미역을 다듬어 널던 할머니.큰 덩치에 큰 목청 장부 같아도비오는 날 놀러가서 옛이야기 해 달라 보채면 부처처럼 앉아 시작했던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흐르고 흘러결국은 흠씬 눈물 쏟고야 마는 아픔 많은 당신이셨지요. “내가 이래봬도 대보부텀 강사꺼정 다 디비도 따라 올 년 없는 최고 해녀 였다. 저 바다에 용사처럼 드나들매 살았다 아이가. 그렇다꼬 머시 돈을 모닸나 집을 지았나 암것도 없다마는 이래 문디 귀신같은 오두막살이에 기들아갔다 기나갔다 살아도 내는 내가 참 기특타. 와그라는 줄 아나? 자슥 8남매 무사히 다 키워 부산이고 울산이고 골골 짝짝이 다 심어 났으니 우예 안 기특켔노. 인자 암것도 부러울 기 없다. 물질로 해가 나오매 방구에 무르팍이 하도 찍히가 이래 다리 쪼매 아픈 거 말고는 몸도 성채, 울 자슥들 맨날 지에미 걱정해주고 울 손자 놈들도 손톱 하나 망가진 눔 없이 잘 크재, 머시 근심이겠노.”붉어진 눈 쓱쓱 비비며 씩씩하게 다시 웃던 당신이셨지요. 열아홉 추자도 아가씨가 아픈 사연 안고 흘러 든 강사리.환갑 넘어서야 딱 한 번 단체관광 다녀왔다는 제주도 이야기를 참 여러 번 들려 주셨던 거 기억하시나요?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추자도도 아니고 겨우 제주도까지 간 걸음인데도 얼마나 벅차고 좋았는지를 알 수 있었답니다. 진이 할머니 성게 작업하시는데 우연히 들렀다가 이제야 들었어요.지난겨울 내내 아프던 당신께서 결국 부산 아들네 집에 가셨고 그리고 더 더 먼 곳으로 아주 가셨다는 소식을요. 차려주는 밥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것도 이쁘다시고냄새나는 노인네 좋다고 놀러오는 것도 이쁘다시고 바깥 날씨가 따뜻한데도 전기장판 위로 결국은 저를 앉히시던 당신,그리 골방 쥐 드나들 듯 살던 놈이 좀 바빠졌다는 핑계로 뜸한 사이사이 얼마나 서운하셨을까요.대한민국 최고로 전망 좋다시던 오두막에 철컥 자물쇠를 걸고 나서며 무슨 생각 하셨을까요. 이렇게 여기 앉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툴툴거리는 유모차 앞세우고 휘~ 휘이 숨비소리 같은 호흡으로보고 싶은 당신이 오실까요? 그럴까요?

2009-07-21

안효대 국회의원 (울산 동구)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경북발전 위해 최선”경북 영양 출신의 안효대(울산 동구) 의원은 자신을 특별 사안에 대해 중재를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현대중공업이라는 회사의 직원으로 일할 때부터 회사와 노조의 상생을 위해 움직여 왔던 경험이 지금의 국회의원 안효대를 있게 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듯한 그의 속내가 인터뷰 곳곳에 묻어났다.어떨 때에는 속사포처럼 빠른 말을 내뱉다가도 가끔은 감정에 치우친 듯한 인간적인 모습도 간혹 드러내 보인다. 특히나 지난 14일에는 시각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시각장애인용 점자 장애인등록증과 주민등록증 발급을 규정한 `장애인복지법`과 `주민등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마련했다고 밝히는 등 한나라당 내의 서민정책 마련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안 의원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편집자주고향 영양, 청정 자연환경 살린 관광자원화 필요시각장애인용 점자주민증 발급 개정안 마련 등서민이 잘 사는 정책 마련 위해 바쁜 나날 보내-고향이신 영양은 아주 산골입니다.▲영양군은 세계사에도 없는 천연기념물입니다. 과거에는 생산적인 공장 등 개발의 특수가 군세를 유지했는데, 이제는 자연 풍광이 그대로 보전돼 있고 1급수에서 자라는 수많은 어종들이 유지되고 있으며, 산림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된 곳입니다.따라서 고향인 영양군을 관광자원화해,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군으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왕피천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가 봤는데, 그곳은 1급수 물고기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그만큼 천연자원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사실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어린 시절의 영양은 어떠했습니까▲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물론 가보면 참 좋은 곳입니다. 저의 아버님이 40여 년 간 교직에 계셨는데, 전근하러 다니시는 아버님을 따라 영양과 봉화 등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영양 읍내에도 있었지만, 영양군 내의 6개 면을 모두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결국 초등학교를 3번, 중학교를 3번 다녔습니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공부가 잘 안된 것도 같습니다.공부를 좀 하려고 하면 전학을 가고, 또 전학을 가고 하다 보니까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초등학교 동창회를 3군데에서 합니다.그런데 저는 그 친구들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저를 다 알더라고요. -그 당시 6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구로 유학을 오셨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대구로 유학을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부모님을 힘들게 했다고 합니다.하지만 홀홀단신으로 출발한 대구로의 유학이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울산의 현대중공업에 들어가면서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 같습니다.특히 부모님이 안목을 가지시고 저를 그렇게 적극적으로 잘 받아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당시, 자취를 하면 연탄불로 밥을 지었고 그 밥을 아랫목에 묻어 놓고 학교에 다녔습니다.물론 도시락도 2개입니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보니, 도시락 2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지금 생각하면 도시락 만들기가 쉽지가 않은데 말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정몽준 의원과의 인연이 이슈가 됐습니다. ▲정 최고위원은 현대 중공업 회장 출신입니다.여기에다 같은 학사장교 출신이니, 그 인연이라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습니다.사실 제가 현대중공업의 노사담당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모토는 분명히 법과 제도가 있듯이 노사관계도 원칙이 있어야 하되, 그 원칙이 근로자가 법적 범위내에서 요구해야 하며 회사도 양보를 미덕으로 하는 등 상대방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그 과정에서 당시 회장이었던 정몽준 최고위원과의 인연이 15년이 된 것 같습니다. 현재 당의 2인자 신데, 앞으로 조그만 역할이 있다면 보태야 하는 게 맞는 것으로 봅니다. -진보 1번지라는 울산에서 나오시면서, 조금은 긴장하셨을 텐데요. ▲같은 지역구에 14년을 있었습니다.그래서 이제는 지역 주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무엇을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습니다. 속된말로 어느 집에 젓가락 숟가락 수가 몇 개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내가 가면 편하다. 우리 지역의 박사다`라는 생각이 통하게 하려고 합니다.이 이유 덕분에, 제가 선거운동 할 때에도 지역민들에게 “내가 4년 내내 친절하고 성실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항상 이야기했습니다.-고향민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어차피 제가 경북 출신이고 영양 출신인데, 우리 지역과 고향이 잘 되는 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이는 인간의 기본적 도리이고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인데, 그곳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나를 키운 곳이고 성장시킨 곳인데, 제가 사회적 위치에 있다면 지역을 위해 보답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박순원기자god02@kbmaeil.com안효대 의원은 195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영양의 청기초등학교와 수비중학교를 나왔다.이후 대구로 유학, 청구고등학교와 계명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학사장교(ROTC 16기)로 군 복무를 마쳤으며, 현대중공업에서 노사문제 담당자로 15년간 근무하면서 정몽준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현재는 울산 동구의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서, 장애인과 여성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 간 복지 불균형 문제 등 지자체의 근본 회생 방안에 대해 힘쓰고 있다.

2009-07-20

김주락 대구지방변호사회 포항지회장

“법률사각지대 시민 직접 찾아가 봉사” 공공기관 무료법률상담서비스 등 다양한 대시민 서비스 활동 추진고도화된 현대사회일수록 각종 법률적인 분쟁이 복잡다난하게 확대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률사각지대에 있는 대다수 서민들은 아직도 법률서비스에 목말라 있다. 최근 대구지방변호사회 포항지회장으로 취임한 김주락(56) 회장을 만나 포항지회의 운영방향을 들어봤다.-취임소감을 말씀하신다면.▲2년으로 임기를 정하고 회장을 선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등록 변호사 28명 전원의 추대형식으로 임기를 시작함으로써 포항지회가 회원 전원의 의견이 반영된 조직으로 새로 출발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법률사각지대에 있는 시민들을 위해 좀더 다가서는 지회가 될 것이라고 천명하셨는데 구체적인 활동계획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변호사를 찾아오는 법률상담에서 변호사가 법률사각지대에 있는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 봉사하는 포항지회가 되도록 회원들과 구체적인 활동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예를 들면 포항시청 등 공공기관에서 회원변호사님들이 참여하는 무료법률상담서비스 등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민들로부터 인정받는 변호사가 되고, 변호사 모임이 구태의연한 친목단체의 성격을 지양할 수 있는 다양한 대시민서비스 활동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시민들로부터 인정받는 변호사의 성격은 또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십니까.▲변호사이기 때문에 존경받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즉, 희소가치로 사회적 대접을 받던 시대가 지금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행동을 해야 비로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법률적인 서비스에서 소외돼 있는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것도 지금 변호사로서의 사회적인 책무이자 역할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좌우명`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溫)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이창형기자 chlee@kbmaeil.com

2009-07-20

감은사지·감은사지 삼층석탑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93년에 발행한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편집자가 조건 없이 허락해준다면 감은사에 대한 답사기를 원고지 처음부터 끝까지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이렇게 쓰고 싶다고 하였다. 지금도 찾는 이들이 많지만, 대구-포항 고속도로가 생기기전에는 대구와 인근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바다 중의 한 곳이 문무대왕암이 있는 경주시 감포읍 봉길리 일대였다. 경주시가지에서 보문단지와 덕동 댐을 지나 봄. 여름에는 신록에 취해,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에 취해 산길을 달리다보면 어느새 곧게 뻗은 감포읍의 지방도와 만나게 된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곧게 뻗은 도로여서 20대에 친구들과 이곳을 찾을 때는 우리끼리 `감포 아우토반`이라고 불렀던 도로이다. 이 도로의 끝자락이자 대종천과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 도착하면 왼쪽 해발 240m의 연대산 남쪽 기슭 언덕위에 우뚝 솟은 3층 석탑 두기가 보인다. 감포의 동해바다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본 곳이고 너무나 유명한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감은사지는 경주시내에서 약 35km 거리의 동해변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번지 일대로서 절터가 위치한 마을은 속칭 탑골 또는 탑 마을로도 불리고 있다. 언덕위의 절터에서 2시 방향의 동해안 어귀를 바라보면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룬 문무대왕 해중릉으로 전해지는 대왕암이 한눈에 보이는데, 이곳에 절터를 잡은 것은 기록에 나타난 호국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삼국사기 만파식적조에 의하면 `제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기록을 종합해보면 감은사는 문무왕대에 창건되기 시작하였으며, 문무왕 사후인 신문왕 원년(682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처음 문무와이 창건할 당시의 사찰 성격은 알 수 없으나, 문무왕릉의 조영과 함께 신문왕이 삼국을 통일한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고 사찰명을 부여함으로써 원찰의 기능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문왕은 감은사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일주일은 문무왕의 유해를 대왕암에 올라 산골하는 장례의식과 감은사의 낙성식이 함께 진행되는데 필요한 기간으로 생각된다. 만일 그렇다면 아마도 신라의 여러 사원 가운데 가장 성대한 의식이 감은사에서 장기간 베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절터는 1960년과 1979년~1980년 발굴조사를 통해 유물이 수습되었고 절터의 전모가 확인 되었다. 감은사는 일당쌍탑식(一堂雙塔式) 가람으로서 남북의 길이보다 동서회랑의 길이가 길게 구성된 점과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의 회랑을 연결하는 중회랑인 익랑(翼廊)을 둔 점이 특이하다. 절터의 남쪽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문지가 있고, 중문 좌우로 후면의 강당지에 이르기까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감은사지에는 중문의 북쪽이자 금당 앞 좌우에 같은 형태의 삼층석탑 2기가 있다. 이 두 석탑은 682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오랜 세월동안 자연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속적인 크리프(creep)―일정한 하중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료의 변형이 증대하는 현상이다.― 현상으로 부재의 열화, 이완, 파손, 풍화현상 등으로 붕괴의 위험과 훼손이 우려되어 시차를 두고 각각 해체보수 하였다. 서탑은 1959년에서 1960년까지 일차 보수를 하고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해체보수를 하였다. 동탑은 1995년부터 1996년까지 해체 보수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탑이 해체 보수과정에서 사리함이 발견되었는데 1959년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함은 보물 제366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1996년 동탑에서 발견된 사리함은 보물 제1359호로 지정돼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보 제112호인 동서삼층석탑은 제일 윗부분인 찰주까지의 높이가 13m로 국내의 현존하는 석탑가운데 가장 큰 탑이다. 신라석탑은 삼국통일과 함께 백제와 고신라의 각각 다른 두양식을 통합하여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양식으로 집약, 정돈된 신라석탑의 시원적인 양식의 표본이 바로 감은사지삼층석탑과 고선사지삼층석탑이다. 특히, 감은사지삼층석탑은 신라와 백제의 삼국시대 말기 석탑 양식이 하나로 집약된 새로운 양식으로 신라석탑의 규범을 이루는 시원적인 석탑이다.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고졸한 자태를 간직한 거대한 규모의 석탑으로 시대에 따라 부분적으로 다소의 변화는 있지만, 이러한 형식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신라석탑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석탑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많은 부재로 구성된 방식은 백제석탑과 공통되지만, 백제석탑이 목조 탑파를 충실히 모방하고 있는데 비해서 감은사지삼층석탑은 기하학적으로 계산된 비율에 의하여 짜인 새로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지붕모양의 옥개석과 공포를 약화하여 표현한 옥개받침과 기둥을 그대로 표현한 별석(別石)의 우주(隅柱), 다층(多層) 등 목조 탑파를 모방한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대석을 갑석보다 더 많이 내밀고, 갑석의 이음 위치를 탱주 위에 두고, 낙수면과 옥개받침석의 이음 위치를 서로 엇갈리게 두어 상부 하중을 분산시킨 조탑기법은 초기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부재 결구 기법이다. 동서 두 탑은 전체적인 형식과 구조는 말할 것도 없고 각 부재의 치수까지도 같다. 다만 상하층 기단 부재 모양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단부와 탑신부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고, 상륜부 노반 위는 결실되어 없어진지 오래이지만 찰주(擦柱)가 남아 있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부처님의 힘을 왜구를 물리치고자 절의 이름을 진국사(鎭國寺)라 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위독하게 되어 승려 지의법사에게 “내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겨 이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안장하였으며,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이름을 감은사로 고친 것이다. 이러한 유언의 흔적은 금당의 구조에도 반영되어 있다. 금당의 바닥구조는 H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장방형의 석재유구를 동서방향으로 깔아서 마치 돌 마루를 얹어 놓은 것 같이 되어있다. 그 위에 주초를 배열하고 건물을 세웠던 특이한 구조로서,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을 감은사의 금당에 들어오게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도 부합하고 있다. 금당 북쪽의 강당지는 원래 정면 8칸, 측면 4칸이었던 것을 , 후대에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고쳐서 지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 때 금당 아래에 용혈(龍穴)을 파서 용으로 화한 문무왕이 해류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 등과 함께 호국의 사찰로서 명맥을 이어왔으나,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문헌을 살펴보면 대체로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09-07-17

`킹콩을 들다`

영화 `킹콩을 들다`는 2000년 전국체전에서 총 15개의 금메달 중 1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휩쓸었던 시골 고등학교 소녀 역사들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극화되었다.대회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신화가 된 소녀들의 뒤에는 故정인영, 김용철, 윤상윤 세 명의 역도코치가 있었다.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버지처럼 가르치고 먹이며 시골소녀들을 역도선수로 키워낸 그들 중 정인영 선생은 전국체전 1년 후 49세의 나이에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학교에서 근무 중 순직했다.그는 역도황무지였던 한국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전병관을 발굴하기도 했다.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미래를 꿈꿀 수 조차 없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의 시골소녀들에게 `역도`를 가르쳐 주고 역도를 통해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드는 역도코치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멘토가 된 진정한 스승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시골소녀들을 아름다운 역사로 키운 어느 역도코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제 역도 선수들의 다양한 경험과 역도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한데 버무려 진솔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만들어낸 `킹콩을 들다`가 단순히 감동적인 스포츠 영화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부분이 바로 이점이다.`킹콩을 들다`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골소녀들이 `자신의 삶의 무게`를 깨치고 `아름다운 역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통해 역도가 가진 힘과 묵직한 감동을 영화 속에 녹여내는데 성공했다.역도는 축구, 농구 등 인기종목의 스포츠에 밀려 올림픽 기간 외에는 국민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경기이다. 하지만 2007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비인기종목인 핸드볼 경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와 전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주며 핸드볼 경기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처럼 `킹콩을 들다`를 통해 `역도`가 던져주는 힘과 감동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역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기회가 되고 있다.조안을 필두로 한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역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그야말로 땀과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과정이었다.조안은 여배우로서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7kg이상 체중을 불리고 특수 분장으로 땟국물이 묻어나는 영락없는 시골소녀로 완벽하게 변신했다.극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여배우들의 `실전연기`는 그들을 웃고 울렸으며, 그 모습은 생생하게 영화 속에 담겨 감동과 웃음의 동력이 되고 있다.`킹콩을 들다`에는 쟁쟁한 중견 배우들이 조연진에서부터 카메오까지 포진해 웃음을 선사한다.영화 속에서 보성여중 교장과 교감으로 분한 박준금과 우현은 때론 자상하게 때론 무섭게 시골소녀들을 역도선수로 단련시키는 이지봉(이범수)의 곁에서 그의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유감없이 해냈다.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친 박준금은 다양한 작품에서 감초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배우 우현과 환상의 호흡을 과시하며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실제로 두 배우는 연기를 하는 동안 환상적인 애드리브로 촬영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후문이다.여기에 대표적인 연기파 중견배우인 변희봉은 교육감으로 카메오 출연해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역시 변희봉`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내공 깊은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으며, 기주봉은 이지봉의 역도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는 역도감독으로 출연해 영화에 감동과 무게를 더했다.

2009-07-17

4. 공민왕이 남긴 문화유산

몽진 당시 청량산성·왕모산성·학가산성 등 축조해 전란 대비공민왕 가족 신격화… 정월대보름 동제 통해 마을 안녕 기원 1. 들어가며-공민왕과 홍건적2. 공민왕은 왜 안동을 피난처로 택했나3. 임시수도 70일- 나라와 백성은 어떻게 대항했나4. 공민왕이 남긴 문화유산 5. 문화유산의 전승방안 고려 31대 공민왕이 안동에 머문 기간은 모두 70일에 불과하다. 우리 역사상 왕의 몽진도 흔치 않았거니와 공민왕의 안동몽진 역시 긴 재위기간에 비하면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단 한 번 안동을 찾아 70일을 머문 공민왕. 그러나 그가 남긴 흔적은 이후 안동 지역 사람들의 삶 속에 700년의 세월동안 유·무형으로 남아 이어져 왔다. 이를 크게 나누자면 하사품과 성곽들, 공민왕 신앙, 전통놀이 정도를 들 수 있다.충성에 보답한 하사품 공민왕은 유형의 문화유산과 무형의 문화유산을 다양하게 남겼다. 유형의 자취 중 대표적인 것들은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안동 지역 백성들의 정성에 감동해 안동부와 안기역에 하사한 물품들이다. 보물 451호로 지정된 이 하사품들은 현재 안동시내의 태사묘의 보물각에 보관중이다.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공민왕은 안동부에 백옥대와 옥관자를 비롯해 모두 18종류 35개 물품을, 안기역에는 유잔구대 14개를 하사했다. 이 가운데 9종 30점이 유실됐고 6종은 일부가 남아있지만 역시 유실된 게 더 많다. 태사묘 보물각에 보관된 하사품들은 따라서 전체 하사품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군왕이면서도 서화에 뛰어난 예술가로 알려진 공민왕은 현판과 포장교서의 형태로 많은 글씨도 하사했다. 현판 글씨로는 영호루(映湖樓)와 안동웅부(安東雄府), 봉정사 진여문(眞如門)과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 등이 있다. 포장교서로는 1360년 당시 복주목사이던 정광도에게 내린 것이 태사묘 보물각에 남아있다. 이 교서는 `영가지`에서 안동의 고적 가운데 하나로 꼽은 공민왕 친필교지로 추정되지만 친필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공민왕이 축성했다는 산성들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한 것은 전란을 피해서였다. 이에 따라 안동 지역에는 어찌 보면 필연적이게도 공민왕이 축성했다는 산성들이 상당수 남아 있다. 청량산 축용봉 부근의 공민왕산성, 청량사와 여러 절터가 자리 잡은 곳 부근의 청량산성, 오마대도산성(五馬大道山城), 도산면 원천리의 왕모산성(王母山城), 안동과 예천 및 영주의 접경지역인 학가산의 학가산성, 서후면 천등산의 천등산성, 남선면 신석리의 신석산성, 용상동과 성곡동 일대의 성황당토성, 송천동과 임하면 천전리의 경계쯤인 양장성(羊腸城), 일직면 송리의 송리산성, 풍산읍의 풍악산성, 도산면 서부리의 선성산성(宣城山城) 등이다. 이 같은 안동지역의 산성들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도록 이어진 축성방법에 따라 석성 또는 토석혼축의 성으로 모두 공민왕이 축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성 중 상당수는 공민왕 이전에 있었던 성으로 공민왕이 몽진했을 당시 재정비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는 원래 안동지역이 전략적 요충지였던 점에 비춰 몽진 이전에 이미 상당수의 산성이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산과 청량산 일대의 경우 왕모산성과 청량산성 등은 물론 공민왕이 군율을 위반한 죄인을 처형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밀성대가 남아 있어 공민왕과의 깊은 인연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학계의 어떤 연구에서도 공민왕이 청량산을 직접 다녀갔다는 사실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산세가 험한 청량산 일대가 매력적인 군사적 요지였던 사실만큼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이 점은 공민왕이 청량산에 직접 다녀갔으며 산성 구축이나 재정비에도 일정부분 관여했을 가능성을 유추하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공민왕 신앙 공민왕이 남긴 무형의 문화유산으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격화 양상이다. 공민왕 또는 왕의 가족을 동신으로 모시는 마을은 현재 안동에만 9개 마을이며 봉화군 지역에도 8개 마을에 이른다. 사실 전통사회에서 특정한 역사적 인물을 공동체의 신으로 모신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공민왕의 신격화 양상은 왕은 물론 왕의 어머니와 부인,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등 가족 구성원 거의를 나눠 신앙화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실제, 공민왕을 직접 모신 마을은 풍산읍 수리 국신당과 남선면 신석리 성골, 용상동 공민왕당이 있다. 또 그의 딸을 모신 `딸당`은 도산면 가송리와 예안면 신남리 구티미마을에 남아 있다. 또 왕의 어머니를 모신 `왕모당`이 도산면 원천리 왕모산성에 존재하며 예안면 신남리 정자골에는 `며느리당`이 남아있다. 600여년 동안 동제가 올려진 가송리 `딸당`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 자정께 많은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풍물 등을 앞세우고 길 굿을 벌인 뒤 유교식 제례로 치러진다. 이날 자정을 전후해서는 안동 지역의 공민왕과 가족신을 모신 마을에서는 규모만 다를 뿐 일제히 동제가 열린다. 주민들은 이 동제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안동 전체가 복을 받기를 기원한다. 놀이와 설화 공민왕의 안동 몽진시 노국공주가 송야천을 건널 때 안동의 부녀자들이 등을 잇대어 인교를 만든데서 유래했다는 `놋다리밟기`는 실은 이전부터 있어온 여성들의 집단놀이라는 데 이설이 별로 없다. 여성들이 서로 손을 잡거나 몸을 부대끼면서 벌이는 집단적 춤이나 놀이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문화임을 춤 인류학은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안동의 놋다리밟기는 곤경에 처한 공민왕에 대해 안동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을 베풀었는지에 대한 증거로서 하나의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놋다리밟기는 전라도의 강강술래, 동해안의 월월이청청, 의성의 지애밟기 등과 같은 맥락인 여성의 대동놀이이다. 다만 다른 지역에서의 놀이가 서로 밟고 밟히거나 주고받는 평등한 방식의 놀이라면 안동의 놋다리밟기는 그와 다르다. 공주를 뽑은 뒤 나머지는 모두 엎드리고 공주만이 등을 밟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공민왕 몽진시 노국공주가 이 놀이에 함께 동참하면서 전승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안동에서는 해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등 수차례 놋다리밟기 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함께 안동 지역에는 공민왕과 관련한 다양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런 설화는 공민왕이 몽진한 과정을 조명한 이야기기 10편에 달하며, 몽진 기간 동안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는 무려 46편에 달하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공민왕과 그 가족들을 모시는 동제와 관련해서도 42편의 이야기가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유형별로 살펴보자면 공주를 위해 인교를 놓았다는 놋다리밟기 설화의 경우 공민왕의 몽진과정을 이야기한 대표적인 설화이다. 안동의 여러 지명에 대한 전설과 공민왕이 청량산에서 거주했다는 설화 등은 공민왕이 안동에 머물던 당시의 행적을 소재로 한 설화이다. 이처럼 다양한 설화는 곧 공민왕 신격화의 토대가 됐으며 `공민왕 신앙` 자체도 영험담 등이 전해지는 등 설화로 내려온다. 이처럼 공민왕은 안동 지역에 크고 작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남겼다. 왕의 안동 체류 이후 7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일부 유실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유산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끈질긴 인연은 오늘날까지 안동의 문화적·정신적 모태가 되고 있다./정태원·이임태기자

2009-07-17

`신라 천년의 향` 품은 맛·최고 육질로 `명품` 각광

경주는 대내외적으로 `문화관광도시`로 알려져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언급하자면 신라 천년 수도였기에 그 당시 유적과 유물이 지역 전역에 걸쳐 분포해 `노천 박물관`이 불릴 정도다. 그러나 경주가 도시 브랜드 이미지와 달리 국내 최대 `축산집산지`라는 이면성에 대해서는 생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육농가만 해도 5천569호에 6만370여만 두가 사육되고 있고, 연간 수입만 해도 1천600억원대 이르는 등 전국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이같은 배경에는 경주시와 경주축협 등 관계기관은 축산농가에 대한 지원을, 축산농가는 철저한 사육 및 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주 `천년한우`라는 명품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편집자주 ▲경주 천년한우 경주시와 경주축협은 지난 2006년부터 경주 한우를 업그레이드한 명품 `경주천년한우`로 탈바꿈시키고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명품화 성공이 소비자들로부터 외국산 고품육보다 더 각광을 받고 있다. 경주천년한우를 생산하는 과정은 이렇다. 번식농가에서 생산된 혈통등록 이상의 건강한 한우송아지를 비육농가에서 입식하여 7개월 이전에 거세를 실시한다. 거세 후 양질의 조사료가 첨가된 브랜드전용 TMR 사료를 급여하고, 출하하기 전에 급여하는 브랜드전용사료에는 항생제가 첨가되지 않은 `무항생제` 사료를 급여함으로서 `한우브랜드육`으로서의 안전성을 지키고 있다. 이에앞서 `경주버섯한우`에서 출발, 지난 2006년 `경주천년한우`로 브랜드명을 변경하면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해인 2006년에는 경상북도 우수농산물 선정 및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 장려상을 획득, 2007년에는 국내 최초 한우사육단계 HACCP 인증 획득 및 경주천년한우 상표등록을 완료했다. 이어 브랜드사업에 탄력이 가해져 `2008년 경북한우경진대회` 브랜드 고급육 부문 최우수상과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 육질 최고상 등을 수상을 통해 각종 평가 대회에서 명품 한우브랜드로서 검증을 받았다. 이를 위해 `경주천년한우 브랜드사업단`이 설치됐다. 사업단은 더욱 안전한 브랜드 육 생산을 위해 경주시농업기술센터와 공동으로 한우사육단계 HACCP 인증사업을 추진했다. 이 결과 2007년 10월 국내최초로 한우사육단계 HACCP (위해요소 중점관리 우수축산물) 인증을 획득해 현재까지 한우브랜드 분야에서 전국 최다인 17농가가 인증을 받았다. 또 2009년에도 22농가의 인증을 추진 중에 있어 안전하고 깨끗한 선도 한우브랜드로 정평이 나있다. HACCP는 CODEX라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정한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이란 뜻이다. 유래는 미국항공우주국에서 우주인에게 무결점 식품을 공급하기 위해 위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해요소를 분석하여 사전에 체계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위생관리제도로서 여러 선진국에서는 위생적인 축산식품 생산과 관리를 통해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다. ▲경주천년한우 브랜드의 특징 경주천년한우 브랜드 번식(암소)농가에는 부루민(해초추출물)을 첨가한 브랜드전용사료를 급여하여 암소의 번식기능 향상과 면역력을 증가시켜 우수한 형질의 건강한 송아지를 생산하고 있다. 브랜드 비육농가에서는 번식농가에서 생산된 우량송아지를 입식해 비육전기까지는 양질의 조사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브랜드 전용TMR 사료를 공급한다. 출하 6개월 전에 급여하는 후기사료에는 항생제를 전혀 첨가하지 않은 무항생제 사료를 급여하고 있으며 특히 브랜드 사료에는 토코페롤(vitamin E)이 첨가되어 있어 브랜드우의 생리작용과 건강을 도와 자연스럽게 안전한 고급 브랜드육이 생산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주천년한우 우수성 홍보 경주천년한우 브랜드사업단은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탤런트 현석이 출연하는 경주천년한우 홍보 CF를 제작해 수도권 및 대도시에 송출하고 있다. 또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에 제작지원을 해 홍보의 파생효과를 보고 있고, 각종 언론매체를 통한 홍보도 같이 하고 있다. 또한 매년 경주시가 주최하는 `술과떡잔치` 행사 참여를 비롯한 연간 5~6회 정도의 무료시식회와 홍보행사를 실시해 수도권 및 인근지역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경주천년한우 브랜드사업단장인 최삼호(사진) 조합장은 “경주천년한우와 같이 안전하고 깨끗한 한우를 홍보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한우의 전통과 안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09-07-16

경산·대구 통합추진위원회 송세혁 공동대표

“행정체제 개편 논의 본격화… 희망 보인다” `경산시` 고유 명칭·지자체 독자기능 보장 전제돼야정치권 등 각계각층 추진위원 260여명 활발한 활동정치권에서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며서 경산·대구의 통합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송세혁(74) 경산·대구 통합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경산은 지난 1981년 7월 지역의 일부인 고산면(시지) 지역과 안심읍(반야월) 지역을 대구광역시 승격과 함께 대구시에 편입시켰던 아픔이 있으며 자녀의 교육을 위해 시지지역으로 위장전입을 하는 학부모가 증가하는 사례도 있었다.교량 하나와 경계선을 경계로 대구광역시와 경북도로 나뉘는 경산은 대구와 통합요구가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실제 이익과 반사 이익 사이에서 고민하던 정치권과 행정권의 관망으로 쉽게 관철되지 못했다.정치권이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는 모르지만 경산·대구 통합을 위한 노력과 전망 등을 송세혁 공동대표에게 들어 보았다.-경산·대구지역 통합 추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추진 이유는.▲통합추진은 지난 1994년부터 시작되었다.경산과 대구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 같은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고 팔공산과 금호강을 함께 끼고 살아온 동질성과 일체감이 있다.94년 경산시의회와 군의회는 대구광역시로 편입되면 지역 경제 및 개발, 교육, 교통 등 여러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과 개선이 기대된다며 경산시란 고유 명칭을 가지고 자치단체의 독자적인 기능수행을 보장하는 전제를 가지고 대구시 편입을 희망하는 견해를 정부와 국회 등에 전달했었다. 현재는 대중교통이 서로 무료 환승을 하며 대구지하철 2호선의 경산연장공사가 진행 중이고 1호선의 하양 연장이 추진되는 등 경산과 대구는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이고 있다.-통합추진위원회에는 어떤 분들이 활동하고 있는지.▲260여 명의 추진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어느 지역에 편중된 것이 아니라 고른 지역을 대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는 윤영조 전 시장을 비롯해 성재영, 최기환, 이영교, 김경윤, 임채열 씨 등이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많은 독지가가 통합을 바라며 후원에 나서고 있다.-지금까지 가시적으로 나타난 성과가 있다면.▲지역적으로 나타난 것은 없다.그러나 정치권의 행보는 남다르다. 지난 2005년 11월 8일 국회가 행정구역체제개편 특위 첫 회의를 열고 `시·도-시·군·구-읍·면·동`의 3단계 행정구역체계를 광역단체-실무행정단위의 개편한다는 큰 원칙을 세웠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이제 다시 행정구역체제개편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대구와 경산의 통합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또 최경환 국회의원이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경산과 청도, 대구를 통합해 교육과 문화, 과학이 중심이 된 에쿠스시티 건설을 공약으로 당선돼 재선의원으로, 실세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하고 있으니 지역민의 민심을 외면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반대 의견도 있다. 이 반대 의견은 어떻게 수용할 것이며 앞으로의 계획은.▲어느 의견이나 일에 대해 100% 찬성은 있을 수 없다. 경산·대구의 통합은 지역민의 80% 정도는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본다. 이는 매일신문이 지난 2005년 6월 `대구·경북 경계인`을 주제로 칠곡군과 경산시, 영천시, 성주군, 청도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대구 편입에 대한 전수조사에서 경산은 77.4%가 찬성했다.민주주의는 다수 의견이 존중받는 사회이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경산시민은 대구와의 통합에 찬성하고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자신과 의견이 합치되지 않아도 다수 의견을 존중하리라 본다.경산지역은 독자적인 권역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대중교통을 포함해 문화·상권이 대구시에 예속되거나 막대한 영향권 안에 있다. 그럼에도 행정적인 경계로 분리되어 경제적인 면이나 교육, 문화에서 누려야 할 권리가 박탈되고 있는 느낌이다. 행정구역체제개편에 나선 정치권이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다 하여도 경산·대구의 통합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09-07-16

오메가형 인간이 뜬다

한 때 알파걸이 각광을 받은 때가 있었다. `알파걸`이란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댄 킨들런 교수가 자신이 출간한 책 제목으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알파걸은 공부와 운동 등 모든 면에서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 엘리트 소녀를 일컫는 말이다. 알파걸에는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인 `알파`가 사용되어 `1등` `최고`라는 의미가 있다. 알파걸의 특징을 지닌 사람을 알파형 인간이라고 한다. 알파형 인간은 당당하고 적극적이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이들은 늘 긴장 상태에서 생활하며 빠듯한 일정 속에서 여유 없이 앞만 보고 살아간다. 이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연속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한다. -각종 자료에 기초하여 분석적인 결론을 잘 내린다. -일찍 출근해서 하루 종일 강도 높게 일하다가 늦게 퇴근한다. -권력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외르크 페터 슈뢰더가 지은 책 `행복한 게으름뱅이`에는 알파형에 비교되는 여러 가지 유형의 인간이 소개되어 있다. 그는 최근의 조직 문화와 노동시장을 관찰하던 중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사람들을 발견하였다. 그 중에는 상관의 부름에 대기하고 있다가 지시가 떨어지면 즉시 실행에 옮기는 헌신적인 베타형 인간도 있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델타형 인간도 있다.슈뢰더의 주목을 끈 것은 알파걸처럼 뼈빠지게 일하는 대신, 인생과 일을 마치 놀이하듯 즐기며, 창의적이고 직관적으로 행동을 하는 오메가형 인간이었다. 오메가형 인간은 양 보다 질을 추구하는 창의시대에 꼭 맞는 유형으로 알파걸을 대체할 새로운 트랜드이다. 오메가형 인간은 직관, 감성적 지성, 음악적 감수성, 창조성, 경험 등 각종 소프트 스킬이 결합된 인간이다. 오메가형 인간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알파형 인간과 비교해 보자. 알파형이 자기중심적이라면, 오메가형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이들은 위계질서에 따라 일하지 않고, 네트워크에 의해 일한다. 알파형이 `Work hard`를 강조한다면 오메가형은 `Work smart`를 강조한다. 오메가형 인간은 얼핏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파형 보다 업무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이들은 단순히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느긋한 마음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다가 거기서 깨닫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 다른 사람이 어쩔 줄 몰라 당황할 때 오메가형 인간은 통찰력을 발휘한다. 오메가형 인간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다차원적인 사고를 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 그리고 저것도`라고 생각한다. -양보다는 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오히려 다른 사람들 보다 천천히 걷는다. -다른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동체 의식을 발휘한다. -직관적으로 상황의 본질을 신속하게 파악해낸다.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정보의 홍수 속을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기존의 것에 만족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규칙을 바꾸고 자기 자신과 상황을 거듭 새롭게 창조한다. -맨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뒤에서 조종한다. 이러한 오메가형 인간이 일하는 지침은 `더 적게 일하고, 더 크게 성공하자`이다.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 다양성과 개성, 그리고 독창성이 요구되는 창의시대에는 오메가형 인간이 각광을 받는다. 게으름뱅이처럼 보이지만 속에 무능과 가난뱅이 의식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창의의식이 들어 있는 이들, 오메가형을 주목하라. Create yourself!

2009-07-15

과학- 은하

별들은 우주 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별들이 제멋대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별은 `은하`에 속해 있다. `은하`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중력에 의해 한데 모여 있는 별들의 거대한 집단을 뜻한다. 그래서 모든 은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은하에는 무게 중심 주위를 공존하는 항성이 있다. 항성은 1000만 개에서 1조 개나 된다. 우주에는 은하가 많이 존재하며, 이런 은하들은 `은하단`이라는 무리를 짓고 있다. 은하는 모양에 따라 타원·나선·불규칙 은하 등으로 나뉜다. 타원형 원반으로 보이는 타원 은하는 빛의 분포가 고르고, 중심부에서 가장자리로 갈수록 어두워진다. 나선 은하는 중심에서 나선 모양의 팔이 나와 있다. 불규칙 은하는 특정한 모양이 없는 은하를 말한다. 은하 중에는 보통의 은하가 일생 방출하는 에너지를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방출하거나 은하 내부의 큰 충돌이나 폭발에 의해 강한 전파를 방출하는 전파 은하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은하는 `우리 은하`로 불리며,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나선 은하`이다. 옆에서 보면 납작한 원반처럼 보이고, 은하의 중심에는 많은 별로 된 핵이 있다. 이 핵 주위를 띠 모양으로 이어진 별들이 돌고 있다. 우리 은하에는 약 2천억개 가량의 별이 속해 있다. 태양은 은하면 위에 있으며, 중심에서 약 3만3천광년 떨어져 있다. 은하의 원판은 회전 운동을 하며, 태양은 2억5천만년 주기로 은하 중심을 공전하고 있다. 한 여름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띠처럼 줄줄이 이어진 별들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게 보일 것이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은하`의 일부로, 우리나라에선 `은하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나라의 전래 동화 중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있는데,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 강을 건너 7월7일 칠석날에 만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서양 사람들은 은하수를 보고 붓으로 우윳빛 길을 그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하수를 영어로 말할 때, 우유라는 단어 `밀크(milk)`와 길이라는 단어 `웨이(way)`를 합쳐 `밀키웨이(milky way)라고 불렀다.생각 생각▶초등 1. `은하`란 무슨 뜻인지 기사에서 찾아보세요. 2. 서양 사람들이 은하수를 부르는 이름은 무엇인가요? 3. `은하수`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세 가지 이상 적어 보세요. 4. 은하는 모양에 따라 어떻게 나누어지는지 기사에서 찾아보세요. 5. `은하수`라는 제목으로 동시를 써 보세요.

2009-07-15

하늘마음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벌써 2개월이 지났다. 봉사활동도 3번이나 갔다 왔다. 처음 봉사활동은 봉사활동이 아닌 체험학습이었고, 두 번째 봉사활동도 사실 청소만 하다왔지 제대로 봉사를 한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로원에 간다고 하니, 왠지 제대로 봉사활동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때 까지 양로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사실 약간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기대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어른들께 싹싹하고 어리광피우는 편이 아니라서 사실 할머니들과 말을 하게 되면 어색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늘마음은 구룡포에 위치해 있었는데,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니 외딴 마을에 하늘마음이 있었다. 십자가도 있고 약간 교회같은 분위기가 들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었다. 일단 우리는 아이들을 나눠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나와 시은이, 유라, 효정이, 새름이, 수진이는 2층을 청소하기로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갔다. 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몸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2층에 올라가는 데도 엘리베이터를 타야 된다고 생각했다. 안내해 주시는 직원분을 따라 우리는 우선 각자 청소기, 걸레를 들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였는데 내가 청소기를 밀면 몇몇 아이들은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그런데 유난히 지금도 생각이 남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복도에 머리를 내밀고 누워계셨다. 그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참 편안하다고 느꼈었다. 정말 편하게 누워계셨다. 그런데 우릴 보더니 소리를 지르셨다. 처음엔 서로 무슨 말 인지 몰라 당황을 했지만 잘 들어보니 방문을 닫아달라는 얘기였다. 몸이 불편하셔서 창문을 못 닫으실 것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다고 한다. 치매에 걸리면 아이로 돌아 간다는 게 정말 인 것 같았다. 자꾸 우리를 보시고 소리를 지르셨다. 겁이 나서 일부러 피하기도 해서 죄송하기도 했다. 그렇게 청소를 마치고 우리는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나와 유라가 같이 청소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화장실이 깨끗하다고 얘기를 하다가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절대로 이런 시설에 보내지 않을 거라고 얘기를 했다. 사실, 그 곳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정말 한가롭다 못해 적적해 보이셨다.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는 할머니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노인분들은 누워있거나, 가만히 앉아 계시는 게 전부 였다. 우리가 처음 할머니를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을 때 그 분들은 아무런 대답도 미동도 없었다. 정말 일상이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측은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여러 얘기를 하면서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각자 덥고 계시던 이불을 걷어 들여 털어드렸다. 이불이 정말 무거웠지만 상쾌한 바람과 뜨거운 햇빛에 이불을 터니 기분이 정말 상쾌했었다. 우리는 이불을 털고 약간의 휴식시간을 얻었다. 더운 줄 알았던 날씨가 바람도 상쾌하고 정말 시원했었다. 그리고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다음 할 일은 방에 있는 개인 물병을 씻고 물을 새로 받는 것이었는데 통마다 이름과 호실이 적혀서 있어서 인상 깊었다. 함께 따라오신 두 명의 교생 선생님들과 함께 물병들을 가지고 1층에 내려갔다. 물통을 씻은 다음 소독기에 넣고 소독을 시켰다. 물통에 물을 채운 다음 2층으로 다시 올라가 제자리로 놓은 뒤, 우리는 1층에 앉아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갔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몇몇 아이들이 나가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정말 즐거우신 듯 하였다. 손뼉도 같이 쳐 주시고 웃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기분이 좋았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 12시 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떠나올 때 정말 몇 달 뒤에 올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었다. 저 분들이 그 때 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고, 다음에 하늘마을에 봉사활동을 올 때에는 치매 걸리신 2층의 할머니에게 일부러 피하지 않고 말도 걸어드리고 얘기도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정말 힘든 일은 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로 보람찬 하루였다.

2009-07-15

연임 성공 서상기 대구시당위원장

“그동안의 불협화음 기우로 만들겠다”친이vs친박 대결구도로 비쳐져 마음고생 많아“제대로 된 공천 이끌어 지방선거 압승 이룰 터”서상기(대구 북구을) 현 대구시당위원장이 연임에 성공했다.시당위원장 연임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기에 반대도 많았던 것이 사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 의원의 대구시장 출마설이 불거지면서 이한구 의원과 이명규 의원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더욱이 대구시당위원장 선거가 `친이 vs 친박`의 구도로 비치면서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이 서 위원장의 속내다.- 연임에 어렵게 성공하셨는데.▲ 솔직히 되니까 기분이 좋으네요. 앞으로 열심히 해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가 기우였다, 또 그 말을 하신 분들을 멋쩍게 만들 생각입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이유하고 표면적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임이라는 자체가 흔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저는 저대로 연임을 해야 하는 필요성이나 또 권유하는 분도 계셨기 때문에 강력히 주장한 것입니다.- 이한구 의원과의 명분싸움이 있었는데.▲ 이한구 의원은 시장 나올 사람이 시당위원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시에서 하는 일에 적극 협조를 해야 한다는 두 가지를 명분으로 했습니다. 사실 시당위원장이 대구시의 일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것은 99% 당연한 이야기이고 그 조건은 문제없었습니다. 다만, 시장 나올 사람은 곤란하다는 이야기는 합리성 여부를 떠나서 제가 결심을 하거나 계획을 하거나 해야 포기를 하든 강행을 하는데, 전혀 아직까지 미래를 모르는 입장에서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결국 그렇게 표현하지 않더라도 시당위원장이 되어서 시장 선거에 그 자리를 활용하는 측면이 없으면 되는 것 아니냐. 그리고 나중에 가서 상황이 변화가 되면 일찍 사퇴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했고 그 부분을 이한구 의원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향후 1년간 대구시와의 협조문제, 지방선거의 문제가 있는데.▲ 대구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똘똘 뭉쳐 대구의 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합치고 내가 할 수 있는 협조는 무엇이든 다 할 생각입니다.지방선거와 관련해서는 가장 핵심이 공천문제입니다. 그 문제는 다른 의원님들과 협의하고 제대로 된 공천을 해서 지방선거를 압승으로 이끄는 것이 제 소임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이 저에 대한 걱정을 기우라고 생각하도록 특별히 염두에 두고 시당위원장 직을 수행하겠습니다. 내년 이맘때 그런 이야기를 하신 분들이 머쓱해 지도록 하겠습니다.- 대구와 경북의원들 간의 협력이 예년만 못지않다는데.▲ 우리 의원들이 중간 역할을 잘해서 정말 대구와 경북이 같은 경제권, 같은 운명체로 힘을 합할 수 있도록 개별 의원들이 앞장서고 시장과 도지사의 협력에 일조를 하겠습니다.하지만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달리,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장에서 다른 지역 의원보다는 가깝게 지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특별히 예산문제에 대해 지정받고 큰 프로젝트로 경쟁하는 것은 있지만 대부분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09-07-15

15일 퇴임 앞둔 신상철 대구시교육감

“창의성교육 인프라 구축이 가장 성공作”난치병학생돕기·아침독서 10분운동 등 보람“지역·학교간 학력격차 해소 못해 아쉬움 커”신상철 대구시교육감이 오는 15일 7대 교육감 임기를 끝으로 대구시교육청을 떠난다. 신 교육감은 2001년 6월22일 6대 민선 교육감으로 당선돼 7월16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뒤 4년 뒤인 2005년 7월 또다시 7대 교육감으로 재신임을 받아 8년간 시교육청을 이끌어왔다. 신 교육감은 13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재임한 8년간은 교육계로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변혁기였다”면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보람과 기쁨도 함께 했던 인생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지난 8년간을 되돌아본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5·31 교육개혁과 교원정년 단축, 교원노조의 합법화와 교원단체 간의 심각한 갈등, 고교 평준화, 대학입시제도의 잦은 변화 등을 비롯 교육정보화와 NEIS 도입, 교원평가제와 교장공모제, 초·중등 교육 관련 업무의 시도교육청 이양, 학교자율화와 공교육 내실화, 사교육비 경감 대책 등 변화의 연속이었고, 교육계는 많은 진통과 갈등,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찾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길다면 긴 8년은 저 개인에게도 다사다난했으며, 늘 머리 속을 맴도는 책무와 갈등으로 고뇌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보람과 기쁨도 함께 했던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가장 보람있었던 점을 꼽는다면.▲`창의성 교육`은 2002년 재임 초기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추구해 온 소신이며 지향점입니다. 초기에는 창의성 교육 인프라 구축을 위해 힘썼고, 이후에는 그동안 쌓아온 창의성 교육 인프라를 토론학습과 프로젝트 학습 등 수업방법 개선에 접목시켜 기초·기본 학력을 확고히 다지고 학생 활동 중심의 교실수업 개선으로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키워가는데 역점을 뒀습니다. 앞으로 창의성 교육이 활짝 꽃피워 우리 대구의 교실에서 노벨상 수상자나 세계적인 석학이 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또 하나는 2004년부터 실시해 온 `난치병학생돕기운동`으로 연인원 1천318명의 학생들에게 의료비 36억4천여만원을 지원하고, 올 5월 현재 88명의 학생이 완치단계에 이르러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전개해 학생들에게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도 보람으로 기억됩니다. -아쉬웠던 점은.▲교육의 성과라는 것이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을 위한 초석을 닦는 것이기 때문에 8년이 지났지만 뚜렷이 자랑할 거리는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후회스러운 점을 든다면 사학 등 학교교육을 지원함에 있어 좀더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과 창의성 교육 등 학력 관계만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인성 교육에 좀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특히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지역간·학교간 학력격차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인사와 예산 지원 등을 통해 해결하려 했으나 성과는 미미하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교원노조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점 등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8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그동안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많이 소홀했습니다. 당분간은 개인적인 일을 좀 정리할 생각이고, 차기 시교육감 출마와 관련해서는 지금 한다 안한다 말하기에는 좀 이르고, 어느 적절한 시기가 되면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이현주기자 sun@kbmaeil.com

2009-07-14

예순아홉번째 안부 - 포구에서

우기 중인 포구가 눅눅합니다. 다행히도 지난밤엔 바람이 크지 않아 오늘 아침 배들은 제법 많은 청어를 풀었지요. 비닐 옷에 장화를 신은 사내들이 터질 듯 한 뜰채를 힘껏 올려 청어를 쏟으면 한가득 싣고 떠나는 트럭과 중매인들 오토바이 소리로 한동안 판장이 북적였구요. 젖은 배 위에서 밥을 지어 둘러앉은 아침식사 위로 한두 방울 또 비가 다녀가네요. 서둘러 식사를 마친 그대는 끼걱끼걱 흔들리는 뱃머리에 걸터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태우며 먼 곳 바라보았지요. 온통 펄럭이는 오후였던가요? 후둑거리며 굵은 빗방울이 사선으로 칠 때 수협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비스듬히 기댄 채 어디론가 안부 전하는 당신을 본 적 있어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지만 까무잡잡한 얼굴에 다녀가는 웃음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나는 걸 보며 아마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했지요. 작정하고 잡은 듯 수화기를 오래 놓지 못하는 걸 보며 무척이나 오랜만에 나누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구요. 힘이 들지만 참을 만 하다고 날이 덥지만 참을 만 하다고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모처럼 목욕탕에 다녀왔다고 여긴 골목마다 주홍빛 능소화가 담을 넘어 피고 키가 큰 줄기에 빨갛게 하얗게 접시 같은 꽃도 피더라고 그리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였더랬지요. 길고 긴 통화를 마치고 그대가 우산을 펴기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어요. 묵직한 할인마트 비닐봉투를 야물게 쥐고 다시 배를 향해 걷는 그대의 걸음이 세찬 빗줄기 속에서도 사뭇 가벼워 보였답니다. 멀고 먼 나라 포구에 정박한 그대의 젊은 날 비록 지금은 눅눅한 외로움의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꿈꾸던 것들을 향해 조금씩 당겨 앉는 귀하디귀한 시절이기를 바라며 포구를 둥글게 돌아 나옵니다.

2009-07-14

김영화 전 한국환경기술진흥원장

국내 최초 `새집증후군` 보상 판결 이끌어내 경북 포항출신의 김영화 전 한국환경기술진흥원장은 요즘 강의준비를 위한 저서집필에 한창이다. 지난 3월부터 연세대학교 외래교수로서 자신이 환경부에서 환경정책을 다뤘던 경험에다 자신의 저서인 환경영향평가론을 덧붙인 강의를 학생들에게 펼쳐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좀 더 충실한 강의를 위해 환경관련 논문과 최근 학계의 동향 등을 반영하기 위해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환경행정의 산 역사`이자 `환경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 전 원장을 만나 고향에서의 추억과 공직에서의 에피소드, 근황 등을 들어봤다.편집자주산림청·지주 수차례 방문… 국립공원 구역조정문제 해결무조건적 환경보호보다 개발도 필요하다는 `환경개선론자`환경·경제 동반성장 위한 `저탄소 녹색성장 전도사` 자처 -어릴때 고향에서 뛰어놀던 추억들 가운데 어떤 일들이 인상에 남아있습니까. ▲어릴 적 기억은 주로 농사일에 관한 기억뿐입니다. 학교를 마치면 소 먹일 풀을 베고, 잡초를 뽑으러 다녔죠.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이런 일을 평생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검정고시를 통해서라도 고교에 진학하게 된 셈입니다. -어릴 때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릴 때는 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가장 좋은 직업으로 보일 때였습니다. 좀 더 커서는 가정형편을 고려해 공짜로 대학을 나올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육사는 아시다시피 학비는 물론이고 잠자리걱정이 없을 뿐 아니라 용돈 걱정도 없어서 좋았습니다. -육사를 졸업한 뒤 군인의 길을 가지 않고, 공무원생활로 뛰어든 것은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 당시 고 박정희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추진력있고, 청렴한 공무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공무원시험에 응시하도록 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박 전대통령을 매우 존경해 왔기 때문에 그 뜻에 따라 행정공무원 시험을 치르게 됐습니다. 군에서 봉사를 하나 공무원으로서 봉사를 하나, 국가에 대해 봉사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있었고, 존경하는 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보람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공직자로 근무할 때 보람있었던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을 들 수 있을까요. ▲환경부 관리관(1급)으로서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으로 일할 때입니다. 당시 새집증후군으로 인한 아토피성 피부염에 대한 최초의 피해보상판정을 해 친환경주택건설 자재 개발과 친환경 벽지 및 도료 개발에 기여했던 일이 보람있는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판정내용은 전국 일간지 1면에 보도될 만큼 관심을 모았습니다. 대형 건설업체가 경기도에 시공한 아파트 벽지 자재에서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이 나왔고, 이 때문에 한살난 남자아이의 아토피 피부염이 생겼기 때문에 치료비와 벽지와 도료 등 내부장식을 모두 바꿔주도록 판정을 냈죠. 그 이후 지어지는 아파트에는 모두 친환경벽지 및 도료가 쓰이게 됐습니다. -환경부 자연보전국장으로 근무했을 때는 주로 어떤 업무를 하셨는 지요. ▲당시 환경부가 10년간 해결하려고 노력해도 풀지 못했던 오랜 숙제로 국립공원의 구역조정문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업무를 맡은 뒤 땅을 가진 개인과 국립공원의 구역조정문제를 해결했죠. 대전에 있는 산림청을 수십차례 드나들며, 땅 주인들을 만나 끈질기게 설득하고 협의해 어렵게 국가적 숙제를 해결했죠. 또 동강유역 생태보전지역 지정문제도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당시 댐 건설이 중지된 후 생태보전지역을 지정해야 했는 데, 영월·평창·정선 지역담당 정책과장을 40여회 만났습니다. 땅을 보상해 사들이고, 비료나 농약을 못쓰게 하고, 유기농으로 유도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환경부 기획예산담당관으로 예산업무를 3년동안 맡았는 데, 이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풍치를 앓으면서 어금니 4개를 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때 환경개선특별회계를 최초로 도입해 환경개선사업의 투자를 확대하고, 관리운영을 효율화하는 데 힘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부가금과 부담금 등을 거둬 일반 세금의 비중을 줄이는 자립형 특별회계 도입이 그때가 처음인 것으로 압니다. -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는 저서도 쓰셨던 데, 환경영향평가를 한마디로 말하면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 ▲환경영향평가는 원래 미국에서 나온 제도인 데, 환경영향평가를 해서 하라거나 하지말라는 결정을 하는 의사결정제도입니다. 다만 미국은 땅이 넓은 나라여서 하지말라고 해도 다른 데 가서 개발사업을 하면 되지만, 일본이나 독일, 또는 우리나라처럼 땅이 좁은 나라에서는 의사결정도구로 쓰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땅이 좁은 나라에서 개발사업을 어차피 해야 한다고 하면 환경영향이 적은 쪽으로, 또는 환경을 해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쪽으로 통제해서 환경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바꿔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사업을 못하게 해야 하는 데, 사업자에게 면죄부를 만들어준다는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아주 나쁜 것은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하지만, 아주 나쁘지는 않으나 피해가 있는 것은 피해를 줄이거나 오염을 줄이고, 사후에 계속 오염관리를 해서 환경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운동과 관련해서는 어떤 지론을 갖고 있습니까.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은 대략 두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첫째는 무조건 `개발은 환경파괴`라고 보고, 환경을 개발하지 않고 보호해야 한다는 환경보호론자가 있습니다. 둘째는 환경개선론자입니다. 환경도 놔 두면 자체적으로 퇴화하기 때문에 돈을 들여서 더 좋게 만들어야 하고, 개발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보는 쪽이죠. 저는 환경개선론자 입니다. 경제성장이 환경을 개선하고, 환경이 성장을 지원하는 선순환 경제와 환경의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영어로 환경분야 회의도 주재할 만큼 영어에 능통하다고 들었습니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아침7시부터 시작하는 종로시사영어학원을 3년동안 다녔습니다. 두달이면 끝나는 코스를 매년 6회 반복해 약 18번 반복한 셈이죠.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려 학원에 늦게 도착했는 데, 들어서자 마자 교재의 몇쪽 몇번 문제를 공부하고 있는 지 알 정도가 되더군요. 그리고 난 뒤에 미국유학을 갔는 데, 공부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로 영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환경분야 회의라면 영어로 충분히 진행할 정도입니다. -현재 정부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저탄소 녹색성장이야 말로 환경개선론자의 사상에 가장 잘 들어맞는 정책입니다. 저는 대학강의에서도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녹색생활화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죠. 에너지 절약이나 물절약, 생활용품절약, 걷기운동 확산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저 스스로는 `저탄소녹색성장의 전도사`라고 자부하고 있을 만큼 지지하고 있는 정책방향입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김영화 전 한국환경기술진흥원장은 김영화 전 원장은 1950년 경북 포항시 북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기북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대구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태국의 아시아과학기술대학원에서 환경공학석사, 영남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1978년 10월 육사출신을 위한 특별고시를 통해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환경부에서 환경평가, 수질정책, 기획예산 업무를 담당했다. 대구지방환경청장, 영산강환경관리청장, 한강환경관리청장, 환경부 공보관을 거쳤으며, 환경부 자연보전국장과 환경분쟁조정위원장으로 역임한 뒤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한국환경기술진흥원장으로서 환경기술개발에 힘썼다. 지금은 연세대학교 외래교수로서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지난 2001년에 출간한 `최신 환경영향평가론`이 있는 데, 지난 2006년 2쇄에 들어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재 또는 참고서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07-13

홍석규 울진군태권도협회장

“도교육감기 선수권대회 성공개최 이룰 터” 출전선수만 1천여명… `전자호구 사용` 관심“지역 태권도 위상 걸맞는 `실업팀` 만들고파” 오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울진에서는 `2009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 성공 기원을 겸한 제 42회 경상북도교육감기 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경북태권도협회가 자체적으로 주최하는 대회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대회다. 초·중·고등부를 통틀어 출전선수만 1천여명에 달한다.홍석규 회장은 울진 토박이다. 11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한 울진 태권도 역사의 산 증인이다. 태권도 외길을 걸어온 홍 회장은 경북태권도협회 감사 등을 역임하면서 태권도 행정에도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이 대회를 유치하게 된 배경은.▲울진군 태권도의 위상에 비해 시설과 인적 인프라가 열악한 것이 안타까워. 오래 전부터 `태권도대회를 유치하면 좋겠구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태권도대회 유치를 계획하고 추진에 나선 것입니다울진은 전국규모 태권도대회 유치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유서 깊은 전통과 문화의 고장인 만큼 다른 스포츠 행사와 문화 행사 등 각종 행사가 많은 곳입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은.▲다른 부분에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2009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를 앞두고 있는데다 여름 피서철과 겹쳐 숙박장소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울진군 차원의 배려와 협조, 군민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요즘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태권도대회를 서로 개최하려고 하기 때문에 경쟁이 심합니다. 울진협회 만의 힘으로는 힘들었지만 울진군 차원에서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컸고 대회를 유치에서 부터 시작해 대회 준비과정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대회 때와 다른 점은.▲이번 울진대회는 전자호구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 울진에서 처음 개최되는 대회라는 점 등으로 비교적 관심을 많이 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전자호구 사용에 대한 평가가 어떤식으로 나올지 관계자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도 단위 태권도대회 개최라는 숙원을 풀어낸 울진군협회가 앞으로 가지고 있는 계획은 무엇인가.▲울진군 태권도단을 만드는 것이 남은 꿈입니다. 올해 도민체전에서도 출전 23개 시·군중 종합 3위를 차지하는 등 울진 태권도 위상은 높습니다. 그래서 실업팀을 만들고 싶어요. 울진군에서도 공감을 하고 있고 경북태권도협회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끝으로 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과 문화의 고장 울진. 그리고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태권도. 멋진 어우러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울진군태권도협회의 발전이 기대되는 만큼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주헌석기자 hsjoo@kbmaeil.com

2009-07-13

`킬 빌` 그 두 번째 이야기

영화 `킬 빌`은 일반적인 시각으론 이제까지 보아온 익숙한 다른 영화들의 스타일에서는 느끼지 못한 너무도 이질적인 영화다.(물론 쿠엔틴 타란티노로선 아주 익숙한 스타일이지만) 처음부터 중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순서는 아예 고려가 안 된 것처럼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이 영화는 그 순서의 파괴에 표한 매력을 풍기며 각각의 에피소드와 챕터들로 영화를 구성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관객들에겐 지금부터 벌어질 재미난 광경을 그저 지켜보고 즐기라고 말하는 듯하다.영화의 첫 장면 더 브라이드가 살해되는 장면에 이어지는 더 브라이드의 순서상 두 번째 제거 대상인 버니타 그린과의 대결, 그리곤 멕시코의 결혼식장의 더 브라이드의 참혹한 결혼식 살해현장에서 곧장 병원에 누워있는 그녀와 그녀를 암살하려는 엘 드라이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간을 거스른다.코마에서 깨어나 복수를 다짐하는 브라이드와 오웬 이시이의 에피소드 그리고 청엽정에서의 마지막 혈투는 영화에서 사건이 발생한 순서와는 전혀 상관없이, 회상의 주체가 있던 없던, 주인공의 현 상황과 그녀 앞에 펼쳐질 일련의 사건들을 나열하듯 각각의 에피소드를 형성하며 감독이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늘어놓은 듯 부산하다.그런데 묘한 것은 이렇게 아무렇게 늘어놓은 듯한 에피소드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묘한 힘을 발휘하며 흥미를 고조시킨다.약에서 중 그리고 강으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액션의 잔인함 또는 참혹함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영화의 긴장감은 영화의 재미를 차츰 아주 조용하게 증가시키곤 마지막 청엽정의 결투에서 그것을 폭발시킨다.그런 미묘한 영화의 흐름은 관객을 영화에 더욱 집중시키고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보이며 더 브라이드와 오렌 이시이의 숙명의 대결 이후에 이어질 나머지 복수극을 담은 `킬 빌 : Vol.2`에 대한 기대까지도 증폭시킨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챕터를 이루어 그녀가 죽여야 할 또는 복수의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아주 친절하게 짚어주고 설명해 줌으로써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주고 동시에 영화에 대한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해 준다.영화 `킬 빌`은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선혈이 낭자하는 피와 살인, 복수로 점철된 잔인한 액션 느와르다.이제까지 보아왔던 어떤 영화들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폭력이 기존의 타란티노 영화조차도 무색하게 할 무자비함과 잔인함이 존재하는 영화이지만 이상하게 `킬 빌`에서 느껴지는 잔인함은 낯설다기 보다는 익숙하단 느낌이다.요즘 자주 접하게 되는 한·중·일의 무협, 사무라이 극이나 일본의 장편 만화영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일련의 성인만화에서 익히 접했던 일련의 잔인한 장면이 그저 형상화되어 있을 뿐 기존에 접했던 그 무엇과 그다지 거리가 멀지 않은 영화 속 잔인한 장면들이 거부감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진다.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액션이 기존의 활자나 그림매체에서 보아왔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영상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그 폭력이 잔인함이 타란티노 스타일로 경쾌하고 발칙하게 때론 흥겹(?)게 연출되어짐으로써 무자비함과 비정함으로 점철된 피의 복수극임에도 영화는 화려함과 흥미로움만 느껴진다.적절한 와이어 액션과 엄격한 사무라이 검법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액션 스타일은 총기나 단검으로 보여지던 기존의 폭력물들과는 엄격한 차별을 이루고 영화를 더욱 독특하고 대중적이며 세련된 느낌으로 한층 재미있고 신기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도와준다.더욱 신선하고 세련되게 단장된 타란티노식 영화문법은 관객을 더욱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실까지 한다.

2009-07-10

2009 포항시 여성상 수상 최채원·이평자씨

디지털 시대, 다감한 여성의 능력 필요 최채원씨, 23년간 교직원으로 참일꾼 양성 노력이평자씨, 25년간 미용사로 예절문화 보급 앞장 “디지털 시대, 친환경 시대인 21세기는 섬세하고 다감한 여성의 능력을 더욱 필요로 하는 시대 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되고 있지요. 생명의 모태로서 만물의 근원이며 여기에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지닌 여성, 이제 여성은 `절반의 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와 능력을 지닌 무한한 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009 포항시여성상` 수상자 최채원(74) 연원장학회 이사와 이평자(62) 전 경북미용협회장. 포항여성상은 포항시가 지난 1997년부터 여성의 권익 증진과 봉사활동에 기여한 지역 여성을 뽑아 주는 상이다. 최채원 이사는 지난 6일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묻자 “늦은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앞으로도 내가 필요한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포항 출신인 그녀는 1960~1980년 포항여성사회를 그야말로 주름잡던 일꾼 중의 일꾼이었다. 당시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도 그녀를 모르면 간첩으로 불릴만큼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밝은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녀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여성의 권익증진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동지교육재단 교직원으로 23년간 재직하면서 참일꾼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1957년 교육공무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딛은 그녀는 특히 졸업생들이 안정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직업군별 자료 정리와 사업장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또한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의 건전한 성장 발달을 돕고, 그들이 저마다의 적성, 흥미, 능력, 포부, 성격에 맞는 진로를 선택해 자아를 실현하도록 도움을 줬으며 또한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소리 없이 학생 4명에게 등록금과 쌀, 옷을 지원했다. 특히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소리없이 학생 4명을 지원했고, 학교새마을어머니연합회장으로 장학사업과 청소년들의 호연지기를 위해 전방견학 및 국토순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또한 여성전진대회와 국산차 보급에도 앞장서고 사회복지시설 및 군부대 위문과 재활용나눔장터 개최 등 스스로 참여하는 자원봉사 생활문화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특히 주부들의 가정문화 회복을 위해 전통윤리 사상에 입각한 다도, 관혼상제, 복식, 음식문화, 인사법, 다양한 예절교육을 24개 읍면동 지역 및 여성문화회관에서 교육시켜 인간중심의 전통윤리사상의 정착화와 여성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존경받는 여성지도자상을 정립했다. 38세에 홀로 5남매를 훌륭히 키워낸 친정엄마의 정신을 존경하고 그 가르침으로 살아왔다는 그녀. “나이가 있어 뒷자리 있었지만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싶다”며 “오래 살다보니 기뻤던 일도 찾기 어렵지만 장애인들에게 봉사하면서 삶의 큰 기쁨을 얻었다”고 했다. 이평자 회장은 1979년 (사)포항시미용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지역사회발전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상소감에 대해 “부족한 면이 많은데 이렇게 큰 상을 받아 영광스럽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달전이 고향인 그녀는 25년간 미용사로 일해오다 여성유림회 창립을 시작으로 지역의 예절문화 보급에 앞장서온 주인공이다. “그때만 해도 미용인들에 대한 사회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을 때이지요. 저는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직접 회원업소를 방문해 지부를 조직하고 포항시 위생계와 협의해 매주 일요일을 정기휴일날로 정하고 회원들의 권익신장과 또한 사회계층간의 학력격차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미용인들의 학력신장을 위해 야간고교, 통신고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진로를 마련하는 한편 포항대학 야간부에 진학할 수 있는 교육 균등의 기회를 열어주었지요.” 이후 1986년 경상북도 미용협회장에 취임해 도내 각 시군에 시군지부를 창립하고 여성 미용인의 상호 유대강화 및 조직활성화 및 권익신장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94년에는 성균관 유성유도회 중앙회 포항시지부를 창립해 유교문화 보급에 앞장서기도 했다. 또한 법무부 교화위원으로 위촉돼 재소자 기술자격취득을 지원해 사회갱생과 재범방지에 앞장서 왔다. 특히 경북도교육청 위탁교육 외국인 교사 한국전통 문화체험 봉사를 운영했으며 예절교실에 출강해 학생들의 올바른 예절교육에 앞장서 예절있는 청소년을 길러내는 역할을 했다. 후배여성들에게 “매일 자신을 거울 삼아 자신을 되돌아 보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하루를 반성하고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온 것이 오늘의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 같다”고 했다. 어릴적부터 신사임당을 존경했다는 그녀. “현모양처라기 보다 여자로서 옛날 사람임에도 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과 남편을 뚜렷이 만들고 시서에 능한 여자로서의 당당한 모습과 여성으로서 갖추고 자기일을 완벽히 해낸 모습을 본받고 싶었어요.” 앞으로 청소년들에게 예절교육의 전도사로 오래토록 봉사하고 싶다는 그녀는 특히 청소년 인성교육에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바쁜 관계로 아이들 인성교육에 신경을 많이 못쓰기 마련이지요. 작은 시간이라도 아이들의 인성교육 강사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미래포항을 견인할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희망찬 메시지를 우렁차게 전해주었던 두 여성상 수상자들. 오랫동안 대양으로 진출을 꿈꾸어왔던 포항의 꿈이 영일만항에서 펼쳐지듯 이들 여성들의 꿈도 대양과 함께 드넓게 펼쳐지길 희망한다. 끝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7-10

김제간 포항와인협회장

포항대학 관광호텔비즈니스과 교수로 재직전국대학 최초 소믈리에 수료증 취득길 열어 동호회 `포샤또` 이끌며 와인전도사로 대활약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와인은 농업, 상업, 의학, 종교,성(sex), 문화 등 다양한 여러 분야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살아 숨쉬는 대표 식음료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이 국가 10대 수출품목 중 하나이며, 현대 글로벌비즈니스에서는 필수메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서양문화이라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시음회,동호회에 자주 참석해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시작하면 와인은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세계에서 e°€장 비싼 와인은 1985년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팔린 1787년산 `보르도 샤토 라피트(Bordeaux Cha teau Lafite)`라고 합니다. 당시 16만달러(약 1억5천만원)에 팔렸다고 하네요. 보통 사이즈(750㎖)론 사상 최고가였다고 합니다. 한 잔당(100㎖) 150만원꼴입니다. 지난달 홍콩에서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와인 60병이 144만 홍콩달러(약 2억3150만원)에 팔린 일도 있답니다. `평범한` 와인도 많습니다. 이른바 데일리 와인입니다. 늘 두고 마실 수 있는 `착한` 가격대입니다. 비싼 와인이거나 값싼 와인이거나 주조원리는 같습니다. 잘익은 포도의 당분을 알코올 발효하는 겁니다. 기원전 3천~4천년 전부터 그래왔다고 합니다.” 김제간(50·포항대학 관광호텔비즈니스과 교수·사진) 포항와인협회장.경북 영천이 고향인 그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그 당시 영천은 사과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집에서도 과수농장이 있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가방에 책보다 사과를 더 많이 갔고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추억이 있단다.세월이 많이 흘러 영천은 지금 포도의 고장, 부가가치가 높은 와인의 고장으로 바뀌어서 지금 그의 와인사랑과 새로운 인연으로 다시 시작돼 가슴 뿌듯할 뿐이라고 했다.그가 와인을 즐긴 지는 올해로 20년째다.특별한 동기가 있냐고 하니 어릴 적 어머니가 담구어 놓은 달콤한 포도주가 첫 인연이라며 장난을 친다.“어린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담구어 놓은 달콤한 포도주가 첫번째 달콤한 포도주의 취함이고, 두번째는 20대 초반에 일본에서 힘든 유학시절 교수님께서 연구실에서 `많이 힘들지` 하시면서 내민 한잔의 와인이 내생애 처음 접해보는 첫와인-그 로망에 빠져 취해버렸고, 세번째는 관광호텔비즈니스과 교수가 되고서 자연스럽게 와인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다는 와인 매력에 빠져 있습니다.”그는 포샤또(Po Chateu), 포항의 포와 와이너리 의미의 샤또의 합성어로 포항을 대표하는 와인동호회 회장으로 회원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포항와인협회장으로서 포항대학 관광호텔비즈니스과의 취업경쟁력 강화을 위해 전국 대학 최초로 한국와인협회와 프로그램교류로 소믈리에 수료증을 취득하도록 했다. 특히 관광호텔비즈니스학과에 중국 자매대학에서 관광전공으로 유학온 19명 학생이 중국에는 아직 와인소믈리에 자격증이 없는데 이번에 와인소믈리에 자격증 취득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와인동호인의 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와인동호회의 어떤 거창한 정신이라기보다는 힘들고 지칠때 비타민과 같은 회원들끼리 서로 힘이 되고 즐거움을 주는 와인이 있어 행복을 느끼고 있어 좋은 것 아니겠냐”는 답이 돌아온다.그가 관광호텔비즈니스과 교수가 되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있다. “한때 유행했던 대기업들의 세계화 해외연수 프로그램 비즈니스를 서울에서 하다가 1997년 IMF로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포항대학과 인연을 맺은지 12년 되었고 지금은 연구실에서 바다가 보이고 산이 보이는 포항에서 제자들과 와인을 얘기하면서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포항대학에 둥지를 튼지도 벌써 12년. 서울에서 기업연수프로그램 일로 유럽, 미국, 일본 등 많은 비즈니스 여행을 하시면서 바쁘게 지내왔는데 대학에 와서도 국제교육개발원장 보직으로 대학간의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해외출장이 잦은 이다. “우리 재학생들을 어학연수,테마여행,인턴쉽 등 여러나라에 보내 문화체험, 외국어 능력향상, 자격증 취득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학과에서 강의와 연구 등 바쁜 생활이 취미로 바뀌었지만 즐겁습니다. 슬로우라이프(Slow Life)를 동경하는건지 와인도 그렇고 최근에는 거북이처럼 닮고 살고 싶다고 마음으로 출장때마다 작은 기념 거북이 켈렉션이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와인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와인은 농업, 상업, 의학, 종교,성(sex), 문화 등 다양한 여러 분야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살아 숨쉬는 대표 식음료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이 국가 10대 수출품목 중 하나이며, 현대 글로벌비즈니스에서는 필수메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서양문화이라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시음회,동호회에 자주 참석해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시작하면 와인은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와인 마시는 법도 빠트리지 않고 상세하게 알려준다. “처음 양식을 먹을때 오른손에 나이프, 왼손에 포크, 스프는 떠먹는다 등 몇번 경험하면 적응하듯이 식사중에 나오는 요리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간단한 에티켓을 갖추면 됩니다. 특히 와인은 즐기는 것과 감정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초대 받아가서 따라 준 와인을 밝은 곳에 대고 색깔을 살피고 코을 깊숙이 넣어 향를 맡는다면 좋은 것인지 아닌지 따지는 셈이 되어 상대에게 상당한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음식과 와인의 궁합에 대해서는 일반화 되어 있는 와인상식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특별함이 있다. “와인의 어울림은 생선요리에는 화이트, 고기요리에는 레드와인이라는 공식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입니다. 생선요리에는 화이트와인이 어울리는 것은 화이트와인의 새콤한 맛과 조화 되기때문이고 레드와인과 육류는 레드와인 탄닌이 육류 기름기와 짙은맛을 조절해주기 때문입니다. 불고기, 갈비, 한식요리에는 묵직한 레드와인 까베르네 쇼비룡 품종의 와인이 어울립니다.”특히 여름에는 시원한 와인 한잔이 생각나는 계절인데 상쾌하고 식욕을 돋우어주는 화이트나 로제와인을 추천했다. 최고로 꼽을 만한 와인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와인은 다양한 종류와 5천원에서 1000만원이 넘는 천차만별의 가격대,개인의 취향 등 너무 다양해서 추천이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서 스토리가 있고, 가격에도 부담없이 저의 마음을 사로 잡은 칠레산 1865를 소개합니다. 산페드로의 설립연도인 1865를 레이블로 옮겨서 선풍적인 인기로 성공한 사례입니다. 골퍼들 사이엔 18홀을 65타로 치라는 의미와 또는 18세에서 65세까지 두루두루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도 하고 2006년 APEC 공식와인으로 선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와인 초보자도 무난한 맛으로 괜찮을 듯 합니다.”그는 와인 이외에도 여행 애호가이다. “즐거움이 있는 일과 여행을 통해서 웰빙을 하고 싶고 앞에서 얘기한 즐거운 일과 여행의 행복조건에 하나 더 추가하면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건강에도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건강 관리하고자 합니다.”그는 여러 사회단체활동을 하지만 아태관광서비스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여러 국가에서 관광서비스에 관심있는 교수, 단체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지역이 고품격서비스로 선진 관광대국이 되길 희망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희망이 무엇인가요?“저에게도 가장 소중하고 큰 꿈이 있습니다. 기네스북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은 일본의 이시카와현에 있는 호시료칸은 1300년동안 46대째 가업을 잇고있는 호텔이다. 이 호텔의 서비스모토가 일기일회(一期一會)다. 일기일회란 일생에 단 한번뿐인 만남이라는 인연으로 생각하고 고객에 최선의 정성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저가 몸담고 있는 관광호텔비즈니스과와의 인연을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자와의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하고 최고의 학과로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저의 소중한 꿈이요 미션입니다. 지금도 연구실에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사자성어를 붙여놓고 연구실에 찾아오는 학생들에게는 절대로 그냥 돌아가게 하지않고 꼭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고 돌아가게 하는 하고 있어 이 작은 행복이 큰 꿈으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