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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시 배터리산업 중심도시로 우뚝 서길

배터리 분야 선도도시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포항시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배터리 산업도시 부문에서 4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대표브랜드 대상은 지역과 산업 문화 분야에서 특화된 인지도를 소비자가 직접 평가하는 것으로 포항시의 대표브랜드로 배터리 산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알다시피 포항은 철강 도시로 국제적 명성을 가진 도시다. 반세기동안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했고, 국가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2017년 에코프로의 포항 투자를 시작으로 포항은 철강 일변도의 산업구조에 새로운 개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9년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가 처음 지정되고, 2023년 이차전지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2024년 이차전지 기회 발전 특구로 지정되면서 배터리분야 전국 최고 도시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영일만과 블루밸리 산단 등에는 에코프로와 포스코 퓨처엠 등 대기업의 투자가 이뤄지면서 짧은 기간 포항에는 수조원의 배터리 산업 투자가 이뤄졌다. 오는 2027년까지 에코프로 등 선도기업과 중소기업이 14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 배터리산업의 확산 속도도 빠르다. 포항시는 현재까지 진행된 대기업 등의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30년에는 배터리 양극재 100만t 양산, 매출 70조 원 달성, 1만명 신규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배터리 산업은 전기차 수요 정체로 일시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기차 수요는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차전지 산업을 미래산업의 쌀로 부르는 것은 폭발적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철강산업이라는 뿌리 깊은 산업구조에 배터리 산업을 장착함으로써 도시산업의 근간이 매우 튼튼해졌다. 포항을 배터리 산업 선도도시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도 산업의 확장성에 긍정적이다. 포항이 배터리 산업 중심도시로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5-04-17

문학과 법: 헌재 판결을 보고

문학의 언어와 법의 언어는 조금 다르다. 문학이 사건이나 현상, 개인의 마음 따위를 반영하거나 재현할 수 있다는 신뢰에 기초한 언어의 투명성에 의존한다면, 법은 발화되는 순간 관철되는 언어의 수행적 힘에 입각해 있다. 문학의 언어가 허구와 모방, 내면성을 특질로 한다면 법의 언어는 사실과 실현, 공공성이란 축을 통해 구성된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한 이번의 헌재 판결문은 나에겐 문학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가령 이런 문장들이 있다.   “한편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것입니다.”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해제된 건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 군경이 소극적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들이 성숙한 ‘시민다움’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헌재는 역사의 주체로 시민을 인준했으며,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권리가 헌법 정신의 기초라는 사실을 다시금 판결했다.   법질서란 사람들이 그것을 준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거해서만 성립한다. 대통령의 권한도 헌법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단순히 대통령 권한의 남용이 아니라 법에 대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탄핵에 찬성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집단적 의지는 법을 어긴 통치권자에 대한 처벌을 구하는 게 아니라 민주공화국 주권자의 실력 행사라 할 수 있다.   법의 언어가 아무리 수행적 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그러한 힘이 법의 어떠한 정신과 내면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항구적인 심문이 필요하다. 법이 법으로 존재하거나 기능할 수 있는 내력을 살피는 작업은 분명 문학적인 관점을 요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학은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보다는 역사의 심연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인용한 헌재 판결의 취지는 헌법 정신의 발현은 시민들의 저항권에 기초해있다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근래 뜯어고치자고 제안되는 87년 체제 헌법조차 시민들이 6월 항쟁을 통해 가까스로 쟁취한 결실 아니었나. 개헌을 겨우 내란 정국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처럼 운위하는 행위 그 자체야말로 헌정질서 문란에 해당한다.   우리는 법기술자들의 법리 운용만이 아니라 그들이 법의 정신을 어떻게 표상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해야 한다. 법을 문학적으로 파악한다는 건 정확히 이런 의미다.

2025-04-17

도박의 무서움

누군가가 나에게 ‘훌라’를 할 줄 모른다고 놀려댄다. 난 훌라를 할 줄도 모르고 배울 마음도 별로 없다. 승부 근성은 있어 돈 따먹기라면 뭐든 하는데 이상하게 훌라는 흥미가 별로 없다. 같은 모양이 나오면 그냥 먹어 점수 나는 게 아니라 빼고 더하고 하는 게 복잡한 것 같아서다. 워낙 단순 무식형 인간이라서 그런지 깊이 생각하기 싫은 성격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친구들이랑 놀러 가서 밤새도록 훌라를 치고 있기에 개평이라도 뜯어 맥주 마시러 나갈까 싶어 기웃 되다가 웃음이 피식 나왔다. 이건 내 어릴 때 치는 ‘나이롱 뻥’과 똑 같지 않은가. 카드로 하면 ‘훌라’이고 화투로 하면 ‘나이롱뻥’이다. 난 또 마작같이 아주 고급스러운 노름인 줄 알았더니 한낱 나이롱뻥인 것을 알았으면 나도 익혀 놓을 걸 그랬다. 나는 지금도 친구들이랑 모임에서 화투도 치고 포커게임도 한다. 물론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따면 개평도 주고 기분이 즐겁다. 명절 때도 꽤나 오랫동안 친척들 간에 화투를 치기도 했지만, 요즘은 다들 바쁜지 제사만 지내고 뿔뿔이 흩어지는 통에 그 흔한 윷놀이 한판 할 시간도 없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어릴 적 농한기 때 화투판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민화투와 육백 같은 화투 놀이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다들 즐겼던 놀이였다. 조선 시대 때부터 투전이란 놀음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가만히 보면 오늘날 ‘짓고땡’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노름이다. ‘구구이’ ‘사륙장’이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을 정도로 숫자계산에 능해야 하는데 다섯 장 화투 들고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는 데 세월 다 보내고 있으면 욕이란 욕은 다 먹게 된다. 그래서 머리 나쁜 인간은 절대 못 하는 짓고땡은 별로였다. 그래서 나와 많은 돈이 오가는 도박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소득을 올리려는 인간의 속성이 도박 속에 찌릿한 맛으로 자리 잡고 있기에 그 맛에 한 번 길들여지면 사람이 정신 줄을 놓는다. 돈 잃고 인간성 다 보여주는 게 바로 노름이다. 중독 또한 심각하다. 국내 도박 시장 규모가 GDP의 9%에 달하고 국내 성인의 10%가 도박중독자이고, 도박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80조 원으로 추정된단다. 도박이 주(酒)·색(色)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남자가 조심해야 할 것은 첫 번째는 여자이고 두 번째는 술이고 세 번째는 도박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어머니는 우리 자식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시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당시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여자, 술 그리고 도박 순인데 도박의 무서움을 간과하신 것 같다. 봄맞이 집 청소를 하는데 장롱 속에서 난데없는 화투 한모가 툭 떨어진다. 몇 번 치지 않은 듯 제법 깨끗한 화투였다. 집사람의 눈빛이 심상찮게 변한다. 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한판 치자는 신호를 보낸다. 내 주머니에 돈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몇 시간 안 가서 다 털렸다. 그날 뉴스에 대규모 도박단이 검거됐다는 방송이 나온다. 그중 40명이 주부란다. 집사람과 내 눈이 마주쳤다. 씩 웃는 그 모습에 오줌 지릴 뻔했다.

2025-04-17

영덕군산림조합 감사 제대로 이뤄져야

산림조합중앙회가 14일∼16일까지 3일에 걸쳐 영덕군산림조합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돌아갔다. 이번 감사는 내부직원들로부터 출장비 상납, 인건비 허위 청구, 송이공판 감량률 조작에다 회계 비리 의혹 <본지 2025년 4월 1일자 5면 보도 등>이 잇따라 제기된데 따른 조치라고 한다. 회계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한 감사팀은 “현재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며 “감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영덕군산림조합 비리의혹이 워낙 방대함에도 중앙회 감사가 3일 만에 마무리되자 뒷말이 무성하다. ‘처삼촌 벌초하듯 한 감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된 감사가 된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런 회의적인 시각은 산림조합중앙회장을 142개 일선 시군의 산림조합장들이 선출하는 시스템과도 무관치 않다. 영덕군산림조합도 중앙회장 선거에 1표를 행사하는 마당인데 감사팀이 이를 의식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일선조합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중앙회가 그냥 있을 수도 없고 하니 마지못해 그냥 형식적으로 내려 온 감사가 아닐까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중앙회 감사팀은 전력을 기울여 감사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영덕군산림조합은 앞서 산림청으로부터도 지난해 연말부터 올 초까지 특별감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아직까지 그 감사 결과를 알 수가 없다. 산림청이 미공개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는 등의 온갖 설과 말만 가득하다. 그런 마당에 산림청은 감사 결과 공개 대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법을 선택해 조합원들의 궁금증만 더 키웠다. 영덕군산림조합의 여러 의혹은 조직이 정상 가동된다면 자체 감사로도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다. 조합원들이 선출한 감사가 자체 감사에 나서거나 외부회계감사 의뢰 등으로 시시비비를 조기에 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합집행부가 감사자료 제출 거부는 물론 자료 조작에다 직원들에게 일절 협조하지 말 것을 지시하면서 감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심한 대립을 하던 집행부와 대의원들은 시간이 지나자 더 아슬아슬해졌다. 마주 보며 달리던 열차는 끝내 멈추지 않고 충돌했다. 집행부와 대의원들은 서로 이사진 해임, 고소 고발 등 막판을 보여주면서 맞섰다. 중심이 흔들리는 사이 이번에는 직원들 간에도 파열음이 났고, 결국은 안팎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더니 내부 비리 제보 등으로 이어지며 자체 폭발해 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영덕군산림조합은 이제 경찰 수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염려되는 것은 경찰수사가 제대로 될까하는 부분이다. 일단, 수사는 경북경찰청과 영덕경찰서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영덕 경우 지역사회가 좁다보니 조사담당 경찰관들과 영덕군산림조합 임직원들과는 평소에도 너무나 잘 아는 사이여서 시원하게 파헤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조사가 예상외로 지연되면서 시중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산불로 영덕이 큰 피해를 입은 부분도 경찰의 조사를 멈칫거리게 할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산림 복구과정에 영덕군산림조합의 역할이 적잖은데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쪽에선 조사를 지연시키기보다 빨리 마무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산불피해복구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도 있다. 지금 상태로는 조합 업무와 주어진 일이 먼저가 아니라 산림조합 상하 직원 모두가 향후 수사 방향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어 제대로 된 업무 진행이 안된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가 끝나 후 조직을 재정비해야 본격적으로 일이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A 조합원은 “한때 전국에서도 모범적이었던 영덕군산림조합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일부 조합장들과 간부들의 일탈로 지역에서도 고개를 들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합이 차제에 재도약하려면 다소 아프더라도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을 확실하게 도려내는 길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산림청과 산림조합중앙회, 경찰은 영덕산림조합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4-17

막오른 경선링…국힘 ‘4强’ 변수 아직 많다

국민의힘이 6·3대선 경선 후보 등록을 15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경선작업에 들어갔다. 언론에서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김문수·한동훈·홍준표 후보가 3강을 형성하고 있고, 나머지 후보들이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최종 후보 선출 때까지 국민의힘 경선판은 여러 변수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 우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저 정치가 최대변수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로 거처를 옮겼지만, 국민의힘 일부 대선 주자들을 만나며 “윤심(尹心)을 전파하고 있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보수당원이 몰려 있는 대구경북(TK)지역만 놓고 보면, 윤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이 지역 경선 결과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철우 경북지사는 친윤, 한동훈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반윤으로 분류돼, 앞으로 1차 경선 때까지 일주일간 ‘윤심’의 향방에 따라 순위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특히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해온 후보들 간의 연대는 경선 결과를 좌우할 메가톤급 변수가 될 수 있다. 실제 김 전 장관과 나경원 의원은 이미 두 차례 자리를 함께하며 1·2차 경선 결과에 따라 힘을 합칠 가능성을 내비쳤다. 경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선택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보수정권의 수도권·중도층 외연 확장에 꼭 필요한 인물로 꼽히는 오 시장의 지원을 받게 되면 경선 경쟁력이 세질 수 있어 현재 상당수 주자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홍 전 시장과 김 전 장관, 안 의원, 나 의원이 15~16일 양일간 오 시장과 식사 또는 간담회를 하며 지지를 요청했다. 국민의힘 1·2차 경선이 흥행하면 각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대부분 한 자릿수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범보수 주자 전체 지지율을 합산해도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지지율에 한참 못 미친다. 경선 주자들 모두 대선 승리라는 넓고 먼 시야를 가지고 경선 전에 임할 필요가 있다.

2025-04-16

비수도권 부동산 부양책, 대선 공약 포함돼야

한국부동산원의 4월 첫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대구지역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72주째 하락세를 기록했다. 토지거래허가제 재지정으로 주춤하던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최근 들어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포, 잠실, 대치 등 선호도가 높은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신고가를 기록하면서 거래량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의하면 최근 몇 년 동안 대구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국 최하위다.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친다. 대구뿐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을 제외한 비수도권 아파트 대부분은 거래도 안되고 가격은 계속 하락세다. 부동산 산업이 경제에 미치는 전후방 효과가 오랫동안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의 시장경기는 침체일로다. 주택건설업계는 계약금을 낮추고, 수천만 원씩 할인 분양에 나서도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지 않는다. 업체 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자주 들린다. 정부가 LH를 통해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아파트를 매입하고, 준공 후 미분양아파트를 구입하면 주택 수에서 제외해 주는 등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시장은 미동의 반응도 없다. 국민의힘이 아파트 분양가를 낮추는 정책을 대선 공약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높은 분양가 부담 때문에 아파트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분양가 상승이 건설경기 침체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용적률과 건폐율을 상향하고 국민주택 비율을 조정하겠다고 했다. 이런 정책이 분양가 인하에 도움을 줄 수 있을는지 모르나 심각한 미분양 늪에 빠져 있는 지방의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지방의 부동산시장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시장기능이 약화된 데 원인이 있다. 소비심리를 살릴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취득세 및 양도세 완화, DSR 완화 등과 같은 세제·금융 혜택이 필요하다. 지방정부가 누차 건의한 비수도권 특성에 맞는 부양책을 별도 만들어야 한다. 서울의 집값은 오르고 지방의 집값은 한없이 추락하는 모순이 개선되지 않으면 지방 민심이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후보들의 대선공약에 지방의 부동산 부양대책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우정구기자 wjg@kbmaeil.com

2025-04-16

스님의 소고기

좀처럼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그녀가 남편과의 불화를 얘기했다. 나는 문제를 풀어 볼 요량으로 남편 입장에 서서 그녀가 해 주었으면 좋을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는 이미 다 해 보았다고 토로하는 그녀의 얼굴에 섭섭함이 묻어났다. 친구를 위해 한 말이 괜한 화를 불렀다. 입을 다문 그녀의 표정에 예전의 내가 보였다. 서른 즈음, 다섯 살인 딸애와 갓 두 돌 지난 아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나날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대문을 나서면, 골목 마루에 앉아 담소 중이던 아주머니들이 오늘도 시댁에 가느냐고 묻곤 했다. 나의 일상은 집과 시장을 맴돌이 하는 것과 시댁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내게 폭탄이 터졌다. 남편의 공장이 부도가 났다. 예상치 못한 연쇄부도에 그는 우왕좌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화난 거래처의 전화를 받는 것뿐이었다. 밀린 자재 값이 무엇인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또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댁과의 작은 오해가 부도보다 더 크게 나를 휘몰아쳤다. 풀려고 해도 꼬인 매듭의 끄트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댈 남편마저 채권자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든 잘못은 이미 내 것이었고, 나는 혼자였다. 아이들을 친정엄마께 맡기러 갔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엄마는 내일 밭에 일할 사람들을 불러놨으니 아침 일찍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대답도 없이 대문을 나섰다. 엄마의 불안한 눈빛이 골목으로 따라 나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팔공산은 어스름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십대에 자주 갔던 곳을 찾아가는 발길이 자꾸만 허방을 짚었다. 작은 절은 여느 때와는 달리 불빛 하나 없었다.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요사채 마루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았다. 친정에 두고 온 아이들도 내 머리 속에는 없었다. 풀벌레 소리조차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 돌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발견한 스님은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고 묻지 앉았다. 그를 보자 눈물이 먼저 말했다. 나는 두서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내게 그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게 다 내 업이라고. 그 말에 가슴이 시렸다. 억울했다. 내가 뭘 어쨌는데 다 내 탓이란 말인가. 내겐 혈육과 상관없이 오빠처럼 지낸 스님이었다. 딸과 아들도 외삼촌이라 부르는 그가 하는 말은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전혀 엉뚱하게 법문처럼 들렸다. 절에는 스님만 있을 뿐 오빠는 없었다. 그 밤이 오래오래 지나갔다. 나는 여명 사이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산을 내려왔다. 내 하소연이 원하는 것은 ‘너,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한마디였다.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내 생각의 서랍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먼 길을 찾아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산을 내려오는 내내 나는 혼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길가에 앉아 집으로 가는 첫차를 한참 기다렸다. 정신없는 생활 속에서 점점 잊어가던 어느 날,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과 나는 약속 장소로 갔다. 뜬금없는 소고기 식당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약속 장소가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하얀 고무신을 신은 스님이 먼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는 엉거주춤 따라 들어갔다. 스님과 소고기는 뭇사람의 눈길을 받기에 충분했다. 고기를 굽는 그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고기가 익기 바쁘게 남편과 내 접시에 올려주었다. ‘어서 먹어라’는 채근에 마지못한 듯 젓가락을 들었다. 소고기가 입에 살살 녹는 듯 했다. 접시는 빠르게 비었고, 또 채워졌다. 목에 찰 때까지 먹고 나서야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 우리는 얇은 스님의 주머니를 바닥냈다. 그가 말했다. ‘힘내야지’라고. 나는 그제야 스님이 상추쌈만 몇 점 드셨다는 것을 기억했다. 내 인생에서 잘라버리고 싶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싱싱하게 떠올랐다.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친구에게 했다. 너만큼 하기 쉽지 않다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친구는 내 추임새에 한참을 더 속을 풀어냈다. 나는 빈 찻잔에 따뜻한 차를 채워주었다. 친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손을 꼭 잡아주었다.

2025-04-16

심폐 기능 강화를 위한 유산소 운동

우리가 하루하루 숨을 쉬며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심장과 폐의 조화는 실로 정교한 생리적 기적이다. 이 두 기관이 담당하는 심폐 기능은 단순히 생존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가 걷고 뛰며 움직이는 것부터 생각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까지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인의 일상은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심폐 기능을 단련할 수 있는 기회는 적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걷기나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은 필수적인 생활 습관이 되어야 한다. 걷기와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비교적 낮은 강도로 일정한 시간을 지속하는 것이 특징으로 근육은 꾸준히 수축하고 이완을 반복하면서 많은 양의 산소를 필요로 하게 된다. 심장은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전신으로 더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해 더 강하게 더 효율적으로 뛴다. 이 과정에서 심장의 근육을 단련시키고 폐는 점점 더 많은 산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로 적응된다. 꾸준한 유산소 운동은 심박수의 안정화와 폐활량의 증가, 모세혈관의 확장을 유도하며 산소 전달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며칠 만에도 시작되지만 수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실천할 경우 눈에 띄는 체력 향상과 신체 내구성 증가로 이어진다. 심폐 기능의 향상이 주는 효과는 물리적 조건의 개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유산소 운동은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 특히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 조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운동을 시작하면 교감신경이 활발히 작용해 심박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오르고 에너지를 빠르게 동원하는 등의 전투 상태가 된다. 하지만 운동이 끝나면 부교감신경이 우세해지면서 심박수와 호흡수는 서서히 안정되고 몸은 휴식과 회복을 위한 상태로 전환된다. 이 두 신경계의 교차 작용은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감정기복과 수면의 질까지 개선되는 결과를 만든다. 장기적으로 보면 단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몸 전체의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과정이다. 이러한 심폐 기능의 강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매우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해도 쉽게 지치지 않고 계단을 오르거나 장시간 걸어도 숨이 가쁘지 않으며 땀이 흐르는 여름날에도 체온 조절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운동 직후 찾아오는 상쾌함과 안정감은 단순한 만족감이 아닌 실제로 자율신경계가 균형을 되찾으며 몸이 최적화된 상태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다. 이 과정은 심혈관계 질환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의 예방은 물론 면역력의 향상과 정신 건강의 회복에도 크게 기여한다.유산소 운동이 주는 효과는 숫자로 측정되는 것 이상이다. 매일의 삶을 조금 더 가볍게 한층 더 활기차게 만드는 변화를 만든다. 현대인에게 유산소 운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루 20~30분의 가벼운 걷기 혹은 일주일에 몇 번 가볍게 흘리는 땀방울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건강 투자다. 마음을 다잡고 첫 걸음을 떼는 순간 우리의 심폐 기능은 다시금 깨어나고 건강증진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2025-04-16

99 ‘콘클라베’, 나만의 영화 감상법

해마다 봄, 아카데미상 소식이 들리면 괜한 기대로 설렌다. ‘기생충’, ‘미나리’ 이전부터도 그랬다. 매달, 매주, 이달의 영화, 혹은 오늘의 개봉영화를 찾곤 하지만 특히 아카데미상 즈음이 되면 영화 관련 뉴스를 더 자주 검색하게 된다. 올해는 이런저런 바쁜 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놓쳤다가 며칠 지나 검색했다. 마침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 중 상영하는 영화가 있었다. 바로 예매하고 극장엘 달려갔다. 관객이 많지 않은 극장에서 혼자서 두 시간이나 숨죽이며 ‘콘클라베’를 봤다. 최근 본 영화 중에 그렇게나 집중했던 영화가 있었던가 싶다. 콘클라베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제도이며,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검은 연기, 선출이 확정되면 흰 연기로 알린다는 정도의 상식은 있었기에 다큐멘터리 비슷한 역사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분류되어 의아했는데 과연 그랬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위해 온갖 정치적 음모가 판치고 그 와중에 드러나는 추기경들의 비리가 난무했다. 화려한 성당에서 아름답기까지 한 복장으로 가려진 다양한 추악한 캐릭터들의 면모를 들여다보는 건 몹시 불편했다. 거기도 세속과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 그리고 변화해야 가톨릭의 미래를 암시하는 결말이었음에도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교황과 로마가톨릭의 추한 면모를 훔쳐본 듯해서 개운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만의 영화 감상법이 시작되었다. 마치 연관 검색하듯 내가 영화로 알게 되었거나 알고 싶은 정보를 찾고 확인하고 또 다른 영화를 보는 방식이다. 먼저, 영화 ‘두 교황’을 찾았다. 원래 보고 싶었으나 개봉관이 많지 않아 놓쳤고, 넷플릭스에 가입해야만 가능해서 아쉬우나 꾹 참고 있었다. 다른 OTT에서는 볼 수 없을까 이따금 검색만 하거나 유튜브에서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보면서 보고싶은 마음을 달래곤 했다. 결국 이번에 넷플릭스에 가입하여 기어이 봤다. 훌륭한 두 배우가 주인공인 두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과 외모적으로 매우 흡사해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였다. 또 있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콘클라베’와 같은 상황이나 내용은 정반대로 코미디 드라마로 분류된 영화였다. 이 역시 티빙에 가입하고 나서야 볼 수 있었지만 가입을 잘했다 싶을 정도로 ‘콘클라베’의 찜찜함을 달래주었다. 교황이 되기 위한 정쟁을 벌이는 영화 ‘콘클라베’의 추기경들과는 정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모든 추기경들이 교황으로 선출되기를 거부한다. 그 중에서도 떠밀리듯 교황으로 선출된 주인공은 두려움을 못 이겨 교황청을 나와 인간들의 세상으로 도망쳤다. 다시 돌아와서 한 그의 첫 연설은 교황 사임이었다. 교황의 무게를 고뇌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이 뭉클했다. 이번에 본 영화가 모두 현 교황과 관련한 것이기에 내겐 더욱 특별하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여름 우리나라를 방문하셨고, 바로 그때 첫 손녀 윤이 태어났다. 손녀 출산 소식에 부랴부랴 도착한 서울엔 광복절의 태극기와 교황 방한 현수막이 함께 나부껴 찬란하고 눈부셨다. 우리 부부는 첫 손녀의 탄생을 축복하러 교황님까지 오신 거라며 맘대로 생각하며 감격해했다.

2025-04-16

주 4일, 혹은 4.5일 근무제

금요일 오후에 퇴근해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고, 월요일 출근하는 주 4.5일 근무제가 국민의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된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 4일 근무제를 주요 민생 의제로 선정해 공약화하는 걸 검토 중이라고. 일과 개인의 삶이 조화롭게 균형 잡히기를 원하는 21세기 노동자들의 요구에 정치권이 진지하게 응답한 격이라 많은 이들이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주 5일제와 주 52시간 근로 규제는 시대의 흐름과 산업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획일적인 제도라 생산성과 자율성 모두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 기본 근무 외에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엔 4시간만 근무한 뒤 퇴근하는 방식을 시범적으로 도입한 울산 중구청의 사례도 언급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검토하는 주 4일 근무제와 국민의힘이 공약으로 내놓은 주 4.5일 근무제 중 어떤 것이 노동자들의 워라밸을 높이는데 효과적일 것인지는 향후 제도 실행방안 등이 구체화되면 비교해 볼 수 있을 터.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한국의 노동자 대부분은 토요일 오전에도 일하는 주 5.5일 근무를 했고, 업종에 따라서는 일요일과 국경일 특근도 거부할 수 없는 경우가 흔했다. 돌아보면 ‘노동자 잔혹시대’였다. 이제 ‘적절한 휴식이 일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좋은 변화다. 사회의 진보와 발전 방향은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지향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16

나를 두드리다

드르륵 쿵쿵, 피아노를 실은 구루마가 바닥을 훑었다. 모서리에 옆구리가 치이고 다리가 부딪혔다. 20년을 품고 있었던 피아노다. 여든 여덟 개의 건반들이 울음을 뱉어내듯 으르렁거렸다. 도살장으로 가는 소처럼 가기 싫다고 울어대는 소리 같았다. 고개를 돌렸다. 사명을 다했으니 이제는 보내도 된다고 애써 마음을 다독거렸다. 쓰레기 더미에 던져지지 말기를 바랐다. 손을 봐서 음악가를 꿈꾸는 가난한 누군가의 집으로 보내지길 빌었다. 텅 빈 자리를 보자 몸속 장기 하나가 빠져나간 듯 허전했다. 머릿속에는 저들과 함께 한 시간이 편집되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는 당신의 꿈을 대신해 내게 피아노를 사주었다.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 아버지는 뭐든 들어주었다. 늦둥이인 내가 고사리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음악대학을 졸업하며 진로를 고민했다. 친정집 2층에 가건물을 지었다. 그렇게 한 대씩 늘인 피아노가 어느새 열 대가 넘었다. 아이들은 하루도 어김없이 약속된 시간에 왔다. 그 많은 건반 중에서도 자기가 연주할 곡의 위치를 잘도 찾아냈다. 어설프지만 한 곡을 완성할 때면 내 마음의 선율 위에도 동심이 무지개 톤으로 펼쳐졌다. 시간이 축적되면서 아이들과의 이야기도 쌓여갔다. 친구의 장난으로 피아노 뚜껑이 닫히면서 다친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쫓아갔던 일,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같은 멜로디를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건반을 두드렸던 일, 스타카토처럼 통통 튀었던 수다와 귀에 익은 어설픈 연주는 흘러가지 않고 내 속에 고였다. 피아노마다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졌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박혔다. 피아노는 동심이 뛰어노는 언덕이었다. 그 언덕에서 나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연필을 깎아냈다. 아이들은 내가 깎아준 연필로 연습을 마칠 때마다 사과 그림에 색칠을 했다. 엇박자를 고집하는 아이와 함께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추었다. 비밀창고처럼 피아노 의자에 숨겨 두고 꺼내 먹던 과자는 달콤했다. 수많은 가요 악보들과 아이들의 색으로 채워둔 그림들, 동심은 내 팍팍한 삶에 맑은 웃음을 선물했다. 겉으로 보면 피아노는 무심한 나무 구조물처럼 보인다. 뚜껑을 열면 하얀 건반과 검은 건반이 가지런히 대비되면서 반짝인다. 현마다 자신만의 음을 지닌 살아있는 생물이다. 속으로 우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육아로 힘들고 시댁 문제로 힘들 때 피아노는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피아노는 마음의 현을 망치로 두드려 희로애락을 드러낸다. 내가 내 현을 두드리면 피아노는 침묵하지 않고 언제나 바로 반응했다. 하나의 건반을 두드리면 더 크고 긴 여운으로 응답했다. 그날의 감정에 따라 나는 건반을 두드리며 내 마음속 파도의 수위를 조절했다. 건반을 두드리고 현이 울면 내 속에 음표는 공중으로 떠갔고 내 기분에 따라 안단테가 되었다가 비바체가 되었다. 내 감정의 북소리가 요동을 칠 때마다 나는 피아노 소리에 음정을 맞췄다. 내가 두드린 것은 피아노가 아니라 내 마음의 현이었다. 현의 장력을 조율하듯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의 현을 두드리면 내가 연주되었다. 삶의 다양한 음역대音域帶를 지났다. 팽팽해서 건들기만 해도 탱탱하게 반응하던 20대, 삶과 싸우며 희로애락을 넘나드느라 출렁거리던 청년기, 지금은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 고개를 이순耳順으로 가고 있다. 귀가 순해지면서 가끔은 내 안을 두드려본다. 삶의 장력도 오래된 피아노 줄처럼 느슨해졌다. 누가 나를 건들어도 반응이 가볍고 어디를 가도 걸음이 느긋해진다. 가끔 내 안의 현들을 바투 당겨보지만 이내 풀어지고 만다. 낡아간다고 생각하면 문득 서글프지만, 여유가 생겼다고 여기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무심코 즉흥환상곡을 연주한다. 이는 편안한 음역대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사주신 피아노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 앞에 앉아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린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유년의 음표들을 날린다. 힐끗 거울을 보니 중년의 내가 여덟 살의 나를 두드리고 있다. /작가

2025-04-16

트럼프와 미국의 대학들

미국 트럼프(Trump) 정부가 대학들을 상대로 압박을 시작했다. 다양성과 포용, 평등을 중시해 온 미국 대학들의 전통적 정책에 정면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백악관은 대학들이 인종 간 형평성을 고려한 입학정책과 인사정책 등을 수정하지 않으면, 총액 22억 달러에 이르는 연방 연구자금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사실상 협박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을 대표하는 사립대학인 하버드(Harvard)대학이 가장 먼저 반기를 높이 들었다. 하버드는 이러한 정부의 개입이 단순히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온 민주주의의 기반을 뒤흔드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대학은 특정 정치권력의 입맛에 따라 생각을 바꾸며 운영방식을 수정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대학들이 지난 긴 세월동안 유지해온 핵심 가치를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버드대학은 “트럼프 정부의 요청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전국의 많은 대학들이 하버드의 입장에 동의하며 정부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대학들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언제쯤 학문의 자유를 이처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외부의 간섭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운영하며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지적 공동체로 설 수 있을까. 학문이 정치에 종속되지 않고 지식이 권력에 복무하지 않는 구조를 우리 대학은 얼마나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가. 학문의 자유는 고상한 이상이나 듣기 좋은 구호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당당함과 직결되는 가치다. 대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사회에는 신박한 창의성도 존재할 수 없으며 뚜렷한 비판정신도 사라지고 긴 안목의 비전도 설 자리를 잃는다. 교육과 연구의 중심이 권력에 종속되는 순간, 사회와 공동체는 쇠퇴와 몰락의 비탈에 서게 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든든한 지식기반 위에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학문의 자유는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누가 대신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정부나 사회가 나서서 선사하지 않는다. 대학 스스로 자유의 가치를 인식하고 지켜내기 위해 싸우며 때로는 불이익도 감수할 각오를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버드와 미국 대학들이 보여주는 대응은 바로 그런 태도의 실천이다. 자금이 끊기더라도 정책의 방향에 동의할 수 없다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대학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이 아닌가. 대학은 교육기관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가 크고작은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며 미래를 위한 실험공간이다. 그런 장소가 위축되거나 침묵할 때, 사회 전체는 비판적 사고를 잃고 방향감각마저 잃게 될 터이다. 학문이 자유로울 수 없다면, 사회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 한국의 대학은 학문의 자유를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되묻고 행동할 시간이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자유를 지킬 책임은 대학 스스로에게 있다. 학문의 자유를 지키지 못한 결과는 사회 전체가 짊어진다. 대학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2025-04-16

빨간 머리 ‘강백호’를 찾아서

세계에서 인정받는 일본문화로 만화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수많은 일본의 만화가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에서 1년 동안 출판되는 일본만화가 대략 10억 부에 이를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톰’이나 ‘코난’부터 시작해 최근의 ‘귀멸의 칼날’이나 ‘단다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본 만화가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저에게, 뻬놓을 수 없는 일본만화를 한 편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말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주간 ‘소년 챔프’에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되었고, 단행본으로도 출판되었는데요. 당시는 신기를 펼치던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대단했고, 한국에서도 대학농구가 수많은 젊은이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마지막 승부’라는 농구드라마가 만들어질 정도였는데요. ‘슬램덩크’가 큰 인기를 끈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이러한 농구붐도 한몫했을 겁니다. ‘슬램덩크’는 강백호라는 빨간 머리의 문제아가 한 명의 어엿한 농구선수로 성장하는 간명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성장 서사의 앞과 뒤에는 강백호가 채소연에게 던지는 “좋아합니다.”라는 말이 놓여 있는데요. 첫 번째 “좋아합니다”가 이상형인 채소연이 강백호에게 건넨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면, 두 번째 “좋아합니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 나가면서 채소연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처음 ‘좋아합니다’의 목적어가 농구보다도 채소연에 가깝다면, 두 번째 ‘좋아합니다’의 목적어는 채소연보다 농구에 가깝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강백호의 성장이,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에 다가가는 과정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슬램덩크’가 일본인론의 교재로 삼아도 손색없는 텍스트로 여겨집니다. 일본에 살면서 실생활이나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듣거나 보는 단어를 하나만 고르라면, ‘간바로(힘내자!)’라는 말을 꼽고 싶은데요. 일본인들은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에도 꼭 ‘간바로’라는 말을 해서 긴장을 불어넣고는 합니다. ‘간바로’ 의식이 더욱 강렬해지면, ‘잇쇼켄메(一所懸命)’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하는데요. 이 단어를 직역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목숨 걸고 해낸다는 의미입니다. 사무라이가 쇼군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을 목숨 걸고 지킨다는 것에서 비롯된 단어를, 일상에서 태연하게 사용한다는 것이 조금 무섭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간바로’나 ‘잇쇼켄메’같은 단어들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은 옛날 사무라이들처럼 자신의 임무를 목숨 걸고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삶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슬램덩크’에서 감독인 안 선생님을 영감이라 부르고, 주장인 채치수를 고릴라라 부르던 자칭 천재 강백호는 ‘잇쇼켄메’는커녕 ‘간바로’에도 어울리지 않는 미숙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백호는 차차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것, 심지어는 자신의 (선수)생명까지 바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데요. 이런 모습은 해남고와의 시합에서부터 분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센터인 채치수가 부상으로 교체되자, 강백호는 채치수 대신 자신이 골밑을 지키겠다고 나섭니다. 그러면서 강백호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해보일 테다!”라고 각오를 다지는데요. 이 대목에서 독자는 이전과는 달리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강백호의 어른스러운 모습에 놀라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간바로’의 모습이, ‘목숨을 거는 수준의 노력(잇쇼켄메)’으로 발현되는 모습은 산왕고와의 경기에서입니다. 산왕고와의 경기에서 후반전 2분을 남기고 힘들게 루스볼을 건져낸 강백호는 경기장 밖으로 넘어지며 등을 다칩니다. 이후에도 강백호는 부상을 숨기고 덩크슛을 넣으며 활약하다가, 결국에는 벤치로 물러나게 됩니다. 벤치에 쓰러져 있던 강백호는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농구, 좋아하세요?”라고 말을 걸던 채소연의 모습과 2만 번이나 했던 슛 연습을 떠올리며, 안선생님에게 경기에 다시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강백호의 선수생명을 걱정하는 안 선생님은 강백호의 출전을 강하게 만류하는데요. 이런 안 선생님을 향해 강백호는 “선생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전 지금입니다.”라고 외칩니다. 이 장면을 읽을 때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몸에는 찌릿한 전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강백호의 투혼은 일본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잇쇼켄메’의 완성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렇기에 누군가는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일본 역사상 최고의 무사로 꼽히는 미야모토 무사시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것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1년간 머물게 되었을 때,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가마쿠라 고등학교 부근이었습니다. 벚꽃이 만개한 4월 초순 드디어 답사를 나섰는데요. 다행히 도쿄에서 오다큐선을 타고 후지사와역에서 내린 후에, 쇼난 해변을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세 칸짜리 미니 전철 에노덴을 타자 1시간 반 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가마쿠라고교는 출입이 통제되어 벚꽃만 볼 수 있었지만, ‘슬램덩크’의 오프닝 장면으로 유명한 철길 건널목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습니다. 온갖 외국어가 들려오는 틈바구니에서 에노덴과 건널목의 사진을 찍으며, ‘슬램덩크’를 비롯한 일본 만화는 21세기 일본의 정체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4-16

기후 변덕

기후학자들은 지구 상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기후변화의 원인은 엘니뇨 현상에 있다고 설명한다. 엘니뇨 현상이란 태평양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기후변화를 말한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대기 순환과 강수 패턴에 변화를 일으켜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2023년 7월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우박이 떨어져 100여명이 다쳤다. 우박의 일반적 크기는 0.5~5cm 정도인데, 이날 떨어진 우박은 직경 7~8cm로 테니스공만 했다. 한여름 강물에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지구 상의 이상기후는 전 세계적 뉴스다. 엘니뇨는 남아메리카 서해안에서는 홍수와 폭우, 동남아시아에서는 심각한 가뭄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북아메리카 남부에서는 폭설과 한파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런 기후변화는 농업과 수산업 등에 영향을 미쳐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기후변화에서 예외는 아니다. 평균기온 상승과 더불어 아열대 기후로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이상기후 발생 빈도도 잦아 기후변화 대응에 민감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는 기상청 관측이래 처음으로 4월 중순에 눈이 내리는 이상기후 현상이 빚어졌다. 전국에는 강풍을 동반한 비가 오면서 기온마저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장롱에 넣어두었던 겨울 점퍼를 다시 꺼내 입기도 했다. 오락가락하는 기후변화가 단순한 변덕만으로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5

대구시 대선공약 준비..후보공약 반영이 관건

대구시가 6월 3일 조기대선을 앞두고 78조 원 규모 20개 핵심사업을 대선공약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은 “대구 미래를 위한 개혁과제들은 정부 계획단계나 법률적으로 다 반영돼 궤도에 올랐다‘며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시정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개혁과제들이 대선공약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작년 12월부터 준비해 온 78조규모 20개 과제가 공약에 반영되도록 시정역량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지역의 현안보다 정쟁과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따라서 지역의 공약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지역현안을 대선후보 공약에 반영시키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이상적 방법이다. 대구시는 수도권 양극화 극복과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TK 신공항사업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울 계획이다. 신공항 사업은 정부부처 협의를 거쳐 상당부분 진척이 되고 있으나 공공개발에 따른 재원 문제가 난관에 봉착해 있다. 대구시는 대선공약을 통한 2차 특별법 제정이 난관 극복의 해법으로 보고 다각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그밖에도 대구취수원 안동 이전이나 군부대 이전, 달빛철도 조기 착공, 대구경북 행정통합 등 대구시의 주요 핵심 대형사업들은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야만 사업의 연속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의 현안사업들은 대체로 수십조원에 이르는 메가 프로젝트가 주류다. 이미 진행 중이기는 하나 마무리까지는 정부의 지원이 아직은 절대적이다. 적극 지원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시장까지 공석인 상태라 지금은 권한대행 체제가 막중한 임무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대구시는 15일 김 권한대행 주재로 21대 대선 지역공약 보고회를 가지고 충분한 토의를 거쳐 25일 이전 공약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여야 대선후보 진영을 설득하고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상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은 대구현안을 대선후보 공약화로 하는 것이 최대 숙제다.

2025-04-15

보수진영 후보 낮은 지지율, 돌파구 있을까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가 14~15일 양일간 대선 경선 후보자 등록 신청을 마감함으로써 경선레이스가 본격화됐다. 당 선관위는 서류심사를 거쳐 오늘(16일) 중 1차경선 진출자를 발표한다. 당내 과반이 넘는 의원들로부터 경선참여를 요구받아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예상대로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경선 ‘빅3’로 분류되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장관과 홍준표 전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 모두 국정 공백을 우려하며 경선참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데다, 한 대행 본인도 14일 “국무위원들과 함께 제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선거 출마 요구에 대해 선을 그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출마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공표하지는 않았다. 공직자의 최종 사퇴 시한이 5월 4일이어서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다. 관심사는 국민의힘이 경선과정에서 중도층 민심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의 경선 불출마로 국민의힘으로선 중도층 외연 확장이 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두 사람 모두 국민의힘에겐 중도층을 품을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이 경선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보수의 영토를 중원으로 넓히기는커녕 점점 쪼그라드는 행태가 할 말을 잃게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국민의힘의 또다른 고민은 대선주자들이 10명에 육박하지만 대부분 한 자릿수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진 의원, 전직 당대표, 광역단체장 등이 대거 주자로 나섰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주하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맞설 인물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가장 최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9∼11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6명대상)를 보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민주당 이 전 대표는 48.8%를 기록했다. 그간 범보수 진영 선호도 1위를 기록했던 김 전 장관은 10.9%, 처음으로 조사 대상에 포함된 한 대행은 8.6%, 한 전 대표는 6.2%, 홍 전 시장은 5.2%,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3.0%,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2.4%를 기록했다. 범보수 주자 전체 지지율을 합산해도 이 전 대표 지지율에 한참 못 미친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국민의힘 경선이 흥행하면 유력 후보들의 지지율에 탄력이 붙겠지만 당내에선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일찌감치 예비후보 등록을 한 후 대구경북(TK)지역을 중심으로 열심히 득표활동을 하는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대선을 완주하고, 유 전 의원마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면 보수지지층 표 분산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보수·진보 양진영의 결집력이 강해, 당락이 근소한 표차이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막판 보수진영 후보들의 극적인 단일화(‘빅텐트’)가 성사되면 다행이지만, 만일 ‘다대일’ 구도로 본선이 치러지면 국민의힘 후보가 민주당 이 전 대표를 이길 확률은 아주 낮아진다. 보수진영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5-04-15

국힘 경선 경고등 켜지자 ‘반명 빅텐트론’ 등장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의 경선불참으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흥행에 경고등이 켜지자, 보수·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빅 텐트론’이 등장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꺾기 위해 정치적으로 노선이 다는 세력이 연대해 단일 후보를 내자는 것이다.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는 지난 14일 대선후보 캠프 개소식에 앞서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보수후보 단일화를 강조하면서 “국민의힘 경선에서 승리한 분이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빅 텐트를 만들어야 이재명 정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홍 후보는 “1강 후보라도 대통령감으로 적절하지 않을 땐 50일 만에 뒤집어질 수 있다”며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사례를 언급했다. 국민의힘 경선에 다소 김을 빼는 생각이긴 하지만.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현재 보수진영에서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일찌감치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득표전을 벌이고 있고, 국민의힘 경선참여를 포기한 유승민 전 의원도 무소속 출마설이 나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무소속 출마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보수진영에서 이처럼 후보들이 난립할 경우 본선은 해보나 마나다. 그러나 보수진영과 호남출신 이낙연 전 총리(새미래민주당)등 다양한 정치세력이 단일 후보를 내 같이 캠프를 꾸리면, 민주당의 집권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생긴다. 한 대행의 경우, 국민의힘 최종후보가 선출되는 5월 3일을 전후해 대선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준석 후보와 유승민 전 의원도 빅텐트 논의에 참여할 가능성은 있다. 이낙연 전 총리가 상임고문인 새미래민주당의 전병헌 대표도 이미 “반 이재명에 동의하는 정치 세력이 뭉치자”는 제안을 했었다.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향후 여론조사에서 한 대행 지지도가 국민의힘 유력후보를 앞설 경우 빅텐트 구성이 빨라질 수 있다. 만약 빅텐트가 만들어지면 이번 대선의 최대쟁점도 ‘국가권력전횡에 대한 위험성’으로 대체될 수 있다.

2025-04-15

2,000번째의 장수사진

봄꽃 떨어지자 눈꽃인가. 팝콘 같은 벚꽃 잔치가 끝나기가 무섭게 강풍과 돌풍에 때아닌 4월의 폭설과 우박을 동반한 봄비라니? 사람사는 세상에 탄핵과 파면, 화마와 붕괴 같은 이변이 속출하자 하늘에서는 일진광풍의 일갈(?)로 날씨마저 변덕을 부리는가. 그래도 꽃이 진 자리마다 연두색 새 움이 실눈을 뜨고, 산과 들에는 소생의 희뿌연 기운에 연초록이 어우러지며 하루가 다르게 생동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몇 차례의 꽃이 피고지며 봄날이 깊어가는 때, 봄꽃은 산이나 들, 길거리에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짧게 피었다가 져버리는 꽃보다 더 밝고 화사하게 오랫동안 향기롭게 피어나는 꽃이 있으니, 이른바 ‘사람 꽃’이다. 머리와 얼굴을 곱게 손질하고 분홍, 연두, 남색의 알록달록한 한복 저고리로 새단장한 모습은 그야말로 활짝 피어나는 꽃이나 다름없다. 움직이는 사람 꽃이 피워내는 웃음꽃은 얼마나 환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울까? 그러한 꽃같은 매무새와 얼굴 표정을 애써 카메라에 담으며 오래도록 사람 꽃을 기억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의 갈퀴 같은 이마의 주름살이며 검버섯이나 오므라들고 쪼그라드는 얼굴의 살갗마저 순수하고 리얼하게 앵글에 담으며 시간의 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람의 얼굴에는 저마다의 희로애락이 스미고 풍진세사가 점철돼 있다. 그러한 얼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당사자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려는 진솔한 정성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취지에서 어르신들의 인물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봉사단은 2019년 7월 창단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의미가 담긴 장수사진을 찍어 두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활기차게 익수(益壽)한다는 속설로 붙여진 ‘장수사진’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긍정이고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즉, 지금까지의 자취이자 앞으로의 존재감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남겨두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출범 이래 포항시의 읍·면지역과 동·리단위의 마을 30여곳을 골고루 찾아다니며 어르신들께 장수사진을 찍어 드린지 5년 9개월만인 지난 주 촬영누계 2,000명을 돌파했다. 포항시 65세 이상 인구 11만여명의 2% 남짓한 어르신들께 장수사진을 선물한 셈이다. 직장에 몸 담으면서 주말이나 개인일정을 뒤로하고 간혹 휴가까지 내면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단원들과 가족의 노력이 사뭇 가상하고 고무적이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힘쓰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을 체득하면서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소리없이 일조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갈수록 고령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때, 경로효친의 측면에서도 ‘찾아가는 장수사진’은 주위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추억과 스토리가 배인 사진을 보면 기억력이 살아나고 뇌운동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장수사진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꽃이 여생을 환하게 비추는 등댓불이 되어 어르신들께서 편안하고 느긋하게 연년익수(延年益壽) 하시기를 빌어본다.

2025-04-15

건설공정에도 AI시대가 열린다

건설사업에도 혁신이 필요하다. 건설 공정의 4요소인 공기단축, 비용 절감, 품질 향상, 안전 확보와 친환경 공법 적용 등이다. 초고층 빌딩과 다양한 건물들이 전문 디자인 및 건설 설계를 통해 여러 모습으로 우리들 곁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일은 건설 공정, 기술, 조직, 프로세스, 제품 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활동으로 건설사업에서도 혁신이 일어 난다. 건축 공법에는 과거 안전사고 데이터와 실시간 센서 데이터 분석 등 AI 기반 위험 예측을 하거나, 개인 보호 장비에도 스마트 헬멧, 웨어러블 기기 활용한 심박수, 낙상 감지 등 실시간 모니터링, 고위험 접근없이 구조물 상태 드론 점검 등 첨단 기법이 적용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일과 장비, 작업공정 특성과 니즈에 맞는 혁신 기법 CQSS(Cost Quality Safety Schedule) 이름으로 적용했다. CQSS 기법은 공사 품질, 공기, 안전, 비용을 통합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건설 프로젝트 성과관리시스템이다. 단순한 건설공정 절차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표준화된 시공 프로세스를 정립하여 지속 개선하는 것이다. CQSS 주요 구성요소는 원가 계획, 실적 분석, 낭비 요소 제거 등의 Cost(비용), 표준시공절차, 품질 점검 체계, 사전 분석 등의 Quality(품질), 스마트 안전관리 시스템, 위험성 평가, 교육 등 Safety(안전), 3D~4D를 통한 시뮬레이션, 주간 일일 공정관리 등 Schedule(공정) 등이다. 즉, 건설 공정 프로세스의 시작과 과정, 마무리까지 분석과 낭비를 발굴하고 제거하여 최적화 하는 활동이다. 필자가 송도 고층 건물 건설 현장의 혁신 진단을 할 때 독일 FERI사의 거푸집 방식인 자동 클라이밍 시스템(ACS, Automatic Climbing System)을 도입하여 유압식 자동 상승 장치를 이용해 타워크레인 없이 거푸집이 자력으로 상승하게 하고, CQSS 활동을 통한 작업 프로세스 상의 항목별 낭비 제거 활동으로 건설 공기, 안전, 품질, 생산성 등 적용 효과를 최대화 하고 있었다. 포스코의 고유 혁신 기법인 QSS를 건설 특성에 맞게 변형하여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건설 공정의 CQSS 활동은 여러 활동의 성과이지만 ACS 도입 등 한 층 시공 시간 단축, 작업자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접목한 양질의 콘크리트 품질 확보, 장비 효율화와 첨단 기술 적용의 현장 인력 20~30% 감소의 원가 개선, 첨단 장비에 AI 연결하여 안전관리체계 정립, 무엇보다도 중요한 성과는 1회성 건설 프로젝트 개념의 한계를 극복한 작업자의 마인드와 건설사의 열린 조직문화 개선이다. 건설 산업의 혁신은 첨단 기술 적용과 작업자의 지속적인 낭비 제거 활동이다. AI, 로봇공학, 웨어러블, 빅 데이터 활용 등 첨단 건설 기술에 CQSS로 종합 혁신운영체계와 건설 작업자의 문제를 보는 눈, 낭비 발굴 및 제거 방법을 인지시켜 안전하고 최적화 된 건설 공법을 통한 지속적 진화 발전과 경쟁력 있는 건설사로 거듭 날 수 있는 것이다.

2025-04-15

정치를 바꿔야 나라가 산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이중권력 충돌은 결국 비상계엄 발동, 대통령 탄핵소추 및 파면으로 끝났다. 정치의 이상은 권력투쟁의 현실 앞에 무력하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권교체’보다 ‘정치교체’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정치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전문가·언론·시민사회의 의견이 대체로 수렴되고 있다. 기존의 ‘공급자(정치인)중심 정치’를 ‘소비자(국민)중심 정치’로,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를 ‘저비용 고효율의 정치’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제왕적 대통령제는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또는 4년 중임제로, 그리고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 사표(死票)를 줄이고 승자독식 정치문화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양당제는 협치를 제약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제3지대 정당의 참여기회를 확대하자는 데에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개혁이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개혁을 주도해야할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고,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는 정치인들이 개혁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약속했던 개혁을 시늉만 했을 뿐, 한 번도 제대로 추진한 적이 없다. 말로는 민심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당파적·개인적 이익에 혈안이었다. ‘개혁 주체’가 되어야 할 정치인들이 ‘개혁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정치제도의 개혁’은 ‘정치의식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투철한 민주주의 가치관, 도덕성, 그리고 정치적 소명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인들의 언행불일치와 표리부동, 전쟁 같은 적대정치,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 행태 등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이기 때문에 올곧은 정신이 없으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탐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의식수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여야는 서로를 비판하면서 ‘자신은 개혁주체’이고 ‘상대는 개혁대상’이라고 코미디를 연출한다. 자신은 바뀌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오만과 독선이다. 적대적 공존관계 속에서 정치적 이익을 챙겨온 그들에게 성찰과 반성,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채찍을 들어야 한다. 특히 정치적 편향성이 없는 지식인·언론·시민사회가 여야에 대한 공정한 심판자로서 정치개혁 추동력을 발휘해야 한다. 지식인과 언론은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통해서, 그리고 시민사회는 정치혁신운동을 통해서 정치인들이 바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강력한 비판과 압력을 계속해야 한다. 정치의 질이 국민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2025-04-14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소풍의 추억

홍성식(기획특집부장) 봄과 가을 2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70~80년대 초등학생들은 소풍 가는 날을 너나없이 기다렸다. 김밥과 사이다 한 병, 평소엔 엄마가 잘 사주지 않던 과자까지 몇 봉지 조그만 가방에 넣고 학급 전체가 1시간쯤 걸어 유원지나 동물원을 향했다. 아이들답게 목적지로 가는 내내 친구끼리 장난을 치고, 별 것 아닌 이야기에 크게 웃었던 소풍. 도착하면 노래와 춤으로 흥겨운 장기자랑과 공책이나 연필을 선물로 주는 보물찾기라는 재밌는 놀이가 이어졌다. 그보다 한 세대 전에는 멀리 걸어가 야외에서 하루를 보내고 온다는 뜻으로 소풍을 원족(遠足)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동시에 일상을 벗어난 짧은 여행의 즐거움을 선물했던 소풍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현장 체험학습(소풍)을 나갔던 초등학생이 사망한 사고에 교사의 형사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학교 측으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의 안전사고는 누구도 예측하기가 쉽지 않으니. 거기에 더해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의 무거운 책임감과 업무 부담도 소풍을 꺼리는 세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학생들 역시 과거와 달리 매번 비슷비슷한 행사 패턴에 싫증을 느끼기도 한단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러 학교가 현장 체험학습을 학교 안에서 진행되는 실내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안전’에 대한 가치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소풍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학생들의 안전과 학창 시절의 추억. 2가지 모두를 포기하지 않고 소풍을 즐길 묘책은 없는 걸까? 어려운 문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14

세계가 인정한 경북 동해안의 地質유산

지난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경북 동해안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의결했다. 오는 17일 유네스코가 이를 공식 통보하면 경북 동해안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2017년 청송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데 이어 경북에서는 두 번째 맞는 경사다. 세계지질공원 인정을 위해 공을 들여 노력한 공직자와 주민들의 덕분이 크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지질학적 가치뿐 아니라 자연생태와 역사, 문화자원과의 연계성, 지속가능한 관리체계 등을 종합검토 평가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경북 동해안 일대는 한반도 최대 신생대 화석산지, 동아시아 지체구조 형성, 화성활동의 흔적, 다채로운 지질경관 등 학술적·교육적·관광적 가치를 골고루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북도내는 세계적인 자연유산 인증제도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두 군데 있고, 국가지질공원 4개소를 포함하면 전국에서 지질유산이 가장 많은 곳이다. 올해 문경도 국가지질공원 인증에 나서고 있어 경북은 지질유산의 보고라 할만하다. 문제는 지질유산의 가치를 영구적으로 보존하고 널리 알려 관광자원으로서 가치를 확대하는 것이 숙제다. 이번에 세계지질공원 유산에는 울진, 영덕, 포항, 경주 등 4개 시군 29개 명소가 포함됐다. 경주의 남산 화강암, 양남 주상절리와 우리나라 대표 해안단구로 손꼽히는 포항 호미곶 해안단구, 2200만년 전 신생대 화석이 분포해 있는 여남동 화석산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학술적 가치를 넘어 자연유산으로서도 우리가 잘 보존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최근 경북은 오랜 숙원인 동해선(포항∼삼척)의 개통으로 경북 동해안 관광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은 이런 기대감에 큰 힘이 된다. 세계가 인정한 경북 동해안의 천혜자원을 잘 보존하여 관광자원화 한다면 관광객 유치뿐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는 경북도 방문의 해인 동시에 경주 APEC 개최 해다. 세계지질공원 인정을 계기로 경북관광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야 한다.

2025-04-14

吳·劉 경선불참…국힘 경선레이스 대혼돈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데 이어 13일에는 유승민 전 의원이 경선에 불참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민의힘 경선레이스에 빨간불이 커졌다. 오 시장과 유 전 의원은 친윤(윤석열)계가 주류를 이루는 국민의힘에서 중도층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해온 인물들이다. 두 사람이 경선 후보 등록을 포기한 것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 전 의원의 경우 국민여론조사로 경선 후보를 압축하는 1차 컷오프에서 ‘역선택 방지’조항을 둔 것에 반발하며 경선불출마를 선언했다. 경선룰이 윤 전 대통령 계엄과 탄핵반대 세력에 동조하는 대선주자들에게 유리한 구조로 설계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역선택 방지조항은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만을 응답 대상으로 한정해, 대선주자에 대한 전국적 민심반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내 일각에선 두 사람이 지지율이 정체돼 경선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에 경선을 포기한다는 비아냥 섞인 말도 나온다. 아직까지 ‘대선불출마’를 언급하지 않은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탈당 후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국민의힘 경선 레이스는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인물 위주로 재편됐다. 탄핵에 찬성한 경선 후보는 한동훈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 두 명뿐이다. 오 시장이나 유 전 의원이 경선에 불참하면서 이들의 지지자들이 대안으로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1차 컷오프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홍준표 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나경원 의원 보다는 한 전 대표나 안 의원이 4명을 추리는 1차 컷오프 단계에서 유리한 입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오늘(15일)까지 경선후보 등록을 받고, 일주일 뒤인 22일 국민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4명으로 압축한다. 현재 국민의힘 대선 경선판을 요동치게 하는‘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차출론’이 현실화 될지 여부가 큰 변수이긴 하지만, 과연 누가 4강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5-04-14

한국과 계몽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오래 전에 심훈의‘상록수’란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 1930년대 농촌 계몽운동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인데, 동아일보 창간 15주년을 기념하는 공모전의 당선작이다. 1935년 9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되고 일부가 교과서에도 실리는 바람에 널리 알려졌다. 최용신이란 실재 인물을 모델로 한 이 소설은 농촌 계몽운동에 투신한 남녀 주인공의 활동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1930년 당시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77.73%였다. 여성의 경우는 92%나 되었으니 열에 아홉은 글을 못 읽는 까막눈이었다는 얘기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맹퇴치가 우선이라는 걸 깨닫고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등의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인 계몽운동을 펼쳤다.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농촌에서 야학을 열어 국어와 산술을 가르치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활동을 벌였다. 2025년 현재 한국의 문맹률은 1%도 되지 않는다. 이제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실행되어 한글은 물론 영어도 의무적으로 배운다. 일부 고령층이나 장애인들을 제외하고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문맹퇴치는 거의 완성이 된 셈이다. 그런데 때아니게 “저는 계몽이 되었습니다”란 말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 탄핵을 심리하는 법정에서 김계리 변호사가 변론 중에 한 말이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민주당의 패악과 일당독재, 파쇼 행위를 확인하고 이 사건 변호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을 계기로 상당수 젊은이들이 ‘계몽’되었다고 한다. 권력의 정점에까지 올랐으면 전임 대통령처럼 국빈대접 받으며 외유나 하다가 임기를 마칠 것이지, 느닷없이 비상계엄이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여간한 충격이 아니었다. 그 바람에 그 때까지 덮이고 감춰져 있던 온갖 것들까지 백일하에 본색을 드러냈다. 국회는 물론 사법부와 언론까지, 심지어는 정부기관인 검·경과 군부까지 좌경화 의식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뜻 있는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계몽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순수와 정의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찌들지 않은 열린 사고라야 가능하다. 불순한 욕망이나 완고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과오가 밝혀져도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행태를 보인다. 한때 민주화운동에 투신 했던 사람들 중에도 노선을 바꾼 사람이 적지 않다. 자유와 민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으로 사회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 어느 정도 달성되고, 운동권이 변질되고 타락한 양상을 보이자 단호히 절연했다. 그러나 불순한 의도와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은 여전히 운동권 전력을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계몽파와 비계몽파가 대선을 앞두고 일대 결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이 대결의 승패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

2025-04-14

개소리의 시대

공봉학 변호사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사람들의 거처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우리는 이 언어를 통해 세계 속에서 머물며, 꿈을 꾸고 사랑하며, 세계를 이해하고 존재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존재는 언어를 통해 비로소 의미로 나타나기에, 대화는 언어라는 집으로의 상호 초대이다. 그런데 그 파티가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소리 내어 읽어보자! “저는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고, 결국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진실을 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문장 더 읽어보자! “이 고난은 하늘이 당신에게 주신 시험입니다. 이겨내면 분명 더 큰 축복이 올 겁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시라. 깊이 생각하는 척하는, 뭔가 있을 듯한 아무말 대잔치! 즉 ‘개소리’다. 거짓말 조차도 이것 앞에선 작아진다. 개소리! 진실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가짜 면허증을 부여받은 말장난. 그렇다. 개소리는 말장난이다. 그런데 매우 나쁜 것이 문제다.‘소리’라는 글자 앞에 붙은 ‘개’가 무슨 죄가 있으랴. 개소리는, 개보다 더 못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 ‘개소리에 관하여(On Bullshit)’의 저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는 진실이나 거짓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말”이라 정의한다. 개소리 꾼은 자신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관심이 없다. 개소리 꾼의 목적은 사실의 전달이 아니다.‘설득’‘이미지 관리’‘주목받기’등을 위한 ‘인상조작(impression management)’이 그 목적이다. 거짓말은 진실을 전제로 하지만, 개소리는 진실을 전제하지 않는다. 개소리는 처음부터 진실에 기반하지 않으므로,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 개소리를 지껄이는 자는, 양심의 가책은 고사하고 의기양양이라는 파렴치 범죄까지 추가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존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개소리 꾼은 처음부터 진실에 무관심하다. 개소리에는 소위 ‘진리값(양심의 가책)’이 없다. 거짓말과 개소리 중간에 ‘협잡’이 있다. 협잡은,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는 있으나, 말 자체가 명확히 거짓은 아닌 경우다. 예를 들어, 광고문구 ‘이 제품은 당신을 바꿉니다’라는 말을 보라. 부분적 왜곡이거나 뻔뻔한 과장이다. 이렇듯 협잡은 듣는 이의 믿음을 이용하여 이득을 노린다.‘거짓말-협잡-개소리’의 순서로 점점 더 악이 가중된다. 거짓말이 최고로 나쁜 말이라 알았던 우리에게 충격적인 순서가 아닌가! 거짓말은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두려움)이라도 있지만, 개소리는 이것에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정치인’. ‘SNS 정보’, ‘광고언어’, ‘이념에 도취된 떠벌이들’은 대표적 개소리 생산공장이다. 진실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사랑도 민주주의도 없다. ‘아는 것이 없을 때 침묵하는 태도’‘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비판적 사고’는 개소리라는 병을 낫게 하는 약이다. 개소리로 포장된 사람은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유의하자. 얼마나 많이 개소리에 속았던가! 얼마나 많이 개소리를 지껄여 왔던가! 우리는 말에 중독되어 있으면서도, 말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서글프게도.

2025-04-14

대통령 후보들이 답해야 할 문제들

김진국 고문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결정됐다. 이제 겨우 51일 남았다. 민주당에는 ‘어대명’(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에서는 여러 사람이 혼전(混戰)이다. 여론조사에서 도긴개긴이다. 이번 선거는 탄핵 선거다.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비슷하다. 그때는 탄핵 극복이 시대 과제로 두드러졌다. 절대다수 국민이 탄핵을 지지했다. ‘촛불혁명’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바람에 문재인 후보가 너무 쉽게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해 죄인이 된 자유한국당이 힘을 쓸 수 없었다. 문 후보에 대한 검증도, 미래 구상도 따져볼 틈도 없이 바로 정권을 넘겼다. 그는 ‘촛불혁명’의 이름으로 과거에 매달렸다. 임기 내내 ‘적폐 척결’을 했다. 보수 정부에 관계한 사람들을 정부에서 쫓아냈다. 자기편은 비리조차 감싸 ‘내로남불’이 유행어가 됐다. 지나친 규제와 세금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 탈원전정책으로 원전 생태계를 와해시켰다. 사드 배치 지연, 대일 합의 번복 등으로 외교 축이 흔들렸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직접 대화의 길을 터주고,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완성을 방치했다. 일일이 나열하기 숨이 가쁘게 보수 정부 정책을 뒤집었다. 물론 탄핵이 이 선거를 있게 했다. 탄핵을 피해 갈 수 없다. 특히 국민의힘 후보들은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탄핵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자기 생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런 사태를 다시 반복할 순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기 행동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사저로 돌아가면서 개선장군처럼 행동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태도도 불분명하다. 윤 전 대통령을 업고 나서겠다면 탄핵을 반대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임기를 못 마치고 물러난 것은 분명히 실패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면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윤석열)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를 포기한 정치권에 던진 준엄한 훈계다. 민주당 후보도 이 지적에 답해야 한다. 비상계엄의 가장 큰 책임이 윤 전 대통령에게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후보가 헌재의 지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국민 통합은 대통령의 최고 책무다. 갈라진 국민을 어떻게 통합할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 실종, 반복되는 헌정 중단 사태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해법을 내놔야 한다. 선거 이후의 상황은 산 넘어 산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거대 권력이 된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국민의힘은 108명에 불과하다. 개혁신당 3명을 합쳐봐야 111명이다. 180석을 넘으면 국회선진화법이 무력화된다. 200석이 필요한 탄핵과 개헌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22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 때 충성파를 제외하고는 노골적으로 정리했다. 무자비한 숙청이었다. 그가 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면 견제받지 않고, 폭주하는 기관차가 될 위험이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치에도 탄핵 반대파가 기세를 올린 이유다. ‘이재명 포비아’에 대한 이 후보의 이해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 거대 야당에 직면하게 된다. 윤 전 대통령이 놓였던 바로 그 환경이다. 선거로 달궈진 대결 의식 속에 어떻게 민주당의 협조를 받아낼지 관건이다. 여기에 실패하면 윤 전 대통령의 길을 걷거나, 아무 일도 못 하는 무기력한 대통령이 된다. 나라도 스톱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50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후보마다 답을 내놔야 한다. 우리도 그 답을 듣고, 냉정하게 답을 찾아야 한다. 또다시 나라가 거꾸로 달리게 할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4-13

권한대행의 본질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한덕수 씨가 며칠 전 헌법재판관 세 명을 전격적으로 임명했다. 국회 추천 몫 마은혁 재판관 임명은 이미 헌재에서 임명 안 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은 사안이라 문제가 없다. 그러나 4월 18일 임기가 만료되는 문형배, 이미선 두 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크다. 비판 측에서는 두 사람의 과거 이력도 문제 삼고 있지만, 핵심은 권한대행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3월 24일 한덕수 탄핵소추 기각 판결문에도 이 문제가 담겨있다. 최형식, 조한창 두 재판관은 각하 의견을 냈는데, 그들은 헌법재판관 임명권이 대통령의 권한이므로 이 문제로 탄핵소추하려면 소추안 발의와 의결에 대통령에 준하는 정족수를 채워야 한다면서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낸 것이다. 이 판결문을 보고 언뜻 조선시대 예송이 떠올랐다. 예송이란 효종이 사망하자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가 효종을 위해 어떤 상복을 입을 것이냐로 서인과 남인 두 정파가 대립한 사건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효종의 본질을 왕으로 볼 것인가 둘째아들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역할을 중시하여 효종의 본질을 왕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덕수 탄핵소추 판결에서도 각하 의견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권한대행이 대통령 지명권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권한대행의 역할은 효종의 지위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일단 효종은 공식적인 왕이었고 업무가 분명했으며 종신직이었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은 공식적 직함도 아니고 권한대행의 권한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으며 임시직이다. 권한대행의 애매한 포지션을 해결하기 위해 제20대 국회에서 민병두 의원 등 41명이 ‘대통령의 권한대행에 대한 법률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방법도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권한대행 체제는 비상시에 발생하는데, 권한 범위를 명문화했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관행을 보면 권한대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추론할 수 있다. 먼저, 권한대행 경호 인력은 대통령에 비해 현격히 적고 국무총리를 경호하는 세종시 경찰청에서 맡는다. 집무도 본래 업무 보는 곳을 근거지로 두고 대통령 업무를 볼 때만 대통령 집무실에 방문한다. 기재부장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때 발생한 제주항공 사고와 산청 산불 처리 업무는 기재부에서 담당했다. 외교에서도 권한대행은 한 나라의 수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권한대행이 명목상으로는 대통령의 권한을 가졌지만 국무총리가 본질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의 재판관 두 명을 임명한 것은 월권이다. 탄핵소추 같은 중요한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이미 2024년 10월 17일 국회 몫 3명의 재판권이 임기 만료된 후부터 정계선, 조한창 재판관이 임명된 12월 31일까지 6인 체제로 운영되었으니 대통령 지명 몫 헌법재판관 임명이 급한 것도 아니다. 신임 헌법재판관 지명은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맡겨야 한다.

2025-04-13

철강·수요산업 균형 잡힌 정책 필요

서정헌 스틸앤스틸 회장 지나친 철강수입 규제로 수요산업의 역풍이 우려스럽다. 최근의 철강위기를 극복하는데 수입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에는 철강업계 모두가 공감하는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최근 우리나라 철강 수입규제 건수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철강수입을 규제하면 국내 철강가격이 올라가고 수요산업의 철강재 확보가 어려워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수입규제를 반대하는 철강 수요업체들의 주장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철강업계는 수입규제를 원하고 철강수요업계는 수입규제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 산업정책은 어느 쪽 주장에 더 귀를 기울여야할까? 철강과 철강수요산업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철강이 철강수요산업과 강한 산업간 상호의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강 수입규제는 단기적으로 철강 산업의 위기극복과 사양화 속도를 조절하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하면 산업간 상호의존관계로 인해 철강수요산업은 역으로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원가 인상 등으로 인해 경쟁력 약화라는 암초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다시 철강산업의 후퇴로 이어진다. 이런 산업간 상호의존관계를 감안하면 지나치게 수요산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철강수입규제는 장기적으로 철강 산업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양 측의 시장과 수요를 정확히 잘 판단, 시책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산업정책은 주로 대형 고로사의 입장을 많이 반영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철강 수입규제가 시작되면 철강사는 더 적극적으로 정부를 설득하여 수입규제를 연장하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중소 철강사나 유통 가공사는 자신의 주장을 산업정책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철강수요산업의 경우 위기의 징후가 장기적으로 분산되어 표출되기 때문에 정량화가 쉽지 않고, 철강소비자 단체의 조직력도 약해서 수입규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산업정책에 반영되는데 한계가 있다. 철강산업과 철강수요산업 관계는 깊게 얽혀 있다. 처음에는 철강이 산업을 이끄나 자동차 조선 가전 등 철강 수요산업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수요산업이 철강을 견인하게 된다. 당국도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해 산업정책의 초점을 철강에서 철강수요산업으로 이동시켜 나간다. 산업정책의 큰 방향이 어느 정도 철강산업의 희생을 감내하더라도 수요산업을 통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철강은 주로 수요산업의 안정적인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에 주력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산업구조는 철강산업에서 철강수요산업으로 더 확산, 성장하게 되고 또 하부로 파생되면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관련 산업 구조다. 필자는 철강과 수요산업의 산업간 연관효과가 튼튼한 나라가 철강산업이 강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산업간 관계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철강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기도하다. 수요산업이 후퇴하면 철강도 설 자리가 좁아진다. 그런 점에서 수요산업과의 상호의존관계를 고려하는 산업정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당국은 철강과 수요산업의 바람직한 상호의존관계를 반드시 유념, 수입규제를 하더라도 철강 하공정이나 수요산업과의 공존, 산업 간의 균형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2025-04-13

위기에 처한 포항경제, ‘해법’ 찾아야 한다

박승호 전 포항시장 경북 제1의 도시 포항이 흔들리고 있다. 이 나라 근대화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포스코를 위시한 철강산업의 본고장 포항이 국내외 경기침체와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중국의 덤핑전략 등의 악재로 뿌리째 휘청이고 있다. 포스코 포항공장 2개소가 잇달아 문을 닫았으며 현대제철 2공장마저 조업을 중단하는 등 철강업계가 그야말로 창립 후 최대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위기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도 심각한 현상이지만 아직까지 철강 단일업종에 편중돼 있는 포항의 경우 2차, 3차적 폐해마저 우려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포항시와 지역 상공계, 철강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하루빨리 특단의 해법을 찾지 않으면 자칫 IMF보다 더 큰 ‘경제 위기(economical crisis)’로 이어져 철강 도시 포항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최대 위기는 미국의 관세 폭탄이다. 트럼프 정부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추가관세를 부과하면서 포스코를 위시한 포항 철강업계가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의 덤핑 저가물량 공세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철강업계로서는 느닷없는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그야말로 업계 전반이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실제로 포항 철강업계의 경우 국내 건설 경기 부진과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생산과 수출 모두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포항 철강산단의 생산실적은 14조7824억원으로 전년도인 2023년 16조3247억원보다 약 9.4% 감소했다. 또 수출도 2023년에는 36억5893만 달러의 실적을 올렸으나 지난해에는 33억2592만 달러로 9.1%가 감소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부터 트럼프 정부의 대미관세 25%가 적용될 경우 그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특히 포항의 경우 아직까지 철강산업을 대체할 만큼 첨단 신산업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주력산업인 철강산업이 뿌리째 흔들린다면 포항시의 내일과 시민의 안녕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지역경제가 안고 있는 현주소다. 예컨대 포스코와 현대제철소의 몸집 줄이기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포항 인구감소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50만 대도시 포항의 한계선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인구감소 현상이 반전되지 않는다면 50만 이상 대도시에 주어지는 행·재정적 정부 지원이 대폭 감소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포항 경제의 어려움은 도심 내 상가와 거리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포항 시내 중심가인 오거리와 육거리 일대 중심상가에는 영업 중인 가게보다‘임대’를 붙인 공실 점포가 더 많을 만큼 을씨년스럽다. 포항시에서도 ‘포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는 등 나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미봉책으로는 근본적인 서민경제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위기에 처한 포항 경제를 살릴 해법을 찾기 위한 그야말로 ‘솔로몬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발 관세정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철강산업 살리기에 포항시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와 함께 서민 가계를 살려 나갈 보다 근본적인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함은 불문가지다. 위기에 처한 포항을 더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