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특검과 거부권

홍석봉 언론인 특검과 대통령의 거부권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거대 야당은 특검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 대통령은 거부권이 전가의 보도다. 야당과 대통령이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치킨게임을 벌인다. 야당의 입법 폭주와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로 22대 국회 시작부터 정치권이 혼미 상태다.1심 법원이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과 관련,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해 중형을 선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화영 특검으로 맞불을 놓았다.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재점화되자 방탄 특검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다.민주당은 22대 국회가 문 열자마자 무더기로 ‘특검법’을 내놓았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22대 국회 개원 첫날 ‘1호 당론 법안’으로 각각 ‘채 상병 특검법’과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다음날엔 ‘김건희 특검법’을 꺼냈다. 22대 국회 시작 열흘 만에 5건을 발의했다. 특검법 발의는 20대 국회 때 16건, 21대 18건이었다. 18건 중 15건이 야권이 내놨다. 야당은 나아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상설 특검법까지 추진하고 있다.정치권이 다시 무한 정쟁에 빠져들고 있다. 정치 공세용 특검과 거부권 남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거대 야당의 특검법 공세에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맞서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폭주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야당은 특검법으로 윤석열 정부를 몰아치면서도 삼권분립을 내세워 대통령의 거부권을 포기하라고 주장한다.윤석열 대통령은 21대 국회 마지막 날 민주유공자 특별법 등 4건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임기 2년 동안 14건의 거부권을 썼다. 노태우 전 대통령 7건, 노무현 전 대통령 6건, 박근혜 전 대통령 2건, 이명박 전 대통령 1건과 비교된다. 야권은 ‘불통 정치’라는 비난을 쏟아냈다.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법권은 국회 고유의 권한이다. 거부권은 신중히 행사돼야 하며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 2년 동안 14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비판 여지가 적지 않다. 쪽수로 밀어붙이는 거대 야당의 실력행사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정치의 생명인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은 실종됐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양보도 없다. 오직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목적만 돋보인다. 과거 여대야소 시절엔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모두 야당 단독 처리한 것이다. 대통령을 불통 프레임에 가두고 선거에 유리한 구도로 끌고 가기 위한 전략이다. 정부여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법안이 대부분이다. 야당 단독 처리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여당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 총선 압승에 취한 민주당의 오만이 빚은 산물이다.민주당은 특검에 이어 윤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단독 원 구성에 이어 상임위원장 자리도 독식할 태세다. 입법 독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삼겹살 1인분이 2만원인 시대다. 야당이 정치를 농단하는 사이 애먼 서민들만 죽어간다. 민생부터 챙겨라.

2024-06-13

도시철 역명은 누구나 알기 쉽게 간명해야

올 연말 개통 예정인 대구도시철도 1호선 안심-하양 연장의 역명을 놓고 대구시와 경산시가 갈등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1호선 연장 구간에는 3개의 역사가 신설되는데 그 중 2개는 경산시 구역에 있어 역명을 제·개정할 권한이 경산시에 있다. 경산시는 두 곳의 역명을 지역과 대학이 포함되는 이름으로 지난해 11월 결정했다. 부호경일대호산대역이 하나고, 하양대구가톨릭대역이 또 다른 하나다.두 역의 글자 수가 8개나 되는 등 너무 길고 심지어 지역과 두 개 대학의 이름이 동시에 들어가 처음부터 혼란스럽고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일부 시민은 “역명이 너무 길어서 도시철도 놓칠 판이다”라는 비판 글을 올리기도 했다.도시철 연장 구간 개통 6개월을 앞두고 12일 대구교통공사가 경산시를 방문해 역명 개정을 공식 건의했다. 3개 이상 지역과 시설이 들어가 혼란 우려가 있고 하양대구가톨릭대역의 경우 국철 하양역과 환승이 가능한데 다른 이름을 사용해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건의의 요지다.코레일과 환승체계를 갖춘 도시철도는 대구역, 동대구역처럼 국철과 지하철이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라는 것이다.이에 대해 경산시는 “지역과 대학의 상생을 위해 불가피하게 지역명+대학명을 역명으로 결정했다”며 대구시 요청에 난감해 하고 있다고 한다. 역명 제·개정의 권한이 있는 경산시로서는 지역과 대학을 알리고 대학도시의 특성을 부각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설명이다.그러나 도시철도 역명은 이용하는 시민 모두가 부르기 쉽고 알 수 있도록 이름을 짓는 것이 원칙이다. 가능하면 역명은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 좋다. 특히 지역의 정보가 부족한 외국인 관광객과 노인, 어린이 승객에게는 긴 이름은 큰 불편을 줄 수 있다.경산시가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지역의 대학을 널리 알리는 방법으로 역명을 활용하려는 뜻은 이해가 되나 이용시민의 입장이 돼 보는 것도 생각할 일이다.대구시와 경산시는 행정구역만 다를 뿐 동일 생활권이다. 역명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할 해법을 찾아 도시철 연장구간이 산뜻하게 출발하길 바란다.

2024-06-13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것은 1988년으로 올해로써 36년째를 맞는다.최저임금은 저소득 근로자의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고 유지시켜 주기 위한 제도다. 정부가 노사간 임금 결정에 개입해 최저임금을 정하고 사용자가 그 이상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임금의 기준점이 된다.그러나 임금을 더 받으려 하는 근로자와 임금 부담을 줄이려는 사용자간의 합의가 쉽지 않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늘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36년동안 합의로 결정된 경우는 단 7차례뿐이다.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달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제 논의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는 시급 1만원 돌파 여부다.그러나 시급 1만원 돌파는 현재 시급이 9860원으로 1만원 턱밑까지 와 있어 1.4%만 인상돼도 시급 1만원을 넘게 된다. 지금까지의 시급 인상폭을 감안하면 1만원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최저임금 시급 1만원은 그동안 사업주에겐 심리적 저항선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1만원이 돌파된다면 심리적 충격이 클 것으로 짐작이 된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불경기를 고려한다면 최저임금 결정 정도에 따라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최근 소상공인연합회는 소상공인의 98.5%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내리거나 동결을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 생산성에 비해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설명도 덧붙였다.올 8월 법정기한까지 노사가 상생의 적정선을 찾을지 지켜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13

대한민국의 숨결, 독도

장규열 고문 일본은 왜 그러는 것일까. 한국 선박이 독도 주변을 조사했다고 일본 정부가 거세게 항의했다는 게 아닌가. 너무나 당연한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권을 놓고 일본은 어째서 집요하게 시비를 거는지. 먼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을 마감하면서 연합국들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었다. 미국, 영국, 소련 등 48개국이 서명하고 1952년 초에 공표되었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우리와 북한은 어느 쪽이 한반도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다고 하여 초대받지 못하였다.‘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와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도서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2조 이 한 줄에 ‘독도’가 적혀 있지 않다면서 일본은 지금껏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이다. 독도가 일본 땅임을 인정한 증거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물론 이 조약이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우리의 구체적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해야 한다.신한일어업협정도 있다.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인 1998년에 체결되어 공표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협정이다. 협정이 설정한 ‘중간수역’에서는 양국의 국민과 어선이 상대국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엄연히 대한민국만의 영토여야 할 독도가 중간수역에 빠진 꼴이 되었다. 독도를 두 나라가 함께 관리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영토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독도 주변에 설정하지 않고 중간수역에 넣어버린 것이다. 일본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흔들 수 있는 까닭을 남긴 셈이다. 중간수역에 떨어진 독도의 지위와 운명은 누가 헤아리는가. 우리가 독도를 생각하며 다분히 감정적이며 정서적인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고 있다면 일본은 조직적인 논리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모은다. 독도를 국제적 분쟁거리로 만들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한국전쟁과 IMF사태를 기억하는 일도 끔찍하지만, 그런 와중에 ‘우리 땅 독도’의 운명이 위태로울 빌미와 움직임이 있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유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의 섬 독도’의 운명을 흔들 수 없음을 분명하고 조리있게 세계만방에 고해야 하지 않을까. 신한일어업협정은 어업에 관한 나라 간의 약속이므로 대한민국 독도의 영토적 지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도 분명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반도의 목소리가 적절하게 개진되지 않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지극히 지엽적인 어업을 대상으로 하는 신한일어업협정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침탈할 수 없음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일본과는 국익의 관점에서 협력과 상생의 정신을 이어 가되, 우리의 땅 독도의 지위를 들먹이는 행태와 망언은 단호하게 짚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와 경상북도, 그리고 울릉군에서 펼치는 다양한 독도 관련 정책과 행사들도 추후 있을 수 있는 국제적 갈등에 미리 대비한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독도는 우리땅!’ 정서를 다짐으로 간직하면서 더욱 실증적인 논거와 실효적인 논리를 확보해야 한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다.

2024-06-12

대구시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 탄력 받나

환경부가 대구시가 추진하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을 사실상 수용함으로써 대구시 취수장 이전사업이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환경부는 지난 10일 경북 상주에서 대구시와 안동, 예천, 의성, 상주, 문경 등 낙동강 수계 9개 지자체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안동댐 직·하류 물을 끌어다 대구시민의 식수로 공급하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환경부는 이날 대구시가 낙동강 상류 안동댐 물을 끌어다 쓰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으로 취수할 수 있는 하루 평균 적절 수량을 46만t으로 제시했다. 이는 대구시가 제시한 하루 63만t보다 17만t이 적은 양이다.환경부는 부족한 취수량은 대구시의 자구 노력과 강변여과수 개발로 채워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해 대구시가 추진하는 안동댐 물을 상수원으로 하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환경부의 대안 제시에 대해 대구시도 “대구시민에게 실질적 필요한 물은 하루 56만t인데 부족한 10만t은 자체 상수원을 가동하는 방안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혀 대구 취수원 다변화 사업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대구시 취수원 다변화사업은 낙동강 페놀사건 후 수십년 논란만 벌였지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낙동강 상류인 구미 해평을 취수원으로 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안동댐을 취수원으로 대구시가 다시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와 안동시가 상생발전 명분으로 안동댐 물을 대구시민 취수원으로 사용하는 데 합의는 했으나 낙동강 수계 지자체들의 반발 등도 적지 않은 문제다.대구시가 안동댐 직하류에서 문산·매곡 정수장까지 110km를 연결하는데 드는 비용을 1조8000억원 추정했으나 이날 환경부는 2조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아 재원 조달도 넘어야 할 산이다. 그 외도 안동시와의 협력사업 등 취수원 확보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대구 취수원과 관련, 공식적 입장을 구체화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사업에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다. 대구시와 경북도, 환경부가 힘을 모아 이번만은 상생의 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2024-06-12

윌리엄 예이츠의 무서운 예언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반골과 다혈질로 유럽에서 유명한 아일랜드 사람들. 그런 성정과는 무관하게 그 나라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예술가가 많다.‘더블린 사람들’로 데뷔한 제임스 조이스, ‘부조리극의 황제’로 불리는 사무엘 베케트, ‘빅토리아 시대 최고 예술가’라는 왕관을 쓴 오스카 와일드, 비단 문학 분야만이 아니다. 대중가수인 U2의 보노와 시네이드 오코너는 수천만 장의 앨범을 판매한 스타 중 스타.언급된 유명인들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아일랜드 시인이 또 한 명 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 159년 전 오늘은 예이츠가 태어난 날이다.19세기 영국·아일랜드 문학사(文學史)의 기린아로 기록된 그는 유년기부터 신화와 기괴한 전설 등 초현실적 주제에 집착했다. 이런 성향은 예이츠의 문학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탐미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변모한 그의 시는 1923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았고.“뛰어난 감각과 통찰력을 지닌 시인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까지 가졌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세간을 떠돌았다. 1920년. 예이츠는 마치 예언 같은 시를 쓴다.‘모든 것이 파괴되고 중심은 무너졌다/혼돈만이 지상에 만연하다/세상엔 핏빛 물결이 번지고…’예이츠는 이미 104년 전에 오늘의 지구를 바라본 듯하다.끝날 기미가 없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이상 기후로 인한 폭염과 폭우 피해, 오직 돈만을 좇으며 청맹과니처럼 돌진하는 무뢰한들….‘모든 것이 파괴되고 중심이 무너진 2024년 지구’를 경계했던 예이츠의 예언이 틀렸기를 바랄 뿐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2

행정통합 추진단 가동… ‘새로운 길 찾는 TK ’

TK행정통합에 속도를 내고 있는 대구시가 체계적인 업무추진을 위해 ‘대구경북행정통합추진단’을 신설했다. 추진단은 1국 2과 편제로 시작하며, 통합자치단체가 출범할 2026년 7월까지 가동된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2년 전(2022년) 통합 논의 때도 ‘대구경북행정통합 합동추진단’을 꾸린 것을 감안하면, 경북도도 곧 추진단을 신설할 것으로 보인다. 추진단은 기업투자유치와 지역개발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이양사무의 발굴, 국회·정부·시의회 등과의 협의, 대구·경북 산하기관 통폐합 및 이전 정책, 대구경북 통합지자체의 균형발전 종합계획 수립 업무를 담당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추진단을 꾸리면서 통합과정에 소외감을 가지는 기초자치단체가 없도록 균형발전정책을 최우선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홍 시장은 최근 열린 산하기관장 회의에서도 “경북 북부지역이 소외되지 않도록 산하·기관단체들을 안동으로 이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홍 시장이 구상하는 통합 방안은 ‘대구경북특별시’라는 개념의 집행기관에 경북도를 통합하고 안동에 북부청사, 포항에 남부청사를 둬 각각 부시장이 관할 구역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경북도청이 위치한 안동·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 주민들이 상실감을 느낄 수 있는 구상이다. 지난 10일 열린 경북도의회 본회의에서도 ‘행정통합 논의가 경북도 민의를 대변하는 도의회의 의견을 배제한 채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었다.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지역 청년들이 지금처럼 계속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 곧 손쓸 수 없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이웃사촌인 자치단체끼리 서로 경쟁하면서 각자도생할 경우 인구소멸을 막기 위한 해법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합쳐지면 인구 500만의 비수도권 최대도시가 된다. 면적도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넓어진다. 대구·경북이 행정통합에 성공해서 미국 연방정부 같은 자치권을 가질 경우, 중앙정부 도움 없이도 생존해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2024-06-12

다시, 뜨개질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예전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 잠시의 여유 시간이 나면 뜨개질을 하곤 했다. 어느 여름방학 땐 굵은 실로 소파덮개를 짜기도 했다. 그 즈음 지역신문에 정기칼럼을 연재 중이어서 ‘뜨개질’을 제목으로 한 글을 게재하였고, 몇 년 전 펴낸 수필집 ‘고비에 말을 걸다’에 싣기도 했다.또 어느 겨울엔 긴 목도리를 짜서 식구들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적도 있다. 솜씨는 없으니 패턴도 없는 민무늬, 그저 짜기 쉬운 걸로 길게만 짜면 되는 것이었다. 남편, 큰아들, 작은아들 차례로 목도리를 짜서 목에 휘감아주었다. 아들들은 고맙게도 결혼 후인 지금도 그 목도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엄마가 짜 준 것이라고 며느리에게 말했던지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 내심 흐뭇했다.나도 노랗고 포근한 느낌의 실로 목도리를 만들어 감고 다녔다. 학교의 친한 교수가 탐을 내어 선뜻 드리고, 다시 하나 더 짠 기억도 있다. 손주들이 넷이나 되고 막내 린이 걸음마를 떨 때쯤엔 민소매 원피스나 셔츠를 짰다. 첫 손녀 윤에게는 분홍원피스, 은에게는 연두색, 린에게는 노란 원피스를 짜 주었다. 손자인 건에게는 하늘색 민소매 셔츠를 입혔다. 그 역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며느리들에게 미리 사이즈를 물어 적당히 맞추면 될 정도로 쉬운 뜨개질이었다. 다 짠 옷을 보내자마자 곧바로 입혀 사진 찍어 보내주니 그걸로 만족했다. 뜨개실이 부드럽지 않고 다소 거친 감이 있어선지 아이들이 입기를 꺼려했다는 후일담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옷들은 어디로 갔는지도 궁금치도 않다. 그저 내 손으로 손주들의 옷을 짜면서 애들에게 입혀 보는 설렘을 즐기는 것으로 족했다.그리고 한동안 뜨개질을 잊었다. 바빴던가 보았다. 2년 동안의 유치원 다니던 손주들이 학교에 가자 쉬는 틈이 많아졌다. 문득 뜨개질이 떠올랐다. 집중해서 할 일이 없을 땐, 손이 심심하다. 무료하게 TV라도 보는 시간이 되면 특히 더 생각이 났다.마침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계획도 있어 결국 뜨개방을 찾았다. 여행은 설레고 좋지만 비행기를 타는 게 항상 두렵고 지겹고 고역이다. 책도 읽고, 작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퍼즐을 가지고 간 적도 있지만 시간은 더디 흐르고 몸은 고되고 힘들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뜨개질이었다. 14시간이나 걸리는 비행시간을 마냥 견뎌야 할 것인데, 뜨개질이 시간 죽이기에는 최고의 소일거리가 될 것이다. 실을 사고, 적당한 소품으로 손가방을 골랐다.미리 연습 삼아 하나를 짰더니 한 3일만에 가방 하나를 완성했다. 코바늘로 짜는 거라 사이즈와 패턴도 넣고 내 맘 대로 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풀어도 될 것이니 심심풀이로는 제격이다. 선물로도 괜찮을 것 같아 짜투리 실로 휴대폰 케이스도 두어 개 짜봤다.문득 중학교 때 생각이 난다. 아마 가정 시간에 코바늘 뜨개질을 배웠을 것이다. 스승의 날, 선생님께 드리려 만년필 케이스를 짰다. 담임선생님께는 분홍과 연두의 색으로 둥글게 말려 올라가는 줄무늬로, 작년도 담임선생님께는 흰색과 파란색으로 무늬를 짜 넣은 자그마한 만년필 케이스를 짜 드렸다. 예뻤던 여선생님들이셨는데, 어디서 무얼하고 계실까.

2024-06-12

심한 두통의 초음파 약침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두통이 없는 사람은 두통의 괴로움을 알 수 없다. 두통은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이고 대부분 만성이다. 두통이 생기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게 되고 머리가 아프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두통이 심한 경우엔 속이 미식 거리는 느낌의 멀미나 소화 장애 증상을 같이 동반하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존재 하는데 체해서 온 환자의 상당수가 두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체해서 두통이 겸해서 온 경우는 위장을 튼튼히 하고 체끼를 해결하면 두통이 해결되나 두통을 주소로 호소하는 경우엔 두통 자체를 치료해줘야지 낫는다.두통의 원인은 다양하나 뇌혈관 쪽 질환을 배제 하고는 치료의 측면에선 그리 복잡하진 않다. 대부분 상부경추 1번, 2번 부분이 뭉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을 풀어 주면 두통이 서서히 좋아진다. 이 부분을 풀어 주는 방법은 다양한데 한의원에선 그동안은 침과 뜸 부항 등으로 치료를 했었다. 그러나 상부 경추는 머리카락이 있어 직접적으로 부항을 붙이기가 힘들고 또 깊이 놓으면 혈관 손상이 올 수 있어 그동안은 적극적으로 치료를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 주변 근육을 풀어 주고 상부경추를 직접 풀어주는 추나를 치료법으로 많이 썼다. 이제는 하나의 치료법이 더 생겼는데 초음파 약침으로 상부경추의 신경을 직접 풀어주면 더욱 빠른 치료 효과와 완치를 기대할 수도 있다. 10년, 20년 된 오래된 두통도 좋아진다.초음파 약침은 신경에 바로 약침을 주사해 신경이 눌리는 것을 풀어주고 영양을 공급해 보다 즉시적이고 빠른 효과가 나고 꾸준히 치료를 하면 완치에 가깝게 좋아진다. 경추 1번과 2번 쪽의 대후두신경과 3차후두신경이 두통에 관련된 신경들인데 이 부분을 그동안은 정확하게 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초음파로 직접 살펴서 대후두신경을 직접 볼 수도 있고 어디를 지나가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생각보다 깊은 위치가 아니긴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자극이 어려운 부위이고 또 단순히 침만으로 자극을 주는 것 보단 약침으로 직접 떡진 것을 분리하고 영양을 주면 훨씬 나은 효과를 볼 수 있다.대후두신경을 초음파 약침으로 치료할 시 근처에 있는 3차후두신경도 같이 풀 수 있어 한번에 두 부위를 치료할 수 있다. 두통의 대부분은 이곳을 치료하면 좋아지게 되고 5~10회 정도 치료로 오래되거나 심한 두통도 많은 개선을 이룰 수 있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아주 심한 두통도 이 부위와 함께 좀 더 깊은 부위에 약침을 주사하면 개선 시킬 수 있다. 역시 초음파로 주변 혈관과 신경 등을 눈으로 확인 하면서 치료를 해야지 안전하고 확실하게 치료를 할 수 있다.이와 더불어 경추와 어깨를 부항으로 어혈을 뽑아주고 침으로 주변 근육들을 풀어주거나 상부 경추를 풀어주고 교정하는 추나를 같이 하면 더욱더 확실한 치료가 가능하다. 특히 추나는 같이 겸해주면 그 효과가 배가 된다. 이제는 침 뜸만 놓는 한의원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한의학의 치료법도 진화를 하고 있고 이에 환자들도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가 있고 고통에서 빨리 해방 될 수 있다.

2024-06-12

하지(夏至)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열 번째가 하지(夏至)다. 태양의 황경이 9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6월 21일(음력 5월 16일)이다. 음력으로는 5월의 절기다. 하지는 망종과 소서(小暑) 사이에 있다.하지(夏至)는 여름 하(夏)와 이를 지(至)를 써 ‘여름이 다 왔다’라는 뜻이다. 지구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때다. 북극지방에서는 하루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뜨지 않는다. 태양이 황도상 가장 북쪽인 하지점에 이르게 되며, 지구 표면이 받는 열량이 가장 많아진다. 더위가 지속되기에 하지 이후에 본격적인 무더위와 장마가 온다.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무렵이면 모두 끝난다. 하지가 지나도록 모심기를 하지 않으면 그해 농사에 큰 지장이 생긴다.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는 다르다’고 할 정도로 못 미기를 서두를 시점이다.이때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므로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온다는 뜻으로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라는 속담도 있다.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농촌에서는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는데, 조선시대에는 3~4년에 한 번씩 한재(旱災)를 당했기에 조정과 민간을 막론하고 기우제가 성행했다.장마가 오면 뿌리채소들이 상할 수 있기에 미리 수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에 수확하는 작물로 대표적인 것은 감자다. 3월 중순에 감자를 심으면 하지 무렵 알이 굵고 단단해진다. 이때 수확한 감자를 햇감자 또는 하지감자라고 했다. 감자는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여름은 오행 가운데 화(火)에 속하고, 확산하는 기운이 강한 오행이다. 화(火)는 오장 중 심장을 관장하고, 토(土)를 생(生)하므로 맛으로는 쓴맛과 단맛을 적당히 취하는 것이 좋다. 쓴맛이 더해진 채소와 단맛이 풍부한 과일을 섭취하는 것이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다. 이 무렵에는 매실 수확이 한창이다. 이 시기에는 사슴의 뿔이 빠지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무궁화가 꽃을 피운다.하지(夏至)부터는 낮이 서서히 짧아지고, 음기가 점차 생겨나면서 음과 양이 서로 그 기세를 다투게 된다. 그러므로 ‘음과 양이 다툰다’고 말한다. 또한 하지에는 생성을 주관하는 양(陽)이 극성의 상태에 이르지만, 그와 동시에 죽음을 주관하는 음(陰)이 점차 자라나게 된다. 때문에 생과 사의 경계가 갈라진다고 말한다.하지는 오(午)에 해당하는 달이며, 오(午)는 주역으로 천풍구(天風姤)괘에 해당된다. 천풍구(天風姤)는 위로는 양효가 다섯 개 있고, 아래로는 음효가 하나 있다. 구(姤)괘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음효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는 형국이다. 마치 새로 등장한 소인에 대한 경계와 스스로의 반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또한 음효가 제일 아래에 있어 바람기 있는 여자로 비유한다. 힘없는 초효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머지 다섯 효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는 역시 바람기 있는 여자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전체적 흐름으로 볼 때 음효가 자라나면 상대적으로 양효의 세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여자는 일종의 비유로, 음기를 의인화한 것이다. 음기가 앞으로 왕성히 자라날 것인 만큼, 적어도 음기를 북돋우는 어리석은 일은 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상전(象傳)에는 구(姤)괘의 괘사에 대해 ‘하늘 아래 바람이 부는 것이 구(姤)괘니, 제후는 명을 내려 사방에 알린다’라고 했는데, 다분히 정치적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바람은 세상 모든 것과 빠짐없이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나아간다. 이런 바람의 모습에서 윗사람의 뜻이 아랫사람에게 파급되는 모습을 연상하는 것이 상전의 내용이다. 허나 바람이 엉뚱한 방향으로 불게 되면 나라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경고도 담겨져 있다.오월(午月)은 음양의 문(門)으로서 일음시생(一陰始生)의 음양이 교체하는 시점이다. 또한 오(午)는 ‘교착하다’, ‘거스르다’, ‘거역하다’는 뜻도 있다. 오(午)는 동물로는 말(馬)이다. 말은 이러한 변동과 변화에 약하기 때문에 잘 놀라는 특성이 있다. 말은 주인을 잘 몰라보기 때문에 아무나 올라타면 달리는 기질이 있다. 말(馬)은 겁이 많고, 낮에 주로 활동하는 동물로 누워서 자는 법이 없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사주에 오(午)가 월(月)이나 일(日)에 있는 사람은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성과를 낼 때는 파도가 밀려들 듯이 실적을 내지만, 하강곡선에 이르면 한없이 초라해지는 특성도 있다. 그러나 강한 기운이기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 굳세고 꿋꿋한 기상을 가지고 있다.오화(午火)의 기본 성격은 도화(桃花)를 가지고 있고, 활동영역이 넓은 반면 성격이 급하다. 오화가 잘 발달하면 적극적이고 예의가 바르고 인간관계가 좋다. 화 기운이 많으면 자신감이 넘치고 적극적이나 성격이 급해서 싫증을 빨리 내는 단점이 있기에 차분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하지에는 낮이 길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는 것이 좋다. 그러한 습관은 건강과 부와 지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인간적 미덕이나 탁월함은 훈련과 습관을 통해 얻어진다. 우리는 미덕이나 탁월함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하던 일을 한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2024-06-12

새벽 외에 문장들

배문경 수필가 오징어의 한계선이 자꾸 서해안으로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는 그만큼 점점 몸값이 비싸지기도 했다. 그래서 새벽시장이다.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이다.시장으로 들어서니 경매인의 손으로 건너온 문어가 큰 다라이에서 미끄럼을 탄다. 작은놈 큰 놈 할 것 없이 지구인과는 다른 종처럼 보인다. 그런 얼굴로 제사상에 늘 올라앉는 품목이다. 집안 큰일에 삶아서 올리면 다리 한 부분 둥글게 쩍쩍 달라붙는 문어야말로 비싸지만 제대로 몸값을 한다. 이제 시가에 팔린 문어는 커다란 솥으로 직행해서 삶겨 또 갈고리에 걸릴 것이다. 문어가 첫 문장을 쓴다.활어야말로 시장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물속에서 제대로 날고뛰던 놈들이 죽은 듯이 엎드리지 않는다. 지느러미와 꼬리로 한 번씩 물을 쳐올리며 퍼덕이던 삶의 막장을 쓴다.늘 동사, 의태어였던 그들은 머지않은 시간 시퍼런 바닷물에서 유영하던 것들이 좁은 수족관에 갇혀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뜰채에 의해 무게가 결정되면 아낌없이 아줌마들의 날렵한 칼날 앞에 앞뒷면이 해체된다. 바다의 향기는 순식간에 한 점의 젓가락에 잡혀 올라가고 시퍼런 꿈들은 이미 사라진 후다. 흥정으로 철썩철썩 바다 향기가 진하게 두 번째 줄을 칠한다.아무리 싸도 갈치는 갈치다. 은비늘 반짝이며 미끈한 몸매를 과시하는 생선 앞에서 아낙들은 쉬 지갑을 열지 못한다. 아이 손바닥만 하게 동강 내서 굽거나 찌지면 그 맛이 비린내로 등천해도 어떤 맛인지 안다. 바다낚시로 잡힌 갈치의 은비늘은 한 톨의 구김 없이 빛을 발한다. 한두 바퀴 돌다 제일 값이 맞는 곳이라야 흥정에 값 치르고 대가리를 떼고 유영하던 지느러미를 과감히 날리고 긴 꼬리까지 길이에 맞게 자른다. 노릇노릇 식탁에서 밥값 톡톡히 할 갈치가 장바구니에 담기며 중심 문장을 쓴다.전복 한 마리를 넣고 라면을 끓여 대박이 난 식당이 있다. 전복이 갖는 위력이다. 병약해진 가족을 위해 접착력 강한 삶의 이면으로 강하게 붙어있는 전복을 크기에 맞게 그날 시세로 팔려나간다. 죽을 끓여도 좋고 해물탕에 넣어도 좋다. 전복불고기는 말해 무엇하랴. 담백하고 졸깃졸깃한 맛 또한 일품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그 이름값을 한다. 큰 놈을 사겠다고 줄 서는 사람들은 원기 회복하고 열심히 살아갈 사람들이다. 전복에게는 바다와 해초 향이 그득 담겨 바다 속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바다의 은유다.어시장 한 켠에는 얇게 저며진 독특한 향의 고래고기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포경선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쳐둔 거물에 걸려 올라오는 밍크고래를 끌어올려 수육을 팔아 나갔다. 소금장에 찍어 먹으며 소주 한잔을 걸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다.옛 고향 마을에도 오일장이 서면 좌판에 펼쳐둔 고래고기는 특미였다. 사내들은 기름이 가득한 고기를 씹으며 소주에 취해 파장쯤에는 인사불성이 되곤 했다. 그러나 우리 집 밥상에는 고래는 오늘도 건너뛴다. 식구 많은 우리 집 밥상에 값나가는 고래는 사족이다.한 무더기씩 쌓인 고동이며 새우며 뼈 없는 종족들이 모여 있다. 싱싱한 고동을 삶아 이쑤시개로 마지막 내장까지 꺼내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나다. 먼 바다를 향해 둥글게 말아 감은 고동의 소리가 한껏 고조된다. 옆에 잔 새우는 볶거나 국물 내기에 더없이 좋고 큰 새우는 튀김에서 단연 최고다. 껍질을 까고 이곳저곳 다양하게 새우를 넣으면 품격이 높아진다. 탄력 있는 새우가 오늘 좌판에서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는 이를 향해 아련한 눈길을 보낸다. 접속사 같은 녀석들을 한 방구리씩 주워 담아 시장을 나선다.새벽을 걷어낸 햇살의 팔다리가 길게 발치에 뻗친다. 장바구니에 담긴 바다가 식기 전에 집으로 달려간다.후다닥 저미고 굽고 졸이고 튀겨낸 수필 한 상 차려 가족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세상으로 내보낸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가라 등을 떠민다. 현관에 가족들이 벗어둔 관용어를 쓸어 담아 수납장에 포갠다. 또 찾아올 새벽을 위해.

2024-06-12

이명박 전 대통령 방문을 포항 발전의 계기로

공원식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 지난달 1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고향인 포항을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고향마을 방문에 이어 지역 경제인들과의 오찬 간담회도 가졌다. 오찬에 앞서 지역경제인들로부터 포항영일신항만 개항 등에 따른 감사패를 받았다.이 전 대통령은 지역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포항은 그동안 많이 발전했지만, 의과대학과 종합병원이 들어서야 더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최근 포항시와 정치권에서도 연구중심의과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 서명운동 등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동안 포스텍, 산기연, 테크노파크, 지능로봇연구소, 제3세대가속기 등 바이오산업의 기반을 다져 왔다.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규모가 축소된 영일만항 건설 사업은 여객선부두가 있는 15선석으로 확대되고, 영일만항 인입도로 및 철도, 국제 컨테이너 부두 조성 등 영일만항 산업단지의 인프라가 크게 개선됐다.더욱이 대부분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취소되는 시점에서 300만평 규모의 포항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와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경제자유구역), 영일만3·4산업단지를 조성했다.이뿐만 아니라 KTX포항직결노선 신설, 포항삼척간 고속도로, 포항울산간 고속도로, 포항울산간 광역전철복선화, 울산삼척간 동해중부선철도 건설 등 포항의 장래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대거 성사됐다.특히 세계 3번째로 구축된 꿈의 기술이라 불리는 방사광가속기는 포스텍이 연구중심대학으로 자리를 매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한미사이언스, 세포막연구소, 지능로봇 연구 인프라 등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을 꿈꾸는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그동안 포항은 철강산업으로 먹고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강산업이 지난 10여 년 간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블루밸리 국가산업 단지와 영일만 3, 4단지를 토대로 이차전지 특화단지가 지정됐고, 이를 통해 제2의 영일만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포항시의 역점사업인 바이오산업은 더욱 부가가치가 높아 모든 자치단체의 선망의 대상이다. 포스텍에 연구중심 의과대학을 유치토록 하고 있는 것은 연구중심 의과대학이 바이오산업의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소위 국가나 자치단체를 만들고 이를 제도화해 좀 더 나은 삶을 기원한다. 지방자치는 그 지역이 갖고 있는 특성과 차별화된 전략이 핵심이라 할 것이다.굳이 국가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을 자치화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천의 장이기도 하지만 그 단체의 특징을 차별화해서 좀 더 나은 주민들의 공공복리를 추구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국가나 자치단체에는 독자적인 권능이 부여되어 있다.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발전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리 포항이 낳은 세계적 지도자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 방문을 계기로 포항이 낳은 훌륭한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포항 발전의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24-06-11

철강업의 빛과 그림자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옛부터 철을 생산하는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었고 ‘철은 국가’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철은 인간 생활의 기초인 동시에 국가 방위, 침략의 기반이기도 하고 우주산업과 로켓 개발 등 미래 경제의 뿌리로서 개량된 강재로 산업구조 생태계의 주춧돌 역할을 한다. 경제 강국 독일, 일본은 19세기부터 제철업이 시작되었고 앞선 철의 기술로 1, 2차 세계 전쟁을 주도하는 국가가 되기도 했다. 모든 움직이는 생명체는 생물이다. 생물은 수명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다. 철강업에도 대내외 변화에 따라 성장과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데 경영자의 인식 오류가 판단 오류를 낳아 베들레헴 제철소처럼 기업을 멈추게도 한다.일본 철강산업을 보면, 경제성장과 함께 1960~7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쳐 연간 1억2000만t 생산하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일본 경제는 여전히 강세였지만 한국, 중국 등 신흥 철강 생산국들의 부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둔화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 거품 경제 붕괴 후 장기적인 경기침체기에 빠지면서 철강업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2년 10월 일본 철강사 3, 4위였던 가와사키와 NKK를 합병하여 JFE가 탄생하고, 2012년에는 1, 2위였던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 금속의 합병으로 지금의 일본제철이 탄생하기에 이르고 최근에는 US스틸을 합병한다. 생존하기 위해 규모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술혁신과 고급강 생산으로 미래를 대비해가고 있다.최근 일본 철강 동향을 보면, 동경 건물들이 50년 넘어 리모델링 하는 시기가 왔고 강재 수요량이 800조엔 규모로 예측되고, 전체 제철소 투자대비 수익성을 고려했을 때 전략적 규모로 8500만t 생산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일본 철강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는 어떻게 상황분석하고 지속가능 경영과 생존을 위해 대비할 것인지 혁신관점에서 생각해 본다.기업의 혁신은 생산, 조직 및 인사, 마케팅, RD, IT 기술 등 다양하지만 근간이 되는 것은 제조 혁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철업에서는 거대 장치산업으로서 좋은 제품,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생산, 품질의 70% 영향을 미치는 설비를 안정화시키고 고급강 생산조건을 확보해가는 것이다.필자가 10여 년째 컨설팅 하고 있는 포스코는 안전관리에서 제조 조건의 근간인 설비 경쟁력 갖추기에 초점을 두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설비 수명사이클은 전문가 진단을 통해 예측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선을 통해 설비 수명을 늘리고 고급강 생산 조건을 확보해 가는 일과 설비를 움직이는 운전원이 설비 속까지 알고 조업하는 것이다.‘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능력을 발휘한다’라고 했듯이 내가 다루는 설비의 구조와 작동원리, 정상 조건, 고장 이력 등을 학습하여 예지 조업이 가능하게 해나가면 장애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갈 수 있다. 제조 경쟁력과 기업 수명은 경영자의 인식, 최적의 설비 조건과 작업자의 설비를 아는 수준에서 가름 된다.

2024-06-11

별빛 같은 선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아침부터 숲에서 들려오던 새소리가 저녁 때 무논에는 개구리 울음소리로 왁자하다. 논배미 여기저기서 개굴개굴하다가 멀거나 가까이서 쉴 새 없이 왕왕거리니, 자연의 합창이 따로 없을 정도다. 모처럼 교외로 가서 듣게 되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청아하고 정겨울 것 같은데, 논 가까이에 사는 시골사람들에게는 매일같이 귓전을 맴돌며 요란하게 자극하니 혼절할 듯한(?) 소음으로 여길 정도라 한다.어설픈 듯 줄기차게 외쳐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서막으로 깔리고 서녘 하늘에 노을이 필 무렵, 청하지역의 어느 마당 넓은 집에서는 삼삼오오 마실 가듯이 이웃집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박모(薄暮)의 하늘에 한, 두 점 별빛이 뜨고 서늘한 바람 결에 악기의 연주음이 울리며 감미로운 노래의 가락이 흐르기 시작했다. 환호 속에 손뼉 치고 기타 치며 노래하니, 흥겨움이 절로 일고 어깨가 들썩이며 신명나는 음악의 향연이 막을 올린 것이다.‘바람 따라 마음 따라 선율 따라 별빛 따라/음악이 피어나고 시가 흐르는 밤/흥겹게 어울리니 도탑고 넉넉하여/지나가던 바람도 설레어 멈춰 서고/별빛마저 서둘러 마당에 내려앉네//더불어 함께 하니 정겹고 아름다워라//마실 가듯 이웃과 소통하며 오고 가고/만나고 나누고 베푸는 인정 속에/잔잔하고 멋스럽게 하모니가 이뤄져/공감의 종이 울리고/상생의 화음이 청하벌에 울려 퍼지네’ -졸시 ‘마음 따라 선율 따라’중이러한 선율이 흐르는 정경은 ‘맑고 푸른 청하’ 고을의 언덕배기 한 켠에 10여 년째 터를 잡고 보금자리를 일궈가는 어느 지인의 잔디마당에서 지난 주 열린 ‘이레정(庭) 네번째 별빛음악제’의 한 부분이다. 즉, 청하읍내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별빛이 내려앉는 초여름날 초저녁에 ‘청하로 220번길’ 주민들과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간단한 음식을 대접하고, 음악과 시낭송 등으로 문화적인 소통을 하며 어울림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작은 음악회인 셈이다.이러한 음악회의 출연진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이웃주민·동료 등으로, 자율적인 참여와 재능기부로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회 콘서트를 스스로 즐기고 누리면서 참석자들에게 즐거움과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컨셉으로 지난 2019년부터 거의 매년 열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음악회 타이틀을 마당에서 즉석 서예 퍼포먼스로 펼치면서 붓으로 멋스럽게 썼는가 하면, 해녀를 주제로 해녀복장과 망사리 등의 물질 소품을 활용한 시극공연과 애절한 듯 구성지게 노래한 시창(詩唱)까지 더하면서 한결 다채롭고 흥미롭게 열려 갈채와 눈길을 끌었다.한적한 청하지역의 주민들과 어우러져 음악과 시를 나누는 문화적인 프로그램으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이웃과 하나되는 만남의 정을 다독일 수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도시화와 급속한 정보화로 점차 개인화, 고립화돼가는 현대인의 가슴에 별빛이 흐르고 문화예술의 향기를 피어나게 한다면 한결 정서적인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과 시의 선율로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을 가슴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별빛음악제가 청하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해 끊임없이 빛나고 이어지기를 내심 기대해본다.

2024-06-11

민주당의 ‘입법독재’에 맞설 세력은 民心뿐

민주당이 그저께(10일)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운영위·법사위를 비롯한 18개 상임위원회 중 11개 위원회 위원장을 자기 당 의원으로 선출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당의원 108명을 18개 상임위 위원으로 강제 배정하고 본회의를 진행하자 전원 상임위원 사임계를 내고 본회의에 불참했다. 야당이 국회의장에 이어 운영위·법사위 위원장을 독식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국회관례상 제1당은 국회의장, 2당은 법사위원장을 맡아왔고 운영위원장은 의석수에 관계없이 여당 몫이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전 ‘법사위원장을 여당에 주면 운영위·과방위 위원장을 포기하겠다’는 협상안을 민주당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추 원내대표로선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민주당이 그동안 필수 상임위로 강조했던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과방위원장을 비롯해 지역 예산이나 사업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국토위·문화체육위·교육위 위원장 등 ‘알짜 상임위’ 위원장은 모두 민주당이 차지했다.민주당은 나머지 상임위원장 7자리도 이번 주 중 선출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모든 상임위 활동을 전면 거부할 방침이어서,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 모두를 싹쓸이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원 구성 후 곧바로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이화영 특검법’ 등을 통과시키고,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와 국정조사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전방위 공세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국회가 완전히 ‘민주당 세상’이 됐다. 여당에 비판적인 유승민 전 의원조차 “총선에 압승한 민주당이 ‘이재명 유신독재’로 타락하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여당으로선 민주당이 어떤 무리한 입법권을 행사하든 대응할 수단이 거의 없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의 경우 22대 국회 본회의가 2차례 열렸지만, 아직 본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회의장 밖에서 규탄대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입법독재에 맞설 세력은 이제 ‘민심’뿐이다.

2024-06-11

염치없는 세상

우정구 논설위원 염치(廉恥)란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사람으로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정중히 부탁을 할 때 염치불고(廉恥不顧)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부탁을 드린다는 뜻이다.염치가 없는 상태를 몰염치(沒廉恥) 또는 파렴치(破廉恥)라 부른다.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염치 있는 척하다’의 축약된 말은 얌체다.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管仲)은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들었다. 그는 예의염치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고, 셋이 없으면 뒤집어 진다고 했다. 또 모두가 없으면 나라는 파멸하게 된다고 말했다.춘추전국시대 순자는 염치없는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하며 “염치 모르는 사람은 음식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대부터 염치는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우리는 흔히 부끄러워서 대할 낯이 없을 때 ‘얼굴과 눈이 없다’는 뜻의 “면목 없다”는 말을 쓴다. 염치와 같이 사람이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됐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이라는 뜻이다.우리 정치에서 염치가 사라지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인데 정작 국민에 대한 염치는 없고 정치인 스스로를 위한 목소리만 요란하다.우리 사회가 염치없는 세상으로 바뀌어가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정치의 영향이 크다. 의사들의 집단 휴진 선언 또한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염치없는 행태의 다름 아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11

3권분립 뒤흔드는 ‘여의도 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포항 앞바다 가스·유전 개발을 위한 시추가 민주당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국회 동의 없는 시추예산 집행이 절대 불가하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이를 놓고 한 여당 의원은 “국민 1인당 25만 원씩 나눠주는 돈으로 시추 130번을 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20% 성공률은 액트지오의 주장일 뿐”이라며, 정부자료를 검토한 뒤 투입 예산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미국 액트지오사의 아브레우 대표는 “유전 가능성은 국가의 큰 경사인데, 한국처럼 논쟁이 뜨거운 것은 처음 본다”고 한탄했다.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 있는 확률이 20%가 된다는 것은 축배를 들어야 할 일이다. 특히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영일만 근해에서 ‘유전 대박’이 터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민주당만은 액티지오사에 대한 의혹을 확산시키며 윤석열 정부의 유전 개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정쟁’ 앞에선 국익도 걸림돌이 되는 모양이다.국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은 최근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분립’을 위협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전직 검사장 출신들이 주도하는 각종 특검법안을 만들어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뒤흔들고 있다. 이제는 ‘판사탄핵’을 언급하는 단계까지 왔다.민주당은 행정부 장악을 위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행정부 수반인 윤 대통령과 영부인의 사법처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법이다. 채상병 특검법은 대통령 격노설·이종섭 전 장관의 출국 과정·대통령실 직무 유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건희 특검법에서는 민주당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민주당은 이와함께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송금에 관여한 혐의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자, “검찰의 조작 수사”라며 ‘대북송금 관련 검찰 조작 특검법’ 처리를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관련 검사들의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민주당은 행정·입법·사법부에 이어 ‘제4부’로 불리는 언론장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 주요 사례다. 만약 탄핵소추가 이루어지면 김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직무가 정지되며, 방통위는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된다.민주당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회 이사진 추천권을 친야 성향 단체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방송 3법’도 추진하고 있다.이번 국회에서는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르게 된다. 2026년에 지방선거, 2027년에 대선이 있다. 민주당이 가속페달을 밟는 특검정국에 선거까지 겹치게 되면 정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민주당은 ‘총선승리의 민의’를 정권타도나 대통령 탄핵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국가적 과제인 민생을 외면하고 3권분립까지 뒤흔드는 입법권력에 집착하면 반드시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된다.

2024-06-11

대구 보행자 우선도로 효과성, 정책 반영해야

도로교통공단 발표에 의하면 대구의 교통안전지수는 전국 평균에 미달한다. 2023년 기준 전국 평균은 78.68이나 대구는 76.67이다. 전국 특·광역시 중 최하위권이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건수는 광주에 이어 가장 높다.그러나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5년 이후 꾸준히 줄고 있다. 2015년 158명이던 교통사고 사망자가 2023년에는 66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8년 이후 6년간 한 명도 없다. 이는 대구시가 2016년부터 추진한 교통사고 30% 줄이기 특별대책의 결과로 풀이된다. 전체적으로 대구는 교통사고 사망자는 줄고, 교통사고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는 여전히 많다최근 대구시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보행자의 통행 우선권이 보장되는 보행자 우선도로에서의 사고가 31%나 준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로 이곳에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보행자 통행이 차량통행보다 우선되는 곳이다. 보행자가 도로 전부분을 보행할 수 있고, 운전자는 보행자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보행자의 통행에 방해가 될 경우 서행하거나 일시 정지해야 한다.대구에는 모두 10군데의 보행자 우선도로가 있다. 대구시는 보행자 우선도로에 대해서는 사업비를 투입해 도로포장과 과속방지 시설, 표지판 등을 새롭게 설치해 운전자의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교통사고 발생은 관계당국의 노력과 운전자의 안전의식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교통시설의 개보수와 교통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보행자 우선도로에서의 사고율 격감을 교훈 삼아 현재 추진하는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을 지속하고 안전한 도로를 위한 당국의 세밀한 정책도 지속 마련돼야 한다.교통사고가 많으면 사회적 비용이 늘어 시민들 개개인의 부담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확인했듯이 교통사고는 노력한 만큼 효과가 나온다. 대구가 전국 최고의 교통안전도시로 거듭나게 당국의 대책과 시민들의 교통의식이 높아져야겠다.

2024-06-11

세계라는 말의 의미

‘오키쿠와 세계’ 포스터. 임진왜란에서 패배한 일본은 막강한 권력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혼란의 정국으로 빠져든다.이 시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본거지로 에도 막부를 설립하고 일본의 최고 권력자로 떠오른다. 수많은 정적을 숙청하고, 지방의 영주격인 다이묘와의 적대와 친화 속에서 최고 권력자인 쇼군에 오르게 되면서 마침내 에도 막부는 안정을 취하게 된다. 이후 1603년부터 1868년까지 약 250여 년 동안 평화와 안정의 시기를 거친다. 해외 무역 장려와 함께 농업생산력을 끌어올리고, 상업을 장려하면서 세계적인 경제 수준을 보이며 호황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나라는 부강했지만 평민들의 생활수준은 가혹한 세금으로 인해 열악한 수준이었다. 에도시대 말기에 이르면 그간 축적되었던 내부의 갈등과 구체제에 대한 도전이 파열음을 일으키고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하는 의지의 기운이 밖으로부터, 위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가 충돌을 예고하는 에도 막부 말기의 1858년, ‘서장 : 에도의 똥은 어디로?’라는 소제목으로 영화 ‘오키쿠의 세계’는 시작된다. 영화는 똥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에도를 돌며 똥을 퍼와 채소밭 농부에게 거름으로 파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두 청년 야스케와 츄지,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와의 이야기다. 비천하고 비루한 직업의 두 청년과 오키쿠는 똥으로 엮이게 되고 똥 같은 상황과 똥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절간의 화장실에서 똥을 푸는 모습에서 시작해 영화는 시종일관 공동주택의 변소와 똥을 퍼다 나르는 모습과 그것을 밭에다 뿌리는 일과 그것을 손으로 만지고 뒤집어 쓰는 장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불쾌할 수도 있는 장면에서 활력과 싱그러움이 일어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냄새와 파리가 들끓는 그곳, 한 평의 변소라는 협소한 세계 속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세 청년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또 다른 세계에 가닿는다.“세계라는 말을 아나. 이 하늘 끝이 어딘지 아나. 끝 같은 건 없어. 그게 세계지.” 결전을 앞둔 사무라이 오키쿠의 아버지가 공동변소에서 볼 일을 보며 똥을 푸러 온 츄지한테 하는 말이다. 똥과 엮인 세계는 가난과 차별, 폭력과 죽음이 만연한 19세기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순수하고 소박한 감정들이 일어난다. “요새 나라가 어수선한 건 그걸 이제 알아서야.” 혼란한 세상 속에서, 곧이어 닥칠 격동의 시대, 광활한 세계 속에서 어김없이 똥을 거름으로 삼아 피어나는 채소들처럼 청춘의 마음들이 싹튼다.“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말해줘. 그보다 더 좋은 말은 없어. 그게 제일 좋은 말이야.” 하나의 세계가 닫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시기. 19세기는 내가 알던 세계보다 더 큰 세계가 물리적으로 존재함을 알게 되는 시기며, 나를 둘러싼 세계관이 파열음을 일으키며 새로운 세계관이 밀려드는 시기다. 경계지점에서 변화의 시기에도 흔들림없이 이어지는 것들의 자잘한 요소들이 영화의 행간을 메워 나간다. 말을 할 수 없는 여자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남자의 사랑 고백이 위와 같을 때 그 표현은 처절하다. 그리고 때마침 눈이 내리고 온통 하얗게 쌓일 때까지 고백은 이어진다.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858년부터 1861년까지다.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영화는 ‘세계의 오키쿠’에 이어 ‘오키쿠와 세계’로 끝을 맺는다. 그 속에서 똥에 대한 리얼한 시각과 생생한 청각까지 더해져 그곳에서 한바탕 뒹굴다 나온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부터 그러한 감정은 뒤로 밀려나고 영화를 관람하는 우리들까지 평온하고 담백한 감정에 빠져든다.시종일관 심각한 냄새로부터 시작해 맑고 상큼한 청춘의 향기를 내뿜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세계의 밑바닥 가장 더러운 곳에서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퍼올린다. 다행히 영화는 흑백이지만 그 흑백의 질감 속에서 자잘하게 반짝이는 색감들이 빛을 발한다. 9개의 장이 끝나는 지점에 짧게 컬러의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깊게 여운을 남긴다. /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4-06-11

사 먹는 물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가게에서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올 것이다.”초등 사 학년 때였다. 중년의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얼토당토않은 예언을 했다. 아이들은 너무나 황당해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무렵은 거의 집집마다 맑은 우물이 있어 언제든 필요한 만큼의 물을 그저 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물은 또한 수박이나 김치를 담갔다 꺼내 먹을 수 있는 냉장고 구실도 했다.동네에 한 두 개씩 있는 공동우물은 식수원일 뿐 아니라 사교의 장이기도 했는데 그런 공짜 우물을 두고 누가 굳이 돈을 주고 사 먹는단 말인가. 선생님은 ‘사 먹는 물’ 이야기 외에도 교실마다 텔레비전을 설치해서 그걸 보며 공부를 하게 될 거라는 말씀도 하셨다. 선생님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게 진지해서 우리를 놀리려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으므로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수요일이면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야산으로 도시락을 싸들고 현장 학습을 갔다. 현장학습이래야 전교생이 나무젓가락과 빈 통조림 깡통을 들고 낮은 소나무에 앉은 송충이를 잡는 일이 전부였다. 송충이를 잡다가 목이 마르면 준비해 간 물통의 물을 마시며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물을 사 먹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점심때가 되어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서는 가방에 뭐가 있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현장 학습 가는 날이면 내 가방 깊숙이 선생님께 드릴 담배며 삶은 계란을 챙겨 주곤 했기 때문이다.그럴 때의 선생님 얼굴에선 물을 사 먹게 되리라고 예견하던 진지함 따위는 찾을 수가 없었는데 머릿속에 한 번 각인된 예언은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았다.신혼의 어느 날이었다. 손님을 대접하려고 닭죽을 끓였는데 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혹시나 싶어 한 입 넣었다가 진저리 치며 뱉어버렸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재료에 문제가 있나 보다 싶어 아까운 걸 다 버렸다. 저녁이 되어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서야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은 마침 장 담그는 날이어서 장을 못 쓰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며칠 후 악취의 원인이 낙동강에 버려진 독성 페놀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국은 떠들썩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은 페놀 수돗물 탓에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게 되었다며 서럽게 울었다. 페놀 수돗물로 인한 피해는 예상외로 컸으며 두 번에 걸친 페놀 사태는 전 국민의 이슈가 되어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페놀 사태로 인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결국 삼 년 후 국내 생수 판매 허용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을 사 먹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어릴 적 선생님의 말씀은 예언이 아니라 자료에 의한 것임을 알고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공허한 울림 같았다. 오랜 기간 내 뇌리를 채우고 있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보며 그분의 예언이 적중하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웠다. 운동장에서든, 공원에서든 사람들은 생수를 필요로 했다. 단체가 모이는 곳에는 생수가 필수품처럼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언제 어디서든 물을 사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뿐만 아니라 돈을 주고 사 먹는 생수병을 국내에서 보게 되었으니 잘 사는 나라가 된 듯 뿌듯함마저 든다는 이들도 꽤 있었다.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페트병으로 인해 환경오염 역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생수가 시판된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되었다. 그동안 생산된 생수병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재활용된 병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한 근거가 없다.그린피스의 발표를 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생수 소비량은 연간 96병에 달한다고 한다. 생수병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에서 1년에 소비되는 페트병은 2021년 현재 약 49억 개라는 집계가 나와 있다. 페트병은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재활용을 염두에 두더라도 지구별을 위협하는 엄청난 양임에는 틀림없다.페트병을 종이팩으로 전환한다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될 테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수돗물을 식수로 쓰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월수 수필가 대부분 생수를 주로 배달시켜 먹거나 정수기를 사용한다. 예전처럼 보리차로 끓여 먹거나 하는 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수돗물은 생활용수로나 쓴다는 인식이 강한 때문이다. 왜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안전한지 믿을 수도 없거니와 일일이 끓여 먹기 성가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생수병 속에 든 미세플라스틱은 우리 몸을 망칠 수도 있다는 보고가 최근 들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생수병에 들어있는 엄청난 수의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우리 인체에 들어가 축적된다면 어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페트병의 폐해를 생각한다면 정수기 사용까진 말릴 필요야 없겠지만 생수 사용은 깊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내 어릴 적 담임 선생님은 사 먹는 물이 건강을 망치고 나아가 지구를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짐작이나 하셨을까. 우물물 먹던 시절이 갈수록 간절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2024-06-11

서른여덟 살의 기타 유망주

서른여덟에 기타 선수를 꿈꾸는 필자. 요즘 나의 낙은 기타 레슨을 받는 것이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첫 앨범을 낸 것이 2010년. 벌써 데뷔한지 14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은 새로운 부분들이 많다. 블루스 기타 솔로 연주를 중점적으로 배우다보니 내가 사용하지 않는 음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다소 틀에 박혀 있다고 느꼈던 나의 멜로디가 자유롭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있는 선생님은 우연히 알게 된 후배 뮤지션 남경운. 그는 나보다 13살이나 어리고 음악 경력도 짧지만 기타 연주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해내는 발군의 연주자이며 재능 넘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서른여덟 살의 내가 스물다섯 살의 그에게 기타 연주를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부탁을 했고, 그것은 최근에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 되었다.사실 음악을 더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형준이 형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같이 활동하던 뮤지션 중 한 명이었는데, 음악만큼 사랑하는 일이 바로 복싱이었다. 어느 날 그가 다니던 복싱 체육관의 관장님께서 노환으로 별세하시고, 그가 체육관을 인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랫동안 복싱을 해온 터라 누군가를 가르칠 실력은 충분했으나 복싱선수로서의 타이틀이 없었던 형준이 형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복싱 신인왕전에 원서를 넣었고 결국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그 때 형의 나이가 마흔이 넘은 시점이었다. 지금까지 불혹의 복서로서 2전 2승 1KO라는 성적을 올리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사실 삼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내가 더 이상 무언가를 배워서 늘 수 있는 가능성이 몹시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어느 정도 숙련도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나 문학의 분야에서 만큼은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는 정도를 목표로 해야지, 지금보다 실력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닫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형은 마흔에 신인으로 데뷔를 하였고 꾸준히 실력을 연마해 더 높은 랭킹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니.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또 어느 날은 TV를 보는데 가수 이효리씨가 나왔다. 이효리씨는 요즘 들어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사실 뛰어난 보컬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미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에 차트 1위를 경험한 유일무이한 가수가 된 그다.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룬 그가 데뷔 26년차에 자신의 보컬에 부족함을 느끼고 일주일에 세 번씩 학원에 다니고 있다니. 그 열정과 용기가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에 들은 그의 라이브는 예전보다 훨씬 훌륭해져 있었다.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 생각도 났다. 나의 이름을 지어주시기도 하셨던 작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러시아문학과 인공어인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형이자 가장이었던 우리 할아버지께서 시대적인 이유로 공산권의 언어를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시는 바람에 포기하고 교사 생활을 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신 뒤에 60대의 나이로 노어노문학과 대학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을 하셨고 기어이 학위를 받아내시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지만,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시고부터 돌아가시기까지의 그 시간이 아마 작은할아버지께서 가장 행복하셨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고 이들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고작 마흔도 안 된 내가 스스로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제는 더 나아질 수 없다며 징징대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공연에서는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주에 다른 연주자에게 맡기곤 했던 기타 솔로 연주를 한 두 곡 정도는 내가 시도해보기도 한다.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처럼 지판 위를 날아다니듯 테크닉을 뽐낼 줄도 모르지만, 그럭저럭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하는 솔로 플레이 비슷하게는 소리를 내는 나 자신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한 분야에서 배움을 얻고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나니 또 다른 도전들이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음악 영역에서도 여태껏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분야들에 발을 담가보고 싶어졌고, 문학적으로도 여태 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더 도전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며 살아보려 한다. 그래, 그런 게 없다면 남은 인생이 너무 지루하지.

2024-06-10

경쾌하게 지내기

며칠 전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 요즘 나를 성가시게 하는 일들에 대해 토로하게 됐다. 가만히 듣던 친구가 넌지시 물었다. 그게 너의 평화를 방해할 만큼 큰일이야?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그렇게 말하니 거추장스럽던 고민이 한순간에 사소한 것으로 변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통화를 마치면서 친구가 덧붙였다. 은강아,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가볍고 경쾌하게 지내자.그 순간 내 안에 중요한 무언가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더운 여름날 살얼음이 낀 맥주를 들이켜는 감각과 비슷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시원하면서 따끔한 기분. 친구는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상태를 딱 들어맞는 언어로 짚어준 것이다.사실 ‘경쾌하다’는 말은 내가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러닝머신 위에서 경쾌하게 달려보겠다는 다짐으로 발을 구르고 학생들의 작품을 첨삭하며 조금 더 경쾌하게 진행해 보라는 조언을 내어놓는다. ‘경쾌하다’고 중얼거리면 어쩐지 꽉 막힌 것들이 시원하게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가 아니라 좀 더 상쾌하게 쭉 뻗어가는 느낌이랄까. 힘차게 전진하는 쾌속 열차처럼, 천진한 아이의 쾌활한 웃음처럼.‘경쾌하게 지내기’란 언뜻 들었을 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물속을 헤엄치는 사람과도 비슷하다. 수중에서 제대로 이동하기 위해선 몸의 정렬을 깨지 않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적당하게 힘을 빼는 것도 중요하고 물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멀리서 보면 우아하고 민첩해 보이나 사실 상당한 체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어떤 준비도 없이 물에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요동치는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허우적대다 가라앉을 수도 있다.부정적인 생각은 물먹은 솜과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그때 그 사람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지? 난 항상 최악의 선택만 하는 것 같아. 생각은 생각을 먹고 더욱 불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억지로 구겨서 폐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쾌하게 나아가기 위해선 먼저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야 한다.최근 나는 삶을 가볍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골몰하고 있다. ‘뭐 해 먹고살지?’보다 ‘어떤 자세가 편안하지?’라는 질문에 무게를 두고서. 물론 나는 아직 젊은 나이고 주렁주렁 매달린 고민과 불안이 당연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젊다고 해서 괜한 것을 짊어질 이유는 없다. 필요한 물건 대신 무거운 돌을 가방에 넣는 건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니까.때론 복잡하고 부조리한 세계가 나의 다짐을 방해한다.집 앞 새로 생긴 카페의 레몬 케이크, 너무 맛있어! 일상에서 즐거운 일이 생기면 호된 꾸짖음이 들려오는 것 같다. 네가 지금 케이크에 기뻐할 때니? 오늘도 혐오에 기반을 둔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고 지구 반대편에선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어. 그뿐이면 다행스럽게? 자본의 논리 속에 약자는 희생당하기 마련이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이상 기온으로 생태계가 엉망이라고.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마음을 주저앉히기에 효과적이다. 요즘처럼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고 흐뭇해하기가 무섭게 곧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것이라는 악담이 끼어드는 식이다. 이러한 속삭임은 타인의 언어라기보다 내 안에서 작동되는 장치에 가깝다. 그러니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나의 괴로움이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방기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세상을 헤쳐 나가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인생이라는 바다를 헤엄쳐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우리 앞에 거친 파도는 다가오거나 다가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경쾌하게 지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며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살랑대는 보사노바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진한 맥주 한 잔 곁들어도 좋겠지. 그렇게 태평하게 굴다간 무시무시한 태풍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그런 목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대꾸하고 싶다. 알겠어요. 우선 여기 이 레몬 케이크를 먹어봐요. 정말 맛있다고요.

2024-06-10

마무리 큐시

강길수 수필가 뭔가 다르다. 평소에 안 나던 소리가 차 뒤 트렁크 쪽에서 들린다. 어떤 울림 같은 소리다.“차 소리가 이상한데….?”하고 함께 탄 아내에게 말했다. 그녀는 별다른 말은 안 했다. 짐을 잘못 실었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텃밭까지 갔다. 두어 시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과 300m 정도 달렸는데, 차 뒤 오른쪽 바퀴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차를 세우고 살폈다. 타이어 공기가 다 빠졌다. 제법 큰 쇳덩이가 타이어에 박힌 것도 보였다.농로 중간이라 차 세울 자리가 마땅찮아 200m 정도 더 가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세웠다. 비로소 박힌 쇳덩이를 자세히 보았다. 건설공사에서 콘크리트 벽을 칠 때, 쓰는 마감재 부착용 연결쇠였다. 공사 관련자가 길에 떨어뜨린 게 공교롭게 내차 뒷타이어에 박혔다. 앞바퀴였다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어이없다.공사 앞뒤 처리를 말끔히 안 해 엉뚱한 내 차가 피해당했다고 생각하니, 황당하고 분하기도 했다. 일단, 스페어타이어를 끼려 시도했으나 어려워 보험 서비스를 불렀다. 전화하는 내 손이 잠시 떨리기도 했다. 보험 출동 기사는 이런 게 박히는 사례가 제법 있다며 때울 수 없으니, 새 타이어로 바꾸라고 권했다. 결국, 타이어를 앞당겨 바꾸는 불편과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지난 7, 80년대 산업화 시기를 실험실에 근무했다. 당시 대부분의 실험기기 장치는 외국산이었다. 어느 날, 국산 전기 건조기가 처음 들어왔다. 검수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손에 상처가 났다. 모서리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날카로운 금속 돌출부에 손을 베인 것이다. 그때의 실망감과 이 타이어 펑크 사고의 황당함이 궤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실험실에서 품질관리 활동을 하던 때, 미팅에서 한 부서장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품질관리는 마무리 큐시(QC·Quality Control)를 잘해야 해.’라고…. 나는 국산 건조기 생각이 나며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었다. 오늘은‘사람의 활동은 마무리 큐시에 유종의 미가 달렸다’하는 마음이 짙게 다시 들었다.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과 용역을 내주는 일이 바로 마무리 큐시니까.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가스누출 사고, 세월호 침몰 같은 끔찍한 대형 사고에서부터 오늘 타이어 펑크처럼 사소한 일까지 원인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 요인은 마무리 큐시가 제대로 안 된 탓일 터. 실무자, 감독자, 감리자 등 관련자가 자기 일을 온전히 해냈다면 즉, 마무리 큐시를 제대로 했더라면 큰 사고란 불행은 닥치지 않았을 것이다.우리 사회는 전 분야가 마무리 큐시를 덜 하거나 오롯이 안 하는 것만 같다. 정치인, 공직자, 언론 등이 말로는 ‘국민, 국민’하지만 속은 제 잇속 챙기기 바쁜 비양심적 행태가 뻔히 보이니 말이다. 또, 담배꽁초 처리 같은 기초질서를 제대로 안 지키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라도 사회 온 구성원이 마무리 큐시를 잘 해내도록 이끌고 가르쳐 국민이 안전하고 복된 나라로 바꿔나가기를 간절히 빈다.

2024-06-10

교육 현장의 모순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24년 상반기 대학가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무학과 단일전공’의 실시 여부였다. 의대 정원 확대와 다르게 무학과 단일전공은 대학 관계자 사이에서나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대학 교육의 근간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무학과 단일전공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한 급변하는 사회현실에서 대학생의 선택권 보장과 융합 교육의 필요성을 기치로 내걸며 20년 전에도 시행된 바 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정책임이 증명되었지만, 결국 다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대입 수험생이 매년 줄어드는 현실에서 의대 입학 정원 확대나 무학과 단일전공 시행이 학생들의 특정 전공 쏠림을 가속화 시킨다는 사실과 의대 입시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 비판적으로 제기되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이미 모든 정책이 법적 절차를 통과한 상황에서 더 이상 논란을 만들기보다는 정책이 자리를 잡아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수 있다.하지만 현재로서는 바뀐 정책이 정말 학생들을 위한 것일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학기에 교대 입시를 준비하다가 우리 학과로 입학한 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발생한 서이초 사건으로 꿈을 포기한 것을 다소 후회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생활기록부에 ‘교사’라고 적은 꿈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학생과 이야기하며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대 입시반’이 있었고 선생님들이 1학년부터 진로를 결정하길 권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활기록부에 일관된 기록이 있는 것이 해당 학과 선택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그때야 알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하며 3년 동안 일관되게 국어국문학과 진로를 희망한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행동이 사실은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말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중ㆍ고등학교의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꿈이 얼마나 다양할까? 결국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편의적으로 생각한 것이다.무학과 단일전공의 시행은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고민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다. 취지만 보면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이상과 현실의 좁힐 수 없는 격차 때문이다.대학 진학을 위해 직업 선택을 강요하는 고등학교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천천히 진로를 생각하라는 대학의 모순을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다시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한다면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 있을까?입시를 위해 하루빨리 진로를 결정하는 고등학교 교육과 다양한 경험을 한 후에 천천히 진로를 정하라는 대학의 모순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비단 교육 현장의 모순은 이것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다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2024-06-10

무서운 아이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작가이자 시인 이상의 최후의 소설 ‘실화’에서 ‘주인공 나’는 진실한 사랑에의 믿음을 잃고 일본 도쿄에 와 버렸다. 이 도쿄 간다(神田)의 하숙방에서 ‘나’는 독백한다.“여기는 동경이다. 나는 어쩔 작정으로 여기 왔나? …. 콕토가 그랬느니라. 재주 없는 예술가야. 부질없이 네 빈곤을 내세우지 말라고.….”여기 등장하는 장 콕토는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앙팡 테리블)’을 쓴 작가였다. 이상 소설 덕분에 나는 결국 장 콕토의 ‘무서운 아이들’을 찾아 읽게 된다.누군가 알라딘 서평에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쓴 게 있다. “사회에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세계의 규칙과 자기 안으로 침잠에 들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동성애, 근친상간, 자살 등의 소재가 다뤄진다.”이 ‘무서운 아이들’은 그후 세간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나타나는 기린아를 표현할 때 자주 애용되었다. 늘 그렇게 쓰여 왔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이 ‘무서운 아이들’의 새로운 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나는 이 ‘무서운 아이들’이 이미 십 년 전에 우리 사회에 다른 방식으로 출현했다고 믿는다. 이들은 사회에 무관심하다기보다 오히려 철저히 사회에 순치된 존재들이다. 그 방식이 역설적이다. 그들은 이 사회체계 안에서 적응과 성공과 출세를 꿈꾼다. 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올바름도 속으로 버릴 태세가 되어 있다. 원한과 적대감을 품은, 욕망 덩어리 존재들은 자신을 아직 아이로 착각하며 가차없이 자기 욕망을 추구한다.기성세대를 향해 원한과 적대를 품은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빈곤’하다고, 제대로 된 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외친다. 무서운 사실은 이 아이들이 올바름을 가장한다는 사실이며, 그러면서 윗세대뿐 아니라 자신들의 세대 내에서도 온갖 모략과 술수로 무한 투쟁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약한 자를 사정없이 짓밟을 수 있는 역설적인 윤리적 우월감으로 스스로 무장해 있다.이 40 전후의 ‘무서운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이 속한 586세대가 비민주적 체제에는 저항했지만 그 사회적, 경제적 체제에는 철저히 순응했고 그후 그 반쪽짜리 이상을 정당화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무서운 아이들’은 586세대의 다음다음 세대에 해당한다. 세대를 거듭하며 악은 진화했고 번성했다. ‘무서운 아이들’의 세대에 이르러 노동, 여성, 정치적 올바름은 도구화, 수단화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늘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외치지만 그 올바름은 마키아벨리즘적인 속성을 보인다.물론 언제나 그렇듯 이 진단과 표현은 세대 전체가 아니라 세대의 어떤 전형적인 일부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느 세대든 두드러진 일군의 무리가 사회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들이 주도할 한국 사회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도 따뜻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또, 불쌍한 것은 이 ‘무서운 아이들’의 아래 세대들이다. 그들, 지금의 이십대 후반, 삼십대 전반기의 젊은이들, 이들은 ‘무서운 아이들’ 아래서 힘들게 생존해 가야 한다.

2024-06-10

밀양 여중생 성폭행… ‘죄와 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았지만, 사건 당시의 놀라움과 대중의 분노는 크고 높았다.2004년. 밀양 지역 남자 고교생들이 여중생 한 명을 성폭행했다. 후안무치한 범죄에 가담한 학생들이 자그마치 44명이라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었다.18세였던 성폭행 가해자들은 밀양의 여러 고교에 재학 중이었다. 범죄의 잔인성 탓에 밀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여론의 돌팔매를 맞았다.14세에 불과한 어린 여학생을 유인해 돌아가며 성폭력을 저지른 건 물론, 때리고 협박했으며, 돈까지 뺏은 고교생들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은 당연지사 엄한 벌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죄를 저지른 고교생 중 10명만이 기소됐고, 20명은 소년부 송치로 마무리됐다. 13명은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론이 났다. 수사 결과를 접한 이들은 “참을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분노했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사건은 잊혀져갔다. 가해자들은 18세 고교생에서 38세 성인이 됐다.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다. 그들이 최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한 유튜버가 “밀양 성폭행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이미 몇 명의 신상이 알려졌고, 얼굴과 직업이 공개된 가해자가 다니던 인기 좋은 식당은 문을 닫았고, 직장도 이들의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공적 처벌이 아닌 사적인 단죄 방식은 옳지 않다’는 견해가 있으나, ‘그때 제대로 받지 않은 벌을 지금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라스콜리니코프가 주인공인 소설 ‘죄와 벌’그리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숨을 곳이 없다”는 공자의 말이 떠오르는 오늘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0

‘의료계 총파업’…얻을 게 별로 없다

개원의가 주축인 대한의사협회가 오는 18일 하루 전면 휴진(총파업)을 하기로 결의했다. 의협이 총파업 찬반투표를 한 결과, 5만명이 넘는 개원의들이 단체행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도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을 했고, 의대교수 비대위도 휴진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넉 달째 이어지는 의정갈등이 더 심화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진료거부 행위는 불법”이라며 강경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계 집단행동은 지난 2000년 의약 분업과 2014년 비대면 의료 도입,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에 이어 4번째다.지난 2월 시작된 의정갈등이 아무런 해법도 찾지 못한 채 오히려 더 격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립대 의대 전임교원 1000명 충원, 의료사고 소송 부담을 덜어주는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 등을 약속했지만, 의료계는 의대증원 철회만 고수하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전국 대학병원들은 전공의(1만여 명) 이탈 이후 의대교수들의 헌신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데, 교수들마저 휴진에 들어갈 경우 의료대란은 피할 수 없다.의대교수들이 휴진에 동참하게 되면, 우선 수술을 못하는 진료과가 대거 발생할 수 있어 중환자 치료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대학병원의 경우 상당수 진료과는 교수 한 명만 빠져도 중환자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개원의들은 휴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파업 참여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문제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도 정부가 수습책으로 꺼내 들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의대증원 계획은 대학별로 확정돼 입시요강까지 발표됐다. 이를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은 정부와 협상테이블에 앉아 2026년 이후의 의대증원 정책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의대교수를 포함한 선배의사들이 할 일은 파업이 아니라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하루빨리 병원과 학교에 복귀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이다.

2024-06-10

포퓰리즘 비판에도 늘어나는 입영지원금

구미시의회가 군에 입대하는 병역의무자에 대해 입영지원금을 주기로 조례를 만들자 제도의 적절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구미시의회는 지난 4일 ‘구미시 입영지원금 지급 조례안’을 기획행정위에서 가결해 이르면 내년부터 입영지원금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미시의회는 현재 시에 1년 이상 거주하면서 현역, 보충역, 대체역으로 입영하는 사람에게 1회에 한해 구미사랑상품권 1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했다. 조례안이 가결되자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지방재정 악화로 중단되는 사례가 있는 등 실효성 측면에서 검토돼야 할 문제가 많다며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들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는 2022년부터 시행하던 입영지원금을 지난해 12월 지급을 중단했다. 국가건전재정 유지, 부동산경기 침체 등 재원 부족이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입영지원금은 2022년 경기도 구리시가 지방자치단체로서 최초 도입하면서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이후 전국적으로 점차 확대 시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의정부시 사례처럼 지자체 재정 사정에 따라 지속성이 결여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데다 유권자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면에서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학자들은 “국방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면 정부가 할 일”이라며 지방정부 재정 사정에 따라 지역간 불균형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 제도 시행에 대한 신중론을 거론하고 있다. 또 용인시 등 일부 지자체는 제도가 상정됐으나 의회에서 부결된 사례도 있다. 입영지원금보다 사회 정착을 돕기 위해 제대 후 지원하는 전역지원금이 낫다는 의견도 나와 제도 시행에 앞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우리나라 지자체 대부분은 재정자립도가 낮다. 지금처럼 국가 차원의 긴축재정이 시행될 때는 재정지출의 우선순위 결정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구미시가 경북도내 지자체 가운데 재정사정이 낫다고는 하나 자립도만 보면 27% 수준으로 낮다. 행정의 신뢰도를 고려해 새 제도 도입에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다.

2024-06-10

문인수의 ‘내 마음의 유민들, 사투리’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오늘 내가 좋아하던 경북 성주에 살던 문인수 시인이 파랑새처럼 하늘로 날라 갔다고 한다. 늘 불그스레한 황혼빛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아름다운 시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지난 어느 날의 내 일기장에서 눈에 띈 짧은 글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쓸쓸하고 마음이 무겁다. 시인과는 고등학교 선배라는 인연도 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그는 항상 따뜻했다. 마침표도 없이 앞뒤로 이어지는 시 화법을 구사한 그의 상상력은 따라잡기 난해한 부조리한 시어 문법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편하게 가슴에 다가선다.‘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창비, 2015)는 시집 제목부터 문법 일탈이다. 이 생뚱맞은 제목 자체가 독자를 곧 바로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곳은 내가 존재할 곳이 못 된다는 말이다.‘굵직굵직한 골목들’의 “작고 초라한 집들이 거친 파도 소리에도 와르르 쏟아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혀 고부라진 골목의 팔심 덕분인 것 같다.”에서는 파도에 의지한 가파른 언덕 섬마을의 모습, 금방 쏟아져 내릴 듯 언덕배기 섬마을을 버티게 해주는 꼬불꼬불한 길을 “질긴 팔심”에 비유한다.시인은 스스로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비범한 시인이라는 꼿꼿함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실제로 문인수 시인이 범속한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다. “굵직굵직한 동아줄의 기나긴 골목”에서 한국어 조사 ‘-의’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의’는 ‘-와 같은’과 동일한 직유의 기능을 하고 있다. 가파른 섬 언덕에 조개껍질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붉은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난 골목길을 질긴 팔뚝과 동아줄로 유추한 비유는 탁월한 시적 상상이다.“해풍의 저 근육질은 오랜 가난이 절이고 삭힌 마음인데”에서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해풍의 근육질로 비유한다. 시인은 철부지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변덕도 심하다. 골목길을 질긴 팔로, 또 동아줄로 비유하다가 이젠 끊임없이 세로로 일어서는 해풍의 강한 근육질로 눈길이 옮아간다. 이러한 자연의 긴장감, 팽팽히 당겨진 인력은 곧바로 그 섬마을에 삶의 거처를 둔 섬사람들의 끈질긴 생을 이야기하는데 성공한다.문인수 시인에게 사투리는 한 시절의 추억이 유적이 되어 쓸쓸히 서녘 서방정토에 묻혀 있다.‘내 마음의 유민들, 사투리’(‘요엄창큰비바리야냉바리야’, 서정시학, 2007)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자동기술적으로 튀어오른다. “낫살이나 먹은 사람들의 몸엔 묵은 된장냄새 같은 말씨가 숨어 있다./귀에 쟁쟁, 목구멍 속에 오소리길처럼 파묻힌 말뜻이 있다.”라고 했다.방언은 시인의 인식 내부 깊숙이 냄새, 소리, 목구멍으로 숨어 있 있다. 방언이 시학의 미적 가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에는 또 다른 액면 구성의 방식으로 시인의 목소리이면서도 마치 타자화한 토박이 방언인 듯 경상도 방언이 실려 있다.“약삐야 덕삐야 살 꺼 없다. 디비가미 애믹이다. 심청머리. 곡식을 까부리다. 아망시다. 양발궂다. 모지락시럽다. 해찰궂다. 까리적다. 야무락지다. 자부럽다. 건성시럽다. 메메 문때다. 짜매다. 허퍼. 개얀타. 쌔비릿다. 넌 갓따리다. 잘 까바지다. 글마가 절마가. 알아서 미미이 잘할까. 각중에. 먹보. 얌새이 시염이다. 통시이. 여불떼기. 수굼포. 호메이. 깨이. 후치이. 써리. 그케. 뺀대기 쌔리다. 가릇부치다.” 이렇게 값진 방언 시어들이 시의 궤적에서는 전혀 일탈되지 않으면서도 정답게 시의 행간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다.문인수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투들은 거칠지만 얍삽하지 않다. 양단간에 곧잘 앗사리 뿔랐뿐다.”라고 방언시에 사용된 방언 낱말의 정의를 바로 내린다.낮은 여항의 일상의 말씨가 결이 곱지는 않지만 솔직한 유민들의 심정을 전해주는 말이라고 했다. ‘혹가다’(우연찮게) 머리에 떠오르는 모어가 아니라 연속의 불연속, 불연속의 연속으로 방언으로만 쓴 시의 한계치를 뛰어넘는다.울림일까 주문일까? 그러나 경상도 사람 외에는 독해할 수 없는 배타성을 감추기 위해 메시지는 철저하게 감춘다. 이해해 달라는 의미일까? 시인 문인수는 뛰어난 서정 시인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직관력과 순간순간 변하는 눈길로 풀어놓은 변덕스러운 시적 긴장감이 시의 맛깔을 한껏 돋운다.

2024-06-10

니가타항을 떠난 사람들

2024년 2월 23일 니가타현립대학에서 한국근대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발표와 토론으로 녹초가 되다시피 한 저희 일행은, 저녁에 니가타 시내로 이동하여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이날의 만찬은 이광수 연구의 권위자인 하타노 세츠코 선생님이 주최하신 것인데요. 니가타 전통 요리를 파는 그곳의 음식은 하나같이 정성스럽고 맛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한밤중까지 이어진 심포지엄 뒷담화로 2월 23일의 밤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 갔습니다.24일은 오전 11시에 비즈니스 호텔 로비에서 만나 해산하는 것이 유일한 일정일 정도로, 여유로운 날이었는데요. 아침 일찍 조식을 먹은 저는 니가타 시내와 바닷가를 산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연구년을 맞아 도쿄의 센슈대학에 와 있는 K대학의 A교수가 저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는데요. 저희는 일본에서 가장 긴 강인 시나노가와의 강변을 걷기도 하고, 그 강 위에 놓인 아치 여섯 개의 아름다운 반다이바시를 건너기도 했습니다.니가타가 한국문학 전공자에게 문제적으로 다가오는 대목 중의 하나는, 니가타가 북·일간의 교류에 있어 일본측 창구였다는 사실입니다. 재일교포 북송사업 당시 수많은 재일교포들이 ‘지상낙원의 부푼 꿈’을 안고 북송선을 탔던 곳이 바로 니가타입니다. 오늘날 북송사업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려던 북한의 이해와, 재일교포를 부담스러워하던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러나 2006년 7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이유로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이 금지된 이후에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니가타항과 북한을 오고 가는 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그래서일까요? 북송사업의 현장지휘소 역할을 하던 조총련 니가타현 본부 및 조국왕래기념관을 찾아갔을 때, 그곳은 셔터가 내려진 채 거의 폐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그 풍경은 현재 북·일간의 삭막한 관계를 대변하는 듯 보였는데요. 1959년부터 시작된 북송사업은 1984년까지 총 186차례에 걸쳐 9만3340명이 이주한 그야말로 대사업이었습니다. 과연 ‘사회주의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벅찬 꿈을 안고, 니가타항을 떠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북한에서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한 이경자의 장편 ‘세번째 집’(문학동네, 2013)은 북송교포들의 후일담을 전해주는 귀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김성옥으로 이어지는 김씨 3대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100여 년에 걸친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펼쳐낸 역작인데요. 할아버지(정남), 아버지(대건), 성옥의 삶을 대표하는 단어는 각각 ‘조센징’, ‘귀국자’, ‘탈북자’입니다. 정남은 징용을 당해 후쿠오카 탄광에 보내졌는데요. 해방 이후 일본에 남아 가정을 이뤄 대건을 낳습니다. 대건(가네다 다이켄)은 와세다대까지 졸업한 엘리트지만 일본 사회가 부과한 ‘조센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아 1967년 니가타항에서 북송선을 타는데요. 안타깝게도 김대건은 북한에서 ‘조센징’이라는 굴레를 벗는 대신 ‘귀국자’라는 새로운 굴레를 뒤집어쓰고 맙니다. 대건의 딸로 북한에서 태어난 성옥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탈북하여 남한에서 ‘탈북자’로 살아갑니다.‘세번째 집’에서는 성옥 가족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콧김을 쐰 경험”을 의미하는 ‘귀국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북한 사회에서 받는 고통과 차별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실수로 동네에 불이 났을 때도, 성옥은 보위부에 끌려가 “토대가 나빠서, 성분이 안 좋아서 어린아이가 남의 소먹이를 다 태운 거”라는 얼토당토 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정도입니다. 성옥은 “귀국자라는 말이 얼마나 지독한 덫인가를” 인민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귀국자’라는 말만 들어도 지겨울 지경에 이릅니다.대건은 평소에 “오리는 오리끼리 만나야 한다”며, 성옥에게 연애 상대로 “귀국자를 만나라”는 말을 습관처럼 해왔는데요. 실제로 보위부장의 아들인 철이와 성옥은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결국 철이 부모의 반대로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이후에도 성옥은 도자기 공장 작업반에 다닐 때, 아버지가 비행군관학교 교수인 토대 좋은 남자의 청혼을 받기도 하는데요.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찾아온 남자에게 대건은 “자네 아버지에게 허락받고 와. 그럼 내가 허락해주지”라고 냉소적으로 대답합니다. 대건의 예상대로 그 남자의 아버지는 “귀국자에 비당원의 자녀와는 혼인할 수 없다”며 성옥과의 결혼을 분명하게 반대하는군요. 결국 북한에 온 초기에는 ‘사회주의 조국 건설’을 위해 성실하게 생활하던 대건도, 귀국자에 대한 차별로 인하여 술만 찾는 냉소적인 인물로 변하고 맙니다. 물론 대건과 그 가족의 삶이 10만 여명에 이르는 모든 북송교포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수많은 자료와 증언들은 북송교포들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00여 명의 동포를 싣고 북한의 청진항을 향해 니가타항을 떠났던 1959년 12월 14일의 바다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을 테지만,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이날의 바다는 너무나 조용하여 쓸쓸하기까지 했습니다.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