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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 번 더 질풍 같은 용기를, 싱어게인!

JTBC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 3’의 인기가 뜨겁다. 과거에 활동을 했지만 무대에서 멀어져 잊혀진 가수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불러 목소리는 익숙한데 이름과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얼굴 없는 가수’들, 그리고 대중의 주목과 관심이 없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묵묵히 자기 음악을 해온 무명 뮤지션들이 싱 어게인(sing again), 다시 노래 부를 기회를 얻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신인을 발굴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재기를 위한 무대라는 점에서 일종의 패자부활전인 셈이다.화제가 된 참가자들이 있다. 우선 1회에 출연한 참가번호 5번 가수다.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깊고 묵직한 허스키 음색으로 주목을 끌더니 전설적인 블루스 아티스트 B.B.킹을 연상시키는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블루지 기타 연주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다.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자신만의 색채로 완벽하게 소화한 그는 경연 최초 ‘올 어게인’(모든 심사위원의 합격표)을 받으며 2라운드로 진출했다.그의 정체는 실력파 뮤지션 김마스타다. 홍대를 중심으로, 또 전국을 돌며 노래를 부르는 방랑가객이다. 무대에서 보여준 뛰어난 음악성, 가을에 어울리는 짙은 음색도 여운을 남겼지만 무대 전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은 큰 울림을 줬다.“다들 요즘 음악을 너무 목숨을 걸고 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목숨 걸고 안 합니다. 인생을 걸고 하는 거지. 목숨은 하나지만 인생은 기니까.”꿈을 위해, 성공을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다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할 의지를 잃은 채 꿈에서 멀어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속적 성공을 못 이루면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절망하는 이들 또한 많다. 그런 세태 가운데 인생을 걸고 온전히 노래 한 곡을 부르는 게 최종 목표라는 김마스타의 말은 아름다운 잠언, “speaking words of wisdom”(비틀즈, ‘Let it be’)으로 들린다.며칠 전 방영된 3회에서는 2030세대의 애국가나 마찬가지인 만화 주제가를 부른 가수가 등장했다. 참가번호 74호. 1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라고 했다. 몹시 긴장한 그는 호흡도 제대로 못하고 몸을 떨었지만 전주와 함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대한민국 전체를 전율시켰다. 그가 부른 노래는 바로 응원가로 익숙한 ‘질풍가도’. 특히 2030세대는 청소년기와 사회초년생 시절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면서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그래 이런 내 모습 게을러 보이고 우습게도 보일 거야. 하지만 내게 주어진 무거운 운명에 나는 다시 태어나 싸울 거야. 세상에 도전하는 게 외로울지라도 함께해 줄 우정을 믿고 있어.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5년 만에 다시 잡은 마이크임에도 엄청난 성량과 단단한 고음으로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결과는 올 어게인. 심사위원 선미, 코드쿤스트, 규현, 사회자 이승기 등 ‘질풍가도’와 함께 성장한 세대는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방송 영상은 하루만에 370만 조회수가 넘고, 댓글 1만개가 달렸다. 하나 같이 “신나고 힘이 나는 노래인데 왜 눈물이 나는 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살하려는 마음을 되돌려준 노래, 또 누군가에게는 실패를 극복하게 해준 노래, 힘겨운 시절에 많은 이들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준 노래가 다시 울려 퍼졌다. 코드쿤스트는 “이 노래로 저희에게 용기를 주셨으니, 이젠 용기를 받으실 차례”라며 74호 가수를 격려했다.유정석. 애니메이션 주제가 외에 별다른 활동을 못한 무명가수다. 만화 방영 후 7년이 지나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식도암에 걸린 누나를 간병하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누나도 세상을 떠나고, 그 자신도 루게릭병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중 전신마비와 우울증을 앓다 겨우 회복했다. 그 슬프고 아픈 시절을 지나 15년 만에 “질풍 같은 용기”를 우리에게 외친 그의 무대야말로 ‘싱 어게인’이다. 최종 우승자를 가릴 때까지 경연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 희망의 노래를 다시 들려준 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이미 ‘올해의 방송’이다. 오랜 어둠을 딛고 일어나 다시 노래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 질풍 같은 용기 있기를!

2023-11-14

삶의 틈 속에서

수요일 오후 반차를 쓰고 집 근처 카페에 앉아있다. 한참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이 많은 수요일 오후에 왜 한가롭게 이곳에 앉아 있느냐 하면, 오늘따라 유독 하루를 버텨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요즘 들어선 잠을 도통 잘 못자고 있다. 어떤 꿈을 꾸고 일어나는 것도 같은데 일어나면 그 꿈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기분 나쁜 찝찝함이 남아 있을 뿐. 오후 반차를 쓴 김에 밀린 잠을 자볼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날씨가 너무 좋기도 하고 햇빛을 좀 쐬어야 할 것도 같아 집 근처 카페에 와 있다. 이 카페는 5년 전부터 자주 찾는 곳으로, 통유리창이 있는 고층 카페에 커피도 맛있어서 꽤 좋아하는 곳이다.수많은 버스,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짧은 주기로 바뀌는 신호등과 흔들리는 나무, 형형색색 커다란 간판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얼마나 적응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북적이는 대도시의 거리를 동경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다가도 어느 날은 내가 얼마나 작은 인간인지 지나치게 화려하게 비춰지는 탓에 씁쓸해지기도 했었다.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다보니 일순간 유리창에 스무 살 중반의 내 모습이 어른거린다. 일하느라 더러워진 흰티를 두터운 외투 속에 꽁꽁 숨겨 놓고 시집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 줄 씩 읽어 내려갔던 오기의 순간이.그리곤 지금 다시 멍하니 내가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벌써 이곳에 자리 잡은 지 5년이 흘러가고 있었고, 20대 중반이던 나는 이제 서른을 앞두고 있다. 서른을 앞둔 지금, 나는 조금 더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졌을까? 생각하다보면 잘 모르겠다. 그저 기차 탑승 시간을 자꾸만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반복적으로 나의 어떤 부분이 변화했는지, 또 어떤 게 변하지 않은 것인지 거듭 생각하며 초조해지고 있는 것이다.지금 카페 테이블 위엔 최지은 시인의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가 놓여 있다. 빛 속에 잠긴 활자들은 슬프고 아름답다. 내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고 들어갈 수 없는 뜨겁고 후덥지근한 세계. 몇 편 읽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딴청을 피우고 만다.어린 날 내가 꿈꾸었던 글쓰기의 열망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바뀐 건 어떠한 희열도 바람도 없이 지내고 있다는 것, 두 번째로는 무거운 뒷목과 굽은 등, 자꾸만 앞으로 말리는 어깨 등 못난 몸의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최근 5년 전 친하게 지냈던 사람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 추억을 이야기하는 동안은 잠시 반갑고 기쁘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 사이의 큰 공백이 생기며 아주 많은 부분이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사이의 변하지 않은 신뢰나 배려, 특유의 말버릇 같은 것에 대해 찾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고, 결국 머쓱하게 웃으며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 다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다시금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곳도 알게 모르게 많은 곳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지인이 일하던 휴대폰 매장은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바뀌었고, 눈물이 많던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했던 호프집은 화려한 헬스장이 들어섰다. 조금씩 달라지는 이 풍경이 처음은 흥미롭다가도 과거가 지워지는 것만 같아 쓸쓸해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 때문일까. 오늘은 왠지 잠이 오지 않아 벽에 기대어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내게 다가와 잠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다. 근래 가장 크게 변화한 건 이렇게 다정하게 물어봐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고, 덕분에 성급한 불안감을 아무렇지 않게 잠잠히 눌러 볼 수 있다는 것이다.별다른 대화 없이 그가 좋아한다는 영화 한 편을 튼다.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지막 장면엔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Life has a gap in it, it just does. You don‘t go crazy trying to fill it.”(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걸 미친 사람처럼 일일이 다 메꿔가면서 살순 없어.) 삶의 권태를 느끼는 주인공 마고에게 언니 제럴딘은 삶은 본질적으로 결핍을 느끼기 마련이고, 허망하고 부족한 부분을 느끼면서도 감내하고 채워가는 게 인생이라는 걸 마고에게 알려 준다.지금 잠시 꿈과 이상, 그리고 열정을 잃어버렸다 한들 인생엔 틈이 있기 마련이니 더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심란해지지 않아도 된다. 삶은 완벽하지 않고 이 또한 작은 해프닝이 될 테니까.

2023-11-14

연예계와 대중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인공지능 개

강지우 SF평론가 최근 ‘최애의 아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었다. 오프닝 곡에 안무를 따라 하는 SNS 챌린지가 유행할 정도로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았다.주인공이 ‘아이’라는 아이돌의 아들로 환생한다는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주로 다루는 내용은 연예계의 뒷사정이다. 아이돌이 당하는 스토킹 범죄, 연예인에게는 사치로 여겨지는 사생활, 연예계에서 거물 PD가 행사하는 영향력, 연애 리얼리티 쇼 출연자에 대한 악플 공격과 언론 폭력 등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는 주제가 연이어 등장한다.2023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단요 작가의 ‘개의 설계사’도 연예계의 화려하고도 비틀린 속성을 소재로 삼았다. 최정상급의 인기를 누리는 슈퍼스타, 슈퍼스타가 기르는 로봇 개, 그 로봇 개의 인공지능을 설계한 설계사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로봇 개는 대중의 관심에 시달린 슈퍼스타 소녀의 정신적 방황과 일탈을 지켜보며, 전 애인의 자살이라는 거대한 스캔들에도 관여한다.한편으로 이 작품은 인공지능을 축으로 삼아 인간의 감정이 무엇인지 깊이 파고든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며 기본소득이 정착된 사회, 그러나 일부 인간은 더 풍족한 삶을 위해 여전히 일을 한다. 주인공은 인간의 친구가 될 감정형 인공지능을 설계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설계사 본인에게는 일반적인 도덕관념이 결핍되어 있어서,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하려면 상대의 반응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일상 대화 속에서조차도 무엇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대답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설계하는 인공지능과도 닮은 모습이다.그의 고민을 따라가며 독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감정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이상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새삼스레 발견한다.인터뷰에 따르면 작가는 감정과 애정의 ‘본질적인 징그러움’이 윤리와 어떻게 뒤엉키는지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 대중이 연예인의 사생활에 보이는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생각하면 ‘징그러운 애정’이라는 표현이 단번에 와닿기도 한다.연예계를 둘러싼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인공지능은 언뜻 생소한 조합이다. 그러나 소설은 징그러울 정도로 뒤틀린 감정들이 증폭되는 현장을 인공지능의 관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SF의 미덕인 ‘낯설게 보기’를 선사한다. 외로워하던 슈퍼스타를 그의 인공지능 로봇 개만이 위로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더불어 작가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의 작품처럼, 기존 사회에 견고한 도덕이나 질서를 아랑곳하지 않는, 또는 부러 그 틈새를 집요하게 공략하고 비틀어 엶으로서 세계를 확장하는 과감함도 고유한 매력이다.연예인의 사생활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가 하면, 일반인의 연애사가 리얼리티 쇼로 화제를 끄는 요즘이다. 관심을 먹고 사는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개인에게는 잔인한 폭력이 가해지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며 인간성이 무엇인지 되묻는 시대에, 우선 우리의 감정이 무엇에 바탕하고 있는지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2023-11-14

행복 연습을 습관처럼

최선희 경운대 교수 늦가을 정취를 즐기기 위해 나들이에 나선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마음 한 켠에는 올 여름 우리사회를 공포로 몰아놓은 묻지마 무차별 살인사건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예고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남아 있을 것이다. 끔찍한 흉기난동과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은 오히려 본인이 억울한 피해자라고 하며 궤변에 가까운 범행 동기를 늘어놓고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기까지 했다.일부 가해자는 타인의 행복한 모습에 분개해 살인을 했다며 사회를 향한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스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무서운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으로 사회적 고립 속에 자신을 가두고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을 향해 증오의 싹을 틔웠던 것이다.행복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인가. 행복에도 조건이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기반, 개인과 사회의 조화, 사색을 통한 자기발견을 행복의 요소로 본다. 경제적 기반은 의식주의 해결이 우선일 것이고 개인과 사회의 조화는 나와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정립이며 자기발견은 자아실현과 같은 내적 성취와 만족과 감사를 느낄 줄 아는 건강한 의식일 것이다.행복의 조건을 자세히 천착해보면 노력으로 우리 모두 행복감을 가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답이 나온다. 특히 사색을 통한 자기발견은 우리 마음에 자리한 중요한 행복요소라 할 수 있다.편안하게 자신의 모습과 마주해 스스로를 깊게 들여다보며 나를 긍정할 때 행복은 가까이 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가꾸어 나갈 때 찾아오는 것이다. 즉, 행복은 멀리서 갈구하고 쟁취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까운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올 3월 OECD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행복순위는 OECD 정회원국 38개 중에서 35위에 그쳤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며 IT같은 과학기술,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스포츠 대회 성적에서 상위권에 들어가는 우리나라가 행복순위 꼴찌에 가깝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 국민인가. ‘행복한 국민’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이다행복도 연습하면 습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행복연습! 인위적이라며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오래전 한 유명한 국회의원 딸이 자신의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TV를 켜고 개그 프로를 보며 행복해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이렇게 행복은 우리의 작은 일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다움’에 감사하고 호젓한 낙엽 길을 걸으며 가을 햇살을 느껴보자. 그리고 현재의 소소한 즐거움에 집중하며 행복을 연습해보자. 습관처럼 행복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행복감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작은 행복이 상대에게 전염되어 큰 행복으로 넘쳐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은 지나친 낙관일까.

2023-11-14

포스코 임금 타결에 걱정 커진 지역중소업체

포스코 임금 및 단체협상안 타결과 관련해 포항철강공단 내 입주업체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입주기업들은 포스코의 임단협 결과가 지역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 노사간 원만한 타결에 박수를 보냈지만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는 직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이를 계기로 고개를 내밀어 고민에 빠졌다는 것이다.포스코 노조원은 이번 협상 타결로 기본급 인상을 포함 주식, 격려금 등의 명목으로 모두 1천400만원 상당의 실질 임금 소득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철강공단 입주기업의 근로자들은 “똑같이 일하면서 임금 격차나 복지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 자괴감이 든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회사 측에 임금인상 분위기를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공단 내 기업들은 경기가 나빠져 어려운 상황 속에 직원들의 이같은 임금 인상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를 두고 경영진 간에 의견을 주고받는 등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래서 동반성장을 목표로 한 정부의 노력으로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한 상생법이 만들어졌고, 2011년에는 정부 차원의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보다 2.04배가 많았으나 2021년에 와서는 2.12배로 더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사회적 갈등 유발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차별을 없애기 위해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했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완전히 해결할 수가 없다. 기업과 노조도 건전한 상생협력 관계가 국가경제 발전의 토대가 된다는 생각에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포스코 노조의 임금 인상이 가져온 후폭풍의 문제는 상생발전을 전제로 지역경제계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2023-11-13

백두대간수목원의 숨은 가치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5천179ha의 넓이에 4천 종의 자생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 최대이자 전 세계 수목원 중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수목원엔 기후변화로 사라져가는 자생식물과 고산식물을 수집·연구하는 등 백두대간 생태계 보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호랑이숲’과 ‘알파인하우스’ 등 39개의 전시원이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 불리는 종자 영구보존 시설은 세계 단 두곳 뿐이다. 볼거리 많고 의미 있는 수목원은 한번쯤은 가봐야 할 명소가 됐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개최하는 ‘2023 백두대간 봉자페스티벌’이 세계축제협회의 ‘2023 피너클어워드 한국대회’에서 ‘영상오디오’ 부문 은상, ‘지역활성화형 축제’ 부문 동상을 각각 받았다. 지난해 ‘홍보디자인’ 부문 은상에 이어 2년 연속 수상이다.봉화의 ‘봉’자와 ‘자생꽃’의 ‘자’를 따온 봉자페스티벌은 지역상생 먹거리부스 같은 판매장터를 운영해 지역 소상공인에게 판로를 제공한다.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수목원 내 문화 활동 공간을 제공, 지역활성화에 기여도가 높다. 특히 자생식물과 방사된 호랑이를 구경하려는 방문객들이 연중 줄을 잇는다.우리나라에서 꽃을 내세운 축제가 적잖다. 대표적인 것이 진해 벚꽃과 마산 국화, 신안 튤립축제다. 하지만 자생식물을 활용한 꽃 축제는 봉자페스티벌이 유일한 듯 하다. 그만큼 희소성이 있다. 백두대간수목원과 자생식물이라는 전국 유일의 자원을 활용, 우리나라 대표축제로 키워나가야 할 터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성공도 괄목할만하지만 관련 콘텐츠를 추가 개발, 축제의 깊이와 의미를 더해야 할 것이다. 봉자페스티벌이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1-13

수도권 메가시티와 남부거대경제권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최근 여당과 서울시는 더 큰 ‘메가시티’ 조성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려 한다. 이 계획은 경기도의 김포, 구리, 광명 등 주변 도시의 편입을 포함하며, 교통개선, 항구도시로의 변화, 경제성장 등의 이점을 목표로 한다.반면, 경기도민 대부분은 이러한 계획에 반대하고 있으며, 지역적 특성의 상실과 균형 있는 발전의 저해를 우려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기도민의 약 66.3%가 반대 의견을 표명했으며, 특히 젊은 층과 화이트칼라 직업군에서 반대가 두드러졌다고 한다.일반적으로 ‘메가시티’는 경제 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투자와 일자리를 집중적으로 유치할 수 있고, 대규모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인프라가 집중되어 관리와 투자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유리한 면이 있다.아울러 다양한 문화적, 교육적 기회가 제공됨으로서 인재 유치와 지식기반 경제성장의 촉진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에 ‘메가시티’에 자원과 기회가 집중되면서 다른 지역과의 격차가 커질 수 있고, 인구과밀과 함께 환경오염, 교통혼잡, 주거문제 등이 심화될 수 있다.아울러 지역적 특성과 다양성이 희석되어 문화적 단일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메가시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광역도시연합’이 제시된다. ‘광역도시연합’은 인접한 도시들이 협력하여 공동의 인프라, 교통, 환경 관리 등을 공유함으로써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통해 각 도시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메가시티’의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공동의 문제해결과 정책결정 과정에서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지역 간 상호 의존성을 증가시키고 균형 잡힌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이와 같이 ‘광역도시연합’은 중복 투자를 방지하며, 인적·물적 교류를 촉진해 상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중립성과 자율성으로 인해 지역에 대한 책임이 약화되고, 난립으로 인한 행정 효율성 저하의 위험이 있다. 국내에서는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광주·전남 등 다양한 지역에서 행정 통합을 통해 ‘광역도시연합’을 추진한 사례가 있다. 국제적으로는 일본의 간사이권광역연합, 독일의 슈투트가르트광역연합, 미국의 미네소타 트윈시티광역정부 등이 광역도시연합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이들 ‘광역도시연합’지역에서는 재정수입을 공동 활용하여 첨단산업, 연구개발, 녹색기술에 집중하며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고 교통, 환경관리, 지역개발 등에서의 협력을 통해 효율적인 도시운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다. 서울의 ‘메가시티’ 추진과 함께 더 비대해질 수도권에 대응하여 대구·부산·울산·광주 등의 광역시와 경북, 전남, 전북, 경남도, 제주특별자치도 등 영호남지역의 ‘광역도시연합’이 형성하는 ‘남부거대경제권’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특히 2030년 ‘대구경북신공항’과 ‘대구·광주 달빛고속철도’ 개항과 개통으로 대구·경북은 ‘남부거대경제권’을 선도할 것으로 전망한다.

2023-11-13

‘대학과의 협업’이 지역혁신 動力이 된다

경북도가 대학지원을 통해 지역혁신체계를 구축하는 ‘라이즈(RISE)센터’를 지난주 개소했다. 라이즈는 광역자치단체가 지역발전을 위해 관내 대학에 대한 지원 권한을 가지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3월 경북도를 비롯해 비수도권 7개 시·도를 라이즈 시범지역으로 선정했다. 경북도는 정부의 대학지원 권한을 이양받기 위해 지난 6월 이미 ‘지역협업위원회’를 구성했다. 협업위에는 경북도, 경북도교육청, 경북연구원, 대구경북중소벤처기업청, 경북도경제진흥원, 경북테크노파크,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 SK실트론, 포스코퓨처엠, SK바이오사이언스(안동), 화신, 아진산업이 참여하고 있다.라이즈 사업은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핵심정책이다. 오는 2025년부터 대학지원 권한이 지자체로 본격 이전되면 교육부 대학 지원 예산의 50%(약 2조원)가 지방정부로 이전된다. 경북도 라이즈센터 사업비는 2천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라이즈센터는 경북도가 주도하는 대학 지원체계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방대학의 지역혁신 역량 강화를 위한 중심역할을 하게 된다.이철우 도지사가 지난 9일 개소식에서 언급했다시피, 4차 산업혁명시대는 지방대학이 지역 혁신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지방대학의 현실은 암울하다. 경북도의 경우, 2050년이 되면 전체 학령인구가 19만명(2020년 38만명)이 된다고 한다. 대부분 지방대학은 이런 추세대로 가면 학생모집이 안되는데다 재학생 이탈률이 심해 견디기 힘들다. 지방대학 위기는 지역의 위기와 다른 말이 아니다.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자면 2년여 간의 시간이 있으니, 앞으로 라이즈센터의 역할이 주목된다. 경북도내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선 인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라이즈센터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지역기업들과 대학을 연계해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이 인재들이 기업의 인적 자원으로 활용되거나 창업을 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2023-11-13

까슬까슬한 벽면 위 만화, 울진 매화벽화거리

바닷물의 짠 내음이 코끝을 스치는 울진 매화벽화거리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이현세(1954~)의 만화가 마을 골목을 수놓은 곳이다. 까슬까슬한 종이 위에 그려진 만화가 거친 담벼락을 따라 피어나 옛 추억을 불러들인다. 학교에서 선생님 몰래 읽었던 아슬아슬한 순간들, 만화방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만화책장만 넘기던 시간들, 다음 편이 나오지 않아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린 날짜만 기다리던 그 시절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당시 만화책은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마음껏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게 해주는 여행티켓이었다. 신화·사랑·영웅·성공 등 그 속에는 무엇이든 다 있었다.울진 매화벽화거리는 ‘공포의 외인구단’(1983~84)과 ‘누구라도 길을 잃는다’(2017), 다수의 단컷 만화벽화, ‘남벌’(1993)을 소재로 한 카페를 찾아볼 수 있다. 매화이현세만화공원·매화역사관·매화박물관·만화도서관·영동이네 옛집 등 마을 곳곳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매화벽화거리는 만화책 속 작은 네모 상자를 골목의 담벼락에서 찾고, 그 안에서 캐릭터 까치·마동탁·엄지가 튀어나올 듯 그려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꺾이며 이어지는 골목의 만화 속 장면들이 발걸음을 따라 조롱조롱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공포의 외인구단’이 그려진 골목은 마을 외곽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러브로드’다. 사실 원작 만화의 줄거리는 사랑보다는 스릴 막장에 가깝다. 주인공 오혜성은 짝사랑하는 엄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한다. 라이벌이자 엄친아이자 권력자인 마동탁으로 인해 엄지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오혜성은 부상으로 야구마저 포기할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그는 외인구단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야구 타자로써 부활하여 마동탁과 엄지 앞에 나타난다. 위기를 느낀 마동탁은 아내 엄지를 이용하여 혜성을 흔들고, 혜성은 두 눈을 상실하면서까지 마동탁의 승리를 원하던 엄지의 소원을 이뤄준다. 엄지는 충격으로 정신병을 앓고 이혼당한다. 혜성이 엄지를 찾아와 서로 포옹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지금도 상상치도 못했던 결말에 얼떨떨했던 당시의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하다. 원래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이 작품은 충격적인 결말만으로도 결코 잊힐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공포의 외인구단’은 공포정치를 하던 군부가 대중들의 눈을 정치가 아닌 곳으로 돌리기 위해 스포츠를 키우던 사회 분위기에 맞춰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1980년대는 국가가 민주화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무력 진압하고, 사회 안정·정의 구현·국민 순화라는 명분으로 감시와 통제를 일삼았다. 국가권력은 대중들의 요구를 컬러티비 보급·야간통행금지 폐지·교복 자율화·스포츠 활성화 등의 정책을 통해 억눌렀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탄탄한 줄거리·엄청난 반전·속도감 있는 전개와 승리에 대한 집착·신체 훼손·과장된 정서적 표현이 특징적이다. 특히 사회 약자들이 영웅이 되는 스토리는 억압받던 80년대의 독자층을 매료시켰다. 나중에는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이나 드라마 ‘2009 외인구단’(2009)으로도 제작되었다.‘남벌’은 열차 카페의 테마로 즐길 수 있다.‘남벌’의 주인공 오혜성은 일본 내 재일교포다. 인도네시아 석유로 인해 한일전쟁이 발발하자 재미교포들은 수용소로 강제 이송된다. 아우슈비츠에 버금가는 그곳에서 가족을 잃은 그는 탈출하여 한국으로 건너가 한일전쟁에 선봉을 서서 한국군의 승리에 공헌한다. 붙잡혔던 엄지도 구출하여 남은 가족과 한국에 정착해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이 작품은 가족과 주변인의 비극적인 죽음·운명적인 사랑·애국심과 민족주의·강한 남성상과 약한 여성상 등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1990년 김영삼 정부의 정책 ‘일제 잔재 청산’에 힘입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냉전이 완화되고, 해외여행이 증가하며, 국제 문화 교류가 증가하던 세계 흐름에서 대중이 느꼈던 일본과의 격차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식민 통치로 인한 과거 청산, 독도 영유권 주장, 경제적 격차로 인한 무역 불균형, 재미교포의 차별 등 일본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반일감정을 과열시켰다. 대중은 작품 속 가상의 한일전쟁에서의 승리에서 현실의 억압된 반일감정을 해소했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은 일본과 상당한 부분을 극복했고 위기나 경계심도 낮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부분은 남아있다.이현세의 작품은 만화가 어린이나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이 향유하는 대중문화라는 인식을 마련했다.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비극적인 사랑과 주변인의 죽음, 극단적인 갈등과 과격한 장면, 과도한 감정표현은 소설처럼 스토리에 빠져들게 했으며, 스포츠·판소리·전쟁·SF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소재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었다. 울진의 매화벽화거리에 가면 ‘천국의 신화’·‘국경의 갈가마귀’·‘활’·‘지옥의 링’·‘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블루엔젤’·‘카론의 새벽’·‘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아마겟돈’ 등 이현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만화가 가득 그려진 골목을 거닐며 까슬까슬한 만화책의 질감을 떠올려 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1-13

육십년대식의 사랑, 육십년대식의 위로

겨울이 오는 듯, 스산한 바람이 들기 시작하면, 왠지 대학 시절 읽었던 김승옥의 작품 속 문장들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 사소한 문장 한 줄이 대학에서 교수가 전해주는 지식보다도, 매일 밤새도록 함께 술을 마셔주던 친구들보다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누구에게나 가끔씩 찾아오는,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온통 잿빛으로 가득한 그 문장이 내 마음에 손을 내밀어 모종의 위로를 주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없는 문장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렇게 겨울 공기에 섞인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기의 기운을 맡곤 했다.비록 구십년대의 대학생이었던 나는 김승옥이라는 작가가 바라보고 있던 긴박된 시대의 분위기를 함께 느끼지 못했고, 그 속에서 조금씩 불어오고 있던 자유의 비린 냄새도 함께 맡을 수 없었다. 그러니 비장한 태도로 유서를 쓰고, 어딘가로 떠나고 있는 김승옥 소설의 주인공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오만한 수사나 합리화에 불과할 것이다. 육십년대를 호흡하는 김승옥의 허무와 감수성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것이고, 내게 그것은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이나 지식의 대상이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십년대의 공기를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내가 김승옥의 문장을 읽을 때 들었던 그 위로와 씁쓸한 공감의 감정을 무엇이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문득 들었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어려워 혀끝에서 맴도는 감정들을 굴리고 있을 때, 누군가 툭 바로 그 단어를 떨어뜨려 두고 간 것만 같은 감각이 김승옥의 소설 속에는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시 아직 어렸던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나의 문장이 삶에 주는 영향 같은 것에 대해 말하기도 했고, 글로 써보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김승옥이라는 계기를 통해 확인한다. 내가 김승옥을 통해 전혀 본 적이 없었던 육십년대식의 분위기를, 육십년대식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고 내가 향유했던 구십년대식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듯, 이천이십년대의 누군가도 그에 마땅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온갖 종류의 유사-감각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시대지만, 마음 깊이 존재하는 우리의 감정에 다가가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 않은가. 어떤 문장은 여전히 그런 힘이 존재한다.그렇게 보면 인간이 영위하고 있는 삶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공기 내부 속에 있을 때는 너무나 빠르고 급하게 변해서, 당장은 마치 저 멀리까지 떠나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나갔던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계절의 변화와 사람의 변화를 노래했던 이제는 그 문자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시가의 언어들도 새삼스러워지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문명과 시대의 변화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수성의 영역은 언제나 한계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계절은 어김없이 변하고, 그 시대를 호흡하는 인간의 감정은 그에 따라 어김없이 피었다가 졌다가 한다.어느새 겨울이 오고 있다. 코끝이 시큰한 겨울의 냄새를 맡으며, 오랜만에 김승옥의 소설집을 펼친다. 빛이 들어 책표지는 바랬고, 그 문장은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잿빛투성이지만, 그 문장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분명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어딘가의 여관에 허무로 갈 길을 잃어버린 잿빛 청춘들이 그렇게 두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위로를 위한 것도 무엇도 아니지만, 읽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위로가 된다. 그 분명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육십년대식의 위로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간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11-13

순천처럼 하세요

김규인 수필가 1천만 관광객이 찾는 행복한 여행지, 순천만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대한민국 제1호 국가 정원과 람사르 습지에 지정된 것을 계기로 순천시는 생태 브랜드화 이미지를 굳히는 데 힘을 모은다. 눈길을 끄는 것은 흑두루미 수백 마리가 순천만 습지에 왔다는 사실이다. 조심스러운 동물이라 사람이 가까이 가면 늘 경계하고 환경이 나쁘면 찾지 않는다. 흑두루미 수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동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는 뜻이다. 지구의 환경이 오염만 되어가는 세상에서 그래도 동물이 살기 위해 찾아드는 곳이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신문만 펼쳐 들면 지구가 망가지는 기사가 나온다. 나무가 우거진 지역은 몇 달째 불에 타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끌 수가 없고,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먹이를 찾는 코끼리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쓰레기를 태우면서 나오는 연기는 앞을 보기도 힘들고 우리의 미래도 연기 속에 싸여 실루엣처럼 희미하기만 하다.바닷물에 떠밀려 해변으로 밀려난 고래의 배를 가르면 플라스틱과 비닐봉지가 쏟아진다. 더는 고래가 살 수 없는 바다에 사람들은 온갖 쓰레기를 쏟아붓는다. 멈추지 않는 인간의 행위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생명을 줄인다. 그런데도 지구를 괴롭히는 인간의 행동은 멈추지를 않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는데도 나는 아직 살만하다고 여기며 그러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순천은 다르다. 순천시는 흑두루미를 부르기 위해 높이 솟은 전봇대를 지하로 숨기고, 지역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농약을 치지 않고 논의 피를 뽑게 한다. 열심히 지은 농작물을 겨울철 흑두루미의 먹이로 준다. 순천 사람들이 곡식을 주어 흑두루미가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핀다.람사르 습지 지정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습지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관청과 주민들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얻고 생활의 불편함을 덜어주며 시의 정책에 함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결과다. 자연 친화적인 생태관광 도시로 만들려는 순천시의 노력 덕분이다.순천만의 수백 마리의 흑두루미는 노력한 인간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몇 마리에 불과한 흑두루미를 수백 마리로 불려준다. 듬성하던 갈대 군락이 바닷가까지 늘어난다. 갯벌에서 게는 뛰어다니고, 땅이 제대로 숨을 쉬고 땅에 기대어 사는 생물의 수가 늘어난다. 물속에서도 삶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사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살아있는 것들의 어울림이 주위를 가득 메운다.“환경을 살리는 생태관광, 지역 주민에게 이익이 되는 지역 기반 관광으로 여행의 콘셉트와 가치가 다른 최고의 순천을 만들어 가겠다”고 한 순천시장의 말보다 앞선 행동이 오늘의 순천만을 만들었다. “순천처럼 하세요”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순천을 돌아보고 느끼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가을은 순천만의 갈대를 보고 싶다. 흥겨움에 겨워 춤을 추는 갈대 사이에서 오염된 자연을 벗어나 자연의 조화를 느끼고 싶다. 순천만의 아름다운 낙조를 보며 절박한 마음으로 지구를 위해 따뜻한 손을 내밀기를 기대한다.

2023-11-13

동빈내항과 포항운하 이야기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필자가 포항을 처음 방문한 것은 몇 년 전, 동해안 자전거 종주 때였다. 최북단 고성에서 출발해 4박 5일 동안 동해안 자전거길을 달려 포항에 이르렀다. 영덕과 흥해 지역을 지나면서 파란 동해 바다와 전원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포항 시내에 진입한 것은 밤 열 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모텔이 밀집한 지역에 숙소를 잡았다. 돌이켜 보면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였던 듯하다. 죽도시장에서 생선회로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열려 있는 식당이 없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당시에는 ‘동빈내항’이라는 이름조차 몰랐지만, 은은한 조명이 새카만 수면에 아름답게 반사된 야경이 실망한 나와 일행을 위로해 주었다. 그때의 광경은 내게 포항의 첫인상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포항에 살며 동빈내항이 과거 번창했던 항구였음을 배웠다. ‘포항운하 역사관’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동빈내항은 일제강점기와 1950, 60년대 동안 경북 일원에 식량을 공급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매립으로 인해 형산강과 동빈내항을 잇는 물길이 기능을 상실했고, 주변부는 난개발이 이루어져 낙후된 주거지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양학천, 칠성천의 생활하수가 동빈내항으로 그대로 유입되어 수질 또한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한다. 잘 정비된 지금의 동빈내항과 포항운하 일대를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포항운하는 형산강과 동빈내항 사이의 물길을 복원하여 수질오염을 개선하고, 시민들이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수변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조성 공사를 시작해 2014년에 완공되었다. 현재 이 지역은 포항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꼽힌다. 송도동에 있는 포항운하관에 가면 동빈내항과 포항운하 지역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운하 공사 당시의 사진 등 다양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형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전시관 내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그런데 포항운하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포항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도, 전시자료도, 멋진 전망의 카페도 아니었다. 전시관 외벽에는 운하 공사에 삶의 터전을 내어줘야만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주자의 벽(壁)’이 설치되어 있다. 이 벽에는 지금의 포항운하 자리인 매립지에서 살았던 827세대 주민들의 이름과 집의 위치가 지도상에 세심하게 기록되어 있다.도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다는 말이 있다. 도시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필요와 요구들이 존재하고, 그에 호응해 도시공간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추억하듯, 도시도 이러한 기록과 기억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화려하고 말끔한 모습은 도시가 간직한 이야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된 이야기, 잊혀 가는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포항운하관 ‘이주자의 벽’이 들려준 이주민들의 이야기가 내 기억 속에도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2023-11-13

사법 절차 보호해야 부패 정치 막는다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는 불안한 제도다. 주권자가 맑은 눈을 가져야 제대로 작동한다. 눈을 감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도 눈이 밝은 사람이 더 많다는 믿음 위에 민주주의가 서 있다. 그래도 위험은 찾아온다. 집단적인 편견이 있다. 숫자는 적어도 목소리가 커 과대 대표되는 세력도 있다.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비극으로 끝났다. 집단 편견은 여러 형태로 우리를 덮친다. 오랜 숙제인 지역감정도 그런 것이다.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추종하는 문화의 확산도 영향을 미친다. 열성 팬은 노래가 나올 때마다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냉정하게 비교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가수는 무조건 1등이다.축구·야구팬이 1등 팀에만 몰리지는 않는다. 팬의 사랑을 받는 다양한 가수와 팀이 무대에 올라 다양성을 유지한다. 거기까지가 정상이다. 그러나 상대팀을 공격하는 훌리건으로까지 나가면 스포츠와 문화·예술을 파괴한다. 더구나 정상적인 숫자로만 비교되는 것도 아니다. 앨범 사재기가 있다. 소수라도 목소리가 큰 악착같은 세력이 있다. 억지를 부리는 세력이 과대 대표된다면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민주주의의 중심은 의회다. 민주주의의 요체인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문제는 부패다. 가장 부패하기 쉬운 곳이 정치권이다. 주권을 위임한 것은 국민의 이익을 지켜달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이 권한을 사익을 추구하는 데 쓰는 정치인이 많다. 선출된 권력이지만 사법제도가 막아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공수처를 만든 명분도 그런 것이다. 부패 정치인의 눈에는 이것이 눈엣가시다. 정치가 사법 질서를 흔들면 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 사법의 신뢰도도 추락한다.1976년 2월 4일 미국 상원 공청회에서 록히드사가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일본 정계에 뿌린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에게 5억 엔(약 50억 원)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총리이던 74년 자기 가족 기업 땅에 건설성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땅값이 수십 배 폭등하는 등 비리가 드러나 사임한 상태였다. ‘청렴한 미키’라는 별명이 붙은 후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총리는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다수파였던 다나카파는 ‘표적수사’, “너무 까분다”라고 비난했다.도쿄지검 특수부는 다나카를 체포해 정치부패를 막는 보루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6개월 수감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다나카는 여전히 정계의 배후 실력자로 활동했다. 83년 1심 재판에서 다나카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상고가 진행 중이던 93년 사망하면서 재판이 끝났다. 최대의 파벌을 형성한 다나카는 ‘금권정치’, 파벌정치의 한계를 보여줬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정적에 대해 불법 침입·도청을 한 ‘워터게이트사건’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려 했다. 그러나 해임을 지시받은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차례로 이를 거부하며 사임했다. 결국 장관 직무대행인 차관보를 통해 특검을 해임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사법 방해행위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민주당은 9일 이재명 대표 수사를 총괄하는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10일 공수처에도 고발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해 표결이 무산되고, 자동 폐기될 처지였는데, 이를 철회하고, 30일 본회의에서 꼼수로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편법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법 방해다. 이 차장검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 심판 전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그때까지는 ‘쌍방울 대북송금 대납’ 의혹, ‘경기도청 법인카드 사적 유용 묵인’ 의혹 등 이 대표 수사가 모두 중단될 수밖에 없다. 명백한 사법 방해다. 민주당이 탄핵 이유라고 적시한 의혹을 보면 처가 고용인 범죄기록 조회, 스키장 리조트 이용 청탁, 처가 운영 골프장 부정 부킹, 위장전입 등이다. 이게 국회가 나서서 검사를 탄핵할 이유가 되나. 팬심에 매달리면 극단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눈을 뜨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12

제국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박진홍부국장 인류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국주의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최초의 제국은 BC 2250년 메소포타미아의 사르곤 대제가 다스렸던 아키드다.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대부분, 이란과 터키 일부 지역을 지배했다. 뒤를 이어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힛타이트, 페르시아 등이 메소포타미아 고대 제국의 바통을 받았다.BC 550년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대왕은 ‘피정복민들은 우리 신민이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남겼다. 아마 키루스 대왕은 대제국에 병합되면 ‘당시 중소 민족·국가들간 치열했던 생존 전쟁 위협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보인다.제국주의의 요건은 무엇일까? 다른 문화 정체성을 가진,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다민족·다국민들을 지배하면서 영토 확장에 공격적인 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 때문에 제국들은 단일 정치체제로 수많은 민족과 지역들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가치와 다양성, 개방성, 표준화 등을 지향할 수 밖에 없었다.로마제국을 예를 들면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기 전까지, 다신교를 신봉했다. 또 피정복민들에게도 일정 세월이 지나면 로마 시민권을 부여할 정도로 개방적인 사회였다. 심지어 48년 클라우디우스황제 때가 되면 피정복민 골족 출신이 권력 핵심 원로원에 입성했고 2세기에는 식민지 이베리아반도 출신이 잇따라 황제까지 된다.식민지에 대해서도 세금과 국방을 일부 부담하는 조건으로 지방자치를 허용했다. 다만 로마제국은 3·4세기 2차례 기독교 탄압으로 기독교인 수천명이 죽음으로써 매우 폭압적인 체제로 비쳐지는 오명을 썼다. 하지만 당시 다신교였던 로마제국은 일신교인 기독교가 체제 유지에 부담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 기독교의 인류 평등의 가치는 신분제 붕괴를, 군 복무에 부정적인 태도 등도 문제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중·근대 유럽의 신·구교 종교전쟁으로 기독교인 수백만명이 서로 학살하거나 죽임을 당한 점을 감안하면, 로마가 패쇄적인 체제라고 볼 수는 없다.우리 현대인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아마 과거 제국들이 식민지 정복 과정에서 보인 참혹한 전쟁과 노예화, 대량 학살 등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서구 열강들의 무자비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식민지 수탈과정은 여전히 많은 분노를 자아낸다.그럼에도 불구, 제국의 속살과 후세에 미친 영향 등을 돌아보면 긍정적인 면이 없지도 않다.최소 수십년이 걸렸던 피정복민들의 동화과정이 고통스러웠지만, 제국들은, ‘세계적인 통합과 협력’을 이뤄냈다. 인류 첫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3천여년동안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제국들을 중심으로 이합집산 하면서 ‘통합 문화’를 만들어냈다.BC 7C∼AD 5C 고대 세계 중심지였던 지중해의 수많은 민족들도, 폐르시아·그리스·카르타고·로마 등에 병합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닮은 꼴이 돼 갔다.중국의 경우 BC 20C경 상나라가 통치한 황허강 주변 사람들만 한족(漢族)이었으나,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변방 이민족들까지 한족(漢族)으로 동화 돼 갔다. BC 221년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했으나, 본래 한족(漢族) 입장에서 진제국 역시 중국 북서쪽에 위치한 변방 이민족이 만든 나라에 불과했던 것.중국은 이후 2천년 동안 또다른 수많은 이민족·지역들을 정복 했으나, 현재 중국인 90% 이상은 스스로 한족(漢族)으로 여기고 있다.또 인류의 중요 문화 유산들이 제국의 잉여경제에서 생산 됐음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영어는 로마제국의 라틴어에서, 동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은 현재 과거 자신을 정복했던 한나라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세 유럽 합스부르크제국은 주변 지역을 지배하며 얻은 잉여 경제력으로 모차르트와 하이든에게 월급을 주고 작곡케 했다.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깔끔하게 분리하는 것도, 인도 역사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사실 불가능하다. 고대 인더스문명을 만든 드라비다족은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침입해 온 아리아족에게 정복됐다. 카스트제도와 힌두교 등을 믿었던 아라아족 왕조는 16C초 중앙아시아에 발흥한 이슬람 무굴제국에게 멸망 당했다. 다시 무굴제국은 1857년 대영제국에게 정복되면서, 인도의 정복과 피정복 역사는 뒤죽박죽 돼 버렸다.인류사에는 정의가 없었다. 정복과 피정복의 끝없는 반복 뿐 이었다. 제국주의는 우리 사피엔스종의 이기적 본성, 끝없는 탐욕 때문에 탄생했다.역설적이게도 그 탐욕이 인류사에 많은 발전도 가져왔다.

2023-11-12

“종점에서 처음으로”

이희정시인 일찌감치 배추를 뽑고더는 밭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알량한 텃밭이다그래도 봄이면 쌈채 모종을 심거나 씨를 뿌리면서무슨 우주 같은 농사꾼인양 했다그리고 가을이 왔다쌈채 농사 끝나고 배추를 심어 구십일도 되기 전벌레한테 모두 먹히기 전일찌감치 뽑아내 입에도 한 잎 집어넣는 일요일 오후가을처럼 하느님이 왔다―고운기, ‘종시(終始)’전문 (고비에서, 2023)움직이지 않는 자는 다치지 않는다. 고운기(1961~)의 시편을 읽으며 상처받은 언어의 모습을 떠올린다. 시인은 최근 시집 ‘고비에서’자신의 투병에 대한 씁쓸한 고백과 담담한 상념을 총 6편의 시집과 같은 제목의 연작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병(病)중에 겪은 여러 고비에 대해 어떤 의미의 가벼움과 무거움도 가늠하지 않고 있다. 병을 앓고 난 후의 심경이 그렇다. “그 어떤 기대치의 높낮이도 자리할 수 없음은 깨달은 자의 미학적 실천에 해당한다.”는 최현식의 말처럼 한 인간이 생의 고비에서 최고점(Over the hill)을 찍고 난 후라면 시업(詩業)과 생업(生業)의 현장 정서는‘알량한 텃밭’으로 여겨지지 않겠는가. 그렇다, 시인에게 병을 앓기 전과 후의 대상은 다른 지평으로 놓인다. 그것이 일이든 사물이든 병을 앓기 전에 우주처럼 경작하던 모든 것들이 대수롭지 않은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는 정제된 미의식으로 삶의 의미를 꿰뚫고, 자연의 순환과 경이를 다잡는다.암 투병으로 인해 생과 사를 다투던 시인은 제목을 종시(終始)라고 달았다. 제목을 좇아보면 “종점(終点)이 시점(始点)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고 했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노래했던 시인 윤동주의 산문 종시(終始)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의 1955년 오리지널 디자인을 증보한 시집(2022) 속의 산문 첫 구절이 그렇게 시작된다. 병을 앓고 난 후 다시 시업으로 돌아온 고운기 시인이 종시를 불러온 연유가 여기에 있음이리라.위 시 속의 화자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보다 높이 있는 ‘가을(하느님)’의 일부이며, 그것보다 아래에 있는 ‘배추’의 일부이다. 고운기 시인에게 ‘배추’는 거대한 몸이고 ‘밭’은 경작지이다. “일찌감치 배추를 뽑고 // 더는 밭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소위 자연의 문법이다. 자연이 크고 단순한 걸음으로 지나갈 때 그동안은 순종하는 농사꾼처럼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으며 “무슨 우주 같은 농사꾼인양 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이 시를 짓는 일이든 대학에서 학생을 경영하는 일이든, 밭을 경작하는 일이든 매한가지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현실은 그것 너머의 어떤 것 때문에 존재하므로,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는 결과인 현실 속에서 원인인 궁극을 읽는다. 벌레가 와서 배추를 파먹는 지극히 단순한 풍경 속에서 시인은 배추가 사라지는 “우주”를, 그 순간의 ‘초월’을 그려낸다. “가을”은 그런 초월이 성취되기에 적절한 시간이다. 제목에서도 그는 ‘종시’라고 시를 직조할 때부터 그는 저 하느님의 눈으로 저 아래 지상의 사물들을 바라보고 그것을 다시 하늘이라는 가을로 되돌린다. 지상의 사물들은 대자연의 구현물이므로 같은 속성을 지닌다. 시인은 지상의 사물과 초월적 자연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다.의식이 자신을 비우고 겸허해질 때 화자는 전유(專有)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화자는 공포가 사라진 순수의 공간에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몸의 언어는 모든 현재를 과거로 만든다. 그것은 자신의 몸이 암이란 병에 먹힌 때처럼“쌈채 농사 끝나고 배추를 심어 구십일도 되기 전 // 벌레에게 먹히기 전”“일찌 감치 뽑아 // 내 입에도 한 잎 집어넣는”다고 했다. 그는 평화로운 안식일을 그렇게 맞고 있다. 시인에게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종점, 이미 겪어본 벌레의 역습으로 인한 투병의 경험이다. 몸의 언어는 채워지지 않는 시작점의 언어, 병마 후의 언어이므로 동시에 유토피아의 언어이다. 그렇게 시인에게 가을이 다시 왔다.“내 입에도 한 잎 집어넣는 일요일 오후, 가을처럼 하느님이 왔다”

2023-11-12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유영희 작가 연일 터져나오는 여당 발 현대사 쟁점에 등 떠밀려 역사를 공부하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육사 안에 있던 홍범도 흉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자유시 참변을 공부하게 하더니, 백선엽의 친일 기록을 삭제해 간도특설대를 다시 들춰보게 된다. 백선엽은 1943년 간도특설대에 참여해 독립군을 토벌한 행적으로 친일행위자로 이름이 올랐다.백선엽의 친일 행적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만, 이번 논란의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 직속으로 설립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와 관련이 있다. 이 위원회는 5년 간의 활동을 마치며 친일반민족행위자 1천6명을 발표했는데 현충원 안장자 중 백선엽을 비롯한 12명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백선엽은 99세 나이로 2020년에 사망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당시 국가보훈부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12명의 안장 정보에 모두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라는 문구를 기록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백선엽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시작되어 백선엽 추모식을 챙기더니, 지난 6월에는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을 설립했고, 7월에는 백선엽 안장자 기록에서 이를 삭제했다. 이에 대해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를 비판하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립묘지에 전과기록을 기재한 사람이 없다”면서, “최초 기재 행위 자체가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졌다”고 대답한 것이다. 알고 보니, 다른 11명의 기록은 삭제하지 않았다.이런 기록이 부당하다면 12명 친일 기록을 다 삭제해야 할 텐데 왜 백선엽 기록만 삭제했는지도 의문이고, 아무리 전 정권의 결정이라고 해도 이미 오래 전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조사 결과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한순간에 뒤집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런 결정은 국가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문제인데, 이렇게 합의 과정 없이 졸속으로 그것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처리한 것이다.친일행위자로 판정되었으면서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을 둘러싸고 여권에서는 기존 친일 평가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고 나섰고, 민주당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현재 친일 묘지는 이전하라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라 접점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역사의식을 가지면, 지금 현실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들을 고뇌하고 번민하게 된다”는 어느 언론인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정치인들은 자신이 지금 하는 선택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갈지 고뇌해야 한다. 윤동주처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보는’ 자아 성찰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라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번민해야 한다. 국가경쟁력은 해마다 떨어지고, 하루하루의 삶이 팍팍하기만 한 민초는 정쟁에 갇힌 정치인의 행태가 부끄럽기만 하다.

2023-11-12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으로 여는 새로운 길

정상철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은 무엇을 통해서 느끼는 것일까?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소한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행복도 소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족, 친구, 연인 등과의 관계에서 사랑과 소통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람들에게 큰 만족감과 행복을 주는 요소이다. 가정주부가 전자상가에서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이 있는 냉장고를 보면 고가임에도 구매하게 된다. 그것은 생활의 편리함과 행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보면, 중대재해 3법이 통과되고 발효되면서 수많은 기업주들이 구속을 피하기 위해 여러 활동들이 산업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고위험 수작업을 자동화 하여 원천적으로 위험 작업장을 개선하여 사고를 방지하는 것으로 디자인 씽킹 툴(Design Thinking Tool)을 활용해 문제를 풀어간다.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란 무엇인가. 현재의 상태를 더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인간을 생각의 중심에 두고 인간에 대한 공감을 통해서 새로운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여 혁신하는 사고방식과 툴들의 집합으로 정의 한다. 인간의 생각과 미래의 가치, 기술의 균형을 이루는 특징이 있고, 직관적 사고를 통한 숨어 있는 문제 발굴과 분석적 사고를 통한 문제해결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 씽킹의 문제해결 과정은 다음 단계로 이루어진다.첫 번째, 이해와 공감(Empathize): 사용자의 니즈와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와 관찰을 통해 사용자를 탐색하고, 사용자와의 공감을 형성한다. 두 번째, 문제 정의(Define): 사용자의 요구사항과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한다. 이 단계에서는 사용자의 관점과 필요성을 파악하여 핵심적인 과제를 도출한다. 세 번째, 아이디어 도출(Ideate): 다양한 관점과 창의성을 활용하여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브레인스토밍, 아이디어 스케치, 아이디어 보드를 사용해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조합한다. 네 번째, 실험과 검증단계(Prototype): 아이디어를 설계하고 실제 프로토타입(시제품)으로 제작해 테스트한다. 사용자의 피드백을 수집하고, 프로토타입을 수정하며 개선해 나간다. 다섯 번째, 구체화와 개발 단계(Test): 프로토타입의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솔루션을 구체화하고 개발한다. 사용자의 요구사항과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얻는다. 각 단계는 반복되며, 문제의 복잡성에 따라 여러 번 반복되기도 한다. 사용자 중심의 솔루션이 도출되고, 실패를 통해 학습하며 개선하는 반복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상황이해·아이디어 발굴·아이디어 설계·시제품 개발·테스트·적용 등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사용자중심 니즈(Needs)를 반영하여 냉장고 기능과 디자인을 새롭게 하여 삶의 편리성과 행복수준을 높여간다. 제조현장에서도 고위험 수작업을 자동화 아이디어를 설계하고 자동화장치를 개발하여 사람을 안 다치게 하는 사회적 욕구수준을 향상시키는 디자인 씽킹 툴은 행복한 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길이다.

2023-11-12

사마귀를 추모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입동(立冬)이었던 11월 8일 된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올해 들어 처음 내린 서리였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마당에 나선다. 휴대전화 사진기로 루드베키아 노란 꽃과 이파리, 망초와 머위 큰 잎에 내려앉은 서리를 담는다. 불과 며칠 전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청년들이 적잖았는데, 순식간에 일기(日氣)가 급변한 것이다.지구 온난화의 폐해가 세계 전역을 휘감고 있는 시절의 난맥상을 우리도 확연하게 경험하고 있다. 늦가을에도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오래전에 사라진 빈대까지 출몰한다. ‘팬데믹(pandemic)’에서 따온 ‘빈데믹’이란 신조어가 나왔으니, 한국인들의 응용력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다. 특허 능력은 없지만, 실용신안 면(面)에서는 명불허전(名不虛傳) 최고다.마침내 겨울이 오긴 온 것이다. 입동 당일에 된서리가 왔으니, 24절기 가운데 하나는 멋지게 맞췄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든다. 사흘이 지난 11일 아침에도 된서리가 내려 초록의 잔디가 하얗게 채색된다. 시절의 변화에 가속이 붙는 양상이다. 차가운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불원초(不願草)를 하나둘씩 뽑다가 아연 놀라고 만다.잔디 위에 사마귀가 잠자듯 고요하다. 미동도 없기에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본다. 그래도 움직임이 없기에 살펴보니 엎드린 채 죽어 있다. 간밤에 부쩍 내려간 냉기를 견디지 못해 이 세상과 작별한 것이다. 집이 없는지, 혹은 집으로 가는 길에 죽었는지 모르지만, 사마귀는 푸르른 하늘과 새털구름과 햇빛과 바람 아래서 생을 마감한 게다.사마귀의 마지막을 동행한 것은 무엇이며, 그 순간 사마귀를 찾은 상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고사성어로 친숙한 사마귀가 겨울 초입에 허무하게 세상과 작별하니 마음이 제법 쓸쓸하다. 한여름에 당당한 자세로 나를 향해 앞다리를 곧추세우던 녀석들의 자태가 눈에 밟힌다. 제 분수를 알게 되면 녀석들은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죽음과 소멸에는 허전함과 아쉬움과 쓸쓸함이 동반한다. 지금부터 53년 전 오늘 1970년 11월 13일 대구 출신의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이 청계천에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외치면서 분신(焚身)을 감행한다.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살면서 동료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하고자 싸웠던 전태일! 그는 자신의 외침에 아무런 반향도 보이지 않은 정부와 업주들에게 가장 처절한 형식의 죽음으로 항거함으로써 부당함을 고발한 것이다.그가 세상을 버린 지 반세기가 가까워진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숱한 정치적 격변과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1천1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엄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가까스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20:80의 사회에서 1:99의 부도덕한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사마귀의 죽음이 불러온 상념이 전태일과 노동자들 그리고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모순에 이른다. 언제나 우리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환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오면!

2023-11-12

대구 도심~신공항간 항공교통시대 열린다

도심항공교통이란 수직 이착륙기를 활용해 지상의 저고도 공중에서 사람과 화물을 이동하는 도심교통 시스템이다. UAM(Urban Air Mobility)이라 하기도 하고 플라잉카, 에어택시 등으로도 불린다. 도심의 교통체증과 물류비용 증가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서도 일찍부터 추진 중인 분야다. 배터리와 모터를 활용해 친환경적이다. 탄소중립시대에 적합한 교통방식으로 주목받는다. 우리나라도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서울 상공에서 UAM 상용화를 위한 실증작업을 추진한다고 했다.대구시는 지난주 대구도심과 대구경북 신공항을 20분 이내로 오가며 여객과 물류를 수송할 수 있는 미래친환경 (도심항공교통) 상용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대구시에 따르면 2030년 신공항 개항 시점에 맞춰 도심항공 상용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계획 아래 5군데 UAM 상용화서비스 거점지역을 선정했다. 동대구역과 K-2후적지, 시청 신청사, 서대구역, 도심 군부대 이전지 등이 지목됐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성못, 테크노폴리스 등 대구의 또다른 도심과 경주, 포항, 울산 등도 확대지역으로 추진할 계획이라 발표했다.대구시는 지난해 10월 SKT, 한화시스템, 한국공항공사, 티맵모빌리티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UAM 생태계 조성 및 공동사업 기반 구축에 이미 나선 바 있다. 특히 모빌리티산업 등 첨단산업 육성에 초점을 둔 대구시의 산업 전략상 도심항공교통 산업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갈 필요성이 높다. 마침 대구는 신공항 개항을 앞두고 있어 도심항공교통의 수요가 많은 장점이 있다. 영남권과 충청권 등의 신공항 이용률을 높이는 데도 상당한 기여가 있을 것이 예상된다.지역의 자동차 부품산업과 연계해 도심항공교통 산업의 기술적 우위를 점하는 한편 관련 기업 유치와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UAM산업은 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분야다. 대구시는 지방 최초로 UAM 상용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자부심으로 도심항공산업에 더 집중하길 바란다.

2023-11-12

짠테크 유행

우정구 논설위원 불경기 심화와 고물가 등의 영향으로 직장인들 사이에 짠테크가 주목을 받고 있다.짠테크는 소비자가 단순히 안 써서 아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낭비를 최소화하여 재물을 모으는 새로운 형태의 재테크 방식의 하나다. 돈에 있어 인색하다는 뜻의 짜다와 금융거래로 이득을 낚아채는 재테크가 합쳐진 신조어다.수년 전 유행했던 욜로(YOLO)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욜로는 ‘인생은 한번 뿐이다(You Only Live Once)’는 뜻으로 미래 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자기 중심적 소비패턴이다.최근 한 트렌드 조사기관이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10명 중 9명이 지금은 재테크 필수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응답했다.응답자에게 “소비와 낭비를 줄이는 지출을 경험해 봤느냐”는 물음에 대해 98.5%나 “그렇다”고 답했다.특히 주목 가는 대목은 잔돈적금 등 앱서비스를 통해 포인트를 현금화하는 앱체크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10명 중 9명이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에 믿음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고, 짠테크를 실천하는 사람을 안쓰럽거나 궁상 맞아보인다는 생각보다 대단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불경기가 좀 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짠테크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여겨진다.고금리, 고물가, 경기침체와 가계소비 둔화 등으로 국내 전반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소비 현상이다. 불황기에 적응하려는 소비자들의 절박함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1-12

與혁신과제 수용, 당 주류들이 솔선수범을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지난 주 청년정책과 관련한 ‘3호 혁신안’을 내놨다. 청년 비례대표 50% 의무화와 청년 전략지역구 선정, 각종위원회 청년참여가 주요내용이다. 그동안 1·2호 안건은 정치적 의미가 강했지만, 3호 안건은 청년 정치참여를 제도화하기 위한 정책적 성격이 짙다. 혁신위는 발표 전날인 지난 8일 경북대 학생회 소속 재학생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 ‘체계적인 청년정치인 육성시스템 도입’과 관련한 의견을 들었었다. 3호 혁신안은 오늘(13일) 최고위 안건으로 상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경북대생 간담회에서도 일부 학생이 “청년이라고 해서 우대받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난다”며 이의를 제기했었다. 첫째 안인 청년 비례대표 50% 할당은 청년 비례대표를 우선적으로 공천하는 방식으로 해서 청년들이 정치 현장에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안건인 청년 전략지역구는 국민의힘 우세 지역 중에서 일정 지역구를 45세 이하의 청년들만 경쟁할 수 있도록 ‘청년 공개경쟁 특별지역구’를 선정하자는 내용이다. 혁신위가 특별지역구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보수진영이 우세한 영남지역과 서울 강남권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과거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도 여야는 청년들의 정치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할당제 등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의 본질인 민의대변을 위해서는 다양한 연령대가 의석을 차지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의원이 너무 적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5세 이하 의원이 10% 미만인 나라는 한국뿐이다.그동안 혁신위가 출범한 후 보름여 동안 많은 쇄신과제를 제안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문제다. 혁신위의 쇄신안에 대해 주류의원들이 큰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정치 발전을 견인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당 지도부와 중진, 친윤(윤석열)계 의원들이 앞장서서 혁신과제에 대한 수용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2023-11-12

대한민국 버전 IRA(인플레 감축법)가 필요하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미국도 유럽 선진국들과 함께 예외 없이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었으나 민주당 정부는 적극적이었고 공화당 정부는 역행했다. 부시 대통령은 교토의정서에 참여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다. 따라서 미국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이 선진국 중에서 매우 뒤처졌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일이 파리기후협약 복귀였고 모든 정치력을 기울여 IRA를 시행하고 있다.IRA는 미국 연방정부 주도로 2022년부터 2031년까지 500조원(현 환율 기준)을 투입하여 지난해 기준 현재 22%인 재생에너지를 2030년 60%까지 달성하고자 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재생에너지 발전인데, 태양광의 경우 2022년 1천750만KW에서 2031년 7천500만KW까지 순차적으로 확대 설치, 둘째 재생에너지 기반 디지털화한 스마트 그리드(전력망) 설치, 셋째 충분한 전기차 충전소(에너지 저장소) 설치, 넷째 막대한 전기차 보조금 지원을 통한 전기차(움직이는 에너지 저장장치) 보급 확대다.이를 통해서 재생에너지 기반의 새로운 첨단 산업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코로나19로 풀린 막대한 자금을 에너지전환과 미래 산업 투자로 이끌어 내고 인플레이션도 감축시키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미래 산업 투자전략이다.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는데 대해 기존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산업계의 반발과 석유, 석탄, 가스 관련 산업 등 좌초자산의 퇴출 저항을 주정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점도 있다. 그래서 연방정부가 강력하게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신재생 에너지 정책의 기본인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의 기본적인 인·허가권을 지방자치제도의 원칙에 의거하여 일선 시, 군, 구에 부여하고 있다.기초자치단체인 시, 군, 구가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경쟁을 했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그간 시, 군, 구는 그 권한을 재생에너지발전 사업을 규제하는 쪽으로 경쟁적으로 사용하여 구미시의 경우 이격거리를 벗어나 발전 사업이 가능한 지역이 도시 면적 전체의 0.09%에 불과한 상황까지 왔다.또한 시, 군, 구의 협상력으로는 산업화시대에 적합하게 설계된 한국전력 중심으로 수직계열화 된 전력 송·배전망을 재생에너지기반 에너지전환 시대에 적합한 수평화 된 ‘디지털화한 스마트 그리드’를 한전에 요청할 협상력도 부족하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지역은 송전선로 부족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한전 또한 수백만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 구성될 수평적인 재생에너지 기반 디지털화한 스마트 전력망으로 송·배전망을 재구축할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차제에 미국의 IRA와 비슷하게 법과 제도 정비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활성화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현재 시, 군, 구의 조례를 통한 각종 이격거리 규제로 재생에너지를 설치할 땅이 없고, 한전의 송전선로 부족으로 재생에너지발전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도 미국처럼 법과 제도 정비를 통해 새롭게 정책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먼저 우리 기업들의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국 산업단지의 장·단기 RE100 수요파악부터 해야 한다. 파악된 수요를 바탕으로 모든 이격거리 규제를 폐지한 뒤 첫째, 도시와 산업단지 주변 농지에 재생에너지 수요에 적합한 만큼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조성하도록 한다.둘째,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과 농지태양광 발전단지 간에 직접 PPA 방식의 새로운 그리드(전력망) 구축을 활성화한다. 셋째, 전국 곳곳에 재생에너지 충전소 구축 사업을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충분할 정도로 활성화한다. 넷째, 국내 차량들을 가능한 한 빠르게 전기차로 교체 가능하도록 전기차 보조금을 확대한다.지금 세계는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난리가 난 상황이다. 미국은 IRA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새로운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안면몰수하고 있다. EU는 유럽판 IRA(Net Zero Industry Act)를 통해 유럽의 산업보호와 새로운 산업생태계 구축에 여념이 없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논의만 분분한 채 탄소중립 정책은 끊임없이 갈지자 행보만 하고 있고 에너지전환정책은 거대한 화석연료 발전사들에게 발목이 잡혀 논의만 가득한 가운데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미국의 경우 국고를 500조원이나 직접 투입하는 충격요법을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첫째, 농지태양광 발전단지 조성, 둘째, 산업체와 발전단지 간 직접 PPA 방식 스마트 그리드 구축, 셋째, 전기충전소 설치 등에 “기후금융”을 활용하면 국가 재정 부담은 거의 없이도 탄소중립 달성이 가능하다.불필요한 이격거리 해제하고 전면적인 농지태양광을 허용하는 등 법과 제도만 선진국 수준으로 정비하고 정부에서 제도 활용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 보다 발전된 첨단 제조업과 디지털화한 산업 환경을 활용하여 단시일 내에 탄소중립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급히 대한민국 버전 IRA(인플레 감축법)가 필요한 이유다.

2023-11-12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하버마스 그리고 포항

유성찬 (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발터 벤야민(1892∼1940), 호르크하이머(1895∼1973), 아도르노(1903∼1969년), 에리히 프롬(1900∼1980), 마르쿠제(1892∼1979) 등 학자들은 프랑크푸르트 대학과 인연이 깊다. 그 대학 사회연구소의 회원이고, 독일인들이다. 부유한 유대인의 자제들이기도 하다. 세계사에서 이 사람들을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부른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히틀러의 나치 집권 후에 1933년부터 학문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출신 유대인 학자들이다.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 후, 대부분 다시 독일로 돌아와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사회비판이론을 연구하게 된다.여기 또 한 사람의 학자가 있다. 유대인은 아니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정통계승자로 불리운다. 현재 생존해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94)가 바로 그 사람이다. 2006년에는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바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부유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특이한 점은 어린 시절 나치소년단의 단원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속에서 나치소년단원은 독일패망 전에 ‘베를린사수’ 전투로 내몰려 총알받이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버마스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치즘의 실체,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사회적, 정치적 의식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파시즘과 사회비판이론을 연구하게 된다. 이후 좌파로부터는 수정주의자로 우파로부터는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하버마스는 실존주의를 넘어 현대사회의 ‘인간의 수단화’, ‘인간소외’에 대항해 학문적 과제를 만들어 내었고 이를 사회비판이론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하버마스의 핵심은 의사소통이론과 공적토론영역(공론장) 이론이다. 또 이 이론들은 현대의 언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에도 영향을 많이 끼쳤다. 프랑스 계몽시대의 공론장은 부르주아지(bourgeoisie)들이 모여서 맥주와 커피를 마시며 논쟁하던 살롱이며, 현대의 공론장은 신문과 라디오, TV방송이다. 약 20여년전부터는 인터넷시대에서 SNS, 모바일톡으로 공론장이 역사적으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려면 공론장이 그에 맞추어 잘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인간의 이성(理性)은 ‘진위(眞僞), 선악(善惡)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말하고, 합리(合理)는 ‘논리적 원리나 법칙에 잘 부합함’을 뜻한다. 사람이 참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알고 그 이치에 부합하여 살아간다면 그 자체가 대동세상이자 선(善)한 공동체일 것이다. 실제 참된 인간이라면 현실사회에서 ‘벽에 부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폭력적 쟁투보다는 평화적인 ‘의사소통행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의사소통이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역할을 바꾸어가며 자신의 주장을 하게 되고, 또 상대방 주장을 비판하고, 주장에 대해 이유를 물으면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말한다.어떤 사회적 문제를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인내와 시간이라고 말하겠지만 필자에게는 ‘하버마스’와 사회비판이론이다. 현대사회에서 하버마스와 의사소통이론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인간세상사가 다 복잡하게 섞여 돌아가도 이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사회적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면 해결되지 않을 일이 없다는 긍정적 논리이다.시민들의 투표로 포항시청과 포항시의회가 만들어져 있다. 포항시청과 포항시의회는 합리적인 행정행위를 통해서 대부분의 포항시의 문제들을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근원적인 힘은 참여민주주의의 원리속에서 시민들이 직접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한 행위이다. 즉 시민의 참여가 힘인 것이다.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이성과 이치에 맞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참여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자발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진실되고도, 당연히 힘이 세다. 이성과 합리성이 왜곡되지 않는 공론의 장(場)이 포항지역사회에 활짝 열리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포항시의 행정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여기까지는 논리적으로 쉽다.문제는 행정행위로도 해결이 잘 안되는 사회적 사안(事案)들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의료폐기물처리장, 음식물쓰레기처리장, SRF발전소 등 환경문제는 포항시민들의 건강권, 환경권과 직결되고, 부동산 가격의 상승, 하락과 연결되기에 재산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시민들의 촉각은 바로 반응하고 저항하게 된다.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론과 공론장이 더욱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포항시와 포항시의회의 활동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관변단체, 지역언론, 기업, 시민, 학자 등 포항지역사회를 대표하는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합리적으로 참여하는 공적토론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폐쇄구조가 아니라 열린사회, 열린토론의 공론장이 있어야 해결이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마스를 본받는 것이 해결의 지름길인 것이다. 단 이성과 합리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진리이다.

2023-11-12

“청년 현안은 정치참여가 아니라 일자리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가 그저께(8일) 경북대에서 학생들과 토론시간을 가진 뒤, 대구시 산격청사로 이동해 홍준표 시장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 혁신위가 대구를 찾은 것은 최근 인 위원장이 여당공천과 관련,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는 발언을 한 이후 싸늘해진 이 지역 민심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혁신위는 이날 경북대 학생회 소속 재학생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는 체계적인 청년정치인 육성시스템 도입 필요성, 청년들과의 소통부족, 취업·집값·국민연금 문제등 청년현안 해소대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메뉴였다고 한다. 지방대학 자율성 등 지역균형발전 문제, 대기업 지방이전, RD 예산삭감 문제 등도 언급됐다고 한다.인 위원장은 학생들과의 간담회 후 곧바로 홍준표 시장을 면담했다. 홍 시장은 이 자리에서 평소처럼 친윤계 인사들을 집중 비판하면서,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는 세력을 정리해달라. 그들이 설치는 바람에 당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허리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홍 시장은 인 위원장이 두세 차례 도움을 요청하자 “박사님 만나서 말씀드리는 게 도와주는 거죠”라고 했다. 홍 시장은 인 위원장과 비공개 면담을 한 후 기자들과 만나 “당 지도부가 전권을 줬으면 혁신위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칠전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 10년간(2013∼2022년) 수도권으로 순유입된 20대 청년이 60여만명에 달했다. 비수도권 광역시 중에는 대구의 순유출 인구가 6만6천명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청년들이 짐을 싸서 수도권으로 가는 이유는 두말할 필요 없이 양질의 일자리 때문이다. 문제는 청년들이 경쟁관계가 치열한 수도권에 몰리다 보니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현상이 심화한다는 점이다. 여당 혁신위는 지금 청년들의 최대현안이 정치참여가 아니라 일자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국정운영에 중요한 과제를 제시할 인요한 혁신위는 이번 기회에 청년들의 생각들을 잘 수렴해서 정부정책에 적극 반영하길 바란다.

2023-11-09

맨발걷기 열풍

우정구 논설위원 맨발하면 에티오피아 출신의 아베베 비킬라 선수가 떠오른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그는 마라톤 전구간을 맨발로 달려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선수다. 그의 맨발 투혼은 마라톤 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지금도 그 모습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최근 맨발로 땅의 기운을 느끼며 걷는 맨발걷기 운동이 선풍적 인기다. 신발을 벗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과 자연을 접하며 걷는 편안함 때문인지 맨발걷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춰 지자체의 맨발 황톳길 조성도 곳곳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맨발걷기 열풍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 같다. 이처럼 맨발걷기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성인병 등 각종 질환에 효력이 있다는 경험담이 방송과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면서부터다. 지역에 따라 맨발로 걷는 어싱족 모임이 생기고, 지자체 주관의 맨발 페스티벌 행사도 벌어진다. 어싱(earthing)은 지구표면과 발이 접지한 상태를 표현한 맨발걷기의 신조어다.최근 부산 해운대와 강원 경포해변 등에는 전국에서 맨발족이 몰리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맨발족을 관광사업의 자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사실 포항은 일찍부터 맨발 친화도시를 선언한 곳이다. 2020년 맨발로 걷기 좋은 ‘맨발로 30선’을 선정한 바도 있다. 송도 솔밭숲, 기계 서숲, 양덕 나무은행둘레길, 해도 도시숲 등이 ‘맨발로 30선’에 포함된 곳이다. 특히 포항의 맨발 길은 도심에서 가까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인기다.포항의 닉네임으로 맨발걷기 친화도시가 하나 더 추가돼도 좋지 않은가. /우정구(논설위원)

2023-11-09

정부의 규제 혁신이 지방경제 살리는 길

대구경북에서 그동안 꾸준히 건의해왔던 지역 현안들이 정부의 규제개선사업에 포함되면서 지역투자 활성화에 청신호가 켜졌다.정부는 최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기업의 투자 프로젝트 가동지원방안을 확정하면서 △포항의 이차전지 특화단지 업종변경 완화 △영천 경마공원 지방세 감면 인센티브 부여 △대구연구개발특구 변경 권한 위임 △TK신공항 건설을 위한 예타면제와 고속도로 신설 등을 정부의 규제개선 과제에 포함시켰다고 발표했다.포항의 이차전지 특화단지는 정부가 포항 블루밸리산단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하고 이차전지 기업의 투자를 촉진키로 했으나 산단 내 일부 부지가 업종제한에 묶여 기업 투자가 사실상 제한돼 왔던 문제다. 정부가 해결해주지 않으면 풀 수가 없는 현안으로 이철우 경북지사가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한 내용이기도 하다.또 영천 경마공원 사업도 지방세 감면규모 총량제한 규정에 걸려 3천500억 규모의 2단계 투자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번 규제 완화로 투자가 진행되면 경마공원 사업의 정상화는 물론 1조8천억원 규모 경제파급 효과도 있다고 한다. TK신공항 예타면제와 도로건설 사업 등은 공항개항 목표년도인 2030년에 맞춰 반드시 진행돼야 할 사업들이다. 정부의 규제혁파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내용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될 수 있게 행정절차 과정에서 속도를 내야 한다.얼마 전 한 여론조사에서 국내 주요기업 최고 경영자들은 기업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정부의 규제를 들었다. 우리나라에 규제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진 지 25년이 되었으나 지자체와 기업이 느끼는 불편은 여전하다. 정부가 모든 권한을 쥐고 규제 완화에는 인색한 탓이다.특히 균형발전을 위해선 지방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로 많은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이번에 규제가 풀린 것처럼 더 많은 지역의 현안들이 규제의 선을 넘어 지역으로 넘어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태야 한다. 정부의 과감한 규제 혁신 노력이 지속되길 바란다.

2023-11-09

‘이자장사’ 된서리 맞는 은행들

홍석봉 대구지사장 “고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서민의 주름살이 날로 깊어지고 한숨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지난 7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나온 얘기다. 금융권이 고연봉과 성과급으로 배 두드릴 때 서민들은 한숨만 내쉰다는 지적이다.은행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정부·여당까지 전방위로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고금리에 이자장사로 돈잔치를 한다는 것이 이유다. 윤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 ‘갑질’이라고 지적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금융권을 질타하고 있다. 대통령이 특정 직업군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은행들이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공적인 기능과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다. 이자장사로 돈을 그러모으면서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금융권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주위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나만 배부르면 괜찮다는 탐욕주의에 대한 경고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수준의 약탈이나 다름 없는 이자장사로 수익과 혜택만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금융권은 고금리 기조 덕분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있다. 5대 은행이 올 9월까지 거둔 이자 이익이 30조366억 원. 전년 동기보다 7.4% 늘었다. 30조 원을 넘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금리 상승때 예금금리는 천천히 올리고 대출금리는 더 빨리 올리는 식으로 막대한 예대마진을 챙긴 덕분이다.“중소기업과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활동은 축소해가면서 은행들은 300~400% 성과급을 지급하고 임직원 1인당 평균 연봉 1억 원이 넘는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은 최대 실적을 낸 올 연말에도 성과급 잔치와 연봉 인상은 불보듯하다. 생계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금융사들은 IMF외환위기 당시 16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투입돼 살아 남았다. 현재의 금융사는 국민의 피땀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 금융사들이 제 잇속 챙기기만 급급,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지역 대구은행도 IMF 당시 공적 자금과 지역민들의 우리사주 운동 등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올챙잇적 시절을 외면하고 있는 금융권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은행들이 부산하다. 하나은행과 대구은행 등은 사회적 책임 실천을 위해 상생금융 지원에 나서겠다며 각종 지원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시중은행은 주택담보대출금리를 인하하며 바짝 꼬리를 낮췄다.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속셈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초과이익 환수 방안과 ‘횡재세’ 도입 논의를 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이몽룡은 ‘금술잔의 맛있는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 쟁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성소리 높다’는 시를 지어 변학도의 탐학을 징계하고 다스렸다. 탐욕에 빠진 금융권이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때다. 함께 가야만 멀리 갈 수 있다.

2023-11-09

입동(立冬)의 계절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푸근한 날씨가 이례적으로 계속되며 단풍이 곱게 물들더니 이제 안동에서 첫얼음을 보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평년보다 10여 일이 늦은 얘기이고 전국 곳곳에 첫서리가 내리고 고드름이 열렸다는 추위 소식도 들린다. 대지가 얼기 시작한 모양이다.이제 농촌에서는 1년 농사의 끝맺음으로 콩으로 메주를 쑤고, 찬 서리 맞은 배추와 무를 절여 김장을 담그는 계절이다. 입동(立冬) 전후 닷새 이내가 가장 맛 좋다고 하니 갖은양념을 섞어 우리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만들어 장독에 넣어 한해의 양식으로 저장해 두면 마음이 푸근하리라. 지난 2년 전 뉴스를 달군 중국 어느 공장의 김치 담그는 장면이 떠오른다. 알몸 남성이 배추를 절이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중국산 김치를 거부하는 공포가 확산하여 김치에 대한 원산지 집중 점검이 실시되곤 했었다. 그러나 김치는 미국 일본 등 해외수출량이 약 4만t으로 지난해에 비해 5% 정도 증가했다지만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뺏겨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알몸 김치’였던 중국산에도 손길을 뻗치지 않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최근 어처구니가 없는 ‘소변 맥주’와 더불어 중국산 식품에 대한 거부 운동이 일고 있다.누른 황금 들판에서 거두어들인 햅쌀로 시루떡을 만들고 치계미(雉鷄米)로 노인들에게 음식을 전해드리는 풍습은 우리의 경로(敬老)사상으로 주변에 훈훈한 미소를 짓게 한다. 또 가을걷이 후 초가지붕을 다시 덮으며 이엉 잇기하고 ‘입춘날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춥다.’고 하여 군불 때어 바닥 말리고 하던 옛 시골의 정경이 떠오른다. 이번 첫추위 이후에 한파특보가 내려지면 땅속으로 파고드는 동물들처럼 우리도 조금 침체된 생활 속에서도 몸을 움직이며 꾸준히 삶의 에너지를 살려나가야겠다.11일은 ‘빼빼로 데이’다. 11월 11일, 아라비아 숫자 ‘11’이 가늘고 길쭉한 초콜릿 과자를 닮았다고, 30여 년 전 부산의 어느 여고에서 시작한 것을 롯데가 국내 최대의 ‘데이 마케팅’으로 추진했던 날이다. 지금은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빼빼로나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자리 잡은 인기 있는 행사일이다. 11일은 또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여 빼빼로 데이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기념일이니만큼 서로를 잘 융합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면 좋으리니….한파특보가 내려졌다. 칼바람 속에 체감 온도가 떨어지면서 시민들도 겨울옷과 목도리 등 추위를 피하기 위한 모습들이 이제 겨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정치계도 연일 찬 바람이 부는 한파로 걱정이다.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터무니없는 날 선 공방으로 밝은 미래를 원하는 국민은 연일 한랭 전선에 싸여있는 듯하다. 이 추운 겨울날 국민들의 마음에는 따스한 날들이 기대될 것인데 연일 쏟아내는 망발에 마음은 더 추워질 뿐이다.이제 나뭇잎 떨어져 나목(裸木)이 되면 풀들도 마르고, 만물 또한 활동을 접고 다음 봄날까지 휴식을 취하는 겨울, 그 초입의 계절인 11월에는 이제 추수 후 겨울잠을 자야겠지. 다음 따뜻한 봄날을 꿈꾸며….

2023-11-09

가짜뉴스와 여론조작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정보화시대인 오늘날에는 여론전 승패에 정당의 사활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론을 선점하거나 장악한 정당이 보다 쉽사리 민심의 지지를 모을 수가 있고, 그것은 곧 선거의 승리로 이어진다. 여론전에는 좌파정당이 능하다. 공산혁명을 위한 핵심전략이 프로파간다이고, 그런 공산당 전술을 배운 좌파들이기 때문이다.지난 좌파정권 5년 동안 그들은 현란한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권의 탄생부터가 그런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결과였다. 민노총이니 전교조니 하는 좌파단체들이 주동이 되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그것을 촛불혁명이란 명분으로 포장해서 대통령탄핵 정국으로 몰아갔고, 마침내 정권을 잡기에 이른 것이다.좌파정권이 제일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언론장악이었다. 정권의 유지나 계승을 위해서는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가 필수적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경영진부터 좌파노조가 장악한 것을 필두로 방심위를 통해서 여타 방송매체도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특히나 탁현민이라는 콘텐츠 기획 전문가를 발탁하여 각종 정부행사를 기획·연출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완전한 통제에는 미치지 못했으니, 우파성향의 신문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다, 방송활동을 못하게 된 정치평론가들의 유튜브 일인방송이 우후죽순 생겨나서 언론독점을 성토하고 비리를 폭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선거판을 뒤집을 뻔한 가짜뉴스의 일례로 소위‘윤석열 커피’사건이 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기간 중에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의혹’으로 몰리게 되자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주임 검사였던 윤 후보가 당시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를 만나 커피를 타 주고 수사를 무마했으니, 윤 후보에게 원죄(原罪)가 있다는 거였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대장동 수사에서 허위로 드러났다. 당사자인 조우형씨는 2021년 11월 “나는 윤석열 검사가 아닌 박모 검사를 만났다”며 이른바 ‘윤석열 커피’ 가짜 뉴스를 부인(否認)한 것이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 남욱 변호사도 그해 11월에는 “그런 얘기를 김만배씨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다가 “조씨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라 착각한 것”이라며 발뺌을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윤석열 커피’ 주장을 계속 확대재생산했고, 당시 친민주당 언론들은 대장동 관계자 또는 검찰발 기사로 이를 확산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뒷받침했다. 또 당시 검찰도 조우형씨 조사 등을 통해 허위임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를 방치해 가짜 뉴스를 묵인·조장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가짜뉴스와 선동정치가 민주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협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선거철에는 여론조작이나 허위사실공표가 급증하게 마련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을 차단하지 않으면 자칫 나라를 망칠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민의를 왜곡하는 여론조작과 가짜뉴스가 횡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2023-11-09

변화를 통한 병역판정검사 제도 발전

김종호 병무청 차장 최근 나타난 여러 현상을 접하면서 세상의 흐름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병무청의 핵심정책이라 할 수 있는 병역판정검사 제도 역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우선 병역판정검사의 정밀성 제고를 위해 지속적으로 전문 검사인력을 증원하고 첨단 의료장비를 도입하는 한편 검사 항목을 확대해 왔다.전문의 자격을 갖춘 병역판정검사전담의사를 비롯한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임상심리사 등 분야별 전문인력을 증원하고,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최신 의료장비를 매년 확충하여 더욱 세밀한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병리검사의 종류도 매년 1∼2종씩 점진적으로 늘려 2022년 신사구체여과율, 2023년 알부민 및 고밀도 콜레스테롤 등 검사 항목을 추가해현재 30종의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병역판정검사의 정밀성 강화뿐만 아니라 병역의무자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병역판정검사를 통해 확인된 질병은 ‘건강검진결과서’ 제공을 통해 본인에게 알려주고 치료방법을 안내해 준다. 병역판정검사가 생에 첫 종합건강검진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또한, 20대청년들의 정신과 관련 문제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고려, 정밀심리검사를 추가하는 등 심리검사를 강화하고 정확한 진단으로 적기에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병역판정검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비용도 지원한다.신체등급 판정에 참조한 병무용진단서와 의무기록지 발급비용을 지급하고 있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 등 경제적으로 취약한 병역의무자는 외부 병원 위탁검사를 우선해 실시하고 있다.이외에도, 뇌전증 위장 병역면탈 범죄 사건 등에 대한 재발 방지와 함께 더욱 정밀한 병역판정검사를 위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병역면탈 추적관리 및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병역면탈 통합 조기경보 체계도 준비하고 있다.병역판정검사는 실질적인 병역의무의 시작으로 병역의무자가 제일 먼저 병무청과 마주하는 곳이 병역판정검사장이다.따라서, 병역의무자들이 불안감을 떨치고 병역이행의 첫걸음을 잘 내디딜 수 있도록 사회의 변화 흐름에 맞추어 제도를 지속 개선함으로써 병역판정검사가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2023-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