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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리 말이 위태롭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우리 말이 위태롭다.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도구로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한다. 글로 쓰고 말로 전한다. 마음에 품은 생각과 느낌을 말에 실어 전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세상에 배울 일이 많지만, 말하기와 글쓰기만 제대로 습득한다면 필요한 교육의 절반쯤은 이미 성취한 게 아닐까.품은 생각을 조리있게 정리하고, 남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새롭게 구성하며, 품격을 싣고 안정감있게 표현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양이었다. 사회와 국가가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여 균형있게 발전해 가기 위해서도 공동체 구성원의 건설적인 제안과 아이디어가 풍성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모든 표현은 말로 해야 한다.그처럼 중요한 말이 흔들린다. 우선, 표현에 논리를 잃어간다. 조리있는 표현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논리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하며 조직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말에 논리가 정연하면, 듣는 사람에게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쉽게 이해하고 정리된 응답도 가능하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하여 말을 사용하면 논리보다 ‘한 방’을 찾게되어 정연한 표현구조는 힘을 잃는다.‘사이다’라 불리우는 공격포인트를 올리기 위하여 논리쯤은 쉽게 무시하고 만다. 말은 논리를 잃고 논리가 빠진 표현은 질서를 잃는다. 심각해야 할 사회적 담론을 단답형 공격형 어조로만 응대하다 보니 누구든 일방적 외침에만 의지할 뿐 의사소통에서 배우거나 얻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말이 품격을 잃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소통과정에서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언어에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수다한 정책적 아젠다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정치권은 우리 말을 훼손하고 격식을 잃게 만든다는 면에서도 책임이 크다.정치에도 공격 뿐 아니라 조정과 숙고, 협상과 타협의 묘를 기해야 할 가닥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언사를 직선적인 공격으로만 채우다 보니 우리 정치인의 언어는 품격을 잃고 허공을 헤매고만 있다. 말이 격식을 잃어가면서 국민의 마음도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국민 앞에 노출이 빈번한 정치인의 언어는 시급히 그 품격을 가다듬어야 한다.말이 안정감을 잃었다. 보수도 진보도 자신들의 생각조차 안정감있게 전하지 못한다. 공격의 다급함과 수비의 분주함에 쫓기다 보니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생각을 다듬고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정치권의 불안정하고 일회적인 언어의 난무를 날마다 만나는 국민도 의견을 조리정연하게 간추릴 기회를 빼앗겨 버렸다. 공동체의 언어가 논리와 품격, 그리고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선 정치권이 책임감을 느끼고 돌이켜야 한다. 우리 말의 높은 격조와 아름다움을 다시 찾기 위하여 국민적인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싶다.정치, 사회, 문화, 경제가 모두 중요하지만, 언어의 품격과 자존심만큼 우리의 바탕을 확인하게 하는 소양이 다시 있을까.

2023-09-20

기미일주(己未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여섯 번째는 기미(己未)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와 지지(地支)의 미토(未土)는 토(土)기운으로 뜨겁고 메마른 흙이다. 또한 정원이며 작은 텃밭이다. 동물로는 황금 양이다.기미일주는 항상 부지런하고 분주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며 독립적이고, 성격은 온화하다. 저돌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개척정신, 투쟁심, 명예심이 있어 어려움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칠전팔기의 각오로 값진 성과를 얻어내는 자질이 있다. 대체로 사회적인 일에는 끝까지 이루어내는 힘이 있으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은연중에 남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노련하지 못하지만 패기 하나만큼은 엄청나다. 허나 한 번 감정이 격해지면 물불을 안 가리고 울분을 터트리지만 항상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특히 특유의 배짱과 뚝심, 용기로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 출세 지향적 삶을 추구하며, 자기 개발에도 충실한 사람들이다. 항상 부지런하고 분주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늘 공부를 많이 하고 교양을 쌓고 정신수양도 많이 한다. 손재주가 남달라 전문기술 분야로 진출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기미(己未)는 음기운인 토(土)이며, 흙이다. 흙은 만물을 낳아서 자라나게 하는 품성이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정화하기 때문에 더러움에서 깨끗함을 창출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채근담 전집 24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굼뱅이는 몹시 더러우나 매미로 변하여 가을 바람결에 맑은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으나 반딧불로 변화하여 여름밤 밝은 빛을 발한다/ 그러므로 깨끗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늘 어두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굼뱅이는 징그럽고 더럽지만, 매미는 깔끔하다. 썩은 풀은 냄새나고 더러우나, 반딧불은 황홀한 빛을 낸다. 참으로 놀라운 변신이다. 매미는 땅 속에서 굼뱅이로 7년을 살다 매미로 된 후 일주일에서 삼주일 살고 죽는다. 반딧불의 알이 썩은 풀더미 속에 떨어지면 반딧불은 썩은 풀을 먹고 자란다. 여름밤의 반딧불은 무척 아름답다. 항상 변화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모든 씨앗은 땅 속으로 들어가 싹이 되어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땅의 어둠을 견디어 낸다. 고난을 참아내면서 찬란한 결실을 이루어내는 것이다.인간의 마음도 그냥 내버려두면 욕망의 싹이 자라 어느새 잡초로 우거진다. 탐욕이 도둑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굼뱅이에서 매미로, 썩은 풀에서 반딧불로 탈바꿈하는 것과 같이 비록 지금 힘이 들지만 과거와 현재의 미혹과 속됨에서 벗어나 밝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배움과 수양을 통해 항상 깨어있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기미일주의 남자는 배우자 덕이 없는 편이다. 밖에서는 무골호인이나 집에서는 무뚝뚝하고 폭군 기질이 있다. 일복이 많아 분주하며 남의 일에 많은 신경을 쓴다. 여자는 고집이 있고 남자 알기를 우습게 보는 기질이 있다. 남편 복보다는 사회활동을 하는 게 적격이다. 남녀 모두 늦게 결혼을 하면 좋다. 사회적인 성공이 있더라도 배우자와 갈등이 있기 쉬우니 서로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기미일주의 미(未)는 동물로 양(羊)이다. 소위 ‘사막 위의 별’이라 한다.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원래 양(羊)의 기운은 가르치는 것과 돌보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거기다가 천간 기(己)라는 기운은 뻗어주고 확산하는 양(陽)의 기운을 수렴해서 챙기는 음(陰)의 기운으로 변동하는 변곡점의 기운이다. 사막의 안내자처럼 사람들을 인도하고자 하는 기운이 있다. 화수분 같은 사람이다.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대사.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오직 마음으로 찾아야 해”라고 여우가 말한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마르지 않는다. 땅 밑에서 물이 계속 솟아 올라오는 분지(盆地) 즉, 남방의 사막 오아시스가 바로 화수분이다. 오아시스는 원하는 일, 원하는 곳을 향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기미(幾微)이지 완성은 아니다.기미일주는 기운이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보는 사람들이다. 기미년(1919년) 3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제의 억압에서 분연히 일어난 한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 전국적인 범위에서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전개된 3·1운동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한민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민족에 대한 끈질기고 강렬한 독립투쟁정신을 고취하였을 뿐 아니라, 나아가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에 새로운 자각과 힘을 주어 민족 자립의 기초를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중국에서는 3·1운동 영향으로 1919년 5월 4일 중국 북경 학생들이 일으킨 반일투쟁,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이 일어났다. 학생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 번진 소위 5·4운동이다. 학생, 지식인, 노동자 등 각계각층이 참여해 서구 열강의 불공정한 태도에 분노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한 행동이었다.한반도에서는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중국은 5·4운동을 전개했지만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중국은 공산주의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민주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어 시민들은 자유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반면 독재체제에서는 국가의 권력이 우선되므로 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시민의 자유를 추구하며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해야 할지 자명하다.

2023-09-20

파랑새를 찾아다녀도 괜찮아

정미영 수필가 바람이 불어온다. 형산강 둔치를 걷다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강바람에 몸이 흔들리니 마음까지 출렁댄다.강변에 서 있으니 풀들이 초록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토끼풀이다. 여기저기에 모도록모도록 소담스럽게 모여 있다. 나는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눈으로, 손으로, 훑으면서 찾는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 시절에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다고 한다.그 뒤로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총알을 피해 살아남아, 훗날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행운이 자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나에게도 그 믿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년 시절부터 토끼풀이 모여 있는 풀밭이 보이면 눈을 반짝이며 찾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습관적으로 네잎클로버를 얻기 위해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네잎클로버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그럼 행복이라도 챙겨야지. 행복을 상징하는 앙증맞은 세잎클로버는 강변에 오보록하게 자라고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손바닥에 작은 잎을 나비 모양으로 펴놓고 들여다본다. 문득,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떠오른다. 마테를링크만의 철학이 담긴 대표작이자, 그가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나는 시공주니어 출판사에서 발간한 원작 형태 그대로인 희곡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동화인줄 알았는데 ‘파랑새’는 원래 희곡이라는 점이다. 국내 출간된 작품 대부분이 중역본이거나, 원작을 짧게 요약하거나 동화로 고쳐 쓴 각색본이다. 또 하나는 주인공 이름이 틸틸과 미틸이다. 내가 기억했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일본어로 중역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틸틸과 미틸은 행복이란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한참을 찾아다녔던 파랑새를 마침내 집에서 찾게 되는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줄거리다. 내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제일 마지막이다.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내 품에 안긴 행복을 남에게 나눠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틸틸과 미틸은 옆집에 사는 소녀에게 파랑새를 기꺼이 준다. 안타깝게도 그 소녀의 품에서 파랑새는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주인공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얼마 전에 네잎클로버를 선물 받았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상북도교육청 영일도서관에서 특강할 때였다.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는 첫날이었다.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다가와서는 “선생님, 이것 드리고 싶어요”라면서 네잎클로버를 건네는 것이었다.나는 학생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네잎클로버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받기가 조심스러웠다.“어머나, 이런 귀한 것을 나에게 줘도 괜찮겠니?”자신이 찾은 행운을 처음 본 나에게 선뜻 주겠다니! 순수한 학생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내 마음이 행복했다.조던 피터슨은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개념은 모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인류, 사회, 가족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된다. 그런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면서.그렇다면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것이 가끔 삶의 목표가 되어도 괜찮을 성싶다. 틸틸과 미틸, 네잎클로버를 선물한 학생처럼, 타인에게 행운이나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래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행복해진다면, 조던 피터슨이 말한 삶의 목표에 근접하는 것은 아닐는지.

2023-09-20

線넘은 이준석의 TK비난, 이유가 뭔가

심충택 논설위원 내년 총선(4월 10일)이 다가오면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대구·경북(TK) 비난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최대지지기반인 TK를 공격해서 뭔가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속셈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치러진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좌파진영이 TK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4·15총선을 코앞에 둔 2020년 3월 6일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를 통해 코로나 발생 원인을 대구시민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고, 민주당 한 청년위원은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는 막말을 했다. 좌파시인 김정란은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라고 조롱했다. 당시 이런 발언들은 TK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좌파진영의 결속력을 높이는 도구가 됐다.이준석은 최근 MBC 정치대담 프로에 출연해 단골 비난 메뉴인 ‘TK 현역의원의 수준’을 언급하면서 TK지역민들이 마치 일반국민과는 동떨어진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처럼 표현했다.그는 ‘TK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사회자 질문에 “요즘 들어 여론조사 기사를 보면 항상 붙는 2개의 문구가 있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층에서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어쩌고 저쩌고, 이게 모든 여론조사에 들어가 있는 문구”라고 대답했다. 마치 TK지역이 60대 이상 노인세대와 함께 타지역과는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언급한 것이다.이준석은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이전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그 사례로 들었다. 노인세대와 TK지역에서만 흉상 이전에 대한 찬성률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경우, 항일투쟁에 앞장선 것은 맞지만, 러시아 스탈린체제에 부역한 공산당원이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나는 유사시 북한과 최일선에서 맞서 싸워야 할 육사생도들이 매일 공산주의자 조형물을 보면서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본다.이준석은 한때 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과 함께 우리나라 청년정치인의 역동성을 대변했다. 그는 대표로 취임한 이후 당의 외연을 호남까지 확장시키면서 국민의힘 전성시대를 만들어냈다. 박지현의 성과도 대단하다. 민주당내 팬덤정치와 86그룹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박지현도 최근 단식 중이던 이재명 대표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표리부동하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청년정치인들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이준석 전 대표도 잘 알겠지만, TK지역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산실이다. 6·25전쟁 때는 북한과 중국공산당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때는 TK지역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자유와 민주를 중시하는 보수정권이 탄생할 수 없었다. 이 지역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라는 사실은 정치적인 판단대상이 아니다. 이준석이 정부·여당에 대해 비판일색인 다양한 방송 대담프로에 출연해 TK를 타깃으로 비난을 퍼붓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2023-09-19

DGB금융 회장 선임, ‘투명성’이 생명이다

DGB금융지주가 김태오 회장의 임기 만료 6개월을 앞둔 오는 25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가동하며 차기 CEO 선임 절차에 들어간다. 김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주주총회 때까지다. 통상적으로 금융권의 경우 회장 임기 만료 2개월 전에 승계 절차를 시작하는데 DGB금융은 국내 금융권 최초로 지주 회장 승계과정을 6개월간 진행한다. CEO 후보군을 충분히 검증하기 위해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 경영승계 규정을 바꾸었다. 회장추천위 멤버는 DGB금융 7명의 사외이사다. 이사회 의장인 최용호 이사가 위원장을 맡는다. 이번 DGB금융 회장 승계 프로그램에는 외부 자문기관도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후보들에 대해 외부 자문기관이 리서치 결과를 내면 이를 토대로 회장추천 위원들이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대구은행장을 선임할 때도 외부 자문기관의 개별 인터뷰와 평판 조회 절차를 거쳤다. 타 금융그룹 지주 회장 선임과정에는 없는 절차다.금융그룹 중에는 최근 KB금융지주가 회장 인선을 마쳤다. KB금융 회장 인선은 최종후보군 선정 과정부터 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인들로만 후보군을 채워 관료 출신 인사는 철저히 배제됐고, 결국 내부 출신인 양종희 부회장이 이변 없이 회장직에 올랐다. KB금융은 사외이사 선임 때도 후보군 평가 권한을 이사회 외부에 넘겨 공정성을 확보했다.최근 은행 임직원들의 각종 비리행위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은 특히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조해 왔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융권의 횡령·배임 문제와 관련 “현재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법 개정안 등 여러가지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DGB금융 사외이사들은 이처럼 예민한 금융권 상황 때문에 어깨가 더 무겁게 됐다. 최용호 이사회 의장이 최근 “금융권 최고 수준의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정립하겠다”고 밝혔듯이, 이번 DGB금융 CEO 선임 절차가 처음부터 끝까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돼 뒷말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2023-09-19

세계 명주 안동소주

우정구 논설위원 안동소주의 세계화는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구상하는 주요 사업의 하나다. 이 지사는 “안동소주는 세계 명주라 부르는 스카치위스키와 중국의 백주, 일본 청주들과 같이 어깨를 겨눌 수 있는 오랜 전통의 술인데도 너무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지난 2월 그는 안동소주 업계 대표들과 함께 스카치위스키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다. 스카치위스키의 성장 노하우 등을 벤치마킹하고 안동소주의 세계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국내서만 판매되는 안동소주를 세계시장으로 진출시키겠다는 그의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도청 내에 전문가로 구성된 TF팀도 가동했다. 민속주인 안동소주를 국제화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우리 고유 민속주가 단숨에 세계화 문턱에 들어서진 않겠지만 한류 분위기를 타고 국제시장에서 명성을 떨치는 것이 꿈같은 이야기도 아니다.15일 경북도는 라오스를 방문해 현지 수출입공사와 안동소주의 동남아시아 진출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안동소주의 해외 진출의 물꼬가 조금씩 열리는 조짐이다.기록에 의하면 안동소주 1281년 일본정벌을 위해 충렬왕이 안동에 행궁을 설치하고 한달동안 머물 때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한다. 1494년 만들기 시작한 위스키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진 술이다. 특히 안동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증류식 방법으로 제조돼 45도의 고도주이면서도 뒤끝이 깨끗해 인기다. 안동지역 명문가에 의해 가양주(家釀酒) 형태로 전수돼 온 것도 술의 품격을 높여준다. 1987년 안동소주 제조법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1988년에는 국가지정 8대 민속주로 지정됐다. 세계 명주 안동소주를 상상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19

긴 추석연휴… 물가와 민생에 세심한 관심을

추석 연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6일간의 긴 연휴를 맞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모처럼 맞는 연휴를 알차게 보내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추석연휴 기간동안 제주노선 항공권이 매진되고 대구공항의 국제선 예약률도 만석이다. 그러나 명절을 맞았으나 우리 주변엔 여전히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은 많다.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저소득층 가구도 많다. 이들은 긴 연휴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명절이라도 찾아올 가족이 없으니 명절 연휴가 더 외롭다.대구시와 경북도 등 자치단체별로 나홀로 노인 등 취약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 등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에 나서고 있으나 빈틈이 없어야 한다. 작년 8월 발생한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지자체별로 복지 사각지대가 없는지 추석을 계기로 다시 한번 점검하고 그들이 따뜻한 추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취약 어르신의 안부도 확인하고 쪽방 주민의 결식 예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민간단체 차원의 취약계층 지원사업도 잘 전개돼야 한다. 또 민생안정과 더불어 추석물가 안정에도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모처럼 국내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다가 지난 8월 물가가 다시 3%대로 올라섰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사과값은 작년 3배, 배, 포도, 복숭아 등은 50% 이상 올랐다. 제수용 과일값이 천정부지 오르면서 서민들의 제수 비용이 부담스러워졌다. 일부 가구에서는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을 줄이기로 했다고도 한다.정부는 비축 농산물의 공급을 늘리고 대체 농축산물 수입도 더 늘려야 한다. 지자체는 시장가격이 안정될 수 있도록 매점방지 등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우리의 전통적 추석 명절은 부모 등을 찾아보고 기족간의 화목을 다지는 시간이다. 또 이웃간에도 정을 나눠 가을의 풍성함을 함께 누리는 데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공동체 의식이 더 필요하다. 소외계층이 없는 따뜻한 명절이 되도록 사회 구성원 각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2023-09-19

외로움의 총합을 늘리지 않는 철도망으로

강지우 SF평론가 지난주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있었다. 40% 내외의 열차가 운행 중지되었다. 필자도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급하게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파업의 가장 큰 요구 사항은 수서행 KTX 운행, 궁극적으로는 KTX와 SRT의 통합 운영을 통한 지방 소외 해소다. 9월 초부터 포항역에서도 SRT를 탈 수 있게 되었으나 하루 2회 운영에 불과하며 대신 부산-수서 SRT 노선이 줄었다. 결국 지방민들이 겪는 불편의 총량은 줄이지 못한 채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기인 셈이다. 변두리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교통수단의 발달이 결국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 갈 뿐”이라던 한 작품이 떠올랐다.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김초엽 작가의 베스트셀러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성간여행이 일상적인 우주 개척 시대에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안나는 먼저 이사한 가족을 따라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가려 한다. 그런데 슬렌포니아로 향하던 ‘워프 노선’이 훨씬 빠른 ‘웜홀 통로’의 개발에 밀려 운항을 중단한다. 슬렌포니아 근방에는 웜홀 정류장이 없다. 별안간 안나와 가족은 빛의 속도로 가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거리로 가로막혀 버린 것이다. 안나 말고도 이산가족이 적지 않았지만, 우주 연방 정부는 그 외로움들을 무시한다. 그들을 일일이 고향으로 보내기에는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제주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보통 서울이나 인천쯤으로 생각하지만, 제주도민의 체감상 더 먼 곳은 대전이라고 한다. 대전에는 공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포항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고속철을 타도 오송이나 대전을 거쳐 크게 돌아가야 하는 광주는 서울보다 40분 더 멀다. 2004년에 우리나라에 고속철이 처음 놓이고 20년이 넘도록 영호남을 직통으로 잇는 고속철도가 없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영호남의 오랜 갈등과 불균형한 발전은 이런 상황의 원인일까, 결과일까? 최근 들어서야 진주-광양, 부전-마산 등의 노선이 이어지고 있다. 달구벌 대구, 빛고을 광주의 첫 글자를 따 두 도시를 잇는 ‘달빛고속철도’도 2030년 개통 예정이다. 그런데 수요와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어려워 특별법 제정까지 필요하다고 한다.지난 6월 윤 대통령은 ‘평택~오송 고속철도 2복선화 착공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디에 살든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보다 촘촘한 교통인프라 구축이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어느 곳의 교통을 먼저 확충할 것인가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지방이 소외되지 않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리지 않는 교통인프라는 기술의 발전이 아닌 인간의 고민으로 이뤄갈 수 있다.

2023-09-19

‘나’의 영향력

개강이다. 시간 강사라는 특성상 한 여름을 일 없이 지내다 간만에 강의를 했더니 몸과 마음이 무척 피곤하다. 처음 보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유창한 척 말을 하자면 내가 마치 약장수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첨단 기술이 나날이 눈부시게 발전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글쓰기는 여전히 필요한 역량이라고 그러니 수업에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을 하고 있자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아마 이 피로감에는 한동안 하지 않았던 강의를 다시 재개하면서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학생들과 새롭게 한 학기를 시작하려니 느끼는 피로감도 있을 것이고, 이전에 했던 강의 자료를 새로 배정받은 학과에 맞게 다듬고 고치는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감도 있을 것이다. 사실 시간 강사를 하기 전에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들을 학생들에 맞춰 설명하는 게 다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수업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사전 작업을 요구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선생이라는 직업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나는 어떤 대답을 해주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하기만 하고,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던 아이가 학기가 끝날 즈음 밝은 얼굴로 인사하며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을 보여줄 때면 꽤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그렇지는 않아서, 간혹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노력에 비해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마주할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내가 만약에 조금만 더 재밌게 수업을 했더라면, 혹은 조금만 더 잘 설명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 아이에게 지금 이 순간의 의미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이 아이의 미래가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책임감. 혹은 사명감. 아마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느낄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좋은 선생도 많이 만났지만, 나쁜 선생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개중에는 폭력을 가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할 수 없다. 왜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가하고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 안달이었던 걸까.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던 게 내 인생에는 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나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해 알려주고, 귀찮은 질문들에도 꼬박꼬박 웃으며 대답해준 좋은 선생님들. 내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를 계속 가다듬으려 애쓰는 건 그분들의 영향이 클 것이다. 만약 그때 그 순간 그 사람들이 해준 말과 행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 또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자꾸만 돌이켜보게 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물론 나는 아직 완벽한 선생님은 아니다. 그냥 조금 친절하고, 조금은 유머러스한 그런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적어도 나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믿을 수 있고, 때로는 기댈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실 이건 내가 선생이라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내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가진 소박한 꿈이 아닐까 싶다.세상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나쁜 선생도 있고 좋은 선생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소수의 사람들을 전체로 오해하곤 한다. 어떤 직업이든 직업윤리에 충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는 것임에도,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잣대 삼아 타인에 대해 판단하길 즐긴다. 당장 인터넷 뉴스의 댓글만 보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알까. 자신들의 인식이,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행동을 미치게 될지. 인간은 모두 사회적 동물이기에, 크건 적건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쯤 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삭막해진 세상에서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2023-09-19

어떤 답은 듬뿍듬뿍

최근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다름 아닌 작업실에서 돌보는 식물에 관한 것. 이 생명력 넘치는 푸릇푸릇한 존재는 작업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다. 보고만 있어도 숲에 온 것처럼 충만해지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매일 부지런해진다. 작업실에 들르지 않는 날이면 화분들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무엇보다 역동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인초는 하룻밤에 거대한 잎을 피워 내고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잎이 다음 날이면 누렇게 변해 우수수 떨어지기도 한다. 너희들, 정말 묘하게 예민하고 조용히 강인하구나. 여린 잎사귀를 매만지면서 생각한다. 식물 키우기는 정말이지 어렵다고.작업실에는 꽤 많은 식물이 있다. 키가 나를 훌쩍 넘어서는 여인초부터 고무나무, 홍콩야자와 크로톤, 고려담쟁이, 선인장, 다육식물까지. 작업실을 함께 꾸려가는 시인과 의기투합하여 하나씩 들여놓은 것이다. 식물에 대해 잘 알아서 들였다기보다 앞으로 알아가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사실 나는 뭔가를 키우는데 능한 사람은 아니다. 혼자 산 지 십 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나 자신을 돌보는 것에도 서투르다. 나의 반려견도 제대로 살피는 건지 알 수 없다. 식물도 내버려두면 알아서 큰다고 생각했다. 생명과 공생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관심과 관찰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혀를 쯧쯧 찰지도 모른다. 뭔가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얼마 전부터 해피트리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한쪽 구석에 놓여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자라던 녀석이라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컸다. 나는 해피트리를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놓아도 보고, 통풍을 위해 창가에 두고, 비 오는 날 밖에 내어놓아도 딱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식물 고수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해피트리가 갑자기 이렇게 시들시들해졌는데, 이유가 뭔지 아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였다. ‘과습인 것 같습니다.’아, 그렇다. 식물을 키우는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물의 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의 작업실에서 키우는 율마가 시들시들하다고 했을 때, 나는 ‘비 오는 날 내어 놓아라’는 답을 준 적이 있었다. 나의 식물들도 그렇게 해서 몇 번 살려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조언대로 동생의 율마는 비를 흠뻑 맞았고, 다음 날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했다. 뿌리까지 모조리 썩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신경 써서 물을 줬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해피트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녀석은 죽어버리고 말았다.그렇게 한 식물을 보내고, 나는 다른 식물들에 물을 주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흙을 만져서 완전히 마르지 않으면 절대 물을 주지 않았고 분무도 조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크로톤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번 주 비 오는 날에 밖에 내어놓았던 게 문제였나. 작업실의 공기가 너무 습한 걸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돌 하나를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토요일 아침, 작업실 문을 여니 내가 그렇게나 고민했던 크로톤이 잎을 활짝 펴고 살아나 있었다. 함께 작업실을 쓰는 친애하는 시인이 간밤 다녀간 모양이었다. 살펴보니 작업실 모든 식물에 듬뿍듬뿍 물을 준 흔적이 있었다. 식물들은 파릇파릇해졌고 잎사귀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답은 물이었다. 물을 아끼는 게 아니라 더 줘야 했다. 그간 엉뚱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허무했다. 물을 넘치게 주면 죽는다. 그러나 물을 주는 것을 두려워해도 안 된다. 식물을 키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그것은 비단 식물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나를 지나쳐 간 무수한 관계들을 떠올렸다. 사랑을 아끼고 상대가 메마르지 않을 정도만 관심을 표했던 지난날의 나를 상기했다. 마음을 모두 쏟아 부으면 상대가 떠나갈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가 시들해진 것을 발견하면 당황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듬뿍듬뿍 물을 주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나는 상대를 떠나보내야만 했다.여전히 나는 식물을 키우는 것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잘하지 못한다. 실패할까 봐 쉽게 겁을 먹고 해결 방식이랍시고 엉뚱한 대책을 내어놓는다. 어떤 순간은 일상적이지만 새삼스럽다. 식물로 인해 골치가 아프고 거기에서 뭔가를 배운다. 햇볕과 물과 바람을 듬뿍듬뿍 맞고 나도 식물들도 자라나는 중이다.

2023-09-19

정주하고 싶은 경북을 위하여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경상북도는 지난 9월 14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비전 선포식에서 ‘청년이 살고 싶은 경북시대’ 실현을 위한 ‘경북형 6대 프로젝트’ 구상을 발표했다.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중에서도 지역 청년들이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 기업에 취업해서 지역에서 정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경상북도, K-U시티 프로젝트’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지역 인재의 유출은 비단 경상북도뿐 아니라 모든 지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일자리 부족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일자리도 결국 지역 생태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서울과 수도권이 지역을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지역의 자율적인 생태계가 붕괴된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중요한 것은 일자리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소프트웨어 자체를 바꿔 나가는 일이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육 및 문화예술산업을 적극 육성하여 지역 주민들이 물질적·정신적 풍요로움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인 생산인구 증가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지역 인재가 지역에서 정주하는 선순환 모델은 만들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 경상북도의 K-U시티 프로젝트가 지역 생태계를 복원하고 정주하고 싶은 지역사회를 만드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외국인 유학생 1만 명 유치. K-드림(Dream) 프로젝트’에 관한 부분이다. 지역 대학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심각한 저출산 기조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이미 대부분의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문제는 이렇게 대학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학습 능력과 한국어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시스템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야 실적도 되고 등록금 수입도 늘어나니 외국인 유학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턱이 낮으니 한국 대학은 진지하게 배움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한국 체류를 위한 수단 정도로 여겨지게 된다. 많은 동료 교사·강사들이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여 강의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외국인 유학생들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외국인 유학생 1만 명 유치를 진지하게 준비하고자 한다면 언어 능력과 학습 능력이 충분한 학생을 선발하는 시스템, 그렇게 입학한 유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을 도울 전문 상담 인력, 그리고 부족한 한국어 학습을 담당할 한국어 교육 전담 인력의 확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을 따라가기 어려운 외국인 유학생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학 교육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2023-09-18

이제는 선행 기사가 줄을 잇기를

김규인수필가 한 사람은 수레를 끌고 다른 사람은 우산을 씌워주며 나란히 걸어간다. 자신의 한쪽은 비를 맞으며 우산을 씌워주는 여인의 따뜻한 마음이 뜨겁게 다가온다. 수레를 끄는 노인의 느린 속도에 맞추어 함께 한참을 걷는다. 남을 위해 함께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몸은 비에 젖어도 마음은 따뜻한 선생님의 선행에 우리는 감동으로 물든다.그동안 여당과 야당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로 피로감은 늘어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우리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한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 다툼은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를 힘들게 한다. 그런 가운데에도 정치가 권력만을 바라볼 때 서민들의 삶은 기댈 곳을 잃는다.이제는 감정 노동자가 되어버린 교사는 점점 죄어오는 족쇄를 풀고자 거리로 나선다. 동방예의지국이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는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집요한 일부 학부모들의 요구는 교사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 교사들의 현실에 우리는 너무 무기력하다. 학생들의 잘못한 행동마저도 지적할 수 없는 교사의 오늘이 그저 참담하기만 하다.방송과 신문은 연일 새로운 기사를 쏟아낸다. 신문 지면을 가득 메운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사건으로 채워진다. 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찬 서민들에게 ‘묻지마 살인’, ‘성폭력을 위한 폭행과 살인’은 마음마저 움츠러들게 한다. 수없이 달린 감시 카메라를 피해 사건은 줄을 지어서 일어난다.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이어 일어나는 교사들의 잇따른 자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어린 학생들의 학교 앞 횡단보도 위에 드러눕기. 공공장소에서의 살인 예고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가 됨으로써 각종 범죄의 학습장이 되는 느낌이다. 여기에 언론의 보도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독자들이 보고 읽도록 만드는 자극적인 표현이 범행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선행 기사를 찾아보니 길에 쓰러진 응급 환자를 구조한 버스 기사,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조한 해군과 축구 코치, 꾸준하게 봉사와 후원을 아끼지 않는 인기 연예인들의 기사가 줄을 잇는다. 그들의 기사를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싣는다면 사람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선행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신문과 방송에 실린 기사는 우리의 시선을 선행으로 쏠리게 하고 우리가 남을 위해 도와주는 것을 친숙하게 만든다.찾아보면 선행도 사건과 사고에 뒤지지 않게 많다. 물론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기사는 쓰기 나름이 아닐까. 선행이 다 같을 수는 없고 돈 많은 사람이 하는 선행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행이 더 많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신문 지면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작은 일 하나에도 소망을 품고 서로를 보듬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서민들이 더 많이 웃기를 빈다. 함께 사는 세상이 더 밝아지면 서민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나리니. 이번 한가위에는 이웃과 풍성함을 나누는 그런 명절이기를 소망한다.

2023-09-18

‘저영향개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대구경북지역에는 9월 15일 전후와 이어진 주말동안 50㎖ 이상의 많은 가을비가 내렸다. 그리고 일최고 30℃ 이상의 날도 점차 줄어들면서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고 있다. 아마도 2023년 여름은 역대 유례가 없는 극한의 집중호우와 산사태 그리고 폭염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해로 기록될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달갑지 않은 역대급 기록은 내년에도 여지없이 깨질 것으로 우려된다. 계속 악화된 기후변화 문제가 완화될 여지는 별로 없고 반대로 무분별한 개발압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파멸의 길로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의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희망의 길을 내고, 브레이크를 작동해야 하듯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길은 내고 ‘저영향개발(LID)’이라는 신형 브레이크를 작동해야 한다.‘저영향개발’은 도시발전 과정에서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빗물관리, 자연적 물의 침투 및 증발, 그리고 토지의 원래 생태계 복원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이를 통해 홍수위험 감소, 수질향상, 도시 열섬효과 완화 등 우리가 부딪친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더 나아가 ‘저영향개발’은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홍수피해 감소와 물관리 비용을 줄여 인프라 유지비용을 절감하고, ‘저영향개발’ 구역은 더 나은 생활환경과 자연경관 제공으로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가치를 높인다. LID 관련 프로젝트는 건설 및 유지보수 분야에서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자연환경 복원은 관광산업도 활성화시킨다. 환경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기업들은 LID 지역에 투자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처럼 ‘저영향개발’은 지역경제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촉진을 기대하게 한다.‘저영향개발’은 특히 물순환 관리에 보다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 LID는 지표수의 자연적 침투를 통해 지하수 재충전을 강화하며, 지표면 처리를 통해 홍수 위험을 줄이며 빗물 유출을 제어한다. 자연스러운 여과 과정으로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물의 질을 개선한다. 아울러 습지의 보호와 복원을 통해 자연의 물순환을 지원한다. 결국 LID는 물의 지속 가능한 관리와 지역 생태계의 건강을 향상시킨다.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시는 빗물정원, 침투지와 같은 LID 기술을 도시 곳곳에 구현하여 홍수와 물 오염을 줄였으며, 워싱턴주 시애틀시는 ‘도시의 녹색 인프라’ 계획에 LID 프로젝트를 도입하여 물 순환을 향상시켰다. 호주 멜버른시는 도시내 빗물을 수집, 재사용하고, 녹색공간을 확장하여 도시 열섬효과를 줄였다. 이처럼 이들 도시는 ‘저영향개발’ 전략을 도입하여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며 도시의 생활 품질을 향상시켰다.이들 도시처럼 대구경북에 ‘저영향개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법적기준 제정으로 LID지침을 확립하고, 도시계획에 LID를 통합하여 초기개발부터 반영해야 한다. 아울러 재정지원 확대를 통해 LID 프로젝트 활성화, 시민교육 및 홍보강화, LID 프로젝트 성과 모니터링 및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2023-09-18

고령 지산동고분군 세계 인정 문화유산됐다

고령군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을 포함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최종 등록되는 쾌거를 얻었다. 17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확정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모두 16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특히 경북은 그 중 6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함으로써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이 분포한 지역임이 증명됐다.이번에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모두 7개 고분군으로 고령의 지산동,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합천 옥전, 고성 송학동, 강화군 교동·송현동, 남원 인월면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이다.그 중 고령 대가야고분군은 대가야 지배층의 집단무덤으로 당시 생활공간을 둘러싼 산지의 능선을 따라 700여 기의 무덤이 축조돼 있다. 7곳 가야고분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또 가야고분군 양식 중 가장 발전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순장자를 위한 너널을 별도로 만들었고 한 무덤에서 순장자 40여 명이 확인되는 등 대가야의 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로 1∼6세기 중엽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작은 나라의 실체를 확인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게 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국내적으로도 가야역사가 재조명되고 가야의 존재와 기록들이 많이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된 것도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오랜시간 세계문화 유산 등재를 위해 힘써온 문화재청과 관련 지자체의 노력이 돋보인 성과다. 이제부터는 세계가 인정한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 관리하고 그 가치를 빛나게 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활동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다양한 지원이 따른다.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세계적 유산으로 인정받은 문화재 관리에 빈틈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관광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뛰어난 효과가 있음이 타지역 사례에서 이미 증명됐다.가야고분군 보존가치를 보다 확대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획기적 전기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023-09-18

대통령실 총선 차출, 民意와 동떨어져선 안돼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대통령실 참모들의 내년 총선 차출을 요청했다는 말이 나오면서 대구·경북(TK) 의원들이 예민해졌다. 총선에 대통령실 참모진을 전면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현역의원에 대한 인적 쇄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TK지역의 경우, 역대 총선에서 현역 물갈이가 항상 절반 이상 이뤄졌고, 그 자리를 낙하산 인사들로 채우는 사례가 많았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대통령실 TK참모는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 전광삼 시민소통비서관, 조지연 행정관 등이다. 이 외에 TK지역에 도전장을 내밀 행정관들도 적잖다. 현재 대구북구와 중·남구, 구미, 포항 등이 용산차출설의 대상으로 거론된다. 대구는 대도시 특성상 지역구 이동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 현역의원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용산차출설은 추석이후 바로 실시될 강도 높은 당무감사와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현재 전국 당협을 대상으로 한 당무감사를 앞두고 질의서를 준비 중이다. 부산출신이며 의사인 신의진 당무감사위원장은 “질의서를 논문처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는 항목들을 꼼꼼하게 질의서에 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질의서에는 현역의원과 원외위원장들의 당원 관리, 사고 여부, 평판, 도덕성, 인지도, SNS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다. 현역 의원들에겐 당무감사에서 점수화된 공천 부적격 근거자료가 나올 수 있다. 당 안팎에서도 당무감사를 근거로 현역의원을 교체하고 용산참모들이 전략공천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윤 대통령 입장에선 순조로운 국정운영을 위해 22대 총선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과 매일 소통하며 국정운영 철학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참모들을 국회에 포진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참모진 공천은 현역 컷오프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참모차출도 민의로부터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2023-09-18

‘경북 해녀협회’의 탄생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은 제주에 이어 전국 두 번째 많은 해녀·해남이 활동하고 있다. 해녀·해남은 ‘나잠 어업’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산소 공급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바닷 속에서 호미와 칼 등을 이용해 해산물이나 어류, 해초류 등을 잡거나 따는 일을 한다.경북도가 지난해 나잠어업 현황 조사결과 2021년 말 기준 경북지역 해녀·해남의 숫자는 1천370명이다. 제주의 3천437명에 이어 국내 2위다. 40년 이상 종사자들이 3분의 2이다. 고령화·소득 감소 등의 영향으로 경북의 해녀·해남이 점점 줄고 있다. 해녀·해남이 고령화로 인한 관절염과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이들이 75%다. 이들은 조만간 물질을 그만둘 것이라고 한다.경북의 해녀·해남은 제주도에서 온 이들에서 비롯됐다. 제주 한림읍 출신 30, 40명의 해녀들이 1950~60년대 독도에 진출해 조개 등을 채취하며 생활한 기록이 있다. 경북의 해녀는 이들이 독도와 울릉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주 수입원은 미역이다. 이어 성게, 전복, 해삼 순으로 많이 잡힌다.제주 해녀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경북 해녀도 제주 해녀와 못잖은 역할을 한다. 양자 교류 필요성이 높다.‘경상북도 해녀협회’가 최근 창립기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포항과 경주, 영덕의 해녀 100여 명이 모였다. 해녀들의 교류와 지원, 해녀 문화의 보전 등이 목적이다. 해녀협회는 해녀학교 등을 운영하고 가족단위 관광객을 대상으로 미역말리기, 해양생태교실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 6차 산업화를 꾀하고 있다. 해녀문화의 전승보전과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고유의 해녀 문화, 잘 지켜나가야 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18

상스 대성당과 초기 고딕건축의 발달

12세기 중반 출현한 고딕건축은 유기적 연결성이라 새로운 접근법으로 중세 건축을 혁신했다.천장에 설치된 교차형 늑재궁륭은 하중을 안정적으로 분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촘촘하게 맞물려 있는 늑재들은 다발을 이루며 벽을 타고 내려와 기둥으로 연결된다. 건물 외벽에 튼튼한 부벽을 설치해 팽창하는 힘을 지탱했고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플라잉 버트레스’ 공중부벽을 설치했다.그물처럼 견고하게 엮인 늑재와 외부에서 든든하게 힘을 상쇄시키는 공중부벽 덕분에 두꺼운 벽이나 육중한 기둥이 불필요해 졌다. 고딕 건축가들은 오히려 벽의 넓은 면을 유리창으로 대체했다. 더 많은 빛이 실내로 유입되면서 실내공간은 한 층 밝아졌다. 넓은 유리창들은 형형색색 화려한 그림으로 장식되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신비로운 색을 발하며 교회를 채웠다.1144년 6월 11일 고딕으로 새롭게 단장한 생 드니 교회의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프랑스 국왕 루이 7세가 왕후와 함께 축성식에 참여했고 외국에서 온 축하 사절은 물론 프랑스 각 지역 주교들도 자리했다. 고딕양식으로 개축된 생 드니 교회의 축성식은 파리를 비롯해 일 드 프랑스 지역에 초기 고딕이 확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120km 떨어진 곳에 상스(Sens)라는 도시가 있다. 상스에 지어진 생 떼띠엔느(Saint-Etienne) 대성당은 생 드니와 함께 초기 고딕 건축구조가 정착하는데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상스 대성당 건축이 시작된 것은 1135년이다. 공사가 시작된지 30여 년이 지난 1164년 경 주제단이 있는 내진 부분이 완성되었다. 1175년과 1180년 사이 회중석이 있는 주랑과 좌우 통로인 측랑이 만들어졌다. 완성된 교회의 전체 길이는 122m에 달했고 13.5m의 폭에 높이가 무려 24.5m나 되었다.상스 대성당의 벽면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구조가 조금 독특하다. 첨두형 아치로 연결된 아케이드가 아래층을 구성하고 그 위로 트리포리움(Triforium)이 나타난다. 트리포리움은 주로 아케이드 층 위에 마련된 열린 공간으로 작은 아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측랑의 지붕 위에 마련된 좁은 공간으로 외부로 창이 나있지 않아 항상 어둡다.2층에 나타나는 트리포리움 위로 넓은 고측창이 설치되어 있어 밝은 빛이 실내로 들어온다. 12세기 초기 고딕성당들은 대개 아케이드, 트리뷴(Tribune), 트리포리움, 고측창으로 구성된 4층 구조를 보인다. 상스 대성당은 넓은 공간의 트리뷴을 생략하는 대신 트리포리움을 설치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에 공중부벽을 설치했다. 트리뷴을 없앤 것은 더 넓은 고측창을 확보하기 위한 건축적 실험으로 보인다.상스 대성당의 견고한 늑재궁륭은 십자형의 4분할 대신 세 개의 늑재가 교차한 6분할 형식을 채택했다. 급한 경사를 보이는 궁륭을 교차해 가로지르는 늑재들은 벽면으로 연결되어 벽면을 타고 내려온다. 새로운 공법이 적용된 초기 과정이라 교회 내부에서 수려한 장식적 요소를 찾을 수는 없다. 발견되는 장식이라고 해야 건물을 단단히 잡아주기 위한 크고 작은 둥근 기둥들이 배관처럼 천장에서 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는 정도가 전부이다. 한 세기나 지나야 등장하는 발달된 고딕의 화려함과 비교한다면 투박하고 소박한 로마네크스에 가깝다 하겠다.이런 무뚝뚝함이 신경 쓰였는지 아래층 기둥 위 아케이드의 연속된 형태가 트리포리움에 그대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동일한 형태의 첨두형 아치가 다시 고측창에서 확대된 크기로 등장한다. 연속된 아치가 만들어낸 수평적 움직임 그리고 약간의 변주가 가해진 형태의 수직적 반복이 살짝 리듬감을 불어 넣어 기계적으로 복잡한 실내공간에 옅은 표정을 불어 넣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9-18

따스한 ‘권정생 동화 나라’

짧은 검은 머리를 한 몽실이가 아이를 업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전쟁에 나간 아버지, 재가하여 다른 지역에 사는 엄마네 가족, 식모살이하며 함께 지내는 새로운 가족, 입양 보낸 동생 등. ‘몽실언니’의 표지 속 몽실이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사실 누구든 정몽실은 따지지 않고 따스함을 나눠줬을 것이다. 그저 바보같이 주어진 삶을 업고 묵묵히 돌봤을 것이다. 사랑만을 전할 뿐 그 무엇도 바라지 않던 권정생(1937~2007) 작가처럼 말이다.권정생 작가는 일본 도쿄 변두리 지역인 시부야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가끔 주워 오던 동화책을 보며 자랐다.해방 후 한국에 돌아오지만, 전쟁과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만 하다가 주변인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안동에 정착한다. 1967년 일직교회의 종지기로 살면서 집필활동을 한다. 1969년 ‘강아지똥’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긴다.초기에는 주로 ‘강아지똥’과 같은 동화를, 중기에는 ‘몽실언니’와 같은 성장소설을, 후기에는 ‘랑랑별 때때롱’처럼 생태 의식이 깃들여진 판타지 소설과 여러 산문을 집필했다.30세부터 눈을 감던 순간까지 교회의 종지기로서 작은 흙집에서 검소하게 살다가 2007년 어린이들을 위해 모든 유산을 남기고 평소 자주 오르던 빌뱅이 언덕에 조용히 잠든다. 2009년 작가의 유고에 따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되고, 2014년에는 ‘권정생 동화 나라’가 만들어졌다. 이후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권정생 동화 나라’에 가면 작가의 작품들이 책 밖으로 나와 실질적인 사물이 되고, 공간이 되고, 사진의 배경이 되어 손님들을 맞이한다.1층은 작가의 유품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귀한 초판본이나 원고지에 써 내려간 작가의 필체도 확인해 볼 수 있다.도서관은 판매를 겸하고 있으며, 체험관은 어린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데려갈 징검다리로 충분하다. 구연연구소나 여러 포토존 등도 즐길 수 있다.2층은 회의실과 작가에게 대여하는 창작실, 숙소가 있어 현지의 작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권정생 동화 나라’의 당초 설립 계획이 모두 지켜지지 않았고 축소되었으며, 실내 공간이 예상보다 작은 편이었다. 운동장의 여러 포토존을 둘러보고, 벽화를 따라 인근의 권정생 생가와 교회를 돌아보고, 빌뱅이 언덕을 올려다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권정생 동화 나라’에는 작가의 작품을 동상으로 만들어 둔 곳이 여럿 있다. ‘몽실언니’도 그중 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입체적으로 표현된 ‘몽실언니’표지 동상을 보면서 예전에 ‘몽실언니’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해방과 전쟁 그리고 가난에 떠밀린 어린 소녀가 어쩔 수 없이 짊어질 수밖에 없던 삶의 무게가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식모살이와 구걸, 어린 동생 돌봄과 입양, 이혼과 재혼 가정에서의 학대, 주변인의 죽음 등 말문이 막히는 장면이 너무도 덤덤하게 이어졌다. 작가는 ‘몽실언니는 제가 너무도 어렵게 쓴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쓴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어주세요.(1984년 4월)’라고 했지만 읽는 내내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우선은 왜 하필 어른도 아닌 어린 존재가 삶의 짐을 떠안고 구원자가 되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해방과 전쟁이 휩쓴 그때는 사회적 약자가 배려받지 못하는 세상이었겠지만 어른들은 무엇을 한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둘째, 주인공은 불행에도 굴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치 부처의 가운데 토막이나 예수의 재림처럼 담담하기만 하다.슬픔을 이겨내고 마음이 성장하면,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나 아픔을 견뎌야지만 만들어지는 진주가 되는 것일까.셋째, 작품의 배경에 깔린 소외된 이웃의 삶이 너무도 진솔하게 전달되어 독자의 마음에 쉽게 전이된다. 진솔한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세월과 세대를 뛰어넘어 독자의 공감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권정생 작가와 그의 작품은 지금도 사랑받고 사랑받는다.넷째, 도시보다는 자연이 살아있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다. 판타지 작품 ‘랑랑별 때때롱’에서는 자연과 멀어지고 있는 현 인류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려놓았다. 돌고 돌아 결국 자연의 품에 안기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인데 자연을 외면하는 오만한 모습에 일침을 가한다.안동의 ‘권정생 동화 나라’는 여러 문학관과는 달리 작가의 작품을 하나의 체험적 공간으로 조성하고 녹여내었다.이것은 독서를 통해 책 속을 여행하던 ‘정적인 활동’을 방문하여 즐기는 ‘동적인 활동’으로 바꾸는 행위이며, 독자를 일상에서 벗어난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행위이다.힘겨운 삶을 담담하게 업은 정몽실의 동상을 살포시 안고 눈을 감아본다. 사랑과 희망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몽실이가 내게도 따스함을 나눠주는 듯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9-18

짜깁기한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

김진국 고문 부끄럽고, 부끄럽다. ‘윤석열 커피’ 보도는 명백한 잘못이다. 기자도 실수한다. 그러나 실수와 알고도 잘못 보도하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윤석열 커피’ 기사는 훈련받은 기자가 할 수 있는 실수가 아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의도가 개입했다고 의심해도 할 말이 없다.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두고 뉴스타파는 ‘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대장동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김만배 씨의 녹취에서 윤석열 후보를 의심하기 좋게 짜깁기해 보도했다. 요지는 김만배 씨가 박영수 전 특검을 통해 윤석열에게 로비해 조우형 씨를 수사하지 않고 풀어주게 했다는 내용이다.검찰은 초대형 금융비리사건인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조사하면서 조우형 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조 씨는 뒤에 대장동 사업 자금을 조성하는 데도 관여했다. 민주당은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이 조 씨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대장동사건이 터졌다며, ‘커피게이트’라고 이름 붙이고, 윤 대통령이 대장동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후보 토론에서 “조우형에게 커피는 왜 타 줬느냐”고 조롱했다.뉴스타파 기사가 보도에 인용한 한 대목을 보자.(신학림)누가? 박○○검사가?(김만배)윤석열이가 ‘니가 조우형이야?’ 이러면서….(신)윤석열한테서? 윤석열이가 보냈단 말이야?(김)응. 박○○(검사가) 커피 주면서 몇 가지를 하더니(물어보더니) 보내주더래. 그래서 사건이 없어졌어.(신)박영수 변호사가 윤석열 검사와 통했던 거야?(김)윤석열은 (박영수가) 데리고 있던 애지.(신)데리고 있었기 때문에?(김)통했지. 그냥 봐줬지. 그러고서 부산저축은행 회장만 골인(구속)시키고, 김양 부회장도 골인(구속)시키고 이랬지.이 대목을 읽어보면 어떤가? 윤 검사가 부하 검사에게 커피 타 주게 하고, 사건을 덮어버렸다고 읽히지 않는가? 그 뒤에 붙은 다음 대화는 보도에서 빼버렸다.(신)조우형은 박○○하고 커피 마시고 온 거야? 윤석열하고 마시고 온 거야?(김)아니 혼자. 타주니까 직원들이…. 어떻게 검사와 마시겠어.(신)검사? 검사 누구 만났는데?(김)박○○ 만났는데. 박○○가 얽어 넣지 않고 그냥 봐줬지….이게 뭔가. 조우형은 윤석열 검사를 만나지도 않았다. 커피를 타 준 것도 검사가 아닌 직원이라고 말한다. 정상적인 기자라면 의미가 분명하지 않으면 다시 물어 확인한다. 들었다고 그대로 보도하지도 않는다. 사건 관련자와 증거들을 교차 검증해 확인한 뒤 보도한다. 그런데 다 나와 있는 말도 자르고, 왜곡했다.JTBC는 대선 직전 두 번이나 “윤석열 후보가 검사 시절 조우형 씨에게 커피를 타 주고 대장동 관련 조사를 하지 않았다”라는 남욱 씨의 말을 보도했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보도 전에 조우형 씨로부터 “윤석열 검사를 만난 적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그 기자는 “의혹 당사자인 조 씨보다 제삼자인 남 씨 진술이 더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라고 주장했다. 최소한 같이 보도했어야 한다. 그는 곧 뉴스타파로 옮겼다.기자는 진실이 생명이다. 사건 윤곽이 뚜렷해도 꼭 반론을 듣고, 기사에 붙인다. 이들은 녹취한 대로 보도했으니 ‘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을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면 이미 진실이 아니다. 같은 기자로서 낯이 뜨겁다. 아니 그들을 기자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더구나 신 씨는 인터뷰 직후 김만배 씨로부터 1억6천500만 원을 받았다. 책값으로 받았다고 한다. 돈은 정직하다. 신 씨는 책값이라고 자신을 속였는지 모르지만, 김 씨 생각은 달랐다고 확신한다.JTBC는 그나마 사과했다. 뉴스타파는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가난해도 자존심과 사명감을 먹고사는 직업이다. 진실을 포기하면 기자가 아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17

처절한 인류의 기원, 미래에도 인본주의 가치를

박진홍 부국장 인류의 기원을 찾아, 세월을 거슬러 올라 가 보자. 현대 과학은 ‘지구는 46억년 전에 생성됐고 생명체는 38억년 전에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그 후 지구에서 모든 생물체들이 얽히고 섥키며 살아 오면서, 그 억겁의 세월을 관통하는 대원칙은 ‘생존 경쟁’이었다. 그 생존 경쟁을 자세히 풀어 설명한 것이,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자연선택설’이다.‘변화 무쌍한 자연 환경에 적응한 생물은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생물은 도태 돼 사라진다’는 것.4억6천만년 전 생존의 필요성에 따라 어류가 육지로 올라 온 후 양서류와 파충류로 진화했다.공룡은 2억6천만년전에 출현했다가 6천5백만년전에 멸종한다.거대 운석 충돌이나 기후 변화, 화산 폭발 등이 멸종 이유로 거론되지만 결국 공룡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인류는 600만년전 침팬지·고릴라 등 유인원과 분기 되면서 등장한다. 이 대목에서, 원시인이 공룡을 피해 달아나는 헐리웃 영화가 ‘엉터리’임을 확인하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반면 현대과학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인간과 침팬지 유전자 98.4% 일치’를 증명했다.불과 유전자 1.6% 차이가 직립 보행과 뇌 크기, 언어 능력, 골반 헝태, 독특한 성생활 등 엄청난 차이를 결정하는 것.진화생물학자들은 “해부학적으로, 침팬지는 원숭이 보다 인간과 더 가깝다.”라며 “혈액의 헤모글로빈 단위 숫자까지 287개로 똑같을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혹자는 “1970년대 유명 영화 ‘혹성탈출’처럼 만약 침팬지가 ‘만물의 영장’이 됐다면 요즘 사람이 동물원에 갇혀 있을 것”이라는 역발상적 시각도 내놓는다.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진화를 거듭한다.400만년전 뒷발을 딛고 서서 걷기 시작 하면서 두손을 사용한다.200만년전을 전후해 석기를 사용하는 호모 하빌리스(솜씨 있는 사람)가, 170만년 전에는 호모에렉투스(직립인간)가 출현한다.이후 네안데르탈인이 나타나고 30만년전 드디어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가 등장한다.이 대목에서 고고인류학자들은 ‘인류들이 2차례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였다’고 추정하고 있다.300만년전 초식성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우버스투스가 출현했으나 120만년전 쯤 멸종해 버렸다.이에 ‘큰 뇌와 도구를 사용했던 잡식성 호모 에렉투스가, 초식성 인류들을 먹잇감으로 사냥해 멸종 시켰다’고 보고 있다.또 40만여년전 서남유럽 등지에서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역시 3만년전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상대적으로 지능이 높고 무리의 수가 많았던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들을 사냥해 멸종 시켰다’고 추정한다.현생 인류가 ‘전쟁을 즐기는 징후’가 이때 표면화된 것 아닌가 싶다.동시에 ‘인류와 동물간 생존 경쟁’도 벌어진다.인류는 처음에 맹수들을 피해 나무 위에서 생활했으나 나무 아래로 내려 오면서 직립 보행을 시작한다.이어 수백만년 동안 소형동물이나 열매 채집으로 연명했다.당시 석기는 조잡해 멧돼지나 코끼리 등 대형 동물 사냥은 불가능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호모 사피엔스의 사냥 도구 역시 100만년 전이나 별 차이 없었다.그러나 4만년전 현생인류 크로마늉인은 화살촉과 창, 작살 등을 사용하면서 대형 동물 사냥이 가능해졌다.이는 기술과 조직력 등을 갖추면서 확고한 포식자로 자리매김 했다는 얘기다.흥미로운 대목은 인류가 호주 대륙에는 5만년전, 아메리카에는 1만5천년전에 진출했는데 얼마 뒤 양 대륙의 대형동물들이 사냥으로 모두 멸종했다는 사실이다.또 3만년전 늑대가 인간의 가축인 개로 진화하면서, 현재 ‘개가 지구상 동물 가운데 생존 경쟁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는 시각도 있다.지구 생명체의 역사는 잔인하고 처참한 생존 경쟁이었다.그중 사람만이 유일하게 그 이기적인 본성을, 문화와 교육 등으로 갈무리한 존재다.미래에도 인본주의가 인류 최고 가치로 존중 되길 바란다.

2023-09-17

거울 밖을 거닐다

거울을 꺼내 나를 비춰본다. 화장이 지워진 여자가 거울 바깥의 나를 보며 피식 웃는다. 여자도 가끔은 거울 바깥의 내가 궁금해서 바깥을 내다볼지도 모른다.스마트 폰을 열어 날씨를 확인한다. 강수 확률 50%다. 바깥을 내다보니 하늘이 새파랗고 단단해 보인다. 저 하늘이 깨져 물방울이 된다는 것은 상상 바깥이다. 짐이 될까 싶어 우산을 내려놓는다.고민은 또 있다.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차를 가져갈까, 버스를 탈까. 캐리어를 들까, 작은 가방을 멜까. 평소에는 하지 않을 고민이 겹겹이다. 일상에 이러한 고민이 많다니, 그냥 하던 대로 하던 것을 막상 작심하니 하나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카드 하나를 쥐고 버스를 탄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내린다. 바다 뒤로 마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무작정 걷자니 500년쯤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도 보이고, 한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등대도 보인다. 눈에 담기는 것들과 한없이 느리게 늑장을 부리고 싶다해변에는 화려한 무대나 환호하는 군중이나 빛나는 조명도 없다. 반겨주는 이도 알아보는 이도 없다. 잘 익은 밀이삭을 닮은 황금빛 모래사장에 앉아 물멍에 들고 지나온 삶의 대본들을 불러 모은다. 주어진 자유에는 내가 주인공이다.혼자만의 놀이에도 배가 출출해진다. 따뜻한 매운탕을 먹을까, 시원한 물회를 먹을까. 바다를 옆에 두고 보니 매운탕과 물회라는 갈림길이 있다. 시원한 물회 한 그릇 먹고 나자 따뜻한 차 한잔 생각난다. 쌉싸래한 커피를 마실까. 달짝지근한 홍차를 마실까.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니 나른한 피로가 몰려든다. 조는 풍경을 연출할까 하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하는 자유를 더 누리고 싶어 바닷가를 거닌다갑자기 후둑 후두둑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방울은 하나, 셋, 열, 점점 굵어지더니 금세 장대비로 바뀐다. 접이식 우산 하나가 무에 그리 무겁다고, 얄팍한 선택을 탓하면서 비를 피할 곳을 찾는다. 허둥대는 사이 이미 마음속까지 축축하게 젖어 든다. 젖은 신발을 벗고 바다에 발을 담근다. 내가 젖는지 바다가 내게 젖는지. 물방울을 발로 차며 뛰는데, 묘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아이, 청년, 어른, 엄마 역할로 숱한 나날을 살았으면서 한 번도 연출해보지 못했던 이 낯선 역할, 나는 속박에서 탈출한 여인이 비를 맞으며 자유를 만끽하는 영화의 주인공이다. 바쁜 일상과 중년만이 지니는 무게가 다 씻어진 듯 상상하지 못했던 쾌감이다. 만약 우산을 가져왔다면 이러한 혼자만의 낭만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면 내가 누리지 못한 풍경과 마주친다. 혼자 산길을 걷다가 영문 모르게 눈이 마주친 다람쥐의 눈동자, 따끈한 커피 한 잔 들고 산사 툇마루에 앉아 들어보는 풍경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발 너머로 펼쳐지는 한 폭의 수채화, 도심 골목을 지나다가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옛사랑의 연가, 우연의 길목에서 건진 풍경들이다. 김경아 작가 살면서 늘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며 살았다. 그 길에서 낭패를 보더라도 내 판단이 옳았다며 위안했다. 이 이기적인 생각은 선택받지 못한 일은 무용하다는 확증 편향에 나를 빠트리곤 했다. 거울 바깥에 더 넓고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거울 안만 보다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지.우리는 때로 관습에 의지하여 삶의 해답을 풀어간다. 홀짝으로 겨루는 구슬 따먹기처럼, 내가 선택하는 것에는 50%가 아니라 100%의 신뢰를 보냈다. 맞춘 쪽은 100이 되고 못 맞춘 쪽은 0이 되는 모순. 하지만 이든 저든 모호할 때, 무작정 하나를 선택해도 오늘처럼 뜻밖의 행복을 누리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혼자만의 놀이가 슬슬 따분해진다. 어느새 강수 확률이 낮아지더니 드문드문 햇빛이 내린다. 비에 젖은 몸이 후줄근하다. 따뜻한 홍차를 주문한다. 이 일탈적 선택의 따뜻함도 새롭다.거울을 꺼내 나를 비춰본다. 화장이 지워진 여자가 거울 바깥의 나를 보며 피식 웃는다. 여자도 가끔은 거울 바깥의 내가 궁금해서 또 다른 외출을 꿈꿀지도 모른다.

2023-09-17

대구군부대 이전사업 순조롭게 진행되길

대구시가 지난주 “국방부장관 교체와 관계없이 대구도심 군부대 이전사업은 정상 진행중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종섭 국방부장관이 대구시청에서 대구도심 국군부대 4곳(제2작전사령부·제50보병사단·제5군수지원사령부·공군방공포병학교)의 통합이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로 했지만, 이 장관의 거취문제로 협약식이 무산되면서 군부대 이전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대구시는 이와관련 “업무협약 지연과 별개로 실무 차원의 군부대 이전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신임 국방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예비역 중장)은 지난 15일부터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대구군부대 통합이전과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문제 등은 국방부와의 원활한 협력이 필수적이어서, 신임 장관과의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지난 11일 대구시와 국방부가 체결하기로 한 협약안에는 △국군부대 4곳의 통합이전을 명시하는 것을 비롯해 △밀리터리타운의 규모 △정주 여건 확보 방안 △영외 관사 규모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약식 연기는 국방부 요청에 따라 이뤄졌으며, 향후 일정은 아직 잡지 못한 상태다. 국방부는 이달 말까지 이전 대상 부대들의 시설 기본 요구 조건을 대구시에 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시는 국방부의 요구조건이 구체적으로 명시되면, 5개 유치 희망지역(군위, 상주, 영천, 의성, 칠곡)을 대상으로 최적 이전지 선정 절차, 평가 기준 등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군부대 통합이전 사업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핵심공약이다. 그동안 대구시는 도심에 있는 군사시설로 인해 효율적인 도시개발을 진행할 수 없었다. 6·25 전쟁 당시 군사요충지였던 대구시내에는 국군부대 4곳 외에도 미군부대(캠프 워커·헨리·조지) 3곳이 있지만, 대구시는 국군부대이전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 신임 장관이 취임하면 대구시가 국방부와 잘 협의해 대구시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군부대 이전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기대한다.

2023-09-17

북러 교류가 정부 탓?

우정구 논설위원 “잘되면 내탓이고 잘못되면 조상탓”이란 속담이 있다. 잘된 일에 대한 공은 자신에게 돌리고 잘못된 일에 대한 책임은 남에게 돌리는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먼저 살펴보라는 교훈이 담긴 속담이다.1990년 고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 교계와 함께 “내탓이오”라는 사회 운동을 펼쳤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남탓으로 돌리는 나쁜 풍조를 고쳐보려는 운동으로 시작해 당시 국민적 호응도 비교적 좋았다. 사회의 한 풍조가 캠페인 하나로 쉽게 바꿔지지는 않지만 김 추기경이 벌인 ‘내탓이오 라는 운동’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남의 눈 티끌은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본다”는 우리 속담처럼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삐뚤어진 편견과 남탓이 유행한다. 그 해의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가 뽑혔고, 우리 정치권에서 출발한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은 미국 언론에도 소개될 정도로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한국사회를 풍자하는 대표적 용어가 됐다. 우리 정치와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라 할만하다.북한과 러시아가 전방위 군사협력에 나선 것을 두고 더불어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탓이라 주장했다. “윤 정부의 경직된 대북정책과 균형 잃은 외교정책의 패착”이라 말했다. 정치권의 네탓 공방이 도를 넘어선 것은 알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을 현 정부 탓으로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과도한 발언이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익을 내다버린 비이성적 주장이다.핵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공동 대응하지는 못할지언정 네탓으로 돌리는 속 좁아진 우리정치 현실이 실망스럽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17

지방시대 선포, 용두사미 되지 말아야

대통령 직속의 지방시대위원회는 14일 부산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전국 시도지사, 시도교육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방시대 선포식을 가졌다. 이 자리서 윤 대통령은 지역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임을 재확인하고 “정부는 지역의 기업 유치를 위한 세제지원, 정주여건 개선, 토지규제 권한의 이양 등을 과감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국토면적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기형적인 수도권 집중을 막고, 인구소멸 위기의 지방을 살리기 위한 지방시대를 여는 것은 지역민의 오랜 숙원이다. 역대 정부가 국가적 과제로 삼았으나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게 현실이다.노무현 대통령 시절, 공기업의 지방 이전을 추진한 것이 유일하나 지방분권 정책이 이어져 나오지 않아 성과가 빛을 내지 못했다. 그 바람에 수도권 인구는 오히려 더 늘었다. 올 6월 현재 수도권의 인구 비중이 50.6%로 커졌다. 10년 전 인구수를 비교할 때 대구는 15만5천여명, 경북은 10만1천명이 줄었다.윤 대통령이 “말로만 지방시대를 외쳤던 지난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수차례 약속했던 2차 공기업 지방이전이 흐지부지됐던 전례를 답습하는 일은 안 된다. 중앙 관료와 수도권 기득권자의 반대가 지방시대와 지방분권 정책을 실천하는 데 장애로 작용했던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이날 대통령 직속의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방의 인구 소멸 대책으로 지방에 4개 특구를 조성한다고 했다.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 도심융합특구, 문화특구 등을 만들어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이나 창업기업에 대해 법인세, 재산세, 취득세 등을 파격적으로 감면해준다고 했다. 이제 정부의 실천력이 과제다. 과거 정부가 지방시대 개막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이유를 면밀히 살피고 윤 정부가 국민과 약속한 “전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윤 정부는 진정한 지방시대를 연 정부로서 역사적 평가를 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3-09-17

가을장마

김규종 경북대 교수 처서(處暑) 백로(白露) 지나 추분(秋分)이 코앞인데 날마다 비가 내린다.예년 이맘때면 가을바람 소슬하고 일기 쾌청하여 교외(郊外)로 나가기 제격이었는데, 요즘 날씨는 종잡기 어렵다. 언론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지구 자연환경을 파괴한 결과를 마주하는 듯하다. 그래선지 ‘인류세(人類世)’라는 어휘가 낯설지 않다.인류세는 1980년대 미국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와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들은 인류의 산업활동 때문에 지구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을 지질시대에 포함하고자 인류세를 제안한 것이다. 명칭에 담긴 것처럼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자연에 유의미한 변화가 초래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지질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는 약 1만1천700년 전 시작된 ‘홀로세’에 살고 있다.하지만 불과 250년 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의 결과 지구의 물리와 화학 시스템이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함으로써 지구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는 게 인류세 주창자들의 논거다.여러 주장이 난립하고 있지만, 1950년대를 인류세 기점으로 보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지질학적인 논의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혜로운 인간’이란 의미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가 초래한 자연생태의 가공할 파괴양상은 지구촌 곳곳을 덮치고 있다.칠레와 캐나다 산불, 버몬트, 르완다와 남수단 폭우, 인도의 몬순 홍수와 열대성 폭풍 마와르의 일본과 괌, 대만, 필리핀 강타 등 열거하기 어려운 지경이다.올해가 인류에게 가장 시원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한다. 언뜻 들어도 섬뜩하지만, 그럴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로 분망한 대중에게 지구촌의 과거와 미래는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직 지금과 여기에 함몰돼야 가까스로 삶의 터전과 가족의 생계가 보장되니 말이다.그러나 지식인 계층이나 상층권위를 가진 자들은 지구촌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된다. 인간이 하루살이로 전락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오직 돈과 권력과 명예에 목숨을 거는 짓은 식자층의 몫이 아니다. 그러하되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노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과 비탄을 자아내는 글로 도배되어 있다.그냥 넘어가기에는 안타깝고 답답한 이 나라 정치 현실, 완전히 실종된 미래기획, 젊은 세대를 위한 꿈과 희망의 실종, 끝없이 지속되는 남과 북의 대치와 대립…. 거명(擧名)하려면 한도 없고 끝도 없는 캄캄절벽의 연쇄가 우리 앞에 산적(山積)해 있다. 이런 난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로 풀어낼 희대의 영웅은 어디 있는가?!지루한 가을장마를 견디면서 언젠가 울려 퍼질 명랑하고 쾌활한 종소리를 기다린다.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탐진치 삼독(三毒)에 물든 남루하고 비루하며 거칠기 짝이 없는 양아치 정치를 일거에 소탕하여 창천(蒼天)의 밝은 태양을 누가 보여줄 것인가?!

2023-09-17

이런 청문회를 보고 싶다

유영희 작가 지난 13일 윤석열 정부는 2차 개각을 단행하면서 국방부 장관에 신원식, 문체부 장관에 유인촌, 여성가족부 장관에 김행을 임명했다.신원식은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을 촉발한 인물로, 2021년에는 홍범도 장군을 찬양했다가 2022년에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의 주역이라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 때 문체부 장관을 하면서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기자를 향한 막말 영상으로 문화계의 수장 자격을 의심받고 있다. 김행 역시 박근혜 정부 대변인을 지낸 인물로, 최근에는 입시와 관련된 킬링 캠프 허위 뉴스를 인용하여 망신을 당했다.그러나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부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보여주기식 개각을 지양하고 오직 국민과 민생을 위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속도감 있게 이끌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에 고삐를 당겼다”고 논평했다. 이번 개각의 키워드는 ‘효율성’과 ‘속도감’인 셈인데, 이번 인선을 두고 실전형이니 전투형이니 하는 평가와 통하는 말이다.그러나 세 인물의 과거 행적을 보자니, 이념 논쟁으로 국가 에너지를 탕진할까 걱정되고, 자유가 가장 보장되어야 할 문화계의 질식이 눈에 보인다. 헌재가 인정한 낙태권을 반대하는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성의 권리 향상에 어떤 역할을 할지도 의문이다.이런 개각에 2주일 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 삶을 돌보지 않는 정권만을 위한 개각이라면서,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MB 시즌 2라면서 ‘구한말 인사’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어떤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먼저, 이들이 말하는 국민은 같은 국민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위한다는 국민과 더불어민주당이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국민은 다른 사람이다. 이미 자기편을 지지하는 국민을 전제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두 번째 구한말 인사라는 비판의 의미가 불분명하다. 구한말은 대한제국 시기를 말하는데, 당시 고종 황제가 구성한 관료들은 왕실 측근 세력 등 보수파였는데, 이때 등용된 이완용, 민병석, 박제순, 고영희, 이병무, 한규설 등은 을사오적이나 정미칠적, 경술국적 명단에 올랐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이번에 임명된 세 인물을 구한말 인사라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의문이다. 단순히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뜻이라 해도 주관적인 평가로 치부될 수 있다. 이런 태도로 청문회에 임한다면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다.장관 임명이 대통령 소관이라고 해도 청문회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비판하느냐에 따라 영향은 충분히 줄 수 있다. 호통치고 삿대질하는 청문회로는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 전 국민에게 중계되는 청문회이니만큼, 더 많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냉철하고 엄정하게 검증해서 의미 있고 생산적인 청문회 문화를 보여주기 바란다.

2023-09-17

퇴계선생 좌우명 따라하기?

배성길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묻지마 폭행과 엽기적인 사건, 극단적 선택 등이 메인 뉴스를 차지한다. 가족이 함께 볼 때는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이럴 때 마다 우리는 묻곤 한다. 왜 우리 사회는 이런 걸 해결하지 못할까?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인이라도 다시 나타나야 하는 걸까? 퇴계 선생이 다시 오신다면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나는 이곳 도산 계곡에 거주하면서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자주 찾아 다니고 있다. 도산면 소재지 퇴계태실이 있는 노송정 앞 개울을 바라보면서 퇴계 선생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본다. 노송정 주변 산기슭이나 오솔길을 다니면서 봄에는 쑥도 캐고, 가을에는 주인 없는 밤과 대추를 따먹으면서도 퇴계 선생의 흔적을 두리번거린다.선생의 자취와 향기를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도산서원은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있어 더 자주 간다. 도산서원 마당 앞에 서서는 하염없이 냇가와 건너편 들판을 쳐다보기도 했다. 조선의 수많은 선비들이 퇴계 선생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그 선비들이 보이는 듯했다.지금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됐지만 당시는 건너편 들판이 솔숲이었고 조선시대 정조 임금의 지시로 특별과거시험이 있었던 이곳에 1만 명이 모였고 영남선비 7천228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그 당시를 상상하면서 퇴계 선생의 흔적을 찾아 킁킁거리기도 했다.선생은 매일 24시간 끊임없이 은밀한 곳이든 혼자 있는 곳이든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이든 항상 경계하며 엄숙을 지켰다.진정한 인격수양과 학문완성을 통해 후세에 삶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으며, 흐트러짐이 없이 성인의 길을 가고자 노력했다. 다산 정약용은 ‘도산사숙록’에서 퇴계의 인간적 품격과 겸허한 인격에 무한한 존경심을 밝히기도 했다.퇴계 선생은 상대가 누구든간에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삶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선생은 ‘사무사(思無邪·간사한 생각을 품지 마라)’, ‘무자기(毋自欺·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무불경(毋不敬·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라)’, ‘신기독(愼其獨·혼자 있을 때도 행동을 바로 하라)’ 등 네 가지 좌우명을 해서체의 친필로 써서 벽에 걸어두고 하루에도 수차례씩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공자 이후 성인은 퇴계가 유일하다는 평가도 있으니 우리는 퇴계 선생을 따라 성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답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마침 한국국학진흥원이 이벤트를 진행한다. 11월 12일까지 주말에는 도산서원에서, 평일에는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 퇴계 선생의 좌우명 목판인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곧 추석 연휴가 시작되고 가을 여행철이다. 자녀들과 함께 방문해서 퇴계 선생의 좌우명을 직접 인출하여 마음에 담았으면 하고 바란다. 액자에 넣어 잘 보이는 데 걸어 두면서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도 좋을 것 같다.

2023-09-17

선동과 기만에 휘둘리는 사회

홍석봉 대구지사장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가 집요하다.윤석열 정부 심판까지 외치고 있다. 민주당은 수산물을 먹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경고장을 마구 날린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먹거리 안전을 강조한 이벤트성 수산시장 행사에 “세슘 우럭 너희나 먹으라”고 저주한다. 이재명 대표는 “태평양 연안 국가에 대한 전쟁 선포”라고 규정했다. 당 지도부는 한술 더 떠 우리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하면 친일 매국 행위라고 했다.합리와 과학은 오간 데 없다. 이랬던 민주당이 정작 목포의 활어횟집을 찾아 식사하고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고 방명록에 서명까지 남겼다. 이 대표가 무기한 단식집회에 들어가기 바로 전날 한 일이었다.국민은 어안이 벙벙하다. 겉 다르고 속 달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겨냥해 “국민 몰래 잡순 ‘날 것’들은 입에 맞으셨나”며 비아냥댔다. 민주당은 대구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방류를 외치며 서명운동을 펴고 있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반응은 그다지 탐탁치 않아 한다. 비과학적인 주장에 기대어 국민을 선동하는 모습으로 비친 탓이다.‘대장동 허위 인터뷰 의혹’도 일파만파다. 대장동 주범인 김만배와 언론노조위원장 출신의 신학림이 허위 인터뷰 보도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대장동게이트’의 몸통으로 만들려 했다는 가짜뉴스를 보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의힘은 선거를 3일 앞두고 언론들이 이 가짜뉴스를 발표, 윤 후보가 해명할 시간과 기회를 박탈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국기를 흔든 사안이라며 검찰의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대선 일주일 전 10% 정도 이기고 있었는데 막판에 0.7% 차이가 난 것은 가짜뉴스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후폭풍이 어디로 번질지 예사롭지 않다.역대 대통령선거에서 가짜뉴스가 선거판을 흔든 경우가 있다. 이회창과 김대중이 맞붙은 15대 대선 때는 김대업의 병풍사건 여파로 김대중이 당선됐다. 16대 대선에선 이회창의 두 아들 병역면제와 30만 달러 금품 수수설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역전, 노무현이 당선됐다. 김대업과 뇌물 수수설을 퍼뜨린 당사자는 한참 뒤 처벌 받았다. 하지만, 가짜뉴스가 유력 후보를 낙선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정부·여당은 좌파가 괴담(세월호·사드·후쿠시마 오염수)을 확산시켜 국민을 불안케 하고 가짜뉴스를 살포, 국민을 속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흔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선동과 기만은 좌파가 곧잘 쓰는 수법이다. 나중에 진실이 가려지긴 하지만 선동과 기만의 폭발력은 엄청나다. 자칫 나라의 기강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흔든다.선동과 기만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선동과 기만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들은 호시탐탐 우리 사회의 허점을 노린다. 이를 뿌리뽑지 않고서는 나라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양두구육은 이들의 단골 메뉴다. 선동과 기만이 국민의 속을 헤집어 놓는다. 부화뇌동하지 않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 속에 천불이 난다.

2023-09-14

“기업의 지방이전 촉진이 지방소멸 대안”

이강덕 포항시장은 13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지방소멸을 막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선 기업의 지방 이전을 촉진해야 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지역인재와 일자리 등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돼 지방소멸을 넘어 지방붕괴 위기에 직면했다”며 “지방도시에 고속도, 철도와 같은 인프라만 건설하면 균형발전할 것이란 과거의 관념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의 이날 발언이 최근 포스코홀딩스가 경기도 성남지역에 미래기술연구원 분원을 설립한다는 소식을 우려해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건실한 기업의 지방유치는 위기를 맞은 지방자치단체들마다 지상과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가 그동안 지방소멸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과 온갖 정책을 다 쏟아부었으나 성과가 없었다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의하면 올 2월 기준 우리나라 인구소멸 위험지역은 전국 시군구 228곳 가운데 51.8%인 118곳으로 절반을 넘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5곳이 더 늘었다. 소멸위험지역이란 20-39세 여성인구 수를 65세 이상 인구 수로 나눈 값인 소멸위험지수가 0.5미만인 기초단체를 말한다.강력한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소멸위험지역은 되레 증가했다. 지방소멸의 문제가 하루이틀만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지방소멸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인구소멸 위험지구는 비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경북은 그 중에서도 소멸위험지역 기초지자체가 많은 곳이다. 지난 12일 기획재정부가 전문가를 초청하고 지방소멸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이 자리서 김병환 1차관은 지역 경제활성화 지원을 통해 지방소멸의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역 경제활성화란 결국은 기업의 지방이전을 확대하는 방법인데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적 정책 구조아래서는 기업의 지방이전은 근원적으로 쉽지가 않다. 이 시장의 말대로 기업의 지방이전을 촉진 할수 있는 법·제도 개선에 국가 적극 나서야 한다.

2023-09-14

원전 재가동·産團유치, 울진은 이제‘생산도시’

지난 7일 신한울 원전 2호기에 대한 최종 운영 허가가 결정되면서, 울진군민들이 “경제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 신한울 2호기는 곧 연료를 장전하고 6개월여간 시운전 시험을 거친 후 상업운전에 들어간다. 신한울 2호기는 2011년 12월 건설허가를 받고 착공해 지난해 8월 완공된 발전 용량 1천400MW급 한국형 원전이다.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2014년 12월 1일 신한울 1호기와 함께 운영허가를 신청했지만,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으로 9년여만에 최종 운영허가를 받은 것이다.신한울 1·2호기의 수명이 60년인 점을 감안하면, ‘쌍둥이 원전’이 울진군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3조원(연 487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울진군으로선 원전운영에 따른 법정지원금(지역자원시설세)과 지방세수(취득세 등) 증대가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2023년 울진군 예산(6천425억원)과 비교하면 전체 예산의 7.57%에 해당한다.원전도시가 누리는 또 다른 혜택은 일자리다. 울진군은 원전 2호기가 가동되면 한수원 정규인력과 협력업체를 포함해 1천여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소규모 지자체로서는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직장인 유입이 부동산 경기활성화와 소비증가 등으로 이어져 지역경제에 엄청난 순기능을 하게 된다. 울진에서는 공사가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에 대한 부지정지공사도 이미 시작돼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울진군은 지난 3월15일 그동안 총력을 쏟아왔던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를 유치하는데도 성공했다. 이 국가산단에 어떤 기업을 채우느냐에 따라 울진군의 미래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울진군의 경우 얼마전 법적 근거를 마련한 ‘전기요금차등제’가 시행되면 원전 열에너지를 국가산단에 입주하는 기업에 싼값으로 공급할 수 있어 기업유치 경쟁력에서 크게 앞설 수 있다.앞으로 전기와 수소에너지 연구·생산 중심도시로 부상하게 될 울진군의 미래 모습이 기대된다.

2023-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