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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젊은이 죽이는 나의 조국 자유대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월요일 출근 후 업무 폭탄과 아이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인용문은 서울 교사노동조합이 7월 24일 유족의 동의를 받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등교사의 일기장 일부다.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교사의 깊은 한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그녀를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낸 두 가지 근본 원인이 글에 담겨 있다.초등학교 담임교사에게 떨어지는 과중한 업무가 그 하나고, 아이로 인해 벌어진 난리 북새통이 그 둘이다.언제부턴가 대학에도 수많은 잡무가 부과되고 있다. 교육부가 강제하는 잡무 때문에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야 할 젊은 교수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예컨대 지난 5년 동안 교육부에 신고하지 않고 참가한 회의나 외부강연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다.무슨 수로 그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자료가 필요하다면 해마다 자료 제출하라고 요구할 것이지, 이 시점에 무슨 이유로 교수들을 들볶는가?!국립대학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초등학교 초임 교사에게 떨어지는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업무가 얼마나 많을 것인지, 가늠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초등교사의 가장 큰 소명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이지, 자잘하고 쓸모없는 잡무가 아니다.왜 그들에게 사무 관료의 사고방식을 강제하는가?! 아이 가르치는 것을 능가하는 숭고하고 중요한 일이 세상에 또 있는가.아이로 인해 생겨난 난리 때문에 경험도 없고 마음도 여린 교사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오늘날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교육부 장관, 교육감, 학교장, 교사, 학생, 학부모 가운데 누구인가?! 왜 서이초 어린 교사는 극단적인 선택에 홀로 내몰린 것일까?!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며, 어디에도 손들어 저항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할 길 없는 참혹한 현장으로 내몰린 것일까?!교육이란 미명(美名)으로 ‘사랑의 매’라는 허울로 포장된 폭력적인 교육을 받아온 나도 알 수 없는 게 학부모들의 온갖 분탕질이다.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 소중한 것쯤은 알아야 할 텐데, 요즘 학부모들 수준은 경이로운 지경이다.담임교사가 아이를 조금만 혼낼라치면 ‘아동학대’란 이름으로 협박하며 교사를 윽박지른다.이런 지경이니 교사가 마음 놓고 학생 지도에 나설 수 있겠느냐 말이다. ‘숨이 막혀 오고,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한’ 상황까지 교사를 몰고 간 교육 당국과 학부모가 이번 참사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세월호 대참사와 이태원 참사도 모자라 이제는 교사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에서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젊은이들을 비난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참담하고 암담하며 또다시 참혹한 내 조국 자유대한이여!

2023-07-30

모처럼 손잡은 與野… ‘달빛고속철’ 순항

‘달빛 고속철도(대구-광주 1시간 내 연결)’ 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청신호가 커졌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지난 27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특별법 공동 발의자로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가 발의 참여를 먼저 제안했고, 의원들이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 여야 충돌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구·광주 공동현안에 여야가 모처럼 손을 잡고 초당적 협력을 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17일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국회에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를 만나 특별법 연내 제정을 당부했었다. 시간을 끌면 곧 총선시즌이 시작돼 특별법 통과가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일단 특별법 발의는 이번 주에 여야가 따로 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에서는 윤재옥 원내대표가, 광주에서는 국토위 소속 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각각 특별법을 발의한 후, 병합 심사를 통해 하나의 특별법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다. 여야의 핵심 지지 기반인 대구와 광주 출신 국회의원이 대표발의자로 나설 경우, 연내 입법 가능성은 더 커진다.대구시와 광주시가 달빛 고속철도 건설사업을 특별법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비용 대비 편익’을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 관문을 넘기 위해서다.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할 경우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사업 진행이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사업이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포함되긴 했지만, 4조5천억 원 이상의 사업비가 투입되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특별법은 국고 부담 원칙과 복선건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달빛고속철도(198.8㎞) 건설의 완공목표는 2030년이다. 이 철도는 동서 지역화합과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지역공약으로 발표했다. 특별법의 입법취지도 영·호남의 인적·물적 교류 촉진과 남부 경제권 구축을 통한 국가균형 발전이다. 이제 민주당도 특별법 통과를 당론으로 정한 만큼, 후속조치가 빨리 진행돼 특별법이 연내 제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2023-07-30

본격 무더위 시작, 취약계층 폭염대책 세워야

긴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지난 주말도 대구 경북을 포함 전국에서 체감온도 35도의 무더위가 이어졌다. 기상청은 이번주도 체감온도 35도가 넘는 무더위와 열대야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난 가운데 이번에는 폭염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기후 재난시대다. 효율적인 폭염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또다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작년보다 빨리 온열질환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지난주에는 경북 상주에서 80대 남성이 폭염 속에 밭일하다 쓰러져 숨졌다.질병관리청에 의하면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26일과 27일 이틀동안 온열질환자가 108명이나 발생했다. 올들어 누적 온열질환자가 868명이며 경북서도 71명의 온열질환자가 이미 발생했다.온열질환은 폭염에 오랜 시간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열사병, 열탈진, 열실신 등의 질환이다. 특히 노인이나 만성질환자, 임산부, 무더위 속에 일하는 근로자 그리고 경제적 빈곤층에게는 치명적이다. 당국의 배려와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나홀로 노인이나 경제적 빈곤층은 무더위에도 전기료가 두려워 냉방기를 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행정당국은 이들이 어떻게 무더위를 견뎌내고 있는지 살펴보고 지원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폭염도 집중호우 못지않게 무서운 재난이다. 재난에 미리 대비하면 피해도 최소화 할 수 있다. 폭염에 대비한 안전수칙을 우리 모두가 지켜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수분과 염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바깥에서 일하는 농민은 무더위 때는 외부 활동을 자제하여야 한다.지구온난화로 지구촌 곳곳이 홍수와 폭염으로 재난을 겪고 있다. 올여름은 엘니뇨까지 겹쳐 역대급 더위가 잦을 것이란 기상청의 예보다. 괴팍해진 기후변화에 맞게 당국도 재난대응 시스템을 바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폭염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각 지자체가 책임감 갖고 폭염에 대응할 때 취약계층과 지역주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2023-07-30

고교야구의 추억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야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05년 서울 한성고가 학교 차원에서 야구를 처음 도입한 것이 시발점이다. 이후 경신, 휘문, 배재 등의 학교에서 야구팀이 생겼고, 1920년에는 조선체육회 발족 기념으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개최됐다.지난 27일 지역의 야구 명문 경북고등학교가 30년만에 우승컵을 거머쥔 청룡기 고교야구대회는 우리나라에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교야구대회다. 1946년 창설됐다. 6·25전쟁으로 잠시 중단되고 1953년부터 조선일보사가 행사를 주최해 오고 있다.1950년대는 동산고가 4차례 우승하였으나 1960∼1970년대 들어서는 경북고와 대구상고(지금의 상원고), 경남고 등 영남권 고교가 판세를 휘어잡아 고교야구의 인기를 몰아갔다. 이후 영남권 고교와 호남권 고교, 서울 등지 고교야구팀이 엎치락뒤치락 승패를 갈랐으나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고교야구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청룡기 야구의 역대 우승 전적을 보면 경남고 9회, 경북고 8회, 대구상원고 6회 등 영남권 고교들이 여전히 선전 중이다.특히 경북고 야구팀의 청룡기 야구대회 30년만의 우승은 지역의 노장년 야구팬들의 추억을 소환하면서 화제를 낳았다. 지나간 추억의 스타를 떠올리게 했고, 30년 전 이승엽 감독이 고교 2학년으로서 이 대회 우수투수상을 수상한 이력도 회자됐다.무엇보다 프로야구에 밀려 등한시된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좋은 일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토양이라 불리는 고교야구의 성장을 위해서도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경북고의 청룡기 야구대회 우승이 30년만의 소중한 기록이지만 고교야구를 되돌아본 즐거운 추억의 시간이기도 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7-30

한국, 에너지전환 선도국 될 수 있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석기시대가 돌이 없어서 끝난 게 아니다. 차원이 다른 청동기라는 신기술이 등장하자 경쟁에 밀려 주류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가 고갈됐기 때문이 아니다. ‘계속 화석연료를 썼다가는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인류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UN 주도로 1992년에 열린 ‘리우회의’와 1995년 열린 ‘당사국총회’ 이후부터 전 세계는 본격적으로 에너지전환에 돌입했다.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를 매년 510억t씩 줄이고 온도 상승을 1.5도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10위다.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2020년 기준 92.8%로 세계 1위다. 에너지 소비량은 10위인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에너지 중에서 화석연료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중은 8.6%다. 덴마크와 오스트리아는 80%대이고, 미국과 일본은 20% 이상, 중국은 30% 정도다. OECD 국가 평균이 31.3%며, 한국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1995년 1%이던 독일은 50%를 넘본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상황이 최악이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가 에너지전환이 어려운 것은 첫째 국토가 좁아서, 둘째 날씨 때문에, 셋째 너무 비싸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빠른 시간안에 에너지전환에 실패해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국내 기업들은 RE100이 가능한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겨야 하며, 이미 이러한 현상은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에 투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산업생태계는 붕괴되고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에너지전환을 늦출 경우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 신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불가론은 사실이 아니다. 먼저 한국은 태양광, 풍력 발전을 하기에 국토가 좁지 않다. 우리나라가 2050년 재생에너지 75% 이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500GWh 정도의 발전시설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에는 국토의 3.5% 즉, 3천500㎢, 서울시 면적의 6배 정도의 토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우리나라 농지가 국토의 15% 정도이니 농지의 24% 미만을 활용한다면 된다.한국 날씨가 재생에너지 생산과 맞지 않다는 주장도 엉터리다. 재생에너지 천국인 독일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독일에 비해 훨씬 낮은 위도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일조량이 1천459 시간으로 1천56 시간인 독일에 비해 38%나 더 많다.그리고 재생에너지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지금은 태양광 설치비용이 원자력발전소 건설비보다 더 싸졌기 때문에 이 말도 맞지 않다. 태양광 기술은 반도체처럼 일정한 기간을 주기로 해서 ‘가격은 반으로, 효율은 배’로 진화한다. 태양광은 한번 설치하면 25~30년간 햇빛과 바람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탈탄소 경쟁력이 곧 기업 경쟁력이고, 기후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92.8%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모든 국민이 협력하면 에너지전환시대에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산업단지 인근 농지에 ‘신재생에너지 연계 스마트팜 융복합단지’ 조성이 활성화되고 있다. 충남 서산시 고북면에서는 21만여평의 부지에 50MWh 용량의 수소연료전지발전소와 연계해 75MWh급 스마트팜 단지가 한창 조성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폐열을 스마트팜에서 이산화탄소는 작물 육성용 원료로, 폐열은 팜 냉난방용으로 활용한다. LNG를 연료로 하는 수소연료발전소의 부산물인 탄소를 팜에서 소진시켜 그린수소화 함으로써 막대한 재생에너지 생산(1천500MWh)과 스마트팜에서 첨단 작물 재배를 통해 고소득 창출을 꾀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생산된 재생에너지는 주변의 홍성일반산업단지 입주 기업에 RE100용으로 공급된다. 스마트팜에서는 첨단 바이오 작물을 재배해 수출함으로써 전통적인 쌀 재배에 비해 800배 이상의 소득을 창출한다. 수소발전소에서 생산하는 그린 수소는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한다.이러한 메커니즘의 스마트팜단지가 현재 전국에서 13군데 진행 중이다. 대도시나 산업단지 주변의 절대농지에 스마트팜 단지를 적극적으로 조성해 나간다면 기업이나 농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국제자산운용사들이, 스마트팜 건설 자금은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앞다투어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전환 지원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스마트팜단지가 보편화돼서 우리나라가 그린-디지털 전환기에도 제조업 강국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고, 후진국들의 에너지전환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3-07-30

한여름 밤의 불청객, 열대야 불면증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열대야’는 밤사이(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주로 일 평균 기온이 25도 이상이면서 일 최고 기온이 30도 이상인 무더운 여름에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장마가 끝난 뒤에 나타난다.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냈던 역대급 올해 장마가 지난 26일 끝나자마자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권으로 낮에는 폭염이 밤에는 열대야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우리나라의 열대야는 7월 말에서 8월 초가 절정이다. 최근 들어 열대야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기간 또한 점점 길어지는 추세이다.열대야는 우리에게 밤에는 잠들기 어렵게 하는 공포의 밤이 되게 하고 낮에는 짜증, 피로감, 집중력 저하, 의욕상실 등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예로부터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불면증이 지속하면 불안증,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와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 대사질환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인사가 정말 실감나는 요즘이다.밤사이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열대야는 왜 우리를 잠들기 어렵게 할까. 왜 기온이 올라가면 잠이 들기 어려울까. 우리 몸이 잠들기 위해서는 체온이 0.3도 정도 떨어져야 한다. 침실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우리 몸은 체온을 낮추기 위해 피부 밑에 있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순환 속도를 높이려 한다. 그 결과 교감신경이 흥분하게 돼 잠들기 힘들어진다.또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밤이 돼 체온이 떨어짐에 따라 밤이 왔다는 신호를 인식하고 분비되는데, 열대야 현상은 한밤중에도 한낮과 비슷한 25도 이상을 유지하기 때문에 뇌의 시상하부가 낮인지 밤인지 구분을 하지 못해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아 불면증이 생기게 된다.열대야 수면의 특징은 서파수면이 줄게 돼 잠이 들더라도 자주 깨며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꿈을 꾸는 수면(REM수면)도 줄며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상쾌하지 못하고 피곤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게 된다.어떻게 하면 열대야로 인한 공포의 밤을 평안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열대야로 인한 불면증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은 침실 온도를 적절하게 맞추는 것이다. 손쉬운 방법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의 냉방기를 활용해 침실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것이다. 쾌적한 수면 온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약 20도이고, 습도는 50%이다.그러나 잠들기 전 에어컨 온도는 자신의 적정 수면 온도보다 약간 더 높게 설정해야 한다. 보통 에어컨은 잠을 자는 곳보다 높게 설치돼 있다. 대류 현상으로 상층 온도는 하층 온도보다 높아 센서가 감지하는 온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보통 에어컨 희망온도를 24도 전후로 맞추면 평균 피부 온도는 입면시 쾌적함을 느끼는 영역(피부 온도 34.5∼35.5도)에 도달한다. 그러나 수면시 에어컨을 사용한다면 24도로 계속 유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수면을 ‘유도’하는 온도와 ‘유지’하는 온도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이를 감안하지 않고 에어컨을 24도로 유지하면 주변 기온이 떨어지면서 체온도 함께 떨어지고 추위를 느껴 오히려 숙면의 유지를 방해한다. 잠이 든 1시간 이후에는 희망온도를 26도로 하는 것이 수면 유지에 좋다. 요즈음 에어컨에는 ‘열대야 모드’도 있다.에어컨을 수면 중 계속 가동해서는 안 된다. ‘예약 꺼짐’, ‘취침 운전’ 기능을 활용해 일정 시간(2∼3시간) 후 가동을 멈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나친 에어컨 사용은 냉방병에 시달리게 하거나 노약자나 심혈관질환자의 경우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선풍기를 사용한다면 작동시 회전 모드로 설정하고 바람은 아래로 향하게 하고 일정 시간(2∼3시간) 후 꺼지도록 예약 설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호흡기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은 급성 호흡곤란까지 겪을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에어컨과 선풍기 사용 없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잠들기 1~2시간 전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는 것이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면 체온이 내려갈 뿐만 아니라 각성시키는 교감신경이 진정돼 기분 좋게 잠이 들 수 있다.그러나 차가운 물로 샤워하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면서 피부 혈관이 수축해 오히려 체온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열대야로 인한 불면증은 온도, 습도 등 수면환경만 개선해도 해결될 수 있다.또 잠자기 3∼4시간 전에는 격렬한 운동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을 해서 몸 안의 심부 체온이 올라가게 되면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내려간다. 높은 심부 체온은 잠드는 것을 방해한다. 여름밤 잠 못 이루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야식의 유혹, 술의 유혹 그리고 수면을 방해하는 블루 라이트가 나오는 스마트폰은 열대야 불면증의 적이다.열대야 불면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불면증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여름이 더운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더우면 잠들기 힘든 것은 인체의 이치이다. 불면증에 집착하면 불면증 환자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이다. 열대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3-07-30

울진을 수소생산도시의 메카로

손병복 울진군수 울진군은 정부의 신규 국가산업단지 공모에서 ‘울진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로 선정돼 대한민국 수소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홍수 등으로 인한 자연재난에 신음하고 있다. 화석 연료 대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탄소중립시대 핵심 에너지원으로 수소생산에 주목하고 있다.울진군의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선정은 바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수소산업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울진군은 기존 추진하던 연구실험 중심의 수소 실증단지 조성 사업을 수소 전주기연구 생산 저장 운송 활용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로 추진 전략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했다군은 수소 관련 기업들과 MOU를 맺는 등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올해 3월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돼 울진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사업비 약 4천억 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일원에 158만㎡ 규모로 조성되는 울진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는 국가산단 조성에 따른 생산유발효과가 7조1천억 원, 고용유발효과가 2만4천여명으로 막대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울진군의 상용원전(한울원전)과 고온가스로(HTGR)를 활용해 수전해 청정수소를 대량 생산하고 수소를 활용하는 관련 기업을 대거 유치한다. 국내 수소 관련 대기업을 비롯해 소재·부품·장비 제조업체와 연구시설과 원전의 열과 전기를 이용해 대량의 청정수소 생산체계를 갖추게 된다.울진에는 현재 7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3기의 원전이 건설 중에 있어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이 가동되면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해안 수소경제 벨트’의 거점 도시 역할을 수행 할 것으로 기대된다.울진군은 세계 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을 선도하고 미래 청정에너지라 불리는 원자력 청정 수소의 대량 생산·실증을 위해 삼성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와 원자력 청정 수소 산업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울진군은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한 수소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동해·삼척 액화수소 클러스터 △포항 수소연료전지 발전 클러스터 △울산 수소그린모빌리티 클러스터 등을 연결하는 청정수소 공급의 최적지로 손꼽힌다.원자력수소의 생산과 저장뿐만 아니라 운송, 활용 기업의 집적화가 이뤄진다면 울진이 동해안 수소경제 벨트(강원~경북~울산)의 거점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된다.울진군은 앞으로 원자력 수소 국가산업단지 인프라 및 원자력 청정 수소의 생산 실증 인프라 구축은 물론 원자력 청정 수소 사업이 착수되면 지역 일자리 창출 및 동해안 수소경제벨트 활성화 등 지역경제 부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또한, 지난 20일 국내 최대규모인 30MW급 청정수소 생산 실증사업 유치계획서를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 제출했다.이번 공모사업은 정부 주도로 2025~2030년까지 총사업비 2천600억이 투입되는 30MW급 청정수소 생산 기술개발 및 실증사업이다.2025~2026년까지 1천500억원을 투입해 수전해 기술(알칼라인 20MW, PEM 10MW)을 기업 공모를 통해 개발하고, 2026부터 2030년까지 1천100억원을 투입해 청정수소 생산기술을 실증하는 사업을 추진한다.울진군은 이제 울진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유치로 울진군이 보유한 원자력의 우수성을 활용한 원자력 청정수소 산업의 비전이 제시됐다.특히 동해안을 따라 철강, 화학, 시멘트 등 대규모 수소 사용 기업·지역이 밀집해 있어 이들과 연계·협력을 강화할 경우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수소 산단이 조성되면 국내 수소 관련 대기업을 비롯해 소부장 제조업체와 연구시설 등의 집적화가 이뤄진다면 탄소 중립 시대 핵심과제인 국가 수소산업을 울진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나아 갈 것이다.민선 8기 남은 기간 국가산단 중심의 ‘울진 원자력수소산업’ 육성을 통해 울진을 ‘대한민국 수소경제벨트의 허브’로 구축하는데 전 행정력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2023-07-30

발이 가고 싶은 곳으로

피곤한 발을 베개에 올리고 누웠다가문득 발이 베개를 베고 누웠다고 생각해 본다가고 싶은 곳에는 경쾌하게 앞서가던 발가기 싫은 곳에는 천근만근 끌려오던 발오늘 발이 피곤한 것은 아무래도가기 싫은 곳에 끌려갔다 돌아온 탓이리라오래된 발톱 무좀도가고 싶은 곳에 못 데려갔거나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고 다닌 탓이 크리라 생각한다발에게 베개를 받쳐주고 누워머리를 발이라고 생각하며 진짜 발을 바라본다열 발가락 하나하나 꼽으며 가고 싶은 곳을 헤아려본다한 키의 간격을 두고 동거하면서도그사이 어디 있는 마음의 발을 자주 동동거리는 바람에마음의 신발을 찾지 못해 허둥대던 날들을 생각해본다더 늦지 않게 마음먹어 본다가고 싶은 곳에 앞장서 가는 발을 따라나서리라머물고 싶은 곳에 발과 함께 머물리라 마음먹어 본다발이 머리가 되고 머리가 발이 되어 생각해 본다머리가 발 같고 머리같이 살아갈 날을 생각해 본다―안상학,‘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걷는사람, 2016)’에서‘발에게 베개를’전문우리의 제한된 삶, 그 불가역의 궤적을 발에 의탁해 형상화한 시들이 꽤 많다. 발만큼 시로 쓰는 인생론에 자주 쓰이는 클리셰도 없을 것이다. 안상학(1962~) 시인의 ‘발에게 베개를’은 제목부터 해학적이다. 해학이란 무엇인가, 예술 체험의 핵심인 즐거움과 깨우침을 주는 것이다. 시의 소재는 발이다. 그런데도 이 시는 발이 머리로 읽힌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 치를 나아가기 위해 두 발로 바닥을 디뎌야 하는 발은 머리와 달리 지상의 바닥과 맞닿은 우리의 몸 가장 아래쪽에 있다. 시인이 가진 발에 대한 연민에는 보이는 현상보다 더 복잡다단한 미안함이 실려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시에 대하여 갖고 있는 낭만적인 정조와는 사뭇 다르게 날카로운 사실적 세계의 인식을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희정 시인 “가고 싶은 곳에는 경쾌하게” “가기 싫은 곳에는 천근만근”이라는 표현처럼 하기 싫은 것들을 견디는 것. 하지만 발 스스로가 이끄는 삶과 끌려가는 삶은 그 무게가 다를 것이다. 발이 향하는 곳을 표현한 이 두 구절은 ‘경쾌’와 ‘천근만근’이라는 대비적인 시어로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심상을 적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발은 앞서가는 발과 끌려가는 발로 병치된다. 우리의 삶처럼.이 시의 클라이맥스는 “발에게 베개를 받쳐”주는 데에 있다. 마음의 발을 동동거리는 바람에” “마음의 신발을 찾지 못해 허둥대던”날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화자는 조곤조곤 발을 위무하듯 “열 발가락 하나하나 꼽으며 가고 싶은 곳을 헤아려 본다”정작 그가 가고픈 곳은 어디일까? 이 물음 앞에 우리는 그가 가자고 하는 곳은 정의와 평등 그리고 개인의 해방이 이룩된 곳일 거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시를 쓰는 까닭은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우리의 발이 견뎌내는 곳은 인간의 자유가 이룩된 세상이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비록 그런 삶을 꿈꾸며 사는 일이 힘들지라도 “더 늦지 않게” “발과 함께 머물고 싶은 곳을 머물리라”다짐한다. 때때로 나 자신이 자유할 수 있는 소유권은 얼마나 될까를 헤아려 본다. 대부분 직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여분으로 각자의 역할에 맞게 할당된 크게 작게 소속된 장소에서 소유한 지분을 제외하면 오롯이 나만의 몫은 그닥 많지 않다. 그럴 때마다 안상학 시인을 따라 발에 베개를 받쳐 놓고 소리 내어 읊조려 보는 것이다.“가고 싶은 곳에 앞장 서 가는 발을 따라 나서리라”

2023-07-30

내가 본 그사람

정상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간다. ‘저 사람은 부정적이야, 위치의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 이런 평가는 그 사람의 실체라기보다 내가 본 그 사람이고 내가 해석한 그 사람이다. 우리는 수많은 대화 속에 이런 오류를 범하면서 살아간다. ‘아들아, 친구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돼!’ ‘엄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나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야’ 엄마와 갓 중학생이 된 아들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아들이 예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자기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사람은 누구나 어떤 현상에 대해서 자신의 가치관대로 평가하고 해석하기 마련이다. 기업이나 가정에서도 대화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상사와 부하직원, 동료와의 관계도,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 심지어 평생을 한 이불 덮고 살아온 부부 간에도 대화가 참 어렵다. 이것은 상대 관점에서 보기보다 자기 관점에서 생각하고 얘기하기 때문이 아닐까.커뮤니케이션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내가 아는 지식을 전하고자 하는 상대에서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읽고 일 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대화가 현실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정의라고 한다. 일상 대화에서도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받게 되는 데, 이것은 자기 판단이 들어가는 순간 상대와 견해차이로 충돌이 일어난다. 실상 그대로를 보는 ‘관찰’ 관점보다 자기 주관이나 판단이 들어간 ‘추측’ 관점으로 보면 상대 시각은 다를 수 있으니 부딪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판단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대화에서 경청을 잘 하면 된다고 하는 데 경청도 쉽지않다. 미국 UCLA 대학교 심리학과 매라비언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구성 요소 중 옷차림, 용모, 인상 등 시각적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이론을 발표한 바 있다.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 단어를 통해서 뜻이 전달되는 것은 7%, 어조, 억양, 음성 등 소리의 요소 38%, 나머지 55%는 제스처, 표정, 몸짓 등 동작 요소에 의해 전달된다고 한다. 동작이나 어조를 제대로 듣지 않으면 소통이 제대로 안된다는 것이니 말하지 않은 것도 듣는 것이 소통의 기술자가 아닐까.기업의 혁신활동을 사람으로 표현해보면, 뼈대는 조직을 의미하고 살에 근육을 붙이는 것이 혁신이고 동맥, 정맥 등 혈의 흐름을 좋게 하는 것이 혁신 운영이다. 혁신 운영에서는 상하·수평조직의 동맥과 직장생활에서 늘 일어나는 대화의 정맥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고 혈류 막힘 현상이 일어나 조직이 고혈압이 되면 그 기업은 어려워 지는 것이다.조직 고혈압을 예방하는 길은 내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의 전부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이 된다. 내가 본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상대관점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부모자식, 친구, 직장에서 상하·수평조직 등 혈관의 흐름이 좋은 소통을 이뤄 건강한 기업, 미래가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개인의 삶과 기업의 건강은 내 판단을 버리고 상대 관점의 생각에서 시작된다.

2023-07-30

세대 모임을 찬양함

유영희 작가 “안녕하세요? 제가 운영자님이 상상하시는 것보다 나이가 많은데, 참가해도 되나요?” 이제는 어느 모임에 가도 내가 최고령인 경우가 많아서 점점 조심스러워 사전에 나에 대한 정보를 알리게 된다. 선생으로 젊은이를 대한 적은 있어도 참가자로 젊은이들과 함께 한 자리는 많지 않은데, HOLIX라는 플랫폼의 모양새를 보니 젊은이들이 많을 것 같았다.그래도 과감하게 용기를 낸 것은 올해 특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감정과 뇌’라는 주제로 뇌 과학 책만 읽는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15명의 참가자 나이 구성이 20대부터 60대까지다. 도서관을 통해 신청을 받고 보니, 나이 구성이 40년에 걸쳐 분포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주로 생협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모임을 해왔기에 이런 다양한 연령대의 모임은 약간 낯설어 긴장했지만,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에 허물없이 서로 잘 배우고 있다.그러나 HOLIX에서 알게 된 영화 모임은 아무래도 더 젊은이 중심인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역시 운영자도 30대이고 대부분 20~30대였다. 그래도 며칠 전 세 번째 모임에는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 참가자가 왔는데, 그 역시 나이가 많은데 와도 되나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이런 나이든 사람의 망설임에는 늙은이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편견이 한 몫 한다.신경과 전문의 김진국의 책 ‘기억의 병’에서는, 사람들은 ‘늙음’에서 고집, 욕심, 무뚝뚝함, 괴팍함과 같은 부정적인 편견과 가까이 가기 싫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떠올린다고 한다. 이런 글을 보니, 젊은이들이 늙은이들을 불편해할까 두려워했던 내 염려가 기우는 아니었구나 싶다. 이런 부정적 편견은 만나야 해소될 수 있다. 나 역시 장거리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80세 노인이 노트를 꺼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노인에 대한 편견이 깨진 적이 있다. 대화를 하면서 알고 보니 60세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이어서 김진국은 나이 들면 불안과 우울이 많아지고, 그러면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불안과 우울을 줄이기 위해서는 속물적인 행복을 지양하고 개성 있는 주체로서 행복을 누리는 경험을 많이 하라고 조언한다. 나이 들었다고 집안에만 들어앉아서 자식들만 바라보면 불안과 우울이 침범하기 쉽다. 뇌세포와 심장세포는 늙지 않는다고 하니 나이 들수록 교류 범위를 넓혀 동네 독서 동아리에 참여해보자. 조금은 낯선 SNS 클럽에서 공부하는 것도 주체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두 모임을 겪어보니, 젊은이들의 생각과 마음씀씀이가 예상보다 깊고 여유가 있다. 영화 모임에 온 어느 젊은이는 또래끼리만 어울리면 생각이 좁아진다며 우리를 반긴다. 세대 간 교류는 젊은이들에게도 늙은이에게도 서로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고 생각의 폭도 넓혀준다. 또래모임도 편안하고 좋지만, 세대모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젊은이들이 싫어할까 지레 겁먹지도 말고 젊은이들에게 자존심도 세우지 말고 배우는 마음으로 어울려 보자.

2023-07-30

국회와 정부는 교실붕괴 막는데 총력 쏟아라

국민의힘과 정부가 그저께(26일) ‘교권 보호 및 회복 방안 관련 협의회’를 열고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학생 생활지도 고시안을 만들어 이를 토대로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고,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교권침해 행위를 기록하도록 하는 내용의 교원지위법 개정안도 빨리 처리하겠다고 했다. 교사 업무 배분 방식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검토를 거쳐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최근 사망한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의 경우 2년 차 교사인데도 불구하고, 1학년 담임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등 기피 업무를 맡겼다는 비판이 제기된 상태다. 이날 발표된 내용 중 ‘교권침해 행위 학생부 기재’와 관련해서는 신중하게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선교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학생간의 학교폭력 사안처럼 교권 침해 역시 학생부에 기재해 학생들의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당정(黨政)의 취지에는 공감을 하지만, 자칫 학부모의 소송이 남발될 소지가 다분하다. 학생간의 학교폭력을 학생부에 기재한 이후 학부모와 교사 간 법적 분쟁이 늘어났다는 통계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교육부 통계를 보면, 관련 행정소송이 2020년 116건에서 2021년 236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학기에만 299건에 달했다. 일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는 교권침해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준비하는 작업이 힘들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학생부가 학생 인성 파악의 기초자료라는 점을 감안하면, 학생이 교권 침해로 전학, 퇴학 등 중대한 조치(징계)를 받을 경우에 학생부에 기재하자는 의견에는 공감이 간다.우리 사회는 지금 교사의 99%가 학부모, 학생들의 폭언 등 비참한 교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정부와 국회는 교권보호를 위한 정책을 어떤 사안보다 우선적으로 다뤄 하루빨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학교는 사회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따뜻한 곳이 돼야 한다.

2023-07-27

방산 투자 등 구미경제 부활에 거는 기대

지난 4월 방산 혁신클러스터 유치에 성공한 구미시가 최근 국책사업인 반도체 다소재·부품 특화단지 유치에도 성공하면서 구미시의 경제 부활에 거는 지역민의 기대감이 크다.우리나라 최초의 전자수출 도시로 명성을 날렸던 구미가 대기업의 해외 이탈로 오랫동안 침체일로를 걸었으나 최근 방위산업과 반도체기업 등의 신규투자가 잇따르면서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로 도시가 활기를 찾고 있다.특히 구미산단 인근인 군위에 신공항이 들어서고, 대구권 광역철도 개통까지 앞두고 있어 구미경제의 미래는 한마디로 맑음이다.지난해 10월 방위산업 제조공장 증설을 약속한 한화시스템이 그저께 구미산단에서 내년까지 2천억 투자 규모의 공장 건립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초소형 SAR 위성 등 방산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알려진대로 한화시스템은 K-방산의 주력 기업이다. 2025년까지 매출 12조원 달성과 함께 세계 10위 내 방산기업을 목표로 한다.현재 구미에는 180개 넘는 방산관련 기업이 포진하고 있어 방산혁신클러스터 조성이 미칠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가 높다. 구미에는 내년까지 구미국가산단에 첨단방위산업진흥센터가 들어서고, 방위산업혁신클러스터 사업단도 발족한다. 한화시스템의 공장 착공으로 국가 방위산업의 전초기지로서 구미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하겠다. 구미 반도체 부분도 마찬가지다. 특화단지 조성으로 생산유발효과 5조3천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2조8천억원이 예상된다. 직간접 고용효과도 6천500명에 이른다.구미경제는 이런 호재의 등장으로 이제 새로운 도약의 길로 접어들었다. 구미시와 기업 그리고 지역민의 관심과 응원으로 구미경제의 새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구미는 전기차로 산업구조를 바꿔가고 있는 대구가 인근에 있고 이차전지산업 특화도시로 지정된 포항과도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구미와 대구, 포항이 산업벨트로 잘 연계만 된다면 경제성장의 시너지를 더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구미는 이제 코앞에 다가온 호재를 발판삼아 전국 최고 경제도시 구미의 부활을 꿈꿔도 좋다.

2023-07-27

좀비 모기

우정구 논설위원 올여름은 모기향이나 살충제에 내성이 생겨 잘 죽지도 않는 좀비 모기가 창궐할 것 같다는 소식이다.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는 모기를 매개로 한 질병이 창궐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보낸 가운데 미국에서는 20년 만에 국내 감염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해 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다.모기 창궐의 주범은 지구온난화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 일단 개체 수가 크게 늘었다. 게다가 살충제 등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 좀비 모기까지 생기면서 모기가 전파하는 질병도 자연스레 늘 것이란 전망이다.지구상에 밝혀진 모기의 종류는 무려 3천500종에 달한다. 모기는 알을 낳은 지 3일 만에 유충이 되고, 성충이 되는 데까지 13∼20일 정도 걸린다. 성충의 수명은 1∼2개월이다. 흡혈은 암컷이 하고 수컷은 식물의 즙액을 빨아 먹는다. 암컷이 흡혈하는 이유는 알을 낳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모기가 매개로 일으킨 질병으로는 말라리아, 일본뇌염, 뎅기열 등 50여 종이 있다. 특히 모기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이 한해동안 100만명을 넘는다고 하니 뱀이나 악어, 사자 등 맹수보다 모기가 더 무서운 생명체다.태국에서는 고열을 동반한 급성열성 질환인 뎅기열 환자가 벌써 2만명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남미 페루에선 역대 가장 많은 뎅기열 환자발생으로 현재까지 300명 넘게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우리나라도 작년보다 19일 빨리 일본뇌염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모기 창궐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도 뎅기열의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까지 나오니 올 여름철 건강 관리에 특별히 유의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7-27

국민에 고통 주는 ‘정당 현수막’

홍석봉 대구지사장 정당 현수막이 지탄 대상이 됐다. 주요 교차로와 지하철역 주변 등에 무질서하게 내걸려 신종 공해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시민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도를 지나친 비방문구와 치적 홍보는 정치 혐오만 부추긴다. 국민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전국이 정당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는다. 인천시가 지자체 중 처음으로 정당 현수막을 강제 철거했다. 인천시는 관련 조례를 개정, 정당 현수막을 지정된 장소에만 설치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을 수 없게 했다. 위반한 현수막을 강제철거하는 등 공권력을 집행했다. 시민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동안 얼마나 눈꼴사납게 보였는지 짐작된다.그런데 행정안전부가 딴죽을 걸고 나섰다. 인천시의 현수막 강제철거가 위법이라며 제동 건 것이다. 행안부는 대법원에 인천시 조례 무효 확인 소송과 효력 집행정지 신청도 했다. 인천시 조례보다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을 위반했단다. 행안부의 조치는 국민정서에 반한 일이다. 국회를 의식한 행동일 수는 있겠지만, 국민감정을 도외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국민 여론을 살피고 신중하게 처리했어야 했다. 법대로가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현수막 공해의 원인은 국회가 제공했다. 국회는 지난해 말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처리, 정당 현수막을 사실상 무제한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지자체 신고·허가 없이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곧 정당 현수막이 난립했다. 법 시행전보다 두 배 늘었다. 민원이 쏟아졌다. 행안부는 부랴부랴 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별무소용이다. 사태의 주역인 국회는 서로 눈치 보며 나 몰라라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수막 홍보’에 맛 들인 정치권이 아예 눈을 감았다. 애먼 지자체만 주민 성화에 들볶인다.정치권은 홍보 효과가 크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콧방귀다. 되레 선거 때 보자며 벼르는 모양새다. 점수를 따기는커녕 본전도 못 찾게 됐다.인천시의 움직임은 지자체들의 행보에 불을 댕겼다. 광주시도 최근 무분별한 현수막 게시를 막는 조례를 만들었다. 광역 자치단체들도 공동 대응 움직임이다. 정부도 차제에 관련 법률 정비를 통해 현수막 공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서 국회차원에서 원성 높은 현수막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옥외광고물법은 위헌 시비도 인다. 정치 신인들은 현수막을 걸 수 없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가뜩이나 국민 눈 밖에 난 정치권이다. 현수막 정치는 누워 춤 뱉기다. 결국, 모든 비난과 원망은 정치가 덮어쓰게 마련이다.대구시가 현수막 제로 구역을 설정하고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이걸로는 임시변통밖에 안 된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현수막 공해를 막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대구시는 인천시의 과감한 조치를 따를 필요가 있다.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행안부 눈치 볼 필요없이 거리 현수막을 제거하길 바란다. 각 정당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국회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민생 정치는 고사하고 괴롭혀서야 되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다.

2023-07-27

교권과 학생 인권의 조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18일 서울 서이초등에서 23세 새내기 여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이 전해왔다. 그것도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을 훈계한 것을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협박하는 소위 ‘부모의 갑질’에 시달리며 힘겨워했으며, 이 사실이 터지자 유사한 사건들이 하나둘씩 알려지며 우리 교육계의 어두운 면이 밝혀지며 참았던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교사의 꾸지람이 학생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으로 학부모의 폭언과 해명 요구 등 보호자의 악성 민원이 교사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불안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1개월 전쯤에는 초등 6학년이 여선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해 신체적 손상을 입혔는데 이 학부모 역시 아동학대라는 이유로 학교를 찾아오고 전화로 협박하여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부모의 갑질은 잘못된 방향의 자식 사랑이고 지나친 편애의 과잉보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수단이 없는 실정이며 교사를 업신여기는 사회 풍조 탓이다. 학생 인권을 앞세우고 있지만 교사들에게는 교권침해이기도 하여 교권 붕괴 현장이 된 것이다.교사는 교육할 권리,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권리 및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있으나 학생, 학부모 또는 동료 교원, 사회단체 등에 의해 침해를 당하기도 한다. 교권은 교과 과정 편성, 교재 채택, 성적 평가 등 많은 곳에 해당하지만 학생지도와 징계권도 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나름의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데 이를 아동학대라 하여 고발하는 등 범죄로 취급하는 학부모가 문제인 것이다. 최근 교육활동 침해는 연간 2천 건을 넘고 모욕과 명예훼손이 약 55%라 한다.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자녀교육권을 위임받아 인생의 지도자로서 덕성과 인격을 바탕으로 진리와 양심을 자유롭게 가르치는 이른바 ‘스승’으로 대접받는 ‘선생’이어야 하지만 요즘은 단지 가르치는 직업인 즉 ‘교사’로 격이 낮아지고 공무원으로만 여겨지는 것 같다.학생들은 수업 중에 라면을 먹는 영상을 남기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녹음도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있어 체벌이나 압수가 어려운 실정이며 하기싫은 공부를 시킨다고 반항하며 오히려 선생을 폭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를 제지하거나 몸에 손을 대면 언어폭력 또는 성폭력이라고 고발당하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조사에 의하면 교사 10명 중 8명 정도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이직과 사직을 생각한다’는 응답이고 ‘이제는 꿈의 직장이 아니다’라는 분위기이다. 여기에 충북도 교육감은 “교사는 예비 살인자이다” 했으니 과연 그 교육감은 교육자인가….교육의 교(敎)는 회초리로 때려 가르친다는 글자이고 육(育)은 거꾸로 태어난 아이를 몸으로 감싸서 키운다는 글자이니 비록 매를 들더라도 따뜻하게 품어주어 진정한 사랑의 가르침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학생은 자유와 권리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하고, 선생은 아동학대, 정신적 학대라는 가해자로서의 모욕을 받지 않도록 참된 인성교육을 통해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올바른 교육환경이 이루어져야 한다.

2023-07-27

기상이변과 치산치수(治山治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전국 곳곳에 엄청난 폭우의 피해가 잇달았다.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이기도 하지만 상당부분 사전대비가 부실한 탓도 없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각종 재난에 대해 얼마나 충실한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선진국 여부를 가름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자고로 현명한 지도자들은 치산치수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 중국 전설상의 우왕이 태평성대를 이룬 군주로 칭송받는 것도 치산치수를 잘 해서였다. 조선 말기까지 우리나라의 치산치수는 아주 열악한 형편이었다. 오죽했으면 정조 임금도 “며칠만 비가 와도 홍수가 나고, 며칠만 비가 내리지 않아도 가뭄이 되는데, 이 모두가 산에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탄식을 했을까.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대규모 조림사업과 하천개수사업은 그나마 계획적인 치산치수사업의 시작이었다. 해방 후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와 사방사업은 오늘의 대한민국 근간이 되는 또 하나의 치적이었다. 1970년대 이전의 헐벗은 민둥산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들은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지금의 산들을 보면 그야말로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을 터이다.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정책에 버금가는 치수정책이었다. 그 사업이 원만히 이루어져 지천의 정비까지 완성이 되었더라면 가뭄과 홍수의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4대강사업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기간사업이었지만 처음부터 반대와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김영삼·김대중을 비롯한 야권인사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우면서 방해를 했던 것 못지않은 저항이 있었다.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4대강사업을 밀어붙인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은 치적으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당시의 야권과 환경단체 등 좌파들은 나라를 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난리를 쳤고, 그런 선동에 넘어간 대다수 국민들도 4대강사업이 국고만 낭비한 무모한 사업인 줄로 알았다.문재인 정권은 5년 동안 나라의 근간을 허무는데만 골몰하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와해시키는 것도 모자라 원전이나 4대강보 같은 중대한 국가 기간산업과 시설까지 파괴하려고 온갖 구실을 만들어 냈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을 조작하고 그 자료까지 폐기한 사실은 감사원의 감사를 통해 밝혀진 바다. 4대강보 해체를 위한 음모도 다르지 않았다. 평가 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해체를 반대하는 인사들을 배제 하고 평가 내용을 조작하는 짓을 저질렀다. “아무 생각 없는 국민들이 들었을 때 ‘그게 말이 되’라고 생각 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이유이고 논리였다.거듭하는 말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과 이명박 대통령의 치수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튼실하게 하는 역사적인 업적이었다. 아직도 그걸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잘한 게 뭐가 있다고 노무현의 봉하마을은 성지가 되고 문재인의 양산 책방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데, 청개천 복원과 4대강사업이라는 치적을 남긴 이명박의 기념관이 있는 포항 덕실마을은 한산하기만 하다.

2023-07-27

교실은 누가 책임지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젊은 선생님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압력에 못 이긴 결과로 보인다. 선생님은 누구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가 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맡겨야 하는가. 학교와 가정, 사회와 국가 가운데 교육의 궁극적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학부모는 학교 교육에 관하여 어떻게 어느 만큼 개입할 수 있을까. 평소에도 궁금했던 질문들이 한 선생님의 극단적인 선택 앞에 불쑥 올라온다. 교사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우리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갈등이 빚어져 회복할 수 없었다면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유사한 상황이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믿고 맡겨야 한다. 교직은 성직이었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았을 만큼 높은 신뢰의 대상이었는데, 언제부터 선생님이 감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을까. 수십 년 전 학교의 모습에서 교사가 자행했던 폭력과 오만의 그늘을 기억한다. 불신과 경계가 일부 교사들의 악행에서 비롯했던 부분도 부인하기 어렵다. 선생님들이 우선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첫 다짐을 회복해야 하고, 학부모는 젊은 선생님의 진심을 받아주어야 한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교육과 관련한 모든 결정과 진행에 학부모의 믿음을 실어야 한다. 교사와 부모가 한마음이 되어 자녀교육을 쌓아야 한다.교사는 을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언제나 갑과 을의 관계로 인식하려는 우리 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이와 성별, 직책과 소속, 업무와 직종에 따라 갑과 을을 판정한 다음, 그 비대칭적인 관계에 따라 나머지 모든 일을 진행하는 방식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필요에 따라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자신이 선택한 업무에 임하는 만큼, 누구든 전문인의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비대칭의 갑을문화가 교육에 들어서 있는 한, 교육의 전문성이 살아날 방법이 없다. 교사와 학부모가 각기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인식과 태도를 견지하고 자신있게 본연의 업무에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기대는 각자의 전문적인 소양을 진작시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자녀교육을 위하여 서로를 믿고 격려하며 소통하고 공유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아이는 온 마을이 기른다. 선생님과 학부모뿐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나는 주변의 사람들과 사물들이 모두 교육에 함께 한다. 교육정책을 만드는 정부와 교육청은 교사가 교실 안에서 가르치는 일에 던지는 과도한 감독과 감시의 눈길을 거두어야 한다. 교사가 전문적이며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긍정적인 교육을 자유롭게 진행하도록 신뢰하고 격려해야 한다. 선생님들이 처음 가졌던 순수와 열정을 회복하고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싶다. 공교육의 근간은 학교에서 찾아야 하며, 교실은 학교 교육의 현장이다. 교실은 선생님의 가르침과 자녀들의 배움으로 가득해야 한다. 선생님이 살아야 교육이 선다.

2023-07-26

다시 열린 문경 하늘재

홍석봉 대구지사장 문경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높이가 525m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를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 분쟁 역사가 전해오는 역사 속의 옛길이다.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하늘재가 2천 년 만에 다시 열렸다.하늘재는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했다. 삼국시대(156년) 때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했다고 기록돼 있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끈질기게 전쟁을 벌였다.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蒙塵)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교통 및 군사요충지이자 물류 및 문화의 통로였다. 하지만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이용객이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서울서 부산까지 가려면 반드시 하늘재를 넘어야 했다. 계립령(鷄立嶺), 대원령, 지릅재 등으로도 불렸다. 길 양쪽에는 전나무, 굴참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2008년 12월 대한민국의 명승 제4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역사적인 길이 지금까지 충주 구간만 남아 있었는데 문경시가 하늘재 옛길을 복원, 문경과 충주를 잇는 하늘재 옛길이 완성됐다. 문경시는 최근 하늘재 정상에서 하늘재 옛길 복원사업 준공식도 가졌다. 하늘재 옛길 복원사업은 관광 자원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9년 시작됐다. 문경시는 57억원을 들여 하늘재 마루턱에서 문경 관음리 마을을 잇는 2.48Km의 옛길을 복원했다. 쉼터와 특산물을 판매하는 마을 공동구판장도 마련했다. 하늘재 옛길을 잘 가꾸어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힐링할 수 있는 명품 옛길이 되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26

포항, ‘이차전지산업 세계지도’ 그려나간다

이차전지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면서 포항시가 제3의 국가산단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철강도시 이미지가 강한 포항시가 4차산업 혁명시대를 맞아 ‘배터리 중심도시’로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포항시에 있는 3·4 영일만 국가산단(흥해읍 곡강리, 용한리)과 블루밸리 국가산단(동해면, 장기면, 구룡포읍)은 최근 이차전지 기업들의 투자확대로 잔여부지가 거의 매진됐다. 현재 2단계 공사가 진행중인 블루밸리 산단은 지난주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수소연료단지 클러스터’가 입주하기로 돼 있어 분양할 땅이 없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차전지 선도기업인 에코프로 한 개의 기업이 영일만 산단과 블루밸리 산단에 4조5천억원을 투자해 포항의 산업지도를 바꿔 놓았다”고 평가했다. 포항지역 국가산단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돼 앞으로 기업유치와 투자확대가 더욱 활성화된다.포항시가 올들어 산업단지연구원 등 전문엔지니어링 회사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산업단지 입지타당성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국가산단 신규수요에 대비한 것은 발 빠른 조치다. 용역 결과는 내년 3월쯤 나오는데, 지난 5월 첫 초안보고회를 가졌다. 포항시는 일단 신규산단 건설보다는 블루밸리산단과 경제자유구역(흥해읍 대련·이인리 일원)을 확장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외 기업들로부터 특화단지 입주 수요조사를 하는 중이다.포항시는 오는 2030년까지 배터리 성능과 가격을 좌우하는 핵심소재인 양극재 100만t 생산·매출 7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만간 경북도 지원을 받아 ‘전지보국TF’도 구성할 예정이다. TF에서는 포항이‘글로벌 이차전지 도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RD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 양성, 양극재산업 전후방 밸류체인 구축 등을 집중 논의한다. 포항시는 이참에 윤석열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핵심정책인 ‘기회발전특구’ 지정에도 도전해 향후 세계 이차전지 산업지도를 주도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도시로 부상하길 기대한다.

2023-07-26

기업가치 혁신한 포스코, 지역 성장도 이끌길

포스코그룹의 상장주가가 급등하면서 장안의 화제다. 이차전지 기업인 포스코퓨처엠의 주식이 장중 한때 60만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하면서 포스코퓨처엠은 25일 종가기준 시가총액이 46조원으로 현대차 시총(42조원)을 제쳤다. 포스코홀딩스는 하루 동안 삼성SDI, LG화학,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앞서면서 시가총액 4위를 차지했다. 포스코그룹 6개 상장사 시가총액은 115조원으로 2018년 7월 포스코그룹이 ‘기업시민’ 경영이념을 발표한 지 5년만에 기업가치가 3배나 뛰었다.포스코그룹 주가가 급등한 것은 철강산업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이차전지 등 친환경사업으로 발빠르게 변신한 그룹의 혁신전략 때문이다. 또 최근 상승세를 보인 포스코그룹 주가는 철강산업을 이끌면서 신산업인 이차전지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포스코에 대한 주식시장의 긍정 평가다. 포스코그룹은 향후 3년간 이차전지소재 사업분야에 그룹 전체 투자비의 46%를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혀 포스코그룹 변신에 대한 기대감은 이제 더 높아졌다.학계는 “포스코그룹이 성공적인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기업가치를 증대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와 관련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은 지난 24일 기업시민 경영이념 선포 5주년 기념식에서 “포스코그룹의 기업시민 경영이 ESG시대를 선도하는 미래경영의 롤모델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포스코홀딩스의 본사가 소재한 포항은 이런 분위기에 맞춰 경사가 겹쳤다. 정부가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일환으로 지정하는 이차전지 특화도시에 포항이 포함됐다. 포항은 철강에 이어 이차전지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장착함으로써 포항 경제에 대한 미래비전이 밝아졌다. 또 이차전지 선도기업인 포스코퓨처엠 등이 앞다퉈 포항에 투자하면서 포항 블루밸리산업단지가 최근 완판되는 일까지 일어났다.포스코그룹의 기업가치 상승은 지역에도 적지 않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 최고의 철강산업을 이끈 포스코의 혁신적 역량이 이제 이차전지까지 확대돼 지역경제 성장에도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2023-07-26

백일홍꽃밭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족히 60㎡는 넘는 제법 큰 밭이다. 작년 가을엔 구석에 밭을 작게 일구어 배추니 들깨니 심어 좀 뜯어먹긴 했다. 그래도 묵혀둔 자리엔 풀만 그득그득 자랐다. 부지런하기만 하다면야 온갖 씨를 뿌려 농사를 지을 테지만 천성이 바지런하지 않다. 게으른 자의 고민을 덜어줄 좋은 방법은 없을까 여럿에게 자문을 구했다. 혹자는 고사리를 심으라고 했다. 풀이 덜 자라고 봄에 고사리순을 뜯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예쁜 꽃도 보고 몇 년 후엔 뿌리를 캐먹을 수 있는 도라지를 적극 추천한 이도 있었다. 도라지가 꽃은 예쁘겠으나 몇 년에 걸친 농사라고 생각하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꽃집을 경영하는 친구가 백일홍을 추천했다. 씨만 뿌려주면 거의 손이 안 갈뿐더러 여름내 꽃을 볼 수 있다고 했다.나 역시 농사보다는 꽃을 즐기고 싶었다. 지난봄 남편과 같이 며칠에 걸쳐 풀을 뽑은 자리에 백일홍꽃씨를 마구 뿌렸다. 그리고 두어 달 지난 6월 초, 백일홍꽃이 한 송이 피었다. 며칠 뒤 가니까 또 몇 송이 더 피면서 사람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분홍, 연분홍, 다홍, 빨강, 주홍, 노랑색의 꽃이 홑겹으로 피다가 며칠 뒤엔 2겹, 3겹, 또 며칠 뒤면 4겹, 5겹, 6겹의 두터운 꽃송이를 마구마구 피워댔다. 남편도 백일홍은 성공했다고 뿌듯해했다.마치 꽃들이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것 같았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루에 의자 꺼내어 앉아 꽃밭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시간이 절로 갔다. 그야말로 꽃멍이었다. 어디 꽃뿐인가. 온동네 나비란 나비는 모두 우리집 꽃밭에 와 있는 듯했다. 세어 보다 수를 잃을 정도로 많은 나비들이 꽃을 탐하며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문득 사미인곡의 한 소절이 떠올랐다.‘찰하리 싀여디여 범나비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대족족 안니다가 향므든 날애로 님의 오새 올므리라’ 저 나비들은 백일홍 향을 묻혀 어디로 날아갈까….혼자 보기 아까웠고 우리 가족만 보기에도 아까웠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여기저기 보내며 우쭐댔다. 꽃멍하러 오시라고 자랑삼아 유혹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소녀같이 흔연해하시는 어른이 가까운 청도에 계신다. 꽃보다 아름답게 노년을 즐기시는 분인데 얼마전 허리를 다치셔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시다. 꽃사진만으로도 감탄하시는데 직접 꽃을 봬드렸으면 하는 마음에 시간을 내어 모시고 와서 꽃구경을 시켜드렸다. 가까이 대구에 사는 후배도 꽃멍하고 싶다며 기어이 짬을 내어 와 한나절을 머물렀다.44년 전 대구의 한 여중에서 1년간 같이 교사로 지낸 인연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 모임이 있다. 다섯 분의 선생님들이 대찬 장맛비를 뚫고 서울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와 모였다. 이 꽃 보러 오신 귀한 걸음인지라 하룻밤을 묵으며 함께 지냈다. 빗줄기 속에도 꽃빛을 잃지 않은 백일홍 덕에 꽃놀이만큼이나 황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 이 꽃 지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꽃을 봤으면 싶었다. 나무판자에 글씨를 크게 써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집 앞 우물 위 덮개에다 올려 두었다. “집안에 들어와서 백일홍꽃 구경하세요”

2023-07-26

백세만세 장수사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청산이 불로하고 녹수가 장존(長存)하는 여름날이다. 청산은 세월이 지나도 늙는 법이 없으니 변함이 없고, 녹수는 세월이 지난 후에 보아도 언제나 변함없이 푸르게 흐르는 물이다.그러나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 몸도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니 그렇다고 지나가는 세월을 탓할 수도,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할 수도 없는 일이라 그저 담담하고 차분하게 세월의 여울에 몸을 맡기면 될 일이다.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生老病死)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 네 가지를 인간이 평생 거치게 되는 큰 고통이라 하여 사고(四苦)라 하기도 한다.즉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은 운명이자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현대의학의 발달과 식습관의 개선으로 병고(病苦)를 다소 줄일 수는 있지만 나이를 먹으며 늙어가는 노고(老苦)는 누구에게나 불가피한 일이기에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어쩌면 젊고 건강한 모습과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오랫동안 남겨두는 습성을 지닌 것이 아닐까 싶다.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좀더 활기차고 발랄한 모습을 보이며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만큼 젊음과 추억과 인연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문명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고 간편하게 폰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또 언제 어느 때 다시 보거나 인화할 수도 있으니, 가히 사진은 현대사회의 필요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멋진 경치나 맛난 음식을 대하면서 사진부터 찍게 되는 것도 결국 오래도록 삶을 회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장수사진도 그러한 관점에서 늙어감의 비애를 줄이고 오래 살고 싶어하는 기대와 욕망으로 애써 촬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밝고 편안한 표정을 담은 자신의 인물사진을 대하면 본인도 모르게 마음이 온화하고 넉넉해져서 기분이 좋아지고 만족감 속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날 것이다.비록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 없고 시간의 지문 같은 주름살을 줄일 수는 없지만,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이 배인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각인시키며 여유롭고 완숙한 얼굴을 사진으로 남겨 놓게 된다면 한결 새롭고 설레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최근 포항제철소 사진봉사단에서는 구룡포읍행정복지센터에서 제32차 ‘찾아가는 장수사진’ 촬영으로 어르신들께 기쁨을 안겨드렸다.5년째 포항시 전역을 동네방네 찾아다니며 1천200여 분께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장수사진을 촬영하고 액자로 만들어주고 있으니, 참으로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쑥스러운 듯 살갑게 장수사진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의 백세만세를 기원해본다.

2023-07-26

거머리

윤명희 수필가 검은 하늘이 내려앉는다. 곧 비가 내리꽂을 태세다. 퇴근을 망설이는데 사무실 문이 열린다. 얼굴이 파리한 여자가 엉거주춤하니 들어선다. 상가를 내 놓겠다느니, 상담을 좀 해 달라느니 말의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차근하게 얘기해 보라고 하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그 남자가 내 명의로 가게를 하거든요?”“무슨? 어떤 남자가요?”얼마 전까지 애인이었던 남자가 그녀의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이름만 사장인 그녀는 직원이 다섯 명이나 되는 가게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카드까지 사용하는 남자와는 이제 헤어진 사이다. 헤어지고도 카드는 남자가 쥐고 있다. 남자는 카드대금을 내야 하는 날짜를 넘기고, 카드를 정지시킨 그녀는 남자에게 가게에 들어간 돈을 돌려주고 명의를 가져가라고 했단다.남자는 그녀의 말을 단칼에 난도질하고 콧방귀까지 뀌었다. 콧방귀에 이어 쌍욕을 바가지로 하더라며 어이없다는 듯이 실실 웃는다. 갚아야 할 카드 대금이 불어서 7천만 원이라는 말에 듣는 내가 억장이 무너진다. 왜 그 남자에게 가게를 내줬냐고 물었다. 묻는 나도 그녀처럼 갈팡질팡 한다.그녀는 남들이 자고 일어날 때마다 돈 벌었다는 말에 비트코인을 시작했다. 빚을 내 시작한 비트코인은 3천만 원의 빚으로 남았다. 그 빚을 남자가 장사해서 갚아주겠노라 했다. 빚을 갚아준다는 말에 또 카드빚을 내 가게를 차려주면서 4살 연하의 남자와 연인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뱃속에 욕심을 품고 맺은 인연이 맞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서로의 목소리만 들어도 욕이 나오는 원수가 되었다. 그녀는 남의 손으로 코를 풀려다 코가 꿰었다.팔에 큰 문신이 있고 성질이 난폭하기까지 하다는 그 남자가 금방이라도 그녀를 쫒아 들이닥칠 것 같다. 나는 흘낏 바깥을 내다 봤다. 어둠이 내린다. 가게 내 주고, 카드 주고 쌍욕까지 듣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카드빚이 오롯이 그녀의 몫이 되는 건 보나마나다.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를 그냥 보내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 얼마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내 사무실까지 찾아왔을까. 오지랖이 발동된다.그녀가 폰에 적어 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것 같은데 요점이 없다. 뭘 말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폐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빚이 더 늘기 전에 그 남자에게 폐업하겠다는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자 그녀의 표정이 잠시 밝아진다. 그녀가 써 놓은 글자를 조합해서 말하고 싶은 문장으로 만들어주었다.듣다듣다 하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하려고 여기까지 왔느냐는 말이 막냇동생 나무라듯이 나왔다. 가게부터 정리하고 나서 파산신청을 하면 그만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말로만 듣던 파산신청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보증금을 받아서 그거나마 먼저 갚고 벌어서 차근차근 갚겠다는 말을 기대한 내 귀에, 이젠 나랏돈으로 자기의 잘못을 처리하겠다고? 순간, 힘든 가운데도 꼬박꼬박 세금내고 있는 내 등에 그녀가 빨대를 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묵은 얘기들을 꺼내며 감정에 받혀 눈물을 찍어내기를 반복했다. 벌써 파산을 말한 그녀를 위해 내가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뜨거운 커피를 그녀 앞에 두고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 줄 뿐이었다. 상담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올 때는 커피라도 사 오겠다고 한다. 손사래를 치며 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 잘하라고 당부했다.그녀가 나가고,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비가 내린다. 우산을 펴고 보니 저만치 그녀가 빗속을 걸어가고 있다. 사무실에 있는 우산이라도 가져가라고 소리쳤다. 하얀 원피스가 손을 흔들며 뛰어간다. 거머리의 등에 더 큰 거머리가 달라붙어 덜렁거린다. 그녀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저렇게 큰 게 쉽게 떨어질까. 나는 신호등 불빛이 바뀔 때까지 바라보았다.

2023-07-26

신해일주(辛亥日柱)

육십갑자 중 마흔여덟 번째는 신해(辛亥)다. 천간(天干)의 신금(庚金)은 보석 같은 작은 금속이나 칼이다. 지지(地支)의 해수(亥水)는 물빛이 맑아 푸르고 맑고 지혜롭다. 동물로는 흰 돼지다.신해일주는 금백수청(金白水淸)이다. 백금이나 다이아몬드며, 맑고 청청한 물의 형상이다. 깔끔한 성격에 신용과 의리를 제일의 덕목으로 삼을 만큼 약속을 잘 지키며, 언행이 바른 편이다. 씩씩한 성격에 예의를 잘 지키며,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고, 허튼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가을바람처럼 겉으로 쌀쌀하고 냉랭한 듯하며, 속으로도 칼날처럼 날카로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미지가 차갑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철하다. 신금(辛金) 자체가 이미 완성된 귀금속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마치 고귀한 여왕 같은 존재다. 낭만적인 연애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 사랑에 대한 욕심이 많고 집착이 강하다. 반대로 상대가 나에게 집착하면 냉철하게 끊어버리는 냉정한 면도 있다.60갑자 중 미남미녀가 많은 대표적인 일주며, 서구적인 미모가 많다. 보석을 물로 깨끗이 씻어 광채가 나듯 대체로 용모가 준수하고, 행동에 품위가 있다. 또한 미적 감각이 탁월하여 옷을 입어도 세련되고 귀티가 난다. 머리가 좋아 선견지명이 있어 늘 남들보다 앞서가는 성향이 있으나, 의외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제 몫을 챙기지 못하는 성품이다.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황공은 겸손함이 지나쳐서 비굴할 정도였다. 황공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다. 황공도 두 딸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자라나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딸들이 못생겼다고 낮추어 말하곤 하였다. 그랬더니 딸들이 못생겼다는 소문이 멀리까지 펴져서 결혼할 나이를 넘기게 되었는데도 청혼해 오는 사람이 없었다.마침 위나라에 광곤이라는 노총각이 모든 것을 팔자 탓으로 돌리고, 황공의 맏딸에게 청혼을 했다. 그리고 첫날밤에 비로소 얼굴을 대하고 보니 천만 뜻밖에도 신부는 아름다운 미녀였다. 뒤에 집으로 돌아온 광곤이 사람들에게 “황공께서 겸손하기를 좋아하셔서 헛소문이 퍼진 것인데, 실제로 가서 보니 처제가 더 아름다운 것 같았네”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청혼을 하였다. ‘윤문자’대도 상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겸손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한편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늘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와 함께 아름다움도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신해일주 남자는 외모가 좋고 재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 큰 문제없이 해로한다. 다만 호색가로 외도를 하거나 숨겨둔 여인이 있으니 처신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여자는 잘생긴 외모에 꾸미기를 좋아하며, 인정욕구가 강해 연애를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결혼 후 남편을 무시하고 밀어내는 기운이 강하여 헤어지는 일이 발생하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남녀 공히 냉정하고 차가운 인상이나, 성실하고 섬세하다. 신해일주는 동물로는 흰 돼지다. 가을에 서리가 내린 풍경으로 고독을 느끼는 성품이며, 불의를 참지 못한다.거친 숨을 몰아쉬는 멧돼지처럼 저돌적인 투지와 끈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울수록 더 힘이 넘치는 난세호걸이다. 난관에 봉착하면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 매력이다.신해일주는 돼지 해(亥)가 하늘의 매서운 기운인 신(辛)을 만나는 물상이다. 중국의 손문 등이 신해년(1911년) 10월에 봉기를 했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는 것을 보고 개혁에 나선 것이다. 돼지 년에, 돼지 달 10월에, 10일에 일어난 혁명이라고 신해혁명이며 쌍10절이다. 청 왕조를 무너트리고 민중이 주인이 되었다는 중국 최대의 국경절이다.신해년(1911년)에 청나라 타도를 목표로 손문이 삼민주의를 내세워 동맹회를 중심으로 혁명운동을 추진한 결과, 우창에서 군대가 봉기함으로써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루쉰(1881∼1916)의‘아Q정전’은 신해혁명 시기 ‘아Q’라는 인물의 인생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그는 성 밖 낡은 절간에서 살면서 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번 돈을 술과 도박에 써버리는 인물이다. 툭하면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Q’가 신해혁명에 가담하여 인생역전을 하려다가(그나마도 도적 패거리와 결탁한 것) 나중에는 하지도 않은 강도짓에 서명함으로써 총살당하는 이야기다. 류대창명리연구자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영양분 삼아 살아가는 중국인이 곧 ‘아Q’다. 노비라는 약자의 입장에 처해 있으면서 반항할 줄 모르는 ‘아Q’는 오히려 자기와 같은 위치에 있는 약자를 무시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주인이라는 강자의 위치로 올라가서 자기 밑 사람들을 압박하리라고 상상하는 사람이 곧 중국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루쉰은 권력자나 외국인이나 주인에게 충성하는 중국인을 물에 빠진 개라 했다. 물에 빠진 개라고 해서 때리지 못한다는 법이 없으며 그럴수록 더 때릴 것을 주문한다. 그놈이 물에 빠진 것을 세례(洗禮)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잘못을 뉘우쳤을 것이니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오판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오히려 이 개를 더 두들겨 패라고 주문한다. 신해혁명 후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제멋대로 기어 올라와 사람을 물어뜯게 되었다는 것을 풍자적으로 나타냈다.개인이 광기에 사로잡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뤘을 때, 혹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에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너무나도 당연히 광기에 사로잡힌다. 그 결과는 항상 좋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요구된다.

2023-07-26

자격을 결정할 자격

한 초등학교의 담임교사가 교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졌다. 참담한 일이다. 그녀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새내기 교사였다. 학부모의 전화를 수십 통 받았으며 환청이 들릴 정도로 힘겨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교사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비통함을 표하고 있다. 나 역시도 얼마 전까지 교원으로 근무했었다. 교무실과 학부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모습과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애썼으나 상실로만 남은 일련의 사건이 떠올랐다. 지금도 비슷한 고통에서 허우적대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마음이 더욱 어렵다.학교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다. 인간은 자라면서 필연적으로 이곳을 거치게 된다. 집과 부모라는 안온한 세계를 떠나 낯선 세계로 들어와 타인을 만나고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운다. 세상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내키지 않더라도 규율과 법칙에 따를 필요도 있다. 학교에 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다시 단단해지면서 한 생명은 자란다. 그렇기에 학교는 마냥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다.나의 학창 시절도 그랬다. 학교가 흡사 감옥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교내에서의 차별과 냉대, 강압과 폭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선생은 손목에 찬 시계를 벗으면서 학생을 향해 무차별적인 구타를 한다. 소설이나 드라마에도 학생을 향해 거리낌 없이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선생이 자주 등장한다. 서사적 비약이 아니다. 그런 야만적인 시대가 우리에게 분명히 있었다.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이 바로 서 있지 못하고 위험한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기도 했다. 폭력에 노출되어도 그것이 폭력인 줄 모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무조건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미진함과 어리숙함으로 종종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잠이 오지 않고 괴로움에 몸서리쳤다. 출근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나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선생의 자리에 앉았다. 어떤 부분이 무뎌지는 기분이 들었고 진정성이라는 피상적인 단어가 무력하게 다가오기도 했다.감사한 점은 내게 사랑과 응원을 주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폭언에 가까운 전화나 문자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 마음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행간에서 나를 상처 주고 싶다는 명백한 의지가 읽혔다. “당신은 선생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간신히 붙잡고 있던 실 하나가 툭 끊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세상을 떠난 그녀 역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자격이 없다’는 말은 상대를 모멸감에 빠지게 만들기에 아주 쉬운 문장이다. 악의적인 인간에게 내뱉기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실수나 부딪침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각 없이 쓰인다. 누군가의 자격을 결정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원인이 어떠하든 그것은 분명히 상대의 마음을 훼손시키는 언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타인을 향한 적의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한 사람을 절대적 악인으로 상정하고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교사가, 관리자가, 학부모가, 어떤 사람들은 학생이 나쁘다고 말한다. 태어난 것 자체가 죄라고 한다. 개인에 고통이나 슬픔에 집중하기보단 누군가에게 책임을 덮어씌운 뒤에 무자비하게 돌을 던진다.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뿌리 깊은 냉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의 책임 전가는 더 이상 해선 안 된다.육체만큼 다치기 쉬운 것이 영혼이다. 종이에 손이 베이는 것도 쓰라린데 보이지 않는 화살이 가슴에 박히면 회복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매일 같이 느꼈다. 구시대적인 통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살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존재가 한 교실에 모였다.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덧씌워선 안 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 모두가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비와 무더위가 반복되는 한여름의 가운데 서서 다짐한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다른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마음처럼 상하기 쉬운 것은 없으니까. 마음 다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학교 구성원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는 물론이고 교육 현장에서의 지속적 성찰과 개선을 통해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3-07-25

인터스텔라, 더스트 볼, 분노의 포도…

영화 ‘인터스텔라’의 기억에 남는 한 장면.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운동장 너머로 거대한 모래 폭풍이 다가온다. 사람들은 모래 폭풍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황급히 집으로 대피한다. 이윽고 모래 폭풍은 마을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어 옥수수 밭을 바라본다.SF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한 장면에 불과해보이지만, 사실 이 장면은 20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끔찍한 대재앙을 재현한 것이다. 1930년대 초 미국의 중부 곡창지대를 덮쳤던 더스트 볼(Dust Bowl)이 그것이다. 미국 중부의 대규모 곡창지대인 콜로라도, 캔자스, 오클라호마, 뉴텍사스를 덮친 모래폭풍은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했고, 마차·자동차 따위에서부터 창고·집·우물·전신주와 같은 시설물마저 날려버릴 만큼 강력했다.더스트 볼은 직접적으로 휘말린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20만 명이 넘는 이재민 또한 발생시켰다. 모래폭풍은 1937년, 미국 중부에 많은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 근방을 떠돌며 토지를 더욱 황폐화시켜갔다. 경작도 생활도 불가능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포기하고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대도시로 이주하였지만, 극단적인 가난과 주거의 불안정, ‘오키(Oki)’(뜨내기)라는 멸칭을 안은 채 살아가야만 했다.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바로 이 시기, 오클라호마를 비롯한 미국 중부의 서민과 노동자들이 겪은 극단적인 가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더스트 볼로 인해 황폐화된 고향을 버리고 대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이주할 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땅을 헐값에 팔아야만 하는 사람들. 그렇게 도착한 서부에서조차, 그들은 가난한 이방인이라는 멸시와 홀대에 직면한다. 모든 것을 잃고 설움에 가득 찬 그들의 모습을 존 스타인벡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놀란 감독이 이와 같은 더스트 볼의 모습과 그 후의 폐허를 영화 속에 차용했을 때, 영화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현실 속 더스트 볼도, 영화 속 모래폭풍도 모두 인간에 의해 빚어진 대재앙이라는 것. 사실 1930년대 초 미국 중부에 닥친 심각한 가뭄이 더스트 볼의 직접적인 방아쇠이기는 하지만, 방아쇠는 결코 총알 없이 발사되지 않는다.식량 증산을 위해 수십 년간 계속된 난개발은 숲과 습지를 비롯한 생태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시켰으며, 미숙한 건조농법의 영향으로 경작지 또한 빠르게 황폐화되었다. 대략 20년간의 난개발과 무리한 경작이 미국 중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더스트 볼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인간에 의해 자행된 자연 파괴가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데에는 채 반 세기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러한 인과를 눈치챈 것은, 이미 그것이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게 되었을 때였다.이처럼 우리는 거듭 자연 파괴로 인한 재난을 겪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무구한 표정으로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 한 컨퍼런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기후변화는 지구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를 비롯한 일부 생물종에게만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 기후 변화로 인해 상당수의 생물이 멸종하게 되겠지만, 지구에서의 생명활동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살아남은 생물들이 다시 번성하여 지구는 다시금 푸른 별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이야기였다.그럼에도 우리는 거듭 기후 변화를 ‘우리’의 일이 아닌 다른 희귀동물의 멸종 따위의 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나의 세대 이후에 발생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우린 이미 기후 변화로 인한 환란의 시대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올 여름에도 끔찍한 수준의 비가 내리고 있다. 기후학회에서는 ‘장마’라는 개념 대신 ‘우기’라는 개념으로 한국의 여름 기후를 바라봐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올 해에도 예상된 호우에도 불구하고 인재가 겹쳐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살고 있지만, 보이는 것을 애써 흐린 눈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2023-07-25

‘교실붕괴’의 심각성, 예삿일 아니다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해 우리사회에 충격을 준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20대 교사의 일기장이 공개돼 또한번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일기장에는 “월요일 출근후 업무폭탄+(학생이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숨지기 15일전에 작성된 내용이다. 교사가 학교업무와 학생문제로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는 일기다.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 초등교사들은 마음속으로 공감하며, 같이 비통해할 것이다.지금 초등학교 교단은 심각한 아노미(무규범) 상태로 병들어 있다. 담임교사가 자기반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학부모의 악의적인 고소·고발에 시달리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일상화되고 있다. 교사들은 예외없이 매년 인사이동 때마다 민원을 남발하는 학부모의 자녀나 정서장애 학생이 자기반에 편성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학교는 담임교사에게 너무 많은 요구를 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수나 권한은 주지 않는다.학생이 다치거나 학생 간 갈등이 발생하면 교육 당국이나 학부모, 심지어 학교 교장·교감도 담임교사 책임으로 미룬다. 교단이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정부와 여당이 오늘(26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교권 보호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 실질적인 교권 침해 방지와 교사지위 회복에 대한 제도적 방안이 나와야 한다.국회에는 현재 교사보호와 관련된 법안이 8개나 발의돼 있다.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이 최근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교사들이 ‘아동학대 범죄 가해자’로 신고당하는 것을 방지)과 교원지위향상법(교육활동 침해를 한 학생에 대한 조치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이 대표적인 계류법안이다.민주당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교육위 소속 강득구 의원은 지난달 ‘법령과 학칙에 따른 교사의 학생 생활 지도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교원이 아동 학대 범죄로 신고돼 조사·수사 등이 이뤄지는 경우 학교장이 조사·수사기관, 법원에 의견을 제출하는 내용)’도 발의해 둔 상태다.여야가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들을 조속히 통과시키기만 해도 교단의 위기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대구·경북은 채택하지 않고 있지만, 서울·경기·광주·전북·충남·제주 등 6개 시·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도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대표적인 장치다. 이 조례는 ‘교사를 보호하면 학생 인권이 추락한다’는 편향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민원을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학부모들은 제 자녀 만큼 교사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악성 민원과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사들이 매일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해서야 어떻게 우리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2023-07-25

경주시의회 해외 출장, 수해 복구 중 가야 하나

지방의원의 해외 출장이나 해외 연수가 논란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되면서 이와 관련한 잡음과 말썽은 끊임없이 이어졌다.지방의원의 해외 연수나 해외 출장은 시민이 낸 세금으로 공무를 수행하기에 그 내용이 공익적 목적에 잘 부합돼야 옳다. 그러나 대개가 출장의 목적성보다 관광 위주의 일정이 짜여 외유성 논란으로 비판을 받은 게 사실이다. 출장 목적은 선진 행정 학습으로 돼 있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관광이 목적일 때가 많았다.2018년 연말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의 관광성 해외 연수 중 발생한 추태와 가이드 폭행 사건은 지방의원 해외 출장의 빗나간 형태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전국적으로 수해 복구가 한창인 가운데 베트남 출장을 떠나 비판이 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당의 조기 귀국 요청이 이뤄지고, 국민의힘은 전국적 비 피해 상황을 고려, 해외 출장 자제령을 내렸다. 지역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괴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수해 현장에서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이런 가운데 경주시의회 일부 의원들이 다음달 7일부터 신라문화제 벤치마킹을 명분으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페스티벌을 방문키로 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작년부터 계획한 행사라고 해명하지만 정치권의 자제 움직임이 확산된 지금 출장 가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특히 에든버러페스티벌과 신라문화제는 성격이 많이 달라 축제에서 벤치마킹해 올 게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많다. 신라문화제는 오는 10월 개최를 일정으로 이미 축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진행돼 에든버러 축제의 장점이 신라문화제에 반영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한 여론조사에서 지방의원의 해외 출장을 금지하자는 의견에 절반 이상이 찬성했다. 지방의원의 해외출장에 대한 불신감을 반영한 수치다. 지방의회가 자업자득한 부분도 많다고 보아야 한다.지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지방의회가 자제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해외 출장 내용도 획기적 변화를 구해야 한다.

2023-07-25

형산강 관리 책임질 ‘홍수통제소 신설’ 절실

전국적인 폭우가 계속되면서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 상륙 당시 집중호우로 큰 인명·재산 피해를 본 포항시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지난 15일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이후 전 직원이 비상근무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지반 약화로 인한 산사태 우려 지역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그저께(24일)는 형산강·냉천 유역 비 피해 확인을 위해 포항에 온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형산강 홍수통제소 신설을 건의했다. 이 시장은 “지난 2018년부터 형산강에 매년 홍수예보가 발령되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선제적 홍수·가뭄 대응과 주민 생존권을 위해 형산강 홍수통제소 신설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지난 2월과 3월에도 환경부를 찾아 형산강홍수통제소 신설을 건의했다. 현재 형산강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 하천은 낙동강홍수통제소가 담당하고 있어 집중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주와 포항을 관통하는 형산강은 61.9㎞로, 동해로 흐르는 강 가운데 가장 길고 유역면적이 넓다. 동해안 하천은 남·서해안 하천과 달리 경사가 급하고 유량변동 범위도 커 홍수 때마다 수위가 급속히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형산강은 전 구간에 퇴적물이 쌓여 있어 2018년 이후 매년 장마철마다 홍수예보가 발령되고 있다.포항시민들은 지난해 태풍 힌남노 사태를 겪으면서 ‘폭우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시피 하다. 힌남노 상륙 당시 오천읍에 있는 냉천이 범람해 인근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물이 잠겼고, 7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포항제철소가 완전히 침수되면서 135일간 고로 가동이 전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냉천 재해복구사업은 2025년 연말이 돼야 완료된다.현재 포항시는 냉천 문덕3교와 곡강천 곡강교에 다목적관측소를 운영하거나 구축 중이다. 사전대비로 갑작스런 홍수피해를 막기 위한 임시조치다. 정부는 하루빨리 경북 동해안을 담당하는 홍수통제소를 신설해 매년 반복되는 집중호우와 태풍에 따른 물적·인적피해를 예방하도록 해야 한다.

2023-07-25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묻지마 범죄’

우정구 논설위원 분노란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했거나 부당한 위협에 처했을 때 생기는 개인의 부정적 심리 상태다. 종교적으로 분노는 최악의 행위로 꼽힌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이기에 잘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특별한 이유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며 공격하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그간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지난 21일 서울 신림역 일대에서 벌어진 30대 남성의 칼부림 사건은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광폭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렸다.‘묻지마 범죄’는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동기가 없는 범죄다.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상관관계가 없다. 범죄 동기도 없고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저질러지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공통점으로 숨어있다. 그래서 범죄에 대한 대비가 어렵다. 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어 황당하고 잔혹한 범죄다.2001년 일본 오사카 어느 초등학교에 난입한 30대 남성이 칼을 휘둘러 8명이 사망하고 15명이 크게 다쳤다. 숨진 사람은 모두 초등학교 1,2학년생. 범죄자는 “많은 사람을 죽여 길동무하고 싶다”고 말해 당시 일본도 큰 충격에 빠졌다.신림역 칼부림 사건의 범인은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우리 사회가 되돌아볼 때다.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사이코패스 범죄 예방도 국가 책임”이라 했지만 대비책이 언제 나올지 막연하다. 이 사건 후 휴대용 호신용품을 찾는 이가 늘었다는 데 이것이 우리의 해법은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