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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런 과학은 없다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동해는 천혜의 어장이며 수산업은 포항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다. 따라서 포항 지역사회는 바다 건너편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대해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24일 오전‘일본 후쿠시마오염수방류반대포항시민행동’은 죽도시장 개풍약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 오염수 방류를 강행하는 일본 정부, 그리고 반대와 견제는커녕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우리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방류를 앞두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정화 시설(ALPS)을 거친 원전 오염수는 방류해도 안전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으며, 일본 정부 또한 이를 오염수 방류의 ‘과학적’ 근거로 삼고 있다. 다소 황당하게도 우리 정부가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들여 이 ‘과학적’ 논거를 홍보하는 광고를 제작ㆍ방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 결과 상식과 안전의 문제여야 하는 것이 정쟁의 소재가 되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은 반증 가능하기 때문에 비로소 과학성을 확보한다고 보았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자 지식 체계이지만, 결코 그 자체로 완벽한 진리는 아니다. ‘ALPS로 걸러진 원전 오염수는 방류해도 안전하다’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주장 또한 지속적으로 반증되고 확인되어야 하는 가설이자 이론에 불과한 셈이다. 방류된 오염수가 중장기적으로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해양생물들의 먹이사슬에는 얼마나, 어떻게 축적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없다.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이번 오염수 방류가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는 일찍이 산업 폐수의 무분별한 방류로 인해 이타이이타이병이나 미나마타병 같은 공해병을 겪은 바 있다. 미나마타병은 수은 중독에 의해 발생하는 병이다.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 위치한 신일본질소비료 공장에서 1950년대부터 중금속인 수은이 포함된 공장 폐수가 바다에 무단으로 방류되었고, 그것이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되어 어패류를 섭취한 사람들이 신체 마비, 정신지체 등의 심각한 증상을 겪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83년, 울산 온산공단 인근 주민들이 겪어 왔던 전신 통증과 마비 증상의 원인이 공단에서 바다로 흘러나온 중금속 때문임을 밝힌 ‘온산병’이 대표적인 공해병 사례로 알려져 있다. 쉽고 저렴하게 산업 폐수를 처리하려던 시도가 수년~수십 년 뒤 무서운 질병으로 돌아온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과학은 결코 100%를 이야기하지 않으며, 과거에는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것이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건 실험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과학의 이름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아가 저지할 수 있도록 과학계와 시민사회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23-09-11

‘첨단산업 최적지’로 부상하는 경북동해안

지난 주말에는 포항과 경주에 대기업들의 잇따른 투자소식이 들려 경북 동해안지역이 새로운 첨단산업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경북도는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 포항시, SK에코플랜트, DCT텔레콤, KB 자산운용, 한국전력공사,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8개 기관과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에 데이터센터 4개동과 육양국(Landing station·국제 해저광케이블을 지상 통신망과 연결하는 네트워크 시설)을 2028년까지 조성하는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같은 날 경북도와 경주시, SK에코플랜트는 경북도청에서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공장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포항과 경주에 잇따라 대규모 투자를 하는 SK에코플랜트는 SK그룹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친환경사업을 이끄는 핵심계열사다. 포항에 들어설 데이터센터는 국내 최초로 ‘육양국 연계 글로벌 데이터센터 캠퍼스’ 형태를 갖춘다. 이번 사업은 정부가 시행중인 ‘데이터센터 지방분산 지원 정책’의 첫 민·관·공 협력사례다. SK에코플랜트와 DCT텔레콤, KB자산운용은 포항 블루밸리 산업단지 내에 약 1조5천억원을 투자해 총 120MW 규모의 데이터센터 집적단지와 국제 해저 광케이블, 육양국을 조성한다. 포항에 투자되는 데이터센터 캠퍼스는 그동안 수도권 중심의 관련 산업이 지방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경주시가 SK에코플랜트의 국내 첫 이차전지 리사이클링공장을 유치한 것은 정말 희소식이다. SK에코플랜트는 경주 강동면에 2028년까지 총 3천300억 원을 투자해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공장을 신설한다. SK에코플랜트는 경주를 전초기지삼아 이차전지 리사이클링사업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차전지 산업의 경우, 포항이 이미 관련기업들을 선도하는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이번에 경주가 SK그룹의 첫 리사이클링공장을 유치한 것은 경북 동해안 지역의 경제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3-09-11

국민을 배신한 ‘네 탓’ 정치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의 행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기 때문이다.‘내 탓’은 없고 ‘네 탓’만 하는 정치는 책임회피이며, 권력을 위임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권력을 감당할 인격도 능력도 없는 정치인들의 유체이탈 행태가 가소롭다.‘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실패로 끝나자 그 책임을 둘러싼 네 탓 공방은 가관이었다. 전 정부와 현 정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모두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여당은 전 정부와 전북도에, 그리고 야당은 정부여당의 비판에 집중했다.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됐다”고 마치 남 얘기하듯 현 정부를 비판했다.국제적 망신을 사고서도 반성은커녕 ‘네 탓 타령’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의 행태가 한심하다.‘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네 탓 공방은 결국 고속도로 추진을 중단시켰고,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서는 행안부·경찰·소방·서울시·용산구청 등이 서로 네 탓을 하면서 책임회피에 급급했다.또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책임소재를 두고서도 충북도·청주시·흥덕구청·경찰·소방이 낯 뜨거운 네 탓 공방을 벌였다.이처럼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이라는 책임회피 심리를 그린월드(A. Greenwald)는 ‘베네펙턴스(beneffectance) 현상’이라고 했다.성공에 대한 자신의 공로는 과대평가하는 반면, 실패에 대한 자기 책임은 과소평가하는 성향이다. 이는 자기기만의 ‘이기주의적 편향성’으로서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 찾아서 ‘핑계 만들기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핑계를 통한 자기합리화는 제3자의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책임회피 및 책임전가일 뿐이다.특히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의 ‘네 탓 타령’은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최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1 더하기 1은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야당과 언론이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했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야당 탓, 언론 탓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하는 국민은 서글프다. 야당과 언론의 역할이 정부여당의 견제와 비판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마찬가지로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 ‘네 탓’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잘했다면 왜 정권이 교체되었는가? 남 탓하며 책임을 회피해왔으니 내 탓이 무엇인지를 알 리가 없었다. 민주당은 남 탓하기에 앞서 현재 수사 받고 있는 각종 비리와 의혹에 대한 자기반성이 먼저다.소크라테스(Socrates)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집행권력과 입법권력을 나눠가진 여야 정치인들이 특히 명심해야 할 말이다. 정부든 국회든 권력을 가진 쪽에서 먼저 성찰하고 반성할 때 비로소 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다. 이것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책임정치의 정신이요, 정치지도자가 가야할 길이다.

2023-09-11

APEC 경주유치 100만 서명운동에 동참을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이 시작된다. 경북도민과 경주시민은 물론 한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실시된다. 경주시는 오는 10월까지 집중적 운동을 벌여 100만인 서명을 조기 달성하겠다는 의지다. 2025년 11월 개최될 APEC 정상회의는 21개 회원국 정상과 각료 등 6천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천년고도 경주시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러나 부산, 인천, 제주 등 경쟁 도시들의 면면이 만만치가 않다. 부산은 2005년 APEC 회의 개최 경험을 내세우고 있고, 제주는 2005년 유치 실패 경험을 다시 재현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인천은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로서 유일하게 도전장을 낸 경주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100만인 서명운동은 경주시가 APEC 개최지로 적지임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고 내적으로는 시도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데 있다. 경주시민과 경북도민은 물론 경북과 한뿌리인 대구시민의 서명 동참은 필수다. 경쟁도시인 인천은 지난 5월부터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이번에 시작하는 서명운동에 시·도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더 필요한 이유다.경주시는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문화 관광도시다. 불국사 등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과 거리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만큼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APEC 회의가 경주에 유치되면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릴 최고의 기회다. 또 경주는 포항과 울산, 구미 등 국내 최대 공업도시들과 인접해 대한민국 산업의 발달상도 행사 참가국에 알릴 수 있는 좋은 장소다. MICE 관광도시 경주의 위상을 올릴 기회임은 물론이다.이번 유치운동을 통해 경주시는 경주가 APEC 개최도시로서 최적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전달하는 전략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1조원 가까운 경제유발효과가 있는 APEC 경주유치 100만 서명운동에 시도민의 적극적 관심과 서명을 촉구한다.

2023-09-11

수성구 프리미엄의 위력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수성구는 정주여건이 좋아 ‘주민 살기 좋은 곳’ 1순위, ‘대구의 강남’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각종 조사에서 대구시 9개 구·군 가운데 최고로 살기 좋은 지자체로 첫 손에 오른다.그 중에서도 수성구 범어 4동과 만촌 3동(범4·만3)은 수성학군의 대명사가 됐다. 이곳에는 경신고와 대륜고, 오성고, 정화여고, 대구여고 등 명문고가 밀집해 있다.최근까지 대구의 아파트 분양은 이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분양가가 대구의 타 지역 보다 월등히 비쌌지만 경쟁률은 높기만 했다. 소위 학군 프리미엄 때문이다. 주택경기 불황 속에서도 수성구 아파트는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입주를 앞둔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가 행정동 명칭을 두고 주민 갈등이 빚어졌다. 결국 의회가 개입, 수성구 중동과 수성동에 걸쳐 지어진 ‘A 아파트’의 소속 행정동 명칭을 수성동으로 결정했다. 신축 아파트가 2개 동에 걸쳐 있어 주민 요구로 특정 동을 선택한 사례는 지역에선 처음이다. 게다가 이 아파트 인근 주민들까지 같은 동으로 편입을 요구하고 나섰다.이 아파트는 부지 면적의 80%가 중동, 20%가 수성동에 걸쳐 총 303세대 6개 동 규모로 지어졌다. 아파트 전체 면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동이 아니라 수성동으로 행정동 명칭을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시행사가 ‘수성동 아파트’라고 분양 광고 해 당연히 수성동 주민이 될 줄 알았다는 주장이다.결국 집값이 문제였다. 수성동은 중동보다 대구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범어동과 더 가깝다. 입주 후 수천 만 원의 집값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이 아파트 인근 주민까지 수성동 편입을 요구, 파장이 일파만파다. 수성구 프리미엄의 위력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11

경주 남산과 열암곡사지

천년의 신라가 자리 잡았던 경주, 그곳에서도 남산은 영산(靈山)이라 불리며 예나 지금이나 신성하게 여겨진다. 이곳은 신라에 불교가 전파된 이래로 불사가 약 400개에 달하는 불국토이며, 현재에는 불자들이 꼭 둘러봐야 하는 성지이며, 역사학자에게는 신라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자 다양한 설화와 전설이 함께 숨 쉬는 이야기의 보고이다. 또한 산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원한 바람에 땀 식히며 걷기에도 매우 좋은 곳이다.남산은 삼국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불교 유적을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장소이기도 하다. 7세기에는 경주 중심가와 소통이 편하며, 지형이 완만하여 절이나 석탑 등의 건축을 조성하기 쉬운 북쪽 기슭부터 만들어지다가 점점 남쪽과 동쪽으로 확대되었다. 서남산 선방곡 초입이나 북남산과 인접한 구릉 하단에서는 주로 이때의 불적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에 불교가 융성하기 시작하여 통일 신라의 세련되고 사실적인 불교로 넘어간 8세기 불적은 도심 가까이 건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잘 알려진 불국사·감은사·사천왕사·망덕사·감산사 등은 대부분 이 시기에 지어졌다. 애장왕 2년(806년) 새로운 사찰을 수도 내에 건립하는 것이 금지된 이후에는 지방이나 영산인 남산을 중심으로 불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9세기쯤부터는 급경사로 이루어진 백운계를 비롯한 남쪽과 서쪽에서도 불사가 이뤄졌다. 신라가 저물어가던 이 시기에는 여러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왕권이 불안정하였다. 왕위 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왕권이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5E211 이상의 거대한 불상이 유행한 이유이기도 하다.9세기 이후가 되면 불상보다는 석탑이 선호된다. 하늘과 가깝고 높고 딱 트인 지형에 석탑을 세워 불국토를 건설하려 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새로 짓기보다 개축하고 보수하여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상황은 고려를 지나 조선 후기까지 계속된다.남산은 불사가 쌓여 온 세월만큼 많은 유적과 유물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그중에서 열암곡은 2007년 이후 ‘기적’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곳이다. 고위산 남서쪽 백운계 본류의 오른쪽 열암곡에는 열암곡사지라는 절터가 있다. 이곳은 깨어지고 넘어진 불상이 많이 흩어져 있고 경사가 심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은 기적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자 열암곡사지를 찾는다. 이곳은 2007년 정비하면서 발굴과 일대 조사가 함께 이뤄졌다. 더불어 흩어져 있어서 외면받고 방치되었던 석조여래좌상의 머리도 발견되었다. 열암곡사지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8세기 후반 불상들에 비해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신체 비례가 짧은 편이며, 어깨와 가슴은 좀 더 남성스럽고, 광배(불상 뒤를 받치는 꽃잎 모양의 석재)의 화염문이 8세기 후반보다는 세밀한 것으로 밝혀졌다.그리고 30E211 거리쯤 떨어진 곳에서 높이 5미터가 넘는 대형 마애여래입상을 찾아내었다. 마애여래입상은 발견 당시 앞으로 고꾸라진 채 바닥과 겨우 5㎝의 간격을 두고 버티고 있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폭 4E211, 높이 6.8E211, 두께 2.9E211 그리고 무게만 80t에 이른다. 그런 바위가 약 40도에 가까운 급경사면에 거꾸로 엎어져 있으며, 불상의 코가 겨우 지면에서 5㎝를 두고 뭉개지지 않은 것이다. 그 5㎝의 간격이 불상의 얼굴을 원형 그대로 살렸다.1천300년의 세월을 품은 기적의 이야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르 몽드’지(2007년 9월 13일) 1면에도 소개되었다. 지금도 남산 열암곡에는 2007년 발견된 그대로의 이야기가 유지되고 있다.사람들은 기적의 이야기를 보고, 기적을 빌기 위해 지금도 남산 열암곡의 험한 산길을 걷는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인 아유타하 왓 프라 마하탓(Wat Phra Mahathat)의 큰 보리수나무 뿌리에 박힌 불상 머리를 보기 위해 몸을 숙이는 것처럼 ‘5㎝ 기적’을 확인하기 위해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엎드리거나 고개를 깊게 숙인다. 그 오똑한 콧망울을 확인하려면 몸을 숙이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마치 부처에게 기도하며 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바로 세워진 마애여래입상보다 거꾸로 있는 현재의 이야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듯하다.남산은 오래된 만큼 많은 불교 유적이 있고, 그 속에 품은 이야기가 있다. 성지 순례하듯이 남산의 불사만 찾아다녀도 꽤 오랫동안 숲길을 걸어야만 한다. 누군가는 성지를 순례한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역사적 탐구를 위해서, 누군가는 이야기를 따라 남산 숲속을 오르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힌다. 바람이 전해주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면서 걷는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9-11

구원의 도착지점

‘더 웨일’ 포스터. 모세가 야훼로부터 받은 ‘십계명(十誡命)’은 행해야 할 두 개의 명령과 하지 말아야할 여덟 개의 금기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으로써 신의 세계로 향하는 엄혹한 규칙이며, 행동과 함께 마음까지 살펴야하는 규범이다. 불교에서는 승려와 신자들이 마땅히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계율로 오계(五戒)가 있다. 모두 ‘아니 불(不)’로 시작하는 부정어로 시작한다. 해야할 것보다 하지말아야할 것을 강조한다.하지만 인간은 쉽게 계명과 계율에서 이탈한다. 그리고 반성하고 회개하며 계명과 계율의 궤도로 귀환한다. 인간은 해야할 것과 하지말아야할 것들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희열을 느끼고, 경건하거나 기쁨을 느끼거나, 맑거나 어지러운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간다. 계율과 계명이 아니어도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사회적 ‘규범’이 존재한다. 이 규범 또한 해야할 것과 하지말아야할 것을 정하고 칭찬과 형벌이 주어진다. 계율과 계명이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규범은 순수하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기인한 것이다. 차이는 있지만 계율과 규범은 항상 ‘후회’가 깔려 있다. 후회가 쌓이고 깊어지면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후회의 강도가 강해질 때 죄책감이 남는다.종교에서 죄책감은 반성과 회개, 기도를 통한 ‘죄사함’으로 해소된다. 규범의 죄책감은 결과의 강도에 따른 ‘형벌’에 의해 해소된다. 죄사함은 구원을, 형벌은 교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의 존재 여부와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와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들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었다.‘후회’는 인간이 하루에도 수십 번 마주하는 선택의 결과다.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날 때 ‘후회’가 뒤따른다.‘후회’를 돌이켜 원상태로 되돌릴 것인가, 후회를 낳은 선택을 다른 선택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을 것인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충돌한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상반된 신념을 가진 이들과 충돌하고 화해하며 서로를 끌어 안는다.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웨일’은 과거에 내린 선택의 결과로 빚어진 지금, 후회를 두고 벌어지는 상반된 믿음을 가진 이들이 낡은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등장하고 퇴장하면서 충돌하는 모습을 그린다. 제목처럼 고래만큼 비대한 초고도 비만자 찰리는 보행 보조기가 없으면 혼자 몸을 일으킬 수도 없고,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다.그가 머무는 한정된 공간 속으로 종교적 구원의 깃발을 든 이와 찰리를 돌보는 유일한 친구이자 간호사 리즈, 찰리의 딸, 그의 전처가 순차적이거나 반복적으로 아파트를 출입한다.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후회’라는 공통적 감정을 숨기고 타인을 통해 그의 후회가 해소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공 찰리에게 집중된다. 선택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되고 후회로 남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누군가에게는 미안함으로, 누군가에게는 그리움과 증오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이 그렇다고 명쾌하게 나눠지지도 않는다.죽음을 직감한 찰리는 이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와 죄책감의 시간을 벗어나 적극적인 화해를 청하고자 한다. 화해에 대한 의지는 그의 동작만큼 굼뜨지만 그의 몸무게 만큼 무겁고 강력하다.“알아야겠어!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다는 걸!”이라는 찰리의 대사처럼 그 하나를 위해 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선택이 후회로 남으면서 고통이 동반되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결국 신에 의해서가 아닌 인간에 의해서 구원받는다.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그의 집안에 갇혀 가쁜 숨을 내쉬며 묵직하게 쌓아가는 화해의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비로소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거대한 한 마리의 고래를 목격하게 된다. 화해했는가, 구원받았는가, 진정성이 얼마나 상투적인가라는 생각이 뒤엉킬 때, 벅차 오름과 함께 눈물이 흘러 내린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9-11

민심에 길이 있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 농성장에서 지난 5일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방문해 극단 정치를 자제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맥락을 보면 단식을 그만두라는 말로도 들린다. 이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개딸’이 무서워서도 이런 충고를 하는 정치인이 거의 없다. 곧 총선이다. 공천도 받아야 한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대표를 비난한 게 아니다. 이 대표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조언이다. 김 의장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자 정치원로다. 국회의장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게 관례다. 그런 점에서 사심(私心) 없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고언(苦言)이다.그의 말을 길게 인용한다. 김 의장은 “정치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라며 “국민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하고, 잘못한다고 보질 않는다”라고 말을 꺼냈다.“벌써 두 번이나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전에 예고되거나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한 사안인데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법안) 단독 처리를 반복하는 것이 과연 민주당을 위해서도 옳은 것인가. 여당이 아예 대안을 안 내놓으면 어쩔 수 없지만, 대안이 있는 경우엔 민주당이 주장하는 10개 중 5~6개만 살릴 수 있으면, 그래서 국민의 70~80%가 ‘그만하면 됐다’고 할 수 있으면, 그것이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가 아니겠나. 그래서 어떤 것이든 일방적으로 처리하기 전에 조정 작업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민주당에서도 좀 협력해달라.”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는 불안하다. 정치인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다수결이 원칙이다. 그렇지만 다수결로만 선택한다면 대통령 한 사람만 뽑으면 된다. 국회는 왜 구성하나. 국회의원들이 무조건 당론 투표만 하고, 대화도 타협도 없다면 정치는 극한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같은 단점(單占) 정부에서는 국회가 거수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분점(分占) 정부에서는 사사건건 정부와 국회가 충돌해 파국으로 갈 수 있다. 민주주의 제도를 설계한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면 결국 양측이 모두 손해고,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 정치인의 윤리와 소명 의식을 믿은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대화와 타협은 꼭 필요한 덕목이 다.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미리 경고한 법안을 여당과 협의 없이 단독으로 밀어 붙이면 법안이 국회로 돌아올 게 뻔하다. 그렇다고 거부권을 무력화할 만큼 재적의원 3분의 2 의석을 확보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고, 그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노림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굳이 법안 단독 처리만이 아니다. 인사청문회도 야당은 반대, 정부는 임명 강행이 관행처럼 굳어간다. 여야의 대화가 실종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의 수사를 받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야당과 대화를 포기하고, 야당 요구를 일체 외면하는 일방통행은 그가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다.내년 총선은 또 하나의 고비다. 지금의 여소야대(與小野大)는 떠안은 것이지만 내년 총선 결과는 윤 대통령 임기 전반기에 대한 심판이다. 선거에서 지면바로 레임덕이다.현행 헌법이 제정된 1987년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7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6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1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건, 윤 대통령이 2건이다. 여대야소였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적은 건 당연하다. 군인 출신이고, 권위주의 정부의 관성이 남아 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횟수는 가장 많지만 가장 타협적으로 국회를 운영했다. 야당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국회에 정치가 살아 있었다. 민심이 야 3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요즘 같은 정치로는 격렬한 지지자만 동조할 뿐 중간층은 외면한다. 단식으로는 뒤집을 수 없다. 김 의장의 지적대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얻어내려고노력할 때 민심도 얻게 된다. 중요한 것은 민심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10

운을 부르는 마법 정리 정돈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부자들의 집을 보면 매우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옷 모자 신발 등이 가지런하게 찾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자라서 집이 잘 정리 정돈 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자가 되면서 습관이 된 것이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부자들은 돈이 되지 않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항상 회색 티셔츠를 입는 이유에 대해 삶을 간단하게 하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함이라 하였다.이는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아침 식사로 어떤 메뉴를 고를지 이렇게 간단한 결정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들고 인간은 피로를 느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인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 하며 건강이나 돈 등과 같이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이를 잘 알고 최대한 활용하는 사람인 것이다.제조현장의 정리 정돈도 이와 같은 이치로 사용하는 자재나 생산 물품이 잘 정리 정돈되어 있으면 필요한 물품을 작업자가 쉽게 찾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 동작에 소모되는 에너지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인 돈을 벌기 위한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 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은 일을 편하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며 조직은 이익이 증대되는 효과가 있다.이를 보면 생산현장의 물품과 자재 류에 대하여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최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보관 장소나 창고는 없애고 필요할 때 바로 공급하는 것이다. 도요타는 이를 위해 설립 이후 지금까지 86년간 후공정이 요청시 생산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공정내 재공이 Zero인 연속 흐름생산을 추구하고 있다. 그 다음이 그렇게 하기 어려우면 최소한의 필요한 자재를 어디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명확히 하고 누구나 쉽게 찾고 사용이 편리하도록 하는 것이다.이중 자재창고의 정리 정돈 방법을 소개하면 창고내 저장되어 있는 모든 물품을 드러내어 종류를 파악한 후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여 필요 없는 것을 버린다. 그리고 유사 품목 별로 구분하여 저장 위치와 방법을 정하여 적절한 적치대를 설치하고 주소를 정하여 자재를 보관한다. 보관된 각 자재는 품명, 코드, 규격·사양, 수량이 알 수 있도록 식별표를 부착하여 적정량을 관리한다. 창고가 여러 개소일 경우 Name Plate와 내부 배치도, 소화기 위치, 운영기준과 점검시트를 동일양식으로 적용 유지한다.정리 정돈은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이 방치하면 더욱 관리가 안되고 상태가 나빠지며 활동을 하면 할수록 이를 통해 생긴 좋은 기운이 행동에 작용하여 모든 일이 잘 풀려 운이 상승하는 개인과 회사 모두에 마법과도 같은 활동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9-10

책맹인류와 독서 예산 삭감

유영희 작가 지난 토요일 동네 도서관에서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김애란 작가를 초대해서 ‘소설, 삶을 담은 그릇’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애란 작가의 말 중에, 소설이란 한숨 같은 소리를 말로 바꾸고 그 이야기에 지위를 주는 것이라는 말이 크게 기억에 남는다.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대접이 담겨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와의 대화는 독서를 자극하고 삶의 의미와 관계 맺음에 대한 통찰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독서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책 문화 프로그램은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독서율이 꼴찌다. 19세 이상 성인 중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EBS에서는 8월말부터 9월말까지 5주에 걸쳐 ‘책맹인류’를 10부작으로 방송하고 있다. ‘책맹인류’란, 문자는 해독했으나 긴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지난 수요일 방송된 ‘책맹인류’ 3부 ‘우리는 왜 읽지 않는가’에서는 세계적으로 독서율이 낮아지는 이유를 분석하고 일본이나 핀란드에서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주로 개인이나 민간 차원의 노력을 소개했는데, 후속 방송에서는 미국, 영국,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 일본. 많은 나라들이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소개할 예정이다.그런데 우리 정부는 독서율을 높이는 데 별로 관심이 없나 보다. 정부는, 올해 약 60억 원이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을 전액 삭감했을 뿐 아니라, 아예 예산 코드 1433-308을 없앴다. 결국 내년 독서 관련 예산은 ‘독서대전’, ‘지역독서대전’, ‘책읽는도시협회지원’ 등 일부 사업들을 위한 10억 원가량뿐이다. 체육기금을 활용하는 ‘책 읽어주는 문화 봉사단’ 예산 2억 원을 합해도 12억 원이라, 올해 독서 진흥 예산 약 114억 원에 비하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이 사라져서 작은 서점에서 진행하던 작가와의 대화나 문학 행사를 내년에는 하지 못하고,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청소년 독서를 위한 전국청소년독서토론한마당, 성인을 위한 독서동아리 지원, 장병을 위한 병영독서 활성화 지원도 모두 할 수 없게 되었다.이 중에서 병영 독서는 2년 간 참여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관심이 간다. 구독자 100만이 넘는 북튜버 김송은 어려서는 책을 읽지 않다가 군대에 가서야 지인 추천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군대에서도 독서는 청년들에게 꿈을 꾸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는데, 내년에는 전면 폐지되었으니 안타깝다.다행히 오늘 도서관 행사는 자치단체 예산이라 내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크고 작은 책 문화 행사가 많아지면 독서율이 올라가고 독서율이 올라가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된다. 정부는 내년 독서 예산안을 재고하기 바란다.

2023-09-10

조각 이불을 보다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독자 여러분은 조각 이불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무늬와 색깔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조각 이불이 마음에 드시는지 궁금하다. 조각 이불은 어린아이를 위한 이불로 사랑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록달록한 무늬와 기하학적인 질서로 배열돼있는 조각 이불은 따스함과 질서정연함을 동시에 선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언제부턴가 나를 만들어온 여러 요인(要因)을 생각하게 된다. 퇴임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하라는 청을 들었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해준 여러분의 인내와 너그러움에 감사한다는 뜻의 말을 전한 것이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나 그를 낳고 길러준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와 친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 덕분에 어제와 오늘의 나와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요즘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가슴 아픈 사건은 단연 교사들의 자살 행렬이다. 지난 7월 19일 스물세 살 먹은 서이초교의 어린 여교사 자살로 학부모와 학교장들의 온갖 행악질과 갑질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세상 살기가 쉬운 일이기만 하랴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대한 사명을 수행하는 교사들을 상대로 악행을 거듭한 자들에게 대를 이어 악운(惡運) 있기를?!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장편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에서 기인하는 ‘베르테르효과’로 간주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악행이 교사들에게 행해지고 있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학생들에게나 적용되는 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행사하는 저급하고 막돼먹은 폭력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있다.어떻게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막말과 폭언과 폭행을 거리낌 없이 자행할 수 있단 말인가?! 학교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놓는 승냥이만도 못한 인간들은 학교를 떠나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 학부모들은 마냥 의기양양(意氣揚揚) 득의만면(得意滿面)하기 그지없는데, 교육부는 서이초 교사의 49재에 참석하느라 수업에 임하지 못한 교사들을 처벌하겠노라고 엄포나 놓았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교육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 삼주체(三主體)가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룰 때 성취될 수 있다. 교사의 권위와 교권을 무력화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단과 교권의 의미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교사가 있는 한, 교육은 만년 공염불(空念佛)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는 학생을,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과 지구와 우주가 돌아간다는 소아병적인 사고와 인식을 버려야 한다.조각 이불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개개의 조각은 고유한 색깔과 무늬가 있지만, 내가 잘났으니 나를 따르라고 우기지 않는다.하나의 조각은 모두를 위하여, 모든 조각은 하나의 조각을 존중하고 어울려 조화로운 전체를 완성한다. 세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홀로 잘나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할 때 비로소 존재의의가 환해진다는 사실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좋겠다.

2023-09-10

전술핵 공격잠수함

우정구 논설위원 북한이 전술핵 공격잠수함을 전격 공개하면서 또 한번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 군은 “무리한 제조로 완성도가 떨어져 정상적 운용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지만 북한의 핵무기가 수중의 잠수함에까지 운용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안보에 상당한 위협이다.이번 공개된 북한의 전술핵 잠수함은 수중에서 한국 전역은 물론 주일미군기지까지 기습 핵타격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전술핵 잠수함에는 총 10개의 수직발사관이 있어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을 최대 10기까지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는 한미가 기존에 구축한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북한은 기존에 배치된 70여척의 잠수함에도 전술핵을 탑재하고 김정은은 핵잠수함 도입까지도 호언장담하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의 핵전술잠수함 개발은 북한핵의 완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응에 주목이 된다. 지난 2010년 3월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 해군잠수함의 어뢰 한 발로 우리 천안함이 폭침당하고 장병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핵전술잠수함에 의한 도발이 이뤄진다고 상상한다면 끔찍하다.북한의 핵도발에 대한 한국 독자 핵무장론이 힘을 받고 있다. 국민의 71%가 핵무기 보유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 된 바도 있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주장이 먹혀드는 분위기다.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한국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비핵화 지위 및 비확산체제 지지라는 전제가 달린 주장이지만 북한의 핵위협에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핵추진잠수함에는 핵추진잠수함으로 대응하는 우리의 준비가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10

아파트 거래 꿈틀… 부동산 연착륙 이끌어야

올 상반기 중 전국의 아파트 거래량이 작년 하반기 대비 77%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구와 경북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여 침체에 있던 아파트경기가 조금씩 상승세로 돌아선다는 분석이 나온다.부동산 R114에 따르면 전국의 올 상반기 아파트 거래량은 모두 20만3천437건으로 작년 하반기 11만4천447건보다 8만8천990건이 늘었다. 올 상반기 대구는 1만743건이 매매돼 작년 하반기보다 두배 가량 거래가 늘었고, 경북도 올 상반기 중 1만1천417건이 거래돼 작년 하반기보다 30%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전체적으로 보면 비교적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중심으로 아파트 거래가 늘고 있으나 지방에서도 상승세 조짐이 뚜렷하다.지난달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첫째 주 집값 변동률을 보면 전국은 0.04%로 전주보다 높아졌고, 내림세에 있던 지방은 보합을 보였다. 작년 6월 둘째 주 이후 14개월만에 하락세가 멈춘 것이다. 영남권과 충청권이 지방의 회복세를 주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미분양 무덤으로 불리던 대구도 전주 ·0.02%에서 0.03%로 돌아섰고 대구의 미분양 물량도 2월을 정점으로 4개월째 감소세로 돌아섰다. 경북도 대부분 지역에서 아파트 시세가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전국 최고의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있는 대구에서 완판단지가 나오는 이변도 벌어졌다.주택경기는 지나치게 과열되어서도 안 되지만 지금처럼 주택경기가 꽁꽁 얼어붙어도 문제다. 정상적인 주택 매매가 막히는 등 부동산 시장 왜곡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일들도 많기 때문이다. 주택건설 경기의 후퇴로 관련산업이 수렁에 빠지고 역전세난과 같은 부작용이 사회문제화 되기도 한다. 정부가 부동산경기 진작을 위해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했지만 아직은 대구와 경북은 여전히 침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들어 거래가 조금씩 살아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조짐이다. 이제 꿈틀하는 아파트 거래를 좀 더 활성화시켜 어려운 우리 경제를 부양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2023-09-10

어른답게 살아가기

김병렬 울릉군 독도박물관장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려고 할 때 나를 밟고 지나가라면서 길에 누운 정치인이 있었다. 그가 만약 살아있다면 “할아버지 그때 왜 그러셨어요”하고 손자가 물을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내가 안목이 짧았다고 하면 손자가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까지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솔직한 분이시라는 자긍심은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반면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했다면 손자는 픽 웃고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더는 갖지 않게 될 것이다.엄마는 수입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고 데모를 하고는 왜 저에게 수입 쇠고기만 사다가 요리해 주세요라고 아들이 질문하면 엄마는 어떤 대답을 할까? 사드가 설치되면 모두 통닭구이가 된다고 외치던 사람은 성주참외를 안 사먹는지 모르겠다.평택에 미군기지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주민등록까지 옮긴 후 데모하다가 밀린 월세도 안 내고 슬그머니 사라졌던 사람들이 요즘은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또 어떤 사람은 일제강점기 때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돕겠다고 모금을 받아 개인적으로 횡령하기도 했고, 또 이를 이용해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피해 할머니들이 우리를 위해 해준 게 뭐 있느냐고 물으면 묵묵부답이다.그런가 하면 어떤 국회의원은 총리에게 오염수가 섞인 바닷물을 마시겠는가 하고 질문했다. 그에게 그의 아들이 아버지는 오염수가 섞이지 않은 바닷물을 마실 수 있어요? 라고 하면 아들이 보는 앞에서 짠 바닷물을 마실 수 있을까?왜 자기는 오염처리수가 섞이지 않은 물도 마시지 못하면서 총리에게는 오염처리수가 섞인 바닷물을 마시라고 할까? 회의 중에 주식을 거래하고 코인을 구입한 국회의원이 자식들에게 수업시간에 딴 짓 하지 말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특목고 폐지하라고 하면서 자기 자식은 해외 유학 보내는 어른은 또 뭐고, 반일을 위해 모두 죽창을 들자고 했던 사람이 일제 볼펜을 쓰는 건 또 뭔가? 또 다른 반일주의자는 일제 샴푸를 쓰다가 들통이 나니까 샴푸를 안 쓴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가 사진이 공개되어 비웃음을 샀다.입만 열면 모든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만큼만 조사받겠다고 하는 건 또 뭔가? 이건 특권이 아니고 모든 국민이 누리는 일반적인 권리인가? 이분도 황제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황제처럼 성장했나? 모두 아이만도 못한 어른들 아닌가?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교정 밖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요즈음 광복회까지 나서서 난리다. 애초에 육사 교정에 이분들의 흉상을 세운다고 했을 때부터 말이 많았다. 육사 교정에 세우는 흉상은 육사에서 세울까 말까부터 시작해서 세운다면 누구를 세울 것인가를 결정해서 세우면 된다.그런데 육사는 배제된 채, 이전 정권에서 세우기를 원했고 자신들이 선정한 인물들의 상을 세웠다. 자신들은 이전 정권에서 세워놓은 각종 표석을 멋대로 옮겨 놓고, 자신들이 세워놓은 것은 자손만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면 이런 멍청한 일이 또 있겠는가?더 한심한 것은 이 흉상을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이 흉상을 만들라고 한 어른이 전 국민을 상대로 SNS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 흉상들을 만들 때 누구누구를 만들라고 하지 말고 육사생도들이 본받을 만한 분들을 만들라고 했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은 무엇을 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만 해주면 된다.다음 달에 독도의 날이 있다. 독도의 날이 됐든 삼일절이 됐든 기회만 되면 머리띠 매고 일본대사관 앞에 몰려가서 데모하는 어른들이 있다. 지금까지 80년 가까이 흘렀지만, 독도문제는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앞으로 80년이 흘러도 해결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 아버지 때는 뭐하고 이런 어려운 일을 자기들에게 물려주느냐고 후대들이 물으면 지금의 어른들은 뭐라고 답을 할 것인가?독도박물관장직을 맡은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내 꿈은 일본의 어린이들이 한국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독도박물관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어린이들도 일본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일본 동경의 다케시마 전시관을 구경하게 될 것 아닌가.한국의 어린이들은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고, 일본의 어린이들은 한국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 이 정도의 판은 어른들이 깔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2023-09-10

도마도마, 도마뱀

뜰을 가로지르는데 뱀 조심 뱀 조심뱀 조심 팻말이 눈에 쏙 들어와서도마뱀 도마 위에 뱀, 그런 생각했어요.투명 플라스틱 컵 들고 들어온 사서선생님여기 이것 봐요 문 틈으로 숨어들어잽싸게 잡아 왔어요, 참 귀엽지 않나요?작은 도마뱀 한 마리 몸 구부리고 엎드려컵 바닥에서 할딱할딱 숨을 몰아쉬어요.가녀린 갈색 꼬리가 길어서 애처로워요.빨리 내보내 주세요, 풀밭으로 어서요.양쪽으로 볼록거리며 할닥거리는 심장도마뱀 객주문학관 도마도마 뱀 뱀 뱀― 이정환, ‘객주문학관 도마뱀’ 전문 (가히 가을호, 2023)도마뱀이란 캐릭터는 공룡을 닮은 신비롭고 귀여운 외모 덕에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이다. 우리가 이 행성에 살기 전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 종의 것이었다면 그것은 거대한 공룡시대일 것이다. 하지만 공룡들의 이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공룡의 이름은 우리가 화석을 통해 알게 된 정보로 인간이 지었다.말 그대로 이름을 만들어 낸 수 천 년의 역사에 인간이 가진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도마뱀이 파충류지만, 모든 파충류가 도마뱀은 아니다. 공룡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다이너소어(Dinosaur)도 그리스어로 ‘무섭다(δεινό)’는 뜻의 데이노와 ‘도마뱀(σαυρος)’을 뜻하는 사브로스에서 유래되었다면 우리말 도마뱀은 어떤 조어법으로 탄생했는지 궁금해진다.여기 이정환 시인(1954~)이 작명한 도마뱀을 어린이들의 눈으로 탐색해 보자. 화자가 말하는 공간 객주문학관은 비교적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나는 청송에 있다. 이 일대는 선캄브리아시대 산악지형과 중생대 퇴적암과 공룡발자국지형 등 우리가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이곳에서 시인의 “눈에 쏙 들어 온” 것은 뱀 조심 팻말이다. 아이들을 기쁘게 할 기대감에 사서 선생님은 “잽싸게 잡아” 온 도마뱀을 투명 컵에 담아 온다. 관찰하던 아이들은 웬일인지 빨리 내보내 달라고 재촉한다. 왜 그랬을까? 물릴까 봐 무서워서일까? 아이들은 투명 컵을 통해 들여다본 도마뱀의 모습에 마음이 급했다. 이희정 시인 “몸 구부리고 엎드려” “컵 바닥에서 / 할딱할딱 / 숨을 몰아 쉬”고 있는 모습에서 도마뱀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평생을 초등 교육현장에서 어린이들과 보낸 시인은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선한 동심을 잘 읽고 있다. 시조가 가진 언어의 율동성을 다정다감한 대화체의 화법으로 “잽싸게” “할딱할딱” “볼록거리며” 등의 소리와 동작을 표현하는 말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오래전 작은 아이의 도마뱀 일화가 떠오른다. 파충류에 흥미를 보이던 아이는 도마뱀 세 마리를 집에서 키웠다. 도마뱀의 집을 꾸며 주고 매일 들여다보며 먹이를 주곤 했는데 어느 날 한 마리가 죽어버렸다. 아이는 슬픔에 빠져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았는데 무심결에 웃음을 보인 엄마에게 식탁을 두드리며 분노했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떻게 도마가 죽었는데 웃을 수 있냐”고 항변했다. 아이의 슬픈 감정을 온전히 이해 하지 못했지만, 생명을 돌보는 갸륵한 심성에 감탄했다. 이후 아이는 남은 두 마리를 숲으로 풀어주었고, 더 이상 도마뱀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도마뱀이 가장 행복한 곳은 숲이란 것을 이해하고 갖고 싶은 자신의 욕심을 놓을 줄도 알았다.찰나의 모든 순간은 예술이 된다. 그림이든 시든 무엇으로든 표현할 수 있다. 긴 여름 전시회장에서 본 카라바조의 그림 ‘도마뱀에 물린 소년’ 또한 그랬다. 얼굴표정으로 혹은 손가락으로 순간의 감정 서사를 그리듯. 이정환 시인이 운율로 감았다 풀어내는 동시조, 도마뱀 또한 재치 있게 작명한 한 폭의 기특한 풍경이다.저만치 가을이 오고 있다, 객주 문학관 풀숲에선 오늘도 “도마도마, 뱀 뱀 뱀”

2023-09-10

역사적 인물의 평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인물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옷이나 생김새 등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고, 학벌이나 지위나 재력 따위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념이나 종교적 시각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감정이나 고정관념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평가의 목적에 따라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도 시대와 문화적 배경,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데 고려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우선은 그 인물의 업적과 그 업적이 시대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인물이 어떤 목표와 가치를 추구했고 그것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하고, 인물이 가진 통찰력과 지혜와 능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야 한다. 물론 윤리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역사학적 증거와 연구를 판단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우리나라는 일제의 침략으로 식민지 시대를 겪었고,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른 상황에서 그 역사 속의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이 극명하게 엇갈릴 수밖에 없다. 북한과 종북·주사파들이 일제치하의 친일행위에 절대적 비중을 두는 것에 비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친일에 못지않게 공산주의에 동조나 가담 여부를 인물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최근 뒤늦게 불거진 광주시의 정율성공원 조성 문제와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문제로 좌·우 양 진영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율성은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조선인민군행진곡, 조선해방행진곡, 팔로군행진곡 등 공산체제를 찬양·고무하는 작곡활동을 했으며, 6·25 때는 중공군을 따라와서 궁정악보 등 왕실관련 유물을 훔쳐 중국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중국에 귀화하여 중국 국적으로 살다 죽은 그가 대한민국과 광주시에 기여한 바가 없는데, ‘정율성거리’를 만들고, 매년 기념음악회를 열고, ‘정율성공원’까지 조성하겠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홍범도 장군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 등 항일 무장투쟁을 한 독립군의 대표적인 인물 중의 일인이다. 독립군으로서의 그의 공적은 누구 못지않지만, “조선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투쟁에 헌신한 조선 빨치산 대장 홍범도의 이름은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하여지리라.”는 묘비명처럼 그는 소련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간성들을 길러내는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 동상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국방부의 주장이다.문재인 좌파정권은 공산·전체주의 시각에서 김원봉이나 신영복 같은 공산주의자들을 존경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반공·자유민주주의 입장에서 공산주의와 싸운 공적을 높이 평가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정부수립 업적을 높이 사고, 백선엽 장군을 6·25전쟁 영웅으로 기린다. 지난 역사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지금 정치권의 인물들에 대한 판단과 평가도 국운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2023-09-07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4일 학부모 갑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등 여교사의 49재 날, 서울 여의도에서 약 2만 명의 교사와 시민들의 추모집회가 열렸다.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전국 곳곳에서 약 10만 명 이상이 동참하였다고 한다. 교육부 장관은 이 추모집회를 ‘교사들은 집단행동 불가’라는 공무원 복무규정의 위반이라며 집회 참가자에게는 파면, 해임 등의 징계가 가능하다는 통보를 했으나 교사들은 오히려 자발적 결의로 연가 또는 병가를 내어 함께 모였고, 유·초·중등 교사 50만7천 명의 교권확립을 주장하며 질서 정연하게 마무리했다.매주 수만 명 이상 토요일 집회를 이어오면서 외친 것은 그동안 계속되어온 공교육 약화를 우려한 교육개선의 문제였다. 지난해 말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고 올해 8월 교원지위법이 발의되어 교사의 생활지도권이 강화되고 교권침해범위가 확대된다. 지난 5년간 교권침해 사례는 매년 약 2천여 건이 발생했고 초등교사 대부분이 교직 생활 중 교권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그중 반 이상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라고 한다.이러한 교권침해 사례가 일어나면 피해 교원과 학생을 격리하지 않고 오히려 교사에게 병가를 내게 하거나 전보 발령을 하는 등 교육청과 교권보호위원회는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등 2차 가해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명예퇴직이 늘고 있다는 안타까운 교육계 소식이다.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 학습권과 교사 수업권, 교원의 존중 등이 법규화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인의 공허한 약속일 뿐 구체적 학생지도와 징계 방법 등이 명시되어있지 않아서 오히려 아동학대로 의심받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업 중 잔다거나 수업 방해와 지시 불응 등이 있는 경우에도 체벌이 불가하여 교내 청소나 반성문 작성을 시키면 비인권적이라는 학부모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학생지도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교육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2014년 ‘아동복지법’이 통과된 후, 아동학대죄로 정직을 당한 경우도 많고 지난 3년간 전국에서 담임교사 129명이 학부모 요구로 교체되었는데, 이 중 102명이 초등교사라 한다. 초등학생 학부모라면 3, 40대 젊은 층일 텐데 귀한 자식을 금쪽같이 키우다 보니 ‘내 아이만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자기 자식은 제멋대로인 아동이 되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은 모르는 듯하다. 잘 못한 초·중등 아동의 인성교육에 필요한 훈육을 아동학대라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사례가 많아서 교사들의 생활지도권 보장이 요즘과 같은 공교육 추락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교권과 학생 인권은 상호 대립하는 가치는 아니다. 정당한 생활지도를 통해 진정한 가르침을 주었을 때 선생님들 또한 자존감과 긍지를 가질 것이다. 이번 집회에서 “선생이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진다”를 외쳤으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큰 가치 속에 부모는 교육을 선생님에게 믿고 맡기고 선생은 제자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가르침을 주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를 이루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09-07

“민간투자 유치가 살길”이라는 말, 공감간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 6일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모두 모아놓고 “민간투자유치만이 앞으로 경북도가 먹고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국내경기가 침체하고, 정부의 긴축재정정책이 이어지고 있으니까, 국비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지방정부 자력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시의적절한 언급이다. 얼마 전 발표된 2024년 정부예산 증가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정부는 지난 7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시행에 따른 ‘기회발전특구’ 제도를 재차 설명하면서 “지방정부 스스로 기업을 유치해서 발전전략을 세우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기회발전특구는 비수도권 지자체와 기업이 협의한 후 정부가 지정하는데, 특구로 이전하는 기업과 직원에겐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준다. 특구로 지정되려면 유력한 기업 유치가 전제돼야 한다. 지방정부로서는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곧바로 다른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기회발전특구 지정이 아니더라도, 경북도는 최근 포항과 구미를 중심으로 국가첨단산업 특화단지 지정, 신규국가산단 후보지 선정 등으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에너지 산업 등에 대한 민간투자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산업단지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기업 유치가 꼭 필요하다. 이번에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된 구미에는 삼성그룹 계열사와 협력업체들이 입주해 있고 삼성도 향후 5년간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경북도와 구미시가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지난 7월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과 수소 연료전지 클러스터 예비타당성조사 통과라는 큰 성과를 낸 포항시도 앞으로 이차전지·수소산업 관련 대기업 유치에 행정력을 집중시켜야 한다.이철우 지사가 간부회의에서 “모든 실국이 투자유치실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한 것처럼, 경북도내 전 공직자는 국내외 인사들과의 인적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민간투자유치에 전력을 쏟길 바란다. 물론 정치권과 기업인들도 이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2023-09-07

안동에 이민청을?

우정구 논설위원 2018년부터 경북도가 야심차게 운영하고 있는 ‘화요일 공부하는 모임’인 슈퍼화공 포럼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정례 행사를 가졌다. 이날 모임 참석자들은 인구소멸 문제와 관련해 경북도의 이민정책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이날 포럼 좌장을 맡은 경기대 김택환 교수는 “지방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독일 남부 보수도시 뉘른베르크처럼 경북 안동에도 이민청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했다. 또 한국장학재단 배병일 이사장은 “도청에 이민국을 신설하고 외국인 유학생 30만명을 유치하자”는 제안도 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선 사람을 모아야 하며 저출산 대책으로 소멸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단일 민족을 표방한 한국은 이민정책에 대해 보수적이다. 그러나 인구소멸의 문제가 심각히 제기되고 최근 이민자 증가가 늘면서 다민족,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이주민에 대한 배타적 시선이 조금씩 수그러들고는 있으나 외국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아직은 소극적이라 했다.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이 200만명을 넘어섰고, 2030년에는 300만선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출산 장려만으로 인구절벽을 줄이기 어렵다”며 “이민정책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적극적 이민정책을 표방했다.슈퍼화공 포럼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것으로 보이는 경북의 인구문제를 푸는데 새로운 시각의 이민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이민을 적극 수용,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북도의 이민정책에 변화가 올까. 기대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07

무너진 것은 교육만이 아니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우리 사회가 교권침해로 홍역을 앓고 있다. 수만 명의 교사들이 참가,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지내고 ‘공교육멈춤의 날’ 행사를 가졌다. 전국에서 추모 열기가 일었다. 이 와중에도 학생의 교사 폭행과 교사 자살 사건은 이어졌다.외신도 한국의 교권침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BBC는 “학업 성공에 모든 것이 달린 초 경쟁 사회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BBC는 “(교사들이) 아동학대범으로 몰릴까 두려워 학생들을 훈육하거나 싸우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고 교육현장을 비판했다.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지금은 학생들에게 훈육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아동학대 관련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의 교권침해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학부모들이 아동학대 고소는 사소한 것들이 누적돼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교사와 아이들의 충돌과 교사의 과도한 언어 대응이 학부모의 분노를 촉발, ‘아동학대’ 나 ‘정서 학대’로 진행된다고 봤다.교육 붕괴의 근인은 가족 해체다. 가족 해체는 가정 붕괴로 이어진다. 가정교육을 못 받은 학생의 일탈은 교사의 지도가 어렵다. 그러다가 포기하게 되고, 학교 교육마저 무너진다. 이는 사회까지 연결된다. 결국, 밥상머리 교육이 문제다. 가정과 학교가 바로 서야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사교육에 찌들려 교실에서 잠만 자는 학생. 이를 나무라지도 못하는 교사 등 학교보다 학원이 우선되는 게 현실이다. 내신조차 사교육으로 넘어갔다. 수능점수에 학생의 인생이 좌우된다. 공교육은 형편없이 망가졌다.교육 붕괴는 연쇄 파급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오랫동안 벗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더욱 문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가 잇따른다. ‘모방 범죄’까지 발생, 국민이 노심초사다.정치판도 무너졌다. 협상은 없고 이전투구만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상화폐 투자로 국민 분노를 산 김남국 의원을 퇴출하지 못하는 죽은 정당이 됐다. 이재명 당대표는 국정감사를 하루 앞두고 단식에 돌입했다. 출퇴근, ‘웰빙 단식’을 한다. 약자의 최후 수단인 단식을 희화화했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친북 단체인 조총련 주최의 간토 대지진 학살 조선인 추모식에 참석, 지탄받았다. 정작 자신은 궁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거대 야당의 묻지마식 반대와 거부에 국정 운영이 비틀대고 있다.국가정보원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 북한이 일부 좌파단체 등에 반대 투쟁 지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공산당이 버젓이 내놓고 활동하는 게 현실이다.교육계에서 다양한 교권침해 대책과 논의가 일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외신이 지적하듯 우리의 현실은 교육 붕괴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정치는 실종됐고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허덕댄다. 사회가 중병이 들었다. 총체적 난국이다.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됐다고 하지만 진정한 선진국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2023-09-07

16년만에 착수하는 지역숙원 영일만대교

경북과 포항의 오랜 숙원사업인 영일만횡단대교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내년에 착수한다. 경북도는 6일 영일만 횡단구간 고속도로(영일만횡단대교) 건설 설계비로 내년에 1천3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대교 건설에는 총사업비 3조2천억원이 투입되는데, 그 중 40%가 국비로 들어가고 60%는 한국도로공사가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내년 정부 예산안에 국비 540억원이 반영되면 도로공사가 추가로 810억원을 투입하게 된다는 것.영일만 횡단대교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 약전리에서 북구 흥해읍 남송리를 연결하는 18㎞ 구간이다. 해상교량 9㎞, 터널 2.9㎞, 도로 6.1㎞로 건설된다.이 사업은 2008년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광역경제권발전 30대 선도프로젝트로 선정됐으나 16년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동안 해마다 약간의 기본용역비가 정부 예산에 반영됐지만 실제 사업과는 연결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경북도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 1순위로 신청을 했으나 그마저도 좌절되고 말았던 사업이다.전국에 100개가 넘는 해상교량이 건설돼 있으나 경북 동해안에는 단 한군데도 없다. 특히 해상 대교건설은 주변의 교통난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경관조명 등으로 관광객 유치 효과도 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힘이 된다. 부산의 광안리 대교는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해 지금은 전국적 명물이 됐다. 경북도민과 포항시민이 간절하게 바라던 대교건설도 이런 데 이유가 있다.특히 환동해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으로서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구축함으로써 신북방교역의 교두보를 선점하는 의미도 있다. 또 이 다리가 관광과 물류기능을 수행함으로써 포항의 산업지형 변화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긍정적 효과다.이제는 세계적인 명물 다리로 건설하는 것과 100∼200년 가도 끄떡없는 안전한 해상교를 건설하는데 만반의 준비를 해야한다. 세계의 유명교량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포항과 경북을 대표할 랜드마크 탄생을 기대한다.

2023-09-07

한글서예로 꽃핀 내방가사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제14회 대구한글서예대축제 초대장과 도록을 받았다. ‘내방가사-한글서예로 담다’를 주제로 한 서예전이었다. 내방가사가 이렇게 꽃필 수도 있구나 싶은 반가움과 고마움에 내방가사의 역사를 짚어보고 싶었다. 마침, 짧은 인사말을 부탁받았기 때문에라도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내방가사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문학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세종대왕 창제의 한글 덕분이다. 1443년에 창제 1446년에 반포된 한글, 훈민정음은 말 그대로 백성을 위해 만든 문자였다. 그러나 조선의 공식문자는 한자였다. 대부분의 남성 양반에 의한 지배문학 역시 한자였다. 그런 면에서 여성은 침묵을 강요당한 백성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130여년 뒤, 1580년대 난설헌 허초희라는 천재시인이 ‘규원가’라는 가사를 지었으나 문학에 관한 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200여 년 후, 1794년 경북 안동 하회에서 연안 이씨가 집안의 겹경사를 송축하는 가사 ‘쌍벽가’를, 연이어 1810년경 기행가사 ‘부여노정기’를 창작하면서 드디어 내방가사가 한국문학사에 점을 찍기 시작하였다.이후 경상도의 여성들은 내방가사를 창작하고, 필사하고, 혼자 읽고, 돌려 읽고, 혼자 외고, 둘러앉아 낭송하는 향유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적으로는 친척 내에서, 더 넓게는 혼인관계를 통해 전파와 전승의 향유를 지속하였다.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보고된 작품 수가 6천여 편이 넘을 정도로 경북 여성들만의 특별한 문학이자 문화가 되었다. 창작과 낭송의 전통이 안채의 담장을 넘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180여년 후인 1997년, 이선자 회장이 창립한 안동내방가사전승보존회 덕분이었다. 특히 총 24회나 개최된 전국내방가사경창대회를 통해 내방가사의 아름답고 기품있는 낭송 소리는 경북을 넘어 전국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고전문학인 내방가사가 현재도 향유되고 있는 현재성의 문학임을 증명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2022년 11월 16일, 내방가사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되었다.“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보존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고, 기록유산에 담긴 문화적 관습과 실용성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목적에 부합되면서 여성공동체의 집단문학적 가치를 인증받은 셈이다. 이는 전적으로 내방가사를 잘 지켜온 대구경북 여성들 덕분이다. 허난설헌으로 기산하면 443년, 연안이씨로부터는 229년의 내방가사의 역사에 이름없는 수많은 여성 작가들을 보태어야 한다. 내방가사전승보존회 이선자 회장의 노고와 대구한글서예협회 최민경 회장의 역량에 기대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인류사에서 기록물 등 수많은 무형유산들이 전쟁, 사회적 변동, 약탈 등에 의해 영원히 사라졌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음에 비춰볼 때, 내방가사를 소중히 지켜온 대구경북 여성들에게 우리 문학, 문화, 역사가 크게 빚지고 있다. 2023년 8월, 대구한글서예대축제에서 만난 서예작품들은 문학이 서예로 비상하는 내방가사의 새로운 역사의 장이었다.

2023-09-06

뜨거운 것에 데었을때 어떻게 할까?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땀이 뻘뻘 나는 더위에도 뜨거운 삼계탕을 먹는 나라, 노곤한 하루 일과를 김이 펄펄 나는 국밥으로 마무리하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이다.이렇듯 뜨거운 음식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살면서 종종 화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어린 아이가 화상을 입어 물집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을 겪는데 이럴 때 떠올려야 할 것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먼저 화상을 입었을 때 손상의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 물집이 생기지 않고 피부가 붉게 되어 통증만 있는 정도는 1도 화상에 속한다. 이런 경우에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낫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물집이 생기면 2도 이상의 화상으로 치료 관리가 중요해진다. 2도 이상의 화상부터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물집의 크기가 크고 물집 아래로 비치는 색이 노랗거나 흰 경우 손상의 정도가 깊으므로 되도록 빨리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화상을 입은 경우 먼저 흐르는 수돗물에 환부를 데어 열기를 가라앉히고 오염을 제거한다.화상으로 입은 상처에 세균 등이 감염되면 치료 기간도 굉장히 길어지고 흉터도 생기게 될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물집의 관리이다. 갑자기 화상을 입으면 물집을 터뜨려야 할지 가만히 둬야 할지 고민이 된다. 물집 안에는 피부 재생을 도와주는 물질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되도록 물집을 간직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물집의 크기가 크면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물집을 터뜨려서 안에 있는 물을 빼 주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물집 주머니는 제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환부 주위를 깨끗하게 소독해 주고 물집 주머니는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외부와 닿지 않게 거즈나 밴드 등을 이용해서 덮어준 상태에서 의료기관을 방문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한의원에서 이런 화상 치료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생소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화상을 치료하는 데 한방 치료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한의원에서 하는 화상 치료로는 대표적으로 자운고 도포와 침 치료가 있다. 자운고는 자초, 당귀, 호마유, 밀랍, 돼지기름 등으로 만들어진 연고로 피부 질환에 많이 사용하는 외용제이다. 자초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청열 작용이 있고 당귀는 보혈 및 어혈을 제거하는 작용으로 피부 재생을 도와주며 나머지 정유 성분들은 보습을 도와준다. 화상에도 많이 쓰이지만 건조한 피부 질환에도 효과가 좋은 약이다.침 치료는 화상으로 상처가 난 부위 주변 테두리를 따라 얕게 자침하여 피부의 재생을 도와준다. 침의 자입으로 인한 미세한 손상이 회복되면서 주변 조직도 함께 회복되는 효과로 추측하고 있다.화상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한의원이 있을 정도이니 한방 치료의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피부의 상처는 관리에 따라서 짧은 기간에 깨끗하게 나을 수도 있지만 감염에 의해 다른 병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고 소독을 너무 과하게 하는 경우에도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의료기관의 전문적인 치료가 중요하니 급한 상황의 처치 후에는 꼭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치료를 받도록 하자.

2023-09-06

초고령사회, 위기일까 기회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은 곧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이 인구의 20퍼센트를 넘기게 된다. 나이가 많아도 경제생활을 지속해야 하지만 일자리에서 물러난 노인들은 길을 잃는다.정부가 짊어질 복지정책 부담도 재정적인 면에서 가볍지 않다. 고령화는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전반적인 인구구조의 변화를 초래하면서, 지역에는 급격한 인구감소를 빚어내 지역소멸의 위기감마저 가지게 한다. 인구위기는 남북한을 가리지도 않는다.2070년이 되면 남한은 3천600만, 북한은 2천400만 인구로, 2021년 대비 각각 70%와 90%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되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위기의 그림자는 반드시 기회의 가능성을 품는다. 오늘 65세로 접어드는 사람들은 이전의 노령층과 어떻게 다를까. 그들은 한국전쟁 후 사회적 경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로 베이비붐세대(baby boom generation)라 불리운다. 급격하게 초고령화로 접어든 느낌이 드는 데에도 까닭이 있는 셈이다. 그들은 사회문화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혼란을 모두 겪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을 시절에 때어났지만 눈부신 발전을 경험했으며, 정치적 변동을 체험하면서 거친 들판을 지나온 세대가 아닌가. 다양한 사회문화현상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깊고 여러 정치적인 이념성향도 겪을 만큼 겪었다. 이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며 배운 바가 있어 노후대비에도 무심하지 않았다. 이전 어느 노인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신개념고령층’이 출현하고 있다.한국사회에 처음 나타난 세대가 아닐까. 역사상 처음으로 체력(體力), 지력(智力), 재력(財力)을 겸비한 세대라고도 한다.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진보로 인간수명 백세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전후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가장 많이 배운 세대가 아닌가. 국가경제 발전을 몸소 견인해 온 어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은퇴한 다음 일로부터 손을 놓고 뒷방 늙은이로 자조적인 삶을 유지하던 노인층이 아니다. 건강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와 다짐을 불태우는 세대로 보아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도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s)를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이 블루오션이라는 게 아닌가. 인구 초고령화는 사회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를 제공한다.초고령화를 위기요소가 아니라 기회인자로 보아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복지예산에 대한 재정적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대의 문화적 유연성과 경제적 소비성향을 진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년연장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지만, 이를 세대 간 갈등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인구고령화를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미래로서 ‘초고령화현상’은 사회문화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틀을 마련하여 준비해야 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맞게 될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대비하는 지혜를 준비해야 한다. 재정압박을 핑계로 회피하려 하거나 세대갈등의 빌미로 보아 배척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2023-09-06

재주는 곰이 부리고…

홍석봉 대구지사장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이 있다. 수고하는 사람 따로 있고 이익 보는 사람 따로 있을 때 하는 말이다.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곰과 호랑이 등 ‘곰 곡마단’에 대한 언급이 있다. 박지원 뿐만 아니라, 당시 청나라를 다녀온 실학자들이 곳곳에서 곰 곡마단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없는 유희단이었다. 독립신문에도 청나라 상인이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부리게 했다는 기사가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속담은 대한제국 시기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과 관련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한국이 양극재 수출로 번 돈 대부분이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급성장에 따라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이 급증하고 있지만 양극재 수출로 번 돈이 리튬, 전구체 등 핵심 원료를 공급하는 중국으로 상당 부분 흘러갔다. 양극재 제조용 원료 확보가 미국 IRA 대응은 물론 원가 절감을 위해서도 중요해졌다.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액은 74억9천만 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6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양극재 수출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77.7% 성장했다. 하지만 양극재 수출이 늘수록 원료인 리튬과 전구체 수입이 늘고 수입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특성상 무역수지가 악화됐다. 상반기 양극재 수출로 58억1천만 달러의 흑자를 봤지만 88%인 51억 1천만 달러가 원료를 수입한 중국에 돌아갔다.원료 공급선 다변화와 원자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해외 원자재 확보와 투자가 절실하다. MB정권이 추진했던 해외 원자재 확보 실패가 뼈아프다.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중국이 버는 상황이 답답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06

소비자물가 다시 3%대… 추석물가 잡아라

추석을 앞두고 8월 소비자물가가 3개월만에 다시 3%대로 진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달 보다 3.4%가 올라 지난 4월(3.7%) 이후 가장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대구와 경북도 지난해 같은달 보다 3.4%와 3.1%가 각각 올랐다.지난 7월 소비자물가가 23개월만에 최저치인 2.3% 오르면서 우리 경제의 물가가 안정세를 찾아가는 듯했으나 또다시 3%대로 올라 걱정스럽다. 당국은 폭염과 폭우에 따른 먹거리물가 급등과 유가상승이 소비자물가 상승을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농축산물 가격이 크게 올라 서민들의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1년전 보다 배추는 42%, 시금치 59%, 사과 30.5%, 복숭아는 23.8%가 각각 올랐다. 추석을 3주 앞두고 제수용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다시 뛰지 않도록 당국의 세심한 대응이 필요하다.정부는 10월 이후 물가가 하향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성급한 안심은 금물이다. 산유국의 원유감산으로 국제유가가 연중 최고로 치솟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이상으로 국제곡물가, 설탕가격 등은 여전히 불안하다.물가 상승은 서민경제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가뜩이나 움츠러든 소비를 더 위축시킬 공산이 커 물가당국의 효과적이고 적절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도 추석물가 안정을 위한 조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비축된 농산물의 공급을 늘리고 대체 농축산물 수입도 늘려야 한다.대구시가 추석 직거래 장터를 개설하고 경북도가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우수 농특산물 할인판매 행사를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가격표시 이행준수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감시활동도 병행해 나가야 한다.올 추석의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물가안정을 통해 소비를 진작하려는 정부의 하반기 경제기조를 유지하는 중요한 고비가 된다. 경기의 상저하고를 기대하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가안정 속에 황금연휴를 맞으면 최고의 명절이 따로 없다.

2023-09-06

교권보호 위해 아동학대법 반드시 개정을

지난 7월 숨진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와 관련해 교권보호 대책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과 관련,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이 지난 5일 “문제는 아동학대법이다. 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 교육감은 이날 아시아포럼21 초청토론회에서 “아동학대 관련 고소·고발이 발생하면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동안 모든 책임은 교사 개인이 져야 한다. 국회 법사위에 상정된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면 교육현장에 분명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로 보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최근들어 초등교사들이 잇따라 숨진 원인은 학부모의 악성민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었던 탓이 크다. 강 교육감도 강조했지만, 학부모들이 아동학대와 관련해서 교사를 상대로 고소한 내용을 살펴보면 사소한 것들이 누적돼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사가 아이들을 훈육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과도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아이의 말을 전해 들은 학부모가 분노해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교사들은 고소사건에 연루되면 개인이 모든 재정적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심적 상처도 대단해 교단을 떠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최근 열린 집회에서 초등 교사들의 요구가 집중된 분야도 학부모 민원에 대한 대책이다. 중·고등학교는 입시 문제가 걸려 있다 보니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함부로 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초등학교는 학부모들이 아동학대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학교장에게 아동학대 신고 의무가 부여되면서 교사들은 직속상관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팽배하다.교육부와 법무부가 지난 3일 교원에 대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응하기 위해 법률 집행 과정에서 교권과 교원의 기본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전담팀을 운영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아동학대로 고소·고발되는 현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2023-09-06

길을 내다

배문경 수필가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길옆으로는 보랏빛 향기가 뿜어져 나올 맥문동이 그득하다. 그 사이 만들어진 길에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얼마 전부터 만들어진 황톳길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황토의 붉은 기운이 힘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새소리며 다람쥐며 청솔모는 덤의 볼거리다. 처음에는 몇몇이 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기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건강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을 자연스레 운동을 이끌어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맨발인 사람,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걷고 일부분은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나또한 한 두 번은 키 큰 철봉에 매달리기를 하며 앞뒤로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어준다. 어깨에 좋다는 설이 있어 간혹 즐긴다.계절마다 선물해주는 봄여름 가을의 향연이 눈부시다. 봄이면 연초록의 숲은 긴 겨울의 적막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진다. 잎들은 더욱 푸르른 빛으로 꽃들은 상큼하게 숲의 하루를 열어준다. 봄을 지난 숲은 더 깊어진 녹음과 매미소리로 풍성해진다. 망초가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숲 위의 하늘은 푸르고 더러 소나기로 더위를 식혀준다. 태풍이 지나고 난 뒤에 갔더니 황토는 말랑말랑 송편을 빚으려고 만든 반죽 같았다. 한두 명이 밟은 발자국 위로 다시 길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다져진다.구월의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힌다. 나의 아침걷기가 참으로 분주해질 때다. 맨발로 땅을 밟으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하나로 소통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곳곳에서 막혀있던 혈관이며 신경이 살아나 아침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의 그 순수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시력과 청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아있음이 세포 곳곳에서 활성화된다는 생각에 빠르게도 걷고 느슨하게도 걸어본다.인류의 신발은 무엇이었을까. 맨발로 생활하다 이족보행이 발바닥에 엄청난 압력을 주어 족저근막염 등의 고통을 주었을 수도 있다. 인디언의 모카신은 최초의 신발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데 한 장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뒤 가장자리에 구멍을 내어 묶어 신었다고 한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문명의 산물인 신발을 벗어 칸만 있는 신발장에 두고 맨발로 땅을 밟는다. 초핀과 전족과 하이힐의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들처럼 문명의 이기를 벗고 자연인이 된 듯이 가볍다. 가벼워진 몸이 하늘을 날 것 같다.지표의 약 10%를 덮고 있는 황토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점력(粘力)을 지니고 있다. 실리카, 알루미나, 철분, 마그네슘, 나트륨, 칼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성분비와 다양한 효소들로 조성된 황토는 동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므로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 부른다.황토에 발을 딛고 걷기 시작하면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황토에는 해독작용과 혈액순환 개선, 통증 완화와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항균작용은 덤이다. 습도조절과 전자파차단이며 항암효과와 중금속 배출이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황토는 또 하나의 자연이득이 분명하다. 황토 팩이나 황토 장판, 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는 황토가 깔린 길을 구경하며 걷는다. 나뭇잎을 흔들던 바람 한줄기가 시원스레 이마와 목젖을 스친다.옛 친정동네에는 오래된 초가집들이 많았다. 그 곳에서 유독 먼 친척 할아버지 집은 황토벽에 황토 구들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때론 대나무가 황토벽 사이로 보였다. 얼기설기 짜 놓았던 그 벽과 구들장들이 아마 원적외선 노출이 되었던가. 얼마 전 귀농하신 지인의 집에서도 비슷한 황토 일색의 인테리어를 보았다. 아마 건강에 좋다는 이유일 것이다. 흙과 불로 이루어진 갖가지 제품들이 건강을 챙기려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아떨어진다.아침산책길에서 운동화는 차에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숲으로 들어선다. 새들이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자 숲의 나뭇잎이 더욱 푸른빛으로 답례를 한다. 황톳길에 발이 닿자마자 나도 숲의 일부분이 된다.

2023-09-06

정사일주(丁巳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네 번째는 정사(丁巳)다. 천간(天干)의 정화(丁火)와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같은 화(火)기운으로, 빛과 열이 혼합되어 화려하고 찬란하다. 동물로는 붉은 뱀이다.정사일주는 타오르는 불꽃같은 형상이지만, 해 질 녘의 모닥불이며 뜨거운 용광로와 같다. 활동적인 불기운이 아니라, 정제된 불기운이다. 만사를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처리하여 처세에 능하기 때문에 큰일을 도모하고 성취하는 재능이 있다. 권력의지가 강하고 활동이 정열적이며 개성이 뚜렷하나 끈기가 약하다. 하지만 꺼질 줄 모르는 열정만은 남다르다.현실적 감각이 뛰어나 금전 감각이 밝은 편이다. 판단력도 좋아 종종 주변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싫증도 빨리 내고 뒷심이 부족한 편이다. 초심과 달리 종종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인내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 현명하겠다.한편 예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신의를 지키고 존중해주면서도 자기 자신을 은근히 자랑하는 스타일이다.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낙천적이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성격은 불같지만 쉽게 누그러지는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강한 상대를 보면 도전하고자 하는 승부욕도 가지고 있다.중국 춘추시대 위나라 임금인 문후가 사냥터를 관리하는 관원에게 사냥하러 갈 날짜를 정해서 미리 알려주었다. 사냥하기로 한 날, 위문후는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마침 그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런데도 위문후는 사냥하기로 한 날임을 기억하고 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위의 신하들이 “오늘 술도 기분 좋게 마셨고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어딜 가시려고 그렇게 차비를 하십니까?”라고 물었다.위문후는 “사냥터 관리인에게 오늘 내가 사냥 간다고 알려 놓았다오. 오늘 비록 술을 마셨고 비가 오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그는 끝내 사냥터 관리인에게 가서 직접 이번 사냥은 쉰다고 말해 주었다.‘위문후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약속에는 신분의 고하가 없는 법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편안함에 매몰된 사람은 쉽게 약속을 파기하는 경향이 있다.정사일주 남자는 경제력이 충분해도 지나친 욕심과 고집으로 배우자가 힘들어 할 수 있다. 경제권을 아내에게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여자는 성격이 화끈하며 치장과 변신에 능하고 독설도 서슴지 않기에 언행에 주의해야 한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어야 만족하기에 고독하게 혼자 사는 경우가 있다. 남녀 모두 결혼은 만혼이 좋다. 부부다툼으로 인하여 이별수가 있으니,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져줄 수 있어야 화목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정사일주는 보름달 아래 붉은 뱀의 모습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느낌이 강하고, 혼자 다니기를 좋아해 어딘가 비밀이 많고 속마음을 잘 비추는 법이 없다. 하지만 밝고 놀기 좋아한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버티는 악착같은 면도 있다. 쇠약하거나 시들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멸의 일주다. 뒷담화로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포용력이 넘치고 친화적이라 인기가 좋은 편이다. 분위기 메이커는 아니지만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또한 화려한 색상의 의상이나 눈부시고 사치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어 성공과 권력에 대한 욕구가 남다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억을 아주 잘하며, 상대가 베푼 작은 선행도 감사하고 잊지 않는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이 있으면 이를 앙갚음하기 위해 원한을 가지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스콧 피츠제럴드 (1896∼1940)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급격한 성장을 이룬 미국 경제와 물질 만능주의가 난무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군 입대와 가난 때문에 이별해야 했던 애인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당시 금주법을 악용하여 불법인 밀주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게 된다.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는 강 맞은편에 거대한 주택을 마련한다. 개츠비는 밤이 되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바라보며 불이 꺼질 때까지 바라본다. 그녀와 다시 만나길 고대하며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연다. 언젠가 그녀가 방문하리라는 기대감으로 살아간다. 데이지는 부유한 톰과 결혼을 했고, 딸아이까지 있었다.개츠비는 우연히 자기 집 근처에 사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 닉을 만난다. 닉은 개츠비가 오래전 연인이었던 데이지를 아직도 못 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닉을 통해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만난다. 개츠비는 인생을 걸고 데이지에게 모든 걸 바치려 하지만, 데이지는 사랑에 응답하지 않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어느 날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랑한 사람은 톰이 아니라 자신이라며 언쟁을 벌이게 된다. 기분이 언짢은 데이지가 자리를 뜨자 뒤쫓아 간 개츠비는 그녀가 모는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는 도중에 톰의 정부 머틀을 차로 치어 죽이게 된다. 톰은 머틀의 남편 윌슨에게 개츠비의 짓이라고 알려준다.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에 데이지는 오지 않았다. 닉과 게이츠 아버지 등 두 세 사람만이 참석했다. 그 후 닉은 고향에 돌아간다.1920년대 미국사회의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치부를 드러내며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타락과 이상을 쫓다가 신분 장벽으로 좌절된 한 젊은이의 삶을 담고 있다. 교활한 사람, 비겁한 사람은 간혹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들은 심오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너무도 단순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100년이 지난 우리 사회도 그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로 출세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코인, 주식,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갈망하고 있다. 신분상승으로 인해 상류기득권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그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몰락의 길인 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2023-09-06

‘빼박’의 국민연금

우정구 논설위원 “빼도 박도 못한다”는 우리말은 일이 난처하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의미의 관용어다. 한자 말로는 진퇴유곡 혹은 진퇴양난에 비유된다. 한때 인터넷상에는 이 말을 줄여 ‘빼박’이라 부르기도 했고, “할 수 없다”는 뜻의 영어 can’t를 붙여 ‘빼박캔트’라고도 불렀다.국민연금 개혁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금개혁을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개혁을 거부했다. 국민 눈치보기 내지 인기영합적 태도다. 누가 보더라도 고갈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이 인기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 그룹이 연금개혁 시안을 내놓았다. 보험료를 더 내고 시기는 늦춘다는 것이 골자다. 2055년 예상되는 연금 고갈 시기를 최장 2093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이다. 현재 20세 청년이 90세가 될 때까지 연금이 소진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두었다.문제는 소득대체율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이 인상되지 않으면 연금소득 자체가 초라해지기 십상이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연금 보험료 인상의 효과가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안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이 오가고 있다.그야말로 빼박도 못하는 개혁안이지만 그래도 여론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밀어붙여라고 하는 쪽이 우세하다. 복지부 산하 16명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안을 내놓았으니 지금부터라도 후퇴없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국민의 70%가 거세게 반대한 프랑스 연금 개혁안을 강력히 밀어붙인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