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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광역비자제도가 인구문제 해법될 수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어떤 자리에 가도 가파르게 떨어지는 출산율이 화제다. 우리세대에서 국가소멸이 가시권 내로 들어온 탓이다. 만약 이 시점에서 인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후세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지난해 연말, 역대 가장 낮았던 4분기 합계출산율(0.702명)과 관련한 사설을 쓰면서 ‘인구재앙’을 언급했던 적이 있다. 만약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걸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가 0.6명대로 떨어지면,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701명으로 더 떨어졌다. 통상 1분기에 아이를 가장 많이 낳고 해가 바뀌는 4분기에 가장 적게 낳는 점을 감안하면, 올 4분기에 0.7명대 마지노선이 깨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이미 대구는 출산율이 0.67명으로 서울(0.59명), 부산(0.66명)과 함께 0.6명대로 떨어졌다. 전국 17개 시도를 통틀어 출산율이 1명을 넘은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세종시의 출산율도 0.94명이다. 올 1분기만 해도 1.19명이었다. 충격적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출산율이 1명이 안 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출산율도 1.3명이다.미국 학자 조앤 윌리엄스는 EBS 다큐멘터리에 나와 한국 출산율 수치를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다”며 머리를 감쌌다.한국의 인구절벽은 그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중소도시 소멸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까 대도시가 아니고는 산부인과·소아과를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일차적으로 초등학교가 붕괴되고 있다.경북도를 예로 들면, 2023학년도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32개교다. 이 중 14개교는 2~3년 연속 신입생이 없었다. 입학생이 1명뿐인 학교도 30곳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언급했다시피, 돈으로 저출산 추세를 막기는 불가능해졌다. 내년에도 저출산 극복예산으로 17조5천900억원을 책정해 놓았지만, 대부분 예산항목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이제 인구정책 패러다임을 외국인 유치 쪽으로 전환할 때가 된 것 같다.정부는 경북도가 제안한 ‘광역비자’제도(시도지사가 외국인 노동인력, 유학생 유치를 위해 비자 발급 권한을 갖는 것)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도 지난해부터 광역단체장에게 비자발급권을 주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지방대학에 외국인 유학생 1명이 입학하면 부모 2명에게 취업 비자를 줄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다.현재 국회에는 임이자 의원(상주·문경)이 발의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인구감소지역을 관할하는 시·도지사가 외국인 우수산업인력의 배우자·부모·자녀에 대한 비자발급을 법무부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우선 이 법안이라도 국회에서 빨리 통과시켜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소멸 위기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

2023-09-05

교권확립을 위한 입법현안 처리 서둘러라

지난 7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이자 전국 교사들이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한 지난 4일 대구·경북 교사들도 휴가를 내는 방식으로 추모대열에 동참했다. 이날 전국적으로 현직 교사는 물론 학부모와 학생들, 교대생까지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거리에 나와 고인을 기리고, 추락한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한 목소리를 냈다.학부모들은 학교에 현장체험 신청서를 내고 자녀를 등교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교사들 집단행동에 동참했다. 이날 오후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추모집회에는 평일인데도 주최 측이 경찰에 신고한 2만명의 배를 웃도는 5만여명(경찰 추산 2만5천여명)이 참가했다.교사들은 이날 자발적으로 병가나 연가를 내고 집회에 참가했다. 경북에서는 1천500여명 이상이 추모에 뜻을 함께하고 교권추락에 대한 무언의 항의를 했다. 대구에서는 전교조 대구지부와 대구교원단체총연합회가 이날 각각 대구시교육청앞, 2·28 중앙광장에서 추모집회를 하며 고인을 기렸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연가·병가 등을 내고 참석한 교사들의 처벌 여부에 대해 “징계는 없을 것이다.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고 공교육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교사들이 이날 전국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교권확립을 위한 입법현안을 빨리 제정하라는 의미가 강하다. 현재 정치권은 교권보호와 학생인권보호를 놓고 견해 차이를 보이며 해묵은 정쟁을 벌이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사들 눈에는 무책임한 처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 가장 급한 것은 교사들을 악성민원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다.교사가 정당한 학생지도를 하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무분별하게 신고 당하지 않도록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교권회복 4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입법 현안처리가 빨리 선행되지 않으면 교권보호 대책은 사상누각이 될 공산이 크다.

2023-09-05

경북·전남에 국립의대 설립… 해법 찾아야

경북도와 전남도는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의료 취약지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각각 1.4명과 1.7명으로 전국 평균 2.1명을 밑돈다. 뇌졸중 등 중증응급 분야 전문의 수도 평균 미만이다. 그래서 10만명당 치료 가능한 환자 사망률은 경북 46.98명, 전남 47.46명으로 전국 평균 43.8명을 훨씬 웃돈다.두 지역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곳으로 전국에서 노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의료서비스 수요가 많은 65세 이상 노인인구도 가장 많다. 또 지역 특성상 도서, 산간지역이 많아 의료서비스도 매우 취약하다.이들 지역은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제때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억울함을 그동안 줄곧 호소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이나 정치권에서 그 어떤 해법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21대 국회에 국립의대 설립을 위한 법안들이 무더기로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내년 총선까지 남은 국회 임기를 생각하면 모두가 폐기될 운명이다.이철우 경북지사와 김영록 전남지사는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최대 의료취약지인 경북과 전남에 국립의대 설립을 위한 대정부 공동건의문을 발표했다. 두 지사는 건의문에서 “두 지역 450만 도민은 오랫동안 생명권과 건강권을 박탈당하며 살아왔다”며 “다른 지역과의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 반드시 국립의대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또 김형동 의원(국민의힘)은 “의료서비스 불균형 해소는 지역민에게는 생존 문제”라며 국립의대 설립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국립의대 설립은 의대 정원 문제와 맞물려 의료계의 폭넓은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의대 정원은 지난 2006년부터 18년째 동결된 상태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의대정원을 확대키로 큰틀에서 합의점을 이뤘으나 의료계 전체의 공감을 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최근 포항에서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연구중심 의대 설립문제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의대설립 요구는 더 달아오를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해법을 내놓을 차례다.

2023-09-05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도 맑고 높푸르러지니 바람의 결조차 달라져 한결 선선하다. 무성하게 자라던 초목은 성장을 멈추고 들판의 곡식은 정갈한 햇살을 받아 여물어간다. 아침 저녁의 선들선들한 기온에 한낮의 무더위가 스멀스멀 꼬리를 감추며 사라져가는 초가을, 알곡이 여물고 과실이 익어가는 9월은 열매달이라고도 한다. 어정거리던 칠월을 지나 동동거리던 팔월의 가슴을 선선한 바람 결에 쓸어 내리는 가을의 어귀로 접어들고 있다.‘지구의 손가락이 궁서체로/공중에 ‘가을’ 한 글자 적으면//무성해 소란스럽던 무더위는/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고//그간 쪼그라들었던 가을바람은/고추잠자리 날개 펼치듯/오금을 쭉 펴고 일어나지//풋풋한 가을이 자박자박 걸어오지’·남정림 시 ‘초가을’전문가을을 찬미라도 하듯이 도처마다 즐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자연의 합주곡마냥 정겹게 들린다. 하늘 높이 떠가는 흰구름이 바람의 시를 쓰고, 또렷하면서 청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이 풀숲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계절의 시계마냥 그냥 보이고 저절로 들리는 자연의 시와 음악이 넉넉한 세상의 배경이 되듯이, 사시사철 나눔과 베풂으로 사회 곳곳을 밝고 따스하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상을 숨쉬게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자원봉사로 소리 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담은 ‘아세만사(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음악회가 바로 내일(7일) 포항의 효자아트홀서 열리기에 이채롭고 신선하기만 하다.봉사활동하기 좋은 9월에 마치 자원봉사의 손길과 땀방울을 찬탄하는 양 풍성하고도 다채로운 문화예술의 향연이 벌써부터 설레고 기대된다. 필자도 조금씩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봉사자들은 자신의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내거나, 심지어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자원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어도 무엇 하나 보상이나 위안을 삼기가 머쓱했었는데, 이번에 포항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감사 뮤직 콘서트가 오랜 준비 끝에 열린다기에 여간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난타와 대중가요, 악기 연주, 시낭송, 밸리댄스 등의 자원봉사 출연진이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1부), 아름다운 장미꽃을 피우는 사람들(2부), 봉사함에 행복한 당신이 있어(3부), 세상은 아름답습니다(4부)’ 등의 테마로 공연을 펼치는 것은 봉사자들의 노고와 기여에 대한 감사와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제공을 위한 정성과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출연진들 모두가 재능기부나 자원봉사로 나섰기에 한결 의의가 크지 않을까 싶다.가을 마중을 하듯이 밖에서는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들려오고 안에서는 음악의 선율과 시의 향기가 흐르고 있으니 과연 가을의 길목에 어울리는 절묘한 하모니랄까,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화음인 듯하다. 아름다운 봉사의 손길이 문화와 예술로 승화되고 삶의 힘이 되듯이, 누구나 편하게 참여하고 부담 없이 어울려 자원봉사의 진정한 보람과 가치를 느끼기를 기대해 본다. 봉사는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최상의 덕목이자 가없는 정성이다.

2023-09-05

포항 하면 SF가 떠오르기를

강지우 SF평론가 2019년, 포항에서 ‘제1회 포항 SF 페스티벌’이 열렸다. 육거리에 위치한 인디플러스 포항 영화관을 중심으로 SF 영화제, 토크콘서트는 물론 한국 SF 100년사 전시와 각종 부대행사가 알차게 펼쳐졌다. 필자가 SNS에 행사를 공유하니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이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컨택트’와 ‘매트릭스’를 보고 우주과학자, 뇌과학자와 영화 속의 과학에서 시작해 우리의 삶과 우주로 확장하는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그러나 ‘제1회’에 담긴 지속하고자 하는 포부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포항 SF 페스티벌은 열리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도 있었겠지만, 찾는 관객이 다소 적었던 것도 원인이 아닐까 싶다.포항 SF 페스티벌은 포스텍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주관이었다. APCTP는 대한민국 유일의 국제 이론물리 연구소로, 세계적인 석학들이 물리를 연구하는 곳이다. 동시에 이곳은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포항시와 함께 ‘포항 가족 과학축제’를 운영하는 주체가 바로 APCTP다. 매년 ‘올해의 과학도서’를 선정해 저자 강연을 개최하며, 이공계 학생 대상의 과학커뮤니케이션 스쿨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SF와의 인연도 깊다. 2008년부터 웹진 ‘크로스로드’에 SF 코너를 운영해 온 덕에, 지금은 거장이 된 SF 작가들이 데뷔 초기, SF를 발표할 마땅한 지면이 없던 ‘보릿고개’를 버티고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처음 SF의 매력에 빠진 것도 ‘크로스로드’에서 낸 SF 앤솔로지(여러 작가의 작품집)를 읽고서였다.APCTP가 위치한 포스텍도 SF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포스텍은 2020년부터 ‘포스텍 SF 어워드’를 개최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SF작가 김초엽이 나온 대학이기 때문일까. 일반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여타 SF 공모전과는 달리, 이공계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만을 참가 자격으로 받는 것이 특징이다. 이공계 전공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SF계를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할 작가와 작품들이 발굴되고 있다. 포스텍은 SF 작가의 강연이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SF, 오래된 미래의 서사’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여섯 명의 연속 강연이 열렸다. 또한 ‘제1회 포스텍 SF 데이’에서는 맨부커상 후보에 빛나는 정보라 작가와 김겨울 작가의 북토크가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이처럼 포항과 SF의 연결고리가 여러 겹으로 견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 연구의 최첨단을 이끄는 포스텍과 최첨단의 기술로 지어진 제철소가 일상처럼 가까운 도시. 이곳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 낼 미래를 꿈꾼다. SF적 상상력을 배양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이제 ‘포항’ 하면 푸른 바다와 맛있는 해산물뿐 아니라 ‘SF’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곳,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등 SF 기반 문화 콘텐츠가 한껏 피어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제2회 포항 SF 페스티벌’이 벌써 기다려진다.

2023-09-05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때 아닌 사상 논증이 한창이다.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 이전 논쟁이 그 주인공이다. 요지는 이러하다. 흉상의 인물이 현 대한민국의 정신에 맞지 않으며,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던 사람도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 국방부와 육사측은 독립운동보다는 창군 이후 군사적 분야에 대해서만 흉상을 비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흉상 철거 사유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다.여기까지만 보아서는 국방부와 육사의 발언은 꽤나 합당해 보인다. 여전히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 정권과 군사적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이므로, 공산당 전력이 있는 사람을 육사의 정신을 표상하는 흉상으로 배치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것으로 들리기 때문. 하지만 그 대상이 홍범도 장군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아한 구석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다. 홍범도 장군은 심지어 2016년 박근혜 정부 시기 해군 97전대 소속의 손원일급 잠수함에도 명명된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쟁은 단순히 육사의 흉상 이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잠수함 명칭 개변 및 국군사에서의 홍범도 장군은 흔적 지우기라는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물론 홍범도 장군이 레닌 시기 소련 공산당 인사였음은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당대 세계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홍범도 장군이 북방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1920년대 당시 일본군은 러시아의 백군과 연합해 전선을 펼치고 있었기에, 만주 군벌 및 일본군과 대립하던 홍범도 장군으로서는 러시아 적군과 연합해 전선을 구성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러시아 공산당은 향후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친 스탈린 시기 공산당과는 사실상 다른 집단이며, 2차대전 당시 연합국에 속해 있었다는 역사가 고려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들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것을 빨갱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빨치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비정규 유격 게릴라 부대를 통칭하는 파르티잔(Partisan)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하자면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국방부측은 여기에 덧붙여 홍범도 장군이 사할린 한인 부대가 러시아 인민혁명군에게 제압당한 자유시 참변에 개입하였기에 진성 공산당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사학계에서는 해당 사건에 홍범도 장군이 개입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역사 논쟁으로까지 확산될 전망이다.그럼에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광복군 인사의 흉상 이전에 찬성하는 ‘제대군인자유노동조합’의 김영교 공동대표는 최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과 공동 진행한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육사 공산주의자 흉상 존치 규탄대회’에서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며 그의 무덤을 파묘해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흉상 이전 찬성 측의 발언과 근거를 확인하고 있자면, 흡사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있었던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논쟁과 임시 정부를 대한민국의 근간에서 부정하려했던 뉴라이트 계열의 논쟁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육사와 국방부측에서 이와 같은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의 자리에 백선엽 장군과 맥아더 장군, 밴플리트 장군의 흉상을 설치하려 계획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백선엽 장군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육군 소속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자서전에 직접 서술한 친일행위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이다. 더불어 맥아더 장군과 밴플리트 장군은 전쟁사와 한국사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육사의 정통성을 기리는 충무관 흉상으로 제작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소의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우리의 역사에서는, 이 둘을 대체할 정도의 영웅이 없었다는 말인가?많은 부분에서 최근의 논란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있었던 역사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특정한 인물이나 역사적 단체의 위상을 상향하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실제 역사를 부정하고, 없는 역사를 만들면서까지 무엇을 위해 이런 행동을 행하는 것일까. 가뜩이나 힘든 뉴스가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없는 문제까지 만들어내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2023-09-05

‘복세편살’이라는 주문

‘복세편살’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그 신조어를 접했던 건 바야흐로 십 년 전,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던 순간이었다.그녀는 “은강아, 복세편살하자. 복세편살.”하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친구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언뜻 들으면 복(福)을 비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심오한 뜻이 내포된 사자성어 같기도 한 묘한 단어. 대충 좋은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야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를 네 글자로 줄여 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요즘 애들은 별걸 다 줄여서 말하는구나. 애늙은이처럼 혀를 차는 것도 잠시, 그 말이 어찌나 중독성 있던지. 언제부턴가 나도 주문처럼 ‘복세편살’을 외치고 있었다.정말이지 그건 주문 같았다. 마음이 실타래처럼 엉키거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댈 때면 마음속으로 ‘복세편살’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정말 주술적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이 단박에 해결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순간적으로 잔잔해지는 것도 경험했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감정에 던진 작은 돌 하나가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주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세상은 복잡하다.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것들이 자꾸자꾸 생겨난다. 변화의 속도는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대면보다 비대면 방식이 많아지고 1분 내외의 숏폼 영상을 넘기고 있노라면 20분 내외의 유튜브 영상도 길다고 느껴진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며 노동세계 또한 완벽하게 변화했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건 어떠한가. 타인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아서 어떤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선의로 건넨 진심이 난도질 되어 아무렇게나 버려질 때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이해하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인간이 질서와 체계를 좋아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자연법칙을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책상이 뒤죽박죽 상태가 되면 말끔하게 정돈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자신의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질서로 향한다. 이토록 복잡한 세상은 단 한 순간도 내가 원하는 상태로 있어 주지 않는다.스토아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슈테판 클라인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복합적인 문제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하는 것이 종종 성공의 열쇠가 되어준다. 단순한 사고만이 승산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모든 문제를 작은 걸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머리로는 알고 있다. 불필요한 생각을 멈추고 담백하게 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저 ‘편하게’라는 말로 넘기기에 눈앞의 문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떤 일이 다가왔을 때 마냥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감히 겪어보지 못한 사건을 경험한 이들도 있다. 걱정을 멈추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조언은 어떤 면에서 사치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렇듯 또다시 마음이 복잡해지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복세편살’을 외치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매사가 불안했고 작은 일에도 쉽게 넘어졌다. 선택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고 누군가 내 진심을 곡해할까 전전긍긍했다. 그때의 나는 친구가 뱉은 그 ‘복세편살’이라는 말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말간 얼굴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 담백하고도 다정한 말은 내게로 향하는 분명한 위로였다.나는 결심한다. 상대의 저의를 파악하는 것보다 상대의 눈동자를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자. 어려운 상황에도 밝고 쾌활하게 웃는 사람을 그 모습 자체로 사랑하자. 그러한 시선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복잡한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편안해지리라고 중얼거리다 보면 생각지 못한 행운이 다가온다고도 믿는다. 알다시피,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니까. 그것이 꼭 불행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의 ‘복잡한 세상’이 ‘복(福)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2023-09-05

신라 이사부 장군이 지켜온 독도·동해…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때

유충근 동해해양경찰서장 중국 당태종의 유명한 고사 중“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는“어떤 일을 이루기는 쉬우나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로 나라를 세우는 것과 잘 지키고 유지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운지를 신하들에게 물었다는 내용이다. 어떤 일을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양경찰 7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해양패권의 경쟁 속에서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 재산 등을 지키며 한 발자국씩 더 발전하고 있는지 오늘 나는 생각해 본다. 동해시 묵호진동 13번지, 이는 동해문화원과 국가기록원 동해시청 등을 통해 찾은 동해해양경찰서의 시작인 묵호기지대의 창설지이다. 동해해경은 1954년 묵호진동 13번지에서 해양경찰 묵호기지대 발대식을 거쳐 2010년 현재의 청사로 이전하기까지 70년간 동해를 지키고 있다. 우리 동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신라시대 지증왕 13년 이사부 장군이 하슬라주에 군주로 임명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군주로 임명된 이사부 장군은 동해 먼바다에 있는 우산국(지금의 독도와 울릉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무로 된 사자를 여러 개 만들어 겁을 주니 우산국(울릉도) 사람들이 놀라 항복한 일화는 우산국을 정벌한 이사부 장군의 지혜와 함께 신라 수군 양성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이사부 장군의 기백을 이어받은 동해해경은 2002년 3월 해양경찰 최대 경비함정인 5001함(삼봉호·독도의 옛 지명)을 인수해 독도와 동해북방해역까지 광활한 동해를 수호할 수 있었다. 2006년 10월 23일 울릉도 북서방 117Km 해상에서 러시아 선적 시네고리예호가 침몰했을 때 동해해경은 삼봉호를 현장으로 보내 10여 일간의 수색 구조작업을 했다. 삼봉호는 거센 파도를 뚫고 북방한계선을 넘어 수색하던 중 러시아 선원 5명을 구조하고 1명에 시신을 수습했다.  이는 국내는 물론 러시아 현지에서도 큰 감동을 불러왔고, 감명을 받은 러시아 유명 화가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에 걸쳐 그린 유화작품(가로 16m, 세로 1m)을 동해해경에 기증했다. 그는“러시아 선적 시네고리예호 침몰사고시 최악의 기상조건에도 불구, 한국 해양경찰의 10여 일간의 생사를 넘나든 구조 활동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휴머니즘의 극치를 보여줬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는 대한민국 국가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2014년 12월 1일에는 러시아 베링해에서 침몰한 501 오룡호를 수색하고자 삼봉호는 해양경찰 역사 중 처음으로 해외 자국선박 구조작업에 투입됐다. 38일간의 긴 수색작업으로 당시 평균 파고 4~5m 이상의 높은 파도와 초속 20m/s의 강풍이 부는 극한의 상황 속, 안타깝게도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한국인 6명의 시신을 인도받아 고국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렸다..또한, 2021년 12월 울릉도 북동 131km 해상에서 5천t급 파나마 선적 화물선이 침몰해 3016 함(태평양 16호)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악천후 속 선원 18명 중 17명을 구조한 동해해경은 베트남 특명전권대사로부터 감사장을 전달받았고 현재까지도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다. 한편, 내부적으로 동해해경은 동해 북방해역 등 광활한 해양영토에서 불법 조업 외국어선 대응역량을 강화해 국민이 안전하게 조업할 수 있도록 대응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또한, 동해를 방문하는 많은 국민에게 연안안전정책 홍보 등을 통해 안전의식을 키우고 연안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새로운 레저 트렌드에 맞는 수상레저활동 안전관리 대책을 세우고 시기에 맞는 특별단속기간을 정해 해양범죄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해양 마약사범 근절 등 해양수사 전문가 양성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해양경찰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동해해경은 묵호기지대 창설지 위치에 동해해경 표지석을 설치, 국민에게 동해해경 역사에 대한 홍보를 이어 나갈 예정이다. 동해해경은 지난 70년 동안 크고 작은 많은 사건·사고를 처리하면서 성장해 왔고, 기본에 충실하고 현장에 강한 국민의 해양경찰이 됐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바다에서 한 줄기 빛을 뽐내는 등대의 불빛처럼, 우리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동해의 길잡이가 돼, 안전하고 깨끗한 동해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독도의 개척자 신라 이사부 장군은 지난 2012년도 표준영정으로 돌아와 삼봉호로 승선, 독도의 수호자 동해해경과 함께 독도와 동해바다를 굳건히 지켜 내고 있다. 동해해경을 지켜온 수많은 선배님과 592명의 든든한 소속 해양경찰관, 함정 18척, 그리고 이사부 장군, 그 기세를 오늘도 떠오르는 독도 동해의 태양을 보며 해양주권 수호를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2023-09-05

경주는 지금 한국 원전의 전진기지로 변신중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일 경주 감포읍 문무대왕과학연구소에서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기관장들과 함께 ‘경주 테크노폴리스 조성’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들 5개 기관장은 협약에서 테크노폴리스 조성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동용역 수행,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 선정, 개발 및 필수 기반시설 구축, 교육·문화·휴양 등 분야별 정주 여건 조성에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경주 테크노폴리스는 원자력 시설로 특화한 첨단산업과 연구시설, 교육기관, 문화, 거주 등 정주 여건이 모두 갖춰진 복합형 자족도시를 의미한다. 경북도와 경주시에는 현재 다른 지자체에는 없는 원자력정책과가 운영될 정도로 몇 년 전부터 원전산업에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다.경주시는 지난 2021년 7월 사업비 6천540억원 규모의 혁신 원자력 연구단지인 문무대왕연구소를 착공했다. 2025년 말 준공할 계획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혁신형 SMR(소형모듈원자로) 연구개발 사업도 오는 2028년 완료된다. 모두 국가차원의 전략사업들이다. SMR은 지금 글로벌 원자력 시장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경북도는 원자력공동캠퍼스와 국책연구기관 분원 유치도 추진 중이다.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의 핵심적인 목적은 경주지역의 교육과 문화, 정주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기업과 인재가 몰리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실무인재 양성을 위해 원자력 공기업이 중심이 돼 기업형 자사고를 설립하겠다는 구상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영 중인 인천 하늘고가 모델이다. 경북도는 이와함께 국립 탄소중립 에너지미래관, 국가 과학기술 연수원도 유치하겠다는 방침이다.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강국인 우리나라 원전생태계는 크게 뒷걸음쳤다. 원전 중단은 경북지역 경제에도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 이번 5개 기관의 협약이 역사·문화관광 도시 경주를 국제적인 원자력산업도시로 변신시켜, 경주가 미래 한국 원전산업의 전진기지가 되길 기대한다.

2023-09-04

‘마린머드’, 진주되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진흙 속에 들어 있는 미네랄은 슈퍼박테리아, 살모넬라, 대장균 등 유해 세균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해 준다. 진흙 속 다양한 무기질과 미량 원소 등 영양소는 항균 작용을 도와 각종 피부질환과 물리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진흙은 이렇듯 인체에 이롭다. 특히 해수와 오랜 시간 반응한 마린머드는 약리적 효능과 화장품 기능을 갖는다.경북 동해안 일대에 다량 분포한 ‘마린머드’가 뷰티산업 신소재로 떠올랐다. 유럽과 남미에서는 이미 테라피(치료) 산업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린머드를 활용한 뷰티 테라피 산업은 건강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사해의 머드는 머드팩, 화장품, 테라피 용도로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경제 가치만 1조 원에 달한다. 최근엔 알래스카 빙하머드도 출시됐다. 뷰티 테라피 산업분야에서 마린머드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경북 동해안의 후포분지는 왕돌초가 퇴적물의 이동을 막고 있는 해저 지형으로 양질의 머드가 대량 부존돼 있다. 지질자원연구원 포항센터는 울진 후포 앞바다에 마린머드가 8만ha에 36억t 가량 산재한 것으로 추정한다.경북도는 최근 마린머드의 보습과 주름 개선, 항산화, 항염, 미백 등 뛰어난 효능을 확인했다. 마린머드의 화장품 원료 공정개발도 마쳤다. 효능평가와 함께 중국과 미국에 국제 뷰티산업 원료등록을 하고 한창 제품을 개발 중이다.경북도는 동해안 마린머드가 충분한 산업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테라피와 의료제품 개발 등 국가지원 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관광 상품 개발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보령 머드축제를 뛰어넘는 울진의 마린머드 축제를 기다린다. 진흙탕 속에 흠뻑 빠져 맘껏 뒹굴 날을….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04

기회발전특구 성공, 앵커기업 유치에 달렸다

대구시가 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서 양금희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대구기회발전특구 포럼 행사를 가졌다. 윤석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핵심 수단인 기회발전특구의 성공적 안착과 관계법령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기회발전특구는 지자체가 주도권을 가지고 지역의 특화된 업종, 입지확보, 앵커기업 유치를 통해 특구 지정을 신청하면 정부가 세제감면, 재정지원, 규제완화 등 패키지 형태의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지역의 성장을 돕고 국토균형발전을 꾀하고자 중점 노력하고 있다.미래사업 전환에 속도를 내는 대구시는 기회발전특구가 또다른 대구발전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특구 유치에 적극적이다. 시는 최근 수성알파시티가 국가디지털혁신거점 조성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모빌리티 모터 소부장 특화단지 유치,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구축사업의 예타 통과 등 대구 역점사업들이 속속 성과를 내 기회발전특구가 지정되면 대구 미래산업 대전환의 속도를 더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시는 즉시 입주가 가능한 국가산단과 테크노폴리스, 수성알파시티를 1단계 특구 전략지로 손꼽고, 중장기적으로는 제2국가산단과 신공항이 들어설 군위군의 첨단산업단지까지 특구를 넓혀갈 구상을 하고 있다.문제는 특구에 들어설 알짜기업을 얼마나 유치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글로벌 앵커기업을 잘 유치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특구유치를 위해 부산 등 전국 대도시들이 각기의 새로운 전략으로 도전장을 낸 상태다. 앵커기업들이 대구를 선택지로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홍준표 대구시장도 “지역에 구축 예정인 미래산업 인프라와 기회특구를 적극 연계해 전국 최고의 기업성장 특구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대구산업의 미래 대전환을 위한 기회와 도전의 장이 우리 앞에 주어졌다. 경쟁력 있고 지속발전 가능한 기회발전특구를 만드는데 대구시와 지역의 대학, 기업 등이 합심 일체가 돼 전력투구해야 한다.

2023-09-04

‘수소 도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4월 10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정부 서울청사에서 공동위원장인 국무총리 주재로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 추진 의지와 정책 방향을 담은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이하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하였다. 그리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확정하였다.이 계획은 작년 8월부터 국책연구기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기술작업반의 총 80회 회의와 연구·분석을 토대로 환경부, 산업부, 국토부, 과기정통부, 기재부 등 20개 관계부처의 협의를 거쳐 정부안을 마련하였다.3월 21일 정부안 발표 이후 탄녹위와 관계 부처는 대국민 공청회를 통해 각계 전문가 토론과 온·오프라인 국민 의견을 수렴하였다. 아울러, 각계각층의 폭넓은 의견 청취를 위해 과학기술계, 노동계·지역사회, 중소·중견기업, 청년·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토론회·간담회(공청회 포함 총 15회)를 개최하고, 기본계획(안)에 각계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 계획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여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고,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를 비전으로 설정하고 4대 전략과 12대 과제를 제시하였다.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우리나라 중장기 감축목표는 2018년(6억8천600만t CO2eq) 대비 40% 감축된 4억3천700만t CO2eq으로 설정하였다. 이렇게 새로이 설정된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부문별 감축 시나리오도 조정하였다.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산업 부문은 감축 후 목표배출량은 2억2천300(14.5%)만t에서 2억3천100(11.4%)만t CO2eq로 상향하였다.반면 태양광과 수소 등 청정에너지 관련 전환 부문 감축량은 확대(+400만t)하고 해외투자를 통한 국제감축 부문도 확대(+400만t) 하는 등 감축 수단별 이행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부문 간 감축목표량을 조정하였다.이렇게 윤석열 정부에서는 전환 부문에서 태양광과 더불어 수소 에너지와 관련하여 수소 생산·인프라와 수소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생산·인프라는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등 핵심기술 실증 및 수소액화 플랜트·수소 배관망 등 인프라 구축을 확대하는 것이다. 수소 생태계는 내연차·선박·트램 등 수소 모빌리티 다양화, 수소 클러스터 및 ‘수소 도시’를 지정하는 것이다.산업통산자원부는 지난 1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소와 암모니아 발전량 비중을 2018년 0%에서 2030년과 2036년에는 각각 2.1%와 7.1%로 확대할 계획을 발표하였다.토요타시(일본)는 ‘수소 사회’ 구축을 추진하며 연료전지 자동차와 수소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으며, 코펜하겐(덴마크)은 풍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과 연료전지 교통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계획에서는 포항시를 포함한 6개 지역을 ‘수소 도시’로 시범 조성할 계획이다. 2030년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함께 공항신도시와 K-2 후적지 등에도 ‘수소 도시’ 조성이 기대된다.

2023-09-04

따라 하기라니

김규인 수필가 살인 예고 건수가 480건을 넘었다. 한 사람에서 시작한 살인 예고가 빠른 속도로 번진다. 이를 중·고등학생들이 따라 하더니 초등학생마저 살인 예고한다.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깝다. 살인 예고는 그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불안하게 한다. 사회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바람과는 달리 어린 학생들마저 따라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져만 간다. 많은 사람이 불안스레 지켜보는 와중에도 왜 이런 일을 계속하는지 알 수가 없다.여기에 더하여 초등학생들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촉법 소년은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초·중등 학생들의 도를 넘는 이러한 행동이 사회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떠오른다. 민식이법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행위인지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돈벌이하려는 행위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늘어나는 따라 하기에 불안하기만 하다. 국가에서는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살인 예고를 한 사람을 붙잡고 횡단보도에 드러누운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유치원에만 다녀도 알 수 있는 사회 기본 질서를 지키는 일이 공권력을 동원해야만 하는지. 그렇지 않아도 사회의 힘들고 아픈 사람도 살펴야 하는데 말이다.그런데 막상 살인 예고를 한 사람을 붙잡아도 마땅한 처벌법이 없어서 다시 놓아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살인 예고는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아울러 촉법 소년이 처벌받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소모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은 오롯이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의원은 다 어디로 갔는지. 관련 법이 없어 처벌하지 못하고 불안한 사회를 쳐다보기만 하는 건지. 권력을 잡는 일에만 열중인 국회의원들을 보면 할 말을 잊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어 권력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다.촉법 소년 교육은 일차적으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자녀들이 사회에서 안전하여지려면 먼저 사회의 규범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국가는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하여야 한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받는다는 사실과 법을 지켜야 자신이 안전하다는 깊은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학부모는 남에게 해를 가하고도 자기 자식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살인 예고와 횡단보도에 드러눕기가 처벌받지 않아서인지 따라 하기가 늘어난다. 이제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남의 이목을 끄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자신이 지키지 않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자신이 위해를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사회는 우리 스스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생활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 인(人)자가 막대 두 개가 서로 기댄 것처럼 사회는 서로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따라 하기를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2023-09-04

고속열차를 타고 오가는 것들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9월 1일, 포항과 수서를 오가는 SRT 고속열차가 개통되었다. 이로써 포항역에서 서울 수서역까지 약 2시간 21분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강남권에 용무가 있는 경북 동해안 지역 주민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으며, 관광객 유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역이 서울~수도권과 더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2004년 KTX 경부선이 개통되며 서울~부산 2시간 반 시대가 열린 이후, 많은 환자들이 부산권 병원 대신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을 찾게 되면서 지역 병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 사례가 있다.이러한 환자 유출 현상은 단지 재정적 어려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출신 인재들이 지역의료에 종사하는 동기를 약화시키게 되어 지역의료 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초래한다. 지금 당장은 지역 병원과 서울권 병원 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에 불과해 보일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아주 가벼운 질병이 아니고서는 지역에서 치료가 불가능해 대부분의 환자가 서울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이러한 문제는 지역 인재 유출이라는 측면에서도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지역의 위기와 지방 소멸을 우려하지 않는 지역은 없지만, 그 해결책으로는 고속철도나 공항과 같은 대형 교통인프라의 유치가 여전히 1순위로 내세워진다. 이러한 교통인프라의 확충을 통해 서울~수도권과의 체감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지역으로 사람과 자본이 대거 유입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행기와 고속철도는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움직이므로, 지역에서 외부로 유출되는 것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된다. 부족한 일자리와 경직된 문화로 인해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을 이탈하는 속도 또한 가속화될 수 있다.지역성은 중심(서울~수도권)과의 상대적 관계 속에서 많은 부분이 형성되는 정체성이다. 지역을 지역답게 만드는 요소가 존재하며, 이것은 중심로부터의 상대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유지되기 어렵다. 필자의 작은할아버지가 1980년대 초 포항에서 일하실 때는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포항과 서울 간의 물리적 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상대적·체감적 거리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고도로 발달된 현대 교통기술이 더 빠른 속도로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킬수록 지역은 지역다움을 잃어가게 된다.그렇다면 지역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역을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으로 지역사회의 속도를 더더욱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서울~수도권과 같은 메트로폴리스의 속도를 무비판적으로 지향하라는 뜻은 아니다. 물질문명의 발달 속도에 맞춰 정신문화의 진보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성차별적 문화,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 조직에서의 수직적 위계질서 등을 타파하고, 지역사회와 문화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이 이런 문제에 염증을 느껴 지역을 떠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고속철도의 속도가 지역사회의 타성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2023-09-04

지오투어리즘, 울릉도

광활한 동해 가운데 아직도 활동하는 화산섬 일대가 있다. 하늘이 허락해야 볼 수 있다는 말처럼 이곳은 그날 날씨 상황에 따라 눈에 담을 수 있는 곳도 가변적이다. 최근에 대두되는 백두산 폭발만큼이나 초대형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곳, 울릉도 일대는 오늘도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려 사람들이 모여든다. 만약 운이 따른다면 독도에 발을 디디게 될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다.대개는 1만년 이내에 화산활동이 있었으면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활화산으로 분류한다. 울릉도는 약 250만년 전에서 5천년 사이에 형성되었는데, 바닷속 해저화산에서 용암이 여러 차례 분출되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해저화산이 섬이란 이름의 땅이 되던 모습은 2021년 8월 일본의 해저화산 폭발이나 2019년 통가의 해저화산 폭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섬은 대부분 바닷물에 의한 침식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영토 확장에 기여하기도 한다. 울릉도는 마지막 화산 폭발이 약 5천년 전쯤 안으로 조사되었고, 활동 주기가 3천년에서 7천년 사이로 확인되었다. 또한 최근에 지하 100㎞에 거대한 마그마방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온천이 없는 울릉도의 지하수 온도가 63~99℃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측정되었고, 지열 발전을 위한 연구에서도 1㎞ 땅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온도는 급속하게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버블스프링’이라하여 마그마가 오래 머금기 어려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만하면 아직도 살아있음이 확인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울릉도는 화산의 총길이가 3천m나 되지만 현재 물 위로 보이는 부분은 겨우 600m에서 1천m에 불과하다. 해저화산의 일부가 물 위에 보이는 형태인만큼 섬의 경사도가 심한 편이고 해식절벽이나 침식동굴, 부석 등 화산활동과 이후의 결과물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저동·도동해안은 초기 화산활동의 지질구조를 잘 간직한 곳으로 주로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마치 치약을 길게 짜놓은 듯 길고 둥근 모양(베개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베개용암이라 부른다. 울릉도 개척항으로 유명한 학포해안은 해안을 따라 집괴암·응회암·조면암층이 분포되어 있는데, 집괴암과 응회암이 많은 지형은 침식되어 만(들어간 곳)이 되고, 단단한 조면암층이 많은 곳은 곶(튀어나온 곳)이 되었다. 해안절벽은 침식으로 붕괴되면서 가파른 절벽이 만들어졌으며 그 위로 국수처럼 길고 각진 기둥이 생성되어 주상절리를 이루었다. 향나무가 자생하는 대풍감이나 노인봉·송곳봉 그리고 국수바위에서도 잘 발달된 주상절리가 발견된다. 또 본래는 울릉도와 한 몸이었으나 이제는 동떨어진 섬이 된 코끼리바위는 높이 약 10m 아치형의 해식동굴이 코끼리의 코를 이룬다. 이러한 코부분이 침식되어 부서진다면 아마도 세 명의 선녀처럼 서 있는 삼선암이나 거북바위처럼 독립된 촛대 모양의 바위가 될 것이다. 이런 침식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관음도의 관음쌍굴도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구멍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전에 높아진 해수면에 잠겨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이다.강물에 의해 침식된 지형은 울릉도 남부의 주요 상수원이 되는 봉래폭포와 용출소가 있다. 용출소는 지하수가 단단한 조면암을 만나 지표로 솟아올라 형성된 물웅덩이로 약 2만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봉래폭포는 오르는 길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풍혈(바람구멍)이 있어 산책하기 좋으며, 울릉도 특유의 식생이 발달하여 여러 식물을 관찰하기에도 편한 장소이다. 사실 대다수 희귀식물은 성인봉 인근의 원시림에 주로 자생한다. 너도밤나무 숲·섬조릿대·솔송나무·섬단풍나무·섬피나무 등과 섬말나리·섬노루귀·섬바디 등 총 200분류군이 발견되었고 보존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원시림은 화산폭발때 발생한 부석이 비옥한 토양층을 형성하여 조성되었다. 대나무가 많이 자라 죽도라 불리는 울릉도의 한 부속섬도 얇은 부석층으로 덮여있다. 울릉도 화산의 분화구에 해당되는 나리분지는 폭발 후 그 일대가 가라앉아 형성된 칼데라이자 그 안에 또 다른 작은 화산 알봉을 품은 이중화산 분화구이다. 두 개의 칼데라가 겹쳐 만들어진 이곳은 울릉도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하여 해마다 눈꽃축제가 열린다. 알봉은 점성이 강하고 끈적한 용암이 봉긋한 돔형태로 굳어진 것으로 마치 새의 알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분화구가 뚜렷하지 않아 살짝 패인 꼭대기를 분화구로 추정하고 있다.우산국·우릉도·무릉도·우릉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 울릉도는 현재 지오투어리즘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화산으로 형성된 지질과 그 이후 침식된 세월의 흔적을 머금었으며, 독자적으로 자생한 원시림이 남아있고, 다양한 자연환경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울릉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온 역사가 흥미를 더한다. 오늘도 하늘이 허락한 사람들은 잔잔한 바람과 고요한 파도를 만끽하며 울릉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9-04

바람과 함께 사라진 시대

1936년에 출판된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표지. 소설을 원작으로 그것을 영상화하는 경우는 대부분 주인공에 어떤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소설의 주인공이란 본디 독자의 꿈속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독자가 꿈꾸는 소설 속 나만의 주인공을 현실 세계의 누가 따를 수 있을 것인가. 꿈과 경쟁할 수 있는 현실이란 본디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하지만, 간혹 먼저 나온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마치 그것 먼저 존재했던 것처럼 우리의 기억의 선후 관계를 바꾸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소설 원작이 있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도 있고,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리려고만 하면 어떻게 해도 그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만 떠오르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본디 소설은 시각적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문자의 추상성과 그 연결을 통해 그것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각인이므로, 그것은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다. 시각화된 이미지가 현대인의 마음을 전유하는 시대라고 해도, 꿈속에 있던 그 이상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당연하다.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려본다면, 어떤가? 아마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1900~1949)의 원작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2년 뒤에 나온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을 연기했던 ‘비비안 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많은 소설 속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소설 속 주인공을 둘러싼 꿈과 현실 속 구체적 인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람들의 인식 너머로 사라져 버렸지만,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스칼렛 오하라만큼은 오히려 사람들의 꿈 앞으로 나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오랜만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꺼내 읽으며, 비비안 리가 스칼렛 오하라로서, 그리고 클라크 게이블이 레트 버틀러로 미국 남북전쟁의 한복판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며 어떻게 그들이 독자들의 마음속 꿈에까지 걸어들어올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비비안 리(Vivian Leigh). 물론, 비비안 리가 없었어도,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스칼렛 오하라는 그 자체로도 모든 사람에게 각인될 만큼 멋진 주인공이다. 거친 남부의 타라 농장에서 살아가며 숙녀가 되는 가장 보수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대한 정열이 숨겨져 있다. 이 스칼렛 오하라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성장해온 여성 작가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미국으로 옮겨와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실현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남북전쟁이라는 전통과 명분, 그리고 자본이 얽히는 시대를 배경으로 좌충우돌하는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의 사랑은 계속해서 어긋나면서 계속 이어진다. 스칼렛은 자신이 사랑했던 애쉴리 윌크스에 대한 질투이자, 가문끼리의 거래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한 번 결혼했으나 결혼 직후 남편이 죽어 바로 혼자가 되고, 전쟁으로 타라 농장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 폐허만 남은 농장을 떠안는다. 농장주로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와중에, 스칼렛은 돈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결혼한다. 스칼렛은 한 번은 가문 때문에, 한 번은 돈 때문에 결혼하고, 스칼렛과 레트의 사랑은 그렇게 부유해 가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사랑보다 시대를 견뎌내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어쩌면 스칼렛 오하라가 단지 로맨틱한 플롯의 일반적 주인공이었다면, 아마도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그 인물이 그토록 우리에게 각인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람과도 같이 시대는 사라지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니 말이다./홍익대 교수

2023-09-04

당론으로 징계감 아니라고 말해보라

김진국 고문 가재는 게 편이었다. 국회 윤리위원회 제1 소위가 지난달 30일 거액의 암호화폐(코인) 보유와 국회 회의 중 투자로 비난받은 김남국 의원 제명안을 부결했다. 거센 여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시간을 끌다 결국 유야무야(有耶無耶) 끝나가는 셈이다. 국회 윤리위가 늘 그런 식이다.21대 국회 들어 49건의 징계안이 제출됐지만, 실제로 징계받은 사람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하나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한 덕분이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 때 법사위원장석을 점거했다고 징계했다. 20대 국회 47건, 19대 국회 39건도 모두 흐지부지됐다. 그 가운데 75건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처리하지 않고 뭉개다 저절로 사라졌다.김남국 의원은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 도중 수백 차례 코인 거래를 했다. 코인에는 젊은이들의 피눈물이 담겨 있다. 부동산과 취업 문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코인 열풍이 불었다. 대부분 큰 손실을 봤다. 의원들에게 백지신탁을 요구하는 건 공직을 이용한 불공정 게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코인은 주식보다 더 불공정한 게임이다. 그것도 국정을 수행하는 중에 투자해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20일 김 의원의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다. 외부 인사 8명으로 구성돼 그런 결론을 냈다. 그러나 윤리위 소위원회는 국민의힘 3명, 민주당 3명, 6명이다. 표결 결과 3 대 3이었다. 민주당 소속 의원 3명이 모두 반대한 것이다. 김남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코인 논란으로 지난 5월 탈당했다. 그러나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지시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의원의 부도덕성은 결국 민주당의 책임, 이재명 대표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김 의원이 탈당한 것도 결국 눈속임이다.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을 다시 복당시킨 데 이어 재산 축소 신고로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선고를 받은 김홍걸 의원을 출당했다가 복당시켰다. 명분이 없다. 지금도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박완주 의원, 정대협 공금 유용과 관련한 윤미향 의원, 돈 봉투 살포와 관련한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지만 모두 민주당 의원처럼 움직인다. 탈당과 제명이 민주당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도 몇 달을 못 참고 복당시킨다. 국민의 눈만 잠시 속이자는 거다.민주당 의원들은 코인을 보유한 다른 의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사람도 문제가 있으면 처벌하면 된다. 추가로 코인 거래 조사를 하겠다던 김상희·김홍걸·전용기 의원도 문제없다며 최근 조용히 끝내버렸다. 도긴개긴이니 모두 눈감아주자는 건 결국 의원들의 짬짜미다. 분노한 국민을 또다시 속이는 일이다. 더군다나 김남국 의원은 코인 보유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 법무부 장관 청문회처럼 심각한 국정 논의 중에도 수백 차례 코인 거래를했다. 가난 코스프레를 하고, 진상 조사 과정에도 수없이 거짓말을 했다.또 김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핑계다. 민주당 의원들은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는 있나. 지금 탈당하고,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은 의원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는 왜 채우려 하나. 내년 4월 총선까지 무엇을 할 생각인가. 활동을 못 해도 억대 세비는 챙기겠다는 욕심인가.결국 국민 여론보다 의원끼리 의리가 중요하다. 다른 의원들도 그 정도 약점은 안고 있다는 고백일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징계감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정직하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자문위는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는데, 의원으로 구성된 윤리위는 아무 이유도 없이 뭉개버렸다. 무용지물인 이런 윤리위로는 부패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표결 의원들도 비공개회의에 숨어서 오물을 덮지 마라. 당당하다면 공개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밝혀라. 그리고 책임을 져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03

정직이 살아있는 한국 사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며칠 전 비상사태가 일어났다. 핸드폰을 분실 했다.자전거를 즐겨 타는데 자전거 앞의 바구니에 넣어서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탄다.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으로 들어도 좋지만, 공간에 퍼지는 음악을 듣는 맛을 훨씬 좋아하기에 앞 바구니에 넣고 음악을 듣는 걸 더 좋아한다.커브를 돌 때 떨어진 듯한데, 그때 음악을 듣고 있지는 않았다. 음악을 듣고 있었으면 휴대폰이 떨어지면 음악이 중단되니까 인지했을 텐데라는 후회를 했다.“당분간 PC 카톡으로만 연락됩니다”…. 라고 여러 친구들, 그룹들에 연락한 후, 한 친구로부터 ‘구글 위치확인’서비스를 받아 보라고 하는 충고를 받았다. 근처 단골 핸드폰 가게에 가서 구글 서비스를 해보자고 하는데 구글 ID 등이 필요하다고 해서 일단 더 찾아보자고 했다.자전거로 다닌 길을 두 번이 지나면서 계속 찾았지만 없었다. 그리고 1시간 반이 지났다. 점점 찾을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었다. 주변 경찰서에 가서 유실물 신고를 했다. 경찰서에서는 핸드폰은 찾는 경우가 많으니 염려 말라고 했지만, 여전히 맨붕 상태는 계속 되었다.다시 집으로 돌아와 구글 ID/PW를 검색해서 다시 핸드폰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구글 위치 추적에 성공했다. 자전거로 다닌 길 어떤 커피숍에 있다고 나왔다.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커피숍에서는 주인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구글 위치에 여기라고 나온다고 나는 주장하고 그는 없다고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결국 그 커피숍 근처를 뒤지는데 없었다. 주인이 나와서 같이 찾기로 했다. 커피숍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그 편의점은 월요일 휴일이었다.그런데 갑자기 그 커피숍 주인이 “저 테이블에 있는 건 무어죠 ?”라고 외쳤다. 찾았다! 핸드폰은 거기 있었던 것이다.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1)구글의 기술력! 정확히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아냈다. 정말 신기했다. (2) 한국민의 양심! 누군가 길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서 길거리 편의점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그것을 2시간 동안 손댄 사람이 없었다.다행히 그 편의점이 오늘 휴점 덕분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2시간을 그 탁자 위에 있었다는 건 한국민의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가져가도 팔기도 쉽지않고 절도로 체포될 수도 있고 아마 그 자리에 놔두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기 핸드폰이 그대로 놓여 있는 건 선진국 영국, 일본 등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문득 10년 전 독일 생활이 생각났다. 처음 독일의 드레스덴이라는 동네에 도착해서 전차를 타는 방법을 모를 때 50유로의 티켓을 사면 한 달 동안 전차, 버스 등 교통수단으로 모든 시내 및 일정한 거리의 시외까지 다닐 수 있다는 것을 한 교민이 알려줬다. 그 티켓을 끊어서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이 참 많았다. 우선 첫 시승 때 전차 내에서 첫 시승임을 스스로 기계로 체크하게 되어 있다. 양심적으로 하도록 돼 있어서 승객이 첫 구입한 티켓을 언제부터 사용하는가를 스스로 신고하는 시스템이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티켓을 발행할 때부터 사용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첫시승 때 스스로 신고 하도록 돼있는 인상적인 시스템이었다. 열심히 한 달 동안 학교를 오가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전차, 버스를 탔지만 티켓검사를 한 번도 하는 경우가 없었다. 결국 승객들이 알아서 자기가 필요한 티켓을 구입하여 양심적으로 가지고 다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한 달이 다 지나가던 어느 날 처음으로 조사원의 티켓검사가 시작됐다. 나는 속으로 아마 여러 사람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건 한 달 내내 티켓검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단 한 사람도 티켓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또 한 번은 배를 타고 인근의 마을로 여행을 하는데 배 안에서 음식주문을 받아서 커피, 차, 식사 등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가격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청구서도 없었다. 속으로 아마 티켓값에 포함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그러나 배를 내릴 때 쯤 되니까 각자가 알아서 식사비용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배에서 내리기전까지 여러 정거장이 있었고 화장실이나 갑판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여러 번 떠났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대로 중간 정거장에서 내릴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음식값을 계산하라고 강요하는 직원도 없었다. 내리기 전에 알아서 양심적으로 계산하고 내리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과연 정직한 사회란 무엇인가를 실감했다.우리 사회도 과거와 비교하면 사회 곳곳에 정직성이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공공질서도 많이 좋아졌고 준칙성은 나의 젊은 시절보다는 훨씬 좋아졌다.이번 핸드폰을 잃어버린 날 그날은 한국인의 양심에 감동 받은 날이었다. 정직이 살아있는 한국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핸드폰을 찾아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길은 날아갈 것 같았다. 신고취소가 필요하지 않을 듯해도 경찰서에 들러 찾았다고 보고 하고 유실물 신고를 취소했다. 경찰들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져갔다.

2023-09-03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재생에너지 100% 공급방안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로서 2042년까지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하기로 계획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시설과 200여 개의 반도체 팹리스,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이 순차적으로 입주할 예정이다.일간 전력수요는 2029년 0.4MW를 시작으로 2042년 7GW, 2050년엔 10GW 이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일간 10GW는 우리나라 연간 최대 전력수요량(피크전력)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인데, 이 정도 전력을 공장이 돌아가도록 24시간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또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전부 재생에너지라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 중 하나인 애플이 2030년까지 RE100(제품 생산에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을 필두로 한 글로벌 IT기업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요전력에 대해 재생에너지 100% 공급을 바탕으로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이 계획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첫 번째는 그 막대한 양의 전력을 용인까지 어떻게 가져오느냐는 문제다. ‘평택 반도체단지’에 필요한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 당진시에서 평택 반도체단지까지 송전선로 34.2Km를 구축하는 사업이 당초 2015년 준공 계획이었지만 당진지역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도 준공하지 못한 사례를 볼 때, 전국에서 10GW 전력을 모아서 용인까지 끌어온다는 계획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두 번째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100% 재생에너지 공급이 필수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공급대책은 없고 LNG, 원전, 석탄전력을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삼성전자의 주요고객인 애플은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을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며, 납품기업들에게도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2050년까지 세계 모든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달성할 계획이다. 그런데 애플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고객 수요인 RE100을 2030년까지 못 맞춰 줄 경우, 2042년까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할까? RE100이 불가능하다면 삼성이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끝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거듭 말하지만,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첫 단계부터 재생에너지 100% 사용에 초점을 맞춰서 조성해야 한다. 필자가 그간 현장에 부딪히며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재생에너지 100% 공급방안’에 대한 의견은 다음과 같다.용인시와 반도체클러스터 인근 화성시, 안성시, 평택시 등 2~3개시의 농지에 ‘첨단 스마트팜과 수소연료전지 융복합 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지역특화산업특구’를 지정해서 개발하면 농업진흥지역에서도 스마트팜과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쌀농사만 짓는 농지에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지붕일체형 태양광으로 건설하는 스마트팜의 지붕과 수소연료전지발전을 통해 생산되는 신재생에너지는 반도체클러스터에 재생에너지 100% 공급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그러면 10GW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농경지가 필요할까. 50KW의 전력생산이 가능한 첨단 스마트팜 1개동을 짓는데 150평의 농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1GW(100만Kw)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00만평의 농지가 소요된다. 그러므로 10GW의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해서는 3천만평의 농지에 첨단 스마트팜을 2027년부터 매년 200만평씩 15년간 조성하면 2042년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재생에너지 100%를 공급할 수 있다.첨단 스마트팜과 병행해서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건설해서 운영하면 용인 반도체클러스트에 100%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용인시 농경지가 2천200여 만평이니 화성, 안성, 평택 등 이웃 시들을 참여시키면 충분히 가능하다. 농민들의 평균 경작 면적이 약 3천평 정도 되므로 1만 농가를 참여시키면 부지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첨단 스마트팜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특화산업특구는 벌써 몇몇 군데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첨단 스마트팜에 협동조합 형태로 농민들이 농지를 가지고 참여하면 쌀농사에 비해 100배 정도 초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트는 용인시를 비롯한 주변 농민들에게도 전통적인 쌀농사에서 첨단 바이오산업에 참여하고 농가소득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용인 반도체단지클러스터 주변 농지를 활용해서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경우 먼 지역에서 송전하느라 설치하는 송전탑 문제로 인한 주민과의 갈등도 없어질뿐더러, 원거리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 또한 줄일 수 있다. 더군다나 주변 농지에서 첨단 스마트팜 조성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게 되는 농민들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성에 막대한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뿐만 아니라 첨단 바이오산업을 통하여 상상치도 못한 소득도 생기는 그야말로 기업과 지역 주민의 상생 발전모델이 될 것이다.

2023-09-03

노화와 죽음을 넘어선다면?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브리 드 그레이의 ‘노화의 종말’(2007)에서 발원하여 데이비드 싱클레어와 매슈 러플랜트의 ‘노화의 종말’(2020)과 호세 코르데이로와 데이비드 우드의 ‘죽음의 죽음’(2023)으로 이어지는 노화의 종식과 불사(不死)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이런 논의 사이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5)가 자리한다.‘사피엔스’에서 하라리가 제시한 것은 ‘길가메시 프로젝트’였다. 사피엔스의 가능 최대수명인 125세의 네 배에 이르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기획이 길가메시 프로젝트다.그런 문장과 만났을 때 ‘농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그럴 법도 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현대의학과 약학, 여타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이 눈부신 것이다.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눈과 귀를 가장 자주 자극한 네 글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일 것이다.인간에게 숙명처럼 내장된,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비켜 갈 수 없는 필멸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불사의 신! 연역법과 귀납법의 단골 소재로도 쓰였던,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논리. 그런데 그것을 뒤집겠다는 과학적 도전이 진행되고 있다.죽음을 앞두고 10년 세월 병원을 들락거리고, 요양원과 요양병원 신세를 진 끝에 인생과 작별하는 요즘 세태에서 보면, 노화의 종말과 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40대에 찾아오는 노화의 첫 번째 제비를 20대나 30대로 돌려놓음으로써 건강과 활기를 유지하면서 노화와 작별하고, 마침내는 죽음을 망각하게 되리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2017년 가을학기에 디지스트에 출강하면서 만난 뇌 전공 대학원생과 이 문제를 생각해본 일이 있다. 20대 중반의 청춘인 그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500년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젊은 대학원생이 진지하게 제기하는 죽음의 공포에 나는 단출하게 대답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봤니?!”근자에 만난 고교 동창생이나 선배 교수들과 노화의 역전(逆轉)과 영생불사 혹은 최소 150년 200년 살아가는 인생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누구도 그렇게 긴 세월 살고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아버지와 어머니는 150살, 아들딸은 120살, 손자는 90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하지만 세태는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다반사(茶飯事) 아닌가?! 불과 한 세대 전에 남녀의 결혼 적령기는 모두 30살 이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산아제한 포스터 문구가 ‘둘도 많다’로 바뀐 게 4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지구촌 최악의 저출산 국가 운운하면서 나라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시대 아닌가 말이다!그래서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모르는 상황에 광속(光速)으로 다가오는 노화 역전과 무병장수 시대를 무작정 맞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사숙고(深思熟考)해보자는 게다.2천500년 전에 공자가 ‘인무원려(人無遠慮) 필유근우(必有近憂)’라 하지 않았던가?!

2023-09-03

합계출산율 0.46명인 곳도 있다

우정구 논설위원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 2분기(4월∼6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0명으로 조사됐다. 작년 0.78명에서 역대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0.6명대가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걱정스러운 분석이다.알려진대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는 일찍이 한국의 출산율 추이를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국가로 꼽았고, 그 시기가 2750년이라 했다.1970년대 우리나라 한해 출생아 수는 100만명이었다. 이것이 50년후(2020년)에 와서는 30만명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작년에는 24만9천명까지 떨어졌다. 최악의 출생율이다.합계출산율은 한 여성(15세∼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다. 국가별 출산율 비교나 한 사회의 인구수 변화를 예측하는 중요한 자료다.이번 조사에서 대구는 전국 평균치에 못미치는 0.67명으로 나타났다. 시도별로 서울(0.53명), 부산(0.66명) 다음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낮았다. 또 전국 구군별로는 대구 서구가 0.46명으로 전국 두 번째로 낮았고 대구 남구는 0.49명으로 전국 하위 8위를 기록했다.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보인 곳은 서울 관악구(0.42명)다.기초자치 단위별로 볼 때 상당수 지역은 이미 인구소멸이 시작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청년층의 결혼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통계청의 청년의식 조사에서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비율이 36%에 그쳤다. 특히 여성의 65%는 결혼을 해도 자녀를 둘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인구 재앙은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03

TK신공항 화물터미널 입지, 빨리 解法 찾길

순조롭게 진행되던 TK(대구경북)신공항 건설사업이 화물터미널 입지문제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의성군 신공항 이전지원위원회는 지난주(31일) 비안면에서 열린 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에서 “화물터미널이 없는 항공물류 약속은 빈 껍데기다. 화물터미널을 의성군에 배치하지 않으면 신공항과 관련한 업무 추진에 어떠한 협조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020년 7월 작성된 ‘신공항 건설에 따른 공동합의문’에는 항공물류·항공정비산업단지 및 관련 산업·물류 종사자 주거단지는 의성군에 조성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국토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대구민간공항이전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용역에서는 약 1만㎡ 규모의 신공항 화물터미널을 군위에 배치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박정대 이전지원위원장은 “의성신도시와 화물터미널의 접근성이 떨어지면 항공물류가 구미 등 다른 지역으로 유출된다. 화물터미널을 의성으로 배치 안 해주면 공항 이전은 불가하다”며 실력행사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김주수 의성군수도 최근 대구시에 “화물터미널이 의성군에 배치되지 않으면 공항사업을 더이상 진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경북도는 신공항건설과 함께 의성군에 항공 물류단지, 항공산업 클러스터, 농식품산업 클러스터, 모빌리티 산업으로 구성된 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다. 특히 의성군에 항공 물류 기반을 구축해서 경북도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의성군민들은 화물터미널이 군위에 들어서면 물류중심이 구미로 치우쳐 의성신도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와관련 “공항 관련 물류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의성군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의성군민들의 상대적박탈감은 큰 것 같다. 군위군의 경우 민간공항 배치와 대구시 편입과 같은 인센티브가 현실화하고 있지만, 의성군에는 아직 가시적인 성과물이 없기 때문이다. 공항 물류를 취급하는 화물터미널 입지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돼 신공항 개항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2023-09-03

추석연휴 6일 확정, 내수 활성화 마중물 돼야

윤석열 대통령은 제19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오는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당초 4일이던 추석연휴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모두 6일로 늘어나게 됐다. 4일부터 사흘간 휴가를 내면 9일(한글날)까지 12일간 황금연휴를 즐길 수도 있다.윤 대통령은 “추석연휴가 국내 관광 활성화와 내수경기 진작에 보탬이 되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한 경제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대체 공휴일 하루 지정으로 2조4천억원 규모의 소비가 늘어난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기업의 조업 감소로 인한 손실도 발생하지만 내수진작 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지금 우리경제는 글로벌 경제불황의 영향으로 경기침체가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7월 중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생산, 소비, 투자 등이 모두 전월보다 하락했다. 상저하고할 것이란 정부의 경기 기대감이 무너지고 있다. 대구와 경북도 예외가 아니다. 대구의 광공업 생산이 6% 감소했고, 경북은 12.6%가 줄었다. 경제 후방효과가 큰 대구의 건설 수주액은 84%가 하락했다.정부는 추석연휴를 6일간으로 늘리면서 내수진작을 위한 각종 조치도 준비했다. 추석물가 안정을 위해 추석성수품 할인에 역대 최대 규모인 670억원을 지원하고, 숙박쿠폰도 60만장을 풀기로 했다.일본 오염수 방류로 어려움을 겪는 수산물의 소비촉진을 위해 1천440억원의 예산을 투입키로 했다. 또 추석연휴기간 고속도로 통행료도 면제한다고 한다.정부의 이런 조치가 내수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기업과 소비자 등 우리경제의 주체들이 잘 호응해야 한다. 특히 추석연휴를 맞아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은 가급적 국내 여행지로 방향을 틀었으면 한다. 모처럼 맞는 명절에 고향을 찾아 부모형제와 친지들과 정겨운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대구와 경북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출향인사들이 고향을 찾아올 수 있도록 고향방문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한다. 모처럼 찾아온 황금연휴가 경제활성화의 기폭제가 되게 합심된 노력이 필요하다.

2023-09-03

안다는 믿음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유명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sns에서, 요즘은 질문은 없고 대답만 있다는 글을 보았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자신의 답에 확신하며 질문하지 않는다는 세태가 안타깝다는 뜻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가, 나의 선택과 행동은 얼마나 일관성 있을까, 하는 문제에 자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수시로 자신의 뇌에 속기 때문이다.닉 채터는 ‘생각한다는 착각’에서 여러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2010년 스웨덴 총선거를 앞두고 실험을 했는데, 실험자는 응답자가 선택한 것과 반대되는 대답을 했다고 바꿔서 보여주었다. 좌파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그들이 낮은 소득세나 건강보험에 민간 개입 등 우파 성향의 답에 공감했다고 알려주고, 우파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그들이 넉넉한 복지와 노동자 권리 선호 등 좌파 성향의 답에 응답했다고 바꿔서 알려주었다. 이때 평소 4분의 1만이 실수로 잘못 응답했다면서 답을 수정했고, 나머지 4분의 3은 바뀐 답에 맞게 그것이 자기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그 입장을 옹호했다고 한다.응답자에게 여러 인물의 카드를 보여주고 매력 있는 인물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도 그가 고른 것과는 다른 카드를 내밀며 당신이 고른 카드라고 속여도 대부분 못 알아채고 자기가 왜 그 카드를 선택했는지 열심히 설명한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을 옹호하는 현상을 ‘선택맹’이라고 한단다.질문 문항이 500개가 넘는 다면적 인성 검사 MMPI에는 같은 질문이 여러 번 나온다. 체크한 답이 정말 자기 생각인지 일관성 있는 답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단다. 나도 해본 적이 있는데 같은 질문이라는 기억은 나면서도 몇 번에 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니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닉 채터의 말대로, 우리의 뇌는 순간순간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지각과 인식과 기억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붙잡는 경향이 많다. 나의 지각과 기억과 인식이 확실하다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질문하는 수밖에 없다.사도시마 요헤이는 ‘관찰력 기르는 법’에서 사람은 모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정량의 지식이나 경험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가설을 떠올리고 그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관찰하면 이런 자동적 행위를 의식하게 되고, 가설에 따르려는 본능에 저항하게 된다면서, 세상과 자신을 관찰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질문과 가설의 순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지난주에 쓴 칼럼과 근거 자료를 여러 채널에 올려서 의견을 받았다. 그 의견을 모아 ‘방류하면 안 된다’, ‘방류해도 무방하다’로 표현을 바꾸어 다시 정리하였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가설을 내놓고 의견을 받으니 질문하는 힘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나날이 심각해져 간다. 관찰하고 질문하는 문화가 정착하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2023-09-03

눈으로 볼 수 있어야 관리할 수 있다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옛날 중국 한나라의 황제인 선제는 서쪽의 강족이 틈만 나면 쳐들어와 백성들을 괴롭혀 근심이 많았다. 강족을 물리칠 장수로 76세의 백전노장 조충국을 불러들여 강족을 토벌할 대책을 묻자 “폐하! 백문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지요. 직접 보지 않고 방법을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 강족이 자주 나타난다는 금성군으로 가서 살펴본 뒤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후 현지에 가서 눈으로 살펴본 후 적절한 방법을 찾아 강족을 토벌하였다.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 성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블랙박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진입로를 혼동하여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지나친 길을 역으로 주행하다 일어나는 사고를 보게 된다. 얻게 될 시간상의 이득을 포기하지 않기에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도로 표면에 분홍색 혹은 녹색의 선이 그려져 있는 것이 자주 보인다. 이를 노면 색깔 유도선이라고 하는데 도로의 진출입 지점을 색깔로 시각화하여 주행 경로 혼동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눈으로 직접 경로를 확인하며 주행할 수 있는 노면 색깔 유도선은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안산 분기점에 처음으로 시범 적용이 되었는데 그 효과는 놀라웠다. 안산 분기점은 연간 2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던 곳이었는데 노면 색깔 유도선 적용 후 3건으로 줄어들었고, 2017년 국토교통부에서는 노면 색깔 유도선에 대한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비게이션과도 연동하여 “분홍색 유도로를 따라 주행하세요”와 같이 음성 안내를 들으면서 눈으로 보며 주행하니 경로를 혼동하여 일어나는 사고의 위험이 현저하게 줄었다.눈으로 본다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적 관리 수단으로 기업을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서 연구하고 활용할 필요가 크다. 핵심은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다. 보이게 하는 수단은 인간의 오감을 포함하여 첨단 계측기들을 활용해야 더 넓은 범위를 사각지대 없이 관리할 수 있다. 배관 내부를 흐르는 물질은 눈으로 볼 수 없어 이로운지 해로운지 알 수가 없기에 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온도계나 압력계 등을 활용한다. 압력이나 온도를 알 수 있어야 환경에 적합한 조건으로 운전하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여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 더불어 배관 바깥 표면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물질의 이름과 흘러가는 방향 표시를 하여 위급한 순간에 빠른 대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인간의 눈은 너무 빠르거나 느린 것은 볼 수 없기에 최첨단 카메라에게 양보하고, 위험 지역은 센서가 24시간 감시하게 하여 이상 시 알려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관리할 수 없어 늘 불안했던 사각지대가 있다면 이제는 눈으로 보는 관리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2023-09-03

어떤 동행

오랜 시간 등장해도 기억나지 않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단역으로 등장해도 오래도록 장면이 떠나지 않는 배우가 있다. 단역은 극적으로 등장해 선명한 사건을 남기거나, 가슴을 후벼 파는 강한 대사를 던지고 사라질 때 주연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다.작년 여름, 마른장마로 지쳐 있을 때 카톡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과자 몇 조각 욕심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더 열심히 교회를 나갔던 코흘리개 친구들이 25년 만에 갑자기 연락이 닿았다. SNS 속에서 사십대 중반이 된 자신과 아이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어린 시절을 떠 올렸다.어릴 적, 살던 동네가 전부인 양 알았던 우리는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다. 서로 다른 직업으로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8명의 어른들이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정 무렵에 모였다. 마음과 몸은 자라지 않고 세월의 주름만 깊이 파인 듯 지금의 우리는 예전이나 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으로 돌아 간 것 같다.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삶의 숙제를 풀어 놓고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 나 하나만 행복해지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느끼는 홀가분함이 좋다고 우리는 이야기 했다. 추억의 서랍을 활짝 열고 미어터지도록 눌러 담긴 어린 시절을 끄집어내며 마주앉았다. 목 놓아 건배를 나눴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사진관을 하는 친구 한 명이 자신의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열 명이 일자로 서서 한 곳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우리 해마다 찍자. 한 명 남을 때까지”경애가 말하곤 ‘제일 먼저 사라지는 친구와 제일 마지막까지 남는 친구는 누가 될까’라고 보탰다. 아직도 우리에겐 올라 설 무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 했기에 까르르 대며 웃었다. 흩어졌던 친구들이 하루 만에 모여 25년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다음을 약속하며 눈물 나는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헤어졌다.“아내가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오늘이 고비입니다. 기도해 주세요”한 달 후 문자가 날아들었다. 경애의 남편이었다. 경애는 희귀병을 앓았는데 최근 병이 악화되어 염증이 혈관까지 퍼졌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경애의 얼굴은 벌겋게 열이 올라 있었다. 우리를 보며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힘겹게 한 마디 건넬 때마다 산소 호흡기에 뜨거운 김이 서렸다.얼마 후 경애는 떠났다.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친구들은 말없이 발지도만 끼적거렸다. 친구들의 얼굴만 봐도 뜨거움이 울컥 올라 왔다. 빈소로 내려가는 계단이 25년이라는 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못 다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반갑고 설레던 마음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친구 한 명을 보내야 했다. 김경아 작가 경애의 영정사진 옆에는 얼마 전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경애는 친구들 옆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올려 달라고 했단다. 아무리 인생이 짧아도 스무 번은 더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친구 7명은 차마 ‘친구야 잘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경애는 우리의 얼굴과 함께 초행길을 떠났다. 우리는 사진으로나마 경애와 함께 저 세상으로 동행했다. 늘 앞장서서 말하기 좋아했고 우리를 대신해 남자 친구들과 과감히 싸워 주었던 경애는 먼 길에도 앞장을 섰다. 짧은 추억과 사진을 함께 안고 떠난 경애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한 명 남을 때까지 사진을 찍자던 경애는 제일 먼저 사라진 한 명이 되었다. 내년이면, 경애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한 명씩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손 맞잡고 찍은 사진이 점점 여백으로 채워질 때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나 여백을 채워가고 있으리라.우리는 모두 엔딩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렇듯 섬뜩한 변주를 예측하지는 못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내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며 영화의 막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3-09-03

주변에 ‘범우주적 세계’ 산재, 역설적인 ‘마음의 여유’

박진홍 부국장 반복되는 일상은 무척 따분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삶이 무미건조하다”고 투털대는 지인들이 대부분이다.하지만 평범했던 주변의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또다른 경이로운 세계를 만날 수도 있다.우리 몸 안에 또 주변 곳곳에는 범우주적 세계들이 산재해 있다. 무심코 지나치고 있을뿐 모두 엄청난 세계이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생긴다.과학자들은 “인체에 세포 37조개와 미생물 39조개가 있다”고 말한다. 세포 한 개 크기는 천문학적인 10-100μm다. 1μm는 100만분의 1m.너무나도 미세한, 이 각각의 세포들은 그러나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소기관을 가지고 호흡과 운동, 성장 그리고 자기복제 즉 번식을 한다.인체 세포 37조개 중의 한 개에 불과한 이 세포 안에, 또다른 우주가 숨어 있는 것. 여기까지라면 현기증은 나지 않는다.하지만 39조개 각각의 세포 핵에, 상상도 하기 힘든 천문학적 분량의 유전 정보가 복사돼 있음을 감안하면 상황은 달라진다.세포핵 이중나선구조 염색체 46개에는 사람의 성을 결정하고 골격을 만든 후 장기와 혈액을 운용하는 모든 방법이 프로그램화돼 있다. 또 뇌와 신경조직, 기질과 성격 등에 대한 유전 정보도 들어 있다.현대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35억년 전에 처음 출현한 세포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세포 결합 등 진화를 거친 끝에 현재의 유기체인 인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세계적인 석학 리처드 도킨슨은 “모든 동물은, 세포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낸 생존기계”라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도 했다.사람 역시 우리 몸 안 세포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진, ‘세포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 된 일종의 로봇’이라는 것.“사람의 생존과 번식 본능은 세포 유전자에 의해 조종 되며, 뇌에 의한 의식 역시 유전자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다.이번에는 사람 혈액 적혈구에 있는, 그 숫자가 무려 60해개에 달하는 헤모글로빈의 세계로 가 보자.역시 인간의 사고로는 접근이 쉽지 않은 범우주적 나노의 영역이다.단백질 분자인 헤모글로빈 한 개는, 아미노산 574개로 구성돼 있고 다시 아미노산 한 개는 원자 수십개로 이뤄져 있다.인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수명은 120일. 매초마다 40조개가 생성되고 파괴된다.헤모글로빈도 인체 안에 있지만, 각자 살아 움직이는 독립 생명체 같은 존재로 볼 수도 있다.숙주(?)인 우리의 의식과는 무관한,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번식을 위한 남성 정자의 세계도 비슷하다.정자 길이는 40-50μm. 정자는 여성 자궁안에서 나선형으로 헤엄쳐 난자에 도달한, 단 한마리만 수정을 한다.한번 사정 때 쏟아지는 정자 수는 무려 2억-5억마리.더 놀라운 사실은, 정자 한 마리 한 마리의 세포핵에는 천문학적인 분량의 아버지 유전 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는 것.여기에다 난자와 수정을 시도하는 정상 정자는 10%에 불과하다.나머지 기형 정자 90%는, 여성 자궁 내로 진입해 난자와의 수정을 시도하는 ‘다른 숫놈의 정자’의 경로를 방해하거나 죽이고는 산화한다.이쯤되면 리처드 도킨스 박사의 ‘인체가 우리 몸 이전에, 세포 유전자가 조종하는 살아 있는 로봇’이라는 주장에 일순 수긍이 가기도 한다.눈을 외부로 돌려보자. 그곳에도 무지막지한 규모의 우주가 있다.과거에는 단 한 개의 우주로 봤지만 최근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주의 개념도 확장되고 있다.많은 천문학자들은 “은하계에 별 3천억개가 있고, 우주에는 은하계 같은 은하가 3천억개가 있다. 다시 이 세상에는 우주가 1개가 아니라, 3천억개가 있다”고 말한다.마이크로한 축소의 세계, 광대한 우주에다 억겁의 세월 앞에 사람은 먼지보다 작은 존재다. 또 인생은 찰나와 같다.빡빡한 현실 속에서 범우주적 세계들을 생각하면, 역설적인‘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

2023-09-03

수도권의 금융집중 심각… 지방은행 위기

모든 자산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DGB대구은행을 비롯한 지방은행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출신 민주당 박재호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6개 지방은행(경남·광주·대구·부산·전북·제주)의 총자산 점유율(해당 지방은행의 총자산/전체 국내은행의 총자산)은 부산은행 2.0%, 대구은행 1.9%, 경남은행 1.4%, 광주은행 0.8%, 전북은행 0.6%, 제주은행 0.2% 순으로 나타났다. 6개 지방은행의 합산 점유율이 국내 전체은행의 6.9%에 불과하다. 수도권의 금융집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다.돈과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지방은행의 수신 경쟁력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대구은행의 경우 2013년 대구시 대출점유율이 34.8%에서 2022년 27.4%까지 떨어졌다. 10년 만에 7.4% 포인트 하락했다.지방은행이 특히 타격을 받는 부분은 주택담보대출 영업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시중은행에 비해 주담대 영업(주로 가계대출)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지방은행의 기업대출 수요 감소세도 두드러지는 추세다. 대출 규모가 큰 대기업들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대부분 중소기업 위주로 대출하다 보니 수신규모나 건전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1·4분기 기준 5대 지방은행(부산·대구·대구·경남·광주·전북)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 규모는 106조5천566억원으로 전체 총수신의 59.3%에 달했다.지방은행의 총자산 점유율 하락은 윤석열 정부 들어 강조하고 있는 지방화 시대에도 역행하는 현상이다.지방은행과 지역사회는 서로 뗄 수 없는 한 몸과 같다. 지방은행의 자금흐름이 위축되면 아무리 재무 건전성이 튼튼한 지역기업도 자금 융통에 문제가 생겨 흑자도산을 할 수 있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려면 은행 돈이 물 흐르듯 순리적으로 흘러가야 한다. 금융당국은 비수도권 경제발전 차원에서 지방은행들이 성장역량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지원을 해야 한다.

2023-08-31

호남 이단아들

홍석봉 대구지사장 호남과 호남인의 문제를 제기하며 호남 주류와 반대 목소리를 내는 호남 지식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전라도 출신이면서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고 5·18에 대한 평가에도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종군 위안부 문제와 간토 대학살 사건 등에 일본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촉구하고 피해자를 돕는 일본의 양심과도 비견된다.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은식 의사와 전라도 시인 정재학이 대표적인 인사다. 이들은 꾸준히 호남의 이탈을 꾸짖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는 양향자 의원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호남 각성을 촉구하는 외침이 우리 사회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전라도 시인 정재학은 조국과 전라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전라도가 종북좌파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그 해악이 국민에게 미치는 걸 두고만 볼 수 없다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전교조추방운동을 하고 보수논객을 자처하며 통렬한 전라도 비판의 선봉에 서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부터 자치단체 기초의원까지 모조리’ 좌파정당 일색인, ‘저울의 평형을 상실한 채, 한쪽으로 기울어진 논리와 주장으로 살아가는 곳’ ‘정치이념의 일방통행만이 허용된 곳’에서 자유 우파를 지향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된 “광주의 정율성 추모는 반역이며 반역을 지시한 자들이 전라도 민주당”이라며 “전라도는 가엾게도 공산주의자들의 땅이 됐다”고 개탄했다.박은식은 호남통신이라는 글을 통해 잼버리 사태를 보고 호남인으로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며 호남이 스스로 변해야 할 때라고 자아 비판했다. 그는 새만금공항부터 취소하자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김성수와 송진우를 배출한 호남이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를 뽑아주고,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도로와 공원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호남 독점을 비판하고 국민의힘 출신 신안군수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거둬 들여야 한다고 단언한다.호남이 자신들이 만든 성에 갇혀 이념 논란의 중심에 서고 퇴행적인 행보를 계속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호남 지식인들의 생각이다.지성마저 마비시키는 이념의 벽이 나라 발전과 민주 시민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시각도 갖고 있다. 호남인들의 민주당 짝사랑이 지역에 독이 됐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정율성 논란과 원전 방류수 공방 등 정치판의 아귀다툼이 빛나는 성취를 일궈낸 한국의 자긍심을 형편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4류 정치는 낡아 빠진 이념의 틀에 갇힌 채 이전투구 중이다. 케케묵어 쉰내 나는 이념에 매달려 한국호가 방향타를 잃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광주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기득권 타파를 주장하며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모두가 한 방향만 보고 달려갈 때 반대 방향을 택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호남 이단아들의 자기반성과 외침이 가슴을 친다. 어느 날 깨어보니, 아르헨티나의 길을 걷고 있어서는 안 된다.

2023-08-31

가을 전어

우정구 논설위원 봄에는 도다리 가을에는 전어라는 말이 있다. 제철에 먹는 음식이 맛도 있고 영양도 좋다는 뜻이다.청어과에 속하는 전어는 몸길이가 15∼31㎝ 크기로 동아시아 연안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볼록한 배와 가로로 갈려져 나온 등지느러미가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며 주로 회, 구이, 찜, 젓갈 등으로 해먹고 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전어를 깍두기와 함께 담궈 먹는 전어깍두기도 있다.조선시대 학자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는 전어를 두고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좋아한 고기라 설명하고 제철 가격이 한 마리당 비단 한필과 맞먹는다고 했다. 또 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에 상관없이 전어를 찾는다 하여 돈 전(錢)과 고기 어(魚)를 써 전어(錢魚)로 불렸다고 한다.전어는 계절적으로 가을 전어를 최고로 친다. 몸에 기름기가 많이 올라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이다.“가을 전어에 참깨가 서말 있다”는 말과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은 가을철 전어의 맛이 최고라는 것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부터 몸속에 지방을 축적한 전어는 이때쯤 지방함유량이 평소의 3배에 달한다.해마다 한 더위가 꺾인 8월말 쯤 전국 곳곳에서 전어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삼천포, 광양, 마산, 사천, 하동 등지에서 전어축제가 열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로 소비가 움츠러들 것을 걱정했으나 예상밖으로 많은 인파가 몰려 축제를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오염수 파동 속에 기대 이상으로 축제를 잘 마친 상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오염수 논란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마음 한쪽은 여전히 불편감에 휩싸여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