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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성형 AI 시대 미래 인재상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2023년 가장 핫한 키워드는 미국 Open AI사의 챗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로부터 촉발된 생성형 AI의 등장일 것이다. 사용자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서비스 인지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인 100만 사용자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이 넷플릭스가 3.5년, 페이스북이 10개월, 인스타그램이 2.5개월이 걸린 것에 비해 챗 GPT가 단 5일만에 갱신하면서 엄청난 파급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생성형 AI는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 등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기존 AI가 데이터와 패턴을 학습해서 대상을 이해 했다면 생성형 AI는 학습을 통해 스스로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 텍스트를 활용한 대화형 AI의 대표적인 예가 챗 GPT와 구글의 바드이며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를 알려 주면 구현하는 달리와 스테이블디퓨전 등이 있고 문자 설명을 음악으로 만드는 뮤직엘앰이나 원하는 장르나 가수 스타일로 음악을 창작하는 쥬크박스와 비디오 생성 AI인 이메진비디오 등이 있다.얼마전 게임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하는 지인을 만났는데 생성형 AI의 출현으로 매우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사람이 게임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 시안 작업에 2~3일이 소요되는데 스테이블디퓨전과 같은 이미지 생성형 AI를 사용하면 수초에 1개씩 시안이 생성 된다는 것이다. 아직은 AI가 만들어낸 시안을 수정하는데 사람이 필요하지만 앞으로 기계가 학습을 지속하면 사람이 거의 필요 없어질 것 같다고 하였다.2023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오픈 AI의 쳇 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앞으로 5년 안에 전세계 일자리의 25%가 영향을 받을 것이며 사라지는 일자리가 8천300만개 AI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6천900만개로 1천400만개가 감소한다고 내다봤다. 실제 2022년 말 기준 전국 17개 시중은행의 지점 출장소 400여 개 가까이가 문을 닫았으며 이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가장 먼저 없어지는 일자리의 순서로 은행 딜러 캐셔 등 단순 작업과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 의사 변호사 등과 같이 고임금 작업을 꼽고 있다.일자리의 변화도 많지만 지금까지의 기업의 인재상 또한 지식 기술 태도에서 지식 기술은 AI로 대체 되고 태도가 가장 중요 해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를 누렸으나 미래에는 필요한 지식은 인공지능이 바로 알려주며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분야도 생성형 AI에 의해 손쉽게 창조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분석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와 일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완벽한 개인은 없어도 완벽한 조직은 있다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할수록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동료들과 잘 어울려 완벽한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미래의 인재임을 지금 꼭 되새겨야 할 때이다.

2023-07-16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시조문학회 동인들이 경북 청도로 문학기행을 갔다. 청도는 시조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조문단에 명망이 있는 이호우·이영도 오누이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유명 시조시인들의 시비(詩碑)를 세워 시조공원도 조성해 놓은 데다 현재 시조문단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민병도 시인이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한 때문이다.청도 출신 이영도 시인에 대해서는 좀 각별한 기억이 있다. 사춘기 시절에 읽은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에서 받은 인상이 그것이다. 1967년, 당시 문단의 중견인 유치환 시인이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연인이었던 이영도 시인은 그간에 받은 연서의 일부를 추려 책으로 내었다. 그 서간집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문단 안팎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 시인에게 20여 년 동안 무려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일찍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이영도 시인에 비해 유치환 시인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이 세간에 물의를 빚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해서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끝맺는 유치환 시인의 연가는 연애감성에 눈뜰 무렵의 사춘기 소년에겐 적잖은 충격과 감동이었다. 뒤를 잇는 이영도 시인의 시편들도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한갓 스캔들에 머물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 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유치환이 세상을 뜨고 난 후에 쓴 ‘탑 3’이란 제목의 이 시는 그들의 사랑을 누구도 섣불리 흠집을 내지 못하도록 단단한 돌로 굳혀 놓았다.내가 남자이고 시조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유치환 시인보다 이영도 시인의 시편들에 더 마음이 갔다. 물론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마음에 새겨졌던 여인상이어서 노년에 접어든 지금도 그의 시조를 읽으면 왠지 모를 아픔 같은 것이 일곤 한다. 누가 그랬던가, 그리움이 다 소진 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철학자 김형석 선생이 98세의 나이에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번의 청도기행은 그런 그리움의 일단을 더듬어보는 일이기도 하였다.이영도 시인의 연시(戀詩)는 일세를 풍미했던 황진이 시조의 계보를 잇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대 환경과 처한 사정은 다르지만 격조 있는 여성성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칫 세간의 입방아에나 오르내릴 스캔들의 주인공일 수도 있었던 그들을 남다른 여성상으로 우뚝 세운 것은 시의 힘이었다. 시가 있었기에 세인들의 비난과 폄훼의 시선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소리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같은 나의 정(情)” - 이영도 시조‘황혼에 서서’의 일부다.

2023-07-13

삼복더위를 시원하게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작은 더위’ 소서(小暑)가 다녀가니 급기야 무더위를 거느리고 온 삼복더위 삼형제가 들이닥친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숨을 막히게 하고 남쪽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열기에 실려 온 장맛비가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게릴라성 집중 호우를 퍼붓고 있다. 여기에 태풍급 강풍을 동반하니 가히 한여름이 중간에 선다. 일본 큐슈를 강타하고 북상한 장맛비는 다음 주까지 수도권 250mm를 정점으로 남부에 폭우를 뿌리며 전국에 물 폭탄을 쏟아붓는다니 산사태와 침수 등 비 피해에 대비하며 생활 안전에 신경을 써야겠다.복(伏)날은 경일(庚日)이라, 가을의 금(金) 기운인 음기가 여름의 화(火) 기운인 양기에 눌려 엎드린 개의 형상인데, 영어로도 ‘개의 날(Dog day)’이라니 동서양 모두 7월 더위가 개와 관련되어 있어서 참 신기하다. 예전 같으면 뜨거운 보신탕 한 그릇 후루룩 비우며 이열치열(以熱治熱) 더위를 물리치겠지만 요즈음은 ‘바다의 산삼’이라는 전복과 인삼을 넣어 푹 삶은 삼계탕을 먹고 이 더위를 이겨나갈 수밖에…. 아니면 ‘밭에서 나는 쇠고기’ 흰콩을 껍질 벗기고 알맞게 삶아 맷돌에 갈아 만든 콩국에 하얀 국수를 말아 콩국수도 먹고 시원한 참외나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날려야겠다.경북 동해안의 23개 해수욕장이 14일부터 순차적으로 개장을 하는데 포항지역 6개 해수욕장은 15일부터 개장하여 8월 27일까지 다양한 해양축제와 함께 그동안 코로나19에 찌들었던 국민의 몸과 마음을 씻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백사장은 중금속 검사를 통해 납, 카드뮴, 수은 등 유해 물질은 기준적합 판정을 받았고, 포항 영일대해수욕장과 영덕 장사해수욕장은 방사능 검사 결과 안전한 수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작년에 23만여 명이 찾은 것으로 봐서 이른 더위가 찾아온 올해는 더 많은 해수욕객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어 아직도 코로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방역 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또 갑자기 식인상어가 돌아다닌다는 소식에 괜한 걱정이 된다.2007년 공식 폐장되었던 송도 해수욕장이 그동안 고운 은빛 모래로 채우고 수중 방파제도 설치하고 각종 시설을 보강하여 17년 만에 개장하려 했으나 바다 시청과 주차장, 화장실 등의 설치 미완으로 내년에 개장하기로 미루는 바람에 옛날 명성을 되살려보려던 지역 주민들이 아쉬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늘 높이 두 손을 치켜들고 웃는 ‘평화의 여신상’도 무색해졌다.한편 해변의 정화 활동에 참여한 2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해안 쓰레기를 빗질하듯 쓸어 모으는 비치 코밍(Beach combing) 활동으로 깨끗한 모래밭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일대 해수욕장에는 새로운 모래예술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이 무더운 여름날에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으로 환자들의 고통이 있고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대통령탄핵 외침으로 도로의 열기가 더욱 달구어지는데 옛날에도 삼복더위에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여 각종 행사를 자제해 왔다고 하니, 현명한 타협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바람이다.

2023-07-13

포항 랜드마크 포스코 야경 재점등 해야

포스코 야경은 포항의 최대 랜드마크다. 세계 최고의 제철소인 포항제철소를 일궈낸 영일만의 기적을 상징할 뿐아니라 역동적인 불빛은 포항의 미래를 상징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LED 조명으로 밝히는 경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역동성은 도시의 이미지를 잘 표현해 시민으로부터 자부심을 갖게 하고, 관광객을 부르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지난 2004년 포항제철소 환경센터, 형산발전소와 정문 앞에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해 관광객과 시민에게 화려한 불빛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시작한 것이 지금은 포항 12경의 하나로 탄생했다.몇차례 리뉴얼 사업을 통해 수변경관은 도시 전체를 밝혀줄 만큼 놀랍게 변신했고 6km에 달하는 수변경관 조명은 세계에서 유일할 만큼 유명하다.영일대해수욕장과 형산강변, 환호해맞이공원, 송도해변 등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답고 각자의 매력이 있다. 2020년 7월 경관조명 개선사업을 끝낸 포항제철소는 그해 해수욕장 개장에 맞춰 ‘LED light show’를 선보였다. 제철소 측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지역사회에 빛을 더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탤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지난해 9월 비상 경영체제에 들어간 포스코가 태풍 힌남노로 전례없는 피해를 입자 점등을 중단했다. 포항지역 해수욕장이 개장에 나서고 많은 외지 관광객이 찾아 올 것으로 예상되나 포항의 상징인 포스코 야경의 재점등은 현재 오리무중이다.포스코는 지난해 11월 기업시민 경영이념 실현을 위해 환호공원 안에 국내 최대규모 체험형 조형물인 스페이스워크를 만들어 선보인 바 있다. 조형물로서는 보기 힘든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공개하자마자 전국적 인기를 모았다. 새로운 관광명소 조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경영이념의 가치가 발휘됐던 것이다.많은 시민이 포스코 야경의 재점등을 바라고 있다. 특히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수욕장이 개장되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금이야말로 포스코 수변야경의 효과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의 결정에 시민의 눈이 쏠리고 있다.

2023-07-13

TK 물갈이론의 실체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은 홍 시장에 비해 정치적으로 햇병아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소신과 철학으로 일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을 ‘싹 다 바꿔라’는 이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얼마 전 대구시와 국민의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김용판 대구시당위원장이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한 말이다. 홍 시장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났다.초선의 김 의원이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물갈이론에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는지 잘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홍 시장은 여러 차례 대구·경북(TK)의원들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고 발언해 지역 초·재선의원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국회에서나 지역에서, 존재감도 없고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22대 총선을 9개월여 앞두고 있지만 지역 정치권은 너무 조용하다. 이맘때쯤이면 출마의사를 밝히고 총선을 향해 뛰는 정치지망생들이 명함을 돌리며 분주하게 지역을 누볐다. 하지만 요즘 TK 정치인들은 대부분 바짝 엎드려 있다. 현역 의원들만 의정보고회와 현수막 정치를 하고 각종 모임에 얼굴을 내밀며 표밭 다지기에 열심이다. 눈에 띄는 정치지망생은 현재 가뭄에 콩나듯 하다.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던 인사 대부분이 다음 총선에서 발을 빼는 이상기류까지 감지된다. 용산(윤석열 대통령) 눈치를 보고 있거나 섣불리 나섰다가 타깃이 돼 찍힐까봐 꼬리를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그나마 최근 일부 지역에서 친박 인사들의 총선 출마 움직임이 관심을 끌고 있다. 본지 여론조사 결과 이들 지역은 현역 의원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 지역 정가를 달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동정론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과 전직 정치인에 대한 평판이 좋은 몇 곳에선 선거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불출마가 거론되는 일부 지역구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아예 경쟁구도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선 오는 10월 예정인 당의 지역구 정무감사 결과, 성적표가 나오면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 같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교체지수가 높고 당과 대통령 지지도를 밑도는 지역은 물갈이 타깃이 될 전망이다.이 같은 TK지역 상황과 기류는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TK 물갈이론에 힘을 더하고 있다. 당 지도부로 봐선 공천을 통한 물갈이 기반이 자연스레 갖춰진 셈이다. 이에 지역에선 옥석을 가리고 중량급 인사를 키워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는 다선 의원 부재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21대 총선때 TK 25개 지역구 중 공천경쟁에서 살아남은 의원은 대구 5명, 경북 4명 등 9명 뿐이었다. 16개 지역구의 주인이 바뀌었다. 결국 초선 의원만 16명을 배출, 정치 신인들의 등용문이 됐다. TK는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공천 희생양이 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TK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속설 앞에 또다시 고개 숙여야할 운명에 놓였다. 공천이라는 이름 아래 속절없이 당하는 학살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역 선량들이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됐다.

2023-07-13

경북도의 ‘지방시대위 대응전략’ 돋보인다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출범에 맞춰 지방정부 주도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의지가 강하다. 이 지사(시도지사협의회장)는 지난 10일 열린 지방시대위 출범식에 참석해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내려놓으려면 법령을 바꿔야 한다. 법안을 제가 싹 다 만들어 드릴 테니 이번 연말까지 국회에서 해결해 달라”고 주문했다. 예를들어 지방시대위가 추진하는 기회발전특구의 경우 지정근거는 마련됐지만, 세법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지방투자촉진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는 얘기다. 경북도는 이미 현정부 지방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1월 전국 최초로 지방시대정책국을 신설했다. 경북도는 우선 지방시대위가 주도하는 정책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 기회발전특구 추진단을 곧 가동하고, 자체적으로 ‘지방시대위원회’를 발족시킨다. 오는 9월 열리는 도의회 임시회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한 후 10월에는 ‘경북도 지방시대위’를 출범시킨다는 일정을 잡아두고 있다. 우동기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지휘봉을 잡은 지방시대위원회 출범은 비수도권 지자체로서는 둘도 없는 기회다. 만약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지방정부 간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물론, 인구소멸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부산·울산·경남의 경우 지난 10일 지방시대위가 발족하자마자 ‘제1차 부울경 정책협의회’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부울경 동맹’으로 불리는 정책협의회는 앞으로 지역 특성을 살린 초광역권발전계획을 수립한다고 한다.기회발전특구 지정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 정부는 역대 정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균형발전 정책을 펴고 있다. 역대정부에서는 중앙정부 중심의 지방정부 지원정책을 폈지만, 현 정부는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수립하면 중앙정부에서 타당성을 검토해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기회발전특구의 경우도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대기업을 유치하는 등 특구 조성여건을 만들어오면 중앙정부에서 규제 특례와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시대위 출범에 맞춘 경북도의 발 빠른 대응이 주목되는 이유다.

2023-07-13

의전차량 논란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11일 경남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야외에 세워져 있던 짝퉁 거북선이 해체되던 날 많은 언론이 지자체의 세금 낭비의 전형적 사례라 세찬 비판을 쏟아냈다.짝퉁 거북선은 2015년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 일환으로 16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들었으나 한 번도 빛을 보지못한 채 12년간 방치되다 이날 해체된 것. 목재는 땔감으로 철근은 고물상으로 넘겨졌다. 국민 세금이 이처럼 허무하게 낭비되어도 그 누구 하나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이를 바라본 시민도 기가 막혀 한다.문제는 이런 유사 사례가 전국 지자체에 걸쳐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대구시 군위군의 삼국유사 테마파크도 1천223억원의 예산을 투입, 조성했으나 3년째 적자 운영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얘기로 놀이공원을 만들었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속골병 든다는 얘기다.세금 낭비가 논란이 되는 속에 대구시내 기초자치단체들이 1억원에 달하는 고급 승용차를 의전용 차량으로 구입할 예정이어서 구설수에 올랐다. 대구서구청장과 대구북구의회의장 의전차량으로 1억원 가까운 제네시스 G80 전기차 구매를 염두에 두고 관계기관이 예산까지 편성했다는 것이다. 구청 관계자는 최근 법이 바뀌어 전기차만 구매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제네시스 G80 외 선택지가 없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선출직 공직자가 1억원 짜리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면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 정서에 맞을지 의문이다.의전차량은 품격과 안전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인데, 1억원 짜리라면 품격보다 권위에 치중한 선택이란 비난을 받지 않을까 싶다. 또 그보다 낮은 전기차가 있는데도 1억원 짜리를 선택한다면 세금 낭비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7-13

호두 맛 아이스크림

윤명희 수필가 장 뜨기 좋은 날이다. 이른 아침, 복실이네 대문 앞에 차를 세우자 햇살바라기를 하던 강아지가 먼저 뛰어나온다. 그녀는 벌써 내 항아리의 장까지 뜨고 있다. 나는 서둘러 고무장갑을 끼고 소금물에 푹 절은 메주를 주물렀다. 같이 하게 좀 기다리지 왜 혼자 하느냐며 눈을 흘기자 날씨가 좋아서라 한다. 두 개의 항아리를 된장으로 채웠다. 언저리에 붙은 것을 찍어 입에 넣었다. 누런 된장이 봄 햇살을 품었다.항아리를 닦고 장독대를 정리하는 일이라도 그녀의 손이 덜 가게 서둘렀다. 수돗가까지 말갛게 치우고는 고무장갑을 벗어 빨래집게로 걸었다. 그녀를 식탁에 앉히고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손에 쥐어주었다. 한 입 베어 문 그녀가 호두 맛이라 한다. 편의점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사온 나는 찢어진 봉지를 확인하며 어떻게 단 번에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얼마나 먹었는데 그 맛을 모르겠느냐고 한다.그녀는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복무지인 연천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이었다. 어린 복실이가 그의 등에 붙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가로지르면 여기저기서 인사를 하곤 했다. 그는 학교 행사 때면 마을 유지들과 함께 천막이 쳐진 단상에 앉아 있었다. 가끔 연단에도 오르는 각 잡힌 군복의 모습이 학교 다니는 내내 자랑스러웠다.초등학교 졸업식 날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그녀는 중학교 교복 대신 지금까지 다녔던 학교의 급사가 되어있었다. 교장실에서 담소중인 아버지 앞에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놓았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그저 급사 아이였을 뿐이었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무쇠종이 그녀 대신 길게 우는 날이었다.엄마는 매일이다시피 남의 집 품팔이를 나갔다. 복실이는 일요일 새벽이면 엄마를 따라 모내기를 하러 가야했다. 일꾼이 모자라 어른들처럼 머릿수건을 하고 작업복을 입으면 한 사람 품삯을 받을 수 있었다. 못줄이 넘어가도록 딸이 다 심지 못한 빈자리를 엄마는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채워야 했다. 엄마와 그녀는 아버지의 화투장이 만들어 내는 구멍을 막기에 바빴지만 역부족이었다.일자리를 구해 부산으로 갔다. 그녀는 신발공장의 일이 힘에 버거워 밤마다 눈물바람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별빛 하나 없는 길을 걸어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손가락질이 방문을 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있었다.어느 날 저녁, 아버지 손에 아이스크림 한통이 들려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동생들은 돌아가며 제비새끼처럼 한 입씩 받아먹었다. 숟가락이 몇 번 드나들자 아이스크림은 바닥을 드러냈다. 통까지 혀로 핥은 동생들은 말갛도록 빤 숟가락을 입에 물고 놓지 못했다.다시 일자리를 찾아 기차를 탔다. 영등포구에 있는 방직공장이었다. 밤이면 야학에서 못다 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남동생이 중학생이 되기 위해 짐 보따리를 들고 왔다. 새벽이면 연탄불에 냄비 밥을 지어 동생을 학교에 보냈다. 종일 미싱을 밟고 밤이면 책상 앞에 앉아 졸았다. 부모님은 여동생까지 얹어주었다. 주머니는 늘 월급날이 되기도 전에 비었다.월급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 앞에서 발이 멈췄다. 아이스크림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얄팍한 월급봉투를 만지고 또 만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들고 온 것보다 더 큰 것으로 샀다. 혼자 어둑해진 둑방에 올라갔다. 한 숟가락 푹 떠서 고봉이 된 달콤함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 가득 차는 호두 맛이 다른 세상을 꿈꾸게 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두 동생도 생각나지 않은 밤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월급날을 기다리며 또 한 달을 버텼다. 혼자 둑방에 올라 퍼 먹고 또 퍼먹으며 어른이 되어갔다.참 오랜만에 먹어본다는 말에 나는 그녀의 손을 말없이 잡았다. 그녀가 웃었다. 오늘 아침에 끓인 된장찌개가 맛있던데 좀 가져갈래? 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손이 닿은 건 다 맛있다고 했다. 언니처럼 챙겨 준 반찬꾸러미를 받아들고 마당에 내려섰다. 마당 가득한 꽃들이 주인을 닮았다.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그녀가 손을 흔든다. 된장이 익어가고, 담장에 장미넝쿨이 어깨동무하는 전원주택에 복실이가 산다.

2023-07-12

기유일주(己酉日柱)

육십갑자 중 마흔여섯 번째는 기유(己酉)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는 규모는 작아도 비옥한 땅이다. 지지(地支)의 유금(酉金)은 귀금속이나 날카롭고 단단한 금속이다. 동물로는 황색 닭이다.기유일주는 보석이 가득 묻힌 땅의 형상이다. 이제 막 출생한 갓난아이이며, 깨끗하고 순박한 성품의 소유자다. 어린아이처럼 감정적이고 호기심도 많고 다소 겁도 많은 편이다. 언행이 가벼울 때도 있지만, 온화하고 꾸밈이 없어 사람들에게 호감을 산다. 예술적인 면에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화술에도 능해 대인 관계도 원만하다. 외모나 성품이 좋은 인상을 주는 캐릭터다. 사회생활도 잘 적응하여 무난하게 뜻을 이뤄 성공과 출세가 빠른 편이다. 신용을 중시하며 남에게 믿음을 주고자 노력하는 경향이다. 자기가 맡은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남에게 신뢰를 준다. 특히 부모로부터 유산, 예술, 기술적 재능과 사업 등 좋은 기운을 물려받을 수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기유일주는 명랑하고 창의력이 넘친다. 재주와 개성을 많이 갖고 있는 일주다. 냉철하게 분석을 잘하는 성격으로 매사 원칙을 중시한다. 솔직하고 거짓을 싫어하며, 확실하고 정확한 것을 선호한다. 허나 너무 예민해서 생각과 번민이 많고 쉽게 감정에 치우쳐 스스로 쓸쓸함과 고독에 빠져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따뜻하고 온유한 성품에 다정다감하여 사랑을 느끼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프랑스 태생 생텍쥐페리(1900∼1944)가 쓴 소설 ‘어린왕자’를 생각해 본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하여 어린왕자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랑과 소유, 그리고 인간의 고독을 극복하는 과정이 어린왕자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어린왕자가 사막에서 여우를 만나게 된다. 어린왕자는 여우를 보며 얼마나 예쁜지 몰라 다가갔다. “이리 와서 함께 놀자. 난 지금 몹시 슬퍼….” “난 너와 함께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길들인다’라는 게 뭐지” “사람들 사이에 잊혀진 것들인데….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인간은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소중함을 느끼게 되고, 사랑이란 감정이 발전하게 된다.어린왕자에게 언제 올 건지를 말해 달라는 여우. 만나면 몹시 기쁠 거라는 기대감에 미리부터 즐거워할 것이라며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라고 여우는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대상이 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혹시 잊지는 않았는지?기유일주의 남자는 포용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즐긴다. 지혜롭고 미모를 겸비한 아내를 만나 처가의 덕도 볼 수 있다. 여자는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다. 단정한 이성에게 매력과 호감을 느낀다. 가끔 남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아이를 낳으면 자식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남편을 밀어내며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 집안 살림도 잘하고 요리와 손재주에도 능하다. 남녀 공히 매너와 체면을 중시한다. 기유일주는 닭이 들판에서 노는 형상이다. 닭이 먹이를 쪼아 먹고 땅을 파헤치기를 좋아하듯이 통찰력과 관찰력이 뛰어나고 예민하다. 사람을 보는 눈도 정확하다. 활동성이 강해 부지런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표현능력이 좋아 자칫 오지랖이 넓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목소리가 좋아 성우나 아나운서처럼 듣기 좋은 음색의 소유자가 많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기본적으로 귀티나 부티가 나는 사람이다. 매너를 지키며 자신이 받은 만큼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변에서 좋게 생각한다. 너저분한 것을 싫어하고 깔끔한 성격으로 복잡한 것을 싫어해 날카로운 모습도 보인다. 또한 한순간의 실수로 남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해서 그동안 쌓은 공덕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다. 내면이 불안하고 갈등이 심해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하지만 보석이 흙에 묻혀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약자에게는 잘 베풀지만, 강자에게는 날카로운 언행으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우유부단하지만 특유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잘 활용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장자 외편 ‘달생’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성자가 왕을 위하여 싸움닭을 기르고 있었다. 왕은 “열흘 만에 닭을 싸움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안 됩니다. 아직 헛되이 교만하여 기운을 믿고 있습니다.”열흘이 더 지나 다시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안 됩니다. 아직도 상대방의 울림이나 그림자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입니다.” 열흘이 더 지나 다시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안됩니다. 아직도 상대를 노려보며 기운이 성합니다.”열흘이 더 지나 다시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완전히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가 되었습니다. 그의 덕은 완전해졌습니다. 다른 닭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날 것입니다.”교만과 조급함을 버리고, 남의 소리와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눈초리는 버려야 한다. 즉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목계지덕(木鷄之德)이다.“느끼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느끼는 감정 없이 스치는 시간들을 ‘삶’이라는 고상한 언어로 부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것이 ‘삶’이라면 개도 고양이도 살아간다. 동물에게는 느낌의 고뇌가 있던가. 그들은 살아있는 존재일 뿐이다. 인간만이 그 끈을 놓지 못하고 고뇌의 기억을 성숙으로 이끄는 지혜가 있다.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주려고 한다. 오직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만이 굽은 것을 펴고, 회복하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진정한 창조력을 갖춘 사랑이야말로 완벽한 구원자다.

2023-07-12

공익 목적 현수막의 정의

심한식 경북부 현수막 공해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경쟁적으로 내건 현수막이 지역의 골칫거리가 되며 안전사고의 위험마저 높이고 있다.경산시는 지난 2013년 12월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 거리를 만들고자 시청 네거리에서 오거리 구간을 ‘현수막 없는 거리’로 지정했다. 시는 이 구간에 설치된 현수막 게시대를 철거하고 현수막 게시 차단을 공지했지만, 현재도 무질서하게 게시된 현수막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경산시는 경산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 산업진흥에 관한 조례를 통해 시의 승인을 받고 현수막 게시대에 게시된 현수막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불법 현수막으로 규정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하지만, 공익 목적의 현수막은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공익 목적의 사전적인 의미는 ‘공동의 이익’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 이다.게시대가 아닌 가로수나 전봇대, 시설물을 이용해 게시된 현수막 대부분이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현수막이 아닌 불법 현수막이지만 곧바로 철거되거나 스스로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서로를 비방하는 현수막, 당 관련자들의 이름으로 걸린 현수막, 누구를 축하하는 현수막 등은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아름다운 형상을 가진 꽃의 이름을 불렀을 때 꽃이 되었지만, 불법 현수막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불법 현수막이다.권력이, 정당이, 시민단체가 내걸었더라도 불법 현수막이 법을 지킨 다른 현수막과 같은 가치를 지닐 수 없다.특히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현수막이 통행량이 많은 교통요충지에 버젓이 게시되어도 단속해야 할 관계기관들이 손을 놓은 것은 이 때문에 불편을 겪는 많은 지역민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이다. 불법으로 법을 지키라고 게시된 현수막이 언제 사라질런지 궁금하다.

2023-07-12

과민대장, 무른변, 설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진이 자는 것, 먹는 것, 싸는 것이다. 이 셋 중의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환자는 불편을 호소하고 증상이 심할 때의 고통은 더욱 크다. 많은 사람들은 대변의 상태를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고 무른 변을 보는 사람은 변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무른 변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건 그 사람의 건강을 체크하는데 아주 중요하다.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의 변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특히 변비로 고생하는 것 보다 변이 무르거나 설사, 혹은 하루에 여러 번 화장실 가는 경우가 많다. 너무 화장실을 자주 가면 복통과 생활패턴이 불규칙해져 불편함을 호소해 한의원에 내원하는 경우가 있다. 대변의 모양은 퍼지지 않고 적당한 강도로 바나나처럼 나오는 게 좋다. 볼 때마다 무른 변을 보거나 설사를 하거나 하루에 여러 번 화장실에 가는 것은 대장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리다.변비가 심하면 병이라 생각을 해도 변이 무르고 쉽게 나오는 걸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장의 기능 장애가 생긴 것으로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다. 점점 심해지면 하루에도 여러 번 복통과 설사 등으로 고생하고 나중엔 과민대장증후군으로 진단 받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예방과 치료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한국인에겐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식생활에서 빼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를 빼야 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변이 물러지고 설사를 하게 된다. 야채의 섬유질은 소화가 다 되지 않고 변으로 나오는데 고춧가루도 이와 마찬가지다. 고춧가루는 피부에 닿게 되면 피부가 붉게 되고 오래 놔두면 염증이 생기고 통증을 일으킨다. 우리 장도 마찬가지다. 고춧가루가 다량 들어오면 장엔 염증이 생기고 수분 흡수가 안되어 설사를 하게 된다. 매우면 매울수록 이 현상은 심해진다.한두 번은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나 매운 음식을 너무 자주 많이 먹게 되면 장은 항상 탈이 난 상태가 된다. 밥 먹을 때마다 혹은 긴장할 때마다 하루에 여러 번 화장실을 가게 되는 과민대장이 있는 사람은 고춧가루를 끊어야 하고 줄여야 한다. 특히‘불’자가 들어간 매운 음식은 절대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유 관련 식품도 먹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의 60~70%가 유당을 분해 못하는 유당불내증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은 우유 관련 음식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우유가 안 맞는 사람이 다량으로 오랜 시간 먹게 되면 장의 기능이 떨어진다.한의원에선 보통 황련이 들어간 약으로 치료를 하는데 황련은 심장의 열을 내려주고 대장의 열도 식혀 준다. 오랫동안 문제가 생겨서 항상 염증상태가 있는 장의 열을 식혀주면 대변이 굳어진다. 설사가 줄어들고 복통도 같이 감소한다. 심한 경우는 세 달, 심하지 않은 경우는 음식 조절하면서 한 달가량 복용하면 많이 개선이 된다.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매운 음식,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최대한 피해줘야 한다. 나의 먹는 식습관에서 오는 질병이라 치료도 중요하지만 관리도 중요하다. 관리는 좋은 걸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안 좋은 걸 안 먹어야 한다.

2023-07-12

봉숭아꽃 물들이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모두의집 뜨락에 추억의 꽃씨를 심었다. 채송화, 분꽃, 봉숭아꽃. 부지런히 물을 줬는데도 자라기는 제각각이다. 씨가 가장 자잘한 채송화씨는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한 송이 겨우 피는 흉내만 냈다. 제법 씨가 굵은 분꽃은 듬성듬성 던져 심었는데도, 노리짱하게 자라는 게 영 시원찮다. 봉숭아만 실했다. 가지런히 싹을 틔우더니 불그스름한 줄기가 쑥쑥 자랐다. 잎사귀를 내더니 어느 날부턴가 진분홍, 연분홍, 주황의 여리고 예스러운 꽃을 피워 내어 예쁘다. 언젠가 서울 손녀가 오면 손주들 다같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매번 갈 때마다 물을 주며 곱게 키웠다.아니나다를까 윤이는 봉숭아를 보자마자 반색을 했다. 그리고는 냅다 봉숭아꽃물들이기를 하겠단다. 어린 다른 애들은 봉숭아꽃도, 꽃물 들이기도 몰라 물어대는 중이었다. 어느 게 봉숭아예요? 물들이기가 뭐예요? 나도 할래요….꽃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며 기다리게 했다. 백반을 사왔다. 실, 비닐장갑을 내와 이벤트를 시작했다. 네 아이 모두에게 먼저 꽃을 따게 했다. 꽃과 잎을 고루 따서 마늘절구에 넣어 찧어 짓이겼다. 아빠 엄마들이 달려들어 찧은 봉숭아즙을 손톱과 발톱에 올려 주었다. 비닐장갑의 끝을 잘라 손가락마다 씌워주고는 인내심을 가르쳤다. 밤새워야 하는데, 봐주겠으니 낮잠 한숨씩 자야한다며 겁을 주었다. 잠시 조용했다. 어디 아이들이 가만있을 리 있겠는가. 십여 분이 지나자 먼저 바른 아이부터 씻어 달란다. 어쩌면 그 짧은 시간에도 제법 발그레하게 예쁜 봉숭아꽃물이 들었다. 발라 준 어른도 바른 아이도 신기해하면서 손톱 발톱 자랑을 한다. 한여름 대청마루엔 봉숭아꽃물 든 웃음소리가 차고 넘쳤다.옛날, 나 어릴 적엔 큰집에서 이런 놀이를 했다. 하얀 모시적삼을 입은 큰어머니께서 주신 하얀 명반을 큰 돌 위에 얹어 작은 돌로 깼다. 봉숭아꽃도 돌로 찧었다. 꽃과 잎을 함께 찧어서인지 봉숭아 찧은 물색은 누렇거나 검었다. 가루가 된 명반과 섞어 손톱 위에 얹었다. 큰어머니는 흰 천을 작게 오려 손톱을 감싼 후 실로 칭칭 감아주셨다. 다섯 손가락을 오무리지 않아야 했으므로 쫙 편 채로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흰 꽃이 오롱조롱 매달린 꽈리나무에서 꽃의 수를 세었다. 마당 한켠에 핀 키 큰 접시꽃에서 붉은 꽃송이를 따서 꽃의 밑쪽을 조심스럽게 반 갈라 코 위에 올려 꼬끼오해보기도 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손가락 끝을 동여맨 실과 천에 시커먼 물이 들면 실을 풀었다. 통통 부은 손가락과 손톱엔 붉은빛이 돌았다. 도발적인 봉숭아물의 색기에 잠시 부끄러움이 들었다. 그 후 여름마다 간 이모네나 외가댁에서도 어김없이 손톱물을 들였는데, 그 빨갛던 손톱의 색도 왠지 내내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여름 지나 가을쯤 반달만큼 남은 손톱이 겨울이 다 되어 희미해져 사라질 때까지 남들 눈에 띌까 감췄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듬해 여름엔 또 봉숭아꽃을 찧었다.오늘 봉숭아꽃 물든 손톱을 하고 간 손주들이 내일 학교와 유치원에서 친구나 선생님께 손톱을 보이며 어떤 이야기를 할까, 어떤 느낌을 말할까 궁금해진다. 부끄러움은 절대로 아니지 싶긴 하다.

2023-07-12

영덕 천지원전 부활하려면 주민신뢰가 관건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계획이 포함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을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긴 이달말 착수하기로 하면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백지화된 영덕군 천지원전 부활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전기본 수립 일정이 앞당겨진 것은 우리나라 전력여건이 급변하고 있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0일 개최한 제29차 에너지위원회 회의에서 다수 민간위원이 신규 원전 검토를 통한 전력공급 능력 확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아직 신규 원전 건설을 구체적으로 거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급증하는 전력여건에 대응하려면 신규원전 계획이 재검토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다. 제11차 전기본에 신규원전 건설계획이 포함될 경우, 이미 원전 건설을 추진했던 지역을 신규 원전 후보지로 정할 가능성이 크다. 학계에서도 원전 후보지로 선정돼 토지보상까지 들어갔던 영덕이 우선순위로 거론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천지원전은 삼척 대진원전과 함께 지난 2011년 신규 원전 부지로 선정됐고, 2015년 제7차 전기본 공고에 반영됐다. 그후 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에너지전환 로드맵에 따라 사업 추진 계획이 백지화됐고 2019년 대진원전, 2021년 천지원전 예정구역은 지정 철회됐다. 당시 문 정부는 천지원전 지정 철회와 함께 신규원전을 건설하는 대가로 영덕군에 지급했던 409억원을 회수해 가 아직도 소송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정부가 신규원전 후보지로 영덕군을 염두에 둔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천지원전 백지화 발표이후 6년여가 흘렀지만, 당시 경제적·심리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영덕군민들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영덕군은 과거 천지원전 부지 선정과 백지화 과정에서 주민들 간에도 엄청난 갈등을 겪었다. 특히 정부가 원전특별지원금을 지급했다가 다시 회수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해 군민들은 정부의 원전정책에 대해 불신감이 크다. 천지원전이 부활하려면 원전사업에 대한 영덕군민들의 신뢰회복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

2023-07-12

올여름 잦을 폭탄비, 취약지 등 세심한 대비를

이틀 전 전국에 걸쳐 내린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이 비 피해로 수난을 겪었다. 전국적으로 내린 비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된 가운데 대구 달성군에서는 1시간동안 40.5mm, 경북 상주시와 의성군에서도 1시간만에 4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도로침수 등의 피해를 입었다. 대구 북구에선 철거 현장의 200m 담장이 무너져 차량 29대가 파손되기도 했다. 강풍을 동반한 게릴라성 폭탄비로 나무가 쓰러지거나 등 전국적으로 잠시 내린 비에 100건이 넘는 피해가 접수된 것이다.특히 서울에선 1시간 누적강수량 50mm, 3시간 누적강수량 90mm 때 발령하는 ‘극한호우’가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발령되기도 했다. 지구촌의 기후변화로 우리나라도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올여름은 좁은 지역에 순식간에 퍼붓는 물폭탄급 집중호우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니 재난에 대비하는 방법도 종전과는 달라져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기상청은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것은 한반도 북쪽 상층대기에 차가운 공기를 가진 절리저기압이 자리하면서 기압골이 반복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쪽 뜨거운 공기와 북쪽 찬 공기가 만나 대기가 불안정한 상태라 언제 비가 올지 예측하기도 어렵다고 한다.1시간에 100mm의 폭탄비가 어느 지역에 쏟아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수도권에 쏟아진 폭탄비가 우리지역에도 얼마든지 쏟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지자체는 여름 장마와 태풍에 대비해 재난비용을 마련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으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재난에 취약한 곳이 많다. 상습 침수지역, 하천제방, 산간절개지, 공사현장 등에 대한 거듭된 현장점검과 보수를 통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천재(天災)는 피할 수 없지만 재난당국의 위기관리에 따라 피해는 줄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전 경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각 지자체는 기후변화로 한반도도 이례적이고 강력한 태풍이 목격될 수 있다는 기후 전문가의 경고에 귀 기울이고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여름철 재난 대응에 총력을 쏟길 바란다.

2023-07-12

교육으로 세상을 건지게 하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장 교수의 선친은 바보였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의 입지를 선정하고 실제 도로디자인을 손수 하였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집에는 한 꼭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남들은 떼돈을 번다는데 아내에겐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80년대 초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이 들어서 숙정의 바람이 불었다. 숱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멀쩡히 일했었다는 게 그의 자랑이었다. 어머니 눈에는 그야말로 ‘바보 아버지 인증’이었다. 필자도 한 때는 어머니와 같은 심정이었지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늘 저 혼란한 세상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깨끗하고 당당하게 부끄럼 한 점 없이 공직자의 길을 지켜낸 아버지가 자랑스럽다.세상이 어지럽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와 끝없이 힘만 드는 경제. 약속을 저버리는 정치를 어떻게 믿으며 나아지지 않는 경제에 무엇을 기대할까.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과 차곡차곡 모으는 꾸준함이 민생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다음세대를 기르는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세상 모습 그대로 거짓과 혼돈을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바르고 성실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는 학교는 날마다 무너진다. 교실에서 이야기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은 오늘도 힘들다. 아이들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게 아니다. 집과 동네에서 만나고 스치며 세상을 배운다. 미디어와 언론은 아이들에게도 제한없이 열려있다. 숨길 수가 없고 숨겨지지도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혀 딴판이라면, 그런 교육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는가.교육적 견지에서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가 바로 서지 않고는 정상적 교육이 불가능하다. 선동과 기만으로만 가득한 세상에서는 성실과 정직을 가르칠 수 없다. 혼돈과 주장만 그득한 일상에서 안정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꿈과 비전이 야심과 욕심이 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용기와 상상력이 술수와 기만으로 해석되는 가르침은 교육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게 교육이지만, 고르지 못한 텃밭에 바른 교육이 설 자리는 없다. 사람을 도구화하는 교육은 부적절하다. 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야 한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키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도록 이끌어야 한다.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눈속임이 가득한 세상에 진정어린 정직을 길러내야 한다. 다음세대의 시선이 넓은 세상을 향하도록 길러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우리는 좁은 우물에 갇히지는 않았을까. 세상을 등진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무너진 세상을 바로잡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던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와 어지러운 세상에는 교육이 희망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세상이 선다.

2023-07-12

‘극한호우’의 등장

홍석봉 대구지사장 장맛비 속 집중호우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 11일 ‘극한호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일원에 폭우가 예상되자 발령한 것이다.폭우는 갑작스럽게 국지적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이 내리는 강우를 가리킨다. 호우는 줄기차게 내리는 크고 많은 장대비를 일컫는다.기상청은 예상 강우량을 감안, 호우주의보와 경보를 발령한다. 호우에 의한 침수 및 사고를 경계하라는 의미다. 주의보는 3시간 강우량이 60mm이상 예상되거나 12시간 강우량이 110mm이상 예상될 때 내려진다. 경보는 3시간 강우량이 90mm이상 예상되거나 12시간 강우량이 180mm이상 예상될 때 발령한다.극한호우는 ‘1시간에 50mm’와 ‘3시간에 90mm’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는 비가 내리는 것을 말한다. 기상청은 지난달 15일부터 수도권을 대상으로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를 보내고 있다.국내에서 기록적인 호우는 1998년 7월 31일 전남 순천시에 1시간동안 145mm의 집중 호우를 쏟아부은 기록이 단시간 최고 강우량이다. 하루 최고 강우량은 2002년 8월 31일부터 9월 1일 사이에 강원도 강릉시에 퍼부은 870mm가 최고 기록이다.기후변화가 지구촌에 기상 이변을 몰고 오고 있다. 열대성 폭우와 폭염이 일상화 됐다. 폭우의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역대급 호우의 기록들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 집중호우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재난이 잦자 경고 차원에서 ‘극한호우’란 용어까지 나왔다. 11일의 ‘극한호우’로 수도권은 물론 대구·경북에도 적잖은 피해를 가져왔다. 이번 주 내내 게릴라성 호우가 예고되고 있다. 피해 예방에 바짝 신경써야 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12

역지사지 · 다른 시각으로 보기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미국 유학 시절의 일이다.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의 영어 토론 수업 시간, 각 국가의 정치체제가 주제였다.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을 반대하여 직선제 선거를 한 한국. 정변의 공범인 노태우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군사 정변의 주범들이 연이어 대통령이 된 것이 싫었지만, 우리나라가 외국인들 눈에 낮춰 보이는 것은 더 싫었다.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당혹함을 되돌려 줄 심사로, 미국인 교수에게 물었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니카라과 내정에 간섭하여 군대를 파병한 것에 대한 교수의 의견을 물었다. 교수는 평온한 표정으로 답했다.‘파병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 답을 들은 순간의 충격은 이전의 당혹스러움이 잊혀질 만큼 강렬했다.내가 가진 국가관이 깨어지는 충격이었다. 국가 안에서 지도자와 국민은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유교적 문화 배경에 더해 전체주의 교육을 받은 결과다. 그것이 유일하고 진리인 국가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국가와 지도자, 지도자와 국민 개인을 분리하여 생각하는,‘새로운 우주’가 열린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보다 인생에 더 소중한 자산이 되었노라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교수가 되기 전에 십여 년 기업에서 일했다. 새로 인수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성공하고 성장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안팎으로 많은 문제가 있는 회사였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산적했지만, 회사 구성원들과 6개월간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했었다. 모회사에서는 회사가 변하는 속도가 늦다고 채근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구성원들의 제안을 듣고 토론하고 합의하여 회사의 나아갈 방안을 정했다. 그 이후에는 일일이 설명하거나 강압할 이유가 없었다. 한 마음으로 일하는 임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돌아보면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눈이 열리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우리는 조급하다. 빨리 이루려 한다. 게다가 내 이름으로 이루려 한다. 2년 임기의 임원으로, 4년 임기의 국회의원으로,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한다.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만 오르면 조급병에 걸린다. 진정 성공하려면 먼저 이전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 좋은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바꾸기보다는 바른 방향에 있는 것을 계속해야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신의 임기에 마칠 수 없는 더 큰 꿈을 그려 후임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이다. 우파 지도자로서 어떤 좌파 정책의 우수함을 칭찬하면 얼마나 멋질까.상대편 전임자 정책의 우수함에 손뼉 쳐주는 멋진 지도자가 나오는 날, 우리 사회는 틀림없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23-07-11

환상적인 울릉도 라이딩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최근 울릉도에서 두번째 라이딩을 즐겼다. 천혜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동해의 진주 같은 울릉도를 찾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한데,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파도소리를 벗삼아 섬일주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3년만에 다시 펼치는 라이딩이니 한결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물론 전체가 화산섬인 울릉도라 해안선을 따라 조금만 내륙으로 향해도 비탈과 가파른 길을 오르기가 만만찮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라이딩의 짜릿함과 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울릉도는 독도 포함 섬 전역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지질유산의 보전과 교육·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큰 곳이다. 수 백 만년 전 신생대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울릉도와 독도는 특이한 이중분화구와 주상절리, 해식동굴, 해식절벽, 용출소 등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지질학적인 가치와 자원이 풍부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울릉도 관광객이 작년엔 46만명, 올해는 역대 최다의 방문객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만큼 곳곳마다 자연이 빚은 걸작(?)들이 많기 때문일까?“삐죽삐죽 구불구불 위태위태 난 길 따라/도동에서 통구미로 설레여 밟는 페달/태고의 신비 벗기듯 한 꺼풀씩 저어가네//낙타등 같이 들쭉날쭉 태하령과 현포고개/숨소리 거칠어도 구슬땀이 달가운데/마루턱 언저리에는 바람의 결 정겹기만//…//애환 서린 내수전 옛길 아슬한 걸음으로/휘청이며 비틀대도 끌고 들고 메고 가니/두 바퀴 펼치는 세상 봉래폭포 환호하네” -拙시조 ‘울릉도 라이딩’전문3년 전의 코스와는 달리 이번에는 사동에서 도동~저동~봉래폭포~관음도로 이어지는 역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울릉크루즈 등 대형선박이 드나드는 사동항 주변은 ‘2026년 개항 예정인 경비행기 활주로 개설 등으로 바닷가측 산을 깎아내는 등 공사와 개발이 한창이었다. 몇 차례의 업힐(Up hill)과 다운힐(Down hill)을 거치고, 파도의 추임새와 갈매기의 안부를 들으며 서서히 페달을 밟는 기분은 필설로 못다할 정도였다. 특히, 나리분지로 향하는 가풀막을 힘겹게 오를 때 천천히 지나가던 차량의 운전자가 굳이 창문을 내려 “힘내요~ 파이팅! 멋져요~!” 라고 격려할 때는 정말이지 순간적으로 힘이 불끈 솟기도 했고, 안개 낀 나리분지의 원시림을 통과할 때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돼 가히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7월 들어 포항~울릉도를 오가던 기존의 배에 쾌속선이 추가되고, 공항 개항 시 관광객 100만명 목표에 대비하여 울릉도에도 숙박시설·교통 등 인프라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가 정체되고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는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아찔할 정도였다. 또한 대부분의 식당이 단체손님 위주의 영업으로 ‘혼밥’이 어려운 현재의 상황 등을 감안하면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울릉도의 관광과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지름길이다.

2023-07-11

지방시대위, 자문만으로는 성과 못낸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회에서 야당에 발목이 잡혀 진통을 겪어왔던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드디어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지 1년 2개월 만이다.대부분 지방언론들은 지난 10일 업무를 시작한 지방시대위 기사를 1면 주요뉴스로 처리하며 환영했다. 그런데 예상은 했지만, 서울지역 주요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개막에 대한 수도권의 냉소적인 시각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전 영남대·대구가톨릭대 총장)이 초대 사령탑을 맡은 지방시대위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분권 정책과 국가균형발전을 총괄하는 국가 조직이다. 향후 5년간 지방시대 국정과제와 윤 대통령의 지역공약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각종 균형발전 시책과 지방분권 과제를 추진하게 된다.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로선 앞으로 지방시대위에 국정에너지가 쏠려야 그나마 인구 소멸과 저성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볼 수 있다.우 위원장은 위원회의 3대 과제로 분권형 국가경영시스템 구축, 지방의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회발전특구 추진, 우수한 지방인재 양성을 제시했다. 비수도권 지방정부들은 한결같이 이 과제들이 잘 풀려서 ‘우동기호 지방시대위’가 큰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정치권력과 언론이 외면하는 지방시대위가 과연 소임을 다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윤 대통령도 지난해 ‘어디에 살든 기회가 균등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미래세대의 주요자산이 될 첨단산업이나 초일류 인재를 수도권에 집중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발표된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다. 정부는 300조원 넘게 투자되는 세계 최대의 이 클러스터를 경기도 용인에 조성하기로 했다. 교육부도 이 흐름에 맞춰 수도권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 등 첨단·신기술 분야 석·박사 정원을 1천300여 명 증원했다. 정부가 지난달 말까지 추진하기로 했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기본계획 발표도 시한을 넘겨버렸다.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 중 수도권 집중이 가장 심하다. 수도권에 인구 51%가 밀집해 있고, 상위 1천대 기업의 74%가 수도권에 있다. 지금처럼 지방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 2050년쯤에는 전국 시·군·구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통계도 발표됐다.지방시대위가 수도권 집중 해소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줘야 한다. 위상이나 기능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대통령 자문기구로 존속하는 한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철우 대한민국 시도지사 협의회 회장(경북도지사)도 지난해 새 정부 출범 직후 부총리급 ‘지방균형발전부’ 신설을 공론화한 적이 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실질적으로 일하는 정부 행정기구가 필요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방시대위가 악조건 속에서도 ‘지방균형발전부’와 같은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

2023-07-11

동해안 식인상어 출몰, 피서객 안전 살펴야

최근 들어 경북 동해안에서 식인상어가 연이어 출몰하면서 피서철을 맞은 관광지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10일 포항 호미곶면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24t 어선 그물에 상어로 추정되는 물고기가 걸렸다. 살아있는 상태로 걸린 이 물고기는 길이 1.8m로 청상아리로 추정됐다. 이보다 앞서 9일에는 포항시 호미곶면 구만항 앞바다에서도 낚시 중이던 어선의 어민이 2∼3m 크기의 물고기를 목격하고 촬영한 사진을 해양경찰에 넘겼다. 감식을 의뢰받은 국립수산과학원은 청상아리의 일종이라고 밝혔다.청상아리는 다른 상어를 잡아먹는 육식성으로 상어 중 가장 빠르고 성질이 포악해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강한 상어다.해경에 따르면 포항 인근 해역뿐 아니라 강원도 삼척 광진항 근해에서도 청상아리로 추정되는 물고기가 목격됐고, 양양군 수산항 근해에선 악상어가 포획됐다고 한다. 해경은 최근 동해안 등지에서 공격성이 강한 상어 10여 마리가 잇따라 목격되거나 죽은채 발견됐다고 밝혔다.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동해안 수온이 오르면서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상어가 영역을 확장한 것”으로 분석하며 “상어 중에도 백상어는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강하고 해변까지 접근하는 성향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해수욕장 개장을 앞둔 포항시 등 동해안 지자체들은 상어 출현 소식에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고 한다. 포항시는 개장을 앞둔 구룡포 등 6개 해수욕장에 안전 그물망을 설치하고 또 상어퇴치기를 해수욕장마다 1대씩 배치키로 했다.그러나 이것만으로 식인상어로부터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식인상어 등장에 대비하는 안내문과 해수욕장 피서객의 상어 출현 시 대응 요령 등 다각적인 안전망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해경 자료에 의하면 국내에서도 상어 공격으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해안 해수욕장은 개장했거나 개장을 준비 중이서 식인 상어 등장에 따른 위험이 우려된다. 관계 당국은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상어 출몰지역에 대한 감시활동 강화와 수온 상승에 따른 해수생태계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2023-07-11

치매약 개발

우정구 논설위원 인류는 의학이라는 과학을 앞세워 질병과의 끝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그 덕에 인류는 100세 시대를 구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치료할 수 있는 질병보다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이 더 많다.질병에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지만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질병의 하나가 알츠하이머성 치매다. 한 인간의 과거사를 몽땅 앗아가는 질병의 특성 때문이다. 노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으로 “신이 내린 가장 잔인한 저주”라는 별명도 있다.알츠하이머 치매가 처음 보고된 것은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에 의해서다. 기억력이 점진적으로 떨어지다가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인지기능에 이상이 번지면서 궁극적으로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병이다.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이나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도 그의 가족을 기억하지 못한 채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60년대 스타배우 윤정희도 프랑스에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가운데 치매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유명했거나 화려한 스타였다는 사실은 그들에겐 무의미한 일이다.세계보건기구는 2019년 5천500만명이던 세계 치매환자가 2050년에는 1억3천900만명까지 급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치매극복에 대한 인류의 도전이 여러 번 좌절된 가운데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를 승인했다는 낭보가 날아 들었다. FDA는 “미국과 일본제약사가 공동 개발한 레캠비가 임상실험을 통해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효과가 있고 안전한 치료법이라는 게 입증됐다”고 했다.대중화 단계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인류의 치매 극복 노력에 서광으로 기록됐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7-11

경북도가 ‘탄소중립 정책’ 모델이 되길 기대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경각심을 다지기 위해 수시로 관련회의를 열고 있는 경북도가 그저께(10일)는 경북 탄소중립 추진단 4차 회의를 열었다. 탄소중립 기본계획 수립과 이행과정을 점검하기 위한 자리였다. 추진단은 행정부지사를 비롯해 21개 부서장이 멤버로 참여하는 매머드급 조직이며, 지난 2021년 8월 구성됐다. 4차 회의는 탄소중립에 대한 전문가 주제발표 후 실무부서별 사업추진 현황 보고와 신규과제 발굴 계획, 관련 예산 확보방안 등에 대해 공유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경북도는 지난해 체계적인 탄소중립 대응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구성된 ‘2050 경북도 탄소중립·녹색성장 추진위원회’도 현재 가동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 위원회는 경북도의 탄소중립 정책 계획 및 이행 등에 대해 심의·의결하고 자문기능도 수행한다.경북도는 오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저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지금까지 4대과제(탄소중립을 위한 지역산업구조 대전환, 녹색건축물 및 녹색교통체계 구축, 산림경영을 통한 지속가능한 탄소흡수원 확보, 도민 건강보호를 위한 기후변화적응체계 구축)를 정해 분야별로 대응해 오고 있다.탄소중립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국가과제가 됐다. EU와 미국은 탄소국경세를 도입해 수출입기업과 공급망들의 탄소중립을 강제화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RE100(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이차전지, 신재생에너지, 수소산업 등 친환경 시장은 지금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순배출량이 제로(0)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처럼 어려운 숙제를 풀려면 지방정부 주도로 가능한 한 자주 전문가가 참여하는 관련 회의를 열어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경북도가 앞으로 탄소중립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해 국가에너지정책의 모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3-07-11

‘집’이 ‘집’일 수 없는 시대

한국에서 집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가정’이 존재하는 공간이자 육체적·심적 휴식의 공간으로서 바깥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Home의 의미. 다른 하나는 물리적 공간이자 물질적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서 거주지 외의 용도 및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서 House의 의미다. 한국어에서 ‘집’은 일상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맥락에 따라 구분할 뿐, 별도의 구별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보니 우리의 일상에서 ‘집’이란 ‘집’이면서, ‘집’이 아닌 경우들이 왕왕 발생하곤 한다.예컨대 유아·청소년기의 한국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와 청장년기의 한국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아·청소년기의 한국인은 실질적인 구매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가까울 확률이 높으므로 ‘집’이란 가정을 위한 공간으로서 Home의 의미가 클 것이고, 청장년기의 한국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실질적 구매의 대상이자 투자의 대상으로서의 House의 의미가 혼재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평론가 이소는 이와 같은 ‘집’의 두 가지 용례를 바탕으로 한국 소설의 경향에 대한 글을 썼다. 여기에서 이소는 한국소설에서 나타나는 ‘집’의 의미를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하는데, 이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House’는 있지만 ‘Home’은 없는 상태’라는 분류다.얼마 전 학생들과 ‘집’이라는 단어를 써서 한 문단짜리 글을 쓰는 수업을 했다. 본래 목적은 짧은 문장 여러 개로 하나의 문단을 완성하고, 그 문단을 활용해 개요를 짜는 방법을 연습해보는 것이었다. 집이란 무엇인지 간단한 비유를 써서 정의를 내리고, 그와 같은 정의를 내린 까닭에 대해 3문장 정도를 서술하는 것. 내가 놀랐던 건 아이들의 정의가 대개 유사했다는 것이다. ‘집은 잠자는 곳이다’라는 정의. 비유라고 할 수 없는, 단지 기능만을 나타내고 있을 뿐인 메마르고 삭막한 정의. 그게 내 수업을 듣는 20대들이 ‘집’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린 정의였다.사실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등 가정을 떠나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집’이란 생각만큼 편한 공간이 아니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온 동거인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다. 거실이나 화장실, 부엌 등을 공유하는 형태의 쉐어 하우스는 그나마 서로 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기에 나은 편이지만, 휴식이나 생활을 위한 공간에 남겨진 타인의 흔적은 때때로 불쾌의 경험을 선사하곤 한다. 화장실이 분리된 원룸형 형태의 고시원이라면 그나마 사정이 낫다 할 수 있겠지만, 가벽에 벽지를 발랐을 뿐인 불법 개조 형태가 대부분인 탓에 타인의 소리와 냄새는 매순간 ‘나’의 공간을 침범한다.더욱 심난해지는 건 그와 같은 공간들이 단지 대학가 혹은 직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조리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평 남짓한 공간에 40만원 가까운 월세를 내야 하거나, 4평 남짓한 원룸에 60만원이 넘는 월세를 요구하기도 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마저도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많아 구할 수 없을 지경이다. 비단 이와 같은 사례가 대학가뿐일까. 쪽방촌으로 눈을 돌리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화장실을 비롯한 공용공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거나 난방이나 수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1평 남짓한 쪽방에, 임대업자들은 30만원 가까운 월세를 요구한다.그럼에도 이들은 이 부조리한 폭리 앞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목돈을 구할 수 없고 학교나 직장 가까이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임대업자의 폭리 앞에서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다. 단지 이것을 평생의 집이 아닌, 충분한 돈을 모을 때까지 거쳐 가는 ‘주거경로’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뿐. 쪽방에 거주하는 주거 빈곤층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목돈을 구할 수 없고, 당장에 수십만 원의 돈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빈곤 계층의 사람들에게, 월 30만원의 쪽방이란 노숙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청년이라는 이유로,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빈곤계층이라는 이유로 주거에 있어 부조리한 폭리를 방조하고 강요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와 같은 주거 빈곤 계층은 주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잠만 잘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공간을 찾아 헤맨다. ‘집’이 ‘집’일 수 없는 시대, 각각의 이유로 주거를 위한 부조리한 비용을 지불하며 인내할 수밖에 없는 시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일들조차도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용납돼야 할까.

2023-07-11

우리는 왜?

우리 집의 구성원은 단출하다. 나, 동생 그리고 강아지 보리. 우리 셋은 서로를 의지하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집안에 큰 어른답게 대소사, 이를테면 생활비 정산이나 집의 관리 및 수리, 청소, 요리, 빨래 그리고 보리의 산책을 맡아서 한다. 동생은 그런 나를 도와주는 역할이다. 내 눈치를 보면서 이리저리 사부작대는데 하나같이 내 성엔 차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나의 감정적인 부분을 잘 보듬어 주고 늘 최고의 조언을 내어놓는다.우리는 일곱 살 터울이 있는 자매다. 외형이나 성격적인 면에서도 완전히 다르다. 동시에 서로만 아는 약한 부분이나 공유하고 있는 많은 면면이 있다. 우리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교육자인 부모님을 두었으며 스무 살에 집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다. 나는 소설을 쓰고 동생은 그림을 그린다. 최근 동생은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매일 같이 집을 나서서 밤늦게 돌아오고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는 날도 부지기수다. 커다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붓을 잡는 동생을 상상해 본다. 백지 위로 깜박이는 커서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나의 마음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곤 한다. 최근 우리의 화두는 예술로의 진입을 알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작품이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든가 책을 출간하고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으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결론이 난다.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인간은 인간이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발끈 소리친다. 이러다 이 집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생명은 강아지밖에 남지 않을 거야! 죽지도 아프지도 않는 애완 로봇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기사는 보리의 귀여움마저 무색하게 만들었지만.인공지능이 두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로봇은 삶의 고난에서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경제적 곤궁에서 허덕이거나 세상에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상대와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나 하는 것 없이 나이만 먹고 있다는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인간은 저마다의 속박에 사로잡혀 필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현실의 문턱에 좌절하며 주저앉기는커녕 계속해서 꾸준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생산해 내는 로봇이 어쩐지 까마득하게 보이는 것이다.처음 사진기가 발명되었을 때도 그랬다. 사진기의 발명과 더불어 회화는 본격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그간 화가들이 그렸던 전원풍경이나 정물 사진을 짧은 시간 내에 또렷하게 찍어낸 사진은 그림보다 훨씬 정교했으며 실용적이었다. ‘이 순간부터 회화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다’고 주장하는 화가들도 있었다.그러나 사진의 등장은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회화의 발전을 가지고 왔다. 그중에서도 신조형주의의 화가 몬드리안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시각적 충격을 주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우주의 진리와 근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사물의 겉모습을 떠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했던 예술가들로 인해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이 탄생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럼에도 의문이 든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까? 가끔은 동생과 내가 가로등을 향해 돌진하는 나방처럼 느껴진다. 빛나는 것에 매료되어 날개가 타는 것도 모르는 존재. 그건 예술에 투신하겠다는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면에서 순진무구한 천진함에 가깝다.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인공지능이 셰익스피어보다 훌륭한 작품을 써내든, 피카소보다 더욱 센세이셔널한 작품을 만들어 내든, 그런 것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몬드리안은 말했다. “나 역시 꽃의 겉모습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하지만 더 깊은 아름다움은 바로 그 안에 있다.” 나와 동생은 ‘더 깊은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그러한 해맑음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새근새근 자는 동생과 강아지를 보면서 나는 그런 것들에 관해 생각한다. 올해 월세 계약이 끝나면 어디로 이사해야 할지, 집필 중인 소설이 완성되기 전까지 모아둔 돈으로 버틸 수 있을지.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괜찮다. 어떤 미래가 찾아오더라도 서로가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지금처럼 손을 잡고 그 시간을 통과해서 가면 되는 것이니.

2023-07-11

부러웠던 광경

강길수 수필가 7월이 왔다. 7월을 맞으며 떠오른 참 부러웠던 장면이 있다. 바로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 광경이다.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빈 방문이라는 상징성도 있었지만, 그보다 미국 상하 양원 의원들이 연설 듣는 모습이 내 맘엔 놀랍고도 참 부러웠다. 미국이 괜히 세계지도국이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전 대통령들의 같은 곳 연설 장면을 볼 때도 비슷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올해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이달 17일은 제헌절이다. 하여, 우리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장면이 떠오른 것일까. 당시 언론 기사엔, 44분 연설에 26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 심야에 중계방송을 다 보았었다. 미 상하 의원 535명이 모두 참석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티브이 화면에 나오는 의원들의 얼굴, 얼굴들 모습에 하나같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배어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국익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마음을 저절로 들게 했다.이 글을 쓰려고, 2017년 11월 8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 동영상을 찾아 시청했다. 연설 중 19회 박수는 있었으나, 기립박수는 한 번도 없었다. 화면에 비치는 우리 의원들 표정은 얼굴 따로, 마음 따로인 것만 같았다. 내 마음 상태 때문인가 싶어 윤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미국 의원들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애국심, 헌신 같은 느낌을, 우리 의원들의 표정에서는 거의 엿볼 수 없었다.국민인 내 눈에 비친 우리 정치권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눈 닦고 보아도 찾기가 어렵다. 국익보다 진영이나 사익만을 추구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입으론 국민만 들먹인다. 우리 겨레의 역사에 ‘사색당파’라는 말이 우연히 생긴 게 아님이, 오늘날 우리 정치권 행태에서도 드러난다. 나라보다 가문과 당파의 이익이나 권세를 앞세웠던 부끄러운 역사가 지금도 유전되고 있는 것일까.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던 6·25 한국동란 때 유엔군은 기꺼이 참전, 국군과 함께 목숨 바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2014년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6·25 전쟁의 한국군과 유엔군의 총피해자는 77만2천608명(한국군 62만1천479명, 유엔군 15만1천129명)이다. 이중 전사자가 17만5천801명(한국군 13만7천899명, 유엔군 3만7천902명)이나 된다.북한군 남침, 중공군 개입, 민간인 피해 등을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에 있다. 6·25 전쟁만 보아도 확실히 그렇다. 만일 누가 북한 체제가 더 좋다면 그는 탈남(脫南)하여 북한에 가면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함께 살며 국민이 주권자인 나라 대한민국이 1인 독재 체제 북한같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부디 우리 정치권이 나랏일 앞에서 ‘포스트 사색당파’란 오명을 벗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장미 만발한 지난봄, 우리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날의 ‘부러웠던 광경’이 제헌절 품은 7월에 정치권과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다.

2023-07-10

세상은 반대에 끌린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1990년대 중반에 SBS에서 방영했던 ‘LA 아리랑’이라는 시트콤 드라마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LA 한인타운에서 살아가는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과 애환을 코믹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드라마는 신(scene)이 전환될 때마다 LA 한인타운의 풍경들을 잠깐씩 비춰주는데, 가로수로 야자수가 심어진 모습, 번화한 거리에 한글 간판이 붙어 있는 모습들이 이국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이 드라마는 ‘아메리칸 드림’의 1990년대 버전에 가까웠던 것 같다.드라마에서는 거의 재현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자리 잡기까지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아시아계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가시적·비가시적 차별이 존재하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기도 하였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중남미계 미국 이주민)의 경우 인구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관계로 이들을 조명하는 문화적 시도들도 많은 반면, 아시아계 이주민에 초점을 맞춘 문화콘텐츠는 매우 드물었다.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화 ‘미나리’, ‘라이스보이 슬립스’나 캐나다에서 대흥행한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계(넓게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 찾기의 문제에 주목하였다.지난 6월 14일 개봉한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또한 아시아계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는 땅, 불, 바람, 물이라는 네 가지 원소들이 모여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를 배경으로 불 종족 여성 ‘앰버’가 겪는 이중적 억압의 문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이야기한다. 작중에서 불 종족은 다른 세 종족에 비해 사회문화적으로 차별받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아간다. ‘엘리멘탈’이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인종차별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집단 내부의 억압과 차이의 문제도 함께 다룬다는 것이다. 앰버는 ‘불’이라는 인종적 정체성에 의해 자신이 대표되는 것을 힘겨워한다. 앰버의 아버지는 그녀가 잡화상을 물려받길 원하지만, 앰버는 이민 1세대인 부모가 힘겹게 일궈낸 것들을 존경하면서도 그것을 물려받아 지켜내는 일에 커다란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면 그들은 동포인 동시에 영원한 타자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이민자 개개인의 목소리와 욕망은 소거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이산(離散)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존중과 함께 그들을 타자가 아니라 사회에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부여하는 동료 시민이자 이웃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급속히 다문화 사회로 진입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엘리멘탈’ 포스터에는 “세상은 반대에 끌린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낯선 것, 다른 것, 이질적인 것들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2023-07-10

지방시대委 출범, 잘사는 지방시대 실현을

윤석열 정부의 지방정책을 총괄할 대통령 직속의 지방시대위원회가 10일 출범했다. 지방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출범하는 지방시대위원회는 앞으로 5년간 정부가 내건 지방시대 국정과제와 지역공약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또 지방시대 종합계획 수립 및 각종 균형발전 시책과 지방분권 과제도 추진하게 된다.윤 대통령의 공약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잘 사는 지방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애타게 갈망하던 지역이 거는 기대감은 높다. 인구감소와 노령화 등으로 도시 자체가 쪼그라드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지방의 이런 기대에 지방시대위원회가 제대로 부응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역대 정부도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국가시책으로 삼고 정책을 수행했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이는 중앙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지자체가 이를 따르게 하는 중앙 주도 방식이어서 지방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지방의 특색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때문이다. 윤 정부의 지방시대위원회는 자치권과 균형발전을 총괄하면서 지방의 주도성을 높임으로써 정책 효과를 키워보겠다는 전략이다.특히 기회발전 특구를 지정해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과 직원에게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줌으로써 수도권에 쏠린 인구를 분산하겠다는 생각은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과거 정부가 그랬듯이 균형발전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기구는 늘 허울에 그칠 뿐이다.윤 정부의 지방시대위가 대통령 자문기구에 그치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를 가지게 한다. 올 연말까지 이전될 것으로 보였던 2차 공공기관 이전이 내년 총선 이후로 밀린 것도 윤 정부의 국가균형 정책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대구경북 등 전국의 지자체는 지방시대위 출범에 여느 때보다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역대 정부와는 다른 윤 정부의 확고한 균형발전 의지가 지방시대위를 통해 실현되기를 바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지방이 회생할 수 있는 정책들이 성과를 내면서 대통령의 말대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

2023-07-10

대구축산물도매시장의 운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축산물도매시장은 대구시 북구 검단동 고속도로 변에 위치해 있다. 대구시민에게 소고기와 돼지고기 및 부산물을 공급한다. 축산물 유통구조 개선 및 신선한 축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구시가 1969년 설립했다. 신흥산업이 1970년 달서구 성당동에 개설된 시립 도축장때부터 운영을 맡아왔다. 도축장은 도시지역 확대와 주변의 주택지화에 따라 악취 공해 및 교통 혼잡을 유발했다. 1981년 4월 서구 중리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2001년 5월 다시 현재의 검단동으로 이전했다.53년 역사의 대구축산물도매시장이 마침내 문을 닫는다. 대구시가 위탁운영 기간이 끝나는 오는 2024년 3월 폐쇄키로 한 것. 전국 70개 도축장 중 유일하게 행정기관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동안 시설 노후화에 따라 개보수 비용이 급증하고 대구시가 인건비 등으로 연간 14억 원의 시비를 부담해 왔다. 인근에 첨단신도시인 금호워터폴리스가 내년 6월 준공될 예정인데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도축장은 이전이나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하루 어미돼지 200마리를 처리했던 대구 도축장이 문닫으면 경북도내에서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 경북 양돈농가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경북 도내 도축장시설 증설이 과제로 떠올랐다. 도축장 폐쇄 시 직원과 중도매인 등 종사자들의 대책도 필요하다. 대구의 대표적 먹거리 명소인 막창 골목도 원료 수급에 비상이다. 묘안을 찾아야 할 판이다. 대구시는 폐쇄될 도매시장 부지(3만7천579㎡)에 도시철도 4호선 차량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다. 입지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4호선 차량기지 문제가 일시에 해결됐다. 대구시는 꿩 먹고 알 먹기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10

의대 광풍의 그림자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의대 광풍(狂風)이 거세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에서 시작된 ‘초등생 의대 진학반’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을 이끌어야 할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휴학·자퇴·재수를 서슴지 않는다. KAIST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과 포스텍의 재학생 중 매년 200여 명이 자퇴 후 상당수가 의대에 가고 있다.이러한 ‘의대 블랙홀’은 심각한 문제이며 원인 분석과 대책이 시급하다. 의대 광풍의 원인은 무엇보다 고소득·안정성에 있다. 공대는 SKY대라도 취업이 쉽지 않지만, 의대는 지방대라도 취업 걱정은 없다. 공대는 고소득자가 되려면 석·박사가 필수지만, 의대는 비인기전공이라도 고소득이 보장된다. 특혜나 다름없는 의사면허증이 사회의 공정성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의대 광풍에도 의사가 없다”는 아우성은 ‘불편한 진실’이다. 의사들이 힘들고 위험한 필수진료과(외과·내과·소아과·산부인과)를 기피하고 돈이 되는 전공(피부과·성형외과·이비인후과)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의 한 종합병원은 연봉 10억을 제시했는데도 심장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신입생 증원, 간호법, 의사면허취소법 등을 반대하고 있으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환자를 인질로 삼아 파업도 불사함으로써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물론 존경받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봉사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도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던 장기려 박사, 94세 임종하는 그 순간까지 소외된 환자들을 보살폈던 한원주 원장과 같은 ‘한국의 슈바이처들’이 지금도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오직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 덕분에 의사들이 존경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처럼 의사들에게는 두 얼굴이 있다. 우리는 의대 광풍에서 ‘빛’이 되어야 할 의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의사가 존경받으려면 돈과 명예가 아니라 희생과 헌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사는 성직자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필수진료과를 기피하고 돈이 되는 전공에 몰리는 의사들의 행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의대 광풍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정부는 의사들의 파업에 굴복하여 18년째 동결된 정원(3천58명)을 대폭 확충하여 붕괴된 필수의료체제를 조속히 복구해야 한다. 기득권이 강화되어 특권층이 되어버린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의사는 생명을 맡긴 환자의 믿음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의사에게는 전문성 못지않게 소명의식이 중요한 이유다.의사의 행복과 소명의식은 적성과 자질에서 나온다. 고소득과 명예에 현혹되어 의대 광풍에 휘둘리는 부모의 욕심은 자녀의 불행을 초래한다. 부모와 선생님의 권유로 2015년 명문 Y대 의대에 들어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서 올해 초 자퇴하고 다시 J대 수학교육과에 입학한 B군의 사례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3-07-10

경주, ‘SMR산업의 중심도시’ 인프라 다진다

경북도와 경주시, 한국재료연구원이 지난 주말(7일)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국재료연구원은 원자력 소부장 업계에서는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 SMR 산업의 허브도시를 꿈꾸는 경주시로서는 꼭 한 배를 타야하는 싱크탱크다. SMR은 특수 극한상황에 견딜 수 있는 내구성 재료와 3D 프린팅 신제작 기술이 필요함에 따라 이 분야 최고의 원천기술을 지닌 연구기관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세 기관은 앞으로 SMR 소부장 기술개발과 제작을 위한 기반 구축, 공인 인증체계 개발, 테스트베드 구축, 전문인력 양성에 협력하고, 한국재료연구원 경북센터 설립도 추진하기로 했다. 경주시는 이미 SMR 산업의 중심도시로 부상할 준비를 차근차근 해오고 있다. 경북도가 국내 가동 원전 24기 중 11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SMR전용 국가산업단지 유치에 성공했다. 동경주 일원에 들어서는 SMR 국가산단은 규모만 150만㎡에 달하고 투입되는 예산도 3천966억원에 이른다. 국가산단이 가동되면 225개 기업이 입주해 SMR 수출시장을 선점하게 된다. 지난해 7월에는 감포읍에 SMR 연구개발 인프라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 건설공사도 시작됐다. 이 연구소는 2025년 문을 연다. 이번에 한국재료연구원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연구소가 더 힘을 얻게 됐다.SMR산업은 미래 전력시장을 주도할 게임체인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앞다퉈 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10년정도 지나면 세계시장 규모가 62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이 1천배 정도 높고 전력을 맞춤형으로 분산 공급할 수 있다. 친환경적이면서 안정적 전력생산이 가능해 정부의 탄소중립 에너지 정책에 부합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언급했지만, 앞으로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중심이 돼 개발할 한국형 SMR이 경주 국가산단에서 생산돼 세계시장을 선점하길 기대한다.

2023-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