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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람들과 개가 함께하는 풍경

김규인 수필가 모델이자 배우인 배정남의 전신마비 반려견인 벨이 1년 7개월간의 재활 끝에 돌아왔다는 보도가 나온다. 인터넷에 벨을 끌어안은 배정남의 기사가 뜬다. 사진이지만 재활의 기쁨을 나누는 배정남의 좋아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유튜브를 통해 벨의 재활 과정을 올리는 모습까지 더해진다.신천을 걷다 보면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걷는 사람을 아이를 태우고 걷는 사람보다 더 자주 본다. 개와 보조를 맞추며 걷는 사람, 벤치에 개와 나란히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 반려견의 개똥을 치우는 사람은 이제 생활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상이다.인터넷에서 반려견을 검색하니 반려견 장례식장, 반려견 동반 자연휴양림, 반려견 무료 분양, 반려견 종류, 반려견 등록 방법, 반려견 산책, 반려견 동반 펜션, 반려견 보험, 반려견 사망신고, 반려견 안락사 등 사람이 필요해서 한 시설들이 이제는 개를 위한 시설로 바뀌고 사람들의 관심사도 개에 관한 이야기다.선거철을 맞아서인지 국회의원의 공약 사항으로 ‘반려견 놀이터 건립’, ‘1만2천명 영등포 반려동물 가족 함께’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개를 키우는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하는 내용이지만 개에 사람들이 밀려난다는 생각마저 든다.개를 키우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늦은 시간에 퇴근하면 발소리만 듣고도 집안에서 현관으로 달려 나오는 애완견의 소리를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가족들은 자기 일을 하느라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과 비교되어서 개를 한 번 더 껴안게 되고 먹을 걸 챙겨주게 된단다.지자체에선 반려견 산책 지역 안전관리 사업을 추진하고 반려견 관절 영양제를 광고하고 사람들은 자신도 먹지 못하는 고가의 식품을 사서 먹인다. 반려견 수술을 위한 혈액 부족 문제를 이야기하고 화재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한 이야기가 떠돈다. 개에 밀려 사람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아이들이 타야 할 유모차를 빼앗고 노인들을 산보시킬 자손들의 옆자리를 개들이 차지한 지 오래다. 소아과병원이 개를 돌보는 병원으로 바뀌고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개를 위한 시설로 바뀌는 요즈음이다. 다리 밑의 벤치에서 산보하는 개를 바라보는 노인들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바라만 본다.사람과 개를 키우는데, 나에 대한 충성심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자식을 키우는 일이 때로는 개를 키우는 일보다 힘이 들지라도 보람된 일이 아닐까. 성장한 자식이 옆에 설 때 듬직함은 자식을 가져본 사람만이 안다.매번 개의 짧은 생명으로 안타까움을 더하기보다는 자식이 있는 풍경이 멋있지 않을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손잡아 주는 건 사람이고 모든 걸 사랑한 당신의 고귀한 유전자를 남기는 것은 자식이다.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향해 조건 없는 충성심을 보이는 동물 앞에 먹이를 내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야 숨길 수 없겠지만 그 옆에 사람이 설 수는 없을까. 사람들과 개가 함께하는 풍경이 더 좋아 보여서다.

2024-03-18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낸 말이다.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유독 저 대사만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괴물로 변하는 주위 사람을 목격하며 사람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기 때문이다.지금 대학가에서는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 출발은 합계출산율의 급감이란 상황이다. 서울에서도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교대의 인기가 예전과 다른 것이 현실이다. 초등학교에 닥친 위기가 몇 년 뒤 대학에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예정된 미래였지만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고, 위기를 눈앞에서 목격하고야 바빠지기 시작했다.얽히고설킨 매듭을 하나씩 풀기보다는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듯 그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이해당사자의 말을 듣기보다는 결정권자가 강하게 밀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마 부분적인 진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특정 집단이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다시 유명해진 ‘하나회’를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해체했듯 말이다.이 정권의 교육 정책은 대학 구성원을 마치 ‘하나회’ 보듯 한다. 정권의 교육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자기 이익 지키기에 급급한 이익 집단으로 취급한다. 자율과 혁신이란 이름으로 ‘글로컬 대학’‘무학과 단일전공’ 등을 추진하며 정작 현장의 목소리는 잘 듣지 않는다.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정책을 불도저처럼 밀어내기에 바쁘고,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인물로 낙인찍고 있다. 어느 순간 감정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의대 정원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하지만 나는 정부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아무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부 정책이 사람을 선동하는 방식과 돈 앞에 괴물로 전락해 버리는 우리들의 초상이다. 모든 정책은 지원금을 동반한다. ‘돈’이란 당근으로 정책에 따르길 요구하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물결 앞에 생명이 위태로운 대학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대학의 보직을 맡으면 평상시 모습과 모순되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유독 돈 앞에 모멸감을 느끼는 횟수가 많아지는 요즘이다. 눈앞의 몇 푼에 부끄러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인 사람이 많은 사회가 정상인 사회라 할 수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영화 속 대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뿐 별다른 대책을 세울 수 없는 무기력만 남게 되는 현실이 말이다. 출산율 급감이 웅변하듯, 이미 우리는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4-03-18

책을 다시 돌보려는 마음

방민호 서울대 교수 꿈을 꾸었다. 무슨 일인가로 나를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쫓겼고, 나중에 잡혔는지 그러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꿈 한가운데 있던 일만 선연히 남았다.어느 큰 파도가 치는 바다로 달려가 뛰어들었다. 밀려오는 파도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나는 마치 서핑을 하는 사람처럼 그 파도 굽이쳐 감기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치 서핑을 하는 사람처럼. 파도는 한없이 크다 해도 좋은 정도였다. 내 키를 열 곱 스무 곱 넘도록 거대하게 솟아오른 파도 속, 그 아래로, 아래로 나는 끝 모르고 파도의 물기둥 벽을 타고 내려갔다.파도는 검푸르다고도, 소랏빛이라고도 할 수 없이 신비로운 어둠에 물들어 있었고, 나는 태양빛을 푸른빛 셀로판지처럼 막아주는 거대한 물기둥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빨려들 듯 내려가는 것이었다.또 다른 내가, 그렇게 아득히 멀어져 가는 내가 마치 하나의 점처럼 작아졌다고 느낄 즈음에 꿈이 깼다.아침이 이미 아주 늦도록 잠들어 있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이광수를 이야기하는 학술대회 자리에 있었고, 그저께는 수업을 하고 박사논문 발표하는 학생들과 밤 늦게까지 함께 있었다. 그 전에는 어땠더라? 잡지 ‘맥’을 교정을 보고 모자란 부분을 기웠다. 그 전에는 우정권 선배가 목월 시 유작들 발굴하는 일, 기자회견 자리에 있었고.눈을 뜨면서, 오늘은 꼭 파주에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책들이 어떻게 되었을까?대학원 학생들에게 다음 주에는 꼭 ‘노동해방문학’ 창간호부터 끝날 때까지 누락된 것 없는 열 몇 권을 다 갖다 보여주겠다고 했다. 벌써 몇 번을 찾아보았는데, 없다. 몇 년 전 학교 건물 4층을 리모델링 한다고 전부 비우라고 할 때, 어디로 갔을까? 파주였을까? 아니면 단체로 보관해 준다는 창고에 휩쓸려가 사라져 버린 걸까?파주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처음 책들을 갖다 둘 때는 주말에는, 2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가서 옮겨놓은 책들을 돌볼 작정이었다. 미련스러운 것이 사람, 욕심껏 사들이기는 했는데, 둘 곳 없을 것은 내다보지 못했다.되도록 햇빛 받지 않도록 하려 했지만 벌써 몇 년째 아직도 유리창에 햇빛 차단용 셀로판 지를 붙이지 못했다. 몇 개 미닫이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먼지에도 속수무책인 책들. 들이는 것만 일이 아니요, 책도 식물을 기르듯, 화초를 기르듯 물 주고 돌봐야 하는 것을, 몰라도 너무 모른 무지의 나날들이었다.어디로 갔을까? ‘노동해방문학’은 무크지 황토빛 ‘실천문학’도 낙질은 있지만 분명 잘 두었었는데….그런데, 있다.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던 책들이 오늘 책장 맨 하단 구석에 그대로 꽂혀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바로 이런 일을 두고 말함인가 한다.내친 김에 어지럽게 꽂혀 있는 아이들을 이제는 다시 마음 잡고 돌보기로 한다. 앞에서 물을 준다 했지만, 이 아이들은 습기도, 햇빛도, 추위도, 먼지도, 몹시 힘겨워 하는 애들이다.나의 삶의 증명 같은 아이들. 나와 같이 깊은 바닷속 같은 심연을 향해 함께 가는 아이들. 이제 다시 물을 주고 돌봐 주기로 한다. 더 알뜰하게 가꿔 보기로 한다.

2024-03-18

TK 낙하산공천은 ‘묻지마 투표’가 낳은 産物

국민의힘이 전국 254개 지역구 후보 모두를 확정하면서 4·10 총선 공천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번 공천에서 현역 의원 114명(비례대표 23명 포함) 중 40명이 공천을 받지 못해 35.1%의 교체율을 기록했다. 21대 총선 때의 현역 교체율 43.5%보다 크게 낮아 현역 위주 공천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TK(대구경북)지역도 사실상 현역 중심으로 공천이 마감됐다. TK지역 현역 교체율은 역대 최저인 36%로, 지난 21대 총선 교체율 64%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요한 혁신위’ 출범 당시부터 중진희생론이 강조됐지만, 대구의 3선 이상 중진 의원과 경북의 재선 의원들도 모두 공천장을 받았다. 용산 참모 출신 중에는 강명구 전 대통령실 비서관(구미을)과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영주영양봉화), 조지연 전 대통령실 행정관(경산) 등 3명이 공천을 받았다.TK지역 공천은 막판에 ‘국민추천 프로젝트’와 ‘재공천’이라는 명분으로, 유권자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인물들을 대거 공천하면서 낙하산 공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주말 이뤄진 대구 북구갑과 동구군위갑 국민추천 후보와 중남구 재공천 후보는 대부분 대구시민에겐 낯선 인물들이다. 지역에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TK지역은 누구를 공천해도 당선이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약속했던 ‘시스템공천’과는 거리가 먼 여당의 막바지 공천 결과를 보면서 TK지역민이 느끼는 실망감은 크다.같은 영남권이면서도 PK(부산경남울산)지역과는 다르게 정치적 획일성이 강한 TK지역의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와 21대 국회를 장악한 야당에 대한 평가를 하는 선거다. TK지역 유권자들도 이제 정치적 소외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묻지마 투표’를 지양할 때가 됐다.각 당이 내놓은 후보자 중 누가 민심을 잘 대변할지를 꼼꼼히 분석한 후 투표를 해야 한다.

2024-03-18

산불과 영농부산물 파쇄

홍석봉 대구지사장 매년 3, 4월이면 우리나라는 산불로 홍역을 치른다.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산불 비상이 걸렸다. 산림 당국은 지난 주 산불 경보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하고, 산불 감시 활동 강화에 나섰다.지난해 우리나라에는 596건의 산불이 발생, 4천992ha의 면적이 피해를 입었다. 2022년엔 756건, 2만4천797ha의 피해가 발생했다. 역대 가장 많은 피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간 연평균 567건의 산불이 발생, 4천4ha의 산림을 불태웠다. 지난해 발생한 산불 596건 중 56건이 농산 부산물을 태우다가 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요즘 농촌에는 지난해 수확이 끝난 영농 부산물을 태우거나 잘게 부수는 작업이 한창이다. 영농부산물 파쇄는 봄철 산불의 주요 원인인 불법 소각을 하다가 내는 산불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문경시가 ‘찾아가는 영농부산물 안전처리 지원사업’을 추진, 관심을 모은다.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찾아가는 영농부산물 안전처리 지원사업’은 산림인접지, 영농 부산물 파쇄가 필요한 65세 이상 고령층 및 취약계층이 우선 지원 대상이다. 3인 1조의 부산물 파쇄지원단은 농장을 방문해 사과, 오미자 등 과수 전정가지 및 영농부산물 잔량을 수거, 파쇄를 대행해 준다.특히, 산불 발생이 많은 3~4월에 집중 추진해 산불 예방과 소각으로 인한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다. 또 영농부산물을 파쇄 후 농경지와 과수원에 뿌려 퇴비로 쓰면 토양에 유기물을 공급하고 비옥도가 높아지는 등 자원순환 효과가 기대된다. 산불과 미세먼지도 잡고 퇴비화까지 1석 3조의 효과를 보는 영농부산물 활용이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18

의대 증원, 안동대·포스텍 의대 신설 포함해야

도농 복합지역인 경북이 가진 가장 취약한 분야 중 하나가 의료다. 경실련이 작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경북은 지역 차별없이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지역으로 분류됐다. 전국 17개 시도 대상으로 책임의료기관의 의사수, 책임공공병원 설치율, 치료가능 사망률 등을 분석한 결과였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수를 인구 1천명당 의사수로 환산하면 경북은 0.55명이다. 전국 평균(0.79명)보다 훨씬 낮다. 치료가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진다면 살릴 수 있는 죽음도 전국평균(43.8명)보다 높은 46.9명으로 조사됐다.경실련 조사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자료는 많다. 서울연구원에 의하면 개인병원수 비율이 경북은 0.5%로 전국 꼴찌다. 서울은 27.1%다. 경북의 11군데 군지역은 소아청소년과가 없다. 또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도내 의사 평균연령은 서울(45.7세)보다 5.2세가 높은 50.9세다.경북도가 2026학년도 목표의 안동대 국립의대, 포스텍 연구의대 신설의 필요성과 설립 계획을 정부에 공식 제출했다고 한다. 정부가 2025학년도 신입생 기준 의대 정원을 현재보다 2천명 더 늘리기로 한 것과 관련해 두 대학의 의대 신설을 요청한 것이다.위에서 지적한대로 지역의료 취약성 보완을 위해 의과대학 설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와 인력 확보를 위해 도내 의대 신설이 필요함을 오래전부터 역설해 왔다. 특히 그는 “포스텍의 연구중심의대는 반도체나 스마트폰을 대신한 미래 바이오산업 육성과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신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세계적 명문인 포스텍은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관련 인프라도 충분하다. 정부도 필수의료와 의료격차 해소 등을 이유로 의료계의 반대에도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전체 증원규모 가운데 80%를 비수도권에 둔 것도 비수도권의 취약한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서다. 정부 의대증원 계획에 안동대와 포스텍의 의대 신설이 포함되는 것은 의대정원 확대의 명분에도 부합한다.

2024-03-18

서남 전라도 서사시 ‘그라시재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여항의 사람들을 탐구한 언어 풍경화가 한 권의 서사 시집으로 꾸며졌다.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이소노미아, 2022)에서는 전라도 서남지방 할머니의 목소리가 벼랑 끝에서 살아남은 하얀 민들레 씨방의 솜털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한 섞인 억양과 까칠하고 쉰 목소리의 사투리 시편을 조정 시인이 서사적 조정자로 개입하여 유장한 한 권의 신화같은 시집으로 묶었다. 전라도 할머니들의 어둔한 사투리 문법은 한 많은 삶을 끈질기게 버텨내며 살아남아 당신들의 말이 표정이 되고 시가 되었다. 갈라지고 쉰 목소리는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판소리가 되었다.산속에서 울려오는 산바람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간이 알맞게 밴 방언 속에는 죽음보다 더 짙은 비극 속에서도 간간이 희망의 목소리가 끼어있음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어떻게 할머니들의 일상적 회상의 언어가 시가 될 수 있을까? 표준어로 변복도 하지 않은 차림으로 이 세상으로 걸어 나왔을까? 평생 이름대신 태어난 마을의 지명으로 가려진 존재였던 여자들,‘진주떡(댁)’, ‘순천떡이’, ‘화순떡이’, ‘보성떡이’로 서로 호명하는 시적 화자의 언어를 받아쓰기해 낸 조정 시인은 행간과 행간에서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여러 첩의 병풍 속 풍경화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념과 권력의 헤게모니 쌈박질로 굴곡진 현대사에서 검게 물든 핏빛 전라도 여항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진다. 때로는 역사의 흔적이 되어버려 두려운 기억들을 그리움이나 슬픔의 언어로 담담히 깨워내기도 한다.‘그라시재라’는 ‘그러믄요’, ‘그럴 수밖에요’라는 체념이 담뿍 담긴 전라도의 관습적 언어다. 동네마다 사람마다 같고도 다른 모양으로 남아 있는 깊은 상처가 이 한마디에서 이렇게 크게 울려 나오다니? 상대 존대의 화법 ‘그라시재라’는 겸허하고 수수한 전라도 토속의 정서와 태도를 한마디로 보여준다. 가래침 소리가 섞인 할머니의 낮은 자세, 내 뜻보다 그대의 뜻을 더 존중한다는 전라방언의 울림이 전라도에서 지리산을 넘어 경상도까지 넘어 온다. “천지에 아는 사램 한나 없는 디서 머슬 보라꼬 살것능가?”의 어말어미 ‘살것능가’는 경상도의 ‘살겠능개’, ‘살겠능교’로 이어져 있다. 방언은 경계를 허물고 손에 손잡고 이어져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원래 다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다만 지역과 계급을 나누어 차별하는 동안 달라졌을 뿐이다. 몸속에 숨어서 핏줄처럼 살아 있는 할머니의 방언은 원래 한가락이었다. “어야 덕진떡(댁) 자네 친정엄니는 고향이 으디시당가?/예 금정이라 어째 그라쏘?/보 성님도 이상하셌지라? 나허고 같은 생각 하셌고만이/덕진떡 엄니 말씨가 쪼깐 귀에 설드랑께요./갈에 우리집 콩 뚜듬서 이약헌디/항, 항허고 답을 허시등만/매 한말이이다 허고 봉께/아먼 그라재 헐 대목이서/항, 항 그라시드랑께”‘새야 새야 파랑새야’란 시에서 같은 전라도라도 친정이 달라 서로 말씨가 조금 다른 것을 느끼는 시적 화자들의 대화다. 서남전라방언에서는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으로 ‘그라재’로 말하지만 동남전남방언을 쓰는 덕진댁의 말은 ‘항’, ‘항’이니 말씨가 서로 귀에 설게 들린 모양이다. 이 말이 태백줄기를 넘어 경상도로 들어서면 ‘하모’, ‘하머’로 나타난다. 방언학을 전공한 나에게 조정의 이 시편들은 마치 방언지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가야와 제주지역에서만 ‘파리’를 ‘포리’하고 ‘팔’을 ‘폴’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전라도에서도 ‘남’을 ‘놈’이라 하니 ‘아래 아’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징하게’(매우, 찡하게), ‘보타지것네’(몸이 마르네), ‘느자구’(싹수), ‘끼께’(끌리어), ‘뿌사리’(황소), ‘태끼래지다’(그릇 이가 빠지다)와 같이 전라도 방언사전 없이는 해독이 어려운 방언이 난무한다. 경계의 표지도 없고 무지해 보이기만 하는 변두리 기층민들의 말씨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묘하게 정겹고 살가운 말씨들에서 역사의 흔적과 사건의 서사가 바람처럼 드나든다. 오래된 나무에 깊이 박힌 옹이, 말의 옹이가 차진 송진을 뿜어내듯 우리 말결을 윤이 나도록 눈이 부시도록 풍요롭게 해 주고 있다. 이 책의 편집자의 말을 빌면 방언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표준말로 통일되기 전에도 이미 전국을 자유롭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조정 시인은 이 시집으로 표준어라는 한 가지 꽃만 피어있는 언어의 독방이 아닌 다채롭게 화석화된 방언의 깊은 지층을 우리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았다.

2024-03-18

일본 성터에서 발견한 러시아 금화

마쓰야마성에서 내려다본 마쓰야마 시내. 일본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실제로 2024년 1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268만8100명) 가운데 한국인은 가장 많은 85만7000명을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추세로 가면, 올해에는 일본 방문 한국인 관광객 수가 역대 최대인 1000만 명을 넘길지도 모른다고 합니다.최근에 유명 관광지인 오사카의 도톤보리나 도쿄의 센소지 등에서는 한국어가 일본어만큼이나 많이 들린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제가 실제로 한국인의 뜨거운 일본 관광열을 확인한 것은, 2024년 1월 28일 한국과 일본의 고전문학을 전공한 C·Y교수와 마쓰야마(松山) 공항을 나왔을 때입니다. 공항을 나선 저희 일행 앞에는, 무려 세 대의 대형버스가 한국인 관광객을 마쓰야마 각지로 실어 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에히메현(愛媛県)의 대표도시인 마쓰야마 시내로 들어서자, 가츠산(勝山) 산정에 자리 잡은 마쓰야마성의 혼마루(本丸, 성의 중심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숙소인 비즈니스 호텔의 욕탕에서도 보이던 마쓰야마성은, 마쓰야마 시내 어디를 가든 보였는데요. 3박 4일 내내 마쓰야마성을 보며,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판옵티콘(panopticon, 일망감시체제)이 떠올랐습니다. 판옵티콘은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고안된 원형 감옥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모든 죄수들은 감시자가 머무는 중앙을 바라보지만, 감시자가 머무는 곳은 늘 어둡게 처리하여 죄수들은 감시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는다고 느끼게 되며, 그 결과 나중에는 감시자들이 원하는 규율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어쩌면 일본에서 성은 외적을 방어하는 목적보다도 영지에 사는 평민들에게 웅장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주의 권력을 각인시키는 목적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목적에서라면 세토나이해(瀬戸內海)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쓰야마성은 참으로 빼어난 성임에 분명합니다.이름난 무장이었던 가토 요시아키가 1602년에 축성을 시작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완성된 마쓰야마성은 일본의 3대 연립식 평산성(산성과 평지성의 중간쯤으로 구릉지와 평지를 각각 일부씩 포함한 성곽) 중의 하나입니다. 마쓰야마성은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요, 해발 132m의 가츠산 정상에는 혼마루가, 산기슭에는 니노마루(二の丸, 영주의 거주공간)와 산노마루(三の丸, 가신들의 저택)가 짜임새 있게 펼쳐져 있습니다.우리 일행은 에도 시대에 건축된 천수각으로 유명한 혼마루을 구경한 후에, 과거의 니노마루를 복원한 니노마루사적공원을 산책했습니다. 일본 특유의 정원미가 가득한 공원을 거닐던 저는 흥미로운 안내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내판은 거대한 우물 옆에 놓여 있었는데요.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매립되었던 우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제정 러시아 시대의 10루블짜리 금화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금화에 러시아인과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인데요. 일본의 전통 정원에서 러시아 금화가 나온 것이나, 거기에 러시아인과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 등이 모두 이해되지 않아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제 의문은 한국에 돌아와 박삼현 교수가 쓴 ‘마쓰야마, 언덕 위의 구름’(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서해문집, 2022)이라는 글을 만나면서 비로소 해소되었는데요. 박삼현 교수에 따르면, 러일전쟁 당시 마쓰야마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러시아군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당시 마쓰야마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4천여 명의 러시아군 포로가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마쓰야마 사람들과 러시아군 포로들의 일상적 교류도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마쓰야마성의 니노마루를 복원한 공원의 우물에서 러시아 금화가 발견될 수 있었다는 것인데요. 여러 조사를 통해, 금화에 이름을 새긴 러시아인과 일본인은 각각 당시 포로가 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러시아군 장교와 그를 간호하던 일본인 여자 간호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금화가 발견된 이후 마쓰야마의 니노마루공원은 연인들이 프러포즈를 하는 성지가 되었고, 2019년에는 금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소로킨이 본 사쿠라’까지 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는 일본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제작했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니노마루공원의 바로 옆에 있는 반스이소(萬翠莊)의 곳곳에도, 반스이소에서 ‘소로킨이 본 사쿠라’가 촬영되었음을 알리는 사진이나 문구가 전시돼 있었습니다.프랑스풍 르네상스식 건물인 반스이소는 마쓰야마 영주의 자손인 히사마쓰 사다코토가 1922년에 지은 이후, 사교장으로서 그 명성을 떨쳐온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일본 중요문화재로도 지정된 반스이소를 각계의 명사들은 물론이고 천황이 방문하기도 했지요. 일본의 성터 우물에서 발견한 러시아 금화를 보며, 어쩌면 인류는 늘 깊이 연결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4-03-18

자만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김진국 고문 얼마 전 대구에 사는 지인이 전화했다. 국민의힘이 과반을 차지한다고 믿었는데, 그 많던 표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선거 초반 국민의힘이 기세였다. 민주당이 비명계를 몰아내고, 친명계 일색으로 공천하느라 비난을 많이 받았다.거기와 비교하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아이돌처럼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사진을 함께 찍으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성급한 보수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과반 확보가 당연한 듯이 예측했다. 그런데 민주당 한병도 전략기획위원장은 15일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130~140석을 얻는다고 전망했다. 현재 지역구 의석은 254석, 비례대표 의석은 46석이다. 지역구 절반은 127석. 결국 민주당 계열이 과반을 차지한다는 의미다.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자. 비례대표 투표 정당을 묻는 설문에 국민의미래(국민의힘 위성정당) 34%, 더불어민주연합(민주당 위성정당) 24%, 조국혁신당 19%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4%인 개혁신당을 포함해 3% 문턱을 넘은 정당에 비례의석을 나누면 국민의미래 19석,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1석, 개혁신당 2석이 된다. 민주당이 최소치로 전망한 130석만 얻어도 단독 제1당이다. 조국혁신당을 합치면 과반인 155석. 개혁신당도 윤석열 정부에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지역구로 가면 더 어렵다. 같은 조사에서 ‘여당이 더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서울에서 31%, ‘야당이 더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8%다. 인천·경기에서는 32% 대 55%로 역시 민주당이 유리했다. 지역구 의석은 서울 48석, 인천 14석, 경기 60석으로 수도권만 모두 122석이다. 그 지인 말처럼 며칠 사이에 왜 흐름이 바뀌었나. 수도권은 미풍에도 판세가 뒤집힌다. 1천표 이내로 당락이 결정되는 곳이 많다. 그런데도 여권이 긴장의 끈을 놓았다.수험생이 있는 집에서는 걸을 때도 조심한다. 선거를 앞두고 출국금지 상태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왜 굳이 이 시점에 출국시키려 했을까. 한덕수 총리는 안보 협력이 긴요해 빨리 내보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최대 안보 협력국인 일본 주재 대사를 2년 반 만에 내보냈다. 당연히 의회청문회 등 절차를 모두 거쳤다. 주한 미 대사도 1년 반 만에 부임했다.영남권 민심만 따진다면 도태우·장예찬 후보를 공천하는 게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선거 전체 판세를 보고,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 선거는 자만하면 진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재검토를 지시하고, 공관위는 이를 뒤집고, 여론이 비등하니 다시 뒤집었다. 중도층뿐 아니라 지지층에서도 불만이 터지는 계기를 만들었다.명품백 사건도 영부인이 빨리 사과하고 털었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오히려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전략공천하려던 김경률 비대위원만 찍어냈다. 한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선거 구도가 이재명 대 한동훈 대결로 바뀌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지방으로 다니며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로 만드는 게 국민의힘에 유리한 걸까.의대 증원 문제도 불안하다. 의사들 주장대로 선거를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노림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이 있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초반의 높던 증원 지지율이 점점 내려간다. 피로감이 쌓인다. 선거와 얽히면 야당 지지자들이 돌아설 수 있다. 진료 공백으로 인해 사고가 터지면 불만 여론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로 향하게 된다.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황상무 대통령 시민사회수석의 폭언도 해이해진 대통령실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는 “MBC는 들어”라면서 군인이 비판적 기자를 칼로 테러한 사건을 들먹였다고 한다. 황 수석은 농담이었다고 하지만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다. 이러고도 선거에서 이긴다면 기적이다. “대통령실에 야당 프락치가 있는 것 같다”라는 한 보수 인사의 개탄이 실감 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17

커밍아웃이 필요 없는 세상

유영희 작가 ‘삼국유사’에는 임금님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다가 죽기 전에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이야기의 교훈은 권력자의 횡포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임금님 같은 권력자라도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알까, 장인이 발설할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권력자라도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 하거나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이렇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혼자만 또는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데는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정보가 알려졌을 때 자신이 심한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는 몇 배 가중될 것이다. 그런 사람 중에는 성소수자들도 있지만, 특정 질환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커밍아웃의 부담을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간다.치매 역시 너도나도 밝히기를 꺼리는 질환이다. 한국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 환자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대처 방법을 눈여겨보게 된다. 김웅철의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의 첫 장에는 스타벅스가 어떻게 치매와 만나는지 소개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치매 환자의 가족은 물론, 치매 당사자와 간병인, 전문가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모여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이것은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치매 정책 5개년 계획에 2025년까지 일본 전역에 치매 카페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세운 후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공공시설이나 빈 가게를 활용하다가 최근에는 스타벅스가 나서서 치매 카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도쿄 근처 마치다 시에는 치매 카페를 의미하는 D-카페 푯말이 붙은 스타벅스가 8곳이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고령의 치매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라고 한다.치매 카페에서도 이들을 특별히 따로 구분하지 않아서, 일반 손님과 자연스럽게 섞여 어울리니 주민들도 치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스타벅스는 이것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장소로 운영한다고 한다. 일본 상황을 잘 아는 지인에게 들으니, 일본에는 치매 환자들의 토론대회도 있다고 한다.2021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10%, 85세 이상은 40%라고 하니, 더 이상 쉬쉬할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주변에는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누가 진단이라도 받는 날이면, 가족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치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환자를 일상에서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당나귀 귀처럼 생긴 귀를 가지고 있어도 기꺼이 두건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2024-03-17

청소의 마력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불교 용어 중에 깨달음이라는 용어가 있다. 깨달음은 특정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임을 이해하고 세계적인 이해와 평화로운 정신상태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는 ‘나는 나 이외의 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를 늘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 즉 태양 공기 물 동료와 같이 나 이외의 것이 없으면 내가 지금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기에 늘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은 하나라고 하는 불교의 세계관과 모든 일은 연결되어 일어난다는 연기법과도 일맥상통한다.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윌슨(Kelling Wilson)에 의해 1982년 발표된 깨진 유리창의 법칙도 연기법의 일종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나중엔 지역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시에서는 지저분하고 낙서 투성이로 범죄가 끊이지않던 지하철 내부 벽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작은 범죄부터 엄격히 단속하여 깨진 유리창을 바로잡아 나가는 방식으로 도시 전반의 치안을 개선하는데 성공한 예가 있다.제조 현장의 관리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제철소의 경우 제품 생산을 문제없이 하기 위해서는 설비를 포함하여 운영에 필요한 자재류와 작업 도구 작업장이 항상 깨끗하고 일하기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유지관리 점검을 해보면 공장 주변의 통로나 사무실 환경 등이 깨끗하게 관리되는 공장은 현장 설비와 그 주변도 잘 정리정돈 되어있고 항상 깨끗하게 관리된다. 특히 대대적인 청소를 통해 깨끗하고 먼지가 없는 새공장만들기를 추진한 공장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공장이 깨끗해지니 이상하게 불량과 고장이 줄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청소를 하찮은 활동으로 여기는 직책자나 직원들이 많은 공장을 보면 현장이 빠르게 지저분해지고 화재나 사고 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깨끗한 공장은 모두가 공들여 만든 작업장과 설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며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거나 사용한 자재나 치공구를 방치하지 않고 정해진 위치에 두고자 노력한다. 이런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각자의 마음가짐을 바꾸게 되고 개인은 스스로 하고있는 일에 대해서도 정리 정돈하여 효율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습관으로 이어져 현장은 더 깨끗해지고 자연스럽게 불량과 고장의 감소까지 연기되어 일어나는 것이다.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이런 청소의 마력을 직책자나 선배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그리고 누구든 활동을 안하면 그 당시는 편하기에 하지않으려 하고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이 서로가 알면서도 방치하게 되어 서서히 지저분한 환경이 되고 사고나 문제 발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면 이를 조치하기 위해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따르게 되며 이 과정에서 재해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지게 된다. 그렇기에 청소는 나와 동료의 생각을 바꾸어 주고 재해 위험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마법과도 같은 활동인 것이다.

2024-03-17

여당의 ‘국민추천제 공천’ 긍정·부정론 교차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지난주 여당 텃밭인 대구 동구군위갑과 북구갑, 서울 강남갑·을, 울산 남구갑 등 5개 지역에 국민추천을 거쳐 심사한 후보자들을 공천했다. 이 제도의 당초 목적이 지역구 공천에서 소외된 여성·청년 후보군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공천 결과는 별로 유권자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국민의힘 국민추천 프로젝트에는 모두 180여 명이 직접 신청하거나 제3자 추천을 통해 참여했다.대구 동구군위갑에는 최은석 전 CJ제일제당 대표이사, 북구갑에는 우재준 변호사가 후보자로 뽑혔다. 정영환 공관위원장은 최 후보에 대해서는 “글로벌 기업을 운영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지역경제 활성화, 국가 발전을 도모할 전문 인재로 추천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우 후보에 대해서는 “대구시 감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는 평가와 함께, 청년(1988년생)의 시각에서 새로운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기성세대와 미래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에 앞장서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공천 과정에서 현역 의원 위주의 공천을 해 청년과 여성, 정치 신인이 배제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경선 위주의 시스템 공천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청년과 여성, 정치 신인에게 불리한 공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쌍특검법’ 재표결 이탈표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천이라는 비판의 소리도 들었다.이처럼 ‘비개혁적 공천’이라는 비난을 만회하기 위해 나온 게 오디션 공천 방식인 국민추천 프로젝트다. 대구·경북 정치권에서는 지난 15일 공개된 후보들을 두고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치색이 전혀 묻지 않은 신인이 발굴돼 지역정계에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긍정론과 기성정치권을 뛰어넘는 차별적인 역량을 찾아볼 수 없다는 부정적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여당이 처음 시도한 국민추천제가 결국 ‘전략공천’이라는 비판도 큰 만큼, 앞으로 제도 개선을 통해 당 지도부의 공천권 전횡을 막는 제도로 정착하길 바란다.

2024-03-17

“말이 씨가 된다”

우정구 논설위원 중국 당나라에서는 관리를 등용하면서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네 가지 기준을 사용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바로 그것이다.신(身)은 풍채와 용모를 뜻한다. 얼굴에서부터 총기가 서려 있고 똑똑함이 묻어나고 마음도 선해 보이는 것을 말한다.언(言)은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란 뜻이다. 생각과 말이 합리적이어야 다른 사람을 이해 설득시킬 수 있다.서(書)는 글씨를 잘 쓴다기보다 자기 생각을 올바르게 표현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판(判)은 그 사람의 판단과 결단을 의미한다. 성공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정확하고 합리적 판단을 잘한다는 것이다.오늘날에도 이 네 가지는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원용이 되고 경우에 따라 신입사원 선발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네 가지 기준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는 것은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여기서는 말(言)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총선을 앞두고 막말 논란으로 여야 간 공천 취소 사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공천을 딴 후보가 지난날 생각없이 던진 말이 씨가 돼 공천이 취소되는 일이 여야 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유대인의 교육 지침서인 탈무드에는 “인간은 입은 하나요 귀는 둘이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말을 신중하게 하지 못해 낭패를 당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구설수(口舌數)라는 게 그런 것이다.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말은 하기에 따라 상대를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지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막말로 공천이 취소된 후보자들에겐 말이 씨가 된 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17

봄꽃 피어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대 창창한 시절엔 여름이 제일 좋았다. 청년 시절 누구나 그렇듯 관념론에 빠져 있던 터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있는 ‘부패는 만상의 본질’이란 구절에 마음을 뺏긴 까닭이다. 열렬한 속도로 생장하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의 빠르기로 부패와 소멸이 진행되는 계절이 여름인 까닭이다. 양극단의 두 얼굴의 계절, 여름을 찬양하라!중년에 접어들자 겨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한여름의 눅진한 습기와 극복 불가능한 열기, 그것들이 자아내는 무기력과 타락의 분위기가 현저히 역겨워진 것이다. 그러나 겨울은 어떤가?! 피부를 뚫고 스며드는 한기(寒氣)가 내장을 서늘하게 인도하고, 이마를 때리는 설한풍은 영혼을 맑게 정화한다. 공부 좋아하는 학자들이여, 겨울을 찬미하라!다시 세월이 흐르고 귀밑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자 사정이 달라진다. 누가 뭐래도 봄을 기다리게 된 터다. 10년 전부터 촌으로 이주한 후에는 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부쩍 깊어진다. 10월 말 11월 초에 누렇게 변색한 잔디와 곳곳에 나부끼는 낙엽이 전하는 처연함과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초로의 인간이여, 봄을 목청껏 노래하라!지난 1월 초에 마주한 후배가 네덜란드 출신 알뿌리 서른 알을 넘겨준다. 봉투에는 튤립, 히아신스, 크로커스, 무스카리의 네 가지 이름이 적혀 있다. 매서운 칼바람 부는 시절에 땅을 파고 알뿌리 심는 일은 차일피일 미뤄진다. 그러다가 후배 전화를 받고 심는 작업에 착수한다. 물까지 듬뿍 준다. 그 이튿날부터 기온이 급강하한다.그때부터 2월 하순까지 달포 가까이 속앓이를 했다. 미숙한 주인 만나 유럽에서 건너온 네 종류의 어여쁜 구근(球根)이 얼어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몹시 괴로웠다. 그러던 차에 녀석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게다. ‘청도 인문학’을 시작한 2월 20일 무렵 일곱 개의 초록 초록한 얼굴이 나를 향해 웃는다.날이면 날마다 녀석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수효를 헤아리는 게 일상이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환희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3월 14일 녀석들 전방에 자리한 수선화가 노란 꽃망울을 화사하게 터뜨리더니, 히아신스와 크로커스가 뒤를 따라 하늘로 몸을 연 것이다. 눅눅하던 마당의 분위기가 일신(一新)한다. 몇 송이 꽃의 개화가 전해주는 생동감과 환희라니!한겨울 추위를 겪지 않으면, 줄기는 자라나지만,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한다. 뉴질랜드에 사는 교민이 개나리가 그리워 옮겨 심었으나 결국 꽃은 보지 못했다 전한다. 그곳의 겨울이 우리의 겨울보다 온화한 까닭에 몸체는 생겨나 자라났지만, 꽃은 피우지 못했다는 얘길 듣고 생각나는 게 적잖았다. 가혹한 시련이 사람도 꽃도 만드는 모양이다.이번에 피어난 크로커스와 히아신스를 보면서 봄이 깊어지면, 튤립과 무스카리도 여기저기서 환하게 피어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환해진다. 만상을 보는 계절 ‘봄’을 화려하고 은성(殷盛)한 축제로 만들어주는 봄꽃을 보면서 저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절이다.

2024-03-17

의료계 집단행동 한 달…醫·政은 대화 나서야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시작한 지 18일로 한 달째다. 정부의 의대생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한 달이 지났으나 여전히 양쪽 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정부는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사전 통지서 통보에 이어 의대 정원 증원분 2천명에 대한 배분 작업에도 들어갔다. 여전히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의료계도 전공의들의 사직에 이어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이 시작됐고, 25일부터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 사직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가톨릭 의대 교수 90%가 전공의의 불이익이 발생할 땐 사직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보였고 전국 의대교수들도 비슷한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종합병원의 수술과 가동률이 떨어지고 암환자 등의 수술이 줄줄이 미뤄지고 있다.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한다면 의료공백이 훨씬 커질 것은 뻔한 일이다. 대구시가 전공의 의료공백과 개원의 집단행동 등에 대비해 비상진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지난주에는 국가거점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가 의·정 사태와 관련 호소문을 발표했다. 총장협의회는 “의·정 갈등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로 번지고 있다”며 “정부는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정부와 의료계는 열린마음으로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호소했다.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한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환자들의 불안감이 극도로 심해지고 있다. 의대교수들의 사직이 시작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의료현장의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환자들이 받을 피해가 상상이 안 된다.의대 증원은 본질적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정상화에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말고 본질적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야 한다.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 정지와 의대생에 대한 유급으로 정부와 의료계 모두가 얻을 게 없다. 의료 현장만 황폐해 질 뿐이다. 시간을 더 끌지말고 의·정은 조속히 대화에 나서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2024-03-17

영일만항의 크루즈 취항, 행정이 적극 나서야

최근 포항 영일만항의 국제대형여객선 취항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관리청인 포항해양수산청에 대한 지역 관광업계의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본지 3월 11일자 보도) JS해운과 두원상사 등 국내 유명 여객선사들이 최근 1년 동안 크루즈사업을 위해 포항 영일만항 취항을 목적으로 사업면허 신청까지 진행했으나 지지부진한 여객터미널 공사 문제로 결국 취항을 포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JS해운은 강원도 속초항으로, 두원상사는 부산항으로 사업지를 옮겨 가버린 것.영일만항의 여객터미널은 2022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 등이 선사 미입점을 우려해 선사 입점 후 공사완공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 바람에 선사가 입점한 후에도 세관검사, 출입국 관리, 검역 등 추가공사로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선사 입점 후 공사완공 때문에 국내 대형선사의 영일만항 유치는 실패로 끝난 셈이다.모처럼 관광산업 활성화를 기대했던 지역관광업계가 불만을 터뜨린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이런 상황 속에 포항시도 타 지역과는 달리 크루즈산업 육성에 무관심한 것이 선사 유치 실패에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전남도와 강원도는 국제해상여객 운송사업 진흥 조례 등을 만들어 여객선사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충남 서산시의 경우는 크루즈여행 불모지에다 국제여객터미널이 없는 악조건에서도 시당국의 노력으로 대신항을 출발해 일본 오키나와, 대만 기륭 등을 거쳐가는 크루즈사업을 유치했다.크루즈산업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수요가 급부상하고 있다. 크루즈 한 척 승객수는 항공기 15대와 맞먹는 관광 효과가 있다. 새로운 국제여행사업으로 각광을 받는 크루즈산업에 대한 행정당국의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특히 영일만항을 보유한 포항으로서는 적극적인 선사 유치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포항은 크루즈산업을 지역 관광산업의 중심에 두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 봄 직하다. 영일만항을 활용한 관광진흥책 마련 등에 당국의 관심과 적극 행정이 필요한 때다.

2024-03-14

세계서 가장 비싼 한국 사과

우정구 논설위원 전세계 물가를 비교할 수 있는 웹사이트인 넘베오(Numbeo)에 의하면 한국의 사과값은 전 세계 1위다.한국 사과 1kg의 가격은 6.77달러로 웹사이트에 올라온 94개국 중 으뜸이다. 다음으로 스리랑카(6.27달러), 미국(5.32달러), 자메이카(5.22달러)가 뒤를 이었다. 94개국 평균 사과값은 2.34달러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지난달 우리나라 과일 물가 상승률은 40.1%다. 통계청에 따르면 과일 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상승률(3.1%)보다 37.5%포인트나 높았다. 과일 물가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85년 이후 약 40년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품목별로는 귤이 78%로 가장 높았고 사과 71%, 복숭아 63%, 배 61%, 감 55.9%, 참외 37.4%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과값은 지난해 이후 지속 폭등하면서 대체재인 다른 과일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고 한다. 문제는 사과값이 이처럼 폭등을 해도 당분간 안정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과 수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검색 절차상 당장 어려워 수입 사과는 기대가 힘들다.사과값이 폭등한 이유는 기후이상에 따른 수확량 감소 때문이다. 특히 사과는 재배면적까지 줄면서 작년 동기보다 가격이 120%나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앞으로 9년 후면 국내 사과 재배면적이 축구장 4천개 면적만큼 줄 거라 했다.과일은 비타민, 섬유소, 미네랄, 항산화제 등 영양소가 풍부해 피로회복이나 면역력 증가 등에 좋다. 사과는 한국인이 즐겨찾는 대표 과일이다.이상기후에 떠밀려 사과값이 금값이 됐지만 지금 추세라면 국내산 사과 구경이 힘들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14

시들해진 TK 선거

홍석봉 대구지사장 우리말에 ‘굿도 보고 떡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굿도 굿이지만 굿판에 차려진 음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굿판은 차려졌는데 음식이 그다지 풍성하질 않다. 손이 갈만한 음식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굿판이 재미가 없다. 구경꾼도 시들하다.22대 총선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작 본선은 시작도 않았는데 대구·경북(TK) 선거판은 열기도 식고 유권자도 별로 관심이 없다.국민의힘 공천이 저들만의 리그 속에 마무리됐다. 당 지도부의 ‘안전빵’ 공천 덕분에 별 잡음 없이 끝났다. 혁신과 감동이 없는 맥빠진 공천이 됐다. 절반 이상 물갈이를 요구하던 지역 유권자들의 열망은 ‘희망고문’이 됐다. 공천 결과에 반발해 뛰어나가 무소속 출마를 하는 예비후보도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예년 총선의 경우 지금쯤이면 무소속 후보들의 연대가 이어지는 등 시끄러웠다. 경산과 포항북, 영천·청도 정도만 무소속 후보가 나서 국민의힘 후보에 맞서는 형국이다. TK가 역대 선거 중 출마자가 가장 적은 선거가 될 조짐이다.역대 총선 중 22대 총선만큼 재미없는 선거는 없을 듯하다. 각 후보자가 개별적으로 지역 발전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 내놓은 공약은 신선미가 떨어진다. 지역 발전과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도 별로 없어 보인다. 당 지도부도 열세 지역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다. 집토끼는 아예 내놓은 자식 취급한다. 지역민들도 누가 되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관심 밖이다. 전국적인 지명도 높은 인사도 없고, 주목할 만한 인물도 없다. 밋밋하고 재미없는 선거판이 불 보듯 하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한 표의 행사는 국민의 소중한 권리다. 하지만, 극심한 지역주의 구도 아래의 선거에서 뻔한 선거 결과는 한 표의 의미마저 퇴색시키고 만다.제3지대를 표방하며 출발한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이낙연의 새로운미래도 갈라서면서 중도세력 결집에 실패했다. 개혁신당은 TK에서 겨우 1명의 후보를 내는데 그쳤다. 보수와 진보에 실망한 표들이 갈 곳조차 없다. 이들 신당은 조국 신당에도 밀리는 등 존재감이 미미하다.지난 20대 총선 때는 안철수 발 녹색 바람이 일면서 굿판에 어느 정도 신명은 있었다. 대구 수성갑 선거에서 김부겸과 김문수의 대결은 빅히트를 쳤다. 31년 만에 야당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명 장면을 만들었다.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 1명과 무소속 3명이 당선되는 이변도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이 공천 파동으로 자멸한 결과였다. 결국, 나중에는 정권까지 헌납하고 말았다.그로부터 4년 뒤 치러진 21대 총선은 민주당이 호남을 석권하고 국민의힘 전신인 통합미래당은 TK를 독식했다. 영호남은 지역구도 타파는 고사하고 지역주의에 매몰됐다. 25일 남겨둔 이번 총선도 21대 총선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지역은 다시 폐쇄와 무기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 정치의 근본 틀을 바꾸지 않고서는 지역 정치판의 변화는 백년하청이다. 재미없고 맥빠진 TK총선을 보는 건 고역이다.

2024-03-14

‘증오의 장’이 된 선거판, 民生은 뒷전인가

도태우 변호사의 공천유지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등으로 국민의힘이 궁지에 몰렸다. 야당이 본격적으로 두 이슈를 가지고 공세에 나서면 중도층 민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조국혁신당이 여당에 대한 증오를 자극하는 공약들을 내놓고 있어 국민의힘으로선 사면초가 형국이다.대구 중·남구에서 공천을 받은 도 변호사의 ‘5·18 폄훼 발언’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야당엔 최고의 호재다. 도 변호사는 최근 “과거의 미숙한 생각과 표현을 깊이 반성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존중하고 충실히 이어받겠다”며 몇 번이나 사과했고 당지도부도 이를 수용했지만, 야권의 공세는 숙지지 않고 있다.수도권 선거에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이 악재가 되고 있다. 이 대사는 장관 재직 당시 발생한 해병대원 사망 사건과 관련,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야당이 연일 이 대사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여당으로선 외연확대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 동작을 후보인 나경원 전 의원은 “대통령실이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부분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고, 서울 중·성동갑 후보인 윤희숙 전 의원도 “공수처의 무리한 수사라고 해도 총선 후에 내보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이런 논란에다 최근에는 성일종 의원이 인재 육성과 장학 사업의 ‘잘 된 사례’로 이토 히로부미를 언급했다가 야권으로부터 ‘친일공세’를 받고 있다.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여야의 막말이 더 거칠어져 걱정이다. 특히 조국혁신당의 경우 선거판을 증오의 장으로 만들 작정을 한 것 같다. ‘한동훈 특검법’을 공약으로 내건 게 대표적인 사례다. 조국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도 입에 올리고 있다. 이러한 험한 언어는 유권자의 정치혐오를 부추겨 선거를 오염시키는 요인이 된다. 득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여야는 난타전을 멈추고 민생문제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

2024-03-14

3월은 ‘깨어나는 달’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꽃샘바람 속에 들판을 걷다 보면 파란 풀들의 새싹이 밟히고 나무마다 꽃망울이 움트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개구리가 깨어난다는데 산간 지역엔 찬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고 있다.만물이 생동하는 달, 3월 달력을 보니 15일이 ‘3·15 의거 기념일’이다. 기억을 60년 전으로 되돌려 본다. 1960년 그날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 중 마산에서 부정선거가 적발되어 이에 항거하는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이 거리에 모여 행진하며 시위했고 이에 경찰이 총기를 발포하여 9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부상했으며 시위는 계속됐었다.이 사건 보름 전 2월 28일 일요일에는 대구에서 자유당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여 경북고, 대구고를 비롯한 8개교 1천200여 명의 고교생들이 ‘일요 등교’ 지시에도 학교를 뛰쳐나가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제1공화국 정부수립 후 민주개혁을 요구한 최초의 시위로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었다.그리고 1주일 후, 3월 8일에는 대전에서 대전고를 시작으로 지역 고교 1천600여 명이 정권의 부정부패와 불법 인권탄압에 항의하여 시위를 전개하였었다. 이는 고교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용기로 항거한 충청지역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고 100여 명의 학생들이 연행·구속되거나 몽둥이 등으로 구타당하는 고충을 겪은 아픈 역사이다.보름 동안 일어난 3건의 학생 민주의거운동은 한 달 후 전국에서 불길처럼 타올랐던 4·19혁명의 불씨가 됐었다. 학생들이 깨어난 나라지킴 열의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본다.3월은 영어로 ‘March’, ‘행진하다’는 말인데 참으로 숨겨진 의미가 있을까 찾아보니, 그 어원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쟁의 신-마르스(Mars)’이다. 추운 겨울 동안 준비했다가 따뜻한 봄이 되면 힘차게 행진하여 전쟁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3월은 우리에게도 투쟁의 역사가 기록됐을까….이렇게 학생운동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 3월은 전국 의대 학생들이 놀라 깬 듯 집단 파업에 들어갔다. 2000년대 초 감축하기도 했던 의과대학 정원이 선거를 앞둔 탓인지 한 달 전 ‘의사인력 확대방안’의 긴급 브리핑에서 현재 3천58명에서 2025년부터 2천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대학 수요와 역량을 기반으로 비수도권 지역의대 중심으로 증원한다고 하지만 관련 학계와의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지 심각한 반대에 부딪혔다. 대학입학 후 전문의까지 10년 후에야 그 효과를 볼 수 있으니만큼 18년간 동결되었던 의대 정원을 갑자기 늘린다고 수도권 의료인력 집중과 필수 의료분야 부족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이 문제로 수련의, 전공의 9천여 명이 집단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 또한 전체 1만8천여 명의 30% 정도인 5천500여 명이 휴학을 신청한 상태이며, 33개 의대의 교수들도 증원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집단 사직서를 쓰고 제자들을 지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대규모 집단행동은 심각한 문제이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 대계이다.3월은 ‘깨어나는 달’-이제 4월 총선도 있고 하니 지금 한창 분탕질에 묻힌 정치계도 다시 털고 깨어나 국가의 진정한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

2024-03-14

의사들의 직업윤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을 직업윤리라 한다. 직종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윤리적 규정이 있을 수 있지만, 교육이나 종교와 같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이 요구된다. 또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직업이나 사회의 정의구현을 담당하는 직업,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살피는 직업에도 못지않은 도덕성과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러한 직종의 종사자들이 윤리규정을 어겼을 때는 더 엄격하게 법적 제재나 지탄을 받게 된다.한국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가 의사라고 한다. 정년의 제한이 없는 안정된 직업인데다 고액의 연봉이 보장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편 병든 사람을 낫게 하고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자부심과 보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오랜 기간 공부와 수련을 거처야 하는 고도의 전문직인 만큼 그에 상당하는 대우를 받아야겠지만 그만큼 직업적 윤리의식도 높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는 의사들이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 등을 내용으로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하기도 한다.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의료(醫療)다. 빈곤한 나라일수록 먹는 것 못지않게 절실한 것이 의사와 의료 시설이다. 간단한 의약품조차 없어 죽어간 사람들도 부지기수라 한다. 아프리카 가봉에 가서 평생 의료 봉사를 한 알베르트 슈바이처나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의료 활동을 펼친 이태석 신부 같은 사람들은 단순한 직업 윤리의 차원을 넘어 지극한 인류애를 실천한 인물로 칭송과 존경을 받는다.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6일 보건의료 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3천58명으로 동결됐던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입시에서 5천58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2035년까지 의사 1만5천명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증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정부 시책에 의사들은 강력 반발하면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현재 전공의들 80% 가량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 중 대다수가 의료 현장을 떠난 상태다. 지난 12일에는 전국 19개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공동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결했다.의대생 증원에 대해 의사들이 왜 그토록 강력하게 반발을 하는 걸까. 이런저런 구실을 대지만 결국 의사의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수익이 줄어들 것에 대한 우려가 제일의 이유일 터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료대란을 일으켜 의료계를 마비시킬 만큼의 타당성을 갖지는 못한다. 의사란 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자유경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다른 직업들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는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현대에 맞게 개정한 제네바 선언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사가 환자 곁에 있어야 할 이유다.

2024-03-14

장송곡 시위와 간접강제

홍석봉 대구지사장 장송곡 시위가 과연 사라질까. 대구서부지법이 대구 서구가 구청 앞에서 장송곡 시위를 벌인 철거민을 상대로 낸 간접강제 신청을 받아들였다.‘간접강제(間接强制)’는 채무자에 대해 불이익을 예고하거나 부과해 심리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채무를 이행토록 하는 강제집행 방법의 하나다. 채무자가 이행하지 않으면 법원은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기간을 정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지연 기간에 따라 일정한 배상을 명해 간접적으로 채무 이행을 강제한다.재판부는 장송곡 시위를 벌인 철거민 2명에게 구청 청사 50m 이내에서 확성기 등을 이용해 장송곡 등을 75㏈ 이상 고성으로 틀어놓으면 하루 100만 원씩 서구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차로를 점거해 청사 차량 진출입을 방해하는 행위도 포함됐다.서구는 철거민 2명이 지난해 12월 대구고법의 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며 간접강제 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철거민들이 위반 행위를 반복할 개연성이 있다며 간접강제를 명령한 것이다. 철거민 측은 앞서 방해금지 가처분 결정과 관련, 집회 시위의 과도한 제한이라며 대법원에 재항고키로 한 상황이다. 대법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기존의 집회·시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장송곡 시위는 상대방에게 미치는 효과는 직접적이고 크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번 법원 결정에 따라 소음 시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시위의 소음 기준이 정해졌고 위반하면 돈으로 물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됐다. 신청 기관과 법원은 돈으로 강제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기관 등에 억울한 피해를 호소하는 방법도 이젠 바뀔 때가 된 것 같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13

총선에 교육이 안 보인다

장규열 고문 곧 총선이다. 나라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선거임에 틀림없다.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도 첩첩산중이다. 경제와 일자리, 산업과 과학기술, 복지와 의료, 외교와 국방, 도시와 건설, 지방정책과 균형발전, 안전과 치안 등 국정 전반에 손을 보아야 할 가닥이 차고넘친다. 최근 들어 우리 모두를 압박하는 과제가 있다.저출산. 젊은이들에게 물으면, 결혼과 출산에 대하여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경제적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적 전망이 밝지 못한데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과 즐거움을 설명하려 해도, 자신과 아이가 겪어야 할 어려움이 불을 보듯 확연한데 어떻게 그런 모험을 하겠느냐는 반응이다.출산을 가로막는 까닭들 가운데 심각한 장애물이 바로 교육이다. 아이들을 반듯하게 기르는 일이 너무 힘들다. 출산과 동시에 다가오는 돌봄과 육아를 비롯하여 초등학교에도 밀려든 사교육의 압박과 대학입시의 그림자, 학교폭력과 교권수호 사이에서 힘을 잃어가는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의 피폐함은 신혼부부들의 자신감을 앗아갈 뿐이다. 총선이 다가오지만, 정당과 후보자들이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유권자가 아닌 학생들에게 표가 없어서 그런지 총선 이슈로는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다.교육부와 교육청으로 나뉘어진 정책 수립과 책임 소재의 구조적인 과제도 있다. 교육이 가진 실질적 내용을 뿌리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젊은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맡길 분위기부터 자리를 잡아야 하고,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녀들이 공교육 과정을 지날 수 있도록 교육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부적절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과정을 손을 보아야 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대입제도도 크게 수정해야 한다.정당들이 훌륭한 후보들을 영입한다지만, 교육과 관련하여 적절한 선택이 그리 보이지 않는다. 교사노조와 관련하여 선생님들의 교권과 복지에 관심있을 인사가 보인다거나 특정한 교과목을 전공한 인사가 영입된다고 하여 교육을 둘러싼 기본적인 담론이 나아지지 않는다. 교육은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떤 인성을 길러낼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떠들썩한 늘봄학교 정책도 따지고 보면 시간활용을 놓고 줄다리기가 있을 뿐 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즐겁고 안전한 학교를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학교만 다녀도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날 든든한 교육의 과정과 내용이 살아나야 한다. 대학은 전문적인 소양을 심화할 장소가 되어야 할 뿐, 사회적 위신을 위한 간판으로 역할은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대입제도는 더 이상 학생들과 부모들을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폭력이 사라지고 교권이 적절하게 보호되는 행복한 학교가 돌아와야 한다. 학생과 선생님이 모두 즐겁게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교육직은 충분하게 존중되어야 하며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총선에 나선 정당과 후보들은 관심 정책 담론에 교육을 반드시 반영하여 유권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4-03-13

치의학연구원, 인프라 우수한 대구가 최적지

치의학 연구 개발과 관련 산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를 위한 지자체 간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대구시와 광주시, 충남 천안시 등이 3파전을 벌이고 있는데 도시마다 각기 장점을 앞세워 연구원 유치에 강한 의욕을 보여 결과가 주목된다.12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기관장 회의에서 “국립치의학연구원의 대구 유치 성공을 위해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이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다. 대구는 치과 산업 관련 인프라가 다른 도시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 대구가 치의학연구원의 입지로서 적합함을 강조했다고 한다.국립치의학연구원은 작년 12월 관련법의 국회 통과로 올들어 3개 도시 간의 유치전이 더 달아오르고 있다. 대구는 홍 시장이 지적한대로 치의학 관련 인프라가 전국서 최고다. 국내 10대 임플란트 기업 중 세 곳이 대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치과에 필수적인 치료용 핸드피스는 대구에서 전국 생산량의 96%가 만들어지고 수출도 98%나 된다. 치과 의료 수출액의 30%가 대구다. 또 경북대 치의과전문대학원과 4개 종합대학이 있고, 12개 종합병원 등 3천800여 병·의원에서 2만1천200명의 의료 인력이 근무한다. 치과의료산업은 대구경북 의료산업의 주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치의학연구원 설립은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하고 다음으로 관련산업의 인프라가 우수한 곳에 입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립치의학연구원은 치의학 관련 연구개발과 기술진흥 및 산업발전, 기술의 표준화, 전문인력 교육과 양성 등의 많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대구는 최적지라 할만하다. 일부 지역에서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공모 과정 없이 지정 설립을 주장하나 부당한 요구다.많은 정부 예산이 들어야 하는 연구원 설립과 운영은 설립 취지에 부합하고 연구 성과가 확산될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해야 한다. 대구시와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은 대구 유치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정부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지역 정치권도 연구원의 대구 유치에 관심을 갖고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2024-03-13

의대 교수마저 병원을 떠나면 어떤 사태 올까

정부가 사직 전공의들에 대한 법적 조치에 나서면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제자들과 같이 사직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대란이 결국 파국으로 가고 있어 걱정이다. 정부가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오는 18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결한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지난 12일 “의대 증원을 1년 뒤로 미루고 의사협회, 여야, 국민대표, 교수, 전공의가 참여하는 대화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집단행동을 예고하면서도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제의한 것이다. 정부는 단칼에 거부했다. 의대 교수들도 의료 현장을 떠나면 예외없이 의료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원칙대로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아예 의사들과의 대화 창구를 봉쇄해버린 모습이다.정부의 강경자세에 대한 의대 교수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계명대 의대 교수들은 최근 성명서를 통해 “무리한 사법 처리와 비합리적인 의대생 증원을 강행해 전공의와 의대생에 어떠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교수들은 스승으로서 제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울산대, 부산대 의대 교수들도 정부가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불이익을 주면 사직하겠다고 밝혔다. 의대 교수들이 만약 병원을 떠나버리면 대학병원은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혼란사태가 발생할 것이다.대구에서는 13일 개업의들도 집단행동에 가세했다. 대구시의사회와 경북도의사회는 이날 대구 동성로에서 의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대시민 설명회를 열고, 정부가 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의 의대 증원에 대해 의료계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어서, 앞으로 의·정(醫·政) 갈등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게 됐다. 정부가 의대증원 숫자를 비롯한 의료계 현안을 모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타협점을 찾지 않는 한 의료 대란은 셀 수 없는 피해자를 내면서 끝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024-03-13

추억의 맛, 시금장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여남은 살쯤이었을 것이다. 막내이모가 결혼하던 겨울이었다. 외갓집 마당에서 올린 혼례식은 끝나도 당일로 돌아가지 않고 며칠을 더 묵는 손님들이 많이 있었다. 자연 잔치분위기는 며칠 더 이어졌다. 나도 아예 방학 내내 있을 참이었다. 어린 손이어도 외할머니와 외숙모의 부엌일도 거들고 심부름을 곧잘 하면서 밥값을 했다. 나의 큰 소임 중의 하나는 상차림이었다. 열 개도 훨씬 넘는 작은 개다리소반을 마루에 쭉 나열해 두고는 독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상마다 수저를 놓고, 작은 종지 같은 반찬그릇에 일일이 반찬을 덜어 담았다.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추위가 문제였다. 밥상을 행주로 닦으면 금방 살얼음이 끼었고, 수저는 손가락에 쩍쩍 달라붙곤 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발도 몹시 시렸다. 발가락을 구부려 바닥에 닿는 면을 최소화해 종종걸음하며 반찬을 담았다. 문어숙회를 찍어 먹을 초고추장도 담고, 각색전 옆에 둘 깨소금간장도 덜어담았다. 그 중에 시금장이 있었다. 작은 단지에 담겨있는 시금장은 된장보다는 색깔이 거무튀튀하고 살짝 묽었다. 그 장을 한 숟가락씩 떠서 작은 종지에 덜어담았다.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비주얼이라 맛보고 싶지 않았다. 시금장은 소스가 아니라 그대로 반찬이었다.대학생이었을 때 큰집에서 시금장을 다시 봤다. 어릴 때 봤던 거라 눈에는 익숙하나 맛은 본 적이 없어 쭈뼛거리고 있었다. 온 식구들이 모두 맛난 반찬 같이 시금장을 먹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 부드러운 단맛과 꼬들꼬들 씹히는 무말랭이의 식감도 섞인 오묘한 풍미였다. 첫 맛임에도 진작 먹어 본 듯도 한 익숙한 맛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까지 처마 밑에 매달려 있던 깨주메기가 없어졌다. 고운 보리등겨 가루를 물로 반죽해 뭉쳐서 납작하게 눌러 가운데 구멍을 뚫어 도넛 모양으로 만든 깨주메기를 새끼나 나무 꼬챙이에 끼워 건조시켰다. 다 마르면 불에 구운 깨주메기는 처마 밑에 매달아 두었다가 시금장을 만든다고 했다. 장 만드는 과정은 못 봤지만 며칠 전까지 있던 바로 그것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시금장의 맛을 안 알게 된 나는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의 솜씨로 만든 시금장을 종종 먹었고, 어른들은 젊은이가 시금장을 잘 먹는다며 대견해 하셨다.외할머니, 외숙모, 큰어머니, 시어머니 돌아가신 후로는 시금장을 먹지 못했다. 언젠가 안강 장날 시금장을 판다길래 사 먹었더니 옛날의 그 맛이 아니었다. 또 경주의 한 식당에서 단골에게만 조금씩 준다는 시금장을 얻어먹어 봤는데 감질났다. 인터넷에서 시금장을 검색하면 팔기는 하나 맛에 실망할까 선뜻 구매할 용기가 안 섰다.며칠 전 큰형님과 통화할 일이 생겼다. 마침 자네 주려고 시금장 좀 담아 놨네 하시는 형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타다닥 손뼉을 쳤다. 목소리의 톤도 절로 높아졌다. 정말요? 직접 담으셨어요? 와 맛있겠네요. 과연 예전 먹었던 바로 그 맛의 시금장이었다. 남편은 살짝 거부감 드는 비주얼 때문에 근처에 놓지도 못하게 한다. 매 끼마다 간장종지에 한 숟가락 듬뿍 떠서 내 쪽에 감추듯 두고 아껴아껴 먹는다.

2024-03-13

생각을 멈추고 행복해지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최근 ‘내면소통’이란 책을 읽으면서 현대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현대인들의 뇌는 원시사회에서의 수렵 채집 등이 삶의 방식이었던 뇌와 다르지 않다. 이는 당시 원시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에 현대인들은 많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당신만 불안하고 화나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게 아니다. 당신만 아픈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문명사회에 사는 현대인들은 다 비슷한 고통을 받고 이를 힘들어 한다.원시시대에서 맹수를 만나면 근육의 힘이 필요하니 심박수를 올려야 하고 몸의 근육을 수축시켜야 한다. 평소에 소화기능에 쓰는 에너지도 근육으로 끌어오기 위해 소화기능을 떨어뜨려야 한다. 죽거나 살거나 하는 상황이라 면역기능도 저하된다. 이는 현대 의학이 말하는 전형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다. 이때는 이성적인 전전두피질 중심의 신경망 보단 편도체 중심의 신경망에 의존한다. 본능적이고 두렵고 공포스런 감정이 올라온다. 원시시대는 이 상황만 벗어나면 다시 평화스런 일상으로 회복이 가능했으나 현대인은 그렇지가 않다. 대학진학을 위한 수능 준비나 취업준비 회사 프로젝트 등등 하루 종일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럴 때 맹수를 만났을 때와 같은 반응이 일어난다. 현대인은 쉬고 있어도 사자에게 쫒기는 상태가 된다.그러니 항상 마음은 불안하고 두려우며 잠은 오지 않고 소화는 되지 않는다. 일을 끝내고 집에 있어도 내일 일을 걱정하고 한 달 뒤의 미래를 걱정을 한다.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제대로 쉬지 못하는 육체는 매일 아프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초원의 얼룩말이 되는 것이다. 얼룩말은 위장병이 없다. 사자한테 쫓길 때는 우리와 똑같은 스트레스 반응이 발생하나 사자의 위협에서 벗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풀을 뜯는다. 사자를 떠올리며 화내거나 분노하지도 또 언제 사자가 나타날까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여기에 집중할 뿐이다. 물론 사자가 나타나면 다시 도망을 가면 된다.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얼룩말이 되어 두뇌를 쉬어야 한다. 걱정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운동을 해도 음악을 들어도 그림을 그려도 된다.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좋았던 추억을 떠올려도 좋다. 이 시간은 나만을 위한 시간이니 지금 현재 여기 나를 위해 시간을 쓰자. 불안한 감정이 들면 그 불안한 감정을 종이에 쓰자. 불안한 감정을 내가 붙들고 있을 때는 편도체가 작동해서 스트레스 반응이 증가하지만 내가 종이에 그 감정을 적는 순간 전전두피질이 작동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게 되고 이는 나의 시야를 넓혀 준다.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지켜보는 내가 된다. 다른 사람도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고 괴롭고 몸이 아프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금 할 일을 하자. 남이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나에게 집중하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 내일의 나는 편안함에 이를 수 있다.

2024-03-13

곡우(穀雨)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여섯 번째가 곡우(穀雨)다. 태양의 황경이 3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4월 19일(음력 3월11일)이 곡우(穀雨)다. 봄철의 마지막 절기다.곡우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하며, 곡식을 뿌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싹과 새순이 돋아나고, 농사철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절기다. 봄비가 내려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뜻도 있다. 농촌에서는 못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된다. 속담으로는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에서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와 같이 농사 또는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곡우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날씨는 따뜻하고 습해져서 강우량은 증가한다. 쌀 성장과 성숙에 결정적이며,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하는 시기다. 농촌에서는 이 시기에 모내기한 논을 정비해 물을 가두고, 조와 같은 늦깎이 작물을 심는다.곡우에 관한 전설이 있다. 이 시기에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의 삶이 힘들어지자 비가 오기를 지극정성으로 빌었다. 정성에 감동한 젊은 용이 강에서 나와 하늘로 치솟아 구름을 모으고 비를 만들어 가뭄을 해소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용의 자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곡우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채로운 용 모양의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렸다. 이렇게 용 연날리기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농경 문화권에서는 자연이 인간의 삶에 깊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풍년을 위해 애쓰는 농민들의 수고로움을 엿볼 수 있다.곡우 무렵에는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북상해 충남 해안 격열비열도(格列飛列島)까지 올라온다. 이때 서해에서는 조기가 많이 잡힌다. 이 조기를 ‘곡우사리’라고 한다. 이 조기는 아직 살이 적지만, 연하고 맛있다. 이 때문에 서해는 물론, 남해의 어선들이 몰려든다.전남 영광에서는 한식사리 또는 입하사리 때보다 곡우사리 때 잡히는 조기에 알이 많이 들어 있어 맛이 좋다고 한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는 속담은 곡우가 지나서 잡힌 조기 즉, 곡우사리의 맛이 최고라는 말이다. 여기서 조기(助氣)란 이름이 ‘사람의 기(氣)를 북돋우는 효험이 있다’고 해서 유래됐다고 한다. 조기는 제사상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제수다.곡우는 봄철의 마지막 절기로, 농작물이 성장하기에 좋은 기후를 가져온다. 이러한 곡우의 의미와 전통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축제와 음식 등이 이어지고 있다. 차(茶) 중에는 곡우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차를 우전차라고 한다. 곡우 이후에 딴 차에 비해 품질이 더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곡우제를 지냈다. 곡우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태의 차이가 있지만, 한 해의 농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는 같다.곡우는 음력 3월이므로 음양오행으로 보면 진토(辰土)에 해당하며, 음에서 양으로 넘어오는 경계의 시점이기에 양의 시간을 관장하는 힘이 있다. 권력과 지배욕을 가지고 있으며,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허무맹랑한 비전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어 현실감이 부족하다. 또한 스케일이 지나치게 커 허세가 드러나기도 한다.동물로는 용(龍)이다. 서로 다른 존재를 아우르는 힘이 있어 비난을 수용하고, 불협화음도 잘 조정한다.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기도 한다. 위급할 때 오히려 차분하며, 과감한 결정을 잘 내린다. 용은 변덕이 심하기에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겉과는 다르게 내면에 어둠을 안고 살아가는 단점도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주역으로 보면 택천쾌(澤天夬)다. 상왈(象曰)에는 ‘하늘 위에 연못이 있는 것이 쾌(夬)괘이니 군자는 이것을 보고 은덕을 아래에 베풀며, 덕에 머물러 있는 것을 피한다’라고 했다. 하늘에 무거운 구름이 잔뜩 드리운 것과 같으니 군자는 이것을 보고 마치 단비가 대지를 적시듯 은택을 아래로 베푼다는 것이다. 군자는 덕에 머물러 있는 것을 피한다고 한다. 즉, 덕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쾌(夬)는 나누어 결단하는 것이라고 설문해자가 설명한다. 다시 말해 소인과 군자의 무리가 섞여 있다면 둘을 구별하여 어느 한 쪽을 과감히 도태시키는 것이다. 소인의 욕심을 경계하는 괘로 설명한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단초이기도 하다.변화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은 타인과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타인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서로를 나누고 차별하는 순간부터 고통의 싹은 이미 자라나기 때문이다.

2024-03-13

목리

배문경 수필가 장롱 한 짝을 들였다. 친정집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만 차지하던 장롱이다. 앞은 느티나무에 옆과 뒤는 오동나무로 된 전통 방식의 맞춤이다. 비록 유행이 지나고 낡았지만 합판에 무늬 필름을 덧씌운 가구보다 나을 것 같았다.장롱은 부모님과 오래도록 한 방에서 숨을 쉬었다. 연륜이 있는 물건은 내력을 품어서 그런지 곳곳에 부모님의 숨소리가 배어있는 듯하다. 두런두런 나누는 말이며 갸릉갸릉 가래소리와 쿨럭쿨럭 기침소리 그리고 얼굴에 새겨진 주름까지 느껴진다. 물걸레로 닦고 광택제로 문지르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삶의 무늬가 깨어난다.물결일까, 바람의 무늬일까, 아니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등고선일까. 이쪽에서는 산모롱이를 지나는 물처럼 유려하게 휘돌고 저쪽에서는 들판을 달리는 바람처럼 곧장 내달린다. 옹이에 부딪치면 소용돌이치다가 서로 엉킴도 없이 다시 흘러간다. 곡선과 직선의 흐름은 말 없는 나무가 온몸으로 그려낸 무늬다.땅속에 묻힌 씨앗 하나, 땅을 움켜쥐고 가만히 고개를 내민다. 축복이라도 하듯 따뜻한 햇살이 뺨을 어루만진다. 직립의 의지를 곧추세운 나무는 우듬지를 하늘로 밀어 올린다. 그토록 사납던 바람이 언제 부드러워졌는지 교태를 부리며 겨드랑이를 간질인다. 꽃이 만개하면 봄날은 절정이다. 벌 나비와의 밀애는 달콤하다. 그러나 봄날 뒤에는 또 다른 시련이 예고되어 있다.나무는 선택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직립을 무너뜨릴 듯 바람이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온 힘을 다해 버틴다.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지면 끝이다. 땅을 꽉 움켜잡는다. 우지끈, 견디지 못한 팔이 파열음을 내며 부러진다. 발성기관이라도 있으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나무는 속으로 제 울음을 가둔다.나무는 소리조차 몸으로 듣는다. 소리에도 나름의 무늬가 있다. 졸졸졸, 쏴아, 휘이잉, 매암매암, 나무는 소리에서 무늬를 읽고 차곡차곡 몸으로 기억해둔다. 우르릉 쾅,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지만 몸을 움츠리지는 않는다. 나무는 두려움도 둥글게 안으로 감아 무늬로 승화한다.몸이 가벼워지면 나무는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고요한 참선에 들어 봄 여름 가을을 다시 돌아본다. 해충이 몸을 갉아댈 때의 아픔, 팔이 부러진 후의 환상통, 온몸을 받아들여야 했던 희로애락, 나무는 한 생애를 통해 겪은 일들을 레코드판에 깊게 새긴다.나무는 제 결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베도록 온전하게 몸을 내놓는다. 결 따라 쓰다듬으면 부드럽게 눕고, 거스르면 가시를 세운다. 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굴리면 둥글게 굴러가지만 대팻날이 지나갈 때는 날을 덥석 물기도 한다.산다는 것은 그 흔적을 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울고 웃고 즐기고 참는 과정에서 들추면 아픈 옹이 몇 개쯤 가슴속에 뭉쳐두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알고 보면 사람의 결도 나무를 닮았다. 버림받고 거절당할 때, 오해로 억울할 때, 외로움과 열등감을 혼자 추스를 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여한과 부러움을 삭일 때, 때로는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도 치지만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절이 순환하면서 사람도 그러한 시련들이 무늬로 새겨진다.삶은 나름의 결을 짜는 일이다. 그것은 누에가 실을 뽑고 직조하는 일만큼 과정이 지난하다.타고난 성질마다 다르고, 겪은 파란에 따라 아랍카펫처럼 다양한 문양이 될 수도 있다. 살아온 날을 돌이킬 수 없듯 한 번 그어지면 바꿀 수 없는 나이테, 기왕이면 추녀에 걸린 풍경소리처럼 은은히 번지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람일까.나무는 동강나야 제 속의 무늬를 드러낸다. 나무의 종을 보려면 자르고, 횡을 보려면 켜야 한다. 종은 하늘을 향한 마음이요, 횡은 삶을 아우르는 역사다. 세상을 종횡으로 누비는 나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서정과 서사를 아울러 내면에 무늬로 켜켜이 새기고 있으리라.장롱을 곁에 두고 나는 오래도록 목리(木理)를 읽을 것이다.

2024-03-13

대구경찰의 ‘릴레이 비위’ 언제까지 이어지나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의 잇따른 비위 행위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만 해도 음주 운전, 음주 폭행, 직장 내 성희롱 의혹 등으로 당사자들이 징계 처분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서부경찰서 한 간부는 지난달 말 술 마시던 일행을 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 간부는 관할 지역 한 식당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술을 마시던 일행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비슷한 시기 대구경찰청은 대구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간부가 부서 회식 도중 동료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민원을 접수하고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이 간부는 현재 타 경찰서로 발령났으며, 성희롱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일선 경찰서 직원들이 음주 운전 혐의로 잇따라 검거됐다. 남부경찰서 소속 한 간부는 교통사고를 낸 후 현장을 벗어났다가 시민에 의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붙잡혔고, 수성경찰서 소속 한 경찰관은 주차하던 중 골목길 3중 추돌 사고를 냈다가 검거됐다.지난해에도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의 음주운전을 비롯해 불법·탈선행위가 이어져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경찰관이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가 하면, 사건 관계인에게 금품을 받아 구속되기도 했다. 불법 도박장에 지분을 투자한 의혹으로 수사 대상에 오른 경찰관도 있었다. 이러니 대구경찰이 ‘릴레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경찰은 지난 정부의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부패·경제·선거 등 6개 분야 수사권만 검찰에 남기고 나머지 수사권은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고 사건을 1차 종결할 수도 있게 됐다. 이처럼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거머쥔 경찰이 본연의 책무인 치안을 뒤로한 채 온갖 불법 탈선행위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대구경찰청은 경찰관들의 연쇄적인 비리행위를 끊어낼 강력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절대다수의 모범적인 경찰들이 도매금으로 욕먹지 않는다.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