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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독재와 항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두 축을 이룬다.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 되는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을 했고, 외신기자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어려울 거라던 민주주의도 보란 듯이 성취를 했다. 일견해서 이 두 축은 상조관계이기보다는 서로 대립하고 길항하는 관계를 지속해온 것처럼 보인다. 산업화의 성공신화를 이루기까지 적지 않은 독재와 인권침해가 있었고, 그것에 저항하면서 민주주의도 발전을 해온 터였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상당한 수준으로 달성한 지금에 와서는 그 대립과 갈등이 상쇄작용만 해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분야에서 개인이나 단체가 권력을 차지해 모든 일을 상의 없이 독단으로 처리하는 것’을 독재(獨裁)라 한다. 독재에는 개인이 행하는 일인독재, 군인들이 행하는 군사독재, 민간인이 행하는 문민독재, 그리고 민중 등 계급이 행하는 계급독재(프롤레타리아독재), 다수가 행하는 대중독재가 있다. 또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독재와 국민 다수에 의한 독재, 그리고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는 독재로 나누기도 한다. 이른바 민주화운동권 사람들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독재에 항거한 투쟁의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민주화운동이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라는 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제2조에 명시된 정의다. 한편 그 법의 시행령에는 민주화운동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해당하는 운동 목록은 3·15의거, 4·19혁명, 6·3한일회담 반대운동, 3선개헌 반대운동, 유신헌법 반대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에다 행정안전부장관이 관계기관 및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고시하는 운동을 포함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동력이었던 민주화운동정신을 국가적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2001년 7월 24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을 제정하고, 행정자치부 산하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설립했다. 민주주의 발전과정을 기념하고 나아가 이러한 역사적 성취 위에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정신을 기리며, 민주화운동의 소중한 경험과 자산을 후대에 물려주자는 취지로 6·10민주항쟁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그동안 정치권은 산업화를 앞세우는 보수 세력과 민주화를 주창하는 진보 세력으로 양분이 되어 보수 쪽은 반공우익을 고수하는 반면 진보 쪽은 점차 용공좌익으로 변모해갔다. 우파와 좌파가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바꿔가며 편 가르기를 하는 바람에 두 세력 사이의 반목과 질시의 골이 깊어져서 지금은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까지 정치인들이 갈라놓은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좌파와 우파가 원수라도 되는 양 적개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가 산업화와 적대관계일 수 없으며, 사회주의나 전체주의가 민주화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는 인식의 전제가 통합의 공통분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2-06-09

잊혀져가는 길, 형산목

윤영대 수필가 그저께 경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강동 지나며 유강터널을 앞에 두고 갑자기 생각난 듯 좁은 옆길로 내려오니 조용한 정원이 있었다. ‘형산강 역사문화 관광공원’이라 적당한 장소에 주차하였다. 나무와 꽃, 벤치가 있는 풍경에 마음이 끌려 잔디밭 길과 나무다리 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이곳을 지나던 옛 기억이 어렴풋하다.천년고도 경주를 지나며 160리길 흘러온 형산강물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심지 포항으로 얼굴을 내미는 이곳을 경주시 강동면의 ‘형산목(項)’ 또는 ‘형산미기’로 불렀다. 둘러보니 소나무 느티나무 주목이 서있고 개나리 영산홍 백철쭉은 봄엔 활짝 피었을 테고 구절초 금계국 등 많은 풀꽃도 있다.팔각정이 아담한 ‘관이금이 마당’에는 할머니 등에 업힌 아기가 잠자고 있는데 바로 유금(有琴)이다. 신라 때, 김부대왕이 죽어 큰 구렁이가 되어 들에 엎드려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지나칠 때 유금이라는 영리한 아이가 “아! 용님 나오신다”라고 외치자 그 용은 형제산을 형산(兄山)과 제산(弟山)으로 갈라 물꼬를 트고 승천하였고 이를 기려 이 들판을 ‘유금이들’이라 했다는 전설을 되새기며 데크를 걸어가서 ‘이문대’에 오르니 황금빛 보부상 동상이 부조장터의 얘기를 들려준다.공원을 나와 기억 속의 길을 가려는데 안내판에 동강서원(東江書院)이 있다고 해서 방향을 틀어 마을로 갔다. 형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숲속에 서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경북기념물 제114호인 동강서원은 숙종21년 우재 손중돈을 향사(享祀)하기 위해 세웠고 23년 전 복원된 탁청루가 시원스럽다. 사원 왼쪽에는 특이한 3층 구조의 오백나한전이 있는 마룡사(麻龍寺)가 있어 잘 꾸며진 뜰을 둘러보고 나오며 앞 벌판을 건너다보니 30년 전 태풍 글래디스가 퍼부은 폭우로 물에 잠겼던 도로를 자동차로 건너려다 포기하고 되돌아 왔던 기억도 있다.제산의 발밑을 돌아 옛 7번 국도를 돌아드니 이 좁은 2차선 도로를 철강제품을 엄청나게 실은 대형 트럭들이 어떻게 달렸을까 신기하다. 이제는 넓게 뚫린 유강 터널길에게 그 역할을 넘기고 한적한 강변도로가 되어 차들도 이따금 지나고, 나란히 가는 자전거길 16km는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뽑혔다.포항 입구 거대한 육교와 대교가 엇갈리는 곳에 유강 건널목이 있고 흰 돛배 형상의 쉼터가 있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자명 열차사고’ 추모비가 있어서이다. 1973년 5월 16일 대구발 직행버스를 타고 오던 나는 봄비가 내리는 아침, 그 사고현장을 지났다. 학교 가는 학생들로 만원이었던 버스가 동대구행 비둘기호에 부딪혀 하천으로 추락하여 85명이 참변을 당했던 엄청난 교통사고…. 그 날 시내 병원으로 실려가던 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이제는 이 형산강변에 철 따라 예쁜 꽃들이 피고 철새들의 날갯짓도 힘차다. 잊혀져가는 ‘형산미기’길을 참 오랜만에 지나보며 희미한 옛 기억을 되살려본 하루였다.

2022-06-09

울릉도 주민의 국힘에 대한 ’반란’

김두한 기자경북부 울릉도주민들은 섬이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집권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러나 집권당이라고 무조건 애착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라야 한다.이 같은 뿌리 깊은 애착은 울릉도가 육지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선 많은 예산을 유치해야 한다는 점과 관련있다. 울릉도는 독도와 광활한 동해 요충지고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과 해안을 같이하는 군사적, 안보적 대한민국의 요충지이기도 하다.그러기 때문에 보수 집권당에 묻지 마 투표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울릉도는 워낙 좁은 지역이라 지역 인물에 대해 서로 잘 안다. 지금까지 묻지 마 투표를 했다 해도 어느 정도 인정할 인물들이 후보로 나왔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 6ㆍ1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울릉도주민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울릉군수선거에서 무소속 남한권 후보가 69.71%를 자치, 30.29%를 얻은 국민의 힘 정성환 후보를 39.42% 격차로 제치고 당선됐다.울릉도에서도 무소속 군수가 당선된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민선 4기 때 무소속 정윤열 후보가 한나라당 최수일 후보를 이긴 적이 있다. 이때는 고 노무현 정부 시절로 한나라당이 야당 때다. 당시 정윤열후보가 승리했지만 12%차이였다. 이번처럼 30% 넘게 이기지는 못했다. 당시 만약 최수일 후보가 집권당 후보였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울릉 군수선거뿐 아니라 도의원 선거도 사실상 국힘이 참패했다.이번 도의원 선거에는 5명이 출마했다. 집권당 후보가 당연히 유리한 구도다. 그런데 결과는 무소속 남진복 후보가 31.16%를 얻어 당선됐다.2위도 무소속으로 26.95%를 얻었고 국민의 후보는 20.98%에 그쳤다. 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고는 하지만 울릉군수 후보 보다 얻은 득표율이 더 참패다.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군의원은 무소속이 없어서 못 뽑을 정도로 참패했다. 울릉군 가 선거구에는 6명의 후보가 출마 4명을 선출한다. 국민의 힘은 4명을 공천했다. 그런데 1~2위가 모두 무소속 후보다.국민의 힘 후보보다 많은 표 차이로 당선됐다. 무소속 후보는 1~2위 2명이 전부다. 그뿐만 아니다. 울릉군 나 선거구는 2명을 선출하는데 3명이 출마했다. 이 중 1명은 무소속이고 2명은 국민의 힘에서 공천했다. 결과는 무소속후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울릉군 가, 나 선거구에 무소속이 3명만 출마했을 망정이지 6명이 출마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울릉군민들은 여당인 국민의 힘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철우 경북지사 후보를 81.24%(더불어민주당 후보 18.76%)로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광역비례대표도 74.22% 지지했다.이번 선거 결과는 경북도당 공심위가 울릉군민의 여론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이 크다. 섬사람은 대륙 사람들보다 특히 무시당하는 것을 싫어한다.이번 선거를 계기로 국민의 힘 경북도당과 김병욱 지역구 국회의원은 이런 점을 각골명심(刻骨銘心), 무소속 울릉군수 당선인과 협력을 통해 울릉주민 숙원 사업 해결 등 울릉군 발전에 큰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kimdh@kbmaeil.com

2022-06-08

콩주머니에 담긴 추억

정미영 수필가 양말을 꺼내 신으려니 구멍이 나 있었다. 아끼던 양말인데 엄지발가락이 쏙 얼굴을 내밀었다. 부끄럽기보다는 재미가 있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실과 바늘을 찾았지만 구멍이 커서 꿰매 신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버리기가 아까워 오자미라고 불렀던 콩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구멍난 곳을 촘촘하게 박음질한 뒤에, 콩을 넣고 양말목 부분에 땀의 크기가 고르도록 바느질에 신경을 썼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내가 어렸을 때에는 놀잇감이 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가끔 구멍 난 양말을 박음질해, 그 속에 솜을 넣고 인형을 만들어 주셨다.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인형을 움직이며,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할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그럴싸하게 움직이는 인형을 보면 이야기가 더욱 실감났다.할머니는 콩주머니도 만들어 주셨다. 콩주머니를 만드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춘향가의 한 대목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가끔 꽃이 핀 마당을 내다보기도 하셨다. 고개를 들지 않고 바느질에 집중하면서도 꽃밭에 나비가 나는지 벌이 날아드는지, 알아맞히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멋있어 보였다.나는 친구들이랑 공터에서 콩주머니를 가지고 놀았다. 콩주머니 놀이는 먼저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가르고 땅에 선을 그어 영역을 나누었다. 그런 다음, 콩주머니를 힘껏 던져 상대편을 더 많이 맞혀야 이길 수 있는 놀이였다. 이리저리 뛰다 보면 이내 땀범벅이 되고, 손으로 땀을 훔치면 얼굴까지 시꺼메졌다.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얼굴이어도 창피한 줄 몰랐다. 서로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할머니는 우리가 노는 것을 한 번씩 구경하셨다. 상대편 아이가 던진 걸 손녀가 잘 받아 내면 손뼉을 치며 주름살이 펴질 듯 환하게 웃으셨다.내가 콩주머니를 받지 못하고 몸 어딘가에 맞으면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하셨다.콩주머니를 바구니에 던져 넣는 놀이도 했다. 한 친구에게 바구니를 지게하고 차례대로 던져서 누가 더 많이 넣는지 내기했다.그러면 술래가 된 친구는 큰 바구니를 등에 메고, 펄쩍펄쩍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그 놀이는 콩주머니가 수십 개 필요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저마다 콩주머니를 가져와야만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가져가고 싶었다. 구멍 난 양말이 없을 때에는 멀쩡한 양말을 들고 가서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꿀밤을 맞고 울음을 터트렸다.그러면 할머니는 손녀에게 콩주머니를 한 아름 안겨 주셨다. 구멍 난 속옷이나 양말을 이용해 미리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보물이 따로 없었다. 나는 보물 상자라도 안은 듯 친구들이 기다리는 골목길을 향해 의기양양 달려 나갔다.콩주머니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았다. 비가 오거나 혼자 집을 봐야 할 때 갖고 놀기 좋았다. 빈 요구르트 병을 세워 놓고 콩주머니를 던져 쓰러뜨리기도 하고, 공기놀이 하듯 손등에 받았다가 다시 움켜잡기를 되풀이했다. 천장까지 높이 던졌다가 잘못 받아 얼굴에 떨어지기도 했다.그러다 싫증나면 내가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천 조각을 부여잡고 씨름한 끝에 겨우 하나 만들기만 하면 야호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뿌듯했다. 하지만 바늘땀이 엉성한 그것이 튼튼할 리 없었다. 한두 번만 던져도 툭 터져버렸다.오랜만에 바느질을 했더니 가슴 가득 설렜다. 콩주머니를 만드는 재미도 소소했지만, 할머니와의 추억 조각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어린이들의 장난감이 다양한 재질과 성능으로 넘쳐나는 요즘이다.하지만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위해 정성껏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이용한 인형이나 소품을 만들어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오늘따라 할머니가 그립다. 손녀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손길이 담겼던 그 많던 콩주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2022-06-08

계유(癸酉)

육십갑자 중 열 번째 계유(癸酉)이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 지지(地支)는 유금(酉金)이다.계유일주(癸酉日柱) 금수(金水)의 기운으로 맑은 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너무 깨끗하다보니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며 결벽증이 있다. 닭의 형상이라, 항상 분주하고 모이를 쪼듯이 말이 많고 매서운 면이 있다. 닭 벼슬 있어 겉모습이 화려하며 잘 꾸미는 편이다. 깔끔한 미모를 갖고 있기에 미남 미녀가 많다. 계수(癸水)는 연약한 음수(陰水)다. 하늘에서는 비와 이슬(雨露)이고, 땅으로 내려오면 계곡물이 된다. 품성이 온화하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사려 깊은 지혜의 인물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가뭄의 단비와 같이 도와주는 지혜로움이 있다. 계수(癸水)는 부드러운 모습이지만 유금(酉金)은 가슴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이중적이다.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혁명적인 기질을 늘 간직하고 있다.계유년(癸酉年) 1393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정한 해이다. 조선 건국 이후 최대의 과제는 조선왕조의 기틀을 잡는 사업, 즉 각종 문물제도의 정비였다. 세종의 재위기간은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훌륭했던 태평성대로 손꼽힌다. 문종은 재위 2년 4개월 만에 서른아홉의 한창 나이로 병사하였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단종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에 불과했다.계유년(癸酉年) 1453년, 단종 1년에 일어난 계유정난(癸酉靖亂)은 세종(世宗)의 둘째 아들 세조(世祖)가 조카 단종(端宗)에게서 왕위를 찬탈하고자 일으킨 사건이다. 계유정난을 통해 수양대군은 문종(文宗)의 유지를 받들어 단종을 보필하던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등을 살해하고 조선의 실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난(亂)을 다스렸다’는 뜻인 ‘정란(靖亂)’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이 역모를 꾸몄다는 것을 핑계로 그들을 제거하였기 때문이다. 계유정난, 이징옥의 난(李澄玉-亂) 등을 통해 기반을 다진 수양대군은 결국 정란 2년 뒤에 단종으로부터 선위 받아 왕위에 올랐다. 조선의 제7대왕 세조(世祖)다.세조는 즉위한 이후 나라를 바로 세우고 민생을 살피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이 나아졌을까? 세조가 실행한 개혁정책들은 불행하게도 크게 실효를 보지 못했다. 공신들이 많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세조에게 야망과 냉철한 결단력이 있기도 했지만,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의 판을 엎고 새로운 판을 짜려고 할 때는 반드시 조력자와 공신이 필요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즉 개인의 이익을 버리고 백성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각오는 없어 보였다. 자기 가문과 신분 유지를 위해서 절대로 자기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만의 싸움이지 백성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러나 민초는 그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었다. 끝까지 신의를 지켜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훗날 사대사화의 단초가 되기고 했다.닭은 옛날부터 무엇보다 신의를 중히 여기는 새다. 그리고 다섯 가지 덕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에 붉은 벼슬로 관(冠)을 쓰고 다니니 문(文)이요, 발에 삼지창이 달렸으니 무(武)요, 싸울 때는 분전하여 감투정신을 보여주니 용(勇)이요, 먹이를 보면 서로 불러 함께 먹으니 인(仁)이요, 밤을 새워 때를 놓치지 않고 새벽을 알리니 신(信)이다.계유일주(癸酉日柱)의 계수(癸水)는 비와 이슬같이 가냘프지만 끝까지 흘러가는 끈기와 집념이 있는 물이다. 물상으로는 가을철에 산사에 내리는 비의 모습이다. 고적하고 쓸쓸함이 묻어 있어 차갑고 냉정함을 느낀다. 하지만 외향적으로는 가장 화려하다. 계유(癸酉)는 검은 닭으로 오골계인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군계일학의 자질이 있어 자신을 드러내 세상에 알리려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고, 미래를 예측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닭은 예로부터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부르는 서조(瑞鳥)로 알려져 왔다. 빛의 도래를 예고하며 새벽을 알리는 닭은 민간에서 잡귀를 쫓는 주술적 영험을 가진 것으로 믿어졌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초에 벽이나 대문에 닭 그림을 붙여두면 잡귀가 달아난다고 여겼으며, 설날 떡국에도 주로 닭고기를 넣었다. 혼례 초례상엔 청보와 홍보에 닭을 싸서 놓았으며, 폐백에도 닭을 사용했다.닭은 오덕(五德) 가운데서도 새벽을 알리는 정확한 울음소리(鷄嗚聲)를 으뜸으로 꼽았다. 새벽은 빛의 도래 즉 광명의 때를 의미한다. 이는 혼돈과 상극에서 조화와 상생으로 가는 천지개벽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산문 ‘별똥 떨어진 데’에서 “이제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켠으로 훠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고 하자”고 표현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닭은 오래 전부터 우리 겨레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설화를 보면 신라 탈해왕 9년(서기 65년)에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신하를 보내 이를 살펴보게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빛으로 된 조그만 궤짝 하나가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 신하가 돌아와 그 사실을 아뢰니 왕은 사자를 시켜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한 다음 그 궤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얼굴이 총명하게 생긴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아주 총명하고 지력이 많았는데 이름을 ‘알지’라 하고 금궤 속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 씨로 하였으며, 금궤가 있었던 시림을 고쳐 계림(鷄林)으로 바꾸고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우물 안의 개구리는 밤새도록 울어도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다. 그저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닭이 한 번 홰를 치면 천지만물을 깨운다. 천지는 만물이 생존하는 집이요, 어김없이 새벽마다 닭이 알려주는 시간은 집을 찾아오는 나그네다.

2022-06-08

홍준표 인수위의 제1현안은 기업유치다

홍준표 시장 체제의 밑그림을 그릴 대구시장직 인수위원회가 그저께(7일) 출범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은 출범식에서 “담대한 변화를 이루지 못하는 대구는 계속 쇠락과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모두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당선인의 공약을 시정에 반영시킬 이상길 인수위원장은 “시민의 입장에서 기존 정책들의 효용성을 점검해서 지속해야 할 과제, 수정·보완해야 할 과제, 폐기해야 할 과제를 정리하겠다”고 밝혔다.인수위원회는 시정 기획 분과와 경제 산업, 교육 문화, 안전 복지, 도시 환경 분과로 이뤄졌으며, 인수위원장을 비롯해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와함께 대구 지역 국회의원 12명이 상임고문단을 구성해 조언하기로 했고, 11명의 대학교수가 교수 자문위원단을 꾸려 자문을 맡고 있다. 인수위는 오는 17일까지 대구시 각 실·국별 업무 보고와 공약 이행 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그후 분과별로 회의를 거쳐 민선 8기가 추진할 정책을 정해 오는 27일 정책 제안서를 작성한 뒤 29일 활동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인수위가 다양한 사정을 고려해 시정과제를 정하겠지만, 우선 최대 현안은 기업 유치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을 유치해서 떠나가는 청년들을 붙잡는 것은 대구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청년이 떠나가는 도시는 홍 당선인도 말했다시피, 쇠락과 몰락의 길을 걷게 돼 있다.최근 삼성과 SK, 포스코 등 주요 대기업들이 1천6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직후,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기업유치를 위한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 강원도에서는 도지사 당선인의 공약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원주에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4석을 석권한 충청권에서도 SK 반도체공장 유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시장직 인수위는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이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인수위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부여당의 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대기업유치전략을 마련하길 바란다.

2022-06-08

경제난 속 화물연대 파업, 대화로 풀어야

민주노총 화물연대가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산업계 곳곳이 물류 비상이다. 산업계의 동맥인 물류 기능이 파업으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힘든 우리 경제가 얼마나 더 큰 타격을 받을지 걱정이다.3천700여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동참한 대구와 경북에서도 첫날부터 포항공단과 구미공단을 중심으로 물류 차질이 시작됐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이날 하루 2만t의 물량출하가 지연됐으며, 현대제철 포항공장도 이날 9천t 가량의 물량이 출하되지 못했다.화물연대의 총파업 예고로 관련업계가 긴급한 물량은 서둘러 조기 출하했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생산을 중단해야 할 최악의 상황이 올지 알 수 없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하루 출하량의 10%가량이 출하하지 못하면 창고 확보와 생산량 축소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시간을 끌면 노사양측이 막심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시멘트 출하중단은 건설업계에 직격탄을 날려 사태 파장이 벌써부터 심상찮다.지금 우리경제는 생산과 소비, 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전례없는 위기 상황이다. 국가와 기업이 경제난 극복에 온힘을 모아야 할 마당에 물류대란이 빚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 연장 및 품목 확대, 물류비 인상 등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요구다. 2020년부터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과적·과로 등을 방지하는 효과를 보았다는 점에서 제도의 유용성이 인정된다. 또 기름값 폭등으로 물류비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상대가 있는 만큼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화물연대가 파업에 나서면서 불탈법적인 이탈행위로 국민의 눈총을 받는다면 정당한 요구도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사태 해결의 최선책은 어디까지나 대화와 협상이다.무엇보다 정부가 적극 개입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정부는 파업에 대한 강경 입장보다는 유연한 방법으로 사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화물연대도 공장 점거나 운행 방해와 같은 불법보다는 정당한 요구로 실리를 찾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2022-06-08

스키터 증후군

여름철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괴로워지는 사람들이 바로 스키터 증후군 환자들이다. 스키터 증후군은 모기에 물렸을 때 남들보다 훨씬 심하게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화끈거려 고생하는 증상을 가리킨다.모기는 흡혈하면서 자신의 타액을 우리 몸에 남기는데, 우리 몸속 면역세포는 모기의 타액을 위험한 외부 물질로 인식하면서 가려움을 유발하는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스키터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이 알레르기 반응이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모기 물린 자국을 보고 스키터 증후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부기, 지속 기간, 물집 발생 여부 등을 비교해보면 된다. 살짝 붓고, 가려움이 1~2일 사이에 가라앉는다면 스키터 증후군이 아니다.그러나 스키터 증후군이라면 물린 자리가 심하게 부풀어 오른다. 손등에 물리면 손 전체가 새빨개지고, 발목에 물리면 부종이 있는 사람처럼 다리가 붓는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10일 이상 증상이 이어진다. 성인보다 면역체계가 미숙한 어린이에게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특히 모기에 물렸을 때는 가렵더라도 긁으면 안 된다. 내부 조직이 손상돼 염증 반응물질이 분비되면서 가려움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냉찜질하면 가려움증을 완화할 수 있다. 모기에 물렸다면 낫기를 기다리지 말고 병원을 찾는 것이 안전하다. 숨이 차거나 어지러우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아나필락시스 쇼크로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병원에서는 증상에 따라 항생제 연고, 스테로이드제 등을 사용해 증상을 완화한다.모기를 피하려면 밝은색이나 긴 옷을 입고, 선풍기를 틀어서 모기를 쫓는 게 좋다. 허브오일이나 모기 기피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외부 활동 후에 땀을 바로 씻는 것도 도움이 된다. 건강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08

교육이 정치인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사방이 고요해진 느낌. 돌아보는 이야기가 적지 않은 가운데, ‘교육감’도 그 한 자락이다.지역의 일꾼을 뽑는 정치적 이벤트에 교육을 따로 떼어 헤아리며 선택하는 일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았다. 정당 공천을 기반으로 부여되는 후보 번호도 제시되지 않아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불편도 감수했다. 특정후보의 이념성향과 정치적 연대를 가늠하며 표를 던지는 정치적 결정도 한몫을 했다. 후보 자신들도 그런 경향성을 드러내며 선거에 임하였다. 선거법을 범하지 않는 수준이었다지만, 정치적 색깔을 사뭇 과시하였다. 수다한 다른 정치적 선택과 함께 버무려진 선거판에서 다음세대를 기르는 교육의 진정성은 묻혀버리지 않았을까.교육이 정치인가. 교육감은 정치인일까. 결과 분석에 따르며,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교육감 자리를 거의 양분하였다고 한다. 어린이와 학생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받는 교육에 정치적 기운이 다르게 실리고 이념적 덧칠이 가해진다는 말인가.우리는 언제부터 교육을 정치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을까. 보수의 든든함과 진보의 역동성을 함께 가르치는 교육은 불가능한 것인가. 전통과 가치는 지키면서 상상력과 창의를 기르는 교육은 있을 수 없는가.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에 갇힌 편협한 품성을 기르겠다는 것인가. 그마저도 정치적 바람에 따라 때마다 다른 교육을 하겠다는 것일까. 의문과 질문이 꼬리를 문다. 국민의 직접 선택이 필요하다 해도, 정치권의 선거 이벤트와는 떼어내 선출했으면 어땠을까. 정치이벤트가 아닌 교육이벤트는 불가능했을까.교육은 무엇인가. 여러 과목도 가르치고 다양한 활동도 함께 하지만,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선생님과 어른들이 다음세대의 마음밭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넣는 게 아닐까. 그런 결과로 수북하게 채워진 모양새를 우리는 품성과 재능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소양도 물론 가르친다.하지만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폭넓은 가르침을 경험하게 하여, 생각의 틀이 넓어지고 상상의 창문에는 제한이 없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이념의 가르침을 다양하게 접하게 하고, 향후 정치적 결정은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물이 오르듯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오른쪽 왼쪽을 강요하는 가르침은 부적절하다.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은 어른들 욕심에 포위된 속좁은 처사일 뿐이다.교육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를 가르친다 해도 정치적일 수는 없다. 진영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가르쳐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의미와 가르침을 모두 담아야 한다.교육은 폭넓게 담는 너른 그릇이어야 한다. 어느 쪽을 물어도 막힘이 없도록 넉넉하게 일러줘야 한다. 자신있게 선택하는 당당한 인성을 길러야 한다. 세상의 누구와도 서슴없이 어울리고 늠름하게 겨루도록 폭넓은 품성을 길러내야 한다.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이념에 갇힌 사람을 기른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06-08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글쓰기 수업의 학기 말은 고되다. 35명 수강생이 쓴 글을 읽고 대면 피드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 1명에 30분. 단순계산으로 17.5시간, 2학점 수업의 8주 분량이다. 서면 피드백으로 대체할 수도 있지만, 학생과 직접 만나서야 가능한 질문을 포기할 수 없어서 대면 피드백을 고집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에세이와 칼럼이 첨삭 대상이다.문제는 에세이였다. 예상대로 대학 신입생이 쓴 에세이의 상당수는 대학 입시 과정에서 느낀 고민과 단상으로 가득했다. 부모님과의 갈등, 국문과에 대한 주변의 조소 등 20년 전 내가 대학 입시를 할 때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30분 단위의 상담에 피로감이 몰려오던 늦은 오후. 어느 여학생 순서가 되었다. 여학생의 글은 에세이와 일기의 경계에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다. 한 문장에 눈이 갔다. ‘고등학교 때까진 성적이 제일 우선이다. 일단 공부부터 하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이 문장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에게 건넨 부모의 말이었다. 학생은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꿈을 포기시키고 진로를 정하라는 부모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대학에 들어가서…’, 이 문장은 나도 고등학교 시절 숱하게 들은 말이다. 여학생의 부모님도 고등학교 시절 적지 않게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통하던 마지막 세대이다. 고등학교 시절 막노동꾼 서울대 수석합격자의 수기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1996)를 읽으며 공부에 대한 열의(?)를 되살리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입학하면 성공신화를 쓸 가능성이 있었다. 2022년 현재는 어떤가?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학생과 부모의 스펙으로 상당한 이력을 채운 학생의 미래가 갖는 거리감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우리 모두 아는 바와 같이 개천에서 더이상 용은 나오지 않는다.그럼에도 많은 부모가 고등학교에서는 공부만 하고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실적인 이유로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테다. 꼭 명문대가 아니라도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라는 의식이 여전히 작동하는 까닭이다. 어째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지만, 유독 대학 진학과 관련한 사고는 조금도 바뀌지 못한 것일까?그 여학생은 자신의 고민과 분노에 공감하는 나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휴지를 건네는 것 말고는 별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면 대학에 와서도 하기 어렵다. 그러니 제발, 공부부터 하고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은 하지 말자. 의도야 그렇지 않겠지만, 이제 그 말은 언어폭력에 불과하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언어폭력을 행사하며 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이 사태의 공범자로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 사슬을 끊어버릴 때가 되었다.

2022-06-08

牛生馬死

조현태 수필가 ‘우생마사(牛生馬死)’,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사자성어다. 유비가 산적을 진압하고 두목이 타던 적로마(的盧馬)를 얻었다. 특별히 그 말이 헤엄을 잘 치는 까닭에 유표의 추적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데 전쟁에도 이용된 가축은 말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육축(소, 말, 양, 돼지, 개, 닭) 중에 으뜸인 소와 말이 물에서 헤엄으로 경기를 한다면 말이 월등하다. 소는 웬만큼 헤엄은 치지만 말보다는 훨씬 뒤진다. 말은 소의 두 배에 가까운 속도로 물을 헤쳐 나가지만 유속이 심하게 흘러가는 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은 자신이 헤엄 잘 치는 것을 믿고 강한 물살을 이기려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그렇게 무리하게 전진과 후퇴를 줄기차게 반복하다가 지쳐 끝내는 기진맥진해 죽어 버린다.물살이란 그저 물이 가야 할 방향으로 흐를 뿐이다. 마소가 빠졌든지 역방향으로 있는 힘을 다 하든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흐른다. 소는 절대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세찬 물살을 이길 능력이 없을 바에야 그냥 물살에 몸을 맡기고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야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강가로 접근하는 방법을 택한다. 적당한 시기와 장소를 봐가며 물에서 나갈 기회를 찾는다고도 하겠다. 그러니까 수천 미터 가량을 떠내려가야 겨우 몇 미터 강가로 다가간다.실제로 몇 년 전, 태풍이 지나간 후에 밀양 낙동강 강변에서 소 한마리가 발견되었단다. 귀표를 확인해본 결과 경남 합천에서 떠내려 온 암소였단다. 합천 축사에서 밀양까지 80km나 되는 물길에 며칠 동안 떠내려갔다는 말이 된다. 그 소의 주인은 기적같이 살아 돌아온 소가 대단히 반갑고 고마우면서 미안하기도 했으리라.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노력을 많이 해도 점점 더 힘들어지기도 하고, 방해꾼이 자꾸 일을 꼬이게 할 때도 있다. 그 방해꾼이 거센 물살이라면 말이 헤엄치는 방법보다 소가 취하는 순리를 따라야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속도전에 너무 집착하게 된다. 아무리 초고속 시대라 하더라도 방향을 무시하고 속도만으로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은가. 바로 옆에 강변 제방이 빤히 보이는데 거슬러 올라가서는 강을 건널 수 없듯이 말이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는 아무런 방해요소가 없다는 착각에 다름이 아니다.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이동해가되 더이상 내려갈 수 없어야 멈추는 법이다. 강제로 퍼 올려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도 이러한 물의 속성처럼 오직 가야 할 방향으로 끊임없이 흘러갈 것이다. 더러 왜곡하거나 조작하여 속성을 혼돈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본래 자세로 되돌아갈 것이다.코로나19라는 대단한 방해꾼이 나타나도, 전쟁이라는 세찬 물살을 만나도, 에너지와 식량이 등짐으로 무겁게 눌러도 우리 다함께 유유한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선거에 당선된 모든 이들은 굽이치는 강물에 뛰어들었다. 밀양까지 떠내려가도 합천 본고장으로 돌아간 소처럼 크게 환영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2022-06-08

세상의 모든 둘째에게

나는 삼 남매 중 둘째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들 역시 그렇다. 둘째끼리는 통하는 어떤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닌지 쓸데없이 헤아려보곤 한다. 우리 모임은 ‘둘째들’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는데 나는 이 명명이 썩 마음에 든다.우리 ‘둘째들’은 말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밤을 새우기 일쑤다. 언니나 오빠에게 당했던 에피소드, 동생에게 화났던 일을 늘어놓으려면 2박 3일도 모자라다. 부모님, 조부모님 관련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끝도 없다. 우리는 둘째라는 것에 대한 묘한 억울함과 설움을 가지고 있다. “언니(혹은 오빠)의 말을 잘 들어야지”라는 말과 “동생에게 양보해야지”하는 말이 뒤섞여서 나는 늘 참아야만 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렇다면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식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은 이러한 둘째의 전형이다. 집안의 자랑이자 학창 시절 1등을 도맡아 하던 잘난 언니와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 동생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덕선은 유쾌하고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면서 철없는 면모도 다분하지만 주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세심함을 갖추고 있다.덕선은 받는 것보다 양보하고 참는 것을 먼저 배웠다.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은 계란프라이보다 콩자반이 좋다고 말하고 치킨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인 닭다리를 언니와 동생에게 양보하면서도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다.쌓여가던 서러움이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진 어느 날, 덕선은 아이처럼 앙앙 운다. “왜 나만 계란 후라이 안 해줘? 나도 콩자반 싫어하거든? 나도 닭다리 먹을 줄 알거든. 언니는 보라고 동생은 노을인데 왜 나만 덕선이냐고!”덕선의 외침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둘째가 공유하는 지점일 것이다.언제였던가. 친구 중 한 명이 어릴 때 겪은 일화를 내어놓았다.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언니에게 양보했을 때, 할머니는 “아이고 참 착하다”라며 자신을 칭찬했지만 동생이 자신에게 뭔가를 양보하자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던 일. 그 단호한 어투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교육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의문했더랬다.캐나다로 어학연수 가고 싶다는 남동생에게 부모님이 너희 누나들은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고 다독이자 그는 “어차피 작은 누나는 그런 것들 필요 없잖아!”라고 소리쳤고 결국 친구는 폭발하고 말았다. 야, 나도 인간이거든. 그저 항상 너한테 양보했을 뿐이었거든. 고성이 오가던 가운데 부모님은 친구의 어깨를 붙잡았다. “둘째야, 그래도 네가 누난데 참아야지.”이야기를 듣고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히 ‘둘째들’다운 에피소드였다. 그래, 우리가 참아야지. 항상 그랬듯이.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야, 둘째라고 가오가 없냐. 쟁취해야 하는 것이 있음에도 욕심내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그렇게 서로를 토닥이며 코끝이 찡해오던 밤, 우리는 다짐했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착한 아이로 사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고.그래서였을까.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었다.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는 정중하게 대접받지 못한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깨달음이 오자 우리가 외치던 부당함이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첫째만큼의 든든함도, 막내만큼의 깜찍함도 없는 애매한 위치의 둘째들에게 고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가 서러움이 없겠느냐만, 둘째의 설움은 둘째만이 아는 법. 뭐 그런 사소한 것을 마음에 담아 두냐고 혀를 차지만 우리만큼은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자.나 역시 그랬다. 그렇지. 맞아. 서운하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둘째들’이 있었기에 그 시절을 무사히 보내올 수 있었다. 미세한 차이를 경험해본 자들. 이상하고 부당하다고 차마 말하기 어려웠던 상황들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가 다정하고 애틋해지는 것이다.그리하여 만국의 둘째들이여, 행복하자. 지구의 실세가 언젠가는 둘째들로 거듭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그날까지 모두 평온하고 건강하도록.

2022-06-07

가장 느린 해방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소설이나 평론을 인용하시던 교수님께서 드라마의 대사를 인용하시다니. 나는 순간 얼어붙었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드라마 내용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교수님께서 하신 얘긴 대충 그런 거였다.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할 수밖에 없다고.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그러지 않느냐고. 항상 소설이나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시던 선생님께서 드라마의 제목까지 거론하시며 이야기를 하시다니. 나는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웃음을 터뜨려야 하나 꽤나 고민을 했더랬다.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최근에 재밌게 본 드라마라고 해도 ‘바이킹스’ 뿐이고, 남들 다 좋다던 ‘이태원 클라쓰’도 세 번을 도전했다가 중도 하차했다.드라마 특유의 느린 템포가 내 성미에는 맞질 않았던 거다. (‘바이킹스’를 끝까지 봤던 것도, 아마 한 화마다 한두 번씩은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나와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드라마를 재밌게 보신다니, 말동무라도 해드리려면 나도 봐야할 것만 같았지만, 영화나 소설이나 평론이라면 모를까, 드라마라니. 교수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 드라마까지 보는 건 좀 아니다 싶어 몇 주를 미루고 있었다.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선생님은 그 말을 했던 거였더라. 왜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정직하다고 하셨던 거였더라. 웃자고 하셨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시던 와중에 하셨던 것 같은데. 아. 안되겠다. 한 번 그 대사 나오는 대목만 봐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드라마를 틀어놓았다. 도저히 그 긴 시간을 버틸 수가 없어서 빨래나 개고 바닥이나 닦으면서 볼 요량으로 말이다.사실 첫 화는 그냥 그랬다. 서울에 태어났으면 뭔가 달랐을 거라 말하는 정서를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거니와(나는 서울 토박이라 그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었다. 죄송합니다.) 다들 자신이 힘들다고는 하는데, 그들의 삶의 적어도 ‘나’보다는 나아보여서 그렇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헌데 2화쯤부터는 내 귀가 점점 드라마에 쏠려가더니, 3화 중반쯤부터는 개던 빨래를 손에 쥔 채 멍하니 열중하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드라마에, 열중을 하다니. 그것도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말이다.나는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는 서사에 좀처럼 공감하지 못한다. 그들의 힘듦 그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 힘듦이라는 것이 ‘나’의 힘듦보다 객관적으로 힘든 것인지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그래도 쟤들은 나보다 이런 점에선 낫네, 그래도 쟤들은 집이라도 있네, 그래도 쟤들은 밥걱정은 없네 등등. 그런 푸념을 하며 이야기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그런데도 내가 ‘나의 해방일지’에 집중하게 되는 건, 그들이 경험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트러블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모든 인물들이 이 일상을 행복도 불행도 아닌 어딘가 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그렇지 않은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일생이란 그다지 불행한 것도, 그다지 행복한 것도 아니다. 크나큰 슬픔이 찾아오는 경우도 드물고 말도 못할 희열의 순간이 찾아오는 경우도 드물다.적당한 슬픔과 적당한 기쁨. 그마저도 적당한 기쁨은 자주 찾아오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고달픔만 반복되기에, ‘나’의 삶은 괴롭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보란 듯이 잘 사는 사람들은 그런 정도의 괴로움을 적당히 숨기거나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 망가진 사람들은 작은 자극에도 그 적당히 반복된 고달픔을 우수수 쏟아내고야 만다. 어딘가 마땅한 방향성을 지니지 못한 채 쏟아지는 적당한 고달픔의 말들은 그래서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못하다. 단지 진심어릴 뿐이고, 그래서 처연하고 사랑스러울 따름이다.‘나의 해방일지’라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이 드라마는 그렇게 거대한 악과 싸우지도 않으며 거대한 성공을 거머쥐지도 않는다.단지 조용히, 자신을 옭아매오던 작은 고통들과 맞서는 법을 하나씩 배워볼 따름이다. 그래서 이 작은 해방의 과정은 결코 성공을 향해 있지 않다. 다만 조용히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며, 자신이 선 자리를 바라볼 뿐이다. 조금의 해방을 위해서. 잘해야 한다고, 성공해야 한다고. 누구에게도 지적받지 않아야 한다고. 누군가에게든 사랑받아야만 한다는, 누구나 갖고 있는 강박으로부터 아주 조금씩 천천히 말이다.

2022-06-07

빛을 뿌리고 꽃으로 흩어진 이들을 기리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가장 날카로운 칼과 / 가장 날카로운 告白은 / 다르지 않다. // 가장 날카로운 칼은 / 그 칼날에 / 그리하여 저의 낯을 비춰 본다. // 그리하여 / 가장 날카로은 칼은 / 꽃잎 앞에도 무릎을 꿇고, / 그 꽃잎은 / 그 칼을 쥔 손목에 / 입을 맞춘다.”“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라고 노래했던 김현승 시인의 시집 ‘김현승시전집’(관동출판사, 1974)에 수록된 시 ‘무기의 의미 Ⅱ’의 처음 세 연이다. 칼은 전통적으로 무기를 대표하고 시대를 아울러서 전쟁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 칼이 꽃잎 앞에 무릎을 꿇고, 꽃잎은 칼을 쥔 손목에 입을 맞추게 함으로써 평화의 도래를 희구하였다.망종(芒種)이자 현충일인 6월 6일 전후로 우리나라 전역에 비가 제법 내렸다. 한자 ‘망’은 벼나 보리 따위의 깔끄러운 수염인 까끄라기를 뜻한다는데, 비가 수염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에 좋은 때인 망종에 마춤하여 내려주었다. 이 비는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순국한 이들과 함께 나라 곳곳에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잠들어 있는 전국의 현충원과 호국원 땅을 적셔주었고, 우리들 마음도 촉촉하게 해주었다.‘산화’라는 말이 있다. ‘흩어질 散’에 ‘꽃 花’ 자를 쓰기도 하고‘빛날 華’ 자를 쓰기도 하는데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이라고 한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호국은 전쟁이 벌어졌을 때만 쓰이는 말이 아니다, 전쟁을 대비하고 막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에서 동료와 부하를 구하려 몸을 바친 이들에게도 우리는 호국을 위해 산화했다고 말한다.산화한 군인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여럿 있다. 강재구 소령은 베트남전 파병을 앞둔 강원도 홍천의 수류탄 투척 훈련장에서 이등병이 실수로 놓친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막아 훈련 중인 중대원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하였다. 고공강하 훈련을 받던 교육생의 낙하산을 펼쳐주고 자신은 그대로 한강 얼음판 위로 떨어진 이원등 상사의 경우도 꽃으로 뿌려진 죽음이다.정갑진 중위를 아는가? 강재구 소령에 버금가는 산화의 주인공이다. 1946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그는 경북사대부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2월 학군(ROTC) 제7기 소위로 임관하였다. 연천 20사단의 소대장으로 부임한 지 일년이 안 된 1970년 5월, 정갑진 중위는 전방 초소에서 부하 사병이 잘못 던진 수류탄 위에 몸을 던졌고 소대원들의 인명 피해를 막아낸 그의 온몸은 꽃잎처럼 흩어졌다. 별 탈 없이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면 엘리트로서 나라를 위해 더 크게 공헌할 수 있었을 서울대 출신의 젊은 장교가 그렇게 스러졌다.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그를 기려 1970년 6월에 군에서는 산화한 그의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고 후손들에게 조국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도록 추모비를 건립했다.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나라와 국민과 동료를 위해 꽃으로 뿌려지고 빛으로 흩어져 간 이들이 이 땅 곳곳에 있다. 이 빛을 모아 세상을 밝히고 평화의 꽃을 피우는 일은 이제 우리 몫이다.

2022-06-07

보석들의 희망

강길수 수필가 손을 흔들며 경보선수같이 빠르게 지난다. 스르르 멈춘 택시 앞이다. 평소 내 습관을 여지없이 깨부순 택시 기사다.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몸에서 세로토닌(serotonin)이라도 일시에 분비되나 보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상식이나 법상으로 멈춰 서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마음이 기쁘다. 살면서 저절로 관습법처럼 자리 잡은 게 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의 ‘운전자 통행 우선’이란 잘못된 행동양식이다. 그 관습법이 별안간 타파된 즐거움이리라.오늘 퇴근길이었다. 첫 번째 신호등 없는 건널목에 도착해 좌우를 살폈다. 왼쪽 2개 차로는 멀리까지 차가 없고, 오른쪽 차로에는 저만치 2대의 차가 간격을 두고 오고 있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건널 수 있겠다 싶어 왼쪽 차로의 절반쯤 가다가 섰다. 차량을 보내고 가는 게 안전하겠다 싶어 엉거주춤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앞에 오던 택시가 스르르 멈춰 서는 게 아닌가. 물론, 뒤차도 따라 섰다.그 옛날 이립(而立) 초반의 어느 날, 일본의 한 시골에서 만났던 광경과 느낌이 확 되살아났다. 세미나를 마친 가뿐한 주말 아침나절, 기차를 타고 온천 관광지 벳푸로 향했다. 지방도 근처를 지나는데, 저만치 횡단보도 곁에서 일고여덟 살로 보이는 아이들 몇이 서 있다. 멀리서 커다란 트럭이 그곳을 향해 온다. 트럭은 아이들이 몇 번 건너도 될 법한 먼 거리다. 이야기에 빠졌는지 아이들은 건너지 않았다. 육중한 트럭이 횡단보도 앞에 천천히 멈추어 섰다. 그제야 아이들은 즐겁게 그곳을 건너가는 게 아닌가.감탄과 부러움이 가슴에서 솟아났다. 선진국의 본모습이란 생각도 났다. 며칠간 만난 꽁초 하나 없는 거리가 더 이해되었다. ‘우리는 언제 저렇게 할까’하는 마음도 들었다. 선진사회는, 돈으로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했다. 일본도 예전에는 교통 등 기초질서가 엉망이었는데, 1964 도쿄 올림픽을 치르며 바로잡았단다. 세미나 간 때가 일본이 올림픽 후 20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는데, 88올림픽이 30년도 더 지난 지금의 우리와 대비된다. 일본은 올림픽을 더 잘 활용했다 싶다.조건반사처럼 저절로 택시 기사에게 손 인사를 하며 지날 때의 심사…. 온 세상이 밝게 다가오는 순간이라 할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드리워졌던 어두운 장막도 걷히는 것만 같다. 살맛도 난다. 어떤 기업직원들이 한때, ‘기본의 실천’이란 문구를 작업복에 새기고 일했다. 사실 택시 기사는 교통법규의 기본을 지킨 것이다. 그런데 기쁜 걸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기본이 덜된 것은 아닐까.다시 출발하는 택시를 뒤로하고 골목으로 들어선다. 문득, “오늘 보석을 만났어!”하고 마음의 추임새가 사방으로 퍼져가는 듯하다. 당연히 해야 하는 행위가 보석으로 보이는 것은, 내 마음 눈이 잘못된 탓일까. 아니면 일그러진 초상(肖像)의 우리 사회이기 때문일까. 신호등 있는 간선도로 횡단보도다. 한 우회전 차량이 보행자인 내가 다 지나가고, 보행신호등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 간다. 역시 기분이 좋다.기본과 상식이 바로 선 보석들을 만난 기쁨이 희망으로 바뀐다.

2022-06-07

이준석·박지현의 정치적 성과

심충택 논설위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인물들이다. 우리나라 주류 정당에서 2030세대가 사령탑을 맡은 것은 두 사람이 처음이다. ‘26세 당 대표급 여성정치인’ 박지현은 아마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이준석·박지현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정치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층의 정치참여를 불러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수도권 광역의회에선 이번 지방선거에서 20~30대 당선인이 서울시의회 16명(14.2%), 경기도의회 20명(12.8%), 인천시의회 4명(10%) 등으로 모두 10%를 넘어섰다. 전국 광역의원 당선인 872명 가운데 2030세대 비율이 9.5%에 이른다. 청년정치인 돌풍이 불면서 정치주도권이 새로운 세대로 전환되는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진영논리보다는 실용지향적인 청년들의 정치권 진출 붐은 바람직한 현상이다.이준석·박지현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우리 정치계를 ‘열린 광장’으로 이끌려고 애써온, 젊지만 강력한 리더들이다.이 대표가 지난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후, 취임 첫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본 국민들은 ‘낯설고 신선한 정치인’의 등장에 박수를 보냈다. 대표재임 1년여간 그는 당비를 내는 열성당원을 80여만명까지 늘렸고, 당의 외연을 호남까지 확장시키면서 국민의힘 전성시대를 만들어냈다. 지난 대선기간 중에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 캠프의 주류인물로 구성된 ‘윤핵관’을 정면으로 공격하며, 당내 ‘이너서클 타파’를 공론화했다. 이 시간 현재도 여러 가지 이유로 당 중진들의 견제를 받고 있지만, 그는 자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그는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번 지방선거 압승에도 1등공신이다.박지현의 성과도 이준석 못지않다. 민주당내 팬덤정치와 86그룹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지현은 “일부지만 팬덤정치가 우리당원을 과잉대표하고 있다”며, 당의 극렬 지지층인 팬덤의 역린을 건드렸다. 특정 정치인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며 비판과 반론에 재갈을 물리는 팬덤정치는 민주당내 합리적 비판을 차단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박지현은 86그룹을 겨냥해서는 “아름다운 퇴장준비를 해야한다”고 직격했다. 이 말에 대한 파장은 팬덤공격때보다 더 컸으며, 결국 그를 민주당에서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됐다.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은 “박지현이라는 역대급 진상의 패악질”이라고 비난했고,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박지현 아웃이라는 글이 도배됐다.이준석·박지현은 우리나라 정계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과제를 던진 청년들이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이제 권위주의나 진영논리, 포퓰리즘에 빠진 인물들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정치인들이 실질적 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정당이 더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도록 노력해야지, 특정인맥이나 지역, 특정이념을 대변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존속하기가 불가능하다.

2022-06-07

코로나19 안정세…보건의식 잊지 말아야

코로나19 확산세가 안정세다. 신규 확진자 및 위중증 환자 규모가 오미크론 변이, 델타 변이 확산 이전 수준이다. 방역지표도 꾸준히 개선돼 일상 의료체계로의 전환이 가까워지고 있다.7일 0시 현재 전국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6천172명으로 사흘째 1만명 미만을 기록했다. 위중증 환자수는 117명으로 11일 연속 100명대다. 대구는 339명, 경북은 452명이다.정부는 오늘부터 내외국인에 상관없이 코로나19 백신 미접종 해외입국자에 대한 7일간 격리의무를 해제했다. 국내외 방역상황이 안정됐고 외국서도 해외입국자 격리의무를 해제하는 추이를 보여 뒤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다만 입국 전 검사에서 양성이 확인되면 격리한다는 방침이다.이밖에도 집중관리 재택치료자를 위한 전화 모니터링을 일 2회에서 1회로 줄였다. 또 지난 2일에는 확진자 격리의무 해제 기준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회의도 열었다. 빠르면 오는 20일부터 확진자의 7일 격리의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실내 마스크 착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없어지는 꼴이 된다.정부는 또 8일부터 인천국제공항의 항공편수와 비행시간을 제한했던 규제도 모두 해제했다. 이에 따라 항공수요도 본격 늘어날 전망이다. 현충일 연휴동안 제주도에는 17만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해 올들어 누적 관광객이 578만명에 달했다. 전년 대비 27%가 증가했다.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전면 해제 분위기에 따라 국민들의 사회 활동 빈도가 크게 늘고 있다. 바람직한 일상의 변화이나 코로나19가 아직은 완전한 종식 단계가 아니란 것을 감안하면 국민적 경각심이 필요하다. 게다가 원숭이두창이 우리의 보건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전세계 31개국에서 400여명의 감염병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마스크 착용, 손씻기 등 개인 보건위생 준수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현대사회에서 감염병 확산은 불가피하나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의 보건의식이 이래서 중요하다.

2022-06-07

정치권 공천갈등 이젠 털어내고 원팀돼야

이번 지방선거 국민의힘 공천과 관련해 포항출신 김정재(포항 북)·김병욱(포항 남·울릉) 국회의원이 단체장과의 갈등, 공천실패 등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정재 의원은 3선에 도전한 이강덕 포항시장을 예비경선에서 컷오프했다가 지역사회 반발이 심하자, 중앙당 공관위가 제동을 걸어 본경선에 포함했었다. 그 후 이 시장은 당내 경선에서 경쟁자를 크게 앞질렀고, 지방선거에서 77.2%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 시장은 컷오프 결정 당시 “김 의원은 정치적 속셈으로 형평성을 잃었다”며 ‘사천(私薦)의혹’을 제기했었다.김병욱 의원은 지역구인 울릉군 지방선거에서 군수와 경북도의원, 군의원 국민의힘 후보들이 모두 낙선하는 바람에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울릉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남한권 군수 후보와 남진복 경북도의원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이번 지방선거 국민의힘 공천과정에서는 포항 외에도 경북도내 많은 시·군에서 공천파동이 발생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처럼 3선에 도전한 장욱현 전 영주시장과 김영만 전 군위군수도 예비경선에서 컷오프돼 중앙당 공관위 재심을 거쳤으며, 경산에서는 시장경선에서 배제된 예비후보들이 ‘시민협의체’를 구성해 무소속 단일후보를 내기도 했다. 영천과 의성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최기문 시장과 김주수 군수가 당선돼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마찰이 예상된다.대구·경북지역의 공천후폭풍은 선거철만 되면 재연되는 현상이다. 그때마다 시·도당 공관위와 지역구 국회의원의 ‘밀실·사천공천’ 논란이 불거졌다. 사실 지방선거에서 공천파동은 국회의원의 ‘자기사람심기 욕심’으로 인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 포항 같은 대도시 지역의 공천갈등으로 정치권이 분열되면 그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지역 비전을 제시하고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똘똘 뭉쳐도 성과를 내기 힘든데, 서로 반목을 이어가면 타도시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공천갈등이 아직 남아있는게 사실이라면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풀고 지역발전을 위해 원팀이 돼야 한다.

2022-06-07

국민고기 삼겹살

우정구 논설위원 삼겹살은 돼지의 갈비 부근에 붙은 돼지고기 부위다. 비계가 세겹으로 겹쳐 보여 삼겹살이라 부른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즐겨 먹는 대표 고기다.지방의 함량이 높고 단백질은 적지만 지방의 고소한 맛과 육단백질의 구수한 맛이 조화를 이뤄 모든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주로 구이로 많이 먹지만 김치찌개로도 잘 먹는다.고기의 신선도 유지가 어려웠던 과거에는 보통 고기를 삶거나 찌거나 국으로 끓여 먹었다. 삼겹살을 구이로 먹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외식문화의 등장으로 육류소비가 많이 늘어난 1970년대 중반 이후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삼겹살이 국민고기로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비싼 고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쁠 때, 슬플 때 혹은 힘들 때도 소주 한잔과 곁들여 언제나 먹을 수 있는 만만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항상 서민 곁에서 위로해 줄 소울푸드인 셈이다.삼겹살이 금겹살로 불린 적도 여러 번 있다. 서민과 친숙한 삼겹살이 가격이 올라 행여 서민 곁을 떠날까 봐 걱정해서 그렇게 불렀다. 최근 삼겹살 가격이 1근에 2만원 육박한다는 소식이다. 생삼겹살을 사먹기가 부담스러워져 냉삼겹살을 사먹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삼겹살이 또다시 금겹살로 둔갑할 모양이다.최근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돼지고기 등 축산물 가격이 전년에 비해 대폭 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등한 곡물가격이 가축사료 값을 끌어올린 탓이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나돌고 1년 중 돼지고기 가격이 가장 비싼 값을 형성하는 7∼8월을 앞두고 있어 삼겹살 가격이 얼마나 더 뛸지 모두가 걱정이다. 국민고기 삼겹살 가격을 지킬 대책이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07

오만한 정치, 국민의힘도 경계해야

김진국 고문 민주당이 시끄럽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참패한 뒤끝이다. 4년 전 제7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광역단체장 14곳을 모두 차지했다. 이번에는 경기·제주와 호남, 5곳에 그쳤다. 기초단체장도 145 대 63, 절반도 안 된다. 서울에서만 서초구청장을 제외한 24개 구청장을 싹쓸이했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17 대 8로 완패했다.이게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정당 지지도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4월까지만 해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런데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6월 첫째 주 전국지표조사를 보면 48% 대 27%로 벌어졌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선거 패배의 책임을 놓고 서로 손가락질이다. 크게는 친 이재명파와 반 이재명파로 갈라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선거에서 참혹하게 패배하고도 그 원인을 찾고, 반성하기는커녕 네 탓 공방이다. 당권 욕심이 앞선다. 먹을 것이 거덜 난 집에서 남은 부스러기를 놓고 다투는 꼴이다.대선에서 국민은 분명히 민주당을 심판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고, 지방선거에서 다시 심판받았다. 2년 전 총선에서 183석(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을 얻은 뒤 오만했다. 민주당 강경파는 이 힘을 사용하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했다.국회 원 구성부터 독식하며 압박했다. 여론조사는 반대하는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응원했다. 국정은 동화 속 이념의 포로가 됐다. 민생 현장보다 ‘우리 정책’은 무조건 옳다고 우겼다. 지난 5년만큼 국민이 분열하고, 진영대결이 극심했던 때가 없다. 조국·추미애 전 장관의 오만이 대통령까지 만들었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받은 지지율은 38.77%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얻은 표는 33.35%로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얻은 33.84%보다 적다. 여기에 열린민주당(5.42%)을 합쳐야 겨우 조금 더 많다. 그래봐야 40%가 안 된다.그런데도 민주당에 감당 못할 많은 의석을 몰아준 건 엄청난 사표를 만들어내는 선거제도, 위성정당을 이용한 속임수다. 그런 자기 속임수에 스스로 넘어가 오만의 길을 걸었다. 제도의 허점 덕에 다수 의석을 확보해놓고, 적은 대선 표 차이는 인정하지 못하고, 불복하는 듯한 행보를 해왔다. 대선 뒤 하루도 허니문을 허용하지 않았다.정권을 넘기는 순간까지 대못질을 계속했다. 여론은 분명히 반대했다. 그런데도 2차 ‘검수완박’ 법을 밀어붙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기 직전 못을 박았다. 물러나는 순간까지 임기 2년, 3년의 공직을 ‘내 권리’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대통령의 권한은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것이지 개인의 권리가 아니다. 퇴직금은 더욱 아니다. 정부를 ‘머리 따로, 손발 따로’로 만드는 건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잘못된 행태를 사과했지만, 비난 폭탄만 맞았다. 강경파 의원들은 조롱을 반복한다.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만의 진실을 만든다. 정치를 게임처럼 한다. 진심은 보이지 않고, ‘작전’만 있다. 국민은 대상이지 상전이 아니다. 이런 식의 정치가 전투력은 강하다. 정치의 팬덤화가 대중화에는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약자와 소수자를 인정하고, 정치적 경쟁자를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톨레랑스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이건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심이 조금만 움직여도 전체 의석수는 크게 차이 난다. 인구와 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은 아주 적은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다. 미풍만 불어도 선거 결과에는 태풍이 된다. 이번 승리로 오만하면 국민의힘도 회초리를 맞는다. 대선이건, 지선이건,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 상대가 스스로 무너져 얻은 승리다. ‘하고 싶은 대로’하면 또 뒤집힌다. 역대 선거를 봐도 승부는 지는 쪽이 결정한다. 2년 뒤 총선, 또 그다음 선거는, 바람이 어디로 불지 모른다. 겸손해야 한다. 권력을 쥐었을 때 더 잘해야 한다. /본사 고문

2022-06-06

토론학

홍택정 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 민주주의의 근본은 토론이라 생각된다. 토론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소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다.토론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의견들을 모아 최종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이견을 배제하게 된다.토론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더 중요한 본질이다.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방송에서 토론회가 중계되는 것을 보면, 상대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보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바쁘다.그러다 보니 활발한 논리적인 의견의 교환은 간곳없고, 상대의 발언을 끊고 자기주장으로 일관하기 일쑤다.자연 토론은 말싸움과 고성으로 결론 없이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그래서 초등학교에서부터 토론학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하여, 토론의 기술과 방법을 익히도록 하고 건전한 토론문화의 정착을 위해 학습을 통해 오랜 기간 훈련해야 한다.이론적인 반론을 주고받는 토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이다.특히 정치인들의 토론문화가 척박하기 짝이 없다.국회의 진지한 정책토론이야말로 토론문화의 출발점이다. 논리는 사라지고 집단적 카더라가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경거망동의 사회적 분위기는 진영 간의 편 가르기로 이용되고 있다.목소리가 크고, 숫자만 많으면 곧잘 진실처럼 알려지고, 믿게 된다.그러다 보니 선동과 비단 같은 말 잔치가 판을 치고 있다. 성숙한 토론 문화의 정착이야말로 전정한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다.

2022-06-06

골드번호 받는 법

골드번호는 번호 4자리가 똑같거나(0000), 연속되는 숫자(1234), 또는 특정 지역(4000)이나 단어가 연상되는 2424나 0404 같은 기억하기 쉬운 번호를 가리킨다.특히 전화번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행운의 번호로 알려진 7이 4번 반복되는 ‘7777’같은 번호를 가진 분들을 보면 이런 번호를 어떻게 받았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이삿짐 센터의 경우 예외없이 2424번을 사용하는 데, 실제로 번호가 외우기 쉬워서 그런지 문의전화가 더 많이 오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2010년대 중반까지 이런 ‘골드번호’는 개인 간에 사고파는 것도 가능했는데, 특정 번호는 수억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정부가 이런 번호를 ‘국가자원’으로 규정하면서 개인 간 거래는 금지됐고, 불법 거래할 경우 최고 수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이에 따라 이동통신 3사는 매년 이른바 ‘골드번호’ 5천 개를 내놓고 공개 추첨으로 배정하고 있다.공개추첨은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진행되는데,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올해는 KT가 8일까지, LG유플러스는 12일까지 공식 대리점이나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1인당 최대 3개의 희망 번호 접수를 받고 있다.골드번호를 영업이나 마케팅에 활용하고 싶은 이들은 이 기간에 신청해 행운을 기다리면 된다. 다만 외우기 쉬운 번호일수록 사업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보이스피싱 등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게 업계관계자의 경고다.세상만사가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골드번호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은 즉각 신청을 서두르시라./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06

‘디지털 트윈’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디지털 트윈’이란? 가상세계(Digital)에 실제 사물의 물리적 특성이 동일하게 반영된 쌍둥이(Twin)를 3차원 가상모델로 구현하고, 실제 사물과 실시간 연동과 시뮬레이션을 거쳐 의사결정(Decision)에 활용하는 기술이다.‘디지털 트원’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NASA가 지구에서 20만 마일 떨어져 있는 아폴로 13호의 심각한 손상을 입은 우주선의 기내 상태를 ‘디지털 트윈’ 초기기술로 평가 및 재현하였다. 그 이후 ‘디지털 트윈’의 잠재력은 분명했지만, 컴퓨팅 성능, 연결성, 데이터 저장공간이 필요한데 요소기술 부족과 엄청난 비용 문제로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그런데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디지털 대전환’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과 ‘그린대전환’,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인류문명 대전환 등 ‘문명사적 대전환’과 함께 급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은 연결과 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AI)이 핵심인데, 이를 위한 5·6G 통신기술, IoT, 클라우드, AI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가능해졌다. ESG경영과 탄소중립에 따른 ‘그린대전환’도 ‘디지털대전환’과 연관성이 높아 주목받고 있다.지난 5월 발표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국토공간의 효율적 성장전략 지원”을 위한 ‘국토 디지털화 사업’이 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교통, 환경, 방재 등 도시문제 해결에 활용하며, 스마트시티 시범도시(부산, 세종)를 완성하고, 강소형 스마트시티를 추가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그리고 ‘기후위기에 강한 물 환경과 자연 생태계 조성’을 위해 ‘안전한 스마트 물 관리’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홍수·가뭄 등 재해로부터 안전하고 깨끗한 물 관리를 위해 인공지능(AI) 홍수 예보(2025년), 댐·하천 디지털 트윈 구현(2026년) 등 스마트기술 기반의 물 재해 예보·대응체계를 구현할 예정이다.대구시는 ‘상수도 디지털 트윈 기반 상수관망 지능화 시스템’을 개발 중인데, AI기반 지능형 누수예측을 통해 수돗물 평균누수율을 10.8%에서 2%로 감소시킬 계획으로 전국적으로 약 5천300억원의 누수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대구시는 고품질의 3D지도, 자가통신망, 재난안전통신망 제2운영센터, 고밀도재난관측망 등 풍부한 기반 인프라를 활용해 ‘폭염 디지털 트윈’ 구축사업을 시작으로 지진, 풍수해 등 재난전반으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벤처기업인 아바타(주)는 지난 1월 비임상 동물실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술로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이 기술은 멀티비전 카메라가 설치된 관측 챔버(Chamber)에 디지털 트윈 기술로 동물의 행동을 정밀 분석하는 시스템으로 수많은 실험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트윈’ 기술은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기업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지난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로 민선 8기 대구시와 경북도를 이끌 수장이 선출되었다. 주요 공약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미래 첨단산업유치 및 스마트 도시건설 등에도 ‘디지털 트윈’ 기술의 접목이 기대된다.

2022-06-06

TK의 도약, 홍준표·이철우 손에 달렸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이 오늘(7일) ‘대구시장직 인수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시정업무에 들어갔다. 동구 신천동 대구테크노파크 건물에 둥지를 튼 인수위는 오늘 오전 인수위원장과 인수위원에 대한 위촉장 수여식을 갖는다. 인수위는 정책추진·시정개혁·군사시설 이전TF 등 3대 TF로 구성됐으며, ‘시정개혁단’과 ‘정책추진단’을 향후 시정 운영의 양대 축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홍 당선인은 다음달 시정을 인수한 뒤 ‘재정점검단’을 별도로 구성할 예정이어서, 시 산하 공공기관 통폐합 문제가 앞으로 쟁점으로 부상하게 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당선 후 바로 경북도정에 복귀해 “새로운 상상력으로 경북도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 도지사는 지난 3일 지방선거 이후 첫 간부 회의를 열고 “미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국가를 발전시키는 세상을 될 것이기 때문에 대학·기업·지방정부가 원팀이 되고 바이오 의료 산업 발전과 문화·관광·예술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현재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모든 자원이 집중돼 대구·경북뿐 아니라 비수도권 지자체 전부가 생존위기를 겪고 있다. 대기업 유치를 비롯한 다양한 현안에 대한 해법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경우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 통합신공항 건설, 대구취수원 다변화 같은 급한 숙제가 한 두 개가 아니다.다행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대구·경북 두 광역단체장 모두 차기 대선후보로 지목될 만큼 중량감 있는 인물이어서 시·도민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현안들은 홍준표 대구시장이나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역량이 높다고 해서 한 사람의 힘만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통합신공항 건설 현안을 예로들면, 대구·경북 모든 정치권이 힘을 합쳐도 민주당의 협조없이는 해결하기 힘든 사안이다.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는 여야 정치인들과 정례적인 모임을 만들어 현안숙의를 일상화할 필요가 있다. 누가봐도 놀랄만한 대구·경북의 도약을 이끌었다는 성과를 임기중에 내야 차기 대통령리스트 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다.

2022-06-06

물가 쇼크, 취약계층 보호에 각별한 신경을

5월 중 물가상승률이 전년 같은기간 보다 5.4%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8년 8월이후 13년 9개월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소비자가 자주 사는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6.7% 상승했다.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정부는 작년 연말 제시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11년만에 4%대로 올려 발표할 예정이다. 작년 연말보다 2배 높다. 또 올 경제성장 전망치도 기존 3.1%에서 2% 후반으로 낮출 예정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6월과 7월에도 5%대의 물가상승률이 지속할 것으로 봤고 국내외 각 기관도 전망치를 수정하고 있다.추경호 부총리는 지금의 물가 상황을 두고 “매우 엄중하다”고 했다. “농축산물의 생산·유통·판매 전과정에 걸쳐 가격 안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유가격 및 국제 원자잿값 폭등 등 국제적 상황이 국내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어 정부 주도만으로 물가를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지난 4월 국내 경제는 생산과 소비, 투자가 2년 2개월만에 트리풀 감소세를 기록했다. 치솟는 물가 속 성장엔진도 식어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대구와 경북의 5월 중 물가상승률은 5,6%와 6.4%를 각각 기록했다. 전국 평균보다 높다. 정부서도 물가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지자체 차원에서도 물가 안정을 위한 정밀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실질소득이 줄어 서민의 생활이 가장 어렵게 된다. 포항시내에 운영 중인 노인무료급식소의 경우 지자체가 지원하는 지원비로서는 재료비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최근 일부서는 영업 일수를 줄이고 있다고 한다. 취약층의 노인 상당수가 당장 무료급식을 받지 못할 처지에 있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이처럼 서민층이 바로 직격탄을 맞는다.물가안정에 중앙정부가 앞장서야겠지만 지방정부도 지역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물가안정 대책반을 조속히 구성하고 특히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별도 지원책 마련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2022-06-06

지속가능한 성장, 친환경 기업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매년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이 날은 1972년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국제사회가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공동노력을 다짐하며 제정한 날이다.환경과 관련하여 ‘핫’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기후정의’이다. 이 단어는 “기후 변화의 원인과 영향이 초래하는 비윤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사회 운동”이란 말로 아일랜드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메리 로빈슨의 ‘기후 정의’책에서 유명해졌다.그는 인디언의 속담에 “자연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부터 잠시 빌려온 것이다”라는 말을 비유하면서 “이 지구 위 모든 사람이 환경 운동가가 되어야만 다음 세대인 어린이들에게 ‘잠시 빌려온’ 세상을 제대로 지켜서 돌려줄 수 있다”라고 했다.또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78억마리 꿀벌 집단 실종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현재 전 세계 꿀벌의 1/3이 사라졌고, 미국에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할 정도로 그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메릴랜드 주립대 교수 데니스 밴 엥겔스도프는 연구 논문에서 “벌, 우리 삶, 자연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이 인간의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라고 하며 지구 온난화와 살충제 남용을 막고, 꿀벌 생태계 회복을 위해 사회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기업에서도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기업이 포스코다. 이 기업은 저탄소·친환경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선제적·능동적인 활동으로 세계 철강업계 관계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석탄 사용량 저감으로 온실가스 감축, 집진 설비 구비로 미세먼지 저감, 철강 부산물의 재활용의 3대 환경과제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여 가시적 성과가 나왔고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필자는 투자부분 보다도 매년 수만건의 QSS개선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환경 변화들이 더 값진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이 활동으로 직원들의 환경 마인드가 바뀌었고, 나아가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과 개선의 의지가 높아졌기에 더욱 값지다고 본다.또한 친환경 활동을 적극 추진하는 맥도널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빨대가 필요 없는 ‘뚜껑’ 사용, 플라스틱 뚜껑 없애기, 개인 컵 사용하기 등으로 11억개가 넘는 일회용컵 사용량 감소, 14톤이 넘는 플라스틱 사용 감축 등의 성과를 보여주었다.이 환경지킴 활동은 모든 사람의 참여가 절실하다. 기업은 저탄소·친환경활동에 앞장서야 하고, 사회 구성원은 물건을 아껴 쓰고, 보존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의 힘이 아니라 물이 바위를 두드린 횟수라는 말이 있다. 나부터 지금부터 생각을 바꾸고 꾸준히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기업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가야할 미션이 바로 친환경 기업이고, 이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과 개선활동을 해야 하며, 개인은 생태계의 파수꾼인 꿀벌들의 힘찬 날갯짓 재현을 위해 힘을 합쳐 환경 문제를 발굴하고 개선해 나가는데 앞장서야 한다.

2022-06-06

노래하는 그릇, 소리명상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내기를 마친 들녘의 저녁때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개구리 소리가 왕왕거린다. 어둠이 깔리면 간간이 소쩍새 소리가 별빛처럼 내려앉고, 심심찮게 부엉이 소리도 드문드문 밤을 수놓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수시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온갖 새소리가 새벽을 열어주고 물소리 바람소리가 마음의 청량감을 더해주는가 하면, 시원한 파도소리는 바다처럼 늘 깨어 있으라 철썩이고, 맑게 흐르는 시냇물은 지침없이 부지런하라며 끊임없이 졸졸거린다.자연은 어쩌면 거대한 음악회장이다. 풀밭을 스쳐가며 잎새를 흔드는 바람은 부드러운 선율이 손끝에서 묻어나는 하프같고, 늦거나 빠르게 맴도는 듯 쉼없이 흐르는 물은 장엄하게 연주되는 첼로 같으며, 나는 듯 거침없이 떨어지며 수만 갈래로 부서지는 폭포수는 끝 모를 스토리가 담긴 피아노 소리같다. 거기에 플룻이나 대금 같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구성진 새소리와, 한가롭거나 무단히 울부짖는 짐승들의 어설픈 외침은 악보 없는 관현악의 합주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자연의 소리는 그저 그렇게 시시각각 울리고 변주되며 곡조를 타지만, 전혀 싫거나 거북하지가 않다. 자연의 음률은 너무 시끄럽거나 거칠지 않고 부드럽고 우아하며 편안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면 여지없이 듣게 되는 자동차 소리나 공사장의 소음, 공장의 기계음 등은 언짢거나 기피하고 싶지만, 많이 접하고 들을수록 자연음은 마음이 맑아지고 심신의 평온함을 가져다주기에 사람들은 자연을 즐겨 찾고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그런데 바쁜 현대생활 속에서 자연을 접하지 않고도 거의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들으며 공감과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이른바 노래하는 그릇 ‘싱잉볼(Singing Bowl)’은 충분히 그것을 가능케한다. 히말라야에서 비롯된 명상 주발 ‘싱잉볼’은 독특한 소리와 깊은 울림으로 진동의 하모니를 느끼게 하여 몸과 마음의 안정과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명상 치유법의 일종이다. 인간의 몸이 70%가 물로 되어 있고, 소리는 물을 통해 5배 이상 빠르게 이동하기에, 몸 전체를 자극하는 매우 효율적인 수단으로 울림의 파동과 진동의 파장으로 신체의 긴장이완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신의 활력을 되찾게 하는 사운드 테라피 명상법이기도 하다.최근에 필자는 ‘부부 행복 명상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실제 싱잉볼을 체험하고 소리를 통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싱잉볼의 고요한 소리가 주는 아늑함과 미세한 진동이 온몸에 전해지는 가슴떨림을 느끼면서 오묘한 울림의 세계에 흠뻑 빠져드는 것 같았다. 우주의 근원적인 어떤 소리같기도 하고, 깊은 메와 골에서 그윽하게 퍼지는 산명(山鳴)같은 울림을 몸소 느끼는 시간은 그야말로 무아경(無我境)이었다고나 할까?소리는 진동이고 울림이며 물결 같은 에너지다. 저마다 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살아가는 시대에 자연과 타인의 소리를 경청하고 공감하여, 배려와 존중이 공명(共鳴)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2-06-06

우리는 왜 뱅크시에게 열광하는가?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홍길동 같은 영국 미술가가 있다. 뱅크시(Banksy)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그는 브리스톨 출신으로 1974년 태어났다는 것 이외에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잠든 도시의 밤을 누비며 건물 외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고 사라지는 그를 가리켜 그래피티 아티스트 혹은 스트리트 아티스트라고 부르지만 미술가 스스로는 자신을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한다. 그를 부르는 명칭이 어떻든 간에 분명한 것은 그가 우리시대 대중들을 가장 열광시키는 미술가라는 사실이다.무엇보다 자유에 큰 가치를 두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규정되어 진 것에 대한 저항한다. 이들의 낙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부정적이다. 공공기물을 훼손하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반달리즘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뱅크시의 작품만큼은 다르다. 상업주의 미술에 반대해 누구도 소유할 수 없도록 건물 벽면에 그렸지만 뱅크시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자 뱅크시는 엉뚱한 일을 벌였다. 2013년 어느 날 뱅크시는 센트럴 파크에 노점을 깔고 자신의 그림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 이것이 뱅크시의 깜짝 이벤트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시카고에 사는 한 남성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그림 4점을 60달러에 구입했다. 이것이 뱅크시의 원작인 것이 밝혀지자 그림 값이 순식간에 45만달러로 치솟았다. 또 이런 일을 벌이기도 했다.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그림을 걸었다. 영국박물관 전시실 벽면에 소를 사냥하고 쇼핑하는 원시인 그림이 그려진 돌을 전시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현대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장난을 쳤다. 이 일로 ‘뱅크시 당했다’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뱅크시는 2017년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더 월드 오프(The walled off)라는 이름의 호텔을 열었다. 베들레헴은 가장 중요한 기독교 성지 중 하나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분쟁지역이기도 한 이곳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세워진 높은 장벽이 있다. 뱅크시는 장벽 바로 옆에 호텔을 세웠다. 내다보이는 유일한 풍경은 높은 장벽 뿐이고 하루 종일 해 드는 시간도 고작 25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호텔 벽면 곳곳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뱅크시의 호텔 전체가 평화와 인권을 위한 기념비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히 3번 객실 벽면 장식 그림이 큰 울림을 준다.침대 머리와 맞닿은 벽면에 두 남자가 그려져 있다. 이스라엘 군인 복장의 한 남자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팔레스타인 남자가 깃털을 날리며 베개 싸움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복잡한 역사와 더 복잡한 정치적 갈등이 불러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을 함축하는 뱅크시의 그림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문구처럼 가슴에 확 와 닿는다.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뱅크시는 영국 남부 사우샘프턴 병원에 ‘게임 체인저’라는 그림을 기증했다. 가로 세로 1미터 크기의 흑백 그림에는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을 선택하는 대신 마스크를 착용한 간호사 피규어를 높이 들고 있다. 코로나로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의료진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기증된 그림은 경매를 통해 1천68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260억원에 판매되었고 수익금은 모두 의료진과 환자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뱅크시의 그림은 어렵지 않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도 뱅크시를 거치면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메시지는 약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해진다. 뱅크시의 메시지는 항상 가장 현실적이다. 뱅크시는 관념적이지 않다. 뱅크시에게 정의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그리고 그런 뱅크시는 분명한 변화를 일으킨다. 미술이 이래야 하지 않는가?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2-06-06

올림퍼스의 노예들 <Ⅳ>

노마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소리 지르지 마. 창피하게.안나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노마에게 작게 말하라 시늉을 했다. 노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쓸데없는 말 말고 제대로 말해봐. 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그 사람이 나한테 직접 말한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들에게 그렇게 약속했대. 그 사람 아들이 내게 이야기해줬어.-뭐라고? 그러면 회장 아들이 협박을 한 거야? 이거, 이거 딱 그림이 그려지네.안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알고 있어라 내게 귀띔을 해 준거야. 알아서 살 궁리를 하라 말해준다는 느낌이었어. 갑자기 당하고 나서 놀라지 말라는 그런 뉘앙스. 그리고 그 사람 아들 그 사람과 안 친해. 부자지간인데 잘 보면 무슨 원수 같아.-안 친하기는 뭘 안 친해.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부자지간이지. 가족끼리 싸우다가도 제삼자 앞에서는 달라지는 게 사람이야. 네가 아직 순진해서 잘 모르는 거야. 이것들이 교묘하게 말이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순진한 사람을 가지고 놀려고 하네. 그 자식이 뭣 하러 널 위해 그런 것을 말해주겠냐?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시끄럽게 하지 말라. 그거잖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거지. 이런 나쁜 놈. 너, 그 자식 전화번호 알지? 전화번호 내게 보내. 내가 한 번 만나야겠어.안나는 그 자식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다시 물었고 노마는 인조인간 말고 인조인간의 아들을 말한 것이라 대답했다.-만나서 뭐라 할 건데?-걱정하지 마. 무턱대고 싸우지는 않을 테니까. 정확한 뜻과 의도를 확인해야지. 그 쪽에서 뭘 줄 수 있는지 확인도 하고 다짐도 받아야지. 지금까지는 그냥 있었는데 안 되겠어.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겠어. 넌 모른 척하고 가만있어. 전화번호나 보내.노마는 자신을 바라보는 안나의 눈길, 여동생이 보내는 신뢰와 감사의 눈빛에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화제를 돌렸다.-참, 인조인간 수술이 언제라고 했지? 벌써 병원도 다 정하고 그랬나?-아직 날을 정하지는 않았어. 출시 예정인 신제품이 있는데 그걸 기다리고 있대. 왜? 꽃이라도 보내시게?-꽃 같은 소리 하기는. 위험한 수술은 아닌 거지?-갑자기 걱정을 해주고 그래? 인조인간 어쩌고 하더니.-어찌 되었던 조카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니 건강해야 하잖아. 의료사고 같은 것 생겨서도 안 되고. 혹시 너, 우현이 기억나? 내 친구. 우리 집에도 제법 놀러 왔었잖아.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그랬는데.-기억하지. 그런데 왜?-그 녀석이 인공 장기 관련 사업을 하거든. 인조인간이 수술을 받는다기에 그 녀석 생각이 잠깐 났어. 그 녀석을 도와줄까 하고. 안 되겠지? 인조인간은 정품으로 들어온 최고급만 쓰겠지?-우현 오빠한테 내 이야기 한 거야? 오빠가 말한 거야? 여동생이 마이걸이 되었다고. 미쳤어?안나가 발끈했다. 노마는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아니야. 설마 내가. 그냥 한 번 해본 생각이야. 정말이야.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몰라.-절대로 말하면 안 돼. 그런 일 생기면 오빠하고 나 사이는 끝이야. 그리고 아무튼. 돈이 문제가 아니야. 이번에 이식받으려는 것은 인공 폐인데 신제품이야. 중고가 없어.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그리고 오빠는, 오빠 조카의 아빠가 되는 사람 수술인데 중고를 권하려 했단 말이야?안나는 자신이 마이걸이 된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노마를 다그쳤고 노마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그런 일 없을 것이라 다짐했다. 노마는 문득 궁금했다.-안나, 너 우현이 중고를 취급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나는 중고라고 말한 적 없는데.안나는 예전에 노마가 이야기해준 적 있다며 벌써 깜빡깜빡하는 것이냐 놀렸다.그날 노마가 맡은 곳은 스무 군데였다. 점심시간을 포기하고 안나를 만났었다. 오전에 일곱 집을 돌았으니 오후에 열세 곳을 방문해야 했다. 오후 첫 방문 수리는 카페 근처의 아파트였다. 현관 벨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다. 노인의 발걸음이다. 모니터로 노마를 확인하고 현관까지 걸어오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방 안에 있었다면 더할 것이다. 노마는 기다리는데 익숙했다. 문이 열렸고 노마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 입구에 서 있던 노인이 노마를 아래위로 살폈다.-기사 양반 기다리느라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노마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약속한 시간보다 십오 분 정도 빠른 방문이었다.-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일단 로봇부터 보겠습니다.노인은 노마를 가정용 로봇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로봇은 거실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최근 출시된 신제품이었다.-바꾸신 지 얼마 안 되었군요.노인은 그걸 어떻게 아느냐 감탄을 했다.-제 일인데요. 어르신이 접수하실 때 말씀주시기도 했고요. 신제품은 원래 고장이 잦습니다. 다음부터는 신제품이 출시된 후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교체하십시오. 그래야 생산과정이나 개발과정에서 놓친, 뒤늦게 발견된 오류 같은 것들이 교정된 제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노마가 로봇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로봇의 골격이나 외관에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어르신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하셨지요? /김강 소설가

2022-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