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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이 화제다. 방영 초기에는 폭력성이 논란이 되었다면, 지금은 이 작품이 ‘오징어 게임’의 위상을 이어받을 K-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가 화제다. 어쩌면 이런 저런 논란은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논란의 핵심에는 ‘지우학’이 학생들의 모습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다. 10대들을 재앙 속에 밀어 넣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전시하며, 그에 대한 윤리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세월호에 대한 알레고리를 차용하고 있다는 경향신문 위근우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우학’이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방식을 포르노에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한다.위근우의 문제제기는 타당하다. 분명 작품은 개연성과 핍진성에 있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윤리적 부채에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문제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때문에 위근우가 해당 칼럼의 말미에서 이 작품에 대해 “디스토피아를 향한 무기력의 학습”이라 평가하는 부분은 핵심을 짚어낸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는다. 우리는 과연 ‘지우학’을 잘못된 재현 양상의 예로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정녕 ‘지우학’은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를 건드림으로써 모자란 부분을 보충할 뿐인 재난 포르노에 불과한 것일까?작품에서 ‘미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꼭 살아남으라고, 그래서 고3이 더 힘든가, 좀비가 더 힘든가 어디 한 번 말해보라고. 좀비보다 수능이 중요하고, 좀비에게 죽는 게 대학 못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는 이 캐릭터를 통해, ‘지우학’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극명하다. 진짜 재난은 ‘좀비’가 아니라,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을 평범한 현실이라는 것. ‘좀비’는 비가시적이었던 구조적 폭력을 가시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좀비가 없을 때에도 이들은 서로를 물어뜯고 반목하며 배제해야만 했으며, 사회는 그들에게 결과로서의 ‘생존’을 강조할 뿐 그 과정은 알려주지 않는다.같은 맥락에서 ‘지우학’이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이 지나치다고, 혹은 신파를 위한 소재로 다룰 뿐이라 평하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자식을 구하기 위한 행동으로 인해 좀비가 되어 도리어 자식을 위협하거나, 혹은 자식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학부모의 모습은 학교폭력의 당사자인 학생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거나, 혹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아이를 구하려 시도하는 현실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더불어 학생이 같은 또래 학생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며 자살로 내모는 장면이나, 폭력의 구조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해 절망하는 모습 역시, 현실에 대한 충실한 재현의 결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모든 장면을 신파, 내지는 고통 포르노라 일갈하는 것은, 그와 같은 현실의 일부를 도려내거나 혹은 자신이 논지에 타당한 방식으로 재현하라는 억지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물론 그와 같은 재현의 방식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우학’이 그러한 사건의 재현에 있어 고심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너무 가혹하다. 작품은 분명 그와 같은 피해자의 모습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비추며 이들의 고통을 다각화하여 재현하고자 노력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렇다면, ‘지우학’은 피해자의 고통을 순간의 스펙터클을 위한 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담론을 위한 이니시에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평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다음의 이야기로는 나아가지 않은 채, 서둘러 잘못되었다 말하고 단죄하기만을 원하는 것인가. 우리가 사건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은 그와 같은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향한 성급한 일갈과 단죄의식인 것은 아닌가.문제는 또 있다. 비록 ‘지우학’이 잘못된 방식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재현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라도 우리는 사건을 재현하고 반성하며 계속적인 의미화를 해나가야 한다. 한 작품을 향해 “역해진다” 비난하며 대상을 성역화하여 박제하는 것은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하는 영역이다.그와 같은 반응 그 어디에 ‘더 나은 현실’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는 그 역함에 대한 해답마저도 지금, 우리, 학교에 요구하며 단지 일침을 가하는 논자로 남길 원하는 것일까. 그것이 칼럼리스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 때문일까? 그와 같은 일침으로 인한 고통에 칼럼리스트는 무엇을 책임질 수 있을까?

2022-02-15

시시하고 치사한

최근 친구에게서 “회사는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회사에서 뭔가를 이뤄내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게 되면 상처받는 상황에 부딪히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온 힘을 다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쓸모없는 취급을 받거나 옆자리의 동료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을 때의 상실감을 견디기 위해서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그렇다면 왜 회사를 다니는 거야?”내 물음에 그는 이토록 한심한 질문을 하는 것도 재주라며 혀를 츳츳 찼다. “돈 벌려고 다니지.”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얼굴이 조금 구겨졌던 것도 같다.“그렇지만 월급은 진짜 돈이 아니야.” 그가 덧붙였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돈 때문이지만 월급은 진정한 돈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되묻자 그는 내가 진정한 사회인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답했다.그러니까 그가 설명하는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시드머니’를 벌기 위함이었다. 정당한 노동으로 받는 돈으로는 내 집 마련은커녕 남의 집에 얹혀사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코인이나 주식을 통한 ‘한 방’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한 ‘한 방’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과연 그랬다. 친구는 시 쓰는 일을 사랑하는 청년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 않았다. 시를 쓰는 것보다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것이 더 돈이 되었다. 회사에서 온종일 일하는 것보다 클릭 몇 번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 더 돈이 되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돈을 버는 일이 무언가에 굴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숭고한 일을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일을 제안받으면 ‘고작 이거 벌자고 이런 일을 해?’ 하고 거절하기도 했다.고고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행색은 궁색해졌으며 작은 일에도 쉽게 초라해졌다. 수많은 작가들이 예술가이기 전에 생활인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경험했던 오만한 시간이었다.그 누가 돈 버는 일을 편안하게 여길 수 있을까. 타인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별 수 없이 타협하고 마는 것. 그보다 더 불편하고 곤란한 상황들이 넘쳐흐르는 것이 다름 아닌 돈 버는 일이다. 그리하여 월급날의 통장을 보면 뿌듯함보다 허망함이 앞선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할까. 더 멋있게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산다는 게 참 시시하고 치사하게 느껴진다.그럴 때면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는 어느 깊은 산속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살고 싶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오션뷰가 펼쳐진 호텔에 놀러 가고 싶다거나 아이폰의 새로운 시리즈를 가지고 싶다는 것과 다름없다. 안빈낙도의 삶이야말로 기득권만이 가질 수 있는 기만적인 태도다.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기 위해서 드는 돈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더랬다. 고요와 평화를 만끽하는 것도 이제는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나는 벗어날 수 없다. 백화점과 커피숍, 요란한 옷을 파는 상가로부터. 밖을 나서면 가장 먼저 쾌적하고 세련된 곳을 찾게 되고 무가치한 소비를 하면서도 자본주의에 비판의식을 가진다. 매일매일 이중성을 경험하고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친구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 어지러운 세계를 돌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 비관하는 대신 돈 버는 일과 자아실현을 위한 일을 완전히 갈라놓는 것을 택했다. 그것은 몇 배나 힘든 싸움이지만 동시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 놓인 가련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청년 세대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희망을 꿈꾸기 때문에 각자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들이 찾아낸 해결책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 혹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어느 쪽도 쉽게 판단 내릴 수 없다.요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누가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대. 코인으로 대박 난 친구는 얼마 전에 퇴사했다더라. 로또 당첨되고 싶다.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 아아, 머릿속엔 오직 돈, 돈 생각뿐이야. 그런 이야기에 깔깔대다가도 순식간에 우울해진다. 결국엔 또 돈으로 귀결되는 이야기구나. 그것 참 시시하고 치사하다, 하고 끝내기엔 너무도 찜찜한 기분이다.

2022-02-15

‘ESG경영’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월 11일 신축공사 중이던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공사인력 1명이 사망했고, 5명이 실종됐는데, 아직도 매몰자 1명과 실종자 1명을 구조·수색하고 있다.이 사고 여파로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23년간 유지한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정률이 약 60% 정도로 투입된 공사비가 1천500억원에 달하는데 전면 철거를 하면 입주 지연 보상금과 재시공 비용 등 손실 액수는 최대 4천억원으로 도급액인 2천557억원을 무려 1천443억원을 초과한다.사고원인 조사 결과에 따라 높은 처벌도 감수해야 하고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게 되면서 장기적으로 이 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고 발생 불과 2주 후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조치 의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본사의 안전보건관리체계 미흡으로 경영진을 바로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코로나19가 유발한 비대면 사회로의 환경변화로 수많은 취약한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또한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전 세계 많은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들이 2050탄소중립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지난 4일 대선 후보 간 첫 TV토론회에서 크게 주목받은 ‘RE100’ 즉,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 글로벌 캠페인에도 많은 기업이 자의나 타의로 인해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이 토론회에서는 노동조합이 추천한 이사가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게 되는 노동이사제의 도입에 대한 찬반 토론도 뜨거웠다.유럽연합(EU)은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 가운데 역내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인 ‘탄소국경조정제도’를 곧 시행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이제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효율화로 이윤 창출을 극대화하던 경영행태에서 친환경제품을 사용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도입해야 하는 대전환기에 직면하게 되었다.즉, ‘기업경영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를 헤치는 의사결정(Governance)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대전환의 시기에 기업들은 ‘성장중심’ 경영에서 ‘지속가능’ 경영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지속가능 경영이란, 기업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진하는 경영 패러다임을 가리킨다. 이제 100년 이상 장수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ESG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기업경영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작년 10월말 대구상공회의소가 보름간 대구지역 내 375개 기업에 대하여 ESG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 10곳 중 6곳이 ESG경영의 도입 필요성을 체감한다고 응답하였다. 이제 우리 대구와 경북의 기업들에도 ESG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 같다.

2022-02-14

22일간의 대접전…민심은 정책에 쏠린다

3월 9일 실시되는 제20대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15일부터 시작된다. 공식 선거전 기간에는 자동차와 확성장치를 이용한 공개장소 연설·대담, 거리 현수막 게시 등이 가능해져 국민들이 선거분위기를 몸으로 체험할 것이다.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간 대혼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선거 전문가들이 “이렇게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는 처음 본다”고 분석할 정도다.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이·윤 후보가 35∼40% 선에서 박빙 경합을 하고 있다. 일부 조사에서 윤 후보가 오차범위 밖 격차를 보이는 결과가 나오기는 하지만,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지 않아 앞으로 돌발변수에 따라 판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막판 판세를 뒤흔들 최대 변수는 야권후보 단일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지난 13일 후보등록 후 윤석열 후보에게 국민여론조사방식으로 후보 단일화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직 갈 길은 먼 것 같다. 윤 후보 측에서 국민여론조사를 할 경우 여권지지자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한 후보를 선택하는, ‘역선택’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는 “안 후보가 정권교체를 위한 대의차원에서 제안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여론조사 단일화방식에 대해선 “아쉬운 점이 있다”고 밝힌 이유다. 그렇지만 안 후보가 먼저 단일화 제안을 한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한 태도다. 서로 만나다보면 후보들이 직접 만나 담판지을 여지도 생길 수 있다.공식선거운동 기간 중 단일화 협상과정이 최대 이슈로 부상되겠지만, 이외에도 후보 배우자를 둘러싼 리스크, 최소 3차례 예정된 TV토론회,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젊은 층 투표율 하락 등도 판세를 예측하기 힘든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유권자들은 지금까지의 대선캠페인이 네거티브전으로 일관된 만큼, 본선에서는 국정비전과 정책공약이 주 의제로 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국가현안인 지역균형발전과 코로나 위기 극복, 산업혁신, 일자리 확보, 부동산문제, 외교안보, 정치사법개혁등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을 듣고 투표장으로 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2022-02-14

포항경주공항 출범, 관광 활성화로 이어져야

오는 7월 14일부터 포항공항의 이름이 포항경주공항으로 바뀐다. 포항시와 경주시가 지역 상생협력 차원에서 추진한 공항명칭 변경 사업이 지난 9일 국토부 항공정책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것이다. 특히 국토부의 명칭변경 승인이 공항 활성화를 바라는 지역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는 점에서 명칭변경에 따른 공항 활성화에도 관심이 크다. 1970년 건설된 포항공항은 경북 유일의 공항이지만 항공 수요부족으로 민간항공 유치가 지지부진했다. 52년 역사 속에 포항∼제주, 포항∼김포의 항로가 여러 번 개설되고 중단되었다. 그러다 2020년 포항시는 공항 활성화, 경주시는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양 도시가 공항명칭 변경에 합의했다. 경주시는 공항에 경주라는 이름을 넣음으로써 공항을 보유한 관광도시 이미지를 획득하고 포항은 국내 최대 관광도시인 경주와 협력함으로써 공항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포항공항은 1997년 연간 이용객 112만명을 정점으로 계속 추락해 지금은 연간 이용객이 6만∼9만명 정도에 머물러 있다. 포항경주공항의 명칭변경은 이처럼 추락하는 이용객 수를 끌어올려 경북 동해안 중심공항으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특별한 목적이 있다. 단숨에 이용객 수를 늘릴 수야 없지만 경주관광과 연계한다면 좋은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2025년 완공 예정인 울릉공항과의 연계도 포항공항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다.그러기 위해선 포항공항으로의 접근성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 현재 포항공항과 경주 보문단지와의 도로 여건은 경쟁공항인 울산공항보다 못하다. 포항공항에서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두시간 걸려 보문단지에 도착한다면 공항의 명칭변경은 무의미하다. 경북 유일의 포항공항을 지역의 중심공항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통합신공항과 포항경주공항, 울릉공항 등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대구경북의 하늘 길을 열어간다면 경제적 파급력도 클 것이다. 포항경주공항 활성화 전략에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겠다.

2022-02-14

구하라법

구하라법은 양육의무 져버린 나쁜 부모가 사망한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이다. 이 법은 지난 2019년 11월 25일 사망한 연예인 구하라의 친오빠 구호인 씨가 국민청원으로 추진하고 있는 법안이다.구 씨의 생모는 20여 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구하라가 세상을 떠나자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민법 1004조에 따르면 자식이 사망하면 제1 상속권자는 친부모가 된다.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제한적 경우 상속결격 사유를 인정하지만, 여기에 부양 의무 태만과 관련된 조항은 없다. 20대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구하라법이 통과되지 못한데는 법무부가 내용은 비슷하지만 ‘구하라법’과는 완전히 반대 개념인 ‘상속권상실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대표발의한 ‘구하라법’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지 않은 경우, 자녀가 사망했을 때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자연적·원천적으로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법무부가 주장하는 ‘상속권상실제도’는 본인 사망 전, 양육하지 않은 파렴치한 부모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한 후 승소해야 한다. 유가족도 소송할 수 있지만, 사망 후 6개월만 가능하다.대한변협과 서울변호사회 등 법조계와 시민단체들은 서 의원의‘구하라법’에 찬성한다. 법무부안은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에게 소송을 걸어야 하는 방식인데다 자녀가 언제 죽을 줄 알고 소송을 제기하며, 아이가 죽기 전에 키우지 않은 부모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법무부의 탁상공론식 법안이 국민들의 발목을 잡고있다는 지적이 따갑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14

노송(老松)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Ⅰ)

달고 묵직한 향이 흘러내렸다. 국화 향은 장례식장 입구와 빈소를 바닥부터 채웠고 만식이 누워있는 관보다 높은 곳까지 쌓였다. 만식이 가지고 갈 마지막 기억은 국화 향이었다. 조의금 함에서 새어나온 지폐의 냄새가 약간 섞이는 정도면 충분했다.조문객들이 문을 열 때마다 바람이 들어와 국화 향을 흔들었다. 필립의 코끝에 국화 향이 닿으면 필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세 걸음 앞으로 나가 영정 앞의 향로에 향을 더 피웠다. 국화 향이 흔들린 틈으로 다른 무언가가 들어갈 것 같았다. 필립은 만식이 국화 향과 지폐, 향로의 향을 제외한 다른 냄새를 기억하는 것이 싫었다. 이를테면 안나와 그 자식의 냄새. 비록 필립이 약속한 삶들이기는 했지만.필립은 두 번째 자식이었다. 안나의 뱃속에 세 번째 자식이 있었지만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안나와 그 자식을 어찌 대할지는 오로지 필립과 필립이 얻게 될 것들에 달려 있었다. 물론 필립은 약속을 잊지 않았다. 만식과의 약속, 노마와의 약속 모두. 지키지 못할 약속을 왜 하나? 회의석상에서, 직원과의 공식적인 대화 자리에서 필립이 즐겨 쓰던 말이었다.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고 결국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필립은 그런 날이면 당사자를 불러 술을 사주고 어깨를 토닥였다.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아? 이렇게 말하며.들어가 좀 쉬세요. 몇몇 사람들이 안나에게 말했다. 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리 내 울지는 않았지만 쉼 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울다가 지치면 반대편 벽을 보거나 한숨을 내뱉으며 어휴,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필립은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만식의 영정을 올려다보거나 방바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가깝지 않은 사람들, 조문객들 중 일부는 안나가 필립의 아내인지 필립의 여자 형제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필립에게 직접 묻지 않았다. 자신들의 테이블로 돌아가 묻고 상상했다. 필립 또한 나서서 설명하지 않았다. 안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안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저 여자는 왜 빈소에 두는 거냐? 상복까지 입히고.필립이 화장실에 들어서자 뒤따라온 외삼촌이 물었다. 오래전 죽은 누이의 남편 빈소임에도 찾아와 조문을 하고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고마운 일임에는 분명했지만 필립은 고맙다 말하지 않았다. 필립의 경험에서 외가의 삼촌은 친가의 삼촌에 비해 기능이 떨어지는 어떤 것이었다. 어릴 적에는 용돈과 재미에 있어 그랬고 나이가 들어서는 필립과 만식에게 기대는 정도에 있어서 그랬다.벌써 세 번째 같은 것을 물었다. 여전히 누이의 자리라 생각했던 곳에 다른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지만 안나의 자리는 필립이 판단할 일이었고 결정한 일이었다. 필립에게는 외삼촌이 와 있는 것이나 안나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나 같았다. 둘 다 장례식장 외벽 우수관을 감고 오르는 질긴 넝쿨이었다.-아버지 가시는 자리를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냥 둘 생각입니다. 이젠 그만 물으십시오.바지 지퍼를 올리고 세면대로 향하는 필립의 뒤에서 외삼촌이 말했다.-네가 엄마에게 어찌 이럴 수 있냐?필립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손을 씻은 후 종이 타올로 손을 닦고 거울을 보았다-그러니까요. 엄마의 아들인 제가 결정한 일이니 그냥 계시라고요. 저도 웃으며 결정한 것은 아니니.자정을 넘어서자 조문객의 수가 줄어들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만식은 죽었지만 만식이 하던 일은 남았고 만식이 가졌던 것들 또한 남았다. 누군가 이어가야 할 일, 누군가가 가질 것들. 필립이 그 누군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필립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안나를 보았다. 얼굴이 부어 있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는 젊은 여자가 버티기에 힘든 하루였다. 황당하겠지, 슬프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저 여자 오늘 조금 많이 울었지. 정말 아버지를 사랑한 건가? 아니면 뱃속의 아이 때문에 그러는 건가? 필립은 안나의 감정과 생각이 궁금했지만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안나의 감정과 생각을 안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었다.-오늘은 더 이상 오실 분이 없을 것 같네요. 들어가서 좀 쉬세요. 내일은 오늘보다 힘든 하루가 될 겁니다.안나는 잠깐 머뭇거리다 일어섰다.-그러면 조금만 쉬었다 오겠습니다. 회장님께서도 눈 좀 붙이시는 것이. 조금이라도.회장님이라. 지금 나더러 회장이라 부른 건가? 허,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네. 필립은 빈소 옆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안나를 보며 생각했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2022-02-14

풍경과 소리, 오감 밀도 가득한 서부극

영화 장르 중에서 특정 지역과 시대가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서부극’이다. 공간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시간적으로 특정 시대가 주류를 이루며 형성된 장르다. 전초가 있고, 그 전초를 기반으로 유사한 패턴의 이야기와 구조가 반복되면서 전형이 만들어진다. 패턴과 전형은 무수한 작품들을 쏟아내면서 장르로 굳어진다. 이후 서부극이 시들해지면서 공간과 시대를 이탈한 변주된 작품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스타일과 내용을 함유한 ‘서부극’이 만들어진다. 장르는 변용을 통해 진화하며 명맥을 잇는다.서부극은 그리 길지 않은 미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이다. 특정한 국가의 시대적·공간적 이야기가 세계적인 장르로 형성된 것이다. 그간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던 서부극의 시대적 배경은 1850년대 골드러시와 미 대륙 횡단 철도 개통, 1860년대 벌어진 남북전쟁 전후가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악당과 보안관, 인디언, 역마차, 총격씬, 황량한 사막을 질주하며 말을 타고 달리는 추격씬, 현상금과 금을 찾는 이들이 클리셰(Cliche·전형적, 의례적 의미)로 각인되었다. 이 속에 정의와 복수, 대결의 다양한 내용들이 자리잡는다.서부극은 공간적 장르다. 그 시대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실에 기반하거나 상상을 동원하여 엮는다. 공간적 해석 속에서 그 공간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전형이 형성되었으며, 액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강도’의 수위를 조절하여 왔다.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는 공간을 약간 비껴서 ‘강도’를 낮춰버린 서부극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운다. 서부극이면서도 서부극의 전형이 등장하지 않는다. 먼저, ‘퍼스트 카우’의 공간은 다르다. 18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간의 서부극이 다루었던 시대적 배경 이전이며, 오리건주라는 북서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직은 공격적인 서부 개척이 일어나기 이전이며, 백인들의 숫자보다 인디언의 숫자가 많은 곳. 모뉴먼트 밸리가 등장하는 황량한 서부가 아니라 춥고 습한 울창한 숲이 배경이 되며, 끼니를 걱정하는 초라한 행색의 유랑노동자가 등장한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비껴선 공간에서 기존 서부극에서 다루지 않았던 다른 것으로 공간을 채운다. 식량을 얻기 위해 버섯을 따는 모습과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낙엽을 밟는 소리와 새들과 풀벌레 소리 등 미세한 소리와 장면으로 채운다.‘퍼스트 카우’의 공간은 익히 보아왔던 서부극의 공간이 아니라 자연의 미세한 소리와 풍경에 집중한다. 대사는 절제되었으며 톤을 높이지 않는다. 정의와 복수, 의리의 내용을 제거하고 일용할 양식을 나누는 우정과 연대가 있다. 절제된 대사는 날카롭지 않고 따뜻하다. 궁핍한 삶에 끼니를 걱정할지라도 사소한 대화의 와중에서도 진솔한 눈빛이 오간다.느슨할 것 같지만 긴장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긴장은 기존의 서부영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긴장은 차분하게 상승되었다가 조용히 내려 앉는다. 결을 달리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영화의 프롤로그에서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다.영화가 시작되면 현재의 오리건주 컬럼비아 강을 타고 들어오는 화물선을 천천히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러다가 개와 산책을 하던 한 여성이 강변에서 나란히 누워 있는 두 구의 해골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앞에 있는 나무를 쳐다보니 새들이 지저귀고 여성은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우며 200년 전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해골을 발견한 여성의 상상일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시작된 장면과 내용은 영화의 결말과 내용이 맞닿아 있지만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기존의 공간을 멀리 벗어나 있는 이 영화에 감독은 그때 그 시절 당연히 존재했었을 것들의 일상으로 채운다. 바느질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성껏 빵을 굽는 궁색한 일상의 모습. 작은 장면들, 미세한 소리와 잔잔한 전개 속에서 펼쳐지는 긴장감이 서정시와도 같은 서부영화로 등장했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2-14

포스코, 신뢰회복이 우선이다

전준혁 경제팀장 포스코가 배당금 관련 주주들의 불만으로 시끄럽다. 포스코는 최근 보통주 1주당 5천원의 연말 현금배당을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분기 배당 1만2천원까지 포함하면 2021년 총 배당금은 주당 1만7천원 수준인 셈이다. 총 배당금 규모만 1조2천856억원으로, 이는 2020년 총 배당금 6천203억원보다 2배 늘었고 포스코 자체적으로도 역대급 금액이다. 그런데 주주들은 왜 불만일까.포스코는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연결배당성향 30%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시끄러웠던 당시에도 최정우 회장은 공개 주주서한을 통해 “2022년까지 연결배당성향 30%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재확인시켜줬다.이런 가운데 2021년 포스코는 최대 실적을 견인하며 연결기준 순이익이 전년대비 302.5%나 증가한 7조1천960억원을 기록했고, 약속대로라면 7조원이 넘는 순이익의 30%(주당 2만8천500원 이상)를 배당해야 했다. 그러나 이 수치가 19% 수준에 그치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주주들은 금전적인 이익보다 포스코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기업 상황이 각종 대내외적 여건에 따라 바뀔 수는 있는데,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우연인지 몰라도 배당 결정이 지주사 전환을 결정짓는 임시 주주총회 이후에 일어났다는 것도 논란이다. 30%란 수치가 찬성표를 위한 미끼였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이러한 태도 탓에 불거진 포스코의 본질적인 ‘신뢰’문제는 현재 포항지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포스코 지주사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포스코는 “지역에 해를 끼치는 것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의 시각은 냉담하다. 심지어 “지방 분권에 역행하는 일”이라는 프레임과 함께 정치권이 가세하며 포항은 물론 전국적인 이슈로 번지는 모양새다.포스코는 이제 신뢰회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무너진 신뢰 속에서는 아무리 약속을 해봤자 ‘공염불’일 뿐이다. 포스코의 어려움은 포항의 어려움이고, 포항의 발전은 포스코의 발전이다. 만약 포스코가 ‘양치기 소년’이 된다면, 지역민 역시 포스코의 손을 더는 잡아주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jhjeon@kbmaeil.com

2022-02-14

手不釋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계절의 시계는 어김없이 가고 있다. 지척에서 기웃거릴 듯한 봄날은 서둘지 않고 기다림과 설레임 속에 차분한 걸음으로 오고 있다. 한결 포근해진 날씨에 이른 봄맞이라도 하듯 모처럼 보경사 인근의 산을 찾았다. 인적이 드문 산언저리에는 메마른 낙엽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겨울가뭄이 심해선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거림이 눈 밟는 소리 마냥 정겹게 여겨졌다.봉긋하게 쌓인 낙엽더미를 지날 때마다 무릎까지 차오른 눈밭을 걷듯 푹푹 밟아 보기도 하고, 한아름의 낙엽을 공중으로 날려 눈처럼 맞기도 하다가, 푹신한 낙엽더미에 그대로 드러누워 낙엽을 이불 삼는 재미가 쏠쏠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한적한 산길에서 장난도 치고 익살을 부리며 한참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산마루에 이르렀다. 탁 트인 시야에 송라와 월포지역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오고 그 뒤로 동해 바다가 푸른 실루엣으로 드리워졌다. 오후의 햇살 속에 올망졸망 발 아래로 펼쳐진 멋진 광경을 사진으로 남기려 했으나 아뿔싸, 산행 전부터 줄어들던 폰 배터리가 벌써 소진돼버려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등산 초입부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산을 오르며 갖가지 재미에 빠지다 보니 한동안 폰을 의식하지 못한 것 같다. 정상 주변을 돌아 하산하며 폰의 시달림(?)없는 산행 내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훨씬 많았음은 불문가지였다. 스마트폰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휴대폰 이상의 많은 의미를 갖게 된지 한참이나 됐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보는 것도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거의 온종일 손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휴대폰이니,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글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공부한다는 뜻의 수불석권(手不釋卷)이 요즘은 너나없이 ‘수불석폰’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만큼 스마트폰의 활용성과 의존도, 영향력이 커진 셈이다.문명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듯이 시대의 총아 같은 스마트폰에도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온갖 소통이며 정보, 지식, 콘텐츠 등을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는 분명 우리의 일상에서 편리함과 유용함을 주는 도구지만, 여러 부작용과 위험성에 노출돼 경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일컫는 ‘스몸비 현상’을 스마트폰 사용자의 95%가 경험한다는 통계와 운전 중 스마트기기 사용율이 42%로 높아져 갈수록 사고발생과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듯이, 스마트폰 과의존이나 미디어 중독 예방을 위한 디지털기기 거리두기로 자기조절능력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휴대폰에 구애됨없이 5시간여 산행을 하는 동안 짧게나마 자연을 보는 여유와 눈을 새롭게 가진 것 같다. 스마트폰과 멀어질수록 자연과 가까워지고, 수불석권할수록 세상 속에서 정을 나누며 지혜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2022-02-14

제조 설비관리와 기본적인 思考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중국 의학사에 있어서 실존 인물 중 가장 명의로 전국시대 편작(扁鵲)을 꼽는다. 사람들은 그를 죽은 사람도 살려낼 정도라고 하여 ‘신의(神醫)’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집안 3형제가 모두 의사였으며 소문을 들은 위(魏)나라 군주가 편작에게 “3형제 중 누가 가장 의술이 뛰어나오?”라고 물었다.편작은 뜻밖에도 “큰 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이 그 다음이며, 제가 가장 떨어집니다”라고 하였다. 이유인즉 “큰 형님의 의술은 병의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근본원인을 사전에 제거하여 예방하며, 둘째 형님은 병의 초기 증세를 치료하며, 본인은 중병만 주로 치료하여 침을 꽂고 피를 뽑고 약을 쓰고 수술을 하는 등 법석을 떨기 때문에 유명하다고 하였다.제조 설비를 정비하는 사람도 의사에 비견 될 수 있다. 설비가 아프면 의사처럼 치료도 하지만 이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활동과 설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제조 공정에서 주체는 사람과 설비이다. 설비의 안정은 생산, 품질, 원가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핵심이며 설비에 이상이 발생하면 조치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어 비용이 증가한다. 또한 P사의 10년간 재해를 보면 절반 가량이 이상 조치 과정에서 발생하므로 재해예방을 위해서도 설비의 안정은 매우 중요하다.이런 설비관리에 들어가는 총 정비비는 ‘설비신뢰도’와 ‘정비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설비신뢰도는 설비도입 시 대부분 결정되며 비용이 많이 들수록 신뢰도는 높아진다. 설비 가동 중에는 ‘고장이 얼마나 안나는가’와 ‘고장시 얼마나 빨리 수리하는가’로 신뢰도를 판단하며 지표는 MTBF(Mean Time Between Failures)와 MTTR(Mean Time To Repair)을 사용하고 있다.설비신뢰도의 대부분은 초기 도입 시 결정되므로 설비 운영 중에 총 정비비를 좌우하는 것은 ‘정비력’이다. 정비력은 인원과 기술력의 관계로 표현한다. 많은 인원으로 기술력이 낮으면 비용이 증가하고, 적은 인원이라도 기술력이 높으면 비용은 줄어든다. 그러므로 총 정비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람의 정비기술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필자가 지도하는 P사의 모 정비부서 리더는 부임 후 조직의 소통과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 고민하다 사람의 역량 향상에 집중하였다. 5년 이하 저근속 직원은 최근 7년간의 장애사례집을 발간하여 학습과 자율 리포트를 작성하도록 하고, 전문 부서 파견 근무와 전문가 초청 교육은 물론 장인, 명장과 같은 모범 선배 양성을 지속 하였다. 그 결과 학습을 통해 정비기술력이 향상되고 더 많은 문제의 발굴과 개선이 이루어지며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는 선순환 체계가 형성되었고 설비장애율이 0.11에서 0.05로 220% 개선되었다고 한다.동양 한의학은 사람의 체질과 습관을 바꾸어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정비인의 역할 중 가장 큰 부분도 설비가 건강하도록 환경과 체질을 바꾸어 고장을 예방하는 것이며 그래도 예기치 못한 이상이 발생하면 빠르게 조치하는 능력으로 그 중심에 정비기술력이 높은 사람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2022-02-14

단일화는 빠를수록 효과적이다

김진국 고문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 정신은 뭘까. 11일 저녁 대선후보 토론을 보면 딱히 잡히는 것이 없다. 서로 약점을 공격한 게 전부다. 미래 비전을 말하는 사람이 없고, 관심을 두는 사람도 드물다. 당장 관심사는 정권교체냐 정권 유지냐다.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주 리서치뷰 조사에서 정권교체 지지(56%)가 정권 재창출 의견(36%)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평가에 대해서도 긍정 평가(40%)보다 부정 평가(57%)가 훨씬 많다.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비슷한 추세다.문 대통령은 지난주 “아무리 선거 시기라고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진영 간의 적대를 증폭시키고, 심지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적대와 증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진영 간 적대를 키운 게 누군가.문 대통령은 지난달 종교 지도자들에게 “(통합과 화합은)당연히 정치가 해냈어야 할 몫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정치권이)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국민 분열을 인정했지만, 그 책임은 정치권 전체로 희석했다.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던 취임사는 그냥 좋은 말을 붙여놓은 데 불과했다.촛불 이후 국민통합의 기회를 진영정치로 몰아갔다. 상식이 사라졌다. 임기 내내 정적에게는 잔인할 만큼 용서가 없었고, 같은 진영에는 봄바람이었다. 비서실에 선물한 ‘춘풍추상’(春風秋霜)도 그저 멋있는 글귀일 뿐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 그나마 남은 가능성까지 깡그리 무너졌다. 총선 때는 위성정당으로 협력 세력의 몫까지 약탈했다.공정이 무너지고, 견제할 세력은 없고, 헌정 제도도 마비됐다. 검찰, 법원, 국회…. 일자리는 마르고, 새 특권층이 설쳤다. 청년층이 절망했다. 그나마 지지율이 받쳐주는 건 극심한 편 가르기로 ‘대깨문’을 만든 덕분이다. 정권교체만 하면 이 상황이 나아질까. 또다시 보복과 뒤집기를 반복하지 않을까.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준비된 후보가 아니다. 정권교체를 위해 선택됐을 뿐이다. 집권하면 적폐 청산하겠다는 윤 후보의 말에 문 대통령이 발끈했다. 의도된 오독으로 보인다.하지만 ‘적폐 청산’은 집권 뒤 예상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윤 후보 지지에는 그런 기대도 많이 깔려 있지 않을까.거기에 그치면 불행이다. 냉엄한 국제 환경이 집안싸움만 할 때가 아니다. 경제 상황도 살얼음이다. 촛불은 국민 다수를 하나로 만들었지만 문 정권이 전리품을 독식했다. 정권교체 열망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적폐’ 청산뿐 아니라 진영정치 타파와 상식의 회복, 미래의 비전이 함께 녹아 있다. ‘연합정부’, ‘공동정부’를 생각하게 된다.국민은 현명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지지도는 윤석열(37%)-이재명(36%)-안철수(13%)다. 그러나 호감도는 안철수(37%)-윤석열(34%)-이재명(34%)이다. 윤 후보를 지지하는 건 정권교체를 실현할 가능성이 큰 거대 정당 후보이기 때문이다. 겸손해야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김종필 전 총리(JP)의 협조를 얻으려 정성을 다했다. JP의 청구동 자택까지 찾아갔다. DJ가 여론조사에서 선두였을 때다. 이회창 후보 측은 ‘숨어 있는 5%’를 꿈꾸며 승리를 자신했다. DJ는 끝까지 최선의 수를 찾았다. 그는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사력을 다한다’라고 말했다. ‘샤이 이재명’ 주장도 있다. 자만해서 이긴 선거는 보지 못했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어제 선관위에 등록하고, 윤 후보에게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후보는 명분 없이 철수하기 어렵다. 다당제로 ‘새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그런데도 단일화를 제안한 것은 국민의힘 논평대로 상당히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제시가 단일화를 깨려는 생각보다 명분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명분을 살려야 이탈 표를 줄일 수 있다. 단일화는 투표 직전까지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본사 고문

2022-02-13

모든 것이 공(空)하다고?!

김규종 경북대 교수 ‘반야심경’을 암송하다가 앞부분에서 딱 막힌다. “관자재보살이 반야심경을 깊이 행하실 때 오온(五蘊)이 모두 공함을 밝게 보시고 일체(一切)의 고액(苦厄)을 넘어섰다.” ‘반야심경’첫머리에 나오는 이 구절이 명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반야심경’ 260글자의 본질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오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다섯 가지를 뜻한다.우리를 포함한 세상 만유의 존재 형식과 실체가 색이다. 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수이며, 받아들인 바에 따라 생각을 일으킴이 상이다. 생각에 따라 행동함을 행이라 하고, 행동의 결과를 판단하는 것이 식이다. 예를 들어보자.강의실에 강아지가 들어온다. 나도 수강생들도 강아지를 본다. 강아지가 색이다. 강아지를 보고 모두 마음이 불편하다. 강의 도중에 왜 강아지가 들어온단 말인가. 누가 주인인가?! 그런 불편한 마음이 수다. 그리하여 나는 강아지를 쫓아내기로 마음먹고 실천에 옮긴다. 강아지를 쫓아낸 행위가 행이다. 강아지를 쫓아낸 것을 판단해보니 조금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식이다.여기서 색수상행식, 즉 오온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간적 순차성에 따라 이루어졌다. 육하원칙에 충실한 과정을 모두 거친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인과율이 적용된 게다. 그런데 이 모든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 모두가 공하다는 것이 관자재보살의 깨달음이다. 그리하여 관자재보살은 세상의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건넜다는 것이다.그런 까닭에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분명히 내 눈으로 강아지를 보고 강의실 밖으로 몰아낸 다음, 그 행위를 후회한 나의 일련의 행동이 왜 공하단 말인가?!한 가지는 확실하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내가 노력해온 독서와 사유, 인식이 가져온 지식으로는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붓다가 설하신 ‘반야지혜(般若智慧)’와 내가 추구해온 얕은 지식의 범주가 양립하기 불가능한 까닭이다.그런데 깨달음은 엉뚱한 서책에서 온다. ‘우주의 구조’를 읽다가 대면한 차원의 문제가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이 조합된 4차원 세계에서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그런데 초끈이론은 9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이 조합한 10차원을, M-이론은 10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이 조합된 11차원 세계를 주장한다. 여기서 무릎을 친다.붓다가 말하는 전생과 사후의 여섯 세계가 확연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천상,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의 여섯 공간이 그것이다. 그것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던 내가 초끈이론의 주장과 만나니 눈앞이 환해진 것이다. 시간개념이 없는 개미는 3차원 공간이 아니라, 2차원 면을 움직이는 존재다. 개미에게 인간의 4차원 세계를 말하면, 개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오온에서 10차원으로 전화(轉化)하는 과정을 보면서 각자 간직한 지식과 관습 혹은 지혜의 깊이와 너비가 얼마나 다를 것인지, 생각하니 새삼 가슴 서늘해진다.

2022-02-13

인공지능(AI)-인간의 승리일 뿐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지난 4일 개막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열기를 더하고 있다.베이징 올림픽은 현대 과학기술의 현란한 전시장이 될 전망이다. 5세대(5G),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등 혁신적인 기술이 경기장 곳곳에 도입돼 더 안전한 경기 진행과 정확한 판정은 물론,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돕는다고 한다.조직위원회는 대회 기간 내내 각 경기장에 다양한 종류의 AI 로봇을 배치한다. 선수들과 경기장 근무자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모니터링 로봇, 소독 로봇, 배송 로봇 등이다.개회식에서 선을 뵌 간결하면서도 다양한 AI 기법의 활용은 전 세계의 흥미를 돋우었다.한국의 2018 평창올림픽에서도 세계 최초 5G, 이동통신 서비스를 비롯하여 편리한 사물인터넷(IoT), 초고화질(UHD), 가상현실(VR) 서비스 등 AI 기반의 각종 기술이 선을 보였다.AI 기반 통·번역 앱인 ‘지니톡’은 공식 지정하여 음성, 이미지 문자, 장문의 텍스트 번역까지 해주는 등 총 9개 언어를 지원하고 있다.과연 AI는 인간을 완전히 대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과의 대결에서 이긴다면 그런 AI는 누구의 승리인가?튜링 테스트 (Turing Test)라는 말이 있다.기계의 지능이 인간처럼 독자적인 사고를 하거나, 의식을 가졌는지 인간과의 대화를 통하여 확인하는 시험법이다. 이 테스트는 현재 로봇 등 인공지능 연구에서 기계의 독자적 사고 여부를 판별하는 주요 기준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튜링 테스트는 1950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 해독가인 알랜 튜링(Alan Turing)이 발표한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란 논문에서 처음 소개되었다.기계의 지능이 인간에 필적하는지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대로 통과한 인공지능이 아직은 드물다.2014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첫 사례가 나왔다고 영국 레딩대학교가 발표하였다. 레딩대학교는 전날 영국 왕립학회에서 이 대학 시스템공학부와 유럽연합(EU)의 재정지원을 받는 로봇기술 법제도 연구기관 ‘로보로’가 개최한 ‘튜링 테스트 2014’ 행사에서 이런 판정이 나왔다고 전하였다.이 대학에 따르면 경쟁에 참가한 프로그램 중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슈퍼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유진’이라는 프로그램이 이 기준을 통과하였다는 것이다.한편, 2016년 세계의 관심 속에 한국에서 개최된 세계 최정상의 기사인 이세돌 9단과 구글이 개발한 바둑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은 전설적으로 남아있다.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인류 대표인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은 싱겁게 4승 1패의 알파고 승리로 끝났다.AI는 컴퓨터 과학의 다른 분야와 직간접으로 많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현대에는 정보기술의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적 요소를 도입하여 그 분야의 문제 풀이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자연어처리, 로봇원리, 전문가시스템, 이론증명, 신경망 이론 등이 인공지능의 분야인데 이 중에서 구글의 딥마인드는 신경망 이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딥마인드가 신경망 이론으로 알파고를 개발하기 이전 2006년에 등장한 딥러닝은 뇌의 구조를 재현한 인공지능 기술을 추진하는 혁신적인 기술로 주목받았다.자율자동차 개발도 AI의 눈부신 발전을 배경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애플도 무인 전기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AI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유진’ 프로그램의 튜링 테스트 통과도 과장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알파고도 학습한 적 없는 경우 맞닥뜨리면 터무니없는 결과를 보여준다는 비판과 함께 1패를 당할 때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중국,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자율주행차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상용화가 머지않았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업계에서는 상품성 있는 차량이 출시되기까지는 최소 5년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국제자동차기술협회에 따르면 자율주행 기술은 0에서 5까지 6개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운전자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4단계 이상을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으로 본다. 현재 상용화된 자율주행은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인 2단계다.인간과 AI의 대결, 누가 이기든 사실상 인간의 승리일 뿐이라는 구글 슈밋 회장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인간이 AI에 진다 하여도 그 AI는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일 뿐이다.사실상 AI는 인간의 승리일 뿐이다.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을 우리는 계속 믿고 싶을 뿐이다.

2022-02-13

카펫을 깔며

카펫을 깔았다. 아이들 호흡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한동안 수납장 속에 넣어 두었었다. 정해진 공간에 넣기 바빠 카펫의 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구석진 곳에 넣기 위해 여러 번 겹접었다. 오랜만에 펼쳐 놓으니 판판하지 않다. 접혔던 선이 선명하다. 자근자근 눌러서 가라앉히려 해도 조금 지나면 등허리가 불룩 튀어나온다. 울룩불룩한 카펫 위를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그 등쌀에 이리저리 밀릴까 봐 소파 발을 빌어 한 귀퉁이씩 눌러 놓았다. 식구들이 번갈아 가며 등도 대주고 엉덩이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할까 보다. 며칠은 그렇게 달래야지.달래야 할 것은 카펫만이 아니다. 요즘 내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오래 접혔던 카펫을 펼친 것처럼, 아무리 혼자 삭히려 해도 쉽지 않다. 올해로 결혼 십이 년째인 나는 그동안 부부싸움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편의 성격이 느긋하고 참을성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싸움을 피하고 싶은 내 마음도 물론 한몫했다. 내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말다툼을 했다. 늘 작고 사소한 것들로 누가 옳으니 그르니 티격태격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결혼하면 절대 싸우지 않으리라, 특히 자식 앞에선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었다.그 다짐이 조금씩 무너지더니 며칠 전엔 새벽이 될 때까지 목소리 높여가며 싸움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둘째 아이가 아직도 한글을 깨치지 못한 것이 꼬투리가 되었다. 남편은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했다. 급기야 시어머니는 자신을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잘 가르쳤다면서, 나와 비교하기까지 했다. 언성이 높아질 만하자 남편은 아이들 잘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아이들이 잠들자 남편은, 요즘의 내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다시 말을 꺼냈다. 결혼 전의 다소곳하던 모습은 다 어디 갔냐고 했다. 자신이 상상하고 기대했던 현모양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어 실망스럽다며 한숨을 토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다. 난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다. 남편이 원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려고 했을 뿐이다. 수납장에 맞춰 카펫을 접어 넣듯이.십 년이 한계였나 보다. 나는 참아 왔던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자기는 하루가 멀다하고 늦게 들어오면서, 어쩌다 내가 약속이 있어 나가면 왜 빨리 들어오라고 시간을 정해 주느냐, 그러지 마라. 내가 시댁에 하는 만큼 당신은 처가에 했느냐, 똑같이 해라. 내 하는 것의 반만 해도 사위 잘 봤다고 동네 소문이 날 것이다. 둘째가 한글 모르는 것도 내 탓만 하지 마라, 아이들 교육을 엄마 혼자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아빠도 참여해서 같이 키우자….’ 카펫이 등허리를 곧추세우며 수납장 속에서의 시간을 성토하듯이 나는 남편에게 가슴속에 접어두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꼬깃꼬깃해진 채 쏟아져 나온 말들은 남편 앞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남편은 얼버무리듯 그만 자자며 자릴 피했다.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크기를 재는 자기만의 자가 한 개씩 있지 않을까? 남편을 만나면서 나는 재단사가 되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을 대보곤 했다. 모양이 맞지 않아도 가위질은 차마 못 해 이리저리 내 마음을 겹접었다.‘접었다’라는 표현이 맞다. 내 생각은 접어서 마음속 수납장에 넣어 두었다. 색종이는 접어서 비행기로 날리고 예쁜 꽃을 피워 빛나게 할 수도 있지만, 마음은 접으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마음 접었다함은 거의 포기했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제때제때 풀어야 한다. 작은 생채기라 해서 돌보지 않고 접어두었더니 나도 모르는 새 가슴 한켠에 쌓였나 보다. 그런 상처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질 거라 여겼다. 내색하지 않으니 남편 또한 내가 어떤 불만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싸우지 않겠다는 애초의 내 다짐이 오히려 문제를 만든 셈이었다. 카펫에 누워 남편과 못다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싸움이 아닌 대화를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카펫의 구겨진 자리가 펴지듯 내 마음도 편안해질 것 같다. /김순희(수필가)

2022-02-13

‘서울 포스코’ 사태, 정부 입장 밝힐 차례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지난 11일 “지역균형발전을 역행하는 포스코의 서울 본사 설립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사실상의 본사인 지주사(포스코홀딩스)를 서울에 설립하기로 한 포스코그룹이 여·야 유력 대선후보들의 ‘서울포스코’ 반대입장 표명에 어떠한 대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현재 포항시민들은 50년간 애환을 같이해온 포스코가 일방적으로 그룹본사를 서울에 설립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며, 본지는 지난 10일자 사설에서 포스코그룹 사태와 관련한 대선후보들의 입장표명을 촉구한 바 있다.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포스코는 경북 유일의 대기업 본사로, 경북의 자부심이자 균형발전의 상징이기도 하다. 포스코의 본사 서울 설립 결정은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도전정신, 민족의 기업으로써 역사적 사명에도 맞지 않는다”라며 “지방이 살아야 국가가 사는 균형발전 시대정신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윤석열 후보도 지난달 27일 포스코그룹 지주사 서울설립 문제와 관련해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김정재·김병욱 국회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기관도 지방으로 가는 마당에 국민기업 포스코가 지주회사를 서울에 설립하는 것은 지방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포스코 측은 “현재 서울에 있는 그룹 전략본부가 지주사로 분리되는 것뿐이며, 분할 전 포스코의 인력과 자산은 변함없이 포항에 유지되기 때문에 지역생산, 세금, 고용, 투자 등 모든 측면에서 변화되는 것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룹 브레인격인 미래기술연구원에 이어 지주사마저 서울에 자리 잡자 포항시민들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 10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포스코 지주사 전환이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하고 지방소멸을 가속화한다’며 1인 규탄 시위를 벌였으며, 지난 11일에는 김정재 국회의원과 이 시장이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나 포항의 민심을 전했다. 이제 50여년간 포스코와 애환을 같이해온 포항시민들의 상실감에 대해 정부가 공식적인 태도를 밝힐 차례다.

2022-02-13

오미크론 위기, 촘촘한 방역망으로 극복해야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다. 주말인 어제도 하루 5만6천명을 넘어 또 기록경신했다. 하루 5만명대 발생이 연 나흘째다. 방역당국은 이달 말쯤에는 하루 13만∼17만명을, 일각에서는 하루 30만명도 전망한다. 하루 수천명씩 확진자가 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도 불안하고 착잡하다. 재택치료 대상자만 전국에 20만명을 넘었다니 정부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더 감당할지도 걱정이다.정부가 지난 10일부터 방역체계를 고위험군과 일반군으로 구분해 관리에 들어갔다. 60세 이상 고령자 등은 정부가 모니터링하는 대신 무증상·경증 환자는 동네병의원에서 진료받도록 했다. 증상이 가벼운 환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셀프 관리에 들어간 셈이다.오마크론 확진자가 급증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신규 확진자의 70∼80%를 차지하는 경증 재택치료대상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의료체계를 먼저 갖추는 것이 옳은 순서다.고위험군이 아니면 이날부터 PCR(유전자 증폭) 검사도 받을 수 없게 되자 자체적인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중에는 자가진단키트가 수요를 감당 못해 값도 뛰고 품귀다. 정부가 온라인 판매금지 등 개입에 나섰지만 코로나 초기 있었던 마스크 사태와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 재택환자가 증상 악화 등으로 상담센터 등에 연락을 하려 해도 전화연결이 잘 안돼 불만도 많다.정부의 준비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이럼에도 정부는 위·중증환자가 안정되고 있다며 거리두기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미크론이 통제선 안에 들어온다면 거리두기 완화도 시행해야겠지만 무앗보다 엄격한 방역체계 구축이 먼저다. 섣부른 완화는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대구와 경북도 어제 하루 4천6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 재택치료대상자도 하루 1천명 이상씩 느는 위급한 상황이다. 방역당국은 물론 지자체도 방역체계에 대한 치밀한 준비와 대응으로 무장해야 오미크론 위기도 잘 극복할 수 있다.

2022-02-13

팔공구(八公區)

얼마전 대구 동구의 자치구명을 팔공구로 하자는 동구의회 내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았다.자치구 명칭변경 주장의 요지는 동서남북 방위개념의 현재 자치구 이름으로는 지역의 정체성이나 차별성을 담을 수 없고 도시브랜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실제로 방위개념의 자치구 명칭은 전국마다 중복 사용되고 있고 지역에 따라서는 도시 확장으로 지리적 방위와 불일치하고 있는 곳이 많아 문제점으로 자주 지적되고 있다.특히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지역민의 자긍심과 통합의식을 불어넣기 위한 새로운 명칭의 필요성이 전국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실제로 이름을 바꾼 곳도 많다.경북에도 2010년 1월 포항시가 대보면을 일출명소 이름을 따 호미곶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작년에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터가 있는 경주시 양북면을 문무대왕면으로 바꾸었고, 이보다 앞서 군위 고로면은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가 있다는 역사 사실을 근거로 삼국유사면으로 바꾸었다.또 상주시 사벌면이 사벌국면으로 청송군 부동면과 이전리는 주왕산국립공원의 명승을 알리기 위해 주왕산면과 주산리로 바꾸었다.대구 동구는 대구시민의 최대 휴식처이자 대구 상징성이 있는 팔공산을 끼는 자치구다. 팔공산은 동화사, 파계사, 부인사, 갓바위 등 많은 문화유산과 더불어 역사적 이야기를 안는 우리지역 대표 산이다.대구 동구가 팔공구로 명칭을 바꾸자는 논의는 시대적 흐름이나 도시 브랜딩 차원에서도 적절해 보인다. 주민 동의와 재정적 문제가 걸림돌이나 이는 자치구가 풀어갈 일이지 논의를 막을 사유는 되지 않는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13

전국에 ‘서울대 10개 만들기’ 제안 공감 간다

경북대를 비롯한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가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거점대학을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이를 대선후보들이 공약에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10개 국립대 총장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총장협의회는 “현재 거점국립대학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서울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거점국립대를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최소한 국립대학법인 평균 수준으로 예산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국회에 계류 중인 국립대학법 제정을 청원한다”고 밝혔다.국립대 총장들의 회견 내용을 요약하면,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굳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각 정당 대선후보와 국회가 협력해 시행해 달라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제안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모든 자원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지방 명문대학인 국립대를 비롯해 비수도권 대학 대부분이 고사위기에 있다. 총장협의회가 밝혔듯이, 비수도권에도 우수인재들이 잔류하도록 하려면 지방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인재육성은 비수도권의 일자리확보와 직결된다. 지난 2019년 SK하이닉스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구미시를 뿌리치고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인재확보 때문이었다. 포항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포스코가 최근 미래기술연구원을 수도권에 두려고 하는 것도 역시 인재확보가 그 이유다.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은 “국내외 우수한 스타급 연구원들이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이와 같은 기업논리에 매몰돼 모든 인재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국가균형발전은 요원하다. 국립대총장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각 지방을 대표하는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지원해서 인재들이 비수도권에도 남도록 하는 것은 국가 최대현안이다. 그래야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도 대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마련하고, 성장기회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2022-02-10

소탐대실의 중국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 가지는 특권의식을 텃세라 말한다. 특권의식이라 표현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위세를 떨치고 사람을 괴롭히는 경우도 포함한다.텃세는 특정지역이나 직장, 단체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자주 일어나는 사람 간의 문제다. 과거 직장인 상대로 새로운 직장에서 기존직원의 텃세를 경험했느냐는 물음에 70%가 경험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는 뜻이다.먼저 입양한 강아지가 뒤늦게 들어온 강아지를 시기해 못살게 군다는 사례도 있다. 사람에게만 텃세가 있는 게 아니라 동물도 텃세를 한다.텃세와 달리 홈그라운드 이점이라는 게 있다.“똥개도 제집 앞에서는 50점을 딴다”는 시쳇말이 이를 뜻한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외 다른 지역에서는 8강이 한계라는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는 4강 신화를 만들었다. 선수도 잘 싸웠지만 2002년 FIFA월드컵 경기에 등장한 붉은 악마의 응원 덕이 컸다.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붉은 악마의 함성과 물결은 다른 나라 선수를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홈그라운드라는 게 이런 장점이 있다. 이는 합법적 어드밴티지다.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한 한국은 홈그라운드 이점을 활용해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인 4위를 목표로 삼았다. 비록 7위에 그쳤지만.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 편파 판정시비로 세계인의 비난을 싸고 있다. “올림픽이냐 중국체전이지”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홈그라운드 이점을 활용하는 지혜는 내버려 두고 텃세만 부린 중국 탓이다.금메달 한두 개 더 따겠다고 국격 실추를 감수하는 중국의 태도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10

단일화 셈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야권 단일화 논의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단일화에 선을 긋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단일화 가능성을 내비치며 밀당에 나선 분위기다.단일화를 둘러싼 양측의 셈법은 어떤 것일까. 먼저 ‘단일화’ 화두를 띄운 윤 후보 측은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이점을 살려 안 후보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반면, 안 후보는 단일화와 거리를 두며 자신의 지지율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윤석열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입장은 선명하다. 언제든 담판을 짓겠다는 태도다. 그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끼리 서로 믿는다면 단 10분 만에도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지를 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지난달까지 “공개적으로 할 말 없다”며 선을 긋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안 후보도 예전에 비해 긍정적인 발언으로 응수하고 있다. 안 후보는 윤 후보의 발언과 관련, 윤 후보의 일방적인 생각이라고 일축했지만 ‘윤 후보의 연락이 오면 만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그때 생각해보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과거 “단일화는 없다”는 입장에서 많이 진전된 입장으로 해석된다.어쨌든 20대 대선을 20여 일 앞둔 시점에서도 단일화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양측의 단일화 셈범이 다르기 때문이다. 윤 후보의 경우 다자대결을 전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기록하고 있어 단일화가 매우 시급하다고 판단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단일화 이슈를 선점하면서 야권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동시에 안철수 후보를 소수정당 후보로 부각시켜 지지율 하락을 유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반면 안 후보는 단일화 논의에 자신이 적극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정치의 폐해를 비판하며 출마한 자신이 국민의힘과 단일화를 할 경우 출마명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확실한 대선승리와 대선 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도 국민의힘 윤 후보와 안 후보와의 단일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실제로 박관용 김형오 박희태 강창희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전직 의원 191명이 10일 오전 국민의힘 윤석열·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를 향해 “후보 단일화는 승리의 길이고 통합의 길이다. 정권 교체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절체절명의 명령”이라며 “각자의 길을 멈추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고 단일화를 촉구하고 나섰다.윤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여유있게 이길 수 있는 필승카드로 단일화를 추진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안 후보로서도 10%에 채 미치지 않는 지지율로 대선끝까지 완주하는 것보다 야권 통합의 대의명분을 지키면서 담판을 통해 총리직이나 야권 공천지분 등을 확보한다면 새로운 정치판을 짜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항간에는 이미 야권 단일화 성사여부와 시기를 두고 내기가 벌어질 정도다. 단일화 셈법의 결론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무척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2022-02-10

은행점포 줄 폐쇄, 노인층만 골탕 먹어서야

인터넷·디지털 뱅킹 등 비대면 금융거래가 증가하면서 은행마다 수익이 떨어지는 동네점포를 잇달아 폐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문화에 익숙지 못한 노인층의 은행권 이용이 불편해지고 일부에서는 집단민원으로 이어지는 등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금융권에 의하면 최근 5년 사이 국내 은행점포는 적어도 1천500개 이상 문을 닫은 것으로 집계됐다. 시중은행, 지방은행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문을 닫아 일부 지역에서는 은행점포를 이용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이동해야 하는 불편도 생겨나고 있다.1년 전쯤 일이지만 서울 노원구의 모 은행 점포는 주민들이 대책위원회를 만드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는 바람에 점포 폐쇄 계획을 은행에서 철회한 바도 있다.대구와 경북에서도 지난 4년간 4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인 대구은행 점포 71곳이 줄었다. 디지털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인데다 코로나 영향까지 겹쳐 앞으로 은행점포 폐쇄는 더 늘 것으로 짐작이 된다.은행의 입장에서 유지비가 많이 드는 점포의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고 디지털 문화 확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이라 불가피하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은행의 공공성을 감안하면 수익성만 고려한 점포 폐쇄는 옳지가 않다. 노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대안 제시가 먼저 있어야 하며 점진적 변화로 소외계층의 확대를 최소화해야 한다.금융감독원이 작년 3월 점포폐쇄 영향평가서 의무화 등 고령층 등 소외계층을 막기 위한 조치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은행권 내부에서도 인력감축이나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 금융점포를 줄이는 것이 반드시 옳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고 하니 점포 폐쇄에 대한 범금융권 차원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은행은 정부가 허가한 업무의 독점성을 가진 공공기관이다. 한곳에서 손해가 나더라도 다른 데서 나온 이익으로 적극적 지원을 해야 한다. 디지털 문화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고령층만 골탕을 먹는 점포 폐쇄는 좀 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2022-02-10

동메달이 행복한 이유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제24회 동계올림픽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됐다. 개막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판정 논란이 일고 있다. 남자 쇼트트랙 1천m 준결승전에 출전한 우리나라의 두 선수도 실격 처리됐다. 경기를 직접 관람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황당하고 어이없다”라는 견해를 밝혔다.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줄 결과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천500m 경기에서 나왔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값진 첫 메달이다. 주인공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같은 종목의 동메달을 땄던 김민석 선수이다. 첫 메달의 영예를 안은 김민석 선수의 인터뷰가 궁금했다.“후회 없는 레이스를 했다. 다른 네덜란드 선수들이 저보다 잘 탔기 때문에 제 경기에 승복하고 결과에 만족한다.” 그런데 4년 전 올림픽에서 금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이번에도 똑같다. 지난번 대회의 결과를 설욕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을 텐데 23세 동메달리스트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밝았다.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동메달이 은메달보다 행복한 이유를 설명했다. 메달이 결정되는 순간 동메달리스트의 행복 점수는 10점 만점에 7.1점인 반면, 은메달리스트는 4.8점에 그쳤다. 이러한 차이는 ‘가상의 성취’ 때문에 발생한다.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을, 동메달리스트는 노메달을 비교 기준으로 삼았기에 동메달리스트가 더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어떨까.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가 작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18~2020년 평균 국가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을 기록했다. 전체 조사 대상 149개국 중 62위이고, OECD 38개국 중 35위에 해당한다.1974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2008년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의 베시 스티븐슨 교수와 저스틴 울퍼스 교수는 부유한 국가일수록 복지 인프라가 발달해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을 방증하고 있는 듯해 씁쓸하다.3월 9일에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르는 순간, 대선 주자들도 사활을 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관심은 권력이라는 금메달을 쟁취하는 것이지만, 국민들은 동메달과 노메달도 모두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OECD 자살률 1위의 오명을 벗고 행복 선진국으로 이끌어줄 지도자를 간절히 찾고 있다.대선이 끝나고 얼마 후인 3월 20일은 ‘세계 행복의 날’이다. 새로운 지도자와 정부는 경제 성장과 복지 증진을 함께 이루어내며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를 높여줄 수 있을까. 또한 우리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반목, 불신과 불공정을 극복할 수 있을까. 메달의 색깔과 관계없이 행복한 세상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022-02-09

산속으로 올라간 타이어

김규인수필가 자갈길, 흙탕길, 아스팔트 가리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내 몸은 닳았고 어느 날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정비소 한 곳에 던져진 채 여러 달을 보냈다. 밤이 이슥한 어느 날, 차에 실려서 밤길을 달렸다. 어디가 어딘지 구별할 수도 없는 곳에서 내렸다. 날이 밝아 사방을 둘러보니 산속이었다.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귀촌이라고 하더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시에서 오염된 공기만 마시다가 오니 낙원이 따로 없다. 터지도록 구르기만 하던 나에게 이런 휴식이 주어지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앙증맞은 새싹은 얼마나 귀여운지. 뾰족이 땅을 헤집고 나오는 싹을 보면 신기하였다. 내 옆의 꽃을 찾아 나비가 날아들고 벌이 꿀을 따갔다. 자연의 잔치는 향기로웠다. 나를 내려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멧돼지가 냄새가 나서 다니지를 못하겠다고 나를 보고 야단을 쳤다. 멧돼지뿐만이 아니었다. 밑에서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엉덩이를 들었더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여 싹을 틔울 수 없다고 쑥이 말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옆의 친구도 나이 든 나무 위에 걸터앉았다고 젊은 녀석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혼이 났다.주위를 둘러보니, 기름때 묻은 친구들의 몰골과 사고로 살갗이 찢어진 친구는 속살을 부여잡았다. 흰색의 줄로 장식한 네 명의 친구는 같은 차에 달렸던 형제라며 가까이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데 하나 같이 얼굴이 굳어졌다. 주위에서 여기는 올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의 생명과 공존할 수 없는 성분을 지녔다. 썩어서 거름이 되지도 화분이 되지도 못한다.“누가 여기에 쓰레기를 버렸어.”승객을 위해 달리고 짐을 싣고 달리고, 평생 사람을 위해 닳고 닳도록 일했는데, 갑자기 쓰레기라니 속이 터졌다. 도시의 길가에 버려져 파리떼가 득실거리는 쓰레기를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아무 말 없이 째려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버린 사람과 싸잡아서 범죄자로 취급한다. 폐타이어 신세가 되면 몸속에서 철을 뽑아내고 깨끗하게 씻고 잘게 부서지면 고무 분말이 되어 다시 원료로 사용된다. 고무 매트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운동장에 트랙 바닥으로 깔린다. 아스팔트 원료로 쓰이기도 하고 아니면 나를 태워 산업체에서 열에너지가 된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몸을 쓰레기라고 부르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싶다.이제야 밤늦게 허겁지겁 나를 내린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다른 사람 모르게 우리를 내리느라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면서 내리고는 쏜살같이 가버렸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귀촌하는 사람처럼 산속에서 쉬라고 내려준 줄 알고 얼마나 고마워했는지,나를 사용한 이도 사람이고 이곳에 버린 이도 사람이다. 평생 사람을 위해 일했는데 산속에 버려지다니, 자원을 쓰다가 버리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지만, 인간은 알아야 한다. 문명의 이기물을 함부로 버리면 반드시 역습당한다는 사실을….

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