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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라이벌들이 남긴 흔적을 생각하며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한국 정치에서 YS와 DJ, 가요계의 나훈아와 남진, 바둑계의 조훈현과 서봉수, 사학 명문 연세대와 고려대, 중국 초한의 항우와 유방 등 익숙한 이름의 이들을 사람들은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부른다.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해 누구나 예외 없이 수많은 라이벌들이 상대의 대척점에 머물면서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했던 과정을 지켜 보아왔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편에서 목표를 향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숱한 라이벌들은 어떤 흔적과 교훈을 남겼을지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라이벌(Rival)의 어원은 River(강)에서 나왔고 같은 강을 끼고 사는 이웃이라는 의미처럼 라이벌도 피해를 주는 것과 도움을 받는 것을 인정하고 성숙한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는 뜻에서 라이벌이 어떤 관계인가 진정한 의미를 알 듯하다.하지만 불행하게도 라이벌의 대결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을 것 같다. 서로 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아름다운 라이벌도 없지는 않지만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타도의 대상으로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 증오와 분노의 라이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모택동과 장개석. 숙명의 두 라이벌이 시작한 중국의 내전은 800만명의 인민이 사망한 세계 최대의 재앙이었다. 그들에게는 화해와 타협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멸시와 반목으로 일관하였다. 수많은 라이벌 중에는 저주에 가까울 만큼 앙숙이었던 미국의 에런 버와 알렉산더 해밀턴이 있다. 두 사람은 1840년 미국의 역사를 뒤흔든 뉴저지주 위호겐의 권총결투에서 해밀턴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유례없는 라이벌이었다.이처럼 한 시대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었고 역사의 항로를 변화시켰던 라이벌이 있는 반면에 서로를 존중하여 동행하고 있는 행복한 라이벌도 없지는 않다.아름다운 라이벌의 대미는 빙상 500m 종목의 이상화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보여주고 있다. 밴쿠버와 소치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건 이상화는 마지막 평창에서 3연속 금메달 도전에 나섰지만 최대의 라이벌인 고다이라에게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라이벌 이상화가 직전의 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울분과 아픔으로 지켜보았을 고다이라는 평창에서 통쾌하게 설욕하며 우쭐할 만도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라이벌 이상화가 트랙을 돌면서 눈물로 고별인사를 하고 있을 때 고다이라가 다가가 진한 포옹으로 아쉬움을 달래주었고 이 사진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도 상대를 격려해 주는 모습은 평창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으로 선정되었고 ‘한·일 우정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었던 것이다.인간은 누구나 삶의 현장 주변에서나 격동의 역사 위에서 수많은 라이벌들을 만나고 그들이 던져 주는 물음표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분명한 것은 제로섬 게임처럼 이길 대상인 라이벌보다 서로 윈윈하며 본받을 대상의 롤모델을 라이벌로 설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라이벌이 있어 부담도 되지만 더 노력하고 집중하여 자기성장과 더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 지혜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20-12-22

시시비비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으로 불렸던 김삿갓의 시 가운데 시(是)와 비(非) 두 글자 만으로 지은 칠언절구 시가 있다.시시비비비시시(是是非非非是是) 시비비시비비시(是非非是非非是)로 시작하는 시다. 내용은 이렇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함도 옳지 않을 때가 있다” “그른 것 옳다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도 옳지 않을 때가 있다” (중략)김삿갓의 글 재주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 커서는 큰 벼슬을 할거라는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재직하면서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하고 항복함에 따라 그 집안은 졸지에 망하게 된다.황해도 산골로 피신했던 김삿갓이 이후 집안의 사면이 이뤄짐에 따라 과거시험을 보게 된다. 김익순을 비판하는 시제가 출제되고 이를 주제로 장원급제에 이르나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는 벼슬을 포기하고 방랑 길로 나선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란 별명이 붙었다.그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가 판을 시절이라 김삿갓의 시는 권력자와 부자들의 놀음을 풍자하고 조롱한 글이 많아 대중의 애환을 달래주었다고 전한다.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이다. 이 한마디로 올 한해 정치와 이념으로 지리멸렬했던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꼬집었다. 다르다(異)와 틀리다(誤)를 구분 않는 우리 시대의 극단적 배타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시시비비는 사리를 공정하게 판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내년에는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지는 올바른 세상이 되길 기원해 보면 과욕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0-12-22

코로나로 혈액량 바닥, 헌혈 릴레이 동참하자

코로나19의 여파로 대구경북의 혈액 보유량이 바닥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1, 2차 대유행 시 단기적 부족 현상을 보였던 혈액이 3차 대유행 시기를 맞아 또다시 헌혈자가 줄면서 혈액 보유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보통 학생들의 방학과 연휴가 많은 12월부터 동절기 동안은 헌혈자가 줄면서 혈액보유량이 평소보다 감소하나 올해는 코로나19가 겹쳐 수급 사정이 더 나빠졌다. 대구경북혈액원에 따르면 21일 현재 대구와 경북지역의 혈액보유량은 1.8일분으로 적정 혈액보유량 5일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혈액보유량은 3일분 미만이면 주의, 2일분 미만이면 경계, 1일분 미만이면 심각 단계로 구분한다.대구경북지역은 지난 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때는 부족했던 혈액을 부산·경남 등 인근지역으로부터 공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전국으로 번져 혈액부족 현상도 전국화 한 마당이다. 시민과 직장 등 단체에 의한 헌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급등하면서 바깥출입이 자제되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한 사람이 증가하면서 헌혈 동참자가 대거 줄고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학교와 군부대 등 100여개 단체가 최근 헌혈을 취소해 왔다고 한다. 혈액부족이 심각해지는 건 당연하다.전국이 똑같은 부족현상을 보이고 있으니 지금은 시도민의 헌혈이 유일한 희망이다. 혈액이 부족하면 수혈이 필요한 수술과 치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혈액원에서는 헌혈 호소 문자보내기, 기념품 추가 증정 등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큰 기대는 걸 수 없다. 혈액보유량 확보를 위해 헌혈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우리가 헌혈한 혈액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그 누군가는 우리의 가족과 친구, 동료일 수도 있다. 헌혈의 소중함과 보람을 되새겨 볼때다.혈액원 관계자는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몰라 헌혈 릴레이가 절실한 때라 한다. 대구경북은 코로나 1차 대유행 시기를 자주적이고도 슬기롭게 극복한 지역이다. 헌혈 릴레이 동참을 통해 또한번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자.

2020-12-22

코로나 백신 조기확보 실패… 또 ‘남 탓’인가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조기확보에 실패한 원인이 밝혀졌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그 배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비판여론이 빗발치자 더불어민주당의 주특기이자 고질병인 ‘내로남불’ 증세가 곧바로 도졌다. 백신 혼란이 야당 탓이고, 대통령의 지시를 어긴 참모들 죄란다. 세계 각국이 시작한 백신접종 뉴스를 보고도 느낀 바가 도무지 없어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한 방송에서 국내 백신 확보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정부가 백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 지난 7월에는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정직하게 실토했다.그런데 정부·여당은 국민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야권을 향해 “정쟁화하지 말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여당 원내대표는 “야당의 백신 정쟁화가 도를 넘고 있다.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사회 혼란을 조장해선 안 된다”고 엉뚱한 정치공세를 펼쳤다.세계 각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줄줄이 직접 나서서 백신을 확보하고 있다. 영국(8일), 미국과 캐나다(14일), 사우디아라비아(17일), 이스라엘(19일)이 이미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7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이달 27~29일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동시 보급을 추진할 예정이다. 화이자 백신에 대해 스위스는 19일 승인했고, 일본 정부는 심사에 나섰다.바이러스 확산세를 극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라는 차원에서 코로나19 백신은 ‘게임 체인저’라고 불린다.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이 중대한 해법을 놓고, ‘안전성’ 타령까지 섞어가며 늑장 대처에 엉터리 변명, ‘남 탓’ 시리즈만 펼쳐대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특히 문 대통령이 책임을 참모들에게 떠넘기는 모습은 허탈감을 부른다. ‘K-방역 성공’은 대통령 공덕이고, ‘백신 조기확보 실패’는 온전히 참모들 허물인가. 교수들이 2020년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한 이유를 알 만하다.

2020-12-22

봄이 온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엊그제가 동지였다. 입동에서 시작하는 겨울이 소설과 대설을 거쳐 동지에 이른 것이다. 이제부터 소한과 대한을 지나면 입춘이다. 그날이 왔다고 곧바로 봄은 아님을 경험은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드디어’ 하는 고요한 탄성이 시나브로 자리하게 될 것은 명백하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사멸과 적요(寂寥)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생명과 약동의 시절과 대면하게 되리라.12월 21일 세계 전역이 코로나19로 동분서주할 때 천상에서는 진기한 장관이 연출됐다. 무려 400년 만에 토성과 목성이 근접하는 보기 드문 천문현상이 관측된 것이다. 그런 일은 앞으로 60년 후에야 재연(再演)된다고 하니, 지금의 40-50세대는 죽어서야 그 소식을 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주가 제공한 희귀한 장면에 눈과 마음을 돌렸을지 알 도리는 없다.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게다.‘별 헤는 밤’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시인 동주는 별을 향한 그리움과 찬탄과 미구에 다가올 찬연한 봄날의 도래를 노래한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하나씩 붙여가던 시인은 별빛이 내린 언덕에 ‘자신의 부끄러운 이름’을 써보고는 흙으로 덮어버린다. 식민지 조선의 백면서생으로 살아가야 했던 지식인의 자화상이 서러웠을 터. 하지만 그는 자기부정의 세계에서 긍정의 세계로 이동한다. 내가 동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소이는 거기 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별 헤는 밤’ 마지막 연)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멀리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로, 아버지가 보내주는 학비로 학업을 이어가는 대학생으로, 용정의 이국 소녀들을 기억하는 청년으로 동주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성찰과 응시를 별로 치환한다. 그리하여 치열하게 자신의 실존을 날카롭게 부정한다. 아름다운 것들의 정화가 쏟아져 내린 언덕 위에 제 이름을 썼다가 황급히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긍정과 확신의 세계로 환원하는 시인의 내적인 의지가 아름답게 다가온다.아침 해가 늦게 뜨고, 저녁 해가 서둘러 지는 아파트가 싫어서,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는 끔찍한 층간소음을 피해서, 자동차들의 경적과 소란스러움이 징글징글해서 도피하듯 찾아든 농촌의 삶이 어느덧 6년 반을 넘어서는 시점이다. 아침 해는 서둘러 오고, 저녁 일몰은 천천히 찾아오는 곳. 새들의 층간소음에 잠을 깨고, 자동차의 경적마저 고요한 공간. 여기서는 외려 도회의 부산스러움과 시끌벅적함이 더러 그리워진다.사람은 언제나 얻을 궁리만 한다. 잃어야 얻고, 얻으면 내놓아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식자나 평균인이나 다를 바 없다. 겨울의 정점이 왔기로, 봄을 향한 그리움이 짙어질 수 있으며, 근본적인 부정이 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긍정의 세계가 문을 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아침이다. 언젠가 지나갈, 그리하여 추억으로 남을 코로나19와 온갖 번다한 세상사와 잠시 거리 두고 동주와 함께 천상의 별을 헤아릴 일이다.

2020-12-22

경이로운 나날들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어떤 친구가 나에게 “너는 사는 것이 재미있나?”고 물었다. “재미로 사느냐? 재미가 있든 없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했더니 그 친구 대답이 “나는 이제 사는 것이 지겨워서 못 살겠다”고 한다. 매일 똑같이 회사 출근하여,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와도 그렇고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못 살겠다는 것이다.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라는 영화가 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가게 앞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무려 4천장을 찍어 앨범에 담아 놓았다. 이 앨범을 보던 사람이 물었다. “어째서 똑같은 사진을 4천장이나 촬영하여 보관하고 있나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똑같은 사진이 아닙니다. 장소는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진마다 빛이 다르고, 색조가 다르고, 계절이 다르고, 날씨가 다르고,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찬찬히 관조(觀照)하여 보니 그야말로 한 장 한 장이 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른 모습의 사진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깜짝 놀라운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몇 해 전에 죽은 아내가 가게 앞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똑같은 일상이 매일 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경이롭고 놀라운 일상이 되었다.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랑클은 절망적이고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아우슈비츠의 자살적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이런 고난의 날들에도 삶의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상의 의미를 찾다 보니 하루 하루가 달리 보이고 드디어 그 일상이 경이롭고 놀라운 날들로 다가왔다. 그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후에 일상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이른바 의미요법으로 불리는 로고테라피를 창시하게 된 것이다.기원후 60년대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에 저항하다가 수십 만 명이 학살당하고, 성전이 파괴되는 등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된다. 매일 매일의 삶이 비통과 고난의 날들이었다. 이를 본 유대의 현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 절망적인 일상을 희망찬 날로 변화시킬까를 생각하다가 매일 매일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예배 캘린더를 만들어 그 날 그 날 성경을 읽고 묵상 하였다. 그렇게 한 결과 하루 하루의 삶이 놀랍고도 경이로운 날들로 바뀌게 되었다. 그들은 그 예배력을 ‘경이로운 나날들(Day of Awe)’이라 이름 하였다.지루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을 마음을 달리하여 깊이 관조하여 보면 어제의 날이 오늘 다르게 보이고, 어제 봤던 사람이 오늘 다르게 보이는, 하루 하루가 다르고 새로운 놀랍고 경이로운 나날들이 될 것이다.

2020-12-22

‘엄마를 부탁해’서 찾은 나

전효선씨“너의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고 시작하는 신경숙님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엄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두 아들의 엄마인 나 자신도 생각해 보았다.엄마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가슴 먹먹한 내용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인줄 알고 무엇이든 자식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사람 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누군가의 딸 이었거나 한 남자의 여자였으며 사랑 받기를 갈망하는 존재임을 잊어버리고‘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기를 강요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아들에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였고 처음 만나는 세상이었고 울타리였다.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그 엄마가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의 곁을 떠나게 되고 힘없고 늙은 엄마는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에 너무 작아져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엄마를 점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이 책은 생일을 맞아 서울에 있는 자식 집을 아버지와 함께 상경한 엄마를 지하철역에서 잃어버리면서 엄마를 기억해 내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된다.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엄마. 같은 걸음으로 남편과 걷기를 바랬지만 남편은 앞장서 가면서 뒤처져 따라오는 아내를 나무란다. 뒤돌아보면 엄마는 항상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나의 삶의 전부를 잃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우리의 엄마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이에게 부탁을 한다. 엄마를 찾기만 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엄마를 돌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슴이 터질 듯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음을 알고 절망하던 큰아들 형철의 모습에서 우리는 노년의 부모를 책임지기에 버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전전긍긍한다.가족이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게 짐이 아니라 같이 있게 행복한 존재들로 남기를 소망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독서모임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이의 글쓰기 선생님을 통해 신문의 독자란에 글을 쓰면서 “나에게도 이런 재주가 있었지”하며 잊고 살던 꿈을 찾게 되었다. 이 또한 엄마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50대 중반에 초등학교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고단함도 있지만 엄마로서 기쁨과 감사가 더 많다. 13년을 엄마로 살아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는 초보 엄마가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쓴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2-21

딸기가 좋아

나는 딸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 예쁜 빨강과 꽃받침 같은 초록의 꼭지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변함없는 조합처럼 질리지 않는 색이다. 점점이 일정한 비율로 박힌 딸기 씨의 그 질서는 또 어떤가! 모나지 않은 삼각뿔 같은 딸기의 모양은 가로로 썰어도, 세로로 썰어도 식욕을 마구마구 일으킨다.잘 익은 딸기의 달큰하고도 아름답기까지 한 냄새를 맡노라면 내 모든 후각세포가 들고 일어나 환호하는 듯하다. 딸기를 씻고서 잘라낸 딸기 꼭지를 주방 싱크대에 두어도 온통 딸기향이 진동을 한다. 작은 몸으로 한 공간을 채우는 녀석의 힘이 대단하다.원래 딸기의 계절은 봄이라지만 찬바람 부는 겨울에 하우스에서 재배된 딸기는 어찌된 일인지 제철 봄딸기 보다 더 달고 맛이 좋다. 농부들이 딸기에게 쏟는 정성이 얼마인지 당도로 짐작할 따름이다. 한겨울에 맛보는 딸기 케이크는 조각난 단면이 어서 한입 커다란 포크로 잘라내 맛보라는 듯 유혹적이다. 봄에 본격적으로 딸기가 재배될 때 알이 좀 작은 것을 골라 잼을 만든다.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덜 달게 하되 알맹이의 과육을 살아있게 끓여두었다가, 푹신한 하얀 식빵에 발라 먹을 때면 입안에 침부터 고인다. 그리고 알이 좀 굵은 딸기는 싱싱한 것을 골라 냉동해 두었다, 여름에 우유나 얼음을 넣고 갈아서 쉐이크나 쥬스로 마셔도 마음이 붕붕 뜨고 좋아진다.크리스마스가 너무 조용하다. 캐럴이 저작권 문제로 거리에서 사라진 지는 좀 되었지만, 지금의 이 고요가 어디 저작권 때문이겠는가. 꿈과 설렘이 있는 크리스마스인데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으로 다니니 자가격리는 저절로 되실 듯하다. 집콕 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딸기를 썰어 생크림을 사용해 산타 딸기를 만들어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올 한 해 우는 일이 많았어도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달된 것만 같아진다./권마루(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2-21

난 이런 셀러리맨이 좋다

차를 샀다. 지지난해 12월이니 일 년차 무료점검 기간이 지났고 이년이 지나면 무료가 아니란다. 내게 팔았던 그 사나이가 1년이 다가올 무렵 전화라도 주었으면. 차를 판 후로 연락이 없다. 물론 새로운 차가 나왔다고 팸플릿은 고정적으로 온다. 6개월에 한 번 정도 차를 잘 타고 다니는지 안부라도 전한다면. 자동차 서비스공장에 가서 무료 서비스를 받았는지 슬쩍 팁을 준다면 이 사람을 나의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소개하겠다. 하지만 소식이 없다.보험을 들었다. 아들이 길에서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병원에 입원해 수술도 받았다. 보험을 타려니 서류가 참 많이도 필요했다. 또 팩스나 등기로 보험회사에 보내야 했다. 아이가 아픈 것도 힘든데 서류에 또 보험회사에서는 이것저것 따지며 보험금을 쉽게 주지 않으려 했다. 혼자 뛰어다니니 눈물이 났다. 이럴 때 설계사가 찾아와 서류도 알아봐 주고 한다면, 난 이 사람 또한 친구들에게 시간 내서 소개해 줄 것이다. 도배를 하고 나서도 한 달쯤 지나서 우리 집에 다시 방문해서 불편한 건 없나 물어봐 준다면 그 사람 또한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알려주리라. 하지만 아직도 내 주위에 이런 세일즈맨은 없다. 딱 한사람 빼고.그 사람은 남편 후배이다. 자동차 보험을 파는 사람인데 서비스가 만점이다. 어느 날 길에서 내 차가 서버렸다. 연락하니 바로 렌터카를 보내준다며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렌터카는 개인적으로 보내준 거지 보험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남동생이 빙판길에 사고가 났다. 물론 남편 후배가 일하는 보험사가 아니었지만 내가 조언을 구하자 모든 일을 해결해 주었다. 그 후로 우리 집 모든 형제들 보험은 그 후배에게 들었다. 세일즈는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이다. 팔기 전에 갖은 애교보다 팔고 나서가 더더 중요하다./최순자(포항시 북구 용흥동)

2020-12-21

어머니는 나 자신

‘어둠이 내리면 작은 등불 하나 밝힌다. 암흑의 천지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누구의 호젓한 마음 하나 밝히기 충분한 빛이다. 언젠가는 어두운 밤하늘 수많은 별 중의 하나 되어 영원히 빛날 그 빛이다.’사진에서의 대상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고 그 대상이 과거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도 한다.또한, 내 눈앞에서 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진에서의 대상은 존재한다는 것과 사라졌거나 사라지리라는 것을 함께 의식하게 되므로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진 이미지의 특성 중 하나인 시간의 다양성이라 하겠다. 따라서 대상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유는 시간의 다양성 선상에 있게 된다.아울러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인간의 심리구조를 인간 상호작용 차원에서 조명한다. 이 이론에 비추어 보면, 어머니는 그 상호 작용의 첫 대상이며 심리구조 형성의 기초가 된다. 어머니에 대한 존재와 부재에 대해 인식하거나 간과(看過)하고 있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개개인의 심상에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어머니란 존재가 나(자아)를 형성하는 원초(原初)가 된다는 이론은 어머니가 나 자신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나호권(사진작가)

2020-12-21

비아 칼차이우올리서 만난 오르산미켈레

르네상스의 도시답게 피렌체에서는 거리 곳곳 어디로든 눈을 돌리면 거장들의 걸작을 마주할 수 있다. 여행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역사의 흔적들이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에 불과하다. 피렌체만큼 훌륭한 역사책이 또 있을까? 꽃의 도시라는 별명의 이곳 중심을 가로지르는 거리 비아 칼차이우올리(Via Calzaiuoli). 그 유명한 두오모를 지나 시뇨리아 광장을 향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접어들게 되는 길이다. 칼차이우올리를 걷다보면 오른편으로 색조 대리석의 장식 없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투박한 건물은 마치 외부와는 단절된 도시 속 요새 같이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이 오르산미켈레(Orsanmichele)라는 이름의 교회라고 한다. 일반적인 교회건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오르산미켈레는 원래 곡물창고였다. 중세가 가을을 맞이해 저물어갈 무렵 도시들이 발달하고 농업에서 상업으로 경제구조가 서서히 변하게 된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몰려 들었다. 풍부한 노동력으로 도시 경제는 활기를 띠었지만 뜻하지 않게 식량난이 발생했다. 대토지를 소유한 주교들이 폭리를 취하기 위해 곡물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길드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폴리 왕국으로부터 대량의 곡물을 들여왔고 이를 보관하고 거래하던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 오르산미켈레이다.오르산미켈레에서 곡물을 사고 팔던 상인들은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기둥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 그림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이 성상이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심지어 교황이 공식적으로 이곳을 성지로 선포를 한다. 그 때가 1292년 7월이다. 신비로운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봉헌을 했고, 이 돈으로 곡물을 사들여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 줬다. 절정에 달했을 때는 하루에 8천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1304년 불행하게도 화재가 발생하면서 성모 마리아 그림이 완전히 불타 버렸고 훗날 화가 베르나르도 다디에 의해 복원됐다.14세기 초, 피렌체의 인구는 대략 10만 여명으로 당시 유럽의 도시로는 꽤 규모가 큰 편이었다. 그런데 1346년 검은 죽음이라고 불리는 흑사병이 창궐해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7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7천500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유럽 인구가 절반으로 준 것이다. 피렌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고 흑사병이 물러갔을 때 이곳의 인구는 겨우 3만 명 남짓에 불과했다.흑사병의 창궐과 세상을 뒤덮은 죽음.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검은 죽음을 진노한 신이 내린 대재앙으로 여겼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게 해 주는 영험한 효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오르산미켈레의 ‘은총의 성모 마리아’를 찾아 기도를 올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던지 봉헌한 돈이 35만 플로린, 지금 돈으로 환산해 보면 자그마치 2천800억 원이나 된다.1380년경 피렌체 주요 길드 연합은 오르산미켈레를 교회로 개조했다. 르네상스가 이제 막 꽃을 피울 무렵 피렌체 대표 14개의 길드들은 자신들의 수호성인을 조각으로 만들어 오르산미켈레 외벽을 장식했다. 건물 외벽은 시각적 공공을 지닌 장소이니 만큼 요즘 식으로 일종의 공공미술인 셈이다. 길드들은 경쟁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미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미술가 섭외에 열을 올린 것은 길드 간에 부와 명예 그리고 자존심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천재들이 피고 지던 르네상스의 중심지에서 최고의 미술가를 모셔 올 수 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덕분에 미술가들의 몸값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자존감이 높아졌다.브루넬레스키의 그 유명한 돔이 머리를 장식하는 대성당을 지나 구 시청사 팔라초 베키오가 자리한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하면 비아 칼차이우올리를 걷게 된다. 그리고 조금 걷다 보면 조각 작품으로 장식된 투박한 건물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0-12-21

절제 속에서 빛나는 완강함… 전남 남원 실상사(實相寺)

지리산 서쪽 들판에 천왕봉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절이 있다. 천왕봉과 반야봉, 덕유 산맥의 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연꽃의 꽃밥 자리에 위치한 실상사이다. 일주문을 대신하는 해탈교를 건너도 익숙한 차안의 고리는 그대로 따라온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세 돌장승을 지나고 천왕문을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불국토는 멀어 보였다.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홍척 증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문을 열었다. 중국으로 건너가 제일 먼저 선법을 배워온 이는 가지산문의 도의국사였지만 산문을 연 이는 실상산문의 홍척국사가 먼저라고 한다. 단일 사찰로는 국보 1점과 보물 11점으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천년 고찰이다.구산선문은 귀족, 왕실과 결탁하여 타락한 교종불교에 반기를 들고 나말여초에 중국 달마의 선법을 수용한 선종불교의 아홉 산문을 말한다. 교종불교가 인과율에 얽매어 운명론적 인식을 가졌던 데 비해 선종은 누구나 마음을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신라 말 혼란기 때 실상산문을 최초로 형성하게 된다.하지만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실상사도 불타버리고 백 년 가량 폐사처럼 방치되어 오다 숙종 16년, 크게 중창되었지만 고종 때 다시 소실 돼 1884년에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10여 채의 건물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엄청난 양의 와편들로 이루어진 탑이 웅장했을 실상사의 옛날을 짐작케 한다. 멀리 정면으로 보광전이 보이고 그 앞에 보물 제 37호 동·서 삼층석탑의 정교한 상륜부가 추위 속에서도 꼿꼿하다.둥근 장고모양의 기둥과 소박한 듯 우아한, 보물 제 35호 석등은 소박한 전각들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실상사를 지켜온 진리의 등불,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사찰을 환하게 밝혔을 석등 앞에 서니 스스로가 작아진다. 어둠이 찾아오면 의식을 치르듯 성스러웠을 수많은 점화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마당을 흐르는 겨울의 찬 공기도 천년의 보물들 앞에서는 유순하기만 하다. 삼층 석탑이나 석등에는 철재 보호막이 없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위용이 느껴진다.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신라인의 기상을 안은 두 탑과 석등의 아우라가 뿜어내는 깊은 정적, 큰 상흔 없이 천 년의 시간을 건너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내 안에 흐르는 한국인의 혼이 자랑스럽다.단청이 벗겨진 보광전의 수수한 자태 앞에서 신발을 벗지 않을 수 없다. 아미타 삼존불 옆에서 광채를 발하는 범종, 종을 치는 부분에 일본 지도 모양이 있어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설로 일제 말기에는 주지가 문초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주치는 것들마다 스토리가 숨어 있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만 같다.경관 좋은 산속을 두고 하필이면 황량한 들판에 자리한 실상사, 그로 인해 마주해야 할 고난의 순간을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촉촉해져 온다. 이토록 많은 보물들이 큰 상흔 없이 천년의 세월을 살아 온 게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남아 있는 빈 터마다 과거의 영화와 아픔이 애틋하게 피어오른다.천천히 옮기는 발걸음에 사색의 무게가 더해진다. 크고 웅장했던 옛 전각을 그려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옛 기단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낮은 기단을 쌓아 아담하고 소박한 전각들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절을 증축하기보다 최대한 옛 흔적을 간직하려는 진중함이 보여서 좋다. 적어도 전통과 현대가 어색하게 어울려 격을 떨어뜨리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았다.조낭희 수필가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이적을 보인다는 영험한 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실상사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약사전으로 향한다. 낮은 기단 앞에 놓인 댓돌 하나에도 생명력이 느껴지는데 약사전을 지키는 나목의 자태는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 법당 문을 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 좌대 없이 맨땅에 모셔져 있다. 실상산문의 2대 조사 수철화상이 4천 근의 철을 녹여서 만든 3m의 거대한 철불이다.천왕봉의 정기가 일본 후지산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 모셨다고 하지만 수난의 시기도 있었다. 조선 시대 지방 유생들의 방화로 가람이 불에 타는 비운을 맞자, 철불은 들판에 방치되어 인근 주민들에게 병을 고쳐 주는 약사여래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숙연한 마음으로 나는 백팔 배를 시작하고 법당 밖에서는 대나무들이 스산하게 울어댄다.법당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더 없이 차분하다.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보물들을 찾아가는 발길도 엄숙해진다. 절제미가 뿜어내는 소박함, 그 속에 숨어 있는 의연한 기상, 새로운 것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된 눈빛, 다양한 기운들이 자꾸만 가슴을 뭉클거리게 한다.짧은 겨울 해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보석처럼 부서지자, 황량하던 실상사가 한껏 몸을 일으키며 다시 살아난다. 석양으로 지는 해가 명부전의 엄숙한 이마 위에 번지고, 차가운 겨울 공기로 초췌해 보이던 실상사의 낯빛도 환해진다. 오랜 시간을 머물렀는데도 돌아서는 발걸음은 좀체 가볍지가 않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멀리서 실상사를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2020-12-21

위안부 ‘앵벌이’의 와인파티

강희룡 서예가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문제 중에서 당연히 인간으로써 지켜야 하는 도리나 원리를 우리는 윤리라고 일컫는다. 윤(倫)은 무리, 질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리(理)는 이치, 도리 등을 의미한다. 그 중에 윤의 어원은 사람(人)과 무리(侖)라는 의미를 가진 합성어이다. 그래서 윤리는 무리의 관계로부터 지켜나가야 하는 도리를 의미한다. 우리사회에 지켜야 할 수많은 규범들이 존재하는 것은 윤리라는 두 글자에서 파생된 사회제도이다. 또한 윤리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평가와 잘못된 것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자신과 남의 행동에 대해 옳다 혹은 그르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기에 윤리는 인간에게 인성이나 인생관 형성에 있어서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개에게 물린 사람은 한나절 치료받고, 뱀에게 물린 사람은 3일간 치료받고 나았으나 사람의 언행에 다친 사람은 완치에 기약이 없다.’는 말이 있다. 공자는 칠십이 넘어서야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不踰矩)며 말에 실수하지 않으려면 삼사일언(三思一言)을 심비(心碑)에 새기라고 가르쳤다. 신중치 못한 언행이나 행동은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비수(匕首)가 된다. 공동체 생활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법도로 한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삼사일행(三思一行)은 바로 행동의 신중함이며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닥친 문제를 극복할 힘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일본의 어지러운 나라 사정과 관계가 깊은 몰락한 무사들이나 농민들이 해적이 되어 고대부터 우리나라의 해안지방에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오죽하면 신라 제30대 임금인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용이 되어 왜적을 막겠다.’며 죽은 후 자신이 동쪽바다에 묻혔다. 이렇듯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지역에 걸쳐 약탈을 일삼던 일본 해적을 우리는 ‘왜구’라 부른다. 이 왜구보다 더 악질적이며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인간들이 토착왜구다. 이들은 일그러진 신념과 욕망으로 무장된 이중인격자들로 바른 언행이나 부끄러움은 그저 사치품일 뿐이다. 그래서 금수(禽獸)만도 못하다고 지탄받는 것이다. 30여 년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앵벌이도구로 이용하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다며 일상을 잠시 멈춰 달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호소한 후 당일 본인은 지인 5명과 노마스크 와인파티를 한 사진을 올리며 ‘길(원옥)할머니 생신을 우리끼리 만나 축하하고 건강기원’이라고 적었다. 허나 길할머니 측엔 아예 연락도 없었으며 그날은 정작 음력으로 본인 생일이었다. 악질 토착왜구의 이런 일탈행위는 인간의 이중성이 얼마나 추악한지 잘 보여준 사례이며, 아직도 선(善)의 탈을 뒤집어쓰고 할머니의 통장에 빨대를 꽂아 고혈을 빨고 있는 앵벌이 행태를 계속 하고 있다는 확증이기도 하다. 이 사회에 반윤리적, 반사회적인 위정자들이 득실거리는 환경은 국민들이 만들었다. ‘국가는 반드시 내부의 적으로 망한다.’ 참정권의 권리가 있는 국민들이 냉철함을 잊고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스스로 망국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20-12-21

세계기록유산과 포항, 그리고 KBS

박혁준KBS포항방송국장‘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는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자연유산 및 인류무형문화유산과 더불어 세계기록유산을 등재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선정기준이다.현재 우리나라는 ‘해인사 장경판전’등 14건의 세계 문화·자연유산과 ‘판소리’ 등 21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 그리고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유산들이 ‘Heritage’라고 표기되는 것과 달리 세계기록유산은 영문으로 ‘Memory of the World’인데, 용어 번역의 통일성 목적과 더불어 역사적 의미와 정신적 가치를 기록하고 기억하라는 함의를 추론하게 된다.우리나라의 ‘훈민정음 해례본’을 위시하여 독일의 ‘양피지에 인쇄된 구텐베르크 42행 성경’, 중국의 ‘갑골문’등이 세계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방송된 프로그램이 기록된 2만522건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는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Finding Dispersed Families)’ 기록물이 그 보편적 가치를 평가받아 상기 유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등재되어 있다는 점이다.방송을 통해 상봉한 이산가족이 1만 건이 넘는 등 국민들이 주시는 소중한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 한국방송이 아니라면 그 어느 매체도 할 수 없는 인류사적, 인도주의적 쾌거로 기억되고 있다.KBS가 기록해온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위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산업화를 이끌어 온 포항의 여기저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장기면 장기유배문화체험촌에 가면 유배생활을 하며 회한의 시간을 보냈을 다산 정약용 등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이러한 귀양살이의 모습은 KBS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 생생히 재현되어 있다. 송도동에 위치한 운하관에는 다섯 개 섬마을이었던 수산업 전진기지 포항이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산업화의 선두에 서기까지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고, 괴동동의 역사박물관에서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발돋움하는 포항시를 알리는 데에는 KBS의 역할이 컸는데, 1973년 포항제철 포항1기 준공을 계기로 줄곧 황금시간대 메인뉴스는 물론 대대적인 특집방송을 편성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표했고, 1974년에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을 준공 1주년을 맞은 제철소 현장을 무대로 두 달간 제작·방송함으로써 막 도약하는 포항시의 철강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애정을 증폭시켜 발전에 일조했다.수산업 전진기지에서 철강도시로, 그리고 미래 신성장 산업도시로 변모 중인 포항시의 역사를 기록해온 KBS의 방대한 아카이브는 수신료의 가치에 대한 당연한 공적 책무를 이행해 온 결과이다. 맨손으로 땅을 간척하며 오늘의 포항을 만들어 온 시민들의 위대한 노력이 망각(忘却)의 여백(餘白)에 남아 그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언젠가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데 KBS의 영상자료가 그 초석이 되기를 간구한다.

2020-12-21

“공수처장은 중립이 생명” 대통령 약속 지켜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회의가 28일로 예정된 가운데, 추천될 초대 공수처장 후보에 관한 관심이 치솟고 있다.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국민의힘이 새 추천위원을 추천하지 않는다면 현 6명 위원으로 회의를 강행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비토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라고 한 약속을 민주당은 차질없이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추천으로 공수처장 후보가 됐던 한명관 변호사(세종대 교수)가 사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 변호사는 “추천위가 거듭될수록 심사 기준은 공수처장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짜 맞춘 듯한 이분법적 논리로 흘렀다”고 사퇴 배경을 밝혔다. “검사 출신은 검찰의 전비(前非·이전에 저지른 잘못)를 못 벗은 사람이니 안 된다는 기류를 체감했다”는 그의 소회는 현재 공수처 설치 과정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증명한다.여당은 야당의 비토권을 거세한 이유로 야당이 공수처 출범에 반대해 후보 추천 자체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주장이 조금이라도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자신들의 추천 공수처장 후보가 야당의 비토권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엄정한 중립성을 지녀야만 하는 게 순리다.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뒷이야기에 뒤늦은 여야 정치권의 합의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살려놓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 직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만나 협의한 내용을 공개했다. 주 원내대표는 현 정부에서 등용했던 차관급 법조인 2명과 김 원내대표가 추가로 추천한 법관 일부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있다고 밝히고 협의를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정부와 여당이 굳이 새해 벽두에 맞춰 공수처를 출범시키려고 조급증을 내는 속셈은 이미 다 드러난 상태다. 서두를수록 검찰의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하루라도 빨리 막고 공수처로 가져와 뭉개고 싶어 하는 음모로 해석될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일체의 흑심을 버리고 문 대통령이 말한 ‘정치적 중립’을 최고의 인선 기준으로 삼아서 결단해야 한다.

2020-12-21

대구·경북도 강도 높은 코로나 긴장감 필요

대구와 경북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체 꺾이지 않고 있다. 언제 어디서 순식간에 대유행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민도 매일 매일 확진자 수를 체크하는 등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연속 10일째 신규 확진자가 두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1일 이후 열흘동안 모두 272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 경북도 최근 1주일 동안 183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도내 전 지역에서 신규 확진자 발생이 이어지고 있다. 경북도내의 주간 일일 평균 확진자는 약 26명이나 된다.임청각 앞 철로 철거행사에 참석했던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밀접 접촉자는 아니지만 코로나19 검체 검사 후 자가격리 되면서 경북도청 신도시 관공서 일대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안동시는 21일 전 시민을 대상으로 2주간 자택 대피 호소문을 발표했다. 경북경찰청 청사 내 근무자 중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치안 공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한다.문제는 코로나19의 최근 국내 흐름이 수도권에 이어 비수도권으로 확산세를 뻗쳐가고 있다는 점이다. 20일 비수도권의 신규 확진자는 296명으로 300명에 육박했다. 전날은 337명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는 산발적인 n차 감염 비중이 높아지고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어려운 확진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코로나 백신 확보에 사실상 실패한 우리나라는 내년 하반기에나 백신접종이 완료될 전망이다. 지금 상태로 보아 코로나 확진자가 언제 정점을 찍을지 알 수 없다. 백신접종이 안 된다면 국민 각자가 방역수칙 준수를 통해 코로나 방어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특히 대구와 경북은 1차 대유행을 경험한 지역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치는 사회경제적 타격을 잘 알고 있다. 지금보다 더 긴장되고 강도 있는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대구시와 경북도가 수도권으로부터 넘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선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방역과는 달리 지방정부 차원의 강도 있는 방역 노력이 병행돼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또다시 국민의 이동이 늘어날 전망이다. 더 긴장감 있는 분위기 조성으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2020-12-21

아시타비(我是他非)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으로, 이른바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옮긴 말이다. 교수신문은 지난 7~14일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88명(32.4%·복수응답)이‘아시타비’를 선택했다고 최근 밝혔다.아시타비는 ‘똑 같은 사안이라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중잣대를 말하며, 사자성어보다는 신조어에 가깝다. 1990년대 정치권에서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관용구로 쓰이던‘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내로남불’로 줄었다가‘아시타비’란 신조어로 변신했다.신조어인 아시타비가 올해의 사자성어에 뽑힌 이유는 뭘까. 그만큼 정치·사회 전반에 아시타비가 만연했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무엇보다 정부여당의 계속된 내로남불 행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재·보궐선거 원인 제공 시 당 후보 무공천’당헌을 뒤집은 여당에 대한 비판이다. 이로써 서울·부산시장 모두 여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추행 비위로 보선이 치러지게 됐음에도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도 후보를 낼 수 있게 됐다. 이 정부 들어 예타면제 사업규모가 박근혜 정부의 24조 원은 물론이고‘삽질 정부’라고 비난했던 이명박 정부의 60조 원보다 훨씬 많은 규모에 이른 것 역시 내로남불이다.문재인 정부 들어 예타 면제 사업 규모가 88조 원에 이르고, 가덕도 신공항까지 포함하면 거의 100조 원에 달한다.‘5·18 역사왜곡 처벌법’을 강행 처리한 여당이 ‘천안함 왜곡 처벌법’에 대해서는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소위 문턱도 넘지 못하게 한 것도 그렇다. 이러니 내로남불 행태를 가리키는 아시타비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힐 수 밖에 없었으리라 여겨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21

나만의 지도 만들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날씨는 차지만 산책 겸 30분을 걸어서 작은 서점에 갔다. 책이 많지 않다며 민망해하는 주인에게 책이 많으면 고르기 힘들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고 서가를 둘러 보다 반가운 책을 발견했다. 사진 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수필집 ‘여행하는 나무’이다. 이 작가의 ‘또 하나의 시간을 간직한 삶’이라는 짧은 글에 알래스카 고래 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44년이라는 짧은 삶의 후반기 20여 년을 알래스카에 거주하면서 그곳의 자연과 야생동물과 사람들을 사진에 담았다고 한다. 어떻게 알래스카를 선택했을까 궁금했는데, 서문에 그의 인생 철학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내용이 있다.북극권에서는 자라지 않는 등피나무를 북극해에서 발견하고 작가는 그 나무가 자기만의 여행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늘을 향해 뻗어오르던 등피나무가 껍질이 다 벗겨지고 뿌리마저 흉물스럽게 드러난 채 북극까지 떠 내려와서는 작은 티티새에게는 휴식을 주고 북극여우에게는 영역을 표시하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음을 발견한다. 작가 역시 알래스카에서 15년간 생활하면서 자신만의 알래스카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면서 사람도 나무처럼 자신의 지도를 그리며 여행하고 있음을 깨닫는다.자신의 지도 그리기는 우연히 찾아오기도 한다. 어느 교수는 터어키의 테키르다 어디에서 학회가 열리는지 몰라 그 작은 도시를 택시 타고 헤매면서 자신만의 테키르다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나도 20여 년 전 북경에서 일행과 길이 어긋나 종이 지도 한 장에 의지하여 목적지를 혼자 찾아간 적이 있다. 길가 음식점에 들어가 짜장면도 먹고, 공중 화장실도 필담으로 물어서 가고, 시내버스를 타기도 했다. 마롄따오에서는 크게 바가지 쓰지 않고 역시 필담으로 차와 다기까지 샀다. 그 덕분에 나만의 노선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그렇다고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꼭 길을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선택으로도 자신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가 뜻하지 않게 이 책도 발견하고 이런 글을 쓰게 되었으니 오늘 오후 나만의 지도를 그린 셈이다.요즘은 대부분 집콕이지만, 여행객이 많은 시절, 낯선 곳에 여행을 가게 되면 미리 검색하여 모든 노선을 완벽하게 짜놓고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가보면 모두 한국 사람이다. 다들 그렇게 같은 정보로 같은 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나의 개성을 발견할 수는 없다.인생도 그렇게 안전한 코스를 정해 놓고 싶지만, 인생에 그런 코스가 있을 리 없다. 큰애 역시 붙박이 삶을 최고로 생각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석 달 후에 또 출국하여 떠돌이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힘들겠지만 자신의 지도 한 부분을 그려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 역시 나만의 지도 그리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야릇한 의욕이 저 아래 뱃속에서 내장지방을 뚫고 살짝 올라온다.

2020-12-21

2021년 포항 지역경제의 방향성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다가오면 누구나 새해는 올해보다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각자의 본업이나 처지에 따라 바라는 형태도 좀 더 건강해졌으면, 월급이 올랐으면, 승진하였으면, 손님이 늘어났으면 하고 다르겠지만, 이들 모두의 올해가 지난해보다 좋아졌더라도 새해에는 그보다 더 좋아지기를 바랄 것이다. 이처럼 언제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향상심, 욕망, 책임감, 사명과 같이 어떻게 표현되더라도 그것을 에너지로 삼기에 인간사회는 언제나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인간사회에서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는 가계나 기업이 자신들이 바라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지난해보다 만족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모두 긍정적인 신호를 나타낸다면 당연히 그 경제주체가 자리한 공간 지리적인 범위를 형성하는 특정 지역의 실물경제도 성장 또는 발전하게 된다. 지난 하반기에 포항에는 많은 긍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포항이라는 도시의 미래 가치를 좀 더 높게 평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포항의 실물경제를 바로 회복시키는 효과까지는 발휘하지 못하였다. 준공된 사업은 정상 가동되어야 하고, 착공된 사업은 준공된 이후에야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2020년 포항 지역경제는 주력산업인 철강 부문이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여파로 부진한 가운데 여타 지자체도 겪었을 코로나19에 따른 악영향까지 함께 겪었다. 당연히 포항시 지역내총생산(GRDP)의 실질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렇다면 2021년은 어떨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올해 포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였던 만큼 이로 인한 기저효과에 힘입어 별다른 큰 충격이 없는 한 플러스 성장률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내년의 포항경제가 플러스의 실질경제성장률을 달성한다고 해서 일반적인 성장기에 나타나는 경제효과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지역 경제가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경우에는 지역 내 생산과 고용, 그리고 수출이 같이 늘어나 기업의 수익이 확대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근로자의 급여나 상여금이 올라 늘어난 가계소득을 기반으로 지역 내 소비가 촉진되며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는 지역경제의 역내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된다. 하지만 2021년 포항 지역 경제가 플러스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는 속내에는 그저 올해 반년 넘게 휴업상태가 계속된 곳이면 내년에는 그 기간이 그 절반 정도로 짧아질 가능성, 올해 공장가동률이 40%에도 미치지 못했다면 50% 수준까지는 올라가게 됨으로써 전년 대비 플러스의 수치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예측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기상도로 비유해본다면 올해 포항경제의 기상도는 흐린 상황에 비가 내려 우산을 쓰더라도 바람 때문에 몸이 다소 젖는 아주 궂은 날씨였다. 내년에는 상시 비가 내리지 않는 구름이 낀 날씨가 기본이겠지만, 불안감에 우산은 들고 다니더라도 간혹 구름 사이로 햇볕을 받는 날이 있을지 아니면 갤 듯하다가 구름이 계속 있을지를 나름대로 예측해보고자 한다.포항 지역은 생산부터 출하 소비로 이어지는 자율적인 순환 메커니즘을 갖추지 못하고 대부분 철강을 중심으로 소재 부문에 특화되어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어 포항 지역 경제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부의 여건부터 볼 필요가 있다.2020년 올해 세계 경제는 거의 모든 나라가 코로나19로 인해 역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국외를 불문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제한되어 호텔, 음식업과 같은 관광 관련 서비스산업이 큰 타격을 입는 가운데 제조공장의 가동률 저하로 고용이 감소하고 투자가 위축되는 한편 소비까지 침체되는 전방위적인 부진으로 대부분 역성장의 늪에 빠져버렸다. 물론 대륙별, 나라별로 종교나 사회적 관습이 모두 달라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가 형태나 속도에도 차이가 있어 나라별로 역성장의 내용과 질에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내년의 회복 속도와 형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이상을 고려할 때 2021년 세계 경제는 적어도 어느 정도 백신의 효과가 작동하고 새로운 형태로 전염병이 진화하지 않는 한 올해 역성장을 기록하였던 거의 모든 국가의 성장률은 나란히 역성장에서 벗어나 플러스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기저효과 때문이다. 다만 나라별로는 자신들이 처한 특수요인이나 지금까지 수년간 이어졌던 각국의 정책 기조가 앞으로도 여전히 경기 회복의 정도에도 차이를 나타낼 것은 분명하다.먼저 미국경제는 올해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롭게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이끄는 민주당 정권의 출범이 확실시되나 연방의회의 최종 의석수까지 결정되어 정부 기능이 정상 작동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모양이다. 따라서 민주당 정권의 주요 정책들이 행정력에서 힘을 발휘하고 경제산업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시작하는 시점은 빨라도 2/4분기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물론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전제하에. 다만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그간의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 국내생산을 유도하는 정책, 그리고 통상정책에서 중국과 치열한 대립 구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 지역경제도 브렉시트 문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관광 유관산업의 비중이 높은 나라들이 많아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인해 여타 산업들도 예년 수준을 회복하는 정도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이 지역의 통상정책도 미국의 정책 기조와 동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경제는 제14차 5개년계획(2021~2025년)의 첫해를 맞이하는 만큼 그동안 강조해왔던 내수확대를 통한 국내외 순환경제의 상호 촉진을 통한 발전 모델을 더욱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대립 구도에서는 추호도 양보하지 않는 강경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우리나라 경제는 양국 간 무역전쟁의 영향권에 놓인 어려운 상황이 내년에도 여전히 계속될 것으로 각오해야 할 것 같다.이상과 같은 2021년 세계 경제의 흐름은 결국 각자도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히 국제 경제여건은 올해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더라도 산업별로는 큰 분기점을 맞이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2021년은 코로나19와 그 이후가 병존하는 준 코로나 이후(semi-post corona)의 원년이 되기 쉽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비접촉, 온택트와 같은 키워드를 어느 산업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성장세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험적인 첫해가 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2021년 포항경제가 올해의 역성장에 기반한 반사효과 이상으로 경기 회복을 이루려면 각 산업 부문의 경제주체들이 모두 이러한 변화에 순응해 나가야만 한다. 먼저 유통부문에서는 시민들이 온라인 거래와 택배 활용에 대한 편리함을 맛본 점을 고려하여 최대한 비슷한 업종, 상점끼리라도 온라인화를 추진하여야만 한다. 1차 산품인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의 생산업자들도 전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전화 주문이나 택배 서비스를 확장해야 할 것이며, 전통시장도 온라인, 오프라인 모든 채널에서 소단위 포장과 일정 금액 이상은 택배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특히 올해 발표되었던 굵직한 주요 정책과 사업들이 모두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2-20

잇따라 터져나온 공직자 비리, 엄하게 다스려야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국이 혼란한 가운데 대구경북에서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잇따라 비리와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거나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충격이다. 특히 단체장이 구속된 군위군은 신공항 이전사업의 후속 조치와 대구시 편입문제 등 당장 풀어갈 현안이 산적해 단체장 공백에 따른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 들린다고 한다. 대구지법은 지난 18일 관급공사와 관련해 억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의 김영만 군위군수에 대해 징역 7년형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김 군수는 작년 11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으나 신공항 이전 등의 이유로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번에 다시 구속됐다. 군위군은 당분간 군수가 없는 업무공백이 불가피하며 그 공백기가 김 군수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여서 장기화 될 가능성도 높다. 김 군수가 구속되는 날 대구지방법원에서는 봉화군 엄태항 군수와 울진군 전찬걸 군수에 대한 심리와 재판이 열렸다. 엄 군수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고 전 군수는 80만원의 벌금이 선고됐다.공교롭게도 같은 날 경북 기초단체장에 대한 법원의 재판이 진행됨으로써 선출직 공직자의 비윤리적 도덕관에 대한 비판이 또한번 제기됐다.지역민을 대표해 지역사회 발전을 이끌 단체장의 윤리 수준이 이 정도일까 하는 비난이다. 공직자의 도덕성은 그 지역 사회의 안정과 질서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공직자에게는 많은 권한이 부여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일반인보다는 더 높은 윤리적 도덕관이 요구된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관련법이 있고 부정부패 방지 등 청렴교육을 강제하는 것도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다.최근 국민권익위가 발표한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경북은 대체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이 평가가 업무의 성과와는 별개라 하더라도 그 단체의 도덕성을 가늠해보는 잣대가 된다. 공직자의 도덕성은 단체장을 비롯한 상사의 도덕성 의지와 연관이 많다. 상사가 도덕적으로 모범되고 그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하위직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최근 지역에서는 국회의원이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기초단체 소속 지방의원들이 무더기 기소되는 등 도덕적 해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모두 엄한 처벌로 다스려야 한다.

2020-12-20

대북전단금지법, ‘패배주의’가 빚은 치명적 패착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단독 의결한 일명 ‘대북 전단 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날로 사나워지고 있다. 탈북 단체들을 중심으로 북녘 동포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돼온 전단 살포를 정부가 원천적으로 차단한 게 이 금지법이다. 접경지 국민을 보호한다는데, 이는 명백하게 적국의 공격을 당연시하는 ‘패배주의’의 산물이다. 궁극적으로는 ‘국방’의 의미마저 퇴색시키는 치명적 패착인 셈이다. 국회를 통과한 금지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전단 살포나 확성기 사용 같은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야당은 물론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에서도 강력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는 내년 초 관련 청문회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초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양국 간 한미동맹·북한 비핵화·북미대화 의견이 일찌감치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여당은 미국이 남의 나라에 너무 내정간섭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까지 제기하고 있다.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적에 대응하는 정부·여당의 논리적 근거는 우리 헌법에 나오는 표현의 자유 제한 조문이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가안보,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을 놓고 ‘적의 협박’에 굴복하는 걸 ‘국가안보’ 개념에 적용하는 것은 분명한 오독(誤讀)이다.북한이 대북 전단을 시비해 군사적 공격을 으르는 것은 최소한의 상대성 원칙조차 지키지 않는 폭거다. 더욱이 북한의 군사적 공격 협박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전제 아래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기반으로 형성된다. 북한이 여차하면 공격하겠다면서 휴전선의 우리 무기를 모두 철수하라고 요구한다면, 그 협박에도 순종할 참인가.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야권의 날 선 비난에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어쩌다가 이런 비굴한 나라가 되어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나.

2020-12-20

동짓날

중국 요순시절 형벌을 담당하던 공공씨의 자식이 동짓날에 죽어 역귀가 되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날은 그가 생전에 가장 싫어했던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역귀를 내쫓는 풍습이 생겼다.이런 중국 풍습이 우리 민족에게도 전래돼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지금까지 민간에 이어져 오고 있다. 민간에서는 동짓날 쑤어 먹는 팥죽은 악귀를 몰아내기도 하지만 낮이 길어지는 양(陽)의 기운이 시작하는 때라 하여 새해의 힘찬 기운을 불러들인다고도 믿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동짓날은 설만큼 중요한 날로 여겼다. 우리나라에는 설날에 떡국을 먹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과 같이 동짓날에 팥죽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속설이 있다.동국세시기에는 동지를 작은 설이라 부르며 설 다음으로 경사스런 날로 여겼다. 동지는 24절기 중 하나며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긴 겨울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영양이 많은 붉은 팥으로 요리도 하고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을 기원하는 날이 바로 동짓날이다.오늘이 동짓날이다. 이 날은 음력으로 11월 7일이다. 속설에 의하면 애동지에 해당한다. 애동지는 음력으로 11월 10일 전에 동지가 오는 날을 말한다. 11∼20일 사이에 동지가 오면 중동지, 21일에서 말일 사이에 오는 동짓날은 노동지라 부른다.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해 먹는다는 속설도 있다.경북 안동에서는 동지팥죽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내쫓는 팥죽 쑤기 시연회가 열린다고 한다. 팥은 예로부터 액운을 쫓는 음식으로 많이 사용됐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문짝에 부어 액운을 막았다고 한다. 이번 동짓날에는 팥으로 쑨 죽을 먹으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퇴치를 기원해보면 어떨까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20

칼날 위의 ‘법치(法治)’

안재휘 논설위원러시안-룰렛(Russian roulette)은 회전식 연발 권총에 총알을 한 발만 넣고 총알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탄창을 돌린 후 차례로 자기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끔찍한 자살 도박이다. ‘디어 헌터’라는 미국영화로 인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정직 2개월’ 징계로 귀결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마구잡이식 징계 소동이 끝내 러시안-룰렛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윤 총장은 법정투쟁으로 맞서고 있고, 징계를 재가한 문재인 대통령도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추미애 장관을 앞세워 사달을 기획하고 관리한 청와대와 문 대통령의 야릇한 처세는 궁색하다. 나라의 최고지도자 국가경영술로는 초라하다는 비판이 난무한다.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판사 출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소위 법률전문가 정치인들이 벌여온 지루한 패싸움 소동을 바라보는 국민은 ‘법은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폄범한 진리마저도 헛갈리기 시작했다. ‘법 논리’를 빙자한 교졸하기 짝이 없는 궤변 공방은 실로 짜증스럽다. 이현령비현령식에다가 아전인수, 내로남불 방식의 논쟁들이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국가의 가장 건강한 민주적 의사결정 기관이어야 할 입법부가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천박한 밀림이 됐다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형해화하는 입법독주는 말할 것도 없이, 말도 안 되는 누명으로 검찰총장을 꽁꽁 묶어놓고 벌이는 그들의 잔인한 모다깃매가 눈 뜨고 보아주기 어려울 지경이다. 윤 총장을 향해 “중세 군주 같다”는 비난을 퍼붓다가 “대통령에게 항명하고 있다”고 하는 종잡기 힘든 적반하장 언변들이 난무한다.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우리 문 대통령은 사실은 아주 무서운 분”이라는 말은 실소를 부른다.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이 윤 총장을 향해 “찌질해 보일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찌질한 쪽은 어디일까. 도무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입에서 나올 말들이라고 믿어주기가 버겁다. 번갈아 나서서 윤석열에게 퍼붓는 온갖 저주와 모략성 발언들은 우리 입법부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넉넉히 대변한다.어쨌거나 이제 국민의 이목은 윤 총장이 제기한 징계 결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의 심판 결과에 쏠려있다. 정치가 자꾸만 사법기관 밑으로 기어드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만간 결정 날 가처분 신청의 심사결과에 따라서 정국은 또 한차례 요동칠 게 분명하다. 이제 윤석열의 문제는 이 나라가 진정한 법치의 국가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분기점으로 떠올라 버렸다. 문자 그대로 법치가 칼날 위에 떠밀려 올라선 형국이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이 문제는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려는 검찰총장의 생목을 잘라내려고 하는 희대의 야만극이다. 이런 추악한 러시안-룰렛의 최종 희생자는 애꿎은 국민일 수밖에 없을 텐데, 어쩌다가 나라 꼴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이 무참한 ‘법치 파괴’의 폐허를 누가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2020-12-20

동지 팥죽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벌써 한해가 끝나가는 동지다. 태양이 돌아가는 황도 길을 24개로 나눈 절기 중에서 스물두 번째, 태양이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그림자가 가장 길다. 또 1년 중 밤이 가장 길어 ‘호랑이가 장가드는 날’이라고도 하는 절기이며 이제까지 커져 왔던 음기가 다하고 양기가 새롭게 부활하는 날이라 역(曆)의 시작으로 보고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로 삼았다고 한다.동지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궁중에서는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을 베풀었고 관상감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으며, 민간에서는 며느리들이 시집의 여자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는 헌말(獻襪)이라는 것도 있었고, 뱀 사(蛇)자를 쓴 부적을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다고 빌기도 했다. 그러나 민간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절식(節食)인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이 제일 보편적인 풍습이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있으니 안 먹고 한 살 덜 먹어볼 수도 있을까.어릴 때 기억이 아스라하지만, 따뜻한 방에 둘러앉아 할머니 옆에서 하얀 찹쌀로 만드는 구슬만한 새알심을 갖고 놀았고 어머니가 부엌에 내려가 펄펄 끓는 팥물에 넣어 질퍽한 팥죽을 끓여오면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그 팥죽을 몇 그릇 떠서 마루의 쌀 뒤주와 우물가 장독대 위에 놓고 정성스럽게 빌던 모습들도 이제는 잊혀져가는 기억들이다.근래 팥죽을 직접 끓여 먹는 가정은 많이 줄었겠지만, 요즈음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젊은 층의 레트로(retro) 취향으로 복고풍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지 골목마다 팥죽을 만들어 파는 가게도 늘고 팥 생산량도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팥은 붉은색 곡식이다. 붉은색은 음기를 쫓는다고 하여 남은 팥죽을 대문이나 구석진 벽에 던지면서 귀신을 쫓아 재앙을 면한다고 “고시내~ 고시내~” 하며 외치기도 하셨던 어른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서 들리는 듯하다.붉은 팥은 약효도 크다고 한다. 해열과 산후통증, 부종에도 좋고 이뇨와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하니 올해는 역병으로 고통 받고있는 외로운 취약계층 노인들에게도 팥죽을 갖다 드리며 온기를 느끼게 하는 것도 좋으리라.그런데 올해 동지는 음력 11월 7일 초순에 들어있어 ‘애동지’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아이들 피부에 물집이 생겨 나쁘다는 속설이 있어 팥죽을 안 쑤고 팥 시루떡으로 먹곤 했지만 지금과 같은 역병이 창궐한 때에 팥죽 한 그릇씩 나누어 먹고 건전한 마음으로 이겨내 보자.정갈한 동짓상 위에 팥죽과 동치미를 차려 놓고 가족의 건강과 새해의 운수 대통을 빌었듯이 코로나19의 악귀가 국민의 마음과 생활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이번 동지에는 가족 모두 모여 앉아 정성스레 하얀 새알심을 만들고 붉은 팥을 갈아 만든 팥죽을 먹으며 병마를 내쫓고 송구영신을 기원하고 싶다.그리고 동짓날에 따뜻하면 이듬해 질병이 들고, 춥고 눈이 오면 다음 해 풍년이 온다고 했으니, 마침 영하권으로 내려가고 있는 요즈음 흰 눈발 기다리며 날씨가 춥다고 불평하지 말아야겠다.

2020-12-20

말이 시(詩)가 된다

김현욱 시인사람은 말로 배우고 말로 사귀고 말로 싸우고 말로 사는 존재다.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은 이유도 말의 무게 때문이다.정약용의 ‘이담속찬’에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는 속담이 전한다. 말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뜻이다.‘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도 말조심하라는 뜻인데 조금 다르다. 평소 무심코 하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으니 불길한 말, 안 좋은 말보다는 즐겁고 이로운 말을 많이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사람에게 한 개의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는 것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귀 기울여 경청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 ‘이청득심(以聽得心)’이 좋은 예다. 친구 사이에도 자기 말만 하는 친구보다 잘 들어주는 친구가 인기가 많고 대접을 받는다. 그뿐이랴. 가족이나 친구 말을 잘 들으면 마음도 얻고 시도 얻을 수 있다. 말이 씨가 되는 게 아니라, 말이 시가 된다.전동재의 ‘요섭이의 말’이라는 시가 그렇다. “걸어오는데/ 요섭이를 만났다// 요섭이가 갑자기/ 동재, 우리 반 김욱현 샘 좋지?/ 그 샘 누구?/ 우리 담임 샘!//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김현욱 샘? 이라고 말하니/ 요섭이가/ 아, 맞다. 하하하!// 요섭이는 샘 이름도 모른다.”// 네이버 카페 ‘시와 노는 교실’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시를 쓴다. 2주에 한 번꼴로 시를 쓰는데, 아이들의 쓰고 싶은 마음을 북돋우기 위해 가장 애를 쓴다. “아파트에서 생긴 일”,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 “억울하면 시 쓰자!”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로 시작한다. 알맞은 마중시가 있으면 읽어주고 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를 할 때는 배한권의 ‘엄마의 런닝구’를 읽어준다. 엄마의 사투리 부분을 맛깔나게 읽으면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반 아이들에게 낭송을 부탁하면 더 재미있게 읽는다. 시 쓸 분위기 조성에 안성맞춤이다.매년 아이들과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를 하는데 곧잘 재미있는 시가 나온다. 전동재의 시 ‘요섭이의 말’이 그렇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요섭이는 자기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거꾸로 알고 있다. 동재와 요섭이는 같이 학교에 오다가 요섭이가 김현욱 선생님을 김욱현 선생님이라고 하는 게 참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아침에 동재가 말로 먼저 내게 그 얘기를 들려줬다. 나는 ‘옳다구나!’ 동재에게 다음에 시 쓸 때 그걸 써보라고 했다. 동재는 요섭이 말을 잘 듣고 나는 동재 말을 잘 들었다. 말이 시가 된 것이다.우리는 말의 세상에 살고 있다.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공인들이 종종 말실수를 해서 구설에 오르는 것을 본다. 아이들의 세상에서 ‘말’은 시의 씨앗이다.누군가의 말을 귀담아듣는 일은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잘 들으면 시가 생긴다. 말이 시가 된다.

2020-12-20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고령 만드는데 최선

곽용환고령군수올해는 누구도 우리 곁에 오길 원하지 않았던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황과 공포에 빠뜨렸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일상이 무너지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단절돼 비대면사회로의 전환이 급속히 진행됐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경영난을 겪고 있고, 고용불안이 심화됐으며, 취약계층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고령군민과 공직자는 그 어느 때보다 한마음이 되었고 새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에게 대출·보증 등 유동성 자금을 공급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 생계지원을 위해 긴급 생활비와 한시적 주민지원, 긴급재난지원금 등을 지급해 위기를 극복하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그 동안 가려져 있던 우리의 소중한 역사자원들이 하나하나 빛을 발하면서 도시의 매력을 더하고 있고, 통계청 국민행복지수 발표 결과 ‘삶의 만족도 대한민국 1위’에 오르며 작지만 강한 고령군의 저력과 역량을 입증 받아가고 있다.대가야 종묘 개관 및 대제 봉행으로 520년 간 국가적 위상과 문화적 독창성을 빛내며 존재한 철의 왕국 대가야가 ‘4국시대’로 인정받는 과정에 있으며, 지산동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최종관문을 통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 군은 유구한 역사와 독창성을 가진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대가야 궁성지와 대가야 관방유적 발굴·정비, 가야사 연구·복원사업 추진을 통해 가야사 복원과 재정립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대가야 생활체험 거점관광지인 대가야생활촌은 기존에 조성된 박물관과 문화누리, 역사테마 관광지와 농촌체험특구를 아우르는 관광단지에 ICT에 기반한 실감콘텐츠까지 접목해 대가야 문화벨트로 완성돼 가고 있다. 향후 즐기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관광지로 각광받으리라 확신한다.고령 100년 대계를 위한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를 위해 온 군민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왔으며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내년에도 군민의 교통편의 증진과 관광산업 연계를 위해 사통팔달의 전방위적 물류교통망 확충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스마트 상수도시스템 도입과 노후 상수관 개선, 깨끗하고 안정적인 수돗물을 공급하고, 농촌중심지 활성화와 기초생활 거점 육성을 통해 꿈과 활력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나가겟으며, 대가야 문화물길 정비와 스마트홍수관리시스템 구축, 성주댐 관리규정 개정으로 만약을 위한 안전 대비를 꼼꼼히 챙겨 나가도록 하겠다.대가야읍 도시재생 뉴딜과 왕릉로 거점공간 조성으로 쾌적한 주민생활환경을 조성하고 도시개발사업, 생활SOC복합화 사업, 공원조성을 통해 군민 삶의 질을 높여 대한민국 행복도시를 완성 하고자 한다.다산면은 지역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정주여건 개선사업을 통해 인구 2~3만 명의 살기 좋은 신도시로 개발하고, 다산문화공원 경관개선사업과 생태레저단지 조성, 바래미숲조성을 통해 新(신)낙동강 시대를 열어 가고자 한다.대구와 경북 통합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대구·경북 달성·고령의 상생협력을 위한 사문진교 경관개선사업을 통해 대구·경북민이 하나가 돼 화합할 수 있는 모범사업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지난 2일에는 김문오 달성군수와 함께 사업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수립 용역보고회를 가졌으며, 28일에는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김문오 달성군수 등 단체장들과 함께 대구·경북이 상생의 미래를 여는 협약식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달성군의 피아노 100대와 고령군의 가야금 100대 공동 협연 문화교류사업, 대구·경북 상생 주말 장터 등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상생협력 공동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우리는 지금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다. 개척자의 심정으로 2021년에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대가야 고도 고령을 완성해 나가고자 한다. 오늘도 군민과 함께하는‘I ♥ 대가야 고령’프로젝트를 추진해‘대한민국 대표 행복도시,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고령’을 만들어 가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20-12-20

화양연화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 달 전 즈음, 교회에서는 뒷산에서 가져온 키 큰 소나무에 솜과 색종이 고리를 연결해서 둘렀다. 트리 장식이 첫 순서였다. 발표회 준비를 하기 위해 방과 후에 교회에 모여 연습도 했다. 언니 오빠들은 전지를 여러 장 눌러 만든 차트에 성가의 가사를 적었다. 창밖을 보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 저~들 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뭇천사 내려와…. 하루에 노래 한 곡 이상은 익혀야 발표회에 율동곡으로 또 합창곡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크리스마스이브가 D-day였다. 무대가 열리는 날은 동네잔치나 마찬가지였다. 예수쟁이가 아닌 어른들도 모두 구경하러 오시니 뒷자리에 서서 보아야 할 정도로 예배당이 꽉 찼더랬다. 어린 반 친구들이 무대 첫인사를 하면 천으로 된 막이 스르르 열린다. 이 막을 열고닫는 일은 언니들의 몫이다. 작은 교회라 일인삼역은 기본이었다.초등학생 때는 발랄한 율동곡을 담당하다가 중 1이 된 그해에는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역할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엄마 치마저고리 입고 십자가 대형으로 앉아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럴에 맞춰 춤을 추었다. 양손에는 촛불을 들고 하는 나름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율동이었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니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옆 사람에게 촛불이 붙을까 조심하며 애쓰는 중1의 우리들이 보여 웃음이 절로 났다. 우리보다 큰 언니 오빠들의 연극이 마지막 무대였다. 돌아온 탕자를 연기한 오빠의 손에 담배가 있어서 저걸 피워도 되나 싶어 끝나고 무대 뒤로 가서 그 오빠에게 걱정을 늘어놓았더랬다. 싱겁게도 담배로 보였던 것은 하얀 모나미 볼펜 깍지였다.김순희수필가동네 어르신들 격려의 박수소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그 자리에서 선물교환을 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추위가 더해지고 통로에 톱밥 난로에 열기가 더해져 우리 볼은 더욱 빨갛게 들떴다. 낮에 교회로 올 때 선물 하나씩 포장을 해서 와야 했다. 누가 어떤 선물을 고를지 모르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끝까지 긴장하며 즐기는 밤이었다. 커다란 상자를 골랐는데 그 속에 러시아 인형처럼 작은 상자를 겹겹이 넣어 마지막 상자에 달랑 볼펜 한 자루가 들어있기도 했고, 작고 가벼워 보여도 맘에 쏙 드는 앙고라 장갑이 툭 튀어나오기도 했으니까. 언니 오빠들의 우스갯소리까지 더해 크리스마스이브가 이브다운 밤이었다.그렇게 밤이 늦도록 놀다 보면 권사님들이 떡국을 끓여서 들통에 담아 내오셨다. 김이 술술 나는 국을 한 대접씩 나눠 먹고 조를 짜서 동네별로 새벽송을 다녔다. 교회 앞 강 건너 무릉 3동에 갈 때는 돌다리를 건넜던, 무지 아련한 추억도 있다. 저 아래 동네인 검암에서 골마를 지나 덕마까지 오며 대문도 없이 살았던 집집이 들어가 크리스마스 송가를 부르면, 한잠 들었던 집에 불이 켜지며 어설프게 겉옷을 걸치고 나와서 과일이나 사탕, 쌀을 한 됫박 안겨주고 들어가셨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크리스마스 행사이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스케치북으로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케치북에 캐럴 싱어즈가 왔다고 말하라고 쓰여 있다. 자막엔 성가대라고 했지만, 성가대와 새벽송을 부르는 건 좀 다른 느낌이다. 새벽송을 듣고 소소한 것을 나누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아 내 기억은 어릴 적 고향의 그 날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그때의 그 친구들이 2019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서울역 근처 힐튼호텔에서 만났다. 나 같은 소시민이 누릴 호사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때 교회 선생님이 호텔맨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뷔페로 점심을 먹고, 선생님이 마련해준 자리에서 선물교환을 하고 한 해의 좋았던 기억을 나누고 힘들었던 일을 서로 위로했다. 같은 추억을 가진 친구들과 새로운 기억 하나를 추가했다. 내년에도 이렇게 만나자 했었다. 코로나가 이렇게 일상을 삼킬 줄 몰랐던 시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였다.

2020-12-20

연말 모임·행사 자제로 대유행 위기 넘어야

정부가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고심 중인 가운데 17일 또 다시 신규 확진자 수가 1천 명을 넘어섰다. 서울서는 역대 최고인 하루 423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했다. 신규 확진자 1천 명대가 3번째를 기록하면서 3차 대유행의 속도가 점차 빠르게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지난 3월 이후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면서 대구경북형 방역체계에 대한 우려도 있다. 17일 대구는 20명, 경북은 9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으나 그 전날에는 대구 27명, 경북은 28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생했다. 대구는 교회 관련 확진자가 17명이나 됐고 경북은 지난 3월 이후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다. 안동, 구미, 포항, 경산 등 도내 곳곳에서 신규 확진자가 발생, 불안한 양상이다.최근 국내에서 발생하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으나 전국적으로 전방위적 발생 분포를 보이고 있다. 어느 한쪽을 틀어막는다고 방역의 고삐가 잡힐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전국이 동시에 강도 있는 방역체제를 구축해야만 겨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최근 1주간 일 평균 확진자(12월 11∼17일)는 882.6명으로 이미 3단계 범위 안에 들어온 상태다. 특히 최근 확진자 3명 가운데 1명이 감염병에 취약한 60대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령자와 위중환자, 사망자까지 급증하는 추세다. 일부 전문가는 하루 2천∼3천명까지 신규 환자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경북을 비롯 전국적으로 응급환자 병상 부족이 심각해지고 의료진 확보도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대구시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유지하면서 오는 21일부터 1월 3일까지 2주간 연말·연시 특별방역 기간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대구시는 이 기간동안 연말연시 각종 모임과 행사를 자제하고 10인 이상 음식물 섭취 모임행사는 취소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 개인방역 수칙 준수와 교회시설의 참석자 수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도 통보했다.코로나가 3차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었음에도 장기화에 따른 국민적 피로감으로 긴장감이 예전만 못하다. 모두가 다시 긴장감을 곧추세우고 위기극복의 시기를 넘겨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연말연시 행사. 모임을 자제하고 방역수칙 준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2020-12-17

제야의 종

새해맞이 행사로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벤트는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볼 드롭’ 행사를 빼놓을 수 없다.12월 31일 자정을 앞두고 시작되는 볼 드롭은 새해 카운트다운과 동시에 타임스퀘어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화려한 불빛 장식의 거대한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3만개의 LED 조명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 볼에 불이 켜지면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관중들의 환호로 이 행사는 절정에 달한다.뉴욕 최고의 랜드마크인 타임스퀘어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매년 내외국인 등 100만 명이 현지를 찾고 TV 등을 통해 최소 10억 명 정도가 관람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영국, 프랑스 등 각국이 그들만의 전통적 방법으로 신년 맞이 행사를 벌이고 있으나 올해는 뉴욕의 볼 드롭과 함께 대개가 온라인 중계로 진행될 것 같다는 소식이다.코로나19는 인류가 즐기는 모든 종류의 행사를 멈추게 하고 있다. 해마다 연말 행사로 실시되던 우리나라 제야의 종 타종행사도 전국 곳곳에서 코로나 때문에 멈춘다고 한다. 서울 보신각과 대구의 달구벌 대종에서도 신년을 알리는 타종 소리를 못 듣게 될 전망이다. 보신각 타종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보신각을 중건한 1953년 이후 6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제야(除夜)의 종은 불교에서 중생들의 백팔 번뇌를 없앤다는 제석(除夕) 타종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에겐 국가의 안위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새해맞이 행사다. 비록 온라인으로 재현된다고 하나 국민이 받을 서운함을 채울 방법이 없다.코로나로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올 연말은 유례없이 조용한 송년이 될 것 같아 암울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17

역지사지(易地思之) vs 화이부동(和而不同)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왼쪽에 있는 사람보다 오른쪽 부분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사물을 보는 시야의 범위가 위치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자신만 볼 수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직접 볼 수 없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왼쪽에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이처럼 물리적 시야의 한계에 의해 생기는 오해는 어떻게 하면 될까.해답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즉, 서로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바꾸면 상대가 얘기한 것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상대의 말을 곧바로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의 시야가 서로 다를 경우는 어떨까. 선입관이나 고정관념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을 바꾸려면 마음이 서 있는 자리를 역지사지해야 가능한 데, 상대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럴 때도 서로 정면대치하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해법은 있다.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바로‘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틀렸고 내가 옳다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 두 사람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결정과 추 장관의 사의표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하다.문제는 이제부터다. 윤 총장이 17일 징계 처분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해 법적공방에 나섰기 때문이다.이쯤에서 추-윤 사태를 둘러싼 두 당사자의 입장을 짚어보자. 정부 여당은 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 수사와 원전 수사의 예에서 보듯 산 권력이나 정권 관련 수사에는 물불 안 가리면서 야권 수사나 검사 술 접대 수사, 윤 총장 장모와 부인 수사 같은 제 식구 수사에는 미온적이라고 눈엣가시로 본다. 즉, 검찰이 관심 많은 사건에만 매달리면서 조직을 보호하는 동시에 정치판을 흔드니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윤 총장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다.반면 검찰은 “산 권력도 봐주지 말고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에 따라 마땅히 할만한 수사들을 했을 뿐인데 적폐수사 땐 힘을 실어줬던 여권이 돌변해 윤 총장을 부당하게 찍어내려 하고,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훼손하려 든다고 여긴다. 결국 집권세력은 검찰이 독립성·중립성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무간섭 향유를 의미한다는 것이고, 윤 총장 측이 보는 집권세력의 민주적 통제란 검찰 길들이기 내지 검찰장악을 뜻할 뿐이다. 이처럼 서로를 보는 마음의 시야가 다르니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무릇 정치는 화이부동해야 하건만….이러니 과연 이 나라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 할 수 있겠는가.

202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