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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챙김의 시’

‘마음챙김의 시’표지.좋은 글이나 마음에 와 닿는 시를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마음 따뜻한 오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나는 류시화 작가가 최근 엮은 ‘마음챙김의 시’라는 책을 읽으며 어떤 시가 나에게 왜 와 닿는지를 이야기하였다. 친구는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도 가장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해서 엄마에게 낭독을 해달라고 하였는데, 그 낭독한 음성파일을 내게 보내 왔다. 이제 막 변성기가 온 아이의 목소리에서 들리는 시는 ‘눈풀꽃’이라는 시였다. 겨울이 채 끝나기 전 이른 봄에 피는 수선화같은 흰색꽃이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사춘기 아들과 친구의 지난 세월의 일상들이 한 순간에 눈앞에 떠올랐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눈풀꽃’이라는 시를 쓴 시인이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한 시집은 단 한 권도 없고, 류시화 작가의 책에서 소개한 게 전부인 ‘루이스 글릭’이라는 여성시인에 대해 검색을 하고 친구와 카톡으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예측불가능한 대위기의 시기에 고립, 단절, 불안, 고독 속에서도 소생하려는 생명의 의지를 잘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를 통해 이를 넘어서는 회복력으로 자연과 일상 속에서 녹아내는 글릭의 시가 나에게도 깨달음을 준다.류시화 작가의 글들을 너무 좋아하여 책이 닳도록 읽기를 반복했던 류시화 작가의 책이 마치 오래된 내 친구 같다. 마음 한 켠에 와 닿는 시 하나가 나에게 울림이 되고 위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진실한 깨달음이 시의 문을 여는 순간이 있다!”라고 했다. 2005년도 출판된 류시화 작가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아직도 꺼내 읽기를 반복한다. 15년이 지나도 진실한 깨달음의 순간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 호시노 도미히로의 ‘일일초’를 읽었다.‘일일초’오늘도 한 가지슬픈 일이 있었다.오늘도 또 한 가지기쁜 일이 있었다.웃었다가 울었다가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부드럽게 감싸 주는헤아릴 수 없이 많은평범한 일들이 있었다.호시노 도미히로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체육 교사였던 그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기계체조를 가르치다 철봉에서 떨어져 전신마비로 장애라는 절망의 나락에서 평범함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일초’란 시를 썼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오랜 친구와 진실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삶의 평범함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낸다. /김예원(경주시 양북면)

2020-11-09

시절인연(時節因緣)

떨켜를 준비하는 나무에 가을바람이 분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잎을 떨구고 새잎을 준비하는 자연의 섭리란 우리의 인연들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지난 여름은 소란과 정적 속에서 한 시절이 갔다. 어찌 됐건 만인이 그리워하는 가을의 초입에서부터 나는 지금 추녀가 되고 싶어 설레고 있다. 어느 해 보다 길고도 지루한 여름날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던 지난 계절의 꽃들과 사람들. 어쩌면 시절인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존재를 기다리며 벌써부터 기쁨에 젖는다. 그들과의 해후는 설레면서도 얼마나 소망하고 갈망한 시간들이었나 생각해 본다. 평소에 너무 가까이 있어 느끼지 못했던 아쉬운 정도 그러하겠지만 아무튼 보고 싶은 마음이 호수만 한 것은 틀림이 없다.가만히 그동안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만난 사람들, 또는 남편 회사와 관계된 만남도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어느 순간 떠나간 사람도 있고 까마득히 잊은 사람도 있고 그대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떠나갔지만 고마웠고 좋아서 생각나는 사람도 있다. 여러 동아리에서도 어쩌면 필요에 의해 만나고 스치고 지나간 인연도 많다. 그러나 필요에 의하지 않았어도 오래 함께한 사람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건 떠났다가 다시 만난 사람도 있다.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를 말고’라는 시절인연 노랫말이 생각난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돼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킨다. 즉 때가 되어야 인연이 합한다는 불교 용어로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는 그것을 시절인연이라고 한다.이번에 만날 사람들은 가을에 잎을 떨굴, 봄여름 수고한 나무들과 가을에 피어날 꽃들을 함께 기다리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단풍과 무채색과 가을 하늘을 빛낼 하얀 억새까지. 그것은 멀리에 있어도 오래 소통하지 않았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우정과도 같은 것. 시절의 인연들은 나뭇잎 하나라도 다 쓸모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요즘을 버티고 살아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또는 내가 응원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첫사랑이 떠나가는 것도, 좋은 관계였던 사람들이 떠나간 것도 슬퍼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일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야 할 인연들은 만날 것이고 굳이 붙잡지 않아도 떠나갈 인연은 떠나는 것이니 섭섭함에 울지도 말아야할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다정한 시절인연이 다가 올테니…. /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100)

2020-11-09

아주 작은 인연에도 부처님이… 보은 법주사 복천암(福泉庵)

속리산의 주말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법주사 선원에서 동안거에 들어가셨던 스님의 부름이 없었다면 감히 차로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할 곳이다.차로 옮길 짐이 있어 인파를 헤치며 들어서는 일은 쉽지 않다. 몇 번이나 검문 받듯 상황을 설명한 후에야 비상등을 켜고 나아갈 수 있었다. 법주사에 대한 기대감보다 특혜를 누리는 듯한 불편함이 무겁게 가슴을 누른다.법주사 뒤편에 자리한 선원에는 인적조차 없어 몸과 마음이 조심스럽다. 동안거가 끝났지만 여전히 선원을 지키며 수행하는 스님들이 계셔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먼 길 온 내게 법주사 공양을 대접하겠다는 스님의 말씀에서 가을 향기가 난다. 스님은 법주사에 처음 온 나를 배려해 지름길을 두고 천왕문 쪽으로 이끄신다.샛노랗게 물이 든 은행잎들의 황홀한 잔치판에 시린 눈을 뜰 수가 없는데 스님의 걸음은 무심하게도 빠르다. 카메라에 법주사의 가을을 마음껏 담고 싶다. 모처럼 서 보는 거대한 사천왕상 앞에서 잠시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 싶다. 국보급 문화재들도 둘러보고 싶은데 스님의 걸음은 흐트러짐이 없다.사진으로만 보던 팔상전을 몇 번이나 힐끔거리며 인파 속으로 사라져가는 스님을 놓칠 세라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공양간에는 사찰 일을 돕거나 스님을 친견하러 온 방문객들이 공양 중이다. 푸짐하고 정성들인 공양 앞에서 잊고 지내던 공양의 기도가 나를 위로 한다.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지키는 대웅보전의 고색창연한 위엄 앞에서 잠시 숨 돌릴 여유를 찾는다. 중층으로 이루어진 법당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삼존좌불, 그 인자하고 근엄한 눈빛이 나를 내려다보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스님의 부름을 받고 이곳까지 한걸음에 달려 왔는가. 화두처럼 와서 박힌다.인파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암자를 보고 싶다고 하자 스님이 산내 암자 중 가장 깊은 역사를 지닌 복천암을 소개해 주신다. 단풍과 등산객들로 활기가 넘치는 잘 닦여진 시멘트길이 우리를 안내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출렁거림을 따라 사람들은 걷고 있다. 인적 없는 시간 이 길을 오르면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사람들이 붐비는 세심정을 지나고 이 뭣고 다리 건너편 산비탈에 복천암이 보인다. 문장대로 향하는 거친 숨소리는 멀어져 가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느티나무 서너 그루가 처연한 자태로 복천암의 깊은 역사를 말해 준다. 이곳은 법주사의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때인 720년에 창건된 사찰이다.고려 공민왕이 극락보전에 무량수라는 편액을 친필로 썼으며, 세조는 이곳에서 신미 대사와 함께 3일 동안 기도드리고 목욕소에서 목욕을 하여 피부병이 낫자 절을 중수하도록 이르고 ‘만년보력(萬年寶曆)’이라 쓴 사각옥판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신미대사에게 왕사이자 혜각존자라는 호를 내리고 존경심을 표한 세조,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치유되었을 세조의 아름다운 인연을 복천암은 간직하고 있다.이곳은 속리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명당자리다. ‘나랏말싸미’ 영화를 접한 적이 없는 내게 산중에 계시는 스님이 영화에 비친 신미대사 이야기를 풀어내신다. 수행뿐만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정세까지 두루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스님은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선방에서 수행만 하셨지만 어느 부분도 막힘이 없다.복천암은 여느 암자와는 달리 선원 뒤로 극락보전과 산신각이 숨어 있듯 앉아 있다. 절 이름과 관련 있는 복천수가 흐르는 바위 옆에 극락보전이 있다. 궁궐의 많은 어의들이 고치지 못한 세조의 병을 고친 복천암,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가을경치에 밀려 아미타삼존불이 쓸쓸히 법당을 지키고 있다.일반인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나한전 쪽을 스님이 안내해 주신다. 산신각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조실 스님이 머무는 요사채와 나한전이 후원처럼 아늑하다. 기와를 얹은 작은 문 안으로 숨이 멎을 것 같은 오랜 기다림 하나, 남들이 드나들지 않는 문을 통해 나를 기다리는 부처님이 보인다.조낭희 수필가조용히 합장한 채 문턱을 넘지 못하는 나와 달리 스님은 벌써 긴 계단을 올라 나한전 문 앞에서 예를 갖추신다. 홀로 돌아앉은 이 쓸쓸한 고립의 풍경이 주는 울림은 크다. 가슴이 먹먹하다. 나한전 뜰 앞에 앉아 하나의 계절로 나투시는 부처님을 오래도록 뵙고 싶은데 스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사라지셨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경이로운 만남, 그 여운은 길 것이다.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후원을 빠져 나오는데 뜰 위에 놓인 조실 스님의 털신 한 켤레가 마음을 붙든다. 외롭고 고독한 수행, 거기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 하나 머문다. 화두가 풀린다. 하마터면 드러나는 현상에 취해서 이 가을을 송두리째 놓칠 뻔했다. 올 가을은 유난히 갈증이 심했다.나태해지거나 흔들릴 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지켜 주시는 부처님, 비로소 스님의 부름 속에 깃든 참뜻을 알아차린다. 무시로 나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인연들, 무심히 걸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이 가을보다 아름답다.

2020-11-09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서명한 불공정 계약서

다방면에 탁월한 학식을 겸비한 인물을 ‘만능인’이라 일컫는다.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에 편중되지 않고,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지성인, 요즘 말로 ‘통섭형 인간’을 가리킨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특히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때 이런 유형의 천재들이 대거 출현했기 때문에 ‘르네상스형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많은 천재들이 피렌체에서 출몰했지만 르네상스의 만능인하면 곧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대표적이다.레오나르도는 1452년 공증인 세르 피에로의 사생아로 태어나 열 네 살 되던 해 피렌체에서 명망 높던 미술가 베로키오의 공방으로 보내져 십년 동안 도제생활을 했다. 레오나르도는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보티첼리, 훗날 미켈란젤로의 스승이 된 기를란다이요 그리고 라파엘로에게 그림을 가르친 페루지노 등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가장 재능 있는 미술가 후보생들과 함께 도제 생활을 했다.스무 살 되던 1472년 레오나르도는 피렌체 미술가 조합에 이름을 올리며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출중한 그림 실력뿐만 아니라 명민함으로 인간과 자연을 통찰한 레오나르도였지만 직업의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화가로서의 명성을 만방에 알릴 걸작은 고사하고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한 궁핍함에 쪼들린 나날을 보냈다.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1481년 산 도나토 수도원에서 제단화 한 점을 의뢰해 왔다. 그런데 작품 제작을 위해 수도원과 레오나르도가 맺은 계약 내용이 결코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계약서에는 미술가와 의뢰자의 책임과 의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예컨대 작품 제작비용과 지불 방법 그리고 기한, 계약 파기 시 책임소재 등과 같은 내용이 계약서에 언급이 된다. 더불어 작품의 품질 보증에 대한 언급도 중요한 부분인데, 제작 공정에 대한 철저한 관리는 물론, 단가 절감을 위한 속임수를 막기 위해 엄선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도 빠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도나토 수도원과 레오나르도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에는 이 같은 일반적인 사항들이 언급되는 대신 미술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들만 나열돼 있다.작품 대금을 현찰로 지급하는 대신 수도원이 소유한 땅의 일부분을 주겠다는 내용이나 30개월 내에 작품을 완성해야하며 이를 어길 경우 작품을 몰수하겠다는 등 화가의 책임과 의무만 기록돼 있다. 불공정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는 것은 레오나르도의 형편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과 제대로 된 작품을 그려보겠다는 의지가 절실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수도원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계약 내용과는 별개로 나뭇단과 큰 장작 한 짐 그리고 밀가루 13ℓ와 적포도주 한 통이 화가에게 지급됐다. 레오나르도의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는 이미 정평이 나 있던 터라, 또한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제단화 완성에 차질이 있을까 염려가 되었던지 수도원은 독려 차원에서 특별히 28피오리노를 입금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오나르도의 제단화는 미완으로 남겨졌다. 이 작품이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한 미완의 걸작 ‘동방박사의 경배’이다.비록 미완으로 남긴 채 화가는 붓을 놓았지만 화가의 어느 작품 못지않은 탁월한 걸작 중에 걸작이다. 미술에 과학적 탐구 정신을 불어 넣은 레오나르도의 위대한 예술 정신이 전혀 부족함 없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완성작 보다 미완의 작업에 다른 다원의 고양된 예술 혼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완벽한 상(像)은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완성된 어떤 작품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에 남겨진 미완의 흔적들은 감상자의 인식작용을 통해 보다 완벽에 가깝게 그려질 수 있다. 의도되었건 그렇지 않건 미술의 본질이 물질적 완성이 아니라, 완전한 아름다움에 다다르려는 예술정신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0-11-09

성선설(性善說)과 백당기(白堂記)

강희룡 서예가노자는 백색의 맑음을 알아야 흙색의 혼탁함을 지키며, 맑음을 지키면서 혼탁함을 조화시키는 것이 온전한 도리라고 했다. 이 흰색의 앎이 귀한 이유는 장차 그 앎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백색은 채색의 바탕이기에 백색이 아니면 채색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백색은 채색을 수용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채색이 끝난 다음에도 백색이 아니면 다시 담박하고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문장이나 일을 꾸밀 때 ‘희게 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색깔로 보면 채색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으나 채색은 반드시 흰색을 바탕으로 시작하고 또한 마무리해야한다.구한말 독립운동가 수당 이남규 선생의 저서 수당집에 ‘백당기(白堂記)’가 수록돼 있다. 이 글은 윤장이 남산 밑에 집을 지어 서재로 삼고 그 처마에 ‘백당’이라는 편액을 달아 내걸면서 수당에게 백당에 대한 기(記)를 써달라고 부탁해 지은 글이다.“일반 사람들은 오로지 채색을 취하지 백색을 선택하지 않는데 그대는 오히려 채색을 버리고 백색을 취했다. 이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고상한 자질을 알고 숭상해 그 취할 것을 아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 바라건대, 그 고상한 자질을 온전히 지켜서 백색을 취한 뜻을 잃지 말라. …. 이미 마음이 맑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나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남들의 시기가 모여들 수 있다. 남들의 시기란 세상 바깥의 일이기에 실제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여 어찌 이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방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다른 사람의 시기를 받고도 온전히 천성을 지킨다는 것은 성인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형산의 옥에 비유하면 바탕이 맑고 찬란해 진실로 천하의 백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박석(璞石·옥돌)에 싸여 땅속에 묻힌 채 세상에 나와도 한 번도 스스로를 드러내 뽐낸 적이 없기에 백색의 맑음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을 드러내고 형체를 노출시켜 스스로 백색의 맑음을 발했다면 거친 자갈과 돌들이 흠을 낼 텐데 어떻게 온전한 모습을 지킬 수 있겠는가. 흰색의 맑음을 지키면서 검정의 혼탁함을 조화시킨다면 그 모습을 온전히 지키는 도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선한 것’이라고 기록된 맹자 등문공상(6ED5文公上)의 성선설을 근거로 볼 때, 천성(天性)의 맑고 깨끗함을 멀리하고 오욕의 혼탁함과 뒤섞여 살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삶을 더럽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들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위정자를 비롯한 공직자들은 그 속마음을 국민들에게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하며, 자신의 뛰어난 재지(才智)와 공(功)은 박석같이 바위 속에 숨겨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없게 해야 한다.비리를 감추려는 어설픈 임기응변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위정자가 남은 올바른 삶의 시간을 고민한다면 흰색의 맑음의 유지는 반드시 새겨야 할 좌우명이다.

2020-11-09

체벌과 아동학대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최근 부모의 체벌로 아동이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의하면,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건 수는 3만45건이다. 학대행위자로는 부모가 2만2천700건(75.6%)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 중 친부가 1만2천371건(41.2%), 친모가 9천342건(31.1%), 계부가 557건(1.9%), 계모가 336건(1.1%)으로 나타났다.학대행위자의 연령은 40대가 1만3천186건(43.9%), 30대가 8천88건(26.9%), 50대가 4천630건(15.4%), 20대가 2천505건(8.3%) 순으로 많았다. 통계로 미루어 보건대, 영아기부터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에 의한 학대가 아동학대 대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2019년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에 이른 사례는 총 43건이며 이 중 영아기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아동이 35명으로 절반 이상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능을 갖고 있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출생 직후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양육자의 보살핌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 성장기 동안 양육자로부터 분리된 자아의식이 생기고 독립에 대한 요구가 있더라도 여전히 양육자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데,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 때 학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권 의식의 부재, 훈육 방법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부재, 아동학대의 세대 간 되물림 등 아동학대의 원인을 다양하게 찾을 수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의식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민법 915조에는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있고 지금까지 대법원에서도 친권자의 징계권을 인정해 왔다. 하지만 훈육을 이유로 아동학대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친권자의 징계권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친권자의 징계권을 민법에서 삭제하는 개정안이 지난달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다.경북도는 올해 포항과 경주, 구미 등 7개 시군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18명을 우선 배치하고 내년에는 전 시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는 체벌 없이도 자녀훈육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의구심에 답하자면, “가능하다”이다(필자의 이전 칼럼 참조).힘에 대한 복종을 가르치는 체벌은 자녀가 책임감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 되지 않는다. 학대의 범위는 시대나 문화마다 다양할 수 있지만 아동은 성인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약자라는 관점에서 학대의 범위를 보다 넓게 바라보고 이 문제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성인이 아동에게 하는 언행이 적절한가는 역지사지해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2020-11-09

바이든 당선이 우리 정치에 던지는 교훈

우여곡절 끝에 미국 제4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Joe Biden)이 당선됐다. 바이든 시대의 개막으로 지구촌 최강국 미국의 정치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바이든의 승리는 우리 정치에도 많은 교훈을 던진다. 트럼프의 ‘분열정치’를 심판하고 바이든의 ‘통합의 정치’를 선호한 미국 국민의 선택은 우리 정치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대목이 적지 않다. 제대로 보고 올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를 미국과 비(非)미국으로 나누고 국민을 흑-백, 빈-부로 갈라치는 방식으로 지지자들을 규합해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방식의 트럼프식 장사꾼 정치로 인한 폐해는 심대하다.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철저한 톱다운(Top-down)방식의 의사결정이 남긴 부작용도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세계와의 동맹과 조약 관계도 장사꾼의 셈법으로 해석하고 접근해 갑질을 서슴지 않은 트럼프의 외교정책도 지구촌의 두통거리였던 게 사실이다.바이든 대통령 시대의 개막은 한마디로 ‘미국정치의 정상궤도 회복’을 기대하게 한다. 조 바이든 당선자의 승리 선언 연설의 핵심 메시지도 이 같은 목표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바이든은 연설 앞부분에서 “우리가 전 세계에서 다시 존경받는 국가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확약해 트럼프의 가차 없는 ‘미국 우선주의’에 시달려온 세계에 청신호를 보냈다. 특히 “미국은 단순히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범을 보임으로써 세계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한 부분은 감동적이다.바이든이 연설에서 “나라를 분열이 아닌 단합시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대목은 우리의 특별한 기억을 소환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언행은 물론 국가정책까지도 ‘국민 모두’가 아닌 ‘지지층’에 초점이 맞춰졌다. 온 나라가 이념과 세대, 빈부로 갈려 서로 대립하는 나라가 됐다. 바이든 당선인의 ‘화합’ 메시지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 우리도 극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정치’로 국민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선진정치로 가야 한다.

2020-11-09

실격 당한 사람들의 존엄을 위한 변론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인간 실격’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간으로서 자격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지만, 사회로부터 인간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기에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사람들을 위한 변론’에서 실격당한 사람은 장애인이다. 그 자신도 장애인이어서 그런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그의 변론은 폐부를 찌른다. 그의 사유의 깊이는 그의 고통에 비례했음이 분명하다.장애인은 살아가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있었다고 한다. 김원영 변호사는 장애인의 삶이 손해라고 생각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삶은 아니라면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장애인도 자기 삶의 저자이다. 상처받지 않은 척 노련하게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연기하지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일치시키고 싶은 기본적 욕구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혐오하지 않고 수용하기로 선택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도 가능하다. 사진 찍듯이 한순간에 포착되는 매력은 떨어지지만, 초상화를 그리듯이 천천히 바라보면 장애인도 아름답다. 장애인을 존중하기 위해 괴물 같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이런 변론을 읽다 보니, 어렸을 때 뚱뚱하다고 놀림 받던 일이 생각난다. 장애인의 상황이 더 안 좋기는 하지만, 외모 차별, 능력 차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 현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상 체중인 적이 없는 나의 신체는 어린 시절에는 놀림거리였고, 커서는 매력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중증 장애인과 나의 신체를 비교하는 것이 미안한 일이기는 하지만, 신체 때문에 놀림 한 번 받지 않은 독자들보다는 조금 더 이 변론에 공감할 수 있다.그러나 저자의 변론은 어느 정도 성찰하는 힘을 가진 일부의 장애인에게만 해당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가 없는 장애인들도 많다. 어떤 상황에서도 수용하기로 선택하기에는 버거운 장애를 가진 사람, 아무리 천천히 초상화를 그리려고 해도 보기가 저자 자신도 부담스러웠던 남윤광 같은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그런 중증의 장애인들은 존엄하지 않은가? 이들을 위한 변론이 필요하다. 그 변론은 사진 찍듯이 한순간에 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섬세한 손길로 초상화를 천천히 그려주기를 바라기 힘들기 때문이다.그들을 위해 장애인들도 행복과 고통을 느낄 줄 안다는 것으로 변론하고 싶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부여돼 있다. 어떤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가진 사람도 좋거나 싫은 감정은 느낀다. 행복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장애인은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똑같이 울고 웃는 존재이다. 감정 앞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이 존엄하다.

2020-11-09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 정 총리가 희망을 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7일 포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과 관련해 “국민들이 즐길 국내 관광명소 개발이 필요하다”며 “횡단대교는 그런 점에서 검토해 볼만 사업”이라 말했다. 또 “정부에 심도 있게 검토하도록 요청했다”며 적극 지원도 약속했다.포항지진 현장을 방문한 정 총리의 이번 발언은 1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정부 지원을 요청했던 경북도와 포항시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오는 15일로 포항지진은 발생 3년을 맞는다. 그러나 아직도 지진의 상흔은 아물지 못하고 있다. 정 총리의 포항방문은 지진발생 3년을 맞는 포항시민을 위로하고 지역경제 회복을 돕기 위한 일종의 민생시찰이다.이런 점에서 정 총리의 이번 발언을 지역에서는 횡단대교 건설의 청신호로 해석한다. 지진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경제 지원에 횡단대교 건설만 한 것이 없어 정 총리의 발언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영일만 횡단대교에서 동해안 횡단대교로 명칭이 바뀐 이 사업은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에서 북구 흥해읍까지 연결하는 바다를 건너는 해상교량이다. 총길이 9km로 사업비가 1조6천억원 가량 소요된다. 정부는 재정부담을 이유로 10년 이상 미뤄왔다.경북은 국토의 5분의 1 면적으로 전국에서 가장 넓다. 하지만 면적당 도로연장은 전국 꼴찌다. 전국에 35개의 해상교가 있으나 바다를 낀 지자체 중 유일하게 경북은 한 군데도 없다. 인천은 7개, 부산과 경남은 각 5개, 전남도 4군데가 있다.서해안은 벌써 끝난 고속도로가 동해안은 아직도 미완성 상태다.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은 국토균형개발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야 할 사업이다. 경북 동해안권 발전의 핵심 기반시설이자 동해안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필수 사업인 것이다. 또 남북통일시대에 대비하는 국가의 주요 간선망이란 관점에서 지금부터 서둘러야 할 사업이다.정 총리의 발언을 계기로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 사업이 정부의 관심사업으로 떠오르길 바란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뉴딜사업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사업 자체의 후방효과가 그만큼 크다. 지진으로 상처를 입은 포항경제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정부의 예타면제 사업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다.

2020-11-09

햇빛 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는 태양광선에 장시간 노출된 피부에 두드러기, 발진, 수포 등의 증상이 생기는 피부질환으로 자외선에 의한 급성 피부변화를 일으킨다. 주원인이 태양 광선이지만, 유전적인 대사이상, 일부 항생제와 진통제 성분, 소독약 등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이 질환은 최근 세상을 떠난 개그우먼 박지선씨가 앓았다고 해 새삼 주목을 받고있다. 문제는 이 질환에 치료법이 없다는 데 있다. 햇빛 같은 경우 가시광선과 같은 장파장이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로도 막을 수 없고, 햇빛에 노출되지 않게 몸을 완전히 가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 국내서는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매년 약 2만명이 이 질환에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서‘자외선에 의한 기타 급성 피부변화’를 앓는 환자는 1만7천280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2만1천83명에서 2017년 1만9천275명, 2018년 1만8천954명으로 줄어들어 3년째 감소하고 있지만, 꾸준히 환자가 발생 중이다. 성별로 보면 국내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전체 환자 1만7천820명 중 여성은 1만421명으로 58.48%를 차지했다. 2018년도 전체 1만8천954명 가운데 여성이 1만1천449명으로 60.40%였다.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거나, 여성의 피부가 더 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뚜렷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01년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부인 한나로네 여사가 햇빛 알레르기의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이 극심한 질환이어서 환자에 대한 따뜻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09

더 추운 겨울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올해는 코로나19에 태풍까지 겹쳐 제조업부터 음식점, 호텔, 마트, 학원, 전통시장에 이르기까지 업태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사업체가 여름인데도 추위를 느꼈다. 그러는 동안 절기도 겨울에 들어섰음을 알렸다.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 어촌마을이 가장 활기를 띠는 계절은 겨울이다. 올여름 시내 상가들이 추위를 느꼈다면 어촌마을은 이번 겨울에 혹독한 추위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겨울철 대목을 누리겠다는 느슨한 마음보다는 일단 이번 겨울 가장 피해를 덜 보고 넘기겠다는 다짐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닷가 마을에서야 늘 수산물이 생산되나 유독 겨울철에 들어서면 활기가 넘치고 돈을 번다는 기대감도 부풀어 오른다. 겨울만 영업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대게와 과메기의 계절인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겨울맞이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비대면, 비접촉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도 그동안 지역 어촌에서 해왔던 방식이 그대로 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점검해야만 한다. 특히 과메기와 같은 수산 가공식품이라면 제조공정과 유통과정을 거쳐 다른 지역 소비자에게 택배로 배달되는 모든 단계에서 의심의 눈빛으로 살피는 소비자가 어떠한 불만도 내세울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적어도 다음 몇 가지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 하나라도 개선해 나갔으면 한다.첫째, 안전한 식품임을 고객의 눈으로 확신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몇 년 전 꽁치, 고등어와 같은 등 푸른 생선의 최고 어장이었던 동일본 앞바다에서 일어난 후쿠시마원전 방사능누출 사고 이후부터는 바다 생물을 먹었을 때 안전한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높아졌다. 포항 구룡포에서 꽁치와 청어로 만든 과메기의 식품안전도 평가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재료인 꽁치, 청어가 어디서 잡혔는지, 수입한 것이면 대만산, 중국산과 같은 고기잡이배의 국적은 물론 어느 해역에서 잡은 것인지도 명확하게 밝히는 원산지표시 방법도 스스로 고안해낼 필요가 있다. 아예 원재료상태나 과메기 포장 직전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하여 아예 포장지에 표시하는 것도 ‘구룡포과메기’라는 지역 브랜드를 전국구 명품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지역 특산물만이 가지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몇 년 내 일본이 방사능 오염물질을 바다로 버리고 나면 먹을거리로서의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 시각은 크게 달라지기 쉬워 이에 대한 사전 대응을 위해서도 신중하게 추진하였으면 한다.둘째, 지역 호텔, 전통시장, 동네 가게 모두 추운 여름을 보낸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자신의 집을 떠나 움직이는 유동인구가 준 탓이다. 당연히 이번 겨울도 예전처럼 관광방문객이 포항을 찾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구룡포는 더욱 특별한 지난해를 겪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특정 방송프로그램 덕분에 잠깐 생겼던 특수였음을 깨닫는다면 올해 구룡포 상권에 다가올 골은 더욱 깊어질 수도 있다.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는 물량이라면 지난해가 아닌 지지난해 정도를 염두에 두면서 모든 일을 점검했으면 한다.셋째, 찾아오는 손님이 줄더라도 예년 수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전화로 주문하고, 카드결제나 계좌입금이 가능한 결제수단, 택배로 안전하게 과메기나 대게를 보낼 수 있는 배달 채널은 갖추어야만 한다. 문제는 전화로 주문할 정도로 충성도 높은 단골이 많으면 몰라도 지금까지 편안히 앉아서 어쩌다 찾는 손님들만 상대해온 음식점이나 판매점이라면 더욱 문제다. 자기 가게가 다루는 수산물이나 요리의 특징을 알리는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과 같은 많은 사이버 홍보에도 나설 필요가 있다.넷째, 지금 위기는 유독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만 겪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야만 한다. 더구나 포항 과메기와 구룡포, 영덕, 울진 등에서 잡히는 대게처럼 경북 동해안 지역은 다른 어촌 지역보다 겨울에 손님이 많았던 점을 생각하면 유독 이번 겨울이 더 추울 수도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만 한다. 그러하기에 손님들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시스템도 조금씩 갖출 필요가 있다. 당장이야 어렵겠지만 지금 일본 일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듯이 앞으로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에 2인석 좌석에는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좌석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하는 지자체가 나올지도 모른다. 포항 시내버스 가운데 구룡포행 버스만이라도 관광객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처럼 경북 동해안 시, 군마다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 어울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지자체만이 아니라 관련 업종 관계자들이 모두 협력하여 이 지역을 찾는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대게, 과메기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도록 유혹하는 정책들을 고안해 낼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수산물은 업계 종사자조차 사진이나 영상만으로 품질과 상태를 알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만 한다. 손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상하다 여기더라도 대면, 접촉 상황에서는 간단한 설명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이나 영상만 보고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고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요즘은 온라인, 소셜미디어 시대다. 아주 작은 문제라도 고객들은 참지 않고 이러한 사실을 마음껏 유포한다. 지역 특산물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앞으로 대게, 과메기와 같이 지역 이름을 내세운 특산물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과정에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관리체계와 식품인증을 받아 둠으로써 무조건 믿고 살 수 있는 지역 특산물이라는 평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적어도 개인이 힘들면 조합이라도 과메기의 원재료 입수부터 제조, 포장과정, 대게의 손질과 상태, 요리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주고 이왕이면 해설까지 붙여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방안들을 계속 궁리해야만 한다. 이왕이면 택배 유통과정에서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급배송 채널을 만드는 한편 압축 비닐 진공포장과 같은 수산물의 위생과 안전, 오염 방지를 위한 수단도 갖추어 나가야만 한다.앞서 언급한 내용은 다른 지역이나 식품업계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코로나19에 따른 피해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긴 어려워도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오히려 다가오는 이 겨울에 과메기의 고향, 대게의 산지라는 자부심으로 제조부터 유통,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전 과정에 걸쳐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최고의 안전한 수산 식품이라는 평판을 만드는 디딤돌로 삼았으면 한다. 언제나 믿고 전화로 주문만 하면 받을 수 있는 특산물.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느껴 전화하면 언제든지 반품을 받아주는 자신감 넘치는 지역 수산업체와 유통업계. 철저한 공정관리와 포장, 여러 인증마크와 수치가 포장지에 박힌 안전한 먹을거리로 증명된 식품.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닌 소비자가 다른 이에게 말할 정도의 지역 특산물이 되었으면 한다. 분명 지금보다 더 추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소비자의 눈으로 점검하는 꼼꼼함이야말로 이번 겨울 추위를 견디는 최고의 난방책일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1-08

너는 특별하단다

김현욱 시인맥스 루케이도의 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고슴도치, 2002)를 딸에게 읽어주면서 신영복 선생의 ‘독버섯 이야기’가 떠올랐다.등산을 하던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산길을 오르던 아버지는 버섯을 발견하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잘 봐. 이게 독버섯이야. 먹으면 큰 일 난다.” 아들이 그 얘기를 듣고, “아, 이게 독버섯이구나!”하고 지나갔다. 그 말을 듣고 버섯은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독버섯이구나. 누군가를 해치는 존재였구나!’ 버섯이 슬퍼할 때 옆에 있던 버섯이 친구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니야. 저건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거야. 넌 내게 좋은 친구야. 너는 사람들이 먹으라고 태어난 게 아니고 나와 친구가 되려고 태어난 거야.” 슬퍼하던 버섯은 기운을 차렸다. ‘그래, 나는 독버섯이 아니야. 그냥 있는 그대로 나일뿐이야.’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에는 엘리 아저씨(목수)가 만든 웸믹이라는 나무 인형들이 나온다. 웸믹들은 언제부턴가 황금빛 별표와 잿빛 점표를 들고 다니며 만나는 웸믹들에게 별표나 점표를 붙이기 시작한다. 별표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웸믹들은 끊임없이 경쟁하고 점표를 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주인공 펀치넬로는 잿빛 점표 투성이다. 점표는 점표를 부르고 별표는 별표를 부른다. 그런데, 루시는 별표에도 점표에도 관심이 없다. 누가 딱지를 붙여도 루시의 몸에서는 금방 떨어진다. 루시가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얻었을까? 루시는 펀치넬로에게 엘리 아저씨를 찾아가보라고 한다. 펀치넬로는 용기를 내어 엘리 아저씨를 만나고 별표와 점표의 비밀을 듣게 된다.동화 ‘못난이 옹기’에 나오는 꽃무늬 옹기는 통가마에서 불을 기다리며 특별한 옹기를 꿈꾼다. 하지만 꽃무늬 옹기는 그만 그릇벽이 무너지고 만다. 옹기장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꽃무늬 옹기는 쓸모 없는 못난이 옹기가 된 것이다. 못 쓰게 된 옹기는 가마터 뒤편 대숲에 버려진다. 사람의 입장에서 못 쓰게 된 옹기지만 수많은 작은 생명이 어울려 사는 대숲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못난이 옹기가 아니라 꼭 필요한 옹기가 될 수도 있다.주둥이가 떨어져버린 약탕관은 작은 제비꽃을 기르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행복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남들이 붙이는 딱지를 붙어 있게 하는 건 사실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마음에 남아 있게 된다. 주류에 속하고 싶어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은 충동을 ‘커버링’이라고 한다.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커버링’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그림책의 서문에 ‘너는 단지 너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하단다’라는 글이 있다. 너는 너인 채로, 나는 나인 채로,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꾸미거나 바꾸거나 덧칠할 필요 없이, 본래, 우리는 충만하고 온전하다.

2020-11-08

원자력 발전의 두 얼굴

윤영대수필가요즘 월성원전 1호기의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을 두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경제성 평가가 낮게 책정됐다는 말에 아마 진실 공방을 하는 모양이다.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은 1955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으면서 원전기술 연구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1978년 4월 고리원자력 1호기가 준공되어 원자력발전시대를 연 후, 부단한 연구와 노력 끝에 현재 총 24기 2천325만kW 설비용량을 갖추어 세계 6위 원자력 국가의 반열에 들었고 1993년 한국표준형 원전을 완성하여 기술 수준은 세계 3위에 올랐다.그동안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 미래의 에너지를 책임질 발전방식으로 확장되어왔으나, 고리1호기는 사용 연한 40년이 지나 영구정지되었고 월성1호기는 작년 12월 폐쇄조치되었다. 그 외 8개 정도의 발전소가 건설 중단 및 백지화 추진 중이고 4기만 건설 중이다. 이렇듯 탈원전 정책이 나오는 것은 아마 우리의 뇌리에 세계적인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악몽 몇 개가 맴도는 탓일까? 미국의 스리마일, 구 소련의 체르노빌에 이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핵발전 사고’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공포감을 주고 있다.원자력발전량은 연간 약 15만GWh로 국내 발전량의 25%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kWh당 발전단가는 통계마다 다 다르지만 약 50원 미만이고 석탄 70원, 풍력 120원, 태양광 300원 선이라고 한다. 연료소비량을 비교해 보더라도 우라늄 1kg의 발전량은 석탄 3천톤에 해당하는 300만 배이고 석유는 200만 리터에 해당한다. 이렇듯 원자력 발전은 효율이 높다. 그러나 방사는 폐기물의 위험이 부각되면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각광을 받고있는 것이다.설비면적을 비교해 보면 태양광 발전은 원자력보다 73배, 풍력은 200배 정도의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고 한다. 보통 가정용 태양광 시설 3kW짜리가 20제곱미터로 쉽게 말해 6평 정도, 즉 부대설비까지 합하면 1kW당 평균 2.5평 정도의 면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1기당 140~150만kW이니 이 정도를 태양광 시설로 한다면 100만kW에 250만 평, 실제 원전 부지의 20배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1일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5시간이다. 이렇듯 태양광은 저효율이고 넓은 면적을 사용해야 하니 산과 호수 등 자연을 훼손할 우려도 많다.원자력 발전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가 어렵고 사고가 났을 경우 그 피해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겠지만 현재와 같이 산업이 고도화되고 생활환경이 커지며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마당에 효율 좋은 원자력 발전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럴 때 원전 비리 사건 등 인재(人災)를 막고 우리의 뛰어난 기술력과 끈질긴 연구력을 모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사고에 대한 철저한 방비로 시설을 안정화시켜 나가며 연관된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의 선도력을 갖추면 좋을 것이다.원자력은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등에 대한 걱정도 줄일 수 있으니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로써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면 한다.

2020-11-08

미리 보는 ‘윤석열 축출’, 그 후

안재휘 논설위원우리에게 ‘판관 포청천(包淸天)’으로 잘 알려진 포증(包拯)은 중국 역사에서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는 북송 인종(仁宗) 천성 5년(1027) 진사 급제를 시작으로 1061년 추밀부사에 오른 인물이다. 포증은 송사를 처결할 때 명민하고 정직했다. 억울한 사람이 직접 찾아와 시비곡직을 따지도록 정문을 열어 놓아 간교한 아전들의 개입을 차단했다. 거무튀튀한 얼굴의 그가 “개작두를 대령하라!”고 호령하는 연속극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포증이 송나라 수도를 책임지는 개봉(開封) 부윤으로 임명돼 귀척(貴戚·임금의 인척)과 환관들마저 덜덜 떨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한 인종의 결단이 있었다. 그는 1062년 5월 24일에 개봉에서 향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항간에는 그를 꺼려한 자들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 전선이 확대일로에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 이어 정세균 총리까지 ‘윤석열 찍어내기’에 합세한 형국이다. 민주당과 추 장관은 드디어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를 시비하기 시작했다. 야사(野史)에나 등장하는, 정적 제거용 ‘호주머니 뒤지기’에 돌입한 꼴인데, 구경하기조차 불편하다.윤석열 검찰총장의 직위 고수가 참으로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여권의 ‘윤석열 찍어내기’ 자귀질이 성공할 경우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친정부 성향 정치검사가 검찰총장 자리를 꿰어 찰 공산이 크다. 한차례 거센 인사 광풍 이후 검찰은 온전히 여당 정치권 손아귀로 들어가게 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검찰상이란 형해(形骸)도 없이 소멸할 것이다.조국 재판, 김경수 선거여론 조작 의혹 사건 등의 ‘물타기’ 공작이 분주해지고, 청와대의 울산 선거개입, 여권 인사들의 라임·옵티머스 사기사건 연루 의혹 따위는 흐지부지 사라질 개연성이 높다. 대통령·국회의원·법관·지방자치단체장·검사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마저 정부·여당의 의도대로 편파적으로 꾸려질 경우, 명실공히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폐허만 남게 된다.집권세력은 전매특허인 ‘사정(査正)’ 드라이브를 새로 걸고, 야당 정치인들과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더 참혹한 ‘적폐청산’의 공동묘지로 갈지도 모른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걸핏하면 내지르던 ‘20년 집권, 50년 집권’ 시나리오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다.그러나 정말 그렇게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어떤 사악한 바람에도 아주 쓰러지지 않고 끝내 일어서온 억센 민초(民草)의 정신이 있다. 광신적 확증편향주의 마약에 찌든, 오도된 악성 권력 바이러스를 일거에 제압할 계기가 어떻게든 만들어질 것이다. 나라를 좀먹는 거악(巨惡)들을 무릎 꿇리고 힘차게 “개작두를 대령하라!” 외치는 포청천은 살아 있어야 한다.

2020-11-08

포항 수성리 사격장 폐쇄 이전 검토돼야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사격장을 둘러싼 국방부와 주민간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사격장 주변 주민의 반발이 단순히 헬기 사격훈련 중단을 넘어 이제는 사격장 폐쇄에 이르고 있다. 문제 해결의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 주민 반발의 빌미가 된 것은 지난 4월 경기도 포천 영평사격장에서 실시하던 주한미군의 아파치 헬기 사격훈련을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영평사격장은 그동안 훈련 중이던 헬기에서 날아온 실탄이 인근 마을의 주택담장이나 지붕을 뚫기도 하고 심지어 주민이 다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주민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방부는 대체 사격장으로 수성리를 지목하고 4월부터 이곳에서 훈련을 해왔다. 주민과의 갈등 폭이 커진 것은 이처럼 국방부가 이전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에서 비롯된다. 수성 사격장으로부터 60년 가까이 정신적 혹은 물질적으로 시달려온 주민의 입장을 조금도 고려치 않은 군 당국의 결정에 주민 반발심이 더 커졌다. 게다가 헬기 사격훈련 사실조차도 알려주지 않아 불신의 벽까지 높아진 상태다.영평사격장은 주민 반발에 폐쇄하고 수성리 사격장은 더 확대한다는 형평성 잃은 군 당국의 조치도 불만이다. 주민을 논리적으로 이해시켜야 할 군 당국이 그동안 몇 차례 현지 주민 방문 기회를 가졌지만 일방적으로 불가피성만 늘어놓아 주민과의 이해 폭을 넓히지 못했다. 주민들은 60년 가까이 군의 각종 사격훈련에 시달려 왔으면서도 남북이 대치한 우리 현실에 인내로 견뎠다. 어떠한 보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왜 수성리 주민이 이런 부담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경북도의회 이칠구 도의원(포항시)은 지난 6일 열린 도의회에서 “수성리 사격장의 폐쇄”를 촉구했다.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불발탄과 유탄사고 등에 시달렸다. DMZ의 철조망 철거와 더불어 휴전선 일대 사격장은 폐쇄 수순에 들어가면서 수성리 주민의 고통을 더 할 이번 결정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수성리 사격장 갈등과 관련, 국방부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수성리 주민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폐쇄 이전도 검토돼야 한다. 국방부가 안보를 명분으로 주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모든 국민은 국가로부터 안전과 재산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2020-11-08

신토불이

신토불이(身土不二)가 마치 한의학 문헌에 나오는 내용인양 알려졌으나 그 근원이 한의에 근거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외국산 농산물의 범람에 대응하는 국산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내건 슬로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제 땅에서 산출된 것이 제 체질에 맞다”는 신토불이는 과학적 근거를 떠나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근본 취지가 호응을 얻으면서 지금도 소비자에게 잘 통하는 슬로건이다. 신토불이라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1970년대 농가소득 사업으로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 황소개구리가 농가 소득은 커녕 왕성한 번식력으로 토종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다. 개구리 등이 멸종할 거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당국이 황소개구리를 포획하는 일에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늪너구리로 불리는 뉴트리아는 우리나라가 지정한 1종 생태계 교란종이다. 칠레 등 주로 남미에 서식하는 포유류인 뉴트리아는 잠시만 관리를 소홀하면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1년에 최대 200마리까지 새끼를 번식할 수 있다. 뉴트리아 1마리가 하루 동안 먹는 양이 자신의 체중 4분1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뉴트리아가 돌아다닌 곳은 금방 쑥대밭이 된다. 우리나라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큰입배스 등 20여종을 생태 교란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미국 남동부지역에 자생하는 ‘핑크뮬리’가 국립환경원에 의해 생태계 위해성 식물로 지정됐다. 토종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우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2013년 한국에 첫 선보인 핑크뮬리는 특이한 색깔과 모양으로 한국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경북도는 식재 자제를 권고하고 제주도는 이미 식재된 핑크뮬리를 갈아엎는다고 한다. 신토불이가 영 헛말은 아닌 모양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08

與圈인사들 폭언시리즈 가관… 권력의 ‘방자’ 심각

여권(與圈) 고위 인사들의 사나운 막말·폭언·갑질 ‘퍼레이드’가 가관이다. 그 수준이 차마 귀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어서 도대체 왜 이렇게 험구를 남발해야 하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오만불손한 흥분 뒤편에 균형감각을 무너뜨리는 모종의 ‘불안’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짐작마저 든다. 정치 수준을 끌어내리는 위정자들의 방자한 행태는 조속히 청산돼야 한다.지난주 청와대·정부·민주당 고위 인사들의 막말이 잇달아 뉴스를 장식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 청와대 국감에서 국민을 향해 ‘살인자!’라고 두 차례나 고함쳤다.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8.15 광화문 집회 사진을 들고 “경찰이 버스로 국민을 코로나 소굴에 가뒀고 문재인 대통령은 경찰을 치하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노 실장은 “광화문 집회에서만 확진자가 600명 이상이 나왔다”면서 “살인자다, 살인자. 이 집회 주동자들은”이라고 고함쳤다. 논란이 일자 노 실장은 뒤늦게 집회 주동자들에 한정한 발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집회 주동자들은 국민도 아니라는 말이냐는 또 다른 반발을 샀다. 그 이튿날인 지난 5일에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고를 쳤다. 이 장관은 국회 예결위에 참석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집단학습을 할 기회”라고 답변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범죄 피해자는 “그럼 나는 학습교재냐?”며 비판했다. 같은 날 법사위에서는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대법관인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의원님들, (예산을) 한번 살려주십시오’ 한번 하세요”라고 거듭 강권해 논란이 됐다. 6일에는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직후 가덕도 신공항 예산과 관련해 “X자식들,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고 해”라고 말하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포착됐다.어쩌다가 노출된 게 이 정도라면 여권 인사들의 권력에 만취한 내부 정서가 어떤 수준인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말은 생각의 발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민을 하찮은 졸(卒)로 여기는 그 오만한 인식은 하루빨리 뿌리뽑혀야 할 것이다.

2020-11-08

김천상무 프로축구단과 스포노믹스

김충섭김천시장스포츠가 경제를 견인하는 스포노믹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스포노믹스(Sponomics)는 스포츠(Sports)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스포츠산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뜻으로 최근 스포츠가 이벤트, 관광, 엔테테이먼트, 정보통신기술(ICT)등과 결합해 산업경제적 가치가 커지면서 생겨났다.영국의 대표적 철강도시 셰필드는 1990년대 초 철강산업의 급격한 하락으로 하루 아침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젊은 인재들이 도시를 떠나면서 비전을 찾지 못하던 애물단지 도시였다. 25여년 전 셰필드시는 유럽연합(EU)의 도시재생펀드를 유치해 각종 경기장과 생활체육단지 등을 건립했다. 그 결과 셰필드는 오늘날 관광과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가 어우러진 영국의 대표적인 ‘스포츠시티’로 자리잡았다.프리미어리그 3부, 2부 리그에 머물다가 19-20 시즌에 프리미어리그(EPL)에 승격한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성적은 하위지만 홈경기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팬들의 충성도가 높다. 지역 밀착 마케팅 덕분이다. 셰필드는 스포츠를 공연, 이벤트, 관광 등과 연계해 경기장 활용도를 크게 높였고 이를 통해 관련 산업을 동반 성장하게 했다.김천시는 종합스포츠타운의 우수한 체육인프라와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매년 60여개 이상의 국제대회 및 전국단위대회를 개최하고 35만 여명의 스포츠 선수와 임원들이 찾는 스포츠 중심도시다.김천시가 이러한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포츠를 매개로한 김천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상무프로 축구단을 유치했다.김천시는 상무프로축구단 유치에 앞서 전문학술 용역기관에 유치 타당성 검토를 실시하고, 지난 6월 2일에는 시민공청회를 거쳐 다양한 의견도 수렴했다. 용역결과 상무프로축구단 유치로 842억원의 경제파급효과와 2,700여명의 고용창출이 기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시는 유치타당성 용역결과를 비롯한 찬성과 반대에 대한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한편, 시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하고 반영해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는 가운데 상무프로축구단이 출범하기를 바라고 있다.지난 7월 10일 김천시와 국군체육부대는 연고지 협약식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 날 협약식은 “2021년부터 상무프로축구단이 김천을 연고지로 하여 김천시의 문화체육 발전과 체육진흥을 위해 다함께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협약서에 공동서명 했다.또한 상무프로축구단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를 가졌고, 향후 한국프로축구연맹 클럽 가입절차를 거쳐서 2021년 김천상무프로축구단을 정식 출범하게 된다.내년도 시즌이 시작되면 이에 따른 관중확보 및 스포터즈 운영, 효율적인 사무국 운영,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 등 풀어야할 과제도 많다. 상무축구단과 김천시와의 만남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상무프로축구단이 내년 시즌부터 홈 경기장으로 사용할 김천종합운동장 시설을 프로축구 시설 규정에 맞게 정비하여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경기장 내·외부 시설 개·보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프로축구단 산하 유소년팀(U-15, U-18)을 창단하여 지역 유소년 축구 인재육성을 위한 준비도 해 나가고 있다.김천시는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최초로 축구와 배구 2개의 프로구단을 운영하는 이례적인 지방자치단체가 되는 만큼 스포츠 특화도시로서 김천 시민들이 가지는 자부심을 한층 더 높이고, 지역축구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0-11-08

한옥교회에 노닐다

어릴 적 예배당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동네에서 가장 신식 건물이었고 피아노는 구경도 못 해본 우리에게 오르간을 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문이 항상 열려있어서 방과 후에 들러 언니들에게서 배운 젓가락 행진곡의 앞부분을 눌러보곤 했다. 심지어 교육관에 탁구대가 펼쳐져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도시에서 이사 오신 목사님은 내 또래의 딸이 있어서 뒤로 둘러맨 가방이나 정갈하게 깎은 연필이 가지런히 들어간 자석필통은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밤하늘의 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영천 보현산 천문대의 자락에는 그 시절 예배당보다 더 오래된 교회가 있다. 한옥으로 지은 자천교회이다. 내가 다닌 예배당은 오른쪽은 남자들이 왼쪽은 여자들이 앉았다. 어른들이 그렇게 나눠 앉았기에 이름표가 없어도 그렇게 앉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자천교회는 중간에 가림막이 있어서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앞에 선 목사님 자리에서 보면 가림막이 느껴지지 않고 양쪽의 성도들이 다 보이니 건물을 지은 사람의 지혜가 돋보이는 설계이다. 뒤쪽에 온돌방이 있어서 아기와 함께 온 사람이나 의자가 불편하고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따뜻하게 해 준다.암울한 시기였던 1904년, 영천에 희망을 만들어 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권헌중 훈장이다. 경북 경주에서 서당 훈장을 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일본에 항거하였으며, 이 일로 인하여 일경의 눈을 피해 경주를 벗어나 청송으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이후 1898년 대구로 내려가기 위해 노귀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외국인 선교사 제임스 아담스를 만난다.그는 대구로 내려가지 않고 이곳 영천에서 초가를 구매한 뒤 정착했다. 초가를 서당 겸 예배당으로 활용하며 지내던 중 교인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예배당을 신축하기로 계획한다. 그래서 건축된 것이 1904년에 지어진 16칸 한옥교회 자천교회이다. 그러나 예배당 건축이 쉬운 것만 아니었다. 유교 사회인 이곳에서 반대가 심하게 일어나 교회건축은 중단되었고 이에 권헌중은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지어주기로 하고 예배당 건축에 대한 동의를 받아낸다.김순희수필가영천의 한옥 기술자는 아이디어를 내어 2면 8간의 한옥 2채를 붙이는 방식으로 예배당을 건축한다. 그래서 이 건물은 좌우가 서로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하게 됐다. 건물 4면 모두 지붕을 가지고 있으며 높아진 지붕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하여 실내에는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쳐다보노라면 아늑함이 할머니네 아랫목과 같다. 1913년 권헌중 장로는 근대식 교육기관인 신성학원을 설립한다. 지금은 자천교회의 교육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한옥교회와 한옥 교육관이 있는 곳은 이곳 영천뿐이라고 한다. 신성 학교는 요즘 처치스테이(Church Stay)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은 야외결혼식장으로도 활용할 것이라 한다.자천교회 예배당의 일화가 하나 있는데,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영천에 주둔한 북한군에게 폭격을 시도할 때 성도들이 지붕에 올라가 ‘CHURCH’ 라는 글을 새겨 예배당은 폭격을 피했다고 한다. 예배당 온돌방 옆에 있는 굴뚝이 나지막한 것은 굴뚝에서 나는 밥 짓는 연기에 마음 아파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배려라고 한다.학당 건물 벽에는 태극기가 걸렸는데 실제로 3·1 운동 때 사용한 것이라 한다. 그 옆에 교회 설립에 참여한 분들의 부조가 있는데 동산병원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만들어 기증했다고 한다. 태극기 옆에 십자가가 섰다. 휘어진 나무로 된 모습이 십자가에 예수님의 형상이 없는데도 그 모양 자체가 구부러진 게 예수님의 모습 같아 마음이 아릿하다. 한옥교회에서 풍기는 온화함과 참 잘 어울리는 십자가이다. 그 십자가 앞에서,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 두고 함께 들어가 남녀가 따로 앉아 드리는 예배. 100년을 간직한 전통을 1천년이 지나도록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2020-11-08

대도무문의 정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진나라 시황제를 섬기던 조고란 환관이 시황제가 죽자 유조를 위조해 태자 부소를 죽이고, 나이 어리고 어리석은 호해를 황제로 옹립했다. 조고는 호해를 온갖 환락 속에 빠뜨려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다음 교묘한 술책으로 승상 이사를 비롯한 원로 중신들을 처치하고 자기가 승상이 되어 조정을 한 손에 틀어쥐었다. 어느날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자를 가리기 위해 술책을 썼다. 사슴 한 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호해한테 말했다. “폐하, 저것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폐하를 위해 구했습니다.” “승상은 농담도 심하시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 무슨 소리요?” “아닙니다. 말이 틀림없습니다.” 조고가 짐짓 우기자, 호해는 중신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니, 여러분들 보기에는 저게 뭐 같소? 말이오, 아니면 사슴이오?” 그러자 대부분의 신하들은 조고가 두려워 “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나마 바른 말을 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사슴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대답한 사람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가 엉뚱한 죄를 뒤집어 씌워 죽여 버렸다. 그러고 나니 그 이후에는 누구도 감히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자가 없게 됐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해도 바른말을 못할 정도로 권세를 휘두르는 경우를 말한다.더불어민주당이 성추행 사건으로 유고가 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전당원 투표를 실시, 고작 26% 당원이 투표에 참여해 80%를 상회하는 지지율을 보였다는 이유로 당헌을 바꿨다. 심지어 ‘전체 3분의 1 이상 투표와 과반 찬성’ 이라고 규정된 당규가 당헌 개정에 걸림돌이 되자 ‘전당원 투표’ 라기보다 ‘의견수렴절차’ 라고 얼버무린 채 당헌을 바꾸고 말았다. 현대판 ‘지록위마’다. 민주당 내 입바른 소리를 내던 금태섭 전 의원이 탈당한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2015년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가 ‘재보선에 귀책사유 있는 정당은 후보를 내지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자 ‘정의로운 결단’이라 열광했던 민주당원들이 5년 만에 이를 번복·폐기하는 투표에 압도적인 찬성을 했다니 쉽게 믿어지지 않는 얘기다. 무엇보다 기존 민주당 대권주자들에 비해 비교적 온건한 정치 행보로 중도보수층의 지지도 적지않게 받아온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번 사태에 앞장서 총대를 멨다는 게 실망스럽다. 대통령 선거에 나설 인사가 정략적인 결정을 위해 꼼수같은 전당원 투표로 당헌을 뜯어고쳐 귀책사유 있는 선거에 후보를 공천키로 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결정이다.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은 “민주당의 꼼수 정치, 배반의 정치를 국민은 용서하지 않을 것” 이라고 비판했다. ‘원조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꼽히는 유인태 전 의원도 “지금의 정치 세태가 명분을 앞세우기보다 탐욕스러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정치는 ‘대도무문’ 이라 했다.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를 지키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대도무문의 정치다.

2020-11-05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영국의 간호사이자 사회 개혁가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의의 천사’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서는 의료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혁한 사회 개혁가로 유명하다.특히 크림전쟁 때는 38명의 성공회 수녀와 함께 이스탄불로 건너가 야전병원장이 되어 최악의 상황이던 의료체계를 대폭 바꾸어 환자들의 사망률을 42%에서 2%로 낮추는 큰 공로를 세웠다.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간호사를 천직으로 알았다. 전쟁 후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해 현대적 간호교육의 기틀도 마련했다.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다면 간호사에게는 나이팅게일 선서가 있다. 간호사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원칙을 담은 선서다. 1893년 미국 디트로이트시 하퍼병원 간호학교 졸업식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간호사도 학교 졸업식 때 이를 선서용으로 사용한다.1920년 국제 적십자사는 나이팅게일상을 제정해 매년 각국의 우수한 간호사에게 표창을 전하고 있다. 그녀의 생일인 5월 12일은 세계 간호사의 날로 지정돼 있다.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정신은 지금도 그녀의 명성만큼이나 여러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다.영남대병원 연구팀 조사에 의하면 의료계 종사자의 30% 정도가 우울·불안 증세를 느끼고 있으며 그 가운데 간호직 종사자의 우울·불안 지수가 가장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인보다 무려 3∼6배가 높은 수준이라 한다.창궐하던 코로나와 사투를 벌였던 우리 지역 의료인의 용기와 헌신 뒤에는 코로나 블루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라 왔음을 짐작게 하는 연구결과다. 코로나 환자의 치료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간호사 등 지역 의료인의 헌신적 모습이 바로 백의의 천사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05

이낙연, TK·PK 찾아 ‘선심’ 폭탄…믿을 수 있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4일 당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선심 공약’ 꿀단지를 들고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을 차례로 방문했다. 대구를 방문한 이 대표는 달빛내륙철도 건설과 감염병 전문병원 추가 설치 등 공약을 펼쳤다. 부산을 방문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대국민 공약을 잘 지키지 않는 사례가 쌓이고 있는 민주당의 약속이 또 다시 공약(空約)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이낙연 대표는 이날 오전 대구 호텔인터불고엑스코에서 열린 지역상생을 위한 지역균형뉴딜 대구·경북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달빛고속도로, KTX로 연결하는 달빛내륙철도, 대구 지상열차 구간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잘 나오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감염병 전문병원 대구·경북 추가 설치, 낙동강 수질 개선 문제 등을 언급하며 관심과 지원을 약속했다. 발언 중 “민주당 의원이 없거나 적은 지역의 지역위원회에 사업 예산 애로를 책임지고 협력할 의원을 할당하겠다”고 강조한 대목이 관심사다.이 대표는 이어 오후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울·경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가덕도 신공항과 관련 “부산·울산·경남(PK)의 희망 고문을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이 대표의 영남행과 장밋빛 약속 소나기는 우선 최근 당헌을 뒤집어 내년 4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게 만든 일 때문일 것이다. TK 민심이 민주당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주마가편(走馬加鞭) 행보로도 읽힌다. 한국갤럽의 지난 달 27~29일 조사에서 TK의 민주당 지지율은 34%로 국민의힘 30%보다 높게 나왔다.국민을 속이는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민심이 사납다. 아쉬울 적마다 공약 꿀단지를 들고 다니며 유권자를 현혹하고, 시간이 지나면 ‘상황변경 논리’의 궤변으로 뒤집는 정치에 번번이 미혹되는 유권자 수준으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이제 곧 선거국면이다. 유권자의 냉정한 판단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바꾸는 정치에 이렇게 무력하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

2020-11-05

포항의 배터리산업 기업 유치로 이어져야

포항시가 배터리산업 선도도시 육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포항에는 세계적 배터리 양극제 생산기술을 보유한 에코프로가 이차전지 양극제 공장을 이달 중 착공하는 등 2025년까지 1조원 규모의 배터리 양극제 생산공장 건립이 추진될 예정에 있다.포스코 케미칼과 GS건설 등 배터리 분야 빅3사 등 대기업들의 포항공장 건립도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보여 철강산업 중심의 포항 경제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포항시는 지난 7월 전국 처음으로 영일만산단과 블루밸리 국가산단 92만6천㎡ 면적을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지역으로 지정해 대한민국 최고의 배터리산업 선도도시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다.배터리산업은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특히 친환경자동차 개발이 대세인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배터리산업이 차지할 산업적 입지는 막강하다 할 것이다. 전기자동차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필수핵심 부품이다.세계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친환경자동차 개발에 얼마나 근접하느냐가 향후 자동차 메이커의 생존을 가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친환경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배터리산업의 성장성은 무한하다.철강산업 중심의 포항경제에 만약 배터리산업이 추가된다면 포항의 경제기반은 한층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포항시가 배터리산업 선도도시로 달려가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지난 해 전세계 전기자동차 누적판매는 717만대로 전년보다 40%가 증가했다.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는 연평균 12.8%의 성장세를 보여 현재 세계시장 점유비가 34.5%에 달한다.배터리산업은 한국과 일본, 중국 등 3개국이 국제시장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향후 2∼3년간 기술력과 인프라 구축, 산업혁신 등을 통해 치열한 경쟁이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포항의 배터리산업은 자동차메이커의 친환경자동차 개발과 성장 속도를 같이 한다고 봐야 한다. 다른 지역보다 발빠른 인프라를 구축한 포항에 더 많은 관련기업이 유치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자동차산업으로 울산시가 성장한 것과 같이 포항도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2020-11-05

이명박 씨?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한 TV 언론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호칭을 “이명박 씨”로 부르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법원 17년형 확정 판결을 계기로 ‘이명박 씨’라고 호칭하겠다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정권이 바뀐 뒤에 전직 대통령이 과거의 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씨’라고 부르는게 맞는 것일까?야당 정치인들은 “해당 언론사는 앞으로 범죄혐의가 유죄확정된 수많은 분들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사유로 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은 분들도 호칭의 일관성을 유지하시길 기대한다”고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여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왜 ‘~씨’라고 부르지 않았느냐는 반박이다. 여권인사 안희정, 한명숙 이런 분들도 씨를 붙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이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칭을 ‘박근혜 씨’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다. 탄핵으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상실한 만큼 ‘전 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탄핵당한 대통령은 경호 및 경비 지원 외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어떠한 예우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호칭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법조계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 “호칭에 예우를 담아서 쓰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한 때 대통령으로 재직한 전 대통령으로 부르는 것은 문제가 없다”며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가타부타 말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대통령으로 불러 주는 것은 좋은 관습이다. 대학총장이나 장관은 퇴임 후에도 아무개 총장, 아무개 장관으로 부르는 관습이 있다. 학교교장, 교수나 의사들도 퇴임 이후에도 교장, 교수, 닥터로 불러주고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시장, 군수들도 퇴임 후도 그렇게 불러준다. 이는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고 봉사한 분들에 대한 예의 차원의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직에 대한 예우 차원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경우는 특히 예우차원에서 아무개 대통령이라 부르는 게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서는 보편화 되어 있다.심지어 미국은 전임 대통령에 대하여 한국처럼 전 대통령(former president)이라고 하지 않고 전임 대통령도 프레지던트 카터(President Carter), 프레지던트 레이건(President Reagan) 이런 식으로 “전임”자를 제외하고 바로 “대통령”으로 부르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다.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도 프레지던트 닉슨(President Nixon)으로 불러준다.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대통령이 통치행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하여 사법적 판단은 정치적 판단일 수도 있기에 여전히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부르는 호칭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씨라고 부르는 건 너무 정치적이라고 본다. 좀더 우리는 아량을 갖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치적인 판단보다 사회적인 관습이 더 앞서야 하지 않을까?

2020-11-05

자유에 대하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추수가 끝난 들판은 한가롭다. 사람들의 용도를 벗어나 차분한 휴식에 들어간 모습이다. 빈 들길을 걷는 발걸음은 자유롭다. 마주치는 사람도 없고 피하거나 둘러가야 할 방해물도 없는 들길의 자유가 참 정갈하고 소중하다. 사람에게 의식주(衣食住) 다음으로 중요한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부와 권세와 명예 같은 세속적인 명리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신앙이나 사랑, 예술 같은 본질적이고 심미적인 것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자유가 없고서야 어찌 제 구실을 하겠는가.‘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이 자유에 대한 사전적 풀이다. 말은 쉽지만 그런 자유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연환경이나 사회적 조건 등 외적인 제약이 많은 데다 남의 자유와 상충이 되기 일쑤 때문이다. 자유란 말에는 피가 묻어 있다거나, 인류의 역사란 자유의 신장(伸張)을 위한 투쟁의 역사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저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 자유다. 자유에는 법률로 규정한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 처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지선택의 자유 같은 개인의 사회적 권리로서의 자유도 있지만 영혼의 구원이나 해탈과 같은 궁극적인 자유도 있다.고대로부터 자유의 개념이 없었던 건 아니나 개인의 당연한 권리로 실현된 것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이 성공한 다음부터였다. 오랜 세월 서양의 종교를 독점해온 가톨릭 교단에 반대하여 일어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백년이 넘은 종교전쟁 끝에야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종교독재를 무너뜨리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부르주아들은 네덜란드와 영국에 이어 미국과 프랑스가 시민혁명에 성공하여 전제군주제와 신분차별제도의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의회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국민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국가성립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분단된 반쪽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이다.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서 대한민국을 수립하면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하지만 전혀 경험이 없고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다 워낙에 열악하고 피폐한 경제사정으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런데도 불과 70여 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실로 세계가 놀랄만한 성과였다.경제적 기반이 없는 자유와 민주는 허상이다. 인권의 최우선 과제는 굶지 않는 것이다. 아프리카 빈국들을 보라. 기아로 죽어 가는데 민주가 어디 있고 인권이 다 뭔가. 대한민국은 지금 소위 민주화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민주주의가 이만큼 신장하기까지 그들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산업화를 이룩한 공로는 그 이상이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든 산업화든 그 과정에는 다 공과가 있을진대, 저들의 공만 내세우고 반대편은 모조리 적폐로 모는 정권에 나라를 맡겨서는 장래가 없다.

2020-11-05

매흙질

정미영수필가지난 주말, 고향집을 찾아갔다. 바람벽을 보니 마른 논바닥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틈이 많았다. 고르지 못한 벽을 손으로 훑으며, 찬바람이 불기 전에 매흙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매흙질은 벽이나 부뚜막, 안마당에 매흙을 바르는 일을 말한다. 산비탈에서 퍼온 백토를 커다란 대야에 담고 물을 부어 흙탕물을 만든다. 그 물을 다른 그릇에 담고 하루를 재우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데, 마치 흐트러진 상념이 가슴 밑바닥에 침잠하듯이 내려앉는다.오늘은 매흙을 미리 만들어 놓았기에, 귀얄로 바르면 된다. 일을 하는 틈틈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비해 자주 매흙질을 했다. 매흙질을 거치고 나면 흙벽은 매끄러웠다. 시커멓게 그을음 묻은 부뚜막도 화장을 한 새색시처럼 새 단장을 했다.아버지는 내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맥질하는 법을 배웠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였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친구들에게 크든 작든 보증서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로 인해 몇 번의 경제적 손실을 겪었지만, 누군가 부탁을 하면 쉽게 거절을 못했다.어느 해 칠월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또 보증을 섰다. 신발 가게를 몇 군데나 크게 하던 소꿉친구였지만,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옷에 소금꽃이 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였다.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생긴 속상함이 아버지를 병들게 했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참아오고 지탱했던 삶의 무게가 한순간 무너졌던 것이리라. 아버지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슬픔의 무게가 묵중할수록 하루하루가 고단했기에 몸이 견디지 못했다.한참을 앓고 난 그 해 가을,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시골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는 명절을 앞두고 매흙질하는 법을 익혔다. 처음에는 귀얄을 잡은 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차츰 손에 익었다.매흙질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었다. 일에 집중하는 동안 상념을 잊었다고 했다. 시커먼 부뚜막이 마치 아버지의 상처 난 마음인 듯 여러 겹 두껍게 덮었다. 허물어진 벽이 마치 아버지의 어지러운 생활을 닮은 듯 거침없이 덧칠했다. 어쩌면 가족의 건강과 새로운 삶의 희망을 덧입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성싶다. 빛바래고 한 쪽 귀퉁이 떨어진 삶이라도 매흙질하듯 정성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매끄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겠지. 예전에 아버지의 손길이 지나다녔던 자리를 더듬어 찾듯 찬찬히 맥질한다. 갈라진 틈을 메우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내 생활의 고단함을 꼼꼼히 부려놓는다. 직장일과 집안일, 어린 삼 남매 키우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여러 해 동안 몸과 마음이 시달린 연유로 내 마음 벽에는 끊임없이 거칠고 뾰족한 선들이 돋아났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를 대고 줄을 그어 매끄러운 선을 만들어 놓아도 수시로 삐뚤어지고 굽었다.고향집 구석구석을 매흙질한다. 튀어나온 직선과 끊어진 사선 같은 내 마음을 달래고 보듬으니 축 처져 있던 어깨가 곧게 펴진다. 기진맥진한 내 생활의 흔적에도 그늘이 걷히고 햇살이 드리워지는 것 같아 귀얄 잡은 손놀림이 가볍다. 덧칠을 반복하는 동안, 앞으로 펼쳐질 내 삶도 단장한 바람벽처럼 모난 데 없기를 기원한다.매흙질한 집은 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처소였으리라. 흙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어깨를 겯고 있는 옹기들이 늘어서 있고, 처마 끝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대글대글한 감을 꼬챙이에 꿰어 늘어뜨린 풍경이 있어 더욱 정겨운 곳이었을 것이다.바람이 불어온다. 매흙질한 자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려주겠지. 아버지가 매흙질을 마친 뒤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운 추억들이 고향집 언저리를 맴돌다가, 서서히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2020-11-04

청관스러움에 대하여

냉정하면 거리감이 생기고 오지랖이 너무 넓으면 성가십니다. 인간사 적당한 게 좋습니다. 하지만 적당하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넘치는 상황끼리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패키지여행 팀에 지인 없이 합류했습니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고 될 수 있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팀원 중 선희 씨도 혼자였습니다. 수수한 차림만큼이나 털털해 보이는 그녀와 자연스레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고향도 같고 나이도 같았습니다.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선희 씨가 제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말 놓고 편하게 지내자. 우린 친구니까! 움찔 놀란 저는 슬며시 손을 뺐습니다. 만난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았는데 동향에 동년배라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될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행 콘셉트인 무심함의 미덕이 방해 받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습니다.다정다감한 선희 씨는 가는 곳마다 제 손을 잡았습니다. 뭉툭하고 못 생긴 손을 누군가에게 내맡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핑계였을 거예요. 혼자가 편했던 저는 에돌려 선희 씨에게 말했습니다. 손잡는 것 대신 팔짱 끼면 안 될까요? 선희 씨는 친구끼리 땀 좀 섞이면 어떻노? 하면서 손 깎지를 풀어 순순히 제 팔짱을 꼈습니다.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인과의 이상적인 거리는 육십 센티라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로, 대책 없이 밀착해오는 그녀가 불편했습니다.선희 씨는 배려와 관심이 넘쳤습니다. 사진 같이 찍자, 저건 저렇고 이건 이렇지, 화장실 가지 않을래, 등등의 말로 친화력을 자랑했습니다. 악의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받아들이는 제가 불편하다는 게 문제였지요. 언덕마다 오밀조밀하게 내려앉은 집, 이국의 골목에서 풍겨 나오는 야릇한 냄새와 좁은 베란다 밖으로 너울거리는 빨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애련한 가락들, 이런 호사의 순간을 선희 씨가 방해하는 것만 같았습니다.참을만한 친절함이었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차단막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 홀로 힐링’을 구하려는 자와 ‘더불어 힐링’을 외치는 자 사이에 작은 균열이 일었습니다. 물론 그런 예민한 저항감은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사람 좋은 선희 씨는 그럴 기미조차 없어보였습니다. 선희 씨 입장에서 보면 운이 없는 거였지요.여행 막바지쯤 선희 씨가 말했습니다. “자기는 너무 청관스러운 것 같아. 같은 고향이니 청관스럽다는 말은 들어봤겠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 말뜻을 유추하느라 남은 일정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선희 씨를 거부한 짓이 있으니, 제 풀에 ‘까다롭다’는 의미로 쓰였을 거라 짐작만 했습니다. 인정머리 없는 속내가 들킨 것 같아 당황스러웠습니다.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언니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저보다는 고향에 오래 살았기에 언니는 ‘청관스럽다’는 말을 알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언니는 옛날을 더듬어 그 말의 쓰임새까지 친절하게 예로 들어줬습니다. 어릴 때, 밥술을 겨우 뜨는 형편의 서촌댁이 마실을 나오고, 밥 같이 먹자고 엄마가 숟가락을 건네면 방금 먹고 와서 배부르다며 도리질을 한 채 배를 쓰다듬곤 했습니다. 그럴 때 엄마는 “에구, 청관스럽기는!”하고 말했답니다. 또한 오일장 나들이에 나선 방산 할배가 빳빳하게 풀 먹인 모시적삼 차림으로 미루나무 신작로를 꼿꼿이 지나갈 때 “그 어른, 참 청관스럽다.”라고 했다나요.짐작하건대 청관스럽다는 말은 타인이 주는 물질적·정신적 호의를 사양하거나, 정갈한 품새로 흐트러짐이 없을 때를 표현하는 말 같았습니다. 경북 북부지방에 널리 퍼진 행동 양식인 ‘염치’ 개념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인데, 그곳 사람들에게 염치는 곧 자존감을 의미했습니다. 선희 씨의 오지랖이 넓을수록 저는 그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다지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피해를 주지 않겠으니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일종의 개인주의적 자기방어였지요.남에게 구하려 하지 않는 자는 남을 들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염치와 분수를 차린다는 명분 뒤에 숨은 제 거북한 마음을 그녀는 읽었던 것이지요. 그걸 청관스럽다는 말로 좋게 포장해준 것 같았습니다.청관스러움도 지나치면 청맹과니가 됩니다. 털털하고 담백할 때 세상도 그렇게 보입니다. 마음이란 건 덥석 주고받아도 오줄없지만 넌지시 거절하는 건 더 상그럽습니다. 남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 편하자고 남의 호의를 들이지 않는 건 소견이 좁은 짓이지요. 움찔 밀어내고 슬쩍 털어내는 건 청관스러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훼방꾼은 타인이 아니라 언제나 제 안에 있습니다. 인정에 호소하지 않는 염치가 무슨 소용이며,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청관스러움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요.

2020-11-04

고단한 삶은 축제를 꿈꾼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세상이 힘들다. 삶이 버겁다. 어렵고 고단한 날들이 이어지면, 나만 생각하게 된다. 난관과 질곡에서 탈출할 생각에 붙들리면, 함께 사는 이웃을 잊어버린다. 친구와 가족마저 서서히 남이 되고만다. 급기야 나만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 살아 버티는 일조차 고난이 된다. 인류가 살아온 자취가 길고 다양하지만, 개인의 삶이 언젠들 즐겁기만 하였을까. 사람 인(人)에 보이듯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 내가 오늘 지나며 누리는 일상의 자락들 가운데 나 혼자 만든 일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를 확인해야 한다. 똑똑한 인류는 묘수를 발견하였다. 공동체를 다시 확인하고 즐거움을 함께 경험할 기회를 찾아내었다. 축제.축제는 혹 낭비가 아닐까. 이렇게 어려운데 막대한 예산까지 사용하는 축제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헛되이 쓰는 게 아닐까. 축제의 의미를 오해하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뜻을 잘못 세우고 운영에 미숙하여 실수가 있을 수는 있어도, 우리네 삶에 축제는 필요하다. 누구든 살아가는 가운데 축제의 순간을 맛보아야 한다. 개인의 삶에도 늘 힘들기만 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따금씩 숨구멍이 생기고 먹구름이 걷혀야 살아갈 힘과 용기를 경험하는 게 아닌가. 잿빛 하늘이 파란 창공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자신만 탓하며 늪처럼 가라앉던 나날에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있었음이 보일 때면 공감과 배려가 피어오른다. 공동체는 부활하고 개인은 다시 시작할 용기를 추스른다.지역 축제는 소중하다. 다만 코로나19 상황과 미래사회를 내다보며 축제의 접근방식과 운영형태가 바뀌어야 한다. 비대면을 강조하면서도 시민의 참여를 유지하는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한다. 최근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에서 ‘스틸아트투어앱’을 적용하여 흥미를 가진 개인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일상 속의 축제로 만든 일은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뉴미디어 환경에서 온라인과 비대면이 일상의 요소가 된 이상, 축제도 예외일 수 없다. 포항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단계적으로 시도하여 하이브리드 축제를 실현한 일도 앞서가는 시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여 문화민주주의에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들이는 노력과 수고가 보다 강화된 홍보와 마케팅으로 더욱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축제도 변해야 한다. 관객관람형에서 시민참여형으로 진화해야 하며 아날로그 일변도에서 디지털을 강화한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축제의 결실은 모두 참여하는 시민이 누려야 한다. 고단한 일상에 숨통을 틔우는 정점이 되어야 하고 도시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예전처럼 축제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축제기획팀장의 고백은 시민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무료하고 힘들던 일상이 축제 덕에 확 바뀌었으면 한다. 힘든 세상에 다리가 되는 축제를 만나고 싶다. 축제가 살아나면 지역이 솟아오른다.

2020-11-04

‘검찰 개혁’, 윤석열 총장 말에 더 공감하는 이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불협화음이 갈수록 태산이다. 윤 총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작심 발언을 펼친 이후 ‘마이웨이’를 시작한 모습이고 추 장관은 윤 총장을 콕 집어 저격했다. 양보 없는 한판 정면승부가 시작된 가운데 두 사람 다 ‘검찰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일단 추 장관의 남용에 가까운 권력 행태에 맞서는 윤 총장의 ‘검찰독립’ 소신에 공감이 더 간다. 추 장관의 ‘말 따로 행동 따로’ 행태의 불공정 사례는 차고 넘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달 29일 대전고검·지검을 방문한 데 이어 3일에도 지방 나들이를 했다. 이날 윤 총장은 신임 부장검사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기 위해 충북 진천에 있는 법무연수원을 찾았다.공교롭게도 같은 날 추 장관은 법무부 공식 알림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언행과 행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국민적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고 대놓고 비난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의 반응은 차갑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장관이 왜 계속 남 탓만 하며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고 “법무부라는 공적 자원을 왜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윤 총장은 이날 강의에서 “검찰 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검찰을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어디로 보아도 그른 말이 아니다.정치적 음모의 소산이 분명한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을 빌미로 한동훈 검사장을 즉각 업무에서 배제한 추 장관이 독직 폭행으로 소란을 일으킨 정진웅 부장검사를 차장으로 승진시켰다. 나아가 정식 기소가 됐는데도 업무배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검찰 공무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언행을 지속하는 진혜원 검사는 서울로 발령내주고, 계속되는 하극상 소란에도 그렇게 좋아하는 감찰 지시조차 내리지 않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검찰을 망치고 있는 건 원칙론으로 검찰독립을 천명하는 윤 총장보다 정치 권력을 휘둘러 ‘선택적 정의’를 무기로 분열 책동에 혈안이 된 추 장관이다. 우리는 지금 ‘적반하장’의 극치를 목도하고 있다.

2020-11-04

‘행정통합’ 넓은 공감대 확보가 성공 지름길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지난 3일 한 지역중견 언론인 모임에 참석한 두 사람은 대구경북 통합에 대해 일부의 반대 여론은 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통합의 길로 갈 것을 천명했다.대구와 경북의 행정통합은 지금보다 더 나은 시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지역산업 동향 추세라면 대구와 경북은 낙후도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대구경북 행정통합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지금은 부산, 울산, 경남이 메가시티를 구상하고, 전남과 광주가 통합에 매진키로 합의했다. 도시 통합을 통한 메가시티는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자 세계적 추세다.포럼에 참석한 권 시장은 “내년이면 대구와 경북이 분리된 지 40년 되는 해지만 두 지역이 대구직할시 승격 이전보다 위상이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인구면에서 당시 전국 점유비가 13.1%이던 것이 지금은 9.8%로 떨어졌다. 전국 3대 도시 위상이 지금은 인천에 자리를 내주고 대전·충청권에 밀리고 있다. 총생산도 전국이 평균 20배 늘었으나 대구는 15배에 그쳤다.이 지사는 “곧 우리가 맞이할 AI시대 환경에서 우리가 대응할 방법은 도시 통합을 통한 시너지를 키우는 것”이라 했다. 지금 상태라면 성장은 느리고 추락은 빨라지는 현상이 가속화된다며 통합을 통한 도시경쟁력 확보에 선도적으로 나아가자고 했다.그러나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권 시장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 △지역적 이해관계 △재정·인사·조직 변화에 대한 불안감 등을 3대 장벽이라 했다. 장벽이라고 하지만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이 드러나면 장벽은 더 커지고 더 격렬해질 수 있다. 비록 통합의 길이 가시밭길이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면 반드시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도민의 일치된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통합공항 문제를 풀듯 지역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 행정통합 시도민 추진위와 공론화위도 이젠 출범했다. 통합의 절박성을 알리고 지역민의 폭넓은 이해를 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중앙의 지원과 절차적 정당성도 잘 확보해야 한다. 쉽지가 않다. 절체절명의 각오가 필요하다.

202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