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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아오르는 간편결제시장

네이버가 삼성페이·카카오페이가 주도하고 있는 오프라인 간편결제시장에 새롭게 진출하기로 해 관심을 끌고있다.네이버측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비씨카드와 제휴,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이로써 네이버페이 이용자들은 지에스25·씨유를 포함한 5대 편의점과 대형마트(롯데마트·하나로마트·지에스슈퍼), 커피전문점(이디야·탐앤탐스·카페베네), 주유소(지에스칼텍스) 등 전국 7만여개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결제를 할 수 있게된다.포인트는 그동안 네이버페이를 쓰면서 적립한 것이나 네이버페이와 연동해놓은 계좌에서 충전한 것을 사용할 수 있다. 이번 결정으로 오프라인 결제시장에서 삼성·카카오·네이버가 정면으로 맞붙게 됐다. 간편결제서비스는 공인인증서 없이 비밀번호를 이용해 결제하는 금융서비스다. 네이버는 네이버 쇼핑을 통해 쇼핑하고 결제하면 고객들에게 포인트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신규고객을 유치하고,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아울러 기존 확보한 고객들은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락인(잠금)효과’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네이버는 올해 4분기 오프라인에서 이용가능한 포인트 QR결제 서비스를 동시에 선보인다. 네어버나 네이버 페이 애플리케이션(앱)에서 2차원 형태의 바코드인 QR코드를 생성해 영업점 포스기에 인식하면 결제되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올해까지 금융계좌를 연결한 선불충전 방식의 오프라인 QR결제 서비스를 먼저 선보인 다음 카드 연동결제방식은 내년에 도입할 예정이다. 핀테크의 발달이 생활속 소비자들의 생활방식마저 바꿀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04

중국 유학생을 만나다

요즘 학생들을 대면으로 만나지 못하다 보니 선생 역할 제대로 못한다는 느낌이 부쩍 강해졌다. 지난 번에는 학년별 학생들도 만나고 동아리 관계 있는 학생들도 만났는데, 다행스럽다, 아직 학생들 살아 있구나 하는 느낌이 좋았다.내친 김에 오랫동안 방치해 두다시피 한 유학생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먼저 중국에서 온 대학원생들 만나고 다음에는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도 만날 계획이다.코로나19 때문에 방학 중 건너갔다 돌아오는데 어려움 겪은 학생들이 많았고, 어떤 학생들은 고향에 돌아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사한 게 다행스럽다. 한국이 낯설지만 견딜만 하기 바라고, BTS 같은 일들로 마음에 부담을 짊어지지 않기 바란다. 어디들 공부는 어떻게들 하시나? 하면 일제시대 여성 작가 이선희를 어렵게 쓰는 학생도 있고, ‘겨울여자’, ‘아메리카’의 작가 조해일을 읽은 학생도 있다. 강석경을 죄다 읽고 분석한 논문을 쓴 후 박사과정에서 이번에는 박경리에 도전장을 내민 학생, 아직 공부 주제를 잡기에는 학기가 안 찬 학생, 중국의 지도교수가 내 학생이었기도 한, 2대째 내게 지도를 받는 학생도 있다.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나의 얘기는 어느새 1996년 가을 혼자 인천에서 배를 타고 엔진으로 건너가던 과거의 일로 들어간다. 그때 나는 인생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낄 만큼 괴로웠고 어떻게든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미리 비자를 받아두지 않고도 당장 외국으로 떠날 수 있는 방법은 그때 서울 신사동에 있던 진천 페리호 사무실에서 배의 티켓을 사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중국은 나의 첫 외국여행지였다. 엔진에서 베이징으로 들어간 다음다음날 천안문 앞 맥도날드 체인점에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외국인들에 둘러싸인, 한국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자유를 맛보았다.맥도날드에서 나오니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그냥 하릴없이 거리를 걷는데 바로 라오사 차점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중국 작가 ‘노사’를 기념하는 찻집, 차만 팔지는 않고 다른 음식도 팔고 전통 민속 공연 프로그램도 펼치는 곳. 당시 돈 50위안을 내고 홀 맨 뒷자리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 머리 사이로 중국 노래와 연기와 묘기를 보는데, 낯선 타향에서 홀로 만끽하는 외로움은 그후에 어디에서도 비할 바가 없었다. 우리 중국 유학생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외롭고 어렵지 않은 학생들이 없으리라.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조그만 공부거리라도 가지고 얼굴 한 번 더 보는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는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1-04

고독사

김규종경북대 교수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고독사(孤獨死)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는 전갈이 들린다. 고독사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자택에서 사망한 사람이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 발견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 이웃과도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하고, 그 시신마저 뒤늦게 발견되는 고독사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해마다 약 3만 명이 고독사한다고 알려져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부 차원에서 고독사 숫자를 집계하지 않는다.고독사 통계 대신 무연고(無緣故) 사망자 집계를 내고 있으며, 지자체가 지역의 고독사를 관리하는 형편이다. 2012년 749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2018년에는 2천549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코로나19로 나빠진 경제상황과 맞물리면서 증가추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에서도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이후에 가족해체와 무연고자, 비혼자와 독신자가 급증하면서 고독사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비혼자와 미혼자,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가족해체 등이 급속하게 진행됨으로써 고독사 숫자의 증가는 불가피한 사회현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일본의 20대 여성 고지마 미유가 펴낸 서책 ‘시간이 멈춘 방’을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만22세에 유품정리와 특수청소 업무를 시작한 작가는 고독사한 사람들이 남긴 물건을 본떠 미니어처를 제작하여 고독사의 실체를 알리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고독사 가능성은 열려 있고, 죽음은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임에 주목한 것이다.젊은 나이에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에 감동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낀다.미니어처 제작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하는 질문에 대한 지은이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모든 이가 고독사와 자기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그만두지 않을까 싶다.”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현실임을 모두가 인식하게 될 때까지 고독사 관련 미니어처 제작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지난 10월에 문재인 대통령은 “기초 생활 수급자가 고독사의 절반을 넘고 있으며, 실태를 더 면밀하게 살피고 필요한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고독사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최하위계층 사람들을 따사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제도개선을 통한 원조방책을 세우는 일은 위정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2020년 3월 국회는 ‘고독사 예방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마련했다. 이 법률은 사회문제로 대두된 고독사의 개념 정리와 실태 조사, 그리고 고독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위한 제도 기반을 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독사가 바다 건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 앞에 제기된 시급한 사회문제라는 엄중한 상황인식을 공유함으로써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고독한 죽음이 하루빨리 해결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0-11-04

교사 취업 시험과 어느 교사의 기도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교사 임용 시즌이다. 이미 공사립 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 접수가 마감됐다. 과목별 편차가 있지만, 경북 공립의 경우 역사 과목이 16.1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걸 보면 교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사람들은 왜 교사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정말 왜 교사를 하고 싶은 것일까?필자도 교원임용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그때 외운 내용 중에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성직, 전문직, 노동직’이라는 교직관이다. 특히 ‘성직관’을 공부하면서 가슴에 피가 끓던 때가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교직관이 있기나 할까?시대가 변했으니 교직관도 변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지금은 교직관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대신 오로지 직업관만 있을 뿐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사도 이젠 생계형 근로자다. 교사 임용 시험도 여타 취업 시험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는 시험 명칭도 “교사 취업 시험”이라고 바꾸어야 할 것이다. 취업자의 첫 번째 목적은 임금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노동을 했으면,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 대가가 때론 사람을 춤추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한때 교사에게는 임금보다 더 큰 가치가 있었다.‘교육백년대계(敎育百年大計)’는 그 가치를 입증하는 절대 논거였다. 교육은 곧 그 나라의 미래였다. 그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교육이었고, 교사는 교육의 중심에 있었다. 필자의 은사님이 그러했듯이 그때 교사에게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 사명감 안에는 제자를 위한 무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헌신이 있었다. 그 헌신에 사회는 존경으로 답하였다.교사의 헌신은 교육 기적을 낳았다. 그 기적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산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은 어느 젊은 교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요즘 교사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했다가는 아마 신고당할 겁니다.” 교육 현장에서 사명감이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라는 말을 잘 알 것이다. 여기서 교사의 수준이란 교사 중심 주입식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인성을 포함 교사의 자질 등을 말한다. 교사에 맞는 자질이 결코 따라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 앞에 서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필자는 언행불일치의 파렴치범이 되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필자에게 약속하였다.“저의 얇은 과거 안에/학생들의 원대한 미래를/가두지 않게 하소서….(중략) 제가 하는 말이/절대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에/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 제가 앞장서서 할 수 없는 일을/학생들에게 강요하는/뻔뻔함의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졸시 ‘교사의 기도 1’)교사 취업 시험 응시생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그리고 어떤 교사가 되고자 하는가!

2020-11-04

아이린, 이미지의 왕국에서 추방되다

아이돌그룹 레드벨벳의 멤버인 아이린(배주현)이 한 잡지사 에디터에게 폭언과 삿대질 등 ‘갑질’을 해 화제가 됐다. 갑질을 폭로한 에디터의 SNS 글이 삽시간에 퍼지며 파장을 일으켰는데, 그 글에 다른 에디터들과 스타일리스트, 백댄서 등 업계 종사자들이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시했다. “나도 당했다”는 댓글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동안 업계에서 쉬쉬해온 게 이번에 제대로 터진 모양이다. 아이린은 사실을 인정하고 “어리석은 태도와 경솔한 언행으로 마음의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갑질 피해자인 에디터를 찾아가 직접 사과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린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티브이 화면에서는 청순하고 선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는 인성이 나쁘다는 이유다.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는 실재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자본주의 상품과 욕망이 만들어낸 가상성, 즉 시뮬라시옹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현대인들은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벤츠를 타고 싶어 하는 것은 주행 성능과 승차감 때문이 아니라 ‘벤츠’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경기도 안양의 호화 아파트보다 서울 강남의 낡은 아파트에 살고자 한다. 집의 주거환경이라는 실체를 떠나 ‘강남’이라는 이미지가 ‘안양’을 압도하는 까닭이다. 이 가상성의 세계에서 대중들은 그동안 ‘아이돌 걸그룹계의 얼굴천재 여신 아이린’이라는 이미지만을 볼 수 있었는데, 어쩌다 이미지 뒤편에 가려진 실체를 확인하게 되면서 실망하고 분노했다. 반성하고 또 자숙하고,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면서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난다 하더라도 한 번 깨진 환상은 복원되기 힘들다.연예인은 사진 속 인물이다. 사진이 구겨지면 아무리 펴도 자국이 남기 마련이다. 이미지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이린이 다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가상성, 아니 환상성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을까?아이린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미성숙한 인격 문제가 오직 그녀 개인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아이돌 업계라는 쇼윈도의 왕국에서 ‘걸그룹계 여신’이라는 이미지를 아이린에게 입히기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해 온 연예기획사와 방송제작자들에게 따져 묻고 싶다. 아이돌 가수들에게 춤과 노래와 외국어와 예능감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이미지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그것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왜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스캔들에 의한 상품성 파손 주의’는 강조하면서 왜 ‘미성숙한 인격이 초래할 인생 파손 주의’는 경고하지 않았느냐고. 화면에 비치는 ‘아이린’의 매력 발산보다 화면 뒤의 인간 ‘배주현’의 내적 성숙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왜 일러주지 않았느냐고.대부분 아이돌 가수들은 10대 때 기획사에 캐스팅되어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회사 내 숙소에서 엄격한 감시와 통제 아래 마치 군인처럼, 운동부 선수들처럼 합숙 훈련을 받는다. 그때부터 철저히 ‘상품’으로 준비된다. 춤, 노래, 랩, 화술, 패션, 외국어를 배우고, 인터뷰 요령과 스캔들 대처법, 팬서비스 등도 연습한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기획사 안에서 보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교나 사회보다 연습실이 더 익숙하고, 평범한 또래집단 친구들보다 ‘업계’ 관계자들과의 소통과 교류가 훨씬 잦다. 자아를 탐색하며 사회화 과정으로 나아가야할 청소년기에 아이돌 연습생들은 진짜 자기 대신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나’, 이미지에 불과한 시뮬라크르 복제품을 자기존재로 받아들인다.아이린도 그랬을 것이다. 무수한 유리들이 빛을 난반사하는 이미지의 궁전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진짜 자신인 줄 알았을 것이다. 기획사도, 방송국도 최고의 상품인 ‘걸그룹계 여신’을 계속 판매하기 위해 금지옥엽 다루듯 했을 게 뻔하다. 행여나 깨질까봐 조심조심, 방송을 앞두고 혹시라도 심기가 불편해보이면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면서. 그러니 매니저도, 코디네이터도, 백댄서도, 스타일리스트도, 에디터도 다 알아서 기었을 테고, 아이린은 그들의 굴종이 자신이 마땅히 누릴 권리인 줄 착각했을 것이다.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인간’ 배주현이 어떤 평판을 얻고 있는지 모르는 채, 화면에 비친 ‘여신’ 아이린에 열광하는 팬들의 사랑이 자신을 대하는 타인들의 공통된 태도라고 오해했을 것이다.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가상 상황이라도 깊이 몰입하면 그것이 실제 상황인 줄 혼동한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나 스탠퍼드대학교 감옥 실험 등이 이를 증명한다. 역할극에 집중하다가 극 속의 세계에 갇혀버리는 어린아이처럼, 어떤 아이돌 가수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채 ‘진짜 세상’으로 나오는 법을 잊어버린다. 도박, 탈세, 원정 성매매 의혹 등으로 얼룩진 빅뱅의 승리가 그렇다. 마약 투여 혐의를 받은 탑, 지드래곤, 비아이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처럼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사회적인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도 있지만, 언론의 자극적 보도와 네티즌들의 악플로 인해 생을 저버린 설리, 구하라 같이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유리로 지은 궁전이 깨졌을 때, 날카로운 조각들이 마음을 찔러 얼마나 아팠을까. 부서진 유리의 성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방법을 정녕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그들을 키워낸 기획사와 방송국의 어른들은 ‘양육’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채 새로운 ‘상품’을 발굴해 대중을 매혹시킬 이미지를 입히는 데만 몰두했을 것이다.하긴 누가 누구를 훈육하겠는가. 지금 기획사 대표와 임원들 중에는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2000년대 2세대 아이돌 출신들이 많은데, 그들 중 상당수가 과거 부끄러운 사건 및 사고로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자들이다. 과거를 청산하고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면 좋으련만 여전히 범죄에 연루되거나 소속 가수와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는 등 그들만의 작은 왕국에 갇혀 철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쪽 업계에는 어째선지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방송제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를 조작해 연습생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다. ‘악마의 편집’으로 자극적인 영상만 송출해 시청률을 올리고 어린 가수들이 받을 상처는 나 몰라라 한다. 오직 잘 팔리는 이미지만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 없다.이병철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아이돌 가수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자기 소속사 대표 성대모사 하는 것 좀 그만 보고 싶다. 그게 자기들한테나 재밌지, 도무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그들이 모사할 만한 모델이라고 해봤자 기껏 소속사 대표인 것이다. 하나도 재미없는데 방송 진행자, 패널들이 웃어주니까 그 웃음이 정말 자신을 향해 지어주는 천사의 미소인 줄 안다. 그토록 순진하다. 하루가 영원인 줄 알고는 부지런히 날갯짓하다 가는 하루살이처럼, 그렇게 한철 춤추다 이미지가 다 소비되면 진짜 세상으로도, ‘이미지의 왕국’으로도 가지 못한 채 허깨비처럼 과거의 환상 언저리만을 배회한다.공정함과 평등, 정치적 올바름, 공인의 성숙한 사회인식에 대한 기준이 높은 요즘 젊은 세대가 아이돌 가수의 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음악만 잘한다고, 연기만 잘한다고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팬들이 아이돌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내는 비용 안에는 그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하리라는 기댓값도 포함되어 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여신’ 아이린이 ‘조현아’와 연관 검색어로 묶일 줄이야. 한 번 망가진 이미지는 회복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녀가 진정성 있는 반성을 거쳐 다시 복귀를 희망할 때, 팬들이 너그러이 받아주는 것 역시 아이돌 음악 산업이라는 고립된 왕국이 현실 세계에서 괴리되지 않게 하는 소중한 노력이 될 것이다.

2020-11-03

中 어선 불법조업, 당국의 실효적 제재 있어야

매년 되풀이되는 중국어선의 북한 수역 내 어업 행위가 근절은커녕 우리 어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이 어업질서 확립을 위해 지난 2001년 한중어업협정을 체결했지만 여전히 양국 간에는 어업 분쟁이 지속 발생하는 상황이다. 물론 어업수역의 구분과 허용어선 수의 제한 및 어획량 설정, 어업자원 보호 등 협정 체결로 인한 긍정적 효과도 상당하다.그러나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입어 문제는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이젠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관한 정부 대응이 연례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어민들의 우려를 키우는 모양이다.알다시피 국내의 어업 환경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지금 상태로 간다면 머지않은 시기에 수입 수산물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한일어업협정은 양국간 불편해진 관계로 4년째 미타결 상태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한일어업협정의 미타결로 우리 어민이 받는 어업피해 규모가 연간 70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게다가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어업으로 동해안 지역의 회유성 어종은 씨가 마르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연근해 오징어 어획량은 2014년 16만t에 달했으나 2018년에 와서는 5만t으로 급감했다. 반면에 중국 어선의 북한수역 입어 척수는 2014년 144척에서 2018년에는 2천161척으로 급증했다. 동해안 지역의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든 것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이런 사정으로 국내 어선들이 러시아 수역까지 진출하고 있지만 입어 허가를 받은 근해 채낚기 어선의 어획량은 쿼터의 10%를 겨우 채울 정도라 한다.전국 21개 수협과 6개 어업인 단체가 설립한 우리바다살리기 중국어선 대책위원회가 또다시 중국어선 북한수역 입어를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포항에서 가졌다. 이미 수차례 대책을 촉구한 문제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 정부 당국의 각성을 재차 촉구한 것이다. 마침 한중어업공동위원회가 2일부터 열려 이 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있었으면 한다.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입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위배한 사안이다. 정부의 역할에 따라 실효적 제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국의 의지가 굳건해야 한다.

2020-11-03

덕장(德將)

손자병법에 장수는 세가지 부류로 나눈다. 맹장(猛將)과 지장(智將) 덕장(德將) 등이 그것이다.맹장은 전투에서 군사를 진두지휘하는 용맹함과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인물을 일컫는다. 대표적 인물로 삼국지의 장비를 들 수 있다.지장은 뛰어난 지략과 견문을 갖춘 전략가형 장수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날카로운 예지력과 통찰력으로 부하를 지휘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삼국지 등장인물 가운데는 조조나 제갈량 등이 이에 해당한다.덕장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부하를 통솔하는 솔선수범형 장수다. 제갈량을 찾아가 삼고초려 했던 유비와 같은 인물을 덕장이라 부른다.장수 간의 우월을 가려본 사례는 없지만 보통 “맹장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잘 쓴다. 부하를 통솔하는 데는 뛰어난 지략과 용감한 전투력도 필수지만 부하의 마음을 사로잡을 인간적인 면모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덕장의 덕(德)은 동양사상에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인격적 능력을 말한다. 덕이란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인데 전장에 나선 장수도 힘과 기술보다는 덕성을 중시하라는 뜻이다.흔히 듣는 ‘부덕의 소치’말은 본인이 덕이 없어 생겼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큰 재해가 덮치면 임금이 나서서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이 말을 썼다고 한다. 자산과 상관이 없는 일인데도 스스로 덕이 없다고 함으로써 윗사람의 넓은 아량을 보여준 것이다.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독주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반발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추 장관의 이후 대응이 주목된다. 추 장관이 지장이 될지 맹장 혹은 덕장이 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1-03

지방 부동산 몰락…고래 싸움에 ‘새우’들만 날벼락

서울 집값만 시비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결국 지방 부동산을 초토화하는 뒤탈을 낳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로 ‘똘똘한 한 채’만 남기고 처분하려는 심리가 폭발하면서 빚어낸 현상이다. 결국, 서울 부동산 ’고래’들의 투기 현상은 제대로 잡지도 못하면서 애먼 지방 ‘새우’들만 등이 터지게 된 형국이다. 강남 부동산 잡기에만 혈안에 된 치자들에겐 지방의 실정이 그렇게도 안중에 없나. 지난 7~9월 지방 중소도시의 아파트값은 전남 무안(-1.62%) 경북 김천(-1.39%) 경남 사천(-0.97%) 등 1% 안팎 폭락했다. 잡겠다던 서울 집값이 같은 기간 1.97%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수요억제 위주 부동산 정책의 모순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지방 청약 시장에도 찬바람이 돈다. 올해 7~10월 지방 중소도시 청약 단지 33개 가운데 70%인 23곳이 1순위에서 미달했다. 지난 9월 전국 미분양 가구 중 70%가 서울·수도권·광역시를 뺀 지방에 있다. 서울에서 분양시장에서는 평균 청약경쟁률이 올해 들어 68대1에 이를 정도로 치열한 것과 확연히 대조된다.모든 부작용은 문제를 시장원리로 풀지 않고 서울과 지방, 1주택자와 다주택자, 집주인과 세입자 식으로 편을 갈라 정치적으로 접근한 게 원인이다. 실거주 요건 강화, 다주택자 보유·양도세 인상, 임대차법 등 쏟아진 정책이 전·월세 공급을 낮추고 ‘똘똘한 한 채’에 수요자가 몰리게 한 것이다. 그 부실한 정책의 유탄이 지방 부동산과 전국의 전세 시장을 때리고 있다.정부의 규제가 투기·실거주 목적을 가리지 않다 보니 당국이 기대한 효과 대신 지방 매물만 쏟아진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지방 중소도시 아파트를 외지인이 사들인 비율은 올해 6월 35.6%에서 9월에는 18.4%로 뚝 떨어졌다. 서울에 고가주택을 1채 가진 것보다 지방 아파트 2채를 보유할 때 세 부담이 더 높아지는 구조가 문제다.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 균형을 위해 다주택 수에 포함하지 않는 지방 주택 범위를 확대하거나 쇠퇴 위기에 처한 지방 중소도시 주택 관리 방안을 별도로 찾아야 할 것이다.

2020-11-03

이상한 대구 부동산 시장

김영태대구취재본부 부장(부국장 대우)대구 부동산 시장이 이상하다. 특히 수성구의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미쳤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의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한국감정원이 지난 2일 발표한 ‘10월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의 주택매매 가격은 지난달에 비해 0.75% 상승했다.대구 부동산의 상승폭은 세종(1.43%), 대전(0.81%)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세번째이고 전국 평균 상승률 0.32%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더욱이 대구 수성구는 1.91%가 올라 전국 지자체 중 상승폭 1위를 기록하는 등 정부의 부동산 규제 후 특정지역으로의 쏠림 현상을 여실히 드러냈다.심지어 ‘학세권’과 ‘초품아’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수성구 중 이른바 ‘범4만3(범어4동, 만촌3동)’의 집값은 호가와 실거래가 모두 고공행진에 접어들었다. 지난 8월 ‘빌리브 범어’ 84㎡형이 15억3천만원에 거래돼 비수도권 최초로 15억원을 돌파했고 준공된 지 40년을 앞둔 범어4동 한 아파트 84㎡ 매물의 호가는 이미 지난달 18억원을 넘어 얼마까지 오를지 짐작할 수 없다.대구 수성구는 부동산 매매는 물론이고 전세마저도 거의 자취를 감췄고 품귀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가끔 등장하는 급매물도 내놓기가 무섭게 소진되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대구지역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똘똘한 한채’를 보유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이런 기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새임대차법 시행이후 대구지역 집값 상승의 기대가 오히려 더 팽배해졌고 전월세 물량 급감과 함께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대구 일부 아파트 단지의 경우에는 허위매물처럼 호가보다 낮은 가격을 표시하는 부동산 중개인과의 거래하지 말자는 내용의 현수막까지 내붙는 진풍경마저 벌어졌다. 실제로 대구 동구, 수성구, 달서구 등지에는 ‘허위부동산 매물 퇴출, 저가매매 유도 아웃’이라는 현수막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이유다. 현재 대구의 모 아파트의 경우에는 단지 입주자 대표와 부동산 중개인 간 소송으로 번지는 극한 대립 양상마저 보이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이런 상황은 정부의 부동산규제 발표가 있을 때마다 지역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성구 쏠림현상과 가격 폭등 등을 지적했고 그 결과가 그대로 재현되는 상황이다. 또 대구지역 부동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며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이 발표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도외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정부 정책이 서울 강남3구의 집값을 잡기 위해 집중되다보니 지방에서는 특정지역의 부동산 가격만 오히려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현재의 대구 부동산 시장의 이상 현상은 정부의 각종 규제가 성장세를 키운 셈이며 앞으로의 정책이 또 어떻게 전개될지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정부의 부동산 억제 정책이 더 이상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오히려 인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기대하면 무리일까.

2020-11-03

중국의 ‘항미원조’ 전쟁의 발언 배경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많은 수난과 고통을 겪었다. 한반도는 중국으로부터 수차례 침범을 받았다. 수·당 시절부터 중국의 침범은 명장 을지문덕과 강감찬이 있어 막을 수 있었다. 임란 시에는 명의 이여송이 조선에 파견되었다. 정묘호란 기에는 청의 홍타이지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인조가 무릎을 꿇게 하였다. 조선왕조는 중국 명황제의 숭정연호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탐욕은 그 역사가 오래고 이번 ‘항미원조(抗美媛朝)’ 발언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1950년 6·25 전쟁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김일성 정권을 위기에서 구출해 주었다. 6·25 전쟁은 김일성의 남침 전쟁임이 판명된 지 오래다. 미국의 부루스 컴잉(Bruce Cumming)은 한때 북의 남침 설을 인정치 않았으나 후일 이를 수정했다. 중국은 최근 6·25 전쟁을 한반도 내전인데 미제가 침범하여 이를 물리친 정의의 전쟁이라고 선포하였다. G2로 성장한 중국은 6·25 전쟁마저 대미항전이라는 도구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이번 정의의 전쟁 발언은 중국의 단순한 실수도 아니고 그들의 오래된 역사 인식에 기인한다. 여러해 전 중국 여행 시 압록강 철교 끝 단둥에 설치된 중조우의(中朝友誼) 비를 본 적이 있다. 동북 3성의 마을 입구에는 의례 그들의 6·25 참전 기념비가 서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의용군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물론 중국의 항일 혁명 시 희생된 영웅들의 기념비도 여러 곳에 서 있다. 여기에는 중국 팔로군을 도운 조선족 영웅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보인다. 중국이 6·25 전쟁을 미제 침략에 반대한 정의의 전쟁으로 미화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중국은 겉으로 한반도 국가의 주권 존중을 강조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반도 국가 건설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 보다는 분단된 현실을 선호하는 입장이다. 중국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정권 창출을 갈망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를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인식하여 북한을 두둔하려 한다. 중국 중앙 정부가 공들인 동북공정(東北工程)도 그들의 국가 헤게모니 확대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은 우리의 발해사까지 자신들의 지방사에 편입시켜 버렸다. 북한정권이 붕괴되면 중국이 동북 4성에 편입할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미국은 이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중정책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교역의 가장 큰 파트너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그간 미국의 사드 배치를 강력히 항의했으며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중국은 ‘일대일로’ 원칙을 고집하면서 미국의 인도 태평양 방위전략을 극력 반대한다. 중국은 한미 동맹의 강화를 반대하고 대한 외교적 압력은 가중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중미 양다리 외교의 조화는 가능할 것인가. 우리 외교의 최대 딜레마이다.

2020-11-03

광화문, 빛들문, 門化光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외솔 최현배가 작사한 한글날 노래 2절 가사이다. 세종대왕의 과학·철학·애민의 탁월한 정신이 오롯이 담긴 세계 최고의 글자, 쓰기 쉬우면서도 모양 또한 아름다운 글자가 한글이다. 유네스코는 문맹퇴치에 공이 큰 단체나 개인에게 주는 상으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1989년에 제정하였다. 인도네시아의 글자가 없었던 부족인 찌아찌아족은 2009년부터 그들의 말을 적는 글자로 한글을 가져다 쓰고 있다. 한글의 과학성, 우수성을 보여주는 두 장면이라 하겠다.서울 한복판 세종로에 광화문이 서 있다.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95년 왕궁이 처음 지어지던 때의 이름은 ‘오문(午門)’이었는데,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왕명을 내려 새로 만든 이름이 ‘광화문(光化門)’이다.광화문은 우리 역사와 길을 같이 걷는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 고종 때에 궁을 중건하면서 문도 재건되었다.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은 일제에 의해 광화문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자리로 옮겨졌다가 1968년, 2010년 두 차례의 재건축 과정을 거쳐 원래 자리인 지금 위치로 돌아왔다.광화문의 현판은 광복 이후 3번 교체되었다. 고종 때 경복궁의 중건 책임을 맡은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門化光’으로 현판이 걸렸다가, 1968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광화문’으로 현판이 바뀌었고, 2010년 복원된 광화문에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한자 현판 ‘門化光’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2010년 복원 당시 고증의 오류와 현재 현판의 균열로 인해 문화재청은 현판을 다시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2011년 문화재청이 5천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판 글씨로 한글(58.7%)을 한자(41.3%)보다 선호한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의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는 한자 현판이 우세했고, 임태영의 한자 현판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광복 이후 4번째 광화문 현판은 올해 걸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지난 5월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만들어졌다. 나는 광화문 현판을 글자체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훈민정음체로 하자는 이 모임을 지지한다.우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얼굴이라 할 광화문의 현판을 한자로 적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문화재는 옛것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타당할지 모르겠으나, 문화는 옛것의 답습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의 대표성을 생각할 때 한자 현판 ‘門化光’보다 ‘광화문’이 훨씬 더 어울리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지은 이름 ‘광화문’을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체로 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마음 같아서는 한자 뜻을 확 풀어 아예 ‘빛들문’으로 바꾸자고 하고 싶지만 말이다.

2020-11-03

책의 묶인 끈을 풀며

집에, 연구실에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오는 하루하루다. 책의 자리가 점점 넓어져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은 책을 좋아하여 그것을 매개로 사유하고, 소통했던 모든 이들이 겪었을 고충이니, 특별히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책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줄여 나의 자리를 넓힐 궁리를 해본다. 별 뾰족한 수는 없다. 책을 주변에 나눠주면 좋겠지만, 그 책을 받고 난감해할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면, 그것도 민폐가 아닌가. 요즘에는 책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려 책을 묶어둔 제본 부분을 자르고, 스캔을 해두는 것도 많이들 하고 있다지만, 그것만큼은 왠지 저어된다. 사실, 많은 자료를 인터넷으로 보고 있는 셈이니, 그리 거리낄 이유도 없지만, 책을 찢는 것은 무언가 내 속에 담겨 있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감각을 건드린다. 디지털과 네트워크가 기본이 되는 시대, 그것은 내게 남은 한 줌의 ‘예술’에 대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생각하면, 본래 종이의 한 쪽 끝을 묶었던 것을 푸는 것에 불과하니, 그리 신경을 쓰는 것은 과민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책을 찢는 일은 단지 그 묶었던 끈을 푸는 것만이 아니라, 책이 담고 있던 내 손끝에 닿아 명징했던 총제적인 예술의 감각을 훼손하는 일인 것만 같다.지금 시대는 분명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지 않은 예술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지금도 네트워크를 떠돌고 있는 유튜브의 영상들이 그러하고, 그 주변에 모여 분명 ‘예술적인 감흥’을 얻고 있을 사람들의 존재가 그러하다. 고작 ‘사진’에 의해 복제된 예술품의 가치 유무를 논하며, ‘아우라’라는 현실적인 낭만성의 기호로 그를 지칭하고자 했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고민은 이 시대에 닿으면, 사실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그림 속에 찍힌 점과 점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점들까지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어디로든 전송될 수 있다.분명 벤야민의 시대에는 예술이 갖고 있는 수많은 가치들을, 그것에 새롭게 붙은 화폐 가치가 밀어내고 소외시켰던 것이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고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대에는 정치나 시장이 예술을 잠식한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작품과 그것을 ‘재현’하는 길고 긴 디지털의 코드더미들이 실제로 같은 것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것이 된다. 이제는 본래적인 것과 찰나적인 것을, 그 선후를 구분할 수 없게 된 시대이기 때문이다.이런 시대에 ‘문학’이 질식할 수밖에 없는 전망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에 문장에 붙어 있는 문장 이상의 의미들과 그것이 우리 마음에 일으키는 파문이 갖는 신비가 바로 ‘문학’이 본령이 아니었는가. 어떤 문장을 읽고 그것을 더 확실한 무엇으로 치환해버리는 시대에야 ‘문학’의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아니,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가능성을 ‘책’이라는 매체에 가두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문장 한 줄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네트워크를 타고 흐르다가 누군가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누군가의 길고도 깊은 사유의 원형이 담겨 전달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나 향유의 양상이 찰나적이 되고만 것은 여러 번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지만, 인간이 언어를 쓰고, 그것을 가지고 타인에게 무언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만큼은 시대가 지나도 변화하지 않을 것 아닌가.책의 묶인 끈을 풀어 헤쳐 둘지 고민하다 결국 풀어내지 못하고 어딘가에 쌓아둔다. 아직 나는 책의 시대에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헤쳐 새로운 ‘문학’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 맡겨 둔다. 책의 시대는 어쩌면 이제는 골동의 영역에 남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시대는 계속해서 흐르고 있고, 인간이 영위하는 문학만큼은 날로 새로운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0-11-02

이 가을, 마음을 헹구며… 청도 북대암(北臺庵)

북대암을 처음 찾은 것은 수십 년 전 시를 쓰는 친구와 함께였었다. 고즈넉한 절간의 정취도 좋았지만 선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치자향 닮은 스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때 마침 제를 지낸 뒤 우리 앞에 차려진 푸짐한 공양상과 친절함은 감동적이었다. 봄기운 가득한 북대암의 첫 이미지는 두고두고 나를 미소 짓게 했다.북대암은 창건연대가 확실치 않고 창건자도 신승 혹은 보양국사라는 설이 전해진다. 네 개 암자 중 가장 먼저 세워졌으며 운문사 북쪽에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북대암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우연찮게 오늘은 동화 작가와 함께 북대암을 찾아간다. 작가의 신도증으로 매표소 앞을 무사통과하는 것도, 전설 같은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흔치 않은 행운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송진 체취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노송들, 그 상흔의 그림자를 밟으며 사색하던 길을 오늘은 문우들과 한껏 들떠서 지나간다.어릴 적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북대암을 오르내렸다는 동화작가가 그 옛날의 암자와 스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으로 다져진 인연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존경과 신뢰로 엮여진 오랜 인연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의 일상들이 푸석거리며 먼지를 일으키는데, 그녀의 추억담은 가을 햇살에 녹아들어 가파른 포장길을 운치 있게 만든다. 소통이 된다는 것은 정신적인 안온함을 나누는 일인데 오늘은 햇살조차 곱다.불현듯 장르가 다른 문인들이 북대암을 찾기로 한 건 파장이 통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직은 서로의 깊이를 잘 모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은 크다.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제 영역을 확고히 지키며 살아가는 문우들을 바라보며 나는 청명한 하늘이었다가 거침없는 바람이기도 하고 속으로 흐느끼는 억새가 되기도 하며 비탈길을 오른다.벼랑에 둥지를 튼 제비집 같은 정겨운 북대암, 작은 마당에 배를 깔고 누운 가을 햇살을 깨우며 동화작가가 익숙하게 대웅전을 향하고 우리는 그녀를 따른다. 준비해 온 떡을 다소곳이 제단에 올리는 시조 시인, 가톨릭 신도인 문우도 자기를 낮추고 절간의 법도를 따라 절을 한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손을 잡는 훈훈한 시간이다.가파른 계단 위 작은 전각에는 독성각과 산신각 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뒤로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신비로움을 더하고, 법당은 햇살의 품에 안겨 잠든 듯 고요하다. 북대암에서 가장 기돗발이 영험하다는 독성각의 동자승 앞에서 또 나란히 기도한다. 함께 한 문우들의 건강과 문운을 기도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숨어 있듯 열려 있는 산길을 따라 바위 앞에 이르면 운문사와 북대암이 한 눈에 보인다. 거대한 바위 어딘가에 스님과 보살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수행을 열심히 하신 스님이 열반에 들면서 사리가 나오면 북대암 뒤 바위에 안치하라는 유언에 따라 모셔진 것이다. 그리고 아랫마을 노보살이 평생을 눕지 않고 염불하여 생시에 치아에서 사리가 나와 이곳에 봉안되었다고 하니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정갈한 나무데크에 앉아 내려다 본 운문사는 한 송이 연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운문사, 그 청렴한 정수리가 향기롭게 빛난다. 노송 아래에서 좌선하듯 앉아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숱한 잡념들은 솔바람에 씻겨 나가고 온몸에 나무향이 배일 것만 같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서로의 눈빛에 젖어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다.구절초가 한들거리는 볕 좋은 산기슭을 따라 내려오는데 앞서 간 동화작가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다. “스님, 스님.” 요사채 방문 앞에서 노스님을 부르는 그녀의 자태가 가을 들꽃을 닮았다. 굳게 닫힌 방문은 끝내 기척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나 사람을 먼저 섬길 줄 아는 배포 크신 노스님, 법춘 스님을 뵙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다.들어올 때 공양주 보살이 내다준 홍시가 여태 평상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인심 좋은 북대암이다. 노스님의 안부를 여쭙자 보현사로 감을 따러 가셨다며 특별히 떡까지 내어오신다. 평상에 앉아 홍시와 떡을 먹는다. 물 귀한 북대암에 감로수 대신 글귀 하나가 마음을 헹구라고 자꾸만 눈빛을 빛낸다.조낭희 수필가“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내가 나를 바꾸는 것이고,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 또한 내가 나를 바꾸는 것이다.”대화를 나누면서도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는 글귀에 붙잡혀 꼼짝을 못한다.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연거푸 좌절감만 맛본 나에게는 멀고도 난해한 글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느 스님은 카르마라는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은 부단한 수행뿐이라고 하셨다.귀한 오늘, 되담을 수 없는 숱한 말을 뱉어낸 벌로 북대암이 안겨 준 숙제 하나 무겁다. 돌아오는 발길에는 가는 계절이 채여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문우들에게서는 잘 익은 시향(詩香)이 난다. 특별했던 가을날의 하루가 추억 속에 또 둥지를 튼다.

2020-11-02

독서에 대한 잡스런 기억들

허명화씨의 책들.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독서에 대한 취미를 붙였느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이러하다.먼저 독서는 나에게 취미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독서 감상문을 써오기 위한 책 읽기였으니 말이다. 매번 검사 받아야 하는 숙제라 여기니 재미있다거나 신나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자주 쓰시던 부모님전상서를 의미도 모르면서 읽은 것이 그 시작이었을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 성싶다.분명한 것은 이런 일들이 학기 초 교과서 읽기로 이어졌다. 이렇게 책을 가까이 하며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지난 주말 찾았던 고향집 거실 책장에는 중·고등학교 다닐 시절 사 놓은 시집이나 소설책, 잡지, 또 열기도 겁나 보이는 두꺼운 전공서적들이 여전히 촘촘히 꽂혀 있다. 볼 때 마다 내 인생의 한 단편을 보는 것 같아서 아련해진다.내가 살았던 시골은 책 한권 사볼 서점이 마땅치 않았다. 당연히 학교도서관은 책을 볼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만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는 나의 첫 책이었다. 그 후로 계속 읽게 된 안데르센 동화들. 여름날 더위 날리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 내가 생각한 그 범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학교 때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여자의 일생, 언젠가 독일에도 가보고 싶게 만든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는 목련꽃 아래에도 서 보았다. 4월에 아파트 화단에 목련꽃이 피면 넌지시 눈길을 건네곤 한다.한 동안 온몸으로 생각했고 ‘내가 아큐 형 인간은 아닌가 ’ 했던 노신의 ‘아큐정전’,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현진건, 이효석의 소설들. 러시아 소설 속 등장인물들 이름은 왜 이렇게 길고 어려운지 입에서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부활’의 남자 주인공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돌프는 메모를 해가며 외운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나’였다고나 할까.자취를 했던 고등학교 때 토요일 오후가 되면 내 발걸음은 서점으로 향했다. 진열된 책의 제목에 마음이 꽂혀 책장을 들추게 되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 잠시 몰입하는 기쁨은 도둑의 긴장감처럼 황홀했다. 이렇게 구입한 책은 친구들과 함께 했던 독서동아리 책이 되었다. 스스로 만든 동아리라 진실은 독서보다는 모여서 수다 떨기로 더 바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먼지 앉은 책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때론 소중하기도 하다.나는 식자(識者)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은 아니다. 그러나 다독가이고는 싶다.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마간산으로 훑은 책을 다시 보고자 했다. 하지만 한갓지게 독서한 기억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기웃기웃한다. 여행이 아쉬운 지금 앞선 작가들의 여행기를 덥석 빼 든다. 오늘은 산티아고를 넘어 남미여행기에 푹 빠진다. 독서의 즐거움에 여행의 기쁨도 더해진다.책과 함께하는 일상이 오롯하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2020-11-02

나의 직업

전효선씨.나는 요양병원 간호사입니다.코로나 시대에 항상 감염의 중심에 서 있는 것같이 방송에 나오는 위험지역에 근무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요양병원은 청정지역입니다.갇혀있는 섬이라고 할까?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으로 직원이 바깥에서 옮겨오지 않으면 절대 코로나가 발생할 수 없는 곳입니다.그러나 외부에서 잘못 옮겨온 병원균으로 인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직원들은 더 조심하고 경계하고 통제합니다.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극한 직업입니다.아니 정말 힘든 사람은 요양병원 환자일지도 모릅니다.입으로 먹지도 못하고 “춥다, 덥다”말도 못하고 심지어 자식도 몰라보고 자신의 세월도 잊어버린 채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내손으로 수저질하다. 반찬 올려 보조하여 먹다가 남은 음식 일부 떠 먹여 식사량 유지함. 전적으로 떠 먹여줌’. 이것이 요양병원 환자분의 식사하기 일상 활동의 기록입니다.전적으로 떠 먹여도 치매로 삼키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연하곤란으로 삼키지 못하면 경관식이를 합니다. 일명 ‘코줄’을 꽂아서 튜브를 통해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렇게라도 살아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믿고 싶습니다.삶의 의미는 우리가 부여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기에 오늘도 일방적인 질문과 답을 하면서 그분들과 말을 이어갑니다. 오래 입원하고 계신 분들 중에는 가족들이 띄엄띄엄 찾아오다가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통제 되면서 비대면으로 영상 통화만 가능합니다. 저는 여기서 3년 조금 넘게 근무했습니다. 몇 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정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마지막 가실 때는 내 가족 같아서 마음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직하는 간호사들도 있습니다.방송에서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학대하고 인권이 없는 곳이라고 일부의 잘못을 가지고 모든 곳에 적용시키는 것을 보면 속상해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하지만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환자분들이 계시고 간호사들이 해야 될 일이고 해내야 되기 때문에 오늘도 힘을 내 봅니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1-02

모국어가 그리울 때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동네 체육관이 있다. 이름하여 Mitchell Field Community Center이다. 오후 5시경, 걷기 운동을 하러 갔다. 초가을답지 않은 차가운 기온이라 실내에서 걷기로 하고 체육관에 간 것이다. 아래층 농구 코트에서는 고등학생 정도의 학생들이 무리 지어 농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2층 워킹트렉에는 열심히 돌고 있는 여인들 대여섯 명이 보였다. 남자는 나 혼자였다. 전광판의 시계를 확인하고 걷기 시작했다.나보다 빨리 걷는 이들도 있고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나이 많은 서양 할머니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내가 걷는 속도의 반도 안 되는 속도로 걷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 걷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살이 좀 많이 찐 편이었다.걷다가 운동기구의 의자에 앉아 쉬었다. 그 표정을 보니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였다. 팔순이 넘어 보였다. 그 나이쯤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그때 걷던 젊은 여자가 쉬고 있는 그 할머니와 한참이나 말을 하였다. 아마 모녀지간인 것 같았다. 젊은 여인 역시 몸이 꽤 살이 찌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나보다 더 빨리 열심히 걸었다.얼마 걷다 보니 거의 다 나가고 그 육중한 체구의 할머니와 나만 남았다. 할머니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나는 그렇게 사십여 분을 걸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 그 할머니도 내려와 내가 앉은 의자 끝에 앉았다. 말을 걸어 볼까 하다가 말았다.40여 년을 토론토에 살았어도 영어로 하는 대화는 항상 긴장을 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늘 눈인사로 대신한다. 모국어를 사용한 시간보다 더 오래 외국살이를 했지만 나이 들어서 배운 언어는 늘 입안에서만 맴돈다. 잠시 후 젊은 여자가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등에 대고 see you again 하고 눈으로만 인사를 했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11-02

그래도 꽃은 핀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겨울에 몸을 움츠리게 하던 찬바람과 함께 뜬금없이 찾아온 불청객은 봄이 지나고 여름을 거쳐 가을이 다 지나도록 떠나지 않고 지척에서 맴돈다. 듣지도 못했었고, 보지도 못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고약한 그놈과의 불편한 동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떠나보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이유가 분명한 그놈이다. 가까이해서는 절대 안 되는 생존의 위기를 초래하는 그놈이다. 떠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참 끈질긴 그놈이다.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일상마저 앗아간 몹쓸 그놈이다.학교에 가고 싶은 학생들, 직장에 가야만 하는 가장들, 수십 년 해온 점포를 닫아야 하는 소상공인들,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는 자식들, 명절에도 오지 말라고 한 가슴 아픈 부모님들, 가까이 있어도 못 보는 친구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상을 잃어버렸다. 평범했던 일상이 귀하고 소중해진 지금이다.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서로 간에 거리를 두라고 강요하는 매정한 지금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가까이하라고 위안하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지금이다. 참으로 잔인한 2020년이다.황무지가 되어버린 일상에도 불구하고 먼 산엔 단풍이 물들었다. 낙엽은 그리움이 되어 떨어지고 얼어붙은 대지에 포근한 흰 눈이 내리고 나면 또다시 봄은 오겠지. 엘리엇(T. S Elliot)의 시 ‘황무지(荒無地)’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은 피우고’처럼 그렇게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겠지. /윤현도(사진작가)

2020-11-02

일안이구(一顔二口)의 괴물

강희룡 서예가괴물은 인간의 내면에 드리운 욕망과 상상력의 산물이다.고대 로마의 문인이며 정치가였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나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유니콘, 그리핀 같은 괴물 이야기를 모은 책들이다.눈이 먼 현자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보르헤스(1899~1986)의 ‘상상 동물 이야기’는 서양 괴물 이야기의 집대성을 이루며 그리스 신화의 괴물에서 카프카의 소설 속 크루자에 이르기까지 약 140여 종이 등장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기묘한 이 허구의 존재들은 어쩌면 실제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해 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동양에도 이런 고전이 있으니 하(夏)나라의 우왕 또는 백익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산해경(山海經)’이다. 짐승의 몸에 사람 얼굴로 용을 타고 다니는 불의 신 축융(祝融), 뱀의 몸에 사람얼굴로 불꽃처럼 붉은 머리를 가진 물의 신 공공(共工), 범의 몸과 사람 얼굴에 머리 다리 꼬리가 각각 여덟인 천오(天吳), 발 하나에 뿔이 없는 푸른 소인 기(夔) 등 200여 종의 괴물 이야기가 실려 있다.2006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로 ‘괴물’이 있다. 오늘날 기형괴물의 탄생은 환경오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이 영화는 1천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미 8군 영안실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약병에 먼지가 있단 이유로 수 백병이 넘는 이 약을 모두 하수구에 버리면서 버려진 독약으로 인해 한강의 물고기는 곧 상상을 초월하는 괴생물체로 변하여 평화로운 한강에 재앙을 불러온다는 내용이다.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시위 때 지금의 이낙연 여당대표가 당시에는 야당으로 집회와 시위,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독재정권의 공권력 남용이라며 거리에서 앞장서서 강력히 규탄하더니 지난 개천절 보수단체 집회에 대해서는 여당대표로서 코로라 방역을 빌미로 설치한 버스 벽 뒤에서 공권력의 강경진압과 무관용 원칙을 경찰에 주문했다. 이 행태를 두고 시무7조로 화제를 모았던 조은산 논객이 그가 지은 ‘산성가’에서 ‘얼굴은 하나요, 입이 두 개인 기형생물’이라고 비판했다. 동물은 환경오염으로부터 기형괴물이 탄생하나 인간은 권력과 영욕으로 오염된 영혼 소유자가 정치판에서 정치를 오염시키고 주변인물과 자신도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바로 이들을 얼굴 하나에 입이 두 개인 일안이구(一顔二口)의 괴물들이라 일컫는다.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 또는 같은 편의 비위사실이 드러날 경우를 우려해 권모술수는 물론 동질사안에 대해서도 아침저녁으로 말이 바뀌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기형생물체들이다. 내로남불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은 국민이 임기동안 쥐어준 권력을 남용해 진영의 장기집권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국가 탑을 쌓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110년 전 망국의 유령이 지금 이 땅에 떠돌고 있다.

2020-11-02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

최미경동화작가지난 7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총 848억원 규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힌 이후 공공미술프로젝트에 대한 지자체와 미술계, 그리고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 중 단일규모로는 최대 수준이기 때문이다.전국 228개 지자체에 총 948억원이 나누어질 예정이기에 각 지자체별로 4억원 정도가 배분된다.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미술계 작가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및 지역 공간문화 개선 등을 목표로 지자체별로 최소 18명에서 최대 38명까지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예술작품 설치, 문화공간 조성, 도시재생, 미디어·온라인 전시, 주민 참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유형으로 진행되고 지역의 여건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문체부에서는 밝혔다.하지만, 이같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 사업에 대한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다.먼저 짧은 공모기간과 급한 진행이 첫 번째의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사업 공공기간이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이주일, 접수 기간 또한 짧게는 하루 뿐인 곳도 있고 긴 곳은 15일 정도이다. 그래서 공공미술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연구기획기간이 짧기에 조악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더불어 실행 주체인 문화재단이나 담당공무원들의 이해 부족, 전문성 부족, 지자체별 차별성 부족, 유사 선생사업 모방 등의 우려도 드러났다. 그렇다보니 ‘과거 정권에서 실패한 정책의 우려먹기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작가들의 공평한 참여가 배제된 채 협회와 단체들이 독점하는 양태에 대한 문제점도 드러났다.포항에서도 지난 9월 ‘2020 공공미술프로젝트-우리동네’사업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명칭으로 포항문화재단에 공고가 났다. 총 6개의 작가팀이 공모했고 먼저 그 중 1팀이 선정되었고 이후 포항문화재단은 10월 재공모를 거쳤다. 재공모에 선정된 팀은 1차 공모에서 떨어졌던 작가팀의 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이 기획했던 프로젝트를 공유하며 수정-보완-반성해서 다시 하나로 만든 팀이었다. 팀원들의 성향과 활동영역은 달랐지만 그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의 작가가 지역의 공간을 지역주민들을 위해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하나로 모였기 때문이었다.선정된 2팀 모두 아직 컨설팅 단계와 작품의 창작, 설치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두 팀 모두 제대로 된 과정을 통해 공공미술이 단지 공공 공간에 미적 가치가 있는 오브제를 들여다 놓는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 장소가 가진 기억과 지역민의 의식을 담아 감성과 가치가 담긴 오브제를 만들 길 기대해 본다.또한 시간에 쫓게 지역의 특성과 여건, 주민을 고려하지 않고 프로젝트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좋은 취지와 목적으로 시작된 만큼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한 포항 시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2020-11-02

한미동맹, 격랑 속으로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한미동맹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맹의 불신과 균열이 매우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이슈(issue)에 따른 단순한 이해관계나 견해차이가 아니라 동맹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근본적 이견이 충돌하고 있다. 한미동맹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하는 최대의 위기다.동맹의 생명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에 사활이 걸려 있는 한국의 안이한 인식과 비현실적 외교가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판문점선언 및 군사합의가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미국과 사전협의가 없었고, 중국을 의식한 균형외교는 동맹국인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불신을 자초하였다. 또한 냉전적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전환하자는 이인영 통일부장관의 주장은 한미동맹의 성격과 목적을 완전히 왜곡하였다. 한미동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억지력(deterrence)’이 그 핵심인데,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확산억지력’ 밖에 없음을 왜 모르는가? 게다가 동맹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이수혁 주미대사는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다고 앞으로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동맹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였다.물론 동맹국인 미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동맹국이 미국을 이용해왔다는 ‘편협한 동맹관’에 입각하여 무리한 방위비 인상을 압박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주한미군이 가져다주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안보증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일방적으로 반중(反中) 쿼드(Quad) 및 5G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에 한국이 동참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나아가 에스퍼(M. T. Esper) 국방장관은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동맹국들에게 아시아판 NATO를 제시함으로써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양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도 심각하다. 한국은 선(先) 종전선언 후(後) 비핵화이지만,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종전선언이다.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전환을 주장하나 미국은 조건충족이 먼저라고 본다. 정부가 추진하는 미·중 균형외교 및 북·미 중재외교는 한·미 동맹외교와 충돌하고 있다. 방위비협상이 길어질수록 동맹의 불신만 깊어질 것이며, 미·중 패권경쟁에서 동맹의 편에 서라는 미국의 요구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갈등으로 최근의 한미안보협의회(SCM)는 예정된 공동기자회견마저 취소되었다.이처럼 현재의 한미동맹은 중병에 걸려 있다. 치료를 서두르면 동맹이 회생될 것이지만 방관하면 동맹이 와해될 수도 있다. 동맹의 치유는 양국의 신뢰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동맹은 같은 생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신뢰관계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친중탈미(親中脫美)’나 ‘친북탈미(親北脫美)’는 동맹에 대한 배신이다. 동맹의 존립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와 이익의 공유’를 위한 전략소통과 정책조율이 시급한 시점이다.

2020-11-02

지방소멸 특별법 제정 머뭇거릴 시간 없어

지방소멸의 문제가 거론된 것은 벌써 10여 년 전부터다. 지방의 젊은이가 수도권으로 대거 빠져나감으로써 발생하는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의 문제는 이제는 더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절박한 지방도시 생존의 문제로 바뀌었다. 정부가 그동안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만들고 전국에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으나 지방소멸의 문제는 조금도 진척을 못 보고 오히려 한층 더 심화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의하면 올해 우리나라 228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모두 105개로 전체의 46.1%다. 전년보다 12곳이 증가했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 수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0.5 미만일 경우 소멸위험 단계로 본다. 경북은 23개 시군 가운데 4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전국적으로 소멸대상의 90% 이상이 비수도권에 몰려있는 것이 문제다.지방소멸의 문제나 농촌의 인구감소, 고령화, 저출산, 국토 불균형 발전 등 지방도시가 안고 있는 현안은 따지고 보면 수도권 과밀화와 모두 연관돼 있다. 수도권으로 쏠리는 인구 및 경제 집중화에 대한 해결책 없이는 지방소멸의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다.우리나라 국토의 고작 11.8%인 수도권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 넘게 몰려있다. 대기업 본사 90%가 수도권에 존재하는 등 경제와 정치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몰려 모든 자원이 빠져나간 지방은 고사 직전 상태다.지난달 30일 전남 장성에서 열린 전국시도의회 의장협의회는 지방소멸위기 지원특별법 제정 촉구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지방소멸 위기와 관련 지역 정치인의 이 같은 목소리는 그동안 수도 없이 되풀이됐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에 늘 그쳤다.국토의 균형발전은 국가가 의지를 갖고 강력하게 추진할 때 성과를 낼 수 있다.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만들어 놓고 예외적으로 수도권에 대기업의 공장 신설을 허용한다면 지방은 소멸위기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2차 공공기관의 지방이전도 지방소멸을 생각한다면 더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이번 국회는 지방소멸 관련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해 소멸위기에 직면한 지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2020-11-02

법무장관이 평검사 저격…누가 개혁 대상인가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범상치 않다. 제주지검 이환우 검사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태에 대해 ‘검찰 개혁은 실패했다’고 올린 글이 도화선이 됐다. 추 장관은 이를 놓고 ‘커밍아웃’이라며 저격했다. 검찰 내부 통신망에는 300여 건의 실명 반발 댓글이 달려 검난(檢亂)이라는 단어를 소환했다. 검사들에게 사표를 받으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2일 현재 30만 명이 동의했다.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저열한 음모가 보인다. 대체 누가 개혁의 대상인가. 추 장관과 조국 전 장관이 이환우 검사의 의견표출에 인신공격성 대응으로 소위 ‘좌표 찍기’를 한 일은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린’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검사의 비판과 이에 대해 동조한 검사들의 행위를 커밍아웃(자백)이라며 모조리 사표를 받으라는 소리를 내는 정권과 그 지지층이 과연 정상인가.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검찰 개혁’이란 독립성 확보와는 거리가 먼 ‘검찰 장악’ 음모임을 반증하는 현상으로 읽는 게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검사들의 집단 반발을 부른 것은 추 장관의 안하무인 행태다. 추 장관은 윤석열 총장 축출을 사명으로 받들어 검찰을 초토화하는 악역을 맡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장관 재임 10개월 동안 줄곧 검사들의 사령탑인 검찰총장을 무시하거나 헐뜯는 발언을 해왔다. 윤 총장의 주변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시켰다. 최근에는 조 단위의 금융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를 ‘의인’으로 여기는 듯한 인식 착란 증상까지 드러내고 있다.이 정권과 추 장관이 왜 그러는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검찰이 조국 일가 비리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을 수사하자 정권이 표변하여 들고 나온 구호가 ‘검찰 개혁’이다. 그들은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 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고 검사들을 좌천시켰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수사를 막으려고 혈안이다. 검찰을 손아귀에 넣어 정권 비리를 덮으려는 속셈이라는 걸 모두가 다 안다. 세상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나라 말아먹을 주장을 ‘개혁’으로 거짓 포장해 군중심리를 선동하고 있는 세상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2020-11-02

암호화화폐 스캠 주의보

본래 스캠이란 ‘도박판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로 경제사기수법 용어로 통용된다. 암호화폐 시장에선 투자자를 현혹해 투자금을 가로채고 잠적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캠 일당이 온라인 메신저나 SNS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특정 계좌번호나 지갑 주소에 자산을 이체하도록 유도한다. 신종스캠은 기존 스캠에서 한단계 진일보한 사기유횽이다. 피해자의 이성적 호감을 이용한 로맨스 스탬에 피해자에게 실제 수익이 나는 것처럼 위장하며 경계심을 풀게하는 수법이 고도화 됐기 때문이다.먼저 일당은 데이트앱에서 범죄대상을 물색한 뒤 이성적 호감을 사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처음에는 호감으로 접근한 것처럼 속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암호화화폐 투자를 권유하기 시작한다.실제 사례를 보면 A씨는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이성 B씨를 알게됐다. 어느날 B씨는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는 해외소재 암호화화폐 투자사 홈페이지를 소개했다. A씨는 B씨가 소개한 투자사 가상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전송했다. 처음 걱정과 다르게 상당한 수익이 나왔다. A씨는 수익금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투자사는 해외세금 등을 이유로 고액의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 문제는 추가 입금에도 수익금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B씨는 잠적했고, 해당 홈페이지도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한마디로 신종 스캠수법이다.국내 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의 자금세탁방지팀에 지난 10월말부터 4건의 동일한 유형의 스캠 사기신고가 접수됐다. 4건 가운데 3건은 거래소 차원에서 사전에 암호화폐 인출을 막아 금전피해를 막았지만 금융당국은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어떤 경우든 낯선 이의 투자권유와 접근은 경계하고 볼일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02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를 보는 눈

11월 3일 미국에서 제46대 대통령선거와 더불어 상원과 하원 의원선거, 주요 주지사선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높은 가운데,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한다면 최소한 앞으로 2년간은 민주당의 색채가 짙은 과감한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민주당 정권이 탄생하더라도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앞으로 대내외 정책의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역 업계도 이번 미국 선거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미국발 정책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인 참정권, 다시 말해 투표할 수 있는 시민권을 가졌다고 해서 한 나라의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직접 개입할 틈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저 자기 생각과 대체로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고 착각한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의 공약을 보고 한 표 찍는 것으로 지금보다는 내 입맛에 가까워지기를 막연히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일단 선거가 끝난 다음부터는 소득, 고용, 소비, 교육과 같은 개인과 가정에 직접 연결되는 모든 영역에서 즉시 영향이 나타난다. 싫든 좋든 그러한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새롭게 그 나라의 정계 구도가 재편되기 전까지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평생 자기가 원했던 정치인을 뽑고 예상대로 국가 정책이 집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 시민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선거인데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매번 선거철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의 영향을 받거나 분위기에 휩싸여 순간적으로 지지 대상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때에 따라서는 투표를 하지 않거나, 반대로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까지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한다.이번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그런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결과 미국 정계가 앞으로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동안 불거진 인종차별 문제, 민주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총기 보유 규제가 강화되리라는 전망과 겹치면서 미국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심지어 아예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올해 생전 처음으로 총을 산 사람만 5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코로나19의 대책으로 우편투표가 많이 늘어나 평소보다 선거결과가 집계되는 시일이 늦어지기 쉬워 개표결과를 의심하는 사태까지 일어날 위험도 있어 안심하기 힘든 상황이다. 11월 3일에 이루어지는 대통령선거를 8일 앞둔 시점인 10월 26일까지 사전투표를 마친 유권자가 6천만 명을 넘겼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미국 선거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마이클 맥도날드 정치학 교수는 이번 선거의 예상 투표자는 총 유권자의 65% 수준인 약 1억5천만 명에 달해 1908년 대선 이래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였다. 당시 남부에 지지 기반을 둔 민주당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후보가 17개 주에서 승리하였으나, 공화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후보가 북부를 중심으로 29개 주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제2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적이 있다. 이번 선거가 당시처럼 미국 유권자에게 높은 관심을 받으며 예측불허의 승부가 예상된다고는 하나 정치 관련 전문기관 대다수는 그때와는 달리 조 바이든 후보를 낸 민주당이 승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번 선거는 마침 대통령선거에 더해 상원과 하원 선거, 일부 주지사선거까지 겹쳐 더욱 열기가 높다. 당연히 이번 선거결과는 우리나라도 정치,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발표된 지지율 분석결과를 종합해보면 일단 대통령선거에서는 조 바이든 후보가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다른 선거에서는 과연 어떠한 결과로 예측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11월 3일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연방 하원과 상원의 선거결과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할 제46대 미국 대통령의 정책운영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하원 선거는 과연 어떻게 될까. 현재 미국 하원의 전체 의석수는 435개다. 하원 의석은 각 지역 인구수에 비례 배정되는데 의석이 1개인 주는 7개 주(알래스카, 몬태나, 델라웨어, 노스다코다, 사우스 다코다, 버몬트, 와이오밍), 20개가 넘는 주는 4개 주(캘리포니아 53개, 텍사스 36개, 플로리다 27개, 뉴욕 27개)다. 하원 임기는 2년이기 때문에 모든 의석이 이번 선거에서 새로 결정된다. 선거 직전인 현재 의석 분포는 결원이 있어 민주당 232개, 공화당 197개지만 이번에도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 전문채널 538은 민주당 239석, 공화당 196석으로 예측하였다.만약 상원까지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새로 출범할 민주당 정권의 주요 정책들은 아무런 걸림돌도 없이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되기 쉽다. 마치 버락 오바마 제1기 정권의 전반기(2009년부터 2010년)처럼 대담한 정책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공화당이 지금처럼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면 바이든 정권이 탄생하더라도 의회에서 발목이 잡혀 획기적인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집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이렇듯 관심이 높은 미국 상원 의석수는 인구수와 상관없이 50개 주마다 상원의원 2명이 배정되기 때문에 총 의석수는 100개뿐이다. 상원 임기는 6년인데 2년마다 전체 의석의 3분의 1씩 교체하기 위한 선거를 한다. 올해 상원 의석 가운데 선거대상 주는 34개지만 조지아주에는 결원에 따른 보궐선거 1개가 있어 새로 선출되는 의석수는 35개다. 지금의 35개 의석 분포는 공화당 23개, 민주당 12개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우세하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현재 전체 상원 의석 분포는 공화당 53개, 민주당 45개, 무소속 2개지만 무소속 의원이 민주당과 투표 행동을 같이하고 있어 공화당 53개와 사실상의 민주당 47개로 의석 차는 6개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2021년 1월 3일 개회되는 상원에서 민주당이 현재 의석에서 3석만 늘리면 사실상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다. 상원의장을 부대통령이 겸직하기 때문이다. 만약 공화당 정권이 이어진다면 상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려면 의석을 4개 늘려야만 한다. 미묘한 상황이지만, 10월 22일 현재 주요 예측기관들의 11월 3일 선거를 하는 34개 주에 대한 분석결과는 민주당이 현직 상원의원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12개 주 가운데 재선에 불리하다고 예상되는 주는 3개 주(알라바마, 미시건, 미네소타)뿐이다. 반면, 공화당의 경우에는 현직 23명 가운데 낙선이 우려되는 주가 8개 주(아리조나, 콜로라도, 조지아(보궐선거 포함 2명), 아이오와, 메인,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9명에 이른다. 공화당 의원이 의석을 잃을 것이라 예상하는 의석수가 민주당보다 3배나 많다. 전문 예측기관들은 선거결과 상원 의석 예상분포를 민주당 52~53개, 공화당 47~48개로 보면서 민주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만약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고, 상원과 하원에서도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적어도 2년 동안은 민주당 색채가 강한 대내외 정책을 비교적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상원과 하원에서 예측대로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거나, 반대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상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탈환하지 못하게 된다면 미국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기 쉽다. 앞으로 지역 업계는 이번 미국의 선거결과에 대해 지금까지 이상으로 세세하게 살펴 경영전략을 조정해 나가야만 미국발 정책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1-01

요즈음의 이웃사촌

윤영대수필가이웃사촌이란, 옛날 집성촌이 많을 때 이웃에는 사촌들이 많아 길흉사에 서로를 도우며 의존하며 정답게 살아가던 시절의 풍경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가족 수도 줄고 또 도시로 흩어지면서 이웃에는 남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친족들은 명절에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가깝게 사는 이웃이 오히려 혈육처럼 허물없고 매우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말인데, 이제는 이웃사촌이란 말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회적 현실이다.80년대를 지나면서 지방에도 아파트 붐이 일었고 인간미가 정겹던 골목길이 사라져갔다. 아파트가 20층이라면 한 통로만 하더라도 좁은 골목길에 40여 채 이상의 집이 모여있는 큰 마을인 셈이다. 동네 마을은 골목길 오가며 인사도 나누고 담장 너머로 집안 사정도 볼 수 있지만, 밀폐된 아파트 마을은 앞집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현관문은 꼭꼭 잠기고 문패도 없어 성도 이름도 모른다. 아기들을 키우며 집을 지키고 이웃과 웃음을 나누던 집안의 여성들도 맞벌이 등으로 집을 비우면 옆집 이웃은 없는 것과 같다. 얼굴을 보는 것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수십 초간, 서로 인사도 말도 없이 내려버린다.한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살았어도 이사가 빈번하여 주민들이 바뀌니 대부분 낯설다. 다행히 오래 살다 보니 터줏대감이 되었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분들이 몇 집이 있어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제는 허물없이 대화하며 짐도 들어주고 가끔 바로 아래 선술집에서 한잔하기도 하는 참으로 좋은 이웃사촌이 되었다.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귀엽고 사랑스러워 말을 붙여보고 싶어도 옆의 아빠 엄마가 이상한 눈초리로 볼 것 같고, 아침저녁 밝은 얼굴로 만나는 학생들에게 무언가 묻고 칭찬하고 싶어도 두렵다. 특히 여학생이 경우 성희롱이 아닌지 의심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나는 교직에 있었다는 배짱으로 한 마디씩 물음을 던지다 보니 학생들도 이제는 먼저 인사를 하곤 한다.요즘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밀폐된 아파트 문화가 낳은 이웃에 대한 서로의 배려 부족이리라. 1970년대 아파트는 주로 5층짜리였지만 그때 친구 집에 갔다가 그의 아내에게 들은 얘기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타지에서 온 신혼부부라 이웃도 없어 남편 귀가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때, 윗층에서 아이들이 뛰고 웃는 소리에 이웃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마음 푸근히 고마웠단다.이웃이 사라진 도시의 아파트 문화, 그나마 있던 반상회도 없어져 이제는 같은 통로의 이웃 사정도 쉽게 듣지 못한다. 옛날은 수평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수직 이웃이라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다. 근래 어느 도시마을생활 인식조사에서 ‘인사 나누는 이웃-5명 이하’가 51.3%로 절반을 넘는다니….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가까운 이웃은 일본과 중국인데 사이좋게 동아시아의 번영을 같이 이루어 가면 좋으련만 서로가 층간소음을 내며 신경을 날카롭게 하니 안타깝다.‘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속담을 되새겨본다.

2020-11-01

詩가 흐르는 뜨락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스치는 바람 결에 풍경소리 맑고 풍금소리 정겹게 들리는 풍경이다. 바람소리 새소리가 간간이 울리는 서옥(書屋)의 뒤뜰에서 잔잔한 배경음을 바탕으로 시 낭송하는 소리와 문학 얘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담소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도심의 한 켠에서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시를 읽고 시 이야기를 나누는 이른바 ‘시가 흐르는 뜨락(詩뜨락)’의 행사 장면이다.‘도심 속 작은 쉼터 아늑한 정원에는/이따금 풀꽃의 속삭임이 들려오고/새들의 지저귐 같은 낭랑함이 퍼진다//시(詩)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그림을 그리듯 날개를 달아주니/비로소 시의 꿈이 피고 맵시마저 곱구나//별빛처럼 타는 운율 영롱함을 더하고/도란도란 엮는 시담(詩談) 달빛에 젖어 드네/뭉클한 감미로움이 새록새록 아리네//꿈결같은 시가 흐르는 뜨락에는/바람의 몸짓으로 시흥(詩興)이 어우러져/새로운 문화의 요람 향기 짙게 울리네’ -拙시조 ‘ 시(詩)가 흐르는 뜨락’ 전문.‘詩뜨락’ 행사는 일종의 시낭송 콘서트다. 경향의 저명한 시인이나 문인을 우거에 초빙해서 시낭송가들의 낭랑한 음성으로 음악을 곁들여 시를 낭송하고 시인의 시작(詩作) 배경과 삶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누는 시 누림이다. 즉, 저자와 독자가 같은 공간에서 가까이 만나 소통하고 문학적으로 교감하는 시 나눔 마당이다. 이러한 행사는 포항시낭송협회와 필자가 공동으로 작년부터 열기 시작하여 지난 주말에 네 번째로 열리면서 세간에 회자되어 시 감상과 시 낭송 콘서트의 대중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한 편의 시에는 소설같은 스토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시에는 응축된 시간과 함축된 생각, 농축된 경험과 절절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는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준다고 했던가. 때로는 연분홍 편지 같고 아스라한 절해고도 같으며 한편으론 뇌성벽력처럼 일갈하는 시를 진지하게 또는 애절하게 낭송하는 것은 시의 행간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활자화된 시에 어울리는 멋진 옷을 입혀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에게서 떠난 시는 독자의 몫이라지만, 시에 걸맞는 음색으로 옷을 입혀서 행과 연의 율격에 따라 목소리의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표정과 몸짓으로 다시 우려냄은 시를 애틋하고 살갑게 가슴에 품는 일이다.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듯이 시낭송은 또 다른 색조의 감동을 전해준다. 저마다의 목소리와 특유의 표정, 몸짓으로 연출해내는 시낭송은, 시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가슴을 열게 하여 손으로 만져질 것만 같은 느낌과 운치를 더해준다. 시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 고운 음색과 조화로운 음률로 시를 단풍처럼 물들게 하는 것이다.시의 날(11월 1일)이 있는 계절에 별빛처럼 시가 흐르고 꿈결처럼 시 얘기가 피어나는 뜨락에서 시의 맛과 멋을 음미하며 교감하고 담소하는 아름답고 귀한 자리가 많아지고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이러한 시 울림은 코로나19로 인해 소침해져가는 마음을 위무하고 활기를 더해주는 감성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11-01

오만(傲慢) 증후군

증후군(症候群)이란 질병의 몇가지 징후가 늘 함께 나타나지만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아니할 때 쓰는 용어다. 영어로 신드롬이라 한다.권력이란 남을 합법적으로 지배하는 수단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강제하는 공권력 같은 것을 권력이라 한다. 권력이 꼭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권력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정치권력만큼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없다.권력이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합법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신중히 사용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권력을 남용해서 빚어진 불행한 일은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있다. 독재자의 말로 등이 그런 것이다.미국의 심리학자 대커 켄트너 교수는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린 자는 뇌 손상을 당한 사람처럼 공감 능력을 상실한다”고 말했다. 타인을 생각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실패에 대한 걱정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권력자의 공감능력 부족 등의 현상을 오만 증후군이라 부른다.상당 시간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리게 되면 이런 증상은 더 심각해진다. 권력자는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자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은 외면한다. 권력 집단의 판단에 대해 언제나 자신감이 넘쳐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정을 1인 운영체제로 만들고 그에게 견제와 균형을 요구했던 참모 다수를 해고한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는 오만한 권력의 행태로 보는 시각이 많다.오만 증후군은 일종의 권력이 낳은 부작용이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국민의 뜻을 외면한 권력자의 독주가 빚은 잘못된 결과물이다. 집권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5년 전 국민과 약속했던 당헌 규정을 내팽개치고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로 내부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여당의 오만 증후군이 또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1-01

미·유럽 코로나 재확산… 남의 일 아니다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다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말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를 연일 50만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누적 확진자도 4천만명을 돌파한 지 2주 만에 500만명이 더 추가됐다. 하루 사망자도 7천명을 웃돌고 있다고 한다.가을철로 접어든 미국에서는 지난 30일로 누적 확진자가 900만명을 훌쩍 넘겼다. 현재의 감염속도로 보면 미국의 누적자 수 1천만명 돌파는 시간문제다. 하루 신규 확진자는 가을철인 이달 들어 줄곧 늘어 지난 16일 6만여명이던 것이 31일 사상 처음으로 10만명을 돌파했다.독일은 2일부터 음식점과 술집, 영화관, 공연장 등 여가시설 폐쇄하는 부분 봉쇄에 들어갔으며, 영국도 봉쇄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국내 사정도 만만치가 않다. 최근 5일간 국내의 신규 확진자 수는 연속 세자리 수를 유지하고 있다. 핼로인데이인 지난달 말 서울과 대구 등 대도시 도심 유흥가는 젊은이들로 넘쳐 코로나 재확산 우려를 키웠다. 이태원발 집단감염과 같은 사례가 또다시 발생할지 유심히 지켜봐야 할 사정이다.대구에서는 대구예수중심교회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자가 23명으로 늘어났다. 수능을 앞둔 가운데 대형 학원에서도 확진자가 새로 발생하는 등 방역당국이 잠시라도 한눈을 팔 사이가 없다.또 막바지 단풍행렬이 코로나 확산의 고리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독감백신 접종으로 인한 사망신고가 이제 전국적으로 80명을 넘어섰다. 코로나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낮다고 하지만 일부 시민의 백신접종 기피 요인은 여전하다.정부가 코로나19의 경계를 1단계로 낮추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방역경계 분위기가 많이 느슨해졌다. 이미 1단계 기준선인 신규 환자 50명선을 넘어선 지 꽤 됐다. 정부도 민생과 경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자칫 방심하는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폭발할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겪고 있는 실패 사례들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의 방역망 확충에 조금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 새로운 방역조치를 마련했으나 근본적으로 사회구성원 각자가 철저한 방역의식을 갖고 수칙을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2020-11-01

‘팬덤(Fandom) 정치’ 망국론

안재휘 논설위원지구상에 광신정치(狂信政治)가 처음 나타난 게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여전히 치밀한 선동전략에 의해 지도자를 신격화하여 미친 듯이 지지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긴 왕조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백성의 섬김이란 충효(忠孝) 사상을 중심으로 강요된 복종이었다. 나라는 온전히 왕의 소유물이고 백성은 오로지 얻어먹는 비렁뱅이 취급을 당했다.북한은 그 인민들이 동족이라는 사실을 빼고 나면 완전히 다른 행성의 나라다. 그 독재구조를 보면 왕조시대에서 오히려 퇴보한 국가체제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발전해온 우리나라에서도 양태는 조금 다를지언정 결과는 마찬가지인 전체주의의 비극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대한민국 건국 이래 팬덤(Fandom) 정치는 늘 있었다. 8·15광복 이후 나타났던 팬덤 정치는 교육받지 못한 국민이 일부 명망가를 중심으로 한정된 정보를 갖고 극소수가 따로 뭉치는 정도였다. 전혀 새로운 양상의 선진적 팬덤 정치를 만들어낸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노무현이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에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나타난 팬덤 현상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독창적인 정치모델이었다. 투신자살이라는 비극적 종말을 맞았지만,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팬덤 정치의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 가능성을 상속받아 더욱 정교해진 선동기술에 의해 정치를 만들어갔다. 작게는 25%에 이르는 범(凡)친문계열 골수 지지층의 정서는 독특하다.친문계열은 친노가 그 핵심이다. 하지만 친노와의 차이점은 분명하다. 친노의 핵심인 노사모는 ‘노무현이 그저 좋은’ 사람들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친문은 다르다. 특히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의 준말)으로 불리는 핵심은 노사모와는 달리 이익 집단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진중권 같은, 한때 진보 논객이었던 사람들은 그 변질에 치를 떤다.조국 사태 때는 물론이고, 작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해괴한 권력 힘자랑 현상에서 나타나는 그 자신감의 저변에는 바로 그 팬덤 정치에 대한 확신이 존재한다. ‘대깨문’들의 행태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이성 따위는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 오로지 확증편향으로 굳어진 아적(我敵) 개념만이 그들의 언행 양식 일체를 결정한다. 누군가 좌표를 찍어주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몰려가 때려 부수는 원초적 복종만이 작동할 따름이다.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뒤집고 내년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래도 이기고, 저래도 이긴다는 팬덤·광신정치에 물든 자신감이 그들의 행태를 뒷받침한다. 이제 이 문제는 온전히 국민의 판단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었다. 괴물처럼 변해버린 팬덤 정치가 이 나라의 또 다른 치유 불능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망령이 어른거리는 우울한 11월이다.

2020-11-01

민주당의 뻔뻔한 ‘대국민 약속’ 파기 쇼

민주당이 자당에 귀책사유가 있는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뒤집고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당헌 개정을 추진중이다. 5년 전부터 이 당헌을 내세워 민심의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나서 막상 상황이 닥치니 손바닥 뒤집듯이 소신을 엎은 셈이다. 언어도단의 행태를 정당화하기 위한 온갖 궤변들이 난무한다. 뻔뻔한 ‘대국민 약속’ 파기 쇼에 대한 국민의 심판에 귀추가 쏠린다.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96조(재·보궐선거에 대한 특례) ②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라고 돼 있다.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드러나는 멋들어진 대목이다. 이런 정신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모두 큰 혜택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정당이 국민에 대한 약속을 파기하는 일은 정치권의 항다반사(恒茶飯事) 다. 그런 차원에서 국민의힘이 이 문제를 놓고 지나치게 거품을 무는 일이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이었다면 과연 약속을 지켜냈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더욱이 대선 1년 전에 치러지는 이 나라 2대 도시 모두의 보궐선거라는 특수성도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속 보이는 뻔뻔한 행태는 소화가 잘 안 된다.이낙연 대표는 투표도 하기 전에 결과부터 말해 ‘전 당원 투표’라는 형식 자체를 하찮은 ‘쇼’로 만들어버렸다. 이 대표는 “오래 당 안팎의 의견을 들은 결과, 공천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결론을 미리 밝혔다. 약속을 어기게 된 데 대한 ‘반성 쇼’가 이제 또 한바탕 이어질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결과물로 읽힌다. 민주당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쇠망치를 휘둘렀다. 이제 그 심판은 오로지 유권자의 몫이다. 이낙연 대표를 향해 “지지자들의 2차 가해 속에 저를 방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사과하는 것입니까?”라고 절규하는 고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 A씨의 절규가 아프다.

202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