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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단지 셰어링’서비스

세대별로 갑자기 필요한 물품이나 부탁할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마을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단지셰어링’서비스가 새롭게 소개돼 관심을 끌고있다.예를 들면 컴퓨터가 갑자기 말썽을 일으켜 쓸 수 없게 됐을 때 “노트북 한나절만 빌려주실 분 찾습니다”라고 올리면, 주민 가운데 그날 하루 컴퓨터 쓸 일이 없는 사람이 “제가 빌려드릴게요”라고 댓글로 응답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급하게 외출해야 할 일이 생겨 아이를 잠깐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거나 집들이를 해야 하는데 큰 상이나 그릇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런 앱을 이용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골프 강사나 아이 미술·음악·운동 선생님 등을 찾거나, 유모차·장난감과 어린이용 자전거 등이 필요한데 잠깐 쓸 용도여서 목돈주고 장만하기 애매할 때도 유용하다.단지셰어링 서비스 아이디어는 어린 시절 웬만한 것은 마을 주민끼리 다 해결할 수 있었던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됐다. 아이 학교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데 돈이 떨어졌으면 이웃에게 빌렸고, 갑자기 호미나 낫이 필요할 경우 이웃집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급하게 외출을 할 때도 마주치는 동네 주민에게‘우리 애들 밥 좀 챙겨줘’라고 말하면 됐던 시절이었다.이같은 앱서비스를 개발, 제공하고있는 쏘시오리빙은 2018년 설립해 시작한 종합 주거 서비스에 아파트단지 주민끼리 물품과 재능을 공유할 수 있게했다. 이 서비스는 현재 서울 강남의 아크로비스타·신반포자이와 수원시 꿈에그린 등 5개 아파트단지 5600세대를 대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문화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14

秋 입장문, 사과·해명 빙자 ‘수사 가이드 라인’

아들의 군복무시절 ‘황제 휴가’ 논란으로 곤경에 처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아들의 검찰소환 조사에 맞춰서 사과의 뜻을 담은 입장문을 내놨다. 그러나 추 장관의 글은 ‘찔끔 사과’에 ‘잘못이 없다’는 변명을 섞어낸 ‘짧은 자서전’, 최소한 검찰에 내린 ‘수사 가이드 라인’으로 읽힌다. 지지자들을 향한 구구한 비호 청탁서가 돼버린 이 글은 의역하면 교묘한 ‘선전포고’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이래저래 검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추미애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제 아들의 군 복무 시절 문제로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다. 국민께 정말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은 부인했다. 추 장관은 아들이“병원에서 수술 후 3개월 이상 안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지만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부대로 들어갔다”라며 “이것이 전부”라고 규정했다. “그렇기에 딱히 절차를 어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도 덧붙였다.추 장관은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면서도 남편의 교통사고사에다가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신파조의 호소를 이어갔고, 마지막엔 뜬금없이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결의로 맺었다. 국민을 ‘개혁’만 외치면 무조건 박수를 보내는 바보로 취급하는 행태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온갖 궤변을 총동원해 추 장관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 황희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을 제기한 사병의 실명을 공개하며 ‘단독범’으로 규정했다. 청와대는 추 장관 가족의 민원제기 사실이 담긴 국방부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느닷없이 ‘공직 기강 감찰’을 선언했다. 내부 제보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뜻으로 해석된다.추 장관은 입장문에서 ‘거짓과 왜곡은 한순간 진실을 가릴 수 있겠지만,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고 했다. 온 나라를 뒤흔들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퍼 올리고 있는 이 사건의 참담함을 근근이 견디는 국민의 심정으로 추 장관에게 자신의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거짓과 왜곡과 강압으로 진실을 영원히 가릴 수는 결코 없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야말로 진실을 밝힐 시간이다.

2020-09-14

울릉도 특별재난지역 신속 지정해야

김두한경북부제9호 태풍 마이선과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잇따라 동해안을 관통하며 울릉도가 큰 피해를 입었다. 섬 전체가 무너지고, 부서지고, 깨지고, 날라가고, 침몰하는 등 멀쩡한 곳의 하나도 없을 정도로 초토화됐다.울릉도 주민 80%가 직간접적으로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관광객이 크게 줄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태풍마저 연이어 덮치며 아사지경으로 내몰았다.육지와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여객선 선착장과 터미널이 부서지고 울릉도 대동맥인 섬 일주도로가 무너지고 뜯겨나갔다. 50t급 시멘트 구조물이 날아다닐 위력의 파도가 덮쳤으니 해안가를 따라 개설된 도로의 파괴는 짐작하고 남을 일이다.지난 3일 울릉도를 관통한 태풍 ‘마이삭’은 최대순간파고가 19.5m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파고를 기록했다. 아파트 7층 높이의 파도가 덮친 셈이니 해안가 시설물과 주택이 온전하게 버텨낼 수 없었다.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파괴된 울릉도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재난, 재해가 발생하면 피해를 정리 입력하는 NDMS(국가재난관리시스템)가 있다. 여기에 울릉도 피해를 입력한 결과 546억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아직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피해는 제대로 산정하지 않은 집계이니 울릉도의 피해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특별재난지역선포기준 피해예상금액 75억 원 이상이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시행령 제69조’에 의거 최종 피해금액이 확정되기 전 예비조사를 거쳐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할 수 있다.정세균 국무총리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국가관리연안항, 국가어항 시설의 책임자인 해양수산부장관까지 피해현장을 목격했다.따라서 당장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 울릉도는 육지와 달리 피해 복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울릉도의 태풍 피해복구를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울릉주민들의 울분을 달래고 합리적인 법적 근거에 따라 정부는 자체없이 울릉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울릉도주민들이 삶의 의욕을 되찾도록 해주기 간곡히 바란다./ kimdh@kbmaeil.com

2020-09-13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

최근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강력한 두 개의 태풍이 경북 동해안 지역을 강타하며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울릉도는 방파제가 유실되고 차량과 선박이 파손되었으며 도로도 유실되었다. 포항을 비롯한 경주, 영덕, 울진 등지도 집중호우로 한 해 농작물이 추석을 앞두고 쓰러지고 심지어 어디에 있던 것인지도 모르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버젓이 남의 논밭에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코로나19로 어렵던 시기를 보내고 있던 소상공인의 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돈을 들여 세워두었던 입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건물 외벽에 전기장치까지 달아 두었던 세로형 간판은 구겨지고 떨어졌다. 어느 모델의 옥상 간판도 넘어졌지만 옥상 안쪽으로 넘어져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다. 아는 지인이 경영하는 철강공장도 지붕이 구겨지고 훼손되었지만, 그 옆 공장의 지붕은 아예 이번 태풍이 뜯어갔다고 한다.포항시 등 지역 공무원들은 불어난 강물로 오염된 산책로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부러진 가로수를 처리하는 등 불철주야 고생하였다. 그동안 공무원들의 일 처리에 불만이 있던 시민들도 이번에는 박수를 보냈다. 코로나19사태가 확대된 이후부터 최근 태풍 피해 복구 등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올해만큼은 공무원들이 모두 월급 값 이상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본다. 이번 재해는 특히 아주 가끔 나타나는 초대형 태풍이었기에 아무리 사전에 철저하게 단속하고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힘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이겨왔기에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이처럼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이후부터는 복구가 최대 현안이 된다. 하지만 태풍이라는 자연재해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지금처럼 강풍으로 훼손되는 주요 대상이 늘 같다는 것이 문제다. 간판이다. 그동안 상인들은 자기 가게 홍보를 위해 어느 한 곳이 돌출형이나 세로형 간판을 만들면, 그 옆 가게는 그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한 간판으로 대응해왔다. 입간판이나 돌출간판, 세로형 간판 등은 오래전부터 도시미관을 해치고,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각을 어지럽게 하며, 보행자에게는 불편을 주는 대상이었다.약 16년 전인 2004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경기도 화성과 판교지역의 건축주나 건물사용자가 건물에 간판을 함부로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최근 두 도시를 가보지 않아 지금의 모습은 모르지만, 그때 정부가 내세운 기준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신도시 건축물 간판 경관제도’라는 이 정책은 무질서하고 원색적인 건물 간판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교통사고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기존 도시보다는 신도시 건설 단계부터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여겨 시행했던 것 같다. 당시 계획으로는 업소당 가로형 간판 1개만 허용하고 세로형 간판은 설치를 금지하며 돌출형 간판은 4층 이상 건물에서 통일된 형태로 설치할 때만 허용하였다. 또 가로형 간판의 경우 3층 이하에는 위층과 아래층 사이 폭 이내에서만, 그리고 4층 이상에는 건축물 상단과 측면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하며, 간판의 색채는 주변 건물이나 간판과 어울리지 않는 순도 높은 원색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문자도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체 사용을 억제하는 상당히 강력한 방침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강한 의지로 규제하더라도 언제나 그 틈새는 있기 마련이다. 상인들도 자신의 가게가 생존하고 더욱 번창하려면 더욱 기발하고 크며 화려한 간판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지금에 이르렀다.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간판(看板)’이라는 존재와 용어 자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거래는 시장이 중심이었고, 그곳에서 거래를 위해 모인 상인들은 호객하거나 자신의 거래목적을 위해 장터를 돌아다니다 적당한 상인을 발견하고 거래하거나 거간꾼을 통해 매매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이후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가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이 상회 등 회사조직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물론 유사한 기능은 있었다. 주요 건물에는 간판이라는 용어가 아닌 현판이나 편액 등이 걸렸다. 때로는 나무판자에 붓글씨를 써서 대문 근처에 걸어두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도입한 간판과 유사한 기능을 가지면서 지금의 네온사인과 같이 밤에도 빛나는 초롱을 걸던 곳도 있었다. 깊은 밤중 산길을 밝혀주는 지금의 여인숙 기능을 함께 하였던 주막의 등불이었다.이처럼 간판이라는 존재는 근대 이후든 이전이든 그 가게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용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려주는 용도 등에 일차적 목적이 있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멀리서라도 자신의 가게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용도로 오랫동안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때마다 다시 그림이나 글자를 새로 쓰던 아날로그 간판은 순식간에 글씨를 바꿀 수 있는 디지털 간판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누구나 지닌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위치 기능을 이용하여 가게 이름부터 주변 맛집 검색 등을 통해 정확하게 해당 지점까지 지도로 안내해주고 있다. 굳이 입간판, 돌출간판, 세로형간판 등 온갖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간판이 없어 가게나 어떤 업체를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대형 건물에 입주한 기업이나 점포도 굳이 머리를 치켜들어 빌딩 바깥의 간판을 보고 몇 층에 있는지 찾을 필요도 없다. 건물 로비에 들어가면 네모난 아주 작은 크기의 판에 각층별로 입주한 업체나 가게를 깨알같이 써서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간판이다.우리는 간판의 크기와 모양을 생각하기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간판이 화려하고, 네온사인을 두르고 원색적인 글자로 손님을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가게의 성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유통점이라면 그 점포에 진열된 상품들의 품질이나 상태가 양호하고 다양성이 갖추어져 있고, 접객하는 종업원의 친절도가 고객의 재방문을 결정한다. 음식점이라면 아무리 수시로 실내 장식을 바꾸고 온갖 진귀한 진열품으로 가게 분위기를 화려하게 꾸미더라도, 정작 그 가게의 정체성인 음식점으로서 음식이 맛없거나 청결하지 않고 손님들이 불편하면 소용이 없다.이번에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연속으로 강타하면서 지역 곳곳에 있는 많은 사업체의 간판을 부수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당장 망가진 간판부터 새로 만들기 전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였으면 한다. 또다시 지금처럼 태풍이 와서 강풍으로 날아갈 세로형 간판이나, 입간판, 돌출형 간판을 굳이 돈을 들여 마련해야만 할지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강력한 태풍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동안 도시미관을 헤친다는 지적이 있었던 간판이라면 더더욱 이번 기회에 깔끔한 작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스스로 우리는 간판보다는 내용이 충실한, 간판이 없어도 경쟁력이 높은 가게임을 자랑해보면 어떨까. 명함에 금박을 입혔다고 그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기다. 시간이 흐르면 녹슬고 태풍 때마다 날아갈까 노심초사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에 있음을 잊지 말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13

고3 수험생 입시 불이익 없게 만반의 준비를

100일도 채 남지 않은 대학수능시험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고3 수험생의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능일이 연기되는 등 입시 전반이 심각히 흔들리고 있어 수험생에 대한 교육당국과 학부모의 관심이 각별히 요구되는 때다. 교육부는 한차례 연기한 12월 3일에 수능을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듭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의 분위기로 보아 장담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언제 어디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대유행을 할지 몰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방역당국이나 교육당국은 감염병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책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고3을 비롯 전 학년이 대면수업을 하는 등 학교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3의 경우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린 1학기만 해도 전년보다 한 달 늦게 온라인 개학을 한데다 대면수업은 5월에 들어가서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학생들의 학습 공백으로 학교별, 학생별 학력 격차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재수를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의 목소리는 지금도 들린다. 수능일의 연기로 일부대학이 수능 전으로 잡아둔 논술고사를 수능 후로 옮기는 등 대학입시 일정변경도 학생들에게는 혼란스럽게 느껴졌다.올해 고3의 입시 불이익을 우려하는 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구시 교육청이 2021학년 대입에 대비해 수시 및 정시모집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맞춤형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한다고 한다. 시의적절한 대처방법으로 보인다.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학교당국의 정확한 입시관련 정보의 신속한 전달은 매우 유익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이유로 학생들을 각자도생의 길로 가도록 방치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일선학교와 학부모들의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돌발변수는 될 수 있으나 학생들의 진로는 막을 수 없다. 학교당국과 학부모들이 긴장감을 갖고 수험생을 독려해가야 한다.

2020-09-13

‘사석(捨石)’ 놀이

안재휘 논설위원바둑판 격언 중에 ‘기자쟁선(棄子爭先)’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돌 몇 점을 희생시키더라도 선수(先手)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수는 돌을 아끼고 상수는 돌을 버린다’는 속담도 있다. 바둑판에서는 초심자일수록 자기편 돌은 하나라도 죽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고수는 사석작전(捨石作戰)에 능하다. ‘버림돌’을 잘 써야 고수다.‘내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뼈를 자른다’는 뜻인 육참골단(肉斬骨斷)은 일본 사무라이들의 세계에서 하수가 고수를 상대할 때 쓰는 비법으로 통한다. 변화무쌍한 정치권의 쟁패에도 이 작전은 왕왕 구사된다.연초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역논란이 도무지 종식될 기미가 없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2건의 ‘추 장관 탄핵’ 국민청원에 각각 24만여 명, 21만여 명의 동의를 얻으며 답변 요건을 충족하자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국방부의 급변이 특히 눈에 띈다. 국방부는 관련 규정들을 구구히 들며 전화로 휴가 연장한 추 장관 아들의 휴가 연장 절차에 하자가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휴가연장 명령서나 청탁 전화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나마 국방부의 해명이 민주당과의 협의 절차를 거쳐서 작성되고 공유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추 장관 아들 측의 법적 대응도 주목거리다. 추 장관 아들 서모 씨 군부대 배치 청탁 의혹을 보도한 SBS와 소속 기자를 형사 고발한 데 대해서는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가 ‘언론 길들이기’라는 비판과 함께 고발 철회를 촉구했다.정부와 민주당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추 장관 아들의 ‘황제 휴가’ 논란에 대한 국민 정서는 험악하다. ‘병역’이라는 민심의 역린을 건드린 일이어서 갈수록 고약해질 공산이 크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해법은 도외시한 채 스스로 판검사 밑으로 기어드는 현상은 우리 정치의 천박성을 상징한다.드디어, 정권이 추미애 장관을 ‘사석(捨石)’으로 놓고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 때도 그랬지만, 팬덤이 지배하는 돌연변이 정치풍토 속에서 온 나라가 난리를 쳐도 거시적 계산법으로는 ‘총알받이’를 장기간 두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 야권은 지금 ‘전술’에서는 이기고 ‘전략’에서는 지는 게임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헐벗은 경제도, 조국도, 윤미향도, 윤석열의 위기도 잊히고 있다. 윤영찬도 곧 잊혀질지 모른다.무능한 정권에 대해 ‘퇴진’을 요구하는 제2의 촛불 민심은 ‘코로나19’가 대신 막아주고 있으니 문재인 정권은 참 복도 많다. 적지 않은 국민이 선동 장난질에 부화뇌동하고 선심 정책에 휘둘리는 수준에 머무는 현실은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던가. 독재 타도를 위해 평생을 뜨겁게 살다 간 고(故) 함석헌 선생의 말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른다.

2020-09-13

개천절 집회·추석, 부디 지혜롭게 넘기자

보름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 명절 귀성풍속과 일부 보수단체의 개천절 집회 문제를 놓고 뒤숭숭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이라는 대명제 앞에 이동과 집회가 유보돼야 한다는 명분은 역연하다.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잇달아 나서서 온라인 성묘와 이동자제를 권고했다. 야당 지도부는 보수단체의 개천절 집회 자중을 호소하고 나섰다. 국가적 방역위기를 지혜롭게 넘겨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정세균 국무총리는 신종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추석 연휴 기간 이동자제를 권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국민에게 추석 명절에 이동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는 개천절에 또다시 대규모 거리집회가 열린다고 하는데, 부디 여러분의 집회를 미루고 이웃 국민과 함께해주길 두 손 모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개천절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출당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안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도심 집회는, 중도층 국민들을 불안하게 해서 등 돌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에게 좋은 핑곗거리만 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15 광화문 집회는 성공한 시위가 아니었다. 코로나19라는 재앙의 특수성을 외면한 집회강행 결과, 온 사방천지로부터 맹비난만 샀다. 현재 상황에서 오프라인 군중집회는 효과적인 의사표출 수단으로서는 하지하책(下之下策)에 불과하다. 아무리 소리 높여 ‘정권 퇴진’을 외쳐 봤자, 그 소리가 국민 귀에 들어가 민심이 반응하기를 기대하기는커녕 공포의 바이러스 전염병이 훨씬 더 빨리 가까이 다가와 생명을 위협할 따름이다.시골 고향 집에서 자식들 기다리는 재미로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올해는 참아야만 한다. 이제 민중의 의사표시도 ‘온라인’ 등 비접촉 수단을 개발하여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살아내야만 할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슬기로운 선택이 절실히 필요하다. 명절풍속도 귀하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우선 건강하게 살아남고 봐야 할 것 아닌가.

2020-09-13

김치의 힘

김치는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이다. 지역과 가정마다 담그는 방법이 다양해 우리나라에는 200종이 넘는 김치가 있다.지역별로 보면 추운 북쪽지방은 고춧가루가 적게 들어간 백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등이 유명하며 영남지방은 짠 김치, 호남지방은 매운 김치가 특색이다.김치에 들어가는 고추에는 비타민이 매우 풍부하고 마늘과 파, 생강 그리고 젓갈류 등이 가미되면서 김치는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한 건강식품이다. 미국의 건강잡지인 ‘헬스’는 세계 5대 식품으로 한국의 김치를 선정했다. 웰빙식품인 김치에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소화를 원활히 하고 암을 예방하는데 유익하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한방에서도 김치를 음양이 조화된 완전식품으로 설명한다. 성질이 서늘한 배추와 무가 열이 많은 고춧가루, 마늘, 파, 생강 등과 음양의 조화를 잘 맞춘 식품이라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동국세시기’가 김장 담그기와 장 담그기를 우리 민족의 중요 연례행사로 소개할 정도로 김치는 우리민족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최근 프랑스의 한 연구진이 코로나19 사망자수와 국가별 식습관 차이간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진은 확진자 대비 사망자수가 적은 국가로 한국과 독일을 주목했다.두 나라는 발효된 배추와 양배추를 주된 부식으로 먹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국의 김치와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다. ‘사우어크라우트’는 양배추를 시큼하게 절여 발효시킨 음식이다.코로나 사태 속에 국내 김치의 수출이 전년보다 무려 44%나 증가했다. 국내 김치업계는 김치가 코로나 면역력 증강에 좋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김치의 해외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김치의 힘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3

“뭉쳐라”, “흩어져라”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뭉쳐야 찬다’란 tv예능프로그램이 있다. 한 때 대한민국 내노라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축구종목으로 한 팀을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축구 반지의 제왕 안정환 선수가 감독으로 팀을 이끈다. ‘전설’, ‘신’, ‘천하’, ‘제왕’, ‘대통령’ 같은 으리으리한 수식어를 장착한 왕년의 최고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동호회 팀들과 겨뤄 처참하게 연패를 당했다. 어느새 목표치 1승을 넘어 제법 하는 축구팀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재미와 의미를 더해간다. 자신들과 무관했던 새로운 종목으로 one팀을 만들어 좌충우돌하는 설정이 쏠쏠한 재미다. 선수와 감독시절 버럭 소리의 대명사였던 농구대통령 허재의 허접한 말과 유행어들이 웃음으로 반전을 이루며 감칠 맛나게 한다. 웃음 뒤에 밀려오는 잔잔한 의미들을 곱씹어 보게 된다. 지나가는 세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경험하지 않은 종목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사람들이 패배를 받아들인다. 내려놓음의 미학을 음미하게 된다.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능력을 과신하는 구성원들이 많은 조직은 갈팡질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함께하며 양보, 희생, 배려의 미덕을 보인다.전혀 다른 종목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one팀을 이뤘지만 개성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 팀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뭉쳐서 살아가는 지혜다. 감독의 목표달성을 위한 열정, 적절한 전술, 연공서열을 넘는 파격적인 출전 선수 선발, 선수들의 건강을 챙기는 자상함에 조직의 리더로서 역량도 보게 된다. ‘뭉쳐서 찬다’ 축구팀은 뭉쳐서 잘되고 있는 조직 같다.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뭉쳐서 잘했다. 몽골의 침략도, 임진왜란도, 6·25 남침도 모두 뭉쳐서 막아냈다. 일제강점은 ‘조선인은 세 명만 모이면 싸운다.’는 허언으로 뭉쳐서 저항을 할까 두려워했다. 코로나 사태로 뭉치는 일이 금기시 되고 있다. 뭉치면 죽는다는 말과 동의어로 ‘흩여져야 산다’는 메카폰 소리가 도처에서 울린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크린은 “join or die”(뭉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말로 영국 식민에 저항의 메시지를 던졌었다.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호소했다. 건국 후 좌우 이념의 극한 대립에 통합과 단결을 외쳤다.작금의 대통령은 ‘흩어져야 산다’고 한다. 이념과 정체성이 대비되는 대통령들의 외침에서 공교롭게도 정치적 메타포를 보는 것 같다. 뭉침은 저항의 최고 공격 무기다. 뭉침은 억압의 공고한 방패다. 부동산 정책, 장관아들 군복무 스캔들 등 난제들로 웅성거림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뭉쳐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광장은 나쁜 바이러스로 이미 폐쇄되었다. 한가위 달빛을 그리며 달리고 싶던 철마는 주춤거리고 있다. 간만에 큰 제사상 받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싶던 조상님도 올 추석은 혼자 계셔야 할 처지다.암은 혈류와 신진대사의 막힘이다. 웅성거림이 막혀 밀폐된 중얼거림은 대중의 암이 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방패삼아 이곳저곳 웅성거림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닐까? 곱지 않은 시선이 나돈다. 뭉쳐서 살아났었던 민족이다!

2020-09-13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김현욱시인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면서 반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번밖에 못 만나고 있다. 저번에는 태풍 때문에 하루 등교하는 날조차도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했다.아이들 만나서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망연자실이다. 최초로 학급 선거를 온라인으로 치러야 할 판이다. 글기지개 2권 넘어가는 아이들도 있어 진심으로 격려하고 새 공책을 챙겨줘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학기 초 꿈꿨던 많은 것들. 이를테면, 시 암송, 시 쓰기, 글기지개, 학급카페, 놀이 활동, 가정독서토론 등등이 코로나19로 물거품이 되는 꼴을 보자니 코로나 블루가 아니더라도 가슴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가장 걱정스러운 모습은 교실에 등교한 아이들 중 몇몇이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존다는 것이다. 물어보면, 십중팔구,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동영상을 봤다고 한다. 생활리듬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뭐든지 귀찮아요, 귀찮아요, 귀찮아 타령을 하는 아이도 늘었다.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또한 학부모이므로 고충을 모를 리 없다. 눈치를 살살 보면서 벌써부터 요령을 피우는 딸아이를 보자니, 이를 어쩌나, 싶다.누굴 탓하랴. 원격수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담임과 학부모가 좀 더 관심과 인내를 가지고 도와주는 수밖에. 코로나19 치료제 희소식이 들리니 아무쪼록 내년에는 마스크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어울리며 수업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오은영 교수의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는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와 부모들의 고민을 담은 책이다.5학년 담임으로서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특히, 자녀와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시점을 ‘공부’로 잡은 것은 몸소 체험한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통 공부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말을 안 들어요. 공부를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아이는 없거든요. (중략) 이렇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부터 아이와 부모는 사소한 일에 티격태격하게 돼요.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하는 거죠.”딸아이의 공부, 특히 수학과 영어를 봐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딸에게 화를 많이 냈다. ‘내가 왜 이러지’란 생각을 자주 하면서. 그전에는 늘 “우리 은유 참 열심히 했네.”, “우리 은유 자랑스럽다” 이런 말들을 자주 했는데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이가 잘 못 하는 것에만 도끼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그 모든 씨앗들이 심어져 있을 것이기에//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박노해 시인의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라는 시를 알아도 현실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라는 시구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본다. 경험상, ‘공부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란 말도 함께.

2020-09-13

내 고장 9월은 사과가 익어가는 시절

윤경희청송군수“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렇게 시작하는 이 글은 우리 청송 근교에 위치한 안동의 저항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그런데 시가 창작됐던 일제강점기 당시 안동에는 사실 청포도가 재배되지 않았다. 조국 광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친 모습을 알알이 영그는 청포도 송이에 비유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내 고장 청송의 7월은 사과가 영그는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추석을 앞둔 지금 9월은 명품 청송사과가 탐스러운 빛을 발할 시간이라고.“청송사과”는 따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지역 최고의 특산품이다. 필자는, 청송사과의 명성이 날로달로 높아지는 이유가 결코 변하지 않는 명품 맛에 있다고 본다. 청송은 일교차가 매우 크고 해양성과 내륙성 기후가 교차하는 등 사과가 자라기 위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그 맛이 일품이다. 또 농가에 대한 지속적인 영농교육 및 선진재배기술의 도입으로 타 지역보다 상품성이 우수하며,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해 신선도가 오래가므로 맛 또한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다.이를 증명하듯 청송사과는 2020년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사과브랜드 부문에서 8년 연속 대상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특히 차별화 측면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는데, 이는 소비자 반응이 우수한 시나노골드 품종을 ‘황금진’ 브랜드로 개발해 황금사과 이미지를 선점하고 붉은색으로만 치우친 사과 시장에 시각을 자극하는 ‘컬러 마케팅’의 남다른 전략 덕분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황금사과는 사과 소비가 부진한 젊은 층에 인기가 높은 품종이어서 미래 고객인 젊은 세대를 겨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군이 만들어가는 황금사과의 미래가 전설처럼 황금빛으로 물들 것이라 예상하는 건 당연지사.“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천혜의 자연이 만들어 준 생육 환경 위에 다채로운 정책들이 얹어졌다. 그 시너지 효과는 명품 청송사과의 품질, 유통 및 홍보 등 다방면에서 상호 상승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앞서 언급한 청송황금사과 브랜드 ‘황금진’을 필두로 해 청송황금사과 한국시리즈 나들이, 전국 146개 이마트 납품, 사과유통공사 시스템 재정비, 농산물 택배비 지원 사업, 청송사과 품질보증제 등이 그것이다.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개막 시즌에 맞춰 서울시민과 관람객들에게 3만 개의 청송사과를 무료로 나눠준 아이디어는 독특하고 유쾌한 홍보 전략이었다. 또 필자가 임기 초부터 자처하며 강조한 ‘세일즈 군수가’ 되기 위해 전국 146개 이마트 납품은 물론, 국내 최대 농산물 도소매 매장인 서울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홍보 판촉행사를 추진했다. 마찬가지로 매년 행안부의 지방공기업 평가에서 최하위를 면치 못하던 부실 공기업인 청송사과유통공사를 유통센터로 전환해 전국적 생산과잉 시대를 대비한 산지유통 시스템을 재정비했다.이렇듯 청송사과의 내일을 위해 이 시절 각 농가마다 주렁주렁 열린 사과들처럼 다양하고 유익한 정책들을 실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필자는 황금빛 미래라는 열매를 ‘주저리주저리’ 결실 맺게 하기 위해 그 노력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내가 바라는 손님은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매년 10월 말경 성황리에 개최했던 청송사과축제를, 올해는 안타깝게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위협을 가져온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군민들의 소중한 피땀으로 알알이 익힌 사과를 전 국민과 함께 축제로 즐기며 맛볼 수 없어서 심히 유감스럽지만, 군민의 안전과 감염 예방이 무엇보다 우선이므로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시인 이육사가 바라는 손님은 푸른 베옷을 입고 찾아오는 조국 광복이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민족 대명절을 앞둔 지금 바라 마지않는 손님은 감염병으로부터 우리 군민을 안전히 지켜내는 것과, 황금사과로 인해 빛나는 청송의 미래뿐이다. 한 시인이 하얀 모시 수건을 앞에 두고 조국 광복을 기다렸던 것처럼 필자 또한 그런 날을 염원해 본다.

2020-09-13

돌에 새기는 마음

금오산을 오른다. 제일 먼저 메타세쿼이아가 푸른 숲에 잘 오셨다고 반갑게 길을 안내한다. 양옆으로 늘어서서 그늘을 만들어주니 눈부터 시원해지고 ‘좋다~’라는 소리가 입에서 반사적으로 흐른다. 메타세쿼이아에게 배턴을 이어받은 소나무 산책로,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켰는지 둘레가 어른 한아름으로도 모자라다. 산새 소리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의 협주곡이 더위에 지친 나그네를 위로한다. 곳곳에 놓인 나무마루에 일찌감치 눌러앉은 가족들, 얕은 물에 뛰노는 아이들 소리가 ASMR이 되어 숲에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금오산이 주는 선물이다.산 좋고 물 좋은 자리에는 늘 정자가 있다. 채미정도 그런 곳에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너머에 흥기문이 보인다. 오래전 이곳에 주인이었던 길재 선생이 거닐었을 그 길에 내 발을 얹어본다. 그가 자란 고향이자 나이 들어 고려의 기울어짐을 바로 세울 힘이 없음을 알고, 어머니와 가족을 거느리고 찾아왔을 때 변함없이 우뚝 솟아 긴 산자락을 펼치고 선생을 안아 준 것은 금오산이었다.금오산은 본래 대본산(大本山)이란 이름이 있었는데 세월 따라 여러 개의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중국 허난성 숭산과 생김새가 비슷한데다 남쪽에 있다 해서 고려 때는 남숭산(南崇山)이라고 불렸는데 북한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둬 남북으로 대칭되는 산의 이름이었다. 지금의 이름인 금오산(金烏山)이란 명칭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한편 중국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죽은 백이와 숙제처럼 이 고장 출신의 고려 충신 야은(冶隱) 길재의 충절을 기려 옛사람들은 금오산을 일컬어 수양산이라 부르기도 했다.고려 말기의 충신이며 학자인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은 조선이 개국하자 태상박사(太常博士)의 관직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1419년에 별세하자 나라에서 충절(忠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채미정을 건립하였다. 뒤편에는 숙종의 어필 오언시(五言詩)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이, 옆에는 구인재가 자리했다. 길 건너에는 기념관이 있다.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 갈 때도 있다. GOP에 근무하던 군인 아들 면회하러 가는 길에 민통선 내에 있어서 평생 가 볼까 말까 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을 우연히 들렀다. 그곳에서 신라왕이 왜 경기도에 묻혔는지 그때야 새삼 깨닫게 됐다. 둘째 아이가 강원도 고성에 배치되었을 때에는 근처의 송지호 호수와 청간정에 올라 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평생 가보지 않고 살았을 곳이다. 채미정도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구미에 있어서 둘러본 곳이다. 고려 삼은 중에 한 분이라서 더 가봐야지 했다. 삼은 중에 포은 정몽주는 경상북도 영천군 임고면에 서원이 있고, 목은 이색은 경상북도 영해읍 괴시리에 기념관이 있다. 두 곳은 예전에 가 보았기에 채미정을 둘러보았으니 이제 삼은을 다 만나본 것이다.김순희수필가세 사람이 삼은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와 이유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 중후기의 사림을 형성하는 성리학자들이 다름 아닌 야은 길재의 후학들이기 때문에, 이색-정몽주-길재로 이어지는 동방 성리학의 거성들을 숭상하기 위해 여말삼은이라 칭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인생 말년을 금오산에 은거하며 스스로를 ‘금오산인’이라 불렀던 야은 길재의 대표 시이다. 이 시조는 채미정 입구 바윗돌에도 새겨져 있다. 고려의 서울이던 개성을 그리며 쓴 ‘회고가’이다. 돌에 새겨놓은 그의 마음이 절절하다. 내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 길재 선생의 절절한 마음까지는 이해 못 하면서도 달달 외워서인지 수십 년 후의 내 입에서도 절로 흘러나온다. 오늘 그의 마음에 오래 간직한 충심을 다시 들여다보며 시를 읊조려 본다.

2020-09-13

추미애 장관, ‘논란 본질’ 살펴 결단할 시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와 관련된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추 장관은 아들의 휴가연장 청탁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추 장관이 직접 휴가를 연장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는 부대 기록이 공개되면서 곤경에 처하게 됐다. 추 장관 아들 군 복무 논란의 본질은 ‘불공정’이다. 청년들의 분노에 이미 불이 질러진 상태다. 이쯤 됐으면 추 장관이 본질을 제대로 살펴 결자해지에 나서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입수해 발표한 국방부 인사복지실의 ‘법무부 장관 아들 휴가 관련’ 문건에는 “(병가를)연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추 장관 부부가) 문의를 했다”고 적시돼 있다. 군 관계자는 “부모님이라 함은 어머니인 추 장관을 말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정치권 공방은 격화일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추 장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고위공직자로서의 도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침묵을 깨고 “무차별적 폭로와 검증되지 않은 의혹들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발전도 확전 양상이다. 추 장관 아들의 변호인 현근택 변호사는 언론사와 제보자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도 추 장관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추 장관 아들과 관련해 평창동계올림픽 통역병으로 선발해달라는 청탁이 있었다는 증언까지 등장하고, 딸의 비자 조기발급 청탁 의혹도 불거져 있다.한국 사회에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병역·입시·취업과 관련한 공정성 문제는 민심의 역린이다. 이 문제를 건드린 이상 합법이냐 불법이냐 따위의 쩨쩨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 추 장관은 아들 군 복무 논란이 나올 적마다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는 등 사태를 키워왔다. 진실을 고백하든지, 아니면 신뢰를 잃은 수사관들을 다 빼고 특임검사든 뭐든 객관성을 완벽히 담보할 수 있는 수사팀을 꾸려서 독립적으로 수사하도록 해 진위를 가리도록 해야 한다. 미적미적 뭉개고 넘어갈 수 있는 길은 모두 차단된 상황이다.

2020-09-10

축약어 시대

영어 브런치(Brunch)는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그 사이에 먹는 식사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브런치를 먹는 가정이 많아 자연스레 생긴 단어라 한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턴가 이를 아점이란 말로 부르기 시작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어울참으로 사용할 것을 권했지만 아점으로 그냥 굳어져 가고 있다.긴 단어나 말을 줄여 부르는 현상이 어느 듯 우리의 일상에서 신조어라는 이름을 달고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소확행이나 버스카드 충전을 가리키는 버카충, 생일파티의 생파 등은 그래도 점잖은 표현이다. 낄낄빠빠(낄때 끼고 빠질때 빠져)나 안물안궁(안물어 봤고 안궁금함), 걸조(걸어다니는 조각상) 등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내용 파악이 쉽지 않은 축약어다.법률분야에서도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과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이 줄여 부르는 일들이 다반사로 행해지고 있다. 축약 언어의 사용은 세태 반영과 더불어 언어 관습의 변화란 관점에서 유의 있게 볼만한 일이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인의 축약어 사용은 민족의 조급성을 반영한 것이란 설명도 하고 있으나 더 자세한 것은 연구가 있어야 할 일이다.긴말을 줄여 부르는 것이 꼭 언어의 왜곡으로만 볼 수 없다.영어에도 축약어가 많이 있다. see you를 CU, First를 1st 등으로 부르는 것 등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축약된 언어가 무질서하게 난무한다면 언어 정화 차원에서 재고의 여지는 있다.최근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젊은층 사이에 영끌이란 말이 유행이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말의 줄임이나 작고 사소한 것까지 탈탈 털어 모은다는 뜻이다. 기성세대에 실망한 젊은층이 지어낸 축약어라서 씁쓸한 뒷맛이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0

통신비 지원보다 전국민 독감 무료접종이 낫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독감이 동시 유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독감백신 무료예방접종 범위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에 대응키 위해 올해의 인플루엔자 예방 무료접종 대상자를 예년보다 크게 늘렸다. 고령자에게만 무료 지원하던 것을 생후 6개월-만18세 어린이와 청소년, 임산부, 만62세 이상 고령층까지도 무료접종 대상에 포함했다. 이로써 무료접종 대상자는 전 국민의 37%인 1천900여만 명이 된다. 그러나 야당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추경을 하더라도 전 국민을 독감백신 무료접종 대상자로 하자는 의견을 제기했다. 전국의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인 예산 확보로 전주민 독감백신 무료접종을 실시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를 혹독하게 경험한 대구시의 권영진 시장은 최근 국무총리 주재 대책회의에서 독감백신 무료예방접종을 전국민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주호영 원내대표가 전국민 독감 무료예방접종을 정부에 제안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했다. 제주도는 도지사 특별명령으로 만19세부터 만61세까지 도민을 대상으로 독감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할 예정이라 한다. 이처럼 독감백신 무료접종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이는 것은 독감과 코로나19가 동시에 유행하게 되면 의료체계에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감염증의 증상이 고열에다 두통, 근육통 등 증상이 비슷해 자칫하면 외국처럼 환자를 의료기관에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자가 치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은 “국민 모두가 예방접종을 할 필요는 없다”고 밝히고 “접종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부터 먼저 받고 무료접종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만성질환자는 접종을 받길 권하나”고 했다.코로나19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유행할지 알 수가 없다. 또 한번 유행하면 이를 제압하는 일도 쉽지 않다. 사전예방이 그만큼 중요하다. 민주당과 정부는 최근 민생 위기대책으로 13세 이상 전국민에게 1인당 2만원의 통신료를 지급키로 가닥을 잡았다 한다. 받는 사람으로서 크게 체감하지 못할 적은 액수다. 그러나 나라 전체로 보면 1조원에 가까운 돈이 사용된다. 실효성보다 민심성에 가까운 예산지출보다 코로나 예방에 효과가 기대되는 전국민 백신 무료접종에 사용하는 것이 낫다.

2020-09-10

여당의 실책이 야당의 성공?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의 잇따른 헛발질이 여권에 대한 여론의 반감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인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이 급격히 오르고 있지도 않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비록 지금은 정부여당을 구석에 몰아넣고 공세를 퍼붓는 양상이지만 절대 자만할 일이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않다.우선 여당 대표 출신의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특혜성 휴가 논란이 통역병 지원과정에서의 청탁논란 등 군복무전반에 있어서의 불공정·특혜논란으로 번지고 있어 여권에 상당한 타격이 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병역문제는 국민의 역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병역 불공정문제에 대해 분노를 느낄 젊은 세대는 서씨의 휴가 특혜논란에 상대적인 박탈감과 함께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가뜩이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에서 공정성 문제가 이슈가 된 마당에 추 장관 아들문제가 또 다시 한번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하는 충격을 더한 것이다. 또 여당 의원들의 잇따른 실수도 공교롭다. 최근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포털 메인뉴스 화면의 뉴스편집에 문제를 제기하며 카카오 관계자를 국회로 부르라고 지시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는 장면이 보도됐고, 야당은“포털 통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윤 의원은 ‘카카오 문자’논란에 대해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사과했지만 여당의 오만을 보여줘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대목이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출신으로, 4선 중진인 우상호 의원이 “카투사 자체가 편한 군대”란 취지로 말했다가 호된 비판에 직면했다. 우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의 특혜성 휴가 의혹 방어에 나서서“카투사는 육군처럼 훈련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편한 보직이라 어디에 있든 다 똑같다”며“카투사에서 휴가를 갔냐 안갔냐, 보직을 이동하느냐 안하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진 직후 카투사 출신 네티즌들이 활동하는 한 커뮤니티에서 우 의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이 발표되는 등 일파만파였다. 결국 우 의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현역 장병들과 예비역 장병의 노고에 늘 감사한 마음”이라며 공개사과했다. 이 같은 여당 의원들의 실책 때문일까. 리얼미터의 9월 2주차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32.8%로 민주당(33.7%)을 오차범위내로 추격했고, 20대에선 8.9%p 오른 36.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이번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은 정부여당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국민의힘이 최근 당명 및 정강정책을 개정하고, 로고와 상징색을 바꾸는 등 변신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새 정강정책에 더불어민주당이 도입을 검토하던 기본소득을 정강정책에 포함하는 등 중도보수층을 아우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한 국민의 평가가 향후 대권 승부를 가르는 관건이 될 수 있다.

2020-09-10

분열의 정치

김병래시조시인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인 정부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느라 대학시절부터 줄곧 감옥을 들락거리다가 1963년엔 종신형을 받아 1990년 석방될 때까지 27년 넘게 감방과 채석장에서 복역을 했다. 석방된 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으로 선출되어 백인정부와 협상, 350여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공로로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취임식에 옛 교도관을 초대했는가 하면 자신을 투옥시킨 사람들을 내각에 등용해서 갈등과 상처의 치유에 힘썼다.그를 추종하는 국민들로부터 종신대통령직 제안을 받았지만,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며 거부하고 199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혔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 정책)의 지지자와 피해자가 함께 일하는 광경은 보기 좋았다. 그들은 과거를 부정하지도, 현재의 의견 불일치를 감추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동의 미래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 같았다. 그것은 만델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화해의 정신 덕이었다.” 그리고 그는 만델라에 대해 ‘오랜 수감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우정, 친절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썼다.그와는 정반대로 문재인 정권은 오로지 분열의 정치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분명 통합과 공존의 세상을 열어가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언명했지만, 실상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분열과 적개심을 조장하는 일에 앞장을 선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지난 정권과 상대 당을 모조리 적으로 몰았고, 반일감정을 부추겨 우파들에 토착왜구란 프레임을 씌운 것,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편을 갈라 증오와 보복의 정치를 한 것, 최근에는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이간질을 하는 비열한 행태를 보였다,정치적 책략 중 가장 비겁하고 치사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분열의 정치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좌우의 대립이 상존해 왔으므로 적당한 구실을 던져주고 프레임을 씌우면 알아서들 피터지게 싸운다. ‘대가리가 깨어져도’밀어붙이는 절대 지지층을 손쉽게 확보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 다음엔 부화뇌동하는 중도층을 포퓰리즘으로 끌어들이면 정권유지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 전략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이 바로 지난 총선이었다. 재난지원금이란 구실로 돈을 풀어먹인 것이 주효했다.정권이 획책한 대로 대한민국은 지금 분열과 갈등의 양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불신과 적개심은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의 전망을 더욱 암담하게 한다. 관용과 배려의 정신은 실종되고 나라가 망하든 말든 끝장을 보겠다는 광기와 증오가 난무한다. 넬슨 만델라와 같은 현인(賢人)이 참으로 아쉬운 시국이다. 최근 들어 문제인 정권을 지지했던 일부 지식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올바른 식견과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른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사필귀정의 결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2020-09-10

두 공항을 한 개의 공항처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구국제공항을 대체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민간 공항+K2 공군기지) 이전지가 공동 후보지인 경북 의성군 비안면, 군위군 소보면 일대로 결정됐다. 대구시와 국토교통부 등은 2028년 개항을 목표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에 나선다고 한다.기본계획수립용역을 통해서 개략적 내용이 수립되면 이를 토대로 통합신공항의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되고, 건설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고 하며, 2024년 착공을 거쳐 2028년 통합신공항을 개항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부산상공회의소는 최근 울산상공회의소, 경상남도상공회의소협의회와 공동으로 국토부의 김해공항 확장안 취소와 유일한 대안인 가덕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이번 공동성명 발표는 부·울·경 경제계가 지난 7월 22일 부·울·경 신공항의 조속한 건설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여전히 검증결과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무총리실의 김해공항 확장안 적정성 검증 발표와 함께 신공항 대체 입지로 가덕도가 선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경북이나 포항의 입장에서 보면 영남권의 신공항 추진이 지역민들에 큰 기쁨과 희망인 것은 틀림없다.그러나 이 조그만 국토와 영남권에 부산권·대구권 2개의 공항이 필요한가 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판단이다.부산·대구 지역이 상호 자기 지역에 공항유치를 위한 노력을 넘어서서 상호비방하는 현수막들을 보면서 참담한 생각이다 두 공항을 만들어도 하나의 공항 개념으로 묶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KTX 고속철이 탄생한 후 서울과 포항, 대구간 항공 노선들이 없어지다시피 한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비록 2개의 공항이 탄생하지만 하나의 국제공항 개념으로 가는 것이 영남지방 발전을 위해 훨씬 좋아 보인다.우선 공항명에 경북, 경남, 대구, 부산 등의 이름을 쓰지 말고 영남의 개념의 이름을 쓰면 어떨까 한다. 공항 이름에서 외국인들이 하나의 공항으로 생각하게 유도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KB(경남, 부산) Airport, KK(경북, 경남) Airport 이름도 좋다. 또는 시애틀-타코마, 달라스-포트워스처럼 두 개의 도시를 묶는 트윈시티 이름을 써 대구·부산 공항으로 불러도 좋다.그리고 각각의 공항을 제1터미널, 제2터미널 등의 이름으로 부르자. 작명부터 하나의 공항 개념으로 묶어 영남권을 커버하는 것이 인천공항과 같이 국제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두 공항 사이에 최신 논스톱 고속철을 건설하여 항공권 소지자는 출발·도착 전후 24시간 내에 무료 승차를 허락하고 두 공항이 다소 거리가 있지만 사용자에게는 하나의 공항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는 영남권을 국제적 중요 명소로 유도하고 영남권이 세계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지역으로 발돋움 하는 지름길이 되리라 확신한다. 두 개의 공항을 하나의 공항으로 묶어 영남권 지역 발전에 불을 지피자. 두 개의 공항을 하나의 공항처럼!

2020-09-10

‘거북목 증후군’ 주의보

코로나19 재확산사태로 비대면 온라인수업이 크게 늘면서 많은 시간을 모니터앞에서 보내는 학생들에게 ‘거북목증후군’주의보가 내렸다. 거북목증후군은 C자형의 정상 목뼈가 잘못된 자세로 인해 일자목으로 변형되고, 더 악화되면 거북이의 목처럼 앞으로 나오고, 이로 인해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생긴다. 대표적인 증상은 목이 뻣뻣해지면서 아프고, 어깨주위까지 통증이 번진다. 팔 저림, 두통, 어지럼증 등도 따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오래 지속될 경우 목디스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전문의를 찾아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증상이 경미한 환자의 경우 물리치료, 약물치료, 도수치료, 주사치료 등 비수술치료만으로도 좋아진다. 하지만 이미 목디스크로 진행된 환자의 경우 통증부위에 약물을 투입해 염증을 치료하는 시술을 고려할 수 있다. 시술은 경막외신경성형술, 풍선확장술, 고주파수핵성형술, 신경차단술 등이 있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목디스크가 심한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한다. 수술에는 경추 전방유합술, 양방향 내시경 하후방 경유 신경감압술 및 추간판 제거술이 있다. 특히 목디스크를 그냥 방치할 경우 하반신 또는 전신마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거북목증후군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눈높이에 맞춰 사용하고, 어깨와 가슴을 바로 펴고 턱을 가슴쪽으로 당긴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한다. 또 1시간 이상 장시간 앉아있는 경우 중간중간에 목과 어깨의 긴장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또 다른 병마에 어린 학생들이 병들지 않도록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09

與 의원이 민간 포털사 ‘오라, 가라’해도 되나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민주당 소속 윤영찬 의원이 민간 포털사 소환을 지시하는 문자가 노출돼 ‘뉴스 통제’ 의혹이 일고 있다. 야당은 윤 의원의 행위가 포털사에 대한 정부·여당의 상시적 통제의 증거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윤 의원의 단순한 ‘항의’ 의도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네이버의 부사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의혹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윤 의원은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카카오 포털뉴스 메인화면에 배치되자 “카카오 너무 하군요. 들어오라고 하세요”라고 청와대 비서실 출신 보좌관에게 지시하는 장면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됐다. 윤 의원이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배현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뉴스 통제가 실화였다”라고 꼬집었다. 배 대변인은 “포털을 통한 여론통제를 시도한 거냐, 청와대에서도 그리 했나”라며 “민주당은 당장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당 김은혜 대변인도 “이젠 포털에도 재갈을 물리려 하는가”라며 “앞에선 디지털 뉴딜, 뒤로는 권력-포털 유착이었나”라고 힐난했다.윤 의원 측은 “카카오 뉴스가 메인에 올라가는 시스템에 관해 설명을 듣기 위해 오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간기업인 포털사에 대해 ‘들어오라고 하세요’라고 지시하는 행태에 대한 의혹은 말끔히 씻기 어려운 변명으로 들린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윤 의원의 ‘카카오 호출’ 논란에 “오해를 살 수 있다. 엄중히 주의드린다”고 경고했다.카카오 측은 “AI(인공지능)가 뉴스 편집·배열을 하기 때문에 인위적인 배치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윤 의원이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의 고위직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상임부회장·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냈고, 국회 과방위 위원이라는 점에서 그의 갑질 행태는 많은 상상을 부른다. 그의 야릇한 언행은 AI 뉴스알고리즘의 허실까지 새삼 부각시키고 있다. 실제로 권력의 여론통제, 여론조작이 횡행하고 있다면 정말 큰일 아닌가. 수상한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2020-09-09

특별재난지역 세분화하고 확대도 검토해야

제9호 태풍 마이삭과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피해 조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경북에서는 동해안 시군과 울릉군에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피해 집계는 더 지켜봐야 한다.울릉도는 사실상 두 차례 태풍의 중심에 있어 피해가 매우 컸다. 현재까지 대략 500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동항과 남양항의 방파제가 파괴 또는 유실되고, 서면 태하리 물양장, 남양 한전부두 등이 크게 훼손됐다. 또 선박 40여척이 침몰되고 민간주택 60여채와 일주도로 14군데 등 곳곳이 태풍 피해를 입었다.울릉지역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9일 피해 현장을 방문하면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포항, 경주 등 경북 동해안지역과 일부 시군의 경우 주택침수나 상가 및 공장, 양식장, 농작물 등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전체적으로 특별재난지역 지정의 여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경북도는 정밀피해 조사를 통해 피해가 심한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할 예정이나 가능성 여부는 미지수다. 현재 경북도와 도내 각 지자체의 재난기금 사정은 최악이다. 올 초부터 시작한 코로나19 사태로 재난기금의 60∼70%를 이미 사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로 가면 코로나가 대유행하거나 또다른 태풍이 닥치고 겨울철 폭설 등 재난이 발생할 경우 예산이 바닥나 재난에 대응할 여력이 거의 없다. 정부의 국고 지원이 가능한 특별재난지역 지정의 확대가 바로 절실한 상황이라 하겠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영호남 수해지역을 방문 한 자리에서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곤란한 시군은 읍면동으로 세분화해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지금 경북도내 상황이 이에 부합한다고 보면 된다.경북도가 시군별 피해상황을 파악하면서 좀 더 정밀한 피해 분석을 통해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추석을 눈앞에 둔 피해 주민의 황당한 심정을 잘 헤아려 정상적 일상복귀가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올해는 코로나 사태와 더불어 국가적으로는 물론 국민 개개인이 어렵지 않은 이가 없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 복구에 정부나 행정기관의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별재난지역 확대에 과감한 조치가 있길 바란다.

2020-09-09

초인은 없다 일등도 아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현실은 늘 못마땅하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다. 삶은 날마다 버겁다. 허덕이며 지나는 모든 질곡은 광야가 아닌가. 시인 이육사(李陸史)는 그래서 백마를 타고오는 초인을 기다렸을까. 보통사람들은 그래도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라고 때마다 표를 던진다. 기대만큼 일상이 호전되지 않아 기대는 다시 실망이 된다. 하필 감염병이 돌아 행동도 자유롭지 못한데 뜬금없는 ‘일등’소리를 듣는다. 일등은 과연 초인이었을까. 당신이 아니면 세상은 하염없는 나락을 헤맬 것인가. 일등만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한때는 그랬다. 아니 그래 보였다. 뛰어난 지력이 놀라운 성장과 함께 성취에 이르면 눈부신 열매도 거두는 듯하였다. 세간의 관심이 먹고사는 데에 머무는 동안 세상의 일등들이 이끌어 여기까지 온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허세와 과장도 결과를 보면서 용인하였다. 그늘에서 이름없이 도왔던 손길들도 그들의 출중함을 탓하지 않았다. 부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묵묵히 일로 보여주므로 공연히 시비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그래 왔을까. 급기야 일등들이 스스로 ‘일등만 해야한다’고 주장하는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자만은 위험하다. 자신을 세상보다 높은 자리에 올린다. 더 배우거나 깨우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현실에 안주하여 생각할 필요를 막아버린다. 더 배우지 않게 하고 상상력을 차단하며 남과 함께 하는 협력의 창을 닫아 버린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테오그니스는 ‘신은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에게 자만심을 선물로 준다’고 하였다. 세상도 바뀌었다. 일등을 조건없이 인정하고 순순히 따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당신에게서 진정성과 공감능력을 확인해야 한다. 세상은 일등의 자만심에 기대지 않는다.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역사 가운데 위기에 봉착했던 인류를 ‘창조적 소수자들(Creative minories)이 구해왔다’고 하였다. 광야에서 달려오는 어느 초인이나 일등의 기억만 고집하는 수재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놓고 함께 공감하며 걱정하는 집단지성을 의미하였다. 인류문명은 외부의 공격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내부의 몰락으로 붕괴한다고 하였다. 우리 내부의 일그러진 모습을 직시하는 창조적 소수자들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념에 기초한 편 가르기에 몰두해서 될 일이 아니다.일등만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다. 초인을 기다리는 국민도 없다. 함께 어우러지며 더 나은 내일을 열어가야 한다. 둔하고 더디어 굼뜨게 행동하는 인간이 인류의 위기를 이제는 절감하며 움직여 가도록 코로나19가 온 게 아닐까. 시대의 지성과 보편적 양심이 깨어나도록 재촉하고 있다. 어떻게 가야 할지는 모두에게 달렸다. 앞에 선 몇 사람에게 재촉할 일이 아니다. 애를 안 쓰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어째서 편만 가르고 있는 것일까.누구를 기대할 것인가.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 세상은 바꾸어보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2020-09-09

선인장의 죽음

어째서 선인장은 仙人掌, 신선의 손바닥이라 했나?멀리 라스베거스 가는 애리조나 사막 드넓은 황무지에서 그대를 만났었지. 고국에 돌아와 나는 선인장 그대를 사랑한다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노라. 사랑은 찾는 데서 싹트고 물을 주는 데서 자라나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애절해질 수밖에 없다.안성 가톨릭 신자들 숨어 살던 배티 성지 가던 길에 아름다운 선인장 하나를 사고, 또 대전 중앙시장 옆 대전천 천변 꽃집에서 선인장 하나를 또 샀지. 하나는 산호 선인장, 다른 하나는 철갑을 두른 듯 용맹하게 생긴 선인장이었다.두 선인장 모두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러 해를 살아왔으되 마치 헛 살아온 것처럼 선인장 키우는 법을 알지 못했다.물은 오랫동안 머금을 수 있어 자주 주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향이 사막인 탓에 더위에도 추위에도 강하다는 것도 알았다. 한없는 어둠만 아니라면 꼭 햇살 따가운 곳이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까지도 알았다.하지만 내가 몰랐던 것은 흙이 오히려 수분이 많아 축축해지면 선인장은 뿌리부터 썩어들어가 버린다는 사실이었다. 흙에도 물을 잘 내리는 흙이 있고 잔뜩 물을 흡수해서 진득진득한 상태로 오래 가는 흙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여름 내내 비도 그렇게 질기디질기게 올 수 없고 그 끝에 태풍도 벌써 세 번째 북상 소식이 들리는데, 그 무덥고 축축한 여름이 오래 가는 사이에, 세상은 코로나 천지가 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측정의 도구조차 잃어버린 사이에, 나의 사랑하는 선인장 하나는 물에 뿌리가 젖어 생살이 썩어가듯 잎사귀가 짓무르며 그만 모진 목숨을 끊고야 말았다.물 없이는 길게는 석삼 년씩도 사는 선인장이 있다는데, 이 여름처럼 습한 나날은 오히려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한 포기 선인장을 잃어 버리고 나의 방에는 이제 마지막 선인장 한 포기, 산호선인장밖에 없다.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메두사처럼, 그러나 아름답게 뻗어 올린 산호선인장은 사막처럼 바싹 메마른 외로운 방을 깊은 바닷물 속처럼 그윽하게 변모시킨다.선인장 하나와 나 하나. 아주 오랜만에 혼자인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온 것 같은 지금, 홀로 남은 강인한, 고독을 견디는 선인장의 삶을 생각한다.홀로 몇 스푼 아주 적은 수분에만 의지하며 적게 먹고 적게 쓰고 말없이 견디는 선인장의 미덕을 생각하며,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적게 살고 뜨겁고 차가운 대지 위에 홀로 많이 버텨야 한다.그렇게 속으로 생각해 보는 날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9-09

디어 위너

강길수수필가영문 이메일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나는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정말 행운의 소식이면 좋겠다.이메일은 영문 ‘디어 위너(Dear Winner)’로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당첨자’라니, 우선 기분이 좋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내용을 대충 살폈다. 내 이메일 주소가, 올해 자사의 이 메일 프로모션에 당첨되어 축하한단다. 당첨금이 원화로 환산하니 무려 150억 원이나 되었다. 일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체 내용을 빨리 알기 위해, 인터넷의 영문번역기에서 전문을 우리말로 바꿔보았다. 따로 추첨에 참여하거나, 티켓을 끊을 필요는 없단다. 단지 이름, 주소, 나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만 답신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기분이 이상해졌다. 번역문을 읽으며 ‘스팸’, ‘피싱’ 같은 단어들이 함께 떠올라서다. 스팸문자, 스팸메일, 보이스피싱 등 사기(詐欺)나 범죄에 이용되는 통신수단에 당했다는 보도나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 집도 보이스피싱을 몇 차례 겪은 적도 있다. 그러니 은연중에 스팸이나 피싱에 대한 대응력이 생겼으리라.스팸메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이면 좋겠다는 바람(望)도 마음 한구석에서 명지바람으로 일었다. 달콤한 유혹이다. 이율배반이다. 햄릿 증후군이기도 하겠다. 머리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끌리는 심리상태를 또 경험한다.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조화롭다면, 스팸메일이란 판단이 들었을 때 지웠어야 했다. 내 속물근성이 이 이메일 앞에서 또 이빨을 드러내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속 갈등을 한다.“그래, 다른 이들도 같은 사례가 있나 찾아보자!”내부 갈등의 타협안이 제시되면서, 내 손가락은 저절로 웹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똑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는 사람의 글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것은 금액이 올해보다 적었지만, 올해 것은 금액도 같았다. 전자는 상담을 받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카페에 올린 글이다. 후자의 경우, 끝에 독자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답신 메일을 보내고 말았다는 게시자의 고백도 있었다.쓴웃음이 났다. 이성과 감성이 이런 상황에서도 싸운다.“이봐! 스팸메일이 맞잖아? 괜히 헛꿈을 꾸었어. 시간도 버리고….”“잠시 행복했잖아? 그러면 된 거지. 뭘 그리 따지고, 불평하는 거야?”처음 복권을 사던 날이 떠올랐다. 주택복권이다. 아마도 7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확실한 날짜를 알려고 일기장을 한참 뒤졌으나, 못 찾았다. 아마 회식을 마치고, 얼큰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으리라. 회식 중 동료들과 복권에 대해 갑론을박하다가 ‘복권은 바로 행운 부르기’란 말에 이끌려, 난생처음 100원짜리 주택복권 두 장을 손에 쥔 날이다. 술기운에, ‘이 복권으로 내 집을 살 것이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발길을 뗐었다. 조금 걷다가 어느 순간, ‘나도 그만 사행성 탁류에 휩쓸리고 말았구나!’ 하고 깨달으며, 하룻저녁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기억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역동적 사회 구조 안에서, 그 시절 내 눈엔 복권은 사행성의 징표일 뿐이었다.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복권을 사행성 징표나, 노름같이 보는 시각은 사라졌다. 어떤 지인은 투자라며, 봉급을 타면 내 기준엔 제법 많은 일정 금액의 복권을 샀다. 문제는 ‘디어 위너’처럼 공적 복권을 사칭한 스팸메일 등, 사기를 치기 위한 정보가 횡행한다는 사실이다. 4차 산업 시대니, 5지(G)시대니 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회의 정보기술 환경에 따라가기도 힘든 현대인들이다. 그들이 스팸이나 피싱 같은 사기에 시달리는 상황에 놓인 것은 대체 무얼 말해주는 걸까.“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말이 있다. 인간과 생명은 아니, 만물은 이 말처럼 살고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우주 안 모든 존재의 존립 양상이 어찌 보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힘을 다하여 살고 또,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을 다잡아야, ‘친애하는 당첨자’처럼 달콤한 사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진정한 ‘디어 위너’만 있는 세상이 그립다.

2020-09-09

짧은 만남 긴 우정

우리가 만난 세월이 얼만데! 상대와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가를 증명해보이고 싶을 때 흔히 하는 말입니다. 오랜 기간 만나왔으니 그 우정의 깊이는 재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시간과 우정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닙니다. 학창 시절 친구가 아무리 좋다 해도 서로 도움 주는 이웃만 못하고, 직장 동료와 종일토록 붙어 있다고 해도 마음 먼저 닿는 먼 친구만 못합니다. 한마디로 때와 장소 등 물리적 요인은 관계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래 알아왔다고 우정이 깊은 것도,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절친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공감보다 나은 친구는 없고 마음보다 앞선 우정은 없을 테니까요. 진심이 통할 때 우정은 지속됩니다.온라인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섯을 묶은 출발점은 ‘책’입니다.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의기투합하여 비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왔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모이기도 힘들 텐데 다섯 친구들은 운명처럼 전국에 골고루 흩어져 삽니다. 대전, 청주, 광주, 포항, 부산.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녀 한 번만 만나도 어떤 성격인지 알 정도입니다.좋은 날 불쑥 각자 기차를 타고 청주나 부산 또는 경주나 대전 그리고 광주 어디쯤에 모여 점심을 함께 하며 수다를 떱니다. 읽은 책을 화제 삼고 가진 책을 나누며, 잘 쓴 작가를 부러워하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물론 고상한 척 책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자식 걱정이나 자랑도 하고, 남편 흉이나 장점도 나눕니다. 각자의 회한도 돌이켜보고 앞일을 가늠해보기도 합니다. 주어진 하루가 짧다는 걸 알아서일까요. 오래 만나온 사람들이 나누는 것 이상으로 인간사 희로애락을 그토록 짧은 시간에 술술 풀어내곤 합니다.이 매혹적인 모임은 한 친구 덕에 가능했습니다. 어떤 방해꾼도 없는 온전한 한나절의 해방구는 그녀의 기획 작품인 셈이지요. 열정과 선함이 몸에 밴 그 친구는 나머지 네 명을 적극적으로 아우르고 배려하고 챙깁니다. 우리는 그녀를 신뢰하고 따릅니다. 그녀가 마련한 멍석 마당에 자유롭게 퍼질러 앉아 수다 떨고 웃기만 하면 됩니다. 책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녀에게 저는 ‘다정도 병’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그토록 다감하고 그토록 솔직하며 그토록 열정적인 친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그렇게 모임을 이끌던 친구가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LA로 가게 되었지요. 환송회가 있던 날 키 크고 잘생긴데다 착하기까지 한 그녀의 남편 뢉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양손엔 다섯 점의 그림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술을 전공한 뢉이 아내와 그 친구들을 위해 몇날 며칠 이별 선물을 준비한 것이지요. 아무도 생각지 못한 깜짝 쇼였습니다. 안타까움으로 허해진 가슴에 훈풍이 깃들었고,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아쉬움과 감동이 교차하던 시간이었습니다.미국에 정착한 그녀는 새로이 간호학에 도전했습니다. 기전공인 패션과는 너무 먼 방향이라 의아했지만 그녀의 열정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지요. 공부엔 나이가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몇 년 만에 드디어 학위를 받게 됩니다. 내친 김에 대학원에도 진학해 학계에 남고 싶어 합니다. 긍정적 마인드로 앞을 향해가는 그녀의 성정을 알기에 그것 역시 어려운 고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취미이자 특기인 공부에 매진하는 그녀가 경이롭기만 합니다.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친구들의 생일이나 경조사 등을 챙깁니다. 그녀를 알게 된 후, 받는 데만 익숙했지 뭔가를 제대로 줘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녀보다 한 발 늦습니다. 이번엔 큰 맘 먹고 한 발 앞서보기로 했습니다. 간호사 면허 취득 축하겸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탄탄대로만 남은 그녀에게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졸업파티에서 입을 한복을 선물할까, 액세서리를 좋아하니 목걸이를 선물할까 이것저것 고민했습니다. 기왕이면 그녀가 받고 싶은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몇 번의 밀당 끝에 제 진심을 안 그녀가 조심스레 말합니다. 청진기를 받고 싶답니다. 미국 간호사는 청진기가 필수랍니다. 선물 받은 청진기로 진료하는 간호사라니, 생각만 해도 멋진 일입니다. 아마존에 접속해 전문 청진기를 검색해봅니다. 그녀가 모델명까지는 끝내 말하지 않으니 화면 앞의 제 눈은 까막눈이 될 뿐입니다. 아쉽지만 차선책으로 송금이란 선물을 택했습니다. 며칠 뒤 청진기에다 제 이름을 새기고 싶다며 그녀가 연락해왔습니다. 쑥스럽지만 고집 피울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러라고 했습니다.작년 미국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놓쳤고, 올해 서울에서 재회하자는 통화도 코로나 때문에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기야 만남 유무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마음이 있는 한, 우정은 계속되는 것이니까요. 간호사로 멋지게 성장할 그녀를 멀리서나마 응원해봅니다.

2020-09-09

이리나를 생각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1990년 10월 3일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되면서 남북의 분단상황이 더욱 괴롭게 느껴지던 무렵의 이야기다. 유학의 피로와 염증이 있던 데다가, 육체적·정신적 소모가 상당해서 일상의 하중을 견디기 어려웠다. 항시적인 피로와 체중감소로 집 근처 내과를 찾았다. 50대 초반의 여의사가 반가운 얼굴로 맞이한다. 루마니아 태생이며 ‘이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의사. 체호프의 ‘세 자매’에 등장하는 막내딸 이리나가 생각났다.무슨 일로 왔는지 물으면서 차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나의 신상 하나하나를 캐묻기 시작한다.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상당히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야경꾼으로 일하고 있는데, 낮과 밤을 바꿔 살아야 하는 일이어서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가깝게는 부모님의 건강 이력부터 멀게는 조부모에 형제들까지 소급해가면서 요모조모 캐묻는 이리나의 진지함과 성실함에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1시간도 넘게 걸린 질의응답을 거쳐 그녀는 일주일 후에 자신이 지정한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당시 나는 유학생 신분으로 한 달에 1만5천원 정도를 의료 보험비로 지출했다. 물론 보험은 3인 가족 전원에게 적용됐다. 종합검진을 받고, 약속한 날짜에 이리나의 병원을 찾아갔다.그녀는 간단한 결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양자택일하라는 것이었다.“학위논문을 포기하거나, 야경 일을 관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에 큰 사달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야경 일을 내려놓는 것이 유일한 출구였다. 그러나 안양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것도 선택 밖의 일이었다.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이리나에게 물었다. “무슨 방도가 없을까요?” 하는 질문에 그녀가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한다.소견서의 골자는 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야간근무를 주간근무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리나와 나의 두 번째 대면은 30분 정도로 끝났다. 소견서 덕분에 나는 야경(夜警)꾼이 아니라, ‘주경(晝警)’꾼이 될 수 있었다. 야경으로 학업을 유지하던 주변의 유학생들은 그런 나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대목은 다른 곳에 있었다.환자 한 사람과 1시간 이상 의료상담을 하면서 도이칠란트 의사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궁금하고 신기했다. 지금도 한국인 의사들은 환자 1인에게 5분 이상의 시간을 허여하지 않는다. 내원자가 많을수록 의료비는 올라가고 그것이 고스란히 의사 개개인의 수입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가정의나 부자들의 개인 전담의가 아닌 담에야 어떤 한국인 의사가 환자에게 1시간의 상담과 진료시간을 베풀고 있는가?!그런 도이칠란트조차 의대 입학정원을 5천명 이상 늘리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구 천명당 의사 수가 4.6명이라는 도이칠란트의 의사들이 의대 정원확대를 반긴다고 한다. 우리는 2.3명 혹은 2.6명이라 한다. 한국의 의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2020-09-09

교육과정과 따로 노는 대입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8월이 자신의 색을 거둬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곳이 들판이다. 녹색으로 일렁이던 들판에 노란색이 더 해지기 시작했다. 색이 익어가는 들판의 변화를 필자는 9월 들어서야 봤다. 그토록 눈을 부릅뜨고 다녔지만 왜 그동안 못 보았을까! 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다는 것을 필자는 확실히 경험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마음의 여부라는 것도 분명히 알았다.욕심을 내려놓고 2020년을 겸손하게 마무리하는 들판을 보면서 공자의 말씀을 떠올렸다.“마음에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 수가 없다.”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말처럼 마음은 모든 행동의 근원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같은 일도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심지어 마음은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기적 또한 간절한 마음의 결과다. 용기, 용서, 사랑, 희망과 같은 말 또한 마음의 소산이다.마음은 어떤 일의 성공 여부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자기에게 최면을 건다. 개인의 일도 이런데 하물며 회사나 국가 일은 어떤가. 리더십은 곧 지도자의 마음이다. 리더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가 속한 집단의 운명이 결정된다.그럼 우리가 속한 사회는, 또 나라는 어떤가?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아서는 리더가 마음이 없거나, 아니면 그 마음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많은 왜곡이 있음이 확실하다. 아니고서야 자연이 노(怒)할 만큼 이 나라가 어쩌면 이토록 불안할까! 지금 우리 사회 모든 리더의 공통된 마음은 탓하기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남 탓하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이 사회 많은 분야가 그렇듯이 교육계 또한 교육 리더의 마음이 순수하지 않다. 이 나라 교육이 특정 정치이념 재생산의 도구가 된 것 역시 정권의 하수인이 된 교육 관료들의 불순한 마음 때문이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우리 교육은 정상에서 멀어진다. 굳이 비정상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이 말은 지금의 교육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비정상의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과정과 따로 노는 대학교 입시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 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라는 새 교육과정의 목표와 “문·이과 공통 과목”이라는 말에 희망을 가졌다.“2015 개정 교육과정은 흔히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 과목을 배우는 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이라고 (….)”그리고 위의 기사 내용이 대학교 입시에 적용되어 문과 이과 구분 없이 학생이 자신의 적성에 맞추어 대학교 입시에 응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나라의 비정상적인 교육계는 이런 학생들의 믿음을 배신했다. 2021 대학교 입시에서 계열 통합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는 얼마나 될까? 버젓이 계열을 구분해 놓은 대학교 입시 요강에 학생들의 마음은 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2020-09-09

울릉도 주민들의 태풍 방송에 대한 분노

김두한경북부울릉도 주민들은 태풍이 내습할 때마다 방송국의 보도때문에 분통을 터트리며 울분을 삼킨다.이번 제9호 마이삭 강타 때에도 울릉군은 5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보았지만, 방송에서는 마이삭이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로 기상전문가의 해설까지 달았다. 하지만, 울릉도는 역대급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이 때문에 울릉주민들은 울분을 토한다. 방송에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고 했으나 울릉도는 태풍 피해가 시작됐고, 태풍방송 내용 역시 예보나, 피해, 진로에 대해 아예 울릉도·독도는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같은 비난으로 이번 제10호 태풍 하이선 때에는 오후 2시에 울릉도를 통과해 북상한다고 방송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틀렸고, 울릉도는 오히려 오후 4시에 순간 최대 파도 높이가 13.3m를 기록했다.이를 두고 SNS에서 한 누리꾼은 “방송에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고 할 때 울릉도는 시작이다. 그럼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동해 상으로 북상해 울릉도와 독도에 피해를 줄 것으로 보인다고 방송해야 하는데 동해 상으로 빠져나가 우리나라는 영향권에서 벗어났다고 방송한다”고 울분을 토했다.특히 태풍 진로 및 예보 방송을 할 때 진행자가 우리나라 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가려 방송을 한다. 최소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언급이 있어야 하지만 어느 방송국에서도 울릉도, 독도는 없다. 앞서 2003년에 울릉도에 큰 피해를 줬던 태풍 매미 당시에도 방송은 동해로 빠져나갔다고만 얘기해 울릉주민들의 분노를 쌓았다.김병수 울릉군수는 “울릉도와 독도도 대한민국의 땅이다. 태풍이 동해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으면 태풍예보, 진로 등 기상특보 방송에 반드시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부디 앞으로는 태풍 방송에서 울릉도와 독도의 소식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kimdh@kbmaeil.com

2020-09-08

멈춘 시간을 보내는 법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최근 서울·경기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강화된 방역 조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했다. 수도권의 음식점은 오후 9시까지 운영되고 프랜차이즈형 카페나 베이커리는 포장만이 가능하다. 헬스장이나 각종 실내체육시설도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개강 시즌이 무색하게 대학가는 고요하고 밤낮으로 북적이던 번화가 역시 텅 비었다. 이렇듯 모두가 힘을 모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타공인 집순이인 나 역시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으니. 분리수거를 하러 나서는 잠깐의 순간도 방역 마스크를 써야 한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젠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단골 술집에 옹기종기 모여 맥주잔을 맞대던 여름밤도 다 지나갔다. 내가 이렇게 바깥 공기를 좋아했던가. 이전엔 미처 몰랐던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요즘이다.상상해본다. 내게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생긴다면 어떨까.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시간을 정지한 뒤, 나 혼자만이 움직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이를 구할 수 있다. 얄미운 상사의 이마에 꿀밤을 날려줄 수도 있겠다. 이런 과대망상이 현실이 된대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거리를 걸으며 지상 마지막 생존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잠겨본 적 있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은 피곤하지만, 그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은 끔찍하게 느껴진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 혼자 남겨진다는 건 자유보다 고독에 가깝다.나는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천재 과학자도,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좀비를 무찌르는 전사도 아니다.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자는 더더욱 아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울리는 재난문자를 확인하며 전전긍긍하는 것뿐이다.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며 혀를 쯧쯧 차다가 익숙한 지명에 화들짝 놀란다. 내가 거기를 다녀왔던가. 과거의 발자국을 헤아리며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역시 ‘집콕’이 가장 마음 편하다. 간단한 모임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필요한 식료품도 배달을 이용한다. 몸이 뻐근하면 유튜브를 켜고 스트레칭을 따라 한다.이런 와중에도 눈앞의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원고 마감일은 째깍째깍 다가온다. 일주일에 두 번 화상 회의 도구인 줌(zoom)으로 학생들과의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모니터 너머의 아이들은 풀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코로나 대체 언제 끝나요?” 그러게 말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누르며 몇 시간이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속이 울렁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힘들다고 투덜대는 것도 잠시,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는 가상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며 자신을 채근하게 된다.‘K-직장인’이란 이런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긍정적인 뜻이 아니다. 국가적 위기나 자연재해, 심지어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가 출몰할지라도 한국의 직장인은 꾸역꾸역 회사를 나갈 것이라는 자조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홍수 때문에 물이 허리까지 찬 상황에서 물살을 가르고 출근하는 이들의 영상은 전설처럼 내려와 인터넷을 떠돈다. 양복에 서류가방을 들고 일터를 향해 용맹하게 나아가는 모습에 감탄 아닌 감탄을 내뱉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라. 몸담은 직장에 뼈를 묻어라.’ 이것은 비대면 시대에도 유효한 듯하다. 뼈를 묻어야 하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아파도 화상 강의는 참여하고 아파라. 컴퓨터 전자파를 받으며 한 줌의 재가 되어라.’완전히 지쳤다. 휴식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쉬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버렸다. 생전 처음 접하게 된 ‘거리 두기’의 시간이 무한정으로 길어지면서 더더욱 일과 휴식을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 안락한 소파와 침대가 이젠 더 이상 쉼의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인 중 한명은 주말의 휴식 시간을 철저하게 계획한다고 했다. 국가공무원으로 일하는 그는 자신만의 ‘휴식 루틴’을 가지고 있다. 10시까지 늦잠 자기. 2시간 운동하기. 6시까지 레고 조립하기. 30분 동안 목욕하기. 일기 쓰고 잠자리에 들기.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휴식을 충실하게 이행해야만 제대로 쉬었다는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쉬는 것마저 계획적이라니.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K-공무원’입니다.”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람마다 휴식의 방식은 다르니까요.” 문득 궁금해졌다. 다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동영상의 유저가 급증했다. 대표적인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사용자는 끊임없이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나 역시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굉장히 감사해하고 있다. 동영상 서비스 없이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휴식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현재의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낸다는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명상 앱을 켰다.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불안해졌다. “당신은 무한한 우주를 홀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명상 안내자의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앱을 종료했다. 집에서도 혼자 있는데 우주에서도 혼자라니. 그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사실상 완벽한 고립은 불가능하다. 세계와 연결되었다는 감각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정치·사회면은 어떤 사건이 장식하고 있는지, 연예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한민국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인터넷 기사와 댓글, 각종 소식과 정보는 침대 위에서도 끊임없이 쏟아진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메인 기사부터 시작해서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트판까지 정독해야 직성이 풀린다. 모니터 너머의 이야기에 파묻혀 정작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경험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이와 함께 우울감을 호소하는 ‘코로나 블루’에 빠진 이들도 생겨났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나타난 현상이다. 일상생활의 제약이 커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호도, 가짜 뉴스 등으로 심각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아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슬픔이나 분노 또한 삶의 원동력일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아무것도 진단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질 것이 없다는 냉소와 허무의 늪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무기력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잡아먹히게 된다.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좋은 점을 꼽아보기로 했다. 순전히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함이다. 먼저 강아지와 보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확보되었다. 나의 반려견 보리는 종일 헥헥대며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친구들과의 연락이 설레어졌다. ‘어느 날 아침, 내게 초능력이 생기면 어떨까’와 같이 쓸데없는 망상을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거나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던 당연하게 존재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는 무엇을 할까 계획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물론 이것은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이야말로 극단적인 자기 암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우리는 어떤 메시아적 전언을 기다린다. 시련은 모두 끝났다. 이제 우린 안전하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고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면 좋겠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일시 정지’된 시간을 ‘빨리 감기’하여 낙관적인 미래로 훌쩍 건너뛰고 싶다. 이 역시 상상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의 상황을 응시하고 현재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많은 이들이 예측하듯 세상은 이전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고. 무엇보다 우리는 함께,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고.문은강‘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2020-09-08

바람 따라 바퀴 따라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바람을 가르며 강변을 달려가는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볼 때면 생동과 활력, 낭만과 여유가 느껴져 누구라도 그렇게 타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자전거는 엔진 역할을 하는 두 다리의 힘으로 바퀴를 굴리며 두 손으로 잡은 핸들의 방향에 따라 사람이 갈 수 있는 웬만한 곳이면 타거나 끌고 갈 수 있는 유익한 이동수단이다.자전거는 타는 목적이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가벼운 차림으로 안장에 앉아 느긋하게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서 볼일을 보거나 누구를 만날 수도 있다.그리고 자출(자전거 출퇴근)하면서 생활 속의 운동으로 삼을 수도 있으며, 휴일의 MTB(산악용자전거) 라이딩으로 질주와 스릴 속에 심신을 단련할 수도 있다. 또한 인천~부산까지의 국토종주나 4대강 종주 등의 원정 라이딩으로 자신의 의지를 불살라 완주의 성취감을 만끽할 수도 있다.이렇듯 자전거는 인간의 힘을 이용해 움직이는 탈것 중에선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발명품으로 사람의 두 발을 대신해 어디든지 손쉽게 누빌 수 있다. 인류가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도록 해준 시발점이 되는 바퀴는 인류의 10대 발명품이기도 하다.필자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중고 자전거로 20여리 신작로를 등·하교 하면서 그리도 신나게 즐겨 타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일까? 4~5년 전부터는 거의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가 하면, 아들과의 국토종주, 동료들과의 퇴근 라이딩, 섬 일주 라이딩 등을 즐기며 쏠쏠한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80년대 초·중반 신입사원 시절에는 교통사정이 여의치 않아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거침없이 헤치면서까지 자전거 출퇴근을 했어야 했지만, 요즘은 건강과 여기(餘技) 삼아 여유롭게 운동하듯이 타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최근엔 주말에 두 바퀴를 굴려 친구나 지인의 집을 무작정 ‘찾아가는 라이딩’으로 자전거 타기의 또 다른 재미(?)를 누리곤 한다. 한동안 뜸했던 사람을 만나는 반가움 속에 차나 음식을 곁들여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살가운 정이 솟아나게 되고, 어떤 친구는 손수 가꾼 푸성귀를 듬뿍 뜯어 주기도 한다. 이따금씩 기계나 죽장, 청하, 경주 등지에 거처하는 분들을 만나러 가는 들길이나 농로 주위에는 민들레와 금계국, 쑥부쟁이가 환호하듯이 반겨 피고 바람의 결마저 설레어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는 듯하다.숨막힐듯 왕왕거리며 들려오는 봄날의 개구리 울음소리와 초록의 논에서 한가로이 날갯짓하는 왜가리, 너른 들판에서 묻어나는 싱그러운 냄새를 맡으며 바람 따라 바퀴 따라 유유히 자전거를 저어가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풍경 속의 주인공이 되는 듯하다. 근교 라이딩으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길가의 정경을 완상하며 사람의 향기에 젖어 드는, 일종의 도락(道樂)과 교분을 나누는 일이다. 바람 따라 바퀴가 굴러갈수록 마음 따라 교유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2020-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