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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코로나 위기 속 돋보인 성주 참외생산

올해는 성주참외 재배 50년 되는 해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성주참외는 50년의 재배기술 축적으로 이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주의 브랜드가 됐다,경북 성주군은 올 한해 지역의 참외 생산액이 5천19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성주참외 조수입 5천억원을 달성한 것이다. 성주참외는 1950년대부터 참외를 본격 재배하기 시작해 시설재배와 기술개발로 2003년에 생산액 2천억원을 달성했고, 작년에는 5천50억원으로 첫 5천억원을 돌파했다. 성주군에 의하면 올해 성주군의 참외재배 농가는 3천848가구로 재배면적이 3천422ha다. 생산량은 18만6천501t으로 전년보다 1천883t이 감소했으나 억대 수입농가는 1천230가구로 지난해보다 30가구가 더 늘었다.이병환 성주군수는 성주참외의 2년 연속 5천억원 돌파는 농가들의 재배기술 발전과 노력의 산물이라 말했다. 성주참외는 실제로 본격적인 시설재배를 시작한 이래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생산량을 늘려왔다. 그 노력의 결과 2006년 성주참외산업특구가 지정되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정하는 성주참외지리적표시제에 등록을 할 수 있었다. 성주참외의 지리적 특성과 품질의 우수성을 공식 인정받은 것이다.최근에는 참외를 딸기처럼 편하게 서서 농사지을 수 있는 재배기술도 경북도농업기술원에 의해 개발돼 화제가 됐다. 이럴 경우 기존의 포복재배 때보다 수확량이 30%정도 는다고 하니 재배기술 발전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낙동강을 낀 성주참외 재배지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겨울에는 북풍을 막아주고 일조량이 풍부한 동남쪽에 넓은 평지를 이룬 곳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으로도 유리한 입지에 있지만 재배기술 개발과 농업단체 등의 마케팅으로 성과를 더 올릴 수 있었다. 올해도 성주조합공동사업법인 및 지역농협 중심으로 통합마케팅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대다수 업종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성주참외는 이런 노력으로 택배물량이 전년보다 30%가 늘어났다는 것이다.성주참외는 수출에도 눈을 돌려 작년 한 해만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 500t을 수출했다. 모든 산업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참외농가가 보인 성과는 그래서 더 빛날 수밖에 없다.

2020-10-26

유전자가위

생명공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발견으로 불리는‘유전자 가위’는 특정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사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내는 기술을 말한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다우드나 교수와 샤르팡티에 교수가 2011년 3세대 유전자가위‘크리스피 캐스9’을 완성해 각광을 받았다.‘크리스피 캐스9’은 박테리아에서 발견되는 면역시스템인‘크리스퍼’에 마치 가위처럼 DNA 염기서열을 자를 수 있는 단백질‘캐스9’을 결합한 기술이다.박테리아는 자신에게 침입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를 표식으로 보관하다가 나중에 같은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바로 효소 단백질로 잘라낸다. 이를 손상된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쓰는 게 바로 유전자가위다. 유전자 가위를 절단하고 싶은 DNA에 붙이면 DNA 이중나선이 풀리면서 가이드 RNA와 DNA가 결합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DNA가 잘리거나 붙으면서 DNA 교정이 가능해진다. 3세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면 연구자들이 동식물과 미생물 DNA를 정확하게 수정할 수 있어서 암 치료를 위한 새 대안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유전질환을 정복한다는 꿈을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를 모으고있다. 다만 유전체를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다는 말은 생명의 기본적인 설계도를 마치 신이 된것처럼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것처럼 멸종된 생물을 복원한다던가, 유전질환을 지닌 태아의 생명을 구하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난제에 봉착하던 난제들에 도전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발전이 인간의 생명윤리 자체를 넘어설 경우 인류가 겪을 재앙이나 공포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26

이건희 별세…일부 정치권 또 ‘천박한’ 조의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삼성서울병원에서 투병 6년 만에 별세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의 총수라는 차원에서 이 회장의 서거는 큰 사건이다. 그런데 이 상사(喪事)에 일부 정치권이 조의를 표하면서 초를 치듯이 험담을 섞어내는 천박한 현상이 또다시 벌어졌다. 그가 이뤄놓은 경제적 업적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장례 기간만이라도 티 뜯기는 삼가는 것이 기본예의 아닌가. 참으로 한심한 풍경이다. 집권당을 대표하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비판’으로 덧칠된 후렴에 더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한 이상한 조의문이 눈에 띈다. 그는 조의문에 “고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면서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토를 달았다.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는 촌평을 섞었고,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이 회장은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고 쪼았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뜬금없이 이재용 부회장을 향해 “당당하게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의당은 조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굳이 밝혔다.근대화의 주역인 김종필 전 총리와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사후 평가를 두고 벌어졌던 볼썽사나웠던 분란이 새삼 떠오른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의 사거(死去)에 즈음하여 그 삶에 대한 공과(功過) 평가는 얼마든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장례 기간도 못 참고 성급하게 무덤에 침을 뱉듯이 악담을 퍼붓는 저급한 문화는 진실로 부끄러운 참상이다.‘명복을 빈다’면서, 대답도 반박도 할 수 없는 망자를 향해 살아 있을 적의 일들을 시시콜콜 적시하며 굳이 강퍅한 주장을 펼치는 일은 추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으뜸 기업이 된 ‘삼성’으로 인해 우리 국민 각자의 삶이 나아진 부분이 분명하게 있음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나. 고인의 어록처럼 아직도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야”할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2020-10-26

‘독도의 날’에

윤영대수필가10월 25일 어제는 ‘독도의 날’이다.1900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반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에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관련 단체 등과 공동으로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전국 단위로 선포했었다. 이것은 일본이 그동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온 것에 대한 경고이자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우리의 강력한 독도수호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은 포항에서 뱃길 258km,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섬이고, 동도와 서도로 이루어져 있는 작지만 소중한 우리의 영토이며 자산이다.영해와 영공을 결정짓는 지리적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난류와 한류가 합치는 황금어장에 해양생태계의 보고이다. 여름철이면 오징어 떼가 넘쳐나고 겨울과 봄에는 명태가 몰려오며 꽁치, 대구들도 무리 지어 다니고 있다. 해저 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등이 숲을 이루어 해삼, 문어들이 풍성하고 이제는 멸종된 바다사자 강치의 기억을 더듬으며 바다제비, 괭이갈매기, 슴새 등 많은 철새들의 서식 낙원으로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 밑 울릉분지에는 천연가스 부존가능성이 있어 경제적 가치로도 동해의 보물이다.이러한 독도에 일본이 끊임없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옛날부터 근해에서 자기들이 고기잡이를 해왔고 1905년 시네마현 고시로 다케시마(竹島)라고 불렀으며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내용에서 빠졌다는 것을 핑계로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세종실록지리지 등 우리의 고문서와 고종 칙령을 보더라도 얼토당토않는 행위인 것이다. 자기네들의 태정관 지시(1877년)에도 ‘죽도(울릉도) 외 1도(독도를 말함)는 일본과는 무관’함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우리 측의 허술함도 있었겠지만 1994년 배타적 경제수역이 실시되면서 독도 주변이 공동 구역으로 정해졌었다. 사실 전 세계지도의 80% 이상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니 우리도 빨리 외교나 학술발표 등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역사를 보더라도 삼국사기에는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었고 이조실록에도 수차례 사람을 보내 지키도록 했었으며 17세기 말 안용복은 일본에 건너가서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왔지 않은가. 이제 홍순칠 대장의 독도의용수비대를 이어받은 독도경비대가 주둔하고 독도 주민도 살고 있는데 아직도 일본은 영유권 고집을 피우고 있다.독도 문제는 일본과의 감정 대립을 넘어 그들의 전략과 속셈을 파악하고 명확한 역사적 자료와 폭넓은 외교력으로 일본의 영유권 야욕을 꺾는 힘을 길러 극일(克日)을 해 나가야 한다.입도신고제로 바뀐 후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들어온다고 하니 ‘독도의 날’을 맞아 해양환경도 지키며 우리의 영토 주권수호에 대한 의지도 길러야겠다.

2020-10-25

책 읽어 주기의 힘

김현욱 시인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뇌가 독서를 배우는 방법을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라고 말했다. 소리에 관한 한 아이들의 선(線)운 이미 연결되어있지만, 문자는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말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만 글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애초에 뇌는 독서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는 행동은 인간에게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E. B 휴이는 “독서라는 과정은 문자를 단순히 시각적으로 읽는 행위만이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행위 중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 중의 하나.”라고 거들었고, 멀린 위트록은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위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 글로 쓰인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가면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의 감정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통합을 위해서는 뇌의 각 영역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렇다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책 읽어주기다. 1979년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출간한 짐 트렐리즈에게는 어린 시절 책을 읽어 준 아버지가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추억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자녀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많은 아이가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가 부모와 교사에게 있음을 깨달은 트렐리즈는 자비로 이 책을 냈다. 그 후 트렐리즈의 책은 스테디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의 교실 풍경까지 바꿔 놓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도 2만여 개가 넘는 학교가 매일 아침을 책 읽기로 시작하고 있다.많은 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해 노심초사하지만 어릴 때부터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사실, 읽기는 모든 학습의 기초요 주춧돌이다. 책 읽기와 학업 성취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수많은 통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읽기가 교육의 중심이고, 읽기가 최우선이다. 읽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읽기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부터 소리 내어 책을 꾸준히 읽어 주는 것이다. 트렐리즈는 요람에서 10대 중반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핀란드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어 글을 배우지만 읽기 능력과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고이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핀란드의 많은 가정은 책을 읽는 분위기이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매우 강조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의 역할도 막중하다. 좋은 책을 골라 아이들에게 열심히 읽어주자. 좋은 책과 책 읽어주는 당신의 목소리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2020-10-25

이제는 ‘저축’이 아닌 ‘금융’도 생각해보자

달력에는 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로서 뜻있는 ‘날’이 많다. 생소한 날도 적지 않은데 ‘금융의 날’도 그중 하나일 것 같다. 옛날 ‘저축의 날’이 개명한 것이다. 10월 마지막 화요일로 지정된 이 날의 유래는 196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증권의 날’과 ‘보험의 날’까지 흡수하면서 ‘저축의 날’이 되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저축’과 ‘금융’이 의미하는 뜻은 크게 다르다. 지금도 신흥국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하도록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국민 저축이 늘어나면 그 자금으로 산업을 육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외국에 차관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자율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도 예전에는 ‘저축은 국력’이라는 표어까지 내걸었다. 저축 유도를 위해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이나 주택마련 적금과 같은 상품도 있었다. 그때는 ‘저축’만으로 재산형성이나 주택마련이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축’으로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시대가 되었다. ‘저축’이 아닌 ‘투자’라는 개념이 들어가는 ‘금융의 날’로 이름이 바뀐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주택, 아파트, 토지와 같은 ‘실물’자산에 대한 욕구가 높다. 가계의 자산구성도 예금, 보험, 증권과 같은 금융자산보다는 실물자산 비중이 훨씬 높다. 미국 등 선진국과는 정반대다. 문제는 아무리 실물자산을 원하더라도 옛날과는 여건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삼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축’과 ‘대출’을 끼면 내 집 마련의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길이 끊어졌다. 더구나 ‘저축’에 상극인 ‘저금리’까지 함께 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를 특정하는 다양한 사회 용어 가운데 가슴 아프게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3포세대’라는 말이 연애, 결혼, 자녀를 의미한다고 할 때 만 하더라도 설마? 했었지만, 지금의 N포세대는 3포세대에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를 더한 7포 세대를 뛰어넘어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이러한 현실에서 새삼 ‘금융의 날’이 달리 느껴진다. 청년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돈’ 때문일 것이다. N포에서 7포로 5포로, 그리고 5포에서 3포로 줄여나가려면 역시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 문제만도 아닐 것이겠지만. 그러한 의미에서 확률적으로 서민이든 N포세대든 돈을 모으는 ‘저축’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 돈을 불리는 ‘금융’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최소한 희망이 있는 ‘금융’을 지금부터라도 눈여겨보고 쥐 꼬리 만한 ‘돈’이라도 불려 나간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N포에서 ‘1포’를 조금씩 빼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덕담 중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누가 말해도 누구에게 들어도 즐겁다. 그러나 실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하늘이 점지한 사람만 부자가 된다고 믿는 선민의식에 빠진 부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수 대에 걸쳐 내려온 부자 가문이 아닌 한 정답은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지식, 그리고 열정, 끈기와 더불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절제가 있다면 부자가 될 최소한의 ‘기회’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외국의 한 국제투자가가 세계의 부유층이 ‘금융’에 대한 투자나 매매에 활용하고 있는 공통분모를 책으로 펴냈다. 제목도 ‘세계의 부자가 실천하는 돈 늘리는 법’이다.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책의 줄거리는 그동안 국내에서 나온 금융투자와 관련한 책들이 이야기하는 ‘비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첫 번째 규칙은 최대한 정보를 모으라는 것이다. 증권이라는 금융상품을 예로 들어 보자. 주식이라는 것은 미래에 그 주식을 발행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를 시장에서 예측하여 오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사고, 떨어진다고 본 사람은 판다. 그 모든 판단은 결국 예측에서 나오며, 그 예측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지식이나 정보에서 나온다. 당연히 ‘금융’을 통해 자신의 돈을 불리려는 사람은 자신이 거래하려는 대상의 기업, 그 기업이 속한 업종, 그 업종이 속한 산업에 대해 전망, 세계적인 움직임을 공부하고 정보를 모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문, 뉴스, 잡지의 경제면을 많이 읽자.두 번째 규칙은 절대 다른 사람 이야기만 듣고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거래의 당사자는 ‘자신’이다. 자기가 부자가 될지 말지를 결정할 중대한 판단을 누군가가 ‘하다더라’라는 말에만 따르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어로 된 약자투성이의 금융상품이나 펀드를 설명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한 금융투자상품들을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권유한다고 그저 믿고 ‘묻지마 투자’를 해서는 절대로 ‘돈’을 불릴 수는 없다.세 번째 규칙은 투자대상이나 상품을 선정할 때 단 하나에 ‘올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돈인데 이것을 나누고 쪼개고 하는 ‘분산투자’가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그마저 줄어들게 만드는 ‘위험’만은 분산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분산투자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위험분산’이기도 하다. 돌다리를 두드린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공부하고 자기가 결정한 거래라도 ‘혹시’, ‘어쩌면’이라는 생각에서 두 개, 세 개로 나눈다면 ‘돈’을 많이 늘리지는 못해도 적어도 가진 ‘돈’을 단번에 잃어버리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다.네 번째 규칙은 자신이 거래할 때는 납득할 만한 자신만의 이유, 원칙을 정해두고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주식을 산다면 어떻게 움직이면 팔겠다. 이 주식은 이런 이유로 가격이 오를 것이므로 산다는 ‘이유’를 적어두면,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알고, 떨어졌을 때는 미리 정한 가격에 무조건 손해를 보더라도 팔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어쩌면 금방 다시 오를 거야’라며 자기를 속이는 일도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법칙이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공부하고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정한 ‘원칙’을 인공지능처럼 지켜서 거래하는 사람과 ‘혹시’라는 ‘기대’로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어기는 사람이 싸우는 ‘주식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뻔하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부자나 돈을 불리겠다는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마지막 다섯 번째 규칙은 사고팔 때 단번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투자가의 ‘위험’을 줄이는 원칙이기도 하다. 자신이 모은 지식, 정보를 이용하여 정해둔 매입가격까지 많이 하락하여 매입 시점이 되었더라도 투자 금액의 3분의 1만큼만 사고 가진 모든 돈을 단번에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혹시라도 자신의 판단이 틀려 가격이 추가로 내려가더라도 가진 돈의 3분의 1을, 또 내려가면 나머지를 살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출 수도 있고, 여의치 않을 때는 추가 매입은 포기하고 최소한의 손해로 그칠 수 있게 된다. 이는 팔 때도 마찬가지다.쉽지는 않다. 하지만 ‘금융의 날’을 맞이하여 적어도 손에 든 ‘돈’을 ‘금융’으로 불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한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0-25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의 역할 막중해졌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강석호 전 의원이 주축인 전·현직 의원들의 모임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의 역할이 막중해졌다. 이렇다 할 대권 주자가 없는 국민의힘의 다급한 상황을 타개해줄 가장 종요로운 베이스캠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포포럼은 최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원희룡 제주지사·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을 초청해 강연을 들은 데 이어 다음 달 5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26일 유승민 전 의원 강연일정이 잡혀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연구단체 마포포럼을 출범시키면서 ‘킹 메이커’를 자청했다. 마포포럼은 10월 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2일 마포포럼 초청 강연에서 “저를 포함해 원희룡·안철수·유승민·홍준표의 5인 원탁회의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김무성 전 대표는 “여기(마포포럼)를 무대로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동의했다. 야권 대권주자 중 하나인 홍준표 무소속 의원에 시선이 쏠린다. 마포포럼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이 제안한 ‘원탁회의’와 관련해 “논의를 하고 있었다”며 “다만 홍 의원이 무소속이기 때문에 5인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홍 의원의 복당 문제는 간단치 않다. 홍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취임때부터 각을 세워왔다. 그의 합류에 대한 득실계산도 복잡하다.더불어민주당이 힘의 논리에만 빠져서 온갖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제1야당 국민의힘이 도무지 그 반사이익마저 챙기지 못하고 있다. 23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 35%, 국민의힘 17%로 나타났고, 무당층은 지난주보다 3%가 오른 34%로 지난 4월 총선 이후 최대치를 보였다. 집권당에 실망한 민심이 여전히 부동(浮動)하고 있다는 증거다.국민의힘은 작금의 불임정당 이미지를 더 이상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민심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수권 능력을 입증할 대권 잠룡들을 하루빨리 레이스에 올려야 한다. 그 막중한 책임이 마포포럼에 부여돼 있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기운으로 하루빨리 전열을 갖추는 일을 해내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이 마포포럼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2020-10-25

선택적 정의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정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말했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의(義)와 이(利)로 구분했다. 정의로운 일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군자라는 뜻이다. 군자란 지금의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가를 이르는 말이다. 공자는 사람과 사회를 중요한 인식의 대상으로 삼은 사상가다. 특히 사회 지도층인 정치가의 도덕심은 사회를 바르게 세우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유럽 국가의 오랜 전통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흐름이 같다.정의란 근본적으로 가진 자의 솔선수범에서 시작한다. 지금 국가 경영에 직간접 참여하는 선출직 정치인이나 장관 등 고위직에 대한 도덕성 요구는 이런 점에서 너무 당연하다. 가진 만큼 더 큰 책임이 있고, 지도자가 가진 힘과 재산은 반드시 정의롭게 사용돼야 한다.정의는 인간이 이성적 판단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든 추구하는 올곧은 가치관을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 본질은 평등”이라고 했고, 플라톤은 “지혜, 용기, 절제의 완전한 조화”라고도 했다.지금 우리 사회 모두가 외치는 정의는 과연 올바르게 실현되고 있는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각자가 주장하는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된다고 하면 정의로운 사회는 영원히 이룩될 수 없다. 정의란 시대불변의 진리인데도 사람에 따라 혹은 이익단체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정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는 누구에게나 동일할 때 정의의 본질이 성립하는 것이다. 정의를 두고 네 것과 내 것으로 가르는 것은 진실에 위배되는 모순이다. 어떤 사안을 두고 “정의롭다, 아니다”라는 판단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던진 ‘선택적 정의’란 표현은 그런 점에서 편가르기로 보일 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0-25

독감백신 접종, 국민불신 해소가 먼저다

독감 백신접종 뒤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으나 보건당국은 접종 일정을 예정대로 지속할 것임을 천명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주말 브리핑에서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신고 분석결과, 사망과 접종은 직접적인 인과성이 매우 낮아 백신 재검정이나 예방접종 사업 중단을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그러나 백신접종을 시작한 이후 사망신고는 줄곧 늘어 24일 현재는 48명까지 급증했다. 또 백신접종과 관련한 이상 반응을 신고한 사례도 23일까지 789건이었던 것이 24일에는 1천154건으로 확인됐다.보건당국은 “올해는 백신의 상온 노출과 백색입자 검출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대국민 불신감이 높아진 것이 신고 증가로 이어진 것 같다”는 분석을 냈다. 그 이유로 작년도 백신접종 후 일주일 이내 숨진 만 65세 이상 노인이 1천500명에 달했다고 했다. 이들은 백신접종과 시간상 연관이 있지만 예방접종과는 무관했던 사람이라 했다.그러나 보건당국의 이러한 해명과 예방 방침에도 백신접종에 대한 불신감은 좀처럼 불식되지 않고 있다. 다수의 국민은 백신접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우왕좌왕한다. 특히 백신접종 후 사망사고와 관련, 전국 일부 지자체와 의료기관이 백신접종을 보류하는 움직임까지 보여 대국민 불신감은 더 증폭되고 있다.포항시는 지난 주말 백신접종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29일까지 유·무료 접종 모두 보류할 것을 민간의료기관에 통보했다. 서울 영등포구도 독감백신 사용을 보류하기로 했으며, 대한 의사협회는 예방접종 권고문을 발표하고 백신의 안정성 입증을 위해 일주일간 접종을 유보할 것을 권고했다.문제는 백신접종에 대한 과도한 불신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국민의 예방접종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예방접종 사업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중대한 허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안전한 관리로 트윈데믹의 위기를 잘 넘겨야 할 때다. 보건당국은 예방접종에 대해 정부, 지자체, 전문가 단체가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확고한 의학적 신뢰를 입증해야 한다. 개개인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 “지난해 괜찮았으니 올해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하면 국민은 이해할 수가 없다. 보건당국의 철저한 원인규명과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다.

2020-10-25

‘윤석열 드라마’가 시작됐다

안재휘논설위원‘권위주의’와 ‘권위’는 완전히 다르다. 소위 ‘진보’와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는 바로 ‘권위주의’를 청산한다면서 실질적으로는 ‘권위’까지 무너뜨린 일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흔한 말 중에 “요즘 나라에 어른이 없다”는 푸념은 참이다.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그 치명적인 만행은 점점 더 광기(狂氣)로 치닫고 있다.지난 22일 여의도 국회에서 벌어진 ‘윤석열 드라마’는 생방송 시청률 9.91%를 기록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윤석열 드라마’의 결정적 흥행요인은 불과 1년여 전 ‘윤석열 찬가’를 부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똑같은 입으로 마구발방 물어뜯는다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적 요소다.2013년 국정원 댓글 외압사건을 폭로할 당시에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기록한 윤 총장은 이번에는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겼다. “검찰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면서 한낱 자신을 졸개 취급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무례에 대한 통쾌한 카운터블로였다.적지 않은 법률전문가들이 추 장관의 5가지 실정법 위반을 적시한다. 검찰청법 제8조에 명시된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이 추 장관 수사지휘권의 권원(權原)이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처리 방향 지휘가 아니라 아예 총장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게 법조계의 보편적 해석이다.수사지휘권 박탈은 ‘정직’에 해당하는 징계다. 검찰청법 제37조 ‘징계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검사가 해임, 면직, 정직 등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과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도 위반했다는 견해마저 분분하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수사지휘권 횡포가 일상화된다면 이 나라는 ‘검찰독립’이 완전히 무너진 독재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청와대와 여당이 입버릇처럼 쓰는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사법기관의 사유화’를 뜻하는 사탕발림이고, ‘검찰 개혁’이라는 말은 ‘검찰 장악 음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다.‘윤석열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플래카드와 함께 검찰청사 앞에 줄지어 선 100여 개의 화환은 결코 즐거운 풍경이 아니다. “(나만 빼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어법(反語法) 괄호 부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윤석열은 ‘바보’라는 야당 정치인의 야유는 차라리 슬프다.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검찰독립’의 미덕을 담보하기 위한 일종의 불문법적(不文法的) 관례였다. 그러나 이제 이 정권이 오래된 전통을 붕괴시키고 있다. 삼권분립을 망가뜨린 정권의 하수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온갖 ‘중상모략’으로 멀쩡한 검찰총장의 ‘권위’를 파괴하며 검찰권 찬탈을 음모하고 있다. 백전노장 ‘윤석열’의 다음 드라마가 벌써 궁금해진다.

2020-10-25

꽃밭을 지키는 탑

“저~기, 꽃도 아이고 나무도 아이고 붉은색 보이지요? 거기시더.”영산서원을 구경하고 난 뒤 해설사에게 근처에 탑이 두 개 있다는 이정표를 봤는데 어디쯤 있냐고 물었다. 언덕에 자리한 서원이라 마당에서 마을과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가을 햇살이 하도 눈이 부셔서 손양산을 하고서 들을 ‘주욱’ 훑었다. 어딘지 헤매는 우리에게 손짓으로 알려준 곳에 꽃밭이 있었다. 모양은 나무인데 키가 낮고 색이 붉기도 하고 분홍빛도 어우러져 진짜 꽃밭처럼 느껴졌다. 그 밭 언저리에 언뜻 탑이 보였다. 그것은 삼층탑이고 거기서 다리를 건너면 오층탑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셨다.차를 몰고 가까이 갈수록 꽃밭의 형체가 드러났다. 시골집 마당 가에 많이 심는 댑싸리였다. 보통은 연두색이다가 베어서 빗자루를 만들어 마당을 쓰는 용도로 썼던 그 풀이다. 핑크뮬리처럼 색이 고와서인지 이미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많았고, 한적한 시골 동네에 차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분홍빛에 묻혀 인증샷을 찍기 위해서였다.꽃밭 너머에 삼층탑이 섰다. 저 멀리 당간지주도 덩그러니 놓였다. 댑싸리 지나 풀밭을 헤치고 가까이 갔다. 탑의 여러 곳이 깨지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12지신상을 한 면에 3구씩 새겼다. 탑신의 1층 몸돌에는 각 면마다 사천왕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각 층의 지붕돌 밑면에는 물을 뺄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고,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이 탑은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이곳에 ‘북악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요즘 들어 영양에 자주 갔다. 길이 새로 난 덕분에 멀기만 하던 영양이 내 곁으로 성큼 다가온 덕분이다. 영덕에서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면 20여 분만에 톨게이트에 내려서라고 하니 포항에서 한 시간 좀 더 가면 된다. 육지 안의 섬이라고 할 만큼 깊은 산 속에 자리한 곳이라 다소 낯설다는 느낌이 드는데 의외로 오래된 종택을 비롯해 국가지정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이 가운데 특히 탑과 관련한 문화재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보통 탑이라고 하면 산을 올라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양군의 경우 대부분 마을이나 길가에 탑이 있어 접근성 면에서 좋다. 탑이 있다는 것은 곧 영양 지역에 사찰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늘은 두 개의 탑을 보러 갔다. 밭 가운데 자리한 영양 현리 삼층석탑과 모전석탑 계열의 현이동모전오층석탑이다.분홍 댑싸리 밭을 나와 다리를 건너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탑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현리 2교의 반대편이자, 현동교를 지나면 이내 현이동모전오층석탑 만날 수 있다. 작은 사찰 내에 자리한 이 탑은 듬직한 형 같아서 건너편의 삼층석탑을 보살피려 내려다보고 있다.일월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반변천 가에 탑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다. 강가의 고가차도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있어, 그 강을 따라 내려가면 국보 제187호 봉감모전오층석탑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영양에는 하천변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김순희수필가절이 사람을 불러들이던 현리에 이제 탑만 남았다. 핑크 댑싸리가 절의 역할을 대신한다. 나와 남편 말고 탑에 관심을 갖는 이가 거의 없었다. 모두 꽃밭 언저리만 맴돌다 이내 차를 돌려 마을을 떠났다. 여기 탑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댑싸리를 삼층탑 둘레까지 심고 꽃밭 입구에 오층탑의 위치를 표시해 두면 좋겠다. 우리가 탑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분홍 댑싸리를 득템 했듯, 댑싸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천년을 그 자리에서 천년의 풍상을 겪은 탑이 전하는 구수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행운을 건질 수 있게 말이다. 그러면 댑싸리가 탑을 더 오래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지. 탑과 분홍 댑싸리가 함께 나오도록 카메라를 높이 들고 한 장의 추억을 찍었다.

2020-10-25

코로나·태풍 아픈 상처 딛고 다시 일어설 터

김병수 울릉군수“총리대신과 현임 대신들께 언급 하도록 하라. 지금 보니 일시라도 버려둘 수는 없다. 비록 한 조각의 땅이라도 버릴 수는 없다. 단지 저들에게 통고만 할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일도 또한 속히 하라”!동해 유일의 섬 대한민국 경북도 울릉군.1882년 고종은 동해 유일의 섬 우리 땅 울릉도에 왜인들이 송도(松島)라 표목을 세우고 우리 강토를 넘보고 있다는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보고에 따라 울릉도 개척을 명했다.이듬해 1883년 개척민(16호 54명)이 입도한 이래로 울릉군민은 138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척박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동해와 함께 우리 민족의 섬 독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그러나 2003년에 태풍 ‘매미’가 울릉도를 관통 할 때도 그랬듯이 매년 태풍이 울릉도와 독도를 초토화 시킬 때 마다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가고 우리나라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멀어 졌습니다”라는 방송사 기상 케스트의 멘트와 함께 국가 재난방송은 종료되고, 울릉도는 그야말로 소외된 땅으로 남아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지난 9월 태풍 ‘마이삭’이 파고높이 19.5m를 기록하며 울릉도 독도를 초토화 시키고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연이은 태풍 ‘하이선’이 관통하면서 섬 전체가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지고, 날아가고, 침몰하는 그 순간에도 울릉도 주민들은 “우리나라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는 뉴스를 보면서 상상하기 힘든 태풍의 위력 앞에서 절규 했고 원망 했다.울릉도는 어느 나라이고 우리는 어느 나라 국민 입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태풍직후 정세균 국무총리가 울릉도로 급하게 달려와 “울릉도 뒤에는 대한민국이 있다”면서 위로를 전했다.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울릉도를 조기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 했고, 울릉군도 이에 발맞춰 태풍 응급복구, 재난구호 등을 신속히 추진, 최근 813억 원의 복구비가 확정되는 등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울릉군의 시름은 끝이 없는 현실이다.올해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코로나 확진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은 코로나 청정섬 울릉도도 관광객이 70%정도 감소해 지역 관광업계가 도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잇따른 태풍으로 행남 해안산책로, 태하모노레일 등 울릉도의 주요관광 시설이 타격을 입었고 무엇보다도 독도 접안시설이 피해를 입어 올해까지는 관광객의 독도입도가 불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지역관관상업 회복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가 큰 고민이다.최근 태풍의 영향으로 중국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 출어하지 못해 예년에 비해 오징어가 조금 빨리 잡혀 지역경제 회복에 작은 희망을 주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코로나로 인한 관광객 감소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판로가 걱정되는 실정이다.울릉군은 코로나로 지역경제의 버팀목인 관광산업이 무너지고 업친데 덥친 격으로 연이은 태풍이 관통 하면서 실의에 빠진 군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공감하면서 공직자의 땀방울이 주민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심정으로 태풍피해의 항구적 복구와 지역 발전을 위한 희망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대한국민 여러분! 138년 전 고종임금이 그랬듯이 울릉도와 독도는 단 조각의 땅이라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동해의 작은 대한민국 ‘울릉도’ 우리나라 영토 애의 상징 ‘독도’는 태풍의 아픈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국민들이 뽑은 대한민국 대표 1위, 2위 섬, 울릉도와 독도는 동해의 진주입니다. 물이 풍부하고 공기가 맑고 깨끗한 청정 섬, 천혜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신비의 섬 울릉도는 여러분의 섬입니다. 코로나 19로 지치고 힘든 정신과 육체를 울릉도에서 힐링하세요.

2020-10-25

택배산업, 죽음 부르는 ‘업무량’ 구조 끊어내야

택배기사들의 과로사망 소식이 잇달아 들려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택배는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올해만 1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최근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생활고를 겪던 택배 노동자가 지난 2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는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 산업구조의 맹점인 업무량 과다 문제를 정밀하게 찾아내어 끊어내고 보완해야 한다. 경남 창원 진해구의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일하던 40대 후반 로젠택배 노동자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억울하다’는 제목의 A4용지에 쓴 유서를 남겼다. 망자는 직접 꼼꼼히 적은 이 유서에서 계약서의 문제점을 낱낱이 고발했다. 로젠택배 노동자들은 ‘손해배상 책임’, ‘위약금’ 등이 명시된 계약서를 써야 했다.택배기사들은 직영 직원과 지입 기사 등 두 가지 형태로 현업에 종사한다. 지입 기사는 자기 소유의 배송 차량과 사업자를 갖고 계약을 통해 하청을 받는 형태로 일하는 직군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일종의 능력급 형태, 즉 배달물량의 수에 따라서 수익이 달라지는 구조여서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능력급 형태의 산업구조가 노동강도를 과도하게 높이고 과로사를 부르는 핵심요인이다. 이 문제는 필연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특고) 문제와 맞물려 있다. 특고 노동자와 기업주는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를 아끼려고 스스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산재보험 문제를 해결하면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정치권이 접근하는 것은 헛발질이다.생지옥 같은 택배기사의 업무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 치명적 업무량 때문에 온몸에 골병이 들고, 어쩌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리는 일은 제도적으로 막아내야 한다. 치열한 택배시장의 무한 가격경쟁 구조도 바로잡아야 한다. 적당히 노동하고도 먹고 살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신속히 해결해내야 한다. 언제까지 이 죽음을 부르는 악마적 노동환경을 그대로 둔 채 강 건너 불 보듯 할 참인가.

2020-10-22

언택트 행사 확대로 경제 활로 찾아야

코로나19로 비대면(언택트)이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창조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한 언택트 라이프 스타일이 이제 향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다. 놀라운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경제 활동이 대거 중단되면서 우리의 경제는 지금 심각한 상황에 봉착해 있다. 특히 사람이 모여야 행사가 가능한 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나 여행업 등은 거의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빠져 있다. 또 식당 등 다중이용 시설의 자영업소들도 줄어든 고객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올 들어 대구와 경북에서 준비됐던 모든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거의 중단됐다. 그와 관련한 산업의 매출감소는 물론 종사자의 대량 실직으로 우리 경제는 초토화 될 지경이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여력도 없다. 코로나로 죽으나 경제가 나빠 쓰러지나 매 한가지라는 분위기까지 나온다.새로운 활로 모색이 절실한 때다. 때마침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아진 것을 계기로 지역경기 회복을 위한 각종 축제 및 행사가 조심스럽게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염두에 둔 비대면 행사 위주로 경제 회복에 나서겠다는 분위기여서 그나마 다행스러워 보인다.실제로 지난 18일 폐막한 ‘2020 온라인 경북영주풍기인삼축제’는 유튜브, 소셜미디어, TV 등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해 640만 명 이상이 접촉하는 성공을 거뒀다. 이에 앞선 경주의 ‘2020아시아송 페스티벌’도 온라인 방식으로 550만 명과 접속해 호평을 받았다.이 같은 성공사례는 코로나19 속에서도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언택트 방식으로 경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각 지자체가 먼저 앞장서 행사를 이끌고 나서야 한다. 일부 지자체가 위드 코로나 시대에 맞춰 언택트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나 보다 적극적으로 서둘러야 할 때다. 방역과 경제를 동시에 살리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장애물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적극적 대응으로 경제 활로를 찾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2020-10-22

재갈 물린 정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얼마전 ‘한국 진보통치자들이 발산한 내면의 권위주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을 평가하면서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1425년 세종대왕의 어록에서 “나는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소.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하시오”라는 구절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에 뼈아픈 조언을 던졌다. 진보진영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정부보다 평등하고 개방적이며, ‘이견에 관대할 것’을 약속해놓고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민주당 내 비판을 참지 못하는 기류는 민주당 내 친문 세력, 강성 지지자들의 폐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기권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았던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탈당 선언으로 이런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금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며 “국민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서슴지 않는 것은 김대중이 이끌던 민주당, 노무현이 이끌던 민주당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온라인 중심의 친문 강성 지지자들은 당내 비판을 하는 의원들에게도 ‘문자테러’등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을 두고 “병역은 국민의 역린”이라고 비판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나 추 장관의 대응방식을 비판했던 조응천 의원도 친문세력들의 표적이 돼 “차라리 국민의힘으로 가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민주당 내 자성을 위한 목소리에 재갈이 물린 셈이다.옛 중국 주나라 여왕이 재위 34년째인 기원전 844년, 괵공 장보와 영이공을 등용해 산과 숲·하천·호수를 모두 왕의 소유로 선포하고, 평민은 거기에서 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는 것은 물론 땔나무조차 벨 수 없게 했다.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고 가혹한 형법을 시행하기를 밥 먹듯 했다. 소목공(召穆公)이 “백성이 포악한 명령을 견디지 못하여 분노의 목소리가 크다”고 간했으나 왕은 오히려 노여워하며 위(衛)나라의 무당을 불러 비방하는 자들을 감시하게 하고, 고발이 들어오면 죽였다. 소목공은 다시 이렇게 간했다. “백성에게 입이 있는 것은 대지에 산천이 있어 거기에서 모든 재물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백성들이 마음껏 말하도록 하면 정치를 잘 하고 못함이 다 반영되어 나옵니다. 좋은 일을 밀고 나가고 잘못된 일을 방지하는 것은 대지에서 재물과 의식을 생산하는 것과 같습니다”얼굴없는 입이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에서 건전한 당내 비판을 막아서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분위기는 언로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이뤄지는 정치는 폭정이거나 독재, 둘 중에 하나일 수 밖에 없다.

2020-10-22

마피아 공무원

1972년 개봉된 알파치노 주연의 ‘대부’는 할리우드 영화 상 가장 훌륭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주인공 알파치노는 실제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출신으로 영화의 배경이 된 마피아 조직의 이야기를 실감 있게 연기한 배우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마피아 권력의 모습을 지나치게 품격 있고 권위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범죄조직을 미화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던 영화다.마피아는 19세기말 이전부터 남이탈리아의 복잡한 정치구조 속에서 번성한 범죄조직이다. 20세기에는 미국 등으로 넘어와 마약, 도박, 금융 등에 얽힌 거대한 범죄조직으로 발전하였고, 지금은 기업형 범죄조직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용어다. 한 때 이탈리아 마피아 범죄조직이 한해동안 벌어들인 돈이 이탈리아 국가 GDP의 7%에 달했다고 하니 그들의 범죄 활동범위를 짐작게 한다.마피아라는 유명세 덕분에 범죄 조직뿐 아니라 공적인 이익보다 사적인 이익에 치중하는 집단에게도 마피아라는 이름이 곧잘 붙여졌다. 서로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인맥을 통해 조직적으로 편의를 봐주는 경우다. 그래서 마피아는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관피아는 관료의 권력유착과 전관예우 등의 문제를 빗대 부른 합성어다. 재경부 마피아, 환경부 마피아, 해수부 마피아, 복지 마피아 등으로 사안에 따라 구체화되기도 했다.한 때 국가 발전의 주역이던 관료 집단이 언제부턴가 사적인 영역에서 권력을 행세하면서 마피아라는 불명예스런 호칭을 얻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최근 산자부 공무원이 탈원전 정책 감사와 관련 조직적으로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또한번 “마피아 같다”는 비난을 들었다. 공직자의 올바른 국가관과 도덕성에 대한 대오각성이 필요한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0-22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1950년대 초 미국 미시간 주의 한 유사종교 교주가 신의 계시라면서 이런 예언을 했다. “12월 21일 대서양 바닥이 융기해 해안선이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다. 프랑스는 가라앉을 것이며, 러시아는 거대한 바다가 될 것이다. 로키산맥 위로는 엄청난 물살이 밀어닥치리라. 이 모든 것은 세상을 정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그 교주는 오로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만 UFO가 와서 구출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날이 되어도 그들이 바라는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종말론을 믿었던 기존의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조증 환자처럼 기쁨에 겨워 날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기도했더니 신께서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시고 홍수를 내리지 않았다”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그로부터 40여 년 후에도‘천국의 문’이라는 종교 단체가 비슷한 종말론을 들고 나왔다. 그 단체의 신도들은 1997년 지구에 가장 근접할 예정이던 ‘헤일밥’이란 혜성의 뒤에 저들을 구원해 우주로 데려가 줄 우주선이 따라온다고 굳게 믿었다. 신도들 중에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던 혜성을 더 자세히 보려고 값비싼 고해상도 천체 망원경을 산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헤일밥 혜성이 지구를 지나갔지만 천국의 문 신도들이 기다리던 우주선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예정대로 구원받아 우주로 가려면 세속의 껍질(신체)을 벗어야 한다고 믿은 회원 39명은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다.이 같은 종말론에 관련한 사건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ce)의 전형적인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인지부조화’란 개념은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1950년대에 출간한 책 ‘인지적 부조화 이론’을 통해 제기된 용어이다.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심리적 불편함 등을 말한다. 다시 말해 태도와 태도, 태도와 행동이 서로 일관되지 않거나 모순이 존재하는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한다.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자신의 착각이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와는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페스팅거의 주장이다. 가령 담배가 발암물질이며 흡연 때문에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 담배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거나 흡연을 하면서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허황된 종말론신앙 못지않게 그릇된 이데올로기의 맹신도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낳는다. 고등학교까지 입시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운동권 선배들에게 포섭되어 오로지 좌경이념에 몰입해온 사람들은, 그들의 이념이 부정되는 인지부조화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신념이나 노선을 바꾸기보다는 대부분 자기합리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현상을 보인다. 심지어 온갖 궤변과 억지도 서슴지 않는 확증편향의 광기에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2020-10-22

‘역시나’로 끝난 노벨상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매년 가을이면 “혹시나”하다가 “역시나”로 끝나는 행사가 있다. 노벨상 수상식이 그것이다. 미국, 영국들이 수백개를 받았고 일본도 수십개를 받은 노벨상을 한국은 평화상이라는 정치적인 상 한 개를 받은 것 이외에는 단 한 개도 받지 못하고 있다.어떤 기자는 만년 하위 팀 야구팬들이 ‘가을잔치’ 포스트시즌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매년 가을 노벨상 발표를 지켜보는 기분이 딱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년 “혹시나”의 신드롬은 계속된다.몇 년 전에는 한국의 시인 한 명이 매년 “혹시나”하다가 “역시나”로 끝난 적이 있는데 금년에는 과학분야에서 “혹시나”로 몸살을 앓았다. 노벨상 수상이 유력한 우수 연구자를 선정, 발표하는 학술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를 화학상 후보로 점찍었기 때문이다. 현 교수 연구실은 기자들로 붐비고, 심지어 기자들은 현 교수의 고향집에까지 몰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국 “역시나”로 끝났다.노벨상을 수상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중진국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고 심지어 우리보다 뒤진다는 인도, 파키스탄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빠져있는 상태이다. 이제 “역시나”를 멈출 수 있을까?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어서 답을 구하면 된다”는 창의적인 학습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해법을 스스로 만드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그들에 비해 한국에서 수재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창의성에서 확실히 뒤지고 있다.과연 초·중·고등학교에서 창의적으로 길러지지 않은 학생들을, 대학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 노벨상을 받게 할 수 있을까.또 다른 문제가 있다. 과학계는 숱한 외풍에 시달린다. 정부가 갈리면 시작되는 과학계 압박과 사임 압박 열풍. 2년 전 정부는 국가연구비를 횡령하고 채용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KAIST 총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과학계에선 ‘정치적 숙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무혐의 처분으로 일단락됐지만 정부의 반성은 안보인다.카이스트 총장이 이러한 압력을 받은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전 정부산하에서 임명된 수십명의 연구원 수장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몰아냈다. 스스로 안나가면 감사라는 명목으로 들들 볶아서 내보내는 건 정부가 갈릴 때면 일어나는 정기 행사이다.창의력이 부족한 교육 그리고 정치에 휘둘리는 과학계 이 두가지 만으로도 노벨상이 안나오는 이유는 설명된다. 이제 “역시나”로 끝나지 않으려면 교육의 방식과 과학계의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제발 부탁한다. 정치논리로 과학계를 흔들지 말라. 교육 개혁은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과학계를 흔드는 일은 즉시 멈출 수 있지 않는가.

2020-10-22

이래도 되는 것이냐

장규열 한동대 교수우리는 어떤 나라를 기대했을까. 누구든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한 일상을 이어가면 부족하지 않은 삶이 가능해 이웃과 함께 좋은 날들을 만나게 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넉넉한 삶은 아닐지라도 사회의 어두운 구석이 사라지고 어울려 살아가는 일에 그늘이 드리우는 일은 만나지 않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천박한 자본주의에 더는 휘둘리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지 않았을까.세상은 희한하게도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한때, 어느 여인의 딸이 대학에서 특혜를 받았던 일에 분개해 대학생들이 분연히 일어서지 않았던가. 대학교수들이 수천만원씩 집어삼키는 비리를 저질렀다는데 대학생들이 저항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뉴스가 전하는 지도층의 부패와 타락을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느 국회의원에게 몇백만원 선물한 것은 너무 적으니, 하루저녁 천만원 술접대를 하고 수천만원 명품백을 돌렸다고 한다. 수억원 뇌물이 오갔다는데, 시민들은 감각이 마비됐다. 언론보도의 행태에 따라 ‘어느 편’이냐를 읽고 있을 뿐 사안의 심각함은 눈치챌 겨를도 없다. 돈에 약하고 유혹에 휘둘리는 건 오른쪽왼쪽이 없다. 정상인가 아닌가.부패와 타락은 문제인가 아닌가. 아니 그 교수들과 저 인사들은 차라리 성공한 게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을 부끄러워 않은 게 잘못이란 말이냐. 더 벌어 모은 게 배아파 하는 소리라면 차라리 당신도 성공하지 그랬냐. 그게 정말 그럴까. 일상에 쫓기듯 살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나라에는 차고 넘친다. 영세자영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주민들, 장애인들, 취업준비생들…. 몇십만원 재난지원금에 숨통이 트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수고에 합당한 대가로 살아가려 해도, 삶을 지탱하기에는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판에, 당신들이 누리는 접대와 뇌물은 정당한 일의 대가인가 아닌가. 당신이 어느 편이냐 묻지 않는다.도덕과 윤리는 무용한 것일까. 보통 사람들이 순종하며 잘 따르게만 하려고 ‘도덕과 윤리’가 있었다면 차라리 모두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모두 정글의 짐승이 되어 사투라도 벌여야 하는 게 아닐까.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이제는 누구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도덕율과 윤리의식을 요청해야 할 터이다. 교수와 의사, 법조인과 경제인들에게 높은 윤리기준과 깊은 공동체 의식이 필요해 보인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으로는 사회가 따뜻해질 방법이 없다.선진국이 된다 한들 도덕이 무너진 나라는 거부하고 싶다. 부족하여도 가슴이 넉넉한 사회가 돼야 한다. 다짐이 살아있으면 모자란 것은 채울 수 있다. 무엇이 많아도 그 집에 심성이 무너지면 금세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깨끗한 나라가 되기 위해 ‘도덕재무장’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는 어렵다. 다음 세대에게는 맑은 나라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2020-10-21

추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 ‘위법성’ 면밀히 따져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두고 여론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한 언론사가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20일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추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찬반 의견이 46.4%로 똑같았다. 여야 정치권만큼이나 일반여론도 치열히 맞서고 있다는 증거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전문가들이 ‘위법성’을 거듭 주장할 정도로 논란이 많다. 상상을 초월한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1일 개선장군처럼 행세했다. 추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려 윤 총장을 한껏 야유했다.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들을 국민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공격했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검찰청법을 명백하게 위반했다는 판단을 내린다. 검찰청법 12조를 보면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고 돼 있다. 사건에 대한 지휘 수준을 넘어 검찰총장의 검찰지휘 권한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해당 법 위반이라는 것이다.검사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도 언론에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처럼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는 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번 지휘는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자체를 박탈했다. 이렇게 권한 자체를 박탈하는 지휘권 행사가 현행 검찰청법상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법조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검찰의 전횡을 차단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정무직인 법무부 장관이 인사권을 휘둘러 친정부적 검찰조직을 만들고 ‘수사지휘권’ 조항을 남용해 현직 검찰총장을 식물상태로 만들어 검찰 장악을 획책하는 것은 사리에도 법리에도 맞지 않는 무도한 권력의 횡포다. 정권마다 이렇게 한다면 앞으로 검찰독립은 영원히 요원하게 된다. 철저하게 따져보고 부실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을 정치 권력 아래로 악착같이 욱여넣은 추 장관의 과도한 행태는 어떻게 봐도 정의롭지 않다.

2020-10-21

잇단 독감백신 사망사고, 국민 불안 해소부터

독감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잇따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2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독감 예방접종 사업이 시작된 이후 백신을 접종하고서 며칠 이내에 사망한 사람은 21일 현재 총 9명에 이른다. 최근 일주일새 예방접종 사망자가 인천, 전북 고창, 대전, 제주에 이어 대구에서까지 연이어 발생했다.이들의 직접 사망 원인이 독감백신으로 인한 것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으나 독감백신 접종직후 사망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올해는 보건당국이 독감백신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일부 백신이 상온에 노출돼 회수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또 최근에는 이미 유통된 일부 백신에서 흰색 침전물이 발견돼 제조업체가 자진 회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독감백신의 유통과 관리의 허점이 노출되면서 백신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백신접종 의혹 사망자 발생은 국민 불안을 키우기에 충분하다.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백신관련 사망자 발생은 2009년 65세 여성이 유일해 백신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은 낮다고 하나 잇단 사고가 주는 충격은 크다. 일부 국민은 독감백신 접종을 기피하거나 백신 접종을 맞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를 둔 부모들은 거의 좌불안석의 심정이다.올해는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사전에 막기 위해 예년보다 백신 무료 접종자를 많이 늘렸다.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면 코로나 바이러스 관리가 힘들어져 최악의 ‘트윈데믹’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하루속히 독감백신 사망사고와 관련한 원인 규명에 나서 보건당국이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17세 남학생 사망사고가 발생한지 사흘 뒤에야 이 사실을 발표해 이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독감백신의 유통과 부실한 관리 등으로 보건당국의 신뢰에는 이미 많은 상처가 나 있다. 철저하고 치밀한 조사를 통해 백신과 사망사고와의 연관성을 밝혀야 한다.코로나19로 지금 우리 국내 사정은 매우 위중하다. 만약 독감이 유행한다면 코로나와 뒤엉켜 의료체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코로나 대유행을 막기 위해선 백신 접종률부터 높여야 한다. 백신에 대한 국민 불안 해소가 시급한 이유다.

2020-10-21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은 온라인상에서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제도를 말한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용어는 군중을 뜻하는 영어 단어 ‘크라우드’와 재원 마련을 뜻하는 ‘펀딩’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최초로 제도화된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플랫폼에서 증권을 발행하고, 투자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일반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으로 지칭한다. 크라우드펀딩은 자금 문제를 겪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잡지나 음반, 영화, 아이디어 상품 제작 비용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아 실제로 만들어지는 사례도 나온다. 크라우드펀딩에서 한 방식인 대출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며, 개인간 직거래 방식 금융 서비스(Person to Person 금융)이라고 해서 ‘P2P 대출’이라 부른다. P2P 대출은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사람끼리 온라인으로 직접 금융거래를 하는 방식이다. 거래 당사자는 P2P 대출로 만나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하던 사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돈을 주고받는다는 데서 P2P 대출은 친구나 가족에게 돈을 꾸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 기존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금조달방법이 되고있다.금융위원회가 21일 크라우드 펀딩의 발행한도를 현재 연간 15억원에서 30억원으로 확대하고, 프로젝트 투자대상 사업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일부 업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화제다. 크라우드 펀딩이 시장을 활기차게 하는 자본조달방식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21

베테랑일수록 가볍다

이십 대 초반, 동아리 친구들과 지리산을 종주한 적 있습니다. ‘산이라면 지리산’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당시 청춘들에게 지리산행은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습니다. 화엄사에서 출발해 노고단, 임걸령, 벽소령, 세석산장,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뒤 하산하는 4박5일의 대장정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등산다운 등산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험한 골짜기와 긴 능선을 넘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현장을 접할 수 있다는 숙연한 설렘만이 가득했습니다.첫날은 그럭저럭 오를 만했습니다. 계곡 물소리와 풀꽃들, 간간이 보이는 하늘과 피곤할 만하면 나타나는 쉼터 등 모든 것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가끔 헬리콥터 소리도 들렸는데 능선을 넘는 산행객들의 무사를 응원하는 것 같아 안심이 되곤 했지요.이틀째였을까요. 임걸령과 화계재 사이 어디쯤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등짝을 뒤에서 당기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허벅지 힘이 마구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발바닥이 땅에 붙고 어깻죽지는 내려앉기만 했습니다. 선발대와의 거리는 한참 멀어져 있었고, 하늘과 잇닿아 있다는 드넓은 쉼터는 나타날 기미조차 없었습니다. 가도 가도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급경사 등산로 앞에서 저를 시작으로 몇몇의 여학생이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체력은 바닥인데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니 설움이 북받쳤던 것이지요. 하지만 강단 있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눈썹조차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역까지 배웅 나왔다가 엉겁결에 뾰족 구두 차림으로 합류한 후배조차 의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체력 안배를 잘 해, 날다람쥐처럼 날랜 다른 여학생들을 보니 부러워서 서러웠습니다. 시쳇말로 ‘멘탈’을 관리하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는 그 한계가 부끄러워 더 눈물이 났습니다.저질 체력의 여학생 배낭은 할 수 없이 남학생들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종주를 마칠 수 있었지만 그 일은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주량도 모른 채 마신 한 잔 소주에 취해, 만 하루가 지나서야 깨어났던 일처럼 창피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민폐를 끼쳤다는 미안함, 체력이 좋거나 강단 있는 다른 여학생들에 대한 부러움 등으로 한동안 괴로웠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텔레비전 오지 탐험 프로그램을 볼 때, 힘든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여성 출연자를 보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각설하고 그때 지리산 산행의 패착을 떠올려봅니다. 이유는 한 가지, 너무 무거운 짐 때문이었습니다. 자잘하게는 세면도구에서 크게는 홑이불세트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품을 죄다 배낭에다 쟁여 넣었습니다. 많이 챙겨갈수록 좋은 줄 알고 이것저것 배낭 배를 부풀렸습니다. 자신의 체력도 가늠해보지 않은 채 가방만 무겁게 꾸렸던 것이지요.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짐이라도 가벼웠으면 그토록 고생하지는 않았겠지요. 길 떠나는 자는 자고로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안 것이지요. 여행 잡지에서 본 전문가의 충고를 되새깁니다. ‘될 수 있으면 짐을 줄여라. 한 번 줄이고 그 다음날 점검할 때 또 줄여라. 그러다 보면 꼭 필요한 것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당신을 즐겁게 해 줄 최상의 동반자다.’물론 전문 산악인들처럼 예외인 경우도 있습니다. 산행 전문가답게 길눈이 밝은데다 체력까지 감당이 되면 무거운 짐을 챙기는 게 당연히 유리합니다. 텐트에서 우산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이타적인 주변인 덕분에 산행이 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이지요.일반적으로 등산을 자주 하고 산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꾸러미는 간소합니다. 베테랑일수록 가볍습니다. 어떤 일에 능숙하면 부차적인 것들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명필일수록 붓 자루 수나 크기에 집착하지 않고, 명강사일수록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이크도 필요치 않은 것과 같지요. 많거나 크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그 덕에 과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오히려 가벼울수록 일을 추진하는데 유리하거나 부담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날마다 가벼워지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다 길 떠날 일이 생기면 최대한 간소하게 짐을 꾸립니다. 그 옛날 지리산 종주할 때의 교훈을 떠올리며 줄였던 짐도 한 번 더 줄입니다. 무거운 짐에게 몸과 마음을 저당 잡히는 것보다는 모자란 듯 헐렁한 상태가 훨씬 부담이 덜합니다. 수고한 짐 때문에 영혼이 피폐해질 정도라면 비울수록 낫습니다. 베테랑일수록 가벼움이나 덜어냄과 친구하니까요.

2020-10-21

와인 한잔 어때요?

배문경수필가칠레산 까시에로 리저브 쉬라를 샀다. 병뚜껑과 상표가 금색이라 눈에 띄었다. 이 와인의 후기를 보니 무게감이 있어 괜찮다는 평이다.간혹 와인의 향기와 빛깔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 딸아이를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자 바로 떠올랐다. 와인 한 잔 기울일 생각에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때론 화이트와인을 마시기도 하지만 오늘은 스테이크를 만들 요량으로 레드와인을 잡았다. 레드와인은 적포도의 껍질과 알맹이, 씨를 모두 으깬 후에 발효시킨 것이다. 내가 산 것은 2017년 생산된 것으로 알코올은 13.5%다.딸아이와 나는 와인의 유래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포도주의 기원은 그리스다. 포도주 원액을 손잡이가 두 개인 항아리 암포라에 담아 운반했다. 그리고 크라테르에 부어 물과 와인을 섞었다. 크라테르는 대형항아리로 주로 연회가 열릴 때 테이블에 올렸다. 암포라와 크라테르는 훌륭한 예술품으로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우리 집에는 와인셀러가 없어서 와인을 잠시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목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도 접시에 담았다. 토마토가 반달이 되어 서로 겹치며 원을 만드니 보기에도 좋다. 레이스가 달린 테이블보를 깔고 식탁 중앙에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핑크빛 리시안셔스를 한 아름 사서 꽂았다. 겹겹이 하늘하늘한 꽃잎이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과 더불어 파티에 어울리는 장식이다. 레드와인에는 보르도 글라스를 준비했다. 튤립 모양의 잔은 타닌의 텁텁함을 줄이는 경사가 완만한 모양이 특징인 잔이다. 음식을 테이블에 올리자 고급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다.가족들이 함께 앉아 잔에 3부 정도 따르고 스템을 잡고 건배했다. 나는 그냥 삼키지 말고 색을 보고, 스월링(Swirling)하며 향을 느껴보라고 했다. 잔을 돌리면 와인의 맛이 깊어진다. 와인 속에 잠자고 있던 여러 성분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와인의 부케와 아로마가 발산되기 때문이다. 한 입 머금은 딸의 볼이 상기되면서 꽃보다 더 고와진다. 나도 덩달아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분위기를 돋우려고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리본이 달린 빨간 지갑이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대충 먹고 흩어지기 바쁜 식사시간이 오늘만큼은 안정적이다. 모두 오늘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비워두고 전체를 위해 배려했다. 식구들은 자신이 그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수다스럽다. 딸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다. 딸뿐만 아니라 부모로서 느끼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주위의 축하 세례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 어깨를 으쓱한다.이런 와인에는 음악이 필요하다며 유튜브를 켠 딸은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을 들려준다.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동기 셋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같이 기립박수를 보냈었다. 샹송과 와인이 이렇게 어울린다는 것이 놀랍다. 덕분에 와인의 맛은 무겁고 텁텁했지만 블랙체리의 과일 향을 그윽하게 느낀다.노래에 취해 있을 때, 10월 14일인 일주일 전이 와인데이였다고 딸이 말한다. 연인과 와인을 마시며 속삭이는 날이었다. 1월 14일은 다이어리데이, 2월은 발렌타인데이, 3월은 남자가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다. 12월은 허그데이로 일 년 내내 이벤트다.와인데이는 그리스신화가 기원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신의 제례를 지냈던 날이다. 주류회사의 상술이긴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으로 볼 수 있고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다. 더러 와인 잔에 맥주나 막걸리를 부어 마시면 낯선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레드와인이나 화이트와인, 로제와인을 한잔하면 어떨까. 단풍든 가을, 마음은 온통 와인빛으로 찰랑거릴지도 모른다.

2020-10-21

대면으로 학생들을 만나다

오죽하면 이런 제목을 붙이랴.대학 학과의 선생님 셋과 학생들 일곱이 마주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런 풍경 볼 수 없었던 게 하루이틀 아니었다.코로나19 대응이 1단계로 떨어졌다 해서 모처럼 학과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무언가 머리를 맞대보기로 했다. 매년 하던 답사도 없어지고 한글날 행사 같은 것도 축소되고 개강이다, 폐강이다 하는 모임도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뭔가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학과의 학생들을 한꺼번에 다 만날 수는 없다. 현재 과대표, 전임 과대표, 동아리 대표들, 각 학년 대표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자. 꼭 대표가 아니어도 되고, 학과의 여러 단위를 표현해 줄 학생들이면 좋다. 만나 요즘 상황이 어떤지 뭐가 필요한 지 들어보기로 하자. 대략 이런 생각이었다. ‘정육식당’이라고 일종 실비식당에 둘러들 앉았다. 전임 과대표는 1학기 때 스페인에 어학연수를 가서 스페인 코로나를 직접 겪었다. 창작 동아리 ‘창문’의 일원으로 나온 학생은 대학원 진학을 계획 중인데 부전공으로 중문학을 한다. 올해 과대표는 코로나 덕분에 정상적인 학생 활동은 엄두도 못냈단다. 제주에서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학생을 ‘줌’ 아닌 식당에서 대면으로 만나기는 처음이다. 지금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1학년 시절은 얼마나 빛나던가? 그런 시기를 갇혀 지낸다니 딱하디 딱할 따름이다. 언론정보학부 학생으로 국문학을 복수전공하는 학생, 국문과반 ‘출신’으로 서양사학과에 진입한 학생, 중학생 때까지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심화전공 코스를 택할 정도로 국문학에 빠져 버렸다는 학생 등등.얼굴들, 어깨들이 사랑스럽다. 귀해 보인다. 여느 때 같으면 캠퍼스에 ‘차고 넘치던’ 학생들 아니던가. 하건만, 이번 학기도 1학기 때처럼 캠퍼스는 썰렁, 국문과 건물 강의실 있는 층들은 고적하기만 하다. 대면이니, 비대면이니, 얼마나 낯선 한자어들이던가. 그 어색한 말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선생님과 학생은 마주 앉아야 하는 법인데, 요즘에는 ‘줌’으로 화면도 안 켜놓고 이야기를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를 지경이다.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아이디어를 듣자 하니, 그렇잖아도 불려 나온 게 아니라 다들 제발로, 반기면서 나온 학생들이라 한다. 그만큼 할 얘기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코로나 시절을 슬기롭게 넘길, 학생들의 자발적 학습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보자고 얘기들 한다. 과연 잘 될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뭔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식당을 나오자 ‘샤로수’ 길이라 불리는 이 대학촌 골목은 아직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기만 하다. 어서 빨리, 학생들 넘쳐나는 골목 거리가 보고 싶다. 내년 봄이면? 아니 가을이라도, 겨울이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절 만나보고 싶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0-21

신중년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나이 지긋한 축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낭만에 대하여’ 일 것이다. 환하게 빛났던 한때를 추억하며 ‘다방’에서 중년 마담이 따라주는 ‘도라지 위스키’를 홀짝거리는 후줄근한 가수의 표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노래. 100세 시대라 불리는 요즘 50-60 나이대의 사람들을 신중년이라 부른다. 예전의 40-50대 정도와 비슷한 정열과 체력과 욕망으로 무장한 신중년. 그들을 노인이라 부르면 서운해하리라.인생의 절반을 살았고, 나머지 절반으로 달려가는 신중년. 이 무렵 누구나 생각이 많아진다. 젊어서 한칼 했던 사람일수록 뭔가 이루려는 의욕과 투지로 넘쳐난다. “나는 아직 한창이야, 내가 뭐 어때서! 이 정도면 쓸만하지, 안 그래!” 거울 들여다보면서 신중년 사내들은 혼잣말한다. 신중년 가운데 일부는 퇴직하여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이 되기도 하고, 일부는 아내 눈칫밥 얻어먹으며 산이나 공원을 떠돈다.신중년에 필요한 작업은 살아온 삶의 내력을 돌아보는 일이다.인생에 목적이나 의도는 없겠으나,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온 날들인지, 총체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은 남은 생을 요긴하게 살아가는 데 적실한 전제다. 주역 ‘계사편’에 “척확지굴 이구신야(尺8816之屈以求信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그것을 펴기 위함이다, 하는 뜻이다.성찰 없이 전진만 하는 삶은 피 끓는 청춘의 몫이지, 피가 식어가는 신중년의 몫은 아니다. 젊은 날 신중년을 매혹하고 열에 들뜨게 했던 오욕칠정(五慾七情)과 거리 두면서 세상과 사회를 돌이키는 작업이 소중하다. 그렇다 해서 반드시 이성적이거나, 매사에 사려와 냉정 그리고 신중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신중년에게도 어린아이 같은 맑고 투명한 치기(稚氣)와 장난스러움 그리고 패기가 요구되기도 한다.문제는 대다수 신중년이 너무 차갑고 계산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철이 없고 이기적이라는 데 있다. 양자의 조화로움을 유지하는 신중년은 나이를 먹어도 쉬 늙지 않을뿐더러, 고유한 매력으로 주위를 환하게 한다. 그러하되 신중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음을 직시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다.생명 가진 모든 것은 소멸한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철칙(鐵則)이다. 주위를 돌아보시라. 얼마나 많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성업하고 있는지. 그곳에 갇혀있는 수많은 노년도 한때는 신중년의 시기를 거친 분들이다. 누구도 그곳에 포획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허여한 일정한 육체와 정신을 탕진하고 나면, 어쩔 도리없이 여생을 거기서 보내야 한다.그곳에 가기 전에 골똘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의 삶은 어떠했으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관계와 인연은 어떻게 정리하고, 몸과 마음은 또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지.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 차지다.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깊이 사유하는 신중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0-10-21

따뜻한 경북교육 실현을!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10월의 자연은 보기만 해도 따뜻하다. 10월은 노란색과 궁합이 너무도 잘 맞는 것 같아 10월의 색을 필자는 노란색으로 정하였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10월의 황금 들판, 도로와 도심을 샛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 세상이 결실맺기 딱 좋은 10월의 노란 햇살!10월은 이야기가 풍성한 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나선다. 10월 길 위에 선 사람들의 걸음 속도는 분명 시인의 속도를 닮았다. 그 속도를 나태주 시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 모양까지 알고 나면 인연이 된다 //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 ‘풀꽃 2’)10월을 걷는 사람치고 표정이 어두운 사람은 없다. 모두가 밝은 표정, 그 표정의 색 역시 노란색이다. 시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서로의 색깔을 알기에 기꺼이 길 위에서 친구가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웃음마저 반가운 인사가 되는 10월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다.10월 바람은 그늘에서는 살짝 싸늘하게, 하지만 양지에서는 기분 좋은 따뜻함으로 분다. 사람들을 그늘 대신 양지의 길 위에서 서게 하는 10월 바람의 마음에 마스크 안에서 지쳐가던 사람들은 기꺼이 길 위에 선다. 그리고 서로 노란 따뜻함을 나눈다.따뜻함이라는 단어는 필자에겐 추억이자 희망의 단어다. 따뜻함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교감 면접시험을 준비할 때다. 그때 공부한 내용 중에 아직도 마음으로 외우고 있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경상북도 교육청의 교육 비전이다. “삶의 힘을 키우는 따뜻한 경북교육”경상북도 교육청 홈페이지 열린 교육감실에 가면 교육 비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중에서 “따뜻한”과 “경북교육”에 관한 설명을 잠시 인용한다.“‘따뜻함’이란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보살핌과 배려로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경북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결과보다는 과정을, 다그침보다는 기다림을 지향하는 교육입니다.”위에 인용한 글을 공부하면 필자는 경북교육 비전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자,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특히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이라는 어구에서는 교육청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았다. 또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모든 아이들이”라는 말에서는 교육청의 결연한 의지까지 느낄 수 있었다.필자의 책상에는 “제2의 교육 기적”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우리 교육은 세계가 깜짝 놀랄 경제 성장이라는 교육 기적을 이룬 경험이 있다. 인구절벽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2의 교육 기적이 필요하다. 그 기적의 가능성을 필자는 “따뜻한 경북교육”에서 보았다. 대안학교 학생을 비롯한 모든 아이를 위하는 “따뜻한 경북교육”이 우리나라와 세계 교육을 선도할 것을 직감하는 따뜻한 10월이다.

2020-10-21

전세 대란

다른 사람의 집을 빌려 쓸 때 일정한 돈을 맡겼다가 내놓을 때 다시 찾아오는 것을 전세(傳貰)라 이른다. 이같은 전세 제도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주거임대차 제도다.그 기원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서 찾는다. 당시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 항구를 개항하면서 일본인의 거주지가 조성되고, 서울로 인구가 몰리면서 전세 형태의 주거가 생겨난 것을 원류로 본다.전세 제도는 주택금융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일로,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제도다. 임대인은 자산을 주택 형태로 보유하고, 임차인은 월세 대신 원금을 지킬 수 있는 전세를 선택함으로써 상호이익이 부합한 시장 구조다.전세 제도는 무주택 서민에게는 유주택자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고 유주택자는 인플레로부터 자신의 자산을 보호받는 구조가 돼 그 제도가 지금까지 탄탄하게 유지돼 왔다.집주인이 집값의 절반 정도에 임대하는 것은 이윤적 측면에서 손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독특하게도 집값이 상승되면서 그런 손실 부분을 보상해 주었다. 전세는 우리만의 주거형태로서 지금은 국민에게 친숙한 주거문화라 하겠다.지난 7월 정부여당이 집값을 잡겠다며 임대차보호법을 시행한 이후 전국은 전세 대란으로 떠들썩하다. 집 없는 서민이 지금처럼 무주택의 설움을 당해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전셋집을 구경하는데 돈을 달라 하지 않나 집주인이 세입자의 관상까지 보겠단다. 전세 살 사람이 많이 몰려와 제비뽑기까지 하고 있다. 전에 보지 못한 진풍경이다. 정부 정책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섣부른 정책의 입안과 결정이 전세 대란을 일으켰고, 그 바람에 서민만 녹아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0-20

청개구리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불효자는 옵니다.”지난 추석 무렵 지방 국도변 곳곳에 붙어 있던 플래카드의 글귀이다. 강원도 정선군의 한 공무원이 코로나 극복을 위해 추석 연휴 기간에 귀성 방문을 자제하자는 뜻으로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의 제목을 패러디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불효자는 웁니다’는 작곡가 이재호가 곡을 만들고 1940년에 가수 진방남이 부른 노래이다. 진방남은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아빠의 청춘’,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반야월이 가수로 활동하던 때에 부르던 예명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진방남, 아니 반야월이 작사한 것은 아니고 ‘땐사(댄서)의 순정’, ‘찔레꽃’의 작사가 김영일의 작품이다. 작곡, 작사, 가수 모두 당대의 대단한 분들이 참여해 만든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가 모음 단 하나가 뒤집힌 채 80년만에 소환되었다. 이를 코로나 덕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한 플래카드 패러디 문구임엔 분명하다.우리의 농어촌은 어르신들 세상이다. 80-90대 노인분들이 논 매고 밭 갈며, 60-70대 어르신들은 경로당에서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력이 좋다 해도 연세 드신 노인들에게 코로나19는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2020년 8월 통계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75-84세의 입원률은 18-29세와 비교할 때 8배 이상이고 치명률(사망률)은 220배 이상이며, 85세 이상 노인의 입원률은 13배 이상이고 치명률은 630배 이상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평소에는 전화 한 통 드리지 않고 발길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다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2020년의 추석에 찾아온다고 하는 자식은 불효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2020년 추석에 고향을 찾은 자녀들을 생각하면 이솝 우화 중 한 이야기로 들었던 청개구리 우화가 떠오른다.(실제로 이솝 우화에 청개구리 이야기는 없다. 어미 개구리의 말에 언제나 반대로만 하는 아들 청개구리에게 언덕이 아닌 강가에 묻어달라고 마지막 유언을 한 어미 개구리의 이야기는 동양의 우화이다.) 그렇다고 추석에 찾아온 자식들을 싸잡아 청개구리 불효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코로나가 아무리 엄중하다 할지라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분들은 누가 뭐라 해도 고향을 방문하고 부모님을 찾아 뵈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분들은 더욱 조심스레 철저히 방역 원칙을 지키며 고향 나들이를 하였으리라.불효자인 나도 지난 주간에 경북 의성과 안동을 다녀왔다.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간 것이 아니라 22년 전에 돌아가셔서 선산에 잠들어계시는 아버님을 국립괴산호국원에 옮겨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이니 코로나의 위험은 드리지 않았다.패러디야 어느 나라 말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우리말은 이렇게 재미있고 곰살맞기까지 하다.이 가을 청개구리 불효자는 왔고, 불효자는 울었다.

2020-10-20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 코로나 극복의 힘 되길

대구지역 초중고교의 전면 무상급식이 내년부터 시작된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장상수 대구시의회 의장,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은 전 학교 대상의 무상급식에 합의하는 협약을 20일 체결했다. 대구지역은 당초 올해 고3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시작하고 내년부터 고2로 점차 확대키로 했으나 코로나로 인한 경제사정 등을 고려해 전 학교 무료급식을 조기에 시행키로 결정한 것이다. 이와 함께 2021학년도 중학교 신입생부터는 무상교복을 지원하는 것도 이날 함께 합의를 했다. 무상급식은 세금을 재원으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동안 학교급식 무상지원을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았다. 지자체의 재원 조성에도 문제가 있고, 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적 결정이라는 지적도 받아 왔다.그러나 지금은 전국 지자체가 전 학교를 대상으로 무상급식에 나서고 있다. 무상급식 자체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수용되고 있는 마당이다. 하지만 전 학교 대상 무상급식은 막대한 재원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하는 전제가 있다. 아직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지자체 입장으로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항상 걱정거리다.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대구지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크게 유행했던 곳으로 그 여파로 아직도 많은 시민이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다수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영세민 등은 여전히 경제 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정신적 충격도 커 이래저래 서민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시장과 시의회 의장, 시교육감이 시민들을 위로 격려하고 학생들의 교육복지 증진에 힘을 실어준 것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지속적인 재원 확보의 어려움은 있으나 더 분발하면 못할 것도 없다. 교육은 백년지계라 했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투자가 지역발전의 동력이자 미래라는 점 잊어서는 안 된다. 대구지역의 초중고 학생의 전면 무상급식을 계기로 대구교육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데 지도자들이 힘을 모았으면 한다. 지역사회가 책임지고 지역의 미래를 담당할 인재양성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교육이 강한 대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20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