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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카라바조의 바로크 회화

서양미술사에서 바로크는 르네상스에 이어서 나타난 양식으로 1600년경에서 대략 150여 년간 지속되었다. 바로크의 양식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화가는 카라바조(1573∼1610)이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인데, 북부 이탈리아 카라바조라는 시골마을 출신이기 때문에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다. 어린 시절 롬바르디아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1598년경 로마로 건너와 역사화, 풍속화, 정물화 등 회화의 여러 장르를 기웃거리다 1599년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한 대형 작품을 의뢰받으면서 종교적인 주제에 집중한다.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해 그린 세 점의 유화작품 중 ‘그리스도가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은 카라바조의 대표작이자 바로크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공간. 다섯 명의 사내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돈을 세고 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손을 들어 마태를 가리킨다. 위엄 있는 그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한 마태는 “저 말이십니까?”하고 반문하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마태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던 세리였다. 당시 세리는 악랄하게 세금을 뜯어냈기 때문에 모두가 경멸하던 직업이다. 물질적 탐욕의 대명사이자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초라한 세리 마태를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로 불렀던 것이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9장 9절은 이 장면을 고작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지만, 카라바조는 바로크적 상상력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광경으로 재구성하였다.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바로크적 스펙터클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빛이다. 어둠이 지배적인 공간을 강렬하게 침투하는 직선적인 빛은 극적인 명암대비를 만들어내 묘사된 장면에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카라바조의 빛은 공간 전체를 밝히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광원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빛은 그림에 묘사된 인물들을 읽을 수 있도록 시선의 통로를 마련해 준다. 그리스도는 짙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지만 얼굴과 손을 밝혀주는 강한 빛으로 인물의 심리는 물론 그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지나친 빛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인물들의 얼굴을 강하게 비춰주고 있어 이들의 표정을 빠짐없이 읽을 수 있게 해 준다.빛을 통한 명암대비가 그림 전체의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독특한 화면 구성방식이다. 카라바조는 그림 속 장면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구성한다. 협소한 공간에 인물들을 밀집시킴으로써 집중력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감상자들의 시선을 산만하게 만들 수 있는 부차적인 요소들은 과감하게 생략되었다.카라바조의 회화적 연출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성서가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는 AD 30년경 중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림 속 인물들은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의상을 입고 있다. 이것은 그림에 현재성과 현장성을 불어넣기 위한 방법인데, 성서의 이야기가 마치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카라바조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가장 바로크적인 요소는 현실의 건축적 공간과 빛을 회화 속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 ‘마태를 부르시는 그리스도’는 콘타렐리 예배당 좌측 벽면을 위해서 그려졌다. 예배당 중앙 상단 부분에는 반원형의 작은 창이 나있고, 그곳으로부터 빛이 들어와 실제로 예배당을 밝힌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화면 우측 상단에서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림만 보아서는 그 빛이 어디서 흘러들어오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화가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실제의 빛을 알고 있었고, 그 빛을 그림 속으로 가지고 들어와 현실과 그림,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처럼 정형화되지 않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상식을 뛰어넘는 극적인 방법을 통하여 르네상스적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세계이다. /미술사학자 r김석모

2020-08-24

삶의 뒤안길에 부는 바람… 상주 도림사(道林寺)

일명 육산이라 불리는 백원산 국사봉 기슭, 상주 시내가 지척에 보이는 곳에 도림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지만 모두 훼손되어 변변한 법당조차 없는 절을 자용, 탄공, 법연 세 비구니 스님이 재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마을을 지나 비탈길을 오르면 일주문 대신 600여 개의 장독이 먼저 반긴다. 오래된 독에는 건강한 시간들이 익어가며 향수에 젖게 한다. 탄공 주지 스님은 전통 사찰음식의 맥을 잇기 위해 사찰음식과 장 담그기에 열정을 쏟는 분이다.해마다 정월이면 3000장의 메주로 장을 담근다고 하니 그 정성과 규모가 놀랍다. 외부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스님들이 손수 된장과 간장을 빚어 판 수익금으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지금의 불사를 이루었다고 하니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다. 스님들의 정성어린 노동력이 곧 수행이다.절 옆으로는 한양 옛길이란 안내판이 무료하게 서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옛날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앞산의 천년 아미타부처님 와불을 향해 소원을 발원하고 도림사에서 불공을 드리면 그 기돗발이 영험했다고 한다. 그들이 금의환향하여 다시 도림사에 시주를 하였으니 도림사의 위세는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으리라.도림사는 고즈넉한 산중의 정취를 고수하기보다 대중과 소통하는 사찰, 좌선의 수행보다 세상과 하나가 되는 도량을 꿈꾸고 있다. 행여 자본의 위력에 초심을 잃지 않기를, 몸소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대중과 더욱 친숙해지는 멋진 사찰로 거듭나기를 소원하며 나는 경내로 들어선다.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전각들이 산재해 있다. 와불산이 잘 보이는 와불전 앞에 108탑 불사가 눈길을 끈다. 한낮의 열기가 후끈거리는데 어디선가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운이 좋다 생각하고 법당으로 달려갔더니 빈 법당에는 녹음된 염불소리가 홀로 더위를 쫓으며 맞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큰 유리 안에 봉안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작은 불보살들이 가득 차 있으며 수미단 풍경도 이색적이다.법당까지 좇아 온 더위를 업고 백팔 배를 시작한다.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의 치매 증상으로 몸과 마음이 무거운 터라 법당이 더없이 안온하다. 절을 해도 가슴 한 켠에이는 찬바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를 뵙고 오는 날이면 허무함으로 힘들었다. 효를 위한 약속들은 언제나 일상에 쫓겨 밀려나기만 했다. 결국은 예기치 못한 사태 앞에서 큰 불효를 한 것을 깨닫는다.온몸은 금세 땀으로 젖고 절을 할 때마다 좌복 위로 뚝뚝 땀이 떨어진다. 눈물도 떨어진다. 불경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을 때 3말 8되의 응혈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를 먹인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양쪽 어깨에 부모를 업고 수미산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이제야 가슴을 후벼 판다.젊은 날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말씀들이 이토록 절절할 줄이야. 흐르는 눈물은 부모에게 무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속죄와 회한이리라. 삭아서 푸석거리는 시간을 안고서도 어머니는 젊은 우리보다 의연하시다. 자식들이 걱정할까 혼자서 병원을 다니며 약을 복용하는 모습은 평생 나를 아프게 할 것이다.조낭희 수필가삶의 뒤안길만큼은 아름답고 평화롭기를 바랐다. 신은 왜 인생의 말년을 한평생 살아온 삶으로 평가받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긍정적이고 강인했던 어머니에게 이런 시련쯤은 비켜갈 줄 알았다. 요양사의 도움을 받는 시어머니와 분노조절 장애가 나타나 작은 일에도 화를 내신다는 아버님의 증상까지,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노후는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들의 서글픈 뒤안길을 지켜보는 일만큼 잔인한 게 있을까. 머지않아 그 씁쓸한 바람들은 방향을 돌려 내 쪽으로 불어오리라.법당을 나와 멀리 서쪽하늘 아래 열반에 드신 와불 형상의 부처님을 바라본다. 도시는 열기에 눌려 꿈쩍도 않고 극락정토를 지키는 아미타부처님은 폭염 속에서도 한량없이 편안하다. 삶이 짊어져야 할 무게와 고통이 없는 세계, 그 머나먼 나라도 지척에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하는 것들 앞에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하기보다 초연해져야 하리라. 누구나 업고 가야할 세상의 마지막 짐들, 당신들의 짐이 좀 더 가볍기를 바라며 와불을 향해 합장한다.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기 위해 내려가다 옛 양반들이 풍류를 즐겼을 법한 고옥 하나 만난다. 도림원이란 현판에 용기 내어 문을 열었더니 관세음보살 부처님과 수많은 불보살들이 봉안되어 있다. 눅눅한 나무 냄새가 안겨드는 법당에는 오랜 향수와 그리운 시간들이 숨을 쉬고 있다. 어머니의 자궁 같은 공간에 나를 맡기고 절을 한다.어머니의 애틋한 여름은 속절없이 가고 있는데, 이 잠깐의 여유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야윈 슬픔들 앞에서 속수무책 무릎 꿇지 않기를, 잃은 것에 안타까워하기보다 남은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자고 다짐한다. 계곡물이 토닥토닥 법문을 들려주며 흐른다. 앉아 있어도 저절로 기도가 자랄 것만 같은 곳, 나는 또 시간에 떠밀려 자리를 떠야 했다.천년 와불 하나 묵직하게 가슴에 안긴다.

2020-08-24

누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가!

강희룡서예가명나라의 환관이었던 유약우(1584-?)는 그의 저서 작중지(酌中志)에 ‘나는 석가의 가르침을 극도로 증오한다. 불교는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이는 것(惑世誣民)으로 여겨 가장 먼저 배척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적고 있다.유약우가 이 말을 남긴 두 가지 이유는, 첫째는 명 황실과 고위관료들의 주자학 숭상이다. 주자학은 주희의 유교 경전 해석을 바탕으로 발전된 것으로 삶의 개별적, 실존적 현상보다는 그 이면의 보편적 이치를 성찰하고 깨닫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에 태생부터 귀족적인 학문이었다. 현학적 태도로 만물의 이치를 통달한 자들만이 세상을 경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에 이 정도 학문에 심취할 수 있었던 이들은 대부분 관료나 토호가문 출신의 유학자들뿐이었다. 주자학측면에서 불교를 위험하고 천박한 사상으로 분류한 까닭은 불교가 근본적으로 인간평등사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과 출신에 관계없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주장은 고정된 신분질서를 옹호하던 이들에게 경멸과 증오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최제우가 창시한 동학(東學)은 신분제의 타파를 외치고 있었기에 혼란한 조선말 상황에 가난한 농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종교였다. 반봉건적, 반외세적으로 농민이 주축이 되어 지배계층에 대한 조선의 최대 항쟁이었으나, 이단으로 규정되어 최제우는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되었다.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으며 후에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2017년 8월에 방영된 TV 드라마‘구해줘’에 묘사된 무지군의 권력구조는 한국사회 전체 권력구조의 축소판으로 불의한 권력이 사람들을 이단의 유혹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이단들이 적극적으로 이 권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묘사된 권력과 이단의 협력은 절대로 허구가 아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JMS(기독교복음선교회)를 예로 보면, 교주 정명석이 1978년 창설한 신흥종교로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교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정명석은 강간, 성추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2018년 2월까지 복역한 뒤 출소했다. 교단마다 교세경쟁이 심하다 보니 이단 문제가 불거져도 쉬쉬하기에 급급하고, 설사 해당 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아도 다른 교단으로 옮기거나 새 교단을 차리면 그만이다. 신천지는 2018년에 공개리에 정통과 이단을 가리자고 한기총에 제안도 했으며, 같은 해에는 신천지가 정통이고 한기총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펴냈다. 올 초 코로나19의 확산중심에 신천지가 지목되자 8개 개신교단은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만희 총회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수그러들던 전염병이 하반기에 다시 고개를 들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표후보는 지난 광복절 집회 중심에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신도를 위시한 한기총이 있으며, 이들이 사실상 테러 집단으로 정부를 흔들고 정권붕괴까지 노리는 정치세력이며,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열을 올렸다. 한기총의 집회행위에 대해 사이비인지는 더 두고 보면 알 것이지만, 유튜브나 다른 매스컴을 통한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은 현대판 혹세무민의 한 행태인 것은 확실하다.

2020-08-24

칠석날 생각

윤영대수필가여름의 끝자락 처서(處暑)가 지나면 가을바람이 분다. 그리고 음력 7월7일 즉 칠석(七夕)이 있다.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서 1년에 한 번 만나 회포를 푸는 날, 우리에게는 익숙한 전설이다.이 견우직녀 설화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옥황상제가 손녀인 직녀와 강 건너 견우를 혼인을 시켜 주었는데 둘이 사랑에 빠져 게으름을 피우기에 화가 나서 은하수 양쪽으로 갈라놓고 1년에 한 번 만 만나게 했단다. 이날 까마귀와 까치들이 하늘로 날아가서 다리를 놓아 서로 만나게 했고, 그래서 이날 까마귀들이 안 보이는데 다음날 보면 머리가 벗겨져있고 그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한다.사실 이날쯤 천문학적으로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독수리자리에 있는 견우성과 거문고자리에 있는 직녀성이 가장 가까이 접근한다고 하는데, 수 천 년 전에도 은하수와 별자리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살피고 그에 맞는 재미있는 설화도 만들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요즈음 도시에 사는 일반인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1등성 밝기의 견우와 직녀별을 살펴보기도 어렵겠지만 은하수의 흐름도 느끼기 어렵다. 수년 전 몽골여행 때 그 넓은 풀밭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까만 하늘에 꽉 차 있는 수많은 별을 보고 감탄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공해로 낮에도 흐린 하늘을 보지만 수천 년 전 그때의 밤하늘은 그야말로 하늘의 끝까지 보였었겠지.여름 밤하늘을 보며 아기자기한 별들의 얘기들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잘 때면 그나마 은하수를 보며 어릴 때를 기억해 보곤 한다.우리는 기억이 없는 사람들에게 ‘까마귀 고기 먹었나?’ 하고 핀잔을 주는데 기억력이 으뜸인 까마귀를 왜 건망증과 관계를 짓는지 모르겠지만, ‘까마귀는 칠월칠석은 안 잊어버린다.’고 할 만큼 칠석이 중요했던가 보다. 그러니 이번 칠석날에도 까마귀와 까치들이 오작교를 놓으러 올라가겠지. ‘칠석날 까치 대머리 같다.’는 속담도 있으니 다음날 들판의 전깃줄에 까맣게 앉은 까마귀들의 머리가 벗겨진 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칠석우(七夕雨) 즉, 칠석날 비가 오면 견우직녀가 만나는 기쁨의 눈물이고 다음날 비가 오면 헤어짐을 슬퍼하는 눈물이라는데, 올해 8호 태풍 바비(BABI)가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칠석 전후쯤 우리나라 남쪽으로 상륙하여 큰 눈물을 보일지도 모른다니 지난번 물난리를 겪은 지방에는 견우직녀의 이별이 매우 서러울까 염려될 것 같다. 제발 둘이서 즐겁게 놀다가 내년의 만남을 약속하며 웃으며 헤어지기를 갈망해본다.그러나 칠석날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들거나 땀띠나 부스럼 등 병을 쫓는 영험이 있어 옛사람들은 빗물로 목욕하고 물맞이를 하였다고 하니 태풍이 오더라도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심해서 맞으면서 나라의 안녕을 빌어보자.칠석날에는 옛 풍습대로 오이와 참외 먹으며 더운 마음 씻고 한창 익을 호박으로 부침 만들고 밀국수 한 그릇 말아서 칠성님께 이번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빌어볼까. 그리고 그동안 습기 찼던 옷과 책들을 꺼내어 햇볕에 말려야겠다.

2020-08-24

탈진실시대의 정도(正道)정치를 위하여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49년 그의 작품 ‘1984’에서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라고 했다. 70여 년 전 전체주의와 독재를 비판한 그의 명언은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탈진실(post­truth)시대’에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거짓에 맞서는 ‘진실이라는 혁명’은 지금도 절실하기 때문이다.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fact)보다 개인적 신념(belief)과 감정(emotion)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인간은 행위결정에 있어서 감정의 영향이 매우 크며, ‘불편한 진실’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성향이 있다. 게다가 SNS의 급속한 확산으로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흐려져서 미디어 사용자는 자신의 믿음에 부합되는 정보만 취사선택함으로써 ‘확증편향’의 외눈박이가 된다. 나아가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반향실(echo chamber)효과’로 인하여 편견과 독선은 더욱 심화된다.이러한 유권자들의 탈진실 성향은 선거정치에 악용되고 있다. 정당과 후보자는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거짓을 서슴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서는 ‘객관적 사실’에 맞서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까지 만들어서 진영정치의 선전·선동을 통하여 유권자들을 현혹한다.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지 않고 ‘내편은 무조건 믿어주는 진영’이 있고, 선거와 후보자를 보는 유권자의 눈이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치는 한 이미지 조작을 통한 탈진실 정치는 사라지기 어렵다.그렇다면 진실에 기반을 둔 정도정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지도자의 각성이다. 대통령은 정치행위의 결과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음을 명심하고 권력유지를 위해 인기에 영합하는 ‘감성정치’를 거부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권력’이다. 따라서 정치에 입문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국민을 위해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정도정치는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야당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주권자인 국민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마약 같은 권력에 취한 정치꾼(politician)에게 정도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민주시민은 늘 깨어 있어야 하며, 탈진실 정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팩트 체킹(fact checking)’ 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른바 ‘문빠’ 또는 ‘대깨문’처럼 진보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진영정치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국민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머슴들(대통령·국회의원)에게 권력을 위임한 주인이다. 주인의 감시·감독이 느슨해지면 ‘머슴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정치적 관심과 오만한 권력에 대한 채찍만이 정도정치를 회생시킬 수 있다.

2020-08-24

킬링타임 전성시대

킬링타임(killing Time)은 무엇이든 할 일이 없을 때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을 말하며, ‘시간 때우기’라고도 한다. 하지만 요즘 같으면 코로나19의 팬데믹탓에 전세계가 킬링타임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주말 혹은 쉬는 날에 킬링타임을 한다고 쳤을 때, 가성비가 좋은 것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작품성은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그럭저럭 재미있는 영화를 킬링 타임용 영화라고 부른다.이밖에도 실내에서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생활 용품들도 많다. 특히 ‘구슬꿰기’ ‘십자수’등 각종 취미용품부터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완성해 홈 데코에 활용할 수도 있는 직소퍼즐, 컬러링북 등의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옥션은 최근 한 달을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카테고리별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각종 실내 취미용품의 인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밝혔다.먼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실꿰기·구슬꿰기 판매량이 무려 6배 이상(560%) 증가했다. 형형색색의 구슬들을 취향대로 엮어 원하는 모양과 길이로 꿰어 이으면, 팔찌부터 머리끈까지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 십자수 용품은 2배 이상 더 많이 팔렸고, 퀼트용품과 펠트용품도 각각 116%, 78% 씩 증가했다.각종 실내 미술 공예용품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색칠하며 정서적인 안정을 주며 성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컬러링북은 54% 판매가 늘었고, 클레이공예와 점토공예,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조립키트, 직소퍼즐도 날개돋힌 듯 팔린다. 그러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24

민주당 전대, 끝까지 ‘충성·외부총질’ 경쟁

더불어민주당의 8·29 전당대회가 시종일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충성 경쟁과 외부총질 막말 경연대회로 끝날 것 같다. 전당대회가 흥행할 환경이 희박하긴 하지만, 나라의 중대 위기와 피폐한 국민의 삶을 되살려낼 정책경쟁이 사라진 집권 여당의 전대는 아쉽다. 지금부터라도 무책임한 ‘남 탓’ 외부총질로 국민갈등을 덧내는 경쟁만은 삼가기를 당부한다. 당권 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22일 비대면 수도권 합동연설회에서 “방역에 도전한 세력은 현행 법령이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부겸 전 의원은 전광훈 목사 등을 향해 “사실상 테러 집단”이라고 비판했고, 박주민 의원 측은 광화문 집회를 신고한 민경욱 전 통합당 의원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이원욱 의원의 도를 넘는 험구는 민주당 전대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합동연설회에서 그는 ‘부동산 투기세력과 윤석열 검찰총장, 바이러스 테러범을 부추긴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민주당이 싸워야 할 ‘외부적’으로 규정했다. 8·15 집회를 허가한 판사의 이름을 딴 ‘박형순 방지법’을 발의하는 비상식적 행동도 취했다.후보들이 앞다투어 자극적 발언을 쏟아내는 이유는 있다. 당권 경쟁에서 ‘이낙연 1강 구도’가 워낙 튼튼해 난공불락인 데다가 코로나·수해로 인해 합동연설회, TV토론까지 줄줄이 차질을 빚으면서 여론 주목도 자체가 줄었다. 결정적인 것은 당 대표 경선 유권자가 전국 대의원(45%)과 권리 당원(40%)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다.조응천 의원의 지적처럼 ‘관심’도 ‘논쟁’도 ‘비전’도 없는 여당의 3무(無) 전당대회는 아쉽다. 집권세력의 실정(失政) 책임을 모조리 외부에 전가하는 국론 분열 생산공장이 돼버린,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양산해낼 외눈박이 부실정치가 심히 걱정스럽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문재인 정권을 겨냥해 “(남을 향한) 비판을 뿜어내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향한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2020-08-24

‘신공항 효과’ 극대화 지금부터 서둘러야

경북도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연계한 ‘동해안권 5개시군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군위·의성에 통합신공항이 들어서면 늘어날 인적·물적 교류를 영일만항과 연계해 경북 동해안을 동북아 물류중심과 해양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와 관련 “통합신공항 이전을 계기로 공항-항만을 연계한 새로운 광역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경북 발전의 기폭제로 삼겠다”고 말했다.이른바 통합신공항 효과를 가시화하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준비 작업에 착수한다는 뜻이다.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영일만항의 기능강화와 경주시 일대에 대한 원자력 클러스터 사업 지속추진 등을 들 수 있다. 포항, 울진, 영덕, 울릉 등에 국립해양시설을 유치해 동해안 일대를 관광과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 명승지로 만든다는 계획도 포함된다. 또 신공항을 기점으로 한 대구경북 17개 시군을 잇는 국내 최장의 철도망도 구축한다는 생각이다.특히 바닷길인 영일만항이 하늘길인 신공항과 연계된다는 것은 산업적 측면에서 기대되는 바가 상당하다. 영일만항은 신북방시대의 물류거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다 올 10월 국제여객부두가 완공되면 물류와 관광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어 그 역할에 벌써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이번에 완공될 국제여객부두는 7만t급 이상의 여객선 접안이 가능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일본의 마이즈루간 크루즈 여객선 운항도 준비하고 있다.신공항 건설은 대구경북의 산업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대형 투자사업이다. 산업적 후방 효과는 수십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공항 이전을 계기로 대구와 경북은 이른바 신공항 효과를 극대화 하기위한 후속조치에 서둘러 착수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동해안권 5개시군 발전전략’은 이런 점에서 시의적절한 발빠른 기획이라 하겠다.군위와 의성 등 경북 중부권을 중심으로 항공·관광산업이 새롭게 일어나고 동해안의 물류와 관광업이 활기를 찾는다면 경북은 소멸지역이라는 불명예를 벗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통합신공항 효과를 확대 재생산하는 각종 정책과 아이디어들이 지역별로 많이 쏟아져야 할 것이다.

2020-08-24

첫인사

궁금하고 설렌다. 딸이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결혼을 해서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키워 시집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시집갈 때는 되었지만 스스로 나서는 것을 보니 이제 다 키웠구나 싶다.나는 퇴근하고 곧바로 식당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예약된 이름을 부르면서 주인을 찾았다. 그 소리에 어떤 총각이 방문으로 나와서 목례를 했다. 어이쿠, 목소리가 컸다 싶어 부끄러워 일단 식당 문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딸이랑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 소매 자락을 잡고 뒤따라갔다.그가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미리 준비해온 꽃다발을 내 손에 안겨주었다. 날이 날인지라 화사한 꽃다발만큼이나 그의 얼굴도 환했다. “인상이 참 좋으네요.” 나도 모르게 첫인사가 술술 나왔다. 얼굴이 희고 눈웃음이 부드럽고 머리숱이 적어서인지 이마 너머로 인상이 넉넉해 보였다.한정식이 입에 맞는지 잘 먹었다. 특히 배추김치를 좋아한다고 했다. 둘은 친구의 소개로 만난 지 몇 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편안한 사이로 보였다. 반찬을 들어서 옮겨 놓기도 하고 부족한 것은 더 시켰다. 밥 먹는 모습을 보니 다정해보였다.며칠이 지나서 그의 집에도 딸이 인사를 갔다. 우리가 만났을 때처럼 저녁은 밖에서 먹고 다과는 집에서 먹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딸을 보고 “고맙다.”라며 첫인사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고맙기도 했지만 약간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내 딸을 과분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담도 되었다.상견례에서 어른들을 만났다. ‘고맙다’는 그 말이 겸손인 걸 느꼈다. 조용하고 편안했다. 반대로 옆에 앉은 바깥 분은 세상사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재미있게 분위기를 끌어가셨다. 취미로 불화를 그린다고 하며 폰에 저장된 작품을 보여 주었다. 바닥에 엎드려 작업을 하기 때문에 무릎관절이 안 좋다고 했다. 그래도 이 나이에 용기가 생겨서 만족한다며 멋쩍은 듯 웃으셨다.돌아오는 길에 ‘고맙다’는 인사말이 자꾸 맴돌았다. 사람을 만나면 말 한마디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은 재밌는 책 한권을 단숨에 읽은 것보다 더 기분이 좋다. 읽고 난 책을 껴안고 한동안 음미하듯이, 고맙다는 말이 떠나질 않아 가슴 위로 두 손을 모았다.또 다른 자식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다. 친구의 말처럼 ‘보고 싶은 장모님’이 되리라./최경하(경주시 현곡면)

2020-08-24

초롱이의 일기

2020년 8월 21일. 내 이름은 ‘초롱이’다. 나이는 네 살, 우리 엄마의 이름은 샛별이고 아버지는 가까이에는 사신다는 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초롱이란 이름은 주인님에게 오기 전 외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나는 초롱이란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 비록 덩치가 작은 발바리지만 싸나이 이름이 초롱이가 무엇인가 말이다. 깡다구 있어 보이게 백호나 청룡이라면 맘에 들겠지만 하다못해 바둑이나 독구는 되어야 하는데 여자이름인 초롱이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그래도 초롱이란 이름이 싫지 않을 때가 있기는 하다. 며칠 집을 비우신 주인님이 돌아오시며 “초롱초롱 초롱이 우리 초롱이 집 잘 보았나?” 하시며 과자를 주시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때이다. 한번 지어진 이름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초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바에는 초롱이란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자꾸만 생각해 볼 것이다.2020년 8월 23일. 오늘은 쥐를 두 마리나 잡았다. 우리 주인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일 중 하나가 내가 쥐를 잡았을 때이다. 그래서 나는 쥐를 보면 숨어있다 꼭 잡는다. 사실은 쥐를 보고 잡을 때 보다는 못 잡을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주인님은 내가 쥐를 보고도 놓치는 경우도 많고, 주인님이 기분 나쁘게 하실 때는 일부러 잡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을 모르신다. 하룻밤 사이 두 마리를 잡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연달아 이틀 동안은 한 마리씩을 잡아 주인님에게 칭찬을 들었고, 안주인님께서 챙겨주신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쥐를 잡으면 주인님이 다니는 길 중간에 배를 위로 가게 놓아둔다. 아마도 쥐를 보시면 또 맛있는 무엇인가를 주실 것이다. 오늘은 기록을 깼으니 무엇을 상으로 주시려나 기다려진다. 더 많은 쥐를 잡기 위해 몰래 그들의 말을 엿들으니 쥐들은 내가 고양이보다 더 쥐를 잘 잡는 개라는 것은 모르는가보다. 나는 그것이 정말 다행스럽다./류대열(경주시 외동읍 입실리)

2020-08-24

도원경(桃源境)

부친께서는 6·25전쟁이 발발하여 북한군이 낙동강 아래로 내려올 당시 보급품을 운반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경북도 영덕군 창수를 거쳐 영해로 내려올 당시 적군 비행기가 보급품인 것을 알고 공중 사격을 가하였습니다. 그때 부친께서는 어깨에 짊어진 보급품을 벗어 던지고 숨은 곳이 복숭아 나무 밑이었습니다. 복숭아 나무를 잡으니 나무가 물렁물렁 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복숭아 나무가 그 시절에도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산문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나오는 무릉도원 역시 복숭아 꽃이 대표적인 무릉도원의 상징입니다. 어부가 발견한 무릉도원 마을 사람들 또한 진(秦)나라 때 난을 피해 가족과 함께 피난한 사람들입니다.‘도화원기’내용을 보면 “민물고기 어부가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강 주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경치가 아름답고 향기롭기 그지 없고, 복사꽃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앞에 커다란 산이 가로 막고 있다”고 했다. 바로 그곳 무릉도원의 배경과 마치 흡사한 이미지를 지닌 영덕은 무릉산 밑으로 흐르는 오십천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눈앞에 옥계계곡과 팔각산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아름다운 영덕 복사꽃이 오십천 강줄기 주변으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도화원기’에서 나오는 민물고기 어부가 본 풍경은 영덕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합니다.우리는 무릉도원과 같은 아름답고 아무 걱정 없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갈망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잠시 행복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움츠려 있습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고, 코로나 유행 이전의 도원경과 같은 아름답고 평화롭고, 근심 걱정이 없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영덕에는 장사상륙작전과 같은 학도병과 군 장병 등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무릉도원과 같은 영덕을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기운을 이어 받은 영덕 복숭아가 익어가는 이 계절, 무릉도원의 결실인 복숭아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드시고 모두 코로나를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이두환 사진작가

2020-08-24

엄마 갱년기 그리고 아들 사춘기

“지금 몇 신줄 알아, 시계는 보고 게임 하는 거야.”하면 두 아들들은 건성으로 “알았어요, 지금 끌 거예요”한다. 그러고도 도무지 끌 기미가 보이지 않아 참다못한 갱년기 엄마는 “지금 당장 꺼”하고 욱 하고 고함을 지르면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끄면 되잖아요.”하는 신경질적인 대답과 함께 최대한 천천히 폰을 끈다. 꾀 많은 둘째는 “엄마, 지금 제가 게임하는 걸로 보이세요. 유튜브 보고 있어요, 유튜브에 얼마나 배울게 많은지 아세요.”하고 뻔뻔스럽게 대답을 한다. 지금까지 엄마 말이라면 고분고분하던 아들들이 초등 6학년. 초등 5학년이 되면서 눈에 빤히 보이는 반항을 한다. ‘이제는 많이 컸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큰 아들은 ‘초등4년 병’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엄마에 대한 무언의 반항으로 시작해서 영혼 없이 “예. 몰라요. 엄마가 맞춰보세요” 건성으로 대답하는 걸로 바뀌었다. 한 살 어린 둘째아들은 이마에 아토피처럼 생긴 피부를 보이면서“엄마, 이것 여드름 맞지. 나 이제 사춘기지?”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철없는 행동에 웃음이 나지만 엄마 말에 조목조목 따지고 들 때면 사춘기 인 것도 같다.우리 집에는 3단계의 의사소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작은 아들의 설명과 큰 아들의 해설을 더해야 이해가 이루어진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엄마와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엄마, 국민학교 졸업한 것 맞아. 딱 보면 보통 핵꼬(학교) 졸업 한 것 같은데”하면서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기도 한다.이제 엄마는 노안도 오고 말귀도 알아듣기 힘들다. 엄마가 나이 먹고 힘이 없어지는 만큼 얘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대견하다.그래도 엄마는 눈 안에 모든 것을 넣어 놓고 키우고 싶어 안달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에 담아 놓고 키워야겠다. 한 발 앞서가는 엄마가 아니라 한 걸음 뒤에서 지켜봐 주고 실수해도 믿고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 엄마 보다 키가 더 큰 아들들을 우러러(?) 보며 언제나 같은 자리에 버팀목으로 서 있고 싶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08-24

고무신과 맨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유년시절의 여름날엔 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가 많았었다. 학교에 가거나 농사일을 돕거나 또래들과 어울려 놀 때면 거의 다 고무신을 신고 나타났다. 지금은 아련해진 신발상표인 말표, 기차표, 왕자표 따위의 검정이나 흰고무신을, 요새처럼 흔한 운동화마저 없었기에 고무신을 질질 끌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 당시엔 다들 시골 5일장에서 좋은 옷이나 괜찮은 신발을 장만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먹고 사는 일들이 녹록찮았던 70년대, 대부분 어딜 다니거나 일을 할 때면 최소한의 기본요건(?)만을 갖춘 옷이나 신발이면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고무신을 발에 견주어 신기도 하면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소꿉놀이 할 때면 고무신에 흙을 가득 담아 실어 나르기도 했고, 개울에서 멱을 감다가 붕어나 송사리를 잡아 물을 채워 집으로 갖고 갈 때는 고무신이 딱 좋았다. 또한 심심할 때는 고무신 두 짝을 벗어 짝짝이처럼 마주치게 하여 특유의 소리를 듣기고 했지만, 어떤 때는 고무신이 너무 빨리 닳는 것이 아까워 들길이나 산길, 신작로를 다니면서 신고 있던 고무신 두 짝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간 적도 흔하게 있었다.특히나 차가 드물게 지나가며 뽀얀 먼지 일으키던 5번 국도 신작로를 맨발로 걸어갈 때에는 길 가장자리로 밀려나온 모래흙과 자갈을 밟으면서 발바닥의 간지러움 따가움, 간혹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었다. 그처럼 일상생활에서나 논밭에서 김을 매고 들에서 일을 할 때면 으레 고무신을 벗어두고 맨발로 움직일 때가 많았으니,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어련무던한 자극과 추억이 세월의 저편에서 아직도 꼼지락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세월이 한참이나 흘러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요즘, 맨발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흔히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듯이, 심장에서 보낸 혈액이 제일 먼 곳에 있는 발로 갔다가 심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의 혈액순환과 발 자체의 관절이나 근육의 기능들이 온전해야 우리 몸의 전체적인 순환과 움직임도 원활해질 것이다. 맨발걷기나 맨발 뛰기로 땅과 바닥의 기운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발 건강을 도모하면 그만큼 심장이 더 건강하고 강해질 것이다.국민들의 맨발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자체 별로 특색있는 맨발 황토길이나 숲길, 지압 보도, 맨발 마당 등을 조성해 호응이 커지고 있다. 최근 포항지역에서는 맨발 걷기의 선풍이 일어나면서 ‘맨발로(路) 8선’을 선정하고, 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건강 프로젝트로 ‘전국 최초 일일 맨발 10만보 걷기’를 완수하는 등 보행환경 조성과 걷기문화를 확산시켜 상당히 고무적으로 여겨진다.사람은 땅과 자연에 가까워질 때 병원과 멀어진다고 한다. 오감을 깨우며 삶의 활력을 주는 맨발걷기와 맨발 운동은 발뿐 아니라 온몸을 일깨우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다.

2020-08-23

빛의 방향과 양

박화진지킴랩 기업탐정본부장전 경북지방경찰청장긴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다. 코로나까지 다시 기승을 부린다니 여름나기가 쉽지 않다. 에어컨이 켜진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견딜만하지만 땡볕 아래 일하는 사람들은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되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긴 장마에 볕이 그리웠는데 오히려 그 볕을 타박하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생명체에서 햇빛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봄가을이면 아름다운 하늘에 청량한 햇빛을 맘껏 누리는 우리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긴 겨울과 비가 많은 북유럽 사람들은 모처럼 나오는 햇빛을 주체하지 못하다고 한다. 빛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피부미용에 민감한 여성들의 얘기가 아니다. 사진작가와 같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다. 필름카메라 시대가 끝나고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되어 누구나 웬만큼 사진을 찍는다. 빛과 색상을 카메라가 자동으로 보정해주지만 그래도 작가들은 수동으로 빛의 양과 각도를 조절하면서 찍어야 예술성 있는 작품이 되는 모양이다. 피사체에 대한 빛의 반응이 재미있다. 피사체 후면에 빛이 있으면 피사체가 검게 나온다. 이런 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실루엣 사진으로 예술성을 찾는다. 전면에 빛이 많이 비치면 피사체가 하얗게 나아서 얼굴사진인 경우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다. 예술사진이 아니라면 적당한 측광이 명암과 원근감을 살려 제대로 된 정상적인 사진으로 찍힌다. 물론 비전문가의 사진이다.사람에게도 빛의 방향과 양이 꽤 중요한 일이다. 유명 체육인, 연예인, 정치인 2세들이 부모의 후광 때문에 정작 자신들은 어두워지는 현실이다. 부모처럼 뛰어나면 본인의 노력은 아랑곳없이 유전적으로 대물림 받은 것으로 여긴다. 부모에 미치지 못하면 부모의 명예에 손상을 끼친 사람이 된다. 이래저래 자기 정체성이 실종된다. 빛이 앞에서 지나치게 비치는 것도 잘 감당되지 않는다. 강한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순간 눈이 감긴다. 앞이 어두워진다. 분별력이 떨어진다. 나락으로 치닫게 된다. 어느 날 유명인이 된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과다한 빛 쬐기의 부작용이다. 적당하게 들어오는 측면의 빛을 받아 명암이 섞이고 원근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 일 수 있다. 부족한 부모를 탓하거나 지나치게 내리 비치는 빛에 우쭐할 일이 아님은 자연의 이치다.최근 나라님의 인기가 나라살림 사는데 지장을 줄 정도까지 내려앉고 있단다. 전임자의 후광과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많이 들떠있던 시간들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임기 후반기에 들어서니 뒤뚱거림이 예외가 아닌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처럼 전임자들이 들었던 말들을 듣고 있는 현실을 심각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지나친 후광과 스포트라이트에 얼굴이 실루엣과 백야가 될 경우 인물사진으로서는 잘못 찍힌 것이다. 빛의 각도와 양을 잘 조절했으면 한다. 민초들은 나라님 존영을 오래도록 원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요즈음은 사진 좀 찍을 줄 알고 볼 줄 아는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 살짝 보정하는 건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2020-08-23

프리미엄 과일

포도계의 슈퍼스타, ‘망고 포도’라는 별명의 샤인머스켓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한송이 가격이 무려 2만원. 비싼 가격에도 대형마트 등에서는 올 여름 가장 잘 팔리는 과일로 손꼽힌다. 작년 동기보다 무려 200% 이상 매출이 급등했다.샤인머스켓은 일본이 개발한 과일이다. 1988년 일본이 이중 교배하여 만든 청포도의 일종. 당도가 일반포도보다 높고 껍질째로 먹을 수 있다. 포도 껍질 특유의 억센 질감과 시큼함이 없으며 식감이 아삭하고 씹을수록 망고향이 난다.일본은 일본 내 품종 등록은 했지만 해외품종 등록을 미처 하지 못해 우리나라가 재배를 해도 로열티를 물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는 2006년 처음으로 식재를 했고 지금은 일본과 함께 유일하게 샤인머스켓 수출국 위치에 있다. 샤인머스켓은 일반 거봉포도보다 수출가격이 약 3배다. 포도주산지가 많은 경북의 상주, 김천, 영천 등지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재배면적도 매년 는다. 경북지역 농산물의 해외 수출에 샤인머스켓이 견인차 역할까지 한다.6월 말에서 7월 중순 사이 딱 2주간만 맛볼 수 있는 과일이 있다. 신비 복숭아다. 이름 그대로 신비한 맛이 있다. 경북 영천과 경산 일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비 복숭아는 외양은 천도복숭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천도처럼 시큼하지 않고 달콤하다. 털이 없어 껍질째 먹을 수 있다. 뉴질랜드 출신의 엔비사과는 전세계 10개국에서만 생산되는 사과다. 아시아에선 우리나라가 유일한 생산국이다. 가격은 일반 사과의 2배 수준이다.같은 과일보다 월등히 비싼 프리미엄 과일의 수요가 늘고 있다. 과일 하나를 먹어도 특별한 것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는 탓이다. 가격보다는 맛과 향을 중시하는 소비트렌드가 프리미엄 과일을 양산하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8-23

‘남 탓’ 공화국

안재휘 논설위원‘칼을 빌려 사람(상대방)을 죽인다’는 뜻으로 직역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은, 흔히 중국 남조 송(宋)의 명장인 단도제(檀道濟)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단공삼십육계(檀公三十六計)의 세 번째 지략이다. 직접 싸우지 말고 타인을 이용하라는 말로 의역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세에 몰릴 적마다 남의 칼을 빌려 휘두르는 통치란 결코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세기적 돌림병 코로나19 싱크홀이 이 나라에서는 뜻밖으로 정권에 행운의 여신으로 작동한다. 정적 소탕과 정책 실험, 국론 분열의 선동 굿판만 거듭해온 문재인 정권 앞에 코로나19는 민심을 흐리는 연막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아가 작금 바이러스 재확산에 즈음해서는 반대자를 향한 합법적인 탄압의 칼로 변질될 위기에 처해 있다.문재인 정부는 집권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실정의 뿌리를 번번이 지난 정권을 비롯한 다른 원인에다 돌려 붙이는 ‘남 탓’ 정권, ‘핑계 정부’에 머물러 있다. 부동산 혼란으로 민심을 잃어 전전긍긍하던 정세를 반전시킬 묘책으로 ‘행정수도 이전’, ‘현충원 친일파 파묘(破墓) 논쟁’ 폭탄을 마구 던지던 여권은 8.15 대규모 반정부집회가 터지자 일제히 ‘코로나 칼’을 치켜들었다.코로나 재창궐은 휴가철에 경각심을 낮추는 성급한 조치들을 내린 당국의 방역실패라고 보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연일 방역 방해 활동을 찍어 ‘공권력 집행’을 외치고, 당은 코로나 사태 초기에 앞다투어 신천지를 때리던 같은 기술로 전광훈 목사를 철천지원수로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전당대회마저 ‘남 탓’ 광기에 빠져 전광훈과 김종인을 한 몸으로 엮는 표독스러운 험구 세례로 책임을 덧씌우는 막말 경연대회로 치르고 있다.광화문을 울린 정권비판 구호는 종적을 감췄다. 그 많은 이들이 모여서 한목소리로 외친 민심은 코로나 소동에 모조리 형해화돼버리고 말았다. 사랑제일교회를 압수 수색한 당국이 ‘통신사 기지국 정보’를 이용해 집회 당시 광화문 인근에 머문 1만576명 모두의 연락처를 확보했다는 소식이다.드디어 광화문 반정부 시위대에 있었거나 그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들, 최소한 적극적인 비판 정서를 가진 국민의 명단을 상당수 확보한 셈이니 이거야말로 정권안보 차원에서 큰 소득일 것이다. 겉으로는 코로나 방역에 협조하지 않은 죄, 속으로는 반정권의 죄를 물을 합법적인 자료가 생긴 셈 아닌가. 문득 조지오웰의 소설 ‘1983’이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는다.‘남 탓’ 공화국은 희대의 비극이다. 1990년대 유행처럼 차량 뒷유리에 붙였던 ‘내 탓이요’ 스티커가 생각난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께서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자며 시작한 그 ‘내 탓이오’ 운동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인사도, 방역에 협조하지 않는 장삼이사도 다 대한민국 국민이다. ‘코로나’라는 칼을 빌려 ‘엄정 대응’하거나 ‘법정 최고형’으로 때려잡아야 할 주적이 결코 아니다.

2020-08-23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서민경제 대책 병행해야

정부가 수도권 등 일부지역에 한정했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23일부터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실내는 50인 이상, 야외는 100인 이상 모이는 집회나 행사는 전면 금지된다. 전시회나 콘서트는 물론 이 규모를 넘어서는 결혼식, 장례식, 동창회도 열 수 없다. 스포츠 경기는 무관중으로 다시 돌아간다. 클럽과 노래연습장, PC방 등 12종의 고위험 시설은 문을 닫아야 한다. 유치원과 초중고교도 등교 인원을 줄여 수업해야 한다.정부의 방역강화 조치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이틀연속 300명을 넘었고 전국 17개 시도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방역당국은 2차, 3차 감염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대구와 경북은 코로나19 1차 대유행을 전국에서 가장 혹독하게 경험한 바 있어 2단계 격상이 가져올 경제적 폐해와 일상의 불편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생활의 불편은 감내할 수 있다하더라도 경제적 문제는 우리사회의 기반을 흔들 수 있기에 비상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가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전방위적이다. 그러나 그중 서민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가장 빠르고 심각하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 조사에서도 이런 문제가 드러났다. 2분기 중 최상위층의 근로소득은 4%가 줄었으나 최하위층 가구는 18%가 줄었다.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 식당 등에는 소비자의 발길이 뜸해지고 이는 영업장의 매출감소로 이어져 직원들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벌써 영세상인들의 한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 겨우 조금씩 살아나는 시장경기가 또다시 얼어붙을 판이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2차 대유행을 반드시 막아야겠지만 정부 당국의 비상한 경제 대책이 먼저 준비돼야 한다. 정부 일각에서 2차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이미 3차례 코로나 관련 추경을 한 상태라 재정형편이 가능한지 의문이다.이 와중에 태풍 바비가 한반도에 상륙할 거란 예보와 의사들의 집단파업도 예고돼 있어 설상가상 형국이다. 정부 여당은 코로나 발생의 원인 탓만 늘어놓을게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국민도 믿고 따라갈 것이다.

2020-08-23

與, 국토부 ‘계좌추적권’ 추진… ‘통제만능’ 심각

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에 부동산 거래와 관련해 개인의 금융정보 일체를 조회할 수 있는 계좌추적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또 들고나선 강수다. 그러나 검찰과 국세청도 법원 영장을 받아야 할 정도로 제한되는 권한을 국토부에 허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방통행식 고단위 항생제만 자꾸 투입하는 정부·여당의 통제만능주의다. 가공할 부작용을 어찌 감당하려고 이러나.여당이 준비 중인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토부 산하 ‘부동산시장 불법행위대응반’이 금융거래, 신용정보 등의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토부의 요구가 있을 경우 금융회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보자료를 내줘야 한다. 부동산시장 교란 행위, 불법 의심 거래 등으로 범위를 한정한다지만 법이 통과되면 검찰 못지않은 권한을 국토부가 갖게 된다는 뜻이다.현행법에는 국토부가 관계기관에 조사 대상자의 등기, 가족관계, 과세 등의 자료만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개정안은 여기에 더해 법인의 재무상태표·포괄손익계산서·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사업자등록정보, 국민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기초연금 등 보험료, 금융자산·금융거래·신용정보 등 민감한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대응반이 국민의 개인계좌까지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부동산대응반의 권한확대 조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설치를 검토 중인 부동산감독기구 설치의 준비과정일 가능성이 크다. 인력과 권한이 대폭 강화된 부동산감독기구는 금융정보를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부동산시장의 빅브라더 역할을 할 개연성이 크다. 매사 통제 위주로 정책을 수립하고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의 방향은 효과적이지도 않거니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경찰국가를 만들어 빅 브라더가 되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감독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부의 통제만능주의는 절제돼야 한다. 세상을 진정 바꾸는 건 그물망이 아니라 선순환의 순리다.

2020-08-23

“안전에는 지나침이 없다”

고윤환문경시장오늘날 가장 많은 바람 중 하나는 안전이다.우리나라도 이례적으로 긴 장마와 집중호우, 산불,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발생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이고, 코로나19를 비롯한 감염병의 확산 등 여러 가지 환경변화로 안전이 위협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하지만, 인류는 이러한 재해들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긴 장마의 경우에도 제트기류가 북반구에서 어느 쪽으로 내려오느냐에 따라 폭염과 가뭄이 들 수도 있고, 홍수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현재 상태를 잘 분석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사전 점검과 조치, 탄력적인 대응, 신속한 복구 등 그 모든 것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우리 시는 매년 실전과 같은 화재대피 훈련, 지진대비 훈련, 저지대 침수대피 훈련 등 위기 상황 대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리 훈련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특히 침수대피 훈련은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해 각 읍·면·동별로 침수가 예상되는 저지대 지역을 각각 선정한 후, 시간당 80mm 이상의 기습 폭우를 가정해 하천 범람 등으로 인한 저지대 침수지역의 주민대피 및 재난복구 훈련 등으로 진행한다. 재난발생 시 실시간 현장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자체 비상상황을 발령해 지역 119안전센터, 파출소, 지역자율방재단, 의용소방대 등 유관기관과 유기적인 협동체계를 구축해 비상 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대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함이다. 또한 소하천 정비, 생태하천 복원, 하천재해 예방 등에 나서 홍수를 예방하고 있다. 올해 총 48개 지구에 270억원을 투입해 치수 사업을 추진 중이다.특히 새로운 모습을 찾은 모전천은 재해예방 하천의 실례로 들 수 있다.2018년 이전 모전천은 해마다 하천 주변에 침수 피해가 발생해 2010년 및 2011년 우수기에 시간당 40mm이상의 폭우로 하천이 범람해 인근 마을이 침수되어 하천 정비가 요구됐다.이에 총 15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하천종합계획을 수립, 하상고를 최대한 낮추어 당초 소하천에 비해 통수단면을 1.8배 확장, 하천범람 피해가 없도록 사업을 추진한 결과, 문경지역에 집중호우가 있었지만 모전천은 홍수위를 넘기지 않아 범람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으며, 호안사면에 보행자 도로와 안전데크를 설치해 급경사로 인한 추락위험을 제거하는 등 범람피해와 추락위험을 동시에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령인구가 많은 농촌 마을은 정보 전달에 어려움이 있다. 어르신들은 휴대폰으로 안내되는 긴급재난문자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힘이 든다.우리 시는 마을의 소식과 행정안내 정보전달뿐만 아니라 태풍·호우 등 각종 재난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마을 무선방송시스템 설치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2017년부터 매년 약 15억원의 예산을 들여 123개 마을, 8천779가구에 무선 마을방송 시스템을 갖추었다. 무선 마을방송 시스템은 옥외 스피커 성능을 높이고 가정마다 실내 스피커를 설치해 행정 정보나 긴급 재난 상황을 신속히 전달받을 수 있으며, 혹시라도 놓친 방송까지 재생해 들을 수 있다.문경시는 약 1천600대의 CCTV를 24명의 관제요원이 24시간 모니터링 하는 CCTV 통합관제센터도 운영하고 있다.작년 한 해 동안 관제요원의 신고는 강력범죄 11건을 포함해 37건, 경찰서 사건 사고 대응으로 140건의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올해는 105대의 방범용 CCTV가 추가로 설치되어 범죄 사각지대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7월 말에는 지역 내 호우 피해 우려 지역을 살펴보던 CCTV통합관제센터에서 폭우로 인해 주택 침수가 우려되는 현장을 발견하고 도로 침수 사실을 신속히 알려 배수 조치함으로 주택 침수를 막은 사례도 있다.그리고 영상회의실과 당직실에는 문경시의 시내 하천이나 유원지 등의 홍수 위험을 실시간 감시하는 CCTV 화면, 그리고 실시간 지진계측도까지, 문경시의 재난안전상황을 총망라한 정보들이 게시되어 있다.이와 같은 노력으로 이번 여름 홍수경보, 호우특보가 발령된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게 문경을 지킬 수 있었다. 안전에는 지나침이 없다. 각종 재해로부터,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2020-08-23

꽃그늘에서 시를 읊다

병산서원 대청마루에 올랐다. 입교당 뒤창을 통해 보이는 배롱나무가 붉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지난밤에 내린 빗물에 꽃잎이 화라락 떨어져 나무그늘도 붉어 졌다. 꽃그늘 아래 선 친구의 뒷모습을 찍었다. 자연과 사람이 한 폭의 그림이 된다.사당인 존덕사 앞에 진분홍색 꽃이 피는 풍광에 반해 일부러 병산서원을 한여름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그 행렬의 한 자락을 차지하려고 여름 한가운데인 8월에 찾아 갔다. 이곳에 배롱나무는 노거수로서 2008년 4월 7일 경상북도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여름에 접어들 무렵 친구가 뜬금없이, “이제 필만 한 꽃은 대충 다 폈지?” 하고 물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피는 꽃의 종류가 가장 많을 때가 바로 여름인데 말이다. 농촌에서 자란 그 친구에게 벼꽃은 언제 피라고 그러냐고 되묻자, 생각 못 했다며 웃는다. 움츠린 겨울 끝에 오는 봄에 그것도 잎도 없이 꽃이 먼저 피는 벚꽃이나 개나리 진달래는 반가운 마음에 이름도 모습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화전놀이도 봄에, 벚꽃놀이도 봄에 하니 말이다. 반면에 짙은 녹음의 그늘에서 피는 꽃들의 노력은 잊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름에 피는 꽃 이름으로 하는 놀이는 예전에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지자체마다 꽃 축제가 제법 생기고 있기는 하다.여름 내내 피었다 지는 배롱나무는 9월까지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한다. 그 붉고 아름다운 모습이 자줏빛 장미를 닮았다고 ‘자미화’ 라 불리기도 한다. 또 매끈매끈한 줄기를 긁으면 가지가 흔들린다고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아 서원과 양반 댁 정원에 많이 심었다. 또 오래 피고 지는 모습이 정진하며 자신을 닦는 스님들의 삶과 닮아 사찰에도 많이 심겼다. 전국 유명한 절을 여름에 방문하면 마당 중앙이나 또 연못가에 어김없이 붉은 배롱나무가 점잖게 앉아있을 것이다. 이렇듯 배롱나무는 고귀한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였다.전해지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선비가 마당에 백일홍이 붉게 피자 자랑삼아 친구들을 불렀다. 서로 앞 다투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백일홍을 노래할 때 마당을 쓸고 있던 글을 모르는 마당쇠의 귀에도 들렸다 한다. 그 싯구에 ‘백일홍백일홍’ 하는 소리가 ‘베롱베롱’으로 들려서 저 나무가 배롱나무구나 했다는 설이다.김순희수필가서원을 알리는 안내장에도 배롱나무가 한껏 꽃을 피운 여름사진이 내걸렸다. 하늘 위에서 찍은 장면을 보면 건물 담장마다 붉은 꽃 장식을 한 듯하다. 찾아간 시간이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라 우리 일행만 남고 다들 돌아간 뒤였다. 그 넓은 공간이 모두 우리차지였다. 사람들이 들어서는 입구부터 만대루 앞에 작게 파놓은 연못에도 꽃잎이 드리워져 있다.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즈려밟으며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병산서원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재이다. 마루에 퍼질러 앉아 여름을 노래하는 붉은 꽃 읽기 삼매경에 빠지기 좋은 공간이다. 류성룡(柳成龍)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이곳에 1614년경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심은 여섯 그루의 나무들이 시작이라고 전한다. 함께 간 친구와 창을 통해 배롱나무의 붉은 꽃을 오래도록 내다보았다.대청에서 보이는 장판각은 책을 찍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바닥 밑을 띄우고 습기로부터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강당인 입교당 대청에서 뒤창을 통해서 늘 감독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했다.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간직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장판각의 목판도 그 앞에 선 배롱나무도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주었으니 말이다.네모난 창틀이 멋진 액자가 되어 여름 풍경을 완성한다. 400년 전 이곳에서 글을 익혔던 선비들의 시선으로 한 계절 피었다 지는 꽃잎을 오래 바라본다. 병산을 휘감고 흐르는 낙동강의 물소리와 글 읽는 소리가 어우러져 낭랑하게 내 귓전에 울렸다.

2020-08-23

앞이 막막할 땐 맨몸운동이라도 하자

최근 세계 경제에 대한 회복 기대감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세계 경제를 부진의 늪에 빠트린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회복이 기대한 만큼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까지 모두 전염병 탓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각국이 내세운 보호무역주의는 철강, 자동차 등 기간산업에 주목했었고, 제재방식도 관세부과나 수입물량 통제 등 무역상대국이 상호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나름 이성적인 조치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미국과 영국 간에는 영국산 몰트위스키에 대한 수입 관세부과 문제로 영국의 몰트위스키 업계가 고사 위기에 몰리면서 영국 정계와 재계는 미국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양상도 지금까지와 같은 관세 등의 조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 등과도 얽혀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 중국에서 스마트폰 등을 제조하는 화웨이에 이어 다른 중국기업까지 미국이 손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을 제작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SNS) 틱톡(TikTok)을 운영하는 중국의 바이트댄스사에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4일 미국 사업을 90일 이내에 매각하라는 공식 명령을 발동했다. 화웨이가 미국에 정치적 공세로 대항한 것과 달리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바이트댄스사에 대한 중국인의 평판도 가라앉고 있다. 반면 화웨이의 경우 미국에 대항하는 자국 기업이라며 오히려 국내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는 등 올해 2/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 대수는 삼성을 처음으로 제치며 세계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이제는 기업 간 경제전쟁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판단에 기업의 생사가 갈리는 정치와 경제가 혼합된 하이브리드형 무역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세계는 이처럼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의사결정들이 유례없이 만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비전통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경제 정상화에 노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비전통적인 경기대책보다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국익 우선주의로 인한 경제차단 효과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든다.올해 전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에 투입한 자금은 무려 20조 달러(약 2경 3천64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0%에 상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그리고 비전통적인 재정, 통화정책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전통적 수단인 양적 완화 정책의 의도는 한 지역이나 국가에 자금을 무제한 공급해 일정 수위가 넘게 되면 그 자금이 마치 댐에서 흘러넘쳐 흐르듯이 각 경제주체 전체로 파급되는 낙수효과에 있다. 이와 같은 낙수효과는 때로는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와 국제무역을 통해 이어지는 다른 나라까지도 경기 자극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각국이 동시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자금이 투입됐는데도 각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데는 다른 것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내수보다는 해외시장이 주 무대인 제조기업체들이 많다. 해외시장으로 이어지는 나라와 나라 간 연결된 다리 자체가 끊어진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낙수효과에 기대 물이 흐르듯이 순환되는 효과가 국제무역에서 이뤄지지 못함은 당연하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만들 돈이 부족하다면 몰라도 물건 자체를 만들어도 그 판로가 막혀있는 상황에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순환은 이뤄지기 힘들다. 상대방이 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기 때문이다.앞으로도 이러한 현실이 쉽게 타개될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의 회복 시기는 예상보다 더욱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칫하면 지역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 모두 그 유명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모하비(Mojave) 사막에 있다. 지난 8월 16일 오후 이 ‘죽음의 계곡’에서 측정된 섭씨 54.4℃는 전 세계의 관측 사상 최고 온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물론 이 ‘죽음의 계곡’에서는 이미 1913년 섭씨 56.7℃가 관측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 기상학자들은 당시 관측자가 실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여하튼 이 죽음의 계곡이 그만큼 인간에게 위협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기술창업이나 벤처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해 성공적으로 시장까지 진출하는 동안 넘어야 할 두 개의 난관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술 씨앗을 이용하여 제품을 개발하고, 시제품을 제작하여 사업화하기까지 약 5년에서 7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사이에 자금이 고갈되는 ‘죽음의 계곡’을 만나 무너지는 기업이 그만큼 많음을 의미한다. 어찌어찌 살아남더라도 이번에는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라는 무시무시한 포식자들이 즐비한 냉혹한 시장이 기다리고 있다. 송사리에 불과한 중소벤처기업이 약육강식의 세계시장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것은 무척 험난하기에 이를 두 개의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의 계곡’이나 ‘다윈의 바다’가 벤처나 기술창업 기업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로 인해 지금 지역 내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은 물론 직장을 잃은 가계까지 모두 각자 나름의 ‘죽음의 계곡’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들 뉴노멀이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올 것이므로 이에 대비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코로나19가 먼저 종식된 이후의 이야기다. 게다가 올해만 하더라도 9월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 10월 미국 외환보고서 발표,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의 하나인 5중전회가 예정돼 있다. 또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선거, 12월에는 일본의 헌법개정, EU 정상회담 등 세계 각국의 중요정책이 결정될 굵직한 정치 일정이 즐비해 어떠한 기상천외한 정치적 판단이 세계 자유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비이성적, 비정상적인 조치들을 탄생시킬지 우려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죽음의 계곡’에 갇혀 비가 오기만 기다려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이 ‘죽음의 계곡’을 어찌어찌 건너더라도 새로운 비대면 비접촉 시대를 맞이하여 또 다른 위험인 ‘다윈의 바다’와 부딪칠 위험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어떠한 위기에도 기회는 있겠지만 기다리는 것만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나 기회는 준비한 자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은 헬스장을 가지 못할 때 맨몸운동이라도 하며 체력을 기른다고 한다. 경제회복 속도가 늦어지는 동안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코로나19 이전에도 분명 자기 기업, 상점 등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약점을 보완하며 체력강화나 체질 개선에 힘쓸 때다. 경제회복이 언제 될지 앞이 막막한 이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맨몸운동이라도 하자.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8-23

이 아름다운 아인슈페너

아침에 한번씩 꼭 들르는 곳이 하나 생겼다. 이름하여 아인슈페너를 파는 커피 전문점. 그렇게도 아이스커피를 즐겼건만 몸이 다 식으니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만 마시게 되었는데. 이 뜨거운 커피 위에 흰 크림 듬뿍 얹은 아인슈페너 파는 곳을 알게 된 것이다.그런데 이 흰빛의 크림 맛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것이랄까. 점원께 물어보니 이곳만의 수제, 직접 만든 것이란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차가운 크림 온도는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한 냉장에서 온 것일 터. 뜨거운 커피 위에 차가운 크림의 날카로운 대조미가 입안의 감촉을 생생하게 만든다.더욱이 이 크림은 뱃속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편할 수 없다. 토핑 크림 얹은 것이 속을 더부룩하게 하고 입안에서도 눅진한 느낌 남아 있는 경우 얼마나 많던가. 이 집 크림은 그런 속된 맛과는 거리 멀다고 벌써 며칠째 아침마다 마시며 감탄에 감탄.하, 그러고 보면 커피라는 것을 참 어지간히도 마셔왔다.처음 커피 맛을 본 것은 중학생 때 어머니가 손님 오셨을 때만 타 내오시는 ‘코히’ 맛을 본 것. 그때 수입산 커피가 수준 있었더랬다. 대학 와서 5동 앞 자판기 앞에 서서 나한테 담배 가르쳐 준 권영석과 같이 싸구려 믹스 커피 마시며 담배까지 태워 뱃속이 노랗게 변하던 기억도. 아이스커피도, 뜨거운 커피도 연한 맛에 꽤 오래 길들였던 것도 같은데, 한참 나중에 드디어 스타벅스 별다방 커피가 상륙했더랬다. 그 맛이 어찌나 쓴지 혀가 떨어져 달아날 지경.24시 편의점에 원두커피 천 원짜리가 등장하자 비로소 4천 원, 5천 원짜리 커피가 무섭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에 목에 신분증 패용하고 체인점 커피 하나 사들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규직의 자부심이라나, 어쩐다나. 그래도 비싼 느낌 어쩔 수 없다.그렇게 나 또한 커피는 하루 세 잔 네 잔도 사양 않는 중증 중독 환자건만. 기가 막힌 커피 맛은 언제 맛봤는지 기억에도 없었거늘. 이제 향미 가득한 아인슈페너 한 잔 앞에 놓고 이것이야말로 커피 중에서도 커피가 아니더냐 한다.아인슈페너(Einspnner)란 사전 보면 비엔나 커피의 한 종류, 오스트리아 것이란다. 원래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를 가리킨다던가 하고. 또 “오스트리아 빈의 마부들이 추위를 이기고자 크림과 설탕을 얹은 커피를 마신 것에서 유래”했다 한다.아하, 오스트리아, 빈. ‘꿈의 노벨레’였던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또….단념, 체념을 익히면 더 불행하지 않아도 되느니. 나는 어제 한 가지 미련, 애착을 단단히 끊어냈느니.아인슈페너 이 아름다운 커피 한 잔만으로도 한껏 행복을 만끽할 수 있나니./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20

국민과 정치

김병래시조시인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아테네와 같은 ‘폴리스’를 최종적이고 이상적인 공동체로 보고 그 속에서 의식주의 자급자족은 물론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공동선(共同善)을 이룰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체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사람과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을 터이다.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는‘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있다.그러나 구성원 모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민주제가 아니라 선거 등의 절차로 대표를 선출해서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범법(犯法) 등의 결격사유가 없는 한 만 18세가 되면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지방단체장,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 교육감에 대해서는 자질이 불량할 때 투표로 파직할 수 있는 주민소환권도 가진다.하지만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 국민의 정치참여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참여의 하나이다. 그들의 국가경영 성패는 곧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권의 잘잘못에 대한 심판은 선거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기에, 여러 경로로 감시하고 평가하여 다음 선거 때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것까지 국민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훌륭한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해서 부강해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를 망친 경우도 적지 않다.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은 전쟁으로 패망했고, 김일성을 선택한 북한과 차베스와 마두로를 선택한 베네수엘라는 결국 거지꼴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도 정부수립 이후 70여 년간 어느 정권도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다. 임기 중에 쫓겨나거나 시해를 당한 대통령도 있었고, 가족이나 본인의 비리로 교도소에 가거나 자살을 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가 나중에 사형선고를 받은 대통령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공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정부를 수립해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한 대통령과 혁신적 산업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진 대통령, 민주화에 기여를 한 대통령들은 역사가 특별히 기억할 것이다.국민들 각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때 나라는 안정되고 부강해질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우 우선 지양해야 할 것은‘패거리의식’이다. 이념이나 성향으로 편을 갈라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는 데서는 올바른 판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자기편은 무슨 짓을 해도 용인을 하고 상대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폄훼하고 반대하는 것은 국력을 소모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패거리들과는 거리를 둔 냉철한 이성을 가진 국민이 많을수록 나라의 근간이 튼실해진다. 현 정권이 크게 우려스러운 것도 바로 이 패거리정치 때문이다.

2020-08-20

반일 친일로 다툴 때인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광복회장이라는 김원웅씨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했다” “안익태는 민족반역자”이므로 그가 작곡한 애국가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일부 여당의원들이 추진 중인 친일인사 파묘법도 주장하고 있다. 이어 연단에 올라온 원희룡 제주 지사는 미리 준비했던 경축사 원고를 접고 우리 국민 대다수와 제주도민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치우친 역사관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를 기념사라고 광복회 제주지부장에게 대독하게 만든 이 처사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하고 제주도지사로서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상 김일성 공산군대가 대한민국을 공산화 시키려고 왔을 때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과 국민들이 있고 그 분들 중에는 일본 군대에 복무했던 분들도 있기에 나라를 잃은 국민에게서 무슨 죄를 묻겠는가는 것이 원 지사의 주장이다.필자는 원 지사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다. 자기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친일을 했다면 그건 비난 받아야 하지만 나라를 잃은 백성이 일본의 폭압속에서 강제로 일어난 일을 친일이라는 프레임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예술인, 군인, 지식인들은 일본의 폭압 속에서 특히 그것을 감내해야 했고 어쩔 수 없는 협력도 있을 수 있었다. 그건 그들이 원해서 한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후에 국가를 위해 행한 공을 생각하여 그 공이 충분히 칭송 받을 만하다면 그것으로서 존경 받아야 한다.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그 공을 우리가 보면서 역사 앞에서 공과 과를 겸허하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며, 대한민국을 만든 데에는 많은 분들의 공이 있었고, 과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광복회장 그 자신은 어떤가라는 비판도 있다. 정치 입문은 자신이 ‘친일’이라고 비판하는 민주공화당에서 이뤄졌고 사무처 공채에 지원해 당료로 근무하면서 정치권에 들어섰고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당료로 근무하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한다. 그 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져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진보진영으로 넘어갔고 진보진영의 프레임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를 두고 재향군인회는 16일 성명에서 김 회장을 향해 “자기 이익에 따라 정당을 바꾸는 철새정치인”이라고 비난했는데 김 회장은 “나는 생계형”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생계형이라면 자기가 비판하는 친일 인사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 비판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생계형을 훨씬 넘는 생명형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금 친일 반일로 다시 분할되어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친일을 청산하자고 하지만 그 기준은 그저 마음대로 그들이 정한 잣대일 뿐이다. 생계형이라면서 과거의 철새행태를 옹호하면서 생명형이었던 애국지사들을 매도할 수 있을까?광복 75주년을 맞은 이때에 이편저편 나누어서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되어야 한다는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조각내고 우리 국민을 다시 편가르기 하는 그런 시각이 맞는 것인가? 여권이 지지도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친일 프레임을 꺼내 든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2020-08-20

화불단행(禍不單行)

설상가상은 본래 “쓸데없는 참견”이란 뜻으로 사용됐다. 눈 내린 곳에 서리가 더 내려봐야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 “환란이 거듭된다”는 말로 바뀌게 된다.설상가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을 찾아보면 여러 개 있다. “앓는 중에 또 다른 병이 생긴다”는 병상첨병(病上添病)과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전호후랑(前虎後狼)이란 사자성어도 있다.우리 말 속담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과 “갈수록 태산”, “산 넘어 산”, “하품에 딸꾹질” 등이 같은 뜻이다. 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도 있다. 일본에서는 “밟혔다가 차였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설상가상에 반대되는 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있다. 이때 금은 비단 금(錦)자를 쓴다. 비단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물건인데 그 위에 꽃을 수놓았으니 좋은 일이 겹친다는 뜻이다.요즘 우리나라가 겪는 상황을 보면 설상가상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긴 장마와 500mm의 집중 호우로 전국 곳곳이 물에 잠겨 아직 생채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가운데 폭염이 덮치더니 이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난 2월 발생한 코로나19로 이미 우리나라는 큰 쇼크를 입은 마당이라 마치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처럼” 두려움이 앞선다.그도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 집중돼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다.옛말에 “복은 겹쳐 오지 않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禍不單行)고 했다. 이 말의 뜻은 “재앙이 또 다른 재앙을 부를 수 있으니 매사에 조심하라”는 것이다. 국가적 위기다. 정부와 국민 모두 엄중함이 절실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20

코로나19의 교훈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코로나19가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일련의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에게 코로나19는 절대자가 인류에 내리는 일종의 종교적 고난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엄청난 전파속도와 치사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를 대하는 종교지도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대범한(?) 행보를 보여 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나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의 얘기다.이만희 총회장의 경우 당초 코로나에 감염된 신도들의 명단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오히려 검사를 받지말라고 독려했다가 방역지침 위반과 방해 의혹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가뜩이나 전염속도가 빠르고, 치료약도 없는 치명적인 질병의 감염을 방조하는 행태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역시 코로나19의 2차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교회에서 마스크도 쓰지않은 채 설교를 하고, 광화문 집회를 주도해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전 목사를 포함한 목회자들은 지난 9일 사랑제일교회 예배 현장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신도들로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를 쓰지 않고, 80여 분간 설교를 했다. 평소 야외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며 마스크를 벗고 다녔던 전 목사는 지난 15일 광화문 집회에서도 “나는 열도 안 올라요. 나는 병에 대한 증상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전광훈 목사를 격리대상으로 정했다고 통보했다, 이놈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는 가차 없었다. 결국 본인 뿐만 아니라 밀접 접촉자인 부인과 비서진, 측근들까지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고 말았다. 신도들도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밤샘기도, 금식기도, 광복절 집회 준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합숙 생활을 마다치 않았다. 그 결과 사랑제일교회발 확진자는 전국 80여개 시군구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쏟아졌다. 사랑제일교회 측이 방역당국에 일부가 누락된 출입자 명단을 제출하거나 교인들의 진단 검사를 고의로 지연시킨 정황도 드러났다.신천지 사태 이후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은 역학조사를 방해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벌금을 내도록 처벌이 강화됐다. 여기에 국가가 부담한 복구 비용이나 치료 비용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구상권을 청구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배상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이런데도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측은 20일 대국민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방역 지침상 접촉자가 아닌 국민을 상대로 명단 제출과 검사, 격리를 강요하는 행위는 직권남용”이라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바쁘다. 신도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종교지도자로서 적절치못한 행태이자 책임회피다.종교적인 맹종은 어리석어서 두렵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최소한의 행동양식마저도 저버리게 한다. 생명존중의 신앙과 종교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에게 평화로운 삶과 안식을 약속한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져준 또 하나의 교훈은 생명존중이란 종교의 본질과 맞닿은 새로운 성찰이다.

2020-08-20

지역사회 확산 막을 비상한 방역의식 필요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번 주말까지 지금의 확산세를 잡지 못하면 코로나19는 전국 대유행의 기로에 설 것”이라 했다. 수도권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14일 이후 7일 연속 세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12개 시도에서도 사랑제일교회 혹은 광화문 집회 관련 확진자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이 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대구시와 경북도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서울 광복절 집회와 수도권 교회 방문자에 대한 진단검사에 총력을 쏟고 있다. 대구에선 1천600명, 경북에서는 1천500명 정도가 광복절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돼 이들에 대한 조기 진단과 격리가 수도권발 지역사회 대유행을 막을 최선의 선택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집회 및 수도권 교회 방문자의 진단검사를 독려하고 있으나 참석자들의 비협조 등으로 조속한 진단검사 이행이 쉽지 않다고 한다.수도권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교회에서 집단으로 발생했지만 지금은 발생처가 무차별적이다. 커피숍, 재래시장, 경찰서 심지어 서울시청 건물까지 폐쇄되는 일이 벌어졌다.지금 전 셰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2천만명을 넘는다. 6월 28일 1천만명을 돌파한지 불과 43일만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 빌게이츠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수백만명이 더 사망하고 내년 말에나 비로소 종식될 것”이라 예측했다.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다. 불요불급한 행사나 모임은 자제하고 대면보다는 비대면 모임으로 대체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밀집·밀착 장소 가지 않기 등을 지켜나가야 한다.그동안 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 방심한 측면이 많다. 감염병 전문가인 고려대 김우주교수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면서 국내 코로나 재유행을 확산시켰다”는 의견을 최근 냈다. 스포츠 경기 관중 제한적 허용이나 교회에서의 소규모 모임 해제, 외식공연 쿠폰 발행, 17일 공휴일 지정 등 정부가 코로나 방심을 조장하는 시그널을 국민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나 국민 모두가 방역의식을 새롭게 다져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희생을 더 치러야할 지 알 수가 없다.

2020-08-20

미래통합당의 서진(西進)…난관 만만치 않다

서진(西進) 전략으로 불리는 미래통합당의 호남 공들이기가 깊어지고 있다. 통합당은 구례 등 호남의 수해현장을 찾아가 구슬땀을 흘린 데 이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국립 5·18민주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러나 통합당의 호남 구애는 뚫어내야 할 난관이 만만찮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호남 민심과 여권은 진작부터 위헌 여지 등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5.18 망언 처벌법’ 올가미 등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광주 방문 중 지난해 당내 일부 인사들이 5·18과 관련해 쏟아낸 온갖 망언들에 대해서 “엄정한 회초리를 못 들었다. 잘못된 언행에 대해 당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자신이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자신이 참여한 데 대해서도 “상심에 빠진 광주시민,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국민에게는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민주당과 호남 민심은 김 비대위원장의 행보에 ‘쇼’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5·18 북한군 개입설 같은 유언비어를 공공연히 퍼트리고, 5·18 유공자를 ‘세금을 축내는 괴물집단’으로 비하하는 등 극우세력의 눈치를 보는 정치세력이 통합당 내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통합당은 최근 새 정강 초안에 ‘5월 정신’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 국회의원 4선 연임금지, 기초·광역의회 통폐합, 피선거권 연령 인하 등 기존의 이념과 거리가 있는 드라마틱한 경제·정치 혁신 어젠다들을 들고 나섰다. 이같은 극적 변화는 4월 총선 승리 이후 독선과 오만에 빠져있는 더불어민주당과 비교된다.김종인 위원장이 맞닥트릴 가장 큰 시험대는 5월 관련 개정법안들일 것이다. 통합당이 조금만 다른 소리를 해도 “그것 봐라. 다 쇼였지 않냐”고 덤터기를 씌울 게 뻔하다. 당당한 전국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합당의 서진 전략은 옳은 방향이다. 큰 눈으로 과감하게 접근하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통합당이 열린 마음과 너른 아량으로 정치 지평을 더욱 넓혀가기를 기대한다.

2020-08-20

모두의 책임이다

장규열한동대 교수말복이어서 그랬을까. 광복절이 뜨거웠다. 국권을 찾았던 뜨거운 감격을 기념하는 한편,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이 광장을 채웠다. 문제는 코로나19. 겨울 끄트머리에 찾아왔던 감염병은 봄과 여름을 건너 가을을 넘보고 있다.전세계 188개국에서 하루에 20만명도 넘게 감염시키면서 2천만을 상회하는 확진자를 낳고 80만에 육박하는 사망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리한 터널을 언제 통과하려는지 아무도 모른다. 광복절 광화문집회가 촉발한 감염확산 위험은 이전의 경우보다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의 건강이 경각에 달렸다.코로나19가 몸을 다치게 하겠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사회의 건강도 이만저만 해치는 게 아니다. 미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하는 까닭은 국민의 건강문제를 정치적 담론으로 몰아온 대통령의 실수로 보인다. 정치적 격론 속으로 빠져든 감염병을 대통령 본인은 물론 미국의 정치권도 도무지 건질 바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타산지석이 아닌가. 코로나19가 정치적 편가르기의 소재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소동이 다 지나고 혹 결산에 이를 때에 공과 과를 가늠할 일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방역에 집중하여야 한다. 백척간두에 섰을 방역당국의 심정은 어떤 모습일까.틀린 말은 아니다. 교회가 문제다. 신앙의 본질보다 정치적 담론으로 물들이며 집회를 주도한 목사의 책임이 크다. 부적절한 주장과 언변으로 신자들을 오도하고 호도해 온 목사와 교회에 대하여 분명한 판단과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던 한국교회에도 책임이 있다. 교회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웃을 돌아보고 사회의 건강을 살피는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믿는 이들의 신앙적 성장을 도우며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게 되면 오늘 이 사건은 교회의 건강도 회복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방역은 정치가 아니다. 오른편 왼편으로 갈라 다툴 일인가. 코로나19를 막는 길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다가도 모두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등장하는 ‘국난극복 DNA’를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념의 차이를 딛고 국난을 헤쳐왔던 기억을 되살리면, 편갈라 싸웠던 이슈들은 오히려 헐거운 과제들이었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 앞에 겨레는 언제나 하나가 되어 솟아오른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K-방역’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지나는 난관이 또 하나의 결실이 되는 역사를 남겨야 한다.모두의 책임이다. 모두에게 닥친 코로나19이며 함께 지나가야 할 관문이다. 누구를 탓하여 무엇을 얻으려는가. 차이를 극복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좋은 시험대이다. 대선을 앞두고 헤매는 미국이 있다. 총선을 거뜬히 치러낸 한국이 있다. 이겨내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구호와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생각에 따라 편갈라 다툴 일은 따로 또 많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뒤에는, 겨레의 마음도 건강해 지지 않을까. 세계가 보고 있다.대한민국, 파이팅!

2020-08-19

경견완증후군 주의보

가정이나 직장에서 컴퓨터 앞에 긴시간 앉아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경견완증후군 주의보가 내렸다. 경견완증후군은 온종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등 상체를 이용해 반복된 작업을 지속했을 때 나타나는 목, 어깨, 손목의 통증을 가리킨다.흔히 ‘오십견’으로 불리는 유착성 관절낭염, 테니스·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호소하는 팔꿈치 관절 주위의 통증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 내외상과염, 잘못된 자세로 오래 자판을 치게 될 경우 겪게 될 수 있는 ‘손목터널증후군’을 가리키는 근막통증증후군과 수근관증후군 등이다. 주로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등에 무감각, 통증, 뻣뻣함 등을 유발하는데, 1주일 이상 지속하거나 한달에 한 번 이상 이런 증상이 보이면 경견완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다. 특히 경견완증후군은 X선, MRI(자기공명영상)를 촬영해도 원인을 알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치료는 스트레칭, 약물,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통증이 심한 경우 주사치료를 하게 된다. 치료가 쉽지않은 경견완증후군을 예방하려면 구부정한 자세를 피하고, 바른 자세를 갖는 게 좋다. 증후군 예방을 위한 올바른 자세는 허리는 곧추 세워 등에 골이 만들어지게 하고, 가슴과 어깨는 활짝 편 채 턱을 당기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땐 무릎의 위치가 엉덩이보다 높지 않게 하고, 엉덩이와 허리의 각도를 90도로 만든다. 소파처럼 푹신한 곳에 앉을 때는 작은 쿠션을 소파와 허리사이에 받치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모니터 중심이 사용자의 코앞에 오도록 조절한다.무엇보다 오랜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피하고, 중간중간 휴식과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주는 게 긴요하다. 건강한 삶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