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밤바다 산책

윤영대수필가요즈음 중부 지방에는 폭우로 내리붓는 장맛비에 온통 물난리인데 여기 포항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열대야가 밤잠을 못 이루게 한다. 코로나19로 답답해진 마음에 밤바다를 거닐고 싶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가본다. 바닷가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아파트를 나서면 벌써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고, 골목길 빠져 해변 도로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방학에 피서철이라 발 디딜 틈도 없을 인파가 저 바닷가 파도처럼 일렁일 텐데…. 멀리 까만 바다 끝에 반짝이는 불빛은 호미곶인지 떠 있는 배들인지 정답게 다가오고, 수평선에 떠오른 보름달은 바다와 거리두기를 하는지 구름 마스크를 쓰고 하늘 높이 떠 있다.넓은 모래밭에는 젊은이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 터지는 소리와 물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산책길에는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의 걸음들이 모두 가볍고 길가에 앉아 서로 속삭이거나 혼자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해변의 낭만이다.사람들과 섞여서 천천히 걷다가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마르고 푹신한 느낌이 좋다. 아예 신고 간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으니 사각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아스팔트 길에 잊어버린 발바닥의 촉감을 찾아준다. 내친김에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용히 밀려오는 밤바다의 물결 소리가 종일 TV 소리에 지친 나의 귀를 간지럽히고, 두 발에 전해오는 차가움은 가슴으로 올라와 온몸의 열기를 식혀준다.바닷물에 세족(洗足)을 하니 생각난다. 8월 4일은 음력 6월 15일, 유두절(流頭節·유둣날)이다.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라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폭포수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친척들과 떡이나 전을 먹으며 유두잔치를 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병이 없다는 신라 때 명절인데 잊혀져가는 옛 풍습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영일만으로 흘러들어 오는 형산강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라 ‘잘 됐구나’ 하며, 오늘 저녁 유둣날의 기분에 한껏 젖어보았다.바닷물에 발 담그고 돌아서서 해변 야경을 보니 알파벳과 외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어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요즘 해외여행이 발 묶여버린 마음에 언젠가 가봤던 기억의 어느 외국 해변 풍경을 그리며 그곳에 와있노라고 상상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모래밭에는 매년 만들어 놓는 모래 작품들도 볼거리다. 섬세하게 쌓아 올린 이름난 건축물 조각상 앞에서 흐르는 불빛 따라 즐겁게 사진을 찍는 모습 또한 행복해 보인다. 발의 모래를 털고 다시 길로 올라오면 즐비한 스틸아트 작품들이 포항의 얘기를 들려주는 듯 밤의 산책을 즐겁게 한다.해변 끝에서 높고 좁다란 방파제에 올라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의 씩씩한 발걸음을 따라 끝까지 걸어 가본다. 빨간 등대 불이 깜빡이는 어둠의 배경은 7, 80년대 형산강의 기적을 만든 포스코, 옛날 그 힘찬 용광로의 불꽃은 다 어디로 갔는지 옛 함성을 반추하듯 초대형 전광판의 글자가 길게 늘어져 지나간다. 나는 그 전광판에 새기고 싶다. ‘포항의 영광을 되찾자.’ 그리고 등대 벽에 낙서한 연인들의 마음을 읽으며 통통거리며 들어오는 고깃배의 만선을 빌어본다.돌아오는 길, 200여 그루의 곰솔 숲 앞을 걸으면 풀잎 지붕의 둥근 테이블마다 바닷바람을 쐬며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흥겹다. 그런데 모든 공연이 금지된 버스킹 무대에는 할머니 몇 분이 손주들 재롱을 즐길 뿐이다. 모래밭에 줄지은 천막은 비어있는 듯하지만 길가 술집과 커피숍은 그래도 젊은이들로 북적이는데 실내 금연이라 밖에 모여 피워대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그들이 버린 꽁초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하얀 애벌레처럼 밤길에 나뒹구는 광경은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며 밤 산책하고 돌아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영일대 누각에 올라 보석처럼 반짝이는 해변의 불빛을 가르며 내 달리는 제트보트의 날렵한 질주를 눈에 담고 집에 돌아와 폭포수처럼 틀어놓은 샤워기로 젖은 땀을 씻고 유둣날의 복을 빌어본다. 남은 말복에 더위 먹지 말기를…. 지난 7일이 입추(立秋), 벌써 가을이 오는가 보다.

2020-08-12

혹시 당신의 마음 속에 행복이 있지 않습니까?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나한테 밥 한 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워서 답례하고 싶어 불러내지만, 날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제대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지만,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 걱정은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죄송합니다.이 세상 떠나신 후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어떤 분은 말합니다.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두 가지는 ‘눈물’과 ‘웃음’이라고 합니다.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웃음에는 건강이 담겨있다고 합니다.당신의 마음속에는 특별한 스위치가 있는데 오직 자신이 직접 켜고 끌 수 있는 행복 스위치입니다.지금 내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나도 모르게 그 스위치를 꺼 놓고 있는 건 아닐까요?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입니다.소망은 쫓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입니다.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디는 것입니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끓이는 것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입니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유는 즐기는 것이고 그런 속박은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고 울음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기쁨은 바로 행복입니다.행복은 누가 만들어줄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의 마음속 행복 스위치를 다시 켜보세요. 밝고 환한 행복이 켜집니다.잡은 것이 많으면 손이 아픕니다.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팔이 아픕니다.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어깨가 아픕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픕니다.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품고 있는 것이 많으면 가슴이 아픕니다.이제라도 모두 다 내려놓으세요.전부 다 놓아버리세요. 그리고 편안하게 사세요.우리가 아픈 것이 많은 것은 모두 다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 땐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그럴 땐 자신에게 칭찬의 한마디를 해주세요. “여기까지 참 잘 왔구나! 고생했네! 힘들었지!” “이만하면 열심히 안 살았나? 그래 참 잘하고 있다.” 소소한 한마디가 그 어떤 힘보다 강하게 되어있습니다.

2020-08-12

서울만 바라보라는 말이냐

장규열 한동대 교수워싱턴으로만 달려가지 않는다. 도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런던만 살 곳이라 여기지 않는다. 파리에만 모두 몰리지도 않는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도권과 지역 중소도시가 함께 어우러지며 나라를 이룬다. 미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도시들은 거의 워싱턴이 아니다. 일본에 가면서 도쿄만 생각나는가. 런던도 파리도 수도의 역할을 훌륭하게 하면서 크고작은 다른 도시와 지역들을 외면하지 않는다.우리 서울은 독특하다. 그래서 ‘특별시’일까. 나라 면적의 10퍼센트 남짓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44퍼센트가 산다. 국가경제활동의 7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게 아닌가. 부동산정책으로 몸살을 앓는다는데, 지방도시의 국민들은 이게 누구 이야기인가 싶다. 출신은 하나같이 지방 어느 곳이었지만 현역 정부 고위인사들은 거의 서울에 집 한 채쯤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출신만 지역인 셈이 아닌가. 국회의원들의 ‘지역대표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쏟아지는 부동산정책은 누가 보아도 ‘수도권부동산정책’이 아닌가.서울과 수도권, 물론 중요하다. 나라를 대표해야 하고 경제의 중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라의 정책이 수도권만 배려하거나 국민의 시선이 서울로만 향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닌가. 지역을 대표하는 이들이 수도권만 지향하는 정책입안 태도를 수정해야 하며, 서울로만 향하는 관심은 지역민들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인구를 분산시키는 일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역에도 자연스럽게 스스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여건조성에 힘써야 한다.지역은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지역이 발전하기 위하여 지역 스스로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발전을 도모하면서 중앙정부의 도움에만 기대는 접근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중앙의 지원이 주도하는 지역발전은 특색없고 획일화된 결과를 빚어낼 뿐이다. 지역이 스스로 품격을 올리고 지역브랜딩을 강화하며 고유문화를 발굴하여 일으킬 때, 지역민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외부의 관심도 일어나지 않을까.청년들에게 물으면 지역에 ‘일자리와 문화’가 없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미래를 열어갈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서 공부하고 서울로 떠나버린다면 지방대학의 존재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지역마다 다른 모양을 가졌을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일자리와 문화가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발견하면 중앙정부를 비롯한 외부의 관심은 저절로 꿈틀거리지 않을까. 밖으로부터의 지원과 투자도 내적으로 만들어낸 동력에 따라 유도될 터이다.부동산정책뿐일까. 정책수립과 입안이 거의 모두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중앙이 중요한 만큼 지방도 소중하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불균형적이며 왜곡된 발전 양상을 벗어날 길이 없다. 지역이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지 않고는, 균형적인 국가발전을 도모할 방법이 없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다양하고 풍성하며 역동적인 삶을 구가할 수 있을 때, 나라다운 나라도 구현되지 않을까.

2020-08-12

구성의 오류

구성의 오류는 부분적 성립의 원리를 전체적 성립으로 확대 추론함에 따라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개별적인 것을 합한 것이 전체의 모습과 다를 수 있는 것, 혹은 한 사람, 한 사람은 영리하고 똑똑한데, 여러 사람이 모인 군중은 어리석을 수 있다는 논리도 여기에 해당한다.구성의 오류를 개별 경제적 관점에서 볼 경우, 절약은 미덕이 될 수 있으나 국가 전체적 관점에서는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절약의 역설’이 대표적이다. 개인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부유해질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저축만 하면 총수요가 감소해 사회 전체의 부가 오히려 줄어든다. 저축을 위해 소비를 억제해야 하고, 줄어든 소비로 인해 생산된 상품은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인다. 이는 총수요 감소로 이어져 국민소득이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소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절약만 하고 쓸 줄 모르면 친척도 배반한다’는 속담은 구성의 오류를 경계하면서 생산과 소비 균형이 경제 성장에 중요한 요인이라는사실을 웅변한다.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근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시장의 특성상 개인의 합리적인 행동(자산증식을 위한 주택구매)이 전체로는 합리적이지 못한 결과(부동산 가격폭등)를 가져와 시장 불안정성을 높이는 일종의 ‘구성의 오류’가 발생한다”면서 부동산가격 폭등이 구성의 오류에서 비롯됐다고 말해 논란이다.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공급을 늘려달라는 시장의 지적에 “공급은 충분한데, (가격폭등은) 투기세력 때문”이라며 규제대책만을 23차례 남발한 정부가 이제와서 구성의 오류 탓을 늘어놓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처사가 아닌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2

통합당 새 강령 방향 ‘신선’…민심 깊이 담아내길

윤곽을 드러낸 미래통합당 새 강령의 토대가 될 ‘10대 정책’의 내용이 일단 신선하다. 심층 검토가 더 필요한 대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동안 민심이반의 원인이 됐던 맹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깊은 고민의 결과가 잘 담겨 있다고 본다.‘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구체적으로 다듬고 확정하는 과정에서 구태의연한 가치관이 다시 개입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공상이 발동하는 일을 잘 막아서 민심을 더 깊이 담아내길 기대한다.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정강정책특별위원회가 11일 발표한 정책에는 과거 자유한국당이 지향했던 반공·성장주의 등 이념 색채를 희석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두루 인정하고 양성평등과 노동존중 등을 당의 정신으로 내세워 중도보수 실용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쇄신책이 담겨 있다. 정책은 기회의 공정, 미래 경제혁신, 경제민주화 및 사회적 양극화 해소, 노동, 정부·정치개혁, 사법개혁, 환경, 복지, 양성평등, 외교·안보 등 핵심 정책 분야가 망라됐다.구체적으로 ‘기초의회와 광역의회의 통폐합’, ‘KBS 사장 대통령 임명권 폐지’, ‘법관 사직 후 즉시 출마 금지’, ‘시도지사와 교육감 러닝메이트 제도’, ‘권력형 범죄 공소시효 폐지’ 등을 포함해 모두 30여 개의 주요 정책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정강정책특위는 전날 끝장토론을 거쳐 ‘청와대 민정·인사수석실 폐지’, ‘기본소득’, ‘피선거권 만 18세 이하 하향’ 등의 내용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새로운 정강 정책이 확정되려면 비대위 의결과 상임전국위원회 및 전국위원회의 의결을 순차적으로 거쳐야 한다. 당명 개정 등과 맞물려 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일부 변동될 가능성도 있다. 국회 권력을 비롯해 3부 권력을 장악한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일방통행이 폭증하고 있는 시점에 제1야당 미래통합당의 혁신은 국민적 관심사다. 수구꼴통의 이미지에 갇혀서 도무지 민심을 돌려세우지 못해온 통합당이 민심을 정직하게 담아내어 환골탈태하는 일은 중대한 시대적 사명이다.민심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 감동적인 이정표에 잘 담아내기를 기대한다.

2020-08-12

“포항지진 100% 구제” 청와대 해결 의지 보여야

정부가 입법 예고한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에 반발한 포항시민의 상경시위가 그저께 청와대 앞에서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포항지진 피해금액 지원 비율을 70%로 한정하고, 유형별로 지원 한도를 규정한데 대한 반발 시위였다. 포항시민이 지진피해 보상과 관련해 거리에 나선 것은 한두번이 아니었다. 포항지진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원인이었다. 정부사업 수행과정에서 촉발된 지진으로 밝혀졌음에도 정부는 공식적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피해보상을 둘러싼 특별법 제정도 2년이나 질질 끌면서 겨우 성사했으며 그 내용도 포항시민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했다.최근 산자부가 입법예고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또 한번 포항시민을 실망시켰다. 정부사업에 의한 촉발지진인데도 피해구제는 70%만 하고 그나마 유형별로 지원한도를 제한한 것이다. 지난 6일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가 주민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것도 이런 독소조항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포항지진 특별법 제14조에는 피해구제 지원금에 대해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한 지원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행령에는 피해금액 지원비율을 70%로 한정하고 유형별로 지원 한도를 제한한 것은 특별법 취지를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그동안 정부가 포항지진과 관련해 취해온 과정은 소극적이며 무책임하다. 이런 측면에서 포항지진과 관련한 포항시민의 분노는 정부가 키워왔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호남에서 포항지진과 같은 지진이 일어났으면 이렇게 했겠느냐”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2017년 11월24일 포항지진 발생 9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 현장인 포항시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민이 안심할 모든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진 발생 3년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나 피해 보상은 물론 특별법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일각에선 산자부가 지역주민 의견 수렴 없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피해구제는 또 다른 마찰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제는 청와대가 해결의지를 직접 보여줄 때다.

2020-08-12

2학기 준비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다. 말 그대로 현대판 삼재(三災)다. 전염병, 장마, 폭염! 더 이상 또 무엇이 있을까? 자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에게 무서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제발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개발을 멈추라고! 하지만 인간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이번 삼재는 분명 인재(人災)다. 코로나19 사태만 보더라도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전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이러스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오염시키고, 사람이 퍼트리고, 사람이 아파한다. 내 몸 안에서 바이러스를 다스리는 방법은 없을까? 면역(免疫)이라는 말은 대결이라는 사람의 본능에서 나온 사람 중심 용어이다. 사람의 면역력은 어디까지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한다,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없다면 그들과 선의의 공생(共生)을 하면 어떨지!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허락이 아닌 바이러스의 허락이 먼저다.우리 생각은 우리 몸이 제일 잘 안다. 이는 우리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들도 우리 생각을 다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을 괴멸하려고 하는데 생존 본능이 있는 한 그걸 알고도 그냥 당할 생명체는 없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더 발버둥 치는 것이며, 거기서 돌연변이와 같은 변종이 생긴다.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변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몸을 빌려 사는 자연은 우리와 대결할 생각이 없다. 말 그대로 자연주의는 공생주의다. 자연의 공생주의에 몽니를 부리는 것은 사람이다. 자연은 그것을 다 받아준다. 자연의 공생주의를 착각한 인간들만 더 파괴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자가 치료 능력이 있는 자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사람과의 진정한 공생을! 사람의 모습을 보면 바이러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가 자연에 한 것처럼 똑같이 당할 수밖에 없다. 맞서려 하면 할수록 저항은 거세진다. 공생의 방법은 자연이 인간을 인정한 것처럼 우리도 바이러스를 인정하는 것이다.2학기 교육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 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를 생각한다. 온라인 개학은 더이상 교과 수업을 학교 안에서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온라인에는 학교보다 훨씬 더 알찬 교과 수업들이 많다. 굳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되는데, 학교는 왜 있는 걸까? 이젠 학교의 존재 의미를 단순히 교과 수업에 두는 시대는 끝났다. 빅 데이터 시대에 검색만 하면 누구나 자신이 부족한 과목의 내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이것은 학교의 기능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학교는 앞으로 어떤 기능을 해야 할까?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학교가 보여준 오류를 인정하고, 과감히 고쳐야 한다. 하지만 고집불통 학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곧 시작할 2학기에 학교에는 새로운 것이 뭐가 있을까? 아이들의 순수한 미래를 학교가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분명 죄다. 그러기 위해 2학기 시작 전에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공생과 인정’을 위한 연수를 할 것을 제안한다.

2020-08-12

사학비리와 공영형 사립대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7월 14일 한국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 대표 사학 연세대의 비리가 교육부 감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세대 송도캠퍼스 전 부총장의 딸과 연루된 대학원 입시비리를 비롯해 학사비리와 회계비리가 민낯을 제대로 드러냈다. 이른바 명문사학 연세대의 비리가 이 정도라면, 여타 사립대학은 어느 수준일까, 모골이 송연(悚然)할 지경이다. 이참에 한국의 고질적인 사립대학 문제를 심도 있게 성찰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은 대학교육을 내팽개침으로써 전국에 수많은 사립대학이 세워진다. 오늘날 대학생들의 80%가 사립대학에 재학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립대학의 원조라 불리는 미국의 두 배 수준이다. 국가는 사립학교법인 설립자가 사회에 재산을 환원한 것으로 생각하여 설립자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사학 경영권을 보장했다. 하지만 설립자들은 대학을 이윤 창출의 도깨비방망이 혹은 화수분으로 생각하여 사학비리가 양산되었다.사학비리가 창궐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70년 장구한 세월 이어진 부패의 구조화와 조직화가 문제다. 사학비리는 역사화-체계화되어 가보나 훈장처럼 대물림되고 있다. 둘째로 2005년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이 개정한 사립학교법을 2007년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이 개악(改惡)함으로써 사학의 효율적인 관리가 매우 부실하다. 셋째로 사학의 이해당사자들이 정계, 관계, 재계, 언론계, 종교계 등에 포진하여 부정부패 카르텔을 전방위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립대학의 부정부패를 뿌리째 끊어내려면 국가가 주도하는 감사의 상설화가 절실하다. 그와 함께 사립대학을 건전하게 육성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영형 사립대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학을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의적절한 방안이 공영형 사립대학이기 때문이다.공영형 사립대학이란 국가가 대학 운영비를 50% 이상 책임지는 대신에 이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여 반(半) 국립처럼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 포함된 사업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 대학서열 구도 완화, 지역균형발전 등을 위해 논의 중인 대안이기도 하다.그러나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 지났음에도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는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2018년에는 교육부가 요구한 812억 예산 전액을 기재부가, 2019년에는 87억 증액요구를 국회가 모두 삭감해버린 것이다. 올해는 교육부 주도로 상지대, 평택대, 조선대 등이 공영형 사립대학 연구에 돌입하였다. 기재부도 내년 예산안 확정 이전에 교육부와 예산편성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낭보(朗報)도 들려오고 있다. 3050클럽에 속한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위상과 미래기획을 위한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 도입은 국가균형발전과 부합하는 좋은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대처를 기대한다.

2020-08-12

익숙함과 새로움의 경계에서

레트로 열풍이 한창이다. ‘김희선 곱창밴드’로 시대를 풍미했던 헤어 스크런치가 다시 유행하고 배꼽티와 통 넓은 바지가 옷가게 여기저기에 걸려있다. 추억의 경양식 돈가스를 전면에 내세운 식당은 인테리어며 식기며 심지어 콜라병조차 이전에 생산되었던 모양을 고수한다. 음악은 또 어떤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혼성그룹 ‘싹쓰리’로 활동하고 있는 이효리, 유재석, 비는 90년대 느낌이 물씬 나는 청량한 노래를 발표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비트를 듣고 있노라면 코끝이 찡해진다. 눈을 감으면 새하얀 백사장과 파도가 일렁이는 어느 여름 바닷가가 펼쳐지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지? 사실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추억은 내 추억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리움마저 답습해버린 세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나의 추억에는 멋이 없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휴대전화를 썼고 방과 후엔 컴퓨터 학원에 다녔으며 만화영화로 ‘스폰지밥’과 ‘파워 퍼프 걸’을 즐겨봤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보다 빅뱅의 ‘붉은 노을’이, 산울림의 ‘너의 의미’보다 아이유의 노래가 익숙하다. 종로의 LP바에서 “아, 심신 최고였지”하는 선배의 넋두리를 들으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미안해요. 난 이 노래 몰라요. 나 때는 동방신기가 최고였다고요.11학번의 문학도로 나는 꽤나 갈팡질팡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이라는 자아와 문학도라는 자아가 만나 이상하리만치 비대한 자아가 탄생했는데, 그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 하는 사람’의 흉내를 냈다. 옆구리에 보들레르 시집을 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려 고뇌에 빠진 표정을 짓는 건 기본이었다. 윤동주와 기형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통기타에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남학생들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전통으로 내려오는 ‘문선’이란 것이 있었다. ‘바위처럼’이나 ‘가자, 노동해방’과 같은 노동요에 맞춰 정해진 율동을 하는 행위였다. 학교 축제가 되면 무대에 올라 사회에 저항하는 몸짓을 선보이는 것이 관습이었다. 나는 무려 문선장을 맡아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르고 “마침내! 노동 해방!”을 부르짖었다. 문선을 가르쳐주던 선배들은 말했다. “질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만 한다.” 나 역시 후배들에게 그렇게 일렀다. “너희들은 이 명맥을 꼭 이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뭔 진 몰라도) 아주 큰 일이 날 것이다.”실제로 우리는 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강제로 남아 빈 강의실에 모여 밤늦게까지 율동을 익혔으며 완벽한 ‘칼군무’를 위해 주말에도 학교에 나왔다. 시큼한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바위처럼’을 오백 번도 넘게 들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의 율동을 열심히 연습하던 친구가 운동화를 벗어 자신의 양말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인 태민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은강아, 사실 나 샤월(샤이니 월드)이야. 태민이 최애야.” 그랬다. 그녀는 유재하도 김광석도 아닌 샤이니의 팬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내 모닝콜도 ‘누난 너무 예뻐’야.”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노동요에 맞춰 춤을 추고 있지? 무엇을 위하여? 어쩌면 과거의 선배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나, 너희 아직도 이거 해?나는 왜 “노동 해방”을 외치면서 “문선 해방”은 외치지 못했는가. 그야말로 구시대적 행위를 대학 시절 내내 고수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멋있어 보였다. 자신을 내던져서 정치적 열망을 부르짖는 행위는 내가 생각했던 진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문선을 연습하는 동안 나는 체제에 저항하며 대단한 일을 행한다는 자기애에 빠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유튜브 동영상 박제라는 끔찍한 벌을 받게 되었지만.돌이켜보면 그랬다. 가끔은 이전 세대를 지나왔던 이들을 질투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시청하며 내 것이 아닌 향수에 잠기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쟁취라는 내러티브를 살아보고 싶었다. “겪어보지도 못한 네가 뭘 아느냐”며 배제 당하는 일은 억울하지 않은가.뉴트로의 탄생엔 이런 맥락도 있을 것이다.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과거의 것을 새롭게 향유하는 현상을 말한다. 레트로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며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의 모습에서 색다름과 신선함을 느낀다.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현재의 시선을 통해 전혀 색다른 종류의 질감을 가지게 된다. 미지의 문화를 직접 발굴해낸다는 일종의 고고학적 감수성과도 궤를 함께하게 되는데, 나는 이 강렬한 경험에 공감한다.나는 첫 번째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50대 여성으로 설정했다. 1980년대를 청년 세대로 살아온 그녀를 표현해내는 것은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존재했던 시간이 내겐 불가해한 우주를 탐사하는 것과 같았다. 집필을 하며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은 부모님이다. 나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 정치적 열망이 가득했던 그때를. 사랑과 낭만이 흐르던 어느 밤을. 동시에 부모님 역시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의 문제와 나를 억압하는 시선에 관하여. 우리는 한곳에 모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각자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의 삶은 더 이상 상상의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야를 공유하면 확장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 큰 세계를 알게 되는 일. 다양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일. 그것은 단순한 답습도 강요도 아니다. 함께 공존하며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다.어쩌면 미래의 아이들은 지금의 일상을 신기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할머니 세대에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녔다면서요? 분리수거도 운전도 직접 했다면서요? 완전 멋지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으이구 무지몽매한 어린 것들”하고 혀를 쯧쯧 차는 할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때의 나는 샤이니의 노래가 얼마나 좋았는가에 관한 연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말한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래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추억은 아름답다. 우리는 거꾸로 된 거름망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일상을 집어넣으면 무겁고 커다란 절망이 가장 먼저 빠져나가고 아픔이 점점 퇴색되어 고통은 지워지고 가볍고 빛나는 것들만 남게 된다. 그것을 아름다움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어쩌면 그리움은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생산품일지도 모른다.나의 여름은 현재진행형이다. 바지런히 살아가며 미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조악하게만 느껴지는 현실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테다.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이효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그녀의 타투가 조금 무섭다고 했고 나는 너무나 간지난다고 했다. 엄마는 그녀가 핑클로 활동했을 때를 추억했고 나는 효리네 민박에 출연했던 모습에 대해 말했다.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며 자기 소신을 지키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라디오에서 싹쓰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효리가 40대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다며 엄마는 작게 웃었다. 가사를 흥얼거리며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있지. 그중 하나는 과거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일 거라고.

2020-08-11

궤변(詭辯)

궤변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남의 소를 훔쳐갔다. 관가에서 그를 붙잡아 왜 남의 소를 훔쳐갔냐며 신문을 했다. 그는 대답했다. “제가 길을 가다보니 길에 쓸 만한 노끈이 떨어져 있기에 그 노끈을 주워가지고 집으로 왔을 뿐입니다” 그는 소 끈에 묶인 소는 보지도 못했고 소를 훔친 의향이 전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이런 억지를 우리는 궤변이라 한다.궤변의 궤(詭)자는 말을 나타내는 언(言)과 위험하다는 위(危)가 합쳐진 글자다. ‘속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속임수가 있는 말이니 위험하다고 해석하면 글자 풀이를 잘한 해석이다. 사전에서도 궤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며 합리화시키는 것이다.’중국 춘추전국시대 궤변 사상가 공손룡은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을 궤변의 명제로 삼았다. 여러 색깔을 내놓고 그 중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면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흰색은 색이 아니므로 흰말은 말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논리의 비약이 분명하나 그의 궤변도 한 시대의 학파로 존재했다.고대 그리스에서도 소피스트라는 궤변가가 활약했다. 당시 철학자나 교사 등 지식집단이 나서 군중을 상대로 설교한 것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이 대가로 돈을 받고 출세욕에 사로잡혀 터무니없는 주장을 양산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소피스트는 부정적 집단으로 추락한다.요즘 우리사회가 논리보다 궤변과 주장이 더 앞서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발언을 보노라면 철학도 논리도 없고 소신도 없다. 목청만 높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궤변에 가까운 발언을 해놓고 정작 본인은 궤변인 줄조차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8-11

제가치국(齊家治國)이 필요한 때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삼국시대 제갈공명은 위나라를 정벌하고 중원을 통일하기 위해 전진기지인 기산으로 수차례 출병했다. 이 와중에 한번은 가장 좋은 호기를 포착해 연전연승하며 중원 진출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이때 본국에서 급히 귀국하라는 소환장이 날아왔다. 공명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눈물을 머금은 채 퇴각한다. 본국에 와 일의 전말을 알아보니 방탕한 신하들이 어린 황제의 귀를 막고 공명이 전쟁에서 이기면 역심을 품을 것이라는 선동질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때 공명은 한탄했다. 병사들은 수 만리 먼 전쟁터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서 전투를 수행중인데 반해 주색에 찌들은 살찐 신하들이 나라를 망치는구나라고. 공명은 내부기강과 단합이 전쟁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판단, 당분간 전쟁을 접고 내치에 접어들었다. 이후 몇 년 동안 국력을 다진 후 공명은 다시 기산으로 진출한다. 이 고사는 국가를 비롯해 크고 작은 조직, 심지어 가정 등에서 내치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현재 경북도의 경우를 보면 최고 수장이 지역의 백년 미래를 결정하는 신공항에 매진하는 사이에 내부 기강이 상당히 흐트러지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또 조직원 간의 불협화음은 고위, 중하위직 등에서 골고루 일어나고 있어 조직 안정화가 시급해 보인다. 그리고 구세대와 사고가 상당히 변화된 젊은 세대가 도청에 대거 진입하면서 이들 사이를 잘 조화시키는 여러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최근 도청 토론방에서 확인되지 않은 댓글이 난무, 피해자가 악플러를 고소하는 등 경찰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젊은 직원들이 확인되지 않은 일에 악플을 단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이고, 정확한 내용은 관계 당국의 조사 후 판가름 날 전망이다.이에 앞서 한 중간 간부급의 부적절한 처신이 올라와 댓글 수 십개가 달리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또 얼마 전에는 절도사건으로 공무원이 경찰수사도 받았다. 한 여직원이 소지품을 분실한 사건으로, 경찰 조사 결과 남자직원이 일부러 훔쳐 주변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올 초에는 인사와 관련, 지사를 겨냥한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 공개된 방에 올라오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직원은 사업소에서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으나 오히려 본청으로 발령받아 근무중이다.경북도에는 약 2천명의 직원이 북적이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는 항상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조직 내의 갈등 속에서 순기능적인 면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경북도내 조직분위기는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강 해이에 대해 감독 부서도 별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지사가 백년대계를 위해 매진하는 동안 조직에 문제가 생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직원들 사이에 반목과 질시가 길어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의 몫이다.제갈공명의 고사가 보여주듯, 경북도도 내부 안정화와 더불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불씨 하나가 마을 전체를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8-11

4대강·태양광, 정쟁 빼고 오직 ‘과학적’ 분석을

전 국민이 폭우로 인한 물난리로 유례를 찾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여야 정치권은 물난리 판을 들여다보며 4대강이 옳다-그르다, 태양광이 문제다-아니다 고약한 정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4대강 공사를 ‘절대 악’으로 몰아온 문재인 정권은 차제에 그 부정적 증거를 찾자고 대들 태세고, 야당은 태양광으로 인한 강산 훼손과 산사태 피해 문제를 부풀릴 기세다. 정권 입맛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확증편향 ‘과학’ 논란이 지겹고도 지겹다.4대강 사업을 소환한 건 미래통합당이다.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빠진 것이 다행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통합당 정진석 의원도 페이스북에 “4대강 사업 후 지류·지천으로 사업을 확대했더라면 지금의 물난리를 좀 더 잘 방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썼다.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당 회의에서 “22조 원의 막대한 예산으로 추진한 사업이 2013년 감사원 감사에서도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사업이 아닌 한반도 대운하 사업 재추진을 위한 성격’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반박했다.태양광 발전시설도 홍수 피해와 관련하여 논란거리다.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에 이어 김미애 비대위원도 “탈원전의 반대급부로 산지 태양광시설이 급증하면서 전국의 산사태가 늘어났다”며 “안정성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산사태 1천400여 건 중 태양광시설 붕괴는 12곳뿐으로 1%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보가 홍수조절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실증·분석할 기회”라며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지시했다. 이번엘랑은 제발 결론 다 정해놓고 외눈박이 얼치기 학자들 모아서 흉내만 내는 이상한 연구 말고, 진짜 과학자들이 모여서 4대강 뿐만 아니라 태양광시설까지도 제대로 된 조사연구 좀 해봤으면 좋겠다. 4대강이나 태양광시설 놓고 ‘과학’이 아닌 ‘이념’으로 패 나뉘어 온갖 곡학·궤변·편법·압력 다 동원하는 저질 패싸움일랑 이젠 좀 그만할 때 되지 않았나.

2020-08-11

기록적 장마 올해뿐일까…항구적 대책 있어야

긴 장마 때문에 전국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0일 현재 전국적으로 5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으며 이재민도 6천명 가까이 발생했다. 우면산 사태가 일어난 2011년 이후 최악이다. 이번 장맛비는 지난 6월 24일 발생해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주에도 비가 계속 내릴 것으로 예고돼 있어 2013년 기록한 49일의 최장 장마 기록도 곧 깨질 전망이다.장마는 대륙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태평양의 무덥고 습한 공기가 맞부딪혀 생기는 현상이다.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난 장마는 북쪽의 고온과 시베리아지방의 고온이 겹쳐 발생한 것으로 지구온난화 현상이 원인이라 한다. 올여름 북극에서는 우리나라 면적의 20배가 넘는 얼음이 녹았다고 한다. 지구온난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올해처럼 역대급 장마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올해는 우리나라 장마기간 평균 강우량 356mm보다 3배나 많은 강우량을 기록했다. 강원도 철원지방은 1천56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대구와 경북 곳곳에서도 300mm가 넘는 비가 단시간에 쏟아졌다.기상학자들은 아열대기후에 들어선 한반도는 여름철마다 언제든 시간당 1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질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포항을 비롯 경북 동해안지방은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해마다 폭풍이 동반한 폭우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태풍 미탁으로 경북에서는 4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영덕은 2018년에 이어 연속 물 피해를 입었다.장마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일 전남 곡성에서는 마을 뒷산이 무너져 주택 5채와 주민 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는 산사태가 유난히 많아 희생도 컸다. 또 이번 장마는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물폭탄을 쏟아 붓는 바람에 저지대를 중심으로 주택침수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우리나라 하수관거는 시간당 50mm정도를 감당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올해처럼 단시간 폭우가 쏟아지면 저지대 상습침수지역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기상변화에 따른 피해대책도 달라져야 한다. 빗물 저류시설인 하수관거 개체와 대용량 펌프시설 설치 등 항구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2020-08-11

윤석열 총장 두드리면 커진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 총장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법무장관과 검찰 총장이 다투는 모습은 드문 일이고 보기에 민망하다. 문재인 정부에도 결코 이롭지도 않다. 두 사람은 검찰 개혁에서부터 검찰의 인사문제, 조국 법무장관 가족수사와 울산시장 선거 등 여러 현안에 부딪치고 있다. 추미애 장관은 이번 검찰 인사를 통해 완전한 친정 체제를 구축하였다. 채널A의 이동재 기자와 한동윤 검사장 검언 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도 서로 간 입장이 반대이다. 이 문제를 보는 시각도 여야가 다르고 그로 인해 여론도 분열되어 있다.지난주 윤 총장의 신임 검사들과의 첫 대면식 격려사가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신임검사들 앞에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의 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검찰은 헌법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진짜 자유민주주의’라고 강조하였다.이 같은 발언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설파한듯 보이지만 이를 해석 평가하는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신임 검사들과의 첫 대면식에서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본인은 한마디의 해명도 하지 않지만 정치권은 그 해석이 상반되고 있다.여권은 그의 발언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독재와 전체주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것이고, 심지어 신동근 의원은 ‘검찰 총장이 반정부 투쟁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사실 윤 총장은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여당을 향해 상투적으로 쓰는 독재라는 용어를 골라 사용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국회가 윤 총장 해임결의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정 의원은 윤 총장이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고 비판하였다. 여권에서는 이럴 바엔 윤 총장이 사퇴하고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좋다고 비난하였다.이에 비해 미래통합당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윤 검찰총장의 최근의 발언이나 행보는 검찰 수장으로서 당연한 직무 수행이라고 그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의 임명 수여식장에서 말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도 철저히 수사’한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윤석열 총장은 전 황교안 대표의 대체재로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있다. 주호영 원내 대표까지 윤 총장의 발언은 문 정권의 일당 독주에 대한 실망의 표시이며 당연한 귀결이라고 그를 두둔하고 있다.그의 발언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사실상 신임 검사들에 대한 윤 총장의 격려 발언은 법치주의를 위한 교과서적인 발언일 수도 있고, 민감한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여당이 그의 발언을 비판하고 압박하는 것은 적절치 않는 모양새다. 정부나 집권당의 과잉반응은 자가 모순이며, 총장을 때릴수록 그의 대중적 인기는 높아진다. 그 스스로 도 다음 달 초 장모의 사문서 위조사건 재판이 시작된다.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고 자인한 그는 스스로 검찰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2020-08-11

물난리가 남긴 것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팔팔 끓듯 더워야 할 팔월이 전국 곳곳의 물난리로 동동거리고 있다. 경기, 강원 북부와 대전, 충청지역에 물 폭탄 같은 수마(水魔)가 걷잡을 수 없는 침수와 산사태를 초래하더니, 주말엔 광주와 전남, 남부지역으로 이동해 사정없이 양동이 물을 쏟아내며 범람의 혀를 날름대고 있다. 봄부터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쓸린 가슴인데, 난데없는 물난리로 또 한번 소용돌이치다니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지리멸렬한 장마와 기습 폭우에 여지없이 많은 손실과 인명피해까지 속출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실종된 일상에 변덕의 계절을 지나는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물은 세상 만물에 생기를 주고 성장케 하는 자양분인데, 어떻게 물로 인해 갑작스런 변고가 생기고 막대한 수해를 가져오는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냥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물이 어떻게 그처럼 돌변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물도 자연의 한 산물이기에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나 섭리에 따라 변화하고 몸부림침은 그 나름의 속성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변의 정도나 빈도의 문제는 처해진 자연의 생태나 기후, 환경 등의 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날 수도 있을 테지만….사람들은 예로부터 물의 이로움을 알았었기에 물을 통해 배우고 닮아가며 물처럼 살아가고자 했다. 이를테면 깨끗한 물을 보고 내 마음을 맑게 하고(觀水淸心), 흐르는 물은 앞서려고 다투지도 않으니(流水不爭先),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불어 함께 흐르고 순리대로 살아가야 함을 추구했다. 또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성질처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도와주는 것에 아낌이 없으면서 어떠한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그러나 세상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가 다 그렇듯이, 정도가 심하고 상태가 지나치면 해악과 폐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지구촌 곳곳에 나타나는 예측불허의 기상이변도 어쩌면 산업화, 문명화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 난개발 등이 상당 부분 기인한 것임을 부인하진 못하리라. 인간 또한 과욕을 부리고 탐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신의 오욕과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됨을 숱하게 보아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알면서도 실천하고 경계하지 못하면 결국 자멸의 빌미만 자초할 뿐이다.그렇기에 우리는 기후나 생태변화 등 자연현상을 좀더 예의주시하고 천재와 인재에 대비한 방재시스템을 철저히 갖춰야 한다. 역사나 과학이 말해주듯이 재난 예방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지혜와 지식이 더해지고 기술과 경험이 쌓여져 안목과 대응력이 길러진다. 정확한 상황판단과 예측,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예방 점검과 선제적인 사전 조치, 신속하고 탄력적인 대응, 효율적인 복구체계 등 그 모든 것이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정교하게 호흡과 박자가 맞아야 한다. 특히 오판이나 남용에 의한 인재(人災)만큼은 냉철하게 예단하고 근절시켜야 한다.물을 잘 이용하고 산과 내를 잘 돌봐서(治山治水) 가뭄이나 홍수 따위의 재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2020-08-11

괴물이 된 진보, 그 위선과 오만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철학자 니체(F. W. Nietzsche)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언이다.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해 ‘독재라는 괴물’과 싸웠던 386진보가 권력을 잡더니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으니 말이다.괴물이 된 진보의 실체는 ‘위선과 오만의 덩어리’다.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해 놓고선 수사하니 검찰총장을 제거하려 안달이다. 통합을 말하면서 분열을 조장하고,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를 옹호하며, 협치를 말하면서 독단을 일삼는 대통령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지식인의 앙가주망(engagement)을 주장했던 조국 전 법무장관은 수많은 특권과 반칙, 비리혐의로 재판 중에 있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성추행혐의로 피소되자 자살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입만 살아 있는 ‘입진보’이며 ‘위선의 끝판왕’이다. 오죽하면 최장집·한상진·진중권 같은 진보학자들이 진보정권의 위선과 오만을 비판하고, 진보가수 안치환까지 ‘진보의 아이러니(irony)’를 노래했겠는가?권력의 절제를 모르는 오만한 진보는 민주적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여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고,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공수처는 진보의 권력유지를 위한 반대파 사찰기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게다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도 이미 중심을 잃고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3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형해화(形骸化)되고 사실상 전체주의적 독제체제가 되어가고 있다.야당을 공존과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적으로 인식하고, 여당 내부의 문제제기를 진보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외눈박이 진보꼴통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괴물이 된 인간, 즉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마음이 병들어 있는 사람’이다.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가 지적한 것처럼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었으니 자연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권력이라는 마약’ 때문에 마음의 병이 들었으니 ‘인간의 자기분열성’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하지만 괴물은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괴물을 응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깨어 있는 민주시민들이다. 아무리 정치적 선전·선동에 능한 진보라고 할지라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한국의 민주정치사는 위대한 시민들이 괴물이 된 권력과 끝없이 싸워온 투쟁의 역사이다. “나라가 니꺼냐”라고 외치고 있는 성난 민심이 마침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설 때, 괴물은 운명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020-08-10

포항지역 관광 활성화 큰 그림 그려야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이라 일컫는다.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없어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산업이다. 관광산업을 통해 외화도 획득하고 문화교류와 국제친선, 지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자치단체들이 문화관광산업에 주력하는 것은 이런 선점효과를 노려 지역산업의 부흥을 꿈꾸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포항시도 일찍부터 해양관광도시를 표방해 왔다. 환동해권의 중심도시로 성장하는데 관광산업은 필수적이다. 포항은 해양을 끼고 있으며 경주 역사문화도시와 절경의 동해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관광산업을 육성하기에 비교적 좋은 입지에 있다.그러나 현실은 관광의 불모지처럼 대접을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9년 전국 주요 관광지 방문객 순위에서 포항지역 주요 관광지는 단 한군데도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경북의 가장 큰 대표 도시이면서도 외지인이 찾아올 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경북에서는 인구 3만의 영덕 강구항이 전국 10위권에 포함됐고 문경, 경주, 안동 등이 뒤를 이었다.포항의 연간 관광객은 400만 명 정도다. 경주(1천386만), 안동(835만), 영덕(576만)에 이어 네 번째다. 50만 명이 넘는 인구와 관광자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관광지로서 이미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포항을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의 그림을 다시 그려져야 한다. 특히 지난해 영일만항을 기점으로 하는 국제크루즈선의 시범 운항을 계기로 포항지역의 관광산업 부흥의 전기를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포항은 공항과 KTX역, 국제물류항 등 사통팔달의 길이 열려 있는 곳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죽도시장의 먹거리와 포항운하, 포스코 야경, 호미곶 해안둘레길 등 관광자원도 부족함이 없다. 포항지진으로 침체된 분위기 타파하고 지역내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광업을 진작할 절묘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포항시가 준비 중인 ‘포항관광 활성화 마스터 플랜’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로 바뀌고 있는 비대면 문화에 맞는 관광산업 개발도 새로운 과제로 삼아야 한다. 특히 포항시만의 독자적이고 창의적 아이템 개발로 포항관광의 승부처를 찾아야 할 것이다.

2020-08-10

넛지효과

넛지(nudge)는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으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넛지’를‘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넛지란 말이 주목받은 것은 지난 4월 미국 뉴욕주에서 시작된 코로나 감염폭발세가 넉달이 지난 지금까지 진정되지 못하고 다른 주로 재확산한 배경에 마스크정책 실패가 있고, 이 정책의 실패가 넛지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넛지전략의 핵심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이들의 편향성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것이다.미국사회에서 이처럼 제1의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해야할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인데, 트럼프는 팬데믹 기간 내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다가 7월말에서야 뒤늦게 “마스크 착용이 애국”이라고 입장을 바꿔 마스크 정책 실패에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제2의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해야 할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반 마스크 행보를 취해 마스크 착용문제가 “민주당원이냐 공화당원이냐”를 가르는 정치적 낙인으로 변질됐다. 심지어 민주당 소속 주지사로 마스크 의무화를 역설했던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도 마스크 착용거부자들을 향해 “무모한(reckless)”, “무책임한(irresponsible)” 등의 부정적 단어를 남발하며 압박해 오히려 반발심을 키우는 바람에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넛지전략의 부재가 재앙을 키울 수 있다는 교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0

조국 發 ‘검찰, 탄핵 준비’설…또 작전 신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이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밑자락을 깔았다’는 끔찍한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은 놀라운 주장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혹여 조 전 장관의 발언이 ‘검-언 유착’ 소동 같은 또 다른 검찰 죽이기 작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그가 여권 핵심부와 맞닿아 있는 인물이라는 점과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하루빨리 진실이 명명백백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조 전 장관은 9일 새벽 SNS에 “작년 하반기 초입 검찰 수뇌부는 4·15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패배를 예상하면서 검찰조직이 나아갈 총 노선을 재설정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성함’을 35회 적어놓은 울산 사건 공소장도 그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 후 대통령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깐 것”이라고 언급했다.조 전 장관은 같은 날 오후에는 지난 2월 심재철 미래통합당 의원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라고 발언했다는 기사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또 같은 날 저녁에는 한 언론사가 보도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을 본 일부 법학자들의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인터뷰를 또 다른 근거로 SNS에 올렸다.조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하자마자 임명권자인 대통령 탄핵을 준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반박이 나온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완전히 실성했다”며 “이 사람들 점점 미쳐간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진 전 교수는 “정권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해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질러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조국 전 장관의 검찰 혐오증은 심각해 보인다. 또다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소란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발언의 진위를 낱낱이 밝혀 잘잘못을 조속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내우외환과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권력다툼에 피폐해진 민생은 도무지 안 보이는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2020-08-10

교육적인 벌(罰), 교육적이지 않은 벌(罰)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연예인의 육아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자녀를 훈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강아지를 거칠게 다루는 자녀의 행동을 교정하고자 그 연예인은 자녀의 팔을 아프게 때리면서 “이렇게 하면 좋아?”라고 물었다. 아마도 강아지의 입장을 자녀가 체험해 보도록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은, 즐기기 위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역지사지를 가르친다는 측면에서 내용상 좋았으나 방법이 부적절해 보였기 때문이다.시대가 변했고 가치와 삶의 목표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자녀를 부모에게 귀속된 존재로 여기던 과거와는 달리 많은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한다. 자녀의 팔을 아프게 하며 훈육했던 그 연예인도 평소에는 자녀를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당시 훈육도 자녀가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훈육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만큼 본 지면에서 어떤 벌이 교육적이고 교육적이지 않은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우선 교육적이지 않은 벌은, 기준이 없고 일관성 없이 시행되는 벌이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 허용되는 행동의 범위가 달라져서 자녀가 부모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경우이다. 부모와 자녀가 민주적으로 의견을 모아 벌을 결정하고 일관성 있게 시행할 때 그 벌이 교육적이다. 자녀가 스스로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려면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예측가능하려면 일관성 있는 훈육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적이지 않은 벌은, 신체에 가해지는 벌이다. 체벌의 문제점은, 첫째 자녀가 체벌로 제압되면 폭력이 남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훗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체벌을 받는다면, 자녀는 대안이 되는 바람직한 행동을 배울 기회가 없다. 셋째, 신체적인 벌은 고통스럽게 때문에 자녀는 이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부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생긴다. 자녀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는 동기를 갖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가 체벌하기 보다는 행동의 결과를 자녀와 함께 평가하고 자녀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도록 대화로 이끌어야 한다.유치원 급식실에서 아이들끼리 부딪혀 한 아이가 울게 되었다. 충돌을 일으킨 아이가 우는 아이에게 “미안해” 하니 우는 아이는 엉엉 울면서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도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사과해야 하며, 사과 받은 상황에서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녀들은 옳고 그른 행동을 알고 있으니 부모가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도 없이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만 해도 그 대화는 충분할 것이다.자녀 양육의 결과는 하루하루 노력과 인내심이 쌓여 얻어지므로 지금 당장 자녀에게서 변화를 볼 수 없더라도 먼 미래에 성숙한 성인이 될 것에 대한 기대를 놓지 말자.

2020-08-10

사불삼거(四不三拒)의 공직자 윤리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 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미수 허목은 남인의 핵심이자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분립되었을 때는 청남의 영수로서 당시 정계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이다. 허목의 저서 ‘기언, 허미수자명(記言,許眉53DF自銘)’에 스스로 지은 묘비명이 올려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말은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하였네/ 부질없이 성현의 글 읽기만 좋아했지/ 내 허물은 하나도 바로잡지 못하였네/ 이에 돌에 새겨 후인을 경계하노라.’허목은 미수(米壽)를 누리기도 했거니와 글도 많이 남겼다. 미수 스스로도 내가 기언을 지어 스스로 반성하였는데 말이 많으면 유익할 것이 없으며,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고 하였다. 그중에 큰 것을 들면 자서(自序)가 2편이고 정사(政事)를 논한 것이 30편이니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미수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권의 자서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했다. 이 자찬 묘비명은 자서를 축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았던 분이 고종(考終)을 앞에 두고 132자의 짧은 글로 자신의 일생을 관조한 것이다. 말이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미수의 자명은 행한 것은 말과 일치하지 못했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겸사이겠지만 한마디로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물론 선현이라고 해서 언행일치가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군자는 말이 그 행실을 지나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공자의 말씀도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예전 같으면 생을 마감했을 나이에 다시 불혹의 나이만큼을 덤으로 더 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 후세에 남길 엄두를 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공무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 공복(公僕)이다. 이 말은 국가나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즉 국민의 일꾼으로 국민들의 편익을 위한 존재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지만 다른 어감을 주는 공무원과 공복의 차이는 책임감과 사명감일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존경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또한 이런 마음가짐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결국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다면 어떤 권력과 권한 속에서도 중용을 잃지 않고 영욕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옛 관리들은 스스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을 정하여 규율로 삼았다. 첫째, 재임 중에는 부업을 갖지 않는다. 둘째, 재임 중에는 집을 늘리지 않는다. 셋째, 재임 중에는 부동산을 취득하지 않는다. 넷째, 재임지의 특산물을 결코 취하거나 먹지 않는다. 다섯째, 윗사람의 부당한 청을 거절한다. 여섯째, 재임 중 경조사의 부조를 받지 않는다. 일곱, 어떤 답례도 받지 않는다. 이것의 실천이 공복의 참길이다. 지금 국민 앞에 편 갈라 갑질을 해대는 공직자들이 언행을 일치시키기 위해 살기를 다한다면 생의 마지막에 회한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래야 미수가 후인을 경계한 보람도 있을 것이다.

2020-08-10

뱀이 허물을 벗듯… 무주 안국사(安國寺)

붉은 치마를 두른 것처럼 단풍이 요란하다는 적상산(赤裳山),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한여름에 오른다. 물안개가 산자락을 휘감고 있어 숲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마음이 이토록 평온한 것을 보니 불이문은 벌써 지나쳤는지도 모른다.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양수발전소 댐을 지나도 산은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참을 올라서야 안국사 일주문을 만났지만 해발 1000m의 고지대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금산사의 말사인 안국사는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 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가 복지(卜地)인 적상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광해군 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절을 증축하여 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그 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어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안국사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1910년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해왔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긴 계단을 올라 누하진입식으로 청하루를 통과하자 제 모습을 드러내는 안국사는 뜻밖에 소박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극락전이 법당문을 활짝 열고 불자를 맞느라 여념이 없고, 큰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성보박물관과 그 위로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인 천불전이 절의 품격을 더해 준다.나는 법당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며 학이 단청을 하였다는 설화를 찾아 극락전을 돌아본다.극락전을 지은 스님이 단청불사를 고심할 때, 하얀 도포를 입은 범상치 않은 노인이 나타나 단청을 해주겠다고 한다. 단청을 하는 백 일 동안 절대 들여다보지 말기를 당부했지만, 스님은 99일째 되던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막 안을 들여다본다. 그 때 노인은 보이지 않고 학이 입에 붓을 물고 단청을 하다 낌새를 채고 날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내소사의 대웅보전 단청 설화와 흡사해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극락전 뒤편 한쪽에는 하루 분량의 목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신비감을 실어준다. 재미로 그치던 설화가 오늘따라 묵직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호기심을 경계하는 숱한 신화들도 생각난다.불경의 육바라밀 중에는 인욕바라밀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참고 견디는 수행을 말한다. 바라밀은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법으로,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번뇌와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이다.보다 나은 인격을 갖추기 위해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다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반성할 때가 많다.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육바라밀은 개인의 인격 완성 단계를 넘어 이타(利他)를 향한 덕목이라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대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마음을 비워내면 자연히 인욕이 된다고 하지만, 바른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으로 참된 인욕바라밀을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지장전 앞에서 사람들이 수런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풀밭 위에 커다란 뱀 한 마리가 가부좌를 한 듯 적당히 몸을 접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경꾼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혐오스런 눈빛들을 묵묵히 감내하며 참선이라도 하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람과 뱀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누군가 이 절에서 가끔 보았노라며 절 지킴이라고 말하자 그제야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붙박여 뱀의 눈빛을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며 연민의 눈빛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와 나의 정체조차 묘연해지는 순간이다. 는개를 맞으면서도 뱀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만 경내를 적시고 또 적신다.조낭희수필가사람들이 빠져나간 조용한 극락전에서 뒤늦게 백팔 배를 한다. 법당 안에는 영조 4년(1728년)에 기우제를 지낼 때 조성한 보물 제 1267호인 괘불이 사진에 담겨 있지만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동쪽으로 괘불함이 드나들 수 있는 앙증맞은 문 하나가 눈에 띤다. 마치 세상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문을 연상시킨다. 오직 저 문이 아니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생명의 문처럼 특별해 보인다. 그동안 법당문을 여닫는데 마음을 모으느라, 있어도 보이지 않던 문이었다.내 안에 존재하는 틀도 보인다. 그것은 안국사 돌 축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견고하고 무서운, 나의 의식과 에고가 빚어낸 프레임이다. 어떤 집착이나 사심 없이 대상을 대하려면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 조금 전 보았던 뱀의 눈빛이 떠오르고 신비주의적인 진리를 상징하는 아프락사스도 생각난다. 그토록 몸을 오싹거리며 혐오하던 뱀도 상처가 생기거나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허물을 벗을 줄 안다.학문의 길은 쌓고 또 쌓아야 의미가 있지만, 진리의 길은 버리고 또 버리며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고 했다. 노자의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상이라는 미혹한 옷 하나 벗을 줄 아는 지혜가 그리운 날이다.

2020-08-10

두려움과 연민, 그리고 정화

인류가 가진 고전 중의 고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그리스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서사 예술 양식이었던 서사시와 비극에 대해 이론화한 최초의 것이자 최후의 것이라 할 만하다. 감히 최후의 것이라 과언하는 것은 인간이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극을 접할 때 어떤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가 하는 것에 대해 아직 이것보다 더 나은 해명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아리스토텔레스가 다룬 ‘서사시’, 그리고 이것에 대한 극적 발전 형태인 ‘비극’은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그리스의 신화를 그 배경으로 두고 만들어낸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실연된 극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시학’을 매개로 비극은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소설과 영화, 드라마와 같은 극화된 이야기 양식과 연결된다.말하자면, 몇 천 년의 시간을 지나고도 인간이 즐기는 이야기의 형태는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갖는 특별함은 지금에 있어서도 어떤 배경 아래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현실을 모방하고 재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치의 형식이나 ‘개연성’의 개념 등을 완성했다는 것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학’의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비극을 보고 있는 관객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려내는, 관객, 혹은 독자의 심리학의 영역을 최초로 연 사례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극은 그 끝까지 완결되어 있고 일정한 크기를 갖는 고귀한 행동의 재현”이며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에 따라 각기 다른 다양한 종류의 양념으로 맞을 낸 언어를 수단으로” 삼고, “비극의 재현은 이야기가 아닌 극의 등장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며 ‘연민(eleos)’과 ‘두려움(phobos)’을 재현함으로써 그러한 종류의 감정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실현한다.” 앞의 것들이 비극의 익숙한 형식적 규정이라면, 뒤의 것은 비극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경에 관한 것이다.우리는 책이나 영화를 볼 때, 그 속에 재현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을 해나가는 인물을 보면서 그 인물의 현재에 공감한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 속에 있는 인물의 분노에 함께 화를 내고, 그 사람의 처지를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종류의 ‘연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는 경험은 그저 밋밋한 활동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두려움’은 어떤 감정일까.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지만,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인물에게 다가올 운명이 실제로 다가올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오이디푸스’에서 주인공에게 내려진 끔찍한 신탁, 즉 신의 예언이 실현될까봐 두려워하는,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신탁대로 해버렸음을 주인공이 알게 될까 하는 두려움은 관객을 비극이 그리는 긴장의 고개로 끌고 올라간다.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한 태도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위험 속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갈 때 관객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긴장과 같다.극의 절정 부분에서 압축되어 터지기 직전의 긴장은 폭발하고, 관객에게는 감정적 해소가 찾아온다. 바로 ‘카타르시스’의 순간이다. 두 연인의 오해를 지켜보던 관객의 마음속 긴장감이 터져버리는 순간, 악행과 복수의 고리로 연결된 두 사람이 결국 마지막 대립하는 순간, 운명의 장난으로 고생하다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순간, 관객은 터져 나오는 감정의 잔여물들이 범벅된 상태로 읽던 책을 마치거나 영화관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어쩌면 이야기를 향유하는 이같은 경험은 가장 인간다운 것이기에,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은 만큼 더 오래 계속될지도 모른다. 지금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0-08-10

토론토의 한여름 해거름

아직은 해가 빠지기 전이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저녁이 되었다. 해가 빠지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 더 있어야 한다. 나는 집 뒤 켠, 집과 붙은 집 뒤쪽의 테라스의 의자에 혼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흰 구름 몇 점이 한가로이 떠간다. 가끔씩 어디에서 오는 바람인가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린다. 살만하다.바로 옆집들의 정원의 나무들이 유월의 녹음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싱싱하고 푸르다. 푸르다 못하여 진녹색이다. 짙푸른 저 나무들은 해마다 저렇게 잘 자란다. 무슨 조화일까? 나뭇잎들은 올해의 몫은 다 컸다. 이제 더 이상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될 준비를 하겠지. 계절은 그렇게 지루한 듯, 그러나 잘도 간다.가끔씩 텃밭을 망가뜨리는 다람쥐가 나타난다. 나는 불이 나게 일어나 다람쥐를 쫓는다. 깡패새로 이름난 북미주의 Robin(울새)이라는 새는 오늘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새는 사람이 다가가도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뒤뜰의 관상용 양귀비는 겨우 일주일 정도를 피고는 떨어진지 오래다. 그 옆의 수선화 역시 잠시 피었다 졌다. 그야 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 옆으로 무궁화 몇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꽃을 피운지 몇 년 된다. 그러나 아직 어린 무궁화 몇 그루는 언제 꽃을 피울지 모른다. 아마 2, 3년 안에는 꽃이 필 것이다.텃밭은 해마다 심어서 올해는 묵히자고 했는데 아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내는 거름을 엄청나게 많이 사서 뿌리고 몇 가지 채소를 심었다. 들깨, 고추, 오이, 부추 등이다. 거름 값도 제대로 못할 것 같다. 아내는 매일 해거름에 물을 준다. 그래도 제 구실을 할 것 같지 않다. 상추는 따로 심지 않아도 작년 가을부터 텃밭에 있던 것이 겨울을 이겨내고 올해는 그대로 조금씩 거두어 먹을 만큼 된다. 나는 이 머나먼 남의 나라에 와서 80이 다 되어도 내 고향 텃밭에서 나던 것을 가꾸고 먹는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08-10

바다를 먹고 산다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간에 바다를 본 적이 있다. 내 몸속에서 바다와 우주가 출렁이는 듯했다.동빈내항을 지나 죽도시장에 도착하니 여명을 기다리는 시간인데 벌써부터 활기가 넘친다.포항(浦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항구에 접한 죽도시장의 수산물 유통은 동해안 최대 규모이며 죽도어시장이라 부른다.바다에서 온 생선이 밥상에 오기까지는 제법 여러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친다. 일반적으로 생산조건과 자연환경에 따라 그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죽도어시장은 바다와 인접한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산지위판의 특징과 소비지 도매시장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외지의 관광객들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새벽 경매가 시작되면 부산스러운 시장의 하루도 시작된다. 바다에서 온 생선들은 다시 바다가 된듯 어시장에서 출렁이고 있다. 어시장은 바다와 인간을 이어주는 관문 같다.손짓과 말을 그들만의 언어로 사용하는 경매인들과 어시장 시멘트 바닥에 경매를 기다리는 생선들과 싱싱한 해산물을 사러 온 사람들이 뒤엉켜 왁자하니 생동감이 넘친다.사람이 하루라도 바다를 떠나 산 적이 있을까? 육지에 발을 딛고 살지만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바다가 내어준 생선을 먹고 소금과 젓갈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단 한순간도 바다를 떠난 적 없이 살아간다.새벽바다를 건너온 만선의 꿈들이 다시 바다가 돼 포항 죽도어시장에서 출렁이고 있다. /김주영 사진작가

2020-08-10

경주 기림사의 템플스테이

여고동창들과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 지난 해 대상포진으로 고생한 친구의 제안으로 떠난 여행이다. 오래된 친구들은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였다. 휴식형과 체험형이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휴식형만 운영하고 있었고, 가격은 성인기준으로 인당 5만원이었다. 삼시세끼가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들은 담백한 절밥을 기대했다. 살가운 친구는 소풍가기 전 날인 듯, 간식꾸러미를 야무지게 챙겨왔다. 그 친구 정성을 까먹으며 도착한 기림사는 웅장하면서 기품이 있었고, 단아하면서도 아기자기했다. 보시로 들어오는 꽃과 화분을 심기 시작한 정원은 연꽃이 피기 시작해 더 기품 있는 사찰로 보였다.새로 지어진 멋진 한옥건물에 방마다 개인화장실과 샤워실도 같이 있었고, 시원한 선풍기 한대와 소박한 탁자 하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템플스테이용 옷은 파란색조끼와 하늘색바지로 여고 때 체육복색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친구들과 함께 사찰을 둘러보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시간이 다 되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공양실로 한걸음에 달려간 우리들을 보살님께서 아기보살이라며 따뜻하게 불러주었다. 보약 같은 저녁 공양 뒤, 큰스님과 함께 저녁예불을 드린 후 방으로 돌아왔다.다음날 새벽, 사찰의 하루는 일찍 시작되었다. 예불은 새벽 4시반 이었는데, 전날 친구들과 폭풍수다로 우리는 오전 6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 공양 후, 용연폭포로 트레킹을 떠났다. 사찰에서 20분 거리로 평지라서 아이들과 걷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울창한 숲길을 걷다보면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는 표지판을 만나고 나서야 용연폭포를 마주할 수 있었다.산책로에서 만난 스님께서는 인생의 진리와 마음의 수양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친구들과 함께 마음공부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기림사를 기대하면서 템플스테이가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엄미나(포항시 북구 환호동)

2020-08-10

인연

습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여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연일 30도를 오르내린다. 진돗개의 공격을 피해 라일락 그늘이 드리운 담장 위에서 먹고 자던 고양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가지러 가려고 현관문을 열면 늘 먼저 야옹 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발레리나처럼 몸을 늘려 스트레칭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고양이는 7년 전 어미젖을 덜 뗀듯 눈매가 희미하고 털이 보송송한 모습으로 우리 집과 인연을 맺었다. 사람들 왕래가 뜸한 아파트 뒤쪽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폼이 위태롭게 보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져온 우유를 주자 그 시간이면 나타나 주는 우유를 깨끗이 핥아 먹었다. 현관 앞에 집을 만들어 주고 사료를 담아 주었더니 애초부터 제 보금자리 인양 눌러 살았다. 아이들 품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고양이는 빨래를 너는 내 다리에 감기고 담장 너머 텃밭까지 졸졸 따라다녔다.어느 날 빨래를 걷는 남편의 다리에 감겼다가 그만, 밟히고 말았다. 그 후유증으로 사료를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입자가 작은 사료로 바꿔주고 고양이용 캔을 사서 사료에 버무려 주었더니 곧잘 먹었다. 사료 냄새를 맡고 도둑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사료를 주고 돌아서기 무섭게 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학교 갈 준비로 바쁜 아이들을 불러 세워 고양이가 사료를 다 먹을 때까지 교대로 보초를 서게 했다. 소유하는 것에는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요일을 정해 밥 당번을 시켰다. 그렇게 한 가족처럼 산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집을 떠났다. 성장한 아이는 부모를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지만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무심코 고양이가 머물던 담장 위로 눈길이 간다. 아침이면 야옹 하고 인사를 건네던 울음소리가 그립다./김지연(경주시 마동)

2020-08-10

생각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

이승율청도군수코로나 사태가 상식으로 통했던 일들도 이제는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등 우리의 생활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지자체장이 담당해야 할 현장 행정에도 많은 변화가 필요해졌다.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생각과 발상의 전환이라 생각한다. 생각과 발상에는 큰 차이점이 없지만, 생각은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을, 발상은 어떤 생각을 해 내는 것의 차이점이 있다.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해진 일들이 역사 속에는 너무나 많다. 우리 청도에도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과 지역변화의 바람을 불러온 사례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50주년을 맞으며 세계적인 평가를 받는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의 시발점이라고 알려진 청도 신도리의 1950년대 말기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임을 각종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4m의 농로에 잘 개량된 지붕, 시원스럽게 닦여진 마을 안길 등은 농한기에는 도박이나 술독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느 시골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지 않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시골의 순박한 마음들이 모여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1969년 기습폭우로 시름에 빠진 전국의 농촌을 돌아보고자 전용열차로 경남지역을 방문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도리 주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복구와 안길 보수작업을 광경을 목격하고 크게 놀랐다. 더욱이 놀람에 그치지 않고 전 국민의 새마을운동으로 발전시킨 발상 전환은 조국의 근대화를 불씨가 됐다. 주어진 데로 살아가던 모습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 발상의 전환은 대한민국을 변화시켰고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세계가 새마을운동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앞다투어 신도리를 방문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군은 지난해 7월 지역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100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미래 먹을거리를 개발하고 후손에게 자신 있게 지역을 물려주려면 공직자들부터 안주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짐과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00인 토론회는 10대 의제와 100대 사업과제를 도출해 가시적 효과를 위해 비 예산사업은 즉시 시행하고 시급한 사업예산은 추경에 반영하고 국도비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그 결과 각종 공모사업에 선정되며 국비 사업 예산을 확보했으며 정부의 새마을운동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돼 환경 분야 최고상인 대한민국 환경대상을 받기도 했다.또 하나의 발상 전환은 올해 귀농귀촌 담당을 신설한 것이다. 청도는 농촌도시로 젊은 층의 인구유입이 필요하다. 노년층의 지식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전문 인력의 유입을 위해 행정과 재정적인 뒷받침을 책임지고 실행에 옮길 기구가 필요했다. 신설된 귀농귀촌 담당은 귀농귀촌인이 시행착오 없이 영농에 종사할 수 있도록 영농기반구축을 위한 귀농 창업 및 주택구매지원과 정착지원 사업, 귀농인 농어촌진흥기금지원 사업, 귀농인 정착장려금 지원사업 등을 담당한다.지난해 300여 명이 청도로 귀농귀촌 했지만 이러한 시책은 청정지역이며 많은 장점이 있는 청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 자신한다.또 군은 농특산물의 가격 폭락에 대비하고자 2023년까지 100억원의 농산물안정기금 조성에 나서는 등 귀농귀촌인만 아니라 농민을 위한 새로운 생각을 계속 실천에 옮기고 있다. 청도의 자랑 중 하나가 지난 2000년부터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지역 곳곳에 버려져 환경오염의 주범이 된 쓰레기를 거둬들여 환경을 보호하고 재활용품 판매 수익금으로 매년 10여 불우이웃의 집을 고쳐주거나 소외계층을 위한 쌀·연탄 등 생필품 나눔 행사 등에 사용하는 등 작은 발상의 전환 효과가 지역민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공공부문 자원순환 분야 대상을 받기도 했다.아무리 좋은 생각과 발상의 전환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최근 청도는 국회 미래연구원과 고려대 공동연구진이 전국 228개 시·군·구의 자치단체별 행복지수(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전국 4위를 차지했다. 자치단체장은 지역민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귀를 열고 생각과 발상의 전환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주변의 여건에 굴복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다.

2020-08-09

접시꽃을 그리다

수채화 교실에서 접시꽃을 그렸다.그림을 그리기 전 날, 그릴 주인공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더 잘 그릴 거 같아서 찾아보았다. 근래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종이겠거니 했다가 자료를 보니 예상이 빗나간 걸 알았다. 신라 말에 중국에 유학 간 최치원이 ‘촉규화’란 제목으로 접시꽃을 노래한 시가 기록으로 전해진다.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6두품이라 출세하지 못하는 자신을 접시꽃에 비유했다. 중국에서는 접시꽃 잎이 아욱을 닮았다 해서 촉규화라고 했다.또 조선시대에는 어사화라고도 했다. 장원 급제자의 삼일유가(三日遊街)에 쓰였기 때문이다. 장원을 한 급제자가 삼 일 동안 부모님과 친인척,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풍속이다. 유가 행렬의 선두에 있는 인물은 붉은색 천으로 싼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들고 가고 그 뒤로 7명의 악사가 풍악을 울리며 홍패를 든 이를 따라가고, 악사의 뒤를 이어 광대와 재인들이 재담을 늘어놓거나 춤을 추면서, 구경꾼들의 시선을 붙든다. 장원 급제자는 녹색의 단령을 입고, 복두(5E5E頭)를 쓰고, 어사화(御史花)를 머리 위에 꽂았는데, 이때 능소화와 더불어 사용한 꽃이 접시꽃이었다. 일반적으로 어사화는 복두 뒤에 꽂고, 명주 실로 잡아 맨 후, 머리 위로 넘겨 명주실을 입에 물었다.악사가 풍악을 울리고, 재인이 재주를 넘고, 춤을 추며 가는 행렬이다 보니, 삼일유가 행렬은 동네 사람들에겐 무척 볼만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여인과 아이들은 담장 너머로 행렬을 지켜보고,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들창을 열어 행렬을 구경했다고 한다. 고샅길을 내다보려고 키를 담장 높이까지 키운 접시꽃은 마치 구경에 취해 볼이 발그레한 새색시를 닮았다.경주 첨성대 앞 꽃밭에 접시꽃이 한창이다. 여름이 시작할 때 피기 시작해서 가을이 시작 될 즈음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접시꽃은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란다. 화단에서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자란다. 할머니들이 좋아해서인지 지금쯤 시골 골목길에 들어서면 흙담을 등지고 기대 선 접시꽃을 만나기 마련이다. 봄이나 여름에 씨앗을 심으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영양번식을 하고 이듬해 줄기를 키우면서 꽃이 핀다.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꽃의 색깔은 진분홍과 흰색 그리고 중간색으로 나타난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견디어 내고 이듬해 무성하게 줄기를 곧게 뻗어 잎사귀 사이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열매의 모양이 자동차 바퀴처럼 닮아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씨앗이 촘촘하게 바퀴의 타이어모양으로 둘러싸여 여물고 마르면 갈라지고 떨어진다. 열매의 둥근 모양이 접시를 닮아서 접시꽃으로 불리어졌다고도 하고 꽃의 모양이 접시와 비슷하게 보여 그리 불린다고도 한다.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버릴 게 없다. 특히 여성에게 유익하다고 동의보감에도 전한다. 불임을 치료했다고도 하니 보기에도 좋고 사람 몸에도 좋은 꽃이다.김순희수필가수채화 선생님을 따라 붓을 들었다. 세필로 줄기를 먼저 그린다. 줄기에 잔가지를 달고 꽃 몽우리를 봉긋하게 그린다. 물을 더 섞어 잎을 그리고 난 후, 더 짙은 초록색을 찍어 몽우리 끝에 점을 찍어 준다. 이제 꽃을 피울 차례다. 분홍색과 빨강을 적당히 섞어 꽃의 농도를 조절한다. 활짝 핀 모양과 막 피려는 봉오리와 또르르 말려 떨어지기 전의 꽃을 차례로 그렸다. 접시꽃이 화면 가득 피었다.신라시대의 할머니들이 뜰에 심어 천년이 넘도록 우리 곁에서 피어나도록 잘 간직한 접시꽃이다. 꽃도 우리에게 간직되기 위해 색깔도 더 곱게, 온 몸을 영양 가득하게 키워 약재가 되었다. 자연이 아닌 사람이 꽃을 피우는 일이 쉬운 게 아닌 것이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접시꽃을 가득 그리다보니 네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더운 여름을 잘 지나가는 묘수가 그림 속에 있었다.

2020-08-09

중고물품 거래시장의 성장조건

최근 세계적으로 온라인 중고품 거래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유럽과 같이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앞섰던 지역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던 오래된 물건 이른바 ‘중고물품’들이 지역마다 자연스레 생겨난 벼룩시장(flea market) 등에서 거래된 지 오래다. 그런 관계로 이들 지역 주민들은 오프라인 장터를 통해 남들이 입었던 헌 옷, 헌 가방이라고 꺼리기 보다는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물품을 누군가가 다시 소중하게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벼룩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의 거래 당사자를 만나 각자 물품에 담긴 에피소드를 말하거나 듣는 즐거운 힐링의 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성을 지니면서 명물이 된 벼룩시장은 유럽을 관광하는 여행객에게는 일부러 찾아가는 관광명소로 변화하기도 하였다.반면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그와는 다소 다른 흐름을 탔다. 두 나라 모두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당시에는 국가 경제와 가계 경제가 동반 성장을 이루었다. 그 성장기의 주역이었던 베이비 붐 세대들은 가계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집, 새로운 자동차, 새로운 가구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다. 가계의 자산축적이 증가함에 따라 모두가 좀 더 좋은 새로운 주택, 신형 자동차, 신형 가전 등을 마련하는 것이 중산층에 진입하였음을 인증하는 것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일본과 우리나라 모두 비슷한 사회현상을 겪는 과정에서 중고주택, 중고자동차, 중고가구 등의 거래도 점차 활성화되었지만 유럽에 비하면 그 역사가 길지는 않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신변잡화 등 개인들이 사용하였던 중고물품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의 체질전환이 주된 요인이다. 고도성장기의 일본과 우리나라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를 경험하였다. 국가나 지역 경제가 고도성장하는 단계에서는 과거 수요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기존 공급처의 생산시설이 완전가동상태라도 미처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청년사회였고, 인구도 증가하는 사회였기에 신혼 가정, 출산에 따른 새로운 육아 환경이 필요한 양육가정 등이 증가하면서 각종 신혼살림 수요와 주택 수요, 그리고 자녀와 함께 이동하기 위한 큰 자동차의 필요성 등 신규 수요가 계속 창출되는 선순환을 일으켰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일본과 우리나라 모두 과거처럼 상대적 후진성을 무기로 선진국들이 닦아놓은 길을 이용하는 따라잡기만으로 성장이 가능하였던 시기는 지났다. 과거보다 더욱 많은 연구개발투자를 하더라도 신기술, 신제품의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유효기간은 중국, 베트남 등 신흥개도국의 따라잡기로 인해 계속 단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인구사회구조도 고령화되고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상속시장도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과거 부모세대가 애지중지하면서 볼 때마다 과거의 추억을 연상시켜주었던 감성의 중고물품들이 그 자녀세대들의 눈에는 그저 오래된, 쓸모없는, 부모들 시대의 아날로그형 옛날물건에 불과하고 지금은 더욱 새롭고 좋은 디지털시대이기에 그저 생활공간만 차지하는 불필요한 물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자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유럽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고품 거래시장이 자연스레 형성되기 시작한 셈이다. 게다가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전국은 물론 전 세계로도 연결되는 인터넷 시대여서 중고품 거래시장이 온라인세상으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중국에서도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프라인의 벼룩시장보다는 바이두(百度) 등을 통해 중고물품거래 플랫폼을 검색하는 주목도가 급상승하고 관련 사이트의 거래량도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 경제도 고도성장기에서 중저속 성장기로 이행하는 이른바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2019년도 중국 중고전자상거래 발전보고’에 따르면 현재 온라인 중고품 거래의 주요 이용자는 18세부터 34세의 청년층이고, 그 가운데 31.0%가 독신이며, 남녀 구성비는 4:6으로 고른 분포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고시장 이용자 관찰보고’에서는 중국인의 중고품 거래 수용도가 최근 2년간 급성장하였는데 응답자 70% 이상이 주 1~2회는 중고품 거래를 한다고 응답하였고 90%는 향후 1년 이내에 중고품 거래예정이라 응답하였다. 최근 인민일보 인터넷판에서는 이와 같은 온라인 중고물품거래시장을 통해 개인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단순히 물건의 판매만이 아니라 그 거래를 계기로 새로운 동호회 활동이나 취미활동에 유용한 자료나 물품들을 주고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일본에서는 2018년 개인과 개인 간의 중고품 거래를 온라인에서 할 수 있도록 시장을 제공하는 플랫폼인 메르카리(mercari)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기업공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신주발행일 첫날 메르카리의 주가는 77%나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6천878억 엔(약 7조 7천465억 원)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에는 100년 이내의 물건이라 하더라도 앤티크(antique)로 분류하며 귀중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골동시장을 제외한 미국의 개인 간 중고물품 거래시장의 규모는 무려 약 337조 8천84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에서 시계, 가방과 같은 고가의 중고 명품전문 사이트인 더리얼리얼(therealreal.com)은 상장 첫날 주가가 44.5%나 상승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시장투자가들도 온라인 중고품 거래시장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와는 다소 다른 것이 유감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선진국답게 인터넷을 통한 거래사이트가 출범한 역사는 짧지 않다. 중고 자동차, 중고 서적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온라인중고거래 사이트가 태어나고 또 사라졌다. 포털이나 옥션 등이 운영하는 중고거래사이트까지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태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제는 중고물품거래에서 해당 플랫폼들이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 사례처럼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정도로 높은 신뢰성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중고거래 그중에서도 직접 물품을 보지 않고 화면이나 동영상만을 보고 판매자가 설명한 그대로의 물품이 제대로 배달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은 온라인 중고거래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대면, 비접촉에서도 믿을 수 있는 상호 신뢰성부터 확보해야만 한다. 단지 사이트 운영자가 회원가입 과정을 통해 개인 대 개인의 거래플랫폼을 제공할 뿐 거래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을 공시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소한의 신뢰성을 갖춘 온라인거래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이용자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거래 당사자 모두 실명인증부터 불공정 거래가 발생하면 해당 사이트에서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전 보증금 예치제도, 거래조건과 무관한 구매자의 거래 취소에 대해서는 노쇼 페널티와 유사한 벌과금부여 등 플랫폼운영자들이 책임지고 오프라인거래시장에서 가능한 부분들을 최대한 확충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