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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초록빛 챙김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온통 초록빛 세상이다. 눈길 닿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연두와 초록이 손 흔들며 반기고 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대지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과 연둣빛의 싱그러움으로 여울지고 있다. 겨우내 당당한 상록수의 잎새들이 군데군데 진초록으로 자리잡고, 그 언저리에 연초록의 잎사귀가 겹쳐서 피어나며 일제히 초록빛으로 출렁거리는 듯하다.헐벗게 보이던 산과 들도 봄날이 깊어지면서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초록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셈이다.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새싹과 잎사귀는 왜 하필이면 초록빛일까? 도대체 초록색의 비밀은 무엇이길래 식물과 작물, 나무의 잎사귀가 투명한 초록으로 빛나고 생장하며, 사람들은 싱그러운 초록을 만끽하고 가까이하려는 것일까?식물이나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인다는 것은 하얀빛에 포함된 수많은 빛의 색이 나뭇잎에 흡수 또는 방출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식물의 광합성작용 시 필요한 파란색과 빨간색 등의 파장이 빛을 흡수하고, 남은 초록빛은 다시 반사되어 우리가 보는 잎사귀의 초록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초록빛이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적다는 의미이며, 다른 빛들 중 초록파장의 빛이 잎사귀에서 가장 많이 반사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사슴이 풀 뜯으며 뒤돌아본다는 건/두려워해서가 아니다/죽음에 대한 경계가 아니다/겨우내 벗은 채 서있던 산의 능선이/초록으로 물든 탓이다/훌쩍 커버린 능선이 등 뒤에서/출렁이고 있는 탓이다//파도처럼 뒤에서 슬픈 사랑이 덮쳐 온다/파도치게 하는 건/길들여지기 전의 일들이다/…./뒤돌아보는 사슴의 눈동자에/눈록(嫩綠)의 함성과 태양의 절기가 담겨있다’ -손창기 시 ‘뒤돌아본다는 것’중에서생명의 나무는 어쩌면 영원한 초록빛이 아닐까 싶다. 새로 돋아나는 어린 잎의 빛깔과 같이 연한 녹색의 눈록이나 엷고 여리기만 한 연둣빛의 잎새가 앙증스럽게 손짓하는 나무는, 한 편의 서정시가 따로 없을 정도로 눈부신 생명의 아름다움을 구가하고 있다. 담록이나 황록, 연초록이나 진초록으로 생명의 잔치를 노래하며 신록으로 넘실대는 산과 들은 이미 도도한 기운생동의 흥겨운 춤사위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초록빛은 싱그럽고 설레며 다채롭고 아름다운 생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식물에서의 생명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초록빛은 건강과 환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절약과 물품의 재활용, 일회용품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 차량운행 최소화, 자전거 타기, 식물기반의 식사 등 친환경 저탄소를 위한 일련의 노력들은 모두 초록빛을 꾸준히 챙겨 나가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언제나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는 자연처럼 쾌적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돋보이게 하는 초록빛은, 환경을 보호하고 건강에도 도움을 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탄소중립의 화두를 초록빛 챙김에서 찾아야 하는 다양한 의미이기도 하다.밝은 초록빛 수풀이 투명한 푸른빛 바다처럼 일렁이는 4월의 들판에서, 사람도 나무처럼 영롱한 초록빛이 될 수 없을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2024-04-23

보수정당 지상과제는 ‘중수청 외연확장’

심충택 논설위원 집권여당 사상 유례없는 총선 참패를 두고 빚어진 윤상현 의원과 권영진 당선인(대구 달서병) 간의 설전은 국민의힘 향후 진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의원은 여당의 험지인 인천 출신이며 이번에 5선고지에 올랐고, 권 당선인은 재선 대구시장 출신에다 이번에 재선 국회의원이 됐다. 둘 다 당의 미래를 이끌고 갈 중진이다.설전은 윤 의원이 지난주 “영남 중심당의 한계가 총선 참패의 구조적 원인이며, 이들이 공천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 당 지도부나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권 당선인은 “선거 때만 되면 영남에 와서 표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무슨 문제만 생기면 영남 탓을 한다. 참 경우도 없고 모욕적”이라고 반박했다. 권 당선인은 차기 당 대표를 노리는 윤 의원이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영남책임론’을 거론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번 총선에서 TK(대구경북)는 25석 전석을 석권하고 PK(부산울산경남)는 6석을 제외한 34석을 획득해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을 가까스로 지킬 수 있었다. 영남권 여당 정치인들은 윤 의원이 영남책임론을 거론한 데 대해 충분해 섭섭해할 수 있다. TK지역에서는 ‘우리가 동네북이냐’는 소리도 실제 나온다.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당 내분이 생겨 안타깝긴 하지만, 나는 윤 의원이 던진 메시지에 공감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인요한 혁신위’를 꾸려 다양한 혁신과제를 내놨지만, 당 주류인 영남권 중진들이 혁신 흐름을 끊어 놓은 건 사실이다. 혁신위가 ‘중진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공식 제안했지만, 영남중진들 중 이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입장에서 보면, ‘영남정치세력의 당내 권력독점’은 보수정당을 비토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여권 지지자들은 다들 걱정이 많다. 야권이 정치권력을 입맛대로 행사하는 상황에서 집권당의 ‘영남 자민련화’는 당연히 TK와 PK지역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역감정이나 소외감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 현실적인 지역현안 해결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지역구 전체를 석권하면서 TK지역은 수많은 현안을 직접 받아줄 입법창구가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이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할 경우, 2026년부터 2028년까지 10개월 여의 간격으로 잇달아 치러지는 지방선거·대선·총선에서도 승산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의 ‘영남 자민련화’를 막기 위해 ‘영남보수당’과 ‘수도권보수당’을 따로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도권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루빨리 ‘중수청’ 위주의 지도부 체제를 구성해서 당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은 재기할 동력을 아예 상실하게 된다.늘 강조하지만, TK정치권과 유권자들은 이제 보수정당의 건강성과 외연 확장을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할 때가 됐다.

2024-04-23

코로나 졸업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코로나19 대응 교훈보고서를 발간하면서 한국을 모범사례 중 하나로 소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정 중 얻은 교훈을 전 세계적으로 공유해 향후 팬데믹 가능성이 높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자는 취지로 만든 이 보고서에 한국의 코로나 극복과정이 모범사례가 된 사실은 자랑할만한 일이다.코로나19가 4년 3개월 만에 엔데믹 상황을 맞는다. 작년 8월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계절성 독감과 같은 4급으로 분류한 정부는 5월부터는 사실상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병의원 등에 남아있던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가 사라지고 정부 차원의 대응조직도 해체한다.2020년 1월 20일 국내서 첫 환자가 발생한 코로나는 세계적 유행을 일으키면서 국내서만 3만5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내 누적 확진자가 3400여만명으로 국민의 67.4%가 코로나19에 한번 이상 감염되는 가슴 아픈 경험을 했다. 사망자가 급증할 때는 화장 차례를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의무화, 사적 모임 인원제한, 상업시설의 영업시간 규제 등 과거 한번도 겪어보지 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압박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이 코로나 우울증을 겪었다.그런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는 시민들과 함께 70일의 사투 끝에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는 기적을 일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ABC 방송은 “코로나를 이겨낸 이 시대 삶의 모델”로 극찬을 했다.엔데믹은 전염병이 풍토병으로 정착한다는 뜻이다. 공포와 아픔으로 끔찍한 기억을 안겨준 코로나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3

장인화號의 혁신…‘초일류 포스코’ 기대한다

지난달 21일 취임한 장인화 회장이 한달여 만에 포스코그룹의 혁신방안을 구체화했다. 그저께 발표된 ‘7대 미래 혁신과제’에는 철강 부문에서 매년 1조원 규모의 원가를 절감하고, 3년 내 유망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룹 내실 다지기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장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미래기술 전략, 생산기술, 인사 등 각 분야 전문가 20여 명으로 구성된 ‘포스코 미래혁신TF’를 가동하면서 회사 경영 현황 전반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7대 미래혁신 과제를 종합해보면, 포항시에 집중된 철강과 이차전지 소재 ‘투톱’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유연한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시장 신뢰 회복을 추구하겠다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포스코는 우선 실행 가능한 과제는 즉시 실천에 옮기는 한편, 저탄소 생산체제로의 전환과 MA 같은 대형 과제는 오는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실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재계에서는 포스코홀딩스가 작년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6조6708억원이나 보유하고 있어 대규모 MA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 회장은 앞으로 과제 실행력을 높이고 성과를 조기달성하기 위해 사업회사 사장 또는 본부장이 책임지고 과제를 추진하도록 하고, 본인이 직접 주기적으로 진행사항을 점검할 계획이다.장 회장은 현재 취임사에서 밝힌 ‘100일간의 현장 경영’을 실천 중이다. 장 회장의 현장경영 첫 방문지는 포항 냉천범람 당시 피해가 컸던 포항제철소 2열연 공장이었다. 장 회장은 그동안 포항을 비롯해 광양, 송도 등 계열사 작업현장을 돌면서 직원들의 다양한 얘기를 듣고 복장자율화, 호칭변경 등 파격적인 조직 문화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맨’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지는 장 회장이 3년 임기 내내 포항제철소를 비롯한 계열사 현장을 자주 찾아 직원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으면서 경영체제 전반을 혁신해 포스코그룹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길 바란다.

2024-04-23

방폐물 특별법 5월 임시국회서 처리되나

우리 미래세대와 원전지역 주민을 위해 임기 종료를 앞둔 21대 국회가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할 과제 중 하나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의 제정이다. 20대 국회에서 한차례 폐기된 경험이 있는 이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또다시 폐기된다면 이것이야말로 21대 국회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21대 국회가 처리할 시간은 5월 중 열릴 것으로 보이는 임시국회가 마지막 기회다.다행히 여야가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인다는 관측이 나와 21대 국회 내 처리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 있다. 특별법은 원전가동으로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관한 세부적 규정을 명기한 법안이다. 1978년 고리원전 가동 후 쌓인 사용후 핵연료가 1만8천t에 이르러 더이상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자칫 원전을 멈춰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한 법안이다.지난 2월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정부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고준위 방폐물인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저장시설 확보가 시급하다”며 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한 바 있다. 그는 “한빛, 한울, 고리원전은 10년 내 방폐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최악의 경우 원전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정부는 앞으로 국내 32기 원전에서 4만4000t까지 사용후 핵연료가 나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당장 시작한다 해도 37년이 걸린다고 하니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경북 경주시 등 원전소재지 주민들은 고준위 특별법이 불발되면 자칫 임시저장 시설이 영구시설화되는 것 아닌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이미 이와 관련해 주민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한 항의를 수 십차례 벌이기도 했다. 특히 원전 수출 등 다시 불붙은 원전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법안의 통과는 서둘러져야 한다.세계 원전운전국 상위 10위권 내 국가 중 영구방폐장 건설에 착수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다.5월 중 열릴 21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탈원전 친원전 등의 이념적 논쟁을 떨쳐내고 여야는 국가의 장래를 내다본 대승적 차원의 결정을 반드시 해야한다.

2024-04-23

강릉에 개관하는 솔올미술관

미술관 건축은 건축 이상을 의미한다. 미술관은 미술을 담는 공간이지만 미술관 건축은 그 자체로도 예술이다.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어떤 전시를 기획하는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미술관의 첫 인상은 미술관 건축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미술관에 대한 기억에 있어서도 다름 아닌 건축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파리의 루브르하면 유리 피라미드,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하면 나선형 계단, 파리 퐁피두센터하면 외부로 노출된 설비시설이 떠오를 정도로 미술관의 기억은 곧 미술관 건축에 대한 기억이다.예술성, 기능성, 상징성, 공공성 등 다양한 측면이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미술관 건축이다. 그런 만큼 건축가들에게 미술관 건축은 큰 도전이지만 또한 건축가 개인이 일생동안 맡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프로젝트일 것이다. 미술관 건축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권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건축가에게 미술관 건축이 맡겨지지만 미술관 건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건축가는 손에 꼽힐 정도다. 지난 세기 미술관 건축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건축가는 ‘백색 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이다.마이어 건축의 트레이드 마크는 ‘백색’이다. “백색은 모든 색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색이라고 생각한다. 무지개의 모든 색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리처드 마이어). 백색에 대한 그의 고집은 그것이 지닌 ‘절대성’ 때문이다. 백색은 건축의 순수한 시각적 형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마이어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을 명확히 보여준다. 백색은 모든 기하학적 형태의 미학적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 하나 더함이나 덜함 없는 정갈함과 명료함. 백색과 간결한 선 그리고 형태의 완벽한 조응은 마이어 건축의 고유한 ‘백색 미학’이다.마이어를 상징 짓는 또 다른 건축 요소는 유리파사드이다. 마이어 건축의 보임새를 지배하는 것은 백색의 정렬된 패널과 그로부터 생성된 격자형 그리드이다. 반복된 사각 패턴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자칫 과도할 수 있는 엄격함은 유리라는 투명한 재료와의 접목을 통해 변주되어 한층 경쾌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넓은 유리창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마이어의 공간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지속성과 연결성을 강조한다. 공간과 공간의 연결성, 공간과 사람의 연결성, 주변 환경과 건축의 연결성. 연결성에 대한 마이어의 건축적 해석은 항상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나 연결성은 미술관 건축의 본질과 밀착된 문제이기도 하다. 미술관은 미술과 미술, 미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재료적 특징, 형태적 특징과 함께 마이어 건축에서 빠트릴 수 없는 조형 요소는 빛이다. 공학적 기술이 건축을 완성한다면, 빛은 건축을 미학적으로 완결 짓는다. 빛은 마이어의 백색 건축에 변화와 움직임을 부여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은 건축 공간 곳곳으로 스며들어 예상하지 않은 움직임을 유발함과 동시에 절제된 조형미를 극대화 한다.한국의 아름다운 도시 강릉에는 현재 마이어의 건축디자인을 계승한 마이어 파트너스의 솔올미술관이 지난 2월 14일 개관했다. 솔올미술관의 건축 역시 마이어의 순수한 백색 미학과 간결한 형태가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 되었다. 솔올미술관은 국내 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외 추상미술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계획이며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이 만나는 미학적 담론의 장이 될 것을 기대한다. 이 같은 미술관의 방향성을 충분히 건축에 녹여내기 위해 계획 단계에서부터 긴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미술을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솔올미술관의 비전이 장소와의 관계성,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마이어의 건축 철학으로 조화롭게 시각화되어 국내미술관 생태계에 의미 있는 좌표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4-04-23

커피가 감미롭지만은 않은 이유

커피콩 가는 소리가 들리면 함께 사는 강아지는 바빠진다. 손님이 온다는 걸 눈치 빠른 강아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재빨리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목을 길게 빼고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좋은 향이 날아가기 전에 손님이 빨리 왔으면 싶다. 나는 언젠가부터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은 커피를 내리지 않는다. 지구별에 보내는 내 작은 성의다.커피만큼 사람을 휘어잡는 것이 또 있을까. 주변에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산다는 이들이 꽤 있다. 헤어날 수 없는 커피의 마력에 빠진 이들이다. 악마의 유혹에 이끌린 사람들로 인해 거리엔 카페가 넘쳐난다. 자고 나면 생겨나는 건 카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밥보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의 역할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밥을 먹고 나면 당연히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범국민적 공감대가 카페의 부흥에 가장 큰 디딤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떻든 커피는 감미로운 향과 맛으로 팍팍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무한다.내가 커피와 가까워진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커피나무나 커피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때였다.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짬 모르게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담배 냄새가 짙게 밴 다방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맛도 모르는 커피를 줄기차게 마셔댔다.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때로는 선배들이 하는 대로 다방 탁자에 놓인 소금을 집어넣어 보기도 했다. 소금 커피는 달달한 커피보단 못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먼 듯했다.서른이 가까워오자 블랙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쓴맛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으므로 의도적으로 마셨다. 산다는 일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들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때였다. 그러다가 차츰 매혹적인 커피의 향에 눈뜨게 되었다. 쓴맛에서 느껴지는 커피 본연의 맛을 음미할 줄 알게 되면서 저절로 철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독약처럼 쓰다는 그것이 마음 맞는 친구 하나를 얻은 것처럼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런 커피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줄곧 이어졌다.하나 요즘 들어 커피로 인한 고민이 생겼다. 마시면 마실수록 죄를 짓는 기분이 따라다닌다. 지구의 허파 구실을 하는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는 건 커피가 원인이기도 한 까닭이다. 전 세계 커피 인구가 늘어나면서 돈이 되는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열대우림은 마구잡이로 파괴되었다. 그 속에 깃들어 살던 수 만종의 동식물들도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던 열대우림이 지금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곳으로 변했다고 한다. 지구가열화에 열풍기를 튼 격이다. 곰곰이 따지고 들면 그렇게 된 원인 중엔 오랜 세월 커피를 즐기는 나도 들어있는 것이다.커피의 탄소발자국은 소고기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서 21g, 커피콩 1kg에서 15.3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커피 원두가 전 세계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 물 발자국 역시 제품이 생산되어 쓰이고 버려지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사용되는지 나타내는 환경 관련 지표를 말한다.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커피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수확하고 커피콩을 볶아서 전 세계로 유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130ℓ의 물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은 지난해 1인당 405잔을 마셨다는 통계가 있다. 전 세계 평균의 두 배가 훌쩍 넘는다.내 폰에는 지난해 생일에 날아든 스타벅스 커피 쿠폰이 몇 장 있다. 소읍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없어 도시에 갈 때 써야지 했는데 매번 바빠서 아직 쓰지 못했다. 그곳에서 나눠주는 사은품이 탐이 나거나 혹은 주변에 선물을 하느라 미리 한 묶음의 커피 쿠폰을 구입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소비자가 언제 마실지 모를 커피값을 미리 지불해 놓을 정도니 업자 측에선 커피 원두를 확보하느라 바쁘겠다. 그들이 지구 환경까지 관심 가질 여력이 있을까. 인터넷 쇼핑몰에 필요한 물건을 주문했더니 사용 후기를 올리면 100% 당첨된다는 커피 쿠폰 안내 쪽지를 보내왔다. 그야말로 우리는 커피를 빼놓으면 어딘가 허전한 시대를 살고 있다. 박월수 수필가 우리와 친숙한 커피는 우리 뇌를 혹사 시키는 역할을 한다. 커피에 든 카페인은 피곤한 상태에서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 착각을 일으킨다. 뇌로 하여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곤할 땐 쉬어야 하지만 커피의 힘을 빌려 업무를 보는 이들이 주변에 흔하다. 커피는 피로회복제가 아니며 제대로 된 휴식만이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걸 기억하자.지구별의 신음 소리가 곳곳에서 커져가고 있다. 최근 남미의 기록적인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 이상고온은 뭇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내가 사는 산골에는 이상 기온으로 인해 사과나무의 꽃눈이 잎눈으로 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꽃이 오지 않으면 열매 역시 기대할 수 없는 건 뻔한 이치다. 사과 농가의 수심이 깊어만 간다. 지금부터라도 지구별을 위한 작은 실천을 해야 할 때다. 우선 모임 자리에서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대신 몸에 좋은 우리 차로 바꿔 보자.◇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박월수 수필가

2024-04-23

4·10 숫자들의 향

강길수 수필가 4·10 총선 전 어느 아침.옆 아파트 담장 안쪽에서 보랏빛 꽃을 앙증스레 피워내는 한 그루 라일락을 올해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아니나 다를까. 라일락 향기가 몸과 마음의 온 세포를 윤슬처럼 일렁이게 했다. 대체 라일락은 어떤 유전자를 가졌기에 저토록 자기 삶에 정직, 진실할까.식물은 거짓을 모른다. 본능대로 살며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한데, 자칭 만물의 영장(靈長) 인간은 어떤가. 영적 존재, 윤리, 도덕, 진선미, 지정의, 신망애, 과학기술 등을 앞세워 가장 진화했다고 자화자찬해온 인간이다. 화성에서 인간의 헬기가 뜨는 시댄데, 지구촌은 전쟁이 참혹하다. 또, 우리나라는 ‘부정선거’란 경천동지할 칼춤이 벌어져도, 다수가 모르쇠다. 나라 사랑은 어디에 팔아먹었나.올 ‘4·10 총선도 부정선거’라고 G 박사 등 전문가들이 주장한다. 부정선거로 55명 이상의 당선자가 낙선자로 바뀌었단다.하면, 이번 선거는 진짜 여당이 이겼고, 무효가 아닌가. 나도 선관위 홈피에서 포항 북구 ‘개표 단위별 개표 결과’를 내려받아 계산, 분석해 보았다. 시간상 흥해읍, 장량동, 죽도동의 결과만 가중평균하여 관내 사전과 당일 투표율을 산출, 북구 결과로 삼았다. 통계적 표본이 크기 때문이다. 관외 사전투표율 계산은 받은 데이터를 썼다.그 결과, 후보별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사전 44.7% 당일 55.3%, 국민의힘 사전 32.6% 당일 67.4%, 무소속 사전 37.0% 당일 63.0%로 나왔다.사전투표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이 타 당보다 7.7~12.1% 높다. 이는, 큰 표본은 통계적 추정 정밀도가 높다는 대수의 법칙을 위반하는 수치다. 어떤 개입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결과다.한편, 비례대표 득표율은 통계적 변칙이 더 심하다. 각 당의 득표율은 더불어민주연합 사전 41.8% 당일 58.2%, 국민의미래 사전 33.3% 당일 66.7%, 녹색정의당 사전 36.2% 당일 63.8%, 새로운미래 사전 36.4% 당일 63.6%, 개혁신당 사전 42.5% 당일 57.5%, 자유통일당 사전 20.4% 당일 79.6%, 조국혁신당 사전 48.1% 당일 51.9%로 나타났다.비례대표는 더불어민주연합과 개혁신당, 조국혁신당의 사전투표율이 다른 정당들보다 5.6~14.8%까지 높다. 자유통일당은 너무 낮다. 왜일까. 비례대표득표율도 지역구처럼 대수의 법칙을 위반한 통계적 이상 수치다. 누군가의 의도적 개입이 추정된다. 다른 군소 정당 계산은 생략했다.라일락꽃이 향기 나듯, 숫자도 향이 난다. 거짓이 없는 향이다. 우리는 4·10총선 개표 결과 숫자들에서도 향을 맡을 수 있다.앞의 포항 북구 선거 개표 결과와 계산 숫자들도 향이 짙다. 총선 전 핀 라일락꽃이 오늘도 향기를 사방으로 뿜어낸다. 나는 그 향기에 더해, 이번 총선 숫자의 향도 음미한다.이 향이, 우리나라에 진실하고 정직한 공명선거를 꽃피우는 향기로 거듭나기 바란다.

2024-04-22

팔공산 깃대종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12월 ‘당사국총회 COP28’이 개최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다녀오면서 사 온 선물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중동의 대표적 동물인 낙타 모양의 귀여운 인형이었다.만약 호주로 여행을 갔는데,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캥거루나 코알라를 사정상 볼 수 없었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우리는 날마다 새롭고 첨단화되는 핸드폰, TV나 자동차를 선호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함없이 인간과 함께해온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 같은 동물들에게도 열광한다.이처럼 인간이 일부 동물을 좋아하는 사례는 인간의 감성적인 필요성 일부이지만 지구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 그리고 식물, 곰팡이 그리고 심지어 미생물까지 망라되는 생명체들이 그 다양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태를‘생물다양성’이라 하는데,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량, 신선한 물, 목재 등의 자원을 풍부하게 받을 수 있고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하고 물을 정화하는 데에 꼭 필요하다.‘생물다양성’은 경제적 가치도 높여주는데, 특히 농업과 관광, 의약품, 생명공학 산업은 ‘생물다양성’에 크게 의존한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식물과 동물로부터 신약을 개발하는 데 유리하고 생태 관광도 유리하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문화적으로도 풍부해지는데, 많은 문화에서 특정 동식물은 신성하게 여겨지거나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된다. 이는 그 지역의 ‘생물다양성’이 문화적 유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인류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기후위기에 ‘생물다양성’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그로 인한 충격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준다. 다양한 유전자와 종으로 구성된 생태계는 기후변화나 질병과 같은 특정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증진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보존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개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우리나라에는 50000여 종 이상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한국의 고유종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산림, 습지, 해양, 하천 등에서 다양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산림은 국토의 약 64%를 차지하며, 생물다양성의 중요한 보고이다. 정부는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여러 법적, 정책적 조처를 하고 있다.예를 들면, 멸종위기종 보호 및 복원을 위한 활동,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국립공원 확대 등이다.4월 17일 국립공원공단은 지난해 5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팔공산의 생태·문화·지리적 특성을 대표하는 ‘깃대종’으로 ‘담비’와 ‘국화방망이’를 선정했다. 전문가 의견과 국민 참여 선호도 조사를 통해 선정된 이들 ‘깃대종’은 대구·경북 시도민의 관심과 사랑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2024-04-22

온몸의 이행, 세월호 세대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Pixabay 기울어진 선체가 캄캄한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고작 52시간은 수십 년처럼 막막하고, 차가운 바다에서 학생들이 죽어갈 동안 땅의 어른들이 헛되이 버린 골든타임 72시간은 억겁처럼 까마득했는데 10년은 참 빨리도 갔다. 너무 빨리 지난 10년이 섬뜩하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안개가 자욱한 바다 위에 섬인지 유령선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검은 형상이 어른거리는 꿈을. 회색 바다 위로 뒤집힌 배의 구상선수 부분만 떠 있는 이미지는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상징이 됐다. 그것은 곧 어른들의 탐욕과 국가의 부재, 세계의 부조리함을 지시한다.작년 9주기 때 희생자 이영만군의 형은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영만아, 밖은 아직도 차고 깜깜하다. 시간이 갈수록 잊혀가는 것 같아 무섭다. 9년 동안의 다짐이 모두한테서 희미해지는 것 같아 너무 무섭다”고 했다. 1년이 지나 이제 10년이다. 10년은 기억과 기념의 단위다. 하지만 세월호는 희미해지고 잊혀졌다. 물밑에 잠겨 있던 선체가 인양됐지만 다시 침몰하고 있다. 이쪽에서 아무리 새기고 기억하려 해도 저쪽에서 지우고 덮고 그만 하라 한다. 그만 하라는 말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10년 동안 세월호는 어떻게 다시 가라앉았나.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이 탄핵됐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한 새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진상 규명은 불충분하고, 국가 책임자 중 처벌 받은 이는 단 한 명뿐이다. 현 대통령은 10주기 기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사 표현이다. 대통령의 빈자리는 뒤집힌 배의 구상선수처럼 오히려 불쑥 솟아 있었다. 그 배는 이미 재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침몰했다.그만 하라고, 지겹다고, 해상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다른 고귀한 죽음들을 기억하라고 윽박지르는 말들이 너무 드세고 거칠어 기가 죽는다. 세월호가 희미해지는 건 이런 드센 말들이 중심 없거나 여린 다수의 마음을 흔들어 여론이라는 걸 잘못 만든 까닭이다. 단원고에 다니는 이윤지 학생은 말한다. “어떤 어른들은 이제 잊으라고 해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세월호를 떠올릴 거예요. 그래야 더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테니까요”라고. 우리 사회의 집단 망각 아래서부터 악착같이 세월호를 띄워 올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들은 아니다. 어른들이 MZ라 부르는 세월호 세대가 바로 그들이다.얼마 전 한 기업의 채용공고에 ‘모집인원 0명’이라고 적힌 문구가 화제였다. 10명 이내 한 자리수를 채용하겠다는 통상적 의미다. 이게 갑자기 문해력 논란으로 번졌다. 0명을 정말 ‘0명’으로 이해해 문제 삼은 누리꾼들을 향해 어른들은 “모르면 배울 생각을 하라”고 충고했다. 충고로 시작해 비난으로 끝난다. 어른들은 MZ세대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혀를 찬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이 없다고.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의 20대들은 10년 전 친구들이,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잘 들어서 죽은 걸 생생하게 봤다. 승객들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원들이 팬티 바람으로 제일 먼저 탈출하는 걸 똑똑히 봤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국민을 어떻게 버렸는지, 사회라는 곳이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매몰찼는지 다 지켜봤다. 그런데 말을 들으라니, 책임감이라니, 감히 공동체라니.계몽과 훈육이라는 자기도취적 우월감으로 ‘MZ’ 비아냥거림을 일삼는 어른들이여, 세월호를 정치 이데올로기의 화두로 만들어 욕보인 이들이여. MZ세대가 아니다. 세월호 세대다. 당신들의 위선과 거짓, 무능력, 탐욕이 가득한 세상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들 중에는 진로를 바꾼 이들이 있다. 유아교육과에 가려다 응급구조사가 된 장애진씨도 그중 한 명이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캄캄한 바다에 다시 들어갔을 때 너무나 무서웠다고 한다. 몸서리쳐지는 트라우마와 맞서서 끝내 이겨낸 힘은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하늘나라의 민지와 민정이에게 다짐한 바로 그 약속이다.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응급구조사로서 열심히 일을 한다”는 애진씨는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한다. 세월호를,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얼굴과 이름을, 그들과의 약속을, 그 약속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김수영)임을.

2024-04-22

동그란 사랑

혼자 사는 집의 동거인이 된 반려 식물. 혼자 살던 집에 동거인들이 생겼다. 바로 작고 작은 반려 식물들이! 하나 둘 씩 모으던 식물이 점차 수를 늘려가며 벌써 다섯이 되었다.집안일을 다 끝낸 무료한 주말엔 집 근처 식물 가게에 간다. 처음엔 분명 구경을 하러 가는 것이지만 왜인지 나올 땐 식물이 하나씩 손에 들려 있다. 아마 식물 가게 주인의 엄청난 영업 실력 덕분이지 않을까.내가 제일 처음에 들인 식물은 스파티필름이다. 어린잎이 하나둘씩 자라더니 갓 파마를 마친 할머니 머리처럼 바글바글 풍성해졌다. 현재는 꽃차례에 하얀 불염포를 피우고 있는데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어린 아이의 말랑한 손가락을 보는 것만 같아 신기하고 설렌달까.그 뒤로 들인 식물은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홍콩야자, 스킨답서스 실버리안이다.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는 솜털 같은 형태의 보송하고 가느다란 잎을 머리카락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홍콩야자는 우산 모양의 초록 잎이 길게 자란다. 그 중 애정하는 스킨답서스 실버리안은 벨벳 재질 형태의 잎과 은은한 실버 색상이 눈에 띄는 독특한 식물이다. 다행히 세 식물 다 우리 집 환경이 잘 맞는지 어린잎을 계속해서 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내가 보지 않는 시간에도 반짝반짝 잘 자라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식물을 애정으로 키우게 되는 이유이지 않을까.가장 최근에 데려왔지만 골머리를 앓게 하는 녀석은 유주나무다. 작은 귤과 흰 꽃이 달리는 과실나무라 계속해서 벌레가 꼬이는데다 햇빛 양이나 물주기가 잘못된 탓인지 살짝 건들기만 해도 잎이 우수수 덜어진다. 힘없이 축 늘어진 잎을 보면 얼마나 눈길이 가는지. 영양제도 꽂아보고 뿌리 파리 벌레를 물리치는 트랩이나 각종 약을 뿌려도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빛이 잘 들지 않는 집이라 겨우 빛이 집 안에 드는 시간대면 유주나무의 자리를 빛이 드는 곳으로 옮겨 둔다. 인터넷 글을 보니 누군가는 이년 내내 아픈 유주나무를 보살피다 어느 샌가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하던데, 넉넉한 시간은 물론 정성과 관심이 없으면 참 어려운 일이다.앞 식물과는 달리 유주나무는 돌봄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 하루라도 빛과 바람, 물주기를 신경써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시들해진다. 조금만 눈을 떼면 금방이라도 죽기 쉬운 식물이라 참 애간장을 녹이는데, 또 작은 귤 열매가 새롭게 맺힌 것을 볼 때마다 만 평 대지에 흉년이 든 것처럼 기쁘다. 아직 초보 식집사라 그런지 내게 유주나무는 아픈 손가락이지만 그래도 요즘 나를 바삐 움직이게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랄까.일주일에 한 번, 물주기가 비슷한 식물을 모아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 내고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천천히 물을 준다. 이제 막 물을 주어 싱그러운 식물을 따라 편안하고 천천히 호흡해본다. 조금씩 시간이 느려지고 상기되었던 얼굴도 누그러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러다 최근 갑작스레 돌아가신 지인분이 불현듯 떠올랐다. 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의 메모장을 본 적 있었는데, 그곳엔 온통 불교 경전의 말씀이 가득했다. 필사는 왜인지 긴박히 서두르는 듯 보였고, 특이하게도 ‘ㅇ’ 모음마다 빨간색 동그라미가 덧대어 그려져 있었다. 왜 ‘ㅇ’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고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을 수 있겠으나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려내며 각지고 날카롭고 뾰족한 마음을 둥글고 부드럽게 다듬고 싶었던 걸까. 동그라미의 틀, 동그란 잎의 식물들, 둥그런 화분의 입구, 동그란 유주나무의 열매, 둥글둥글해지는 마음.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세시 정도였고, 일요일의 오후가 조금 더 남았다는 것에 안심하며 끼니를 챙겨 먹기 위해 천천히 일어섰다.조금씩 빛이 드는 자리에 앉아 마음의 파동을 일으키는 대상을 가만히 생각해보는 것이 내겐 사랑이고, 이 사랑으로 채워진 시간이 오롯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함을 안다.평온함의 오후, 물 빠진 식물은 다시금 제자리에 돌려놓고 유주나무는 한 번 더 벌레가 기어 다니지는 않는지 체크한 뒤 놓아준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내내 눈길이 가고, 떨어져 있을 때면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괜찮은 건지 생각하며 저릿하고도 무력한 마음 같은 것이 나는, 사랑이라 믿는다.

2024-04-22

허수경의 ‘진주 저물녘’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허수경 시인은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했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고대동방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허 시인은 유적발굴을 위해서 1년의 절반 이상을 이집트와 시리아와 이라크로 떠돌며 살아왔다.유목민같은 삶을 살다가 독일에서 얻은 암으로 이승을 떠났지만 그녀는 자신의 시를 오래된 유적처럼 이 땅에 남겨 두었다. 녹슨 청동 구릿빛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그녀를 기리는 이는 더 늘어날 것이다,허수경은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 그의 꿈을 소리와 문자로 새겨두고 우리곁을 떠났다. 시집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진주 저물녘’이라는 시에서 그는 서쪽 바람이 일으켜 놓은 황혼의 고향을 시의 그물로 당겨놓았다. 이 시에는 경남 진주의 토박이말이 걸쭉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경상도 전역에서 두루 쓰는 방언인 ‘문디’를 만나니 반갑기도 하다.방언은 추상화된 보편 언어가 아니다. 관념과 같은 무중력의 언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방언은 현실 세계에서 지역에 따라, 계급에 따라, 그리고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파생되고 갈라지다가 그 ‘곳’에 자리를 차지한 민들레 씨방과 같은 존재다. 그러면서 방언은 공동체 안에서 그들끼리만 소통함으로써 내부적 결속을 강화해주기까지 한다. 표준화된 무채색의 언어인 표준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대상과 사건의 신비로운 숨결까지 방언에 깃들어 있다.“기다림이사 천년같제 날이 저물셰라 강바람 눈에 그리메 지며 귓불 부콰하게 망경산 오르면/잇몸 드러내고 휘모리로 감겨가는 물결아 지겹도록 정이 든 고향 찾아올 이 없는 고향/문디 같아 반푼이 같아서 기다림으로 너른 강에 불씨 재우는 남녘 가시나/주막이라도 차릴거나/승냥이와 싸우다 온 이녁들 살붙이보다 헌출한 이녁들/거두어나지고/밤꽃처럼 후두둑 피어나지고”, -허수경 ‘진주 저물녘’허수경은 스스로 “남녘 가시나”라고 고백한다. 가난에 쫓겨 어디 주막의 작부노릇이나 할까보다고 생각하다가 “기다림으로 너른 강에 불씨 재”운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송기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허수경을 두고 “세상의 모든 남정네들에게 버림받고, 그렇게 버림받아 자유로운 몸이 되어, 드디어 세상의 모든 남정네들을 제 살붙이로 여기는 진주 남강이나 혹은 낙동강 하류의 어느 가난한 선술집의 주모를 떠올렸다”고 표현했다.좀 더 깊이 성찰해 보면 일본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 물에 뛰어든 정열의 기생 논개를 연상하다가 진주 남강 너른 강 같은 마음에 기다림의 불씨로 그 망상을 손질한 것일 것이다. 진주 시가지를 휘돌아가는 남강과 일본의 침략군 적과 싸우다 죽은 숱한 양민들의 피가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든 진주성의 저물녘과 역사성이라는 그물의 코로 이어있다.가끔은 폐병에 걸린 남성과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내면적 충동을 시로 쓴 ‘폐병쟁이 내 사내’에서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주고 싶었네”라며 20대 젊은 여성의 내면적 욕망을 변주하고 있다.“산가시나가 되고 백정집 칼잽이가 되어 폐병에 효험이 있다는 뱀과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후, 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선한 물같이 맛깔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어디 내 사내뿐이랴”에서는 눈빛이 타오를 듯 고혹적인 사내를 위해 헌신한 우국충절의 논개가 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나의 어머니, 아니 나의 할머니부터 나에게 이어 내려온 강렬한 정념을 포효하고 있다.폐결핵이 걸린 사내라도 잎차같이 함께 눕고 싶어한다. 후후 불어 더운 보양국물 먹여 가며 그 사내가 흘린 식은땀을 후후 마시고 싶다. 그 여인 슬픈 눈길로 사내를 내려다보며 땀과 눈물 닦아줄 것이라는 환영에 빠진다.

2024-04-22

도미노게임-민족의 대이동

‘인간은 너머의 세상을 동경한다. 그러나 방향 잃은 패자의 역습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기원전 2세기 초, 흉노의 이동은 중앙아시아는 물론, 중국과 인도의 역사까지 바꾼다. 거대 국가를 이룩한 흉노는 한나라 고조 유방을 포로로 잡는 쾌거를 올리고,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해 장장 2,500여 ㎞를 흐르다 아랄해로 스며드는 아무다리야강 근처 대월지를 점령한다. 흉노로부터 남쪽으로 쫓겨난 대월지 사람들은 그곳의 ‘대하’, 즉 박트리아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인도로 쳐들어가 ‘쿠샨왕조’를 세운다. 도미노 게임의 시작이다.기원전 141년, 흉노족은 한무제로부터 시작해 후한에 이르기까지 몇백 년에 걸쳐 서서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대략 200년이 흐르고, 카스피해 북쪽에 훈족이 나타났다. 모습이 흉노와 똑 닮았고, 흉노와 발음도 비슷한 이들이 유럽에 입성하자 유럽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강력한 훈의 침략은 게르만족 일파들을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했다. 이탈리아 서로마 멸망을 앞당겼으며 프랑크왕국을 탄생시키고, 훗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라는 나라로 발전하는 초석을 다진다.9세기 말, 우리가 흔히들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노르만족의 유럽 유린은 또 한 번 판도를 뒤집는다. 유럽의 북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살던 북방민족 노르만족이 여름이 짧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추위와 척박한 땅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따뜻한 남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그들이 남으로 이동해 노르망디공국을 세우고,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는가 하면, 영국의 서북쪽 아일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지중해를 뚫고 들어가 시칠리아, 나폴리왕국을 건설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동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 중 한 무리는 러시아에 도착해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슬라브족을 몰아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간 무리는 현재 러시아의 기원인 키예프를 점령하고, 블라디미르 공국까지 손에 넣는다.노르만족으로부터 쫓기듯 밀려난 슬라브족은 남하해 발칸반도에 자리 잡고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를 세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톨릭에 흡수된다. 그 당시 발칸반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이들 역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대번에 뽑아버리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폭력과 희생의 토대 위에 나라를 세웠다. 민족 이동은 순차적이거나 평화적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폭력과 약탈이 동반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쫓기듯 도망치면서도 그 와중에 저지른 살인과 약탈과 방화는 또 다른 민족의 이동을 불렀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한 패자의 역습! 아니, 패자의 화풀이다.고등학교 역사부도 머리글에 ‘민족 대이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가 쓰여 있다. 얼핏 읽으면 매우 평화롭고 한가로운 민족의 이동으로 환희에 찬 신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살육과 방화, 약탈은 기본이었다. 머리를 돌에 부딪쳐 죽이고, 살아남은 자들은 끌고 가 노리개나 노예로 삼았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되짚어야 할 의무가 있다.몽골의 칭기즈칸과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해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와 유럽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와는 질이 다르다. 이 셋은 단순한 이유가 바로 목적이 되는 그들의 공통된 용어, ‘정벌’을 앞세운 살육자였다. 항복 아니면 도륙이라는 무시무시한 몽골군은 유럽인 눈에는 그저 하늘에서 보낸 악의 군대이자, 신의 채찍이었다. 사회 질서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자 하느님이 보낸 응징을 위한 군대였다. 사람의 머리로 탑을 쌓기를 즐겼다는 티무르는 그냥 할 말을 잊는다. 알렉산드로스 역시 페르세폴리스에서 보듯 그가 지나는 자리에 불타고 허물어진 건물잔해, 하늘에 울리는 인간들의 절규만이 남았다.세계를 자신의 발아래 놓고자 벌이는 욕망의 화신을 영웅이라고 불렀다. 유럽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영웅이고, 유럽을 짓이겼던 티무르는 왜 죽음을 부르는 악인가? 훈족 희대의 영웅 아틸라는 왜 ‘신의 재앙’으로 불려야 하는가.마치 도미노 게임처럼 벌어졌던 인류 이동의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지금의 세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약탈자 그 이상도 아닌 폭력적인 인간을 영웅으로 미화하는 것은 마치 후대의 성스러운 의무가 되었다. 이를 넘어 어떤 민족에게는 저항의 힘으로 작용하고, 또 어떤 민족에게는 이웃에 대한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단언컨대 통치제도는 통치자를 위한 것이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국가에도 질서와 통제를 위한 세력은 어떻게든 존재하기 때문이다.스스로 선진문명인들이 살아가는 서구 유럽이라는 개념 역시 이 과정을 거치며 생겨났다. (기실 폭력의 역사만 두고 보았을 때 문명보다 야만에 가깝지만) 일찍이 유럽이라 하는 지역 개념은 아시아를 타자화하면서, 유럽과의 대비를 통해서 형성되었으며, 그 기조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4-22

비운의 순종황제 동상

홍석봉 대구지사장 순종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다. 대구 중구는 순종이 1909년 1월 남쪽 순행 중 대구를 다녀간 일을 재현해 지난 2017년 달성공원 정문 앞 일대를 테마거리로 만들었다.어가길에 담긴 치욕을 ‘다크 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역사교육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낙후된 골목 개발과 원 도심 재생 및 관광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길이 2.1㎞의 어가길은 국비 35억원 등 70억원이 들어갔다. 동상 건립과 함께 차선을 줄여 교통섬 등이 들어섰다.사업은 구상단계부터 친일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일제가 반일 감정 무마를 위해 순종을 대구와 부산 등으로 끌고 다닌 치욕스러운 역사라는 이유였다.어가길과 동상 조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대례복 차림의 순종 동상이 군복을 입고 다닌 당시 모습을 왜곡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대를 무릅쓰고 건립을 강행했다.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어가길 조성 이후 달성공원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교통 혼잡 등 민원이 빗발쳤다. 보행과 안전사고 위험이 커졌다. 결국 중구는 ‘순종황제 어가 길 조형물’ 철거를 결정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순종의 후손들은 “황제를 욕되게 하지마라”며 동상 기증을 요청했다. 의미 있는 장소로 이전하자고 했다.역사 왜곡과 친일 논란까지 애써 무시하고 다크 투어리즘으로 포장한 채 세워진 대구 ‘순종황제 동상’은 고작 7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조선의 마지막을 지켜봐야했던 것만큼 서글픈 운명이다.동상 건립비와 원상 복구비로 11억원이 들어간다. 지역사회와 논의조차 제대로 않고 추진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세금낭비와 행정력만 소모했다. 10년 앞도 못 내다본 우리 행정의 현주소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2

성난 민심을 어떻게 받들 것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108 대 192’, 국민은 윤석열 정권을 무섭게 심판했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에 성난 민심의 폭발이었다. 이미 6개월 전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강력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으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대통령은 이번에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무엇을, 어떻게 쇄신하겠다는 것인가? 병은 원인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다. 대통령은 참패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검찰 중심의 측근 인사는 불통의 상징이었고, 대통령이 내쳤던 이준석·안철수·나경원은 모두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돌아왔다. 이태원·오송 등 대형 참사에서 보여준 무책임, 해병대 채 상병 사망수사와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의 처리에서 보여준 오만한 태도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대통령의 성찰·반성·변화가 시급한 까닭이다.대통령이 민심을 받들려면 국민, 여당 및 야당과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인데, 그것은 바로 ‘언론과의 소통’을 의미한다.대통령은 총선 참패에 대해 언론 앞에서 직접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국무회의 비공개회의에서 간접적으로 사과했다고 한다.“참모 뒤에 숨지 않고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고 한 대통령은 어디로 갔나? 분노한 민심에 진솔하게 사과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다음으로 당정(黨政) 소통을 위한 양자관계의 재정립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당의 주류가 합리적·개혁적 보수로 교체되어야 한다. 수구적인 보수, ‘윤심’만 살피는 보수는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변화와 혁신을 추동할 수 없다.여당은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하는 ‘악마의 대변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은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이 되어야 한다. 검찰문화에 습관화된 상명하복의 정치행태는 불통만 키울 뿐이다.마지막으로 야당과의 소통이다. 정쟁을 중단하고 정치를 복원하라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이다. 향후 대통령의 잔여 임기 3년은 가시밭길이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대통령의 레임덕만 재촉할 뿐이다. 이재명과 조국의 범죄혐의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사법부에 맡겨두고, 대통령은 정치적 대화를 통해 국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여소야대의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이처럼 성난 민심은 대통령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요구하고 있다. 취임 이후 반복되어온 표리부동과 언행불일치, 선택적으로 적용해온 공정과 상식을 반성 없이 변명만 하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병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데 야당을 탓하고 참모들을 질책해서 될 일이 아니다. 권력에 취해 초심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 아닌가.민심을 받드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은 대통령이 변하는 것이다. 오만과 불통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소통·대화·타협의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할 때 비로소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2024-04-22

총선참패 여당, ‘남탓’하며 자중지란 빠질 때냐

4·10 총선에서 참패를 당한 여권이 자중지란에 빠져들고 있어 안타깝다. 당이 흡사 ‘무정부’ 상태에 빠진 모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의 갈등이 우선 당을 혼란스럽게 한다. 총선 후 침묵을 지켜왔던 한 위원장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국민뿐이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는 글을 올렸다. 이날 오전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글을 올린 직후였다. 한 위원장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오찬을 제안하자 건강이 좋지 않다며 거절까지 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위원장이 이참에 윤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감을 둘 각오를 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차기 당권 레이스와 관련해 ‘영남권 책임론’도 나와 당 내분을 짙게 한다. 지난주 당내 낙선자 모임과 윤상현 의원 주최 세미나 자리에서 총선참패에 대한 영남권 책임론이 거론되자 TK정치권에서 발끈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잘 되면 내탓이고 잘못되면 조상탓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질타했고, 대구시장 출신 권영진(대구 달서병) 당선인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영남 탓을 한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22대 국회 권력을 모두 야권에 넘겨준 채 개헌·탄핵 저지선만 가까스로 확보한 여당이 향후 갈 길도 찾지 못한 채 내분을 겪는 모습은 국민에게 한심하게 비칠 수밖에 없다. 역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이처럼 크게 패배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독단적인 국정운영이 가장 큰 패인이라는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는데도, 영남권 책임론 같은 뒷말이 나와 당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지도부를 하루빨리 구성해서 대통령과 야당 간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권력독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집권여당답게 대화와 타협의 여야관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2024-04-22

중소도시까지 번진 도심 빈점포, 특단 대책을

경기 측정의 바로미터로 삼는 상가 공실률이 급상승하고 있다. 대도시는 물론 포항, 안동, 김천 등 경북도내 중소도시까지 도심의 빈점포가 늘어나 도농할 것 없이 불황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지고 있다. 상가 공실률 증가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시장경제 회생을 위한 정부의 획기적 조치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한국부동산원 조사에 의하면 작년 4분기 전국의 상가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 13.5%, 소규모 상가 7.3%, 집합상가 9.9%로 나타나 전년보다 0.3∼0.9% 포인트가 높아졌다. 대구는 전국 평균보다 높은 평균공실률이 15.9%를 기록했고, 경북은 이보다 더 높은 19.7%다. 포항 도심은 25.8%의 공실률을 기록했으며 안동과 김천 등도 전국평균을 웃도는 공실률을 보였다. 특히 포항 구도심인 중앙상가의 경우는 45%가 공실인 것으로 포항시가 파악하고 있어 거의 절반 가까이 문을 닫은 심각한 수준이다.전국보다는 대구 공실률이 높고 대구보다는 경북 공실률이 더 높아 불황에 따른 빈점포가 농촌의 중소도시까지 확산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분석이 된다.상가의 빈점포가 늘어난 것은 자영업자들의 폐업도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대구에서 폐업한 음식점이 무려 5천 곳에 달한다고 한다.고물가, 고금리, 고유가 등으로 장사가 안돼 폐업을 선택한 자영업자가 속출한 셈이다. 일부 상인들은 높은 금리 때문에 중도에 파산 선고를 한 경우도 많아 소상공인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급하다. 경기침체에 물가까지 치솟는 상황이 이어지자 각 지자체가 나서 상가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 대책을 세우나 시장경기 전반이 부진해 상가 경기회복이 쉽지 않다.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금융·세제 등 정부 차원의 파격적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그간 민생이란 이름으로 많은 대책을 밝혔지만 피부로 와닿는 게 별로 없다. 시장경기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

2024-04-22

선상출장소 명칭 변경은 주민의견 수렴이 먼저

김락현 경북부 구미시 선산출장소에 대한 명칭 변경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구미시가 조직개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의원들이 선산출장소의 명칭을 농정국으로 변경하는 안을 제안했기 때문이다.시의원들은 출장소라는 명칭보다 농정국이라는 명칭이 구미시 전체의 농업산업을 총괄하는데 더 낫다고 판단했다.예산 확보나 사업설명을 위해 중앙부처를 방문하더라도 선산출장소 보다는 구미시 농정국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에 시의원들의 이러한 제안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하지만, 선산이라는 지역적인 특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이 합쳐지면서 설치된 선산출장소는 단순히 구미시의 조직이라기보다 ‘선산’이라는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구미와 선산이라는 두 지역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더라도, 당초 선산군에 속했던 구미읍은 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1978년 2월 15일 칠곡군 인동명과 합쳐지면서 구미시로 승격됐다. 이후 선산군까지 포함하면서 지금의 도농복합도시 구미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선산지역에는 아직까지 선산이라는 지명을 구미시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다른 지역에서도 출장소 명칭변경을 두고 지역민들의 반발을 산 경우가 있다. 경남 양산시는 지난 2020년 조직개편을 진행하면서 웅산출장소를 양산동부출장소로 변경하려 했으나, 지역민들이 ‘정체성 상실’등의 이유로 반대하면서 무산됐었다.당시 주민들은 명칭 변경 반대 현수막 수십개를 거리에 걸고, 항의 집회까지 열면서 한때 지역사회가 크게 술렁이기도 했다.선산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장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것보다 선산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먼저 수렴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재도약을 위해 갈 길이 먼 구미가 명칭 변경 문제로 갈등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4-04-22

윤석열·이재명은 협력할 부분이 많다

김진국 고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총선 중에 “3년은 너무 길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을 다 채우기가 지겹다는 말이다. 임기 중간에 탄핵하든지,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어 야당이 국정을 휘젓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로 홍역을 치렀다. 가장 힘있게 임기 중 할 일을 기획할 중요한 시기를 날려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해 맥없이 정권을 넘겨줬다.이미 윤 대통령은 날개가 꺾였다. 법이고, 예산이고, 야당의 승인 없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전공의 파업도 야당 태도가 큰 변수다. 의사 증원은 원래 민주당이 추진한 정책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어깃장을 놓으면 증원 계획을 백지화할 때까지 의사단체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을 바랄까. 총선의 기세를 몰아 바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비명횡사’로 민주당을 완전히 ‘이재명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윤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기 위해 탄핵이든 개헌이든 하려면 결국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건 큰 모험이다. 빨리 대통령이 되고 싶어 헌정질서를 중단시켰다는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아무리 윤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이라도 후폭풍을 각오해야 한다.인기가 바닥을 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만 탄핵소추 이후 후폭풍이 거셌다. 심지어 대구·경북에도 역풍이 불었다. 탄핵안이 발의된 날 한국갤럽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의견이 60.6%(필요 없다 30.1%)였지만, 탄핵 반대는 65.2%(찬성 30.9%)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천막당사를 치고, 사과를 거듭하며 겨우 선거를 치렀다. 더구나 국회에서 다수의 힘으로 탄핵소추를 한들 헌법재판소 통과가 쉽지 않다.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대표 재판이 더 빠를 수 있다.야권 사정도 만만하지 않다. 이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몰빵’을 강조했다.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도 더불어민주연합(민주당 위성정당)’이라는 말이다. 조국혁신당의 ‘비조지민’(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지역구는 민주당) 주장을 누르려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금버금하다. 위성정당이 26.69%를 얻어, 지역구 후보도 없고, 번호도 뒤쪽에 있는 조국혁신당(24.25%)과 비슷했다. 더 심각한 대목은 민주당의 대권 향방을 결정하는 호남(광주·전남·북)에서 모두 조국혁신당에 밀렸다는 점이다. 광주에서는 47.72% 대 36.26%, 전북에서는 45.53% 대 37.63%, 전남에서는 43.97% 대 39.88%로 확실하게 졌다. 공무원들이 많은 세종시와 조국 대표의 고향인 부산에서도 민주당이 졌다.그러니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을 벌이면 거저먹을 상황이 아니다. 막상 대선 국면이 되면 공천 과정에 불만이 많은 비명 세력이 조국혁신당으로 뭉칠 수 있다. 그렇다고 당내 세력 구도를 고려해 민주당에 유리한 단일화를 요구하다가는 과거 김영삼·김대중 씨처럼 쪼개질 수도 있다. 당대의 선거공작 전문가인 엄창록 씨가 1988년 노태우 후보 측의 영입 제안을 받고, “어차피 이긴 선거이니 내가 필요 없다”라며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양김 단일화가 안 된다고 확신한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주중 만나자고 제의했다. 사실 두 사람은 ‘너만 아니면 돼’(Anything but You)라며 사생결단으로 싸울 이유가 없다. 선거 때 공격하는 것은 정치인의 일상사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여러 가지 수사도 사실 민주당 내부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윤 대통령이 수사해 감옥에 넣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세 번이나 만나 화해했다.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것은 문재인 정부다.이 대표도 정치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 정치권에는 “대통령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순 없어도, 안 되게 할 힘은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면 국리민복을 위해 협력할 일이 많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21

안락사는 자살이 아니다

유영희 작가 2주 전부터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에서 자살 예방 특강 영상을 릴레이로 올리고 있다.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를 필두로, 우울증을 앓는 아내를 7년간 돌본 최의종 작가, 뇌과학자 장동선과 김용 전 세계은행총재가 출연하여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 자살하고 싶은 사람을 돌보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다 조회수가 많지만, 최의종 작가 영상은 77만회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이다.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20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에 가면, 자살자의 연령별, 성별, 직군별 등 다각도로 분석된 통계를 볼 수 있다. 2022년 한국 자살률은 24.1%로 OECD 평균 10.7%의 두 배가 넘는 부동의 1위지만, 그나마 자살률이 감소하는 추세라 다행이기는 하다. 2012년 한국의 자살률 30.3%보다 6%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다만, 자살률 감소는 세계적인 흐름이고, 2012년 한국과 비슷하게 30.1%였던 리투아니아가 10년 후 18.5%로 줄어든 것을 보면 마냥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 경제적 곤란, 치료가 어려운 질병 등 자살의 원인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한국이 이토록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과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살률을 낮추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긴급한 화두다.눈에 띄는 것은 연령별로 자살 원인이 다르다는 것인데, 고령층의 자살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질병이다.‘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건강’(23.7%)과 ‘경제적 어려움’(23.0%)이라고 하는데, 의료비 지출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하는 큰 요소이다. 그러니 80대 이상이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걸리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이 117.9%라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자살은 남은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혼자 외롭게 고통스럽게 죽는 일이지만, 안락사는 가족의 합의를 얻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평화로운 죽음이다. 오남용의 여지는 제도적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 잘된 거야’에서는 아버지가 선택한 안락사를 가족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데,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까지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네덜란드는 삶의 질 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국민의 4%가 안락사로 죽음을 맞는다는데, 올해 1월에는 병을 앓던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를 선택했다. 최근에는 중증 치매 환자의 안락사도 허용했다고 한다.극단적인 저출생 현상과 함께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살률은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 얼마나 나쁜가를 보여준다. ‘세바시’ 영상처럼 우울증 치료도 중요하지만,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안락사 허용은 필요하다. 그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안락사는 자살이 아니다.

2024-04-21

측정 수단의 진화와 활용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은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관리는 측정 불가능한 것에도 적용해야 하고 조직 내부에는 중요하지만 정량화할 수 없는 사안도 존재한다. 우수한 인재를 붙들어 두지 못한 나머지 사양길에 접어든 기업이나 산업이 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일은 아니지만, 불량률 등 눈에 띄는 수치보다 훨씬 중요한 기업의 생존 지표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발생한 과거의 것이다. 여기에 미래에 관한 것은 없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관한 것이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과거에 측정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현실에 적용하여 개선의 효과로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실시간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로 고쳐 불러야 되지 않을까 한다’최근 웨어러블을 통해 내 몸의 상태를 측정한 데이터를 살피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달리기에 매료되어 현재 달리는 속도가 얼마인지 심박수는 몇 구간인지를 눈으로 보며 체력을 가늠하고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며 실력이 느는 만큼 측정의 중요성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웨어러블을 통해 측정된 데이터를 휴대폰 디바이스를 통해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달릴 때 좌우 비대칭 정도와, 지면 접촉시간은 어떤지 수직진폭은 좋아졌는지 수시로 확인하여 훈련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데 스마트 기기는 아주 유능한 휴대 가능한 코치이다.실시간으로 측정된 달리기 정보를 볼 수 있으니 오버 페이스 염려가 없어 마라톤 풀코스 같은 장거리 달리기도 완주 확률을 현저하게 높여준다. 주자의 신체적 능력에 맞게 데이터를 정보의 형태로 가공하여 실시간으로 제공하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이렇듯 측정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때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보이지 않는 신체적 징후를 가시화된 형태로 피드백 받아 관찰하다 보니 웨어러블의 다른 데이터들도 관심 있게 보게 되는데 두 가지가 특히 유용하다. 하나는 수면의 질에 관한 것이고 스트레스 레벨에 관한 것이다. 수면을 잘 취하는 것이 혈당이나 심박수 등 몸의 컨디션에 큰 영향을 주고 조금만 부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와 심박수가 오른다는 것들이 놀랍게도 명확하게 표시된다.인공지능과 IoT가 이제 현실이다. 웨어러블은 그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간단하지만 너무도 유용하면서 확실한 효과를 제공한다. 배를 침몰 시키는 것은 배를 감싸고 있는 바닷물이 아니라 그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도록 놔둔 구멍 때문이다. 배가 구멍 없이 견고하다면 바닷물도 그저 배가 떠 있는 곳일 수 있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진 배라고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과 떠 있는 조건에 따라 침몰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구멍이 생기기 전에 알 수 있어야 징후를 측정할 수 있어야 바다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

2024-04-21

첫 영수회담… ‘증오의 정치’ 끝내는 계기 되길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취임 2년이 지나도록 회담 제안에 응하지 않았던 윤 대통령이 먼저 회동을 제안한 것은 이 대표를 국정파트너로 인정하고, 민주당과의 협치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으로선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함에 따라 민주당 협조 없이는 국정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나갈 수 없게 됐다. 이 대표로서도 차기대선 출마를 위해 제1야당 리더위치를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양측은 지난주 회담 성사 직후 의제 조율에 들어간 상태다. 최우선 의제는 ‘민생협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 민생협치의 핵심은 아마 민주당 주요 총선공약인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원’ 문제가 될 것이다. 이 지원금에는 대규모 예산(13조원)이 투입돼 조율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은 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과 전세사기 특별법, 제2 양곡관리법과 같은 현안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국무총리·대통령실 비서실장 후임 인선 문제가 협상 대상이 될지는 주목된다. 만약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정부인사 문제에 대해 조율이 이뤄질 경우 ‘거국 내각’ 구성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정국의 뇌관으로 작용할 예민한 쟁점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데다 여야 협치 무드가 어렵게 조성됐다는 점에서 의제조율 과정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 5월 임시국회 처리를 예고한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등이 대표적이다.윤 대통령 취임 이후 여소야대 21대 국회는 극한대립으로 일관하면서 우리 정치를 ‘정쟁과 증오의 장’으로 변질시켰다. 이번 영수회담을 계기로 다음달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22대 국회는 민생을 위한 건설적 정책논의와 초당적 협력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지금 서민들은 자고 일어나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로 인해 하루하루가 고되고 지친 상태다. 정부와 여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국민 삶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22대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2024-04-21

아스팔트 위의 생명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날의 변덕스러움은 짐작하기 어렵다. 곡우(穀雨)이자 혁명일이었던 4월 19일, 반팔과 반바지 차림의 청춘들이 길을 메우고, 하늘엔 옅은 황사가 찾아들었다. 창문 열고 질주하는 차량 행렬에서 가까이 다가온 여름 냄새가 짙어진다. 가슴과 등판을 서서히 적셔오는 땀방울이 교정(校庭)에 환하게 피어난 이팝나무 꽃망울과 엇박자로 교차한다.오후 7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다가오는 황혼이 하루해를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내보낸다. 거기서도 최소 30분 이상 기다려야 까만 어둠이 지상에 깔리기 시작하고, 옅은 어둠은 조금씩 짙어져 마침내 대기가 깊은 침묵에 휩싸인다. 그제야 밤이 시작된다. 불과 두 달 전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 날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경이로운 시간이 우리 곁에 있다.그렇게 화사하고 화려한 날들이 토요일 급변하더니 드디어 가느다란 이슬비가 내린다. 아주 느릿하고 가느다란 빗줄기가 서서히 대지를 적신다. 오는 듯 멈춘 듯 봄비는 오락가락 춤춘다. 탱고나 람바다 혹은 루뭄바가 아니라 우아한 왈츠로 봄의 정령(精靈)들을 적셔주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그네는 우산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것이다.늦은 하오 장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대문 근처에서 헉, 하는 소리가 폐부에서 절로 밀려 나온다. ‘아니, 저게 말이 되는 거야?!’ 혼잣말한다. 장에서 사들인 물품을 대충 내려놓고 사진기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대문의 좌우 담벼락에는 오래전부터 민들레며 지칭개, 광대나물 같은 봄풀 무리가 이리저리 뒤얽혀 살아왔다. 그런데, 이것은?!작년인가, 차고 넘치는 아스팔트를 대문까지 발라준 청도군의 선심 행정이 무색하게 뽀리뱅이가 돌연 얼굴을 내밀고 빗속에 우아하게 서 있다. 두툼하게 깔리는 아스팔트를 보면서 농촌에서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우점종(優占種)이 되다니, 하며 혀를 끌끌 찼더랬다. 그런데 저 여린 뽀리뱅이는 어떤 연고(緣故)로 아스팔트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단 말인가?!사람이든 동물이든 풀과 나무든, 모든 생명은 최적의 장소와 시기를 만나야 적절한 생장(生長)과 대물림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불가(佛家)에서는 ‘시절(時節) 인연’이라 한다. 우연히 만나 인연을 엮는 것도 시절 인연이지만, 가장 적절한 시공간에 두 대상이 마음을 열고 화합함으로써 최상의 인연을 맺는 것을 ‘시절 인연’이라 부른다.그런데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아스팔트 위의 뽀리뱅이에서 시절 인연을 읽어내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생명의 놀라운 자생력과 놀라운 끈기와 투쟁력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이런 식으로 계절이 바뀌고 다시 가을과 겨울이 지나면 녀석은 색깔과 형태와 향기를 잃고 스러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본디 목표 지점 가운데 하나인 종족 보존에는 성공할 것이다.아스팔트에서 솟아난 뽀리뱅이를 보면서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80억 호모사피엔스를 잠시 떠올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절 인연을 맞아 환하고 아름답게 나름의 운명과 우주와 만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봄비 속의 상념이 깊어가는 봄날이 고요하게 지나가고 있다.

2024-04-21

담배와의 전쟁

우정구 논설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밝힌 한국의 흡연율은 15.9%(2022년)다. OECD 평균과 비슷하다. OECD국가 중 흡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튀르키예로 28%다. 흡연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아이슬란드로 7.3%다.한국은 남성 흡연율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남성은 27.8%인데 반해 여성은 3.9%다. 남성 흡연율로만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8번째다. 우리나라는 2015년 2500원하던 담뱃값을 4500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당시 OECD 평균보다 높은 흡연율을 낮추고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조치라 했다. 그러나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다소 논란이 있다.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감소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데 별반 이론이 없다. 그러나 소비자 물가가 오르면서 지속적 효과보단 반짝효과에 그친다는 견해가 더 많다. 그럼에도 흡연율을 줄이는 데 각국은 담뱃값 인상을 유효한 정책으로 활용한다.지금 세계는 흡연과의 전쟁이 치열하다. 담배의 유해성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을 펴는 나라로 멕시코가 꼽힌다. 멕시코는 거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하고 있다. 광고는 물론 가게에 담배를 진열하는 것도 금한다. 가정집과 같은 사적 공간에서만이 흡연이 가능할 정도다. 영국이 이보다 더 강한 금연법을 추진해 화제다. 2009년생부터 평생 담배를 못사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법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간섭한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아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담배의 심각한 유해성에 반해 아직 담배를 금한 나라는 없다. 담배와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1

대구 노후 주택지 통개발, 부동산 경기가 관건

대구시가 대규모 노후 주택지 통개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마스터플랜의 대상지로 범어, 수성, 대명, 산격지구 4곳을 꼽았고, 이곳을 대구 미래 50년을 상징하는 미래공간으로 새롭게 만들겠다고 했다. 조성후 50년이 지난 노후 주택지에서 발생하는 주차난, 쓰레기 무단 방치, 편의시설 부족 등의 문제를 통개발을 통해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기존의 소규모 개발 방식에서 나타나는 주변지역과의 부조화, 조망권, 일조권 등의 문제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대구시의 설명이다.노후 단독주택지의 재개발을 위해선 바람직한 정책이다. 시가 용적률을 높이는 종 상향만 할 것이 아니라 개발 방향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민간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대감도 크다. 시는 민간이 주도하는 개발을 위해 규제는 최소화하고 인센티브는 최대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대구시의 통개발 플랜에 대해 민간업계 반응은 대체로 신중하다. 대구시의 계획이 좀더 구체화돼야 심도있게 검토하겠다는 태도다. 또 장기적 관점에서는 바람직하나 대구의 적체된 미분양의 해소가 선행되지 않으면 민간 참여가 쉽지 않다는 반응도 보였다.대구지역은 지난해말 기준 1만 가구가 넘는 미분양 물량이 남아 있다. 전국 미분양 6만여 가구의 17%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악성물량으로 분류되는 준공후 미분양도 전국의 10% 수준이다.대구지역은 이미 수년째 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빠져 있다. ‘미분양 무덤’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다. 청약을 미루고 있는 업체도 많다. 준공후 분양으로 전환해도 분양이 안돼 일부 업체는 민간임대로 전환하는 곳도 등장했다. 공급이 부족한 서울과는 상황이 달라 대구지역 부동산 경기부터 활성화 시켜야 통개발 플랜도 효과를 낼 수 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대구시의 통개발 플랜은 장기과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아니면 공공이 개발에 나서야 하나 재정 문제가 쉽지 않다. 대구시의 통개발 플랜은 바람직하지만 부동산 경기회복이 선결돼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2024-04-21

지방에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강영석 상주시장 20·30대가 교육, 일자리, 기회를 쫓아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방은 고령화 문제에 직면했다. 젊은 농부가 없는 농촌에는 농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수도권 쏠림 현상과 저출산 문제로 지방소멸이 가시화 되고 있다.경북도는 올해를 ‘K-U시티 프로젝트 실행의 해’로 정하고, 청년 지방 정주 시대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상주시도 ‘K-U시티 프로젝트’에 동참을 선언했다. 상주시는 시의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인 이차전지를 특화 분야로 지정하고 지난해 12월 경상북도와 관련 업무 협약을 맺었다.경북대, 한국폴리텍대, 상주공업고, 상산전자고는 인력 양성 교육기관으로, SK머티리얼즈그룹포틴과 새빗켐, 아바코 등 이차전지 기업들은 지역 특화 기업으로 ‘상주시 이차전지 U시티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이와 연계해 청년들의 미래가 보장되는 기업 투자와 인력양성, 그리고 안정적인 정주 여건을 마련코자 관련 사업들을 추진 중이다.기업 투자 부분에서는 청리일반산업단지 인근을 확장, 60만 평 규모의 이차전지 클러스터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인력 양성 부분에서는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와 상산전자고등학교, 상주공업고등학교와 연계한 지역인재양성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SK머티리얼즈그룹포틴과, 새빗켐, 아바코 등 이차전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맞춤형·일체형 인재를 연간 131명씩 2032년까지 1,230명 이상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경상북도교육청과 함께 추진 중인 상주형 미래인재 교육플랫폼도 조성한다. 상주시는 시의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자료실, 인문학 카페, 실내스포츠실, 자전거 공방, 야외쉼터 등을 갖춘 ‘온마을 아이들 3in1 스테이션’을 조성할 계획이다.예비 귀농 청년을 위한 지역 탐색·교류 프로그램 운영 및 청년 복합문화거리를 조성해 청년들의 문화·사회 커뮤니티 활동 기회를 확대해 나간다.지역에 정착하려는 청년들에게 거주 시설을 단기 제공해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는 청년드림하우스도 신축한다. 특히, 지역 현안 해결과 지방소멸 대응방안으로 ‘리빙랩(Living lab)’을 접목하고 있다.현재 우리나라는 각 지역에서 다양한 리빙랩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일터와 삶터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생산성 강화, 안전강화, 생활편의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신규사업 발굴과 그에 따른 성공사례들이 속속 공유되면서 리빙랩은 ‘현장기반 문제 해결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상주시도 마을리빙랩 사업 추진을 위한 지역 리더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청년 인구감소, 저출생, 고령화로 대두되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에 대한 해법을 지역사회 내에서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주민주도형 마을리빙랩’을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이미 상주시 내 24개 읍면동에서 각 2명씩 48명의 마을활동가 교육생 모집을 마무리했고, 이번 달 12일 교육생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 12개월 과정으로 단계별 교육을 진행한다.이렇게 양성된 마을활동 전문가에게는 마을사업 추진을 적극 지원한다. 상주시는 교육 전 과정을 이수한 마을활동가 중 20명을 선발해 우수마을 10개소에 각 마을별 사업아이템 발굴 및 분야별 전문가 컨설팅을 제공, 마을활동 전문가들의 사업계획을 구체화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사업화 자금 2억원을 투입한다. 기존의 주민자치회와 마을리빙랩을 결합해 2025년에는 마을리빙랩을 정착·확산할 방침이다.상주시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여긴다면, 시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청년들의 정착과 생계, 활력을 돕는 중장기적 청년 정책으로 청년들의 꿈을 지원 사격하기 위한 씨앗을 뿌렸고, 이제 싹을 틔웠다.마을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마을리빙랩은 마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상주시의 혁신을 이끌 수 있다.이 같은 실험은 앞으로 상주시 곳곳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며, 이것이 지방소멸에 대응할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2024-04-21

기막힌, 암호

“딩동”휴대폰 벨이 울리자 아흔의 아버지 얼굴이 환해진다. 돋보기를 끼고 휴대폰 문자를 읽더니 고개를 들어 거실 벽을 쳐다본다. 아버지는 웃음을 띤 얼굴로 휴대폰 자판을 누른다. 더듬더듬 글자를 찍어 넣는 아버지 손이 분주하다. 도대체 누구에게서 온 문자이기에 아버지 낯빛이 저토록 밝아진단 말인가?“나도 1번이다”아버지에게 나는 늘 1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또 다른 1번이 생겼단 말인가. 아버지는 문자를 발송하고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잠시 후, ‘딩동’하고 벨이 또 울렸다. 이번엔 ‘2번이에요’라고 들어온 문자에 찍힌 이름을 보고, 나는 눈물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결혼 후에도 음악학원을 하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냈다. 몸과 마음이 피로에 지쳐있을 즈음, 아이까지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면 동화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리라 다짐했던 각오는 먼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가 20개월 쯤 되었을 때 어린이집에 보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머니, 아이가 너무 울어요. 오늘은 그냥 데리고 가셔야겠어요.”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아이를 억지로 떼어내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는 조금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날마다 내 마음을 찢어 놓았다. 그날 나는 아버지께 부탁을 했다. 아이를 보고만 온다던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놀고 있는 많은 원아들 가운데 아무리 찾아도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구석구석 다니며 찾아보니 혼자서 벽만 쳐다보고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내 이제부터 경로당에 안 가고, 니 새끼 봐 줄 테니 걱정 말고 일해라.”아버지는 그날부터 아이를 돌보았다. 장기도 가르치고, 화투도 가르치고, 자전거도 가르쳤다. 함께 고구마를 심었고 구워 먹기도 했다. 강나루에 업고 가서 돌 던지기도 하고, 기차도 타러 가고, 함께 버스를 타고, 동물 시장에 가서 토끼도 사 왔다. 뻥튀기를 사서 들고 공원으로 가서 비둘기에게 던져주는 것도 가르쳤다. 아이와 할아버지, 둘 사이에는 놀이가 하나씩 둘씩 늘어갔다. 놀이에 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다.“오늘은 1번 하고 놀까?” “아니 3번”1번은 자전거 타기고, 3번은 비둘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아버지는 삶의 무료함을 아이를 통해 달랬고 아이는 아버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그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들은 한 달에 한, 두 번 집에 온다. 그런데 아흔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하더니 청각 장애 판정을 받았다. 아이가 아무리 많은 말을 큰 소리로 해도 다 못 알아들으신다. 할아버지와 소통하고 싶었던 아이는 칠판을 하나 사들고 와서 무언가 적어두었다. 김경아 작가 1. 사랑해요. 2. 보고 싶어요. 3. 진지 맛있게 드세요. 4. 자전거 타실 때 차 조심 하세요. 5. 이번 주 토요일에 갈게요.아이는 어릴 때, 놀았던 기억을 더듬어 할아버지와 소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연구했던 것이다.“딩동” “할아버지, 2번이에요.”아이가 아버지께 보낸 문자를 보고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손자와 할아버지의 기막힌 소통, 그것은 숫자를 이용한 문자 메시지였다. 1번부터 5번까지 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문자가 올 때마다 칠판을 확인했다. 아버지는 더듬거리며 ‘나도 2번이다’라고 찍어 넣고 있는 중이다.노인 냄새난다고 아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들려오는 요즘이다. 예사로 보았던 칠판의 숫자들, 아버지에게 휴대폰 문자는 손자를 곁에 두고 어루만지는 것만큼 기쁜 일이 되어 있다. 그새 또 문자가 울린다. 5번이란다.

2024-04-21

범죄자들 전성시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4·10 총선 기간 중에 원희룡 후보의 유튜브를 자주 보았다. 소위 험지로 불리는 인천 계양 을 지역구를 자원한 원 후보는 가장 모범적인 선거운동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수능시험 전국 수석을 한 수재답게 선거운동도 점수로 매기자면 만점에 가까웠다. 후원회장을 맡은 이천수 축구선수와 함께 지역구를 샅샅이 훑고 다니는 모습은 적지 않은 감동이었다. 국회의원 3선에다 제주지사를 두 번이나 한 정치경력 중에 한 번도 범법이나 비리에 연루된 적이 없거니와 선거 공약도 시험공부를 하듯 철저하게 준비한 것을 알 수 있었다.반면 경쟁 상대인 이재명 후보는 모든 면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권력과 사법리스크 방탄용으로 국회의원 배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지역의 발전이나 민생 따위는‘하는 척’만 하는 것 같았다. 재판을 받으러 다니랴, 다른 후보들 유세장에 가랴, 자신의 선거에는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4차례나 되는 전과에다 10여 가지 범죄 혐의로 수사·재판 중인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는 것은 언감생심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계양을 주민들은 이재명을 선택하는, 도저히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그런 현상이 비단 그 한 곳 뿐이 아니라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불거진 심각한 문제점이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2년 형을 받아서 당연히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할 사람이 당을 만든 것도 기가 찬데, 2년 형을 받은 사람과 온갖 비리·부정의 연루자들을 영입한 그 당에 표를 몰아주어 12석이나 차지한 것은 여간 경악스러운 노릇이 아니다. 그 밖에도 범죄 혐의로 수사 중인 사람들 다수가 당선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속출했다. 그들은 당선이 되자마자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는가 하면 사법부를 겁박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바야흐로 범죄자들의 전성시대가 된 것이다.대한민국은 엄연히 삼권분립을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다. 입법, 사법, 행정부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는데 삼권분립의 목적이 있다. 국회의 다수당이 되었다고 안하무인으로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좌지우지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저들의 만행과 폭주가 더 이상 자행되지 않도록 사법부가 나서서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범죄자들이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지금 수사·재판 중인 사건들은 법에 따라 신속·엄정·공정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권력과 이념에 좌고우면하면서 엄정하고 공정한 법집행을 하지 못한 사법부의 책임이 크다. 저들이 남발하는 특검법이나 탄핵소추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고, 국회에서 통과하더라도 헌재에서 그 정당성 여부를 판결하는 것이 법치다.국민들이 지도자를 잘못 선택해서 몰락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이 그랬고, 스탈린 같은 공산주의자를 지도자로 선택한 나라들도 모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온갖 비리와 부정에 연루된 범죄자들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짓이다. 국민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2024-04-18

봄날의 새로운 변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이번 봄날씨가 무척 덥단다. 기온은 25도를 넘을 것 같고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영향으로 뿌연 대기는 미세먼지 ‘매우 나쁨’으로 예보되고 있다. 그 치열하던 선거 열풍도 사라지고 난 거리에는 벚꽃도 다 져버렸다.4월의 달력을 다시 살펴본다. 많은 기념일이 있고, 특히 우리들의 기억을 불러내는 큰 사건이 많다. 4·3 제주 사건의 희생자 추념일도 있고 16일의 세월호 사건은 아직도 명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지 못한 채 진도 해상에서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단원고 학생 등 300여 명의 원혼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19일은 4·19혁명 기념일이다. 1960년 3월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의거(義擧), 크게 말해서 민주혁명이다.혁명(revolution)은 사회적 가치체계가 변화하였거나 그러한 변동을 야기시키는 과격한 사회적, 정치적 변동을 의미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해방과 함께 민주주의 교육이 실시되어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변화시켰고 삶의 도시화로 기존 질서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경우가 많아졌다.4·19의거와 같은 반정부시위가 민주항쟁으로 번져서 고교생과 대학생 약 3만여 명이 나라를 제2공화국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큰 선거를 치르고 나면 어디에선가 사회 변화가 꿈틀거릴 수 있다. 이 혁명이란 말은 꼭 정치적인 것에만 쓰는 것이 아니고 산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혁신들을 언급하며 우리의 뇌리에 박혀있다. 요즘 사회는 3차 디지털 혁명을 거쳐 AI와 빅데이터 등 인터넷 기술 발달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며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선거 결과가 마음을 질퍽거려 밝은 길을 달려봤다. 지난 일요일,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에서는 무형문화재 전승공연이 있었다. 포항무형문화재이수자협회가 포항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이화 도화 만발하다’라는 주제로 가야금 병창, 판소리, 살풀이춤, 농악뿐만 아니라 택견까지 우리의 고유문화를 이어 나가는 행사였다. 한여름 한겨울을 빼고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오후에 ‘신라마을’ 잔디밭에서 펼치는 공연이라, 많은 관객이 한옥의 마루에 걸터앉아 흥을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귀비고(貴妃庫)에도 내려가 연오랑세오녀의 전설도 살펴보며 포항시의 축제 활성화 노력을 헤아려 봤다.해안도로를 달려 호미곶 유채밭에 가보니 14만 평의 노란 물결 속에 휩쓸리는 상춘객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가득하다. 가을에는 메밀꽃과 해바라기가 아름다운 들판을 만들게 하는 것도 신선한 변화이려니 호미곶광장으로 가서 ‘상생의 손’을 본다. 이번 주말 20일부터 이틀간 제13회 호미곶 돌문어 축제가 열린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활문어 경매 쇼와 문어잡기 체험, 가요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으니 가족들과 함께 호미곶을 찾아 바닷바람 맞으며 유채꽃 향기도 듬뿍 맡아주기를 기대해 본다.호미곶 막걸리 한 병 사서 돌아오는 길, 붉은 저녁노을이 영일만을 가득 채운다. 푸른 동해, 영일만과 호미곶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어 옛 철강 도시 포항의 위상을 뛰어넘는 관광 혁명이 일어나기를 염원해 본다.

2024-04-18

유영하와 대구·경북

홍석봉 대구지사장 먼저 유영하 변호사의 국회의원 당선을 축하한다.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가진 의문 중 하나다. 유영하가 지역민에게 어떤 의미인지. 유영하는 대구와 달서구에 과연 무엇인가.그는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달서갑 공천 신청을 했다. 달서갑과는 전혀 연고가 없다. 전형적인 낙하산이고 전략공천이다. 그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시각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유 당선인은 2004년 경기 군포에 출마, 고배를 든 후 2020년 21대 총선까지 매번 국회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법률 참모로 발탁돼 핵심 측근이 됐다. 2016년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변호인을 맡은 후 현재까지 최측근 역할을 해 왔다.그는 202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달성 사저에 둥지 틀 때 함께 따라왔다. 이때부터 대구 정치판과 연을 맺는다. 그해 4, 5월엔 대구시장 경선과 수성을 국회의원 재·보선 경선에 출전, 탈락하는 쓴 맛을 봤다. 하지만,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대구에서 달서갑 공천을 받았다. 결국, 정치 투신 20년 만에 금배지의 한을 풀었다. 7전 8기 끝에 이룬 결실이다.그는 왜 대구에, 달서갑에 공천을 신청했나. 당은 왜 공천장을 주었나. 그는 박근혜와 함께 대구에 왔고 지역 정치권에서 기회를 찾았다. 박근혜 정서에 힘입어 자신의 숙원을 풀었다.국민의힘 공관위 발표에서 공천 배경을 짐작케 한다.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당의 입장이었다. 지역민들도 처음에는 웬 뜬금없는 공천인가 싶었지만, 용산과 당 입장에서 박근혜의 형편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박근혜는 천막당사 시절 신한국당을 지켜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다. 보수를 일으켜 세운 주인공이다. 대구·경북은 국정농단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감옥살이까지 한 그를 보듬고 품에 안았다. 과실도 있지만, 연민을 느꼈다. 지역민의 정서였다.박근혜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이 지역민들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 이 연장 선상에서 달성 사저 안착을 반겼고 마음의 쉼터가 되길 바랐다.유영하는 온전히 박근혜 후광을 입었다. 본인은 발끈할지 몰라도 지역 일각에선 박근혜를 이용,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총선 과정에서도 그는 지역민과 뭔가 겉도는 느낌이었다. 타 지역구 후보 지원으로 눈총받았다. 지역민에겐 ‘밉상’이 됐다.유 당선인은 박근혜와 지역에 대한 의리와 초심을 지켜야 한다. 이를 잃는 순간 평가와 지지가 일순간 돌아설 것이다. 지역 심부름꾼과 나라의 일꾼으로 지역구 및 입법 활동에도 성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지역민과의 스킨십을 늘려야 한다. 유영하가 대구·경북에서 어떤 의미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이제 보여줘야 할 때다. ‘대구의 미래, 달서의 새 희망’이 되겠다는 선거 구호가 빛바래지 않길 바란다.

2024-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