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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빛산업동맹, 영호남 경제협력 새지평 열길

대구시와 광주시가 17일 달빛산업동맹의 본격적인 추진을 위한 실무추진단 회의를 전북 남원에서 가졌다. 지난 2월 달빛철도가 경유하는 영호남 10개 광역·기초단체장은 광주에서 특별법 국회 통과를 축하하는 모임을 갖고 그 자리서 영호남 상생과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남부거대경제권 조성 협약서에 서명한 바 있다. 이날 회의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양 도시 실무단 모임이다.2013년 대구시와 광주시가 상생발전을 도모하며 맺은 달빛동맹이 이제는 남부경제권 구축을 위한 산업동맹으로 이어지면서 두 도시의 역할에 무게감이 더해지고 있다. 두 도시는 수도권의 노골적인 반대에도 상호협력으로 달빛철도 특별법 제정을 일궈낸 바 있어 두 지역이 구상하는 남부거대경제권 계획도 상당한 기대감을 준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인구와 산업 등이 집중되는 수도권 일극체제다. 지방의 경제는 고사 직전에 몰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의 경제가 살지 않으면 국가의 기형적 성장으로 국가의 존립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대구시와 광주시가 협력하는 남부거대경제권 계획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수도권에 쏠리는 경제의 힘을 지방으로 분산시켜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어서 정부의 국정 방향과도 일치한다.이날 회의에서는 달빛철도의 조속한 건설과 달빛철도 연계 달빛첨단산업단지 조성, 국가 AI·디지털혁신지구 구축, 2038년 하계아시안게임 성공적 유치 등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가 있었다 한다. 남부경제권 구축에 대한 논의가 광역자치단체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다.남부경제권 조성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인근 광역단체의 협력과 정치권의 관심도 이끌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은 필수다. 두 도시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준비와 노력으로 남부경제권 조성이 성공리에 진행되길 기대한다. 달빛고속철도가 완성되면 두 도시는 한 시간 거리다. 산업뿐 아니라 관광 등 많은 분야에서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다. 두 도시 간의 협력이 경제발전의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4-04-18

시중은행 준비 大邱銀, ‘내부통제’가 우선 과제

금융위원회가 그저께(17일) 은행예금 연계 증권계좌 1천657건을 고객 명의로 임의 개설한 대구은행에 대해 해당 업무(은행예금 연계 증권계좌) 정지 3개월(중징계)과 20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고객 계좌 임의 개설에 가담한 영업점 직원 177명에 대해서는 감봉 3개월·견책·주의 등의 신분 제재조치를 했다.다행히 금융위 중징계가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다. 금융위는 그저께 회의에서 관련 안건을 아예 다루지 않았다. 대구은행으로선 그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징계 건이 결론나면서 시중은행 전환에 속도를 붙일 수 있게 됐다.지난달 28일 취임한 황병우 DGB금융그룹 회장(대구은행장 겸임)은 대구·경북을 비롯해 전국 경제계와 증권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사상 처음으로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는 해인 만큼, 그룹 CEO의 비전과 역량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황 회장이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시중은행 전환 이후에도 조직을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해 은행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어떤 조직이든 신뢰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내부통제시스템을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특히 대구은행은 시중은행으로 전환되면 영업 범위가 전국으로 확대돼 내부통제시스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지난해 DGB금융이 내부통제혁신위원회를 신설하는 한편, ‘책무구조도’를 마련해 임원별 책임 소재를 구체적으로 부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책무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은 자신의 소관 업무에 대해 내부통제 기준의 적정성, 임직원의 기준 준수 여부 및 기준의 작동 여부 등을 상시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다.그동안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은 다양한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강력한 내부통제를 다짐했지만, 신뢰의 근간을 흔드는 횡령사고 등이 빈번하게 터져 고객들에게 충격을 줬다.대구은행 임직원들은 이번 기관 중징계를 계기로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해 철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유사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4-04-18

봄의 불청객

우정구 논설위원 온갖 봄꽃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봄은 계절의 왕이라 부를만하다. 많은 시인들이 봄빛의 따스함과 형형색색으로 갈아입는 봄날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했다.경주가 고향인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윤사월’이라는 짧은 문단의 시 속에 앳 된 한 소녀의 애틋한 그리움을 4월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려냈다.봄이 밝고 희망찬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처럼 불청객도 있게 마련이다. 봄에 찾아오는 불청객 중에 으뜸은 황사다.중국 내몽골 고원과 고비사막 등지에서 발생하는 모래 폭풍과 흙먼지가 우리나라로 날아와 황사가 된다. 중국서 오는 황사는 우리나라에서는 4월이 가장 많다.특히 모래바람은 중국 전역을 돌면서 다양한 매연과 화학물질, 산성비 등 유독성 물질과 합쳐져 우리나라에 오게 됨으로써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알레르기 질환은 물론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반도체와 같은 정밀기계의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지난 17일 경북에는 황사 위기경보가 발동했다. 중국에서 넘어온 황사로 당분간 대기질이 크게 떨어질 것 같다는 일기 예보다.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로 황사 폐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에는 황사 일수가 무려 23.1일을 기록한 바도 있다.황사의 역사는 삼국시대 기록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토(雨土)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 때는 한양에 흙비가 떨어졌다는 실록의 기록이 보이기도 했다.봄의 불청객인 황사가 기승을 부릴 시기이다.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실내서는 먼지가 들어오지 않게 창문을 잘 닫도록 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18

봄과 여성 갱년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다. 봄은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다.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새 학기가 시작된다. 많은 것들이 다시 시작된다. 겨울 내내 추웠던 날씨가 풀렸다 다시 추웠다 하면서 인체가 외부의 기온 변화에 대응하기 힘들고 면역이 떨어진다. 일조량은 겨울보다 많이 늘게 되어 급작스러운 일조량의 변화는 사람의 감정을 변화 시킨다. 다양한 주변 상황이 나의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하게 만든다.이렇게 봄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갱년기로 고생하는 여성은 계절 중 봄이 특히 괴롭다. 날씨의 변화가 심할수록 감정도 평온했다 뛰었다 가라앉았다 널을 뛴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열이 훅 오르고 땀이 주루룩 흐른다.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을 쉬게 되고 두근두근 거린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증상은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적은 여성은 덜하지만 증상으로 고통받는 것은 동일하다.갱년기는 폐경 전부터 폐경이 끝난 후까지를 말하지만 갱년기 증상은 월경을 하는 젊은 여성에게도 있고 꼬부랑 할머니에게도 있다. 아직 갱년기가 아닌데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 한다고 한다. 여자들의 갱년기 증상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생기는데 꼭 폐경이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나 면역력 저하 또는 신체 기능의 저하 등으로 호르몬의 변화가 생기면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봄과 같이 계절의 변화가 심하면 인체도 그에 따라 몸과 마음의 변화도 심해진다. 갱년기 여성뿐만 아니라 갱년기가 아닌 여성들도 같은 증상으로 고통 받는다.갱년기 증상을 하나씩 보면 화병의 증상과 다르지 않다. 갱년기 증상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첫 번째로 우선되어야 할 것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여자들의 스트레스는 대부분 가정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좋든 싫든 남편 혹은 시어머니와의 불화가 가장 많고 이에 가슴이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가슴을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남편은 아내를 이해를 해주고 대화를 해야 한다.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고 아내를 챙기고 보살피면 여성들은 갱년기를 편하게 지나간다.둘째는 운동을 해야 한다.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남자들보다 근력이 떨어지고 몸이 약하다. 같은 병이 나도 몸이 건강하고 근육이 많고 튼튼하면 덜 아프고 빨리 회복이 된다. 귀찮고 우울하다고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는다. 상황만 악화 될 뿐이다. 수영 헬스 걷기 달리기 에어로빅 탁구 등등 다양한 운동이 있으니 어떤 것이라도 시작을 해야 한다.셋째 음식의 질을 바꿔야 한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신선한 야채와 고기 그리고 적당한 과일을 섭취하면 좋다. 탄수화물은 밥 두 세 숟갈 정도 먹으면 제일 좋다. 적게 먹으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건강해진다. 인체의 모든 기능이 살아난다.한의원에 방문해 갱년기 보약을 먹거나 그에 맞는 약침 시술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교감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약재들로 구성된 한약을 먹거나 교감신경을 조절하는 한방 약침 시술을 받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모두 다 하면 제일 좋다.

2024-04-17

학습루틴 만들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작심삼일은 오랜 나의 루틴이었다.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새 다이어리를 얻어 새로운 계획을 야심차게 적지만 한 달을 채 못 넘기고 끝이다. 새 계획을 적어 벽에도 붙여두지만 작심삼일이다.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아예 못 지킬 계획을 세웠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며칠 못가 흐지부지된 것만은 확실하다. 까짓 3일만에 다시 작심삼일하면 되지라며 뻔뻔한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바쁜 일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모면하고자 하지만 끈기가 없는 성격 탓을 자책하면서도 좀처럼 고치지 못한 채 살았다.그런 내가 달라졌다. 지난달 첫날부터 시작한 수영과 서예공부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잘 실행하고 있다. 일단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시간 없어 못한다는 핑계를 쓸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나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내어 오랫동안 나의 단점으로 꼽았던 작심삼일 징크스를 깨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수영은 30년 전에도 한 번 시도한 적 있으나 약 석 달 정도 다니고 그만두었다. 수영 시간 앞뒤로 챙길 게 많아 번거롭다는 핑계거리가 있었지만 끈기 부족 탓이 더 컸다. 퇴직 후에 다시 시작해보리라 했으나 코로나로 수영장이 문을 닫아 시작하지 못했다. 최근 집 부근의 수영장이 재개장해서 곧바로 등록했다. 수영을 평생 할 운동으로 꼽겠다는 의지로 매일반으로 등록했다. 옛날 배운 적이 있어 몸이 기억할 것이고, 쉽게 잘할 수 있으리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한 달 이상을 초급반에서 물 먹고 숨가쁘긴 하지만 결석 않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붓글씨 공부 역시 나의 은퇴 후 버킷리스트였다. 마침 대구한글서예협회장이신 최민경 교수님을 만난 고마운 인연으로 작년 7월부터 한글서예를 배우게 되었으나 2주만에 중단했다. 예의 그 못된 버르장머리, 작심삼일이 발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손녀 유치원 등하원, 허리 통증 등 이런저런 핑계가 생겨 버렸다. 그러나 3월부터 작심하고 시작하였다. 1주일 두 시간 공부하고, 집에서 매일 한 장씩의 숙제를 꼬박꼬박 챙기는 습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배우고 익힌다는 뜻의 학습(學習)은 논어의 첫 문장 학이시습(學而時習)에서 나온 말이다. 학습의 반대어는 학문이나 기예를 가르친다는 뜻의 교수(敎授)다. 대학에서 전문학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학습보다 교수하면서 40여 년을 살았다. 물론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야 했지만 학습이 목적이지는 않았다.오로지 나의 몸을 위한 수영을 학습하고, 나의 글쓰기 기량을 위한 학습을 해보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습(習), 익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 런던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좋은 습관이 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66일이라고 한다. 물론 개인차가 상당하여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18일만에, 못하는 사람은 254일이나 걸린다고 한다. 이제 시작한 지 달 반이 지났고 아직은 순항 중이다. 내가 평균에 드는 사람이면 좋겠다. 66일이 지나 수영과 서예가 좋은 습관이 되어 평생 가면 더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다. 작심삼일은 훌쩍 지났으니 왠지 조짐은 좋다.

2024-04-17

명태 껍질

피귀자 수필가 ‘여인과 노인’이라는 거장 루벤스의 그림 앞에 섰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가슴을 빨고 있는 부자유스러운 애정 행각에, 먼저 불쾌한 감정을 노출하기 일쑤라고 한다.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반나체의 노인을 통렬히 꾸짖던 사람들에겐 노인과 이성을 잃은 젊은 여인이 가장 부도덕한 인간의 유형으로 비춰졌을 테니 말이다. 삼류 포르노 같은 그림은 알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보게 된다.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가끔 일어나고 그 끝은 대개 아름답지 못했던 까닭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커다란 가슴을 내놓고 있는 그림 속의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이 노인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고 로마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둔 후 ‘음식투입금지’ 명령을 내렸던 것이었다.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었고, 그의 딸은 해산한지 며칠 되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감옥에 찾아갔던 것이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엔 핏발이 섰으리라.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금 밖으로 사라지려는 아버지. 여인은 가슴을 풀고 불은 젖을 아버지께 물렸다는 것이다. 무엇이 부끄러웠겠는가.마지막 가시는 아버지에게 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의 장면이었던 것이다. 부녀간의 사랑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으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아끼는 그림이라고 한다.부도덕한 작품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도 설명을 듣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명화를 감상한다. 사람들은 종종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본질을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 옛날 어른들은 종종 본질을 호도할 때 ‘눈에 명태껍질이 씌었나.’라고 나무라기도 하였다.지인 중에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나 꿀 등을 파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알맞은 값을 받을 판로가 부족하다보니 부탁을 받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려면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고 가끔 물건을 전달해줘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사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물건을 시중보다 싸게 살 수 있고, 파는 사람들은 가계에 도움이 되니 서로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자주 연결을 해주었다. 할 수 있는 한 적극 이어주던 어느 날 깜짝 놀랐다.그렇게 하면서 중간에서 물건을 얻는 등 이득을 취하리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의 겹이 두꺼울수록 그림자의 깊이는 깊어지는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 오해를 받고 보니 사람 마음은 모두 같지 않음이 더 서글펐다. 수십 년 사귄 친구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되돌아 보였다. 사람들은 소개를 위해 입을 떼는 자체를 귀찮아하거나 자신에게 이로움이 생기지 않는 일에는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음도 알게 되었다.생각과 믿음에도 숨이 있다. 어떤 생각에는 숨통이 트이고, 어떤 생각에는 숨이 막힌다. 내가 한 행동처럼 좋은 일 한답시고 나서는 이는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닐까. 한번은 소개를 해주었을 뿐인데 우리 집에 보낸 걸로 착각하는 해프닝으로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 말의 독한 상처에 베인 이후로 나서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또 딱한 사정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옛날엔 그냥 버렸던 마른 명태껍질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콜라겐이 많다고 알려지자 기호식품이 되었다. 튀기거나 볶은 반찬은 맛도 괜찮은 편이다. ‘눈에 명태껍질을 발랐나’라고 질책하던 말의 뜻은 아무리 얇을지라도 눈에 막을 치면 사람의 품성이나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이나 사물의 이치, 사람사이의 모든 관계에도 해당되리라. 눈에 불필요한 명태껍질을 떼고 교만과 아집과 편견을 버리면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내뿜는 세상의 향기들이 발을 헛디뎌 사라지지 않도록.

2024-04-17

근대 건축물, 계산성당

계산성당 경상감영과 서남쪽으로 약 600미터 떨어진 약령시장 일대는 대구의 구 중심가이자 근대 종교가 일찍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서상돈 고택·이상화 고택과 같은 근대 건축물이 제법 남아있으며, 지금은 대구 근대골목투어로 더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2개의 종탑이 하늘에 닿을 듯 솟은 아주 오래된 성당-계산성당도 만나볼 수 있다.우리나라에 성당이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886년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된 다음이다. 주로 천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되었으며,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종교적 활동을 위한 기반과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쉽게 말해 자생이 가능한 성소의 마련, 즉 성당 건축에 힘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를 이용하여 한옥 양식으로 지었는데, 이는 소자본으로 기존의 건물을 개조하기 좋으며, 좌식 생활에 익숙한 신도들에게 친근함을 줄 수 있는 편리함이 있었다.지금의 계산성당도 본래는 한국식 십자형 성당(성모성당)이었다. 그러나 1901년 2월 대구에 닥친 강진에 의해 축성 1년 만에 화재로 소실된다. 당시 추위에 얼어버린 성체등(기름등) 대신 촛대를 세워놓았던 것이 화재의 원인이었다. 만약 성모성당이 소실되지 않았다면 국내 유일의 그리스 십자형 평면에 팔작 기와지붕을 올린 45칸짜리(약 100평) 독특한 근대성당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듬해(1902) 르베르 신부는 신축 성당 건축에 돌입한다.계산성당은 르네상스적 성향이 남아있는 고딕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불린다. 건축양식을 명확히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고딕양식은 ‘뾰족하고 수직적인’ 것이 특징이다. 뾰족한 아치창문, 뾰족한 첨탑, 수직적인 지지대가 하늘에 닿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또한 신이 하늘에서 지상을 바라볼 때 성소가 잘 보이기를 열망하기도 했다.그래서 고딕양식의 교회 평면도는 십자가 모양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스테인드글라스로 경이로움과 성스러움을 더해 종교적 존엄을 표현하였다. 계산성당도 2개의 높고 뾰족한 첨탑과 라틴십자가 모양의 평면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가 반영되어 있다. 반면에 르네상스 양식은 일명 ‘황금비율(1:1:2)’이 특징이다.황금비율은 서양에서는 고대 이래로 가장 이상적인 비례로 여겨지며, 절대적인 미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황금비율이 반영된 르네상스 건축물은 좌우가 대칭적이며 조화롭고, 아기자기한 지붕이나 동글동글한 장식이 건물에 붙어 있다. 계산성당은 전면의 종탑과 측면의 출입구가 모두 1:1의 비율로 정사각형의 안정적인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익랑(십자가 모양에서 짧은 부분) 내부는 황금비율(1:1:2)이다.계산성당은 동서로 긴 건물로 주 출입구인 종탑은 서쪽의 서성로에 인접해 있다. 2개의 종탑 베이에는 각각 반원형의 아치창이, 그 중앙의 박공에는 화려한 장미창이 설치되어 있다.그 아래 출입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서면 삼랑식 높은 천정을 따라 2열의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열주로 인해 중앙의 신랑 부분과 좌우의 측랑(복도)부분이 뚜렷하게 구분되며, 상부의 아치들이 모여 아케이드를 만든다. 건물의 측면에 돌출된 좌우 익랑에는 성가대석과 연주석이 있으며, 건물의 동쪽 끝에는 제단을 두었다. 기둥이 아치 모양으로 세워져 있어 반원형의 주보랑이 생성되었다.이러한 건축양식은 주로 프랑스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로, 당시 르베르 신부와 설계자 프와넬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1918년 계산성당은 정삼각뿔에 가까웠던 첨탑의 지붕을 기존보다 더 뾰족하게 높이고, 동쪽 끝 주보랑 뒤로 오각형 모양의 공간을 더 달아내어 건물을 증축한다. 익랑도 설치하여 일자 모양의 건물이 십자가 모양처럼 보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성당에서 중요한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설치되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 프랑스 툴루즈의 앙리 제스타의 서명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상 아래에 남아있으며, 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하여 1902년 10월에 들어왔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작품이 설치된 2년 뒤, 프랑스로 보낸 로베르 신부의 편지에 ‘남한을 휩쓴 태풍으로 스테인드글라스 하나가 떨어져 나가 산산조각이 났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계산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유럽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계산성당은 대구근대골목으로 유명한 약령시장에서 서성로에 인접해 있는데, 건물의 동쪽으로는 수녀원과 사제관이, 남쪽으로는 계산문화관과 사무동이, 북쪽으로는 매일신문사가 둘러싸고 있다. 옛 사제관의 모형과 미술가 이인성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인성 나무와 성모동산의 사진들과 로베르 신부의 흉상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역사관에서 오래된 성당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김해 볼 수 있다. 근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약령시장, 그곳에 한때는 대구의 랜드마크였던 계산성당이 오랜 세월에도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4-17

세상은 상상력에 목숨을 건다

장규열 고문 세상이 먹먹해 보였던 1970년대 끝 무렵, 소설가 이병주는 ‘행복어사전’에 이렇게 적었다.“파사데나의 젊은이들은 우주정복을 꿈꾸는데, 꽃은 한 번밖에 피지 않는다.” 암울한 현실을 지나고 있었던 당시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바다 건너 청년들은 저 먼 우주를 겨냥하고 있음을 일러주었다. 동시에 꽃은 딱 한 번 필 것임을 경고하였다. 일상이 어둡고 답답하다 하여 코앞의 현실에 파묻힐 게 아니라 상상력을 발동하여 멀리 보면서 내일을 꿈꿔야 한다는 권고가 아니었을까.상상과 창의. 4월 21일은 ‘국제 창의와 혁신의 날(World Creativity and Innovation Day)’이다. 세계인들에게 창의와 혁신을 통하여 지구가 처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밝은 내일로 나아가자는 요청과 염원을 담아 유엔이 지정한 날이다. 공식적인 교과과정이 물론 존재하지만, 이제는 형식적인 교육내용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창의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올해는 사람들에게 창의적 영감을 불어넣으며, 그런 사람들을 연결하고 함께 행동하는 마당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테마로 삼았다고 한다.나라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내일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말하지만, 누구도 교육에 진정을 싣지 않는다. 민생을 돌본다면서 정치는 교육을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세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험한 세상을 헤쳐가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하는 소양은 무엇인가.상상과 창의. 지난 세기 모방과 추격을 거듭하며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상상과 창의로 앞자리를 유지해야 하고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으로 승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향해 비판적 시선을 던지며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누구도 가보지 않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기존 틀을 깨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도전을 거듭해야 한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결과물을 내어놓아야 한다. 교육은 다음세대를 상상과 비전의 바다로 이끌어야 한다.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국내만 생각하면 답답하고 협소하지만 다음세대가 걸어갈 활동 무대는 세계시장이다. 시선을 확장해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와야 한다. 나라 안 다툼에 매몰되어 낙심하지 않도록, 나라 밖 환경과 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세상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다음세대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상을 바꿔 내도록 부추겨야 한다. 이념의 낡은 틀도 극복해야 한다. 좌와 우로 나뉘어 다투는 구태를 벗어야 한다. 건강한 보수를 충분히 이해하고 진보의 발걸음을 자신있게 내딛도록 일깨워야 한다. 보수와 진보 모두를 끌어안는 넓은 가슴을 가르쳐야 한다.이미 열린 21세기를 자신있게 걸어가는 다음세대를 길러야 한다.앞으로 백년을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기르는 다음세대가 세상을 바꿀 터이다. 교육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대한민국이 살아야 세상이 바뀐다.

2024-04-17

조선 왕실의 ‘검’

홍석봉 대구지사장 조선의 대표 도검 중 하나인 사진검(四辰劍)은 용을 상징하는 주술 목적의 벽사(8F9F邪)용 칼이다. 조선 왕실의 신령한 사진검이 경북 문경 고려왕검연구소에서 최근 다시 태어났다. 용을 뜻하는 진(辰)이 네 번 겹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사진검(四辰劍)은 청룡의 해인 올해(甲辰年), 4월(辰月), 13일(辰日), 오전 7~9시(辰時)에 만들어졌다. 장인이 6개월 정도 작업 끝에 수만 번의 단조작업과 담금질 과정을 이겨내고 완전한 검으로 태어났다. 사진검은 1m 약간 넘는 길이에 한 면에는 벽사 글귀와 용 형상이, 반대편에는 28수의 별자리가 상감기법으로 새겨졌다. 칼자루에는 사진검이라는 글자와 전통문양이 새겨졌다. 조선왕실에서 마를 물리치기 위한 참사검(斬邪劍)의 하나로 만들었던 사진검은 호랑이 기운이 담긴 사인검(四寅劍)보다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이 검은 사인검과 함께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선정된 장인에 의해서만 제작됐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만들어진 수량이 적은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유실돼 현재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조선왕실은 또 12년마다 한 번씩 호랑이해에 귀신을 쫓아내고 재앙을 막아준다는 사인검(四寅劍)도 만들었다. 사인검은 왕실의 종친이나 공신에게 하사했다. 조선말 고종황제가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하사한 사인검 한 자루가 10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전통 왕실 검은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공도 많이 들어간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칼이다. 사진검 등에 얽힌 일화를 찾고 이야기를 덧입히면 훌륭한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을 터이다. 새로운 K-콘텐츠의 탄생을 볼 수 있으려나./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17

글로컬大 예비지정 지역대, 혁신으로 승부를

교육부가 추진하는 글로컬대학30 사업에 대구와 경북에서 6개대학(5개 혁신기획서)이 예비 지정에 이름을 올렸다. 대구서는 경북대와 대구보건대학이, 경북에서는 영남대와 금오공대, 한동대, 대구한의대 등이 예비 지정됐다. 경북대와 한동대, 대구한의대는 단독으로, 영남대와 금오공대가 연합으로, 대구보건대는 광주보건대, 대전보건대와 연합으로 신청했다. 경북대 등 대구권 대학들은 한 군데도 선정되지 못한 지난해 글로컬대학 선정 때보다 진일보한 성적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문제는 올 8월 최종 선정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이들 대학들은 7월말까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산업계 등과 함께 혁신기획서에 담긴 과제를 구체화하는 실행 계획서를 제출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 교육부 주관의 이 사업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담대한 정책이다. 선정된 대학은 5년간 1천억원의 정부 재정이 지원된다. 이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사실상 자연도태될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2024년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에는 전국에서 105개교 65개 기획서가 제출됐으나 33개교 20개 기획서만 예비 지정됐다. 이 가운데 10개 대학 정도가 본 지정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글로컬대학30은 지역의 대학과 지역사회가 동반성장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역의 대학과 지자체, 산업계 등이 머리를 맞대 상호 협력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고 지역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경북대는 연구중심대학, 대구보건대는 초광역 연합을 통한 특화캠퍼스, 영남대와 금오공대는 반도체와 SW 특성화, 한동대는 전인지능인재 양성, 대구한의대는 K-메디 신산업 창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예비 지정된 지역의 대학들은 이번 사업의 본지정을 위해 지금부터 학교 명운을 건 노력을 다해야 한다. 대학은 지역사회를 이끄는 지식의 보고이자 성장동력이다. 지역대학의 발전이 곧 지역사회 발전이라는 사명으로 글로컬대학 본지정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길 바란다.

2024-04-17

리더십 진공상태에 빠진 대통령실과 여당

정부·여당이 심한 무력감에 빠져 있다. 역대 최악의 총선 참패를 당한 지 1주일 지났지만, 아직 수습 방향을 찾지 못한 채 극도의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는 듯하다.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윤석열 대통령의 그저께(16일) 국무회의 발언은 오히려 여론을 더 악화시킨 감이 있다. 얼마 전 심각한 의정갈등 국면에서 발표한 담화 결과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후폭풍을 가져온 메시지라는 평가가 많다. 선거후 첫 입장 표명 방식을 두고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이 아니라 국무회의 모두발언 형식을 택한 것부터가 대통령의 불통이미지를 더 강화했다는 것이다. 야권은 “용산주도의 불통식 정치로 일관하겠다는 독선적 선언”이라며 비판했다. 여당도 리더십 실종 상태다. 위기감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저께 당선자 총회를 열어 총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논의했지만, 전당대회에 대한 구체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총선 패배를 앞장서서 수습해야 할 여당 지도부의 진공상태는 대통령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정부가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윤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방법밖에 없다. 여권 내에서는 야당과의 협치 차원에서 국무총리 후임에 박영선 전 의원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카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생뚱맞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야권의 최대목표는 현 정부를 흔들어 ‘식물정부’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정권교체가 가능해진다. 여권이 야당과 협치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여권은 일단 집권여당 사상 최악의 총선 참패를 왜 당했는지 진단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 후에 국정방향을 다시 정립해 민심을 얻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번 선거 외연 확장의 실패 요인이 됐던 ‘대기업·부자 감세정책’을 다른 방향의 민생정책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야당이 현금지원성 정책을 제안한 것에 대해 ‘마약과 같은 것’이라며 일축해버리는 식으로 대응하면 상당수 서민을 적대세력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04-17

울릉도 공무원,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군 공무원의 변화와 혁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의 자세가 너무 안일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실 감각이 떨어져 군이 목표로 하는 100만 명 관광객 유치가 되겠느냐는 시각부터, 설령 100만명을 유치한하고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가 될까하는 이야기가 적잖다.    실제, 요즘 울릉군청 공무원의 행정집행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면 답답한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울릉도에서 랜드마크 급의 호텔을 건설하는 시공사 등의 하소연은 그 단적인 예다. 매머드 급 호텔체인을 건설 중인 A사는 울릉도 최고층 규모인 15층 규모의 호텔을 신축하고 있다.오픈하면 261개의 객실을 갖추게 돼 군민들의 기대 또한 크다. 이 시공사는 최근 공정 차원에서 울릉군에 상수도를 신청했다. 그런데 군 담당자들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귀를 의심케 했다. 16mm의 수도관을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가정용 수준이다.시공사는 도대체 상식이 있는 공급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호텔 측에서 16mm로 하겠다면 공무원은 오히려 작아서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텐데, 울릉군 담담 공무원은 261개의 숙박시설이 들어서는 호텔을 가정집 정도로만 여기고 업무를 처리했다. 울릉읍 저동리 관해정 앞 관광객을 승하차시키는 장소도 민원이 잇따르고 있으나 군 담당부서는 태평이다. 이곳은 늘 혼잡해 관광객을 승하차시킬 때는 위험천만하다. 무질서하기도 해 주민들이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해 왔다.그러나 울릉도 관광객 유치, 안전, 편의 등을 총괄하는 부서 최고 책임자는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우리 부서는 단속 권한이 없고 교통계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정리한다. 관광으로 먹고 산다해도 과언이 아닌 울릉군에서 군청의 홍보 태도 또한 너무 미온적이다.  최근 울릉군과 김포시는 자매결연을 맺었다. 울릉에는 울릉공항이 공사중에 있어 김포공항과는 어떻게 연관될 것인지, 또 몇 편의 비행기가 김포와 오갈것으로 예상하는 지 등이 지역의 이슈가 됐지만 울릉군 자매결연 업무 부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서면 태하동 황토구미 관광지에 낙석을 피하고자 건설한 교량도 자료 공개를 꺼려  논란이다.  물론 위 지적사항이 작은 일 일수도 있고, 억지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실시한 것은 작은 일이라도 주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적극 행정을 펼치라는 전제 아래 시작됐음은 다 아는 부분일 것이다.  남한권 군수는 연일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정작 군의 동맥 부서들은 군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이 울릉군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울산시는 3년 걸리는 허가를 1년 만에 끝낸 6급 공무원을 5급으로 승진 시킨 바가 있다.남 군수도 적극 행정에 앞정서는 직원은 우대 발탁하고 소극적이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직원은 변화 할 수 있도록 주문하고 이끌어야 할 것이다. 울릉군의 행정이 제자리에 머문 상태에서 관광객 100만 명을 맞이한다면 울릉도는 교통, 숙박, 음식제공의 대란이 올 수 밖에 없을터다./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04-17

상황인식이 조직문화를 바꾼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조직과 기업에 혁신을 넣으면 건강한 조직,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난다.인식에 오류가 생기면 판단 오류가 생기고 판단 오류가 생기면 방향 설정이 틀어진다. A방향으로 가는 길이 C방향으로 틀어지면 기업은 불협화음이 생기고 조직문화가 실패하는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경영자와 조직을 이끄는 직책 보임자들의 잘못된 인식에 의한 판단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일본 히로시마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벤다선광공업은 포스코 선재 제품을 사용하여 자동차 링 기어를 만들고 있는 고객사이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하고 직원 50명에서 300여 명으로 성장한 전문경영인체제의 일본계 기업으로 TPM 세계경진대회를 출전하기 위해 11개월째 활동하고 있고 생산관리에 자부심이 강한 기업이다.조직과 영업, 생산, 납품까지 진단한 결과와 낮은 활동 수준을 설명했다. 사장과 직책간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 이유를 설명하니 공감은 하는 데 현재 지식수준에서 어렵다고 했다. 생산공정은 선반 가공과 용접, 도금, 검사 공정으로 공기구 보관대는 작업자의 일의 편리성보다 보여 주기식 활동이었고, 생산 공장장과 수주를 받아오는 영업부장과 일의 소통이 어려웠다. 중소기업은 영업에 70% 비중을 둔다고 하지만 116종의 자동차 링 기어를 생산하고 있는 공장은 생산 지시가 수시로 바뀌고 제품 창고의 재고 파악이 잘 되지 않아 고객과 생산 대응에 늘 아교가 있었다.고객이 자동차 링 기어를 주문하면 생산 지시를 내려 생산하고 공급하는 종합 프로세스 개선을 프로젝트로 설정하여 영업부장과 생산 공장장이 매월 미팅을 했다. 영업부에서 고객 마케팅을 할 때 즉흥적으로 주문 받지 않고 납기 15일 표준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주문을 받아 생산 스케줄의 혼란을 줄여 나갔다. 또한 자원관리시스템인 ERP를 도입하여 공정 재고와 완성 재고를 실시간 파악하여 생산 스케줄과 제품 공급을 원활하게 대응하게 했다. 모든 작업장에 필요한 공구나 도구는 인체공학적으로 어깨와 허리 위치에 비치하여 팔을 뻗으면 쉽게 쓸 수 있게 일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높였다.혁신의 성공의 원리는 5가지 벽을 넘어서야 한다. 사실에 입각한 상황 분석으로 올바른 인식의 벽, 정확한 판단으로 결단의 벽, 조직원 모두가 공감하는 방향과 목표의 공유의 벽, 좋은 팀워크로 행동의 벽과 지속적인 실행으로 반복의 벽을 넘어야 비로소 혁신활동을 성공할 수 있다.사장과 영업부장, 공장장 등 의사 결정의 중심에 있는 직책간부들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인식의 오류는 지식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선입견과 상황분석이 미약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첫번째 인식의 벽을 넘지 못하는 기업이 70% 차지한다. 인식이 잘못된 판단으로 가면 조직은 혼란에 빠지고 비효율적인 일의 문화와 잘 나가던 기업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는 경우도 발생한다.혁신 성공과 기업 경쟁력을 갖춰 지속가능 경영으로 가는 길은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상황 분석과 인식 오류, 판단 오류를 예방하는 길이다.

2024-04-16

자연에서 배우는 협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벚꽃이 폭죽처럼 터지듯 들끓던 민심이 4·10총선으로 표출됐다. 정권 심판론이 우세해서 야당의 압승으로 결판나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그러나 언제까지 폭죽처럼 터진 승리에 도취해 자만한다거나, 참패의 충격에 빠져 낙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듯이(花無十日紅), 금세 벚꽃이 진 자리마다 연둣빛 새순이 손을 내밀고 잎새들의 잔치를 준비하며 생동하는 봄날의 기운이 왕성해지고 있다.봄꽃은 기후나 주변 여건에 따라 조금 늦게 필 수도, 한 해 또는 몇 해 건너 필 수도 있으니, 이번의 선거결과가 여야에 있어서 결코 현재나 미래 모습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듯이(陰地轉 陽地變) 세상에 영원한 것도, 영원히 머무는 것도 없다. 당락이나 성패, 행불행 따위는 끝없이 돌고 돌 뿐이다. 말이 가는데 소도 갈 수 있듯이(馬行處 牛亦去), 기회가 다시 올 때를 대비해 꾸준히 노력하고 추구한다면 성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꽃자리를 내주면서 작은 열매가 맺히거나 잎새를 불려 나가는 나무들은, 꽃이 많이 피거나 열매를 적게 맺음에 상관없이 묵묵히 수액을 길어 올리고 광합성작용을 하며 성장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연초록이나 담록, 진초록 빛깔로 산과 들을 물들이며 연이어 잎새를 드리우는 것은, 어쩌면 대지의 광활한 캔버스에 봄날의 신명난 붓질로 생명의 조화로움을 채색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대립하거나 반목, 질시하는 일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을 피우기도 하면서 어울리다가 온통 잎새들의 잔치로 초록의 싱그러움을 뿜어 올리고 있다.대화와 타협, 조정의 과정이 생명인 정치판에서도 이 같은 자연의 조화로움이 깃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의 무수한 잎새 같은 정치인들의 온갖 말이 공염불이거나 일방적이고 배타적이며 어불성설이라면 결코 초록동색의 순리적인 조화로움에 근접하지 못할 것이다.과반을 과신하여 횡포나 전횡을 일삼고 소수에 대한 안배와 양보가 없다면 나무와 숲에서 볼 수 있는 상생과 협치의 지혜로움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통과 신뢰, 타협과 협력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거나 민의와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한다면 급기야 자가당착에 빠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하지만‘정치는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상황이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수많은 견해나 요구, 변수로 인해 돌연히 변화할 수 있기에 각종 현안에 대한 섣부른 단정이나 취사, 조율을 해나가기가 극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일수록 견제와 균형의 열린 사고로 대화와 소통의 실마리를 찾고, 공생과 공동선의 가치를 기반으로 대의명분과 국익에 보탬이 되는 합일점을 도출하는 통찰력과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주위 사람들과 친화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나 부화뇌동으로 편향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야 말로 주체적인 정치를 펼치는 정치가들이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2024-04-16

인간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인간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한 번쯤은 복수를 꿈꾸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겪는 모든 것에 미숙했던 시기에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상처받고, 때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기도 하고, 가끔 자신이 가진 일부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돈이나 집 같은 유형의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나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은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 같은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박탈당하는 것은 더욱 끔찍하다. 하물며 내가 인간임을 유일하게 증명해주는 자존심은 어떤가. 자만심이나 질투에 의해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존엄을 침해 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그럴 때 찾아오는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복수라는 원한의 감정뿐이다. 그것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없는 자기혐오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인 우리는 누구나 현재 복수를 꿈꾼다. 비록 실행할 수 없거나,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마음 한켠에는 복수에 대한 환상이나 원한의 감정을 가지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를 복수를 느리고 지루하게 진행하고 있는 와중일지도 모른다.복수를 꿈꾸는 원한의 감정이 인간에게 너무나 익숙한 감정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복수라는 테마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문학 작품에서 늘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단언컨대, 복수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행위 중에서 가장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스펙터클한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니 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복수는 당연하게도 여러 번 되풀이되어 읊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서 생존과 존엄을 박탈당할 위기에 내몰린 주인공이 결국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복수를 행하는 서사의 짜릿함은 독자인 우리를 가장 감정적으로 자극한다.그런 의미에서,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00E8re, 1802~1870)가 1845년에 쓴 ‘몽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은 복수라는 주제를 구현했던 문학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복수의 서사적 문법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어린 나이로 커다란 배의 선장이 되고,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을 약속하는 약혼식장에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협력해 프랑스 황실에 반역했다는 혐의로 잡혀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그를 시기하는 이들의 질투와 탐욕에 의해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명예,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잃어버리게 된다.사실 이 에드몽 당테스가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1814년에 엘바섬에 유배되었을 때, 그곳에 배를 정박해서 탈출을 도왔다는 명목이었다. 뒤마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등장해서 격변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 위에, 인간의 탐욕과 질투로 인한 누군가의 몰락을, 그로 인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복수를 향한 처절한 여정을 그려냈다.하지만, 복수라는 것은 마음먹기는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쉬운 일일까. 에드몽 당테스는 감옥에서 파리스 신부를 만나 탈옥을 할 수 있게 되고, 그가 남긴 막대한 재산을 물려 받아 복수의 대명사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다. 그리고서도 평생에 걸쳐 집요하고 느린 복수를 결국 완성한다.인간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우리가 에드몽 당테스의 복수에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안고 살 수밖에 없는 낯익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4-04-16

낭만을 사는 값

앞산 달비골은 우리들 낭만 놀이터였다. 방학을 맞아 약속한 날짜가 돌아오면 동아리 남학생들은 손수레에 장작을 싣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올랐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날은 동아리 선후배 단합의 장이었다. 오르막을 만날 때마다 무거운 손수레를 미는 건 고역이었으나 후배들이 장작을 나르는 건 전통처럼 되어있었다. 선배들은 읍내 지서에 동아리 모임 허락을 얻은 후 산 중턱에 몇 동의 텐트를 쳐놓고 후배들을 기다렸다. 여학생들은 각자 맡은 찬거리를 싸 들고 흙먼지 이는 길을 걸었다. 누군가의 어깨엔 기타가 걸려있었고 불룩한 주머니엔 하모니카도 들어있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숲은 깔깔거리고 마주 웃었다.신나게 공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다가왔다. 선배 언니들은 카레라이스며 볶음밥, 김치찌개 같은 걸 망설이는 법 없이 척척 차려냈다. 후배들이 어설픈 설거지를 마치면 모두들 숲속 공터로 모였다. 둥글게 원을 그리고 촛불을 손에 든 우리는 저마다의 꿈을 마음속에 새겼다. 누군가 언덕 위에서 묶인 줄을 따라 불씨를 내려보내면 화들짝 놀란 밤의 골짜기는 갑자기 소란해졌다. 우리는 높이 치솟는 모닥불 앞에서 기타를 퉁겼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으며 신들린 듯 몸을 흔들었다. 타오르는 모닥불과 젊은이들의 열기로 주눅 든 달빛마저 시들해지면 새벽이 뿌옇게 밝아왔다. 꼽아보니 마흔 해가 지난 일이다.지난해 여름 두 아이가 휴가를 받아 함께 내려온다고 했다. 직장이 서로 달라 휴가를 맞추기도 어려울 텐데 각별한 남매의 정이 기특했다. 게다가 나 더러 하고 싶은 게 있느냐고 정중히 물어오기까지 했다. 기억에 오래 남을 여행을 하고 싶었다. 곰곰이 계획을 짜다가 문득 달비골 생각이 나서 캠핑을 가자고 했다. 종종 전해 듣기로 코로나 이후 아들은 골수 캠핑족이 된 모양이어서 장비 걱정은 없을 듯했다. 더구나 낚시에도 꽤 이력이 붙어서 아들이 낚아 올린 생선회를 맛볼 수도 있을 거라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아이들은 흔쾌히 응했고 강아지 동반이 가능한 캠핑장도 미리 예약해 놓았다며 지도를 공유해 주었다. 바다 바로 곁에 있는 캠핑장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거느린 근사한 곳이었다. 함께 사는 강아지도 눈치를 챘는지 사방으로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한창때를 지난 평일의 캠핑장은 한산하고 깨끗했다. 어디 한 곳 강아지 배설물이 널브러진 곳도 없었다. 깨끗한 샤워장과 잘 갖춰진 주방, 있을 것 다 있는 매점을 보며 캠핑장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편리함이 추억까지 길어 오진 않는다. 가까스로 부모님의 허락을 얻고 동아리 친구들과 달비골로 향하던 날을 떠올려 보았다. 산짐승 소리만 들리는 골짜기에서 계곡물로 밥을 짓고 서툰 설거지를 하고 밤을 꼬박 새우며 우정을 돈독히 하던 그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두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주로 오토캠핑장을 다녔으므로 캠핑의 불편함이 많지 않았다. 그만큼 아이들은 제대로 된 캠핑의 낭만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잘 갖춰진 장비가 낭만을 대신해 준다고 여길지 모른다.짐을 부리고 텐트를 치기 바쁘게 아들은 빤히 보이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겼다. 어릴 적 남해 어디 섬에서 첫 바다낚시의 손맛을 경험한 아들은 그 짜릿함을 온몸에 묻어두고 지낸 모양이었다. 성인이 된 아들은 가끔씩 월척을 낚은 사진을 내게 전송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벼르던 날의 낚시는 성적이 좋지 않은 법이어서 어린 노래미 몇 마리를 낚아 돌려보냈을 뿐이다. 나 대신 장을 봐온 아이들은 소고기를 굽고 와인을 따르고 차돌 된장국을 끓여 저녁 식탁을 차렸다. 자식 키운 보람 같은 게 언뜻 느껴졌다. 저녁상을 물리자 아들은 매점에서 사 온 장작을 준비해 온 화로에 넣고 모닥불을 피웠다. 우리는 깊어가는 여름밤을 ‘불멍’을 하며 보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텐트에서도 당연한 절차라는 듯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백석탄을 낀 신성계곡 물빛이 한꺼번에 핀 봄꽃들로 하여 눈이 부시다. 아직 드문드문 남은 산벚이 사람의 마음을 사무치게 한다. 일 년에 단 한 번 산이 웃는 시기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는 또 목마른 사람처럼 산벚 피는 시기를 기다릴 것이다. 박월수 수필가 가까운 캠핑장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추억을 쌓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뜨거운 봄을 지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우리 가족이 캠핑을 다녀오며 남긴 탄소발자국은 얼마쯤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지구 환경에 너무나 무지한 사람이었다.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양껏 고기를 굽고 와인병을 따고 장작을 지폈다.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건 권할만한 일이다. 해변 혹은 숲에서 온전히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은 삶의 소중한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점점 가열화되는 지구를 생각한다면 화석 연료의 사용은 지양해야 옳다. 최소한의 소비가 지구의 수명을 조금 더 연장하는 길이란 걸 기억한다면 아무리 좋아하는 캠핑이라도 현재의 절반으로 줄여보는 건 어떨까. ‘불멍’을 위한 모닥불을 지피기 전에 한 번 더 지구별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보라고 캠핑을 즐기는 아들에게 전화 한통 넣어야겠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박월수 수필가

2024-04-16

국민의힘 차기 비대위원장 책임 막중하다

국민의힘이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열 때까지 다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지난 15일 국민의힘 4선 이상 중진 당선자들이 모여 당 수습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전당대회를 하려면 비대위를 거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 비대위에서 전당대회 절차를 주관해 22대국회 새 지도부를 선출하겠다는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 마당이라 불가피하게 ‘관리형 지도부’를 구성해야겠지만, 집권 여당의 위상에 맞지 않게 비대위 체제가 너무 잦다. 국민의힘 비대위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년 동안 벌써 네 번째 만들어지게 된다. 그만큼 여당이 바람 잘 날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내에서도 “지도부가 이렇게 자주 바뀌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상태다.이번에 구성될 여당 비대위는 전당대회 관리를 위한 지도부라고는 하지만 책임이 막중하다. 우선 총선 참패에 대한 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저께 열린 중진 당선자 모임에선 선거 참패 원인 분석이나 위기 수습 대책은 거의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진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만 했을 뿐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니 보수정당 사상 최악의 패배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이번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을 처리하고, 22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김건희 특별법 등을 재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이 법안들에 대해 조건부 찬성을 하는 당선자나 현역 의원들이 있는 만큼, 국민의힘으로선 유일한 저지수단인 대통령 거부권까지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22대 국회에선 여당에서 8명만 이탈해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용지물이 된다. 이러한 현안을 고려해 보면, 국민의힘 새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가교 역할, 그리고 당정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비중 있는 인물이 선출돼야 한다.

2024-04-16

최악의 참패 분석할 ‘與총선백서’ 필요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김재섭 당선자(서울 도봉갑)는 지난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참패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요인으로 ‘이종섭·황상무’를 꼽지만 이건 기폭제일 뿐이다. 정권 심판론은 2년 동안 축적됐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36세 청년인 김 당선자는 민주당 텃밭에서 49.05%를 얻어 당선됐다. 차기 당 대표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래 보수정당의 리더로 평가받는 인물이다.김 당선자의 언급처럼,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간 민심이반을 가져올 많은 정책을 고집스럽게 시행했다. 대표적인 게 서민과 청년들의 분노를 자극한 ‘대기업·부자 감세’ 정책이다.안 그래도 우리사회는 부모자산과 관계없이 개인이 노력하면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층이동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는 각종 지표(주택이나 금융소득과 같은 자산불평등)에서 쉽게 확인된다.이러한 불평등 사회변화 속에서 현 정부는 대표적인 부자세금인 금투세(금융투자소득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비롯해 상속세, 다주택자 양도세, 주주친화기업 상속세 등에 대한 폐지 또는 감면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서민과 청년들을 자극했다.총선이 임박해 ‘5년간 의대생 1만명 증원’ 정책을 발표한 것도 총선패배의 주요 원인이다. 의사나 의대생 가족들은 지금 “윤석열로 인해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할 정도로 분노심에 가득 차 있다.대규모 증원이 가져올 후폭풍을 뻔히 알면서도 선거철에 불쑥 ‘2천명 증원’ 카드를 꺼내 든 발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 의사들의 적대감 해소보다, 국가 의료 시스템이 더는 망가지기 전에 의정갈등의 해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지난해 4월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 정부가 간호사들의 지지를 잃은 것은 오래됐다.공무원들도 윤석열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다. 대기업이나 금융계 같은 타 직종에 비해 턱없이 급여가 낮은데다 현 정부 들어서는 연금개혁 움직임도 있어 특히 교사들이 반대세력으로 돌아섰다. 이 정부가 40~50대 노동계와 등을 진 지는 오래됐다.4·10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국민의힘 득표수는 약 1천318만표(45.1%)다. 민주당과 대략 160만표 정도 차이가 난다.정부가 이번 총선에서 앞서 언급한 한두 가지 정책만 쓰지 않았어도 참패를 당하지 않았을 수 있다. 전통적인 보수지지 세력조차 적으로 만들었으니, 애초에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앞으로도 윤 대통령이 이러한 스타일로 국정 운영을 할 경우 보수정당은 점점 지지세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정부·여당이 2026년 지방선거와 차기대선(2027년 3월)에서 권력을 되찾아 오려면 가장 먼저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여당도 하루빨리 총선패배의 늪에서 벗어나 차기 선거 인재 발굴과 선거 전략 수립에 나서야겠지만, 윤 대통령의 ‘불통과 오만’ 통치 스타일이 변화하지 않으면 민심 회복이 어렵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백서가 필요하다”는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의 제안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2024-04-16

세컨드홈 세제 혜택, 농촌경제 활력소 되길

정부가 기존 1주택자가 인구감소지역에서 신규로 집을 구입하더라도 1주택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특례 조치를 발표했다. 대상은 전국 인구감소지역 89곳 가운데 대구 남구·서구 등 서울과 광역시 일부 지역을 제외한 모두 83곳이다. 지난해 대구에 편입된 군위군은 특례지역에 포함된다고 밝혔다.정부는 또 인구감소지역에 지정 요건과 절차를 간소화한 소규모 관광단지를 도입해 지역 맞춤형 관광인프라를 확대한다고도 밝혔다. 그리고 외국인 산업인력 및 정주인구 확대를 위해 지역특화형 비자지역을 28곳에서 66곳으로 늘린다. 할당 인원도 현재 1천500명의 두배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농어촌지역의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해 지방의 인구소멸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농촌지역으로 이동하는 생활인구(하루 동안 3시간 이상 머무는 시간이 월 1회 이상인 사람)와 방문인구, 정주인구 등을 늘려 농어촌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생각이다.알다시피 저출산과 청년층의 수도권 진출로 지방은 인구가 노령화되고 사람도 줄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농촌으로 갈수록 더 심각한 양상이다. 당장 인구를 늘릴 수 없으니 도시인구의 농촌 유입과 왕래를 통해 지방의 경제에 힘을 보태겠다는 궁여지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1주택자가 공시지가 4억원(시세 6억원 정도) 이하의 인구소멸지역 주택을 구입할 경우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재산세 등에 세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농촌지역의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특히 농촌 빈집 등의 활용 방안이 나오는 등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것이 침체된 부동산 경기 전반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저출산과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나오고 있으나 실효적 성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인구소멸 대응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사업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정부 조치를 뒷받침할 지방자치단체의 세심한 후속 조치도 매우 중요하다.

2024-04-16

22대 국회의 도덕성

우정구 논설위원 서양의 도덕성을 얘기할 때 반드시 나오는 용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프랑스 말로 노블레스는 고귀한 신분을 뜻하고, 오블리주는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일컫는 표현이다. 프랑스 사전에는 “귀족계급이란 자신의 이름에 명예가 되는 의무를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일본 출신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 2천년을 지탱한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 했다. 영국 최고 명문사학 이튼칼리지 교내에 세워진 건물에는 1,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전사한 졸업생 1천9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법과 도덕은 결과적으로 구분되지만 원천적으로 보면 법적 의무란 도덕적 의무에서 출발한다.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이나 규범, 관습, 도덕심 등이 기초가 돼 법을 만들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잘못됐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넘어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켜온 도덕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특히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라면 법과 도덕이 일치하는 엄격하고 모범적 행동을 보이는 것을 당연시 여겨야 한다.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한국 전통적 윤리관과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는 별로 다르지가 않다.총선에 출마한 후보 가운데 범법과 막말, 위선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들이 대거 당선되자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관례를 보면 공천과정에서 당연히 걸러져야 할 인물이 당선까지 됐으니 말이다. 22대 국회가 품격과 도덕성을 잘 유지할 지 지켜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4-16

소리문법으로 치유하는 아픔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경남 합천 율곡면에서 태어난 박태일 시인은 시인으로서나 현대문학사 연구에서나 뚜렷한 봉우리 위에 선 학자이기도 하다. 대학을 은퇴할 무렵 연변의 나그네가 되어 연길 안까이 시편들을 시집으로 묶더니 자신의 시선집으로 ‘용을 낚는 사람들’(소명충판, 2024)을 펴냈다. 이 시전집 전반에 경상남도의 산천을 흐르는 물소리와 산새소리가 듀엣으로 합창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박태일의 세 번째 시집 ‘가을 악견산’과 네 번째 시집인 ‘풀나라’에서는 시인이 유년의 회상공간으로 한 경상남도 일대의 경관이 소리문법으로 리듬을 타고 그리움과 만난다. 제3시집에서‘가을 악견산’,‘거창노래’,‘합천노래’와 제4시집 ‘용전사기골’, ‘황강’은 연작시이다. 봄이면 봄의 소리로 여름이면 소낙비 소리로 가을이면 낙엽지는 소리로 산천의 경관이 바뀌고 자낙자낙한 서정의 메아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가끔은 표준 언어에서 벗어난 소리문법인 방언이 툭툭 튀어나온다. 박태일의 시 세계가 이토록 경건하고 진실할 줄을 어이 알았으랴. 가난한 농촌 아이일 적에 체험한 삶의 고뇌를 회상과 기억의 방식으로 변주해 눈물을 정화수로 바꾸는 소리문법으로 쓴 시어들, 태백산맥의 마지막 가야산과 산청 산의 끝자락의 뻐꾹새 울음소리, 바람과 햇살 휩쓸려 내리는 송화가루의 휘날리는 적막, 갑자기 땅땅 총소리에 쓰러지는 숱한 바지저고리가 노란 초가집 지붕으로 날아가는 거창양민 학살의 아픔들…. 경남 사투리를 간간히 섞어 쓰는 노래는 치유의 정화수로 지난 역사의 끝자락에 뿌려놓는다.“피멍 들었제 동복이 아제/쪼그려 앉아 박하 잎만 찧게/저수지 못 미쳐 목이 죄인 물줄기/타닥타닥 옴개구리도 밟으며/애드럽게 집게칼로/손금이나 다듬게//제실 가는 흙담 위 붉은 감또개/고픈 날 숨어 씹던/짚가리 그늘//매호 높은 봉우리에는 속기 많은 산중과 아들과/그 아들이 지른 된똥에 잠자리 날고” -‘합천노래’에는 한국 현대사의 이념적 갈등의 슬픔이 잔잔하게 깔려 있다. 전쟁의 난리 통에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합천과 거창지역이 좌우로 갈려 학살이 자행된 역사. 치유하기 힘든 아픔을 추궁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지만 시인은 그 아픔을 오롯이 정화로 깨끗이 씻어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격렬하지 않은 옛 기억을 그냥 그대로 호명하고 있다. 동복이 아제 어린 시절 홀로 소꿉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잘근잘근 경남 사투리로 ‘옴개구리’, ‘애드럽게’, ‘된똥’이라는 지역어를 들춰내어 북바치는 슬픔을 지난 추억으로 묘사하여 슬픔을 잠재우고 있다.지리산 자락 의령으로 흘러내리는‘황강’연작시는 물길처럼 유유히 흐르는 고향의 어린 시절의 풍경화를 소리로 리듬으로 이끌어낸다. 진주로 시집가 혼자되었다는 ‘콩점이’의 설화같은 이야기를 민요자락처럼 펼쳐내고 있다.“두렁콩 배는 날에 해가 저물어/진주로 시집간 콩점이 생각/곡식도 씨 따는데/사람이 못 딸까/내리 딸 넷에 아들/남편 상났단 소식도 이어 들리고//콩점아콩점아 콩 보자/사타리에 점 보자/잔불 놓던 둑너머엔/첫날 첫 봄밤//달빛 홀로 다복다복 어디로 왔나”-‘황강 7’어린 시절 마을에 함께 살던 콩점이, 사타리(사타구니)에 까만 콩같은 점이 있어서 콩점이라 불린 아이. 진주로 시집간 첫날밤의 풍경과 어린 시절 둑너미에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잔불 지르던 추억이 한 몸으로 엉켜 훤한 달빛으로 걸어오고 있다. 살짝 섞어 넣은 방언의 촉매작용은 그 그립고 안타까운 추억 속으로 회전한다.“콩점아콩점아 콩 보자/사타리에 점 보자” 동요의 리듬은 표준어문법으로 질주하는 시어를 경상도 가락으로 되일으켜 우리들의 감흥을 일깨워 준다. “황강 물 굴불굴불 황강 옥이와 귀엣말 즐겁습니다/황강 모래 엄지 검지 발가락 새 물꽃 되어 흐르듯이/간지러운 옛말이 들리는 봄/재첩 볼우물이 고운 옥이 마을”-‘황강 9’콩점이와 동명이인일 수도 있는 옥이에 대한 그리움이 황강 물줄기로 이어져 온다. 옥이와 고향마을의 추억은 간지러운 옛말, 방언으로 도란도란 울려와 봄을 불러온다. 붉은 진달래꽃빛이 물꽃이 되고 옥이가 속삭이던 귀엣말이 봄빛으로 물드는데 “혼자 사는 옥이 엄지 검지 손톱이 뭉개져 까”매져 세월의 무상함을 저토록 처연하게 나직한 소리로 속삭여 준다.

2024-04-15

목숨 걸고 쓰다 그리고 죽다

마쓰야마에는 나쓰메 소세끼의 흔적도 곳곳에 있지만, 마쓰야마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문인은 단연 마쓰야마에서 나고 자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입니다. 마쓰야마 시립 시키기념박물관에는 마사오카 시키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온갖 자료들이 알뜰하게 모아져 있었는데요. 대충 훑어보는 데만 한나절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마사오카 시키는 언론인, 수필가, 평론가 등으로도 활약했지만, 그의 가장 큰 활약은 단연 일본의 전통 시가인 하이쿠를 혁신한 겁니다. 심지어 시키의 하이쿠 혁신 운동이 없었다면, 일본이 자랑하는 하이쿠는 이미 사라졌을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까요.시키는 당시 유행하던 하이쿠가 발상이 신선하지 않고, 사용하는 언어가 상투적인 것 등을 비판하며, 새로운 하이쿠를 주장했는데요. 새로운 하이쿠가 갖춰야 할 요소로 시키는 당시 일본에 들어온 서양화에서 비롯된 ‘사생(寫生)’이라는 개념을 내세웠습니다. 사생이란 “실제로 있는 그대로를 그린다”는 의미인데요. 시키는 자연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이쿠야말로 새로운 세상에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었던 겁니다. 그러한 시키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하여 하이쿠는 오늘날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시가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습니다.시키기념박물관을 둘러볼 때, 저의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한 모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듯 초췌해 보이는 시키가, 한 여성이 들고 있는 화판에다 붓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모형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시키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시키의 창작을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모형 옆에 놓여 있는 안내판에는, 시키가 죽기 하루 전날 가족과 지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절필삼구(絶筆三句)’를 쓰는 장면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절필삼구’는 시키가 병상에서 보이는 수세미외를 읊은 세 편의 시가인데요. 시키는 목숨이 경각에 걸린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키기념관을 나온 후에도,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던 이 모형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도대체 무엇이 한 인간으로 하여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 궁금했던 것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시키가 보여준 ‘목숨을 건 글쓰기’가 일본의 무사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간상과 정신이 있는데요. 일본인이 내세우는 이상적인 인간형과 정신은 말할 것도 없이 무사(사무라이)와 무사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사도의 핵심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사도의 고전으로 꼽히는 ‘하가쿠레(葉隱)’(1716년)에서 야마모토 쓰네토모는 반복해서 무사란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무사도란 ‘죽음’을 깨닫는 것이다. 생과 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죽음을 선택하면 된다”로 시작합니다. 또 하나의 무사도에 대한 고전인 다이도지 유잔의 ‘부도쇼신슈(武道初心集)’(1720년)도 “무사는 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 숙명”임을 반복해서 강조하는데요. 오늘날 세계인들에게 일본의 무사도를 알린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Bushido)’(1899) 역시 사무라이의 제1계율을 “죽음을 각오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무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던 것이죠. 이경재 숭실대 교수 문인과 무인을 구분하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일본의 사무라이를 ‘칼을 찬 무인’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우리와 달리 일본의 사무라이는 기본적으로 ‘칼을 찬 무인’이지만, 동시에 ‘붓을 든 문인’이기도 했습니다. 사무라이는 전쟁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에 필요한 일체의 활동을 담당했으니까요. 일본 문화에서는 애당초 문인과 무인은 일체화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붓을 든 자’ 역시 ‘칼을 찬 자’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내면화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는, 조금은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시키의 최후 모습은 아마도 이러한 전통 속에서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마쓰야마시에는 시키기념박물관 이에에도 시 중심부에는 시키가 살던 집을 본떠 지은 시키도(子規堂)가 있고, 도고 온천역 근처에는 야구 배트를 든 시키상이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문인이 야구 배트를 들고 있다는 것에 의아해 할 분도 있으실 텐데요. 시키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야구용어, 일테면 1루수, 2루수, 우익수, 포수와 같은 말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안다면, 붓 대신 야구 배트를 든 시키도 그렇게 어색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2024-04-15

진실이란 어려운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요즈음 학생들과 함께 1980년대 소설 읽기를 하는데, 지난주에는 마침 박태순 소설 편이다.‘어머니’라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주변의 여러 일들을 사실적으로 엮어 놓은 작품이다. 무크지 시절의 ‘실천문학’ 1985년경에 실렸다.이 이야기를 읽자니, 여러 해 전, 박태순 선생이 살아계셨을 때, 충북 수안보로 선생을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그 무렵 나는 소설집 ‘정든 땅 언덕 위’(민음사, 1973)를 헌책방에서 얻어 읽은 후였다.수안보는 선생이 어머니를 돌보려고 가서 정착하게 된 곳이라 하였다. 그때 만난 선생의 마지막 인상이 참으로 처연했다. 수안보 연립주택 맨 윗층, 걸어서야 올라갈 수 있는 5층인가에 홀로 거주하고 계시던 선생은 내가 찾아간 것을 몹시 반겨 주셨다. 같이 들어간 음식점에서 선생은 잘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시고, 오로지 띄엄띄엄 말씀만을 하셨다.사람은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살아 있을 때는 며칠이라도, 몇 달이라도, 아니 몇 년이라도 늘 그렇게 살아있을 것 같다. 운명을 달리하고 보면, 아하, 그것이 그분 생의 마지막 국면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 꼭 그러했다.‘실화소설’ 딱지가 붙은 ‘어머니’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박태순 자신이 직접 겪고,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들만으로 썼다. 그래서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한다.진실이란 어려운 것이다. 리얼리스트들은, ‘사실’ 뒤에 웅크리고 있는 진실에 육박하고 있노라 자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많은 경우에 있어 망상인 경우가 많다.1980년대는 더욱 그러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이니, 노동자니 하는 말이 그런 망상을 잔뜩 품고 있었다. 박태순이 말하는 민중이며 노동자는 사회과학 지식으로 얻은 것이 아니요, 스스로 겪고 생각한 것을 일인칭의 시점으로 말한 것이었다.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난 지 십 년이 된다. 벌써 십 년이었나? 채만식은 해방이 되고 나서, 여승,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했다.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 말해 왔다 할 수 있는가? 정부가 바뀌고 나서 밝혀질 줄 알았던 진실이 오히려 꽁꽁 숨어 버린 것을, 나는 깊은 환멸 속에서 경험했다. 그러고 나서 정부가 한 번 더 바뀌었다. 이번에도 큰 참사가 났다. 이를 둘러싼 진실은 수면아래 먼 깊은 곳에 잠겨 있다.나는 지금 정치 세력의 어느 한 쪽을 편들어 주려고 진실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입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처절히 깨달았음을 말한다.바로 며칠 전 나라의 큰 일이 있었다. 이 큰 일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아마도 영영 모르고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모두들 자신이 믿는 바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비극이요, 희극이다.그렇다고 생각하기라도 할 수 있다면, 그래도 한 발자국은 나아간 것일까? 무엇을 향해서?

2024-04-15

지명 변경 ‘몸부림’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수성구가 매호동 소재 농업용 저수지인 ‘구천지(狗泉池)’의 명칭을 ‘매호지’로 변경을 추진 중이다. 이름이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곳을 이르는 구천(九泉)을 연상시키는 부정적 어감때문이다. 경북 성주군 금수면은 최근 ‘금수강산’면으로 명칭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주민들이 한번만 들어도 평생 기억되고 꼭 가보고 싶은 지역 이름으로 바꾸길 원했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대공원역도 최근 이름을 수성알파시티역으로 변경을 추진 중이다. 대공원 조성이 장기화되면서 역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대공원 조성 예정지가 역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배경이다.경산시는 2007년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쟁광리’를 옛 마을 이름인 ‘일광리’로 바꿨다. 포항시는 2010년 ‘대보면’을 일출 명소 호미곶 이름을 따 ‘호미곶면’으로 바꿨다. 울진군은 2015년 금강송이 많은 ‘서면’을 ‘금강송면’으로, 매화나무가 많은 ‘원남면’을 ‘매화면’으로 바꿨다. 고령군도 2015년 대가야국 도읍지로서 위상을 높이고 브랜드화 하기 위해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했다.군위군은 2021년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변경했다. 승려 일연이 고로면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입적한 인각사가 위치한 점이 고려됐다.경주시는 2021년 100년 이상 써오던 ‘양북면’ 명칭을 관내 문무대왕릉의 인지도를 앞세워 ‘문무대왕면’으로 변경했다.이름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으면 된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도 촌스럽다는 이유로 바꾸는 요즘이다. 좋은 이름을 갖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지역 정체성도 살리고 브랜드 가치도 높이려는 지자체의 지명 변경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의 처절한 생존 몸부림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15

중동 리스크, 지역경제계도 비상경계 나서야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심야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면서 중동에서의 전쟁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50년만에 중동전쟁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전 세계가 중동발 글로벌 경제위기에 긴장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경제계도 비상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중동사태에 따른 긴급 경제안보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이 6개월 넘게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동에서의 전쟁 확전은 세계 안보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수입 원유의 70% 가량을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악재 중 악재를 만난 꼴이다. 현재 브렌트 유가가 장중 92달러를 넘어섰고, 호르무즈해협이 봉쇄가 되면 국제유가 100달러 돌파는 시간 문제로 경제계는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17개월만에 가장 높은 1천370원을 기록하고 있어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1천4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고유가, 고환율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 가뜩이나 불안한 국내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크다. 모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국내 수출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게 되고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멀어질 수 있다.기업들은 원유가격 상승으로 원가부담이 올라가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심리적 불안감이 경제를 더 어렵게 할까봐 걱정이다. 지역업계서는 벌써 중동으로부터 주문이 줄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 상공단체 등이 나서 중동발 리스크에 대한 상황을 면밀히 관찰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정부 차원의 대책이 당연히 나오겠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지역경제단체가 할 일도 많다.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의 사정을 고려 기업의 일시적 자금난 해소를 위한 지원책과 수출지원을 위한 선제적 대응책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물가가 오르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도 가중된다. 서민들의 어려움을 보살필 따뜻한 정책도 필요하다. 선거 후유증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까지 겹쳐 있다. 당국은 민생의 어려움이 최소화되도록 만반의 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2024-04-15

난국 타개하려면 ‘쓴소리 총리·비서실장’ 필요

국민의힘의 총선 참패 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후임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 현재 후보로 거론되는 대부분 인물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것이 주된 원인이다. 이번 인사는 여당의 총선 패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정 쇄신 의지를 보여주는 첫 시험대이기 때문에 대통령실도 여론동향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하마평에 오르는 총리 후보는 대구 수성갑에서 6선에 오른 주호영 의원을 비롯해 권영세 의원,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이정현 전 의원 등이며, 비서실장 후보는 인천 계양을에서 낙선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충청 출신 정진석 의원 등이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거론되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기류가 워낙 강해 대통령실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결격사유는 ‘TK 출신이라서, 서울 용산이 지역구이기 때문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맞대결을 해서, 민주당 대표 출신이라서’ 등등 다양하다.정부 요직에 대한 조기 인적쇄신론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이번 인사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맞다. 인사를 서둘렀다가 검증이 허술해 청문회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야당의 집중포화로 국정이 표류할 소지가 다분하다. 무엇보다 총리 후보자는 야당의 추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당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윤 대통령이 이번 인사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는 언제든 서슴없이 쓴소리와 직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야권은 이번 선거기간 중 ‘대통령 탄핵’을 거론할 정도로 윤 대통령에게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야권을 상대로 국정과제를 수행하려면 지금과 같은 독단적인 업무 스타일로는 하루를 견디기 어렵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다양한 국정현안을 타개하려면, 우선 매일 얼굴을 대하며 국정을 논의하는 인사들이 대통령과 격의없이 대화하고, 야당과도 쉽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2024-04-15

가볍게 정치 얘기 좀 해볼까요?

최근 열린 22대 총선 개표소 풍경. /경북매일 자료사진 지난 4·10 총선 기간 내내 나는 한 번도 SNS에 나의 정치적 의견을 피력한 적이 없다. 그것은 내게 특별한 정치적 의견이 없어서도 아니고 내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나는 대중예술인이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중예술인은 말 그대로 대중들을 상대로 예술 활동을 펼치는 사람이고 대중들이 외면하면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대중들은 자신과 다른 정치색을 가진 예술인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한 결론이다. 비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누군가가 보수 지지자이건 진보 지지자이건 관계없이 사랑받고 싶다. 지금 나와 나의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분들 중에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그가 몇 번을 찍었건 간에.그렇다고 내가 ‘대중예술인은 정치적 발언을 삼가야 한다.’라는 명제에 찬성하는 입장인 것은 아니다. 그것이 대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입장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그를 상종조차 하지 않는 문화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던 한국인 1호 프리메라리가 플레이어이자 2002년의 영웅인 이천수 선수는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축구선수이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던 ‘구마적’ 이원종 배우 역시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배우이다. 이천수 선수와 이원종 배우를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 불가능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정치색은 정치색이고 사람은 사람이고 그의 업적은 업적이다. 모든 국민은 어떤 정당이건 지지할 권리가 있고 그것은 나도 이천수 선수도 이원종 배우도 마찬가지이다.실제로 내 주변에는 다양한 정당에서 일하는 벗들이 있다. 국민의힘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 민주당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한 선배는 녹색정의당에서 일하고 있고, 또 어떤 후배는 진보당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 중 누구와도 나는 즐겁게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고 그렇게 해 본 경험이 있다. 어떤 이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즐거웠고, 또 어떤 이들은 나와 다른 철학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어서 새로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의견이 단단해지기도 하고,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납득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납득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생각이 자라는 일인 것은 분명하고 그 결과 나는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우리 가족 안에서도 다양한 정치색들이 있다. 우리는 식사를 하거나 술을 한 잔 곁들이며 가끔 정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가끔 의견 대립이 팽팽해지는 경우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지도 않고 단지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 아버지가 삼성라이온즈의 팬이고 내가 롯데자이언츠의 팬인 것이 우리 부자의 사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누가 어떤 당을 지지하는지는 우리 가족들의 유대감을 전혀 해치지 않는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상대에게 밉보일까봐, 또는 상대를 미워하게 될까봐 우리는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친구끼리라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정치 얘기만 나오면 화가 나고 흥분하는 이상한 조건반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어째서 토론이 자꾸만 싸움이 되곤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 이야기는 금지라며 말도 못 꺼내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정치적 견해 같은 건 들어볼 기회가 없어진다. 서로 간에 정보 교류와 의견 교환이 없다는 것은 물이 한 곳에 고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인 물이 썩듯이 정체된 정보는 왜곡되기 쉽고 올바른 선택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모두가 자유롭게 서로의 정치적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좋겠다. 그로부터 뻗어 나온 다양한 생각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의 말할 권리를 죽음을 각오하고 지킬 것이다.”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말했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거나 생각해 볼만한 말이다.

2024-04-15

우리 못된 일을 하자

아기는 조그만 생명이 주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언스플래쉬 최근 내 삶에 생긴 몇 가지 변화가 있다. 그중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단연 조카의 탄생이다. 조카가 태어난 날을 기점으로 우리 가족의 결속력은 단단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주고받고 조카의 집에 다함께 모여 시간을 갖는 일도 잦다. 처음에는 아이를 안아 드는 것도 버거웠지만 이젠 여러 일에 제법 능숙해졌다.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는 건 기본. 쏟아지는 졸음에 칭얼대는 것과 먹을 것을 요구하는 소리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팔이 떨어질 것같이 아프다가도 내 품에서 잠든 아기의 체온에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아, 이토록 조그만 생명이 주는 기쁨이란!세게 움켜쥐면 바스러질 것같이 조그만 아기였다. 언제부턴가 몸을 뒤집더니 배밀이를 하고 이젠 네 발로 온 집안을 헤집는다. 목도 가누지 못하던 날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듯 꼿꼿하게 앉아 무거운 물건을 쥐고 흔들기도 한다. 한 생명의 뼈가 단단해지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노라면 시간이 흐른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실감 난다. 자란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다. 우리 아기 어디 있지? 장난을 치면 몸을 배배 꼬면서 자기 몸 위에 손을 얹는다. 어찌나 영특하고 귀여운지. 바라보고만 있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고모인 내가 봐도 이렇게 예쁜데 부모는 오죽하겠는가. 자신들의 아이를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다는 부모의 열정이란 실로 대단해서 옆에서 보고 있자면 머리가 아득할 지경이다. 숙지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할 것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도 무궁무진하다. 나 때는 그런 거 없었는데,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면 혀를 꾹 깨문다. 나도 모르게 기성의 문법이 불쑥 솟아오르는 나날이다. 오지랖 넓은 우려가 들 때도 있다. 서울 한복판의 높다란 건물에서 태어난 아이가 지겹도록 볼 것들과 끝내 보지 못할 것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더욱 그렇다. 창의성을 길러준다는 태블릿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 또한 낭만적인 감상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를 향한 부모의 열렬한 사랑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어느 주말, 아빠에게서 연락 한 통이 왔다. ‘우리 못된 일을 할 거야.’ 연이어 조카의 사진이 도착했다. 노란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탄 모습이었다. 늘 그랬듯 집 근처의 대형 쇼핑몰로 산책을 가려다가 인천으로 노선을 틀었다고 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갈매기 때문. 수족관 앞에 놓인 모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진짜 갈매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오빠와 새언니의 눈을 피해 조카를 데리고 지하철에 올라타는 아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니 웃음이 났다. 그야말로 불량 할아버지와 손자가 아닌가. 주먹을 꾹 쥔 채 앉아 있는 사진 속 조카가 너무나 의젓하고 결연함까지 느껴지는 바람에 나도 그 일탈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렇게 도착한 포구는 꽤 부산스러웠다. 흥성거리는 불빛과 색소폰 연주가 어지럽게 뒤엉킨 저녁이었다. 조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갈매기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수산시장에 들러 도다리회를 떴다. 노래미와 멍게까지 서비스로 받았다. 우리는 회에 소주를, 조카는 이유식을 먹었다. 조카의 오동통한 볼을 꼬집으면서 말했다. “너희 엄마 아빠가 알면 엄청나게 혼날걸? 위생적이지 못하다거나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랬느냐고 한참 잔소리 들을 거야.” 키득거리면서 내가 했던 많은 못된 일을 떠올렸다. 어른들이 절대 가지 말라던 위험한 동네를 배회하던 일이나 엄마 몰래 불량식품을 숨겨 놓고 야금야금 까먹던 일. 조마조마하고 무서우면서도 얼마나 신났던가. 나의 조카 역시 무수하게 많은 못된 일을 행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기분이 들떴다.잠든 아기의 뒤통수는 동그란 행성 같다. 망망한 우주를 떠돌다 우연히 발견된 어떤 별.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이 존재는 내 삶을 대차게 뒤흔들었다. 아이는 걷고 뛰고 말하고 생각하며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테다. 그러다 거꾸로 걷고 싶은 날도 있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을 때도 있을 것이고. 그게 나쁘다면 가끔은 나쁜 아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조만간 우리 또 못된 일을 하자. 잠든 조카의 귓속에 속삭인다. 언젠가 반드시 혼날지언정,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비밀스러운 일을 도모하는 친구가 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2024-04-15

인기가 무엇이길래

김규인 수필가 새끼 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났다. 에버랜드에서 태어나 자란 지 1,354일 만이다.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이 푸바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취재하러 나온 방송국의 카메라와 팬들의 카메라가 뒤섞였다. 이송하는 동안에 불안한 마음을 줄이기 위해 여러 번의 적응 훈련도 했다. 편안한 이송을 위해 무진동 차량을 준비하고 모친상을 당한 사육사가 중국까지 함께했다. 사육사 어머니의 마지막 길에도 불구하고 푸바오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모여든 사람들의 수가 푸바오가 누리는 인기를 말해준다. 인기에 비하면 이토록 많은 혜택도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진다. 관계자들이 무엇을 더 해줄 게 없는지 자꾸만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푸바오는 그저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행동해도 곱게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더 그러하다.사람들의 관심 뒤편에는 쓸개즙을 뺀 사육 곰이 아픈 배를 잡고 웅크린다. 넓은 땅을 활보하며 다니던 본능은 이미 상실한 지 오래고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눈은 늘 아래를 향한다. 어쩌면 곰의 사육이 금지되는 2026년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주인의 불안한 눈길을 피하는지도 모른다.생사를 좌우하는 절박한 문제에도 인기 없는 곰에 사람들은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어디 곰만 그러할까. 인기 없는 건 다 그러하다. 창문 하나 없는 방에서 인기를 갈구하는 무명 가수, 신춘문예만을 쳐다보며 젊은 시간을 다 보내버린 무명작가, 라면 한 개로 하루를 때우는 무명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오늘도 인기를 찾아 나선다.거리를 떠돌며 한 표를 얻으려는 국회의원 선거도 끝났다. 2주간의 절박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패자에게는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역대급의 여당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는 고작 5.4% 정도다. 단지 5.4% 차이에 모든 게 바뀐다. 승자는 많은 걸 가지지만 패자는 다시 긴 시간을 어두운 곳에서 재기를 모색해야 한다.인기는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게 아니다. 푸바오처럼 단지 귀엽다는 감정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인기가 많은 제품이 성능이 좋거나 더 많은 인기로 당선되었다고 하여 반드시 선량이 아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개인이나 당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만 보아도 우리 인간이 얼마나 감정에 휘둘리는지 안다.사람은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만을 하지 못한다. 때로는 감정에 쓸려 비이성적인 생각에 빠져버리고 만다. 푸바오에서 나타난 ‘베이비 스키마’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낳지 않는 경향은 여전하고 사육 곰에는 관심조차 없다. 단지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않아 감정이 내키지 않고 인기가 없다는 것 때문에 말이다.그렇다고 불공정한 사회라며 나무라고 싶지도 않다. 사회는 늘 그렇게 돌아간다. 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쪽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기에 그나마 우리 사회는 제대로 돌아간다. 인기를 누리는 푸바오도 언젠가는 잊힐 것이고 또 다른 무엇이 우리의 관심을 끌 것이다. 다만 인기 없이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들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두기를 바랄 뿐이다.

2024-04-15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추모하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2014년 당시 학계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한 세미나와 토론회 등 각종 학술행사가 개최되고 다양한 기록물이 연이어 발간되었다. 이후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일부의 방해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두 가지 입장이 소모전을 벌이며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다시 물어본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당장 떠오르는 것이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다. 하나의 사건은 커다란 배가 서서히 침몰하는 과정에서 대다수 학생을 구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른 하나의 사건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압사’라는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수많은 청년이 생명을 잃었다는 점에서 판박이다. 한 마디로 두 참사는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서 근원적 동일성을 갖는다.그렇다면 대체 왜 있을 수 없는 일이 반복해서 생겨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책임 있는 기관의 조사로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앞선 두 번의 사례가 증명하듯 사회적 참사를 조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어떤 세력의 조직적 방해가 제대로 된 조사를 막았고, 조사가 안 되니 책임자의 처벌도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 시스템이 반복적으로 오작동하게 된 원인을 추적해서 개선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지점에서 그간 오작동이라고 생각했던 시스템이 원래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정상인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해 이런 학습의 결과 대다수 국민이 국가 시스템에 별로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유례없는 합계 출산율과 투자 열풍이 국가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하는 것이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나의 삶과 미래를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세월호 참사는 오작동하는 사회가 정상이 아니라는 인식을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오작동을 멈추는 일은 국가의 몫이지만 여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난주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민들은 정부 여당을 심판하는 투표를 했다. 국가 권력이 투표로 드러난 다수 시민의 마음을 잘 받들기를 희망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기대가 크면 절망도 크다는 사실을 과거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우리 스스로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전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해진 나의 신체를 뒤바꾸고자 써 내려간 메모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 뒤로 뭐 하나 1년 넘게 꾸준히 실천한 항목이 없었다.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만큼 나와 내 주위의 많은 것이 변했다. 다시 메모를 작성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이것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