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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군위産團 SMR’은 기업유치의 최고 해법

대구 군위에 국내1호 소형모듈원전로(SMR) 건설이 추진된다. 대구시와 한수원은 이달 중 군위군 소보면 첨단산업단지에 SMR을 건설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한다. SMR 건설은 한수원이 주도하고 대구시는 부지를 제공하며, 타당성 조사와 부지 적합성 평가 등을 하는 게 주요내용이다. 내륙도시에 원전 건설이 추진되는 것은 처음이어서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 26기는 모두 경주, 울진, 기장, 울주, 영광 등 바닷가에 있다. 가열된 원자로를 냉각하려면 대량의 수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기존 대형 원전은 높은 건설비용과 안전성으로 인해 입지 선정이 제한적이었지만, SMR은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원전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공장 제작과 현장 조립이 가능하고, 전력 소비지 인근에 배치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지하 40m에 설치되는 SMR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존 원전과는 달리 중력만으로 냉각수가 투입돼 안전성이 높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기존 원전보다 안전성이 10배이상 높다”고 했다. 군위 첨단산업단지에 SMR이 들어서면 입주기업들에겐 장점이 많다. 값싼 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인근에 군위댐과 낙동강물이 있어 산업용수도 풍부하다. 622조 원을 투입해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 일원에 조성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처럼 전기와 산업용수가 모자라 공장가동을 걱정하는 일은 없다. 2030년까지 경주 문무대왕면 일원에 건설되는 SMR 국가산업단지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정부는 최근 2031년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로부터 SMR 실제 건설을 위한 허가를 받은 뒤, 2034년에 최종 운영 허가를 받아 2035년쯤부터 상용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원안위는 현재 국제원자력기구(IAEA) 및 세계 각국과 협력해 SMR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중이다. SMR 최종 입지는 정부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하겠지만, TK통합신공항 인근에 조성될 군위 첨단산업단지가 다양한 측면에서 최적지로 판단된다.

2024-06-06

행정통합은 완전한 지방자치 실현에 있다

지난 4일 행정통합 논의를 위해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상민 행안부 장관,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이 만난 첫 회동에서 대구경북(TK) 행정통합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이 나왔다.핵심 골자는 시도의회 의결을 거쳐 연내 TK 행정통합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는 것과 2026년 7월에는 통합자치단체를 출범시키자는 것이다. 행안부는 TK통합이 행정체계 개편의 선도사례가 되도록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제시됨에 따라 통합은 이제 급물살을 타게 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지원에 힘입어 과거와는 다르게 힘있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윤 대통령은 취임 후 완전한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 미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가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전국 어딜가나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해 TK통합을 시작으로 행정통합 논의가 전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높다.행정통합의 본질은 수도권 중심의 일극체제로는 지방이 살 수 없다는 위기감에 있다. 지방소멸을 억제하고 인구절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권에 대응할 지방단위의 행정체제 개편이 불가피한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이 500만 메가시티를 만들어 지방 스스로가 경쟁력을 키워 갈 때 국가 발전도 가능하다는 뜻이다.이번 TK 통합이 관심을 끄는 것은 덩치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을 정부가 지방으로 이양해 줄 것인지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국방, 외교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넘겨받는 자치정부가 돼야 완전한 지방정부가 완성된다”고 말했다.이 장관도 미래지향적 방향에서 모색하겠다고 말했으나 권한이 얼마나 이양될지는 알 수 없다. 행정통합은 시도민이 공감해야 성공 할 수 있다. 시도민이 이해할 명분을 충분히 설명하고 통합으로 주민 삶의 질이 나아질 거란 희망도 주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통합에 벌써 반대 뜻을 밝히기도 했다. 통합의 산은 멀고 험하다. 완전한 지방자치 정부를 목표로 한다면 이 고비도 넘길 수 있다.

2024-06-06

유전으로 대박 난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금세기 최대 유전 발굴로 벼락부자가 된 나라는 남미의 가이아나다.가이아나는 남아메리카 동북단에 위치한 인구 80여 만명의 작은 나라로 과거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1966년 독립국가가 됐다.사탕수수와 쌀농사 등 1차산업 기반의 빈국이었으나 가이아나 앞바다서 석유가 발견되고부터는 일약 부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됐다.가이아나의 석유 발견은 단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거의 100년 가까이 탐사작업을 벌였으며 실패를 거듭한 끝에 거머쥔 행운이다. 2019년 가이아나 앞바다서 8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것이 확인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국제사회는 2020년대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남미의 가이아나를 꼽고 있다. IMF는 가이아나의 1인당 GDP가 5년 내로 4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도 한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가이아나의 회원가입을 권유하는가 하면 원유생산 능력이 알려지면서 유엔안보리 비상임 국가에도 진출하는 등 국가의 위상도 올라섰다.그러나 한편 IMF는 제조업 육성을 경시하고 석유로 번 돈을 마구 쓴다면 베네수엘라처럼 자원의 저주를 받을 것이란 경고도 함께 보내고 있다. 실제로 석유개발과 건설 붐으로 일자리가 늘고 있지만 정작 원주민보다 외지인이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고도 한다.경북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표로 산유국 진입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다. 아직은 넘어야 할 문턱이 많아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가이아나의 실체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살펴볼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6

미래세대를 위한 희생

홍석봉 언론인 아이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한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공부가 하기 싫어 농땡이 친 기억이 있을 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자신의 일과 업무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다. 심지어 자신의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공부는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공부를 해야 만 자신의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고 스스로 길을 헤쳐나갈 수 있다. 우리 주위에선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유치원부터 과외를 하는 때도 있다. 억지로 하는 공부다.하지만, 이러한 공부가 장차 성공의 초석이 된다.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공부다.국민연금 개혁 및 의료개혁, 전기료 인상은 우리나라의 당면 과제다. 늦추면 우리 사회의 부담은 물론, 미래세대에게도 짐이 된다. 무조건 해야 한다.국민연금법 개혁은 국민이 모두 시급성을 인식하고 있고 동의하는 부분이다.하지만, 정작 연금 요율 조정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주저앉고 말았다. 연금 개혁의 핵심은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2055년이면 기금이 고갈된다. 저출생,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주 요인이다. 미래세대에겐 심각한 문제다. 현 세대의 평안을 위해 후손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연금은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면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연금 개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막 첫발을 뗀 22대 국회지만 개원과 함께 연금 구조개혁과 재정 안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여야는 연금 개혁부터 추진해야 한다.의료개혁도 의사 증원 문제를 두고 심각한 의정 갈등을 겪었지만 큰 틀에서의 증원 문제는 문턱을 넘어선 셈이다. 당장 정부가 선언한 2000명 증원 선에는 못 미치지만 곧 1500명이 2025학년도부터 증원된다. 물론 의사집단의 반발은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의사 인력난 역시 그냥 두면 미래세대에는 부담이다.전기 및 가스료 인상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와 가스 공급으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한전과 가스공사의 이자만 4조~5조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말 현재 양 공사의 총 부채는 250조 원. 사상 최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위기 여파다. 2022년 이후 원가 이하로 전기 등을 공급했다. 한계에 이르렀다. 늦출수록 경제부담만 커진다. 조기 인상 외엔 방법이 없다.정부는 공공요금 인상, 기업의 생산비 증가, 수출입 감소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요금 인상 시기를 재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싼값에 에너지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추가 인상분은 미래세대의 부담이다.6월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애국충정을 기린다. 그들과 산업전사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국민연금 등 개혁은 현 세대의 희생이 필요하다. 하기 싫고 힘들어도 해야 한다. 22대 국회가 출범했다. 정부와 여야는 이번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등 시대 과제를 조기 마무리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희생해야 할 때다.

2024-06-06

정원을 잘 가꾸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5월의 들판을 달려보면 갖가지 풀꽃들이 밝은 계절을 노래하고 있다. 노란 꽃들이 유난히 많다. 그중에서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는 금계국은 황금색 깃털이 아름다운 금닭(金鷄)을 비유한 듯한 국화과 식물인데 너무나도 소담스러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살펴본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지 않았던 꽃들이 요즈음은 길섶과 비탈에 풍성하게 널려있다. ‘사랑의 망각’ ‘상쾌한 기분’이라는 꽃말과 함께 강인한 번식력으로 봄의 들판을 차지하고 있다.풀꽃은 원래 존재감이 별로 없지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흥얼거리며 시골집 골목길로 들어서면 노란 돈나물(돌나물) 꽃도 눈길을 끈다.오늘은 시골집의 소나무 순치기를 하려는 날이다. 5월 하순부터 6월까지가 적기이다. 그동안 노란 꽃가루를 마루에 흩뿌려 귀찮게 하던 새순들이 쑥쑥 자라서 다른 모양새를 보이고 있고, 그대로 두면 잎들이 햇빛을 가리거나 바람을 막고 수형(樹形)을 망칠 수 있기에 불필요한 가지도 잘라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걸 놓치면 다음 계절, 여름과 가을을 기다려야 한다.정원에는 몇 그루 낮은 소나무가 꽤나 근사하게 자라고 있는데 수형 관리를 위해 매년 가지치기를 해주고 있다. 검붉은 나무둥치가 드러나도록 자르며 나무 끝부분이 강하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순을 따서 가지 세력의 균형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소나무 종류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나무의 외모를 고려하며 큰 가지부터,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쪽으로 전지(剪枝)를 한다. 말라죽은 가지, 병든 가지를 먼저 자르고 쑥 뻗은 도장지와 아래쪽으로 쳐진 가지, 둥글게 굽어있는 가지, 교차하는 가지를 자른다. 뭉크러져 있던 잔가지가 잘려지면 바람도 시원하게 통하고 갖가지 모양의 굵은 가지가 영험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소나무는 절개와 의지, 충정과 지조 등의 가르침을 주듯 우리의 애국가에도 철갑을 두른 듯하다고 하지 않은가. 소나무 꿈을 꾸면 벼슬할 징조이고 소나무를 그리는 꿈은 만사형통을 이룬다고 하니 잘 키워야 하겠다.5월 30일부터 22대 국회가 열렸다. 여의도 국회 정원에도 가지치기를 한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은 지역구 253명과 비례대표 47명 등 총 300명의 국회의원 중 초선 의원은 131명이다. 지난 21일 국회 박물관에서 가진 ‘초선 의원 의정 연찬회’에 모여 국회 조직과 기능 및 주요 의정 지원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앞으로 4년간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국회에 반영하여 국민의 심부름꾼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나무에 기둥 쪽 108개 가지와 밖에서 둘러싸고 있는 175개의 가지가 서로 엉키거나 햇빛을 가리고 혼자서 쭉 뻗는 행위로 여의도 소나무를 훼손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는 옛날에는 가축을 키웠다고 하니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도록, 여의도의 여의(汝矣)를 ‘여의주(如意珠)’라고 해도 좋을 정치·금융의 중심으로 거듭나게 해서 대화와 타협으로 국회 정원을 잘 가꾸어 나가길 염원하는 바이다.

2024-06-06

시낭송의 매력과 풍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아침 들리는 새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부터 들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고 눈을 뜨니, 오늘 하루가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예전에는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지만, 요즘은 촌락에서도 닭 울음 소리나 개 짖는 소리가 드물어진 것 같다. 그만큼 삶의 양태가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소쩍새나 부엉이 등 밤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고, 이른 아침 온갖 새소리에 눈을 뜨면 도회지만 어디 산 속에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필자의 우거 주위엔 도로 건너의 야산과 연결되는 작은 언덕이 뒤뜰과 이어지고 있어서 정원의 나무들과 함께 길다랗게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나무를 비롯 풀들이 자라고 있는 그곳에선 사시사철 수많은 새들이 날아들고 합창이 끊어지질 않는다. 그러한 곳에서 새들의 지저귐을 자주 듣다 보니, 어쩌면 새들의 특유한 대화법(?) 같은 지저귐에도 일정한 패턴이나 규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침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새들의 울음은 서로의 안부마냥 그렇게 정겹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전문싱그러운 녹음과 향기로운 풀잎이 꽃필 때보다 더 아름답다는 유월 아침에,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는 그야말로 자연의 서정시처럼 들린다. 연록의 잎새가 짙어지면서 산과 들에 초록의 서사시를 쓰듯이, 새들의 낭랑한 지저귐은 계절을 찬미라도 하듯 그 자체가 영롱하고 이슬빛 머금은 명징(明澄)한 시편으로 여겨짐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바람결조차 부드러워 새들의 목놓아 외치는 읊조림에 나뭇잎마저 살랑거리며 추임새를 넣는 듯하다.누렇게 물결치며 맥추(麥秋)의 서정을 노래하던 보리를 베어내고 논배미의 행간에 또박또박 글자를 심듯이 모심기를 하는 망종(芒種) 즈음에, 사람사는 세상에도 시와 음악을 품고 즐기는 모습들이 활달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책방이나 한적한 뜰에서 시를 읊거나 시낭송회를 열고, 십인십색의 화음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문인과 독자와의 만남으로 문학과 예술의 얘기꽃을 피워가는 마당에는 풍류가 저절로 흐르는 듯하다.시는 세상에서 가장 정제된 언어로 짧지만 시사하는 의미와 울림이 있다. 아름다운 시어들을 목소리의 음색과 시에 담긴 희로애락을 가슴으로 전하며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시낭송가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활자화된 시를 목소리의 운율과 낭송가의 표정, 몸짓 등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표현이 더해지게 되면 더욱 따뜻하고 풍부한 감동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시낭송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를 이어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시 나눔의 감동을 전달하는 풍류 가인(佳人)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감정과 정서가 메마르고 단절돼가는 현대사회에, 시를 읽으며 시낭송의 매력과 운치를 느껴보는 풍류생활을 즐겨보면 어떨까?

2024-06-06

산사의 풍경소리

탄탄스님(통도사중동분원 서래사주지, 동국대(와이즈 캠퍼스) 출강) 밤 하늘의 별들이 초롱초롱하고 칠흑같은 어둠속 저 멀리 산그늘이 더욱 검푸른 곳에서 하루에 두끼만 먹고 어떨때는 일용할 두끼마저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이고 밤참으로는 가끔 왕뚜껑 컵라면 일 때도 있었지만 차리리 속은 편했던 적이 있다. 사람을 만나고 친분을 쌓아올려 수 천명의 지인이 있음 뭣 할런가? 살아보니 다 헛되고 헛된 인연이더라.  세상 살아가며 허무함을 느껴 나락에 빠진 자에게 겨울이면 아프지나 말고 엄동설한 굶지말고 잘 버티라며 쌀 한가마 김치 몇포기 나눠주는 지인 딱 한 명이면 그저 행복한 세상일터.직장생활에 밥줄을 걸고 높은 자,같잖은 자,눈치나보며 비위맞추랴,쥐꼬리같은 박봉에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아가며 사는 꼴이 꼭 여색에 빠져서는 머리부터 아그작 아그작 암컷에게 씹혀 먹히는 줄도 모르다가 최후에는 성기조차 씹혀먹히며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숫컷 사마귀 같은 수 많은 인생도 어지간히 애잔하다. 인간세상이란게 종족번식을 위해서이든, 애욕에 빠져서이든, 짝사랑이든, 또 그 어떴든 간에 숫컷 사마귀처럼 애처롭게 살아가는 이 또한 부지기수다.  갈 곳도,오라는 곳도 없어 하루 온종일 신물이 나오도록 라면으로 연명하지만 이 몸은 자유로운 들개 버금가는 자연인이다. 잠 못이룬 긴긴밤 줄기차게 마셔된 술병이 머리맡에 나부끼고 이를 바라보며 우선 당장 해장할 고민에 머리를 감싸나,그래도 그대는 자유인이자 자연인 아닌가. 여름날 밤에도 온 몸에 모기에 뜯기며 홀딱 깨벗고 잔걸 보면 더욱 그렇다.  이 몸이 아침이면 뱃속이 벌써 여러 해째 영 불편하였다.생률과 생무우를 먹어 보면 어떨까하여 생각만 하염없었지만,밤을 날로 예쁘게 깍어 무우를 밤톨처럼 깔끔하게 까서는 앙징맞은 찬합에 넣어 대령해줄 어여쁜 어느 여인이 있나, 그 번거로운 일을 해 줄 언년이 식모가 있을까나, 마트에 가서 무우 한개 먹자고 한 다발을 사와서 보관 할 곳도 없고 당뇨에는 썩 이롭지 않지만 비타민C가 엄청 풍부하다는 사과나 감조차 혼자 먹자고 깍아 먹는 사소하기조차 한 일도 그렇게 쉽지가 않다. 이토록 혼자 사는 일은 그 모든 것이 수월치가 않다.가끔 자연인 재방을 본다.홀로  날마다 부지런 떨며 깊은 산 속에서  집도 손수 지어 자급자족을하며 사는 모습, 대단한 용기이지 않은가.어디에도 얽메임 없는 자유를 갈망하여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생활하는 그 신념과 용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높이 평가할 만 일이다.  '만사 귀차니즘' 에 빠진 현대인들에게는 죽었다가 여러 번 깨어나도' 언감생심으로 꿈꿀수도 없는 그 신비의 세계, 그 삶도 충분히 인간다운 삶이라는 철리를 깨우쳐 본다.  누군가에게 얻어들은 옛날옛적 이야기 하나 해보자,"어느 골짜기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칡넝쿨을 거두려고 웬 줄을 당겨 붙들었는데, 그것이 하필 그늘에서 자고 있던 호랑이 꼬리였다.이런 낭패가 있나,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나무꾼이 깜짝놀라 급히 나무 위로 올라갔다.잔뜩 화가 난 호랑이가 나무를 마구 흔들어 대자 놀란 나무꾼이 엉겹결에 그만 손을 놓아 버렸다. 그런데 나무에서 떨어진 곳이 하필 호랑이의 등이었다이번에는 호랑이가 너무도 놀라 몸을 흔들어 대었고,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호랑이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달리기 시작했다.나무꾼은 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호랑이 등을 더 꽉 껴안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그런데,한 농부가 무더운 여름에 밭에서 일을하다가 이 호사스런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한다. “나는 평생 땀 흘려 일만 하고 사는데,어떤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면서,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는가?”농부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절대절명의 생사의 기로에 있는 나무꾼을 부러워 했다나ᆢ. 때로는 남들을 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나만 죽도록 고생하는 것 같다. 나는 뜨거운 뙤약볕에서 일을 하는데 남들은 호랑이 등을 타고 신선 놀음을 하는 듯 하다.그러나,실상을 알고보면 사람 사는 것이 거진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하다.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똑같은 외로움속에서 몸부림치며 생을 영위하고 남과 비교를하면 다들 내것이 작아 보인다.나에게만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들어가 보면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비교해서 불행해 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것이 현명한 삶의지혜가 아닐까 한다. 탈탈털린 영혼이었을때 꼭 한번은 만나보시라고 꼭 강권하고 싶은 경북 영덕군 남정면 골짜기의, 포항에서 제일 높은 스님은 아니지만 젤 높은 곳 내연산 문수암에 가면 저절로 만나지는 스님이 있다.산위에서 산밑을 바라보라.모두 다 아랫것들로 보이더라, 높은곳은 뭐 별천지 더냐?,지역사회에서 명망있는 팔순의 카톨릭 사제를 거주하는 암자의 명예신도회장으로 일방적(?)으로 임명하시고 하루 흙짐 스무지게를 지어 절을 손수 보수 수리하고 일상에서 지옥과 극락교를 마음대로 건넌다는 지론으로 아무런 걸림없이 겸손을 지향하며 내 맘이 가는대로 당나귀하고 염소하고도 벗이 되어주고 가파른 산길에서 지던 짐을 내던지는 당나귀 타박하지 않고 돌려받아 둘러메고는 묵묵히 산길 걷는 포항의 기인스님, 3,000배도 쉽지 않은데 팔굽혀 펴기 3,000회도 끄떡없다더니 몸을 너무도 흑사하며 하나 뿐인 몸을 아끼지도 않더라.남의 사주팔자도 명쾌히 들여다 보고 염생이 밥주려고 청과시장 썩은 과일 수거하러 트럭을 몰고 극락교를 건너 사바로 발길 향하는 작업복도 잘 어울리는 묵설스님이다. 포항에 잠시 살때면 가끔은 통화도 하고는 했지만 더운 날엔 내가잡은 고기는 말고 방금 죽어버린 시원한 물회 한사발을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싶다.'전국의 기인찾아 삼만리'를 취미삼은 내게 경북 영덕군 남정면 회리길499로 좀 오라하시기에 한숨에 달려갔네. 비싼 게 좀 먹자면서 곱게 동여멘 포장끈 녹슨칼로 뚝 끊어서 융슝한 대접도 받았다.그 다음엔 이런 당부의 말씀을 주시었네, '인생이란 강한자와 대적만 하려 말고강한자를 벗으로 두는 속편한 길 가라'다 이루워져서 만족한 다음엔 그 다음에는 반드시 어김없는 허무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리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나 어느정도 성공하여 일가를 이루웠거나 돈줄을 거머 쥔 재벌이거나 유명연예인들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후에 그 공허를 이기지 못해서 도박도 하고 술이나 이성을 찾고 더 나락으로 빠져서 마약으로 그 공허함을 넘을려고 하는 것 같다며, 자신도 수행길 고단하고 외로워서 술마시다가, 아까비라 내청춘도 많이 지난간 거라고 솔직담백하게 할도 해주고 방도 해준다.그러면서 나에겐 한가지 더  한번 더 강조하여 챙겨주는 말쌈이"절대로 강한자에게 덤비지 말고친하게 지내요'두 번을 더 내게 반복 강조를 하더니만, 또 '어떤 일을 하든 아쉬움을 조금 남겨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신다.인간에게는 이성적으로 다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어야 하며, 그래야 호기심을 일으키고 희망을 되살린다고 되뇌이셨다.동물선원 원장직 마다하지 않고 제 갈길 가는 기인(?)이랄까, 수행도 독특한데 니들 맘대로 생각하던 말던멋대로 살아갈테니,괘념치를 않는다네.헤어짐을 앞두고선 사족을 하신 말쌈이 '완벽한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듯 여지를 남기고 감사 할줄도 아는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현실에 순응하고 마음의 부족을 채우라고 덧붙이셨다.날 콕찍어서는, 언어를 빨리하면 복이 감한다고 다른 복은 갖추었어도 말을 천천히 하라고 말이 많은 사람들은, 즉 욕구불만이니 말을 줄이는것이 상책이라신다.촌로처럼 허름하게 늙어가지만 어느 관상가 점쟁이 뺨따구 왕복으로 서너번도 더 쳐주는 도인도 훨씬 능가하는 꿰뚫어 명쾌하기조차 한 인생길 조언도 결코 마다하지 않으면서, 예전의 묵설당이 그 포커페이스 고수의 묵설은 온데간데 없고 번듯한 중늙은이의 스님으로 거듭나 내일모레 구순의 신부님하고도 승속과 종교도 초월하고 지옥과 극락도 마음대로 넘나드는 확고부동한 고독한 수행자의 늠름한 모습이었다네. / 탄탄(통도사 포교원 서래사 주지•동국대학교 출강)

2024-06-06

‘보복정치’로는 民心 얻을 수 없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22대 국회 문을 열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부부 등을 겨냥한 특검법 폭주에 나서 분위기가 살벌하다. 민주당은 가장 먼저 ‘채상병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윤 대통령을 특검 표적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사망 사건 조사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던 날 윤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에서는 “탄핵까지 거의 온 것 아닌가”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중앙지검장 시절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최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주가조작 의혹, 허위 경력 기재 사기, 뇌물성 전시회 후원,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인테리어 공사 특혜, 민간인의 대통령 부부 해외 순방 동행,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를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법안 내용을 보면, 자신들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검 후보 2명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더 기막힌 것은 압수 수색, 구속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영장 전담 법관을 따로 지정하고, 재판도 전담 재판부가 심리하도록 한 것이다.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원천배제한 법안이다.조국혁신당은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한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법무장관 시절 자녀의 논문을 대필했다는 가족 관련 의혹과, 작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설명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일각에선 “조민 아빠의 복수극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조국 대표 가족은 자녀 입시비리로 딸(조민)은 의사면허를 잃고 아내는 3년여 수형 생활을 했다. 조 대표도 유죄를 선고받고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조 대표는 “과거 검찰이 내 딸은 일기장과 고교 생활기록부, 체크카드, 신용카드 내역을 조사했다. 그러나 한동훈 딸 같은 경우, 소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압수수색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검찰의 불공정성을 제기했다.야권은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21%까지 떨어진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나오자 입법폭주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든, 민심은 자기편이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22대 국회가 시작부터 복수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장소로 변한 것 같아 충격적이다. 명색이 국민대의기관인 국회가 앞으로 ‘특검정치’라는 어둡고 파괴적인 어젠다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존재이유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느끼고 있지만, 특검정국은 사법체계와 정부의 행정기능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야권이 윤 대통령 부부와 한 전 위원장을 처단대상으로 규정하고, 국회를 ‘복수의 장’으로 만들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일시적으로는 증오심에 가득 찬 보복정치가 민심을 얻는다는 착각을 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06-04

6년 만에 재개되는 대북확성기

우정구 논설위원 대북확성기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심리전 무기다. 1962년 북한이 대남방송을 시작하자 우리도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개시한 것이 대북확성기 방송의 시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 따라 방송이 중단되거나 재개되는 일이 여러번 반복됐다.최근 북한이 오물이 든 대형풍선을 남한으로 살포하는가 하면 GPS 전파교란 행위 등 연쇄적 도발을 일삼자 정부가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를 무기로 꺼내 들었다.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 이후 중단된 지 6년만이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압박 수단으로 통하고 있어 북한의 다음 반응에 정부도 긴장감 갖고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대북확성기 방송은 최대 30km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방송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고출력 장비의 무기다. 부도덕한 북한 수뇌부의 실상이 스피커를 통해 폭로된다면 북한군과 인근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 무기로서는 최적격이다.정부는 과거에도 북한이 심각한 도발을 개시했을 때, 대북확성기를 카드로 꺼낸 적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2015년 비무장지대 목침지뢰 사건, 2016년 4차 핵실험 등의 직후다. 특히 그동안 내보낸 대북방송의 내용이 김정은 정권의 세습과 비리 등 북한 내 실상을 폭로한 것이어서 이번 우리측 대응에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이번 대북확성기의 재개로 남북관계의 긴장감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측의 다음 대응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분위기다. 대북확성기의 위력과 함께 유비무환의 정신무장도 갖고 갈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4

북한의 저질도발 속에 맞는 69회 현충일

6월 6일은 69번째 맞는 현충일이다. 현충(顯忠)은 충렬(忠烈)을 높이 드러낸다는 뜻으로 이날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충정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정부 기념행사가 열리고 대구와 경북에서도 애국선열과 참전 유공자 등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지역에서 열린다.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침의 위기를 극복하며 오늘의 번영을 이룩했다. 일제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독립정신으로 맞섰고, 100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6·25전쟁의 비극을 딛고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나라다. 정부가 이달을 특별히 호국보훈의 달로 정한 것은 현충일을 비롯 6·25 전쟁일, 제2연평해전 승전기념일, 의병의날 등 호국과 관련한 날이 이달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호국보훈의 정신을 선양해 국가안보를 보다 튼튼히 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대구와 경북은 호국보훈의 성지다. 일제 강점에 맞서 목숨을 바친 독립유공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경북은 전국 독립유공자의 15%를 배출한 곳이다. 안동은 시군 단위에서 유일하게 300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그 숫자가 시군 전국 평균의 10배가 넘는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국제사회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위협과 중동지역에서의 전쟁 발발 등 세계는 바야흐로 신냉전시대에 돌입했다. 국제정세의 불안감은 한반도 안보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이어 최근에는 1000개가 넘는 오물풍선을 우리쪽으로 날려보내는가 하면 GPS 통신교란 등으로 우리사회의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맞서 대북확성기 설치 등 즉각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안보는 지키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 열강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 안보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전쟁의 아픈 경험이 없는 젊은세대에게 호국선열의 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휴일보다는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경건한 날이 되어야 한다.

2024-06-04

‘산유국의 꿈’… 포항 앞바다에서 이루어지길

포항 근해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오자, ‘제2의 영일만기적’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기대감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를 발표하자, 포항시민들은 ‘산유국의 꿈’이 포항 앞바다에서 이루어지게 됐다며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그저께 ‘포항 앞바다 석유 가스 풍풍 솟아나길’이라는 제목의 SNS를 통해 “탐사와 시추를 구체화 시킨다면 우리나라도 새롭게 일어나는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경북도에서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대한민국이 ‘산유국’으로 우뚝 서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지사는 미국이 2010년 이후 셰일가스 혁명 당시 기존 중동 등에 치우친 에너지경제 패권에서 벗어나 값싸게 에너지를 공급하며 새롭게 성장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포항시민들도 이번에는 정말 대박이 터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포항지역에서는 여러 차례 석유와 가스가 발견됐지만, 모두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최근 6000t급 물리탐사연구선 ‘탐해 3호’를 영일만항에 유치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포항시가 미래 자원 확보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으로선 근해에서 본격적으로 유전개발 작업이 이루어질 경우,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영일만항과 배후단지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영일만 근해에서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흥분할 단계는 아니다. 경제성 확인 단계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추 성공률은 20% 정도이며, 석유가 나오더라도 채산성이 없을 수 있다. 포항시민들은 지난 1976년 영일만 일대에서 원유와 가스가 발견됐다는 해프닝으로 인해 큰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제적으로 신뢰성이 아주 높은 업체가 탐사를 주도했기 때문에 실제 석유·가스 자원이 심해에 매장됐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우리 국민이 모두 간절히 바라는 ‘산유국 꿈’이 포항 앞바다에서 이뤄졌으면 좋겠다.

2024-06-04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닭의장풀

점심을 먹는 동안 소나기가 내렸다. 시원해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습도만 높아졌다. 식당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제 비가 내렸나 싶게 말갛고 파란 하늘이었다.“아이고 더워라. 여서 뭐합니까? 그늘에 가서 좀 쉽시다. 담배도 한 대 피우고.”검고 붉은 피부를 가진,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크고 깡마른 사내가 내 옆으로 와 섰다. 오늘부터 나와 한 조가 된 사내였다. 우리는 식당 처마 옆 그늘진 곳으로 가 앉았다. 사내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 중 하나를 자기 얼굴에 문지르면서 남은 하나를 내게 건넸다. 냉동고에서 막 꺼낸 생수병이었다. “이 일 한지 오래입니까?”“오래 되고 말고가 있습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전기 기술자도 아니고. 어제 처음 해 본 일입니다. 어제 하루 하고 말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오늘 또 나오라 하더라고요.”태양광 발전 패널 설비 공사 현장은 처음이었다. 공사 현장이 집에서 비교적 먼 곳이라 어쩔까 했지만 일당이 나쁘지 않았고, 현장이 산이라 하니 마음이 갔다. 오후 작업을 시작한 후에도 사내는 계속해서 말을 걸거나 자기 이야기를 했다. 손놀림을 멈추거나 쉬지는 않았다. 입을 통해 노동의 무게를 내뱉고 덜어내는 것 같았다. 사내의 목소리가 조금 컸었는지 공사 감독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잠시 조용하다 싶었는데 감독이 사라지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이거, 이거 이름이 뭔지 압니까?”보랏빛 꽃이었다.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가 뭉쳐진, 주위를 둘러보니 공사 부지에 지천으로 깔린 풀이었다. 사내가 가리킨 꽃으로부터 눈길이 닿는 곳까지 퍼져나간 보랏빛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아니오, 이름이 뭡니까?”“이게 바로 닭의장풀. 닭장 옆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달개비라고 하면 들어 보셨을라나? 예쁘지요? 봄에 나는 것은 먹기도 했는데.”사내는 꽃을 하나 꺾어 머리에 꽂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이것들이 예쁘기는 한 데 풀은 풀이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보는 족족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엉망진창이 됩니다. 생존력이 엄청 나거든요. 여기 뽑아 놓으면 저기서 나고 저기서 뽑아 놓으면 저쪽 어딘가에서 또 나고 있고. 약으로도 쓰인다 듣긴 들었는데, 그렇다고 이걸 약으로 쓰겠다고 캐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은 없으니.”4, 5일정도 평탄 작업이 끝난 후 콘크리트 작업이 시작됐다. 태양광 패널을 올리고 고정할 자리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설명을 듣고 흩어져 막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보랏빛 꽃이 보였다.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꽃이라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쓰였다.“왜요? 무슨 일입니까? 그 잡초 꽃 때문에요? 아이고, 보기보다 마음이 여리시네.”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사내가 삽으로 땅을 내리찍었다.“이 녀석들은 어디서든 잘 살아낸다 했지요. 걱정 마십시오. 죽었나 싶어도 다시 머리를 내밉니다. 자, 하지요. 오늘 좀 많이 파야 하던데.”하지만 한 번 간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능한 꽃을 피해 삽질을 했다. 사내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지만 더 이상 입을 대지는 않았다. 땅을 파는 작업은 그전 작업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오전 일을 마칠 즈음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에 젖은 옷 때문인지 몸이 무겁다 느껴졌다.일주일이 지났다. 전날부터 태양광 전지 패널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넓고 큰, 검은 판들이 땅을 덮었다. 설치는 전문업체의 사람들이 했고 나와 사내는 보조 일을 했다. 주로 장비, 도구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이거나 패널을 고정하는 동안 흔들리지 않게 잡고 있는 일이었는데 검은 전지판에 반사된 빛에 내내 눈이 부셨다. 그날따라 사내는 말이 없었다. 나는 사내가 입을 여는 것을 기다리다 먼저 말을 걸기로 마음먹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싸구려 선글라스라도 하나 가지고 오는 건데. 말이라도 좀 해 주지. 안 그래요?”연철은 부러 툴툴거렸다.“오늘 마치고 한잔 합시다. 술 하지요?”사내가 말했다.일을 마치고 둘은 식당에 남았다. 삼겹살과 소주 몇 병 준비해줘요,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식당 주인에게 부탁을 해놓았었다.“이건 내가 낼 게요.”“아이고, 고맙습니다. 잘 마실 게요. 하하. 자, 한 잔 받으십시오.”사내는 내 잔에 술을 따랐다. 둘은 공사가 얼마나 이어질지, 어느 어느 지역에 열린다는 큰 공사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티브이에 나오는 정치인이나 대통령 얼굴을 보며 욕을 해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문득 사내가 했던 말이 떠올라 내가 말을 꺼냈다.“그, 닭의장풀인가 하는 것들 말인데, 패널들이 다 올라가고 나면 햇빛을 못 받을 텐데 괜찮을까요? 오늘 보니 패널 밑은 완전히 응달이던데. 햇빛도 못 받고 비가 온다해도 빗물들이 스며들려면 오래 걸릴 텐데. 쟤들도 꽃이 피려면 해도 보고 비도 맞고 해야 할 텐데.”“글치요. 햇빛을 아주 못 받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받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위에서 흘러 내려오거나 땅속으로 흘러든 빗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전만 못 하겠지요. 뭐,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래서 잡촌데. 잡초가 제일 강하다 안 합니까.”“그렇겠지요? 하긴, 우리가 잡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보니. 꽃이 예쁘더군요. 자꾸 보니까.”“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카는 말도 있다 아입니까. 무슨 유명한 시에 나온다 하던데. 하하.”나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오늘 왜 말이 없었는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었다. 사내는 소주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고는 한숨을 쉬었다. 사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재건축이 된다고 했다.“오늘 회식은 내가 쏠 일이 아니네. 듣고 보니.”“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입니다.”재건축 이야기는 제법 오래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재건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파트 주민들 중 상당수는 전세나 월세로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었고 자가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막상 재건축을 위해 집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들면 막막했다. 재건축을 위한 투표에서 찬성표는 번번이 60%를 넘기지 못했다.“다들 말만 재건축, 재건축 했지 실제로 벌이지는 못했거든요.”이번에는 달랐다. 외지의 한 부동산 업체가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재건축을 위한 투표 공고가 붙었고 투표 결과 찬성률이 60%를 넘었다. 사내도 찬성표를 던졌다. 재건축조합이 결성되었고, 시행사와 건설사 입찰이 시작되었다.“저야 뭘 압니까. 마누라가 이번에는 꼭 재건축을 해야한다 해서. 그런데 어제 웬 서류가 집에.”재개발 후 지어질 아파트의 대략적인 평수, 호수와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자가 분담금에 대한 안내서가 왔다고 했다. ‘평당 건축비는 천만 원 정도 예상하고 있으며 기존 조합원의 경우 크기별로 기존 아파트의 가치를 산정해서 건축비에서 기존 아파트의 가치, 늘어나는 세대의 분양이 다 된다는 가정 하에서의 이익을 조합원 수로 나눈 가치 등등을 뺀 금액이 자가 분담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성을 따져보니 아파트 층수를 기대만큼 높이지는 못한다. 이러저러하니 조합의 이익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양해 바란다.’ 는 내용이었다.“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이 열다섯 평인데 작은 것을 고른다고 해도 스물여덟 평이니 거의 두 배가 되는 셈입니다. 그것만 해도 건축비가 이억 팔천이라는 말인데 절반만 낸다 해도 일억 사천을 제가 감당해야 한다. 이런 엿같은 계산이 나오더라 이 말입니다. 시발.”그것 때문에 아내와 심하게 싸웠다고 했다.“마누라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돈 못 버는 제 잘못이지요. 헛바람 불어넣으며 돌아다닌 나쁜 놈들 탓이지요.”사내는 물잔의 물을 바닥에 부어 버리고는 소주를 물잔에 따르더니 벌컥거리며 마셨다.“뭐, 어찌 되겠지요. 안 되면 팔고 또 이사 가면 됩니다. 우리가 한두 번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외지에 나가있으니 마누라하고 나하고 둘이야 어디든 누울 곳이 있겠지요.”불판의 고기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술병은 쌓여갔다. 나는 이것저것 이야깃거리를 찾아 건넸지만 사내는 취한 탓인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일이 많아졌다. 간혹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알아듣기 힘들었다. 시발시발 욕지거리만이 분명하게 들렸다. 욕설이 사내의 술버릇이었는지 이번만 유독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슬리지 않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가끔 욕을 따라 하기도 했다. 사내가 시발하면 내가 따라서 시발, 사내가 지랄하면 또 따라서 지랄. 한동안 식당은 시발 지랄거리는 욕설로 가득했다.사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려나 싶었다.“혼자 가도 괜찮겠어요? 넘어질 것 같은데.”사내는 손을 들어 안심하라는 듯 휘휘 젓고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나갔던 사내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잠이 든 것인지, 비탈을 굴러 아래쪽에 처박힌 것은 아닌지, 잠시 고민을 하다 나는 사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직은 달빛이 남아 있는 밤이었다. 그 달빛을 배경으로 누군가 연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사내였다. 사내는 대뜸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시발. 쟤들도 살아가는 놈들인데. 햇빛은 볼 수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비도 맞아야 하고. 아이, 시발. 미안합니다. 그라고 이건 선물입니다. 아니다 숙제인가. 볕 잘 들고 물기 많은 곳에 심어 주세요. 거기서 또 어떻게든 살아가게.”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6-04

반려견과 현대인의 삶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현대인의 행복지수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안정, 건강, 사회적 관계, 직원 만족도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 높은 기대치, 경쟁시대의 압박 등은 행복지수를 낮추게 하기도 한다. 경제 선진국과 후진국, 아프리카 원주민 등의 행복지수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과학기술문명이 가져다 주는 삶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은 행복지수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또 다른 면도 있는 것이다.독일, 유럽의 경제 선진국 행복지수는 대체로 높은 편이다. 생활수준, 안정된 소득, 국가 복지제도 등 경제적 안정이 첫번째 이유다. 과학적 의료시스템으로 건강관리가 용이하고 기대수명을 충족시킨다. 또한 사회 보장 제도와 안전한 환경, 다양한 교육기회와 교육수준이 삶의 가치를 높여주고 만족도 상승에 요인이 된다. 반면, 경제 선진국 미국을 보면 불평등, 스트레스, 정신건강의 문제로 우울증과 총기 난사 등 사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얀마, 네팔처럼 경제 후진국의 행복지수는 낮은 편이다. 소득, 실업률의 경제적 불안정과 낮은 기대수명, 질병, 정치적 불안정, 교육 수준 등도 행복지수를 낮게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행복지수는 문화, 생활방식, 공동체 관계 등이 영향을 받는다. 가족과 공동체의 강한 유대,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문화적 정체성, 자연과 밀접한 생태적 균형 등 다른 각도의 행복지수로 봐야 할 것이다.인간의 삶의 행복지수는 경제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되는 속성이 있다. 최근에 유럽과 미국, 한국 등은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흐름이 높아 졌다. 초경쟁사회에 정신적 손실과 소외감을 조건없이 배려와 사랑으로 채워주는 반려견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아침 방문을 두드리고 깨워주고 함께 산책하고 거리를 보면 유모차보다 반려견을 태운 차가 많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필자도 5년 전에 대전에서 블랙탄 포메라니안 변려견을 가족의 일원으로 입양했다. 집에 새로운 기운을 달라고 ‘새봄’으로 이름 짓고 우리 가족 막내가 되었다. 경쟁시대 부모의 요구와 사회적 요건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았던 큰 아이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입양을 반대했던 가족도 밥을 같이 먹고 재롱에 웃고 웃는 하루의 생동감을 일으켜 주는 새봄이의 열혈 팬이 되었다. 필자도 새봄이 등장으로 주말 집으로 가는 길이 즐거워졌고 산책 당번이 되어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입양했을 때 4개월 된 3.4kg의 작은 체구지만 빠르고 영리하고 귀여움에 산책길에서도 사랑받는 존재이기도 했다.반려견이 현대인의 삶에 주는 선물은 크다. 생존의 경쟁에서 발생되는 스트레스와 허전함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주고 가족 간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한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현대인의 삶이 풍족해도 스스로 못 채워주는 삶의 공간 때문에 행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 공간을 채워주는 반려견이 늘 곁에 있어 현대인의 삶은 행복해져 가는지도 모른다.

2024-06-04

탄핵의 추억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현직 대통령 탄핵의 추억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게 한 추억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휩쓴 하나의 광풍이었다. 곳곳에 포진 해 있던 반정부 세력들이 세월호 참사로 흉흉해진 민심을 선동해서 대규모 민중시위를 일으켰고, 언론과 과반의석의 야당이 적극 가세하고 일부 여당과 사법부까지 동조해서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낸 거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그 탄핵을 짜릿한 승리의 성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치욕과 한탄의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탄핵에 대해서는 헌법 제 65조에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고위 공직자의 비리 또는 위법의 혐의가 발견되었을 때 그 수사와 기소를 정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규검사가 아닌 독립된 변호사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는 제도를 특별검사제(특검)라 한다. 한 마디로 수사의 공정성을 기대·인정할 수 없을 때 도입하는 제도다.특검법안과 탄핵소추의 의결권은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이는 국회가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남용을 방지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하는 기능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거듭해서 국회의석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자 걸핏하면 특검과 탄핵이란 말을 입에 올리고 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탄핵으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을 한 것과 적폐청산의 명목으로 특검을 해서 지난 정권의 공직자들을 모조리 사법처리한 전력의 재현이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겁박하고 방해하는 특검과 탄핵의 남발을 막을 수단이 바로 대통령의 거부권이다.지금의 야권이 집요하게 특검과 탄핵 정국을 갈망하는 것은 오로지 저들이 지고 있는 사법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과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야당이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민심이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빼놓고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이슈가 없다는 것과 언론과 사법부도 어느 정도는 달라진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게 관건인 것은 야권의 구심점을 이루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조국 당대표가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이다.그들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보려던 ‘김건희 특검’은 김정숙· 김혜경과 함께 ‘3김여사 특검’으로 가자는 반격에 머쓱해졌고, 채상병 순직사건 특검도 국회 부결로 일단 무산되었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특검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대통령 탄핵으로 몰아가기는 역부족일 것 같다. 그보다는 그들을 향해 시시각각 죄어가는 사법리스크가 오히려 국운의 향방을 가를 것 같다.

2024-06-04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하자

김진홍 포항지역학연구회 연구위원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와 함께 탐사시추 계획의 승인을 알렸다. 석유 문제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리게 된 것은 50년 만이다.당시 많은 언론의 1면을 장식했던 영일만 앞바다의 석유 이야기는 당시 어디에선가 지하로 스며든 경유가 우연히 올라온 것을 원유로 착각하면서 오해가 커지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1973년 2월 7일 상공부는 포항 앞바다 제6광구 1차 석유 시추 탐사작업의 90%를 완료한 시점에서 석유 발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포항 앞바다의 석유 발견의 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3년 뒤인 1976년 1월 16일에는 포항 영일 일대 석유광업권을 국가서 집행하고 민간인 광구 설정은 불허한다는 결정도 나왔다. 이후로도 포항 앞바다 일원의 석유 탐사는 본격화돼 30개소에 시추작업이 추가로 이뤄지기도 하였다. 결국 1977년 1월 15일 당시 상공부 장관은 재차 포항의 석유탐사는 진전이 없다고 언명하였다. 그 이후 포항 앞바다의 석유 이야기는 마치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다시 5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불이 붙었다.50년 전보다 더욱 과학기술이 발전한 지금의 물리 탐사 결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기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사실 포항의 지하에 가스전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장 수년 전부터 철길숲의 불의 정원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나중 확인이 되어야만 하겠지만 적어도 영일만 앞바다가 분쟁 수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는 경제적으로 큰 긍정적인 효과를 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석유제품 수출국이기는 하지만 수출하는 석유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원유를 모두 수입하기에 국가 차원에서 수익이 극대화되기는 한계가 있다.그런 면에서 만약 영일만 앞바다에서 대규모의 원유나 가스전이 발견되어 실제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면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제품의 가격경쟁력만큼은 크게 개선될 여지가 크다.포항의 경우에는 향후 생산기지가 될 곳과의 직선거리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내륙으로 원유나 가스를 이동시켜 임시로 저장할 시설 등을 해안가 어디엔가 만들 수도 있다. 포항철강공단에서는 이와 관련된 저장장치, 수송장치 등에 필요한 강관이나 관련 설비를 생산하기 위해 모처럼 가동률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로 파생되는 어떠한 형태로든 새로운 고용 창출, 인구의 유입과 그로 인한 소비산업과 서비스업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제 겨우 탐사 시추계획을 승인했을 뿐이다. 호들갑 떨 때는 아니다. 앞으로 실제 포항 앞바다에서 석유나 가스가 나더라도 그 소유권은 포항시와 무관하다. 따라서 포항시나 경상북도는 이 사업이 성공할 경우를 대비하여 최대한 그 낙수효과가 포항시, 경상북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2024-06-03

가난이란 무엇인가

최근 타계한 신경림 시인은 ‘가난한 사랑 노래’란 시를 남겼다. /연합뉴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다. 시인은 맑고 뜨거운 눈물의 언어를 우리에게 남기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파장’, ‘농무’, ‘목계장터’ 등 절창이 셀 수 없으나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위의 시다.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 가난한 젊은이는 곧 그 자신이기도 하고,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온 민중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젊은 날 광부, 장사꾼, 영어강사 등으로 힘겹게 삶을 이었다.가난을 겪어본 시인이 쓴 이 시는 가난이 무엇인지 말해준다.가난이란 두려워하면서도 기계에 손을 넣거나 용광로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것이다. 가난이란 버릴 수 없는 그리움을 버리고 사랑을 알아도 몰라야만 하는 것이다. 가난은 꿈과 사랑과 그리움을 다 버려야 하는 상태, 개성이며 취향은 물론 희망과 기대까지 모든 게 끊어져버린 막막한 무저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에 흐르는 가난의 구정물 대신 애처롭게 빛나는 가난의 낭만만을 읽는다.신경림 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날, 학생들과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을 읽었다. 빈민촌에서 사는 ‘나’는 일가족이 자살해 세상에 홀로 남았다. 얼마 안 되는 봉급이지만 씩씩하게 삶을 꾸리면서 동거남인 상훈과 미래의 알뜰한 행복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상훈이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나 말한다. “사실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대학생이야. 아버지께서 방학 동안 어디 가서 고생 좀 하고, 돈 귀한 줄도 알고 오라고 해서 너랑 여기서 지낸 거야.”가난을 ‘사서 하는 고생’으로 여기는 풍조는 여전하다. 몇 해 전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며 절규한다. 사람들은 가난에 낭만을 부여하고 서사를 입히기 좋아한다. 같은 성공이라도 자수성가 스토리에 열광하고, 가난해본 적이 있다고 하면 인간적으로 느낀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가 어묵을 먹고, 겨울에 연탄 나르며 흰 얼굴에다 검댕을 처바른다. 연예인들이 빚더미에 앉았다며 생활고를 호소하고, 광고가 끊겼다며 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가난은 대개 상대적 가난이다. 하지만 진짜 가난은 절대적인 것이다. 서로의 가난을 비교하다 그래도 나는 낫구나 싶으면 가난이 아니다. 남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가난이 진짜 가난이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집에서 나와 옷 입고 밥 먹고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과 나는 가난하지 않다. 결핍과 가난을 혼동하지 말자. 정말 가난한 이들을 욕보이지 말자. 가난을 낭만으로 여기지 말자. 가난을 대상화하지 말자”고.돌아보면 나는 결핍을 가난과 착각해 잘 먹고 잘 사는 생활을 애써 남루하게 만든 적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타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며 삶 자체다.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가난한 계집을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가난 그 자체를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내 가난은 그게 어떤 가난이라고.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이다. (…)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등골이 서늘하다. 나는 그리움을 알고 사랑을 알고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며 더 즐거운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가.

2024-06-03

결혼 이야기

요즘 부쩍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카페에 앉아 가능한 주택 대출제도를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이 어딜지 점찍어 보며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가 찬찬히 둘러본다. 그것만으로 벌써 내게 마음에 드는 집 한 채가 생기는 기분.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이 동네가 벌써 우리 것이 된 것만 같아 설렌다.결혼이란 뭘까.사실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때때로 결혼이란 상대에게 얽매이는 구속 또는 희생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지레 겁을 먹다보면 현재 내 앞의 행복이 소중하고 아까워서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8평 짜리 원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자유의 공간.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이곳에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된다면? 아주 약간 망설여질 정도로 쉽게 내 공간을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이 협소한 공간 속에서 우린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양보하며 살아가야 할 거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근사한 결혼 생활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던 중 며칠 전 본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결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LA 출신 여배우 니콜은 연극 감독인 찰리와 결혼을 하기 위해 배우 커리어를 버리고 그와 결혼해 뉴욕에 산다. 니콜은 결혼 생활 중 고향인 LA로 돌아가고 싶지만 찰리와의 결혼 생활 때문에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니콜이 LA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고, LA에 생활하며 찰리에게 이혼 신청을 요구한다.그 와중 그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며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이혼 소송까지 번지게 된다. 이혼 소송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물의 감정선을 극의 절정까지 끌어올리며, 두 인물 모두 서툴고 인간적이며, 본인 스스로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사랑은 변하기 마련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 전과 후 분명히 결이 달라진다. 무수히 많은 상황, 환경, 사건이 있겠고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변형되거나, 비틀어지거나, 끈끈해지거나, 단단해질 수도 있다.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건 사랑만으로 완벽한 결혼 생활의 완성을 꿈꿀 수 없다는 점이다. 나와 너는 우리로 묶이지만 어쨌든 다른 개개인의 인간이고, 더군다나 유통기한처럼 소멸하는 연인간의 뜨거운 사랑만으로는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영화 속 니콜과 찰리는 웨딩마치 속 화려함이 완벽하게 빼내진 채로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니콜은 찰리와 헤어지는 길에서 그의 풀린 신발끈을 정성스레 묶어준다, 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그를 증오하지만 그가 가는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신발끈을 묶어주며 끝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니콜에게 찰리는 ‘우리끼리의 나눈 농담도 다 기억하는 사이’, ‘확신이 없는 나랑은 정반대인,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를 본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져‘버릴 정도로 내가 깊게 빠져들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대를 답답해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모난 말들만 던지는 싸움 속에서 그간 우리가 쌓아올린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굳게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싸움은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고, 감정이 고조되며, 본능적으로 손해를 보기 싫어하니까. 아담과 찰리도 그렇다. 서로를 위해 고상하게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부수고,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으로 쌓아올린 믿음까지 부수진 못한다. 그들은 과거의 사랑을 바탕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도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사이를 택한다.파경 후 관계를 유지하는 ‘결혼 이야기’를 보며 나는 오히려 그전까진 알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소멸된 애틋한 사랑이었고, 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겁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사랑은 자연스레 변할 테지만 함께 사랑해온 시간 속의 믿음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고 연인과의 첫 만남, 우리가 나눈 눈빛,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고 이는 이미 내게 영원한 믿음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2024-06-03

방언시의 놀라운 효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고통을 나누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시는 독자들과의 소통 고리를 잃어버리고 표독하게 제 잘난 듯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옷을 갈아입고 미로로 질주하고 있다. 시인은 정치적 선동으로도 모자라 고발과 분열을 미덕으로 삼아 내뛰고 있다. 글로 쓰인 시가 시 본연의 운율과 가락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황혼에 물든 저녁녘 단 한 줄의 시 구절에 어깨를 들썩이는 독자를 찾으러 나서는 시인이 그립다.말하듯 노래하듯 써야 시가 되는 언문일치와 결별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표준어라는 그물망이 직조되기 이전에는 가슴을 격렬하게 울리는 싱싱하고 푸른 토착어로 노래하듯 시를 쓴 작가들이 있었다. 소월이 대표적인 시인이다. 구전 전통의 우리 가락을 시작을 통해 안정된 시의 미학에 도달하였다. 한자어는 물론 외래음차표기조차 배제하여 쓴 그의 시는 노래하는 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민요적인 가락과 구어적 글쓰기의 결합으로 가장 전통적인 시혼을 우려내는 시작에 충실하였다. 김소월은 ‘개여울’, ‘가는 길’, ‘팔베개 노래’, ‘진달래꽃’에서 외래어나 외래어 음차표기나 한자어를 철저히 배제하고 토착어 지향적인 자세를 일관하였다. 동시대의 만해나 이상화 등의 시인들과도 비교해 보면 매우 재미있다. 토착어로만 쓴 시들과 외래어나 한자어가 많이 뒤섞인 시들을 비교해 보면 시로서의 품격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상화 시의 경우에도 고유어로만 시어를 선택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한자어가 뒤범벅이 된 ‘이중의 사망’을 비교해 보면 토착어 지향성의 시들이 훨씬 더 아름답고 가슴을 치는 품격을 지녔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30년대 이후 시문학파나 생명파, 특히 청록파 시인들의 토착어 지향의 시작 경향이 이어져 아름다운 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한자어를 선호하거나 외래어나 외래어음차표기를 선호하는 위세적 심층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시 쓰기에도 반영이 되었다. 사회 공간 속에서 지적이고 고급적 집단 무리에 편승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시에는 마치 조선조 양반과 평민층의 계급적 길항관계처럼 외래어나 한자어가 꿈틀거린다. 특히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에게 두드러졌다. 70년대로 들어서면서 민학운동이 촉발되고 상실된 실체로서의 민족과 고향을 강조하는 민족문학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시들이 판소리나 민중극과 함께 많이 나타났다. 특히 새마을운동으로 붕괴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이들이 잃어버린 고향과 고향의 재발견을 위한 방편으로 토착어 지향성을 보이지만 표준어라는 압박에서 자신의 구어의 맛깔을 온전히 찾아내지는 못하였다.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시인협회 주관으로 두 차례에 걸친 방언시집 간행이 계기가 되었던지 모티브 차원에서 이용되었던 방언이 시작에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표준어를 수호하던 국립국어원이 오히려 토착적 방언시의 창작을 지원하고 주도하였다. 언어의 종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국어정책의 중요한 축이라는 지향이 피상적으로 간간히 이용하던 방언 시어들을 온전하게 활용하는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공유하고 지식과 계급의 차등을 뛰어넘는 상실의 실체, 사라진 것들을 다시 호명해 내는 시적 기술로서 방언시가 나타났다. 토착 지향의 시인들이 방언을 활용한 노래하는 시, 말하는 시로서의 발돋움을 시작하였다.방언으로 쓴 시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온갖 감각 기관을 총동원시키는 시간 회귀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실한 사물과 상응하는 토박이 음성이 결합하는데 성공한 작품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방언으로 쓴 시편들은 시각적 텍스트인 문자로 잊어버린 옛 시간을 당겨오고 가물가물 사라진 기억을 호명하는 힘을 가진다. 떠나온 고향,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척들과 이웃의 삶터를 개방해 준다. 눈으로는 지나간 시간이나 공간의 빛을 되찾아주고 귀로는 소멸된 소리를 토속적인 악센트로 불러온다. 코로는 증발되어버린 시큼하고 소똥냄새가 뒤섞인 공간의 냄새를 소환하고, 입으로는 소멸된 사물의 존재들을 호명해 온다. 시의 방언은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을 기억해내고 불러오는 수단이 된다.

2024-06-03

인류 문명 발상지 해 뜨는 동방의 나라 오리엔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동경으로 실크로드를 열었던 서아시아다. 서구 유럽의 시각으론 역사의 카메오라며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지만 인류문명 교류에 위대한 공헌은 변치 않은 사실이다.서아시아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름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차탈휘유크’와 ‘예리코로’라는 인류 최초의 도시가 형성된 곳이 서아시아와 나일강 유역의 오리엔트 지역이다. 물론 처음에는 주민이라고 해봐야 5000에서 1만 명 정도였겠지만 가축의 사육이라는 선진 삶의 방식으로 윤택한 터전을 닦았던 곳이며, 농법과 가축사육, 생산물의 이동 등을 유럽에 전해준다.기원전 4000년경부터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3500년 전, 농경과 관련해 관개농업이 발달했던 이 지역에서 농업생산량이 늘어나고 농촌은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청동기가 제작되고 점성술과 더불어 문자와 태음력이 발명된다.이집트 역시 나일강 유역의 범람을 대비한 대규모 치수 사업을 통해 도시국가가 형성된다. 이로써 고대문명의 태동, 즉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를 중심으로 히타이트, 아시리아, 헤브라이,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등 수많은 오리엔트 고대국가가 태어났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인류문명 창달에 앞장섰다. 이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훗날 5000년 역사의 굳건한 모태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문명이란, 자생적이든 모방에 의한 것이든 일단 탄생과 동시에 이동과 전파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동 과정이 곧 문명의 교류다. 문화교류를 통해 서양문명의 뿌리라 일컫는 그리스·로마 문명이 꽃피는 토양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서양 기독교 중심사상이 절대적 보편가치로 인식되고, 유럽인의 인식 세계에 들어앉은 이교도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축소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르네상스나 산업혁명으로 인한 살상 무기의 발전으로 절대강자의 자만이 넘쳐 인류침탈에 이바지한 제국주의만 없었어도 자랑할 만한 요소는 그리 많지 않다.오리엔트란 용어 역시 서구의 시각이다. 오리엔트란 지중해 동쪽 여러 나라, 아시아를 가리키는 경우다. 어원은 라틴어의 오리엔스(Orient)에서 나왔다. ‘해가 뜨는 곳’ 동방(東方)을 뜻하며, 특히 로마인들은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한 지중해 동쪽을 통틀어 오리엔트라고 불렀다. 라틴의 속담 ‘빛은 동방으로부터’에서 동방이란, 당시 그리스를 가리킨다. 이때 빛이란 선진문화를 일컫는다.‘페르시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란 남서부 해안가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 파르스(Fars)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이란의 고대국가 엘란 왕국에 이어 기원전 815년경 이란의 북서부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거주하던 민족이 남쪽으로 내려와 파르수마슈에 정착해 세웠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발상지다.막강 페르시아가 등장하면서 기원전 6세기 나일강 유역에서 30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자연재해 한번 없이 풍요를 누리던 이집트를 평정하고, 갈등을 일으키던 오리엔트를 하나로 묶는다.페르시아는 지중해로 진출해 소아시아 그리스 식민지를 야금야금 삼켰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리스와의 한 판 세기의 대결을 불렀다. 결국 다리우스 3세를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기원전 331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제국이지만, 당시 화려했던 그들의 문화는 상상 속에서 여전히 찬란하다. 6세기에 폐허가 된 페르시아 고대도시 페르세폴리스를 방문했던 여행자들은 적지 않은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 기록 중 하나이다.“황량한 들판에 초라한 기단과 무너진 원형 석주만이 남아 있을 뿐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훗날 1931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그 비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이 생존한 이상 인류는 진화를 거듭할 것이고, 문화는 느리게 빠르게, 혹은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신라인 혜초, 이븐바투타, 마르코폴로는 기록의 사나이였던 까닭에 역사 인물로 기억되지만,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갔을 것이고, 그 길에 족적을 남겼다.초기 페르시아제국에는 수백만의 이민족이 살았고, 거대한 주를 통치하는 지방 총독들 역시 왕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제국에 대항하는 자는 피의 응징을 당해야 했지만,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점령하면서 그곳에 잡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했으며, 그들의 신앙과 종교의례도 허락했다. 훗날, 이 일로 인해 제국에 다양한 종교가 섞이면서 복잡한 문화적 양상을 띠게 되지만 말이다.역사란 제국이 힘을 다하면 새로운 제국이 태어나면서 이어진다. 고대 제국은 토지와 노동력 확대 및 군사력의 기본적 확장에 목적을 두고 정벌이란 이름으로 정복 전쟁을 일으키곤 하였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6-03

‘24환경의날’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구시는 지난 1일 삼성창조캠퍼스에서 ‘2024년 환경의날 및 환경교육주간’을 맞아 ‘파란하늘 대구, 탄소중립으로 GREEN 미래’라는 주제로 ‘24환경의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기념식에 앞서 지역 예술인 양철인간의 ‘마임공연’이 이루어졌는데, 태극기 그림이 들어간 폐현수막으로 만든 옷에 대나무꽂이가 몸통 곳곳에 박혀 보기가 불편한 복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마임공연’은 관객 앞에서 보다 관객 속으로 들어가 진행한 시간이 많이 길어 바로 옆에서 보는 사람은 다소 불편하였다. 그러나 그만큼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행위예술의 방법으로 전달하려 한 것 같다. 그럼 실제 대구시민은 환경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대구시가 지난 2012년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조사하고 있는 ‘대구의 사회지표’ 조사 결과를 참고해 보았다. 이 조사는 구군별로 1000~1200가구를 표본추출하여 총 8400가구, 가구원수 총 1만48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메머드급 인식조사이다.‘생활환경’ 분야 인식조사 항목은 대기, 수질, 토양, 소음·진동, 녹지환경 등에 대한 ‘환경체감도’, 쓰레기 증가, 자연자원의 고갈, 수질오염 등 ‘환경문제 인식’, 합성세제 사용줄임, 대중교통 이용, 녹색제품 이용 등 ‘환경보전 노력’ 등 다양하게 구성하였다. 먼저, 최근 2022년의 대기환경 체감도를 보면 ‘좋음’ 응답자가 22.6%로 2019년 ‘좋음’ 응답자 비율이 36.9%인 것에 비해 무려 14.3% 감소하였다. ‘나쁨’에 대한 비율은 2013년 13.8%에서 매년 증가하여 2022년에는 33.5%까지 증가하였다.이렇게 2022년의 조사결과, 대기 외에도 수질, 토양, 소음·진동, 녹지환경 모두 ‘좋음’ 응답자 비율이 2019년에 비해 감소하였고, ‘나쁨’에 대한 비율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계속 증가하였다. 2022년도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가장 큰 환경문제는 ‘쓰레기 증가’로 39.6%이고, 이어서 ‘기후변화’가 17.7%로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환경문제로서의 인식은 2019년 5.1% 정도에서 22년에 17.7%로 무려 12.6%p 증가했다. 구·군별로 보면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 인식은 달서구가 22.5%로 가장 높고, ‘소음’은 동구가 12.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환경보존 노력은 ‘에너지 절약’이 유일하게 51.1%로 50% 이상이고, ‘녹색제품 이용’, ‘중고물품 구매 및 판매·기부’, ‘환경 및 자연보호운동 참여’는 노력하는 비율이 30% 이하이고, 매년 감소추세이다. 이처럼 대구시민들의 ‘환경체감도’는 나빠지는데, ‘환경보전 노력’은 오히려 낮아지는 상황이다.그래서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현명한 환경보전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마침 이번 ‘24환경의날’에 27개 기관과 단체에서 마련한 다양한 교육과 ‘체험부스’에 부모님과 함께 흥미롭게 참가한 많은 ‘어린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환경은 분명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2024-06-03

지금 애타게 ‘우리’를 찾는 건

김규인 수필가 대한민국에서 ‘우리’라는 말이 사라진다. 코로나로 사람들은 혼자가 되고, 정치권에서는 철저히 나와 남을 두부 자르듯이 구분한다. 잘린 무리는 남이 되어 우리의 크기를 자꾸 줄인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를 입에 달고 살아온 한민족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줄어드는 인구로 가속도가 붙으며 사그라든다.혼자 크는 자녀가 ‘우리’라는 단어를 잃고, 집뿐만 아니라 식당에서조차 홀로 식사하는 자리가 늘어난다. 음식물 제조 회사에서는 일인 가구에 맞추어 용량을 줄인 상품을 잇달아 내어놓고 편의점에서는 한 사람의 식사에 맞추어 무가 자신의 형체를 잃고 토막 난 채로 잘려 나온다. 그렇게 ‘우리’는 해체된다.휴대전화의 출현은 나 홀로의 삶을 부추긴다. 친구를 만나려는 사람들을 떼어놓고, 긴 시간을 붙들고 자기만 쳐다보라고 다양한 미끼를 던진다. 미끼를 문 사람들을 놓지 않는다. 심지어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를 걸을 때도 휴대전화를 쳐다보느라 사고를 당해도 사람의 일이라 넘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꽉 쥔 채 놓지 못한다.친구들을 만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는 모두 휴대전화를 쳐다보느라 바쁘다. 말하더라도 휴대전화가 중심이 된다. 휴대전화 게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최신 모델의 휴대전화가 이야기 소재가 된다. 휴대전화는 한 번 문 미끼는 절대 놓지 않는다.사람들이 혼자의 삶을 즐기고 휴대전화가 자신에게 빠진 사람들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홀로 떠돈다. 우리 엄마, 우리나라, 우리 집과 같이 ‘우리’가 붙어야 말맛을 느끼던 우리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두가 혼자의 삶에 빠져있는 사이, 밀려 사라지는 ‘우리’를 되찾아야 한다.아직도 늦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를 다시 모으자.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이모, 밥 한 그릇 줘요”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모가 차려주는 한 끼의 식사는 몸과 마음을 덮인다. 돈을 내고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우리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일상에서 확인하는 순간이다.어디 그것뿐인가. 2002년 월드컵 경기 당시 한국인들의 월드컵 응원 열기는 축구 실력 못지않게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모두가 하나 같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하나 되어 응원하는 모습은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보기 어렵다. 한국인은 좋으나 슬프나 한결같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렇게 살아왔다.지금 애타게 ‘우리’를 찾는 것은, 혼자 해결하기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 때문이다. 낮은 신생아 출생률, 합의를 모르고 각자의 길을 가는 의대 증원 문제, 침체한 경제는 아직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 개혁 문제는 다시 22대 국회로 책임을 떠넘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인데 그 앞에서 나만을 찾는다.다시 ‘우리’를 회복할 수는 없을까. IMF 위기 앞에 금을 모으고 국가 채무를 갚기 위해 돈을 모으던 우리의 유전자는 그대로 우리 몸에 남아있지 않는가. 혼자가 편하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2024-06-03

국민들의 대통령과 영부인 걱정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해결 어려운 문제나 걱정거리가 있을 땐 선현이 남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서 하루에도 수천 번 인용되는 것이지만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에.‘논어’ 계씨편엔 天下有道 則政不在大夫 天下有道 則庶人不議(천하유도 즉정부재대부 천하유도 즉서인불의)란 문장이 있다. 고루하고 어려운 말이 아니다. 현대적으로 풀어쓰면 대충 아래와 같다.“공자는 말했다. 세상에 도(道·원칙과 합리)가 굳건히 서있다면 정치가 권력자의 손에만 독점되지 않고, 그런 세상이라면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국민을 위무하고 편안하게 해줄 의무를 가진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하지 않고, 외려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해괴한 상황에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다 말하면 과장이라고 욕을 먹을까? 앞서 인용한 문장 중 大夫(대부)란 단어를 21세기 방식으로 ‘대통령’이라 바꿔보자.한국 국민들은 현재 전·현직 불문 대통령과 그의 아내를 무거운 마음으로 걱정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인도를 방문한 아내를 두고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 하니, 견해를 달리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 “국민을 어찌 보고 능청맞게 흰소리를 하느냐”고 따진다.현직 대통령의 아내가 선물로 받았다는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놓고는 “특별검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도한 흠집 내기”란 목소리가 긴 시간 격렬하게 충돌 중이다.너그럽고 선량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까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대통령들과 그의 배우자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걱정과 화를 부르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도 못해주는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03

‘승자독식 전쟁’을 끝내려면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치’가 ‘전쟁’이 되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이라는 함정에 빠진 탓이다. 승자의 독식은 패자의 박탈감과 분노를 불러온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이유다.대화와 양보가 없는 승자독식 정치는 민주주의를 형해화(形骸化)한다. 집행권을 가진 여당과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의 끝없는 전쟁이 그 생생한 증거다.승자독식 선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대선에서 득표율 0.73% 차이(윤석열 48.56%, 이재명 47.83%)로 승리한 대통령이 집행권을 100% 독점하며, 총선에서 지역구 득표율 5.4% 차이가 의석수 1.8배 차이(민주당 161, 국민의힘 90)를 초래했다. 이처럼 엄청난 사표(死票)가 발생하는 선거는 민심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승자독식 제도에서는 승리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 같은 정치’가 일상화된다. 다수결의 전제인 대화와 타협은 공허할 뿐이며, 이성과 양심은 설 자리가 없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증오 마케팅’으로 상대를 비난, 조롱하고 혐오를 극대화시킨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흑백론이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을 심화시킴으로써 공동체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그렇다면 어떻게 ‘승자독식 전쟁’을 ‘승패공존 정치’로 바꿀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정신’과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먼저 정신적 측면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가치관이 내면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대소’(more or less)를 두고 벌이는 협상과 타협이다.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오만과 독선이 민주주의 파괴의 주범이다.다음으로 제도적 측면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혁과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은 물론, 대통령 4년 중임제 또는 의원내각제 개헌까지도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서유럽국가들이 보여주듯이 다당제 연합정치와 같은 합의제민주주의가 정치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꼼수 위성정당을 막고, 소선거구제의 사표를 줄이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 문제는 이미 여야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음에도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여 ‘폭탄 돌리기’만 계속하고 있다.거대양당이 여론을 의식하여 개혁시늉만 할 뿐,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얻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선거법 개혁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니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식인·시민사회·언론 등 여론의 압력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성사시킨 것처럼, 개혁요구가 거세지면 정치권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은 거대양당의 ‘승자독식 전쟁 놀음’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혁에 나서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2024-06-03

포항 근해에 ‘석유밭’… 한국 다시 ‘産油國’되나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첫 국정브리핑에서 “포항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최대 매장량은 140억 배럴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매장 예상지역은 영일만에서 38∼100㎞ 떨어진 넓은 범위의 해역에 걸쳐 있으며, 모두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다. 신생대 3기 지층을 가진 포항에서는 그동안 수차례 석유와 가스가 발견됐다. 특히 지난 2017년 3월 남구 대잠동 철길숲 공원 조성지에서 지하수 개발을 하던 중 발견된 천연가스의 경우, 경제성은 없지만 7년이 지난 현재까지 타오르고 있다. 한국은 지난 1966년부터 해저 석유·가스전 탐사를 꾸준히 시도해왔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 4500만배럴 규모의 ‘동해 가스전’을 발견해서 2021년까지 상업생산을 마쳤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는 지난해 2월 세계 최고수준의 심해 전문기업인 미국 액트지오사에 동해 가스전 주변 물리탐사 심층분석을 맡겼는데 이번에 성과가 난 것이다.실제 석유·가스 부존 여부와 부존량은 탐사시추 단계를 거쳐야 확인할 수 있다. 탐사시추를 위해서는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하는데 1개당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는 첫 시추 일정을 연말로 계획 중이며, 최종적인 작업 결과는 내년 상반기 중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의 투자 비용은 정부재원과 해외 메이저 기업의 투자 유치를 통해 조달할 방침이다.한국은 지난 2004년 한국석유공사가 생산을 시작한 ‘동해-1 가스전’ 덕분에 ‘세계 95번째 산유국’이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2021년 가스전 고갈로 산유국 지위를 잃었다. 시추를 해봐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겠지만, 포항 앞바다에 경제성이 풍부한 석유·가스가 생산돼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길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다시 산유국이 되면 국제 입찰·자원 외교에서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다.

2024-06-03

“돈 준다고 아이 안 낳아” 정교한 출산정책 필요

정부는 2006년부터 4차에 걸친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줄어드는 인구 문제에 대응해 왔다. 투입된 예산만 무려 280조원이다. 많은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인구는 늘지 않았고, 출산율은 거꾸로 떨어졌다. 통계청에 의하면 올 1분기 국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은 0.7명대다. 정부가 초저출산율 국가로 진입했다고 발표한 2002년 0,18명을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출생아는 감소세다.합계출산율 0.7명은 100명이 70명의 아이를 낳는다는 뜻이다. 통계청은 지금 추세라면 100년 후 우리나라 인구는 1000만명으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라는 말이 실감나는 예측치다.15년 동안 예산으로 280조원을 투입했는데도 효과가 없었으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 꼴인 셈이다. 정부가 선전효과만 노려 백화점식으로 정책을 남발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정책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경북도가 도내 22개 시군을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지출한 출산지원금과 합계출산율을 비교 분석해 보았더니 출산지원금이 합계출산율 상승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돈 준다고 아이 낳는 게 아니라는 해석이다. 현금성 위주 정책의 교정이 필요하다. 경북의 대표적 산업도시인 포항과 구미의 경우는 출산지원금과 합계출산율이 반비례 관계를 보여 현금성 지원보다는 경제적 요인이 더 큰 작용을 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경북도는 이번 조사에서 출산지원금을 시군별로 차등 지급되는 것에 대한 부적합 여론과 시군간 출산지원금 경쟁이 인구 빼가기로 변질되는 문제점도 파악했다.경북도는 이번 결과를 중앙 부처에 알리고 정부 정책에 반영해줄 것을 건의했다. 정부도 출산정책에 대한 획기적 방향 전환에 고심하고 있다. 저출산 해결에 현금 지원이 능사가 아니란 사실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각 지자체가 남발하는 현금성 지원책에 대한 통일된 정책도 검토돼야 한다. 저출산 정책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

2024-06-03

특검이 인민재판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표는 많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국민이 뽑았다. 각자 자기 역할이 있다. 대통령은 가장 많은 사람의 지지로 선출됐다. 그렇지만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든다. 그렇다고 아무 법이나 만들 수는 없다.흔히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론은 대통령이 자기 권한을 넘어서지 않도록 날을 세워 견제한다. 원로원 중심의 로마에서 권력을 집중하던 시저는 암살당했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서로 다른 분점(分占)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대립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임기 중에 하는 의회 선거는 일종의 중간평가다. 그러니 감내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그런데 요즘 일부 야당 의원은 선을 넘어선다. 대통령 선거는 과거이고, 국회의원 선거는 최근이라고 해서, 대통령 선거를 무효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대통령의 권한까지 접수한다고 착각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의원도 있다.특검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의혹을 묻어놓고, 두고두고 정치적 갈등을 빚는 것보다 특검으로 진실을 밝히는 게 오히려 오해를 덜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너무 예민하다. 그것이 오히려 김 여사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킨다. 윤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람조차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조언을 피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내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사이가 멀어진 원인도 김 여사다.그렇지만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김건희 종합 특검법안’은 어이가 없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전시 군사정부를 운영하는 점령군이 된 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수단을 다 끌어다 붙였다. 상상을 뛰어넘는다. 민주당이 모든 권한을 쥐고, 김 여사를 심판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다.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김 여사를 수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래서 지휘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윤 총장을 털어서 몰아내기 위해 임명된 지검장이었다. 그런데도 아무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검찰수사로는 먼지까지 털어도 안 되니, 이제 ‘정치수사’를 해보겠다는 건가.그는 사법 체계를 잘 아는 전문가다. 그런데도 사법 체계를 파괴하며 자기 편할 대로 일방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법을 짰다. 특검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도록 했다. 이제까지 여야 정당이 합의해 추천하던 관례를 버렸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추천하려다 비난을 받자, 겨우 선심을 쓴 게 조국혁신당도 추천하라는 것이다.특검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수사와 기소는 행정부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가 추천한다. 그런데 이 법은 국회가 특검을 추천했는데도 대통령이 3일 이내에 임명하지 않으면, 두 명 가운데 연장자가 자동 임명된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민주당이 임명하겠다는 말이다.행정부만 무시하는 게 아니다. 특별검사는 관할 법원장에게 영장을 심사하고 발부할 전담판사를 지정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특검이 기소한 재판은 전담재판부가 신속하게 집중심리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영장 발부는 물론 재판까지 입맛에 맞는 판사를 지정하겠다는 뜻이다.특검은 검사 10명, 검사 아닌 공무원 20명을 파견받아, 특별검사보 10명, 특별수사관 70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100명의 수사 인력이 최대 170일까지 수사를 벌인다. 관련 범죄 혐의를 자수·자백·제보하는 사람은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플리바게닝’까지 도입했다. 우리 법체계에는 없는 제도다. 이런 법을 던져놓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꽃놀이패다.박근혜 대통령 특검에서조차 없던 무소불위의 특검이 9개월 동안 대통령실을 휘저으면 국정이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면 국민은 더 큰 권력을 주었을 때를 두려워하게 된다. 권력 행사는 넘치지 말아야 한다.

2024-06-02

교육부와 고질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의대 학생 증원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이른바 자유전공(무전공)학부 문제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지만, 전체적인 상황과 미래기획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지 않은 채 정부가 힘으로 밀고 가는 상황이어서 씁쓸하다. 의견 대립과 충돌을 방지하면서 충분한 대화와 설득의 마당이 선행돼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다.교육부는 자유전공학부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처럼 단칼에 대학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고전 그리스 비극에서 얽히고설킨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고안된 것이 ‘기계 타고 오는 신’이었다. 쾌도난마식으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고 표표하게 무대를 떠나가는 위대한 신을 경배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행복했을까?!자유전공학부는 새로운 제도가 결코 아니다. 지난 1977년 박정희 정권 시절 말기에 실시된 ‘실험대학’ 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입학하기 전에 전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1년의 대학 생활을 경험한 후에 전공을 결정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 실험대학이었다. 하지만 실험은 끝내 실험으로 끝났고, 5년 만인 1982년부터 학과제로 환원되고 말았다.이유는 간단명료하다.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이 우심(尤甚)한 까닭이었다. 나는 어문계열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국문·영문·불문·독문·중문·노문학과의 여섯 개 학과가 어문계열 소속이었다. 어문계열 정원이 19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130명 이상이 영문과로, 30명 정도가 국문과로 진학했다. 따라서 30명을 가지고 4개 학과가 운영되는 기형적인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실험대학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김영삼 정권은 1996년부터 이른바 ‘학부제’라는 이름으로 ‘실험대학’을 부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학생과 교수들의 극심한 반발과 준비되지 못한 교육 현실의 벽에 막혀 불과 3년 만에 좌초하기에 이른다. 1999년부터 학과제로 돌아가는 대신 일부 국립대와 사립대에 ‘자유(자율)전공학부’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문제는 내년 입시부터 전국 73개의 대학에서 3만 8천 명에 이르는 신입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전체 입학생의 28.6%에 이르는 무전공 입학 인원이 작년의 6.6%에 비해 무려 5배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무전공 인원을 대거 늘리면 한국 대학의 문제가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는 교육부의 행태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비인기학과 혹은 기초학문 영역에 속하는 단과대학과 학과 및 해당 대학과 전공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과 우려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시한 채 두 차례나 실패한 제도를 앞세워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압박하고 협박하는 교육부 관료들의 두뇌 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몇 년에 한 번씩 강남 8학군 학생들을 위한 대입제도 변화로 그나마 존립 근거를 찾아왔던 교육부가 이제는 대학 자체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국가교육위원회와 고질라처럼 괴물이 되어가는 교육부의 행태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아! 교육부여, 대학이여!

2024-06-02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우정구 논설위원 고(故)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그룹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획기적 전기가 된 사건으로 유명하다.1993년 6월 7일.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 200여 명을 불러모아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 내지 2.5류가 된다”며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다 바꿔라”라는 강도 높은 주문을 했다.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은 경영의 핵심가치를 양에서 질로 전환하고, 품질경영으로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다. 기업주의 비전 제시가 성장으로 이어진 모범적 사례로 평가된 선언이다.프랑크푸르트 선언 2년 후인 1995년의 일이다. 삼성 생산 휴대폰 15만대가 불태워지는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 거행된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자 자존심”이라는 구호 아래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거행된 휴대폰 화형식 후 삼성의 휴대폰 시장 국내 점유율은 놀랍게도 4개월 만에 50%를 차지한다.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많은 기업의 본보기로 회자되는 것은 선언적 의미 이상의 기업성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지난달 파업을 결의하자 국내 경제계의 관심이 삼성의 파업 움직임으로 쏠리고 있다. 무노동 경영을 고수하던 삼성에서 파업선언이 나온 것만으로 쇼킹한 일인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점이라 삼성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일부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버금갈 제2의 선언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의 국내 경제 기여도는 국내 기업 중 단연 1위다. 삼성의 대응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02

포항 해양쓰레기 발생 전국 1위 불명예 벗자

본지는 창간 34주년을 맞아 지속발전 가능한 포항의 성장을 위해 환경오염 문제와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2024년 5월 31일자 1면시리즈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한 환경오염 및 파괴에 대한 전반적 문제를 짚는다. 특히 첫 회에서는 바다를 끼고 해양문화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시가 해양쓰레기 발생량 전국 1위라는 불명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주요 테마로 강조했다. 해양쓰레기 발생 1위는 글로벌 도시를 꿈꾸는 포항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줄뿐 아니라 포항시민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포항시는 여타 도시와는 달리 청어를 시어(市魚)로 삼고 있다. 바다와 수산업에 대한 비중을 높게 보고 이를 상징화한 것이다. 또 시는 일찍부터 환동해 중심도시를 목표로 시정을 펼쳐왔다. 해양관광, 해양스포츠, 해양관련 먹거리와 볼거리를 개척하고 바다를 낀 도시로서 각종 콘텐츠를 확충하는 데 주력했다.특히 청정해양도시 이미지를 알리고 관광자원을 목표로 호미곶국가해양정원 지정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해양쓰레기 발생 1위는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아 하루빨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포항의 해양쓰레기 발생은 작년 한국해양대 연구진의 논문 발표로 알려졌으나 포항시 해양쓰레기 수거 실적에서도 이를 증명한다. 포항시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수거한 해양쓰레기는 1626t으로 2018년부터 3년간 수거한 양의 두배다. 매년 그 양이 증가하고 있어 더 문제다. 포항지역 환경단체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배 위에서 해양쓰레기를 수거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특수선박 기술 도입을 주장한다. 기술적인 문제는 관계당국이 검토해 좋다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그와 동시에 시민들의 환경의식을 일깨우는 노력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생활 속에서 환경보전을 각자가 실천하는 것은 환경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환경오염에 대한 본지의 연재가 자극제가 돼 시민실천운동으로 번진다면 포항의 해양쓰레기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024-06-02

지구당 부활 필요하지만 ‘검은돈 차단’이 관건

‘지구당 부활’이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등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이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면서 22대 국회 초반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것이다. 입법 논의도 시작됐다.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국회 개원 첫날, 지구당 부활을 핵심으로 한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지구당 설치와 후원회 모금을 가능하게 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여당에선 ‘취약한 원외조직’이 총선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지구당 부활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지만, 지금은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밝혔다. 여당 당권 주자인 나경원·안철수·윤상현 의원이 이에 동조했고, 이해 당사자인 원외 위원장들이 지구당 부활을 요구하는 성명까지 냈다.지구당은 지역구별 위원장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중앙당 하부 조직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로 불린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계기로 2004년 들어 폐지됐다. 당시 지구당 폐지에 앞장섰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구당은 지역토호의 비리온상이다”며 부활론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구당 부활 논쟁은 반(反)개혁일 뿐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 접근에서 나온 말”이라며 비판하고 있다.사실 지구당은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정당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지역구 사무실을 둘 수 있는 현역의원과는 달리,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해야 하는 원외 위원장의 차별해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국회개원 때마다 지구당 부활 논의가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지구당이 ‘금권선거의 온상’이 될 우려가 아직도 크다는 점이다. 22대 국회에서 지구당 부활을 입법화하더라도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차단할 수 있는 투명성 보장 장치는 철저하게 마련돼야 한다.

202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