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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3년 내 사장자리 넘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자 할 때, 주변 사람들의 마인드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 현명한 리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Y리더십으로 원하는 바를 이룬다. 21세기 리더는 상대관점에서 말하고 지원하는 Y리더십이다. 상대를 진정 공감하게 하는 능력은 현대의 리더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조직의 경영자, 관리자, 리더들에게 You 관점의 Y리더십으로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낸다.MB정부시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현대배관은 포스코와 관련이 없는 첫 혁신지원을 받는 기업이 되었다. 배전용 전기회로 개폐장치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배관은 원료 창고와 1차 가공, 2차 가공, 완제품 생산 공장이 있고 생산 물류 흐름이 효율적이지 못했다. 창업주 Y씨(당시 63세)는 영업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을 못 믿어 7년 더 사장하고 넘겨주겠다고 했다. 필자는 재무만 쥐고 3년 내 넘겨주라고 했다. 한 달 반쯤 지나 양주시내 조용한 자리에서 3년 내 아들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했다. 이에, 필자는 아들을 생산 이사로 발령 내게 하고 3개 공장의 흐름을 잇는 ‘생산 물류 최적화’ 프로젝트를 맡겼다. 코흘리개부터 성장과정을 지켜본 공장장들은 아들 말을 쉽게 들어주는 구조가 못 되었다. 생산 물류 최적화 활동 과정에 분석과 개선 기회를 창출하는 방법 등 전문지식을 심어주고 공장장들을 리딩 하게 했다. 처음에 진행이 잘 되지 않았지만 변화관리 교육을 병행하며 6개월쯤 눈에 띄게 변화가 일어났다. P-Q(Products-Quantity) 분석을 통해 Layout 설정과 창고 위치, 원료관리, 생산과정의 중간재 양을 적량화 하여 정체되는 상태를 개선해 나갔다. 작업장은 일을 쉽고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되었고 바쁨이 여유로 다가왔다. 원료 입고에서 제품 출하까지 강물이 흘러가듯 흐름화를 만들어 효율적인 생산체제로 변화되었다. 함께 참여한 공장장들은 젊은 30대 생산 이사를 인증하게 된다.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이 내가 아는 지식을 전하고자 하는 상대의 뇌에 넣는 일이라고 한다. 금수저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아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피하는 성격이었지만 잠재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업주의 기업 성공 지식과 노하우를 일방적으로 주입시켜려다 보니 소통은 요원해 지는 것이다. 성공적인 생산 물류 최적화 결과를 전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지속하게 했다. 이후 창업주는 회장이 되고 아들이 사장이 되었다.인도의 일곱 살 동자승은 야생 코끼리에게 책을 읽어주며 소통을 한다. 동자승은 코끼리와 함께 태어나 성장했고 늘 상대를 먼저 생각해주는 친구다. 현명한 리더는 상대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 상대가 주인공이 되어 선택하고 도전하게 하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질문에 답하며 성공의 결과를 만드는 동안 경영수업을 체득한 것이다. 일의 성공은 타이밍과 수용성에 있고 상대 관점에 생각하고 말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2024-04-02

포항 기업혁신파크 유치, 새 도약의 기회

안병국 포항시의원 우리 포항시는 청년인구의 수도권 유출 및 인구 감소,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해왔고 노력하고 있다.특히, 기업혁신파크 유치는 포항시에서 급변하는 사회·경제환경에 맞춰 새로운 도시경쟁력 확보에 대한 기대와 공모 선정에 각별한 노력을 들였고 포항시의회와 함께 힘을 모은 도약의 결과이다.포항시는 지역대학과 산업단지를 거점으로 산업·연구기관·대학 등 글로벌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는 산학 연계·융합형으로 지난해 11월 기업혁신파크 공모사업을 국토부에 신청하여 올해 3월 27일 최종 결정 통보를 받았다.기업혁신파크는 기업도시개발특별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민간기업의 산업·연구·관광·레저 분야 등에 걸쳐 계획적·주도적으로 자족적인 도시 개발·운영에 중점을 두고 국토의 계획적인 개발과 민간기업의 투자를 촉진시킨다는 목적이 있다.기업혁신파크는 기업이 스스로 입지 선정, 개발계획 수립, 투자, 개발, 사용 및 기업 유치 등 전 과정을 주도하고, 정부는 기반시설 조성 및 세제 지원을 통해 지역 경제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포항 기업혁신파크는 이차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동대 일원에 54.7㎡(16.5만평) 규모로 들어서며, 부지조성 사업비는 2천565억원이다.사업기간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로 한동대학교, (주)에코프로, (주)포스코퓨처엠 등 7개 기관이 공동 제안하여 산학융합 캠퍼스와 기업육성을 위한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필자는 포항시에 기업혁신파크가 성공적으로 조성된다면 포항의 경제성장과 발전에 반드시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며 에너지, 바이오헬스 산업도시로의 변모가 가시화됨에 따라 이는 작은 변화가 아닌 포항의 경제적, 사회적, 산학연의 지평을 확장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따라서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감소 예방에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수도권과의 격차 완화로 경제적 역외유출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그 결과,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지 못하고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악순환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앞으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9일 간담회 개최 결과를 통해 4월부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현장실사 등을 통해 점검하고, 미진한 부분은 전문가 컨설팅 등으로 보완하는 등 기업 및 지자체와의 협력 유치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이제 포항시는 거제, 당진, 춘천에 이어 기업혁신파크 선도사업지로 선정된 만큼, 지역균형발전의 초석이 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소통하며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포항 기업혁신파크의 성공을 위해 다음 몇 가지 고려 사항들을 제안하고자 한다.첫째, 양덕과 흥해 주민들과 소통이 있어야 한다. 대상지역 주민들과 소통은 사업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이것이 기업혁신파크 성공의 지름길이다.둘째, 기업혁신파크 성공은 입주할 실제기업들의 실제투자와 실입주를 이끌어내야 한다. 다른 지자체들이 내놓는 투자 유인책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앵커 기업인 (주)포스코퓨처엠, (주)에코프로와 한동대학교의 정책사업과 반드시 연계해야 한다.셋째, 포항 기업혁신파크의 유치 업종은 이차전지 에너지사업과 바이오헬스산업이다. 두 산업의 조화로운 융합과 균형있는 질서를 잘 활용해서 혁신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2024-04-01

평북 방언으로 서정을 노래한 김소월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평북 정주 출신인 김소월의 시에는 섬세한 향토 방언이 800여 개나 결 고운 무늬를 이루어 향토적인 전통 가락과 장단과 어울린다. 소월은 20년대의 문학 일상어와 평북 방언을 구분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일상어로서, 모어로서 방언을 사용하였다. 소월은 시 작품에 평균 2개 이상의 방언 내지 방언 변이형을 사용하고 있을 만큼 방언을 풍족하게 시에 수용하였다. 방언을 표준어와 대립되는 관점에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어로 인지하였고, 자연스럽게 시어로 사용함으로써 가장 전통에 근접한 서정시의 최고봉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소월이 사용한 북방의 언어는 개여울에 흐르는 서정적 울림의 샘처럼 마르지 않고 우리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김소월의 ‘진달래꽃’(매문사, 1925)에 실렸던 ‘기억’이라는 시 1연에서는 무려 5군데나 의미 해석이 어려운 방언 시어가 나온다.‘싀밋업시’, ‘실벗듯한’, ‘머리낄’, ‘슷고’, ‘잔물’, ‘해적이다’, ‘축업은’, ‘시메산골’, ‘하롯길’과 같은 시어는‘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은 고어이자 평안도 방언이다. 향토색 짙으며 이미 소멸의 길로 들어선 이런 시어는 해석하기가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싀밋업시’는 ‘멋쩍게’라는 의미의 평안 방언인데 ‘평북방언사전’에도 보이지 않아 그 의미를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싀멋업시’는 소월이‘팔베개 노래조’의 서사에서와 ‘시초’에서 사용한 시어이다. “무슨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망연히 있음”을 뜻한다고 이기문 교수의 설명을 듣자 겨우 시 문맥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실 벗듯한’은 ‘실’이 ‘뻐듯한’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벗듯한’으로 교열함으로써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머리낄’은 ‘머리카락’의 방언형이다. 그러나 시집‘진달래꽃’에서는 ‘머리길’로 교열함으로써 엄청난 오류를 범헀다. ‘슷고’는 “담벼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대어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을 의미하므로 ‘스치고’의 의미로 교열하면 좋을 듯하다. 가수 정미조가 가요로 불러서 80년대에 인기를 끈 노랫말이었던 소월의 시 ‘개여울’에도 많은 평북 방언이 보인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에서 ‘잔물’이란 시어는 ‘작은 못’의 의미를 지닌 방언이다.‘해적이다’는 ‘풀따기’에도 보이는데 “무엇을 헤쳐서 들추어내다”라는 의미를 가진 평안도 방언이다. 남부 방언에서도 ‘희적거리다, 해적거리다’라는 방언이 있으니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가 이젠 고어가 된 어휘다.김억(1939)편 ‘소월시초’‘님에게’라는 시에는 ‘축업은’(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님에게’)이라는 시어가 있다. ‘축업은(추겁은)’은 평북 방언으로 ‘추겁다, 추거워’로 변칙 활용을 하며 ‘축축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미래사에서 출판한 ‘진달래꽃’(1991)에서는 ‘축업은’(‘님에게’), ‘추거운’(‘여자의 냄새‘)으로 달리 표기가 되어 있다. ‘추겁다’라는 방언을 잘못 이해한 결과로 동일한 시어를 이처럼 서로 다르게 교열해 버린 것이다. ‘축축하다’보다 물기가 좀 더 빠진 상태를 ‘눅눅하다’라고 하는데 이 ‘눅눅하다’의 방언형인 ‘누겁다’ 역시 소월의 ‘오과의 읍’에 나타난다. ‘시 산’에서 보인 ‘시메산골’은 ‘두메산골’과 함께 ‘인적이 드문 산골 마을’이라는 의미로 오늘날까지 정주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의 길”이라는 뜻인 ‘하롯길’이라는 방언형도 이 작품의 외롭고 쓸쓸한 전경을 드러내는데 매우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모든 언어나 방언은 고도의 표현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흔히들 세계의 언어와 방언이 많은 것은 경제적으로 낭비라는 주장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많은 경비가 지출된다는 근거에서다. 사실 세계에 언어와 방언이 다양하면 할수록 이에 대처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언어의 다종성이 가져다주는 지적 축적이나 문화 창조의 힘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방언은 시와 소설을 창작하는데 놀라우리만치 위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들 방언이 사라지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 지식과 이해의 단위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우리가 향토 언어, 방언을 아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4-04-01

(비)일상의 공간 온천

지난 1월 29일 저희 일행이 향한 곳은 마쓰야마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인 도고온천입니다. 도고온천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유바바 온천장의 실제 모델로도 널리 알려져있지요.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도 등장하는 도고온천은 무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고의 온천입니다. 이토록 유서 깊은 도고 온천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94년 서구식과 일본식을 절충한 양식의 도고온천본관이 건설된 이후인데요.이 건물은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마쓰야마시 전체 가옥의 55%가 파괴되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일행이 방문했을 때는 도고온천본관이 내부공사 중이어서 근처의 별관인 아스카오유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다리를 다친 백로가 도고온천에서 상처를 치유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두 건물의 꼭대기에는 모두 백로 조형물이 있었습니다.흥미로운 것은 도고 온천가에 일본의 문호인 나쓰메 소세키(1864~1916)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복원된 도고온천역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坊っちゃん, 봇짱)’(1906)에도 등장하는 봇짱 열차 실물이 전시돼 있었으며, 근처에는 8시부터 22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도련님’의 등장인물이 나와 움직이는 ‘봇짱가라쿠리시계탑’이 있었고, 도고온천 상점가에서는 ‘도련님’과 관련된 각종 미니어처와 봇짱 당고를 팔기도 했습니다.이것은 마쓰야마와 나쓰메 소세키가 맺은 인연의 결과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28세이던 1895년 마쓰야마의 보통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이곳에서 1년간 생활했는데요. 이때 고교 동창이자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와 교류를 나누었으며, 무엇보다도 소세키의 명작 ‘도련님’을 낳는 여러 가지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도련님’은 에돗코(江戸っ子, 도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 봇짱(도련님)이 마쓰야마의 학교에 부임해 장난이 심한 학생들과 도덕성이 결여된 선생님들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쓰야마 지역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짓궂고 음험한 면도 있지만, 봇짱 역시 무조건 자기만 옳다고 여기기에 마쓰야마 사람들이 더욱 부정적으로 보인 것인지도 모릅니다.이 작품의 첫 번째 문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親譲りの無鉄砲で子供の時から損ばかりしている.)”는 것인데요. 봇짱의 무모하고 저돌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가 바로, 그 유명한 ‘무대포(無鉄砲, むてっぽう)’입니다. 결국 봇짱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교감에게 복수를 하고 도쿄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무대포인 봇짱이 살 수 있는 곳은 언제나 “도련님은 올곧고 고운 성품을 지녔어요”라고 칭찬만 해주며, 자신을 “끔찍이 귀여워해” 주는 기요가 사는 도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도련님’의 봇짱을 생각할 때면, 늘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 ‘나의 개인주의’(1914)가 떠오릅니다. 이 강연에서 소세키는 남의 흉내나 내는 ‘타인본위’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개인주의를 주장했는데요. 이때의 개인주의는 “당파심이 없고 옳고 그름만 있는 주의”로서, 국가주의가 대세이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주목할 것은 소세키가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남들이 모르는 외로움을 낳는다고 경고한 점입니다. 실제로 ‘도련님’의 봇짱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마쓰야마를 떠나 도쿄로 돌아오지만, 곧 자신의 유일한 하인이자 친구이며 부모이기도 한 기요가 죽어 진정한 혼자가 되어 버립니다. 철저히 ‘자기본위’로만 생활했던 봇짱에게는 안타깝지만 당연한 결말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도련님’에서도 도고 온천가는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봇짱은 “다른 곳은 뭘 보나 도쿄의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온천만은 근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나 온천이 맘에 들었는지, 봇짱은 하루라도 온천에 가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토록 혐오하는 집과 학교와는 구분되는 비일상적인 장소가 아니었음이 곧 밝혀집니다. 사실 이곳에도 수많은 눈들이 있어, 봇짱이 경단이나 메밀국수를 먹거나, 욕탕에서 헤엄을 쳤다는 등의 사소한 사실까지도 낱낱이 감시당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도련님’에 등장하는 도고온천은 일상의 괴로움과 모자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일상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일상의 자유로움과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의 공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하긴 일본에는 활화산만 70여 개에 이르며, 공식적으로 지정된 온천만 3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또한 고온다습한 기후의 특성상 일본인에게 목욕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일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도련님’이 잘 보여주듯이, 일본인에게 온천은 극락과도 같은 별세계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숙한 삶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04-01

대학이란 전쟁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3월이 끝났다. 대학의 3월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입학한 새내기와 화사한 봄날이 어울려 빛이 나는 시기이지만, 올 3월 대학가에는 유독 피곤함과 우울함이 뒤엉켜 있었다. 주위의 동료들과 전화할 때마다 전쟁터 같은 대학에서 다치지 말고 살아남자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나의 무능력을 다시 직시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시작은 개강과 함께 폭탄처럼 던져진 본부의 모집단위 광역화(안)이었다. 2025년부터 입학정원의 25%를 무학과 자율전공을 선발하겠다는 안에 대해 학내에서 수많은 문제 제기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본부는 어떤 이유인지 학내의 의견을 듣지 않고 원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입학정원을 한 명만 내놓으면 모든 혼란에서 자유로운 학과에 선발되기 위한 이전투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전선은 함께 살아가는 동료와의 사이에 생긴다. 사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광경이 대학에도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다음으로 던져진 폭탄은 ‘글로컬 대학 30’사업이다. 작년에 이어 진행되는 이 사업에 전국의 모든 지역 대학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스럽게(?) 우리 대학은 작년에 선정이 되어서 당장은 별 파도가 없지만 전국적으로 선정되기 위한 이합집산이 활발하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학교와 학교, 학교와 지역의 벽을 허무는 것이 관건이 되는 사업이기에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작년에 선발된 대학에서 들려오는 온갖 잡음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눈앞의 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글로컬 대학’이란 간판이 갖는 위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 와중에 부산의 어느 사립대에서는 교수 근태 관리를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출근부를 작성하는 지침과 이를 어길 경우를 대비한 징계 규정을 만들었다. 명분은 연구와 수업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지만, 교수 사회를 길들이려는 제도임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학교는 비판적 교수들의 재임용 거부 등으로 지역에서 제법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을 거울삼아 교수 길들이기가 확산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대학이 대학(大學)이길 포기하고 취업 전문기관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한때 이 사실에 분노하는 교수들이 많았지만, 더 이상 아무도 이런 현실을 원망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교수가 취업률이란 지상과제를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대학이 지켜야 할 학문의 자율성과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교수의 역할이 근본적인 한계에 처해있기 때문이다.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연구자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 교육의 방식이나 보탬의 구체적 함의는 전공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를 부정하는 교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권력이 정한 연구와 교육만을 강제하는 꼴이다. 토론과 협의는 완전히 실종된 상황에서 생활인으로서 교수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2024-04-01

몸으로 쓴 리더의 조건

김규인 수필가 손흥민의 골에 이강인이 펄쩍 뛰어올라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 모습을 국민들은 얼마나 원했는지. 태국과 피파 순위만큼이나 큰 차이로 이겨서 기쁘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대한민국 축구팀이 하나가 된 것이다. 조각난 팀이 한 팀이 되는 건 쉽지 않다. 누군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탁구 게이트 이후 런던으로 사과하러 온 이강인을 손흥민은 따스하게 맞아준다. “강인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달라”는 인간적인 손흥민을 만난다. 이 한마디가 국가대표팀과 토트넘을 이끄는 주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리더란 이런 거라고 조용히 몸으로 말한다.손흥민이 남모르게 지원한 무료 급식소가 40곳이라는 보도가 영국을 달군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고 시간이 나면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대학교에서 축구를 지도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 온 그의 기사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토트넘에서 슬럼프에 빠진 동료, 히샬리송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응원하고 재기를 돕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력이 없으면 밀려나 벤치에 앉아야 하는 냉엄한 프로의 세계에서 말이다. 어쩌면 서로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주장이기에 앞서 따스한 마음이 먼저 다가가는 그에겐 언제나 팀이 우선하는 것 같다.그런 가운데에도 매년 두 자릿수의 골과 도움을 기록한다. 이러한 바탕에는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으며 실력을 키우는 노력이 있음은 물론이다. 돈으로 몸값을 결정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인간미 넘치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본다.2023년 수해가 발생했을 때 수색 작업 중 급류에 휘말려 순직한 채수근 병사의 유가족에게도 그는 말없이 1억 원을 건넨다. 이러한 사실도 최근에서야 알려진다. 언제나 그의 선행은 남이 모르게 이루어지기에 뒤늦게야 다른 사람을 통해 알려진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도움만을 주려는 그의 마음이 요즈음 더 반짝인다.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고자 나온 사람들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투표용지의 길이는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는데, 그 길이만큼이나 출마자들의 비리도 끝없이 알려진다. 심지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당선권에 다수를 차지하는 당도 보인다. 국민을 위해 남 앞에 나서는 사람들의 수신제가 후의 치국은 언제나 이루어지는지. 자신을 찍어달라고 내미는 손을 보며 리더의 조건을 생각한다.손흥민의 선행이나 남 앞에 나서는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의 그동안의 행동이 둘 다 남이 모르게 하는 데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다르다. 손흥민으로 따스하게 데워진 가슴이 차갑게 식는다. 남을 배려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언제나 볼 수 있을지. 더 높은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자신을 닦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국회의원은 언제쯤 나올까. 국회의원이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임을 잊은 것은 아닌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쯤 남을 향해 손을 내미는 리더가 나올까.

2024-04-01

대구국제안경전, 안경산업 재도약 발판 삼길

국내 유일의 국제 안경전시회인 2024년 대구국제안경전(DIOPS)이 3일부터 대구엑스코에서 열린다. 대구시가 지원하고 한국안광학진흥원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최근 수출 부진으로 흔들리는 대구 안경산업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올해 DIOPS는 350개 전시부스가 모두 매진됐다. 사전 등록한 국내외 바이어 수도 전년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8천여 명이 참관한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의 참관이 예상된다.특히 올해 전시회는 안경 브랜드 전문기업과 중국, 일본 등 국제적 명성의 유명 브랜드 기업도 대거 참여해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행사를 주관한 진흥원은 대구 안경산업의 기술 및 디자인 혁신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번 전시회부터 DIOPS 혁신상을 신설했다. 선정된 수상작은 국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제품 홍보 등 특전이 주어진다.대구는 안경산업의 태동지이자 우리나라 안경산업의 거점도시다. 북구 노원·침산동 일원은 일찍부터 안경특구로 지정됐다. 국내 안경업체의 80% 이상(500여 개 업체)이 이곳에서 기업을 영위한다. 2009년에는 노원동 네거리 1.1km 구간이 안경특화거리로 조성되고, 안경축제도 열린다. 또 진흥원을 통해 기업에 대한 디자인 및 브랜드개발, 마케팅 등도 지원된다.그러나 중국기업의 추격 등으로 최근 3년 사이 대구 안경산업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국내 수출액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구 안경산업의 수출액이 품목에 따라 20∼30%가 줄었다.새로운 트렌드를 요구하는 안경산업의 특성에 맞는 디자인과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진흥원을 중심으로 지역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이번 전시회가 지역기업의 상품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신기술 개발에 대한 정보교류의 장이 되고 지역안경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돼야 한다. 대구시도 “대구 안경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져 대구가 안경산업 중심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길 바란다.

2024-04-01

낯 뜨거운 박정희 비하 발언, 구미서만 분노?

국민의힘 구미지역 후보들이 지난주말 박정희 전 대통령 비하발언을 한 민주당 김준혁(경기 수원정) 후보의 사퇴와 당의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김 후보는 최근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자신의 막말 논란에 대해 “1940년대 관동군 장교로서 해외 파병을 다녔던 만큼, 확인된 바는 없지만 당시 점령지 위안부들과 성관계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역사학자로서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김 후보는 최근 “박 전 대통령이 1937년 문경초등학교 교사 시절 초등학생과 (관계를) 맺었을 수 있다”고 한 과거발언이 문제되자 다른 사람의 강의 내용을 재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한 적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막말을 쏟아낸 사람이 제1야당 공천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김 후보는 이번 공천과정에서 비명계 박광온 전 원내대표를 꺾고 민주당 간판을 달았다. 국민의힘 강명구(구미시을) 후보는 지난주말 성명서를 통해 “김 후보의 해명은 박 전 대통령과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 모두를 비하하는 망언”이라고 했고, 같은 당 구자근(구미시갑) 후보는 “김 후보는 이재명 대표와 대학 동문으로 대표적 ‘찐명’이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저열한 발언 수위도 함께하는 것인지…”라고 했다. 김 후보는 이재명 대표를 조선시대 정조에 비유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는 몇년전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라는 책을 내면서 ‘정조가 이 대표의 대선 출마선언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글을 썼다. 낯 뜨거운 아부성 글이다.구미지역 여당 후보들이 나서서 대구경북 지역민 상당수가 느꼈을 분노를 대변해 준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금까지 이 지역 여당 후보 중 민주당 공천문제와 같은 현안에 대해 공론을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다. 마치 꿀 먹은 사람처럼 입을 닫고 있다. 괜히 나설 필요없다는 생각에 몸을 사리는 것이다.선거가 이런 분위기로 진행되면 이지역 투표율은 아마 역대급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2024-04-01

저마다 사는 길

방민호 서울대 교수 첫 방문인데, 뭘 사가야 할까?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다니, 옛날 같으면 크리넥스 티슈를 한 박스 가져가야겠지만 첫 만남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결국 과일이다. 하필 과일 금이 엄청 올랐다는 때였다. 사과가 ‘금과’가 되었다던 때였다. 그러고 보니 이날의 만남도 벌써 석 주는 지났다.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과일은 백화점 과일이 제일 맛있다는데, 들를 시간이 없다. 큰 슈퍼마켓에 들어가 사과, 딸기, 바나나, 천혜향 같은 것을 한 바구니씩 사니 값이 꽤 나간다. 무게도 제법이다.이제 들고, 선화동, 대전에서 가장 전통적인 동네, 하지만 시가지 중심이 둔산 지구로 옮아간 후 30년 동안 내리막길만 걸어온 동네로 간다. 거기에 그는 살고 있다고 했다. 전화로 그런 얘기를 듣고 자신만만했다. 선화동이라면, 광천식당이나 청양칼국수다 해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나다니던 곳, 커서도 때만 되면 동창 친구와 만나는 약속을 정하는 곳이다.역사를 연구한다는 그는 나보다 대학 학번이 두 학번이 위로, 외교학과를 나왔고 법학박사였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 모든 일과 멀어져서 역사를 연구하고 책을 쓰면서 내 옛날 동네 선화동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드디어, 나는 그가 사는 원룸 빌딩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고, 초인종을 누르고 밖으로 나온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어수선해서 맞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했다.내게는 서울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 잠깐 하고 자췻집, 하숙집을 이리저리 전전하며 스무 집 정도를 옮겨 다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전화 통화를 통해서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제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나는 발 디딜 틈 없는 현관 바닥과 정리도 되어 있지 않은 주방과 각종 원서들이 어지럽게 꽂혀 있는 거실의 책장을, 서서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이 원룸의 풍경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자고 먹고 책을 꽂아두고 있었던 것이었다.어색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를 태연하게 자신의 거처로 맞아들인 그 사람. 무거운 과일 봉지는 베란다 쪽 바깥에 다른 짐 쌓인 곳에 팽개치듯 얹어 놓고 곧바로 그가 열중하고 있는 고구려, 발해, 몽골 이야기로 들어간다.나는 귀로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구사하는 러시아어, 몽골어, 만주어, 중국어, 아랍어는 몇 개도 알아들을 수 없다. 부지런히 듣고 있는 시늉을 하며 나는 속으로 나의 생각을 이어간다.참 희귀한 사람이군. 경륜을 감추고 책만 읽었더라는 허생이라기보다, 먼 이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역사를 밝히신 단재 신채호 같은 사람…. 이 사람의 공부 길을 계속해서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그런 것 같다. 세상을 사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돈을 따라가는 길, 지위를 구하는 길, 이름을 높이는 길….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른 길을 가는 분들이 있다. 없지 않다. 이들이야말로 사회의 빛이다. 소금이다. 이 글을 쓰는 때가 하필 선거 때다.

2024-04-01

박정희 능욕 파문

홍석봉 대구지사장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긍·부정이 엇갈린다. 하지만 최근엔 군사쿠데타와 정치탄압 등 부정적인 측면 보다는 나라를 가난에서 구제한 업적을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22대 총선에서 박 전 대통령을 능욕한 막말 논란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수원정에 출마한 김준혁 후보가 종군 위안부와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능욕한 망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구미 시민과 정치권이 분노하고 있다. 김 후보가 2019년 2월 한 유튜브 채널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종군 위안부와 교사 시절 학생들과 성관계를 가졌을 가능성을 언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에 국민의힘 구자근·강명구 구미시갑·을 후보는 성명서를 내고 “구미가 낳은 박정희 대통령을 비하하는 망언이자,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며 김 후보의 사과와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김장호 구미시장도 SNS에 ‘더럽고 충격적인 망언을 들었습니다’라며 김 후보를 규탄했다. 대학교수라는 그의 직업과 양식이 의심받을 정도의 저급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박정희’ 논란은 그의 사후 수십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역사에 대한 공정한 재평가가 아니라 질낮은 정치 공세의 단골 소재로 악용되고 있다. 박정희를 능욕하고 조롱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집단의 저열한 술수다. 정파의 이해득실을 위해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희화화로 폄훼되는 것은 범죄행위와 다름 없다.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엔 예술을 빙자한 능욕과 조롱이 적지 않았다. 노무현·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패러디도 풍자를 넘어 능욕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저급한 막말은 현실 정치에서 사라져야 할 때가 됐다. 국민의 자긍심과 국격을 떨어뜨릴 뿐이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2024-04-01

민주당의 미래는 이재명인가, 조국인가

김진국 고문 22대 총선 최대 변수는 조국이다. 그의 출마로 전체 판세가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기울었다. 국민의힘이 상승할 때도 잘해서라기보다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진 탓이다. 이재명 대표가 비명계를 숙청하고, 친명계를 심으려 무리했다.민주당 주류였던 호남계와 친노, 친문들이 치명상을 입었다.이 대표는 민주당 주류가 아니었다. 꼬리가 몸통을 집어 먹으려니 소음이 났다. ‘비명횡사’와 함께 민주당 지지율도 추락했다. 충성도만 보고 자객들을 뽑았다. 검증에 소홀했다. 문제 후보가 속출했다. 서울 강북을에서 줄줄이 낙마한 정봉주·조수진 후보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계속 점수를 잃었지만,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과반은 최대 목표로나 삼을 만했다. 그런데 보수 진영은 압승할 것이라며 긴장을 늦췄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 호주대사로 보냈다. 굳이 선거를 앞두고 서두른 이유를 알 수 없다. 황상무 대통령 시민사회수석 말이 발등을 찍었다. 평생 언론사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오만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이 무렵 조국혁신당이 출범했다. ‘비명횡사’로 등산이나 가려던 비명계 야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이재명 대표에게 실망해도, 투표할 이유를 찾았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냈다. 조국혁신당을 찍으러 투표장에 나가면, 지역구 후보는 민주당 후보를 찍게 된다.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지금 여론조사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국민의힘이 더 어려운 형편이라고 봐야 한다.야권 내부에도 새로운 긴장이 생겼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3월 셋째 주 33%이던 민주당 지지율이 넷째 주 29%로 떨어졌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8%에서 12%로 올랐다. ‘비례대표의원 투표 의향’은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이 22%로 같았다. 조국혁신당이 앞서는 조사도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조국 대표는 창당 직후 민주당을 찾아가 이 대표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이 대표는 현재 20명으로 돼 있는 교섭단체 기준을 낮춰주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이 상승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역구, 비례, ‘몰빵’을 외친다. 박지원 후보가 조국혁신당 명예당원 하겠다고 덕담했다가 경고받았다. 소셜네트워크에는 조국 대표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가 조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 경쟁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호남 지지가 절대조건이다. 광주 경선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예상하는 사람이 적었다. 이인재 전 의원이 오랫동안 ‘황태자’로 행세했다. 그러나 광주의 선택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호남 유권자들은 다른 지역보다 전략적이고, 집단적이다. 감정과 투표를 절제할 줄 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호남 출신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고 인정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39만 표 차이로 겨우 이겼다. 이때 이인재 후보가 492만여 표를 가져갔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아 충청지역의 지원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 정도이니, 다시 호남 출신 대통령 만들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영남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계자로 찾아냈다.비호남 출신 후보를 지원할 때 조건이 있다. 호남을 배려해달라는 것이다. 민주당 정부마다 호남 인물과 기업이 호조를 보였다. 쉽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 때도 친노와 호남 세력이 주도권을 다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앙금으로 호남 표를 얻는데 고생했다. 안철수 의원에게 밀리기도 했다.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을 친명 일색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 호남 세력도 많이 밀어냈다. 이낙연·임종석·박용진…. 과거 야당 총재들도 비주류에 조금의 공간은 나눠줬다. 이번에는 주류를 바꿨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력을 모두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했다. 조국 대표도 공천을 안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 대표가 당을 따로 만들어 돌아왔다. 특히 호남에서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높다. 선거 이후가 궁금해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31

어제와 다른 오늘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하루가 다르게 태양이 일찍 떠올라 창천에서 오래 빛난다. 아침 여섯 시 무렵 동창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고, 저녁 일곱 시가 지나야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생명의 환희와 약동(躍動)이 찬란하게 작동하는 눈부신 시절이다. 이런 날이 이어지면 누구나 들뜨고 조금은 흥분되기 마련이다. 접촉사고에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반면에 봄날은 아주 변덕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이를테면 지난 목요일 내가 사는 고장 청도에는 온종일 비가 뿌렸다. 아침나절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한밤중까지 그칠 줄 모르는 것이다. 결국 그날 온종일 나는 잠과 벗하는 선택 말고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하되, 대체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기상청도 민간 기상업체도 묵묵부답이다.그러다 금요일 아침나절에 피식, 하고 혼자 웃는다. 일일 누적 강수량 41.8mm라는 표기가 일기예보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정보가 차고 넘치는 때에 이토록 늦게 강수량 표기를 한다는 사실이 좀체 납득(納得)하기 어렵다. 나처럼 수량(數量)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인간에게 가장 요긴한 것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이기 때문이다.금요일 아침 경북대 교정에는 기다리던 반가운 손님이 단체로 몰려들었다. 하얗고 발그스레한 벚꽃이 무더기로 하늘을 향해 몸을 연 것이다. 그것도 맹렬한 봄바람의 기세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무더기 개화를 시작한 게다. 매몰차게 불어닥치는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화사하게 꽃잎을 열어젖힌 봄의 무수한 전령이 일제히 고함치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다.온종일 비가 내려 두문불출(杜門不出)해야 했던 어제와 찬연(燦然)한 하늘과 드센 바람과 놀라운 개화가 공존하는 오늘의 차이를 현저하게 실감하는 실존의 봄날! 어쩌면 이런 까닭에 인간은 죽음을 경원하고, 생의 마지막 그날까지 살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삶을 향한 끈질긴 소망은 또 얼마나 처연한 것인가?!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변론’ 말미(末尾)에 독배를 마셔야 하는 소크라테스의 소회가 눈길을 잡는다.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나는 죽으러 가야 하고, 여러분은 살러 가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나 가운데 누가 더 축복받은 것인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입니다.” 이 대목은 대단한 무게로 우리를 덮쳐온다.누구나 삶이 죽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달리 생각한다. 그는 신의 가호를 받는 인간에게는 삶도 죽음도 차이가 없다고 확언한다. 죽음은 아주 깊은 잠을 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1601년의 햄릿의 독백을 그는 기원전 399년에 이미 선취(先取)하고 있다.어제를 어제로 보내고, 오늘은 오늘로 맞이하는, 삶은 어제로 보내고, 오늘은 삶이 아닌 죽음과 대면하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아니하는 소크라테스. 그에게는 이토록 화려하고 눈물겨운 봄날이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과 다르지 않은가 보다. 하되, 어쩔 것인가, 이 찬란한 봄날을!

2024-03-31

만우절

우정구 논설위원 오늘이 모두가 바보가 된다는 만우절(萬愚節)이다.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듯한 거짓말로 재미있게 남을 속이면서 즐기는 날이다. 영어로 April Fool’s Day라 부른다.유래는 중세 프랑스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유력하다. 16세기 유럽에서는 1년의 시작을 부활절로 여겼다. 하지만 부활절 날짜가 3월 25일부터 4월 20일까지 들쭉날쭉한 바람에 프랑스왕 샤를 9세가 1564년 1월 1일을 새해로 선포했다.그러나 그런 사실이 백성에게 잘 전달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여전히 4월 1일을 새해로 알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들을 대상으로 놀리거나 조롱하던 것이 유래가 됐다는 것. 프랑스에서는 만우절 날 속아 넘어간 사람을 ‘4월의 물고기’라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4월에 물고기가 유난히 잘 잡힌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 한다.유럽에서 시작한 만우절은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도 만우절 날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에피소드 중 하나는 1957년 있었던 BBC 방송의 한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은 스위스에 있는 나무에서 스파게티를 수확하는 장면을 내보내 시민들의 전화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또 네덜란드 TV에서는 피사의 탑이 무너졌다는 보도를 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국내서도 만우절을 핑계로 경찰서나 소방서 등에 거짓 신고를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했다. 선거철 기간이라 혹시 거짓 신고가 있을까 걱정이 된다. 경찰은 만우절을 맞아 거짓 신고가 확인되면 엄격 대응하겠다고 했다. 불필요한 시간과 인력 낭비로 선의의 피해자 발생을 우려해서다. 만우절을 생활의 활력소가 되게 재미있게 즐기는 것은 각자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3-31

대구와 경북서 안 팔린 주택이 2만가구 육박

국토교통부 주택통계 자료에 의하면 2월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 수는 6만4천874 가구다. 작년 12월 이후 석달 연속 증가세다. 그런 가운데 대구와 경북의 미분양 주택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는 2월 현재 미분양 주택이 9천927가구로 전국 1위며 그다음이 경북으로 9천158가구다. 대구와 경북을 합친 미분양 주택 수는 1만9천85가구로 2만가구에 육박한다. 전국 미분양 주택 수의 약 30%다.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대구와 경북의 아파트 매매가격도 줄곧 내림세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의하면 지난주 대구는 19주 연속 하락세다. 하락폭은 -0.06%로 ·0.04%를 기록한 전국 평균보다 하락폭이 컸다. 특히 대구의 아파트 매매가는 10주 연속 전국 최고다.경북은 미분양 물량이 많은 포항 북구가 -0.35%로 가장 하락폭이 컸고 구미(-0.09%), 경산(-0.08%)이 다음을 이었다.대구와 경북은 부동산 경기가 장기침체 국면에 빠져 있다. 최근 대구에서는 P아파트가 완공 후 분양에 나섰지만 239가구 모집에 10%도 채우지 못했다. 대구에 미분양 주택 수가 워낙 많아 매수 심리가 살아나지 않은 탓이다. 집이 팔리지 않아 새 집을 구입하고도 이사를 못하는 사람도 많다. 부동산 거래가 장기간 정상화되지 못함에 따라 중개업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형편이다.정부가 최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미분양 물량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지방의 미분양은 CR리츠를 통해 매입해 안정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CR리츠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사들인 후 우선 임대로 운영하고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분양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미분양 물량이 지방에 집중돼 있고 특히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지방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침체 늪에 빠진 지방에 대한 부동산 대책은 시급하다.건설경기 부진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정부 대책이 피부로 느껴질 수 있게끔 실효성 있고 서둘러 시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2024-03-31

투표소관리 허술하니까 ‘부정선거’ 말 나온다

4·10총선 사전투표를 나흘 앞두고 전국 사전투표소에서 통신기기로 위장한 불법 카메라가 잇달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까지 대구를 비롯해 서울·부산·인천·울산·경남·경기 등 전국 사전투표소 40여 곳에서 발견됐지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경찰은 카메라를 설치한 피의자 중 한 명인 40대 유튜버를 검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남성은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사전투표소에 카메라를 설치해 내부를 촬영한 정황이 확인됐다. 선관위의 사전투표소 관리가 그만큼 허술했다는 얘기다.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지난 2020년 총선에서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이뤄져 민주당이 압승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사건으로 부정선거 논란이 또 촉발돼 선거의 공정성 시비가 확산할까 우려된다. 선관위는 “무단으로 카메라를 설치하고, 투표하는 선거인을 몰래 촬영하는 행위는 유권자의 투표 의사를 위축시켜 선거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선거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카메라 설치자가 정확히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무슨 이유에서든지 간에 투표소에 몰래 들어가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선거관리를 방해하고 비밀투표의 보장을 어렵게 만드는 행위다.선관위와 경찰은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비밀선거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특히 정치 현장을 생중계하면서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내는 일부 유튜버들의 선넘은 행위를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 선관위가 오는 4일 사전투표소를 설치하는 날 다시 한번 시설 전반에 대해 최종 점검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사전투표소는 외부 장소에 설치되는 만큼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만약 불법 카메라가 사전에 발견되지 못한 채 이 유튜버가 과거처럼 투표장 출입 영상을 근거로 부정선거 주장을 할 경우, 선관위는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024-03-31

포스텍 총장, 속였는가 비겁한가

이대환 작가 봄비 내리는 저녁, 서울 광화문. 작가, 교수, 변호사, 사업가(후배) 등이 어우러졌다. 후배가 내게 김성근 포스텍 총장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이가 또래라는 것만 안다고 했더니, 화학계에 이름 높은 학자로서 받고 있던 연봉보다 적게 받으면서 총장으로 갔다는 자랑을 보탰다. 내가 ‘박태준 평전’을 쓴 작가니까 그랬겠는데,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칠십 고개를 바라보면서도 인생의 의미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면, 속물이거나 바보 아니겠나?”며칠 지났다. 나는 포항에 왔다. 또 봄비가 어둠을 적시는 저녁이었다. 몇이서 돼지국밥에 막걸리를 주고받았다. 문득 심각해지는 화제가 올랐다.“포스텍 총장이 의과학대학 설립에 소극적이라는데.”변호사 선배의 무거운 우려였다.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설왕설래가 길어졌다. 내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이러한 경우에 ‘소극적’이란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첫째는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환경에 안 맞는다는 것이다. 만약 첫째의 경우라면, 그는 포항시민·포항시·포스텍 구성원을 속인 총장이다. 몇 년에 걸친 지역공동체의 중대 현안이고 포스텍과 포항시가 함께 추진해오는 프로젝트인데, 이것이 자기 생각과 안 맞는 거라면 총장으로 오지 말았어야 옳은 거 아닌가. 만약 둘째의 경우라면, 그는 최정우 이사장의 눈치나 살피는 용기가 부족한 총장이다. 올바른 용기가 부족한 리더십은 조직에 도움이 되기 어렵지 않는가.포스텍 이사장을 겸임한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이 김성근 총장을 뽑았다. 회장 3연임에는 막혔으나 여전히 이사장을 유지하는 그가 포항시민·포항시와 대립해온 것은 온 나라가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그날의 막걸리 술잔들은 “이사장이 의과학대학을 반대하니까 총장이 소극적이지 않겠나” 하는 쪽으로 일단 의견을 모았다.포스텍의 의대(의과학대학) 신설, 스마트병원 설립에 열정을 바쳤던 김무환 전임 총장이 임기를 마치는 지난해 8월의 어느 오후였다. 나는 동갑내기 총장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마침 후임과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돌아온 그가 학교 동기라며 칭송했고, 그래서 나는 새 총장이 또래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의과학대학, 스마트병원 설립에 대해 새 총장도 잘 아는가요?”“그럼요.”“현실적 문제는 어떤 게 있는지요?”물러나는 총장이 세 가지를 꼽았다. 의대 정원 증원과 신설 의과학과 배정받기, 이사회의 인준받기, 연차적 재원 확보 등이었다.“의대 증원이 이뤄져도 교육부에 의과학대 설립과 정원 배당을 신청하자면 그보다 먼저 포스텍 이사회의 승인을 받고 재원 계획을 확립해야 하는 거군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답답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안 들어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김무환 총장도 최정우 이사장이 뽑았다. 그는 지역사회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총장 연임에서 멀어지는 길이었으나 꿋꿋하게 용기를 보여줬다.그의 전임 김도연 총장은 가치창출대학, 그러니까 연구 결과가 벤처창업으로 꽃피는 포스텍을 외치면서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과 대학정책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었다. 지식인의 소신과 용기를 보여준 그가 임기 종료를 세 학기 앞둔 2018년 봄날, 주총에서 임기 3년을 받으며 연임에 올랐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출범 2년차 문재인 정권에 겨우 한 달을 버텨서 사퇴하겠다고 표명하더니 그해 여름에 최정우 회장이 등장하고 12월부터는 포스텍 이사장도 맡았다. 마음 비운 김도연 총장에게 그가 연임을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김 총장도 총장 후보에 등록했다. 그러나 그는 면접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업어다가 난장 때린 격이었다. 포스텍 이사회 관계자들이 청와대와 무관한 결과라고 강변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드물었다.두 전임 총장의 용기를 언급한 까닭은, 김성근 총장이 속이고 온 경우도 아니고 연임할 욕심도 아니라면, 그들의 용기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는 뜻이다. 물론 포스텍 총장으로 왔으니 기본예의 차원에서라도 ‘박태준 평전’을 일독한다면 뒤늦게 용기의 새로운 참뜻도 덤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다시 며칠이 지났다. 새하얀 새떼 같은 목련꽃 송이마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었다. 카톡이 날아들었다. 신문기사였다. 이강덕 포항시장의 일갈이 제목으로 뽑혀 있었다.‘의대에 미온적인 포스텍 총장은 포항에 필요 없다.’내가 들었던 변호사의 ‘소극적’을 시장은 ‘미온적’이라 했다. 격정을 응축한 표현인데 나는 오히려 점잖게 느꼈다. 포항시에서 의과학대학 관련으로 포스텍에 전화를 걸면 안 받거나 뺑뺑이를 돌린다는 기자의 취재가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포항시 도처에는 ‘포스텍 의과학대학 설립은 포항의 미래입니다’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시민 30만 명이 연대서명에 동참했고….김성근 총장에게 ‘박태준 정신’에 비춰서 말해주고 싶다. 리더십은 비겁하지 말아야 하거늘, 소극적이든 미온적이든 그 이유가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첫째의 경우라면 지역공동체를 속인 셈이니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라고, 자기의 환경에 안 맞는 둘째의 경우라면 용기를 세워서 이사장을 설득하기 바란다. 더구나 최 이사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유난히 시끄럽게 회장을 마쳤음에도 현재 연임한 이사장의 임기를 2년 8개월이나 남겨뒀으니 포스텍을 위해 새 회장에게 이사장을 넘겨주고 그만 자진 사퇴해야 옳다는 주장들이다. 이게 포항 민심이기도 하다. 한창 떠들썩한 총선 마이크가 꺼지고 나면 민심은 뭉쳐져 움직일 것이다.그리고 화학자 김성근이 아니라 포스텍 총장 김성근으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사유해야 할 일들이 따로 있을 듯하다. 작가의 눈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어른거린다.먼저, 포스텍의 미래이다. 이것은 총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의대 증원이 이뤄지면 젊은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이 더 심해지고, 이는 포스텍 학생들의 학력 수준에 악영향을 끼친다. 2021년 1월 최정우 이사장이 “포스텍 기부 체납”을 운운한 그때 이미 포스텍의 정체를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한파전선처럼 형성됐는데, 의대 증원은 설상가상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포스텍 리더십은 주저 없이 ‘의과학대학’ 신설을 결단해야 한다. 다행히 포스텍은 생명과학이 아주 강하며 인프라도 한국 최고 수준이고, 의과학은 의학·공학·기초과학을 융합하니, 그것이야말로 포스텍 전체에 재도약의 활력을 불어넣는 신의 한 수가 아니겠는가. 재원 문제? 사람들이 의기를 결집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도 더러는 폭발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물론 병원 경영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중심의대(의과학대) 부속병원의 특수성을 살려나가고 3D 바이오프린팅, 세포막 단백질 연구, 그린바이오, 마린바이오 등 포스텍 생명과학의 뛰어난 기술력을 임상에 적용하는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보면 겁부터 먹을 노릇이 아니다. 당연히 바이오제약 기업들도 동참할 것이다. 호암 이병철 선생과 청암 박태준 선생, 일찍이 두 거장이 포항공대 곁에 암치료 전문병원 설립을 논의했던 것과 같은 선각적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호암 선생의 건강한 삶이 더 길어졌더라면!또 하나는, 포스텍을 포스코의 미래기술연구원과 거의 한 몸으로 만드는 일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이차전지소재, 수소 등에 주력하겠다는 미래기술연구원을 반드시 포항에 오게 해서 포스텍과 거의 한 몸으로 묶어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포항시민이 앞장서서 미래기술연구원은 포스텍과 함께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지역균형발전의 거점을 육성하려는 시대정신의 실천의지도 담고 있지만, 포스텍에게는 박태준 선생의 유지를 받들며 세계 일류로 나아갈 강력한 동력을 장착하는 거사이기도 하다. 과연 총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진정으로 포스텍의 희망찬 미래를 담보하려는 집단지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러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미래기술연구원에 대해 시민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다른 하나는, 총장 자신의 삶에 관한 문제이다. 임기가 4년 미만으로 남았는데 임기를 마치면 포항에 정주하겠는가?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포스텍 의과학대학과 스마트병원은 포스텍(포항공대)·포스코(포항제철)·포항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 바이오제약의 향후 40년을 위해 기필코 갖춰야 하는 필수적인 새 인프라이다. 너무 오래 지각한, 이 엄중한 운명적 도전을 회피하려 한다면, 그는 2024년의 포스텍 총장이든 이사장이든 직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경북매일신문은 4월부터 ‘이슈 논단’ 코너를 마련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는 만큼 시민사회에 제기된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수렴키 위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주지하시다시피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실은 매우 복잡합니다. 사안에 따라 이해관계가 있고 견해차도 큽니다. 논단을 통해 다름을 살펴보고 고찰하면 당면하고 누적된 과제에 대한 미래적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코너 참여는 ‘기고’ 형식으로 누구나 가능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일이나 비난, 민원 등은 불가하며, 분야는 제한이 없습니다. 특정 사안의 기고에 대해 의견이 다를 경우 반박 투고도 열어뒀습니다. 시민 및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연락처 054-289-5040)를 기대합니다.

2024-03-31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유영희 작가 4월 10일, 22대 총선일이 열흘 남짓 남았다. 정당마다 구호를 내걸고 표심을 얻기에 분주하다. 어떤 이는 진작에 마음을 굳혔겠지만, 아직 표를 줄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도 많다. 처음부터 판세가 결정된 지역도 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전지도 있다. 그러니 투표일까지 유권자는 두 눈 크게 뜨고, 두 귀 활짝 열고 후보의 인물과 정책을 주시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인물을 보고 자기 이익에 기반해서 투표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투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피지배 집단이 지배 집단을 위해 투표하는 일이 종종 있다. 10여 년 전에 출간된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도 캔자스 등 낙후된 지역 주민들이 공화당에 표를 주는 현상에 주목했다.이런 현상에 대해 뉴욕대 심리학 교수 존 조스트는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을 통해서 사람들 대다수는 현 상태를 옹호하고, 강화하고, 정당화하도록 동기화 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런 방식으로 동기화되는 이유는 많고도 복잡하다. 그중에 내가 관심 있는 방식은 양가감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지위가 높은 집단과 자기 집단에 대해서 모두 양가감정이 높다는 가설이 검증되었다. 양가감정이 높다는 뜻은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다 있다는 것이다.존 포스트가 보여준 여러 실험에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비난하면서도 선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빈부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흑인과 백인, 명문대와 비명문대 등 사회적으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는 집단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데에는 문화적인 고정 관념도 중요하게 작동한다고 한다. 존 포스트는,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크래칫 가족을 통해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고정 관념을 만들었다면서 이런 고정 관념이 사회에 널리 퍼지면 약자인 당사자도 그것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이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 대다수 사람이 양가감정을 비롯한 인지부조화에 휘둘리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관성이 없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런 식의 양가감정에 지배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인터넷의 발달이 언제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양가감정에서도 자유로워지고 교차검증을 통해 합리적인 사고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정책과 비전에 입각하여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왔다. 돌아오는 4월 10일에 그 능력을 발휘해보자.

2024-03-31

건강한 소통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말에 ‘발품 팔다’라는 말이 있다. 발로 무엇을 해서 먹고사는 일을 뜻한다. 힘들게 발품 팔아서 이룬 결과들은 오래오래 남아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이 된다.가만 생각해 보니 군대에서 구보를 마지막으로 발품 팔아먹는 행위는 끝났고 두 발은 오직 차 있는 곳까지 걸어가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짧은 이동의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발품 파는 일을 그만두니 발아래서 일어났던 고달프고 힘들었던 순간과 가슴 저미도록 벅찬 감동의 순간들도 자연스레 희미해졌다.고달픔을 잃어버린 곳에서는 새로운 희망이 자리잡을 수 없고 건강한 경쟁이 싹틀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보릿고개를 넘던 힘들었던 시절의 경험을 자녀들에게 들려주며 현재에 감사함을 알고 더 큰 꿈을 꾸며 살아가도록 교훈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말을 통해 전해지는 교훈은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 그 자리마저 피하게 된다. 자녀들과 효과적인 소통의 방법이 아니라는 뜻이다.사람은 혼자보다 함께할 때 더 많은 행복을 느끼게 되며 몸으로 함께 땀 흘린다면 그 행복감은 가파르게 상승한다고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말하고 있다.그래서인지 최근 마라톤 같은 달리기 대회에 연인이나 가족단위 참가가 확연하게 늘어나는 추세이며, 기업에서도 임직원이 단체로 참가하여 함께 달리면서 고통의 순간마다 서로를 응원하며 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완주 후 극도의 피곤함도 뒤로 한 채 얼싸안고 포옹하며 천상의 행복한 표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된다.그 환희의 순간은 지켜보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말로 전해지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교훈보다 말 한마디 없어도 얼싸안고 서로의 땀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몇 배나 더 효과적인 소통이 되는 것이다.여기서 주목해야 될 점은 마라톤이 2030세대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7일 막을 내린 서울 마라톤을 기준으로 2030세대 비율이 2019년 43% 수준에서 2024년 50.4%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제니퍼 헤이스가 쓴 ‘운동의 뇌과학’ 책을 보면 달리기는 모든 질병의 예방제라고 설파하고 있으며 노화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집중력과 창의력의 원동력이라는 것으로 건강하게 삶을 유지하는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비타민제를 비롯하여 건강에 관심이 크다는 2030세대에게 달리기는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되고 있으며 ‘러닝 크루’는 최고의 소통 공간인 것이다.매년 5월 하남시 ‘미사 경정공원’에서 열리는 ‘철강마라톤’에는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 관련 기업의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함께 땀 흘리며 세대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장이 되고 있다. 필자 역시 본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고 퇴근 후 직원들과 달리기를 통한 소통을 하고 있다. 건강한 몸에 축적되는 지식은 자신과 기업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빛을 발하여 성장의 무한한 자원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이유로 달리기를 건강한 소통의 방법으로 모든 기업과 개인에게 제언하고자 한다. 달리고 있는 동안 자신에게는 체력이 기업에는 지속 성장의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2024-03-31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GRDP

우정구 논설위원 GRDP(지역내총생산)는 일정기간 동안 특정지역 안에서 새로이 창출된 최종 생산물가치의 합을 말한다. 각 시도가 경제활동으로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발생하였는지를 나타내는 경제지표다.지역내총생산에서 지역의 범위를 국가 전체로 확장하면 국내총생산(GDP)이 된다.대구의 GRDP는 1992년 이후 31년째 전국 꼴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GRDP는 울산(7천751만원)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충남(5천894만원), 서울(5천161만원)이 뒤를 이었다. 대구(2천674만원)는 전국 평균(4천195만원)보다도 1천521만원이 낮다.대구는 대통령을 여러 번 배출한 도시였지만 GRDP 실적만 보면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곳이다. 대구의 GRDP가 낮은 이유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으나 그 중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서 탈피하지 못한 산업구조에 있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선거 때부터 전국 3대 도시인 대구의 명성 회복을 위해 뛰겠다고 말했다. 취임 후 신공항 사업을 서둘고 첨단미래업종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에도 힘을 쏟고 있다. 대구가 GRDP 전국 꼴찌에서 벗어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지역경제보고서에 의하면 주요 성장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비수도권의 성장잠재력은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GRDP에 대한 수도권의 기여율이 2015년 50%에서 2022년에는 70%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생산성이 높은 반도체, IT 등 신산업이 수도권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역대 정부마다 내세운 국토균형발전 정책이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는 결과란 점에서 실망이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28

APEC개최 도시선정 시작, 경주가 답이다

외교부는 지난 21일 APEC 개최도시 선정위원회 제1차 회의를 열고 개최 도시 선정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APEC 정상회의 유치목적과 기본계획의 우수성 △국제회의에 부합하는 도시여건 △정상회의 운영여건 △국가 및 지역발전 기여도 등 4가지를 개최도시 선정 기준으로 확정했다. 윤진식 위원장(한국무역협회 회장)은 “APEC 개최도시는 공정하고 투명하며 객관적인 방식으로 선정돼야 한다”고 말했다.경주를 비롯 부산, 제주, 인천 등 개최 희망 4개 도시들은 나름의 준비를 마치고 개최도시 선정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경주시는 27일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주낙영 경주시장, 김석기 국회의원 등이 외교부를 방문해 APEC개최 경주 유치의 의미와 당위성을 건의했다. 이 지사 등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나 경주가 APEC이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과 지방시대 균형발전이라는 국정목표 실현에 부합하는 도시라고 설명했다.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인 APEC 회의는 21개국 정상과 각료 등 6천여 명이 찾는 국제행사다. 1989년 출범한 APEC은 세계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의 지역협의체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크지만 지역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2025년 APEC 개최를 희망하는 4개 도시 중 경주는 유일한 기초자치단체다. 하지만 국제회의 개최 경험과 호텔 등 국제회의에 필요한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세계역사도시로서 알려져 있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도시다. 천년고도로서 도시 자체가 노천박물관을 방불케 한다.또 APEC이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 철학에 부합하는 도시다. 균등한 경제활동 기회가 주어지고 성장 혜택이 골고루 배분되는 포용적 성장은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명제다. 작은 도시지만 가장 한국적이며 한국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경주가 APEC의 이념을 대변할 수 있는 장소다. 상반기 중에는 개최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경주의 많은 장점을 잘 부각해 좋은 성과를 내길 바란다.

2024-03-28

與82, 野110 ‘우세’… 이제 유권자판단이 변수

어제부터 4·10 선거운동 유세전이 시작되면서 주요 거리마다 선거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4월 5일부터 이틀간 치러지는 22대 총선 사전투표를 감안하면, 선거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총선은 진영싸움이 극대화돼 사전투표율이 역대급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선거 승패를 좌우할 사전투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정권 심판론’이 그대로 선거에 반영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민주당에 유리하다.대구·경북의 경우 대구 중남구와 경산지역구에서 국민의힘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치열한 승부전을 펼치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지역은 선거열기가 크게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선거전이 진영싸움으로 치달으면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지역구가 많을 정도로 야권지지도가 바닥이기 때문이다. 아마 투표율도 역대최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현재 전국적인 판세는 일단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 26일 기준, 254개 지역구 가운데 승리 가능성이 큰 ‘우세지역’으로 국민의힘은 82곳을, 민주당은 110곳을 각각 꼽았다. 국민의힘은 “지난주에 거의 최저치를 찍었다고 생각하고 이번 주부터는 좀 반등할 것”이라고 했고, 민주당은 “심판 민심이 우세해지고 그에 따라 우리 당 후보들과 관련된 판세가 상승 추세에 있는 것 자체는 분명하다”고 했다.선거일이 며칠 남아있지 않지만, 현재의 판세는 얼마든지 출렁일 수 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수습 여부와 말실수, 사전투표율 등이 판세변화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여권으로선 이번 총선에 정권의 운명이 걸렸다. 현 판세대로 민주당이 압승하면 정국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가고, 윤석열 정부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정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여야의 공방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이제 유권자의 판단시간이 다가왔다. 선거 이후의 우리나라 국정과 여의도 국회모습을 그려보면서, 오직 국익차원에서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2024-03-28

다시 나온 ‘이게 나라냐?’

홍석봉 대구지사장 2017년 최순실 사건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국민은 자괴감을 느꼈다. 당시 집회에서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왔다. 국민의 자조적인 심경을 대변하는 표현이었다. 한동안 유행했다.2022년 11월 이태원 핼러윈데이 참사가 터졌다. 많은 신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관계 당국을 향해 “이게 나라냐?”며 또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각종 시위에 단골 메뉴로 등장, 시국을 관통하는 단어가 됐다.‘이게 나라냐?’라는 말은 대형 사건 사고와 관련, 국가의 대처 미흡을 꼬집으며 질책하는 용어로 폭넓게 사용됐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4년 연거푸 등장한 위성정당을 두고 정치권과 국민이 ‘이게 나라냐?’라며 세태를 한탄하고 있다. 온전한 상식을 갖고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에 범죄꾼과 반 대한민국 세력이 대거 입성할 위기에 놓이자 나온 말이다.야권의 비례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은 반미·좌파 성향의 진보당 추천 후보 3인을 당선권에 배치했다. 많은 국민이 종북·좌파가 국회에 대거 입성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국가발전에 역행하는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을 보냈다.조국혁신당에는 실형을 선고받았거나 재판 중인 인사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비례 2번인 조국은 자녀입시 비리 등으로 1·2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상위 순번 10명 중 5명이 징역형을 받거나 피고인과 피의자다.국회가 온통 범죄꾼과 사기꾼, 거짓말쟁이의 소굴이 될 판이다. 마침내 ‘범죄자가 판치는 국회, 투표로 심판하자’는 정당까지 등장했다. 비례정당인 가락특권폐지당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함께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같은 자가 설치는 나라는 막자’고 주장한다.우리나라는 북, 중, 러의 위협과 자원빈곤이란 최악의 조건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세계가 인정하는 기적의 나라다. 최근엔 문화 및 방산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데 이런 한국이 추락하고 있다. 성장과 질서가 사라지고 선진국에 겨우 턱걸이하자마자 경제 침체와 무질서로 가라앉고 있다.진보와 보수가 서로 죽고 살기로 물어뜯고 있고, 최빈국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가슴 졸이는 한심한 나라가 됐다. 의료계 파업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환자들만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 상식과 합리성이 배제된 나라, 도덕과 질서 등 기본을 잊은 나라의 전형이 됐다.거기에 경제를 견인하던 반도체와 조선 산업도 주춤하고 있다. 사과 한 개 1만원, 감자 한 알 2천500원 등 생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안 오르는 것은 봉급뿐이라는 근로자들의 탄식이 쏟아진다.세계의 지성들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나라가 됐지만 속은 곪고 있다. 정치부터 바뀌어야 하지만 썩어가고 있다. 지도층은 팔짱만 끼고 있다. 대한민국이 삼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2024-03-28

환절기 건강 관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은 왔지만 아직 날씨는 겨울에 머물러 있다. 오늘 날이 풀린 것 같아 내일 같은 옷을 입고 나가면 감기 걸리기 좋다. 우리나라는 봄이 와도 봄 날씨가 아니다. 더운 날이 지속되면 인체는 더운 날에 맞춰 몸의 세팅을 서서히 바꾸고 추운 날이 지속되면 몸은 거기 맞춰서 몸을 세팅한다.지금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에 몸이 적응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인체는 면역이 떨어지고 감기에 걸리고 알러지가 발생하고 몸살이 난다.흔히들 기력이 딸린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봄에 유독 나른하고 힘이 없고 밥 먹으면 졸린 증상들이 많다. 겨울동안 추운 외기에 맞춰줘 있던 몸이 봄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응 하느라고 힘이 든다는 소리다. 몸이 나른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피로를 느끼기도 한다. 몸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알러지가 올라오고 비염이 심해지거나 피부가 가려울 수도 있다. 변화폭이 큰 기온 때문에 감기에 많이 걸리기도 한다.옷을 갑자기 얇은 옷을 입거나 짧은 옷으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날씨를 매일 체크한 후 날씨에 맞춰서 옷의 두께를 조절하고 가벼운 외투를 추가로 준비하자. 특히 저녁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니 모임이 있는 경우는 좀 두꺼운 외투를 준비해서 나가는 것이 좋다.매일 혹은 격일로 간단한 운동을 하면 좋다. 그동안 추워서 운동을 안했던 사람들은 간단하게 30분 정도 걷기나 자전거 타기 또는 10~20분 정도의 간단한 조깅을 해주는 것도 좋다. 땀이 적당하게 스며 나올 정도로 하면 충분하다. 날이 찰 때 땀이 나면 감기에 걸리거나 몸살이 날 수 있으니 안에 얇은 옷을 입고 운동복을 입은 후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봄을 맞아 음식관리도 하자. 식사의 순서만 바꾸면 된다. 먼저 고기나 생선 두부 등의 단백질을 섭취 하고 다음은 채소를 섭취하자. 그리고 마지막에 밥이나 국수 등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된다. 탄수화물의 양은 반 혹은 4분의 1까지 줄이면 더욱 좋다. 하루에 두끼 혹은 세끼만 먹고 간식은 먹지 않는다. 과일은 기호에 따라 한 두 조각 정도로만 먹는 것이 좋다. 간단한 것이지만 쉽지 않다. 이것도 운동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좋다.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는 자동으로 된다. 맵지만 않으면 음식의 종류는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된다. 찜닭을 시켰으면 닭고기 위주로 먹고 밥은 반 공기 혹은 그 이하로 먹으면 된다. 귀찮다고 라면만 먹거나 국과 밥 찌개만 먹는 것은 금해야 한다. 내 몸으로 들어오는 균형 잡힌 영양소가 내 몸을 만든다. 질 낮은 음식 조합은 내 몸의 건강을 해치고 질 높은 음식 조합은 내 몸을 건강하게 한다. 그리고 음식은 적게 먹는 것이 좋다.만물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봄이다. 사람도 그에 맞춰 몸이 동작한다. 겨우내 움추렸던 몸을 서서히 움직이면서 몸 곳곳에 활력을 불어 넣고 기름칠을 해야 한다.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날씨에 맞춰 옷을 입고 활동을 하자. 나가서 걷고 뛰자. 좋은 음식 조합을 먹자. 올 한해는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024-03-27

화전놀이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3월 들어서도 겨울과 봄이 서로 줄다리기를 했다. 겨울은 3월의 폭설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으나 결국 꽃피우는 봄이 이겼다.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차례를 지킬 겨를 없다는 듯 앞다투어 피워댄다. 꽃구경을 유혹하는 상춘(賞春)의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눈으로만 하는 봄구경에 만족하지 못했다. 온몸으로 뱃속까지 봄을 느끼고 싶어 입맛으로 즐기는 상춘(嘗春)을 감행했다. 그 절정이 바로 화전놀이였다. 화전놀이는 꽃피는 봄날 마을 부근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꽃을 보며 놀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지져 먹고 노는 여성놀이이다.한국향토문화대전에서 화전놀이를 찾으면 저 북의 강원도 강릉에서부터 경기도 양주, 서울 도봉, 대구, 전북 남원, 전남 광주, 부산, 제주 서귀포까지 전국적으로 즐긴 전통적인 봄놀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화전놀이의 전통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시작했다.‘삼국유사’에는 “해마다 봄철이면 김유신 집안의 모든 여성들이 재매곡의 남쪽 시냇가에 모여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에는 온갖 꽃이 피고, 특히 송화가 골짜기에 가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만화방창 가운데서 벌인 잔치엔 온갖 꽃지짐 또한 질펀했으리라 짐작된다.‘교남지’에는 신라의 궁인들이 봄놀이를 하면서 꽃을 꺾은 데서 비롯하였다는 경주 화절현(花折峴)이라는 고개를 소개하기도 했다.이렇듯 이미 신라시대에 모습을 갖춘 화전놀이의 전통은 조선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이 이어졌다. 집안의 여성들, 특히 시집온 며느리들이 함께 모여 장막을 세우고 참꽃으로 지짐을 지져 먹으며,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많다. 남성들도 낭만적인 화전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부정기적인 봄맞이 풍류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는 구별된다. 또 남성들에게는 가벼운 여가 활동이었으나 여성들에게는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공식적인 집단나들이였다는 점에서도 문화적 의미에 차이가 있다.역사도 깊고 전국적으로 보편적이었던 화전놀이지만 경북의 경우는 특별하다. 조선 후기부터 화전놀이와 내방가사가 만나 화전가가 창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현재까지도 경북 여성들은 화전놀이의 과정과 소회를 담은 화전가를 짓고 즐겼다. 화전가의 창작과 낭송이 화전놀이의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경북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남성들의 화전놀이, 그 이전 시기 여성들의 화전놀이, 음주가무로 풍물을 즐기는 다른 지역의 화전놀이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경북 여성들은 놀이날이 되면 미리 준비한 음식과 조리도구 외에 반드시 지필묵(紙筆墨)을 챙긴다. 현장에서 화전가를 지을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2009년 청도 비슬산에서 류복혜 선생님이 이끄는 영남화전놀이보존회에서 전통에 가까운 화전놀이를 펼쳤다. 안동의 내방가사보존회원인 안어르신들을 모셨더니 우아하고 품격있게 화전가를 읊으셨다. 2018년, 경주 양동마을에서 벌인 화전놀이에서도 그들은 내방가사를 거침없이 낭송하셨다. 오는 3월 30일, 대구 가창 한천서원에서 화전대회를 한다고 한다. 팀을 나누어 화전을 예쁘게 지진 팀의 우열을 가리는 모양인데, 화전놀이의 현대적 변용이요, 전통놀이를 잇는 새로운 형태인 셈이다.

2024-03-27

선거, 집단지성의 발현

장규열 고문 역사 속 민중은 어리석기도 하였다. ‘우민(愚民)’은 위정자에게 늘 속기만 하고 살았던 백성의 부끄러운 이름이었다. 교육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치고 민주의식의 전개는 국민들의 인식 수준을 바꾸어 놓았다.한두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기만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집단지성센터(Center for Collective Intelligence)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연결되어 공통된 지향점을 가지고 사고(思考)를 이어갈 때 개인이 생각하여 결정할 때보다 뛰어난 이성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어놓고 있다.총선이 코 앞이다. 선거는 민주주의 제도에 있어 국민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할 기회이다. 집단지성의 두 가지 기본조건인 ‘여러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지성을 발휘하여 국정의 흐름을 놓고 지역의 대표를 결정하면서 나라 살림의 전반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정치학자 렉스 폴슨(Lex Paulson)은 동물들 가운데 그리 강하지 못한 인간이 가장 탁월하게 발달한 데에는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집단행동적 두뇌’가 열쇠였다고 밝혔다.인간은 집단적으로 지식을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학습할뿐 아니라, 습득한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습성으로 대자연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꼭대기에 올라서게 되었다는 것이다.인간사회의 규모가 커갈수록 중앙집권적인 권력은 부패하게 되어있음을 알게 되어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하여 집단지성이 효율적으로 나타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였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회의 규모가 팽창하고 기능이 복잡해질수록 집단지성은 더 나은 의사결정의 기본요소가 되어간다고 하였다.개인으로서 국민이 집단지성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방법은 선거와 투표가 아닌가. 선거에 임하여 선거의 구도와 표방하는 정책, 후보의 면면을 살피고 사회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시대정신을 참고하고 전달되는 메시지를 헤아려 투표 의사를 결정하는 개인적인 과정을 물론 거친다. 개인이 던진 표들이 집적되어 선거의 결과를 확인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이 지향하는 방향을 걸정하게 된다. 선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결과를 받아들여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므로 복잡하지만 국민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로서는 매우 훌륭하다. 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서도 상당히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시스템이다.개인의 투표의사가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집단의 최종 의사를 확인하면서 모두가 수긍하는 결과물을 낳는다는 의미에서도 탁월한 의사결정 방식이다. 문제는 국민의 참여의식이다. 참여 여부도 물론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인 과제에 함께하는 의미가 적지 않음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은 사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만 공적인 책임으로서 사회적 지향성을 함께 고민하고 결정 과정에 참여했으면 한다. 총선이 공정하고 유익한 결과를 빚어내기를 기대한다.

2024-03-27

박근혜의 ‘윤·한 단합’메시지, 여권위기 경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자신의 사저를 찾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윤석열 대통령과의 단합을 강조했다. 이제 열흘 정도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 국민의힘 판세와 관련한 위기감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유영하 변호사의 전언에 의하면, 박 전 대통령은 “서해수호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두 분이 만난 것을 언론을 통해 봤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에서 뜻을 모아 단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념식 장면을 TV를 통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느꼈겠지만,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 어깨를 치며 격려 인사는 건넸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감추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날 단합을 특히 강조한 것은 지난 2016년 여권의 ‘옥새파동’으로 당시 새누리당이 다 이긴 선거를 지고, 자신은 탄핵까지 당한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박 전 대통령과 한 위원장과의 대화에서 중점 거론된 이슈가 ‘의대증원 문제’라는 점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아마 선거막판 총선정국이 정권심판론 쪽으로 흐르는 주된 이유가 의료대란으로 인한 사회혼란 때문이고, 이에 대한 대책이 빨리 나와야 한다는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27일 현재 총선 판세는 민주당의 우세쪽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이 양대 정당을 앞선다는 조사도 나온다. ‘범야권 200석’이라는 말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163석)와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모두 180석을 얻어 입법권을 그들의 입맛대로 행사했다. 만약 예상대로 범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석 3분의 2인 200석 이상을 확보하면 대한민국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대표가 장악하게 된다. 개헌과 대통령 탄핵 추진도 가능해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질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만나 윤 대통령과의 단합을 강조한 것은 만약 의료대란 해법 등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또다시 부딪히면 총선 승리는 물 건너간다는 점을 경고한 것으로 판단된다.

2024-03-27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 입장 달라졌나

연구중심 의대 신설 및 스마트병원 설립에 포항시 등 지역사회와 함께 적극 나섰던 포스텍(포항공대)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연구중심 의대 신설은 포스텍이 설립의 주체인데 포스텍이 발을 뺀다면 설립 추진의 동력이 상실돼 사실상 추진의 의미가 없게 된다. 특히 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 움직임은 범시민 궐기대회와 서명운동까지 벌어지는 등 지역사회 핫 이슈로 등장해 포스텍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시민들의 납득을 구할 수 있다.본지 취재팀에 따르면 이에 대한 포스텍의 공식 입장은 들을 수 없다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 미온적 태도만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대외협력팀은 책임교수에게 연락해 보라고 하고, 책임교수는 대학 기획처에 알아보라고 한다. 포항시도 이 문제와 관련해 포스텍과 소통이 잘 안 된다고 답변을 했다.이러다 보니 포스텍이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원하기나 하는지 아니면 원치도 않는데 포항시 등이 혼자 나서 이제껏 춤판을 벌인 건 아닌지라는 지적도 나온다.사정이 이러자 이강덕 포항시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포스텍을 작심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은 포스텍이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간 김성근 총장이 보여준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했다. “학교 안에서 아카데미만 챙기는 총장은 필요없다”고도 했다.시민단체도 “포스텍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을 한다. “총장이 바뀌었다고 의대 설립이라는 중대한 목표가 달라지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은 포스텍이 우리나라 최초로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출발한 학교로 단기간에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목표다. 또 포항이 추진하는 바이오산업 특화단지와 잘 어울리는 학문이고 국가적으로도 가야 할 분야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당위성이 많다. 이 문제로 논란이 커져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포스텍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

2024-03-27

저수지의 재탄생, 김천 연화지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수성못은 일제시대 관개용 저수지로 조성됐다. 대구시가 넓어지고 저수지 기능을 잃자 대구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수성못은 면적 21만8천㎡, 못 둘레 2천20m로 1965년 유원지가 됐다. 수변 데크 로드와 왕벚나무, 버드나무 가로수길이 상징이다. 2026년 수상공연장과 수성 브리지가 완공되면 문화 랜드마크로 거듭날 전망이다.경산 남산면 반곡지도 1903년에 만든 농업용 저수지다. 이곳엔 수백 년 된 왕버들 20여 그루가 늘어선 150m 가량의 흙길이 농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인기다. ‘사진 명소’로 선정돼 사진 동호인들이 많이 찾는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이름났다.김제 벽골제와 상주 공검지, 제천 의림지 등 삼한시대 조성된 곳도 저수지 기능을 잃고 현재는 문화재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다.김천 연화지는 조선시대 농업용 관개지로 조성됐다. 연화지(鳶5629池)라는 이름은 1707년 김천 군수 윤택이 지었다. 솔개가 못에서 날아오르다가 봉황으로 바뀌는 꿈을 꾼 후 좋은 징조라 여겨 연화지라 했다. 연화지 가운데 봉황대 정자는 경관이 아름다워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했던 곳이다.1993년 주변 조경과 편의 시설을 갖춰 시민 휴식 공간이 됐다. 연화지는 사진작가들의 벚꽃 작품과 입소문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엔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선’에 선정됐다. ‘연화지’에 벚꽃이 만발, 상춘객 발길이 줄을 잇는다. 김천시가 올해는 교통, 편의시설 등을 개선하고 ‘차없는 거리’를 운영, 손님맞이에 정성을 쏟고 있다. 농업용 저수지들이 국민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벚꽃이 만발한 연화지의 아경에 푹 빠져들고 싶은 요즘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27

빼어나고 고운, 성주 회연서원과 무흘구곡

‘무이산이 기이하고 빼어나며 맑고 고와 진실로 천하에 제일이다. 또 우리 주 선생이 도학을 공부하던 장소가 되어 만대의 아래가 수사와 태산처럼 우러르게 하니 진실로 우주 사이에 다시 있을 수 없는 땅이 된다. 내가 외진 곳과 늦게 태어나서 이미 선생의 문하에서 배울 수 없고 또 구곡의 하류에서 갓끈을 씻을 수 없으니 어찌 심히 불행이 아니겠는가’(‘무이지발’, 정구)성주 가야로를 타고 가다 수륜면에 도달하면 새하얀 백매화가 팝콘처럼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한 서원을 찾아볼 수 있다.이곳은 조선의 대학자 한강 정구(鄭逑·1543~1620)의 회연초당이 있었던 장소이자 그를 기리고자 후예들이 세운 회연서원이 자리 잡은 곳이다. 회연초당은 한강 정구가 41세가 되던 해에 고향으로 돌아와 대가천의 귀퉁이에 초당을 재건하고 학문을 강학하던 장소이다. 그는 회연초당의 동쪽 부모님 묘소가 보이는 곳에 망운암을 짓고, 앞뜰에 다수의 매화나무를 심어 백매원을 만들었다.겸재 정선(鄭6B5A·1676~1759)이 그린 ‘회연서원도’에도 대가천 인근의 봉비암, 경회당, 사당, 나무들과 백매원 등이 그려져 있다. 겸재 정선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상상을 가미하여 그림을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인데, 아마도 청하현감으로 있던 시절 이곳을 다녀갔을 것으로 짐작된다.주자의 삶을 흠모하던 정구는 직접 무흘구곡을 경영하지는 않았지만, 인근의 아름다운 풍광을 후학들과 거닐며, 그 아홉 굽이마다 이름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가’는 주자의 ‘무이구곡가’에서 차운해서 지은 것으로, 제1곡 봉비암·제2곡 한강대·제3곡 무학정·제4곡 입암·제5곡 사인암·제6곡 옥류동·제7곡 만월담·제8곡 와룡암·제9곡 용추를 노래한 한시이다. 서시까지 포함하여 모두 10수이며, ‘한강집’ 권1에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제4곡까지는 성주, 나머지는 김천에 속해 있다. ‘무흘구곡가’는 마냥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기보다는 그를 통해 학문의 근원을 찾고자 노력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지금은 회연서원의 입구에서 ‘영남제일승지 무흘계곡’이라는 표석과 두루마리 형태의 돌에 잘 설명되어 있다. 또한 향현사 뒤로 조성된 데크 산책로를 따라가면 제1곡 봉비암까지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데, 중간쯤 완연대를 지날 때 세월에 바랜 돌에 새겨진 한시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회연서원은 문루인 현도루를 통해 들어간다. 곧 마당이 드러나며, 왼편에 400년이 넘은 노거수 느티나무가 방문객을 반가이 맞이한다. 서원의 작은 출입구를 들어서면 ㄷ자모양의 세 건물을 볼 수 있는데, 본당인 경회당과 고학년의 기숙사인 동재 명의재와 저학년의 기숙사인 서재 지경재가 그것이다. 명의재와 지경재는 한강 정구의 학문적 스승인 남명선생의 사상에서 ‘의’를, 퇴계선생의 사상에서 ‘경’을 가져와 그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경회당은 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맞배지붕에 기품있는 모양새를 지녔다. 한석봉이 썼다는 해서체 현판과 경회당이라 적힌 편액 양쪽으로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의 글씨 옥설헌·망운암이라 적힌 전서체 편액이 보인다. 왼쪽 측실 퇴보 위에는 자칫 놓치기 쉽게 숨어있는, 허목의 다른 편액 불괴침도 걸려 있다. 경회당은 대양처럼 큰 주자의 학문을 본받는다, 망운암은 기상을 높게 가져라, 옥설헌은 깨끗한 마음을 가져라, 불괴침은 부끄러움이 없는 잠자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글쓴이만 알아본다는 그림 같은 전서체 아래에 작은 글씨로 적힌 한자가 한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당시 주자의 유유자적한 삶과 선비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추구하던 한강 정구와 그를 따르는 미수 허목의 학문에 대한 진심이 편액들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회연서원의 오른쪽이 강학을 위한 공간이라면 왼편은 사당을 위한 공간이다. 대개의 서원에서 사당은 강학 공간의 뒤쪽에 마련되어 있는데 회연서원의 사당은 특이하게도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 안에는 새 사당을 지어 한강 정구와 석담 이윤우를 모셨고, 향현사에는 한강과 더불어 존경받던 지역의 인물이 모셔져 있다. 향현사 뒤쪽 산책로를 따라 봉비암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작은 구사당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유물전시관인 승모각에는 한강 정구의 학문들과 초상화, 문집이나 교지 등이 보관되어 있다.3월에 찾은 회연서원은 이른 봄날 거닐기에 제법 운치가 있는 장소다. 대가천에서는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봉비암과 완연대를 오르며 볼 수 있는 절경도 가슴을 트이게 한다. 서원 주위로 가지마다 팝콘처럼 열린 백매화가 봄소식을 완연히 전하고, 서원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 느티나무 가지들도 새싹들로 봄맞이에 한창이다. 담장 너머 회연서원의 기와가 매화 향기와 더불어 아지랑이를 따라 아른거린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3-27

무관심과 호기심 사이

피귀자수필가 나긋하게 얹힌 봄이 꽃샘추위 속에서 시간의 길을 잃어버린 날, 무엇에 이끌렸을까. 지하철에 들어선 풍뎅이 한 마리가 수십 개의 눈 안에 갇히고 말았다. 이리저리 부딪다가 뒤집어져 팽그르르, 축을 잃은 팽이의 동작에 놀란 몇몇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 모양이 마치 찬바람 속에서 버둥거리는 새싹을 닮았다.진화를 꿈꾸던 곳은 어디였을까 여긴 분명 아닐 텐데. 낯선 환경을 뒤늦게 감지한 걸까. 날갯짓의 속도에 점점 불안함의 무게가 더해진다. 먼 섬을 찾아 들썩여도 좋았을 저 튼튼한 견골. 잘못 접어든 골목길에서 한참을 헤매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던 난감함이 저럴까. 미로를 빠져 나가려고 허우적거리다보면 당황하기 일쑤 아니던가. 조급한 마음에 애를 쓰면 쓸수록 침착함과는 멀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던가.호기심 가득한 구둣발과 운동화 사이로 앞발 뒷발 바싹 들고 하늘을 이고 살던 등으로 돌리는 풍뎅이의 연자방아. 낯선 말의 길에서 한동안 잃었던 나를 여기서 다시 보듯 풍뎅이의 비보이 공연이 아찔했다. 그때 새로 들어찬 사람들에 가려 대각선 입구 쪽에 있던 풍뎅이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안개처럼 일어났던 관심도 차츰 바람처럼 사라져갔다.또각또각 뾰족 하이힐이 걸어와 맞은편 빈자리에 앉자 의자까지 환하다. 매끈한 종아리 위의 짧은치마 끝을 향해 저절로 고개가 들려지고 아뿔싸 훔쳐보던 눈동자들, 들키고 말았다. 여자의 눈도 저절로 드러난 다리를 더듬는데 남자들이야 오죽할까. 옆자리 검은 운동화의 하얀 끈과 날씬한 종아리도 눈부시다. 파릇한 청춘의 다리는 곧다. 맞은 편 사람의 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핸드폰의 자판을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다.창 모자 밑으로 보이는 세상은 색다르다. 모자를 쓰고 지하철에 앉아 고갤 살짝 숙이면 사람들의 무릎아래만 보인다. 마주보는 것이 어색했는데 창 모자 하나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까만 납작 망사구두가 부푼 발을 감싸느라 터질 듯 하고 연세 많은 할머니의 통통한 다리는 아직 세상을 딛고 설 기운이 넘침을 말해 준다. 끌어올린 두꺼운 양말 속 종아리가 나이를 과시하고 있지만. 발만 바라봐도 나이가 보이고 비슷하거나 아예 같은 신발의 남녀는 다정한 커플임을 과시한다. 아마 고개를 조금 더 들면 겉옷이나 윗도리 등도 커플룩이 보일지도 모른다.어느 역에서인가 맞은편 의자의 손님들이 교체되었다. 여섯 자리 모두. 평소엔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중요치 않던 자리 수를 세다보니 지하철은 종점을 향해 달린다.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는 시외로. 팔이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는 운동화 한 쪽 앞이 비어있는 듯 앞쪽이 쭈글쭈글 하다. 발 뿐 아니라 한쪽 손까지 불편한지 손바닥이 위쪽을 향해 의자에 힘없이 놓여 있고, 또 다른 발이 되었을 지팡이 끝 고무판도 비뚤게 닳아 있었다.레이스가 있는 하얀 바짓단 아래 분홍 색깔의 구두는 더 선명하다. 그 옆자리 까무잡잡한 슬리퍼의 아주머니와 대조적이다. 두 사람의 나이는 비슷할 것도 같으나 신발로만 본 나이는 차이가 확연하다. 다리 사이에 삼진 어묵 종이봉투를 끼우고 앉은 아주머니는 구겨진 봉투처럼 안절부절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시 문이 열리자마자 검은색 바탕에 연두색 끈이 달린 볼 넓은 운동화에 온통 흙이 묻은 아저씨가 올라왔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텃밭이라도 가꾸느라 묻힌 흙일까?아뿔싸! 굼뜨게 지하철을 내리려던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와 그 흙발아저씨가 부딪히고 말았다. 기우뚱하던 할아버지는 기어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손과 발이 불편해 보이더니 풍뎅이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주저앉듯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그때까지 파르르 떨다가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던 풍뎅이처럼.목소리가 없어 말을 못하는 풍뎅이. 온몸으로 안간힘을 쓰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던 당신의 슬픈 등은, 마스크와 모자로 변장하고 자신의 일 외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암시를 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최고의 배려라는, 이청득심(以廳得心)을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2024-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