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스승의 정신을 세운 옥산서원

조선학자 회재 이언적 서거 스무해 뒤 경주부윤 이재민이 유림 뜻 모아 창건 2년 뒤 1574년 선조로부터 사액 받아 영남 유학의 정수 고수란히 간직한 채 흥선대원군 사원 철폐령에도 남겨져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회화나무 그늘 길 옥산서원으로 가는 길은 마치 나무들이 지켜주는 오랜 골목 같다. 회화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굴참나무, 이팝나무···. 이름만 불러도 그늘이 젖어든다. 가지는 하늘을 덮고, 뿌리는 땅을 움켜쥐었다. 특히 회화나무는 하나같이 백 년을 훌쩍 넘긴 듯 기품을 지녔다. 회화나무는 중국에서는 출세의 상징이고, 서양에서는 학자의 나무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길상목, 행운목으로 불린다. 예로부터 양반가에서만 심을 수 있던 귀한 나무였다. 집안에 학자가 나고 부자가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궁궐이나 고택, 서원의 뜰에 이 나무가 자리를 잡았고, 나무는 집의 품격이 되었다. 또한 회화나무는 마을의 수호목이기도 했다. 잡귀를 막고 복을 부르기 위해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로 심었다. 옥산서원의 회화나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길을 걷는 일이 아니다. 학문의 기운과 삶의 지혜를 함께 지나가는 일이다. 오래전 이 길을 따라 걷던 유생들, 글을 배우러 모였던 발걸음들이 아직 나무 아래에 남아 있는 듯하다. ■정신의 집 옥산서원 옥산서원에 이르렀을 때, 역락문(亦樂門)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른 아침, 닫힌 문 너머로 속세와 단절된 듯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자계천 세심당에서 한참 놀고, 독락당을 사색한 후 다시 왔을 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햇살이 문 위 편액을 부드럽게 비췄다. 독락당과 양동마을은 2010년(한국의 역사마을)에, 옥산서원은 2019년(한국의 서원)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옥산서원은 조선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1491~1553)을 기리는 정신의 집이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스무 해, 선비들이 뜻을 모아 기둥을 세웠다. 1572년, 경주부윤 이제민이 유림과 뜻을 모아 창건한 옥산서원은 단지 제향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평생 닦은 학문의 격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고, 그를 스승으로 섬기려는 이들의 간절함이었다. 사액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이 년 뒤였다. 선조 임금이 옥산서원에 이름을 내려줌으로써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후학들이 스스로 터를 닦고 예를 세워 스승을 모셨다. 회재는 사후에 그런 존경의 이름이 되었다. 부드러운 학문이 아니라 엄격한 수양, 권력의 의지가 아니라 물러남의 품격으로 자신이 걷던 길 위에 후학들을 불렀다. 흥선대원군의 사원 철폐령에도 옥산서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남은 예로부터 글이 법이 되고, 예가 삶의 뼈가 되는 땅이었다. 들판마다 선비가 있었고, 골짜기마다 책 읽는 소리가 울렸다. 학문은 벼슬을 위한 계단이 아니라, 인간 됨의 바탕이었다. 서원은 한 시대 정신의 화석이었고, 스승과 제자의 약속이었으며,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한 작은 세계였다. 조선의 육백여 개 서원 가운데 무려 이백여 개가 넘는 서원이 경상도 땅에 있었다. 조선시대 서원철폐령으로 폐쇄한 뒤에도 전국 오십여 서원 중 열네 곳이 영남 지역에 남았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 지역의 기개와 정신이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를 말해주는 역사적 증거다. 그만큼 유학은 생존을 넘어 저항이었고 실천이었으며, 정신 그 자체였다. 옥산서원은 그런 영남 유학의 정수가 고스란히 서린 곳이다. ■역락문과 무변루 역락문을 들어서자마자, 곧장 무변루(無邊樓)의 뒤태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무변루는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끝이 없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편액은 조선 최고의 명필 석봉 한호가 썼다. 붉은 기둥과 녹청색의 문살, 그리고 닫힌 문들 사이로 스며드는 어둠이 조용히 말을 건다. 마치 발걸음을 멈추라는 듯, 그 너머로 나아가려는 마음에 제동을 건다. 숨이 턱 막힌다. 닫힌 문이 하도 웅장하여 위압감마저 든다. 무언가를 단호히 막아선 듯한 정면의 구성은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여기에 모신 이의 정신, 그 절도를 다시 한번 가다듬고 오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허투루 들어올 수 없다는 듯, 위엄과 침묵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래서일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엎드리게 된다. ■강학 공간 구인당과 암수재, 민구재 무변루를 지나면 강학 공간이다. 강의와 토론이 오가던 서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정면에 구인당이 단정히 서 있다. 구인당은 회재 이언적이 쓴 글귀 ‘구인(求仁)’에서 이름을 따왔다. 구인당 좌우의 양진재(兩進齋)와 혜림재(蕙林齋)는 교수와 유사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오늘날의 교무실이나 연구실에 해당한다. 구인당은 1836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지어졌다. 햇살이 마당을 넓게 비추고, 구인당 현판 아래가 유독 환하다. 검은 기와지붕 아래 걸린 ‘옥산서원(玉山書院)’ 현판 네 글자는 상당한 무게로 읽힌다. 앞에 서면 어느새 자세가 조심스러워진다. 단정한 기운, 절제된 구조다. 공간이 먼저 예를 요구하는 자리다. 강당 앞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학문을 닦으며 머물던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암수재(巖守齋)와 민구재(敏求齋)가 서로 마주 본다. 수백 년 세월을 견딘 목재들이 몸을 낮춘 채, 정면의 구인당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이가 많은 유생은 동재에, 어린 유생은 서재에 기거했다. 유생들은 나이에 따라 위계가 있었다. 마치 학문 앞에 엎드린 제자 같고, 정신의 중심을 받드는 두 팔 같다. 좌우의 건물이 높지 않은 이유, 곧고 단정하게 뻗은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이곳이 스승을 모신 자리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옥산서원의 깊숙한 한켠, 전적들을 보관하는 경각이 조용히 문을 닫고 있다. 이곳에는 회재 이언적의 저술과 관련 기록, 유생들의 학문 흔적이 고요히 보존되어 있다. 누가 읽고 누가 필사했는지 모를 붓 자국들이 책 속에 남아, 긴 세월을 지나 지금도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굳게 닫힌 제향의 공간, 사당 서원 안쪽으로 더 들어서면, 굳게 닫힌 문이 나온다.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제향의 공간이다. 이곳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리지 않는다. 사람의 말보다 침묵이 무거운 공간, 제사의 손길과 정갈한 마음으로만 닿을 수 있는 자리다. 경외감은 그 자체로 경계선이 되어, 이 공간을 감히 넘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정신이 깃든 자리다. 담장은 높고 길게 둘러쳐져 있다. 위엄을 막연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신성함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다. 담장 안쪽은 제사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스승을 모신 제향 공간은 그 자체가 법이었고, 침입할 수 없는 신성의 영역이었다. 담장 너머의 고요는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라, 수백 년을 지켜온 절제의 목소리다. 고요는 서원의 다른 공간들에도 번져 있다. 강당이며 재실이며 마당까지, 모두가 그 사당의 중심을 향해 기운을 모으고 있다. 바람결 하나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고, 발걸음마저 조심스럽다. 사람들은 말없이 담장 바깥에서 손을 모은다. 숨소리조차 가볍게 뱉고, 눈빛조차 가라앉는다. 신을 모시는 공간이기에 앞서, 스승을 모시는 곳이기에 그 앞에서 사람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회재 이언적 신도비 서원의 끝자락, 신도비가 있다. 회재 이언적의 생애와 사상을 새긴 돌이다. 옥산서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묵언의 무게가 한결 선명해지는 비석이다.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서원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 겸손하라, 조심하라, 무릇 배운다는 것의 시작은 스스로를 낮추는 데서 비롯된다고. 옥산서원은 그 가르침을 담은 거대한 침묵의 서책이다. 서원을 나서려 돌아 나오는데, 무변루 좌우에 우뚝 선 향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수백 년 세월을 품은 듯 굵고 묵직하다. 향나무는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무변루를 사이에 두고, 마치 경계라도 하듯 서 있는 모습에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스승과 제자의 자리, 학문과 침묵의 자리를 누가 감히 어지럽힐 수 있을까. 아까부터 알 수 없는 기척이 자꾸만 목덜미를 건드리고 있었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아 발끝을 낮췄고, 숨도 조심스레 내쉬었다. 그 기척의 정체가 향나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높고 무성한 가지 사이로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다행이다. 무례한 말도, 요란한 소리도 내지 않았으니. 안도의 숨을 쉬어낸다. 나무 아래를 지날 때조차 괜스레 허리를 굽히게 된다.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다. 향나무는 다시 고요해지고, 나는 나무를 뒤로한 채, 천천히 서원을 떠난다. 회화나무 그늘이 처음보다 한층 더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2025-05-28

안동댐, 낙동강 수계 상류에 있고 우수한 수질 관리 ‘1급수’

3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 대구시민들이 갈망하는 이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대구시는 그동안 고군분투를 이어왔으나,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현재 추진하는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이 취수원 이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진단한다. 그 말은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은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에 본지는 대구시가 추진해 왔던 취수원 이전 노력과 현재 추진 중인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 퇴적물 중금속 농도 3~4등급 해당 수질 검사서 단 한번도 검출 안돼 용출 수질오염 가능성 거의 없어 최근 10년간 8개 항목 모두 1등급 의성군 풍지교 하천 유지량 분석 최대가뭄 기준 산정 물 부족 없어 생·공·농업용수 법적 유지량 충족 글 싣는 순서 ①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이란 ② 댐의 물이 가장 안전하다 ③ 대구 안동댐 취수원 이전⋯지역 상생의 모델이 되다 ④(인터뷰)“30년 이상 끌어온 취수원 이전, 지금이 마지막 기회” △댐의 물을 식수로 이용해야 상수원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수자원은 강물과 댐 물이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는 댐 물을 식수로 이용하고 있다. 강물 지표수를 식수원으로 하는 곳은 낙동강 수역이 유일하다. 강물이 식수로 부적합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강물은 수질 오염 사고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지표 위의 오염 물질들이 빗물에 섞여 유입되기 쉽고, 하천이 흐르면서 상류 지역에서 발생한 생활하수나 공장폐수의 처리수와 섞이기 때문에 우수한 수질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댐 물은 수백 ㎞에 걸쳐 흐르는 하천에 비해 길이가 짧고 댐 인근 지역의 관리가 용이하다. 또 대부분 수계 상류에 위치해 있어 우수한 수질을 유지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구시는 낙동강 강물이 아닌 안동댐에서 공급되는 청정 1급수 댐 물을 대구로 공급하는 ‘대구 취수원 안동댐 이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서울과 인천은 팔당댐(7%)과 팔당댐 직 하류(93%)에서 100%, 대전과 세종은 대청댐에서, 광주는 주암댐(42%)과 동복댐(58%)에서 100% 댐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그에 반해 대구는 가창댐·공산댐(7%), 운문댐(27%)에 불과하다. 안동댐 하류 166㎞ 지점에 위치한 문산·매곡 취수장에서 취수한 강물(66%)을 이용하고 있다. △안동댐이 중금속에 오염됐다? 1976년 준공된 안동댐의 퇴적물에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안동댐 퇴적물의 중금속 농도는 3~4등급에 해당하는 나쁜 수준이다. 그러나 퇴적물 중금속 농도와 달리 안동댐 수질은 1997년부터 27년이나 지난 현재까지 수질검사(연 4회 실시)에서 단 한번도 중금속이 검출된 바가 없다. 이는 퇴적물에 포함된 중금속이 수중으로 용출돼 수질을 오염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혹여 미량의 중금속이 검출되더라도 응집·침전 등의 정수처리 과정을 통해 충분히 제거가 가능하다. 취수예정지인 안동댐 직 하류에 인접한 수질측정망(안동1) 지점의 측정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매월 조사) 조사한 일반수질 8개 항목 모두 Ⅰ등급(매우 좋음~좋음)을 받았고, 카드뮴, 비소 등의 조사에서도 전 항목에서도 수질기준을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6년간(주 1회 이상 조사) 조류(녹조) 발생농도 및 기간 조사에서도 안동댐이 낙동강 본류(문산취수장 인근)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 안동댐 취수로 인해 하천유지 용수 부족과 수질 악화가 우려된다? 대구시는 당초 안동댐 계약량 하루 63만5000t을 취수하는 것으로 정부에 건의했으나, 환경부의 검증 결과에 따라 하루 46만t을 공급하는 방안으로 확정했다. 특히, 환경부는 과거 발생한 최대 가뭄을 기준으로 안동댐 직 하류 취수 시 가장 물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성군 풍지교 지점에서 하천유지량을 분석해 적정 취수량을 산정한 만큼 물 부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최대가뭄을 조건으로 물수지 분석 세부 산정한 결과에 따르면 용수공급량 (댐방류+지류하천)은 319만 5000t으로 하천수 사용량(생·공·농업 용수 + 취수량 46만 t) 196만 2000t을 사용하더라도 사용용수 회귀량(56만 4000t)을 포함하면 법적 하천 유지유량인 179만 7000t을 충족한다. 하루 46만t의 취수로 수질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3월 검토한 결과 BOD 0.1~0.2ppm, T-P 0.001ppm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돼 수질에 대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31년 이후 취수가 실제 이뤄지게 되는 시점에는 본류 수질 개선 사업 등이 추가로 반영되기에 수질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러한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생·공·농업용수 및 하천유지 용수 부족과 수질이 악화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5-05-28

세월의 풍파 속 잎 틔우며 열매 맺는 모습 부모의 삶과 닮아

초록으로 나날이 물들어가는 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들어 있다. 어린이날이면 다른 일은 제쳐두고 아이들을 공원의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버이날에는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용돈도 드렸다. 이는 소소한 일이지만,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도리를 행한 것이고, 자식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도가 아닐까, 역시 마땅한 도리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부모님은 하늘로 떠나 먼 추억으로 남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일들이 바로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은 어버이날이면 성장한 자식들이 멀리 있어 직접 카네이션 꽃을 달아 드리진 못하지만, 용돈만은 꼬박꼬박 보내 주어 기쁘게 한다. 속이 텅텅 비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희생을 감내한 부모의 은혜를 자식은 효도로 보답하고 있다. 이처럼 부모의 자식 사랑이나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효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인간 삶의 진리이고 행복의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회재 이언적 선생 제사 받드는 별서 ‘독락당’에 자리잡은 500살 노거수 韓·中 교류 등 역사문화 가치 뛰어나 천연기념물 제115호 지정 보호 받아 밑동 줄기가 텅 빌만큼의 상처에도 아름답게 가지 뻗은 모습 대견스러워 조각자나무 노거수 또한 그러한 것 같아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 여름의 끝자락에 아내와 함께 경주 안강읍 옥산리 옥산서원 숲을 거닐다가 독락당 천연기념물 조각자나무 노거수 앞에 멈춰 섰다. 천연기념물이라는 품격의 자연유산에 걸맞지 않게 노거수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밑동 줄기의 속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텅텅 비어 있었다. 분명히 속이 꽉 찬 튼튼한 나무였을 터인데,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진 에너지를 비바람의 외세에 맞서고 꽃과 열매를 맺어 후손을 이어가느라 소진했을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자국도 없이 조용히 속을 비운 채 푸른 가지들을 높이 올리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 자식에게 웃음과 사랑, 삶의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은 분들, 웃음과 사랑을 다 주고도 정작 본인의 속은 그렇게 비워졌다는 걸 나 또한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속이 텅 빈 나무처럼 부모님도 그러셨다. 말없이 견디고, 꺾이지 않고, 우리를 푸르게 키워내셨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북편 600m 거리에 있는 별서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 거처한 건물이라고 전해진다. 옥산리 1600-1번지 건물 마당에는 천연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된 나이 500살, 키 14.5m, 몸 둘레 4.9m의 조각자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나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우나 밑부분과 두 개의 가지만 살아 있고 속은 비어 있었다. 텅 빈 속을 깨끗이 외과 수술하여 튼튼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였다. 조선 중종 1532년, 회재 이언적 선생이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 전념할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래되고 희귀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교류 관계와 독락당의 역사를 알려주는 문화적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었다. 나는 이처럼 속이 텅 빈 노거수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끈질긴 생태적 삶의 모습에서 꼭 우리 부모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각자나무로부터 그 오래됨과 아름다움을 넘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 삶을 반추해 볼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 조각자나무는 살아오면서 비바람과 곤충으로 인해 속이 썩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며 열매를 맺어 후손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상처를 받고 때로는 속이 무너질 듯한 고통을 겪지만, 그 모든 흔적을 품은 채 여전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다시 웃으며 사랑하고, 새로운 열매를 맺으려 한다. 나무는 마치 상처를 품은 채 더 넓게 가지를 뻗는 사람과 닮았다. 삶의 아픔이 단지 고통으로만 남지 않고,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각자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가시가 굵고 억세며, 주엽나무와 잎, 가시, 열매 등이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어렵다. 주엽나무는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인 반면, 조각자나무는 중국 중남부 지방이 원산지이다. 꽃은 5∼6월에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서 피며, 작은 꽃들이 모여 있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약재로 사용된다. 열매에는 사포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비누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줄기 겉면에는 이끼가 무성했는데, 이는 습하고 그늘진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의 특성을 보여준다. 줄기의 속은 텅 비었지만, 잎은 풍성하고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도 많이 달려 있었다. 나뭇잎이나 열매를 문지르면 강한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도덕산과 어래산에 떨어지는 빗물이 모여 옥산천이라는 계곡을 이루어 흐르면서 곳곳에 아름다운 경관과 유명한 사적지를 품고 있다. 독락당과 접하고 있는 계곡에는 느티나무, 팽나무, 소나무, 회화나무, 이팝나무 등 다양한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그 옛날, 계곡의 아름다운 명소를 옥산구곡이라 명명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특히 옥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계곡 가운데 자리한 너럭바위 일대, 세심대(洗心臺)는 작은 폭포와 용소를 이루어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주변 산과 계곡에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사산오대(四山五臺)라 하며, 그중 하나가 세심대이다. 세심대는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는 뜻이며,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퇴계 이황이 쓴 것이라고 전한다. 사산은 도덕산, 화개산, 무학산, 자옥산이고, 오대는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걸으며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조각자나무 노거수는 사람과 다름없다. 50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온 생명체이다. 독락당이 세워질 무렵부터 오늘날까지 한자리를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조선의 학자들이 이곳에서 글을 읽을 때도, 후손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락당의 정취를 더욱 깊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쉼과 사색을 제공하는 안락한 품속이 되었다. 바람이 불 때면 조각자나무의 잎사귀가 속삭인다. 그 소리는 독락당의 오래된 기와 아래에서 들리는 옛 학자들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독락당을 오가며 입구에 세워진 경청재(敬淸齋)와 화의문약설(和議文略說)에 관한 안내판을 읽으며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경청재, 화의문약설, 옥산구곡… 경청재(敬淸齋)는 회재 이언적 선생 손자 두 형제가 독락당을 보존키 위하여 화의문을 작성하면서 세운 집으로 선생은 청백리에 가자되었다. 청백은 공경지심에서 나온다 하여 후손들이 본 집을 경청재라 이름하였다. 화의문약설(和議文略說)의 내용은 독락당은 회재 선생의 별서이고, 이외 유택에는 우리 부모님의 혈설이 가득하다. 당우와 담장을 수호하기 위하여 우리 형제가 약간의 토지를 출현하였다. 후손들 가운데 혹 궁벽하여 토지에 대해 다투는 일이 있으면 불효로써 논단한다는 것이다. 옥산구곡(玉山九曲)은 회재 사후에 하계 이가순이 회재 은거지에 구곡 원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옥산천을 따라 아홉 곳을 선정하고 명명하였다. 옥산천(옥산구곡)은 회재의 시(詩)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의 창작 공간이며 옥산서원길에는 3곡∼7곡까지를 포함하고 있어 옥산천을 오르며 굽이굽이 존재하는 회재의 자취를 유람할 수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5-28

포항 남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울산 야외체험활동

포항시 남구 정신건강복지센터(이하 센터)는 28일 센터 등록 회원 중 야외체험활동 프로그램 신청자 및 보호자 등 45명과 함께 울산에서 야외체험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번 야외체험활동 프로그램은 센터 등록회원과 가족이 함께 자연 속에서 힐링하며, 야외체험활동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가족 간 유대감 증진을 위해 운영했다. 이날 참여자들은 울산 장생포 고래문화마을과 태화강 국가정원 십리대숲을 방문했다. 또 도보 및 모노레일로 장생포 앞바다와 고래문화마을 등을 둘러보며 조별 미션을 수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여자는 “평소에 혼자서는 이렇게 멀리 오기 어려운데 이렇게 회원들과 같이 와서 안전하게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 좋았고 특히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센터는 야외체험활동 프로그램 외에도 지역주민의 정신과적 어려움에 대한 조기 발견 및 치료연계, 중증정신질환자 사례관리 서비스, 자살예방사업,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증진사업, 전 국민 마음투자 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김정임 남구보건소장은 “이번 야외체험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대상자들 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2025-05-28

포항남부署, 보이스피싱 예방 영포새마을금고 직원에 감사장

포항남부경찰서(서장 박찬영)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사전에 차단한 공로로 영포새마을금고 본점 직원 A씨에게 감사장과 포상금을 수여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영포새마을금고 본점을 찾은 80대 남성 B씨는 1500만 원을 인출해 송금하려 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은행원 A씨가 송금 사유를 묻자 B씨는 “채팅 어플을 통해 ‘투자금을 크게 불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이미 650만 원을 송금했고, 추가로 1500만 원을 보내려 한다”고 답했다. A씨는 즉시 송금 계좌를 조회했고 해당 계좌가 보이스피싱 의심 신고가 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B씨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송금을 만류했지만 B씨는 이를 믿지 않고 계속해서 송금을 요청했다. 이에 A씨는 침착하게 송금을 지연시키며 신속히 112에 신고를 접수했고 B씨가 송금한 계좌를 지급정지 시켰다. 이미 일부 금액이 송금된 상황이었지만 큰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은 결정적 조치였다. 감사장을 받은 A씨는 “평소 보이스피싱 예방에 관심을 갖고 업무에 임해왔는데 이번에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어 기뻤다”며 “앞으로도 고객 응대 시 세심히 살펴 보이스피싱 근절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박찬영 서장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차단하는 데 있어 금융기관의 역할이 매우 크다”며 “앞으로도 경찰과 금융기관이 긴밀히 협력해 유사 범죄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보규기자 kbogyu84@kbmaeil.com

2025-05-28

“사업보국” 창업정신 강조한 한화 김동관 부회장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이 창업정신인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강조하며 한화의 기술과 비전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부회장은 28일 부산 벡스코에 개막한 ‘2025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5)’에 참석했다. 김 부회장은 이날 국내외 군 및 방산업체 관계자와 해외 정부 대표단 등 100여명이 참석한 칵테일 리셉션에 참석해 “한화는 국가단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글로벌 사업환경에서 사업보국 창업정신을 깊이 되새기고 있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국격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미국, 중국, EU 등의 국가간 패권경쟁과 블록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국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 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리셉션에서 국내외 군·방산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한화 방산의 미래 기술 및 비전을 소개했다. 한화오션 중심의 해양방산 사업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으로 이어지는 방산 3사의 통합역량 및 시너지 효과도 설명했다. 또 미래 전장환경을 이끌 차별화된 기술력을 토대로 2030년 ‘글로벌 10대 방산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화는 이날 방산 3사 통합전시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정예화·기술화 되고 있는 미래형 군 구조 전환 추세에 맞춘 ‘글로벌 토탈 방산 솔루션 프로바이더’의 역량을 선보였다. K-방산의 미래를 이끌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날 리셉션에서 한화오션 김희철 대표이사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고대 로마의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의 격언을 언급하며 “세계 곳곳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산의 가치와 중요성이 두말할 나위 없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K-해양방산의 선두주자인 한화는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환경 속에서 세계 각국의 전략적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이번 MADEX 2025를 통해 글로벌 톱티어 방산기업인 한화의 해양방산 의지와 기술력이 잘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05-28

리딩금융이 밸류업도 으뜸…KB금융 ‘경제부총리상’ 수상

KB금융그룹이 지난 27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밸류업 우수기업 시상식’에서 경제부총리상을 수상하며 국내 리딩금융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한국거래소는 상장기업의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올해부터 ‘밸류업 우수기업 표창’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번 표창은 밸루업 우수기업 선정기준에 따라 수익성, 자본자율성 등의 심사를 통해 수여됐다. KB금융은 공시충실성(이사회 참여, 가이드라인 체계 충실성), 기업가치 제고 노력(주주환원 실적, 시장 평가) 등 정성 항목 전반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KB금융은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전부터 업계 최초로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실시하고, 배당총액 기준의 분기 균등배당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선도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KB금융의 ‘지속가능한 밸류업 방안’은 국내 최초로 보통자주본(CET1) 비율과 주주환원을 연계한 ‘밸류업 프레임워크’를 도입, 주주환원의 지속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KB금융 관계자는 “KB금융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은 회사의 본원적인 수익성을 개선하면서 지속적으로 주주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를 충실히 이행해 나갈 계획”이라며 “주주, 고객,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금융그룹으로서 밸류업 문화의 확산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05-28

“배터리 인재 계속 키운다” SK온, UNIST와 맞손 연장

SK온이 울산과학기술대학원(UNIST)과 배터리 인재 양성을 위한 ‘e-SKB 산학 협동과정’ 연장 협약을 체결했다. 28일 SK온에 따르면 전날인 27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UNIST 본관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안현실 UNIST 부총장, 박기수 SK온 R&D 본부장, 이승노 SK온 선행공정개발실장, 김영식 UNIST 산학협력단장 등이 참석했다. ‘e-SKB’는 SK온과 UNIST가 함께 만든 배터리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2022년 3월 시작됐다. 해당 전형 입학생은 등록금 및 학연 장려금 지원을 받으며 연구를 하고 졸업 후 SK온 취업의 특전이 주어진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측은 협력기간 연장과 더불어 e-SKB 참여학과와 선발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먼저 e-SKB 참여학과를 에너지화학공학과에서 기계공학과, 전기전자공학과까지 확대하고 석사 과정에 더해 박사 과정을 밟는 것도 가능하게 했다. 기존에는 UNIST 최초 입학시에만 e-SKB 참여 기회가 주어졌지만 앞으로는 재학 중에도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다. 교수진 연구활동 및 논문 지도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이를 통해 배터리 관련 연구 증진 및 우수 인재 확보 효과가 기대된다. 박기수 SK온 R&D 본부장은 “미래 배터리 산업을 이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SK온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연구개발 저변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현실 UNIST 부총장은 “SK온과 인재 양성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전주기 배터리 전문 인력 교육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협약 체결 후 UNIST 재학생 대상으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약 80명의 학생과 교수진이 모인 자리에서 박 본부장은 “시장과 고객사의 요구가 다양해짐에 따라 배터리 연구개발 범위 역시 넓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구개발 인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배터리 주요 소재만 아니라 설계, 공정, 분석, 시뮬레이션 등 넓은 범위의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며 “제품과 시스템의 성능, 안전성,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05-28

“외국인 고객도 하나” 하나은행 ‘하나더이지 적금’ 출시

하나은행은 해외송금을 이용하는 외국인에게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하나더이지 적금’을 출시했다. 해외송금 실적에 따라 우대금리 혜택이 커지는 ‘하나더이지 적금’은 급여 등 정기적으로 해외송금을 보내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목돈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외국인 전용 상품이다. 적금 만기 전이라도 본국으로 귀국하거나 납입된 적금을 해외로 송금할 경우 특별중도해지가 가능하다. 28일 하나은행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3만좌 한정으로 판매 예정인 ‘하나더이지 적금’의 가입금액은 매월 1만원 이상 30만원 이하다. 계약기간은 1년이다. 적용금리는 기본금리 연 2%에 우대금리 최대 연 3%를 더해 최고 연 5%다. 우대금리 조건은 △해외송금 건수별 최고 연 1.5% △해외송금 금액별 최고 연 0.5% △급여이체 연 0.5% △하나카드 결제 실적 연 0.5%다. 하나은행은 적금 출시를 기념해 29일부터 6월 말까지 ‘적금 이름 맞추기 초성퀴즈 이벤트’도 진행한다. ‘하나더이지 적금’을 가입한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해외송금 전용 앱 ‘하나EZ’를 통해 참여 가능하다. 추첨을 통해 △황금열쇠(1명) △CU 편의점 모바일 상품권 3만원권(10명) △파리바게뜨 모바일 상품권 1만원권(100명)을 제공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하나은행 주거래 외국인 손님이 더 나은 조건에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나더이지 적금’을 출시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혜택이 있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05-28

‘TK 사전투표율’ 대선판세의 잣대 될 수도

지난 27일 열린 대선후보 3차 토론회도 지난 두 차례 토론과 마찬가지로 네거티브전으로 일관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김문수(국민의힘) 후보에게 “국회에서 국무위원들이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을 때 유일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고, 김 후보는 이 후보에게 “본인을 위해 모든 재판을 중지하고 대법관 수를 100명, 30명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황제도 이렇게는 안 한다”고 대응했다. 이준석(개혁신당)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형수 욕설 논란을 꺼내 들며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토론회니 만큼 어느 정도 난타전이 예상되긴 했지만, 대선후보 토론회라고 하기엔 그 수준이 너무 낮았다. 세 후보가 이날 상대 후보를 공격한 주 무기는 ‘비상계엄’과 ‘사법 리스크’, ‘과거 발언’이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거론돼온 메뉴 들이라, 정책 경쟁을 기대했던 많은 시청자들이 식상해 했을 것이다. 오늘(29일)부터는 사전투표가 시작되면서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일인 6월 3일 오후 8시까지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다. 부정확한 여론조사가 발표돼 선거 공정성을 해치더라도 시간이 촉박해 반박·시정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번 대선은 이재명·김문수·이준석 후보 간 3자 대결로 구도가 굳어지는 분위기다. 보수진영 단일화도 사전투표가 진행됨으로써 물 건너 간 것 같다. 국민의힘도 이준석 후보와의 단일화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보고, 김문수 후보 지지층 결집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이제 승부를 가를 최대변수는 투표율이다. 김문수 후보의 경우 최근 지지도가 상승하는 대구·경북(TK)지역 투표율을 역대급까지 끌어 올리면 대역전극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 아마 오늘 시작되는 TK지역 사전투표율이 후보들에겐 승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다. 사전투표율로 보수진영 결집 정도를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05-28

TK 신공항 국가사업, 대선후보가 약속해야

대구경북(TK) 신공항 사업을 국가가 주도하는 국가재정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경북 신공항은 기부대 양여방식 원칙 아래 대구시가 직접 건설하는 공영개발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사업 진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대구시는 신공항 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 조달을 위해 정부의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융자를 건의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은 상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2월 대구시 간부회의에서 “30조 원이 넘는 신공항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되려면 국가재정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말하고 “대구시 사업으로 추진한 자체가 잘못된 출발인 만큼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기부대 양여방식이란 대구시가 선투자 해놓고 민간 공항을 짓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K-2 군부대 부지를 팔아 신공항 건설비를 다시 충당해야 하는데, 신공항 사업비 규모가 수십조에 이르는 마당에 지방자치단체가 선투자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TK신공항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재정 조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통합신공항대구시민추진단은 27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국가 주도 TK신공항건설 촉구대회’를 열고 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정부 재정의 선투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찾아가 신공항 건설 촉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대구경북 신공항사업은 지역 100년을 내다본 미래를 위한 투자다. 지역민의 기대와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가적으로도 국토 균형발전을 이룰 사업이다. 지방소멸 극복에 도움을 주고, 신냉전 시대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이 국가사업으로 추진되면서 대구경북의 신공항을 지자체 부담 사업으로 둔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대구시가 대선후보 건의 1호 사업으로 신공항 조기 건설을 선정해 후보 측에 전달했다. 사업의 중요성과 대구경북민의 희망으로 가득 찬 사업이란 측면에서 당연하다. 이제 국가재정사업에 대한 대선후보의 약속이 필요하다. 그래야 희망이 보일 것이다.

2025-05-28

‘대통령의 아내’라는 자리

지위가 높은 사람의 부인을 일러 영부인(令夫人)이라 칭한다. 보통은 선출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아내를 부를 때 사용된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영부인 역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이니 매사 몸가짐과 언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건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영부인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나 말이 남우세스러운 꼴로 대중 앞에 노출되는 걸 우리는 드물지 않게 봐왔다. 최근에도 그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2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베트남을 찾았다. 그런데, 하노이공항에 도착한 비행기 입구에서 눈꼴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영부인이 마크롱 대통령의 뺨을 때리듯 강하게 얼굴을 미는 모습이 여과 없이 영상을 통해 전해진 것. 스물다섯 살 연상의 아내에게 밀쳐진 프랑스 대통령은 면구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걸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봤다. 프랑스 당국은 즉각 “영부인의 장난”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늦었다. 각국 외신들이 ‘둘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으니. 비단 프랑스 영부인만일까? 적절치 못한 행실로 국민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영부인이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내는 공식 행사장에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대통령이 내민 손을 뿌리쳐 화제가 됐다. 한국의 전 대통령인 문재인과 윤석열의 아내, 즉 한국 영부인들 역시 적지 않은 구설수에 휩싸여 있다. 영부인은 벼슬이 아니며,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자리는 더욱 아니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자신은 물론 남편까지 망치게 된다. 그러니, 다들 자중하시라.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28

토론인가 배틀인가

TV 토론이 유권자에게는 후보자의 자질을 가늠할 수 있는 창이며, 후보에게는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국민 앞에 펼쳐 보이는 기회다. 최근 방영된 TV 토론에서 토론 주제가 있었고 후보자 간 시간 배분도 조율된다. 그럼에도 정작 토론의 시간을 채운 것은 정책이 아니라 인신공격이었다. 후보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통 특정 후보에 대한 비난으로 채웠다. 본인의 비전이나 공약에 대한 설명은 단편적이거나 생략되기 일쑤였다. TV 화면 앞에 앉은 국민은 ‘우리가 왜 이 장면을 지켜봐야 하는지’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정치토론은 상대를 깎아내리는 자리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은 ‘다른 생각’의 공존이며 토론은 바로 그것을 드러내고 조율해가는 과정이다. 후보자들이 서로의 정책과 가치관을 비교하며 논리적으로 겨루는 가운데, 유권자는 각자에게 더 믿음직한 정책을 선택할 근거를 확인한다. 오늘 선거 토론은 본래의 취지를 잊어버렸다. 무엇이 문제일까. 토론문화 자체에 대한 후보자들의 바른 인식이 없다. 후보자들이 토론을 ‘전투’로 인식하여 공격과 방어로 점수를 따고 상대의 실수를 하나라도 끌어내어 그것을 확대·재생산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가인데 토론 시간을 상대방 흠집내기로만 날려버린다. 유권자의 시간을 낭비하고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결과만 낳는다. 토론의 운영방식도 문제다. 주제가 분명히 제시되었지만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비껴가며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후보에게 제재가 없다. 사회자는 때때로 공정한 중재자라기보다 시간 관리자 역할만 한다. 방송사의 편집방식도 갈등과 자극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토론보다 고성과 자극적인 언행이 ‘돋보이는 전략’이 되고 만다. 토론에 대한 교육과 훈련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유권자도 정치인도 진정성 있는 대화보다 ‘말싸움’에만 몰입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토론이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공직선거 TV토론의 규칙을 더욱 엄격히 정비해야 한다. 주제 이탈, 인신공격, 반복 발언에 대한 경고와 벌칙을 정비하고 실효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사회자의 적극 개입권과 진행 권한을 강화해 토론의 질을 높여야 한다. 유권자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자극적인 발언보다 성실하고 조리 정연한 설명을 평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언론이 정책중심 보도를 강화하고 선거 토론을 예능처럼 소비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가 이겼나’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나’를 무겁게 여기는 분석과 보도가 필요하다. 정당의 책임도 크다. 후보자에게 단순한 말싸움 기술보다, 시민과 소통하는 진정어린 화법과 설득력을 장착하도록 준비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 정당 스스로 ‘네거티브 선거’를 탈피하려는 의지를 세워야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토론은 정치 이벤트가 아니다. 토론이 정치의 얼굴이어야 한다. 어떤 토론을 하느냐는 어떤 정치를 바라는가 보여주는 거울이다. 선거 토론은 배틀이 아니다. 토론이 성숙해야 정치가 숙성한다. /장규열 고문

2025-05-28

오장육부-정신과 육체

오장육부(五臟六腑)에는 몸과 마음, 그리고 삶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마련된 거대한 지도가 담겨있다. 장(臟)은 에너지를 저장‧변화시키는 본체이고 부(腑)는 그 에너지를 순환‧배출시키는 통로다. 이 둘이 서로 호흡을 맞추면 기와 혈이 전신을 부드럽게 흐르고, 사람의 몸과 마음은 동시에 튼튼해지고 가벼워진다. 반대로 간이 울체되면 근육이 뻣뻣해지고 화(火)가 치밀며, 신장이 허하면 요통과 무릎 통증이 찾아오는 동시에 두려움이 증폭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전통적 관찰이 현대 의학의 언어로도 설명된다는 점이다. 장(腸)과 뇌를 잇는 ‘장–뇌 축’ 연구는 장에서 합성된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뇌의 감정 회로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혔고, 이는 곧 비위(脾胃)와 심(心)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의 덩어리다. 일상에서 깊고 일정한 호흡으로 폐를 충분히 사용하면 산소 포화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과다한 교감신경 흥분이 잦아들어 불안이 완화된다. 반면 수면이 부족해 비위 기능이 흐트러지면 달콤한 음식이 당겨 체중이 늘고, 뇌의 보상 회로는 과각성 모드로 돌입해 짜증과 집중력 저하가 뒤따른다. 규칙적으로 걷거나 달리는 전신 운동은 간의 기혈 순환을 촉진해 근육 뭉침을 풀어 줄 뿐 아니라 정체된 감정까지 배출한다. 이처럼 ‘좋은 컨디션’은 특정 장부 하나를 집중 관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장육부가 빈틈없이 협연할 때 비로소 꽃피는 총체적 상태다. 정신 건강 역시 장부 균형에 달려 있다. 한의학은 마음의 근거를 심장만이 아니라 간‧비‧신장까지 오장육부 모두가 폭넓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간은 욕구와 창의성, 비는 사유와 기억, 신은 의지와 생명력의 뿌리를 맡는다. 과로로 비위가 허하면 사소한 일을 곱씹는 사려과다가 생기고, 간에 열이 오르면 작은 자극에도 짜증과 분노가 폭발한다. 반대로 장부가 조화를 이루면 감정 기복이 완만해지고 정신적 몰입과 통찰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명상과 복식호흡이 주목받는 이유도 폐‧심‧간‧신의 리듬을 맞추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장부 균형을 지키는 첫 걸음은 몸의 언어를 듣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혀의 색과 설태를 살피고, 첫 소변의 색과 냄새를 관찰하며, 오후쯤 찾아오는 피로의 위치와 강도를 기록해 보면 어느 장부가 과부하를 받는지 윤곽이 드러난다. 이어서 하루 한 끼만이라도 따뜻한 밥과 채소 위주의 간소한 식사를 하고, 점심 후 10분 산책으로 기와 혈의 순환을 깨우며, 잠들기 전 5분간 복식호흡과 명상으로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화를 찾으면 몸은 자연스레 건강해진다. 여기에 주 2~3회 가벼운 땀이 맺힐 정도의 운동을 더하면 오장육부에 생기가 돌고 머릿속 구름이 걷히듯 기분이 맑아진다. 결국 오장육부는 낱낱의 장기가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움직이는데 그리고 감정까지 영향을 미치는 정신과 육체의 주체다. 숨을 제대로 쉬고, 땀을 흘리고, 잘 씹어 먹고, 편히 잠드는 평범한 실천과 간단한 명상으로 건강하고 편안한 오장육부를 만들 수 있다. 오장육부가 건강하면 육체와 정신의 건강은 따라온다. 오늘부터 걷고 움직여 명상하며 육체와 마음을 다스려 당신의 오장육부에 작은 격려를 건네 보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5-28

모리 교수의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두 달 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책장에서 꺼내 다시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또 한 권의 책을 샀다. 모리 교수의 제자인 미치 앨봄이 쓴 책이 아니라 모리 교수가 생전에 썼던 미출간 유고를 그의 아들인 롭 슈워츠가 사후 편집해 출간한 책이었다. 영어 원제는 모리의 지혜(The Wisdom of Morrie)인데, 우리나라에서 출간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바꿔 놓았다. 처음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과 같이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 최근엔 가방에 넣어다니며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읽는다. 원래 소설 읽기를 즐기던 심히 편협된 독서 취미가 있던 나는 책 한 권을 잡으면 며칠을 밤새다시피 읽어 끝장을 보곤 했다. 그러나 서사가 없는 책은 내리읽을 필요도 없고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니 쉽다. 침대 가까이 두고 집히는 대로 잡아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곤 했다. 지난주 일요일 108 사찰순례 때는 가방에 넣어 가서 버스에서 읽기도 했고, 오늘은 손주들 하교 도우러 나설 때 가방에 넣었다가 차 안에서 한 페이지를 읽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건 아니고, 읽은 데를 또 읽기도 하고, 가까이에 쓸 것이 있으면 밑줄을 그어두거나 별표를 크게 하기도 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그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 두기도 했다. 모리 교수가 “책장을 가벼이 넘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생각하고 다각도로 궁리하기”를 바랬으며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노년의 즐거움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어 현재의 노년의 내 생활에 가장 긴요한 주문들이 그득그득하기 때문이다. 67살 즈음 자신이 고령자임에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노년의 삶을 긍정하기 시작한 작가, 모리의 성찰과 지혜에서 우러나온 거의 모든 언사에 백배 공감한다. 책상 위에 있는 책을 들고 책의 접힌 부분을 슬쩍 펼쳐보니 34페이지다. “오늘 내가 살고 만들어가고 경험하는 ‘지금’이 인생의 화양연화임을 이제는 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무릎을 탁 쳤고, 혼자서 씩 웃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신황금기라 여기는 나와 똑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259페이지에서는 소중한 관계의 가치를 얘기하고 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들 모두와 인연을 이어가자”를 읽으면서 소소하되 귀한 모임의 소중한 동반자를 떠올리고, “손주들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울 방법을 알아내자. 이때 자녀와 손주의 관계를 방해하면 안 되겠지만 오히려 자녀들이 반길 수도 있다”를 읽으면서 나의 현재 최대 관심사를 어찌 알았을까. 또 줄을 굵게 쳤다. 8장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에서는 잘 늙기를 제안한다. 세상은 아름답다.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고 타인을 존중하고 삶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매일 즐겁고 황홀하게 웃음거리를 찾자.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은퇴 후의 자유를 활용하라는 조언.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더욱 충만하고 자유롭고 활기차게 살 수 있다는 모리 교수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책은 요 근래 내 지근 거리에 있으면서 내 시선과 손길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