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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목련 축제

강길수 수필가 춘분을 사흘 앞둔 토요일 오후. 하늘이 유리알이다. 오랜만에 할아비 집에서 고사리 형제가 만났다. ‘동기(同氣)가 없는 두 아이가 친형제처럼 자라나게 해야 한다’는 내 소망이 작동했나 보다. 동네 공원에 함께 갔다.예전엔, 아이들이 많이 와 시끌벅적하던 곳이다. 요즈음은 아이들이 드물다. 오늘은 아이라고는 우리 손자 둘 뿐이다. 아동들과 청소년들도 없다. 기구 운동을 하거나, 정자나 벤치에 앉아 쉬는 나이 든 분들만 여남은 돼 보인다. 어딘가 텅 빈 느낌이다.다섯 살, 세 살 난 우리 집 사촌 형제는 얼마간 미끄럼틀에서 정신없이 놀았다.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신이 나서 깔깔댔다. 나와 큰손자 아비는 아이들이 놀다 다칠까 봐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적막강산 같던 공원이 손자 두 놈이 지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어른들도 두 아이를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만일 이 시간에 우리가 안 왔더라면, 공원은 사그라지는 봄날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저쪽 화단에 날개 하나인 하얀 목련 나비가 유리 하늘을 난다. “얘들아, 자전거 타고 놀면 좋겠네!” 하는 내 말에, 둘은 어린이 자전거 앞뒤에 타고 공원 마당을 휘돌았다.한참 후, 목련 나비 나는 화단 앞에서 동생이 내렸다. 녀석은 화단 위로 올라가, 떨어진 하얀 꽃잎을 가리키며, “할아버지, 이게 뭐야?”하고 물었다. “목련이야!”라고 대답했더니, 목련 꽃잎을 한 움큼 주워 미끄럼틀로 뛰어가 회전 미끄럼관 안에 들어갔다. 그 꽃잎으로 무슨 놀이를 하는 모양이다.형이 뒤따라가 미끄럼틀 위에 오르자, 동생은 나와 목련 꽃잎을 회전 미끄럼관 입구에 놓아두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형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동생의 목련 꽃잎을 손에 들고 짓궂게 하늘로 뿌렸다. 이를 본 동생은, “내 거야!”라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주우면 된다고 달래며, 덜어진 목련 꽃잎을 주워 동생에게 주었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었다.이 광경을 보던 형이 다시 목련 나무에 뛰어갔다. 꽃잎 한 줌을 주워 와 미끄럼틀 위로 올랐다. 갑자기 큰 소리로, “목련 축제!”라고 외치며 손에 든 하얀 꽃잎을 하늘에 흩뿌리며 좋아했다. 동생도 덩달아 제 손의 목련 꽃잎을 뿌리며, “목련 축제!”하고 소리 지르고 웃었다. 미끄럼틀은 졸지에 형제의 ‘목련 축제 마당’으로 변했다. 두 아이는 축제 놀이를 반복 즐긴다. 어른 둘도 추임새를 넣으니, ‘3대(代)의 목련 축제’로 피어났다.큰손자가 ‘목련 축제!’하고 외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의 창의력과 순발력, 기억력이 어른을 뺨치는 현장과 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목련’이란 말도 오늘 처음 배운 녀석의 어디에서 ‘축제’란 생각이 떠올랐는지 탄복했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동영상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이른 봄날, 난데없이 어린 손자 형제가 베푼 ‘목련 축제’ 행복 마당…. 거기서 또다시 깨닫는 말이, 하얀 목련꽃 나비가 되어 유리알 하늘에 날아오른다.‘어린이는 역시, 어른의 아버지야!’….

2023-03-30

4월 2일은 사이버범죄 예방의 날

4월 2일은 사이버범죄 예방의 날, 예방수칙 기억하고 사이버범죄 예방하자 매년 4월 2일은 ‘사이버범죄 예방의 날’이다. 2015년 4월 사이버범죄 예방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4월 2일은 사이버(Cyber)의 ‘사(4) ‘이(2)’를 따서 선정한 것이며, 사이버범죄 예방을 위한 국민 참여로 ‘사이버안전’ 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사이버범죄는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여 피해범위가 광범위하고, 비대면·익명성으로 범인특정 및 검거에 장시간이 소요되는 등 피해 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라는 말이 있다. 사이버범죄라고 하면 예방하는게 크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이버범죄의 유형을 파악하고 예방법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는다면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 의심하기! 링크 클릭 금지! 전화해서 확인하기! 이 세 가지만 기억하고 잘 지켜도 피해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첫 번째 예방수칙은 고액 알바나 고수익 투자권유 등 달콤한 유혹을 의심하여야 한다! 포인트환전사기는 ‘고수익 성인채팅 알바’(성인 채팅사이트에서 남성들과 대화만 하면 큰 수익을 주겠다고 하며 알바비로 포인트를 지급한 후 환전 등으로 금원 편취), ‘카지노 대리베팅’(SNS에서 부업 등을 미끼로 접근하여 자신이 대리로 베팅하여 큰 수익을 내주겠다고 속여 포인트 환전 등으로 금원 편취), ‘로맨스스캠’(소개팅어플, SNS 등으로 호감을 쌓은 뒤 환전부탁) 등으로 피해자들을 현혹하여 포인트 환전을 빌미로 금원을 편취하는 사기이다. 포인트환전 수수료, 선입금 등을 유도하면 반드시 의심하여야 한다. 두번째 예방수칙은 ‘링크 클릭 금지’이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인터넷주소(URL), 문자 속 링크, 첨부파일 등은 절대 클릭하지 말아야 한다. 스미싱 범죄의 경우 교통범칙금, 택배주소 확인 등을 사칭하여 문자를 보내 인터넷주소나 전화번호를 클릭하도록 유도한다. 사이버사기의 경우 중고거래를 하면서 가짜 결제창이나 결제 사이트를 만들어 링크를 클릭하도록 유도한다.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해킹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권아름 경사 경북경찰청 사이버수사과 마지막으로 ‘엄마 나 핸드폰 고장났어’처럼 자녀나 지인을 사칭하여 금원을 편취하는 메신저피싱의 경우 휴대폰 파손 보험처리를 해야한다며 링크를 클릭하게 하거나 어플을 설치하도록 유도한다. 클릭하는 순간 ‘팀뷰어’와 같은 원격제어앱이 설치되고 △계좌개설 △대출실행 △휴대폰 개통 등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 경우 가장 좋은 예방법은 자녀나 지인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경북경찰은 갈수록 지능화되고, 교묘해지는 사이버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자주 발생하는 사이버범죄 피해유형과 예방수칙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적극 홍보하고, 사이버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유관기관과 협업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학생, 노인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예방교육을 지속 실시해 안전한 사이버 환경을 조성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사이버범죄 예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사이버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사이버범죄예방의 날을 맞아 잠깐 시간을 내어 사이버범죄 예방수칙을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03-30

국가소멸위기, 이민과 다문화로 극복하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비어간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모든 정책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2017년에 5천136만명이었던 한국인구는 2047년에 4천771만명, 2067년에 3천689만명, 2117년에는 1천51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 한다. 백 년 후에는 나라인구의 70%가 사라진다는 셈이다.지역소멸이 문제라지만, 이쯤 되면 ‘국가소멸위기’라 불러야 하는게 아닐까. 인구가 국가성장동력의 한 축이라면 대한민국은 특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 10위를 넘나든다는 국위와 국격도 인구가 실제로 급격히 줄어든다면 그리 오래가지 못할 터이다.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실효적인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한다.많은 나라들에서 인구정책으로 골치를 앓는 가운데, 캐나다 인구는 1년 만에 100만명 이상 증가하여 인구증가율 2.7%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의 인구가 14% 감소한 데 비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캐나다 정부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한다. 이같은 증가세가 지속된다면 약 25년 후에는 캐나다 인구가 지금의 두 배가 된다는 예측마저 한다.미국은 건국초기부터 이민자의 나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인종갈등과 여론동향에 따라 이민정책이 그리 유연하지 않았다. 이민자들에게 유리한 다문화정책(multiculturalism policy)과 동등기회정책(equal opportunity policy)을 점진적으로 시행하면서 미국 이민사회와 인구추이는 안정적인 성장을 기록하는 중이다. 캐나다와 미국에도 이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없지 않지만, 유입되는 이민인구에 대하여 점차적으로 개방적인 정책성향을 장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보다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이민정책을 시도하는 셈이다.우리는 어떤가. 5천100만 전체 인구 가운데 다문화배경 인구가 200만명을 넘어서고 결혼하는 10쌍 가운데 1쌍은 다문화가족이라고 한다. 전체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동안, 초중고교에서 다문화 학생수는 한 해 1만명 이상씩 늘어난다고 한다. 이민과 다문화정책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문화배경 시민들의 70% 이상이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단일민족을 내세우는 고루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은 이미 글로벌 환경으로 변하였는데 우리만 폐쇄적인 구습에 머물 수가 없다. ‘다’문화를 ‘다른’ 문화로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대하고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다문화는 낯설고 다른 문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의 새로운 얼굴로 받아들여야 한다.글로벌 세상에서 대한민국이 환영받으려면 나라 안에서 글로벌을 환대해야 한다.추세로 보아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인구감소위기에 반전의 계기가 솟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민을 신성장동력의 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고, 교육과 문화의 현장에서 보다 포용적인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국가소멸위기는 이민과 다문화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정책적 시선으로 극복해야 한다.

2023-03-29

혼돈 속의 봄꽃

홍석봉 대구지사장 봄꽃은 순서대로 개화하는 게 자연의 섭리다. 봄꽃은 동백과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순으로 핀다. 하지만, 요즘 봄꽃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핀다. 몇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봄꽃의 개화 시기가 앞당겨진 때문이다.기상청은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의 개화일이 최근 30년 동안 짧게는 4일에서 길게는 21일까지 빨라졌다고 했다.한창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주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자태를 자랑한다. 꽃비를 뿌리는 곳이 많다. 라일락이 보랏빛 향기를 뿜어낸다. 도로변에 하얗게 핀 조팝나무 꽃은 열병식을 한다. 성급한 철쭉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한다. 올해 대구지방의 벚꽃 개화일은 21일이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24년 이후 두 번째로 빠르다고 한다.통상 봄꽃의 개화시기는 순서대로 열흘 넘게 차이가 났다. 식물은 저마다 일정 온도가 돼야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상고온 현상은 개화시기를 헝클어뜨렸다.동시개화는 한번에 화사함과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을 주지만 저마다 피는 시기에 누리던 인간의 즐거움을 앗아가버린다. 더 큰 문제는 생태계 교란이다. 꿀벌의 수분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곤충의 활동 시기도 바꾼다. 꿀벌 실종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꿀벌이 없으면 과일과 채소 등의 수분 작용이 차질을 빚고 농작물 작황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칫 인간의 식생활을 위협할 수도 있다. 봄꽃 축제를 준비 중인 지자체마다 행사 개최시기를 두고 큰 혼란에 빠졌다는 소식도 들린다.지구온난화가 초래한 결과다. 자칫 봄꽃과 여름꽃이 동시에 피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 터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9

지역 대학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수업시간에 ‘지방-대학생’이란 정체성에 대한 학생들의 발표를 들었다. 어느 학생의 발표 요지는 이랬다. 진주에서 나고 자란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보통의 학생들처럼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역의 거점국립대에 오게 되었고, 속상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 대한 애착으로 곧 극복할 수 있었다.문제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발생했다. 진주 출신임을 밝혔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타인들의 불편한 시선이 경상국립대를 다닌다고 하면 쏟아진 것이다. 그 학생은 대학생이 되고 학벌주의를 체감한 것이다. 서울 명문대 출신의 사람을 진주에서 만난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어떤 어른의 말에, 자기 위치를 실감했다는 경험담은 강의실을 침묵으로 이끌었다.정부가 지역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한 글로컬 사업에 지역 대학의 존폐를 건 경쟁이 시작되었다. 처음 추진 계획이 발표되고 두 달도 되기 전에 공모를 마감하는 등 졸속 추진에 대한 비판이 다각도에서 제기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대학 지원에 대한 지자체의 의지와 인식, 지역 국립대와 사립대의 규모나 이해관계 등을 고려하면 글로컬 사업의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글로컬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책임회피이다. 지자체와 지역 대학이 연합해서 혁신의 방안을 찾으라는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실 그 이면에는 지역 대학이 외면받는 원인을 분석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부의 실질적 무능이 자리 잡고 있다.학벌주의가 여전히 득세한 우리나라에서 지역에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서울로 가는 학생들을 막을 수 있을까? 출생률 감소로부터 시작한 지역 대학의 위기는 ‘학벌주의’가 상징하는 서열화 된 의식 구조를 해결해야 극복할 수 있다. 20~30대가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서열화된 사회의 구조로부터 생겨난 불안과 분노라는 정서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지역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서열화된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개혁해야 하는 과제는 지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맡아야 마땅하다. 사회의 여러 측면이 중층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존중해주는 사회적 시선이 마련될 때, 지역 청년이 지역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지자체와 대학이 연계해서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생긴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채우기 위해 서울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서울대 100개 만들기’와 같은 대학 서열화를 뒤흔들 수 있는 정책과 그 정책이 시민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역 대학의 위기는 단순히 경제문제로만 소급되지 않는다. 급조한 정책으로는 문제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2023-03-29

환절기 감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이 왔다. 점점 날이 따뜻해지고 화창한 날씨엔 얇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나 한국의 봄은 만만하지 않다. 오늘 내일 기온이 다르고 아침과 점심 저녁의 기온이 다르다. 아침에 애들과 등교 할 땐 온도가 영상 한자리 수지만 오후가 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초여름이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맞춰 봄옷 겨울옷 반팔을 번갈아 가며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많은 이유로 환절기에 인체는 급작스런 온도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것이 누적되면 인체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모르고 면역력은 저하되고 감기에 걸린다. 나만 그렇게 겪는 온도 변화가 아니라서 내가 감기에 걸리면 가족과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도 역시나 감기에 걸린다.감기에 걸리면 목이 아프고 몸살기로 인한 컨디션 저하와 함께 맑은 콧물이 며칠 나온다. 사람에 따라선 열이 나거나 땀이 난다. 그후 기침과 가래가 나오고 콧물의 색깔이 노래진다. 일 이주 고통을 겪게 되면 감기는 서서히 물러난다. 그러나 몸조리가 잘 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기침과 가래가 끝이 나지 않아 고생하기도 한다. 한달 넘게 감기를 앓고 나면 골골대고 힘이 없다. 이상하게도 힘이 나지 않고 밥맛도 없어서 검사를 해보면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잘 아는 사람은 이럴 때 한의원을 방문해 보약이나 면역을 높이는 약을 지어가서 복용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회복되겠지 하고 기다리지만 몸의 회복은 기약이 없다.온도 변화가 심한 환절기엔 옷을 너무 얇게 입는 것은 좋지 않다. 겨울만큼 두꺼운 옷은 아니더라도 너무 얇거나 짧은 옷은 피하는게 좋다. 특히 바람이 싫거나 추위를 많이 타는 마른 사람과 여자들과 노인들은 옷을 한겹 더 입어 갑작스런 추위를 피하는게 좋다. 잘 때도 보일러를 적당히 틀고 긴 옷을 입은 다음 이불을 덮고 자는 게 좋다.한의원에선 감기를 초기감기와 중후기 정도로 나눠서 처방을 한다. 초기엔 찬기운을 날리고 땀을 낼 수 있게 하는 약들 위주로 처방을 한다. 계지탕, 시호계지탕, 갈근탕, 마황탕, 대청룡탕, 패독산류의 처방으로 감기 초기 증상인 몸살과 발열, 오싹오싹 추운 느낌, 맑은 콧물 등을 치료한다. 감기 중후기에 기침과 가래를 제거하고 기관지의 기운을 높여 기침을 줄어 들 수 있게 하는 시함탕 시함박탕 맥문동탕 등을 한의원마다 고유의 처방으로 처방한다.보통 감기는 치료약의 선택을 잘하면 7일 전후로 증상이 소실되고 컨디션도 점점 회복이 된다. 그러나 가끔 컨디션이 회복이 안되고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로 유지되는 경우가 있다. 기운이 없는 것과 더불어 마른기침을 몇 달 할 수도 있다. 보통 체력이 약한 아이나 여성 노인들에게 가끔 생기는 증상이다. 이럴 경우는 사람에 맞게 면역을 올리는 처방을 먹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컨디션 회복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언젠가 낫겠지 기다리지 말고 주변 한의원에가서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2023-03-29

벚꽃, 그리움

정미영 수필가 경주 보문단지에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나뭇가지마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산들바람을 따라 꽃잎이 날아오른다. 나비떼를 보는 것 같은 황홀감에 한참을 서 있었더니, 앞서가던 일행이 내 이름을 부른다.일행은 꽃나무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그런 연유로 기어이 산책로 가운데로 진입했으나, 나는 가지 않았다. 중심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니는 것보다 양지바른 한쪽에서 전체 풍경을 내 눈에 가득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돗자리를 깔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벚나무에게도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나는 나무가 기특해 쓰다듬었다. 그 순간 뚝, 하고 봉인되었던 그리움 하나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대학시절, 친구들과 학교 근처에 위치한 보육원에 방문했다. 자원봉사를 해보자는 친구의 말에 처음에는 망설여졌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마음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던 한때가 나에게는 존재했었다. 더군다나 어린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더더욱 책임감이 느껴졌다.그러나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던 친구의 말에 용기를 냈다. 어린이들에게 말벗이 되어 주는 일은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야지, 머릿속으로 너무 오래 고민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육원에는 외로움을 느끼는 어린이가 있기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이었다. 숙련된 손길로 세탁을 하고 청소를 해주는 것도 좋지만, 서툴러도 진심으로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주말에 몇몇 친구들과 보육원을 방문했다. 먼저 설거지를 하고 방 청소를 도운 뒤, 어린이들과 산책을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갔다. 가장자리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바라보는 이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동행할 어린이를 찾다가, 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꽃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던 소녀에게 다가갔다.아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틈을 두고 앉았다. 소녀는 나를 의식하지 못했는지 얼굴을 들지 않았다. 자신이 하던 일에 묵묵히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그냥저냥 너무 귀여워 같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동안 꽃잎을 줍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나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었다.“나하고 산책할래?” 머뭇거리지도 않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제야 나도 일어서며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내 손에 꽃잎들을 쥐어주며 책갈피를 만들면 예쁠 것이라고 했다. 꽃잎에 아이의 선한 마음이 담겨 내게로 건너왔나 보다.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나도 모처럼 순수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그즈음 나는 취업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불투명한 현실에서 겪는 내 심리적 압박과 우울한 기분을 조교에게 토로하는 일이 잦았다. 숱한 번뇌와 좌절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푸를 것 같던 젊음이 점점 시들해지고, 마음은 흔들다리 위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그런데 아이의 앙증맞은 손을 잡고 산책하는 동안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보육원을 방문했던 것은 어린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내가 위안을 받다니.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나는, 처음에 보육원을 찾아오기 망설였던 내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 그 아이와 재방문을 약속하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있었다.나는 그 아이를 면면히 만나러 갔다. 우리는 꽃잎을 주워 색지에 붙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낱말을 써서 책갈피를 만들며 놀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와 그 아이의 만남은 두 계절 동안이었다. 내가 다른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벚나무 꽃잎들이 리드미컬하게 춤사위를 이어간다. 그 끝자락을 소녀에 대한 내 그리움이 바투 잡고 따라간다.

2023-03-29

<6> 당나무가 김 사장과의 약속을 지키다

선돌가 당나무가 검붉은 산불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남서풍의 하늘 바람을 타고 시꺼먼 안개를 머금은 불똥이 날개를 달고 삽시간에 주위를 온통 화염으로 삼킨다. 뜨거운 산불 연기가 메케한 냄새를 사방으로 진동시키고 있다. 불덩어리가 하늘에서 춤을 추면서 바람을 타고 먹이를 따라 흐른다. 김 사장과 고향 마을 주민들은 모두 깊은 슬픔에 잠겼다.당나무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첫 번째가 김 사장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그 두 번째 약속은 대의와 더 큰 공익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나무는 신목이면서도 스스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선돌가 당나무는 신목이 되기까지 태백산맥이 힘차게 뻗어 마지막 머무른 묵은봉과 김 사장이 생명의 은인이었다. 당나무는 묵은봉의 배려로 선돌이 된 명당의 끝자락 요지에 자리하여 신목이 될 수 있었다.한편 묵은봉은 국제선 비행기 항로로서 태평양을 거친 숨을 토해 내면서 건너와 동해에 이르면 처음으로 보이는 육지의 첫 관문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 산림이 헐벗어 전국에서 시범적으로 사방사업을 하였던 곳이다. 1970년대 초에 대통령이 묵음봉에서 사방사업을 격려 한 바 있고, 급기야 당나무가 스스로 불탄 자리에 사방기념공원이 건립되었다. 드라마로 유명세를 탄 묵은봉 봉우리에는 항구에 있던 어선을 봉우리에 올려놓아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묵은봉은 당나무와 김 사장이 어릴 때 뻐꾸기가 뻐꾹, 뻐꾹 운다하여 일명 뻐꾹산이라 했다. 어선이 놓인 산봉우리에는 실제로 뻐꾸기가 살았는데, 뻐구기의 전설에는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설화가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나무꾼이 짝이 되었다가 영원히 이별 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얘기가 있다.명당에도 호사다마가 있는 것일까? 소박 맞은 여자가 이 동네를 떠날 때도 잠시나마 당나무 앞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떠났고, 나무 위에 모여 있던 학들을 총으로 쏘려던 포수를 벼락 맞게 한 것도 그랬다. 남남쪽 월남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맹호부대를 따라 떠났던 박씨도 여기서 애인과 포옹하다 끝내 떠나고, 슬프게도 전사했다는 통지만 돌아왔다. 가난해서 목숨을 담보로 한 머구리의 슬픈 애환의 사연도 서글프다. 모두 명당 뻐꾹산 선돌가가 낳은 슬프고도 애잔한 얘기들이다.묵은봉 정상에는 고려시대 밀직부사와 대언의 관직에 이르렀고, 문신이며 시인이기도 하였던 석재 박효수가 이 마을을 지나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바다와 하늘구름과 파도가 함께 어우러져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무아지경이 된다고 했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뻐꾹산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이곳이 천하의 명당으로 좌청룡, 우백호이고, 배산임수인 곳이다.당나무는 스스로 불태워져 산림 복구를 필요하게 하여 묵은봉에서 전국으로 사방사업을 성공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불씨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더욱 신령스러운 묵은봉의 은혜를 갚고, 가난하여 살기 어려웠던 김 사장의 고향 마을 위해, 학을 위해 상처를 입었듯이 스스로 희생하였던 것이다. 약속을 지키고, 대의를 위해 살신성인 하였던 것이다.S시 변두리에 강 선배와 공동으로 법원에 입찰 봐서 매입한 임야가 구획정리지구에 편입 되고, 그 경계선에 잔여 토지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 당시는 자연녹지이었으나, 정부의 주택난 해소책 일환으로 녹지가 풀려 택지로 편입되었다. 그 임야의 보상금으로 혜화동 지하철 인근에 있는 2층 상가를 구입하여 그 2층 일부를 김 사장이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김 사장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민간 토지구획정리조합에서 시행한 공매에 수많은 입찰자를 제치고 2필지가 낙찰되어 그 낙찰 보증서를 그 자리에서 조합장으로부터 받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얼마 후 김 사장은 혜화동 2층의 조그마한 사무실 벽에 걸린 병원 사진을 보면서 회한에 잠겼다. 이 사진은 최근 조합에서 공매로 매입한 토지에 ‘당나무 메디칼’이라는 병원의 청사진이었다. 서진국 작가 김 사장의 고향 마을 당나무가 서 있는 선돌가는 태백산맥의 큰 줄기가 뻗치다 못다 한 아쉬움이 남아 마을과 바로 이어진 넓은 바위 덩어리들이 다시 솟구쳐 있는 곳이다. 산맥의 마지막 묵은봉의 줄기가 명당 중 명당인 것이다. 태어남은 누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듯이 명당을 품고 태어난다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인 것이다. 당나무는 용마람 태수 대장을 김 사장에게 빙의로 보내 어릴 적 약속을 지켰다.조합사무실은 열기와 흥분의 도가니였다. 당선자를 발표할 때마다 손뼉치고 기뻐하기도 하고 탈락자는 실망한 모습으로 희비가 극렬하게 엇갈리고 있었다. 첫번째 입찰 통에 투찰표를 뽑아 이름을 부르는데 그의 이름이 불리는 것이 김 사장은 마치 무슨 꿈이나 꾸는 것처럼 들렸다. 500명 중 첫 번째 부른 한 명의 이름이 김 사장이었다.조금 후 두 번째 넣은 입찰 통에서 투찰된 명단을 뽑았는데, 조합장이 그 많은 사람 중 호명한 이름의 낙찰자가 또다시 김 사장이었다. 뭐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신화가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었다.그 병원 청사진은 그 명당을 이용하여 어려운 환경에 있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서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것이 당나무와의 약속이었던 것이다.끝

2023-03-29

꿈의 물고기를 만나다

세상이 내게서 등을 돌리고, 인생이 나를 배반한다. 노력의 결과는 허망한 실패이고, 뜻밖의 고난에 대책 없이 무너져 내린다.올해 마흔이 됐는데, 내 꼴이 딱 그렇다. 한 대학교의 전임교수 공개채용에서 최종 3인까지 올라갔지만 공개강의와 면접까지 치르고서 탈락했다. 내 나름으로는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다시 기회가 있을까? 찢기고 패인 마음을 우선 달래야만 했다. 구두와 양복을 눈에서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놓고 낚시 장비를 챙겼다. 제주도에 열흘쯤 내려가서 아무 생각 없이 낚시만 하다 오려고.낚시에서 마음을 비우면 인생도 좀 달관하지 않을까? 하지만 넙치농어만큼은 꼭 잡고 싶었다. 6년을 기다린, 내 꿈의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꽤 오랜 세월 낚시를 하면서 바다와 강에 사는 온갖 물고기들을 만났다. 2019년에는 러시아 아무르강에 가서 타이멘과 파이크, 레녹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늘 마음 한켠엔 어두운 방이 있고, 그 어둠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리한 은빛 섬광이 어른거리다 사라지곤 했다. 그 매혹적인 섬광은 넙치농어의 것이다. 2017년 초, 제주 현지 전문가의 넙치농어 낚시 영상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저렇게 멋진 물고기가 있다니!그 당시 겨울 제주도에 가 ‘맨땅에 헤딩’을 감행했다. 넙치농어는 난류성 어종으로 회유하는 성질이 있는데, 제주 남쪽인 서귀포 일대와 가파도, 지귀도, 마라도 등에서만 잡을 수 있다. 그 위쪽으로는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어렵다는 넙치농어 낚시에 도전한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언 손이 떨어져나가는 듯했다. 그 와중에 실수로 낚싯대를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4박5일간의 넙치농어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건 내가 할 낚시가 아닌가보다 하고 단념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서귀포에 넙치농어가 꽤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6년을 기다려 넙치농어에 재도전하는 날이 밝았다.몇 개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며 겨우 포인트에 진입했다. 거센 파도가 사방을 뒤덮는, 야성적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첫 캐스팅(낚시를 던지는 행위) 후 릴을 감으며 지형을 파악했다. 그리고 두 번째 캐스팅, 천천히 릴을 감는데 퍽! 하는 입질, 넙치농어를 걸었다.꾹꾹 처박으면서 암초를 향해 돌진해 낚싯줄을 끊으려는 질주가 굉장했다. 어느 정도 힘을 빼 거의 제압했다고 생각한 그때, 그만 놓쳐버렸다. 넙치농어의 필사적인 바늘털이에 당하고 만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경계심이 강한 넙치농어는 잡았다가 놓치게 되면 다른 개체들까지 예민해진다. 나는 또 다시 교수 채용 탈락 통보를 받았을 때의 심정이 돼 버렸다.포기할 수는 없었다. 부지런히, 아니 처절하게 두드려보기로 했다. 우측에서 좌측, 좌측에서 우측 부채꼴 모양으로 30분쯤 캐스팅을 반복했을까? 흰 포말에 덮였다가 검은 이마를 드러내는 암초 옆에서 또 한 번의 강력한 입질을 받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넙치농어였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챔질을 확실하게 하고 낚싯대를 옆으로 눕혔다. 수중 암초를 향한 폭발적인 질주가 몇 차례 있을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다 녀석이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순간 심장이 터질 듯했다. ‘오냐, 살려는 몸부림이 처절하구나.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한다. 네 얼굴을 봐야만 내가 살겠다. 그러니 오너라!’끌려오던 녀석이 마지막으로 거칠게 저항했다. 발 앞 바위틈으로 처박는 바람에 낚싯줄이 날카로운 바위에 쓸리기 시작했다. 줄이 끊어질 것 같아 서슴없이 물로 들어가 바위 반대편에 서서 침착하게 릴을 감았다. 한 평생 같은 십 초가 지나고, 드디어 은빛 실루엣이 수면에 넘실거렸다. 빛나는 은린 갑옷을 입은, 6년을 기다린 내 꿈의 물고기 넙치농어였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68센티미터. 큰 사이즈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인생고기다. 대학 교수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에 대학 교수보다 넙치농어를 잡아본 사람의 수가 훨씬 적을 것이다. 누가 더 귀한가? 나는 넙치농어를 잡은 사람이다. 거친 제주바다가 내게 준 선물은 넙치농어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해내겠다는 용기와 의지,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다.

2023-03-28

절망적인 희망

착하다는 말이 싫다. 나는 3자매 중 장녀이면서 동생들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난다. 동생들은 늘 보살펴야 하는 존재였으며 가장 소중한 물건은 거듭 양보해야만 했다. 자연스레 나는 물건과 사람에 대한 애착을 줄였다.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나 친구가 생기게 되는 순간 얼마 못 가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었다.동시에 동생들을 보살핌으로써 착한 언니, 착한 딸로 인정받는 것이 당시엔 큰 칭찬으로 여겨졌다. 타인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 인정받는 사랑은 동생들뿐만 아니라 늘 타인에게 베풀어야 하는 나의 덕목이자 행동지침이 되었다.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그들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지나치게 조용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과장하여 행동했다. 공부는 못해도 상관없지만 나쁜 길로 빠져 부모의 마음을 속 썩이는 나쁜 딸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엄마와,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착하게 커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아빠의 말을 제일 좋은 칭찬으로 여기던 때였다.나는 착하다는 말이 정말 싫지만, 사실 지금도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선 극도로 말을 아낀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타인의 하는 말의 처음부터 끝까지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며 행동 하나하나에 많은 신경을 쓴다. 조금이라도 나의 허점을 보이게 된다면, 그래서 실수가 많은 허무맹랑한 사람이라고 여겨져 결국 쟤는 참 괜찮은 애야, 라는 말을 듣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또는 감정에 대해 주도적으로 사고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을 착한아이 콤플렉스라 부른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란 늘 위축되어 있으며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가 원하고 느끼는 것을 지속적으로 억누른 것을 말한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나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하지만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하는 순간이 쌓이고 결국 나조차 스스로를 인정해 주지 못하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 단절이 찾아온다. 실은 타인을 위한 진짜 호의가 아니었음을 깨달으며 그 가식적인 비좁은 마음이 드러났을 때에 내면이 위축되고 쓸쓸함만이 남아 자리한다.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닮고 싶은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닮고 싶은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만18세 나이에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가수 이상은의 ‘담다디’는 밝은 멜로디이지만 가사를 뜯어보면 그대는 나를 떠나려고 하는 상황이다. 그대가 나를 떠나려고 하는 원치 않는 상황임에도 이상은은 나를 떠나지 말라며 쾌활한 노래를 부른다. 곡에서 가장 명랑한 부분이면서 계속 반복되는 가사인 ‘담다디’엔 의미가 없다. ‘담다디’의 뜻을 정확히 모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떠나려는 커다란 상실을 열렬히 해석하여 젊은 날 이별의 슬픔을 자유롭게 노래하기 때문이다.강변가요제 당시 날씨는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상황이지만 대부분 많은 이들에게 쾌청한 날 속의 밝은 무대로 오래토록 기억된다. 실연의 아픔과 슬픔을 행복한 멜로디로 표현하여 신나는 무대를 만들어 내는 것, 흐린 곳에서의 밝고 환한 멜로디는 얼마나 닮고 싶어지는지 모른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프랑스 문학가이자 ‘슬픔이여 안녕’으로 알려진 프랑수아즈 사강은 삶은 하나의 끔찍한 농담이며, 인간이 공포에 질린 고통에 가장 좋은 해독제로 유머를 꼽은 바 있다.사강은 사람이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희망이며, 삶은 공연이 끝난 희극처럼 그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유쾌한 극으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여기서 사강이 말하는 희망은 생존을 희망하라거나 고통을 극복하자는 단순한 희망이 아닌, 절망적인 희망이다.절망적인 희망이란 용납할 수 없는 타인이 있을지라도 그의 입장을 이해하여 유쾌한 농담으로 희망을 지향하는 것이다. 유쾌하고 터무니없는 행동엔 이유가 없으며, 때문에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는 무상의 행동이라 말한다.어쩌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무런 대가도 보답도 바라지 않는 무상의 행동일지 모른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펼치고서 이상은의 ‘담다디’를 듣는 주말 오후, 괴로움 속에서 무상의 ‘담다디’를 흥얼거려 본다.

2023-03-28

미식여행

우정구 논설위원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사람을 흔히 미식가(美食家)라 부른다. 이때 미의 한자가 맛을 뜻하는 미(味)가 아니고 아름답다는 의미의 미(美)를 쓰는 게 특별하게 눈에 띈다. 음식을 단순히 맛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아름다움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다.언제부턴가 우리 생활주변에도 이런 미식가들이 놀랄만큼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종의 취미처럼 생활하는 이들이다. 맛있는 한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몇 시간도 기다리고, 심지어 수백㎞도 이동해 찾아 나선다.맛을 주제로 한 TV 오락물이 넘쳐나고 여행을 하는 데 있어 그 지역의 대표 맛집을 찾아보는 것은 이제 필수다. 그 지방의 아주 오래된 노포(老鋪)식당이 주목받는 것도 미식문화 확산의 영향이다.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 기시다 총리가 만찬 회담을 했던 장소인 도쿄 긴자의 렌가테이(煉瓦亭)도 128년 된 노포식당이다. 일본식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원조식당이다.내 지방 전통문화를 이해시키는 데는 음식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방마다 서로 다른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문화의 차이이자 특성이다.일본의 전문 미식가를 포함한 미식여행단이 경북을 찾았다. 지난 21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청도와 영천, 영덕, 울진, 청송, 경주 등 7군데를 방문, 그 지역의 특산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청도에서는 미나리와 삼겹살, 영천의 육회비빔밥, 울진에선 대게, 청송에서는 닭요리 등을 맛보고 귀국했다. 경북의 매력적인 문화와 음식이 일본에 소개될 좋은 기회였으면 한다. 잘만하면 미식여행이 경북관광의 효자가 될지도 모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28

헌법재판소가 날개 달아준 ‘입법폭주’

심충택 논설위원 헌법재판소가 지난주 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 법안에 대해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민의힘이 “절차를 어긴 이 법을 무효로 해달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지 11개월 만이다. 헌재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적 사고를 수용한 것이다. ‘절차상 하자가 있으면 유죄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와도 모순된다.민주당은 작년 4~5월 검수완박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위장 탈당 등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했다. 법사위 통과를 위해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킨 뒤 안건조정위에 넣어, 이 위원회를 무력화했다. 안건조정위는 국회 과반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다수당이 수적 우세를 악용해 법안을 함부로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제도다.상임위에서 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소속 의원 수가 가장 많은 민주당 조정위원 수와 비민주당 조정위원 수를 같게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탈당한 민 의원을 조정위원에 포함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이와함께 여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해 ‘회기 쪼개기’ 수법도 동원했다. 헌재는 이런 행위를 위법으로 판단하면서도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전면 차단해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효라고 했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이번 헌재 결정으로 앞으로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어떤 불법과 편법, 꼼수를 저질러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어졌다. 이와관련 법원장 출신인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이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더이상 지켜지지 않아도 되고, 절차에 어떠한 위헌·위법이 있더라도 형식적인 다수결 원칙만 지켜지면 된다. 입법절차의 위헌·위법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했다.현재 국회에는 여야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야당이 본회의 직회부(법사위 패싱)를 추진하고 있는 법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민주당은 지난주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과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직회부한 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통과시켰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호 법안으로 불린다.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 방송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상태다.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모든 의사가 투사가 돼 총궐기에 나서겠다”고 밝혀, 또 한번의 국가적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노란봉투법’도 본회의에 직회부할 계획이다. 상임위 의석수를 보면, 민주당이 직회부할 수 있는 상임위가 전체 17곳 중 6곳에 달한다.헌재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입법 폭주에 날개를 달아주면서, 민주당은 이제 국회에서 여야합의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입법 과정마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 강행 카드를 남발할 경우,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2023-03-28

21세기 한중일 삼국지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요즘 일제 강제징용 배상금 처리 문제로 벌집을 쑤신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는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도 선진국인 일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니, 미쓰비시, 혼다, 토요타 등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을 호령하던 1980년대에도 그랬다. 그 기업들이 만든 제품은 사용하면서, 정작 그 제품을 만든 기업과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었고, 저변에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잃어버린 10년을 훌쩍 지난 일본,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경제 강국이고 과학기술 강국이다. 다른 편 이웃 중국은 어떤가. 시진핑 집권 이후 등장한 표어, 중국 굴기. 2004년 독일회사 지멘스에서 일할 때 종종 듣는 질문이 있었다. 세계시장에 등장한 화웨이라는 중국기업의 기술력과 사업 전망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는 중국기업들이 내수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막 진출할 때였다. 나도 궁금했었다. 그러나 궁금함은 10년도 지나지 않아 풀렸다. 화웨이는 무섭게 성장하여 이미 세계 최고를 다투고 있었다. 중국은 그 이후로도 괄목할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이제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겨누는 경제 강국이다.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대륙 세력과 일본의 해양 세력 사이에 놓여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3위의 경제 대국이다. 2022년 발표된 국내총생산(GDP) 자료에 의하면, 미국 25.03조 달러, 중국 18.32조 달러, 일본 4.30조 달러. 우리나라는 1.73조 달러 13위 수준이다. 국가경제력이 국가경쟁력의 매우 중요한 지표라는 점에서 볼 때, 아직 우리나라는 일본을 따라잡지 못했고 중국은 진작 우리를 추월했다.중국은 14억의 인구 대국이다. 그렇기에 개인 소득은 낮지만, 국가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은 우리나라의 10배 이상이다. 2023년 중국의 국방 예산은 전년 대비 7.2% 증액한 293조 원으로, 우리나라 57.1조 원의 5배 이상이다. 올해 일본의 국방 예산 규모도 한국보다 많다. 냉정히 볼 때 국가가 전략적으로 동원 가능한 경제력 면에 있어서, 한중일 삼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떨어진다.우리 이웃들은 세계적 경제 강국이고 기술 강국이다. 중국과 일본, 더이상 무시하거나 도외시할 수 없는 이웃이다. 세계정세는 우리에게 중국과 일본, 다시 말해 중국과 미국 중 어디에 더 긴밀하게 연결될 것인지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선택은 한반도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미 19세기 말 시작되었고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이어질 듯하다.중일 양국과 규모로 경쟁해서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우리는 내용으로 내실로 뛰어나야 한다. 우리는 이미 몇몇 분야에 세계 최고를 경험했다. 초격차, 이제 우리의 세계 최고는 더 깊이 있고 더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 어느 한 편으로 떠밀려 속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균형의 중심에 설 수 있다. 2023년의 한중일 삼국지, 우리에겐 생존하고 번영할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2023-03-28

영웅을 기리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벌써 몇 차례의 꽃이 피고지면서 3월이 저물어 가고 있다. 새봄과 함께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출발을 하게 되는 3월은 언제나 설레고 희망차다.지천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꽃의 자태에 마음이 쏠리기도 하지만, 유난히 많은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게 되는 3월이기도 하다. 삼일절을 비롯 3·8민주의거, 3·15민주의거기념일, 서해수호의 날 등과 함께 필자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인 3월 26일을 짐짓 기억하며 경건한 마음을 되뇌어본다.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를 맞은 올해 3월에 본 영화 ‘영웅’은 벅찬 감동과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영웅’은 1909년 10월 26일, 민족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처단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 준비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를 담은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촬영 이후 거의 3년만인 작년 말에 개봉한 영화로 뮤지컬로도 동시 개막하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나라를 위해 싸웠다면 과연 누가 죄인이고 누가 영웅일까? 냉혹하고 암울한 시대에 단지동맹(斷指同盟)까지 하며 혈서를 쓰고,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의 유지에 힘쓰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의, 숨막힐 듯 긴장되고 급박한 상황을 드라마틱한 연기와 완급의 뮤지컬로 풀어내며 박진감과 호소력을 더한 보기 드문 걸작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정 부분의 연출과 각색을 곁들였지만,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의 숨겨진 이야기가 원작 뮤지컬 영화 출연진의 열연과 음악, 노랫말의 힘으로 되살아나, 영화의 웅장한 스케일과 뮤지컬의 깊은 울림으로 절절한 감동과 자긍심을 선사했던 것 같다.오로지 구국의 일념,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으로 군인의 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을 다한 안중근 의사의 잊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풀고 바로잡아야 할 과제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순국 직후 일제가 자행한 안 의사 주검의 비밀스러운 은닉으로 현재까지도 유해를 찾지 못해 안 의사는 그토록 원하던 독립된 조국의 품에 잠들지 못하고 있으며, 여순 옥중에서 집필하다가 만 미완성의 동양평화론 원본이나 이등박문의 저격장면을 담은 원본필름 등을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해도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다. 사형집행이 예정된 날에도 담담하게 휘호를 하며 안중근 의사를 경외한 일본 간수에게까지 유묵을 전하는 등 현재 70여 점 남아 있는 묵적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치와 의미부여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정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안중근 의사가 1909년 하얼빈에서 총성을 울린 지 딱 다섯달만에 평화와 독립을 부르짖으며 가장 치열하게 빛나는 서른 한 살의 생을 마감했다. 생명을 바쳐 독립운동을 실천한 애국자요 한국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민족의 영웅이자 살신성인의 애국선열을 길이 기리며 기억해야 하리라.

2023-03-28

계절근로자

홍석봉 대구지사장 영농철이 다가왔다. 청년들이 씨가 마른 농촌에는 영농 인력 구인난이 심각하다. 그래서 지자체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확보에 목을 맨다. 이들이 없다면 한 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무단이탈,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농촌에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필수적인 존재다.경북 의성군은 지난 23일 입국한 필리핀 시닐로안시 계절근로자 26명을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투입했다. 의성군은 농가주와 계절근로자 대상 근로조건, 인권 침해 방지 등 안전과 범죄예방교육을 했다. 김천시는 캄보디아 51명, 라오스 49명 등 100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오는 4월부터 지역 농가에 투입한다. 농업기술센터는 김천의료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의 마약검사 비용을 지원한다.정부는 올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2만4천418명을 배정했다. 지난해 1만536명에 비해 132% 증가한 규모다. 체류기간도 현행 5개월에서 10개월로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계절근로자를 고용하는 농어가에는 산재보험료 부담도 줄여준다. 하지만 무단이탈은 ‘혹’이다. 체류기간이 끝나고 잠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당국이 단속인력 부족과 계절근로제 위축을 우려, 적극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지자체마다 주거 및 의료혜택 지원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생활편의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언어 소통 도우미를 배치해 사회적응도 돕는다.외국인 근로자 말고 대안은 없을까. 대구 남구와 고령군이 내놓은 노인일자리 부족과 농촌 인력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도-농 상생을 위한 노인 일자리 창출’이 눈에 띈다. 도시 노인의 잉여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계절근로자와 도시 노인이 농가에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7

봄이 정치인에게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의 암흑기에 시인 고영민은 ‘봄의 정치’라는 시에서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봄의 희망으로 국민의 분노를 위로했다. 독재에 대한 저항과 희생은 민주화시대를 열었지만, 권력정치의 퇴행은 또 다시 주권자의 봄을 빼앗아가고 있다.봄은 왔건만 우리네 삶은 여전히 춥다.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소명을 망각한 권력은 봄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권력이 봄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오관(五官)으로 봄을 접촉하지만 감각기관의 뿌리에 있는 마음으로 꿰뚫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정치인들이 봄으로부터 배워야 할 그 첫째는 ‘유능제강(柔能制剛)’, 즉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가르침이다. 봄은 폭염의 여름, 혹한의 겨울과는 달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계절이다. 봄은 권력에게 ‘온화하고 따뜻한 정치’를 하라고 말한다. 팬덤(fandom)에 의존하는 강성정치는 상대의 적대심만 불러올 뿐이다. 합리성을 상실한 극단의 정치로서는 온건한 합리정치를 결코 이길 수 없다.정치인들의 강성 발언은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한다. 타협을 거부하는 독선은 반민주적 태도다. 정치인의 사고가 합리적이고 유연할 때 비로소 정쟁은 사라지고 정치가 살아날 수 있다. 유연한 정치는 자신을 낮출 때 가능하다. 겸손은 자기성찰을 통한 능력 한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나온다.둘째, ‘인고(忍苦)’의 가르침이다. 봄꽃들의 곱고 여린 모습의 뒤에는 모진 겨울을 견뎌낸 인고의 시간이 숨어있다.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는 혹한의 고통을 겪어야 맑은 향을 낼 수 있다. 새 봄을 열기 위해 애쓴 꽃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한국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여야 정치인들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정치는 독재정치와 달리 정치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한 결과물이다. 때문에 민주주의는 ‘결과(result)보다 과정(process)’을 중시한다.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대화와 타협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숙성된 장이 맛있듯이 우리의 정치도 숙성되어야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마지막으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가르침이다. 활짝 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는 것처럼, 천하를 호령하던 제왕적 권력도 한 때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이다.정치의 세계에서 영원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의 봄에도 멀지 않아 가을이 찾아오고 혹독한 겨울이 오면 끝난다. 정도(正道)정치는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때 가능하다. 게다가 권력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이니 목에 힘주지 말고 늘 겸손해야 마땅하다.봄은 사계(四季)를 시작하는 계절이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도 봄이다. 이제 여야 정치인들은 ‘전쟁 같은 정치’를 멈추고, 봄의 가르침에 따라 유연한 정치, 겸손한 정치, 그리고 대화의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2023-03-27

청송(靑松) 주왕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자연은 인공적이지 않을 때, 그 어떤 꾸밈도 필요치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다.산세가 험준하여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나는 청송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있다. 이 일대는 선캄브리아시대 변성암·응회암 산악지형, 중생대 퇴적암과 공룡발자국 지형, 신생대 관입암맥 지형 등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여러 전설이 전해지는 주왕산,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주산지, 신비한 하얀 돌이 즐비한 신성계곡, 돌 속에 꽃을 품은 구과상 유문암(꽃돌) 등 가장 순수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주왕산은 우리나라 3대 암산이자 조선 8경으로도 유명하다.암석이 병풍 같다고 하여 석병산, 김주원이 은거했다고 하여 주방산 또는 대둔산, 중국 주왕이 피신했다고 하여 주왕산, 조선 8경으로서 작은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소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주왕산을 유람한 기록만 36편이 남아 있는데, 특히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1690~1756)은 “돌로만 골짜기를 이뤄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눈은 똑같았던 모양이다.주왕산 초입 주왕계곡 탐방로에 들어서면 7개의 커다랗고 하얀 기암단애(旗巖斷崖)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깃발 바위’라는 뜻인 기암은 주왕의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중국 당나라 덕종 15년에 진나라의 복원을 꿈꾸던 주왕이 전쟁에서 패하여 주왕산에 숨어든다. 신라 마일성 장군은 세수하러 나온 주왕을 화살로 맞혔고, 신라 병사들은 승리를 알리는 대장기를 이곳에 세웠다. 죽은 주왕의 피가 골짜기를 흘러 수달래라는 붉은 산철쭉을 피워냈다.’ 이와 더불어 주왕이 숨었다는 주왕굴, 주왕의 딸 백련 공주가 성불했다는 연화굴, 무기를 숨겼다는 무장굴은 모두 주왕과 관련된 이름이다.대전사(大典寺)에서 왼쪽 갈림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상단부의 바위에 비해 하단부의 주상절리(柱狀節理 : 다각형 기둥의 암석이 모여있는 모양새)가 잘 드러나는 급수대라 불리는 바위가 보인다.급수대에는 신라 무열왕의 6대손 김주원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37대 선덕왕은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으나 홍수로 인해 신라에 오지 못했고,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겨 상대등 김경신(38대 원성왕)을 대신 왕으로 옹립했다. 김주원은 주왕산에 머물며 물이 귀해지자 계곡에서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했다.’ 전설에서는 하늘의 뜻이라 했으나 김경신은 무력으로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김주원은 지금의 강릉으로 물러나 지냈으며, 30년 뒤 그의 아들 김헌창이 ‘억울하게 왕이 되지 못한 아비의 한’을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킨다. 신라말 김헌창의 난은 9개주 중 5개주가 가담한 대규모 난이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주왕산에서 진압되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전해진다.급수대 옆의 봉우리인 학소대는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 하여 불리는 이름이다.‘사냥꾼이 학 한 마리를 쏘아 죽이자 다른 한 마리는 구름 사이로 날아가 버렸다. 사냥꾼이 집에 돌아와 보니 가족들이 모두 죽어있었다.’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은 신선 세계로 가는 길목이라 여겨져 예로부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청학동이라 불리기도 했다. 학소대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은 용추·용연폭포로 이어지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이 있는 곳이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주왕산은 산세가 험준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푸근한 이웃집 할아버지가 품어주는 느낌을 받는다.이는 산봉우리가 다른 산들에 비해 뭉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형은 경상분지(평지)에서 화산활동으로 인해 지면이 솟아올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시루봉, 학소대, 급수대, 연화봉과 맞은편의 병풍바위도 평지였다가 산지가 된 뭉뚝한 산봉우리 모양이다. 백악기 말 경상도 일대는 경상분지라는 저지대가 지각변동으로 인해 형성된다. 경상분지는 퇴적암과 화성암 위주로 이뤄진 유라시아판의 끝부분으로, 원시 태평양판과 수시로 마찰을 일으켰고 이로 인한 화산활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화산재가 쌓인 두꺼운 경상분지 일대의 지층은 빠르게 식으면서 틈이 생기고 틈을 중심으로 침식되어 주상절리가 형성됐다. 청송의 주왕산은 9번 이상의 화산 분출과 지반의 융기로 만들어진 지형이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지형만큼이나 주왕산 일대의 풍광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지상 최고의 절경이다.주왕산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지형의 형성과정도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역사와 사람을 함께 품어 온 이야기도 몹시 풍부하다.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이야기, 어떤 꾸밈도 없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품은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머금은 채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3-27

부유하는 이들의 쓸쓸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시시각각 독일군이 프랑스로 진군하면서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가기 위해 마르세이유로 몰려 든다. 이제 마르세이유는 떠나기 위해 머물러야 하며 머무르기 위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장소가 된다.1940년 파리가 함락되고 프랑스 의회 결의를 통해 전권을 위임받은 페탱이 독일과의 협상에 의해 프랑스 북쪽은 독일이, 남쪽은 괴리정부인 비시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프랑스를 떠날 수 있는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곳은 니스와 마르세이유 단 두 곳뿐이었다. 프랑스를 탈출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할 경유지 영화 제목인 ‘트랜짓(Transit)’이 바로 마르세유다.영화의 무대가 되는 마르세유는 각자의 최종 목적지인 ‘그곳’으로 가기 위한 중간지점으로, 다른 곳, 희망하는 그곳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다. 떠나기 위해 경유지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거대한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마르세이유는 실낱같은 희망과 이제 더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절망과 두려움이 뒤섞여 절실함으로 채워진 도시가 된다.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증서로 ‘출국비자’가 필요하다. 그 출국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경유지가 어디고 목적지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는 통과비자를 각 나라에서 받아야만 한다. 통과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체류비자를 받아야만 한다. 체류비자는 체류하고자 하는 나라에 다시 체류할 수 있는 증명을 해야한다. 이 과정 속에서 모순이 발생한다.위의 처음 문장에 썼듯이 ‘떠나기 위해 머물러야 하며 머무르기 위해 떠나야 한다는 증명’을 해야만 비자가 발급된다. 출국비자를 받기 위해 그 전에 발급받아야 하는 증명서들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난하게 흘러가면서 불안감은 증폭되고 떠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도착했던 경유지 마르세유는 종착지가 된다. 부조리한 과정 속에서 불안은 증폭되고 희망은 줄어들며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만 남는다.독일군의 대대적인 공습이 진행되자 파리는 봉쇄되고, 도망자 신분인 게오르그는 자살한 바이델이라는 작가의 유품을 들고 마르세유로 향하는데 유품에는 작가의 원고와 아내에게서 온 편지와 멕시코 대사관에서 온 비자 허가서가 있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게오르그가 호텔을 예약할 때 경유지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보여준다. 호텔 주인은 체류 허가증이 없기 때문에 게오르그에게 1주일치 선불을 요구한다. “여기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을 증명해 보라고 한다. “여기에 머물기 위해 머물지 않을 걸 증명하란 예기”가 된다.유품을 전달하고 사례비나 챙기려던 게오르그는 이제 멕시코 영사관 직원의 착오로 자살한 바이델로 오인받게 되면서 호텔 예약의 부조리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서 각자의 사연과 목적을 갖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 속에 합류하게 된다.영화는 1940년대의 이야기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현재의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한다.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것은 과거가 문제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1940년대는 유럽을 탈출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현재는 유럽으로 들어오려는 불법 이민자들이 공존하는 공간, ‘그곳’으로 가기 위한 욕망이 시대를 뛰어넘어 이어지고 있는 장소로써 마르세이유가 된다. 다른 세계로 열린 공간인 아름다운 항구도시 마르세유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닫힌 지옥의 공간이 된다.“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요? 떠난 사람일까요? 남겨진 사람일까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곳’과 ‘그곳’, 희망과 절망 사이에 깊은 쓸쓸함이 담긴다. 게오르그가 불법 이민 가족 소년의 라디오를 고쳐주면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몰고기도 집에 가고, 코끼리도 쿵쿵대며 집에 가고, 개미도 서둘러 집에 가고, 등불이 켜지고 날이 저무네”의 가사가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의 쓸쓸함을 표현한다.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관통하고 있는 경유지에 남은 사람들의 마음처럼./(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3-27

BTS는 왜 임영웅을 못 이길까

김진국 고문 2주 전 관훈클럽이 방시혁 하이브 의장을 초청했을 때다. 포럼이 끝난 뒤 함께 식사하면서 그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라고 했을 때 저출산 문제를 얘기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라고 말했다. 의외였다. 그는 세계 최정상급 방탄소년단(BTS)를 키운 아버지다. 대단한 사람인 건 알겠지만, 연예 기획사 대표의 최대 관심사가 ‘저출산’이라니.당시 그는 국내 최대 연예 기획사인 SM 인수 경쟁에서 막 손을 뗀 때였다. 이미 4천500억 원을 집어넣고, 수천억 원을 더 던지려고 준비했다. 보통 사람은 아파트 한 채를 사고팔 때도 혼이 나간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함께 식사한 하이브 박지원 대표는 “내부에서 그 주제를 깊이 토론했다”고 말했다.들어보니 그럴만했다. ‘한국에서는 BTS가 임영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 1월까지 유튜브 뮤직 차트를 보면 세계 기준으로 BTS는 79억7000만 뷰로 아이유(9억900만 뷰)나 임영웅(4억1900만 뷰)을 압도한다. 그러나 한국으로 한정하면 3억5200만 뷰로 아이유(4억4900만 뷰)나 임영웅(3억9000만 뷰)에 못 미친다.인구 구조가 피라미드형일 때는 젊은 층이 가요 시장을 주도했다. 인구 구조가 오각형 모양으로 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래쪽이 뾰족한 역삼각형으로 변해간다. 가요 시장도 필자 또래의 베이비부머들이 쥐고 흔든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30대 이하(13~39세)에서는 BTS가 29.4%로 1위, 40대 이상에서는 임영웅이 33.0%로 1위였다. 40대 이상은 10위까지 모두 트로트 가수다. 가요계까지 휘저어놓다니. 저출산 고령화가 발등에 떨어졌다.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아이가 평균 0.78명이라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비교가 안 되는 꼴찌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우리뿐이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젊은 층으로 갈수록 출산율이 더 낮다. ‘2022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만 13세 이상에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절반이다. 20대 이하는 결혼해도 자녀를 낳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먹을 것이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새끼를 낳아 주체를 못 하는 동물은 진화과정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라면서 “진화생물학자인 제가 보기에는 (저출산이) 아주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를 경제적·문화적 어려움 없이 키울 수 있어야 출산율이 올라간다는 말이다.과거에는 다자녀였다. 살기가 수월해서가 아니다.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 더 많이 낳았다. 주택비·교육비가 올라 아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한 아이 정책을 하면서 아이들이 ‘소황제’가 됐다. 한 아이 키우기가 과거 서너 명 키우기보다 어려워졌다. 뭔가 잘못됐다.2021년 경북의 합계출산율은 0.966명으로 전국 평균 0.808명보다 많다. 서울(0.626)이 가장 낮다. 그런데도 2019년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10분의 1의 땅에 사람이 계속 모인다. 이것이 생존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든다.윤석열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를 대폭 풀었다. 첨단 반도체 단지도 허용했다. 이해는 간다. 미국과 대만 등은 전력을 다해 지원한다. 아차 하는 순간 세계 경쟁에서 밀려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반도체뿐이 아니다. 수도권이 아니면 우수 인력 유치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도 포스코가 포항으로 본사를 옮긴 것은 이례적이고, 박수를 받을 일이다. 이러니 지방은 저출산 부담을 이중으로 떠안는다. 전국 시·군·구의 절반이 소멸 직전이다. 지방대학도 소멸하고 있다. 필자가 대학 갈 때는 서울대 다음은 지방 국립대였다. 이제 무조건 수도권 대학이다. 취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방에도 산업·일자리가 절실하다. 시장·병원·문화시설이 필요하다. 국가든 지방이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3-26

미래의 농촌환경에 대한 고민

김하수 청도군수 시간이 흐르며 사회환경과 의식구조도 바뀌고 생활환경과 밀접한 먹거리도 변했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발생한 지구 파괴는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사계(四季)가 뚜렷했던 우리나라의 계절도 이제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계절의 혼선에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집중호우와 극심한 가뭄, 때늦은 폭설 등으로 당황하고 있다.지구환경 변화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세계가 노력하며 지난 5일 국제기구와 세계 각국의 통제권 밖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온 공해(公海)와 심해저(深海底)의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공해 및 심해저 등 국가 관할권 이원지역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 및 지속 가능 이용을 위한 협정안’이 유엔본부에서 타결됐다.15년간 논의를 거듭하다 극적으로 합의된 협정안은 바다 표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공해의 환경과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공해와 심해저의 어로작업, 항로설정, 광물채굴 등 제반 활동에 적절한 제약이 가해지고 정기적인 환경 영향 평가로 보전에 앞장서게 된다.또 2021년 11월에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 변화로 전 세계가 홍수·가뭄·폭풍 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어 석탄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조약을 영국 글래스고에서 체결하기도 했다.이처럼 지구의 무분별한 개발과 방치로 발생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세계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이윤 창출,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를 추구하던 기업들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이해관계자 중심의 ESG 경영을 도입하고 있다.ESG는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여기서 E는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환경적 지속 가능성, 또는 환경적 책임을 뜻한다.청도처럼 농업이 중심이 되는 지방 자치단체에 기후의 변화는 민감한 문제이고 이를 따라가는 농작물과 생산기법 터득, 미래를 대비하는 작물의 선택과 청년 농민의 육성은 중요하다.청도는 밤낮의 기온 차이가 뚜렷하고 물이 맑고 공기가 깨끗해 1960~1970년대에는 사과 재배의 최적지였으나 한반도 기온이 오르며 농작물 재배 한계선 북상에 따라 생육하기에 좋은 감나무가 주요 수종으로 자리 잡고 특히 지역에서 유일하게 생산되는 씨 없는 감 청도반시가 유명세를 떨치고 200년 전부터 복숭아가 재배되는 등 과실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이상 기후변화는 매미나방과 꽃매미, 갈색날개 매미충 등 외래·돌발 병해충 발생을 증가시켜 지역의 산림이나 과수에 피해를 일으키며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에 걸림돌이 되며 직격탄을 맞고 있다. 또 꿀벌에 기생하는 응애가 만연해 꿀벌의 집단폐사와 꿀벌이 벌통에서 사라지는 손해를 입고 있다. 군은 돌발 병해충 방제에 나서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아열대 작물 재배단지 조성을 지역 3개소에 추진하고 바나나와 파파야, 애플 망고 등 아열대 작목을 재배하는 농가를 지원하며 아열대 작물 테스트베드 조성을 통한 전문능력을 기르고 있다.청도군이 미래를 위해 추진하는 지역 농업의 육성책은 청도 브랜드 명품화 농업 육성과 살맛 나는 부자 농촌 건설이다. 청도 브랜드 명품화 농업 육성은 청도 반시의 명품화로 청도 반시를 원료로 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생산·유통·홍보·판매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마케팅과 제품 표준화, 금이 함유된 기능성 복숭아 생산, 미나리 신상품 개발, 고품질의 아열대 작물 생산 등이다.살맛 나는 부자 농촌을 위해 청도 반시 산업화 사업을 지속화하고 농산물 유통 센터 개설 등의 활발한 유통으로, 성공적인 귀농을 위한 정착 지원비 지급, 농업 창업 자금과 농가주택 마련, 결혼 이민자 농가 소득 증진 지원 등 농민과 귀농인의 성공적인 정착을 돕는 것이다.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작물을 개발하고 이를 위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행정이 지원한다 해도 실행에 옮길 인력, 젊은 인력이 없다면 그림의 떡이다.인구소멸지역의 하나인 청도군에 지난해 10월부터 유입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하늘이 청도에 베푸는 선물이라고 받아들이며 미래를 생각하는 농업환경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누구나 안심하고 적응할 수 있는 청도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2023-03-26

탱자나무 골목을 달리다

유년의 기억은 골목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길처럼 넓거나 쭉 뻗은 곳이 아니라 옆으로 새어 나온 구불구불한 골목이다. 친구들과 담벼락 아래 앉아 구슬치기와 딱지치기하며 놀았던 곳. 그 골목길을 뛰어가던 부모님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부모님의 결혼은 읍내를 떠들썩하게 했다. 잘생긴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가난했고 외모조차 평범했다. 누가 봐도 기우는 혼사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벌인 일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었다. 처음에 교사 생활을 하다가 미래가 없다며 그만두었다. 곧 작은 도시에서 보험회사를 차렸지만, 그것도 고객과의 실랑이로 금방 접었다. 하는 것마다 성과가 없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시장 모퉁이서 국수를 팔아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 처지를 딱하게 여긴 외할머니께서 아버지를 불러들였다.아버지는 외가 동네에 방을 얻었다. 대문 곁에 조그만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었다. 부모님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종일 들에 나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해도 살림은 좀처럼 일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에 대한 욕심이 없었고 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지 못하는지라 먹고 사는 것에 늘 허덕였다.또 처가붙이로 살면서 아버지의 마음은 자주 골목 밖으로 나돌았다. 마음이 밖에서 서성이다 보니 농사일은 항상 어머니 몫이었다. 술 때문에, 여자 때문에, 이곳저곳 늘어놓은 외상값 때문에 어머니의 속을 어지간히 태웠다. 저녁때가 되면 골목 저쪽에서부터 술에 젖은 질펀한 노랫가락이 아버지를 앞섰다. 밭에서 일한 어머니의 수고는 뒷전이고 시원한 김칫국부터 찾았다. 그러고는 구판장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묻지 않아도 외상장부에 한 줄 더 그었다는 말이다.어느 날, 어린 남동생이 마당에서 놀다가 물통에 고꾸라졌다. 물을 많이 먹어 눈동자가 뒤집히고 몸이 축 늘어졌다. 뒤란에 있던 부모님은 놀라 뛰어나왔다. 순식간에 동생을 업은 아버지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끼고 골목을 냅다 달렸다. 지금껏 가족을 위해서 그렇게 민첩했던 적은 없었다. 병원을 향해 달음박질하던 모습은 평소의 아버지가 아니었다.골목을 달리다 캑캑거리는 소리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뛰는 것을 멈추었다. 등에 업혀 있던 동생의 배가 홀쭉해진 것을 보고서야 골목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동생이 토해낸 멀건 물이 아버지의 땀과 섞여 흘러내렸다. 새파랗게 질렸던 아버지는 동생의 얼굴에 핏기가 돌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시 가득한 탱자나무 골목은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아버지의 문이었다.골목은 추억 속에서도 일한다. 초등학교 때였다. 평소에 나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었다. 배가 고프면 내가 먼저 상위의 밥을 먹어야 했고, 도시락 반찬도 언니와 동생의 것에 코를 킁킁거리며 확인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하루는 마루에 앉아 밥을 먹는데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다. 이순혜 수필가 순간 나는 얼굴이 벌게졌고 목에 걸린 가시를 빼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어도 보고 밥을 한 숟가락 가득 넣어 꿀꺽하고 삼켜도 보았지만 깊이 박힌 가시는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 등을 세게 쳐도 가시는 빠지지 않았다.순식간에 가슴이 조여 왔다. 나는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구르면서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채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업고 골목을 달렸다. 아버지는 내 신발을 들고 어머니를 뒤따랐다. 마을 입구까지 뛰어가는데 희한하게도 목에 있던 가시가 사라졌다. “엄마, 가시가 빠졌나 봐.” 부모님은 골목에 주저앉아 가슴을 쓸어내렸다.탱자나무 골목에서 아직도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내 부모님의 소리다. 동생을 업고 뛰던 아버지, 나를 업고 뛰던 어머니의 숨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골목이 품은 추억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빠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오늘처럼.

2023-03-26

독도(獨島)

우정구 논설위원 독도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다. 한반도 동쪽바다 동해에 있는 총둘레 5.4km의 대한민국 최동단 바위섬이다. 우리는 섬으로 부르지만 국제해양법상으로는 암초로 분류된다.국제법상 섬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경제활동이 가능할 때 부르는 호칭이다. 독도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독도 안에서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암초로 분류한다는 뜻이다.독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누어져 있다. 그에 딸린 부속도서가 89개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는 독도 섬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다양한 어종의 수산업 보고인데다 천혜의 절경으로 관광자원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안개 등으로 시야가 가릴 때가 많으나 열흘에 한 번쯤은 울릉도 고지대서 육안으로 볼 수 있을만큼 울릉섬과 가깝다.고문헌에 따르면 독도는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라 지증왕 때 우산국이 신라에 병합되면서 부속섬 독도도 편입된 것으로 기록돼 있고,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가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군을 행정편제안에 넣으면서 조선시대에도 행정구역상 우리의 영토로 존재했다.2005년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 주장하며 지방정부인 시마네현이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했으나 그런다고 역사가 뒤집어질 리 없다. 독도를 관할하는 경북도는 2005년 7월에 10월 한 달을 독도의 달로 제정, 선포했고 시마네현과 자매결연도 파기했다.독도의 날 법정기념일 제정 관련해 정치권의 거친 공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유권 수호라는 독도 문제의 본질로 본다면 다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독도를 정치적 유불리의 대상으로 삼은 게 불편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26

재난의 정수리로 돌진하는 청춘

김규종 경북대 교수 3월 8일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만화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2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코로나 3년 동안 새로 만들어진 풍속도 가운데 하나가 영화관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영화 관객이 확연히 줄었다. 천만 관객 영화가 드물지 않은 영화판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비싼 입장료다. 조조할인을 받아야 1만1천원이니, 젊은 세대에게는 적잖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이런 형편에 ‘스즈메의 문단속’이 순항하고 있는 게다. 영화는 이른바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면서 재난 드라마와 사랑 이야기까지 동반한다. 그렇다고 구성이나 사건 전개, 갈등과 해결이 밋밋하지 않다. 한 마디로 신카이 마코토의 저력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역작이다. 규슈에서 시작하여 시코쿠의 에히메를 지나 혼슈의 고베와 동경에 이르는 장정(長程)이 지루하지 않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강도 7 이상의 지진이 지나간 곳이다.일본을 괴롭히는 전통적인 자연재해는 화산 폭발, 태풍 그리고 지진이다. 태곳적부터 이런 자연재해에 익숙해진 일본을 우리는 매뉴얼 사회라 부른다.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전해주는 재난 공화국 일본. 하지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 망연자실 우왕좌왕 뒤죽박죽, 문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하토야마 유키오의 민주당 정권이 아베 신조의 자민당으로 넘어갔다.12년 세월이 흐른 2023년 3월 일본은 대지진을 얼마나 극복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스즈메의 문단속’은 이런 정황을 배경에 두고 ‘지금과 여기’의 일본을 보여준다. 평범한 여고생 스즈메와 그녀가 등굣길에서 마주친 대학생 소타가 자연재해와 대결하는 장면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문단속’은 도둑이나 강도를 막아내는 작은 범주의 노동이지만, 영화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래서 조금은 낯선 제목이다.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일본 열도는 화산과 지진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다. 언제 어디서든 지진과 화산이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감독의 설정이 흥미로운 게다. 청춘남녀가 재난의 한복판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영웅성을 사랑의 당의정(糖衣錠)으로 달콤하게 포장한 ‘스즈메의 문단속’. 그래서 젊은 관객들의 발길이 영화관에 이어지고 있다.무기력과 무능력,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표현되는 현대 일본 청년들의 모습과 딴판인 남녀 주인공의 사유와 행동이 가슴을 따사롭게 적신다.만약 일본의 청춘들이 저런 양태로 성장·변화·발전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의 힘은 도전과 모험 그리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노인과 바다’의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른다.영화가 막을 내릴 즈음 한국 청춘들의 얼굴과 생각과 행동이 어른거린다. 과연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그들의 내면 풍경과 장쾌한 미래기획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하다.

2023-03-26

글로컬대학 발전을 저해하는 개념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 시안을 공개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해 지역의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한다.올해 비수도권 지역 총 10개 내외 글로컬 대학을 지정할 계획이고, 내년부터는 매년 5개 내외 글로컬대학을 지정해 2027년까지는 총 30개를 지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선정된 대학은 총 5년간 1천억원(매년 200억)을 지원 한다고 하니 파격적인 지역대학 지원책이다.또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제안서보다는 대학의 혁신비전과 과제를 핵심적으로 제시한 신청서 5쪽 분량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제안서 접수부터 혁신적이고 신선한 감을 주고 있다.지자체의 참여를 필수로 하고 있다는 점도 시선을 끈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내에서 인재양성-취·창업-지역정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구축하기 위해 글로컬 대학에 집중 투자를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정부가 매칭 형태로 지원하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정부는 “앞으로 글로컬 대학을 시작으로, 우리 대학이 도전 의식과 혁신 의지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경계를 허물고 담대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범부처와 지자체가 함께 장벽 없는 지원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그런데 이런 ‘글로컬 대학 30’ 육성전략의 발표 기사 옆의 안동시의 퇴계학당의 관련 기사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지난해 안동시 퇴계학당에서 공부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75명 가운데 54명이 수도권 대학에 합격해 지역 학부모들의 이목을 끌었다고 자랑스럽게 보도를 하고 있었다.지난 2012년 학당 개설 이후 퇴계학당은 고교특성화 교육 사업으로 안동시장학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지만, 서울 유명학원의 강사를 초빙해 수도권 대학의 진학률을 높이는 걸 큰 자랑으로 홍보하고 있었다.지역발전의 초석이 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퇴계정신에 입각한 인성교육은 물론 다양한 교육시책을 발굴·추진해 서울 및 대도시권에 못지않은 경쟁력 있는 교육여건을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 퇴계학당의 목표이면서 그 최종목표는 수도권대학의 진학률을 높이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아이러니컬 한 사실이다.수도권대학의 진학이 중요하다면 지역대학의 발전과 진학도 동시에 중요하다는걸 퇴계학당이 깨달아야 한다. 안동이 포함된 경북대구권의 경북대, 포항공대 등 명문대 진학률도 함께 공개하는 것이 퇴계학당의 취지에 맞는 것일 것이다.언젠가 포스코교육재단 관계자들이 서울대 합격률을 자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986년 지역에서 세계적 명문대학을 만든다는 취지로 설립된 포스텍은 포스코에 의해 설립되었고 포스코교육재단은 당연히 포스텍 합격률을 서울대 합격률과 함께 자랑해야 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자기가 나온 대학을 ‘지방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 해당 의원은 과거에도 ‘지방대 출신임에도 블라인드 채용으로 KBS 아나운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발언을 했는데, ‘블라인드 채용법’의 취지를 강조하기 위한 열성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출신 대학을 낮춘 것에 해당대학 학생들의 큰 반발이 있었다.우리는 사실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지방이란 단어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 지방공무원, 지방대학, 지방신문 등등,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문제는 지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방대’란 단어이다.세계화 시대에 반드시 고쳐져야 할 개념이 ‘지방’이란 단어의 사용이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좁은 나라의 미래의 번영은 세계화에 있다. 우리는 일체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지방에 있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중앙에 있다고 우수한 것도 아니다. 각 지역의 객체들은 세계로 도약하며 각개 약진을 해야 한다.정부가 수천억 수조원을 들여 글로컬 대학에 투자한들 퇴계학당처럼 수도권대학의 진학률을 목표로 하고 서울대 합격률을 자랑하는 지역의 풍토에서 어떻게 글로컬 대학의 육성이 가능할 것인가?글로컬 대학의 발전은 교육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우선 우리 자신들의 지역대학에 대한 인식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글로컬 대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은 바로 우리자신이고 우리의 잘못된 개념에 있다. 그러한 개념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역대학에 투자를 해도 지역대학의 글로컬 대학으로의 도약은 암울할 뿐이다. 정부가 일체 ‘지방대학’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글로컬 대학의 육성과 투자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개념이다.

2023-03-26

RE100은 우리 손에 달렸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RE100(Renewable Energy 100)은 기업이 제품의 생산, 유통, 보관 전 과정에 걸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이다. 구체적으로는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글로벌기업 간의 자발적 협약이다.2022년 현재 구글, 애플, GM, MS, 이케아 등 370개 글로벌기업이 이미 참여를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SK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한화큐셀, 고려아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KT, 삼성그룹 등이 참여를 공표했다.RE100이 그나마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해 2월 40% 가까운 시청률을 보인 대선후보 TV토론을 통해서였다. 당시 이재명 후보가 윤석렬 후보를 향해서 “RE100을 아느냐”고 던진 질문 덕분에 기후변화와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100가 기업 간 자발적 협약에 불과한데도 기업경영의 현실적인 위험요소로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이 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전달되어 사용되기까지 전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점이다.예컨대, 특정 업체가 판매하는 완성품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 생산업체도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해서 제품을 생산해서 납품해야 하고, 운송과 애프터서비스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전 과정에 모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RE100이 글로벌기업이나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모든 업종에 걸쳐 모든 중소기업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RE100은 대기업이나 기업인, 혹은 국가만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다. 국민 모두가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100%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 나간다면 RE100은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국민이 스스로 RE100에 참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각자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전자 제품을 모두 고효율·절전 제품으로 바꿔야 한다. 당연히 냉·난방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은 지붕과 주차장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전기세 제로를 실천해야 한다. 아파트에 산다면 옥상과 벽면, 거실 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전기세 제로를 달성해야 할 것이다.지금은 이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와 비용의 문제가 거의 해결된 상태다. 주민들의 참여와 노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공장을 운영한다면 우선 사용하는 에너지를 효율화하여 낭비 요소를 없애야 한다. 옥상, 벽면, 주차장에 태양광이나 소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하여 신재생에너지로 소요전력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만큼 스스로 실행해야 한다.중요한 것은 참여다. ‘우리는 안 해도 되잖아’라면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RE100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선언이고 협약이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세밀한 실천운동이 따라줘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참여는 물론이고 모든 빌딩과 공공기관, 산업체가 반드시 참여해야 비로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각급 지자체는 독자적으로 해당 지자체의 전기 총수요와 총사용량을 파악하여 스스로 RE100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농지나 유휴지에 태양광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현재 조례로 규제 중인 이격거리에 관한 주민들의 거부반응과 반발성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분쟁을 조정하는 과정에 시·군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태양광 설치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태양광 설치에 한국은 5년, 독일은 6개월, 중국은 2개월 걸린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태양광과 소형 풍력발전에 관한 법령 또한 미비한 실정이다. 독자적인 법령이 없이 사안이 있을 때마다 관련 법안에 끼워넣기식으로 대응한 탓에 정책의 일관성이나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법령정비가 필수적이다.RE100 달성은 시대적인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에너지전환 시대에 앞서가는 국가는 선진국이 되었고, 뒤따라가는 국가는 추락했다. 더군다나 신재생에너지는 원재료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햇빛과 바람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모든 자원이 부족하여 항상 자원을 수입하느라 막대한 돈을 내보내야 했던 우리나라로서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신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보다 우리나라의 일조량이 38%나 더 많다고 하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대전환 시대에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재편하고, 동시에 전 국민이 각자의 처지에서 RE100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에너지 자립을 바탕으로 에너지안보와 국가경쟁력 확보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에너지 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이고 동시에 국가경쟁력인 시대다. 국민 모두의 참여로 대한민국을 국가경쟁력과 에너지 경쟁력에서 새로운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RE100! 우리 손으로 해낼 수 있다.

2023-03-26

강건한 기업 생태계의 촉매제, 동반성장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12대 400년 동안 덕망으로 부와 명예를 이어오면서 한국적 자본주의의 모범을 보여준 경주 최부잣집,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현하여 오랜 기간 변함없이 주위의 존경을 받아 온 명문 가문, 참부자 정신실현을 통해 지역사회와 동반 성장한 최부잣집의 정기를 받아 보고자 지난 주말 지인들과 함께 경주 교촌을 찾았다. 오랜 세월 많은 과객이 드나들던 나지막한 용암 고택에 들어서니, 나무와 쌀의 향기가 배어있는 커다란 곳간이 보였다. 그 곳간 앞에는 작은 쌀통이 놓여 있었는데 욕심내지 말고 한 손으로 자기 먹을 양 만큼만 쌀을 가져가라는 나눔 철학의 글이 쓰여 있었다. 필자는 온 마을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그곳에서 주위 이웃들과 동반 성장한 최부잣집의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부와 명성을 누린 세계적인 명가 메디치 가문 역시 200년의 부를 유지했을 뿐인데, 어떻게 경주 최씨 가문은 400년이란 세월 동안 부와 명성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필자는 그 비밀의 핵심은 사회와 동반 성장한 결과라고 결론을 내렸다.동반성장이란 규모 차이가 있는 대상끼리 상생과 협력을 통해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도움이 되어 산업 생태계를 강건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최부자는 농사를 지을 때 소작인들과 동반성장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농사할 때 땅의 지주와 소작인의 비율을 7:3 이하로 분배하던 시기에 최부자는 5:5로 파격적으로 바꾸어 소작인에게 더 많은 성과를 주었고, 전체 수확량 만석의 총량을 정해 놓고 그 이상으로 거두어들이지 않으므로 소작농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그러면서 흉년이 들면 정도에 따라 소작료를 감면해 주기 때문에 소작인들은 최부자의 땅이 늘어나서 자기가 소작할 땅이 더 많아지기를 원했던 것이다.욕심부리지 않고 나눠 줬는데 더 돌아오는 기발한 지혜다. 일찌감치 나눔과 상생 경영을 실천한 최부자는 적정이윤 추구와 정당한 재산 증식을 통해 명예와 부를 400년 넘게 유지했다.포스코는 2005년부터 동반성장 전담 조직을 만들어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길을 택했다. ‘동반성장 지원단’, ‘혁신성장 지원단’ 등은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고 국내 산업계의 공급망을 강화하는데 많은 이바지를 했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고리를 풀고 상생의 해법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됐다.‘동반성장 지원단’은 사업파트너, 고객, 지역사회 등의 이해관계자와 영속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유지하였고, ‘혁신성장 지원단’은 중소기업의 혁신을 컨설팅하여 스스로 성장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철강기업의 계약상의 잠재력을 급속히 늘리는 등 기업의 영속성에 이바지했다.물통에 물을 담을 때 단면의 높이에 차이가 있으면 가장 낮은 수준까지만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기업들이 최부자나 포스코와 같은 지속적인 동반성장 플랫폼을 만들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주면 더 부강하고 더 윤택하고 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2023-03-26

어떤 경제적 자유인가?

유영희 작가 3천890원, 이 금액은 얼마 전 N이 SNS에 올린 이번 3월 도시가스 요금이다. 이 액수는 같은 기간 우리 집 요금의 50분의 1이고, 작년 8월 요금 4천180원보다 적다. N은 십여 년 전 어느 모임에서 만나 가끔 소식을 전하는 남자 후배인데 지방 출장이 자주 있어서 1년 365일 집에서 지내는 나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손이 너무 시릴 때만 조금 온수를 켰다고 하니 엄청난 근검 절약이다. 그가 한 만큼 따라할 수는 없지만, 이 포스팅을 보고 자극받아 나도 실내 온도를 2℃ 낮췄다가 이틀 만에 감기에 걸려 바로 원위치했다. 그의 친구들이 건강 걱정을 할 만하지만, 그래도 그가 이토록 절약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즘 일찌감치 경제적 자유를 얻어 파이어족이 되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많다던데, 혹시 N도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것일까?경제적 자유란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 자산소득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이고, 파이어족은 어느 정도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이 조기 은퇴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경제적 자유가 있다고 파이어족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파이어족이 되려면 경제적 자유는 있어야 한다.어쨌거나 자산소득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에 투자해서 100억 자산가가 되었다는 개그맨 황현희도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좋은 점이 시간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아무리 자산소득이 충분하다고 일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 최고의 부자라는 이재용도 일하고, 1년에 100억원 이상을 번다는 일타 강사들도 이미 충분한 자산소득이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전히 장시간 일한다. 황현희 역시 출퇴근 시간은 자유롭겠지만, 좋은 투자 종목을 찾기 위해 온 시간을 다 썼을 것이며 앞으로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자유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방해받지 않는 상태이다. 소극적 자유라고 하는 이 상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조건이다. 경제적 자유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일 뿐이다. 경제적 자유를 얻었어도 계속 일하기도 하고, 파이어족이 되어 더 이상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자기가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활동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시간을 통제하고 싶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시간이 필요한지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내가 하고 싶은 일이 1억 드는 일이라면 10억 가진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그러면 괜한 일에 힘 빼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남들이 좇는 경제적 자유를 따라 하느라 내게 필요한 것보다 더 힘을 쓴다면, 그만큼 내 꿈도 지연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마도 N은 분명한 자신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한겨울 도시가스 요금 3천890원은 빛이 난다. 이참에 남은 시간 나의 경제생활의 목표는 무엇일까, 새삼 다시 점검해본다.

2023-03-26

실직 중 지역가입자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지원

남상헌 국민연금공단 포항지사장 국민연금공단은 제도 시행 34년 만인 2022년 5월 ‘수급자 6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현재 수급자 622만 명에게 매월 2조8천억원의 연금을 지급하고, 포항지사 관내(포항시, 영덕군, 울진군, 울릉군) 수급자 7만4천명에게 매월 441억원의 연금을 적기에 정확하게 지급하여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수급자의 급속한 증가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생활 안전망으로서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나, 이런 성장의 이면에는 팍팍한 생활로 보험료 납부가 부담스러워 못 내는 분들이 아직 많다. 매월 내야 하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납부를 기피하기도 하며 소득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한다.한편 지역가입자인 국민은 연금보험료 중 일부를 사업주가 내주고 있는 사업장의 근로자와 달리 보험료 전부를 본인이 내고 있어 보험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볼 수 있음에도 그간 지역가입자인 국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복지 당국과 공단에 형평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또한 실직, 휴직 또는 사업중단 등으로 연금보험료 납부예외를 신청하신 분들은 대표적인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들로서 소득이 발생하여 보험료 납부를 재개하는 경우에도 경제적 사정상 다시 납부예외를 신청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이런 분들에 대한 우선 지원이 절실하였다.이에 작년 7월부터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동안 영세사업장에만 적용된 보험료 지원이 지역가입자인 국민까지 확대된 것이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제도가 국민에게 월 최대 4만5천원의 혜택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실직, 휴직 또는 사업 중단하신 분들의 보험료 부담도 최대 12개월까지 경감하게 되어, 제도 시행 6개월 만에 약 4만 명이 48억 원의 보험료를 지원받아 든든한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을 다시 납부하고 있다.이제 공단은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제도를 사각지대 해소의 초석으로 활용해 더 많은 국민이 연금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자 한다. 가능한 모든 국민이 ‘1개월 이상’ 가입하고 가입자는 최소 ‘10년 이상’ 가입해 월 ‘1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 기본이 바로 국민연금이므로, 연금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시길 바란다.

2023-03-23

역사는 흐른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역사의 강은 멈추지 않는다. 세월을 거슬러 거꾸로 흐르지도 않는다. 그 역사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지금 우리들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있다. 중국과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웃나라다. 중국과는 오랜 세월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는 종주국의 관계였고, 일본에게는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역사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지금도 중국은 우리나라가 과거 속국이었음을 말하고, 일본은 침략과 수탈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약소국이 아니다. 지도자,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영향력, 강력한 국제동맹, 강력한 군사력, 수출 등 여섯 가지 지표를 점수화해서 순위를 매긴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에서 한국이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꿈도 못 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세게 굴지의 경제대국 일본의 선진기술을 베끼고 배우기에 급급했던 우리가 드디어 일본을 따라잡고, 반도체산업과 휴대전화기 같은 일부 품목에서는 오히려 추월하는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아직도 전체적인 경제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산업이나 문화 전반에 걸쳐 당당하게 어깨를 견줄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일본은 지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을 공유하는 이웃 나라다.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된지 20년 만인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12월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주권의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한 국교정상화가 실현되었다. 반대 진영의 극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면서 강행을 한 것은 우리의 처지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양국 간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도부터 1975년도에 걸쳐 도입된 5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은 농림·수산업·광고업·과학기술개발·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서비스 부문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바탕이 되었다. 미진하게 남아있던 앙금의 대부분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 중에 오브치 게이조 총리와의 공동선언을 통하여 상당부분 해소가 되었다. ‘양국 간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한 것이다. 역사에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불구대천의 적국이었던 나라들도 필요에 따라서는 손을 잡는 게 역사다. 북중러 공조와 북핵의 위협 앞에 한미일의 공동대처는 당면한 필요조건이다.윤석열 대통령의 방한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으로 악화된 한일관계에 다시금 정상화의 물꼬가 트였다. 더도 덜도 말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가치와 정신만 되살리면 서로의 국익에 상당한 득이 될 것이다. 매국이니 굴욕외교니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퇴행일 뿐이다.

2023-03-23

춘분 다음 윤2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이 지났다. 천문학적인 봄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부터 북반부는 여름으로 향하고 남반부는 겨울을 향한다. 봄보리를 갈며 춘경(春耕)을 하고 담장도 고치고 파릇한 들나물도 캐 먹는다.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고 동풍이 불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했는데 올해는 비가 오지 않았으니 코로나가 또 늘어 날려나? 요즘 같은 기상이변으로 3월의 온도가 역대 최고로 거의 20도를 웃돌고 꽃들도 한창이다.마스크를 벗어 던진 가벼운 기분으로 신광(神光)의 백련봉에 올랐더니 분홍 진달래가 산길마다 가득하고 노란 생강나무는 아랫마을에 피어있는 산수유와 샛노란 꽃잎을 겨루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봄비에 젖어 질퍽거리던 오솔길에는 마른 낙엽들이 쌓여 작은 불씨에도 금방 불이 붙어 번질 것만 같다. 연초록 새싹이 돋아난 찔레꽃 나무 가시에 팔뚝을 긁혀가며 얕은 계곡을 헤매기도 했다.22일은 물의 날, 23일은 세계기상의 날이다. 근래 세계 곳곳이 기상이변으로 엄청난 자연재해를 맞고 있지만 ‘날씨, 기후, 물의 미래’라는 슬로건처럼 스스로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올봄과 같은 극심한 가뭄에 산과 들, 강이 마르고 있어서 산불이 많이 발생하며 농사도 어려울까 염려된다. 24일은 제8회 서해수호의 날.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그리고 천안함 피격사건 등 북한군의 기습 도발을 겪으면서 서해북방한계선 NLL을 지키며 영해 사수 의지를 가슴에 품고 산화한 55인의 용사를 기리기 위한 날이다. 이날 우리 해군은 전 해역에서 대규모 해상 기동훈련을 실시하며 그 의지를 재다짐한다.춘분 다음날부터는 윤달의 시작이다. 윤달은 양력과 태음력 상의 계절이 서로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19년마다 7번, 보통 2~3년에 한 번씩 끼워 넣는데 올해는 윤2월이다. 만세력(萬歲曆)을 살펴보니 윤5월이 가장 많고 윤2월은 지난 2004년 이후 20년 만이다. 윤달은 ‘썩은 달’ 또는 공달[空月], 덤달, 여벌달이라기도 하며 옛날부터 천지신명이 인간의 행위를 감시하지 않고 쉬는 달로 여겨서 묘의 이장 또는 수의를 하곤 했는데 ‘걸릴 것도 없고 탈도 없다’ 하더라도 나쁜 짓 하지 말고 조심스레 보내야 한다. 2월에 윤달이 들면 장을 담그고 팥죽 쑤어 먹으며 가택신들에게 가족의 안녕을 빌기도 했었다. ‘부정이나 액이 없다’라고 하며 집수리도 하고 장독대도 옮겼다 하니 집안도 두루두루 말끔히 정리해보자.3월은 벚꽃의 계절이다. 올해는 따뜻한 날씨 덕분인지 전국적으로 꽃들이 앞당겨 피어났다. 포항에도 개나리, 진달래가 10여 일이나 빨리 꽃망울을 터트렸고 벚꽃도 벌써 피어나 다음 주 만개할 예정이란다. 환호공원과 효자 영일대, 마장지 등에는 벌써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경주 보문관광단지에도 3월 말 만개할 예정이며 제30회 벚꽃 마라톤도 열린다.양력과 음력 간의 계절 느낌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윤달을 끼워 넣듯, 요즘 윤 대통령의 일본과의 대화에 대한 여야의 어긋난 정치 감각 차이를 메꾸어 주는 멋진 한 수를 놓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