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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을미(乙未)

육십갑자 중 서른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미(乙未)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은 화초나 풀을 뜻하며, 지지(地支)의 미토(未土)는 메마르고 열기가 많은 땅이다. 동물로는 양순한 양이다.을미일주는 물상으로 ‘사막의 선인장’이다. 생명력 강한 화초가 건조한 땅에 놓인 형국이다. 내면에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발현이 쉽지가 않다. 삶에 고난이 많지만, 외유내강형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끈기와 예리한 촉이다.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예리한 촉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강한 끈기와 집념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안으로는 재물을 만드는 능력 또는 융통성, 지적 호기심과 남을 설득하는 능력, 자신의 뜻을 현실적으로 풀어가는 돌파력이 돋보이는 일주다. 대체로 자유롭고 씀씀이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의외로 돈을 잘 모으지만 지출이 크지 않은 편이다.을미(乙未)의 미토(未土) 양(羊)은 순(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양처럼 아주 살벌하다. 절벽에 살고 다리는 짧지만, 싸울 때는 목숨을 걸고 죽을때까지 싸운다. 마음이 급해서 성질이 나면 앞뒤도 보지 않고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큰일을 앞두고 대사를 그르친 민비(1895년 을미사변)처럼 자신도 주변도 모두 망가진다. 결국 인화(人和)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다.중국 명나라 육작(陸灼)이 지은 애자후어(艾子後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애자(艾子)는 뜰 안에다 양을 기르고 있었다. 양은 들이받기를 좋아했다. 사람이 나타나면 쫓아가서 뿔로 받곤 하였다. 애자의 제자들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애자를 찾아가서 “선생님의 양들은 모두 수놈이라서 거칠고 사납습니다. 저희들이 양들을 거세하고자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성질이 온순해질 것 같습니다”라고 청하였다. 그 말을 듣던 애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들은 아직 잘 모르는군. 임금을 모시는 사람들을 보게. 모두 거세를 당하여 사나이의 성(性)을 갖지 않았지만, 사나이들보다 훨씬 더 거칠고 사납지 않는가?” 명대 환관들의 정치참여를 비판한 것이다. 힘없는 양이지만 권력이 생기면 재물이 들어와서 본분을 망각하여 쉽게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을미의 특성은 인간관계에서도 낯을 많이 가리는 터라 마음이 잘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밀어내는 특성도 있다. 이런 기운에 사로잡힐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욕망과 삶의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지혜가 필요할 듯하다.을미일주에는 백호살이 있다. 백호살이란 과거 호랑이가 불시에 민가로 내려와 사람의 목숨을 위협했던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사고의 기운을 뜻한다. 백호는 한 마디로 강한 것을 다루는 재능이 있어 험한 세상에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능력이 비범하여 자신의 능력을 배로 발휘할 수 있기에 부자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살 중의 하나다.부부 사이의 금슬도 좋지 않고 배우자 건강 또는 부모형제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므로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질병과 사고 등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 단순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사고와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교통사고다. 한 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숫자가 2백만 명에 이른다.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은 주변 사람들을 고통의 늪에 빠지게 한다.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는 1960년 1월 4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청각장애인 어머니와 가난 속에서 자랐다. 하층민에 속한 아이는 초등교육을 졸업 한 뒤 곧바로 노동자가 되는 것이 그 당시 정해진 진로였다.그렇지만 초등학교 교사 루이 제르맹은 가난했지만 지적 탐구에 강한 호기심을 보인 카뮈를 발탁해 중학교 장학생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었다. 카뮈는 당당하게 장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문학과 철학에서 그의 재능을 깨닫게 해 준 장 그르니에 교수를 만났다. 그러한 주변의 도움으로 성장하여 1957년 44세 젊은 나이에 소설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 수상했다. 그는 수상 연설을 루이 제르맹 선생에게 헌사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17세 때는 결핵으로 학업도 중단하고, 부조리라고 부르는 비극적인 감정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살고자 갈망하였다. 카뮈는 삶의 부조리란 선한 일에는 선한 결과를 얻고, 악한 일에는 악한 결과를 얻는다는 합리적 관점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와 그 세계를 향해 합리적인 이해를 얻고자 애를 쓰는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과 세계 사이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는 부조리를 평생 탐구했다.1960년 1월 4일, 휴가를 마친 그는 기차로 파리로 갈 계획이었다. 때마침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 갈리마르가 자기 차로 가자고 제안했다. 동승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47세 나이에 죽은 것도 어떤 필연에 의한 것인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차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죽음, 그러니까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생을 마친다. 그는 생전에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만큼 부조리한 것은 없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다.노자 도덕경 5장에 ‘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狗)’라는 구절이 있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긴다. 자연은 스스로 정해진 법칙에 따라 운행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무관심한 것이다.인간의 합리적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세계, 그러한 세계를 상대로 부조리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은 한마디로 부조리를 느끼는 인간인 것이지 인간이 부조리한 것은 아니다. 카뮈는 부조리란 피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23-04-12

스트레스로 스트레스 날리기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소화가 안되고 배가 아파서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별 이상 없고 신경성이라고 해요” 진료중에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신경성이라고 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다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도 디스트레스(distress·나쁜 스트레스)가 있고, 유스트레스(eustress·좋은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라는 말은 라틴어 strictus(꽉 조이는), stringere(단단히 죄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떤 자극을 받으면 그에 반응해서 신경을 바짝 긴장 시켜서 나의 생존과 안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스트레스(stress)인 것이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기분 나쁜 일, 억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수시로 겪는다.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인간은 놀람-저항-기진맥진의 단계를 천천히 거치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것을 디스트레스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받는다고 할 때 그 스트레스다.스트레스는 심장관상동맥질환의 위험인자로서 급성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고혈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증가하고 이의 작용으로 혈압이 상승한다. 목덜미가 아프다, 어깨가 쑤신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사방이 결린다 등의 만성통증증후군 역시 스트레스 때문에 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슐린 요구량이 증가하여 당뇨병이 악화된다. 간 경화증, 간암 발생이 증가한다. 만성폐쇄성 폐질환, 폐기종, 만성기관지염, 폐암 발생도 증가한다.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생기고, 비만을 일으키고, 불감증, 월경불순, 발기불능 등의 성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디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만하다.한방에서는 디스트레스를 화병, 울화 등으로 표현한다. 향부자, 황련, 황금, 계지, 소엽 등의 약재를 활용하여 울체된 기를 풀어주는 약을 쓰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수면과 배변 상태 등이 좋아진다. 침과 사혈요법, 추나 요법 등을 잘 활용하면 뭉친 근육을 풀고 혈액순환을 개선시켜 디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각종 통증을 쉽게 제어할 수 있다.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일만 겪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상황이 부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면, 긍정적인 일에는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이것을 유스트레스라고 한다. 어릴 때 달리기 시합 전에 느끼던 (기분 좋은)긴장감, 설렘, 흥분 등이 유스트레스의 대표적인 반응이다. 유스트레스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동기부여와 성취욕을 높이며, 집중력 증가, 신체 활력 증가, 면역 세포를 활성화 시키는 등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는 유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자주 만든다면, 기분 나쁜 긴장감인 디스트레스가 쌓일 틈이 없어질 뿐 아니라, 쌓여 있던 디스트레스도 없어진다. 악기 연주, 노래 배우기, 춤 배우기, 외국어 배우기 등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유스트레스가 늘어난다. 등산, 여행, 산책, 수영 등의 운동을 할 때도 유스트레스가 늘어난다.

2023-04-12

세월호 참사 9주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9주기이다. 9년이 흐르도록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못했고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안산에 조성하기로 한 생명안전공원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교통사고 운운하던 여당의 유력 정치인은 여전히 그 소신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쓰인 돈을 예산 낭비라고 비판하거나 자식을 잃은 부모를 비아냥거리는 시선도 변하지 않았다.세월호 참사는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사회적 재난을 대하는 사회의 구조와 인식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아야 할 대상이다. 2014년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말과 글이 이어졌고,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며 무엇을 바꿀지를 적어놓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으나 그 눈물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사죄의 표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무엇보다 온라인에 익명으로 숨어 있던 혐오 세력이 가시화된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투쟁 중이던 유가족들 바로 앞에서 극우 세력이 폭식 투쟁을 진행했다. 이 사건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음지에서 존재하던 혐오의 감정이 광장으로 가시화되고 미디어를 통해 여과 없이 공유됐다는 점에서 ‘혐오 사회’의 제도화를 알리는 것이었다. 시간의 속도 앞에서 변화를 다짐하던 사람들의 의지도 약해져 갔다. 약해진 의지와 혐오라는 감정은 멀리 있지 않았다.세월호의 출항부터 침몰까지의 과정, 언론의 오보, 이후 이 모든 사건에 대한 국가 권력의 대응까지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 구조 전반에 걸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폭식 투쟁이 상징하듯 제도와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 권력이 자행 혹은 묵인하는 폭력의 메커니즘이 평범한 일상에 얼마나 깊게 개입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2022년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인식과 판단의 문제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번에도 국정조사까지 진행했지만, 사고원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자식을 잃은 부모에 대한 혐오성 발언도 등장했다. 사회적 참사를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보는 시각도 유사하다. 9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자본을 위한 국가 정책이 개인의 삶과 깊게 결부되며 비슷한 유형의 참사가 반복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까?’가 아니라 ‘우리는 왜, 바뀌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은 익숙하다. 하지만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왜 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바뀌지 않을까? 질문을 이렇게 던지면 조금 다른 것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다. 바뀌지 못하는 이유를 찾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부터 논의하자.

2023-04-12

直指를 잊었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인류 소통의 역사에 혁명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오늘 경험하는 정보의 홍수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컴퓨터의 보급이 일으킨 소통의 혁명이다. 세계사는 그보다 앞선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인쇄술’을 소통혁명의 원조로 꼽는다.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회나 왕실이 주도하는 상류사회에나 접근이 가능했던 성경을 비롯한 문건들이 밀물처럼 활자술로 인쇄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니, 가히 시민들을 위한 소통의 혁명이 시작된 셈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처음 인쇄된 1455년을 소통혁명의 기원으로 삼는 까닭이다. 보통사람들에게 비로소 눈이 열리고 생각이 트이는 혁명이었음에 틀림없다.직지(直指)를 기억하는가. 고려말 간행된 직지는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이다. 1377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 앞선 활자인쇄물이다. 유네스코(UNESCO)도 직지의 문명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의 기억유산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였다. 결정위원장이었던 벤디크루가스(Bendik Rugaas)는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물임을 인정한다’고 하였다.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를 열면서 직지를 다시 한번 세상에 내어놓는다. 도서관 수장고에 보관된 직지는 1973년 공개된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안타깝고 아쉽다.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한참이나 앞선 금속활자 인쇄물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직지는 여태 ‘혁명적인 인쇄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구텐베르크 성경은 교회의 그늘에 갇혀있던 성경을 인쇄하여 일시에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던 사실이 있었다. 반면, 직지라는 인쇄술은 연이어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는 근거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셈이다. 기술의 진보가 대중의 수용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탓이다. 혁명이라 일컫기엔 파급력이 미치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아닌가.무엇을 해도 마지막 평가는 보통 사람들의 손이 결정한다. 나라가 어지럽다. 경제가 위태롭고 교육이 위험하며 외교가 걱정스럽고 안보가 아슬아슬하다. 선출하여 믿으며 맡긴 이들이 최선의 지혜를 모아 잘 꾸려가길 바라지만, 보통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부가 되었으면 하지만, 국민들이 생각을 모아 정부가 하는 일에 조언하여야 한다. 실수와 실책은 겸허히 인정하고 국민의 인정을 회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판단을 내릴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민이 수용하고 밀어줄 때에 정부의 정책에 동력이 생긴다. 국민이 실망하여 등을 돌렸던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직지가 인류문명에 기여했던 성과를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정부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땀흘리는 노력도 평가되어야 한다. 국민의 일상에 힘이 되고 나라의 앞길에 덕이 되는 정책들을 펼쳐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고, 국민은 정책의 추이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국민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2023-04-12

‘소가 사람 수보다 더 많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거짓말 좀 보태서 소가 사람 수보다 더 많다”지난 11일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국민의힘 김형동(안동·예천) 의원이 한 말이다. 인구소멸 위기의 경북 북부지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현재 인구수 기준의 선거구를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선거구제 개편에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경북 북부 안동·예천·영주·봉화·상주·문경 지역의 의원 수는 11대 국회(당시 1선거구당 2석의 중선거구제) 때 10명에서 현재 4명으로 줄었다. 경북 북부 11개 시군의 면적은 1만786㎢다. 7천433㎢의 충북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도 충북은 국회의원이 8명이다.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할 경우 22대 총선의 수도권 의석수는 253석의 지역구 의석 중 128석으로 과반을 넘게 된다. 1981년 11대 국회 당시 서울·경기 국회의원 숫자는 52명에서 2020년 21대 때 121명으로 2배 넘게 늘었다. 11대 때 대구·경북 국회의원 숫자는 26명이었다. 21대 때는 25명으로 1명 줄었다.선거구 획정 시 지방 소멸을 고려, 지역구 면적 기준의 상한을 두거나 인구 편차 기준을 완화하는 등 지역 대표성을 반영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인구수 기준에서 벗어나 지역 면적과 생활권 요소를 선거법에 반영해야 한다.19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각종 안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전원위에서 21대 총선 당시 ‘위성정당’ 논란을 초래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손봐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요소를 선거법 개정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여야 간, 의원 간에도 이해관계가 얽혀 결론 도출이 쉽지는 않겠지만 말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12

도서관의 새로운 변신, 미래창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이 점차 맑아지고 만물이 생기를 더해가는 청명(淸明) 즈음은 독서와 공부하기에 좋은 때다. 꽃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연초록 잎새 소리 들으며 글을 쓰게 된다면? 당나라 문호 한유는 ‘마을과 들판에 서늘한 바람 불어오는(新凉入郊墟)/가을 무렵에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으니(燈火稍可親)/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簡編可舒卷)’고 읊었지만, 서늘함이 어찌 가을뿐이랴. 날씨와 계절의 변화는 그만큼 사람의 감성을 움직일 수도 있기에, 비교적 평온하고도 청량한 때에 맞춰 책과 글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권장하기도 한다.그래서일까? 정부는 올해부터 관계법령에 따라 ‘도서관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 오늘 4월 12일이 바로 제1회 ‘도서관의 날’이다. 1964년부터 시작된 도서관 주간은 독서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지역주민들의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4월 12~18일을 지정, 운영해서 올해로 59회째를 맞고 있다. 도서관이 국민의 정보기본권 신장과 사회의 문화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지식문화 선진국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기반시설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자는 것이 도서관법의 기본이념이다. 또한 도서관의 가치가 사회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다하며, 국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과 이용을 위해 도서관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보장한다는 내용 등이다.지식과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한 도서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료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공장소이며, 제대로 된 정보와 자료의 제공으로 이용률을 극대화하도록 봉사하는 시설이다. 또한 개인단위로 운영하여 자료를 공유하는 ‘작은 도서관’ 사업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큰 도서관은, 공유경제의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서관의 기능을 별도의 건물이나 특정영역이 아니라, 업무적인 공간에서 자유로이 이용하며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소통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 생겨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작년말에 개관된 경상북도 도청 안민관 1층 로비에 도민의 책 쉼터이자 지식공유 공간인 ‘미래창고’ 도서관이 그곳이다.‘미래창고’는 ‘도정 현안에 대한 해답과 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이 축적된 저장소’라는 의미의 명칭 공모를 통해 선정된 도서관으로, 본관 로비에 있던 구 당직실을 헐고 그곳에 독서 쉼터를 만든 전국최초의 사례이다. 일반도서 2만여 권과 다양한 이용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세대별 추천도서, 노벨문학상 수상도서 등의 북큐레이션과 무료 도서나눔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북도내의 향토문인 전용 북코너를 도서관 입구에 개설, 책자를 비치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 중의 하나인 도서관은 ‘무료로 다니는 대학’이자 언제나 희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오늘부터 1주일 동안의 ‘도서관 주간’에 서울 도담도담 한옥도서관이나 인천 누리공원작은도서관, 청주 생태자연도서관 등 특색있고 이색적인 가까운 동네 도서관에서 책과 만나는 소중한 기쁨을 누려보면 어떨까?

2023-04-11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우리나라의 인구 소멸 문제가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존폐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35년부터는 총 인구수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2060년에는 총 출생아 수가 20만 명 이하로 집계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 문제는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논의된 사안이 아니다. 이미 10~20년 전부터 인구감소에 대한 경고는 여러 데이터를 통해 보고되었고, 관련된 여러 통계값들의 변동 추이는 우리 사회가 심각한 인구 절벽의 문제를 직면할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인구감소 문제는 우리가 20년 전부터 여러 데이터를 통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객관적 사실이었다는 것이다.이처럼 데이터로 발견한 하나의 사실은 매우 객관적이다. 데이터 값 그 자체의 꾸밈없고 편향되지 않은 고유한 특성은 주관적 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가 덜 편향되고 덜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무리 죄가 명백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그에게 유죄를 선언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그렇기에 데이터를 통해 알려진 인구 소멸 위기에 대한 우려는 그 어떤 정치적 또는 상업적 의도가 내포되지 않은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였다. 그렇다. 우리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다. 다만 기성세대라고 하는 우리 모두가 국가의 존폐가 달린 이 심각한 문제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를 제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거부하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고, 그저 가시적인 성과 창출에만 집착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동기부여(세금 감면, 부동산 청약 우선순위, 공공 정책 지원 등)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지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통계측의 40년 후 예측치 역시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결국 데이터 활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데이터를 통해서 객관적인 사실을 찾아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이 객관적인 사실의 경중을 이해하고 판별하는 가치 체계이다. 물론 데이터의 양과 종류가 더 늘어나다보니 데이터로부터 수집한 수많은 객관적 사실들 중에 중요도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무엇이 더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인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데이터는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다만 데이터를 활용하는 우리가 그 의미와 중요성을 가리는 잘못된 또는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수많은 데이터가 경고하고 있는 객관적 예측들을 너무 쉽게 간과할 뿐이다. 현 사회와 더 나아가서는 우리 자녀들이 살게 될 미래 사회를 더 유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데이터가 제공해주는 유익하고 객관적인 여러 정보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겸손함과 그러한 정보들을 잘 판별하여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현명함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할 것이다.

2023-04-11

봄꽃의 에피파니

산수유와 매화가 먼저 피고, 진달래 개나리 피고, 목련 핀 다음 벚꽃과 라일락 피던 시절은 추억이 됐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면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이상고온으로 개화 순서가 뒤죽박죽이 돼 한꺼번에 핀 봄꽃들을 보며 어쨌든 눈과 마음 즐거운 봄이다.벚꽃과 개나리가 색을 나누어 늘어선 강변을 걷는데, 내가 보는 봄꽃 풍경이 불현듯 특별하게 느껴졌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의 엄마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열어보기 전에는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한 대사를 아직 기억하는지 꽃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초콜릿 상자’가 떠올랐다. 봄꽃은 매년 피지만 2023년의 봄꽃은 오직 이 봄에만 볼 수 있다고, 놓치면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찰나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했다.상상해보자. 인간이 100년을 산다고 했을 때, 우리는 초콜릿 100개가 든 상자를 선물 받은 것과 같다고. 칸 하나에 든 초콜릿은 그 해에 먹지 않으면 폐기된다. 누군가는 100개를 다 먹고, 또 80개를 먹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한 개도 까먹지 못한 채 상자를 반납한다. 이때 ‘초콜릿’은 봄꽃의 화사함, 여름의 무성한 녹음, 가을 단풍, 차고 맑은 첫눈의 다른 이름이다. 매년 돌아오지만 그해의 초콜릿은 오직 그 해에만 먹을 수 있다.제임스 조이스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이 갑자기 그 평범함이라는 외피를 벗고 진리의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을 ‘에피파니(Epiphany)’라고 불렀다. 에피파니는 ‘나타남’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피파니아(epiphaneia)에서 유래한 단어다. 종교에서는 순간적으로 계시를 느끼거나 비전을 보게 되는 직관적 경험, 즉 ‘신’을 보는 체험을 말한다. 문학작품에서는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 혹은 독자가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을 전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며, 작가가 일상 속의 평범한 소재를 통해 독자에게 계시나 깨달음을 주는 기법을 뜻하기도 한다.조용필의 ‘고추잠자리’에는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날.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라는 노랫말이 있다. 볕 좋은 가을날 야트막한 뒷동산에 올라 네잎클로버 찾고, 코스모스 꺾으며 놀던 한 소년이 잠깐 낮잠에 들었다 깼다. 때로 낮잠에서 깨면 무서울 정도의 이질감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그런 모양이다. 저 구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존재의 기원과 실존의 유한함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한 순간 근원적인 고독감과 혼란감이 소년을 집어삼킨다. ‘가을빛 물든 언덕’이 평범함이라는 가면을 벗고 섬뜩한 진리를 드러낸 에피파니의 순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어느 지나간 날에 오늘이 생각날까? 그대 웃으며 큰소리로 내게 물었지. 그날은 지나가고 아무 기억도 없이 그저 그대의 웃음소리뿐…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에는 데이트 하는 연인이 등장한다. 영화 보고, 맛집 가고, 사진도 찍고, 사랑의 말들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중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자기야, 나중에 세월이 한참 지나도 오늘이 생각날까?” 정말 그 ‘나중’이 됐는데, 그녀는 내 곁에 없고, 아무 기억도 없다. 사랑의 기억과 애틋한 약속들, ‘의미’를 지닌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시각적 인상인 동시에 일종의 상징 언어인 미소 또한 흩어진다. 긴 세월이 흐르고 남은 것은 그저 ‘웃음소리’뿐이다. 의미를 지닌 ‘말’이 아니라 오직 소리라는 감각만 주체에게 남는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떠다니는 어느 추억의 거리에서, 남자는 에피파니를 경험한 것이다.이 봄, 벚꽃과 개나리, 목련이 나란히 피어 있는 산책로를 걸으면서, 잉어들이 연안에서 헤엄치고, 오리가 수면에 내려와 앉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내가 기다리는 건 에피파니의 얼굴이다. 평범한 일상적 장면이 특별해지는 순간, 나를 둘러싼 세계의 빛깔과 질감과 음악이 달라진다. 그 체험을 통해 나는 너무 오래 묵은 내 세상을 갈아엎고 새 꿈과 새 맘을 가져보려는 것이다. 초콜릿 상자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에피파니는 초콜릿을 열심히 꺼내 먹으려는 이에게 허락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나가서 걷고, 열고, 보자.

2023-04-11

취향 넓히기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분명히 고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 옷을 고를 땐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고 좋아하는 커피 취향은 어떤 지 분명히 말할 수 있으며,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 수고를 들여서라도 지식을 익히고 깊게 파고든다. 선호의 기준과 취향이 명확해서 그들이 사는 삶은 무언가 견고하고 완벽해 보인다.취향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취향을 갖고 있던가? 내 주변 인물들은 어떤 단어로 나를 설명할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나는 대체 뭘 좋아하는 거지?나는 내 자신이 무색무취의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싫어하는 것도 없다. 이것저것 일을 벌리는 건 많이 하지만 꾸준히 한다거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다. 좋아하는 운동도 잘 모르겠다. 한때 런닝이 너무 좋아서 동호회도 가입하고 런닝용 운동화와 운동복까지 다 갖추었건만 날이 추워지면서부턴 뛰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관심사 밖으로 밀려났다. 좋아한다며 요란을 떨던 마음이 식을 때 무언가 심심한 듯한 허무함이 든다. 그래서 런닝복이나 운동화를 안 보이는 곳에 깊게 숨겨두고 외면하고 있다.최근 퇴근 후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침대 위에 누워 하루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가벼운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다. 짧게 압축한 게임 영상이나 예능 편집 영상 등 무언가를 이해하고 행하는 데에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주로 찾아본다. 또는 피로감과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유명 패션 브랜드 사이트에 접속 후, 실시간 옷 인기 순위 기준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그러면서 인기 순위에서 고른 패션 아이템들이 곧 나의 취향이자 센스 있는 안목이라 생각하며 으쓱해진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고민조차 할 수 없도록 스스로 취향과 개성을 실종하게 만드는 못된 습관임이 분명하다.하지만 취향을 갖는다는 건 어렵다. 취향을 갖기 위해선 일정의 소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을 끊으려면 회원권 비용을 내야하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하려면 각종 활동비부터 내야한다. 비즈십자수나 펀칭니들 같은 새로운 취미를 도전해볼까 싶으면 만만치 않은 재료비부터 든다. 여유 없이 생활에 쫓기게 되는 순간 취향은 사치라 여겨진다.그래서 나는 새로운 취향에 관심이 가면 얼마 못가 금방 시들해졌다. 취향을 위한 지속적인 소비나 수집을 하는 이들을 보면 낭비를 일삼는 피곤한 삶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취향을 위한 소비는 과한 지출이라 여겼으며, 내가 당장 얼마나 벌며 얼마나 저축을 하는 지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어긋나 있었는지, 올바르고 분명한 취향을 지닌 이들을 보며 깨달아 버렸다. 취향을 확보한다는 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고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즐겁고 유쾌한 것을 인지하여 취향에 자유롭게 빠져들다 보면 나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소중히 다루게 된다. 아리송한 삶 속에서 취향의 가치를 발굴하여 지속하는 것은 건강하고도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아버린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세상의 불합리함을 보며 삶은 불공평하고 덧없다며 심드렁하게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것보단 삶의 유한함 속에서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끈질김이 중요한 태도였다. 취향을 찾기 위한 호기심으로 나의 가치를 닦아 빛내어 나아가 더 올바른 이념과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음이 분명했다.이번 주말에 나는 내 취향에 걸맞은 반지를 3개 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각 손가락에 딱 들어맞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만족감에 가슴이 벅차 집에 가는 내내 호들갑을 떨었다. 언젠가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옷과 태도 그리고 마음가짐이 잘 정돈되어 삶을 살아가는 만족감이 강하게 드는 때가 올 것이다.집에 돌아와 반지를 벗어놓고선 타인의 취향으로 덧칠된 방을 둘러보았다. 나를 찾기 위해 깊이 파고드는 과정은 궁극적 목표에 비해선 다소 요란해 보이지만, 그런 어설픔도 무언가 애틋해서 벗어둔 반지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당시의 얼굴빛은 근래 들어 가장 환했을 것이다.

2023-04-11

엠폭스 비상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보건기구(WHO)는 ‘원숭이 두창(MONKEY POX)’이란 병명을 지난해 11월 엠폭스(MPOX)로 변경해 부르기로 했다.특정 문화 및 지역과 관련해 감염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우리 질병관리청도 이에 대응해 한국어 표기를 ‘원숭이 두창’이 아닌 엠폭스로 사용할 것을 의료기관 등에 권고했다.엠폭스는 중서부 아프리카 열대수림에서 서식하는 원숭이 사이에서 전파되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특정 지역의 토착병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전세계로 퍼져 있다. 세계적으로 근절된 것으로 알려진 천연두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이 질병에 감염된 동물과 접촉한 사람도 감염되는 인수공통 전염병이다.2022년에서 2023년 4월4일까지 전세계 110국에서 8만6천여 명의 엠폭스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 사망자도 112명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6월 첫 환자 확인후 6명의 엠폭스 환자가 발생했다. 특히 국내 6번째 환자는 최근 3개월 이내 해외여행 경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내에서의 지역사회 감염도 우려된다고 한다.코로나 팬데믹이 마무리 단계에 들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통한 엠폭스 전염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특히 일본과 대만에서 엠폭스 환자가 늘고 있어 해외 여행객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일본은 현재 엠폭스 누진 환자가 95명에 달한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피해와 고통을 생각하면 엠폭스 감염 경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엠폭스 토착화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의료계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사회가 긴장감을 늦춰선 안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4-11

좌파진영의 ‘친일몰이’, 지겹지도 않나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에 대한 좌파진영의 ‘친일몰이’가 갈수록 거칠게 진행되고 있다. 국익이나 이웃나라에 대한 기본적 예의는 찾아볼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반일프레임으로 집권당 지지율을 떨어뜨리겠다는 정치공학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과학적으로 치밀하게 검증돼 우리 수산업계와 상인, 그리고 소비자의 불안을 없애야 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검증을 앞두고도 민주당과 좌파진영은 온갖 의혹을 쏟아내며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들은 친일몰이로 나라를 둘로 쪼갤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태세다.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일본 도쿄전력은 지난 2011년 원전 사고로 오염된 물을 현재 원전 부지 내 수백여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이 오염수의 삼중수소(트리튬) 농도를 자국 규제 기준의 40분의 1인 1L(리터)당 1천500베크렐 미만으로 희석해 올여름부터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후쿠시마 원전 내 오염수 처리 과정은 지금 국제공신력을 가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검증 중이다. IAEA는 지난 5일 전문가들이 현장 조사를 벌인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4차 보고서를 통해 “일본 측이 IAEA 요구에 따라 보완한 정보를 바탕으로 도쿄전력이 오염수를 방류한 뒤 환경 영향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세운 프로그램이 신뢰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방사선 보호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IAEA 현장조사팀에는 우리 원자력 안전기술원도 참여하고 있다.IAEA 발표 하루 후 민주당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저지 대응단’ 소속 의원 4명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신뢰할 수 없다’며 2박3일 간의 일정으로 직접 후쿠시마 현장을 찾았다가 거의 빈손으로 돌아왔다. 민주당의 친일몰이 속셈을 파악하고 있는 일본 정계나 도쿄전력이 이에 협조할 리가 만무했다.국내 한 좌파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에서 광역단체장, 국무위원들과 비공개 만찬을 한 횟집 상호가 ‘일광수산’인 점을 두고 ‘일광(日光)은 욱일기의 상징’이라는 황당한 비판을 했다. 지난 대선 당시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후보의 60년 전 돌잔치 사진 속 화폐가 일본 엔화라고 주장하면서 “(윤 후보가) 일본과 가까운 유복한 연세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했다가, 한국은행 발행 지폐임이 확인되자 머쓱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일단 친일 공세를 하는 것이 좌파진영의 습관이 된 지 오래다. 일본군위안부 지원 단체 활동을 하다 국회에 진출한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기부금 유용 등의 의혹을 제기하자 “친일 세력의 모략극”이라며 억지를 부린 일도 있었다.윤석열 정부에 대해 근거없는 친일몰이를 하는 행위는 결국 국격과 국익을 해치게 된다. 수권정당을 노리는 민주당이 국익차원에서 일본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고민이 없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저 사회갈등을 키워 정치적 이득만 취하려고 하고 있으니 국가 장래를 위해 걱정이다.

2023-04-11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보는 진정한 위로의 방법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2011년 3월 9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은 2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 47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재해 복구 사업을 통해 도로나 건물 같은 인프라는 상당 부분 복구되었지만, 이재민들의 마음까지 치유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잃은 것은 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 마을, 학교, 고향처럼 ‘사망자·실종자 수’나 ‘재산피해액’이라는 숫자로 요약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먹읍시다’와 같이 경제적 손해를 벌충해주는 방식은 충분하지 않다. 재난 이전의 삶은 어떤 경제적 보상으로도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재난 피해자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를 기반으로 위로를 건네는 일이다. ‘지나간 일은 빨리 잊고 새출발하라’는 식의 조언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들이 이 당연한 사실을 몰라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들(피해자 자신도 포함한)을 애도할 충분한 시간, 그리고 다정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는 공동체 전체의 몫일 수밖에 없다. 재난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이웃이자 동료 시민이므로.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러한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창작자이다. 전작인 ‘너의 이름을’에서 그는 재난으로 인한 상실과 회복의 문제를 다뤘다. 이 주제는 최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반복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여고생 스즈메는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거대 지렁이 괴물)’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규슈의 미야자키현에서 도호쿠의 이와테현까지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이 여정에서 스즈메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는데, 이는 재난 피해자인 스즈메를 사회가 포용하고 위로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스즈메는 비로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재난 이후’가 아닌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조력자들이 민박집 딸, 스낵바 마담, 대학생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 또한 감동을 더한다. 재난 피해자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의 공감과 선의, 연대이기 때문이다.스즈메는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해 싸우는 히어로이기도 하다. 거대한 괴물에 맞서는 스즈메의 용기는 그녀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재난을 겪으며 죽음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에서 나온다. 즉, 이 영화는 스즈메를 단순히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스즈메는 상실을 애도하고 ‘재난 이후’의 삶을 일상으로 바꾸기 위해 용감하게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지난 십여 년간 우리 사회도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들을 겪어 왔다. 포항에서는 몇 년 전 지진으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고, 작년에는 폭우로 인해 일곱 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상실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해 왔는가. 피해자에 대한 동정과 금전적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여겨 왔던 것은 아닌가.

2023-04-10

시 낭송문화에 관한 소고(小考)

오낙률 시인·국악인 수선화는 봄을 기다리며 살지 않는다. 다만 봄날에 피워 올릴 꽃대 하나 튼실히 준비하며 겨울을 살아갈 뿐, 그들은 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준비하느라 오히려 짧은 겨울이 아쉬울지도 모를 일이다.수선화처럼 오늘날 많은 예술가의 삶도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나름의 예술세계를 꽃피우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했던 삶을 고스란히 견디고 살뜰히 준비해온 예술혼이 작품에 배어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예술작품에서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도 싶다.근래 들어 많은 사람이 시 낭송에 관심을 두면서 여기저기서 시 낭송대회가 열리고 있다.그러나 그 많은 시 낭송가 중에서 시 낭송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고 낭송에 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새로운 하나의 예술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시 낭송의 정체성에 대해서 짧은 식견이나마 더듬고자 한다.자칫 시 낭송가를 단지 한 시인의 시를 외워서 대중 앞에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는 시인과 청중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 낭송이란 엄연히 이 시대에 성행하는 하나의 중요한 문화콘텐츠로서, 시 낭송가는 한 편의 시를 자신의 해석과 느낌에 맞게 재구성해서 시 낭송이라는 콘텐츠로 완성하는 예술가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시를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개념에서 벗어나 또 한 장르의 창조예술을 하는 독립적인 예술가로서 이 사회에 당당히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다.시와 낭송의 관계를 음악에 비교한다면 악보와 연주자의 관계와 같다. 작곡가는 작곡가 나름의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연주자는 연주자 나름의 예술가로 사회적 예우를 받듯, 시와 낭송가와의 관계에서도 엄연히 그에 따른 예술 행위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칭호와 장르적 지위가 사람들의 인식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일찍이 인간은 문학을 향유 하는 방법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를 탄생케 하였음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시 낭송 또한 시 속의 음악적 요소를 찾아내고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퍼포먼스를 곁들여 시와 청중과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작업임은 이미 전술한 바이다. 따라서 시 낭송가는 단순히 시인이 쓴 시를 세상에 알리는 매체의 역할을 넘어 연극배우나 가수처럼 공연 예술가로 자리매김 받는 것으로, 그 칭호의 타당성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 낭송은 낯설은 장르의 콘텐츠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시 낭송이라는 문화콘텐츠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은 특정 몇 인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시 낭송이 대중에게 어필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필자만의 시각일 수도 있겠으나 시 낭송 무대에서 낭송되는 시가 대부분 함축성이 떨어지고 다소 긴 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조금의 아쉬움이라 할 수 있겠다.

2023-04-10

서양미술사 양식의 탄생 : 로마를 닮은 ‘로마네스크’

476년 게르만의 침략으로 서로마제국이 패망한 후 유럽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사회는 급격히 변했고 사람들은 비참한 마음을 견뎌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천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종말과 심판이라는 세기말적 공포에 휩싸였다. 새천년이 밝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의 마지막도 심판도 일어나지 않았다. 종말의 공포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안도했다. 신의 분노가 진정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마을들은 서로 경쟁하듯 낡은 교회를 단장하거나 크고 웅장한 교회를 새로 짓기 시작한다. 이 시기 미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양식’이라는 것이 출현한 것은 괄목할 만한 점이다.미술에서 양식은 스타일을 말한다. 개개인의 미술가들은 누구라도 각자 고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술에서의 양식은 개별 미술가들의 독특한 특징만을 뜻하지 않는다. 같은 시대 특히 같은 지역에 속한 미술가들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 있다. 미술가가 되기 위해 받은 교육이나 지역에서 흔히 접한 미술이 자연스럽게 의식으로 스며들어 영향을 준다. 미술가들은 각자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형식을 지니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양식이라고 부른다. 서양미술사의 시대구분은 대부분 양식에 따라 나누어진 것이다.10세기에서 11세기로 넘어가는 동안 미술에 양식이 관찰되는데 후대 미술사 연구자들은 그것에 ‘로마네스크(Romanesqu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단어는 고대 로마를 가리키는 ‘로만’과 ‘~과 닮은’을 뜻하는 접미사 ‘-esque’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로마를 닮은’이라는 의미다.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에 ‘로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서유럽 중세 기독교 미술에 라틴 다시 말해 로마문화가 녹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로마네스크라는 개념에는 라틴어 문명권의 정신적 연대의식이 담겨 있으며 고대 로마의 미술이 중세 미술에 흘러 들어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건축은 많은 요소들을 고대 건축에서 가져왔다. 교회건축이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바실리카’ 구도가 로마에서 온 것이고, 세례당이나 소규모 예배당을 지을 때 나타나는 중앙집중식 원형 구도는 고대 신전이나 영묘에서 가져 온 것이다. 돔이라 부르는 반구형 천장이나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아치 그밖에도 육중하고 두꺼운 벽면구조 또한 고대로마의 건축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 모든 것을 고대 로마로부터 가져온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중세인들이 새롭게 발명한 것도 있다. 예컨대 목재 버팀구조의 천장을 석조 반원통형 궁륭(Vault)으로 바꾸었는데 이 새로운 천장구조는 중세 교회건축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으로 꼽힌다.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발전을 견인한 것은 수도원과 수도사들이다. 특히나 910년 무렵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클뤼니(Cluny)에 세워진 수도원은 미술사 발달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교회 개혁을 주창했던 몇몇 수도사들은 부르고뉴의 공작 기욤 드 아키텐느로부터 땅을 기증받아 클뤼니에 수도회를 창설했다. 교회 개혁의 선봉에 섰던 클뤼니 수도회는 남으로부터 밀려오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기독교를 지켰고 스페인 사람들이 이슬람에 빼앗겼던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성인 야고보의 유해가 묻힌 것으로 알려진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을 계획하면서 스페인과 프랑스 기독교도 사이의 유대감을 돈독하게 다진 것도 클뤼니 수도회였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4-10

고령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를 품은 평온함

고령의 지산동에는 오래된 봉분들이 즐비하다. 주산의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나무들 사이로 빼곡하게 드러나는 봉분들을 만날 수 있다. 주로 산의 정상부 능선, 하늘과 맞닿은 곳을 따라 볼록하게 솟은 이 고분들은 옛 고령에 터를 잡고 4~6세기를 풍미했던 대가야 왕족들의 흔적이다. 그 아래 산각과 사면에도 능선만큼은 아니지만 직경 10m 내외의 중형고분들과 그 보다 작은 소형고분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스스로 천신과 산신의 후예로 여겼던 대가야인들은 죽은 후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 터를 잡고 그들의 품으로 돌아가 평온을 즐긴다.‘산신인 어머니 정견모주(正見母主)와 아버지 천신이 결합하여 두 알을 낳았는데, 두 아들 중 하나는 대가야를 세웠고 다른 하나는 금관가야를 세웠다.’ 대부분의 건국 신화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대변하는 남신이 주가 된다. 그에 비해 고령의 건국 신화에는 신화 이전 모계 사회의 흔적과 여럿으로 나눠 다스리던 옛 사회의 모습이 남아있다. 이는 대가야가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후 ‘대가야국 왕후는 죽어서 산신이 되었’고, 사람들은 해인사의 정견모주 신당(지금은 없다)에서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약 100년 전까지도 산신제가 이어졌으니 정견모주에 대한 이 지역의 믿음이 굳건함을 알 수 있다.대가야의 역사는 옛 기록에서도 남아있는 유물이나 유적에서도 잘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평가하기로는 삼국에 비해 고대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쓰러진 소국들의 연합체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밝혀지고 있는 바에 의하면 삼국시대가 아니라 사국시대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다.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펼쳐 백제와 신라가 가야를 덜 견제하던 시기인 5~6세기 초, 대가야는 서쪽의 백두대간을 넘어 백제와 마주했으며 동쪽으로는 신라를 경계에 두었다. 신라의 영역인 낙동강을 교류의 창구로 활용할 수 없었던 대가야는 섬진강을 따라 길게 세력을 넓혀 독자적인 활로를 개척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령-거창-함양-운봉-구례-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루트는 대가야에게 꼭 지켜야 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진안 태평봉수대(太平烽燧臺)와 같은 군사시설이 40여 개나 밀집해 있으며, 여수 고락산성(麗水 鼓樂山城)이나 하동 고소성(河東 姑蘇城)과 같은 산성들도 찾아볼 수 있다. 모두 섬진강 루트를 중심으로 찾아볼 수 있는 옛 군사시설이다. 또한 진안 장수·장계분지 고분, 장수 삼봉리 고분군(三峰里 古墳群) 등 진안·임실·장수·남원 등에는 대가야식 고분군이 종종 발견된다. 촘촘한 물결 무늬가 특색인 고령식 토기와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가 대가야의 영역이었음을 밝힌다.대가야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면 내륙 고령이 중심이며, 서쪽으로는 기문·대사 지역에서 백제와 날을 세우고, 동쪽으로는 신라와 마주하고 있었다. 홀로 다른 나라와 교역하기에 어려운 지역으로 보이는데, 대가야는 중국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내 그 국가적 지위를 인정받은 적이 있다. 또한 오키나와에서만 생산되는 야광조개국자나 일본에서 발견된 금동관과 금세공품으로 보건대 일본과도 활발히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섬진강이 교류의 창구였을 것으로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대가야가 섬진강 루트를 통해 중국·일본과 교류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많은 봉수대와 산성, 섬진강 상류의 가야계 고분이나 토기만으로는 가설을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대가야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신라에게 빼앗기는 과정에서 결국 쇠퇴의 길을 걷는다. 어쩌면 당시의 험난했던 전선에서 섬진강 루트를 지키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확장하는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백제를 돕다가 전쟁에서 패해서일지도 모른다. 대가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에 주어진 정황을 살펴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게다가 562년 이사부(異斯夫)의 공격으로 신라에 복속된 이후에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산등성이 위로 하늘에 맞닿은 촘촘한 고분군이 옛 영광을 노래할 뿐이다.한때는 야로(冶爐, 지금의 합천)에서 생산되던 풍부한 철광석과 섬세한 금동 제련술로 한반도의 한 지역을 호령하던 옛 대가야인들이 고령 주산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봄이 날개를 편 4월, 지산동 고분군 등산로를 천천히 거닐며 옛 대가야인들을 그려본다. 잘 정비된 등산길도, 산새들의 지저귐과 봉분을 호위하는 나무들도, 이곳을 찾은 등산객도 모두 어머니 산신과 아버지 천신의 품에 안긴 옛 대가야인들처럼 평온을 즐긴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4-10

반지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우리사회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는 심각하다. 포퓰리즘과 진영논리, 편 가르기와 팬덤정치가 공동체의 지성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성의 최후 보루인 언론과 지식인들까지 권력과 야합하여 반지성적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반지성주의를 비판했던 대통령 자신도 언행불일치로 반지성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반지성주의 담론은 자기중심적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반지성주의’란 지성의 유무(有無)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작용방식이 ‘이성적·합리적 소통을 수용하지 않는 정신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반지성주의자들은 대체로 자기확신·적대감·성찰불능 등의 인지적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쓴 호프스태터(R. Hofstadter)는 “반지성주의는 서로 대척점에 선 세력들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가장 큰 원인은 반지성주의”라고 민주당을 겨냥한 반면, 민주당의 박홍근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반지성주의가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측의 공통된 잘못은 ‘가치중립적 개념인 반지성주의’를 ‘내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서 편향된 진영논리로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반지성주의를 비판한 세력이 바로 그 반지성주의에 빠져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슬픈 코미디’가 아닌가?이처럼 우리는 반지성주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탈진실시대의 포퓰리즘 정치는 인간의 지성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정보홍수로 인해 생각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쉽게 이성을 포기하고 감정의 길을 택한다. 게다가 반지성주의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이나 선의로 포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이해관계와 연결될 경우에는 더욱 단절하기가 어렵다.그렇다면 우리는 반지성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신’과 ‘제도’의 양면적 혁신이 절실하다. 정신적 측면에서는 편향성 극복을 위한 지성주의 가치관의 내면화가 요구된다. 지성의 원천은 ‘사실’과 ‘합리성’이다. ‘인지적 편향성’은 소통의 과정에서 반지성주의를 유발 또는 촉진시킨다. 지성주의는 ‘감정이나 의지보다 이성과 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타협에 필요한 민주적 가치관, 즉 “동의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agree to disagree)”는 정신이 중요하다. 이 때 그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지식인은 ‘비판적 지성주의’를 견지해야 함은 물론이다.이와 함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의 혁신도 수반되어야 한다. 반지성주의 정치는 승자독식이라는 대통령제의 영향이 크다. 정치는 진영 간 싸움인 동시에 진영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승자의 독식으로 패자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면 협치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화와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정치제도를 구축해야 반지성적 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다. 물론 제도개혁 이전이라도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야당과의 대화와 협치를 통해 반지성적 정치풍토를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23-04-10

퇴계 귀향길

홍석봉 대구지사장 퇴계 이황은 454년 전 서울 경복궁에서 출발해 안동 도산서원까지 장장 270km의 길을 꼬박 13박 14일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수구초심의 ‘퇴계선생 귀향길’이다.퇴계 이황(1501~1570)은 말년에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퇴계는 수개월에 걸쳐 선조에게 사직 상소 끝에 1569년 3월 4일 귀향을 허락받았다. 그의 나이 69세 때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700리 귀향길에 올랐다. 멀고도 험난한 노정이었다.퇴계 귀향길은 지난 2019년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개최한 ‘제1회 퇴계선생 귀향길 재현 걷기 행사’로 시작됐다. 퇴계 귀향길이 복원된 지 4년 만에 다시 재연 행사가 열렸다.‘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가 지난 9일 마지막 구간인 삽골재에서 도산서원까지 걷기 여정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이번 귀향길 재현행사는 45명의 재현단이 퇴계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지난달 27일 경복궁을 출발, 9일 도산서원까지 5개 시·도와 17개 시·군·구의 길을 걸으며 선생의 참뜻을 되새겼다. 구간별로 봉은사 원명스님과 차담회, 강연, 시 해설, 고유제 등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퇴계 귀향길은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리면서 소문이 나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경북도는 이번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지방시대의 성공모델을 퇴계정신에서 찾았다. 그의 귀향이 서원운동으로 발전했고 국가의 자원과 인재를 지방으로 되돌려 지방시대 혁명으로 이끈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마지막날 일정을 함께 한 이철우 경북지사는 제2의 퇴계혁명의 정신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10

선거법, 다 잃었을 때를 생각하라

김진국 고문 내년 총선에서 야당을 찍겠다고 한다. 지난주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다.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라고 답한 사람이 50%로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36%)는 사람보다 14%포인트 많았다. 3월 초 ‘정부 지원론’이 42%, ‘정부 견제론’이 44%였던 데 비하면 한 달 사이에 견제론으로 확 기울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지난주 울산시 교육감과 울산 남구 구의원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이겼다. 울산 남구는 국민의힘이 유리한 지역이다. 구의원 선거, 한곳이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년 총선을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유리한 지역을 더 뺏기면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더 어려워질까. 가뜩이나 야대(野大) 국회에 눌려 있다. 내년 총선이 같은 결과면 바로 레임덕이다.여론은 원래 조변석개(朝變夕改)다. 그렇지만 짧은 기간에 급격히 바뀔 때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국민의힘 전당대회, 한일 정상회담, 근로 시간 개편안 혼선,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국민의힘 최고위원 잇단 설화(舌禍), 여권 도지사 산불 때 골프, 술자리…. 모두 한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이다.전당대회는 컨벤션 효과를 기대하는 행사다. 그런데 역주행했다. 후보끼리 격렬하게 총질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대통령 핵심 측근을 제외하고는 모두 몹쓸 인간으로 만들고, 주저앉혔다. ‘우리 세상’이라고 기고만장했는지, 이해 못할 언행들이 이어졌다. 그러고도 여론이 바뀌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많은 사람이 매운맛을 좋아한다. 정치에서도 화끈한 것을 바란다. 그렇지만 잠시 기분뿐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水至淸則無魚)라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청빈한 공직자에게 부패를 유혹하는 되지도 않은 말”이라고 폄훼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보다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흑백논리를 경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양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민주당에서는 자기 반성적인 의견을 내면 ‘수박’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국민의힘은 대표 선출 규정에서 여론조사 30%를 없애버렸다. ‘윤핵관’이 아니면 배신자, 나쁜 놈으로 몰아세웠다. 그렇게 다 쫓아내면 무엇이 남나. 극단적인 주장을 정체성이라고 강조한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미련한 짓이다. 스스로 지지세력을 줄이고 있다. 당장 재·보궐선거 성적표를 받아봤다. 윤석열 정부의 명운이 걸린 총선이 바로 내년 4월이다.당내에서 이 모양인데, 여야 관계가 잘될 리 만무하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대화로 타협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경쟁 정당을 파트너가 아니라 무찔러야 할 오랑캐로 규정하는데, 무슨 타협이 가능하겠는가.2020년 총선은 치욕적인 선거다. 법을 만드는 거대 양당이 선거법의 취지를 대놓고 무시하고, 편법으로 의석을 훔쳤다. 어차피 다시 이 법으로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의석을 도둑질한 두 정당도 다 안다. 그런데도 어느 당도 사과하지 않았다. 또다시 선거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안간힘이다.선거법을 먼저 무력화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는 완패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 그냥 두었으면 민주당이 과반도 못 가져갔다. 민주당만이라도 자기가 밀어붙인 법을 지켰다면 도덕적 명분을 얻고, 반(反) 국민의힘 연대를 주도할 수 있었다. 정권을 지켰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양대 정당은 모두 완승을 꿈꾼다. 선거법 개정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득표율을 존중하는 상생의 길은 피한다. 두 정당끼리만 나누어 먹으면 파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 아니면 도다. 야당일 때를 생각하고, 완패했을 때도 염두에 둬야 한다. 지면 윤 대통령 처지가 된다.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생이다. 선거법은 그렇게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생의 기반부터 닦아야 한다. 민주당은 다수당의 횡포를 포기하고, 정부·여당은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09

김천시의 도시공간구조와 도로교통망 확충

김충섭 김천시장 도시(都市)는 도읍(都邑)과 시장(市場)이 합쳐진 말로 도읍은 행정 및 정치의 중심지를, 시장은 상업 및 경제의 중심지를 의미한다.김천시도 1949년 시 승격과 함께 도시형성의 초기에 해당하는 도시공간구조를 갖게 되었다. 시가지의 중심에는 시청과 김천역, 전통시장이 자리를 잡았고 버제스의 동심원(同心圓) 형태로 시가지가 형성되었다.1960년대 중반 인구 21만 여명을 기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당시 도시화와 산업화에 편승하지 못하면서 도시발전의 정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그러나 지방자치제 시대의 개막과 함께 김천은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고 부곡동에 맛고을 상가와 아파트단지가 건립되면서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이 분화돼 호이트의 선형(扇形) 이론과 같은 형태로 도시가 발전했다.1995년 도농복합도시로서 김천시와 금릉군의 통합시 새출발과 함께 시청이 신음동으로 이전하고 그 일대에 대단위 아파트단지, 병원, 이마트 등이 들어서면서 신도심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농소·남면지역에는 이전 공공기관 13개 기관을 중심으로 한 경북혁신도시(율곡동, 현재 2만3천명)가 2007년부터 건설되는 한편, 2010년 11월, 김천(구미) KTX 역이 개통하여 새로운 신도시가 탄생했다.현재 김천시는 원도심(평화남산동, 김천역), 신음동, 율곡동이 하나의 중심지 기능을 수행하면서 해리스와 울만의 다핵심(多核心) 이론과 같은 도시공간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김천시는 다핵심 도시공간구조에서 토지이용 및 도시계획시설의 효율성을 높이고 도시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3개의 중심지구를 상호연계 시키고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고질적인 병목현상을 해결하는 도로교통망 구축이 시급한 과제이다.이에 김천시는 도로·교통 시설확충으로 도심 교통난을 해소하고, 시민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도로·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주간선도로 확장 및 개설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국도59호선(김천∼구미·선산) 확장, 국도대체우회도로 어모(옥률)∼대항(대룡) 구간 개설, 김천희망대로(시청∼혁신도시) 개설 등 3개 사업을 올해 안에 준공·개통하기 위해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김천 희망대로는 총 사업비 1천 513억원 예산으로, 연장 5.6㎞에 4차선 도로를 개설하는 대형사업으로 지난해 10월 시청 앞 신음동 삼거리에서 유한킴벌리 구간의 도로(대신터널)가 준공돼 현재 이용 중에 있다. 나머지 유한킴벌리∼혁신도시까지 3.04㎞ 도로가 2023년 12월 개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김천 희망대로’가 개통되면 신음동과 율곡동(혁신도시)를 연결하는 최단거리 노선의 교통축을 형성해 기존에 자동차로 25분 걸리던 것이 15분이면 도착한다. 이와 함께 구도심과 신도심을 연계하는 도시개발 사업이 큰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삼애원 일대 대신지구 도시개발과 신규로 조성 중에 있는 김천1일반산업단지 4단계 분양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교동·삼락동 주거지역과 신음동 시청 일대가 달봉산으로 인해 단절돼 도심 발전축이 단절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봉산 터널’개설사업을 계획하고 올해 보상비 20억원을 확보하여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교동택지∼달봉산∼산업단지를 연결하는 도로개설은 신음동 시가지가 확장되고 산업단지가 추가로 조성돼 일자리가 늘어남에 따른 교통량 증가로 도로개설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사업이다.총사업비 755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총연장 1.87㎞에 4차로로 개설한다. 지난 2019년 설계용역을 시작으로 2023년 올해부터 보상을 실시하고 2025년 개통할 예정이다.이밖에도 현재 김천시에서는 국도3호선(김천~거창), 국도59호선(김천~구미), 국도대체우회도로를 비롯해 903호 지방도 사업 및 도시계획도로, 농어촌도로사업 등 타 도시보다 월등히 많은 도로 사업이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신설 및 확장되는 주간선도로는 접근성 개선과 교통량 분산효과로 편리하고, 빠르고, 안전한 교통환경을 조성하고, 도로 인근지역은 주거지 개발 등 도시개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23-04-09

‘시피사모’의 개구리 떼창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꿈틀거릴 때다. 어둑한 데서 꽁꽁 웅크렸다가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다. 몇몇 마음에 맞는 이들과 수목원 나들이 한다. 이곳은 계절 따라, 절기 따라 다양한 핑계를 대며 수시로 찾는 곳이다.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리면 경북수목원이 나온다. 수목원은 해발 500~900m로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분지로 이루어졌다. 수목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샘하는 늦겨울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친다. 따뜻하게 데운 보온병을 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수를 향한다. 갓길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간들바람 등에 타고 햇볕을 향해 왁자지껄하다.호수로 가는 길 오른쪽 산비탈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런데도 서둘러 봄 단장 중이다. 지난해 심었다는 맥문동에 새 볏짚을 덮느라 일하시는 분들의 손길이 바쁘다. 그에 비해 왼쪽 양지바른 곳에 터 잡은 식물들은 이른 봄볕을 쬐느라 기지개를 켠다. 자주 오는 곳이지만, 올 때마다 수목원의 나무들이 주는 미세한 흔들거림은 늘 새롭다.마음이 있는 곳이라 벌써 오감이 열린다. 호수가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먼저 귀가 열린다. 저 멀리 윙윙 윙, 개굴개굴하는 소리가 수목원을 들썩인다. 또 코가 발름거린다. 비릿하다. 그런데 어제의 비릿함이 아니다. 꾸덕꾸덕한 비릿함이다. 수목원의 햇볕에 무장해제 되었나 보다. 이제 눈마저 시원하다. 나뭇가지마다 꽃을 피우려 꽃눈이 빼꼼하다. 모든 감각이 호수로 향한다.개구리들의 노래가 시작된 곳이 어디일까. 호숫가 가장자리 길섶이 소리에 누웠다 일제히 일어난다. 조심조심 다가가니 개구리들은 소리를 멈추고 호수로 냅다 줄행랑을 친다. 순식간에 길섶이 뒤에서부터 파도처럼 눕더니 개구리 떼들이 지나간다. 꼭꼭 숨어있던 개구리들이 물속으로 달린다. 무리에 합류하지 못한 개구리는 슬금슬금 기어간다. 이마저도 놓친 개구리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하느라 무리에서 멀어진다. 개구리 노랫소리가 호수를 맴돌아 수목원을 가득 채운다.시를 읽고 피아노를 사랑하는 모임 ‘시피사모’가 있다. 커피 마시며 수다를 나누다 가볍게 결성한 모임이다. 가만 보니 그 중 한 사람은 수준급의 피아니스트요, 시를 읽고 나누는 시문학 강사이며 얼마 전까지 컴퓨터 지도를 한 강사, 손만 대면 집 안 구석구석이 환하게 환골탈태하는 달인 한 사람, 이렇게 회원은 넷이다. 한 사람을 빼고는 피아노 건반하고는 멀어 보이는 조합이다. 이순혜 수필가 뒷방으로 밀려있던 먼지 뒤집어쓴 피아노를 조율했다. 시피사모는 멋진 꿈을 그렸고, 그 후로 심장이 떨렸다. 봄바람이 불면 우리가 배운 것을 거리공연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선포했다. 꿈은 크게 그리고 그 시작은 작게, 첫 곡은 개구리 동요였다. 딩, 딩, 딩 한 음 한 음을 눌렀다. 거의 두 달 만에 개구리 전곡을 연주했다. 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모두 피아노 앞에 모여 개구리 노래를 불렀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 집에서 연습할 때는 틀리지 않았는데 같이 노래 부르며 피아노 치니 두어 군데 틀렸다. 손에 땀이 났지만, 우리는 그렇게 훤한 낮에 노래를 떼창을 했다.수목원의 산개구리 합창은 남성 중창단이다. 중, 저음의 묵직한 베이스음이 아래서 노래 각을 잡는다. 어쩌다 긴 울음 끝에 개구리 테너가 오선지에 튀어 오르기도 한다. 걸음을 멈추고 앉아 무슨 노래를 부르는가 싶어 귀를 더 연다. 조금만 귀를 기울여 들으니 개구리들은 일정한 음의 길이를 내고 있다. 여럿이 한 무더기의 음을 내는 듯하다. 잘 꾸며진 중창단 한 사람이 내는 목소리 같다. 개구리 합창단의 노랫말은 어떨까, 자꾸 궁금해진다. 허공에 그린 원고지에 ‘개구리 합창’ 제목을 적었다가 ‘시피사모’라 다시 썼다.어느 토요일 저녁, 영일대해수욕장 한 모퉁이에서 개구리들의 합창이 들리는 듯하다.

2023-04-09

존재 증명하기와 존재하기

유영희 작가 몇 년 전 어느 예능 프로에서 이경규가 어떤 어린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자 이효리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한 말에 시청자들의 공감이 이어졌다.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결과이고, 아무나 된다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화 ‘청춘스케치’에서 레이나가 ‘23살에는 뭔가를 이루고 싶었다’고 하자, 친구 트로이가 ‘23살 때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아를 찾는 것’이라고 한 말도 이효리의 반문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전 근대사회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곳에서 붙박이로 살아서 나로 존재하기만 해도 나의 존재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고 이제는 그것을 남에게 알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나 알려지느냐가 성공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심한 경쟁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회의감과 괴리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존재하기’가 절실해지고 있다.그러나 존재하기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다. 트로이가 아무리 치즈버거와 커피, 담배 몇 개비, 그리고 약간의 대화로 충분하다고 해도 그런 삶이 지속가능하기는 어렵다. 이효리 역시 어떤 순간에는‘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살겠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인생에는 뭔가 이루는 것도 필요하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존재를 증명하는 일도 필요하다.오랜 기간 서예를 연마한 동창이 시간이 갈수록 상 받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면서, 그래서 출품에는 아예 관심을 끊었다고 한다. 서예를 즐기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온전하게 존재하기를 원할 뿐, 대회에 작품을 내는 일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존재를 증명하는 일에는 아무래도 자신과 다른 사람을 대상화하거나 수단으로 삼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작품을 출품하는 순간, 인격은 사라지고 등수라는 대상으로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며칠 전 종강한 EBS1의 ‘존재와의 대화’에서 심리학자 김정규 역시 존재를 회복하기는 해야 하지만 인간을 대상화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한다. 칸트 역시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써만 대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고 하여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도 인정한다.‘존재를 증명하기’와 ‘존재하기’, 다 중요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비율로 하면 좋을까? 이 질문에 김정규는 삶에서 80% 정도는 인간을 대상화하고, 나머지 20% 정도는 존재하기로 하자고 말한다. 지나친 존재 증명도 문제지만, 존재하기에 너무 치우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할 것은 아니지만, 굳이 회피하거나 거부할 필요는 없다. 셀럽의 한마디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자신의 형편에 맞는 비율로 균형 잡기가 필요하다.

2023-04-09

마음을 여는 소통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마음속엔 방이 여러 개 있다. 어떤 방은 사시사철 활짝 열려있어 누가 들고나던 별문제가 되지 않고, 또 어떤 방은 안으로 굳게 잠겨있어 웬만해선 누구도 그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다. 때로는 밖으로 잠긴 방도 있는데 꼭 맞는 열쇠가 있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어떤 이는 늘 열려있는 방을 보고는 넌 참 열려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늘 굳게 닫혀있어 결코 열릴 것 같지 않은 방을 목격한 이는 마음을 좀 열어두라고 하기도 한다. 늘 열려있는 방이 부산스럽게 느껴지는 이는 내게 외향적이라고 하고, 어쩌다 바람 소리 휑한 방에 들어섰던 이는 너 요즘 힘들구나 한다.기분에 따라 어느 방문을 열어둘지 결정하는 건 나일 테지만 간혹 어느 방문이 열렸는지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것도 사실이다.때가 되면 저절로 열리는 방이 있는가 하면, 일정 시기가 되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방도 있다. 어떤 방은 갑자기 조금씩 작아져서 안에 든 사람을 몰아내기도 하고, 아무리 왕래가 많아도 괜스레 허전하기만 한 방도 있다. 그래서 마음을 연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누군가 내게 마음을 열라는 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그 방을 열라는 것일 텐데 나조차도 찾기 힘든 그 방들을 어떻게 열어두어야 할까. 이 방만큼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기를, 알려고 들지 않기를, 혹여 그런 방을 보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모른 척 지나쳐 주기를 바라게 된다.소통은 마음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고, ‘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한 길’이다. 그 방에 들어서면 가라앉았던 기분이 부유하며 상대를 향해 무장해제를 하게 된다.어떤 방은 억지로 열어서 들어가기도 하고, 또 어떤 방은 꼭 맞는 열쇠가 있어 따뜻하게 번져오는 온기가 마음으로 스며들어 행복하게 만든다. 억지로 열어서 들어가면 강력한 방화벽이 작동하고, 열쇠로 열고 들어간다는 건 겨우내 얼어붙은 흙이 완강함을 풀고 서서히 스미어서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 여리디여린 풀싹들이 지면으로 올라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그 열쇠는 충고 하고픈 마음을 누른 채 얘기를 듣는 것이고, 판단하는 마음 없이 상대방을 응원하는 것이다. 2천4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로, 에토스(ethos)·파토스(pathos)·로고스(logos)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 에토스는 발로 뛰는 진정한 솔선수범으로, 진실됨과 높은 윤리의식을 갖는 것이다. 두 번째 파토스가 중요한데 아픔을 들여다보고, 기쁨에 보태서 감동을 주는 감성이다. 옳은 말만 한다고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며, 비판적이지 않은 태도로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될 때 마음의 문은 열릴 것이다. 세 번째는 로고스로 거짓됨 없이 논리적으로 있는 그대로 설득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진실만을 말하는 것보다 감성이 3배 더 영향력이 있고, 솔선수범과 진정성까지 보여주면 6배 더 영향력이 올라간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2023-04-09

꽃다지와 꽃샘추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배운 첫 번째 노래가 민중가요 ‘꽃다지’와 동물원의 ‘거리에서’였다.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하고 시작하는 ‘거리에서’가 시나브로 입안을 맴돌았다. 처연하고 서정적이며 내장(內臟) 깊숙한 곳을 푹, 찔러오는 가사와 음조가 날마다 흔들리던 나의 내면을 후려갈겼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다.유학 나가기 전에 나는 적어도 30곡 정도의 민중가요를 알고 있었다. 쾰른에서 첫 번째 어학 과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작은 잔치(kleine Fete)를 했을 때 ‘이 산하에’를 부른 일이 기억난다. 러시아 민요 세 곡을 알던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함께했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이 산하에’였다. 야경꾼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늦은 밤 도서관에서 귀가할 때도, 뭔가 애잔하고 답답할 때도 길동무가 돼주었던 노래가 ‘이 산하에’였다.그런데 ‘꽃다지’라는 낯선 노래가 주는 정감은 색다른 것이었다. 강력하고 웅혼하며 유장(悠長)한 노래들과 결이 다른, 애틋하고 섬세하며 가슴을 아프게 저미는 노래였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 밤 캄캄한 창살 안에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무력감과 무기력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약한 자아를 고백하는 민중가요라니! 그래서일까?! 어렵지 않게 서둘러서 노래를 배우고 익혔다.세월은 물처럼 흐르고 사라져 자취도 없는데, 어제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언론은 ‘꽃샘추위’라 규정한다. 모든 꽃이 일제히 피어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통렬한 3월도 지났는데 느닷없는 꽃샘추위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뒷집 할머니는 윤이월로 인해 봄이 늦고 늦추위 있을 거라 했는데, 요즘 일기는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인간이 지구별을 끝없이 착취한 결과로 자연파괴(自然破壞), 기후변화, 환경위기가 초래된 것 아닌가?!마당에는 올해 꽃다지 풍년이다. 작년에 군데군데 앙증맞은 자태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를 거듭한 꽃다지였다. 그랬던 녀석들이 마당을 점령할 태세다. 꽃다지와 함께 새로 주둔한 제비꽃들의 위세도 대단하다. 작년에 쑥과 우슬, 민들레를 정리하고 난 후 안심한 게 화근이다. 꽃집 주인 말로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나 떨어지면 그 30배에 이르는 꽃씨가 퍼져나가 군락을 이룬다고 한다.한편으로 무척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론 저 많은 녀석을 어찌 감당하리, 하는 걱정도 찾아온다. 마당을 절반 넘게 차지했던 사초(조릿대)와 쑥, 민들레의 추억이 아직도 삼삼하다. 잔디 심은 마당을 건사하노라면 거의 날마다 호미로 불원초(不願草)와 전쟁해야 한다. 풀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잔디 형상을 유지하는 것이 게으르지 않은 주인 행색이라 수고로운 노동을 아껴서는 아니 된다.입김마저 하얗게 나가는 아침마당에서 때늦은 한기(寒氣)와 만나면서 인생살이 곳곳에서 나를 덮쳐왔던 크고 작은 시련을 생각한다. 봄꽃 흐드러진 봄날의 정한(情恨)이 깊어만 간다.

2023-04-09

의원수 축소안

우정구 논설위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수를 30명 이상 줄이자는 제안을 두고 여야가 신경전이다.야당의 호응이 있어야 실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데, 원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식적으로 반대다. 여당은 다음 주 시작하는 국회 전원위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나 현실화되기에는 넘어야 장벽이 많아 보인다.의원 수 축소와 관련, 작년 11월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그가 당대표가 되면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의원 수를 100명가량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개혁대상 1호로 손꼽히는 정치권이 먼저 솔선수범하자는 뜻이다. 또 지난 2월 홍준표 대구시장도 그의 페이스북에서 “의원 수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 하원 수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80여 명 만해도 충분하다”고 언급했다.각종 여론조사서도 의원 수 축소에 대해 찬성이 반대를 월등히 앞서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아도 의원 수는 줄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는 의미다.여당 대표가 비록 30명 정도 축소를 언급했지만 의원 수 축소 제안 자체는 유의미한 논제다. 당내 문제 돌파용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축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정치는 수준 이하의 언행 등으로 불신으로 꽉 차있다. 축소안의 등장은 자업자득 측면이 있다.독일의회가 지난달 의원 수 감축을 의결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감축 분위기가 뜨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마저 급격히 줄고 있어 의원 수를 줄이자는 게 명분과도 일치한다. 의원 수가 정치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의원 축소가 국민의 뜻에 부응하는 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4-09

탄소중립 피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정부는 지난 3월 21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을 발표하면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한 세부 이행 방안도 제시했다.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가 2030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기준 40% 줄이겠다고 발표한 NDC의 실행계획이다. 핵심내용은 우리나라가 줄여야 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총량은 40%로 유지(IPCC 협정상 한번 설정한 NDC는 후퇴할 수 없다) 하되, 기존 산업부문 탄소 감축 목표(14.5%·3천790만t)를 11.4%(2천980만t)로 줄이는 것이다. 2021년 NDC 발표 당시에도 에너지, 건물, 수송 등 6개 분야에서 산업부문 감축률이 가장 낮았었는데 이번에 다시 3.1%나 줄인 것이다. 산업계는 이번에 5% 감축을 ‘현실적인 감축량’이라고 주장했는데, 국무총리가 설득해서 그나마 11.4%로 합의했다는 후문이다. 산업계에서 줄여준 810만t은 에너지(전기)분야에서 400만 t, 해외부문과 CCUS(탄소 포집 활용, 전장기술) 등에서 410만t을 줄일 계획이다.기후경제학자인 서울대 홍종호 교수는 “2030년이 되면 국제무역규범이 기존의 ‘전통적 WTO 자유무역규범’에서 ‘탈탄소 무역규범’으로 완전히 옮겨질텐데 이러한 국제 추세에 맞춰 기업 경쟁력 재고를 위해서라도 최소한 14.5% 감축으로 원상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지난 3월 20일 정부의 기본계획 발표 하루 전날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6차 종합보고서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하라”는 긴박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글로벌 기업 구글은 벌써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여 RE100을 달성했는데, 한국 기업 네이버는 0.64%만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기업과 토종 기업 간의 재생에너지 경쟁력 수준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탈탄소 무역규범’에 대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정부의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후퇴 정책은 재생에너지 투자를 축소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어서 심히 우려된다.RE100 달성은 글로벌 기업들간의 피해 갈 수 없는 국제적 약속이다. 국가에 따라 에너지 믹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산업계에 대한 탈탄소 부담이 달라질 수 있지만, 글로벌 기업 경쟁력에서는 기준이 다를 수는 없다. 나라에 따라 NDC에 원자력이 포함되기도 하고 포함 안 되기도 하지만 RE100에 원자력 에너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순수 재생에너지만 포함된다. 2025~2026년부터 시행되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철강제품, 유기화학물, 플라스틱 등 9가지 고탄소 배출 제품에 부과하는 일종의 탄소세다.무역이 국가 경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장벽이다. RE100은 우선 자체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충당하고 부족한 소비전력은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서 채워나가야 한다. 원활한 국제 교역을 위해서는 산업계가 최대한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도록 해야 하는데도 정부가 잘못된 신호를 산업계에 보냄으로써 산업계의 경쟁력을 후퇴시키고, 재생에너지 기반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조바심도 든다.필자가 대구, 구미 지역 기업들을 대상으로 RE100 컨설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대구의 3공단에 있는 수출 중심의 안경 공장이나 애플에 납품하는 IT기업은 RE100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50KW, 100KW 정도라도 태양광 설치를 한다.하지만 성서산업단지의 내수용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태양광을 설치하면 RE100을 달성하고도 남는데도 필요성을 못 느껴 미적거리는 것이 현실이다.구미산업단지의 삼성, LG에 납품하는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생산 여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태양광 설치를 거부하고 있다. 외관도 안 좋고, ‘정부가 어떻게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이런 상황에서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후퇴시키는 정부 정책에 대해 기업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재정부 로비 대신 당장 공장 지붕이나 공터, 주차장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현재 가능한 20~30% 정도라도 재생에너지 공급에 앞장서야 한다.탄소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거창한 계획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실천하면 된다. 실천캠페인에는 가장 급한 산업계가 선두에 서야 한다. 국민들도 내 집 옥상이나 내가 다니는 회사 옥상 등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는 세금 감면 등 각종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캠페인을 독려해야 한다.탄소 감축은 어차피 맞아야 할 매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인 것이다. 피해 갈 길은 없다. 정부는 좀 더 타이트한 로드맵과 더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해서 산업계가 속히 RE100 달성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2023-04-09

어깨 통증 잡는 맞춤형 운동 치료

박성률 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요즘같이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는 관절 통증이 자주 나타나거나 악화하기 쉽다. 관절 통증 가운데 어깨 통증은 우리나라 성인의 60% 이상이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할 정도로 흔한 근골격계 증상이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와 이해부족, 막연한 견관절의 통증에 대한 두려움으로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십상이다.어깨는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360도 회전하는 관절이다. 그만큼 불안정한 부위이며 손상되기도 쉽다. 나이가 들면서 힘줄이 약해지고, 운동이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 전자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잘못된 자세 등 다양한 요인으로 어깨 통증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 어깨 통증이 심해지면 자연스럽게 오십견으로 단정하지만 같은 어깨 통증이라도 회전근개 파열, 석회화 건염 등 다른 질환일 수 있다.회전근개 파열은 어깨 통증의 70% 정도를 차치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최근에는 골프 등 스포츠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회전근개는 어깨를 감싸고 있는 극상근, 극하근, 소원근, 견갑하근과 같이 4개의 힘줄을 말하는데, 어깨 안전성, 운동성, 유연성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 힘줄이 여러 원인에 의해 약해지거나 찢어지면서 발생하는 것이 회전근개 파열이다.대개는 과도한 어깨 사용으로 인한 힘줄 파열이 원인인데, 증상은 본인 스스로 아픈 팔을 움직여 보거나 정상적인 팔의 도움을 받아 아픈 팔을 앞으로나 옆으로 들어 올릴 때 극심한 통증과 운동 제한을 보이는 오십견과 다르다. 회전근개 파열은 팔을 움직여 보면 억지로 움직여지는 어느 한순간 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어디엔가 걸리는 듯한 소리나 느낌을 받는다. 또 팔을 벌릴 때는 힘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된다.회전근개가 완전히 끊어졌다면 찢어진 힘줄을 관절에 붙여주는 수술적 치료가 불가피하지만, 회전근개 파열이 생겼다고 무조건 수술할 필요는 없다.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부분 파열이라면 적절한 약물 치료와 스트레칭이나 근력 운동으로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운동 치료는 비수술적 요법 중 부작용이 가장 적게 나타나며, 근육 상태의 회복이 운동의 목표가 되므로 근본적인 치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어깨 통증 완화를 위한 운동 치료는 운동 유형, 빈도, 시간, 강도 설정이 중요하다. 운동 유형은 약으로 치면 성분과 같다. 운동의 종목일 수도 있고, 동작일 수도 있다. 크게는 유산소, 유연성, 근력 운동이 있고, 각 운동은 신체 부위와 근육에 따라 종목과 동작, 기구 등이 있다. 빈도는 약의 복용 횟수다. 하루 몇 번 또는 일주일에 몇 번인지를 의미한다. 시간은 약의 총 복용량이다. 운동에서는 지속시간을 의미하여 보통 분 단위로 설명한다. 강도는 약 성분의 함량이다. 운동을 얼마나 힘들게 또는 편하게 할 것인지를 말한다.어깨 통증 완화를 위한 운동 유형으로는 스트레칭 등 신전운동과 근력 운동이 좋다. 스트레칭을 몸풀기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유연성은 체력요인 가운데 중요한 항목이다. 특히 재활에서는 아픈 부위가 정상적인 부드러움이나 가동범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그리고 벽 밀기나 팔굽혀펴기 등 자기 체중을 이용하거나 고무밴드로 하는 근력 운동도 함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다양한 매체에서도 어깨에 좋은 운동 방법은 추천되지만, 얼마만큼 자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부족할 때가 많다. 운동을 통해 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서 똑같은 형태의 운동을 한다면 운동 빈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트레칭 운동은 하루에 3회 이상을 해야 하며, 근력 운동의 경우 본인 체중이나 고무밴드를 이용한 운동은 하루 1~2회 정도가 적합하고, 바벨 등 무거운 중량으로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주 2~3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근육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량은 비교적 높이고 횟수는 적게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통증 완화 등 재활에는 다르다. 무겁게 하는 근력운동은 주로 표면의 큰 근육의 발달을 유도하지만, 심부근육의 발달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통증은 주로 심부근육에서의 문제이며, 심부근육은 사이즈도 작고 상대적으로 적은 힘을 낸다. 통증으로 인해 힘을 잘 못 쓰는 상태라면 더욱 무게를 낮출 필요가 있다.스트레칭도 강하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완시키고자 하는 부위가 당기기 시작하는 각도에서 멈추어 날숨과 들숨을 4~5회 길게 반복하며, 2~3셋트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신전운동이든 근력운동이든 가늘고 길게, 그리고 자주하되 통증이 없는 범위에서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어깨 통증은 잘못된 진단과 처치로 어깨 힘줄이나 관절 손상을 부추길 수 있기에 전문가의 검사와 진단이 중요하다. 특히 어깨 근력과 관절 운동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 치료가 동반돼야 효과적인데, 재발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기 검사를 받으며 본인의 건강과 체력 상태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

2023-04-09

연금개혁, 하기 싫어도 해야

홍석봉 대구지사장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또 배움의 즐거움을 떠나 일단 너무 싫어한다. 아이들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그래야만 스스로 공부한다. 싫다고 안 할 수 없는 것이 공부다. 개인의 장래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다.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국민을 위해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 기득권 혁파 및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완성을 언급하면서 한 말이었다.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윤 대통령이 저항 세력에 굴하지 않고 국민과 약속한 주요 개혁 과제를 흔들리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윤 대통령은 “국민을 약탈하는 이권 카르텔과 일전불사의 각오로 싸워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도 말했다. 방해 세력과는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다짐이다.지난달 말 예정됐던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 발표가 전격 취소됐다. 국정 지지율 하락에 놀란 여당이 발표 선언 이틀 만에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뒤집었다. 요금 인상을 정치가 막았다.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을 비난할 때가 언제인가 싶다. 빚더미에 올라선 한전이다. 정상화는 점점 멀어져간다.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 그냥 뒀다간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한일 관계 정상화는 북핵 등 동북아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국내외의 부정적 여론을 무릅쓰고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론은 좋지 않다. 현 정부의 딜레마다. 거기다가 일본 측의 ‘독도’ 발언으로 일이 더욱 꼬였다. 다시 키를 잡고 가야한다. 기왕에 빼든 칼이다. 후퇴는 곤란하다.국민연금 개혁 방치는 대표적인 포퓰리즘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정치가 개입하면서 수익률 세계 꼴찌라는 터무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연금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연금 제도는 지속될 수 없다. 우리의 미래가 불안해진다. 출산율과 국민연금 기금투자 수익률을 대폭 올려도 2060년 이후 기금 소진을 막을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더 많이 오래 내고, 적게 받는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 중이다. 필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여론의 반발이 적잖다.모두 전 정부의 유산이다. 표가 떨어질까 두려워 방치하거나 미뤄둔 것들이다. 이젠 빼도박도 못할 상황이 됐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연금 수령 시점을 2년 늦추는 연금개혁안을 하원 표결 없이 입법하는 초강수를 뒀다. 야당이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고 노동계는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가 시끄럽다. 마크롱은 자칫 레임덕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정치생명을 걸었다. 미래를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어차피 모든 국민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정치권은 정치생명을 걸고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마크롱을 배워야 한다.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외통수다.

2023-04-06

봄비와 단비

우정구 논설위원 봄비는 봄철에 내리는 비를 이르는데, 국어사전에는 조용히 가늘게 오는 비로 정의하고 있다. 여름비는 기온과 습도가 높아 소나기처럼 빗방울이 굵게 내리나 봄비는 대지와 새순을 살짝 적시는 보슬비처럼 내린다.그래서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어느 시인은 봄비 내리는 것을 송홧가루 날리듯 내린다고 표현했다. 봄비는 추운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비여서인지 정감도 있다. 봄비를 주제로 한 시와 노랫말이 많은 이유다.가뭄 끝에 전국에 걸쳐 많은 비가 내렸다. 모두가 단비라 불렀다. 꼭 필요한 시기에 알맞게 맞추어 내린 비란 뜻이다. 한자말로는 단비를 감우(甘雨)라고 부른다. 고마운 뜻의 단비는 순수 우리말인 데다 어감도 좋아 사람의 이름으로도 잘 쓰인다.이틀에 걸쳐 전국에 내린 비는 제주도 산지에는 300㎜ 이상 비를 뿌리는 등 대구와 경북에도 약간의 비를 내렸다. 가뭄으로 애를 태웠던 농민들이 가장 먼저 반겼다. 또 전국에 걸쳐 동시다발로 일어나던 산불로 고생하던 소방수들도 잠시나마 숨을 돌렸다. 국립산림과학원은 5㎜ 정도의 비가 내리면 25.1시간 즉 하루 정도 산불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2015년 3월 기상청은 봄비의 경제적 가치를 환산해 발표한 적이 있다. 대기질 개선효과, 가뭄해소, 산불예방 효과 등 약 2천400억 정도 라 했다. 어떤 셈법으로 나온 계산인지 알 수 없으나 지금과 같은 시기에 내리는 비는 그야말로 금비다.농업을 천직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비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특히 봄비를 쌀비라 불렀다. 봄비가 농사에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아쉽지만 고마운 봄비 소식이 있어서 다행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4-06

청명 날 봄비, 산불을 끄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이번 주는 청명·한식에 식목일까지 몰려있다. 청명은 ‘하늘이 맑아진다’는 날이라 날씨가 좋으면 그해 농사가 잘되고 고기도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올봄은 유난히 가뭄이 심하고 산불이 잦아 걱정이었는데 마침 단비가 내려 크고 작은 산불도 끄고 산과 들도 물기를 머금게 하였으니 오히려 농사가 잘될 것이 아닌가.오동나무 꽃 피우고 종달새 나타나고 첫 무지개가 뜬다는 청명 절기에 예년처럼 되풀이된 식목일의 산불을 각인시키려는 듯, 지난 2일 오전 충남 홍성을 시작으로 전국 34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은 강풍에 힘을 얻어 4일까지 58곳으로 확산해 그 발화원인에 야릇한 의심을 사게 만들기도 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피해가 심한 10개 시·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주택과 공공시설의 피해복구 등 후속 조치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산불 피해 면적이 10ha 이상인 곳만 5곳, 그중 4곳이 충남 호남이다. 경북은 최근 3년 동안 청명 한식 전후로 10건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이번 전국적 산불 사태에서 경북지역 피해가 적은 것은 올해 1월 출범한 경북소방본부 소속 ‘119산불특수대응단’이 24시간 진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이다.그동안 계속되어 온 가뭄 현상으로 전국의 산천은 거의 말라버렸고 이에 따라 화재위험이 크다는 우려에 3월 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위험지수 4단계 중 ‘높음’으로 예측하며 4일 비가 내리기 전까지 지속될 전망이라고 예보한 바 있다. 자료를 보면 희한하게도 식목일날 산불 발생이 2000년 50건, 2002년 63건 등 청명·한식에 많이 발생했다.옛날 임금이 고을 수령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내려주는 불을 받으려고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었다’고 한식이라고 했지만, 불을 금했다는 이날 요즘 산불이 많다 보니 그 의미가 묘하다. 이제 산불도 다 꺼졌으니 한식에 약밥, 쑥떡을 먹으며 무병을 빌고 또 윤달이니 조상묘를 찾아가서 풀 베고 잔디 입혀 성묘하며 마음을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지금껏 강원과 경북이 산불 주요 발생지역이었던 것은 태백산맥의 영서에서 영동으로 불어오는 양간지풍(襄杆之風) 탓이라 하며 이번처럼 충남 호남지역에서 많이 발생할 것은 예상치 못했다. 다행히 청명 날부터 전국적으로 단비가 내려 산불은 껐지만, 평균 이하 강수량으로 50년 만의 가뭄 해갈에는 부족할 것 같다. 그런데 제주와 남해 지역에서는 호우주의보, 강풍특보 등이 내려 항공편 결항사태를 빚었으니 참 이상한 기후 현상이다.요즘은 식목일 행사도 뜸하다. 그러나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고 했으니 비록 산림복구엔 100년이 걸린다지만 잿더미가 된 축구장 4천400개 넓이의 산에 힘을 모아 나무를 심어야겠다. 산불 피해로 마음 둘 곳 없는 이재민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봄갈이하는 들판에도 계속 비가 내렸으면 한다. 이상 고온으로 서둘러 핀 벚꽃이 이번 단비로 모두 떨어져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시원한 메밀국수 한 그릇 훌훌 말아먹고 진달래술 한잔하며 정녕 아름다운 4월을 만들어 가자.

2023-04-06

지성인(知性人)의 사명과 역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바람직한 문명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성인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해박한 지식과 합리적인 사고,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지성인의 역할이다. 또한 지성인은 뛰어난 지식과 인격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과 발명을 창출하며, 예술과 문화, 철학 등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은 문명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가능케 하며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류의 진보를 촉진한다. 요즘 우리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반지성적 행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뒷골목 불량배들의 얘기가 아니라, 사회 지도층에 만연해 있는 폐단을 말하는 것이다. 반지성이란 정략적 의도나 개인적인 감정, 불의한 이념을 쫓는 편견 등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지성적인 시각과 행동이 생산한 편견과 거짓정보는 언론과 인터넷매체 등을 통해 삽시간에 확산될 수 있다. 그로 인해 일반 국민들은 진상을 호도하게 되고 민심이 왜곡되는 것이다.반지성적 풍조의 발원지는 정치권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보니 합리성이나 진실성, 도덕성 따위를 무시한 거짓과 왜곡, 억지와 모함이 판을 치는 것이다. 거기에 각종 언론매체들이 선정적으로 가세해서 일반 국민들은 물론 청소년들까지 거짓과 천박함을 당연시 하게 되었다. 정치세력을 형성하는데 편 가르기 만큼 손쉽고 유용한 것이 없다. 이념이든 계층이든 젠더든 일단 편을 갈라서 저들끼리 싸우게 해 놓으면 절반은 거저먹는 게 정치세력이다. 그 한 쪽 편에 힘을 실어주고, 거기다 포퓰리즘과 선전선동으로 민심을 잡으면 집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공학적 계산이다.편 가르기 정치의 대표적인 수단이 ‘내로남불’이다. 무슨 짓이든 내가 하면 정의롭고 상대방이 하면 불의와 적폐라는 논리다. 이런 억지 주장을 관철하려면 당연히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아무리 비리와 거짓이 드러나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후안무치가 지지 세력을 공고히 하는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후안무치의 결정판은 적반하장이다.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라는 것이다. 궁지에 몰리면 자신의 비리와 부정 혐의를 오히려 상대편에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수룩한 국민들에게 사건의 본질을 흐려 양비론 정도만 끌어내도 성공인 것이다. 패거리정치판의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 진영논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고, 진영논리의 추진력은 확증편향에서 나온다. 반지성적 풍조에 휩쓸려 천박해지고 황폐해진 민심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언론과 교육과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 역시도 편이 갈리고, 부정과 비리를 공정하게 단죄해야 할 사법부조차도 진영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지성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지성이 오히려 적폐로 몰린다. 무조건 자기 패거리를 지지하지 않으면 저주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지성의 역할이고 사명이다. 악조건일수록 오히려 더 분발하여 정의로운 언행으로 맞서야 한다. 건강한 사회와 국가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지성인의 역할이 절실한 현실이다.

2023-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