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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선거철 단상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바야흐로 선거철은 선거철인가보다. 내년 3월 치를 대통령 선거나 지방선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침 등교시각, 인천의 한 중학교 앞에서 눈길 끄는 선거운동 광경을 목격했다.아마 중학교 학생회장 선거가 시작됐나 보다. 학교 정문 앞에서 붉고 푸른 형형색색의 피켓을 든 학생들이 줄지어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번호가 7번까지 있는 걸 보니 7명의 후보가 출마했나 보다. 회장 후보로 출마한 학생들이 표심을 얻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코스튬 플레이를 연출했다. 세계적인 히트를 친 넷플릭스 영화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체육복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학생들이 등장한 것이다. 또 다른 학생들은 지지후보의 이름과 번호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학생들은 “모두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기호 ○번, ○○○”라고 캐치프레이즈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지지를 호소했다. 어린 학생들이 기성 정치인처럼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실감과 함께 오래전 순수했던 학창시절 추억들이 떠올랐다.필자는 대구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녔는데, 반장은 주로 담임선생님의 지명으로 정해졌다. 선생님들은 주로 공부를 잘하거나, 학교생활 하는 데 모범적인 학생에게 반장을 맡겼다. 그러니 선출직이 아니라 지명직이었던 셈이다. 반장의 임무는 다양했다. 기본적으로는 아침 등교 후 출석 점검, 수업시작 전 선생님께 인사 구령하기, 과제물 검사, 교실 청소와 미화 업무분담 지시 등등이었다. 반장을 맡으면 교무실에 자주 불려다니고, 반장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등 꽤나 성가시었지만 혜택도 적지 않았다.성적표에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란 우호적인 평가가 따라붙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제와 고백하거니와, 개인적으로는 과제물 검사를 반장이 전담하기에 스스로는 과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특혜가 있어 좋았다. 특히 선생님들에게 모범학생이란 인상을 주는 것 자체가 큰 메리트였다. 아무리 호랑이 선생님이라해도 여간 잘못하지 않고는 반장을 혼내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매 교시 수업 시작 전에 반을 대표해 일어나서 “차렷, 열중쉬어, 차렷, 경례!” 하고 선생님께 인사구령 붙이는 일이 꽤나 멋있었다. 필자 역시 그게 멋있어 보여 무척 즐겼던 기억이 난다. 다만 ‘반장들의 반장’인 전교 학생회장은 그때도 직선제로 뽑는 경우가 많았다. 선생님들마다 자신이 맡은 반 학생이 전교회장을 맡길 바랬기 때문이었을게다. 초등학교 시절, 전교학생회장 후보로 나섰다가 연설원고를 모조리 까먹는 바람에 낙선했던 악몽도 이제는 정겨운 추억으로 남았다.대의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 법. 어린 학생들이 학생회장 선거를 통해 대의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는 선거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어떤 사람을 뽑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21-12-16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천심은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선정국.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운명이 한판 승부에 걸렸다. 결전의 날은 다가오는데 국민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예측도 하고 통계도 읽어보지만, 숫자가 분명한 무엇을 가르키지 못한다. 국가적으로도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세인들의 관심과 언론매체의 초점이 선거전에 몰렸으면서도 그 본질이 무엇일까 갈수록 오리무중이 아닌가.후보들의 공약이 선거 후에 물거품이 되는 걸 수다히 목격하였다. 철석같이 믿는 국민도 그리 없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선거전을 바라보는가. 소신과 비전은 어디로 가고 표만 따라 갈대처럼 흔들리는 우리의 선거판. 민심은 정말 천심일까, 아니면 그냥 해보는 소리였을까.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관찰, 치밀한. 그냥 보고듣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비교하고 분석하여 더 나은 선택을 이끌어내는 일. 어차피 모두에게 최선은 없다. 누구든 완벽한 후보도 없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진정성을 헤아려야 한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야 한다. 실수와 과오도 짚어야 하고 성과와 찬사도 들어봐야 한다. 이룬 일의 발자취를 돌아봐야 하고 그르친 바에 성찰이 있었는지 들춰봐야 한다. 무엇보다 정직하고 바르게 일하려는 노력과 관심이 보여야 한다. 배려와 공감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하며 거짓과 음모를 경계하는 자세가 보여야 한다. 눌린 자를 헤아리는 측은지심이 있어야 하고 힘센 자의 마음을 여는 재주도 있어야 한다. 다음세대의 눈높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두렵게 여겨야 한다.20·30 유권자 청년층도 중요하지만, 청소년과 어린이들도 살펴야 한다. 학교에서 정치와 사회를 배우지만 목격하는 현실에서 더 많이 깨우친다. 그들은 오늘 대선판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공정과 정의를 배워야 하는데, 불평등과 부정의만 목격하지는 않는지 생각해야 한다. 나라의 내일은 그들에게 달렸는데, 정치권이 오늘 표에만 매달린다면 교육을 해치고 다음세대를 망치지 않을까.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인사가 만사라면서 날마다 뒤집히는 바꿔치기의 연속. 정직해야 한다면서 아무리 들어도 거짓으로 가득찬 정치권의 권모술수. 긴 미래를 말한다면서 몰두하는 오늘 당장의 손해와 이익. 디지털세상에서 감출 길 없는 세상의 모습에서 모든 게 다 보인다.들어서 배우기보다 보면서 배운다. 선거판이 드러내는 모습은 그들에게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책으로 익히기보다 겪으면서 익힌다. 그들이 익히는 태도와 습관은 정직에 가까울까 거짓에 가까울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배우고 익히는 게 켜켜이 쌓여 선택도 하고 투표도 할 터인데, 이대로 세월이 흐르면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표가 모여 결과를 빚는다면, 천심은 결국 우리가 만든 게 아니었을까. 하늘에서 운명처럼 떨어지는 천심에 기댈 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관찰하는 민심을 키워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다.

2021-12-15

바퀴 달린 냉장고의 약진

한때 ‘바퀴 달린 냉장고’라는 혹평을 듣던 국산 자동차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세계적 권위의 자동차 시상식에서 잇달아‘올해의 차’로 선정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올해 자동차 선진 시장인 북미와 유럽의 주요 자동차 시상식 10곳 중 6곳에서 최고상을 받았다고 15일 밝혔다. 최고상 없이 부문별로만 발표하는 왓카와 카앤드라이버를 제외하면 8개 시상식에서 6개를 받아 사실상 올해 주요 자동차 어워즈를 휩쓴 셈이다.현대차그룹은 각 국가 및 지역 자동차 전문가로 구성된 단체가 평가하는 북미·유럽·세계·캐나다·독일 등 5개 시상식에서만 3관왕을 차지했다. 엘란트라는 북미 올해의 차, GV80은 캐나다 올해의 유틸리티, 아이오닉5는 독일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 자동차 전문 매체가 발표하는 시상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왓카·카앤드라이버·탑기어·모터트랜드·오토익스프레스 5개 시상식에서 현대차그룹은 모터트랜드 올해의 SUV(GV70), 탑기어 올해의 차(i20 N), 오토익스프레스 올해의 차(아이오닉5) 등으로 3번의 최고상을 차지했다. 폭스바겐, 토요타 등 세계적인 완성차 회사들을 압도한다. 특히 의미있는 것은 영국의 자동차 전문매체‘탑기어’의 평가다. 탑기어가 지난 2004년 현대차를‘바퀴 달린 냉장고 또는 세탁기’에 빗대 조롱하며 “영혼과 열정이 없다”고 비난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그후 17년이 지난 올해 탑기어는 현대차의 유럽 전용 소형 해치백‘i20n’을 올해의 차로 선정하며 “경주 트랙이나 일반 도로 어디서든 안정적이고 재밌는 주행능력을 선보였다”고 칭찬했다. K-자동차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왠지 가슴 뿌듯해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15

생태 전환 교육과 환경 지혜 교육 (下)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가히 폭발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온 국가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K-방역, 백신 등을 내세우며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곧 이길 수 있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이다. 그런 인간에게 코로나는 변종 바이러스로 응수 중이다. 변종에는 정답이 아닌 해답이 필요하지만, 인간은 오로지 정답 찾기에 바쁘다.코로나는 지금까지 살아 온 인간의 삶의 방식이 오답(誤答)이라고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인정(認定)을 모르는 인간은 그 신호를 해석할 마음을 잃었다. 마음을 잃는다는 것은 곧 인정(人情)을 잃는 것과 같다. 마음이 없으면, 봐도 본 것이 아니고,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진실과 진리가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다.필자는 사람이 만든 말 중에 가장 이기적인 말이 극복(克服)이라고 생각한다. 극복(克服)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냄. 적을 이기어 물리침”이라고 나온다. ‘코로나19 극복’이라는 문장에 쓰인 ‘극복’이라는 말 역시 이 뜻이다.우리는 코로나 상황을 슬기롭게 넘어야 한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코로나를 무조건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한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 초월의 환경 재앙이다.코로나를 극복(克服)보다는 극복(克復)의 자세로 대하면 어떨까! 코로나는 무분별한 개발주의가 부른 인재(人災)다. 그래서 해결 방법도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바뀌면 코로나 양상도 바뀐다. 사람을 바꾸는 방법은 극복, 즉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논어 안연편에는 극기복례라는 말과 함께 “爲仁由己 而由人乎哉(인을 행함은 자기를 말미암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말미암겠는가!)”라는 글귀가 나온다. 여기에 세상 모든 문제를 풀 답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실천이다. 실천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죽은 지식은 사람을, 사회를, 지구를 병들게 한다. 지식은 지혜의 근원이다.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키는 데에 필요한 것은 실천이다. 환경 지식 교육도 중요하지만, 지금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이 환경과 관련해서 배운 지식을 스스로 실천을 통해 환경 지혜로 승화하는 실천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의 생각이다. 교육부나 정부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학생의 동의 없이 일방적인 지시로 환경 교육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학생은 마음을 닫고, 교육 당국을 극복(克服)의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양심 없는 이 사회가 환경 미래 세대라고 추켜세우는 학생의 환경에 대한 마음을 영원히 못 열지도 모른다.‘기후 위기 극복 및 탄소 중립 실천을 위한 학교 기후·환경 교육 지원방안’을 세울 때 학생에게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한 번만 물어보면 안 될까!

2021-12-15

닭 우는 소리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항복을 하자 독일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은 나치경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본 회퍼는 반 나치주의자 답지 않게 나치경례를 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본 회퍼를 향해 변절자라고 비난을 했다. 나치경례를 거부하던 자들은 나치의 탄압에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제 목숨 살리기 위하여 망명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나치경례를 용납했던 본 회퍼는 히틀러에 저항하다 형무소에서 처형을 당했다. 본 회퍼에게 경례하는 일은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목숨을 아껴 두었다가 정말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그는 도망가지 않고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다.예수께서 로마의 병사들에게 잡힐 때에 베드로가 칼을 빼 들고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때에 예수는 칼을 거두고 저항하지 말라고 하면서 순순히 포박을 받았다. 그렇게 목숨 바쳐 싸우려 했던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형장으로 가자 자기 목숨 살리기 위해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거짓증언을 하면서 도망갔다. 베드로는 작은 일에는 목숨을 거는 듯 했지만 정작 큰일에는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 반면에 예수는 작은 일에는 목숨을 걸지 않았지만 큰일에는 목숨을 바쳤다. 인간사가 그렇다. 잘 나갈 때에는 간이라도 빼어 줄듯 온갖 아부를 다하며 선봉에 서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 함석헌 선생이 어려운 일을 당하자 평소에 늘 주변에 알랑거리던 사람들이 다 떠나갔다. 함 선생은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하며 탄식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 뱉는 것이 인간지사(人間之事)이고 보니 우리 사는 세상이 감탄고토(甘呑苦吐)의 기회주의 소인배들의 난장판이 될까 걱정스럽다. 공자가 말하길 “성인은 내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군자만이라도 만나 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성인 같은 요순임금 이후에 권력과 사리만 탐하는 소인배 임금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나라가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바울은 “개인적인 혈과 육을 상대하여 싸우지 말고 악한 권세를 가진 통치자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싸우라”했다. 대의명분 없는 일에 제발 목숨 걸고 싸우지 말고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에 목숨걸고 싸워야 하지 않을까?제 목숨 살기 위해 도망가던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에 문득 깨우치고 다시 돌아와 대의를 위하여 거꾸로 십자가를 짊어진다. 닭 우는 소리는 깨우침을 주는 은유적 표현으로 육사의 시 ‘광야’에도 나온다.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2021-12-15

피라칸사스처럼

양태순수필가 잎들이 떠나고 있다. 내내 붙들고 있던 가지에서 떨어져 바람을 잡고 날아오르거나 신발 밑창에 붙어서 어디론가 옮겨간다. 더러는 자신을 키워준 나무 주위를 이리저리 흩날리다 밑동에 엎드리기도 한다. 자신만의 색깔로 마지막을 마무리한다.때가 있다는 말이 크게 다가오는 계절이다.가로수에 몇 남지 않은 잎새에 새삼 마음이 간다.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연인의 떠난 마음을 귀찮게 하는 질척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은 끈적한 미련으로 보여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떠날 때가 같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스스로 지금이라고 여기는 순간이 가장 좋을 때가 아닐까.우리는 흐름의 물결에 휩쓸려 갈 때가 있다.마치 내 생각이나 존재의 이유는 없는 것처럼 따라간다. 앞서가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으로 나아가는지 알 틈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뒤처지지 않으려고 용을 쓸 뿐이다. 그래서 낭패를 보기도 한다.나는 가끔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유행이라는 이유로 사들인 옷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징이나 나이와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이외에도 헤어스타일, 여행, 맛집 등이 있다. 나에게 맞는다는 말을 잊은 선택이었다. 그중에 으뜸은 검색창에 뜨는 맛집 탐방이다. 수많은 리뷰가 맛있다고 하는데 막상 찾아가서 먹었을 때 이건 아니야, 느낀 적이 많다.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남들과 어울려 가려면 같은 그룹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이다. 내가 중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하여 앞서가는 그룹의 끝자리라도 차지하면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 뒤처진다는 것이 무능력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해서다.이성의 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오십이 넘으면서 덜거덕거리며 더 심해졌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동작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음을 느꼈을 때부터다. 마음이 바빠지고 괜스레 허둥거리며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식에 얹혀간다면 보통은 하리라 믿으며 나를 주장하기보다는 나를 안으로 불러들였다.가로수 뒤로 공장 울타리를 만든 피라칸사스를 본다.봄부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그곳에 겨울이면 빨간 열매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의 일부였다. 계절마다 눈을 빼앗는 갖가지 꽃들과 열매의 유혹에 넘어가서이다. 지금은 나무들이 잎을 떨구어 겨울이라는 여백을 만드는데 홀로 붉다. 근사한 작품으로 다가온다.지금부터 그의 계절이다. 바람이 차가울수록 마음이 시릴수록 더욱 돋보이는 피라칸사스다. 무채색 고요 속에서 흐트러짐 없는 존재를 붉게 드러내어 시선을 가둔다. 배고픈 새들에게 양식이 되어주는 보시로 사람들의 마음에 따스함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그 열매는 봄까지 가지를 붙잡고 있다.피라칸사스는 저만의 속도로 일 년을 산다. 온갖 꽃들이 앞줄에서 사랑을 받아도 시샘하지 않고 묵묵히 때가 되기를 기다린다. 기온이 널뛰기하듯 오르락내리락해도 서두르지 않고 줏대를 지켜 지긋이 내면을 키운다.무엇에 쫓기듯 달려가는 나에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큰 숨 내쉬고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으련다, 쉽지 않겠지만 흉내라도 내야겠다. 그러다 보면 가슴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시린 바람 드나드는 마음 구멍을 메울 방법도 찾을 수 있으리라.산다는 것은 살아내는 일이다. 각자의 앞에 쌓인 문제를 풀어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호흡에 맞춰 인생시계를 설계하면 된다. 겨울 길목을 홀로 밝혀 건너가는 저 피라칸사스처럼.

2021-12-15

길짐승일까 날짐승일까

불가에서 중생(衆生)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중생의 뜻은 두 갈래로 분화되었는데, 하나는 끊임없이 죄를 지으며 해탈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또 하나는 발음이 ‘짐승’으로 변해 사람을 제외한 동물만을 가리킨다.하늘을 나는 짐승은 ‘날짐승’, 땅 위를 기는 짐승은 ‘길짐승’이다. 들에 사는 짐승은 ‘들짐승’이며 물에 사는 짐승은 ‘물짐승’, 산에 사는 짐승은 ‘산짐승’이다. 집에서 키우는 짐승은 ‘집짐승’이며 한자어로는 가축(家畜)이다. 이들을 통틀어 금수(禽獸)라고 하는데, ‘禽’은 날짐승이며 ‘獸’는 길짐승이다.우리말은 짐승뿐만 아니라 그것의 새끼도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였다. 사람으로 치면 ‘어린이’라고나 할까,풀치 : 갈치 새끼.강아지 : 개 새끼.망아지 : 말 새끼.고도리 : 고등어 새끼.간자미 : 가오리 새끼.꽝다리 : 조기 새끼.능소니 : 곰 새끼.개호주 : 호랑이 새끼.꺼병이 : 꿩 새끼.애소리 : 날짐승의 어린 새끼.초고리 : 매 새끼.병아리 : 닭 새끼.솜병아리 : 알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솜털 같은 병아리.서리병아리 : 서리가 내릴 즈음 알에서 나온 병아리.숭어/모쟁이, 조기/깡다리, 농어/껄떼기, 멸치/잔사리, 명태/노가리, 노래미/노래기, 누치/대갈장군, 방어/마래미, 웅어/모롱이, 잉어/발강이, 민어/암치, 상어/전데미, 전어/전어사리암소의 배에 있는 송아지를 ‘송치’라고 불렀다. 길짐승에게 사람처럼 태명을 붙인 이유는 소를 가족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밭을 갈고 수레를 끌고, 농사에 가장 큰 노동을 담당하는 소는 사람과 가장 밀착된 교감이 있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소를 사람처럼 소중하게 여겼다.동부레기 : 뿔이 날 만한 나이가 된 송아지.부룩소 : 아직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 엇부루기.하릅송아지 : 태어난 지 1년 된 송아지.불강아지 : 몹시 여윈 강아지.찌러기 : 성질이 몹시 사나운 황소.푿소 : 여름에 생풀만 먹고 자라 힘을 잘 못 쓰는 소.애돝 : 한 살 정도 된 돼지.햇돝 : 그 해에 태어난 돼지.짐승은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다. 한 태에서 낳은 새끼 가운데 제인 먼저 나온 놈을 ‘무녀리’라고 불렀다. ‘門열이(문+열+이)’ 즉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으로 발음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무녀리는 산도를 연다고 안간힘을 써서 그런지 다른 새끼들에 비해 몸이 약하다고 한다. 그래서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을 빗대어 비유하는 말로도 쓴다.날짐승도 아니고 들짐승도 아닌 짐승이 있다. 닭과 오리인데, 둘은 멀리 높이 날지 못하거니와 걷거나 뛰는 동작도 서툴기 그지없다. 저리 굼떠서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은데, 멸종되지 않고 종족을 보전하고 있다. 사람에 의해 길러진 ‘길짐승’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사람이 짐승의 생태에 개입한 건 개가 처음이라고 한다. 집짐승화되면서 개는 야성을 버리고 주인에게 아양을 떠는 동물이 되었다. 천적이 우글거리는 야생에 비하면 집은 먹이와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니, 주인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습성이 길러진 것이다.개들은 주인을 보면 배를 발랑 드러낸다. 포유류는 신체에서 배가 가장 약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강자에게 배를 드러내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주인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행위이다.애완견은 야생에서 살지 않아도 되니, 죽어라 뜀박질할 일도 없다. 천적의 눈을 피해 숨거나 몸을 움츠릴 일도 없다. 사람에게 재롱을 떨면 되고 예쁘게 보이면 된다. 그래서 사람과 함께 사는 개는 새끼를 낳을수록 예쁘고 귀엽게 진화한다. 요즘 반려동물을 보면 다 그렇다.야생에서 살 자유를 포기한 집짐승과 야생에서 마음껏 살아가는 들짐승, 둘 중 누가 행복할까.생뚱맞은 말 같지만, 이는 인간에게 근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교칙, 규칙, 윤리, 도덕에 길들여진 존재인 인간, 밥줄을 쥔 ‘센놈’에게 아양을 떨어야 하고 잘 보여야 하고 더러는 충성을 서약해야 한다. 이렇게 살라고 태어난 목숨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모든 속박을 끊고 산들바다로 떠나 원시의 자유를 누린다.어느 바닷가에서 닿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속이 탁 트인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날짐승을 보면 시원하고 유려한 날갯짓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유를 향한 동경 한 컷이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2-15

비판하기의 책임감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Pixabay 글을 쓴다는 직업의 특성상 내 글에 대해 타인의 의견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 보았다는 인사치례 정도의 말이 대다수이지만, 개중에는 나의 글을 세밀하게 읽고 문제점을 지적해주는 고마우신 분들도 있곤 한다. 그런 의견을 들을 때면 소중한 독자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런 지적들에 괜시리 서운한 마음이 들어 마음에 상처를 받곤 한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내 귀는 종종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대상에 대해 이성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로부터 문제점을 찾아낸 후 이를 개선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비판이라면, 비난은 대상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감정적으로 힐난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겠다. 분명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보면 둘을 구분하는 건 매우 간단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현실에서 이 둘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건설적인 비판을 가장하고 대상을 깎아내릴 뿐인 경우도 적지 않으며, 비난하듯 감정적인 표현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 이면엔 대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전제돼 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비난인지, 혹은 조금은 감정적인 비판인 것인지를 구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비판은 수용하고 비난은 멀리하라는 건 누구든 알고 있지만, 그건 내가 나의 마음을 지킬 힘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지치고 힘든 순간이면 타인의 비판은 얼마든지 내 마음을 꺾어버릴 방아쇠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내가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지적인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타인의 작품에 대해 마치 폭로하듯 문제점을 지적하곤 한다. 그러한 나의 행동이 나의 가치를 올려주기라도 한다는 듯 말이다.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런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한낱 식사를 하더라도, 그 음식에 대해 평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더 나은 사례를 말하느라, 그들은 종종 내가 자신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겠으나, 이런 종류의 평가들은 대개 그것을 만족하며 먹는 이를 향해 “네가 제대로 하는 집을 안 가봐서 그래”라는 비난 아닌 비난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아 함께하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곤 한다.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건 비판이 단지 대상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판이라는 건, 타인에 대해 말한다는 건, 다른 대상에 대해 말한다는 건 생각 이상의 책임을 요구한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 말을 듣게 될 타인이 경험하게 될 감정적 소요에 대한 책임.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태도와 말을 잘 정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한 것과 무책임한 것은 다르다. 굳이 일침을 날린다며 치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말들을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만약 내가 당신의 비판을 받아들이길 원한다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져달라는 부탁이기도 하다.어쩌면 이런 나의 태도 자체가 굉장히 유아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지적받고 싶지 않고, 평가받고 싶지 않은 그런 아이 같은 생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더 잘할 수 있잖아’라는 식으로 무책임한 비판과 비난을 듣는 것이 때로는 나를 지치게 만든다. 왜 나는 구태여 글을 쓰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몰려올 정도로 말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실 나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근근이라도 꾸준히 잘 해나가고 싶은 것이고, 그런 종류의 비판이야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힘들고 지친 사람에게는 아주 간단한 칭찬도 때로는 구원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취향과 작품에 대해 평가할 때면 자신에 대한 것보다 수십 배는 엄격해져 무책임한 비판을 쏟아내기 일쑤다. 마치 창작을 하는 사람보다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처럼.사람들은 때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앞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은 감수해야 한다는 듯이 말하지만, 그건 무언가를 만들어본 적도, 앞에 나서 본 적도 없는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정말로 어려운 건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쉬운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을 타인보다 우위에 서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자신을 증명하는 건 그 사람이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지, 쉬운 일을 반복할 때가 아니다.

2021-12-14

술 한 잔의 힘

술 마시기를 즐기는 편이다. 술에 관한 대단한 지식이 있다든가 그렇다고 소주를 궤짝으로 마시는 엄청난 술꾼도 아니기에 정말이지 ‘즐긴다’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술의 세계는 넓고 주당은 많지만 나의 식견은 짧으니 이렇게 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지. 어쩌겠는가. 감히 외쳐본다. 나는 술이 좋아.어쩌다 나는 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집안 내력은 아니다. 나의 부모님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그들이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늦은 저녁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아버지가 “통닭 사 왔다!”고 외치는 건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술사랑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얻게 된 후천적 결과물인 셈이다.나를 술의 세계로 인도하고 혹독하게 단련시킨 건 대학 동기들이다. 우리는 서울 아현동과 신촌 일대를 누비며 어제도 내일도 마시고 또 마셨다. 따로 약속할 필요도 없었다. 단골 술집에 가면 나의 동료들이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지는 해를 보면서 건배를 외치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귀가하던 날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신촌의 어느 술집 사장님은 우리가 자리에 착석함과 동시에 서비스로 모둠 튀김을 내어줄 정도였다.그때의 나는 술보다 술자리가 더 좋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글 쓰는 청년들, 어딘가 이상하고 비뚤어진 구석이 있는 인간들과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찌나 재밌던지. 날이 어두워지면 밖으로 뛰쳐나와 그들과 함께 실컷 떠들면서 이런저런 고민들을 나눴다. 술 한 잔에 낯선 이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목소리가 커졌으며 선명한 정신일 때는 하기 힘든 이야기들도 술술 흘러나왔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함께 술을 마시는 행위가 늘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술병이 쌓여갈수록 더 그랬다. 이성이 풀어지면서 드러나는 민낯은 당연하게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자리에서 곯아떨어지는 사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를 벌컥 내 거나 남들과 시비가 붙는 사람, 집에 가겠다고 택시를 부르는 사람, 가겠다는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사람….함께 술을 마시는 일에는 서로의 흑역사는 묻어두자는 암묵적 약속이 수반되는 것이 아닐까. 부끄러운 행동을 하나하나 들추어내자면 끝이 없으니.나 역시 다양한 술버릇이 있다. 그나마 공개할 수 있는 버릇 중 하나는 극도의 감정 과잉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다지 재미없는 상대의 농담에도 자지러지게 웃고 별로 슬프지 않은 일에도 펑펑 눈물을 흘린다. 눈앞에 있는 땅콩이 너무 조그매서 눈물이 나고 금이 간 소주잔의 모양에 마음이 깨질 듯 아프다. 창피한 모습이지만 널뛰는 감정을 아무렇게나 표출하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언제부터일까. 나는 그렇게도 좋아하던 술자리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나 자신의 행동을 극도로 검열하게 되었으며 아무 옷이나 훌렁훌렁 걸쳐 입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들이켜는 술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주종과 관계없이 꼴딱꼴딱 잘 들이키는 편이지만 요즘에는 특히 와인을 즐겨 마신다. 계속 들이켜도 배가 부르지 않고 이렇다 할 안주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좋다. 길쭉한 잔에 와인을 꼴꼴꼴 따른 뒤 입안에 잠시 머금고 목구멍 뒤로 꼴깍 넘기면 고단한 하루가 서서히 끝나는 것이 느껴진다. 술기운이 스르르 온몸을 감싸면 아,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곤 하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술을 마시니 알겠다. 온전한 정신으로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두침침하게만 느껴지는 고민에 명쾌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날들이 늘어간다. 모든 것이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 날에는 술 한 잔의 힘이 필요하다.항상 취한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술기운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었던 나는 다음 날이면 다시 소심하고 무력한 인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취기로 걸었던 전화를 후회하고 상대에게 뱉은 말을 자책하며 내가 아닌 내가 한 약속에 발목이 잡힌다.그럼에도 아직 술 한 잔은 내게 여전한 위안이 된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골라 담는 맥주와 샤워를 마친 후에 마시는 와인, ‘요즘 일 때문에 힘들지? 저녁에 만날까?’ 친애하는 친구에게 오는 연락이 가진 위로의 힘이 소중하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한 잔의 술을 마신다. 내일의 나는 나약할지라도. 일단 지금은 건배.

2021-12-14

이전투구(泥田鬪狗)

정도전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격동기에 등장한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때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본격 활약을 시작한다.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을 비롯해 현재 경복궁과 도성 자리를 정하고 이름도 그가 지었다.하루는 태조가 개국공신인 정도전을 불러 우리나라 팔도사람의 특징을 네 글자로 표현해 볼 것을 명한다. 이때 이전투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그는 함경도 사람을 이전투구에 비유했다.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처럼 강하다는 뜻이다. 함경도 출신인 태조가 그의 말을 듣고 언짢은 듯 표정을 짓자 그는 “돌밭을 가는 소와 같다.”라는 뜻의 석전경우(石田耕牛)처럼 함경도 사람은 우직한 성품을 가졌다는 말로 바꾸어 설명했다고 한다.참고로 그가 지역별 사람의 특징을 평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사람은 거울에 비친 미인(鏡中美人)으로, 충청도 사람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春風明月)과 같고 전라도는 부드럽고 양반의 품성(風前細柳), 경상도 사람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松竹大節), 강원도는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岩下老佛)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이전투구는 원래 함경도 사람의 강인한 성격을 평하는 말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거나 다투는 것을 비유할 때 쓰이는 뜻으로 변형이 됐다.교수들이 뽑은 올해 한국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 가운데 이전투구가 세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코로나나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힘들어하는 국민은 안중에 없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마치 이전투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우리의 정치 대오각성이 있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14

열다섯, ‘오감도’와 오미크론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模型心臟(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업즐러젓다.내가遲刻(지각)한내꿈에서나는極刑(극형)을바닷다.내꿈을支配(지배)하는者(자)는내가아니다.握手(악수)할수조차업는두사람을封鎖(봉쇄)한巨大(거대)한罪(죄)가잇다.”(한자만 한글로 병기하고 원문 그대로 옮김)26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이 1934년 8월 8일자 조선중앙일보에 게재한 시 ‘오감도 시제15호’의 마지막 6연이다. 어절 사이는 물론 문장 사이의 띄어쓰기도 하고 있지 않은 이 시는 ‘오감도’ 연작시의 열다섯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원래 ‘오감도’ 연작시는 1934년 7월 24일에 실린 ‘시제1호’로부터 시작하여 30편까지를 계획하였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시15호’에서 결국 중단되었다.연작시 15편 모두에 대해 해석이 난분분한데, ‘시15호’에서 나는 전율을 느낀다. ‘악수조차 할 수 없는 두 사람’은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이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인사의 악수, 화해의 악수, 조약의 악수조차 할 수 없는, 시 창작 86년 뒤인 미래 세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듯해서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종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알파와 델타 그리고 지금 전 세계를 다시 긴장시키고 있는 오미크론 등 몇 개의 변이종만 아는 정도이지만 ‘오미크론’(Omicron)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열세 번째 변이종이다. 그런데 ‘오미크론’은 고대 그리스어 알파벳의 열다섯 번째 글자인 ‘O’의 이름이다. 열세 번째 이름인 ‘뉴’(nu)는 ‘뉴(new)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열네 번째 이름인 ‘크시’(xi)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영문 성(Xi)와 같아서 의도적으로 건너뛰었다고 한다.열세 번째 변이종에 열다섯 번째 글자 이름 ‘오미크론’을 붙인 것인데, 나는 ‘오감도 시1호‘의 첫 문장 ‘十三人(십삼인)의兒孩(아해)가道路(도로)로疾走(질주)하오.’를 떠올리며 다시 전율하였다. ‘십삼인의 아해’가 지금 열세 개의 바이러스로 돌변한 것은 아닐까? 이들이 세계의 길이란 길을 종횡무진 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시 ‘오감도’가 새롭게 읽힌다. 이상의 난해한 연작시는 열다섯 번째 작품에서 멈추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변이종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한데, 이 바이러스의 질주가 언제나 멈출 것인가.‘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 15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많은 강연자가 발굴되었고, 세바시 15분 남짓의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공자는 열다섯 나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吾十有五而志于學). 열다섯은 이렇게 좋게 풀어낼 수도 있는 숫자인데 코로나19는 이 숫자의 함의마저 혐오스러운 ‘변이’를 만들어 내었다.아, 어느덧 대학의 한 학기 수업 총 15주차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대학은 2년째 봉쇄 아닌 봉쇄를 당한 상태이다. 국경과 학교와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는 바이러스에게 있을까,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추악한 인간들에게 있을까?

2021-12-14

친환경을 꿈꾸는 미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오후,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겨울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철길숲길을 따라 서서히 페달을 밟으니, 넌지시 억새가 흰손을 흔들고 차마 떨어지기가 아쉬운 듯 단풍잎새는 팔랑거리며 길손을 반기고 있다.연말이 다가올수록 왠지 모를 다급함으로 일에 채이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다운 시간을 제대로 못 보냈는데, 이 날만큼은 한동안 세워 둔 자전거를 점검하고 오랫만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숲길을 달렸다.철길숲길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포항 철길숲은 ‘202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답게 주변에는 수십종의 나무와 화초가 자리잡았고, 특색있는 각종 조형물들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여러가지 테마길에 걸맞게 설치된 조형물들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여년간 철마가 달리던 선로가 사람과 자연,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친환경 복합테마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한 길을 자전거로 누비며 다다른 곳은 송도해변에 위치한 포항수협 갤러리였다.포항수산업협동조합 문화갤러리에는 (사)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창립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을 통한 환경 사랑운동과 계몽운동에 목적을 둔 순수미술단체인 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창립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을 찾은 것은, 필자 나름대로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며 친환경 캠페인에 동참하여 환경의식을 고취해보고자 함이었다. 전시장에는 각종 생활용품이나 자동차, 공구, 도구, 용품 등을 재활용하거나 이색적으로 재해석한 미술품, 설치물 등이 다양하게 반겼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미지와 글귀, 식탁에 올려지는 산해진미의 이면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올가미 등의 그림이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특히 이색적인 것은 전시장 오른쪽 벽면을 가득 메운 ‘길바닥 껌 그림 친환경 캠페인 프로젝트’ 코너였다. 지난 10월 중순 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회원들과 포스코 재능봉사단이 참여하여 길바닥에 버려진 껌딱지에 그림을 그려 50여일간 전시 후 11월 말경 껌 그림을 제거, 회수하여 껌 그림으로 ‘그린 리더 배지’를 만들어 봉사활동 참여자들에게 나눠주는 추억나눔 테마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길거리 행위예술처럼 길바닥에서 껌 그림 친환경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무심코 버려지는 양심과 이기적인 소비문화 행태에 경각심을 주고 환경사랑의 실천을 제시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왔다.인간과 환경은 물과 고기의 관계(水魚之交)이다. 자연스러움이 안정과 평온, 편안함을 가져온다. 일체의 생명과 생태변화의 장(場)인 자연을 가까이하는 친환경적인 요소와 시도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가꾸고 지키는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싶다. 자연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친환경 미술을 운동으로, 문화로 유지, 발전시켜 환경 친화적인 공존의 삶을 꿈꾸는 작지만 큰 변화의 걸음이 고무적으로 여겨졌다.

2021-12-13

기계의 발전과 유지, 그리고 개선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인류는 탄생 이래 인간의 노동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구를 개발하거나 동물 등 다른 힘을 빌려 농사를 짓거나 재화를 창출하는 노력을 지속하여 왔다. 특히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하여 생산하던 수공업에서 필요한 물건을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과 더불어 촉발된 산업혁명으로, 재화의 생산에 무생물적 자원을 광범하게 이용하게 된 조직적 경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이렇게 기계를 활용해 대량의 재화를 창출하게 되면서 국내 수요를 충족한 국가들이 남는 물건들을 앞다투어 강제로 다른 국가에 소비시키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1,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전쟁을 치르면서 기계는 더욱 발전을 거듭하여 생산성은 크게 향상 되었으며 기계가 없으면 생산을 못할 정도가 되었고 전기 컴퓨터와 결합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에 와서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빅데이터, 로봇기술, 가상현실(VR) 등과 융합되어 기계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가 발전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생산 측면에서 보면 이 모든 기술의 발전과정 중심에 기계가 있고 복잡화, 장치화, 대형화 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고장이며 이를 예방하고 고장시 빠르게 복원하기 위한 전문가가 필요해지게 되고 운용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비용 증가의 문제를 떠나 기계가 고장없이 도입 당시의 모습으로 유지 보전(保全)되어야 운용하는 사람이 편하게 되며 생산성의 향상으로 연결된다.설비를 원래 도입 당시 모습으로 유지 보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5가지 요소가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조정하고, 교체하는 것이다. 이를 필자가 지도하는 P사에서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3가지를 마이머신 활동으로 명명하고 1단계 설비기본청소, 2단계 불합리 발굴 개선, 3단계 청소·점검, 급유·급지 기준서 작성 단계로 구분하고 전 직원이 참여하여 설비의 성능을 복원하고 열화를 방지하여 고장을 예방하는 활동을 2007년부터 지금까지 전 설비에 대하여 꾸준하게 실시하고 있다.포항·광양제철소에 마이머신 대상 설비로 구분한 수가 무려 1만3천여 개소에 이르며 매년 2천여 개소 이상 주임 단위에서 불합리 개선 활동을 하고 있다. 주임 단위당 연 평균 10건의 불합리를 개선한다고 보면 2만건 이상의 개선이 매년 발생하며 14년간 이어지고 있음으로 어림잡아 계산해도 28만건 이상으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실증되고 있다. 이야말로 제철소의 진정한 현장력인 것이다.현대와 같이 제조 설비가 아무리 복잡해지고 자동화·첨단화 되어도 최종적으로는 전기적 에너지를 물리적으로 변환하는 장치인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여야 재화의 생산이 가능하고 이 기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래 상태로 보전하는 활동이 중요하며 ‘설비보전의 5요소’인 것이다.앞으로의 현장은 기계의 발전과 더불어 적은 인원으로 설비 유지 보전을 얼마나 잘 하는가가 기술력이고 진정한 현장력이 될 것이다.

2021-12-13

그 모습을 되찾은 신라시대 청동 삼환령

경주 쪽샘 지구 신라 고분유적은 신라 귀족들의 집단 묘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적은 2007년 3월부터 현재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14년 이상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고대 왕국 신라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그 노력들로 인해 수년 간의 조사로 700여 기가 넘는 많은 무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덤 속에서는 부장품으로 사용된 다양한 종류의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는 발굴자와 연구자들의 땀이 이뤄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물은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되기도 하지만, 대다수가 깨지고 부서지고, 부식된 상태로 출토된다. 긴 세월의 흐름에 따른 것이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손되거나 부식된 신라시대의 유물들 중 상당수는 보존과학실로 옮겨져 보존처리 작업이 이뤄진다. 여기서부터 유물의 과학적 분석이 시작되는 것이다.쪽샘 41호 고분(2010~2013년 발굴)에서 발굴된 청동 삼환령 역시 부식이 상당히 진행되고 파손되어 있었다. 그런 상태였으니 주변의 작은 편까지 모두 수습하여 보존과학실로 옮겨와 보존 처리와 과학적 분석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가장 먼저 청동 삼환령의 처리 방법과 전반적인 처리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상태 조사를 실시하였다. 상태조사는 유물의 구조와 형식, 형태를 먼저 서술하고 부식 상태와 녹의 색상, 파손 부위, 유기질 유무, 재질 성분의 특이점 등 세부적인 것을 상세하면서 자세하게 기술하였다.철저한 상태 파악과 기록 조사 이후에는 삼환령 표면에 붙어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실시하였다. 유물 표면에는 몇 가지 부식층이 확인되었는데, 동합금 유물의 부식물과 삼환령 구슬 내부의 철환에서 생성된 철제부식물 두 종류가 표면에 두텁게 고착되어 있어서, 두텁게 생성된 부식물은 실체현미경을 보며 메스나 소도구를 이용하여 물리적인 방법으로 신속히 제거해 주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고대 유물 연구에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이물질을 깔끔하게 제거하는 작업이 끝나면 유물 내부의 부식인자를 제거해주는 안정화 처리와 부식으로 인하여 재질이 약화되어 있는 유물에 강화제를 주입하고 표면을 코팅해주는 강화처리를 해주어 보존처리 과정을 완료하였다. 서두르지 않고 순차적으로 작업은 진행됐다.이러한 세세한 보존처리 과정 이후에는 다시 전체적인 조사를 통해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혹은 처리 후에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있는지의 여부를 정리하는 ‘처리 후 조사’를 하고 보존처리를 마무리 하게 된다. 보존처리가 완료된 삼환령의 모습은 둥근 고리에 세 개의 방울이 달린 매우 특징적인 유물로 확인되었다.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삼환령은 둥근 고리에 정삼각형 형태로 방울이 달리는데 반해 쪽샘 삼환령은 한 개의 방울이 파손되어 제작 혹은, 사용 당시 리벳으로 수리한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다.이처럼 보존처리 후에 해당 유물의 재질 확인, 내부 구조와 결합 방법, 수리한 흔적을 더 알아보고자 다양한 분석연구를 실시하는데, 삼환령의 경우는 재질을 확인하기 위해 X선 형광분석기(P-XRF)라는 장비를 이용하게 됐으며, 내부 구조와 결합 방법 등을 파악하기 위해 X선 촬영과 실체현미경 등을 사용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첨단의 과학기술이 과거 유물들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그렇게 분석을 진행한 결과 삼환령의 성분은 구리, 주석, 납이 주성분인 청동합금으로 밝혀졌는데, 구리의 함량이 다소 높게 확인되었다. 한편 X선 촬영을 통해 삼환령 방울 내부에는 작은 구슬이 있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특히 기존에 발굴된 삼환령은 대부분 방울 안에 작은 돌이나 청동 구슬을 넣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쪽샘 출토 삼환령의 경우는 철로 만든 구슬(철환)이라는 것이 새롭게 밝혀졌으며 이 수리된 방울에만 철환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속적이고 면밀한 연구의 결과가 현실에서 도출된 것이다. 김은정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마지막으로 삼환령의 용도에 대해서는 각각의 연구자마다 이견이 있다. 말에 매달아 장신구로 사용했다는 견해와 사람이 착용한 장신구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는 것이 그것이다.발굴된 신라 무덤 속에는 말과 관련된 다양한 용품이 확인되고 있다. 물론 발걸이나 안장과 같이 기능적인 유물도 있고, 말을 꾸미기 위한 장신구도 있다. 삼환령은 말에 매달아 소리를 내는 말방울의 기능을 하면서 말을 꾸미는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한편 일부 연구자들 중에는 무덤에 매장된 사람의 허리 위치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사람이 착장한 장신구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신라 무덤 유적에서 발굴된 깨지고 부서진 보잘것없는 유물이 보존 처리와 보존과학의 노력으로 1500년 전 신라인의 문화와 기술을 전해주는 보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 의미가 작지 않은 일이다.

2021-12-13

지금, 우리의 머릿속을 맴돌며사라지지 않는 그 노래의 멜로디처럼

어떤 문장은 읽고 지나간 뒤에 계속 우리를 붙잡고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 어제 잠깐 들었을 뿐인데 오늘 하루 동안 내 주변을 맴돌면서 사라지지 않는 노래의 멜로디처럼.아니,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지금 머릿속에 자동반복이라도 틀어놓은 듯 울리고 있는 노래가사의 멜로디는 마치 귀로 듣고 있는 음향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지만, 어제 읽었던 어떤 문장은 마음 깊숙하게 들어 있는 무언가를 건드려 상처를 내든가 해서, 오랫동안 다시 생각나고, 생각나고 한다. 피가 난 상처가 아물어 완전히 나아도 아렸던 그 상처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떨쳐내고자 하는 기억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글귀에 한 번 붙들린 인간은 그곳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도 인스타나 페북 같은 SNS에 따옴표로 인용된 문장들이 대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 누군가의 글 속에 들어있었던 그 문장은 이제 누군가의 마음속을 붙들고 놓지 않으면서 나를 표현하는 피와 살이 되었다.영국 밴드 비틀즈의 곡 ‘엘레노어 릭비(Eleanor Rigby)’를 하루 종일 흥얼거렸던 어떤 소설 속 인물처럼, 어떤 멜로디나 가사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야 어쩌면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문장이 우리를 붙드는 것은 이처럼 바쁜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만큼 강렬하고 충동적인 경험이다. 우리가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라면, 주로 그 멜로디가 반복적이고 그래서 중독적인 까닭일 테다. 하지만, 어릴 때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던 어떤 노래의 가사가 새삼스럽게 우리의 마음 안쪽에 슬쩍 들어오기도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어떤 문장이 우리를 붙드는 것은 그 문장이 지금 나의 현재로 슬며시 들어와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하기 때문일 것 같다. 그렇게 우리가 여기저기에서 읽고 지나갔던 문장들은 어느새 나의 지금 마음의 풍경이나 바람을 표현하는 소중한 문장으로 바뀐다. 잡다한 금속이 귀중한 금으로 바뀌는 연금술 같은 경험이다.고백하자면 어렸을 때는 무수히 읽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는 시들이었다. 아마 어릴 때의 나는 계절의 변화 같은 당연한 것들, 눈이 내리고, 싹이 움트고, 하늘이 높아지는 모든 변화들을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계절이 변화해가는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나이가 되니, 예전에는 심상히 지나쳤던 그 시들이 묘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과서로만 배우고 가르쳤던 ‘국화 옆에서’조차 새롭게 다가온다. 문장이 변했을 리 없으니, 내가 변한 것이고, 때가 되어 그 문장이 나를 붙들게 된 것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읽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지만, 언제나 그것을 붙들리는 시기는 따로 있다.시의 경우만은 아니다. 소설처럼 읽고 있다 보면 어느새 지금 내가 문장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소설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스토리의 내용에만 집중하게 되기 마련이다. 헌데 가끔씩 어떤 소설의 문장은 유독 존재감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씩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 한 번의 숨이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공들여 상징으로 수놓은 문장이 아니라고 해도, 그저 여느 소설에라도 있을 법한 투박한 문장이라도 그것을 읽고 있을 때의 나의 마음으로 인해, 그 문장은 나를 붙드는 것이다. 묘하게 기억 속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그렇게, 어떤 문장은 읽고 지나간 뒤에도 계속 우리 주변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를 내기도 하고, 그것을 봉합해주기도 한다. 지금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의 멜로디처럼, 말이다. /홍익대 교수

2021-12-13

메타패션

패션과 메타버스·NFT의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입을 수 없지만 디지털세계에 존재하는 ‘메타패션(meta fashion)’이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지난 9월 크리스털, 금, 은 등으로 화려하게 디자인한 드레스, 재킷, 왕관 등 디지털 세계에만 존재하는 ‘가상 패션 NFT(대체불가능토큰)’ 아홉 작품을 경매에 부쳐 총 560만달러에 팔았다. 디지털 패션 스타트업 RTFKT는 지난 2월 디지털 아티스트 푸오셔스와 손잡고 600종의 가상 스니커즈 NFT를 판매 7분 만에 완판해 310만달러를 벌어들였다.이같은 추세는 메타패션을 주도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SNS, 메타버스 속의 나’를 현실의 나만큼이나 중요한 자아로 여기는 데다 NFT화된 디지털 패션이 투자 수익까지 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돌체앤가바나, 구찌, 휴고보스 등도 디지털 의류와 신발 등을 선보였다. 구찌는 지난 10월 ‘구찌 스니커 개러지’라는 스마트폰 앱을 출시했고, 가상 신발을 구매한 뒤 스마트폰 카메라로 발을 비추면 증강현실(AR) 기술로 ‘가상 피팅’이 가능하다.아바타만 입을 수 있는 디지털 드레스도 인기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패션 스타트업 오브오티디(OFOTD)가 가수 이효리가 최근 열린 ‘2021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에서 입은 드레스와 재킷을 디지털 옷으로 만들어 판매할 계획을 밝혔다. 대다수 디지털 패션은 NFT로 제작된다. NFT는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해 소유권을 확실히 하고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메타패션의 눈부신 진화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궁금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13

진취적 결단력 갖춰야

박원호 전 안동시의회 부의장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 6월 1일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안동은 이미 양대 선거 국면에 접어들어 갈등과 내홍으로 점차 분위기가 혼탁해지는 양상이다. 유력 대통령 후보가 안동출신이라는 점에서 안동은 이미 보이지 않는 신경전으로 전쟁터를 연상시키고 있다.민주당 대통령 이재명 후보를 두고 안동 일각에선 지지층 움직임이 지역 깊숙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후보가 선출되면서 야권 지지층 단속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정권교체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안동의 보수층도 집결하는 양상이다.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바로 이어지는 지방선거 기초의원 선거구도에는 적잖은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기 안동시장 구도는 ‘찻 잔속 태풍’으로 그칠 수도 있다. 안동은 보수층 결집력이 상당한 지역으로 안동시민 대부분은 시정안정과 민생안정 추구에 목말라 있는 편이다.차기 안동시장은 청렴과 진취적인 결단력을 갖춘 인물을 원하는 게 시민 대부분의 중론이다. 다만 지방선거 6개월을 앞둔 현재시점에서 자천타천 거론되는 안동시장 출마예정자들의 면모를 살펴보아도 지역에서 동분서주 간절하게 발로 뛰는 인물은 극히 드물다는 시민들의 지적이 많다. 단지 여론조사에 이름이 거론 되는 인물들과 소문만 무성한 인물들꺼지 가세해 시민들의 선택과 집중을 방해하고 있을 뿐이다.이런 상황에 안동시민들은 지역 현안을 잘 알고 해결할 행정력을 갖춘 강력한 리더십 인물이 적임자라는 여론이 점차 무르익고 있다. 이번에는 정당, 지역, 학연, 문중을 떠나 꼭 안동을 발전시키고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통한 발전을 꾀할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가 곧곧에서 들리는 이유다.또한, 안동지역의 특성상 지역사회를 구축하는 기본 틀은 공무원 사회다. 안동은 공무원 사회를 중심으로 시정을 안정시킬 강력한 소통력과 행정력을 갖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통·행정·신념을 두루 갖춘 수장이야말로 안동이라는 엔진에 강력한 휘발유가 되어 안동을 다시 뛰게 할 것이다. 조직 전체에 하고자 하는 긍정 시너지효과도 불러일으킬 것이다.자질 면에서도 근면과 성실, 도덕성과 책임감, 청렴한 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을 선호하며, 발로 뛰고 현장을 누비며, 늘 만날 수 있는 현답행정이 몸에 밴 그런 지도자를 추구해야 한다.그리고 2조원에 가까운 안동시 예산, 산적해 있는 헴프, 바이오, 백신 등 앞으로 닥칠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 맞춰 1차그리고 산업에서 6차 산업까지 골고루 갖춘 도농복합도시를 안동 맞춤형으로 탈바꿈 시킬 설계와 해법, 모범답안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누구나 그렇듯 안동시민들도 안정된 삶과 행복할 권리를 추구한다. 경제, 복지와 건강, 문화와 관광, 교육, 일자리, 주거, 노후, 레저, 환경, 안전, 등 기본 삶이 우선적으로 안정되길 원하고 삶의 가치와 행복할 권리를 보호받기를 간절히 바란다.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는 인물은 강한 추진력을 갖춘 역동적인 엔진으로 사회기반시설인 정주여건을 갖추고 그 외 파생돼 있는 시민의 삶과 연계된 모든 환경을 정비하고 창의와 미래지향적인 요소로 달려야 한다. 예비 문화도시가 선정에 따라 돈과 사람, 국, 도비 확보에 사활을 걸고 독특한 기획과 안동형 맞춤 정책 연구로 미래 해법을 찾아야하는 지도자를 우리 안동시민들은 선택해야 한다.

2021-12-12

녀던길

제사 지내고 돌아오는 길, 먼 산 위에 달이 떴다. 나물을 다듬고 탕국을 끓일 초저녁부터 우리 동네를 서성이다가 음복이라도 하고 가라는 소릴 기다렸는지 반쯤 감긴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본다. 달을 향해 달리다 상에서 내린 술 몇 잔에 취기가 오른 옆지기에게 저 달 좀 올려다보라 권했다. 달을 보니 요 며칠 퇴계 이황의 시선집의 목차를 어루만졌더니 시 한 수 읊고 싶은 밤이라 읊조렸다.퇴계에서, 도산 달밤에 매화를 읊어, 어제 농암 선생을 뵙고 물러 나와 느낀 바 있어 두 수를 짓다, 조사경이 병 때문에 청량산으로 가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기에 금협지가 화답한 운으로 시를 지었다, 제목만으로 이황 선생이 거닐던 서원과 시를 나누던 친구들까지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시인들이 그의 문학을 따라 하고 싶어서 선생이 자주 걷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주말에 길을 나섰다.안동 선비 순례길은 아홉 개의 코스가 있다. 우리는 그중에 예던길을 걷기로 했다. 네 번째가 퇴계 예던길이다. 퇴계가 지은 ‘도산십이곡’에도 녀던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분들을 못 뵙네 옛 성현을 못 봬도 그분들이 행하던 길은 앞에 있네 그분들이 가던 길이 앞에 있는데 아니 가고 어쩌리. ‘녀던’은 ‘가던’, ‘다니던’의 뜻이 담겨 있다. 지금은 녀던길이라는 이름 대신 예던길로 불리는 이 길은 퇴계가 숙부(송재 이우)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위해 청량산으로 가면서 처음 걸었던 곳이다. 스스로 ‘청량산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청량산을 사랑했던 퇴계는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이 길을 걸어 ‘퇴계 오솔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녀던길, 예던길 모두 같은 길이다.퇴계는 낙동강을 따라 거닐었으나 현재는 사유지 문제로 인해 옛길을 그대로 걸을 수는 없다고 했다. 안동시에서는 강변길 대신 건지산으로 돌아가는 길을 만들어놓았다. 약 4km에 달하는 산길이다. 단천교에서 고산정까지 가는 길에 백운동, 미천장담, 한속담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퇴계의 한시와 그 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 ‘시심의 길’이라 불리기도 한다.산행에 자신이 없어 다시 차를 타고 농암종택이 있는 가송리로 가서 예던길을 이어 걸었다. 원래 도산서원 인근 분천동에 있었으나 1975년 안동댐 건설로 그 지역이 수몰됨에 따라 현재의 자리로 이전 복원했다. 종택과 사당, 긍구당, 분강서원, 애일당 등 농암 관련 각종 문화재를 지금의 자리로 한데 모아놓았다. 종택은 고택 체험하는 사람들로 붐비는지 주차장이 빈틈이 없었다. 방안에 사람들이 있다니 조용히 기와집이 앉은 품새와 현판과 문살만 슬쩍 보고 강가로 나왔다,오전의 햇살이 낙동강에 내려앉는다. 물소리인지 햇빛이 반짝이며 내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다. 순간에 지나가는 풍경이라 얼른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만큼 담아내는 실력이 내겐 없다. 다시 강의 윤슬을 한참 서서 눈으로 담았다. 고산정을 향하여 남편과 두런거리며 걸었다.이황 선생은 늘 혼자서 이 길을 걸었을까? 가끔은 애제자와 동행하기도 했겠지? 아침 일찍 나서서 농암종택에서 안동식혜로 목이라도 축이고 고산정까지 갔겠지. 아, 그때 고춧가루가 있었나? 이황 선생은 1570년에 돌아가셨고, 임진왜란 즈음에 전래했다는 설이 있으니 빨간 식혜는 아니었을 거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도 목이 말랐다. 가까운 거리라 손에 물병 하나 들지 않고 걸어온 게 후회스러웠다.강 건너에 고산정이 멀리 보였다. 난간이 없는 다리를 건너 차 한 대 비켜서기 힘든 길을 걸어 고산정에 다다랐다. 마당에서 강을 내려다보노라니 물빛에 비친 풍경이 이황 선생의 발길을 자주 이곳으로 불러들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묵은 탱자나무가 선생이 자주 외던 시 한 수 들려줄 것만 같았다. 고산정을 둘러싼 주위 산이 온통 돌산이다. 마치 이곳에 머물던 선비들이 읽은 책을 켜켜이 쌓아 놓으니 산이 된 듯하다. 산바람 강바람에 묻어오는 글향이 은은하다. /김순희(수필가)

2021-12-12

포스텍에 의과대학이 꼭 필요한 이유

심충택 논설위원 경북도와 포항시가 포스텍(포항공대)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지난주에는 포항출신 김정재·김병욱 의원이 나서 국회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을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조해진 교육위원장도 참석해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책사업화하겠다고 약속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이 포스텍 의대 설립에 목이 타는 이유는 경북도내에 아직 고난도 중증질환에 대한 치료역량을 갖춘 상급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2~3월 대구·경북에서 신천지사태로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을 당시 경북도내 위중증 환자들은 입원할 병실을 구하지 못해 119구급차를 탄 채 전국을 헤매야 하는 고통을 당했다.기존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심각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세계 각국은 지금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공포 속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한 주역들은 의사출신 과학자다. 예를들어 지난해 12월 미국 화이자와 함께 ‘화이자-바이온텍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독일의 생명공학기업인 바이온텍은 터키 이민 가정 출신의 의사과학자 부부가 설립한 회사다.불행하게도 한국은 아직 신약(오리지널 의약품)이나 백신을 자체 개발한 경험이 전무하다. 세계 30대 제약사에 한국 회사는 한 곳도 끼지 못하고 있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약품을 복제해서 손쉽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인적·물적자원이 투입되는 신약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의사과학자가 양성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이 최근 다녀온 미국 보스턴시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분자이미지연구소’에는 의사과학자들이 중심이 돼 신약개발과 임상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물리학자, 화학자, 유기화학자, 공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연구를 펼치고 있는데, 포스텍이 의대를 설립할 경우 모델로 삼을 만한 곳이다.주영석 카이스트(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의사과학자는 의사이지만 환자 진료보다 연구·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주 교수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도 현재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는 대신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이 있긴 하지만 의대 졸업자 중 기초의학교실로 가는 의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어 기초의학 붕괴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하버드 의대처럼 실력있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부시절부터 바이오 분야에 익숙한 인재를 발굴해 내는 시스템이 돼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인재들이 몰려 있는 포스텍 같은 유수 공과대학에 의과대학이 없다는 것은 국가 100년대계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신종 전염병 백신이나 치료제를 자체개발할 수 없다는데 대해 많은 열등감을 느껴왔다. 포스텍 의대설립과 의사과학자 양성은 대선후보들이 주요공약으로 내걸어야 할 현안이다.

2021-12-12

코로나 2년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한 코로나 전염병은 12월로 꼭 2년이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인류가 첨단과학기술 발전을 자랑하지만 바이러스 하나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유한성이 드러난 경우다. 지금 전 세계인은 고통과 악몽의 시간을 2년째 보내고 있다.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이 질병은 우한에서 발생한 지 한달만에 전 세계로 확산돼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는 이를 범유행전염병(팬데믹)임을 선언했다.올 12월 1일 현재 전 세계 누적확진자는 2억6천만명이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522만명. 누적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4천932만명이며 인도 3천465만, 브라질 2천216만이다.발생 1년 뒤인 지난해 12월 전 세계인구의 1%가 감염됐고 올 10월 10일 누적확진자 2억3천700만명을 돌파, 지구 인구의 3%가 감염됐다. 33명 중 한 명이 이 질병에 걸린 꼴이다.우리나라도 12월 10일 기준으로 누적확진자가 50만명을 넘었다. 작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래 사망자도 4천210명에 이른다. 지열별 누적확진자는 서울이 18만명(35%)으로 가장 많고 경기도(15만명), 인천(2만8명) 순이며 대구(2만260명)가 다음을 이었다. 경북은 1만2천794명으로 전국에서 8번째다.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처음 백신을 개발, 접종을 시작했으나 거듭되는 변이 바이러스 등장 앞에 인류는 아직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인류의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인류의 이런 도전은 항상 새로운 문명 세계로 인류를 이끌었다. 코로나 극복의 희망을 기다리자./우정구(논설위원)

2021-12-12

‘존경’이라는 단어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존경하는 000 위원님”이런 명칭을 국회 청문회나 국회 본회의에서 자주 듣는다. 듣기에 따라서는 거북하기조차 하다. TV를 보면 국회 청문회에서도 사회자가 국회의원을 부를 때 “존경하는” 이란 말을 이름 앞에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본다.시청자가 볼 떄 서로간에 별로 존경스럽지도 않은 분위기에서 이런 단어를 들으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영어에도 ‘Honorable’, ‘Excellency’ 라는 단어를 이름 앞에 붙여서 상대를 높혀서 쓰기도 한다. 상대 국가의 대사에게 편지를 쓸 때 자주 사용한다. 대부분은 서로 공식적인 국가나 행정 단위의 수반일 때 높혀서 쓰는 말이다.그러나 한국처럼 국회의원을 부를 때마다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그러한 단어의 사용은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존경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이재명 후보는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했다고 한다.앞서 이 후보는 지난주 전북 전주에서 진행한 청년들과 토크콘서트에서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힘들 때 대구 서문시장을 갔다”고 말해 좌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평소 보수정권을 그렇게 비판하고 보수정권의 대통령을 비웃던 그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청중의 놀라움은 컸다.그런 ‘존경’이라는 단어가 논란이 되자 이 후보는 최근 서울대 세미나에서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하여 좌중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결국 그는 존경하지도 않는 사람을 그저 장난으로 존경한다고 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의 말은 패러디가 되어 다양한 조크를 낳았다“문재인 존중한다 했더니 진짜 존중하는 줄 알더라” “특검하자 했더니 진짜 특검하는 줄 알더라” “조국 사과한다 했더니 진짜 사과한 줄 알더라” “국토세 철회한다 했더니 진짜 철회한 줄 알더라.” “한다면 합니다 했더니 진짜 하는 줄 알더라” 등 줄을 이어서 패러디가 양산됐다. 이러한 패러디에 피식 웃으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결국 국회에서 위선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존경”이라는 단어를 대통령 후보도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고 이를 수습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는 것이다.존경도 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하는”이라고 부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걸 대중 앞에서 설명하려고 애쓰는 모양새도 딱하다. 마음속에 존경도 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해놓고 존경도 하지 않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 거라고 설명하는 모습이 정말 딱하다.모두 가식을 벗었으면 한다.국회에서 “존경하는 000 의원님” 이런 말을 없애자. 호칭부터 가식적이니 국회에서 논의하는 내용이 가식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그런 가식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벗어나야 한다.

2021-12-09

세계 인권의 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 났으며 서로 동포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1조다.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선언은 인간으로서 시민적·정치적 자유 및 사회보장과 노동권, 공정한 보수를 받을 권리, 노동자의 단결권, 노동시간의 제한과 휴식, 교육에 관한 권리,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등 사회적·경제적 권리에 관한 규정을 하고 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수천 년 인류문명사가 마침내 도달한 최상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규정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그것을 기념하여 1950년 12월 4일에 열린 유엔총회에서 매년 12월 10일을 세계 인권 선언일로 결의하였다.인권(人權)이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의 권리 및 지위와 자격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는 한마디로 ‘사람은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지역이나 민족, 성별, 나이 등에 관계없이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닌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오늘날 국제법이나 국제 규약, 대다수 국가들의 국내법에 실정법으로 규정된 인권은 자연법(自然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연법은 자연과 이성을 전제로 하는 법으로서, 자연법 규범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자연법사상을 내용으로 한다. 자연법론은 신이 정한 인간사회의 질서로서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한다는 전통적 자연법론과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인식된다고 정의하는 근세적 자연법론으로 나뉜다. 현대 법사상의 흐름은 실정법과 자연법의 대립적 태도를 지양하고 그 조화를 요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유엔은 지난달 17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고문·자의적 구금·성폭력, 정치범수용소, 이동의 자유 제한, 송환된 탈북자 처우, 종교·표현·집회의 자유 제약 등 북한 정부차원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강력한 용어로 규탄하고 있다. 아울러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일본인 납북 피해자 즉각 소환, 미송환 전쟁포로와 그 후손에 대한 인권침해 우려 등도 올해 처음으로 추가됐다.그런데 정작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인권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분단과 전쟁으로 생이별을 한 천만 이산가족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이 3년 연속으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 동참을 거부한 사실에 대해 국제사회는 의아해 한다.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서’라는 이 정부의 궁색한 변명으로는 북한 주민의 인권은 아랑곳없이 세계가 지목하는 최악의 독재자 김정은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을 터이다. 무슨 명분으로든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는 반인륜적이고 비정상적인 처사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2021-12-09

커피 공화국

올해 발표된 여러 통계 중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커피전문점 증가다. 동네 곳곳에서 마주치는 커피점을 볼 때마다 많이 늘었을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까 싶다.올 11월까지 전국에 커피점은 1만4천800개가 늘었다. 작년 한해 1만4천개 기록을 벌써 넘었다. 이 추세라면 연말까지 1만6천개의 커피점이 더 생길 것 같다고 한다. 꼽아보니 하루 44개 커피점이 새로 생겨나고 있는 꼴이다.커피는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일부 상류층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한 음료다.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황제는 커피 애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는 커피를 가배, 가비라 불렀고 서양에서 들어온 탕이라 하여 양탕(洋湯)이라고도 불렀다.본격적으로 커피가 대중화된 시기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다. 이제 우리나라는 커피 소비 세계 3위 국까지 올라섰다. 전세계인이 즐겨 찾는 기호품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의 커피 사랑만큼 특별한 나라도 없을 것 같다. 미국에서 시작한 스타벅스가 한국에 온 지 22년만에 1천300개 점포를 확장했고, 작년기준 매출액이 1조9천억원이라 한다.스타벅스 말고도 글로벌 브랜드들이 호시탐탐 한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한국인 한 사람이 커피점에서 쓰는 비용이 연간 11만8천원 정도 된다고 하니 눈독 들일만 한 시장이다. 한때 커피는 유해론도 있었으나 지금은 적당한 섭취는 스트레스 해소 등 건강에 오히려 좋다는 설이 더 많다.한국인이 한끼 식사값과 맞먹는 커피를 즐겨 찾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분석은 없다. 그러나 커피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커피는 한국인의 대중속으로 스며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09

영입인사 논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 선거에 나선 여야 후보 진영 모두 선대위 영입인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야 진영이 세 확장과 이미지 쇄신을 위해 외부에서 참신하고 젊은 전문가나 상징적인 인물을 영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야 선거캠프 모두 영입 인사들의 스캔들이나 의혹, 막말논란 등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채 인선안을 발표했다가 영입인사 본인은 물론 선대위조차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팡질팡이다.먼저 타깃이 된 곳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를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유튜브 채널‘가로세로연구소’가 조 교수를 향해 혼외자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조 전 위원장은 2010년 8월경 제3자의 성폭력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됐으나 폐쇄적인 군 내부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가족의 병환 등으로 인해 외부로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아이는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낙태하지 않았다는 요지의 입장문을 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조 교수는“제가 짊어지고 갈 테니 죄 없는 가족들은 그만 힘들게 해 달라”며 공동상임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재명 후보 선대위에서 기본사회위원장직을 맡은 최배근 교수는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조 교수와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수정 교수의 사진을 나란히 올린 뒤“차이는?”이라는 글을 올리는 바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 교수는 논란 이후 최근 선대위에서 돌연 사퇴했다.국민의힘 윤석열 캠프에서도 함익병 피부과 전문의가 선대위원장에 내정됐다가 과거 독재 옹호, 여성 비하 발언으로 7시간 만에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뒤 이어 노재승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이 SNS 발언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일명‘비니좌’로 인기를 끈 노 위원장은 지난해 5월 SNS 긴급재난지원금 조회 서비스 화면을 공유하며 “뜬구름 잡는 헛소리와 개밥 주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건가”라며 재난지원금을 ‘개밥’, 이를 받으면 ‘개돼지’가 된다고 해석할 수 있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그는 또 과거 김구 선생을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 죽인 인간”이라고 비하했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성역화 1대장”이라고 폄하했다. 노 위원장의 글은 인터넷에서 인기 끄는 사이다 발언의 전형이지만 공격적이며, 이념적으로 극우성향이다.대통령선거가 여야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검증하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후보들을 돕기위해 합류한 사람들의 과거 행적이나 스캔들을 기화로 후보를 비방하는 양상으로 번져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여야 없이 부실한 검증을 노출하고, 논란이 이는데도 그냥 뭉개는 처사 역시 국민정서에 맞지 않다. 특히 극우성향이 분명한 인사를 영입한 국민의힘은 보수중도를 아우르겠다는 기본 선거전략과 배치되는 만큼 재고하는 것이 마땅하다.아울러 여야 후보진영 모두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가치와 기준을 명확히 내세우고, 꼼꼼한 검증 후에 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