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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은 정권 10년을 평가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 12월 17일 평양에서는 김정일 사망 10주년 추도대회가 태양궁전에서 개최되었다. 동시에 김정은의 10년의 행적을 찬양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은 현지 시찰 열차에서 심근 경색으로 사망하였다. 김정은은 장례 시부터 북한 정권의 최고 통치자로 행세하였다. 권력의지가 강한 김정은이 형 김정철을 제치고 미리 후계자로 결정된 결과이다. 1984년생 당시 27세였던 김정은은 애도기간 내내 눈물을 흘렀다. 그 후 그는 당 제1비서로 추대되고 오늘의 총비서, 국무위원장이라는 북한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김정은은 집권 초반부터 권력기반을 공고히 다졌다. 그를 둘러싼 당·군 간부를 수시 교체하여 충성도 경쟁을 유도하였다. 공산주의 국가 권력 이양과정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백두혈통론’을 내세워 3대 세습을 이어갔다. 그는 2013년 고모부 장성택마저 공개 처형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이복형 김정남도 처치하였다. 그는 집권 초반부터 2016년까지 현영철, 리용하, 장수길 등 약 100명의 권력 측근을 숙청해 버렸다. 현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당 조직비서 조용원, 동생 김여정, 현송월 부부장이 그의 핵심 측근이다. 김정은은 집권 후 인민제일주의를 내세워 인민 경제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인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공언도 하였다. 그는 19개의 경제 개발 특구를 설정하고, 시장 경제의 허용을 통해 북한 경제의 획기적인 발전을 획책하였다. 그러나 4차례의 핵실험과 60여회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유엔과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라는 역풍을 초래하였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의 북·중 국경 봉쇄는 올해 총 교역액을 3억 달러로 추락케 하였다. 김정일 집권 시 3.86%의 경제 성장은 0.84%로 주저앉아 버렸다.김정은의 핵·경제 병진노선에 따른 북미 협상을 통한 체제 보장이라는 외교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가 추구한 2018년 판문점회담, 9·19 평양 합의는 싱가포르와 하노이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은 북미관계 뿐아니라 남북관계마저 경색시켜 버렸다. 핵개발을 북미 회담의 지렛대로 삼아 북미관계 개선과 체제 안전의 보장이라는 그의 목표는 좌절되어 버린 것이다. 개성 남북 연락사무소의 폭파는 남북관계마저 단절시켰으며 북미간의 외교적 돌파구도 보이지 않고 있다.김정은 정권 10년, 북한 경제 회복과 체제의 안전이라는 그의 목표는 현재로서는 멀어진 꿈이 되어 버렸다. 유엔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 팬데믹은 북한의 경제 문제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 인민제일주의를 내세운 김정은 정권은 식량 문제마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이 국가 제일주의를 앞세워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은 600여 개로 늘어나고 주민들의 휴대 전화는 벌써 800만대를 넘어 버렸다. 엄격히 통제된 북한 사회도 정보화시대에 ‘진공속의 안정’으로 남을 수는 없다. 평양의 봄은 언제쯤 오려는가.

2021-12-22

산수유 열매, 그리움으로

산수유 꽃차를 우린다. 바짝 말랐던 꽃잎이 화사하게 물에서 피어난다. 찻물이 서서히 노랗게 변한다. 찻잔을 입에 대자 떫은 향이 입안에 퍼진다. 한 모금 입속에 모았다가 삼킨다. 입안에 떫은맛이 금방 사라지고 은은한 차향이 남는다.봄이 오면 고향마을 뒷산에 산수유꽃이 가장 먼저 피었다. 건너편 진달래가 신호를 받아 드문드문 연분홍 꽃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땅들은 들썩들썩,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꽃들이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따스한 바람이 불면 어느 사이 산수유가 뒷산을 가득 물들였다.사물에 대한 추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계절에 따라, 함께하는 이에 따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억이 소환된다. 내게 산수유나무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산수유꽃이 피면 노란 꽃그늘 아래 어머니가 있고 열매가 열리면 열매를 따서 가을 햇볕에 말리는 어머니가 있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어머니의 산수유가 떠오른다.어머니의 삶은 몹시 추웠다. 하루하루를 넘겨도 도무지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겨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머지않아 봄이 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농사일에 허리 한 번 펼 수 없을지라도. 어머니는 봄을 좋아했다. 뒷동산에 산수유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면 자주 중얼거렸다. 봄이 와서 꽃을 피웠는지, 꽃이 피어 봄이 왔는지. 산수유는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산수유꽃은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의 꽃으로 보인다. 꽃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면 꽃차례에 노란색 꽃이 소복이 모여 있다. 자그마한 우산을 펼쳐 놓은 것처럼. 마치 별들이 하늘 향해 모든 것을 열어놓은 듯하다. 하늘바라기, 별바라기, 꿈바라기가 거기에 얹혀있다. 충분히 별바라기 했다면 산수유는 이제야 열매를 맺는다. 봄꽃이 모두 피고 지고, 여름꽃도 사라지고 단풍조차 다 떨어진 후에 손톱모양의 열매를 단다.산수유나무의 고향은 중국 산둥성이다. 산둥성에서 구례군 산동면 계척마을로 시집온 새색시가 산수유 열매를 들고 와서 심었다고 한다. 새색시는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정서도 많이 달라 힘들었지만,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했다. 새색시는 통일신라 말기의 유학자 최치원의 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최치원이 중국에서 공부하다 급히 귀국하면서 딸에게 산수유씨앗을 쥐여줬다고 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신라 청년을 만나 지리산 산동면에 시집왔다. 새색시는 많은 날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녔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새색시는 고향의 어머니 또한 많이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마당 안팎에 심은 산수유나무를 보듬고 그리움을 달랬다. 그때 심은 산수유나무가 천 년 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할아버지나무, 할머니나무, 아들나무도 있다. 지금까지 구례군 산동면 일대는 산수유꽃과 산수유 열매로 가득하다. 이순혜​​​​​​​수필가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산동마을 사람들은 산수유 열매를 팔아 자녀를 공부시켰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꽃을 따서 말리고 열매를 수확할 때 산수유 꽃그늘 아래 있음을 감사하게 여겼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사랑 덕분에 나무도 살아가고 그들의 아이들도 살아갈 수 있었다. 산수유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은 우리와 같은 생명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나 싶다. 산수유 열매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열매를 따서 씨를 털어내고 말려 차로 마시면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해준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마음까지 따듯하게 데워준다. 산수유차는 온갖 부정한 것을 물리친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즐겨 마신다. 어머니의 산수유는 어떠했을까, 고된 노동에서 허리 펼 때 보았던 희망이었을까, 오종종히 어머니 어깨에 매달린 자식들의 얼굴이었을까, 아니면 오롯이 산수유꽃과 열매만으로 함박웃음 지었을 어머니의 마음이었을까, 고향의 씨앗을 땅에 묻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 것은 또 다른 그리움의 표현이었을까, 골짜기마다 산수유가 물들인 것을 보며 새색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어디에다 그렸을까. 얼마나 깊은 곳에 새겼을까.인생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건넌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꽃들이 시끌벅적 폭죽을 터트려 꽃을 피울 것이다. 노란 꽃물에 내 마음을 앉혀놓고 있으면 곧 가을에 이르러 붉은 산수유 열매를 볼 것이다.창가에 앉아 산수유 열매를 본다. 창밖의 바람에도 찻물이 노랗게 일렁인다. 내 안의 세포들이 일어나 추억 한 장을 갈무리하고 페이지를 넘긴다.

2021-12-22

오년마다 한 계단씩 가라앉는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큰일이다. 대선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사람들의 믿음을 세우기보다 무너뜨려서 큰일이다. 나라의 갈 길을 보여주기보다 흐리멍텅하게 만들어 큰일이다. 내일이 보여야 하는데 오늘마저 뭐가 뭔지 가늠하기 힘들어 큰일이다. 청년들에게 힘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짐만 안기니 큰일이다. 여성들에게 든든한 무엇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되레 헷갈리게만 하니 큰일이다.믿음직하게 보여주는 건 도무지 없고 거짓과 땜빵만 즐비하니 큰일이다. 학교에서 배운 일들이 모두 다 반대로 벌어지니 큰일이다. 큰 선거가 나라의 큰일이어야 하는데 그 선거가 큰일나게만 만드니 큰일이다. 국민은 고구마를 백개쯤 입에 문 것처럼 답답하고 억울하다. 보나마나 엄청난 돈들을 쓰고있을 터인데 덕이 되는 건 하나도 안 보이니 큰일이 아닌가.대선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 당신들만 없었어도 나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며 자라고 있었을 다음세대가 대선에서 무엇을 배울까. 온 나라의 선생님들이 학생들 앞에서 정직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집집마다 가정에서 아이들 기르면서 착하게 자라라고 마음도 먹기 힘들지 않을까. 소신과 원칙은 내팽개칠지라도 눈앞의 이익에는 아귀같은 심성들만 즐비한 오늘이 아닌가. 어제까지 애지중지 가까웠어도 정치적 계산에 따라 언제라도 등돌리는 차가운 우정을 보고있지 않을까. 심대하게 틀어졌다가도 술 한잔에 쇼처럼 마술처럼 어깨동무를 하는 세상에 신의와 성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배운 바는 모두 신속하게 잊어야 하는 세상을 배우는 게 아닐까. 나라는 오년마다 한 계단씩 가라앉는다. 국민은 선거를 겪으며 사나워질 뿐이다.신뢰라면 무너질 바닥도 없다. 이제 우리에게 서로를 믿는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진영의 의미를 망각하며 떠돌며 헤맨다. 보수와 진보는 발전을 위한 멋진 양 날개여야 하거늘, 당신이 섬기는 바가 무엇인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표에 따라 인기에 흔들리며 마구 오락가락하는 모습들에서 국민은 당신이 무엇을 믿는다는 겐지 알 바가 없다.보수든 진보든 다시 가서 공부하고 오시라. 나라와 국민은 한치라도 잘 살고 싶지만, 진영 간 악다구니에는 지쳐만 간다. 소신과 철학도 보이지 않는 이전투구는 정치도 아니고 씨름도 못 된다. 든든한 오늘을 지켜내든지 희망찬 내일을 가져와야 하지 않겠나. 선진국 문턱에서 후진국 정치를 목격하는 국민의 처지를 헤아려는 보는지.나라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국민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징검다리 삼아 내일로 달려가야 한다. 말재주꾼을 기다린 적이 없으며 구호만 들먹이는 사람을 기대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여 일하고 또 일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생각도 반듯하고 실력도 출중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오년 만에 만나는 대선이 대박을 터뜨려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한 계단 올라설 수 있을까. 희망을 당기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2021-12-22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한다.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단순 거짓말쟁이와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다.리플리 증후군의 이름은 미국의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쓴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 ‘리플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반항아적 기질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친구이자 재벌의 아들인 디키 그린리프를 죽인 뒤,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그린리프의 인생을 가로챈다. 즉, 톰 리플리가 아닌 디키 그린리프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린리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연극은 막을 내린다.실제 현실에서도 리플리 증후군의 사례는 다양하다. 지난 2007년 동국대 교수 임용 및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 선임 과정에서 예일대 박사학위와 학력을 위조한 S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 사건을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 빗대어 ‘재능 있는 S씨’로 표현하면서 리플리 증후군이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14년에는 SBS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08년부터 6년 동안 48개의 유명 대학교를 전전하며 신입생 행세를 한 학생의 사연을 추적 보도하기도 했다.리플리 증후군이 위험한 것은 욕구 불만족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본인의 상습적인 거짓말을 진실인 것으로 믿게 되면서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신조어는 최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후보의 부인의 학력과 경력에 대해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공격하면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22

아버지와 부대찌개

아버지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 가방공장 사장이었다. 덕분에 나는 유복한 환경에서 유년을 보냈다. 우리 집이 있었고, 옥상엔 아버지의 골프 연습 시설이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주말마다 낚시를 다녔고, 엄마는 평일 오전에 에어로빅과 꽃꽂이를 했다. 그러나 IMF 사태로 아버지 공장은 부도를 맞고, 집안 곳곳엔 차압딱지가 붙었다. 아버지는 지방을 전전하는 행상이 되어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조차 힘들었다.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아버지가 일 년여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에어쇼 행사장에서 무슨 일을 한다며 놀러오라고 했다. 아버지 본다는 생각에 설레어 토요일 방과 후 성남 비행장으로 갔다. 비행기들이 일으킨 모래바람 너머 아버지가 손을 흔들었다. 빨간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채 소시지를 굽고 있었다. 파인애플을 꼬치에 끼우고 있었다. 나는 좋아하던 군것질거리를 실컷 먹는다며 마냥 즐거웠고, 아버지는 웃었다. 빨간 모자챙 아래 그 웃음이 얼마나 애처로운 것인지 깨달았을 때 나는 어른이 돼 있었다. 머리가 굵어 아버지가 어려웠다. 살가운 말 한마디 하지 못하게 됐다. 같이 목욕탕에 갈 수 없을 만큼 멀고 어색해졌다.아버지는 십 여 년 전 충남 당진 대호만 물가에 컨테이너 집을 짓고 정착했다. 된장과 청국장을 담가 팔고, 낚시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서툰 손으로 닭도리탕이나 라면을 끓여 내고, 평생 좋아한 낚시 실컷 하면서 편하게 사시는 듯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하는 날까지 나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만큼 무뚝뚝한 분이다.다행히 초기에 발견돼 수술이 잘 됐다. 위를 절제했으므로 식사량이 줄어 몸집이 작아진 아버지, 약해진 아버지는 아들이 감당해야 할 슬픈 풍경이다. 그해 여름 대호만에 갔더니 아버지가 전복을 넣고 옻닭을 삶아주셨다. 고기에는 손도 못 대고 국물만 뜨는 아버지, 아버지 앞이라 울진 못하고 그저 먹기만 하는 나, 내가 먹어 치운 닭 한 마리, 뼈대만 남아 앙상한 낚시 좌대, 아버지 따라 야윈 대호만 물, 먼지 쌓인 아버지 낚싯대, 햇살 내려앉은 장독대, 덜 마른 빨래, 일찍 덮어버린 에어컨, 아무것도 모르는 뒤란의 닭과 개들, 유난히 푸른 하늘, 반짝반짝 빛나는 약통… 내게 각인된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어린 나를 목마 태우던 젊고 건강한 사내에서 힘없는 촌로로 대체된 지금, 나는 빨간 모자를 쓰고 소시지를 굽던 옛날의 아버지 나이가 됐다.얼마 전, 아버지가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정기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수면내시경 검사에는 보호자가 필요하다. 어떤 내색을 잘 안하는 아버지는 그동안 동네 친구분과 함께 병원에 다녔는데 이번엔 추수철이라서 동행이 어렵다고, 그래서 “혹시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10시면 끝날 거야” 내게 완곡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동네 친구분을 보호자로 하여 병원에 다니셨다니, 아들 눈치를 보시다니, 속상하고 죄송했다.차가 막혀 30분 늦게 도착하니 당진서 먼저 온 아버지는 노란 검사복을 입고 병원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청력이 약해져서 간호사가 묻는 말에 내가 몇 번 대신 대답했다. 혈압 재고 내시경실로 가 검사 받으실 동안 나는 수납하고 원내 약국에서 약 처방을 받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잘 부축해드리세요” 간호사가 말했다. 오늘 내내 어지러울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쳐보였다. 아버지를 부축하고 걸었다. 힘껏 붙잡고 싶은데 힘껏 붙잡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들의 마음이다. 부축도 견인도 아닌 동작으로 아버지 팔에 손을 얹은 채 말없이 걸었다.밥 먹고 가자 하셔서, 검사 2시간 이후부터 식사가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먼저 올라가…” 아버지 혼자 식사하실 게 눈에 밟혀 병원 권고를 무시하고 근처 백반집에 들어가 앉았다. 아버지 입맛에 맞게 청국장이나 우렁된장을 시키려는데, 아버지가 부대찌개를 가리켰다. 햄과 소시지 같은 걸 드시는 줄 몰랐다. 아버지의 뜻밖의 취향, 세월은 흐르는데 내가 모르는 아버지가 너무나 많다.어쩌면 아들 입맛에 맞추려고 부대찌개를 시키신 게 아닐까. 아버지는 부대찌개를, 아들은 우렁된장을 생각하는 어긋남이 아버지와 아들의 평생이다. 지금은 어정쩡한 부축에 실린 아들의 가벼움과 아버지의 무거움 사이를 걷고 있지만, 부대찌개를 먹고 아들은 살찌고 아버지는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부축하는 팔에 점점 힘이 많이 들어갈 것이다. 늘 그랬듯 아버지와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주앉은 밥상 위에 부대찌개 끓는 소리만 들렸다.

2021-12-21

겨울의 기억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어떤 계절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늘 “겨울”이라 답한다.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우선 눈 내리는 풍경을 마주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봄과 여름, 겨울에 미뤄둔 고민이나 일들을 한꺼번에 실행하기도 하고, 고마운 이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용기내어 보내기도 한다.그렇게 한 해를 얼렁뚱땅 마무리 지으며 새 시작 앞에서 겨우 의연한 척 해본달까. 그게 일 년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계절인 겨울에 내가 해보곤 하는 일들이다.눈을 보며 먹는 겨울 간식도 좋아한다. 겨울밤만 되면 속이 답답하다는 엄마는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잦다. 군고구마나 옥수수, 감자 같은 걸 한 솥 크게 삶아 쟁반 째로 내어오면 각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가족은 금세 거실로 모여든다. 겨울 간식이 가족간의 따스한 정을 나누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고구마의 맛이 심심해질 때쯤엔 손으로 찢은 잘 익은 김장김치를 올려 먹고, 목이 막힐 쯤엔 차가운 동치미 한 사발을 들이켜 퍽퍽함을 씻어낸다. 이불 안에서 손이 노래 질 때까지 까먹는 귤의 맛도, 폭닥한 외투 속에 붕어빵을 안고 뒤뚱뒤뚱 집으로 향하는 것도 이 계절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묘미다. 이쯤 되니 내가 겨울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싶다.만성 비염을 앓고 있는 난 매일 코가 닳아 있지만, 그래도 겨울을 좋아하는 건 아무렴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겨울에 태어났단 점이다.2001년 겨울이다. 엄마는 셋째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만삭이었던 엄마는 출산 시기가 앞당겨 오자 나와 둘째를 데리고 잠시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어느 새벽 급격한 태동을 느낀 엄마는 급히 나주병원으로 옮겨갔고, 어린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확인하자마자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서럽게 울음을 쏟아냈다.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외할머니는 허벅지를 찰싹 때리더니 언니는 동생 앞에서 절대 울어선 안 된다며 쏘아봤다. 열손가락 모두 금과 옥반지를 끼고 있던 할머니의 손은 얼마나 맵고 매몰찼던지. 동생이고 뭐고 내 마음 하나 이해 못해주는 할머니가 미워 더 큰 소리로 울어대면 할머니는 애써 등을 진 채 외면했다.외할머니는 동네에서 멋쟁이라 불릴 만큼 반짝이는 옷을 즐겨 입었고 그만큼이나 흥도 많으셨다. 누가 보건 말건 기분이 좋으실 땐 춤을 추곤 하셨는데, 검정색 라디오를 이리저리 똑딱이다 보면 댄스의 시작을 알리는 시끄러운 트로트가 쿵광거리며 흘러나왔다.실크 소재의 검은 상하의를 갖춰 입고선 오른발과 왼발을 차례로 내밀며 나아가는 그 스텝은 어린 내가 보기엔 얼마나 난해하고 우스꽝스러웠는지. 지금 떠올려보면 다 유쾌했던 어린 날의 추억들이다.외할머니는 호랑이 선생님 역할도 하셨다. 넌 이제 초등학생이니 구구단 정도는 눈을 감고서도 외워야 한다며 2단부터 9단까지 엄격히 가르치셨는데,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그 특유의 리듬감에 맞춰 낮게 외는 소리는 그때 외할머니에게 눈물 콧물 빼며 배운 것이다.추가로 전국 8도 지도를 펼쳐 경상도-전라도-충청도-강원도-경기도-평안도-황해도-함경도 순으로 한 번에 외는 수업도 들어야만 했다. 무사히 수업을 이수한 덕분인지 지금도 낯선 지명을 들을 때면 아아, 거기 경상북도에 있는 곳? 하며 직감적으로 알아맞히곤 한다. 이런 게 조기교육의 결과인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장난감이나 책 한 권 없는 지루한 일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창문을 내다보는 일이었다. 엄마는 열 밤을 자고 온다고 했고, 그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 분명 동생을 품은 엄마가 등장할 거라 생각했으니까.그때부터 창문을 보는 습관이 생겼달까. 사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 몰랐지만 글을 쓰다 보니 틈만 나면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이유가 위의 경험 때문이란 걸 방금 깨달았다.눈이 잔인할 만큼 거세게 내리는 날엔 늘 크고 작은 이별이 있었다. 늘 예고 없는 헤어짐은 한 겨울 속이었고, 극단으로 스스로를 몰아 방치하는 것도 전부 극심한 추위 속이었다.거듭 돌이켜 보면 이별과 슬픔으로 이루어진 계절인데도 어쩐지 나는 차갑고 매운 바람 부는 겨울이 와야 비로소 나의 오랜 집 안에 들어선 듯하다. 다시금 떠올려보자면 분명 울적하고 지루한 시간이지만 그것이 나를 지탱하고 있음을 안다.

2021-12-21

노인을 위한 나라

김규종 경북대 교수 “개 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알몸으로 거리에 뛰쳐나와야 겨우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어. 늙은이들에 대해서 누구 하나 관심이 없잖아.”2008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오는 말이다. 이유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살인을 거듭하는 연쇄 살인범 쉬거를 추적하는 황혼의 보안관 벨. 그는 확연히 달라진 미국의 현주소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사회에 만연한 노인들에 대한 끔찍할 정도의 무관심이다. 노인이 알몸에 개 목걸이를 걸치고 거리를 배회해야 비로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노인에 대한 무관심이 어디 미국만의 문제인가?!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들에 대한 무관심은 극에 달한 형편이다. 선거철이면 표 때문에 얼굴 들이미는 정치인들 말고 누가 노인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가. 하기야 아직도 ‘고독사’의 정확한 통계치마저 없는 나라고 보니 노인을 향한 냉대에 가까운 무관심과 무반응, 무신경은 당연지사처럼 보인다.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 하루 24시간의 변화나, 1년 사계절의 운항이나, 생로병사의 필연적인 수순(手順)은 변화가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입증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경영대학원 마우로 기옌 교수가 펴낸 ‘2030 축의 전환’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베푼다. 그 가운데 하나가 ‘노인’에 대한 관점의 필연적인 변화다.기옌 교수에 따르면, 불과 9년 뒤인 2030년의 70대 노인들은 요즘의 50대처럼 원기 왕성하고 혈기방장하며 쓰임새가 클 것이라 한다. 그들 자신의 건강에 관한 관심과 엄격한 자기관리, 나아가 사회 전반적인 의료와 영양의 진보가 그 바탕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이 확보한 부(富)가 젊은 세대를 압도하기 때문에 돈을 벌고자 하는 기업은 주 고객 대상으로 70대 이후의 세대에게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우리 주변에도 강건하고 의욕에 넘치는 은퇴한 세대가 즐비하다. 그들 가운데 남성들은 등산이나 신체 단련에 시간을 소모하고, 여성들은 각종 모임에 분망하다. 그들은 돈은 적게 받아도 좋으니 일자리를 달라고 하소연한다. 집에서 온종일 얼굴 맞대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부부의 불화와 반목(反目)을 예방하는 최적의 수단이 남성의 출근 아닌가?! 여기서 문제가 생겨난다. 기업은 고임금과 정비되지 않은 노동법을 근거로 노인 재취업에 난색이다. 하지만 노인 문제를 방관하면 어떤 문제가 불거질 것인지는 명약관화! 이제라도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토론회나 공청회부터 열어야 한다. 적정한 임금 수준과 노동 가능 시기를 조율하여 숙련된 노인 노동력을 사회적으로 방치하고 낭비하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명제만큼 자명한 이치도 없다. 인생 3막을 열어가려는 노인들에게 새로운 활기와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이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2021-12-21

44번 버스의 교훈

이창훈 경북도청본사취재본부장 중국 오지의 한 시골길을 버스가 달리고 있다. 길가에서 차를 기다리던 청년이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운다. 2시간이나 기다렸다는 말에 젊은 여성 운전사는 친절한 미소를 짓는다. 이후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다시 2명의 남성을 태웠고, 잠시 뒤 이들은 강도로 돌변한다. 두 강도는 승객들의 금품을 모두 빼앗고 폭행까지 한다. 그러다 여성 운전사를 훑어보고는 성폭행을 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서 끌어 내린다. 청년은 승객들에게 그냥 두고 볼 거냐고 소리치지만 승객 모두 고개를 돌린다. 청년 혼자 강도들을 막아 보려 하지만 오히려 강도의 칼에 찔려 부상만 당하는 등 두 사람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운전사는 승객들을 말없이 돌아본다. 뒤늦게 청년이 버스에 타려 하지만 운전사는 청년을 매몰차게 버려둔 채 버스를 몰고 떠나 버린다. 허탈한 청년은 다른 차를 얻어 타고 길을 가는데,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경찰이 보인다. 청년이 탔던 44번 버스가 교각을 들이받고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운전사와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경찰의 말에 청년은 허탈한 미소를 짓는다. 이 여성 운전자는 이 버스에서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람은 청년 한 명이라고 생각했고, 나머지 모두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길에 동반시켰다. 한마디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비겁한 방관자의 최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 내용은 중국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지난 2001년 홍콩에서 영화 ‘버스 44’로 제작돼 알려졌다. 러닝타임 11분 밖에 안되는 독립영화지만 너무나 강력한 메시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지금 우리나라는 향후 수십년을 좌우할 대통령을 뽑는 중요한 시기에 도래했지만 국민은 어느 때보다 참담한 상태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골라야 하나 후보마다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있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비리 의혹에다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최근 아들의 도박 혐의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시장·군수 후보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야당의 윤석열 후보는 검찰 총수까지 올랐지만, 아내와 장모 리스크에 공정과 정의라는 본인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고, 어정쩡한 사과 등 대통령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를 기대하기는 부족해 보인다.선거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고, 서로의 치부만 들추어내는 네거티브가 극에 이르고 있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로 상당수의 젊은층을 비롯 중장년층도 투표에 무관심해 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다. 하지만 후보가 우리의 마음에 들지않을수록 국민이 이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 44번 버스의 방조자가 되어 함께 자멸의 길을 걸을 수는 없지 않은가.플라톤은 말했다. “정치를 외면하다 보면 오히려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고. 문득 랭보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오 성(城)이여, 계절(季節)이여,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었으랴’.

2021-12-21

30대 장관

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는 1985년생이다. 34세이던 2019년 총리에 취임했다. 그녀는 파격적 내각 구성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19명의 장관 중 12명을 여성으로 임명했다. 그 중 마린 총리를 포함해 4명이 30대 여성이다. 마린 총리 내각은 작년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잘 관리해 국민의 70% 지지를 얻었다.세계적으로 30∼40대 지도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은 만 39살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뉴질랜드 저신더 아던도 2017년 37살 나이에 총리로 임명된 여성 지도자다. 벨기에 샤를 미셸 총리도 38살에 총리가 됐으며 오스트리아 제바스틴 쿠르츠 총리는 35살의 현직 총리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은 47살에 대통령이 됐고, 영국의 캐머린 전 총리는 43살에 총리에 취임했다.정치 지도자의 연령층이 낮아지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특히 지구촌 곳곳에서의 30대 국가 지도자 탄생은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다. 젊은 지도자 등장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이라는 것이 보편적 분석이다. 국내서도 지난 6월 국민의 힘 당 대표 선출에서 36세의 이준석 후보가 뽑혀 돌풍을 일으켰다. 이 대표의 당선은 세대교체 이상의 의미를 담아 우리 정치사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가 집권 후 청년인사 중용 방침을 밝히고 있다. 차기 내각 구성에 30대 장관 인선도 말했다. 젊은 층의 장관 등용은 여러 면에서 고려할 부분이다. 디지털화 시대에도 바람직한 선택이며 기성정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부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하다.국회의원과 장관의 평균 연령이 50∼60대에 머물고 있는 한국정치 현실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란 면에서 기대감도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21

19세기, 피아노가 있던 풍경

영화 ‘피아노’의 전개는 섬세하다. 그 섬세함은 순전히 배우들의 연기력에서 기인한다. 배경은 생경하고 아름다우며, 진행은 겉잡을 수 없이 전개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빼곡히 화면을 채우고 있다. 여기에 시대적 배경과 장소, 피아노라는 사물과 주인공 ‘에이다’의 인물 설정들이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영화는 하나의 층위로 보아도 무방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다양한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쉽게 짐작된 층위가 만만찮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우선, 19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뉴질랜드라는 장소부터 시작해야 한다. 18세기 초 영국은 뉴질랜드협회를 세우고 식민운동을 시작한다. 연이어 뉴질랜드 토지회사를 설립하고 뉴질랜드의 토지를 마음대로 팔아 먹는다. 당연히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백인들의 충돌이 일어나고, 19세기 말에 들어서 인종분쟁이 끝나고 마오리족의 공식적인 영국화가 시작된다. 서구의 식민주의와 원주민 사이 문명간의 충돌이 첨예했던 식민주의 뉴질랜드다.이러한 배경에 여섯 살때부터 말하기를 그만두고 침묵을 선택한 ‘에이다’는 미혼모로 아홉 살 난 사생아 딸 ‘플로라’를 데리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머나 먼 곳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에 도착한다. 그녀의 짐이 뉴질랜드 해안가에 부려질 때, 피아노도 함께였다.‘에이다’와 딸 ‘플로라’가 뉴질랜드에 도착하면서 남편 ‘스튜어트’와 근처에 살고 있는 ‘베인스’가 등장한다. ‘스튜어트’와 ‘베인스’는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온 백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현지에서의 생활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뉴질랜드로 옮겨 진 피아노는 이들 사이에서 단순한 악기 그 이상의 배치에 놓이며, 다양한 층위의 상징과 은유로 역할을 맡는다.피아노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장소를 이동한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말처럼 “아주 무겁고 시끄럽고 거추장스러운 악기”가 바다를 건너 해변가에 머물기도 하고, 진흙탕길의 밀림을 거쳐 ‘베인스’의 집으로 다시 ‘스튜어트’의 집으로 옮겨 다닌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깊은 바다 속으로 잠긴다. 피아노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모종의 거래가 일어난다. 땅과 육체, 감정의 거래조건으로 피아노가 놓인다.식민주의는 쟁탈의 역사였다. 원주민의 관념에서 거래될 수 없는 것들을 유럽에서 건너 온 백인들이 빼앗고 거래하며 ‘탐욕’과 ‘욕망’을 채워 나가던 시기다. 원주민의 역사에서 땅을 비롯한 자연은 주인이 없었다. 그것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공동으로 잠시 이용할 뿐이었다. 쟁탈의 세계관과 원주민의 세계관이 충돌하여 피로 물들던 시대다. 이러한 식민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호기심’과 ‘에로티즘’이라는 요소를 더한다.말을 하지 않는 ‘에이다’는 손가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우선 수화(手話)가 그러하며, 간단한 의사전달을 위해 연필을 잡은 손가락이 그러하다.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피아노, 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가락이다.주인공 ‘에이다’가 ‘왜 말하기를 그만두었는가’와 ‘왜 그토록 피아노에 집착하는가’의 직접적인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피아노가 놓인 곳 마다 ‘에이다’는 피아노를 따라다니며 연주한다. 뉴질랜드의 해변에서 ‘베인스’의 집에서 손가락을 이용해 피아노를 치고 대화를 나눈다.다양한 층위의 은유와 상징으로써 피아노는 여러 방식으로 거래된다. 물론 피아노를 둘러싼 거래품목들, 주고 받는 것들이 일반적이지 않다. 여기에 최종적으로 거래를 끊어내는 방식이 충격적이며 명쾌하다.피아노의 이동과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의 거래 내역 속에서 식민주의와 여성성과 에로티즘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섬세하게 보기보다는 거칠게 보아야한다.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기저에 놓인, 그 다양함이 어느 선상에서 출발하느냐의 문제다. 혈연과 결혼, 가족 단위에서 국가적 단위로까지 이어지는 바탕에 깔린 ‘탐욕’과 ‘욕망’ ‘호기심’ ‘에로티즘’과 ‘사랑’의 단어들이 부정과 긍정,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를 넘나든다. 19세기 뉴질랜드가 그러하다.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생경하고 아름다운 풍광과 정확하게 나눠지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과 풍성한 의미를 담은 피아노 선율과 함께하는 영화다./(주)Engine42 대표

2021-12-20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 쪽샘의 유리구슬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에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가 있다. 우리는 이 ‘작은 세계’를 통해 유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고,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도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작은 세계’는 보존과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우리에게 새롭게 밝혀진다. 쪽샘 유적에서 발굴된 1400년 전 유리구슬에도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가 있다.유리는 흔한 물질이다. 하지만 고대에는 유리가 권력자의 사치품이었다. 유리는 화려한 색상, 특유의 광택과 투명함을 띠며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구성이 약해 깨지기 쉽다. 인류가 유리를 처음 만든 건 약 4500년 전. 학계에선 지중해 지역에서 유리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유리가 한반도에 처음 출현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중국의 철기문화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가 되면 다양한 유리제품이 등장한다. 특히 유리구슬은 고대 유적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리제품 중 하나다. 고대의 유리구슬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 주로 장신구의 재료로 사용됐고, 이런 장신구는 권력자의 죽음과 함께 무덤에 매장됐다가 발굴이라는 학술적 행위를 통해 다시 빛을 보게 된다.발굴된 유리구슬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매우 작은 기포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기포는 유리구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단서다. 고대 유리구슬을 제작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였다. ①기다란 유리를 금속 봉에 스프링 형태로 감아서 제작하는 감은기법 ②넓은 판 형태의 유리를 금속 봉에 감아 열을 가한 후 양 끝 부분을 접합해 만드는 접은기법 ③유리 융액을 잡아당겨 유리 관을 만든 후 잘라서 제작하는 늘인기법 ④거푸집 중앙에 철심을 꽂은 후 작은 유리 조각을 넣고 가열하거나 유리 융액을 부어서 제작하는 주조기법 등이다.고대의 유리는 당시 제작 기술의 한계와 유리 융액의 높은 점성으로 인해 기포가 외부로 방출되지 못하고 유리 내부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구슬의 형태를 만들 때 사용되는 힘의 방향에 따라 기포의 배열이 다르다. 감은기법과 접은기법은 구슬을 꿸 수 있는 구멍의 방향과 교차하는 가로방향으로 기포가 배열되며, 늘인기법은 구멍의 방향과 평행하는 세로방향으로 기포가 배열된다. 그러나 유리 용액을 부어서 제작하는 주조기법은 기포의 방향성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쪽샘의 유리구슬은 어떤 방법으로 제작했을까? 발굴된 유리구슬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구멍의 방향과 평행하는 세로방향으로 기포가 길게 늘여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즉, 이 구슬은 늘인기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늘인기법으로 제작한 유리구슬의 경우 한반도에서 관련한 부산물이 보고된 바가 없고 기술적인 난이도를 고려하였을 때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유입된 걸로 추측된다.쪽샘의 유리구슬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에서 제작했을까? 유리는 모래나 석영광물을 넣어 용융(融解·고체가 열에 의해 액체가 되는 현상) 과정을 거쳐 만든다. 석영광물을 녹이기 위해서는 1700도에 육박하는 고온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저런 온도를 높이는 기술이 없었기에 용융온도를 낮추기 위해 융제(融劑·원물질의 녹는점보다 낮은 온도에서 융해하게 하는 물질)를 첨가한다. 융제를 첨가하면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구조가 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시 안정제를 첨가하고, 다양한 색상의 유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착색제를 더할 수 있다. 융제로 사용한 재료는 나트륨(Na), 칼륨(K), 납(Pb) 등이 있는데 첨가되는 재료에 따라 유리 종류가 구분된다. 나트륨을 사용하면 소다 유리, 칼륨을 사용하면 포타쉬 유리, 납을 사용하면 납 유리로 분류한다. 한편 안정제로 사용하는 재료는 칼슘(Ca), 알루미나(Al), 마그네슘(Mg) 등이 있다. 소다 유리 중 알루미나 함량이 높은 경우 고(高)알루미나 유리로 분류하며, 함량이 낮은 경우 광물의 탄산소다를 사용한 네트론 유리와 해양 식물의 재를 사용한 식물재 유리로 다시 분류할 수 있다. 첨가된 융제와 안정제의 성분을 통해 고대 유리의 제작지를 추정할 수 있다. 포타쉬 유리는 인도나 동남아시아산 초석이나 식물의 재가 원료다. 고(高)알루미나 유리는 아시아의 특징적인 조성으로 주로 남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네트론 유리는 지중해 지역의 원료로 제작했고, 식물재 유리는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원료로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김세희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쪽샘에서 발굴된 유리구슬은 감청색이 가장 많다. 그외 벽색, 청록색, 황색 등이 있다. 분석 결과 감청색 유리구슬은 초석을 사용한 포타쉬 유리와 소다 유리로 밝혀졌다. 많은 양을 차지하는 소다 유리는 고(高)알루미나 유리와 네트론 유리 계통이 확인됐다. 벽색과 청록색, 황색의 유리구슬은 대부분 고(高)알루미나 유리다.아직 한반도에서 발굴된 고대 유리구슬의 유통 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학계에선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된 유리구슬이 해양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유입됐다는 견해가 발표됐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유리구슬의 성분 조성이 인도나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출토되는 유리구슬의 성분 조성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쪽샘 유적에서 발굴된 유리구슬 역시 아직까지 제작지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최근 연구 성과를 고려한다면 교역이나 교류를 통해 외국에서 유입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현재 쪽샘 지구에 대한 발굴이 진행 중이다. 출토된 유리구슬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에 쪽샘 유리구슬의 ‘작은 세계’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2021-12-20

동지(冬至) 무렵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날씨가 제법 추워지니 비로소 겨울이 느껴진다. 세월의 바퀴는 세모로 치닫고 계절의 수레는 한겨울로 굴러간다. 잎새를 떨군 나무들은 당당한 외로움의 가지를 드러내는데, 휑한 들녁은 텅빈 충만으로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만고청산은 조곤조곤 동면의 생물들을 품으며 파리한 푸른빛으로 세한(歲寒)의 화폭을 채우는가 하면,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삶의 질곡에 성찰과 침잠의 몸짓으로 또 한 차례의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세찬 칼바람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그야말로 북풍한설에 산하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야 겨울의 제격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겨울이라야 추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필자의 어린시절 겨울은 혹독했지만, 오히려 강추위 속의 겨울놀이로 나름 즐거웠다고나 할까? 매운 바람결에 나목의 신음 같은 전율이 오싹해져도 언덕 위에서 손등이 부르틀 정도로 연날리기를 하고, 얼어붙은 무논에서 얼음지치기를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거나 깨어진 얼음장 밑으로 두 발이 빠져도 온종일 한데서 추위와 꼿꼿하게 맞서며 재미난 겨울놀이를 즐겼던 것 같다. 그렇게 보낸 동심의 추억이 있었기에 해마다 맞는 겨울이 가슴 시리게 푸근하기만 하다.‘한겨울 시린 마음 겹겹으로 고이 접어/사랑방 아랫목에 꼬옥 재워두면/눈치는 겨울밤에도/서럽지 않으련만’ - 강성위 시조 ‘겨울밤’ 전문동지가 다가오는 겨울밤은 길기만해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금세 배가 출출해졌다. 그럴 때면 으레 또래들과 뜨뜻한 구들방에 둘러 앉아 시시닥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무나 고구마를 깎아서 먹고, 살얼음 낀 식혜를 단지에서 퍼먹으며 요기를 달랬다. 요즘처럼 인스턴트식품이 거의 없던 시절 식혜는 겨울 별미 중의 최고였다. 시원 달콤하고 걸쭉 매콤하며 아삭 새큼한 맛이 우러나는 안동식혜는 낮에 일하다가 새참으로 먹기도 했지만, 겨울밤에 친구들과 어울려 먹는 맛이야 말로 어떤 음식맛과도 견줄 바가 못됐다. 구멍 난 문종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간혹 떡가루 같은 눈발이 소리없이 날리던 겨울밤, 아늑하고 쿰쿰한 사랑방에서의 먹거리 나눔은 달달하고 정겹기만 했었다.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는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면서 양기(陽氣)가 살아나기 때문에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도 전하고 있다.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 동지팥죽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릴 적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요즘은 나이 한살 더 먹기가 두렵기만 하니, 연치(年齒)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동지에 즈음하여 팥죽에 대한 의미와 주변을 살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예부터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경사나 재앙이 있을 때에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의 난마를 팥죽 한그릇으로 이겨낼 수도 있지 않을까?

2021-12-20

영덕 지방소멸을 저지할 물적 토대 ‘공모사업’과 국비확보

박윤식 경북부 지난 10월 18일 행정안전부는 전국 기초단체 중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있는 행정구역 89곳을 지정·고시했다.전국 229개 기초단체의 39%에 해당하며 경북과 전남이 각각 16곳으로 가장 많았다.지난 20년간 인구가 감소한 지역은 151곳으로 66%에 달한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기존의 2배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 중 75%가 젊은층이어서 지방의 인구절벽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역시 작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지 연간 1조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국고보조사업 선정 때 지방에 가점을 주는 등 행정적·재정적인 지원책을 내놨다.하지만 문제는 어미 주둥이에 물려있는 모이는 하나인데 한껏 입을 벌리며 처절히 울어대는 새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다 줄 수 없다는 것은 살릴만한 놈에게만 모이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노력하고 노력하는 지방자치만 살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그러한 변화속에서 영덕군은 매년 새로운 공모사업과 국비 등 확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영덕군이 최근 정부예산 심의과정에서 2022년도 국비 예산 62억5천만원을 추가로 확보한데 이어 ‘2022 어촌뉴딜300’ 신규대상지로 선정돼 110억원을 확보하는 등 대형 국책사업을 연이어 유치함으로써 군예산을 전년대비 112억원이 증액된 5천125억으로 편성했다.주요 사업을 살펴보면 △국립해양생물종복원센터 건립 △강구대교 건설 △축산~도곡 국지도 개량사업 △포항~삼척 동해중부선 철도부설 △고래불해수욕장 해안 생태탐방로 △영덕시장 재건축의 일환인 도시재생인정사업 등 영덕군을 새롭게 변화시킬 새로운 활력사업들로 구성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새로운 무한경쟁시대에 군민의 행복은 이러한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들이 모여서 이뤄 지는 것이다. 이희진 영덕군수는 “국책사업 추가확보와 군예산 증액 편성을 통해 군민 모두가 행복한 영덕, 지속발전이 가능한 영덕을 만들기 위해 온힘을 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영덕군이 국비와 공모사업에 목을 메는 이유는 지방 세수가 적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정된 먹이를 먹기 위해선 잘 훈련된 전투부대원이 필요하다.최근 도시에서 일하고 농촌 전원주택에서 생활하며 바닷가 주택에서 힐링하는 듀얼라이프가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만큼 ‘영덕형 듀얼라이프’ 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머무르다 떠나는 관광도시 영덕이 아닌 정착을 위해 다시 찾는 영덕이 될 때 지방 소멸 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영덕/newsyd@kbmaeil.com

2021-12-20

윤석열 후보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제1야당의 윤석열 후보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정권교체 여론은 50%가 넘는데 윤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30∼40%선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윤 후보가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윤석열은 정치에 입문한지 이제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정치신인이다. 살아 있는 권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저항정신은 높이 평가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아우성치는 국민의 고통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윤 후보가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대권을 잡으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첫째, ‘권력불나방’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을 경계하면서 오직 ‘국민의 소리’만을 경청해야 한다. 선대위 출범이 늦었던 것도 윤 후보의 측근과 당대표 및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다툼 때문이었다. 미래 권력을 두고 벌이는 대선캠프에도 충신과 간신이 있다. 노회(老獪)한 정치꾼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에 혈안이 된 간신들의 요설(妖說)을 멀리하고 충신들의 고언을 경청해야 한다. 선대위 출범을 앞두고 내분이 극심했을 때 상임고문단이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함으로써 가까스로 당이 화합할 수 있었다. 이제 윤 후보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의식과 혜안(慧眼)이다.둘째, ‘보수의 혁신’이 중도 확장의 첩경이자 대선 승리의 길임을 명심하라.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중도층과 2030’의 마음을 얻으려면 꼴통보수를 버리고 혁신보수의 길을 가야 한다. 윤 후보의 전두환과 5·18 관련 실언(失言)에서 입증되었듯이 극우세력에 휘둘리는 순간, 중도는 물론 다수 국민의 마음은 떠난다. 인재를 영입해서 ‘외적 이미지를 새롭게 포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수의 혁신을 통한 ‘내용의 실질적 변화’이다. 총괄선대위원장 김종인의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지려면 보수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신인 윤석열’을 후보로 선택한 이유가 ‘보수혁신을 통한 정치혁신’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마지막으로 ‘국정의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국민이 정권교체를 바라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정청사진이 없다는 것은 기대할 것이 없다는 뜻이 된다. 이미 죽은 권력이나 다름없는 ‘반(反)문재인’ 정서에 기대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윤 후보가 말하는 “국민을 위한 국가”,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공정한 세상”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윤 후보가 역설하는 정권심판론 보다 정권교체 이후의 새로운 삶에 더 관심이 크다. 김종인 위원장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실력 있는 정부가 국민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후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국민에게 호소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 그 철학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2021-12-20

무형문화재 ‘갯벌 어로’

갯벌어로가 무형문화재로 선정돼 화제다. 문화재청은 갯벌어로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무형문화재는 형태로 헤아릴 수 없는 문화적인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형체가 없기 때문에 그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정 대상이 된다.예를 들어 인류의 정신적인 창조와 보존해야 할 음악·무용·연극·공예기술 및 놀이 등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이번 무형문화재 지정 범위는 맨손이나 손 도구를 활용해 갯벌에서 조개류·연체류 등을 채취하는 어로 방식인 갯벌어로를 비롯해 관련 전통지식, 공동체 조직문화(어촌계)와 의례·의식 등을 모두 포함한다. 한반도 서해안과 남해안 갯벌을 무대로 어민들이 일군 전통 어로 방식이다.갯벌어로는 오랜 기간 갯벌이 펼쳐진 한반도 서·남해안 전역에서 전승되며, 조선 시대 고문헌에서 갯벌에서 채취한 해산물을 공납한 기록이 확인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갯벌어로에 쓰이는 도구나 방식이 지질이나 지역에 따라 달라 그 기술의 다양성이 학술연구 자료로서 가치와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갯벌어로는 지난 9월 한국관광공사에서 제작한 광고영상에서 민요 옹헤야를 배경 음악으로 바지락을 따러 가는 어민들의 경운기 여러대가 갯벌을 달리는 장면이 화제를 모았다. 20일 오후 기준 영상을 본 시청자 수는 3천471만명을 넘었다.어로 방식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는 이번이 두번째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9년 한국 어촌문화와 생업의 근간인 어살(漁箭)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문화로 자리잡기까지의 오랜 염원이 어느덧 무형문화재로 자리매김해가는 듯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20

어떻게 살 것인가

조현태​​​​​​​수필가 조선조 시대에 병조판서와 대제학까지 역임한 ‘윤회’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출중한 인격자였다.그가 젊은 시절에 시골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여관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행색이 말이 아닌 까닭에 여관주인이 투숙을 허락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는 뜰아래 앉아있었다. 그때 주인집 아이가 까만 구슬을 하나 들고 나왔다. 구슬을 손바닥에 굴리며 놀다가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구슬은 데구루루 굴러서 장독대 사이로 들어갔다. 아이는 구슬을 찾느라 요리조리 살피다가 금세 포기하고 들어가 버렸다.그런데 그 순간 커다란 거위 한 마리가 나타나 그 구슬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여관에서 야단법석이 났다. 엄청난 값어치가 나가는 흑진주를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앞뒤 상황을 간추려보던 여관 주인 내외는 구슬을 훔칠만한 사람이 새로 나타난 윤회 밖에 없다고 의심했다.날이 새면 관가에 고발하겠다며 도망가지 못하게 그를 기둥에 묶어놓았다. 갑자기 도둑으로 취급받게 된 윤회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까닭 없이 봉변을 당하기는 억울하지만 워낙 명확한 진실을 알고 있으니 그다지 염려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장 어떻게 할 방도가 없으니 그저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서 윤회는 주인에게 자기 곁에 거위도 함께 붙들어 매 달라고 청했다. 주인이 생각하니 엉뚱하고 괴이하지만 귀중한 보석을 찾기 위해 윤회의 요구대로 거위를 붙잡아 따로 묶어 두었다.이튿날 아침, 자신을 끌고 가려는 주인을 보고 윤회는 우선 ‘거위 똥부터 살펴보라’고 말했다. 이상하게 여긴 여관 주인이 우습다는 투로 나무랐다. 없어진 흑진주와 거위 똥이라니 도대체 두 가지 물체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코미디의 한 부분 같기도 하지만 일단은 윤회의 말대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거위 똥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속에 흑진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윤회는 그때서야 어제 본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여관 주인은 부끄러워하며 사과하고 나서 말했다.“그런 줄 알았으면 어제 저녁에 말하지 왜 지금에야 그 이야기를 하느냐?” 그러자 윤회는 “만약 그 때 말했다면 당신이 거위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조금만 참으면 거위를 살릴 수 있기에 일시 수모를 참았노라.”덕을 세우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진실이란 어떻게 감추든지 언제 밝히든지 사실 그대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윤회에게 ‘진실은 흑진주를 훔치지 않았고, 때가 되면 거위에게서 찾을 수 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위가 자신의 입장을 증명해 줄 상황이 어느 시점이든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거위를 다치지 않게 진실이 밝혀진다면 자신의 덕이 올바로 세워진다는 것이다.근간에 스스로를 덕망 있는 사람이라고 외치며 백성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필자도 그런 사람을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라 여기지만 출중한 인격자는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거위를 잡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둥에 묶일 줄도 알고 관가에 끌려가서 곤장을 맞지 않아도 될 것은 알지만 거위 배를 가르지 않으면서 도둑 누명을 벗지는 못하고 있다.덕을 제대로 세워서 윤회를 능가하는 인품이 지금 시대에도 있기를 빌어본다.

2021-12-19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윤영대수필가 이제 대선도 80여 일 남았다. 그런데 국가 미래의 꿈을 보여주기는커녕 갈수록 서로 헐뜯는 시끄러운 잡음들이 연일 매스컴과 SNS를 달구고 있다. 대통령 후보자들의 기본 자질은 고사하고 주변의 인물, 특히 가족들의 참하지 못한 언행들이 우리 귓전에 맴돌며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우리가 흔히 들어오던 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가 있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다음에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한다는 옛 가르침을 ‘대학(大學)’의 팔조목(八條目)을 통해서 배워왔다. 대통령 후보자의 개인 능력이나 인격과 품성은 유권자 각자의 판단일 수 있지만 최근 가족의 행위들을 볼 때 옛 가르침이 가슴을 치게 만든다.이재명·윤석열 후보 둘 다 법학과를 나와 변호사, 검사로서 또 도지사, 검찰총장직을 수행하면서 나름대로의 국가통치 방법을 익혀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들과 아내의 석연치 않은 비행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안타깝다.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러한 것들이 떠도는 자체가 후보 자신들의 문제다. 공인으로 국민 앞에 나서려면 본인과 가족의 법적, 도덕적 검토가 필요하다. ‘내로남불’이라는 희한한 말들이 이곳저곳 떠돌며 품격을 떨어트리고 사회의 빈축을 사고 그에 대한 변명도 사죄도 진실이 아닌 듯하니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사람들은 자기 자식 나쁜 점을 알지 못하고 자기 밭에서 자라는 곡식의 싹이 큰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요즈음 대선 정국에 절절히 맞는 것 같아 안쓰럽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에 휩싸여 말 바꾸기를 거듭하더니 아들의 불법도박과 성매매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며 “아들 말을 믿는다”하며 고개를 숙였다. 윤석렬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으로 질책을 받더니 최근 부인의 허위 경력 의혹에 “공정 상식에 맞지 않다”고 사죄했다. 그 진실공방이 연일 들쑤셔대지만 듣고 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이러한 인물들이 국가수반이 되고자 나서는 것 자체가 ‘수신제가 후 치국’이라는 옛 선현의 일깨움과 멀기 때문이다. 연좌제라는 말은 요즘 사라졌어도 아들의 비행, 부인의 허위가 후보 행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정치사를 보면 가족·형제 측근들의 돈에 얽힌 비리들이 꼬리를 문다. 전두환은 형제 비리로 ‘29만 원’만 남았고 노태우는 ‘6공 황태자’를 낳았고 김영삼은 ‘소통령 아들’이 재임 중 구속되었으며 김대중은 아들 ‘홍삼 트리오’가 청탁과 금품수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노무현은 형 때문에 비운을 맞아 결국 투신자살하였다. 이명박은 다스 논란, 처가의 로비 사건으로, 박근혜는 측근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등으로 투옥되어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불행한 통치자들의 모습이다. 모두 자신을 갈고닦으며 집안을 두루 살피지 못하고 외적인 과시와 투쟁만을 해온 결과이다.공자의 가르침에는 수신에 앞서 정심(正心)을 가지라 했다. 자신과 가정에 대한 바른 마음으로의 통찰이 필요하다. 내년 대선을 염려하며 후보들에게 한 마디 ‘수신제가 후 치국평천하’.

2021-12-19

이주배경아동 학습권 보장, 평등한 정책 되길…

장흔성 경북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5천년의 역사 속에서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다양한 이주배경의 사람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은 당혹감을 교육 현장에서도 가지게 된다.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 이주의 현재 모습은 초기 특정 20∼30대의 연령층에서 벗어나, 전 세대를 걸쳐 진행되고 있다.2021년 통계를 보면 이주배경 아동 수는 30만 여명에 이른다. 학령기 아동의 수도 18만 여 명이다.다문화가정아동의 학습권은 아동의 기본 인권이자 미래 사회의 경쟁력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여성가족부에서는 2차 기본계획에서부터 ‘사회발전 동력으로서의 다문화가족역량강화’를 기본 목표로 설정해 ‘다문화가족자녀의 성장과 발달’ 사업을 진행했다.이러한 사업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아동들의 학교 생활은 여러 형태의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다문화가정의 부모들이 국내 공교육 경험이 없다. 이런 부모들이 세계에서 가장 교육에 관심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수 밖에 없다.필자가 2018년부터 3년간에 걸쳐 공동으로 수행한 ‘경상북도다문화가정청소년의 학교적응실태와 지원방안’과 ‘경상북도 다문화청소년의 진로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방안’ 연구에서도 이들의 한계점이 나타났다.다문화청소년이 학교적응에 미치는 요인을 4가지로 분류했다.첫째, 개인적 요인으로는 고학년이 될수록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부모의 외모가 외국인임이 명확하게 드러날 경우 자아정체성 고민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또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문제해결 능력에 있어 자기 효능감이 문제로 나타났다.둘째, 가정적 요인으로는 부모의 경제적 수준과 부모의 양육태도, 부부관계가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셋째, 학교 생활적 요인으로는 학교생활의 태도, 학교의 수업, 또래 친구와의 관계, 교사와의 관계로 나타났다. 넷째, 거주지역별 요인으로는 농어촌 지역 거주, 도심지역 거주, 도시 근교 산업단지 지역 거주였다. 이런 문제점들이 다문화 아동에게서는 낮은 학업 성취의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경상북도에서는 다문화가정 아동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2015년부터 이중언어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이중언어 환경 조성을 위해 이중언어 강사양성과 보수교육을 통해 250여 명의 결혼이민여성을 대상으로 12억원의 예산으로 지역별 강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방학을 통해 중국과 베트남 국내외를 격년제로 현지 이중언어 캠프를 진행해 두 개의 언어와 문화의 경험을 통해 글로벌 인재양성 및 정체성 확립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2018년 전국 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서 다문화가정자녀가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학교 공부가 어려워서가 63.6%로 나타났다. 특히 중도입국자녀는 학교공부가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95%로 나타났다. 경북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가정 아동의 학업 격차를 해소하고자 학습 및 진로지원사업을 202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경북도내 10개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4학년과 5학년 각각 10명씩 100명을 선정해 부모와 사전 설명회를 통해 본 비대면 학습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학습 멘토로는 도내 사법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50명을 선발해 진행했다. 사후 평가에서는 전원이 학업 성취가 향상이 되었고 자신감 회복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하지만 이런 긍정적 효과성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노력에 비해 사업의 확대성에서는 달팽이 걸음이다. 항상 소수자의 권리는 정책의 주변부이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의 인적 역량은 지역의 생산성과 직결된다. 다문화가정 아동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정책 시행이 멀리 유엔의 아동권리헌장을 말하지 않아도 모든 아동들이 출발선에서 특정 이주배경으로 인한 교육적 불평등이 해소되어야만 도민의 미래 생산성도 담보할 수 있다.2022년 지방 선거에서는 지역에 살고 있지만 세계 시민이 되는 글로컬한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해 그 출발을 평등하게 하는 공약들이 개발되길 바란다.

2021-12-19

사라질 것과 살아날 것의 조우

경주라는 이름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가 끝날 때이다. 경순왕이 서라벌을 떠나 개성에서 항복하면서 신라의 천년 사직이 끝나고 도시 이름도 서라벌(금성)에서 지금의 경주로 바꿨다고 한다. 천년을 간직한 이름이다.천 년을 견뎌낸 유적과 갓 백 살을 넘긴 건물을 만나러 갔다. 천 년이라는 세월을 펼쳐보기 전에 짧은 시간을 살아낸 경주역을 미리 만나보기로 했다. 곧 폐역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와서 먼저 그리로 발걸음을 옮겨 눈도장을 찍고, 고려 시대에 토성으로 태어나 조선 시대에 석축으로 변신하였다가 일제강점기에 성벽 50m만 남기고 그 형태의 대부분이 헐렸던 경주읍성을 나중에 알현했다.어린 시절, 안동에서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왔었다. 처음 맞닥뜨린 곳이 경주역이다. 비둘기호에서 내려 지하도를 지나 광장으로 나왔을 때 어찌나 넓었는지, 신라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살았다던 그 역사적인 도시의 입구를 두리번거리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때도 역 지붕이 기와였었나, 광장 오른편에 삼층탑이 선 공원이 있었드랬나 아련하지만 말이다. 두 줄로 서서 역 근처의 민박에서 하룻밤을 자고(사실은 까불고 노느라 거의 밤을 샜다.) 새벽에 석굴암으로 일출을 보러 가려고 또다시 역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갔다가 다시 경주역에서 안동으로 돌아갔었다.여행이라는 이름을 처음 내게 안겨준 곳이 경주역인 셈이다. 남편은 여기서 서울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고 했다. 나와 같은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 전국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이의 추억의 장소인 이곳이 28일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러다 건물이 없어지고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다 기억하던 우리가 사라지면 함께 잊히고 말지 모른다.경주역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읍성이 복원되었다기에 가보기로 했다. 경주읍성은 1012년 고려 현종이 토성을 짓고 우왕이 석축으로 개축하고 네 개 문을 정비하였다. 조선 시대에 경주부 읍성의 길이며 성안에 우물이 83개소이고, 해자(海子)는 아직 파지 않았다는 기록이 문종실록에 등장한다.일제강점기가 들어서자 전국에 읍성 철거 명령이 떨어졌고, 경주읍성도 철거 대상이 되었다.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1912년쯤 불국사와 석굴암을 구경하려고 경주를 방문하였을 때 시내에 들어오는데 큰 성벽의 높이 때문에 차량이 통과할 수 없다고 하자 그대로 동쪽 성벽 조금만 남기고 모두 철거하였다. 성벽이 철거된 후 나온 자재는 모두 경주선으로 투입되었다고 하니 경주읍성이 경주역을 만드는데 쓰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인연이 쌓인 두 유적지가 한 곳은 천 년을 버티어 온 경력으로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제 모습을 되찾아 가고, 겨우 백 년을 버틴 짧은 이력의 역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성에 오르니 경주시가 내려다보인다. 향일문에서 서쪽을 향하니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이 기둥 사이에 액자로 걸렸다. 성벽 아래에 복원하면서 발견된 석재들이 놓였다. 마치 역 광장에 수학여행 온 초등생 같다. 전교생이 겨우 세 반인거 보니 시골에서 온 듯하다. 절구 모양으로 물을 담고 있는 반, 건물의 기둥을 받힌 주춧돌 반, 돌로 만든 다리로 사람들을 건너게 한 친구들까지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모여서 옛날이야기를 조잘대는 듯하다. 복원한 새 건물과 철거 위기에도 살아남은 성벽을 이어 놓았다. 그 밑으로 차가 지나다닌다. 스러져 가던 역사가 현재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처럼 보였다. 복원해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면 박제된 건축물이지만 이렇게 오를 수 있고 차가 성을 드나들 수 있다면 살아 숨 쉬게 된다.계림초등학교의 담장 역할 정도만 담당하다가 2014년부터 발굴을 시작해 성벽의 일부가 완성됐다. 학교 옆으로 아직도 한창 발굴하는 중이다. 스러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더디고 오래 걸리는 일이다. 천년 고도에서 아직은 짧은 시간인 백 년을 살아낸 것들도 스러지기 전에 소중히 간직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 기록해 본다./김순희(수필가)

2021-12-19

지방의회와 계급제공무원

김휘태 전 안동시 풍천면장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등을 골자로 하는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다음달 13일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의 정책역량 강화 등을 위해 의회 직원의 인사권을 의회 의장에게 부여하는 것이 골자이다. 또 지방의원 정수의 2분의 1 범위 내에서 정책지원 전문인력(정책지원관)을 지방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하지만, 현직공무원들이 지방의회 근무를 기피하고 있어 시작부터 인사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조직규모가 적어서 승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앞으로 신규채용에서도 현직공무원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면,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따지고 보면 이런 지방의회 인사난맥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비단 지방의회뿐만 아니라 규모가 적은 조직은 공무원계급이 낮아서 승진기회가 적기 때문에 기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중앙부처의 과장은 3급이고, 시도의 과장은 4급이며, 시군구의 과장은 5급이다. 거기다가 5급 이상 간부 분포비율도 조직 규모에 비례하여 지방의회는 적게 되어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현재까지도 이러한 계급제공무원으로 수직행정을 해오다 보니까, 인사적체로 사기와 능률이 떨어지고 복잡한 전문행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선진국들은 진작 계급제공무원을 직위분류제공무원으로 전환하였다. 직위분류제는 계급 없이 직무에 따라 공무원의 직위와 보수를 주는 전문공무원제도이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속담처럼 21세기에는 직위분류제 전문공무원으로 임명을 해야 4차 산업혁명시대의 전문행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나, 아직도 전시동원체제나 새마을운동시대 같은 획일적이고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급제공무원을 임명하다보니, 업무능률도 떨어지지만 승진도 어려워 기피현상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지방의회 인사난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광역시도의회는 승진이 유리하여 현직공무원들의 지원이 잇따르고 있으나, 기초시군구의회는 고작 사무관자리 2~3개로 승진이 어려워 지원을 꺼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향후 신규공무원 채용에서도 난항이 예상되므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본문의 제목부터 지방의회의 전문성과 상반되는 계급제공무원을 드러낸 의도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제도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계급제는 순환경력에 의한 승진으로 대우를 받지만, 직위분류제는 장기간 전문경력에 의한 직무로 대우를 받으므로, 소규모의 지방의회는 직위분류제공무원이 적합하다.그렇다면, 지금 당장 지원이 부족한 지방의회 정원은 일단 기존 집행부의 순환근무 형식으로 파견배치하고, 향후에 지방의회 전문인력 충원 시에 원대복귀 시키는 절충안을 마련하던지, 아니면, 전부 신규채용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외부의 신규채용이라도 행정경력직으로 채용한다면, 그만큼 업무공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이번에 전국적인 지방의회 인사문제를 계기로, 대한민국공무원 인사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직위분류제로 전환은 지방자치제도 실시 전부터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이다. 1980년대에 5급에서 9급까지 세분하고 직렬도 대폭 늘려서 직위분류제로 전환하는 준비를 하였으나, 정권교체에 따라 일관성 없이 지금까지 흘러온 것이다. 무려 2천년 전에 중국의 진시황은 개방형 단일공무원제도로 광활한 대륙을 통일하였다. 중국대륙 어디서나, 공무원의 자유의사에 따라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여 누구나 고관대작이 될 수 있도록 기회균등인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산등선으로 마차가 달리는 대로를 개발하는 등 획기적인 국가발전을 이루어 강력한 진나라를 탄생시켰던 것이다.그로부터 2천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공무원 체계는 어떤가? 국가직·지방직·광역·기초 등 기관단체별로 각각 다른 조직으로 나누어져 있고, 계층도 9급·7급·5급(고시)·특채 등으로 사분오열 돼 있어서 국가를 통합적으로 관리ㆍ운영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의아스럽다. 동맥에서 모세혈관까지 하나로 맥박하는 신체를 비교해 봐도 걱정스럽다. 또한, 같은 전문직이라도 기관, 단체, 지역, 계층별로 신분이 다르므로 적재적소에 따른 수평이동이 어렵다. 그렇다보니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탁상에서 기획하고, 광역단체 공무원들은 전달이나 하고, 기초단체 공무원들은 집행만 하면 된다고 항변하는 수직행정을, 21C의 4차 산업혁명과 생명우주과학시대에도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다.어느 나라나 공무원에 관심이 깊은 국민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공무원이 국가를 관리·운영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호불호를 떠나서 국민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주마가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지방의회의 전문직공무원은 시민의 편에서 지방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지방의원의 역할을 보좌하고, 때로는 그 역할을 대신하는 지방자치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2021-12-19

갓생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갓생’이라는 신조어가 청년들 사이에 인기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영어 ‘갓(God)’과 ‘인생’을 합친 말이다. 소소하게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혼자지내며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낭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일상에서 좋은 생활습관을 실천하면서 작게나마 성취감을 느끼는 삶을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자는 것이 ‘갓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바탕이다.그 실천 조항들을 살펴보면 일어나자마자 이불과 커튼 정리하기, 하루 물 다섯 컵 마시기, 하루 10분 이상 걸으며 바람과 함께 나무 읽기, 밥 먹고 바로 눕지 않기, 혼자 먹어도 예쁜 접시에 담아 식사하기, 내 방 꾸미기, 월급 모아서 명품 플렉스 하기, 자신을 돌아보며 한두 줄이라도 일기쓰기, 팬티 바르게 개기 등, 자기 자신을 돌보며 자기에게 좋은 것을 선물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생활의 습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이 ‘갓생’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갓생러’들은 해이해지기 쉬운 일상을 서로 점검 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유로워지려면 반드시 욕망을 제어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는 항우처럼 압도적인 용기가 아니라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현실에 집중하면서 성실한 생활을 하는 정도의 용기만으로 가능하다. 용기는 혼자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내 삶이 응원받을 때 생기는 게 용기다.그러한 것을 잘 아는 ‘갓생러’들은 계획한 것을 마칠 때마다 종이에 스티커를 붙이는 습관추적기(해빗 트레커)양식을 통해 기록하고, 자기관리 앱을 이용해 일과를 기록하고, 친구들과 공유한다. ‘갓생러’들에게 목표를 달성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앱 ‘챌린저스’와 하루의 할 일을 설정하고 친구들과 공유한 다음 서로 응원을 남길 수 있는 ‘투두 메이커’ 등이 인기라고 한다.코로나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일상이 불안하고,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시대가 주는 불확실함에 주눅 들고, 지속가능한 것이라고는 없는 불한당 같은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는 더욱 더 공동체의 응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갓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서로 응원하며 용기를 낸 MZ세대는 얼마나 대단한가.이러한 ‘갓생러’들에게 세상을 바꾸기보다 순응하는 쪽을 택한 것 아니냐는 기성세대들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청년들이 살아가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상은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운 세대들이, 경제 성장을 위해 피땀을 흘린 세대들이 만든 세상 아닌가. 누가 떳떳할 수 있을까?오히려 그들의 ‘갓생 실천조항’에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지구와 공생의 삶을 살아가는 목록이 추가됐으면 좋겠다.예를 들면 내가 먹는 한 끼의 식사가 더 우아해 지려면 예쁜 접시도 필요하지만 내가 한 끼를 먹을 때 기후변화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 수 있는 ‘기후변화 식품계산기’를 사용하여 서로 ‘지구를 위한 식탁 차리기’를 점검해 주는 것도 실천 항목에 추가했으면 한다. 지금은 아직 필 때가 아닌데 피어있는 꽃을 발견하면 ‘불시개화 앱’을 만들어 자신이 사는 골목의 기후재앙의 지표들도 공유하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등 생태적인 삶의 구체적인 실천방식도 목록에 추가됐으면 좋겠다.나에게 좋은 것을 주는 만큼 지구에 사는 다른 생명들에게도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갓생러’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만하면 기성세대에서도 ‘갓생러’들이 생겨나도 좋지 않을까?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460억원이라는 돈을 가지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보았다. 동생을 고아원에서 빼내오는데, 엄마 가게를 차려주는데 그리 큰돈이 들지 않는다.고전 평론가 고미숙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의 피가 묻은 돈을 벌어왔다고 어느 부모, 어느 가족이 좋아할까? 마지막승자인 주인공의 표정이 행복해보이던가?”차라리 ‘갓생’이 훨씬 멋지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고, 밥 한 끼를 먹어도 지구와 함께 공생하는 실천을 하는 삶이 더 행복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따돌림사회연구모임 우정팀은 ‘자기우정’이라는 책에서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했다. 함부로 대한 자기 자신에게 사과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자기우정’을 발휘하는 것이 ‘갓생’의 시작이다.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물리적 거리두기의 한계를 넘어서 이런 일상을 응원하는 툴을 만들고 사람사이의 연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디지털 기술을 이용할 줄 아는 MZ세대의 ‘갓생’을 응원한다. 개개인이 고립되지 않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일궈가도록 서로 응원하며 팬데믹의 시대에도 개인과 공동체의 ‘명랑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MZ세대에게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생활자립, 경제적 자립, 정신적 자립, 성적 자립과 함께 생태적 자립을 자신의 일상생활로 만들자는 ‘갓생러’들을 응원한다. ‘갓생러’들이여, 언제나 너희가 옳다.

2021-12-19

이젠 대선후보 ‘본인검증’에 집중하자

심충택 논설위원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유력후보들의 가족 과거사를 파헤치는 지겨운 네거티브전으로 변질됐다. 지난 주말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동시에 가족의 불법행위와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에게 사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 후보는 장남의 불법도박 의혹사건에 대해, 윤 후보는 아내 김건희씨의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가족문제가 선거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된 느낌이다. 후보들이 가끔 내놓는 국정비전과 정책공약은 이 블랙홀에 금방 묻혀 버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대선후보 가족과 관련된 네거티브전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상대후보 가족이나 주변인물에 대한 네거티브와 정치공작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게 선거판 관행이다. 상대후보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최고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진영에 관계없이 언론사들도 가족검증이라는 미명하에 이 싸움에 적극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감이 없지 않다. 이번 대선이 역대 최악의 비호감으로 진행되는 것이 종편방송을 중심으로 한 언론탓이라는 목소리가 많다.선거판이 점점 더 저질로 흐르는 것에 대해 여야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다행이다. 여권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지난주 윤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의 사생활 관련 의혹제기에 대해 “어디 유흥업소 종업원 운운하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돈이 많은 집 딸이 그런데 나오는 경우를 봤느냐. 그런 걸 가지고 하면 오히려 역풍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야권에서도 이 후보 가족문제에 대한 과도한 공격을 자제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금태섭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실장은 이 후보 장남의 불법도박의혹과 관련해 “당사자가 관여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의 개인문제를 소재로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두 사람의 말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전에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위중증환자와 사망자 급증으로 온 국민이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국가경제가 위태위태하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여야 선대위가 상대후보 가족의 약점이나 파고 있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대선후보들은 국가 현안해결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대안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국회의원과 전직 장관까지 지낸 사람들이 번갈아 등장해 상대후보 가족의 개인사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천박한 수준을 국내외에 드러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각 정당 선대위는 미래세대를 위한 비전 제시와 정책공약이 선거승부를 좌우할 중도층 공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언론은 대선전이 ‘가족배틀’로 흐르는 것을 부추겨선 안 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시대 속에서는 국민을 대신해 언론이 각 후보들을 심층 검증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특정후보 가족에 대한 차별적이고 편파적인 보도에 집중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서는 안된다.

2021-12-19

백신 독점주의

19세기말 네덜란드 한 식물학자가 큰달맞이꽃에서 별종의 돌연변이를 발견하면서 이 분야의 연구는 지속 발전되어 왔다. 과학자들은 돌연변이는 생명의 연속성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 말한다. 지구상의 진화하는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변이를 시도한다는 뜻이다.사막에 사는 검은쥐가 흰쥐로 바뀌게 된 것도 큰 새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한 자연적 변이 현상이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은 번식을 유지하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도태하기 마련이다.미세한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백신이란 물질에 살아남기 위해 변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달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오스만 박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미크론 변이는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백신이 불평등하게 공유되는 한 더 많은 변이가 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코로나 백신이 주요 국가에게만 집중되는 백신 독점주의가 코로나 바이러스 종식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다. 그럼에도 지구촌은 여전히 코로나 백신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모순에 빠져 있다.주요 20개국이 89%의 백신을 독점하고 있으며 오미크론 등장으로 부스터샷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선진국의 백신 독점은 더 심화할 것 같다는 전망이다. 오미크론이 처음 발견된 보츠와나와 남아공의 백신 접종률은 20% 안팎이다. 나이지리아나 에티오피아 등은 아직 1%대에 머물고 있다.빈곤국의 백신 대란을 방치하고는 코로나 대유행을 잡을 수 없다는 전문가의 지적에는 지구촌 공존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옆집 불을 꺼야 우리 집 불도 막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 모두가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19

무 싹이 나왔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동치미 담그고 남은 자잘한 무 몇 개/ 밑동을 잘라내고 수반에 세웠더니/ 파릇한 싹이 돋아나 자꾸만 눈길을 끈다// 잘려진 무 동강이 기를 쓰고 밀어 올리는/ 꽃도 씨도 되지 못할 무모한 무의 싹이/ 겨우내 어둑한 방에 싱싱한 긴장을 채운다// 생명이란 무얼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시시각각 그 자체로 목적이고 충만이라고/ 연약한 무 싹이 번쩍, 나를 들어 올린다” -졸시 ‘무 싹이 나왔다’마트에서 사온 무나 당근도 며칠 두면 싹이 나온다. 생장조건이 맞지 않을 것 같은 비닐봉지 속에서 어느새 노랗게 싹을 내민 것을 버리기가 뭣해서 대강이를 잘라 수반에 세워 두고 한동안 함께 지내곤 한다. 서재 겸 침실인 좁고 어둑한 방에서 겨우내 무나 당근의 싹과 함께 호흡을 한다는 건 작지만 그런대로 생기로운 일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수천 권의 책보다 무 대강이 하나가 내민 새싹이 훨씬 더 생생한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무나 배추 같은 채소는 봄에 씨를 뿌리면 장다리가 나와 꽃이 피고 씨를 맺는다. 그것이 한해살이 식물의 정상적인 한 사이클이다. 늦가을에 수확을 하는 김장용 무나 배추는 그런 과정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것이다. 사람의 용도에 맞게 인위적으로 품종개량을 하고 심는 시기를 늦추어서 꽃피고 씨를 맺지 못하도록 한 것이니 식물로서는 여간 억울한 노릇이 아닐 터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무성하게 자란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까, 식물의 성장을 두고 꽃 피우고 씨를 맺기 위한 수단이나 과정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인 것이다.위의 시는 오래 전에 그런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쓴 것이다. 잘려진 무 동강이가 한사코 밀어 올리는 새싹을 무모하고 측은하게만 바라보던 나에게 어느 날 문득 한 소식이 온 거였다. 어떤 경우이든 생명이란 무얼 위한 수단이나 과정이 아니라 시시각각 그 자체로 완성이고 충만(充滿)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비단 무나 당근 같은 식물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 인간에게도 해당하는 진리요 섭리라는 것이다. 삶의 무목적성이야말로 오히려 허무와 절망을 무산시키고 활로를 여는 역설이었다. 우리가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어딘가에 있거나 스스로 상정한 바로 그 목적이라는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얼마 전 ‘대장동 사건’에 관련되어 수사를 받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성남도시개발 사업본부장을 거쳐 경기도 포천도시공사 사장 자리까지 올랐으니 제법 출세를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미루어볼 때 그 출세가도가 공명정대하지만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출세라는 목적을 위해서 나름 열심히 달려 왔겠지만 막상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그동안 성취해온 것들이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았을까 싶다.‘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는 것을 모토로 지금 대선판을 종횡무진 누비는 어느 후보도 그 결말이 아름답지는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짓밟은 것들이 결국 그를 삼켜버릴 늪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2021-12-16

반복되는 대입 수능 오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2022학년도 수능을 치른 입시생 중에 생명과학Ⅱ를 선택한 수험생들은 과목 성적이 공란인 채 수능 성적표를 받았었다. 출제 오류 논란이 벌어진 한 문제를 놓고 수험생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모두 정답 처리하라는 결정이 나왔다.이 상황으로 수능 최저학력 등급이 걸린 수시는 물론이고 정시모집 일정에도 혼란이 우려된다.입시 출제 논란의 효시는 1965년 중학 입시의 ‘무즙 파동’이다. 필자는 ‘무즙 파동’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당시 ‘엿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는 문제가 출제됐다. 발표한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는데 무즙도 맞는다고 학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듬해 무즙도 정답으로 됐고 추가 합격자들이 나왔다. 이 사건은 과열 경쟁의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는 한 실마리가 됐다. 3년 후 1968년 중학교 입시에서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이란 미술 문제의 복수 정답 인정 여부를 놓고 ‘창칼 파동’이 일어났고 1969년 결국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었다.입시경쟁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다시 대학으로 옮겨갔다.2014학년도 대입 수능의 세계지리 출제 오류는 1년 만에 판가름이 났다. 교과서에는 EU(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권역보다 크다고 되어 있다. 세계 금융 위기로 2010년 무렵부터 EU와 NAFTA 경제 규모가 역전됐다. 평가원은 교과서대로 정답을 발표했으나 소송이 진행되었다. 결국 전부 정답 처리하고 대학들도 입학 사정을 다시 해서 수백 명이 추가 합격하는 소동이 벌어졌다.이런 상황에서 금년도 또 대입 수능 오류가 발생했다.시험시간에 비행기의 이착륙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듯이 한국의 대학 입시에 관한 관심은 절대적이다. 도대체 입학 시험문제로 소송을 거는 이러한 현상은 왜 자주 일어나는가? 이 현상은 절대적으로 대학 서열화 입시의 과열화에 있다.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미국 입시가 다른 건 대학들이 클러스터(cluster), 집단화되어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미국에서는 대학에 갈 때 꼭 어느 특정 대학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버드, 스탠퍼드, MIT, 예일 등 소위 일류 사립대학은 하나의 거대한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어떤 대학을 가든 괜찮다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주립대학들도 버클리, 일리노이, 미시간 등 우수한 여러 개의 주립대학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우리도 대학을 6개까지 지원해서 수험생이 골라서 가는 제도는 매우 잘한 제도이다. 그리고 이공계는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 몇 개의 대학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어 이공계 학생 지원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대입 수능 오류’가 반복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물론 문제 출제를 오류 없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가진 실력으로 원하는 대학의 클러스터에 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은’ 풍토가 정립된다면 반복되는 ‘대입 수능 오류’는 막을 수 있다.

2021-12-16

대구 동성로

대구 동성로는 누가 뭐래도 대구 제1의 번화가다. 하루 20만명 이상 방문객이 찾는 이곳은 백화점, 쇼핑센터, 패션타운, 호텔, 술집, 카페 등 없는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한 업소들이 밀집해 있다.대구의 핫플레이스이면서 맛집들도 즐비하다. 한때 대구시민이 시내(다운타운)로 간다고 하면 모두가 동성로를 가리켰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대구백화점 앞은 대구시민의 대표적 약속 장소다.대구에는 1907년 대구읍성의 동쪽 성벽을 허물면서 동성로와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 등이 만들어졌고 그때 조성한 동성로 길(0.92km)이 동성로의 시발점이다. 세월이 흘러 상권이 줄곧 확대되고 동성로 영역도 더 커졌다.다른 도시들이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발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대구는 동성로를 중심으로 상권이 확장됐다. 내륙도시 특성 때문에 도시 중심에서 방사형 형태로 상권이 뻗어났다고 한다. 현재는 반월당역을 중심으로 대구역 인근과 공평동까지를 포함하는 거대 상권을 동성로라 한다.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이 곳 월 방문객은 600만 명이다. 대구 대표 여행길인 근대골목투어 길과 김광석 거리와 어울려지면서 대구 동성로 상권은 이제 전국 어디에도 손색없는 번화가로 성장했다.한국부동산원 자료에 의하면 최근 대구 동성로의 공실률이 22.5%에 이르렀다. 전국 평균 10.9%보다 크게 높다. 대구 대표 상권의 쇠퇴 징조다.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관광특구 지정까지 안될까봐 관계기관도 조바심이라는 소식이다.동성로 상권 위축에는 코로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동성로 상권 쇠퇴에 대한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 대구시민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적 소식이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