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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 선생님과 당신

김현욱시인‘유튜브’를 ‘유 선생님’이라고도 한다. 보통 선생님이 아니다. 가히 팔방미인, 박학다식, 모르는 게 없고, 안 해본 게 없는 선생님이다. 그동안 유 선생님께 배운 실력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영재발굴단에 출연한 6살 소녀는 5개 국어를 유 선생님께 사사(?)했다. 10대 드럼 천재도 유 선생님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개별레슨으로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나도 유 선생님께 주역과 바둑, 통기타, 연필 스케치, 집짓기, 기업 재무제표 보는 법, 스포츠마사지, 전원주택 분석 등의 강의를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듣는다. 물론,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클릭해야하는 작은 수고가 있지만, 강의의 수준도 괜찮고 커리큘럼도 체계적이다. 근자에는 김지윤 박사와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의 강의를 유 선생님의 도움으로 듣고 있다. 나는 김지윤 박사와는 일면식도 없고, 홍익대는 가본 적도 없지만, 두 사람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뛰어난 안목과 식견에 그저 감탄하며 들을 뿐이다. 자연스레 김지윤 박사와 유현준 교수의 책을 구입했고, 밑줄을 그으며 그들의 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무엇보다 유 선생님께 고마운 것은 명상에 대한 폭넓은 가르침이다. 개인적인 병고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시절에, 명상을 만났다. 명상과 관련된 수많은 책을 찾아 읽었지만, 실천과 수행의 영역에서 언제나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유 선생님께서 거창 붓다선원 진경 스님과 춘천 제따와나선원 일묵 스님의 영상을 보여주셨고, 전현수 박사의 강의를 소개해주셨다. 붓다선원은 방학을 이용해 다녀오기도 했고, 일묵 스님과 전현수 박사의 책은 밑줄을 긋고 또 그었다. 살면서 명상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모든 명상은 여기에 속한다. 계(戒), 정(定), 혜(慧).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아직은 까마득하고 아득하고 범접할 수 없는 진리의 법이지만,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통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유현준 교수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의 특히,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다. 아픈 마음들이 너무 많다. 몸은 성인인데 마음은 아직 유년기에 머물러 불안과 회피를 되풀이하는 어른들도 많다. 그들은 자신을 괴롭히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간다.세계적인 위빠사나 명상 지도자 고엔카는 “진리를 직접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을 바라보는 것,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외부로 향한 시선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을 보라는 뜻이다.내 나이 마흔 중반. 서원(誓願)을 세운다. 상담 공부와 명상 수행을 통해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힘닿는 데까지 가보련다. 여러 가지로 유 선생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유 선생님은 다름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생의 선배, 동료들이다. 바로 당신이 나의 소중한 유 선생님이다. 정말 고맙다.

2020-07-19

맑음으로 ‘맑은 미래’ 여는 영덕

이희진 영덕군수코로나19는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줬다. 하지만 국난 속에서 우리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도 알 게 해줬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 사돈에 팔촌, 친구의 친구까지 발품을 팔아 마스크를 확보해 각 가정에 배부하고, 신속한 재난 지원금 지급을 위해 밤잠을 설친 영덕군 공직자들. 또, 그 와중에 국회의원 선거 준비까지. 코로나19 속에서 영덕군 공직자들은 빛을 발했고, 현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생활치료센터 제공에 동의한 주민, 자발적 방역에 나선 사회단체, 소중한 성금을 기부한 군민, 그리고 착한 임대인까지.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채운 우리 군민들도 있었다. 코로나19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공직자와 군민들이 한 마음으로 뭉친다면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 확신한다.이제 우리 영덕군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자원인 맑은 공기와 바다, 오랜 시간 품어온 역사와 문화 등 값진 자원을 활용해 가장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로컬(global+local) 관광산업을 선도하고, 이를 통해 미래 100년의 먹거리를 만들 것이다.그 중심엔 ‘맑음’이 있다. 청정이라는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맑은 공기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영덕의 맑고 청량함을 더욱 부각시킬 생각이다. 맑은 바람을 맞으며 자란 복숭아와 송이, 맑은 바다를 머금은 수산물, 맑은 공기를 마시며 뛰어놀 수 있는 해변과 체험시설 등 맑음을 다양한 분야로 확신시켜 깨끗한 영덕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혀나갈 것이다.최우선 과제 ‘맑은 생활 프로젝트’는 주민이 행복하고, 주민중심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영덕읍에는 놀이터, 도시공원, 로컬푸드센터, 키즈카페 등이 들어서는 ‘다함께 행복청사’가,영해면에는 소규모체육관, 공공도서관을 갖춘 ‘예주행복드림센터’, 강구면은 키즈카페, 북카페, 작은 도서관이 있는 ‘강구건강활력센터’가 생긴다. 또, 영덕의 맑은 미래를 여는 인재를 양성하는 ‘미래인재양성도서관’도 생겨 주민 중심의 맑은 정주여건을 만든다. 해당사업은 국비 및 도비 확보, 부지 등이 순조롭게 진행돼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을 위한 ‘맑은 미래 만들기’도 진행된다. 통합공공도서관, 청소년수련관을 통해 지역복합문화의 장을 마련하고,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여성·아이 친화도시도 조성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맑은 도시’를 목표로 어린이놀이터 확충, 영유아 실내놀이터 등을 통해 영덕만의 특색 있는 아동·보육 정책도 추진한다.미래 100년 먹거리는 ‘맑은 산업’이 이끌어 나간다. 지난 6월 대한민국 대표 웰니스 관광지로 인문힐링센터 ‘여명’이 선정됐다. ‘여명’이 중심이 돼 영덕군에‘명상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맑은 공기가 있는 우리 영덕이 대한민국 대표 명상 도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또, 코로나로 달라진 가족형 휴(休) 문화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여름 한 시즌 운영하는 현재의 해수욕장을 4계절 관광객이 찾는 맞춤형 해변으로 재탄생 할 계획이다.‘뉴노멀’과 ‘비대면 시대’에도 적극 대응한다. 유통단지와 산지유통센터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로컬푸드 직매장, 프리마켓, 드라이브 스루 판매, 라이브 커머스 1인 미디어를 활용한 농수산물 온라인 판매도 진행한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군민의 안전과 행복일 것이다. 우리 영덕군은 취약계층 생계지원 및 일자리 사업의 꾸준한 추진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회복지 관련 기금들을 복지기금으로 통합해 복지 상생모델로 삼을 것이다.또, 우수기 전 태풍 피해 복구와 방지 대책을 마련해 군민 안전을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다.맑은 도시 이미지에 부합하는 청렴하고 깨끗한 조직 문화, 군민 중심의 적극행정, 군민이 체감할 수 있는 열린 행정으로 불투명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고 맑은 미래를 여는 영덕군이 되겠다.

2020-07-19

담장

세상에 나올 때부터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우리는 처음부터 담장이 익숙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햇볕이 따뜻하게 데워 놓은 담장에 기대 놀았고, 친구와 담 밑에서 숨바꼭질하며 키를 늘였고, 부지깽이를 든 엄마에게 쫓겨 줄달음치다가 잠시 흙담 모퉁이에서 가쁜 숨을 고르기도 했다. 담장은 골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우리에게 안겨주었다.청송 덕천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햇살에 바랜 흙담이 맨 앞에 서서 구경꾼들을 안내한다. 홍살을 단 솟을대문을 슬며시 밀자 ‘꿔이익’ 닭 울음 닮은 소리를 낸다. 근방에 송소고택만큼 품 넓은 집이 없다고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다. 아흔아홉 칸 기와집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렸다는 심호택이 1880년경 호박골에서 본래 살던 덕천리로 이전하면서 지어졌다.너른 마당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헛담이 우릴 반겼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외출이 잣지 않던 여인들이 뭇 남정네가 앉아 있는 앞을 지나 안채로 가는 게 상당히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아녀자를 배려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내외벽인데, 바깥주인이 머무는 사랑채에서는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짝 가려 보이지 않게 했다. 병풍을 두르듯, 가리개를 세운 듯 ‘ㄴ’ 자 모양으로 돌아앉은 모습이 수줍은 새색시 같다.이집에는 담이 유독 많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높은 담이 행랑채를 끼고 집 전체를 휘감았고, 남자는 사랑채에 여인네들은 안채에 따로 살게 나누는 흙담이 있고 노소 또한 구분해 놓았다. 남자아이는 일곱 살이면 어미가 사는 안채에서 나와 아버지가 기거하는 작은사랑채와 할아버지 슬하인 큰사랑채에서 글을 배워야 했다. 여자아이는 별채를 따로 두고 신부수업을 시켰다. 별채 담장에 달린 문이 특이하다. 보통의 대문이 집안으로 열리는데 비해 이 대문은 밖에서 잠그고 열 수 있게 설계했다. 시집가기 전에 그 담장 밖으로 함부로 나오지 말라는 뜻이었다.조선의 여성들이 풍성한 치마아래 고쟁이에 속속곳까지 여러 겹의 속옷을 받쳐 입었듯, 이 고택의 솟을대문에서 안방까지 가기 위해서는 여러 문을 거쳐야 한다. 그런 여인에 대한 배려인가, 만석꾼의 여유인가. 사랑채와 안채를 가르는 담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사랑채에서 보면 여섯 개의 구멍이고 안채에서 보면 세 개의 구멍이다. 셋이 여섯을 이기는 기적이 이 담장에서 일어난다. 여섯 개의 구멍에도 불구하고 사랑채에서는 안채가 보이지 않지만 안채의 세 개의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망원경처럼 사랑채 마당을 살펴볼 수 있다. 옛날 이곳에 살았던 안주인은 세 개의 구멍으로 비껴서 여섯 개의 구멍 앞을 거니는 사돈댁에 다니러 온 아비의 뒤태를 보고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지척에 친정아비를 두고도 부르지 못하니 고된 시집살이에 대해 넋두리를 담장에게 털어 놓으며 수많은 계절을 보냈을 것이다.담을 생각해낸 이들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서민들 속의 담은 그들과 달랐다. 분명 ‘내’와 ‘네’는 겉모습이 다르지만 써 놓고 읽으면 같은 소리가 난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우리는 내 집 네 집 구분 없이 드나들었다. 울타리 때문에 친구 집에 못 가는 일은 없었다.김순희수필가공간을 나눈 담장이 많아 자칫 답답하게만 느껴질까 봐 송소고택의 주인장은 지혜를 발휘해 흙담에 꽃을 그려 숨통을 터 주었다. 꽃담은 보면 볼수록 소박하고 은근한 맛이 배어난다. 해의 양기와 달의 음기를 불어넣어 꽃을 피우고, 새를 불러들이며, 풍성하게 열려있는 과실을 표현하여 담이 곧 정원이 되었다. 깨진 기와와 돌을 꾹꾹 눌러 박은 소탈한 치장은 조선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설치미술이다. 담장이 긴 이야기책이라면 꽃담은 신윤복과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첩을 닮았다.고택 마당을 돌아 나오니 어느새 배추흰나비 한마리가 담장에 찾아왔다. 기와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날개로 여름을 접었다 폈다하기를 쉼 없이 반복한다. 오래 간직한 고택 담장에 내가 다녀간 이야기를 한켠에 그려 넣는 듯하다.

2020-07-19

장관 이름을 꼭 넣어야 했을까?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몇 년전 모 대학교의 국제화 자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문기간이 끝나 감사패를 받게 되었는데 감사패에는 일반적으로 수여자인 총장의 이름을 쓰게 되어 있다. 그런데 수여자 이름에는 총장 이름 대신 ‘oo대 교수단’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대학총장은 총장 전용 주차장도 없애고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공을 가운데 세우는 겸허하면서도 구성원에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최근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 명패석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포함된 사실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경북 김천에 위치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 ‘경부고속도로 준공 50주년 기념비’가 지난달 30일 세워졌다. 1970년 준공된 경부고속도로의 5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그런데 그 기념비에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명의로“본 고속도로는 5000년 우리 역사에 유례없는 대토목공사이며,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 되고 국가발전과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국민정신 고취에 크게 기여했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엔 발주처였던 건설부 관계자와 시공 업체 직원 등 531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그리고 헌정인으로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라고 쓰여져 있다.경부고속도로는 독일 아우토반(고속도로)을 보고 온 박정희 전 대통령 구상에서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 뒤인 1968년 착공, 1970년 개통을 이뤘다. 야당인 통합미래당과 보수권 국민들은 “왜 박 대통령의 이름이 없는가”라고 항의하고 기념비를 다시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또 준공기념비에 대통령 이름이 들어간 적이 없다고 하며, 김현미 국토부 장관 이름이 들어간 것은 국토부를 대표하는 장관이름을 쓴 것이라고 강변한다. 건설공사 참여자의 명단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기념비의 헌정인은 자연인 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 장관은 고속도로 건설에 아무런 공헌을 한 것이 없다. 헌정인은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현 정부의 원천이 되는 당시 야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극렬하게 반대하며 ‘차도 없는 나라에 고속도로가 웬말이냐’, ‘고속도로 만들어봤자 돈 많은 자들이 놀러 다니기만 좋게 할 거’라고 비판 하면서 고속도로에 눕기도 했었다.어제 누군가가 기념비에 새겨진 ‘국토교통부 장관’ 글자를 훼손하여 다시 복구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한다. 왜 그렇게 이름을 알리지 못해 안달일까? 김 장관에게 앞서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모 대학의 총장으로부터 배우라고 주문하고 싶다. 필자도 최근 이임하는 교수에게 재임기념패를 주면서 학장이름을 안쓰고 ‘교수일동’이라고 써넣었다. 이임하는 교수나 축하해주는 교수들이나 모두 흐뭇한 표정이었다. 국토부도 그 기념비에 ‘대한민국 국민 일동’이라고 썼다면 오히려 장관의 겸손함이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다.

2020-07-16

역사의 한 페이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며칠 전 별세했다. 그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불굴의 투혼으로 지켜낸 구국의 영웅으로 길이 청사에 남을 군인이었다. 일제치하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한 전력이 있어 좌파 진영에서는 친일파로 매도를 하지만, 그것은 그의 공적에 비하면 옥의 티에 불과한 것이었다. 김일성이 얼마간 항일운동의 전력이 있다지만 북한의 전 주민을 꼭두각시 노예로 전락시키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것과는 참으로 대비가 되는 일이다. 굳이 공과를 따지자면 백선엽 장군은 과 하나에 공이 아홉이요, 김일성은 공 하나에 과가 천이고 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백 장군의 타계 하루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살을 했다. 지난 몇 년간 비서로 있으면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경찰에 고소장을 낸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오거돈 부산시장이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할까. 아마도 오랜 세월 인권변호사로, 특히 여성인권의 대변자를 자처해온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상반된 행각이 탄로나자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심정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성추행범들과는 달리 박 시장의 경우 선도적 페미니스트로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입장이었기에 죽음 말고는 도피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두 죽음에 대한 이 정권의 태도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에 기록될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부와 여당이 즉각적으로 애도를 표하고 서울시장(葬)으로 시청 앞에 빈소를 차리는 반면, 백 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뭉그적거리다가 비난이 일자 마지못해 국군장도 아닌 육군장으로 하고 뒤늦게 조문을 하는 행태를 보였다. 광화문의 분향소도 일부 뜻있는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차린 것이라 한다.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국군의 사투가 아니었으면 한반도는 김일성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고 지금쯤 우리는 김정은을 절대존엄으로 떠받들며 살고 있을 것이다.잘못을 저지르고 궁지에 몰려 선택한 자살은 비겁한 도피일 뿐이다. 박 시장이 남긴 짤막한 유서에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는 것으로 보아 양심의 가책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오로지 그동안 쌓아온 나름의 업적과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걸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반성하고 참회하는 마음이 있다면 죽음으로 도피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위선과 가식과 죄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양심이고 도리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죽음을 미화하고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몰아가려는 자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튼 두 사람의 죽음을 두고 극명하게 엇갈린 민심이 양쪽 분향소 앞에 줄지어 선 모습은, 이 정부가 조장하는 극단적인 대립 양상의 단면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행여 망국의 조짐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2020-07-16

비서(秘書)

조선시대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곳이다. 도승지는 승정원의 우두머리로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당상관 벼슬이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사람을 보좌하는 자리는 업무의 특수성으로 보아 반드시 필요했던 모양이다. 15세기 영국에서도 왕의 문서를 취급하는 사람을 비서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서의 영어 표기인 Scretary가 비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산업화와 더불어 사회구조가 복잡화되면서 전문비서의 역할이 더 커졌다. 우리나라도 경제가 발전하면서 대기업의 경우 그룹 회장을 모시는 비서실의 비중이 크게 부상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비서직의 중요성을 고려, 비서학과가 등장한다. 이화여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비서학과를 개설했으며 지금은 전국 대학에 20여 개 학과가 개설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위층의 비밀업무를 취급하는 비서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모시는 분과 생활패턴을 같이해야 한다. 상사의 요구에 순종해야 하며 상사의 요구를 기록하고 미리 예측하는 센스도 있어야 한다. 업무 파악력도 좋으며 영어나 타이핑도 잘해야 비서직에 발탁될 수 있다.그러나 상사보다 항상 먼저 출근해야 하고 퇴근도 늦다. 상사의 일에 보조를 맞추다보니 사생활이 많이 제약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비서직은 외견 화려해 보이나 개인적인 고통도 적지 않은 자리다.비서직이 연이은 고위직의 성추행 사건에 휘둘려 수난을 맞고 있다. 비록 짧지만 사회과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은 비서학이 전문직 영역에서 대접을 못 받는 꼴이다. 비서직이 기관장의 사적업무나 돕는 사람 정도로 보는 그릇된 사회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7-16

숙명론적 자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사건이 여의도 정치판은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사회운동가이자 여권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그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자살론’을 저술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 및 유형을 4가지로 나눴다. 사회적 연대가 너무 약해졌을 때 일어나는 이기주의적 자살은 과도한 개인주의가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적 연대가 너무 강화됐을 때 나타나는 자살, 예를 들어 자폭 테러, 순장, 카미카제 등은 이타적 자살이다. 아노미적 자살은 무규제(normlessness) 상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살로 실직한 가장의 자살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적으로 규제가 너무 약할 경우의 자살이다. 사회적 규제가 너무 강할 경우의 자살은 숙명론적 자살로, 꿈도 희망도 없는 노예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완전히 막혀 극단적인 빈곤을 평생 대물림으로 강요당하는 극단적인 양극화에 속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다. 묘사하자면 “무슨 노력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이게 숙명이야”라는 절망감이 자살에 이르게 한다.뒤르켐의 분류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숙명론적 자살에 해당할 듯하다. 그가 자살한 이유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추행 피소가 엄청난 충격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가 성추행으로 피소된 지 하루만에 자살한 채 발견된 것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전면 부정하는 모순에 맞닥뜨리면서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으리란 추측이다.무엇보다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이 성추문으로 하차하게 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비상이 걸렸다. 장례식장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질문하는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라며 욕설까지 퍼부었던 이해찬 대표도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다.야당은 이때가 기회라는 듯 특검과 국정조사를 거론하며 여당에 대해 맹공을 펼치고 있다.무사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할복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자신의 결백함이나 명예를 위해 배를 칼로 그어 자살하는 행위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거나 전쟁에서 진 장수가 살아남았을 때에 모든 일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루어졌던 이 행위는 고결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근대 일본에선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문학 작가마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할복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할복 자살 덕분에 일본 내에서 자살이란 행동은 꽤나 숭고한 행위로 여겨졌으며, 죄를 지은 인간이라 해도 자살을 했을 경우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한국은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수 천 년 전부터 죽음에 대한 금기가 심하다. 유교의 정신 역시 죽음을 금기시한다.박 전 시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로 목숨을 끊었지만 어쨌든 피해 진상규명 절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민여론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쪽이 많다. 그래야 제도적 무관심 속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구제가 가능해질 것 아닌가.

2020-07-16

조선작 단편소설 ‘영자의 전성시대’

김유정 문학촌에 터줏대감이신 전상국 작가를 만나러 간 적 있다. 그때 전상국 선생의 작품을 ‘문학의 오늘’에 싣고자 할 때였다. 참 섬세해 보이시는 전상국 선생께서 당신의 작가 수업 과정을 말씀하시는 중에 조선작이라는 작가가 당신 학창시절인가 사는 데서 만났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비로소 조선작을 문학사의 작가로서 인식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이 작가의 대표작은 아직은 설익은 내 생각일 뿐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영자의 전성시대’일 것이라 생각한다. 1973년에 ‘세대’ 잡지에 실린 것을 1975년에 김호선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서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던 모양이다. 1975년이라면 내가 열 살쯤 되었을 때인데, 선정적이라 여겨지던 영화 포스터를 눈여겨 보았던 기억이 있다.다시 읽어 보는 ‘영자의 전성시대’는 영화로 된 것과는 스토리가 달라도 아주 다르다. 영화도 나쁘지는 않지만 굳이 손을 들어 보자면 확실히 소설 쪽이 작품성이 좋다. 이는 영화감독을 폄하함이 아니라 조선작 소설의 우수성을 말함이다.여기에는 ‘창수’라는 화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월남전 참전용사로 현 직업은 목욕탕 ‘때밀이’,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세신사’라 한다. 창수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지 돈이 생기면 젊은 욕망을 사창가를 찾아가 몸 파는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때우곤’ 한다. 이 창수의 이야기를 작가 자신의 경험이나 세계인식으로 곧장 환원하는 것은 작품 연구의 기본에서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해 두고, 이렇게 해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게, 한쪽 팔을 잃어버리고 창녀로 ‘전락한’ 바로 영자다. 나는 지금 ‘전락’이라는 말에도 작은 따옴표를 쳐 놓았는데 함부로 ‘전락’이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골에서 상경한 몸으로 식모가 되었다가 버스 차장이 되고 그때 버스에서 떨어져 삼륜차에 치이는 바람에 한쪽 팔을 잃어버리고 말았다.이 영자를 위해 창수가 나무 팔을 만들어 주는 장면, 그리고 청량리 588의 화재와 영자의 죽음 같은 극적인 스토리는 두고두고 이 작품을 시대의 문제작으로 만든다. 월남전 참전용사와 시골 상경 여성의 만남과 사랑, 그 비극적 결말은 이 작품이 얼마나 정교한 상징적 의도 아래 쓰여졌는지 말해준다.조선작은 1940년 대전 출생으로 대전사범학교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밖에 이 작가에 대해서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아는 것이 없다. 앞으로 내가 성장한 대전에서 나온 이 작가에 관해 한 번 이것저것 알아볼 생각이 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7-16

대통령 만수무강(大統領 萬壽無疆)

탄탄 스님 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이 시대의 정치체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라는 상징적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직이 안정이 되어야 한다.물론 투명하고 무엇보다도 정의롭고 공평해야 그러한 신뢰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우리네 삶의 안정에 연관되는 대통령의 의사 결정은 우리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뒤틀어 놓을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고용이며 노동조건과 소득, 재산, 부동산, 건강, 교육, 사회보장, 세금과 공공요금, 삶의 인프라 등 그 어떤 막강한 힘 아래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고 바뀔 수 있는가.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 대통령이 장악한 정부와 관료 체제이고, 그러한 체제를 움직이는 최고의 사령탑에 앉아 있는 존재가 대통령이며 대통령직이 흔들리면 온 나라의 불안감은 증폭된다는 사실이다.정치는 일상적 잡사에까지 힘이 미치면서 동시에 일상의 잡동사니를 초월하는 정연하고 투명한 공간을 구성한다.잡다한 일상사에서 삶의 위엄을 그 나름으로 직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공간이다. 그러나 근자에 정치 공간에서의 위엄의 소멸은 세계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수준 낮은 발언이나 인종차별, 이민자의 박해 등 공공의 공간에서 결코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야 할 말들이지만 지지기반 확대를 위한 정치쇼에 우매한 유권들은 열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시기에 트럼프의 권력누수는 미국 사회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작금에 시진핑 주석의 마음도 상당히 급해졌다. 아예 ‘지쟁조석(只爭朝夕)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지쟁조석은 마오쩌둥 주석의 말인데, 1963년 1월에 지은 시 ‘만강홍·궈모뤄 동지와(滿江紅·和郭沫若同志)’에서다. 당시에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인도 지지와 중국 반대를 외칠 때였다. 당시 대약진운동 열기의 그늘 속에서 중국인민 약 2천만 명 이상이 굶어죽던 시기에 마오는 남의 나라에서 1만년 단위로 역사가 전개될지라도 중국에서는 한 시간, 한나절 단위로 급박하게 역사가 전개되어야 한다며 조급해 했다. 지난 가을 현대판 로마제국인 미국 추월을 선언한 시 주석의 조급함이 문화대혁명 직전 마오를 닮고 있다. 중국의 원로 역사학자 장카이위안은 “조급 의식이 무한하게 팽창하거나 남용되면 민족을 풍광(瘋狂)케 하여 민족의 재난 또는 세계의 재난이 된다”고 경고한 바 있음에도 말이다.우리 대통령도 조급해 하지 말고 차분히 민생을 챙기고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길 바랄 뿐이다. 홀로 독주만 하려 말고 야당과 동반하여 레임덕 없이 남은 기간을 잘 마무리하고 무탈하길 바라며 골깊은 산사에서 통령각하 만수무강을 애타게 불전에 기원한다.

2020-07-15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7월 10일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경북대와 전남대 인문대학이 함께하는 제2회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열린 것이다. 작년 10월 18일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주제로 처음 열린 학술대회에 이어 ‘기억과 기록: 대구와 광주’를 주제로 두 번째 학술대회가 열렸다.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의 거점 국립대학인 전남대와 경북대가 동서화합과 미래지향의 가치를 내걸고 개최한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이번 대회에서는 대구와 광주의 근현대사에 나타난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다뤘다. 그런 까닭에 대구에서 발원한 국채보상운동, 2·28 운동과 대구 3·1운동, 광주의 5·18 민중항쟁과 제주 4·3항쟁 같은 의미심장하고도 뼈아픈 한국 현대사가 소환됐다.코로나19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70여 청중이 모여 열기를 보여주었다.작년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에게 지역감정을 묻다’는 주제로 발제했던 나는 올해는 대담 진행을 맡았다.대구의 이창동 감독과 광주의 황지우 시인을 대담자로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 주지하다시피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해 1997년 ‘초록 물고기’로 영화에 입문한다. 황지우 시인은 1983년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시작한다.작년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30년 넘도록 친교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올해 두 분을 모시고 문학과 영화 그리고 광주와 대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는 터였다. 객석을 웃음바다로 인도한 것은 198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두 사람이 경험한 어긋나는 기억이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던 황지우 시인의 기대와 달리 이창동 감독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던 모양이다.문인들이 들락거리던 술집에서 황지우는 홧김에 술집의 육중한 아크릴 입간판을 이창동 부근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누구보다 자신과 뜻을 같이할 것이라 믿었던 친구를 향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두 사람은 술집의 위치와 입간판의 색깔과 소재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기억을 소지하고 있었다.87년 대선판 ‘라쇼몽’의 재연이 33년 만에 성황리에 이뤄진 셈이다.두 분의 대담에서 청중은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이창동의 영화 ‘시’에서 낭송되었던 장면을 떠올리며 따뜻하게 추억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나, 우리나라 감독 가운데 이창동 감독은 영화의 서사가 가장 탄탄하다는 언명을 황지우 시인이 여러 번 강조했다. 두 분의 우정과 예술혼의 교류가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이철수 판화가와 도종환 시인이 친구인 것처럼 황지우 시인과 이창동 감독이 친구인 것은 한국문학과 예술에 유용한 자양분이다. 지역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도정에 있는 우리의 문학과 예술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하겠다.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계속 이어지기 바란다.

2020-07-15

코로나19와 자유학년제 금단 현상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자연의 자리바꿈이 시작되었다. 개망초와 금계국이 일가를 이루던 6월이 갔다. 그리고 자귀 꽃을 필두로 자연의 공생이 시작되는 7월이 왔다. 자귀 꽃의 화려함에 들꽃 무리에서 달맞이꽃이 소소하게 답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안다, 그 소소함이 단순한 소소함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먼저 핀 꽃들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그러기에 다른 들꽃들도 기쁘게 달맞이한테 자리를 내어준다. 그 마음을 아는 달맞이는 달이 세상을 품듯 노랗게 세상과 사람을 품는다.“(….) 공벌레도 떠난/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하얀 마음으로 뭉게뭉게/피어오른 개망초가/더 넓고 더 큰 꿈을 꾸라며/달맞이를 노랗게 노랗게 밀어 올린다//달을 맞이하는 이들의 마음가짐보다/달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먼저 생각하라는/개망초의 마음을 뿌리로 읽은 달맞이는/공벌레가 끌고 간 길 끝에서/또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 (졸시 ‘달맞이꽃 마음’)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좀처럼 자리바꿈을 하지 못하고 있다.의료진과 국민의 노력으로 코로나 19 상황이 잡히는가 했는데, 최근 들어 소규모 집단 감염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나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사회를 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글쎄다.코로나19 사회의 핵심어를 두 가지만 들라고 하면 필자는 “거리 두기”와 “온라인”을 든다.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 속 거리 두기는 서로의 안전을 위해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되었다. 물론 거리 두기에 민감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 사람은 자신을 위해 이 규칙은 꼭 지킨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말을 들었다. “사람이 죄다.”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간의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위협 대상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의 거리 두기 모습은 “온라인 수업”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일부 유형의 온라인 수업은 학교 수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학교 이야기를 할 때 핵심으로 나오는 것이 온라인 수업이라니 참 슬프다.“요즘은 매일 매시간이 수행평가야! 이게 무슨 자유학년제야! 차라리 시험이나 보면 쓸데없는 과제 같은 것은 안 해도 되지!”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야. 좋은 마음 가지고 해.”이웃집에 사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과 어머니의 대화다. 휴일 저녁 집으로 가는 시간대와 길이 겹쳐서 우연히 듣게 된 대화다. 아이의 냉소적 어조에 필자는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자유학년제란 학생들이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진로 탐색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도입된 (….) 선생님은 학생의 교과 성취도보다 개별적인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 자유학년제, 과연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이 의미도 찾지 못하는 수행평가가 교사의 일방적인 지시로 자행되고 있는 학교 모습에서 자유학년제 금단 현상에 고통받을 우리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벌써 들린다.학교는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뻔뻔한 죄를 지을까?

2020-07-15

1년 후에 받은 엽서

윤영대수필가온종일 내리던 장맛비가 살짝 그치고 창 넘어 들어오는 바람이 왠지 시원해서 오랜만에 마을 뒷산을 산책하고 싶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려다가 우편함을 보니 엽서 같은 것이 있기에 뭘까? 하고 꺼내보니 색다른 엽서다. POST CARD 글자 옆에 전자우표가 붙어있고 보내는 사람은 ‘外洞휴게소에서 河78A4’(하영-나의 아호)이고 받는 사람도 우리집 주소에 내 이름으로 되어있다. 내 글씨, 내가 보낸 엽서다. 어! 내가 언제 경주 외동휴게소를 갔었지? 이상하여 뒷면을 보니 휴게소 사진 옆에 간단한 글이 있다. ‘비 내리는 남해여행, 고속도로 위 휴게소가 예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동행하는 친구들도 좋고, 모두 즐겁다. 2019년 7월18일’어! 작년이네. 그런데 왜 1년 후 이제야 오지? 아, 생각난다. 작년 이맘때 친구들과 남해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포항-울산 고속도로를 달려 남해 독일마을을 돌아보려는 여행이었지. 휴게소에 잠깐 들러 커피 한잔하며 둘러보니 마침 입구 쪽에 ‘1년 후에 받아보는 편지함’이 있기에 엽서 한 장을 얻어 간단히 적어 넣은 기억이 났다. 그리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뜻밖의 엽서를 받고 보니 그날이 새롭다. 소인(消印)을 살펴보니 발송일이 2020.07.08.이고 470원의 요금도 찍혀있었다. 나는 그냥 지나는 마음으로 써넣었는데 그것을 모아두었다가 잊지 않고 돈 들여 1년 후에 보내 주다니 외동휴게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그러고 보니 이러한 1년 후 받은 엽서의 기억은 또 있다. 몇 해 전 거실 탁자 위에 제주도 풍경의 그림엽서가 한 장 있기에 익숙한 풍경이라 그냥 선전물이겠거니 하고 제쳐 두었는데 다음날 다시 정리하다가 언뜻 보니 나의 글씨였다. 그 해는 제주여행이 없었는데 의아했다. 세계자연 경관 7대 명소를 돌며 서귀포의 물결을 본다는 찬사에, 보내는 사람은 ‘제주올레길7번’이고 받는 사람은 ‘아내에게’로 적혀있었다. 그 당시도 1년 전에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서 한 바퀴 돌았었는데, 그때 보낸 엽서가 집안 구석 어디 돌아다니다가 이제 나타났구나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엽서를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쓴 날짜는 11월13일인데 소인은 11월6일로 되어있다. 우체국 소인은 틀림없을 텐데 내가 1주일을 잘못 알았나? 다시 뒷면을 보았더니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인쇄되어있었다. ‘1년 후에 보내는 편지-서귀포 대륜동 주민자치위원회’.그제야 또렷이 생각났었다. 서귀포 7번 올레길을 걸어 외돌개를 지나 내려오는 개울 옆에서 만난 빨간 우체통과 안내판, 그곳에 비치된 엽서에 사연을 써넣으면 1년 후에 보내 준다는 설명을 읽고서 설마 하면서 써넣었던 기억이 새로웠었던 적이 있다.1년 후 받아보는 느린 엽서가 아니어도 여행지에서 나에게 보낸 또 다른 엽서들도 내 기억 속의 여정을 되새기게 한다. 울산 간절곶에서 일출을 보고 해변 바위 위의 커다란 빨간 우체통에 넣었던 행복엽서도,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가 지친 몸을 쉬며 장터목 산장에서 부친 단풍엽서도 받아보았고, ‘토지’의 숨결을 찾아 원주문학기행을 갔을 때 박경리문학공원 북카페에서 적어 보낸 감사엽서도 있다.이러한 엽신(葉信)을 보내는 취미는 해외여행 때도 만끽하고 있다. 관광하는 도시마다 거리의 기념품점이나 우체국이 보이면 그림엽서를 사서 그날의 여행에서 본 것 느낀 것들을 간단히 적어 부치고, 어떨 땐 호텔카운터에 부탁하거나 가이드에게 맡겨두면 고맙게도 잘 보내 주었다. 내가 즐기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이러한 나의 취미를 잘 알고 있는 딸과 아들도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가끔 삽화까지 그려서 그곳의 관광엽서를 보내온다. 그러면 나의 마음도 따라서 그 여정을 훑어가곤 한다.‘1년 후에 받아보는 편지’를 보내 주는 느린우체통은 누가 어떻게 매일매일 써넣어지는 엽서를 모아두었다가 꼭 1년 후에, 그것도 우편요금을 부담하고 보내 주는 것인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기억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받아보는 한 장의 타임캡슐은 지난 흔적을 따라 두 번째의 여행을 하게 한다.해 질 무렵 조용한 산길을 내려오는 나의 손에는 1년 전에 찾은 남해 보리암의 석불이 조용히 미소짓고 있다.

2020-07-15

버리기 어려운 것

저는 뭐든 잘 버립니다. 안 그래도 좁은 집, 그리 필요치 않은 물건이 여기저기 쌓이는 걸 참아내지 못합니다. 틈 날 때마다 뭐 떠나보낼 게 없나 살피곤 합니다. 보내는 입장에선 홀가분해서 좋고, 떠나는 물건 입장에선 사랑 받을 새 주인이 생겨서 좋고. 버려야만 하는 자로서 저런 변명이나 합니다. 어쨌거나 버리지 못하는 것보다는 잘 버리는 편이 낫다고 말하곤 합니다.우리가 잘 버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알뜰 콤플렉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저와 동시대를 지나온 이들은 아껴야 잘 산다,라는 말을 캠페인 문구처럼 듣고 자랐습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놓아준다고 해서 가난뱅이가 되는 것도, 그것을 품고 간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레기나 다름없는 물건을 쌓아두는 건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합니다.잘 버리는 자들은 처음부터 잘 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것을 알기에 될 수 있으면 물건을 잘 들이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버릴 물건이 원래부터 그다지 없는 편에 속하지요. 최소한의 물건으로 버티다가 그마저 필요치 않게 되면 떠나보내는 것이니까요. 둘 자리가 넉넉했다면 이런 습관은 들지 않았겠지요. 마당 없는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공간을 규모 있게 활용하고픈 맘에서 생긴 습관입니다. 코로나 핑계로 바깥 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올해 들어 새 신발이나 새 옷을 산 적이 없습니다. 알뜰해서가 아니라 뭔가 쌓이거나 넘치는 걸 경계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내친 김에 유행하는 미니멀리즘까지 나아가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특정 물건에 대한 은근한 애정이나 감성적 회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책방 청소를 하는데 구석 밑자리에 있던 엘피판들이 청소기에 걸려 쏟아집니다. 이때다 싶어 와르르 부려내 한 컷 담았습니다. 삼십여 년 묵은 사연들이 먼지 낀 표지 위로 풀썩입니다. 버릴까 말까 숱한 망설임 끝에 살아남은, 저에겐 골동품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힘겨운 십대와 이십대를 건너는 동안, 감성적 물결로 제 곁을 지켜준 친구입니다. 그때의 청춘들은 라디오나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엘피 디스크로 음악 감상을 하곤 했지요. 추억을 소환하고 시간을 경작한 그 물건들을 누군들 함부로 버릴 수 있을까요.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부피가 큰 오디오 시스템 기기를 가장 먼저 버렸습니다. 턴테이블과 카트리지 바늘만은 따로 빼둘까 하다가 몽땅 버렸었지요. 새로운 밀레니엄이 온다고 매체들은 떠들었고, 그 예라도 되듯 엘피판이나 테이프로 된 음원 기기가 속절없이 무너지던 시대였으니까요. 와중에 엘피판들만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발품을 팔아 사거나 선물로 받은 그 디스크 안에는 청춘을 감내하던 풋것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아무리 버리기 좋아하는 선수라 해도 이어질 듯 끊어지는 한 시절을 소환하는 매개물 앞에서는 망설이게 되니까요.김살로메소설가잠시 그 시절을 환기해 봅니다. 카트리지 바늘이 엘피 홈에 스치면서 원판이 돌아갑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게 뻔한 소식을 기다리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사념을 가눌 길 없어 모차르트의 미사곡에 카트리지를 얹곤 했지요. 쓸데없이 성찰하고 불필요하게 막막해하던 스스로를 음악 속으로 유폐시키던 시간들이었지요.이제껏 버리지 않아서 거추장스러웠던 적은 있어도, 버리고 나서 후회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버리지 않아서 다행인 게 세상엔 얼마나 많은지요. 그간 너무 쉽게 추억이나 향수를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젠가부터 복고의 풍경이 아슴아슴 떠오르더니 턴테이블이 갖고 싶어졌습니다. 꼼꼼한 남편은 이게 나아, 저게 좋아 하면서 검색만 열심입니다. 쉽사리 들일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제게 있습니다. 기왕의 물건들은 자리가 정해져 있고, 아무리 둘러봐도 턴테이블이 놓일 만한 맞춤한 장소가 없습니다. 걸리적거린다고 버림당할 것을 저어해 확실한 공간이 확보될 때까지 주저하게 되는 것이지요. 새로운 하나를 위해 기존의 무언가를 비워야 하는 우리집의 한계, 아니 제 품의 한계만 실감합니다. 그 공간을 만들 때까지는 옛 친구가 해준 말로 위안이나 삼아야겠습니다.그 시절, 서울로 유학 간 친구에게 엘피판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 왈, 자취 살림에 잦은 이사가 성가셔 턴테이블을 없애버렸답니다. 제가 건넨 음악을 들을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이런 위트 있는 회답을 보내왔었지요.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나요. 저 음반들 역시 지금은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짜릿할 테지요.

2020-07-15

차세대통신기술 6G

5세대 이동통신이 상용화초기단계에 들어서기 무섭게 6세대 이동통신기술이 개발되고 있다.삼성전자가 차세대 6G(6세대) 이동통신 비전을 제시하고 나섰다. 6G에서는 최대 전송속도 1000Gbps, 무선 지연시간 100μsec로, 5G 대비 속도는 50배 빨라지고, 무선 지연시간은 10분의 1로 줄어드는 등 획기적 성능 개선이 예상된다.6G는 모바일 단말기의 제한적인 연산 능력을 극복하기 위한 네트워크 구성 요소들의 최적화 설계가 필수적이다. 네트워크 구성요소들이 실시간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AI가 기본 적용되는 ‘네이티브 AI’ 개념이 적용된다.6G는 내년부터 개념 및 기술 요구사항 논의를 시작으로 표준화가 착수되고, 이르면 2028년부터 상용화에 들어가 2030년 본격적인 서비스가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6G 시대에는 △초실감 확장 현실 △고정밀 모바일 홀로그램 △디지털 복제 등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부터 5G 국제 표준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기술 제안과 표준화 완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5G 상용화에 기여했다. 2019년 4월 대한민국의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이어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 통신사들에 5G 상용화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5세대 이동통신은 최대 속도가 20Gbps인 이동통신 기술로, 4세대 이동통신인 LTE에 비해 속도가 20배 가량 빠르고, 처리 용량은 100배 많다. 특히 CDMA(2세대), WCDMA(3세대), LTE(4세대)가 휴대폰과 연결하는 통신망에 불과했고, 5G는 휴대폰을 넘어 모든 전자 기기를 연결한다. 눈부신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7-15

대학은 어디로 가는가

장규열한동대 교수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학에 치부가 드러났다. 교육부가 벌인 주요 사립대 감사에서 이 대학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직교수 자녀를 부당하게 합격시켰으며, 입학전형자료를 보존하지 않았고, 교원채용 과정도 적절하지 않았으며, 직원채용에도 출신 대학을 부당하게 차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학에서 여든도 넘는 교수들이 징계를 받았으며 사백도 넘는 사람들이 인사 조치됐다. 해당 대학에 수치스러운 일임은 물론이지만, 이제 첫발을 뗀 교육부의 대학감사에서 얼마나 더 많은 대학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것인지 알 수가 없다.코로나19로 ‘교육’이 몸살을 앓는다. 초중고 공교육이 감염의 우려와 함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이에 대학은 약간 비껴선 느낌이다. 지난 학기 대학들은 온라인 강의역량을 강화하고 비대면 교육을 주로 하면서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다음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많은 일들 가운데 대학의 강의는 후보군 앞순위를 맡아놓았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과 교수와 학생 사이의 교감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간다. 강의는 이제 기계적이지만 수려한 외양을 한 ‘콘텐츠’로 변모해가고 학사일정은 디지털과 온라인으로 호흡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간다.대학에게 묻는다. 대학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오늘 대학이 가진 모습에서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가. 세상과 함께 숨 쉬며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바뀌는 세상에도 대학이 고집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대학은 새로운 세상에 앞서가는가 아니면 겨우 따라나 가는가. 지난 세기 대학이 젊은 양심과 소중한 인재를 길러냈다면, 앞으로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대학은 누구를 가르치고 무엇을 나눠야 하는가. 사회를 향하여 던지는 답변보다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 차고 넘친다. 대학은 21세기에도 필요한 것일까.지식소매상으로 대학이 설 자리는 없다. 백과사전과 지식충전소는 온라인을 이미 점령했다. 교수가 강의실에서 배달할 새 지식은 없다. 이미 세상은 대학보다 복잡하고 일들은 전공별로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길러야 할 인성은 좁은 전공지식에 갇힐 수가 없다. 한 가지 분야에서 평생을 구가할 보장도 없다. 백세시대지만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같은 것을 보고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으로 살아야 한다. 매일 대하는 일상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습관에 익숙해야 한다. 현상유지로는 버틸 수가 없다. ‘비판정신’으로 충만한 사람을 길러야 한다.대학은 너무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 관심을 덜 쓰는 사이에 구태에 물들어 있었다. 바뀌지 않고는 죽어야 하는 길목에서 대학은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부끄러운 모습을 앞서가는 열정으로 바꾸어 가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 대학 스스로 결정하고 달려야 한다.

2020-07-15

고(故) 박원순 시장을 추모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박원순 시장은 지난 10일 북악산에서 자살로서 한 많은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한국의 후진적 정치 풍토에서 시민운동의 대부였으며 최장수 서울 시장인 그의 갑작스런 자살은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서울 시정을 개혁적으로 이끌고 차기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그의 자살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비극이다. 항상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의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그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그는 평소 ‘꿈을 가진 사람은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는 이제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유언만 남기고 고향의 부모님 곁으로 내려가 버렸다.박원순은 고시 합격 후 검사직을 포기하고 스스로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87 민중 항쟁 후 참여연대를 창설하여 시민운동의 토대를 굳건히 다졌다. 당시 하향식 공천이 지배하던 시절 그는 ‘낙천 낙선운동’을 통하여 매니페스토 운동을 정착시키려 무던히 노력하였다. 당시 시민운동을 하던 나는 그를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권력이라는 꽃길을 버리고 스스로 택한 그의 고난의 길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그의 유언장은 이를 잘 입증한다.2018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우리 일행은 서울 시장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서울 시청 그의 집무실은 예상과 달리 무척 검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의 집무실 책상 정면에는 서울 시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 상황판이 비치고 있었다. 서울의 교통, 소방, 치안뿐 아니라 의료, 복지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장치였다. 넥타이도 매지 않은 차림으로 서울 시정을 소개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3선 시장으로서 관록이 쌓였는데도 그는 권위주의적 모습은 티끌만큼도 찾아 볼 수 없고, 대중 친화적 그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다.박 시장은 생을 마감하기 전날까지 착실히 공무를 수행하였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자살 전날까지 분초를 다투는 일정을 충실히 소화하였다. 전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부동산 대책관련 회의를 가졌고, 서울 판 그린 뉴 딜 정책까지 직접 발표하였다. 며칠 전 CBS ‘김현정의 뉴스 쇼’에는 직접 앵커로 출연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살 당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오찬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통화까지 하였다. 그는 2명의 자녀 결혼도 시키지 못하고 6억여 원의 부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원순 시장이 비극적 선택을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의 자살은 여직원의 형사 고소 사건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론을 맡아 배상판결을 이끈 적도 있다. 평생 인권 운동가로 더구나 여성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하던 그였지만 성추행 피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인생 역정을 전면 부정하는 모순 앞에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결국 그는 노무현, 노회찬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연인 박원순의 명복을 빌 따름이다.

2020-07-14

제철소의 오리가족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제철소 조업현장에 오리가족이 살고 있어 화제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닌 어미오리 한 마리에 새끼 아홉이 딸린 10마리의 대가족이다. 오리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포항제철소 내 혁신적인 쇳물 제조공정인 파이넥스(FINEX)공장 철광석 원료야드 입구의 침전조 내부다. 언제부터 오리가족이 살게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조업현장 근무자의 제보에 따라 필자가 직접 현장을 확인, 촬영한 결과 흰뺨검둥오리 10마리가 살고 있음을 목격했다.척박한 공장지대에서 오리가 산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일 같지만 실제 상황이다. 야드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철광석이나 석탄, 부원료 등의 파일(Pile)이 바람으로 인해 날려가는 먼지를 줄이기 위해 필요에 따라 살수를 하게 된다. 이 때 살수된 물이 파일 내부로 스며들었다가 야드 측면의 배수로를 타고 입구에 조성된 침전조(Settling Pond)로 흘러들어 침전물을 가라앉힌 후 폐수처리장으로 흘러가도록 설계돼있다. 이렇기 때문에 침전조 한쪽에서는 야드에서 살수한 물이 미량의 분진을 머금은 채 유입되고, 대각선 방향의 반대쪽에서는 물이 가득 넘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내부 바닥에는 진흙 같은 슬러지가 조금씩 쌓이고 더해져 물 속에 작은 퇴적층이 형성된 것이다.그러한 상태에서 몇 년 새 풀씨가 날아들고 수초와 갈대 등이 자생하면서 침전조 가장자리에는 작은 수초숲이 저절로 생겨났다. 소량의 물이 계속 흘러들어와 서서히 맴돌이 후 빠져나가니, 마치 내나 강의 물굽이가 치는 곳의 주위가 여울의 천탄(淺灘)에 따라 모래흙이 퇴적되면서 수변 식물이나 동물이 서식하는 환경이 되는 것처럼, 폰드 내부에서도 미생물은 물론 수중, 수상 동식물이 서식할 여건은 어느 정도 되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육중한 공장지역에서 과연 동식물이 장기간 서식하고 살아남는지는 의문스럽기만 할 것이다. 철광석 가루와 석탄 먼지가 조금씩 날아들고, 주변에 벨트 컨베이어나 집진기 설비가 돌아가는 소음 등으로 인해 생육환경이 상당히 열악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오리가족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으니 경이롭기만 하다. 더욱이 폰드의 수초숲에는 잠자리와 나비가 찾아들고 무당벌레 같은 곤충도 보이는가 하면, 야드 주위에 조성된 방풍림에는 수십 마리의 새들이 날아들기도 한다. 이쯤 되면 거의 제철소의 이색적인 생태서식처(?)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만큼 공장환경이 깨끗해졌고 파이넥스가 청정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함께 환경보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요즘이다. 사람은 자연의 생태계 속에서 자연환경을 지키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 보다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최근 포항제철소는 1조원 규모의 환경개선 투자사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와 함께 환경개선의 실효성을 더하기 위한 산·학·연 협의체를 발족시켰다. 환경변화에 발맞춰 기업시민 포스코가 지향해야 할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하고 지역 환경현안에 대한 올바른 인식 개선과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2020-07-14

보신탕보다 삼계탕

보신탕은 개고기로 만든 보양 음식이다. 개고기를 푹 삶아 살은 수육으로 하고, 뼈로 푹 고은 육수에 배추, 시래기, 파, 토란 등과 갖은 양념을 하여 만든 탕이다. 본래 개장국이라 했다. 그러나 1984년 서울시가 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개장국을 혐오식품으로 지정 판매를 금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보신탕, 영양탕, 사계절탕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단고기탕이라 부른다.조선 순조 때 문신인 조운종이 우리나라 사계절의 세시풍속을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세시기속’에는 “복날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 개를 삶아 국을 만들어 먹었으며 중복과 말복에도 마찬가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이로 봐선 보신탕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먹었던 음식 중 하나로 보인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개고기가 속되다는 이유로 임금께 올릴 수 없으니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어 끓여 개장국을 육개장이라 불렀다고도 한다.요즘처럼 몸보신할 음식이 많지 않은 옛 시절에는 개고기가 몸보신에 으뜸 대접을 받았던 모양이다. 특히 삼복더위로 체력 소모가 많은 여름철에는 개고기를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우리 속담에 “복날 개 패듯 한다”는 말은 여름철 복날 몸보신용 개가 마구 도살되던 것을 보고 나온 말로 풀이된다.삼복(三伏)은 7∼8월 사이 여름철 중 가장 더운 때를 뜻한다. 지금처럼 냉방시설이 없었던 우리 선조들은 이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해 여러 노하우를 쌓았다. 그 중 하나가 보신탕 먹기다.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즐비하던 보신탕집이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먹거리가 많아지는 등 세태 변화에 따른 현상이다. 16일은 초복이다. 삼계탕으로 몸보신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7-14

터무니없는 발코니 확장비와 유상옵션 비용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최근 대구 신규 아파트 가격이 상당히 올랐다.뜨거운 청약률을 보인 대구의 신규 아파트는 최근 1년간(2019년 5월∼2020년 4월) 3.3㎡당 평균 가격은 1천510만800원으로 1년 전 (2018년 5월∼2019년 4월) 평균 가격 1천324만9천500원 보다 13.9%(185만1천300원)나 상승했다.수성구 신규 분양 아파트의 3.3㎡당 분양가는 2천55만6천원으로 2천만원을 넘어섰고 달서구는 1천844만원을 기록하는 등 분양가 상승을 주도했다.경북지역 최근 1년간 신규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 가격은 880만7천700원으로 1년 전 864만2천700원보다 1.9% 상승하는데 그친 것과도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이런 현상은 우선 땅값이 비싼 대구 도심지역 재개발을 통한 신규 분양이 많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건설업체들이 유독 대구에서 발코니 확장비와 시스템 에어컨, 냉장고, 바닥재 등 유상옵션 가격을 올린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발코니 확장비는 최고 3천만원을 넘었고 유상옵션비도 최고 4천437만원까지 치솟아 결국 소비자들은 추가로 7천만원 이상을 더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올해 남구와 달서구 3개 단지가 1천만원 전후의 발코니 확장비 책정한 것 이외에 나머지 5개 단지는 평균 2천500만원을 웃돌았다.특히 지난 4월 중구에서 전용 면적 84.08㎡ 타입의 한 아파트 확장비는 3천180만원을 기록한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분양된 달서구 같은 면적의 한 아파트는 850만원이었다.또 다른 원인은 고분양가 관리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인 중구와 수성구에 대한 HUG(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통제도 한 몫을 하고 있다.시세만큼 분양가를 높일 수 없자 건설업체들이 인허가 과정에서 분양가에 포함되지 않는 발코니 확장비 및 유상옵션을 늘이는 것으로 정부 규제 회피 수단으로 삼고 있다.발코니 확장 전문업체들도 최고급 자재만을 고집하면 3천만원대 발코니 확장비가 나오겠지만, 기본적으로 1천∼1천500만원이며 충분히 시공하고도 남는다고 했다.건설업체들은 열선과 온돌 마루판 및 벽 도배 추가 비용 등도 만만찮다고 항변하지만, 신규 아파트는 철거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데다 벽체와 거실 미닫이문을 만들 필요가 없어 오히려 공사비가 감소할 수 있어 별도의 확장비가 들지 않는다.최근 대구지역 청약 열기에 편성해 발코니 확장비와 유상옵션 비중을 늘리는 것은 결국 건설업체들이 수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횡포에 가깝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정부의 각종 규제가 발표되면 이를 피할 다른 방법을 찾는 건설업체들의 꼼수를 계속 봐 왔다.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인허가 관청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편법으로 분양가 상승을 이끄는 건설업체들을 제지할 수 있는 최일선이기 때문이다. 이어 대구 소비자들도 눈을 크게 뜨고 분양 공고문 한쪽 귀퉁이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터무니없는 발코니 확장비와 유상옵션 가격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시점이다.

2020-07-14

마음아, 넌 누구니?

‘마음아, 넌 누구니?’ 책 표지.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도덕주의적 판단을 내리고 타인을 비판하기 일쑤인 사람이 가까이 있는가?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본인은 욱하지만 뒤끝 없는 쿨 한 성격일 뿐이라고 하며, 감정을 쏟아 붓는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은 감정 쓰레기통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화를 잘 내거나, 타인을 비판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두어 이러한 괴로운 인간관계를 멀리 하여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반복될 고통의 관계가 남아 있을 것이다. 타인의 비판과 화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거나, 스스로 화를 추스르기 어려워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잦다면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 작가의 ‘마음아, 넌 누구니?’와 마셜 B.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이들 책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은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의 왜곡된 표현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관계 속에서 폭력을 부추기는 것이다’라고 한다. 비판받는 사람도 폭력에 노출되지만, 비판하는 사람도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표현하여 부정적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고 부정적 단어에 갇힌 삶을 살게 된다. ‘말은 마음의 창, 아니면 벽’이라는 루스 베버마이어의 말이 참으로 와 닿는다. 화 잘 내는 것도 성격이라 생각하는 무지에서 벗어나려면 감정을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감정소통을 하려면 상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성숙되게 표현할 수 있는 마음 훈련을 해야 한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인간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고, 디딤돌로 작용하도록 비폭력대화의 방법을 익혀야 한다. 비폭력은 우리 안에 잠재한 긍정적인 면이 밖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비폭력대화법을 익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자유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삶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긍정적인 행동 언어를 사용하는 비폭력 대화법과 슬기롭게 화내는 방법을 익힘으로써 불편한 인간관계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데 이 두 책이 힘을 실어줄 것이다./김예원(경주시 양북면)

2020-07-13

할머니와 SNS

자정이 넘은 밤, 할머니의 SNS 장례식이 있었다. 할머니가 해외에서 고인이 되었기 때문에 캐나다 현지 시간에 맞춘 일정이었다. 한국에 있는 우리부부는 평소 같으면 잠든 시간이었지만 검은색 옷으로 예를 갖추어 앉았다. 식탁 위 십오 인치 노트북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은 남편과 나는 긴장했다. 전날부터 인터넷 환경을 점검하고 음향 테스트도 했다. 단정한 손수건 두 개도 준비했다.인터넷 와이파이 망으로 현지 장례식장이 연결되었다. 고인의 생애와 작별 인사가 노트북 화면으로 전파되었다. 누워 깊은 잠이 든 할머니가 보였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였다. 구십팔 세가 되도록 장수하셨던 할머니는 태블릿 피시를 사용할 정도로 새로운 것을 수용하길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명절에는 음성 채팅 서비스를 이용하여 고국에 사는 자손들을 축복해 주셨다.“할머니가 늘 기도한단다. 우리 손녀내외 감사하고 즐겁게 살아라.”할머니는 당신의 수명이 다할 것을 직감했다. 냉동고에 유언서와 현금을 밀봉해 놓고 잠드셨다. 나는 봄이 오면 할머니를 찾아뵙겠다고 다짐 했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몇 달 후 전염병이 퍼져 국가와 국가뿐 아니라 미주 지역 내에서도 출입이 통제될 줄 몰랐다.일 초의 순간, 한 번의 손가락 터치로 COVID-19의 장벽을 넘었다. 소설 페스트가 발표될 이십 세기 초 무렵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육대주가 링크되어 시공간을 공유하는 날이 예측되었더라면 카뮈의 소설 플롯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이십 년 후 화성에서 내가 조카 결혼식을 어떤 방식으로 축하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인류의 문화가 이십억 년 동안 변화했지만 소시민으로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상상할 수 있다. 이십 년 후 얼리어답터 고모할머니가 된 내가 화성에서 조카의 결혼을 축하하는 순간을./김정희(포항시 남구 SK3차아파트)

2020-07-13

강낭콩을 키우며

강낭콩 씨앗을 심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봄 아이의 원격 수업에서 강낭콩의 성장 과정 이야기가 나왔다.‘그래, 이거다!’ 싶었다. 베란다에 다육이로만 가득 채웠었는데 올 봄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심어보고 싶다하던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아이도 좋아라고 했다. 머릿속에는 벌써 콩꼬투리 속의 콩들을 그리면서.그렇게 심은 강낭콩은 일주일이 되지 않아 초록 초록하며 머리를 밀어 올렸다. 그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던 게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니 꽃을 피우고 콩꼬투리도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아이와 번갈아 물을 주고 정성을 쏟은 결과이리라.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런 세심한 보살핌과 기다림 속에 피어나는 강낭콩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자니 문득 육아로 유독 힘들어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기다려 주기보다는 아이보다 한 발 먼저 내딛는 성격 급한 엄마였다.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 시작한 방통대 공부는 늘 ‘빨리’를 외치게 했고 주말이면 시험과 출석 수업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력단절이라는 말이 싫었고 아줌마라는 말은 더 더욱 밀어내고 싶었다.아이들이 어서 자라기를 바랐고 겨울 같은 이 시간들이 지나고 새봄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무엇을 위해 가는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의문이 들면서도 말이다.지금 강낭콩이 자라는 것처럼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는 시간들이 부족했다. 늘 초봄에 일찍 열매 맺기를 꿈꾸며 내달리던 마음이었다. 매일 물을 주고 마음을 써 준 덕일까 지친 내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아이들이 ‘엄마. 사랑해’라고 하는 말, 따뜻한 손, 깔깔 웃음소리는 잊어버렸던 일상을 다시 반짝이게 했다. 서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는 시간 안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강낭콩에게 물을 주듯,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눈빛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삶도 조금 더 단단해진다.아직도 엄마 역할이 힘들지만 그 단단해진 힘으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고 지지해 주리라. 그 안에서 자라는 멋진 열매를 꿈꾸며.베란다에는 어느 새 콩꼬투리 속의 콩들이 무르익고 있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87-2)

2020-07-13

양성평등정책 진단 및 향후 과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2020년은 북경행동강령이 채택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북경행동강령 이행에 있어서 양성평등 증진과 여성의 대표성에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그 성과가 충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간 양성평등 증진을 위한 제도적 성과로는 성별영향평가 컨설팅을 통한 정책개선안이 제고됐다. 성별영향평가 업무담당자 실무교육과 1:1 맞춤형 대면 컨설팅 확대·실시로 성별영향평가 보고서 작성 실무역량을 강화하고, 실현가능한 정책개선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다양한 각도로 개선방안이 제시됨에 따라 정책개선 사례가 증가하고 개선의견 수용률 및 반영률도 높게 나타났다. 성인지력 향상 및 성별영향평가 실행의지가 향상됐다. 정책업무를 추진하는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성인지 교육, 실무역량강화교육 등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해 업무담당자의 전반적 이해도가 점점 향상되고 있으며, 양성평등 의식 및 성주류화 정책 실행의지가 뚜렷하게 보인다. 성별영향평가 결과 정책이 개선된 사례를 발굴해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통해 성별영향평가 제도 추진동기를 강화하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성주류화 정책 홍보 효과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지역 차원의 양성평등 정책 성과를 돌아보면서 향후 과제에 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첫째, 성별영향평가 내실화를 위한 정책개선 성과 도출이다. 성별영향평가 양적 과제 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장감 있는 제도의 정착을 위해 질적 성장이 필요하며, 정책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성별영향평가서의 내실화를 기하고, 과제선정과정에서부터 정책개선안을 도출할 수 있는 정책개선 가능 과제를 발굴해 컨설팅 강화 등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둘째, 정책개선 이행점검 확대이다. 성별영향평가 결과 도출된 정책개선안이 실제로 추진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이행점검은 지속적인 정책개선의 실천과 새로운 정책개선 방안의 마련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도출된 정책개선안이 실행을 통해 정책개선으로 이어져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이행점검 확대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세분화된 성별영향평가 모니터링을 통해 정책개선 사항에 대한 환류 강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셋째, 특정성별영향평가 예산 수립 및 확대이다. 성별영향평가 과제 수가 양적으로는 일정 수준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정책개선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지자체 특정성별영향평가를 추진하여 이에 대한 성인지 예산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넷째,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연계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성별영향평가와 성인지 예산제도의 연계는 필수적이므로 성인지 예산에 대한 컨설팅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성인지예산제도 실효성을 위한 조례 제정을 통해 지자체의 실행 의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관리직 공무원 대상 맞춤형 교육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성별영향평가 업무는 다른 부서 업무담당자의 협조가 있어야 원활히 추진되므로 기관장, 부서장 등 관리직 공무원이 제도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관심, 지원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2020-07-13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강희룡 서예가삶의 여정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바른길도 있고 그릇된 길도 있다. 대개 그릇된 길은 개인 욕심이나 집단의 그릇된 목표로 인해 본의 아니게 택함으로서 패가망신하거나 목숨까지 던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조선후기 금석학파를 창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실학자인 김정희의 완당집(阮堂集)에 ‘천 리 길을 가는 말(適千里說)’에, 갈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아는 사람이 바른길과 잘못된 길을 자세히 알려주면서, 잘못된 길은 가시밭길이고, 바른길은 반드시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라고 성심을 다해 알려줘도 의심과 욕심이 많은 자는 이를 믿지를 못해 딴 사람에게 묻고,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고 한다.결국 ‘남들이 모두 옳다하여 내가 감히 따를 수 없고, 남들이 모두 그르다 해서 그것이 과연 그른 줄 모르겠으니 내 직접 경험해 보리라,’ 라는 생각으로 가다보면 결국 함정에 빠져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거나, 설령 끝에 가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되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이미 시간과 심력을 다 소모해 버린 터라 돌이킬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남들이 분명하게 일러준 바른길을 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여기서 완당이 말하는 천 리 길은 단순히 먼 노정만을 뜻하지는 않기에 우리 삶의 긴 여정에 비추어 보면, 인생의 여정에도 수많은 갈림길이 나타나기에 그때마다 어느 길로 갈지 신중히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여간해서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당은 이러한 갈림길을 만나서 헤매지 않는 해답을 이미 행간에 암시하고 있다. 모르는 길은 마음대로 가지 말고 남들이 일러 준 것을 믿고 그 길로 가라는 것이다.완당은 선현들은 진리와 지혜를 고전을 통해서 가보지도, 겪어보지도 못 해 미로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욕심이나 위선을 앞세운 삶의 결과는 반드시 망양지탄(亡羊之歎·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서 길을 잃음)으로 돌아온다는 교훈도 함께 전달하고 있다.조선 인조 때의 학자인 홍만종의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賊反荷杖)’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이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로 풀이된다. 오늘날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공(公)과 사(私), 정(正)과 사(邪)는 함께 할 수 없다고 검찰총장을 향해 법무장관이 내뱉은 말이다. 명언이다. 허나 여기서 누가 공과 정이고 누가 사란 말인가? 장관 입장에서 보면 본인이 공과 정이고, 검찰총장이 사라고 풀이되는 대목이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 반대로 풀이됨을 아는가! 추 법무장관의 임무는 임명부터 조국 전 장관 비리와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같은 패거리의 각종 권력형 비리 등을 수사 중인 검찰지휘부를 장관직을 이용해 와해시키고, 임무에 충실한 윤 총장을 찍어냄으로서 검찰개혁이라는 포장으로 정치검찰화 시키려는 의도를 국민들이 읽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닌가.

2020-07-13

숱한 오류들의 연속… 청도 적천사(碩川寺)

적천사의 은행나무를 보러 떠나라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초입에서 펼쳐지는 소나무 숲에 한껏 부풀어 있는데 느닷없이 8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와 마주 선다. 시간을 벗어난 존재의 환희, 푸르고 깊은 눈빛과 마주친 이상 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은행나무의 오랜 침묵과 장엄한 자태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화석, 나무에게서 서늘하도록 도도한 기운이 흐른다.천연기념물 제 402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수형이 곧고 반듯하며 큰 상흔 없이 자랐다. 고령의 몸으로 유주를 늘어뜨린 채 손톱만한 은행들을 품고 본분을 다하는 모 앞에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성의 젖가슴처럼 자라는 유주가 남근처럼 길게 자란 탓에 이것을 끓여 먹으면 남자아이를 잉태한다는 속설이 전한다. 은행나무와 옛 여인들이 재워둔 아픔들이 쿨럭이며 깨어날 것만 같다. 그 지난한 시간들이 먹먹하다.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유유히 은행나무를 돌아 산 아래로 내려가는 고급 승용차의 뒷모습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은행나무를 올려다본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젊은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은행나무 연시 한편이 떠오르고, 유난히 은행잎이 노랗게 슬픔으로 차오르던 바이마르에서 몇 달만이라도 머물고 싶던 낭만어린 나의 꿈들도 살아난다. 숱한 꿈들은 현실에 치여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젊은 날 문학과 감수성에 불을 붙이던 은행나무가 오늘은 성스러울 만큼 외경스럽다.동양에서는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학을 즐겨 한 까닭에 유학을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졌다.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곳을 행단(杏壇)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릴 적 고향 집 앞에도 은행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회화나무가 지성적인 나무라면, 은행나무는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나무라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허기진 시간들이 그리움이 되어 몰려온다.고령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돌아보는 지난 세월은 허무하도록 짧고 애틋하다. 찰나에 불과했던 시간들이 푸른 잎 사이에서 여전히 서성일 것만 같은데, 나무 아래에는 괴테의 연시나 나의 짧았던 청춘은 간곳이 없다. 촛불 밝히며 빌었던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들이 삶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부처님 계신 극락정토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천왕문이 앞을 막아선다. 탐욕과 오염된 마음 내려놓고 들어서라며 사천왕상이 눈을 부라리는데 그 표정조차 친근하다. 사천왕의 발밑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온갖 악귀와 축생, 잘못을 저지른 중생들, 천국와 지옥이라는 말도 낯설기만 하다. 오늘 하루의 생각과 행동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조용히 합장한다.적천사는 문무왕 4년(664년) 원효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을 지으면서 창건되었다. 828년 심지왕사가 중창했으며 고승 혜철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175년 고려 명종 5년에 지눌이 크게 중건 했을 때 참선하는 수행승이 오백 명이 넘었으며 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토록 유명했던 절은 인기척이 없고 쓸쓸하다.커다란 괘불을 걸고 위엄을 갖추었을 당간지주, 명부전 지붕 위로 보이는 잘 생긴 소나무, 영산전 앞의 수국의 침묵과 허공을 닮아가는 눈빛들, 흐린 날씨 탓인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인다. 천천히 대웅전 법당에 들어가 백팔 배를 한다. 온몸이 젖어들지만 마음은 고요하지가 않다.원음각 뒤로 곧게 뻗은 길은 소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름풀들 사이로 시(詩)가 자랄 것만 같은 길, 걷다보니 도솔천이 부럽지 않다. 시원한 소나무 숲길이 나를 편안하게 이끈다. 수풀 우거진 부도밭이 보이고 길은 울창한 대숲 사이로 이어진다.아름다운 길이다. 새로 올라온 대나무의 푸른빛이 매혹적이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빛깔들이 묵은 대나무들 사이에서 청량한 기운을 뿜어낸다. 줄기는 이미 단단한 마디가 생겨 대나무로서의 손색이 없다. 푸른빛에 홀려 수없이 셔터를 눌러대는데, 지나치게 현상에 이끌려 실체를 놓치지 마라는 말씀 한 자락이 대숲에서 들린다.조낭희 수필가길이 끝나는 곳에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 하나 열려 있다. 암자는 아닌 듯하다. 정성스럽게 꾸며진 정원과 집 한 채가 숨어 있듯 앉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 덩치 큰 외제 차가 사천왕상보다 더 무섭게 지키고, 잘 가꿔진 나무들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곳은 무슨 용도로 쓰여질까? 급하게 사립문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에 온갖 의구심이 실린다.내 발길은 대나무 사립문 앞에서 그쳐야 했다. 무심코 넘은 선이 애써 찾은 마음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선(線)을 넘지 않는다는 것, 중용의 도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마음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소나무 길을 내려올 때쯤 마음이 고요해진다. 환경에 이토록 민감해지는 내 마음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인가?부처님은 법당을 고집하지 않는다. 혼자서 걷는 길이나 무심코 만나는 나무와 풀, 낮게 부는 바람에도 부처님은 계신다. 우리가 무언가에 한눈을 팔거나 부처님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데에서 빚어지는 오류들의 연속, 그것이 삶이다.

2020-07-13

팔이 없어 더 아름다운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부분.프랑스 왕들의 거처였던 루브르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대중들에게 개방된 박물관이 되었다. 루브르가 세계 최고의 소장품을 수집한 역사의 이면에는 침략과 약탈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힘의 논리가 예술의 세계마저 지배하고 있다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방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루브르이며, 루브르를 방문하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몇몇 작품들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 고대 그리스 미술의 정수 ‘사모트라케의 니케’ 그리고 또 다른 여신이 있다. 바로 사랑과 미의 여신 ‘밀로의 비너스’이다.기원전 100년경에 제작된 비너스는 헬레니즘 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비너스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다름 아닌 몸에 흐르는 유려한 곡선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조각은 평면적인 회화와 달라서 공간과 입체 그리고 인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작용하는 방식을 잘 읽어야 한다. 서 있는 조각의 경우 무게가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몸의 균형을 이루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면밀히 관찰하면 아주 흥미롭다. 특히나 조각은 입체 작품으로 우리와 같이 볼륨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훨씬 생동감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다수의 비너스가 있지만 특히나 ‘밀로의 비너스’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거의 유일하게 머리 부분이 온전히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비록 두 팔은 망실됐지만 말이다. 그런데 ‘밀로의 비너스’는 왜 팔이 없이 전시되고 있을까? 프랑스의 복원 기술이라면 충분히 원형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사실 비너스의 두 팔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팔이 없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과 방향성을 분석해 두 팔이 어느 위치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그에 따르면 비너스는 왼팔을 들어 머리에 장신구를 꽂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혹은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커다란 거울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비너스 옆에 기둥이 하나 서 있었고 그곳에 팔을 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여러 가지 제안들 중 아주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비너스의 배 부분을 보면 자그마한 둥근 모양의 흔적이 있다. 이것이 복원을 위한 결정적 단서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부분은 비너스의 오른팔이 붙어 있었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비너스의 오른팔은 몸을 사선으로 가로질러 반대편인 왼쪽 허리에 놓여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왼쪽 팔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조금 더 쉬워 보인다. 왼쪽 어깨의 근육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비너스는 왼쪽 팔을 어깨 높이로 들고 있었을 것 같은데 팔꿈치에서 손 부분은 앞을 향해 뻗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비너스는 왜 이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비너스가 밀로 섬에서 발굴되었을 때 다른 파편들과 함께 출토됐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출토된 파편들 중에는 왼팔의 일부로 추정되는 조각이 있었는데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여러 다른 작품들에서 관찰되듯 비너스는 사랑 혹은 타락의 상징인 사과를 들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루브르의 복원 전문가들은 비너스가 사과를 든 왼팔을 앞으로 뻗으며 서 있었을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결론은 내려졌지만 복원 작업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왜일까?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복원된 팔은 비너스를 완성 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것이 지닌 신비한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시간 속에 소멸된 요소들을 인위적 손길을 가해 복원하는 것 보다 불완전한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불완전은 감상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고, 그 상상력으로 인해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들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학자

2020-07-13

‘어용(御用)’들의 행진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어용’이 판치는 세상이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대쪽’은 없고 모두가 소리 높여 ‘문비어천가’를 부른다. ‘가물에 콩 나듯’ 보이는 대쪽들의 직언은 이른바 ‘문빠’와 ‘대깨문’들의 왜곡과 공격으로 무용지물이다. 대쪽 검찰총장을 제거하기 위해 어용 검찰간부는 항명(抗命)하고 법무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가 하면, 어용국회의원과 어용언론이 총동원되어 ‘어용검찰 만들기’에 혈안이다. ‘절대화 된 권력의 필연적 부패’ 조짐이다.누가 권력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권력 해바라기’가 된 어용지식인들이다. 어용교수·어용언론인·어용시민운동가들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권력을 가지려는 속내는 숨기고 마치 정의의 투사처럼 행세한다. 연구와 교육에 거리가 먼 ‘어용교수들’은 정부여당의 외곽단체에 참여하거나 방송에 출연하여 교활한 궤변으로 정권을 비호하면서 권력에 접근한다. ‘외눈박이가 된 어용언론인들’은 진영논리를 펴면서 권력과 밀착되었고, 그 공로로 청와대 대변인·국회의원 등 스스로 권력이 되었으니 언론의 사명을 잊은 지 오래다.‘어용권력이 된 시민단체들’의 병폐도 심각하다. 지식인들의 시민운동이 권력과 밀착됨으로써 출세의 지름길로 변질되었다. 문재인정부에서 참여연대·민변·정대협 출신들이 장관·청와대비서관·대법관·헌법재판관·국회의원 등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렸으니 시민단체의 사명인 권력에 대한 감시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보수단체인 자유총연맹까지도 대통령의 40년 지기가 총재에 취임함으로써 그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바야흐로 ‘어용의 시대’를 주름잡는 ‘어용들의 행진’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비난받아 마땅한 어용들이 오히려 목에 힘을 주고 ‘어용이 명예’가 된 어지러운 세태이다. ‘어용을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위장’하면서 요설(妖說)을 펴는 지식인까지 등장했다. 어용은 사익(私益)을 위해 권력에 영합하지만, 대쪽은 공익(公益)을 위해 권력을 비판한다. 권력의 속성상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권력에게 ‘어용의 감언(甘言)은 독(毒)’이고 ‘대쪽의 고언(苦言)은 약(藥)’이다. 권력이 약을 싫어해서 독을 계속 복용하면 마침내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된다. 괴물이 된 권력은 판단력이 흐려져서 ‘어용은 내편, 대쪽은 네편’이라고 착각한다. 권력이 저지른 불의는 정의로 둔갑하고, 권력의 폭주는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면서 독재의 길을 걷게 된다.‘괴물이 된 권력’이 성공한 경우는 없으며 그 끝은 언제나 불행하였다.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많은 어용들을 만들었지만, 바로 그 어용들 때문에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용들의 행진’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어용이 된 지식인은 개인적 불명예이자 국가적 손실이다. 사익을 위해 권력에 접근하여 스스로 권력이 되기보다는 ‘공익을 위해 권력을 비판하고 바른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참된 지식인의 역할이요 사명이다.

2020-07-13

사이토카인 폭풍

전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있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코로나 중증 환자에서 발견되는 과잉염증 반응의 원인을 밝혀냈다.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때문이란다.사이토카인 폭풍은 바이러스 등 외부 병원체가 인체에 들어왔을 때 체내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 과잉반응 현상을 일컫는다. 즉, 인체 내에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사이토카인의 지나친 분비로 대규모 염증 반응이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정상 세포들의 DNA가 변형되어 일어나 신체 조직을 파괴하는 것이다.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경증 질환만을 앓고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으나, 어떤 환자들은 중증 질환으로 발전해 심한 경우 사망하기도 한다.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에 중증 코로나가 유발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어떤 이유로 과잉 염증반응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중증 코로나 환자의 치료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내 연구진은 중증·경증 코로나 환자로부터 혈액을 얻은 후 면역세포들을 분리하고 ‘단일 세포 유전자발현 분석’이란 기법을 적용해 특성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 환자의 면역세포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일종인 종양괴사인자(TNF)와 인터류킨-1(IL-1)이 공통으로 나타났고, 특히 인터페론이라는 사이토카인 반응이 중증 환자에게서만 특징적으로 강하게 나타남을 확인했다.지금까지 인터페론은 항바이러스 작용을 하는, 인체에 유익한 사이토카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구진은 인터페론 반응이 코로나 환자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염증반응을 촉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한시라도 빨리 코로나가 퇴치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7-13

자살에 대해

한국사람의 자살률은 2003년 이래로 OECD회원국 중 줄곧 최고다. 2018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6.6명으로 OECD평균 11.3명보다 월등히 많다. 하루 평균 37.5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한햇동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수가 3만 명을 넘는다. 전국 응급실로 들어온 응급환자를 통해 집계한 수치다. 남성이 여성보다 2∼3배 정도 더 많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세계 1위라 평가 받지만 우리나라 노인층의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1위다. 문제는 한국이 비교적 잘 사는 나라라고 하지만 자살률은 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살에 대한 원인이야 많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사회 양극화문제와 노인층의 빈곤률 등 경제적 문제가 주 요인이다.사회학자 E.뒤르켐은 자살을 세 가지 형태로 분류했다.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붕괴적 자살 등이다. 이기적 자살은 개인과 사회와의 결합력이 약해질 때 생긴다. 이타적 자살은 사회적 의무감이 지나치게 높을 때 일어난다. 민족을 위해 논개처럼 생명을 던지는 것을 말한다. 붕괴적 자살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적응못해 일어나는 자살이다.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자살은 또다른 자살을 부르고 자살 자체가 문제의 해결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이 종종 발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이 그러했고 비리와 연관된 정치인과 유명 연예인의 자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극단적 선택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경우는 없다.오히려 가족에게 평생 잊지 못할 크나큰 상처만 안겨주고 사회적으로도 부정적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어느 누구도 자살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동정이나 미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죄악시하고 우리사회가 경계할 일인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