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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악어의 눈물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먹고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에서 ‘악어의 눈물’이란 말이 나왔다. 실제로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슬퍼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눈물샘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아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악어의 눈물은 보통 위정자의 거짓 눈물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최근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한밤중 열병식에서 내보인 눈물을 두고 악어의 눈물에 비유했다. 그가 보인 눈물은 인민을 위한 연민의 정이 아니고 인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일종의 통치수단이란 뜻이다.이해관계에 있을 때 어느 집단보다 가장 독하게 싸우는 정치인도 눈물은 흔하게 보인다. 선거에서 승리를 했을 때 그들이 보이는 눈물은 드라마틱할 정도다. 자신을 지지해준 주민에게 저렇게 감동적으로 고마움을 표시할까 싶다.역사적으로 볼 때 강력한 통치권자도 눈물을 보인 사례는 많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는 눈물이 많기로 잘 알려져 있고,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도 부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강력한 지도자의 눈물은 연약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적인 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들이 흘린 눈물은 백성들에게 각별하게 다가간다.그러나 눈물은 진실할 때 상대를 진정 감동시킬 수 있다. 상대의 눈물이 진실한지 여부는 쉽게 알 수가 없으나 눈물의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마련이다.미국의 저명작가 어빙은 “눈물은 천만단어 보다 힘 있는 웅변”이라 했다. 김정은의 눈물이 인민에게 힘 있는 웅변으로 감동적이게 전달 된 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인지 아닌지 판명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0-13

진실, 성실 그리고 절실

이창훈경북도청본사취재본부장여우가 토끼를 쫓고 있었다. 여우는 토끼보다 힘도 세고 속도도 훨씬 빨랐지만 결국 토끼를 잡지 못했다. 왜일까. 여우는 한끼의 식사를 위해 뛰었지만 토끼는 살기 위해 뛰었기 때문이다. 바로 간절함의 차이다. 대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흔히 세가지 ‘실’ 이 필요하다고 한다. ‘진실’ ‘성실’ 그리고 ‘절실’이다. 주어진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이 벽을 반드시 넘고 가겠다’는 간절함이 클수록 눈앞에 놓인 한계는 작게 보인다.베토벤은 어릴 적부터 천재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스물일곱 무렵 귓병으로 청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깊은 절망 속에 급기야 죽을 결심까지 했다. 위대한 작품은 그때부터 꽃피기 시작한다.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등 대작은 대부분 청력이 무너진 이후 탄생했다. 특히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교향곡 9번 합창은 청력이 완전히 소멸된 후에 나왔다. 음악에 대한 그의 눈물겨운 간절함이 만들어낸 승리로 밖에 볼 수 없다. 간절함이 기적을 만들어 내듯 ‘세상의 모든 일은 간절한 만큼 이루어진다’는 말이다.경북도는 각고의 노력끝에 통합공항 후보지를 결정했고, 더 나아가 대구경북행정통합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중이다. 대구와 경북을 하나로 묶어 메가시티를 만들어 수도권에 대항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통합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은 아직은 이에 무관심하다. 이에 따라 시민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전환시키는 보다 상세한 당위성과 절실함을 만들어내, 직접적으로 시도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뿐만 아니라 행정대통합은 향후 크고 작은 파고를 넘어야 하는 등 난제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실과 성실, 절실’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아직 초반이어서 그런지 진실은 보이나 절실함은 약하게 느껴진다.며칠전에 통합에 대한 첫 의회보고회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때 분위기는 통합에 대한 거시적인 고찰보다는 지사에 대한 의원들의 섭섭함이 묻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사는 300만 도민의 대표 집행기관이지만 도민들을 대표하는 의원들을 먼저 만나 이해를 구해야 함에도 부족했다.그동안 공항문제에 집중했고, 또 코로나로 인해 대외적인 활동에 한계가 있었지만, 행정통합의 로드맵에 앞서 우선 의원들에게 통합의 대의명분을 알리는 등 소통이 아쉬웠다는 생각이다. 중차대한 행정통합을 특정언론을 통해 알게되는 등 그동안 의원들은 상당한 섭섭함을 가졌고 이날 표출됐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의원들도 차제에는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역의 미래비전을 우선 순위에 두고 상생을 위한 큰 그림에는 여야를 비롯 북부권 동부권 등 따로 없이 힘을 합쳐야 한다. 궁극적으로 통합결정은 시도민의 손에 달려있다. 통합신공항 입지결정이 경북도민의 절실함이 뿜어져 나왔기에 성공을 거뒀듯, 행정통합이라는 시도민의 손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진실, 성실, 절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0-10-13

1인 가구의 탄생

가족의 형태를 초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처음으로 배웠다. 그 시절 나는 굉장한 우등생이었다. 난 백 점인데 넌 몇 점이야? 시험지를 앞에 두고 좌절하는 친구를 약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선생님의 질문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대답하는, 그야말로 얄미운 짝꿍의 전형이었다. 아마 사회 교과를 배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대가족과 핵가족의 개념을 설명했다. 가족은 다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대 사회는 급속도로 핵가족화되어 간다고. 멀쩡한 구조가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다며 열변을 토하던 목소리가 생생하다.세상에는 가족 만들기를 포기하고 혼자 사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아주 특수한 형태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 혼자 사는 건 이상한 일이구나.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름지기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배웠던 나는 백 점의 어른, 기성세대가 동그라미를 그려주는 완벽한 미래를 고대했다.굴뚝이 있는 이층집에서 다정한 남편, 올망졸망한 아이들, 애교 많은 강아지와 함께 멋진 가족을 이룰 것이라고 다짐했다. 생을 살아내는 것도 우등생답게 거뜬히 해낼 줄만 알았다.시간은 무럭무럭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나는 선생님이 그렇게나 한심하게 생각하던 혼자 사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난 이모랑 살아.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면 될 것을 “왜?” 하고 질문해서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나의 되물음에 친구는 우물쭈물하다가 몰라, 그냥 나는 그렇게 살아, 하고 말을 맺었다. 그가 내보이던 난처함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알게 된 것은 훗날의 일이다.나는 그가 사회가 인정한 ‘정상 가족’ 안에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바랐다. 악의를 가진 말보다 더 날카로운 무지로 친구에게 상처를 줬다. 그 죄책감은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남아있다.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피를 나눈 사람들, 그러니까 조부모, 부모, 형제, 자매가 함께 사는 것만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이 그랬고 옆집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건너편 집의 누군가는 사돈의 팔촌과, 애인과, 햄스터와,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미국 ABC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모던 패밀리’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다.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 삼 남매를 키우는 부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백인 남자와 재혼한 라틴계 여자, 게이 커플과 그들이 베트남에서 입양한 아이,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묘하게 어우러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어렴풋이 만들어낸다.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에서 등장하는 가족은 사회 규범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이들은 이들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서 안정과 위안을 얻는다. 우리가 그렇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족보’ 따위 없는 이들은 그 무엇보다 가족에게서 요구되는 이해와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현대적 가족이 의미하는 것은 혈연으로 묶인 공동체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홀로 살아가기를 택한 1인 가구는 어떨까. 1인 가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여 작년에는 무려 30.2%에 다다랐다.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내 주위에도 혼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현하는 연예인 역시 그렇지 않은가. 이들은 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지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집을 가꾸며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고 자부한다.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외로움보다는 편안함으로 받아들이며 허심탄회하게 나 자신과 마주 앉아 사색하기도 한다. 이들의 모습에 우리는 모종의 대리 만족을 느낀다.혼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부끄럽던 시대는 지났다. 홀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은 시장에 즐비하게 나와 있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테이블을 배치한 식당은 물론이고 1인 분량의 재료를 소분한 상품을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영화, 독서, 코인 노래방, 컬러링북, 다이어리 꾸미기 등 혼자 노는 방식도 무궁무진해서 집에서 보내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무엇보다 혼자여서 좋은 점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과 강하고 다정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서는 1인 가구에 대한 무례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는 ‘노처녀’ 혹은 ‘노총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말인지에 관해 잘 알고 있다. 마치 어떤 하자가 있기 때문에 가족 제도에 편입하지 못했으며 출산과 같은 복잡한 일은 피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식이었다.물론 아직까지 이런 교묘한 시선은 남아 있어서 명절과 같이 친인척들이 모이는 날이면 “그래서 너는 결혼 언제 한다고?”와 같은 구시대적 질문을 들어야만 한다. 혼자 살 거라는 대찬 포부를 밝히면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얼굴로 되묻는다. 사람이 어떻게 혼자 살 수가 있어?한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주요한 특징처럼 보이지만, 이는 인간성이라기보단 동물성에 가깝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얼룩말이나 우리나라의 겨울 철새는 모두 무리를 이뤄 사는 동물이다. 이들은 다양한 이익을 얻기 위해 무리를 형성한다. 포식자의 공격을 빨리 알아차리고 먹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안정적으로 종족 번식을 할 수 있다.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이유, 생존을 위함이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다. 이것이 여타의 동물과 다른 지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무리 생활을 넘어 한 차원 높은 형태인 가족을 형성한다. 가족 공동체는 사회로 국가로 뻗어 나간다. 언어와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간다. 토론하고 설득하고 이해하며 삶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건 인간의 권리 중 하나다.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1인 가구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비자발적으로 떠밀린 경우도 있다. 사별로 혼자 된 사람들이나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노인 계층이 그렇다. 또한 제도 속에 편입되고 싶지만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는, 이를테면 동성 부부의 경우는 1인 가구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성 부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지만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성 커플이지만 결혼이라는 사회적 규약을 거부하고 동거 형태를 유지하는 이들 역시 1인 가구에 포함된다. 요즘에는 하우스 메이트를 구해 함께 사는 방식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공간을 쉐어하는 목적으로 만나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경제적 절약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이나 반려 식물과 함께하는 삶도 있다.인생은 정답이 있는 시험지가 아니다. 선입견에 갇혀 타인의 삶에 빗금을 긋는 과오를 저질러선 안 된다. 또한 비자발적으로 1인 가구로 편입된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가족의 형태와 그를 뒷받침하는 역할에 관해 골몰해야 할 때다.문은강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은 현대적 가족의 의미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드러냄으로써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주)티캐스트

2020-10-13

양파와 단호박

양파를 넣은 단호박 수프.깨끗하게 껍질을 벗겨 씻어 놓은 양파는 말갛게 투명한 우윳빛을 드러내듯, 빨리 요리에 써 달라고 단단하게 주먹 쥐며 아우성치는 듯이 느껴진다. 햇살을 받으며 스테인 채반에 얹혀 있는 양파는 보기만 해도 요리 본능을 자극한다. 양파의 장점은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고기 요리나 야채 볶음이나 생선조림 그 어디에 넣어도 아작아작한 식감과 달큼함이 때론 요리의 주된 식재료보다 더 맛있게 느껴질 때도 있다.단호박 수프를 좋아하는 나는 양파와 단호박으로 수프를 자주 해 먹는다. 초록색의 단단한 겉껍질 속에 숨은 속살을 웬만해선 드러내지 않는 단호박은, 고를 때부터 맛있는 걸 선택했길 간절히 바라며 신중하게 장바구니에 담는다. 집에서 식도로 단호박을 반으로 갈랐을 때 진한 노랑을 드러내면 일단 안심이다. 먼저 채 썬 양파를 약불에 올린 냄비에 버터와 함께 오랫동안 양파의 단맛이 우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볶아준다. 이 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수프에서 양파의 매운맛에 입안이 공격당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껍질을 제거하고 썰어 둔 단호박도 넣고 살짝 볶아둔 뒤 물을 넣고 끓인다. 단호박이 잘 익었으면 한 김 식힌 후 믹서에 갈고, 다시 한번 우유나 생크림으로 농도를 맞춘 후 간을 하고 흰 후추를 톡톡 넣어주면 색상도 고운 단호박 수프는 완성이다. 오로지 양파와 단호박이 열 일 한 음식이다.요리를 하면서 어느 요리에나 잘 스며드는 양파 같은 사람이고 싶다. 또 양파를 잘 품으면서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는 단호박을 닮고 싶기도 하다./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0-12

인연

가을에 접어들면서 일교차가 커지고 있다. 추석이 지나면서 낮과 밤의 일교차가 10℃ 이상으로 커지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다. 진돗개의 공격을 피해 라일락 나무 옆 담장 위에서 먹고 자던 고양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가지러 가려고 현관문을 열면 늘 먼저 야옹 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발레리나처럼 몸을 늘려 스트레칭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고양이는 7년 전 어미젖을 덜 뗀 듯 눈매가 희미하고 털이 보송송한 모습으로 우리 집과 인연을 맺었다. 사람들 왕래가 뜸한 아파트 뒤쪽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폼이 위태롭게 보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져온 우유를 주자 그 시간이면 나타나 주는 우유를 깨끗이 핥아 먹었다. 현관 앞에 집을 만들어 주고 사료를 담아 주었더니 애초부터 제 보금자리 인양 눌러 살았다. 아이들 품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고양이는 빨래를 너는 내 다리에 감기고 담장 너머 텃밭까지 졸졸 따라다녔다.어느 날 빨래를 걷는 남편의 다리에 감겼다가 그만, 밟히고 말았다. 그 후유증으로 사료를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입자가 작은 사료로 바꿔주고 고양이용 캔을 사서 사료에 버무려 주었더니 곧잘 먹었다. 사료 냄새를 맡고 도둑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사료를 주고 돌아서기 무섭게 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학교 갈 준비로 바쁜 아이들을 불러 세워 고양이가 사료를 다 먹을 때까지 교대로 보초를 서게 했다. 소유하는 것에는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요일을 정해 밥 당번을 시켰다. 그렇게 한 가족처럼 산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집을 떠났다. 성장한 아이는 부모를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지만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무심코 고양이가 머물던 담장 위로 눈길이 간다. 아침이면 야옹 하고 인사를 건네던 울음소리가 그립다./김지연(경주시 마동)

2020-10-12

농장 가는 길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기 위해서 취하는 일종의 자위 수단이다. 대부분의 차량은 서행하며 조심을 하나 일부는 출근길이 바빠서도 그렇겠으나 막무가내로 달려들며 심한 경우 손이나 옷이 스치게 되는 경우까지 있어 호미를 들되 도로 쪽으로 향한 손에 적당하게 벌려 들고 흔들며 촌놈 행색으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달려들면 제 차에 흠집이 생길 것이므로 모두 조심하나 가끔 나팔을 울리며 조바심을 치는 경우도 있으나 깡그리 무시하고 그대로 걸어간다.다리 끝부분에는 좌우로 밭이 있다. 왼편에는 만해 형님 밭이고, 오른편에는 이화씨의 농장이다. 제멋에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마을에는 잘 나고 똑똑하신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내가 존경하던 분들은 만해 형님과 우리 부부가 천사라고 부르는 이화씨이었는데 불행하게도 한 분이 먼저 떠나시고 이제 이화씨만 남았다. 재작년에 초보 농군인 우리는 마늘 두 접을 심어 종자보다도 못한 수확을 한 적도 있는데 이화씨는 반 접을 심어 두접반을 수확한다. 항상 필요한 양보다 많이 심고 거두어 이웃들과 나눈다. 우리더러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대로 뽑아 먹으란다.나는 농장이라고 뻥을 치나 실은 하천 부지를 개간한 국가의 땅이다. 처음 강둑에 매실나무를 심을 때만 해도 어느 천 년에 효도를 보겠느냐고 하시던 마을 분들이 우리가 매실을 수확하는 것을 보시곤 묘목들을 심으셨다. 농장 둑에는 왕보리수, 감, 대추가 달린 나무가 보이고. 무성한 오가피나무에는 산비둘기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부화하여 새끼를 데리고 떠난 빈 둥지가 숨어있다. 농장에는 봄에서 가을까지 열 가지도 넘는 야채며 채소들이 자란다. 매일 아침이나 한낮이나 저녁에는 한두 번쯤은 들려 살펴보고 만져보고 대화한다. 아마도 나무며 채소들은 나의 발소리를 기억할 것이고 멀리서 내가 나타나면 주인님 오신다고 영차영차 할 것 같다./류대열(경주시 외동읍)

2020-10-12

책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당신은 지금 이탈로 칼비노의 새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를 읽을 참이다.”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우리가 책을 읽고 있다 보면, 불현듯 책 속에 있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 작가는 언제나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서 작가의 말건넴이란 이런 소설가의 창작이나 독서의 몰입에 대한 비유가 아니다. 칼비노는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실제로 말을 걸어온다.이탈리아의 환상문학 작가인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소설의 목소리나 서술의 형식에 있어서 지금까지 존재했던 소설 작품들 중 가장 독특하다고 해도 좋을 작품 중 하나이다. 서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많은 이론가들 역시 특히 독자에게 전하는 작가의 목소리라는 측면에서 이 소설을 특별한 사례로 손꼽고 있기도 하다.이 소설은 철도역에서 시작한다. 여느 작가가 그렇듯 칼비노도 어느 철도역에나 있을 법한 풍경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기관차에서 나오는 증기 구름, 그리고 냄새, 낡은 기차의 뿌연 유리창과 멀어져가는 기적 소리들이 이 소설의 초반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당연히 그 배경 속으로 역시 여느 소설이 그러하듯이 아마도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사람이 카페로 들어온다. 역 안의 풍경과 시골 역 한 켠에 있는 카페에 지금 막 들어선 남자를 묘사하는 시선은 작가의 그것이다. 그러다가 소설 속 목소리는 남자의 것으로 바뀐다. “나는 카페와 전화 부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남자다” 그러면서 작가는 ‘당신’이라고 불리우는 독자를 소설 속에 초대한다. “그 남자는 ‘나’라고 불리며 당신은 이 역이 ‘역’이라고 불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듯 그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이처럼 이 소설에는 ‘작가’와 ‘나’와 ‘당신’이 공존한다. ‘작가’는 한편으로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가 하고 있는 행동들 속에 담긴 심리를 이해하면서 그것들을 소설 속에 기록해둔다. 또 독자인 ‘당신’이 갖고 있는 마음속 상태를 예민하게 짐작하면서 작가의 마음속, 그리고 독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소설’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다룬다. ‘메타픽션’이라는 형식으로 작가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목소리가 소설이 되어가는 양상을 다뤘던 경우는 적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 소설은 독자의 자리를 소설의 내부에 만들어 두고 그 독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설이라는 현상에 참여하도록 한다.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인 당신은 이 책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를 30페이지 넘게 읽고 있다가, 제본의 실수로 같은 페이지가 중복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당신이 서점에 항의를 하러 가보니 서점 주인은 제본소의 실수로 책의 속지가 타지오 바자크발이라는 폴란드 작가의 책과 뒤섞여 버렸다고 한다. 당신은 서점에서 만난 다른 여성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우연히 발견한 이 바자크발이라는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하고, 그 사이에 책의 중단과 그 책에서 연결되어 파생된 다양한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책의 또 다른 독자인 루드밀라와 책이 얽혀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경험한다. 독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바자크발이나 칼비노의 완결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이든 읽어나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삶이라는 것이다.소설의 마지막에 당신은 루드밀라와 결혼하여, 다시 책을 읽는다. 루드밀라가 불을 끄고 그만 자라고 말하자, 당신은 “조금만 더 보고. 이탈로 칼비노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인데 거의 다 읽었어” 라고 말하며, 소설은 끝난다.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인가. 아니면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당신의 삶 자체인가. 이 소설은 이렇게 질문한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인가? 아니면 당신의 삶 자체인가?/홍익대 교수

2020-10-12

다시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다… 문경 심원사(深源寺)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 828m의 도장산 깊숙한 곳에 심원사가 있다. 쌍용구곡의 비경을 감상하며 절을 찾아 가는 길은 초입부터 걸음이 설렌다. 계곡 옆 작은 주차장에 두어 대의 차가 주차돼 있지만 산길을 한적하다. 발밑에서 돌멩이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가빠지는 나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온다.심원사는 직지사 말사로 태종 무열왕 7년(660년) 원효 대사가 창건하여 창건 당시에는 도장암(道藏庵)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뒤 이 절의 연일이 유정을 도와 일본에 가서 포로들을 데려오는 등의 공훈을 세워 선조 38년 나라로부터 부근 십 리 땅을 하사받았다. 영조 5년 낙빈대사가 옛 절터에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현재의 심원사로 고쳐 부른다. 1958년 건물이 전소되어 1964년 법당과 요사채를 세워 오늘에 이르지만 예전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으며 특별한 문화재도 전하지 않는다.돌길에 익숙해져 갈 때쯤 서서히 숲의 속삭임이 들린다. 계곡 물소리도 들린다. 좁은 산길은 가을 공기로 가득하다. 발품을 팔지 않으면 당도할 수 없는, 오염되지 않은 절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즐겁다. 쉽게 얻은 것일수록 쉽게 잊혀지게 마련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산사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미세한 숲의 소곤거림에 내 귀는 훨씬 예민해진다. 작은 폭포와 맑은 물,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바람, 숲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작은 움직임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경이롭다. 그토록 반짝이던 나뭇잎은 어느 새 윤기를 잃고 까칠하다. 머지않아 이 계절도 눈 깜짝할 사이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성급히 돌아서는 계절의 뒷목덜미를 바라보며 나는 진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으리.저만큼 보이는 산문 앞에서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낮고 겸손해서 오히려 높아 보이는 문, 이토록 아름다운 일주문은 본 적이 없다. 가벼운 양철지붕과 작고 소박한 현판, 무명옷 두르고 사립문을 서성이던 잊혀진 애환과 정서가 녹아 흐르는, 저문 기억들이 말없이 서 있다. 세파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온 산문이 뿌듯하도록 자랑스럽다.작은 산문을 경계로 속세로 이어져 있던 길은 더 이상 나를 따르지 못한다. 적송 한 그루와 오동나무가 사천왕을 대신하고 주목이 울타리처럼 자라는 길을 따라 경내로 향한다. 이 길 위에서는 누구나 나무향이 날 것 같다. 살이 오른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는 조그만 철재다리, 그 극락교 너머에 심원사가 있다.숲이 울리도록 진돗개가 짖어대며 나온다. 녀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대웅전으로 향한다. 크고 잘 생긴 녀석의 눈에 나는 큰 불청객은 아니었나보다. 이내 경계심을 푼다. 꼬리를 흔들며 법당 문 앞을 지키는 영리한 녀석에게 나는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신 수미단과 후불탱화, 어디에도 화려함을 탐내지 않았다. 법당 안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천장에 달린 소원등도 많지 않다. 소박함이 나를 낮고 경건하게 만든다. 하지만 허리통증이 심해 앓는 소리를 내며 겨우 삼배를 마칠 수밖에 없다.풍족해 보이지 않지만 결핍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맑은 기운이 일렁이는 심원사의 가을은 온전한 소박미로 눈부시다. 가지런한 장독대에서는 여성스러운 정갈함이 배어 있다. 비구니 스님이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오실 것 같다. 요사채 뒤편 허름한 건물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주인이 있음을 알린다.잘 자란 산수국과 돌배나무가 대웅전을 지키고, 흔하디흔한 풀꽃들이 이곳에서는 더 사랑스럽다. 요사채와 삼성각, 존재감을 드러내는 풀과 나무들의 눈빛을 읽을 수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고즈넉한 평화가 머문다. 고향집에 온 듯 꾸밈없는 따스함이 곳곳에서 피어난다.대웅전 옆 빈터에는 빛바랜 연등 하나 모과나무 가지에 걸려 홀로 쓸쓸하다. 그 아래 시멘트 벽돌 위에 나무판을 얹어 만든 투박한 벤치가 허전하도록 시리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모과나무 이파리가 툭툭 어깨를 치며 무뎌진 감성을 깨워줄 것만 같다. 서리 오기 전에 모과를 거두는 밀짚모자 쓴 스님이나 시집을 읽으며 고독한 영혼을 달랠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풍경조차 비어 있다.조낭희 수필가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모과나무는 빈 몸으로 서기 위해 묵상 중이다. 떨어진 나뭇잎을 밟는데 풍경소리가 대신 울어준다. 이곳에는 외로운 것이 없다. 이 계절이 서늘하도록 아름다운 건 비움의 미학 때문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나도 몇 번이나 미니멀라이프를 꿈꾸었다. 하지만 비워진 공간은 또 다시 물건들에 점령당하곤 했다. 영혼을 방치한 채 소유에 지쳐가는 삶, 비우지 않고는 어떤 것도 품을 수 없다.심원사의 묵언 같은 말씀 한 자락 품고 나오는데 운치 있는 별채가 보인다. ‘금장암’이란 현판을 내건 개집을 보고 뒤늦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금장이를 향한 스님의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는, 숨어 살 듯 고요함을 사랑하는 심원사는 독백 같은 절이다.산문을 나서는 내게 가을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대, 이 가을엔 시집 한 권 들고 여행을 떠나라. 아름다운 계절일수록 걸음이 빠른 법이니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서둘러야 하리.

2020-10-12

한국정치판의 조슬(蚤蝨)들

강희룡 서예가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의 사상을 집대성한 철학소설이 바로 ‘의산문답(醫山問答)’이다. 이 책은 중국 동북지방의 명산 의무려산(6BC9巫閭山)을 배경으로 벌이는 문답 형식의 글이다. 이 책 내용에 지구 자전설을 흥미롭게 풀어쓴 책의 뒷부분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무릇 지구는 우주 가운데 살아있는 것이다. 흙은 그 피부와 살이고, 물은 그 정액과 피다. …. 초목은 지구의 머리카락이고 사람과 짐승은 지구의 벼룩(蚤)과 이(蝨)다’. 벼룩이나 이는 사람과 짐승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사는 기생충이다. 자연 속에서 생성되고 움직이며 펼쳐있는 모든 삼라만상이 다 지구를 살리는 역할을 하나 유독 사람과 짐승은 지구에 해가 되는 기생충 존재로 본 것이다.벼룩은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작은 것의 대명사로 불리고 민첩성이 있기에 잡기가 쉽지 않다. 이슬(蝨)자는 ‘이’를 말하지만 다르게 ‘관(官)의 폐해’를 일컫는 단어이기도 하다. 인간사회에서 소수라도 벼룩이나 이처럼 유해한 기생충 유형의 인간이 정치권이나 고위공직자에 섞여있으면 그 사회는 곧 공정과 정의가 사라지게 되며, 반칙과 불공정이 그럴듯한 궤변으로 정의로 둔갑한 채 활개를 치게 된다. 결국 사회는 병들게 되고 망국을 재촉하게 되며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온다.지난달 23일 우원식, 윤미향을 비롯한 의원 20여명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을 국회에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민주유공자와 그 유가족들과 자녀들에게 입시혜택과 학비지원, 취업혜택, 의료비 감면, 양육, 주택, 금융권의 장기 저리대부 등을 제공한다는 골자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과 여당에는 자칭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자녀가 대학입학과 학비면제, 취업은 물론 금융권 등에서도 혜택을 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선정된 민주화 유공자들에 대해선 이미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져 왔으며 여권 고위층에도 억대의 보상금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민주주의와 사회공정을 외치던 운동권 여당에서 자신들이 포함된 셀프특권법안을 만들려는 것이다.민주주의에서는 공정한 절차와 과정이 없는 역차별 제도는 헌법이 금지하고 있기에 이 법안은 80년대 운동권이 스스로 사회적 특수계급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직까지도 명확한 유공자선정 기준과 명단을 국민 앞에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겉으로 민주화유공자 몇 명의 이름을 세우고 뒤로는 자신들이 이 법안에 편승하여 가족과 함께 대물림 혜택을 받으려는 꼼수인 것이다.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던 심장이 권력의 단물에 녹아 과거의 가치는 소멸된 민주화의 낡은 세력으로 남아 영욕에 찬 기득권집단이 되어 이 사회에 벼룩이나 이 같은 존재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화운동은 긴 세월 모든 시민들이 함께 투쟁하여 얻은 결과이기에 지금의 민주주의 한국에서 명예로 이미 보상 받지 않았는가!

2020-10-12

아무것도 안하기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올해의 추석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니니 평일이나 휴일이나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휴일에는 쉬는 편이다.그동안은 깜냥에 비해 많은 일을 했던지, 아니면 이제 체력이 좀 떨어질 나이가 되었는지 휴식도 일삼아 해주어야 뒤탈이 없다.이번 추석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했다. 넋 놓고 TV를 보다가 졸리면 잠자고, 잠자다 일어나면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잡초를 뽑기도 하고, 자잘한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공활한 가을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또 있다. 띠 동갑인 막내 동생이 와서 2박3일 동안 두런두런 옛날이야기도 했고, 마을길을 걸으며 들판의 코스모스도 함께 보았다. 막내는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나를 오빠이자 아버지처럼 따랐는데, 몇 해 전 담낭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 생사를 넘나드는 모습을 손수무책, 그냥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기억에 더욱 마음이 애틋하다. 막내는 같이 놀자고 보채는 두 마리 키 큰 멍멍이들과 공 던지기 놀이도 했고, 나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막내는 나와 같은 개띠지만 덩치 큰 개 두 마리를 무서워하였으나 그들의 줄기찬 꼬리질에 넘어가서 ‘개 고모’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서 도착 안부도 개안부가 먼저였다. 개보러 자주오라니 대답이 걸작이다. “개 보러 갔다가 오빠도 잠깐 보고.”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안한 게 아니라 그동안 허겁지겁 정신없이 사느라 못하던 것들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지친 심신의 휴식을 위하여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이라야 뭐 대단한 건 아니고, 하루에 10분 남짓 시간동안 혜민 스님의 명상안내에 따라 가는 것이 고작이다.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명상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함께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것이며, 편안하게 숨 쉬며 존재를 자각하는 일이다.18일차 명상의 주제가 ‘아무것도 안하기’였다. 혜민 스님은 한결같은 편안한 목소리로 오늘은 특별한 일 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어가는 날이라며 프랑스의 플럼빌리지 얘기를 하셨다. 플럼빌리지는 명상을 오랫동안 가르친 틱낫한 스님이 만든 수행공동체로, 이곳에 가면 나이나 성별, 종교, 인종 등을 초월하여 다 같이 모여 앉아 명상수행을 한다.여기서 스님이 인상 깊었던 것은, 스케줄에 맞추어 열심히 명상 수행을 하다가 일주일에 하루는 ‘레이지 데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게으른 날’이다. 그날은 정해진 스케줄 없이 쉬던지 잠을 더 자고 싶으면 자도 되는 날이다. 틱낫한 스님은 내 몸과 마음에 좋은 명상도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야지 너무 열심히 하려고만 하면 중간에 지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게으름의 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정말로 현명한 생각이다.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독으로 변하는 법이니까.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게으른 시간을 가져볼 일이다. 편안하게 숨 쉬고, 편안하게 내쉬고….

2020-10-12

역지사지는 불가능하지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오래전 이야기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게 됐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면 서로 미소로 인사하던 초등학교 동창이 언제부터인지 내가 인사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 후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은, 자기는 열심히 웃어줬는데, 내가 외면해서 자기도 인사를 안 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엄청 과장되게 인사하게 됐다. 이런 에피소드는 사람마다 차고 넘칠 것이다. 내 딴에는 좋은 의도로 한 행동도 엉뚱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잘못 이해하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이런 어긋남은 아무리 전문적인 수련을 한 상담 전문가도 예외는 아니다.실존심리치료 전문가 어빈 얄롬은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라는 책에서 내담자 마리를 치료한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고백하고 있다. 마리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우울증에 걸려 얄롬을 찾아왔는데 3년이 넘는 치료에도 큰 진전이 없었다. 결국 자문 치료자의 최면 치료 도움을 받기로 하고 마리가 최면 치료를 받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았다. 마리는 최면에 들어있는 동안 미소를 두 번 지었는데, 하나는 자문 치료자가 마리에게 그녀의 턱 통증에 대해 구강외과 의사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도움을 받으라고 권했을 때이다. 두 번째는 마리에게 금연을 권하면서 개를 키운다고 상상하라고 하면서 그 개에게 독이 든 음식을 주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몸도 돌보라고 했을 때이다.얄롬은 마리와 구강외과 의사의 불편한 관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마리가 이전에 애완견을 안락사시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의 웃음은 자문 치료자의 조언이 마리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의미였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마리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자문 치료자는 마리가 자신의 조언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면에서 깨어난 후 마리의 대답은 얄롬의 확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처음 미소는 구강외과 의사와의 불편한 관계를 그가 몰랐으면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고, 두 번째 미소는, 얄롬이 자기 개를 안락사시키라고 했기 때문에 얄롬이 불편할까 봐 개 이야기는 그만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결국 두 심리치료 전문가는 당사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미소의 의미를 해석한 셈이다. 그러니 플로베르가 키우던 앵무새까지 조사해도 플로베르라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줄리언 반스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네가 나라면 웃을 수 있느냐며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호소하기 위해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상대방에게 내 사정을 다 보여주어도 완전한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모든 교류가 무의미하거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만 알아도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를 걱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성장할 수 있다.

2020-10-12

신종 보이스피싱 ‘전화 가로채기’

‘전화 가로채기’는 전화를 가로채 받을 수 있는 앱을 피해자 스마트폰에 깔도록 유인한 뒤 돈을 갈취하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일컫는다. 전화 가로채기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 스마트폰에 악성 앱을 설치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후 범죄 조직은 금융사나 경찰 등을 사칭해 금융사기에 연루됐으니 확인 바란다는 식의 연락을 한 뒤, 악성 앱을 통해 피해자 스마트폰을 감시한다.피해자가 금융사 대표번호, 112 등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려 하면 사기꾼이 전화를 가로채 자신들에게 연결해 안심시키며 원하는 계좌로 입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또 보이스피싱 집단이 피해자가 평소 거래를 해 오던 은행 이름으로 기존 빚을 갚으면 신용도가 높아져 낮은 금리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등 피해자가 관심을 보일만한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 이 문자에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면, 이들은 보안을 위해 문자에 링크된 애플리케이션(앱)을 스마트폰에 내려받도록 유도한다.피해자가 앱을 설치한 후 평소 거래하던 은행, 카드사 등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집단이 피해자가 설치한 앱을 통해 전화를 가로채 마치 은행원 등 관련 직원인 것처럼 상담을 해 돈을 갈취하는 방식이다.이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검찰, 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을 사칭하던 보이스피싱 방법에서 한걸음 더 진화한 신종 보이스피싱 기법이다.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공식 앱 장터 외에서는 애플리케이션 설치하지 않기 △스미싱 차단을 위한 보안 앱 및 모바일 백신 설치하기 △문자 메시지에 포함된 URL 클릭 하지않기 등이 필수다. 눈 뜬 채 코 베이고 싶지않다면 모두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12

‘차벽(車壁)’ 너머 ‘맹탕’

안재휘 논설위원광화문 일대에 쳐진 물 샐 틈 없는 차벽(車壁) 설치물 장관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경찰은 세계적인 설치미술 그룹이 됐다’는 우스개가 생각났다. 우리 경찰은 현존하는 그 어떤 예술가도 할 수 없는 ‘재인 산성’이라는 제목의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이명박 정권 때의 ‘명박 산성’ 실험과 박근혜 정권의 ‘근혜 산성’이라는 시행착오를 맹비난하면서 배워 완성한 새로운 버전의 산성이니 그 완벽성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을까.광화문 ‘재인 산성’을 외신들은 어떻게 볼까, 세계인들은 서울의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가장 훌륭한 장비가 마스크이고 그 다음으로 손 소독제, 에틸알코올 정도라는 건 지구촌의 상식이다. 거리 두기도 한 방안일 수는 있을 것인데, 기발한 수단인 ‘산성’이 신종 방역장치로 등장한 셈이다.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려는 모든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수백 대의 경찰 버스로 광장을 틀어막고, 차량 시위마저 금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원지·관광지는 내버려 두고, 굳이 광장만 다 틀어막고 행인들 모두를 검문 검색하는 일을 ‘방역’이라고 우기는 건 야릇한 일이 아닐 수 없다.수십 수백 대 차량이 사람을 가득 채우고 교통신호를 기다리거나 주차장에 몰리는 건 괜찮고, 깃발이나 현수막을 단 차량엔 단 1명만 타야 한단다. 그것도 일행이 9대를 넘기면 안 된다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또 있을까. 그야말로 코로나19는 작금 문재인 정부의 정권 안보를 담당하는 으뜸 방패다.정치 전략적인 차원에서 보면, 코로나19를 무기로 써먹는 문재인 정권의 용의주도함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것도 실력’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야당은 도무지 마땅한 대안세력으로서의 미더움을 장만해 내놓지 못하고 있다. 치열한 투쟁도 안 보이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도 흐릿하다. 뭘 어쩌자는 심산인지 도통 모르겠다.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지금 이 정국 속에서 야당이 더불어민주당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과거 ‘명박 산성’과 ‘근혜 산성’ 때 했던 그들의 행태를 돌이켜보면 상상은 어렵지 않다. 방역이라는 변수가 다른 요소이긴 해도, 아마도 광화문에 둘러쳐진 경찰 버스 몇 대쯤은 부서지거나 불이 붙지 않았을까. 상황을 꿰뚫는 기발한 시위수단이 고안됐을 수도 있다.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힘은 예상대로 전혀 맥을 못 춘다.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인 국회 안에서 절대다수인 여당은 불리한 증인신청을 모조리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략에 제1야당은 고작 ‘야당 간사직 사퇴’ 같은 영양가 없는 저항 정도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쳐진 ‘다수 횡포의 차벽’에 막힌 견제세력은 절멸 상태다. 완고한 ‘차벽’ 너머의 참담한 ‘맹탕’ 정치에 한숨이 절로 난다. 불임 정당의 초라한 몰골인 국민의힘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흔들리는 국운을 바로잡을 지혜, 열정이 조금이라도 있긴 한 건가.

2020-10-11

부부 일심동체

남편을 위해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아내를 열녀(烈女)라 불렀다. 옛날에는 열녀를 기리는 비(碑)를 세워 그녀의 공덕을 찬양하고 널리 알렸다.유교에서 중요시하는 덕목으로 효(孝)와 열(烈)이 있다. 효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이다.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개념이다. 여성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봉건적 발상에서 비롯된 잘못된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조선시대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재혼을 할 수 없도록 아예 법제화했다. 법으로 재혼을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개가(改嫁) 자체가 죄악시 되는 사회였다. 지금 생각하면 남존여비 사상의 병폐가 얼마나 극심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요즘 젊은이들은 절반 정도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성인의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학생보다 여학생일수록 더 그렇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그들이 바라보는 부부란 서로의 인격이 존중받고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동반자적 관계이지 어느 한쪽 우월적 개념은 아니다. 부부가 뜻이 잘 맞아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된다면 좋지만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일심동체를 위해 서로 노력하자는 데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요즘 젊은이의 사고다.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이 코로나 와중에 요트 구입 차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응답이 절반 정도 나왔다. 다소 의외지만 법률적 문제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개념이 존중돼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강 장관은 “남편의 해외여행을 억지로 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이 더 이상 우리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된듯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0-11

조화로운 삶의 기술

김현욱시인세계적인 위빠사나 명상 지도자, 고엔카는 조화로운 삶의 기술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스로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고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 평화와 조화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이며, 사심 없는 사랑, 연민,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함, 평정심으로 가득 찬 완전히 순수한 마음이라고 하는 최상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면서 나날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조화로운 삶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부조화의 원인을 발견해야하는데 원인은 항상 각자의 내면에 있다.위빠사나는 긴장과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뿌리 깊은 집착이 있는 곳까지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구조를 탐구하도록 도와준다. 자신의 실제를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신과 육체의 모든 본질을 경험하고 나서야 정신과 물질 너머에 있는 궁극을 알 수 있다.그 시작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왜 호흡일까? 낱말, 주문, 형상, 특정 상황과 같은 대상은 더 강한 상상과 환상을 요구한다. 어떤 단체에서는 부수고 죽이는 끔찍한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데 이는 결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고엔카는, “호흡은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기 때문에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수행의 길에서 모든 발걸음은 종파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합니다. 호흡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호흡은 알고 있는 것에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건너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호흡은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으며, 의도적일 수도 있고 자동적일 수도 있는 하나의 육체적 기능이기 때문입니다.”호흡은 본질적으로 마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걱정과 근심, 흥분과 분노로 가득 찬 마음 상태가 되면 호흡은 거칠고 빨라진다. 번뇌가 사라지만 호흡은 다시 차분해진다. 이처럼 호흡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관찰, 탐구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대상이다.알다시피 마음은 하나의 대상에 머물지 못하고 항상 다른 대상으로 떠돌아다닌다. 마치 원숭이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듯이 말이다. 마음은 그 어떤 대상에도 머물지 못한다. 끊임없이 배회한다. 문제는 항상 마음이 과거 아니면 미래에서 헤맨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마음의 습성 때문에 우리는 후회와 불안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수행의 첫 걸음은 지금 이 순간 코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통해 현재에 마음을 고정할 때 시작된다. 지금, 여기에 마음을 머물게 하는 것이다.마음은 늘 무지, 갈망, 혐오로 덮여 있다. 환상, 망상, 갈망, 집착, 혐오, 미움으로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고통은 시작된다. 이러한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은 호흡을 관찰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호흡에 마음을 완전히 집중한 순간, 순간들이 길어지면 마음의 습성을 바꿀 수 있다. 코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 현재를 알아차리면서 반응하지 않고 오로지 관찰하는 것으로 마음은 조금씩 깨끗해진다. 조화로운 삶의 기술을 배우는 첫 걸음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2020-10-11

한글은 위대하다

윤영대수필가한글날은 국경일이다. 국경일에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아야 하는데 아파트를 올려다보니 10%도 되지 않는다. 개천절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국경일로서 공휴일을 보내며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겨 본다.한글날은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하여 제1회 ‘가갸날’로 기념식을 가졌었고 2년 후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을 ‘한글’이라고 부르면서 ‘한글날’이 되었다. 그 후 1946년에 10월 9일로 정해졌고 1970년 대통령령으로 공휴일이 되었었는데 1990년 ‘노는 날이 많다’는 기업들의 볼멘소리에 국군의 날과 함께 제외됐다가 2006년부터 국경일로 격상되었으나 쉬지는 않았다. 그리고 2013년 법정 공휴일로 정해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그러니 그냥 공휴일로 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는 고유한 문자인 한글을 가진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으로 이날을 기념하듯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짧은 글이라도 한번 써 보내면 좋지 않을까.세계에는 3천여 개의 언어가 있고, 문자는 100여 개 정도라고 하지만 우리 한글과 같이 자음과 모음이 있는 알파벳 부류에는 18종류뿐이라 한다. 여기에 한글은 1446년 세종대왕이 반포했다는 역사를 알고 있는 유일한 문자이며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소리 내는 입 모양’을 따른 문자이다.각국의 언어학자들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게 고안된 문자체제’ ‘한글의 탄생은 세계문자사의 기적’ ‘위대한 지적 성취’ 등으로 극찬하고 있다. 펄벅 여사도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단순한 글자이다. 24개의 부호가 조합될 때 인간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한글은 무엇보다 학습의 용이성과 사용능률이 뛰어나서, 특히 요즘과 같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송신하는 자판의 효율성을 보더라도 단연 최고다. 자음 14자, 모음 10자이지만 전화번호판과 같은 10개의 버튼으로도 처리할 수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전 세계의 문자 중에서 눈감고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글자는 한글이 유일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엄지손가락 사용법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어제 유튜브에서 신기한 글을 보았다. 카자흐스탄 동전에 한글이 새겨져 있다는 말에 설마(?) 하며 찾아보았더니 ‘단군전’이란 한글이 새겨진 기념주화였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사용하고 요즘 K-팝, 한국드라마 등으로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어 문화 강국으로의 나아감에 그냥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우리말과 함께 우리 문자 ‘한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큰 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근래 들어 각종 이름의 표기와 우리말에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음도 깨우쳐야 한다.한글은 문자와 소리가 일치하여 컴퓨터의 음성인식률이 높아 IT기술과 융합하는데 아주 유리하다. 쉽고 아름다운 우리 한글을 더욱 연구하여 보다 편리한 문자생활을 이끌어 나가고, 문화 수출의 순풍이 불어오는 세계의 하늘에 태극기를 높이 달자.한글은 위대하다.

2020-10-11

앞으로 지역 유통업계가 나아갈 길

기세를 숙일 줄 모른 무서운 역병, 코로나19가 이제는 한 달도 남지 않은 미국 대통령선거까지 개입할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까지 감염됨에 따라 이후 아주 특별한 사건이 미국 정계를 뒤흔들지 않는 한 바이든 후보 진영이 승리할 것이라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세계 각국의 정치계만이 아니라 산업,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코로나19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있는 지금(with 코로나)까지 일어난 변화는 앞으로(post 코로나)도 계속 이어질 여지는 매우 크다.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며 그 영향은 전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상공인들이 주로 종사하고 있는 소매유통점들은 그 변화의 태풍 한가운데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채 넋을 놓고 있다.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소매유통업계의 처음부터 끝까지 당연시하였던 개념들마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소매유통업이라면 제조업체나 도매상에서 구매한 물품을 자기점포에 진열하면 끝이었다. 소비자들은 직접 가게까지 발품을 팔아 찾아와 진열된 물건을 직접 만져 살펴보거나 입어보고, 신어보며, 때로는 맛보기까지 한 후 그 물건 중에서 선택하여 구매하는 거래만 경험해왔다. 이것이 달라졌다. 소매유통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익숙했던 오프라인구매에서 비대면, 비접촉의 온라인구매로 거래형태가 반강제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전국이든 지역이든 일정 지역 범위에 있는 유통시장의 거래 규모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오프라인 소매유통점 매출은 바닥으로, 온라인 유통점의 매출은 천정으로 향하고 있다. 소매유통점이 가졌던 매출액이 온라인 유통으로 이전되는 거래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유통시장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부진에 빠진 지역 소매유통업계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과연 예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소매유통업계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먼저, 소비자의 거래행태는 종전보다 많이 다양해질 것이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생필품부터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지역 가게, 시장, 마트에서만 구매해왔다. 명품과 같이 해당 지역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아닌 한.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새로운 거래 수단을 학습하였다. 집에서 전화나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택배로 쉽게 배달된다는 신세계를 충분히 맛본 것이다. 택배의 편리함, 굳이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야 하는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집에 앉아 다른 시간을 만들 수 있고 온라인이나 카드로 결제하고 배달되는 간편함을 적어도 6개월 이상 누려왔다. 이들이 새로 익힌 이 소비행위는 특별한 전환점이 생기지 않는 한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 오프라인 소매유통업자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소비자의 진화다.또 하나, 유통시장에서의 권력도 점차 소매유통점(판매자)에서 소비자(구매자)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지역 소매유통점은 일종의 제조업체 판매대리점으로서 그동안 공급자 중심 유통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당 지역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에 철저하게 맞춘 물건들로 채우지 않는 한 게을러진 손님들을 가게로 찾아오게 만들기는 어려워졌다. 예전처럼 있는 것에서 사가라는 판매대리점의 입장을 빨리 버리고, 소비자를 대신해서 물건을 구매하는 가게로 탈바꿈하여야만 생존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끝으로 앞의 두 사실을 생각하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갖춘 혼합형 소매유통점, 그리고 소비자 기호와 선호를 반영한 구매 대행을 위해 빅데이터 분석까지 동원하여 치밀하게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춘 소매유통점을 중심으로 지역 유통업계는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통시장이라고 해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앞으로 소매유통점의 진정한 경쟁자는 주변의 상가나 옆 가게가 아닌 인터넷에 존재하는 온라인 유통점들이다. 소비자의 구매력, 지갑 속에 있는 돈은 무제한이 아니다. 생활에 쓸 수 있거나 사용하는 돈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거래방식에서 어느 한쪽을 이용하면 당연히 다른 거래방식에 이용할 수 있는 자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이 지역 소상공인들 가게가 어려워진 이유다.이처럼 오프라인 소비가 온라인소비로 이동하는 현상은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일본 주요 소매유통업종의 온라인시장은 급성장하였다. 주류 및 음식료품은 8.9%, 가구 및 잡화는 8.5%, 가전 및 컴퓨터기기는 7.5%가 커졌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일본임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성장세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업종들이 모두 오프라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가구 및 잡화, 가전 등은 온라인 유통시장에 30~40%나 이미 진출한 상태였는데도 이러한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일본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소매유통업계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을 것이라 짐작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지금까지 언급한 것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지역 유통업계도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이든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동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지역 소매유통업계가 나아갈 길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첫째, 인구사회의 구조변화를 꼭 생각해야만 한다. 과거 인구가 확장되던 시기에는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소매유통업계가 가져다주는 대로 감사하며 받을 수밖에 없는 공급자 우선 시장이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소비자는 새로운 공급자도 만나보았다. 앞으로 지역 유통업자는 철저하게 지역민 취향을 만족시키는 구매대행자를 자처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둘째, 온라인거래 기반을 마련하기 힘들면 전화로 주문받고 배달해주는 서비스라도 갖추어야만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거래 모두 되는 소매유통점으로 변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역 소비자들이 동네 점포가 변화할 때까지 느긋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셋째, 앞으로 상대할 소비자 고객계층을 최대한 좁혀나가야 한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라는 현상을 뼈에 새겨야만 한다. 지방 도시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금 구도심에 신장개업하고 있는 소매유통점들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인구가 유출되고 있는 20대, 30대 연령층이 선호하는 상품군, 온라인거래로도 구매하고 있는 상품군을 다루는 유통점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온라인거래로도 규격, 크기를 선택하여 충분히 살 수 있는 물품들을 취급하는 대리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사실 지방 도시에서 이와 같은 품목을 취급하는 유통점들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진전되고 있는 지역의 소비시장을 생각하면 불리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신장개업하는 유통점들은 최소한 인구가 늘어나는 60대 이상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이었으면 한다.지역 소상공인들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이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 믿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지금 시대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진화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단지 시기와 속도를 좀 더 일찍 당겼을 뿐임을 명심해야만 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0-11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하는 예천’

김학동 예천군수자동차는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주차장은 부족하다. 주차공간 확충은 군민의 생활불편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라 본다. 이를 해소하고 침체된 지역상권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생활권인접 예천읍 중심가 주변에 20~30대정도 주차가능한 쌈지형 주차장을 만들고 있다.올해 원도심 상설시장과 맛고을길, 예천교육지원청 주변 총 5개소 174면을 조성하는데, 총사업비 85억 원 중 55억 원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국비 16억 원을 확보해 군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주차여건을 개선하고 주차장 주변 맛고을 문화의 거리 및 전통시장 이용객의 접근성도 높여 지역경기 활성화의 해법도 풀어나가고자 한다.일방통행 교통체계는 주차여건을 개선하고 보행환경을 쾌적하게 하면서 침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편리하고 안전한 사람중심의 교통체계로 만들어 이를 통한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예천읍 중심 도로망이 시장로와 효자로인데 서본리 굴머리에서 갈라져서 백전리 한전 앞에서 다시 합류하는데, 이 구조가 일방통행 체제로 바꾸기에 더없이 좋은 구조로 동서 간선가로축 2.8㎞ 전 구간을 일방통행으로 하고 기존 남북방향 간선도로는 현행대로 쌍방향으로 운행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현재 2차로를 1차로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차도는 최소 4m~4.5m로 확보해 차량정차 시 소방차 등 대형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하고 남는 부분에 보행로 폭을 최대 3m까지 확대해 쾌적한 보행 공간을 확보하면서 추가로 총 310여 면의 주차장도 생기게 된다.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최우선방법이 ‘교통 환경개선’으로 공영주차장 조성, 일방통행체계 구축, 전선지중화를 비롯한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훨씬 더 활기찬 모습으로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전세계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사회 전반에 새로운 트렌드를 낳는 신풍속도가 생기고 농업 분야도 소비 위축 등 비대면·비접촉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어 이를 고려한 농산물 판매 활성화 방안이 필요한 실정이다.농축산업 현대화와 구조조정으로 소득향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지역농산물을 이용한 부가가치 창출과 기술혁신으로 농가소득증대 지원책과 유통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농업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중점 과제로 △시설원예 전략품목 현대화 △예천농산물 홍보관 운영 유통 활성화 △친환경 농업 지원 △한우브랜드화 사업 △농산물가공센터 건립 등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어 부자농촌의 모습을 만들어 갈 것이다.예천군은 원도심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고 신도시와 상생 발전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기에 원도심의 기능을 되살리고 지역 내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한 특색있고 경쟁력이 있는 도시로 변모를 위해 도시재생사업에 공모한다.도시재생 활성화계획은 역사·문화 전시관과 도시재생지원센터 설치, 남본시장진입로개설과 이용객 쉼터, 농산물 전시·판매시설을 마련하는 한편 상설시장 인근 공공임대상가와 복합공영주차장 등 지역특화 거점시설을 설치하고 장난감도서관 및 돌봄센터, 문화쉼터 등 부족한 생활SOC 시설을 확충하게 된다.‘스포츠마케팅이 곧 지역경제 활성화의 심장’이라는 각오로 공격적 스포츠마케팅에 행정력을 결집시켜 군민 자긍심 고취와 지역경기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강한 열정을 쏟은 결과 ‘2022년 U-20 아시아 주니어 육상경기선수권대회’ 개최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이 대회는 아시아 45개국이 22개 종목 1천500명이 참가하는 규모로 군 단위 최초로 대회를 개최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며, 예천군 브랜드 가치상승 기회와 스포츠도시 위상 제고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남은기간도 군민들에게 약속한 군민이 행정의 주체라는 ‘섬김 행정’, 소통만이 해법이라는 ‘소통 행정’을 바탕으로 역동적인 군정에 변함없는 관심과 참여를 당부하며 예천군 발전을 위한 도전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2020-10-11

느티나무 가로수 길 끝에

낙동강이 만들어 준 습지는 예로부터 농사지을 넓은 들을 선물했다. 대로를 달려가다 구미 해평면 마을 길로 접어들면 갈냄새 풍기는 들판 사이로 ‘느티나무 숲 가로수 길’이란 이정표가 먼저 우릴 반긴다. 여기서부터 가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하는 듯하다. 길 양옆으로 느티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려 터널을 만들었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니 나무줄기와 줄기 사이로 누런 들판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서 더욱 낭만적인 풍경이 완성되었다. 3km 넘게 가로수가 이어져 있어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은 길이다. 달리던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차창을 내려 심호흡을 하며 깊숙이 가을을 마셔 본다.‘용수골 못’을 지나자 느티나무 사이에 간간이 벚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다 길이 가팔라지며 가로수의 수종이 소나무로 변했다. 창을 활짝 열고 이번엔 솔 향기를 맡으며 구불구불 한참을 더 오르면 길 끝에 냉산(冷山)이 품고 있는 고즈넉한 도리사(桃李寺)가 나타난다.고구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와서 창건한 도리사,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도화상이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겨울인데도 복숭아꽃(桃)과 오얏꽃(李)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고 상서로운 곳이라 생각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근처 도개면 신라불교초전지의 전시관에는 아도화상이 복숭아 꽃그늘 아래에서 참선하는 형상을 재현해 놓았다. 도리사는 법당인 적멸보궁에 불상이 없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구법 중 모셔온 부처님의 사리를 5곳에 나눠 봉안한 곳이 5대 적멸보궁으로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통도사가 있는데 최근에는 대구 용연사, 건봉사, 구미 도리사까지 합쳐서 8대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불교의 성지로 인정되는 곳이다. 법당 뒤로 난 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다.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조성해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린다. 법당에서 10분도 안 되는 곳에 서대라는 전망대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절 주변 소나무 숲에 벤치와 평상이 셀 수 없을 만치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이 법당이 아니라 소나무 아래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마음을 풀어놓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휴식처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구포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장려하고 도리사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수려하다.”라고 했다. 서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물이 수려하게 흐르고 구미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이곳에 올라 아도화상이 서쪽 황악산을 손으로 바로 가리켰다는 곳에 절을 세우면 불교가 흥할 것이라고 말한 곳이 ‘직지사’가 되었다. 12시 방향에 금오산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가산산성, 팔공산 자락이 있다.김순희수필가극락전 앞에 특이한 모양의 탑이 우리를 돌계단으로 안내한다. 내려가니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좌선대가 보였다. 아도화상이 널따란 바위에 앉은 모습을 상상하려는데 할머니가 손녀의 손을 잡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놀고 있었다. 그걸 웃으며 지켜보는 내외를 보며, 스님이 거기에 올라 참선을 한 곳인데 저렇게 함부로 오르내려도 되나 싶었다. 아이들이 그러하더라도 타일러야 할 것을 함께 웃고 즐기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았다. 문화재를 대하는 마음 자세가 아쉽다.신라 최초의 가람이자 구미 시티투어버스 코스로 지정된 도리사. 일교차가 심한 요즘에는 산자락 밑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니 가을 가람이 중생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늦가을에 향 축제를 연다는 도리사, 아도화상이 큰 병이 든 성국공주를 위해 기도를 올려 낫게 한 후로 집안에 환자가 있거든 아도화상에게 향을 피우면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향이 해평면 들에 퍼진 것인지 절의 일주문이 느티나무 숲 가로수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신라 때부터 지금껏 한자리를 지켜온 도리사의 품이 온 들판을 감싸고도 남는 크기였다. 아기단풍의 색이 짙어질 무렵 한 번 더 찾아가 오랜 세월을 간직한 그 향을 음미해 보아야겠다.

2020-10-11

조혼 페스티벌

강길수수필가이곳저곳에서 결혼식 팡파르가 울린다. 노란 예복을 차려입은 민들레 아가씨들의 결혼식이다. 새로 태어난 지 한 달 남짓한데 벌써 결혼을 한다. 조혼(早婚)이라도 너무 이른 혼인이다.어디 그뿐이랴. 민들레 아가씨들에 뒤질세라 벌써 돌잔치를 푸짐하게 벌이는 강아지풀들이 도처에서 싱글벙글한다. 함께 어우렁더우렁 사는 풀들의 축복을 받으며 풋열매를 단 강아지풀 꼬리들이 바람에 살랑댄다. 한족에서는 참새 떼가 작은 바랭이 열매로 아침밥을 먹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우르르 밥상을 물리고 날아오른다. 참새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바랭이들에게는 내가 고마운 과객이 아닐까.다른 곳은 외래종으로 보이는 풀들도 꽃을 피우고 있다. 한여름 천지개벽보다 더할, 몸이 댕강 잘려 나가는 고통을 당했던 풀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새봄의 작고 여린 자태를 여지없이 드러낸 풀들이다. 어떻게 저 어린 풀들이 그새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라면 아동기이지 않은가. 아동이 형편상 가장을 떠맡는 경우는 있어도 아동끼리 혼인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구월 중순. 아침저녁 지나다니는 한 학교의 녹지 이야기다. 가을 초입인데 녹지의 풀들은 봄날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팔월 초, 뜨거운 날씨 아래 녹지의 풀들은 벌초를 당했었다. 풀들은 그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한 달여 만에 연록 초지를 만들어 냈다. 귀뚜라미 소리 청아해지자 녹지는 느닷없이 조혼의 열기로 가득 찼다. 조혼 페스티벌이 벌어진 것이다. 가을이 가면 세상에 태어난 본분(本分)을 다할 수 없기에 절박한 것인가. 어린 나이에도 풀들은 시시각각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열흘 전쯤인가. 간밤에 비가 내린 아침 출근길이었다. 여린 풀잎들은 손에 손마다 빗물 이슬 머금고 오가는 이들에게 연록 생명의 빛을 선물하였다. 초가을에 초봄의 정서를 만끽하는 기쁨을 맛보고, 체험하는 귀한 복도 누렸다. 몸이 동강 난 끔찍한 상황에서도 매 순간 억척스레 살아내는 당찬 모습이, 내 기대를 채워주고도 남았다. 고통과 희생 뒤에 따라오는 삶이, 값지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또다시 일깨워주는 아침이기도 했다.생각해보면 나와 너, 지구촌 사람들이 이 녹지의 풀보다 더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심각한 기후변화 하나만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피부로 느끼듯 지구촌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와 국민들은 당장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생존 문제 앞에 정치와 권력은 무엇이며, 국제 이해관계와 패권이 다 뭐란 말인가. 풀은 뿌리라도 있어 다시 살아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풀들은 씨앗을 만방에 퍼뜨려 기후변화에 대응한다. 본래 생명에게 주어진 본분이 삶의 최우선이며 결국 그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가. 알면서도 외면하는가.여러 문화권에서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 위신, 체통, 권위, 권력 등을 얻기 위해 조혼을 해왔단다. 우리의 경우도 과거 ‘민며느리’나 ‘데릴사위’가 성행했었다. 자연히 조혼으로 인한 어린이들의 인권이 유린되거나 침해되고, 여러 비극도 불러왔었다. 반면, 풀들은 환경이나 상황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살아내고 있다. 벌초 당해 새로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시간 만에 혼인 하고, 열매를 맺으며, 조혼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는 이 녹지가 그 증거다.푸른 행성 지구촌에 생명은 왜 태어난 걸까. 자연은 예외 없는 인과법칙 안에 존재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어떤 과학자가 주장하듯, 생명이 바다에서 우연히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을 설계하여 만들고, 관리하는 지성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가 창조주든, 신(神)이든 생명에게 주는 본분이 있으리라. 본능을 뛰어넘는, 생명이 마땅히 해야 할 바 같은 것 말이다. 내 눈에는 이 녹지의 여린 풀들이 생명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만일 우리 인간이 저 풀들처럼 살아왔다면 오늘날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의 소용돌이는 생기지 않았으리라.풀들의 조혼 페스티벌이 성스럽다.

2020-10-07

사랑은 순간

맘대로 되지 않는 감정 중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리석음이요, 유치함이요, 수치요, 절망이요, 나락입니다. 사랑을 일컬어 현명함이요, 세련됨이요, 자긍이요, 희망이요, 천국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사랑이란 감정을 초월했거나 겉보기 사랑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사랑이란 말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사랑은 어떻게 올까요. 대개 그것은 찰나의 순간과 맞닥뜨립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첫 3초면 충분하답니다. 3초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판단의 중심 감정 중 하나가 사랑입니다. 감성이 풍부할수록 첫 3초의 편견인 사랑의 마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상대의 마음을 사버린 것을 일컬어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계산이 들어찰 여유가 없고, 판단을 유보할 사유가 없는 시간이지요. 사랑을 하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 순식간에 사랑의 조명탄을 맞아버리는 일이니까요.봄물 오르는 캠퍼스 느티나무 그늘을 지나던 남학생. 잔디밭에 앉아 여흥을 즐기는 일군의 무리를 발견합니다. 같은 과 친구들인 그들은 한낮의 고스톱을 즐기는 중입니다. 그 중 고스톱 패를 돌리던 한 여학생에게 시쳇말로 필이 꽂힙니다. 모든 빛이 여자 주변만 비추는 듯합니다. 햇빛 받아 반짝이는 머릿결, 화투장을 내리찍는 여자의 긴 손가락 끝에도 햇살이 머뭅니다. 심장이 멎는 듯하고 구름 속을 헤매는 심정입니다. 붕 뜬 허공에서 지상에 발 디디게 해 줄 이는 저 여학생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내적 반응이지요.집에 돌아와도 알 수 없는 감정은 지속됩니다. 수줍은 듯 짓궂은 여학생의 표정, 화투장을 돌리던 희고 긴 손가락이 미끼처럼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덥석 물고 싶을 만큼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집니다. 봄풀처럼 해사한 얼굴도 아니고, 날렵한 몸매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누비던 여학생도 아닙니다. 어떤 이유도 조건도 없습니다. 그냥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의 상황 앞에 마음의 파고가 일렁인 것이라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3초의 편견이 사랑의 마법이 되는 순간이랄까요.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그 찰나를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불교 용어 중에 돈오(頓悟)와 점오(漸悟)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박에 깨치는 것이 돈오이고, 수행의 공을 쌓아 서서히 깨닫는 게 점오입니다. 딱 들어맞진 않지만 사랑에 그 말을 적용해 봅니다. 돈오의 사랑이야말로 순정한 사랑이라 할 만합니다. 점오의 그것은 타협과 조정의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 시작이 돈오의 사랑만큼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흔히 나이 들도록 사랑 한 번 못해 봤다고 말했을 때, 이는 돈오의 사랑을 못해봤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타협이나 필요에 의한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찰나적 사랑만큼 강렬하지는 않습니다.서서히 물드는 쪽이 아니라 찰나적 사랑이 그 염결성에 더 가깝습니다. 흐린 눈이나 달뜬 가슴으로 봐야 첫 3초의 마법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정돈된 상태의 이성적 머리가 세팅되는 순간 즉흥적인 순정이 들어찰 자리는 없는 거지요. 고요한 찻잔 속의 물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잎새라면 그건 사랑일 리 없습니다. 감출 수 없는 어리석은 낯빛과 가라앉힐 수 없는 활화산 같은 심박수 그것이 사랑이지요.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거짓일 수가 없지요.김살로메소설가사랑은 무모함입니다. 베이는 줄도 모르고 맨몸으로 칼끝을 향해 돌진하는 무지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실체였는지를 알 때까지 그 사랑은 지속됩니다. 하지만 사랑의 실체를, 그 속성을 자각하는 순간은 기어이 찾아오고 말테지요. 애석하게도 사랑의 환상이 부서지는 그 필패의 시간은 사랑의 덫에 걸린 속도에 반비례해 질척거립니다. 그래도 머잖아 마법은 풀리기 마련이고 칼날 스친 자리엔 아련한 상흔만이 남습니다. 회한조차 희미해질 때쯤이면 그 상처 몽돌이 되어 심지(心志) 하나 키웁니다. 무뎌진 그것은 칼날을 벼리지도 제 심장을 겨누지도 않습니다. 유유자적 세파에 씻기는 평온의 둥근 돌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사랑에 빠질 리 없는, 지속 될 이 평화를 우리는 또 사랑이라 부른다지요.환희의 꽃밭인 줄 알았지만 소금밭을 헤매는 바람. 키질에 남는 열매보다 풍구에 날아가는 쭉정이라야 ‘찐’인 사랑. 오늘도 사랑 때문에 누군가는 핸드폰 문자를 수십 번 확인하고, 울리지 않는 현관 벨 소리에 귀를 당겨 세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속수무책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고 무너질 3초가 아니면 사랑이 아니니까요. 수천 번의 참사를 예감한대도 모순의 통점인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라야 유효하니까요.

2020-10-07

코로나19 덕에 배우는 게 다 있다

장규열한동대 교수미국이 혼돈을 겪는다. 대선을 코 앞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주말을 병원에서 지냈다지만, 완치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국사가 중대하고 대선캠페인이 시급하다지만, 전 세계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가울 수 밖에 없다. 팬데믹으로 알려진 대감염상황을 매우 대수롭지 않은 일로 규정한다거나 기본 방역수칙인 마스크착용 여부에 관해서도 그는 매우 부정적이다. 퇴원하여 관저 앞에 서서 그는 마스크를 ‘시원하게’ 벗는 상직적 제스추어를 연출하였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이런 모습들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제시된다면 몰라도, 누가 보아도 정치적인 계산에 따른 행동이므로 시민들에게는 극심한 혼란만을 초래하는 일이다.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인가. 2020년이 마비되었다. 세계적으로 3천500만 명을 감염시킨 이 바이러스는 100만이 넘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으면서도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미국뿐 아니라 지구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보건정책을 정치성향과 섞은 나머지, 정상적인 예방과 방역에마저 이념적인 프리즘을 들이대면서 편견과 주장을 하면 어떤 결과까지 맞을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도가 도를 넘어 국민 앞에 선 지도자가 저처럼 자극적이며 선동적인 행태를 반복하면 국민이 얼마나 불안할 것인지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런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심할 수 있을까. 엇비슷한 태도가 빌미가 되어 국민건강에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일까.코로나19로부터 의외로 많이 배운다. 민주시민이 정책과 집행에 대하여 얼마나 깨어있어야 하는지를 깨우치는 중이며, 정부는 국민의 반응에 어떤 진정성으로 답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이다. 건강을 직접 위협하는 소재이다 보니 관심도 높고 반응도 빠르다. 그 영향에 있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해당하는 일이라 온 국민이 이해당사자인 셈이다. 위기상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하므로 정치적인 계산이 끼어들 틈이 그리 없어 보인다. 진영의 논리로 편을 갈라칠 양이면, 자칫 코로나19 피해가 눈덩이가 되지 않겠나. 그런 위험을 미국의 모습에서 이미 보고있는 셈이다. 저들이 잘 극복하길 바라지만, 국민들 사이에 골이 저렇게 깊어서야 정치도 방역도 회복이 어렵지 싶다. 우리에겐 타산지석이 아닌가.코로나19가 가져온 뉴노멀에는 ‘표현방식’도 들어있다. 광화문과 서초동의 기억이 엊그제인데 어느 틈에 비대면과 언택트가 들어와 앉았다. 강의와 교육도 온라인과 디지털을 매개로 하는 바에야 집단의사의 표현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어려울 때 발전하였다. 성가셔야 뚫고 나간다. 코로나19로 힘들어진 세상에 편을 갈라 이길 방법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남을 무찌르며 헤쳐갈 길이 아니다. 당략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 정책으로 이겨내야 한다. 오늘, 방역은 정치보다 중요하다. 홀로 영웅이 되기보다 함께 위기를 헤쳐가야 한다.

2020-10-07

하르츠 개혁

하르츠 개혁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때인 2002년 2월에 구성된 노동시장 개혁위원회가 제시한 4단계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말한다. 설립 당시 폭스바겐의 담당 이사였던 피터 하르츠가 위원장을 맡아‘하르츠위원회’로 불리게 됐다. 하르츠위원회가 내놓은 4단계 노동시장 개혁 방안은 당시 독일 정부의 사회복지 및 노동 정책인 ‘어젠다 2010’의 하나로 2003년 1월부터 시행됐다. 주요 내용은 △노동시장 서비스와 노동정책의 능률 및 실효성 제고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재유입 유도 △노동시장 탈규제로 고용 수요 제고 등에 초점을 맞췄다. 슈뢰더 전 총리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임시직 고용을 늘리고, 저소득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의 하르츠 개혁을 통해 독일을 성장 정체의 수렁에서 건져내고 경제 호황을 구가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다만 하르츠 개혁이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급여와 사회보장 및 복지를 대폭 축소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최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화두로 던진 노동법 개정이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란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노동개혁 카드를 제시한 것이 상법·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공정경제 3법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즉, 재계와 국민의힘 내부에서 공정경제 3법에 불만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서 공정경제 3법에 부정적인 재계를 다독이면서, 당내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라는 설명이다. 어쨌든 코로나19에다 경기침체로 쪼그라든 호주머니 사정에 시름만 깊어진 서민들은 나라살림을 살찌울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07

트럼프 씨, 코로나에 걸렸다 살아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 씨가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퇴원했다는 뉴스가 티비를 떠들썩하게 장식하고 있다.의료진은 그가 멀쩡하다고 했지만, 입원하기 전에 산소호흡기를 했다는 둥, 앞으로 48시간이 고비라는 둥 하는 얘기들도 있었으니 결코 안심할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더구나 74세 고령에 비만도 있어 고위험군이라 하지 않았던가. 미국 국민이 백만 명 넘게 감염에 이십만 명 넘게 사망한 코로나가 그마저 덮쳤으니 예삿일은 아니었을 것이다.사실, 정치적인 ‘입장’ 같은 것을 따져 보면 트럼프 씨를 좋아할 일은 없을 것도 같다. 대통령 하기 전부터 유럽에서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미국도 지식인들은 많이들 한탄을 했다고 한다.그런데 미국 백인 남성들, 부유층은 그를 상당히 지지한다던가? 또 그가 코로나 걸렸다는 뉴스 전까지만 해도 이번 선거도 알 수 없다는 얘기들도 심심찮게 들렸다. 지금은 그가 재선되기는 쉽지 않은 모양새지만. 하건만,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어쩌면 그렇게 재미도 없어 보이는지. 일점 그에 대한 어떤 흥미도 안 생기는 것인지. 항간에는 그가 또 친중파라는 분류법을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고.요즘 왜 그렇게 친중파니, 친북파니, 친미파니, 친일파니 하는 소리들이 많은지, 구한말 정국이 따로 없는 듯도 하고.코로나 걸리기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문제로 선거를 끌고 가려고 한 듯 했다. 화웨이가 어떻고, 틱톡이 어떻고, 대만이 어떻고, 바이든이 어떻고 하는 것이 다 그런 맥락이다.그런데 이 중국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이, 트럼프 씨가 이 이슈를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힘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수출을 못할까, 남북 문제 헝클어질까, 동북공정에, 일대일로에, 중국의 힘은 무한정 뻗어나갈 것만 같고, 한국은 조공이라도 바쳐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갑자기 다시 코로나로 돌아와 버렸다. 트럼프 씨의 발병은 그의 ‘생사’에, 그가 치료제로 무얼 쓰는지에, 미국 대선이 과연 무사히 치러질 것인지에, 사람들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코로나는 과연 무섭고 전파력 강하고 예측불가능한 질병이라는 것이다.그렇게 허풍선이 같은 데도 어째 밉지만은 않아 보이는 트럼프 씨가 과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넘기고 선거를 무사히 치를 수 있으련지? 바이든에는 관심이 안 가고 트럼프 씨 동정에만 눈과 귀를 기울이는 나는 과연 정치 의식 불분명, 불투명한 사람인 것일까?그런데 요즘 국제정치,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 그 역학이 간단치만은 않다. 각국에서 트럼프 씨를 향한 위로전문들을 선두 다툼 벌이듯 보냈던 것은 또 뭔가? 짙은 안개 속 같은 세상을 꿰뚫어 볼 혜안이 필요한 시대다. 트럼프 씨, 코로나에 걸렸다 살아돌아온 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길’ 일만은 아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0-07

어게인 없는 교육청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여러분, 우리는 지금 별의별 꼴을 다 보고 살고 있습니다.”이 말은 모 방송사에서 추석 특집 방송으로 제작한 언택트 공연에서 주연 가수가 한 말이다. 공연 이후 반응이 놀라워 필자는 스페셜 방송을 보았다. 공연 기술도 기술이지만 교육계에서는 안 된다고만 하는 비대면 시대에 언택트 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그리고 그 가수가 공연 사이 사이에 하는 말을 들을 때는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었다.대표적인 말이 첫 문장에 적은 말이다. 그 말을 하는 가수가 너무 멋있었다. 아니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특히 대한국민을 외칠 때는 눈물이 났다. 무엇보다 국민이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 것에 존경심이 우러났다.방송을 보는 내내 필자는 여러 가지를 메모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 수 없었고, 그의 말과 가사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필자의 감정을 그냥 휘발되게 둘 수 없었다. 하지만 메모가 쌓이면서 메모 양은 급속도로 줄었다. 반면 복받쳐 오르는 감정은 마음을 넘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감정이 전체 감정을 지배하였다. 그 마음은 다름 아닌 죄송함이었다. 필자의 메모는 결국 다음 이야기에서 멈췄다. 표준어로 잠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살다 보니 세월은 그냥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이왕 세월이 가는 거 끌려가지 말고 세월의 모가지를 꼭 비틀어 끌고 가야 합니다. (….)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세월한테 끌려가는 거고 (….) 안 하던 짓을 해야 (….)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 끌고 갑니다.”그가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치는 힘을 필자는 이 말에서 찾았다. 끌려가면 안 된다는 그의 문제 인식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는 그만의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은 분명 별의별 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 나라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될 것이 확실했다.필자가 죄송한 이유는 다른 사회 분야는 그래도 이 힘을 가지고 세상을 개척해가고 있지만, 정녕 이 힘이 가장 필요한 교육계에는 이 힘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안 하던 짓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용기와 도전정신을 가르쳐야 할 학교지만, 이것을 가르칠 교사가 없다.교사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은 소위 말해 교사에게 찍힌다. 찍힌 학생의 학교생활이 어떨지는 설명을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학생들은 찍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틀에 자신을 가둔다. 그러면서 또 틀에 갇힌 어른이 된다.이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교육청과 교육부에 전화할 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다.“다른 교육청도 안 하는데 우리가 왜 합니까? 우리도 바꿔야 하는 걸 잘 알지만, 교육부 지시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안 해도 되는 걸 왜 굳이 하려고 합니까!”이것이 교육 당국의 별의별 꼴이며, 교육계가 교육 어게인을 절대 외칠 수 없는 이유다.

2020-10-07

나훈아 공연장의 정치적 메시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가수 나훈아는 여전히 한국 가요사에 우뚝한 존재다. 그의 노래에 열광하는 팬들을 뒤로 두고 그는 방송매체에서 10여 년 간 사라져 버렸다.이번 추석 명절에 가황(歌皇) 칭호를 얻은 나훈아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의 공연은 코로나 전염병으로 지쳐있는 우리 모두의 정서를 위로해 주었다. 공연 중간 중간의 그의 멘트는 시중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상당한 정치적 메시지로 읽혀지기도 한다.공연 중 나훈아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자는 발언을 하는 도중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상당히 공감하는 발언으로 들렸을 것이다.우리 역사에서 임진란이나 병자호란 등 수많은 외침 시 도망친 군주는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됐다. 6·25 남침 시에도 이 대통령은 한강 다리를 끊고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나훈아의 말대로 국가적 위기 시 목숨 바쳐 백성을 구한 왕은 찾아볼 수 없어 민망할 뿐이다. 해방 후 이 나라에 십여 명의 대통령이 통치했지만 진정으로 범국민적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최대 비극이다.나훈아의 말대로 위기 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백성은 수없이 많다. 일제 시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일제 시 대구 형무소에서는 176명의 애국지사들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IMF 경제 위기 시에도 우리 국민들은 장롱의 금붙이로 나라를 구했다.나훈아는 국민의 힘이 (나쁜) 위정자를 물리친다는 주장도 하였다. 당명을 ‘국민의 힘’으로 바꾼 야당에서는 그의 발언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주 국가의 ‘국민의 힘’을 정파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나훈아는 그간 ‘고향 역’, ‘홍시’, ‘18세 순이’, ‘잡초’, ‘청춘을 돌려다오’ 등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가 직접 작사한 노랫말은 우리 민족의 이별과 슬픔, 눈물의 정서를 유감없이 잘 표출한다. 오직 평생을 대중가요에 헌신한 전문 음악인 나훈아는 훈장까지 거부했다. 그는 노태우 정권 시절 총선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이마저 거부하였다. 그의 거부 이유는 자신의 ‘울긴 왜 울어’를 자신처럼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성공한 기업인, 유명 교수, 시민운동가, 언론인들이 몰려가는 정치판에서 새겨들을 이야기다.나훈아의 이번 공연은 이래저래 억눌린 우리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주었다. 그는 분명 자신의 노래에 자부심을 가진 전문 예술인이다. 천박한 상업주의에 빠져 돈과 인기에 목숨을 거는 연예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이 나라 최고 재벌 이건희 회장의 생일 초대 공연도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일본의 초청 공연에서도 공연 말미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후렴을 슬쩍 넣었다. 이번 KBS 주최 공연에서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곡 ‘테스 형’에서 ‘세상이 왜 이렇고, 세월이 또 왜 저런 지’를 겸손히 묻고 있다.

2020-10-07

새로운 秋캉스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명절맞이 풍속이 차츰 달라지고 있다. 민족의 대이동을 방불케 하던 추석연휴 귀성행렬이 줄어들고 관광지나 휴양지를 찾는 가족들이 늘어난 것이다. 전염병의 재확산을 우려한 정부 당국에서의 귀성 이동 자제 권유 등으로 예년에 비해 20% 정도 국민들의 전체 이동이 줄었다고 하지만, 갑갑해진 일상에서의 일탈 같은 마음으로 귀성 대신 기분전환 겸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수개월째 이어지는 위축되고 침체되는 일상이 조금씩 바뀌더니 급기야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를 보내는 모습조차 이색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이른바 ‘추(秋)캉스’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추석연휴뿐만 아니라 가을날의 여유로운 시간에 언택트 여행이나 휴가(바캉스)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실제 지난 추석연휴 때의 숙박업소 예약률은 코로나의 와중에도 강원도가 95%, 제주도가 60%에 육박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성묘나 고향방문을 미루고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명소를 찾아 명절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난데없는 바이러스가 고유한 풍습마저 변모시키는 양상이다.미상불 필자도 가족과 함께 한가위 연휴를 제주도에서 보냈다. 봄날에 떠날 예정이었던 제주도 여행이 돌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을로 연기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3년 전부터 진행 중인 아들과의 자전거국토종주 장기계획에 따라 이틀은 해안으로 조성된 제주환상자전거길을 바다와 달빛을 벗삼아 달렸고, 나머지 이틀은 가족들과 섬 속의 섬 우도 일주 등의 일정으로 라이딩과 관광을 겸해 나름 뜻있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용두암에서 출발해 애월~대정~서귀포 쪽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하는 라이딩 내내 아름다운 절경의 해안도로와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는 설레임으로 환상(環狀)자전거길은 그야말로 환상적(幻想的)으로 펼쳐지는 듯 했다. 또한 바퀴가 굴러가는 곳곳마다 올레길 트레킹과 캠핑, 카약과 낚시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말 그대로 추캉스(추석 바캉스)가 실감날 정도였다. 특히 함덕해변에는 밤에도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띄는 수면에 잔잔하게 어리는 보름달빛을 감상하거나 서늘한 밤바람을 쐬는 여행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자연이나 세상은 시간과 환경이 바뀜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기 마련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활방식이나 삶의 양태는 주변 여건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익숙하게 대처해 나간다. 집콕족이니 비대면 온라인 성묘, 추캉스 등과 같은 생소한 명절 풍속도도 어쩌면 새로운 환경과 특이한 변화에 순응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다만, 그러한 변화나 낯선 환경에 직면해서 우리 고유의 관습이나 전통문화가 퇴색되거나 희석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변화하되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적응하되 배제해서는 안 될 것들을 잘 판단하고 챙기는 추캉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은 곧 우리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며 명절 퓨전문화를 현실에 맞게 가꾸고 보듬어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2020-10-06

세계 한인의 날

김규종경북대 교수지난 10월 5일은 ‘세계 한인(韓人)의 날’이었다. ‘세계 한인의 날’은 거주국 내 재외동포의 권익신장과 역량강화,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 고양, 동포들의 화합 및 모국과 동포 사회의 호혜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제정되었다. 세계 곳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한인 동포의 숫자는 700만 정도로 추산된다. 대구와 부산, 울산의 인구를 합친 정도의 한인들이 디아스포라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오랜 세월 한반도를 거점으로 살아온 한국인은 특정한 시기와 인물을 제외하면 영토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에 나서지 않았다. 전쟁은 숱한 인명 살상과 참화를 불러온다. 우리는 대륙(중국)과 해양(일본)으로부터 900여 차례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대륙이나 해양으로 전쟁하러 나간 경우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쓰시마 정벌과 나선정벌,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베트남전쟁 정도가 아닐까?!한인들의 외국 이주는 크게 네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는 1860년대 이후부터 1910년 사이다. 조선왕조의 가혹한 수탈과 억압을 피해 노동자와 농민들이 중국과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쿠바 등지로 이주한다. 두 번째 시기는 일한합방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부터 8·15해방에 이르는 1945년까지다.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민과 노동자들은 만주와 일본으로, 독립지사들은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지로 떠나갔다.세 번째 시기는 1950년대 초부터 1962년까지의 시기로 전쟁고아, 유학, 결혼 등의 이유로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했다. 네 번째 시기는 정부의 이민정책이 실행된 1962년부터 지금까지다. 대표적인 본보기가 분단 서도이칠란트로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한 일이다. 1963년에서 1977년까지 파견된 광부가 7천936명, 간호사가 1만1천57명으로 2만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머나먼 이역(異域)으로 떠나갔다.쾰른과 베를린에서 공부하면서 한인 간호사와 광부들과 만나면서 디아스포라의 실체를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환갑나이에 보훔에서 현역으로 탄을 캐던 초로의 광부와 ‘장기수후원회’를 열정적으로 돕던 쾰른의 간호사가 기억에 남는다. 1997년 문민정부가 ‘재외동포재단’을 설립하고, 1999년 국민의 정부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면서 재외 한인들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이런 선행작업에 기초하여 참여정부는 2007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10월 5일을 ‘세계 한인의 날’로 정하고 법정기념일로 제정한다. 아울러 10월 5일을 전후로 한 10월 3일 개천절과 10월 9일 한글날에 이르는 기간을 ‘재외동포주간’으로 설정-기념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부는 케이팝, 케이방역, 영화와 드라마, 방탄소년단 등의 선도적인 수용자인 해외 한인들의 성실한 삶에 고개 숙인다.그러하되 ‘재외동포주간’ 첫날에 ‘개천절 집회’를 강행하는 자들과 경찰의 실랑이는 우울한 풍경이었다. 처참한 코로나19 상황에 정치적 목적을 탐하는 자들의 야욕이 아프게 다가온다.

2020-10-06

아, 훈아 형!

추석 전날 낮잠 늘어지게 자다가 해질 무렵에야 마스크 쓰고 집 앞 안양천을 산책했는데, 천천히 걷던 어르신들이 갑자기 경보선수마냥 빠른 걸음으로 나를 추월하시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일까? 다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는 “나나”, “나오나” 중얼거렸다. 뭐라는 건지 궁금했는데, 가만 들으니 그 소리는 “나훈아”였다.어르신들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나훈아 공연을 보려고 축지법까지 쓰면서 귀가를 서두른 것이었다. 아직 노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어르신들에게 청춘을 돌려주는 나훈아의 위력에 감탄했다.나훈아 노래 한 곡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1966년 데뷔한 이후 60년 가까이 최정상 가수로 군림해온 ‘트로트의 전설’이다. 생긴 것도 꼭 시베리아 호랑이상이라서 ‘군림’이라는 말이 적확하다. 중학교 때부터 ‘잡초’, ‘건배’, ‘갈무리’ 같은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도 했고,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 큰 머리, 벌어진 어깨가 닮았다는 소리 꽤 들은 나 역시 팬의 한 사람으로서 막걸리 한 병과 동태전을 늘어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공연을 보면서 후회했다. 나훈아 콘서트는 ‘모엣 샹동’ 같은 고급 샴페인을 마시며 봐야만 하는 것이었다. 현장 공연은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던데, 방구석 1열에서 즐기는 이 디너쇼는 어쩌면 코로나가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메뉴 구성에서 ‘가황(歌皇)’을 맞이할 준비가 다소 미흡했지만, 장면 하나 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 타이틀에서부터 급이 다른 위엄이 느껴졌다. ‘대한민국’과 자기 이름을 나란히 걸고 명절 지상파 방송에 공연을 송출할 수 있는 뮤지션은 나훈아와 조용필 둘 뿐이다. 스케일이 크고 무대연출이 화려한 나훈아의 공연은 올림픽 개회식 뺨친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커다란 여객선을 몰고 등장했다. 이래저래 마음 헛헛한 추석 전야, 기차 경적소리와 함께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이 울려 퍼졌다. 고향 못 간 이들의 마음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사전 신청제로 모집된 국내외 1000명의 관객들이 스크린과 마이크를 통해 비대면 객석을 이루었다. 언택트(untact) 시대의 진풍경이었다.아직도 근육이 탄탄하게 박힌 구릿빛 몸에 주름 없이 팽팽한 이마, 찢어진 청바지와 하얀 셔츠는 칠십이 넘은 그의 나이를 의심케 했다.고음과 저음, 단음과 장음을 자유롭게 오가며 미세한 음 하나 하나에 감정과 서사를 싣는 특유의 가창력은 변함없었다. 아니 소리가 예전보다 더 짱짱한 느낌이었다. 노래 부르면서 춤도 추고 점프도 하고 기타도 치고 북도 때렸다.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홍시’, ‘무시로’, ‘18세 순이’, ‘갈무리’, ‘영영’, ‘잡초’, ‘청춘을 돌려다오’, ‘번지 없는 주막’ 등 총 30곡을 세 시간 가까이 열창했다. 트로트를 헤비메탈, 펑크록, 댄스, 가스펠, 뮤지컬 등과 결합하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훈아’라는 장르로 바꿔냈다. 대체 뭘 드시기에 저렇게 기운이 넘쳐날까, 궁금했다. 공연 끝나고 다시 안양천에 나가보니 낮에 그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팔굽혀펴기와 맨손체조를 하는 것이었다.순간 최고 시청률 40퍼센트를 넘겼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과 뉴스란을 잠식했다.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공연 후 여기저기서 “테스 형!”(나훈아 신곡 ‘테스형’에서 ‘소크라테스’를 칭하는 가사)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대에서 그가 한 발언들은 정치권의 화두가 되었다. “세월에 끌려가지 말자”, “안 해 본 일들에 도전하자”, “의료진들이 우리의 영웅이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나쁜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민들이다” 한 사람의 대중음악가가 코로나로 지친 온 국민을 위로하고, 계층과 세대, 남녀노소, 지역, 종교, 이념을 모두 뛰어넘어 사회 전체에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나훈아 말고 누가 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에게는 대체 대중을 휘어잡는 어떤 마력이 있는 걸까?‘나훈아’라는 신화를 떠받치는 부력은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다. 몸매, 체력, 가창력,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함께 그는 대중가수로서의 상품가치, 최고의 스타만이 갖는 희소성을 지키고자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아 왔다. 재벌가로부터 내밀한 공연 요청을 받고는 “표 사서 봐라”라고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나훈아’의 값은 오직 그 자신 나훈아만이 매길 수 있다는 고고한 예술가적 자존, 대중을 위해서만 기꺼이 상품이 되겠다는 대중연예인으로서의 직업의식 등 그의 철학을 함축해 보여준다. 국가가 수여한 훈장을 거부하면서 “예술가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권력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문화예술인들이 들으면 부끄러울 것이다.‘신비주의’로 오해 받을 만큼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그는 스타는 밤하늘에 별로 떠 있을 때에만 존재가치가 있다는 평소 신념대로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일이 없었다. 반세기 넘도록 대중과 친밀하게 호흡해온 ‘나훈아’는 오직 노래 안에, 무대 위에만 있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곡 작업을 위해 그가 두문불출할 때마다 흉측한 루머가 돌았다.그래도 그는 대응하지 않고 침묵했다. 일부 언론이 무책임하게 뜬구름을 부풀리는 사이 소문과 전혀 무관한 지중해 해변이나 중앙아시아 고원을 걸으며 낯선 풍경들로 묵은 감각과 상상력을 씻어내는 데만 몰두했다.문화예술계 거장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스캔들로 평생 일궈온 명예와 경력을 잃는 일이 많은데, 온갖 루머와 “이제 끝났다”는 평가가 끈적끈적한 콜타르마냥 이름을 뒤덮을 때마다 나훈아는 극적으로, 자기를 불살라 다시 날아오르는 불새처럼 더 환한 빛과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돌아왔다. 그렇게 많은 루머로부터 공격 받았는데도 여전히 최정상에서 건재하다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세상이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을 향해 열린 태도는 그의 음악이 ‘뽕짝’에 머무르지 않고 락, 클래식, 댄스, 가스펠, 리듬앤블루스, 힙합, 뮤지컬, 국악, 마당놀이 등과 결합한 새로운 장르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타자성을 수용하는 열린 세계관은 단순히 음악적 시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의 예술가적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소가 되었는데, 영남을 대표하는 가수인 그가 5·18 광주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87년 ‘엄니’라는 곡을 썼다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탄압 받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연, 학연, 계층이라는 울타리를 쌓아 기득권을 유지해온 정치 이기주의, 지역 및 집단 이기주의가 한국 근대사를 지배해왔다면, 나훈아의 노래는 도시빈민,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이주노동자, 일용직 근로자, 샐러리맨, 농사꾼 등 시대의 ‘잡초’들 사이를 흐르면서도 부자, 권력자, 지도자, 교육자, 사상가라고 불리는 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음악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명제는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홍시’)는 노래가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곡성 오일장에 두루 퍼질 때, 빈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오며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킬 때 성립된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무대 연출, 장치, 소품, 컴퓨터 그래픽, 출연진의 동선까지 무대의 모든 부분에 직접 관여했을 것이다. 한 음절마다 감정과 표정을 싣는 연기력 또한 세밀하게 준비된 것이리라. 이러한 완벽주의는 ‘나훈아’라는 상품을 구매한 관객들에게 지금껏 단 한 번도 실망을 주지 않았다.이번 공연은 ‘다시보기’ 없이 오직 단 한 번만 방영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이 뿜어내는 일회적인 빛”을 아우라(aura)라고 불렀는데, 현장성이 아닌, 텔레비전 화면이라는 기술복제 안에서 뿜어지는 나훈아의 빛은 아우라 그 자체였다.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출하는 것이 근대성이라던 보들레르의 말을 떠올리면, 나훈아는 근대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대중예술인이 틀림없다. 아우라,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어떤 것의 영적인 광휘, 나훈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 곁에 있지만 저 높이, 저 멀리 있다.

2020-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