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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삶에 의지와 모험을… 영주 희방사(喜方寺)

이른 아침 중앙고속도로는 안개로 자욱하고, 대형 전세버스들로 몸살을 앓았을 소백산 입구조차 한산하다. 붉게 물든 단풍과 상실의 눈물처럼 떨어지는 낙엽들, 소백산 가을잔치는 화려하고도 쓸쓸하다.희방사는 고운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두운이 창건하였다. 1850년 화재로 소실되어 강월이 중창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네 채의 당우와 보관되어 오던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되었다. 다행히 주존불은 무사하여 두운이 기거하던 천연동굴 속에 보관하다가 1953년 중건한 뒤 대웅전에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희방사는 생각보다 작은 사찰이다. 보수 중인지 인부들이 자재를 옮기느라 경내는 분주하다. 일행은 여러 번 와본 절이라며 스치듯 등산로로 접어들고 나와 남편은 대웅전에 들러 삼배의 예를 갖춘다. 어수선한 절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신산하다. 수런거리는 가을의 수다가 법당까지 흘러들어와 나를 유혹한다.서둘러 법당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편하지가 않다. 절 기행과 등산,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에 소백산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절 주변을 밝히는 단풍들과 시나브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한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들으며 붉은 슬픔이 차오르는 숲으로 흐느끼듯 걸어 들어간다.가을 숲과 음악이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계절에 대한 감탄도 잠시, 하늘은 멀미가 일 듯 단풍으로 출렁이고 산길은 점점 더 가파르다. 얼마 오르지 않아 아픈 다리와 거친 호흡으로 걸을 수가 없다. 산을 잘 타는 남편이 앞에서 잡아주고 호흡법을 가르쳐 주며 격려하지만 몸은 등반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가슴이 죄어오고 두통까지 몰려온다.내 곁을 떠나지 못하는 남편과 기다리고 있을 일행이 점점 부담스럽다. 지켜보는 눈들이 산행을 더 힘들게 한다. 중간중간 이정표는 까마득히 남은 거리를 제시하며 낙오자 하나쯤 자랑스럽게 내걸고 싶어 하는 눈치다.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명산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작정 산을 오른다. 시야에서 벗어난 일행을 좇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도 같다.지금이라도 희방사로 내려가 스님을 뵙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토록 황홀하던 단풍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나는 험난한 등산로 앞에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무거운 짐을 싣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나 자신의 사막으로 달려가고 있다. 산을 오를수록 나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벤치가 있는 나무 아래에서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나를 위로하는 남편의 주름진 얼굴 위로 선득한 바람이 분다. 젖은 옷 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보다 더한 서글픔이 밀려든다. 가는 세월 앞에서 나는 무엇으로 위안 받기를 원하는가.연화봉 정상에 설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아름다운 시간은 덧없이 짧고 머지않아 닥칠 겨울은 길고 건조하리라. 무엇이 두려워 주어진 시간과 젊음을 포기하려고 하는가. 비록 정상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극복하며 최선을 다하는 게 삶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이른 점심을 챙겨 먹고 남편보다 먼저 폴대를 잡고 앞서 걷는다. 바닥을 보이던 체력은 놀랍게도 다시 힘이 난다. 일행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과 언젠가 다녀온 비로봉의 힘든 노정이 나를 옥죄었던 것일까. 몇 번의 난코스를 힘겹게 오르자 나는 지친 낙타에서 한 마리 사자로 변하고 있었다.육체적인 고통은 무감각해지고 길은 스승이 되어 나를 이끈다. 나와 길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때론 내가 길보다 앞서 걷는다. 거친 장벽과도 같던 산은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주며 함께 걷는다. 고비를 극복하고 난 뒤에 안겨드는 희열이 좋다.“많이 힘들지요?” “힘내십시오.”마주치는 사람들이 건네 오는 격려에는 진심어린 온기가 담겨 있다.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며, 같은 아픔을 맛본 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믿음과 위로이다.연화봉은 아직 멀기만 한데 능선에서 바라본 희방사는 한참이나 아래에 있다. 절은 작지만 또렷한 상징물이 되어 나를 격려한다. 어수선하고 산만하던 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머리를 맞댄 당우들이 자기를 낮춘 채 소백산 품에 안겨 있다. 어떤 확고함으로 중심을 지키고 서 있다.조낭희 수필가날이 밝기까지 고뇌하지 않은 어둠이 있을까. 묵묵히 이 길을 올랐을 사람들의 땀방울과 그들이 짊어졌을 무게를 생각한다. 고통의 밑바닥에서 쟁취한 자유는 더 깊고 클 수밖에 없다. 일행보다 한참 늦었지만 1,376m 연화봉에 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고독한 낙타가 아니었다. 의지와 모험을 추구하며, 나 스스로를 극복해 나가는 한 마리 사자가 되어 있었다.내려오는 길에 들른 희방사는 그제야 속살을 드러내며 다가온다. 지장전 앞을 지키는 상록수는 흔들림이 없고 종소리가 은은하다는 동종도 함부로 울지 않았으며, 요사채 뜰 위에 검정 고무신 한 컬레가 좌선하듯 사색에 잠겨 있다.

2020-10-26

완급을 가진 리듬, 즐겁고 환상적인 영상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화면에 배치된 인물과 소품들, 그들의 동선에까지 경쾌한 리듬을 지닌다. 이 리듬은 완급의 조절과 멈춤에서 기인한다. 멀리 빠져 있던 카메라는 서서히 들어가는가 싶더니 과감하게 점핑해서 클로즈업하거나 더 들어가는가 싶더니 멈춘다.완급을 가진 리듬에 음악이 깔린다. 이 음악은 그의 영화를 이끄는 속도를 따라 혹은 사건을 따라 배경이 되어 영화 속으로 녹아들게 만든다. 끊임없이 분위기를 이끄는 음악과 완급을 가진 리듬에 대사는 넘치지 않는다. 절제된 대사는 이야기를 이끄는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전달할뿐 구구절절하지 않다.이는 무성영화의 형식과 흡사하다. 모든 대사가 자막으로 전달되던 무성영화에서 대사는 함축적이며 간명했다. 그리고 시종일관 그 배경에 음악이 깔려 분위기를 전달하며 결말로 관객들을 이끌었다.편집은 완급을 가진 리듬에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과정을 나눠주고 있으며, 친절하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관객이 이야기 밖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돕는다. 영화 속 현재는 1980년대다. 그리고 1930년대와 1960년대 후반을 오간다. 이에 따라 화면 비율은 1.85:1, 2.40:1, 1.37:1을 오간다. 모두 해당 장면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에 주로 쓰이던 영화 화면 비율이다. 화면 비율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편집과 완급을 가진 영화의 속도와 경쾌한 음악으로 인해 영화가 시작되면 깔끔하게(?) 결말에 이른다. 깔끔하다는 것은 복잡한 전개구조와 갈등이 없으며, 복선과 암시로 인해 앞뒤의 사정을 되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모든 것들은 경쾌한 분위기를 살려주는 ‘스타카토’와 같다. ‘스타카토’는 음악의 형식을 나타내는 기호로 해당 음의 길이를 줄여 짧게 연주하라는 악상기호이다. ‘스타카토’로 인해 선율에 변화를 주거나 특정 부분을 강조할 수 있다. 자칫 복잡해 질 수 있는 영화의 구성에 과감한 생략을, 멈추고 달리는 전개에 ‘스타카토’선율처럼 속도에 변화를 부여한다.여기에 영화의 색감은 화려하고 선명하다. 세트와 등장인물의 의상, 소품까지 선명한 색감들을 가지고 있어 아기자기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색감은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1930년대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호텔 외관과 몇몇 장면은 정교한 미니어처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했다. 이 영화는 허구이지만 193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대에 몰아쳤던 광풍이 영화의 미술과 형식에 의해 아기자기하면서도 동화같은 느낌을 갖는다.웨스 앤더슨 영화의 특징인 좌우대칭은 여기서도 등장하는데, 사물과 배경, 등장인물의 등장과 퇴장 등은 좌우대칭을 배경으로 들고난다. 이는 등장인물과 영화의 모든 미장센이 철저히 계산된 감독의 의도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이 모든 것들 속에서 기저를 이루는 정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유머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과 대사, 정서들은 모두 참혹한 전쟁과 함께 사라진 낭만과 예술에 대한 애수로 가득하다. 호텔의 품격을 위해 내려지는 일련의 지시와 주인공 구스타브가 유지하는 일련의 고집들에서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잔인하다. 그것이 다른 영화에서 행해졌다면 잔인함이 극대화되고 관객은 그 장면이 내내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잔인한 장면이 그냥 흘러가 버린다. 거기엔 화려한 동화같은 미장센과 리듬을 가진 속도와 속도를 가진 배경음악과 함께 유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유머에도 리듬과 속도가 있다. 심각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위트. 멈추어 숨을 고르고 이어지는 잔인한 장면이 아닌 적절한 속도를 가지고 행해지는 잔인한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흐름들이 완급을 조절한다.현재와 과거, 과거에서 다시 더 먼 과거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는 복잡해질 수 있지만 시대에 따른 화면구성과 톤, 이야기 전달을 위한 영상 구성의 면밀함이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밝고 경쾌한 음악과 환상적인 동화같은 배경이 시작되고, 우리는 적절한 리듬과 속도를 지닌 열차를 타고 종착역까지 지루할 틈없이 달려갈 것이다./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0-10-26

화씨지벽(和氏之璧)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사냥꾼은 좋은 사냥개를 얻으려 하고 말 타는 사람은 좋은 말만 얻으려 하지 그것이 어떤 새끼를 낳을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있어서도 위정자의 인물 됨됨이가 중요한 것이지 문벌은 그리 중요치 않다. 공자가 위나라 영공의 무도함을 힐난하자 강자가 물었다. ‘그러한데 그 나라는 어찌 망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공자가 답했다. ‘중숙어가 외교를 맡고, 축타가 종묘를 다스리고, 왕손가가 군사를 맡아 다스리니 어찌 망하리오!’ 이렇듯 비록 왕의 됨됨이가 비루하더라도 훌륭한 신하들이 그 임금을 보좌해 백성을 위해 국정을 돌본다면 그 나라는 굳건히 영속할 것임을 공자 또한 알고 있었다.기원전 770년부터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춘추전국시대는 약 550년에 달하는 기간이다. 이 시기는 각자 지역에 근거한 집단이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문화적 풍토를 배경으로 나라를 세우고 왕을 세워 맹주를 다투던 시기였다. 주 왕조의 일방적인 천하지배 구조는 무너지고 지방정권들이 역사적, 지리적 환경에 근거해 자립하면서 초기에는 온건하게 연합과 합병을 거듭하다 재화와 자원, 인재와 기술을 두고 싸움이 시작되면서 철기의 출현은 치열한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정치중심의 다극화는 사회불안을 초래했지만, 동시에 가치의 다양화를 낳았고, 대륙에는 옛 체제와 가치관의 붕괴가 진행되는 가운데 유례없는 창조가 태어나게 된다.국가와 정치, 산업과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키워낸 사상가와 명신들이 나타났으니, 이들이 바로 유가, 법가, 도가, 묵가, 병가 등으로 불리는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학설을 내세워 문하생을 교육시키고 각국을 떠돌며 자신의 주장을 실제 정치에 반영시키려 했다.병가(兵家)의 손무, 완벽(完璧)의 인상여 등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대륙역사의 한 대목을 대변할 수 있을 정도의 수많은 현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옛 시대의 사상과 학문을 배우며 과거를 토대로 현재의 자신을 반성하며 교훈을 얻고 있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고대인들의 주옥같은 일화와 교훈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은 물론 미래에서도 여전히 금과옥조 같이 여겨질 것이다. 초나라 사람 화씨가 다듬지 않은 옥돌을 구해 두 번이나 왕에게 바쳤을 때 옥을 감정하는 관리가 돌이라 결론짓자 왕을 속인 죄로 두 발이 차례로 잘려나갔다. 세 번째 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옥돌을 안고 궁문 앞에서 사흘 밤낮을 슬피 울었다.소문을 들은 왕이 이유를 묻자 화씨는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속임수 쓰는 자로 몰아 마구 베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왕이 화씨의 돌을 쪼개고 다듬으니 마침내 천하제일의 옥이 드러나자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했다. ‘한비자, 변화편(韓非子,卞和篇)’에 보인다. 화씨는 두 발꿈치를 잃고서야 다듬지 않은 돌을 천하의 옥으로 인정받았다. 지금 우리사회가 절차에 따라 돌을 쪼개 옥을 다듬는 것은 외면한 채 사람 다리 자르는 것은 쉽게 여기지 않는지 깊이 성찰해볼 문제이다.

2020-10-26

일·가정 양립하는 길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일·가정 양립지원정책은 남녀 근로자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장 그리고 가정생활의 충돌을 완화하고자 도입된 정책이다. 근로자의 임신, 출산, 자녀 양육기의 모성보호와 경력단절을 방지해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자녀 양육기의 가족생활을 보장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출산전후휴가제도, 육아휴직제도, 근로시간 유연화 관련 제도, 돌봄 정책을 포괄한다. 일·가정 양립지원정책은 2000년대 초반 양성평등, 2000년대 중반 저출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 단계에 접어든다. 제도의 기본 틀은 1953년 근로기준법과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에 반영되어 있었다. 출산전후휴가는 1953년 근로기준법에 유급제로 도입됐고, 육아휴직제도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에 무급제로 도입됐고, 역시 2001년에 정액 20만원의 고용보험 급여가 신설됐다. 이로 인해 육아휴직제도와 출산전후휴가제도 활용은 증가했다.현재 일·가정 양립지원제도는 크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대변되는 부모휴가제도와 유연근무제로 구분할 수 있다. 부모휴가제도는 출산(전후)휴가제도, 육아휴직제도, 배우자출산휴가제도, 가족돌봄휴직제도 등이 있는데, 그 영향력과 제도적 개선 가능성을 육아휴직제도를 중심으로 검토되어 왔다. 일·가정양립지원을 위한 다양한 휴가·휴직제도 중 육아휴직이 제도적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그 보편성과 중요성은 물론, 출산휴가와 달리 근로자의 선택에 의하여 제도 활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한편 최근에는 육아휴직으로 인한 근로관계 단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활용성이 증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유연근무제는 사업장 단위에서 제도 도입과 운영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높다. 유연근무제를 규율하는 법률은 크게 ‘근로기준법’과 ‘가족친화 사회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해 여성경제활동 활성화와 직장맘의 안정적인 고용유지, 경력단절 예방, 나아가 행복한 일과 가정의 균형 있는 삶을 위해서는 불평등하고 열악한 고용구조 개선과, 가사와 양육의 남녀 공동부담, 사회적 책임강화, 일생활 균형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종합적 접근이 모색되어야 한다. 공공기관, 기업, 가정 등 사회전반에 걸쳐 일·생활균형이라는 워라밸의 실천을 위한 인식과 실천 아젠다들이 발굴되는 분위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다양한 근무방식, 장시간 노동을 감축하거나 휴가 사용을 촉진하는 등 제도 도입 및 실천은 기업의 근무방식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직장에 국한되지 않고, 자택과 오피스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는 생산성이 높은 업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새로운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신패러다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일·가정양립지원의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때문에 일·가정양립형 지원 정책의 적극적 활용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일과 삶에 관한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020-10-26

정상과 병리 사이

유영희작가​​​​​​​·인문글쓰기 강사매스컴에서 듣던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가 어느샌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도 가족이 조현병을 앓고 있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족들조차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라서 우왕좌왕한다.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라는 책에 유난히 관심이 갔다. 이 책은 가족이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책이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실을 잘못 보는 환자와 논쟁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 현실을 왜곡해서 본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건 A가 아니야, B야. 아무리 설명을 하고 납득을 시키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때로는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큰 병을 앓다 보면 이상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5년 전 돌아가신 엄마는 파킨슨씨 병을 앓으면서 환청이 있으셨다. 내 신발에 도청장치가 있어, 사람들이 나와서 나한테 소리를 질러, 누가 죽었대 등등. 이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책에서는 이런 환자들에게 설득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심하게 흥분했을 때는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이 좋고, 그 망상이 누군가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개입하지 말고 가볍게 흘려듣거나 슬며시 화제를 바꾸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논쟁하지 말고 대신 그 밑에 깔린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고 한다.그런데 이런 조언은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 기능을 어느 정도 수행하는 사람들도 비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실증적인 증거를 들이대도 수용하지 않는다. 책의 조언을 적용하면, 이때 그런 생각과 논쟁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 생각이 누구에게 해를 끼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설득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때로는 비논리적인 사고로 남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감정이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때 나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 적이 있다. 상담사가 아무리 나의 성취한 부분을 말해주어도 부정하거나 폄하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럴 때 상담사가 논리적으로 내 생각을 반박하려 하지 말고, 그 생각 뒤에 숨은 감정을 알아주었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인정했을 때 오는 후폭풍, 예를 들어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을 때 오는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대목 역시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대목이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는 말이 있다. 그럴 때 논리적으로 그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반박하기보다 부끄러움이라는 속감정을 이해해주는 것이 그 사람과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이다. 정상과 병리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2020-10-26

유전자가위

생명공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발견으로 불리는‘유전자 가위’는 특정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사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내는 기술을 말한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다우드나 교수와 샤르팡티에 교수가 2011년 3세대 유전자가위‘크리스피 캐스9’을 완성해 각광을 받았다.‘크리스피 캐스9’은 박테리아에서 발견되는 면역시스템인‘크리스퍼’에 마치 가위처럼 DNA 염기서열을 자를 수 있는 단백질‘캐스9’을 결합한 기술이다.박테리아는 자신에게 침입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를 표식으로 보관하다가 나중에 같은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바로 효소 단백질로 잘라낸다. 이를 손상된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쓰는 게 바로 유전자가위다. 유전자 가위를 절단하고 싶은 DNA에 붙이면 DNA 이중나선이 풀리면서 가이드 RNA와 DNA가 결합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DNA가 잘리거나 붙으면서 DNA 교정이 가능해진다. 3세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면 연구자들이 동식물과 미생물 DNA를 정확하게 수정할 수 있어서 암 치료를 위한 새 대안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유전질환을 정복한다는 꿈을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를 모으고있다. 다만 유전체를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다는 말은 생명의 기본적인 설계도를 마치 신이 된것처럼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것처럼 멸종된 생물을 복원한다던가, 유전질환을 지닌 태아의 생명을 구하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난제에 봉착하던 난제들에 도전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발전이 인간의 생명윤리 자체를 넘어설 경우 인류가 겪을 재앙이나 공포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26

‘독도의 날’에

윤영대수필가10월 25일 어제는 ‘독도의 날’이다.1900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반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에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관련 단체 등과 공동으로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전국 단위로 선포했었다. 이것은 일본이 그동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온 것에 대한 경고이자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우리의 강력한 독도수호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은 포항에서 뱃길 258km,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섬이고, 동도와 서도로 이루어져 있는 작지만 소중한 우리의 영토이며 자산이다.영해와 영공을 결정짓는 지리적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난류와 한류가 합치는 황금어장에 해양생태계의 보고이다. 여름철이면 오징어 떼가 넘쳐나고 겨울과 봄에는 명태가 몰려오며 꽁치, 대구들도 무리 지어 다니고 있다. 해저 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등이 숲을 이루어 해삼, 문어들이 풍성하고 이제는 멸종된 바다사자 강치의 기억을 더듬으며 바다제비, 괭이갈매기, 슴새 등 많은 철새들의 서식 낙원으로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 밑 울릉분지에는 천연가스 부존가능성이 있어 경제적 가치로도 동해의 보물이다.이러한 독도에 일본이 끊임없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옛날부터 근해에서 자기들이 고기잡이를 해왔고 1905년 시네마현 고시로 다케시마(竹島)라고 불렀으며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내용에서 빠졌다는 것을 핑계로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세종실록지리지 등 우리의 고문서와 고종 칙령을 보더라도 얼토당토않는 행위인 것이다. 자기네들의 태정관 지시(1877년)에도 ‘죽도(울릉도) 외 1도(독도를 말함)는 일본과는 무관’함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우리 측의 허술함도 있었겠지만 1994년 배타적 경제수역이 실시되면서 독도 주변이 공동 구역으로 정해졌었다. 사실 전 세계지도의 80% 이상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니 우리도 빨리 외교나 학술발표 등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역사를 보더라도 삼국사기에는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었고 이조실록에도 수차례 사람을 보내 지키도록 했었으며 17세기 말 안용복은 일본에 건너가서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왔지 않은가. 이제 홍순칠 대장의 독도의용수비대를 이어받은 독도경비대가 주둔하고 독도 주민도 살고 있는데 아직도 일본은 영유권 고집을 피우고 있다.독도 문제는 일본과의 감정 대립을 넘어 그들의 전략과 속셈을 파악하고 명확한 역사적 자료와 폭넓은 외교력으로 일본의 영유권 야욕을 꺾는 힘을 길러 극일(克日)을 해 나가야 한다.입도신고제로 바뀐 후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들어온다고 하니 ‘독도의 날’을 맞아 해양환경도 지키며 우리의 영토 주권수호에 대한 의지도 길러야겠다.

2020-10-25

책 읽어 주기의 힘

김현욱 시인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뇌가 독서를 배우는 방법을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라고 말했다. 소리에 관한 한 아이들의 선(線)운 이미 연결되어있지만, 문자는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말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만 글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애초에 뇌는 독서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는 행동은 인간에게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E. B 휴이는 “독서라는 과정은 문자를 단순히 시각적으로 읽는 행위만이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행위 중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 중의 하나.”라고 거들었고, 멀린 위트록은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위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 글로 쓰인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가면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의 감정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통합을 위해서는 뇌의 각 영역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렇다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책 읽어주기다. 1979년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출간한 짐 트렐리즈에게는 어린 시절 책을 읽어 준 아버지가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추억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자녀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많은 아이가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가 부모와 교사에게 있음을 깨달은 트렐리즈는 자비로 이 책을 냈다. 그 후 트렐리즈의 책은 스테디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의 교실 풍경까지 바꿔 놓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도 2만여 개가 넘는 학교가 매일 아침을 책 읽기로 시작하고 있다.많은 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해 노심초사하지만 어릴 때부터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사실, 읽기는 모든 학습의 기초요 주춧돌이다. 책 읽기와 학업 성취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수많은 통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읽기가 교육의 중심이고, 읽기가 최우선이다. 읽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읽기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부터 소리 내어 책을 꾸준히 읽어 주는 것이다. 트렐리즈는 요람에서 10대 중반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핀란드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어 글을 배우지만 읽기 능력과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고이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핀란드의 많은 가정은 책을 읽는 분위기이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매우 강조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의 역할도 막중하다. 좋은 책을 골라 아이들에게 열심히 읽어주자. 좋은 책과 책 읽어주는 당신의 목소리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2020-10-25

이제는 ‘저축’이 아닌 ‘금융’도 생각해보자

달력에는 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로서 뜻있는 ‘날’이 많다. 생소한 날도 적지 않은데 ‘금융의 날’도 그중 하나일 것 같다. 옛날 ‘저축의 날’이 개명한 것이다. 10월 마지막 화요일로 지정된 이 날의 유래는 196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증권의 날’과 ‘보험의 날’까지 흡수하면서 ‘저축의 날’이 되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저축’과 ‘금융’이 의미하는 뜻은 크게 다르다. 지금도 신흥국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하도록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국민 저축이 늘어나면 그 자금으로 산업을 육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외국에 차관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자율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도 예전에는 ‘저축은 국력’이라는 표어까지 내걸었다. 저축 유도를 위해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이나 주택마련 적금과 같은 상품도 있었다. 그때는 ‘저축’만으로 재산형성이나 주택마련이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축’으로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시대가 되었다. ‘저축’이 아닌 ‘투자’라는 개념이 들어가는 ‘금융의 날’로 이름이 바뀐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주택, 아파트, 토지와 같은 ‘실물’자산에 대한 욕구가 높다. 가계의 자산구성도 예금, 보험, 증권과 같은 금융자산보다는 실물자산 비중이 훨씬 높다. 미국 등 선진국과는 정반대다. 문제는 아무리 실물자산을 원하더라도 옛날과는 여건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삼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축’과 ‘대출’을 끼면 내 집 마련의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길이 끊어졌다. 더구나 ‘저축’에 상극인 ‘저금리’까지 함께 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를 특정하는 다양한 사회 용어 가운데 가슴 아프게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3포세대’라는 말이 연애, 결혼, 자녀를 의미한다고 할 때 만 하더라도 설마? 했었지만, 지금의 N포세대는 3포세대에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를 더한 7포 세대를 뛰어넘어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이러한 현실에서 새삼 ‘금융의 날’이 달리 느껴진다. 청년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돈’ 때문일 것이다. N포에서 7포로 5포로, 그리고 5포에서 3포로 줄여나가려면 역시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 문제만도 아닐 것이겠지만. 그러한 의미에서 확률적으로 서민이든 N포세대든 돈을 모으는 ‘저축’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 돈을 불리는 ‘금융’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최소한 희망이 있는 ‘금융’을 지금부터라도 눈여겨보고 쥐 꼬리 만한 ‘돈’이라도 불려 나간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N포에서 ‘1포’를 조금씩 빼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덕담 중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누가 말해도 누구에게 들어도 즐겁다. 그러나 실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하늘이 점지한 사람만 부자가 된다고 믿는 선민의식에 빠진 부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수 대에 걸쳐 내려온 부자 가문이 아닌 한 정답은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지식, 그리고 열정, 끈기와 더불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절제가 있다면 부자가 될 최소한의 ‘기회’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외국의 한 국제투자가가 세계의 부유층이 ‘금융’에 대한 투자나 매매에 활용하고 있는 공통분모를 책으로 펴냈다. 제목도 ‘세계의 부자가 실천하는 돈 늘리는 법’이다.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책의 줄거리는 그동안 국내에서 나온 금융투자와 관련한 책들이 이야기하는 ‘비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첫 번째 규칙은 최대한 정보를 모으라는 것이다. 증권이라는 금융상품을 예로 들어 보자. 주식이라는 것은 미래에 그 주식을 발행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를 시장에서 예측하여 오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사고, 떨어진다고 본 사람은 판다. 그 모든 판단은 결국 예측에서 나오며, 그 예측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지식이나 정보에서 나온다. 당연히 ‘금융’을 통해 자신의 돈을 불리려는 사람은 자신이 거래하려는 대상의 기업, 그 기업이 속한 업종, 그 업종이 속한 산업에 대해 전망, 세계적인 움직임을 공부하고 정보를 모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문, 뉴스, 잡지의 경제면을 많이 읽자.두 번째 규칙은 절대 다른 사람 이야기만 듣고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거래의 당사자는 ‘자신’이다. 자기가 부자가 될지 말지를 결정할 중대한 판단을 누군가가 ‘하다더라’라는 말에만 따르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어로 된 약자투성이의 금융상품이나 펀드를 설명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한 금융투자상품들을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권유한다고 그저 믿고 ‘묻지마 투자’를 해서는 절대로 ‘돈’을 불릴 수는 없다.세 번째 규칙은 투자대상이나 상품을 선정할 때 단 하나에 ‘올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돈인데 이것을 나누고 쪼개고 하는 ‘분산투자’가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그마저 줄어들게 만드는 ‘위험’만은 분산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분산투자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위험분산’이기도 하다. 돌다리를 두드린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공부하고 자기가 결정한 거래라도 ‘혹시’, ‘어쩌면’이라는 생각에서 두 개, 세 개로 나눈다면 ‘돈’을 많이 늘리지는 못해도 적어도 가진 ‘돈’을 단번에 잃어버리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다.네 번째 규칙은 자신이 거래할 때는 납득할 만한 자신만의 이유, 원칙을 정해두고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주식을 산다면 어떻게 움직이면 팔겠다. 이 주식은 이런 이유로 가격이 오를 것이므로 산다는 ‘이유’를 적어두면,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알고, 떨어졌을 때는 미리 정한 가격에 무조건 손해를 보더라도 팔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어쩌면 금방 다시 오를 거야’라며 자기를 속이는 일도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법칙이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공부하고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정한 ‘원칙’을 인공지능처럼 지켜서 거래하는 사람과 ‘혹시’라는 ‘기대’로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어기는 사람이 싸우는 ‘주식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뻔하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부자나 돈을 불리겠다는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마지막 다섯 번째 규칙은 사고팔 때 단번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투자가의 ‘위험’을 줄이는 원칙이기도 하다. 자신이 모은 지식, 정보를 이용하여 정해둔 매입가격까지 많이 하락하여 매입 시점이 되었더라도 투자 금액의 3분의 1만큼만 사고 가진 모든 돈을 단번에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혹시라도 자신의 판단이 틀려 가격이 추가로 내려가더라도 가진 돈의 3분의 1을, 또 내려가면 나머지를 살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출 수도 있고, 여의치 않을 때는 추가 매입은 포기하고 최소한의 손해로 그칠 수 있게 된다. 이는 팔 때도 마찬가지다.쉽지는 않다. 하지만 ‘금융의 날’을 맞이하여 적어도 손에 든 ‘돈’을 ‘금융’으로 불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한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0-25

선택적 정의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정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말했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의(義)와 이(利)로 구분했다. 정의로운 일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군자라는 뜻이다. 군자란 지금의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가를 이르는 말이다. 공자는 사람과 사회를 중요한 인식의 대상으로 삼은 사상가다. 특히 사회 지도층인 정치가의 도덕심은 사회를 바르게 세우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유럽 국가의 오랜 전통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흐름이 같다.정의란 근본적으로 가진 자의 솔선수범에서 시작한다. 지금 국가 경영에 직간접 참여하는 선출직 정치인이나 장관 등 고위직에 대한 도덕성 요구는 이런 점에서 너무 당연하다. 가진 만큼 더 큰 책임이 있고, 지도자가 가진 힘과 재산은 반드시 정의롭게 사용돼야 한다.정의는 인간이 이성적 판단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든 추구하는 올곧은 가치관을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 본질은 평등”이라고 했고, 플라톤은 “지혜, 용기, 절제의 완전한 조화”라고도 했다.지금 우리 사회 모두가 외치는 정의는 과연 올바르게 실현되고 있는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각자가 주장하는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된다고 하면 정의로운 사회는 영원히 이룩될 수 없다. 정의란 시대불변의 진리인데도 사람에 따라 혹은 이익단체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정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는 누구에게나 동일할 때 정의의 본질이 성립하는 것이다. 정의를 두고 네 것과 내 것으로 가르는 것은 진실에 위배되는 모순이다. 어떤 사안을 두고 “정의롭다, 아니다”라는 판단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던진 ‘선택적 정의’란 표현은 그런 점에서 편가르기로 보일 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0-25

‘윤석열 드라마’가 시작됐다

안재휘논설위원‘권위주의’와 ‘권위’는 완전히 다르다. 소위 ‘진보’와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는 바로 ‘권위주의’를 청산한다면서 실질적으로는 ‘권위’까지 무너뜨린 일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흔한 말 중에 “요즘 나라에 어른이 없다”는 푸념은 참이다.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그 치명적인 만행은 점점 더 광기(狂氣)로 치닫고 있다.지난 22일 여의도 국회에서 벌어진 ‘윤석열 드라마’는 생방송 시청률 9.91%를 기록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윤석열 드라마’의 결정적 흥행요인은 불과 1년여 전 ‘윤석열 찬가’를 부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똑같은 입으로 마구발방 물어뜯는다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적 요소다.2013년 국정원 댓글 외압사건을 폭로할 당시에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기록한 윤 총장은 이번에는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겼다. “검찰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면서 한낱 자신을 졸개 취급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무례에 대한 통쾌한 카운터블로였다.적지 않은 법률전문가들이 추 장관의 5가지 실정법 위반을 적시한다. 검찰청법 제8조에 명시된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이 추 장관 수사지휘권의 권원(權原)이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처리 방향 지휘가 아니라 아예 총장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게 법조계의 보편적 해석이다.수사지휘권 박탈은 ‘정직’에 해당하는 징계다. 검찰청법 제37조 ‘징계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검사가 해임, 면직, 정직 등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과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도 위반했다는 견해마저 분분하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수사지휘권 횡포가 일상화된다면 이 나라는 ‘검찰독립’이 완전히 무너진 독재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청와대와 여당이 입버릇처럼 쓰는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사법기관의 사유화’를 뜻하는 사탕발림이고, ‘검찰 개혁’이라는 말은 ‘검찰 장악 음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다.‘윤석열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플래카드와 함께 검찰청사 앞에 줄지어 선 100여 개의 화환은 결코 즐거운 풍경이 아니다. “(나만 빼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어법(反語法) 괄호 부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윤석열은 ‘바보’라는 야당 정치인의 야유는 차라리 슬프다.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검찰독립’의 미덕을 담보하기 위한 일종의 불문법적(不文法的) 관례였다. 그러나 이제 이 정권이 오래된 전통을 붕괴시키고 있다. 삼권분립을 망가뜨린 정권의 하수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온갖 ‘중상모략’으로 멀쩡한 검찰총장의 ‘권위’를 파괴하며 검찰권 찬탈을 음모하고 있다. 백전노장 ‘윤석열’의 다음 드라마가 벌써 궁금해진다.

2020-10-25

꽃밭을 지키는 탑

“저~기, 꽃도 아이고 나무도 아이고 붉은색 보이지요? 거기시더.”영산서원을 구경하고 난 뒤 해설사에게 근처에 탑이 두 개 있다는 이정표를 봤는데 어디쯤 있냐고 물었다. 언덕에 자리한 서원이라 마당에서 마을과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가을 햇살이 하도 눈이 부셔서 손양산을 하고서 들을 ‘주욱’ 훑었다. 어딘지 헤매는 우리에게 손짓으로 알려준 곳에 꽃밭이 있었다. 모양은 나무인데 키가 낮고 색이 붉기도 하고 분홍빛도 어우러져 진짜 꽃밭처럼 느껴졌다. 그 밭 언저리에 언뜻 탑이 보였다. 그것은 삼층탑이고 거기서 다리를 건너면 오층탑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셨다.차를 몰고 가까이 갈수록 꽃밭의 형체가 드러났다. 시골집 마당 가에 많이 심는 댑싸리였다. 보통은 연두색이다가 베어서 빗자루를 만들어 마당을 쓰는 용도로 썼던 그 풀이다. 핑크뮬리처럼 색이 고와서인지 이미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많았고, 한적한 시골 동네에 차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분홍빛에 묻혀 인증샷을 찍기 위해서였다.꽃밭 너머에 삼층탑이 섰다. 저 멀리 당간지주도 덩그러니 놓였다. 댑싸리 지나 풀밭을 헤치고 가까이 갔다. 탑의 여러 곳이 깨지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12지신상을 한 면에 3구씩 새겼다. 탑신의 1층 몸돌에는 각 면마다 사천왕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각 층의 지붕돌 밑면에는 물을 뺄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고,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이 탑은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이곳에 ‘북악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요즘 들어 영양에 자주 갔다. 길이 새로 난 덕분에 멀기만 하던 영양이 내 곁으로 성큼 다가온 덕분이다. 영덕에서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면 20여 분만에 톨게이트에 내려서라고 하니 포항에서 한 시간 좀 더 가면 된다. 육지 안의 섬이라고 할 만큼 깊은 산 속에 자리한 곳이라 다소 낯설다는 느낌이 드는데 의외로 오래된 종택을 비롯해 국가지정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이 가운데 특히 탑과 관련한 문화재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보통 탑이라고 하면 산을 올라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양군의 경우 대부분 마을이나 길가에 탑이 있어 접근성 면에서 좋다. 탑이 있다는 것은 곧 영양 지역에 사찰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늘은 두 개의 탑을 보러 갔다. 밭 가운데 자리한 영양 현리 삼층석탑과 모전석탑 계열의 현이동모전오층석탑이다.분홍 댑싸리 밭을 나와 다리를 건너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탑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현리 2교의 반대편이자, 현동교를 지나면 이내 현이동모전오층석탑 만날 수 있다. 작은 사찰 내에 자리한 이 탑은 듬직한 형 같아서 건너편의 삼층석탑을 보살피려 내려다보고 있다.일월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반변천 가에 탑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다. 강가의 고가차도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있어, 그 강을 따라 내려가면 국보 제187호 봉감모전오층석탑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영양에는 하천변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김순희수필가절이 사람을 불러들이던 현리에 이제 탑만 남았다. 핑크 댑싸리가 절의 역할을 대신한다. 나와 남편 말고 탑에 관심을 갖는 이가 거의 없었다. 모두 꽃밭 언저리만 맴돌다 이내 차를 돌려 마을을 떠났다. 여기 탑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댑싸리를 삼층탑 둘레까지 심고 꽃밭 입구에 오층탑의 위치를 표시해 두면 좋겠다. 우리가 탑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분홍 댑싸리를 득템 했듯, 댑싸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천년을 그 자리에서 천년의 풍상을 겪은 탑이 전하는 구수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행운을 건질 수 있게 말이다. 그러면 댑싸리가 탑을 더 오래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지. 탑과 분홍 댑싸리가 함께 나오도록 카메라를 높이 들고 한 장의 추억을 찍었다.

2020-10-25

코로나·태풍 아픈 상처 딛고 다시 일어설 터

김병수 울릉군수“총리대신과 현임 대신들께 언급 하도록 하라. 지금 보니 일시라도 버려둘 수는 없다. 비록 한 조각의 땅이라도 버릴 수는 없다. 단지 저들에게 통고만 할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일도 또한 속히 하라”!동해 유일의 섬 대한민국 경북도 울릉군.1882년 고종은 동해 유일의 섬 우리 땅 울릉도에 왜인들이 송도(松島)라 표목을 세우고 우리 강토를 넘보고 있다는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보고에 따라 울릉도 개척을 명했다.이듬해 1883년 개척민(16호 54명)이 입도한 이래로 울릉군민은 138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척박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동해와 함께 우리 민족의 섬 독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그러나 2003년에 태풍 ‘매미’가 울릉도를 관통 할 때도 그랬듯이 매년 태풍이 울릉도와 독도를 초토화 시킬 때 마다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가고 우리나라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멀어 졌습니다”라는 방송사 기상 케스트의 멘트와 함께 국가 재난방송은 종료되고, 울릉도는 그야말로 소외된 땅으로 남아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지난 9월 태풍 ‘마이삭’이 파고높이 19.5m를 기록하며 울릉도 독도를 초토화 시키고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연이은 태풍 ‘하이선’이 관통하면서 섬 전체가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지고, 날아가고, 침몰하는 그 순간에도 울릉도 주민들은 “우리나라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는 뉴스를 보면서 상상하기 힘든 태풍의 위력 앞에서 절규 했고 원망 했다.울릉도는 어느 나라이고 우리는 어느 나라 국민 입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태풍직후 정세균 국무총리가 울릉도로 급하게 달려와 “울릉도 뒤에는 대한민국이 있다”면서 위로를 전했다.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울릉도를 조기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 했고, 울릉군도 이에 발맞춰 태풍 응급복구, 재난구호 등을 신속히 추진, 최근 813억 원의 복구비가 확정되는 등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울릉군의 시름은 끝이 없는 현실이다.올해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코로나 확진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은 코로나 청정섬 울릉도도 관광객이 70%정도 감소해 지역 관광업계가 도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잇따른 태풍으로 행남 해안산책로, 태하모노레일 등 울릉도의 주요관광 시설이 타격을 입었고 무엇보다도 독도 접안시설이 피해를 입어 올해까지는 관광객의 독도입도가 불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지역관관상업 회복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가 큰 고민이다.최근 태풍의 영향으로 중국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 출어하지 못해 예년에 비해 오징어가 조금 빨리 잡혀 지역경제 회복에 작은 희망을 주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코로나로 인한 관광객 감소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판로가 걱정되는 실정이다.울릉군은 코로나로 지역경제의 버팀목인 관광산업이 무너지고 업친데 덥친 격으로 연이은 태풍이 관통 하면서 실의에 빠진 군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공감하면서 공직자의 땀방울이 주민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심정으로 태풍피해의 항구적 복구와 지역 발전을 위한 희망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대한국민 여러분! 138년 전 고종임금이 그랬듯이 울릉도와 독도는 단 조각의 땅이라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동해의 작은 대한민국 ‘울릉도’ 우리나라 영토 애의 상징 ‘독도’는 태풍의 아픈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국민들이 뽑은 대한민국 대표 1위, 2위 섬, 울릉도와 독도는 동해의 진주입니다. 물이 풍부하고 공기가 맑고 깨끗한 청정 섬, 천혜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신비의 섬 울릉도는 여러분의 섬입니다. 코로나 19로 지치고 힘든 정신과 육체를 울릉도에서 힐링하세요.

2020-10-25

재갈 물린 정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얼마전 ‘한국 진보통치자들이 발산한 내면의 권위주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을 평가하면서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1425년 세종대왕의 어록에서 “나는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소.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하시오”라는 구절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에 뼈아픈 조언을 던졌다. 진보진영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정부보다 평등하고 개방적이며, ‘이견에 관대할 것’을 약속해놓고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민주당 내 비판을 참지 못하는 기류는 민주당 내 친문 세력, 강성 지지자들의 폐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기권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았던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탈당 선언으로 이런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금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며 “국민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서슴지 않는 것은 김대중이 이끌던 민주당, 노무현이 이끌던 민주당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온라인 중심의 친문 강성 지지자들은 당내 비판을 하는 의원들에게도 ‘문자테러’등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을 두고 “병역은 국민의 역린”이라고 비판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나 추 장관의 대응방식을 비판했던 조응천 의원도 친문세력들의 표적이 돼 “차라리 국민의힘으로 가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민주당 내 자성을 위한 목소리에 재갈이 물린 셈이다.옛 중국 주나라 여왕이 재위 34년째인 기원전 844년, 괵공 장보와 영이공을 등용해 산과 숲·하천·호수를 모두 왕의 소유로 선포하고, 평민은 거기에서 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는 것은 물론 땔나무조차 벨 수 없게 했다.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고 가혹한 형법을 시행하기를 밥 먹듯 했다. 소목공(召穆公)이 “백성이 포악한 명령을 견디지 못하여 분노의 목소리가 크다”고 간했으나 왕은 오히려 노여워하며 위(衛)나라의 무당을 불러 비방하는 자들을 감시하게 하고, 고발이 들어오면 죽였다. 소목공은 다시 이렇게 간했다. “백성에게 입이 있는 것은 대지에 산천이 있어 거기에서 모든 재물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백성들이 마음껏 말하도록 하면 정치를 잘 하고 못함이 다 반영되어 나옵니다. 좋은 일을 밀고 나가고 잘못된 일을 방지하는 것은 대지에서 재물과 의식을 생산하는 것과 같습니다”얼굴없는 입이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에서 건전한 당내 비판을 막아서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분위기는 언로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이뤄지는 정치는 폭정이거나 독재, 둘 중에 하나일 수 밖에 없다.

2020-10-22

마피아 공무원

1972년 개봉된 알파치노 주연의 ‘대부’는 할리우드 영화 상 가장 훌륭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주인공 알파치노는 실제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출신으로 영화의 배경이 된 마피아 조직의 이야기를 실감 있게 연기한 배우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마피아 권력의 모습을 지나치게 품격 있고 권위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범죄조직을 미화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던 영화다.마피아는 19세기말 이전부터 남이탈리아의 복잡한 정치구조 속에서 번성한 범죄조직이다. 20세기에는 미국 등으로 넘어와 마약, 도박, 금융 등에 얽힌 거대한 범죄조직으로 발전하였고, 지금은 기업형 범죄조직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용어다. 한 때 이탈리아 마피아 범죄조직이 한해동안 벌어들인 돈이 이탈리아 국가 GDP의 7%에 달했다고 하니 그들의 범죄 활동범위를 짐작게 한다.마피아라는 유명세 덕분에 범죄 조직뿐 아니라 공적인 이익보다 사적인 이익에 치중하는 집단에게도 마피아라는 이름이 곧잘 붙여졌다. 서로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인맥을 통해 조직적으로 편의를 봐주는 경우다. 그래서 마피아는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관피아는 관료의 권력유착과 전관예우 등의 문제를 빗대 부른 합성어다. 재경부 마피아, 환경부 마피아, 해수부 마피아, 복지 마피아 등으로 사안에 따라 구체화되기도 했다.한 때 국가 발전의 주역이던 관료 집단이 언제부턴가 사적인 영역에서 권력을 행세하면서 마피아라는 불명예스런 호칭을 얻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최근 산자부 공무원이 탈원전 정책 감사와 관련 조직적으로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또한번 “마피아 같다”는 비난을 들었다. 공직자의 올바른 국가관과 도덕성에 대한 대오각성이 필요한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0-22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1950년대 초 미국 미시간 주의 한 유사종교 교주가 신의 계시라면서 이런 예언을 했다. “12월 21일 대서양 바닥이 융기해 해안선이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다. 프랑스는 가라앉을 것이며, 러시아는 거대한 바다가 될 것이다. 로키산맥 위로는 엄청난 물살이 밀어닥치리라. 이 모든 것은 세상을 정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그 교주는 오로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만 UFO가 와서 구출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날이 되어도 그들이 바라는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종말론을 믿었던 기존의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조증 환자처럼 기쁨에 겨워 날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기도했더니 신께서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시고 홍수를 내리지 않았다”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그로부터 40여 년 후에도‘천국의 문’이라는 종교 단체가 비슷한 종말론을 들고 나왔다. 그 단체의 신도들은 1997년 지구에 가장 근접할 예정이던 ‘헤일밥’이란 혜성의 뒤에 저들을 구원해 우주로 데려가 줄 우주선이 따라온다고 굳게 믿었다. 신도들 중에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던 혜성을 더 자세히 보려고 값비싼 고해상도 천체 망원경을 산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헤일밥 혜성이 지구를 지나갔지만 천국의 문 신도들이 기다리던 우주선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예정대로 구원받아 우주로 가려면 세속의 껍질(신체)을 벗어야 한다고 믿은 회원 39명은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다.이 같은 종말론에 관련한 사건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ce)의 전형적인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인지부조화’란 개념은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1950년대에 출간한 책 ‘인지적 부조화 이론’을 통해 제기된 용어이다.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심리적 불편함 등을 말한다. 다시 말해 태도와 태도, 태도와 행동이 서로 일관되지 않거나 모순이 존재하는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한다.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자신의 착각이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와는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페스팅거의 주장이다. 가령 담배가 발암물질이며 흡연 때문에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 담배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거나 흡연을 하면서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허황된 종말론신앙 못지않게 그릇된 이데올로기의 맹신도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낳는다. 고등학교까지 입시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운동권 선배들에게 포섭되어 오로지 좌경이념에 몰입해온 사람들은, 그들의 이념이 부정되는 인지부조화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신념이나 노선을 바꾸기보다는 대부분 자기합리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현상을 보인다. 심지어 온갖 궤변과 억지도 서슴지 않는 확증편향의 광기에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2020-10-22

‘역시나’로 끝난 노벨상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매년 가을이면 “혹시나”하다가 “역시나”로 끝나는 행사가 있다. 노벨상 수상식이 그것이다. 미국, 영국들이 수백개를 받았고 일본도 수십개를 받은 노벨상을 한국은 평화상이라는 정치적인 상 한 개를 받은 것 이외에는 단 한 개도 받지 못하고 있다.어떤 기자는 만년 하위 팀 야구팬들이 ‘가을잔치’ 포스트시즌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매년 가을 노벨상 발표를 지켜보는 기분이 딱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년 “혹시나”의 신드롬은 계속된다.몇 년 전에는 한국의 시인 한 명이 매년 “혹시나”하다가 “역시나”로 끝난 적이 있는데 금년에는 과학분야에서 “혹시나”로 몸살을 앓았다. 노벨상 수상이 유력한 우수 연구자를 선정, 발표하는 학술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를 화학상 후보로 점찍었기 때문이다. 현 교수 연구실은 기자들로 붐비고, 심지어 기자들은 현 교수의 고향집에까지 몰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국 “역시나”로 끝났다.노벨상을 수상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중진국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고 심지어 우리보다 뒤진다는 인도, 파키스탄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빠져있는 상태이다. 이제 “역시나”를 멈출 수 있을까?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어서 답을 구하면 된다”는 창의적인 학습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해법을 스스로 만드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그들에 비해 한국에서 수재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창의성에서 확실히 뒤지고 있다.과연 초·중·고등학교에서 창의적으로 길러지지 않은 학생들을, 대학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 노벨상을 받게 할 수 있을까.또 다른 문제가 있다. 과학계는 숱한 외풍에 시달린다. 정부가 갈리면 시작되는 과학계 압박과 사임 압박 열풍. 2년 전 정부는 국가연구비를 횡령하고 채용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KAIST 총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과학계에선 ‘정치적 숙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무혐의 처분으로 일단락됐지만 정부의 반성은 안보인다.카이스트 총장이 이러한 압력을 받은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전 정부산하에서 임명된 수십명의 연구원 수장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몰아냈다. 스스로 안나가면 감사라는 명목으로 들들 볶아서 내보내는 건 정부가 갈릴 때면 일어나는 정기 행사이다.창의력이 부족한 교육 그리고 정치에 휘둘리는 과학계 이 두가지 만으로도 노벨상이 안나오는 이유는 설명된다. 이제 “역시나”로 끝나지 않으려면 교육의 방식과 과학계의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제발 부탁한다. 정치논리로 과학계를 흔들지 말라. 교육 개혁은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과학계를 흔드는 일은 즉시 멈출 수 있지 않는가.

2020-10-22

이래도 되는 것이냐

장규열 한동대 교수우리는 어떤 나라를 기대했을까. 누구든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한 일상을 이어가면 부족하지 않은 삶이 가능해 이웃과 함께 좋은 날들을 만나게 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넉넉한 삶은 아닐지라도 사회의 어두운 구석이 사라지고 어울려 살아가는 일에 그늘이 드리우는 일은 만나지 않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천박한 자본주의에 더는 휘둘리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지 않았을까.세상은 희한하게도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한때, 어느 여인의 딸이 대학에서 특혜를 받았던 일에 분개해 대학생들이 분연히 일어서지 않았던가. 대학교수들이 수천만원씩 집어삼키는 비리를 저질렀다는데 대학생들이 저항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뉴스가 전하는 지도층의 부패와 타락을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느 국회의원에게 몇백만원 선물한 것은 너무 적으니, 하루저녁 천만원 술접대를 하고 수천만원 명품백을 돌렸다고 한다. 수억원 뇌물이 오갔다는데, 시민들은 감각이 마비됐다. 언론보도의 행태에 따라 ‘어느 편’이냐를 읽고 있을 뿐 사안의 심각함은 눈치챌 겨를도 없다. 돈에 약하고 유혹에 휘둘리는 건 오른쪽왼쪽이 없다. 정상인가 아닌가.부패와 타락은 문제인가 아닌가. 아니 그 교수들과 저 인사들은 차라리 성공한 게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을 부끄러워 않은 게 잘못이란 말이냐. 더 벌어 모은 게 배아파 하는 소리라면 차라리 당신도 성공하지 그랬냐. 그게 정말 그럴까. 일상에 쫓기듯 살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나라에는 차고 넘친다. 영세자영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주민들, 장애인들, 취업준비생들…. 몇십만원 재난지원금에 숨통이 트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수고에 합당한 대가로 살아가려 해도, 삶을 지탱하기에는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판에, 당신들이 누리는 접대와 뇌물은 정당한 일의 대가인가 아닌가. 당신이 어느 편이냐 묻지 않는다.도덕과 윤리는 무용한 것일까. 보통 사람들이 순종하며 잘 따르게만 하려고 ‘도덕과 윤리’가 있었다면 차라리 모두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모두 정글의 짐승이 되어 사투라도 벌여야 하는 게 아닐까.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이제는 누구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도덕율과 윤리의식을 요청해야 할 터이다. 교수와 의사, 법조인과 경제인들에게 높은 윤리기준과 깊은 공동체 의식이 필요해 보인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으로는 사회가 따뜻해질 방법이 없다.선진국이 된다 한들 도덕이 무너진 나라는 거부하고 싶다. 부족하여도 가슴이 넉넉한 사회가 돼야 한다. 다짐이 살아있으면 모자란 것은 채울 수 있다. 무엇이 많아도 그 집에 심성이 무너지면 금세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깨끗한 나라가 되기 위해 ‘도덕재무장’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는 어렵다. 다음 세대에게는 맑은 나라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2020-10-21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은 온라인상에서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제도를 말한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용어는 군중을 뜻하는 영어 단어 ‘크라우드’와 재원 마련을 뜻하는 ‘펀딩’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최초로 제도화된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플랫폼에서 증권을 발행하고, 투자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일반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으로 지칭한다. 크라우드펀딩은 자금 문제를 겪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잡지나 음반, 영화, 아이디어 상품 제작 비용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아 실제로 만들어지는 사례도 나온다. 크라우드펀딩에서 한 방식인 대출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며, 개인간 직거래 방식 금융 서비스(Person to Person 금융)이라고 해서 ‘P2P 대출’이라 부른다. P2P 대출은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사람끼리 온라인으로 직접 금융거래를 하는 방식이다. 거래 당사자는 P2P 대출로 만나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하던 사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돈을 주고받는다는 데서 P2P 대출은 친구나 가족에게 돈을 꾸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 기존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금조달방법이 되고있다.금융위원회가 21일 크라우드 펀딩의 발행한도를 현재 연간 15억원에서 30억원으로 확대하고, 프로젝트 투자대상 사업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일부 업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화제다. 크라우드 펀딩이 시장을 활기차게 하는 자본조달방식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21

베테랑일수록 가볍다

이십 대 초반, 동아리 친구들과 지리산을 종주한 적 있습니다. ‘산이라면 지리산’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당시 청춘들에게 지리산행은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습니다. 화엄사에서 출발해 노고단, 임걸령, 벽소령, 세석산장,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뒤 하산하는 4박5일의 대장정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등산다운 등산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험한 골짜기와 긴 능선을 넘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현장을 접할 수 있다는 숙연한 설렘만이 가득했습니다.첫날은 그럭저럭 오를 만했습니다. 계곡 물소리와 풀꽃들, 간간이 보이는 하늘과 피곤할 만하면 나타나는 쉼터 등 모든 것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가끔 헬리콥터 소리도 들렸는데 능선을 넘는 산행객들의 무사를 응원하는 것 같아 안심이 되곤 했지요.이틀째였을까요. 임걸령과 화계재 사이 어디쯤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등짝을 뒤에서 당기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허벅지 힘이 마구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발바닥이 땅에 붙고 어깻죽지는 내려앉기만 했습니다. 선발대와의 거리는 한참 멀어져 있었고, 하늘과 잇닿아 있다는 드넓은 쉼터는 나타날 기미조차 없었습니다. 가도 가도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급경사 등산로 앞에서 저를 시작으로 몇몇의 여학생이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체력은 바닥인데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니 설움이 북받쳤던 것이지요. 하지만 강단 있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눈썹조차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역까지 배웅 나왔다가 엉겁결에 뾰족 구두 차림으로 합류한 후배조차 의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체력 안배를 잘 해, 날다람쥐처럼 날랜 다른 여학생들을 보니 부러워서 서러웠습니다. 시쳇말로 ‘멘탈’을 관리하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는 그 한계가 부끄러워 더 눈물이 났습니다.저질 체력의 여학생 배낭은 할 수 없이 남학생들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종주를 마칠 수 있었지만 그 일은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주량도 모른 채 마신 한 잔 소주에 취해, 만 하루가 지나서야 깨어났던 일처럼 창피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민폐를 끼쳤다는 미안함, 체력이 좋거나 강단 있는 다른 여학생들에 대한 부러움 등으로 한동안 괴로웠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텔레비전 오지 탐험 프로그램을 볼 때, 힘든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여성 출연자를 보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각설하고 그때 지리산 산행의 패착을 떠올려봅니다. 이유는 한 가지, 너무 무거운 짐 때문이었습니다. 자잘하게는 세면도구에서 크게는 홑이불세트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품을 죄다 배낭에다 쟁여 넣었습니다. 많이 챙겨갈수록 좋은 줄 알고 이것저것 배낭 배를 부풀렸습니다. 자신의 체력도 가늠해보지 않은 채 가방만 무겁게 꾸렸던 것이지요.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짐이라도 가벼웠으면 그토록 고생하지는 않았겠지요. 길 떠나는 자는 자고로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안 것이지요. 여행 잡지에서 본 전문가의 충고를 되새깁니다. ‘될 수 있으면 짐을 줄여라. 한 번 줄이고 그 다음날 점검할 때 또 줄여라. 그러다 보면 꼭 필요한 것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당신을 즐겁게 해 줄 최상의 동반자다.’물론 전문 산악인들처럼 예외인 경우도 있습니다. 산행 전문가답게 길눈이 밝은데다 체력까지 감당이 되면 무거운 짐을 챙기는 게 당연히 유리합니다. 텐트에서 우산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이타적인 주변인 덕분에 산행이 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이지요.일반적으로 등산을 자주 하고 산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꾸러미는 간소합니다. 베테랑일수록 가볍습니다. 어떤 일에 능숙하면 부차적인 것들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명필일수록 붓 자루 수나 크기에 집착하지 않고, 명강사일수록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이크도 필요치 않은 것과 같지요. 많거나 크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그 덕에 과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오히려 가벼울수록 일을 추진하는데 유리하거나 부담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날마다 가벼워지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다 길 떠날 일이 생기면 최대한 간소하게 짐을 꾸립니다. 그 옛날 지리산 종주할 때의 교훈을 떠올리며 줄였던 짐도 한 번 더 줄입니다. 무거운 짐에게 몸과 마음을 저당 잡히는 것보다는 모자란 듯 헐렁한 상태가 훨씬 부담이 덜합니다. 수고한 짐 때문에 영혼이 피폐해질 정도라면 비울수록 낫습니다. 베테랑일수록 가벼움이나 덜어냄과 친구하니까요.

2020-10-21

와인 한잔 어때요?

배문경수필가칠레산 까시에로 리저브 쉬라를 샀다. 병뚜껑과 상표가 금색이라 눈에 띄었다. 이 와인의 후기를 보니 무게감이 있어 괜찮다는 평이다.간혹 와인의 향기와 빛깔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 딸아이를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자 바로 떠올랐다. 와인 한 잔 기울일 생각에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때론 화이트와인을 마시기도 하지만 오늘은 스테이크를 만들 요량으로 레드와인을 잡았다. 레드와인은 적포도의 껍질과 알맹이, 씨를 모두 으깬 후에 발효시킨 것이다. 내가 산 것은 2017년 생산된 것으로 알코올은 13.5%다.딸아이와 나는 와인의 유래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포도주의 기원은 그리스다. 포도주 원액을 손잡이가 두 개인 항아리 암포라에 담아 운반했다. 그리고 크라테르에 부어 물과 와인을 섞었다. 크라테르는 대형항아리로 주로 연회가 열릴 때 테이블에 올렸다. 암포라와 크라테르는 훌륭한 예술품으로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우리 집에는 와인셀러가 없어서 와인을 잠시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목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도 접시에 담았다. 토마토가 반달이 되어 서로 겹치며 원을 만드니 보기에도 좋다. 레이스가 달린 테이블보를 깔고 식탁 중앙에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핑크빛 리시안셔스를 한 아름 사서 꽂았다. 겹겹이 하늘하늘한 꽃잎이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과 더불어 파티에 어울리는 장식이다. 레드와인에는 보르도 글라스를 준비했다. 튤립 모양의 잔은 타닌의 텁텁함을 줄이는 경사가 완만한 모양이 특징인 잔이다. 음식을 테이블에 올리자 고급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다.가족들이 함께 앉아 잔에 3부 정도 따르고 스템을 잡고 건배했다. 나는 그냥 삼키지 말고 색을 보고, 스월링(Swirling)하며 향을 느껴보라고 했다. 잔을 돌리면 와인의 맛이 깊어진다. 와인 속에 잠자고 있던 여러 성분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와인의 부케와 아로마가 발산되기 때문이다. 한 입 머금은 딸의 볼이 상기되면서 꽃보다 더 고와진다. 나도 덩달아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분위기를 돋우려고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리본이 달린 빨간 지갑이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대충 먹고 흩어지기 바쁜 식사시간이 오늘만큼은 안정적이다. 모두 오늘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비워두고 전체를 위해 배려했다. 식구들은 자신이 그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수다스럽다. 딸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다. 딸뿐만 아니라 부모로서 느끼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주위의 축하 세례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 어깨를 으쓱한다.이런 와인에는 음악이 필요하다며 유튜브를 켠 딸은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을 들려준다.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동기 셋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같이 기립박수를 보냈었다. 샹송과 와인이 이렇게 어울린다는 것이 놀랍다. 덕분에 와인의 맛은 무겁고 텁텁했지만 블랙체리의 과일 향을 그윽하게 느낀다.노래에 취해 있을 때, 10월 14일인 일주일 전이 와인데이였다고 딸이 말한다. 연인과 와인을 마시며 속삭이는 날이었다. 1월 14일은 다이어리데이, 2월은 발렌타인데이, 3월은 남자가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다. 12월은 허그데이로 일 년 내내 이벤트다.와인데이는 그리스신화가 기원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신의 제례를 지냈던 날이다. 주류회사의 상술이긴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으로 볼 수 있고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다. 더러 와인 잔에 맥주나 막걸리를 부어 마시면 낯선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레드와인이나 화이트와인, 로제와인을 한잔하면 어떨까. 단풍든 가을, 마음은 온통 와인빛으로 찰랑거릴지도 모른다.

2020-10-21

대면으로 학생들을 만나다

오죽하면 이런 제목을 붙이랴.대학 학과의 선생님 셋과 학생들 일곱이 마주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런 풍경 볼 수 없었던 게 하루이틀 아니었다.코로나19 대응이 1단계로 떨어졌다 해서 모처럼 학과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무언가 머리를 맞대보기로 했다. 매년 하던 답사도 없어지고 한글날 행사 같은 것도 축소되고 개강이다, 폐강이다 하는 모임도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뭔가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학과의 학생들을 한꺼번에 다 만날 수는 없다. 현재 과대표, 전임 과대표, 동아리 대표들, 각 학년 대표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자. 꼭 대표가 아니어도 되고, 학과의 여러 단위를 표현해 줄 학생들이면 좋다. 만나 요즘 상황이 어떤지 뭐가 필요한 지 들어보기로 하자. 대략 이런 생각이었다. ‘정육식당’이라고 일종 실비식당에 둘러들 앉았다. 전임 과대표는 1학기 때 스페인에 어학연수를 가서 스페인 코로나를 직접 겪었다. 창작 동아리 ‘창문’의 일원으로 나온 학생은 대학원 진학을 계획 중인데 부전공으로 중문학을 한다. 올해 과대표는 코로나 덕분에 정상적인 학생 활동은 엄두도 못냈단다. 제주에서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학생을 ‘줌’ 아닌 식당에서 대면으로 만나기는 처음이다. 지금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1학년 시절은 얼마나 빛나던가? 그런 시기를 갇혀 지낸다니 딱하디 딱할 따름이다. 언론정보학부 학생으로 국문학을 복수전공하는 학생, 국문과반 ‘출신’으로 서양사학과에 진입한 학생, 중학생 때까지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심화전공 코스를 택할 정도로 국문학에 빠져 버렸다는 학생 등등.얼굴들, 어깨들이 사랑스럽다. 귀해 보인다. 여느 때 같으면 캠퍼스에 ‘차고 넘치던’ 학생들 아니던가. 하건만, 이번 학기도 1학기 때처럼 캠퍼스는 썰렁, 국문과 건물 강의실 있는 층들은 고적하기만 하다. 대면이니, 비대면이니, 얼마나 낯선 한자어들이던가. 그 어색한 말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선생님과 학생은 마주 앉아야 하는 법인데, 요즘에는 ‘줌’으로 화면도 안 켜놓고 이야기를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를 지경이다.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아이디어를 듣자 하니, 그렇잖아도 불려 나온 게 아니라 다들 제발로, 반기면서 나온 학생들이라 한다. 그만큼 할 얘기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코로나 시절을 슬기롭게 넘길, 학생들의 자발적 학습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보자고 얘기들 한다. 과연 잘 될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뭔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식당을 나오자 ‘샤로수’ 길이라 불리는 이 대학촌 골목은 아직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기만 하다. 어서 빨리, 학생들 넘쳐나는 골목 거리가 보고 싶다. 내년 봄이면? 아니 가을이라도, 겨울이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절 만나보고 싶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0-21

신중년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나이 지긋한 축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낭만에 대하여’ 일 것이다. 환하게 빛났던 한때를 추억하며 ‘다방’에서 중년 마담이 따라주는 ‘도라지 위스키’를 홀짝거리는 후줄근한 가수의 표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노래. 100세 시대라 불리는 요즘 50-60 나이대의 사람들을 신중년이라 부른다. 예전의 40-50대 정도와 비슷한 정열과 체력과 욕망으로 무장한 신중년. 그들을 노인이라 부르면 서운해하리라.인생의 절반을 살았고, 나머지 절반으로 달려가는 신중년. 이 무렵 누구나 생각이 많아진다. 젊어서 한칼 했던 사람일수록 뭔가 이루려는 의욕과 투지로 넘쳐난다. “나는 아직 한창이야, 내가 뭐 어때서! 이 정도면 쓸만하지, 안 그래!” 거울 들여다보면서 신중년 사내들은 혼잣말한다. 신중년 가운데 일부는 퇴직하여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이 되기도 하고, 일부는 아내 눈칫밥 얻어먹으며 산이나 공원을 떠돈다.신중년에 필요한 작업은 살아온 삶의 내력을 돌아보는 일이다.인생에 목적이나 의도는 없겠으나,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온 날들인지, 총체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은 남은 생을 요긴하게 살아가는 데 적실한 전제다. 주역 ‘계사편’에 “척확지굴 이구신야(尺8816之屈以求信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그것을 펴기 위함이다, 하는 뜻이다.성찰 없이 전진만 하는 삶은 피 끓는 청춘의 몫이지, 피가 식어가는 신중년의 몫은 아니다. 젊은 날 신중년을 매혹하고 열에 들뜨게 했던 오욕칠정(五慾七情)과 거리 두면서 세상과 사회를 돌이키는 작업이 소중하다. 그렇다 해서 반드시 이성적이거나, 매사에 사려와 냉정 그리고 신중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신중년에게도 어린아이 같은 맑고 투명한 치기(稚氣)와 장난스러움 그리고 패기가 요구되기도 한다.문제는 대다수 신중년이 너무 차갑고 계산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철이 없고 이기적이라는 데 있다. 양자의 조화로움을 유지하는 신중년은 나이를 먹어도 쉬 늙지 않을뿐더러, 고유한 매력으로 주위를 환하게 한다. 그러하되 신중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음을 직시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다.생명 가진 모든 것은 소멸한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철칙(鐵則)이다. 주위를 돌아보시라. 얼마나 많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성업하고 있는지. 그곳에 갇혀있는 수많은 노년도 한때는 신중년의 시기를 거친 분들이다. 누구도 그곳에 포획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허여한 일정한 육체와 정신을 탕진하고 나면, 어쩔 도리없이 여생을 거기서 보내야 한다.그곳에 가기 전에 골똘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의 삶은 어떠했으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관계와 인연은 어떻게 정리하고, 몸과 마음은 또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지.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 차지다.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깊이 사유하는 신중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0-10-21

따뜻한 경북교육 실현을!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10월의 자연은 보기만 해도 따뜻하다. 10월은 노란색과 궁합이 너무도 잘 맞는 것 같아 10월의 색을 필자는 노란색으로 정하였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10월의 황금 들판, 도로와 도심을 샛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 세상이 결실맺기 딱 좋은 10월의 노란 햇살!10월은 이야기가 풍성한 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나선다. 10월 길 위에 선 사람들의 걸음 속도는 분명 시인의 속도를 닮았다. 그 속도를 나태주 시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 모양까지 알고 나면 인연이 된다 //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 ‘풀꽃 2’)10월을 걷는 사람치고 표정이 어두운 사람은 없다. 모두가 밝은 표정, 그 표정의 색 역시 노란색이다. 시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서로의 색깔을 알기에 기꺼이 길 위에서 친구가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웃음마저 반가운 인사가 되는 10월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다.10월 바람은 그늘에서는 살짝 싸늘하게, 하지만 양지에서는 기분 좋은 따뜻함으로 분다. 사람들을 그늘 대신 양지의 길 위에서 서게 하는 10월 바람의 마음에 마스크 안에서 지쳐가던 사람들은 기꺼이 길 위에 선다. 그리고 서로 노란 따뜻함을 나눈다.따뜻함이라는 단어는 필자에겐 추억이자 희망의 단어다. 따뜻함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교감 면접시험을 준비할 때다. 그때 공부한 내용 중에 아직도 마음으로 외우고 있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경상북도 교육청의 교육 비전이다. “삶의 힘을 키우는 따뜻한 경북교육”경상북도 교육청 홈페이지 열린 교육감실에 가면 교육 비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중에서 “따뜻한”과 “경북교육”에 관한 설명을 잠시 인용한다.“‘따뜻함’이란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보살핌과 배려로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경북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결과보다는 과정을, 다그침보다는 기다림을 지향하는 교육입니다.”위에 인용한 글을 공부하면 필자는 경북교육 비전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자,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특히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이라는 어구에서는 교육청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았다. 또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모든 아이들이”라는 말에서는 교육청의 결연한 의지까지 느낄 수 있었다.필자의 책상에는 “제2의 교육 기적”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우리 교육은 세계가 깜짝 놀랄 경제 성장이라는 교육 기적을 이룬 경험이 있다. 인구절벽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2의 교육 기적이 필요하다. 그 기적의 가능성을 필자는 “따뜻한 경북교육”에서 보았다. 대안학교 학생을 비롯한 모든 아이를 위하는 “따뜻한 경북교육”이 우리나라와 세계 교육을 선도할 것을 직감하는 따뜻한 10월이다.

2020-10-21

전세 대란

다른 사람의 집을 빌려 쓸 때 일정한 돈을 맡겼다가 내놓을 때 다시 찾아오는 것을 전세(傳貰)라 이른다. 이같은 전세 제도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주거임대차 제도다.그 기원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서 찾는다. 당시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 항구를 개항하면서 일본인의 거주지가 조성되고, 서울로 인구가 몰리면서 전세 형태의 주거가 생겨난 것을 원류로 본다.전세 제도는 주택금융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일로,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제도다. 임대인은 자산을 주택 형태로 보유하고, 임차인은 월세 대신 원금을 지킬 수 있는 전세를 선택함으로써 상호이익이 부합한 시장 구조다.전세 제도는 무주택 서민에게는 유주택자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고 유주택자는 인플레로부터 자신의 자산을 보호받는 구조가 돼 그 제도가 지금까지 탄탄하게 유지돼 왔다.집주인이 집값의 절반 정도에 임대하는 것은 이윤적 측면에서 손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독특하게도 집값이 상승되면서 그런 손실 부분을 보상해 주었다. 전세는 우리만의 주거형태로서 지금은 국민에게 친숙한 주거문화라 하겠다.지난 7월 정부여당이 집값을 잡겠다며 임대차보호법을 시행한 이후 전국은 전세 대란으로 떠들썩하다. 집 없는 서민이 지금처럼 무주택의 설움을 당해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전셋집을 구경하는데 돈을 달라 하지 않나 집주인이 세입자의 관상까지 보겠단다. 전세 살 사람이 많이 몰려와 제비뽑기까지 하고 있다. 전에 보지 못한 진풍경이다. 정부 정책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섣부른 정책의 입안과 결정이 전세 대란을 일으켰고, 그 바람에 서민만 녹아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0-20

청개구리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불효자는 옵니다.”지난 추석 무렵 지방 국도변 곳곳에 붙어 있던 플래카드의 글귀이다. 강원도 정선군의 한 공무원이 코로나 극복을 위해 추석 연휴 기간에 귀성 방문을 자제하자는 뜻으로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의 제목을 패러디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불효자는 웁니다’는 작곡가 이재호가 곡을 만들고 1940년에 가수 진방남이 부른 노래이다. 진방남은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아빠의 청춘’,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반야월이 가수로 활동하던 때에 부르던 예명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진방남, 아니 반야월이 작사한 것은 아니고 ‘땐사(댄서)의 순정’, ‘찔레꽃’의 작사가 김영일의 작품이다. 작곡, 작사, 가수 모두 당대의 대단한 분들이 참여해 만든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가 모음 단 하나가 뒤집힌 채 80년만에 소환되었다. 이를 코로나 덕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한 플래카드 패러디 문구임엔 분명하다.우리의 농어촌은 어르신들 세상이다. 80-90대 노인분들이 논 매고 밭 갈며, 60-70대 어르신들은 경로당에서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력이 좋다 해도 연세 드신 노인들에게 코로나19는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2020년 8월 통계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75-84세의 입원률은 18-29세와 비교할 때 8배 이상이고 치명률(사망률)은 220배 이상이며, 85세 이상 노인의 입원률은 13배 이상이고 치명률은 630배 이상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평소에는 전화 한 통 드리지 않고 발길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다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2020년의 추석에 찾아온다고 하는 자식은 불효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2020년 추석에 고향을 찾은 자녀들을 생각하면 이솝 우화 중 한 이야기로 들었던 청개구리 우화가 떠오른다.(실제로 이솝 우화에 청개구리 이야기는 없다. 어미 개구리의 말에 언제나 반대로만 하는 아들 청개구리에게 언덕이 아닌 강가에 묻어달라고 마지막 유언을 한 어미 개구리의 이야기는 동양의 우화이다.) 그렇다고 추석에 찾아온 자식들을 싸잡아 청개구리 불효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코로나가 아무리 엄중하다 할지라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분들은 누가 뭐라 해도 고향을 방문하고 부모님을 찾아 뵈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분들은 더욱 조심스레 철저히 방역 원칙을 지키며 고향 나들이를 하였으리라.불효자인 나도 지난 주간에 경북 의성과 안동을 다녀왔다.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간 것이 아니라 22년 전에 돌아가셔서 선산에 잠들어계시는 아버님을 국립괴산호국원에 옮겨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이니 코로나의 위험은 드리지 않았다.패러디야 어느 나라 말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우리말은 이렇게 재미있고 곰살맞기까지 하다.이 가을 청개구리 불효자는 왔고, 불효자는 울었다.

2020-10-20

김정은 체제의 3대 악재는 극복될 것인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통치한지 벌써 9년이 지났다. 부친 김정일은 일찍부터 북한 권력의 상당 부분을 김일성과 분점하였다. 그해 비해 1984년생 김정은은 부친 사망으로 27세에 갑자기 최고 통치자로 추대되었다. 백두 수령론에 의해 권력을 승계한 그는 집권 초기 내부적 위험요소를 제거하면서 핵과 경제 발전의 병진정책을 펼쳤다. 선대와 달리 서구 유학경력을 가진 그가 북한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유엔의 대북 제재, 코로나 전염, 수재는 북한 경제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다. 김정은의 당면 악재는 극복될 것인가.유엔의 대북제재가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다. 김정은이 대외여론을 무시하고 개발한 핵무기의 부메랑이다. 김정은은 핵개발을 통해 대미 협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의 선행을 요구하면서 그 협상은 중단되고 말았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탑다운 방식의 협상을 통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원했으나 무위로 끝나버렸다. 현 상황에서 유엔이나 미국의 대북 제재는 완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계속 유지되는 한 북한 경제의 회생은 사실상 어렵다.코로나19의 폭발적인 전파는 북한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코로나 환자가 한 명도 없다고 선전하지만 그 사실 여부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 방역당국은 북·중 국경지대와 동서 해안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의료 보건체제가 형편없는 북한으로서는 코로나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후진적인 조치이다. 이번 서해안 남한 공무원 실종자 총살도 북한의 방역 비상체제가 초래한 비극이다. 그러나 북한의 국경차단과 내부의 주민 통제는 중국과의 소규모 밀무역마저 막아 북한 경제를 더욱 옥죄고 있다.지난번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마이삭은 남북한에 동시 피해를 입혔다. 한반도 남북의 기상여건은 비슷한데도 수재는 북한에 집중되었다. 여러 해 전 북한지역을 다녀보았지만 북한의 야산에는 나무 한 포기도 없는 민둥산이었다. 북한 주민들이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한 결과이다. 그래서 북한지역은 비만 오면 홍수가 초래되고 그 피해는 엄청나다. 최근 북한 언론이 수재 현장의 ‘김정은 지도자 동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은 올해도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인정하였다.이러한 3대 위기는 결국 북한 경제의 총체적 위기로 직결된다. 북한에서 인민들의 어려운 민생을 해결치 못하면 결국 수령에 대한 불만으로 누적된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내부 권력 주변의 소수 불평분자를 과감히 척결하였다. 그러나 인민들의 생존을 위한 불평은 원천적으로 막기 어렵고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정치범 수용소 수감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북한도 이미 시장경제가 확대되고 정보사회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정은이 ‘애민 정치’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을 전면 폐기할 수도 없고, 주민들을 엄격히 통제할 수도 없다. 이것이 김정은 체제의 위기 극복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2020-10-20

채식 웰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오곡백과 익어가는 먹거리 풍성한 가을이다. 작물의 뿌리나 잎, 열매 등 어느 것 하나 먹거나 수확하지 않을 것이 없는 계절, 들판에서는 봄이나 여름에 심거나 뿌린 농작물의 온갖 결실을 한창 거둬들이고 있다.지난 주말 텃밭에서 뜯은 손바닥보다 더 넓은 배추잎으로 쌈을 싸먹으니 한결 푸졌다. 집 한 켠의 손바닥만한 텃밭에 몇 포기 심어놓은 배추와 가을상추가 어느새 제법 자라 얼굴을 가릴 정도로 넓고 파릇한 잎을 드리우고 있다. 몇몇 포기에는 배추벌레의 엄습으로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거나 갉아먹은 흔적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손수 물을 주며 병충해 약 한번 치지 않고 수시로 배추벌레를 잡아내서 인지, 벌레가 해친 배추잎을 함께 따서 쌈으로 싸먹거나 삶아서 무쳐 먹으니 은근히 맛나고 식감마저 좋아짐은 왜일까?어릴 때부터 달리 먹을 것도 없었겠지만 당시엔 거의 나물 위주로 먹고 자라선지 필자는 요즘도 유난히 푸성귀를 즐겨 먹고 있다. 초, 중학교엘 오가면서 땅찔레나 밭둑에 흔한 시큼한 시금치를 숱하게 꺾어서 먹었고 미나리, 씀바귀, 열무, 정구지, 배추 등을 무치거나 부침개로 해서 고픈 배를 채웠었다. 오죽했으면 교수로 있는 친구 시인이 필자 더러 ‘안동 물한리의 나물을 좋아하는 촌사람이다’라고 표현했을까.요즘 들어 대부분의 식습관이 서구화, 간편화 돼선지 채식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른바 채식과 생식에 가까울수록 건강과 장수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비건(vegan·채식주의자)이 늘어날수록 동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전하는데 보탬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채식은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매카트니의 ‘고기 없는 월요일(Meat-free Monday)’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일주일에 한 번 고기를 안 먹는 것만으로 자기 몸도 건강해지고 그만큼 지구온난화 위협 요소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월드워치연구소에 따르면, 육류 생산이 전체 온실기체 방출의 최소 51%를 차지한다고 한다. 세계의 10억 마리 소들이 되새김질을 통해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3배 더 지구 온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육류의 과다 섭취로 인해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이 많아져 심장혈관성 질환의 원인이 되고, 각종 항생제를 투여한 동물의 고기를 사람이 먹을 경우 그 약물이 체내에 그대로 흡수돼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잘 먹어야 건강하고 잘 살 수 있다. 가이아이론에 따르면 지구도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라는 것이다. 사람 몸 속에 있는 다섯 가지의 장기도 땅과, 물, 지구와 관계되듯이 오장(五臟)과 오미(五味)도 자연과 조화되고 연계된다. 채소, 곡물 등 색깔을 살린 칼라푸드, 노벨푸드를 많이 섭취할수록 사람의 몸은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이 이뤄진다.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실천하고, 채식과 생식의 조화로운 식생활을 개선하면 갑갑한 일상에 새로운 활기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2020-10-20

‘오그라들다’, 그리고 ‘진지충’이라는 말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우지마라 하고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저 산은 내게 잊으라잊어버리라 하고내 가슴을 쓸어내리네아 그러나 한줄기바람처럼 살다 가고파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떠도는 바람처럼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내려가라 하네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양희은의 ‘한계령’ 중가을이 되면 나는 꼭 가수 양희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특히 이 노래, ‘한계령’은 가을에 세상을 떠난 우리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 중 하나여서 더욱 사무친다. 올해도 별 생각 없이 가을을 맞아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이 노래가 언제 나온 것인지 궁금해졌다.1985년. 이 노래를 부를 당시 양희은은 지금의 나와 같은 서른네 살이었고, 그 노래를 좋아하던 우리 엄마는 스물여섯 살이었다.정덕수 시인의 ‘한계령에서’라는 연작시로부터 영감을 얻어 하덕규가 작사, 작곡한 ‘한계령’의 주제는 인생이다. 세상의 번뇌로부터 벗어나 바람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곡이다. 나는 새삼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1985년 당시에는 이와 같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곡이 2030세대의 히트곡이 될 수도 있었구나.또 하루 멀어져 간다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점점 더 멀어져간다머물러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중1994년 김광석의 앨범을 통해 발표된 강승원 작사, 작곡의 노래 ‘서른 즈음에’ 에도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나타난다. 나의 기억을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내 가슴 속은 공허해지기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삶 자체를 관통하는 철학적인 질문이다. 이토록 진지한 질문을 김광석과 강승원은 그야말로 ‘서른 즈음에’ 자신에게 던지고 있다.이러한 이야기들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신기하기까지 한 것은 그런 진지한 대화가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도통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는 유튜브에서 본 재미난 동영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어느 연예인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며칠 전 우연히 마주친 어여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새로 개봉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르기 전에 팔아버린 주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진작에 샀어야 했을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나이를 관통하는 인생 자체에 대한 이야기나 사랑과 이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건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대중가요에서도 그런 진지함은 찾아보기가 어렵다.우리는 확실히 점점 진지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학부시절 과 학생회실에서 오래된 노트 수십 권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1980~90년대 학번 선배들이 학생회실에 방문할 때마다 적어 내려간 공동 일기장 같은 것이었다.저마다의 고민과 사상을 진지하게 장문으로 적어낸 노트는 이후 개인 홈페이지로 대체되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거치며 활자의 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활자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SNS매체인 인스타그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활자의 양이 줄었다는 것은 할 말이 줄었다는 것이고, 할 말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진지한 사고의 빈도가 줄었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우리가 진지해지는 것을 가로막는 말들이 있다. 하나는 ‘오그라든다’는 말이다. 예전에 친구와 술을 마시다 ‘오그라든다’는 말을 듣게 될까봐 삼키게 되는 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표현은 2002~2003년 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유행하게 되었고 꾸준히 확산되어 이제는 일상 언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원래는 어느 유머 게시물의 ‘손발이 오그라든다’라는 문장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이후 ‘오그라든다’는 축약형이나 ‘오글오글’이라는 의태어로 매우 창피한 기분이 들었을 때, 충격과 공포를 느낄 때,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만 한 것을 보았을 때, 유치한 것을 마주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누군가의 진지한 언행을 마주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진지한 언행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어색함을 동반한다. 그때 누군가 ‘어휴, 오그라들어’ 하고 말한다면 받게 될 타박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도저히 진지해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한 술 더 떠서 ‘진지충’이라는 표현이 있다. 웃자고 하는 말에 과도하게 진지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 사용했던 ‘진지병’이라는 말로부터 비롯된 말이다.‘진지병’은 원래 부적절한 상황에 진지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만 사용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진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하는 이를 일컬어 그 상황의 적절성을 막론하고 ‘진지충’이라 부르는 풍조가 생겼다. 여기서 ‘-충’은 명백한 혐오의 표현이다. 요즘 우리들이 진지한 분위기를 얼마나 혐오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어째서 우리는 이처럼 진지한 대화를 혐오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추측하건대 나는 그것이 우리가 처한 경제적 상황과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는 우리 세대를 일컬어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고 했다. 그에 따른 박탈감은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막대한 양의 고민을 선사했다. 그런데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인 세대에게 그런 식의 에너지 소비는 합리적이지 못한 행위일 수 있다. 진지한 대화에까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것 아닐까. 철학이니 인생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지.나는 우리 세대에게 제안하고 싶다. 우리 머릿속의 사전에서 ‘오그라들다’와 ‘진지충’을 삭제할 것을. 진지한 대화의 실종은 우리의 삶을 인문학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누구도 이 두 단어를 두려워함으로써 진지한 대화를 삼키고 마는 일이 없도록, 서로에게 건네는 진지한 대화를 반기며 귀를 기울일 것을 권하고 싶다. 삶이 아무리 각박해도 각자가 각자의 삶에 대해 어설픈 철학이나마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2020-10-20

주사파와 민주유공자

강희룡 서예가한국은 제1공화국이었던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네 번의 민주항쟁을 겪는다. 첫 번째가 1960년 4·19혁명이다. 그 해 이승만정권의 3·15부정선거로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국민까지 확대된 반독재투쟁으로 민주주의 혁명의 뿌리였다. 두 번째로 1979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독재에 저항해 10월 16일부터 5일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이다. 셋째가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이다. 전두환과 육사출신 하나회의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하여 이들이 정치실권자로 떠오르자 광주지역 대학생들이 5월 18일에 김대중 석방과 전두환 퇴진, 비상계엄해제를 외치며 일어나 수 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유혈항쟁이었다. 네 번째가 1987년 6월에 일어난 6·10민주항쟁이다. 서울대 학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연세대 이한열의 죽음이 동기가 된 이 시위로 인해 6월 29일에 당시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서 정권교체의 계기와 민주화를 이루는 디딤돌을 만들었다.이 민주항쟁과정에서 1986년 초부터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은 남한의 반체제 학생운동세력인 주사파가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주사파는 학생운동에서 대학별로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자민투)’를 조직하여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바탕으로 자민투를 앞세워 1987년 주요 대학들의 운동권을 장악한 뒤 각 대학의 학생회까지 장악해 일반학생까지 반미투쟁과 혁명투쟁에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이 학생들이 1987년 선봉에서 6·10항쟁을 이끄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한국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사회주의혁명을 이루려는 운동권의 다수파로 민족해방(NL)의 한 분파이다.노동운동분야에서는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와 이후 국회의원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그 정당을 지지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확립되어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활동무대가 확대되고 주도권도 더욱 강화됐다. 이들이 본 한국사회의 기본모순은 한국 민중과 미국 간의 민족모순과 한국 민중과 자본계급 간의 계급모순으로 분류해 두 모순 가운데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민족모순으로 정한 뒤 반미투쟁과 사회주의혁명을 위해 민족해방투쟁부터 우선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의 이중성은 한국사회의 특징이다.일부는 전향했지만 지금처럼 운동권 출신들이 정치권 중심에 전면적으로 진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다. 민주화 과정에는 진정한 민주화세력이 있는 반면, 체제전복(顚覆)으로 사회주의혁명을 목표로 하는 세력도 있다. 30년 세월을 거쳐서 지금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이 된 과거 386운동권의 위선이 드러나고, 그들의 사고방식이 내세우는 정치적 정당성도 사라졌다.그릇된 도덕적 우월의식이 자기성찰을 방해해 부끄러움마저 없어졌다.그들은 지금 기득권층에서 민주유공자로 둔갑하여 권력의 중심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역사의 무게를 기억한다면 국민들의 냉철함만이 우리사회에서 가짜들을 솎아낼 수 있다. 나라의 흥망이나 참 민주주의는 결국 성숙한 국민들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202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