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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국 대통령 선거 끝나도 안 끝났다

깜빡 잠든 사이에 유튜브에 몇 개 클립이 떴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이라는 것을 발동했다고 한다. 이 명령에 따르면 미국에는 행정 주체들의 권한 사용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관행들이 있어 왔으며, 이에 따르는 부정한 절차와 방법으로 인해 미국 국민 스스로 자신의 대리인을 선택하는 힘이 약화되어 왔다고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년 동안 미국에서 치러진 선거들에 대해 앞으로 120일 동안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명령했다.이 명령은 트럼프 임기가 단 하루만을 남긴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문을 야기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보고하라는 것이냐? 명령을 내린 사람은 플로리다에 내려가고 없지 않겠는가?지금 시각이 미국의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을 근 하루 앞둔 시점이다. 이 행정명령은 지난 2020년 11월 3일 미국인들이 선거를 치른 이후에도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 온 미국 선거 사태가 시계 제로 상태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11월 13일 밤,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이번 선거의 관건이라고 알려져 온 대여섯 개의 경합주에서 트럼프는 일방적으로 앞서 갔다.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했고 바이든은 늦게 나타나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새벽이 되었을 때 바이든이 예언한 것 같은 현상이 갑자기 일어났다. 이 경합주들에서 일제히 바이든이 트럼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전세는 예기찮게 역전되었고 다음날, 다다음날,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한 선거를 도둑질 당했다고 주장했다. 선거 사기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그리고는 최근 며칠 사이에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었다. 미국의 빅테크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은 1월 6일의 상하원 합동회의의 바이든 인증 이후, 선거 부정을 주장한 트럼프의 계정을 삭제해 버렸다. 또 선거 부정 운운하는 유튜버들을 향해서는 삭제를 하거나 경고 딱지를 붙이는 일들이 계속되기도 했다.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미국 선거 문제는 바야흐로 새로운 궤도에 진입한 것 같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는 이미 3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전국 50개주에서 차출, 밀집해 있다. 크기는 서울의 반의 반밖에 안 되고 인구는 60만에 불과한 행정수도에 어마어마한 숫자다. 하객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깃발만 수없이 꽂아놓은 플래그 취임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이번 선거는 결고 통합적 축제로 기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 얻은 것이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절차가 무엇인지, 어때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지 재확인시켜 준 세계사적 과정이 될 것이다. 그래도 뒷맛은 여전히 쓸 것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1-21

팬덤의 심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산다는 뜻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바나의 초식동물들처럼 혼자 떨어져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적이나 맹수의 공격을 막기도 쉽고 큰 동물을 사냥할 수도 있으니 그만큼 생존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지금도 고립되거나 소외되면 왠지 불안해지는 것은 아마 그런 습성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무슨 동호회나 팬덤이 성행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터이고.팬덤(Fandom)이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 즉 어떤 대상의 팬(fan)들이 모인 집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팬덤이 시작된 것은 가수 조용필로부터라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남진, 나훈아 등 인기가수들의 팬 집단이 있었지만, 대규모의 체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것은 조용필의 ‘오빠부’가 시초였다는 것이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한 1세대 아이돌스타의 등장으로 조직적인 응원문화가 형성되고 팬덤의 개념이 대중화됐다. 2000년대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2세대 아이돌스타들이 팬덤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대 이전 팬덤은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는 지지자의 역할이 강했다면 이후에는 스타 보호 및 변호, 성공을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서포터(supporter)로서의 역할로 확대되었다.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전역으로 팬덤의 범위가 확산되었고 이는 한류열풍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오늘날에는 가수뿐만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같은 특정 인물이나 브랜드에 대한 팬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고려대 성영신 교수는 팬과 스타의 관계를 ‘심리적 공생관계’라고 했다. 팬들은 스타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게 되고, 스타는 팬을 통해서 자신의 인정 욕구나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비평가 앤드류 튜더는 팬덤이 되는 과정을 스타와 친해지는 단계에서부터 감정적인 동일시 단계, 스타의 외모를 모방하는 단계, 심리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단계로 나누기도 했다,팬덤활동은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특정한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하나의 성취감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스포츠나 연예계를 활성화 시키는 등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는 한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한다. 스포츠나 운동선수에 열광하는 팬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라이벌에게 위해를 가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팬덤의 위험성이다. 특정 정파나 정치인의 팬덤이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형성되어 국정운영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팬덤의 심리에는 냉철한 현실인식이나 사리분별보다는 감정적 군중심리나 ‘내로남불’같은 진영논리가 판을 치게 마련이다.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시류에 휩쓸리거나 팬덤 같은 집단에 함몰되기 쉽고, 그런 부류가 많을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팬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잇속을 챙기려는 장사치들이나 정치꾼들의 술수에 부화뇌동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2021-01-21

합동군사훈련을 북한과 협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우방과의 군사훈련을 적과 상의한다?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필요하면 남북 군사공동위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군 통수권자가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을 적과 협의하겠다고 한 것이다.김정은은 강한 군사력을 선언하고 군 퍼레이드를 심야에 열고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언하며 무력에 기반한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핵이 없고 미군과의 연합 훈련 강화만이 북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 아닌 북한과 ‘훈련 협의’를 하겠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이다.‘싱가포르 쇼’로 각종 연합훈령이 전부 폐지됐다. 김정은 트럼프 쇼는 비핵화를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러나 북핵은 오히려 그후 대폭 증강됐다.북한이 돌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세계사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사에서 서로 합의하여 지은 건물을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폭파시킨 예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항의 한마디 못하고 북한의 눈치만 본다. 바보 같은 짝사랑 제의가 계속되고 있다.과거에도 남북단일팀 구성, 올림픽 분산개최, 대북지원 민간단체 방북 등 아무런 답이 없는 북한을 위한 짝사랑 손짓은 계속 되었지만 지금도 금강산 관광, 개성단지 재개, 남북 경협 등 메아리 없는 손짓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심지어 한미군사훈련을 북한과 상의하는 지경까지 왔다. 올 때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왜 우리는 짝사랑을 하는가? 상대는 트집만 잡고 있는데도 계속되는 짝사랑은 국민의 자존심만 상하게 하고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을 허용하고 우리가 백기를 들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통일은 절대 구걸로 오지 않는다. 북한과의 평화는 우리가 우방과 관계를 공고히 하고 강한 힘을 보여 줄 때에만 가능할 뿐이다.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주도로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으로 결정했다’는 논란이 지난 대선에서 불거졌다.이제 한미 훈련마저 북과 사전 협의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인권 표결을 북에 물어보고 정했다는 소식이 믿어진다.한 깡패 같은 친구가 힘이 없는 친구를 매일 괴롭힌다. 힘이 없는 친구는 평화를 위해 돈도 가져다주고 그 깡패 같은 친구가 때려도 참고 웃음을 지으면서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날 힘없는 친구가 주머니에 짱돌을 쥐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깡패를 공격했다. 난투극이 벌어지고 힘없는 친구는 크게 다쳤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부터 그 깡패가 힘없는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끝났다.구걸이나 양보가 아니라 강한 힘으로 대응해야만 깡패의 행패를 종결시킬 수 있다. 우리가 북한에 지금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다.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배워야 한다.

2021-01-21

타인의 방

배문경수필가문을 닫자 사면에 갇혔다. 생일을 맞아 카페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잠시 보냈다. 뒷날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일 전날 코로나양성인 사람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기겁을 한 친구는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해왔다.말로만 듣던 두려운 상황이 내게도 일어났다. 코로나가 나와는 상관없으리란 생각이 여지없이 깨졌다. 잠시 침착하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나마 일요일이라 다행이었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사방이 숨조차 쉴 수 없이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도 시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양성일 수 있다는 불안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코로나에 걸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이 직장인 나는 입원환자와 의료진들, 직원들, 진료를 볼 환자들,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가족들은 또 어찌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코로나 환자가 입원한 병원과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자꾸만 떠올랐다.그 순간 목이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증세가 나타나는 걸까. 두려웠다. 사실이라면…, 종일 마음속 지옥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에 친구로부터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온통 세상이 깃털처럼 가볍게 와 닿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그 후에도 나는 세 번의 독방을 더 경험했다. 그러는 사이 현관문을 열면 삽시간에 가족들이 사라졌다. 집으로 들어서면 거실은 좀 전까지 텔레비전을 봤는지 요즘 유행하는 미스트 트롯의 멤버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트로트를 열심히 불렀다. 급하게 방으로 모두 들어간 흔적이다. 입에 착 달라붙는 노래가 어서 오라고 인사한다. 나를 반기던 가족은 모두 타인이 되었다.노크를 하면 곧 첫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될 딸의 예민해진 외마디가 들린다. 방마다 사람은 있지만 벽처럼 단단한 문은 걸쇠를 건 채 여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나의 “퇴근했다”는 인사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리다 바닥에 툭 떨어진다.방문을 닫으면 외롭다.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든 음식을 먹든 함께 하던 시간이 아주 오래전처럼 아득하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처럼 인정받지 못한 내가 웅크리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타인에게 힘든 상황을 만드는 것도 내가 타인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안전하기를 바라지만 고립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버겁다.상황이 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고 그때마다 음성이었다. 음성이라는 문자가 올 때까지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음성이 지금 괜찮다는 뜻이지만 ‘다행’이 언제 ‘불행’이 될지 모른다. 그만큼 역병은 내 주변까지 깊게 파고들었다.이러다 어느 순간 나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의 주인공인 그레고리처럼 가족들로부터 잊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현실을 움직이는 괴물이 되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미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 속도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오늘도 현관문을 무겁게 열었다. 식탁 위에 어머니가 금세 끓인 된장찌개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그 옆에는 딸아이가 쓴 예쁜 카드에 며칠 후 출근한다며 엄마의 건강을 걱정했다. 남편이 낮에 직장으로 전화를 했었다. “별일 없제?” 무뚝뚝한 한 마디를 하고 끊었다.긴 시간 적과 싸우며 지친 나를 가족들이 위로한다. 내 곁에는 각각 타인의 방처럼 보이는 곳에 자신을 가둔 가족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마스크를 끼고 거리를 두고 손을 자주 씻는 일이 예방이다. 그것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적을 무찌르는 것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체온을 올리면서 면역을 키워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방마다 고립된 가족 모두가 서로를 염려하는 텔레파시를 열심히 타전하고 있다.

2021-01-20

삶을 깁고 공그르고

한글은 표현이 아름다운 글자이다. 하지만 외래어와 더불어 국적불명의 언어들 때문에 우리말이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돌아보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삶의 각 분야에 녹아 있는 우리말을 김이랑 문학평론가가 찾아 그 아름다움을 들려줄 예정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함께 만물의 공존과 조화, 상생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 우리말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장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편집자 주개나 소 등 동물은 털옷을 입고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태어난다. 벌거숭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씻긴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 입히기이다. 그래서인지 언어배열도 의식주(衣食住)라고 썼다. 음식이나 집보다 옷(衣)을 우선시했던 것이다.어릴 적 어머니는 반짇고리를 꺼내 호롱불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바늘에 실을 꿰어가며 밤늦도록 바느질했다. 구멍이 난 양말, 무릎이 해진 바지, 단추가 떨어진 점퍼, 끈 떨어진 책가방, 이러한 것을 무릎에 올려놓고 깁고 호고 홀치고 공글렀다.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옷도 가방도 멀쩡해졌다.바느질할 때, 어머니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천을 덧대고 이으며 한 땀 한 땀 바늘길을 냈다. 어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바늘이 가고 실이 따라갔다. 작은 바늘과 가느다란 실이 만들어내는 언어는 어머니의 손끝처럼 매우 세밀했다.깁다 : 다른 헝겊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박다 : 두들기거나 꽂거나 틀거나 하여 속으로 들어가게 하다.뜨다 : 실이나 끈, 노 따위로 얽거나 짜서 만들다.호다 : 헝겊을 여러 겹 겹쳐 대고 땀을 곱걸지 않은 채 성기게 꿰매다.누비다 : 천을 두 겹으로 포개어 안팎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솜을 두어 가로 세로로 줄이 지게 박다.볼달다 : 버선의 앞뒤 바닥에 헝겊을 대어 깁다.홀치다 :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다.감치다 : 실의 올이 풀리지 않게 용수철 모양으로 감으며 꿰매다.시치다 : 여러 겹의 헝겊 조각을 맞대어 듬성듬성 성기게 꿰매다.사뜨다 : 올이 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실로 감치다.휘갑치다 :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얽어 휘둘러 감아 꿰매다.공그르다 : 접어 맞댄 양쪽에 바늘을 번갈아 넣어 가며 실 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떠서 꿰매다.징거매다 :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게 딴 천을 대고 대강 꿰매다.송당거리다 : 바늘땀을 다문다문 거칠게 자꾸 호다.바느질이라는 행위 속에 이러한 동사가 있다. 깁고, 박고, 뜨고, 호고, 누비고, 홀치고, 감치고, 시치고, 사뜨고, 휘갑치고, 공그르고…, 우리말은 행위나 상태를 소리로 표현하는 소리글자이다. 하나씩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면 행위와 발음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은 세밀한 동작을 절묘하게 소리로 표현하기 때문이다.땀 : 바늘로 한 번 뜬 자국.솔기 : 두 장의 천을 실로 꿰매어 이어 놓은 부분.매듭 : 실이나 끈 따위를 묶어 마디를 맺은 자리.시접 : 접혀서 옷 솔기의 속으로 들어간 부분.민짜 : 아무 장식이 없는 박음질.곱솔 : 솔기를 한번 꺾어서 호고 다시 또 접어서 박는 일.쌈솔 : 겉으로 시접한 쪽을 0.3~0.5cm 내에서 박은 다음 그 시접으로 접어 한 번 더 박는 일.뒤옹솔 : 바느질한 감의 안을 서로 맞대고 시접을 0.5cm 정도 박은 다음 안으로 뒤집어서 겉쪽의 시접이 보이지 않도록 다시 안에서 박는 일.가름솔 : 여러 천을 겉끼리 맞추어 한 번 박아 솔기를 양쪽으로 가르는 일.마름질 :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게 재거나 자르는 일.뜨개질 : 털실이나 실 따위를 얽고 짜서 옷, 장갑 따위를 만드는 일.박이옷 : 박음질하여 지은 옷.도련박기 : 도련이나 치마의 밑단을 박는 작업.반짇고리 : 바늘·실·골무·헝겊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누비이불 : 누벼서 지은 이불.김이랑수필가이렇게 나열해보니, 바느질과 관련된 명사도 동사 못지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늘로 뜬 자국은 ‘땀’이라 하고 맺은 자리는 ‘매듭’이라 하고 솔기를 곱으로 접는다고 ‘곱솔’이라 한다. 안으로 솔기를 싼다고 ‘쌈솔’이라 하고 뒤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뒤옹솔’이라 한다. 게다가 솔기를 가른다고 ‘가름솔’이라 하고 침을 감는다고 ‘감침질’이라고 하니, 그 모양새가 발음에 그대로 살아있지 않는가.그런가 하면 파생어도 많다. ‘일을 마무리하다’에서 ‘마무리’는 ‘마무르다’에서 나왔다. 옷을 입을 때 끈을 매고 여미고 하는 뒷단속을 ‘매무시’라고 한다. 마무르다, 매무새, 매다, 맺다, 맵시 등은 모두 바느질에서 나온 말이다. 삶에서 옷을 뺄 수 없듯이 바느질 용어가 삶 곳곳에 녹아 있는 것이다.가만히 짚어보면 우리네 삶도 바느질과 같다. 살다가 마음이 해지면 깁고, 느슨해지면 단단히 홀치고, 풀어질 것 같으면 말아서 감친다. 큰일을 앞두고는 마음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이 끝나면 마무리한다. 인연은 맺고 다하면 끊고 하던 일은 매듭을 짓는다. 정착하고 싶으면 말뚝을 박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누비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문학평론가

2021-01-20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미국 대통령이 바뀌었다. 바이든 새 대통령은 ‘회복과 포용을 지표로 삼아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선거는 지난 11월에 있었지만 지나온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군중이 의사 진행 중이었던 의회 건물 안으로 들이닥쳐 소동과 폭력을 휘두른 일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 여부가 문제가 되어 그는 하원에서 탄핵까지 당하였다. 민주주의의 모범이라 여겼던 미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전 세계가 보고 말았다. 미국은 이대로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회복하려면 미국은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혼돈의 과정에서 미국을 흔들었던 구호들을 살펴보자. ‘다시 위대한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그들의 외침에는 백인우월주의가 숨어 들었다. 건국으로부터 다양한 출신 사람들을 품기로 했던 미국인들이었지만 ‘피부색’에는 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자 레비츠키(S. Levitsky)와 지블라트(D. Ziblatt)는 미래를 걱정하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는가(How Democracies Die)’를 저술했다. 트럼프의 리더십이 백인 중심으로만 진행되면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급기야 선거의 결과도 부정하지 않았는가.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 적이 거의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그런 전통을 세워가기를 기대하였다.미국이 보여줘야 한다. 미국이 먼저 인종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가 외쳤던 ‘꿈’이 실현되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부정한 끝에 폭력과 탄핵에 이르는 경험까지 하지 않았는가. 민주주의의 모범은 ‘많은 사람의 생각’을 담는 데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배경.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배격하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이내 막을 내린다.우리는 어떤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나름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달려가는 길목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는가 아니면 배척하는가. 편을 가르고 진영을 나누는 주장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하트만(Michael Hartmann)은 그의 책 ‘엘리트제국의 몰락’에서 ‘소수의 세력이 지배하는 닫힌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포괄적이면서 환대하는 열린 엘리트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엘리트구조로는 민주적 공존을 기할 수가 없다.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고 차별없이 참여하는 사회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는 구현된다.‘우리는 늘 반대편에 서 있지만, 한 번도 적이었던 때는 없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의 말이다. 반대는 더 나은 무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다른 생각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힘으로 하여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해 가야 한다. 새 미국에 높은 기대를 건다.

2021-01-20

공매도

공매도는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용어로, 특정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주문을 내는 투자전략을 가리킨다.주로 초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데 사용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A 종목 주가가 1만원이고, 주가하락이 예상되는 경우 A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일단 1만원에 공매도 주문을 낸다. 그리고 실제 주가가 8천원으로 하락했을 때 A 종목을 다시 사서 2천원의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주식 공매도는 특정 주식의 가격이 단기적으로 과도하게 상승할 경우 매도 주문을 증가시켜 주가를 정상수준으로 되돌려 증권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반면 증권시장에서 시세조종과 채무불이행을 유발할 수 있다. 만약 투자자 예상과 달리 주식을 공매도한 후에 주가가 급등하면 큰 낭패다. 손실부담이 증가해 빌린 주식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채무불이행이 발생한다. 주식공매도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69년 2월 이며, 2008년 금융위기때 외국인 공매도가 전체 물량의 90%를 넘자 2008년 10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5년간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를 전면금지한 바 있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폭락장이 이어지자 2020년 3월16일부터 9월15일까지 6개월간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가 금지됐고, 이후 2021년 3월15일까지 6개월 연장됐다. 올들어 주식시장이 3천포인트를 넘어 고공행진하면서 3월15일 공매도 재개여부를 결정할 금융위원회의 결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있다.기관투자가들에게 훨씬 유리한 주식공매도 영구금지를 요구하는 동학개미들의 요구가 과연 받아들여질지 관심거리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0

8차 노동당 대회 무엇이 달라졌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8일간의 북한 8차 노동당 대회(1월 5∼12일)가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2천800여명의 대의원들이 참가한 4·25회관의 8일간의 당 대회는 폐회되었다. 김일성의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김정일 시대는 당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2016년 7차 당 대회를 개최해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8차 당 대회는 대의원 인준 절차에 이어 분야별 사업보고와 당 규약의 개정이 있었다. 김정은 집권 후 두 번째 개최된 이번 대회는 종래와 몇 가지 다른 점을 보여주었다. 이번 당 대회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이번 8차 당 대회는 5년 마다 열리는 당 대회를 정례화 시켰다는 점이다. 김정일 시대 개최되지 않았던 전국 당 대회를 김정은이 정상화 시킨 것이다. 과거 통치자의 뜻에 따라 자의적으로 개최여부를 결정했던 당 대회가 정례화된 점은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당 대회에서 김정은 자신의 위상도 당위원장에서 ‘총비서’라는 직함을 되찾았다. 김정일은 유훈통치를 앞세워 총비서 대신 국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김정은이 열병식에서 할아버지의 소련식 털모자 착용뿐 아니라 총비서라는 직함까지 정식으로 승계 받게 된 것이다.김정은은 이번 대회에서 북한의 5개년 경제 개발 전략이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통치자가 실정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어느 사회주의 국가나 최고 통치자의 행위는 언제나 정당화되고 미화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작년 우리 경비선 피살사건에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김정은은 코로나로 인한 국경통제, 대북 제재 등으로 경제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종래의 모든 책임을 미국과 남조선에 돌리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이번 당 대회에서는 각 산업별 보고와 토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당 중앙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종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번 대회의 당직 인선에서도 당 핵심 간부 39명 중 29명이 교체되었다. 군 출신 간부는 약 50%가 감소하고, 행정 경제 전문 관료가 대폭 증원됐다. 원로들이 대폭 물러나고 신진들이 약진했다. 북한 체제도 이제 과거 항일 빨치산의 이념형보다는 전문 테크노크라트 형으로 교체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교체가 북한의 위기 극복과 개혁·개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북한의 대미, 대남 태도도 미세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종래의 미 제국주의의 타도 등 미국에 대한 거친 비난은 감추어 버렸다. 미국에 대해서도 ‘강(强)대강 선(善)대선’의 정책을 강조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리라고 수위를 낮추었다. 지난번 등장했던 신형 ICBM은 보이지 않고, 신형 SLBM은 사열에 등장했다. 대남 발언도 남북의 합의를 잘 지키면 2019년의 봄을 열 수 있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한미 군사 훈련과 남한의 첨단 무기 도입중지 요구는 종래 주장의 반복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을 예의 주시할 뿐이다.

2021-01-20

수업이 답이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수업이 달라요. 지금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수업도 얼마 안 했지만, 애들이 수업 시간에 다 자요. 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기는 수업이 너무 재밌어요.”지난 주말 산자연중학교에서는 입(전)학을 위한 겨울 예비학교가 열렸다. 참가 학생들에게 필자는 왜 입(전)학을 하려고 하는지 꼭 묻는다. 그러면 거의 모든 학생이 위와 같이 답한다. “수업 시간에 자도 괜찮니? 선생님들께 혼나지 않니? 수업 시간에 왜 자니?” 이 질문에 대한 답도 필자는 잘 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지만 역시나 답은 똑같다. 수업 붕괴를 보도하는 뉴스 내용을 필자는 매년 학생들에게서 직접 듣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수업 붕괴의 강도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자는 친구를 깨우는 선생님은 거의 없어요. 어느 선생님은 애들 깬다고 아주 조용하게 수업하시기도 해요.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하면, 집중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집중하면 들린다고 하세요. 선생님 혼자 말씀하시고는 종 치면 바로 나가세요. 수업 정말 재미없어요.”물론 모든 학교가 이렇지는 않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많은 학교 수업이 또 이렇다는 것이다. 교육청에서는 수업 질 개선을 위해 교사들을 대상으로 거꾸로 교실, 하브루타 수업 등 별별 수업 관련 연수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연수가 늘수록 학생들의 수업에 관한 관심과 흥미는 더 떨어지고, 학교 붕괴는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학교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업이다. 그래서 무너진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수업 혁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때 “교사들, 교실의 위기 맞서 ‘수업 혁신’ 나섰다”와 같은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뭔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이기만 하는 실패의 블랙홀인 이 나라 교육계 특성상 결과는 걷잡을 수 없는 교실 혼돈뿐이었다.그럼 수업을 바꿀 방법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혁신의 방향을 바꾸면 된다. 지금까지의 혁신은 교사 주도 혁신이었다. 그것은 마치 순리를 거스르고 역류하는 물과 같은 것이다. 혁신 수업을 보면 겉으로는 학생 중심 수업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더 교사 중심 수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수업 혁신에 학생은 없다.과연 수업의 주인은 누구일까? 물론 교사와 학생이다. 그런데 학생이 듣지 않는 수업은 아무리 좋은 수업이라고 해도 수업이 아니다. 혹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아는가? 필자가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재밌는 수업을 가장 원한다. 그래서 필자는 평교사 때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한 번 이상 크게 웃을 수 있게 하자!”라는 목표를 정하고 수업을 하였다.교사도 즐겁고, 학생도 즐거운 수업! 이런 수업을 위해 다음과 같은 수업디자인을 제안한다.“수업을 마치고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수업”2021년부터는 학생과 교사 모두 잃어버린 즐거움과 의미를 되찾은 수업만 있기를 바란다.

2021-01-20

백약이 무효인 부동산 대책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정부의 25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도 미친듯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지난 한해는 코로나19로 대부분 산업은 기나긴 어둠의 터널이었지만, 유독 아파트 분양시장만은 활기가 넘쳤다. 그동안 정부는 대출규제와 각종 세금 인상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내용을 담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상하게도 부동산 가격만 올려놓았다. 정부의 대책 이후 잠시 주춤하다 곧바로 반등세로 돌아서는 현상이 이어지며 ‘똘똘한 한 채’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더 양산했다. 투기과열지구나 조정지구로 묶으면 이른바 ‘풍선효과’로 인해 다른 지역들이 동반 상승하는 결과까지 나왔다.대구 수성구의 경우 투기과열지구로 지정 이후 부동산 가격은 고공행진했고 지난해 11월 조정지구라는 규제까지 함께 발동했지만, 범어동과 만촌동 등은 끝 간 데 없이 가격 폭등세로 정부대책에 응답했다.심지어 수성구 인근의 경북 경산시 아파트 분양시장이 풍선효과로 인해 들썩이는 등 백약이 무효라는 말 그대로였다. 이후 수성구 아파트 매물은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씨가 말랐고 계약한 매매 물건마저 집주인이 2배로 위약금을 물고 취소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여기에다 매매 가격을 낮게 게시한 부동산 중개인에게 매물을 내놓지 말자는 현수막까지 나붙으며 일부는 소송으로 번지는 진풍경까지 나타났다. 이런 것을 종합하면 결국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헛심만 쓴 셈이 됐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만든 머리 좋은 국토부의 공직자들이 정말 부동산을 잡을 방법을 모르는 것일까, 의문이다.정부의 수많은 대책에도 이 같은 이상한 현상이 반복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대구지역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곧바로 막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분석이다.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한 방법이고 현재의 아파트 분양방식을 완공이나 시공 이후 분양하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분양권 전매는 지난 1999년 3월 IMF경제위기에 따라 최악의 상태에 빠진 부동산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국토부의 전신인 건설교통부가 발표했다. IMF를 졸업하지 20여년이 지났음에도 제한 범위만 일부 조정될 뿐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분양권 전매를 완전히 제한하면 부동산 투기자금이 들어설 수 없어 진짜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 중심으로 분양시장이 돌아가고 아파트 가격 급등세의 악순환도 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선 완공 후 분양제를 도입하면 살집이 필요한 이들로 부동산 시장이 재편되면서 투기를 목적으로 한 이들이 더이상 발붙일 방법이 거의 없다는 진단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건립된 아파트를 직접 볼 수 있어 모델하우스 건립비용이 없어지고 ‘억지 춘양격’인 발코니 확장을 비롯한 각종 부대설비 비용 등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아파트 시행사도 최대한 분양가를 낮춰야 다른 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분양 가격은 담당 구청이 조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억제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다. 이 중 하나라도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다면 지금까지 발표된 어떤 대책보다 강력하다는 사실을 국토부는 모르고 있을까.

2021-01-19

포항 한라봉

제주도 한라봉을 한국에서 나는 귤과 오렌지를 교배한 품종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러나 제주 한라봉은 1972년 일본 농림성 과수시험장에서 육성한 교잡종 감귤이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께 들어와 처음에는 ‘데꼬봉’이라는 일본 이름 그대로 사용되었다.제주도에서 생산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한라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꼭지 부분이 마치 한라산 봉우리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데 착안해 붙인 이름이라 한다.제주도에는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등 수 많은 감귤의 교배종이 있으나 제주도의 이미지를 잘 결합한 것으로 한라봉 만한 것이 없다.아열대 작물의 국내 재배가 이젠 빠르게 보편화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기후 온난화로 한반도 남쪽지방에서는 바나나와 파파야, 망고, 감귤류 등의 생산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제주도에서 나던 감귤이 대구에서도 생산되고 있으니 지구온난화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들이다.최근 제주도의 한라봉이 포항에서 재배 4년 만에 첫 수확을 거뒀다. 중량과 당도 등 품질면에서 한라봉 못지않은 고품질의 상품이라고 한다. 포항의 한라봉 말고도 경북도내서는 경주에서 경주봉, 신라봉이라는 이름으로 한라봉이 생산되고 있다. 한라봉의 캐릭터를 지역 특성에 맞게 이름을 바꿔 제주도산에 대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 작물의 판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현재 남쪽지방 중심으로 재배되는 아열대 작물이 2080년에는 중부내륙지방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재배면적도 현재 10%에서 6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지구온난화가 가져 온 과일시장의 판도 변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정구(논설위원)

2021-01-19

때문에와 덕분에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걸 먹을까, 저걸 입을까, 어느 쪽으로 갈까, 누굴 만날까 등 어찌보면 사람의 모든 행위나 생활 자체가 모두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사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수두룩하지만, 할까 말까 또는 갈까 말까 처럼 순간의 판단이나 이미 마음먹은 선택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먹거나 말하고 행동하는 자체는 순전히 그 행위자의 생각과 의사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물인 셈이다.어떤 현상이나 일을 두고 생각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대립되고, 찬성과 반대가 양립할 수 있다. 그것은 곧 개개인의 마음먹기와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닌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무시하거나 배척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귀중하듯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야말로 인간관계의 기본이고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숱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충족시켜 주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인간사회에서의 예의와 범절을 알고 기본과 상식을 지키는 것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쪽이 잘 되면 저쪽이 잘 안될 수 있고, 한쪽이 손해보면 다른 쪽은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것은 곧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어떤 사안에는 명암이 존재하고 유불리가 상존하는 것이 다반사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냐는 관점과 태도, 자세에 따라 결과가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똑같은 일이나 현상을 놓고도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졌다 하기도 하고 ‘~덕분에’ 힘이 나고 수월해졌다 하는 부류가 나타나게 된다.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을 의미하는 ‘때문’은 부정, 긍정적 맥락에서 모두 쓰이지만 부정성이 많고,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의미하는 ‘덕분’은 자연히 긍정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에 쓰이게 된다. 즉, 때문에는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일을 뜻하는 ‘탓’이라는 의미가 강하고, 덕분에는 수긍하고 호응하는 자세로 감사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있다.희대의 전염병 때문에 사회전반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언제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만 탓하고 경기침체를 한탄만 할 것인가. 암울한 난관에 직면해서 마음을 다잡고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지방의 모방송에서는 지역의 대기업체 때문에 야기되는 환경, 질병 등의 사회적인 문제를 명확한 인과관계와 진실규명도 하지 않은 채 여과없이 파헤치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는 듯하니 무슨 의도와 뒷북인지 모를 판이다.가뜩이나 민감하고 조심스런 시기에 누구 때문에 무슨 탓(?)을 하기 보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덕분에 다행스럽고 안심하다는 선의적인 발상과 전향적인 맥락으로 막막한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2021-01-19

일관성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임마누엘 칸트(1724∼1804)의 저작은 모르지만, 그의 습관은 기억한다. 그는 매일 오후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평생에 두 번 산책을 빠트렸는데, 장-자크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을 보도한 신문을 읽다가 그랬다는 것이다.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걸은 것으로도 유명하다.왜소하고 병약한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칸트가 80세의 천수(天壽)를 누린 것은 규칙적인 산책 덕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장구한 세월 정해진 시각에 산책을 시작해서 마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칸트가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던 근저에는 자신을 이겨낸 탁월한 의지도 한몫했을 것이다. 칸트처럼 좋은 습관을 평생 지켜온 사람을 주위에서 보셨는가?! 그것을 일관성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언제 어디서든 수미일관(首尾一貫)하는 자세와 관점을 유지하는 것을 일관성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요즘처럼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점에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더욱 쉽지 않다. 일례로 양치질의 ‘3-3-3법칙’을 들 수 있다. 하루 3번, 식후 3차례, 3분 동안 이를 닦는 것이다. 사정이 허락하는 사람들은 이 법칙을 성실히 지켜왔다. ‘치아가 오복(五福)의 하나’라는 말이 시중에 떠돌 만큼 장수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치아이기 때문이다.그런데 ‘3-3-3법칙’ 치아를 상하게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식후 최소 30분 후에 양치해야 치아의 법랑질 성분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가까이 지켜온 습관이 오히려 치아 건강에 해롭다는 결과를 천연덕스레 보도하는 언론이 마냥 신기했다.기다렸다. 치과협회나 치과의사들이 사과 성명이라도 낼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3-3-3법칙’을 오랜 세월 주장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연구와 실험 결과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한 ‘3-3-3법칙’이 유효하지 않기로 미안하게 됐다.”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했던 ‘3-3-3법칙’의 피해자들은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사람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참에 우리 국민도 치과의사들과 치약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해야 할 판인가, 궁금하다.이런 일은 날마다 되풀이된다. 코로나19 백신 구매가 늦다고 정부-여당을 몰아치던 정당과 언론사들이 화이자를 비롯한 백신의 부작용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하나같이 입을 닫는다. 중요사안을 정파적으로 접근하는 언론사와 정치인들은 돌아봐야 한다. 얼마나 오래 일관성을 지킬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올바른 행위인지! ‘내로남불’은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1-19

올 겨울 한파, 어쩌면 지구의 경고일지도

지난 1월 8일, 한반도에는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 닥쳤다.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18.6℃로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경북 지역의 수은주도 영하 15℃ 아래로 떨어졌다. 1964년 이래 57년 만에 제주도도 한파 경보가 발효되는 등 실로 어마어마한 한파가 한반도를 매섭게 할퀴었다.갑자기 폭설도 내리는 바람에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고 곳곳의 수도 계량기가 동파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 오고 3년 간 한 번도 언 적이 없었던 우리 집 수도도 얼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내일 일어나면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을 살살 틀어놔야지 마음을 먹고 잠들었는데, 그 하룻밤 만에 수도가 얼어붙은 것이다. 수도가 얼자 나는 더 이상 이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수도가 얼었다는 것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씻는 건 둘째 치고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얼어붙어버린 집에서 나는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나는 친구 집과 아버지 집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자연재해의 피해자가 되어 (사실상)집을 잃기는 처음이었다. 얼어버린 수도가 자연스레 녹길 기다리며 며칠을 버티다 결국 동네 철물점 사장님께 수십만 원을 드리고 배관을 녹일 수 있었다. 우리 집 배관은 보일러실부터 계량기까지 싹 다 얼어붙어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말이다.이번 한파는 역설적이게도 지구 온난화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지구가 따뜻해지는데 어째서 한반도는 더 추워진 것인가. 이번에 뉴스를 보며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겨울철 한반도의 추위는 주로 북서쪽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인데, 겨울철 한반도와 시베리아 사이에는 고맙게도 시베리아 기단을 가로막는 제트기류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트기류의 양 끝 지점의 온도차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이 제트기류가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한반도를 쉽게 침범하지 못하던 시베리아 기단이 마음껏 한반도로 넘어와 이번과 같은 한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요약하자면, 지구온난화로 몸살을 앓던 지구가 ‘콜록’하고 기침 한 번 한 바람에 한반도에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이 내리고 도로가 마비되고 계량기 7천여개가 망가지고 우리 집 수도가 얼어붙고 내가 일주일간 이재민 아닌 이재민이 된 것이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나는 사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분리수거는 대충대충 흉내만 낼 뿐, 페트병에 붙어있는 비닐 라벨을 떼거나 종이박스에 붙어있는 비닐 테이프를 제거하는 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인들을 보며 ‘뭘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까 문득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나에게 지구가 ‘이놈’하며 가벼운 호통을 한 번 친 느낌이었다.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한파 때문에 하얗게 얼어붙은 동네를 보며 재난영화 ‘투모로우(2004)’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다 녹고, 이로 인해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분노한 자연 앞에서 인류의 무력함을. 인류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이 있다고. 허나 그건 오만이었습니다.”이번에는 고작 우리 집 수도가 어는 정도의 경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우리가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과 같은 오만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나와 같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지구는 더욱 더 엄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항의를 해 올지도 모를 일이다.

2021-01-18

나는 내가 실패하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

열일곱의 나는 모든 것이 싫었다.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지, 대학은 왜 진학해야 하는지, 우리는 왜 굳이 태어나서 허망하게 죽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그건 분명 나를 괴롭히기 위해 구축된 시스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비대한 자의식은 사실 나는 먼지만큼이나 작은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반증에 불과했다.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으며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은 아무리 노력해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묘한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것이다.요즘의 학생들도 그때의 나와 비슷한 기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소설 수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보면 “제 인생은 망했어요” 하는 말로 끝맺음을 짓기 일쑤다. 그럼 나는 당황하고 마는데 이 친구들은 그때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조숙하고 열린 태도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정말 잘하고 있어.” 진심을 가득 담아 이야기하지만 별로 와 닿아 보이진 않는다. 그저 선생의 의례적인 위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혼자서 베트남을 종단했던 적이 있다. 커다란 배낭 하나 둘러매고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다. 하노이를 떠나 사파에서 2박3일을 보내고 다음으로 예정된 도시는 닌빈이었다. 땀꼭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파에서 닌빈으로 이동하려면 슬리핑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머물고 있던 숙소의 호스트에게 닌빈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알겠노라고 답했다. 자신의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터미널에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엄지를 척 내미는 그의 환한 미소만 믿고 아무 확인 없이 버스에 올라탄 것이 실수였다. 8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라오스와 국경이 맞닿은 도시, 디엔 비엔 푸였다.그러니까 나는 내가 원했던 곳과 정반대에 위치한 도시에 떨어진 것이다. 호스트의 실수였던지 내 실수였던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부랴부랴 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예약했다. 주인은 불친절했고 침구는 더러웠으며 숙소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피로하고 지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피곤은 쏟아졌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애써 짜놓은 계획이 모두 틀어졌다. 시간과 예산이 부족했고 예약된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했다. 축축하게 젖은 마음은 부패되어 곰팡이가 필 지경이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망했다.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맞이한 다음 날 아침, 나는 무작정 숙소를 나섰다. 여행 책자에도 인터넷에도 이 도시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낙담한 기분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는 많은 것과 마주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가게 주인에게 손짓발짓으로 주문한 볶음 쌀국수와 철부지 동네 꼬마들. 망망하게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서의 감동. 그렇게 나는 계획에도 없던 도시에서 이틀을 보내고 다시 하노이로 돌아와 여행을 재개했다. 여행 일정은 완전히 수정되었지만 오히려 나는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유랑할 수 있었다.우리는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먼저 실패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이게 끝이라면? 여기가 나락이라면? 두려움은 경험을 가로막는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성난 파도처럼 몰려와 우리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유려한 서퍼처럼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가면 좋겠지만 균형을 잡지 못한 채 바닥으로 꼬르륵 잠길 수도 있다.돌이켜보면 다양한 실패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 실패한 사람이 될까봐 두렵지만, 실패가 두렵진 않은 나를. 그러니 나는 언제든 실패할 준비가 되어있다. 사무엘 베케트가 남긴 그 유명한 정언처럼. ‘실패하라, 또 실패하라, 그리고 더 나은 실패를 하라.’

2021-01-18

경주의 청동기(靑銅器)

고고학에서는 흔히 시대를 도구의 재료로 구분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이었다고 판단되었던 돌(석기), 청동(청동기), 철(철기)이 그것이다.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이는 인류가 자연 그대로가 아닌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다시 말해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철보다 앞선 청동기의 제작은 한국 청동기시대를 열며, 청동기문화를 꽃피웠다.또한 그 이후인 초기철기·원삼국시대까지 사용되고, 일본에 전파되기도 했다.한반도 전역에 넓게 분포한 청동기는 동남부지역의 경주에서도 확인되는데 여기에서는 이를 살펴보려 한다.경주의 청동기는 대부분 원삼국시대에 집중돼 출토됐고 우리는 국립경주박물관 등에서 그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시기에 특이한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바로 경주 출토로 전하는 견갑형동기(肩甲形銅器, 일제강점기 수집)이다.이 견갑형동기는 단독 출토로 용도가 불명확한데 이와 비슷한 것이 중국의 심양 정가와자 6512호묘(1965년 8월 발굴)에서 확인된 바 있다. 여기 무덤 안 인골의 오른쪽 경골(정강이뼈) 옆에서 견갑형동기가 나왔는데 그 내부에 동부(銅斧·도끼)와 동사(銅9248·새기개)가 들어 있어 이를 넣어 보관하는 용도로 해석된다.경주의 견갑형동기는 현재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이고 복제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이 유물은 흥미롭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해석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다. 오히려 전형적이라 말할 수 있는 유적의 청동기에서 당시 사회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할 수 있겠다.경주에는 그러한 유적들이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입실리(1920년 8월 발견), 구정동(1936년, 1951년 10월 발견), 조양동(1979년 4월 발굴), 사라리(1995년 11월 발굴), 덕천리(2004년 6월 발굴), 탑동 21-3·4번지(2010년 2월 발굴), 죽동리 639번지(2018년 8월 발굴) 유적 등이다.이들 유적은 대부분이 목관묘이며, 청동기 외에 철기, 구슬 등도 나왔다.경주의 목관묘는 기원전 2~1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새로운 집단이 청동기를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인다. 이중 2기의 무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기원후 1~2세기는 고고학에서 원삼국시대, 사학에서 삼한시대라 부르는 시기에 속한다. 이때 만들어진 두 무덤이 경주 사라리 130호 목관묘와 탑동 목관묘이다.이들 무덤은 초기철기시대가 끝난 후 만들어진, 즉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된다.여기에는 청동기와 철기가 다량 부장됐는데 흥미로운 점은 한국식동검(세형동검)이 이들 무덤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이다.따라서 이때까지도 한국식동검은 경주(진한)에서 중요한 권력의 상징물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또 다른 흥미로운 부분은 사라리 130호 목관묘와 탑동 목관묘의 부장유물들이다.도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식동검, 청동거울, 호랑이모양 허리띠, S자 모양의 재갈, 나무를 끼울 수 있는 철제의 창, 양쪽 손잡이 달린 항아리 등 두 무덤에는 거의 같은 물건들이 묻혔다.이러한 유사한 유물이 공통적으로 부장된 사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군다나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수의 유물들이 나온 무덤은 더더욱 그렇다.허준양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비슷한 시기, 같은 지역 안 15km 가량 떨어진 위치, 공통된 부장품들은 어쩌면 진한의 사로국 여러 지배자들을 떠올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이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어 왔으나 아직까지 확증은 발견되지 않았다.하나 더 덧붙이자면, 경주 탑동 목관묘의 청동거울에서 왕(王 또는 主)명의 문자가 확인됐다. 우리는 이 한 글자를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이 王은 진짜 왕을 말하는 것일까? 또는 진한의 지배자(또는 장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단순한 글자인가? 만약 이 글자가 진짜 왕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탑동 목관묘의 주인은 왕이라는 뜻이다.그런데 이렇게 되면 비슷한 시기, 비슷한 수준의 무덤에 묻힌 사라리 130호 목관묘의 주인은 또 누구라고 할 수 있는가? 이렇듯 고고학은 역사문헌만으로 알 수 없는 단서를 찾아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다시 말해 경주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보통 ‘경주’의 이미지는 신라의 고분들과 화려한 금관, 금귀걸이와 맞물려 있다.그러나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그에 더해 청동기와 밝혀지지 못한 수많은 이야깃거리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2021-01-18

시선과 손길로 전달되는 사랑이야기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은 ‘흐름’에 관한 영화다. 시작하는 연인의 감정이 어떻게 전달돼 얽히는가에 관한 영화다. 한 순간 포착돼 잊혀지지 않는 감정이 무엇을 매개로 전달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특별나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경험해 보았다면 누구나 겪었을 보편적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시작은 ‘시선’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있는 백화점에서, 무수한 사람들 사이로 단 한 사람에게 시선이 머문다. 서로의 시선을 확인한 두 사람에게 시간과 소리가 멈추고, 두 사람만의 공기가 흐른다. 그 공간 속에서 모든 감각은 예민해지고, 미세한 떨림조차 크게 울린다. 운명적인 사랑, 한 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영화는 ‘흐름’으로 표현하고 있다.이것은 언어 이전에 표현돼 전달되는 그 무엇이며, 대화없이 전달되는 감정의 총체적인 것이다. 누군가를 내 마음 안으로 들이는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던가. 이유가 정립되기 이전의 시선에 포착되어 눈빛으로 전달되는 그 무엇이다. 순간이며 영원인 사건이 ‘눈빛’ 하나로 펼쳐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눈빛’으로 전달된 감정은 ‘손길’로 진화한다. ‘눈빛’이 나와 당신의 불확실한 감정의 교환이었을 때, ‘손길’은 그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흐름의 신호로 작용한다. 장갑과 담배를 피우는 손과 피아노를 치는 손, 술 잔을 잡은 손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시선에 풍성하며 미묘한 감정들을 실어 전달했듯이, 이들의 손동작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흐르고 전달되기를 반복한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과 변곡점에서 언어보다 시선과 손길이 선행한다. 언어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그 이후의 확인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영화 ‘캐롤’의 첫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서 반복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영화 속에서 두 번의 중요한 질문(요청)이 나오는데 그 질문을 던진 이의 의지와 희망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손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시선으로 전달된다. 두 번의 요청이 언어로 시작해 손길로 전달되고, 그에 대한 답변은 눈빛으로 전달되고, 눈빛으로 화답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구구절절하지 않다. 섬세하게 전달되는 모든 것들을 올올이 포착해 전달하고 있다. 두 배우는 미장센 속에서 감정의 넓이보다는 깊이에 치중한다. 그 깊이가 심오하거나 난해한 깊이는 아니다. 공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디테일들을 오롯이 전달하는 순간들을 감상자는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되는 영화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의 격량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은 감정의 애틋함이다. 눈으로 감상하는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가슴을 울린다.각자의 사랑이 어떻게 무엇으로 시작되었는가를 회상할 때, 그리고 그 기억이 무엇으로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추억할 때,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의 집합체다. 상세한 이유가 사라지고 아련한 감정으로 남는 것의 모든 것들을 담았다.영화 ‘캐롤’에서 보여지는 사랑에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대사처럼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등장해 시작되는 사랑이다. 그 시작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다.영화는 섬세한 것들이 유유히 흐르는 연속이다. 그 흐름이 감정의 파고를 만들고, 마지막을 장식한다. 어쩌면 격정적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느리고 차분하게 흐른다. 선택의 순간에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소음은 소거되고 시간은 느리게 흐르며, 흔들리던 카메라는 고정되고 줌인한다. 이것은 ‘흐름’의 모든 것들이 마지막에 도달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답고 숨막히는 엔딩이다.마지막에 밝히는 것이지만 영화 ‘캐롤’의 사랑은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그녀와 그녀의 사랑이다. 이것이 보편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 방해가 되거나 낯설어질 이유가 되지 않는다.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이질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사랑의 ‘흐름’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1-01-18

실종된 창업수통(創業垂統) 정신

강희룡 서예가본래 조선을 건국할 당시의 건국이념인 유학은 긴 세월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탄탄한 논리로 기틀을 이룰 바탕을 갖추고 있었다. 그 논리의 핵심이 바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움’이다. 무슨 대단하고 고매한 이론이 아니라 사람 하나하나가 본인이 처한 위치에서 주어진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륜의 논리가 국가나 가정을 지탱할 수 있는 원초가 될 수 있으며 사회질서 또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향리에 사창(社倉)을 열어 빈민을 구제하고, 향약을 실시하였던 조선 후기 학자 권구 선생은 그의 저서 병곡집에 당론(黨論)을 기록했다. 권구는 정치에 몸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한 학자의 눈으로 중도에서 조선 중기 이후에 발생한 붕당정치가 망국의 원인이 된 핵심을 꿰뚫어보고 정리한 글이 바로 당론이다.그 내용은 ‘조선이 처음 건국하여 예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니 유학자가 배출되고 문화와 교육이 융성했다. 이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도리가 분명해져 성인들이 서로 계승하여 어진 정치는 깊이가 있고 끼친 은택은 두터웠다. …. 안으로는 정권을 장악한 권신이 없고, 밖으로는 함부로 날뛰는 강한 주변국이 없으니 결코 뽑히지 않을 기반과 범하기 어려운 형세는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백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심이 오랜 평화와 안정에 오만해져 미래의 안목이 없어지고, 선비의 버릇이 문장의 폐해에 빠져 온화하고 인정이 두터운 기풍이 적어졌단 말인가! ….’선조 때 동인과 서인의 견해 차이에서 시작된 당론은 정치가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에 권구는 붕당정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누구도 국가에 해악을 끼칠 마음으로 당을 세우고 논의를 주장하여 서로 공격했던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권구는 이 글에서 견해를 달리한 당론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그 원인을 두고 있다. 독사 같은 무리와 경박하고 조급한 부류가 목전의 은원과 이익에 매달려 당론을 좌우하기 때문에 결국 나라를 그르쳤다는 오명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들은 오직 자신의 영욕만을 생각하는 자들이다. 자신이나 패거리의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상대를 공격하고 법을 비틀고 조작하다보니 결국 물고 뜯는 지경으로 몰아가 정작 옳고 그름과 정사(正邪)는 사라지고 없다. 예나 지금이나 당론으로 인해 정치가 분열되어 나라를 그르쳤다고 모두 입을 모은다.‘맹자 양혜왕장구’에 창업수통(創業垂統)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가의 좋은 전통을 후세에 영원히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지금 당장 혼란스럽고 어려워도 먼 훗날의 국가번영을 위해 정의를 탄탄한 반석에 올리고 바른 정치의 공정함으로 정도를 지켜야 한다.지금 서울, 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후보자들의 출마의 변은 정책보다 다른 후보의 약점부터 먼저 헐뜯고 나온다. 이젠 성숙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만이 이런 한심한 부류들을 정치권에서 영원히 몰아내어 국가의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창업수통이 절실한 시기이다.

2021-01-18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새해 계획은 늘 세웠던 기억이 있다.그런데 이번은 그런 생각이 일도 없다. 오직 코로나19의 종식만을 바라는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먼 나라의 불행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코로나19가 작년 2월부터 슬며시 대한민국을 덮친 후 코로나19로 사투를 벌인 해였고, 신축년 새해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만연하여도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 또 새해를 맞았다.그랬다. 경자년은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대로 정지된 한해였다. 코로나19로 일상을 잃어버린 한해였지만 잠시 멈춘 일 년 세상 덕에 좋은 것도 있다. 황사 걱정 없이 맑은 봄 하늘도 만끽했고 높은 가을하늘도 유난히 높았다. 세상은 다 나쁜 것도 다 좋은 것도 없다.이 시기가 엄청 힘들긴 했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만남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던 것 같다. 가족도 장모님도 보고 싶다.그리고 교실도 문이 닫힌 한해였다. 등교를 하지 못했고, 원격수업에 쌍방향 수업, 아침에 줌으로 조례를 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새로운 학습을 했기에 아침 조례에 들어오지 않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조·종례를 해야 하는 진풍경이다. 또한 국가적인 시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학생 없는 종업식을 하고 또 학생 없는 졸업식을 한다.이규홍님의 시에서는, ‘옳음과 외로움이 / 빈자리를 요구할 때’새해는 실천하며, 외로운 사람들의 벗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안타깝고 가련한 이웃들을 힘껏 돕겠다는 말이다.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빌고, 예수님의 무한 사랑을 얻어와, 모처럼 다시 맞은 새해 벽두에 우리들의 눈과 몸을 정화하고 서로를 아끼며 정체성을 되찾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답답했던 마스크 착용이 이제는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버리고 평범한 삶의 소중함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 교훈을 준 값진 한 해였던 것 같다.신축년에는 ‘몸, 비워 주리라 / 저 찬란한 햇살 / 세상을 향해 훨훨 타오르도록’이라는 시구처럼 남을 위해 학생과 함께 봉사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신축년에는 저 찬란한 햇살처럼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시고, 취업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직장을 주시고, 수업시간에 수업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학생들과 함께 졸업식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학생들과 마스크 벗고 이야기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학생들과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신축년이 되기를 기원한다.소소한 삶이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것을 깨달은 신축년에 가족과 함께 산책도 하고, 여름날 텐트를 치고 캠핑도 하고, 학생들과 함께 눈 맞추며 수업하는 일상으로 돌아가 행복하고 건강한 꿈이 이루어지는 평범한 일상의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2021-01-18

성장의 의미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성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성장하기 위해 누구나 노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노력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우리는 현실이 고통스럽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성장을 꿈꾼다. 만족을 위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와 귀를 소망한다. 그러나 성공이 성장은 아니라서 이것을 갖는다고 내적인 만족까지 따라온다는 보장은 없다.며칠 전 펼친 대담집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뉴욕 소네트’라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온 후에 출간된 것이어서 다큐멘터리의 뒷이야기와 못다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시모어 번스타인은 1927년생으로 미국의 피아니스트이다. 이런 작품이 연이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그의 삶이 성장의 모범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우 에단 호크의 제안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나이는 88세였고, 인터뷰를 할 때 나이는 90세였다. 그의 삶이 남긴 흔적은 그가 추구한 성장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번스타인은 개인적 자아와 음악적 자아의 통합을 성장이라고 한다. 번스타인에게는 음악이었지만, 각자의 재능에 따라 분야는 달라질 것이다. 어떤 재능이든 예술이다. 개인적 자아와 예술적 자아의 통합이란, ‘어떤 것에 열정이나 관심을 최대한 펼칠 때 인간의 영적 세계, 감성적 세계, 지성적 세계, 육체적 세계가 함께 발달하는’ 것이라고 번스타인은 말한다. 총명하고 재능이 많다고 해서 그의 예술적 자아가 개인적 자아와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일그러지고 괴팍한 예술가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우주의 전부라면서 자기 안에 매몰되는 자아 과잉도 성장의 목적지는 아니다.감성과 지성뿐 아니라 육체의 발달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번스타인은 자기가 관심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자신의 감성과 지성, 그리고 육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대가와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재능을 존중하고 보호하면서 작품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는 템포를 스스로 고르라고 한다. 번스타인은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운동도 신경 쓴다. 그것이 통합이다.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공부에 재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논문을 쓰려고 발버둥칠수록 인격파탄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좌절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감성과 지성과 육체의 발달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재능을 어떻게 펼쳐야 할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많은 이들이 번스타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해보겠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다. 성장의 의미와 목적을 바르게 알기만 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누구에게나 통합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관심 있는 분야를 발견하고 그 활동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가면서 표현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은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2021-01-18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ASMR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ASMR)’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하는 자극에 반응해 나타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 등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다.힐링을 얻고자 하는 청취자들이 ASMR의 소리를 들으면 이 소리가 기분 좋게 소름 돋는 느낌을 갖게한다. 2010년 무렵 미국 등지에서 시작했으며, 국내에서도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다.사람에 따라서는 긁는 소리, 구깃구깃하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등의 환경소음을 통해서 ASMR을 느끼기도 한다.ASMR을 느끼게 하기 위해 역할놀이를 하는 영상 및 오디오가 제작되기도 한다. 역할 놀이 상황으로는 미용실, 병원, 마사지, 귀청소 등이 있으며, 심상치료 요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한국에서 ASMR을 최초로 상업적으로 사용한 것은 가수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MOAI’이다. 물방울 소리, 영사기 소리 등과 함께 실제 이스터섬에서 녹음된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사용했다.최근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집안에서만 갇혀있다보니 편안한 소리로 심리적 안정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ASMR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바람이 느껴지는 자연의 소리나, 음식을 조리하는 소리, 장작 타는 소리, 심지어 공부하는 소리까지 나왔다.한국문화재재단이 명주 짜기 과정을 촬영한 영상은 베틀 소리, 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는 큰 호응을 얻어 조회 수 250만 회에 육박했다니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ASMR은 코로나 시대가 주목받게 만든 새 문화의 부산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18

자라 보고 놀란 가슴

포항시민에게 지진은 악몽이다. 2017년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5.4규모 지진은 포항시민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아직 남아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 포항시민 3명 중 2명이 “포항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했으니 포항지진이 안겨준 트라우마의 위력이 놀랍다 하겠다.2008년 5월 중국 쓰찬성의 규모 8.0 강진은 7만명의 사망자와 40만명의 부상자를 냈다. 450만동의 건물이 파괴되고 도로붕괴, 교통마비, 통신두절 등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돌변했다.지진이 일어난 후 “지진 전 두꺼비떼 대이동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쓰찬성 대지진의 전조가 미리 있었던 것 아니냐는 후일담도 나돌았지만 사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2011년 쓰찬성 청두에서는 실제로 두꺼비 대이동이 도심에서 발견돼 또한번 대지진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속설에는 지진 전조현상으로 개미, 두꺼비 등 동물의 이동이 일어나고 땅 울림이 있다든가 산사태나 단층에 있던 가스가 갑자기 새어나오면서 냄새가 나는 것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경주지진 이후 2016년 7월 부산과 울산시내 곳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스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와 지진 전조현상이라는 괴담이 돌았다.20세기 전 과학적 감지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이런 현상을 전조현상으로 보고 지진에 대비했다. 그러나 일부는 과학적 근거가 없어 지금은 괴담정도로 취급된다.지난 14일 강원도 고성군 해안에서 매오징어 떼죽음이 발견되면서 누리꾼 사이에 “지진징후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코로나 사태 등 지구상 이상징후가 곳곳에서 등장하자 요즘 우리 심정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처럼 돼 버린 것 같다. 씁쓸한 기분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17

‘사면’과 ‘박해’ 사이

안재휘 논설위원1866년(고종 3년) 천주교 탄압 교령(敎令)으로 인해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인 사제 12명 중 9명과 다수의 신자들이 체포된다. 사제들에게는 원한다면 본국 프랑스로 보내 주겠다고 제안하고, 신자들에겐 배교(背敎, 천주교 신앙을 버림)하면 석방해 주겠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사제들과 신자들은 이를 능멸로 받아들여 순교의 길을 택했다. 병인박해에서 십자가를 밟기만 하면 살 수 있는 길을 거부하고 잠두봉에서 순교한 교인들은 무려 8천 명을 헤아린다.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이 정가의 화두로 떠돈다. 애초에 ‘국민 통합’을 위한 사면론 애드벌룬을 띄웠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그러잖아도 겨누고 있던 친문 세력의 집중포화를 받아 치명적 내상만 입고 무춤한 상태다. 언급을 삼가던 대권 주자 지지여론 1위 이재명 경기지사도 ‘부적절’ 쪽에 무게를 실어 또 한 번 약은 처신을 드러냈다.사면은 선고의 효력 또는 공소권 상실, 형 집행을 면제시키는 국가원수의 고유 권한이다. 헌법 제79조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는 조문에 근거한다. 좁은 의미로는 선고 효과의 전부나 일부 또는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일을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대상자들의 복권까지 모두 포함한다.우리 정치사 고비 고비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은 다양한 형태로 행사돼왔다.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정적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쪽으로 단행되지만, ‘끼워 팔기’식으로 우군세력의 정계 복귀문을 열어주는 기능도 함께 해왔다. 대통령의 ‘사면’ 단행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현존하는 정치권 인사의 상당수는 정치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져 지금 볼 수 없었을 것이다.논란 중인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놓고, 집권당 민주당은 부정적인 지지층 여론을 핑계 댄다. 야릇한 일은, 가당치도 않은 사유들을 붙여서 ‘박근혜는 되고, 이명박은 안 된다’고 갈라치는 편견이다.항복문서 내지는 반성문을 내면 용서해주겠다는 식의 논법은 ‘사면권’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하긴 반성문을 쓰고 풀려난 뒤 시대가 바뀌어 대통령까지 오른 인사도 있으니 이런 논란들이 다 무소용하긴 하다. 정적에게는 ‘항복문서’를 전제로 베푸는 은전이 되고, 동지에게는 ‘훈장’이 되는 사면은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방종이다.지난 2019년 5월 21일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일찌감치 꺼냈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사족이 떠오른다. 문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성격을 아는데 민정수석 때 태도를 보면 아마 못 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인도주의적 결정 영역이라면 ‘형집행정지’나 ‘가석방’도 있다. 여론조사 수치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지지세력의 참섭(參涉)에 좌우되는 사면은 이미 사면이 아니다. ‘십자가를 밟으면 살려 주겠다’는 식의 천박한 권력 갑질은 오로지 인격 말살을 강제하는 가혹한 ‘박해’로 기록될 따름일 것이다.

2021-01-17

포항 신성장 바이오산업 혁신 플랫폼

김도영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련리와 이인리 일원에 148만m2(약 45만평) 규모의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가 조성되고 있다.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조성되고 있는 산업지구는 첨단 융복합산업의 거점기지로 육성하기 위해 포항의 3대 바이오 혁신성장 플랫폼인 포항지식산업센터, 세포막단백질연구소,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가 구축되고 있으며 올해 안에 완공될 예정이다.포항지식산업센터는 총사업비 240억원이 투입되어 4차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인공지능, 바이오, ICT/SW, 그린에너지 분야의 유망기업 등을 지역에 유치하고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구축되는 임대형 시설로 기업 입주시설, 홍보전시실, 대회의실 등을 비롯하여 각종 편의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입주 대상기업은 4차산업 관련 기업과 강소특구 연구소기업, 지역전략산업 관련 기업 등이다. 1월 말에 입주공고를 거쳐 총 53개 기업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세포막단백질연구소는 총사업비 458억원이 투입되어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로 구축되고 있으며 향후 가속기 기반 신약개발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거점시설로 활용될 계획이다. 모든 생물체의 구조적, 기능적 기본 단위인 세포는 세포막으로 둘러싸인 세포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백질 및 핵산과 같은 많은 생체분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세포막에는 세포 내외로의 물질수송이나 외부 환경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신호전달 수용체 등의 단백질이 존재하고 있으며 세포막 단백질의 기능이상은 곧바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 상용화되고 있거나 개발되고 있는 화합물 신약의 50~60%는 세포막 단백질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에 구축되는 세포막단백질연구소는 극저온전자현미경을 활용해 세포막 단백질의 고해상도 3차원 구조를 밝히고 이를 기반으로 암과 감염성, 대사성, 뇌, 심혈관, 희소 질환 등 6대 중증 질환에 대한 항체의약품과 신약 후보물질을 찾기 위한 거점시설로 독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구축되고 있다. 포항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더불어 향후 1천5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신약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는 바이오 신약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될 예정이다.그린백신 실증지원센터는 국내 최초로 구축되는 그린백신 생산지원시설로 총사업비 165억원이 투입되어 본관 1개동(지상 3층)과 별관 1개동(지상 1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린백신은 담배와 같은 식물을 생산플랫폼으로 활용하여 생산하는 백신으로 기존의 유정란이나 동물세포를 활용하여 생산하는 방식에 비해 신속하고 안전한 백신생산이 가능해 미래 안전사회를 주도할 유망 과학기술로 인정받고 있다.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등의 원인으로 인해 돼지열병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독감, 구제역 등과 같은 동물 감염병뿐만 아니라 사스,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 등의 인체 감염병 발생빈도가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특히 식물을 생산플랫폼으로 활용하면 4~6주 이내에 백신을 생산할 수 있어 빠르게 퍼지는 감염성 질병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독감이나 코로나19 대응 그린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현재 코로나19 그린백신 개발에 있어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은 캐나다의 메디카고(Medicago)와 미국의 캔터키바이오프로세싱(KBP)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두 기업 모두 글로벌 담배회사에서 그린백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KBP사는 세계적인 담배 브랜드인 BAT의 지원을 받아 코로나19 그린백신을 개발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 FDA로부터 임상시험 허가를 받아 임상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캐나다의 메디카고사는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의 지원으로 담배에서 생산한 코로나19 그린백신의 임상 1상을 완료하였으며, 현재 임상2/3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흡연용으로 사용되는 담배는 니코티아나 타바쿰(Nicotiana Tabacum)종이며, 그린백신 생산에는 연구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Nicotiana Benthamiana)종이지만 담배를 활용하여 백신을 생산하는 신산업을 육성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담배기업이 그린백신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그리고 2019년에 세계 최초로 담배를 활용한 돼지열병 마커백신을 개발한 국내 중소벤처기업에서도 코로나19 그린백신에 대한 전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 국내 원천기술로 개발된 그린백신이 전 세계로 수출될 수 있을 것이다.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는 2019년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어 첨단기술기업과 연구소기업이 각종 사업비 지원과 세금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포항 3대 바이오 혁신성장 플랫폼을 기점으로 인근에 한미사이언스, 바이오앱 등 유망 바이오기업이 3천672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였다. 향후 바이오, IT 및 첨단신소재 분야 국내외 유망기업이 집적화되고 첨단기술 기반의 제품개발을 통한 매출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포항이 바이오헬스산업 글로벌 거점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1-01-17

헴프는 무엇인가

손광영 안동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지난해 7월 6일 안동시가 대마특구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대한민국 ‘대마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즈음에 우리 안동시민들에게 ‘대마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시민들께 조금이나마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고 향후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우선 ‘대마(헴프)는 무엇인가?’란 주제로 이야기 해볼까 한다. 우리가 흔히 ‘대마’ 또는 ‘대마초’라 부르는 건 ‘칸나비스 사티바 엘’(학명:Cannabis Sativa L.)을 두고 하는 말이다. 칸나비스를 과학적으로 분류하자면 속씨식물문, 장미목, 삼과의 한해살이 식물에 속하며, 세 가지 종(사티바·인디카·루더랄리스)으로 나뉜다.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그 기원을 남아시아에서도 찾는다.그렇다면 ‘헴프’란 뭘까? 대마초나 마리화나를 말하는 걸까? 중독성 마약이 아닐까? 위험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점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마로 알고 있는 헴프(Hemp)는 칸나비스를 지칭하는데, 이는 환각성 약물로 활용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쓰이는 모든 ‘칸나비스’를 의미한다.환각제로 유통되는 칸나비스를 제외하고 대마줄기 껍질(섬유·삼베), 씨앗(헴프씨드) 또는 기름(헴프씨드오일) 그리고 대마속대(건축자재) 등의 칸나비스가 바로 ‘헴프’이다.특히 서양에서 ‘헴프’라고 하면 산업용 칸나비스를 두고 하는 말인데, 주로 섬유산업분야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뤄왔다. 의료용 칸나비스 또는 의료용 마리화나(MMJ, medical marijuana)는 의사가 환자를 위해 처방하는 칸나비노이드(칸나비스에서 발견되는 화합물)를 말한다.외국에서도 의약품으로 사용하기 위한 칸나비노이드 생산은 정부의 규제로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칸나비노이드를 사용한 질병치료의 안전성과 효능에 관한 임상연구도 제한적으로만 허용되어왔다.헴프산업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산업용 대마가 사용되는 섬유, 건축자재, 식품·화장품 등의 산업을 통칭한다. 헴프산업의 세계시장 규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다.헴프비즈니스저널에 따르면, 2019년 의료대마를 제외하고도 헴프의 유통량은 46억 달러에 달하며, 2025년에는 266억 달러(한화 약 29조)에 달할 전망이다. 매년 34% 이상의 성장률이 예상되는 대규모 시장인 것이다.헴프산업은 앞으로 △헴프 재배의 합법화 △헴프씨드넛트와 헴프씨드오일의 기능성 및 수요 증가 △다양한 식품응용 분야에서 사용량 증가 △만성질환의 증가 등의 요인으로 더욱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헴프산업의 시장성장 잠재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그 활용도가 높아 각광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에 묶여 수십 년째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헴프재배량이 해마다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미국은 건조중량 기준 0.3% 이하의 델타-9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을 함유하는 칸나비스 또는 칸나비스의 종자 및 모든 파생품, 추출물 등을 ‘헴프’로 정의한다.소위 마약으로 알고 있는 ‘마리화나’(marihuana)는 헴프를 제외한 칸나비스의 나머지 모든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하지만, 한국은 ‘헴프’와 ‘마리화나’에 대한 구분 없이 칸나비스와 그 수지를 원료로 제조한 모든 제품의 개발 및 유통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단,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된 안동시는 제외된다.‘UN마약위원회’(CND)는 대마초 및 그 파생물에 대한 일련의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들을 검토하면서, 1961년 이래로부터 강력하게 규제하던 물질 분류인 ‘지정IV’에서 칸나비스를 2020년 12월 2일에 제외하기로 결정한 바 있으며, 현재 5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약용 칸나비스 프로그램을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캐나다와 우루과이 그리고 미국 내 15개 주에서 기호용 마리화나의 사용이 합법화됐고, 에콰도르는 대마초의 생산, 판매, 사용에 관한 ‘우수 사례, 품질, 혁신 및 연구 개발을 보장하는 규제근거’를 갖추도록 촉구한 바 있다.미국 하원에서는 2020년 12월 4일 수십 년간 이어온 마약정책을 전환하여 마리화나를 비범죄화하고, 비폭력 마리화나 관련 유죄판결을 말소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캐나다에선 2018년부터 칸나비스를 전면적으로 합법화하여 가구당 4그루의 마리화나를 재배할 수 있고, 기호용 마리화나의 흡연과 섭취도 합법화하였다.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이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UN 마약위원회에서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를 받아들여 가장 강력한 위험약물에서 대마를 제외하였듯, 대마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미국의 헴프 농업법을 모범 삼아 마약류관리 법상의 대마(칸나비스)의 정의를 헴프와 마리화나로 구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한국 헴프농업과 그에 파생된 헴프산업을 육성하여 세계 헴프산업의 리더가 될 기회를 스스로 잡아야 할 것이다.

2021-01-17

좌우명을 써 본다

윤영대수필가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올 한해의 목표를 정하고 꼭 이루어 보자고 다짐한다. 또 그러한 일들을 성취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마음의 언약을 글로도 써본다. 자신의 가치관, 생활관 등을 마음에 새겨 반성의 재료로 삼는 금언, 격언, 경구 등을 좌우명(座右銘)이라 하는데, 나는 처음에 왼쪽이나 오른쪽에 적어둔다는 좌우명(左右銘)인 줄 알았었다.좌우명이란 뜻의 유래는 공자의 일화가 있다. 공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묘당에 갔을 때 삐딱하게 놓여있는 빈 술독을 보고 그 의미를 물었는데 “비어있을 때 쓰러져있다가 반쯤 차면 바로 일어서고 다 채우면 다시 쓰러진다”는 관리인의 설명을 듣고 ‘교만하게 굴지 말라’는 겸손의 가르침으로 새기며 자신도 그러한 항아리를 만들어 옆에 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후한의 학자 최원(崔瑗)이 스스로 지켜야 할 글귀를 써서 자신의 오른쪽에 두고 평생을 스스로 가다듬었다는 글 - ‘남의 단점 말하지 말고 자기 장점도 자랑하지 말라’는 좌우명은 문선(文選)이라는 책에 실려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우리도 이러한 좌우명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자기가 마음속에 담아왔던 생각을 새기면 좋지만, 평소 들어온 수많은 선인들의 말씀 중에서 하나 골라 액자나 족자를 만들어 벽에 걸거나 그냥 백지에 써서 붙여두고 매일 보며 다짐하는 것도 좋겠다. 자신의 의지와 염원을 담아 스스로 격려하고 반성하며 올바른 길을 찾을 때 삶의 의욕도 커지고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되리라.‘모든 것은 제자리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머리와 가슴에 넣어두고 되새기며 생활의 방향을 정하고 있다. 여기서 ‘제자리’라는 말은 그냥 ‘움직이지 말고 나아가지 말라’는 ‘부동’의 뜻이 아니다. 자신의 신분에 맞고 자기의 격에 맞는 ‘자기 자리’ 즉, ‘자기가 있는 곳,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곳’이란 뜻으로 때와 장소에 맞게 말과 행동을 삼가며 최선을 다해서 처신해야겠다는 마음 다짐을 말한다.물건도 또한 마찬가지다. 있어야 할 곳에 두고 써야 할 곳에 쓰자는 것이다.나이가 들고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쓰고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다음에 찾기가 힘들다. 우리의 뇌는 습관에 따라 몸을 움직이곤 한다. 그래서 쓰고 나면 원래의 있던 제자리에 두어서 찾기 쉽고 유용하게 쓰려고 한다.요즘 입사지원서를 낼 때 자기소개서에도 좌우명을 적으라는 곳이 많아서 젊은이들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나는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좌우명을 하나씩 갖도록 가르치며 ‘항상 최선을 다하라’라고 했지만 나 자신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회와 직장에선 교수로, 집에서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온 내 삶을 되돌아보면 나름대로 노력을 했으나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러한 좌우명으로 살아왔기에 큰 후회는 하지 않는다.새해를 맞아 글귀 하나를 지어 나의 책상 오른쪽 벽에 써 붙이고 가족들에게도 보낸다. ‘맑은 마음, 밝은 얼굴, 고운 말씨’.

2021-01-17

집콕 시대에 팔자 고치기(下)

김현욱 시인지난 글에 동양학자 조용헌 교수의 ‘팔자 고치는 법’을 소개했다. 적선(積善), 스승 만나기, 독서, 명상(기도), 명당, 자신의 사주팔자를 아는 여섯 가지 방법이 그것이다.첫 번째, 집콕 시대에 비대면으로 적선(積善)하기. 두 번째는 랜선을 통해 좋은 스승을 찾아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이번에는 집콕 시대에 팔자 고치는 방법으로 독서와 명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행히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책 판매량이 조금 늘었다고 한다.나도 2021년 1월을 두 권의 책으로 시작했다. 정재승 교수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과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으로 신축년 독서 마라톤의 출발선을 끊었다. 독서 마라톤이라고 했으니 함께 뛰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마음이 통하는 가까운 사람과 함께 읽는 게 좋다. 같은 책을 읽고 오붓하게 책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읽다가 마음에 드는 낱말이나 구절,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는 것이 전부다. 만나서 밑줄 친 부분을 읽으며 소감을 나누면 된다. 다음 주에 지음(知音)을 만나서 오붓하게 책담을 나누기로 했다. 책갈피처럼 설렌다.정재승 교수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에서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에 밑줄도 긋고 형광펜도 칠했다.“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읽고 흠뻑 취했다. 마종하 시인의 시집을 구하고자 했지만 모두 절판이었다. 중고서점을 뒤져 몇 권을 찾았다. 시집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조용헌 교수는 “독서는 역사적으로 뛰어난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고 했다. 운이 나쁠 때는 집에서 책이나(?) 읽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면서.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시대는 운이 나쁜 시대가 맞다. 운이 나쁠 때는 싸돌아다니면 손해다. 집에 편히 누워서 ‘역사적으로 뛰어난 인물들과 대화’를 나눠보자.정재승 교수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전작 ‘열 두 발자국’으로 나는 이미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동시에 마종하 시인을 소개해줘서 곧 만날 예정이다.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을 읽고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동급생’의 첫 문장이 압권이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이 첫 문장을 읽고 책의 마지막 문장까지 안 읽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의 결정적 스포일러가 되니 함구.명상은 짤막하게 한 마디만. “왜 명상을 하나요?” 오프라 윈프리가 답했다. “명상은 제 삶을 1000% 나아지게 하기 때문입니다.”집콕 시대에 팔자 고치는 방법 4가지를 소개했다. 지금 당장 전화기를 들거나 모니터 앞에 앉거나 책을 펼치거나 방석을 깔면 좋겠다.

2021-01-17

책갈피

읽은 책을 꺼내 넘기니 책이 저 혼자 알아서 한 쪽을 펼쳐 준다. 구멍 뚫린 영화 티켓이 사이에 껴 있다. 그 영화를 보았을 즈음에 읽은 책이라고 내게 귀띔하고 있다. 또 다른 책을 펼치면 언젠가 친구랑 먹었던 점심값 영수증이 들어있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명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던 신문의 칼럼이, 새로운 종이돈에 밀려 사라진 천 원짜리가, 도서관 옆자리에서 친구가 건네던 쪽지가 책 속에서 튀어나와 지나간 그날의 추억을 들려준다. 책갈피는 문득문득 지나간 일을 들려주는 일기장이다.오랜만에 간송 전형필 일대기를 꺼내니 하얀 입장권이 그 속에 잠자고 있다. 터키 여행 중에 데린구유 지하도시 입장권을 보고 순간 머리가 띵했다. 여느 입장권에 있는 사진 하나 없이 하얀 바탕에 지명 하나만 달랑 적어 놓은 터키 정부의 자신감을 보고 한동안 감탄했었다. 데린구유의 멋진 모습을 떠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자부심이 그 하얀 백지 입장권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티켓은 가방 속 어딘가에 구겨 넣었지만 그 표만은 버리지 않고 여행길에 읽던 책 사이에 끼워 내가 읽은 만큼을 표시했었다.나는 책갈피를 사거나 선물 받고도 사용하지 않는다. 성격이 꼼꼼하지 못해 어디에 놔두었는지 정작 필요할 때는 내 손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영수증이나 메모지가 책갈피를 대신한다. 책을 다 읽고는 받을 때 아무 생각 없었던 것처럼 무심히 넣어둔 채 덮어 버린다. 오랜만에 책갈피를 보니 그 날, 그 여행길, 그 영화, 그 기찻길이 펼쳐진다. 지난 일기장을 넘겨보는 것 같다.지난 가을, 친구들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가방에서 어젯밤 읽은 수필집을 꺼냈다. 동행한 친구들에게 밑줄 친 문장을 읽어주며 내가 느낀 기쁨을 전하려고 했다. 책장을 넘기자 책갈피가 끼인 곳이 펼쳐졌다. 순간,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의 손이 책갈피로 향했다. “이거 내꺼지 싶은데?” 하며 손때 묻은 꽃무늬 책갈피를 앞뒤로 넘기며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책갈피를 얼른 빼앗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머지 친구는 박장대소를 했다.김순희수필가도서관에서 한옥에 관한 책을 빌렸었다. 책을 펼치자 그 사이에서 문제의 책갈피가 들어 있었다. 예쁜 꽃그림이 있고, 뒷면에 숫자가 있는 걸 보니 누군가 달력의 그림을 오려서 만든 수제 책갈피였다. 귀퉁이가 낡은 것을 보니 오래 간직한 듯 했다. 이런 센스 있는 사람이 누굴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것이라 책만 반납하고 책갈피는 내가 가졌다. 그런데 여기서 그 주인을 만나다니, 친구는 꽃그림이 있는 달력을 보면 자주 오려서 책갈피를 만들어 둔다고 했다. 그 후 나는 전시장에 갈 때면 팸플릿을 꼭 챙긴다. 화사한 그림이 나오도록 오려서 독서회 회원들에겐 책갈피로, 지인들에게는 선물상자 속에 메모장으로 썼다.연말에 달력을 주는 이가 있으면 명화나 꽃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것이면 넉넉히 챙긴다. 2020년 달력 중에는 친정집 달력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물방울을 그리는 화가 김창렬 화백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딸이 좋다고 너스레를 떠니 금방 벗겨서 가져가라고 하셨다. 달력에 숫자를 보는 게 목적이 아니니 1년 동안 걸어두고 보다가 해가 지나면 달라고 했더니, 잊지 않으시고 챙겨 보내셨다. 몇 장은 작은 액자에 넣어 친구에게, 몇 장은 책갈피를 만들어 새해 만나는 이들에게 나눠주려고 한다. 며칠 전 김창렬 화가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책갈피를 만든다. 가위를 들고 하나씩 오릴 때마다 받을 사람 이름을 떠올리며 혼자 행복해 한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내가 더 기쁜 작업이다.수필집에 있던 낡은 꽃그림 그것은 내가 지켜냈다. 지금도 그 책갈피는 내 일기장 한 쪽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내가 만든 꽃갈피 하나씩 챙겨 넣으려 한다. 누군가에게로 가서 그 사람을 미소 짓게 할 수만 있다면 그때 내가 훔친 책갈피 값을 치르는 일일 터이니.

2021-01-17

철강 산업도시 포항, 친환경 녹색생태도시로 탈바꿈

이강덕 포항시장포항시는 최근 행복한 삶을 위해 건강을 챙기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누리려는 웰빙(well-being)과 힐링의 바람 속에서, ‘그린웨이(Green Way) 프로젝트’를 통해 도심 곳곳을 초록의 숲이 어우러지는 친환경 녹색도시로 변모시키고 있다. 그동안 철강 산업도시로만 알려졌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정성껏 심은 나무 하나하나가 모여 숲이 되고, 그 숲에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생기고 산새들과 야생동물의 보금자리가 되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포항시는 올해 철길숲을 효자에서 유강에 이르는 2.7㎞ 구간을 연장해 형산강의 상생인도교와 연결한다. 이어 시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포스코대로를 비롯한 이동 도로를 녹색 숲길로 확장해 사람 중심의 그린웨이 생명력을 이어갈 계획이다.또한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으로 ‘환경’ 관련문제 극복하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생태도시 조성을 최종 목표로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왔고, 지난해부터 하나둘씩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눈에 띄는 부분은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의 성과다. 지난 2019년 22마이크로그램(㎍)/㎥이었던 미세먼지가 지난해 16마이크로그램(㎍)/㎥으로 감소했다. 사업장의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제를 확대 시행을 비롯해 실시간 악취 모니터링을 통한 상시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악취 유발 사업장의 시설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또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에 대한 운행제한, 노후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사업과 전기자동차 보급을 지속 추진하는 한편 철강산업단지 주변에 스마트 녹색생태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입주기업에 대한 악취방지시설을 지원하고, 포스코의 사일로(Silo)와 탈질설비(SCR) 준공을 통해 오염 배출물질을 80% 이상 줄여 나간다. 이 밖에도 구무천을 비롯한 생태하천 복원사업과 철강산업단지 완충저류시설 설치, 형산강 생태복원사업 등 수생태계의 건강성 회복과 안전한 친수 공간 확보에도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겠다.맑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지방상수도 현대화, 스마트 관망관리 시스템 구축 등 ICT 기반의 상·하수도 관리로 24시간 안심할 수 있는 스마트 물관리 인프라를 조성하고, 지속적인 수돗물 모니터링과 검사결과를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방침이다. 또한 산업폐기물 매립장 증설문제와 장기 수성사격장 문제 등 최근 이슈화가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해서는 지역주민들은 물론 시민들과의 충분한 공감대 형성을 통해서 문제해결 노력을 기울이겠다.특히 복개로 인해 심각한 오염단계에 있는 양학천, 칠성천, 학산천, 두호천 등 4개 하천을 각각의 테마를 가진 하천으로 체계적으로 복원해,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시민들에게 쾌적한 환경과 휴식공간을 제공할 복안이다. 생태하천 복원사업은 수생태계의 회복과 자연친화형 도시 공간 창출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드높이고, 쇠퇴한 구도심의 도시재생을 활성화해 나가겠다는 공약사업 가운데 하나이다. 시범사업인 학산천의 추진과 모니터링을 통해 양학천과 칠성천, 두호천 등 나머지 하천에 대한 복원사업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관련해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치수적으로 안정성이 있는 하천 복원 △깨끗하고 풍부한 물이 흐르는 하천 복원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명력 있는 풍부한 하천 복원 △시민들의 소통과 화합, 가족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하천 복원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하천 복원 등 구체적이고 장기적으로 실천 가능한 5대 정비목표를 설정하고 시민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겠다.이밖에도 지난해 전국 최초로 착공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주거와 복지, 통합과 소통, 도시 공동화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공동체 가치를 만들어 나간다는 청사진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중앙동 일원은 내년까지 청소년 문화의 집과 청년창업 플랫폼을 구축해 스마트 콤팩트 도시의 모델로 조성하고, 송도동 일원의 경우는 2024년까지 첨단해양산업 R&D센터를 건립해 경제자립과 도시의 활력을 증진하는 등 ICT기반의 해양산업 플랫폼을 조성하겠다.

2021-01-17

유튜브 ‘쓸데없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점입가경이다. 공중파, 채널티비만 해도 그렇지 않은데, 유튜브를 보면 하루하루가 긴박하기만 하다. 오늘은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 일원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고 하는데, 이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하기만 하다.벌써 며칠째 유튜브를 통해서 미국 대선 현황을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유튜브가 아니고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주는 데가 없어서일 것이다. 이 중에는 오보도 많고 가짜도 많지만 있었던 일을 해석하고 며칠 뒤 일을 예측하기도 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그런데도, 내가 유튜브 쓸 데 없다고 과장 섞인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요즘 들어 유튜브가 전례없이 뜨겁다 못해 거칠고 험악해졌기 때문이다.특히 미국 대선 문제, 국내 정치 문제를 둘러싼 유튜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프로를 올리는데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쓰는 말이며 표정이며 몸짓이 무서울 정도로 변했다.정작 더 큰 문제는 마냥 자유로울 것처럼만 여겼던 유튜브가 사실은 이면적인 정치공학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튜브만의 문제가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CNN 같은 거대 여론 주도 매체들의 공통된 문제다.며칠 전 놀랍게도 트위터에서는 ‘트통’의 계정을 영구삭제하고 그 편 드는 사람들 계정도 많이도 없앴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팔러’라는 새로운 인터넷 매체로 옮아갔고 그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옮겨가 버렸다고도 한다.이것은 독일 수상도 우려를 표명했다던데, 사실상 검열이고 언론 자유의 억압인 것이다.세상을 살아갈수록, 뭔가 세상의 안쪽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게 되면 될수록 사람살이는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편에 서는 것도 어렵고,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사는 것도 어렵다.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디지털 세상이 더 민주적이고 더 자유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던 낙관은 이제 디지털 전체주의, 디지털 통제 사회에의 공포로 변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쓸데없다’는 과장법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지?그래도 내일 나는 또 유튜브를 보게 될 것 같다. 미국 대선도 어느 쪽이 최후 승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나마 시시각각 뭔가라도 던져주는 곳은 유튜브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 속된 말로 영혼이 털려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해야겠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