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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르크시즘 민주주의론 생각

지지지난 정부 시대에 모두들 드디어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들 했다. 어느 시대였던가는 숫자를 따져봐 주기 바란다. 그러나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들 민주주의다, 독재다 말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는 얼마나, 어떻게, 어느 정도나 훌륭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대학 고학년 시절에 마르크시즘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변증법’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부르주아를 위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다. 또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에 대한 독재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요, 독재는 독재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독재를 거느리고 있다.흔히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르주아에 대해 행사하는 독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논리는 그럴듯해 보였다, 젊은 날의 내게는 말이다. 뭐든 A는 A일뿐이고 B는 B일뿐이라는 논리는 단순투명하지만 그 대상의 복잡한 양상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바로 이 복잡함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한 승려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했던 것을 기억해 두기는 하자.민주주의는 언제나 독재일 수 있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다 마코토는 국내에 번역되기도 한 작은 책자에서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관해, 그것은 아테네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불과한 자유민들을 위한 민주주의였다고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는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도시국가여서 전쟁을 그렇게 다반사로 치를 수가 없었다고도 한다.1980년대가 가고 김영삼 정부 시대도 가고 김대중 정부 시대가 열리자 ‘드디어’ 직선제 개헌의 참된 효과로서 정권 교체가 현실화 되었다. 그 무렵 마르크시스트들은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확대, 비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고, 덕분에 ‘절차 민주주의’라는 말이 성행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니 민주주의니 하는 원리론과 구별해서 선거 절차의 개혁이나 혁명을 설명할 필요가 생겨났던 것이다.그렇다면 이 절차 민주주의를 통해 나타난 권력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담지자라고 확신할 수 있나? 옛날에 히틀러의 나치즘은 절차 민주주의로 탄생한 야만적 권력이었다고들 한다. 한 마디로 말해 표 많이 얻었다고 다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것인데, 요즘 이 나라도 이 민주주의다, 독재다하는 말로 꽤나 왁자지껄할 태세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06

포항우체국, 추억을 갈무리하다

정미영수필가포항우체국 풍경이 역동적이다. 우편번호를 찾는 눈길과 주소를 쓰는 손길이 분주하다. 오고가는 발길이 끊어지지 않자 우편물은 자루 가득 담긴다. 분분한 사연들이 제비 떼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문득, 며칠 전 읽었던 신문 기사가 떠오른다. 포항우체국은 1905년 6월 9일 연일임시우편소로 개소한 이래 올해 115년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포항우체국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오랜 세월동안 소식을 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든든하게 수행하고 있다.사람들의 모습을 눈여겨본다. 상기된 얼굴로 편지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서 달콤 쌉싸래한 표정이 느껴진다. 떨어져 지내는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지금 이 시간, 그들 누구도 타인처럼 낯설지 않다.학창 시절, 집집마다 전화기가 놓여 사람들이 드문드문 편지를 쓸 때에도, 나는 편지 쓰는 일에 열심이었다. 친구가 바닷가 고향 마을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편지는 전화가 없는 친구와 나를 이어주는 소통의 끈이었다.친구는 도시로 이사를 왔다. 배를 탔던 아버지가 풍랑에 휩싸여 돌아가셨기에 어머니가 포구에서 힘들게 일했다. 하지만 접힌 삶은 곧게 펴지지 않았다. 도시 공장에 나가면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먼 친척의 말을 믿고 옮겨왔다.전학 온 친구는 반 아이들과 서먹서먹했다. 나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두 살 많고 늘 무표정이었기 때문에,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새 학기가 되어 내가 부반장이 된 직후였다. 부반장에게 솔선수범을 기대했던 선생님은 친구와 짝이 되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데면데면한 내 행동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았다.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였다.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 가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레 물었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친구의 단칸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한쪽 구석에 놓인 앉은뱅이책상 위의 불가사리들을 보았다. 친구는 여러 조각으로 잘라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불가사리가 마음에 들어 모았다고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는 불가사리를 닮은 것 같다. 불가사리는 단단한 석회질 속에 싸여 있지만 몸이 수분으로 되어 있다. 친구는 겉으로 강한 척했지만, 속으로 눈물을 가득 담고 있었는지 모른다. 빽빽한 가시를 지닌 불가사리처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표정이라는 딱딱한 가시를 달고 살았던 것이리라.친구의 어머니는 건강이 나빠졌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던 어머니는 고향이 그리웠을 수도 있다. 결국 모녀는 바닷가 마을로 돌아갔다. 이제 겨우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는데…. 나는 그 후로 바닷가 소식 들려올 때면 친구를 생각하며 편지를 썼다.우정(郵政)은 우정(友情)을 이어주는 끈끈한 조력자였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에도 편지지 가득 낱말을 쏟아 부었다. 메마른 현실에 물꼬가 트이지 않을 때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 속이 후련했다. 삶의 목표가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내뱉고 나면, 옅어지는 의지가 다시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친구 또한 사연을 옹골지게 적어 나에게 보냈다.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 우체국에 나와 편지를 부치면, 젊은 가장으로서 짊어졌던 생활의 무게가 조금은 줄어든다고 했다.열려진 창문으로 노을빛이 찾아든다.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졌는데도 여전히 우체국 안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어쩌면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부치면서, 발신자와 수신자가 동일인이 아닌 사실에 감사할 수도 있다. 안부를 건네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인가.포항우체국에서 모처럼 추억을 갈무리한다. 흘러간 세월에 아랑곳없이 편지 행간에 스며있던 의미를 떠올리니 가슴 한 자락이 따스하다. 기억을 넘나드는 진실한 편지 하나 품고 있으니 살아가는 힘이 된다.나는 지금, 포항우체국 창가에 서서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띄운다.

2020-08-05

꽃 진 자리

능소화가 집니다. 무너진 꽃잎들, 담장 아래로 붉은 꽃그림자를 이룹니다. 오점의 예견도 없이 추락의 예감도 없이, 찢어지고 오므라들다 마침내 누렇게 타들어갑니다. 담담한 생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길을 내는 저 화흔(花痕)들. 제아무리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도 지고 나면 찐득한 상처를 남깁니다.그 상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에 기댈 때가 많습니다. 꽃나무로 마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운명이 된 우연은 상처인 줄도 모르고 꽃을 피웁니다. 그러다 돌풍 실은 바닷바람 한 점에, 여름을 재촉하는 다급한 장맛비 한 방울에 꽃잎을 떨굽니다. 일견 화려한 꽃이 안타까운 꽃 무덤으로 보이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너무 당연한 자연현상일 뿐입니다.진물로 끈적이는 그 자리는 끝이 아닙니다. 결코 흉물스럽지도 않습니다. 생의 이면을 날 것으로 보여주는 고해성소입니다. 살다보면 사물이나 사람을 그릇 이해할 때가 있습니다. 넘치는 욕심에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고, 어림없는 오해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작은 우연에서 시작될 때가 많습니다. 꽃 진 자리는 이러한 우연이 마련한 통곡의 바다이자 상처의 실존입니다.하지만 그 상처는 힘이 됩니다. 그것으로 새로운 꽃망울을 말아 올릴 수 있으니까요. 결곡하게 피운 꽃은 또다시 향을 내뿜고 열매로 보답합니다.칠월의 꽃 능소화, 그 꽃 진 자리는 서러움도 추함도 아닙니다.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의 시작점입니다. 곡진 생의 사이클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증거물입니다. 그 상처가 풍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안에서 몇 번의 개화와 몇 번의 낙화가 필연처럼 이어집니다. 싹틈 또는 꽃피움으로 이어지는 환희의 이미지, 그것이 자연의 전부는 아닙니다. 필연으로 이어지는 떨굼 또는 추락의 순환까지 거쳐야 완전체의 자연이 되는 것이지요.생각하면 모든 결실은 추락이 그 시작이었지요. 떨어져보지 않는 시간은 가짜입니다. 더럽혀지지 않은 추억은 엉터리이지요. 뭉개져보지 않은 열매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생애, 깊어지거나 단단해졌다면 그 모든 것은 충분히 꽃 진 자리를 살폈다는 뜻이겠지요.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환희와 절정, 우연처럼 이어지는 청춘의 혼란과 불안. 짓무른 그 시간의 힘으로 다시 꽃망울을 맺고 피는 중년, 머잖아 운명처럼 맞이할 노년의 허무와 고독. 숨 쉬는 한 우리 삶은 비상과 추락의 변증법을 연주합니다. 저 먼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무대 위 그 사이클은 계속됩니다.누군가 묻습니다.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고는 어느 시절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혹시라도 이십대 시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완강히 젓겠습니다. 끝없이 흔들리고 하염없이 추락하던 한 시절이었으니까요. 결실 없던 열매, 비상 없던 날개의 나날만 지속되었지요. 새벽이 올 때까지 무너지던 버거운 한 시절은 그것으로 족합니다.김살로메소설가지금의 청춘들도 별달라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겠지요. 하지만 짓무른 꽃잎 같은 시간 없이 어떻게 단련할 수 있을까요. 하염없이 떨어져본 나날들은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단단하게 부릴 줄 압니다. 싹 틔우는 모든 힘은 한 시절의 상처가 원동력이 되니까요. 떨어진 꽃잎의 선명한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굳건한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이지요. 꽃의 진실은 피어서 화사하느냐, 떨어져 시드냐가 아니라 꽃 자체의 한 살이에 있습니다. 피는 꽃은 화사해서 아름답고 지는 꽃은 안타까워서 눈물겹습니다. 그러니 꽃 진 그 자리, 처절한 아름다움이라고 불러도 될까요.핀 꽃의 진실은 나뭇가지에 달리지만 진 꽃의 진실은 꽃 진 바위에 내려앉습니다. 꽃 진 자리를 톺아봅니다. 누군가 꽃 핀 자리에 눈을 높이 맞출 때, 누군가는 녹아내린 꽃무덤 속으로 마음을 보탭니다.그 속에서 생환의 뿌리를 다지고 활력의 가지를 뻗는 나무를 봅니다. 꽃 핀 나무가 단순히 밝은 눈을 선사할 때, 꽃 진 자리는 성찰이라는 깊은 우물을 보여줍니다. 생과 멸로 이어지는 이 우주적 질서는 아름다운 추락이자 처절한 비상으로 명명할 수 있겠습니다.꽃 진 그 시간을 최상의 것으로 추억하기 위해 저마다 길을 냅니다. 구구절절 말을 잇긴 했지만, 실상 떨어진 꽃잎은 해석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해되기 전에 전달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실존의 상처로 단련된 꽃무덤은 그 자체가 사유의 통로가 됩니다. 필연으로 떨어져 꽃길을 내고, 깊이 내려가 진물을 이루는 모든 것은 생의 이면입니다. 견고한 잉태와 단단한 도약을 위한 전초전입니다. 절절하게 떨어져 본 꽃잎일수록 절실하게 꽃피우는 자양분이 됩니다. 꽃 진 자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추락 없는 꽃잎이 어디 있으며 짓무름 없는 성장이 가당키나 할까요.

2020-08-05

누구는 무너진 지구가 자기 일이라는데

장규열한동대 교수비가 오래 내린다. 장마가 그 이름이지만 올해 쏟아지는 빗줄기는 한층 더 길게 느껴진다. 지역에 따라 물난리와 뙤약볕이 함께 펼쳐진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이 다시 보인다. 코로나19 직전엔 호주 대륙이 난공불락의 산불을 겪었다. 감염병의 힘든 언덕을 넘으며 병균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문명을 절감하였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초래했다고 했던가. 북극 얼음이 녹아내린다 하고 그 덕에 시베리아가 고온에 시달렸다고 했다. 온난화의 나비효과 끄트머리에 한국, 중국과 일본이 폭우로 몸살을 앓는다. 이상기후는 유럽에도 영향을 미쳐 영국과 스페인 폭염기록을 다시 썼다는 게 아닌가.지구 반대편도 한가할 겨를이 없다. 코로나19 위기 가운데 유난히 바쁜 기업이 있다. 스페이스엑스(SpaceX). 전기자동차 테슬라(Tesla)를 만들면서 우주개발에도 열을 올리는 일란머스크(Elon Musk)는 ‘화성에 가서 살’ 비전을 파는 중이다. 인간이 망쳐버린 지구는 인류를 수용할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를 화성에 정착시킨다는 꿈을 향해 나아간다. 사기업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유인우주선 드래곤(Dragon Capsule)을 성공적으로 쏘아올렸고 지구귀환에 성공하였다. 지난달 우리 군의 첫 통신위성 아나시스2호를 거뜬히 발사한 업체도 스페이스엑스였다. 한쪽에서 무너져 내리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개인 기업이 열심히 쌓아 올린다.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바꾸어 내겠다는 의지와 지키려는 고집스러움이 부대끼는 것인가. 코로나19와 긴 장마를 배경으로 부동산정책과 검찰개혁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모든 국민이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도록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부동산을 주거목적이 아닌 불로소득의 원천으로 이해하는 폐습부터 사라져야 한다. 검찰이 스스로 무너뜨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본연의 사명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가적 과제에도 개인이나 기업이 기여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부동산정책과 검찰개혁이 적절히 펼쳐지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부동산에 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일확천금의 꿈을 집과 땅에 걸던 생각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내 집’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주거의 안정과 생활의 공간이 적절하게 확보된다면 지나친 욕심을 품지 않고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도 변화해 간다. 검찰이 가진 구시대적 권위는 이제 조정되어야 한다. 수사와 기소에 관련된 전문적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유지하면서 비대하게 집중된 힘은 정당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부동산이든 검찰이든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로 이해하여야 한다.부동산쯤 되니까 내 문제로 보였을까. 일란머스크는 무너진 지구가 자기 문제라는데. 수다한 정책과제들이 사실은 모두 우리의 문제가 아닌가. 정치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정부 탓만 할 일은 더욱 아니다. 국민이 감시하고 기업이 소매를 걷어 함께 쌓아 올릴 때, 나라가 되고 국민이 산다.

2020-08-05

디지털치료제

디지털치료제는 약물은 아니지만 의약품과 같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SW)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애플리케이션(앱), 게임, 가상현실(VR) 등이 디지털 치료제로 활용된다. 디지털 치료제는 1세대 합성의약품, 2세대 바이오의약품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분류된다.세계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로 평가받는 제품은 미국의 페어테라퓨틱스사가 약물중독 치료를 위해 개발한‘리셋(reSET)’이다. 2017년 9월 미국 FDA로부터 환자 치료 용도로 첫 판매 허가를 받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약물 중독 환자들에게 인지행동치료(CBT)를 수행하도록 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최근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응용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인 웰트와 디지털치료제 ‘리셋(reSET)’국내도입 업무협약을 체결해 화제다. 해당 앱의 임상시험 결과 리셋을 사용한 환자군에서 금욕을 유지한 비율이 40.3%로, 사용하지 않은 환자(17.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정신건강 분야에서도 디지털 치료제가 개발됐다. 최근 아킬리 인터렉티브가 개발한 ‘엔데버Rx’는 FDA 허가를 받은 최초의 게임 기반 치료제다. 스마트폰 게임과 같은 형식으로 개발됐는데, 8~12세 ADHD 환자의 주의력을 개선하는 효과를 냈다. 초소형 센서를 넣은 조현병 알약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도 FDA 허가를 받았다. 조현병 환자가 알약을 몰래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데 착안, 알약 복용 시 센서가 위액을 만나 전기 신호를 만들고 이 신호가 환자가 착용한 전자기기로 의사에게 전송된다. 국내에서도 웰트, 뉴냅스, 하이 등이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나서 디지털치료제가 차세대 바이오산업을 주도하는 핫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05

사람이 ‘죄’입니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2020년 참 어렵다. 바이러스 폭탄에 이어 물 폭탄까지 자연은 매몰차게 사람을 몰아세우고 있다. 다음은 어떤 폭탄이 인간 사회를 덮칠지 예측하기조차 두렵다.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는 다음 폭탄은 세금 폭탄이다.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그 폭탄의 피해는 상상 초월이다. 그런데 더 큰 걱정은 각종 폭탄에 좌절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양치기 정부와 안하무인 국회는 과거를 잊고 한풀이하듯 자신들의 생각만을 일방적인 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지신들이 하는 일은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떠들어 댄다. 과연 그들이 그토록 말하는 국민은 누구일까? 국민이라는 단어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았다.국민은 힘들다고, 지금과 같은 힘듦은 여태껏 겪어보지도 못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괜찮다고만 한다. 물론 국민 중에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소통 없이 위압적 지시만 있는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불신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불신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교육과 정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곳은 소통과 신뢰가 제일 필요한 곳이다. 일부 사람들이 학생을 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교육이 희망이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학교 교육이 죽은 이 사회에는 메아리조차 울리지 않는다.지금처럼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 학교 교육은 어떤 모습인가?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학교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코로나19 예방과 관련한 교육 방침이다.“(자율활동) 단체 활동 및 행사를 가급적 지양하고 불가피한 경우 참여 인원 최소화 (동아리 활동) 밀폐된 공간 내 활동 자제 (봉사활동) 외부 기간 봉사활동 가급적 지양 (….)”위 내용을 요약하면 모이지 말라는 것이다. 과연 모이지 않고 교육이 가능할까? 온라인 학습 찬양자들은 4차 산업 시대에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자고 한다. 그 말을 비판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아날로그 적폐라고 몰아세운다. 그리고 EBS 강의를 털어주거나, 의미도 없는 과제를 낸 다음 벌점으로 엄포를 놓고 개인 일을 한다. 그리고 성과급을 생각한다.8월 초 많은 학교가 학기말 시험 중이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에도 대한민국 학생들은 시험을 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이 나라 교육은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시험이란 오로지 입시를 위한 성적 산출용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확인해 주고 있다.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유일하게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종이 인간이라고 한다. 의미 없는 시험지 또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전국의 학교를 놓고 보면 시험으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은 어마하다. 그런데 쓰레기는 치우면 되지만, 오로지 입시를 위한 의미 없는 시험으로 황폐해진 학생들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교육 또한 인간이 하는 일이라 인간적 실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교육은 실수를 넘어 재난의 일종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 폭우 사태 등과 함께 학교 교육 역시 분명한 인재(人災)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더 아파야 죄를 멈출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나라와 교육이다.

2020-08-05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얼마 전에 영화 ‘1987’을 다시 보았다. 1987년 6월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상황을 정면으로 다룬 장준환 감독의 ‘1987’은 전국관객 723만을 모았다. ‘1987’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다가 목숨을 잃은 서울대생 박종철을 전반부에서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정문에서 시위하던 청년학도 이한열의 투쟁과 죽음을 보여준다.불과 30년 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대학생 살해사건이 새삼 끔찍하게 다가왔다. 대공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관들이 종철이 머리를 욕조에 강제로 밀어 넣어 질식사시킨 희대의 고문 살인사건. 45도 이상 각도로 최루탄을 발사해야 함에도 수평으로 직격(直擊)하여 한열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전투경찰.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삼복염천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다.‘정의’라는 어휘가 반복되는 장면에서 사유가 흔들리곤 한다. 5공의 전두환 일파가 내세운 ‘정의사회구현’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명칭이 왜 자꾸 겹치는지! 분명히 그들은 한글을 공용어로 쓰는 한민족의 같은 일원이었으나, 그들의 정의는 너무도 달랐다.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다. 최고 권력자와 하수인들의 정의와 천주교 신부들의 정의가 왜 그토록 다른지, 영화는 묻는다.권부의 기득권 수호를 빨갱이 사냥으로 포장하면서 부하들을 다그치는 박처원 치안감의 종횡무진 활약상은 1980년대의 무차별적인 광기를 몸서리치게 재현한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 나라, 벌써 김일성이한테 멕혔어야!” 하고 강변하는 그의 서슬이 하늘을 찌른다. 당대 2인자로 불렸던 안기부장 장세동의 위세도 두려워하지 않는 박처원. 1950년 월남하여 대공업무의 전설이 되었지만, 그 역시 좌우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보이는 인간.그들에 맞서는 함세웅과 김승훈 신부, 김정남과 이부영의 정의는 민초(民草)들의 바람과 직결돼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전말(顚末)을 밝힘으로써 사회정의를 바로 잡겠다는 그들의 신념은 베드로의 반석처럼 단단하다. 영화가 흥미로운 까닭은 이들 양대 세력 사이에 자리한 이름 없는 소시민들의 행적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느 편에 서는가, 그것이 정의의 궁극적인 향배(向背)를 결정할 터였다.민주주의는 일상적인 국민투표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여론의 형태로 발현된다. 그래서 구시대의 반민주적인 정권과 앞잡이들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거나, 여론조작을 공공연히 자행했다. 매주 발표되는 대통령 지지율이나, 여야의 지지율도 여론의 동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2016년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는 의미심장하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인데,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요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명시적인 대결과 충돌이 화제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정의와 권력 그리고 민주와 독재의 고갱이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2020-08-05

천도론(遷都論)

국가의 수도를 옮기는 것을 천도(遷都)라고 한다. 요즘은 천도보다 수도이전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천도는 과거 국가에서 일어난 수도이전이라는 뉘앙스가 있어서다.역사적으로 보면 천도는 새롭게 나라를 세우거나 큰 사건이 있을 때 단행됐던 국가의 대역사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것이나 백제가 고구려의 침공으로 위례성에서 웅진으로 옮긴 것 등이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때 북한으로부터 서울을 함락당하자 부산으로 임시수도를 옮겼다.이처럼 수도이전은 전쟁이나 지진과 같은 큰 재난으로 수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혹은 국가의 더 큰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취하는 대형 조치다.최근 여당이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을 들고 나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처음 등장했으나 2004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정을 함으로써 사실상 폐기된 정책이다. 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다.그럼에도 국민적 관심과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수도 이전이라는 대형이슈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수도권 과밀화를 명분으로 내놓은 정책이라 야당도 무턱대고 반대하기 힘든 이슈이다. 이 문제의 결말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특히 수도권 과밀을 비판해 왔던 지방자치단체들도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집권 여당이 이 정책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문제다. 국가의 미래발전을 위해 수도권 과밀화를 풀겠다는 정책 의지를 국민에게 솔직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여 야당의 주장대로 국면전환용으로 끄집어냈다면 성공 확률은 고사하고 민심만 잃게 될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8-04

장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더 쏟아져라! 어서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새에 숨은 뿔갱이마자 다 씰어가그라! 나무틈새기에 엎딘 뿔갱이 숯뎅이같이 싹싹 끄실러라! 한 번 더, 한 번 더, 옳지! 하늘님 고오맙습니다!”윤흥길의 소설 ‘장마’에서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의 전사 통지를 받은 후 장마철 벼락이 치며 장대비가 퍼붓는 날씨에 외할머니의 저주에 찬 외침이다. 빨갱이가 되어 산으로 들어간 아들을 기다리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갈등은 퍼붓는 빗줄기보다 더 세차고, 몸을 휘감는 장마철 눅눅한 습기보다도 더 서로를 불쾌하게 만든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와 감나무 위에 올라앉은 구렁이 한 마리를 아들로 생각하는 친할머니를 대신하여 외할머니가 음식 소반을 차려내고 친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워 주자 감나무 가지를 친친 감았던 구렁이는 천천히 대밭으로 사라진다. 결국 두 할머니는 화해하고 친할머니의 임종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판교의 아파트 단지에 사람 키보다 길고 큰 뱀이 나타났다고 아내의 지인이 난데없는 뱀 사진을 보내왔다. 아니나 다를까 산골이 아닌 도시 곳곳에서 뱀 출몰이 부쩍 늘어났다는 뉴스 기사가 이어졌다. 장마가 길어지고 비도 많이 내리면서 뱀들이 사람의 생활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다. 오랜 비에 땅 밑에서 기어 나오는 작고 가느다란 지렁이조차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뱀이야말로 혐오를 넘어선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겠는가.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3년에도 6월(음력) 내내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한다. “임금이 장차 친히 광효전에 제사를 올리려 하였다가, 비가 몹시 내리므로 중지하였다.”라는 6월 1일자 기사를 시작으로 “큰비가 물을 퍼붓듯이 내려…. 풍양궁을 시위(侍衛)하는 군영(軍營)이 거의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7일), “큰 비가 와서 서울에 냇물이 넘쳐, 하류가 막혀서 인가 75호가 떠내려가고, 통곡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12일), “수재(水災)로 인하여 각 전(殿)의 차비(差備)와 선반(宣飯)을 감하여 줄이도록 하였다.”(25일)라는 기록이 이어지고 있다. 비 그치기를 기원하는 제사 기록도 여러 차례(16일, 24일, 28일) 보인다. 세종임금이 수재 대책을 명하고 급기야는 큰 비로 정사를 임시로 중단하고 수재를 걱정하였다는 내용(23일)까지 실록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올 장마는 8월 중순까지 이어져 역대 가장 길었던 2013년의 49일을 넘어서 최소 51일을 기록하고, 역대 가장 늦은 1987년의 8월 10일보다 더 늦게 끝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나왔다. 장마가 지속됨에 따라 뱀 출몰에 따르는 사람들의 놀람은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전국 각지에서 산사태와 농경지 침수 등으로 인한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가 염려되는 상황이다. 뻔한 말이지만, 정부도 민간도 이번 장마를 잘 대처하고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정말 지루한 장마였다.”‘장마’의 마지막 문장처럼, 장마가 그친 후 두 할머니 사이에는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떴으리라. 이번 장마 역시 아무리 길어도 결국에는 과거형이 될 것이다. 무지개 뜬 화창한 하늘, 쾌청한 마음을 기대한다.

2020-08-04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른바 ‘2030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시각과 촉수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본다. 고정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경제·정치·문화적 현상을 해석하고 있는 20~30대 4명이 ‘21세기 오늘의 문제’를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고전적 매체인 종이신문에 젊은 감각을 더해줄 이병철(시인), 문은강(소설가), 강백수(뮤지션), 윤여진(시인)이 이어갈 새로운 연재에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나 스스로에게 묻고, 만나는 이들에게 질문하고, 그러다보면 갑론을박 토론이 되는데, 나는 여전히 낙관주의자여서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내 주변엔 비관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더디기만 한 백신 개발 현황이라든가 바이러스의 변이 가능성 등 객관적 사실을 논거로 내 막연한 희망을 무참히 짓밟으면 “그럼 계속 이렇게 살자는 거야?” 역정을 내며 자리를 뜨곤 한다.주제 사라마구가 ‘눈먼 자들의 도시’와 ‘죽음의 중지’에서 그려낸 ‘기능 마비 사회’를 우리는 현실에서 체험하는 중이다.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전염병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우리 삶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소설 같다. 기업, 공장, 상점 등의 생산과 소비가 멈추면서 경제가 침체되었다. 국가 간 입출국이 막히면서 무역, 여행, 문화교류가 중단되었다. 국가고시들은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어렵게 개학한 학교들은 다시 문을 닫고 있다. 종교시설은 집단감염의 온상이 되었고, 공연 및 전시, 스포츠도 집단감염 우려로 취소되거나 관객 입장이 제한되었다. 마스크 착용이 필수 에티켓이 되자 이제는 마스크 쓴 사람들이 안 쓴 사람들을 혐오하고, 안 쓴 사람이 착용을 요청하는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배출할 창구들이 막히면서 분노와 우울 같은 감정들이 점점 압력을 견디지 못해, 여기저기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올 게 염려되는 요즘이다.보편적 삶의 양상들이 달라진 만큼 개인의 내밀한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국경 없는 세계’를 지향하며 한 해에 한 두 번씩은 꼭 외국엘 가곤 했는데, 마음껏 여행할 수 있던 시절이 몹시 그립다. 여행이 사라진 세상은 너무 뻔하고 지루하다. 이 권태를 견디기 위해 인디밴드의 공연장이나 클래식 연주회에 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을지로 만선호프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노래방에 가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던 날들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헬스클럽에서 마스크 쓴 채 운동하느라 숨이 턱턱 막힌다. 외출하는 길에 마스크를 두고 온 게 생각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아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까봐 노심초사한다. 지난해 한 매체에 경북 바닷길 기행문 연재한 것을 올해 책으로 낼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직격탄을 맞은 지역에 관한 여행서적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해 결국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가장 안타까운 것은 요양병원 면회가 금지되면서 할머니를 뵙지 못하는 슬픔이다. 고관절 골절 수술 후 침상에 누워만 계신지 4년째다. 앞을 못 보는 데다 흡인성 폐렴을 앓은 후엔 콧줄로 식사를 하기에 오직 청각이 세상을 감지할 유일한 감각이지만, 그마저도 가족들이 면회를 가 보청기를 끼워드려야만 가능하다. 며칠 전 괴로운 낮잠 끝에 “병철이!” 내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꿈에서 깼다. 할머니 귀에 대고 “할머니, 나 ㅂ, 벼, 병” 말하려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힘껏 쥐어짜 겨우 외쳤다. 그런 잠꼬대는 말이 아니라 울음에 가깝다.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신 이들 누구나 그런 속울음을 우는 중이다.요즘 몇 분의 공연기획자, 축제기획자, 무대감독, 연극연출가들과 함께 ‘평화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작은 움직임’이라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시각예술, 다원예술, 전시, 축제, 음악, 무용, 문학 등 각각 예술 분야에서 ‘평화’에 대해 고민해보는 협업이다. 평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특히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위협 받고 있는지, 평화를 회복하고 널리 함께 나눌 방법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연구하는 중이다. 홀로 머무는 공간에서 쓴 글을 온라인으로 전송하면 그만인 문학과 달리 공연과 전시, 특히 축제는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필수적이다. 관객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비무장지대에서 평화를 노래하는 음악 축제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김미소 총감독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 25개 음악 축제 중 17개가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 또는 아예 개최되지 않았다. ‘피스트레인’ 역시 취소되었다. 이틀간의 축제를 준비하는 데 1년 가까운 시간과 상당한 제반비용, 1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소요된다고 하니 스태프와 뮤지션들, 축제를 기다려 온 관객들의 상실감이 클 것이다. 물론 안 하는 게 맞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 이질적 타자인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자유, 평화, 인권, 소수자의 더 나은 삶, 정치적 올바름을 한 목소리로 외치고,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의 온도를 나누는 마당이 사라지는 것은, 이미 코로나에 잠식된 우리 일상은 물론 이따금 일상 밖에서 하루쯤 선물처럼 주어지던 평화마저 빼앗기는 일이다. 우리는 다시 모일 수 있을까?사실 나는 코로나 시대를 양가적 감정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이 글 내내 코로나를 원망하며 투정했지만, 나쁜 것만도 아니다. 대학 수업이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면서 강의실이라는 제한적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오프라인에서는 활용할 수 없던 영상, 소리, 이미지, 자막 등을 통해 보다 알찬 수업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강사 생활 5년 만에 강의평가 최고점을 받았다. 강의평가 결과를 확인한 순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228.56이라는 꿈의 점수를 받고 놀라던 김연아 풍으로 활짝 웃었다. 이런 얘기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 보편적이기도 하다. 오프라인 수업이라는 재현 불가능한 원본이 온라인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무한히 반복되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거나 다른 공부를 함께 하거나 기숙사를 나와 고향집에서 수업을 듣는 등 학생들에게 다양한 삶의 선택권이 생겼다. 100년 넘도록 현장성과 일회성을 무기 삼아온 대학의 강력한 권위가 도전 받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코로나가 가져 온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차단이다. 앞에서 한 말을 뒤집는 것은 아니다. 축제에 가는 것은 개인의 자발적 의지이지만 회식이나 회의에는 강제성이 있다. 어쩌면 사회적 격리야말로 코로나 시대의 축복인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회식과 모임이 사라지고 개인이 자기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안전거리’가 생겼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집단 안에 개인을 편입시키는 폭력적 스킨십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생각한다. 해병대 체험이나 단체 래프팅 따위 ‘애사심과 단결력 고취’를 위한 전체주의적 행사는 물론 ‘술잔 돌리기’ 같은 비위생적 회식문화는 진작 구시대 유물이 되었어야 했다.너무 많던 경조사들이 듬성듬성해진 것도 반가운 일이다. 황금 주말에 교통체증을 견디며 예식장에 가 축의금 내고 지루한 주례사가 언제 끝나나 하품이나 하다가 뷔페 음식 두어 접시 먹고 오는 결혼식만큼 한심한 의식이 또 있을까? 있다. 돌잔치가 그렇다. 결혼도 아이 돌도 가족들끼리 모여 기념하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꽉 조이는 색동옷 입고, 억지로 웃어 사진 찍고, 저급한 유머나 던지던 행사 MC로부터 판사봉 잡아라, 청진기 잡아라 강요받는 건 아동학대라고 생각한다. 결혼도 못하고 애인도 없는 나로서는 결혼식보다 짜증나는 게 돌잔치 청첩이다. 이참에 선언한다. 이제 안 간다!이병철 시인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간절히 돌아가고 싶다. 여행하고, 공연장에 가고, 전시를 관람하고, 축제에서 춤추던 때로 가고 싶다. 온라인 수업이 아무리 강의평가 점수를 잘 받아도 현장에서 학생들과 묻고 답하고 토론하고 싶다. 요양병원에 가 할머니 귀에 보청기를 끼우고 ‘도라지 타령’ 들려드리고 싶다. 노래방에 가고 찜질방에도 가고 싶다. 북콘서트와 낭독회에서 독자들과 만나고도 싶다. 그러면서 또 간절히 돌아가기 싫다. 회식과 회의와 온갖 쓸 데 없는 모임과 경조사와 오지랖과 훈수와 원치 않는 스킨십이 있던 시절로는 가고 싶지 않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거리두기’이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우리 삶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 건강한 간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 필요하다. 육체의 질병보다 마음의 감염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020-08-04

시호감(詩好感)

김현욱 시인목적과 목표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목적이 ‘방향’이라면 목표는 ‘방법’이다. 목적이 ‘왜?’, ‘어디로?’라면 목표는 ‘무엇을’, ‘어떻게’이다.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목적은 책을 즐겨 읽는 평생 독자를 기르기 위함이다. 평생 독자 양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학부모나 교사는 책 읽어주기, 도서관 방문하기, 독서 행사 참여하기 등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실천한다. 목적은 가치 지향적이지만, 목표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이어야 한다.경상북도교육청에서 추진 중인 시울림학교의 목적은 무엇일까? 2020 경북 주요업무계획(1-3-1 바른 성품을 기르는 인성교육)에는 시울림학교의 목적을 따뜻한 인성과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명시되어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시를 즐길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시낭송과 시 포트폴리오 제작, 시 콘서트 개최 등의 구체적인 실행 목표를 세웠다.나는 시울림학교의 참된 목적은 ‘시호감(詩好感)’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시에 호감을 갖는 것, 시를 좋아 하는 것,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게임과 동영상의 시대에도, 올곧게 시를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하여, “선생님 덕분에 시를 좋아하게 됐어요.”, “시울림학교 덕분에 시에 관심이 생겼어요.”, “좋아하는 시인이 생겼어요.”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시울림학교의 목적을 아주 훌륭하게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내가 아는 동료교사의 자녀는 탁구 신동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10살인데 웬만한 어른도 상대한다. 탁구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엄마가 탁구를 좋아해서이다. 엄마 따라 탁구장에 들락날락하다가 라켓을 잡게 됐고, 탁구에 호감이 생겼다고 한다. 탁구를 쳐보니 재미가 있어, 탁구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했고, 어느 순간, 탁구를 통해 결정적 경험을 하게 됐다. 결정적 경험이란 몰입과 성취의 카타르시스를 뜻한다. 그 후 아이는 탁구장에 살다시피 하며 엄청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어떤 대상에 호감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자주 접하는 게 중요하다. 시울림학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들과 시를 자주 만나게 하는 것이다. 매일 또는 매주 1교시 여는 수업을 교사의 시 낭송과 아이들의 시합창으로 시작하면 참 좋다. 학교 방송에서도 자주 시를 들려주고, 교장선생님의 훈화도 시 낭송으로 대체하면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선생님은 시를 좋아해!”라는 느낌을 아이들에게 주는 일이다. “우리 선생님은 시 낭송 할 때 참 행복해 보여!”같은 교사의 태도는 아이들에게 큰 감화를 준다.안타깝지만, 현장에 시를 좋아하고 애호하는 선생님은 그리 많지 않다. 불행하게도 시를 토막 내 배운 탓이다. 교과서나 문제집에 나오는 시 말고는 다른 좋은 시를 만나본 적이 없는 탓이다. 시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 낭송이다. 낭독이 의미전달이 중심이라면 낭송은 감정 전달이 중요하다. 낭독이 이성적이라면 낭송은 주관적이다. 낭독을 반복하면 낭송이 된다. 낭송은 시의 재해석이고 나만의 리메이크이다. 낭송과 암송을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낭송이 깊어지면 저절로 시의 맨살에 가닿게 될 테니까.

2020-08-04

트럼프의 독선적 정치 행각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긴 것은 이변이었다. 그는 ‘힘 있는 미국’,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대통령 트럼프는 그간 내치와 외교에서 상식에 어긋난 정책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의 정치는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정치라고 비난받고 있다. 물론 백인 중산층들은 그의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인구 3억3천만의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400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15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의 최고 선진국을 자랑하던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방역의 선봉에 서야 할 대통령 트럼프는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 예방의 기본 수칙임에도 이를 무시하다가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지난주부터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트럼프의 지나친 자만심과 오기가 코로나 미국의 확산을 막지 못한 것이다. 미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과 코로나 확산이 그의 11월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은 명약관화한데도 그의 수상한 정책은 계속된다.트럼프는 선거를 넉 달 앞둔 시점에서 느닷없이 대선 연기를 주장하였다. 그는 코로나 위기로 치러질 불가피한 우편 투표를 인정할 수 없어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 하원의 결의가 있어야 하며 민주당 의원이 많은 하원에서 이를 통과시키기 사실상 어렵다. 그는 우편투표의 대선 결과는 승복하지 않겠다는 주장도 하였다. 현직 대통령의 괴이한 발상이다. 그가 진정으로 선거 연기를 주장한 것인지 자기 지지층 결집 수단인지는 알 수는 없다. 여론이 좋지 않자 그는 선거 연기주장이 아니라고 입장을 번복하였다. 트럼프의 ‘아니면 말고 식’ 이런 돌출 행동은 그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트럼프는 지난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6배 인상을 요구하였다. 장사꾼들의 거래와 흥정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의 방위비는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한미 동맹보다는 실무진에게 인상된 협상안의 타결을 강요하고 있다. 부동산 재벌, 장사꾼 트럼프다운 협상 전술일지 모르지만 우리 측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사안이다. 트럼프는 이를 수용치 않으면 미국의 전략 무기 판매와 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마키아벨리식 정치 행각은 미국에서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이밖에도 트럼프는 취임 초부터 외교 관례를 벗어난 외교 행각을 벌였다. 이란과의 핵 협정 파기, 하노이의 북미 회담의 중단 선언, 중국 주도의 WHO 탈퇴, 휴스턴 중국 영사관 폐쇄 등 상식에 어긋난 독선적 외교정책을 펼쳤다. 비정치인 출신 트럼프는 목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책을 계속 펴고 있다. 그의 위선과 조작의 정치 선전술은 그의 정치 이미지만 추락시킨다. 그는 상대인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 10% 이상 밀리고 있다. 트럼프는 11월 대선 승리를 위해 또 다른 정책을 발표할 것이다. 선거 결과가 매우 궁금한 아침이다.

2020-08-04

울릉도∼포항 간 공모 여객선 공영제로 하자

김두한경북부울릉군과 경상북도는 포항-울릉 간 여객선 노선에 공모를 통해 지난해 (주)대저건설을 선정했다.하지만 1년이 다 돼가도록 사업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모 여객선이 여객전용선이라 택배, 우편물 등을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울릉군비상대책위원회와 남진복 도의원에 따르면 공모선의 경우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원하는 여객선을 건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여객선사 원하는 선박을 건조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울릉도 주민들이 원하는 여객선을 건조해야 한다는 것.이에 공모를 취소하고 재공모의 법적 문제를 등을 고려해 아예 울릉군이 건조, 운영하는 공영제 방법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남 신안군은 최근 하이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항로에 신안군이 운영하는 공영제로 운항에 들어갔다. 신안군은 증도-자은도, 송도-병풍 간 3개 항로에 여객선 공영제로 운항하고 있다. 서·남해는 여객선 공영제 운항이 늘어나고 나머지도 대부분 수협이나 농협 등 공공기관이 운영하고 있다.비대위의 말대로 대형여객선 유치 공모 조건이 맞는다면 울릉군이 운영하는 게 맞다. 여객선의 감가상각비까지 지원하고 선박건조비 이자까지 지원하면 여객선을 세금으로 건조해주는 것과 같다. 더군다나 10% 수익까지 보장해 준다면 당연히 울릉군이 운영해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이 원하는 여객선 건조는 물론 여객선에 지원하는 세금 일부를 울릉군이 회수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와 포항 터미널에 근무할 인력 역시 모두 울릉도 주민들을 채용할 수 있다. 여객선의 선장, 기관장, 선원도 울릉주민들로 채울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주민의 윤택한 생활을 지원하고 주민복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공모선 유치가 늦어질수록 울릉도 주민들이 고통과, 불편, 피해만 늘어난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울릉군과 울릉군의회, 남진복 도의원이 머리를 맞대고 포항~울릉도 간 여객선 공영제를 검토해볼 때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김병수 울릉군수 역시 대형여객선 유치를 공약한 만큼 이번 기회에 여객선 공영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kimdh@kbmaeil.com

2020-08-03

어떠한 걸림이나 위태로움도 없는 눈빛으로… 영동 반야사(般若寺)

달이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을 지나 석천계곡을 따라 반야사로 향한다. 불어난 계곡물로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는데, 긴 장마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햇살을 업고 백화산 둘레길을 걷는다.줄지어선 잣나무 그늘 끝으로 반야사가 보인다. 반야는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말한다. 접근성 좋은 천변에 자리 잡은 널찍한 경내로 들어서는데 계단 옆에서 봉숭아꽃이 무리지어 반긴다. 문턱이 높지 않은 개방적인 절임을 알 수 있다. 템플 스테이로 머무는 참가자들과 관광지에 들른 듯 반바지 차림에 뒷짐을 지고 둘러보는 방문객들로 절은 조금 어수선하다.법주사의 말사인 반야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지만, 성덕왕 19년(720년) 의상의 십대 제자 중 하나인 상원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더 지배적이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세조 10년(1464년)에 크게 중창하였지만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고졸미는 찾기 어렵다. 다만 맞은 편 지붕 위로 꼬리를 치켜들고 포효하는 돌무더기 호랑이가 신비감을 자아낸다.이 절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극락전과 오백 년 된 배롱나무, 절이 창건될 당시 세워졌다는 보물 제 1371호 삼층석탑이 섬처럼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배롱나무 꽃그늘에서 바라보는 극락전 주변은 사대부가의 후원처럼 아담하고 운치가 있다. 그 옆 돌계단 위에는 산신각이 홀로 꿈꾸듯 외롭다.아득한 과거를 그리워하는 극락전과 무심하도록 개방적인 대웅전의 훤한 이마, 비밀스런 아픔 하나쯤 풀어놓고 싶은 앙증맞은 산신각,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엄숙한 수행 공간까지 다양한 매력이 숨어 있다. 하나가 아닌 듯 하나로 존재하는 절, 방문객들의 시선을 즐기며 성장하는 사찰 같다.불자들이 많이 찾는 대웅전보다 극락전이 백팔 배를 하기에는 훨씬 아늑하고 편한 공간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사람들은 주로 대웅전을 들른 후 약속이나 한 듯 문수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수전 가는 두 갈래의 길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담장을 끼고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 대신 대웅전 뒤편의 넓은 돌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참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반야사의 뒷모습은 지극히 평범하고 편안하다.길지 않은 산길을 따라 오르자 뜻밖에도 문수전은 시원스럽게 펼쳐진 허공을 안고 벼랑 끝에 돌아앉아 있다. 아슬아슬한 문수전 절벽 아래로는 장마로 불어난 물길이 울창한 숲을 뚫고 나와 도도하게 흐른다. 법당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도 중이고 물길은 너른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제 갈 길을 가느라 바쁘다.문수전 법당은 아주 작다. 느긋하게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서둘러 삼배만 하고 나왔다. 쉼 없이 발길을 재촉하는 물길을 바라보며 불심이 강했다던 세조를 생각한다.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대산 상원사 계곡을 찾은 세조와 등을 밀어주고 사라진 문수보살 이야기가 이곳에도 전해진다. “왕의 불심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문수보살은 복덕과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문득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 떠오른다. 세상의 본성을 나타내는 공(空)은 무한한 가능성이며 잠재적인 무엇이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들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실체는 공이다. 양자역학이 있기 수천 년 전에 이미 부처님은 이 모든 색의 실체는 공이라 말씀하셨다. 상식적일 만큼 흔하게 쓰는 철학 용어이지만 여전히 어렵고 먼 세계이다. 내게 공의 세계는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늘 지식적인 수준의 앎에서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머리로 아는 실존의 방식은 참으로 단순한데 내 삶은 늘 무언가에 목 말라하며 허기져 있다. 수많은 절을 찾아다니며 백팔 배를 하는 것조차 본질을 놓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어쩌랴. 마지막 문을 열 때까지 내 존재의 크기만큼 발버둥치다 가는 게 인생인 것을.내려오는 길은 다른 길을 택했다. 좁고 가파른 돌계단이 바짝 긴장한 채 나를 이끄는데 나는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격렬하게 굽이치는 계곡물의 힘찬 맥박소리에 숱한 사념들이 자맥질을 해댄다. 반야사로 이어지는 인적 없는 오솔길을 문수전의 자유로운 눈빛이 함께 걷는다. 어떠한 걸림이나 위태로움도 없는 하나의 말씀이 되어.조낭희 수필가다시 만난 반야사는 더 새롭고 깊이가 느껴진다. 한낮에도 백화산 돌무더기 호랑이가 지켜주는 절, 그 신비로운 비경 속에 문수보살의 지혜와 영험함이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이른 새벽이나 밤에 기도하러 오는 여성 불자들을 위해 특별히 문수전은 비구니 스님이 관리한다는, 절 앞 카페 여주인의 친절한 설명에도 자부심이 가득하다.사람이 많지 않을 어느 호젓한 날에 백화산 둘레길을 걸어서 다시한번 반야사 일주문을 들어서고 싶다. 그리고 한 번도 온 적 없는 곳에 온 듯 두근거림을 안고 문수전으로 향하리라. 저 참나무 숲 언저리를 오를 때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면, 나는 그를 문수보살로 기억하며 흥분할지 모른다. 그가 평범한 불자여도 상관없다. 깨달음의 길은 멀고 험하지만 그 도상에서 만나는 신기루 같은 기쁨들이 있어 우리는 또 힘을 내지 않는가.

2020-08-03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교회’

최고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현대건축 최고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1887∼1965). 1955년 5년간의 공사 끝에 건축사의 이정표가 될 또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프랑스 동부, 인구가 채 3천명이 되지 않은 시골마을 롱샹(Ronchamp)의 높은 언덕에 세워진 기념비적인 교회건축. 편히 롱샹성당으로 불리는 이 교회의 정식명칭은 ‘롱샹의 높으신 성모성당’이라는 뜻의 노트르 담 뒤 오 드 롱샹(Chapelle Notre-Dame-du-Haut de Rochamp)이다.시카고 건축학파를 이끌며 근대 건축의 첫 장을 펼쳤던 루이스 헨리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로 건축을 규정했다. 1908년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루스는 ‘장식은 범죄다’라고 선언했다. 르 꼬르뷔지에는 이 모든 금기를 깨고 충분히 기능하지만 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시선의 방향이 달라지면 건축물의 형태도 달라진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그런 것처럼, 베르니니의 조각상이 그런 것처럼 르 꼬르뷔지에의 롱샹 교회 또한 하나의 시점에 형태를 잡아두지 않는다.백색의 몸은 묵직한 콘크리트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별다른 장식 없이 콘크리트의 재료적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시각적 무게감이 한 층 더 할 것 같지만 롱샹의 건축 언어는 다른 속삭임으로 다가온다.어느 한 곳도 이러겠지 하는 서투른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다. 비(非)규범성을 넘어 불확정적 형태들이 시선에 따라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새로운 조형미를 발산한다. 건축에서 기능은 모든 것에 앞서는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자주 기능과 대립하게 된다. 롱샹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유발하는 비규범적이고 비정형적인 형태가 공학적 측정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답지만 서 있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건축이다.예측 불가능성이 가지는 조형적 다양성. 건축의 바깥 벽면을 따라가던 시선은 자연스레 내부의 구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정형화된 건축에서는 이미 외부에서 충분히 내부 구조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꼬르뷔지에의 롱샹교회는 한 면이 다른 면을 감추듯 바깥 역시 내부구조를 보여주지 않는다. 교회에 발을 딛고 들어서야만 비로소 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롱샹교회 내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공 빛을 철저히 제한하고 오로지 자연광으로만 교회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툼한 외벽의 두께와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으로 자리한 채광창. 창의 깊이는 빛의 밀도와 관계가 있다. 넓고 얕은 창이 받아들이는 빛은 건축물 내부 전체를 가득 채운다. 이럴 경우 빛이 건축구조를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반면 롱샹에서처럼 깊고 두터운 창이 집중력 있는 강한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면 아주 극적인 공간이 연출된다. 건축가는 지나친 연출을 통한 시선의 산만함을 피하기 위해 유리에 색을 입혀 자연광이 색을 투과해 공간에 녹아들도록 했다.특이한 것은 천장이 벽면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천장과 벽면은 완전히 닿아 있지 않다. 따라서 그 사이가 띠처럼 비어 있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이러한 건축적 접근을 통해 재료의 원래적 성질은 증발해 버리고 심리적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전혀 다른 언어가 탄생한다.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곳곳에 마련된 작은 예배의 처소들이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빛이 새어들어 제단을 은은히 밝힌다. 제단들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예배자들과의 경계가 최소화 되어 있다. 종교적 권위 보다는 소통과 평등이 강조되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르 꼬르뷔지에의 롱샹교회는 기능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는 건축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증명해 내면서 건축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훗날 얼마나 많은 건축가들이 꼬르뷔지에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위대한 건축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미술사학자

2020-08-03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얼마 전 출판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에 출간한 ‘사설시조의 맛과 멋’이라는 신간이 올해 세종도서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됐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전공자가 아니면 그다지 볼 일도 없는 학술서건만 그래도 글을 쓴답시고 밤새 글자 한 자 한 자 뜯어보며 수정하던 지난 날이 문득 떠올랐다.한참 교정을 볼 때였다. 한 지인이 하는 말이 아니, 요새 책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더군다나 인문학 학술서를 누가 그렇게 신경 써서 본다고 그러는지, 단어 하나에까지 참, 대충 좀 하라는 것이었다. 국어과 교수 아니랄까 봐 그렇게 공들이며 시간을 한참 보내는 게 이해도 가지 않을뿐더러 답답해 보인다고까지 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인문학의 가슴 아픈 현실을 일깨우는 말들을 콕콕 집어하는 말이 어찌나 얄밉던지. 오랜만에 본 반가움은 잠시, 말 한마디에 괜히 샐쭉했던 기억이 있다. 결과적으론 오기가 나서 글자 하나에 더 신경 쓴 덕에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지만.사실,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말을 잘해 천 냥 빚을 갚기도 하나 반대로 말 한 번 잘못해 멸문지화를 당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조선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공공연히 ‘한 고조 유방이 장자방을 쓴 게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라며 함부로 말하고 다님으로써 태종의 미움을 받아 끝내 죽임을 당한 일이나 왕자의 난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세 치 혀끝 실수로 죽음에 이른 태종의 처남 민무구 형제 이야기는 설화(舌禍)의 대표적인 예이다.그래서 옛 성현들은 한 번 입 밖에 나온 말은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도 따라잡기가 어렵다 했고, 혀 밑에는 도끼가 들었다 여겨, 늘 조심에 또 조심을 해왔다. 공자가 말을 어눌하게 하라 하고, 또 말조심에 관한 시경 구절을 하루에 세 번씩 읽은 남용(南容)에게 질녀를 시집보낸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양의 고전 ‘탈무드’에도 말이 당신 안에 있을 때는 노예이지만 입 밖으로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고 한 것은 모두 말조심을 강조한 것들이다.이렇게 조심해야 할 ‘말’, 그런데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이를 매우 가볍게 생각하는 이들이 꽤나 많다.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없는 말을 지어내어 타인을 모함하는 것은 예사요, 걸핏하면 이 사람 저 사람 밥 사준다고 불러내서는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들을 험담하고, 파당을 짓고 뒷담화를 하다가 들키면 그나마 사과하는 사람도 있고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발뺌하는 사례 또한 부지기수다. 스스로의 인격을 갉아먹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바야흐로 8월이다. 코로나로 시작한 한 해가 이제 제법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곧 휴가철이니 지인들과 만나 ‘썰’을 푸는 게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좋을 법하다. 다만 ‘썰’을 풀기 전, 작자 미상의 우리 옛 시조 하나 떠올려 보면 어떨까? “말하기 좋다하고/남의 말 말을 것이/남의 말 내 하면/남도 내 말 하는 것이/말로써 말 많으니/말 말을까 하노라//’.

2020-08-03

어무적의 ‘유민탄(流民嘆)’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 시인 어무적(魚無迹)이 지적한 병폐들이 오늘날의 적폐와 겹치면서 시대가 달라도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하려는 핵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어무적은 연산군 때 인물로 사직(司直)을 지낸 어효량과 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이기에 신분제의 한계로 과거를 보지 못했지만 뛰어난 재주를 인정받아 면천(免賤)되어 율려습독관이라는 말직을 지냈다. 당시 가난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이 유민들의 탄식을 담아 지은 시가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유민탄(流民嘆)’이란 제목으로 올려 있다. 이 시는 먼저 곤란에 처한 백성이 굶주려 곤궁하고, 헐벗어 고통 받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토로하며, 나라에서 구제할 힘이 있는데 마음이 없음을 원망한다. 다음으로 관리들이 욕심을 비우고 백성의 소리를 들으라고 한탄하며, 나라에서 구제책을 내도 지방에는 헛된 종이장이니, 청렴하고 제대로 된 인재를 뽑아서 백성들을 구제하라고 탄식한다.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7년(1501), 7월 28일’ 에 어무적이 올린 장문의 상소문이 있다. 김해에서 백성의 어려움을 담은 상소를 올렸으나 무시되자, 무리한 세금으로 고통에 빠진 백성을 대변해 작매부(斫梅賦)를 지어 관리의 횡포를 비난했다. 이 상소문의 첫머리에 재앙의 징조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미진한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물이 새는 지붕은 위에 있지만, 물이 새는 줄 아는 자는 밑에 있다’라는 말로 자신이 상소를 올리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이 말은 위에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고스란히 아래에 있는 백성들 몫임을 비유한 것이다.어무적은 이 상소에서 몇 가지 조목들을 나열해 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주장했다. 그 첫째가 큰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군주가 마음과 뜻을 곧고 성실하게 해야 천리가 이기고 욕심이 사라져 군자가 모이고 소인이 멀어지며, 간신이 간사함을 부릴 수 없고, 권력자가 성패를 좌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는 선비들의 기개를 진작시키는 길은 언로(言路)를 크게 틔워 어진 이를 쓰고 부정한 사람을 물리치라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대부들의 잔치에 가무(歌舞)의 폐단을 없애 공검(恭儉)한 교화를 펼칠 것과 곡식을 축내는 술을 금지할 것, 이단을 금하는 법을 세울 것 등을 주장했다. 어무적은 1501년 이 상소로 쫓겨 다니다 객사하였지만 오늘날 우리 정치에 던지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고 본다.국민의 생명과 윤리는 뒷전이고 권력과 이윤만이 판을 치며 다투는 사회를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믿으면 속는 것이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떠돌이 백성마냥 마음의 혼란을 겪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삶을 절실하게 이해하고 도우려는 위정자는 드물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개혁이란 이름을 빌린 완장부대가 망나니 칼춤을 연상케 하는 작태를 벌이고 있는 시국이다. 500여 년 전 조선의 한 시인의 노래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리 정치판을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2020-08-03

고장난 체중계

아내는 몸무게를 재고 있다. 청소나 설거지를 하고서는 어김없이 체중계에 올라선다. 그 때마다 표정은 밝지 않다. 때론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한다.설을 지나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세계를 강타하며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집 밖으로 나가거나 사람을 대면하는 자체가 두려웠다. 그 여파로 아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칩거에 들어갔다.그 무렵 때마침 ‘미스터트롯’의 열풍이 불어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기에 불편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나를 유혹하기도 했고 음악을 듣고 화초를 가꾸면서 나름 즐거워했다. 어느덧 나도 ‘미스터트롯’의 매력에 빠져들었다.TV를 보면서도 입은 항상 즐거웠고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자세 변화도 다양해졌다. 처음엔 소파에 앉았더니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고 급기야 매트를 거실에 깔기까지 했다. 거실은 또다른 침실이 되었다. 나에 대한 음식 유혹의 빈도도 잦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파 앞 티 테이블 위에는 먹거리로 다양해져 갔고 옷차림은 헐렁하게 바뀌었다.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퇴근 후 걷기운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바라던 일이었기에 이를 공감하고 즉각 수용했다. 그렇게 매일 산책을 했지만 집에 와서는 TV를 보며 여전히 입은 즐거워 보였다. 그러면서도 고민이 되는지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얼마 후 다급해 졌는지 스스로 운동량을 늘려갔고 티 테이블 위에도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윗몸일으키기도 했다. 체중감량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찐 살이 쉽게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아내는 수시로 체중계에 올랐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상하다 체중계가 고장 났나?’라는 표현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또 한편으로는 운동을 포기할까 걱정도 되었다.이찬원의 ‘딱풀’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딱 붙어있지만 고장난 체중계는 언제쯤 고쳐질 지 궁금하기만 하다. /배만식(경주시 현곡면)

2020-08-03

기이한 만남

붉게 백일홍이 활짝 핀 형산강변을 걷다보면 마음까지도 상쾌해진다. 고운꽃빛을 담아본다. 어떤 느낌의 사진을 찍었을까?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 완성될 이미지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사진을 찍는 순간, 이미지를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보다 기다림과 설렘의 순간들이 아날로그 사진작업에는 있다.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사진이미지로 만나는 순간들. 설렘은 매순간 낯선 시간과 낯선 공간을 걷게 한다.몇 년 전부터 형산강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아왔다. 강변에 생활체육공원이 생긴 후로는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마스크와 모자로 복면을 한 채 운동을 하는 모습들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진작업 제목도 ‘기이한 만남’이 되었다. 하지만 기이하게 느껴졌던 풍경들이 지금은 일상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기이한 일이다. 코로나19사태가 많은 것들을 정지시키고 바꿔 놓았다.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은 여전히 보도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일상의 소중함을 지키고 찾고 있다. 운동이나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들은 언제나 공간 속 주인공이 되어 당당한 모습이다. 나는 그런 모습들을 숨을 멈추고 카메라에 담는다. 기이한 만남들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강철행 사진작가

2020-08-03

달과 6프렌즈

달은 얼마만큼의 거리에서 우리를 비추이는 걸까요?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 벤치에 앉았습니다. 빠듯한 일 박 이일의 번개 팅의 일정을 마치는 즈음이었습니다. 마지막 휴게소에서 몸속의 뜨거워진 것들을 비우고 숨 가빴던 하루를 식히던 참이었습니다. 우연히 달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피곤한 줄 모르고 헤매며 다니던 우리들을 향해 그 달이 계속 따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달도 바다를 향해 섰고 희미하게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느라 지친 몸을 식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날은 첫 출사 수업 날이라 빠질 수도 없는 날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수목원까지 와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납치하듯 나를 태우고 떠났습니다. 문득문득 서로의 시간이 맞아떨어지는 날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수시로 뭉치게 됩니다. 요지는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그러니까 그나마 내 의지로 다닐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다니자 주의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떠난 소중한 추억여행이었습니다. 무섬마을, 부석사, 소수서원, 평창의 육백 마지기 샤스타데이지, 바위공원 등에서 추억을 담고, 곳곳에 우리의 수다와 웃음을 뿌렸습니다.구름사이로 달빛이 스미는 소리가 들립니다. 달은 저장된 기억만큼이나 멀리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서 그만큼의 간격을 두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창에서 그것도 고지대 청옥산 육백마지기 언덕 베기에서 샤스타데이지를 조용히 숨어서 바라보던 희미한 달이었습니다. 친구들 함박웃음으로 구름을 쫓아내던 달, 우리들의 우정으로 평창의 친구는 앓고 있던 대상포진을 잠시나마 잊고 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7번 국도를 따라 정동진, 삼척, 죽변, 장사, 달은 우리와 동행을 했다가 또 앞에서 끌어주다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뒤에서 바라보았습니다. 평창에서 빛나던 달은 포항으로 왔다가 다시 경주로 따라갔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평창의 내 아름다운 친구 부부를 지켜주고 있을 것입니다. 친구는 달 같은 사랑입니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달그림자가 마음 든든합니다. 달은 해마다 3.8센티씩 멀어진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 갈수록 친구와의 우정은 해마다 3.8센티씩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

2020-08-03

나를 설레게 하는 것

목요일이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외출을 서두른다. 평소보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손끝에서도 즐거움이 묻어난다. 한 주간 같이 수업을 듣는 책친구 선생님들은 뭘 하며 지냈을까? 오전 10시까지 작은도서관 책친구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집 가까이 있는 도서관이 아닌 탓도 있지만 빨리 선생님들을 뵙고 싶어서다.여름에 들어서면서 지리 한 장마가 계속되지만 차창 밖의 나무들은 제 색깔을 만들어 놓았고 곳곳에 여름 꽃들도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도 서로 먼저 연주회 열 듯 정겹다. 조수석에 놓인 수업파일에 눈길을 주며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로 수업이 펼쳐질지 살짝 기대도 된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에 발을 들여 놓은 지도 햇수로 십 여 년이다.작은도서관이 막 생겨날 즈음 큰 아이를 낳고 포항에 둥지를 틀었다. 두 살 터울로 둘째가 태어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도서관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 북스타트를 시작으로 인문학 붐에 발맞추어 도서관은 최고의 최적의 평생교육장이 되었다. 물론 나도 기뻤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독서동아리에서 만난 그림책은 남편까지도 육아로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어 준다. 그 중에서도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은 남편이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우리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면 대출해온 책으로 저녁 이야깃거리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책으로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즐겁다.이런 멋진 도서관이라니.그래서일까. 아이들도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나 수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를 한다. 나 또한 도서관은 ‘공주(공부하는 주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사람이 있다. 여러 해 동안 알고 지내는 강사 선생님들, 익숙하게 반겨주는 사서 선생님들. 여기서 만나는 인연들은 참 따뜻하다. 서로가 책으로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또 내가 잊고 있었던 꿈을 생각나게 했고 다시 문학소녀로 돌려놓았다. 아이들은 도서관 다니는 엄마를 자랑스레 이야기 한다.책친구 수업에서 고등학교 때 익숙했던 시인들을 만난다. 한용운, 윤동주, 황동규, 서정주, 김종길, 박재삼, 두보의 칠언율시까지.오늘은 또 어떤 시인들이 나를 설레게 할까. 작은도서관으로 올라서는 내 발걸음이 가볍다. /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2020-08-03

임대차 3법의 나비효과

나비효과는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브라질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나비 효과는 과학 이론이었으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 용어는 1952년 미스터리 작가인 브래드버리가 시간여행에 관한 단편소설 ‘천둥소리(A Sound of Thunder)’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를 대중에게 전파한 사람은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다. 1961년 로렌츠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상 변화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초기 값인 0.506127 대신 소수점 이하를 일부 생략한 0.506을 입력했다. 그 결과 0.000127이라는 근소한 입력치 차이가 완전히 다른 기후패턴 결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63년 로렌츠는 이 사실을 연구 결과로 발표했다.이에 대해 한 기상학자가 “그게 사실이라면, 갈매기의 날갯짓 한 번만으로도 기후패턴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과 진배없네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로렌츠에게 갈매기보다 나비의 날개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좀 더 극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가 반짝 떠올랐다.세입자의 임대 기간을 최소 4년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지난 달 31일부터 전격 시행되면서 나비효과가 거세다. 당장 시장에서 전세 공급이‘멸종’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신혼부부 등 새로 전세를 구하는 사람에겐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장기간 전세 중심이던 아파트 임대차 시장이 급격히 월세 위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임대차3법이란 나비 날개짓이 아파트 전세 시장에 태풍으로 다가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03

걱정 마세요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혈압약을 받기 위해 동네 의원에 한 달에 한 번 가기 시작한 지 반 년이 다 되어가던 때 이야기다.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가 이번 주는 원장님이 부재중이라며 대진 의사가 진료한다고 한다. 원장님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어쩌나 잠시 망설이며 서 있노라니 막 진료를 마치고 나온 아주머니가 한마디 한다. “엄청 좋아요. 저는 어제도 오고 오늘도 왔어요. 원장님보다 좋아요. 아이구, 참,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하며 입을 가린다. 원장님은 남자 의사인데 평소 설명이 짧은 편이라 비교가 된 모양이다. 옆에 있던 간호사는 웃으며, “딸 같으신가 봐요.” 둘러대 준다.진료실에 들어가 앉는다. 혈압을 잰다. 120/75 괜찮다. 망설이다 말을 꺼낸다. “2주 전에 지어간 수면제가 첫날부터 몸이 따갑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4일 만에 끊었어요.” 그러자 의사가 말한다.“어떤 증상이라도 약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도 불면증이 있을 때 여러 약을 처방받았는데 다 안 듣고 지금 따가웠다는 그 약이 제게 잘 들었어요. 안 들으면 다른 약으로 바꾸거나 분량을 반 알로 줄여볼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내게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그 말을 듣자 갑자기 무언가가 가슴에서 물컹 솟아오른다. 사실 이 말 하기가 망설여졌던 이유는 원장님이 처방을 잘못해줬다는 불만을 다른 의사에게 말하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듣다 보니, 그 약이 안 들으면 내게 맞는 약은 없는 건가 하는 불안이 더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번개처럼 두 가지 깨달음이 온다. 그 하나는, 생각은 기저에 있는 실제 감정을 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 수준에서는 의사를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이었지만, 감정은 건강이 많이 나빠졌을 때 약들이 듣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번잡한 생각의 노예가 되어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감정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자.다른 발견은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라도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런데도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은 좁은 시야에 갇혀 한 가지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좁게 생각하는 것을 터널 비전이라고 한다. 대부분 과거의 틀에 지배당할 때 터널 비전에 사로잡힌다. 과거 경험이나 사고 틀을 인식할 수 있다면 해결 방법 찾기가 쉬워진다. 이렇게 딸 같은 대진 의사의 한 마디에 여러 가지 통찰을 하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이런 인사를 건네고 싶다. 걱정 마세요. 방법은 많아요.후일담, 대진 의사 에피소드를 자주 가는 한의원의 원장님에게 말했다. “남자 의사들 어떡해요? 여의사가 더 능력 있나 봐요.” “아니에요. 남자 의사들의 무뚝뚝함과 지시적 표현을 카리스마 있다고 안심하며 더 좋아하는 분들도 있어요.” 아이코, 또 걸렸구나, 내 경험을 전부로 생각하다니, 발견과 성장에는 끝이 없다.

2020-08-03

사후약방문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일을 다 망치고 뒤늦게 수습에 나서보지만 허망할 뿐이라는 뜻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나 망양보뢰(亡羊補牢)도 같은 표현이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망양보뢰는 “양을 잃고 나서야 우리를 고친다”는 말이다.원래 이 말은 양은 우리에 모아 기르기 때문에 한 마리의 양이 달아난 뒤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긍정적 뜻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죽은 뒤에 청심환 찾는다” “늦은 밥 먹고 파장 찾는다” 등의 우리 속담이나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비온 후 우산 보낸다는 우후송산(雨後送傘)도 사후약방문과 비슷한 말이다.인생 살면서 사후약방문 한두 번 경험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나. 그러나 경계를 직업으로 하는 군에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경우가 다르다. 군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으나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경계의 중요성을 아주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다.1941년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한다.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미국은 그들이 자랑하는 태평양 함대 소속 배 12척이 침몰되고 100여대의 비행기가 부서지는 치욕스런 참패를 당한다. 수십만 명의 인명피해를 낸 6·25전쟁도 북한군의 기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군 경계의 실패는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2012년 우리 군은 ‘노크귀순’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경험이 있다. 북한군이 우리 경계부대의 내무반 문을 두드려 귀순의사를 밝힌 사건이다. 탈북민의 월북 사건으로 군당국이 해당 지휘관을 보직 해임하는 등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또다른 사후약방문으로 비쳐질 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02

‘자판기’ 국회

안재휘논설위원‘자판기’는 인류문명을 바꾼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지난 2010년 아랍에미리트공화국(UAE)의 최고급 호텔 에미레이트 펠리스에 처음으로 금(골드 바) 자판기가 등장해서 화제가 됐다. 지난 2018년 중국의 공룡 기업 알리바바는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와 손잡고 자동차 자판기를 등장시켜 해외토픽난을 뜨겁게 달궜었다. 모바일 앱으로 자동차를 구매하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작금 21대 국회에서 벌어지는 초 스피드 법률 통과는 더 놀라운 ‘자판기’ 기록이 될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임대차 3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후속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전광석화처럼 통과시켰다. 통상적으로 국회는 상임위에 법안이 회부되면 대체토론, 소위 심사보고, 축조심사, 찬반 토론, 의결(표결)의 순서를 거치는데 이날 국회 상임위들은 짜 맞춘 듯이 모든 절차를 생략했다.민주당은 이어서 30일에는 본회의를 열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재석 187명 가운데 찬성 185명, 기권 2명으로 의결했다. 법안의 본회의 상정부터 가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5분이었다. 군사독재정권 때도 좀처럼 못 보던 ‘입법 독재’의 활극이 펼쳐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수십 년 국회 입법 프로세스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횡포의 뒤에는 교졸한 ‘법 기술’이 있었다.여당 국회의원들 입에서는 ‘소위원회는 강제조항이 아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국회법 제57조(소위원회) 1항을 보니 ‘필요한 경우 특정한 안건의 심사를 위하여 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돼 있는 건 맞다. 민주당은 ‘둘 수 있다’는 대목을 ‘안 해도 된다’로 읽어 자기들 법안만을 짜깁기해서 통과시켰다. 분석도 안 된 법안을 기립통과 방식으로 처리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거수기’ 행태였다.아무리 좋은 명약이라도 약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있다. 유해한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한 다음 시장에 내놓는 것은 상식이다. ‘부동산 3법’이 제아무리 좋은 제도일지라도 마지막으로 정리된 대체입법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들의 검토보고조차 거치지 않은 것은 민주당의 치명적인 실수다.“학생운동 세대의 엘리트 그룹과 이른바 ‘빠’ 세력의 내밀한 친화성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의 ‘전체주의’를 우려한 진보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지적이 눈에 띈다. ‘결과’ 중심으로 ‘속전속결’만을 도모하는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박정희 시대에 유정회를 만들어 부린 일이 우리 정치사에 부끄러운 흔적이듯, ‘결과 지상주의’에 빠진 민주당의 행태는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록될 가능성인 높다. ‘통법부’ 행태를 주도하고도 “야당이 양보해야 한다”고 우기고, “통합당이 민주주의 기본 작동 원리부터 다시 생각할 때”라는 적반하장을 서슴지 않는 여당 인사들의 막무가내 언행에 억장이 막힌다.이 엉터리 ‘자판기’ 국회 행태를 ‘민주주의’로 잘못 배우고 있을 아이들이 걱정이다.

2020-08-02

포항경제와 포스코의 상생 조건

지난달 21일 포스코가 2/4분기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기업활동의 결과가 적자라는 것은 큰일이지만 그것이 과연 특별한 일시적 충격으로 인한 현상인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앞으로도 지속성을 가질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당연히 이에 따라 포항 광양 등 포스코가 자리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적자를 기록하였다는 소식에 포항시민들이 걱정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포스코가 그 정도의 적자로 그친 것은 선방한 셈이다. 이번 적자는 분명 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로 인한 일시적 요인이라 할 수 있겠지만, 글로벌 철강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더 크다. 이번에 글로벌 철강회사들이 다각적으로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기록한 데는 크게 3가지 요인 때문이다.첫째, 코로나19가 전 세계의 문제로 확대되기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그에 따른 영향에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과 ‘셧다운’의 영향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요침체로 국제무역의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조선, 자동차 등 물류 관련 수요가 크게 타격을 입은데다 불확실성 증대로 인한 투자 부진은 건설업과 기계 등 제조업까지 이어지면서 철강산업의 4대 전방산업에 대한 수요부진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영향이 가장 컸다. 둘째, 전 세계 조강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철강업계가 국제간 협의 등으로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대한 감산 방침을 암묵적으로 지켜왔었으나,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격화되면서 경기 감속을 우려한 중국의 내수부양정책에 힘입어 자제해왔던 과잉생산의 고삐가 풀렸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급과잉은 필연적으로 중국 국내 강재 시장의 경쟁을 가열시키면서 철강재 시황을 악화시키고 이것이 국제철강재 가격을 하락시키는 도미노 현상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생산량과 매출량을 기록하더라도 손안으로 들어오는 매출액 자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포스코가 수년 전 많은 수익을 내었던 것과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셋째, 두 번째 요인과도 관련이 깊은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철강회사들이 생산물량을 감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생산을 재개하기 시작함에 따라 소요되는 철광석 등 원자재 수요로 인해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따른 국제철강재 시황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철광석 등을 이용하여 철강을 생산하는 고로업체는 생산량과 수출량 등 모든 조건이 같은 상황이라도 매출액은 줄고 생산원가는 올라가기 때문에 당연히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포스코의 이번 적자는 이처럼 수요부진, 공급과잉 그리고 원가상승이라는 3중고를 겪는 글로벌 철강사들의 공통적인 경영악화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철강회사 최고경영자의 능력이나 경영전략 등이 영향을 미치는 기업 내부요인과는 전혀 무관한 외부요인 또는 세계철강업계가 지닌 고질적인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포스코가 이번 2/4분기에 기록한 영업이익 적자 규모는 1천85억 원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적자는 글로벌 철강사와 비교하면 오히려 자랑할만한 실적이다. 일본의 글로벌 대형 철강 3사는 본격적인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이 나타나지도 않았던 2019년도 3월 말 결산에서 모두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적자 규모는 각각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이 2019년 4월 상호 변경)은 4천315억엔(약 4조8천112억 원), JFE는 1천977억엔(약 2조2천044억 원), 고베제강은 680억엔(약 7천582억 원)이었다. 물론 기업 규모 등 체급 차이가 있기는 하나 세계 조강생산 5위인 포스코의 체급이 작지는 않다. 지금처럼 전 세계 철강업계가 3중고를 겪는 상황에서 포스코가 글로벌 철강사보다 상대적으로 경영성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증거다.다만 그렇다고 해서 포항이나 광양과 같은 포스코가 자리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포항지역 경제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철강업이며, 이 철강업과 연동되는 운수업, 건설업 등이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업계가 어려운 원인이 조선, 자동차, 건설, 기계제조 등의 수요 감속으로 인한 것인데 지역 철강업의 부진은 다시 지역 건설, 운수 등의 부진으로 파급되기 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포스코는 글로벌 회사이므로 그 적자의 여파가 세계적으로 분산될 수 있지만, 포항시의 입장에서는 최대의 어쩌면 유일한 경제 엔진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그 영향의 정도를 최대한 낮출 필요가 있다.문제는 앞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 성공적으로 개발되고 모든 경제활동이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철강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여건까지 빠르게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적자의 3대 원흉인 수요부진, 공급과잉, 원가상승 가운데 자동차, 운수, 건설 등의 수요가 다소 개선되더라도 중국발 공급과잉에 따른 매출액 감소요인과 철광석 가격 등 원가상승문제는 과거 사례를 볼 때 단기간에 정상화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전 세계 조강생산량은 연간 약 20억 톤에 근접하는데 이중 절반 수준인 약 10억 톤을 중국 철강업계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국내의 경기부양, 미중간 무역전쟁 등 다양한 여건이 중국 철강회사들의 생산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때문에, 중국 현지에서 벌어지는 활발한 생산활동에 따른 철광석 등 원자재 수요로 인한 원가상승요인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거기에 과잉생산으로 인한 중국 국내 강재 가격의 하락은 국제철강재 시황을 계속 악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국제유가하락에 따른 셰일오일 등 유정용 강관에 대한 수요를 포함한 세계 전체의 철강 수요도 완만하게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국의 국내 철강 수요가 활력을 보일수록 중국 국내 철강업계의 생산과잉 현상은 이어지기 쉽고, 반대로 중국 국내 철강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이들이 과거처럼 또다시 저가의 덤핑물량을 세계수출시장에 쏟아내며 철강재 시황을 악화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 국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수요부진에 따른 국내 철강생산량에 대한 조절을 위해 일본 철강사들도 자체적인 감산에 나서고 있다. 일본제철은 지난 4월부터 전국 15기 고로 중 6기를 일시가동 중단(조업정지 포함)하기로 결정하였다. JFE도 2024년 3월 말까지 총 3기를 일시가동 중단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들 3사는 내년 3월 말 결산기에도 흑자 전환이 어려울 전망이다.그동안 포항경제는 포스코와 동고동락 해왔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건 포스코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포스코를 평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지역기업과 지역경제의 상생은 일방통행만으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때로는 손잡고 때로는 각자의 발걸음이 보장되어야만 상생이 시작될 수 있다. 포항경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언제든지 예기치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어떠한 외부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지역 내 모든 경제주체가 포스코와 무관하게 각자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갖추게 된다면 그때부터 비로소 지역 경제와 포스코의 진정한 상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02

빵안개의 나라

코로나로 인해 먼 나라 여행은 당분간 어려워졌다. 식사를 오래 거르면 허기가 지듯 여행이 고파서 10년 전 앨범을 들췄다.12시간 비행 끝에 밤늦게 이스탄불공항에 도착, 우리나라와 7시간의 시차가 있다. 현지 가이드가 내일 일정은 새벽 4시 30분에 모닝콜, 5시 30분에 식사, 6시 30분에 출발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이야긴지. 4시 30분부터 강행하는 여행이 어디 있는지. 그런데 그렇게 해도 다들 따라올 거라고 장담했다. 다음날 새벽, 가이드 예언대로 일어나서 씻고 아침밥 먹고, 우리는 지금 차에 앉아 있다. 이게 시차라는 거구나. 서울은 지금 오전 11시 30분이니까 내 몸은 그 시간에 맞춰져 있었다. 패기지 여행의 묘미다.앙카라를 떠나 카파도키아로 가는 길에 차창 밖 풍경을 찍었다. 터키사람들은 왜 넓은 들판 놔두고 산에 다닥다닥 집을 지었을까? 들판엔 밭이 넓게 펼쳐졌는데 왜 농로가 보이지 않는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이 가이드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물어볼 때마다 참 대답하기 힘들다고 했다. 터키의 역사를 물어봐야 편할 텐데 난 왜 이런 게 궁금할까.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서 그런가. 와우, 들판 풍경이 컴퓨터 배경화면이다. 좋다.터키사람들 사는 집들이 우리나라 산동네 같기도 한 것이 또 부산의 언덕배기 동네를 닮았다. 카파도키아 길가에서 히잡을 쓴 아줌마가 아이를 안고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드니 세워준다. 택시도 아니고 버스가 서는 것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에서도 손님이 손을 드는 곳이 곧 정류장이 되었다. 많은 것들이 내 고향과 닮아 참 정이 간다. 형제의 나라라서 그런가.스머프 집 같은 유적지 구경이 끝나니 배가 고프다.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 맨 먼저 스프가 나온다. 닭고기 국물에 콩가루를 푼 것 같은 맛이다. 그리고 당근, 치커리, 샐러드가 나오고 빵이 나온다. 공갈빵같이 구멍을 내면 뜨거운 김이 나오고 빵이 납작해진다. 따뜻해서 빵이 참 맛있다. 주 요리인 케밥이 나왔다. 올리브유에 볶고 소금 간을 해서 밥이 짭짤하다. 반찬이니 짜게 나오는 게 맞는 거겠지만 압력솥에 앉힌 우리 집 현미밥이 그립다. 하루밖에 안 지났건만.터키의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저녁때가 되어가니 집들마다 지붕에 나 있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가이드의 말이 빵을 굽는 중이라 그렇다고 했다. 어릴 적 저녁 어스름에 동네 어귀를 들어설 때면 집집마다 밥하느라 마을이 온통 안개에 쌓인 듯 했다. ‘밥안개’였다. 그럼 저것은 터키의 ‘빵안개’인가? 달리는 버스를 세워 빵이 구워지는 냄새를 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김순희수필가터키여행은 인내였다.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터키에 왔더니 버스를 8시간 타고 움직이는 것은 그러려니 한다. 밥이 아닌 빵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러고 나니 그 속에 사는 사람도 그 곳을 여행하는 이도 보이기 시작했다. 길에는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 걸어서 길을 잇고 있는 사람. 유럽이 가까이 있어서 젊은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 나이가 들어 연금 타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처럼 관광버스로, 어떤 방법으로든 삶을 살찌우는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여행하는 동안 나는 책 한 권을 읽었다. ‘간송 전형필’, 우리문화지킴이이며 박물관까지 만드신 분의 이야기이다. 터키에 가보니 우리문화에 대해 내가 너무 모른다는 걸 더 느꼈다. 우리에게도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데. 공부해야겠다.우리에겐 스토리텔러가 필요하다. 그 작은 트로이를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와 보게 만드는 것은 스토리의 힘이다. 우리 집 가까이 있는 장기읍성이 트로이 성보다 덩치만으로는 훨씬 크다. 그러니 수원화성은 트로이를 앞서 가야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화로 소설로 세계인을 우리 동네로 이끌 이야기꾼이 절실하다. 잘 간직하고 널리 알려야 세계의 사람들이 보러 올 것이다. 빵안개 못지않은 밥안개의 나라 한국을 말이다.

2020-08-02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지역축제 방향성

엄태항봉화군수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인 이른바 ‘7말 8초’가 되면 봉화군은 전국 곳곳의 방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특히, 봉화읍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내성천은 흔히 사람반, 고기반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바로 대한민국 대표 한여름 축제인 ‘봉화은어축제’의 익숙한 풍경이다.201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5년 연속 우수축제, ‘2020년 제8회 대한민국 축제 콘텐츠 대상’ 축제관광부문 대상 수상 등 매년 50만 명 이상이 찾는 봉화은어축제는 매년 축제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특히, 올해 초에는 봉화군의 축제와 관광산업의 전문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한 봉화축제관광재단을 설립하고, 축제 경쟁력 강화를 통한 전국 문화관광의 1번지를 향해 순항하던 중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스포츠 무관중 경기, 각종 예술공연의 온라인 중계처럼 새로운 문화소비 방식이 등장하고, 사람들 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언택트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었다.대부분의 산업이 직간접적으로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지역 축제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구촌 축제인 도쿄 올림픽을 비롯해 전국의 지역 유명 축제들이 잇달아 취소되거나 잠정 보류되었다.봉화은어축제도 올해 축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무리한 축제 강행을 통한 코로나19의 대확산 우려와 축제의 취소를 두고 많은 고심이 있었지만, 봉화군은 또 한번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선택했다.지난 7월 9일 봉화군과 (재)봉화축제관광재단은 제3회 임시 이사회를 열고, 제22회 봉화은어축제는 코로나19로부터 봉화군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고 청정봉화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간 접촉이 없는 온라인 축제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봉화은어축제의 핵심 콘텐츠인 은어 반두잡이와 맨손잡이 체험이 밀집도와 활동성에 있어 코로나의 지역 전파 가능성이 높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축제관광 트렌드인 온라인 축제로 변경한 것이다.8월 1일부터 8월 9일까지 9일간 개최되는 이번 온라인 축제는 축제 전용 유튜브 채널을 통해 모든 행사와 프로그램을 실시간 생중계 한다. 봉화은어축제 전용 유튜브 채널은 유튜브에서 ‘봉화 은어 TV’ 검색을 하거나 축제 공식 유튜브 접속 QR코드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제한된 수의 지역주민과 관내 학생들이 참여해 은어를 잡는 모습과 유명 셀럽들이 봉화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콘텐츠를 진행하는 모습을 시간과 지역의 제한 없이 전 세계인 모두가 온라인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그동안 코로나19로 지친 국내외 모든 사람에게 은어축제의 우수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상세한 축제 운영 프로그램 소개와 참가방법은 온라인 봉화은어축제 공식 홈페이지를(http://www.bonghwafestival.or.kr) 통해 확인할 수 있다.또한, 드라이브 스루를 통한 은어구입도 가능하다. 축제기간 중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봉화읍 내성대교 하단 내성천 방류조 일원에서 1kg당 1만원에 은어를 구입 할 수 있다.올해 봉화은어축제는 비록 가족과 친구 연인과 함께 내성천에서 직접 체험을 하며 즐길 수는 없지만, 온라인 봉화은어축제를 통해 어렵고 힘든 코로나 시대에 즐겁고 유익한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해 보시길 바란다.온라인 축제라는 낯선 시도인 만큼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겠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축제와 대규모 행사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새로운 축제관광트렌드를 주도하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축제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곧 있을 제22회 온라인 봉화은어축제에 전 국민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라며, 내년에는 부모님과 함께 내성천에서 은어를 잡으며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2020-08-02

오! 신발짝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젓가락, 가위 같은 물건은 짝이 있어야 제구실을 한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신발짝이라 불린다. 신발은 경제발전의 척도다. 아직도 아프리카 오지나라나 지구촌 구석에는 맨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해방과 6·25 전란 이후에 고무신 패션이 주류를 이루었다. 중장년층은 백고무신, 조무래기들은 검정고무신이다. 생필품인 고무신이 부정선거 현장에서 공공연한 사은품으로 나돌만한 이유였다. 낡은 미제 군화는 전란이 남긴 캠퍼스의 가난한 낭만이다.어린 시절 한 동안 검정고무신을 사계절 신고 다녔다. 여름철은 제격이다. 개울가를 건너거나 비가 오더라도 툴툴 털거나 말리면 된다. 발등 부분은 박세리의 발등, IMF의 시름을 한방에 날릴 때 보여준 선명한 흑백의 대비가 생긴다.겨울은 괴로운 계절이다. 발등을 아리는 찬 공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질기고 값싼 탓에 자식 많은 집에서 아이들 생필품으로 딱이었다. 부동의 자리를 지킬 줄 알았던 고무신은 ‘잘살아보세’ 기치아래 전 국민이 허리띠 졸라맨 노력의 결실로 운동화와 구두가 등장하며 명을 다하게 되었다. 새로 등장한 운동화는 온갖 기능들이 장착된 지금의 브랜드 운동화와는 천양지차 품질이다.새신을 신고 팔짝 뛰는 대신에 날아오는 축구공을 되받아 차다가는 조악한 헝겊으로 된 신등이 처참하게 찢어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부모님의 성난 얼굴이 말풍선이 되어 머리위에 떠오르는 부작용은 뒷감당이 불감당이다. 그래도 명절이면 연례행사처럼 받을 수 있는 운동화 한 켤레를 이불 속에 안고 행복감에 젖어 잠들곤 했다. 요즘 세대들은 조선시대 짚신 신은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고무신의 장점이 운동화의 단점이다. 물로 쉽게 씻던 고무신과 달리 천으로 된 운동화는 세탁이 만만찮은 일이었다. 비누칠을 해서 싹싹. 옷을 빨듯이 해야 한다. 흰 고무 테두리를 더욱 희게 하려고 치약을 살짝 발라 문지르는 비법도 구사했다.사춘기 소녀들의 맵시내기 비법일 것이다. 신발에 한 맺힌 민족마냥 신발 산업은 경제발전에서 단연 효자 종목이었다. 우리의 경제성장 상징으로 여겨지는 신발 한 짝이 날아간 일로 나라 한 쪽이 얼마간 술렁이고 떠들썩했다. 중년의 한 남자가 집에 신발이 남아돌지는 않을텐데 나라님 행차 길에 던졌단다. 나라님께 할 말이 있다는 의사표시라고 한다. 사직 당국은 테러분자의 소행으로 본 건지 구속을 시키겠다고 했다. 영장이 기각되어 영어(囹圄)의 몸 신세는 면했지만 법원의 최종판정을 받는 절차가 남았다. 신문고를 치는 북채 대신에 신발을 던진 행위라는 항변도 있다.독립운동을 한 열사에 버금가는 신발열사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폭탄이었으면 어쩔뻔했냐’며 과도하게 호들갑을 떠는 사직당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허, 허, 허’하고 너털웃음으로 사람 좋게 보였던 나라님의 관대한 아량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지 모르겠다.그런데 ‘한 쪽 발이 맨발인 상태로 연행돼갔다면 혹시 인권침해?, 워낙 인권을 챙기는 나라라서….’

2020-08-02

나의 三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늦장마로 며칠째 계속 비가 내렸다. 예기치 못한 물 폭탄을 맞은 부산과 강원 등지에서는 갑작스런 폭우에 하천 범람, 침수, 산사태 등으로 피해가 속출했고, 인명피해까지 가져와 안타까움을 더했다. 자연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나약함이 다시금 드러났지만, 철저한 대비와 적절한 대처로 피해를 막거나 최소화하는데 지혜와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간간이 소강상태를 보이기는 하지만, 여름날 장마나 소나기가 잦다 보니 농사일이나 바깥 활동에 제약이 많아진다.비 오는 날씨에 옷이나 물건을 적셔가며 마음마저 축축해지는 청승맞은 일들을 대부분 꺼리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주로 실내 활동을 하게 되는데, 옛 선비들은 기후나 시간, 계절에 따른 호기(好期)를 잡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글공부와 자기 연마에 힘썼다.이를테면 ‘비오는 날, 하루 중 밤, 일년 중 겨울’이 한가하거나 조용하거나 넉넉한 때이기 때문에 독서와 학문에 전념했다. 이른바 독서삼여(讀書三餘)가 그것이다.빗소리의 리듬에 맞춰 소리내어 책을 읽기도 하고, 쉼이나 잠을 청하는 고요한 밤시간에 명상하듯이 경서를 탐독하며, 동면하는 침잠의 계절에 시문과 기예로 내면을 채워가는 독서와 강학은 선비와 유현(儒賢)의 의례적인 관습이 아니었을까 싶다.시대의 양상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제각각 다른 현대를 살아가면서 필자는 ‘나만의 삼여(三餘)’를 즐기고 있다.즉, 독서삼여를 나의 주관과 취향에 맞춰 살리고 즐거움과 보람을 누려가며 체득한 일종의 자기 만족법인 셈이다. 나름의 특성을 살려 ‘심신삼여(心身三餘)’로 지칭한 필자의 삼여는 서예, 자전거, 교유(交遊)이다.35년여 서예에 매료돼 정진해도 아직 허접하기 이를 데 없지만, 먹과 붓과의 인연을 통해 나름 위안과 흡족을 느껴가고 있으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다만 한편의 작품 완성을 위해 고금동서의 시문을 더 많이 접하고 궁구하며 창작해야 하는데, 틈날 때마다 더 깊이 천착하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으로는 10여년 전부터 즐겨 타오던 자전거다. 그 옛날 말을 타고 주유천하 하듯이 은륜을 굴리며 전국의 강줄기와 바닷가를 누비며 자락(自樂)을 일삼고 있다. 자전거 출퇴근으로 생활 속의 운동으로 여기며 건강한 습관과 두 바퀴 여행까지 겸할 수 있으니, 가히 고마운 애마임에 틀림 없다고나 할까.마지막으로는 좋은 분들과의 교분을 통한 교유다. 어쩌면 진정한 만남은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는 담백한 물 같은 사귐이 아닐까? 남녀노소, 고하귀천없이 유유상종으로 어울리고 의기투합하면 그 자체가 그윽하고 향기로워질 것이다.장마가 주춤하던 지난 주말, 필자는 자전거를 심야버스에 싣고 상경해 임진각~인천~강화도를 주유하는 라이딩을 하며 저녁에는 친구들도 만나 회포를 푸니 넉넉하기만 했다. 거기에 어떤 친구에게는 서예작품이 쓰여진 부채까지 선물해주고 왔으니, 나만의 삼여를 실천한 셈이다.

202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