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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젊으니까 괜찮다’는 생각

코로나19 확진자는 의외로 젊은층에 많다.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20∼29세 연령 사이가 27.4%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 30∼39세 사이 10.8%를 포함한 2030세대의 확진 비율은 전체의 38%나 됐다.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은 거꾸로다. 사망자는 70∼80대가 35.8%로 가장 많다. 29세 이하는 단 한 명도 없다. 30대는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치명률은 80대가 25%, 70대 10.8%다. 30대 0.17%와 40대 0.21%에 비교하면 고연령층의 치사율은 무서울 만큼 높다.전문가들은 젊은층의 감염률이 높은 것은 자유분방한 사회활동과 느슨한 경계심을 원인으로 본다. 실제로 젊은층은 코로나에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심하지 않아 해열제를 먹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파자 역할을 한다.“젊으니까 괜찮다”는 젊은 사람의 생각이 가정으로 돌아가 부모나 조부모에게 2차 감염을 일으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WHO 사무총장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젊은이에게 특별한 당부를 했다. “당신은 천하무적이 아니다. 당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코로나19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한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가을 이후 대유행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생활방역으로 돌아선지 이틀만에 이태원 클럽 발 집단감염 발생으로 온통 비상이 걸렸다. 전국적 2차 감염 파동도 점쳐진다. 신천지 신도에 이어 클러버(클럽 애호가)가 슈퍼 감염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잠시의 방심도 허용 않는다. 공든 탑이 일시에 허물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10

진정한 경제효과에 더욱 주목하자

최근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둘러싸고 전국이 들썩였다. 물론 포항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예선 탈락에 그쳤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 ‘선정조건 자체부터 불리’ 등 탈락에 따른 자조적인 탄식과 더불어 과학자와 정치가의 시각차를 다루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개인적인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낙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굳이 포항이 우리나라 모든 과학 분야의 기초연구 기반인 가속기라는 하드웨어를 하나 더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가속기가 들어서더라도 여전히 포항은 3세대 원형(방사광)과 4세대 선형(XFEL)가속기를 보유한 국내 최고의 가속기 집적지다. 경주의 양성자가속기까지 가세한다면 포항 경주 지역은 세계적인 가속기클러스터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포항시를 비롯해 지역 각계가 이번 차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유치에 정성을 쏟은 것은 국가과학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순수한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이 가속기 건설에 따른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라는 ‘경제’에 더 주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속기 건설에 따른 경제효과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측면의 경제효과가 있다. 우선 가속기 건설에 필요한 장치의 제작과 설계, 기술 등을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매출이 바로 공급 측면에서 파급되는 경제효과다. 그리고 수요측면에서는 바이오, 의료, 건설, 생활, 철강, 소재금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원형에서 가속하며 튀어나오는 빛(방사광)이건, 직선에서 가속하여 X선 자유전자 레이저(XFEL) 빔이건 가속기를 가동하여 나오는 빛의 투과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여 산업에 접합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경제효과가 있다. 가속기 건설의 경제효과가 여타 다른 사업에 비해 크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는 대체로 공급 또는 수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경향이 크지만 가속기는 양 측면에서 경제효과가 광범위하게 파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가속기가 국가기초과학기술의 발전에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것은 보너스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는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전혀 부풀려진 수치는 아니다.그렇다면 그동안 포항이 심혈을 기울여 유치하여 건설, 가동하고 있는 3세대 원형가속기와 4세대 선형가속기를 통해 과연 당시 기대만큼 어느 정도 경제효과를 거두었을지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대규모 국책건설사업의 유치에 공을 들이지만 기간시설의 건설과정에서 고스란히 경제효과를 지역이 누리려면 반드시 전제가 뒤따른다. 일단 2016년 가동을 시작한 축구장 50배 면적에 국내에서 길이가 가장 긴 1.1킬로미터에 이르는 단층 건물로 만들어진 이른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살펴보자. 과연 그렇게 넓은 면적과 수 백억원의 자금을 제공한 포항에서 지역 건설업체나 철강업체가 가속기 건설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지역산 철강재가 어느 정도 투입되었을까. 아마도 생각만큼 그 비율은 높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경 필자는 ‘포항의 가속기클러스터사업 추진현황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요지는 간단하다. 이 가속기 건설 당시 주요 장치를 신규개발하고 국산화하였던 업체들이 손 놓고 있지 않도록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여 소형화, 국산화, 고기능화를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내의 주요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용 가속기 대부분이 수입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제공 가능한 의료용 가속기의 국산화 추진 등을 통해 공급 측면에서의 경제효과를 확대하기 위한 가속기 생태계를 조성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이 기업들이 성장해왔다면 다른 지역에 가속기가 건설되더라도 최신 기술력과 가속기 건설 경험을 지닌 이들이 당연히 참여하게 될 것이고, 포항에 부가가치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있다.수요측면이야말로 가장 기대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포항의 가속기를 이용하여 보다 가시적으로 지역 내에 혁신적인 기술이나 신제품을 개발하여 창업한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특허와 연구성과는 적지 않았다. 수천 편에 이르는 연구논문 중에는 네이처지의 표지를 장식한 것이 있을 정도로 높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가속기가 우리나라 과학발전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정작 포항경제를 윤택하게 할 신제품의 개발과 창업이 이루어져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은 아직 알고 있는 것이 없다.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어떠한 국책사업을 유치하려 하였을 때 외형적인 경제효과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총 건설금액이 아무리 크더라도 지역업체가 참여하지 못하면 그저 공사하는 동안 먼지만 날아오고 지역의 아름다운 산만 없어지고 환경만 훼손시킬 뿐이다. 진정한 경제효과는 사업비의 다과에 있지 않다. 사업 시행에 과연 우리 지역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지부터 계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역량이 부족하다면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역량을 키우거나 역량이 되는 업체를 조건부로 끌어들인 다음에 유치하는 꼼수도 필요하다. 지역경제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국책사업은 과감하게 포기할 필요도 있다. 이번 가속기 유치문제도 비슷한 사례다. 주요 언론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에 동참하여 자괴감에 빠져 마치 포항이 버려진 양 침울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다시 한번 국가 기초과학발전에 포항이 이바지하겠다고 손을 들었지만 다른 지역에 양보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오히려 이미 포항은 아름다운 강산을 희생하면서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통해 국가 기초과학발전에 넘칠 만큼 이바지해 왔다고 자부해도 좋다. 단지 그것을 이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한 기업들 가운데 포항에 소재한 기업이 많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여러 가속기를 한곳에 모아두면 분명 시너지효과는 있다. 연구원들이 멀리까지 발품을 팔 필요도 없고, 협업하는데도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가속기 기반 연구가 24시간 가속기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지역에 있더라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데다, 온라인 화상회의도 있어 연구 활동에 제약은 그리 크지 않다. 그보다는 가속기 기반 연구가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의 창업으로 연결될 것인지다. 또 지역에서 성공한 기업을 모델로 국내외에서 우수 인재들이 모여들어 가속기 기반의 신약, 신기술, 신제품을 연구 개발할 것인지다. 이들이 포항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솔직히 국가 기초과학기술의 진보는 중요하나 굳이 포항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만이다. 가속기가 어디에 건설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속기 기반의 연구 결과가 얼마나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것인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미 포항이 보유하고 있는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기반으로 지역의 청년, 과학자, 연구원들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잘 보살필 필요가 있다. 그들이 포항에서 창업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혁신형, 기술형, 고부가가치형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진정한 경제효과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5-10

대한민국의 건강을 지키는 국민건강보험

박무근 건강보험공단 대경본부 행정지원부장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31번 환자가 발생한 후 어느덧 3개월 가까이 지났다.7일 기준 대구지역 신규 확진자가 5일 연속 0명을 유지하며 안정세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따뜻해진 봄기운처럼 대구·경북 지역에 조금이나마 회복의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코로나19 확산 초기 대구·경북지역은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났고 지역 주민과 공단 근무 직원들의 불안과 동요가 적지 않았다.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행동지침,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 그림판 등을 제작해 정기적으로 직원 교육을 하고, 지역 영세사업장과 공공기관에도 그 내용을 함께 공유했다.무엇보다 지사를 찾은 고객과 직원 안전을 위해 유증상자 상담을 위한 선별민원실을 별도 운영하고, 대구 공공기관 최초로 지사 민원대에 투명 아크릴 가림막을 설치해 지역감염 예방에도 앞장섰다.또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된 대구와 청도지역부터 선제적으로 2교대 순환 근무를 시행해 범국민적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이런 노력 덕분인지 직원들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으며, 지사를 찾는 지역 주민들도 발열검사와 손소독제 사용 등 공단의 감염 예방 노력에 안심하고 민원실을 이용하고 있다.국민건강보험은 국민의 평생 건강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이번 코로나19 상황 극복을 위해 이렇듯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무엇보다 코로나19 치료비는 건강보험이 80%를 부담하고, 나머지 20%를 정부가 부담해 중등도 환자의 경우에는 전체 치료비 약 1천만원 중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0원이다. 미국의 코로나19 평균 치료비는 4천300만원 수준에 이르며, 민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면 이 금액을 본인 모두 부담해야 한다.우리나라가 이번 코로나19 상황을 일찍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렇게 정부의 빠른 정책 결정과 우수한 의료진, 수준 높은 시민의식과 함께 더불어 국민건강보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국민건강보험은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앞으로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19 상황을 대비해 국민의 평생건강 지킴이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0-05-07

보수가 나아갈 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보수야당 미래통합당의 미래가 막막해 보인다. 더구나 4·15총선에서 과반의석도 지키지 못한 통합당을 전폭 지지한 대구·경북민들은 더욱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돈이 될 만한 4차산업 중점사업들은 모조리 호남지역이나 충청지역으로 배정되고 만다.차세대 다목적방사광 가속기 후보지로 신청한 포항지역이 탈락하고, 전남 나주와 충북 청주가 후보지로 선정된 것이 이같은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한다. 호남지역이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니 말할 게 없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자처하는 충청권에도 그럴듯한 국책사업을 유치하는 실적으로 표심을 끌겠다는 복안이 깔려있어 보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방사광가속기와 관련, 경북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긴급 미팅을 갖고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힘써줄 것을 요청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경북지역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후보지 탈락 직후 이 지사가 밝힌 입장문에서도 잘 드러난다.우리 지역은 1994년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건립된 이후 25년간 가속기 운영에 필요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원 등 가속기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새롭게 유치된다면 명실공히 가속기 클러스터 구축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었다. 정부에서도 오로지 국가 과학기술연구와 산업발전을 고려한다면 경북 포항이 최적지가 될 것이란 점엔 동의했으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러니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결과라는 심증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이 와중에 임기완료를 앞둔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7일 기자간담회에서 통합당의 가장 큰 패인은 정권의 현금 살포였다고 주장했다. 심 원내대표는“선거 이틀 전부터 아동수당을 40만 원씩 뿌려댔고, 코로나 지원금을 4월 말부터 신청하라며 대통령부터 나서서 100만 원씩 준다고 했고, 기획재정부에서 50%로 잡았던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며 “앞으로는 모든 선거를 앞두고 정책과 제도의 이름으로 공식적인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이어 어설픈 세대교체를 앞세운 공천 실패와 막말 파문, 황교안 전 대표의 리더십 등을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지난 6일 무소속 윤상현 의원 주최로 열린‘4·15 총선 평가와 야권의 향후 과제’세미나에서 도 보수야권의 패인이 거론됐다.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자유’를 중요시하는 보수 세력이 왜 인권 자유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진보진영의 전유물인 것처럼 넘겨줬느냐고 질타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보수가 나아갈 길은 진보의 가치를 배격하는 게 아니라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가 가야 할 제3의 길은 진보 우파라는 것이다.보수의 참패에는 이유가 있다. 해답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제시된 해답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게 보수의 가장 큰 딜레마다.

2020-05-07

한국의 食문화

조선시대 때는 양반들이 먹고 남은 잔 밥은 그 집 하인이나 노비들이 물려받아 먹었다. 이를 물림상이라 했다. 왕궁에서도 임금님 수라상에 차려진 음식이 남으면 물림상이라 하여 궁궐 내 하인이나 관리들이 가져간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특히 임금님이 드신 음식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만큼 왕의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통했다고 한다.우리 조상들은 음식을 나눠 먹는 자체를 믿음과 정(情)의 표현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상차림도 상이 휘도록 했다. 위생적 측면의 고려는 없다. 밥상 한가운데 반찬을 두고 여러 사람이 젓가락질을 하며 식사하는 것은 오랜 우리의 전통문화다.특히 찌개는 밥상 가운데 놓아두고 여러 사람이 자기가 먹던 숟가락으로 휘저어가며 먹는다. 외국인의 눈에는 이런 식문화가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개인별로 밥과 반찬을 따로 주는 일본의 식문화와 비교하면 상차림에서 먹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식문화는 독특하다 할만하다.코로나19 사태 이후 나타난 새로운 변화를 우리는 뉴노멀이라 부른다.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지칭하는 말이다. 향후 우리의 일상에서 많은 변화를 예고한 용어라 하겠다.우리의 식문화도 변화 중 하나로 꼽힌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한 비위생적 식문화의 개선은 불가피하게 고쳐야 할 관습이다.보건당국은 코로나19가 공기 중 비말뿐 아니라 식사 중에도 전염이 가능해 음식을 각자 접시에 덜어 먹도록 권장하고 있다. 상당수 직장과 요리 집에서도 각자가 반찬을 덜어먹는 방식을 채택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종래와 같은 방식의 식문화가 주류다. 우리의 식문화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07

코로나 캠퍼스 풍경

5월 초까지 ‘비대면’수업을 하자던 방침은 이번 학기 내내 비대면을 유지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나라들 상황 보면서 모두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5월 첫 날은 메이데이다. 그래도 학교에 나가 뭔가 일을 해보려 한다. 점심 지나 학교 캠퍼스에 당도하니, 녹색 5513번 시내버스 몇 대가 외부 차량 출입을 막고 있다. 5월 5일까지는 외부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생활방역으로 옮겨가겠다 하던가?예년 같으면 3월부터 학생들로 붐볐어야 할 캠퍼스다. 그러나 모든 것이 스톱에 가까워졌다. 신입생 환영회도, 개강 모임도, 전체 교수 회의도 생략, 외국인 유학생 심사도 화상으로, 답사 행사도 2학기로 미루었다. 학교에 나와도 어딘가 쓸쓸한 기운이 감돌곤 했다.공휴일의 캠퍼스를 천천히 걸어본다. 오늘은 캠퍼스에 붙은 산 계곡을 올라가 볼 작정이다. 산은 언제라도 좋다. 벚꽃, 목련꽃, 진달래꽃 다 지고, 철쭉 한창인 위에 산복숭아꽃 수줍고도 옅은 빛이 그늘진 산 계곡에 하늘하늘 드리웠다.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비대면 수업은 별로 좋지 않았다. 비대면이란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는 것이니, 화상 회의 어플을 가지고 수업들을 한다. 내가 사용한 것은‘줌’이라는 것인데, 다들 이걸 쓰는 기색이다. 미국 것인데 뭔가가 중국을 경유한다던가? 위험하다, 보안이 취약하다, 말들 많다.인터넷 인공 세계는 쏠림이 심하다. 한국산 ‘구루미’도 있다지만 한번 밀리면 상황 바꾸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더러 ‘스카이프’도 쓰기는 쓰는 모양.산 그늘진 계곡 따라 걷는 길이 호젓해서 좋다. 아직 몹시 가물다. 물 마른 계곡 바위 사이로 건너 건너 오른다. 요즘 일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선거는 끝났고, 그러고도 어딘지 개운치 않고, 코로나19가 확진자 0에까지 다다른 게 천만다행이고, 북한의 수령은 살아 있었다던가? 이천에서 일어난 끔찍한 화재는 이 나라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비대면 수업은 말 이상의 의미 전달이 어려운 방식. 듣고는 있는지, 의사는 통하는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다른 친교 표현들, 유머조차 여간해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2,30분만 지나도 긴장과 스트레스가 차는 것이 꼭 요즘 세상 같다고나 할까.계곡을 내려오니 마음은 나아졌건만 하늘은 아직도 잔뜩 찌푸렸다. 비라도 왕창 내리고 다 새로 시작해야 할 테다. 그러면 하늘이 새로 열릴 것 같다고 생각한다. 천만다행, 코로나19에서 벗어나고 있건만 뭔가 어딘지 석연찮기만 하다. 이 돌아가는 세상이 말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5-07

건강한 삶, 성인지 관점에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건강한 삶은 생애주기별, 연령별, 성별에 따른 특수한 요구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건강과 관련한 정책을 추진할 때 성별 욕구를 반영하는 성 중립적인 관점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책집행 과정과 결과에서 성별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몰성적인 정책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건강관련 사업추진시 남성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으로 보인다.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농어촌 지역이 많은 지역 특성과 남녀간의 생활문화의식의 차이가 한 원인일 것이다. 여성의 경우 가정, 이웃 등 생활문화 적응이 생애주기별로 비교적 유사하게 나타나는 데 비해 남성 특히 장년층 남성들의 생활문화 부적응은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노년층의 여가생활 이용과 관련해서 사회단체나 문화센터 등에서 제공되어지는 건강프로그램 이용도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마찬가지로 보건소의 각종 프로그램들의 이용에 있어서도 남성들의 참여는 저조하게 나타나며 실제 생활터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일지라도 남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기가 쉽지 않게 나타난다.또한 여성이 비만이나 영양사업의 경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반하여 남성은 생활습관의 변화를 쉽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이 남성의 자발적 참여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 모두 질병 예방에 대한 관심은 상당하며 성별 특성을 고려한 양성평등 관점에서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여성은 임신, 출산, 수유 등 남성과는 생애주기상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성별 특수성을 반영한 건강정책이 필요하다.성별 특성을 고려한 건강정책을 위해 무엇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먼저, 기초적으로 건강정책과 관련한 분야별 성별 통계를 생산하고 활용, 성별을 고려한 성인지 예산을 배분하여 성별격차 해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둘째, 지역별로 건강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성별에 따른 현실과 요구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셋째,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성별 욕구를 파악해야 할 것이며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남성에게는 건강프로그램의 다양성 및 의식 전환, 남성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운동기구 및 의료장비 보완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넷째, 건강프로그램 홍보는 성별을 고려하여 생애주기별, 생활터별로 어느 정도 수혜 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기존 이용자나 주변인의 권유로 건강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수이다. 남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 및 인터넷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건강정책 입안에서부터 정책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반의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실무담당자들에 대한 양성평등 및 성인지적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남녀 모두의 참여와 정책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정책에 적용 가능한 양성평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성인지 정책의 이해도를 증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책결정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상이한 경험과 요구가 균형적으로 반영되기 위해 성인지적 관점을 지닌 남녀 전문가의 균형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2020-05-07

대학가 커닝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970년대 정치적 데모가 매일 계속 되던 시절 학교 앞 광장에 수백명의 학생이 모였다. 그런데 한 학생이 일어나 “시험시간에 커닝하는 사람은 여기서 나가달라. 우리 자체가 부정 없이 순수해야만 정치권의 부정을 규탄할 수 있다”라고 외쳤다.필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이다. 그 시절 그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던 순간이 기억난다. 70년대는 대학가의 시험 커닝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정치적인 부정과 독재에 항거하면서도 그 자신은 커닝으로 시험을 치르는 모순된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 그 후 5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대학가의 커닝은 지속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커닝(Cunning)은 원래 “교활하다”는 뜻인데 일본식 영어로 시험부정을 일컫는 말로 한국에서는 통용된다. 미국식 영어는 치팅(Cheating) 이고 커닝이라고 하면 미국인은 알아듣지 못한다. 28년 포스텍 재임 기간 중 시험 커닝이 없는 깨끗한 캠퍼스를 경험했다. 포스텍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처럼 어너코드(Honor Code·시험치기전 양심선언)가 있어 커닝없는 시험을 치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대학가 커닝은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건 확실해 보인다.그런데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온라인 교육으로 시험 커닝 문제가 다시 대학가 이슈로 부상했다. 온라인 시험인 점을 이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려는 학생들이 생기자 학교와 교수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교수들은 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커닝자제를 촉구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대리 시험을 모의한다는 제보를 받고 제자들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시험만은 감독을 할 수 있도록 강의실에 모여서 치루겠다는 교수들도 많다. 정당하게 시험보는 양심적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일부 교수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고자 ‘스피드퀴즈’ 형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온라인 시험에서 빨리 문제를 풀어 답안지를 제출할수록 가산점을 주기로 하는 것이다.자신이 공부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고 또 그 평가 결과를 토대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시험의 올바른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학점이 취업, 진학 등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커닝에 대한 유혹은 계속 될 것이다. 커닝은 불법행위이다. 해서는 안 될 행위이다. 젊은이들은 “공정한 사회”를 늘 주장한다. 그런데 커닝은 공평한 평가를 방해하는 것이며 공정한 사회를 그르치는 것이다.“제도는 사람을 유혹한다”는 말도 있다. 따라서 교수들은 공정한 평가가 유도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학생들이 커닝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은 그들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커닝과 같은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자명하다.사상 유례없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도 공정한 사회의 꿈은 커닝없는 캠퍼스에서 시작 되어야 한다.

2020-05-07

가정의 달에

김병래시조시인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가족은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다.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에서 밝고 안전한 사회가 비롯되는 이유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의 일원이 된다.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성장기간이 긴 사람의 자식은 20년이 넘도록 다른 가족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사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가족과 가정은 사람의 성장환경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길러져야 원만한 인격체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바뀌면서 가족의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3, 4대가 한 집안에 모여 살던 대가족에서 소가족 혹은 핵가족의 형태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가족 간의 유대나 역할도 적잖이 변했다.특히 요즘 들어서는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나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인식들에 현격한 변화를 가져왔다.아예 결혼을 포기하거나 이혼율까지 높아지면서 가정의 붕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상치 않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물론 인성이나 가치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갈 징조마저 보인다. 시대에 따른 불가피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할 것 같다.20세기에 들어 우리 민족의 가족사에는 크나큰 비극이 있었다.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 전쟁으로 생이별한 천만 이산가족의 상처와, 헐벗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수많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아픔이 그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이산의 당사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가족이 많은 것 같다.갑질과 분노조절장애를 대물림한 듯한 행태를 보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느 재벌가의 가족이나,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서는 거짓과 부정도 서슴지 않는 유명 교수 부부의 가족들이 그랬다.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족들도 모두 일그러진 가족상을 보여주고 있다.가족이기주의를 가족 사랑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 자식 내 가족을 위해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이나 비리도 불사하겠다는 사고방식이 결국에는 자식들과 가정을 망치게 하는 경우도 흔하게 본다.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은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물질만능과 출세지향적인 가족이기주의가 재산문제로 형제끼리 이전투구를 벌이고 심지어는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참극을 빚기도 한다.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가족과 가정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이십여 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은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성장의 조건이기 때문이다.비뚤어진 가족애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진정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라야 가정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굳건한 기반이 될 것이다.

2020-05-06

BBC가 민족 정론지?!

김규종 경북대 교수한국인들 사이에 ‘BBC가 민족 정론지’라는 말이 유행한다. 코로나19가 지구촌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외국의 주요언론은 한국정부의 민주성과 투명성 그리고 강력한 진단역량에 주목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반면에 ‘조중동’ 같은 신문은 ‘우한 코로나’와 ‘중국인 입국금지’ 같은 후진적인 행태로 일관해 수준 높은 독자들의 질타(叱咤)를 받았다. 아직도 극우 유튜브 수용자들과 낙후지역 독자들은 이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한국 독자들이 외신을 신속하게 번역하여 SNS에 올리는 일이 일상화된 세상에 우리는 살아간다. 정보통신 강국의 국민답게 한국인들은 세계적인 문제와 동향 그리고 사실관계를 판단하면서 더는 보수신문을 믿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강화된 시기는 2019년에 아베 정부가 수출규제를 시작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한국정부가 강력한 대응에 나서자 보수지들이 앞다투어 일본에 고개 숙이라는 논조(論調)를 펼쳤던 그때 국민은 대거 그들을 버렸다.2020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세계 42위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31위를 기록했지만,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70위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해 언론자유가 후퇴한 대표국가가 되었다. 한국의 보수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선진국’ 미국과 일본의 순위는 45위와 66위다.언론자유지수가 전임정권과 비교해 현저히 상승하고 있지만, 언론인들의 수준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인 듯하다. 그 결과 ‘BBC 민족 정론지’ 주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참 우울한 일이다. MBC 피디 출신인 정길화 아주대 교수는 한국언론의 문제를 조급성, 전문성 부재, 정파성(政派性)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남보다 앞서 기사를 송출해야 한다는 성과주의가 만들어낸 조급성은 기사의 신뢰도를 낮춘다. 인터넷상에 올라온 기사에서 우리는 비문(非文)과 틀린 맞춤법으로 범벅된 경우를 너무도 자주 찾아낸다. 전문성 없이 글을 쓰다 보니 기사의 내용과 질이 저급할 수밖에 없다. 저질 유튜브나 찌라시 수준을 넘지 못하는 기사도 적잖다는 얘기다.정파성은 정당과 인물 그리고 지역을 특정해서 당위론적으로 기사를 제작하는 행태를 말한다. 기자가 속한 집단과 출신에 기초하여 색안경을 끼고 대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나날이 강고해지고 있다. 공정과 신속, 정확성과 무정파성을 전제로 해야 함에도 언론사와 종사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의 소명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닌가.외신이 늘 옳다는 주장은 당연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모든 나라에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민족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언론마저 해외직구 해야 하나’라는 자조적(自嘲的)인 말이 떠돌고 있음은 우려스럽다.그러하되 한국에도 BBC 같은 정론지가 나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2020-05-06

어머니의 뜰

어머니는 아직도 혼수방에 나가십니다. 그곳에서 당신 노년의 뜰을 가꾸듯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십니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에게 바느질은 벅찬 노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오남매 어느 누구도 애써 그것을 말리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손끝이 평생 바지런함과 친구해왔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소일거리가 있다는 게 당신 여생의 활력과 건강을 위해서도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한창 때의 체력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천성이 밝고 재바른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 앞에서 당신 건강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지요.그해 봄, 혼수방으로 일 나가시는 어머니의 배웅은 노환과 병색으로 힘든 아버지 차지였어요. 이른 아침을 드신 어머니가 집을 나서 지름길인 방죽계단으로 올라섭니다. 겨울 뜰에 버려진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아버지가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 따라 나섭니다. 둑방 아래 금호강에서는 풀어헤친 여인의 속치마처럼 물안개가 솟아올랐지요. 어머니는 물안개에 떠밀리듯 방죽길 속을 잰 걸음으로 걸어가셨지요. 안개 속 희미한 실루엣을 한 어머니는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아버지를 향해 ‘어여 들어가라’는 손사래를 치곤했지요. 어머니가 먼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요.연민과 구차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이런 익숙한 아침 풍광을 지켜보던 나는 은밀한 가출을 꿈꾸곤 했어요. 원하던 대로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날 때, 잔정 많은 병든 아버지는 우셨지만 날개를 꿈꾸던 저는 마냥 웃었어요. 남은 밭뙈기까지 팔아 아낌없이 결혼자금을 마련해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같은 건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철없는 탈출이었지요. 그렇게 막내인 저를 마지막으로, 우리 오남매는 콩깍지를 벗어난 콩처럼 통통 분가를 하고 새로운 식솔들을 거느렸지요.어머니가 없는 온 낮을 아버지는 혼자 견뎌내야 했어요. 안방 윗목, 아버지 손끝에서 바스락대선 약봉지들 소리를 신호삼아 천식 앓던 당신의 기침소리가 고요히 퍼져나가곤 했지요. 지루함을 견딜 수 없을 때, 아버지는 노구를 이끌고 바로 집 앞 방죽으로 올라갔어요. 그곳은 또 다른 아버지의 뜰이었지요. 아버지는 멀리 강물을 바라보곤 했어요.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강물 위로 종달새가 낮게 날아다녔지요. 아버지는 방죽 위에 쪼그리고 앉아 까불대는 종달새의 생기발랄한 지저귐을 부러운 듯 바라보곤 했어요.아버지는 그해 마지막 이승의 봄날을 당신만의 뜰에서 그렇게 적요와 쓸쓸함으로 버텨내고 있었지요. 저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안부전화조차 자주 하지 않았어요. 칙칙하고 병약한 아버지의 하루가 까닭 없이 설레는 제 신혼생활에 방해가 되는 게 싫었던 거지요.김살로메소설가어스름 저녁, 긴 방죽을 따라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면, 아버지는 다시 어머니를 마중하러 둑방 계단을 올라서곤 했지요. 멀리 도심의 화려한 불빛을 지고 어머니가 돌아오십니다. 아카시아꽃잎처럼 머리칼에 핀 몽실몽실한 솜먼지가 어머니 노동이 얼마나 고되고 또한 아름다웠는지를 말해줬어요. 아버지는 말없이, 풍성한 어머니 머리카락 사이에 피어난 솜꽃을 하나하나 떼어내 주셨지요. 그 모습은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에 남아 쓸쓸하게 서로를 보듬는 겨울새 한 쌍 같았지요.아버지는 그해 오월을 넘기지 못했어요. 수선스러움도 없이 너무도 고요하게 돌아가셨어요. 늘어난 약봉지만 남긴 채 쓸쓸하게 떠나신 아버지를 부르며 저는 목 놓아 울었어요. 너무 늦은 후회만큼 쓸 데 없이 큰 울음이었지요.친정집을 둘러봅니다. 어머니 없는 무료한 낮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흔적들이 좁은 뜰 곳곳에 보입니다. 담장 밑을 손수 파고 심은 넝쿨장미는 온 담장을 휘감아 지붕까지 뻗어 있습니다. 방죽 위, 당신만의 뜰에서 쪼그리고 앉아 캐내왔던 어린 유도화는 어김없이 여름이면 붉은 꽃잎을 말아 올립니다. 지천에 널려 있던 나팔꽃씨를 받아 화분에 키우던 분도 아버지셨지요. 아버지의 나팔꽃은 지금껏 봄이면 싹을 틔워 가을이 질 때까지 옥상 난간을 휘감곤 하지요. 나팔꽃이 얼마나 순하게 싹을 틔우고 얼마나 부드럽게 꽃을 피우는지 아버지 덕에 알게 되었어요.아버지가 안 계시는 지금도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십니다. 당신 신성한 노동의 뜰에서 잠시 지치면 어머니는 가만, 아버지의 시간을 추억해낼지도 모릅니다. 방죽 위, 그 쓸쓸했던 아버지의 그림자와 목소리와 눈빛들. 머리칼에 핀 작은 솜꽃을 떼어내 주던 아버지의 손길을 그리며 말없는 미소를 지으실 거예요.

2020-05-06

같지만 다른 봄

강길수수필가마스크를 쓰고 철길 숲 산보에 나섰다. 봄을 타는지 몸이 나른해서다. 늘 가던 코스 따라 초등학교를 가로지르려 열린 문을 들어섰다. 교사(校舍) 앞 화단에 선 매실나무는 열매가 토실토실 도토리만큼이나 컸다. 옆의 능금나무에는 하얀 꽃잎이 자태를 뽐내며 일부 꽃은 지고 있다. 어느새 봄이 매우 짙어졌다.저만치 떨어진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만 외롭다. 사람이라곤 그 앞으로 쓰레기 정리하는 분 한 명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휴일이면 제법 많은 이들이 운동장을 걷거나, 녹지의 쉴 곳에서 삼삼오오 이야기꽃이 피어나곤 했었다. 이 교정(校庭)은 주민들의 운동과 휴식, 소통의 공간이었다. 한데, 지금은 텅 비었다.웬일인지 입구 반대편 출구의 문이 잠겨 있다. 전엔 문이 없던 곳인데 최근 설치되었다. 화급하다면 넘어갈 수 있을 높이의 자바라 차단문이다. 하지만, 평상시는 사람이 해선 안 될 행동이다. 철길 숲에 가려면 할 수 없이 돌아가야 한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오늘은 그냥 학교 구내를 몇 바퀴 돌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한적한 봄 교정을 이것저것 바라보며, 그들과 마음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교사 한 바퀴를 돌고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왼쪽 나무 곁 잔디밭을 굴렁쇠 형으로 동그랗게 파 엎어 잔디 뿌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뒤집어 놓았다. 뒤집힌 잔디 뿌리와 흙이 이랑, 파인 자국은 고랑이 되었다. 클로버의 증식을 막기 위한 조처임을 금방 알아챘다. 클로버는 졸지에 커나갈 자기 땅을 차단당하고 말았다. 이 숨 막히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로버는 짙은 녹색 봄옷을 바람에 팔랑이며 나비로 춤추고 있다. 둘러보니 잔디밭 다른 쪽에도 그렇게 차단한 곳이 여러 군데다.저 클로버들은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언젠가는 작업자가 뽑아내거나, 제초제의 공습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곳은 클로버를 뜯거나 캐낸 흔적도 보인다. 자연의 뜻과 사람의 뜻이 상충하는 현장이다. 자연은 잔디와 클로버가 어우러져 한 땅에 사는데, 사람의 눈과 마음은 그 아울림을 용납할 수 없나보다. 잔디와 클로버가 어우러져 사는 모습도 달리 보면 아름다울 수 있을텐데 말이다.문득 우리나라와 지구촌의 지금 모습도 바로 저렇다는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19의 전염을 막으려 나라 간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고, 국민에게 사회적 격리의 삶을 강제하고 있다. 그 확진자들은 병원이나 시설에서 격리치료를 받거나, 자택격리를 당하며 산다. 미 감염자도 외출 시 꼭 마스크를 쓰고, 사람 모인 곳 안가기, 사회적 거리 두기, 손 씻기 등의 실천을 요구받고 있다. 귀여운 우리 두 손자도 꼼짝없이 자기 엄마들과 집에 갇혀서 이 봄을 지낸다.벚꽃이 피었을 때, 세 살짜리 손자 녀석과 그 아빠와 인근 주택단지에 조성된 벚꽃 길을 처음 드라이브 스루를 한 적이 있다. 차창 밖으로, 예전과 같지만 다른 봄이 와락 달려들었다. 이어, 드라이브 스루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는 장면도 처음 겪었다. 주일예배를 자차 안에서 드리는 교회도 있다. 코로나19 감염검사도 워킹 스루 방법으로 한단다. 분명 자연은 같은데. 사람이 다른 봄이다.잔디밭에 만들어진 클로버 차단 이랑과 고랑이, 꼭 우리 사회와 지구촌에 만들어진 전염 차단 망(網)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코로나19란 괴상한 전염병 확산이 정말 박쥐에서 비롯된 자연현상일까. 만에 하나, 사람이 만든 것이 개입되어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우리가 어찌 살아내야 할지 깊은 걱정이 앞선다.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본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신록에 생명의 오라(aura)가 뿜어 나오고 있다. 첨단과학 시대를 사는 인류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코로나19 격리의 올봄을, 그 불행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방역 당국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좋은 봄날 신록의 교정을 걷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분들이 마냥 고맙다.

2020-05-06

터널은 빠져나갈 때가 더 위험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사뭇 긴 터널이었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모두 긴장하였다. 감염위험을 가까이 두고 아슬아슬하게 지낸 몇 달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텅빈 도시와 썰렁한 교실, 손님없는 음식점과 관객없는 극장은 현대 문명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지는지를 보여 주었다. 위기 앞에 유난히 강한 국민은 이번에도 어려움을 극복하는 슬기를 보여 주었다.세계가 놀라는 여러 기록을 남기며 우리는 서서히 위기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학교가 문을 열고 학생들을 맞는다. 장터에 활기가 넘치고 휴가 행렬에 다시 봄기운이 돋는다. 신규확진자 발생이 현저히 줄었으며 뉴노멀(New normal)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세계는 아직 몸살 중이지만, 대한민국은 터널을 빠져나가는 중이다.이래도 되는가 싶다. 북적이는 도심이 돌아오고 사람 많은 공원을 다시 만나지만, 벌써 이래도 되는가 걱정이다. 국내는 진정국면이라 해도 다른 나라들 상황은 아직 어렵다. 감염 추세가 한풀 꺾였던 싱가포르에 코로나19가 다시 무섭게 번지는 걸 보아도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개발도상국가들에 새롭게 번져가는 양상도 또 다른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집안에 웅크렸던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니 반가우면서도 혹시나 싶은 걱정이 마음에 걸린다.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 과제가 보이지만, 모든 문을 활짝 여는 일은 너무 이르지 않을까. 아이들을 등교시키면서 부모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여야 할까. 지역의 오일장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들일까. 동굴처럼 길었던 격리된 일상이 자연스럽지 못하긴 해도, 헤쳐나온 터널 끝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세상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 하지 않는가. 생활 속 거리두기와 상대방 배려하기, 온라인교실과 원격소통방식, 달라질 공연과 스포츠문화,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 다가올 세계질서와 판도의 재구성, 사이버와 온라인의 본격적 자리매김, 달라질 소비문화와 변해갈 레저환경, 급변할 경제환경과 이미 달라지는 외교관계, 급변할 의료환경과 질병 간 우선순위, 글로벌 소통과 협력양태의 변화, 시민들이 새롭게 새길 국가의 역할, 변해갈 사람 간 관계형성과 유지방식, 다르게 해석해야 할 과학문명의 의미와 새롭게 평가해야 할 자연환경의 가치, 노동시장과 상거래방식의 변모.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남길 생각거리와 담론과제가 차고도 넘친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양이면 사려깊게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터널은 빠져나갈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총, 균, 쇠’에서 총이 대변하는 전쟁과 쇠가 상징하는 문명과 함께 균으로 표현되는 질병이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왔다고 하였다. 겪고 보니 바이러스가 전쟁이나 문명보다 의미심장한 변화를 불러오는 게 아닌가. 터널을 잘 빠져나가야 한다. 터널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터널 밖 세상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생각깊은 지혜를 가다듬어야 한다.

2020-05-06

뉴노멀(New Normal) 시대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에서부터 일터, 사회, 국가단위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으며, 이같은 변화는 코로나19 창궐 이후의 삶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새로운 표준이란 뜻에서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불린다.경제학에서 뉴노멀이란 용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최대 채권운용회사 핌코의 최고경영자 모하마드 엘 에리언이 저서‘새로운 부의 탄생’(2008)에서 저성장, 규제 강화, 소비 위축, 미국 시장의 영향력 감소 등을 위기 이후의 ‘뉴 노멀’로 지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최근 언론에서 거론되는 뉴노멀로 지칭되는 현상은 경제학적 용어보다는 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변화를 가리킨다. 언택트 문화, 온라인 시장의 확대, 홈콘텐츠의 부상 등이 특징이다.코로나19로 기업의 비대면 업무와 협업 기회가 늘면서 기업의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학교도 온라인 개학을 실시하고, 웹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주택분양시장도 유튜브 라이브로 공개되고, 청약 시스템도 온라인에서 가능해졌다. 소비도 온라인으로 대체돼 외식은 줄어들었고, 옥션, 11번가 등의 온라인 판매가 전년에 비해 300% 이상 늘었다.‘집콕’ 시간이 늘어나자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는 트래픽 폭증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접속장애를 일으킬 정도였다.프로야구 KBO리그 2020시즌이 개막된 5일, 관중석이 텅빈 서울 잠실구장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등 수도권 구장엔 십수명의 외신기자들이 개막전 준비상황과 경기진행 모습을 세계 각국에 전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의 뉴노멀이 대한민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방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06

5월에는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바이러스에 봄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로하듯 예년보다 훨씬 진한 아카시 꽃의 향과 꿀이 도로를 따라 흐리기 시작했다. “우정, 즐거움, 깨끗한 마음”과 같은 꽃말 때문인지 비록 마스크를 썼지만,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이 4월과는 비교가 안 되게 밝고 경쾌하다. 나무마다 고봉으로 핀 이팝나무꽃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5월의 응원 선물이다.“코로나19의 역설”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필자는 교육계의 화두를 생각했다. 다음 뉴스들에서 코로나 19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같이 찾길 바란다. 그 답이 바로 우리 교육계가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코로나19에 지구는 회복 중, 맑아진 ‘중국·인도’ 하늘 눈길” “관광객 줄자, 60년 만에 맑아진 베네치아 운하” “인간에겐 치명적, 자연엔 치유 기회?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이들 뉴스를 한 문장으로 하면 “이기적인 인간이 사라지자 자연이 본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이다.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코로나19로 인간의 발걸음이 봉쇄된 지구촌 곳곳에 뜻밖의 손님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략) 아르헨티나에서는 인적이 드물어진 해변 자동차 도로에서 바다사자가 누워 자기도 한다. (중략) 울릉도에서는 멸종된 줄 알았던 독도 강치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의 건강에는 치명적이지만, 자연에게는 치유의 기회로 다가오는 역설이다.”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해코지하고 살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이 발 디디고 사는 곳 중에서 자연이 아닌 곳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사실을 잊고 마치 자연의 주인인 양 염치도 없이 자연을 군림하며 살고 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코로나19가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오늘도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오로지 이기심밖에 없다. 배려, 희생, 사랑 따위의 말들은 인간이 자신의 악성(惡性)을 감추기 위해 만든 위장(僞裝)막에 불과하다. 물론 선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의 행동 또한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필자는 지울 수 없다.치유와 회복의 길에 든 자연과는 달리 교육계의 혼돈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학교 편의에 따라 강행된 온라인 수업 중 일부 수업은 교육계의 인재(人災)이다. 교사 중심의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그나마 있던 학교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이는 재난 수준이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을 “숙제 노동자”라고까지 표현한다. 출석 체크를 위한 과제 학습에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구조 신호를 학생들은 계속 보내고 있지만, 답을 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자연은 코로나19의 역설로 인해 회복되고 있지만, 학교는 온라인 수업의 역설에 무너지고 있다. 5월에는 교육도 자연처럼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해인 시인의 시를 전한다.“(….) 피곤하고 산문적인/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 (‘5월의 시’)

2020-05-05

꽃길을 걷게 되거든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완연한 봄, 꽃들이 만개하고 군데군데 꽃길이 눈에 띈다. ‘길’이란 말은 중의적이다.‘꽃길’이란 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 아름 따다 가시는 길에 뿌려진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있는 길이다.비유적으로는 일이 잘 풀리거나 좋은 일을 의미한다.반대되는 말로 가시밭길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꽃길만 걸어가세요.’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란다는 덕담이다.대중가요의 노랫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꽃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미지가 길이라는 단어에 덧붙여져 참 아름다운 말이 되었다.주변의 크고 작은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산책길을 걷다보면 길 양쪽으로 잘 가꿔 놓은 꽃길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산책하는 기분이 꽤 좋아진다.길에 뿌려진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게 되는 길은 아니지만 꽃향기에 취할 수 있는 길이다.길 어귀에 ‘꽃길만 걸어가세요.’라는 글귀라도 마주치게 되면 덩달아 발걸음에 흥겨움이 더해지게 된다.그런데 길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길 단장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관리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보인다. 흥겨움에 젖어 걸어가는 꽃길은 그들에게는 노동의 현장이다.슬쩍 미안함이 밀려온다. 꽃길에는 그들의 땀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꽃길을 걸을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꽃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꽃길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잘 걸어가던 사람이 생각난다.큰 건물에는 건물 내외를 청소하거나 시설물을 관리하시는 분들이 있다.고용조건이 열악함에도 궂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특히 청소일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 한다.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 이른 시간에 청소를 마쳐야하고 사무실은 물론 화장실, 복도 등 구석구석 청결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은 노동이다.어느 날 아침, 계단을 오르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계단 끝에 달린 미끄럼 방지 요철물을 닦는 작업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이물질이 끼어있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그럼에도 아주머니는 열심히 닦고 광택을 내고 있었다.직원들의 출근길을 상큼하게 해줄 꽃길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출근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 무심코 계단 끝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작업한 자리가 다시 더럽혀지곤 했다.그런데 요철부분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하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아주머니, 수고 많으시네요.’라는 아침인사까지 곁들였다.짧은 순간 일어난 일을 보면서 ‘꽃길을 잘 걸어가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누구일까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환하게 빛나는 뒷모습만 보았다.계단 끝 요철을 볼 때면 흐뭇한 기억으로 떠오른다.누구나 꽃길을 걷고 싶어 하지만 인생의 긴 여정을 가노라면 꽃길만 걷게 되지 않는다.설령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걷게 된 꽃길일지라도 결코 혼자만의 꽃길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산책길 가장자리 꽃처럼 누군가 소리 없이 꽃길을 단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걸어가면 좋겠다.“딸, 아들아! 꽃길을 걷게 되거든 꼭 꽃길 만든 사람도 생각해라.”“저희 아직 가시밭길 가고 있습니다. 취업도 해야 하고….”

2020-05-05

재기(再起)의 길을 묻는 보수에게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보수는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보수가 올바른 혁신의 길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혁신을 실천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현재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고 있는 통합당으로서는 ‘사즉생(死卽生)’의 비장한 각오가 요구되는 조건들이다.보수의 재기를 위한 혁신의 길은 무엇인가? 혁신의 전제는 총선 참패에 대한 참회와 자성이다. ‘정권심판’을 외쳤던 보수가 오히려 ‘야당심판’을 당했다. 유권자들은 그 원인이 ‘여당이 잘해서’(22%)가 아니라 ‘야당이 못해서’(61%)라고 답했다. 2040세대의 통합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80%를 넘고 있다. 선거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다. 통합당은 진보의 위선과 반칙을 비판했지만 보수의 품격과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핵심당원들의 평균연령이 60세이고, 지역분포는 영남이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낡고 늙은 꼰대당’으로 각인되었고, 강남당·영남당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극우 태극기부대에 휘둘리면서 포용성과 확장성을 잃었다.이러한 사실은 혁신의 주도세력이 ‘수도권의 3040세대’가 되어야하며, 혁신의 방향은 ‘포용성과 실용성의 확대’임을 말해준다. 혁신을 위해서는 경직된 보수가 아니라 수도권에서 격전을 치른 3040세대가 주도해야 민의(民意), 특히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도층의 표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통합당이 보수층만 바라보고 정치를 했으니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금수저는 흙수저의 고통을 모른다.”는 비판은 통합당의 대중성과 공감능력이 부족함을 말해준다. 따라서 보수의 가치인 자유·안보·법치뿐만 아니라 빈부격차·청년실업·서민경제 등 시대적 아픔도 함께할 수 있는 포용성, 그리고 이념투쟁보다는 국민의 생활 속에 뿌리내릴 수 있는 실용성이 크게 확대되어야 한다.더욱 중요한 것은 변화와 혁신을 실천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통합당은 선거패배 때마다 비대위를 구성하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해 놓고서는 말뿐이었다. 혁신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국민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거짓말까지 했으니 총선참패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보수의 재기는 국민이 통합당의 변화와 혁신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좋은 약이 입에 쓴 것처럼 ‘혁신의 길은 고통의 길’이다.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며 때로는 자기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낡은 것을 버려야 새 것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늙은 보수·웰빙 보수·기득권 보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자 시련이다.정치인으로서 소명의식이 투철하면 혁신의 고통도 즐거움이 된다. 초심으로 돌아가 대의(大義)에 충실하면 얼마든지 혁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혁신할 수 없다면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물러나라. 나를 바꾸는 혁신도 싫고 권력도 내려놓지 않겠다면 결국 당과 함께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2020-05-05

“부모님 모시기”

심청은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픈 마음에 쌀 삼백석에 몸을 판다. 끝내 인당수에 몸을 던졌지만 그의 지극한 효심에 감복한 용왕은 그녀를 사람으로 다시 환생케 한다. 효를 주제로 한 우리나라 대표적 고전소설인 심청전의 한 토막이다.부모를 위한 자녀의 효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부모님의 날이 별도 정해져 있다.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어버이날, 어머니날, 아버지날 등이 지정돼 있다. 이날만큼은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 정신을 기리자는 뜻이다.미국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 아버지날은 6월 세번째 일요일로 따라 정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날은 전 세계 100군데가 넘는 나라에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기념일을 보내고 있다.우리나라도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다가 아버지날을 정하자는 여론이 나오면서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변경 운영되고 있다. 이날은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고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이다.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등으로 고전적 가족 분위기가 많이 퇴색돼 가고 있다. 그렇다고 부모를 섬기고 존경하는 미덕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모님을 자식이 꼭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는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부모를 모실 책임이 자녀에게 있다”는 물음에 반대가 찬성보다 월등히 많았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녀가 모셔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는 반증이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효의 기준인 시대는 이미 끝났다. 어버이날에 즈음해 생각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05

피론(Pyrrhon)의 돼지들

안재휘 논설위원‘승자의 손에는 꿈이 가득하고, 패자의 주머니에는 욕심이 가득하다’는 말이 있다. ‘승자는 넘어지면 앞을 보고, 패자는 넘어지면 뒤를 본다’는 말도 있다. 지난 4·15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고, 미래통합당은 당권 쟁취 가능성 저울질 속에 ‘김종인’ 추대냐 아니냐를 놓고 연신 파열음이다. 당분간 제1야당에서 무슨 희망의 싹수를 보기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고 있다.민주당에서 일어난 ‘개헌론’ 돌개바람은 결코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송영길 의원을 필두로 일부 당선자들의 입을 통해서 우후죽순 터져 나온 개헌론은 ‘대통령 중임제’에서 ‘토지공개념’, ‘이익공유제’에 이르기까지 휘발성 높은 개헌 화두들을 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마저도 “개헌은 앞으로 1년이 골든타임”이라며 부채질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국민 100만 명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국민발안 개헌안’ 처리를 모색 중이다.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가 일단 제동을 걸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개헌추진과 관련해 우리 당, 지도부 내에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청와대와 정부는 전혀 개헌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그러나 집권당의 개헌론이 소멸했다고 볼 여지는 없다. 코로나19의 가공할 여파가 걱정인 판국에 개헌 논란 과열로 인한 민심이반을 우려한 작전상 후퇴로 읽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어질더분한 안팎 사정이 조기에 정돈될 가망이 전혀 없는 판국이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절체절명의 위기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미래통합당은 아직 배가 부른 모습이다.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총선참패의 충격을 획기적인 혁신의 전환점으로 승화시키기는커녕 여전히 구닥다리 권력 쟁패만 탐닉하는 양상이다.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해 극적인 반전을 꾀하자는 측과 전당대회를 통해 자강(自强)의 길을 가야 한다는 측이 맞서 8일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의 정중동 패싸움에 함몰돼 있다.나라도 그렇고 통합당도 그렇다.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난 선박 신세다. 그런데, 아수라장이 된 배 위에서 식식거리고 잠을 자거나 먹을 궁리에만 빠진 천하태평 돼지들이 너무 많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피론의 돼지’ 또는 ‘필론과 돼지’로 통용)는 무도한 각반(脚絆·폭력집단의 상징)들의 횡포를 방관하는 비겁한 군상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하버드대 교수 야스차 뭉크(Yascha Mounk)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들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 포퓰리스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래통합당은 아직도 ‘수구꼴통’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낡은 보수’ 각반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

2020-05-03

보복소비

‘보복소비’라는 다소 거친 용어가 등장했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사태의 진정세를 틈타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왜 보복이라는 부정적 표현을 했는지는 그 어원을 알 수 없다. 코로나 발상지인 중국에서 나왔다는 설만 있다. 우리말로는 보상소비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다.억눌렸던 소비가 일시에 터져 나오기 때문에 보복소비의 구매력은 대략 폭발적이다. 지난 4월 중국 광저우에서는 에르메스 명품매장이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지난 1월 코로나 사태로 문 닫은 지 석 달 만에 매장을 다시 오픈하자 소비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거 몰려와 하루 판매액이 무려 270만 달러(한화 약 32억 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지금 곳곳에서 이런 보복소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코로나 사태로 참았던 소비자의 구매심리가 봇물 터뜨린 것이다. 그러나 초점은 보복소비가 침체된 시장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여부다. 중국은 보복소비 현상이 침체된 소비시장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긍정 평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4조위안의 자금을 풀어 경기부양 효과를 본 바 있다. 코로나 이후도 중국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한 준비에 나설 거라 한다.5월 황금연휴를 맞아 국내서도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국 관광지마다 사람이 넘치고 고속도로는 도시를 벗어나려는 차량으로 꼬리를 물었다. 도심의 공원과 카페 등도 모처럼만에 사람들로 활기를 찾았다.코로나19로 풀이 꺾였던 시장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하지만 침체된 국내 경기에 보복소비가 과연 위력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시장변화의 단초가 되길 바랄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5-03

봄을 기다리는 월성원전

박민철 한수원노동조합 월성원자력본부노조 제1발전소 지부위원장월성원전 1호기가 영구정지 결정 됐지만, 아직까지 여기저기서 논란이 되고 있다.하물며 월성2,3,4호기는 사용후핵연료저장시설의 포화가 예상되면서도 추가건설에 대한 아무런 액션도 취할 수 없이 무작정 넋 놓고 기다리고 있다. 내년 말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돼 추가건설 결정이 시급한 재검토위원회의 공론화 과정에 대한 논의는 코로나19와 총선의 분위기 때문에 그 관심조차 잃었다.월성원전에서는 4년 전부터 준비하고 추진해 온 사안이지만, 포화시점이 가까워 짐에도 아직 건설 여부에 대해 결정조차 하지 않아 공사는 시작도 못한채 애타는 마음으로 시간만 허비되고 있다.월성원전에 대한 관심은 월성 1호기를 향하고 있다. 설계수명이 2022년인 월성1호기의 경우 앞으로 겨우 1년 남짓한 운영을 기대하며 다시 되돌리겠다는 것은 에너지산업의 실익은 무시한 채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월성1호기는 더 이상 가동 논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역사 속으로 우리 가슴에 묻고 가야 함을 알고 있다. 지금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월성 2,3,4호기 상황이다. 설계수명이 2022년인 월성1호기와는 달리 월성 2,3,4호기의 설계수명은 각각 2026년, 2027년, 2029년이다. 아직 6~9년간은 더 운영할 수 있는 원전이고 1호기당 하루 매출이 약 10억원에 달한다. 이를 가동하지 못하는 손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계산이 나온다.올해 1월 월성원전은 원전운영의 안전성을 심사하는 원안위에서 맥스터 추가건설에 관한 운영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공론화 과정이 아직 남아있다. 지금 맥스터 관련 여론으로 이를 공론화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해도 시기가 급박한 상황이다.실제로 지금 우리나라 에너지 미래에 중요한 부분으로 국민의 관심이 필요한 것은 맥스터이다. 이제 월성1호기는 가슴에 묻고 맥스터 추가건설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해 월성 2,3,4,호기가 동시에 셧-다운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지금까지 원전 1개 호기도 수명연장 영구정지 등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하지만 원전 3개 호기의 존폐를 동시에 결정짓는 사안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지 통탄할 따름이다.경주의 원자력산업은 우리 지역주민들의 삶, 고용안정 등 지역경제와도 끊을 수 없는 긴밀한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이제 우리 시민들의 합리적인 판단과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 힘으로 월성원전과 경주에도 봄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0-05-03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소재 안보부터

우리나라가 생활방역체계로 전환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과 달리 최근 일본은 긴급사태를 선언한 상태에서 기존의 3밀 회피(밀폐공간, 밀집장소, 밀접장면)와 기본적인 감염대책(손씻고, 기침할 때 가리고, 환기하기 등)을 유지하면서도 지켜야할 새로운 지침을 발표하였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22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80% 줄이는 10대 포인트’라는 지침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1) 영상통화로 온라인 귀향, 2) 슈퍼는 1인 또는 소수 인원으로 덜 혼잡한 시기에 이용, 3) 조깅이나 산책은 소수로 공원은 비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 4) 필요한 물품은 온라인 통신판매를 이용, 5) 회식 등도 온라인으로 각자 공간에서, 6) 진료는 원격진료로 대체하고 정기검진은 간격을 조정, 7) 헬스, 요가 등은 자택에서 동영상을 활용, 8) 음식은 식당에서 포장하거나 배달, 9) 의료, 인프라, 물류 등 사회기능 유지를 위한 목적을 제외하고는 재택 근무, 10) 마스크 착용 상태로 대화하기다. 전체적인 흐름은 역시 비대면, 비접촉을 생활화하자는 것이다.이처럼 세계는 각국의 사정과 상황에 맞게 현재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려는 고민에 빠졌다. 일부에서는 과거 아시아통화위기는 미국에 대한 높은 수출의존도가, 이번에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위기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최적지가 동남아시아나 인도라며 그것을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 꼽기도 한다. 이처럼 그 방법이 어떠한 것이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는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 지금까지의 생활환경부터 도시정책에 이르기까지 위기 이후 새로운 시대상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우리가 비대면 또는 비접촉이라는 말을 하는 자체가 어쩌면 소수 얼리어댑터만이 적응하고 있던 디지털세계를 모두가 공유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뉴노멀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 국가들이 노멀에서 뉴노멀로 진전되는 과정에서 유효 적절하게 대응하는지 못하는지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도 영원히 변함없이 그 존재감을 유지하는 ‘진정한 노멀(Real Normal)’도 있다. 어떠한 나라라도 제조업이라는 산업은 반드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제조업은 각국의 고용을 창출하고 가계에 소득을 제공하는 근원이 된다. 바로 이 제조업이라는 산업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금속’이 제조산업에 식량으로 원활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우리가 피츠버그를 보면서 쇠퇴하였던 철강 도시의 부흥과정에만 주목하였지만, 사실 사양산업이라는 철강은 세계의 강대국인 미국조차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괜히 미국이 한국산이나 중국산 철강 수입을 제한하고 반덤핑관세를 물리는 것이 아니다. 안보개념은 군사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량안보라는 말이 단지 구호처럼 들리나 실제 국제분쟁에서 어느 한 국가가 식량 자급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양국 간의 군사대립이 심각해져 식량 수출을 막는 순간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인을 먹일 수 없어 시작도 전에 손을 들 수밖에 없다.무역전쟁이 치열한 지금의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일본이 주요 소재 부품의 수출을 제한하였을 때 대일 수입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등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것도 ‘뉴노멀’의 하나다. 우리가 분노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는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쌀인 철강금속, 반찬이 되어야 할 소재 부품을 얼마나 보호 육성해왔는지도 반성해야만 한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하물며 자국이 무기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을 아무 조건도 없이 무한대로 상대국이나 경쟁국에 수출하는 멍청한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면에서 미래 사회가 아무리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옮아가는 ‘뉴노멀’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기초적인 국가 경제의 제조산업에 필요한 ‘산업의 쌀’은 변함없이 소비할 수밖에 없다.최근에야 경량화, 탄소 배출억제 등 다양한 환경문제로 인해 탄소섬유, 알루미늄, 플라스틱, 강화유리 등과 같은 대체소재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소재들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소재를 생산하기 위한 기계설비는 여전히 ‘철강금속’이라는 소재로 제작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강금속’이야말로 어떠한 ‘뉴노멀’이 세계를 뒤흔들더라도 변함이 없는 ‘진정한 노멀’이다. 물론, 단순히 철강, 금속이라는 말만 가지고 앞으로 세계 무역전쟁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철강금속이라는 소재 자체에서도 ‘뉴노멀’은 있다. 보다 내구성과 내식성, 고탄성, 고장력 등을 충족시키는 특수강, 합금강 등과 같은 특수금속은 이른바 ‘고급 쌀’로 항공우주, 의료공학 등 선진국의 첨단산업에서 높은 가격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특수금속이야말로 ‘진정한 노멀’인 철강금속 분야에서 ‘뉴노멀’로 진화하고 있다.최근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 조기 경제회복을 위해 조선, 기계 등과 같은 7대 기간산업을 선정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7대 기간산업에 포함된 기계, 조선, 자동차부품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해당 산업의 후방에 자리하여 보이지 않는 철강금속산업에서 ‘산업의 쌀’을 적기에 적절하게 공급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문제는 지금 국내에서 산업의 쌀을 생산하는 농사꾼인 ‘철강금속산업’이 수년간 이어온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 등으로 인해 논밭을 놀리고 있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 ‘산업의 쌀’을 수입해도 된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나 강대국의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를 고려한다면 국가 경제의 안정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산업의 식량안보 즉 ‘소재 안보’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정부가 이번에 7대 기간산업을 살리기 위해 40조 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그만큼 정부가 국내 산업기반을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경제는 생명체고 산업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하나의 생태계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7대 기간산업에 선정된 조선, 기계, 자동차와 같은 기계장비 분야의 생태계는 철강금속 소재부터 조립가공을 거쳐 최종재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체가 유기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여야만 살아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7대 기간산업이라는 분류나 항목에 굳이 ‘철강금속’을 끼워 넣을 필요까지는 없다. 이들 산업이 활성화되면 그 기반을 이루는 철강금속도 절로 수요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지원대책이 보다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별도로 특정 산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각종 지원대책을 마련할 때 공급망과 산업생태계라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세부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하면서 해당 산업의 ‘쌀’에도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도록 지원대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포항의 철강금속업계에서도 즉각 변화를 모색해야만 한다. 영원불멸의 ‘진정한 노멀’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한다면 그 속의 ‘뉴노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 가격 경쟁력이 아닌 품질과 기술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고급 쌀’을 국내 기간산업에 공급하고, 그것이 전방산업의 경쟁력을 높여나갈 때 만이 국내 기간산업의 ‘소재안보’를 위한 정부 대책도 더욱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5-03

예술인 심리상담 체험기 1

김현욱 시인재 작년에 모친이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짜증과 신경질, 감정 변화가 극에 달했다.누군가에게 속 얘기를 하고 싶은데 자식이나 남편은 싫다고 했다. 오랫동안 계 모임을 해온 친구들이 있지만, 속 얘기는 털어놓을 사이가 아니란다. 모친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지역 상담소가 떠올랐다. 몇 군데 알아보니 집 가까이에 상담하는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전화로, 두 번째는 방문해서 소장에게 상담 절차와 비용을 들었다.상담 비용이 중국집 메뉴판 같았다. 8만 원, 10만 원, 12만 원. 팔보채, 유린기, 샥스핀이 나오는 코스요리처럼. 석사 급, 박사 급, 교수 급으로 나눠지는 듯했다.비용이 부담스러웠지만, 모친을 위해 8만 원 하는(?) 상담사로 총 5회 상담코스를 골랐다. 원래는 주 1회 10회 코스인데, 5회를 먼저 해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모친은 비용 얘기를 듣더니 펄쩍 뛰었다. “한 시간 내 얘기 들어주는데 8만원?” 어찌어찌 모친을 달래 상담을 시작했다. 첫날은 내가 고이 모시고 갔다가 모시고 왔다. 모친에게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낯선 상담일 테니까.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담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5회 상담을 끝낸 모친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자식이나 남편, 친구에게 못하는 얘기를 상담사에게 마음껏 하고 나니 살 것 같단다. 아, 상담이란 게 이런 거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맞구나. “한 번 더 할래요?” 물었더니, 이번엔 거절하지 않는다. “나중에 하지, 뭐.” 그렇게 모친의 우울증은 심리 상담을 통해 봄날 봄바람처럼 보드라워졌다. 그러던 차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지원 상담을 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대체 모친이 어떤 경험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중년의 무게감을 느끼던 차에 덜컥 신청했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 연락이 왔고, 나는 참마음심리상담센터 문가인 원장과 주 1회 12회 코스로 상담을 받기로 했다.3월 첫 번째 상담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문가인 원장의 성격이다. 그녀는 내가 상담사에게 가졌던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일 거라는 묵은 선입견을 완전히 깨주었다. 단도직입, 직설, 명랑, 소탈한 상담사였다. 그동안 내가 책과 영화에서 만나 온 상담사는 현실의 상담사가 아니었다. ‘오길 잘했구나. 좋은 경험이 되겠어.’ 그녀는 중년의 고비를 막 오르고 있는 내 삶의 방향과 성격에 대해 듣고 호탕하게 조언해주었다.567개짜리 문항 MMPI-2 심리검사도 받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성’이 굉장히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를 여기서 듣다니. 내 안의 여성성과 남성성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을까. 겉으로는 남자답게 과격하게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움츠리고 상처받았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상담소를 나서며 문득 고갱의 그림이 떠올랐다. 계속.

2020-05-03

탈북자 태영호 국회의원에 거는 기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총선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당선자가 여러 명 있다. 태구민이란 이름으로 강남 갑구에서 당선된 그도 그중의 한 명이다. 야당의 총선 참패가 공천의 잘못이라고들 비판하지만 이번 탈북자 2명의 보수 정당 공천은 매우 신선한 측면이 있다.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가 3만 명을 훨씬 넘어섰지만 아직도 남한 땅에는 성공했다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 태영호는 새누리당 국회의원 조명철에 이어 두 번째로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번 꽃 제비 출신 비례 대표 지성호도 있지만 그는 탈북자 중 지역구에서 당선된 첫 국회의원이다.그는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오랜 외교관 생활을 하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다. 황장엽 선생 보다는 직위는 낮지만 외교관으로서는 탈북민 중 가장 고위직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탈북 동기에 의아심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그가 ‘북한 공금 횡령자’, 심지어 ‘미성년자 강간범’이라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다. 심지어 그는 북한의 이중 스파이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는 북한 탈출 동기를 언론을 통해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는 아들의 북한 소환이 임박한 상황에서 자식의 장래를 위해 탈북했다고 증언했다. 사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함께 거주하는 일부 탈북민 보다 형편없는 처우인 북한 외교관 생활에 환멸을 느꼈을지 모른다.그의 2016년 남한 땅 정착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는 평양에서 중국 유학을 다녀오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친가와 처가 모두 핵심계층 출신이다. 그는 이곳에서도 정부 기관 특임 연구원직을 맡아 특권을 누렸다. 그의 ‘3층 서기실의 암호’는 나는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칼럼에는 그의 남한 사회 정착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지난 2월 보수 정당인 ‘미통당’에 전격 입당하고, 강남 갑구에서 58.4%의 득표로 당선되었다.그의 당선 소식은 북한 땅에서 분명 전파되었고 북한당국은 여전히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 북한 당국은 탈북자를 수령의 품을 떠난 ‘배신자’로 간주한다. 10여 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남북 학술 토론회에 참석한 바 있다. 북한의 저명 J 교수는 북한 땅에서는 탈북자가 없다고 주장하다 독일인들의 빈축을 산적이 있다. 태영호의 남한 지역구 당선은 그 자체만으로 북한 당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은 그를 ‘인간쓰레기’로 비판하지만 그의 당선 소식은 북한 당국에 더욱 무거운 짐이 되어 괴로울 것이다.이제 태영호는 태구민이라는 주민 이름을 버리고 대한민국 의원으로 당당히 출발한다. 그의 이번 남한 지역구 당선은 남북 분단사에서 남을 수 있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북한의 고위 탈북자로서 그는 이제 남한 정착의 역할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그는 남북 화해라는 민족적 대업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의원이 되길 바란다. 그의 활동은 세계 언론의 주목도 받고 한국 정치의 다원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 남한의 일부 진보그룹에서는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다. 지극히 정당치 못한 처사이다. 그는 이 땅을 남북의 젊은 세대들에게 열려진 ‘희망의 땅’이라는 점을 보여주길 바란다.

2020-05-03

코로나도 뚫지 못한 ‘산소카페 청송군’

윤경희 청송군수청송군 보건의료원 응급실을 들어가려면 ‘잠시 멈춤’을 해야 한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원 직원들이 일일이 내방객의 체온을 체크하고 신원 확인과 해외방문 여부를 기록한 후 발열이 없을 경우에만 내방을 허가한다. 청송군 보건의료원은 엄격한 출입통제를 위해 응급실을 제외한 나머지 의료원 출입구는 모두 봉쇄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청송군의 치밀한 방역활동 모습이다.지난 2월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청송군보건의료원의 물 샐 틈 없는 방역체제 구축으로 지역에서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확진자 1명도 완치, 퇴원했다. 또 청송군 확진자로 집계된 2명 중에 1명은 주소지만 청송인 대구의 대학생이고, 1명은 해외입국자여서 사실상 지역주민 감염은 없었던 셈이다.‘코로나19 없는 청정 청송’이 된 것은 △민관 합동의 완벽한 방역체제 구축 △정부 대책보다 한발 앞선 방역당국의 선제 대응 △청송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청송군보건의료원은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 의료원 및 군청 방역반, 관내 사회단체, 봉사단체 등 50명의 긴급방역대책반을 편성하고, 군청 축산부서 차량과 군부대 살수 차량 협조를 받아 진보면 일대에 대대적인 방역에 나섰다. 다중집합장소, 사회복지 및 요양시설, 공공기관을 우선 방역한다는 방침 아래 확진자 동선에 따른 상가, 식당에 대해서도 일제 방역에 나섰다. 주민들의 불안 해소를 위해 일반 아파트, 빌라 등 주거지역의 공동시설 및 복도까지 꼼꼼히 방역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8개 읍면의 재래시장, 버스터미널 등 군민이 모일만한 장소면 어김없이 방역에 치중했다.특히 청송군은 지난 4월 10일 코로나19 검체 채취의 신속성과 안전성 향상을 위해 ‘워킹스루’ 검체 채취 방식을 도입했다. ‘워킹스루’ 방식은 공중전화와 비슷한 형태의 음압시설이 작동하는 부스를 이용한 검체 채취방식으로, 이번에 도입한 ‘워킹스루’ 부스는 기존의 방식에서 진일보한 양방향 워킹스루가 가능한 형태이다.정부대책보다 한발 앞선 청송군의 선제 방역대응도 코로나19를 잡은 요인 중의 하나다. 청송군은 긴급방역에 따른 예산이 없자 여름철 방역비를 선집행해 방역활동에 나섰다. 정부는 다음날 일선 행정기관에 선집행을 지시했다. 또 서울 콜센터 집단확진이 터진 날 청송군은 정부 방침이 내려오기 전에 관내 다중집합장소인 노래방, pc방 등지에 대해 미리 일제방역을 실시하는 등 선제 대응했다. 또한 청송군은 정부 발표 이전에 이미 임신 공무원에 대해서는 재택근무를 지시하기도 했다.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소상공인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중앙정부와 경북도의 지원을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소상공인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도 지원과는 별도로 청송군 자체적으로 긴급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게 됐다.소상공인 긴급생계비 지원, 청송사랑화폐 특별 할인, 지방세 감면, 농기계임대료 감면, 전통시장 점포사용료 2개월 면제, 소상공인 특례보증 등의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군민들의 위축된 소비 심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침체 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그리고 지난 3월 12일부터 근 한 달 동안 운영돼온 생활치료센터 ‘소노벨 청송’은 191명이 입소하여 지역 전파 없이 완치율 92%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자칫 청정지역인 청송의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을 법한데, 우리 군민은 대승적 차원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며 따뜻한 응원을 메시지를 보내며 힘을 보탰다.특히 이번 사례는 코로나19라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국가적 비상사태를 마주한 상황에서 지방의 지자체와 민간이 합심해 최상의 치료환경을 제공한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그런 덕분이었을까. 청송군은 ‘코로나19 청정지역’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산소카페 청송군’이 2020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에서 도시브랜드 부문의 첫 대상이라는 선물과 함께. 더불어 사과브랜드 부분에서 ‘청송사과’는 8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가져왔다. 이 기쁨을 소중한 우리 군민들과 환희 속에서 함께 누리고 싶지만 아직 깨알 같은 코로나19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섣불리 축배를 들지 않기로 했다.

2020-05-03

인문학(Liberal Arts)이 뭐길래

박현미회사원수년 전, 고전 열풍을 타고 인문학 붐이 대한민국을 들썩였다. 책방에는 관련 서적이 넘쳐났고 나 역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고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고전을 처음 손에 잡기 시작한 이유는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솔깃한 구절을 본 다음이었다. 대표적 인물로 조선 시대 권율 장군은 고전을 파고든 뒤, 마흔이 되어 벼슬자리에 나갔다고 한다. 늦은 관직 진출이었지만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자 문신이 아니던가? 100세 시대인 요즘, 나 또한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똑똑해지고 싶었고, 말도 잘하고 싶었다. 난처한 상황에서도 빠른 상황 판단과 임기응변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었다. 지금 하는 일에 지성이라는 무기를 더하여 비상하고 싶었고, 궁극적으로 팍팍한 세상살이가 고전 읽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수월해지길 바랐다.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지혜로운 삶과 정신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것이 고전이라는 희망을 품었다.처음에는 책에서 소개하는 추천도서 목록을 참고해 무턱대고 고전을 읽어 나갔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솝우화를 읽는 내내 미궁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수십 세기가 지나도록 살아남은 천재들의 책은 오르기 힘든 견고한 벽처럼 상상 이상으로 문턱이 높았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내 바람은 결국 고전을 함께 읽는 모임을 통해 이뤄졌다.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통해 위대한 사상과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내게도 활짝 열리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경이롭다. 새롭고 깊은 울림은 기분 좋은 두통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 번 읽고 그만두지 않고 거듭 반복 읽기로 같은 고전을 한 번 더 읽을 때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전과 다른 나, 한 뼘 성장한 나를 발견한 것이다.고전은 우리에게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바른 삶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준다. 어떤 잘못된 경험을 직접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아픔 없이도 지혜롭게 삶의 교훈을 선물해 준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전을 공부하는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고전은 삶의 진짜 문제, 가장 깊은 관심사를 다룬다. 기쁨, 아픔, 두려움, 사랑, 증오, 용기, 분노, 죽음, 믿음,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들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갈등과 문제는 늘 우리 속에 있는 것이니, 고전을 읽고 토론하면서 우리는 삶의 가장 깊은 부분을 직면하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는다.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미래를 저당 잡히지는 말아야 하며 삶의 현장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인문학의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내 기쁨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기쁨을 줄 때 우리는 더 행복하고 삶의 기쁨은 두 배로 늘어난다. 나와 타인의 행복을 위한 인문학 정신이 퍼져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밝고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기성세대를 포함, 나 역시 얼마나 꽉 막힌 사고를 하며 현재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가? 초, 중, 고 교육을 마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대학에 떨어지거나 진학하지 않는 것은 인생의 시련이자 패배로 치부한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나온다 해도 좋은 직장을 잡는 일, 연봉을 높이는 일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스펙은 결코 인문학적 성찰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국어를 꾸준히 해야 하며 미래를 위한 자격증도 두어 개는 따 놓아야 덜 불안하다. 그래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월을 허비하며 헛된 힘을 쏟을 뿐이다. 물질로 내 존재를 증명해 내야 하는 사회의 근본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잉여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저변에 깔린 탓이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인문학이 절실하다.인문학은 내게 속삭인다. 대단하고 심오한 사유로 홀로 서 있기보다 지혜를 추구하고 사랑하며 함께 살라고. 먹고 살만큼의 부에 자족하고 넓은 아량으로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며 살되 독립적이고 선한 의지로 살아가라고. 벌어도, 벌어도 모자란 물질문명에 속지 말고 깨어 있어 행복하라고. 끝

2020-05-03

사랑 따로 결혼 따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70년대 결혼 풍속도에 자주 나오는 얘기다.고시공부를 하는 남자 애인을 위해 공장에 다니는 여자 애인이 열심히 돈을 벌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한다. 남자는 몇 번의 도전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고시에 합격한 남자 애인은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복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변심한다. 그는 많은 희생을 한 여자 애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뻔하디 뻔한 통속적인 스토리다. 이같은 출세지향적인 풍토가 만연해지자 이를 묘사한 말이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미래통합당이 바로 그 짝이다.대구·경북지역은 미래통합당의 본산이다. 지역구 25개 가운데 복당을 추진중인 대구 수성을 홍준표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24개 지역구에서 모두 통합당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통합당의 공천이 잘못됐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의원들에게도 할 말이 많았겠지만 지역민들은 통합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여당에 맞서 싸울 야당이 힘이 부족해서 되겠느냐는 심산에서였으리라. 문제는 지역민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한 통합당이 정작 자신의 운명을 정하는 비대위나 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는 대구·경북지역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에게 나이 든 어르신들이 설득조로 내놓는 이 얘기에는 ‘사랑은 감성, 결혼은 이성(현실)’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런데 과연 이 논리가 합당한가.통합당은 여당이 180석을 얻는 동안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간신히 넘긴 10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어떻게든 지지세를 넓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구·경북에서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 참패한 통합당이 외연을 넓히려면 누가 당의 중심이 돼야 할까. 통합당 중진들은 대구·경북은 중심에서 빠지고, 수도권의 민심을 끌어올 만한 세력이 앞장서서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한다. 당의 가장 핵심적인 지지기반은 대구·경북지역인 데,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은 뒤로 빠져 있으란 얘기다. 수도권의 민심을 끌어오기 위해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배제한 채 당권과 대권다툼에 혈안이 된 몇몇 이들에게 당의 운명을 맡기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통합당은 건전한 비판세력으로서 대안을 갖춘 야당, 중도적 보수를 포용하는 폭넓은 보수가치의 채택 등 개혁과 쇄신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통합당은 오히려 자신들을 뜨겁게 지지하는 TK지역의 민심을 등에 업고, 수도권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개발과 보수가치의 확장에 힘쓰는 게 옳다. 그런 연후 수도권 민심을 공략할 수 있는, 젊고 참신한 대권 후보를 내세워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뤄야 한다. 무엇보다 통합당이 바로 서려면, 우선 총선 직후부터 언론에 떠도는 ‘대구·경북지역 패싱론’이 현실화되는 걸 막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산토끼보다 집토끼가 우선이다. 그리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순리다.

2020-04-30

코로나19 백신

인류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각종 질병에 대응하는 백신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부터다. 수세기 전까지 만해도 아이가 태어나 10살이 되기 전에 보통 3분 1정도는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래야 30살 남짓했다. 콜레라, 장티푸스, 페스트 등 전염성 질병으로 사람들의 수명은 그야말로 하늘의 뜻에 맡겨야 했던 시절이다.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고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행성 질환 중 하나가 완전 박멸됐다는 뜻이다. 두창이라 불리는 천연두가 수세기 동안 인류에게 끼친 폐해는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치사율이 30%다. 어린아이에게는 더 높은 치사율을 보였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매년 천연두로 40만 명이 사망했다.그러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에 의해 백신이 개발되면서 천연두의 퇴치는 시작됐다. 또 장티푸스, 콜레라, 페스트 등도 잇따라 백신이 개발되면서 인류는 질병과의 전쟁에서 점차 승기를 잡는다. 그때가 19세기다.WHO의 설립 목적은 세계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최고의 건강수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인류의 행복은 인류의 건강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사람이 예로부터 즐겨 써온 오복 중에도 수(壽)와 강녕(康寧)은 건강의 덕목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처럼 건강은 사람이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다.코로나19 퇴치를 위한 백신개발이 전 세계적으로 한창이다고 한다. “병원체가 규명되고 1년만에 개발된 백신은 없었다”는 의학계의 지적에 비쳐볼 때 코로나 백신의 개발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세계적 권위의 의학연구소들이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뜻밖의 결과가 인류를 기쁘게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4-30

삭막해지는 캠퍼스의 추억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캠퍼스의 추억들이 삭막해져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의 추억들은 졸업앨범에 새겨져 있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 졸업앨범이 유일한 추억이었고 앨범을 뒤져가면서 친구들 얼굴, 선생님들 얼굴을 떠올리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교사 10명 가운데 7명이 학생 졸업앨범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는데 불안감을 느낀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교사들은 졸업앨범에 들어간 사진이 범죄나 학부모들의 평가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졸업앨범에 교사 사진이 들어가는 것에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졸업앨범 사진 탓에 피해를 본 경우를 접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0% 가량이 “직접 피해를 경험했거나 다른 교사가 피해를 본 사례를 들었다”고 답했다고 한다.졸업앨범을 안 만드는 학교도 늘어가고 앨범을 사지 않는 학생은 과반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가 너무 쉬워 학창시절 사진이 차고 넘치니까 앨범에 대한 필요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삭막해지는 학창시절의 추억의 일환이라고 생각이 들어가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졸업식 전에 하는 사은회도 없어지고 있다. 40여 년 전 필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 사은회는 제자와 은사 간의 큰 잔치와 같은 것이었다. 여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남학생들도 양복으로 정장을 하고, 교수님들에게 큰절을 하는 행사였다. 졸업생들도 교정을 떠나는 아쉬움과 스승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떠나는 제자를 축하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그런 자리였다.스승과 제자 사이가 예전만 하지 못하고 또 사은회의 참석률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사은회가 없어진 대학도 꽤 있다고 들었다. 졸업식도 마찬가지이다.많은 국내의 대학 졸업식에는 대학원생만 자리에 앉고 학부 학생은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사진만 찍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졸업식에 와서 사진만 찍는다면 졸업에 대한 감회와 기억이 남아있을까. 서구의 대학에서 졸업식은 엄숙하면서도 온 가족이 참석해 화기애애하게 치러진다. 모든 졸업생을 단상으로 불러 학위를 수여하고, 식이 길어져도 자리를 이탈하는 졸업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몇 년 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시작했던 졸업식 길거리 퍼레이드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졸업식에 모두 참가하여 그 타운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고 정겨웠다. 그러나 그 행사도 코로나19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실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함께 나오는 앨범의 전통도 지켜지고 사은회의 아름다운 모습도 지켜지고, 졸업식도 좀 더 화기애애하면서도 모두 참가하는 그런 잔치로 치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이지만 캠퍼스의 추억의 모습들이 잘 보존되었으면 한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가 아날로그 시대의 전통이 지켜지면서 삶의 큰 보람으로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2020-04-30

임사체험과 양자물리학

김병래시조시인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에 의해서 지동설이 확립되고, 뉴턴이 물리학적 체계를 정립하면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상계의 과학적 이해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현대인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물리적 현상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거시적 현상이나 미립자와 같은 미시적 현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이론과 법칙이 발견되어 뉴턴의 역학은 한계를 드러내었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간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중력장으로 인한 공간과 빛이 휘어진다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증명되고, 원자(atom)의 구조와 같은 미시적 현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은 물리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였다. 원자가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라는 건 중학생이면 배우는 상식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입자가 아니라 원자핵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전자의 자기장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리처드 파인만의 말처럼 물질계의 기본이 되는 미시현상은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의식(意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임사체험(臨死體驗)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임사체험이란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말하는 것으로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라고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심장이 멎고 뇌기능이 정지된 상태를 사망으로 보는데, 요즘은 심폐소생술이 발달하여 일시적인 사망상태에서 깨어나는 경우가 많아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1982년에 행해진 갤럽조사에서는 미국에서만도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임사체험자들의 증언에는 보통 몇 가지 패턴이 있다. 밝은 빛을 본다든가 자신의 삶을 순간적인 파노라마로 보는 것, 시공을 초월한 의식의 무한한 확장 등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한히 밝고 가볍고 안온하고 모두가 하나인 상태를 경험하고 나서 모든 집착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례도 있다. 그것은 종교를 초월한 무한한 영적세계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임사체험 연구가 종교적 영역이 아닌 수백 건이 넘는 학문적 보고서와 논문이 제출된 의학의 한 분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대다수 임사체험자들의 일관된 증언은 우리가 과학적 사유로 인식하는 물질계 말고도 영계와 같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과 육신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지 않는 의식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사체험을 하고 난 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불필요한 욕심이나 이기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늘어나며,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지향하게 되는 등 상당히 고양된 의식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증언과 연구자들의 견해는 우리의 의식이나 사유가 과학이라는 고전물리학적 프레임에 갇혀서 너무 형편없이 찌들고 쪼그라든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2020-04-30